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미사이야기] (28) 강론 경청은 어렵지만…](//cpbc.co.kr/CMS/newspaper/2017/12/rc/705539_1.0_titleImage_1.jpg)
[나의 미사이야기] (28) 강론 경청은 어렵지만…김종우 베드로
인천교구 답동본당 모든 신앙인과 신자들은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흠숭하고 섬겨야 하며, 이는 신자라면 꼭 지켜야 할 의무요 도리다.세월에 떠밀려 이제 70평생을 살고 있는 지금 하느님의 사랑과 보살핌이 없었다면, 이제까지 평탄한 길에서 신앙생활을 못 했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감사의 나날로 살아가고 있을 즈음, 갑작스럽게 나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와 나를 괴롭히고 신경을 많이 쓰게 했다.지난 5월 전국 111곳 성지순례를 완주하기로 계획했다. 혼자서도 순례하고 아내(마르타)와 큰딸 (클라라), 손자(미카엘)와 손녀(미카엘라)까지 함께 순례하기도 했다. 3대가 순례를 무사히 마쳤는데 111곳 중 110곳을 순례하고 성지 1곳만을 남긴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예기치 않은 불행이 내게 찾아와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했는지 모른다.두통과 어지럼증으로 종합병원에 가니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거기에 더해 청각 장애 4급이 됐다. 이 결과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승에서 모든 미사가 끝나는가 싶었다. 천만다행한 결과로 정밀 검사 후 뇌종양은 양성으로 밝혀졌고, 청각 장애도 보청기 등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차도를 보였다. 하지만 장애 판정 이후 겨우 성당 문을 밟았을 때는 기대와 달리 신경질과 한숨만 이어졌다. 한쪽 귀에서는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각종 풀벌레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 그리고 별의별 희귀한 소리가 떠나지 않고 들려왔다. 잠이 들어 꿈나라로 갈 때만이 소리가 잠시 멈추는 시간이었고, 꿈에서 깨면 항시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그러니 신부님들의 강론 말씀을 제대로나 들을 수 있겠는가. 비장애인 때에는 누구 못지않게 강론 말씀이나 독서 내용 등을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청각 장애 이후 그러한 적극적인 경청은 어렵게 됐고, 나는 좌절과 고민에 휩싸였다.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신앙의 운명일까? 아니면 주님께서 신앙생활에 크나큰 변화를 주시려고 내리시는 은총의 선물인가? 내가 신앙인으로서 정말 배워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주님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일흔이 넘은 노인이 나이 들어서 저승으로 갈 준비나 하지 무슨 허황된 생각과 꿈을 꾸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젊어서부터 이제까지 항시 배움의 길만은 포기하지 않았고 버리지 못했다. 특히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틈나는 대로 관련 서적을 읽으며, 작문하고, 성경 필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길, 편안한 길은 아니겠지만, 오늘도 묵주를 쥐고서 마음을 다져본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며,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의 뜻이 아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보살핌 안에서만 그 깊은 뜻이 이뤄진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겠다. 이승에서의 삶, 나그네 생활에서의 삶도 열심히, 성실히 하느님 뜻에 따라 후회 없는 길을 걸어야 하겠다. ※‘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평화신문2017.12.20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7·끝) 정명호(요한) 토속촌 삼계탕 창업주](//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3303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7·끝) 정명호(요한) 토속촌 삼계탕 창업주손님에게 보약 한 그릇 대접한다는 마음 삼계탕에 담아 소문이 자자(藉藉)한 서울의 맛집 가운데 한 곳을 찾았다. 맛의 비결과 성공 뒤에 숨겨진 창업주의 삶과 신앙 여정(旅程)이 궁금했다. ‘토속촌 삼계탕’의 창업주인 정명호(요한) 사장이다. 계절 음식으로 알려진 삼계탕의 전문점이 계절에 상관없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 왜 한 음식에 인생을 걸었을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겪은 좌절과 슬픔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평신도로 본당 사목회에 헌신하고 지역주민으로 세상에 복음을 외치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아도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지 않고 그냥 믿는 게 신앙이고 생활 속에서 늘 하느님을 찾아야 자신의 신앙이 흐트러지지 않고 정리된다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찾고 모시면 다 풀어 주셨다고 했다. 일과 신앙에서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그의 남은 소망은 새로운 다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지만, 더 작은 구멍이라도 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살고 싶습니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삼계탕집인데, 계절에 상관없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요즘 음식이 삼계탕뿐만이 아니고 계절을 가리지 않더라고요. 예전에는 닭에 인삼이 들어가면 값이 비싸고 모처럼 먹는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경제사정이 많이 나아져 언제든지 찾고 있습니다. 모든 음식은 재료가 독특하고 신선해야 맛이 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는 닭의 종류가 80여 가지인데 그중에서 음식용으로 많이 쓰이는 닭은 6~7종류입니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닭은 ‘와룡’이라는 품종인데, 천천히 크는 닭입니다. 삼계탕용으로 보통 20일에서 30일 키우면 되는데 우리가 쓰는 닭은 50일은 키워야 합니다. 새벽 2시면 양계장에서 당일 사용할 닭을 고르고 우리 집에 6시에 도착합니다. 그날 잡은 닭은 그날 소비합니다.▶조류 인플루엔자(AI)라도 발생하면 영업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으시죠.몇 군데에 농장을 두고 있습니다. 한 군데가 잘못되면 다른 곳에서 닭을 공급받습니다. 직영하는 농장도 있고 도급도 주는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닭 종자를 분양하고 우리에게 납품하는 방식입니다. 총 다섯 군데 농장에서 키우기 때문에 AI가 오더라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데, 대신 닭이 조금 작아질 수는 있습니다. ▶삼계탕에 인생을 걸어 보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셨나요. 옛날에는 종로나 을지로에 가면 한의원들이 많았어요. 한의사가 있고, 운영자가 따로 있었는데, 저는 운영을 했습니다. 사향이나 녹용은 값이 비싸서 일반 서민들의 경우 약으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의 건강에 좋은 약을 한번 찾아보자’고 해서 찾은 게 바로 삼계탕입니다. 인삼과 황기가 들어가고 들깨, 율무, 호박씨, 은행, 밤, 마늘은 물론이고 대추 등 여러 가지가 들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가격이 맞아야 하고, 맛도 있어야 하지만 소화가 잘 돼야 합니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 홀로 서울에 오셨죠.월남전에 참전하고 1971년에 귀국한 뒤 먹고 살기 위해 대구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와서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페인트칠하는 일용직을 시작으로 손수레에서 앨범 파는 노점 행상도 했고요. 이후 한의원을 시작했는데, 약재값이 비싸져서 한약재 수입업도 했습니다. 당시 녹용 수입이 할당제여서 수출 실적이 있는 사람에게만 녹용 수입을 할 수 있도록 제한을 했어요. 참 어려웠죠.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게 저의 작은 꿈이었는데, 스물일곱 살에 결혼해서 1년 만에 집을 샀습니다. 꿈을 일찍 이룬 셈이죠.▶지금의 ‘맛’을 내기까지 과정은 어떠셨나요?닭을 200마리 이상 실험용으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음식은 궁합이라고 하잖아요. 이것저것 다 넣어봤죠. 한의원 운영 경험을 살려서 황기와 당기 그리고 각종 견과류를 넣으니까 제맛이 나더라고요. 요즘도 한약재를 구매하러 경동시장에 가는데 음식 궁합을 보고 값도 따져봅니다. 음식 맛은 완성이 없습니다. 늘 진행형이죠.▶1시간 이상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삼계탕집으로 유명한데, 왜 프랜차이즈를 안 하십니까. 프랜차이즈를 하면 정해진 규격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해진 규격이 어디 있습니까? 만들 때마다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재료가 하나라도 빠지면 제맛이 안 나잖아요. 관리가 안 됩니다. 제가 돈을 벌려고 “가맹점 구합니다” 라고 하면 전국과 해외에서 100군데 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해야지, 제맛이 나고 실수를 안 합니다. ▶실질적인 운영은 아드님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당부를 하시나요.변함이 없어야 하고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직원들에게 겉으로만 입에 발린 칭찬을 할 게 아니라 가족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아버지 때부터 거래해 왔던 단골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유지하라고 합니다. 바뀌고 변하면 안 되잖아요. 30년 이상 재료를 공급하면서 바뀌지 않은 분들이거든요. 또 ‘갑질’ 하지 말고 직원들에게 겉으로 표 내지 마라.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고 가슴으로 대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요즘 TV를 보면 음식 프로그램이 아주 많습니다. 어떻게 보세요.음식점은 한 방에 ‘대박’ 나는 게 아닙니다. 먹어보고 인정하고 입으로 꾸준히 전달돼서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창업하시는 분들에겐 손님이 와야 하니까 방송이 필요하고 방송국 처지에서 보면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아야 해서 필요하긴 한데요, 업주도 방송도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도 한 번은 닭 속에 인삼이 안 들어가 손님이 항의하길래 복권에 당첨되신 거라고 말씀드리고 수삼 열 뿌리를 꿀과 함께 갖다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음식점을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데요, 고비를 지혜롭게 잘 넘겨야 합니다.▶35년 동안 삼계탕집 하시면서 힘들 때마다 어떻게 견디고 극복하셨나요.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는데, 어릴 때 아침, 저녁으로 집에서 기도하고 추운 겨울에도 20~30분씩 걸어서 대구 계산동성당에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성당 가라고 하면 ‘춥고 배고픈데 무슨 성당을 가라고 하느냐’고 반항하기도 했습니다. 그땐 신앙이 가슴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돌아가시니까 ‘성당에 가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겠구나!’ 했지요. 그런데 다급한 일이나 무서운 일이 생기면 십자성호부터 긋고 하느님을 찾게 되더라고요.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도 신부님을 찾아가서 ‘기도 좀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묵주를 주셔서 월남 전쟁터에서 22개월 내내 기도하며 생활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신앙인데, 보이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몸에 배 있더라고요. 누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자신 있게 ‘신앙’을 물려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믿는 구석이죠.▶본당 총회장도 하시고 사목회 봉사활동을 많이 하신 분으로 유명하신데요.본당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을 때 노력해서 풀고 정상화되었을 때 많은 보람을 느꼈죠. 노인분과장을 할 때 노인분들에게 기쁨을 주고 청년분과장을 했을 때는 아이들과 어울려서 함께할 때 참 좋았습니다. 청년들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거리를 주고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중심에 있는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재미있게 노는 것이죠. 저에게 신앙은 몸 일부이고 생활 일부입니다. 언젠가는 찾을 수 있고, 모실 수 있고, 급할 때 부를 수 있는 그런 분이 하느님입니다. 신앙이 진통제처럼 당장 효과는 없지만 언젠가 돌아보면 문제가 다 풀려있더라고요.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에게 한 말씀 해 주시죠.남이 잘된다고 답습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자기가 찾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절대로 쉽게 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요즘 푸드트럭이 유행하고 있는데, 쉬운 게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에게 맞는 일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끝이 보입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다 대기업에 가고 공무원을 할 수는 없잖아요. 험하고 작은 일이라고 업신여기지 말고 재미있게 최선을 다하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늘 품고 계신 성경 구절이나 좌우명이 있는지요.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고 말씀하셨잖아요. 이 성경 구절이 항상 제 몸속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믿음’인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몸이다, 하느님이 아버지이고 예수님이 아들이다’라는 말씀이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 되잖아요.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열심히 하든 안 하든 믿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은 무엇인가요.성경 구절에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기가 더 쉽다”(마태 19,24)고 했잖아요. 저 역시 바늘구멍은 못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바늘구멍보다 더 작은 구멍이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의 다짐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들어갈 수 없지만, 그 작은 구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백영민2017.11.29
[하느님과 트윗을] (34) 왜 우리는 여기 세상에 있나요사랑 나누며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행복 문 : 우리는 왜 태어났습니까.답 : 이 세상에서는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그리고 내세에서는 하느님과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심을 알아보도록 요청받습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십니다.(요한 3,16 참조) 우리는 마땅히 그분께 사랑과 존경을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데 우리는 종처럼 하느님께 굴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주님이요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순명할 것을 사랑으로 선택하지요. 그렇게 하려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청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문 : 우리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요.답 : 천국에서 영원히 하느님과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를 믿기 힘들지만 우리는 여기 이 세상에서 이미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하느님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돌보고, 함께 기도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계십니다. 죄 그리고 죄의 결과인 고통과 죽음으로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은 완전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하느님과 함께 살고 또 다른 이들을 돌본다면 이 세상에서도 여전히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감으로써 우리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고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문 :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 : 행복해지려면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의탁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완전히 행복하게 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 건강, 성공, 안락함 등을 바랍니다. 이러한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갈망이 너무 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하느님의 계명을 위반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이러한 것을 우상으로 만들어 하느님 대신 섬기고 숭배합니다. 문 :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살 수 있나요.답 : 성경은 우리 마음에 쓰여 있는 몇 가지 기본 규칙에 관해 말해 줍니다.(로마 2,15 참조) 이러한 규칙들은 자연법을 이루지요. 자연법은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에서 산 사람들이 모두 보기에 인간 본성에 맞으며 우리가 올바르게 살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양심은 어떤 행동이 자연법에 부합하고 어떤 행동이 부합하지 않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는 내면의 소리입니다.(로마 9,1 참조) 우리는 어떤 행동이 아주 강하게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동이 선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자신을 속이지 않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또한 우리가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시고 교회를 주셨습니다. 문 :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나요. 답 : 자기 양심에 귀를 기울여 바르게 산다고 해서 그들 자신이 옳고 그름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옳다거나 그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 판단할 수도 있죠! 바오로 사도는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아신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1코린 4,4) 옳고 그름의 판단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방식에 따른 것입니다.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cpbc2018.01.02
뜨거운 신앙으로 주님 체험하고 사랑 실천하는 2018년 전국 교구장 사목교서 발표, 공동체성 회복과 삶으로 복음 전파 강조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전국 교구장들은 3일 대림 제1주일을 맞아 발표한 2018년 사목교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데 더욱 힘써달라고 호소했다.염수정 추기경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사랑은 새로운 복음화의 열매’라는 제목의 사목교서에서 “성경 말씀과 기도,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는 사람은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변화돼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며 “하나의 계명을 이루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의 성숙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우리가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완성”이라면서 각 본당과 기관에 하느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숙고하고 실천하기를 요청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맞아 교구 초창기의 순수함과 절실함으로 돌아가 개인과 가정, 본당과 기관을 포함한 교구 전체의 쇄신과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고 교회의 사명인 복음화에 온 힘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공동체성 강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 이루기 △사제단 사목 교류 강화 및 지구사목 활성화에 역량을 쏟고, 복음 묵상과 실천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는 신(信)·망(望)·애(愛)의 삶으로 복음을 전할 것을 권고했고,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교구 쇄신의 희망인 시노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신앙의 기초를 다지기를,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는 하느님에 대한 희망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일하기를 당부했다.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모든 세대와 계층을 유기적 관계망 안에 놓고 접근하는 통합사목을,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가정을 중심으로 사목 전반을 연계하는 통합사목과 통합사목센터 설립을 제시했다. 2018년을 ‘믿음의 해’로 정한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는 교구민들이 교구 초창기의 신심과 열정을 되살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기를 희망했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나아갈 것을 천명했다.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사제와 신자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알아듣도록 ‘마음의 귀’를 열 것을,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본당의 쇄신을 위해 마음과 힘을 모을 것을 주문했다.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내적 쇄신을 강조했으며,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는 변함없는 열정으로 군 복음화에 매진할 것을 요청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평화신문2017.11.28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5)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의 변화 ?르네상스·바로크](//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6257_1.2_titleImage_1.jpg)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5)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의 변화 ?르네상스·바로크하느님 중심 권위보다 인간 중심 자비 강조극사실 기법으로 하느님 모습 묘사 헤라르트 다비드, ‘축복하는 하느님 아버지’, 15세기쯤, 유화,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파리15세기 교황의 수위권과 공의회 우위설이 한창 대립할 때 교황을 지지하는 교회에서 교황관을 쓴 ‘판토크라토르(전능하신) 그리스도’를 그렸다고 했습니다. 플랑드르(현 네덜란드) 화파로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의 영향을 받은 헤라르트 다비드(Gerard David, 1460?~1523)의 ‘축복하는 하느님 아버지’도 그 대표적 작품입니다. 15세기 말쯤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플랑드르 화풍의 특징인 극사실 기법으로 마치 하느님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머리카락과 수염 한 올 한 올, 카파(전례복)의 자수와 보석들의 섬세함은 돋보기로 보는 듯합니다. 작품에서 그리스도는 교황의 삼중관을 쓰고 카파를 입고 있지만, 전통적인 판토크라토르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작품 제목처럼 성자를 통한 성부의 형상을 시각화한 것은 비잔틴 양식의 성미술 전통을 계승한 요소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하는 풍성한 머리카락과 수염, 왼손으로 쥐고 있는 왕홀은 이 작품이 판토크라토르임을 보여 줍니다. 아울러 오른쪽 손가락으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 또한 전통적인 이미지입니다. 사랑 넘치는 자애 표현 16세기 독일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환상적이고 묵시적인 세계를 그린 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공부해 유럽 전체의 화풍을 섭렵했습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같은 선대 르네상스 화가들이 심취했던 인체의 균형과 조화에 평생 몰두했습니다. 그는 인체를 일부러 왜곡되게 길고 넓게 그려 시각적으로 균형감을 주는 독창적인 화법을 개발했습니다. 1504년에 뒤러는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아담과 이브’, ‘예수 탄생’ 등의 동판화를 선보입니다. 그는 같은 해에 유화로 ‘구세주’를 그립니다. 당시 유럽은 격변기였습니다. 중세가 끝나고 근세로 접어들던 시기였습니다. 1492년 스페인이 통일하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인문주의가 성행해 문학 예술 과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르네상스가 열렸습니다. 교회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요한 묵시록에 기초한 종말론이 유행했고, 교회가 쇄신돼야 한다는 요구가 전 유럽으로 퍼졌습니다. 이러한 때 뒤러는 교회의 전통 틀에서 살짝 벗어난 판토크라토르를 그립니다. 그의 ‘구세주’ 작품에는 제도 교회의 흔적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화려한 교황 제의 대신 보라색과 붉은색 옷감으로 마지막 날 그리스도 왕으로 오시는 주님의 권위를 드러냅니다. 또 정통적인 근엄한 눈은 온유한 눈으로 바뀌어 오시는 구세주께서 정의의 심판자가 아닌 사랑 넘치는 자애로우신 분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오른손은 상징적 복음의 언어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달린 원형 모형은 지구를 연상케 하는데 8세기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2세 황제 때부터 사용한 판토크라토르의 표현 기법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원형처럼 그리스도의 평화가 영원히 지속할 것이라는 믿음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교회 분열 격랑의 시기에 그려진 성미술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과 거의 비슷한 이미지를 스페인 바로코 미술의 대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목도 ‘구세주 그리스도’입니다. 엘 그레코의 말기 작품입니다. 엘 그레코가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유럽은 ‘교회 분열’이라는 큰 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프로테스탄트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 조직이 참된 교회가 아니며 오직 ‘성경’ ‘은총’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성미술을 우상숭배로 여기고 파괴했습니다. 또 이들은 제도 교회를 부정하는 극단적 표현으로 성사, 특히 ‘성체성사’를 부인하고 단지 상징적 의미로만 해석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프로테스탄트의 거센 불길에 맞서 쇄신을 단행하기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1545년 12월 13일부터 1563년 12월 4일까지 18년에 걸쳐 진행된 공의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견줄 만큼 혁신적으로 교회 쇄신을 단행했습니다. 공의회는 로마 표준 라틴어 성경과 미사 경본, 시간 전례서, 교리서 등을 마련했고, 신학교와 수도원 정비, 가난한 이웃에 대한 선행 실천을 권고했습니다. 아울러 일곱 성사가 교회의 참된 성사임을 확인하면서 무엇보다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실재한다고 재확인했습니다. 엘 그레코는 격랑의 시기에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이며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는 교두보이자 중심지인 톨레도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스페인 펠리페 2세(1527~1598) 국왕은 프로테스탄트에 맞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는 데 앞장섰고, 트리엔트 공의회 결의안을 적극적으로 실천했습니다. 엘 그레코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신비감 넘치는 성미술을 그렸습니다. 그는 구도와 조화를 강조하는 정형화된 방식에서 벗어나 빛과 색의 대비로 극적인 단순미를 드러내는 작품을 구현했습니다. 그의 작품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콘의 판토크라토르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뒤러처럼 자비로우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맑고 깊은 구세주의 눈망울은 모두를 회심으로 이끕니다. 그는 뒤러와 같이 보라색과 붉은색 옷감으로 구세주의 왕권을 드러냈습니다. 원형 모형 위에 올려진 왼손을 통해 구세주께서 영원한 평화를 안겨 주시는 분임으로 고백합니다. 따뜻한 빛으로 예수님의 자비로움 나타내 바로크풍의 사실주의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가 그린 ‘축복하는 예수 그리스도’ 역시 앞의 두 작품과 비슷한 이미지입니다. ‘빛의 화가’인 조르주는 한 개의 촛불이나 한 줄기 빛으로 그림의 입체감과 공간감을 표현하는 천재적 작가였습니다. ‘축복하는 예수 그리스도’도 왼쪽 측면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으로 구세주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시선이 마치 하느님 나라에서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는 듯 아래로 향해 있지만, 화폭 전체를 감싸는 따뜻한 빛으로 이 분이 엄혹한 심판자가 아니라 자비로우신 구세주이심을 보여 줍니다. 또 투명한 구체에 비친 하나의 창틀은 오로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렇듯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판토크라토르는 초기 그리스도교 성미술의 양식을 일부분 계승하지만, 제도 교회가 표방하던 하느님 중심의 신적 권위보다 인간 중심의 자비로움을 강조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심판자 그리스도의 근엄한 모습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은 눈빛을 지닌 자비로우신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화려하고 위압적인 왕관과 옷은 사라지고 옷감의 색으로 주님의 권능과 권위를 표현했습니다. 또 왼손에 든 복음서(또는 생명의 책)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평화를 상징하는 구체(원형)로 바뀌어 성경이 가르치는 본연의 그리스도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15~17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성미술에도 인문주의의 정신이 깊이 배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문채현2017.09.20
남미처럼 정의·평화의 초석 놓는 데 교회가 나서야서울대교구 민화위 주최 ‘정의와 평화, 한반도의 길’ 한반도평화나눔포럼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천주교회 5개국 주교들과 학자들이 진리와 사랑, 정의와 평화, 화해 증진을 위해 서로 경험을 나누고 평화 문화 건설에 나섰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는 3∼4일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정의와 평화, 한반도의 길’을 주제로 2017 한 반도평화나눔포럼을 개최했다. 남미 천주교회의 사목 경험을 토대로 한반도에서 평화와 화해를 건설하는 교회의 사명을 돌아봤다.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추기경과 브라질 상파울루대교구장 오질루 페드루 쉐레 추기경,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 멕시코 모렐리아대교구 카를로스 가르피아스 메를로스 대주교, 벨기에 겐트교구장 루카스 반 루이 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과 전 교황청주재 아르헨티나 대사를 역임한 베센테 에스페체 힐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과 강원택 서울대 교수, 홍용표 한양대 교수 등 국내외 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화해와 치유를 위한 삶의 길’이 남미 교회의 고위성직자들을 통해 공유됐고, ‘평화 실천을 위한 나눔의 길’이 남미 평신도 지도자와 국내 학자들에 의해 제시됐으며 ‘한반도의 미래를 내다보는 하나됨의 길’이 국내에서 선교했던 유럽의 고위 성직자와 정치학자, 이주사목 담당 성공회 사제의 눈길을 통해 논의됐다. 염수정 추기경은 기조강연을 통해 “분단 70년이 넘도록 군사적 대치와 반목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반도 상황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면서 “화해와 용서를 통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지구 반대편 라틴아메리카 천주교회와 한국 천주교회가 공유하고 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신앙적 가치는 바로 정의와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며, 주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바치는 평화를 위한 기도, 정의를 위한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의 협력자였던 엘살바도르 차베스 추기경은 “평화의 도정에 참여하는 교회의 역할은 모든 종류의 인도주의적 활동과 함께 분쟁의 당사자들이 대화의 테이블에 앉도록 초대하고 다시는 무력의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 원인을 철저히 제거하기 위해 강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라틴아메리카 주교단은 포럼에 참석한 뒤 5일 가톨릭 청년들과의 대담, 6일 ‘함께 평화를 꿈꾸다’를 주제로 한 특별대담을 통해 평화의 저변을 넓히는 노력을 이어갔다. 3일 판문점, 7일 요셉의원, 1·8일에는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를 각각 방문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17.11.07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61) 444.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8982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61) 444.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성인과 같은 삶 살아온 영국 문학가 하버걸 작사가톨릭성가 444번 '나는 주를 의지하리라'의 작사가인 영국의 문학가 하버걸.신앙인들에게 있어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은 바로 주님이심을 일깨워주는 성가는 444번 성가 ‘나는 주를 의지하리’이다. 원제목은 ‘주 예수님 당신을 신뢰합니다(I am trusting Thee, Lord Jesus)’이다. 이 성가는 마치 어린아이가 부모님의 품 안에 안겨있는 것처럼 주님께 의지하고 의탁한다는 내용을 아주 잘 표현하고 있다. 실제로 성가 작사가는 바로 그런 삶을 살았다. 영국의 여성 문학가 하버걸(F. R. Havergal, 1836~1879)이다. ‘거룩한 시인’, ‘성가계의 가장 달콤한 목소리’로 불린 그는 평생에 걸쳐 어린아이와 같은 신앙과 주님께 대한 신뢰의 삶을 보여줬다. 이미 3살 때 글을 읽을 줄 알았고, 7살 때에는 시를 쓸 줄 알았으며, 영어뿐만 아니라 프랑스어, 독일어, 이탈리아어, 라틴어,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도 할 줄 알았던 대단히 지적인 여성이었다. 성경에도 해박한 지식을 갖고 있었으며, 구약 일부분과 신약성경을 외울 정도였다. 또한 뛰어난 피아니스트였고, 음악에도 해박한 지식을 가지고 있었다. 노래까지 잘했다고 한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나의 주님께서 음악적 선율이나 아이디어를 주신다고 믿어 왔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분을 쳐다보고 기쁜 마음으로 감사드리며 작업을 계속 하지요. 이것이 내가 성가를 쓰는 방식입니다.” 임종을 앞에 두고는 “천국의 문에 가까이 있다는 것이 얼마나 눈부신 일인지요”라고 했으며, 43세의 나이로 숨을 거둘 때는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 제 영혼을 당신께 맡깁니다”라는 마지막 말을 남겼다.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그의 삶은 마치 성인과도 같은 삶이었다고 전해지는데, 444번 성가의 가사는 1874년 스위스에서 썼다. 작곡자는 영국 성공회 사제였던 불링거(E. W. Bullinger, 1837~1913)다. 그는 그리스어와 히브리어에 능통했다. 문자적 성경 해석을 바탕으로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대하시는 것이 일정한 기간들로 나뉜다고 보는 신학 사상(세대주의)을 신봉했던 ‘극단적 세대주의자’였다. 그는 여러 권의 저서와 몇 곡의 성가 작품을 남겼는데, 오늘날까지 전해지는 유일한 성가가 바로 444번 성가이다. 이 성가 선율은 그의 이름을 따서 ‘불링거’라 불리며, 1874년에 작곡돼 1878년에 처음 출판됐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김지항2017.04.19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68) 예루살렘 입성(루카 19,28-40)](//cpbc.co.kr/CMS/newspaper/2018/06/rc/723761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68) 예루살렘 입성(루카 19,28-40)수난과 죽음 향해 걸어가신 평화의 임금 예수님께서는 벳파게에서부터 나귀를 타고 올리브 산을 내려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사진은 해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열리는 예루살렘 올리브 산의 성지 주일 행렬. 【CNS 자료사진】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의 활동 기록은 크게 셋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 활동기(4,14─9,50), 예루살렘 상경기(9,51─19,28), 예루살렘 활동기(19,29─24,53)입니다. 예루살렘 활동기의 첫 장면이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예리코에서 사람들에게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입니다. 두 도시의 해발 고도 차는 거의 1000m나 됩니다. 그러니 “오르는 길”입니다.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19,28)는 표현에는 결연함 혹은 비장함이 묻어납니다. 예수님 일행은 드디어 올리브산 근처 벳파게와 베타니아 가까이에 이르렀습니다. 베타니아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곳으로 추정되는 요르단 강 동쪽 베타니아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쯤 떨어진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맞은 편 동네”에 가서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를” 풀어 끌고 오라고 분부하십니다. 누가 왜 나귀를 푸느냐고 묻거든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 하고 대답하라고 챙겨주십니다. 제자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고, 또 예수님께서 대답하라는 대로 대답하고 나귀를 끌고 옵니다. 제자들은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들의 웃옷을 걸치고 예수님을 거기에 올라타시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올리브산을 내려오시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 앞에 자기들의 겉옷을 깔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는 것은 구약의 다윗 왕이 아들 솔로몬을 노새에 태워 데려와 임금으로 삼도록 한 것을 연상시킵니다.(1열왕 1,33-39) 또 길 위에 겉옷을 깔아 놓는 것은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예후가 임금이 되자 신하들은 겉옷을 벗어 예후의 발밑 층계에 깔고 “예후께서 임금이 되셨다!” 하고 외친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2열왕 9,13) 한마디로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바로 임금으로서 당신의 거룩한 도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올리브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이르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환호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무리가 다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19,37-38)이 대목에서 특별히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며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환호하는 이유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제자들이 본 모든 기적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 곧 병자를 고쳐주고, 눈먼 이를 보게 하고, 악령 들린 이를 풀어주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포용하며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모든 것이 바로 제자들이 본 기적이었습니다. 루카 복음서에는 이를 요약해서 전하는 대목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인용하신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4,18-19)제자들은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환호하면서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이라고 노래하는데, 이는 예수님의 탄생 때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2,14) 하고 하늘의 군대가 찬미하는 노래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오셨음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하고 부르면서 제자들을 꾸짖어달라고 청합니다. 너무 소란스러워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임금님이라고 부르면서 환호하는 것이 못마땅해서일까요? 후자일 가능성이 더욱 클 것입니다. 그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스승”으로서는 인정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임금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임금이심을 부인하고 거부하여 예수님을 배척한다면 그때에는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돌들이 소리를 지른다는 말은 “벽에서 돌이 울부짖으면 골조에서 들보가 대답하리라”는 구약성경 하바쿡서 2장 11절의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임금으로 입성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의 임금처럼 권세를 휘두르는 권력자 임금이 아니라 평화의 임금님으로 제자들의 환호 속에 소박하게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 갈릴래아를 떠난 예루살렘 상경기가 예루살렘 입성으로 일단락됩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단순히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이 아니라 갈릴래아에서 시작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여정이었습니다. 그 여정이 예루살렘 입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부터 살펴볼 것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가시는 목적지 예루살렘은 또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갈릴래아에서 두 차례, 그리고 갈릴래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도중에 한 차례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물론 당신의 부활까지도….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환호합니다. 분명한 것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평화의 임금으로 환호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임금으로 환호하며 따르는지요? 미사 때마다 성체를 모시면서 어떤 임금으로 고백하며 맞아들이는지요?[알아보기]벳파게와 베타니아 : 베타니아는 올리브산 동쪽 산비탈에 비탈에 있습니다. ‘가난한 이의 집’이라는 베타니아는 예수님께서 친구처럼 대하시며 가깝게 지내신 라자로와 그의 두 여동생 마르타와 마리아가 사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날 라자로의 무덤을 비롯해 가톨릭과 정교회의 기념 성당이 있지만 아랍인 마을이고 이스라엘이 친 분리 장벽으로 일반 순례객들이 순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벳파게는 ‘익지 않은 무화과나무의 집’이라는 뜻으로, 베타니아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마을이지만 정확한 위치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도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900m)에 있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벳파게로 추정되는 곳에는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관리하는 성당이 있습니다. 해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면 이곳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 행렬을 시작해 올리브 산을 내려오지요. 백영민2018.06.12

성인이 된 요한 바오로 2세를 추억하다지인들이 전하는 교황의 일과, 직무 스타일 등 일상 속 교황 모습 볼 수 있어 나의 삶을 바꾼 사람, 요한 바오로 2세 브워지미에시 레지오흐 엮음 / 고준석 신부 옮김 / 가톨릭출판사 / 1만 6000원누군가의 영향으로 나의 삶이 바뀌는 일은 흔치 않다. 그러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가까이 지냈던 이들은 하나같이 말한다. “거룩한 아버지인 나의 교황님과 만나 나의 삶이 영적으로 더욱 충만하고 성숙해질 수 있었다”고.저자는 30년 넘게 교황청 기관지 ‘로세로바토레 로마노’ 기자이자 교회 서적 작가로 활동한 인물. 교회 인사들과 두루 친분이 있는 저자는 ‘성인 교황’과 가까웠던 22인을 인터뷰했고, 그들의 기억 속 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이야기를 한데 엮었다. 책은 ‘성인 교황 증언록’이나 마찬가지다.우리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위대함을 잘 안다. 27년간 베드로 사도좌 직무를 수행하는 동안 교황은 세계 129개국을 방문했고, 이탈리아 국내 사목방문도 146회에 이른다. 또 200차례가 넘는 시복ㆍ시성식을 거행해 하느님의 종 1338위를 복자로 선포했고, 복자 482위를 시성하는 등 그야말로 쉴 틈 없이 성무를 수행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1999년 이탈리아 북부 발레 다오스타에서 산책하고 있다. 【CNS】 여기까지는 우리가 잘 아는 교황의 업적. 책 속의 지인들은 교황의 하루 일과, 직무 스타일, 인간적 성향 등 ‘일상 속 교황’을 말하며 눈길을 끈다.“교황님은 기도하기 위해 일찍 일어나셨습니다. 아침 7시에 그분의 개인 경당에서 거룩한 미사를 거행하셨죠. 우리는 그곳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시는 그분을 자주 볼 수 있었습니다. 교황님은 저녁 시간까지 일하셨습니다.”(에메리 카봉고 대주교, 교황 제2비서)“교황님의 침실 한구석, 창문 두 개 사이에 자그마한 책상이 있었습니다. 그분은 그 책상에서 일하는 것을 좋아하셨지요.”(미에치스와프 목지츠키 대주교, 교황 제2비서)교황은 바쁜 사도좌 방문 일정 중에도 편히 쉬지 않고 기도와 시간 전례를 꼭 지켰다. 그런 교황에게 주변 사람들은 “좀 쉬셔야 합니다”했지만 교황의 답은 분명했다. “저는 하늘에서 쉴 수 있습니다.”교황의 신학교 친구였던 안제이 마리아 데스쿠르 추기경은 신학생 시절 누군가 카롤 보이티와 신학생 방문 앞에 ‘카롤 보이티와 : 미래의 성인’이라고 쓴 일화를 전한다. 교황은 늘 동료들의 사랑을 한몸에 받았다.교황의 모든 공식 문헌을 작성하며 ‘교황의 손’ 역할을 했던 파베우 프타시니크 몬시뇰은 “교황님은 성경 구절과 교부들의 말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을 외워서 그것을 인용하셨다”며 교황의 기억력과 총명함을 예찬한다.베네딕토 16세 교황이 추기경 시절, 신학 서적 집필에 대한 고민으로 신앙교리성 장관을 맡아 달라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요청에 망설이자 교황이 형제애와 넓은 마음으로 두 가지 직무를 잘 수행해 주기를 요청한 일화도 나온다.영적으로 끈끈한 우정을 맺었던 평신도 친구부터 교황의 경호원, 교황 옆에서 일거수일투족을 함께했던 사진사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이들의 증언이 이어진다. 교황이 취미였던 스키를 타던 중에도 삼종기도를 바친 이야기, 병환 중 병실에서도 가까운 이들과 매일 미사를 함께 드린 일 등 교황의 인간적이면서도 깊은 신앙적 면모가 끝없이 빛을 발한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12.26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52) 12세기 ⑥ - 생 빅토르회의 신비신학](//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3334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52) 12세기 ⑥ - 생 빅토르회의 신비신학‘생 빅토르회(Chanoines de Saint-Victor)’는 의전 수도회(Canons Regular)임에도 불구하고, 학교를 세워 신학도를 양성하고 신학 연구의 중심 역할을 하면서 스콜라신학 발전에 큰 기여를 했습니다. 생 빅토르의 후고(Hugo de Sancto Victore, 1096~1141)와 생 빅토르의 리카르두스(Ricardus de Sancto Victore, 1110~1173)는 생 빅토르회 신학자이자 신비체험가로서 신비신학을 체계화한 작품을 남기면서 유명해졌습니다.도덕적 의미를 살피는 후고의 ‘트로폴로지아’ 방법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21~1274)는 짧은 저서 「모든 학문의 신학으로의 환원(De reductione artium ad theologiam)」에서 생 빅토르의 후고를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와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Gregorius PP. I, 540경~604) 및 위-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 ?~500경)와 관련시켜 평가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가 신학을 체계화하면서 형이상학을 가르쳤다면 후고도 신학의 체계화를 통해 지성 활동에 도움을 주었으며, 교황 그레고리우스 1세가 형이상학을 도덕적인 관점으로 전환시켜 덕행 실천과 신비체험을 설교했다면 후고도 도덕적인 가르침을 바탕으로 지성 활동을 수덕 생활 실천으로 관심을 돌렸고, 위-디오니시우스가 하느님과 일치하는 관상 생활의 단계를 제시했다면 후고도 도덕적인 수덕 생활을 바탕으로 신비신학을 전개했다는 것입니다. 후고는 저서 「교육 지식서(Eruditionis Didascalicae Libri Septem)」에서 성경의 의미를 파악할 때에 역사적 사건의 진실을 통해 역사적인 의미를 살피는 ‘히스토리아(historia)’와 역사 해석 이면에 있는 우의적인 의미를 살피는 ‘알레고리아(allegoria)’ 및 하느님께서 만드신 세상을 통해 사건의 의미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깨닫는 도덕적인 의미를 살피는 ‘트로폴로지아(tropologia)’라는 방법을 사용하라고 언급했습니다. 또한 후고는 「교육 지식서」에서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 렉시오 디비나)를 통해 알아야 할 것과 모범으로 삼아 행동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배워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후고는 지성적인 학습보다 도덕적인 행동이 우위에 있다고 강조하면서 ‘학습-묵상-기도-실행’의 단계로 발전하는 거룩한 독서를 제시했습니다. 그리고 이 모든 단계가 완성되었을 때에 결과적으로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를 관상에로 이끄신다는 것이었습니다. 도덕적인 수덕 생활에 바탕을 둔 후고의 신비신학 후고는 저서 「도덕적 노아의 방주(De Arca Noe Morali)」에서 트로폴로지아 방법론을 적용해 신비신학을 전개했습니다. 먼저 우리는 믿음과 사랑으로 하느님의 거처에 영적인 거처를 마련하고 머물러야 합니다. 그러면 하느님께서 지식과 사랑으로 우리 안에 머무르시게 됩니다. 이후 우리는 ‘사랍들(Seraphim)’의 세 쌍의 날개와 같이 히스토리아, 알레고리아, 트로폴로지아의 방법으로 상승해 도덕적인 의미에 도달해야 합니다.(이사 6,1~2 참조) 후고는 도덕적인 의미가 인간 영혼이 능동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가장 높은 곳이라고 여겼습니다. 다음으로 인간은 구원을 위하여 도덕적이고 내적인 방주인 지혜의 방주와 모성적 은총의 방주에 들어가야 합니다. 특히 세 개의 층으로 된 방주의 위쪽이 좁아지는 것은 완덕에 도달하기 어렵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방주의 가장 높은 곳의 작은 공간에 그리스도께서 머무르시고 계십니다.(창세 6,14~16 참조) 따라서 후고는 도덕적인 행동을 실천하더라도 적당히 할 것이 아니라 덕행을 완성해 완덕에 다다를 정도로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마지막으로 사방에서 민족들이 모여드는 모습을 의미하는 방주의 네 귀퉁이에서 인간은 영성적인 열정, 육체적인 탐욕, 교만, 무지라는 악습이 무분별하게 행해지고 있는 것을 깨닫고, 이 악습들을 극복하면서 질서를 회복해야 합니다.(미카 4,1~2 참조) 후고는 순명으로 교만을 극복하고, 욕망과 악습을 짓밟아서 극복하며, 성경 독서와 묵상으로 무지를 극복하고, 영성적인 열정을 더 높은 선을 추구하는 데 활용해 완덕에 다다르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후고는 스콜라신학의 영향으로 지나치게 지성적인 탐구를 통해 신비체험을 설명하려는 시도에 경종을 울리기 위해 도덕적인 덕행 실천이 동반된 수덕 생활로써 신비체험을 설명하려고 했습니다. 초월적인 지성 활동을 통한 관상 생활에 바탕을 둔 리카르두스의 신비신학 스코틀랜드 출신 생 빅토르의 리카르두스는 중세에 영향력 있는 신학자였으며 신비신학에 정통했습니다. 리카르두스는 생 빅토르 수도회 초대 원장 질뒨(Gilduin de Saint-Victor, 재임 1113~1155) 시절에 수도원에 입회했으나, 후고가 사망하기 전이었는지 후였는지 확실하지 않았습니다. 리카르두스는 1150년대에 생 빅토르 수도원에서 후고의 신학을 이어받아 교사로서 활동했습니다. 1162년에 교황 알렉산더 3세(Alexander PP. III, 재임 1159~1181)의 추천으로 리카르두스는 원장으로 선출되어 죽을 때까지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리카르두스는 저서 「작은 벤야민(Benjamin Minor)」이라고도 하는 「관상을 위한 영혼의 준비(De Praeparatione Animi ad Contemlationem)」에서 야곱과 열두 명의 아들들에 대한 비유를 통해 관상의 단계를 제시했습니다.(창세 29-35장 참조) 리카르두스는 야곱을 이성적인 영혼으로, 그리고 네 명의 아내들인 언니 레아를 의지로, 그녀의 몸종 질파를 감각으로, 동생 라헬을 이성으로, 그녀의 몸종 빌하를 상상력으로 비유했습니다. 또한 리카르두스는 12명의 아들들이 태어난 순서대로 관상의 발전 단계를 비유했습니다. 즉, 묵상자는 감각적으로 느끼는 단계인 르우벤에서 시작해 무아경의 단계인 벤야민에 도달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한편 리카르두스는 저서 「큰 벤야민(Benjamin Major)」이라고도 하는 「관상의 은총(De Gratia Contemplationis)」에서 계약 궤와 두 ‘커룹들(Cherubim)’에 대한 비유를 통해 관상의 단계를 완성했습니다.(탈출 37,1~9 참조) 리카르두스는 먼저 관상의 첫 번째 두 단계가 감각 세계의 경험을 통한 상상력에서 출발하고, 다음으로 관상의 두 번째 두 단계가 이성을 통해 얻은 지식을 통해 발전하며, 마지막으로 세 번째 두 단계가 이성을 초월하는 지적인 능력을 통해 완성된다고 언급했습니다. 특히 리카르두스는 다섯 번째와 여섯 번째 관상의 단계는 하느님 은총의 결과로 도달하는 신적인 영역이므로 모든 영혼이 도달할 수 있는 단계가 아니라고 강조했습니다. 생 빅토르회 신학자들은 실천적이면서 사변적인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 노선을 따르면서 신비신학을 발전시켰습니다. 특히 후고는 수덕적인 관상을 강조했고, 리카르두스는 신적인 세상을 바라볼 수 있는 지적 능력에 바탕을 둔 관상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그들은 위-디오니시우스의 신비신학 노선을 따르면서 상징적인 의미를 헤아리는 관상을 통해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 나아갈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결국 생 빅토르회 신학자들의 신비신학은 이후 신비신학 발전에 크게 기여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7.1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