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17)한국 교회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5 : 신앙을 통해 현실 안에서 세속적 가치 극복하기(상)](//cpbc.co.kr/CMS/newspaper/2019/04/rc/749768_1.0_titleImage_1.jpg)
[평신도영성 나는 평신도다] (17)한국 교회 평신도 사도직의 현주소 5 : 신앙을 통해 현실 안에서 세속적 가치 극복하기(상)삶의 순간마다 손을 뻗어 주님의 손을 잡자 하느님을 바라보며 사는 것은 성당에서 온종일 살라는 말이 아니다. 직장에서도 학교에서도 집에서도 하느님은 늘 함께하시기에 우리는 간단히 손을 뻗어 그 손을 잡기만 하면 된다. CNS 자료 사진 많은 분이 영적인 삶을 살아가기가 힘들다고 합니다. 늘 하느님과 함께 현존하는 그 삶이 어렵다고 합니다. 그 삶을 어렵게 만드는 장애물에는 무엇이 있을까요. 많은 것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갑자기 찾아온 병으로 고통받을 수 있습니다. 성당에 다니자마자 갑자기 집안에 우환이 생겨서 성당에 나오기 힘든 경우도 있습니다. 사업이 어려워지거나 실직을 당해 신앙생활에 소홀할 수도 있습니다. 이처럼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고통은 평신도들의 신앙을 흔들리게 합니다.그런데 고통이 근본적으로 안고 가야 하는 것이라면 거기엔 고통보다 더 높은 그 어떤 가치가 있는 것이 틀림없습니다. 하느님은 우리에게 왜 고통을 허락하실까요? 고통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들이십니다. 그런 분이 왜 고통을 받았겠습니까? 예수님이 받으실 만한 고통의 높은 가치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래서 고통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왜 고통을 받아야 하나의인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하는가에 대한 문제는 예수님 탄생 이전까지 구약성경의 가장 큰 주제였습니다. 그 해답이 예수님에 이르러 주어집니다. 고통보다 높은 가치가 있는 것이 아버지의 뜻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완성된 모범을 보이십니다.의인이 왜 고통을 받아야 할까요? 의인은 고통을 받아야 한다는 것이 해답입니다. 악인은 고통을 받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마지막까지 손해 안 보려고 극악하게 발버둥 치며 자신을 합리화합니다. 그리고 자신의 고통을 덜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그 고통을 전가합니다. 자연히 고통을 받을 확률이 낮아집니다. 의인이니까 고통을 받는 것입니다.고통은 젊은이와 늙은이 사이의 구별이 없습니다. 가난한 자뿐 아니라 부자에게도 어김없이 찾아옵니다. 여러분은 부자가 행복할 것 같은가요? 고통이 전혀 없어 보이는가요? 권력자가 행복할 것 같은가요? 오히려 권력 있는 자가 권력 없는 사람보다 더 심각한 내면의 병을 앓고 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행복은 외적인 것에서 주어지지 않습니다.우리가 고통과 관련해 통찰력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서입니다. 계시를 통해 우리는 몇 가지 알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고통은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그리스도와 일치하도록 돕는다는 점입니다. 어떤 고통이든 마찬가지입니다. 두통이든 교통사고로 인한 부상이든, 빈정거림을 받든, 그 고통은 모두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돕습니다.또 신앙적 차원에서 고통은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주는 속죄의 수단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세상에 와서 고통을 받으신 이유는, 하느님과 일치하는 모범을 보여주시기 위해서, 그리고 수많은 인간이 저지른 죄를 속죄하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서 우리를 죄와 죽음으로부터 해방시켜주셨습니다. 평신도는 이러한 진리를 믿고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평신도는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리스도의 고통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입니다.그런데 하느님을 바라보며 산다는 말은 성당에 와서 온종일 있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산속에 들어가서 평생 하느님만 바라보며 살라는 말이 아닙니다. 하느님은 계시지 않는 곳이 없습니다. 직장에도 계시고, 학교에도 계시고, 이웃의 표정 속에서도 살아 계십니다. 버스 정류장에 혼자 앉아 있는데 옆에 어떤 사람이 와서 길을 물어본다면 그 사람의 눈빛 속에도 하느님이 계시는 것입니다. 들에 핀 꽃 한 송이에도, 기름 잔뜩 묻은 차량 정비공의 손에도 하느님이 계십니다. 세상 모든 것 안에서 하느님을 발견하고 항상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늘 우리 옆에 계시는 분 하느님 빼고 학교에 가고, 하느님 빼고 직장 일을 하고, 하느님 빼고 이웃과 대화하는 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느님은 사막에 가야 찾을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예루살렘 성지에만 존재하시는 분도 아닙니다. 하느님은 늘 우리 옆에 서 계십니다. 평신도는 간단히 손만 뻗어서 그 손을 잡기만 하면 됩니다. 성경을 읽다가 아름다운 시 한 편을 발견했습니다.하늘은 하느님의 영광을 이야기하고 창공은 그분 손의 솜씨를 알리네. 낮은 낮에게 말을 건네고 밤은 밤에게 지식을 전하네.말도 없고 이야기도 없으며 그 목소리조차 들리지 않지만 그 소리는 온 땅으로, 그 말은 누리 끝까지 퍼져 나가네.(시편 19,1-4)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평화신문2019.04.03

사랑과 자비 베풀며 참된 왕이신 예수 그리스도 기억하자‘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 전례 안내 가톨릭교회는 전례력으로 한해를 마무리 하는 마지막 주일인 연중 제34주일에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지낸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려는 성부의 뜻을 이루려고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셨고, 교회는 그 신비 안에서 이미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다. 이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임으로써 들어갈 수 있다. 사진은 독일 성 베네딕도회 마리아 라크 수도원 성당 제단에 설치돼 있는 그리스도왕 모자이크. 가톨릭교회는 전례력으로 한 해를 마무리하는 마지막 주일인 연중 제34주일을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로 지낸다. 전례력은 가톨릭교회의 달력으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 드러난 사건들을 한 해 동안 기념해 거행하는 시간 구조이다. 교회가 전례력을 만들어 시간 흐름에 따라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기념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인들이 전례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도록 하는 데 있다.‘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을 맞아 이날의 의미와 전례 안에서 주님의 어떤 모습을 닮아야 할지를 살펴본다.신앙 고백가톨릭교회는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서 부활하시고 하늘에 올라 전능하신 천주 성부 오른편에 앉으시며 왕으로서 영광을 받으시고 세상 마지막 날에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재림하신다’고 신앙 고백을 한다. 이 믿음은 주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어 수난을 당하시기 전 올리브 산에서 제자들을 따로 모아 ‘최후의 심판’에 관해 일러주시면서 “사람의 아들이 영광에 싸여 모든 천사와 함께 오면, 자기의 영광스러운 옥좌에 앉을 것”(마태 25,31)이라고 하신 말씀에 근거한다.‘그리스도왕’은 성경 곳곳에서 드러난다. 먼저, 주님께서는 다윗의 후예로서 왕의 혈통을 이어받은 분이시다.(마태 1,1-17) 그리고 동방 박사들의 입을 통해 태어난 아기 예수께서 ‘유다인들의 임금’이 선포된다.(마태 2,2) 주님께서는 “너희는 내 나라에서 내 식탁에 앉아 먹고 마실 것이며, 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할 것”(루카 22,30)이라며 스스로 당신의 왕권을 드러내시기도 했다. 또 주님께서는 ‘유다인의 왕’(요한 18,37)으로 고발되어 조롱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다. 그리고 ‘유다인의 왕 나자렛 예수’(마르 15,26)라는 십자가 죄명패가 이를 재확인시켜줬다.하지만 주님의 왕국은 지상 영화를 위한 권력이 아니다. 그리스도 왕국은 복음 선포를 통해 지상에 펼쳐지지만(사도 1,8) 그 완성은 미래에 있고(1코린 15,24-25), 영원히 지속되며(루카 1,33), 진리를 증언하는 것(요한 18,37)이다. 그래서 교회는 주님의 왕국을 “진리와 생명의 나라요,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요,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라고 고백한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 36항)교회는 그리스도왕이 다스리는 ‘하느님 나라’의 표징이다. 주님께서는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성부의 뜻을 이루시려고 지상에서 하느님 나라를 시작하셨다. 교회가 “신비 안에서 이미 현존하는 그리스도의 나라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63항) 이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으로 들어갈 수 있다. 지상의 하느님 나라는 그리스도께서 영광스럽게 다시 오실 때 비로소 천상 영광 안에서 완성된다. 그동안 이 나라는 지상의 순례 길 위에서 박해를 견디고 하느님의 위로를 받으며 ‘예수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복음을 선포하면서 땅끝까지 확장된다.(사도 1,8 참조) 그리스도인은 이를 위해 하느님 나라가 완전히 도래하여 영광스러운 교회가 완성될 때까지 자신의 신원과 역할, 의무를 다해야 한다. 이는 하느님께 대한 헌신과 이웃을 위한 자비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왕이 다스리는 하느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세상의 죄악에 맞서 끊임없이 싸우고, 인간이 행하는 일과 만들어 내는 문화에 그리스도의 가치를 불어넣음으로써 세상의 제도와 환경이 하느님의 정의에 부합하도록 이끌어 가야 한다고 가르친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왕권에 동참하는 그리스도인의 왕직이라고 한다.(「교회 헌장」 36-38항)전례 의미‘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은 비오 11세 교황이 1925년 12월 11일 회칙 「Quas Primas」(꽈스 프리마스, ‘처음의 것’ 또는 ‘그리스도왕 대축일에 관하여’)를 통해 제정했다. 비오 11세 교황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고백한 니케아 공의회 1600주년을 기념해 무신론과 세속주의를 경계하고, 그리스도께서 하느님 나라의 참된 왕이심을 기억하고, 그리스도의 왕권이 온 세상에 충만하기를 기원하는 뜻에서 이날을 선포했다. 1925년 제정 당시에는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 전 주일인 10월 마지막 주일에 이 축일을 지내도록 했다. 모든 성인과 함께 주님의 왕권과 영광을 널리 세상에 전하기 위해서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전례를 개혁한 교회는 ‘하느님 나라의 도래’ 즉 그리스도왕의 재림과 온 누리의 임금이신 그리스도의 축일 의미를 강화하기 위해 1970년부터 연중 마지막 주일로 옮겨 이날을 지내고 있다.3년 주기의 이날 복음과 독서는 그리스도를 ‘인류의 목자’(가해: 마태 25,31-46; 에제 34,11-12.15-17; 1코린 15,20-26.28), ‘영원하신 왕’(나해: 요한 18,33-37; 다니 7,13-14; 묵시 1,5-8), ‘십자가 위에 계신 왕’(다해: 루카 23,35-43; 2사무 5,1-3; 콜로 1,12-20)으로 표현한다. 감사송은 그리스도 왕국의 특징을 진리와 생명의 나라, 거룩함과 은총의 나라, 정의와 사랑과 평화의 나라로 묘사한다. 주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의 핵심어는 ‘하느님 나라’이다. 그리스도인은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 완성될 하느님 나라를 이미 지상에서 살기 위해 예수께서 마련해 주신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이다. 이 새로운 삶은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직접 가르쳐 주신 ‘최후의 심판’(마태 25,31-45) 내용에 구체적으로 나타난다. 그리스도왕께서 마련해 주신 새로운 삶의 가치 질서이다. 굶주린 이, 목마른 이, 헐벗은 이 등 어려움에 처한 불행한 사람들, 특별히 가난한 사회 약자를 자비로이 보살피며 사는 삶이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러한 사랑과 자비의 삶이 복음 정신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9.11.20

하느님을 ‘아빠’로 여기는가예수-우리의 발걸음을 아빠 하느님께로/ 송봉모 지음/ 바오로딸/ 1만 6000원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저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히 드러내시며…’”(마태 6,9)예수님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르자, 이를 본 유다인들은 하나같이 ‘아니, 어찌 하느님을 아빠라고 부른담?’ 하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유다인들은 전통적으로 죄 많은 인간의 입술로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을 불경한 일로 여겼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높고 멀리 계시는 것으로 여겼던 하느님을 당장 바로 곁에 계신 분, 인격적으로 가깝고 애정 깊은 아버지로 여기도록 처음 일깨운 분이셨다.송봉모(예수회) 신부가 펴낸 「예수 - 우리의 발걸음을 아빠 하느님께로」는 예수님처럼 하느님을 나와 더욱 가까운 아빠로 여기도록 만들어주는 책이다. 하느님을 머나먼 하늘나라의 다가가기 어려운 분이 아니라, 가까이서 내게 은총을 주고, 너른 품을 제공해주는 아빠로 여기도록 돕는다. 더불어 ‘주님의 기도’의 의미와 함께, 아빠를 닮기 위한 가르침인 예수님의 ‘행복 선언’에 관한 강론이 담겨 있다.주님의 기도와 성경 구절마다 나오는 ‘아버지’를 ‘아빠’로 고쳐 발음해보자. 하느님께 한 걸음 더 다가간 느낌이 들 것이다. 하느님은 우리가 언제든 어리광 피울 수 있고, 힘들고 아플 때 매달릴 수 있는 ‘아빠’다. 실제 마태오ㆍ루카 복음서는 그리스어로 하느님을 ‘파테르’, 곧 ‘아빠’라고 썼다.간혹 구약의 하느님과 신약의 하느님을 다르게 보는 이들이 있다. 특히 구약의 하느님을 심판자이자, 꾸짖는 아버지로 여기기도 한다. 그러나 구약의 하느님은 분노하는 아버지가 아니라, ‘격정’하는 분이시다. 송 신부는 “하느님의 격정은 우리의 선을 위한, 하느님과 우리 관계를 회복시키려는 돌봄의 행동”이라며 우리도 모르게 잘못 인식하고 있는 ‘율법주의적 태도’를 돌아볼 것을 권한다. ‘하늘의 아빠’는 돌봄과 자비를 베푸는 참 아버지이신 것이다. 루카복음에 등장하는 ‘되찾은 아들들의 비유’에서 아빠는 집에 있는 큰아들이든, 집을 나가 고생하다 돌아온 작은아들이든 기쁜 마음으로 품에 안아 맞아주지 않는가.예수님은 우리가 아버지 하느님 나라에 헌신하는 사람이 되길 바라셨다. 예수님은 산상설교를 통해 우리가 주님의 성품을 지니며 ‘성화’ 될 수 있음을 가르치셨다. 바로 ‘행복 선언’이다. 우리는 마음이 가난하기 위해 교만하지 않을 줄 알아야 하며, 남의 고통에 함께 슬퍼할 줄 아는 마음을 지녀야 한다. 그러면 하느님 아버지께서 그 사람의 눈물을 닦고 위로해주신다.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른다면, 아빠의 이름은 거룩히 빛날 것이다.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2019.05.22
![[영화의 향기 with CaFF] (5) 바울](//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2847_1.0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5) 바울주님 뜻이라면 죽음조차 유익하다는 사도영화 ‘바울’ 스틸컷.“그리스도는 내 삶의 전부이니 죽는 것도 유익하다”는 바오로 사도. 그는 많은 시련에도 담대하게 맞서며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를 위하여 고난까지 겪는 특권을 받았다”고 말한다. 육체는 약해졌지만 영혼은 희망과 확신으로 가득 차, 목숨을 건 것에 오히려 감사하는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담은 영화 ‘바울’은 우리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바울과 사울, 바오로 모두 같은 인물이다. 종교 영화에 나오는 성인의 이름이나 지역 명칭은 음역하는 과정에서 다소 차이가 난다. 바오로는 그리스 이름이고, 히브리어로는 사울이다. 이 칼럼에서는 본래 발음을 존중한 가톨릭 성경(천주교중앙협의회 발행, 2005)을 기준으로 했다. 영화 ‘바울’은 선교여행을 마치고 성전에서 체포된 바오로 사도가 유다인들의 시기와 모략으로 다시 구속된 후 로마 시민권자로서 황제의 판결을 자청하고, 로마 지하 감옥으로 이송된 후 마지막 처형되기까지를 소개하고 있다. 영화는 감옥에 갇힌 바오로가 자신의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루카에게 전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가르치는 모습 그리고 천인대장과의 갈등을 함축된 내용으로 알기 쉽게 보여준다. 영화 ‘바울’의 대사와 나래이션 대부분은 자체가 하느님의 말씀이다. 일반적으로 역사적 인물을 그리는 대서사극은 주인공의 영웅적 면모를 표현하기 위해 대결 구도를 설정하고, 스펙타클한 이미지와 화려한 액션으로 볼거리를 제공한다. 하지만 이 영화에는 그러한 요소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에게 극적이고 감동적으로 다가오는 것은, 신성모독을 이유로 나자렛 예수를 “메시아”라고 하는 이들을 박해하는 데 앞장섰던 사울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한 번에 깨닫고 예수의 사도가 되어 조금의 흔들림도 없이 복음을 전하는 신념과 구원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진리에 대한 확신이 있고, 내가 믿는 그분을 안다”는 바오로 사도. 그는 본인이 로마에서 죽을 것을 알지만 본인이 가야 할 곳 즉, 하느님의 나라에 대한 확신이 있기에 죽음조차 두려워하지 않는다. 죽음을 앞둔 시점에서도 “당신의 은혜는 충분합니다”라는 하느님에게 감사를 드리는 바오로 사도의 모습에 머리가 숙여진다. 하느님의 구원을 제대로 받아들인 바오로 사도는 그 누구보다도 행복한 사람이다. 믿음을 지키고 말씀을 전하는 데 끝까지 사명을 다 한 그의 굳은 신념이 그를 행복하게 한 것이다. 바오로 사도의 헌신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해 듣게 된 우리도 참 행복하다. 2019년 신년을 맞아, 성경 읽기 계획을 세워 바오로 사도가 전해주는 말씀을 만나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문채현2019.01.02

한국 천주교 역사 담긴 유물, 알릴수록 빛난다서울 명동대성당 유물 담당 정웅모 신부... 수장고 유물 목록화·사진 촬영·해설 작업, 7월 유물 이야기 담은 책 발간 정웅모 신부가 유물 수장고에 보관된 성합을 살펴보고 있다. “교회 안의 유물을 보면서 자신의 신앙을 돌이켜볼 수도 있고 자신의 부족한 신앙을 성숙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도 있죠.”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유물 담당 정웅모 신부는 “역사와 신앙의 흔적이 담긴 유물들이 신앙 재교육과 교회의 역사·문화 이해 차원에서 신자나 일반인 관람객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정 신부가 유물 담당 사제가 된 것은 2016년 8월 30일. 지금까지 3년 가까이 명동대성당에 있는 유물 수장고에서 유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을 하고 있다. 수장고에 보관돼 있는 유물들에 대한 목록화와 사진 촬영, 해설 작업을 하는 것이다. SNS를 통해서도 유물들에 대해 알리고 있고 7월에는 교회 유물 이야기를 담은 책도 발간할 예정이다.명동대성당에 최초로 유물전시실이 생긴 것은 1989년 8월 15일이다. 당시 유물실은 꼬스트홀 1층에 있었다. 하지만 꼬스트홀이 혼인 관련 공간으로 자주 이용되면서 유물실은 문을 닫게 됐다. 그리고 그때부터 유물들은 창고에 보관됐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고찬근 신부(전 명동대성당 주임)는 “신앙 선조들과 영성, 명동의 역사가 담긴 유물이 창고에 있어서는 안 된다”며 유물 보관실을 마련했고 그것이 지금의 유물 수장고가 됐다. 그래서 2018년 2월부터 유물들이 유물 수장고에 보관되고 있다.유물 수장고에 보관된 유물은 모두 366점이다. 명동대성당에서 사용하던 전례 용품과 사제복, 미사와 관련된 제구 등이 보존돼 있다. 유물 수장고는 아직 현재 일반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유물 수장고 한편에는 전례복들이, 다른 한쪽에는 전례 기물과 교회 물품, 전례 예식서, 성경, 기도집, 미술품들이 보관돼 있다. 정 신부는 “모든 유물이 저마다의 이야기를 담고 있어서 가치를 따지기는 쉽지 않지만 성작이나 성반, 성합 등 특별히 성체성사와 관련된 유물들을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고 설명했다.유물 수장고는 최종 목적지가 아니다. 유물 전시실과 가톨릭 미술관, 교회 박물관으로 가기 위한 전 단계일 뿐이다. 또 지금 진행되고 있는 유물 목록화와 사진 촬영, 해설 작업은 교회의 많은 유물 가운데 명동대성당에 있는 유물에 국한돼 있지만, 앞으로는 서울대교구, 그리고 지방 교구로 확대하고 나아가 한국 가톨릭 교회 전체로 확대할 계획이다.정 신부는 “세상 안에서 복음을 전하는 도구 가운데 하나가 문화이고 문화를 통하지 않고 복음을 전하긴 어려운 시대가 됐다”며 “유물들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역사와 신앙의 흔적이 담긴 유물들은 신앙 재교육을 위해서만이 아니라 교회의 역사와 문화를 이해하고 알리는 차원에서도 신자와 일반인 관람객들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경험과 지식을 토대로 교회의 문화와 예술, 미술 등 유물만이 아니라 문화와 예술, 건축에 대한 교회 용어도 정립하는 토대를 만들고 싶다”고 덧붙였다. 도재진 기자 djj1213@cpbc.co.kr cpbc2019.06.25

국적·피부색 상관없이 인술 펼치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인권 주일 - 춘천교구 예리코클리닉 춘천교구 가산성당에 자리한 예리코클리닉. ‘병 키우지 말고 빨리 병원에 가.’아플 때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흔히 듣는 말이다. 아플 때 의료 혜택을 받는다는 건 ‘인권’이라는 단어를 빌리지 않아도 일상이 된 지 오래다. 하지만 가난한 외국인노동자에게 병원의 문턱은 여전히 높다. 의료사각지대에 놓인 불법 체류 이주노동자들의 사정은 더 딱하다.인권 주일을 맞아 이주노동자들에게 사랑의 인술을 펼치는 춘천교구 예리코클리닉(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소재)을 찾아갔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아픈 외국인노동자들의 벗주일 오후 1시 반, 예리코클리닉을 찾은 자원봉사자들이 이주노동자 진료 준비에 한창이다. 오늘은 내과, 외과, 안과, 산부인과, 한방과, 치과 치료가 있는 날이다. 진료 시작 30분 전이지만, 대기실에는 10여 명의 외국인노동자가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필리핀 이주노동자가 대부분이지만 파키스탄, 스리랑카, 몽골, 이란에서 온 이들도 있다.예리코클리닉 담당 오세호(춘천교구 사회사목국장) 신부는 “환자의 국적과 종교, 비자 유무를 떠나 치료한다”며 “교회가 마땅히 해야 할 ‘가난한 이들의 우선적 선택’을 실천하는 것”이라고 했다.병원의 이름인 ‘예리코’는 착한 사마리아인들의 일화에 등장하는 도시 이름에서 따왔다. 예리코클리닉은 성경 속 예리코처럼 눈먼 이를 고치신 주님이 살아계신 곳이며, 도움이 필요한 이들을 외면하지 않은 착한 사마리아인들의 의지가 모인 곳이다. 예리코클리닉은 2003년 춘천교구 가톨릭의사회에서 무료진료를 시작할 때만 해도 가산성당 마당에 천막을 친 야전병원에 불과했다. 이후 가건물을 거쳐 지난 8월에 2층짜리 건물을 신축하고 교구장 김운회 주교 주례로 축복식을 가졌다. 지금은 치과의사, 한의사, 약사, 간호사, 치위생사, 임상병리, 통역, 환자관리 등 수 많은 분야의 자원봉사자가 매월 첫째, 셋째 주일 외국인노동자들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네고 있다. 그래도 무료진료소가 있어서예리코클리닉 설립부터 봉사를 이어온 윤미현(마르셀라, 49) 간호사가 분주히 움직인다. 윤씨는 “진료 접수부터 혈압과 체온, 체중 등 환자의 신체 등을 측정하고 어떤 과에 가야 할지 분류한다”며 “하루를 온전히 내어줘야 하는 일이지만 치료받는 외국인노동자들을 생각하면 큰 보람을 느낀다”고 했다. 접수를 마친 이주노동자들은 각 진료과를 찾아 치료를 받는다. 이주노동자들이 의료진과 대화 나누는 모습을 보니 우리가 병원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았다. 감기, 혈압, 당뇨, 충치, 근육통 등 생활 속 질환에 대해 상담하고 처방을 받는다. 1층 치과에서 치료를 받은 필리핀인 그레이스 모레스(55, 가명)씨는 “친구에게 무료 병원이 있다고 듣고 강원도 철원에서 왔다”며 “병원을 갈 수 없어 아파도 참았는데 치료를 받고 좋아졌다”며 예리코클리닉에 고마움을 표했다. 2층 한편에 자리한 한의과에서는 침대에 엎드려 침을 맞고 부황을 뜨는 외국인 이주노동자가 이웃집 아저씨 같다. 처음에는 침을 놓고 피를 뽑는 것에 놀라던 노동자들이 이제는 치료를 받으며 잠들기도 한다. 이곳을 찾는 이주노동자들은 인천과 평택 등 먼 지역에서 오는 경우가 많다. 자신이 속한 지역에서 치료를 받을 만한 곳이 없기 때문이다. 치료 비용도 문제지만 비자 문제가 얽힌 이들이 적지 않기에 병원을 찾을 엄두도 못 내는 게 현실이다.도움 필요한 사람을 서류로 분류해야 하나“여기서 진료하기 어려워서 큰 병원 가서 진료받을 수 있냐고 하면 10명 중 1, 2명 정도만 병원에 갈 수 있다고 하죠.”엄규동(대건 안드레아, 72) 예리코클리닉 회장은 “이곳을 찾는 다수의 이주노동자는 의료보험 혜택을 받을 수 없는 불법 체류자일 가능성이 높다”며 “보건복지부 등을 통해 받을 수 있는 의료 서비스는 정상적인 비자가 있는 사람에게만 해당한다”고 설명했다.엄 회장은 “3년 전 가슴에 종양이 있는 이주노동자에게 큰 병원을 가야 한다고 했지만, 의료보험 카드가 없다며 한숨을 쉬었다”며 “대형병원에 계시는 수녀님께 환자를 연결해 줬지만 그 후 어떻게 됐는지 알 수 없었다”고 안타까워했다.그는 법을 바꿔서라도 이주노동자들에게 의료혜택이 돌아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불법 체류자들이 많이 있는 나라의 대사관 같은 곳에서도 힘을 써서 의료 사각지대에 있는 분들을 도와주길 바란다는 말도 꺼냈다. 아픈 이들의 고통에 함께 울어주는 노(老) 의사의 말에 “착한 사마리아인은 자신이 돕는 사람이 누군지 가리고 도운 게 아니다”라는 말이 떠오른다.몇몇 이주노동자들이 처방받은 약 봉투를 들고 밝은 표정으로 예리코클리닉을 나선다. 그들이 받은 치료와 손에 쥔 약은 단순한 의료 혜택이 아닐 것이다. 약 봉투 안에는 피부색은 달라도 같은 주님의 자녀, 사랑받을 권리와 봉사자들의 헌신, 이국땅에서 고난을 이기고 고향으로 건강히 돌아갈 희망이 담겨 있다.후원 문의 : 033-264-3547, 예리코클리닉후원 계좌 : 신한 100-032-914833 (재)춘천교구천주교회 #오세호 신부 인터뷰(예리코클리닉 담당)“예리코클리닉을 신축할 때 이주노동자들이 필리핀 공동체를 중심으로 자발적 모금을 해 370여만 원을 전달했어요. 그들에게 적은 돈이 아닌데 고마움을 표현한 거죠.”오세호 신부는 “교구의 지원과 여러 사람의 정성으로 진료소를 신축하고 서울과 의정부에서도 봉사자들이 오기 시작했다”며 “교회를 중심으로 신자와 비신자가 외국인노동자 진료를 위해 힘을 모으고 있다”고 설명했다. 포천 일대는 물론 인접한 강원도 지역에도 외국인노동자가 증가하는 추세지만 경기 지역에서 외국인노동자를 진료하는 민간시설은 예리코클리닉이 유일하다.오 신부는 “계속 노동자가 유입되니 불법 체류 노동자도 상당수 있을 것이고 병원에 가기도 쉽지 않을 것”이라며 “예리코클리닉은 일반 병원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우수한 의료진과 장비를 갖추고 있다”고 설명했다.예리코클리닉은 최근 포천 지역 8인 이상 사업장 1800여 곳에 이곳의 의료활동을 알리는 홍보문을 발송했다. 의료 사각지대에 놓인 더 많은 외국인노동자에게 의료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다. 늘 수고를 아끼지 않는 든든한 봉사자와 후원자들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오 신부는 “봉사자들은 자신이 가진 탈렌트로 열악한 환경에서 고통받는 외국인노동자들을 돕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모였다”며 “하느님 사업이 17년이라는 세월 동안 점점 나아지고 많은 이주노동자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으니 감사한 일”이라고 했다.이어 “월 2회 진료에서 매주 진료로 확대하려고 계획 중”이라며 “봉사를 함께할 분들과 영적 물적 후원으로 뜻을 함께해줄 은인들이 많이 오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기다린다”고 말했다. 백영민 기자 cpbc2019.12.04
![[사순 특집] 회개와 보속 실천하며 주님 부활의 영광 준비](//cpbc.co.kr/CMS/newspaper/2019/02/rc/747219_1.3_titleImage_1.jpg)
[사순 특집] 회개와 보속 실천하며 주님 부활의 영광 준비재의 수요일 ‘재를 얹는 예식’에서 신자 이마에 재를 바르고 는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재의 수요일인 6일부터는 교회 전례력으로 사순시기가 시작된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회개와 보속을 통해 주님 부활의 영광을 준비하는 때이다. 신자들이 사순시기를 더욱 잘 이해하고 합당한 생활로 뜻깊게 지내도록 사순시기의 유래와 의미, 전례, 생활 자세 등에 대해 알아본다.사순시기 의미 사순시기는 주님 부활의 영광을 기쁜 마음으로 준비하도록 마련됐다. 교회가 사순시기를 지내는 것은 예수님의 생애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부활하시기 전 성부 하느님 뜻을 따르기 위해 수난과 죽음을 겪으셨지만, 이 때문에 부활하셨으며,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는 영광을 받으셨다. 그리스도를 따르는 하느님의 자녀인 우리도 삶 안에서 주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해 사순시기를 지내는 것이다. 사순시기는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헌장」(제109항)이 규정하고 있듯이 “파스카 신비의 경축을 준비”하는 시기다. 주님의 고통과 죽음을 마냥 슬퍼하는 시기가 아니라, 주님 부활을 준비하기 위해 예수님의 고통과 죽음의 신비를 묵상하는 시기이다. 사순시기 전례 사순시기에는 그리스도의 수난에 적극 동참한다는 뜻에서 전례 중 기쁨을 상징하는 요소인 대영광송과 알렐루야를 하지 않는다. 사제의 제의도 회개와 속죄를 상징하는 보라색(자색)으로 바뀐다. 그러나 사순 제4주일에는 부활의 기쁨을 미리 맛본다는 의미에서 장미색 제의를 입기도 한다. 미사 전례 독서와 복음은 회개와 세례성사를 두축으로 예수 부활을 준비하는 시기로서의 주제를 드러낸다. 교회는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수난의 신비를 깊이 깨달을 수 있도록 ‘십자가의 길’ 기도를 자주 바칠 것을 권고하며, 주님 수난 성지 주일로 시작하는 성주간에는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를 묵상하는 가장 거룩하고 뜻깊은 기간으로 보내도록 초대하고 있다. 또한, 사순절은 고해성사를 위한 가장 알맞은 시기다. 사순과 대림시기에 의무로 받는 고해성사는 신자로서 쌓은 공로를 헤아려 판별한다는 뜻으로 ‘판공(判功)’ 성사라고도 한다. 사순시기 유래 「가톨릭 대사전」에 따르면, 사순이 언제 어떻게 생긴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인들은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참회의 시기를 지켰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 기록에 사순시기 기간이 40일이라는 내용이 있는 것으로 보아 니케아 공의회 또는 그 이전에 사순시기 기간이 정해졌을 것으로 짐작한다. 4세기 말 로마 교회가 부활 전 40일을 부활 준비기간으로 정했는데, 여기서 ‘40일’ 동안의 기간을 의미하는 ‘사순절’이라는 말이 나온 것으로 본다. 사순시기는 40일? 사순시기는 보통 주님 부활 대축일(올해는 4월 21일)을 맞이하기 위한 회개와 보속을 행하는 40일의 기간으로 알고 있다. 예전에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토요일까지를 사순시기로 지냈다. 이 기간에서 주일을 제외하면 정확히 40일이 된다. 주일은 주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날이기에 사순시기에서 제외한 것이다. 하지만 지금은 성주간 목요일 주님 만찬 미사부터 부활 대축일까지를 파스카 성삼일이라고 해서 사순시기와 분리해서 지내므로 재의 수요일부터 성주간 목요일까지의 기간에 주일을 빼면 40일이 되지 않는다. 따라서 사순시기의 40일은 글자 그대로 받아들이기보다는 영성적인 의미로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 ‘40’이라는 숫자는 하느님을 만나기 전에 또는 하느님의 백성으로 태어나기 위해 거치는 정화의 준비 기간을 상징한다.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 단절된 관계를 회복하기 위해 참회와 속죄로써 자신을 정화할 때 ‘40’이라는 숫자가 종종 등장한다. 노아 홍수로 새 세상을 준비할 때 40일간 비가 내렸고, 이스라엘 백성은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기 전에 40년간 광야를 헤맸으며, 모세는 십계명을 받기 전 40일간 단식했다. 예수께서 공생활 전에 40일간 광야에서 단식하신 것도 대표적인 예다. 재의 수요일 사순시기 전례는 재의 수요일, 이마에 재를 받는 예식으로 시작된다. 재의 수요일이 되면 각 본당에서는 성지(聖枝)를 태워 만든 재를 축복하고 이를 신자들 머리 위에 얹거나 이마에 십자 모양으로 바른다. 이때 사제는 “사람아, 너는 먼지이니,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여라” (창세 3,19 참조) 혹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라고 말하는데, 이처럼 재는 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 기억하게 하고 참회와 슬픔을 느끼도록 한다. 구약성경에서도 재는 허무와 애통, 속죄를 상징한다. 단식과 금육 교회는 사순시기에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자주 묵상하고, 탐욕과 이기심에서 벗어나 회개와 보속, 봉사를 권고하면서 재의 수요일과 예수님께서 수난받으시고 돌아가신 성금요일에 단식(금식)과 금육을 하도록 가르친다. 「한국 천주교 사목 지침서」는 ‘모든 신자는 인류 구원을 위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고, 자신들과 이웃들의 각종 죄악을 보속하는 정신으로 금식재와 금육재를 지켜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제136조) 또한 ‘재의 수요일과 성금요일에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켜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식은 만 18세부터 60세 전날까지, 금육은 만 14세부터 죽을 때까지 모든 신자가 지켜야 한다. 단식과 금육은 절제와 극기로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한다는 뜻도 있지만 더욱 중요한 것은 단식과 금육으로 절약한 것을 가난한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사랑의 실천이다. “우리는 하느님의 상속자입니다. 그리스도와 더불어 공동 상속자인 것입니다. 다만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라는 성경 구절은 사순시기가 단순히 고통을 감내하는 기간이 아니라 신앙을 쇄신하고 실천함으로써 주님 부활 대축일을 뜻깊게 맞이할 준비를 하는 기간임을 보여준다. 사순시기 생활 자세 사순시기의 보속과 희생은 개인적인 차원에만 머물러서는 안 되고 “외적이고 사회적”(「전례헌장」제110항)이어야 한다. 진정한 회개와 보속의 삶은 개인적인 절제와 희생뿐 아니라 이를 통해 모아진 결실을 어려운 이웃과 함께 나누는 외적 실천이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랑과 봉사와 선행을 실천하는 사순시기가 되어야 한다. 윤재선 기자 leoyun@cpbc.co.kr 문채현2019.02.27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 우리 삶에 펼쳐지는 ‘희년’](//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4684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 우리 삶에 펼쳐지는 ‘희년’ 한민택 신부 예수님의 나자렛 방문과 회당에서의 ‘희년 선포’는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시며(신원) 무엇을 위해 파견 받으셨는지를(사명) 보여줍니다. 예수님께서 읽으신 성경 구절은 이사야서 61장 1-2절의 말씀이었습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이 말씀을 통해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구약에서 오시기로 약속된 그리스도로 드러내십니다. 그리스도라는 말은 ‘기름 부음 받은 이’라는 뜻으로 구약의 메시아를 지칭합니다. 구약의 약속처럼(이사 61,2) 그분의 사명은 온갖 종류의 속박에 매여 있는 이들에게 다가가 해방의 기쁜 소식을 전하며 그들을 불러 모으는 것이었습니다.“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루카 3,22) 예수님의 세례 때 확인된, 예수님께서 하느님 아버지와 맺는 사랑의 친교는 그분의 공생활을 통해 생생히 드러나기 시작합니다. 광야에서 유혹을 받으신 후 예수님께서 찾아가신 곳은 이방인들의 갈릴래아, 거기서도 가장 비참한 삶을 사는 사람들의 삶의 자리, 구원을 간절히 바라는 이들의 울부짖음이 울려 퍼지는 곳이었습니다.“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이집트 종살이에 허덕이며 하느님께 울부짖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간청을 듣고 모세를 보내시어 그들을 종살이에서 구해주신 하느님께서는, 죄와 악의 종살이에서 허덕이는 이들의 울부짖음을 들으시어 ‘새로운 모세’인 당신 외아드님을 친히 파견하셨습니다. 그곳에서 ‘새로운 탈출기’를 실현시키기 위해서입니다.“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루카 4,21) 복음 말씀에 나오는 ‘오늘’은 2000년 전 예수님의 시간인 동시에, 그분의 인격과 업적을 기억하고 기념하며 그분을 따라 하느님 나라 복음을 선포하는 교회의 ‘오늘’이며 우리 각자의 ‘오늘’이기도 합니다.그 옛날 가난하고 소외되며 온갖 병고에 시달리고 죄와 악의 속박 속에 갇혀 살던 이들에게 다가가 당신 사랑의 힘으로 그들을 속박에서 벗어나 새로운 삶으로 인도하신 것처럼, 주님께서는 오늘도 초라하고 나약한 우리에게 다가오시어 우리가 새로운 삶을 살도록 이끌어주십니다. 죄와 악, 죽음과 두려움이 아닌 사랑과 용서, 자비와 평화가 우리의 삶을 다스릴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우리는 유다인이든 그리스인이든 종이든 자유인이든 모두 한 성령 안에서 세례를 받아 한몸이 되었습니다.”(1코린 12,13)우리는 모두 세례를 통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에 동참하였으며, 그분 사랑으로 새로운 삶을 선물로 부여받았음을 기억합시다. 주님 자녀로서의 고귀한 품위가 회복되었음을 기억합시다.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끊임없이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시며, 자유와 평화의 땅으로 이끌어주고자 하십니다.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cpbc2019.01.23
![[교부들의 사회교리] (2) 공동소유](//cpbc.co.kr/CMS/newspaper/2018/12/rc/741252_1.0_titleImage_1.jpg)
[교부들의 사회교리] (2) 공동소유내 것 내세우지 말고 모든 것 공유하라 “얻기 위해 손을 벌리지 말고, 주기 위해 오므려라. 네 손으로 벌이한 것이 있으면, 네 죄들을 속량키 위해서 주라. 주기를 망설이지 말며, 주면서 불평하지 말라. 보수를 후하게 쳐주시는 분이 누구신지 알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궁핍한 자에게서 돌아서지 말며, 모든 것들을 네 형제와 함께 공유하고 네 것들이라고 말하지 말라. 너희가 불사하는 것을 공유하고 있으니 하물며 사멸하는 것들을 공유하는 것쯤이랴.”(「디다케」4,5-8) 성경처럼 읽히던 책「디다케」는 가장 오래된 교회 규범집이다. 그리스어 디다케는 ‘가르침’이라는 뜻인데, 이 작품의 긴 제목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디다케)」을 줄여서 그리 부른다. 100년경 시리아에서 저술되었으리라 어림잡지만, 지은이는 알 길이 없다. 초기 교회에서는 성경 같은 권위를 누렸고, 미사 전례에서 사도들의 서간들과 함께 봉독되기까지 했다. 사도 시대와 맞닿아 있는 이 책은 로마의 네 번째 주교 클레멘스가 쓴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96년경)과 더불어 가장 오래된 교부 문헌으로 손꼽히며, 사도 시대와 맞닿아 있다 하여 사도 교부 문헌이라 일컬어진다.「디다케」의 사회적 가르침은 매우 짧고 단순하다. 가난한 사람을 외면하지 말고, 모든 것을 형제들과 공유하며 자신의 소유라고 주장하지 말라는 것이다. 모름지기 그리스도인이라면 모든 것을 공유물로 여기고 아무것도 제 것이라 내세우지 말라는 이 공유의 원리는 전혀 낯설지 않다. 조금 일찍 저술된 사도행전에서 루카가 이렇게 증언하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모두 함께 지내며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사도 2,44)고, “아무도 자기 것을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사도 432)공유의 삶은 이상에 지나지 않는가?사도행전의 소유 공동체적 교회상은 역사적 사실을 기술한 것이라기보다 루카가 이상적 교회상을 묘사한 것이라고 해석하는 현대판 사도행전 주해서들이 많다. 그러나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는 주님의 말씀대로 기꺼이 함께 나눔으로써 비참한 궁핍을 겪는 이가 아무도 없었다”는 사도 시대의 이 소중한 증언을 성경 저술가의 한바탕 꿈이나 희망 사항이었다고 단정 짓기에는 사도행전에 이어지는 교부들의 증언이 너무도 생생하고 강렬하다. 165년 로마에서 제자들과 함께 순교한 성 유스티누스 교부는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안토니우스 피우스 황제에게 긴 글을 써 보냈다. 그리스도교의 진리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애틋하게 설명하는 이 작품에는 공유 생활에 관한 보석 같은 정보가 들어 있다. “한때 우리는 부와 재산만을 탐했으나 이제는 가진 것을 공동의 몫으로 내놓고 궁핍한 이들과 함께 나눕니다.”(「첫째 호교론」 14,2)그로부터 280년 가까이 흐른 뒤에도 이러한 삶의 방식은 수도승 생활을 통해 지속되고 있었으니, 일흔을 훌쩍 넘긴 아우구스티누스 주교는 자신이 추구해 온 공유 공동체의 삶에 관하여 이런 강론을 남겼다. “저는 선의를 지닌 형제들을 모아들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제가 아무것도 지니지 않은 것처럼 저를 본받아 아무것도 자기 소유로 지니지 않은 가난한 동지들이었습니다. 제가 지니고 있던 얼마 되지 않는 재산들을 팔아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듯이 저와 함께 살고자 했던 그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그것은 우리 모두가 가진 것을 공동으로 내어 놓고 살기 위해서였습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공동으로 모시듯이 크고 기름진 농지도 우리 모두의 공동 소유였습니다.”(「설교」 355,2)재화의 보편적 목적, 곧 세상의 유일한 주인이신 하느님을 모신 우리에게 세상 재화는 공동의 것이라는 확신이 초기 그리스도교 공동체에서 공유되고 있었을 뿐 아니라, 교회 안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실현되고 있었다고 교부들은 증언한다. 최원오 교수(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 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cpbc2018.12.12
주님 사랑과 자비 전하는 행복한 수도 공동체 소망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 유덕현 초대 아빠스 “아빠스의 영적 부성을 기억하며 모든 형제를 자비롭게 대하라는 사명에로의 초대로 받아들입니다.” 유덕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 고성수도원 초대 아빠스는 “아빠스로 새로운 소임을 받으면서 형제들이 정말 행복을 느끼고 수도원에서 만나는 이들이 하느님 사랑과 자비를 느끼도록 함으로써 하느님께서 영광을 받으시는 공동체가 되기를 소망했습니다.” 1988년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가 한국에 진출하던 해에 입회, 이제는 대수도원장으로서 고성수도원을 이끌게 된 유 아빠스는 우선 “형제들이 정말 행복함을 느끼는 수도승 공동체를 만들겠다”고 다짐했다. 유 아빠스는 특히 “연간 1만 명이 넘는 분들이 우리 수도원을 찾고 있는데, 이는 그만큼 영적 갈증을 느끼는 현대인들이 많다는 방증”이라며 “그래서 이들 평신도와 봉헌자들에 대한 영적 강의와 면담, 고해성사는 우리 일 중에서 가장 중요한 사도직 활동”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성경 말씀으로 기도하는 데에 맛 들이면 세상의 어떤 책이나 오락보다도 더 큰 감동을 하게 되고 하느님을 만나게 될 것”이라면서 렉시오 디비나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유 아빠스는 또 현대의 수도 공동체에도 개인주의적, 세속적 성향이 스며드는 데 대해 “올리베따노 식구끼리라도 먼저 더 사랑하고, 더 돕고, 더 협조하고, 더 나누고, 더 친교를 증진한다면, 공동체 생활을 통해 하느님께 영광을 드릴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성소 계발 문제에 대해서도 그는 “하느님을 찾아라. 그러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될 것”이라는 말로 답변을 대신했다. 유 아빠스는 “이를 위해 기도와 일, 고행과 거룩한 독서를 하는 것”이라며 “이것이 바로 하느님을 만나는 도구”라고 언급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19.03.05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9)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9 - 평신도의 다른 이름, ‘하느님의 외교관’](//cpbc.co.kr/CMS/newspaper/2019/09/rc/762551_1.0_titleImage_1.jpg)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39)평신도를 통한 한국 교회의 쇄신, 그 대안은 복음화 9 - 평신도의 다른 이름, ‘하느님의 외교관’평신도는 예수님의 구원사업 대신하는 사람들 이웃들이 힘들어하고 외로워할 때 예수님께서 그러하셨듯이 우리도 먼저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그림은 렘브란트의 ‘착한 사마리아인’ 일부, 1630년. 가톨릭평화신문 DB “예수님께서는 교만과 아집으로 가득 찬 율법 교사가 당신을 시험하기 위해 던진 질문에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답하셨다.”(루카 10,25-28 참조)이 비유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습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의 측은지심이 바로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마음이고,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가져야 할 마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환자를 고쳐주실 때마다 측은하고 가엾은 생각을 가지셨습니다. 또 눈여겨볼 장면은 강도당한 사람이 행여나 가는 동안 상처가 더하지나 않을까 염려하여 응급조치해 주는 부분입니다. 착한 사마리아인은 그 사람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길까 염려스러워 함께 밤을 지새웠습니다.우리는 흔히 평신도로서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 모범이란 나 자신만 정직하고 정의롭게 잘 사는 것이 아닙니다. 간절하고 절박한 사람들에게 진정한 이웃으로 거듭나는 것이 예수님이 비유로 말씀하셨던 평신도 신앙인의 모범입니다. 날로 각박해져 가는 현대사회에서 정신적, 육체적 깊은 병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웃들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들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그들을 진정으로 이해해 주는 이웃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러하셨듯 사랑 실천세상 사람들은 사랑에 목말라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도 자신 이외에는 관심을 가지려고 하지 않습니다. 이웃이 힘들어하고 외로워할 때,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그러하셨듯이, 그리스도인이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도 힘들고 고통받고 외롭고 아파할 때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위로받고 치유받고 용기를 얻고 새로운 희망을 갖고 살게 되지 않았습니까?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쓴 편지에서 “여러분은 분명히 우리의 봉사직으로 마련된 그리스도의 추천서입니다. 그것은 먹물이 아니라 살아 계신 하느님의 영으로 새겨지고, 돌판이 아니라 살로 된 마음이라는 판에 새겨졌습니다”(2코린 3,3)라고 말씀하셨습니다.평신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대신하는 그분의 소개장입니다. 성령의 능력으로 마음에 새겨진 소개장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께로부터 복음 전파의 사명을 받고 이 땅에 파견되셨듯이,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 평신도들은 각 지역과 여러 분야에 파견된 그리스도의 외교관입니다.예수님께서 인류의 구원을 위해 복음을 선포하셨고 자비와 사랑을 베풀고 치유를 하셨듯이 우리 평신도들도 세상에 나가 하느님 나라를 증거하고 선포해야 합니다. 그리고 가진 것을 나누고 기도하며 사람들의 아픔을 치유해 주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화라고 하는 하느님의 구원사업입니다.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파견하실 때 그 사명과 능력을 주셨듯이 하느님께서는 세상에 파견되는 우리 평신도 모두를 무장시켜 주실 것입니다. 사랑이라는 무기와 성령의 능력을 주셔서 당신의 외교관으로서 부족함이 없도록 보호해 주시고 이끌어 주실 것입니다.성령께서는 마음의 평화와 기쁨으로, 깊은 회개로, 용기와 확신으로 그리고 새로운 삶을 살도록 우리에게 새 생명을 주셨습니다. 우리가 잘나서가 아니라 그분의 자녀이기 때문에 선물로 받은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영원한 생명을 약속받았고 그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을 알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 평신도들이 먼저 세상 사람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무관심 속에 버려진 사람들, 힘들고 어려운 처지에 있는 사람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영적으로 빈곤한 상태에 놓인 사람들에게 달려가 이 기쁜 소식을 전해야 합니다. 우리가 전해야 할 것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안다면 머뭇거릴 시간이 없습니다.성령이 이끄시는 방법으로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복음화를 이끄시는 주역은 성령이시라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이끄시는 방법이 아닌 개인 생각과 판단으로는 복음화를 이룰 수는 없습니다. 파견된 모든 평신도는 성령과 친교를 통해 성령의 이끄심에 충직하게 따르는 종이 되어야 합니다. 복음화는 복음 선포가 선행되어야 합니다. 복음 선포는 명백한 선포와 더불어 생활의 증거가 필요합니다. 명백한 선포를 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교리 지식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평신도들도 공부해야 합니다. 생활의 증거는 평소의 삶을 보여주는 것으로 얼마나 그리스도적인 사상으로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은 삶을 사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평신도의 또 다른 이름 ‘하느님의 외교관’은 예수님을 대신해서 하느님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들입니다.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cpbc2019.09.17

주님의 빛 속에서 100년 향해 새 출발춘천교구, 설정 80주년 기념 미사 봉헌… 하느님 은총에 감사 춘천교구는 교구 설정 기념일인 4월 25일 춘천 죽림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김운회 주교 주례로 8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오랜 세월 한결같이 받은 하느님 은총에 감사하는 시간을 가졌다.과거 일제의 종교 핍박과 남북 분단의 아픔, 공산 치하의 혹독한 수난을 온몸으로 겪으면서도 신앙의 전통을 고스란히 간직해온 춘천교구는 이날 80주년 기념 미사를 통해 주님의 빛 속에 하나 된 마음으로 100년을 향한 사랑의 공동체로 거듭날 것을 새롭게 다짐했다. 김운회 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하느님의 자비로 이뤄진 80년이라는 시간은 감사의 시간일 뿐만 아니라, 우리의 현재를 다시금 돌아보고, 또 미래의 우리를 준비해나가는 시간”이라며 “주님의 빛 안에 신앙의 기쁨을 나누는 모습을 통해 내가 살아가는 공간과 시간을 ‘작은 하느님 나라’로 만들어가자”고 당부했다.춘천교구는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란 주제 아래 올 한해를 교구 설정 80주년 기념의 해로 보내기로 하고, 지난해 12월 1일 개막 미사 봉헌 후 다양한 방식으로 기쁨의 시간을 보내고 있다. 교구는 개막 미사 이튿날부터 1년간 행해지는 ‘예수 성심상 본당 순례’를 통해 교구 주보이신 예수 성심의 사랑에 교구민 전체가 감사와 기도의 뜻을 모으고 있다. 아울러 △나부터 변하자 △사랑으로 하나 되자 △감사한 마음으로 우리가 하느님 말씀을 전하자 등 세 가지 신앙덕목 아래 교구민 전체가 사랑으로 더욱 변화되고자 힘쓰고 있다. 또 평일 미사 참여와 매주 금요일 단식 실천으로 나눔의 뜻을 돋우고, 80주년 기도 봉헌과 성경 통독 및 쓰기, 성시간, 성체조배 등을 활발히 펼치면서 신앙 성숙과 내실을 더해가고 있다. 춘천교구는 이미 지난해 전 교구민 대상 신앙 설문조사를 실시해 결과를 토대로 후속 프로그램 마련을 진행 중이며, 젊은 세대를 위한 사목 프로그램 개발에도 힘쓰는 등 변화와 쇄신, 공동체 일치로 100년을 향해 새롭게 성장하는 교구로 나아가는 데 주력하고 있다. 80주년 기념 사진전과 음악회, 미술전 등 다양한 행사도 펼쳐지고 있다.1939년 경성대목구에서 분리돼 춘천지목구로 출발한 춘천교구는 1962년 한국 가톨릭 교계제도 설정에 따라 정식 교구가 됐다. 춘천교구는 서울ㆍ대구ㆍ광주ㆍ전주에 이어 5번째로 역사가 오래됐으며, 관할 지역은 경기 가평ㆍ포천에서 강원 영서ㆍ영동ㆍ영북지역에 이르기까지 전국 교구 중 제일 넓다. 교구 내 본당은 63곳(준본당 포함), 공소 39개소, 사제 115명, 신자는 9만여 명이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9.05.02
![[교부들의 사회교리] (6)연대와 환대](//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3447_1.0_titleImage_1.jpg)
[교부들의 사회교리] (6)연대와 환대 다른 얼굴, 삶 지닌 이들과 '더불어' 최원오 교수 “예전에 우리는 향락을 즐겼지만, 이제는 오직 절제만을 사랑합니다. 전에는 요상한 속임수를 썼지만, 이제는 선하시며 창조되지 않으신 하느님께 우리 자신을 봉헌합니다. 한때 우리는 부와 재산만을 탐했으나 이제는 가진 것을 공동의 몫으로 내놓고 궁핍한 이들과 함께 나눕니다. 전에는 서로 미워하며 죽이기도 했고, 우리 혈통이 아닌 사람들이나 다른 풍습을 지닌 사람들을 환대하지 않았지만, 그리스도께서 오신 다음부터는 공동체를 이루어 삽니다. 그리고 원수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부당하게 우리를 미워하는 사람들을 설득하려 애씁니다. 그들도 그리스도의 선한 계명대로 살아감으로써 마침내 우리와 더불어 만유의 주님이신 하느님께 똑같은 상급을 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유스티누스, 「첫째 호교론」 14,2-3) 그리스도교야말로 참된 철학 성 유스티누스는 한평생 참된 철학을 추구한 위대한 평신도 교부이다. 젊은 시절에는 철학책에서 지혜를 찾아 헤맸으나, 마침내 성경을 통해 참된 지혜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이 되었다. 우연히 만난 한 노인이 진정한 지혜는 철학책이 아니라 성경에서 찾을 수 있다고 일러준 덕분이었다. 그리스도교야말로 확실하고 유익한 단 하나의 철학이라 확신한 유스티누스는 끝까지 철학자로 살다가 165년 로마에서 제자들과 함께 순교했다. 가장 빼어난 호교 교부인 유스티누스가 남긴 대표작은 「첫째 호교론」(150년경)이다. 이 작품에는 초기 그리스도인의 교회 생활과 사회 활동에 관한 중요한 정보가 그득하다. 서로 다른 혈통과 풍습을 지닌 사람들 유스티누스 교부는 이 짧은 인용문에서 그리스도인이 되기 전과 후의 근본 변화를 생생하게 묘사하고 있다. 특히 난민이나 이주민들처럼 “우리 혈통이 아닌 사람들이나 다른 풍습을 지닌 사람들”을 그리스도인들은 환대하게 되었다고 밝힌다. 전에는 깔보고 무시하던 다른 민족 사람들과 가난한 외국인들을 지금은 공동체에 따뜻이 맞아들여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낯선 이들을 배척하고 외면하던 혐오의 장벽을 허물고 연대와 환대의 공동체적 삶으로 건너왔다는 것이다. “우리 혈통이 아닌 사람들이나 다른 풍습을 지닌 사람들”을 환대하지 않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를 때의 관습이며, 그리스도를 외면하는 삶이다. 나그네의 모습으로, 떠돌이의 모습으로, 난민과 이주민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예수님(마태 25,31-46)을 환대하기는커녕 거부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의 세계관에 머물러 있을 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오심을 반대하는 것이 분명하다. 난민에 대한 환대는 교부들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그리스도교의 거룩한 전통이며, 그 성전(聖傳)은 오늘날까지 프란치스코 교황의 삶과 가르침을 통해 전 세계 가톨릭 교회 안에서 줄기차게 이어지고 있다. “난민은 숫자가 아니라 사람입니다. 저마다 얼굴과 이름, 삶의 이야기를 지닌 난민들을 인격적으로 맞아야 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 2016년 4월 16일 인터뷰)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cpbc2019.01.09
![[생활속의 복음] 성령 강림 대축일 - 성령 안에 새로운 삶](//cpbc.co.kr/CMS/newspaper/2019/06/rc/754606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 성령 강림 대축일 - 성령 안에 새로운 삶 한민택 신부 “우리는 하느님의 사랑을 믿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은 윤리적 선택이나 고결한 생각의 결과가 아니라, 삶에 새로운 시야와 결정적인 방향을 제시하는 한 사건, 한 사람을 만나는 것입니다.”(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1항)베네딕토 교황님의 이 말씀은 그리스도 신앙의 출발점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에 있다는 것을 알려줍니다. 그리스도 신앙은 성경이나 교리 지식을 믿는 종교가 아닙니다. 우리는 살아 있는 인격,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 안에 당신 자신을 드러내신 하느님 아버지를 믿습니다.예수님을 만방에 선포하도록 제자들을 움직였던 것은, 바로 스승과의 만남이며 그분과 함께한 삶에서 비롯된 신앙 체험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인격에 깊이 감화되었고, 그분으로부터 받은 사랑으로 구원을 경험하였습니다. 그들이 경험한 예수님의 인격과 사랑, 그리고 그들의 삶 안에 실현된 놀라운 구원의 신비를 전하고자 하였던 것입니다.사도행전은 제자들에게 결정적인 변화를 가져온 사건을 성령 강림 사건으로 전해줍니다. 성령 강림 체험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신비로운 현상을 보거나 마음속에서 알 수 없는 신비로운 체험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영이시며, 성령 체험은 내면 깊은 곳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그분의 사랑으로 정화되고 변화되는 체험입니다. 좌절과 절망, 두려움과 죽음으로 점철된 삶이 주님께서 주시는 새로운 희망과 활력, 기쁨과 환희로 채워지는 체험입니다. 성령의 활동을 통해 두려움에 떨던 제자들은 다락방을 박차고 세상 한가운데로 나아가 예수님에 대해 담대하게 증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또한, 성령 강림 체험은 예수님께서 누리시던 아버지 하느님과의 친밀한 관계의 체험이기도 합니다. 아버지를 ‘아빠’ 하고 친밀하게 부르며 그분께 온전히 신뢰하고 의탁하는 체험입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 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하고 외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대는 더 이상 종이 아니라 자녀입니다. 그리고 자녀라면 하느님께서 세워 주신 상속자이기도 합니다.”(갈라 4,6-7)그러나 유아기적 망상에 사로잡혀서는 안 됩니다. 그 체험은 마술과 같이 즉각적으로 주어지지 않습니다. 각자 삶의 영역에서 각자가 살아가는 방식 안에서, 특별히 시련과 환난을 겪으면서 서서히 우리 안에 실현되는 변화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환난도 자랑으로 여깁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환난은 인내를 자아내고 인내는 수양을, 수양은 희망을 자아냅니다. 그리고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3-5)성령을 통해 우리 마음에 부어진 하느님의 사랑은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우리를 변화시켜 당신 아들의 형상으로 닮아가도록 인도하실 것입니다. 성령 강림 대축일에 성령께서 우리 삶을 새롭게 하시어, 그분께서 주시는 열매가 풍성히 열리기를 청해봅니다.“성령의 열매는 사랑, 기쁨, 평화, 인내, 호의, 선의, 성실, 온유, 절제입니다. 우리는 성령으로 사는 사람들이므로 성령을 따라갑시다.”(갈라 5,22-23. 25)한민택 신부(수원가톨릭대 교수, 이성과신앙연구소 소장) 평화신문2019.06.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