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11) 최고의회 결정과 사도들의 반박 (4,13-22)](//cpbc.co.kr/CMS/newspaper/2019/03/rc/749245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11) 최고의회 결정과 사도들의 반박 (4,13-22)“어느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지 판단하라” 베드로와 요한은 예수님의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는 예루살렘 최고의회의 지시에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며 담대히 증언한다. 사진은 로마 요한 라테라노 대성전 벽면의 베드로 사도 조각상. 【CNS 자료 사진】 태생 불구자를 고치고 백성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설교했다는 이유로 붙잡힌 베드로와 요한은 최고의회에서도 마찬가지로 복음을 증언합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하느님께서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서 살리셨다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예수님만이 유일한 구원자시라고 선포합니다. “그분 말고는 다른 누구에게도 구원이 없습니다. 우리가 구원받는 데에 필요한 이름은 하늘 아래 이 이름밖에 없습니다.”(4,12) 이번 호에서는 이런 증언에 대한 최고의회의 결정과 이 결정에 사도들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알아봅니다. 최고의회의 압력과 권고최고의회 사람들은 베드로와 요한의 증언을 듣고는 놀랍니다. 놀라는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먼저 두 사도의 담대함, 곧 최고의회 앞에서도 전혀 기죽지 않고 용기 있게 증언하는 그 태도에 놀랍니다. 또 두 사도가 무식하고 평범한 사람인데도 성경을 인용하면서까지 조리 있게 예수님을 증언하는 모습에 놀랍니다. 그러면서 두 사람이 예수님과 함께 다니던 사람들이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4,13) 예수님은 누구입니까? 백성의 지도자들이라는 최고의회 사람들이 앞장서서 죽게 한 그 나자렛 사람 아닙니까. 그런데 그 나자렛 사람을 따라다니던 무식한 갈릴래아 사람들이 그 사람의 이름으로 태어날 때부터 40년 넘게 불구인 사람을 멀쩡하게 만들었을 뿐 아니라 그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면서 오직 예수만이 구원자라고, 그것도 감히 유다인들의 최고 통치기구인 산헤드린, 곧 최고의회에서 설파하고 있는 것입니다.최고의회 의원들은 당장 헛소리라고 반박하고 싶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불구였던 사람이 멀쩡하게 되어 사도들과 함께 있으니 헛소리라고 반박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사도들을 최고의회에서 내보낸 다음 이렇게 의논합니다. “저들을 통하여 명백한 표징이 일어났다는 사실이 예루살렘의 모든 주민에게 알려진 터이고 우리도 그것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니 이 일이 더 이상 백성 가운데로 퍼져 나가지 않도록, 다시는 아무에게도 그 이름으로 말하지 말라고 엄중히 경고만 합시다.” 그러고는 사도들을 불러 예수님의 이름으로는 절대로 말하지도 말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지시합니다.(4,14-18)최고의회가 내린 결정과 같은 그런 일은 살아가면서 어렵지 않게 경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실제로 권세가들은 자기들에게 불리한 일이 생기면 상대방에게 “다시는 그런 일을 입 밖에도 꺼내지 마라”고 압력을 넣고 경고하곤 하지요. 그러면 사람들은 그들의 위세에 눌려 그만 입을 닫고 맙니다. 베드로와 요한은 어떻게 대응했을까요? 굴복하지 않은 베드로와 요한두 사도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4,19-20) 하고 대답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이 말은 최고의회의 압력에 굴복하지 않겠다는 것입니다. 자기들이 보고 들은 것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도들이 보고 들은 것은 무엇일까요? 사도들은 3년 동안 예수님과 함께 지내면서 예수님에게서 직접 보고 들었습니다. 또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신 예수님을 만났고 부활의 증인이 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도들은 자기들이 보고 들은 이 모든 것이 바로 하느님에게서 온 것이라는 굳은 믿음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두 사도는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라고 증언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여기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사도행전의 저자는 베드로가 최고의회에서 증언했을 때 “성령으로 가득 차 그들에게 말하였다”(4,8)고 전합니다. 베드로와 요한이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고 용기 있게 증언할 수 있었던 것도 굳은 믿음과 함께 바로 성령의 능력에 힘입어서입니다. “성령에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은 주님이십니다’ 할 수 없습니다.”(1코린 12,3) 두 사도의 이런 답변을 들은 최고의회 사람들은 사도들을 처벌하고 싶었지만, 백성이 두려워서 처벌할 방도를 찾지 못하고 거듭 위협만 하고는 풀어줍니다. 40년 이상이나 불구로 지냈던 사람이 멀쩡하게 치유된 것을 보고 백성이 모두 하느님을 찬양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4,21-22)생각해봅시다“하느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여러분의 말을 듣는 것이 하느님 앞에 옳은지 여러분 스스로 판단하십시오. 우리로서는 보고 들은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베드로와 요한의 이 대답은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무슨 일을 결정하거나 실행해야 할 때에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 좋은지를 제시하기 때문입니다. ①먼저 내가 실행하거나 결정하려는 일이 하느님의 뜻인지 아니면 개인의 욕심이나 감정에 의한 것인지를 잘 판단해야 합니다. ②그러려면 결정을 내리기에 앞서 성령의 도움을 청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마음을 비우고 성령의 은사, 특별히 지혜와 통찰의 은사를 청하고 결정을 내리는 자세가 요청됩니다. ③하고자 하는 일이 하느님의 뜻에 맞다는 판단이 들면 슬기롭고 용기 있게 결정하고 수행해 나가야 합니다. 그 일이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라면 사랑ㆍ기쁨ㆍ평화ㆍ인내ㆍ친절ㆍ선의ㆍ성실ㆍ온유ㆍ절제 같은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알아보기최고의회: 최고의회는 예수님 시대에 예루살렘에 있었던 유다인들의 최고 통치기구로, 아람어로 산헤드린(Sanhedrin)이라고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 땅(팔레스티나)은 로마 제국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로마는 예루살렘 최고의회에 상당한 자치권을 주었습니다. 그래서 최고의회는 종교적인 문제뿐 아니라 법적이고 행정적인 문제들에 대해 재량권을 가지고 처리할 수 있었습니다. 다만 사형같은 중형은 로마 당국에 넘기거나 승인을 얻어야 했다고 합니다.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께 사형을 내리고 로마 군인들이 집행한 것이 이런 이유에서입니다.예루살렘 최고의회는 대사제와 수석 사제들, 귀족 계급의 원로들, 그리고 율법학자 등 모두 71명으로 구성됐다고 하지요. 수석 사제 등 사제들 가운데는 사두가이가 많았고 율법학자들은 대부분이 바리사이였습니다.예루살렘에는 최고의회가 있었지만, 지방에는 의회가 있었습니다.(마태 10,17) 지방 의회는 23명의 유다인들로 구성돼 있었고, 예루살렘 최고의회에서 다루지 않는 사항들과 관련한 법정 역할을 했습니다. 의회는 회당에서 법정을 열었고 채찍질 같은 형벌도 함께 내렸다고 합니다. 평화신문2019.03.26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 아직도 저 멀리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cpbc.co.kr/CMS/newspaper/2018/12/rc/741179_1.0_titleImage_1.jpg)
[평신도 영성 나는 평신도다] (2) 아직도 저 멀리 있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공의회의 결실 ‘평신도 사도직’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평신도에게 사도직이 있다는 사실이 분명해졌다. 사진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회기 중 모습. 가톨릭평화신문 DB 완벽한 의미의 인천 상륙작전은 아직 이뤄지지 않은 듯 보입니다. 맥아더 장군의 상륙작전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아직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배가 한국 땅에 상륙하지 못하고 인천 앞바다에 둥둥 떠 있습니다. 진정한 의미의 평신도 사도직이 한국 천주교회에 제대로 상륙하지 못한 듯 보입니다.갑자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언급한 이유는, 그 신앙의 방주에 평신도 사도직의 진정한 의미가 잔뜩 실려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신도 사도직을 이야기하기 위해선 먼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언급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1962~1965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20세기의 위대한 예언자이신 성 요한 23세 교황께서 소집하셨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은 요한 23세 교황은 연세가 많으셔서(거의 80세가 되어 교황이 되셨습니다) 그냥 스쳐 지나가시는 분이시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가톨릭교회 역사 안에서 가장 중요한 업적을 남기십니다. 안타깝게도 요한 23세 교황님은 공의회를 소집하셨지만, 공의회 도중에 돌아가셨고, 성 바오로 6세 교황께서 공의회를 마무리하십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톨릭교회가 과거의 제도와 틀을 현대적인 모습으로 바꾸게 된 획기적인 사건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가 현대 사회에 맞는 새로운 교회의 모습으로 탈바꿈하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것을 인식했습니다. 공의회 이후 많은 것이 바뀌었습니다. 그중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전례의 변화입니다. 공의회 전에는 제대가 벽에 붙어 있었습니다. 사제들은 벽에 있는 십자가를 바라보고 미사를 주례했습니다. 제사의 성격이 강했습니다. 미사 언어는 전 세계 공통으로 라틴어였습니다. 과거에는 신자들이 무슨 말인지도 모르면서 라틴어 미사에 참여했습니다. 그런데 공의회 이후 제대가 앞으로 나왔고 사제도 신자들을 바라보며 미사를 주례했습니다. 미사 언어도 그 나라 고유 언어를 사용했습니다. 이제 미사는 만찬의 성격으로 거듭납니다. 그리고 과거에는 모든 중심이 성찬의 전례에 있었지만, 공의회 이후에는 말씀의 전례와 성찬의 전례가 똑같은 비중을 차지하게 됩니다. 말씀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새롭게 인식한 것입니다.왜 이렇게 변화되었을까요. 그 바탕에 바로 평신도 사도직이 있습니다. 공의회는 가톨릭교회 2000년 역사에서 처음으로 평신도 신원을 분명히 했습니다. 공의회를 통해 평신도에게도 사도직이 있다는 사실이 이제 명확해졌습니다. 그래서 이때부터 평신도 신학이 생겨나고 발전하기 시작했습니다.사실 공의회 이전까지 교회 구조는 피라미드 형태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황님을 정점으로 사제와 수도자가 그 아래, 그리고 평신도들은 제일 아래에 위치해 있었습니다. 이는 가톨릭교회가 중세 이전부터 정치와 종교가 하나였기에 자연스러운 현상이었습니다. 고위성직자들이 성주나 높은 직위를 겸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공의회 이후 놀랄만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평신도가 피지배 계급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공동체 안에서 서로 직무적으로 다른 역할을 할 뿐, 유기적인 협력을 통해 이뤄간다는 정의였습니다. 이후 평신도 신원은 갈수록 중요해졌습니다.공의회가 끝난 후 모든 내용이 정리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이 발표됩니다. 이 문헌은 ‘현대의 복음서’로 불리고 있습니다. 꼭 한 권씩 구입해서 읽어보시길 권합니다. 성경과 공의회 문헌을 놓고 함께 읽어보시면 좋겠습니다. 이 문헌에는 교회와 전례, 평신도가 누구인지, 또 교회의 모든 기본 교리, 비전 등이 담겨 있습니다.그래서 우리는 공의회에서 말하는 평신도 사도직의 의미에 대해 알아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도직의 의미에 앞서서 먼저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평신도가 속한 교회에 대한 문제입니다. 교회가 무엇인지 알아야 평신도의 의미에 대해서도 명확해집니다. 자! 이제 교회가 무엇인지에 대해 먼저 알아보겠습니다. 정치우(안드레아, 새천년복음화학교 교장) cpbc2018.12.11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13) 초대 교회의 모습 (4,32─5,11)](//cpbc.co.kr/CMS/newspaper/2019/04/rc/750262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 이야기] (13) 초대 교회의 모습 (4,32─5,11)“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 하나니아스와 사피라의 이야기는 성령을 모독하고 거슬러서는 안 된다는 교훈을 준다. 그림은 퀴스타보 드레의 성경 판화 ‘하나니아스의 죽음’. 사도행전의 이 대목에서 두 가지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입니다.(4,32-37) 다른 하나는 모두가 예외 없이 그렇게 살지는 않았음을 알게 해주는 구체적인 사례로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이야기입니다.(5,1-11)초대 교회의 공동체 생활(4,32-37)루카는 2장 42-47절에서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를 듣고 개종한 첫 신자들의 공동체 생활을 요약해서 전한 데 이어 여기서도 다시 한 번 신자들의 공동체 생활을 압축해서 소개합니다. “신자들의 공동체는 한마음 한뜻이 되어, 아무도 자기 소유를 자기 것이라고 하지 않고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였다.”(4,32) 이렇게 한마음 한뜻이 되어 모든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자 “그들 가운데는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4,34ㄱ)고 하는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런데 초대 교회 공동체에는 재산의 공동 소유보다 더욱 중요한 일이 있었습니다. 예수님 부활의 증인이 되고 또 하느님의 은총에 힘입어 살아가는 삶이 그것입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큰 능력으로 주 예수님의 부활을 증언하였고, 모두 큰 은총을 누렸다”(4,33)고 루카는 전합니다. 그렇다면 모두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진 것을 공동으로 소유하고 궁핍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모습은 사도들의 증언과 가르침을 믿고 따름으로써 신자들이 모두 하느님의 큰 은총 속에 살아가는 결과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루카는 초대 교회 공동체에서 가진 것을 공동 소유로 하는 구체적인 방식을 설명합니다. “땅이나 집을 소유한 사람은 그것을 팔아서 받은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고, 저마다 필요한 만큼 나누어 받곤 하였다.”(4,34ㄴ-35) 사도들의 발 앞에 두었다는 것은 사도들의 처분에 맡겼다는 뜻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공동체의 재산 관리에 사도들이 최고 권한을 행사했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겠지요. 루카는 “키프로스 태생의 레위인으로 ‘위로의 아들’이라는 뜻의 바르나바라는 별명을 얻은 요셉도 자기가 소유한 밭을 팔아 그 돈을 가져다가 사도들의 발 앞에 놓았다”(4,36-37)고 전합니다. 키프로스 태생의 이 레위인은 사도행전 9장 이후에 바오로와 함께 자주 등장하는 중요한 인물인데, 요셉이라는 이름보다는 바르나바라는 별명으로 불립니다. 바르나바가 이렇게 자기 밭을 팔아 사심 없이 그 돈을 사도들에게 갖다 준 것은 “착한 사람이며 성령과 믿음이 충만한 사람”(11,24)이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 공동체 신자들이 모두 바르나바처럼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이에 대한 구체적 사례가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입니다. 하나니아스와 사피라(5,1-11)우선 줄거리를 살펴봅시다.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는 함께 재산을 팝니다. 그런데 하나니아스는 아내의 동의 아래 판 값의 일부를 떼어 놓고 사도들 앞에 갖다 놓습니다. 베드로는 하나니아스에게 왜 “성령을 속이고” 땅값 일부를 떼어놓았냐고 추궁하면서 “그대는 사람을 속인 것이 아니라 하느님을 속인 것이오”라고 질책합니다. 이 말을 들은 하나니아스는 그 자리에서 쓰러져 숨지고 맙니다. 이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큰 두려움에 사로잡히고, 젊은이들이 그 시체를 메고 나가 묻습니다.(5,1-6) 세 시간 후에 아내 사피라가 들어옵니다. 그 여자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베드로가 그 여자에게 땅을 판 값 전부냐고 묻자 그 여자는 그렇다고 대답합니다. 베드로는 이렇게 말하지요. “어쩌자고 그대들은 서로 공모하여 주님의 영을 시험하는 것이오? 보시오. 그대 남편을 묻은 이들이 바로 문 앞에 이르렀소. 그들이 당신도 메고 나갈 것이오.” 그러자 그 여자도 바로 베드로의 발 앞에 쓰러져 죽고 맙니다. 그 여자는 남편 곁에 묻히고 “온 교회와 그 소문을 들은 사람들은 모두 큰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5,7-11)이야기를 요약하면 부부가 땅을 판 값 가운데 일부를 떼어놓고 나머지를 갖고는 그것이 전부인 것처럼 사도들 앞에 바쳤고, 그 결과로 죽음을 맞았다는 것입니다. 재산 일부를 빼놓고 바쳤다고 해서 죽음까지 당하는 것은 심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의 지적에서도 볼 수 있듯이 단지 재산을 빼돌리고 거짓말을 했다는 것이 핵심이 아닙니다. 핵심은 성령을 속이고 시험했다는 데에 있습니다.생각해봅시다하나니아스와 사피라는 재산을 판 값을 사도들 앞에 갖다 놓으면서 일부를 떼어 놓았습니다. 사실 그 돈은 자기들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돈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거짓말을 했습니다. 속였습니다. 속이고 거짓말을 하는 행위가 잘못인 것은 분명하지만, 사람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 그런 일은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니아스와 사피라가 비록 사도들을 속이는 잘못을 했지만, 그것이 죽음을 초래할 정도로 심한 잘못인가. 베드로가 너무 심하지 않나’ 하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베드로는 하나니아스와 사피라 부부에게 단순히 거짓말을 했다고 질책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을 속였다고, 하느님의 영을 시험했다고 질책합니다. 말하자면 이 부부는 성령을 속이고 시험하려 함으로써 성령을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을 거슬러 말하는 자는 모두 용서받을 것이다. 그러나 성령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 자는 용서받지 못할 것이다”(루카 12,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부부의 죽음은 성령을 모독한 결과입니다.성령을 속이고 하느님의 영을 시험했다는 베드로의 말에 들어 있는 의미를 더 생각해 봅시다. 오순절 성령 강림과 함께 시작하고 사도들의 복음 선포로 커가는 이 공동체는 단지 여느 인간들의 공동체가 아닙니다. 그 공동체는 성령이 함께하시는 공동체입니다. 그래서 이 공동체를 대표하는 사도들 앞에서 속이고 거짓을 말하는 행위는 바로 그 공동체에 함께하시는 성령을 속이는 행위와 다를 바 없는 것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나니아스와 사피라의 이야기는 하느님의 은총 속에 살아가는 삶, 곧 성령 안에서 살아가는 삶이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얼마나 중요한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신자들의 공동체가 한마음 한뜻이 되어 가진 것을 내놓고 공동으로 소유할 수 있었던 것은 은총을 누리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하나니아스와 사피라는 성령의 은총보다는 자신들의 사심에 마음이 쏠렸기에 가진 것을 다 내어놓을 수가 없었습니다. 한마음 한뜻이 되어 살아가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만으로는 불가능합니다. 성령의 은총이 있어야 합니다. 성령께서 도와주시지 않으면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제대로 살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령께 마음을 열어드리도록 늘 노력해야 합니다. 평화신문2019.04.09

예수님과 함께 떠나는 사순 여정… 이 책 챙기셨나요?사순시기 위한 신앙 안내서 세 권 사순시기는 ‘봄’이다. 사순의 계절이 봄이기도 하지만, 모든 것이 새로워지는 이 시기엔 각자의 신앙 또한 ‘새 희망’을 향해 재탄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절제와 인내가 뒤따르는 ‘사순살이’는 결코 쉽지 않다. 새 희망을 향한 사순살이를 도와주고 이끌어줄 신간을 소개한다.내면의 샘 안셀름 그륀 지음 / 김선태 주교 옮김 / 바오로딸 / 6000원유다교는 속죄의 날이면 모든 사람이 의무적으로 하루 동안 단식했다. 단식은 ‘경건함의 표지’였다. 바리사이들은 일주일에 두 번씩 단식을 지킬 정도였다. 특별한 갈망과 도움을 요청할 때에도 이들은 수시로 단식에 돌입했다.고대 수도승들도 마찬가지였다. 이들은 평일엔 단식하고, 주말에 음식을 먹었다. 고기와 치즈, 포도주도 피했다. 초대 교회는 이 같은 ‘단식 관행’을 점차 받아들였으며, 단식을 결코 슬픔의 표현이 아닌 구원과 기쁨을 기다리는 ‘영육의 수련’, ‘내적 조명’으로 보았다.지역과 종교를 넘어 수많은 독자에게 깊은 울림을 선사해오고 있는 ‘세계적 영성가’ 안셀름 그륀 신부가 사순 길잡이 「내면의 샘」을 펴냈다. 단식의 의미를 전하고, 사순시기 하루하루를 영성적으로 보내는 방법을 제시한 책이다.저자는 “교회는 개인에게만 단식하라고 권고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리스도교 공동체 전체에 영향을 주는 ‘포기의 문화’를 만들고자 하는 것”이라고 일깨운다. 풍요로운 현대 소비문화에 맞서는 단식, 금주, 금욕 등 ‘포기 행위’들은 사회 전체에 ‘치유’를 선사한다는 것이다.저자는 사순 제1~5주간을 단식→정화→수련→언어→기도와 연민의 흐름으로 지낼 것을 제안한다. 2주간 ‘영혼의 정화’에 이르기 위한 각자의 생각과 느낌 관찰하기, 영혼의 밑바닥 깊이 묵상하기 등 구체적인 수행법도 일러준다. 이 같은 일련의 수행은 가족과 함께하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다. 저자는 각자 실천 계획서를 종이에 기록해 한자리에 모여 자신의 ‘포기의 계획’과 ‘실천사항’을 약속해볼 것을 권한다. 가족, 공동체와 함께하는 기도와 자비의 활동은 사순을 예수님과 함께하는 완벽한 여정으로 만들어줄 것이라고 저자는 확신한다.거룩한 독서 쉽게 따라하기 김인호 신부 지음 / 생활성서 / 1만 3000원거룩한 독서, 즉 렉시오 디비나는 침묵→성령 청원→독서→묵상→기도→관상의 6단계 과정을 수반하는 전통적인 묵상법이다. 그러나 성경 전체를 통독하기도 벅찬데, 기도와 묵상, 관상의 과정까지 거치려니 막상 엄두가 나지 않는 것도 사실.20년 넘게 거룩한 독서법을 신자들에게 전하고 있는 김인호(대전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더욱 쉬운 방법으로 ‘거룩한 독서’를 하는 법을 소개했다.성 요한 크리소스토모는 “하느님의 말씀은 나에게 들려주는 하느님의 편지다”라고 했다. 하느님의 편지인 성경을 더욱 제대로 이해하려면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다. 성경의 배경 지식을 알고, 말씀을 자세히 읽어야 하며, 그 안에 담긴 예수님 모습을 찾는 것이다. 간단해 보이지만, 우선 복음서가 누구를 대상으로 쓰였고, 어떠한 사상을 담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복음서끼리 어떤 성격을 지녔는지도 알아야 한다. 저자는 성경의 내용을 육하원칙에 맞춰 살펴보고, 읽은 본문을 요약해 써볼 것도 권한다. 그 뒤에 예수님이 어떠한 뜻으로 제자들에게 비유를 들고, 메시지를 전하는지 나의 삶에 적용할 수 있다.책은 ‘나해’ 주일 복음 전체에 대한 거룩한 독서법을 담고 있다. 거룩한 독서는 혼자 또는 공동체가 함께할 수 있다. 저자는 △침묵 △기도 △독서 △나눔의 반복적인 과정을 통해 매 주일 복음 말씀을 갖고 ‘예수님 찾기’를 효과적으로 수행할 방법을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복음 곱씹기’의 노력은 삶을 거룩하게 만들어줄 것이다.오늘 기도 노트 가톨릭출판사 / 7000원목적이 있는 기도만 해오진 않았는지. 기도의 양과 질을 깊이 돌아본 적 있는지. 신앙인이라면 매일 기도를 바치고 묵상하며 쇄신해야 한다는 것을 머리로 알고 있지만, 이를 체계적인 ‘성실한 기도생활’로 실천하기란 쉽지 않다.이 책은 노트 형식의 ‘기도 일기장’이다. 일상의 잡다한 일을 겪고 푸념하고 지나치기보다 학창시절 일기 쓰듯 나의 일상을 기도와 연관 지어 기록하는 습관을 길들여줄 일기 노트다. 날마다 기도 지향을 적고, 자신의 하루하루의 삶과 기도를 하느님과 대화하듯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엮었다. 장마다 기도에 관한 위대한 이들의 짧은 어록과 성경 말씀도 적혀 있다. 적어도 100일 동안 이 노트를 이용해보면 삶과 기도가 하나 되는 작은 기적을 맛볼 수 있지 않을까.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8.02.07

전국 167곳 성지, 두 발로 걸으며 마음으로 순교 선조 만나 순교 영성 새기며 ‘순례 삼매경’'성지순례 이렇게 한다’ 완주자들이 전하는 성지순례 방법과 추천 성지전국 성지를 순례하는 신자 수가 꾸준히 늘고 있는 가운데, 저마다의 성지순례 방법으로 여러 차례 완주에 성공한 신자들도 많아지고 있다. 사진은 최양업 신부를 비롯한 많은 신자가 은둔하며 신앙을 지켰던 울산 울주군의 죽림굴이다. 리길재 기자 한국 천주교회엔 167곳의 거룩한 땅, ‘성지’가 있다. 성지는 신앙 선조들이 남긴 믿음의 흔적이다. 크나큰 하느님 사랑을 처음 접한 이들의 신심이 어찌 이리 강건했던 걸까. 가족과 떨어지는 이산의 아픔을 겪고 삶의 터전까지 버리고 산속에 숨어들어 가는 한이 있어도…. 급기야는 짐승 취급당하며 포승줄에 묶인 채 주리가 틀리고, 목이 잘려도… “나는 주님을 섬깁니다”라고 고백한, 목숨보다 소중히 여긴 그들의 믿음은 어디서 비롯된 것일까. 한국의 성지는 167권의 ‘작은 성경’이다. 그런 순교자들의 큰 믿음과 주님 사랑의 마음을 따르고자 전국 성지 순례를 완주한 이들에게서 신앙 선조들을 만나는 순례 방법과 마음가짐을 들어봤다. 이들은 나름대로 추천할 만한 성지를 꼽아주기도 했다. 평신도 신앙 선조들이 일군 한국 교회 영성의 토대 위에서 오늘의 평신도들이 순교 영성과 신심을 새롭게 일구고 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강민주(요안나, 64, 대전교구 태안본당) 성지순례요? 안 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간 사람은 없을걸요. 혼자서도, 둘이나 셋이 가도 좋은 게 성지순례입니다. 저는 구교우 집안에서 태어났고 부모님이 옹기그릇 장사를 하셔서, 어릴 때부터 순교자 이야기를 듣고 자랐어요. 111곳 성지를 한번 완주하는 데 2년 걸렸네요. 매주 수요일이면 남편에게 가게를 맡기고 무조건 순례길에 올랐거든요. 최근 167곳으로 재지정된 성지를 순례하기 시작했습니다. 저는 성지로 향할 때마다 예수님께서 동행하시는 걸 느낍니다. 머나먼 한국 땅에서 순교하신 선교사들이 신자들을 사목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 저는 사치스럽게 사는 건 아닐까 반성도 하게 됩니다. 제게 성지순례는 죽어야 끝난다고 할까요? 그만큼 성지순례는 신앙생활의 큰 부분이 됐어요. 성지에 오가는 길에 핀 꽃도 주님께서 마련해주신 아름다움이라 여기면 순례를 향하는 길도 기도가 되지요. 강민주씨 추천 성지 ①춘천교구 행정공소(강릉 연곡면) - 은퇴하신 신부님이 상주하고 계셔서 미사를 봉헌할 수 있답니다. 공소에서 민박도 할 수 있어 묵을 곳을 따로 찾지 않아도 되죠. 아담하고 쉬어갈 수 있는 ‘작은 친정’ 같은 곳입니다. ②수원교구 은이성지(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 김대건 신부님이 사제품을 받은 중국 상해의 김가항성당이 없어져 아쉬웠는데, 이곳에 가면 복원된 김가항성당을 볼 수 있습니다. 신부님이 사용하던 유물도 있어 교회사 교육에도 딱입니다. ③솔뫼성지(충남 당진시 우강면) - 김대건 신부님이 태어난 곳이어서 그분의 영성이 더 가슴에 와 닿는 곳이죠. 이름대로 소나무가 우거진 풍경을 함께 만끽하며 순례할 수 있어요. 배웅(야고보, 76, 수원교구 안산본당) 제가 성지순례를 세 번 완주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어릴 때 부모님이 돌아가셔서 할머니와 살았죠. 한동네에 살던 아주머니들이 치마폭에서 감자와 고구마를 꺼내준 기억을 잊지 못합니다. 열심히 돈 벌어 그분들께 밥 한 끼라도 사드리고 싶었는데 모두 돌아가셨습니다. ‘기도보다 더 큰 보은이 있을까?’ 싶어 전국 성지를 순례하며 기도드렸습니다. 제가 가톨릭에 입교한 지 50년째 되던 2012년이 성지순례 첫발을 내디딘 해입니다. 제 승용차 운전석 옆자리를 아예 침상으로 개조해 다녔고, 밥도 차에서 해먹었습니다. ‘노숙 순례’를 자처한 거지요. 성지에서 바칠 기도문을 A4용지 6장에 옮겨 적어 코팅해서 갖고 다녔습니다. 맨 처음 순례를 시작할 때만 해도 도로 사정이 안 좋은 곳이 많았는데, 요즘은 잘 되어 있어 이동하기가 좋아졌습니다. 하나 더 이야기하자면, 성지에 가면 복장이 호화스럽거나 러닝셔츠 차림으로 다니는 분들이 더러 있습니다. 그런 복장은 좀 자제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가족에 대한 사랑과 그리움을 성지에서 달래곤 합니다. 그래선지 순교자 가족 묘소가 있는 성지를 특히 좋아합니다. 나만의 성지, 내 지향과 맞는 성지를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도 좋겠네요. 성지에서 혼자 울기도 많이 울었으니, 성지는 위로의 공간이자, 성당과는 또 다른 영성의 공간입니다. 저는 죽을 때까지 12번 완주가 목푭니다. 배웅씨 추천 성지 ①황경한 묘(제주시 추자면) - 황사영과 정난주 사이에 태어난 황경한의 묘소입니다. 황경한은 신유박해 때 아버지가 순교한 후 어머니 정난주가 제주도로 유배되면서 하추자도에 남겨졌습니다. 어린 마음에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얼마나 컸겠습니까? 어부의 손에 거두어졌는데, 황경한의 후손이 추자도에 아직 살고 있답니다. 바닷가의 무척 아름답고도 슬픈 곳입니다. ②치명자산성지(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길) - 가족 순교자 묘가 있는 곳입니다. 신유박해 때 순교한 유항검과 그의 가족 6위가 합장된 묘가 있지요. 저는 가족에 애착심이 강합니다. ③죽림굴(울산시 울주군 상북면) - 하룻밤 자고 오고 싶었던 곳입니다. 금세라도 호랑이가 튀어나올 것 같은 굴에서 신부와 신자들이 박해를 피해 생활했다는 게 놀라울 따름이지요.김달철(베드로, 66, 서울대교구 수서동본당, 시각장애 6급) 시각장애인도 전국 성지를 완주할 수 있어요. 비용은 좀 더 들었을지 모르겠네요. 장애인 복지 콜택시로 전국을 다녔기 때문이죠. 기사님이 신자였던 덕에 같은 순례 멤버가 돼주셨어요. 그렇게 시각장애인 교우 두 분과 2년 동안 성지를 두 번 완주했습니다. 저는 어느 정도 앞을 볼 수 있기에 두 분을 양팔에 팔짱을 끼고 안내했어요. 성지는 끈끈한 형제애도 깨닫게 해줍니다. 저희가 시각장애인이다 보니 가는 곳마다 신부님, 수녀님, 신자분들께서 더 챙겨주신 거죠. 불편함을 전혀 못 느꼈습니다. 순교자 이야기는 성지 해설사님이나 단체 순례 오신 분들 속에 섞여서 들었어요. 청주교구 연풍성지에선 신자분들이 음식까지 대접해주셨어요. 무척 감사했죠. 마음씨 좋은 교우분들 도움이 성지 완주의 큰 힘이었습니다. 성지순례는 우리 가슴을 다시금 떨리게 하는 신앙활동입니다. 박해 때 이 땅의 순교자들의 믿음과 당시 상황을 전해 듣고 떠올릴 때마다 후손으로서 더욱 굳건한 믿음으로 살아야 함을 확인했습니다. 성지는 ‘순교자 신앙학교’입니다. 순례 때 성지 미사 시간을 맞출 수 있다면 꼭 참여하시고, 성지 사제와 해설사를 통해 신앙 선조의 이야기를 꼭 듣고 도장 받길 권합니다. 김달철씨 추천 성지 ①김범우 순교자 성지(경남 밀양시 사기점길) - 김범우는 이승훈 베드로에게 세례를 받고 천주학 모임을 하다 유배를 당했습니다. 원래 김범우 유배지는 충북 단양으로 알려졌었는데, 1989년 밀양에 묘소를 모시게 됐습니다. 초행이라면 가는 길이 쉽진 않습니다. 이곳에 성모 동굴 성당이 있어 여름철 시원한 느낌을 받으며 미사를 봉헌할 수 있어 좋습니다. ②조씨 형제 순교자 묘(부산 강서구 생곡길) - 끝까지 믿음을 지키다 순교한 조석빈ㆍ석증 형제가 묻힌 곳이라 더 와 닿는 곳입니다. 기골이 장대한 형님에 비해 왜소했던 동생이었지만, 형제 모두 똑똑하고 믿음이 무척 굳건했다고 해요. ③황경한 묘(제주시 추자면) - 백서 사건으로 신유박해 때 순교한 아버지 황사영, 어머니 정난주와 떨어져 끝내 홀로 유배지 추자도에서 죽음을 맞이했던 가슴 아픈 가족사를 간직한 곳이죠. 류지훈(베드로, 75, 부산교구 수정마을본당)·홍수자(베로니카, 68)씨 부부 성지순례는 ‘순교자들을 만나는 여정’입니다. 성인부터 무명 순교자까지 한분 한분을 알아가는 길입니다. 아무 준비 없이 순례길에 오르면 그냥 여행이 돼버리니까 사전에 인터넷과 신앙 서적을 뒤져서라도 순교자들을 이해하고 가면 좋아요. 저희는 성지 순례하면서 인근 관광지는 아예 가질 않았습니다. 순례와 순교자 영성에 집중하기 위해서죠. 공경하는 집안 어른을 뵈러 가는데, 이 정도 정성은 들여야겠죠? 또 부부라면 꼭 같이 순례하길 권합니다. 20년 넘게 냉담한 남편과 순례를 다녔는데, 글쎄 먼저 “미안하다”는 말을 못하던 남편이 순례 후에 배려하는 남자로 180도 변했어요. 제가 성당 일 바쁠 때면 밥과 청소도 척척 해주기도 하고요. 결혼 생활 오래 했지만, 성지순례가 부부 사이를 변화시켜줄지 누가 알았겠습니까. 부부가 함께 순례하면 얻을 수 있는 은총입니다. 순례하다 보면 서로 토닥거릴 일도 생겨요. 그런데 성지에서 함께 기도하고 챙기다 보면 어느새 신앙 안에 가까워지는 ‘기적’도 체험할 수 있어요. 저는 청양다락골성지의 무명 순교자들의 줄무덤에서 묘비 하나하나를 기도하며 닦아드렸어요. 성지순례는 이처럼 ‘순교자와 만남’을 체험하는 일입니다. 류지훈ㆍ홍수자씨 부부 추천 성지 ①치명자산성지(전주시 완산구 바람쐬는길) - 이순이 루갈다·유중철 요한 동정부부의 지극한 덕행과 효심을 들으면 눈물이 절로 나는 성지예요. 가족은 물론, 사돈과 친척까지 따뜻이 챙긴 이순이의 영성이 가득한 곳입니다. ②미리내성지(경기 안성시 양성면 미리내성지로) - 김대건 신부님과 페레올 주교님 등 목숨 걸고 그토록 신자들을 위했던 초대 사제들의 마음을 본받고 감사의 기도를 드릴 수 있는 곳이에요. ③갈매못 순교성지(충남 보령시 오천면 오천해안로) - 병인박해 때 다섯 성인의 순교 처형장이었다고 해요. 성지 주변에 조성된 순례길 따라 바닷가를 거닐다 보면 성인들의 순교 피가 모래사장 아래에 면면히 흐르고 있음을 느낄 수 있어요.김광식(요셉, 63, 인천교구 가좌동본당)·최복순(안나, 62)씨 부부와 큰아들 김병선(베드로, 41) 우리 가족은 그야말로 순교자들에게 미쳤어요. 7년 동안 일곱 번 성지순례를 완주했습니다. 왜냐고요? 그분들께 너무 감사해서요. 오늘 이렇게 우리가 하느님을 알고, 신앙생활을 하면서 사랑과 기쁨을 알도록 맨 처음 믿음을 남겨주신 분들이잖아요. 성지를 매년 완주하다 보니 집에 쉴 때엔 뭔가 마음이 가라앉아요. 그럼 또 떠나는 거예요. 순교자들 앞에 가서 그간 잘 계셨는지 문안 인사드리는 마음으로요. 성지는 순교자들의 정신과 얼을 채우는 ‘신앙 충전소’입니다. 뇌병변장애가 있는 큰아들과 함께하는 장거리 순례가 쉽진 않아도, 아들 덕분에 우리 가족이 매년 주님 부르심에 손잡고 응답할 수 있다고 여깁니다. 간혹 ‘도장만 받는 게 성지순례야?’ 하고 우려하는 분도 계시지만, 어찌 됐든 도장 순례자들도 성지를 향한 거잖아요. 하느님은 마음을 보시는 분! 어떤 형식이 됐든 성지라는 거룩한 땅을 찾는다는 것 자체가 중요한 신앙 활동이라고 봐요. 성지 안내판이나 표지가 잘 돼 있지 않은 곳에선 애를 먹을 수 있지만, 그 또한 순례의 한 부분이죠. 하느님을 처음부터 잘 알지 못하듯 처음엔 좀 버벅거려도 지향 한 가지씩만 잘 간직하고 떠나면 됩니다. 성지순례는 안일했던 나의 삶을 다시금 일깨우는 ‘믿음의 목욕재계’에 비할 수 있겠네요. 순례는 고통과 부활의 은총을 모두 체험하는 길입니다. 순례의 끝은 ‘숨 쉬는 것 모두 주님을 찬양하여라. 할렐루야!’(시편 150,6)란 말씀으로 늘 귀결됩니다. 저희는 성지를 따로 추천하지 않겠습니다. 모든 성지가 다 소중하고 아름다운 주님의 땅이잖아요.cpbc2019.07.17

피정, 일상에는 쉼표를 신앙에는 느낌표를주님 부활 대축일 앞두고 주님 맞을 준비는 피정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묵상은 피정을 통해 그 깊이를 더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묵상 끝에는 부활에 대한 희망과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사순시기, 가시나무로 꾸며진 제대 장식 너머로 보이는 십자가상. 가톨릭평화신문 DB 예수님께도 기도는 하느님과 만나는 시간이었다. 예수님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마음속 골방에 들어오시도록 초대하셨고, 그 만남을 통해 새로운 변화를 일으킬 힘을 얻으셨다. 이렇듯 일상을 떠나 기도와 묵상으로 자신을 돌아보고 침묵 속에 하느님 음성에 귀 기울이는 일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이들에게 꼭 필요한 신앙의 양식이다.사순 5주일, 주님 부활 대축일이 멀지 않았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으려면 마음속 묵은 먼지를 털어내고 우리에게 다시 오실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해야 하지 않을까. 피정의 의미를 되새기며 신앙인을 위해 마련된 다양한 사순과 부활 피정을 소개한다.피정의 의미 우리는 몸을 돌보기 위해 운동을 하고 음식을 섭취하고, 아프면 병원에 간다. 마음을 돌보기 위해 책을 읽고 여가를 즐기며, 행여 아프면 정신과나 심리 상담을 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영혼을 돌보기 위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영혼이 병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문득 영혼에 공허감이 밀려올 때 많은 가톨릭 신자들은 미사와 전례, 고해성사와 면담, 기도와 봉사 활동 등을 통해 영적인 양육을 받으며, 자신의 영혼을 돌본다. 그런데 어느 순간 성당 활동에 공허감이 밀려오고, 전례와 기도가 의무적이 되어 가며, 자기만족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무엇이 잘못된 것일까? 어떻게 하면 자신의 신앙생활을 쇄신하고 영적으로 더욱 성장하며, 마음의 상처와 아픔을 치유받고 새롭게 변화된 모습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 심리 상담이나 여가 활동은 마음에 평화나 삶에 즐거움을 주지만, 궁극적인 존재의 변화나 참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직접 깨닫게 하지는 못한다. 영적 성장과 치유, 신앙의 쇄신, 그리고 자기-초월을 위해 무엇보다 필요한 것은 하느님의 은총이다.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의 모든 형태는 하느님의 은총과 축복을 잘 받아들이기 위한 준비와 정화를 돕는다. 성사와 기도, 자선, 고행 등 하느님의 은총을 얻기 위한 준비 방법 가운데 교회는 오랫동안 ‘피정’을 권고해 왔다.주님 안에 머물며 그분과 하나 되기피정은 하느님과의 관계를 새롭게 하도록 일상을 벗어난 특별한 시간과 공간 안에서 그분께 집중하는 시간이다. 하느님께 집중한다는 것은 많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 침묵함을 뜻한다. 마음의 문을 열고, 고요히 그분 곁에 머물며 침묵과 고독 가운데 시간이 정지한 듯한 ‘지금 바로 이 순간’ 그분의 현존을 깨닫게 되면, 우리는 나를 넘어 그분의 시간으로 들어가게 된다. 어머니 품에 안긴 어린 아기처럼 그렇게 주님 영 안에서 나의 영이 쉬며 그분과 하나 되는 시간이다.다음으로 피정은 우리가 순례자임을 자각하는 시간이다. 우리의 삶은 고정된 것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와서 하느님께로 되돌아가는 순례의 여정이다. 순례자는 많은 짐을 가지고 갈 수 없다. 결국, 죽음이라는 마지막 순간 앞에 오직 우리의 영이 하느님께로 되돌아감을 알기에 자신을 비우는 특별한 시간이 바로 피정이다. 재물, 관계, 자아에 대한 집착은 우리의 영적 순례 여정에서 무거운 짐들이다. 그래서 피정은 순례자인 우리가 더욱더 영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도록 자신을 비우는 시간이다. 자신을 주님께 내려놓는 순간 우리 내면에 치유가 일어나기도 한다. 피정은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필요하다. 예수님께서 바쁘신 공생활 중에도 외딴곳에서 기도하신 것처럼 그리스도인들은 분주한 일상과 세속의 소음과 안락한 삶을 피해 한적한 곳에서 피정을 가져야 한다. 오늘날 한국 교회는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을 마련해 그리스도인들의 영적 쇄신을 돕고 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 피정은 지식을 쌓는 강좌나 성경 공부 혹은 머리로 자신을 성찰하고 식별하는 시간과는 다르다. 오히려 온 마음으로, 온 영혼으로 하느님의 사랑 안에 머무는 시간이다. 그분 사랑 안에서 내 존재가 변화되지 않을 때 지식은 울리는 징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나를 멈추고 하느님께 봉헌하는 시간너무 바쁘게 살아가는 우리는 ‘잠시 멈춤’이 필요하다. 심지어 새로운 것을 배워 지식을 쌓는 것만을 피정으로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멈춤이 필요하다. 피정은 나를 위한 시간이 아니라, 나를 멈추고 하느님께 나를 봉헌하는 시간이다. 우리가 그분의 것임을 다시금 자각하며, 그분의 사랑을 느끼고 체험하는 시간이다. 구약의 시편 작가를 통해 하느님께서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시는 듯하다. “너희는 멈추고 하느님 나를 알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재찬 신부(부산 분도 명상의 집 원장) 다양한 피정 프로그램 수도자들과 함께하는 사순ㆍ부활 피정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피정의 집에서는 18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수도자들과 함께하는 피정을 마련한다. 또 고등학교 1학년부터 40세 이하 미혼 남녀를 위한 ‘청년 파스카 성삼일 전례’ 피정도 19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마련해 놓고 있다. 성 금요일 주님 수난 예식, 토요일 파스카 성야 미사, 주님 부활 대축일 낮 미사를 수도자들과 함께할 수 있다. 문의 : 054-971-0722, 010-8353-2323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녀회도 수도자들과 함께하는 파스카 성삼일 전례 피정을 18일부터 3박 4일 일정으로 부산 은혜의 집에서 실시한다. 미혼 여성과 60세 이하 혼자인 여성이 참가할 수 있다. 문의 : 010-8004-5729 은혜의 집툿찡포교베네딕도 대구수녀원 역시 청년 부활 전례 피정을 19일부터 2박 3일 일정으로 마련한다. 35세 이하 미혼 청년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문의 : 010-9890-3431피정 장소가 지방이라 부담된다면 서울 도심에서 열리는 피정을 추천한다. 수도자와 함께하는 부활 전례 피정이 20일 오후 3시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서울 장충동 성베네딕도회 피정의 집에서 열린다. 문의 : 02-2273-6394 치유와 인문학이 함께하는 피정낙태의 아픔을 치유하는 피정도 있다. 착한목자수녀회는 26~28일 성 빈센트 환경마을에서 한국 틴스타와 함께하는 낙태 후 화해 피정을 마련한다. 문의 : 010-9318-1366며칠의 피정을 떠날 여유가 없다면 당일 피정이 제격이다. 수원교구 고초골 피정의 집은 9일 전임 교구장 최덕기 주교와 함께하는 1일 피정을 실시한다. 피정은 ‘부활하신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란 주제로 오전 9시 30분부터 오후 3시까지 진행된다. 문의: 031-337-0470 음악과 문학과 함께하는 피정도 있다. 사순 피정과 함께하는 작은 음악회가 8일 오전 10시 서울 새남터순교성지 성당에서 열린다. 주제는 ‘제가 주님을 뵈었습니다’(요한 20,18)이며, 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강주현ㆍ한진욱ㆍ백남일 신부가 강사로 나선다. 문의 : 070-8672-0327부산가톨릭문인협회는 문학과 함께하는 사순 피정을 13일 오후 2시부터 1박 2일 일정으로 경남 양산 정하상바오로영성관에서 마련한다. 염봉덕 신부와 김영욱 신부, 김정자 교수가 지도한다. 문의 : 010-2831-3550대구대교구는 2019 사순 특집 콘서트를 14일 오후 2시 주교좌 범어대성당 대성전에서 펼친다. 네덜란드 DUDOK 앙상블 초청 내한공연으로 ‘바흐 마태 수난곡’이 연주된다. 문의 : 053-744-1394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cpbc2019.04.03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교회에 전한 서간, 각주·보충 설명 붙여 코린토 1서 강해 코린토 1서 강해 이영헌 신부 지음 / 바오로딸 / 2만 2000원바오로 사도는 ‘바오로 편’, ‘아폴로 편’, ‘케파 편’, ‘그리스도 편’으로 분열돼 파벌 싸움을 일삼는 코린토 교회 사람들에게 말한다. “그리스도께서는 세례를 주라고 나를 보내신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라고 보내셨습니다.”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첫째 편지(이하 코린토 1서)는 바오로의 실천적 사목 지침을 담고 있는 성경이다. 바오로 서간들 가운데에서도 가장 시사성이 짙고, 초대 교회 공동체 생활을 현장감 있게 다룬 문헌이다.코린토 교회는 다른 공동체와 달리 신자들의 분열과 갈등, 복음 말씀과 교회 전례에 대한 몰이해로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하느님의 지혜를 이해하지 못한 어리석음 때문이었다. 공동체는 윤리적으로 타락해갔고, 그래서 편지에서는 우상숭배, 부활관에 대한 문제 등 신앙생활 전반에 대한 당부가 이어진다.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사람들에게 요청한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적 친교, 일치의 공동체였다. 코린토 1서는 바오로 사도가 지향한 ‘하느님의 교회’로서 코린토 공동체가 하나가 되길 바라는 마음을 담고 있다.저자는 광주가톨릭대 총장과 교수를 지낸 이영헌(광주대교구 옥암동본당 주임) 신부. 가능한 많은 각주와 보충 설명을 덧붙이고, 그리스말 본문도 삽입해 바오로 서간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8.05.22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21) 성모님이 미소 짓다](//cpbc.co.kr/CMS/newspaper/2018/12/rc/741188_1.0_titleImage_1.jpg)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21) 성모님이 미소 짓다근엄하신 성모님이 웃으시자 아기 예수님도 환한 미소 오타비아노 넬리, ‘하느님의 어머니’, 1407~1422, 프레스코,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아시시, 이탈리아. 성모 마리아가 드디어 웃으십니다. 덩달아 아기 예수도 재롱을 피웁니다. 그리스도교가 생긴 지 1000년의 세월이 흘러서야 성모자를 표현한 성미술 도상(圖像)에 정감이 스며들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의 성미술 도상은 예수님의 거룩한 신성을 드러내는 데에 치우쳐 성모자를 초현실적인 존엄한 존재로 표현했습니다. 그래서 마치 로마제국 시대 황제와 황후의 초상처럼 우아하고 고상하지만, 함부로 가까이할 수 없는 근엄한 모습으로 그려졌지요. 인간미 넘치는 표정 담기 시작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를 표현한 성모자상에 인간미 넘치는 표정이 담기기 시작한 것은 9세기 말부터라고 합니다. 물론 미술사학자들 사이에 이견이 있지만, 성화상논쟁(8~9세기)이 끝난 후 콘스탄티노플에서 처음으로 표정이 담긴 성화가 그려지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그 대표적인 작품이 현재 그리스 아토스섬 필로테오스 수도원에 있는 ‘글리코필루사’(Γλυκοψιλουσα) 입니다. 우리말로 ‘달콤한 입맞춤의 성모’입니다. ‘자비의 성모’라는 뜻의 ‘판아기아 엘레우사’(Παναγια Ελεουσα)라고도 하는데 ‘달콤한 입맞춤의 성모’라는 이름이 더 정겹고 매력적입니다. 성모님은 양팔로 아기 예수를 포근하게 감싸 안고 주님의 뺨에 입을 맞추십니다. 아기 예수도 성모님의 달콤한 입맞춤이 좋은지 어머니 품에 온전히 자신을 내맡긴 채 왼손으로 엄마 턱을 어루만지며 귀여운 표정을 짓습니다. 성모님의 모성애뿐 아니라 아기 예수의 어머니에 대한 사랑이 물씬 드러나는 그림입니다. 이전의 도상과는 확연히 다른 인간미 넘치는 이러한 도상이 생긴 까닭이 있습니다. 6세기부터 성화상 공경이 대중 신심으로 발전하면서 그 부작용으로 신자들 사이에 미신 행위가 생깁니다. 그 도가 지나쳐 결국 동로마제국의 레오 3세(713~741) 황제는 726년 법으로 성화상 공경을 금지합니다. 이후 100년 가까이 신학자들 사이에서 “성경에 우상을 섬기지 말라 했는데 하느님을 형상화할 수 있느냐?” “인간이 그린 그림을 어떻게 공경할 수 있느냐?”며 논쟁을 벌였고, 과격한 이들은 성화상을 파괴했습니다. 그러다 843년 열린 제2차 니체아 공의회는 “성화상은 단순히 시각 도구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은총이 사람에게 전해지는 통로 역할도 하는 성사적 특성을 지니고 있으며, 하느님의 신비를 담고 있는 기록”이라고 선언하고, 성화상 공경을 허용합니다. 이 결정으로 성미술은 전성기를 누립니다. 도상의 표현 방법도 예수 그리스도의 인성과 성모 마리아의 모성을 숨김없이 드러낼 만큼 자유롭고 성숙해졌습니다. 성미술 안에서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본성이 온전히 표현되면서 그제야 인간의 미적 가치와 하느님의 신비를 결합하는 새로운 끈을 찾게 된 것입니다. 서방 교회에서 성모님을 주제로 한 성미술 도상은 13세기부터 전성기를 맞습니다. 1253년 봉헌된 이탈리아 아시시 성프란치스코대성당은 성미술의 보고입니다. 이 성당에는 성모자상의 전통 이미지와 풍부한 표정을 담은 도상들이 벽면 곳곳에 장식돼 있습니다. 먼저 오타비아노 넬리의 작품입니다. 1407~1422년에 그려진 ‘하느님의 어머니’ 도상으로 옥좌에 앉아 있는 존엄한 성모님의 모습과 아기 예수를 표현하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의 오른손에 들려있는 백합은 ‘평생 동정녀’이심을 상징합니다. 또 아기 예수의 왼손에 앉아 있는 새는 ‘제2의 그리스도’로 불리고 있는 성 프란치스코를 연상시킵니다. 다음으로, 피에트로 로렌제티의 작품입니다. 1315~1319년에 그려진 ‘성모자와 성 프란치스코, 요한 세례자’ 도상입니다. 성모님 왼편에 프란치스코 성인이, 아기 예수 옆에 요한 세례자가 서 있는데 성모자의 표정을 읽기 위해 확대했습니다. 아기 예수께서 “어머니는 프란치스코와 세례자 요한 중 누구를 더 사랑하시느냐”고 묻자 당황한 성모께서 눈을 크게 뜨고 말씀을 하지 못한 채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당신 옆에 서 있는 성 프란치스코를 가르치고 있는 모습이라 합니다. 이 그림에서 성모 마리아와 아기 예수의 친밀한 관계를 잘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성모님을 향해 앞으로 숙인 채 더없는 사랑의 눈으로 성모를 바라보고 말을 걸고 있습니다. 성모님 또한 어린 자식의 당돌한 질문에 감정을 숨기지 않고 지극히 인간적인 표현으로 그 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 이끄는 성모 마리아 여기서 우리는 하느님과 인간을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계시는 성모님의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어려운 교회 용어로 ‘중재자이신 마리아’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매일 우리가 성모님께 “저희 죄인을 위해 빌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그 이유를 이 친밀한 성모자의 모습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모성애와 인간미 가득한 성모 마리아의 성화는 우리를 그리스도께 이끕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12.11
청소년 예비신자 위한 교리서 발간 교사들과 학생들이 쉽게 가르치고 배우게 풀어 「신앙의 열매-교사용 교안집」,「신앙의 열매-학생용 워크북」 가톨릭 청소년 교육 프로그램을 연구하는 그리스도의 교육 수녀회 ‘참신나’ 팀에서 청소년 예비신자를 위한 교리서 「신앙의 열매-교사용 교안집」,「신앙의 열매-학생용 워크북」(바오로딸) 발간했다.‘참신나’는 10년 넘게 청소년 신앙학교, 생명교육, 피정 등 다양한 신앙 교육을 한 경험을 바탕으로 교사들과 학생들이 단순하고 쉽게 가르치고 배울 수 있는 내용을 책에 담았다. 학생들은 총 20과에 걸쳐 ‘한국천주교회사, 성경이란 무엇인가, 창조주이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 성사ㆍ미사란 무엇인가, 성모 마리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 등 주제를 배우게 된다. 처음 접하는 가톨릭 교리에 쉽게 다가갈 수 있도록 워크북은 두꺼운 책자 대신 낱장 20장으로 구성했다. 교리 주제와 관련된 성경 말씀과 핵심 내용을 글ㆍ그림으로 구성해 한눈에 알아보기 쉽고 흥미롭게 짰다. 워크북은 교리 시간마다 한 과씩 배부·회수하며 전체 과정을 마친 후 워크북 케이스에 담아 선물할 수 있도록 했다. 워크북 케이스는 롤링 페이퍼를 쓰면서 전 과정을 마무리할 수 있게 만들었다. 이 책은 예비신자 교리뿐만 아니라 본당 주일학교와 청년 교리에도 활용할 수 있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백영민2018.01.17

인류의 빛 예수님, 모든 민족의 구세주이심 드러내주님 공현 대축일 유래와 의미6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이다. 아기 예수가 동방박사들을 통해 자신이 구세주이심을 드러낸 사건을 기념하는 대축일이다. 동박박사 3명이 구유로 이끄는 별빛을 발견하고 여정을 시작했듯이, 그리스도인인 우리도 스스로의 나태함을 이겨내고 그리스도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주님 공현 대축일의 유래와 의미, 동방박사에 대해 알아본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강생하신 구세주 예수님께서 경배하고 예물을 바치러 온 동방박사들을 통해 스스로 당신 자신을 공적으로 세상에 드러내보이셨음을 기념하는 날이다. 2세기 동방 교회에서 유래한 주님 공현 대축일은 1월 6일이다. 한국 교회는 사목적 편의에 따라 1월 2~8일 사이의 주일에 축일을 지낸다. 주님 공현을 뜻하는 그리스어 ‘에피파네이아’와 ‘테오파니아’는 ‘드러나게 나타나거나 밝혀지는 것’ ‘스스로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한다. 이 외에도 하느님의 발현이나 기적적인 신의 개입을 가리키는 데 사용했다. 동방 교회에서는 인간의 모습으로 ‘나타나심’을 기리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이 용어를 사용해 불렀다. 우리가 지내고 있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예수 성탄의 의미가 확대되어 드러난 것이다. 동방 교회에서 이 축일을 기념하게 된 것은 서방의 예수 성탄 대축일이 등장한 것과 같다. 서방에서 동지 축제(태양신 탄생 축제)를 12월 25일에 지냈듯, 이집트와 아라비아에서는 1월 6일에 축제를 지냈다. 그리스도인들은 낮이 밤보다 길어지는 이 날에 그리스도의 탄생과 공현을 기념함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을 구원할 참빛이심을 드러내려 했다. 서방 교회는 4세기부터 주님 공현을 기념했다. 최초로 이 축일을 기념한 것은 361년 갈리아에서 가장 성대하게 공현 축일을 지낸 것으로 확인된다. 동방의 공현 축일이 361년 갈리아에서 전통이 된 것으로 보아, 이 축일의 기원은 로마의 예수 성탄 대축일과 동시대로 여겨진다. 서방 교회는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 이후 예수 성탄 대축일과 함께 주님 공현 대축일을 기념하기 시작했다. 이처럼 서방에서는 예수 성탄 대축일을, 동방에서는 공현 축일을 성탄 축일로 지냈다. 동방 교회의 공현 축일이 서방으로 전파됐을 때 의미가 달라졌다. 서방 교회에서는 동방박사들이 탄생한 구세주를 경배하려고 베들레헴에 온 것을 기념한다. 그리스도로 오신 예수의 탄생에 ‘그분의 탄생을 이방 민족들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의미가 공현 축일에서 강조된 것이다. 또 ‘예수의 세례’와 ‘카나의 첫 기적’을 덧붙여 기념했다. 서방 교회의 성탄 축일이 동방 교회에 도입됨으로써 공현 축일의 본래 뜻은 사라지고, ‘예수의 세례’를 더 기념하게 됐다. 서방 교회들은 동방박사들의 방문을 기념하면서, 이들이 인류를 대표한다고 여겼다. 성탄에는 그리스도의 탄생을, 공현에는 온 민족의 경배를 기념하는 것으로 성탄과 경배는 이렇게 구별된다. 오늘날 주님 성탄 때의 전례는 동서방 교회들이 ‘주님 탄생’이라는 동일한 사건을 기념하지만, 주님 공현의 전례는 동방과 서방이 서로 다른 특성을 가진다. 서방 교회는 좁은 의미에서 공현 축일에 ‘현자들의 방문’을 기념하고, 주님 세례 축일에는 ‘주님의 세례’를 기념한다. 그러나 동방 교회는 두 가지를 모두 주님 공현 축일에 기념한다. 동방박사,?예수님을 구세주로 알아본 최초의 이방인 마태오 복음서에 의하면 동방박사들은 별을 보고 아기 예수를 경배하기 위해 베들레헴을 찾아왔다.(마태 2,1-8 참조)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를 찾아온 것은 민족들을 대표해 그리스도를 경배하고 예물을 드리기 위해서다. 성경에서 동방박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은 최초의 이방인으로 등장한다. 동방박사의 경배는 네 복음서 중 마태오 복음서에만 나온다. 마태오 복음사가는 동방박사의 방문을 통해 이사야의 예언(이사 60,3-6 참조)이 실현됐음을 선포했다. “민족들이 너의 빛을 향하여, 임금들이 떠오르는 너의 광명을 향하여 오리라.…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 예수는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로서, 임마누엘로서 세상에 왔다. 그러나 헤로데 대왕과 이스라엘 백성들은 구세주가 오심을 알아보지 못했다. 이들과 달리 동방의 박사들은 메시아의 탄생을 알아보고 경배하러 온 것이다. 점성가들로 생각되는 세 명의 박사는 전승에 따르면 멜키오르, 발타사르, 가스파르로 불린다. 동방에서 온 이들을 요르단, 시리아, 메소포타미아, 페르시아 가운데 어느 한 곳에서 온 점성가로 여긴다. 점성가들의 신분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지만, 유럽의 그리스도인들은 6세기 초부터 그들을 ‘임금’이라고 생각했다. 한편 십자군은 중동 지역에서 삼왕의 유해를 유럽으로 옮겨와 이탈리아 밀라노의 성 에우스토르지오 성당과 독일 쾰른주교좌성당에 안치했다. 동방박사들은 예수님을 경배하고 황금과 유향, 몰약을 선물로 바쳤다. 황금은 ‘왕권’, 유향은 ‘그리스도의 신성’, 몰약은 ‘인류를 위해 죽으실 그리스도의 희생’을 상징하는 예물이다. 신학자 칼 라너 신부는 “황금은 ‘우리의 사랑’, 유향은 ‘우리의 그리움’, 몰약은 ‘우리의 고통’”이라고 봤다. 동방박사의 경배 이야기를 통해서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은 메시아의 탄생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다. 동방박사의 구세주 방문은 유다인 뿐 아니라 이방인에게까지도 하느님 나라를 드러낸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문채현2019.01.02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이야기] (8) 불구자를 고친 베드로 (3,1-10)](//cpbc.co.kr/CMS/newspaper/2019/03/rc/747697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사도행전이야기] (8) 불구자를 고친 베드로 (3,1-10)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이룬 첫 기적 예루살렘 성전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있던 불구자를 고친 이야기는 베드로 사도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한 첫 기적이다. 그림은 마솔리노(1383~1440), 불구자를 고친 성 베드로, 산타 마리아 델 카미네 성당 브란카치 경당 벽화. 이탈리아 피렌체. 루카는 예루살렘의 첫 신자 공동체 생활을 요약해서 전하고 나서(2,42-47) 베드로를 중심으로 하는 사도들의 예루살렘 활동을 본격적으로 소개합니다. 베드로 사도가 불구자를 고친 이야기가 그 첫 번째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도들을 통하여 많은 이적과 표징이 일어나므로 사람들은 저마다 두려움에 사로잡혔다”(2,43)고 루카가 요약해서 전하는 내용의 구체적인 첫 사례이기도 합니다.베드로와 요한이 오후 세 시 기도 시간에 성전으로 올라가고 있었습니다.(3,1) 오후 세 시는 성경 원문의 ‘제9시’를 우리 식으로 풀어 표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낮을 12등분해서 해가 뜬 뒤 한 시간이 지난 시각을 제1시라고 불렀습니다. 하루를 낮과 밤 절반으로 나눠 새벽 6시에 해가 뜬다고 보면 7시가 제1시가 되지요. 이런 식으로 계산하면 제9시는 오후 3시가 됩니다. 당시 유다인들에게 정해진 기도 시간은 성전에서 제물을 바치는 이른 아침과 오후 3시 그리고 저녁 해 질 무렵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베드로와 요한은 유다인들의 기도 관습에 맞춰서 오후 세 시에 기도하러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다고 하겠지요.그런데 “모태에서부터 불구자였던 사람” 하나가 ‘아름다운 문’이라고 하는 성전 문 곁에 있었습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이들에게 자선을 청할 수 있도록 사람들이 그를 날마다” 그곳에 들어다 놓았던 것입니다.(3,2) “모태에서부터 불구자”라는 표현은 그 사람이 불구가 확실하다는 것을 뜻합니다. 사람들이 그 사람을 날마다 성전 문앞에 들어다 놓았다는 것 역시 같은 뜻을 담고 있지만 이와 함께 그 불구자를 사람들이 배려하고 있다는 사실도 함축한다고 하겠습니다. 그 불구자는 성전에 들어가려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고 “자선”을 청하고, 베드로는 요한과 함께 그를 유심히 바라보고 나서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하지요. 그 사람은 뭔가를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는 베드로와 요한을 쳐다봅니다.(3,3-5) 그 불구자는 여느 때와 다름없이 베드로와 요한에게 자선을 청합니다. 성전에 들어가는 사람들에게 자선을 청하는 것이 그에게는 일상적인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우리를 보시오” 하고 말했을 때도 대수롭지 않게 여겼을 것입니다. 어쩌면 속으로 ‘이 사람들이 얼마나 큰 것을 주려고 하기에 자기들을 보라고 한다는 말인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했을 수도 있겠지요. 그러자 베드로가 말합니다. “나는 은도 금도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가진 것을 당신에게 주겠습니다. 나자렛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 그러면서 그의 오른손을 잡아 일으킵니다. 그러자 그는 즉시 발과 발목이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서 걷습니다.(3,6-8ㄱ) 뭔가 주려나 기대했던 그 불구자는 “나는 은도 금도 없다”는 베드로의 말에 실망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다음 순간 베드로는 깜짝 놀랄 말을 합니다. 일어나 걸으라는 것입니다. 그뿐 아닙니다. 베드로가 손을 잡아 일으키자 그는 벌떡 일어나 걷습니다. 손을 잡아 일으켜 세웠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발과 발목에 힘이 생겨 튼튼해져서 벌떡 일어나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이 기적은 베드로가 사도로서 행한 첫 기적이었습니다. 그 사람은 걷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하느님을 찬미하기도 하면서 베드로와 요한을 따라 성전으로 들어갑니다.(3,8) 껑충껑충 뛴다는 것은 불구였던 몸이 완전히 나았음을 의미합니다. 이는 그 사람으로서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한, 정말로 뜻밖의 선물이자 은총이었습니다. 그것은 또한 기쁨의 표현이기도 합니다. 예상치 못한 값진 선물을 받았을 때 감사하는 마음이 우러나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평생 불구로 지내며 구걸하며 살아야 했던 사람이 완전히 낫게 됐다면 껑충껑충 뛰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할 것입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이라면 말입니다.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고 “그에게 일어난 일로 경탄하고 경악하였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3,10) 날마다 성전의 아름다운 문 곁에 앉아 자선을 청하던 불구자가 성하게 되어 걷기도 하고 껑충껑충 뛰기도 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는 것을 봤으니 그럴 만도 할 것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몸이 성하게 된 그 사람처럼 하느님을 찬미한 것이 아니라 경탄하면서도 경악합니다. 그 사람들이 베드로의 치유를 하느님의 업적이라고 여겼다면 하느님을 찬미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경악했다는 것은 하느님의 업적으로 여기기보다는 그냥 ‘소스라치게 놀랐다’는 뜻이 더 강합니다. 뭔가 복선이 깔려 있는 것이지요.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계속 살펴볼 것입니다. 생각해봅시다베드로 사도는 오순절 설교에서는 사람들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회개하고 세례를 받아 죄를 용서받으라고 설파했습니다. 이제 태생 불구자를 고치는 이야기에서 베드로는 그냥 “일어나 걸으시오”라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에게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촉구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일어나 걸으시오”라고 말합니다. 마르코 복음사가에 따르면,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이름으로 마귀들을 쫓아내고…병자들에게 손을 얹으면 병이 나을 것이다.”(마르 16,17-18) 루카 복음사가는 “예루살렘에서부터 시작하여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가 그의 이름으로 모든 민족에서 선포되어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전합니다.(루카 24,47) 여기서 “그의 이름으로”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를 말합니다. 여기서 관건이 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입니다. 우리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모든 일을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한다는 것은 우리가 하는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오늘 하는 일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드러나도록 해달라고 기도하고 다짐하면 좋겠습니다. 하루를 마치면서는 그렇게 살았는지 잠깐이라도 짬을 내어 성찰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cpbc2019.03.06

예수님 발자취를 따라 - 이스라엘 성지를 가다 (1)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내 동굴 앞 제대가 성스러운 모습을 하고 있다. 제대 앞에 라틴어로 ‘이곳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Verbum Caro Hic Factum est)’라고 씌어 있다. 믿음의 선조 아브라함과 이사악과 야곱의 후손들이 사는 ‘약속의 땅’. 하느님이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로운 ‘성지 중의 성지’. 4000년 역사 안에 이민족의 숱한 침략과 유배의 아픈 기억을 고스란히 간직한 나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과 구원의 기쁜 소식이 처음 울려 퍼진 땅. 이스라엘이다. 7월 24일~8월 1일 일주일간 타임머신을 타고 성경 속을 거닐듯 이스라엘을 다녀왔다. 이스라엘 관광청과 공동 기획으로 예수님의 발자취를 따라간 이스라엘 순례기를 4회에 걸쳐 연재한다. 이스라엘=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이스라엘 북부 갈릴래아 지방의 작은 마을 나자렛. 성모 마리아가 천사를 만나 예수님 잉태 소식을 듣고, 이후 예수님이 유년 시절을 보낸 곳이다. 공관복음은 이 시기 예수님 이야기를 풍부히 다루고 있진 않지만, 예수님이 어린 시절 믿음을 다지며 생활하고, 공생활을 시작하기에 앞서 지혜를 쌓던 고향이다.2000년 전 이 작은 마을은 겨우 150명 남짓 살았을 것으로 추정되는 가장 가난한 동네였다. 믿음의 성지 예루살렘과는 150㎞ 떨어져 있고, 갈릴래아 호수에서 서남쪽으로 약 25㎞ 지점에 있다. 스코틀랜드의 저명한 화가 데이비드 로버트가 1830년쯤 이곳을 방문한 뒤 그린 나자렛 마을 전경 작품만 들여다봐도 당시 나직나직한 전통 가옥 몇 채만 눈에 들어올 정도였다. 그러나 오늘날 나자렛은 아랍인들이 주를 이루는 인구 8만 명의 제법 큰 도시로 성장했다.나자렛 마을은 해발 600m 언덕 분지 안에 집들이 빙 둘러 자리한 모습을 띠고 있다. 3~4층 높이의 제법 큰 건물들도 곳곳에 자리한 동네가 됐다.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은 나자렛 마을 가장 중심에 자리하고 있다. 자동차 한 대가 겨우 다닐만한 좁은 골목을 따라가다 보면 하늘을 찌를 듯한 대형 첨탑이 드리운 성당에 다다른다. 성모 마리아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며 성령으로 아기 예수를 잉태하리라는 하느님 말씀을 순수하게 받아들인 위대한 신앙 고백의 현장이다. 작고 가난한 유다인 마을에 주님의 천사가 찾아왔고, 마리아의 태중은 이내 찬란하게 빛날 분이 모셔진 성스러운 지성소가 된다. 하느님의 총애 속에 마리아는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들을 곧 잉태하게 됨을 기꺼이 받아들인다.‘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은 ‘성모님의 집터’로 추정되는 동굴 위에 세워져 있다. 1969년 봉헌된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마당은 전 세계 각국이 봉헌한 성모 성화로 둘러싸여 있다. 육중한 문을 열고 대성전에 들어가면 주님 탄생 예고 동굴 앞 제대가 성스러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Verbum Caro Hic Factum est)’. 제대 정면에는 말씀이 사람이 되신 육화의 신비가 라틴어로 쓰여 있다. 2층 본 성전을 따라 눈길을 올려다보니 첨탑 꼭대기에 성모 마리아의 순결함을 상징하는 백합과 아베 마리아(Ave Maria)를 뜻하는 무수히 많은 ‘A’와 ‘M’이 수놓아져 있다.그런데 마리아의 집이 동굴이라니. 의아할 법도 하지만, 이는 헤로데 대왕 시대의 전형적인 가정집 형태였다. 석회암으로 만든 작은 방과 부엌, 물 저장소, 곡식 창고 등이 1~2평 남짓한 공간에 자리하고 있다. 이처럼 작고 가난한 집에서 성가정을 이뤘을 2000년 전 소박한 예수님 가족이 눈앞에 그려진다.‘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바로 옆에는 요셉의 집터 위에 세워진 ‘요셉 성당’이 자리하고 있다. 요셉과 마리아는 매우 가까운 거리에 살았던 모양이다. 어린 예수는 부모의 손을 잡고 얼마나 즐거운 마음으로 회당을 찾았을까. 또 어린 예수는 목수였던 아버지 요셉이 일하는 것을 얼마나 유심히 지켜봤을까. 물을 길어오는 어머니 마리아의 정성스러운 손길, 철없이 뛰어다니다 이따금 넘어지기도 했던 자신을 일으켜 세워 줬을 요셉과 마리아의 따스함은 얼마나 컸을까. 인근에는 예수님이 드나들었던 유다인 회당 자리의 성당과 마리아가 매일 우물을 길었다고 전해지는 곳에 세워진 가브리엘 성당이 있다.2010년 ‘주님 탄생 예고 기념 성당’ 바로 옆에서 예수님 시대 집터가 새롭게 발견됐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잘 보존된 주거지가 발굴된 것은 이 지역에서 드문 일이다. 새로 발굴된 주거지에서는 기원전 1000년 솔로몬 시대 때 가옥의 벽면과 지하 3층 깊이 저수시설, 점토 항아리 등이 발견됐다.구약성경에는 거의 등장하지 않는 나자렛 마을이 이미 신약의 예수님 시기 이전부터 촌락을 이루고 있었음을 보여주는 현장이어서 의미가 크다. 이스라엘 문화재청은 이 집터에 국제마리아센터를 건립해 이곳을 방문하는 모든 이에게 예수님 시대와 그 이전의 집터를 생생히 감상하도록 돕고 있다. 예수님 관련 영상 감상실과 전시실, 나자렛 일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아름다운 경당 등을 갖추고 있다.가장 가난하고 작은 마을 나자렛. 나타나엘이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요한 1,41)하고 필립보에게 보인 시큰둥한 반응이 그럴 법하게도 다가올 만큼 보잘것없는 이곳에 주님의 천사가 찾아왔다. 그리고 성가정은 파스카 축제 때마다 머나먼 예루살렘을 다녀오는 신심 깊은 가족이었다.“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2,40) cpbc2018.08.07

하느님 말씀에 목마른 청년에 수녀회 문 활짝‘말씀과 함께하는 아미드뽈’, 첫째·셋째 주일 오후 1~5시 7일 명동 바오로교육관에서 열린 ‘아미드뽈 청년카페’ 모임에서 수도자들과 청년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하느님 말씀이 고픈 청년들을 위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서울관구 수도자들이 나섰다. 수도자들은 ‘말씀과 함께하는 아미드뽈 청년카페’(이하 아미드뽈)를 운영하며 청년 누구나 수녀회 문을 열고 들어와 삶의 이야기와 복음을 나눌 수 있도록 초대하고 있다. 1월 첫째 주 주일인 7일, 서울 주교좌명동대성당 성모동산 옆 성바오로교육관을 찾았다. 2018년 첫 모임에 10여 명의 청년이 모였다. 꾸준히 만남을 이어오다 보니 ‘아미드뽈(Amis de Paul, 바오로의 친구들)’ 뜻처럼 담당 수녀들과 청년들은 친구처럼 서로를 반긴다. 청년 미사 전까지 진행되는 모임은 자유로운 분위기 속에서 다과를 나누며 신앙과 친교의 시간으로 꾸며진다.‘아미드뽈’은 교회 내에서 갈 곳을 잃은 청년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2014년 7월 처음 시작됐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명동에서 영세자가 많이 탄생하는 데 반해 정작 세례를 받은 후 냉담한 경우를 안타깝게 여겨 청년 모임을 꾸렸다. 수많은 기도 모임과 차별화하기 위해 ‘수녀들이 전하는 복음 이야기’에 초점을 맞췄다. 청년들이 복음을 읽고 그들의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살아 계시는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구성했다.수도자들의 강의로 처음 시작된 모임은 청년들의 요청에 따라 신앙 고민 나누기, 성경 읽기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각자 삶 속에서 신앙과 현실이 부딪칠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주제를 정해 이야기를 나누는가 하면,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 없는 청년 신자들 눈높이에 맞춰 렉시오 디비나(읽기, 묵상, 기도, 관상을 통해 말씀을 통해 하느님 현존을 깊이 깨닫도록 돕는 독서 수행법), 성경 통독, 나눔, 상담의 시간을 보냈다. 지난해에 바오로 서간을 함께 읽은데 이어 최근엔 마태오복음을 함께 읽고 있다.이미경 수녀는 “아미드뽈은 말씀이 한가운데 놓이는 모임”이라고 했다. 이 수녀는 “종교가 삶이 아닌 취미가 되고, 교회 내 청년 모임도 동아리처럼 변질하는 경우가 많은 현실 속에서 청년들이 하느님을 만날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라며 “청년들이 하느님을 ‘관념’이 아닌 ‘우리 안에 살아 계신 분’으로 받아들이고 자신들의 고민, 아픔, 상처를 열어 보이고 대화할 수 있길 바란다”고 말했다.청년들은 모임을 통해 믿음이 성장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유지완(요안나, 명동본당)씨는 “2년 전 예비신자 교리를 받을 때부터 아미드뽈과 함께하고 있는데 기도할 때, 성경 읽을 때 모르는 부분이 있으면 바로 수녀님께 여쭤볼 수 있는 자유로운 분위기가 좋고 마치 ‘신앙 그룹과외’ 같은 느낌”이라고 말했다. 조성진(프란치스코, 명동본당)씨는 “군대 전역 후 가족같은 아미드뽈을 만나면서 긴 냉담을 풀 수 있었고 꾸준히 신앙과 일상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미래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과 불안함도 사라졌다”고 말했다.아미드뽈은 세례를 준비 중인 예비신자와 세례받은 청년(20~36세)이면 누구나 참여할 수 있다. 모임은 매월 첫째ㆍ셋째 주일 오후 1~5시 성바오로교육관에서 열린다. 문의 : facebook.com/amisdepaul유은재 기자 you@cpbc.co.kr 백영민2018.01.10

요셉 성인은 누구인가 - 성가정 위해 온전히 헌신한 ‘아버지’성 요셉 성월과 성 요셉 대축일(19일)교회는 매년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지낸다. 그리고 19일은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양아버지인 요셉 성인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충실한 도구로 선택돼 성가정을 돌봤다. 요셉 성인에 관한 성경 구절은 예수의 어린 시절을 다룬 마태오복음 1─2장과 루카복음 1─2장뿐이다. 외경 작품들에는 요셉 공경에 대한 내용이 많다. 성경에 그에 대한 언급이나 내용은 별로 없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요셉은 참으로 많은 일을 남모르게 실천했다. 다윗 왕가의 후손인 요셉은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했고 의인으로 존경받았다. 약혼자 마리아가 임신하자 파혼하려 했지만, 성령에 의한 잉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요셉은 부모로서 아기 예수가 할례를 받도록 하고 아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했다.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 생활을 해야 했다. 예수가 12살 되던 해에 예수,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 순례를 갔다가 예수를 잃었으나 아들이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요셉(Joseph)은 ‘하느님을 돕다’, 곧 ‘돕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예수 시대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요셉의 인생은 성실하게 돕는 이의 삶이었다. 요셉은 먼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보호했다. 정결한 남편으로서 동정을 원하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끝까지 지켜줬다. 자기 희생과 봉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셉은 또 예수의 양부로 아버지 역할을 성실하게 다했다. 예수가 공생활에 나서기 전 30년 동안 예수를 보살피고 가르쳤다. 성경은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51-52)고 기록하고 있다. 어린 예수의 지혜와 키를 자라게 한 이가 요셉이다. 이처럼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3월 19일이 요셉 성인의 축일로 자리 잡은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이 비교적 늦게 시작된 것은 그의 역할이 성모 마리아만큼 명확하지 않아 전례력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2세기 예루살렘 성지를 이슬람에게서 되찾고자 했던 십자군은 요셉 성인을 공경하고자 나자렛에 성당을 세웠다. 이후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과 축제는 주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통해 유지되고 전파됐다. 작은형제회 출신 식스토 4세 교황은 15세기 말 요셉 성인의 축일을 모든 교회로 확산시켰다.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성 요셉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1889년 레오 13세 교황은 요셉을 가장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 성모 마리아 다음의 위치로 올렸다. 교황은 “성 요셉은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산 표본”이라면서 “아내들에게는 사랑, 마음의 일치, 충실함의 모범이고, 미혼자, 독신자, 수도자ㆍ성직자에게는 정결의 이상이며 수호자”라고 밝혔다. 이어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의 아버지이므로 가톨릭 교회의 가장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비오 11세 교황은 성 요셉을 공산주의와 싸우는 영적 투쟁의 보호자이며 사회 정의의 수호성인이라고 불렀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공산주의의 5월 축제에 맞서고자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 요셉 축일’로 정했다. 요한 23세 교황은 성 요셉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보호자로 지정하고 1962년 감사기도 제1 양식에 그의 이름을 넣었다. 성 요셉은 목수, 임종하는 이들, 노동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백영민2018.03.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