미신 성행하던 마을이 복음의 땅으로23. 안동교구 가은본당 민지공소 안동교구 가은본당 민지공소 전경. 마을 안쪽 한적하고 볕 잘 드는 곳에 자리하고 있다. 공소의 모태는 조선 왕조 치하 박해 시기 교우촌이다. 교우촌은 대부분 깊은 산 속 험하고 가파른 골짜기에 자리했다. 박해의 칼날을 피해 비밀리에 신앙생활을 자유롭게 할 수 있는 안성맞춤의 공간이었기 때문이다. 교우촌은 말 그대로 ‘작은 교회’였다. 우리가 일반적으로 ‘신앙 선조’라 부르는 박해 시기 그리스도인들은 이곳에서 가톨릭 신앙을 대물림했다. 그들은 깊은 산 속에서도 자녀들의 신앙 교육을 결코 소홀히하지 않았다. 그들의 삶을 지탱해주던 것은 오직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뿐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버지는 아들에게(父傳子習), 어머니는 딸에게(母傳女習) 믿을 교리와 기도문, 성인들의 이야기를 외워 들려줬다. 애덕과 선교의 현장, 교우촌 교우촌 일상의 중심은 ‘기도와 전례’였다. 가정에서의 하루 시작과 마침은 기도였다. 온 가족이 함께 일어나 아침 기도를 바쳤고, 잠자리에 들기 전 저녁 기도를 했다. 혹 사제가 성사를 집전하기 위해 찾아온다는 소식을 들으면 100리 길도 마다치 않았다. 아울러 교우촌 회장이 주일 첨례를 이끌고 신앙 지도를 맡아 했다. 교우촌 모든 구성원에게 있어 기도와 전례는 하느님 은총을 받는 참 기쁨의 행위였다. 교우촌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는 애덕의 현장이었다. 주님께서는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을 그리스도인들에게 주셨다.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 이웃 사랑의 원천이고, 이웃 사랑은 하느님 사랑의 구체적 표현이다. 교우촌의 그리스도인들은 하나 된 삶을 살았다. 계급은 물론 빈부도 없었다. 기근이 들어온 조선 땅에 굶어 죽는 이가 늘어나도 교우촌에서는 끼니를 거르는 이가 없었다. 그들은 가난의 일상 속에서도 과부와 고아들을 거두고, 서로의 양식과 재산을 내놓으며 모두가 한가족처럼 생활했다. 교우촌은 선교의 현장이었다. 교우촌은 결코 폐쇄된 공간이 아니었다. 농사지은 담뱃잎과 구운 옹기를 내다 팔며 교우촌 그리스도인들은 복음을 전했다. 그들은 박해를 피해 모든 것을 버리고 온 교우들을 내치지 않고 기쁜 마음으로 품어 안았고, 복음을 받아들인 이들에게 교리교육을 해 세례를 주었다. 이에 현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교우촌에 뿌리를 둔 공소를 ‘사제가 상주하지 않는 불완전한 교회’라는 소극적 교회관을 버리고 토착화한 ‘마을 교회’라는 인식을 가져달라고 당부한 바 있다. 그래서 권 주교는 “공소 교회는 어느 한 본당의 부속 교회라는 법적 차원에서 정의할 것이 아니라 더욱 적극적으로 개별 지역 교회, 개별 부락 교회라는 ‘완전한 교회’로 이해하고 정의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공소 교회-신앙과 생활 공동체의 모델’ : 「안동 가톨릭사학」 12쪽) 공소 옆에 조성된 아담한 성모동굴. 무속에 빠져있던 마을 주민에 선교 안동교구 가은본당 민지공소는 경북 문경시 가은읍 원민지길 34(민지리 76번지)에 자리하고 있다. 민지리(泯地里)는 조선 중엽에 생긴 마을이다. 마을 뒤에 작은 못이 있는데 갈수기면 자주 바닥을 보여 ‘물 빠진 땅’이라 불렀다 한다. 민지리는 또 영강이 마을을 둘러싸고 흘러 마치 섬 같다 하여 ‘섬 안 마을’ 한자음으로 ‘도내’(島內)라 했다. 민지공소는 가은본당 관할 14개 공소, 현재 8개 활동 공소 가운데 가장 늦게 설립된 공소다. 조동희(티모테오) 초대 공소 회장이 1974년 민지리로 이사와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면서 공소의 싹을 틔웠다. 「안동 가톨릭사학」은 민지공소를 “조동식 회장의 헌신적인 봉사와 노력으로 믿음의 공동체가 형성되어 미신이 성행했던 이 지역을 그리스도화하는데 큰 공헌을 세움. 농암공소의 정아오스딩 회장과 함께 공소 설립 후 1981년 현 공소를 본당과 이웃 공소의 도움으로 건립함”이라고 간략히 소개하고 있다.(348쪽) ‘조동식’은 ‘조동희’의 오기이고, 역대 농암공소 회장 가운데 ‘정아오스딩’은 없어 아마도 농암 출신 가은본당 전교 회장 ‘신상철 아우구스티노’를 일컫는 듯하다. 신상철 회장은 아직 무속과 미신에 빠져 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가톨릭 입교를 원하는 이들에게 교리 문답을 가르치고 가정을 위한 기도를 하고 성수를 뿌리며 오래전부터 집안에 모셔둔 성주단지며 토주단지, 삼신 바가지 등을 없애는 데 힘썼다. 조동희 회장은 민지리로 이사 온 후 주일이면 4㎞ 떨어진 농암공소에 가서 공소 예절을 했기에 아마도 그때부터 신상철 회장과 알고 지낸 듯하다. 조동희 초대 공소 회장도 농한기에 술과 노름에 빠져 지내던 민지리 주민들에게 전교해 많은 이를 입교시켰다. 그는 먼저 냉담 중인 여교우 2명을 회두시킨 다음, 마을 청년들과 합심해 동네에 3개나 있는 술집을 몰아냈다. 그는 주민들에게 교회 서적을 나눠줬고, 자신의 집에서 예비신자 교리반도 열었다. 민지공소 내부.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거의 사용하지 않아 먼지가 많이 쌓여 있다. 공소 건립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 두 회장의 노력으로 민지공소는 1977년 설립됐다. 지금의 공소 건물은 1983년 7월 5일 당시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공소 봉헌 당시 현재 민지리에 31가구 주민 127명이 살고 있었는데 이들 중 39명이 세례받은 교우이고, 7명이 예비신자였다. 12평 규모의 공소 건물은 공소 교우들과 은인의 도움으로 모인 300여만 원으로 지어졌다. 민지공소 교우들은 1981년 공사를 시작해 1983년 공소를 봉헌할 때까지 2년 동안 매일같이 공소 건립을 위해 한마음으로 기도했다. 이처럼 민지공소는 마을 교회로 완전히 자리 잡게 됐다. 민지공소는 코로나19 팬데믹 이후 크게 쇠퇴했다. 가뜩이나 젊은이들이 도시로 빠져나가 한적한 마을이 됐는데 코로나 팬데믹을 겪은 후 어르신들의 수도 적지 않게 줄었다. 지금은 공소 유지를 위해 교우 몇몇이 개인적으로 공소를 찾고 있다. 민지공소는 마을 안쪽 한적한 곳에 자리하고 있다. 공소 입구에 마을 길이 나 있고, 옆은 농지이며, 뒤로는 숲을 이루고 있다. 장방형 벽돌집인 민지공소는 입구에 종탑과 그 위에 십자가를 세워 이 집이 가톨릭교회임을 드러내고 있다. 내부는 단출하다. 천장은 얇은 합판으로 덧대놓고, 벽은 흰색 도료로 칠해 놓았다. 제단을 제외한 세 벽면에는 제법 큰 십자가의 길 14처 부조가 설치돼 있다. 또 커다란 칠판에는 미사 때 부를 성가 번호가 적혀 있다. 제단 벽면은 갈색 휘장으로 둘러쳐져 있고, 제단은 제대와 독서대, 제단 십자가, 성모상으로 꾸며져 있다. 제단 맞은편에는 흰색 도료가 칠해진 낡은 회중석들이 양편으로 나열돼 있고, 성가정상과 가톨릭대사전 등 교회 서적이 놓여있다. 회중석 가운데 한 자리에는 독서대와 성경, ‘코로나19 극복을 청하는 기도문’이 놓여있는 것이 인상적이다. 아마도 이 자리의 교우가 지금의 민지공소를 힘겹게 지키고 있는 듯하다. 사람의 온기를 느끼게 하는 이 한 자리가 “예수 그리스도가 계신 곳에 가톨릭교회가 있다”는 초대 교부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주교의 가르침을 일깨워준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전문2026.06.01
![[사도직 현장에서] 교도소, 정화와 성찰의 공간](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9/02/Iq01756794984563.jpg)
[사도직 현장에서] 교도소, 정화와 성찰의 공간유정수 신부(수원교구 교정사목위원회 부위원장, cbck 한국가톨릭교정사목전국협의회 회장) “저에게 감옥은 삭막한 광야이면서 배움과 깨달음의 장소입니다.” 30년 수용생활을 이어온 한 형제의 고백입니다. 감옥은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형을 치르는 공간이지만,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가치에 눈을 뜨고 자신을 성찰하는 배움의 공간이 되기도 합니다. 수용생활은 분명 광야입니다. 대다수 수형자는 생각보다 좁고 열악한 환경에서 많은 이들과 함께 생활합니다. 범죄의 경중도, 사회적 배경도, 성격도, 기질도, 나이도 제각각인 사람들이 심지어 정신질환을 앓고 있는 분들과 한 공간에 수용됩니다. 분명 고통의 시간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생각하는 적막한 느낌의 광야는 결코 아닙니다. 성경에서도 광야는 단순히 고통의 공간만이 아닌, 정화의 자리였음을 저는 기억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율법을 받았고, 예수님께서 광야에서 기도와 단식을 통해 사명을 다지셨듯이, 감옥의 시간도 누군가에게는 새로운 삶을 준비하는 여정이 될 수 있습니다. 물론 모든 수용자가 이런 성찰의 길에 오르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이들은 억울함과 분노 속에 적개심을 키우고, 또 어떤 이들은 불필요한 자기 합리화 속에 무의미한 시간을 보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정 사목자의 역할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급격히 대두되는 ‘과밀 수용’ 문제는 이를 더욱 어렵게 합니다. 현재 교정시설 평균 수용률은 130%이며, 높은 곳은 150%가 넘어가는 현실입니다. 물론 강화된 ‘열등 처우의 원칙’(기결수용자는 자유인의 최저 수준 이하의 처우)을 주장하며 응보적 정의를 주장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과밀 수용은 오히려 재범 가능성을 높인다는 연구 결과가 보고되고 있습니다. 교정 당국도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더욱 나은 교정·교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저 역시 다양한 활동과 공동체적 경험 그리고 지원사업을 통해 부족한 환경에 매몰되지 않도록 노력합니다. ‘자신만의 시간’을 살아가는 수용자들에게 진정 중요한 것이 무엇일까 고민하는 요즘입니다. 수원교구 교정사목위 부위원장 유정수 신부cpbc2025.09.16

테살로니카 : 2000년 동안 새겨진 신앙의 그림들[월간 꿈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5) 출처: 월간 꿈CUM 서기 50년경, 인구 20만 대도시 테살로니카의 중심가. 인종, 민족, 종교가 다른 사람들이 한데 뒤섞여 북적대는 그 번잡함의 중심으로 바오로가 걷고 있다. 얼굴은 잔뜩 상기된 상태. 그럴 만도 했다. 바오로는 지금까지 필리피 등 중소도시 중심으로 복음을 전해왔다. 하지만 이제 목표는 마케도니아의 서울, 테살로니카다. 이 대도시에서의 성공 여부에 따라 유럽 대륙 복음 선포가 탄력을 받느냐 아니면, 이대로 활력을 잃고 주저앉느냐가 결정되는 상황이었다. 30일이면 충분했다. 바오로는 한 달여 동안 유대인 회당에서, 그리고 길거리에서 확신에 찬 모습으로 그물을 던졌다. 확신은 응답받는다. 그물이 터질 듯, 물고기가 올라왔다. 유대인은 물론이고 그리스 정관계 고위층까지 복음을 받아들였다. 테살로니카는 그렇게 복음의 땅이 됐다. “바오로는 늘 하던 대로 유다인들을 찾아가 세 안식일에 걸쳐 성경을 가지고 그들과 토론하였다. 그는 메시아께서 고난을 겪으신 다음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셔야 했음을 설명하고 증명하면서, ‘내가 여러분에게 선포하고 있는 예수님이 바로 메시아이십니다’ 하고 말하였다. 그들 가운데 몇 사람이 감복하여 바오로와 실라스를 따르게 되었다. 또한 하느님을 섬기는 그리스인들 가운데에서 많은 사람과 적지 않은 귀부인들도 그렇게 하였다.”(사도 17,1-4) 2000년 복음의 땅 테살로니카는 그 자체로 신앙 추억 앨범이었다. 바오로가 다녀간 이후 2000년 동안 축적된 그리스도교 신앙의 발아와 성장, 열매가 곳곳에 스크랩되어 있다. 앨범 첫 페이지에 로툰다(rotunda, 원형건물)라고 불리는 성 게오르기오스(St. Georgios) 성당이 있다. 로마 제국 동부를 다스리던 황제 갈레리우스(242~311)가 자신의 무덤으로 설계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건물은, 종교 자유 이후 순교자 성 게오르기오스(? ~ 361)에게 바치는 교회로 바뀌었다. 테살로니카의 수호성인을 모신 성 디미트리우스(St. Demetrius) 성당도 빼놓을 수 없다. 군인이었던 디미트리우스는 그리스도인들을 죽이라는 명령을 어겼다가 순교한 전설적인 인물이다. 412년에 재건, 7세기의 확장을 거쳤고, 1917년 화재 이후 1948년 새로 건축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 현재 그리스에서 가장 큰 정교회 성당이다. 성 디미트리우스 성당 내부 8세기에 가톨릭 교회 성당으로 건축되었다가 지금은 정교회 성당으로 사용되는 성 소피아 성당의 웅장함도 추억 앨범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장식하고 있다. 또 450년경 건축된 성모 바실리카(Basilica of the Virgin)도 1500년 역사의 깊이를 온 몸으로 만날 수 있는 신앙 공간이다. 거리 안내 표지판에는 이 성당이 ‘아케이로포이에토스’(Acheiropoietos)로 표기되어 있는데, 이는 ‘그리스도가 친히 만들어 준 것’이라는 뜻이다. 이밖에도 테살로니카는 1246년 건립된성 가타리나(St. Catherine) 성당 등 수많은 신앙 추억을 품고 있다. 하지만 이 모든 성당은 500여년간(1430~1912) 오스만 제국이 점령하면서 이슬람 사원으로 바뀌었는데, 그리스 독립 후에 다시 정교회로 자리를 잡아 지금에 이르고 있다. 모든 열매의 맨 앞줄에 바오로 사도가 있다. 그렇다고 해서 테살로니카 전교가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성 디미트리우스 성당 유대인들이 문제였다. 유대인들은 바오로 사도가 유대교 회당에서 설교하며 수많은 사람을 입교시키자 이를 곱지 않게 봤다. 그래서 시 당국에 이렇게 고발한다. “그자들은 예수라는 또 다른 임금이 있다고 말하면서 황제의 법령들을 어기고 있습니다.”(사도 17,7) 이들의 협박이 얼마나 살벌했는지, 신자들이 바오로 사도를 ‘베로이아’라는 곳으로 피신시켜야 했을 정도였다.(사도 17,1-10 ; 1테살 2,13-16참조) 그러자 유대인들은 베로이아까지 쫓아와 훼방을 놓았고, 결국 바오로는 위협을 피해 아테네까지 가야 했다.(사도 17,10-15 참조) 쫓겨나듯 아테네로 향하는 바오로의 머릿속에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얼굴이 떠나지 않았다. 몸은 떨어져 있지만, 마음은 늘 테살로니카에 있었다. “몸만 떨어져 있을 뿐이지만, 우리는 간절한 열망으로 여러분의 얼굴을 다시 보려고 갖은 애를 썼습니다. … 나 바오로가 여러 차례 가려고 하였습니다.”(1테살2,17-18) 아테네로 향하는 바오로의 뒤를 따라가기로 했다. 아테네로 향하는 그 복음 선포의 길, 바오로의 길 위에서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바오로는 왜 테살로니카를 그토록 그리워했을까. 나는 지금 무엇을 그리워하고 있는가. 내 안에는 그리움이 있는가. 내 안에는 과연 테살로니카가 있는가. 테살로니카 항구 전경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cpbc2026.02.12

AI가 인간의 형상인가? 인간이 AI의 형상인가? 우리가 물어야할 곳[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3) 한 인간으로서 ‘개인’은 자기 자신과 세상의 진리를 알기 위해 가장 먼저 부모에게 질문하고 부모로부터 답을 얻습니다. 그러다 점차 어른이 되어 가면서 사회 혹은 세상에 묻고 사회나 세상으로부터 답을 얻게 됩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세상으로부터 거짓과 부조리를 경험하게 되면, 방황하게 되고 극단적으로는 안다는 자체를 회의하기까지 합니다. 우리는 진리를 알기 위해 어디에 묻고 어디에서 답을 찾아야 할까요? 맹자는 「진심 上」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합니다. 물론 이것은 맹자 고유의 말이 아니라 유학사상 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사고방식이라 할 수 있습니다. 盡其心者 知其性也 知其性則知天矣 「맹자, 진심 上」 마음을 다하면 본성을 알 수 있고 그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게 된다. 하늘이 인간의 본성(인간다움)을 부여했기에 인간은 하늘이 부여한 본성을 알면 하늘을 알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본성은 인간의 마음속에서 떨리는 울림의 느낌으로 우리에게 말을 걸어옵니다. 그 울림에 귀를 기울이는 것은 누가 대신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나 개인에게 주어진 소명입니다. 마음을 다해 본성을 안다는 것은 오직 나 개인이 홀로 하늘을 대면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한 개인은 하늘 앞에 서서 묻고 답을 구합니다. 인류사적으로 인간은 신화의 시대에 신들에게 묻고 신들에게서 답을 구했습니다. 자연학이 발달하면서 자연에 묻고 자연에서 답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현대는 인간이 주인이 되어 스스로 이성에 묻고 이성에서 답을 구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시대를 대면하고 있습니다. AI 인공지능에게 인간은 묻고 그에게 답을 얻는 시대가 열리고 있습니다. 제한된 정보와 오류, 거짓과 편견투성이인 인간보다 헤아릴 수 없는 정보와 빠른 판단의 인공지능 능력이야말로 거의 신의 능력에 가깝습니다. 이제 대학에서조차 인간 이성이 아니라 챗(Chat) GPT에 자리를 내주게 될 위기에 처했습니다. 편리한 인공지능에 대한 과도한 믿음과 의존이 우리의 삶을 과연 윤택하게 만들어줄지는 의문스럽습니다. AI 인공지능은 최대한 많은 데이터 정보를 빠르게 입력 저장하는 데서부터 시작합니다. 마치 인간이 태어나 많은 경험을 축적하는 것으로부터 학습되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AI 역시 인간과 같이 학습한 정보를 바탕으로 종합판단을 합니다. 이제 챗 GPT가 인간과 대화하면서 종합판단을 내려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일상생활 깊숙이 인공지능에 묻고 답을 구하는 시대가 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인공지능이 흡수한 기초 데이터 정보가 상당수 왜곡된 거짓이라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인류가 쌓아온 지식은 구분하기조차 어렵게 거짓과 진실이 얽혀 있고, 언젠가 뒤집힐 내용들이 많습니다. 또 역사는 그렇게 반복되어왔습니다. 완벽해 보이는 논리, 군더더기 없는 형식, 어떤 전문가보다 다양하고 많은 지식이 귀결된 인공지능의 답변 뒤에 숨겨진 거짓 우상에 광신적 믿음으로 살게 되는 것은 아닐까요? 그 믿음으로 인간은 신과 같이 전지한 능력을 갖추게 되는 것 같지만, 그렇게 믿고 사는 세계가 계몽이 아니라 플라톤이 말한 동굴 속이 되는 것은 아닐까요? 맹자가 하늘을 대면하여 그 앞에서 답을 구한 것은 1+3=4와 같은 객관적 진리가 아니었습니다. 오직 나 개인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는지 인간 실존과 구원을 물은 것입니다. 그 길의 기준이 하늘이 부여한 마음속 울림에 있기 때문에 맹자는 그 본성(性) 앞에 서 있으라 한 것입니다. AI에 대한 광신적 믿음이 ‘인간다움’의 길조차도 그 앞에서 묻고 답을 구하는 시대가 온다면 인공지능이 만들어준 레시피에 따라 움직이는 꼭두각시 인형이 되는 것은 또 아닐까요? 지금까지 인간이 주인이 되어 만든 산업 자본주의 세계와 소비 세계는 더 많은 정보와 더 빠른 처리, 더 많은 이익을 창출해줄 AI인공지능 시대를 재촉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을 모방하여 만든 인공지능에게 모든 것을 묻고 모든 답을 구한다면 인간이 인공지능의 모상(형상)이 되어 버리는 역전의 날도 오지 않을까 매우 염려스럽기도 합니다. 덴마크의 키에르케고르는 ‘신 앞에 선 단독자(개인)’라는 말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느님 앞에 보편적 인간도 아니고, 추상화된 객관적 진리도 아니며, 세상에 의해 만들어진 대중으로서도 아닌, 고뇌하며 절망하고 불안한 오직 ‘나’라는 고유한 ‘개인’으로 ‘신’ 앞에 서라 말했습니다. 그때 우리에게 참된 진리가 다가오기 때문입니다. 맹자는 키에르케고르처럼 하늘을 신이라 말하지 않지만 인간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소리에 스스로를 세워놓으라 합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형상이라면, 인간은 내면 깊은 곳에서 울리는 하느님의 울림에 고독해도 홀로 자신을 세워놓아야 합니다. AI 앞에 맹목적 믿음으로 자신을 세워놓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랍니다.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06.10
![[전문]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부활 담화](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4/01/N7O1775032833807.jpg)
[전문] 군종교구장 서상범 주교 부활 담화 “이날을 기뻐하며 즐거워하세. 알렐루야, 알렐루야!”(시편 118,24)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우리 주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돌무덤의 죽음으로부터 승리하시고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주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며, 여러분 모두에게도 부활의 은총이 가득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축하 인사를 전합니다. 알렐루야. “네 오빠는 다시 살아날 것이다.”(요한 11,23) 예수님께서는 베타니아에 살던 마리아와 마르타 자매, 그리고 오빠 라자로를 친구처럼 대하시며 사랑하셨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라자로가 병을 앓다 죽게 되었고, 그가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났을 때 예수님은 베타니아로 가셨습니다. 그리고 “주님, 죽은 지 나흘이나 되어 벌써 냄새가 납니다.”라고 말하며 죽음 앞에 무력함을 고백하던 이들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라자로야, 이리 나와라.”(요한 11,43) 하고 말씀하시며 라자로를 소생시키셨습니다. 이후 라자로가 얼마를 더 살았는지 성경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분명 라자로는 예수님을 공경하며 따르다가 결국 육신의 죽음을 맞았을 것입니다. 인간이면 누구나가 건강히 오래오래 살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이러한 인간의 원의는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마태 28,7) 부활 대축일의 복음은 베드로와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다른 한 제자가 예수님의 시신을 모셨던 ‘빈 무덤’ 안에서 수의로 쓴 아마포와 잘 개켜진 얼굴을 쌌던 수건을 보았고, 예수님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말씀을 믿었다고 전해 줍니다. 이후 베드로 사도는 “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사도 10,39-40)라고 증언합니다. 예수님께서 이미 죽은 지 나흘이나 지난 라자로에게 “이리 나와라.”라고 명하심으로 소생시키셨다면, 하느님께서는 돌무덤에 묻힌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시어 부활하게 하셨습니다. ‘빈 무덤’은 예수님 부활을 처음으로 드러낸 표징입니다. 그런데 라자로와 예수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라자로가 얻은 것은 단순히 이 세상에서의 삶이 잠시 연장된 소생이었다면, 예수님의 부활은 모두가 간절히 염원한 영원한 생명, 구원의 완성이었다는 점입니다.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콜로 3,1) 안타깝게도 우리는 불안한 세계 정세 속에서 매일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테러와 전쟁, 자연 재해와 기근, 각종 사건과 사고 소식은 우리의 삶을 어렵고 힘들게 만듭니다. 이런 상황에서 레오 14세 교황님께서는 연일 세계평화를 말씀하시며, “하느님을 부르는 자는 평화를 추구해야 한다.” 또 “어떤 이들은 감히 죽음을 정당화하기 위해 신의 이름을 빌려 쓰려한다. 그러나 신은 어둠의 편에 서실 수 없다.”라고 하시면서, 희생자들을 위해 기도하고 대화의 길로 나아가기를 촉구하고 계십니다. 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아났으니, 저 위에 있는 것을 추구하십시오. 거기에는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아 계십니다. 위에 있는 것을 생각하고 땅에 있는 것은 생각하지 마십시오.”(콜로 3,1-2) 우리는 모두 예수님의 십자가상 죽으심을 통해서 부활의 영생을 선물로 받은 복된 사람들입니다. 영원히 살고 싶다는 인간의 바람이 그분의 부활을 통하여 우리 안에서 실현되었습니다. 부활의 희망으로 우리는 현세의 고통을 극복할 힘과 근거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진정으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것은 언제나 하느님을 바라보며, 영원한 생명에 대한 희망과 감사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마태 28,10)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다른 마리아에게 이르십니다.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예수님께서 제자들과의 재회 장소로 지목하신 ‘갈릴래아’는 어떤 곳입니까? 바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공생활의 주무대였습니다. 그곳에서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이 제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갈릴래아 카나의 혼인 잔치(요한 2,1-12)에서는 물을 포도주로 변하게 하시어 잔치의 기쁨을 더하시는 표징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리고 산상설교(마태 5-7장)를 통하여 참 행복을 전파하셨습니다. 한마디로 예수님과 제자들, 메시아를 바라던 백성들 사이에 사랑이 시작되고 꽃을 피운 장소였습니다. 하느님과의 만남과 영적 체험이 이루어진 곳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에게 ‘갈릴래아’는 어디일까요? 매 주일 말씀을 듣고 성체를 받아 모시는 바로 이 성당이기도 하고, 우리가 사는 생활관, 각자의 가정, 또 주특기에 따라 임무를 수행하는 자리가 바로 우리의 갈릴래아입니다. 그곳이 바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2026년 부활 메시지 예수님께서는 바로 그곳에서 우리가 당신의 부활을 드러내는 평화의 도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곳에서 주변의 지친 이들에게 평화와 위로를 건넬 때 우리 또한 영적 기쁨을 얻어 누릴 수 있습니다. ‘평화의 파수꾼으로서 기도하는 천주교 신자 군인이 됩시다.’ 사랑하는 군종교구민 여러분! 지금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우리의 선행이 결실을 맺기 위해 기도하는 가운데 부활의 빛과 기쁨을 이웃에게 전하며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을 마주하는 각자의 갈릴래아에서 늘 기도하는 천주교 신자 군인이 될 것을 다짐하며, 서로를 격려합시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주시는 참 기쁨이 전후방 각지에서 수고하는 여러분 모두에게 함께하기를 기도합니다. 2026년 부활절에 천주교 군종교구장 서상범 티토 주교 cpbc2026.03.31

이슬람 문화 속 그리스도교의 숨결 품은 ‘성 소피아 성당’ 레오 14세 교황 첫 해외 사목 방문지, 튀르키예에서 만나는 신앙 유산 <상> 이스탄불 블루 모스크에서 바라본 성 소피아 성당. 비잔틴 건축 양식에 이슬람을 상징하는 네 개의 첨탐이 더해진 모습이다. 레오 14세 교황이 27일부터 12월 2일까지 튀르키예와 레바논을 찾는다. 교황 즉위 후 첫 해외 사목 방문으로, 올해 니케아(현 튀르키예 이즈니크) 공의회 1700주년을 맞아 교회 일치를 구현하겠다는 의지다. 27일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에 도착한 교황은 종교 간 대화를 위해 28일부터 이스탄불에서 본격적인 사목 일정에 나선다. 그런데 왜 이스탄불에서일까? 비잔틴 건축 걸작 ‘성 소피아 성당’ 313년 밀라노 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한 콘스탄티누스 대제는 330년 로마 제국의 수도를 로마에서 콘스탄티노폴리스로 옮겼다. 4세기 말 테오도시우스 1세가 자신의 두 아들이 다스리도록 로마 제국을 동서로 나눈 뒤 5세기 중반 서로마 제국은 멸망했지만, 동로마 제국은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기 전까지 천 년간 중세 그리스도교와 동방 교회의 중심이 됐다. 오스만 제국의 수도 역시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이스탄불로 이름만 바뀌었을 뿐이다. 지금의 이스탄불은 보스포루스 해협을 사이로 유럽과 아시아가 만나고, 그리스도교와 이슬람교의 문화가 공존하는 이색적인 도시다. 특히 성당 건축과 성화로 대표되는 비잔틴 예술의 걸작을 확인할 수 있는 곳이다. 그 선봉에 성 소피아 성당이 있다. 레오 14세 교황이 이번 사목 방문에서 지역 교회 및 그리스도교 공동체 지도자들과 비공개 회동하는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스어 ‘하기아 소피아(Hagia Sophia)’에서 유래한 ‘성 소피아(Sancta Sophia, 라틴어)’ 성당은 ‘성스러운 지혜’라는 뜻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킨다. 현지에서는 ‘아야소피아’(Ayasofya, 튀르키예어)로 불린다. 지금의 성당은 같은 자리에 세워진 세 번째 건축물이다.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건축을 명한 첫 번째 성당은 360년 콘스탄티누스 2세 때 완공됐다. 그러나 404년 폭동으로 불타 테오도시우스 2세에 의해 다시 지어졌다. 이마저도 532년 니카의 반란 중 화재로 소실됐다. 지금의 성당 구조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반란을 진압하자마자 재건을 시작해 537년 완공한 것이다. 니케아 공의회 이후 바실리카는 교회 건물의 표준 모델이 됐다. 국내 및 유럽에서 방문하는 역사적인 성당의 내부 구조다. 비잔틴 건축 역시 기본적으로 바실리카 양식을 따르지만, 성당 중앙을 정사각형으로 조성하고 그 위에 대형 돔을 올리는 차이가 있다. 이른바 그릭 크로스(Greek Cross) 구조로 안정감을 주며, 중앙 돔 외에도 여러 개의 돔을 만들어 조화를 이룬다. 이 양식은 이후 이슬람 사원인 모스크 건축에도 계승됐다. 성 소피아 성당과 지척에 있는 블루 모스크(1617년 완공)의 구조가 비슷한 이유다. 당대 뛰어난 건축공학자들의 노력과 제국 각지에서 조달된 석재로 6년이 채 안 되는 기간에 지어진 성 소피아 성당은 비잔틴 건축을 대표하는 걸작으로 지금껏 사랑받고 있다. 회중석 위의 중앙 돔은 그 지름이 약 31m, 바닥에서 천장까지의 높이가 57m에 달하며, 중앙 돔 하단부에 있는 40개의 창문으로 들어오는 빛이 신비로움을 자아낸다. 중앙 돔과 돔을 지지하는 기둥 및 벽면에는 수많은 성화가 새겨져 있다. 비잔틴 예술을 대표하는 모자이크 및 프레스코화다. 모자이크는 다양한 색깔의 돌·유리·조개껍데기 등을 사용했고, 사이사이 금박의 조각을 넣어 금빛 성스러움을 표현했다. 1 심판의 날 예수님께 인류를 구원해 달라고 성모 마리아와 요한 세례자가 간청하는 모습이다 2 예수님이 왼손에는 성경을 들고 오른손을 들어 축복하고 있다. 3 성 소피아 성당 내부. 대형 돔 아래 귀퉁이에 세라핌이 새겨져 있다. 곳곳이 모스크로 개조됐다. 4 천으로 가려진 성모자상은 무슬림이 기도하는 1층에서는 보이지 않는다고 한다. 성모자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성 소피아 성당을, 오른쪽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들고 있다. 회칠 벗겨내고 복원한 모자이크 성화 성당 내부를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중앙 돔 아래 귀퉁이에 세라핌이 그려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사진3 참조) 과거 제단 위인 돔 안쪽에는 성모님과 아기 예수님의 모습도 있다.(사진4 참조) 성상 파괴가 한창이던 9세기에 제작된 모자이크화인데, 지금은 천으로 가려졌다. 성당을 대표하는 작품은 1261년에 만들어진 모자이크화로 절반 이상이 훼손됐다. 심판의 날 왼쪽의 성모 마리아와 오른쪽의 요한 세례자가 중앙의 예수님께 인류를 구원해 달라고 간청하는 모습이다. 벽화의 오른쪽 아래에는 복원된 소형 그림이 걸려 있다..(사진1 참조) 푸른 옷을 입은 예수님 양쪽으로 콘스탄티누스 9세와 조에 황후의 모습을 담은 작품도 있다. 예수님은 왼손에 성경을 들고, 오른손을 들어 축복하고 있다. 얼굴 뒤로 십자가형 후광이 비치고, 그 좌우로 예수 그리스도를 뜻하는 그리스어 약자 IC와 XC가 새겨져 있다..(사진2 참조) 출구 바깥쪽 위에는 성모자와 두 황제의 모습이 담겨 있다. 아기 예수님을 안고 있는 성모 마리아를 중심으로 왼쪽에는 유스티니아누스 1세가 성 소피아 성당을, 오른쪽에는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상징하는 건축물을 들고 있다. 10세기에 제작된 것으로 알려진다..(사진5 참조) 압도적인 이들 성화에도 가톨릭 신자에게는 성 소피아 성당이 낯설게 느껴질 수 있다. 익숙한 바실리카 양식이 아닌 데다 십자가나 제대마저 없기 때문이다. 실제로 성 소피아 성당은 정치적·종교적으로 변화무쌍한 이스탄불의 역사를 온몸으로 겪었다.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폴리스를 점령한 뒤 라틴 제국을 선포했을 때는 50여 년간 가톨릭 성당으로 바뀌었고, 1453년 오스만 제국이 들어서면서부터는 481년간 모스크로 변경됐다. 20세기 튀르키예 공화국에 이르러 1934년부터는 박물관으로 세계인을 맞았으나, 2020년 다시 모스크로 전환됐다. 오스만 제국 시절 성당의 십자가는 내려졌고, 벽면을 장식하고 있던 수십 개의 성화도 회칠로 덮였다. 이슬람 건축 양식에 따라 계단 형식의 설교단인 민바르와 메카의 방향을 나타내는 벽감인 미흐랍이 추가됐고, 외부에는 네 개의 첨탑 미나렛도 더해졌다. 그나마 지금 감상할 수 있는 성화는 박물관으로 바뀌었을 때 회칠을 벗겨내고 복원한 것이다. 이슬람 문화 속에 여전히 숨 쉬고 있는 그리스도교의 숨결인 셈이다. 기자가 방문했던 2025년 10월에는 무슬림이 아닐 경우 2층만 개방돼 성당과 성화를 온전히 볼 수는 없었다. 성 소피아 성당에 비해 규모는 작지만 모자이크 성화를 만끽할 수 있는 코라 구세주 성당은 다음 주에 만나보자.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5.11.18
![[전문]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부활 담화](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4/01/AN21775029481346.jpg)
[전문]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대주교 부활 담화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에서 나를 보게 될 것이다.”(마태 28,10)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하신 주님의 평화가 여러분과 함께하기를 빕니다. 오늘 복음은 어둠이 채 가시지 않은 새벽, 무덤을 찾은 여인들의 발걸음에서 시작됩니다. 그들의 가슴에는 스승을 잃은 슬픔과 세상의 불의에 대한 절망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복음 말씀에는 슬픔에서 기쁨으로, 절망에서 희망으로 변하는 ‘위대한 역전’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이 마주한 것은 죽음의 흔적이 아니라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라는 희망의 선포였습니다. 1. 무덤의 돌을 굴려내는 용기 여인들이 무덤에 갔을 때, 그들의 마음은 커다란 돌덩이로 막힌 것처럼 무거웠을 것입니다. 그들은 무덤을 막은 그 큰 돌을 누가 치워줄까 고민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무덤의 돌을 옆으로 굴려내자 무덤을 지키던 경비병들은 두려워 떨며 까무러쳤습니다. 그러나 주님을 진심으로 찾았던 여인들에게 천사는 “두려워하지 마라”(마태 28,5)라고 위로합니다. 우리의 인생에도 나 혼자서는 도저히 치우기 어려운 ‘마음의 돌’이 있습니다. 본의 아니게 오해받았을 때의 노여움, 터무니없는 처우를 받았을 때의 황당함, 급변하는 상황에서의 경제적인 불안, 가족이기 때문에 겪을 수밖에 없는 갈등 등과 같은 개인적인 것들이 있습니다. 또한 힘의 논리만 남은 국가 위기 앞에서도 자신의 이익만을 좇는 일부 지도자들의 이기심, 경제적 양극화로 아무리 노력해도 가난을 벗어나기 어려운 사람들의 무력감, 가짜뉴스에 매몰되어 진실을 외면한 채 일방적인 주장으로 공동체를 분열시키는 어리석음 등과 같은 사회적인 돌들도 있습니다. 부활은 이러한 돌들을 치우고 어둠 속에서 빛을 향하여 걸어 나오는 용기입니다. 우리 시대의 상실과 아픔을 직시하고 그 곁을 굳건히 지키면서 내가 할 수 있는 만큼 함께 하는 것이 바로 무덤의 돌을 굴려내는 일입니다. 오늘 우리를 짓누르는 걱정들을 주님 무덤 앞에 내려놓읍시다. 주님께서 “두려워 말라”(마태 28,10 참조)라며 우리 손을 기꺼이 잡아 주실 것입니다. 2. “말씀하신 대로” 주님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 오늘 복음에서 천사는 아주 중요한 말을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마태 28,6) 예수님은 빈말을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하신 약속,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4 참조)라고 하신 약속을 부활을 통해 증명해 보이셨습니다. 삶이 막막할 때 세상의 화려한 말들에 귀 기울이기보다, 우리 곁에 놓인 성경 말씀을 펼쳐보십시오. 주님은 당신 삶으로 말씀이 이루어지도록 실천하셨습니다. 절망하는 사람들에게는 희망을, 슬퍼하는 이들에게는 위로를, 굶주리는 이들에게는 나눔을, 죽음을 두려워하는 인류에게는 당신의 부활로 말씀이 이루어짐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럼으로써 주님은 우리에게 변치 않는 희망으로 삶의 용기를 주시고 모든 방식으로 우리 곁에 살아계십니다. 3. 가장 낮은 곳, 갈릴래아로 가라는 초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여인들에게 건네신 첫 마디는 “평안하냐?”(마태 28,9)였고 이어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마태 28,10 참조)라고 하셨습니다. 왜 하필 갈릴래아입니까? 갈릴래아는 제자들이 그물을 던지며 물고기를 잡던 삶의 터전이자, 하루하루 땀 흘려 일하는 평범한 이들과 아픈 이들이 모여 살던 소박한 곳이었습니다. 예수님은 화려한 예루살렘의 권좌가 아니라, 고통받는 이들의 눈물 섞인 삶의 현장으로 먼저 가 계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갈릴래아는 어디일까요? 국정은 점차 안정을 찾아가고 있지만 민생의 삶은 여전히 어렵기만 합니다. 경제적 어려움은 단순히 돈 문제를 넘어 사람들을 심적으로도 여유가 없게 만듭니다. 작은 말에도 쉬이 상처받고 주변보다는 자신을 챙기는 데 급급하게 됩니다. 이렇게 어려울 때일수록 마음 한 자락 내어 도움이 필요한 이웃들의 손을 잡아 주어야 할 것입니다. 일자리를 잃은 노동자, 돌봄이 필요한 어르신과 장애인, 취업 준비로 지쳐가는 자녀들, 은퇴 이후에도 구직활동을 할 수밖에 없는 가장들, 억울한 일을 당해도 제대로 하소연할 수조차 없는 이주노동자들, 그리고 사회적 참사로 눈물 흘리는 이들이 바로 그들입니다. 우리는 그들과 함께할 때 부활하신 주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거창한 도움이 아니라 따뜻한 말 한마디, 재능 나눔, 이웃을 향한 작은 관심 등이 바로 우리가 갈릴래아에서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는 방법입니다. 4. 부활은 “함께 걷는 여정”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부활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우리가 서로의 상처를 보듬고 안부를 물으며 챙길 때, 주님은 우리 가운데 현존하십니다. 삶이 그리 녹록지 않은 것이 현실이지만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이로써 세상의 두려움을 떨치고 일어납시다. 부활하신 주님께서 우리보다 앞서 갈릴래아로 가고 계십니다.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 더 낮은 곳으로 더 소외된 곳으로 함께 걸어갑시다. 그 여정 끝에 살아계신 주님께서 우리를 환한 미소로 맞아주실 것입니다. “그분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 함께 기뻐합시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26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 천주교 광주대교구장 옥현진 시몬 대주교 장현민2026.03.30

건축으로 읽는 삼위일체의 신비, 발트자센 카플 순례 성당[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76. 독일 발트자센 카플 성 삼위일체 순례 성당 발트자센 인근 글라스베르크(628m)에 자리한 카플 성 삼위일체 순례 성당. 게오르크 딘첸호퍼가 1685~1689년 세운 중앙집중식 바로크 양식 성당으로, 세 개의 반원형 공간과 세 개의 탑, 세 개의 지붕탑이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현재는 뮌헨로이트 성 에메람본당이 순례 사목을 담당하고 있다. 시토회 수도원의 도시 발트자센 1786년 9월 3일 새벽 3시, 독일의 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는 카를스바트, 오늘날 체코의 카를로비바리를 몰래 빠져나와 마차에 오릅니다. 훗날 「이탈리아 기행」이 될 긴 여행의 출발이었습니다. 괴테는 정오 무렵 바이에른에 들어서며, 사방이 비옥하고 완만한 언덕들로 둘러싸인 발트자센 수도원과 처음 마주합니다. 거대한 수도원과 주변의 드넓은 농경지, 물줄기의 흐름을 관찰하면서도 과거 가톨릭 성직자들의 선견지명에 대해 유머러스하게 평가합니다. 괴테는 발트자센 수도원이 단순한 종교 건물이 아니라 지역의 삶을 일구고 가꿔 나가는 핵심임을 잘 알고 있었지요. 실제 발트자센(Waldsassen)은 시토회 수도원이 황무지를 개간해 발전시킨 도시입니다. 이곳의 이름부터가 ‘숲 속의 자리’라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1133년 디폴트 3세 방백이 시토회 수도자들을 불러 이곳에 수도원을 세웠고, 1147년 국왕 콘라트 3세의 보호와 특권을 받으며 제국 직속 수도원으로 성장합니다. 중세의 시토회 수도자들은 기도만 한 것이 아닙니다. 숲을 개간하고, 연못과 물길을 다스리며 농경지를 넓혀 나갔습니다. 그렇게 마을이 형성되었기에 오늘날에도 이곳을 슈티프트란트(Stiftland), 곧 ‘수도원이 일궈낸 영지’로 불립니다. 카플 성 삼위일체 순례 성당 천장화. 1880년 화재 후 오스카르 마르틴이 1934~1940년에 새로 그린 천장화로 세 반원형 공간(Concha)이 정삼각형처럼 맞물린 중앙집중식 구조 위에 성부·성자·성령의 도상이 펼쳐져 있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 완성된 오른쪽 돔 성령 천장화는 전쟁 장면을 배경으로, 고통받는 이를 돕고 위로하는 그리스도인의 자비 실천을 함께 보여준다. 독창적 원형 구조의 바로크 양식 순례 성당 오늘날도 발트자센의 중심은 수도원입니다. 19세기 세속화 이후 수도원이 아니라 수녀원이 되었지만, 수도원 바실리카와 바로크 양식의 도서관은 지금도 이곳의 얼굴로 순례자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그런데 신자라면 수도원의 매력에만 빠지고 돌아오면 아쉽습니다. 수도원에서 3.5㎞ 떨어진 언덕 위에 삼위일체의 신비를 몸으로 체험할 수 있는 카플 순례 성당이 있기 때문입니다. 발트자센에서 카플 순례 성당까지 가는 길은 인기 있는 하이킹 코스입니다. 동네를 벗어나 숲 속으로 쭉 뻗은 길은 유모차도 갈 정도로 완만한 오르막길입니다. 숲속 묵주기도 기둥 길을 따라 언덕을 올라가는 길만으로 이미 순례자의 모습으로 변모합니다. 언덕길 끝 흰 벽에 검은 양파형 지붕을 얹은 카플 순례 성당이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름은 소성당을 뜻하는 독일어 ‘카펠레’에서 유래했지만, 전혀 작은 성당이 아닙니다. 게다가 바이에른 북부에서 보기 드문 독창적인 원형 형태의 성당입니다. 카플 성 삼위일체 순례 성당의 주 제대와 본랑. 붉은빛 스투코 대리석으로 꾸민 주 제대는 1700년 무렵의 작품. 제대화에서 옛 순례 소성당의 모습을 볼 수 있다. 평수사의 기도에서 시작된 성지 발트자센 수도원이 세워질 무렵, 수도원의 평수사들이 이 언덕으로 나와 가축을 키웠습니다. 그들은 일터의 한 나무에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성화를 걸고 기도하곤 했지요. 기적이 일어난다는 소식에 사람들이 찾아오기 시작했고, 12세기 후반에 성화를 보호하고 순례자들이 기도할 수 있도록 목조 소성당이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이 작은 성지도 후스전쟁과 란츠후트 계승전쟁을 거치며 파괴되고 맙니다. 종교개혁 이후에는 사실상 폐허에 가까운 상태로 남아 있었죠. 다시 삼위일체 신심의 불씨가 살아난 것은 17세기였습니다. 1644년에 치유의 기적 소식이 퍼지면서 순례자들이 다시 찾아왔고, 새 소성당도 세워졌습니다. 현재 원형 형태의 카플 성당은 17세기 후반 발트자센 수도원 재건과 같은 흐름 속에서 태어났습니다. 1685년 발트자센 수도원 재건에도 참여한 건축가 게오르크 딘첸호퍼가 공사를 맡았습니다. 그는 기존 소성당을 허물지 않고, 새 성당을 옛 소성당 바깥에 둘러싸듯 짓고는, 지붕과 궁륭이 완성된 뒤에야 옛 건물을 철거했습니다. 건축가로서 순례의 연속성을 끊지 않으려는 고민의 산물이었죠. 발트자센 시토회 아빠티스좌 수녀원(위)과 도서관(아래). 1133년 창립된 옛 시토회 아빠스좌 수도원이었으나, 1803년 세속화 정책으로 폐쇄된 뒤, 1863년 재건되어 현재는 시토회 수녀들이 생활하고 있다. 독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방으로 꼽히는 수도원 도서관은 18세기 초 오이겐 슈미트 아빠스 재임 중 바로크 양식으로 꾸며졌으며, 카를 슈틸프의 목조 인물상과 천장화가 신앙과 학문의 세계를 함께 보여준다. 건축으로 이해하는 삼위일체 신비 카플 순례 성당 앞에 서면 ‘3’이라는 수가 먼저 떠오릅니다. 흰 벽 위로 검은 양파형 지붕을 얹은 세 개의 큰 원탑이 솟아 있고, 지붕 위에도 세 개의 작은 탑이 반복됩니다. 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이 상징은 더 분명해집니다. 성당은 장방형 구조가 아니라 세 개의 반원형 공간(Concha)으로 구성된 중앙집중식 구조입니다. 세 공간이 보이지 않는 정삼각형을 감싸듯 서로 맞물려 배치되어 있고, 각 공간의 천장화는 성부·성자·성령을 구현하고 있지요. 이는 단순히 기발한 설계가 아닙니다. 중세 성경 주해가 한 단어와 숫자에서 여러 층의 의미를 읽어내듯, 삼위일체를 상징하는 숫자 3을 건축의 문법으로 삼은 겁니다. 동쪽의 주 제대와 북쪽의 성가정 제대, 남쪽의 성모 승천 제대가 성당 중심을 향해 배치된 모습도 삼위일체를 상징합니다. 카플 순례 성당은 삼위일체 교리를 말로 설명하지 않습니다. 성부·성자·성령은 서로 구별되지만 한 분이신 하느님이라는 삼위일체 신앙을 성당 전체가 시각적으로 드러냅니다. 성당 마당에 서면 슈티프트란트 특유의 구릉 지대가 눈에 들어옵니다. 그 너머로 괴테가 지나왔던 보헤미아의 숲과 국경도 어른거립니다. 괴테가 발트자센에서 수도원이 만든 땅의 질서를 보았다면, 카플에서는 신앙의 신비가 공간으로 해석되는 순간을 경험합니다. 신비는 멀리 있는 추상적인 개념이 아니라, 때로는 중세 평수사들의 일터 그림으로, 때로는 길에서 만나는 성당에서 체험할 수도 있음을 깨닫습니다. <순례 팁> ※ 체코 카를로비바리에서 발트자센까지 약 53㎞, 레겐스부르크/뉘른베르크에서 약 125~130㎞. 발트자센 시내에서 카플 순례 성당까지 약 3.5㎞(도보 약 40분). 발트자센 수도원 바실리카와 도서관을 먼저 둘러본 뒤, 순례 성당으로 이동. 성당 옆에 비어가르텐이 있다. ※ 카플 순례 성당 미사: 주일과 대축일 09:30 (주님 수난 성지 주일~모든 성일 대축일 전 주일), 삼위일체 대축일의 ‘카플 축제’ 미사 09:30·11:00 ※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cpbc2026.05.27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1주일 - 세상이란 광야에서 하느님 만나기](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3/04/zpt1741071604935.jpg)
[생활속의 복음] 사순 제1주일 - 세상이란 광야에서 하느님 만나기 이계철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유다 광야. 가톨릭평화신문 DB 사순 첫 주일입니다. 파스카 부활 축제를 준비하며 기도와 자선과 재계(단식과 고행)로 속죄하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는 시기입니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후 40일 동안 단식하시고 악마로부터 유혹을 받으신 이야기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유혹이지만, 유혹의 내용을 새겨보면 신앙인 누구나 살아가면서 겪게 되는 유혹이기도 합니다. 첫 번째 유혹은 ‘하느님의 아들이거든 돌을 빵이 되게 하라’며 ‘빵’으로 표현된 부귀영화의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따라 ‘사람이 빵만으로 살지 않는다’(신명 8,3)하시며, 청빈과 하느님 말씀의 진리로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두 번째 유혹은 ‘내 앞에 경배하면 모든 권세와 영광이 담긴 세계의 모든 나라를 주겠다’며 ‘높은 곳’으로 표현된 ‘권력과 명예’의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따라 ‘주 너의 하느님을 경외하고 그분만을 섬겨라’(신명 6,4-5,13)하시며, 모든 인간은 평등하고 오직 하느님 홀로 높으심을 고백하며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세 번째 유혹은 ‘하느님의 아들이라면 성전 꼭대기에서 몸을 던져보라’고 표현한 ‘기적’ 요구의 유혹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따라 ‘주님이신 주 너의 하느님을 시험해서는 안 된다’(신명 6,16)하시며, 하느님께 향한 오롯한 믿음으로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우리가 추구할 것은 부귀영화나 권력과 명예, 기적이 아니라 하느님께 향한 흔들리지 않는 굳건한 믿음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혹을 받으실 때마다 성경 말씀을 철저히 따르심으로써 그 유혹을 물리치십니다. 이는 유혹을 이기는 길은 자신의 의지가 아니라, 하느님 말씀에 의탁하는 믿음에 있음을 보여주시는 것입니다. 굳건한 믿음은 악마를 물리치고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악마는 다음 기회를 노리며 물러갔지만 언제 또다시 찾아올지 모릅니다. 따라서 잠시도 경계를 늦춰서는 안 됩니다. 저의 생각으로는 세례받은 지 오래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신앙심도 깊고 유혹도 쉽게 물리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오히려 신앙의 독선이 생기고 아집도 늘어나면서 유혹과 쉽게 타협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하느님 뜻을 따르기보다 자신의 생각만이 옳다고 고집하며, 화합하지 못하기도 합니다. 사제인 저도 유혹의 실체를 물리치지 않고 값싸게 하느님을 파는 잡상인이 되고 있지는 않은지 늘 성찰하고 결심합니다. 악마는 참으로 인간을 교묘하게 자극합니다. 그래서 물리치기 쉬운 유혹은 없는 것 같습니다. 하느님께 신뢰를 두지 않고 하느님을 멀리하며 자만하면 이미 유혹에 빠진 것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부귀영화나 권력과 명예 그리고 기적에 현혹되는 것은 신앙인의 길이 아님을 분명하게 가르쳐 주십니다. 그리고 하느님께 기도드리며 유혹을 단호히 떨쳐버리고 주님 말씀을 따르는 신앙이 악마를 물리치고 우리가 추구해야 할 진정한 가치임을 보여주십니다. 사순 첫 주일을 시작하며, 유혹을 단호하게 떨쳐버리기 위해 열심히 기도합시다. 주님의 말씀인 성경을 가까이합시다. 그리고 재계로 몸과 마음을 정결히 합시다. 광야는 악마가 도사리고 있지만, 유혹을 물리친 후에 하느님과 만나는 장소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세상이라는 광야에서 살아갑니다. 이번 사순절에 세상이라는 각자의 광야에서 영적으로 단련하는 기회를 가져보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하느님을 만나게 되면 참 좋겠습니다. 이계철 신부cpbc2025.03.04
![[이상근 평화칼럼] 부익부 빈익빈](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11/29/Im51701224096562.jpg)
[이상근 평화칼럼] 부익부 빈익빈이상근 마태오(미국 테네시 오크릿지 국립연구소 연구원) 마태오 복음 13장 12절 말씀은 이러하다. “사실 가진 자는 더 받아 넉넉해지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오래전 이 구절을 처음 접했을 때 ‘하느님께서 어떻게 부익부 빈익빈의 하느님이실 수 있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런데 며칠 전 미사 복음 속에서 다시 이 구절을 대할 때는 ‘아, 정말 맞는 말씀이십니다’ 하는 커다란 울림이 마음에 전해졌다. 세속적 관점이 아니라 신앙에 있어서는 정말로 ‘부익부 빈익빈’이 성립한다는 것을, 그동안 신앙생활에서 겪은 선순환과 악순환의 경험을 통해 몸소 깨닫게 된 것이다. 몇 년 전, 새해 다짐으로 ‘올해는 성경을 매일 조금씩이라도 읽어보자’는 결심을 했었다. 그리고 그 결심을 한 해 동안 꾸준히 지켜나갔다. 때로는 성경 말씀에 깊이 집중해 마음에 와 닿는 큰 울림을 체험하기도 했지만, 또 어떤 날들은 ‘의무감에 읽기만 하는’ 날들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1년을 그렇게 보내고 성경 통독을 마쳤을 때, 곧바로 엄청나게 큰 변화가 생기진 않았지만 내 안에 분명히 남은 것이 있었다. 바로, 기도를 하고 싶다는 열망이었다. 성경을 읽는 작은 노력에서 출발한 여정이 자연스럽게 기도에 대한 갈망으로 이어졌고, 그 결실로 묵주기도를 시작하게 되었다. 묵주기도를 매일 바치다 보니, 신비 안에 등장하는 이야기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고, 전에 읽었던 성경 말씀과의 연결이 궁금해졌다. 교리도 더욱 자세히 공부하고 싶어졌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크게 얻은 것은 ‘죄에 대한 민감함’과 ‘성체성사와 고해성사에 대한 열망’이었다. 분명 하느님께서는 하느님을 가까이하려는 이에게 ‘청한 것보다 더 많이’ 주셨다. 이것이야말로 신앙에서 누리는 가장 아름다운 선순환이었다. 물론 이렇게 선순환만을 경험하는 것은 아니다. 신앙에 있어 선순환이라 느끼다가도, 작은 유혹이나 사소한 실수로 인해 악순환의 굴레에 빠진 적이 여러 번 있었다. 가까운 사람과의 사소한 말다툼이나 섭섭함 같은, 지나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한순간 죄에 빠지면 그동안 열심히 쌓아올렸던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지기도 하고, 그런 상태가 반복되면 죄에 둔감해져 고해성사를 멀리하고 싶어지는 순간도 찾아오곤 했다. 그럴 때일수록 더욱 하느님 자비를 기억해야 한다. 주님께서는 언제나 우리에게 새로운 선순환의 시작을 허락하시고, 회개의 길을 열어주신다. 그래서 우리는 설령 죄에 빠질지라도 다시 일어설 희망이 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기쁜 소식’이 바로 이 회복과 구원의 메시지이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고, 다시 성경을 펼치고 묵주를 잡으며, 성사를 통해 주님께 나아갈 때 우리는 또다시 풍성한 은총을 맛보게 된다. 결국 우리의 목표는 ‘가진 자, 그리고 더 받아 넉넉해진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런데 더 많이 받았다고 해서 그걸로 끝이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께서는 “많이 주신 사람에게는 많이 요구하시고, 많이 맡기신 사람에게는 그만큼 더 청구하신다.”(루카 12,48) 오늘도 우리는 ‘많이 받은 자’로서 그 은총을 잘 지키고 더욱 활짝 피어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렇게 ‘가진 자’로서 더 많은 요구를 받되, 결국은 더 풍성한 은총과 사랑을 누리는 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신앙인들에게 허락된 ‘부익부 빈익빈’의 참모습이며 하느님 사랑의 신비라고 믿는다.cpbc2025.02.12

눈부신 복음화 활동과 신앙의 초석 놓은 사도들[저는 믿나이다] (33) 사도들의 업적과 신앙 유산들 이제 사도 시대 교회 역사를 마무리하려 합니다. 사도들은 “먼저 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선포되어야 한다”(마르 13,10)는 주님 말씀에 따라 극히 짧은 시기에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 제국 전역을 넘어 인도까지 전해질 수 있도록 헌신했습니다. 요한 사도를 제외한 사도들 모두는 순교로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증거했습니다. 신약 성경에는 로마뿐 아니라 팔레스티나와 시리아·소아시아·마케도니아·크레타 지역 60여 개 도시가 등장합니다. 복음은 이곳뿐 아니라 지금의 프랑스와 스페인 지역인 갈리아와 에스파냐에까지 전해집니다. 갈리아 지방의 론 강 하류에 세워진 도시 마르세유는 일찍부터 소아시아와 긴밀한 무역 관계를 맺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계 상인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전했고, 도시 베즐레는 마리아 막달레나와 관련한 아름다운 교회 전승을 품고 있습니다. 사도들이 짧은 시기에 눈부신 복음 선포의 성과를 낼 수 있었던 것은 정치·사회·지리 환경도 한몫했습니다. ‘로마의 평화(Pax Romana)’는 정치 안정, 원활한 공용어 소통, 편리한 광역 도로망, 자유로운 여행 보장을 제공해 복음 전파에 기여했을뿐 아니라 지역 신앙 공동체들을 서로 연결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 사도들은 자신들의 선교 지역에 교회를 세웠습니다. 시리아에서 사도들이 세운 교회는 안티오키아뿐 아니라 다마스쿠스·티루스·시돈 등이 있습니다. 또 동시리아 지역 오스로에네 지방의 에데사 교회도 큰 교회입니다. 에우세비우스 「교회사」에 따르면 이곳 아브가르 왕이 예수님과 서신을 주고받았고, 토마스와 타대오 사도가 이곳에서 활동했습니다. 그 결과 에데사는 이미 200년께 그리스도교가 국가 종교로 자리합니다. 이집트 교회는 알렉산드리아를 중심으로 성장합니다. 베드로 사도의 제자 마르코 복음사가가 알렉산드리아에 처음 신앙 공동체를 세웠다는 전승도 있습니다. 알렉산드리아 교회는 교부 시대 클레멘스와 오리게네스 같은 저명한 신학자들을 배출합니다. 그리스와 소아시아 지역은 신약 성경에서 볼 수 있듯이 사도들에 의해 많은 교회가 세워집니다. 그중 에페소와 코린토·테살로니카·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등이 대표하지요. 로마 교회는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가 세운 신앙 공동체로 처음부터 교회 신앙의 규범이 되었습니다. 로마 교회는 1세기 말부터 실질적인 수위권을 지닌 교회였습니다. 이 시기부터 로마 교회의 기준에 따라 신앙의 정통과 이단이 구분됐습니다. ‘사도 신경’과 주교들의 ‘사도 계승’에 대한 고증도 로마 교회 관습에 따른 것입니다. 지역 교회는 어려움에 처할 때마다 로마 교회에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로마 교회 역시 이들의 요청을 거절하지 않고 힘 닫는 데까지 지원했습니다. “여러분에게는 모든 형제를 여러 가지 방법으로 돕고 모든 도시에 있는 많은 공동체에 기부금을 보내는 관습이 처음부터 있었습니다. 로마인인 여러분은 전승된 로마 관습을 철저히 지켰기 때문에 예부터 보낸 희사금으로 곤궁한 이들의 가난을 덜어 주었으며, 광산에 사는 형제들을 도와주었습니다. 여러분의 거룩한 주교 소테르는 이 관습을 철저히 지키는 데 그치지 않고, 자애로운 아버지가 자식에게 따뜻한 말로 위로하듯이 성도들뿐 아니라 로마에 오는 형제들에게도 많은 희사금을 나누어 주어 이 관습을 더 확대했습니다.”(에우세비우스 「교회사」 4,23,10) 사도들은 선교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먼저 미사 전례의 틀을 마련했습니다. 사도들은 성찬례 모임에서 성경을 낭독하고, 설교했으며 전구 기도를 바쳤습니다. 그리고 빵과 물을 섞은 포도주에 대한 성찬 축복 기도를 했습니다. 그리고 성찬례에 참여한 모든 이와 축성한 빵과 포도주를 나눠 먹었습니다. 215년께 저술된 히폴리투스의 ‘사도 전승’은 사도 시대 행해졌던 성찬례 감사 기도를 다듬어 담아놓았습니다. 이 감사 기도는 오늘날 ‘로마 전례서’ 성찬 전례 감사 기도 제2양식으로 계승돼오고 있습니다. 사도들은 또한 전례력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사도들은 주님께서 부활하신 날인 주간 첫째 날을 ‘주님의 날’ 곧 ‘주일’로 정해, 유다인들의 금요일 안식일을 대체했습니다. 사도들은 주일에 동트기 전 성찬례를 거행해 행동이 자유로운 시민뿐 아니라 노예·노동자도 미사에 참여할 수 있도록 배려했습니다. 새벽 미사가 여기서 유래된 것이죠. 사도들은 또 주일과 더불어 주간 넷째 날과 여섯째 날, 곧 수요일과 금요일을 특별한 단식일로 지냈습니다. 월요일과 목요일에 단식하는 유다교 관습을 본받은 것입니다. 이 전통을 계승해 요즘도 수도원에서는 수요일과 금요일에 단식과 금육재를 지킵니다. 사도들은 교회의 공식 전례인 미사 외에 개인 기도를 허용하고 권장했습니다. 「디다케」는 주님의 기도 외에 하루 세 번 18 축복문을 바칠 것을 권고했습니다. 이것이 훗날 매일 3시·6시·9시에 기도를 바치는 시간 전례로 발전합니다. 사도들은 그리스도인 생활 규범의 틀도 제시했습니다. 사도들은 ‘이웃 사랑’ 특히 고아와 과부, 가난한 이들을 우선하는 사랑을 강조했습니다. 사도들은 겸손과 자비, 도덕과 사랑을 그리스도교 윤리 규범으로 제시했습니다. 특히 도덕의 힘인 ‘양심’을 높이 인정했고, 주님 가르침대로 박해자를 위해 기도하고 보복하지 말며 원수까지 사랑하라며 윤리 쇄신을 요구했습니다. 사도들은 하느님 사랑은 인간 사랑으로 완성된다고 가르쳤습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6.24

153[월간 꿈 CUM] 정치우의 위대한 기적 (22)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후 제자들은 실의에 빠집니다. 베드로는 “에이~ 이제 고기나 잡으러 갈래”라며 과거에 버렸던 그물을 다시 손에 잡았습니다. 그런데 3년 동안 손에서 놓은 고기잡이가 잘될 리 있겠습니까? 이때 어떤 분이 나타나 배 오른편에 그물을 치라고 합니다. 그 말에 따랐더니 물고기가 많이 잡혔습니다. 정확히 153마리가 잡혔습니다.(요한 21,11 참조) 그런데 왜 하필이면 153마리였을까요? 요한 복음사가는 왜 정확히 153이라는 숫자를 기록했을까요? 이에 대해 어떤 분들은 이렇게 해석하기도 합니다. 1에서 2를 더하고, 그 2에서 3을 더하고, 다시 4를 더하고…, 이렇게 17까지 더하면 153이 된다고 합니다. 여기서 17은 10계명 등 성경에서 중요한 10이라는 숫자와 7성사 등 7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좀 더 신빙성 있는 해설은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vulgata)한 성 히에로니무스(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8~420)의 주석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히에로니무스 성인은 “아마도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 호수의 어종이 153종이었을 것”이라고 추정했습니다. 모든 종류의 고기를 다 잡았다는 것이죠. 이 해석에 따라 만들어진 것이 ‘모나미 153 볼펜’입니다. 어쨌든, 물고기가 많이 잡히자 순간 베드로는 그제야 눈이 떠지고, 주님을 알아봅니다. 베드로는 3년 전에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 바 있습니다. 당시에도 베드로는 물고기를 잡지 못하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 후 물고기를 많이 잡았습니다. 때는 아침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베드로가 잡은 물고기로 숯불구이를 해 주십니다. 아침식사입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식사를 함께한다는 것은 ‘친교, 용서, 화해’를 뜻합니다. 이탈리아 밀라노의 까를로 마리아 마르띠 추기경님이 해설하신 요한복음 21장에 따르면 “하느님은 우리가 용서를 청하기도 전에 용서해 주시는 하느님”이십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배반한 것에 대해 용서를 청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먼저 베드로를 찾아가 아침식사를 준비해 주십니다. 함께 식사한다는 것은 용서한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 예수님의 몸을 먹고 피를 마시는 것 자체가 용서와 화해, 일치입니다. 그렇게 예수님은 음식을 통해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그들과 화해하십니다. 이후 제자들이 어떻게 행동합니까? 다시 그물과 배를 버리고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고향을 버리고 다시 예루살렘으로 갑니다. 그렇게 다시 성령을 받고 교회가 시작됩니다. 그분들이 전했던 것은 바로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입니다. 글 _ 정치우 (안드레아, 복음화발전소 이사장) 복음화라는 용어가 생소했던 1990년 5월 새로운 복음화 사업을 시작, 복음화학교를 설립하여 재복음화 및 선교를 위한 예수님의 제자훈련 교육 체계를 확립시켜 많은 제자를 양성했으며 평화방송 TV를 통해 복음화학교 강의를 했다. 전국의 본당 및 단체의 초대로 수백회의 특강과 견진 교리, 피정 등을 했으며 가톨릭신문과 가톨릭평화신문에 많은 글을 연재하는 등 저술 활동에도 매진하고 있다. 복음화학교를 은퇴한 이후 ‘복음화발전소’를 설립, 삶을 통한 새로운 복음화 운동을 전개하고 있다. 저서로는 「길이 있어 걸어 갑니다」 「위대한 기적」 「위기의 대안으로서의 평신도영성」 등이 있다. cpbc2025.06.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