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에서 삶의 진리 향한 길을 찾다예수회 사제이자 불교 철학 박사 이영석 신부,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 한데 엮어 예수처럼 부처처럼 예수처럼 부처처럼 이영석 신부 글 / 성바오로 / 1만 8000원“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무(無)!”(「무문관」 제1칙)예수와 부처가 만났다. 인격적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하는 그리스도교와 비인격적인 지혜의 진리를 강조하는 불교의 만남이다. 「예수처럼 부처처럼」은 시대를 뛰어넘어 최고의 진리를 전해 온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을 한데 엮은 책. 예수회 사제이자 불교 철학 박사이기도 한 이영석(서강대 인성교육센터 교수) 신부가 오랜 진리 탐독 끝에 내놓은 서적이다.저자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문법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삶의 기술’에 대해서는 겹치는 부분이 꽤 있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책은 성경과 함께 중국 남송의 선승 무문혜개가 지은 불서 「무문관」 내용을 두 축으로 삶의 지혜로의 안내를 시작한다. 쉬운 설명과 재미있는 비유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막달레나는 텅 빈 무덤을 보고 울면서 말하지만, 요한은 빈 무덤 안에 사랑으로 충만한 예수의 삶을 읽는다. 저자는 “예수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체가 비어 있는 삶이었다”고 일러준다. 아무것도 없는 마구간에서부터 텅 빈 돌무덤에 이르기까지. 자기 이권과 의지 모두 버리고 자기 비움의 방식으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선사한 ‘텅 빈 충만’이라는 것이다.텅 빈 무덤처럼 무문관 제1칙이 말하는 불성이란 그 어디에도 없는 무(無)와 같다. ‘무’는 “있고, 없다”의 사유적 개념이 아닌, 아득히 멀리 떨어진 ‘자유’ 그 자체를 일컫는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이 계시다, 계시지 않다”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다. 불가의 이 같은 가르침을 빌리자면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에 대해 존재 여부를 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저자는 현대인에게 깨달음의 시각을 꾸준히 제시해 준다. 그는 “세상이 예수를 못 보는 까닭은 이별을 이별로만 보기 때문”이라며 이별 속에 가득히 남은 사랑을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또 주님께로 아무런 차별 없이 영원한 생명의 식탁에 초대받은 우리에겐 부자, 기업가, 정치인, 서민,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없음을 상기한다. 석가모니가 가르침을 기다리는 대중에게 그저 꽃 한 송이만을 들어 올려 보였듯이 진리를 깨닫는 것은 삶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고 전한다.예수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라고 했다. 여기서 말한 ‘가난한 마음’은 너와 나를 가르지 않고, 네 것, 내 것을 따로 두지 않으며, 편애하지 않는다는 무심(無心) 무변(無邊) 무애(無)의 마음이다.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누군가 고통과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무조건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는 예수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자리에서 “제가 그런 게 아닌데요?” 하고 회피하며 산다.유무(有無), 상하(上下), 빈부(貧富)는 인간이 만든 득실의 세계다. 저자는 진리를 저 높은 곳, 멀리 있는 사유의 영역으로 여기지 말고, 진정한 믿음을 향해 몸담고 있던 틀을 부수고 나오는 용기를 지니길 청한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11.14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16) 미투(#Me Too)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영적 치유](//cpbc.co.kr/CMS/newspaper/2018/03/rc/714811_1.0_titleImage_1.jpg)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16) 미투(#Me Too)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영적 치유 지난해 1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성폭행 피해자를 위한 시위 참가자들에게 판매된 #Me Too 배지. 【CNS】 성적인 악은 원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중대 문제다. 뱀으로 비유되는 악이 개입된 영적 사건이기 때문에 인간의 방식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현재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은 대중의 관심과 분노를 촉발시켜서 정의를 이루는 느낌을 주지만, 이는 용서와 화해로 가는 길이 아니다. 성적 범죄는 성에 대한 철저한 영적 이해를 바탕으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미투 운동을 영적 치유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성문제의 표층적 차원재벌 2세 남성이 가난한 여성을 사랑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드라마는 IMF 이후 항상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는 드라마 속 환상일 뿐이다. 현실에선 여성이 농락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실에서 재벌 2세인 것처럼 가장하고 나타난 남성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사업을 물려받으려면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는 말로 여성에게 대출을 받아오게 한다. 여성은 시키는 대로 다 하고나서 깊은 상처를 받는다.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다. 반대로 남성이 피해자, 여성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재판을 하면 가해자는 처벌을 받는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런 해결로는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성문제의 영적 차원이 현상의 이면에 자리한 영적 뿌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피해자가 당하는 이유는 의존성이 강한 영을 품고 있기 때문인데, 이 영은 성적·금전적 착취를 하는 사람에게 끌리게 한다. 본질은 ‘당하게 하는 영’과 ‘가하는 영’이다. 이 영이 내 안에 나로 위장해 있기 때문에 거짓 자아인 영이 느끼는 감정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따라가 버린다. 남녀 내면에 각각 숨어 있는 이 영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처음에는 잘 지내는 척하다가, 결국 한쪽은 착취를 당하게 또 한쪽은 착취를 가하게 하면서 상처를 입히고 원한과 분노를 키우게 한다. 표층에서는 가해자의 악만 보이지만, 영적 심층에서는 피해자 안에 있는 악도 드러난다. 당하게 하는 악인데, 이 악은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악이 가해자에게만이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영적인 진실이다. 이 둘이 맞물릴 때 죄가 형성된다. 따라서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영적 접근이 필수적이다.성적 상처에 대한 영적 치유란?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진정한 치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안에 있는 의존과 망상의 영, 억울하게 당하도록 끌어가는 악을 없애줘야 한다. 이 악을 제거하거나 그 힘을 약화시켜주지 않고 가해자만 처벌하면, 피해자는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예수님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갈라서 판단하지 않으셨다. 군중에게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고 하셨고,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고 하셨다.예수님은 두 악을 각각 지적하여 쫓아내셨다. 진단의 깊이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군중들에게는 그들 안의 악을 인식시키고 치유하셔서 살인 무기인 돌을 내려놓게 하셨다. 여인에게는 더 깊은 치유를 베풀어주셔서 악을 분리해주셨다. 현재 벌어지는 미투와 예수님 치유 사이의 극명한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악의 양쪽 매듭을 동시에 풀어버리는 진정한 영적 치유로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다.왜 분노 표출보다 영적 치유가 우선인가?간음했다는 이유로 잡혀온 여인과 현재 미투를 외치는 이들의 공통 입장은 뭘까? 상황은 달라 보이지만 성경속 군중과 깊은 상처를 준 성폭력 가해자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영적으로 보면 이는 피해당한 사람 안의 당하게 하는 악이 보는 시각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 시선에 결코 동의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의 딱한 처지에는 공감했지만, 여인의 분노 표출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 분노는 여인의 감정인 것 같지만, 여인 안에 숨어 있는 영이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에 이것이 군중을 향해 표출될 경우, 군중 안의 악이 또 터져나와 여인의 상처를 더 깊게 한다. 악의 증식 원리를 잘 아시는 예수님은 악의 입은 다 틀어막고, 군중과 여인 모두에게 근원적 치유를 해주셨다. 이것이 진정한 돌봄이고 사랑이다. 그런데 지금의 미투는 방송을 통해서 공개되고, 이후 엄청난 2차 가해를 불러들인다. 겉으로는 사람이 싸우는 것 같지만 영적 차원으로 보면 악이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억울함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다. ‘악이 악을 부르는 현상’을 동양에서는 주화입마(走火入魔, 화를 뛰어다니게 해서 악마를 불러들인다)라고 했는데, 이는 개인과 사회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예수님은 서로 맞물려 있는 양쪽의 악을 침묵시켜 쫓아내고, 사람을 치유해주셨다.악을 악으로 갚지 않아야가해자는 극악한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을 위해서도 피를 흘리셨고, 피해자를 사랑하는 만큼 가해자도 사랑하신다. 성폭력 고소와 공개적인 미투는 그 성격이 다르다. 죄인이라 해서 그를 대중재판이라는 불구덩이에 넣을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고,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7-21 참조)라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한다.치유의 영적 원리를 이해하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이를 실천하여 미투의 방향이 용서로 바뀌기를 소망한다. 이 운동의 창설자 타라나 버크도 미투 운동의 변질을 우려하며 “어떤 이들은 치유와 정의를 얻기 위해 가해자의 이름을 크게 소리치고 싶어한다. 이를 이해하지만 이보다 더 긴 여정과 나아가야 할 길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고 했다. 미투가 일치로 가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백영민2018.03.21
![[성경 속 도시] (74) 아라랏 산](//cpbc.co.kr/CMS/newspaper/2015/12/rc/611364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74) 아라랏 산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는 전설의 산 다니엘 매클라이즈 작, ‘노아의 제사’. 아라랏 산은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이란과 아르메니아와의 접경 지대에 위치한 사화산이다. 이 산이 유명한 것은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표류하다가 도착한 곳이라는 전설 때문이기도 하다. 아라랏 산은 지난 수백 년간 ‘노아의 방주’ 목격설이 있었고, 현재까지도 노아의 방주와 그 유물을 찾기 위해 탐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세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는 아라랏 산에 노아의 방주가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탐험가들은 아라랏 산에서 발견한 나무, 그 밖의 자재들을 노아 방주의 일부분으로 주장하고 있고, 미국·러시아 비행사들이 찍은 항공사진을 근거로 아라랏 산 노아 방주의 존재를 최근까지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도 노아의 방주에 대한 구체적인 여러 증언이 나오고 있다. 성경에서도 여러 번 이 지역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창세기의 홍수 사건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은 하느님의 심판과, 방주를 통해 악한 세상에서 의인 노아를 구원해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다. 홍수 때 노아의 방주가 정박했던 산이 바로 아라랏 산이다. “그리하여 일곱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 위에 내려앉았다”(창세 8,4). 성경은 노아가 포도밭을 가꾸는 첫 사람이 됐다고 한다. “농부인 노아는 포도밭을 가꾸는 첫 사람이 되었다”(창세 9,20). 노아의 방주가 내려앉았다는 아라랏 산의 주변 지역은 포도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니네베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의 두 아들이 산헤립을 죽이고 이 지방으로 도망했다. “그런데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예배드리고 있을 때, 그의 두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르에체르가 그를 칼로 쳐 죽이고는 아라랏 땅으로 도망쳤다. 그의 아들 에사르 하똔이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2열왕 19,37). 이 이야기는 토빗기(토빗 1,21)나 이사야 예언서(이사 37,38)에도 잘 기록돼 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바빌론에 관해 예언할 때에도 이 지역의 언급이 나온다. “그 땅에 깃발을 세우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팔을 불어라. 바빌론을 칠 민족들을 동원하고 그를 칠 왕국들 곧 아라랏과 민니와 아스크나즈를 불러들여라. 그를 칠 사령관을 임명하고 날개를 곤두세운 메뚜기 떼 같은 군마를 몰고 와라”(예레 51,27).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는 탐험가들의 아라랏 산에 대한 발견과 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아라랏 산이 오늘의 지명 아라랏 산과 일치하고 있느냐는 논쟁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아라랏 산의 정확한 위치뿐 아니라 노아와 홍수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구원과 사랑이 성경의 중요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12.28
![[밭에 숨겨진 보물] (1) 예수 그리스도](//cpbc.co.kr/CMS/newspaper/2017/02/rc/670955_1.0_titleImage_1.jpg)
[밭에 숨겨진 보물] (1) 예수 그리스도그리스도 이해의 지평 넓혀 줄 신앙 서적 좋은 책은 인생을 바꾼다. 두려워하는 자에게 용기를, 절망하는 이에게 희망을 준다. 때론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 되기도 한다. 밭에 숨겨진 보물 마냥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좋은 책들이 많다. ‘밭에 숨겨진 보물’ 꼭지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거나 잊힌 책들 가운데 우리 신앙과 인생의 훌륭한 길잡이가 될 책들을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안젤로 아마토 추기경 지음 / 김관희 신부 옮김 /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 2만 5000원교황청 시성성 장관인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이 교황청립 살레시오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재직할 때 저술한 책이다. 그리스도론 신학 서적 중에서 압권으로 평가받으며 ‘그리스도론 교과서’로 불린다. 그리스도론에 관한 많은 학설과 이론을 종합해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풀이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말 번역 또한 깔끔하다. 이해하기 난해한 중문과 복문이 거의 없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처음 듣고 읽는 독자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학 서적이라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를 소개하는 입문서에 가깝다. 하지만 읽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에 자연스럽게 응답하도록 이끄는 신앙 서적이다. 그래서 아마토 추기경은 이 책을 마음으로 읽을 것을 권한다.책은 크게 다섯 부(部)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현대 사상 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객관적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교회 밖에서 본 그리스도론, 특히 비 그리스도교 종교에서 본 예수 재해석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한 마디로 ‘예수 흉내 내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종교는 예수를 하느님의 예언자로,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순교자로만 인식할 뿐 예수의 핵심적인 구원 사건을 고려하지 않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원초적인 모습에서 상당히 빗겨나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 함께 현대에 나타난 우주론적ㆍ초월적ㆍ역사적ㆍ종말론적 그리스도론과 토착화 신학에 드러난 신학적 견해를 폭넓게 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한다.제2부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신원을 담았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론의 핵심인 ‘예수 부활’에 넓은 이해를 전해준다. 부활에 관한 예수의 자의식부터 이를 신앙으로 수용하는 초대 교회의 모습까지 신앙의 정통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성경 속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려낸다.제3부는 가장 중요한 핵심 글이다. 성경의 그리스도론에서 교의적인 그리스도론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동방교회를 전공한 아마토 추기경은 동방교회 관점에서 그리스도론을 풍부히 서술하고 있다. 여느 그리스도론 책에서 볼 수 없는 백미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부터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까지 개최된 일곱 보편 공의회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교의 즉 신앙 고백을 어떻게 발전시켜 가는지를 서술하고 있다.아마토 추기경은 “공의회에서 선언된 규정들이 성경과 부합하고, 전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실천되었으며, 교회의 전례 생활과 선교사명에 상응한다는 사실은 그 정식들이 오늘날 그리스도 신비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필수적인 원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제4ㆍ5부는 교의신학적 그리스도론을 다루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사건이 삼위일체적, 그리스도론적, 구원론적 사건임을 고백하고, 전 인류에게 미치는 구원의 보편적 가치를 정리해 놓았다. 역자인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김관희(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신부는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그리스도론 자료들이 많이 수록돼 있다”고 소개했다. 김 신부는 “이탈리아어로 된 원서 자체가 쉽게 쓰였지만, 독자들이 잘 이해하고 쉽게 해득할 수 있도록 우리말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다”며 “많은 신자가 이 책을 읽고 그리스도 이해의 지평을 더욱 넓혀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김지항2017.02.08
![[하느님과 트윗을] (26) 영원한 삶은 어떤 것일까요](//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0805_1.0_titleImage_1.jpg)
[하느님과 트윗을] (26) 영원한 삶은 어떤 것일까요기쁘고 행복하게 하느님 안에 사는 삶 하느님과 트윗을 문 :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인지요.답 : 천국이 어떤 곳인지 그려보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은 천국에 관해 말할 때 생명, 빛, 평화, 혼인 잔치, 아버지의 집, 천상의 예루살렘, 낙원과 같은 다채로운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천국은 ‘생명이 넘치는 곳’이고 ‘영원한 곳’입니다. 영원한 삶은 성인들과 천사들과 더불어 기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느님과 영원히 사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영원한 삶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로 하고 세례를 받을 때 지상에서 시작합니다. 천국에서만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을 완전히 알 수 있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의도하셨던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 비로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마련하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를 것을 선택할 때 세례를 받지만, 세례성사가 자동으로 ‘천국행 티켓’이 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우리의 행위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문 : 지옥은 어떤 곳인가요. 답 : 지옥은 의식적이고 결정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따라서 지옥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영원히 분리된 것이며, 교만과 이기심으로 인한 고통과 불행에 갇힌 곳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을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은 ‘고통스러운 불’입니다. 최후의 심판 후에 모든 영혼에 육신이 주어지는데, 지옥에 있는 이는 육체적인 고통도 겪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극심한 지옥의 고통은 하느님과 다시는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만을 신경 쓰기 때문에 그곳은 지독하게 외로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께 돌아설 것을 끊임없이 촉구하시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숨을 거둘 때까지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도록 할 기회는 있습니다. 그 기회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은총의 상태에서’ 즉 하느님과의 친교의 상태에서 죽지만 이를 거부하는 것은 바로 생명을 거스르는 선택으로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문 : 연옥을 두려워해야 하나요. 답 : 연옥은 지옥에 가기에는 너무나 선하지만, 천국에 가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 어느 사제는 말했습니다. 연옥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연민과 자비가 존재하는 곳으로 천국의 대기실이라는 준비 단계이며 자기 자신과 살아온 삶의 여정을 마주 보아야 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따라서 연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죄의 결과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든지 죽으면 곧바로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이미 용서받은 죄의 결과에 계속 짓눌리고 있다면 우리는 정화를 위해 연옥에 갑니다. 하느님과 불완전함은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게 반대되기 때문에 정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 가기 전에 죄의 결과로부터 깨끗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은 사후에 우리를 정화하고 천국을 준비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정화하는 고통을 경험한 후에야 우리는 두려움 없이, 아무것도 숨길 필요 없이 예수님 사랑의 눈길에 응답해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평화신문2017.11.07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59)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7)](//cpbc.co.kr/CMS/newspaper/2017/07/rc/689795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59)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1테살 4,17)부활한 주님 만날 그날까지 항상 깨어있으라 ‘바오로 사도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 중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언급이다. 그림은 조토 디 본도네 작 ‘승천’. 바오로 사도가 생각한 그리스도인의 삶은 이 말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은 바로 여러분이 거룩한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1테살 4,3) 하느님께 맞는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는 것은 ‘부르심’과 ‘선택’이라는 주제와 항상 함께 생각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그렇기에 하느님과 믿는 이들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이와 함께 테살로니카 1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또 이렇게 권고합니다. “조용히 살도록 힘쓰며 자기 일에 전념하고 자기 손으로 제 일을 하십시오.”(1테살 4,11) 이런 삶을 통해 품위 있게 처신하고 아무에게도 신세 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초대 교회 공동체 특징 ‘대조사회’바오로의 편지에서 볼 수 있는 초대 교회를 특징짓는 중요한 요소 중의 하나는 대조사회(對照社會)로서의 공동체입니다. 그리스도교 공동체의 삶은 세상에 속해 있지만, 세상의 삶과는 다른, 세상을 신앙의 힘으로 바꾸어 갈 수 있는 사명을 지닌 공동체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권고 역시 다른 이들과 갈등을 일으키지 않고 조용히 살라는 의미이기보다 이런 대조사회의 역할을 하도록 신앙인들을 초대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테살로니카 1서에서 바오로 사도의 이런 권고들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이야기됩니다. 테살로니카 1서에서 찾을 수 있는 특징 중의 하나는 ‘그리스도의 재림’에 대한 언급입니다. 종말의 다른 표현인 그리스도의 재림은 초기 바오로 사도의 글에서 강조되는 내용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재림이 머지않은 때에 올 것이라고 믿었던 것 같습니다. 신앙인들에게 재림을 준비하며 하느님의 뜻에 맞게 처신하고 살아가도록 권고합니다. 테살로니카 1서 4장 13절에서 5장 11절은 재림과 종말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담고 있는 부분입니다. “명령의 외침과 대천사의 목소리와 하느님의 나팔 소리가 울리면, 주님께서 친히 하늘에서 내려오실 것입니다. 그러면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 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들려 올라가 공중에서 주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많은 이들이 재림과 종말 때의 모습을 상상하는 데 많이 사용되는 이 구절은 한때 ‘휴거’라는 말로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이 표현에서 어떤 이들은 종말 때에 믿는 이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로 올라간다거나 하늘과 땅의 중간쯤으로 들어 올려지는 것을 상상하기도 하지만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것은 구약성경을 배경으로 합니다. 무엇보다 구름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나타내는 상징이었고 바오로 사도 역시 이런 의미로 사용합니다.(다니 7,13; 마르 13,26) 또한, 당시의 세계관에 의하면 하늘과 땅은 구분되어 있었고 부활 이후의 우리는 땅에 속하지 않는 이들이라는 의미에서 ‘공중’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재림과 종말에 관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에서 중요한 것은 이미 죽은 이들이 부활하고 살아 있는 이들과 함께 주님을 만나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이렇게 하여 우리는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입니다”는 표현이 그것을 잘 말해 줍니다. 언제 올지 모르는 그리스도 재림언제 올지 모르는 주님의 재림. 바오로 역시 예수님의 가르침처럼 아무도 알지 못한 때에 마치 “도둑처럼” 온다고 표현합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아무도 모르지만 “잠들지 말고, 맑은 정신으로 깨어 있도록” 준비하라는 것이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입니다. 현재에 집중하며 주님 맞을 준비를그에게 재림의 준비는 이미 이야기한 것처럼 하느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제나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살아가는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느님의 뜻입니다.”(1테살 5,16-18) 이처럼 믿음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준비하고 있는 이들에게 재림은 곧 희망입니다. 그때에 우리는 지금과는 다른 모습으로 주님을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재림과 종말의 가르침은 바오로 사도뿐 아니라 지금도 마찬가지로 현재의 삶을 돌아보도록 초대합니다. 그날이 언제이고 그때에 어떤 일이 벌어질 것인지를 알려 주는 것이 아니라 지금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더 관심을 둡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김지항2017.07.25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1) 3세기 ②-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cpbc.co.kr/CMS/newspaper/2017/02/rc/670916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1) 3세기 ②-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에 방향을 제시하다 오리게네스는 구약성경의 「아가」를 영성적 관점에서 해석하며 인간 사이에 사랑의 감정에 대한 비유적 언어로 신비체험과 애덕과의 깊은 관계를 쉽게 설명했다. 알렉산드리아 학파에 속한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Origenes, 185~254)는 우의적 의미를 추구하던 성경 해석 방법을 어떻게 영성 생활 발전에 적용했는지 보여주는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탁월한 성경 주석가였던 오리게네스는 성경 본문을 문자적 의미, 윤리적 의미, 영적 의미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영적 여정을 체계적으로 설명했습니다. 특히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인이 아직 살아있는 동안에 하느님과 일치하는 체험을 이론적으로 체계화하여 제시한 첫 번째 그리스도교 신비 사상가였습니다.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체험사실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은 그리스도인이 최선을 다해 노력해야 하는 수덕 생활의 측면도 있지만, 결코 인간의 노력만으로 완성되지 않습니다. 때로는 하느님께서 은총으로 그리스도인을 이끌어 주셔야 하는 신비 생활의 측면도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느님 은총의 도움 속에서 하느님께 가까이 나아가는 ‘신비체험’(mysticism)을 하게 됩니다. 신비체험은 사도 베드로(사도 10,9-16 참조)와 사도 바오로(2코린 12,1-4 참조)의 경험에서처럼 ‘무아경’ 속에서 ‘환시’나 ‘말씀’을 동반하는 경우도 있지만, 신비체험의 과정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교 2000년 역사 안에 수많은 신비 체험가들이 있었던 만큼 그들의 신비체험 과정을 설명하려던 수많은 신비 사상가들도 있었습니다.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은 기본적으로 플라톤 사상과 중기 플라톤 사상의 영향으로 ‘영혼 선재(先在) 사상’과 ‘삼분법’의 색채를 띠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인간 영혼이 이미 신의 영역에 존재했었기 때문에 인간 영혼과 신의 본질이 같은 ‘동족’(同族) 관계를 이룬다고 강조했습니다. 즉, 본질이 같은 두 물질은 서로 섞이기도 쉬울 뿐 아니라 서로를 이끄는 성질도 있기 때문에, 인간 영혼은 하느님과의 일치를 간절히 원할 뿐 아니라 하느님과의 일치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다만 오리게네스는 물질적 차원에서 사는 인간 영혼이 초월적 차원에 존재하는 신을 향해 상승의 여정을 걸어가야만 하느님과 일치한다고 설명했습니다.상승의 여정으로서의 신비체험먼저 오리게네스는 저서 「아가 강론」(Homiliae in Canticum Canticorum) 서문에서 구약성경 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를 배경 삼아서 인간이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상승의 여정을 일곱 단계로 구분하여 묘사했습니다. 즉, 모세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홍해를 건넌 후에 첫 번째 노래를(탈출 15,1), 이스라엘 백성들은 브에르에 있는 제후들이 판 우물에서 두 번째 노래를(민수 21,17), 모세는 요르단 강둑에서 세 번째 노래를(신명 32,1), 판관 드보라는 가나안 임금의 손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구한 후에 네 번째 노래를(판관 5,2), 다윗은 자신의 원수들과 사울의 손아귀를 벗어난 후에 다섯 번째 노래를(2사무 22,2), 이사야 예언자는 여섯 번째 포도밭 노래를(이사 5,1), 마지막으로 아름다운 영혼은 더 높게 올라가 신랑과 함께 일곱 번째 노래인 「아가」를 부른다는 것입니다. 결국 세례성사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여러 어려움을 극복하며 영적 여정을 무사히 통과하여 하느님과의 일치 속에서 기쁨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또한 오리게네스는 저서 「아가 주해」(Commen tarium in Canticum Canticorum) 서문에서 세상 학문 분야와 솔로몬 왕의 작품으로 여기는 구약성경을 짝지어 ‘정화’, ‘조명’, ‘일치’의 단계를 거치는 상승의 여정을 설명했습니다. 즉, 덕행의 습득을 다루는 ‘윤리학’과 창조질서에 순응하며 세상 본성을 다루는 ‘자연학’ 및 천상적인 것을 다루는 ‘형이상학’은 삶의 규범을 다루는 「잠언」과 헛되거나 유익한 것을 구별하는 지혜를 다루는 「코헬렛」 및 천상을 향한 신랑과 신부의 사랑을 다루는 「아가」와 각각 짝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영성 생활을 갈망하는 그리스도인은 「잠언」에서 계명을 배우고, 「코헬렛」에서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며, 「아가」에서 하느님 사랑에 빠지는 상승의 여정을 걷습니다.사랑-신비사상이렇게 오리게네스는 구약성경의 「아가」를 영성적인 관점에서 해석하면서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과정을 다루는 신비사상을 펼쳤습니다. 즉, 「아가」에 등장하는 ‘신랑’을 그리스도로, ‘신부’를 인간 영혼으로 해석하면서 그리스도인이 하느님을 향하는 상승의 여정을 신부가 신랑을 찾는 과정으로 비유했습니다. 이후 「아가」를 바라보는 오리게네스의 시각에 영향을 받은 많은 영성가들과 영성신학자들은 그리스도교 신비체험과 「아가」를 연관 지어 묵상하고 주석하면서 ‘영적 혼인’의 개념을 발전시켰습니다.게다가 「아가」에 나타난 인간 사이에 사랑의 감정에 대한 비유적 언어 때문에, 오리게네스는 신비체험과 애덕과의 깊은 관계를 쉽게 설명할 수 있었습니다. 사랑의 주제를 강조한 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은 ‘사랑-신비사상’ 혹은 ‘신부-신비사상’이라고 일컬어지면서 훗날 ‘혼인-신비사상’ 계보의 시작이 되었습니다.그리스도 중심적 신비사상한편 오리게네스는 플라톤 사상의 한계를 극복하고 그리스도 중심적인 신비사상을 전개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아가 주해」 제4권에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바위 굴 안에 넣고 뒷모습만 볼 수 있게 하신 것처럼(탈출 33,22-23), 그리스도께서 바위틈을 통해 하느님을 알려 주셔서(아가 2,14 참조) 그리스도인이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또한 오리게네스는 「아가 주해」 제2권에서 다섯 개의 영적 감각 기관에 감지되는 그리스도가 ‘하느님 말씀’이라고 주장했습니다.(아가 1,12 참조) 즉, 그리스도는 영적 청각에 들리는 ‘말씀’이시고, 영적 미각으로 맛보는 ‘생명의 빵’이시며, 영적 후각이 냄새 맡는 ‘말씀의 향기’이시고, 영적 촉각으로 느끼는 육신을 취하신 ‘생명의 말씀’이시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른 감각 기관으로 느낀 각기 다른 대상은 결국 동일한 하느님 말씀입니다. 따라서 하느님 말씀에서 퍼지는 거룩한 은총의 향기를 맡을 수 있는 후각을 지닌 영혼만이 완전히 정화되어 성화됨으로써 하느님과 일치할 수 있습니다.사실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본질과 피조물인 인간 영혼의 본질이 결코 같을 수 없기 때문에, 오리게네스의 신비사상은 훗날의 시각에서 보면 오류를 지녔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리게네스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수동적인 측면과 하느님에 대한 사랑에 고무되어 상승의 여정을 걷는 능동적이며 실천적인 측면을 균형 있게 언급함으로써 알렉산드리아 학파를 대표하는 신비 사상가로 오래 기억되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cpbc2017.02.08

수원가톨릭대 부설 이성과신앙연구소, ‘덴칭거와 오늘의 신학’ 학술대회2000년 가톨릭교회 역사와 생명력 담긴 신앙의 유산수원가톨릭대(총장 유희석 신부) 부설 이성과신앙연구소(소장 곽진상 신부)는 10~11일 수원가톨릭대 하상관에서 ‘덴칭거와 오늘의 신학’을 주제로 개교 33주년 기념 학술대회를 개최했다. 「덴칭거」 한국어판 표지이번 학술대회는 수원가톨릭대가 14년에 걸쳐 번역 작업을 완료한 「신경, 신앙과 도덕에 관한 규정ㆍ선언 편람」(이하 「신경편람」)의 번역 과정과 학술 가치를 일깨우는 자리였다. 「신경편람」은 2000년 가톨릭교회의 신앙과 도덕에 관한 공식적 가르침들을 모아 집대성한 서적으로, 초판 집필자 하인리히 덴칭거(Heinlich Denzinger, 1819∼1883)의 이름을 따 ‘덴칭거’라 불리기도 한다. 학술대회에는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와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를 비롯한 사제와 수도자, 신자 400여 명이 참석해 1부 ‘덴칭거란 무엇인가’, 2부 ‘덴칭거와 오늘의 성서ㆍ교의신학’, 3부 ‘덴칭거와 오늘의 윤리ㆍ전례ㆍ사목 신학’ 등 다양한 주제로 「신경편람」의 가치를 돌아봤다.「신경편람」이 집필된 이유 “가톨릭 교육의 장에서 좋지 않은 상황을 만들어내는 많은 해악 가운데 교회의 권위가 최종 결정한 신앙과 도덕에 관한 이른바 실증적 문헌들이 많은 사람들에 의해 무시되거나 경시되고, 많은 경우 자기 생각대로 이해하는 것은 신학 연구에 가장 큰 해를 끼치고 있다.” 「신경편람」의 첫 집필자인 덴칭거는 1853년 자신의 편람 집필 목적을 이처럼 교회 문헌에 대한 자의적 해석과 해악에 있다고 밝혔다. 19세기 독일의 신학적 흐름이 교회 권위와는 정반대로 흐른 것을 우려한 것이다. 그리고 이듬해 편람 초판을 출간하기에 이른다. 편람은 교회 초기부터 전해진 신경의 원형에 해당하는 고백문부터 교황 클레멘스 1세 서한, 베네딕토 16세 회칙 「진리 안의 사랑」에 이르기까지 교회 문헌을 연대순으로 총망라한 신앙 규정집이다. 덴칭거는 1883년 사망 전까지 약 30년간 초판부터 제5판에 이르는 「신경편람」을 집필했다. 오늘날 45판에 이르기까지 개정 및 추가 제작에는 43년간 집필한 요한네스 움베르크 등 수많은 이들의 노력이 담겨 있다. 이번에 주교회의가 발행한 한국어 번역본은 44판까지의 내용을 담고 있다. 「신경편람」의 한국어 번역 완수 수원가톨릭대 교수진을 비롯한 사제들은 2003년 번역 작업에 들어가 14년 만인 올해 작업을 완료하고 지난 3월 1658쪽, 5120항에 달하는 서적으로 출간했다. 2003년 당시 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였던 이성효 주교를 중심으로 수원교구 사제 20여 명이 번역 작업에 참여한 것을 시작으로, 2005년 주교회의로부터 번역 작업의 공식 승인을 얻은 뒤「덴칭거」 번역위원회의 번역 작업이 이뤄졌다. 이후 초벌ㆍ수정ㆍ교정ㆍ감수 등 작업을 거쳐 완역하기에 이르렀다. 황치헌(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이날 ‘덴칭거 우리말 번역의 역사와 가치’란 발제에서 “한국 가톨릭 신학의 발전 정도는 아직 초기 단계에 머물러 있다”며 “아직 「신학대전」과 「교부 문헌 총서」, 「보편 공의회 문헌」의 완역이 이뤄지지 않은 상황이지만, 「덴칭거」 한국어판은 한국 가톨릭 신학이 2단계로 넘어갈 수 있는 과도기에 나온 서적”이라고 밝혔다. 덴칭거와 오늘의 성서ㆍ교의신학 학술대회 2부는 「덴칭거」를 중심으로 교회 신학을 전반적으로 돌아보는 자리로 마련됐다. 송창현(대구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현대 성경 연구와 덴칭거’란 발제에서 “교황 레오 13세는 1893년 발표한 회칙 「섭리의 하느님」을 통해 교부들의 일치된 합의를 거슬러 성경을 해석하는 일은 어느 누구에게도 허용되지 않는다(「덴칭거」 3281항)고 밝히고 있다”면서 “성경의 의미를 정확히 파악하기 위해선 학문적 해석의 도움을 받아야 자의적 해석이 되지 않겠지만, 교회 공동체와 관련성을 잃지 않는 신앙적 해석 또한 중요하다. 두 해석 방법을 통한 성경 독해의 정확성과 방향을 잃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곽진상(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신경의 문학적 비평과 기초신학적 의미’란 발제를 통해 신경의 문학적 구조와 특성, 신경에 나타난 그리스도교 신앙의 특징을, 그리고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는 격언의 역사적 발전과 현대적 의미’를 주제로 한 발제에서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한 3세기 오리게네스와 치프리아노 성인의 진술에서 유래하는 명제를 오늘날의 관점으로 방향을 제시했다. 곽 신부는 “교회에 속하고 속하지 않는 ‘가시적 요소’와 시간, 장소 등 물리적 한계를 넘는 ‘비가시적 요소’ 가운데 한 부분만 취하는 것은 부분적 태도다. 모든 인류가 그리스도와 신비적으로 유대를 갖는다는 신앙은 추상이 아닌 실제”라며 “그러므로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한 명제는 배타성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를 통해 구원의 은총이 선포된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주장했다. 「신경편람」의 활용 이번 대회는 덴칭거의 업적을 주제로 한 국내 첫 학술발표회로, 신학적 문제를 교회 역사 전반에 걸쳐 고찰하며 교리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 자리이기도 했다. 또 수원ㆍ대구ㆍ부산가톨릭대와 서강대 등에서 후학을 양성 중인 전문 신학자들이 발제한 전국 단위 학술대회였다. 발제자들은 「신경편람」 한국어 번역본을 통해 더욱 깊이 있는 신학 연구가 이루어지고 교회 사상과의 소통이 활발해지기를 바랐다. 박현창(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는 “신학을 공부하는 이들이 고대어로 전승된 초세기 신앙고백부터 이후 발전된 양식의 고백문들을 두루 한눈에 볼 수 있게 됐다”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의존에서 나아가 시대를 관통해 사상의 윤곽을 탐구할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번역에 주도적 역할을 한 심상태(수원가톨릭대 명예교수) 몬시뇰은 기조강연에서 “세상을 향해 열린 교회를 지향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편람에 수록된 모든 가르침을 자비의 관점에서 해석하고 이해하기를 바라신다”며 “2000년 가톨릭교회 역사의 생명력을 지닌 이 편람을 이용한 연구가 앞으로도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규만(원주교구장) 주교는 축사에서 “편람 번역으로 우리 신앙의 새로운 토대가 마련된 셈”이라고 축하했다. 이날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의 신학을 통해 덴칭거의 업적을 살펴본 ‘교도권과 교부들’ 주제 발표를 하기도 한 이성효(수원교구 총대리) 주교는 “덴칭거의 「신경편람」은 새롭고 훌륭한 가톨릭 신학을 드러낸 것이며, 한국어판 완역은 한국 가톨릭교회의 자부심과 긍지를 세상에 알린 사건과 같다”며 “교부들의 전승을 이제 더욱 깊이 묵상하고 내면화해야 한다”고 밝혔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백영민2017.0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