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75) 예루살렘 멸망 예고와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루카 21,20-28)](//cpbc.co.kr/CMS/newspaper/2018/08/rc/729119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75) 예루살렘 멸망 예고와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루카 21,20-28)종말은 구원의 때, 두려워 말고 현실에 충실해야 종말에 관한 예수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에게는 두려움이 아니라 위로와 희망을 주는 말씀이다. 그림은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에 있는 최후의 심판. 지난 호에서 살펴봤듯이, 예루살렘 성전 파괴를 예고하시면서 종말에 앞서 시작될 재난에 대해 말씀하신(21,5-19)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 멸망을 예고하시고는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 곧 종말에 관해 이야기하십니다.예루살렘 멸망 예고(21,20-24)루카복음에서는 예루살렘 멸망에 관한 예수님의 예고 말씀이 이렇게 시작합니다. “예루살렘이 적군에게 포위된 것을 보거든, 그곳이 황폐해질 때가 가까이 왔음을 알아라.”(21,20) 같은 내용을 마르코복음에서는 이렇게 전하지요. “있어서는 안 될 곳에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서 있는 것을 보거든─읽는 이는 알아들으라─.”(마르 13,14) 마태오복음도 마르코복음과 비슷합니다.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 거룩한 곳에 서 있는 것을 보거든─읽는 이는 알아들으라─.”(마태 24,15) 같은 예수님 말씀이 루카 복음서와 마태오 및 마르코 복음서에서 차이가 나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일단 이런 물음을 가지고 본문을 더 살펴봅시다. “그때에 유다에 있는 이들은 산으로 달아나고, 예루살렘에 있는 이들은 거기에서 빠져나가라. 시골에 있는 이들은 예루살렘으로 들어가지 마라.”(21,21) 유다는 예루살렘이 속한 지방 이름입니다. 예루살렘이 적군에 포위당해 함락될 처지라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지당합니다.문제는 그다음 말씀입니다. “그때가 바로 성경에 기록된 모든 말씀이 이루어지는 징벌의 날이기 때문이다. 불행하여라, 그 무렵에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 이 땅에 큰 재난이, 이 백성에게 진노가 닥칠 것이기 때문이다.”(21,22-23) 이 대목을 보자면,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성경에 기록된 말씀이 이뤄지는 징벌의 날로 보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구약에서 특히 예레미야와 에제키엘 같은 예언자들은 하느님께 대한 불충한 징벌로 예루살렘의 멸망을 강력히 경고했습니다. 결국 예루살렘은 기원전 587년에 바빌론에 함락당하고 수많은 이스라엘인이 포로로 끌려갔지요. 옛날 예루살렘이 그랬던 것처럼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거부하는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예수님께서는 이 예언의 마지막 부분에서 “사람들이 칼날에 쓰러지고 포로가 되어 모든 민족에게 끌려갈 것이다. 그리고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21,24) 이 예언은 실제로 기원후 70년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수많은 유다인들을 죽이고 포로로 데려가고 함으로써 역사적 현실이 됐습니다. 다만 마지막에 나오는 “예루살렘은 다른 민족들의 시대가 다 찰 때까지 그들에게 짓밟힐 것”이라는 말씀에 대해서는 좀더 생각할 여지가 있습니다.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예수님을 배척해서 멸망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성경에서 예루살렘은 하느님의 도읍, 하느님의 백성을 뜻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 마지막 말씀을 두고 새로운 하느님의 백성인 그리스도인들이 복음을 모르는 이민족들에 의해 박해를 받고 시련을 겪으리라는 것으로 풀이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루카복음의 예언과 마태오복음 및 마르코복음의 예언 말씀이 차이를 보이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루카가 복음서를 집필한 시기인 기원후 80년쯤에는 로마군에 의한 예루살렘의 멸망이 이미 이루어지고 난 후였습니다. 따라서 루카 복음사가는 마태오나 마르코와 달리 ‘황폐를 부르는 혐오스러운 것’이라는 추상적 표현을 쓸 필요 없이 적군에게 포위됐다는 구체적이고 역사적인 표현을 썼다고 성경학자들은 풀이합니다.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21,25-28)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신 예수님께서는 바로 이어서 사람의 아들이 오는 날에 대해 이야기하십니다. 이 말씀을 세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봅니다. 첫 부분은 종말이 왔음을 알리는 표징들입니다. “해와 달과 별들에 표징이 나타나고 땅에서는 바다와 거센 파도소리에 자지러진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일 것이다. 사람들은 세상에 닥쳐오는 것들에 대한 두려운 예감으로 까무러칠 것이다. 하늘의 세력들이 흔들일 것이기 때문이다.”(21,25-26) 해와 달과 별에 생기는 표징들, 바다와 거센 파도소리에 민족들이 공포에 휩싸이는 것 등은 종말에 관한 구약성경의 표현들입니다. 묵시문학적 표현이라고도 하지요. 둘째 부분은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떨치며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사람들이 볼 것이다”라는 대목입니다.(21,27) 예수님께서는 자주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표현하시는데, 구약성경 다니엘서에서는 사람의 아들을 하느님께 뭇 민족과 모든 나라를 영원히 다스리는 왕권을 받는 분으로 예언하고 있지요.(다니 7,13-14) 또 구름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권능이나 현존을 묘사할 때 사용됩니다.(탈출 14,20; 34,5; 시편 104,3 등) 셋째 부분은 종말을 대하는 태도와 관련됩니다.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라. 너희의 속량이 가까웠기 때문이다.”(21,28) 하늘에 표징들이 나타나고 땅과 바다가 거세게 뒤흔들린다면 사람들은 공포로 자지러질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은 늘 두려움과 결부됩니다. 하지만 루카복음에서 전하는 예수님의 이 말씀은 정반대입니다. 그리스도의 제자들은 종말이 오면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힐 것이 아니라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때야말로 속량이, 곧 구원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생각해 봅시다예루살렘 멸망과 종말에 관한 예수님의 말씀을 두고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당신을 거부하고 배척하는 예루살렘에 재앙이 있으리라고 경고하시는 말씀으로 풀이합니다. 예수님을 거부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처형한 예루살렘은 실제로 기원후 70년에 로마군에 의해 멸망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종말이 이처럼 재앙으로 다가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사람들, 그리스도의 제자들에게는 종말이 재앙이 아니라 구원의 때입니다. 그러니 예수님 말씀처럼 허리를 펴고 머리를 들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종말은 파국이 아니라 구원입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이 복음의 가치와 상반되는 가치관이 팽배한 현실 속에서 살아가며 고통과 시련을 겪을 수밖에 없지만 희망의 끈을 놓지 말아야 할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 희망은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문채현2018.08.01
![[창간 31주년 연중기획 오늘날의 청년 예수] 가톨릭청년미술가회](//cpbc.co.kr/CMS/newspaper/2019/05/rc/752441_1.0_titleImage_1.jpg)
[창간 31주년 연중기획 오늘날의 청년 예수] 가톨릭청년미술가회 새로운 복음의 씨앗 뿌리며 신앙 키우는 열혈 청년들 연어가 바다로 떠나면 강에는 연어가 없다. 강의 입장에서 보면 연어가 없는 것이요, 연어 입장에서는 강이 너무 좁게 느껴져 바다로 떠난 것인지 모른다. 교회도 비슷하다. 교회에 청년이 없다는 목소리와 청년이 교회에서 활동할 곳이 없다는 목소리가 교차한다. 하지만 마음속 본향인 주님을 따라 교회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있다. 환경이 척박해도 자신의 탤런트로 복음의 씨앗을 뿌리는 ‘청년 예수’들이다. 힘들 때 서로 힘이 되어주고 지칠 때 서로 위로하며 주님을 따르는 청년 예수의 삶과 신앙을 가톨릭평화신문이 창간 31돌을 맞아 연중 기획으로 소개한다. 신앙의 씨앗을 뿌리며가톨릭청년미술가회(회장 송면근, 이하 가청회)는 40세 이하 청년 미술가 27명으로 구성된 신앙 공동체다. 2016년 창립해 매년 정기전과 아트마켓전 등을 열며 예술로 신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예술의 길은 멀고도 험하다고 했던가. 젊은 미술가 중 전업 작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미술학원 강사나 미술 관련 아르바이트 등을 하며 성미술에 대한 열정을 이어가고 있다. 송면근(실바노, 36) 회장은 “젊은 작가의 삶이 힘들지만, 미술을 통해 신자와 만나고 교회 미술에 청년의 힘을 불어넣고 싶다”며 “홀로 작업할 때 겪는 어려움은 신앙과 공동체 안에서 극복하고 있다”고 밝혔다.작가들의 작품은 부모에게 물려받은 신앙, 어린 시절의 성당 추억 등 신앙 체험이 바탕이 되기도 한다. 송 회장의 아버지는 성미술 조각을 40여 년 한 원로 작가다. “돈에 연연하지 않고 작업을 해 온 아버지의 모습에 미술가의 길을 걷기 주저하기도 했죠. 지금은 허투루 작업한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아버지의 마음가짐을 떠올립니다.” 김지혜(엘리사벳, 33) 작가도 “어린 시절 성당에서 언니, 오빠들과 어울려 공부하고 놀던 기억을 돌아보면 신앙에 큰 힘이 되는 것 같다”며 “신앙도, 성미술 작업도 어린 시절의 자연스러운 신앙처럼 쉽게 다가가야 한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김 작가는 얼마 전 동료 작가들과 창세기 성경 공부를 마치고 함께 기획전을 준비 중이다. ‘행복을 가득 담아 그대에게’ 이금휘 작. 신자들과 소통하는 기회가 늘길 바라두 청년을 비롯한 회원들은 모두 각자의 신앙이 반영된 성미술 작업을 하지만 교회 내 청년 미술가가 설 자리가 없음을 아쉬워한다. 김 작가는 “성미술 작업을 하는 신앙인은 많지만 펼칠 기반이 교회 내에는 거의 없다”며 “명동 갤러리 1898만이 신앙과 예술 세계를 펼칠 유일한 장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그래서 22일~27일 갤러리 1898 제2전시실에서 열리는 2019 아트마켓전 ‘네모 안에 담은 세상’은 청년과 관객이 소통할 수 있는 더없이 소중한 기회다. 가로, 세로 25㎝ 정사각형 캔버스 안에 청년 미술가의 세계관과 신앙을 자유롭게 표현하고 기존 작품보다 저렴하게 판매함으로써 예술에 관한 장벽을 낮춘다는 계획이다. 전시할 작품은 서양화, 한국화, 도예, 석조, 금속공예 등 20여 점과 개인 부스의 작품까지 모두 50여 점. 25~26일에는 한국화 그리기와 열쇠고리 만들기를 체험할 수 있는 장도 마련한다. 송 회장은 “4년차를 맞는 가청회가 교회라는 하느님 울타리 안에서 젊고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는 존재가 되도록 노력하겠다”며 “작가에게 작품 판매는 다른 작품 활동을 새롭게 시작할 수 있는 동기 부여이자 원동력이 된다”며 아트마켓에 대한 관심을 부탁했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19.05.07
![[영화의 향기 with CaFF] (15) 생일](//cpbc.co.kr/CMS/newspaper/2019/04/rc/749805_1.0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15) 생일세월호가 남긴 상처, 함께 어루만지는 우리 영화 ‘생일’ 스틸컷. 로스크 제공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시편 34,19)영화 ‘생일’은 세월호 침몰 사고로 아들을 잃은 한 유가족의 이야기를 다룬다. 한국 사람이면 누구나 슬픔을 절감하는 5년 전의 사고로 304명이 억울한 죽임을 당했고, 아직도 5명의 실종자가 있다. 유가족의 형언할 수 없는 고통과 상처는 현재진행형으로 남아 있음을 잘 알기에 사건에 대한 재현 자체만도 고통스럽다.이 영화의 특별한 점은 아들 ‘수호’를 떠나보낸 아빠 ‘정일’과 엄마 ‘순남’, 여동생 ‘예솔’의 관점에서 그들의 감정과 갈등을 담아간다는 것이다. 아들의 사건 소식을 알고도 몇 년이 지나 가족 앞에 나타난 정일. 세상과 심지어 다른 유가족과도 거리를 두며 우울하게 살고 있는 순남. 오빠의 빈자리 때문에 가족 안에서조차 사랑을 갈구하지 못하는 예솔. 이 가족은 해체되어 있고 서로를 보듬지 못하고, 슬픔의 구렁텅이에서 영원히 헤어 나오지 못할 것 같은 시간이 계속된다.다행인 것은 이 가족 주위에는 착한 이웃들, 대가를 바라지 않고 도움을 주려고 찾아오는 이들 그리고 다른 유가족들이 자리하고 있어 슬픔이 북받칠 때 슬픔을 있는 그대로 받아주고, 공동체로 가족을 끊임없이 초대하며, 그 닫힌 마음을 조금씩 열어간다는 것이다.영화에 등장하는 수호의 ‘생일잔치’는 상징적이며 실제적인 가치를 지닌다. 성경 안에서 ‘잔치’가하느님과 함께하는 구원의 상징적 자리이고, 예수님은 죄인들과의 식사를 통해서 하느님의 용서와 자비를 드러내는 것처럼. 수호를 기억하는 모든 이가 모여 슬픔 너머의 희망적 가치를 기대하게 한다.실제 유가족 중 한 분이 세월호 사건에는 한 가지 보편적인 슬픔이 아니라 304가지 각기 다른 슬픔이 자리하고 있다고 말한 것을 기억한다. 한가족이지만 정일과 순남, 예솔이 서로 다른 입장에서 그 슬픔을 안고 살아가고 있는 것처럼 그 고유한 슬픔과 고통의 무게는 가늠할 수 없지만, 누군가 함께 해주지 않는다면 그 슬픔은 그대로 가족들의 몫으로 오랫동안 남는다는 것이다.사순시기를 보내면서 신앙인으로서 회개와 보속을 통해 하느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회복하기를 모두가 바란다. 나와 하느님의 관계는 나와 이웃과의 관계를 통해 완성됨을 기억하면서 이웃에 대한 관심, 특별히 시대적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고 마음으로 함께하며 그 짐을 나눌 수 있을 때 우리 안에 하느님 사랑과 자비로 말미암은 공동체적 치유를 체험하게 될 것이다.그 슬픔을 이해한다고 말하는 것조차 사치스러운 표현같이 느껴지지만 세월호 희생자 모두가 하느님 나라에서 영원한 안식과 기쁨을 누리며, 남겨진 가족들 한 사람 한 사람에게도 그분의 위로와 사랑이 그 상처를 치유해주시기를 간절히 청한다. cpbc2019.04.03
주님 안에서 이뤄지는 거룩한 사랑의 서약](//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3462_1.0_titleImage_1.jpg)
[성사풀이](29)주님 안에서 이뤄지는 거룩한 사랑의 서약가톨릭교회의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주님 안에서 인격적으로 합의하는 결코 철회될 수 없는 계약이다. 가톨릭평화신문 DB혼인성사의 근거는 무엇인가요 하느님께서는 남녀의 사랑이 당신께서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절대적 표상이 되게 하셨고(「가톨릭교회 교리서」 1604항), 그들에게 “자식을 많이 낳아 번성하여라”(창세 1,28) 하셨다. 예수님께서도 첫 기적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행하시고(요한 2,1-11 참조) 혼인을 축복하셨다. 바오로 사도는 부부의 사랑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베푸신 사랑을 표현한다고 설명했다.(에페 5,31-32 참조) 사랑으로 인간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또한 사랑하도록 인간을 부르셨습니다. 성경은 인간이 바로 “사랑이신” 하느님과 닮은 모습으로 창조되었고, 남자와 여자는 서로를 위해 창조되었다고 말합니다.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몸이 된다.”(창세 2,24) 주님께서는 친히 처음부터 창조주의 계획이 무엇이었는지를 환기시키심으로써 이것이 남녀의 확고한 결합을 의미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셨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04, 1605항 참조) 이처럼 혼인성사는 혼인의 본디 모습인 거룩함을 회복시키고 하느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지 못하도록 하며(마태 19,6), 그리스도인 부부가 평등한 존엄과 상호 헌신으로, 또 사랑의 신적 원천에서 흘러나오는 갈림 없는 사랑으로, 부부 생활을 풍요롭게 가꾸어 나가도록 도와줍니다. 가톨릭교회 혼인의 특징은 무엇인가요 가톨릭교회의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주님 안에서 인격적으로 합의하는, 결코 철회될 수 없는 계약이다.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이 평생 공동체를 이루어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살아가도록 도와주시고자 이 혼인을 성사의 품위로 들어 올리셨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01-1603항 참조) 남자와 여자의 창조로 시작하는 성경은 처음부터 끝까지 혼인과 그 신비, 혼인 제정과 목적, 죄로 말미암은 혼인의 어려움, 그리스도와 교회 사이의 새로운 계약을 통해 주님 안에서 이루어진 혼인의 새로운 의미에 대해 말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01항 참조) 그러기에 교회는 세례를 받은 신자들의 혼인이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주님 안에서 인격적 합의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는 계약이며, 이 계약은 결코 풀릴 수 없다고 가르칩니다.(마태 19,6) 그리스도께서는 신자들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평생 공동체를 이루고 그분의 구원 활동에 협조하며 살아가도록 혼인을 성사의 품위로 올리시어 은총으로 도와주십니다. 혼인성사는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요 혼인 당사자들은 혼인성사를 받기에 합당한 내적, 영적 준비를 위해 혼인 전 견진성사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하며, 적어도 혼인 1개월 전에는 본당 신부와 혼인성사에 대해 의논하고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리를 받아야 한다.(사목지침서 제104조) 혼인의 전례 거행은 성화하는 성사 행위이므로, 성사가 유효하고 존엄하며 열매를 잘 맺으려면, 며칠만이라도 조용한 시간을 갖고 내적 준비를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따라서 신랑 신부는 혼인을 거행하기 위한 준비로 고해성사를 받는 것이 마땅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622항) 만일 견진성사도 받을 수 있다면 같이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이를 통해 혼인을 앞둔 당사자들은 혼인성사로 새로워질 자기 신분의 거룩함을 올바로 이해하고 또 그에 따른 의무를 잘 이행하도록 준비해야 합니다. 외적으로는, 먼저 본인이나 배우자가 속한 본당의 사무실을 방문해 혼인 신청서를 작성하고, 본당 신부와 면담 일정을 정한 다음, 소속 교구에서 시행하는 혼인 교리를 수강합니다. 혼인 교리는 그리스도교 혼인의 의미, 그리스도인 부부와 부모의 임무에 관해 배우므로 빠뜨리지 않고 꼭 받아야 합니다. 그다음, 주임 신부는 혼인 당사자들과 개별로 면담하며 혼인이 온전한 자유 의사에 따른 것인지, 혼인에 방해되는 요소는 없는지 살펴보고, 이를 문서로 작성해 혼인을 거행한 본당 사무실에 영구적으로 보관합니다. 만일 가톨릭 신자가 혼인성사나 관면 혼배를 받지 않고 그냥 일반 혼인만 한다면 성사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이를 과거에는 ‘조당’(阻撞)이라고 불렀지만, 현재는 ‘혼인 장애’라고 합니다.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cpbc2019.01.09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7) 18세기 ④ - 개신교 경건주의에 직면한 독일 가톨릭 영성](//cpbc.co.kr/CMS/newspaper/2018/08/rc/729748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7) 18세기 ④ - 개신교 경건주의에 직면한 독일 가톨릭 영성‘개인주의적 신앙’에 영성생활 지침 제시 베스트팔렌 조약의 비준을 담은 그림. 1648년 10월 24일 맺어진 조약으로 유럽 전역은 평화를 맞았고 독일은 종교의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됐다. 하지만 개인적 신심을 지나치게 강조한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독일 가톨릭 영성에 악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16세기 종교개혁주의자들의 개혁 운동은 가톨릭교회가 신자들에게 올바른 영성생활을 가르쳐 주기는커녕 오히려 잘못된 신심을 조장한다고 비판했습니다. 하지만 17~18세기 개신교는 자신들의 근본주의에 매몰돼 교회 운영 방식과 교리에 대한 논쟁의 양상을 보이거나, 사변 신학에 무관심하면서 개인주의적이고 체계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였습니다. 특히 독일에서 성경 말씀을 엄격하게 준수하려고 했던 개신교가 유연성을 잃고 경직됐을 때, 가톨릭교회는 성경 연구를 비판하고 수용하면서 신비체험과 신비신학을 통해 신자들에게 영성생활의 본보기를 제시하려고 노력했습니다.역사 비평적 성경 연구 방법론의 출현17세기 프랑스에서 많은 영성가와 영성작가들이 이단 사조에 대항하면서 올바른 영성생활을 가르치고자 노력했지만 외적으로 보기에 신자들의 영성생활뿐 아니라, 믿음에까지 혼란을 가져올 것만 같았던 시도도 있었습니다. 성경 비평가인 프랑스 오라토리오회 소속 리샤르 시몽(Richard Simon, 1638~1712)은 1678년에 저서 「구약성경의 비판적 역사(Histoire critique du Vieux Testament)」에서 모세오경의 저자가 모세라고 널리 알려진 내용을 비판했습니다. 보쉬에(Jacques-Bnigne Bossuet, 1627~1704) 주교는 즉시 시몽의 주장에 반대하며 금서 처분을 이끌어냈습니다.하지만 시몽의 주장은 세속 학자들에게도 영향을 끼쳤습니다. 의대 교수였던 장 아스트뤽(Jean Astruc, 1684~1766)은 1753년에 익명으로 출판한 저서 「모세가 창세기를 쓰는 데 사용한 것으로 보이는 원본 문헌에 대한 추측(Conjectures sur les mmoires originauz dont il paroit que Moyse s’est servi pour composer le livre de la Gense)」에서 저자가 최대 11개의 원전 자료들을 사용해 창세기를 썼는데, 원전 자료들이 연대순을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섞여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처음에 비판적인 성경 연구는 가톨릭교회에서뿐만 아니라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를 주장했던 개신교에서도 받아들일 수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스트뤽의 주장은 18세기에 들어서 프랑스보다 독일에서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독일 개신교 경건주의와 영국 감리교의 출현종교개혁 이후에 주로 교리 논쟁에 치우친 결과로 영성생활이 메말랐다고 생각한 개신교는 17세기 루터교를 중심으로 생활 쇄신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독일 루터교 신학자였던 필립 슈페너(Philipp Jakob Spener, 1635~1705)는 1675년 저서 「경건한 욕망(Pia Desideria)」에서 신앙인이 영적 쇄신을 통해 개인적으로 변화되는 방법을 강조하면서 개별적인 신심과 경건함에 초점을 맞췄습니다. 특히 슈페너는 저서에서 6개 항목의 생활 개선 방안을 제안했습니다. 즉, 평신도 신앙인들은 성경 공부를 더 열심히 해야 하고 교회 활동에 더 참여해야 하며, 신앙을 실천해야 하고 논쟁보다는 겸손과 사랑으로 토론해야 하며, 종교 지도자는 학식뿐만 아니라 경건함도 지녀야 하고 일반 신앙인의 신앙을 발전시킬 설교를 해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경건주의(Pietism)’의 아버지로 불렸던 슈페너는 개별 신앙인들이 경건해질 때에, 교회도 긍정적으로 쇄신될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18세기 절정기를 맞은 경건주의는 개신교 신앙인의 신앙 부흥과 영성생활을 위해 개별적으로 엄격한 윤리 도덕과 경건함을 겸비할 것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경건주의는 개인 신심의 형태로 발전했습니다.유럽 본토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18세기에 영국에서 새로운 종교 부흥 운동이 일어나는 데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교리 논쟁이나 신심생활에 흥미를 잃어버린 영국 성공회에 실망한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와 동생 찰스 웨슬리(Charles Wesley, 1707~1788)는 1729년에 ‘신성회(Holy Club)’를 설립하고 박애주의와 경건주의를 실천했습니다. 성공회 사제였던 존 웨슬리는 1738년 특별한 종교 체험을 한 후에 신앙인들에게 생기 있는 실천적인 신앙심을 불러일으키고자 순회 설교를 시작했으며, 많은 사람이 그의 가르침과 성품에 매력을 느끼고 모여들었습니다. 존 웨슬리를 추종하던 사람 중 일부는 미국으로 이주해 1768년 그곳에서 ‘감리교(Methodist)’를 설립했으며, 영국에서도 1795년 영국 감리교가 성공회로부터 독립했습니다. 존 웨슬리의 가르침에 따르면, 감리교는 개인의 신앙 체험을 중요하게 여기고 애덕 실천을 강조했으며, 하느님의 구원 은총도 개인적인 체험에서 접근했습니다. 또한 신앙인들이 사랑의 완전을 추구하는 것을 강조하면서 사회복지 사업에 관심을 가졌고, 종교개혁주의자들이 주장한 복음주의를 따랐습니다. 물론 존 웨슬리는 평생 성공회를 떠나지 않았고 성공회 사제로서 자의식도 분명했지만, 그의 가르침을 따르던 사람들이 새로운 종교 조직을 만드는 것을 반대하지도 않았습니다.독일 가톨릭 영성에 악영향을 끼친 경건주의의 개인 신심독일 지역은 17세기에 발발했던 30년 전쟁(1618~1648) 때문에 많은 변화를 겪었습니다. 30년 전쟁은 초기 신성 로마 제국을 중심으로 한 가톨릭교회를 지지하는 나라들과 개신교를 지지하는 나라들 사이에서 벌어진 종교적인 요소가 담긴 전쟁이었는데, 점점 각 나라가 자국의 이익을 추구하면서 독일과 프랑스의 대결 구도 속에서 정치적인 전쟁이 됐습니다. 1648년 체결된 베스트팔렌 조약(Westflischer Friede)으로 30년 전쟁은 끝났으며, 유럽 전역은 평화를 맞았습니다. 18세기 독일은 평화조약 덕분에 평민들이 제후의 종교를 따르지 않고 자신의 종교를 가질 수 있는 종교 자유를 누리는 나라가 됐으나, 개신교 교세가 강한 북쪽 지역의 백성들은 부유하고 가톨릭 교세가 강한 남쪽 지역 백성들은 빈곤하게 됐습니다.따라서 독일 가톨릭교회는 빈곤한 남쪽 지역 신자들에게 신앙 강화를 위한 신앙교육과 영성생활을 시급히 보급해야 했습니다. 하지만 독일 지역 개신교의 경건주의는 신심생활을 지나치게 개인화시킴으로써 가톨릭 신자들에게도 수덕생활과 신비생활을 개인적인 신심의 관점에서 다가가는 오류를 범하게 할 가능성을 높였습니다. 더군다나 18세기 후반에 나타난 낭만주의는 가톨릭교회를 동방 지역 및 동양의 종교들과 유사하게 여기면서 일반인들에게 가톨릭 신앙을 미신 행위의 일종으로 느끼게 했습니다.독일 프란치스코회 소속 멜키오레 베버(Melchiore Weber)는 1714년에 저서 「하느님 말씀의 칼로 자른 경건주의자들의 종파(Secta Pietistarum Dissecta Gladio Verbi Dei)」에서 경건주의를 강력하게 반대했습니다. 또한, 독일 폴링(Polling)의 의전 수도회 소속이었던 신학자 에우세비우스 아모르트(Eusebius Amort, 1692~1775)는 1744년에 저서 「사적 계시, 환시 및 발현에 대한 모든 규범들(De Revelationibus, Visionibus et Apparationibus Privatis Regulæ Tutæ)」에서 경건주의 때문에 혼란을 초래한 신비체험에 대해 종합적이면서도 엄격한 규범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이러한 시도들은 이후에 독일에서 신비신학자와 신비체험가가 출현해 경건주의의 영향으로 자칫 흔들릴 수 있었던 독일 가톨릭 영성의 중심을 잡아주는 출발점이 됐습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평화신문2018.08.07

가톨릭과 개신교의 성경은 어떻게 다를까?[교회상식 교리상식] 번역서 많아지며 인정하는 부분 달라가톨릭과 개신교는 똑같은 그리스도 신앙을 고백하고, 성경을 경전으로 삼고 있는데 왜 성경 권수는 차이가 나는지 알고 싶습니다. 그리스도교는 성경의 종교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성경을 하느님 계시의 원천이자 경전으로 중요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같은 그리스도교이지만 가톨릭과 개신교는 경전으로 인정하는 성경 수에 있어서 다소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가톨릭은 구약 46권, 신약 27권 등 모두 73권을 경전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는 구약 39권과 신약 27권으로 66권만을 경전으로 인정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우선 구약성경에서 가톨릭은 개신교에 비해 구약성경이 7권이 많습니다. 차이가 나는 이유는 이렇습니다. 구약성경은 원래 히브리어로 씌었습니다. 이렇게 씌어진 구약성경은 모두 24권입니다. 유다인들은 기원 후 90년 쯤에 얌니아에서 회의를 열어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의 권 수를 24권으로 확정했습니다. 그런데 유다인들이 구약성경을 24권으로 확정하기 훨씬 이전인 기원 전 3세기 쯤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대표해서 모인 70인(또는 72인)이 모여 히브리어로 쓰인 유다교 경전을 당시 널리 사용하던 언어인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습니다. 약 100년 간에 걸쳐 이뤄진 이 작업으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 24권이 그리스어 성경 39권으로 나뉘어 번역됐습니다. 이렇게 늘어난 것은 열왕기ㆍ역대기ㆍ사무엘기 등 일부 성경을 각각 상ㆍ하 권으로 나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70인이 번역한 그리스어 구약성경(이를 '칠십인역 성경' 또는 70을 뜻하는 라틴어 '셉투아진타'나 숫자 'LXX'라고 부름)에는 24권의 히브리어 구약성경 외에도 다른 책들이 포함됐습니다. 토빗기, 유딧기 같은 7권의 책이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없는 다니엘서 일부분 등도 포함시켰습니다. 이후 그리스도교가 출범하면서 초기 교회는 히브리어 성경보다는 그리스어 성경 곧 칠십인역 성경을 받아들였습니다. 당시 지중해 연안 세계에서는 그리스어를 널리 사용했고, 신약성경들도 그리스어로 기록됐기 때문입니다. 그러다가 라틴어가 사용되면서 성경을 라틴어로 번역하는 작업들도 이뤄졌습니다. 그런데 성경 번역이 여기저기서 이뤄지다보니 번역의 질과 순수성이 떨어지는 등 심각한 문제들이 생겼습니다. 이 문제는 예로니모(347~419)라는 위대한 성인의 등장으로 극복됩니다. 예로니모 성인은 성경 번역을 통일할 필요를 느끼고 독자적으로 라틴어로 번역을 했는데 이를 '불가타역' 성경이라고 부릅니다. 번역의 대본으로 사용한 구약성경이 바로 칠십인역 성경이었습니다. 이후 교회는 예로니모 성인이 번역한 불가타역 성경을 사용했습니다. 여기에는 유다인들이 사용하는 히브리어 성경 24권(그리스어 성경 39권) 외에 칠십인역 성경에 포함된 다른 성경들도 포함됐지요. 그러다가 1500년대에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이 일어나면서 루터를 비롯한 프로테스탄트들은 구약성경에 대해서는 히브리어 성경만 정경으로 인정했습니다. 이에 대해 가톨릭 교회는 1548년 트렌토공의회에서 불가타역 성경을 정경으로 재확인하면서 원래 히브리어 성경(24권, 칠십인역에서는 39권)에 포함되지 않은 칠십인역의 다른 성경을 제2경전으로 구별했습니다. 그러나 '제2경전'이라고 해서 '제1경전'에 비해 경전으로서 가치가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똑같이 하느님의 영감을 받아 씌어진 성경으로 받아들입니다. 이에 비해 개신교에서는 제2경전을 경전 외의 책 곧 외경(外經)으로 봅니다. 구약성경에서 개신교와 차이가 나는 가톨릭 성경(제2경전)은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권, 마카베오 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이렇게 7권입니다. 이밖에도 다니엘서 3장 세 젊은이의 노래와 13장의 수산나 이야기, 14장의 벨과 뱀 이야기를 가톨릭은 제2경전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봅니다. 또 에스테르기 일부분에 대해서도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여깁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cpbc2017.08.11
[방송] 주님 맞이, cpbc 새 프로그램으로 더욱 뜻깊게 TV산티아고 가는 길 - 역사를 걸으며 힐링을 담다야고보 성인의 발자취를 찾아 떠나는 산티아고 순례기. 천 년 역사가 숨 쉬는 산티아고로 시청자들을 초대한다. 프랑스 ‘생장’부터 스페인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까지 800여 ㎞에 이르는 순례길 곳곳에 살아 있는 그리스도교 역사와 문화 그리고 나눔과 자비의 정신을 확인한다. 순례객의 삶이 이야기가 되고, 그 이야기가 모여 길이 되는 신비의 여정을 통해 시청자들에게 휴식과 위로를 선물한다. 방송시간 : 본방송 화요일 밤 9시 / 재방송 수요일 오후 7시, 목요일 오전 9시, 토요일 오후 5시황인수 신부의 칠죄종교만ㆍ인색ㆍ질투ㆍ분노ㆍ음욕ㆍ탐욕ㆍ나태는 모든 죄와 악습의 근원이 되는 원초적인 죄, ‘칠죄종’이다. 이 죄들은 일상에서 어떤 모습으로 나타날까. 또 어떻게 하면 일곱 가지 죄의 덫을 피해갈 수 있을까. 하느님은 왜 우리가 죄를 짓도록 내버려 두실까. 성바오로수도회 황인수 신부가 칠죄종에 관해 속 시원하게 답해준다. 방송시간 : 본방송 토요일 오후 4시 / 재방송 주일 오전 10시, 화요일 새벽 1시, 금요일 오후 7시양정무 교수의 교회 미술 2000년서양 미술의 역사는 곧 그리스도교 예술사라고 할 수 있다. 교회 미술 걸작들을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고, 그 안에 담긴 신앙의 향기를 공유한다. 「난생 처음 한번 공부하는 미술 이야기」 저자 양정무(프레데리코)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가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에서부터 르네상스, 바로크, 20세기 현대미술에 이르는 시간여행을 안내한다.방송시간 : 본방송 수요일 오전 7시 / 재방송 목요일 오후 4시, 토요일 오후 8시, 주일 자정예수님! 오늘은 어디 계세요? 복음서를 통해 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들을 입체적으로 짚어보는 새로운 형식의 성경 강좌. 2000년 전 그리스도의 공생활 현장에 함께 있는 듯한 생생한 감동을 선사한다. TV 프로그램 ‘루카ㆍ마르코와 함께 쓰는 나의 복음서’에서 명쾌한 성경 강의를 선보인 바 있는 성바오로딸수도회 윤일마 수녀가 다시 한 번 마이크를 잡았다. 12월 셋째 주부터 만나볼 수 있다. 방송시간 : 본방송 금요일 오전 7시 / 재방송 토요일 오후 7시, 주일 오전 11시, 월요일 오후 4시드라마 ‘김수환 추기경’옹기장수의 막내아들, 시대의 양심, 바보…. ‘고 김수환 추기경’ 하면 떠오르는 단어들이다. 많은 사람이 그리워하는 김 추기경의 이야기가 라디오 드라마로 재탄생한다. 2019년 김 추기경 선종 10주기를 맞아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가 선보이는 특별 프로그램이다.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전무 유환민 신부가 연출을 맡았고, 김 추기경 역을 맡은 탤런트 최재원(요셉)씨를 비롯해 서울가톨릭연극협회 소속 배우들이 열연했다. 여기에 김 추기경의 실제 육성과 관계자들의 증언까지 담았다. 김 추기경의 사랑과 나눔 정신을 되새기게 하는 라디오 드라마 ‘김수환 추기경’은 팟캐스트를 통해서도 들을 수 있다.방송시간 : 매주 월~금요일 오전 8시 30분, 오후 5시 50분 / 재방송 주일 오전 8시(5회 연속) 라디오열린세상 오늘! 새롭게 달라진 가톨릭평화방송의 간판 시사 프로그램. 1시간 30분으로 확대 편성해 세상 이야기를 가톨릭교회의 시각으로 깊이 있게 들여다본다. 다양한 인터뷰와 기자 리포트로 뉴스를 생생하게 전할 예정이다. 사회 현안과 관련된 교회의 가르침을 짚어보는 ‘세상 속으로’와 프란치스코 교황의 메시지와 해설을 들어보는 ‘바티칸은 지금’, 우리 농산물 이야기를 나누는 ‘착한 밥상’, 아름다운 성당과 성지를 소개하는 ‘어디 가고 싶으세요?’ 등 다채로운 코너를 통해 알찬 정보도 전달한다. 김혜영(유스티나) 앵커가 진행을 맡는다. 방송시간 : 월~토요일 오전 7시백슬기 기자 jdarc@cpbc.co.kr 평화신문2018.11.28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35) 베드로의 기적적인 풀려남(12,6-17)](//cpbc.co.kr/CMS/newspaper/2019/10/rc/764146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35) 베드로의 기적적인 풀려남(12,6-17)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난 베드로감옥에 갇혀 있던 베드로는 천사의 도움으로 기적같이 감옥에서 풀려나온다. 그림은 렘브란트(1606~1669) 작, ‘감옥에 갇힌 베드로’.이 기사는 두 단락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단락은 감옥에 갇힌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풀려나는 부분이고(12,6-11), 둘째 단락은 베드로가 요한 마르코의 집으로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부분입니다.(12,12-17) 베드로의 풀려남(12,6-11) 헤로데가 베드로를 감옥에서 끌어내려고 하기 전날 밤이었습니다. 문 앞에서는 파수병들이 감옥을 지키고 있었고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손이 묶여 두 군사 사이에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감방이 환하게 비치고 천사가 나타나더니 베드로의 옆구리를 두드리며 “빨리 일어나라”고 깨웁니다. 그 순간 베드로의 손에서 쇠사슬이 떨어져 나갑니다. 그러자 천사는 베드로에게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 하고 일렀고 베드로가 그대로 하자 천사는 “겉옷을 입고 나를 따라라” 하고 말합니다. 베드로는 따라가면서도 환시를 보는 것이라고 여기지요. 첫째 초소와 둘째 초소를 지나고 성안으로 통하는 쇠문 앞에 다다르자 문이 저절로 열립니다. 문밖으로 나가 거리를 따라 내려가는데 갑자기 천사가 사라집니다. 그제서야 베드로는 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야 참으로 알았다. 주님께서 당신의 천사를 보내시어 헤로데의 손에서, 유다 백성이 바라던 그 모든 것에서 나를 빼내어 주셨다.” 이 대목에서는 특별히 이해하지 못할 내용이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그래도 좀 더 살펴보면 1) 베드로는 엄중한 감시 속에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두 개의 쇠사슬에 묶여서 잠을 자고 있었습니다. 감옥 경비병들은 네 명이 한 조가 돼 모두 네 조가 돌아가면서 베드로를 감시하고 있었습니다. 두 명은 베드로 양옆에서, 두 명은 문 앞에서 지키고 있었습니다. 게다가 감옥 밖으로 나가려면 초소를 두 개나 거쳐야 하고 쇠문을 열어야 했습니다. 이런 엄중한 감시 속에서도 베드로는 풀려난 것입니다. 2) 사도행전 저자는 베드로가 풀려난 것은 천사의 도움을 받아서라고 기술합니다.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풀려났다는 것은 인간의 능력을 뛰어넘는 하느님의 초월적인 능력이 작용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에 힘입지 않고서는 이렇게 엄중한 감시를 뚫고 감옥을 빠져나올 수 없었을 것입니다. 3) 베드로는 감옥에서 풀려나는 과정을 환시로 여겼습니다. 완전히 밖으로 나온 뒤에야 비로소 환시가 아니라 실제임을 깨닫습니다. 이 또한 베드로가 풀려난 것이 하느님의 능력에 의한 것임을 일깨운다고 하겠습니다. 요한 마르코의 어머니 집(12,12-17) 베드로는 자기가 풀려난 것이 환시가 아님을 깨닫고는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의 어머니 마리아의 집으로” 갑니다. 그 집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12,12) 여기서 몇 가지를 더 짚어볼 수 있습니다. 우선 마르코라고 하는 요한에 대해서입니다. 신약성경에 따르면, 마르코라 불리는 요한 또는 요한 마르코는 바르나바의 사촌(콜로 4,10)이고, 베드로가 아들처럼 여기는 인물로(1베드 5,13), 마르코복음을 쓴 복음사가로 전해집니다. 바르나바가 사도들에게서 ‘위로의 아들’이라는 별명을 얻을 정도로(사도 4,36) 사도들과 관계가 돈독했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베드로가 감옥에서 풀려나 곧바로 바르나바의 사촌인 마르코의 어머니 마리아 집에 간 것을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다음으로, 마리아의 집에는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는 언급입니다. 이들은 왜 기도하고 있었을까요? 베드로를 위해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사도행전 저자는 앞에서 베드로가 감옥에 갇히자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12,5)고 전하는데 마리아의 집에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했다는 것은 이를 구체적으로 뒷받침하는 표현이라고 하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마리아의 집에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다는 것은 그 집이 예루살렘 공동체에서 신자들이 모여 기도하는 집 가운데 하나로 이용되고 있었다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는 또한 베드로가 풀려나자마자가 그 집으로 간 이유에 대한 설명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마리아의 집에서 기도하던 사람들은 베드로가 풀려난 줄 아직 모르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문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하녀가 문으로 가서 베드로의 목소리를 확인하고는 너무 기뻐서 문도 열어 주지 않고 돌아와 사람들에게 전했을 때에 사람들은 믿지 않으면서 처음에는 하녀에게 ‘정신 나갔다’고 말했고, 하녀가 계속 우기자 이번에는 ‘베드로의 천사’라고 말합니다. 베드로가 계속 문을 두드리자 사람들이 그제서야 문을 열어 그를 보고는 깜짝 놀랍니다.(12,12-16) 이 대목에 대한 사도행전 저자의 서술은 루카복음에서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도 ‘너무 기쁜 나머지 아직도 믿지 못하고 놀라워했다’는 구절을(루카 24,41) 떠올리게 합니다. 베드로는 놀라는 사람들에게 손짓으로 조용하게 한 다음 주님께서 자신을 어떻게 감옥에서 끌어내 주셨는지를 이야기합니다. 베드로는 이어 “이 일을 야고보와 다른 형제들에게 알려 주십시오” 하고 이르고서는 그곳을 떠나 다른 곳으로 갑니다.(12,17) 여기서 베드로가 말하는 ‘야보고’는 열두 사도 가운데 한 사람인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가 아니라 ‘주님의 형제’ 야고보를 가리킵니다.(갈라 1,19; 마태 13,55; 마르 6,3) 베드로가 다른 형제나 사도들이 아닌 야고보를 언급했다는 것은 예루살렘 교회에서 야고보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앞으로 보겠지만 실제로 야보고는 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핵심 역할을 합니다.(사도 15,13-21) 사울은 나중에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야보고를 “교회의 기둥”이라고까지 이야기하지요.(갈라 2,9)생각해봅시다베드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 교회는 그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했습니다.(12,5) 베드로가 천사의 도움으로 기적적으로 풀려나 요한 마르코의 어머니 집으로 갔을 때 그곳에서도 많은 사람이 모여 기도하고 있었습니다.(12,12) 여기서 중요한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기도입니다. 이야기의 전후 맥락으로 보면 베드로의 기적적인 풀려남은 교회가, 믿는 이들의 모임이 끊임없이 그를 위해 기도한 덕분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어려움에 처했을 때 우리는 노력할 수 있는 만큼은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합니다. 기도가 필요합니다. 기도할 때 명심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간절함이 하늘에 닿도록 기도해야 하겠지만, 동시에 하느님의 뜻이 이뤄지도록 기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풀려난 베드로는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께서…빼내어 주셨다.” 주님께서 베드로를 빼내어 주신 것은 교회의 끊임없는 기도를 주님께서 들어주셨기 때문이지만 주님께서 이루고자 하시는 바가 있었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간절하게 끊임없이 기도하지만 또한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와 방식으로 이루어지기를 기도하는 것, 이것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기도 자세가 아닐까요. cpbc2019.10.10
![[창간 특집] 청년들에게 들어본 청년 신앙의 현실](//cpbc.co.kr/CMS/newspaper/2019/05/rc/752519_1.0_titleImage_1.jpg)
[창간 특집] 청년들에게 들어본 청년 신앙의 현실변화하는 청년들 삶과 그들 목소리에 ‘깨어 있는 교회’ 돼야 2014년 8월 14일 솔뫼성지에서 개막한 제3회 한국청년대회 참가자들이 “우리가 희망입니다!”라는 문구가 쓰인 천을 높이 들며 행사에 참석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청년사목을 위한 교회의 고민이 깊다. 교회 입장에서는 마음껏 신앙을 펼칠 장을 마련하고 청년들을 부르고 있지만, 공허한 메아리로 돌아오는 경우가 적지 않다. 교회가 청년을 위해 준비한 ‘신앙의 선물’이 정작 받는 청년 입장에서는 달갑지 않기 때문이다. 3~5일 온라인과 오프라인을 통해 만난 청년 100명에게 자기 신앙생활과 그들이 바라는 교회에 대해 물었다. 조사 표본이 적어 청년들의 전체 현실을 반영하지 않을 수 있다는 점을 밝힌다.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전은지 기자 청년들이 세례를 받은 시기는 유아세례 비율이 66%로 압도적으로 많았다. 이어 10대 때가 20%, 성인(군대 포함) 시기가 14% 순이었다. 이는 부모에게서 신앙을 물려받은 비율이 높은 것으로 부모의 신앙, 가정에서의 신앙 교육에 대한 중요성을 반증한다. 성당에 나간다고 답한 청년은 72%로 신앙생활을 하는 이유로는 △미사 전례 중 주님을 만나 은총을 받기 위해서(20%) △같은 또래와 어울리는 게 즐거워서(20%) △어릴 적부터 습관, 단체활동 책임감(18%) △마음의 평화를 위해(12%) 등 답변이 돌아왔다.냉담을 한다는 청년들은 쉬는 이유를 다양하게 쏟아냈다. △시간이 없거나 귀찮아서(14%) △종교 활동의 불필요성(8%) 등을 가장 많이 꼽았으며 △시대 현실에 부합하지 못하는 가톨릭의 보수적 태도 △말과 행동이 다른 사제에 대한 실망 △기존 공동체에 낄 수 없어서라는 답변들도 있었다.청년들이 찾고 싶은 본당은 어떤 모습일까? 현실에 고달픈 청년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또래 신앙인들끼리 함께 어울리며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자유로운 공동체를 원한다고 입을 모았다. 특히 누구에게나 열려 있고 개인의 다양성을 존중하는 ‘주님이 집’이 되길 바란다고 밝혔다.교회에 대해 하고 싶은 말도 잊지 않았다. “기존 세대와는 다른 청년의 모습을 배척하기보다 이해해 주기를”, “제발 봉사를 강요하지 마라. 있는 청년도 떠난다”, “사제, 수도자들이 권위적 모습을 조금만 내려놓길 바란다”, “교리에 목마른 청년들에 대한 교육과 사제 강론에 신경을 써달라”, “여성 폄하적인 성경 말씀이나 여성에 불합리한 교회 내 제도 개선” 등 목소리도 냈다. 다양한 의견에 공통으로 주님에 대한 사랑, 교회에 대한 애정이 밑바탕에 자리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었다.이지윤(엘리사벳, 29)씨는 “사목자들이 보수적이고 경직된 성당 문화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을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다”며 “본당이 종교적 성찰을 하고 마음의 평화를 얻고자 하는 사람들의 오아시스가 될 수 있도록 힘써주길 바란다”고 말했다.청년들의 다양한 의견에 대해 이영제(서울대교구 사목국 기획연구팀, 유튜브 ‘가톨릭 주유소’ 진행자) 신부는 “청년이 바라는 것을 상상하고 다가서는 사목에서 벗어나 청년들의 삶의 형태와 양식이 변했다는 것은 인식해야 한다”며 “진심으로 청년들이 원하는 이야기를 들어주고 청년에게 다가가려면 예수님과 함께하는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공동체에서 오랫동안 신앙생활을 한 청년들에 대한 배려가 필요하다는 성찰도 나왔다. 조재연(햇살청소년사목센터 소장, 서울 면목동본당 주임) 신부도 “청년들이 교회 안에서 존중받고, 귀하게 여김을 받는다고 느끼도록 해야 한다”며 “교회 내 교리교사로 일하는 소수의 청년에 대해서도 이들을 일의 대상으로 전락시킨 것은 아닌지, 도구화한 것은 아닌지 돌아보고 반성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cpbc2019.05.08
![[6ㆍ25 특집] 어릴적 덕원 수사들과의 추억, 여든 넘어도 가슴속에 살아 있어](//cpbc.co.kr/CMS/newspaper/2019/06/rc/755664_1.0_titleImage_1.jpg)
[6ㆍ25 특집] 어릴적 덕원 수사들과의 추억, 여든 넘어도 가슴속에 살아 있어 “성체 신비를 말씀으로 알아듣고 마지막 순간까지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던 프룀머 신부의 말을 전하는 장초득 수녀. 25일은 6ㆍ25 전쟁이 발발한 지 69돌. 그 상잔의 아픔은 민족도, 교회도 고스란히 겪어야 했다. 그래서 교회는 이날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의 날’로 보낸다. 원산 출신의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 장초득(피아, 87) 수녀도 그 참혹했던 수난을 함께했다. 1ㆍ4후퇴 때 월남한 뒤 입회,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의 초대 한국인 원장 수녀로 선출돼 두 차례나 원장을 지낸 장 수녀를 만나 유년 시절과 이산가족으로 살아온 얘기를 들었다. 2012년 여름. 툿찡 포교 베네딕도수녀회 대구수녀원에 잡지 한 권이 배달됐다.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에서 발행하는 계간 「분도」였다. 잡지를 들춰보던 장 수녀는 1장의 사진을 발견하고 깜짝 놀라 시선을 멈췄다. ‘너무도 기뻐’ 한참을 들여다보고 또 들여다봤다. 원산 해성유치원 시절의 덕원수도원 수사 신부들이 그 사진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잊으려야 잊을 수 없는’ 얼굴들. 독일 슈바이클베르크수도원에서 온 가브리엘 프룀머 신부,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우달리코 자일러 신부, 뮌스터슈바르작수도원 요셉 쳉글라인 신부, 스위스 우츠낙수도원 이소 샤이빌 신부 등 4명이었다. 사진에 실린 11명의 수도자 중 자신이 아는 네 수도자를 보며 장 수녀는 어린 시절의 기억을 애써 되살렸다. 젖먹이 때 황해도 봉산에서 원산으로 이주한 장 수녀는 ‘수줍음 많던’ 해성유치원 시절부터 회상했다. “프룀머 신부님은 유치원생이던 저를 자전거에 태워 덕원수도원에 데려가시곤 했어요. 기차도 태워주셨지요. 그때 풍경이 그림처럼 스쳐 가네요. 성모상을 지날 때면 화살기도도 가르쳐 주셨어요. ‘성모님 사랑해요’ ‘성모님, 예수님께도 아가타(장 수녀의 세례명)가 왔다 간다고 전해주세요’ 같은 기도였지요. 신부님은 덕원수도원이 폐쇄될 때 체포돼 자강도 옥사덕수용소에 잡혀가 무진 고생을 하셨는데, 훗날 제가 수녀가 돼 신부님이 계시던 슈바이클베르크수도원에 갔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아버지 같은 분이셨지요.” 자일러 신부는 장 수녀가 해성학교 출신들도 한 해에 한두 명밖에 못 가던 원산의 명문 루시(Lucy) 중ㆍ고교에 입학하자 자기 일처럼 기뻐하며 원산성당에서 미사를 드려주기도 했다. 자신의 가족에게 보낸 편지에서 “아가타가 수도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썼던 자일러 신부는 신자들에게 병자 영성체를 주러 갔다가 발진티푸스에 감염돼 1948년 12월에 선종했다. 쳉글라인 신부는 가난하고 자녀들이 많은 가정을 물질적으로 많이 보살펴준 따뜻한 사제였다. 당시는 조선어 사용을 금지하던 때라 장 수녀는 쳉글라인 신부 앞에서 일본어로 교리문답 시간에 12단 기도문을 외고 구두시험도 봤다고 한다. 끝으로 해성학교 시절에 만나 월남 뒤 서울 명동대성당에서 재회했던 샤이빌 신부는 훗날 스위스 이츠낙수도원에 가서 성묘를 통해 만나야 했다. 원산의 기억은 이뿐만이 아니다. 왜관수도원의 이석진 신부는 원산본당 시절 장 수녀의 해성유치원 동기였다. 어머니(윤옥봉 막달레나)의 친구였던 쿠네군다씨가 바로 이 신부의 어머니였고, 두 어머니는 주일 미사를 마치면 원산수녀원 교리실로 가서 독일에서 온 발부르가 수녀와 임 마리아 수녀에게 성경 이야기를 즐겨 듣던 사이였다. 그 속에서 장 수녀는 성소를 키웠고 해성유치원 교사이던 김 데레사 수녀처럼 ‘수녀가 되고 싶다’는 꿈을 키웠다. 그런 신앙적 분위기 속에서 자라난 장 수녀는 1950년 12월 6일 대형 병원선을 타고 월남, 부산에서 그리던 가족을 만나 서울로 가게 된다. 집안을 돕기 위해 부산으로 내려가 메리놀 수녀원 기숙사에 있으면서 수녀들을 돕던 장 수녀는 1955년 수녀회에 입회, 평생 수도의 길을 걸었다. “원산에 살 때 덕원의 신부님들은 저희에게 성체거동을 보게 해주셨는데, 성체 안에 계신 예수님께 대한 흠숭과 사랑, 성체에 대한 굳센 신심을 심어주려고 하셨던 것 같습니다. 지극히 거룩하신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이면 그 시절 성체거동은 잊히지 않고 가슴속에 살아 있습니다.” 전쟁 중에 옥사덕수용소로 끌려가 4년 6개월간 고초를 겪다 독일에 귀환, 수도원 피정의 집 책임자로 일하던 프룀머 신부의 말을 장 수녀는 요즘도 잊지 못한다. “아가타, 성체 신비를 말씀으로 알아듣고 마지막 순간까지 감사의 삶을 살아야 한다.” 그 말을 기억하며 장 수녀는 요즘도 성체 앞에서 자신의 삶을 마무리하는 꿈을 꾼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19.06.18
![[영화의 향기 with CaFF] (12) 가버나움(Capharnaum)](//cpbc.co.kr/CMS/newspaper/2019/03/rc/748205_1.0_titleImage_1.jpg)
[영화의 향기 with CaFF] (12) 가버나움(Capharnaum)혼돈의 도시에서 기적을 꿈꾸다영화 ‘가버나움’ 포스터.“너 카파르나움아, 네가 하늘까지 오를 성싶으냐? 저승까지 떨어질 것이다. 너에게 일어난 기적들이 소돔에서 일어났더라면, 그 고을은 오늘까지 남아 있을 것이다.”(마태 11,23)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도시 ‘가버나움’(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공생활과 밀접한 곳입니다. 예수님이 많은 기적을 일으킨 곳이기도 하죠. 하지만 예수님이 행한 많은 기적을 보고도 사람들은 회개하지 않았기에, 예수님은 위와 같이 꾸짖은 것입니다. 영화의 배경이 되는 레바논의 베이루트는 난민, 아동 학대, 조혼, 불법체류, 마약 등 많은 문제가 혼재되어 있는 혼돈의 도시처럼 보입니다. 프랑스어를 할 줄 아는 감독은 ‘카파르나움’이 잡동사니를 넣어 두는 곳, 뒤죽박죽 엉망진창인 상태, 나아가 ‘혼돈’을 뜻한다는 데서 착안해 제목으로 삼았을 것입니다. 영화는 교도소에 수감돼 있던 자인(12세)이 수갑을 찬 채 어딘가로 이동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이어서 버스에 탄 자인의 부모가 보이고, 자인과 자인의 부모는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그리고 재판정과 자인의 과거가 교차로 보이면서, 영화의 초반에 가지게 된 의문점들이 하나둘씩 풀리게 됩니다. 가난하고 무지한 자인의 부모는 아이들을 제대로 돌보지 않습니다. 오히려 아이들을 이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인은 여동생 사하르가 생리를 시작했을 때, 그 사실을 부모에게 숨기라고 합니다. 가난한 집의 아이들이 그렇듯이 어린 나이에도 눈치가 빠삭한 자인은 부모가 사하르를 시집 보낼까 봐 두려웠던 것이죠. 결국, 사하르는 아사드라는 남자에게 강제로 보내집니다. 그러나 이 아이들에게 더 큰 문제는 출생 신고가 되어 있지 않은 것이었습니다. 존재가 있음에도 법적으로는 존재하지 않는 이들. 자인의 부모는 자식들의 존재를 증명해주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이 영화에 출연한 대부분의 배우는 영화에서와 비슷한 처지의 일반인들이라고 합니다. 영화 출연 후, 이들은 자신을 증명할 신분증이 생겼고, 정착할 나라를 찾았고, 자기 나라로 돌아갔으며, 학교에 다니게 되었다고 합니다. 나딘 라바키 감독은 칸 영화제 시상식에서 영화의 힘을 믿는다고 말했습니다. 영화란 단지 개봉하거나 꿈꾸게 하려고 만드는 게 아니라 생각하게 하고, 보이지 않는 것을 보여주고, 말할 수 없던 것을 말하기 위해서 만드는 거라고 했습니다. 혼돈의 도시 베이루트에서 ‘가버나움’이라는 영화를 촬영하면서, 감독은 성경에서처럼 간절히 기적을 원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은 없지만,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 기적을 행해주길 바랐을지도 모르죠. 그녀와 제작진들은 가버나움 재단을 설립했고, 영화를 본 관객들의 모금은 이어지고 있습니다. 사순시기입니다. 기적의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겨 봅니다.문채현2019.03.13
가정, 세상을 향해 복음의 기쁨 선포해야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 가톨릭평화신문과 신년 대담서울대교구장이며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추기경은 그리스도인 가정들이 자기 가정의 안위와 행복을 추구하는 것에 그치지 말고, 세상을 향해 복음의 기쁨을 선포해달라고 요청했다.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도 주문했다. 염 추기경은 가톨릭평화신문과 한 2019년 신년 대담에서 “가정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배우고 키우며 전하는 못자리가 되어야 한다”며 “가정이 복음의 기쁜 소식을 전해야 우리 사회에도 희망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반도의 평화를 위해 끊임없이 기도해달라”고 요청하며, “진정한 평화는 우리의 기도로 청해야만 확실히 얻을 수 있는 하느님의 선물”이라고 강조했다. 염 추기경은 젊은 세대들이 고민하는 출산과 양육 문제에 대해, “본당, 운동 단체, 학교, 교회의 여러 기관은 다양한 방식으로 가정을 지원하고 가정에 힘을 보태줄 수 있다”는 교황의 말(「사랑의 기쁨」229항 참조)을 인용하며, “교회는 출산과 양육처럼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힌 사람들의 어려운 삶을 돌봐주고 그 안에서 하느님의 계획을 온전히 완수하도록 함께 그 길을 걸어야 한다”고 언급했다. 또 신앙의 열정을 잃어버린 젊은이들에게는 “미사와 성사생활의 은총을 체험하도록 양질의 교리교육과 성경공부, 기도와 묵상 모임을 통해 교육해야 한다”며 청년들과 “일방적 교리 전달이나 훈계와 지시가 아닌 대화와 소통, 영적 친교를 통해 소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염 추기경은 통치자와 지도자의 모습으로 살아가는 일부 성직자들에 대해 “평신도와 성직자는 결코 대립적이거나 종속적인 관계가 아니”라면서 “평신도도 성직자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백성”이라고 말했다. 이어 “성직자들은 평신도들이 교회의 한 일원으로서 교회의 사명에 함께 참여하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18.12.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