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85)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히브 4,14)](//cpbc.co.kr/CMS/newspaper/2018/01/rc/709857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85) “우리에게는 하늘 위로 올라가신 위대한 대사제가 계십니다”(히브 4,14)그리스도의 희생 제사, 우리 죄를 용서받게 하다 대사제의 가장 큰 역할은 백성 전체를 위한 속죄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었다. 그림은 루랑드 라 이르 작, ‘이사악을 희생 제물로 바치는 아브라함’ 부분, 캔버스 유화, 1650년, 프랑스 파리. 오르세미술관. 출처=가톨릭굿뉴스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강조와 함께 중요하게 드러나는 것은 ‘아들이신 예수님’입니다. 이 특별한 관계를 통해 우리에게 구원이 왔다는 것은 신약성경의 공통된 내용으로 다른 서간들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히브리서)에는 이 사실을 말하면서도 독창적인 내용을 전개해 나갑니다. 그것은 바로 ‘대사제이신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먼저 히브리서는 예수님을 ‘구원의 영도자’로 표현합니다. “만물은 하느님을 위하여 또 그분을 통하여 존재합니다. 이러한 하느님께서 많은 자녀들을 영광으로 이끌어들이시면서, 그들을 위한 구원의 영도자를 고난으로 완전하게 만드신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히브 2,10)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명과 불신, 갈림길 여기서 표현되는 영도자, 지도자의 모습은 편지 안에서 모세와 비교됩니다. 모세의 가장 큰 업적은 이집트에서의 탈출입니다. 모세는 하느님의 말씀을 충실하게 따르는 종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이끌어냈지만, 이스라엘의 조상들은 그와 다르게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보여준 하느님께 대한 불순종은 탈출기와 민수기에 잘 담겨 있습니다. 이렇듯 하느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는 이들은 하느님의 안식처에 들지 못합니다.(시편 95,7-11)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명과 불신은 안식처를 향한 갈림길로 표현됩니다. 히브리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의 광야에서의 역사를 말하면서 ‘대사제’에 대한 언급으로 넘어갑니다.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으면서 시작된 새로운 정체성은 ‘사제적인 백성’이 되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이제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경신 공동체로서 스스로를 이해하게 됩니다. 사제적인 백성으로 살아가면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대)사제입니다. 대사제의 가장 큰 역할은 백성 전체를 위한 속죄의 제사를 바치는 것이었습니다. ‘속죄의 날’로 표현되는 이 날에는 대사제가 모든 백성을 대신하여 하느님께 속죄 제물을 봉헌합니다. 이런 대사제의 역할은 하느님과 백성을 화해시키는 중요한 것이었습니다. 예전처럼 제사를 봉헌하지는 않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다인들은 이 속죄의 날을 지키고 있습니다. 대사제는 이처럼 백성을 위한 제물을 바치던 사람입니다. 히브리서는 이 관점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예수님 역시 대사제이십니다. “지금 하는 말의 요점은 우리에게 이와 같은 대사제가 계시다는 것입니다. 곧 하늘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어좌 오른쪽에 앉으시어,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세우신 성소와 참성막에서 직무를 수행하시는 분이십니다.”(히브 8,1-2) 예수님 역시 대사제처럼 백성을 위해 제물을 바치는 분이시지만 그분이 바친 제물은 다른 대사제들과는 다릅니다. 대사제이신 예수님은 히브리서에서 중복된 의미로 표현됩니다. 제물을 바치는 대사제이자, 대사제에 의해 바쳐진 제물이기도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많은 사람의 죄를 짊어지시려고 단 한 번 당신 자신을 바치셨습니다.”(히브 9,28) 대사제 중의 대사제, 예수님 대사제는 매해, 반복해서 속죄 제물을 바쳐야 했지만, 그리스도의 제사는 유일한, 반복되지 않는, 결정적인 희생 제사입니다. 예수님은 대사제처럼 우리를 위해 제사를 바친 분이십니다. 또 그분은 희생 제사의 다른 동물, 곧 황소나 염소의 피가 아닌, 당신의 피로 우리를 구원하신 분이십니다. 이렇게 우리는 죄를 씻고 용서받았습니다. 예전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우리는 대사제를 모시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과 맺어진 계약은 새로운 계약입니다. 그리고 이 새 계약은 옛 계약을 낡은 것으로 만듭니다. 구약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인 탈출과 가나안 정착까지의 여정, 또 그 안에서 보여주었던 선조들의 불순종. 이 모든 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새롭게 되고 완전한 의미를 갖게 됩니다. 히브리서는 지난 것을 통해 새로운 것을 이끌어 냅니다. 낡은 것과의 대조를 통해 새것의 의미를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통해 우리는 새 계약을 맺은 사람들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8.01.30

신자 눈높이 맞춰 풀어쓴 ‘교부들의 삶과 말씀’황인수 신부, 정통 신앙 토대 확립한 교부 10명 문헌 엮어 출간황인수 신부는 "우리 모두 교부가 될 수 있다"며 "지금도 살아 숨쉬는 교부들의 말씀에 심취해 보길 권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끝없는 길 언제나 새로운 길 황인수 신부 지음 / 1만 3000원 / 성바오로출판사 교부들의 문헌을 읽은 적이 있는지. ‘교회의 아버지’라 불리는 교부(敎父)는 그리스도교 진리를 널리 전파한 존경받는 위대한 사상가를 일컫는 칭호다.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중세기까지 그리스도교 정통 신앙의 토대를 확립한 많은 교부들의 문헌은 여전히 ‘신자들이 접하기 어렵다’는 인식이 자리 잡고 있는 게 사실. 그러나 이 책을 보면 ‘교부들과의 친밀도’가 한껏 높아진다. 황인수(성바오로수도회 준관구장) 신부가 펴낸 「끝없는 길 언제나 새로운 길」(성바오로출판사/1만 3000원)은 사도 시대부터 수 세기에 걸쳐 정통 신앙을 수호한 교부 10명의 빛나는 문헌과 감동적인 삶을 독자 눈높이에 맞춰 엮었다. ‘기도’, ‘이웃 사랑’, ‘깨어 있음’, ‘말씀’ 등 가장 필요한 주제들을 다뤘다. 황 신부는 “교부들은 성경 말씀을 자기 삶으로 주석해낸 성인들”이라며 “교부들의 말은 당대 현실 문제와 직면해 있을 뿐만 아니라, 그 메시지는 오늘날에도 생명력을 지닌다”고 강조했다. 책 주인공은 대바실리오(329~379)부터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도(1090~1153)에 이른다. 교부들은 평생을 하나같이 그리스도의 진리를 깊이 깨닫는 데 매진했고, 말씀의 의미를 주해해 설교했다. 또 부패한 황실, 부유해진 권력과 잘못된 세태에 맞서 싸우기도 했다. 황 신부는 “오늘날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신앙적으로 현실을 짚고, 이웃사랑과 실천을 강조하시듯 교부들 또한 개인 영성에 국한하지 않고, 사회 정의와 평화를 위해 사회적 발언도 서슴지 않으며 목숨까지 내놓았다”고 했다. 실제 부패한 권력층을 향해 “소유물이 소유자의 것이 되어야지 소유자가 소유물에 사로잡혀서는 안 된다”고 외쳤던 암브로시오 성인은 결국 주교직을 박탈당하고 유배지에서 순교했다. ‘황금의 입’(金口)으로 불리는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 또한 폭군을 질타하다 쫓겨나 순교한다. 대바실리오도 추종을 강요한 황제에 당당히 맞섰다. 황 신부는 “교부들은 하느님 사랑을 깊이 체험했기에 이 같은 모범과 실천이 가능했던 것”이라며 “이분들의 모습에서 하느님의 모상인 사람을 제대로 알고, 그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진리를 꿰뚫었음을 알 수 있다”고 했다. 책은 교부들의 성경 주해서와 서간, 그리고 삶에 담긴 아름다운 신앙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늘 깨어 있는 사람이 되라”고 강조한 대바실리오는 “지상에서 천사들의 합창대를 모방하는 것보다 더 복된 것이 무엇이 있겠느냐”고 시편을 찬양했다. ‘하느님의 종들의 종’이란 표현을 처음 쓴 대그레고리오 교황은 지병으로 목소리를 내기 힘든 상황에서도 교황직을 수행하면서 ‘개인 기도’와 ‘이웃 섬기기’의 균형을 강조했다. 하느님 신비를 깊이 꿰뚫어본 ‘은총의 박사’ 아우구스티노 주교와 예로니모 성인이 갈라티아서의 해석을 놓고 편지를 주고받으며 ‘겸손한 논쟁’을 펼친 일화도 흥미롭다. “모든 이를 돌보는 영혼의 의사이신 그분”(대바실리오), “아주 작은 일에 불의한 사람은… 영적인 재산을 분배하는 데도 불의할 것입니다”(예로니모), “그리스도를 마시십시오. 그분은 생명의 샘입니다”(암브로시오)와 같은 주옥같은 글귀도 읽을거리다. 로마 아우구스티니아눔에서 교부학을 전공한 황 신부는 “수원가톨릭대 신학생 시절, 스승의 날 신학생들이 교수님께 꽃을 달아드렸는데, 그분께서 글쎄 의자를 가져다 갑자기 칠판 위 예수님께 달아드리더라”며 “당시 교부학을 가르치셨던 이성효 주교님의 이 모습에서 ‘아, 이것이 참 신앙이구나!’를 느끼고 교부학에 매진하기로 결심했다”고 말했다. “사실 교부란 꼭 이처럼 대단한 분들만 지칭하는 게 아닙니다. 우리에게 생명의 신앙을 전해준 모든 이는 교부입니다. 제게 세례를 준 신부님, 몸도 제대로 가누지 못하는 병환 중에도 마지막까지 강론대 앞을 떠나지 않았던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도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교부는 가까이 있습니다. 신앙을 전수하는 우리도 모두 교부인 셈입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김지항2017.08.09

불을 밝혀 하느님께서 함께하시길 바라 [교회상식 교리상식] 왜 촛불을 켜나 성당에서는 미사 때 제대에 촛불을 켭니다. 또 집에서 기도할 때도 촛불을 켜곤 하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촛불을 밝히면 어둠이 사라지고 환해지지요. 초는 그래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 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미사 때에 제대에 촛불을 켜는 것은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심을 나타냅니다. 집에서 기도할 때 촛불을 켜는 것도 빛이신 그리스도를 우리 가운데 모신다는 의미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예로부터 성스러운 곳이나 또는 성스러운 예식을 거행하는 데는 빛이나 불이 있었습니다. 구약성경에서는 주님 성소에는 등잔 일곱개를 얹을 수 있는 등잔대를 만들어 불을 밝히라고 규정합니다(탈출 25,31-37).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하느님께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비추셨다는 기록도 있지요(탈출 13,21). 신약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세상의 빛이라고 칭하셨을 뿐 아니라 제자들에게도 "세상의 빛"(마태 5,14)이 되라고 당부하셨습니다. 그런데 교회에서 전례 때에 등잔불이나 촛불을 처음 사용했을 때는 이런 상징적 의미를 받아들여서가 아니라 저녁에 모여 기도할 때 어둠을 밝힌다는 실용적 이유가 더 컸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영원한 생명과 희망의 상징, 천상 생명으로 새로 태어난 기쁨의 상징으로 장례식 때 또는 순교자들 무덤에서 촛불을 켜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물론 당시 이교도들 사이에서 널리 행해지던 관습이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교회 지도부에서는 예식 때 촛불을 켜는 것을 오히려 못마땅해 했다고 합니다. 촛불을 밝히는 것이 이교도의 관습일 뿐 아니라 빛을 만드신 분이자 세상에 빛을 주시는 분께 예배를 드리면서 촛불을 켜 드리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러나 4세기 이후부터는 교회에서도 기도 모임이나 예식 때에 촛불을 켜는 관습이 지켜지기 시작합니다. 촛불이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심에 대한 기쁨을 상징한다고 본 것입니다. 그래서 성체성사 때는 물론이고 세례식과 장례식, 서품식에서도 촛불을 켰습니다. 촛불만 아니라 아로마 향 등을 첨가한 등잔불로 성당을 화려하게 수놓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등잔불을 사용하는 관습은 점차 사라지고 12세기 쯤에 와서는 초를 사용하는 것이 일종의 규범이 됐습니다. 촛불이 교회 예식에서 사용되면서 그 의미를 새롭게 이해하려는 시도들도 있었습니다. 예를 들면 촛불이 불꽃과 심지, 밀랍 세 부분으로 이뤄져 있는 것을 삼위일체에 비겼습니다. 또 밀랍을 그리스도의 육신에, 심지는 그리스도의 영혼에, 불꽃은 그리스도의 신성에 비기기도 했습니다. 그렇다면 초가 타는 것은 또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에 비길 수 있겠지요. ◇정리합시다 촛불을 켜는 것은 첫째, 하느님께서 함께하심, 특별히 세상의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심을 나타냅니다. 둘째,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는 것에 대한 우리의 기쁨을 표시하기도 합니다. 셋째, 촛불이 자신을 태워 주위를 밝히듯이 우리도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고 이웃을 위해 태운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식 때, 첫영성체 때, 수도 서원이나 서품식 때에 후보자들이 촛불을 받아들거나 촛불을 들고 입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지요. ◇알아둡시다 관찰력이 뛰어난 신자라면 미사 때에 제대 위에 켜는 초 개수가 때마다 조금 다르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사 때 제대 위에 켜는 초 개수는 그날 전례의 성격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평일이나 기념일에는 2개의 초를 켭니다. 그러나 주일이나 축일에는 4개의 초를 켜지요. 또 대축일에는 6개의 초를 켭니다. 그런데 제대에 초를 7개 켤 때가 있습니다. 주교가 미사를 드릴 때입니다. 대사제인 주교에 대한 존경의 표시로 하나를 더 켜는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cpbc2017.07.27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66) 예수님과 자캐오(루카 19,1-10)](//cpbc.co.kr/CMS/newspaper/2018/05/rc/722416_1.5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66) 예수님과 자캐오(루카 19,1-10)지성이면 감천이라… 간절함으로 구원받은 자캐오 예리코에서 예수님께서 자캐오를 만나시는 이 일화는 루카복음서에 볼 수 있는 대표적인 회심 사건입니다. 그 과정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살펴봅니다. 예리코에 있는 돌무화과나무. 자캐오가 올라간 나무라고 전해지지만 실제 나이는 700살 정도로 알려지고 있다. 예수님께서 예리코에 들어가 거리를 지나가고 계셨습니다. 마침 거기에 자캐오라는 돈 많은 세관장이 있었는데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보려고 했지만, 키가 작은 탓에 군중에 가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앞질러 달려가서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거기에서 그 아래를 지나가는 예수님을 보려는 것이었습니다.(19,1-4)우선 자캐오에 대해 알아봅시다. ‘자캐오’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자카이’를 그리스말로 발음한 대로 표기한 것이라고 합니다. 이 말은 ‘깨끗한, 결백한’이란 뜻입니다. 그는 국경 도시 예리코의 돈 많은 세관장입니다. 유다인들은 세리들을 싫어했습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식민지로 삼은 로마제국을 위해 세금을 거둬들일 뿐 아니라 그 과정에서 착복하고 횡령하는 일이 적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세리를 죄인처럼 여겼습니다. 그런데 자캐오는 유다인이면서도 세관장이었을 뿐 아니라 돈까지 많았습니다. 경건한 유다인들에게는 죄인으로서 배척의 대상이었음이 당연합니다.그런 자캐오가 예수님을 보려고 합니다. 아마 예수님에 관한 소문을 들었을 것입니다. 어쩌면 예수님이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루카 7,34)라는 소리도 들었을지 모릅니다. 그렇지만 키가 작아 사람들에게 가려서 볼 수가 없자 앞질러 달려가서 돌무화과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세관장이라면 그래도 기관장입니다. 기관장이 달려가서 나무 위로 오른다는 것은 보통 사람이라면 엄두를 내지 못할 일입니다. 그만큼 예수님을 보려는 열망이 컸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예수님께서 나무 아래에 이르러 자캐오를 쳐다보시면서 “자캐오야,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친근함의 표시입니다. 자캐오는 예수님 얼굴이라도 한번 보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서 나무 위로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님께서는 자캐오의 이름을 부르면서 친근함을 표시하시고는 그의 집에서 하루를 묵겠다고 하십니다. 그것도 “오늘” 말입니다. 자캐오로서는 놀라움이자 더할 수 없는 영광이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얼른 내려와서 기쁘게 예수님을 집에 모십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를 보고 “저이가 죄인의 집에 들어가 묵는구나” 하고 투덜거리지요.(19,5-7)여기서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자캐오가 일어나서 “주님! 제 재산의 반을 가난한 이들에게 주겠습니다. 그리고 제가 다른 사람 것을 횡령하였다면 네 곱절로 갚겠습니다”라고 말한 것입니다.(19,8) 자캐오는 부자였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부자라 하더라도 자기 재산의 절반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준다는 것은 절대 쉽지 않은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다른 사람의 것을 횡령했다면 네 곱절로 갚아주겠다고 선언합니다. 이스라엘 사회에서 네 곱절로 갚아주는 경우는 양을 도둑질했을 때입니다.(탈출 21,37) 남을 속여서 또는 착취해서 부당하게 이익을 챙겼을 때는 그 액수에다 그 액수의 5분의 1을 더한 액수로 되갚아 주어야 했습니다.(레위 5,21.24) 그렇다면 자캐오는 아주 파격적인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이기 때문이다.”(19,9) 경건한 유다인들이 볼 때 자캐오는 죄인임이 분명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가 구원받았다고 선포하십니다. “이 집에 구원이 내렸다”는 말씀은 단지 자캐오만이 아니라 자캐오의 가족 모두가 구원받았음을 알게 해줍니다. 말하자면 한 사람의 회심이 그 사람만이 아니라 그 집안 전체에 구원을 가져다준 것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잃은 이들을 찾아 구원하러 왔다”(19,10)는 마지막 말씀은 자캐오 이야기의 결론일 뿐 아니라 소외된 이, 가난한 이, 이방인, 죄인들에 대한 관심을 강조하는 루카복음서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자캐오 이야기는 15장에 나오는 되찾은 양의 비유(15,3-7), 되찾은 은전의 비유(15,8-10), 되찾은 아들의 비유(15,11-32)를 뒷받침하는 실제 사례로서 역할을 합니다. [생각해봅시다]예수님과 자캐오의 이야기는 만남과 구원에 대해 좀더 생각할 여지를 남겨 줍니다. 구원은 주님이신 하느님과 인간과의 만남에서 시작됩니다. 그런데 만남이 이루어지려면 인간 편에서의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사실 하느님께서는 늘 우리를 만나러 오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마음의 귀를 닫고 영혼의 눈을 감고 있다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하느님을 볼 수가 없고 우리에게 말씀을 건네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습니다. 자캐오에게는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고자 하는 간절함이 있었습니다. 그 간절한 열망에서 자캐오는 창피를 무릅쓰고 앞질러 달려가서 나무에 올라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주님을 만날 수 있었고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변화되었습니다.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기는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기보다 어렵지만(루카 18,25), 부자인 데다 죄인으로 멸시받던 자캐오는 구원을 얻었습니다. 자캐오는 사람에게는 불가능한 것이 하느님께는 가능함을 보여주었습니다. 따라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눈을 뜨고 내면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단순한 호기심이 아니라 간절함을 담고서 말입니다. 그 간절함의 기도는 이런 기도일 것입니다. ‘주님, 저를 도와주십시오. 아니면 제가 바뀌도록 해주십시오.’ [알아보기]예리코 : ‘종려나무 도시’라는 뜻을 지닌 예리코는 기원전 9000년쯤 형성된 지구 상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가운데 하나입니다. 구약성경에서 70번이나 언급되는 예리코는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6㎞ 떨어진 오아시스 도시이기도 합니다. 예리코는 예수님 시대 이전부터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에 이르는 길목이었습니다. 예루살렘은 해발 700m의 고지에 위치하지만 예리코는 해수면에서 250m나 낮아서 두 도시의 고도 차이가 거의 1000m에 이릅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에서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서 예리코로 “내려가다가”(루카 10,30)라고 표현하시는데, 참으로 적절한 표현이라 하겠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예리코는 레위인들과 사제들이 주로 살고 있어서 사제들의 도시라고 불리기도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탄생하실 무렵 이스라엘 땅 전체를 다스린 헤로데 대왕은 이곳에 화려한 궁전을 짓고 겨울이면 예루살렘에서 이곳으로 내려와 지냈습니다. ‘겨울 궁전’이라고불렀는데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지요. 예리코는 오늘날 이스라엘에 속하지 않고 팔레스타인 관할 지역입니다. 시내에는 자캐오가 올라갔다고 하는 돌무화과나무가 있습니다만, 이 나무의 실제 나이는 700살 정도라고 하지요. 예수님께서 자캐오를 만나시고 또 바르티매오라는 눈먼 이를 고쳐주신 곳이 예리코인 데다 근처에는 예수님께서 유혹을 받으신 유혹 산도 있어서 이스라엘을 찾는 순례객이 빠지지 않고 순례하는 도시이기도 하지요. 구약의 엘리사 예언자가 소금을 뿌려 물의 수질을 좋게 했다는 ‘엘리사의 샘’ 또한 볼 수 있습니다. cpbc2018.05.30
![[성경 속 기도] (2) 아브라함의 기도 (상)](//cpbc.co.kr/CMS/newspaper/2016/02/rc/61739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기도] (2) 아브라함의 기도 (상)모든 것 버리고 떠나라 “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뜻에 따라 고향을 버리고 떠난다. 아브라함의 손님 환대 모습을 그린 세밀화. 출처=「성경 역사 지도」 “여러분은 살아오면서 어느 때 기도를 가장 열심히 하셨나요?” 신학교 입학 때 피정 지도 신부님께서 하셨던 질문이다. 그때 무엇이라 대답했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하다. 난 언제 열심히 기도했을까? 아무리 생각해도 가장 열심히 기도했던 때는 항상 시험 전날이었다. 창피한 일이지만 항상 같은 기도를 반복했다. “주님! 이번 시험만 꼭 잘 치르도록 해주세요. 그러면 다음에는 미리미리 준비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러나 뻔뻔스럽게(?) 마지막 시험까지도 같은 기도를 바쳤다.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의 인격적인 대화이다. 대개 일방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인 이야기를 강요하는 것을 대화라고 하지는 않는다. 그런데도 그저 내 이기적인 내용만 주절주절 털어놓고 부탁을 드렸던 것 같다. 대화에서 중요한 것은 오히려 상대방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는 것이다. 그러나 난 주님의 이야기를 들으려 하지 않고 나만 떠들고 만 셈이다. 안타깝게도 친구들 모임에서 다른 이의 이야기는 듣지 않고 저 잘났다고 혼자서 떠들어대는 사람은 기피대상이 되기 쉽다.아브라함은 신앙인의 전형이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신앙인에게 모델이 된다. 하느님께서 먼저 부르시고 우리 인간이 응답하는 것, 이것이 바로 신앙의 보통 공식이라 할 수 있다. 아브라함은 일생 철저히 시험에 들며 엎치락뒤치락하며 고된 삶을 살았다. 어느 날 아브라함은 주님의 부르심을 받는다.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나는 너를 큰 민족이 되게 하고, 너에게 복을 내리며, 너의 이름을 떨치게 하겠다. 그리하여 너는 복이 될 것이다’”(창세 12,1-2). 교회는 하느님을 향한 응답으로 항상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 모범은 창세기 12장에 나오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아브라함의 순명이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이 말씀에 대한 응답으로 우리는 하느님의 뜻을 찾아 식별하고 순종해 그분께서 가리키시는 곳을 향해 출발해야 한다. 당시 사람들에게 자신이 살던 고향을 떠나 이별한다는 것은 마치 죽음과도 같은 위험한 행위였다. 자신이 이룬 모든 것을 버리고 떠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인간에게 죽음이 그토록 고통스러운 것은 영원한 이별을 하기 때문이 아닐까? 아브라함의 고향, 칼데아 우르는 당시에 문화가 발달해 마치 오늘날 파리나 뉴욕에 견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모든 것에서 이별하라고 하신다. 부르심을 받은 아브라함의 마음은 어땠을까? 그는 솔직히 두렵고 떠나고 싶은 마음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브라함은 다른 사람처럼 평범하게 살고 싶었을 것이다. 아브라함은 수없이 “왜 하필 저입니까?”라고 말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결국 하느님의 말씀 하나만을 굳게 믿고 하느님 명령대로 고향을 떠나 낯선 곳으로 향했다. 그의 기도는 철저히 순명의 기도이다. “그는 그곳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고,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불렀다”(창세 12,8). 순명은 하느님에 대한 사랑으로 자신을 희생하며, 자유 의지를 가지고 기쁨으로 명령에 따르는 덕을 뜻한다. 그래서 “우리의 이성으로는 이해가 다 되지 않지만, 당신을 믿으니 당신의 말씀대로 하겠습니다”라는 의미를 지닌다. 신앙이란 보이는 것에서 보이지 않는 것을 믿는 여정이라 했던가. 그런데 아브라함은 그 후 인생의 최고 시련을 맞이하게 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6.02.02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나타난 친교’(코이노니아)명동본당 사순특강 <3>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회심(메타노이아)을 통해 우리는 하느님과 화해하고 전적으로 새로운 관계를 맺으며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난다. 하느님과의 화해로 새로운 사람이 된 우리는 이제 이 세상 안에서 화해의 도구로서 그 직분을 실천하게 됐다.회심은 새로운 관계 맺음, 즉 새로운 친교(코이노니아)를 가능케 한다. 친교에는 수직적 친교와 수평적 친교가 있다. 수직적 친교란 하느님의 영과 나의 영이 통교하는 상태를 말한다. ‘생명을 주시는 성령’의 인도로 나의 영이 하느님의 뜻을 향해 성장하고 발전해 나가는 상태이다. 성령론적 관점에서 본다면, 인간은 ‘휴먼 빙’(human being)이 아니라 ‘휴먼 비커밍’(human becoming)이라 할 수 있다. 인간은 고정된 존재가 아니라, 성령의 인도를 따라 성장해 나가는 ‘되어가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성령께서는 참으로 우리의 가능성과 잠재력을 발굴해 주시고 이를 현실적인 힘으로 바꿔 주신다. 그러므로 하느님과의 친교는 정체된 상태가 아니라, 성령 안에서의 역동적인 쇄신과 성장을 의미한다. 이처럼 성령께서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위대한 사랑과 구원 은총을 우리에게 전달해 주시는 친교와 일치의 원리이다. 내가 인간적인 힘으로 하느님께 도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먼저 나에게 다가와 주시는 은총이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바로 이것이 미사경문 시작 부분에 채택된 성경 말씀의 의미이기도 하다. “사랑을 베푸시는 하느님 아버지와 은총을 내리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시는 성령께서 여러분과 함께”(「미사 통상문」의 시작 예식 중에서).이러한 하느님과의 수직적 친교는 성령을 통해 수평적 친교로 전환된다. 하느님과의 새로운 관계 즉, 수직적 친교를 이룬 사람들의 수평적인 공동체가 교회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통해, 그 이전의 교계제도 중심적 교회관을 새로이 보완하고 넘어서는 친교의 교회론이 강조되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교회 헌장」을 통해, 내적으로는 영적 친교를 이루며 이 친교가 외적으로는 가시적 조직과 제도로 표출되는 성사적 교회관이 등장하게 됐다. 성령께서는 육화 사건을 통해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결합하는 원리로 작용하신 것처럼, 이제 교회의 내적인 차원과 외적인 차원, 비가시적인 영적 측면과 가시적인 인간적 측면을 결합하는 친교의 원리로 작용하신다.성령론적이고 또한 교회론적 관점에서, 영적인 측면과 인간적ㆍ제도적 측면의 결합을 바로 보여 주는 것은 바로 은사와 직무의 관계라 할 수 있다. 성령께서 주시는 은사(카리스마)는 개인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교회의 공동선을 위해 봉사하기 위한 것이다. 성령께 받은 은사를 통해 우리는 교회에 봉사하는 구체적 직분을 얻게 된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주십니다”(1코린 12,4-7). 그래서 은사를 받는 이들은 참으로 겸손해야만 한다. 은사는 본질적으로 교회론적 친교를 지향하기 때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복음의 기쁨」에서 “은사는 바로 친교 안에서 참되고 신비로운 열매를 맺는다”(130항)고 말씀하신다.교회 안에서 직무를 받은 이가 스스로 능력이 부족하다고 느끼고 아직 은사를 받지 못했다 하더라도 너무 걱정할 필요는 없다. 성령께 간절히 기도하면 된다. 교회의 친교와 봉사를 위해서라면, 하느님께서는 반드시 필요한 은사와 능력을 우리에게 부어 주실 것이다. 그것이 친교와 일치의 원리이신 성령께서 이루시고 섭리하시는 신비로운 역사이다.정리=이힘 기자 lensman@pbc.co.kr 백영민2016.03.09

“새 신부님, 양 냄새 나는 목자 되시길 기도할게요”대구대교구, 전주교구, 제주교구, 안동교구 사제서품식 강우일(앞줄 가운데) 주교와 송승진(강 주교 왼편) 새 신부를 비롯한 제주교구 사제단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제주교구 가톨릭사진가회 제공 전국 각 교구에서 사제서품식이 잇달아 열리고 있다. 교구민들과 선배 사제들은 새 사제 탄생을 한마음으로 축하하며 새 사제들이 ‘양 냄새 나는 목자’가 되기를 기도했다. 대구ㆍ전주ㆍ안동ㆍ제주교구에서 거행된 사제서품식 소식을 모았다.대구대교구 사제서품식이 16일 주교좌 범어대성당에서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로 거행됐다. 이날 사제서품식에서 전형천ㆍ한지환ㆍ이수환ㆍ유상완ㆍ박준환 부제가 사제품을 받았다. 서품식에는 사제단과 새 사제 가족, 출신 본당 신자 등 3500여 명이 참석해 새 사제 탄생을 축하했다. 조환길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새 사제들에게 “말과 모범으로 하느님의 교회를 건설해 달라”고 당부했다. 또 신자들에게 “예수님을 닮은 사제, 신자들로부터 존경받는 사제가 될 수 있도록 많이 기도해 달라”고 요청했다.이날 사제 서품식에는 300여 명의 선배 신부들이 ‘내 발을 씻기신 예수’를 축하 노래로 합창하며 새 사제의 출발을 격려했다. 전주교구는 18일 전주 중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김선태 주교 주례로 사제 서품 미사를 봉헌했다. 홍석진ㆍ채주원ㆍ이성용 부제가 사제품을 받아 교구 사제는 222명이 됐다. 서품식에는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 신자들과 수품자 가족, 친지 등 1200여 명이 참석해 ‘영광의 주인공’들에게 아낌없는 박수와 응원을 보냈다.김선태 주교는 훈시에서 ‘너희가 나를 뽑은 게 아니라 내가 너희를 뽑아 세웠다’(요한 15,16)는 성경 말씀을 인용하며 “성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으로 여러분의 능력이 아니라 주님의 능력으로 일해야 한다. 따라서 여러분은 하느님의 주도권을 소홀히 하거나 빼앗지 말고 인정해야 하며 언제나 하느님께 감사하고 온전히 순명하며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새 사제들은 ‘사랑은 참고 기다립니다’(1코린 13,4)를 공통성구로 정하고 거룩한 교회의 직무를 수행할 것을 다짐했다. 이날 축하식에서 여혁구(교구 사제단 친목회장) 신부는 “‘관심은 친구를 만들고 무관심은 적을 만든다’는 말처럼 목자는 맡겨진 양들에게 관심과 애정을 가져야 한다”고 당부했다. 새 사제 홍석진 신부는 “부족한 저희를 뽑아 주시고 사제로 세워주신 하느님께 감사와 찬양을 드린다”며 “겸손하게 기도하고 사랑하며 살겠다”고 말했다.제주교구는 20일 제주 이시돌 삼위일체대성당에서 사제 서품식을 거행했다.서품식에 참석한 교구 사제단과 수도자, 신자 등 2000여 명은 교구 50번째 사제인 송승진 새 신부의 수품을 축하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종이 되기를 기원했다. 교구장 강우일 주교는 강론을 통해 “출세하고 성공하기 위해 매진하는 이 시대에 자기 자신을 버리는 사제가 된다는 것은 미친 짓이나 다름없다”면서 “사제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욕구와 권리를 포기하고 이 세상이 아닌 예수 그리스도의 시각으로 살아가는 것”이라고 사제직의 의미를 일깨웠다. 강 주교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행동과 생각을 따르고 실천하는 것”이라며 파견받은 자로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살아가는 목자가 될 것을 권고했다. 안동교구는 21일 주교좌 목성동성당에서 교구장 권혁주 주교 주례로 12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사제 서품식을 거행했다.문경 모전동본당은 백동수ㆍ송정현 신부를 동시에 배출하는 영광을 누렸고, 영주 휴천동본당과 하망동본당은 각각 박철현ㆍ우석민 신부를 배출했다. 이로써 교구 사제 수는 주교 2명과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제를 포함해 92명이 됐다.권혁주 주교는 훈시에서 “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당신과 함께 복음을 선포할 첫 제자들을 뽑으시는데 그 숫자가 넷”이라며 “특히 네 명의 제자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돼가는 모습에선 오늘 사제품을 받고 새 사제의 삶을 살아가게 될 네 명의 부제들을 위해 기도했다”고 말했다. 이어 “진정한 예수님의 참 제자가 되는 데 필요한 것은 회개의 삶이며, 회개란 예수님이 아닌 것을 돌아서서 다시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라며 “새 사제들이 끊임없는 회개로 진정하고 참다운 예수님 제자의 길을 멈추지 않기를 희망한다”고 당부했다.송정현 새 신부는 “부족한 제가 사제품을 받도록 허락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드린다”며 “앞으로 하느님의 포도밭 안에서 일하는 기쁨을 늘 기억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신현숙·김승호·정장훈 명예기자 평화신문2018.01.23
[미사전례풀이] 4. 주님 수난 묵상하는사순 시기 알렐루야 노래하지 않아▨사순 시기에는 왜 ‘알렐루야’를 하지 않나?복음 낭독 전에 노래하는 ‘알렐루야’는 ‘주님을 찬양하여라!’는 뜻이다. 이는 주님의 부활을 기뻐하며 외치는 환호이기에 주님의 수난을 묵상하는 사순 시기부터 파스카 성야 전까지 노래하지 않는다.히브리 말로 ‘할렐’은 찬양하라는 뜻이고, ‘야’는 야훼(주님)의 약칭입니다. 알렐루야는 주님의 부활을 찬양하는 대표적인 환호이므로 부활 시기에 특별한 의미를 지닙니다. 복음을 선포하기 직전에 우리에게 말씀하실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는 의미에서 알렐루야를 노래합니다. 이 알렐루야는 환호하는 노래이므로 일어서서 합니다.알렐루야에 따라오는 구절은 일반적으로 복음에서 선택합니다. 사순 시기 시작부터 파스카 성야 전까지는 알렐루야 대신에 다음과 같은 환호를 선택적으로 합니다. “그리스도님, 찬미와 영광 받으소서.” “말씀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예수 부활 대축일과 성령 강림 대축일에는 ‘부속가’를 바쳐야 합니다. 성체 성혈 대축일과 고통의 성모 마리아 기념일에도 부속가를 바칠 수 있는데, 이는 알렐루야 전에 노래로 하거나 낭송합니다. ▨전례력에 따르면 가, 나, 다해로 구분하고, 독서와 복음도 다른데 왜 그런가?교회는 그리스도 신자들에게 하느님 말씀 전체를 알려 주고자 성경 독서를 알맞게 배정했다. 즉, 주일과 축일에는 성경의 주요 부분을 3년(가ㆍ나ㆍ다해) 주기로, 평일에는 2년(홀수ㆍ짝수해) 주기로 적절히 나눠 놓은 것이다. 교회는 연중 시기의 주일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라면 그리스도의 행적과 말씀을 기록한 복음의 주요 부분을 3년 동안에 다 들을 수 있게 ‘가해’에는 마태오 복음서를, ‘나해’에는 마르코 복음서를, ‘다해’에는 루카 복음서를, 연중 제2주일과 ‘나해’ 의 연중 제17-21주일에는 요한 복음서를 읽도록 했습니다. 대림, 성탄, 사순, 부활 시기의 주일에는 그 전례 시기와 조화를 이루는 복음을 읽습니다. 주일 미사의 제1독서는 대부분 구약 성경을 읽고, 부활 시기에는 사도행전을 봉독합니다. 제1독서는 그날 복음의 주제와 일치하는 성경 본문을 배정함으로써 신자들이 복음 내용을 더 잘 이해하도록 배려하면서 신약이 구약의 완성이라는 점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제2독서는 신약 성경의 서간이나 요한 묵시록을 읽도록 하고 있습니다. 평일 미사에서는 1년 동안 복음서를 순서대로 읽도록 하고, 독서는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주요 부분을 2년 안에 다 읽을 수 있게 홀수해와 짝수해로 나눠, 될 수 있으면 연속적으로 배열함으로써 신자들이 주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도록 배려하고 있습니다. 사순, 대림, 성탄, 부활 시기의 독서는 전례 시기의 특징 때문에 해마다 반복해서 읽습니다.말씀 전례는 성찬 전례와 함께 미사의 중심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하느님 말씀의 풍부한 식탁을 마련하고자 성경의 보고(寶庫)를 널리 개방하고, 회중들에게 성경의 주요 부분을 일정한 햇수 안에 낭독하도록 위와 같은 원칙을 정한 것입니다. cpbc2016.12.14
![[성경 속 도시] (73) 엔 게디](//cpbc.co.kr/CMS/newspaper/2015/12/rc/61029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73) 엔 게디사울에게 쫓긴 다윗의 은신처 엔 게디의 청동기 시대 신전 유적, 사해 연안. 출처=「성경 역사 지도」 사해에 위치한 엔 게디는 오늘날 많은 관광객이 찾아오는 휴양지이다. 관광객은 물론 성지 순례자들도 이곳에 들러 사해 온천을 즐기곤 한다. 엔 게디라는 말은 “들염소의 샘”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엔 게디는 네게브 사막의 북쪽에 있다. 쿰란에서 불과 20km 정도 남쪽, 사해 서안 중앙부에 있다. 주변의 황량한 사막과는 대조적으로 아주 매혹적으로 조성된 오아시스 지대에 있다.매우 건조한 지역에서 유일하게 샘이 솟아 오래전부터 이곳에 사람들이 거주했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초 이곳 부근의 텔(층을 이룬 흙무덤)을 발굴한 결과 기원전 4000년대 청동기시대의 성소 유물이 나왔다. 발굴에 따르면 기원전 7세기부터 유다인이 이곳에 거주하기 시작해 기원후 6세기 중엽에 파괴되기까지 1000년 이상 살았다고 한다. 엔 게디는 기원전 6세기 말, 바빌로니아 군에 의해 파괴됐으나 바빌론 유배 후 귀국한 유다인들에 의해 재건됐다. 이후 하스몬 왕조 시대(기원전 152~37)에 유다인 정착지가 된 후 비잔틴 제국이 쇠퇴할 때까지 700년간 지속됐다. 오늘날 이곳에는 1949년 이래 유다인 정착 마을이 형성되어 있다. 성경에 등장하는 엔 게디는 사울로부터 도피한 다윗의 은신처였다. 사울에게 쫓기던 다윗이 숨은 곳이 엔 게디 산성이다. “다윗은 그곳에서 올라가 엔 게디 산성에 머물렀다. 사울이 필리스티아인을 쫓아내고 돌아왔을 때, 누군가 사울에게 다윗이 엔 게디 광야에 있다는 소식을 전해 주었다”(1사무 24,1-2). 다윗은 동굴 안에 있을 때 사울의 옷자락을 자른 뒤 사울 임금님을 죽이지 않는다. 사울은 주님께서 기름으로 성별하신 이였기 때문이다. “바로 오늘 임금님 눈으로 확인해 보십시오. 오늘 주님께서는 동굴에서 임금님을 제 손에 넘겨주셨습니다. 임금님을 죽이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저는 ‘그분은 주님의 기름부음받은이니 나의 주군에게 결코 손을 대지 않겠다’고 다짐하면서, 임금님의 목숨을 살려 드렸습니다”(1사무 24,11). 아가서에서 한 여인은 자기 연인을 ‘엔 게디 포도밭의 헤나 꽃송이’에 비유했다. “나의 연인은 내게 엔 게디 포도밭의 헤나 꽃송이어라”(아가 1,14). 그만큼 엔 게디가 아름답다는 것을 반증하는 것이다. 고대에는 ‘헤나’로 빨간 염료를 만들었으며, 화장품으로도 사용했다. 헤나는 굵고 하얀 꽃으로 피며, 향기는 장미꽃 같다. 유목 여인들은 몸에서 염소 냄새를 없애려고 겨드랑이 부근이나 머리에 헤나 꽃을 꽂기도 했다. 집회서는 지혜가 성장하는 모습을 엔 게디의 야자나무에 비긴다. “나는 엔 게디의 야자나무처럼 예리코의 장미처럼 평원의 싱싱한 올리브 나무처럼 플라타너스처럼 자랐다”(집회 24,14). 엔 게디의 샘물은 아마도 대추야자를 재배하기 위해 물을 대는 데 처음으로 사용했을 것이다. 엔 게디의 솟구치는 폭포를 향해 길을 올라가면, 사울 왕을 피해 숨은 다윗의 모습이 벼랑의 동굴 모습과 함께 생생하게 살아 다가온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12.21

한반도 평화와 화해, 세계 평화 갈망하는 염원 그림에 담아 장긍선 신부, 21일~7월 4일 은경축 기념전 및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회원전 장긍선 신부 작 ‘평양교구 하느님의 종 24위’, 134 X 104㎝, 목판에 에그템페라. 7일 서울 명동 평양교구 사무실에서 만난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장 장긍선(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본부장) 신부에게 올해는 잊히지 않을 특별한 해다. 장 신부는 평양교구의 관할지인 신의주 출신 실향민 부모에게 태어난 순수 혈통(?) 평양교구민인데, 평양교구가 올해 올해 설립 90주년을 맞았다. 또 올해는 사제 수품 25주년이다.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이 뜻깊은 해를 지내면서 장 신부는 성모님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이콘(Icon)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가 21일부터 7월 4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영혼의 빛을 따라서’를 제목으로 마련하는 ‘제10회 회원전 및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 은경축 기념전’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 세계 평화를 갈망하는 장 신부의 염원이 담겨 있다.연구소의 3년 과정을 마치고 연구ㆍ심화 과정의 회원 50여 명과 함께 전시회를 여는 장 신부는 “분단 72년이 흘렀음에도 진정한 평화와 화해가 도래하지 못한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회를 통해 성모님께서 주님께 더욱 힘 있게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간청하도록 우리의 희생과 기도를 성모님께 모아드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장 신부는 전시회에서 ‘평양교구 하느님의 종 24위’를 비롯해 예수님과 성모님, 러시아 유학 시절 연필로 그린 구약의 예언자들과 표상의 성모 시리즈 등 7~8점을 선보인다. 전시 공간도 개인전 분위기가 나도록 3개 가운데 한 전시실을 장 신부 작품으로만 꾸민다. 장 신부 작품 가운데 ‘평양교구 하느님의 종 24위’는 지난 3월 18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염수정(평양교구장 서리) 추기경 주례로 봉헌된 평양교구 90주년 기념 미사 때 제대 앞에 세웠던 작품이다. 이 이콘에는 일제와 공산당의 탄압에도 목자의 소임을 다하다 순교한 평양교구장 홍용호(보르지아) 주교를 중심으로 초대 평양교구장 패트릭 번 주교와 12명의 사제, 1명의 신학생, 2명의 수녀, 평신도들이 24위를 의미하는 24송이의 무궁화와 총, 깨진 종 등 각자의 상징들과 함께 그려져 있다.장 신부는 1997~2001년 한국 교회 사제로는 최초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정교회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을 수학했다. 귀국 후 2003년 이콘연구소를 설립, 교회 미술의 옛 형태 가운데 하나인 이콘을 통해 성미술의 영적인 의미를 전하는 데 노력해 왔다.장 신부는 이콘을 ‘눈으로 보는 교리서이자 성서’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도 이콘을 베끼는 그림으로 오해하는 이가 여전히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형태는 같아도 똑같은 이콘은 하나도 없어요. 성경을 필사하면 다 같은 성경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콘을 먹지에 대고 옮기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참된 이콘이 아닙니다. 번거롭더라도 내 손으로 정성껏 그려야 참된 작품입니다. 이콘의 인물에 표정이 없는 것은 인간의 희로애락이 표현돼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영성’과 ‘기도’라는 재료입니다.”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백영민2017.06.14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45) 11세기 ⑤ - 카르투지오회 영성](//cpbc.co.kr/CMS/newspaper/2017/10/rc/697956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45) 11세기 ⑤ - 카르투지오회 영성침묵 속 은수 생활로 하느님 안에 자유로움 찾아 카르투지오회를 설립한 브루노. 공주(共住) 생활에서 은수(隱修) 생활로 옮겨가는 방식을 택했던 카말돌리회의 수도 생활은 수도원과 은수처 상호 간의 명확하지 않고 느슨한 관계 때문에, 서로 대립하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면서 긴장 관계 속에서 갈등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카말돌리회의 상황이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었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공주 생활과 은수 생활을 모아 놓은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수도 생활이 출현했습니다.그레고리오 개혁 운동에 동참한 브루노쾰른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브루노(Bruno Cartusiensis, 1030/32~1101)는 2005년에 개봉했던 영화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에 나오는 ‘카르투지오회(Ordo Cartusiensis)’를 설립했습니다. 쾰른(Kln)에서 학업을 시작했던 브루노는 프랑스 랭스(Reims)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쾰른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브루노는 1056년쯤 다시 랭스 주교좌성당 학교로 돌아왔으며, 이듬해에 학장이 되어서 거의 20년 동안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또 브루노는 랭스 주교좌성당 참사 위원도 겸직했습니다.랭스에서 지내는 동안 브루노는 그레고리오 개혁 운동이 쇄신하고자 했던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부도덕한 생활을 바로 눈앞에서 경험하면서 그레고리오 개혁 운동의 지지자이자 버팀목이 되어 갔습니다. 1067년 랭스대교구좌가 공석이 되자 마나세(Manasss de Gournay, 재임 1069/70~1080/1081)는 성직 매매의 방법으로 랭스 대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이후 교회의 재산을 노골적으로 사유화했습니다. 따라서 주교좌성당 학교 학장이었던 브루노를 비롯하여 교구 구성원들은 마나세를 비판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했고, 마나세 역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위협을 느낀 브루노는 1076년에 잠시 쾰른으로 피신했습니다. 보다 못한 랭스에 성 레미(Saint Remi) 수도원 수도자들이 이러한 사태를 교황청에 고소했고, 마나세가 수도자들을 파문함으로써 갈등은 최고조에 다다랐습니다. 결국 1077년에 교황 특사가 마나세를 이단자로 파문했으며, 1080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PP. VII, 재임 1073~1085)는 그를 면직시켰습니다.침묵 속에서 은수 생활 실천하는 공동체 설립교황대사와 교구민들은 브루노를 랭스대교구의 차기 교구장으로 추천했으나, 브루노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수도 생활을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특히 세상을 등지고 독거 은수 생활을 실천하고자 했던 브루노는 1082년 2명의 동료와 함께 세셰 퐁탠(Sche-Fontaine)으로 이주해 몰렘의 로베르투스(Robertus Molesmensis, 1028~1111)에게 조언을 받으며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브루노 일행은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 범위 안에서 다른 수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은수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브루노는 개별적으로 더 엄격하게 실천하는 은수 생활을 원했습니다.1084년 브루노는 6명의 동료와 함께 그르노블(Grenoble)로 이주해 그레고리오 개혁 운동을 열렬히 지지하던 그르노블의 주교 후고 1세(Hugues de Grenoble, 재임 1080~1132)가 제공한 샤르트뢰즈(Chartreuse)라는 험준한 산속 골짜기에서 경당 및 그 주변에 은수처를 짓고 엄격한 은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브루노는 일행과 함께 6년 동안 이집트 사막 은수 생활을 본받아 고독, 청빈, 금욕과 함께 기도, 묵상, 노동을 행하면서 침묵 속에서 은수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오늘날 브루노가 설립했던 수도회를 카르투지오회라고 부르는 것도 정착했던 곳의 지명인 샤르트뢰즈의 라틴어 표기 카르투시아(Cartusia)에서 유래한 것입니다.1090년 과거 주교좌성당 학교 시절에 제자였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PP. II, 재임 1088~1099)가 도움을 요청하자 브루노는 동료였던 라누이노(Lanuino, ?~1116)에게 수도원을 맡기고 로마로 가서 교황의 자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은수 생활을 바랐던 브루노는 1092년 교황에게 간청해서 허가를 얻어, 시칠리아 영주 로게리우스(Rogerius de Altavilla, 재위 1071~1101)가 제공한 칼라브리아(Calabria) 지역 토레(Torre)에 성 마리아 수도원을 설립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1094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수도원 성당을 축성했습니다.수도원 안 독방에서 은수 생활 실천브루노가 사망하기 몇 달 전인 1101년 교황 파스칼리스 2세(Paschalis PP. II, 재임 1099~1118)는 카르투지오회의 생활 방식을 인가했습니다. 브루노는 수도 규칙을 정한 적도 없었고, 수도 규칙서를 저술한 적도 없었습니다. 브루노는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할 생각이 없었으며, 다만 엄격한 수도 생활을 실천한 공간으로 수도원을 건설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수도 서원과 같은 서약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브루노는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수정하여 기본적인 생활 규범을 제시하면서 침묵 속에서 고독한 은수 생활을 강조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근 수도자들마저 이러한 수도 생활 방식을 따르려 하면서 고유한 수도 생활 방식으로 인정받으며 정착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제5대 원장이었던 귀고 1세(Guigo de Castro, 재임 1109~1136)가 1127년 저술한 「관습법」(Consuetudines)이 카르투지오회의 첫 번째 규정집이었습니다.카르투지오회 수도자들은 수도원 안에 독방에서 은수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수도원과 은수처가 구분되어 있던 카말돌리회와도 달랐으며, 공주 생활을 실천하는 베네딕도회와도 달랐습니다. 세상과 단절되어 침묵 속에서 고독한 은수 생활을 실천하던 수도자들은 성경 말씀과 함께 영적 독서를 실천하면서 관상 기도에 깊이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또한 수도자들은 독방에서 은수 생활을 실천하면서도 세상과 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수도자들은 성경 말씀을 연구했고, 필사했으며, 사람들을 위하여 저술 활동을 했습니다.카르투지오회 수도자들은 한 수도원 안에 살면서도 공동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수도자들은 미사 전례 거행에서 생략할 수 있는 요소들은 최대한 생략해서 전례를 단순화시켰습니다. 성무일도를 바치기 위한 시간 전례에 있어서도 단순하고 소박한 가운데 경건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자들은 전례 안에서 성모 마리아가 현존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신심을 발전시켰습니다.카르투지오회는 오늘날까지 한 번도 수도회를 개혁해 보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즉, 브루노가 생각했던 대로 침묵 속에서 고독한 은수 생활을 기꺼운 마음으로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카르투지오회 영성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7.10.11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몸] (4) 생명운동 - 생명 수호 운동](//cpbc.co.kr/CMS/newspaper/2018/03/rc/713370_1.0_titleImage_1.jpg)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몸] (4) 생명운동 - 생명 수호 운동낙태 잔혹성 고발하고 생명운동 필요성 일깨워 지난 1991년 4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문화관에서 열린 ‘낙태 방지 심포지엄’은 생명 수호 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교회에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앞줄에 윌키 박사 부부 등 내빈들이 앉아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1991년 4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문화관. 여느 때와 비슷하게 평범한 심포지엄이 마련됐다. ‘낙태 방지’라는 제목이 달린 게 달랐을 뿐, 늘 열리는 심포지엄과 그리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교황청 가정사목위원 윌키(Willke) 박사 부부와 맹광호(이시도로) 가톨릭대 의대 교수 강의, 미혼모와 인공 유산을 경험한 이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낙태 경험자들을 위한 치유예식도 거행됐다. ‘침묵의 소리(The Silent Cry)’와 ‘이성의 소멸(The Eclipse of Reason)’이라는 제목의 영상물도 잇따라 상영됐다. 그런데 캐나다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회심한 뒤 만들었다는 두 편의 영상물이 한국 교회의 생명운동을 뒤바꿔 놓았다. ‘웅변보다 더 웅변같이’ 낙태의 잔혹성을 고발했고, 생명운동이 왜 필요한지를 교회 공동체에 각인시켰다. 이를 계기로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입양결연부를 주축으로 ‘참생명학교’가 시작됐고, 기도회와 월례강좌, 청소년 성교육 지도자 연수 등 다양한 생명수호활동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한국 사회는 연간 70만 명이 태어났지만 150만 명의 태아가 인공유산으로 죽어가는 상황이었기에 입양결연부에서 시작한 생명 수호 운동은 교회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입양결연부는 먼저 1991년 5월 생명 수호를 위한 전문 요원 양성을 위한 참생명학교를 설립, 가톨릭성서모임 성경 봉사자로 활동하던 평신도 성양경(베로니카)씨를 교장으로 추대했다. 참생명학교는 1991년 9월 교구 내 6개 지구 구역ㆍ반장 월례 교육에 참가한 신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 낙태 예방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설문 결과 응답자 719명 가운데 인공유산을 경험한 신자가 601명(83.6%)이나 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참생명학교는 1992년 1월부터 매달 둘째 주 금요일마다 낙태아와 낙태 부모를 위한 기도회를 하게 됐다. 생명 수호를 위한 기도회는 생명에 대한 강의와 나눔, 치유 기도, 미사, 친교 시간 등을 생명 수호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었다. 참생명학교는 기도회에 이어 1992년 5월 서울 동교동 협동교육연구원에서 ‘청소년 성교육 지도자 연수회’를 개최했다. 이때 쓰인 교육 프로그램이 ‘틴스타(Teen STAR, 성인의 책임감이라는 맥락에서 본 성교육이라는 의미)’였다. 틴스타를 만든 세계적인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 한나 클라우스(조지워싱턴대학 의대 산부인과 의사) 수녀가 내한해 가진 이 날 특강은 청소년 성교육에 대한 교회 안팎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청소년 성교육 지도자 연수회에 참가했던 봉사자들은 1995년 중ㆍ고생이나 서울소년원 내 가톨릭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청소년 성교육 강좌를 열어 청소년들이 잘못 알고 있는 성 지식을 교회 가르침을 통해 바로잡도록 도왔다. 이 성교육은 당시 가톨릭대 이동익(현 서울대교구 공항동본당 주임) 신부의 강의와 비디오 시청, 그룹 토의와 발표 차례로 진행됐는데, 기존 성교육과 달리 성이 갖는 지성적ㆍ영성적ㆍ정서적ㆍ사회적ㆍ신체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 인간 성장과 더불어 발달하는 성의 의미를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은 본당 순회 교육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했고, 수도자와 일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생명ㆍ성교육으로 시행되기도 했다. 이어 1993년 10월 5일∼11월 23일에는 매주 한 차례씩 ‘생명과 사랑을 위하여’를 주제로 8주 과정의 제1기 참생명학교 강좌를 개설해 생명 교육의 장을 열었다. 이 강좌는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 반포 25주년을 맞아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생명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재정립하고자 마련됐다. 또한, 1994년에는 서울대교구 구의동성당에서 두 차례에 걸쳐 참생명학교 단기 강좌를 열기도 했다. 참생명학교는 1993년 입양결연부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로 이관되면서 생활실천부 소속으로 교육을 계속했으며, 1994년 1월에는 월례 모임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어 1995년 생명운동부에 속하게 된 이후에도 ‘생명과 사랑’을 주제로 참생명학교 강좌를 꾸준히 개설했다. 1995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 해마다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낼 것을 결정하면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명운동부는 해마다 생명의 날 캠페인을 벌이며 아기발 배지 달아주기, 생명 수호 사진 전시, 생명의 날 홍보물 배포 등 활동을 전개하면서 꾸준히 생명 수호 운동을 이어 나갔다. 이어 2000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산하 협력 연구기관으로 ‘생명윤리연구회’(2008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로 승격)를 설치키로 하면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또한 2001년 6월 기획조정위원회의에서 생명윤리위원회 설립하기로 한 뒤 그해 11월 산하 기구로 생명윤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런 가운데 2005년 10월 서울대교구는 ‘생명위원회’를 발족,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에 대처하고 생명 수호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교회의 본질적 가치이자 시대적 소명인 생명 존중을 실현하기 위해 교구 생명위원회를 중심으로 생명 연대를 확대해 나간 것이다. 교구 생명위원회가 발족, 기존 생명윤리위원회와 생명운동부가 맡았던 생명 수호 운동을 전개함에 따라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기존 생명운동부와 장기기증부의 부서를 ‘생명운동팀’으로 통합, 장기 기증과 조혈모세포기증, 헌혈 등의 사업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백영민2018.03.07
![[성경 속 도시] (69) 타보르](//cpbc.co.kr/CMS/newspaper/2015/11/rc/60541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69) 타보르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시다 이즈르엘 평야에서 볼 수 있는 타보르 산. 평화신문 자료사진 이스라엘의 이즈르엘 평야를 달리다 보면 둥근 종 모양 같은 높은 산이 나타난다. 해발 560m가 넘는 타보르 산이다. 길이 가팔라서 산길을 오르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내려 작은 차로 올라가야 한다. 타보르 산은 평지 위에 왕릉이나 고분처럼 우뚝 솟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로 이집트와 다마스쿠스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와 여러 지방도로가 마주치는 요점에 있어 예로부터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타보르 산을 오르다 보면 주변의 아름다운 전경이 눈앞에 펼쳐져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5세기경 예로니모는 “경이롭도록 둥글고 높은 산”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예례미아 예언자는 타보르 산을 산중의 대표적인 산으로 칭송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신 임금님의 말씀이다. ─ 산들 가운데에서는 타보르 같고 바닷가에서는 카르멜 같은 자가 반드시 쳐들어온다”(예레 46,18). 타보르 산은 구약시대에도 많은 전쟁이 있었던 곳이었다. 일찍이 타보르 산은 이스라엘의 여 판관이었던 드보라의 파견을 받은 바락에 의하여 가나안의 시스라 군대와 병거들이 완패를 당하였던 장소였다. 그렇기 때문에 타보르 산은 유다인들에겐 승리를 주는 동시에 꿈과 성공을 높여 주는 산으로 통해 왔다. 드보라는 타보르 산 부근에서 시스라와 전투를 벌여 군사 1만 명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에 드보라가 바락에게 말하였다. ‘자, 일어나시오. 오늘이 바로 주님께서 시스라를 그대의 손에 넘겨주신 날이오. 주님께서 반드시 그대 앞에 서서 나가실 것이오.’ 그리하여 바락이 그 만 명을 거느리고 타보르 산에서 내려갔다. 주님께서는 시스라와 그의 온 병거대와 온 군대를 바락 앞에서 혼란에 빠뜨리셨다. 그러자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 달음질쳐 도망갔다”(판관 4,14-15). 한편 기드온은 자기 형제들에게 화를 입혔던 미디안의 두 왕 제바와 찰문나를 바로 타보르 산에서 처형하기도 했다(판관 8,18-21).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돌아갈 때에도 타보르 산이 언급된다. “거기에서 더 가다가 타보르의 참나무에 이르면, 하느님을 예배하러 베텔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오. 한 사람은 새끼 염소 세 마리를 끌고, 한 사람은 빵 세 덩이를 들고, 나머지 한 사람은 술 한 부대를 메고 있을 것이오”(1사무 10,3). 또 신약에서 타보르 산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등, 제자들과 함께 오르신 후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하신 산으로 생각되는 곳이기도 하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 17,1-2).타보르 산이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산으로 전해지는 곳이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친인 헬레나 성녀가 기원후 326년, 정상에 교회를 지었으나 후에 파괴되었다. 다시 지은 교회들도 1187년, 아랍군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다. 현재 타보르 산 정상에는 1921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예수님의 변모를 기념하고 있다. 이 교회는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답고 잘 건축된 교회당 중 하나이다. 십자군시대의 성벽과 건물의 유적이 있다. 또한 그리스 정교회 엘리아 기념 교회도 정상에 있어 순례객이 끊이지 않는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cpbc2015.1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