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위령성월에 만난 사람 ...이도행·윤성규 신부“죽음, 두려워만 하기보다 조금 더 사랑하는 삶 사세요” 뇌경색으로 언어를 잃어버렸던 이도행 신부(오른쪽)와 혈액암을 극복하고 사제 생활을 하고 있는 윤성규 신부. 이힘 기자 죽음 너머의 삶을 묵상하는 위령성월이다. 이미 누군가는 떠났고, 곧 누군가가 떠난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진리다. 평범한 일상, 뇌경색과 혈액암이라는 병마가 찾아와 죽음의 문턱을 오갔던 두 사제를 만났다. ‘일상’이라는 고귀한 선물을 다시 돌려받은 이들의 삶은 예전과 같지 않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사제가 제대에 올라 가장 먼저 바치는 성호경. 평소와 같이 두 입술이 부딪히며 성대를 통해 자연스럽게 흘러나왔어야 했다. 고개를 갸우뚱하며 몇 번이나 성호를 다시 그어봤지만 소용이 없었다. 한 단어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9년 전, 서울 대치2동성당. 새벽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제대에 오른 이도행(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사무부국장) 신부는 뇌경색 진단을 받고, 언어 중추가 손상돼 말과 언어를 통째로 잃어버렸다. 의식은 있었지만 말을 할 수 없었기에 미사 봉헌도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는 일도 불가능했다. 위로의 문자가 오면 ‘감사합니다’라는 답장을 보내고 싶었지만, 엉뚱한 자판만 두드렸다. 언어 중추가 망가진 이 신부에게 하느님에 대한 원망, 사제직을 그만둬야 할지 모른다는 깊은 두려움이 엄습해왔다. 윤성규(안동교구 성소 담당) 신부는 2000년 혈액암 4기 진단을 받았다. 일반대학 전자공학과를 졸업한 후 엔지니어로 일하고 있었다. 짝사랑하던 사람도 있었다. 엔지니어로 성공하는 삶을 꿈꿨다. 척추에 퍼지고 있던 암세포로 통증은 심해졌고, 의사는 길어야 6개월이라고 했다. 걷지 못해 누워 지냈다. 어머니가 늙은 몸으로 아들의 대소변을 받아냈다.서울성모병원 암 병동에 입원한 그는 자연스럽게 방송으로 흘러나오는 기도, 병상에 찾아와 기도해주는 사제와 수녀, 자원봉사자들을 만났다. 어려운 가정형편으로 치료가 어려워지자 원목 담당 신부와 수녀는 윤 신부의 부모가 운영하는 과수원에서 수확한 사과를 병원에서 팔아줬다.“따뜻한 사랑을 베풀어주는 그들 삶이 크게 다가왔습니다. 내 생명이 어떻게 될지 모르지만, 그동안 나 자신의 성공을 위해 살았다면 이제는 타인을 위해 살고 싶었습니다.”윤 신부는 조혈모세포이식을 받기 전 대세를 받고, 이듬해인 2001년 보례를 받고 퇴원했다. 사제 성소의 부르심을 받은 그는 2006년 안동교구 소속으로 대구가톨릭대 신학대에 입학했다. 2013년 사제품을 받은 그는 서울성모병원에서 환우들과 뜨거운 첫 미사를 봉헌했다.2018년 11월 1일, 낙엽이 수북이 쌓인 명동대성당 들머리를 거닐며 두 사제가 마주 보며 웃는다. 6개월이라는 시간 동안 가나다부터 다시 한글을 배운 이도행 신부의 말은 느려졌고, 발음은 또렷해졌다. 매일 봉헌하는 미사는 항상 긴장감 넘치고 새롭다.“이 미사가 항상 마지막일 수도 있다고 생각해요. 다음 미사 때 말을 못할 수도 있는 거예요. 아침에 일어나면 ‘아아’ 해봅니다. 목소리가 나오는지. 소리가 나오면 오늘 하루도 감사한 선물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이 신부는 낙엽을 밟으며 지난 사제의 삶을 회고했다.“아프기 전에는 어깨에 날개를 달고, 신나게 퍼덕거리며 살았죠. 투병생활 전에는 세상에 무서울 게 없을 정도로 실행력이 강했습니다. 15분에 하나씩 뭔가를 계획하고, 확인하고…. 성과를 내야만 훌륭한 사제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아프고 나서, 일보다는 사람, 사람보다는 사랑함에 집중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이 신부는 “아프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것은 미사와 강론, 성사를 집행하고 성경을 가르치고 예비신자들을 만나는 일이었다”며 “사제로 살면서 성과보다는 존재 의미가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다”고 털어놨다.성소 담당 사제로 젊은이들을 만나고 있는 윤성규 신부의 마음에는 자원봉사자의 말이 아직도 남아있다. “자신의 차량으로 병원에서 경북 영주 집까지 데려다 준 봉사자께 은혜를 어떻게 갚아야 하겠느냐고 물었는데, 그분은 ‘나에게 갚지 말고, 예수님께 감사드리고 앞으로 만나는 사람에게 그 사랑을 전해주면 된다’고 하셨습니다.”죽음의 문턱을 빠져나온 두 신부는 공통된 말을 꺼냈다. 죽음을 마주하는 것은 진리이며, 언젠가는 우리 모두 죽어서 하느님께 돌아간다는 것이다. 그러나 하느님 나라는 갑자기 오지 않으며, 현세에서 하느님의 사랑을 깊이 받아들이고 삶에서 만나는 사람을 조금 더 사랑한다면 죽음을 잘 준비할 수 있다고 했다. 윤 신부는 “사람들과의 만남 안에서 하느님 사랑을 전해주는 사람을 만났고, 그 삶을 따라 살고 싶었기에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행복하다”고 털어놨다. 이 신부는 “이 삶에서 중요한 세 가지는 내가 여기에 있다는 것과 내가 언젠가는 죽는다는 것, 죽어서 하느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라며 “신자이든 아니든 지금 내가 사는 삶이 죽음을 너머 영원의 삶과 연결된다”고 강조했다. 알아보기보례=세례성사나 혼인성사 등을 거행했을 때, 부족했던 부분을 보충하는 예식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죽을 위험이 있는 자가 죽음에 임박했거나 사제가 없을 때 대세(代洗)를 받았을 경우, 병자가 죽지 않고 다시 살아났다면 신앙생활을 잘하기 위해서는 제대로 갖추지 못한 예식을 보충하는 예식을 한다. 이를 통해 정식 성사와 같은 효과를 얻는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cpbc2018.11.07

할머니 말씀, ‘잘 보아라 내일이면 부활하실거야!’ 주님 부활 찬미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어록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를 가두고 있는 돌(장벽)을 치우고 싶어하신다고 프란치스교 교황은 말한다. 사진은 미국 뉴욕의 성 알레이시오 성당에 있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유리화 작품. 【CNS 자료사진】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1코린 15,3-4)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께서 ‘다시 살아나셨다’는 기쁜 소식이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우리의 신앙은 여기에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다. 만일 그리스도의 삶이 죽음으로 끝났다면, 성경은 어느 헌신적인 인물의 영웅담에 그쳤을 것이라고 한다. 교황은 주님 부활 대축일 즈음이면 “베드로는 일어나 무덤으로 달려가서”(루카 24,12)라는 구절을 즐겨 인용한다. 우리 자신의 부활은 죽음 뒤에 일어나는 현상이 아니라 베드로처럼 어둠 속에서 ‘일어나’ 그분을 만나러 ‘달려가는’ 것이라고 말한다. 교황 어록에서 주님 부활을 찬미하는 노래를 옮긴다. 할머니가 가르쳐 준 부활 “어릴 때 주님 수난 성금요일이 되면 할머니와 함께 그 예식에 참례하곤 했습니다. 성당에서 대리석으로 만든 십자가에 누워 계신 그리스도를 모시고 촛불 행렬을 했지요. 십자가 앞에 도달하면 할머니는 우리에게 무릎을 꿇으라고 하셨어요. 할머니는 ‘잘 보아라. 내일이면 부활하실 거야!’라고 말씀하셨지요. 그 당시는 전례 개혁 이전이어서 주일이 아니라 성토요일 아침에 부활 예식을 거행했습니다. 그래서 할머니는 성토요일 아침 부활 종소리가 들리면 그리스도의 영광을 보게 하시려고 물로 우리의 눈을 씻게 하셨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영광을 바라보도록 가르치십시오.”(3월 21일 아침 미사 강론) 우리 무덤을 주님께 열어야 “그 여인들처럼 두려워서 얼굴을 숙이고 있으면(루카 24,5 참조) 생명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닫혀있는 우리 무덤을 주님께 열어야 합니다. 원한의 돌덩어리, 과거의 무거움, 나약함과 실수 때문에 생긴 무거운 짐을 그분께 갖고 갑시다. 오늘 밤에 굴려버려야 할 첫째 바윗덩어리는 우리를 스스로 가두어 버리는 희망의 부재입니다. 그리스도교의 희망은 하느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우리 자신 밖으로 나가서 그분께 우리를 열어드릴 때 주어집니다. 이 희망은 실망시키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 마음속에 성령께서 내려오셨기 때문입니다.”(2016년 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강론) 부활하신 그분의 심장 “부활하신 그분의 심장이 새롭게 뛰기 시작합니다. 이는 선물로, 은총으로, 희망으로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들과 나누라고 주어진 것입니다. 주님은 무덤의 돌을 치우고 나오셨습니다. 주님은 또한 생산성 없는 비관, 삶과 동떨어진 관념적 사고방식, 안전만을 추구하는 강박 관념에 우리를 가둬두는 돌(장벽)을 치워버리고 싶어 하십니다. 다른 사람의 존엄성을 흥정하려 드는 끝없는 야망 안에 가둬두는 돌도 부수고자 하십니다.”(2017년주님 부활 대축일 파스카 성야 미사 강론) 부활하신 주님은 어디에 “도대체 (부활하신) 주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 예수님 부활은 환상이 아닙니다. 꽃들로 장식된 축제가 아닙니다. 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집 짓는 이들이) 내버린 돌이 우리 존재의 기초가 된다는 버림받은 돌의 신비입니다. 쓸모없게 된 것이 버려지는 이런 버림의 문화에서, 예수님이신 그 돌은 버림받았지만, 생명의 원천이 됩니다. 우리 또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가진, 고통과 비극의 땅에 버려진 작은 돌들입니다.” (2017년 주님 부활 대축일 강론) 내면에서 주님 뵙기를 “새롭고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목숨을 잃는 부활의 법칙을 우리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목숨을 잃는다는 게 무엇을 의미합니까? 다시 말해 밀알 하나가 되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개인적인 이익을 덜 생각하고, 우리 이웃, 특히 끝자리에 있는 이들이 필요로 하는 것을 보고 도와주러 갈 줄 아는 것을 의미합니다.…저는 예수님을 뵙기 원하지만, 내면에서 뵙기를 원합니다. 그분의 상처 안으로 들어가십시오. 당신을 위해, 나를 위해,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 마음의 그 사랑을 관상하십시오.” (3월 18일 삼종기도 메시지) 정리=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cpbc2018.03.28
은총으로 영혼의 거울 닦는 고해성사](//cpbc.co.kr/CMS/newspaper/2018/10/rc/735511_1.0_titleImage_1.jpg)
[성사풀이](16)은총으로 영혼의 거울 닦는 고해성사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악으로 이끌리는 경향은 그대로 남아 또 다시 죄를 짓게 된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느님과 교회의 친교를 회복하려면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 【CNS 자료 사진】 다른 그리스도교 교파에도 성체가 있나요다른 그리스도교 교파들도 가톨릭교회의 성체성사와 유사한 예식을 거행한다. 그러나 성체에 대한 교리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다만 동방정교회는 가톨릭교회처럼 성체의 실체 변화를 믿고 있다. 동방정교회는 성체 안에 그리스도께서 현존하신다는 확고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의 십자가상 제사가 재현되고 효력이 드러난다고 믿으며, 사제로 서품된 사람만이 성찬례(성체성사)를 유효하게 거행할 수 있습니다. 다만 가톨릭교회는 성체 축성용으로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사용하는 데 반해, 동방정교회는 누룩을 넣은 빵을 사용한다는 점이 주요한 차이점 입니다.대부분의 개신교 교파들은 성체성사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성찬식을 단순히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예식으로 규정하고 있습니다. 또한, 성체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상징일 뿐이라고 말합니다. 개신교의 성찬식은 제사적 성격보다 공동체의 식사적 성격이 강합니다. 그래서 매주 예배 때마다 성찬식을 하지 않고 주로 부활절, 성탄절, 성령 강림절 그리고 세례 예식 같은 중요한 때에만 지냅니다. 성공회의 경우 미사 형식과 용서가 가톨릭교회와 매우 비슷하지만, 성체의 실체 변화를 믿지 않는다는 점에서 가톨릭교회의 성체 교리와 근본적 차이가 있습니다.고해성사의 근거는 무엇이고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고해성사는 성경에 근거를 두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는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그러니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고,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마태 16,19)라고 말씀하셨다. 부활하신 다음에는 사도들에게 죄를 용서할 수 있는 권한을 위임하셨다.(요한 20,23)고해성사는 죄인들에게 잃어버린 은총을 회복할 수 있는 새로운 가능성을 제공하는 성사입니다.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뒤, 주님께 받은 이 권한을 행사하는 형태는 많이 변했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서간을 통해 초대 교회가 고해성사를 어떻게 드렸는지 가늠해 볼 수 있습니다. 먼저 중죄를 지은 이들은 공동체로부터 추방당한 뒤(1코린 5,13) 교회로부터 사죄를 받는 형식으로 이루어졌습니다.(2코린 5,7-10) 처음 수 세기 동안은 세례를 받은 다음 특별한 대죄(우상숭배, 살인, 간통죄 등)를 지었을 경우에 매우 엄중한 징계를 거쳤습니다. 회개하는 사람은 용서를 받기 전에 여러 해 동안 공적 보속을 해야만 했습니다. 그러다가 7세기 아일랜드 선교사들이 동방 수도회 전통에서 영향을 받은 ‘사적인’ 속죄의 절차를 유럽 대륙에 전했습니다. 이후 고해성사는 참회자와 사제 사이에 비밀리에 행해지게 됐고, 일생에 한 번만 받던 것도 자주 반복해 받을 수 있게 됐습니다.대죄와 소죄를 구분해 용서받는 관습들도 단 한 번의 성사 거행으로 모두 용서받을 수 있었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형태의 고해성사가 오늘날까지 이루어지고 있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47항)고해성사는 왜 받아야 하나요우리는 세례성사로써 모든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났다. 그러나 세례를 받은 이후에도 악으로 이끌리는 경향(「가톨릭교회 교리서」 978항)은 그대로 남아 또다시 죄를 짓게 된다. 그러므로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느님과 교회의 친교를 회복하려면 고해성사를 받아야 한다.세례성사를 받아 원죄와 본죄, 그리고 죄벌까지도 용서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 새로 태어난 우리지만, 나약함과 죄로 기우는 경향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누리는 새 생명은 죄 때문에 약해지거나 아예 잃어버릴 수도 있습니다. 죄는 우리가 세례 때 받은 은총을 잃어버리게 할 뿐만 아니라, 하느님과 우리가 이루는 친교를 단절시키고 동시에 교회와 우리가 이루는 친교에도 해를 끼칩니다. 이렇게 끊어진 하느님과의 친교, 교회와의 친교 또한 고해성사를 통해 회복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40항)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사도들에게 나타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이처럼 죄는 하느님만이 용서하실 수 있지만, 예수님께서는 죄를 용서해 줄 수 있는 권한을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41항) 그래서 교부들은 고해성사를 “은총을 잃어버린 난파 후 두 번째 구명대”(「가톨릭교회 교리서」 1446항)라고 소개하였습니다. 무엇보다 고해성사를 통해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은총은 우리의 죄보다도 더 강한 하느님의 사랑을 체험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 13항)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8.10.09
영하의 날씨에도 ‘성령의 열기’로 후끈서울 공항동본당 성령 세미나 11월 22일 오후 7시 7주간 진행된 성령 세미나의 마지막 교육이 열리는 서울대교구 공항동본당(주임 이동익 신부) 대성전은 영하의 추운 날씨에도 500여 명의 신자들로 가득했다. 찬양과 미사, 은혜의 밤으로 열린 성령 세미나에 참석한 신자들은 “성령 세미나를 통해 삶이 변화됐다”고 입을 모았다. 또 새롭게 변화된 삶을 통해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사랑, 기쁨, 평화, 인내, 친절, 선행, 진실, 온유, 절제)를 생활에서 실천하겠다고 다짐했다. 본당은 재정 문제와 신앙 활성화 문제 등을 극복하고 신자 재교육 차원에서 성령 세미나를 시작했다. 서울대교구 성령쇄신연합회에 의뢰해 10월 11일부터 매주 수요일 저녁 성령 세미나를 열었다. 평일 늦은 시간에 참석자가 많이 있을까 하고 우려했지만 신자들의 반응은 예상을 뛰어넘었다. 매주 성령 세미나에 참석하는 신자로 성전은 꽉꽉 찼다. 덩달아 평일 미사 참여자도 늘었고, 성경을 새롭게 읽으며 말씀에 맛 들이는 신자들이 생겨났다. 김경란(효주 아녜스)씨는 “성령 세미나가 처음엔 낯설었는데 하느님께 늘 구하기만 했던 내 모습을 깨닫는 시간이 됐다”면서 “이제는 하느님 말씀에 더 귀를 기울이고 응답할 수 있는 삶을 살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연(라파엘라)씨는 “성령 세미나를 계기로 성경을 하루에 두 장씩 읽기 시작했다”며 “오늘을 감사하고 내일을 기다리는 삶이 됐다”고 소감을 말했다. 마지막 성령 세미나 미사를 주례한 이동익 주임 신부는 강론에서 “성령의 열매를 맺기 위해서는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내어 놓고 하느님을 굳게 믿으며 그분 뜻에 순종할 때 가능하다”고 강조했다. 이어 성령 세미나를 통해 변화된 삶을 고백하는 신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며 “성령의 은총이 본당 공동체에 함께하기를 바란다”고 격려했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백영민2017.11.29

고령화 사회의 선교 비결, 안동교구서 보다 전교 주일 이웃에 관심 갖기·기도·찾아가기 등 선교의 정석이 해답 안동교구 송현동본당 주임 배인호 신부가 지난 5월 28일 거행된 세례식에서 한 어르신에게 세례를 주고 있다. 안동교구 제공 우리나라 천주교 신자 비율(복음화율)은 11.1%(2016년 말 기준, 주교회의 통계)다. 그런데 65~79세의 복음화율은 13%를 넘는다. 80대는 15.5%, 90~94세의 복음화율은 26.5%, 95~99세는 무려 46.4%다. 우리나라는 고령화사회(65세 이상 인구 7% 이상)를 넘어 고령사회(14% 이상)에 접어들었다. 한국 교회가 노인 사목과 복음화에 더 많은 관심을 가져야 하는 이유다. 전교주일을 맞아 노인 신자 비율이 높은 안동교구의 선교 비결을 살펴본다. 안동교구는 2014년부터 3년간 ‘선교의 해’와 ‘길 잃은 양 찾기’ 운동의 해를 보내며 선교 및 냉담교우 회두에 힘을 쏟아왔다. 어려울 때 돕기예비신자 교리 교사 정희덕(모이세, 목성동주교좌본당)씨는 종형수의 암 진단을 계기로 종형수 내외를 성당으로 이끌었다. 맏형수가 입원했을 땐 자연스레 신앙 이야기를 꺼냈다. 맏형이 “동생이 성당 다니고부터 얼굴이 좋아 보이고 건강해졌다”고 거들었고, 결국 형제들이 전부 세례를 받았다.이현심(아녜스, 예천본당)씨는 몇해 전 가정 선교를 지향으로 성경을 필사하던 중 시아버지에게 대세를 주고 장례 미사를 치렀다. 이를 계기로 시어머니와 시누이가 세례를 받았다. 평소 성경을 가까이하고 신자로 열심히 신앙생활 한 것이 도움이 됐다. 기도하기정성 어린 기도는 선교의 특효약이다. 8년 전 53세로 세례를 받은 진명철(유스티노, 휴천동본당)씨는 세례 직후부터 일기장에 ‘날마다 그분과 함께-기도, 선포, 봉사’라는 글귀를 써놓고 매일 시간 전례(성무일도)를 바쳤다. 9일 기도에 이어 성경 필사도 했다. 신자가 아닌 아내를 위해 기도하고 묵주 기도를 바쳤다. 결국 아내는 그를 따라 세례를 받았다.가정 방문하기신영순(아가타, 영덕본당)씨는 성당에 가기가 쑥스럽다는 어르신을 위해 방문 교리에 나섰다. 노트북과 프로젝터를 들고 찾아가는 교리 교육을 했다. 덕분에 어르신은 마음을 열었다. 신씨는 또 시장 근처에 사는 한 할머니를 위해 본당 수도자와 방문 교리를 하며 기도해 줬다. 이웃 할머니들이 이 모습에 천주교에 호감을 보였고 함께 세례를 받았다. 삶의 자리에서 최선 다하기검찰청 형사조정위원인 박종열(프란치스코, 서문동본당)씨는 상인들이 맞고소한 사건을 맡았을 때 양쪽 입장을 충분히 들어 주며 화해로 이끌었다. 덕분에 냉담교우였던 상인은 회두하고 비신자였던 이는 세례를 받았다. 박씨는 “성경 구절을 인용해 상담에 임했더니 자연스레 두 사람이 천주교에 관심을 두게 됐다”고 했다.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박춘강(가밀라, 개운동본당)씨는 일하는 집에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 책을 놓고 오곤 했다. 그러면서 성심껏 일했다. 어느 날 집주인 부부는 “아주머니처럼 열심히 일하는 분은 처음 봤다”며 “손목에 염주 같은 게 있는데 그게 무엇이냐”고 물었다. 박씨는 묵주에 관해 설명해줬고, 용기를 내 부부를 예비신자 교리반으로 인도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평화신문2017.10.17

매회 5시간 꼬박 시각장애인 위해 도서 녹음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자원봉사 대표이사상 수상한 박봉희씨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설립 41주년을 맞아 유경촌 주교가 박봉희 봉사자에게 자원봉사부문 대표이사상을 수여하고 있다. “크게 잘한 것도 없는데, 또 해야 할 일을 한 것뿐인데, 상을 주신 건 봉사 더 열심히 하라고 주신 것 같습니다.” 9월 27일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 설립 41주년 기념 미사에서 자원봉사 부문 대표이사상을 수상한 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 박봉희(헬레나, 65, 서울대교구 중계양업본당) 봉사자는 이같이 수상 소감을 밝혔다. 1989년 우연한 기회에 시각장애인선교회에 들렀다가 봉사를 시작해 지금까지 30년 가까이를 한결같이 소리도서 낭독과 성경 말씀 점자 입력ㆍ편집, 테이프 녹음 봉사를 해왔다. “저를 봉사자로 불러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루카복음에 나오는 ‘저희는 쓸모없는 종입니다. 해야 할 일을 하였을 뿐입니다 하고 말하여라’(루카 17,10)라는 말씀이 생각납니다. 오랜 세월 봉사할 수 있었던 건 제 힘이 아니고 주님께서 주신 성령의 은총, 그 힘이었습니다.” 한번 복지관에 들르면 5시간을 꼬박 스튜디오에 앉아 시각장애인이 즐겨 찾는 소설부터 잡지, 신문, 학습 도서, 신앙 도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콘텐츠를 녹음하고, 성경 말씀을 점자도서로 입력하고 녹음하는 여정이었지만 그는 결코 봉사의 끈을 놓지 않았다. 보람도 컸다. 성경 말씀을 점자도서로 제작하고 테이프에 녹음하면서 말씀을 공부하다 보니 어느새 원망하는 마음이 사라지고 하느님께 감사하는 마음이 앞서게 됐다. 그 덕분인지 두 아들 신현박(서울 잠실본당 보좌)ㆍ현학(서울 역삼동본당 보좌) 신부를 하느님께 봉헌하는 기쁨도 누렸다. 그는 “시각장애인들은 어려운 가운데서도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말씀 공부도 열심히 하고 생활 속에서도 기도와 실천으로 성실히 살아간다”며 “어두운 곳에 있는 이들이 빛으로 나올 수 있도록 시각장애인에게 더 많은 관심과 사랑을 가져 달라”고 당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17.10.10

마음의 평화 얻고 싶지만 교회 활동은 ‘글쎄’ 의정부교구 사목회장·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평신도 주제 학술 심포지엄…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 갇힌 영성생활 지적 “요즘 신자들의 마음은 ‘고객의 마음’으로, 서비스를 받는 위치에 있는 것 같습니다. 봉사는 어려워하고 마음의 평화를 이루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교회가 평신도들에게 참여하고 싶은 마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지도 성찰해야 합니다.”(의정부교구 선교사목국장 이재화 신부)“80년대 전까지는 교회가 세상으로 들어가 세상을 변화시켰는데, 교회가 비대해지면서 세상이 교회를 세속화시키고 있습니다.”(의정부교구 사목회장협의회 김옥현 회장)의정부교구 사목회장ㆍ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는 6월 23일 의정부시 신흥로 교구청 옆 신앙교육원에서 ‘변화의 시대, 다시 깨어나는 평신도’를 주제로 한국 천주교 ‘평신도 희년’ 기념 학술심포지엄을 열어 평신도들의 삶을 성찰하고 교구의 사목 과제를 모색했다.‘복음의 기쁨으로 사는 평신도’를 주제로 발표한 박문수(프란치스코, 의정부교구 가톨릭평신도영성연구소장) 박사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권고 「복음의 기쁨」을 바탕으로, 평신도가 지닌 문제와 과제를 △신앙의 낮은 우선순위 △이웃 없는 신앙생활 △개인주의 영성 △반지성주의 △쇠퇴하는 가정 등 다섯 가지로 꼽았다.박 박사는 신앙의 동기는 점점 낮아지고, 현세 구복적 신앙과 세상의 평화에 무관심한 마음의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복음의 기쁨을 체험하지 못하는 신앙생활을 언급하면서, “현대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에서 가장 큰 문제는 자기 자신의 이해와 관심에만 갇힌 고립된 정신”이라고 지적했다.이에 앞서 최민호(의정부교구 교회사연구소장) 신부는 ‘마재 성가정을 중심으로- 한국 천주교 평신도의 영성 : 자발성ㆍ성모신심ㆍ순교신심’을 발표하고, 한국 평신도 영성의 뿌리를 정약종 일가의 삶에서 들여다보는 시간을 가졌다.한효수(바오로) 교구평신도단체협의회 회장은 패널 토의에서 △본당 신부들의 개인 성향에 따라 본당 단체들의 활동을 중지시키거나 폐지하는 경우가 있고 △단체 지도(담당) 신부들이 해당 단체 활동에 지나치게 개입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단체들이 교구의 사목방침이나 단체 특성에 맞게 활동하도록 지도하는 일 외에는 나머지는 단체들의 자율에 맡기도록 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좀더 많은 신자들이 재교육에 참여할 수 있도록 신자 재교육 공간으로 활용할 수 있는 거점 본당을 지정해 줄 것을 건의했다. 사목회장 등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한편, 박문수 박사는 4~5월 심포지엄 준비를 위해 본당 사목회장ㆍ평단협 소속 단체회원 1300여 명을 대상으로 한 의식조사 결과를 발표했다.<표 참조> 조사 결과에 따르면, 본당 사목회장 교회활동 및 직무인식 조사에서 사목회장이 된 계기를 묻는 말에 ‘주임 신부의 권유’가 82.8%로 가장 많았고, 사목회장에게 필요한 자질을 묻는 항목에서는 ‘주임 신부와의 소통 능력’이 56.3%로 가장 많았다. 또 의정부교구의 최우선 사목 과제를 묻는 항목에서는 ‘쉬는 교우 회두’(65.6%), ‘신자 재교육’(51.7%) ‘청소년ㆍ청년사목’(47.5%) ‘사제 쇄신’(31.8%) 순으로 응답자가 많았다. 한국 교회의 아쉬운 점으로는 ‘신자들의 소극적 태도’(49.2%), ‘크게 늘어난 쉬는 교우’(31.5%)가 응답률이 높았다. 이날 심포지엄에는 이재화(교구 선교사목국장) 신부, 김옥현(베드로, 사목회장협의회) 회장, 한효수(바오로, 교구 평단협) 회장, 송정미(보나, 여성총구역) 대표, 성경화(체칠리아) 평신도 신학자 등이 패널로 참석했다.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백영민2018.06.27

주교좌명동본당 사순 특강 (2) ‘성경을 통해 바라보는 미사’ -이영제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부활하신 예수님 만나는 체험, 미사 미사는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자리다. 예수님과 일치하는 관계로 이끄는 것, 그것이 미사다.헨리 나우엔 신부님은 저서 「뜨거운 마음으로」를 통해 엠마오로 가는 길의 두 제자를 묵상하면서 상실, 현존, 환대, 일치, 사명의 다섯 단계로 미사 의미를 설명한다. 미사는 예수님을 잃은 상실의 아픔을 체험하는 참회, 예수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말씀의 전례, 엠마오의 제자들이 예수님께 청하는 신앙고백, 주님께서 우리와 하나가 되시는 성찬의 전례, 복음을 선포할 사명을 받는 파견 예식의 단계로 이루어진다.제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엠마오로 향한다. 그들은 예수님을 잃은 실망과 절망 속에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다.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주님을 만났던 때를 잊는다. 주님을 다시 만나기 위해 우리는 미사를 봉헌한다. 거룩한 성찬례에 참여하기 위한 준비가 참회 예절이다. 나의 죄를 마주하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우리의 죄를 마주하지 않는다면 진정한 참회를 만날 수 없다.말씀의 전례는 하느님과 우리가 대화하는 구조다. 하느님의 현존을 체험하는 것이다.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도 예수님과 동행하며 대화를 주고받았다. 하지만 그들은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면 우리의 고정 관념을 내려두고 진심으로 그분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인내를 가지고 예수님 곁에 머물러야 한다. 그러면 엠마오의 두 제자들이 느낀 것처럼 마음이 뜨거워지기 시작할 것이다.엠마오의 제자들은 예수님께 머물다 가시기를 요청한다. 우리의 마음에 예수님을 모신다는 의미다. 나에게 큰 의미가 되는 분으로 받아들인다는 뜻이다. 우리는 간절히 예수님을 붙잡아야 한다. 구원을 믿고 고백하는 신앙고백이다. 하느님과 일치를 이루는 단계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의 집으로 들어가 빵을 떼어 나누어주셨다. 그때 제자들의 눈이 열려 예수님을 알아보게 됐다. 성찬의 전례다. 그분의 사랑을 통해 온전히 그분과 결합했다. 예수님의 몸과 피를 통해 예수님과 일치를 이루었다. 예수님의 몸과 피의 성사, 성체성사다. 우리의 구원을 위해 온전히 자기 자신을 내어주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님은 엠마오의 제자들 앞에서 사라지신다. 예수님께서는 사라지신 것이 아니다. 다른 방식으로 현존하시고 계신다. 제자들은 이런 깨달음을 얻는다. 빵의 형상, 포도주의 형상으로 오시지만, 그분이 나의 하느님이라고 믿고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주님, 제가 주님이고 제가 당신이고 당신이 저입니다”라며 고백할 수 있어야 한다. 영성체를 통해 절망에서 희망으로 향하는 은총이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우리의 눈이 열려 신앙 공동체를 바라볼 시야가 생긴다. 마지막으로 파견의 단계다. 아직 예수님을 만나지 못한 사람들에게 우리가 체험한 주님의 사랑을 전해야 한다. 엠마오의 제자들은 곧바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간다. 그들은 위험을 감수하고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그들에게는 본인의 위험보다 예수님께서 살아나신 사실을 알려야 하는 사명이 더 중요했다.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은 예수님 부활의 기쁨을 믿고 사람들에게 이를 전하는 것이다. 미사는 역동적이고 생생한 자리다. 우리는 그분의 부재를 아파하고, 자비를 믿고, 그분께 다가가고, 그분의 말씀을 듣고, 그분과의 일치를 경험하고, 뜨거워지는 벅찬 감동을 느끼는 일련의 과정을 미사 안에서 경험한다. 미사를 사랑하고 미사 은총을 공동체와 나누기를 바란다. 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평화신문2017.03.21
![[2018 한반도평화나눔포럼] 아시아 주교들에게...평화로 가는 길을 듣다](//cpbc.co.kr/CMS/newspaper/2018/09/rc/733249_1.0_titleImage_1.jpg)
[2018 한반도평화나눔포럼] 아시아 주교들에게...평화로 가는 길을 듣다 2018 한반도 평화나눔포럼에는 아시아 주교들만 4명이 참석, 평화로 가는 길에 대한 지혜를 들려줬다. 이에 한반도 평화나눔포럼과 인터뷰, 기자회견을 통해 들려준 주교들의 ‘보화와도 같은’ 육성을 정리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인도 뭄바이대교구장 - 오스왈도 그라시아스 추기경 인도 뭄바이대교구장 - 오스왈도 그라시아스 추기경뭄바이대교구장 오스왈도 그라시아스 추기경의 이름 앞에는 직책이 많이 붙는다. 아시아주교회의연합(FABC) 의장, 인도 주교회의 의장이라는 직책이다. 프란치스코 교황 특별자문기구인 ‘9인 추기경 회의’ 곧 C9의 일원이라는 직책도 빼놓을 수 없다. 그런데도 그라시아스 추기경은 무척 소탈했다. ‘의전’에 크게 신경 쓰지도 않았고, 포럼에서든 만찬장에서든 기자들의 질문에 성의껏 답했다. 군사분계선(DMZ)과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을 다녀온 소감을 묻는 말에 그라시아스 추기경은 ‘울컥했다’고 말문을 뗐다. 1947년 파키스탄 분리 독립 당시 인도도 똑같은 고통을 겪었다는 것. 단지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300만 명이 죽고 500만 명이 부상을 입은 분쟁 끝에 장벽이 세워지면서 가족이 오도 가도 못하게 됐다. 그 통행 제한은 수십 년이 지나고 나서야 풀렸지만 지금도 ‘비자’가 있어야만 왕래가 가능하다. “외신을 통해 남북한 이산가족들의 눈물을 보면서 한반도의 비극을 체감했는데, 이번에 DMZ와 JSA를 다녀오면서 눈물이 나오려고 하더군요. 남북 간 긴장과 갈등, 대결의 역사를 보면서 개인적으로 남북관계를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됐습니다. 그래서 이번 한반도 평화나눔포럼이 정말 소중하다는 생각을 했고, 남ㆍ북ㆍ미ㆍ중이 모처럼 주어진 기회를 잘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라시아스 추기경은 “4ㆍ27, 6ㆍ12로 이어지는 정상회담은 바로 평화는 도전이지만, 가능하다는 걸 보여준다”며 “특히 교회는 모두 평화의 선교사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그라시아스 추기경이 생각하는 평화는 예수님이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루카 2,14)라는 찬미에서 드러나듯, “예수님께서는 평화 그 자체이셨다”는 것이다. 그라시아스 추기경은 특히 평화의 본질적 요소로 공동선, 인권 수호와 증진 등을 평화를 증진하기 위해서는 국가 간 연대 쌓기와 대화, 종교 간 협력, 평화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또한, 교구에서도 평화 증진을 위해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각종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면서 “우리가 시대의 표징을 조심스럽게 찾으면서 인권을 옹호하고 증진할 때 신앙의 활력과 빛은 항상 우리를 동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필리핀 마닐라대교구장 -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 마닐라대교구장 루이스 안토니오 타글레 추기경은 국제 카리타스 의장, 가톨릭성경연합회 회장도 겸한다. 그런 만큼 굉장히 바빠 이번 포럼에서도 1박 2일의 짧은 방한 일정만 소화했다. 하지만 타글레 추기경이 남긴 주제 발표의 여운은 길었다. 우선 타글레 추기경은 “평화는 하느님의 선물”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그래서 평화를 위한 첫 번째 실천은 기도여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도해야 하는 건 우리가 스스로 평화를 만들 수는 없기 때문”이라며 “그래서 기도할 기회가 오면 무시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평화를 실천하기 위한 두 번째 단계는 “인간의 진정한 가치와 정체성을 재발견하는 것”이라며 “인간 존엄성에 대한 존중 없이는 평화가 올 수 없다”고 강조했다. “평화를 위해 일하는 것은 인간 존엄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해야 하며, 인간 존중을 통해서만 인간은 문명 발전에 이바지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타글레 추기경은 또한, 평화에 있어서 ‘관계’의 중요성을 거듭 역설했다. “사람은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자신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평화는 관계입니다. 만약에 평화가 파괴됐다면, 그것은 관계가 무너졌다는 것과 같은 뜻입니다. 성경에도 사람은 관계로 정의됩니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인간과 하느님과의 관계, 그리고 강생의 신비가 그것입니다. 특히 남자와 여자, 계약, 성사, 혼인은 다 관계입니다. 나아가 피조물과의 관계에서도 인간은 창조물을 보호하는 자이자 섬기는 자가 돼야 합니다.” 타글레 추기경은 그래서 “어떤 인간도 하느님과 이웃, 창조물과의 관계를 맺지 못하면 진정한 평화를 얻을 수 없다”면서 “인간의 관계 맺기가 곧 평화”라고 규정했다. 타글레 추기경은 “살다 보면, 내 목적에 맞지 않는다고 관계를 끊는 경우가 있는데, 이런 행동을 하면 바로 스스로 인간성을 무너뜨리는 것”이라며 “이렇게 목적에 맞지 않는 사람들이 바로 태중의 아이들, 병든 노인들, 장애인들, 실수로 범죄를 저지른 사람들, 자신의 단체에 소속돼 있지 않은 국외자들인데, 관계 끊기는 바로 전쟁의 시작”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따라서 “사람을 사람으로 보는 관점을 복원하는 것, 그것이 바로 관계 맺기며 용서는 바로 관계 복원에서 비롯된다”며 “여러 차원의 관계 맺기가 바로 평화”라고 타글레 추기경은 거듭 강조했다. 미얀마 양곤대교구장 - 찰스 마웅 보 추기경 양곤대교구장 찰스 마웅 보 추기경은 미얀마 가톨릭교회의 첫 추기경이다. 2015년 2월 14일 추기경에 서임됐고, 2017년 5월 교황청과 미얀마가 공식 외교 관계를 수립하는 데 ‘보이지 않는’ 역할을 했다. 현재 교황청 수도회성과 문화평의회, 홍보처 위원으로 있다. 보 추기경은 우선 “DMZ를 방문하면서 한국의 현실을 더 잘 이해하게 됐고, 한국과 한국 교회를 위해 기도하는 계기가 됐다”고 말문을 열었다. 보 추기경은 “미얀마 역시 1948년 독립 이후 70년 동안 평화를 알지 못했고, 인간 존엄성이 짓밟혀왔다”며 “그래서 인간 존엄성이 존중되지 않는 한 평화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고 전했다. 로힝야족 사태에 대한 질문에 보 추기경은 “오늘날 로힝야 사람들의 끔찍한 고통이 세계적 관심을 받고 있는데, 이는 당연한 일”이라며 “그들의 고난은 미얀마의 양심에 지독한 상처를 남겼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도 “군대에 의해 고통을 받은 것은 로힝야 부족만이 아니라 미얀마 북부 카친족도 마찬가지”라고 전했다. 지금도 그곳에서는 부족 대다수가 그리스도인인 카친족 반군과 미얀마군 간에 치열한 전투가 벌어지고 있다. 보 추기경은 “지난 7월 미얀마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Ad Limina) 때 카친족이 사는 미찌나와 바모, 라쇼 등 세 교구 교구장들이 교황에게 카친족이 겪는 고통을 호소했다”면서 “주교들이 원한 건 단 하나, 평화와 정의의 실현뿐이었다”고 말했다. 보 추기경은 “지난 2015년 아웅산 수치 여사는 수십 년 만에 실시된 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53년 군정을 종식하고 민주정부를 출범시켰지만, 현재 군대를 통제하지 못하고 있다”면서 “이는 강력한 불교 민족주의 운동과 결합해 미얀마의 평화와 인간 존엄성을 지속해서 부정하는 증오와 억압의 혼합물이 되고 말았다”고 안타까워했다. 보 추기경은 “미얀마 가톨릭교회는 작은 교회지만, 그것이 평화를 추구하는 데 아무런 방해가 되지는 않는다”며 “과감한 평화 추구만이 미얀마 교회의 길”이라고 강조했다. 아울러 “최근 몇 년 동안 종교 간 대화와 참여가 미얀마 교회의 최우선 과제가 돼왔다”고 말했다. 또 “우리는 가난과 분쟁과 불의로 고통 받는 이들, 자기 집에서 쫓겨난 난민, 인신매매를 당한 이들, 슬픔에 잠긴 이들을 위한 목소리가 돼야 하고, 불편한 진실을 말하는 것은 교회가 가진 의무”라고 강조했다. 파키스탄 라호르대교구장 - 세바스찬 프란시스 쇼 대주교라호르대교구장 세바스찬 프란시스 쇼 대주교는 작은 형제회(프란치스코 수도회) 출신이다. 1999년부터 7년간 작은 형제회 파키스탄관구장을 지냈다. 2009년 라호르대교구 보좌 주교에 임명됐으며, 2013년 라호르대교구장에 착좌했다. 현재 교황청 종교 간 대화위원회 위원으로 있다. 쇼 대주교는 먼저 “종교나 은행 잔고, 가족적 배경, 직업 등에 따라 인간 존엄이나 가치가 달라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순교자들의 모범이 보여주듯 중요한 것은 사람 자체”라며 “인간 존엄성을 해치는 것은 하느님의 형상을 파괴하는 것과 같다”고 전제했다. 쇼 대주교는 파키스탄 내에서 빈발하는 종교적 혐오 범죄에 대해 깊은 우려를 표명했다. “파키스탄 건국의 아버지인 무함마드 알리 진나는 1947년 8월 제헌의회 연설에서 자기 종교를 실천하고 존엄성을 가지고 살 수 있는 나라를 보장했지만, 1980년대 들어 이슬람법인 하두드(Hadood)ㆍ샤리아(Sharia)법 제정, 1991년 5월 신성모독법 통과 이후 종교와 관련된 발언에는 자유가 제한되고 있습니다. 특히 2001년 9ㆍ11사태 이후 그리스도교도들은 미국이나 유럽의 동맹으로 간주돼 교회와 함께 공격을 당했고 많은 이들이 살해됐습니다.” 쇼 대주교는 1986년 남펀자브 라힘 야르 칸에서 교회가 전소된 것을 시작으로 그리스도인에 대한 테러와 그리스도인 정착지 전소, 재산 약탈과 자살폭탄 테러 등을 구체적으로 예시하고, “이 모든 사건은 다른 믿음이나 신조를 용납하지 않는 이슬람 근본주의 집단의 종교적 광신주의를 보여준다”고 지적했다. 그래서 “펀자브 주 정부 요청에 따라 성당이나 교회, 학교 주변에 8피트(2.4m) 높이 담장과 함께 철조망과 CCTV를 설치했고, 성당 문을 통과할 때는 금속탐지기와 화재경보기를 설치했으며, 총을 든 경비원을 세우고 경찰이 상주하도록 했다”고 전한 뒤, “그럼에도 우리 교회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따라 2010년부터 종교 간 대화 노력을 계속했고 그 결과 종교적 믿음에 대한 오해는 많이 해소됐다”고 소개했다. 쇼 대주교는 “파키스탄의 가톨릭 인구는 전체 인구 2억 명 중 2%도 채 되지 않지만, 교회는 프란치스코 성인의 모범을 따라 2010년부터 종교 간 대화 노력을 계속해 왔고 앞으로도 평화의 일꾼이 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그리고 한국 교회도 “통일의 희망을 지니고 평화 속에서 살면서 한국 사회의 빛이 되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백영민2018.09.11
조롱과 심문 (루카 22,63-71)](//cpbc.co.kr/CMS/newspaper/2018/10/rc/736830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84)조롱과 심문 (루카 22,63-71)최고 의회 심문관들의 질문과 메시아의 답변 밤새도록 대사제의 집에서 고초를 겪으신 예수님은 최고 의회에 끌려가셔서 ‘당신이 메시아요?’라는 질문을 받으신다. 사진은 대사제의 집에서 조롱과 모욕을 받으시는 예수님을 묘사한 모자이크화. 예루살렘 베드로 회개 기념 성당에 있다. 【CNS 자료사진】 루카 복음사가는 대사제로 끌려가신 예수님께서 사람들로부터 조롱과 모욕을 받으셨으며(22,63-65), 날이 밝자 최고 의회로 끌려가 심문을 받으신 이야기를(22,66-71) 전합니다. 차례로 살펴봅니다. 조롱(22,63-65)“예수님을 지키던 사람들은 그분을 매질하며 조롱하였다. 또 예수님의 눈을 가리고 ‘알아맞혀 보아라. 너를 친 사람이 누구냐?’ 하고 물었다. 그들은 이 밖에도 예수님을 모독하는 말을 많이 퍼부었다.”루카 복음사가는 이 대목으로 예수님께서 대사제의 집에서 밤새 겪으신 고초를 전합니다. 매질과 조롱, 모독하는 말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세 번째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하시면서 “그들은 사람의 아들을 조롱하고 모욕하고 침 뱉을 것이다”(18,3)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사람의 아들이 올 날에 관해 말씀하시면서 그 일이 일어나기 전에 사람의 아들이 “먼저 많은 고난을 겪고 이 세대에게 배척을 받아야 한다”(17,25)고 말씀하셨지요. 이렇게 당신 친히 예고하신 말씀이 이제 이루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최고 의회의 신문(22,66-71)대사제의 집에서 밤새도록 죄인으로 취급받으며 고초를 겪으신 예수님께서는 날이 밝자 최고 의회로 끌려갑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을 최고 의회로 끌고 간 이들이 “원로단, 곧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22,66)이라고 기록합니다. 최고 의회는 ‘산헤드린’이라는 그리스말을 우리말로 옮긴 것인데,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 그리고 백성의 원로 등 모두 71명으로 이뤄진 유다교의 최고 재판기구 또는 그 재판이 열리는 장소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이제 유다인들의 최고 법정에 서게 된 것입니다. 무슨 죄목으로? 예수님을 최고 의회로 끌고 간 이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이 메시아라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하시오.”(22,67ㄱ) 메시아는 그리스말로 ‘그리스도’ 곧 ‘기름부음 받은 이’로 번역되는 아람말을 우리말로 음역한 것으로, 예수님 시대에 유다인들은 민족적이고 정치적인 의미를 담아 이 칭호를 사용했다고 합니다. 유다인들은 다윗 왕가의 후손으로 자기들을 이민족의 압제에서 해방시켜 줄 메시아, 즉 정치적 왕권을 지닌 메시아를 간절히 고대하고 있었습니다. 따라서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말은 ‘당신이 왕이면 그렇다고 우리에게 말해 주시오’라고 묻는 것입니다. 이 물음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을 두 부분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첫 부분은 “내가 그렇다고 말하여도 너희는 믿지 않을 것이고 내가 물어보아도 너희는 대답하지 않을 것이다”(22,67ㄴ-68)까지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물음에 대답하지 않겠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물음에 부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베드로가 당신을 두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고백했을 때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지만, 당신이 그리스도 곧 메시아심을 인정하셨습니다. 따라서 수석사제들과 율법학자들의 물음에 예수님의 이런 대답에는 오히려 그들을 신뢰하지 않는다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둘째 부분은 “이제부터 ‘사람의 아들은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을’ 것이다”(22,69)라는 말씀입니다.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당신 자신을 지칭할 때 사용하신 표현으로, 루카복음서에만 서른 번가량 나옵니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은 원래 구약성경 다니엘서에 나옵니다. “사람의 아들 같은 이가 하늘의 구름을 타고 나타나 연로하신 분께 가자 그분 앞으로 인도되었다. 그에게 통치권과 영광과 나라가 주어져… 모든 사람이 그를 섬기게 되었다. 그의 통치는 영원한 통치로서 사라지지 않고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않는다.”(다니 7,13-14)반면에 ‘전능하신 하느님의 오른쪽에 앉는다’는 표현은 시편 110편 1절에 나옵니다. “주님께서 내 주군께 하신 말씀, ‘내 오른쪽에 앉아, 내가 너의 원수들을 네 발판으로 삼을 때까지.’” 이 시편은 ‘군왕 시편’으로서 임금의 대관식 같은 때에 부르는 노래라고 합니다. 따라서 다니엘서에 나오는 사람의 아들과 다윗 왕가의 임금 즉위식 때 사용됐을 시편 노래를 합친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다윗 왕실을 잇는 왕으로서 영원히 다스릴 메시아, 그리스도이심을 분명히 밝히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이 말씀에 “모두 ‘그렇다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이오?’ 하고 물었다”(22,70ㄱ)고 기록합니다. ‘모두’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말씀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최고 의회에 있던 모든 사람이 다 잘 알고 있음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다시 “내가 그러하다고 너희가 말하고 있다”(22,70ㄴ) 하시며 직접적인 답변을거부하십니다. 하지만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예수님의 이 말씀이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인정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 우리에게 무슨 증언이 더 필요합니까. 제 입으로 말하는 것을 우리가 직접 들었으니 말입니다.”(22,71) 여기서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그들이 직접 예수님에게서 ‘유다인의 왕’이라거나 ‘하느님의 아들’이라는 말을 직접 들은 것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평화신문2018.10.23
세례명, 사사로운 이유로 바꿀 수 없어](//cpbc.co.kr/CMS/newspaper/2018/08/rc/731095_1.0_titleImage_1.jpg)
[성사풀이](12)세례명, 사사로운 이유로 바꿀 수 없어 세례명은 사사로운 이유로 바꿀 수 없고 평생 간직해야 한다. 이미 세례명을 받았다면 개명을 고민하기보다 수호성인이 보여준 사랑의 본보기를 헤아리고 따르려 노력해야 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세례성사 때 받은 세례명을 견진성사 때 바꿀 수 있나요한국 천주교회는 2015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 결정에 따라 사목적 혼란을 피하려고 세례명의 변경을 원칙적으로 허용하지 않는다. 따라서 견진성사를 받을 때 세례명을 바꿀 수 없다. 교회는 그리스도교 이름을 주는 예식을 통해 예비신자에게 새 이름을 주고 그 이름과 세례명을 부르며 세례를 줍니다. 그러기에 세례명은 사사로운 이유로 바꿀 수 없고 평생 간직해야 합니다. 따라서 부모와 대부모, 본당 신부는 예비신자가 선택한 수호성인을 잘 본받고 기도하도록 보살펴야 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165항)예비신자나 부모와 대부모는 편의로 생일에 맞추어 성인을 선택하거나 근사한 세례명을 찾기에 앞서, 성인의 생애와 신앙의 모범을 알아보고 신중하게 세례명을 결정해야 합니다.이미 세례명을 받았다면 개명을 고민하기보다 수호성인이 보여 준 사랑의 본보기를 헤아리고 따르려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이따금 사제나 수도자의 경우 본디 세례명에 다른 성인의 이름을 붙여서 부르거나 다른 성인의 이름을 받기로 하지만, 이는 자신의 세례명을 바꾼 것이 아니라 특별한 지향으로 공경할 성인을 더불어 기억하는 것입니다.세례받을 때 대부모를 정했는데 견진 받을 때 또 대부모를 정해야 하나요세례 때와 마찬가지로 견진 때도 대부모를 정해야 한다.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의 단일성을 드러내고자 세례 대부모와 동일한 사람으로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세례받을 때 정했던 대부모와 교분을 유지하고 있거나 연락할 수 있다면 그를 견진 대부모로 정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러나 유아 세례를 받았거나 세례성사를 받은 지 오래된 신자들은 세례 대부모가 이미 세상을 떠났거나 소식조차 알 수 없을 경우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견진 대부모를 따로 정하면 됩니다. 견진성사의 대부모는 견진성사를 받은 만 16세 이상인 신자로서 열심히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어야 하며, 대부모의 의무를 수행하는 데 교회법적 제재를 받지 않은 사람이어야 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11항)견진 대부모는 견진자가 내적 외적으로 준비를 잘하도록 도와줘야 합니다. 그리고 견진 예식 중 도유할 때 대자녀를 주교 앞으로 인도하고 견진성사를 받았음을 확인하는 증인이 됩니다. 대부나 대모를 미리 정해 놓았는데 부득이한 사정으로 예식에 참석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대리로 다른 사람을 지명해 참석하도록 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에도 실제의 대부나 대모는 이미 정해 놓은 사람이 됩니다.성체성사는 언제 만들어졌나요예수님께서는 수난 전날 밤 제자들과 함께하신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셨고, 이 예식이 제자들을 통해서 계속 이루어지기를 원하셨다.성체성사는 예수님께서 최후의 만찬 때 제정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실 때 하신 말씀이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 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 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예식은 오늘도 우리가 미사를 거행할 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는 주님께서 다시 오실 때까지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세세에 영속화하고, 또한 그때까지 사랑하는 신부인 교회에 당신 죽음과 부활의 기념제로 맡기신 것입니다.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를 완결 짓습니다. 세례성사로 왕다운 사제 품위에 올려지고, 견진성사로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게 된 사람들은 성찬례를 통해 온 공동체와 함께 주님의 희생 제사에 참여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22항)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08.21
[가톨릭 인포] 하느님 집으로 들어가는 입구이자 경계, 성당 門성당 문성당은 전례를 거행하는 거룩한 공간이다. 여타의 공간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무엇보다 이 공간에서 성찬례를 통해 하느님의 현존이 명백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이 거룩한 공간과 세속을 구분하는 경계가 바로 성당 ‘문’이다. 또 성당 문은 성경과 교리에 관한 주요 내용을 조각으로 장식해 글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그리스도교를 알려주는 교리서이다. | 성당 문은 일반 문과 다른가 | 성당 문 : 거룩함(聖)과 일상(俗)을 갈라놓는 경계. 동시에 하느님의 집으로 들어가는 통로. 이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는 진정 주님께서 이곳에 계시는 것을 깨달음. 이곳이 다름 아닌 하느님의 집이며 하늘의 문이기 때문.(창세 28,16-17) 교회(Ecclesia, 에클레시아) : 삼위일체이신 성부 성자 성령의 구원 업적으로 세워진 하느님의 백성. 똑같은 의미로 교회 건물에도 사용. 교회는 주님께로부터 소집된 회중이기 때문. 성경 근거 : 계약의 궤를 모신 지성소에 성막을 치고 사제들만 제사를 드리던 구약의 ‘성전’과 달리 사제와 신자 회중이 제대에서 거행되는 성찬례에 함께 참여하기에 그리스도인들은 이 집을 ‘교회’라고 함.(로마 16,5 참조) | 성당 문을 들어설 때 필요한 것 | 교회에 들어가기 위해선 속된 것을 떨쳐내고 하느님을 경배할 수 있는 정화의 마음가짐이 필요. 그 정화의 장소가 바로 성당 문. 새 성당 문 축복 기도 - “주님 간구하오니, 이 문을 통과하는 당신의 신자들이 당신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같은 성령 안에서 성부께로 나아가며, 당신 교회에 함께 모여 교회의 신앙을 통하여 신뢰하는 마음으로 사도들의 가르침을 항구히 따르며, 같이 성체성사를 나누어 모시며, 기도에 항구함으로써 나날이 천상 예루살렘 건설에 힘쓰게 하소서.”| 성당 문의 변화 | 예수님 시대 -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성체성사를 세우시며 첫 미사를 드린 곳은 일반 가정집의 큰 이층방.(루카 22,12) 사도 시대~313년 밀라노칙령 이전 - 로마 시대 여느 가정집과 별반 다름없는 일반 가옥에서 전례 거행. 문 오른쪽에 세례대가 있음. 4~6세기(바실리카) - 로마제국 공회당 본뜬 바실리카 성당 들어섬. 성당 문 앞 회랑식 나르텍스를 만들거나 아트리움(atrium, 안뜰)을 만들어 정화의 공간으로 사용. 로마 라테라노대성당과 이탈리아 밀라노 성 암브로시오 성당이 대표적. 6~10세기(비잔틴 시대) - 이 시기 성당 문은 앞에 있는 아트리움 대신 현관에 예비신자를 위한 나르텍스를 만들어 사용. 성 소피아 성당이 대표적. 10~12세기(로마네스크) - 처음으로 성당 문을 장식. 건축을 통해 영혼을 호소하던 성당에서 눈에 호소하는 성당 건축으로 변모. 종말론 확산으로 성당 문 전면에 최후의 심판 부조 장식. 재림한 왕이신 그리스도는 준엄한 심판자 모습으로 표현해 신자들의 성찰과 회개를 이끔. 프랑스 므와삭(Moissac)수도원 성당, 부르주대성당이 대표적. 12~14세기(고딕) - 성당이 높고 크게 지어지면서 성당 정문들이 늘어남. 일반적으로 가운데 문에는 최후의 심판, 오른쪽 문은 성모 마리아의 영면과 승천, 천상 모후의 관을 씀, 왼쪽 문은 성모님의 일생과 수호성인이 조각. 프랑스 생드니 성당과 파리 노트르담 대성당이 대표적. 14~16세기(르네상스와 종교개혁) - 로마네스크와 고딕 성당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엄숙하면서도 장엄하게 성당 문을 장식. 성당 문 앞 현관 형태의 나르텍스에 열주들로 장식. 성당 문이 5개까지 늘어남. 로마 성 베드로 대성당이 대표적. 트리엔트 공의회~현재 - 성당 문과 회중석 사이의 나르텍스 기능이 약해짐. 장엄하고 화려한 성당 문의 장식은 사라지고 전통만 유지. 로마 예수회 성당이 대표적 | 나르텍스란? | 나르텍스(narthex) : 성당 문과 그 앞의 회랑식 공간 또는 성당 문과 성당 안쪽 회중석 사이 공간. 성당 문과 함께 정화의 공간. 성당 문과 나르텍스를 회중석보다 어둡게 꾸밈. 신자들이 이 공간을 지나면서 몸과 마음을 가다듬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함. 신자들은 이 정화의 공간을 가로지른 후 성수대에서 성수를 찍어 십자 성호를 그으며 “주님, 이 성수로 저의 죄를 씻어주시고 마귀를 몰아내시며 악의 유혹을 물리쳐 주소서. 아멘”하고 기도. 성당 문 건축 용어? 뷰슈르(voussure,아치띠)?팀파눔 주위를 감싼 구조. 몇 겹의 아치띠 전체 구조는 아치볼트(archivolte)라고 함. ? 팀파눔(tympanum)?성당 정문 상부의 삼각형 혹은 반원형 공간 장식. 성경 장면으로 조각 ? 렝토(linteau, 상인방)?정문 입구 위에 수평으로 가로질러 놓인 석재 ? 에브라즈망(ebrasement, 좌우벽)?문틀 양쪽에 있는 조각된 벽 ? 피에드르와(piedroit, 버팀벽)?건축의 구조적 안정을 위해 건물 외벽에 덧댄 부벽 ? 트뤼모(trumeau, 조각 기둥)?상부 구조를 떠받치고 있는 문 한가운데에 있는 조각으로 된 기둥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문채현2018.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