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87)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히브 12,1)](//cpbc.co.kr/CMS/newspaper/2018/02/rc/711886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87)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꾸준히 달려갑시다”(히브 12,1)모든 유혹과 시련에 맞서 하느님께 나아가라 히브리서는 예수님과 모세를 비교하면서 ‘집’으로서의 교회를 언급하고 있다. 또 우리는 하느님이 지으신 집이며 집안을 맡은 분은 예수님이라고 설명한다. 그림은 예수님의 수난을 그린 가르파초 작 ‘그리스도의 수난과 도구’, 캔버스에 유채, 1496년, 이탈리아 우디네, 역사와 미술 시립박물관. 출처=가톨릭굿뉴스 신약성경에서 기원후 1세기 후반에 기록된 서간들은 공통적으로 당시의 공동체가 생각했던 교회에 대한 언급을 담고 있습니다.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히브리서)이 말하는 교회의 모습은 사목서간에서 보았던 것과 비슷합니다. “어떤 집이든 그것을 지은 이가 있습니다. 그런데 만물을 지으신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분의 집안을 맡은 아드님으로서 충실하신 분이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집안입니다. 우리의 희망에 대하여 확신과 긍지를 굳게 지니는 한 그렇습니다.”(히브 3,4.6) 히브리서는 예수님과 모세를 비교하면서 ‘집’으로서의 교회를 언급합니다. 구약에서 하느님의 집을 맡아 하느님의 백성을 이끈 인물이 모세라면 예수님께서는 모세보다 더 큰 영광을 누리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지으신 집이며 집안을 맡은 분은 예수님입니다. 우리는 믿음 안에서 희망을 간직할 수 있고 그런 이들이 모여 있는 교회는 하느님의 집입니다.하느님의 집, 교회 하느님의 집인 교회의 중심에 놓인 것은 예수님의 업적과 그분의 충실함입니다. 히브리서는 예수님의 업적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의 피 덕분에 성소에 들어간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습니다.”(히브 10,19) 이 성소는 히브리서에서 안식처로 표현되고 또 돌아가야 할 고향이라는 의미에서 ‘본향’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히브 11,14.16) 히브리서가 말하는 교회는 하늘의 본향을 향해가는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이런 공동체 안에 있는 제도에 대해서 히브리서는 ‘지도자’만을 언급합니다. 히브리서는 교회 안의 여러 직무나 개인들의 은총에 대해 구체적으로 묘사하지 않고 하느님의 말씀과 관련된 것에 집중합니다. 지도자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일러준’ 사람들로 자신의 삶을 통해 믿음을 증언하는 이들로 소개됩니다.(히브 13,7) 이들은 공동체 안에서 지속적으로 신앙인들의 ‘영혼을 돌보아주는’ 이들입니다.(히브 13,17) 그들의 믿음을 본받도록 권고하는 내용과 함께 히브리서는 신앙인들에게 필요한 실천적인 삶에 대해서도 강조합니다. 히브리서는 두 방향으로 신앙의 실천적인 면에 대해 언급합니다. 첫째는 흔들리는 신앙을 간직한 이들과 세상의 삶을 추종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경고입니다. 그들은 스스로 회개를 거부하는 이들로, 공동체에서 떨어져 나간 이들로 표현됩니다. 그들의 행동은 “스스로 하느님의 아드님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고 욕을 보이는 것”입니다.(히브 6,6) 그들은 스스로 하느님의 약속을 얻지 못한다고 여기고 기쁜 소식을 들어도 그것을 통해 희망을 간직하지 못하는 이들입니다. 반면에 신앙인들을 향해서는 “진실한 마음과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하느님께” 나아가자고 권고합니다.(히브 10,22) 실천을 통해서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자고 권고합니다.(히브 12,14) 이런 권고가 평화로운 일상에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는 당시의 상황에서 만나게 되는 어려움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지는 않습니다. 단지 죄에 맞서는 행동을 설명하고 지도자의 모범을 이야기하면서 죽음을 표현합니다. 그래서 이것이 당시의 박해 상황을 염두에 두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히브 12,4; 13,7) 그렇지만 히브리서는 박해라는 구체적인 상황보다 그것을 포함한 넓은 의미에서 ‘신앙을 흔드는 모든 것들’을 시련으로 표현합니다. 신앙인들이 모든 시련을, 곧 죄짓게 하는 모든 어려움과 유혹을 견디어내도록 용기를 불어넣습니다. 아버지가 자녀를 훈육하듯 신앙의 인내를 설명할 때에 히브리서는 다시 ‘집안’의 비유를 사용합니다. 신앙의 인내는 자녀들이 아버지로부터 받는 훈육에 비길 수 있습니다. 마치 가정 안에서 아버지가 자녀들을 훈육하듯 영적 아버지인 하느님 역시 자녀들을 훈육하는 분으로 그려집니다. 훈육이 당장은 기쁜 일이 아니지만, 자녀들의 유익을 위한, 자녀들에게 궁극적으로 평화와 의로움의 열매를 가져다주기 위한 것입니다. 그렇기에 슬퍼하지 말고 어려움을 견뎌내는 것 역시 신앙에 필요한 일입니다. 인내를 통해 하느님의 거룩함에 동참할 수 있습니다. “맥 풀린 손과 힘 빠진 무릎을 바로 세워 바른길을 달려가십시오. 그리하여 절름거리는 다리가 접질리지 않고 오히려 낫게 하십시오.”(히브 12,12-13)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8.02.21
봄학기 맞아 다양한 강좌 풍성 예수회센터가 2017년 봄학기를 맞아 다양한 강좌를 개설했다.3월 8일 개강하는 ‘가톨릭 신앙과 영성’은 △예수님의 죽음 - 왜 나를 위한 것인가? (최현순 박사, 서강대 신학대학원) △영적 성장을 위한 몸 신학(김혜숙 선교사, 신학박사) △수도 전통에서 배우는 일상 속의 영성(조인영 신부, 예수회 부관구장) △철학자의 눈으로 본 신앙과 영성(이종진 신부, 서강대 신학대학원) △성경은 왜 하느님의 말씀인가? (허귀희 수녀, 성서신학 박사) △그리스도인의 대화법 - 비폭력 대화(이윤정 강사, CNVC국제인증 지도자) △과학의 도전과 신앙의 응답(김도현 신부, 서강대 물리학과) 등의 주제로 진행된다. 강좌는 서울 예수회센터 3층 성당에서 매월 둘째 넷째 주 수요일 오후 2시부터 열린다. 영성 과목으로는 △영신수련 정기 강좌(3월 6일, 12주 과정) △어떻게 실제로 기도하고 성찰할 것인가? (3월 14일, 10주 과정) △영성의 향기(3월 15일, 3년 과정) △영적 성장을 돕는 신학적 토대(3월 2일, 12주) △아픈 영혼을 철학으로 치유하기(3월 7일, 12주 과정) 등을 개강한다. ‘영신수련 정기 강좌’는 영신수련 피정을 마친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심화과정으로 일상에서 영신수련의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프로그램이다. ‘어떻게 실제로 기도하고 성찰할 것인가?’는 기도 방법과 기도와 삶에서 일어난 영적 체험과 다양한 현상의 성찰하는 방법을 배우고 익힌다.성경 공부 프로그램도 다양하다. △요한복음, 그 산에 오르다 △성경과 영성 - 4복음서의 예수님 △영어 성경 나눔 △영화로 복음 읽기 등이다. 교회사 강좌도 있다. ‘세계사 안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주제로 3월 2일부터 12주 과정으로 매주 목요일 저녁 7시 30분에 열린다. 이규성 신부가 진행하며 중세 교회 역사를 중심으로 세계사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이 어떻게 이해되고 수용됐는지를 알려준다. 문의 및 접수 : 02-3276-7733, 예수회센터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7.02.15
![[가톨릭 리빙] 작심삼일? 안 돼요! 신자들의 새해 신앙결심](//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6746_1.2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빙] 작심삼일? 안 돼요! 신자들의 새해 신앙결심 새해엔 새로운 계획들을 세운다. 그런데 ‘작심삼일’(作心三日)이 되기 십상이기에 ‘초심을 잃지 않게 3일마다 마음을 다잡으라’는 말도 생겨났다. 정유년 새해를 맞아 새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열심히 해보면 어떨까. ‘시작이 반’이다. 신자들이 각자의 본당에서 찾아 시작할 수 있는 활동들을 소개한다. 신심ㆍ활동 단체 가입하기 교회 안 ‘은총의 창고’인 신심 단체에 문을 두드려 보자. 성모님의 군대로서 묵주기도를 바치며 봉사하는 ‘레지오 마리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을 돕는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와 ‘나눔의 묵상회’, 내적 쇄신을 지향하는 ‘성령쇄신봉사회’, 대화로 부부 관계를 개선하고 혼인 생활의 참의미를 발견하게 하는 ‘매리지 엔카운터’(ME), 이혼과 별거 위기에 처한 부부의 회복을 돕는 ‘혼인 재발견’(르트루바이)을 추천한다. 또한, 이탈리아의 초등학교 교사 출신 키아라 루빅(1920~2008)이 시작한 평신도 영성 운동 ‘마리아 사업회’(포콜라레), 성체 신심을 증진해 참된 신앙생활에 도움을 주는 ‘지속적인 성체조배회’, 선종한 이의 영혼을 위해 기도하고 장례 전반에 대해 봉사하는 ‘연령회’, 회심을 위한 3박 4일 피정을 통해 내적 변화와 세상 복음화를 꾀하는 ‘꾸르실료’도 눈여겨보자. 기부ㆍ후원하기 1989년 서울에서 열린 제44차 세계성체대회를 계기로 생명 존중과 나눔 실천이라는 대회 정신을 실천하고자 김수환 추기경이 설립한 ‘한마음한몸운동본부’(www.obos.or.kr)가 있다. 또한 종교를 초월해 국내ㆍ외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들의 자립 지원과 인권향상을 위한 공익활동을 펼치는 법정 기부금 단체인 ‘(재)바보의 나눔’이 있다. 각 교구 성소 계발을 지원하는 ‘성소후원회’, 군인과 가족 등에게 영적ㆍ물적지원을 하는 ‘한국 가톨릭 군종후원회’, 각 수도회의 성소 계발과 활동을 돕는 ‘수도회 후원회’, 성경을 살 수 없는 가난한 나라의 이웃들에게 자국어 성경을 지원하는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에도 관심을 기울여보자. 아울러 주님의 기쁜 소식을 이 땅에 전파하며 밝은 세상을 만드는 가톨릭평화방송(cpbc)ㆍ신문을 후원하는 것도 방법이다. 자녀 주일학교 보내기 어린이와 청소년은 교회의 미래이자 희망이다. 가정에 초ㆍ중ㆍ고 자녀가 있다면 새해부터는 주일학교에 등록시키는 것은 어떨까. 본당 사무실에 문의하면 주일학교 입학 절차와 연간 교육 일정 등을 친절히 안내받을 수 있고, 담당 교사 연락처도 알 수 있다. 주일학교는 ‘신앙 공교육의 장’이다. 신앙이야말로 자녀에게 반드시 물려줘야 할 가장 소중한 유산이다. 성경 공부하기 성서못자리ㆍ가톨릭(청년)성서모임ㆍ바오로성서모임ㆍ성경 백주간ㆍ여정 성경모임ㆍ우리 성서모임ㆍ겨자씨 성서ㆍ어버이성서모임 등이 교회 인준을 받은 성경공부 단체와 모임이다. 교구와 본당에 따라 개설된 성경공부 모임에는 차이가 있을 수 있다.온라인이나 우편물을 통해 집에서 원하는 시간대에 성경공부를 할 수 있다. 성바오로딸수도회의 ‘시청각 통신성서 교육원’(http://uus.pauline.or.kr)가 대표적이다. 영원한 도움 성서연구소가 최근 개설한 무료 성경 공부 사이트 ‘성경의 세계 바이블 톡’(www.bibletalk.co.kr)도 살펴보자. 성경 필사도 좋다. 서울대교구 ‘굿뉴스’(http://info.catholic.or.kr/bible/taja)에 접속해 컴퓨터로 성경 필사를 하는 것도 추천한다. 기도하기 가톨릭 기도서를 참고해 매일 시간을 정해 기도하는 습관을 들이는 것은 어떨까. 아침ㆍ저녁 기도, 묵주기도, 틈날 때마다 바치는 화살기도도 좋다. 스마트폰 앱스토어나 플레이스토어에서 ‘가톨릭’으로 검색하면 ‘가톨릭 기도서’를 비롯해 ‘가톨릭 매일 기도 알람’, ‘성모님과 함께하는 묵주기도’, ‘기도문’, ‘성무일도’ 등 기도 어플을 활용하는 것도 방법이다. 반 모임 참석하기 본당 소공동체 반 모임에 적극적으로 참여해보자. 반 모임 활동을 통해 이웃 신자들과 함께 성경을 읽고 나누고 교류함으로써 주님께 더욱 풍성한 은총을 받는 새해를 만들 수 있다. 문화 강좌 신청하기 문화 복음화 전성시대를 맞아 본당마다 문화 강좌가 한창이다. 클래식 기타와 오카리나, 댄스, 하모니카ㆍ바이올린ㆍ오르간ㆍ피아노ㆍ사진ㆍ스마트폰ㆍ색소폰ㆍ바리스타ㆍ다도(茶道)ㆍ꽃꽂이ㆍ수화ㆍ서예ㆍ수지침ㆍ중국어 등 매우 다양하다. 본당에 따라 과목과 개강 일정에 차이가 있다. 사무실에 문의하면 된다.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문채현2017.01.04
![[성경 속 도시] (77·끝) 로마](//cpbc.co.kr/CMS/newspaper/2016/01/rc/615095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77·끝) 로마그리스도교의 심장 바티칸시티의 성 베드로 광장. 【CNS】 로마는 외국 여행을 가는 사람들, 특히 성지순례를 하는 사람들이 꼭 들르는 장소다. 무엇보다 볼거리가 많은 탓이다. 고대 제국에 있어서 정치 문화의 중심지요 사도 시대 이후에는 그리스도교의 중심지였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도 가톨릭의 중심지로서 교황이 국가 수반으로 있는 바티칸시티가 로마 시내에 있다. 최근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폭발적 인기(?) 덕분에 교황 일반 알현이 있는 날이면 베드로 광장은 사람들로 넘쳐난다. 교황 덕분에 이탈리아 관광객이 늘어났다고 하니 그 인기가 실감이 난다. 예수님 당시 강대한 로마제국은 로마시를 중심으로 사방으로 넓은 영토와 함께 전성시대를 이뤘다. 로마가 세계에 준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국가 조직 및 정치 그리고 문화 윤리 및 철학 등 다양한 문화를 서방에 전파하는 역할을 하였다. 로마제국은 기원전 27년 아우구스투스에 의해 건설되어 동ㆍ서로마제국으로 분열된 후 서로마제국이 476년, 동로마제국이 1453년에 멸망하기까지 계속돼 서양 문화 형성에 커다란 역할을 한 대제국이다. 로마는 그리스도교의 생성과 발전에 밀접한 관계가 있다. 예수님은 로마제국의 식민지였던 유다 지방에서 태어나 활약하다 ‘유다인의 왕’이라는 죄목으로 로마법에 따라 재판에 회부돼 십자가형을 받으셨다. 초대 교회 역시 당시 세계의 중심이었던 로마 문화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그리스도교는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시작돼 시리아, 아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니키아, 소아시아, 요르단, 이집트 같은 근동 지방으로 퍼져나갔다. 로마 제국은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칙령을 통해 그리스도교를 공인하고, 얼마 후 국교로 자리 잡게 된다. 서기 8세기부터 1870년까지 로마는 교황령의 수도가 됐다. 이탈리아 통일 후 1871년 이탈리아 왕국의 수도가 되었고, 2차 세계대전 이후 지금까지 로마는 이탈리아의 수도로 자리 잡고 있다.성경에서 바오로 사도는 당시 세계의 가장 크고 중요한 이방인들의 도시였던 로마에서 선교하고자 하는 원대한 꿈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로마에 있는 여러분에게도 복음을 전하는 것이 나의 소원입니다”(로마 1,15).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로마 선교 계획을 여러 번 주변에 이야기했다. “이런 일들이 끝난 뒤, 바오로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를 거쳐 예루살렘에 가기로 작정하고, ‘거기에 갔다가 로마에도 가 보아야 하겠습니다’ 하고 말하였다”(사도 19,21). 그러다 결국 바오로 사도는 죄수의 몸이 되어 로마에 들어가게 된다. “형제들이 로마에서 우리 소문을 듣고 아피우스 광장과 트레스 타베르내까지 우리를 맞으러 왔다. 그들을 본 바오로는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용기를 얻었다. 우리가 로마에 들어갔을 때, 바오로는 자기를 지키는 군사 한 사람과 따로 지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았다”(사도 28,15-16). 바오로 사도는 2년 동안 죄수의 몸이었지만, 비교적 자유롭게 그리스도의 복음을 로마에서 전하게 된다. “바오로는 자기의 셋집에서 만 이 년 동안 지내며, 자기를 찾아오는 모든 사람을 맞아들였다. 그는 아무 방해도 받지 않고 아주 담대히 하느님의 나라를 선포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하여 가르쳤다”(사도 28, 30-31). 그러다 네로 황제 때에 교회의 두 기둥인 베드로 사도와 바오로가 로마에서 순교하면서 로마는 더욱 큰 종교적 의미를 갖게 된다. ‘영원한 도시’라 불리는 로마는 현재도 여전히 세계의 중요한 도시 중 하나다. 서양의 예술과 문화가 집대성된 장소이며, 고대 정신문화와 그리스도교의 결합에 의해 형성된 유럽 문화의 본산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성경 속 도시’는 이번 호로 마칩니다. 다음 호부터는 계속해서 허영엽 신부의 ‘성경 속 기도’가 연재됩니다. 평화신문2016.01.19
 영광스러운 변모(루카 9,28-36)](//cpbc.co.kr/CMS/newspaper/2017/10/rc/698080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34) 영광스러운 변모(루카 9,28-36) 주님의 거룩한 변모, 우리에게 힘과 위안 줘 ▲타보르 산 전경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이야기는 바로 앞의 내용들 곧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베드로의 고백(9,18-21)과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 말씀(9.22), 그리고 당신을 따르는 이들의 자세에 대한 말씀(9,23-27)과 긴밀하게 결부되어 있습니다. 하느님 만나는 곳으로 세 제자 데려 가시다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시러 산에 오르셨다는 것으로 시작합니다.(9,28) 성경에서 산은 기도하는 곳 또는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제자들 가운데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가신 것은 이 세 제자에 대한 예수님의 각별한 사랑을 반영하는 것 같습니다. 카파르나움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실 때도 이 세 사람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8,51 참조) 같은 내용을 전하는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에서는 “엿새 뒤”(마태 17,1; 마르 9,2)라고 하는데 루카복음에서는 “여드레쯤 되었을 때”라고 합니다. 루카가 왜 ‘여드레’라는 표현을 썼는지에 대해서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유다인들에게 8이라는 숫자는 새로운 시작을 의미한다고 하지요. 그런데 이상한 일이 생깁니다.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데 얼굴 모습이 달라지고 옷이 하얗게 번쩍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에 싸여 나타나 예수님과 대화를 나눕니다.(9,29-31) 유다교에서는 옷이 하얗게 번쩍이고 빛난다는 것은 종말에 있을 천상 영광의 표시로 이해한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기도 중에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있을 영광스러운 모습으로 변하신 것입니다. 그 변화가 옷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얼굴에도 있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그만큼 충만한 영광 중에 계셨다는 것을 나타내겠지요. 게다가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에 싸여 예수님과 대화를 나눕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을 대표하는 위대한 지도자요 예언자입니다. 엘리야는 죽지 않고 회오리바람에 실려 하늘에 올라갔고(2열왕 2,11), 모세는 “주님께서 얼굴을 마주 보고 사귀시던 사람”(신명 34,10)으로서 그가 주님을 만나고 오면 사람들이 가까이하기 두려워할 정도로 살갗이 빛났습니다.(탈출 34,29-30) 이렇게 하느님의 영광에 싸여 세 사람이 나누는 대화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 곧 세상을 떠나실 일”(9,31)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배척을 받고 수난을 겪고 죽임을 당하는 것뿐 아니라 부활하시어 하늘에 오르시는 일까지 다 포함한다고 성경학자들은 풀이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을 두고 ‘하느님의 그리스도’시라고 고백했을 때 함구령을 내리시고는 바로 이어서 당신의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셨는데,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나누신 대화가 바로 이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학자들은 또 “세상을 떠나실 일”이라는 표현에 주목합니다. 이 표현에 해당하는 그리스 말이 ‘엑소도스(Exodos)’로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을 가리킬 때 쓰는 표현과 같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선 당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새로운 탈출을 실현하신다는 것을 뜻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주석 성경」 루카복음서 참조) 제자들이 잠에 빠졌다가 이 광경을 봅니다.(9,32) 그리고 모세와 엘리야가 예수님에게서 떠나려고 할 때 베드로가 나서서 이렇게 말합니다. “스승님,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스승님께 하나는 모세께, 또 하나는 엘리야께 드리겠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베드로는 자기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몰랐다”(9,33)라고 덧붙입니다. 이렇게 이해하면 어떨까요? 잠에 빠졌다가 눈을 뜬 베드로가 보니 예수님과 모세와 엘리야가 영광에 싸여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아름답고 황홀해서 베드로는 얼떨결에 세 분을 모실 거처를 지어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비록 잠이 덜 깼을지 모르지만, 세 사람이 함께 있는 그 모습이 영원히 지속됐으면 하는 게 베드로의 마음이었음은 분명했을 것입니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그런데 구름이 일더니 세 사람을 덮고 세 사람이 구름 속으로 들어갑니다. 제자들은 덜컥 겁이 났습니다.(9,34) 구름은 하느님의 현존을 표시합니다. 구름이 세 사람을 덮었다는 것은 세 사람이 하느님의 영광 중에 들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을 감싸는 하느님의 위엄과 영광에 제자들은 겁을 먹은 것입니다. 그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가 선택한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하는 소리가 납니다(9,35)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고 하늘에서 들려온 말씀을 상기시킵니다.(3,22 참조) 그러나 세례 때와 달리 여기에서는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는 말씀이 첨가됩니다. 이 말씀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한 말을 반향합니다. “주 너희 하느님께서 너희 동족 가운데에서 나와 같은 예언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신명 18,15) 따라서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예언된 그 예언자이심을 상기시킵니다. 이 말씀이 끝나자 예수님만이 보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은 침묵을 지켜 자기들이 본 것을 그때에는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았다”(9,36)는 설명으로 거룩한 변모 이야기는 끝이 납니다. 제자들의 침묵은 베드로가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로 고백했을 때 예수님께서 내리신 그 함구령(8,21)을 그대로 지킨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 함구령은 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이후에 해제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 곧 메시아로 선포하기 시작한 것은 성령 강림 이후부터라고 봅니다.(사도행전 2장 참조) 생각해 봅시다 왜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하느님의 그리스도’라는 베드로의 고백에 함구령을 내리시면서 베드로와 다른 두 제자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 거룩한 변모를 보게 하셨을까요?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놀라운 일들을 목격합니다. 병자들을 고치고 마귀를 내쫓으시고 죽은 사람을 살리실 뿐 아니라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을 배불리 먹이시는 기적도 행하십니다. 풍랑을 잠잠하게도 하시지요. 예수님의 이런 모습은 제자들에게 예수님이 이스라엘을 구원할 현세적 메시아로 여기게 했음이 분명합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오히려 당신이 겪으실 배척과 수난과 죽음을 먼저 예고하십니다. 그리고 당신을 따르려면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권고하십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의 이런 말씀이 혼란스러웠지 않았을까요? 제자들은 ‘내가 이 분을 메시아로 믿고 따르는 것이 제대로 가는 길일까?’ 하고 의문도 제기했을 법합니다. 거룩한 변모 이야기는 바로 이런 상태의 제자들에게 힘과 위안을 주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잠시지만 종말에 있을 그 영광을 체험한 제자들은 이제 다시 격려를 얻고 용기를 내어 예수님을 따를 것입니다. 물론 또 실망하겠지만 말입니다.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기는 사실 쉽지 않습니다. 차라리 예수님을 놓아 버리고 싶을 때도 있지요. 거룩한 변모 사건은 이런 우리에게도 위로와 힘을 줍니다. 힘들 때 우리가 예수님을 따르기로 한 후 예수님과 함께하면서 행복했던 순간을 떠올려 보십시오. 우리 각자에게 ‘거룩한 변모의 산’은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다시 힘을 얻어 내게 주어진 십자가의 길을 다시 성실히 걸을 수 있지 않겠습니까? 거룩한 변모 이야기는 이런 의미에서 대단히 중요한 일화입니다.알아 둡시다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신 산은 어디일까요? 복음서들은 그 산의 이름을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지만 교회 전승은 거룩한 변모의 산이 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 호수 남서쪽에 있는 타보르 산이라고 봅니다. 이스라엘의 비옥한 북부 이즈르엘 평야 북동쪽에 자리 잡고 이 있는 타보르 산은 둥근 사발을 엎어놓은 모양입니다. 해발 588m로 그리 높지는 않지만 주변이 평야 저지대여서 정상에 오르면 사방을 훤히 내려다볼 수 있지요. 산 정상에는 성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관할하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 기념 성당과 정교회에서 세운 엘리야 성당이 있습니다. 문채현2017.10.11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67) 미나의 비유(루카 19,11-27)](//cpbc.co.kr/CMS/newspaper/2018/06/rc/723302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67) 미나의 비유(루카 19,11-27)주님께서 다 알고 계신다 작은 일에도 성실하여라 미나의 비유는 주어진 일을 자신의 능력에 따라 수행하면서 그리스도 신자이기 때문에 현실에서 겪게 되는 어려움을 인내롭게 극복해 나가는 삶의 자세가 중요함을 일깨운다. 그림은 미켈란젤로 작 최후의 심판, 바티칸 시스티나 성당 벽화. 가톨릭평화신문 DB 미나의 비유는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탈렌트의 비유(마태 25,14-30)와 비슷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두 비유가 대단히 비슷한 본문 또는 같은 본문에서 유래하는 것으로 봅니다. 비유의 상황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이 이 말씀을 듣고 있을 때에”(19,11) 미나의 비유를 더 말씀하셨다고 루카 복음사가는 기록합니다. 사람들이 듣고 있던 “이 말씀”은 문맥으로는 예수님께서 자캐오의 집에서 하신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9-10)는 말씀을 가리킵니다. 따라서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신 곳은 아직 자캐오의 집임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비유 내용을 전하기에 앞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덧붙여 말씀하시는 이유를 설명합니다. 두 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까이 이르신 것이 하나이고, 사람들이 하느님의 나라가 당장 나타나는 줄로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이 다른 하나입니다.(19,11) 이스라엘 백성은 이스라엘의 구원은 주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온다고 생각했습니다. 예루살렘은 또한 갈릴래아를 출발할 때부터 예수님의 최종 목적지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예루살렘까지 이 하룻길밖에 되지 않는 예리코에 오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예언자 또는 메시아로까지 여기기도 했던 군중은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기만 하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기대했을 수도 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집에 구원이 내렸다고 말씀하시면서 사람의 아들은 잃은 사람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고까지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이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가시기만 하면 당장 하느님 나라가 나타날 것으로 생각한다고 해서 크게 무리는 아닐 것입니다. 미나의 비유 말씀은 사람들의 이 같은 생각 또는 기대와 맞물려 있습니다. 비유의 내용어떤 귀족이 왕권을 받아 오려고 멀리 떠나면서 데리고 있던 종들에게 미나 하나씩을 주고 “내가 올 때까지 벌이를 하여라” 하고 당부합니다. 마침내 왕권을 받아 돌아와서는 종들에게 돈벌이한 결과를 보고하게 합니다. 첫째 종은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였다고 보고하고, 둘째 종은 한 미나로 다섯 미나를 벌었다고 보고합니다. 주인은 이들에게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하면서 각각 열 고을과 다섯 고을을 맡아 다스리도록 합니다. 그러나 다른 종은 한 미나 그대로 가지고 와서는 “주인님께서 냉혹하신 분이어서 가져다 놓지 않은 것을 가져가시고 뿌리지 않은 것을 거두어 가시기에 저는 주인님이 두려웠습니다” 하고 보고합니다. 그러자 주인은 그 종이 가지고 있던 한 미나를 빼앗아 열 미나를 가진 사람에게 주라고 지시합니다. 그러면서 “누구든지 가진 자는 더 받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19,26)이라고 말하지요.(19,12-13.15-26) 여기까지는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탈렌트의 비유와 비슷합니다. 그런데 마태오복음에는 없는 부분이 루카복음에 있습니다. 귀족이 왕이 되는 것이 싫었던 백성은 사절을 뒤따라 보내어 반대 의사를 전달합니다. 사절의 말이 먹히지 않았는지, 귀족은 왕권을 받아서 옵니다. 그러고는 자기를 싫어한 원수를 사람들 보는 앞에서 처형시킵니다.(19,14.27) 비유의 이해 이 비유는 두 가지로 나눠서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미나 자체에 관한 비유입니다. 비유에서 왕권을 받으러 떠나는 귀족은 예수님을 의미합니다. 종들이 받은 미나는 화폐 단위이지만 예수님에게서 받은 명령이라고도 할 수 있지요. 화폐 단위로 볼 때 미나는 마태오복음에 나오는 탈렌트에 비해 훨씬 적은 돈입니다.(아래 ‘알아보기’ 참조) 중요한 것은 적은 돈이라도 불리려는 노력입니다. 한 미나로 열 미나를 벌어들인 종이나 다섯 미나를 벌어들인 종은 나름대로 성실히 노력한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에게 “아주 작은 일에 성실하였으니…” 하는 칭찬과 함께 그에 따른 보답을 받습니다. 반면에 한 미나 그대로 보관해 둔 종은 아무런 노력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종은 결국 가진 한 미나마저 빼앗기고 말지요. 이 비유가 전하고자 하는 핵심은 ‘성실한 노력’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성실하게 노력한 만큼 더 베풀어 주십니다. 그러나 성실하지 않다면, 가지고 있는 것조차 빼앗으십니다. 한편 귀족이 왕이 되는 것을 싫어한 백성은 바로 예수님을 거부한 이스라엘을 의미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하시는 일을 방해하지요. 그렇지만 그들의 방해 공작은 실패합니다. 그러면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요? 예수님께서 왕으로 다시 오시는 날 엄정한 심판을 받을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실제로 있었던 사건이 바탕이 되고 있다고 학자들은 봅니다. 헤로데 대왕의 세 아들 중 맏이인 아르켈라오스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기원전 4년에 헤로데 대왕이 죽고 세 아들 아르켈라오스와 안티파테르, 필리포스가 아버지의 영토를 나눠 차지하게 됩니다. 맏이 아르켈라오스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차지하면서 왕이라는 칭호를 받기 위해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만나러 로마에 갑니다. 하지만 아르켈라오스의 잔인함이 싫었던 신하들은 유다인 50명을 사절로 로마에 파견합니다. 결국 아르켈라오스는 왕이라는 칭호는 얻지 못하고 영주(또는 분봉왕)라는 칭호를 얻고 돌아옵니다. 어떻게 했겠습니까? 자신이 왕이 되는 것을 반대한 이들에게 잔혹하게 보복합니다. 그러다 결국 그는 기원 후 6년에 쫓겨나고 맙니다. 그러나 아르켈라오스와는 달리 예루살렘을 떠나 부활하시어 승천하신 예수님께서는 종말에 왕이 되어 다시 오실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예수님의 부활과 승천 후 성령을 받은 사도들이 선포하는 복음을 받아들여 생겨난 그리스도 신자 공동체들은 처음에는 예수님의 왕으로서 다시 오실 날이 머지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임박한 재림 기대 사상은 옅어져 갔고, 한편으로는 박해도 간헐적으로 이어졌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런 상황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를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미나의 비유를 통해 제시하려고 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작은 일을 성실히 하는 것입니다. 또 그리스도 신자라는 이유로 박해를 당하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견뎌내는 것입니다. 그러면 마침내 주님께서 그 모든 것을 갚아주실 것입니다. 이는 오늘의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내가 성실히 노력해야 하는 작은 일은 무엇인지, 참고 견뎌내야 하는 박해는 무엇인지 생각해 봅시다. [알아보기]미나와 탈렌트는 얼마나 차이가 날까요? 미나는 유다인들의 화폐 단위인데, 1미나는 그리스의 화폐 단위인 드라크마로 환산하면 100드라크마에 해당합니다. 탈렌트 역시 그리스 화폐 단위인데, 1탈렌트는 6000드라크마라고 합니다. 그렇다면 미나로 환산하면 1탈렌트는 60미나입니다. 그리스의 드라크마에 해당하는 로마의 화폐 단위가 데나리온입니다. 1데나리온은 농사를 짓는 품꾼이 받는 하루 삯입니다. 1탈렌트는 6000데나리온이지요. 1탈렌트는 농민의 품삯으로 치면 16년 5개월 치입니다. 백영민2018.06.07

억양·소통법 달라도 같은 신앙으로 우정 돈독전국 가톨릭 고교 학생대회 대전서 열려… 21개 교 참가 대전 살레시오 청소년 수련원에서 열린 제28회 전국 가톨릭 고등학교 학생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대회를 마무리하며 각자의 다짐과 친구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쓰고 있다. 전국 가톨릭계 고등학교 학생들이 한데 모였다. (사)한국가톨릭학교법인연합회(회장 정신철 주교)는 10월 27일~29일 대전 살레시오 청소년 수련원에서 ‘제28회 전국 가톨릭 고등학교 학생대회’를 열고 같은 신앙을 가진 청소년들을 위한 친교의 장을 마련했다.학생대회에는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마태 5.14)를 주제로 서울 동성고, 제주 신성여고, 인천 박문여고, 안성 안법고, 논산 대건고, 경주 근화여고 등 전국 곳곳에 있는 가톨릭계 21개 고등학교에서 학생 181명이 참가했다. 참가자들은 18개 조로 나뉘어 2박 3일 동안 모둠 활동을 펼쳤다.프로그램은 조 구성원들과 협력하고 나누는 체험으로 꾸며졌다. 참가자들은 영상물 ‘한국 고등학생들의 현실’을 함께 시청하고 자신이 처한 상황과 감정, 세상에 대해 생각을 나누는가 하면 ‘빛과 어둠의 대화-아름다운 동행’을 통해 성경 한 구절을 묵상하며 짝꿍과 산에 올라 대화를 나눴다. 또한 퍼즐 맞추기, 축제 준비 등의 프로그램을 통해 구성원의 소중함과 하느님의 현존을 느끼기도 했다. 대회에는 가톨릭에서 운영하는 특수학교 학생들도 참가해 비장애 친구들과 어울렸다. 학생들은 충주 성심학교에서 온 청각장애 친구들과 소통하기 위해 메모장을 들고 다니며 대화를 나눴고 인솔교사가 수화 통역을 도왔다. 충주 성심학교 장경화(세라피나) 교사는 “우리 아이들이 학교 안에서만 이뤄지는 교육으론 얻기 힘든 자신감을 얻고 간다”고 말했다.학생들은 다른 지역 학생들과 어울리는 경험을 통해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입을 모았다. 광주 살레시오여고 2학년 배정빈(스텔라)양은 “친구들이 충청도, 제주도, 경상도에서 오다 보니 서로 사투리가 신기하다고 계속시켜 보기도 했다”면서 “친구를 많이 사귈 수 있어 좋았다”고 말했다.(사)한국가톨릭학교법인연합회 사무총장 박찬복 신부는 “학생대회는 가톨릭계 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신자 2세 교육, 미래 교회 인재 양성, 학교 내 가톨릭 활동 신장 등의 목적으로 매년 열리고 있다”며 “참가 학생들이 학생대회에서 얻은 신앙의 빛을 주변에도 전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전국 가톨릭 고등학교 학생대회는 1989년 처음 시작됐으며 2018년 대회는 6월 1일~3일 광주 청소년수련원에서 열릴 예정이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김지항2017.11.01
![[원로 사목자를 찾아서] (1) 정진석 추기경](//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4382_1.0_titleImage_1.jpg)
[원로 사목자를 찾아서] (1) 정진석 추기경어떤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 사랑 믿으며 희망 가져야 정진석 추기경 교회와 사회를 위해 평생을 바친 원로 사제들을 만나는 ‘원로 사목자를 찾아서’ 연재를 시작한다. 교회의 큰 어른인 원로 사제들이 주님과 함께, 그리고 신자들과 함께 울고 웃으며 지낸 이야기를 들어보고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필요한 삶의 지혜를 청해본다.“건강에 큰 문제 없이 살고 있어 기도 아끼지 않은 교우들 덕분” 새벽 5시 일어나 기도와 미사 방문 손님 만나고 집필과 산책 대통령과 정치인들 모세 닮은 관용의 지도자 되길 대화할 때 좋은 점 말하는 것 행복의 첫걸음2일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은 싱그러운 녹음이 짙었다. 미세먼지 없는 하늘은 얼마나 맑고 푸른지, 눈앞에 보이는 모든 것이 선명하게 다가왔다. 화창한 날씨 때문이었을까. 2012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후 신학대학 강성삼관에서 지내는 정진석(전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을 만나러 가는 길은 발걸음이 가벼웠다. 정 추기경(86)은 신학대학 교정이 주는 평화로움만큼이나 온화한 미소로 기자를 반겼다. 정 추기경은 지난해 12월 자신의 니콜라오 영명 축일 미사 때 성공 확률이 10%도 되지 않는 위험한 수술을 무사히 받고 깨어났다고 밝혀 참석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다. 먼저 건강을 묻자 정 추기경은 “건강은 내 나이 또래와 비슷한 정도로, 큰 문제 없이 살고 있다”면서 “저를 위해 기도를 아끼지 않는 교우들 덕분”이라고 고마움을 전했다. 정 추기경은 젊은 시절부터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해 왔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새벽 5시쯤 일어나 7시 반에 같이 지내는 신부들과 미사를 드리고 8시에는 아침 식사를 한다. 이후 숙소와 붙어 있는 집무실로 나와 손님을 만나거나 글을 쓴다. 낮 기도와 점심 식사 후 오후 일과도 오전과 비슷하다. 오후에 빼놓지 않는 일정이 있다면 신학대학 구내를 한 시간가량 걷는 것. 산책은 평소 습관이기도 하지만 건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많이 움직여야 한다는 의사의 강력한 권유에 따른 것이기도 하다. 저녁 기도와 식사 후에는 묵주기도 20단을 꼭 바친다. 그리고 아무리 늦어도 9시 반 이전에는 잠자리에 든다. 텔레비전은 필요할 때만 잠시 보는 정도다. 정 추기경은 “잠에서 깨어나 미사 드릴 때까지 새벽 시간이 하느님을 가장 온전히 만나는 순간”이라며 “이 시간에 하느님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책도 쓰고 있다”고 일과를 소개했다. 정 추기경과 평생을 함께해온 오랜 친구로 집필을 빼놓을 수 없다. 올해 영명 축일에 맞춰 펴낼 책은 「나를 이끄시는 빛」(가제)이다. “교구장으로 일하면서 모든 것이 꽉 막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성경에 매달렸고 성경 속 인물들에게서 길을 찾았습니다. 성경에는 내가 따라야 할 훌륭한 인물이 참 많습니다.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결점을 가진 분들 또한 적지 않죠. 「나를 이끄시는 빛」은 그런 모든 이들에게서 얻은 인생의 교훈을 묵상한 책입니다. 각 장의 말미에는 해당 인물과 연관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을 한 단락씩 실었습니다. 성경과 공의회 문헌을 연결시켜 함께 묵상하도록 이끄는 시도는 처음이 아닐까 싶습니다.” 허영엽(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신부가 정 추기경의 구술과 자료를 바탕으로 본지에 연재하고 있는 회고록 ‘추기경 정진석’을 읽는 소회가 궁금했다. 정 추기경은 자신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한다고 했다. “회고록을 읽다 보면 내 무덤 앞에 모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제 모습이랄까요. 죽은 다음의 나를 미리 보는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차분한 심정으로 일생을 돌아보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죽음이 두렵거나 아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감정적 동요도 없습니다. 회고록은 제가 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잘 준비하도록 돕는 좋은 벗입니다. 수고를 아끼지 않는 허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아쉬웠던 순간과 보람 있었던 순간이 씨줄과 날줄처럼 엮여 반복하는 것이 사람의 일생이다. 늘 나쁠 수만도, 늘 좋을 수만도 없다. 정 추기경은 희비가 함께한 대표적인 경험으로 1998년 청주성모병원 건립을 꼽았다. “청주교구 한 해 예산의 10배나 되는 100억 원을 빌려 병원을 인수했는데, 덜컥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됐습니다. 다른 곳으로 떠날 줄 알았으면 그런 큰일을 벌이지 않았을 텐데 말입니다. 당시 서울대교구 총대리 김옥균 주교님께 대책을 세울 때까지 부임 일정을 늦춰달라고 요청했지만 그건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습니다. 결국 6월에는 서울로 올라와야 했습니다. 다들 서울대교구장으로 가니까 좋겠다고만 생각했는데, (청주)교구에 100억 원이라는 큰 빚을 남긴 저 자신은 얼마나 미안하고 착잡했는지 모릅니다. 시험에 든 아브라함의 심정이었습니다. 다행히 제가 떠난 후 모두가 일치단결해서 기한 내에 빌린 돈을 다 갚을 수 있었습니다. 청주교구 신부님과 신자들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하다는 마음을 전합니다.” 청주성모병원 건은 당장은 이해가 되지 않는 역경도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것이고, 마침내는 선(善)으로 승화시키신다는 신앙의 신비를 보여주는 하나의 사례가 아닐까 싶다. 정 추기경은 “하느님이 예수라는 사람으로 이 세상에 오셨고, 십자가의 고통 끝에 죽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킴으로써 사랑의 승리를 보여준 것”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강조했다. “하느님은 자신의 뜻을 전하고자 인간이 돼 오셨습니다. 나쁜 사람은 잘살고, 착한 사람이 고통을 받는 세상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부조리하고 정의롭지 못합니다. 무고한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과 죽음이 그렇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부활시킴으로써 인간의 정의를 초월하는 당신의 정의를 보여주셨습니다. 하느님의 사랑이 모든 악을 이긴다는 것을 보여주신 겁니다. 그리스도인은 인간의 눈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하느님의 무한한 자비를 믿는 이들입니다. 어떤 절망 속에서도 하느님은 사랑이시라는 믿음을 잃지 말고 희망을 가져야 합니다.” 최근 대한민국을 이끌 제19대 대통령으로 선출된 문재인(티모테오) 대통령에게 당부 말씀을 청했다. 정 추기경은 비단 문 대통령뿐만 아니라 한국의 모든 정치인이 모세 같은 지도자가 되기를 요청했다. “모세는 하느님이 택한 영도자입니다. 물론 결점도 많았지만 성경에서 가장 훌륭한 지도자로 꼽히는 성인 가운데 한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에게 여러 차례 반란을 일으켰습니다. 진노하신 하느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다 없애고 모세를 새 민족의 조상으로 만들어주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을 살려달라고, 제가 참을 테니 용서해 달라고 하느님께 매달렸습니다. 모세는 그런 지도자였습니다. 성경에 나오는 모세의 일생을 꼭 한번 읽어보시길 바랍니다. 모세를 닮는다면 분명 좋은 지도자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인터뷰를 마치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사제와 신자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을 부탁했다. 정 추기경은 가능하면 상대방의 좋은 점을 보고, 일단 일을 맡겼다면 믿고 지원을 아끼지 말라고 조언했다. “하느님은 제게 상대방의 단점이나 못하는 것보다는 장점과 잘하는 것을 크게 보는 은총을 주셨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든 일을 맡기면 잔소리를 하거나 간섭하기보다는 스스로 알아서 하도록 했습니다. 지난 40여 년간 교구장직을 큰 무리 없이 수행할 수 있었던 비결이 아닌가 싶습니다. 대화할 때 가능하면 좋은 점을 이야기하세요. 행복의 첫걸음이라고 믿습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정진석 추기경 약력 ▲ 1931년 12월 7일 서울 출생 ▲ 1961년 가톨릭대 신학대 졸업 ▲ 1961년 3월 18일 사제 수품 ▲ 1961년 서울대교구 중림동본당 보좌 ▲ 1961~67년 성신고등학교 교사 ▲ 1962~64년 서울대교구 법원 공증관 ▲ 1964~65년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 총무 ▲ 1965~67년 서울대교구장 비서ㆍ상서국장 ▲ 1967~68년 성신고등학교 부교장 ▲ 1968~70년 교황청립 우르바노대 대학원 졸업(교회법 석사) ▲ 1970년 6월 25일 청주교구장 임명 ▲ 1970년 10월 3일 주교 수품, 청주교구장 착좌 ▲ 1970~99년 재단법인 청주교구 천주교회 유지재단 이사장 ▲ 1987~93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총무 ▲ 1993~96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부의장 ▲ 1996~99년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의장 ▲ 1998년 5월 30일 서울대교구장 임명 ▲ 1998년 6월 29일 서울대교구장 착좌 ▲ 2006년 2월 22일 베네딕토 16세 교황으로부터 추기경 임명 ▲ 2006년 3월 24일 추기경 서임 ▲ 2007년 2월 3일 교황청 성좌조직재무심의 추기경위원회 위원 임명 ▲ 2012년 6월 15일 은퇴백영민2017.06.07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6.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9732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6.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세상에 전한 제자들마솔리노 작 ‘불구자를 고친 성 베드로와 타비타의 소생’중 일부, 1424-25년쯤, 프레스코, 브란카치 경당,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피렌체, 이탈리아.성령 강림 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예수님의 행적 요약하는 내용 담아 걷지 못하던 사람 일어나도록 치유 사도들 증언 통해 교회 형태 정착 모든 일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며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음을 전해복음서의 인물 중에서 베드로는 사도들의 으뜸이면서 인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사도입니다. 예수님께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처음 고백하지만 뒤이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이 전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는 사도행전 초반에 담겨있는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님의 사건을 요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중심이 되는 이런 내용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사도 2,22-24) 오순절의 성령 강림 이후에 전하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사도들이 이해한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제 약속된 성령을 통해 지속됩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성령 강림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훌륭한 연설입니다. 또한,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는 것에서 당시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준비된 하느님의 계획 안에 구약성경이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사도들은 단지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활동을 이어갑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는 병자의 치유입니다. 베드로는 태어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었던 사람을 성전에서 치유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거처라고 생각했던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를 치유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사도들을 통해 이 땅에서 예수님의 활동이 여전히 지속됨을 보여줍니다. 이 치유와 함께 있었던 솔로몬 주랑에서의 설교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이 설교 안에서 죄의 용서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사도 3,19). 사도들의 활동은 이처럼 예수님의 업적을 이어가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이었지만 부활과 성령 강림은 그들은 완전히 바꾸어놓는 계기가 됩니다. 사도들은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고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이 선포 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물론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이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인입니다. 이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교회’입니다. 성령 강림은 교회의 시작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실 때부터 이미 교회는 준비되었지만,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성령 강림 이후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인 사도들의 활동을 통해 교회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내용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도 표현됩니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김지항2017.04.26

2억 5000만 이주민을 환대하자, 평화의 씨앗을 심자제51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이민과 난민 : 평화를 찾는 사람들 아기를 안고 있는 한 로힝야 여인이 난민들 무리 속에서 고통스러워하고 있다. 교황은 해마다 1월 1일 세계 평화의 날을 맞아 담화를 발표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제51차 세계 평화의 날 담화 주제를 ‘이민과 난민’으로 정했다. 세계 평화의 날 담화를 요약, 소개한다.1. 평화를 빕니다이 세상의 모든 사람, 모든 민족에게 평화를 빕니다 평화는 모든 이, 각 개인과 모든 민족, 특히 평화를 누리지 못하고 극심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간절히 열망하는 것입니다. 특히 2250만 명의 난민을 포함한 2억 5000만 명 이상의 전 세계 이주민들에 관하여 말씀드립니다. 전쟁과 기아를 피하여, 또는 차별과 박해와 빈곤과 자연 훼손으로 고향을 떠날 수밖에 없는 그 모든 사람을 자비심으로 끌어안읍시다.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대하여 마음을 여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환대하는 데에는 구체적 헌신, 협력 네트워크와 선의, 깨어 있는 자세와 연민 어린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또 현실의 복잡한 상황들을 책임 있게 관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정부 지도자들은 환대와 증진과 보호와 통합을 위한 실질적 대책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 공동선을 해치지 않는 한계 내에서 이들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2. 왜 그렇게 많은 난민과 이민이 있을까요전쟁과 분쟁, 대량 학살과 인종 청소의 결과의 하나로서 이재민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무장 투쟁을 비롯하여 다른 형태의 조직적 폭력들이 국경 안팎에서 민족 이동을 계속 촉발하고 있습니다. 더욱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강조하였듯이 “자연 훼손으로 악화된 빈곤 상태에서 벗어나려는 이주가 증가”하는 비극적 상황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모든 지표에 따르면, 전 세계적 이동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라고 합니다. 어떤 이들은 그것을 위협으로 봅니다. 저는 여러분이 그것을 평화를 건설하는 기회로서 확신을 갖고 봐주실 것을 요청합니다. 3. 관상하는 시선으로이민이든 그들을 환영하는 현지인이든 모두 한가족이고, 교회의 사회 교리가 가르치듯 모두 똑같이 보편적 목적을 지닌 지상 재화를 누릴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연대와 나눔의 바탕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우리가 살고 있는 도시들을 관상하는 시선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 집 안과 거리와 광장에 살고 계시는 하느님을 볼 줄 아는 신앙의 눈을 가져야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연대와 형제애를 증진해 주시고 선과 진리와 정의를 향한 열망을 북돋워 주십니다. 평화에 대한 약속을 이뤄주십니다.이러한 시선으로 이민과 난민을 바라볼 때, 우리는 그들이 빈손으로 온 것이 아님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은 용기와 재능과 에너지와 열망, 그리고 고유문화라는 보화를 가지고 옵니다. 이렇게 그들은 자신들을 받아들여 준 나라의 삶을 풍요롭게 합니다. 이러한 시선으로 보는 사람들은 이미 싹트고 있는 평화의 씨앗들을 알아볼 수 있을 것이고, 또한 그것들이 잘 자라도록 돌보아줄 수 있을 것입니다. 4. 행동을 위한 네 가지 이정표비호(망명) 신청자, 난민, 이민 그리고 인신매매 피해자에게 그들이 갈구하는 평화를 찾을 기회를 제공하려면 네 가지 행동, 곧 환대하기, 보호하기, 증진하기 그리고 통합하기를 결합하는 전략이 필요합니다.“환대하기”는 이민들과 실향민들이 목표한 국가에 합법적으로 들어가도록 선택의 폭을 넓혀주고 그들을 더 이상 박해와 폭력의 나라로 몰아내지 않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은 또한 국가 안보에 관한 염려와 기본적 인권에 관한 배려 사이의 균형을 맞추도록 요구합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이야기합니다. “손님 접대를 소홀히 하지 마십시오. 손님 접대를 하다가 어떤 이들은 모르는 사이에 천사들을 접대하기도 하였습니다.”“보호하기”는 피신처와 안전을 찾아 실질적 위험들에서 달아난 사람들의 침범할 수 없는 권리를 인정하고 보호하며, 착취당하지 않도록 예방해야 하는 의무와 관련이 있습니다. 특히 저는 위험과 학대의 상황에 놓여 있는 여성들과 어린이들을 생각합니다. “주님께서는 이방인들을 보호하시며 고아와 과부를 돌보신다.”“증진하기”는 이민과 난민의 온전한 인간 발전을 지원하는 것을 수반합니다. 그것을 실행하는 수많은 가능한 수단 가운데, 저는 어린이들과 젊은이들이 모든 단계의 교육에 접근할 수 있도록 보장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습니다. 이것은 그들의 잠재력을 가꾸고 실현할 수 있게 해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만나서 거부와 대립보다는 대화의 정신을 기를 수 있도록 더욱 잘 준비시켜 줄 것입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가르칩니다. “하느님은 이방인을 사랑하시어 그에게 음식과 옷을 주시는 분이시다. 너희는 이방인을 사랑해야 한다. 너희도 이집트 땅에서 이방인이었기 때문이다.”끝으로 “통합하기”는 난민과 이민이, 지역 공동체의 온전한 인간 발전에 봉사하는 가운데 상호 풍요로움과 유익한 협력 과정의 일부로서 자신들을 환대하는 사회의 생활에 온전히 참여하도록 허용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바오로 성인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러분은 이제 더 이상 외국인도 아니고 이방인도 아닙니다. 성도들과 함께 한 시민이며 하느님의 한가족입니다.”5. 두 가지 글로벌 콤팩트(세계 협약)를 위한 제안2018년에 유엔이 안전하고 질서 있고 정상적인 이민에 관한 글로벌 콤팩트(global compact, UN이 세계의 대기업에 경제 국제화에 동반되는 여러 가지 문제에 적극적으로 대처할 것을 호소한 선언적 협약)와 난민에 관한 세계 협약을 작성하고 승인하는 과정을 선도하게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전 세계 차원의 합의인 이 협약들은 정책 제안과 실천 수단을 위한 주요 골격이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두 개의 세계 협약은 연민과 선견지명과 용기로써 영감을 받아, 평화 건설 과정에 도움이 되는 온갖 기회를 활용하여야 합니다. 오직 이렇게 함으로써만 국제 정치에서 요구되는 현실주의가, 냉소주의와 무관심의 세계화에 굴복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대화와 조정은 국제 공동체에서 반드시 필요하고 특수한 의무입니다. 만일 국제적 협력으로 그들에게 필요한 기금이 보장된다면, 덜 부유한 나라들에서도 더 많은 수의 난민이 국경을 넘어서 환대를 받거나, 또는 더욱더 환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교황청 온전한 인간 발전 촉진을 위한 부서 이주사목국이, 공공 정책과 그리스도인 공동체의 태도와 실천에서 이 네 가지 행동을 이행하도록 구체적으로 인도하는 20가지 행동지침을 발표하였습니다. 이것을 비롯하여 여러 다른 기회에 발표하는 내용들은 두 가지 유엔 글로벌 콤팩트(세계 협약)의 채택 과정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관심을 표명하는 것이 목적입니다. 이러한 관심은 교회의 기원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그리고 현재까지 교회의 수많은 활동에서 계속되어 온 매우 일반적인 사목적 관심의 표지입니다. 6. 공동의 집을 위하여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말씀에서 영감을 받도록 합시다. “평화로운 세상을 향한 ‘꿈’을 여럿이 공유하고, 이에 대한 이민들과 난민들의 공헌을 평가할 줄 안다면 인류는 모든 이의 가정이 되고 우리들의 이 지구는 참으로 ‘공동의 집’이 될 것입니다.” 전 역사를 통하여 많은 사람이 이 “꿈”을 믿었고, 그들이 이룬 성취는 그것이 단지 유토피아만은 아니라는 사실에 대한 증거입니다.이분들 가운데 프란치스카 하비에르 카브리니(1850~1917) 성녀를 기억합니다. 이 탁월한 여성은 이민들을 섬기는 데 생애를 봉헌하였고 그들의 수호성인이 되었습니다. 성녀는 우리가 형제자매들을 어떻게 환대하고 보호하며 증진하고 통합해야 하는지 가르쳐주었습니다. 성녀의 전구로써, 주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다음 말씀을 체험할 수 있게 해주시기를 바랍니다. “의로움의 열매는 평화를 이루는 이들을 위하여 평화 속에서 심어집니다.”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7.12.27
![[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알프레드 델프 신부 (2)](//cpbc.co.kr/CMS/newspaper/2018/04/rc/716222_1.1_titleImage_1.jpg)
[예수회 회원들의 생애와 영성] 알프레드 델프 신부 (2)쇠사슬 묶인 손으로 거룩한 미사 봉헌하다 알프레드 델프 신부는 1943년 「인간과 역사(Alsatia-Verlag, Kolmar)」라는 80쪽의 소책자를 보겐하우젠의 친구들을 위해 썼다. 그는 이 책에서 모든 인간에게 있어 가장 어두운 질문을 다룬다. “검은 돛을 단 배들이, 해적선들이, 생명을 마음대로 유린하는 배들이 자기의 바다에서 항해한다. 그들의 돛은 적절한 바람으로 부풀어올라 있고, 그들이 다닐 공간은 충분하다. 그들은 고요하고 안전하게 이 불의에서 다른 불의로 항해한다.…” 당시 이 글을 읽은 모든 이는 그들이 누구를 가리키는지 알았다. 델프 신부는 이 책에서 도대체 왜 악이 역사 안에서 그렇게 열매를 많이 거두는지에 대한 물음에 대답하고 있다. 그것은 “역사를 지배하는 악의 힘이 더 강력한 것도, 악이 역사에서 더 현실적이어서가 아니라 선이 풍성하지 못하기 때문에, 선이 전통을 단지 보수적인 몽매와 관습으로 잘못 이해하기 때문에, 선이 삶에 대한 시험의 극복을 삶의 한복판에서가 아니라 그 주변에서 행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후 그는 넓은 시야와 큰 용기 그리고 위대한 결단의 시험대에 섰다. 그는 헬무트 몰트케 백작(Helmuth Graf Moltke)과 다른 지식인들과 함께 히틀러 패망 후 독일과 유럽의 정세를 걱정하면서 하느님의 법과 인간의 존엄성이 존중되는 새로운 질서를 창조하기 위해 비밀 모임을 만들고 여기에 참여한 것이다. 사실 그의 관구장이었던 아우구스틴 뢰쉬 신부의 소개로 ‘크라이스아우 크라이스’라는 클럽을 알게 된 델프 신부는 가톨릭 사회이론가로 참여하게 됐는데 시대를 비판하는 사람에서 시대의 파괴자들에 맞서 싸우며 시대를 건설하는 사람으로 부름을 받게 됐다. 그에게 주어진 투쟁의 장이란 우리가 서 있는 현재다. “도망, 이민 혹은 반발은 결코 그리스도인의 태도가 될 수 없다. 그리스도교 고유의 실재와 모순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인의 태도는 오로지 성취하고 완성하며 구원하려는 의지여야 하기 때문이다. 모든 참 실재는 육화의 신비와 연관돼야 한다.”(유고집 「그리스도와 현대」 I권 중에서)따라서 그에게 투쟁은 그리스도인들의 언어로 말하면 하느님을 위한 신실한 증거다. 1944년 1월 그라프 몰트케(Graf Moltke)가 그리고 그해 7월 델프 신부가 체포됐다. 그들은 나치의 붕괴 가능성을 예상해 가능한 해결책을 마련하고 그리스도교 사상에 입각한 새로운 독일 건설을 계획했다는 죄목으로 고발당했다. 그리고 그 때문에 두 사람은 사형 선고를 받게 된다. 델프 신부는 그해 7월 28일 뮌헨의 보겐아우젠 게오르그 성당에서 오전 미사를 마치고 신자들과 인사를 나눈 후 사제관으로 오는 길에 사복 차림의 게슈타포들에게 체포돼 곧바로 베를린으로 압송된다. 델프는 관구장에게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 최종 서원식이 있을 거라는 소식을 받고 이를 준비하기 위해 피정을 떠나려는 참이었다. 델프 신부는 체포 순간 마지막이라는 것을 직감했다. 때가 때인 만큼 그가 어디로 끌려가 어떤 처지에 있는지 누가 알 수 있겠는가? 베를린에 살며 델프 신부를 돕던 마리안느는 용감하고 끈질긴 노력끝에 그가 게슈타포 감옥이 있는 베를린 레-르터 가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마리안느는 기지를 발휘해 비밀경찰대의 삼엄한 경비와 제지를 뚫고 레-르터 가를 방문해 델프 신부의 빨랫감을 가져갈 수 있는 허락을 기어코 받아냈다. 그날이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이었다. 그런데 마리안느와 친구들은 델프 신부의 셔츠에서 선명한 핏자국을 보았다. 마리안느는 그날의 놀라움을 이렇게 적었다. “이(피)를 미루어 볼 때 델프 신부는 바로 얼마 전에 매를 맞았을 것이다. 소름 끼치는 일이다! 그러니까 그는 본래 뮌헨에서 그가 장엄 서원을 받기로 되어 있었던 축일에,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하늘나라에 들어 올려짐을 기념하면서 인간의 몸이 얼마나 신비스럽게 영광을 받을지를 희망하는 그 축일에, 그의 독방에서 피가 터지도록 맞고 있었다니….”3주 후 9월 8일 성모 탄생 축일에 델프 신부는 레-르터 거리의 건물에서 테겔에 있는 감옥으로 옮겨졌다. 국민재판소의 피고인으로 테겔에 감금된 것은 비밀경찰에 의해 심문받을 때보다 훨씬 더 견딜 만했다. 고문을 자행하던 심문은 중단됐다. 간수장은 일반 법무부 소속 공무원으로 조용하고 인간적인 관료였다. 무엇보다 좋았던 것은 마리안느라 불리는 두 교우와 더욱 자유롭게 연결된 것인데, 이들은 성실하게 옷을 세탁해 가져다준 것은 물론, 성경과 성무일도서 그리고 연구할 수 있는 책들을 넣어 주고, 가끔 음식 꾸러미도 가져다 주거나 아주 작은 유리잔과 성반 등을 몰래 들여넣어 주었다. 델프 신부는 독방에서 성물이나 초, 제대포는 없지만, 쇠사슬에 묶인 손으로 거룩한 미사를 비밀리에 봉헌할 수 있었다. 그는 그해 10월 초 지인들께 보낸 편지에는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교수대에 가야 한다더라도 두려워하지 않으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힘은 모든 길에 함께 합니다. 그러나 가끔은 벌써 무거운 무엇이 누르는 것이 사실입니다. 게오르그(감옥에서 자신을 지칭하는 이름)는 피눈물 어린 흐느낌으로 가끔 사로잡히기도 합니다”라고 고백했다.테겔 감옥생활은 어둠과 빛, 절망과 신앙이 반복되는 시간이었다. 고독과 격리, 폭격 상황에서도 수감자들은 감방에 머물러 있어야 하고, 수갑과 함께 밤낮을 지내야 하는 등 모든 것이 신경쇠약을 일으킬 정도로 견디기 힘들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심한 외로움 때문에 고통당하고 있는 심각한 단계에 있었다.” 김용해 신부 예수회 서강대 신학대학원 교수문채현2018.04.05

사제·신자들 함께했기에 교구장이라는 ‘십자가’가벼웠습니다27년 만에 전주교구장에서 물러나는 이병호 주교 2002년 3월 성주간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기도에서 십자가를 지고 치명자산을 오르는 이병호 주교. 전주교구 홍보국 제공 “주교님 오늘의 빵은 무엇인가요?”오늘의 말씀(빵)을 묻는 질문에 이병호 주교의 성경 암송이 시작됐다.“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온 여자들도 뒤따라가 무덤을 보고 …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갑작스레 시작된 이병호 주교의 성경 암송은 장장 20여 분 동안 이어졌다. 이 주교가 들려주는 예수 부활 이야기는 루카복음서 23장에 이어 24장을 모두 읊으며 끝이 났다. 이야기를 펼쳐놓는 목소리는 또렷했고 막힘이 없었다.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양팔을 뻗고 가슴에 손을 대며 말씀을 그려 낸 이 주교는 “성경 봉독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 동안 성경을 읽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이고 빵입니다. 엄마가 부엌에서 밥을 짓듯 매일 새벽 성경을 읽으며 오늘 하루 동안 만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빵을 마련합니다.”29일 이임식을 앞둔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를 20일 전주교구청 교구장실에서 만났다. 전주교구를 위해 27년 동안 말씀의 빵을 구워 온 이 주교는 “(교구장직에) 참 오래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공의회 헌장 구현 노력해와“교구를 어떻게 변화시켜야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다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알려준 교회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관심사는 그것뿐이었습니다. 공의회 헌장의 모습대로 모든 교우가 사제와 함께 하느님 소명을 자각하고 수행하길 바랐고, 특히 전례 안에서 신자들의 생생한 기도가 드러나길 희망했습니다. 신자들이 적힌 대로 읽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입으로, 자기 표현으로 하는 기도가 되길 바랐고, 사제들도 스스로 하느님 말씀으로 들어가는 강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구 분위기가 매우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교구 본당을 방문할 때마다 신자들의 신앙체험을 꼭 들었다는 이 주교는 힘든 생활 속에서 신앙을 이어가는 신자들에 대한 애정도 듬뿍 드러냈다.“저는 신자들 덕분에 이렇게 기도하고 묵상할 여유가 있어요. 하지만 수많은 어려움과 유혹이 가득한 일상 속에서 신자들은 하느님 말씀대로 살기가 쉽지 않죠. 신앙을 실천하고 사는 신자들을 보면 교장 선생님 앞에 선 학생이 된 기분입니다. 그 옛날 사도행전이 지금도 계속되는구나 감동이 밀려옵니다.” 해군기지, 4대강 문제에서부터 백남기 농민 사망과 최근 대통령 탄핵까지 시대의 아픔과 함께했던 이 주교는 “착각에 빠진 신앙인, 혼자 열심히 잘 믿다가 혼자 천국에 가는 신앙인이 되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공동체를 위한 존재 돼야 “보통 종교인을 생각할 때 산 깊이 들어가서 도를 닦거나 신비체험을 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우린 그것을 ‘가짜 신자’라고 합니다. 물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종교를 찾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죠. 예수님을 향해 달려들었던 모든 신자가 자기를 살려 달라 했으니까요.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공동체를 위한 존재가 돼야죠. 나의 것을 모두 내어주고, 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내어줄 때,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이 도는 것이 성령입니다. 그 바퀴에서 떨어져 나가면 하느님을 잃고 외롭고 이기적인 존재가 됩니다.”대선을 앞두고 지도자의 덕목을 묻는 말에도 이 주교는 역시 ‘공동체’를 우선으로 꼽았다. “누구를 찍어야 내 처지가 확보되고, 내가 속한 계층이 이익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천 년이 걸려도 발전이 없습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누가 더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기준을 가져야 하죠.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끼며, 성령의 힘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제가 늘 하는 말입니다.”인보성체수도회 담당 사제로 지낼 계획 교구장직을 떠나지만, 이 주교의 일정은 지금 못지않게 바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심어 둔 상추와 호박, 가지, 토마토, 포도, 체리, 무화과가 이 주교를 기다리고 있다. 사제관이 들어설 전주 근교 대성리에서 농사짓기를 시작했다는 이 주교는 교구 인보성체수도회 담당 사제 역할도 맡게 됐다. 그러면서도 “피앗!(Fiat,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이라며 “내 계획은 의미 없으니 하느님이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매일 다른 옷을 입는 자연이 좋아 치명자산에서 묵상하기를 좋아한다는 이 주교는 지난 27년을 날씨에 비유했다. “오늘처럼 우중충하게 비가 오는 날도 있지만, 햇빛이 드는 날도 있고 그러다 또 천둥 벼락이 치는 날도 있습니다. 그 모든 날을 나와 함께 걸어주신 우리 신자들과 수녀님, 신부님들께 감사합니다. 무겁게 느껴지던 십자가였는데 앞뒤에서 받쳐주니 어느 날 붕 떠 있는 듯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이병호 주교 약력 1941년 전북 완주 출생 1969.12 사제 수품1969.12 ~ 1971.04 전주교구 중앙본당 보좌1971.04 ~ 1975.01 전주교구 정읍본당 주임1975.01 ~ 1976.06 대건신학대학 전임 강사 1983.01 ~ 1990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대학원장)1990.02.08 전구교구장 임명1990.04.03 주교 수품, 전주교구장 착좌2010.03 ~2017.03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2017.03.14 전주교구장 사임 발표 2017.04.29 전주교구장 은퇴 평화신문2017.04.25
![[성경 속 기도] (3) 아브라함의 기도 (하)](//cpbc.co.kr/CMS/newspaper/2016/02/rc/61961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기도] (3) 아브라함의 기도 (하)순명의 기도, 믿음의 삶 티치아노 작 ‘이사악의 희생’, 1542~154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출처=「명화로 만나는 성경」 아브라함은 네겝 지방에 살 때 기근이 들어 식구들과 함께 이집트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내려갔다. 이때 이집트 사람들에게 아내 사라이를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자칫 아름다운 사라이를 차지하려는 이집트인들 때문에 아브라함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창세 12,10-20). 그 후 아들과 같은 롯과 분쟁도 일어났다. 돈과 재물이란 것이 이상해서 하루아침에 인간관계를 파괴해버렸다(창세 13,1-18). 또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아들이 생기지 않는다고 초조한 나머지 하가르를 소실로 들이기도 했다. 결국 하가르에게서 아들을 얻었지만, 본인과 아내 사라이, 하가르 모두에게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삶이 되고 만다(창세 16,1-16). 아브라함은 자신의 잘못으로 겪게 된 인생의 고비마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출발을 했다. 이때마다 그는 제단을 쌓고 기도를 드렸다. 아브라함 일생의 기도는 순명의 기도이다. 그는 하느님이 역사에 개입하실 때마다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응답한다. 물론 그의 삶에는 청원과 탄식의 기도도 있다(창세 18,16-33). 그의 신뢰 가득한 모든 기도는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또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다른 이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창세 18,25) 아브라함에게 질문하고 탄식하는 기도는 하느님 뜻을 찾고 하느님 신비를 느끼는 장이 된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마치 가까운 부모나 친지에게 드리는 대화처럼 친밀하다.그런데 말년에 아들 이사악 때문에 받게 될 시련은 그동안 받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 되어 이사악을 얻었다. 늦둥이로 얻은 이사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런 자식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그 어린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다. 그는 수없이 외치며 기도했을 것이다. “하느님, 너무 잔인하십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아마도 그는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아브라함 일생의 가장 큰 시련에서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갈등과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오면서 그는 한 가지 분명히 확신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당신 자녀가 행복하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당장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더 깊은 뜻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것이 그의 기도의 삶이었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시련과 시험의 연속이었으며, 그가 만난 하느님은 시험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시련과 시험을 잘 감당해 마침내 하느님 앞에 인정받은 사람이 되었다. 믿음을 전제로 자신의 삶을 하느님 말씀에 먼저 순명했던 아브라함은 믿음이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된다. 후대 사람들은 이런 아브라함을 ‘신앙의 성조’(聖祖)라고 부르지만 그도 그저 약한 한 인간이며 신앙인이다. 신앙이란 끊임없이 완성을 향해 나가는 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죄인인 채 하느님께 나가는 길이다. 중요한 건 언제 어느 때라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위로이고 힘이다. 신앙인 아브라함의 기도는 그렇게 낮고 간절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6.02.16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사도 12,5)](//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2888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50)“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사도 12,5)박해, 복음 선포의 밑거름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 작 ‘성 대 야고보의 순교’, 1639년,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스테파노 부제의 순교 이후 박해는 점차 확대되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박해를 피해 사도행전은 사도들만이 예루살렘에 남아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사도행전은 가장 처음 사도들을 박해하고 스테파노 부제를 죽인 이들을 대사제와 사두가이들로 표현합니다. 이 박해는 종교적인 차원의 박해입니다. 유다교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처럼 하느님을 모독하고 자신들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합니다. 이후 계속되는 박해는 직접적으로 유다인들에 의한 것뿐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즈음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었다.”(사도 12,1) 여기서 등장하는 왕은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여러 명의 헤로데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주로 표현되는 헤로데 왕은 세 아들(헤로데 아르켈라오스, 헤로데 안티파스, 헤로데 필리포스)을 두었고, 그의 손자뻘 되는 인물이 바로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이들이 모두 ‘헤로데’라는 이름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그 인물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는 친(親) 유다교 성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며 41~44년까지 이스라엘 전역을 다스리던 영주였습니다.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사도 12,2-3) 이렇게 교회를 박해한 헤로데 아그리파스는 실제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을 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그에 대해서 사도행전은 하느님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고 표현합니다.(사도 12,23) 열두 사도 중의 한 명인 야고보 사도가 순교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께서 부르셨던 어부 중의 한 명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으로 표현됩니다.(마르 1,19-20) 신약성경에서 언급하는 야고보 역시 두 명입니다. 한 명은 헤로데에 의해 순교한 예전에 ‘대(大) 야고보’로 불렸던 야고보 사도입니다. 복음서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를 청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잔을 함께 마실 것이라고 예고합니다.(마르 10,39) 야고보 사도의 순교는 이 예수님의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예수의 형제’로 불리던 야고보입니다. ‘소(小) 야고보’로 불리기도 하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큰 역할을 했던 인물로 “교회의 기둥”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사도 12,17; 갈라 1,19; 2,9) 이 일과 함께 헤로데는 베드로 사도 역시 잡아들입니다. 쇠사슬에 묶여있던 베드로 사도는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을 탈출합니다. 기적처럼 묘사되는 이 이야기에서 천사는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빨리 일어나라.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사도 12,7-11) 천사의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탈출 12,11) 하느님께서 파라오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신 것처럼 베드로 역시 헤로데의 손에서 탈출합니다. 로마에는 베드로 쇠사슬 성당이 있는데 이곳에 지금도 베드로 사도가 묶였던 쇠사슬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초기 교회의 모습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복음 선포를 통해 성장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던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박해’입니다. 새로운 정체성과 함께 유다교와 분리되고 종교적인 탄압은 초기 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초기 교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바로 박해를 피해 흩어졌던 이들이 여러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4)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김지항2017.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