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소일 위원의 일치순례기 붓다의길 예수의길] (4·끝) 붓다의 입멸지 쿠시나가르](//cpbc.co.kr/CMS/newspaper/2019/04/rc/751405_1.0_titleImage_1.jpg)
[김소일 위원의 일치순례기 붓다의길 예수의길] (4·끝) 붓다의 입멸지 쿠시나가르예수와 붓다가 통하다 사랑과 자비 쿠시나가르 열반당에 있는 붓다의 열반상은 길이 6.1m의 금박 와불이다. 전 세계 불자들의 순례와 기도가 끊이지 않는 곳이다. 한국의 종교지도자들은 사원 측의 배려로 별도의 기도시간을 배정받고 종교간 화합과 한반도 평화를 기원했다. 길 위에서 마친 붓다의 삶붓다는 길 위에서 태어나 길 위를 떠돌다가 길 위에서 삶을 마쳤다. 당시 인도 북부에는 16개 작은 나라가 있었다. 붓다의 설법 여행은 주로 마가다국을 중심으로 국경을 넘나든다. 조계종 총무원장 원행 스님은 그 여정을 “동서 삼천 리, 남북 이천 리”로 표현했다.붓다의 마지막 여행은 마가다국 수도 왕사성에서 쿠시나가르로 가는 북행이었다. 북서쪽으로 300㎞쯤 되는 곳이다. 이미 여든에 이른 붓다에게는 힘겨운 길이었다. 머물고 설법하며 몇 달에 걸쳐 걸었을 것이다. 붓다는 이 길에서 곧 다가올 열반을 몇 차례 예고한다. 마지막 공양을 바친 사람은 대장장이 춘다였다. 일종의 버섯 요리였다고 전한다. 붓다는 쿠시나가르에 이르러 몸을 눕혔다. 머리를 북쪽으로 두고, 오른쪽 옆구리를 땅에 댔다. 제자들에게 마지막 설법을 하고 열반에 들었다. 사방에 두 그루씩 사라쌍수가 그 열반을 지켜보았다. 순례와 기도의 열기 넘치는 열반당쿠시나가르의 열반당에 들어서면 숙연한 마음을 감출 수 없다. 붓다는 길이 6.1m의 대형 금박 와불로 누워 있다. 불심 깊은 순례자들이 끊임없이 참배하고 꽃을 바친다. 준비해온 비단으로 불신을 덮고 나직한 소리로 경을 왼다. 그 신심과 기도의 열기가 공간을 채우고 흘러넘친다. 위대한 구도자의 가르침은 2500년의 세월을 넘어 수많은 사람의 가슴에 꿈틀거리며 살아 있다.예수 그리스도의 죽음은 그리스 비극처럼 잘 짜인 서사적 구조로 흐른다. 슬프고 아름답고 장엄하다. 그분은 나귀를 타고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한다. 군중은 길바닥에 겉옷을 깔고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며 외친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그러나 그분은 다가올 수난을 알고 있다. 최후의 만찬을 준비하고 제자들의 발을 씻긴다. 한 제자의 배신을 예고하고 동산으로 물러나 홀로 기도한다. 군사들에게 붙잡혀 재판을 받을 때 군중은 소리친다.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 그들은 바로 며칠 전 ‘호산나!’를 외쳤던 군중이었다.가장 큰 계명,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경전은 붓다의 마지막 가르침을 ‘자등명(自燈明) 법등명(法燈明) 자귀의(自歸依) 법귀의(法歸依)’로 전한다. 자신을 등불로 삼고, 법을 등불로 삼으며, 자신을 귀의처로 삼고, 법을 귀의처로 삼아 정진하라는 뜻이다. 팔리어 원전에는 등불이 아닌 섬이라고 한다. 진리를 바다 한가운데 떠 있는 섬처럼 여기고 오직 그에 귀의하라는 뜻일 터다.성경에도 비슷한 가르침이 있다. 역시 수난과 죽음을 앞둔 시기다. 율법 교사 한 사람이 물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그분이 답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마태 22,35-40)과연 그렇다. 그리스도의 모든 가르침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 두 가지로 요약된다. 붓다가 강조한 ‘법을 등불 삼고, 법에 귀의하라’는 가르침은 아마도 ‘하느님 사랑’과 통할 것이다. 다만 ‘자신을 등불 삼고, 자신에게 귀의하라’는 가르침은 ‘이웃 사랑’과 미묘하게 엇갈린다. 서로 방향이 다르다. 한쪽은 내면을 향하고, 다른 쪽은 바깥을 본다. 깨우침을 강조하는 불교와 사랑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그리스도교의 특성이 드러난다.비슷하면서도 다른 수행문화가톨릭과 불교 사이에는 다름과 같음이 공존한다. 두 종교는 비슷하면서도 색다른 수행문화를 갖고 있다. 선불교에 참선 문화가 있다면, 가톨릭에는 사막의 은수자로부터 이어져 온 치열한 수도 문화가 있다. 기도와 노동으로 이뤄진 단순한 삶의 전통은 오늘날 남녀 수도원에 면면히 흐른다.물론 그 수행에는 본질적인 차이도 있다. 불교적 수행이 해탈과 성불을 목표로 한다면, 가톨릭은 신비적 합일과 구원의 은총을 갈구한다. 깨달음은 철저하게 고독한 수행을 요구한다. 가족도, 이웃도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홀로 가야 한다. 가톨릭 수도 문화는 공동체적 사랑을 중시한다. 미운 이를 용서하고 괴로운 이에게도 순명한다. 저 천덕꾸러기 형제를 사랑하지 못하면 은총도, 구원도 얻지 못한다. 잘나고 못난 이웃을 사랑할 수 있어야 한다. 이웃 사랑이 부족하면 하느님도 사랑할 수 없다.대자대비와 사랑 붓다는 지혜와 더불어 대자대비의 상징이다. 자비는 지혜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아마도 사랑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출가와 수행이 개인의 해탈만을 목표로 한다면 그 가르침을 잘못 이해한 것일 수 있다. 대승불교는 이타행(利他行)을 강조한다. 상구보리(上求菩提) 하화중생(下化衆生)이 보살의 덕목이다. 위로는 깨달음을 구하고 아래로는 중생에게 다가가야 한다. 홀로 깨달아 성불하는 길은 외롭고 불확실하다. 매일의 삶 속에 실천하는 연민과 자비에도 성불의 길은 열려 있을 것이다.결국, 두 종교는 사랑과 자비로 서로 만난다. 관용과 존경으로 서로를 긍정한다. 쿠시나가르의 열반당을 물러나며 프란치스코 교황을 떠올렸다. “삶이라는 것은 길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우리는 형제들입니다.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도록 합시다.”감사한 마음으로 순례를 마쳤다. 짧지만 강렬한 체험이었다. 불교와 그리스도교를 함께 생각해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순례의 끝이 어디 있을까. 인생이 곧 순례이니 삶이 다하는 그 순간까지 우리는 순례자다. 허락된 시간만큼 걸어가는 나그네일 뿐이다. 인도=김소일 기자 sonos@cpbc.co.kr cpbc2019.04.23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76) 무화과나무의 교훈과 깨어 있어라 (루카 21,29-38)](//cpbc.co.kr/CMS/newspaper/2018/08/rc/729698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76) 무화과나무의 교훈과 깨어 있어라 (루카 21,29-38)깨어 기도하며 완성될 하느님 나라 기다려야 예수님께서는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셨고 밤에는 올리브 산으로 가서 묵으셨다. 사진은 예루살렘 성전이 있던 자리인 황금 돔 사원(이슬람교 대사원) 쪽에서 본 올리브 산 전경. 원 안은 올리브 산 중턱 주님 눈물 성당 모습. 앞에서 살펴봤듯이 루카복음은 21장 5절부터 계속해서 종말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말씀은 성전 파괴에 대한 예고(21,5-6), 재난의 시작(21,7-19), 예루살렘의 멸망 예고(21,20-24),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날에 관한 말씀(21,25-28)으로 이어집니다. 이번 호에는 그 마지막 부분으로 무화과나무가 주는 교훈에 관한 말씀과 깨어 기도하라는 말씀에 대해서 알아봅니다. 무화과나무의 교훈(21,29-33)무화과나무는 성경에서 50회 가까이 언급되는 대표적인 성경 속 식물 가운데 하나입니다. 예수님께서 무화과나무를 비유로 들어 말씀하시는 것은 이 나무에 대해 당시 이스라엘 사람들이 잘 알고 있음을 전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비유와 관련된 예수님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째 부분은 “무화과나무와 다른 모든 나무를 보아라. 잎이 돋자마자 너희는 그것을 보고 여름이 이미 가까이 온 줄을 저절로 알게 된다. 이와 같이 너희도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21,29-31)까지입니다. 무화과나무를 비롯한 다른 나무들에 잎이 돋아나면 여름이 이미 가까이 왔음을 알게 되는 것처럼 예수님께서 지금까지 말씀하신 종말에 관한 표징들이 나타나는 것을 보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라는 말씀입니다. 주목할 구절은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입니다.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르코복음이나 마태오복음에서는 ‘하느님 나라’가 아니라 ‘사람의 아들’로 표현하고 있습니다.(마태 24,33; 마르 13,29) 성경학자들은 루카 복음사가가 사람의 아들을 하느님의 나라로 바꿨다고 봅니다. 하느님 나라는 복음서들, 특히 마르코 마태오 루카 세 공관 복음서의 주요 내용이자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의 핵심입니다. 나아가 예수님께서는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마태오복음에서는 ‘영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루카 11,20; 마태 12,28) 하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과 함께 하느님 나라가 시작됐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무화과나무 잎이 돋아나는 것처럼, 종말의 표징들이 나타나면 종말에 오실 ‘사람의 아들’이 가까이 온 줄로 알아라”하고 표현한 마르코복음이나 마태오복음이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 하고 표현한 루카복음보다 훨씬 사리에 맞게 보입니다. 그런데 왜 루카 복음사가는 ‘사람의 아들’을 ‘하느님 나라’로 바꾸었을까요?이렇게 생각해 보면 어떨지요.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이 오심으로써 이미 시작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치유 행위 그리고 기적적인 행동들은 하느님 나라가 와 있음을 알리는 표징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 후 제자들의 복음 선포 활동으로 많은 이들이 이를 받아들이고 믿음의 공동체에 들었습니다. 하지만 신자들은 박해를 받았고 시련을 겪었습니다. 그러면서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종말을 기다리게 됐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사람의 아들이 다시 오시는 종말이 단지 심판이 아니라 이미 예수님과 함께 시작한, 그러나 아직 완전히 실현되지 않은 하느님 나라의 완성이라는 측면을 강조하고자 했습니다. 그래서 종말 심판자의 느낌을 주는 ‘사람의 아들’ 대신에 ‘하느님 나라’라는 표현을 사용했으리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온 줄 알아라”는 표현은 하느님 나라가 완전히 실현될 날이 가까웠다는 표현인 셈입니다.예수님 말씀의 두 번째 부분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가 지나기 전에 모든 일이 일어날 것이다. 하늘과 땅은 사라지더라도 내 말은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이다”(21,32-33)는 종말의 표징들이 나타나면 하느님 나라가 완성되리라는 말씀이 결코 헛말이 아님을 단호하게 천명하고 확인해 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깨어 있어라(21,34-38)그래서 제자들에게 또 제자들의 공동체에게 요청되는 자세는 깨어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21,34) 하는 것입니다.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에 젖어 지내는 것은 종말이 가까웠음을,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와 있음을 깨닫지 못하고 현실의 덫에 빠져 지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덫에 빠져 사람의 아들이 오시는 종말에 완전히 실현될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하려면 “깨어 기도하여야”(22,36) 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종말에 관한 예수님 말씀을 이렇게 전하고 나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하신 마지막 활동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낮에는 성전에서 가르치시고 밤에는 올리브 산이라고 불리는 곳으로 묵곤 하셨다. 온 백성은 그분의 말씀을 들으려고 성전에 계신 그분께 이른 아침부터 모여들었다.”(21,37-38)생각해 봅시다예수님의 부활과 성령 강림부터 세상 종말이 오고 하느님 나라가 최종적으로 실현될 그 날까지를 교회의 시대라고 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은 교회를 통해 온 세상에 퍼져나갈 것입니다. 그와 함께 마치 겨자씨가 자라 큰 나무가 되듯이 하느님 나라도 성장할 것입니다. 종말에 완성될 그 날까지. 우리는 지금 교회의 시대를 살고 있고, 루카 복음사가가 복음서를 썼을 때에 함께했던 그 신자 공동체는 그 교회 시대의 첫 세대였습니다. 그렇다면 루카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말씀을 통해서 자기 신자 공동체에게 전하려고 했던 그 메시지는 오늘날 우리에게도 여전히 유효합니다.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여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으로 너희 마음이 물러지는 일이 없게 하여라. … 늘 깨어 기도하여라.”우리는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의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마음은 늘 기쁨에 차 있어야 합니다. 하지만 이미 시작된 하느님 나라는 아직 완성되지 않은 나라입니다. 밀과 가라지가 함께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긴장 속에서 늘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다시는 방탕과 만취와 일상의 근심에 젖어 헤어나지 못하는 일이 없어야 하겠습니다. 평화신문2018.08.07

구약에 대한 단편적 지식… 눈높이 해설로 묶는다 동명이인의 두 신부가 비슷한 시기에 구약성경 해설서를 펴냈다. 두 신부 모두 성경에 정통한 사제들이다. 대구대교구 원로사목자 박영식 신부는 창세기 해설서를, 서울대교구 가톨릭대 교수 박영식 신부는 탈출기 해설서를 펴냈다. 성서학 박사들이 깊은 지식으로 쉽게 풀어주는 구약 이야기를 펼쳐보자.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창세기 해설과 5분 명상 박영식 신부 지음 / 가톨릭출판사 / 1만 5000원하느님은 한 처음에 ‘빛’으로 세상을 창조했다. 낮과 밤, 육지와 바다, 집짐승과 들짐승들을 제 모습대로 만든 하느님이 맨 마지막에 창조한 피조물은 사람. 하느님은 사람에게 ‘땅을 지배하고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고 명했다.그리고 사람에겐 피조물을 다스리는 권한을 주셨다. 그러나 인간이 마치 지구상 모든 피조물의 지배자인 것처럼 여기면 곤란하다. 저자는 하느님이 주신 ‘땅을 지배하는 권한’은 피조물을 파괴하거나 착취하는 권한이 아닌, 그분 대신 땅을 경작하고 보살피며 문화를 창출하는 권한이라고 일러준다.책은 성경과 함께 펼쳐놓고 읽어야 한다. 1990년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취득한 박영식(대구대교구) 신부는 지금까지 수많은 저서와 글을 통해 성경 말씀을 올바로 전하는 데 힘써왔다. 책은 창세기 기원부터 태초의 역사, 이스라엘 민족과 조상들에 관한 방대한 이야기를 여러 성경 구절을 인용하며 설명해주고 있다.저자의 해설은 촘촘하다. 하느님은 엿새 동안 당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고 ‘참 좋았다’고 강조한다. ‘참 좋았다’란 뜻은 이전에 그냥 ‘좋았다’라고 하는 말과는 달리, 부족하거나 약하거나 나쁜 것이 전혀 없고 모든 피조물이 아름답고 완벽함을 이르는 말이다.하느님은 당신 ‘생명의 숨’을 불어넣어 사람을 당신 모습으로 창조했다. 이 생명의 숨은 하느님과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것으로, 다른 피조물과 다른 신에 깃드는 ‘영’(靈)과는 다르다. 이 숨은 여타 그리스 철학자들이 말하는 육체와 영혼과는 구별된다.에덴동산의 선악과(善惡果)가 뜻하는 것은 무엇일까. 구약의 지혜문학 작품에 따르면 하느님만이 지닌 지혜가 있는데, 이는 사람이 획득할 생각조차 해서는 안 되는 지혜다. 선악과와 나무는 하느님의 지혜를 상징하며, 사람의 이해를 능가하는 신비다. 아담과 하와를 향한 하느님의 금령은 제 마음대로 선과 악을 정하지 말고, 하느님의 법과 계시에 의지하라는 가르침이다. 그래서 선악과를 따먹은 행위는 인간의 교만과 원죄로 통한다.저자는 아브라함과 야곱 이야기에 이어 요셉의 죽음에 이르는 모세오경 첫 권의 이야기들을 쉽게 풀이해주고 있다. 중간중간 ‘5분 명상거리’를 제공하며 “하느님을 저버리고 서로 무관심하고 해치는 것은 곧 외로움의 시작이요, 삶의 기쁨은 곧 이웃과의 관계 속에서 비롯된다”고 일깨운다. 박 신부는 「탈출기 해설과 5분 명상」도 조만간 출간할 예정이다.탈출기 2(19ㅡ40장) 박영식 신부 지음 / 성서와함께 / 1만 1000원 탈출기 2 ‘광야’는 어떤 곳인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 종살이에서 벗어나 맞이하게 된 또 다른 고통의 장소일 뿐일까.박영식(서울대교구, 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탈출기 광야의 상징에는 하느님의 자유가 충만한 지평선에 도달하기 전, 반드시 거쳐 가야 하는 ‘순례의 시간’과 ‘기다림의 시간’이 감춰져 있다”고 말한다. 광야의 기다림은 모든 인간이 겪는 피할 수 없는 현실이며 성장과 성숙으로 나아가는 필연적 과정이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광야를 ‘긍정적 모험의 장소’라고 칭한다.박 신부는 교황청립 성서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우르바노대 초빙 교수, 가톨릭대 총장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으로 활동 중이다. 2년여 만에 탈출기 후반기에 해당하는 19ㅡ40장 안내서를 출간해 구절마다 담긴 깊은 신학적 의미를 설명해주고 있다.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우주적 저항’을 경험한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당신 권능으로 백성의 여정을 방해하는 모든 장애물을 제거한다. 마싸와 므리바에서 목마름이 해결된 것도, 만나와 메추라기로 굶주림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것도 하느님의 손길 덕분이다. 온갖 역경과 유혹을 이겨낸 이스라엘 백성은 마침내 모세를 통해 ‘계약’으로 하느님과 가장 특별하고도 영원한 관계를 맺게 된다.“나는 너를 이집트 땅, 종살이하던 집에서 이끌어 낸 주 너의 하느님이다.”(20,2) 이 같은 ‘하느님의 자기 계시’는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의 관계를 새로운 국면으로 초대한다. 저자는 “하느님께선 순명을 요구하시지만, 당신이 베푸셨으므로 그 대가로 인간에게 순종을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설명한다. 그보다 하느님 선물에 충실할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고 이른다. 또 이어지는 “너에게는 나 말고 다른 신이 있어서는 안 된다”라는 말씀도 유일하신 하느님 앞에서 백성들이 임해야 할 처신을 가르치는 것이지, 유일신을 직접적으로 주장하는 표현은 아니라고 설명한다.하느님 계명을 실천하는 이들에게는 복이 주어진다. “천대에 이르기까지 자애를 베푼다”는 말씀은 많은 후손에게 자애를 베푼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어 등장하는 성막을 통해 하느님은 천상과 지상에서 현존하심을 드러낸다. 하느님의 거처가 성막으로 옮겨지는 것은 공간적 이동의 의미를 넘어 우리에게 내려오신다는 신학적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금송아지 배교 사건이 담고 있는 의미, 영험한 구름 기둥이 있는 ‘만남의 천막’에서 모세와 하느님의 만남이 담고 있는 뜻이 상세히 펼쳐진다. 백영민2018.04.25

남녀의 결합, 하느님 맺어주신 혼인 안에 이뤄져야 국내 최초로 가톨릭 성 윤리 번역서 출간한 한광석 신부 “최근 교회 안팎으로 성추문이 이어져 가톨릭 성(性) 윤리를 다룬 번역서를 내놓는 데 부담감이 컸습니다. 그럼에도 신학생들을 위한 교재조차 없다는 안타까움 때문에 펴냈습니다.” 대전가톨릭대에서 윤리신학을 강의하는 한광석(대전교구 홍보국장 겸 비서실장, 사진) 신부가 최근 가톨릭교회의 성 윤리를 다룬 「가톨릭 성(性) 윤리」를 국내 최초로 번역 출간했다. 원서는 미국가톨릭대 부설 교황청립 요한 바오로 2세 혼인과 가정연구소의 윌리엄 E. 메이 명예교수, 피츠버그교구 ‘성인과 가정 종교교육’ 책임자이자 스튜번빌대 교수 로날드 롤러(카푸친 작은 형제회) 신부, 조셉 보일 주니어 토론토대 철학과 교수 등이 공동 저자로 참여했다. 한 신부는 “국내에도 생명윤리나 환경윤리 등에 대한 책은 나와 있는데, 성 윤리에 대해선 번역서 한 권 나와 있는 게 없었다”며 “그래서 신학생들을 위해 미국 천주교회에서 보편적으로 읽히는 책을 골라 번역했다”고 배경을 설명했다. 한 신부는 이어 “가톨릭 성 윤리는 성행위가 하느님이 맺어주신 혼인 안에서 이뤄질 때 의미가 있다고 가르친다”며 “따라서 성 윤리는 혼인과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강조했다. “교회는 혼인이라는 적합한 상황에서 자신의 전 존재를 나누며 출산을 지향하는 건강한 사랑의 행위일 때, 성행위는 근본적으로 선하다고 가르칩니다. 행위자의 지향이나 행위가 이뤄지는 상황, 행위의 결과나 목적 가운데 어느 하나라도 악한 것이 있을 때는 선한 행위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러면서도 한 신부는 “교회 가르침과 달리 현대 상황은 성을 혼인과 상관없이 즐기는 쾌락의 도구로 사용하는 경향이 크고, 신자들 또한 교회의 가르침을 따르지 않는 경향이 있어 끝까지 번역해야 하는 건지 회의도 없지 않았다”고 털어놓았다. 이어, “성 윤리 문제는 국내에 전문가도 없고, 가르치는 분도 없고, 저 또한 제대로 배운 적이 없어 막막했다”면서도 “누군가 하겠지 하고 기대했는데 결국은 아무도 연구하지 않아 몇 년 동안 자투리 시간을 내 번역을 마무리했다”고 설명했다. 한 신부는 “그리스도인에게 정결의 문제는 혼인한 사람이나 혼인하지 않은 사람, 나아가 성직자나 수도자 모두에게 공통 과제”라며 “이번에 번역한 책은 성경에서부터 초기 교부들, 교회 가르침, 신학자들 연구 성과까지 모두 담고 있다”고 말했다. 한 신부는 “다만, 내용이 다소 어려울 수도 있어 이를 쉽게 풀어내는 건 또 다른 과제가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또 “성 윤리에 대한 교회의 아름다운 가르침을 본당이나 청소년들에게 전해주는 건 성을 풍요롭게 하는 윤리적 기반이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cpbc2018.10.24

하느님 말씀 거름 삼아 참 신앙인으로 거듭나기 서울 면목동본당, 신자 재교육, 천호동본당 ‘성서 100주간’ 확대
서울 천호동본당 신자들이 성서 100주간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모습. 천호동본당 제공 연간 세례자 수가 줄고 냉담 교우가 늘어나는 현실에서 서울대교구 본당들이 하느님 말씀을 거름 삼아 적극적으로 ‘신자 재교육’에 나서고 있다.면목동본당(주임 조재연 신부)은 30여 명의 예비신자와 130여 명의 견진 대상자를 포함해 전 신자 대상 ‘함께하는 여정’에 돌입했다. 면목동본당은 2월 25일 교중미사 후 마리아홀에서 ‘함께하는 여정의 재복음화 첫 모임’을 열고 500여 명의 신자가 참여하는 6개월의 여정에 돌입했다. 첫 모임에서는 주임 조재연 신부와 사목 코디네이터(직원), 봉사자들이 신자 재복음화를 위한 교육 교재이자 소공동체 프로젝트인 ‘함께하는 여정’을 소개하고, 함께하는 여정의 방법과 의미, 목적 등을 전했다.조 신부는 “각 구역ㆍ반(두레) 모임 때는 기도로 준비하고, 마음을 열고 적극적인 자세로 성경 말씀을 가까이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성경 말씀을 듣고 기도하고 묵상한 후 서로 솔직하게 생각을 나누는 시간은 구성원 각자의 경험과 신앙의 깊이를 전하게 하고, 공동체에 구성원이 받아들여졌다고 느끼게 함으로써 신앙이 두터워지게 해준다”고 강조했다.본당은 2015년 하반기 조 신부가 부임하면서 서울대교구형 소공동체 프로그램 ‘말씀터’를 실시, 하느님 말씀인 성경의 맛에 눈을 뜨고 공동체 모임과 나눔의 의미를 깨우쳐 왔다. 앞으로 6개월간 이어지는 함께하는 여정에 참여하는 9개 두레(구역) 40여 개 반원은 복음을 통해 교회의 삶이 공동체의 삶으로 확장되는 여정에 나서게 된다.천호동본당(주임 임승철 신부)은 신자 재교육을 위해 ‘성서 100주간’을 전 반ㆍ구역으로 확대했다. 올해 본당 설립 60주년을 맞는 본당은 사목 목표를 ‘우리의 희망 성서 100주간, 우리의 평화 성체조배’로 정하고 전 신자 성서 100주간 시행에 나섰다. 이를 위해 지난 2월 23일 말씀봉사자 160여 명을 양성, 파견 미사를 봉헌했다. 25일에는 교중미사 때 성서 100주간을 활용한 반 모임 시연을 선보이기도 했다. 천호동 공동체는 6일부터 121주간의 성서 100주간 대장정에 돌입한다.봉사자 파견 미사 때 예로니모 성인의 말씀을 예로 든 임승철 신부는 “성경을 모르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이고, 그리스도를 모르는 사람은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라며 “본당 공동체에 하느님의 말씀이 힘차게 퍼져나가 진정한 복음의 기쁨, 평화의 메시지를 전하는 주님의 자녀가 되길 희망한다”고 당부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평화신문2018.02.28
 한글, 복음 전파 일등 공신되다](//cpbc.co.kr/CMS/newspaper/2018/10/rc/735640_1.0_titleImage_1.jpg)
[한글과 천주교의 만남 신앙의 꽃을 피우다 ](중) 한글, 복음 전파 일등 공신되다까막눈 김서방, 한글 교리서로 천주님 말씀에 눈뜨다 1784년 조선 땅에 천주교회를 들여온 선각자들은 도입 초기부터 한자로 된 교리서와 해설서, 성경 등을 ‘한글’로 번역했다. 대중 선교를 위해서였다. 신분제도가 굳건했던 당시 조선 시대엔 양반이나 넉넉한 집안 출신이 아니면 배움의 기회를 얻기 어려워 한문 서적만으로는 전교가 어려웠다. 농민이었던 백성은 대부분 가난했기에 먹고 사는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가장 큰 삶의 과제였다. 그래서 글을 배우고 책을 읽는다는 것은 사치에 가까웠다. 박해시기였던 18~19세기 신앙 선조의 삶과 더불어 한글을 통한 전교가 어떻게 이뤄졌는지 살펴본다.옹기와 교우촌당시 신자들은 경기도 광주ㆍ이천ㆍ용인 고을의 접경인 태화산 자락을 비롯해 충청도 서천ㆍ한산ㆍ흥산ㆍ비인 고을의 옆인 천방산 자락 등지와 같은 도(道) 경계 지역에서 옹기종기 교우촌을 이뤄 살았다. 포졸들이 들이닥치더라도 도 경계를 넘어가면 관할 밖이라는 이유로 추격을 멈추는 경우가 많아 피신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교우촌을 이루고 살았던 궁극적인 이유는 다른 데 있다. 함께 모여 살면 함께 기도하면서 신앙을 배울 수 있었고, 주님 가르침을 실천하며 살 수 있기 때문이다. 대대로 신자 집안 출신이자 교우촌이었던 수원교구 손골성지를 전담했던 윤민구(수원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교우촌의 옛이야기를 이렇게 증언했다.“신자들이 교우촌에 모여 살았던 이유 중 하나가 기도하고 싶고 천주교의 교리를 알고 싶어서입니다. 신자들이 함께 있으면 함께 기도할 수 있어요. 예비신자 하나가 있다고 칩시다. 그런데 그 사람은 글을 몰라 혼자선 기도도 못 하지만, 교우촌에선 함께 기도하고 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 자연스레 한글도 배우게 되지요.”신앙 선조들은 교우촌과 교우촌, 장(場)과 장을 오가며 교류했다. 이들은 주로 옹기장수였다. 당시 옹기장수들은 크고 작은 옹기를 등에 지고 돌아다니며 파는 형태여서 마을과 마을을 돌아다니기 쉬웠다. 게다가 옹기 속에 천주교 교리서나 묵주 같은 성물을 숨기는 것도 가능했다. 신앙 선조들은 자신이 가진 교리서를 필사해 다른 신자에게 전하고, 자신에게 없는 책은 빌려 필사한 뒤 다시 만났을 때 되돌려주며 신앙에 물들어갔다. 윤 신부는 “가진 책을 팔고 사기도 하고 다른 신자와 바꿔보기도 했다. 전문적으로 책을 필사해주고 먹고 사는 신자들이 있을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스마트폰으로 검색만 하면 실시간으로 신앙 관련 정보를 수두룩하게 찾을 수 있는 요즘과 비교하면 얼마나 많은 시간과 정성, 심지어 목숨까지 건 여정이었을까 상상하게 된다. 「성경직해」의 첫 페이지 서문. 오른쪽 페이지에 광무 7년(1903년) 발행됐다고 써 있다. 천주가사, 문맹자들을 위한 구전 교리서한글 서적을 통한 전교 방법 이외에 문맹자들을 위한 ‘맞춤식 교리(?)’도 있었다. 입에서 입으로 전하는 ‘가사’다. 국문학에서 ‘천주교 가사’로 부르는 가사는 그 종류가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사향가’ ‘천주공경가’ ‘천당가’ ‘지옥가’ 등이 대표적이다. 이 가운데 천주공경가(天主恭敬歌)는 짧으면서도 천주교 교리의 핵심을 담고 있다.‘어화세상 벗님네야 이내말씀 들어보소/ 집안에는 어른있고 나라에는 임금있네/ 내몸에는 영혼있고 하늘에는 천주있네/ 부모에게 효도하고 임금에겐 충성하네/ 삼강오륜 지켜가자 천주공경 으뜸일세/ 이내몸은 죽어져도 영혼남아 무궁하리/ 인륜도덕 천주공경 영혼불멸 모르며는/ 살아서는 목석이요 죽어서는 지옥이라/ 천주있다 알고서도 불사공경 하지마소/ 알고서도 아니하면 죄만점점 쌓인다네/ 죄짓고서 두려운자 천주없다 시비마소/ 애비없는 자식봤나 양지없는 음지있나/ 임금용안 못보았다 나라백성 아니런가/ 천당지옥 모른선비 천당없다 어이아노/ 시비마소 천주공경 믿어보고 깨달으면/ 영원무궁 영광일세 영원무궁 영광일세’(천주공경가 전문)전 호남교회사연구소장 김진소(전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는 “신유박해(1801년) 이전에 정약전이 천주가사를 지은 것이 분명하다고 본다”면서 “1973년부터 지금까지 만나본 신자 어르신들 가운데 글을 모르는 어머니들이 길면 840행이나 되는 가사를 암기하는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김 신부는 그러면서 “오히려 글을 아는 이는 노래집을 갖고 있다 보니 암기하는 수고를 하지 않았다. 하느님께선 공의로우셔서 눈이 어두우면 귀를 밝게 해주신 것 같다”고 말했다.장주교윤시제우서목숨을 던져 신앙을 전파한 프랑스 선교사들도 한글 전파에 큰 공헌을 했다. 특히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시메온(1814~1866, 장경일) 주교는 충청도와 전라도의 모든 신자에게 한글을 배우라고 공식적으로 선포했다. ‘장주교윤시제우서(張主敎輪示諸友書)’를 통해서다. 1857년 반포된 사목교서인 장주교윤시제우서에는 ‘교리를 제대로 배우기 위해서는 언문(한글)을 배우든 한문으로 배우든 글자를 배우기를 적극적으로 권장한다’는 내용이 담겨 있다. 윤시(輪示)는 ‘돌려가면서 보라’는 뜻이고, 제우(諸友)는 ‘모든 교우에게’라는 뜻으로, 장주교윤시제우서는 ‘장 주교가 모든 신자에게 보내는 돌려가며 봐야 하는 편지’로 해석할 수 있다. 프랑스 선교사들은 한글의 체계적인 연구와 전파를 위해 ‘한글-한문-프랑스어 사전’과 ‘한글-한문-라틴어 사전’을 제작했다. 한글에 관한 최초의 사전은 1866년 완성됐다고 전해지지만, 그해부터 일어난 대박해인 병인박해 때 불태워져 남아있지는 않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사전은 1880년 완성된 「한불자전」과 1881년 발행된 「한어문전」이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백영민2018.10.10
성바오로딸수도회 성경 중급 교재 출간성바오로딸수도회 시청각통신성서교육원 신ㆍ구약 성경 중급 교재 「모세오경」과 「공관복음」이 출간됐다.「모세오경」(윤성희 지음 / 바오로딸 / 2만 원)은 구약 입문 과정에서 배운 내용을 심화시키기 위해 깊이 있고 폭넓은 해석을 제공하고 있다. 모세오경은 창세기, 탈출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를 아울러 일컫는 말로 세상 창조에서 시작해 모세가 이끄는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직전까지의 이야기를 들려준다. 총 6부로 구성된 「모세오경」은 인류와 이스라엘의 기원을 들려주는 원역사, 이스라엘 조상들 이야기를 소개하는 성조사,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 이야기, 시나이에서 머물며 일어났던 모든 일, 시나이를 떠나 약속의 땅을 향하는 여정, 모세가 남긴 마지막 설교 등을 다루고 있다. 「공관복음」 「공관복음」(박병규 지음 / 바오로딸 / 2만 원)은 마태오, 마르코, 루카 복음 각 권이 지닌 고유하고 특징적인 이야기의 흐름 안에서 예수의 삶과 가르침을 이해하고, 이를 바탕으로 신앙인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다루고 있다. 복음서들이 편집하고 구성한 이야기들의 연결고리를 따라 읽어가면서 복음서의 가치와 사상을 발견할 수 있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백영민2017.02.15
 십자가에 못박히시다(루카 23,26-43)](//cpbc.co.kr/CMS/newspaper/2018/11/rc/738747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87) 십자가에 못박히시다(루카 23,26-43)뜻밖에 지게 된 십자가, 우린 어떻게 받아들이는가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못박은 이들을 용서해달라고 청하신다. 사진은 골고타에 세워진 예수님 무덤성당 외부 전경. 가톨릭평화신문 DB 이제 예수님께서는 처형장으로 끌려가십니다. 십자가의 길이 시작됩니다. 그 길의 끝은 말 그대로 십자가 처형, 곧 죽음입니다. 편의상 이 대목을 십자가의 길(23,26-32)과 십자가에 못박음(23,33-43) 두 부분으로 나눠서 살펴봅니다. 십자가의 길(23,26-32)“그들은 예수님을 끌고 가다가, 시골에서 오고 있던 시몬이라는 어떤 키레네 사람을 붙잡아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을 뒤따르게 하였다.”(23,26) 여기서 “그들”은 누구를 가리킬까요? 루카복음의 맥락에서 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으라고 외친 이들, 곧 수석사제들과 지도자들과 백성입니다. 하지만 실제로 이들이 예수님을 끌고 가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마르코복음이나 마태오복음이 전하는 것처럼(마태 27,27-30; 마르 15,16-20 참조), 군사들이 예수님을 끌고 갔으리라고 보는 것이 더욱 타당합니다. 그렇다면 왜 루카 복음사가는 군사들이라고 하지 않고 ‘그들’이라고 표현했을까요?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일차적 책임이 유다인들에게 있음을 암시하려고 했다고 학자들은 해석하기도 합니다. “시몬이라는 어떤 키레네 사람”이란 키레네에 사는 혹은 키레네 출신의 시몬이라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키레네는 북아프리카 해안 지방으로 유다인들이 많이 살던 도시로, 오늘날 리비아의 수도 트리폴리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끌려가시는 그 길에는 “백성의 큰 무리”가 따랐고 그 가운데는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들도 있었습니다.(23,27) 많은 백성이 예수님의 뒤를 따랐다고 하는 것은 적어도 백성은 예수님에게 적대적이지 않았음을 나타내줍니다. 백성 가운데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 여자도 있었다는 것은 이들이 예수님께서 사형당하시는 것을 몹시 슬퍼하면서 안타까워하고 있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예수님께서 무죄하시다는 또 다른 표현이기도 합니다. 그런 여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나 때문에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들 때문에 울어라”라고 하십니다. 또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자, 아이를 배어 보지 못하고 젖을 먹여보지 못한 여자는 행복하여라!’ 하고 말할 날이 올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23,28-29)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임신한 여자들과 젖먹이가 딸린 여자들은 불행할 것이라고 하신 말씀(루카 21,23)을 떠올리게 합니다. 또 예루살렘의 멸망을 예고하시면서 우신 일(루카 19,41-44)도 떠올릴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잘 이해되지 않는 두 가지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그때에 사람들은 산들에게 ‘우리 위로 무너져내려라’ 할 것이며, 언덕들에게 ‘우리를 덮어다오’ 할 것이다” 하신 말씀과(23,30), “푸른 나무가 이러한 일을 당하거든 마른 나무야 오죽하겠느냐” 하신 말씀입니다.(23,31)첫 번째 말씀은 구약성경 호세아 예언서 10장 8절을 인용한 것인데, 우상을 숭배하는 이들의 최후가 어떠할 것인지를 예언한 것입니다. 두 번째 말씀은 예수님 시대에 널리 알려졌던 격언이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생생한 푸른 나무가 불에 타버린다면 바짝 마른 나무야 얼마나 잘 타겠느냐는 것으로, ‘예루살렘의 딸들’로 표현된 예루살렘이 예수님께서 당하시는 고통 훨씬 이상으로 예수님을 죽음에 처하게 한 대가를 치르게 되리라는 것입니다.이 일은 예루살렘 멸망(AD 70년)으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루살렘 멸망이 무죄한 예수님을 죽게 한 벌로 보면서 이미 현실이 된 그러나 예수님 당시에는 아직 미래의 일을 예수님의 입을 통해 예언 형식으로 전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처형장에는 다른 두 죄수도 함께 끌려갔습니다.(23,32)십자가에 못박음(23,33-43)해골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처형장 이름이 해골인 것은 해골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곳 지형이 해골처럼 생겼다고 해서 붙었다고 합니다. 골고타라고도 하는데 이는 해골이라는 뜻의 아람말 굴갈타를 그리스말로 음역한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았고 다른 두 죄수도 각각 예수님 좌우에 못박았습니다.(23,33) 루카 복음사가는 십자가에 못박히신 예수님께서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하고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23,34)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루카 6,27) 하고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말씀을 십자가의 못박히신 상황에서 몸소 실천하고 계신 것입니다. 또 예수님을 못박은 이들이 제비를 뽑아 예수님의 겉옷을 나눠 가졌다고 전하는데, 이 말씀은 시편 22편 19절을 인용한 것으로, 구약에서 예언된 성경 말씀이 예수님에게서 실현되었음을 드러낸다고 하지요.백성은 말없이 서서 바라보고 있었지만 지도자들은 ‘이자가 정말 메시아라면 자신도 구원해 보라지’ 하고 빈정거립니다. 군사들도 “네가 유다인들의 임금이라면 너 자신이나 구원해 보아라” 하며 조롱합니다. 예수님과 함께 못박힌 죄수 가운데 하나도 같은 말로 예수님을 모독합니다. 다른 죄수는 예수님을 모독한 죄수를 꾸짖고는 “예수님, 선생님의 나라에 들어갈 때 저를 기억해 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23,35-43) 생각해 봅시다키레네 사람 시몬은 어쩌면 과월절 순례를 위해 예루살렘에 왔다가 우연히 십자가를 지고 비틀거리며 형장으로 가시는 예수님과 마주쳤을지 모릅니다. 군사들은 저러다가는 저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인이 해골 산에 가기도 전에 쓰러질지 모르겠다고 생각하던 차에 마침 시몬을 보고는 대신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을 것입니다.시몬으로서는 정말 뜻밖에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된 셈입니다.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의 뒤를 따르면서 시몬은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학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고 뒤를 따르는 시몬이 그리스도를 뒤따르는 제자들을 표상한다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살다 보면 때로는 내 짐, 내 십자가가 아니라고 생각한 뜻밖의 십자가를 지게 될 때가 있습니다. 마치 시몬이 군사들에게 붙들려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진 것처럼 말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떤 반응을 보이는지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십자가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치거나 십자가를 내려놓을 때까지 줄곧 투덜거리는지요. 아니면 뜻밖에 지게 된 이 십자가가 나와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 되새기며 그 십자가를 받아들이는지요. cpbc2018.11.13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50) 순례,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cpbc.co.kr/CMS/newspaper/2019/01/rc/744683_1.0_titleImage_1.jpg)
[김용은 수녀의 살다보면] (50) 순례, 내려놓을 수 있는 용기사진=CNS “우리 남편이 산티아고 순례를 다녀온 후 사람이 확 달라졌어요?”“정말이요? 어떻게요?” “우선 자신감이 생겼고요. 무엇보다 그동안 어디 한 곳에 정착을 못 했는데 지금은 취직해서 직장도 잘 다녀요.” 지인의 남편 H씨는 오랫동안 전문 분야에서 관리직으로 있다가 왕성하게 일할 나이에 퇴직하게 되었다. 한동안 방황을 하면서 자신감도 잃고 우울감에 빠지곤 했다. 경제 능력을 잃고 아내만 바라봐야 하니 자존감도 바닥이었다. 그러던 차에 아내의 권유로 순례 길에 나섰던 것이다. 그런데 순례 길에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가 달라질 수 있었을까? H씨가 순례를 하면서 SNS에 올린 글이다. “나는 왜 왔을까? 오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백수로 살면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러 온 것도 아니다. 가톨릭 신자로서 신앙심을 더 키우려는 의지도 없었다. 그 어떤 바람 없이 그냥 왔다. 게다가 난 아무것도 할 줄 아는 것이 없다. 비행기 표 살 줄 알아? 아니. 유심칩이 뭔지 알아? 몰라. 영어 할 줄 알아? 못해. 외국 음식 이름이나 알아? 전혀. 그래 난 아무것도 못 한다. 게다가 혼자 여행 갈 생각을 하니 엄청 겁이 났다. 그러다가 ‘에라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는 심정으로 왔을 뿐이다. 그런데 걷다 보니 참 좋다. 그냥 좋은 것이 아니라 눈물이 날 정도로 너무 좋다. 계획 없이 그냥 부딪혀도 되는 것이 있다는 걸 처음 알았다. 그래. 이렇게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되는걸. 왜 나는 여태 억수로 쫄며 살아왔을까. 그리 살면 죽는 줄 알았다.” 나는 H씨의 글을 읽으면서 ‘그래, 순례란 바로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죽기야 하겠어?’ 바로 모든 것을 내려놓은 용기다. 순례는 외로움을 허하고 아무 바람 없이 욕심을 내려놓는 용기 있는 선택이다. 순례자는 사전에 계획하고 준비하면서 이것저것 챙기지 않는다. 배낭도 하나, 삶의 짐을 덜어내듯 가벼울수록 좋다. 걷다 보면 그동안 움켜쥐었던 욕망의 짐을 덜게 되고 잘 보이고 싶고 인정받고 싶고 방어하고 싶어 입었던 무거운 갑옷도 벗고 싶어진다. 그렇게 덜어내고 벗다 보면 진짜 참 나의 모습과 가까워진다. 미움받을까 봐 판단 받을까 봐 두려움에 잔뜩 웅크리던 어린아이 ‘에고’와도 거리가 생긴다. 그래서 점점 더 진짜 내가 좋아진다. 순례자에게는 처음부터 끝까지 그 여정 자체가 구원의 시간이다. 그러니 어찌 행복하지 않을까. 나와 열애하는 순례 길, 그냥 내가 좋은데 누굴 만나든 어디를 가든 무엇을 먹든 어찌 좋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H씨는 누구를 만나도 고마웠고 무엇을 먹어도 감사했다. 와인 한잔에 눈물이 났고 배가 고파도 불평하지 않았다. 우연히 들어간 성당에서 미사를 드릴 수 있어 행복했고 길을 잃고 헤맬 때 굳이 가던 길 돌아와 알아듣지 못하는 언어로 바른길 안내해준 그 사람을 천사라고 믿었다. 무심코 떠오른 성경 구절에 전율을 느꼈고, 우연히 보게 된 무지개에 가슴이 뜨거워졌다. 건강하게 걸을 수 있어 감사했고 어디서 잠을 자도 은총이었다.그렇게 여행을 마친 H씨는 단 하나 크게 깨달은 것이 있단다. ‘내가 이 길을 걸은 것이 아니고 바로 하느님께서 나를 걷게 해주셨다’는 것을. 신문사로부터 원고 쓴 지 1년이 되었다는 연락을 받았다. ‘벌써?’ 놀랐다. 사실 처음에는 부담이 컸다. ‘그래, 일 년만 해보자. 어떻게 되겠지’ 하고 용기를 내고 시작했다. 그런데 어느덧 시간의 흐름을 까마득히 잊고 원고와 순례의 길을 걸어왔나 보다. 참으로 감사할 뿐이다. ‘내가 하는 일이 아니었다.’ 성찰하기 1. 계획해서 이뤄낸 것이 얼마나 있던가요? 아무 생각 없이 살아도 되는 것이 얼마나 많던가요? 2. 힘든 일이 있을 때, ‘설마 죽기야 하겠어’ 하며 용기를 내요. 진정한 용기는 ‘내려놓음’입니다. 3. 삶의 짐과 갑옷, 타인의 시선과 판단을 고스란히 내려놓을 때, 비로소 하느님의 시선으로 나를 볼 수 있습니다. 그게 진짜 나의 참모습이지요. <살레시오교육영성센터장, 살레시오수녀회> cpbc2019.01.23

말씀에 목마른 신자들, 성경 공부에 ‘로그인’수원교구 사이버성경학교 14일 수원교구청 지하강당.쌀쌀한 날씨에도 강당을 빼곡히 메운 신자 300여 명이 성경 강의를 듣는 재미에 푹 빠졌다. 성경과 교재를 나란히 놓고 강의에 열중하는 이들은 수원교구 복음화국 성경사목이 운영하는 ‘사이버성경학교’ 수강생들. 지난해 하반기 한 학기 동안 온라인을 통해 성경강좌를 이수한 이들이 한자리에 모인 것은 학기를 마무리하는 ‘오프라인’ 강좌와 수료 미사가 있는 일일연수에 참석하기 위해서다.올해부터 ‘가톨릭 서간’ 새 강좌의 전문 강사로 영입돼 이날 강의를 진행한 한재호(광주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재치있는 입담을 곁들여가며 신약성경의 개괄적 구조에 대한 이해를 도왔다.한 신부는 성경 공부의 필요성을 설명하면서 “오랫동안 강의를 해온 저 또한 성경 구절이 어느 순간 나의 갈등을 해소해주는 모토로 자리 잡고, 하루하루 강의가 곧 영적 일기가 되더라”며 “노트북과 성경으로 마음껏 ‘신앙 공부’를 하는 것이 엄청난 은총임을 함께 깨닫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수원교구가 매년 개최하는 성경 잔치에서 청소년들이 성경 속 주인공 복장을 하고 암송퍼포먼스를 펼치고 있다. 수원교구 제공 성경 공부의 새 바람 성경 말씀을 익히는 것은 성사생활과 더불어 신자들이 행해야 할 의무 중 하나다. 바쁜 현대 신자들은 시간을 쪼개 성경 공부를 충실히 하기란 사실 쉽지 않다. 하지만 우리가 늘 이용하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으로 성경 공부를 할 수 있다면 이야기는 또 다르다. 수원교구는 25년 전부터 ‘말씀 안에 사는 신앙’을 강조하며 성경사목에 매진해온 기반을 바탕으로 약 3년간 기획 끝에 2013년 ‘사이버성경학교’를 개설했다. 시대에 발맞춘 ‘말씀 사목’을 실천에 옮긴 것이다.‘온라인 성경 강좌가 잘 될까’ 하는 우려도 있었지만, 예상치 않게 처음부터 폭발적인 관심을 끈 사이버성경학교는 개설 3년 만인 지난해 한 학기 수강생이 처음으로 1000명을 넘어섰다. 시공간 제약이 없다 보니 교구와 지역을 막론하고 말씀에 목마른 신자들이 몰려들었다.빵빵(?)한 강사진과 프로그램 구성사이버성경학교의 힘은 전문성과 강의력을 갖춘 강사진에서 나온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첫걸음ㆍ일반 여정 등 단계를 갖춘 강좌에는 김혜윤(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 수녀, 이용화(전 수원가톨릭대 총장) 신부, 김영선(마리아전교자프란치스코회) 수녀, 김효준(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장)ㆍ김승부(수원가톨릭대 교수)ㆍ박병규(대구가톨릭대 교수)ㆍ한재호(광주가톨릭대 교수) 신부, 이혜정(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수녀 등이 강사로 포진하고 있다. 모두 해외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한 성경 전문가들이다.강의는 오경ㆍ역사서ㆍ시서와 지혜서ㆍ예언서ㆍ복음서와 사도행전ㆍ서간과 요한 묵시록을 비롯한 신구약 성경 전반을 다룬다. 또 성경 필사와 성경 일기 쓰기, 퀴즈 풀이, 과제 제출 등 다양한 방식으로 성경을 익히도록 한다. 온라인에 접속만 하면 어디서든 수강할 수 있다 보니 해외 한인 신자들에게도 인기다. 이동 중에 스마트폰으로 강의를 듣는 이들, 직장에서도 틈틈이 반복해 듣는 이들도 있다. 몸이 불편한 이들도 집안에서 편히 수강할 수 있다. PC방에서 강의를 듣는다는 신자도 있을 정도다. 출석과 과제물 제출, 참여도 등을 평가해 장학생이 된 이들은 다음 학기 수강비를 지원받는다.강의를 수강한 이들은 “한 번 들은 강의를 여러 번 반복해 언제든 들을 수 있어 좋다”, “막상 시간과 마음을 내기 어려웠는데 집안 일을 하면서도 강의를 들을 수 있어 편리하다”고 한목소리로 말한다.3년 넘게 사이버성경학교 강의를 수강해 장학생이 된 김숙경(베로니카, 서울 무악재본당)씨는 “한 강의를 두세 번 들을 수 있어 부엌에서 일할 때에도 태블릿PC를 켜놓고 강의를 듣는다”며 “말씀은 들으면 들을수록 은총이 되고 신앙생활의 질을 높여준다고 느낀다”고 말했다.강의를 수료한 이들은 봉사자 교육을 받고 ‘성경 봉사자’가 될 수 있다. 현재 사이버성경학교 봉사자는 200여 명. 이 가운데 150여 명이 각 본당에서 말씀을 전하고 있다. 온ㆍ오프라인에서 유기적으로 교구 성경사목이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사이버성경학교 인사말에서 “사이버성경학교는 시간과 지리적 환경으로 성경 공부를 하지 못해온 이들의 아쉬움을 채워줄 새로운 배움의 길”이라고 소개했다.발전을 거듭해온 수원교구 성경사목수원교구 복음화국 성경사목은 오래전부터 교구민이 말씀을 제대로 익히는 방안을 여러모로 모색해왔다. 온라인에 사이버성경학교가 있다면 올해 23회째를 맞는 ‘수원교구 성경 잔치’는 교구민 수천 명이 한 자리에서 말씀을 체화하는 자리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교구민 전체가 수원 효명중학교에 모여 연령별 예선도 치르고, 그림으로 성경을 표현하기도 하며 무대에 올라 암송대회를 경험하기도 한다. 옷을 맞춰 입고 조를 이뤄 참석한 청소년들은 성극을 하듯이 성경 장면을 표현하며 암송한다. 성경 잔치는 모든 신자가 말씀으로 하나 되는 축제다.올해 사이버성경학교 개강일은 2월 27일이며, 3월 31일까지 수강 신청을 받는다. 사이버성경학교 누리방 : cyberbible.casuwon.or.kr, 문의 : 031-8017-4239수원교구 문희종 주교 “우리는 말씀을 빼놓고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수원교구 사이버성경학교는 단순히 성경을 공부하는 프로그램을 넘어 새로운 방식으로 하느님 진리를 익히고 전하는 교회 자산이자 도구입니다.”수원교구 교구장대리 문희종 주교는 “사이버성경학교는 수원교구 25년 성경사목의 새로운 모델이자 말씀의 나침반이며, 여기에 많은 신자가 동참해 좋은 결실을 보이고 있다”며 “바삐 살아가는 많은 신앙인의 말씀에 대한 갈증을 더욱 시원하게 해소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설명했다.2010년 교구 복음화국장 시절 사이버성경학교 기획을 함께 짰던 문 주교는 “당시에도 이 같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달라는 요구가 많아 이에 부응하고자 교구가 두 팔 걷어붙이고 나선 것”이라며 “현재 사이버성경학교 수강생 비율은 수원교구민 55%, 타교구 및 해외신자 45%가 되는데, 나중엔 타교구민 비율이 더욱 높아지길 바란다”고 말했다.아울러 문 주교는 “말씀을 익히는 것은 요즘 팽배한 개인주의를 극복하고, 보편적 진리의 부재를 채워주고, 나아가 성경에 대한 잘못된 이해로 발생하는, 신흥종교로의 신자 이탈도 막을 수 있다”며 “예로니모 성인이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교를 모른다’고 하신 것처럼 하느님 말씀을 알아갈수록 빠지게 되는 사랑을 얼른 느끼시면 좋겠다”고 전했다.“수원교구는 사이버성경학교와 함께 매년 10월 개최하는 성경 잔치를 통해 ‘성경 공부 문화’가 뿌리 깊게 자리 잡았다고 여깁니다. 올해엔 주변에 ‘성경 공부 같이하시죠?’라는 초대가 세상이 주지 못하는 생명의 물을 붓는 작업이 될 것입니다. 함께 말씀의 일꾼이 됩시다.” 이정훈 기자 cpbc2017.01.17

유머 감각만 있어도 성인이 될 수 있다?프란치스코 교황, 권고 「기뻐하고…」 통해 ‘유머의 성덕 쌓으라’ 강조 한 신자를 만나 호탕하게 웃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 【CNS 자료사진】 “성인들은 기뻐했고 유머가 넘쳤습니다. 소심하고 시무룩하고 신랄하고 우울한 것과는 거리가 멀었습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발표한 권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122항)에서 유머도 성덕을 쌓아가는 그리스도인의 특징 중 하나라고 말했다. “뒷담화만 안 해도”에 이어 “유머 감각만 있어도” 성인이 될 수 있다는 요지의 얘기다. 교황은 냉혹한 현실 속에서도 유머를 잃지 않은 성인들 가운데 영국의 성 토머스 모어(1478~1535)를 예로 들었다. 「유토피아」 작가로 널리 알려진 그는 헨리 8세 왕이 자신의 이혼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교황청에 반기를 들자, 왕명을 거역하고 단두대로 걸어나갔다. 그는 단두대에서도 “아, 내 수염은 반역죄를 저지른 일이 없지” 하며 수염이 칼날에 잘리지 않도록 턱을 앞으로 쭉 내밀었을 정도로 최후 순간까지 유머 감각을 잃지 않았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웃음과 유머가 부족한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복음에는 우리를 기쁘고 즐겁게 해주는 사건이 넘쳐난다. 하지만 예수의 수난과 죽음, 죄와 벌, 희생과 절제 같은 ‘장중한’ 중심 주제에 시선이 더 머무는 것은 어쩔 수 없다. 또 예수가 화를 내셨을지언정 웃으신 적이 없다며 중세식 엄숙주의를 그리스도인의 ‘얼굴’이라고 믿는 이들이 많다. 움베르토 에코가 장편소설 「장미의 이름」 끝 부분에서 ‘미소를 모르는 신앙’을 악마라고 칭한 것은 이런 엄숙주의에 집착하는 이들에 대한 비판이다. 물론 성경 어디에도 예수가 웃었다는 기록은 없다. 제자들이 ‘아재 개그’ 같은 썰렁한 유머로 스승을 웃겼다는 얘기도 없다. 웃음이라면 예수를 조롱하고 모욕하는 유다교 지도자들의 비웃는 소리만 크게 들린다. 그럼 예수는 정말 웃은 적이 없을까. 기록되지 않았을 뿐 우리와 똑같은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기에 분명히 웃었을 것이다. 유머는 인간만이 가진 특성이다. 김정은 위원장이 “(냉면을 가져온 평양을) 멀다고 말하면 안 되갔구나”라는 가벼운 유머로 남북 정상회담장 분위기를 바꿔놓았듯 유머에는 반전의 힘이 있다. 창의적 상상력을 발휘하면 성경에서 예수의 미소와 웃음소리를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예수가 산에 올라 군중에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마태 5,3-12)며 참 행복을 가르치는 장면을 상상해보자. 그분 얼굴에는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불어오는 봄바람만큼이나 온화한 미소가 피었을 것이다. “어린이들을 끌어안으시고 그들에게 손을 얹어 축복해”(마르 10,16) 주실 때의 표정은 어땠을까. 품으로 돌진하는 아이를 끌어안는 아빠처럼 함박웃음을 지었을 것이다.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쳐놓은 교묘한 올가미를 치워버리고도 통쾌하게 웃었을 것이다. 그들이 간음한 여인을 데려오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라는 한 마디로 그들의 속셈을 무너뜨렸다. 그러자 살아온 세월만큼 죄가 쌓인 “나이 많은 자들부터 시작하여 하나씩 하나씩 떠나갔다”고 성경은 전한다. 그 위선자들의 뒤꽁무니를 보면서 웃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그들이 황제에게 세금을 내는 것이 합당하느냐고 떠봤을 때도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마르 12,17)라는 재치 넘치는 말로 그들의 말문을 막아버렸다. 갑자기 꿀 먹은 벙어리가 된 그들을 보면서도 웃지 않았을까. 제자들, 특히 베드로 때문에도 적잖이 웃었을 것 같다. 예수는 큰소리 떵떵 치고 나서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지레 겁을 먹고 맥주병처럼 가라앉으면서 살려 달라고 소리치는 모습을 봤다. 야고보와 요한에게는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우스꽝스러운 별명을 붙여줬다. 그분의 웃음과 유머가 느껴지는 대목이다. 교황이 신앙인의 유머를 언급한 취지는 딱딱하고 완고한 신앙에서 벗어나라는 것이다. 이는 “복음 선포자는 장례식에서 막 돌아온 사람처럼 보여서는 안 된다”(「복음의 기쁨」 10항)는 당부와도 맞닿아 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cpbc2018.05.30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84)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cpbc.co.kr/CMS/newspaper/2018/01/rc/709198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84) “사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히브 4,12)‘말씀하시는 하느님’ 통해 구원의 역사 전해 히브리서는 (모세) 오경, 시편 등 구약성경의 내용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다. 그림은 히브리인 출신 아기 모세가 강가에서 파라오의 딸에게 발견되는 장면을 그린 율리우스 카롤스펠트 작 ‘모세의 탄생’. 출처=「아름다운 성경」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히브리서)은 신약성경의 서간들 중에 독특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은 이 편지를 읽으면서 이해하기 쉽지 않고 어렵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서간의 형식이긴 하지만 신약성경의 서간들이 전하는 내용과는 조금 다르게 신학적인 언급이 주를 이루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 후대의 기록으로 추정 전통적으로 히브리서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으로 구분되었습니다. 오래된 성경의 순서에 보면 히브리서는 바오로 사도 서간의 마지막에 놓여 있습니다. 서간을 보낸 이가 누구인지 표명되지는 않지만, 서간의 마지막에 표현되는 “우리 형제 티모테오”는 바오로 사도를 생각하게 합니다. 내용적인 면에서 보면 바오로 사도의 생각과 비슷한 내용들도 발견됩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에게서 찾을 수 없는 여러 표상이나 비유, 그리고 바오로 사도보다 후대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생각할 수 있는 여러 내용들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많은 학자는 이런 내용과 함께 히브리서의 저자가 바오로 사도보다는 후대의 사람이며 신앙의 전통에 밝은 사람이었을 것으로 추측합니다. 서간 안에서 수신인 역시 “히브리인들”이라고 표현되지는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간의 많은 내용이 구약성경에 기반을 두고 있다는 점에서 유다인 출신의 신앙인들을 염두에 두고 있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서간이 저자나 수신인에 대해 명확한 정보를 전해주지 않지만, 히브리서는 1세기 후반의 교회 공동체가 처한 상황을 전한다는 점에서 1세기 후반에 기록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히브리서는 시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예전에는 예언자들을 통하여 여러 번에 걸쳐 여러 가지 방식으로 조상들에게 말씀하셨지만, 이 마지막 때에는 아드님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히브 1,1-2) 히브리서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 중에 하나는 ‘말씀하시는 하느님’ 또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강조입니다. 이것을 통해 창조 때부터 지속되는 하느님의 말씀을 통한 구원의 업적을 요약합니다. “아드님은 하느님 영광의 광채이시면 하느님 본질의 모상으로서, 만물을 당신의 강력한 말씀으로 지탱하십니다.”(히브 1,3) 이런 특징은 히브리서 전체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히브리서의 생각은 서간 전체를 통해서도 드러납니다. 히브리서는 초대 교회의 다른 어떤 기록보다 훨씬 많은 구약성경의 내용들을 인용합니다. 그 분포를 보면 창세기를 비롯한 (모세)오경, 시편, 예레미야와 이사야를 중심으로 한 예언서들 그리고 집회서나 잠언과 같은 지혜문학의 책들도 포함됩니다. 그중에 눈에 띄게 많은 것은 (모세)오경입니다. 가르침이나 계명이라고 말할 수 있는 토라, 곧 (모세)오경의 많은 인용은 히브리서가 처음부터 강조하는 ‘말씀하시는 하느님’을 잘 보여줍니다. 하느님 말씀, 믿음 통해 교회에 전해져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하느님을 중심에 두고 이야기하는 히브리서는 하느님과 예수님의 관계에 대해서도 ‘말씀’을 통해 설명합니다. “아드님과 관련해서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중략) 당신께서 정의를 사랑하시고 불의를 미워하시기에 하느님께서, 당신의 하느님께서 기쁨의 기름을 당신 동료들이 아니라 당신께 부어 주셨습니다. 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중략) 그러나 당신께서는 언제나 같으시고 당신의 햇수는 끝이 없을 것입니다.”(히브 1,8-12) 하느님의 말씀은 외아들인 예수님께 국한되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시간에 얽매이지 않고 그 자체로 살아 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힘이 있으며 어떤 쌍날칼보다도 날카롭습니다. 그래서 사람 속을 꿰찔러 혼과 영을 가르고 관절과 골수를 갈라, 마음의 생각과 속셈을 가려냅니다.”(히브 4,12) 이런 하느님의 말씀은 믿음을 통해 교회 안에서 전해집니다.(히브 13,7) 그리고 성경을 통해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그 말씀은 과거의 어떤 것이 아니라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는 말씀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8.01.23

춘천교구 설정 80주년 여정의 닻 올렸다‘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 주제 1년간 대장정… ‘예수 성심상’ 본당 순례 김운회 주교가 춘천교구 설정 80주년 개막 미사에서 1년간 각 본당을 순회할 예수 성심상을 축복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춘천교구가 1일 춘천시 호반체육관에서 교구장 김운회 주교 주례로 교구 설정 80주년 개막 미사를 봉헌하고, 1년간 전개될 ‘교구 설정 80주년 여정’의 닻을 올렸다.춘천교구는 이날 개막 미사를 시작으로 내년 11월 24일 온 누리의 임금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 1년간 기쁨의 ‘80주년 대장정’을 이어간다. 80주년 주제 성구는 ‘주님의 빛 속에 걸어가자!’(이사 2,5)이날 개막 미사에 참여한 사제단 110여 명과 교구민 4000여 명은 그간의 주님 사랑에 감사하며 빛을 향해 함께 걸어가기로 다짐했다. 개막 미사에는 전 춘천교구장 장익 주교를 비롯해 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와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광주대교구 총대리 옥현진 주교가 함께했다.각 본당 신자들은 미사에 앞서 60여 개 본당 이름이 적힌 족자와 80주년 기념 엠블럼을 봉헌했다. 80년 전 11개 본당으로 출발한 교구가 그간 이만큼 성장한 데 대한 감사의 마음을 주님 앞에 바친 것이다. 교구 성장과 발전에 기여한 수도회와 단체에 대한 상패 수여도 이어졌다. 교구 설립 당시 선교사들을 파견해 내외적 성장에 기여한 성 골롬반외방선교회를 비롯해 성골롬반외방선교수녀회, 마리아의 작은자매회, 예리코클리닉봉사회, 학교법인 일송학원에 교구장 감사패가 수여됐다.교구 사제단과 수도자, 청년들은 이어진 축하 행사에서 율동과 찬양으로 80주년의 기쁨을 표현했다. 김운회 주교는 1년 동안 각 본당을 순례할 교구 수호 성인인 ‘예수 성심상’에 축복했다.김운회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무엇이 하느님 뜻에 더욱 맞는지 늘 자문하고 따르는 가운데 80주년에 대한 감사의 마음을 100주년을 향한 준비의 시간으로 다져나가야 한다”며 “나부터 먼저 바뀌고, 사랑으로 하나 되고, 신앙의 기쁨을 다른 이와 나누는 신앙 덕목을 꼭 실천하자”고 당부했다.교구는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80주년을 기념하고 교구민 신심을 북돋는다. 개막 미사 이튿날부터 각 본당 순례를 시작한 예수 성심상은 신자들에게 교구에 대한 주님 사랑을 연중 고취하게 된다. 교구는 평일 미사 참여를 더욱 장려하고, 매달 지향을 둔 단식의 날 실천, 80주년 지향 성시간과 성체조배를 더욱 독려한다. 모든 교구민은 교구가 제작한 ‘성경 통독 일기’를 통해 매일 말씀과 함께 보낸다. 또 설정 80주년 기념일 당일인 내년 4월 25일에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이를 전후로 사진전과 음악회, 미술전 등 다양한 기념행사도 펼칠 계획이다.교구는 이에 앞서 전 교구민을 대상으로 신앙 설문 조사를 실시해 현재 분석 작업을 이어가고 있으며, 청소년을 위한 공동사목 정례화, 100주년 주역이 될 30~40대를 위한 프로그램 마련도 검토 중이다. 교구는 9만 명 교구민과 함께 △쇄신 △공동체의 일치 △복음화를 통해 더욱 깊은 사랑의 공동체, 새롭게 성장하는 교구로 발돋움한다는 계획이다.춘천교구는 1939년 11개 본당, 사제 19명, 신자 9000여 명으로 시작했으며, 해방 이후 38선이 그어지면서 강원도 동북지역과 함경도 신자 3000여 명이 북녘에 남겨지는 교구 분단의 아픔도 겪었다. 강원도 일대와 경기도 일부, 휴전선 이북 북강원도 지역 등 교구 관할구역은 전국 교구 중 가장 넓다. 신자 수는 2017년 말 현재 8만 9446명, 복음화율은 약 8%이며, 사제 수는 117명, 본당은 62개(준본당 1개 포함)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8.12.05

신자와 신학생 위한 신앙 길라잡이 도서 신학자들은 풍부한 지성과 영성으로 교회 가르침을 연구, 발전시키고 전파하는 ‘교회의 수호자’들이다. 신학 발전에 힘쓰고 있는 수원가톨릭대 교수 사제들이 신학생과 신자들을 위해 중요한 신앙서적들을 번역해 출간했다.모든 이를 위한 예수 조셉 도레 지음 / 한민택 옮김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1만 1000원우리가 믿는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적 실존 인물의 한 사람으로 바라본 일이 있는가. 성경에 등장하는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말고, 일반인들이 이야기하는 설교가이자 혁명가요, 현자로서 예수 말이다.그리스도론에 정통한 프랑스의 조셉 도레 대주교가 예수님을 둘러싼 사람들의 물음에 답한 책 「모든 이를 위한 예수」를 펴냈다. 이를 기초신학 박사 한민택(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번역 출간했다.책은 예수에 관해 모든 이에게 설명하고자 썼다. ‘예수는 실존 인물이 맞는가’부터 ‘그 증거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무엇 때문에 왜 죽었는가?’, ‘기적들은 어떻게 가능했는가’까지. 도레 대주교는 ‘신비로운 실재’인 예수에 다가가기 위해 먼저 ‘인간 예수’를 명확히 설명해준다.예수님이 혁명가라고? 분명한 것은 예수는 “황제의 것은 황제에게 돌려주고, 하느님의 것은 하느님께 돌려드려라”라고 했다. 예수의 인맥은 철저히 헐벗고 굶주린 이들 아니었는가. 당시 이스라엘인들이 정치적, 종교적 의도로 여러 혼란을 일으켰지만, 굳세고 단호하면서도 감수성 많았던 예수의 주된 가르침은 ‘하느님 나라의 도래’였다. ‘타인을 향한 사랑’, ‘하느님을 향한 희망’이 예수님이 전한 핵심 메시지였음은 행적에서 드러나는 사실이다.한 신부는 “예수님은 정치적 혁명가는 아니었지만, 근본적 차원의 ‘내적 혁명가’였다”며 “책을 통해 실존 인물로서 예수님의 모습을 새롭게 바라봄으로써 현대 신앙인들도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시각을 확장시키면 좋겠다”고 밝혔다. 1쇄 1500부는 완판됐고, 최근 개정판이 나왔다.니케아ㆍ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 이냐시오 오르티츠 데 우르비나 지음 / 황치헌 옮김 / 수원가톨릭대학교 출판부 / 3만 원그리스도교 역사는 초기부터 숱한 논쟁 속 이단과의 싸움으로 시작됐다. 로마제국 치하에서 박해를 받았던 그리스도교는 신앙 자유를 얻은 직후인 4세기 초반부터 복음의 계시를 올바로 이행하지 않는 이단의 무리와 다투게 된다. 드디어 세계 주교들은 325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소집으로 역사상 첫 공의회인 니케아공의회를 열게 된다.교회사 안에서 세계 공의회는 21번 열렸다. 교부들은 한자리에 모여 삼위일체 교리와 부활 대축일 날짜 확립, 니케아 신경 채택 등 다양한 규정을 논의하며 교회 질서를 잡아나갔다. 그래서 교회는 신적이며 동시에 인간적이라고 칭한다.수원가톨릭대가 세계 공의회사 총서 1권 「니케아ㆍ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를 펴냈다. 황치헌(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번역했으며, 총서는 21번의 세계 공의회를 13권까지 출간할 계획이다. 특히 총서는 다른 개론서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던 공의회 규정과 서한 원문들을 싣고 있어 유용하다.황 신부는 “공의회는 교부들의 교회 일치를 위한 노력이자, 성령에 의해 소집되고 이끌어진 회의였다”며 “신학생과 신자들이 가톨릭대 교수 신부님들이 번역한 「보편 공의회 문헌집」과 병행해 공의회사를 공부한다면 교회에 대한 깊은 이해가 더해질 것”이라고 전했다.이정훈 기자 cpbc2018.12.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