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바오로 사도가 알려주는 교회 지도자의 임무·덕목[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6)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하)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은 교회 지도자들의 직무와 갖춰야 할 덕목을 잘 알려주고 있다. 2024년 서울대교구 사제서품식.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하 티모테오 1서)은 바오로 사도가 로마에서 첫 번째 옥살이를 하고 난 후 다시 사도직을 수행할 시기부터 순교하기 전, 곧 63년에서 67년 사이에 쓰인 것으로 추정됩니다. 하지만 티모테오 1서 1장 3절에는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서 마케도니아로 떠나면서 에페소 교회를 지도하라고 티모테오를 그곳에 남겨둡니다. 문제는 티모테오가 바오로 사도의 제3차 선교 여행을 줄곧 동행했다는 것입니다. 곧 바오로 사도 곁에 있었다는 것이지요. 따라서 1티모 1,3의 내용은 사도행전의 기록과 맞지 않습니다. 여기서 바오로 사도의 친저성 문제가 다시 한 번 제기됩니다. 티모테오 1서는 모두 6장으로 인사말(1,1-2)과 그릇된 가르침에 대한 경고와 감사(1,3-20), 교회 공동체에 대한 가르침(2,1─3,16), 다양한 권고(4,1─6,16), 끝인사(6,20-21)로 구성돼 있습니다. 티모테오 1서는 오늘날 성직 제도의 기본 구조라 할 수 있는 감독(주교, Επισκοποs 에피스코포스)·원로(신부, Πρεσβμτεροs, 프레스비테포스)·봉사자(부제, Διακονοs, 디아코노스)에 관해 언급하고 있습니다. 1세기 말은 아직 교계제도가 설정되기 전이었습니다. 이들 교회 지도자들은 “원로단의 안수와 예언을 통하여” 선별됐습니다.(1티모 4,14)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 여행 도중 밀레토스에서 사람을 보내 에페소 원로들에게 작별 인사를 하면서 “여러분 자신과 모든 양 떼를 잘 보살피십시오. 성령께서 여러분을 양 떼의 감독으로 세우시어, 하느님의 교회 곧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피로 얻으신 교회를 돌보게 하셨습니다”라고 교회 내 감독과 원로의 직분을 설명했습니다.(사도 20,28) 이 내용에 따르면 감독과 원로는 실질적으로 똑같은 직분을 맡는 듯합니다.(1티모 3,1) 교회 지도자들은 “그리스도 예수님의 훌륭한 일꾼”(1티모 4,6), “복음 선포자”(2티모 4,5)로 존경받았습니다. 그들의 주된 임무는 무엇보다 복음 선포와 교회를 위협하는 이단자들을 배격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티모테오 1서는 교회 지도자들에게 저속하고 망령된 신화들을 물리치고, 믿음의 말씀을 위해 열심히 노력할 것을 당부합니다.(4,7-10 참조) 티모테오 1서가 경고한 이단자들은 바오로 사도의 여러 서간에서 언급했듯이 유다교와 영지주의의 영향을 받은 자들입니다. 교회 지도자들은 세상 사람들에게 좋은 평판을 받을 만큼 나무랄 데 없고, 절제할 줄 알고 신중하며 단정하고, 손님을 잘 대접하며 가르치는 능력이 있어야 하며, 술꾼이나 난폭하지 않고, 관대하며 온순하고, 돈 욕심 없고, 자기 집안을 잘 이끌며 모든 일에 성실한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티모 3,2-13 참조) 그리고 교회 지도자들은 성경 봉독과 권고, 설교와 올바른 가르침을 전하는 데 전념해야 하고, 신심이 깊어지도록 자신을 단련해야 합니다. 말과 행실에서 믿는 이들의 본보기가 되어야 합니다. 또 모든 이를 대하고 모든 일을 처리하는 데 있어 선입견과 편견 없이 존중하고 공정해야 하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선행을 베풀어야 합니다. 아울러 교회 지도자들은 자기 직분에 전념할 수 있도록 적절한 존중과 보수를 받아야 합니다.(1티모 3─5장 참조) 티모테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이하 티모테오 2서)은 세 편의 사목 서간(티모테오 1·2서, 티토에게 보낸 서간) 가운데 가장 늦게 쓰였습니다. 이 서간에서 바오로 사도는 “달릴 길을 다 달렸다”(2티모 4,7)며 로마에서 수감 중일 때 쓴 것(2티모 1,16-17 참조)처럼 밝히고 있어, 바오로 사도의 친저성을 주장하는 이들은 순교 직전인 67년께 쓰였다고 주장하나 대부분의 성경학자는 1세기 말엽이나 2세기 초반에 쓰였을 것으로 봅니다. 티모테오 2서는 모두 4장으로 감사와 격려(1,1-14), 바오로의 반대자와 협력자(1,15-18), 그리스도의 훌륭한 군사와 인정받는 일꾼(2장), 마지막 때의 타락상과 지시(3,1─4,8), 개인 부탁과 끝인사(4,9-22)로 구성돼 있습니다. 티모테오 2서는 티모테오를 비롯한 교회 지도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로부터 전승된 신앙 유산을 잘 지키고, 가르칠 자격이 있는 성실한 사람들에게 전하라고 권고합니다.(2,2) 그리고 “우리 주님을 위하여 증언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 말고”(2티모 1,8), 무엇보다 그리스도 예수님의 길을 따르라고 당부합니다.(2티모 2,8-13 참조) 티모테오 2서는 교회 지도자들의 가장 중요한 직무가 ‘말씀 선포’라고 강조합니다.(4,2) 그리고 끈기를 다해 사람들을 가르치며 타이르고 꾸짖고 격려해 복음 선포자로서의 역할을 완수하라고 권고합니다.(2티모 4,2-5) 주님께서 재림하시는 마지막 때에 앞서 하느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는 타락상이 펼쳐지며 그리스도의 훌륭한 일꾼들과 예수님 안에서 경건하게 살려는 모든 이들이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러면서 박해에 굴하지 않고 하느님의 영감으로 쓰인 성경을 공부하고 가르치고 의롭게 살면 그리스도 예수님께 대한 믿음을 통해 구원받을 것이라고 격려합니다.(3,10-17)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8.20

세상 끝까지 복음 전파, 구원의 역사가 시작되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5) 사도행전 사도행전은 성령의 이끄심으로 사도들이 땅 끝까지 모든 민족에게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라는 복음을 선포하는 구원의 여정을 서술하고 있다. 장 레스투 작 ‘성령 강림’, 유화, 프랑스 루브르 박물관. 사도행전은 ‘성령의 복음서’입니다. 사도행전은 신약 성경 27권 가운데 네 복음서와 21권의 서한 사이에 있습니다. 복음서와 서간을 연결하는 역할을 하지요. 네 복음서가 예수님이 그리스도 곧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제시하고, 21권의 서간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신앙 공동체의 삶의 자리에 관해 이야기한다면, 사도행전은 말 그대로 사도들이 예수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어떻게 세상 끝까지 선포했는지를 보여줍니다. 그래서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αζειs των Αποστολων(프락세이스 톤 아포스톨론)’,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ctus Apostolorum’,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사도행전’이라 표기합니다. 사도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루카 5,43) 활동을 시작하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제자들 가운데 친히 뽑으신 12명을 말합니다. 이들은 집과 가족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사도, 곧 ‘파견된 자’로서 제자 교육을 받은 이들입니다. 예수님 생전에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죄를 용서하는 권한을 받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활동을 했던 이들입니다.(루카 9,1-6) 예수님께서는 열두 사도들에게 “너희를 받아들이는 이는 나를 받아들이는 사람”(마태 10,40)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사도들은 성령 강림 이후 ‘하느님의 일꾼’(2코린 6,4)으로 파견됐습니다. 그들은 모든 민족에게 파견돼 교회를 세웠습니다. 한국 주교회의가 펴낸 「주석 성경」은 사도행전을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 “사도행전은 어떤 의미로 신약 성경에서 현시성이 가장 큰 책이다. 이 책에서 펼쳐지는 ‘말씀’의 시간과 공간이, 주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1,11)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열려 있기 때문이다. 오늘날 ‘형제들’ 곧 모든 그리스도인이 인내심을 가지고 다 함께 이 책 읽는 법을 알게 된다면, 다양성 속에서도 하느님의 유일한 백성을 이루는 교회 안에서, 자기들이 부활하신 주님을 ‘땅 끝까지’ 공동으로 증언해야 하는 사람들임을 다시 깨닫게 될 것이다. 그리고 주 예수님께서 어제와 마찬가지로 오늘도 베풀어 주시는 성령께서 그들에게 그러한 ‘일치된 결정’(15,25)을 불어넣으시어, 다 함께 ‘주님의 길’을 걸어가도록 이끌어 주실 것이다.”(450~451쪽) 사도행전의 저자는 전통적으로 루카 복음서의 저자로 알려졌습니다.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모두 ‘테오필로스’(Θεοφιλοs-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헌정됐습니다.(루카 1,3; 사도 1,1) 사도행전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테오필로스처럼 그리스도인 독자들을 위해 쓰였습니다. 곧 그리스도인들을 교육하고 신앙을 굳건히 하게 하려고 펴냈습니다. 이런 목적으로 사도행전 저자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울려 퍼지는 날까지 복음 전파를 이야기합니다.(28,31) 또 저자는 신앙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그리스도교를 유다교화하려는 경향을 반대합니다. 그는 온 교회가 성령의 인도에 따라 “한마음 한뜻”이었던 예루살렘 교회처럼 살아가라고 촉구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사도행전 저자가 “바오로의 로마 도착 이 년”(28,30. 62~63년)에 작품을 저술했다고 밝히지만 80년께 사도행전이 집필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 이유는 루카 복음서가 70년께 저술됐고, 바오로 사도의 재판 결과보다 로마에서 복음을 선포하는 일을 더 비중 있게 증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곧 예루살렘부터 로마까지 이르는 길에서 유다 사회에서 시작해 세상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선포되는 ‘구원의 여정’을 사도행전은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28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15장을 기준으로 이전은 유다인 세계를 중심으로 사도들이 복음을 선포하는 과정을, 이후는 바오로 사도를 중심으로 이방인 지역에서 복음이 선포되는 과정을 상세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신앙으로 해석된 역사가 펼쳐집니다. 곧 성령 강림으로 탄생한 교회를 토대로 펼쳐지는 구원의 역사를 서술합니다. 이 역사는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일으켜 세우신 때’부터 시작됩니다.(3,22.26; 13,23) 아버지 하느님께서 성자 그리스도를 부활시키시어 그분을 “주님과 메시아”로 세우시고(2,36) 그분께 약속된 성령을 파견하십니다.(2,33) 그리하여 구약의 백성인 이스라엘에 하신 약속이 완전히 실현됩니다.(13,22-23) 그러나 이 약속의 대상이 이스라엘과 함께 “땅 끝에 이르기까지”(1,8) 모든 민족이기 때문에(2,39) 사도들의 복음 선포를 통해 구원의 역사가 펼쳐집니다. 그리고 이 구원의 역사는 그리스도께서 재림하시는 날에 완전히 성취될 것입니다. 이처럼 복음과 구원이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다른 민족들에게로 넘어감(13,46)이 사도행전의 주제입니다. 사도들은 모든 민족을 향해 예수님께서 주님이시며, 메시아로 받아들여 믿으라고 촉구합니다.(2,36)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은 “성령으로 세례를 받은 이들”(1,5; 11,16)이고, 예수님께서 하신 “약속”(1,4)에 동참하는 이들입니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교회’라 부릅니다.(5,11; 11,26) 교회는 하느님의 유일한 백성입니다. 하느님께 속한 이 백성과 교회들은 주님과 결합된 존재입니다.(2,47; 5,14; 11,24) 성령께서 늘 교회의 삶에 생기를 불어 넣으시고 인도해주시기 때문입니다.(1,8; 5,3; 15,28) 교회의 일상은 ‘빵을 떼는 것(성찬례)과 기도’(2,42)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곧 성찬례를 중심으로 기도하고 서로 나누면서 영적 일치를 이루며 살아갑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5.28

바오로 사도의 충실한 협력자 티모테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5)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상) 티모테오 1·2서와 티토서는 사목 서간으로 바오로 사도의 제자나 협력자가 쓴 제2 바오로 서간으로 분류되고 있다. 티모테오 성인의 이콘. 성경학자들은 경전 내용과 교리 가르침이 비슷한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둘째 서간(이하 티모테오 1·2서), 그리고 티토에게 보낸 서간(이하 티토서)을 ‘사목 서간’으로 분류합니다. 이들 세 서간은 티모테오와 티토에게 보낸 개인 서간일 뿐 아니라 원로 사목자가 젊은 교회 지도자들에게 그들의 직분과 실천해야 할 삶의 지침을 제시한 ‘공적 서간’입니다. 이들 사목 서간은 2세기 말에 작성된 「무라토리 정경」에 포함된 후 지금까지 바오로 사도의 서간으로 여겨져 오고 있습니다. 하지만 19세기 성경 연구에 역사비평 방법론이 도입되면서 사목 서간이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것이 아니라 그의 제자나 협력자가 사도의 말을 받아 적었거나 글을 단편적으로 수록해 저술했다는 주장이 제기됐습니다. 이 주장의 근거로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로마서와 갈라티아서는 의화(義化)를 ‘하느님께서 베푸시는 은총 상태’로 설명하지만, 사목 서간은 ‘인간이 스스로 닦아야 할 덕’(1티모 6,11; 2티모 2,22; 3,16)으로 가르쳐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또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재림·종말이 곧 다가올 것으로 보고 준비할 것을 권고하지만, 사목 서간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처럼 먼 미래의 일로 보고 교회 제도와 현세의 질서를 중시합니다. 이러한 종말관의 차이는 “젊은 과부들이 재혼하여 자녀를 낳고 집안을 꾸려 나가, 적대자에게 우리를 헐뜯는 기회를 주지 않기를 바랍니다”(1티모 5,14)라며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7장에 제시한 바오로 사도의 혼인관과 정반대의 견해를 보입니다. 이러한 여러 이유에도 불구하고 사목 서간들을 바오로 사도의 친필 서간으로 여기는 이들도 있지만, 오늘날 대다수 성경학자는 이들 세 서간을 바오로 사도의 제자나 협력자가 쓴 ‘제2 바오로 서간’으로 규정합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Τιμοθεον Α·Β’(프로스 티모테온 알파·베타),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Timotheum Ⅰ·Ⅱ’,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티모테오는 사도행전과 바오로 사도의 여러 서간에 등장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가장 가까운 협력자’라고 그를 소개합니다.(사도 19,22) 또 “그는 내가 주님 안에서 사랑하는 나의 성실한 아들”이라고도 자랑합니다.(1코린 4,17) 아울러 “우리의 형제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위한 하느님의 협력자”(1테살 3,2)라고 정겹게 부르기도 합니다. 둘은 소아시아 리카오니아 지방에 있는 리스트라에서 처음으로 만났습니다. 제1차 선교 여행 때 만났고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에게 세례를 받아 그리스도인이 됐습니다. 그리고 언제인지 몰라도 교회 원로들로부터 안수를 받았습니다.(1티모 4,14; 2티모 1,6) 티모테오의 아버지는 그리스 사람이고, 어머니는 유다인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유다교 율법이 명시한 할례를 받지 않았지요. 하지만 그는 어릴 때부터 신심 깊은 어머니 에우니케와 할머니 로이스에게서 성경을 배웠습니다.(2티모 1,5; 3,15)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의 제2차 선교 여행에 동행합니다.(사도 17,14-15; 18,5; 20,4; 2코린 1,19) 바오로 사도는 시나고그에서 주님의 복음을 선포할 때 유다인들에게 불필요한 빌미를 제공할까 봐 미리 티모테오에게 할례를 베풉니다.(사도 16,1-5) 티모테오는 아주 어린 나이에 바오로 사도의 제자가 된 듯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그와 함께한 지 15년이 지난 뒤에도 티모테오에게 “아무도 그대를 젊다고 업신여기지 못하게 하십시오”라고 조언합니다.(1티모 4,12) 그는 조용하고 수줍음을 잘 타는 성격이었고(1코린 16,10; 2티모 1,8 참조), 자주 앓을 만큼 허약했습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에게 “이제는 물만 마시지 말고, 그대의 위장이나 잦은 병을 생각하여 포도주도 좀 마시십시오”라고 애정어린 충고도 합니다.(1티모 5,23)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 등 7개 서간을 쓸 때 곁에 있었습니다.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가 그에게 특별한 일을 맡길 만큼 신임이 깊었습니다. 그는 바오로 사도에 앞서 마케도니아로 가서 유럽 선교를 위한 길을 모색했습니다.(사도 19,22) 또 언제 주님이 재림할 것인가를 두고 논쟁을 벌이던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가서 그들을 진정시키고 격려했습니다.(1테살 3,2.6) 그리고 코린토 신자들에게 가서 믿음을 굳건히 하고 교회가 가르치는 그대로 그리스도 안에서 지켜야 하는 원칙들을 실천할 것을 독려했습니다.(1코린 4,17) 이처럼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의 충실한 협력자였습니다. 그래서 순교를 눈앞에 둔 바오로 사도는 “믿음으로 나의 착실한 아들이 된 티모테오”(1티모 1,2)를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볼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했습니다.(2티모 4,9.21) 성 요한 다마스쿠스의 증언과 외경인 「티모테오 행전」에 따르면 티모테오는 에페소 교회 초대 주교(1티모 1,3 참조)로 사목하다 94년 1월 22일 에페소인들이 숭상하던 아르티메스 여신의 음란한 축제를 규탄하다 광분한 군중들에게 곤봉으로 맞아 순교했다고 합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8.13

상처 안고, 무력함 견디며, 다시 살아갑니다주님 부활 대축일 추천 도서 구글 제미나이 제작 주님 부활 대축일이다. 지극한 고통과 슬픔 뒤에 찾아온 부활의 영광을 생각하며 저마다 안고 있는 지금의 힘듦을 다독이면 어떨까. 동행할 수 있는 책들을 골라봤다. 허울과 가면 벗는 것이 치유 첫걸음 겉옷을 벗어던지고 가에타노 피콜로 신부 이상훈 신부 옮김 바오로딸 “기도는 우리가 품고 있는 그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있는 소중한 장소입니다. 우리 삶의 조각들, 부서져 버린 꿈들, 끊어져 버린 관계들을 주님 앞에 가져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느님께 우리 삶의 부서진 조각들을 내어드리기만 한다면, 그분은 그것을 더 귀한 걸작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 삶의 조각들을 이어 붙이는 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시는 은총입니다.”(115쪽)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형이상학을 가르치는 가에타노 피콜로(예수회) 신부가 쓴 내적 치유를 돕는 책이다. 저자는 우리 모두 저마다 상처 입은 삶의 이야기를 마음속 깊이 안고 살아가지만, 모든 영적 여정은 그 고통과 원망의 자리에서 벗어나라는 초대에서 시작된다고 말한다. 비극과 죽음마저도 결코 삶의 마지막이 아니며, 존재의 의미를 발견하고 새롭게 태어날 수 있다고 다독인다. 저자는 이러한 내적 치유를 위해 아홉 단계를 제시한다. 자신의 내면 상태를 면밀히 살펴보는 것이 치유를 향한 첫걸음이며, 성장을 막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고, 자신을 보호한다고 여겼던 허울과 가면을 벗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단계마다 바르티매오·나아만·라자로 등 성경 속 인물의 이야기는 물론 영성·신학·심리적 차원에서 깊고 풍성한 묵상으로 안내한다. 종신 서원 받던 해, 이해인 수녀가 쓴 일기 해인의 바다 이해인 수녀 가톨릭출판사 이해인(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의 산문집 「해인의 바다」가 출간됐다. 첫 시집 「민들레의 영토」를 펴낸 1976년은 이 수녀가 종신 서원을 받은 해이기도 하다. 이번 책에는 ‘수녀 시인’으로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하던 시절의 설렘과 두려움, 수도 생활의 다양한 풍경, 관계에서의 희로애락, 신앙 앞에서 고민하고 다짐하며 기도하던 시간들이 고스란히 녹아 있다. “저의 이 검은 수도복이 실은 얼마나 두려운지 모르겠습니다. 벗기고 보면 아무것도 아닌 나. 수도복을 입지 않은 이들보다 더 열심히 한 것도 없고, 더 사랑하지도 믿지도 못하면서 ‘수녀’라는 사실 때문에 받는 대우에 익숙해져서 때로는 정말 무엇이나 된 것처럼 착각하는 것 아닙니까. 주님. 언제나 제가 아직 수도복을 받지 못했을 때의 그 배고픔과 갈망과 겸허한 마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184쪽) 책은 1976년의 기록을 사계절의 흐름에 따라 구성했다. 마지막에는 최근의 단상을 더해, 수도자로서 반세기의 삶을 되돌아본 시선을 확인할 수 있다. 하느님께 건넨 독백 형식으로, 한 편의 일기처럼 독자들의 마음을 파고든다. 「민들레의 영토」도 기념판이 나왔다. 수도자의 삶에서 길어 올린 사유와 기도를 맑고 소박한 언어로 노래한 이 시집은 신앙의 울타리를 넘어 대중적으로 많은 사랑을 받았다. 이들 책의 출간을 기념해 이해인 수녀와 독자들이 만나는 북콘서트가 11일 오후 2시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 코스트홀에서 개최될 예정이다. 35년 종양내과 의사의 정직한 고백 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암 강진형 청년의사 「암을 치료한다고 했습니다」는 35년간 암의 최전선을 지켜온 한 종양내과 의사의 기록이다. 출간 당시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년을 앞뒀던 저자는 “한다고 했는데, 과연 무엇을 했을까?” 스스로에게 되묻는다. 저자는 암의 경우 완치법이 명확하지 않아 다양한 임상시험이 끊임없이 이어지고 새로운 치료법도 매년 등장하다 보니 내과 전공의들 사이에서도 기피 대상이 된다고 말한다. 특히 폐암과 두경부암은 종류가 다양하고 예후도 좋지 않아, 치료를 맡은 의사는 크고 작은 좌절을 수없이 반복하게 된다. 암 환자가 겪는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니겠지만, 암을 치료하는 의사의 삶도 녹록지 않은 것이다. 대학병원이라는 공간에서 만나는 의사와 환자는 여건상 서로 긴 이야기를 나누기 어렵지만, 이러한 속사정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이도 당사자들일 것이다. 이 책은 회고록이나 투병기, 치료 가이드는 아니다. 가족부터 유명인, 성직자와 수도자, 외국인, 아이까지 의사와 환자가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났을 때 생겨나는 복잡다단한 감정들, 연민·공감·유대라고 표현하기엔 뭔가 부족한, 가운을 벗어도 내내 지워지지 않을 듯한 이야기들을 엮었다. 완치의 기쁨보다 치료의 한계 앞에서 무력했던 순간들, 환자에게 전해야 했지만 끝내 삼켜야 했던 말 등 ‘치료’라는 이름 아래 환자와 생의 마지막 구간을 함께 걸어온 저자의 정직하고 담담한 성찰이 담겨 있다. 허무하게 사라지는 생명이 아니야 “개미가 떠나기 전, 꽃마리에 해 준 이야기가 있습니다. ‘네 꽃가루는 다른 꽃마리에 가 닿게 될 테고, 그럼 그 꽃마리도 비로소 씨앗을 품게 될 거야.’ ‘아하!’ 꽃마리는 잠시 꽃을 피웠다가 금세 흔적도 없이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또 다른 생명을 살게 하는 귀한 생명이었던 것입니다! 꽃마리는 주위를 찬찬히 둘러보았습니다. 재잘거리며 저마다의 시간을 충만하게 누리는 다른 생명들이 이제야 눈에 들어왔습니다.”(13쪽) 느티나무·벌·토끼풀·민들레꽃 등 익숙한 이름부터 꽃마리·가래나무·비술나무·구상나무 등 생소한 이름까지 숲속에서 생활하는 다양한 생명들의 이야기가 담긴 책이다. 국립산림과학원 산림 생태계 연구자인 저자는 수많은 생명이 우리 삶과 연결되어 있고, 알게 모르게 서로를 돕고 돌본다는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이 책을 썼다. ‘연구’하면 떠오르는 딱딱한 구성과 내용은 아니다. 미래 우리 지구를 지켜 내야 하는 아이들과 함께 읽고 생각을 나눌 수 있도록 저자의 동화·시·편지 등에 김수나 작가의 정감 어린 그림을 더했다. 연구자로서 경험을 녹인 칼럼을 곁들여 전문성도 높였다. 숲의 회복을 도우면서 나아가 여러 ‘관계의 회복’에 작은 힘을 보태고 싶다는 저자의 희망을 읽을 수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6.04.01
![[생활속의 복음] 메시아 콤플렉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2/10/nPr1765330963414.jpg)
[생활속의 복음] 메시아 콤플렉스대림 제3주일 (자선 주일) 마태 11,2-11 안드레아 델 베로키오 작, ‘그리스도의 세례’ 1472~1475년 구약과 신약을 잇는 중간기에 이스라엘 민족이 염원했던 바는 난세에 등판하는 시대의 영웅과 같은 메시아(그리스도)의 출현이었으며, 이를 ‘메시아 대망 사상’이라 일컫는다. 메시아 신원을 확보한 인물은 당대에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수 있었다. 구약 성경에서 전개되듯 이스라엘 민족은 위기의 순간마다 특정 인물의 활약으로 이를 극복하였으며, 하느님께서 이 인물을 파견하셨다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신약 시대 초기의 세례자 요한은 독특한 생활 양식과 구약 예언자들의 명맥을 계승하는 설교로 ‘오실 분’(메시아)으로 추앙될 만한 충분한 입지를 구축하였다. 또 요한의 제자들에 대한 언급은 요한이 주도하는 특정 조직의 형성과 확장을 추정하게 만든다. 그런데 요한은 메시아 신원을 스스로 부정하면서 ‘오실 분’을 찾았다. 복음서는 요한의 발언을 통해 ‘더 큰 능력을 지니신 분’을 지목하면서 요한의 위치를 ‘오실 분의 신발 끈을 풀어드릴 자격조차 없는 이’로 격하한다.(루카 3,16 참조) 이후 이스라엘 민족은 공생활을 본격적으로 시작한 나자렛 예수를 메시아로 추대하고자 하였다. 메시아 신원과 관련해 요한과 예수님 사이에 공통분모가 발견된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메시아임을 공개적으로 피력하지 않았다. 요한이 메시아임을 스스로 거부하면서 ‘자기 뒤에 오실 분’을 강조하였다면, 예수님은 함구하면서 ‘자기 앞에 있는 분’(아버지 하느님)으로부터 자신이 파견받았음을 역설하였다. ‘기름 부음을 받은 자’를 의미하는 메시아 호칭은 해석상 ‘초월적·절대적 능력 혹은 권한’을 함의한다. 이는 ‘메시아 콤플렉스’란 심리학적 용어에 접목할 수 있다. 자기애와 과대망상에 사로잡혀 자신이 문제 해결의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에게 나타나는 심리 현상이다. ‘내가 아니면 안 돼! 내가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적임자야! 나만큼 고민한 사람은 없기에 내 결정은 옳아!’ 메시아 콤플렉스의 성향을 보이는 이들은 자기 판단과 실행을 절대적인(최고·최선) 진리로 규정하고, 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을 철저하게 배척하는 분위기를 조성한다.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을 ‘메시아의 오심을 준비하는 이’, ‘앞에서 길을 닦는 이’로 평가한다. 요한은 ‘앞에 있는 자신’(먼저 태어남, 먼저 활동함)을 내세워 주인공 행세를 하거나 주도권을 점유하려 하지 않으면서 ‘뒤에 오실 분’을 배려하는 조연의 소임을 적극적으로 수행하였다. 곧 메시아 대우를 받을 만한 잠재적 가능성이 컸던 요한은 메시아 콤플렉스로부터 자유로웠다. 또 ‘이 세상에서의 큰 인물, 요한’을 칭찬하신 예수님께서는 ‘저 세상에서의 요한보다 더 큰 인물’(마태 11,11)을 상정하였다. 우리 사회에는 다양한 문제가 있다. 극소수는 특정 인물의 지휘로 해결될 수 있지만, 대부분은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해결하기 곤란한 문제들이다. 인생의 복잡한 문제는 ‘해결하는’(푸는) 것이 아니라 ‘관리하는’(품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권한과 책임을 지닌 이들에게 문제 해결형, 권력 집중형의 ‘메시아 리더십’보다 문제 관리형, 권력 분산형의 ‘큰 인물 리더십’이 요청된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관계처럼 시간적 선후 관계의 이상적인 형태는 자녀를 위해 부모가 있고, 학생을 위해 선생이, 후임자를 위해 전임자가 있으며, 미래 세대를 위해 현 세대가 있는 관계다. 이 관계는 자신의 능력을 과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타인의 능력을 돋보이게 하는 태도로부터 시작될 것이다. 2025.12.10

사제를 꿈꾸던 카를로 성인[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30) 카를로 성인의 장래 희망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이 이 세상에서 보낸 마지막 여름, 2006년 7월 이탈리아 아시시의 수바시오 산 정상에서 찍은 사진. 이 사진은 2025년 9월 7일 시성식에서 공식 초상화로 사용되었으며, 카를로 성인의 초상화 가운데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출처=www.carloacutis.com 교리 분야의 척척박사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은 중학생 시절부터 보조 교리교사로서 첫영성체나 견진성사를 준비하는 아이들에게 교리를 가르쳤습니다. 카를로의 중학교 친구는 이런 말을 했지요. “종교 시간이면 카를로는 척척박사였어요. 종교 선생님이 오히려 카를로에게 교리와 성경에 대해 묻기도 했거든요.” 몸도 마음도 제법 성장하는 시기를 겪으며 10대들은 자신의 행복한 미래에 대해 좀더 구체적인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카를로 성인은 어떤 어른을 꿈꾸었을까요? 진지하게 고민했던 사제성소 2006년 여름, 고등학교 2학년이 되는 카를로가 진지하게 고민했던 장래 희망에 대해 카를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봅시다. “카를로가 방학이라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 조부모님 댁에서 지낼 때였어요. 카를로와 함께 저녁 미사를 드리고 아름다운 해변을 걸으며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었지요. 카를로가 그 특유의 순수성과 솔직한 말투로 자기가 사제가 되는 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묻더군요. 그 순간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되도록 차분한 마음으로 카를로의 이야기를 계속 듣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과 교회에 대한 카를로의 마음을 저도 잘 알고 있었기에, 카를로의 그런 물음이 낯설게 여겨지지는 않았어요. 카를로는 분명히 종교의 삶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것에 대해 오랫동안 생각했을 겁니다.” 교구 사제를 꿈꾸던 카를로의 속마음 그렇다면 카를로는 어떤 사제의 모습을 그리고 있었던 걸까요? 계속해서 카를로 어머니의 이야기를 들어볼까요? “만일 카를로가 사제품을 받게 된다면, 아마도 교구 사제를 선택했을 겁니다. 카를로는 남에게 드러나지 않게 그리고 침묵 중에 일상을 보내면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신자들의 삶을 위해 헌신적으로 일하는 교구 사제를 존중했습니다. 카를로는 예수님께서 일상의 삶에서 자신을 드러내시고 당신 백성들 가운데에서 걸어가신다고 했어요. 무언가 거창하고 위대한 일을 통해서가 아니라 평범한 삶 가운데 작은 일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아르스의 성자, 요한 마리아 비안네 신부님의 말씀이 떠올랐어요. ‘지상에서 구원사업을 이어가는 이는 사제입니다. 사제를 보면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하십시오. 선행을 전부 모아놓아도 미사성제에 비할 수 없습니다. 선행이 사람의 일인 반면, 거룩한 미사는 하느님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사제직은 예수 성심의 사랑입니다.’ 이러한 말씀이 카를로의 속마음이었을 거라고 저는 확신합니다.” 카를로가 사제가 되겠다고 결심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카를로 어머니는 그런 결심이 당연하다고 말합니다. “카를로에게는 예수님이 ‘전부’였으니까요. 카를로가 몇몇 신부님들의 아름다운 모범을 보면서 그분들을 닮고 싶다고 생각한 것도 분명하고요. 카를로는 가족 말고도 다른 많은 이와 소중한 우정을 나누었지요. 하지만 카를로의 마음을 파헤친 이는 다른 누군가가 아니라 바로 주님이었다는 걸 저는 잘 알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요청사항 알아차리기 체코 출신의 스피들리크 추기경님은 이런 말씀을 남겼습니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신뢰하시며 이미 당신 마음 안에 간직하고 계신 그 무언가를 우리에게 요청하실 때, 그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이 되고자 하는 것.” 무엇에 대한 말씀일까요? 거룩한 부르심, 바로 ‘성소’입니다. 2025년을 마무리하는 요즘, 하느님께서 우리 각자에게 요청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2026년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기를 바라시는지 알아차릴 수 있다면 우리의 미래는 더욱 활기차고 값질 것입니다. 2025.12.10

물의 도시가 품은 ‘복음의 심장’, 베네치아 산 마르코 바실리카[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73.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 마르코 바실리카 산 마르코 광장의 산 마르코 바실리카와 캄파닐레(종탑). 석호 위에 세워진 베네치아는 바다를 길로 삼아 번영을 일궈낸 해상 공화국이었다. 두칼레 궁전과 나란히 자리한 바실리카는 과거 공화국의 정치·종교의 구심점이었으며, 복음사가 성 마르코의 성해를 모신 도시의 영적 중심지다. 98.6m 높이의 종탑은 1902년 갑작스러운 붕괴를 겪었으나, “있던 곳에, 있던 모습 그대로”라는 슬로건 아래 1912년 재건되었다. 크고 작은 백여 개의 인공섬과 수많은 운하와 다리 사이로 오가는 곤돌라와 수상버스. 베네치아는 다른 유럽 도시에서 보기 힘든 이국적 풍경을 지닌 ‘물의 도시’입니다. 그러나 이 도시의 중심에는 오래전부터 한 성인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복음사가 성 마르코입니다. 광장의 이름도, 도시를 상징하는 ‘날개 달린 사자’도 모두 그 이름에서 출발합니다. 베네치아를 제대로 본다는 것은 아름다운 풍경을 눈에 담는 데에 그치지 않고, 왜 이 도시가 한 복음사가의 기억을 소중히 품고 있는지 알아보는 일일 겁니다. 성 마르코의 성해를 모신 산 마르코 바실리카는 바로 그 의문에 답하는 순례지입니다. 산 마르코 바실리카의 정면. 상부에 도시의 수호 성인 성 마르코와 성인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가 광장을 굽어보고 있다. 마르코 복음서의 시작이 광야에서 외치는 세례자 요한의 소리가 사자의 포효를 연상시킨다는 전승에 따라 사자는 성인의 영원한 상징이 되었다. 800여 년간 도제의 개인 소성당이자 공화국의 상징이었으며, 1807년 나폴레옹 시대에 이르러 베네치아총대교구 주교좌 성당으로 승격됐다. 바다를 길로 삼아 발전한 베네치아 둑길을 따라 베네치아로 들어서는 순간 이국적인 여정이 시작됩니다. 산타루치아역 밖으로 나서면 자동차 대신 수상버스가 기다립니다. 보통 산 마르코 바실리카로 갈 때는 대운하를 따라 리알토 다리까지 이동한 뒤 골목길을 가로질러 갑니다만, 베네치아의 참모습을 보려면 본섬을 돌아 먼바다의 정취를 느껴보길 권합니다. 베네치아는 서로마 제국 멸망 후 롬바르드족의 침입을 피해 석호로 숨어든 사람들의 정착지에서 출발했습니다. 이들은 척박한 개펄에 4m가 넘는 오리나무 말뚝을 촘촘히 박아 건물을 세우며 도시의 기틀을 닦았습니다. 물이 늘 완벽한 방어막은 아니었습니다. 9세기 말 마자르족의 침입이 시작되었고, 900년 리도디알비올라 전투에서는 사투를 펼쳐야 했습니다. 아드리아해 해적의 위협도 만만찮았습니다. 리알토 주변에 방어벽을 쌓고, 대운하에 거대한 쇠사슬을 설치한 것도 바로 이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넓은 육상 배후지가 없던 베네치아인들은 바다를 길로 삼을 수밖에 없었고, 바다를 통해 강해졌습니다. 중세에 동지중해와 서유럽을 잇는 중계무역의 거점으로 거듭나며 해상강국으로 부상했지요. 하지만 이들을 지탱한 것은 물질적 번영만이 아니었습니다. 바다의 위협과 기회를 동시에 견뎌야 했던 그들에게는 자신들의 과거와 미래를 결속할 정신적 구심점이 필요했습니다. 그 자리를 채워준 것이 성 마르코였습니다. 산 마르코 바실리카 주 제대와 본랑. 금빛 모자이크로 뒤덮인 반구형 돔과 아치들은 신비로운 비잔틴 전례 공간의 특징을 드러낸다. 제단과 신자석을 엄격히 구분한 대리석 스크린 상단은 열두 사도와 성모 마리아, 성 마르코 성상이 배치되어 있다. 도시 행정과 신앙의 중심이었던 바실리카 배가 주데카섬을 벗어나면, 산 마르코 종탑과 두칼레궁이 서서히 시야에 들어옵니다. 산 마르코 바실리카는 그 옆에 있습니다. 현재 성당은 11세기부터 수세기에 걸쳐 완성된 것으로, 높은 첨탑이 하늘을 찌르는 서유럽식 대성당과 다른 모습입니다. 둥글게 솟은 다섯 개의 돔, 황금빛 모자이크, 대리석과 부조가 겹겹이 포개진 정면은 보는 이를 압도합니다. 건너편에 우뚝 솟은 종탑은 과거 지진과 붕괴를 거치며 별도로 세워졌습니다. 바실리카의 역사는 829년 성 마르코의 유해를 알렉산드리아에서 베네치아로 옮겨온 사건에서 시작됩니다. 832년 첫 성당 봉헌과 함께 성해를 모셨고, 기존 성 테오도로를 대신해 성 마르코를 새로운 수호 성인으로 세웁니다. 이는 복음사가의 권위를 빌려 베네치아를 단순한 해상도시가 아닌 특별한 도시로 격상시키려는 포부의 산물이었습니다. 이에 따라 성인의 상징인 ‘날개 달린 사자’는 공화국 문장(紋章)이자 도시의 정체성 그 자체가 됐습니다. 당시 주교좌 성당은 외곽의 산 피에트로 대성당이었지만, 도심의 바실리카는 도제의 소성당이자 국가 의례의 무대로서 사실상 베네치아 공화국의 영적 지주 역할을 했습니다. 바실리카에서 공식 행사가 치러졌고, 성 마르코는 베네치아인이 하나로 뭉치는 구심점이 됐습니다. 도심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날개 달린 사자는 이 도시가 바다를 통해 번영을 이루면서도 삶의 중심에는 늘 성인에 대한 공경심이 있었음을 잘 보여 줍니다. 현관 아치 ‘포르타 산탈리피오’. 서쪽 정면에서 유일하게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13세기 모자이크다. 829년 알렉산드리아에서 수습한 성 마르코의 유해를 주교와 도제의 영접을 받으며 바실리카로 운구하는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모자이크 배경에서 당시 바실리카 모습을 볼 수 있다. 주 제대 뒤편의 제단화 팔라 도로. 금박을 입힌 은판 위에 화려한 비잔틴 칠보와 수천 개의 보석·진주를 촘촘히 박아 완성했다. 중앙의 ‘축복하는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상단에는 비잔틴 교회의 주요 축일 장면들, 하단 좌우에는 성 마르코의 생애와 순교, 베네치아로 성해 운구 장면이 펼쳐진다.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황금 성전 현재 바실리카는 11세기에 비잔틴 전통을 반영한 기본 구조를 갖춘 뒤, 외관이 점차 덧입혀졌습니다. 13세기에 벽돌 돔 위에 납판을 씌운 돌출 돔이 얹혔고, 서쪽 정면은 14~15세기에 더해진 고딕 장식과 조각으로 화려하게 마감됐습니다. 특히 1204년 이후 콘스탄티노폴리스에서 가져온 대리석과 네 마리 청동 말 조각은 동·서방을 넘나든 베네치아의 역사를 선명히 드러냅니다. ‘창세기 돔’ 아래로 들어서면 찬란한 금빛 모자이크가 천장과 벽면을 가득 채웁니다. 비잔틴 특유의 공간감은 고딕 위주의 서유럽 대성당과는 전혀 다른 경이로움을 선사합니다. 이 모자이크는 단순한 장식이 아닌 성경의 세계를 펼쳐 보이는 ‘벽면의 언어’이며, 석호의 물결을 닮은 듯 일렁이는 바닥의 대리석 무늬는 도시 밖의 이국적 풍경을 성전 안으로 자연스럽게 끌어들입니다. 주 제대에는 베네치아인 신앙심의 구심점인 성 마르코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제대 뒤편의 제단화인 ‘팔라 도로(Pala d’Oro)’는 성인의 삶을 담은 정교한 금세공 패널입니다. 베네치아 최고의 보물인 동시에, 성 마르코 순례의 서사를 눈앞에 펼쳐 보이는 성화이지요. 로지아에 서면, 베네치아 번영과 성쇠를 함께한 앞바다가 한눈에 들어옵니다. 바실리카는 도시의 권력과 부를 과시하려 세운 공간이 아닙니다. 하느님 앞에 베네치아의 현재와 미래를 봉헌하던 간절한 자리였습니다. 현재 호르무즈 해협의 바닷길을 둘러싸고 세계가 요동치고 있습니다. 이해관계의 셈법이 아니라, 전쟁을 피하고 평화를 주십사 하느님의 자비를 청하는 간절함이 필요하지 않을까 합니다. <순례 팁> ※ 대운하 코스: Rialto(ACTV 1, 2번) 하차 후 도보 이동하거나 배편(1번)으로 계속 이동(총 25~45분) / 우회 코스: P.le Roma ‘E’에서 승선(ACTV 4, 1, 5.1번, 총 25~35분) ※ 바실리카 미사 : 주일 및 대축일 8:00· 10:00·12:00·18:45, 평일 8:00·10:00·18:45. 미사 참례는 북쪽 ‘포르타 데이 피오리’ 문으로 입장. 그 외 관람 목적은 유료.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cpbc2026.05.06

주님 재림을 희망하는 삶[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4)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은 주님 재림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경전으로 초대 교회 신자들뿐 아니라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에게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갈 것을 권고한다. 바오로 사도가 그리스 테살로니카와 베로이아 신자들에게 설교하는 모습을 담은 모자이크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이하 테살로니카 2서)은 초대교회 때부터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하 테살로니카 1서)과 함께 바오로 사도가 직접 쓴 신약성경 정경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이후 19세기 들어 역사비평 방법론이 유행하면서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2서를 직접 쓰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주장이 제기됩니다. 그 이유로 테살로니카 1·2서가 수신인 테살로니카 사람들의 교회, 발신인 바오로와 실바누스, 티모테오에게 하는 인사말도 “하느님 우리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은총과 평화가 여러분에게 내리시기를 빕니다”로 같고, 구조와 내용이 비슷하지만 ‘주님의 재림’에 대한 내용이 큰 차이를 보인다는 것입니다. 테살로니카 1서는 그리스도교 신앙생활의 근본은 ‘주님의 재림을 기다리는 삶’(1테살 1,10)이라며 “맑은 정신으로 믿음과 사랑의 갑옷을 입고 구원의 희망을 투구로 쓰라”(1테살 5,8)고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재림이 임박했으니 대비하라고 충고합니다.(1테살 5,1-5 참조) 그런데 테살로니카 2서는 주님의 재림을 먼 미래의 일로 설명합니다. 주님의 재림이 있기 전에 배교자들과 무법자들이 출현하고 사탄의 작용으로 거짓 표징과 이적이 반드시 일어나는데, 아직 이런 표징들이 없기에 주님의 날이 온 것은 결코 아니라고 합니다.(2테살 2,1-12) 이런 이유로 오늘날 대부분 성경학자는 테살로니카 2서가 테살로니카 1서를 쓸 당시 교회 상황과 다른 시기에 바오로 사도의 권위를 빌려 그의 제자들이나 협력자들 가운데 한 명이 썼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그래서 오늘날 성경학계는 테살로니카 2서를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 티토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제2 바오로 서간’ 또는 ‘바오로의 차명 서간’으로 분류합니다. 물론 지금도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2서를 직접 썼다고 하는 성경학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바오로 사도가 50~51년께 코린토에서 테살로니카 1서를 쓴 후 같은 장소에서 51~52년께 테살로니카 2서를 썼을 것이라 주장합니다. 반면, 오늘날 대부분 성경학자는 집필 장소는 어디인지 단정할 수 없으니 그리스도교 박해자들(1,4)과 열광주의자들(2,2)이 나타날 무렵인 80년 이후부터 1세기 말에 테살로니카 2서가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테살로니카 2서가 쓰인 동기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테살로니카 1서처럼 테살로니카 교회가 당면한 문제, 특히 주님의 재림 시기에 관한 신자들 사이의 혼란을 해결하기 위한 것으로 보입니다. 테살로니카 2서는 모두 3장으로 인사말(1,1-2), ‘주님 재림 시기’(1,3─2,17)와 ‘기도 요청과 게으름에 대한 경고’(3,1-15), ‘축복과 끝인사’(3,16-18)로 구성돼 있습니다. 주님 재림 시기에 대한 내용은 직설법과 서술체로, 기도 요청과 게으름에 대한 경고는 명령법과 권고체로 쓰였습니다. 저자는 주님의 재림 시기 곧 종말 문제로 혼란에 빠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거짓 예언자들에게 현혹되거나 여러 속임수에 빠지지 않도록 당부합니다. 당시 테살로니카 신자들 사이에는 주님 재림에 대한 지나친 기대와 열광주의자들의 거짓 주장이 난무했습니다. 일부 신자들은 테살로니카 1서의 바오로 사도 가르침에 따라 주님 재림이 임박했다고 여겨 종말이 이미 온 것처럼 행동했을 뿐 아니라(2,1-2) 무질서하게 살았습니다.(3,6) 일도 하지 않고 남의 일에 참견만 했습니다.(3,10-12) 사회 현실을 도외시하고 거부한 것이지요. 그래서 테살로니카 2서 저자는 주님께서 재림하실 때가 아직 닥치지 않았으니 종말이 임박했다는 허튼 소문에 동요하지 말라고 훈계합니다. 앞서 설명했지만, 저자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종말의 표징’을 제시합니다. 먼저, 배교하는 사태가 벌어지고 무법자들이 나타나 신이라 자처하며 하느님의 성전에 자리 잡고 사탄의 힘을 빌려 거짓 표징과 이적을 일으키며 속임수를 쓸 것이라 합니다. 이러한 역사적인 전개 과정을 거치면서 주님의 재림은 분명히 실현된다고 합니다. 종말은 “주 예수님께서 능력을 지닌 당신의 천사들과 함께 하늘로부터 나타나실 때”에 이루어지며(1,7), 재림하신 주님께서 악을 심판하고 불신자들을 책벌하실 것이며 믿는 이들을 당신 영광에 동참시키실 것입니다.(1,8-10) 따라서 참 그리스도인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과 희망을 견고히 하며 종말이 오는 그 날까지 사랑으로 질서를 지키며 좋은 일을 묵묵히 실천하며 살아가야 한다고 당부합니다.(2,15-16; 3,6-13) 이처럼 테살로니카 1·2서는 모두 초대교회 신자들이 지녔던 주님 재림에 대한 희망을 보여주는 중요한 경전입니다. 두 서간은 “사람들을 당신께 부르시는 하느님의 사랑, 재림하시기를 바라며 신자들이 열렬히 기다리는 그리스도의 주권, 복음 선포 말씀과 공동체의 삶에서 드러나는 성령의 활발한 활동, 부활에 대한 확신, 박해를 이겨 내는 인내, 형제들과 공동체들을 굳게 결속해 주는 형제적 사랑 등을 낱낱이 보여준다. 이렇게 테살로니카 1서와 2서는 우리 신앙의 원천을 보여 준다. 그리하여 모든 세대의 그리스도인은 이 서간들을 통하여 지속적으로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갈 수가 있다. 그리고 자기가 서 있는 시간과 장소에서, 이 신앙의 선조들이 지녔던 것과 똑같은 열정을 가지고 같은 희망 속에서 살아가라는 부르심을 늘 듣게 된다.”(「주석 성경」 783쪽)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8.06

상처 속에서 만나는 ‘작은 부활’ 프라하 엠마우스 수도원[중세 전문가의 간김에 순례] 71. 체코 프라하 엠마우스 수도원 블타바강 강변에서 바라본 엠마우스 베네딕도회 수도원. 1347년에 세워진 성모 성당은 17세기 스페인 몬세라트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에 의해 바로크 쌍탑을 갖추었으나, 1945년 미군 공습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전후 복구 때 프란티셰크 M. 체르니가 오늘의 철근콘크리트 쌍탑을 세워, 중세 성당 위에 전쟁과 재건의 기억을 함께 남겼다. 프라하를 찾는 이들은 카를교 위에서 프라하성과 블타바강이 어우러진 풍경에 매료됩니다. 그러다가 북적이는 도심의 명소로 발걸음을 옮기곤 합니다. 하지만 신자라면 선택지가 많습니다. 프라하에는 유서 깊은 수도원이 많기 때문입니다. 흐라트차니 언덕의 스트라호프 수도원처럼 관광 가이드에 나오는 유명한 곳도 있지만, 프라하 곳곳에는 고요히 자리를 지켜온 수도원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습니다. 특히 부활 시기라면 들러볼 곳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길 위에서’ 알아보고, 마침내 식탁에서 눈이 열리는 복음의 여정을 건물과 전례, 회랑의 동선 안에 품고 있는 곳, 엠마우스(Emauzy) 베네딕도회 수도원입니다. 슬라브어 전례 위해 세워진 ‘나슬로바네흐’ 카를교에서 엠마우스 수도원으로 가는 길은 우리가 익히 아는 중세 도시 프라하의 모습과는 조금 결이 다릅니다. 중세의 색채가 점차 옅어지는 대신, 주민들이 사는 도시의 결이 살아납니다. 신시가지 안쪽 평범한 건물 사이로 트램이 오가는 일상의 삶 속에 수도원이 있지요. 엠마우스 수도원은 1347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이자 보헤미아 왕이었던 카를 4세가 설립했습니다. 당시 라틴어 전례권이었던 보헤미아에서 슬라브어 전례를 거행할 수 있도록 교황의 허락을 받아 세운 드문 베네딕도회 수도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슬라브인의 장소’라는 뜻의 ‘나슬로바네흐’라고도 불립니다. 이는 단순한 전례 실험이 아니었습니다.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의 선교 유산을 이어받아 보헤미아가 동방 슬라브 전통과 서방 교회 사이를 잇는 영적 가교임을 드러내려는 카를 4세의 원대한 의도였습니다. 1372년 수도원 성당 축복식 날 낭독된 복음이 부활한 주님께서 두 제자와 함께 걸으신 ‘엠마오 이야기’였기에, 사람들은 이곳을 자연스럽게 ‘엠마우스 수도원’이라고 부르게 됐습니다. 2016~2017년 복원된 엠마우스 수도원 ‘천국의 뜰’. 회랑의 고딕 창과 오래된 석벽으로 둘러싸인 빛의 십자가가 중세 수도원과 오늘의 영성을 하나로 묶어 드러낸다. 폭격의 폐허에서 돋아난 부활의 날개 수도원 앞에 서면 먼저 ‘낯섦’과 마주하게 됩니다. 비슷한 시대에 세워진 성 비투스 대성당과 달리 현대 조각을 연상시키는 두 개의 거대한 흰 콘크리트 날개형 탑이 솟아 있기 때문입니다. 과거를 찾아왔다가 현대를 만난 듯한 묘한 기분이 듭니다. 본래 성당에는 바로크 양식의 첨탑이 있었으나, 1945년 2월 14일 연합군의 오폭으로 수도원과 성당이 크게 파괴되어 전후에 오늘날의 독특한 쌍탑이 세워진 겁니다. 그날 드레스덴을 목표로 한 B-17 폭격기 62대가 악천후와 항법 오류로 비슷한 지형의 프라하를 잘못 폭격한 거죠. 단 2분 만이었지만 엄청난 피해를 낳았습니다. 흰 쌍탑은 인간의 잘못으로 생긴 상처를 하느님 앞에 감추지 않고 온전히 받아들인 듯합니다. 성당 안으로 들어서면, 바깥의 인상과 전혀 다른 고요가 밀려듭니다. 세 개의 본랑 높이가 같은 홀 형식 구조 덕분에 공간은 하나의 거대한 기도실처럼 차분하게 다가옵니다. 안을 천천히 바라보면, 서로 다른 시대의 흔적이 하나의 질서 안에서 조용히 어우러져 있습니다. 14세기 고딕의 골격 위에 후대의 손길이 덧입혀졌고, 19세기 말에는 독일 보이론 예술학교 수도자들의 채색으로 전례의 공간이 새로운 옷으로 갈아입었습니다. 수도원 회랑의 벽화(14세기). 회랑과 인접 공간에 구약과 신약의 사건들을 짝지은 약 90개 장면의 벽화를 대규모 연작으로 그렸으나, 수명이 짧은 석회화 기법의 취약성, 후대 개조와 공습으로 크게 훼손되어 일부만 남아 있다. 회랑을 걸으며 깨닫는 신앙의 신비 이 수도원이 왜 부활 시기에 어울리는지 회랑에 들어서는 순간 실감하게 됩니다. 1360년경 회랑과 주변 공간에 제작된 벽화 연작은 원래 약 90개의 장면으로 구성된 방대한 성경 공부의 장이었습니다. 안타깝게도 석회화(프레스코화) 특유의 취약성과 이후 보수, 폭격으로 많은 부분이 유실되었지만, 남은 벽화만으로도 구원사를 따라 걸을 수 있습니다. 회랑을 따라 걷다 보면 구약과 신약의 사건들이 서로 마주하고 있음을 알게 됩니다. 예를 들어, 물이 없어 고통받던 이스라엘 백성에게 단물을 주신 모세의 기적과 예수님이 우물가에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생명수를 약속하시는 장면이 짝을 이룹니다. 주님을 곧바로 알아보지 못했지만 함께 걸으며 차츰 눈이 열렸던 제자들처럼, 순례자 또한 이 회랑을 걸으며 구원의 섭리를 서서히 깨닫게 됩니다. 엠마우스 수도원의 성모 성당 주 제대와 후진 공간. 14세기 고딕 성당의 높은 궁륭과 굵은 원주가 내부 골격을 이루고, 벽면과 아치 아래는 19세기 말 독일 보이론 미술로 장식됐다. 1945년 공습으로 내부의 옛 시설이 거의 사라져, 오늘의 성당은 넓은 공간감과 절제된 인상을 준다. 무너짐 속에서 거듭된 작은 부활의 역사 엠마우스 수도원의 역사는 무너짐과 회복이 거듭된 시간의 기록입니다. 처음에는 슬라브 전례를 위한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세워졌지만, 후스 전쟁 이후에는 오랜 침체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위기의 순간마다 외부에서 온 베네딕도회 형제들을 통해 다시 살아났습니다. 17세기에는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자들이 들어와 공동체를 재건하며 새로운 성모 신심을 심었고, 19세기에는 독일의 ‘문화 투쟁’으로 박해받던 보이론 수도자들이 이곳을 전례와 성미술이 어우러진 공간으로 빚어냈습니다. 하지만 1945년 폭격의 상흔이 채 가시기도 전, 체코 공산 정권의 박해로 수도자들은 수용소로 끌려갔고, 수도원은 국가에 몰수되는 암흑기를 겪었습니다. 그러나 1989년 벨벳 혁명 이후 돌아온 수도자들은 폐허를 닦아내며 공동체를 재건했습니다. 외부 형제들의 도움으로 일어섰던 과거처럼, 이제는 박해를 이겨낸 현지 수도자들이 스스로 쇄신하며 새로운 생명을 일구고 있습니다. 엠마우스의 역사는 쇠퇴와 파괴, 국가 박해 속에서도 끊기지 않고 다시 일어선 역사, 곧 하느님의 섭리 안에서 거듭된 ‘작은 부활’의 역사입니다. 시대를 건너며 이 신비를 체험한 수도원에서, 우리도 길 위에서 우리 곁을 지키시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납니다. <순례 팁> ※ 프라하 중앙역에서 트램 3, 14, 24번으로 이동.(15분 소요) 카를교에서 구시가 쪽으로 건넌 뒤 국립극장 쪽으로 내려가 강변 따라 이동(2㎞, 도보 25분) ※ 수도원 전례: 수도원 성당 매일 미사 10:00, 저녁기도 17:30, 성 고스마와 성 다미아노 성당 주일 및 대축일 9:00, 평일 17:00(목), 18:00(금, 우크라이나어) 수도원 웹사이트 opatstvi-emauzy.cz ※ 혼자 가시기 힘든 분을 위해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마련한 2026 유럽 수도원 성지 순례. 문의 및 신청: 분도출판사, 010-5577-3605(문자) cpbc2026.04.14

눈 뜨는 순간 성찰·기도는 뇌에게 주는 가장 건강한 첫 식사[김용은 수녀의 오늘도, 안녕하세요?] 127. 하루의 첫 시간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습관적으로 휴대전화를 찾는다. 뉴스와 정보·메시지를 확인하는 순간 복잡한 생각의 미로로 빨려들어간다. 위 사진은 기사의 내용과 연관 없음. 출처=이미지투데이 아침 공복에 ‘무엇을 먼저 먹느냐’는 생각보다 중요하다. 전문가들은 채소나 단백질을 먼저 섭취한 뒤, 탄수화물이나 커피를 권한다. 밤새 비워진 위에 좋은 것을 먼저 넣어야 몸이 활기를 얻듯, 아침의 뇌도 마찬가지다. 잠자는 동안 쌓였던 생각이 정리되고 깨끗이 비워진 상태이기에, 어떤 생각을 먼저 채워 넣느냐가 하루의 방향을 결정한다. 특히 아침은 뇌세포가 가장 활발히 활동하는 시간이다. 집중력이 높고, 신경을 이완시키는 알파파와 기분을 좋게 하는 호르몬이 활발히 분비된다. 그렇다면 우리는 눈을 뜨자마자 무엇을 가장 먼저 하고 있을까? 조사에 따르면 현대인의 80% 이상이 침대에서 일어나기도 전에 스마트폰을 확인한다. 무심코 화면을 터치하는 순간, 하루의 주도권은 이미 남에게 넘어가 버린다. 뇌과학자들은 잠든 동안 뇌가 쉬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 바쁘게 일한다고 말한다. 하루 종일 쌓인 정보를 분류하고, 불필요한 기억은 지우며, 중요한 것은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는 ‘정리 작업’을 밤새 이어간다. 그래서 새벽의 뇌는 마치 깨끗이 비워진 도화지와 같다. “메시지 하나 확인하는 게 뭐 그리 대수일까?”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뇌는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메시지를 여는 순간, 발신자와 얽힌 기억들과 처리해야 할 일들이 도미노처럼 밀려온다. 날씨를 확인하려던 단순한 의도가 순식간에 복잡한 생각의 연쇄로 이어진다. 고요한 호수에 돌이 떨어지면 잔물결이 사방으로 번져 가듯, 아침의 가장 맑고 집중력 높은 시간을 소모하는 것은 결국 가장 소중한 자원을 낭비하는 셈이다. 그렇다면 아침의 뇌와 마음을 위해 우리는 무엇을 먼저 해야 할까? 복잡한 명상법을 따로 배울 필요는 없다. 눈을 뜬 뒤 스마트폰 대신 단 5분만 자신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수도자들은 매일 새벽 묵상으로 말씀을 마음에 새긴다. 허리를 곧게 세우고 호흡을 고르며 생각을 가라앉히고, 침묵 속에서 지금 여기 함께하시는 하느님의 현존을 의식한다. 그리고 성경 말씀을 천천히 읽는다. 내 마음에 유난히 깊이 다가온 말씀은 이것이다. “내가 바라는 것은 희생 제물이 아니라 자비다.”(마태 12,7) 집중이 잘되지 않는다면 한 단어만 붙잡아도 좋다. 숨을 들이마시며 ‘자비’, 내쉬며 ‘자비’라고 마음속으로 읊조린다. 그렇게 하다 보면 말씀은 단순한 글자가 아니라 내 삶을 움직이는 힘이 되고, 구체적인 상황 속에서 자비롭게 실천할 길을 비춰 준다. 신경과학 연구에 따르면, 반복하는 생각은 실제로 신경회로를 만든다. 사랑·감사·온유 같은 긍정적 단어를 자주 되뇌면 그에 해당하는 회로가 강화되어 실제로 더 사랑스럽고 온화한 사람이 된다. 반대로 분노·불안·질투 같은 부정적 생각에 머무르면 그런 감정이 쉽게 활성화되는 구조가 형성된다. 결국 아침에 어떤 생각으로 하루를 시작하느냐는 단순히 그날의 기분 문제가 아니다. 장기적으로 “나는 어떤 사람이 되는가”를 결정하는 문제다. 스마트폰으로 하루를 여는 사람과 사색이나 묵상으로 시작하는 사람은 몇 년 후 전혀 다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눈을 뜨는 순간은 하루 중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내가 나 자신에게 무엇을 건네줄 수 있는지 선택하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쏟아지는 정보가 아니라, 내 내면에 귀 기울이는 시간. 남이 만든 콘텐츠의 물결에 휩쓸리기 전에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하루를 설계하는 시간이다. “오늘 하루, 나는 어떤 사람이 되고 싶은가?” 이 답은 매일 새벽, 눈을 뜨는 순간 내가 무엇을 선택하느냐에 달려 있다. 단 5분의 선택이 새로운 나를 만든다. <영성이 묻는 안부> 누군가가 밉게 느껴지면 애쓰지 않아도 ‘미움’이라는 단어에 마음이 붙잡히고, 원치 않아도 그 말이 자꾸 떠오릅니다. 반대로 사랑·온유·친절·소망 같은 긍정적인 단어들은 의식하지 않으면 쉽게 흘려버리게 되지요. 그래서 하루의 첫 시간에 긍정적인 단어 하나로 마음을 채우는 습관이 필요합니다. 외부 소식은 막 일어난 뇌에 수많은 정보를 쏟아붓고, 마음의 평정을 깨뜨리며 주의력을 흩뜨립니다. 반대로 기상 후 첫 시간을 고요히 성찰이나 기도로 시작하는 것은 뇌에게 주는 가장 건강한 첫 식사와도 같습니다. 성경 말씀이나 영적인 단어를 되뇌는 일은 영적 수련이자 뇌과학적으로도 입증된 ‘뇌 구조 훈련’입니다. 사랑·자비·인내 같은 거룩한 언어로 아침을 열면 하루가 훨씬 더 평화롭고 밝아집니다. 오늘부터 영혼의 첫 끼를 챙겨보시면 어떨까요? 말씀 한 구절, 아니 단어 하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하느님과 마주하는 그 순간, 영혼의 허기가 채워지고 하루는 한층 더 빛나게 될 것입니다. cpbc2025.08.27

생활 속 예수님과 쌓아가는 친교[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26) 말씀과 성사로 양육되는 신앙 우리의 ‘금쪽같은 신앙’을 양육하는 것은 부활하신 예수님과 맺는 친교다.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현존을 삶 안에서 체험하는 것, 그분을 ‘살아계신 분’으로 만나는 것은 그 누구도 제외될 수 없는 빛의 폭발과 같은 가장 큰 영적 기쁨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 제37차 세계청년대회 메시지) 신앙의 핵심 메시지는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셨으며, 지금 우리 안에 살아계신다는 것이다. 당신 사랑으로 온 세상을 구원하셨으며, 오늘도 그 구원을 지속하고 계신다는 사실이다. 신앙생활은 부활하신 예수님, 우리 가운데 살아계시는 예수님과의 만남이며 친교이고, 그분과 동화되는 과정이다. 그런데 보이지 않는 예수님을 어디에서 어떻게 만날까? 바로 말씀과 성사를 통해서다. 예수님과의 친교는 ‘말씀과 성사 중심의 삶’을 통해 나날이 깊어진다. 먼저 ‘말씀 중심의 삶’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다. 말씀 중심의 삶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오늘 나에게 들려주시는 말씀을 식별하는 삶이다. 예수님께서는 과거만이 아닌 지금도 나에게 말씀을 건네신다. 교회 안에서 말씀과 성사를 통해, 그리고 삶의 다양한 사건과 만남을 통해, 각자 삶의 여정과 미래 계획 안에, 이웃과 어우러져 사는 삶을 통해 말씀하신다. 말씀의 전례 때 선포되는 하느님 말씀은 신앙을 통해 내 마음 안에 울려 퍼지며 나를 향한 말씀이 된다. 그리고 나의 응답하는 삶, 회개하는 삶을 통해 신앙은 나날이 성장해 간다. ‘성사 중심의 삶’은 성사를 통해 나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 사랑을 삶의 중심에 두는 삶이다. 교회 안에서 거행하는 일곱 가지 성사는 2000년 전 사람들에게 다가가시어 자비와 사랑으로 구원을 베푸신 예수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소다. 가령 성체성사를 통해 주님께서는 나에게 생명의 양식으로 다가오시어 사랑으로 나를 양육하신다. 그렇기에 주일 미사도 중요하지만 매일 미사 참례는 주님 사랑에 힘입어 매일 성장하는 신앙의 삶을 살도록 하는 자양분이다. 고해성사는 종종 잊고 살아가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상하고 자애로우며 한없이 어지신 마음을 체험할 수 있는 장소다. 어둡고 좁은 고해소에 들어가는 것이 어렵다면, 한없이 자비로운 얼굴로 두 팔 벌려 우리를 맞아주시고 껴안아주실 준비가 되어 계신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려보자.(루카 15,20 참조) 용기를 내어 고해소에 들어갈 수 있다면,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매일의 삶을 축복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죄와 허물로 물든 삶을 용서받고 온전히 새롭게 시작할 수 있다. 그 밖의 여러 성사들도 새로 나게 하시고(세례) 견고케 하시고(견진) 치유하시며(병자) 친교와 봉사의 삶으로 이끄시는(혼인, 성품) 주님을 직접 만날 수 있는 장소다. 신앙생활은 그 자체로 성사의 의미를 지닌다. 곧 보이지 않는 하느님 은총을 체험하게 하는 매개다. 일상 안에서 이루어지는 기도와 활동들, 아침기도·저녁기도·삼종기도·묵주기도·화살기도·성체조배·성경 읽기·미사 참례·성체성사·고해성사·공동체 모임·애덕 실천·봉사·희생·자선 등은 모두 ‘은총의 통로들’, 곧 나를 향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만날 수 있는 매개들이다. 이와 더불어 ‘공부하는 신앙’이 신앙 성숙에 큰 도움을 준다. 세상 돌아가는 이야기뿐 아니라 교회 돌아가는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자. 가톨릭계 신문·잡지 등을 구독하고, 신심 서적을 읽고, 교회의 공식 가르침을 공부한다면, 세상이 달리 보이고 삶이 달리 보이기 시작할 것이다. 한민택 신부cpbc2025.12.02

환대와 섬김의 정신으로 가난한 환자 무료로 돌보며 사랑 실천[사진에 담긴 고요한 아침의 나라] 43. 진료소와 시약소 <사진 1> ‘환자들이 모여 있는 덕원 진료소’, 1928?, 랜턴 슬라이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예수님의 산상 설교에 기초한 환대와 섬김 ‘환대’와 ‘섬김’. 그리스도인의 윤리적 삶의 모토이며,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평생을 수행해야 할 수도 규칙 중 하나다. 환대와 섬김은 예수님의 산상 설교에 기초한다. 이웃, 특별히 가난한 이를 환대하고 섬기는 것은 단순한 윤리적 행위를 넘어 사랑으로 힘을 얻는 ‘덕’이다.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삶과 생활 규범을 제시하고 있다.(로마 12―15장; 1코린 12―13장; 콜로 3―4장; 에페 4―5장) “사랑은 거짓이 없어야 합니다. 여러분은 악을 혐오하고 선을 꼭 붙드십시오. 형제애로 서로 깊이 아끼고, 서로 존경하는 일에 먼저 나서십시오. 열성이 줄지 않게 하고 마음이 성령으로 타오르게 하며 주님을 섬기십시오. 희망 속에 기뻐하고 환난 중에 인내하며 기도에 전념하십시오. 궁핍한 성도들과 함께 나누고 손님 접대에 힘쓰십시오. 여러분을 박해하는 자들을 축복하십시오. 저주하지 말고 축복해 주십시오. 기뻐하는 이들과 함께 기뻐하고 우는 이들과 함께 우십시오. 서로 뜻을 같이하십시오. 오만한 생각을 버리고 비천한 이들과 어울리십시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에게 좋은 일을 해 줄 뜻을 품으십시오. 여러분 쪽에서 할 수 있는 대로, 모든 사람과 평화로이 지내십시오.”(로마 12,9-18)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계명에 기초한 이 복음적 권고는 그리스도인으로 하여금 성덕으로 나아가게 하는 길을 제시한다. 예수님께서는 이를 위해 직접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셨고, 병자들을 치유해주셨다. 그리고 딸과 오빠를 잃고 슬피 우는 가족을 위해 그들을 죽음에서 깨어나게 해주셨다. 섬김은 ‘굴종’이 아니라 상대를 ‘아끼는 것’이다. 아끼는 것은 사랑의 표현이다. 정성과 마음을 다하여 사랑하는 것이다. 섬김은 자발적 행위다. 겸손 없는 의지로 행해지는 것이 아니다. 더더욱 누가 시켜서 마지못해 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성덕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하느님과 이웃을 제 몸처럼 섬기지 못하기 때문이다. 섬김은 ‘자기 헌신’이다. 여기엔 ‘섬세한 배려’가 요구된다. 인간적 연민이나 물질적 이익 등 세부적인 것들에 사로잡혀선 안 된다. 온전한 진정성만이 드러나야 한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불안감이나 교만, 과시욕이나 지배욕으로 하는 일이 성덕으로 이끌 리 없다는 것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우리가 하는 모든 일이 복음적 의미를 지니고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 언제나 더욱 일치시켜 주는 그러한 방식으로 자신을 내어주며 살아가라는 과제가 있습니다”라고 권고한다.(「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28) 섬김은 ‘자기 봉헌’이다. 하느님의 자비에 힘입어 거룩한 산 제물로 자신을 내어주는 선한 의로움이다. 이 자기 봉헌의 삶은 은총의 삶으로 우리를 성장시킬 것이다. 수도자들이 환대와 섬김의 삶을 수행하는 이유도 마찬가지다. 이 복음적 권고가 하느님에 대한 완전한 사랑의 징표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라고 고백한다.(1요한 3,14) 더불어 “누가 ‘나는 하느님을 사랑한다’ 하면서 자기 형제를 미워하면, 그는 거짓말쟁이입니다. 눈에 보이는 자기 형제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하느님을 사랑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그분에게서 받은 계명이 이것입니다.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자기 형제도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라고 한다.(1요한 4,20-21) <사진 2> ‘아이를 치료하고 있는 요셉 그라하머 수사’, 1928?, 랜턴 슬라이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1928년 가난한 이들 위한 덕원 진료소 마련 성경의 가르침과 베네딕도 성인의 「수도 규칙」에 따라 한국 선교사로 파견된 남녀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은 찾아오는 모든 손님을 그리스도처럼 맞아들였다. 특히 그들이 진출할 당시 한국은 콜레라 등 여러 전염병이 창궐했다. 그래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진료소와 시약소를 운영했다. 특히 덕원 수도원에 마련된 진료소와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들이 운영하던 시약소는 가난한 이들뿐 아니라 일반인들에게 깊은 존경과 신임을 받았다. 요셉 그라하머 수사는 덕원 수도원 사랑채에 1927년 11월 진료소를 꾸민 다음 1928년 초 당국의 정식 인가를 받아 내과 질병과 외상을 치료하는 진료소를 열었다. 사랑채는 덕원 수도원을 찾아온 손님들의 숙소로 사용하던 건물이었다. 이 덕원 수도원 진료소에는 매일 60명이 넘는 환자들이 찾아와 그라하머 수사에게 치료를 받았다. <사진 1> 요셉 그라하머 수사는 1911년 1월 23세 나이로 한국에 파견됐다. 서울 백동 수도원 문간 수사 소임과 숭공학교에서 재단 과목을 가르친 그는 강제 징집돼 제1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다. 의무병으로 제대하고 다시 한국에 온 그는 ‘간호 수사’로 병자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의료 면허가 없던 그는 서울 국립병원장의 추천서를 통해 서울에서 온 의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시험을 쳐 통과해 서울 행정 당국으로부터 1928년 의사 면허를 취득할 수 있었다. 이후 그는 서울 국립병원에 가서 마츠이 박사로부터 외과 수술 과정을 수련해 전문의에 버금가는 의술을 터득했다. 덕원 진료소는 약값을 낼 처지가 되는 환자에게는 원가만 받고, 가난한 이들에게는 무상으로 제공했다. 주로 위장병 환자와 류머티즘·폐렴·늑막염 환자들이었다. 또 여름에는 말라리아와 티푸스 환자가 많았다. 그라하머 수사는 덕원 수도원이 북한 공산당에 의해 폐쇄될 때까지 20년간 진료소를 운영했다. 그동안 그는 김재환 플라치도 수사를 비롯한 한국인 조수 몇 명을 고용했고, 진료소도 확장해 환자 대기실·진찰실·응급실·약국·방사선 치료실·수술실·입원실까지 갖추었다. 환자 대부분은 병원 문턱에도 갈 수 없는 가난한 이들이었다. 그래서 진료소는 늘 적자였다. <사진 2> <사진 3> ‘원산 수녀원 시약소’, 1925, 랜턴 슬라이드, 국외소재문화유산재단, 독일 상트 오틸리엔수도원 아카이브 소장 한국 사진. 원산·신고산·회령·청진에 무료 시약소 운영 “한국 사람들, 그중에서도 특히 가난한 사람들이 병에 걸려 고통받을 때 그들을 도와줌으로써 우리 수도원이 널리 알려지고 있고, 외교인들 사이에서 수도원의 명망과 수도원에 대한 신뢰가 커지고 있다. 요셉 수사의 의료 행위의 중요하고 궁극적인 목적은 외교인들의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게 하는 일이다. (⋯) 이들은 우리 진료소에서 치료와 보살핌을 받게 된 것을 계기로 개종을 결심하게 되었다. (⋯) 외교인들은 가족 중 누가 병에 걸리면 여간해선 선교사를 찾지 않는다. 그러나 굿을 해도 안 되고 평범한 한국인 의사도 환자를 치료하지 못할 경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선교사를 찾아온다. 이때 선교사는 의사이자 선교사라는 두 가지 임무를 완수해야 한다. 요셉 수사는 건강을 되찾을 가망이 전혀 없는 환자를 완쾌시켰다. 그의 기도와 그가 지닌 하느님에 대한 큰 신뢰도 치료에 도움이 되었을 것이다. 그의 진료소에는 가난한 사람들만 오는 것이 아니라 고위 관리도 찾아온다.”(「분도통사」 535~536쪽)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수녀들은 1925년 원산에 진출하자마자 시약소를 열었다. <사진 3> 간호사 출신인 프룩투오사 게르스트마이어 수녀는 1949년 북한 공산당에 의해 시약소가 국유화될 때까지 25년간 가난한 병자들을 돌보며 2000명이 넘는 어린이에게 대세를 주었다. 시약소는 주일과 축일을 제외하고 매일 문을 열었고, 하루 평균 50여 명의 극빈자를 치료했다. 툿찡 수녀들이 운영한 무료 시약소는 원산·신고산·회령·청진 네 군데였다. 툿찡 수녀들은 또 1941년 9월 함흥에 ‘성심 의원’을 개원해 의사 출신 디오메데스 메페르트 수녀가 진료를 맡아 운영했다. 메페르트 수녀는 매일 밤 12시까지 진료를 했고, 그가 아침 식탁에서 수저를 든 채 잠에 곯아떨어져 있는 모습은 흔한 일이었다. 성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의 한국인, 특히 가난한 이들에 대한 환대와 섬김은 늘 존경과 신뢰로 그리고 선교의 결실로 되돌아왔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전문2025.09.02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삶은 생명이요 부활[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4) 요한 복음서 요한 복음서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면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도메니코 테오토코풀로스 작 ‘요한 복음서 저자’, 유화, 1594~1604년께, 스페인 프라도 미술관. 요한 복음서의 핵심 내용은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입니다. 저자가 복음서를 쓴 목적을 그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이것들을 기록한 목적은 예수님께서 메시아이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20,31) 한마디로 요한 복음서 전체 내용은 ‘나자렛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믿고 구원받아라’라는 것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을 “사람이 되신 말씀”(λογοs-로고스, 1,14)이라고 선포합니다. 이 말씀은 하느님과 함께 계시고 하느님이십니다.(1,1) 말씀과 하느님은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입니다. 아버지는 당신이 파견한 아들 안에 현존하시며 둘은 하나이며 유일합니다. 따라서 사람이 되신 말씀인 예수 그리스도를 보는 사람은 그를 보내신 아버지 하느님을 보는 것입니다. 이를 믿는 이는 영원한 생명을 얻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자는 심판을 받습니다.(3,15-19; 4,14; 11,25-26; 12,31) 이처럼 요한 복음서는 ‘예수님은 누구이신가’에 집중한 공관 복음서와 다른 차원의 그리스도론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215년) 교부는 “공관 복음서가 사건 보도 형식을 취한 ‘육적인 복음서’라면 요한 복음서는 사건을 음미해 신학적으로 해석하는 형식을 취한 ‘영적인 복음서’”라고 평가했습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Κατα Ιωαννην Αγιον Ευαγγελιον(까타 요아넨 하기온 에우안겔리온-요한에 의한 거룩한 복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Ioanne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요한 복음서’라고 표기합니다. 요한 복음서 저자는 자신을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13,23; 19,26; 20,2; 21,7.20.24)라고 밝힙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요한 복음서 저자를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야고보 사도의 동생인 요한 사도라고 제시합니다. 그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잡이하다가 시몬과 안드레아 형제와 함께 예수님의 부름을 받고 그분의 첫 번째 제자들 가운데 한 명이 됩니다.(마르 1,16-20 참조) 그는 과격할 만큼 활동적이었습니다.(루카 9,54) 시샘(마르 9,38; 루카 9,49)도 명예욕(마르 10,35-37)도 대단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요한과 그의 형 야고보에게 ‘천둥의 아들들’(보아네르게스)이라는 별명을 지어주셨습니다.(마르 3,17) 유다 지도자들도 예수님을 선포하는 요한의 담대함에 놀라워했습니다.(사도 4,13) 이에 초대 교회는 요한을 케파(베드로)와 함께 교회의 기둥으로 인정했습니다.(갈라 2,9) 요한 복음서는 90~100년께 저술됐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여러 교부가 요한 사도는 로마 제국 트라야누스 황제(98~117년) 집권 초기까지 살았다고 증언합니다. 아울러 80년대 후반 얌니아에서 유다교 재건을 위한 바리사이들의 결정 사안, 곧 “누구든지 예수님을 메시아라고 고백하면 회당에서 내쫓기로 유다인들이 이미 합의하였기 때문이다”(9,22; 12,42; 16,2)라는 내용이 요한 복음서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뉩니다. 전반부(1─12장)는 하느님으로부터 파견된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공적 계시 활동을 보여줍니다. 후반부(13─21장)는 하느님께 돌아가는 하느님의 아들로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에 관한 내용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한처음에 말씀이 계셨다”라는 ‘로고스(말씀) 찬미가’(요한 1,1-18)로 시작합니다. 말씀으로 표현되는 그리스도는 하느님이시고, 빛이시며 그분 안에 영원한 생명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지만 사실 그분은 이 세상이 시작되기 이전부터, 곧 창조 이전부터 계셨습니다. 세상의 모든 사람이 그분을 믿는 것이 당연한 일이겠지만 일부만 받아들였고, 이제 그들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주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또 유일하게 ‘파라클레토스(παρακλητοs-보호자)’에 관해 고백합니다. 파라클레토스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아버지에게서 나오는 진리의 영” 곧 ‘성령’입니다.(15,26) 요한 복음서는 파라클레토스 성령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 믿는 이들에게 선물로 주어진다고 합니다.(7,39; 20,22) 성령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 사건과 근원적으로 결속돼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파라클레토스 성령과 함께 지상에 현존하며 아버지 하느님과 함께 계속 활동하십니다.(16,14-15; 20,22-23) 성령은 아버지 하느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처럼 한 위격으로 하느님이시고, 성부·성자·성령은 한 분이신 하느님입니다. 요한 복음서는 참된 믿음이란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에 대한 전인적인 응답이라고 강조합니다.(4,50; 14,11; 17,20) 구원에 이르는 결정적 믿음의 단계는 눈으로 보지 않고도 믿는 것입니다.(20,29) 이 믿음은 인간을 ‘영원한 생명’에로 이끕니다.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얻게 되는 은총의 선물입니다.(10,28) 이 영원한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와 친교를 이루고 그분과 일치하는 인격적인 공동체 삶(6,56; 14,20; 17,20-21)을 통해 ‘지금 여기’에서도 얻을 수 있습니다.(11,25) 아울러 지금 여기에서 누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삶은 그분을 통해 완성으로 나아가는 종말론적 삶입니다.(11,25-26; 12,25-26; 17,22-23)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이요 생명이기에(11,25) 그분을 믿고 그와 함께하는 삶 자체가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라고 요한 복음서는 고백합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5.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