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04) 21세기 ② - 영성생활에 대한 교황님들의 가르침](//cpbc.co.kr/CMS/newspaper/2018/12/rc/741176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04) 21세기 ② - 영성생활에 대한 교황님들의 가르침세 교황, 21세기 영적 여정의 안내자 프란치스코(Franciscus PP., 재임 2013~현재) 교황은 2014년 8월 16일 광화문 앞 광장에서 한국 순교자 124위를 복자 반열에 올리는 시복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마침 프란치스코 교황은 한국 방문 얼마 전인 4월 27일에는 바티칸 베드로 광장에서 요한 바오로 2세(Ioannes Paulus PP. II, 재임 1978~2005) 교황을 성인 반열에 올리는 시성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그런데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1984년 5월 6일 여의도 광장에서 한국 순교 복자 103위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는 시성 미사를 봉헌한 바 있었습니다. 이런 이유에서 한국 가톨릭교회는 교황님들의 가르침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됩니다.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던 요한 바오로 2세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재임 기간이 길었던 만큼 재임 동안 많은 문헌을 발표했습니다. 문헌 내용도 신학적이거나 윤리적인 주제뿐만 아니라 그때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중요한 사회적 주제까지 다양했습니다. 이때 거의 모든 문헌에서 발견할 수 있는 공통점은 항상 영성적인 주제를 성찰하면서 더 나은 영성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권고했다는 점입니다. 게다가 성모 마리아를 공경하는 신심도 자주 언급됐습니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문헌들 가운데 문헌 전체를 영성적인 관점에서 저술한 문헌이 있습니다. 2000년 대희년 폐막 즈음에 주교들과 성직자들 그리고 평신도들에게 보낸 문헌으로서 2001년 1월 6일 주님 공현 대축일에 반포한 교서 「새 천년기(Novo Millennio Ineunte)」는 새로운 천년기를 맞는 신앙인에게 각자 자신의 삶에 대한 영성적인 성찰을 제공하고 가톨릭교회에 사목적인 과제를 던져주었습니다.「새 천년기」에서는 그리스도인이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면서 영적 여정을 걸어가는 방법을 소개했습니다. 즉, 참 하느님이시며 참사람이신 성자 그리스도의 신원을 제대로 깨달아야만 그리스도의 얼굴을 올바로 인식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말씀이 사람이 되시면서까지 자신을 비우신 강생의 신비의 의미를 깨달아야만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보이신 고통의 얼굴이 하느님께 버림받은 절망이 아니라 모든 사람을 구원하기 위한 기도라는 걸 알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얼굴을 바라보기 시작한 그리스도인은 기도의 실천, 성찬례의 참여, 화해의 성사인 고해성사로 회귀 등 보통의 방법으로 성덕의 훈련을 하며 영적 여정을 걷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인의 성성(聖性)의 완성은 하느님 말씀에 귀 기울이며 복음을 선포하는 데 있다고 강조했습니다.한편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2년 10월부터 2003년 10월까지를 ‘묵주기도의 해’로 선포하고, 마리아의 묵주기도에 관하여 주교와 성직자와 신자들에게 보낸 문헌으로 2002년 10월 16일에 교서 「동정 마리아의 묵주기도(Rosarium Virginis Mariae)」를 반포해 묵주기도가 성모 마리아뿐 아니라 그리스도의 생애를 깊이 관상하는 훌륭한 기도 방법이라는 점을 강조했습니다. 특히 이 문헌에서는 기존에 바쳤던 묵주기도에서 세 가지 신비를 묵상했던 것과 달리 예수님의 공생활까지 묵상하는 ‘빛의 신비’를 추가하면서 신자들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신비에 잘 동화될 수 있도록 초대했습니다.영적 여정의 마지막 단계에서 행동을 강조한 베네딕토 16세베네딕토 16세(Benedictus PP. XVI, 재임 2005~2013) 교황은 재임 기간이 짧은 만큼 주요 문헌을 많이 반포하시지 않았지만, 영성 사상을 엿볼 수 있는 문헌과 작품을 발표했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이미 교황직에 오른 후이지만 2007년에 발간한 저서 「나자렛 예수 1(Jesus von Nazarreth I)」 서문에서 이 책이 교도권을 다룬 공식 문헌에 속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얼굴’을 찾는 개인적인 탐구라는 것을 밝히면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묵상했습니다. 이때 교황님은 ‘역사 비평적 방법’으로 복음서에 다가간다면 예수님을 단순히 과거에 묶어둠으로써 예수님을 오늘날 살아 있는 주님으로 만나는 데에 한계가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복음서가 인간의 말에만 머물지 말고 한층 높은 차원에 속한 의미에 도달하기 위해서 성경 전체 내용에 대해 통일성을 가지고 살피는 ‘정경적(正經的) 성경 주석’이라는 연구 방법이 유익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베네딕토 16세 교황은 2010년 반포한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Verbum Domini)」에서 어떻게 하느님 말씀에 다가가고, 하느님 말씀을 살아가며, 하느님 말씀을 전해야 하는지 언급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살아가는 영적 여정에 유익한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즉, 카르투지오회 9대 원장이었던 귀고 2세(Guigo II, 재임 1174~1180)가 정리해서 소개했던 ‘거룩한 독서(Lectio Divina)’에서 실천하는 ‘독서-묵상-기도-관상’의 단계에 ‘행동’이라는 단계를 추가했습니다. “거룩한 독서의 역동은 행동(actio)에 이르기 전에는 아직 완결된 것이 아님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행동은 신자들이 사랑으로 자신의 삶을 다른 이들을 위한 선물이 되게 하는 것입니다.”(87항) 행동으로 애덕을 실천할 때에야 비로소 영적 여정을 마치고 거룩함을 완성하여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그리스도인의 성덕의 소명을 상기시킨 프란치스코프란치스코 교황은 2018년 반포한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소명에 관한 교황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Gaudete et Exsultate)」에서 성덕이 성직자와 수도자에게만 해당하는 소명이 아니라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해당되는 소명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다만 각자 신분의 상태에 따른 성덕의 소명은 같은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 각기 다른 모습으로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권고했습니다. 따라서 평신도 그리스도인은 성덕의 소명에 두려워할 것이 아니라, 옆집의 평범한 이웃을 통해서 발견할 수 있는 모습에서 성덕의 소명을 발견하라고 격려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문헌에서 오늘날 그리스도인의 성덕을 교묘하게 교란시키는 이단 교리에 대해 경고했습니다. 즉, 하느님도 육신도 거부하면서 신비생활을 마음대로 조정하려는 현대의 영지주의와 자신의 힘만 앞세우고 정해진 규범에 과도하게 집착하면서 개인주의에 빠져 자신의 우월성만 강조하는 현대의 펠라기우스주의가 그것입니다. 따라서 교황님은 현대 세계에서 성덕의 징표가 되는 우리의 자세로 항구함과 인내와 온유함, 기쁨과 유머 감각, 담대함과 열정, 공동체성, 그리고 지속적인 기도를 제시했습니다. “저의 소박한 바람은 많은 위험과 도전과 기회를 안고 있는 우리 시대에 맞갖게 실천적 방식으로 성덕의 소명이 다시 한 번 울려 퍼지게 하려는 것입니다.”(2항)우리는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역대 교황님들이 그리스도인의 영적 유익을 위해 고민하시고, 심사숙고해 결단을 내리셨던 모습을 발견합니다. 오늘날 우리가 함께했고, 또 함께 하고 있는 교황님들에게서도 같은 모습을 발견합니다. 그러므로 교황님들이 발표하는 문헌들만 열심히 읽어도 그리스도인이 나가야 할 올바른 영적 여정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다는 점을 우리는 유념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장> cpbc2018.12.11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5) 주님 승천 (상) 고대 시대](//cpbc.co.kr/CMS/newspaper/2018/07/rc/728316_1.0_titleImage_1.jpg)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5) 주님 승천 (상) 고대 시대성모와 사도들 해와 달의 찬미 받으며 천상에 오르시는 예수님 성경은 세 분의 승천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줍니다. 에녹(창세 5,24)과 엘리야 예언자(2열왕 2,11), 그리고 주님(마르 16,19; 루카 24,51; 사도 1,6-11)입니다. 또 가톨릭교회는 성모 마리아께서 지상 생애를 마친 다음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상 영광으로 들어 올려지셨다고 고백합니다. 하지만 주님의 승천은 근본이 다릅니다. 주님께서는 승천하신 다음 하느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우리에게 약속하신 성령을 보내십니다.(사도 2,33; 에페 1,20) 또 주님께서는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시어 우리를 구원하실 것입니다.(사도 1,11) 이번 호부터는 ‘주님 승천’의 도상을 고대와 비잔틴 시대, 그리고 중세로 구분해 세 차례에 걸쳐 소개합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미술은 그리스와 로마의 도상(圖像)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습니다. 고대 그리스와 로마 제국 사람들은 자신들이 숭배하던 신과 영웅들의 승천 장면을 마치 전쟁에서 승리한 황제가 개선하는 것처럼 병거를 타고 땅에서 하늘로 비스듬히 올라가는 모습으로 즐겨 그렸습니다. 초대 교회 신자들은 ‘주님 승천’ 장면을 그릴 때 이 도상을 빌려서 표현했습니다. 로마 아벤티노 언덕에 있는 성녀 사비나 대성전(Basilica Sanctae Sabinae)의 나무문 조각 ‘주님 승천’ 부조와 6세기 헬라어 필사본 「라불라(Rabula) 복음서」의 ‘주님 승천’ 삽화가 대표적입니다. 성녀 사비나 대성전의 승천 부조 작품. 승천하는 엘리야(왼쪽 사진의 파란 점선)는 병거를 타고 천사의 도움을 받고 있다. 주님의 승천은 엘리야와 다르다. 예수님(오른쪽 사진의 파란 점선)은 세 천사의 호위를 받으며 부조상에는 보이지 않지만 하느님의 오른쪽을 향해 승천하고 있다. 성녀 사비나 대성전 430년 봉헌한 성녀 사비나 대성전의 정면 나무문에는 ‘승천’을 주제로 한 두 장면이 돋을새김으로 조각돼 있습니다. 주님과 엘리야의 승천입니다. 엘리야 승천 부조는 문 오른쪽 아래에 장식돼 있습니다. 엘리야 예언자는 엘리사가 지켜보고 있는 가운데 두 마리 불 말이 이끄는 불 병거를 타고 비스듬히 하늘로 오르고 있습니다. 불 말과 불 병거는 ‘주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성경은 “엘리야가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로 올라갔다”(2열왕 2,11)고 하지만 사비나 대성전의 부조는 천사가 지팡이 같은 걸로 엘리야를 들어 올려 하늘로 데려가고 있습니다. 엘리야가 자기 능력으로 승천한 것이 아니라 주님의 권능에 의해 하늘로 들어 올려졌음을 웅변하고 있습니다. ‘주님 승천’ 부조는 성당 문 오른편 가운데 자리하고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엘리야 예언자와 달리 당신 권능으로 스스로 하늘로 오르십니다. 여기서 눈여겨볼 것은 예수님의 승천 방향입니다. 부조를 바라보는 이의 시선에서 볼 때 주님은 하느님의 오른편으로 향해 승천하십니다. 주님을 맞이하는 세 천사는 주님께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으시게 보필하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하느님의 권능에 참여하고 계실 뿐 아니라 그 권능 안에 영원히 현존하고 계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사도 2,35; 에페1,20) 라불라 복음서「라불라 복음서」의 ‘주님 승천’ 삽화는 성녀 사비나 대성전의 성당문 부조와는 사뭇 다른 도상을 보여줍니다. 그리스ㆍ로마 풍과 함께 인성(人性)을 중시하면서 성경 내용을 있는 그대로 표현하려는 시리아풍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네 마리 동물이 이끄는 사륜 병거에 올라타시고 네 천사의 보필을 받으며 승천하십니다. 네 동물은 사자와 소, 독수리, 그리고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습니다. 요한 묵시록에 등장하는 이들은 네 복음사가 또는 네 복음서를 상징합니다. 사자는 마르코, 사람은 마태오, 소는 루카, 독수리는 요한을 가리킵니다.승천하시는 주님은 하느님의 영광에 둘러싸여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오른손을 들어 강복하시고, 왼손에는 구원의 상징인 ‘생명의 책’을 들고 계십니다. 해와 달이 하늘의 양 측면에서 주님을 찬미하고 있습니다. 땅에서는 성모님을 중심으로 사도들과 제자들이 주님의 승천 모습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이들은 ‘교회’를 상징합니다. 성모님은 주님 승천 장면을 보면서 놀라워하는 이들과 달리 양팔을 하늘을 향해 뻗고 기도하는 ‘오란테’의 자세를 취하고 있습니다. 성모님이 ‘교회의 어머니’로서 그리스도의 지체들 안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성모님의 양옆에서 흰옷을 입고 왕홀을 손에 쥔 두 천사는 주님의 승천을 지켜보고 있는 사도들에게 무언가를 일러주고 있습니다. “너희를 떠나 승천하신 저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다”(사도 1,11)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천사의 이 말은 무슨 뜻일까요?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승천하신 이후에도 당신의 인성을 그대로 지니시며 재림 때 육신을 지닌 구세주로 우리에게 오신다는 말씀입니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재림을 단순히 미래에 닥칠 사건으로 여기지 않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라고 승천하실 때 약속하신 주님의 말씀을 믿으며 성체성사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체험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들과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주님께서 지금 살아 계신 분이시고 우리 또한 살아 있게 해주시는 생명 자체이심을 증언하고 있습니다”(요한 14,19 참조. 베네딕토 16세 교황 「나자렛 예수」 2권 346~347쪽).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8.07.24

“내 집처럼 가꾼 기도의 집에서 신앙 키우세요”서울 성북구 위치한 가톨릭교리신학원 ‘기도의 집' 기도의 집에서 봉사하는 가톨릭교리신학원 졸업생들. 몸은 서울대교구 가톨릭교리신학원(원장 최승정 신부)을 떠난 졸업생들이지만 세상의 복음화에 이바지하고 싶은 작은 희망으로 가톨릭교리신학원이 운영하는 ‘기도의 집’(관장 김진태 신부)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봉사하는 이들이 있다.서울 성북구 성북로 기도의 집 마당. 가톨릭교리신학원 졸업생들이 빗자루로 낙엽을 쓸고, 쓰레기 분리수거를 한다. 사무실에서 피정 접수 및 문의 전화를 받고, 숙소의 침구류 정리도 한다. 성물방 지킴이도 있다. 최근 5~6년 사이에 가톨릭교리신학원을 졸업한 평신도 선교사 40명이 지난해 9월부터 기도의 집 봉사에 나서고 있다. 가톨릭교리신학원의 교육 이념인 기억ㆍ선포ㆍ봉사에 따라, 평신도 선교사들을 위한 재교육의 장을 마련하고 지역사회 복음화를 위한 밀알이 되기 위해서다.봉사는 궂은일부터 시작했다. 40명의 봉사자는 일주일에 한 번 정해진 요일에 4시간씩 봉사한다. 연령대는 대부분 50~60대 중장년층이다. 서울을 비롯해 멀리서는 용인, 춘천에서도 봉사를 다닌다. 기도의 집 누리방을 개설, 운영하기 위해 학원에 다닌 봉사자도 있다.기도의 집은 2010년 문을 열었다.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로, 기도와 묵상을 위한 경당과 피정을 위한 숙소, 세미나실, 휴게실 등을 갖추고 있다. 교리신학원의 재학생과 졸업생들의 친교 장소이자, 기도 공간 및 모임 장소다. 지난해까지 청소 및 관리인을 따로 고용해 운영해왔지만, 운영비를 아끼고 졸업생들이 자발적으로 봉사하자는 목소리가 나왔고 지금은 100% 자원봉사로 운영한다.기도의 집에는 성물방 ‘성북동 성모님’에서 성물 판매와 함께 작품도 전시하고 있다. 성물방 봉사자 서영희(클라라, 69)씨는 “성북동에서 유일한 성물방으로 성북동에 나들이를 온 가족들이 종종 이곳을 찾고 있어 지역주민에게도 선교의 장이 되어가고 있다”며 뿌듯해 했다.기도의 집 운영위원회 회장 이춘식(파우스티노, 69)씨는 “세상의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졸업생들이 자발적 봉사를 시작했다”며 “교리신학원 졸업생들이 기도의 집을 재교육의 장으로서 활용하는 동시에 신자들에게는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는 곳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기도의 집 운영위원회는 직장인들을 위한 성경공부 및 기도 모임을 비롯해 비신자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 등을 기획하고 있다.피정 및 이용 문의 : 02-747-8507, 누리방 : www.ccikido.or.kr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18.11.13

고통의 바다에서 표류한다면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조너선 모리스 신부, 고통을 풀어갈 수 있는 삶의 원칙과 실천 방법 제시 고통의 이유를 찾는 당신에게 들려주는 - 하느님의 약속 조너선 모리스 지음 / 이창훈 옮김 / 가톨릭출판사 / 1만 8000원 주님은 우리가 고통 중에도 ‘함께 계시는 분’이다. 우리는 이를 믿고, 일상에서 거룩해지는 노력을 해나가야 한다. 우리 고통에는 늘 하느님이 계신다. 사진은 브라질 코르코바도 언덕에 자리잡은 예수상. 선하신 하느님은 왜 고통을 만들었을까? 이 세상에 악인(惡人)은 왜 있는 것일까?뉴스는 연일 각종 사건 사고를 보도한다. 육체적 병고와 정신 질환, 죽음과 이별, 가난과 빈곤. 지구 곳곳에서 매일같이 일어나는 끔찍한 재해와 사고들. 고통은 인류의 숙제일까, 아니면 신이 어쩌지 못하는 악마의 농간일까. 그럴 때마다 ‘하느님은 계시긴 한 걸까?’ 하는 의구심을 떨치기 어렵다. 인간 이성은 ‘하느님 뜻’을 다 헤아리기 어렵다.미국 뉴욕대교구 사제인 저자 조너선 모리스 신부는 폭스 뉴스 해설자로 활동했다. 어느 날 쓰나미와 지진으로 아시아에서 37만여 명이 사망했다는 소식에 앵커가 갑자기 저자에게 질문을 던진다. “한꺼번에 발생한 죽음과 파괴 이면에 무엇이 있는지 사람들은 궁금해합니다. 신이 화가 났나요?” 그러나 사제인 그도 생중계되는 카메라 앞에서 선뜻 답하기 어려웠다. 이를 두고두고 고민한 저자가 이에 대한 답을 쓴 책이다. 여러 서적을 우리말로 옮겨온 가톨릭평화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이창훈(알폰소) 위원이 번역했다.저자는 다소 철학적일 수 있는 주제 ‘고통의 근거’를 쉽게 풀어냈다. 저자 주변인들의 다양한 고통 체험에 교회가 전하는 진리를 잘 접목해 고통을 새롭게 마주하고 풀어갈 수 있는 ‘삶의 원칙’과 ‘실천 방법’을 엮었다. 고통에는 세 가지 얼굴이 있다. 육체적ㆍ정서적ㆍ영적 고통. 우리는 각자 고통의 실체를 잘 살피지 못하거나, 하느님과 멀어지는 ‘영적 손상’을 입기도 한다.그래서 돌아볼 것이 있다. ‘나에게 하느님은 어떤 존재인가.’ 우린 우리가 원하는 것을 그때그때 들어주는 ‘자판기 하느님’으로 인식하고 있지는 않은가. 잘못된 일에 그저 분노하는 ‘심판자 하느님’으로 여기진 않는가.저자는 “주님은 철학이 아니며 도덕률도 아니다”라며 “그분은 우리가 인격적 관계를 맺을 수 있는 살아계신 분”이라고 일러준다. 하느님은 우리가 생각하는 ‘도덕의 기준’ 역할만 하는 게 아니라, 언제나 그 고통과 함께하는 분이란 것이다.성경을 좋은 영감을 주는 ‘낱장 달력’쯤으로 여기거나, 이성으로 납득이 될 때에만 ‘찬양’한다면 ‘섭리하시는 하느님’을 제대로 알고 신뢰할 수 없다. 무신론자나 비신자들이 갖는 ‘1단계적 하느님 인식’을 넘어야 한다. 저자는 성경에 대한 ‘학문적 이해’, ‘인간 이성’ 너머에 있는 ‘살아 계신 하느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서 ‘고통 속에 함께해주시는 분’이라고 설명한다. 그 근거가 인간의 고통을 모두 짊어지고 하늘나라로 오른 아들 예수님이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통해 더 큰 선(善)을 가져다주셨다. 고통을 무조건 나쁜 것으로 여기고, ‘왜 하느님이 해결해주지 않느냐’고 조급해 하는 생각과는 차원이 다르다.해법은 ‘삶의 거룩화 작업’이다. 바오로 사도처럼 ‘그리스도와 일치된 삶’을 살고자 노력하는 것. 인간은 누구나 사랑에 대한 갈망이 있기에 ‘완전한 사랑이신 분’을 사랑하도록 영혼을 인도하는 자기 노력이 필요하다.저자는 각자가 지닌 ‘뿌리가 되는 죄’를 파악하고, 이와 반대되는 ‘선한 행위’들을 삶의 목표로 세워 실천하도록 이끈다. 하느님께서 ‘더 큰 선’을 주신다는 약속에 대한 믿음은 그리스도의 손과 발이 될 우리 행동의 뿌리 역할을 한다. 고통은 아프지만, 하느님과 함께할 수 있는 또 다른 계기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8.08.29

전례력 ‘나해’, 나를 위한 복음의 양식 세 권2018년은 전례력으로 ‘나해’에 해당한다. 새해를 맞아 사제들이 이에 따른 복음의 참뜻과 거룩한 독서방법을 전하는 해설집과 성경을 바탕으로 쓴 에세이 등 신간을 잇달아 내놨다. 말씀을 향한 신자들의 ‘복음 열정’을 더욱 드높여줄 사목자들의 책을 소개한다. 일어나 가자 - 뜻으로 듣는 복음(나해) 홍승모 몬시뇰 지음 /위즈앤비즈 / 1만 5000원 사람들은 요한 세례자를 ‘세례를 베푸는 사람’으로 여겼다. 죄에 대한 정화의 권능과 세례를 베푸는 행위를 보며 사람들은 그를 최고 예언자요, 지도자로 추앙하기까지 했다. 저자 홍승모(인천가톨릭의료원장) 몬시뇰은 요한복음서에 등장하는 요한 세례자를 ‘예수님을 증언하고 알리는 사람’이었다고 그 역할을 분명히 전한다. “물로 세례를 준다”는 요한 세례자의 말은 빛을 증언할 계기를 마련해주는 사람을 공고히해주는 메시지다. 이를 통해 요한 세례자는 ‘뒤에 오시는 분’을 드높일 ‘위대한 조연’이라고 저자는 칭한다. 요한의 궁극적인 사명은 빛을 증언하여 사람들로 하여금 그리스도를 믿도록 하는 것이었다. 구약성서신학 박사인 홍 몬시뇰은 지난해 ‘가해’ 복음 해설집 「신랑이 왔다」에 이어 ‘나해’ 복음 해설집을 내놨다. 성경이 보여주는 수많은 사건과 비유의 의미를 명쾌한 해설을 통해 알기 쉽게 엮었다. 연중 전례력에 맞춰 복음에 이어지는 깊은 의미를 분명히 반추하도록 이끌어주는 길잡이와 같다. 성모 마리아는 처음 가브리엘 천사의 예수 잉태의 메시지를 받았을 때 결코 인간의 잣대로 판단하지 않았다. 마리아는 묻고 또 물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저자는 “‘종입니다’라는 고백에 마리아의 모든 마음이 실려 있다”며 “이 대답은 이미 구원의 시작을 의미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책은 해설에만 그치지 않는다. 저자는 각 복음 해설에 앞서 ‘깨어 있음은 어떤 실제적 의미를 지닐까요?’, ‘동방박사들의 순례 여정과 선물들이 우리에게 주는 영성적 영감은 무엇인가?’ 하고 질문하고, 그 안에 스민 복음의 뜻을 짚어주는 길잡이 역할을 자처한다.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 신교선 신부 지음 / 생활성서 / 2만 원 “성경은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에게 건네시는 ‘사랑의 속삭임’, ‘사랑의 편지’입니다.” 때마다 성경 해설서 등 신앙 서적을 꾸준히 펴내온 신교선(인천교구 용현5동본당 주임) 신부가 구약성경 전반에 대한 이해를 돕는 신간을 내놨다. 저자는 하느님의 ‘사랑의 속삭임’과 가까울수록 우리는 참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진리를 전하고자 책을 펴냈다고 밝힌다. 저자는 △오경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에 이르는 구약성경 전반에 대한 거룩한 독서 방법을 제시한다. 노아가 살았던 시기, 하느님이 대홍수를 일으킨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저자는 대홍수는 곧 성(聖)과 속(俗)의 뒤엉킴을 통해 인류의 타락을 고발하고 있다고 전한다. 탈출기에서 하느님이 파라오와 대결을 펼친 이유, 그 속에서 드러나는 하느님 구원의 의지를 비롯해 예언서를 넘어 하느님 구원의 보편성을 가르치는 교훈서로서 요나서를 들여다봐야 하는 이유까지. 저자는 구약을 바라보는 올바른 시각을 통해 성경을 읽는 근본 이유를 되새겨준다. 가톨릭평화방송 TV는 4일부터 매주 목요일 오전 8시 ‘신교선 신부의 알기 쉬운 구약 체험’ 방영을 시작했다. 신 신부의 TV강좌를 통해 책 속에 담긴 성경 이야기를 더욱 생생히 접할 수 있는 기회다. 말씀 흔적 박병규 신부 지음 / 성서와함께 / 1만 1000원 말씀을 바탕으로 쓴 성경 에세이. 성서신학 박사인 저자는 책 전반을 통해 성경을 터득하는 관점을 바로잡아준다. 많은 신자가 성경 공부에 매달리는 요즘. 성경은 여전히 철저히 공부하지 않고선 이해하고 실천하기 어려운 진리를 담고 있는 게 사실이다. ‘어떻게 하면 어려운 성경을 쉽게 설명할 수 있을까?’ 저자는 “철부지가 돼라”고 일러준다. 그저 계획 없이 흘러가는 대로 노니는 철부지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 철저히 투신할 줄 아는 ‘하느님의 철부지’ 말이다. ‘부활이 가장 중요한 신앙의 핵심이라면, 왜 예수님은 바로 돌아가시고 부활하시지 않으셨나?’ 성경을 읽다 보면 이런저런 의문이 생기기 마련. 저자는 “성경의 주제를 ‘이것이다’ 하고 규정하는 순간, 성경은 성경이 아니게 된다”고 이른다. 대신 ‘제발 저를 바꿔주십시오!’, ‘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까?’ 하고 질문과 요구를 적극적으로 던질 때 하느님은 우리 삶 속에 계실 것”이라고 일러준다. 하느님 나라를 사후 어딘가에 존재하는 일종의 국가 개념으로 보는 이들도 있다. 저자는 하느님 나라는 내가 원하는 형태와 방법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며, 내일 혹은 미래를 염두에 둔 나라가 아니라고 바로잡는다. 하느님 나라가 아직 오지 않았다고 생각하며 사는 것 자체가 오늘의 평화, 사랑의 관점을 흩트리는 주범이 된다고 일러준다. 책은 △하느님 나라 △회개 △성령 △구원 △용서 △희망 △부활 등 성경 속 다양한 신앙 주제에 대한 저자의 새로운 시각을 전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8.01.03

척박한 땅에서 일하며 기도하는 소박한 삶으로 초대합니다여주 ‘도전돌밭공동체’를 찾아서 문명은 한계를 드러냈다. 재앙에 직면한 우리 미래에 대한 희망은 생태적 삶으로의 회귀밖에 달리 길이 없음을 보여준다. 서강대 종교학과 교수직을 퇴임한 예수회 한국관구 서명원(본명 Bernard Senecal, 66) 신부도 새로운 문명을 꿈꾸며 공동체를 만들었다. 퇴직 이전부터 준비해 경기도 여주시 강천면 새향길(도전리), 태백산의 끝자락에 터를 잡은 ‘도전돌밭공동체’다. 도전은 공동체가 자리 잡은 마을 이름의 한자만 바꿔 ‘온전한 길’이라는 뜻의 도전(道全)으로 정했고, 돌밭은 이들이 일구는 땅이 돌밭이기에 거기서 이름을 땄다. 현실은 돌밭이지만,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어간 그 길, 곧 생명의 길, 부활의 길, 영생의 길을 따라 살고 싶다는 속내가 담겼다. 주님 부활 대축일을 앞두고 여주 도전돌밭공동체를 찾았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중앙선 양동역에서 내리니 봄비가 흠뻑 내렸다. 봄 가뭄에 단비다. 논배미 건너 실개천 다리를 지나자마자 샛길로 접어들었다. 새로운 고향 같은 길이라고, 새향길이라고 이름 붙인 아늑한 분지가 한눈에 들어온다. 6ㆍ25 땐 휴전협정이 끝나고 나서야 전쟁이 일어났다는 걸 알게 됐을 정도로 ‘외진’ 마을이다. 봄비에 밭을 갈던 공동체 식구들은 마침 뒷동산에 십자가의 길 15처를 세운다. 부활을 알린 ‘눈부시게 차려입은 두 남자’(루카 24,4-7 참조)를 그린 15처를 포함했다. 공동체 식구인 고성진(요셉) 조각가가 봉헌했다. 7년간 투석만 하다가 1년 전 신장을 이식받아 되살아난 뒤 그림 타일을 가마에 구워 뒷동산에 십자가의 길을 조성했다. 십자가의 길을 만드는 여정에 함께한 김춘미(아녜스)씨는 “작가가 하루하루 죽음의 고통 속에서 기도하며 그려낸 십자가의 길이어선지 정말 느낌이 남다르다”며 “아주 질박한 십자가의 길이지만, 그 소박한 게 더 감동적”이라고 전한다. 그러고 나서 “특히 빈 무덤에 나타난 두 천사의 모습만 그린 15처가 무척 인상적”이라고 했다. 서명원 신부가 꿈꾸는 공동체는 기도 수행과 노동을 통한 ‘비움’의 공동체다. “마음을 비우면 비울수록 마음을 예수님으로 채울 수 있다”는 서 신부는 전통 관상수도원 방식으로 공동체 명상센터를 지었다. 평면 사각형으로 컨테이너를 맞물리고 정원에는 자갈을 깔았다. 지붕은 이중으로 만들어 ‘성령의 바람’이 지나는 듯한 이미지를 만들었고, 공동체 건물은 사각형이면서도 사방으로 문을 둬 사통팔달하는 공동체를 지향했다. “우리 공동체는 아집을 끊어버리고, 예수님의 현존이 거짓 자아를 대체하도록 수행하는 데 그 목적이 있습니다. 천국에 들어가는 데 뭐가 도움되겠습니까? 예수님이 참 나가 되는 것이 핵심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2장 20절에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사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지 않습니까? 이것이 우리 영성입니다.” 수행 방식은 이냐시오 관상기도를 토대로 한다. 이냐시오 성인이 받은 조명, 곧 삼위일체의 친교에서 창조, 성체를 통해 세상 안에 계시는 주님, 강생 신비, 깨달음으로 정점을 이룬다. 이를 위해 날마다 아침ㆍ저녁기도를 하고, 식사도 두 끼니로 최소화했다. 공부와 연구, 명상은 당연히 뒤따른다. 교회일치운동과 이웃 종교와의 대화도 시시때때로 이뤄진다. 공동체 활동에는 생태적 삶을 공동체 차원에서 구현하기 위한 유기농 농사가 끼어 있다. 흙을 만지는, 먹는 음식 일부만 생산하는 삶의 방식을 통해 최소한만 생산하려 한다. 소박한 생활방식으로 돌아가 지구와 새로운 관계를 맺기 위해서다. 농사에 시행착오가 없을 수 없다. 그래도 자연과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밭에서 옥수수와 땅콩, 고구마, 감자, 당근, 야콘, 고추, 배추, 무, 토마토, 토란 등 20여 가지 작물을 재배 생산한다. 가장 많이 생산한 건 들깨로, 지난해 두 가마를 생산해 들기름을 수십 리터나 뽑아냈다. 공동체는 그러나 이제 시작이다. 등록한 식구는 50명을 채웠지만, 함께 사는 식구는 서넛에 그친다. 서 신부 또한 “공동체가 어떻게, 얼마나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며 “성령의 바람이 부는 대로 이뤄질 것”이라고 웃으며 말했다. 그래도 앞으로 공부와 연구를 위한 도서실과 성경 공부를 위한 공간도 만들고, 현재 8개 실에 그치는 숙소도 더 만들 계획으로 토지 형질 변경과 개발 허가를 받았다. 서명원 신부. 이 공동체의 탄생은 불교학자로 예수회원인 서 신부가 아니라면 어려웠을 터다. 1953년 캐나다 퀘벡에서 태어난 서 신부는 ‘3대 의사 집안’을 만들고 싶다는 부모 뜻에 따라 프랑스로 건너가 보르도 의대에 다니다가 ‘의미 있는 삶’을 찾아 1979년 예수회 프랑스관구에 입회, 한국으로 파견됐다. 파리 7대학에서 한국불교를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은 뒤 14년간 서강대에서 종교학을 강의해왔다. 여전히 그는 서강대 종교연구소 국제학술 등재지인 「Journal of Korean Religions」(한국 종교 저널) 부편집장으로 있으면서 공부와 연구를 멈추지 않고 있다. 이런 배경이 기도 수행과 노동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수행자들의 공동체를 탄생할 수 있게 했다. 공동체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 보니 어느새 들녘에 어둠이 내려앉는다. 칠순을 향해 달려가는 나이에도 ‘의미 있는 삶’을 꿈꾸는 노 사제와 평신도들의 기도를 뒤로하고 서울로 올라오는 열차에서도 서 신부의 말이 귓전에 울린다. “깊은 산골의 가장자리, 농사를 짓기에도 너무 척박하고 힘든 이 땅에서 길이 완성됩니다. 길의 끝,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을 그 끝까지 따라가고 싶습니다.” cpbc2019.04.17
![[생활속의복음] 대림 제1주일 - 하느님의 시간](//cpbc.co.kr/CMS/newspaper/2018/11/rc/740004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복음] 대림 제1주일 - 하느님의 시간구요비 주교(서울대교구 보좌) “오늘이 바로 마지막 날이네!”초등학교 6학년이던 1962년, 담임 선생님께서는 수업 중에 늘 일간 신문의 중요 내용을 읽어 주셨습니다. 그해 10월 소련이 미국 본토를 겨냥해 쿠바에 핵미사일 기지 설치를 비밀리에 추진했고, 이를 포착한 미국과 소련 사이에 일촉즉발의 위기가 고조되던 때였습니다. “지금 핵미사일을 실은 소련의 군함들이 쿠바로 향해 가고 있는데 해상 봉쇄령을 내린 미국 해군과 맞부딪혀서 오늘 밤에 제3차 세계대전이 일어날지 모른단다.”선생님의 말씀에 깜짝 놀라 방과 후에 십리 길이나 되는 집으로 한달음에 뛰어갔습니다.“엄마, 큰일 났어요! 오늘 밤에 핵전쟁이 일어나서 지구가 멸망할지 모른대요.” 선생님께 들은 얘기를 전하자 집안 분위기는 심각해졌고 결국 식구들은 저녁기도를 바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그때 어머님의 혼잣말이 들렸습니다. “아니 오늘이 마지막 날이라고? 그래, 요비 말이 맞네! 오늘이 바로 마지막 날이야!”다음날 새벽, 눈을 뜨자마자 밖으로 뛰어 나갔습니다. 밤새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짙은 안개와 침묵이 흐르는 고향 마을 길을 홀로 걸으며 말로 형용할 수 없는 경이로움을 느꼈습니다. 인류 공멸의 위기 앞에서 미국과 소련이 극적으로 타협했다는 선생님의 설명을 듣고 안심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당시 어머님의 ‘오늘이 바로 마지막 날이네!’라는 말은 성경에서 계시되는 하느님의 시간(Kairos)을 관통하고 있음을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더 절감하게 됩니다. 카이로스는 본래 ‘결정적인 것’, ‘본질적인 시점’을 뜻하는데 종말론적으로 마지막 때인 하느님에게 온전히 속한 ‘하느님의 시간’을 말합니다.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시간’의 신앙적인 의미를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렇게 말합니다. “임의 날은 나날이 아닌 다만 ‘오늘!’, 그 오늘은 내일로 옮지도 아니하고, 어제 뒤에 이어지지도 않은 날이다. 임의 오늘은 곧 ‘영원!’”이라고 갈파하였습니다.(「고백록」 11권, 13장) 그런 면에서 교회의 전례력, 전례의 시간은 이 덧없는 인간의 세월 안에 길들여지기 쉬운 우리네 인생에 하느님의 영원한 시간이 개입해 계심을 일깨워 주는 것입니다. 대림 제1주일인 오늘은 전례력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날입니다. 오늘이라는 시간을 허락하신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그리스도의 뜻에 더욱 맞갖은 삶을 살도록 다짐하는 기다림의 시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성도들과 함께 재림하실 때, 여러분이 하느님 우리 아버지 앞에서 흠 없이 거룩한 사람으로 나설 수 있게 되기를 빕니다.”(1테살 3,13)------------------------------※대림 제1주일부터 매월 첫째 주 생활 속의 복음은 서울대교구 주보 ‘생명의 말씀’에 소개되는 서울대교구 주교단의 글이 실립니다. 또 매월 2ㆍ3ㆍ4주는 한민택(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신부가 연재합니다. cpbc2018.11.28
“진심과 사랑으로 신자 대하는 ‘양 냄새 나는’ 사목자 원한다”춘천교구, 설정 80주년 1만 6000명 설문조사 결과 가톨릭 신자들은 사제의 어떤 모습을 보고 기쁨과 희망을 느낄까. 또 교회와 본당이 신자들에게 어떤 부분을 신경 써주길 바라고 있나.춘천교구가 최근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응답자들은 ‘진심과 사랑으로 신자들을 대하는 겸손한 사목자 모습’에서 신앙생활의 기쁨과 희망을 많이 느낀다고 대답했다. 가장 먼저 변화돼야 할 사제 모습으로는 ‘독단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38.7%)을 꼽은 사람이 가장 많았다. 춘천교구는 교구 설정 80주년(2019년)을 앞두고 최근 교구민 1만 6000명을 대상으로 ‘80주년 설문조사’를 실시해 분석한 1차 설문 결과를 내놨다. 8000여 명이 응답한 설문조사 결과에는 신자 다수의 ‘신앙생활 현주소’와 ‘희망 사항’ 등 다양한 의견이 담겨 있어 교회 전체가 참고해볼 만하다.신자들은 ‘기쁨과 희망을 주는 우리 신부님 모습’을 묻는 물음에 ‘신자들을 진심과 사랑으로 대하는 겸손한 모습’(38.5%)을 최고로 꼽았다. 경건한 미사 거행(27.8%)과 감동적인 강론(19.1%)보다 높은 수치로, 평소 ‘양 냄새 나는’ 따스한 사목자 모습이 더 큰 영향을 주는 것으로 나타났다.‘강론 준비에 더 노력해야 할 점’에 대해선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는 내용이면 좋겠다’(36.3%)는 응답이 가장 높았다. 또 ‘독단적으로 무언가를 결정하는 모습’(38.7%)이 가장 변화돼야 할 사제의 모습으로 꼽혔다. 신자 돌봄에 더 관심을 바라는 목소리도 컸다.고해성사와 관련해서는 ‘고해성사 교육이 필요하다’(35.3%), ‘고해 사제가 먼저 부드럽게 말씀을 건네주면 좋겠다’(29.3%)는 바람이 많았다. 본당 공동체 내 갈등 이유로는 교우 간, 단체 간에 ‘끼리끼리 문화 때문’이라는 응답이 43.3%에 이르러 친한 사람, 자기 단체 중심 문화가 큰 걸림돌로 나타났다. 본당이 해야 할 우선적 사목으로는 ‘냉담교우 예방’(34.4%)이, ‘지역사회보다 성당 내 소외된 신자부터 먼저 챙겨야 한다’(39.4%)는 의견이 많았다.신자들의 이 같은 의견은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와도 일맥상통한다. 교황은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사제들에게 “고해소가 고문실이 아닌 주님의 자비를 만나는 장소가 돼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강론에 대해서도 “동떨어진 사상으로 연설을 닮은 강론이 아닌, 긍정의 언어로 빛을 갈구하는 신자들의 경험과 연결시켜 복음을 전해야 한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면서 “모든 종교적 가르침은 복음 선포자의 생활방식에서 드러나야 한다”고 거듭 강조하고 있다.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신자들 간의 시기, 질투에 대해서도 ‘형제애’를 강조하고 있다.이번 설문조사에서는 춘천교구민들의 신앙생활상도 드러났다. 신앙 성숙을 위해 ‘성경공부를 하고(40.8%), 매일 미사에 되도록 참여한다는 이(55.1%)가 많았다. ‘자녀에게 신앙을 유산처럼 교육해야 한다’는 의견(59.4%)이 높았지만, ‘스스로 선택해야 한다’는 의견도 25.5%나 됐다. 교구장 사목교서를 끝까지 읽거나 써봤다는 이는 24.9%였다.춘천교구 사목국장 김혜종 신부는 “교구는 통계 결과에 따른 지속적인 분석작업을 거쳐 신자들의 다양한 목소리를 반영한 사목과 프로그램들을 계속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8.12.12
신앙과 영성 교육 특강 ...예수회센터, 7월 2일부터 예수회센터는 7월 2일부터 6주 과정으로 센터(서울 마포구 서강대길 19)에서 그리스도인의 신앙과 영성 교육을 위한 특강을 마련한다. 강좌 프로그램으로는 △영적 성장- 우리의 마지막, 세상의 마지막(최현순 박사, 매주 월 오전 10시) △아픈 영혼을 철학으로 치유하기(박병준 신부, 홍경자 철학상담수련감독, 매주 화 오후 2시) △구약성경의 하느님과 나- 모세의 마음, 모세의 하느님(주원준 박사, 매주 화 저녁 7시 30분) △몸 신학-사랑의 신학적 이해(김혜숙 선교사, 매주 수 오전 10시) △겸손-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영성과 그리스도교 영성의 못자리(손유배 신부, 매주 목 오전 10시) 등이다. 문의 및 접수 : 02-3276-7733, 예수회센터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05.23
![[교부들의 사회교리] (4)주님께 쓸모없는 부자들](//cpbc.co.kr/CMS/newspaper/2018/12/rc/742359_1.0_titleImage_1.jpg)
[교부들의 사회교리] (4)주님께 쓸모없는 부자들 재산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눠주어라최원오 교수 “부인, 탑을 세우는 데 알맞지 않고 희고 둥근 돌, 그들은 누구입니까?” 그녀가 나에게 대답하였습니다. “너는 언제까지 어리석고 판단력도 없느냐? 너는 모든 것을 물어보면서 아무것도 모르겠느냐? 그들은 주님을 믿고 있으나 이 세상의 부도 가지고 있다. 환난이 닥치면 그들은 부와 사업상의 일 때문에 주님을 부인한다.” 내가 그녀에게 “부인, 그러면 그들은 탑을 세우는 데 언제 쓸모가 있겠습니까?” 하고 묻자, 그녀가 대답하였습니다.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는 부를 잘라낼 때 그들은 하느님께 쓸모가 있을 것이다. 둥근 돌이 잘리지 않고 자체의 어떤 부분을 내버리지 않으면 네모나게 될 수 없듯이, 이 세상의 부자들도 부를 잘라내지 않으면 주님께 쓸모가 없다. 먼저 너 자신에게서 배워라. 네가 부유할 때 너는 쓸모가 없었다. 그러나 지금 너는 쓸모가 있고 생명을 위해 올바르게 살고 있다. 하느님께 쓸모 있는 사람이 되어라. … 서로 화목하게 지내라. 서로 돌보아 주고 도와주어라. 너희는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너희 자신만을 위하여 풍족하게 사용하지 말고 곤궁한 이들에게도 주어라. 어떤 사람들은 과식으로 몸에 병을 얻어 건강을 해친다. 이와 달리 먹을 것이 없는 사람들은 음식을 제대로 먹을 수 없어 건강이 나빠지고 그들의 육체는 죽어간다. 이렇게 공동체 정신이 부족하여 가진 것이 있어도 곤궁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 것은 너희에게 해롭다. 임박한 심판을 주의하여라. 부자들이여, 너희는 탑이 아직 완성되지 않은 동안에 굶주린 이들을 찾아라. 탑이 완성된 뒤에는 너희가 선을 행하고 싶어도 더 이상 기회가 없기 때문이다.”(헤르마스, 「목자」 환시 3,6,5-7; 3,9,1. 하성수 옮김) 세례받은 뒤에 지은 죄를 용서받는 길 헤르마스의 「목자」는 130~140년경에 저술된 묵시록이다. 초기 그리스도교에서는 성경처럼 읽힌 권위 있는 교부 문헌이다. 헤르마스는 노예 신분에서 해방된 인물이었으며, 로마의 주교 피우스의 형제라고만 전해진다. 그는 고대 엄격주의 교회론과 참회 제도에 반기를 든 개혁가였다. ‘세례받은 뒤에 지은 죄는 용서받을 수 없다’는 완고한 교회 전통에 맞서 참회와 용서의 가능성을 최초로 열어젖힌 관용주의의 선구자라 하겠다. 교회를 상징하는 탑 여기서 ‘탑’은 교회를 상징한다. 탑인 교회는 네모 반듯한 돌들로 지어지고 있으며 종말에 완성될 것이다. 부와 재산으로 몸집을 부풀린 뚱뚱하고 희멀건 둥근 돌들은 그 교회 건축에 쓸모가 없다. 부자들은 부와 재산을 잘라내어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줌으로써 군더더기 없이 네모 반듯한 모양을 갖출 때 비로소 교회의 구성원이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묵시적 환시 형식으로 전해 준다. 하느님 앞에서 부자는 아무런 쓸모가 없으니, 쓸모 있는 인생을 살려거든 부를 축적하지 말고 서둘러 덜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진정한 참회는 돈 욕심과 가난한 이웃에 대한 무관심에서 벗어나, 공동의 재화를 궁핍한 이들에게 되돌려주는 것임을 일깨워주는 소중한 초기 교부 문헌이다. 최원오(빈첸시오, 대구가톨릭대유스티노자유대학원장) cpbc2018.12.26
![[김소일 위원의 일치 순례기 붓다의길 예수의길] (2)붓다의 성도지 부다가야](//cpbc.co.kr/CMS/newspaper/2019/04/rc/750308_1.0_titleImage_1.jpg)
[김소일 위원의 일치 순례기 붓다의길 예수의길] (2)붓다의 성도지 부다가야광야의 예수님처럼 악마의 유혹 뿌리친 붓다 그리고 깨달음 부다가야 마하보디 사원에 있는 불상. 깨달음의 현장 부다가야예수 그리스도의 공생애는 세례와 함께 시작된다. 서른 살 무렵 요르단 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다. 성경은 그 순간에 성령이 그분께 임했다고 전한다. “물에서 올라오신 예수님께서는 곧 하늘이 갈라지며 성령께서 비둘기처럼 당신께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이어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9-11) 그때부터 예수는 복음 선포의 여정에 나선다. 온 갈릴래아를 두루 다니며 가르치고 깨우쳤다.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붓다는 출가 후 6년의 고행 끝에 보리수 아래서 궁극의 깨달음을 얻는다. 그 순간 고타마 싯다르타에서 붓다가 된다. 35세 되던 해 음력 12월 8일이었다. 불경은 “새벽의 밝은 별이 돋을 때”라 한다. 불교에서는 이날을 성도절(成道節)로 지낸다. 부다가야는 그 깨달음의 현장이다. 거대한 석조 건축물인 마하보디 사원과 무성한 가지를 드리운 보리수가 있다. 보리수 수명은 대체로 1000년 정도라고 한다. 그렇다면 붓다의 깨달음을 지켜본 그 보리수는 아닐 것이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부처님 당시의 보리수는 스리랑카로 이어졌다가 다시 이곳으로 왔다”면서 “아마 3대쯤 되는 후손 나무일 것”이라고 짐작했다.생사를 넘나든 극단적 고행인도는 위대한 영성의 땅이다. 초월을 향한 저들의 의지는 다양한 종교와 갖가지 기이한 수행법을 낳았다. 일찍부터 수많은 종파와 유파가 꽃을 피웠다. 치열한 수행으로 경지에 오른 영적 스승들이 곳곳에서 독특한 가르침을 편다. 물질과 현실의 가치를 낮게 두고 정신과 수양을 추구한다. 선정과 해탈을 열망하고 영원과 진리를 갈구한다. 이토록 종교적이고 영적인 민족이 또 있을까.붓다 또한 출가 후 여러 스승을 찾아다니며 수행을 했다. 그러나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해답은 얻을 수 없었다. 결국은 고행림으로 불리는 숲 속에서 홀로 수행에 들어갔다. 6년 동안 이어진 이 수행은 그야말로 생사를 넘나드는 처절하고 극단적인 수행이었다. 붓다는 이렇게 말한다. “그때부터 나는 하루에 깨 한 알과 쌀 한 알씩을 먹었다. 그리하여 몸은 점점 쇠약해져 뼈와 뼈가 서로 맞붙고 정수리에는 부스럼이 생겼으며 가죽과 살이 저절로 떨어져 나갔다. 그것은 다 음식을 먹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또 낙타의 다리처럼 내 두 엉덩이도 그와 같았다. 만약 내가 손으로 배를 어루만지면, 그때 곧 등뼈가 손에 만져지고 또 등을 어루만지면 뱃가죽이 손에 만져졌다.”붓다는 또 이렇게도 말한다. “혹은 가시 위에 드러눕기도 하였고, 혹은 널판자나 쇠못 위에 눕기도 하였으며, 혹은 땅에서 멀리 떨어져 새처럼 매달려 있기도 하였고, 두 다리를 위로 올리고 머리를 땅에 두기도 하였으며, 혹은 다리를 꼬고 걸터앉기도 하였고, 혹은 수염과 머리를 길러 아예 깎지 않기도 하였으며, 혹은 햇볕에 노출하고 불로 굽기도 하였고, 혹은 한겨울에 얼음 위에 앉기도 하였고, 혹은 몸을 물속에 담그기도 하였으며, 혹은 잠자코 아무 말 하지 않기도 하였다.”(증일아함경 제23권)마침내 도달한 궁극의 깨달음이런 고행을 통해서 붓다는 “끝내 아무 이익이 없었고, 또 그 최상의 거룩한 법도 얻지 못했다”고 말한다. 붓다는 마침내 다른 길을 생각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도를 성취하는 근본이 아니다. 그러므로 마땅히 다른 길이 있을 것이다.” 결국, 고행을 중단하고 체력을 회복하기로 마음먹는다. 마을로 내려가 수자타라는 여인으로부터 유미죽을 공양받는다. 우유와 쌀가루를 끓인 죽이다. 강에 들어가 몸을 씻고 머리와 수염을 깎는다.그때부터 붓다는 고행림을 나와서 유명한 보리수 아래에 앉았다. 부드러운 길상초를 깔고 수행을 계속하다가 마침내 궁극의 깨달음을 얻었다. 그 깨달음의 의미는 무엇일까. 제행무상(諸行無常) 제법무아(諸法無我)일까. 중중무진(重重無盡) 법계연기(法界緣起)일까. 색즉시공(色卽示空) 공즉시색(空卽示色)일까. 불법의 경지는 높고 심오해서 선뜻 헤아리기 어렵다. 원행 스님은 간단히 요약했다. “모든 번뇌에서 벗어나 대자유를 얻고, 그러한 공덕으로 지혜와 복덕을 함께 갖추셨다는 의미입니다.”악마의 방해와 유혹세례를 받은 예수는 곧바로 광야로 가서 40일 동안 단식한다. 이때 악마가 다가와 세 가지 유혹을 던진다. “이 돌더러 빵이 되라고 해 보시오.” “모든 권세와 영광을 당신에게 주겠소.” “여기에서 밑으로 몸을 던져 보시오.” 세 가지 유혹은 아마도 인간을 타락으로 이끄는 재물과 권력과 교만을 상징할 것이다. 예수는 “사탄아, 물러가라.”는 일갈로 유혹을 물리친다. “그러자 악마는 그분을 떠나가고, 천사들이 다가와 그분의 시중을 들었다.”(마태 4,1-11; 루카 4,1-13)붓다 역시 깨달음을 앞두고 악마의 방해와 유혹을 받는다. 처음에는 미색을 동원했고, 다음에는 마귀 군대를 보냈다. 그래도 소용없자 천하를 지배할 전륜성왕을 약속했다. 붓다는 설법으로 모두 물리쳤다. 불경은 악마왕 마라를 욕계의 최고 지배자로 묘사한다.결국, 악마나 마귀는 우리 욕망의 분신일지 모른다. 우리가 욕망에 젖어 살 때 악마는 굳이 우리를 공격하지 않는다. 그러나 고행과 수양으로 드높은 정신세계에 접어들 때쯤 필연적으로 욕망의 저항을 받는다. 수행이 추구하는 신비적 합일이나 큰 깨달음은 언제나 그 너머에 있다. 인도=김소일 기자 sonos@cpbc.co.kr cpbc2019.04.09
[하느님과 트윗을](76) 수도생활은 어떻게 시작됐나요 주님과 홀로 있고자 떠난 은수자들 문 : 수도생활은 어떻게 시작됐나요답 : 교회가 시작했을 때부터 예수님을 가까이 따르고 싶어한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혼인하거나 재혼하는 대신에, 기도하고 단순하게 살며 교회와 가난한 이들을 도우면서 자신을 하느님께 온전히 바쳤습니다. 그들의 자발적인 증거의 삶은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온전한 헌신을 보여주었습니다.문 : 은수자는 어떤 사람들인가요답 : 그리스도교 초기 박해가 끝나면서, 그리스도인들은 순교자가 되지 않으면서도 예수님을 완벽하게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궁리했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을 하느님께 완전히 내어드리는 방법들이 생겨났습니다. 3세기 하느님께만 집중하고자 외딴 사막으로 물러나서 살았던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이들을 ‘은수자’라고 하는데 초기의 유명한 은수자로 안토니오 성인이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이 부자 청년에게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주어라. 그러면 네가 하늘에서 보물을 차지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라고 하신 말씀에 응답했습니다. 안토니오 성인은 예수님과 홀로 있고자 이집트 사막으로 떠났습니다.문 : 공동체는 어떻게 만들어졌나요답 : 325년 이집트 사람인 파코미오 성인은 다른 은수자들과 함께 공동체를 이루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은 공동체 장상에게 복종하고 복음에 헌신할 것을 약속했습니다. 곧 다른 공동체들도 세워졌습니다. 그 가운데는 동방 수도생활의 아버지인 대 바실리오 성인이 세운 공동체도 있었습니다. 4세기에 히포의 주교였던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기 교구의 신부들과 함께 공동체 생활을 이끌었습니다. 그의 출발점은 초기 그리스도인들의 삶이었습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사도 4,32)했습니다.문 : 가난한 이들은 어떻게 돌보았나요답 : 그리스도인이 아닌 사람들도 자기 가족을 돌봤을 테고, 부자들도 때로는 매우 너그러웠겠지만, 고대 세계에는 많은 경우 조직적인 자선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의 태동과 함께 바뀌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을 따랐습니다. “누구든지 세상 재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 그에게 마음을 닫아 버리면, 하느님 사랑이 어떻게 그 사람 안에 머무를 수 있겠습니까?”(1요한 3,17) 초기 교회는 일부 남성들을 부제로 뽑았고, 그들은 가난한 이들을 돌보는 데에 전념했습니다.(사도 6,2-3 참조) 수도자인 대 바실리오 성인은 4세기에 최초로 자선소를 세웠습니다. 서유럽의 수도원들은 자선뿐만 아니라 문화의 중심지가 됐습니다. 그곳의 수도자들은 의약, 기술, 건축, 예술, 농업 그리고 목축업에 숙달된 사람들이었습니다. 동시에 그들은 도서관과 필사실로 지적 문화를 촉진했습니다. 수도자들은 책을 필사하며 공부했습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교 학교의 기원입니다. 후에 대학들은 도시의 수도원을 중심으로 생겨났습니다. 정리=전은지 기자 eunz@cpbc.co.kr cpbc2018.12.05

교회의 미래 ‘청년들’이 주인공 되는 사목이 필요하다청년들을 위한 세계주교시노드 폐막 후 …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전국 청년 대표자 모임 열려 지난 10월 한 달 동안 세계 교회의 눈과 귀는 바티칸을 향했다. 전 세계 주교들은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을 주제로 열린 세계주교대의원회의(이하 시노드)에 참석해 이 시대 청년들과 ‘함께 걷기’ 위한 지혜를 탐색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0월 28일 시노드 폐막 미사 강론에서 “우리 사목자들이 행여나 젊은이들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다면, 또 우리 마음은 열지 않은 채 젊은이들 귀만 가득 채우려고 했다면 용서해 달라”고 청했다. 시노드 직후 한국 교회도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위원장 정순택 주교)는 3일 전국 청년 대표자 모임을 열고 교회를 향한 젊은이들의 목소리를 들었다. 청년사목위에서 평신도 청년들을 한자리에 모아 사목 방향을 논의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위원장 정순택 주교와 총무 김성훈 신부, 전국 14개 교구에서 참가한 청년 27명은 3시간 넘게 열띤 대화를 나눴다. 가톨릭학생회, 본당 청년회장, 교구 청년연합회, 청년성서모임 등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은 허심탄회하게 고민 보따리를 늘어놓았다. 그 가운데 높은 공감대를 얻은 발언들을 정리했다. ▲ 지쳐가는 봉사자, 우리는 교회 소모품인가요? “교회 활동을 해보면 봉사하는 청년은 거기서 거기예요. 본당 일 하는 사람이 교구에서, 또 다른 단체에서 일하다 보니 결국 부담이 쌓이고 지쳐서 냉담한 경우가 많아요.”(광주 신재덕 발렌티노) “교회가 봉사자들에게 너무 많은 것을 요구하고 의존하고 있어요. 전문 인력이 필요하다면 일정 부분 고용을 하고 청년들은 진짜 봉사만 할 수 있게 했으면 좋겠어요. 그러면 봉사자도 힘을 얻고 신앙을 더욱 깊이 체험할 수 있지 않을까요?” (전주 김경주 치릴로) ▲ 늘어나는 ‘나이 든 청년’, 몇 살까지 청년인가요? “오늘날 청년의 범주가 너무 다양해요. 결혼했지만 나이가 어린 경우, 미혼이지만 40대를 넘긴 경우, 청년과 장년의 경계에서 나이 때문에 봉사할 시간과 의지, 열정, 기회가 있는데도 스스로 위축되는 일이 많습니다.”(광주 이민영 로사) ▲ 청년 없는 청년 사목 “청년들이 진짜로 원하는 건 우리가 제일 잘 아는데 연수나 피정을 요청하면 지원과 협조보다는 어렵다는 대답을 들을 때가 많아 힘이 빠집니다”(대구 홍대식 대건 안드레아) “어릴 때부터 너희는 교회 미래의 주인공이다는 말을 들었어요. 초중고, 대학생을 지나 어른이 된 지금 저는 언제 주인공이 되나요?”(대전 허현 안젤로) ▲가톨릭 청년 겨냥한 유사종교의 마수 “대학교 안에 유사종교동아리가 많은데 학칙으로 제한을 두지 않아요. 그렇다 보니 가톨릭 학생들이 유사종교에 현혹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대학생들을 위한 신천지 대응과 교육이 시급합니다”(청주 신민경 유스티나) “가톨릭 청년들의 기본적인 교리교육이 부족한 것 같아요. 주위를 보면 성당에 수십 년을 다녔는데도 성경 공부를 제대로 한 적 없다는 청년들이 많아요. 신천지가 소규모 성경 공부로 청년들을 유혹한다는데 우리도 성서 모임을 더욱 다양하게 늘려야 합니다”(마산 구미정 미카엘라) ▲ 신앙생활=시간 뺏기는 일? “행사를 기획해보면 애걸복걸해서 끌어와야 할 정도로 청년들 참여가 저조합니다. 2박 3일 피정을 가려 해도 어느 회사가 금요일에 연차를 내주겠어요? 청년들 주거환경을 생각하면 출퇴근 시간도 길고 회사 눈치도 보이고…성당에 나오려면 현실의 장벽이 꽤 큽니다”(인천 정백현 안드레아) “학생은 시간은 있지만, 돈이 없고, 직장인은 돈은 있지만, 시간이 없어요. 사목 프로그램 아무리 좋아도 현실적으로 왜 청년들 왜 못 오는지 생각해봤으면 좋겠습니다”(마산 정성영 그레고리오)정순택 주교는 “오늘날 젊은이사목의 주인공은 바로 여러분”이라며 “교회는 가르치고, 청년들은 배우는 관계가 아니라 청년들이 삶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바른길을 찾아갈 수 있도록 교회는 동반하며 돕겠다”고 약속했다. 두 번째 모임은 2019년 5월 열릴 예정이며 각 교구의 청년 사목 프로그램을 공유하는 자리로 마련된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세계주교시노드에 참석하고 돌아온 정순택 주교 미니 인터뷰“오늘날 청년들의 성소 식별을 가로막는 걸림돌은 ‘세속주의’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성소 식별은 ‘하느님이 바라는 모습을 찾아가는 여정’입니다. 세상적 가치에 맞춰 성공을 추구하며 살다 보니 성소 식별에 어려움이 생깁니다.”‘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을 주제로 열린 한 달간의 주교 시노드를 마치고 귀국한 정순택 주교는 “성소 식별을 위해 청년들이 ‘새로운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해야 하며 그것을 가능하게 해주는 것이 바로 신앙”이라고 강조했다.“신앙이란 바쁘게 살아가는 청년들에게 성당에 와라, 봉사하라, 단체에서 활동하라고 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세상 밖에서 참된 가치가 무엇인지 제대로 판단하고, 하느님 앞에 보람있는 삶을 성취할 수 있도록 세상을 뚫고 나가는 힘을 길러내는 것이 신앙입니다. 오늘 청년 대표자 모임에서 많은 청년이 지적했듯 성당 ‘일’을 주기보단 가치관을 바로 세워나갈 수 있도록 사목하고 동반하는 것이 교회의 역할입니다.”정순택 주교는 시노드 참가 소감에 대해서는 “시노드는 구체적인 방법론을 제공하는 자리가 아니라 오늘날 청년들이 처한 상황을 진단하고 교회가 나아가야 할 큰 방향을 바라보는 자리였다”며 “각 지역 교회에서 구체적 현실 안에서 풀어야 할 숙제를 안고 왔다”고 말했다. 정 주교는 “청년을 주제로 시노드가 열렸는데도 정작 청년들은 시노드가 열렸는지조차 모르는 경우도 많다”며 “세계 교회의 문헌들이 우리 청년들에게 더 공유되고 직접적인 목소리가 울릴 수 있도록 사목자들의 노력이 더욱 절실하다”고 지적했다.청년 기간이 곧 성소 식별의 기간인 만큼 청년사목과 성소사목을 연결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일반적으로 성소 식별을 이야기할 때 사제, 수도자, 평신도 세 갈림길 중 하나를 선택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정확히는 하느님 앞에서 그리스도인으로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찾아가는 과정”이라며 “우리 교회는 주로 ‘사제 성소 양성’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는데 더 큰 눈으로 성소 사목과 청년 사목을 연계할 것”이라고 밝혔다. 유은재 기자 cpbc2018.11.07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93)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십시오”(유다 20)](//cpbc.co.kr/CMS/newspaper/2018/04/rc/716086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93) “지극히 거룩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십시오”(유다 20)불경하면 하느님 심판을 면치 못하리니 구약성경 민수기에 등장하는 발라암은 예언자임에도 하느님의 천사를 알아보지 못하는 거짓 예언자로 그려지고 있다. 유다 서간에는 이처럼 불경한 자들에 대한 경고가 담겨 있다. 그림은 율리우스 카롤스펠트 작 ‘발라암을 가로막은 천사’. 출처=「아름다운 성경」 유다 서간(이하 유다서)은 25절로 이루어진 짧은 편지입니다. 이 서간은 짧은 편지 형태의 서문(1-2절)과 결문을 대신하는 찬송(24-25절)과 함께 전해집니다. 그 형태로 보면 바오로 사도의 차명 서간과 비슷해 보입니다. 저자는 자신을 “야고보의 동생인 유다”라고 소개합니다.(유다 1) 여기서 야고보는 제베대오의 아들이 아닌 주님의 형제 야고보입니다.(마르 6,3; 마태 13,55 참조) 저자 역시 스스로 주님의 형제인 유다라고 표현합니다. 이 서간은 언어나 내용적인 면에서 주님의 형제 유다가 직접 쓴 편지이기보다 차명 서간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편지의 수신인들은 명확하게 표현되지 않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이들, 곧 하느님 아버지께서 사랑하시고 예수 그리스도께서 지켜 주시는 이들”로, 넓은 의미의 신앙인들을 향한 것처럼 표현됩니다. 구체적으로 유다서가 생각한 이들을 추측하기 어렵지만, 현대의 많은 학자는 바오로 사도가 선교했던 지역의 사람들일 것으로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편지의 내용이 바오로 사도의 신학과 상당히 유사하고 일부 내용은 바오로 사도의 특정한 서간을, 예를 들어 코린토 1서를 생각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불경한 자들에 대한 경고유다서의 주된 내용은 “불경한 자들”(유다 4)에 대한 경고입니다. 이들은 “하느님의 은총을 방탕한 생활의 방편으로 악용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하는” 자들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은 “몸을 더럽히고 주님의 주권을 무시하며 영광스러운 존재들을 모독합니다.”(유다 8) 그들의 가장 큰 죄는 “불륜과 변태적인 육욕에 빠진” 것입니다. 또, 그들의 행실은 “카인의 길을 따라 걸었고 돈벌이 때문에 발라암의 오류에 빠졌으며 코라처럼 반항”하는 것으로 드러납니다.(유다 11)성경에서 ‘길을 걷는다’는 표현은 많은 경우에 윤리적인 처신이나 생활 방식을 말할 때 사용되는 비유입니다. 이들이 카인의 길과 비유되는 것은 카인에게 내려진 결과와 같은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창세 4,11-12) 발라암은 구약성경의 민수기에 등장하는 이방인 예언자입니다. 민수 22―24장에 기록된 발라암의 모습은 그렇게 부정적이지 않지만, 후대에 발라암은 발락의 사주를 받아 하느님의 백성을 우상숭배에 빠지게 한, 특히 윤리적인 부도덕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져온 부정적인 인물로 소개됩니다.(민수 33,16 참조) 발라암은 유다교 안에서 이미 예언자임에도 불구하고 하느님의 천사를 알아보지 못한 자로 평가되고 하느님보다 자신을 드러낸 거짓 예언자로 이해됩니다. 자신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을 배신하도록 만든 발라암은 성경에서 우상숭배를 조장한 대표적인 인물로 그려집니다.(묵시 2,14) 코라는 모세와 아론에게 대항해 반역을 일으켰던, 하느님을 업신여겼던 인물입니다.(민수 16장) 이들에 대해 유다서는 이렇게 평가합니다. “저들은 불평꾼이며 불만꾼으로 자기 욕망에 따라 살아가는 자들입니다. 잇속을 챙기려고 사람들에게 아첨하면서 입으로는 큰소리를 칩니다.”(유다 16) 신앙인들이여 자비를 베푸소서 유다서는 신앙인들에게 이런 불경한 자들의 가르침과 그들의 행실을 따르지 않도록, 그들이 받게 될 심판에서 벗어나도록 권고합니다. 권고의 내용은 크게 세 가지입니다. 우선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자세는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성령 안에서 기도하면서 “믿음을 바탕으로 성장해” 나아가도록 권고합니다. 둘째는 “하느님의 사랑 안에서 자신을 지키며” 자비를 청하는 것입니다. 이 권고에는 자신의 행실에 따라 모든 사람이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는 생각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유다서는 신앙인들 역시 자비를 베풀도록 권고합니다. 유다서는 이런 권고와 함께 하느님의 업적을, 하느님이 베풀어주신 자비와 구원, 그리고 불의한 자에 대한 심판을 기억하도록 초대합니다. “여러분이 넘어지지 않도록 지켜주시고, 당신의 영광 앞에 흠 없는 사람으로 기쁘게 나서도록 해주실 수 있는 분, 우리의 유일하신 구원자 하느님”을 찬송하는 편지의 마지막은 신앙인들을 위한 기도이기도 합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8.04.03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17) 스테파노가 체포되다 (6,8-15)](//cpbc.co.kr/CMS/newspaper/2019/05/rc/753023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17) 스테파노가 체포되다 (6,8-15)어떤 적대자도 맞서지 못한 스테파노의 지혜와 성령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 최고의회에 끌려가 거짓 증인들에 의해 고발을 당한다. 사진은 예루살렘 키드론 골짜기에 있는 성 스테파노 기념 성당. 정교회가 소유하고 있는 성당이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스테파노를 비롯한 일곱 봉사자를 뽑는 이야기에 이어 사도행전 저자는 즉시 스테파노를 부각시킵니다. 스테파노의 체포(6,8-15)를 시작으로 설교(7,1-53)와 순교(7,54-60)로 이어지는 스테파노 이야기는 사도행전 첫 부분의 대미를 장식하면서 또 다른 국면으로 이어지는 연결고리 역할을 합니다. 이번 호에는 체포 이야기를 살펴봅니다. 지혜와 능력 충만한 스테파노일곱 봉사자 선출과 관련한 앞 대목에서 스테파노를 “믿음과 성령이 충만한 사람”(6,5)으로 묘사한 루카는 스테파노의 체포 이야기에서도 “은총과 능력이 충만한 스테파노는…”(6,8)이라는 표현으로 시작합니다. 이 두 절을 합쳐서 보면, 스테파노는 믿음과 성령으로 충만했기에 성령께서 주시는 은총과 능력으로 충만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 스테파노는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6,8) 일으킵니다. 사도행전에서 ‘이적과 표징’은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로 이해됩니다.(2,19.22 참조) 이적과 표징은 또한 예수님께서 일으키시는 일이기도 합니다.(2,22; 4,30)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을 통해 많은 이적과 표징들을 일어나게 하십니다.(2,43; 5,12) 스테파노가 “백성 가운데에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켰다”는 것은 단순히 식탁 봉사를 하는 차원을 넘어 이적과 표징들을 통해 사도들이 하는 일 곧 말씀 선포의 직무도 함께 행하고 있으며 적어도 행하는 일에서는 사도들과 같은 대열에 있음을 짐작하게 해줍니다. 백성 가운데서 큰 이적과 표징들을 일으킨다면 당연히 사람들이 주목하고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유식하다고 하는 사람들은 반박도 할 것입니다. 바로 이런 일이 스테파노에게 벌어집니다. 몇몇 사람이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인 것입니다. 그들은 “해방민들과 키레네인들과 알렉산드리아인들과 킬리키아와 아시아 출신들의 회당에 속한 사람”(6,9)이었습니다.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기에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을까요? 스테파노와 논쟁한 사람들해방민들이란 전쟁 등으로 노예가 돼 끌려갔다가 자유인이 돼 풀려난 사람 또는 그 후손을 가리킵니다. 실제로 로마 장수 폼페이우스는 기원전 63년에 많은 유다인들을 노예로 끌고 갔다고 하지요. 키레네인들은 북아프리카, 지금의 리비아에 있는 도시 키레네에서 살았던 유다인들을 가리킵니다. 당시 키레네에는 많은 유다인이 살았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골고타로 십자가를 지고 가실 때에 병사들이 키레네 사람 시몬을 붙잡아 강제로 십자가를 지게 했는데(마르 14,21), 같은 지역을 가리킵니다. 알렉산드리아는 이집트에 있는 큰 항구도시로서 그리스 문화의 중심지였습니다. ‘70인역’인 그리스어 구약성경이 편찬된 곳이 바로 알렉산드리아입니다. 킬리키아는 오늘날 터키 남부 지역으로 그 지방의 수도는 바오로 사도의 출신지인 타르수스였습니다. 따라서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인 이들은, 말하자면 대부분이 외지에서 들어온 유다인로서 예루살렘에서 자기들을 위한 회당을 두고 있을 정도로 신심이 깊었고, 유다교의 가르침이나 율법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이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들이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였지만 “스테파노의 말에서 드러나는 지혜와 성령을 당해낼 수가 없었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6,10) 이 표현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재난이 시작되어 증언할 기회가 올 때에 “어떠한 적대자도 맞서거나 반박할 수 없는 언변과 지혜를 내가 너희에게 주겠다”(루카 21,15)고 하신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이 스테파노에게서 그대로 실현되고 있는 것입니다. 스테파노를 당해낼 수 없게 되자 그들은 사람들을 선동해 “우리는 그가 모세와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들었습니다” 하고 말하게 합니다.(6,11) 그뿐 아니라 백성과 원로들과 율법학자들까지 부추기고는 스테파노를 붙잡아 최고의회로 끌고 갑니다. 그리고 거짓 증인을 내세워 말하게 합니다. “이 사람은 끊임없이 이 거룩한 곳과 율법을 거슬러 말합니다. 사실 저희는 그 나자렛 사람 예수가 이곳을 허물고 또 모세가 우리에게 물려준 관습들을 뜯어고칠 것이라고, 이자가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6,12-14) 거짓 고발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이던 이들이 사람들을 선동하고 거짓 증인을 내세워 고발하게 하는 모습은 예수님의 재판 때 모습과 흡사합니다. “우리는 저자가, ‘나는 사람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허물고, 손으로 짓지 않는 다른 성전을 사흘 안에 세우겠다’고 말하는 것을 들은 적이 있습니다.”(마르 14,58; 마태 26,61) “그러자 최고의회에 앉아 있던 사람들이 모두 스테파노를 유심히 바라보았는데, 그의 얼굴은 천사의 얼굴처럼 보였다”고 사도행전 저자는 기록합니다.(6,15) 유심히 바라본다는 것은 스테파노가 무슨 말을 할지 주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읽고 나서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의 눈이 예수님을 주시한 것과 비슷한 상황입니다.(루카 4,20) 스테파노의 얼굴이 천사 얼굴처럼 보였다는 것은 그의 모습이 거룩하게 변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 타보르산에서 모습이 거룩하게 변하셨고(루카 9,29),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주님과 말씀을 나누고 내려왔을 때 얼굴이 빛난 데서 알 수 있듯이(탈출 34,29), 스테파노의 얼굴이 변했다는 것은 이제 중대한 일이 있으리라는 것을 예고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살펴보겠습니다.생각해봅시다1.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잘 났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이 함께 논쟁을 벌였지만, 스테파노를 당해낼 수 없었던 것은 스테파노에게 은총과 능력이 충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스테파노가 은총과 능력이 충만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믿음과 성령이 충만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일을 하는 데 무엇이 필요하고 무엇이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하느님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의 영 곧 성령으로 충만해야 합니다. 그러려면 무엇보다 믿음이 충만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이라도 있으면, 이 돌무화과나무더러 ‘뽑혀서 바다에 심겨라’ 하더라도, 그것이 너희에게 복종할 것이다.”(루카 17,6) 우리의 믿음은 어느 정도인지요? 우리는 어떤 믿음을 지니고 있는지요? 2. 스테파노와 논쟁을 벌인 사람들은 나름대로 확신에 차서 논쟁을 벌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논쟁에서 당해내지 못하자 사람들을 선동합니다. 그뿐 아니라 거짓 증인들을 내세워 고발하게 합니다. 우리 역시 살아가면서 논쟁을 벌일 때가 많습니다. 처음에는 선의에서 시작하지만, 논쟁이 격화하면 무슨 수를 써서라도 상대방을 짓누르려고 하기 쉽습니다. 바로 이 점을 우리는 경계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더욱 큰 악을 불러일으킬 수 있습니다. 평화신문2019.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