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사목자를 찾아서] (6) 박정일 주교](//cpbc.co.kr/CMS/newspaper/2018/04/rc/717183_1.0_titleImage_1.jpg)
[원로사목자를 찾아서] (6) 박정일 주교“과감한 쇄신으로 그리스도 구원 전하는 착한 목자 돼야”박정일(미카엘, 92) 주교가 올해로 사제 수품 60주년을 맞았다. 주교품을 받은 지 41년째다. 그는 한국 가톨릭교회에서 여러 기록을 갖고 있다. 한국 교회에서 3개 교구(제주ㆍ전주ㆍ마산) 교구장을 지낸 유일한 주교다. 또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단독 추진한 124위 시복시성 소송 책임을 졌던 주교다. 그는 한국 교회에서 가장 먼저 ‘피데이 도눔’(Fidei Doum, 사제가 부족한 지역에 교구 사제를 한시적으로 선교사로 파견하는 제도)을 도입해 실천한 주교다. 그리고 한국 교회 사도좌 정기방문 및 세계성체대회에 가장 많이 참석한 주교다. 박정일 주교는 “늘 선교하고 사회 속에 현존하는 그리스도인이 돼 달라”고 당부했다. 2015년 3월 사도좌 정기방문 때 교황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한 박 주교는 “아무런 공로 없이 은퇴한 주교”라고 자신을 소개했다. 교황은 크게 웃으면서 “겸손하신 분”이라 화답했다. 박 주교는 겸손하고 소탈하다. 늘 웃는 얼굴로 사제들과 신자들을 대한다. 직접 컴퓨터로 만든 기도 상본을 만나는 사람마다 나눠주면서 매일 기도할 것을 당부한다. 그래서 때때로 그를 ‘무른 사람’으로 오해할 때도 있다. 하지만 그는 한 가지 목표를 세우면 결실을 볼 때까지 뚝심 있게 추진하는 ‘호시우행(虎視牛行, 눈은 호랑이처럼 예리하게, 행동은 소처럼 성실하게)’형 인물이다. 사제 수품 60주년을 맞은 박정일 주교를 4일 경남 창녕 나자렛 예수 수녀원에서 만났다. ▶사제품을 받은 지 올해로 60년이 됐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다 “1958년 11월 23일 로마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수품 성구는 ‘나 주님의 자비를 영원토록 노래하리라’(시편 89,2)이다.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에는 ‘저는 주님의 자애를 영원히 노래하오리다’로 돼 있다. 나같이 부족한 사람을 사제로 뽑아주신 주님의 자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 시편을 선택했다.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아니었다면 부족한 제가 60년 동안 사제로 살아올 수 없었을 것이다. 저를 위해 기도해준 모든 이에게 감사드리고 특히 하느님께 깊은 감사를 드린다.” ▶로마에서 유학했을 당시는 어땠는지 “6ㆍ25 전쟁이 한창이던 1952년 봄 당시 피란 온 신학생들이 부산 영도의 임시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는데 학장이 로마로 유학을 가라고 했다. 교황청이 전 세계 교회와 전교 지방 신학생들을 교육하기 위해 1623년 설립한 우르바노대학교에 입학해 철학 3년, 신학 4년 과정을 마치고 철학과 신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당시 우르바노신학교는 규율이 매우 엄격했다. 울타리 속에 갇혀 사는 곳이었다. 모든 수업은 라틴어로 진행됐고, 자는 시간 외에는 항상 수단을 입어야 했다. 방학 때도 집에 가지 못하고 신학교 별장에서 함께 기숙 생활을 해야 했다. 신문은 물론 라디오도 들을 수 없었다. 로마에서 10년을 살면서 한국에 전화 한 번 할 수 없었고, 동생이 보내온 편지 1통을 받아 보았을 뿐이었다.” ▶로마에서 신학뿐 아니라 사회학도 공부했다는데 이유가 있나 “우르바노신학교에선 철저한 복음 선포 의식을 배웠다. ‘한번 우르바노 신학생은 영원한 선교사’는 표어를 늘 자랑스럽게 외치곤 했다. 성모 신심을 몸에 익혔다. 우르바노대를 졸업하고 운 좋게 장학금을 받고 그레고리오대학교와 안젤리쿰(성 토마스 아퀴나스 대학교)에서 1년씩 사회학을 공부할 수 있었다. 사제품을 받고 나서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다. 사회학을 주제로 박사 논문을 준비하고 있을 때 당시 부산교구장 최재선 주교가 사제가 부족하니 빨리 귀국하라고 해서 박사 과정을 포기하고 1962년 귀국했다.” ▶덕원신학교 출신으로 알고 있다 “나는 평남 평원군 출신이다. 1950년 12월 월남할 때까지 북한에 있었다. 1926년 12월생이니 24년을 북한에서 살았다. 평양교구 영유본당 출신으로 서울대교구 백민관 신부와 고향 동기다. 어머니 반대로 중학교 졸업 후 신학교에 바로 들어가지 못하고 1945년부터 3년간 초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당시 움직일 수 없을 만큼 심하게 앓자 어머니가 ‘신부가 되지 못해 병이 났다’며 신학교 입학을 허락했다. 그래서 1948년 9월 덕원신학교에 입학했지만, 이듬해 1949년 5월 7일 북한 공산 정권에 의해 신학교가 폐쇄됐다. 귀가 명령을 받고 평양교구청에 와 보니 교구장이던 홍용호 주교도 체포돼 행방불명 상태였다.” ▶귀국 후 부산교구로 입적했다 “평양교구 소속으로 사제품을 받았다. 귀국할 때 유재국ㆍ장덕범 신부와 함께 부산교구에 입적했다. 당시에는 사제품을 받고 바로 주임 신부로 발령을 받았는데 평양교구 출신 셋은 부산교구에서 처음으로 1년 넘게 보좌 생활을 했다. 이후 1964년 문산본당 주임으로 발령받아 사목하고 있을 때 마산교구가 설정됐다. 문산 사목구가 마산교구로 편입되면서 마산교구 사제로 입적됐다. 이후 1970년부터 대건대신학교(현 광주가톨릭대) 교수로 윤리신학과 사회학을 가르쳤다.” 박정일 주교는 1977년 4월 15일 바오로 6세 교황에게 초대 제주교구장으로 임명됐다. 그해 5월 31일 제주 중앙성당에서 주한 교황대사 루이지 도세나 대주교에게 주교품을 받았다. 주교 수품 성구는 ‘충성과 온유’(집회 45,4)였다. 박 주교는 제주교구장 착좌 후 “앞으로 제주교구가 하느님께 대한 믿음과 충성이 두터운 교회, 그리고 사회 속에 현존하는 교회가 되도록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사목 이념을 밝혔다. 그가 약속한 ‘사회 속에 현존하는 교회’는 제주교구의 전통이 됐다. 박 주교는 5년간 제주교구장으로 사목하다 1982년 요한 바오로 2세에게서 제6대 전주교구장으로 임명됐다. 박 주교는 전주교구장 시절이 가장 잊지 못할 시기라고 했다. ▶전주교구장 시절이 각별한 이유는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과 1987년 교구 설정 50주년을 준비하면서 많은 일을 했다. 그중 가장 보람된 것은 한국 교회에서 처음으로 피데이 도눔 선교사를 남미 페루에 파견한 일이었다. 한국 교회가 성숙한 교회답게 새로운 출발을 할 때라고 인식했다. 그래서 교구 사제들에게 보편 교회에 이바지하는 선교 활동에 동참하자고 호소했다. 당시 정승현ㆍ방의성ㆍ김윤섭 신부가 피데이 도눔을 자원했다. 이들이 밀알이 돼 현재 서울, 대구, 수원, 대전, 원주, 춘천 등 많은 교구 사제들이 남미와 아프리카에서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천호성지와 치명자산 성지를 조성한 게 기억에 남는다.” ▶124위 시복시성 운동의 책임을 맡았다 “전주교구장으로 6년간 활동하다 1988년 마산교구장으로 임명됐다. 103위 시성 이후 전주교구장으로 있을 때 초기 순교자 시복 청원을 준비했었다. 1999년 주교회의 의장으로 선출된 후 주교회의 산하에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를 조직하면서 주교들의 동의로 위원장이 됐다. 11년간 위원장으로 활동했다. 당시 마산교구장이었기에 교회법에 따라 마산교구장이 책임을 맡아 시복 대상자를 선발하고 시복예비심사 재판을 이끌었다. 지금도 시성 절차법에 따라 조선 왕조 치하 순교자들에 대한 시복 책임은 마산교구장이 지고 있다. 시복시성주교특위 위원장도 마산교구장의 위임을 받아 추진한다. 124위 복자가 한 명도 탈락하지 않고 2014년 모두 복자품에 올라 너무 기쁘다.” ▶나자렛 예수 수녀회와는 어떤 인연이 있나 “나자렛 예수 수녀회는 마산교구에서 처음으로 설립한 수도회다. 가장 가난한 사람들을 돌보기 위해 설립됐다. 홀몸노인과 매 맞는 여성, 갈 곳 없는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수녀원은 지은 지 30년이 넘은 폐교를 수리해 쓰고 있다. 곳곳에 비가 새고 건물이 낡다 보니 수녀들이 병에 걸려 많이들 아프다. 요즘 나의 제일 큰 걱정이기도 하다.” 2002년 마산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은퇴한 박정일 주교는 “교회는 늘 선교해야 하고, 사회 속에 현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순교자의 영성과 순교 정신을 기반으로 한 올바른 정신 자세와 자기 쇄신의 태도, 시대의 표징과 사람들의 필요를 재빨리 파악하는 감수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박 주교는 한국 교회의 사제들에게 “내적으로 과감한 쇄신을 이뤄 겨레가 갈망하는 그리스도의 구원을 가져다주는 착한 목자가 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 cpbc2018.04.12

사순시기, 책 속으로 떠나는 신앙 여정유경촌 주교와 정미연 화백의 사순 묵상집-한민택 신부, 사순시기의 올바른 의미 쉽고 재미있게 풀어 그리스도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회개하고 보속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시기는 사실상 금욕과 단식, 자선과 봉사의 40일 이상의 의미를 지니는 ‘정화’의 시기이자, 하느님과 이웃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때이다. 이 시기를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뒤에 찾아올 부활의 의미도 달라진다. 재의 수요일(2/14)부터 시작하는 사순시기를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묵상하며 지내며 예수 부활을 맞아야 할지 안내할 신간들이 나왔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사순, 날마다 새로워지는 선물 유경촌 주교 글, 정미연 그림 / 가톨릭출판사 / 1만 원주교는 글을 쓰고, 화가는 붓을 들었다. ‘사순시기 신자들에게 깊은 뜻깊은 여정을 선사해 주자’고 뜻을 같이한 주교와 화가의 만남이 사순시기 신자들에게 영적 교훈을 전하는 새 묵상집 출간으로 이어졌다.“우리가 죽는 순간까지 유혹과 싸워야 한다면, 어쩌면 우리의 인생 전체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정화하고 준비하는 시간이자 자리라고 할 수 있습니다.”(유경촌 주교)「사순, 날마다 새로워지는 선물」은 유경촌(서울대교구 보좌) 주교와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화백이 합심해 내놓은 사순 묵상집이다. 재의 수요일부터 5주간의 사순시기를 넘어 성주간과 부활에 이르는 길에 주교와 화가가 함께 걸으며 내놓은 영적 길잡이다. 2004년 출간해 100만 부 이상 판매됐던 「내가 발을 씻어 준다는 것은」의 개정 증보판이다. 유 주교의 새 묵상글 10여 꼭지가 더 실렸고, 정 화백의 그림은 모두 새로 제작됐다.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와 솔직한 자기 고백이 담긴 유 주교의 묵상글은 믿음을 향한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막상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하느님께 무언가 바라고 억지를 부리고만 싶은 심정은 사순시기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이에 유 주교는 “남에게 베푸는 만큼이 바로 내가 받을 선물의 크기”이며 사순시기는 말과 행동 불일치의 간격을 들여다봐야 하는 때라고 전한다. 유 주교는 사제가 될 때 “주님의 요구가 무엇인지 알고 있으며 그분과 동고동락하겠다”고 다짐했던 자신의 고백도 들려준다.정미연 화백은 늘 하느님 뜻에 탄복하고, 그것을 신자들과 교류하는 성미술가다. 2015년 1년간 서울대교구 주보 표지화 작업과 가톨릭평화신문 ‘정미연 화가의 그림으로 읽는 복음’을 동시에 선보이며 한 해에만 수백 점의 성화를 그려내고, 때마다 초대형 성화 작품 전시를 여는 등 성미술에 몰두해온 지도 20여 년째. 올해에도 쉴 틈 없이 2년째 대구대교구 주보 1면 성화를 그리고 있는 그는 매주 ‘마감의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새 묵상집 제작을 위해 미리 사순시기를 보냈다.정 화백은 “하느님께서 제 손을 잡고 붓을 움직여주셨다는 것을 느꼈다. 그때마다 주님은 기적처럼 깨우침과 선물을 주셨다”며 두 달 만에 묵상집 작품 47점을 완성시킨 과정을 전했다. 출판사와 유 주교에게 사순 묵상집 제작을 먼저 제안한 것도 정 화백이었다. 그의 작품들은 독자들을 깊은 묵상으로 안내한다. 사람들이 하느님께 오르기 위해 주님 성상을 맞잡아 끌고, 가장 높은 곳에 계시는 하느님의 눈길이 우리를 이끄는 성화들이 등장한다. 정 화백은 책과 함께하는 ‘영적 피정’을 제공하고자 사순시기 중인 3월 14~25일 서울 주교좌 명동대성당 지하 1898갤러리와, 3월 28~4월 10일 대구 범어대성당 드망즈갤러리에서 작품 전시회를 개최한다.내맡기는 용기 한민택 신부 지음 / 생활성서 / 1만 원“사순시기는 그간 나의 정신과 영혼을 잠식시켜 온 ‘불필요한 것들’을 돌아보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여정으로 인도하는 길에 온전히 맡기는 때입니다. 자선과 금욕의 외적인 신앙 행위와 함께 나를 비우는 내적인 쇄신 또한 중요한 시기죠.”‘열린 교회’, ‘열린 신학’을 지향하는 한민택(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가 사순의 올바른 의미를 쉽고 재미있게 풀어쓴 「내맡기는 용기」를 펴냈다. 지난해 삶 속에서 하느님을 찾는 방법을 일깨워준 「하느님과 숨바꼭질」을 낸 지 1년도 채 안 돼 선보이는 사순ㆍ부활 서적이다.수원가톨릭대에서 만난 한 신부는 “제목 ‘내맡기는 용기’는 다른 말로 ‘포기의 용기’와 같은 말”이라며 “하느님의 부드러움에 자신을 포기하는 것은 열린 미래를 맞닥뜨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수많은 고통과 어려움, 선택으로 일관된 현실에서 우리가 존재 깊은 곳에서부터 나오는 긍정이 하느님 신비로 들어가는 ‘영적 출입구’라는 것이다. 한 신부는 “그분은 찾아야만 만날 수 있다”면서 “우리는 ‘현대의 동방박사’가 돼야 한다”고 덧붙였다.한 신부의 표현은 간결하고도 분명하다. 한 신부는 책에서 “신앙은 마술이 아니다. 각자의 바람이 나만의 시각으로 욕심을 채우려 한 간청임을 자각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느님을 ‘호주머니 속의 동전’으로 만들어버릴 위험이 있다”고 지적한다. 하느님은 불러내면 다 이뤄주는 ‘알라딘의 램프’가 아니라며 고착된 신앙관도 뒤집어준다.한 신부는 또 내가 하는 말의 겉과 속이 다르고, 내가 베푼 선행이 남에게 잘 보이기 위한 위선 섞인 ‘관리된 얼굴’이 아닌지를 묻는다. “하느님과 화해하기 위해선 하느님을 속일 이유도, 속일 수도 없다”며 “내가 상처로 얼마나 힘겨워하는지, 얼마나 나약한지 인정할 때 하느님과의 시간은 질적으로 달라진다”고 일러준다. 아울러 고해성사 때에도 ‘죄의 목록’을 작성하기보다 그간 하느님께 받은 사랑이 얼마나 되는지 돌아보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전한다. 그래야 ‘나만의 색안경’에서 빠져나와 ‘하느님의 눈’을 닮을 수 있기 때문이다.책은 예수님이 걸으신 여정, 강생의 신비가 주는 참된 은총이 무엇인지 일깨우도록 신앙생활 전반을 점검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한 신부는 “부활의 영광은 결코 담배를 끊고, 절제하고, 고해성사 본 뒤에 주어지는 기쁨에 국한하지 않는다”며 “예수님이 걸으신 길, 그것이 곧 참사랑이었음을 느끼고 새 희망과 은총에 내맡기는 여정이 돼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한 신부의 북콘서트는 3월 15일 목요일 오후 7시 30분 강북구 덕릉로 42길 57-4 생활성서사에서 열린다. 백영민2018.01.31
빛과 소금의 길 돌아보며 주님 사랑에 감사 춘천교구 속초 교동본당 50년
춘천교구 교동본당 설립 50주년 감사 미사에서 김운회 주교와 사제단이 미사를 공동집전하고 있다. 춘천교구 문화홍보국 제공 춘천교구 속초 교동본당(주임 김광근 신부)은 10일 성당에서 교구장 김운회 주교 주례로 본당 설립 50주년 감사 미사와 축하식을 거행했다.이날 미사는 역대 주임 사제와 출신 사제 등 20여 명이 공동 집전했으며, 미사 중에는 본당 설립 50주년을 기념해 신자들이 쓴 성경 필사본과 묵주기도 50만 단, 50주년 감사 기도문 등이 봉헌됐다.김운회 주교는 축사에서 “희년을 맞이한 교동본당 공동체가 이웃을 서로 용서하고 화해하는 삶, 늘 하느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기를 바란다”며 “반세기 주님 사랑을 감사하고자 자리를 마련해준 신자들에게 격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고 말했다.교동본당은 1967년 속초 동명동본당에서 분리, 설립됐다. 본당은 이듬해 학업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학생들을 위해 안토니오 학원을 설립해 지역 청소년을 도왔다. 1990년부터는 한국인 사제가 부임했으며 1991년에는 신자 가정 방문과 면담을 통해 교무금을 책정, 경제적 자립도 이뤄냈다. 1992년 설립 25주년을 기념해 성모상, 성모서원, 안당의 집 등을 마련했으며 안당의 집에서는 한글교실과 교리교실이 열리기도 했다. 1997년에는 지역 복음화를 위해 통일 전망대에서 영북지역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합동 미사에 참여해 최전방에 자리한 지역민의 통일 염원을 함께 기도했으며, 그해 본당 30년사 책자를 발간하기도 했다. 올해 50주년을 맞아 사진전, 기념 음악회, 특강, 축제 미사와 대잔치 등을 마련해 의미를 더욱 새겼다.주임 김광근 신부는 “오늘의 자리가 50년을 추억하고, 동시에 그간의 하느님 사랑에 감사드리며 앞으로 거듭나는 각오를 다지는 자리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7.06.14
![[평화칼럼] 촛불혁명 1년, 적폐를 넘어서야](//cpbc.co.kr/CMS/newspaper/2017/10/rc/699531_1.0_titleImage_1.jpg)
[평화칼럼] 촛불혁명 1년, 적폐를 넘어서야윤재선(레오, 보도총국장) 세월은 인간의 망각을 부추긴다. 1년 전의 망각을 일깨우는 건 언제 되살아날지 모르는 ‘촛불’의 힘이다. 광장에 모인 시민들 함성의 긴 여운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벌써 1년이 다 되었다. 2016년 10월 29일을 회상한다. 이른바 최순실 국정 개입 파문이 있고 난 후 첫 주말 촛불 집회였다. 서울 광화문 광장과 도심 주변에 삼삼오오 몰려든 시민들. 그들은 평범했다. 가을 날씨치고는 무척이나 쌀쌀했던 그날, 터질 듯이 답답하고 놀라버린 가슴은 쌀쌀함에 비할 데가 아니었다. 성난 민심은 ‘박근혜 하야’를 외쳤다. 거부하면 탄핵까지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오기도 했다. 촛불은 그렇게 100만, 200만을 넘어 전국 각지로 퍼져나갔다. 대통령 박근혜는 올해 3월 10일 결국 파면됐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전원의 일치된 의견으로. 피고인 박근혜가 구속 수감된 건 올해 3월 30일이다. 그날은 3년간 바닷속에 가라앉아 있던 세월호가 목포 신항에 도착하면서 마지막 항해를 마친 날이기도 하다. 세월호 3주기를 하루 앞둔 올해 4월 15일 주말, 시민들은 촛불을 내려놓았다. 탄핵에 이르기까지 제 몸을 기꺼이 사른 ‘촛불’들은 국민이 주권자임을,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임을 다시금 일깨웠다. 촛불은 ‘혁명’이었고 ‘희망’이었고 ‘평화’였다. 돌이켜보면 ‘촛불혁명’의 전조(前兆)는 어쩌면 지금으로부터 13년 전에 있었는지도 모른다. 시계추를 2004년 3월 12일로 돌려보자. 제16대 대통령 노무현에 대한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대한민국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탄핵의 주역은 당시 야당인 한나라당과 새천년민주당이었다. 국회의원 신분으로 한나라당 대표였던 박근혜는 팔짱을 낀 채 옆에 있던 서청원 의원과 함께 당시 국회 광경을 지켜보며 환하게 웃었다. 투표를 마치고 난 뒤에는 해맑은 표정으로 국회를 나서는 모습이 TV 카메라에 포착되기도 했다. 탄핵을 반대하는 국민 여론이 압도적으로 많았지만 이를 무시하고 탄핵을 밀어붙인 결과는 참담했다. 그해 실시된 총선에서 유권자인 국민은 한나라당에 참패를 안기면서 민주주의 준엄함을 보여 주었다. 세월의 간극을 뒤로하고 대통령이 됐지만 국민은 무능하고 오만했던 그를 평화와 연대의 상징인 촛불로 심판했다. 자업자득이라고 해야 할까. 지금의 ‘수인번호 503 박근혜’는 그래서 이 시대를 사는 우리 모두에게 반면교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촛불혁명으로 문재인 정부가 탄생한 이후 정치권은 적폐 청산을 두고 연일 으르렁거리고 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국가정보원과 군 사이버사령부의 민간인 사찰과 댓글부대 운영, 세월호 참사 진실 은폐 의혹 등은 검찰 수사를 통해 진실을 향한 항해를 계속하고 있다. 성경 말씀처럼 ‘숨겨진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지기 마련이다.’(루카 12,2) 정치 공작이니 보복이니 거짓 선동이니 하는 말 따위로 국민의 공감을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뭔가 크게 착각하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촛불혁명의 의미와 정신을 깨닫지 못하는 우매함에 다름아니다. 시대 징표를 읽으려 하지 않고, 진실을 애써 감추고 덮으려는 무모함과 비겁함이 퇴행적 사고가 아니고 무엇이던가. 과거 잘못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반성, 방향 전환 없이는 ‘꼴통 보수’라는 조롱과 비난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문재인 정부 역시 적폐 청산을 넘어 국민 삶의 실질적 변화를 이끌어내지 못한다면 ‘얼치기 진보’라는 딱지를 떼어내기 힘들 것이다. 국정감사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국감이 끝나고 열흘 뒤면 문재인 정권 출범 반년이다. 촛불의 기억은 이제 보통 사람들의 일상의 행복을 지켜 줄 수 있는 정치로 되살아나야 한다. 평화신문2017.10.25
![[성경 속 도시] (65) 예루살렘 (하)](//cpbc.co.kr/CMS/newspaper/2015/10/rc/598943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65) 예루살렘 (하)정복·파괴·건설의 역사가 쳇바퀴처럼 험난한 구세사의 역사를 지닌 예루살렘 전경. 고고학적으로 예루살렘은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석기 시대부터 인류가 정착한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예루살렘에는 기원전 4000년경부터 사람이 살았으며, 기원전 3000~2000년경에는 제법 큰 도시를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루살렘은 이스라엘의 모든 생활 문화의 중심지요 위대한 왕의 성읍이었다. 그러나 강대국 사이에 있었던 예루살렘은 역사적인 우여곡절을 겪으며 수 세기 동안 정복당하고 파괴되며 다시 건설되기를 반복했다. 성경에서 예루살렘의 역사를 보면 이스라엘의 가나안 정복 직전 여부스족이 예루살렘에 거주했으나 베냐민과 유다 지파에 의해 일시적으로 점령됐다(판관 1,8). 그런데 이스라엘 민족은 여부스족과 함께 거주했다. “벤야민의 자손들은 예루살렘에 사는 여부스족을 쫓아내지 않았다. 그래서 여부스족이 오늘날까지 예루살렘에서 벤야민의 자손들과 함께 살고 있다”(판관 1,21).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발전했던 다윗 시대에 예루살렘은 완전히 정복, 통일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가 됐다(1역대 11,7). 이어 솔로몬에 의해 요새로 강화되고 성전이 건립됐다(1열왕 9,15).예루살렘은 남쪽 유다의 르하브암 왕 때 이집트 왕 ‘시삭’의 침입을 받았다(2역대 12,2). 또 유다 임금 아마츠야 때 북이스라엘 왕 여호아스로부터 공격을 받기도 했다.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는 아하즈야의 손자이며 요아스의 아들인, 유다 임금 아마츠야를 벳 세메스에서 사로잡아 예루살렘으로 데리고 왔다. 그리고 ‘에프라임 성문’에서 ‘모퉁이 성문’까지, 예루살렘 성벽 사백 암마를 무너뜨렸다”(2역대 25,23). 그리고 예루살렘은 기원전 586년 바빌론 왕 느부갓네살에게 함락된 뒤 약 70년간 황폐한 채로 바빌론 총독의 지배를 받았다(예레 25,11).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포로들이 귀환해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시작했다(에즈 1,2). 그러다 기원전 333년에는 마케도니아 알렉산더 대왕이 예루살렘을 정복했다. 기원전 63년에는 로마의 폼페이우스에 의해 정복당하고, 기원후 70년 로마 장군 티투스에게 예루살렘은 함락됐다. 제2차 유다전쟁(135년) 때 하드리아누스는 다시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예루살렘 성전 자리에 주피터 신전을 건설하고 골고타 언덕 위에는 비너스 신전을 지어 유다교와 그리스도교를 동시에 말살하려 했다.그러나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에 의해 그리스도교가 공인되면서 예루살렘은 각광을 받고 그리스도교의 중심 도시로 재건됐다. 그러다가 무슬림들이 637년에 예루살렘을 정복하기 위해 예루살렘으로 진격했다. 1099년 십자군 군사들이 정복할 때까지 예루살렘은 이슬람 도시로 인식됐으며, 1517년에 투르크 족이 예루살렘에 침입해 도시의 성벽을 세웠다.예루살렘은 이슬람과 십자군의 몇 차례에 걸친 탈환 전쟁의 소용돌이에 휩싸였다. 1917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 직전까지 터키의 지배를 받다가 1923년 영국의 위임 통치를 거쳐 제2차 세계대전 후 이스라엘의 수도가 됐다. 예루살렘은 길고 험난한 구세사의 역사를 지니고 있는 도시이다. 성벽과 길바닥의 돌 하나하나가 수천 년의 역사를 증언하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10.20

요셉 성인은 누구인가 - 성가정 위해 온전히 헌신한 ‘아버지’성 요셉 성월과 성 요셉 대축일(20일)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돌보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바르톨로메 무리요 작 ‘성가정’, 1650, 스페인 마드리드, 프라도미술관. 교회는 매년 3월을 ‘성 요셉 성월’로 지낸다. 그리고 20일은 한국 교회의 공동 수호자 동정 마리아의 배필 성 요셉 대축일이다. 성 요셉 대축일은 원래 19일이나 올해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을 묵상하고 준비하는 사순 제3주일과 겹쳐 20일로 옮겨 경축한다.예수 그리스도의 양아버지인 요셉 성인은 하느님의 영원한 계획이 이뤄질 수 있도록 충실한 도구로 선택돼 성가정을 돌봤다. 요셉 성인에 관한 성경 구절은 예수의 어린 시절을 다룬 마태오복음 1─2장과 루카복음 1─2장뿐이다. 외경 작품들에는 요셉 공경에 대한 내용이 많다. 성경에 그에 대한 언급이나 내용은 별로 없지만, 신앙적으로 보면 요셉은 참으로 많은 일을 남모르게 실천했다. 다윗 왕가의 후손인 요셉은 나자렛에서 목수 일을 했고 의인으로 존경받았다. 약혼자 마리아가 임신하자 파혼하려 했지만, 성령에 의한 잉태라는 사실을 알게 되면서 마리아를 아내로 받아들였다. 요셉은 부모로서 아기 예수가 할례를 받도록 하고 아들을 예루살렘 성전에 봉헌했다. 헤로데의 박해를 피해 이집트로 피난 생활을 해야 했다. 예수가 12살 되던 해에 예수,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 순례를 갔다가 예수를 잃었으나 아들이 학자들과 이야기하는 모습을 보고 놀라기도 했다.요셉(Joseph)은 ‘하느님을 돕다’, 곧 ‘돕는 사람’이라는 뜻으로, 예수 시대에 매우 흔한 이름이었다. 요셉의 인생은 성실하게 돕는 이의 삶이었다. 요셉은 먼저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가정을 보호했다. 정결한 남편으로서 동정을 원하는 마리아를 아내로 맞아들여 끝까지 지켜줬다. 자기 희생과 봉헌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요셉은 또 예수의 양부로 아버지 역할을 성실하게 다했다. 예수가 공생활에 나서기 전 30년 동안 예수를 보살피고 가르쳤다. 성경은 “예수님은 부모와 함께 나자렛으로 내려가, 그들에게 순종하며 지냈다. 그의 어머니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였다.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루카 2,51-52)고 기록하고 있다. 어린 예수의 지혜와 키를 자라게 한 이가 요셉이다. 이처럼 요셉 성인은 성가정의 수호자로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를 보호하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3월 19일이 요셉 성인의 축일로 자리 잡은 것은 12세기 무렵이다.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이 비교적 늦게 시작된 것은 그의 역할이 성모 마리아만큼 명확하지 않아 전례력으로 받아들여지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12세기 예루살렘 성지를 이슬람에게서 되찾고자 했던 십자군은 요셉 성인을 공경하고자 나자렛에 성당을 세웠다. 이후 요셉 성인에 대한 공경과 축제는 주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를 통해 유지되고 전파됐다. 작은형제회 출신 식스토 4세 교황은 15세기 말 요셉 성인의 축일을 모든 교회로 확산시켰다.1870년 비오 9세 교황은 성 요셉을 교회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1889년 레오 13세 교황은 요셉을 가장의 모범으로 선포하면서 성인들 가운데 성모 마리아 다음의 위치로 올렸다. 교황은 “성 요셉은 가족들에 대한 보호와 배려의 산 표본”이라면서 “아내들에게는 사랑, 마음의 일치, 충실함의 모범이고, 미혼자, 독신자, 수도자ㆍ성직자에게는 정결의 이상이며 수호자”라고 밝혔다. 이어 “성 요셉은 마리아의 남편이요 예수의 아버지이므로 가톨릭 교회의 가장권을 가지고 계신다”고 했다. 비오 11세 교황은 성 요셉을 공산주의와 싸우는 영적 투쟁의 보호자이며 사회 정의의 수호성인이라고 불렀다. 1955년 비오 12세 교황은 공산주의의 5월 축제에 맞서고자 5월 1일을 ‘노동자들의 수호자 성 요셉 축일’로 정했다. 요한 23세 교황은 성 요셉을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보호자로 지정하고 1962년 감사기도 제1 양식에 그의 이름을 넣었다. 성 요셉은 목수, 임종하는 이들, 노동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평화신문2017.03.15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8) 고기잡이 기적 - 어부를 제자로 부르심(5,1-11)](//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5174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8) 고기잡이 기적 - 어부를 제자로 부르심(5,1-11)주님의 부르심에 죄인임을 고백한 시몬 베드로 요르벨 산 정상에서 내려다본 갈릴래아 호수. 왼쪽에 기노사르 평야가 펼쳐져 있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루카는 5장을 시작하면서 서로 연결된 두 가지 중요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고기를 많이 잡게 하신 기적과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부르신 일입니다(5,1-11). 이번 호에서는 본문을 차례로 따라 읽어 내려가면서 함께 생각해 봅니다. 갈릴래아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전하시던(4,44) 예수님께서 어느날 겐네사렛 호숫가에 나타나십니다. 이미 예수님의 소문은 주변에 퍼졌을 테고(4,37), 그래서 예수님을 보러 아니면 그분의 가르침을 들으러 군중이 몰려왔을 것입니다. 루카는 군중이 예수님께 몰려들어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을 때 예수님께서 호숫가에 대어놓은 배 두 척을 보셨는데, 어부들은 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고 전합니다.(5,1-2) 군중이 들은 하느님의 말씀은 무엇일까요? 루카는 여기에서 구체적으로 언급하지 않습니다만,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4,43)에 관한 말씀인 것이 분명한 듯합니다. 배 두 척이 호숫가에 대어져 있고 어부들이 배에서 내려 그물을 씻고 있었다는 것은 어부들이 고기잡이를 마쳤음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 두 척의 배 가운데 시몬의 배에 오르시고는 시몬에게 뭍에서 조금 떨어지도록 배를 저어 나가 달라고 부탁하십니다. 그러고 나서는 배에 앉으시어 군중을 가르치십니다.(5,3) 아마 서서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시다가 피곤하셨는지 모르겠습니다. 시몬은 이미 카파르나움의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보았습니다. 장모의 열병을 낫게 해주셨고, 많은 병자들과 마귀 들린 사람들을 고쳐 주신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4,38-41 참조). 그러니 배를 뭍에서 조금 떨어지게 저어 나가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당연히 따를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말씀을 마치신 예수님께서는 시몬에게 “깊은 데로 저어 나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아라”하고 이르십니다. 그러자 시몬이 이렇게 대답하지요. “스승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잡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스승님의 말씀대로 제가 그물을 내리겠습니다.”(5,4-5) 인간적으로만 생각하면 시몬은 예수님의 분부가 마뜩잖았을 것입니다. 시몬은 고기잡이가 주업인 어부였습니다. 게다가 간밤에는 밤새도록 애썼지만 허탕이었습니다. 그러니 몸도 더 피곤했을 것입니다. 그물도 다시 손질해 놓은 상태였습니다. 그런데 어부와는 거리가 먼 랍비 예수님, 우리 식으로 말하자면 선비 같은 예수님이 자기 배에 올라 뭍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가라고 하시더니 이제는 깊은 데로 저어 나가 그물을 내려 고기까지 잡으라고 하시니 기분이 썩 좋을 리는 없었을 것이 분명합니다.그렇지만 시몬은 “스승님…” 하면서 말씀대로 따릅니다. 성경학자들은 여기에 나오는 ‘스승님’이라는 표현은 일반적으로 ‘선생님’ 하고 존경을 표시하는 것보다 예수님의 권위를 훨씬 부각시키는 표현이라고 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었고(4,32.36 참조), 시몬 또한 이를 깨달았기 때문은 아닌지요. 그렇다면 ‘스승님’ 표현은 어쩌면 무림에서 스승을 높여 부르는 ‘사부님’이라는 표현과 비슷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어쨌거나 예수님께서 시키시는 대로 시몬이 하자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물고기를 잡게 된 것입니다. 시몬은 자기 배로는 어찌해 볼 도리가 없자 동료들을 부릅니다. 두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그렇게 많은 고기가 잡힌 것입니다.(5,6-7) 그것을 보고 놀란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의 무릎 앞에 엎으려 이렇게 말합니다. “주님,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5,8) 고기가 많이 잡혔을 뿐인데 왜 시몬 베드로는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자신은 죄가 많다고 고백했을까요? 시몬은 이미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카파르나움에서 보았습니다. 그렇지만 고기잡이에서만큼은 자신이 예수님보다 낫다고 생각하고 예수님 말씀에 거역하지는 못했지만 속으로 투덜거렸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엄청난 고기가 잡히니 두려움에 사로잡혔다고 봐야겠지요. 그러면서 순간적으로 자신의 왜소함, 비천함에 고개를 들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이제 시몬은 진정으로 예수님의 권위에 승복합니다. 고기를 잡기 전에는 “스승님”이라고 불렀다가 갑자기 “주님”이라고 으로 호칭이 바뀐 것이나, “저는 죄 많은 사람입니다”라는 고백이 이를 뒷받침합니다. 어떻습니까. 이렇게 볼 때 시몬의 모습은 바로 우리 자신의 모습과 닮지 않았는지요? 그런데 놀란 사람은 시몬만이 아니었습니다. 동업자들인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로 놀랐습니다. 그런데도 엎드려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고백한 사람은 시몬 한 사람뿐입니다. 게다가 루카는 시몬 베드로라는 이름까지 덧붙입니다.(5.8) 그 이유는 무엇일까요? 케파 곧 바위라는 뜻의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시몬에게 붙여주신 이름입니다.(루카 6,14) 마태오복음에 따르면, 예수님께서는 시몬의 신앙 고백을 들으신 후 그를 교회의 기초로 삼으신다는 말씀을 하시면서 시몬에게 베드로라는 이름을 주십니다(마태 16,18 ; 요한 1,42 참조). 그렇다면 ‘저는 죄인이니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라는 시몬 베드로의 고백은 시몬 한 사람의 고백이 아니라 시몬을 기초로 하는 공동체 전체를 대표하는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몬의 고백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이제부터 너는 사람을 낚을 것이다.”(5,10) 예수님의 이 말씀에 시몬뿐 아니라 야고보와 요한까지도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5,11)고 루카는 전합니다. 생각해봅시다 : 시몬 베드로를 비롯한 제자들을 부르신 예수님께서는 오늘도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주님의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고 있는지요? 알아둡시다 : 갈릴래아 호수루카가 겐네사렛 호수라고 부르는 호수는 갈릴래아 호수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겐네사렛이라는 이름은 호수 서북쪽 고을과 평야 이름이 그리스말로 ‘겐네사렛’(히브리말로는 기노사르)이어서 나왔다고 합니다. ‘티베리아’라는 명칭은 호수 서안에 갈릴래아의 영주 헤로데 안티파스가 세운 도시 이름이 ‘티베리아스’라는 것과 관련됩니다. 요르단강 상류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받아 하류로 보내는 역할도 하는 갈릴래아 호수는 바다처럼 커서 유다인들은 호수가 아닌 ‘바다’라고 불렀다고 합니다.(마르코복음과 마태오복음에서도 그리스어 사본에서는 ‘바다’로 표기하고 있지만 우리말 번역 ‘성경’에서는 통일성을 주기 위해 모두 ‘호수’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크기가 얼마나 될까요? 호수 남북의 길이는 약 20㎞ 동서의 길이는 약 12㎞, 둘레는 52㎞로, 호수 넓이로 보면 약 170㎢입니다. 여의도 면적의 20배에 이릅니다. 호수 서북쪽의 겐네사렛(기노사르) 평야를 거쳐 북쪽으로 올라가면 헤르몬 산이 있고 호수 동쪽으로는 골란 고원이 이어집니다. 겐네사렛, 타브가, 카파르나움, 코라진, 벳사이다, 게라사(쿠르츠), 막달라 등 성경에 나오는 갈릴래아 지방 도시(고을)들이 이 호수를 끼고 있어서, 갈릴래아 호수는 오늘날 성지순례객들이 꼭 찾아가고 배도 한 번 타보는 지역입니다. 백영민2017.06.14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1) 십자고상 (중) 6~8세기](//cpbc.co.kr/CMS/newspaper/2018/03/rc/713259_1.0_titleImage_1.jpg)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1) 십자고상 (중) 6~8세기 십자가 예수님의 부르짖음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시리아 에데사 교회 라불라 주교의 복음서 필사본 중 일부, 6세기, 이탈리아 피렌체, 라우렌시아나도서관. 로마 카피톨리노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 사이에는 고대 로마 제국의 정치 경제 사회의 중심지였던 포룸 로마눔(Forum Romarum)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곳에 5세기 때 지은 옛 성모 마리아 성당이 있습니다. 이름 그대로 ‘바실리카 디 산타 마리아 안티콰’(Basilica di Santa Maria Antiqua)라 부르는 이 성당에는 로마로 유입된 초기 시리아풍의 십자고상 프레스코화(주님 수난화)가 남아 있습니다. 6세기부터 8세기 사이에 그려진 이 프레스코화는 지난번 소개했던 6세기 필사본 「라불라 복음서」의 채색삽화와 흡사합니다.<본지 1453호 2018년 2월 25일 자 참조> 이 프레스코화의 주님은 양팔과 양발에 못이 박힌 채 십자가에 매달려 계십니다. 하지만 주님은 전혀 고통을 느끼지 못하시는 듯 평온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아니 어머니를 바라보시며 살짝 미소를 짓고 있는 듯합니다. 이 시기까지만 해도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십자가 상에서 고통받고 있는 모습을 그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수난보다는 죄와 죽음을 이기신 승리의 그리스도를 보여주고 싶어했습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숨을 거두시기 전에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루카 23,34)라고 장엄하게 기도하셨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이 말씀을 ‘대사제의 기도’라고 했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기도하실 때 그분은 모든 것을 보시고, 내다보실 수 있으셨습니다. 당신은 모든 원수를 보셨고, 그들 가운데 많은 이가 당신의 친구가 되리라는 것을 내다보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들 모두를 위해 대신 기도하신 까닭이 바로 이것입니다. 그들이 화가 나서 욕을 퍼부었지만, 그분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셨습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그자를 십자가에 못 박으시오!’하고 외쳐 댔지만, 그분은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하고 부르짖으셨습니다. 그분은 단단한 쇠못으로 십자가에 박히셨지만 온유함을 잃지 않으셨습니다. 당신은 그토록 무자비하게 다루는 자들을 용서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셨습니다.”(아우구스티노 「설교집」에서) 아우구스티노 성인의 말씀처럼 고대와 중세 초기의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고상을 통해 모든 이의 용서를 비는 대사제의 모습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십자가 상의 주님 머리 뒤로는 황금빛 후광이 빛나고 있습니다. 황금빛은 ‘하느님 나라’와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냅니다. 교회는 전통적으로 예수님의 후광 안에만 ‘십자가’를 그려 넣습니다. 그리고 비잔틴 교회에서는 십자가 위와 양 날개 사이로 ‘Ο ΩΝ’ 또는 ‘Ο ωΝ’(오 온)을 새깁니다. 이 글은 야훼 하느님께서 당신 신원을 드러내실 때 하신 말씀으로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 라틴말로는 Ego sum qui sum-에고 숨 퀴 숨)를 헬라어로 표현한 것입니다. 이는 ‘하느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며 십자가의 죽음으로도 결코 멈출 수 없는 생명의 원천’이심을 뜻합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존재하시는 하느님이시며 천지 창조 이전부터 하느님이셨고 그분의 십자가를 통해 모든 사람을 하느님께로 들어올리시는 분’이심을 나타냅니다.(묵시 1,8 참조) 한마디로 ‘주님의 신성’을 표현한 것입니다.주님의 머리 위에는 ‘유다인의 임금 나자렛 예수’(라틴말- Iesus Nazarenus Rex Iudaeorum/ 예수스 나자레누스 렉스 유대오룸, 헬라어- Ιησουs ο Ναζωραιοs ο Βασιλευs των Ιουδαιων/ 예수스 오 나조라이오스 오 바실레우스 톤 유대온)라고 적힌 명패가 달려 있습니다. 네 복음서가 알려주고 있는 이 명패 말고 간혹 헬라어로 ‘Ο ΒΛΣ ΤΣ ΔΞΣ’라고 적힌 성화를 볼 수 있습니다. 이 글은 ‘Ο Βασιλευs Τηs Δοξηs’(오 바실레우스 테스 독세스)의 약자로 ‘영광의 임금’을 뜻합니다. 이 영광의 임금은 세상 종말 때 심판자로 오실 분이십니다. 이분은 수난과 죽음을 당하시고 부활을 통해 하느님 아버지께로부터 영광을 받으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성경은 아울러 하느님께서도 예수님을 통해 영광을 받으신다고 합니다.(1베드 4,11) 그리고 그리스도인들도 주님의 수난과 부활에 동참함으로써 그 영광에 참여하게 된다고 합니다. 주님은 십자가 상에서 양팔을 펼치시고 계십니다. 교부 아타나시우스 성인은 “주님께서 한쪽 팔을 펼쳐 유다인을, 다른 팔로는 모든 민족을 모아 그 둘을 당산 자신 안에서 그리고 교회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셨다”(아타나시오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에 대해」 중에서)라고 강조했습니다. 따라서 펼쳐진 주님의 양팔은 주님께서 당신 십자가를 통해 만백성을 하나로 모으시고자 하는 ‘의지’를 상징합니다. 주님은 짙은 청색의 긴 옷을 입고 계십니다. 주님의 후광이 ‘신성’을 상징했다면, 입고 있는 파란색 옷은 ‘주님의 인성’을 보여줍니다. 옷은 주님께서 죄에 물든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해 사람이 되셨음을 고백하는 표지입니다. 이 도상에서 눈여겨볼 것이 또 있습니다. 바로 성모 마리아와 요한 사도가 주님을 중심으로 양편에 자리하고 있는 모습입니다. 이전까지 십자고상을 주제로 한 성미술 작품에는 주로 성모님과 요한 사도가 함께 있는 모습으로 표현했습니다. 바실리카 디 산타 마리아 안티콰의 십자고상 프레스코화가 그려진 6~8세기부터 십자고상 성화에서 성모 마리아는 십자가상의 주님 오른편에, 요한 사도는 그 반대쪽인 왼편에 자리합니다. 이러한 대칭 구도는 정형화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성모 마리아와 요한 사도 역시 수난당하시는 주님의 모습을 보면서도 전혀 슬픈 기색이 없습니다. 성모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당신의 외아들과 눈을 맞추면서 웃고 계십니다. 주님의 사랑하는 제자인 요한 사도도 복음서를 들고 “예수는 그리스도이시다”(요한 21,31)라고 당당하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성모님, 요한 사도 사이에 있는 두 사람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창으로 찌른 로마군 백인대장 론지누스와 예수님께 신 포도주를 적신 해면을 우슬초 가지에 꽃아 들이댔던 군사가 서 있습니다. 성모님 옆에 서 있는 론지누스는 예수님의 죽음을 보고 “참으로 이분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태 27,54)라고 말해 ‘참신앙 고백’의 상징으로 표현됩니다. 또 우슬초 가지를 든 병사는 주님의 ‘순종’, ‘죄의 용서’ ‘우리의 정화’를 상징합니다. 그 이유에 대해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시편 51,9은 ‘우슬초로 제 죄를 없애주소서. 제가 깨끗해지리이다’라고 노래합니다. 우리가 깨끗해지는 것은 그리스도의 겸손 덕분입니다. 그분께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십자가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필리 2,8)하지 않으셨더라면, 죄의 용서 곧 우리의 정화를 위해 그분께서 피를 쏟으시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아우구스티노 「요한복음 강해」에서)바실리카 디 산타 마리아 안티콰의 십자고상 프레스코화는 참 하느님이시며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만백성(모든 이)을 구원으로 이끄시기 위해 십자가 상에서 죽음을 이기신 사랑의 구세주이심을 고백하는 명작이라 하겠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8.03.06
험난한 여정이라도 주님과 함께라면…2018 대입수학능력시험(11월 16일)을 앞두고“주님, 당신께서 주신 소중한 선물인 아이들에게 저희의 기도가 용기가 되고 힘이 되길 바라며 간절히 두 손을 모읍니다…. 경쟁 상대가 아니라 서로 동반자임을 알게 하소서.” 2018 대입수학능력시험이 두 달 앞으로 성큼 다가온 9월 25일, 서울 명동 옛 계성여고 성미관 지하 기도실에 수험생 엄마들이 모였다. 수험생을 위한 54일 기도 모임에 함께한 엄마들은 수능 날까지 매일 아침 함께 모여 기도를 바친다. 기도는 시작 성가, 성경 말씀, 묵상, 묵주기도, 성인 호칭 기도, 수험생을 위한 기도로 1시간여 동안 이어진다. 부모들은 큰 시험을 앞두고 불안해 할 아이들을 주님께 의탁하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할 수 있도록 간절한 기도를 바친다. 11월 16일 치러질 2018 대입수학능력시험을 앞두고 전국 곳곳에서 수험생을 위한 기도가 한창이다. 절두산성지는 수험생을 위한 청원을 담아 103일 동안 한국 순교성인에 드리는 기도를 바치고 있으며 본당마다 학부모를 위한 수능 100일 전, 54일 전, 9일 전 기도모임과 수험생을 위한 안수 기도를 마련하고 있다. 기도는 긴장한 수험생이 어려운 여정을 주님과 함께 걸어가며 평화와 안정 속에 수능을 준비하도록 돕는다. 어떤 지향을 담아 기도하면 좋을지, 도움이 되는 책자를 함께 소개한다.어떤 지향을 담아 기도하면 좋을까? ‘○○대학에 갈 수 있게 해주세요, 점수를 올려 주세요, 친구보다 등수가 잘 나오게 해주세요’라는 식으로 기도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기도를 통해 수험생들에게 부모와 하느님의 사랑을 느끼며 힘든 과정에서 더 넓은 배움을 얻을 수 있도록 지혜를 청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늦은 밤 힘든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녀를 위해 ‘과정에 충실하게 하소서, 평온함을 주소서’라며 아래처럼 기도해 보는 것을 추천한다.(기도문은 「수험생을 위한 100일 기도」에서 발췌) ‘지혜로 충만해지게 하소서’ 수능 날 단 하루, 한 번의 시험을 통해 결과를 받게 될 아이들은 크게 긴장한 나머지 답안지를 미뤄 쓰기도 하고 평소라면 하지 않을 실수를 하기도 한다. 갑자기 점수가 껑충 오르진 못하더라도 준비한 것만큼은 최대한 실력 발휘를 할 수 있도록 지혜를 청한다. ‘주님, 아이들이 시험 보는 그 날까지 주님의 사랑과 은총을 충만히 베풀어 주시기를 간절히 청합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던 농부가 기쁨으로 곡식단을 거두듯이 저희 아이들이 공부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을 이겨 내고 기쁨의 열매를 거둘 수 있도록 은총의 비를 내려주소서.’ ‘영혼과 육신의 건강을 허락하소서’ 수능 당일까지 아이들이 건강한 몸과 마음을 가지고 시험장에 들어갈 수 있도록, 시험이라는 어려운 시간을 씩씩하게 넘을 수 있도록 힘들어하는 아이의 손을 주시길 청한다. ‘주님, 시험을 앞둔 아이들의 몸과 마음에 건강을 지켜 주시기를 청합니다. 혹여 넘어지고 쓰러지는 아픔이 있더라도 그로 인해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의 고통을 헤아릴 줄 알게 하소서.’ ‘주님의 겸허한 자녀 되게 하소서’ 시험 결과에 따라 일희일비하지 않고, 어떤 결과든 하느님께서 새 길을 열어 주시리라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기도한다. 결과를 떠나 시험을 준비하는 시간이 아이의 인생에서 소중한 시간이 되길 바라며 이 시기를 통해 한층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이끄심을 요청한다. ‘주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따라 거룩한 사람이 되게 해주십시오. 주님, 주님의 사랑만이 저희의 마음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늘 함께해 주시는 예수님의 사랑에 아이들의 마음이 깨끗이 씻기고 그들이 주님의 자녀로 불림 받았음을 알게 하시고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게 하소서. 그리하여 최선을 다한 후에 얻은 결과가 어떤 것일지라도 겸허하게 받아들이는 주님의 성실한 자녀가 되게 하소서.’ 수험생 기도를 위한 책 「수험생을 위한 묵주의 9일 기도」 김계숙 지음 / 김옥순 수녀 그림 / 바오로 딸 출판사 / 4500원 수능을 준비하는 아이들과 이를 지켜본 부모의 갈망과 원의를 전하며, 예수님의 탄생과 수난,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 신비를 관상하고 사랑을 느끼도록 초대한다. 부모로서 지닐 수 있는 기대와 욕심을 버리고 아이들에게 능력 이상의 것을 요구하지 않고, 다른 자녀들과 비교하지 않으며, 아이들이 더욱 건강한 미래를 설계하도록 돕는다. 묵주의 9일 기도는 묵주기도 5단을 청원하는 뜻으로 9일씩 세 번(27일), 그리고 감사하는 뜻으로 9일씩 세 번(27일), 총 54일 동안 봉헌하는 기도다. 54일간 환희·빛·고통·영광의 신비를 하루에 하나씩 번갈아 바친다. 기도하는 사람의 상황에 따라 9일 동안만 바쳐도 된다. 이 책은 특별히 수험생을 위해 바치는 내용으로 짜여있다. 「수험생을 위한 십자가의 길」 김옥례 지음 / 이소영 그림 / 성 바오로 출판사 / 4000원 예수 그리스도께서 걸었던 십자가의 길을 묵상하며 수험 생활을 헤쳐나갈 수 있도록 만들어진 기도문이다. 각 처의 묵상에 따라 시험의 공포와 불안으로 떨고 있는 아이들을 안타깝게 바라보며 주님께 의탁하려는 부모의 기도로 구성돼 있다. 또한, 시험의 목적이 진정 아이를 위함이 아니라 부모의 욕심과 허영을 채우기 위함이 되지 않도록 기도하고 있다. “주님, 당신의 죽음을 묵상하며 아이를 일류 대학 좋은 학과에 보내고자 했던 부모의 허영과 남을 딛고서라도 위로 올라가고자 했던 욕심에서 죽어야 할 때임을 깨닫습니다. 죄 없는 죽음을 통해 겸손을 알게 하신 주님, 십자가 위에서 고개를 떨구신 당신의 모습을 늘 가슴에 새기고 살게 해 주소서….” -제12처 중에서- 「수험생을 위한 100일 기도」 김종국 신부 지음 / 생활성서 / 1만 2000원 행복하고 맛있는 것은 다 아이들에게 주고, 아픈 것은 다 내가 대신 짊어지고 싶은 것이 부모의 한없는 사랑이다. 하지만 대신 고통을 짊어져 줄 수 없을 때 부모가 해줄 수 있는 최선은 곁에 함께해 주는 일이다. 이 책은 입시를 앞둔 아이들이 시험을 힘들고 괴로운 것으로 생각하기보다 더 넓은 배움의 길로 나아가기 위한 하나의 과정으로 받아들이며, 부모들도 100일 기도를 통해 마음의 위안을 얻고 내 아이, 내 가정의 울타리를 뛰어넘어 보다 넓고 큰 사랑의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돕고자 한다. 기도하는 개인으로뿐만 아니라 본당에서 함께 모여 기도할 수 있도록 짜여 있다. 「수험생이 드리는 40일 기도」 심유빈 외 9명 지음 / 바오로 딸 출판사/ 4500원 고3 학생이 직접 바치는 기도를 담은 책으로 기도를 바치는 동안 공감과 위로를 얻고 마음의 안정 속에서 수능을 준비할 수 있도록 돕는다. 성경에서 숫자 40은 구원을 향한 은총의 시간을 상징한다. 이 의미를 생각하며 수험생들이 40일간 집중 기도를 바치고 은총을 체험할 수 있도록 짧고 간결한 기도를 담았다. 지금까지 잘 걸어올 수 있도록 허락해 주신 것에 감사드리고 여정에 동반해 주고 있는 부모와 스승, 친구들을 기억하며 고마운 마음을 담아 그들을 위해서도 기도하도록 돕는다. 기도는 40일간 매일 한 가지씩 바쳐도 되고 아니면 차례에 제시된 제목을 보면서 본인의 상황에 맞는 기도를 그때그때 골라서 바쳐도 좋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문채현2017.09.27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6) 회개와 기쁨(루카 15,1-31)](//cpbc.co.kr/CMS/newspaper/2018/03/rc/714808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6) 회개와 기쁨(루카 15,1-31)되찾은 양을 시기할 것인가, 목자의 사랑 깨달을 것인가 되찾은 양의 비유, 되찾은 은전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모두 하느님의 크나큰 자비와 사랑을 이야기하고 있다. 사진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2014년 1월 로마의 알폰소 마리아 데 리구오리 본당을 방문했을 때 전통복장을 한 여성 신자가 어깨에 어린양을 올려주자 환하게 웃는 모습. 【CNS 자료사진】 루카복음 15장은 예수님의 세 가지 비유 말씀으로 이뤄져 있습니다. 되찾은 양, 되찾은 은전, 그리고 되찾은 아들의 비유입니다. 이 부분을 살펴봅니다. 비유의 상황(15,1-2)세 비유는 예수님께서 비유를 말씀하시는 상황을 먼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상황 묘사에서는 두 가지가 극명하게 대비됩니다. 세리들과 죄인들이 모두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가까이 모여들고 있지만, 그 모습을 본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님이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음식까지 함께 나눈다고 투덜거리지요.(15,1-2) “저 사람은 죄인들을 받아들이고 또 그들과 함께 음식을 먹는군.”(15,2) 이들이 투덜거리는 내용에 비춰봤을 때 예수님께서는 길거리에서 그냥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음식을 함께 나누는 자리에서 비유를 말씀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음식을 나눈다는 것은 친교를 나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되찾은 양의 비유(15,3-7)비유의 내용은 간단합니다. 어떤 사람에게 양 백 마리가 있었는데, 한 마리를 잃으면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놔둔 채 잃은 양을 찾아 뒤쫓아가고 마침내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돌아와 친구들과 이웃에게 잃었던 양을 찾았으니 함께 기뻐해 달라고 말한다는 것입니다.혹시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 잃은 양 한 마리를 찾으려다가 다른 아흔아홉 마리를 잃게 되면? 하고 말입니다. “아흔아홉 마리를 광야에 놓아둔 채”(15,4)라는 표현은 그런 걱정을 더 하게 만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비유의 핵심은 잃은 한 마리를 찾을 때까지 헤매는 목자의 마음에 있습니다. 마침내 양을 되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돌아오는데, 양을 어깨에 멘다는 것 자체는 더할 나위 없는 기쁨을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 목자는 단지 혼자만 기뻐하지 않습니다.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함께 기뻐하자고 초대합니다. 그만큼 기쁨이 크다는 것입니다. 되새겨야 할 부분은 비유의 결론인 “하늘에서는 회개할 필요가 없는 의인 아흔아홉보다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더 기뻐할 것”(15,7)이라는 말씀입니다. 되찾은 은전의 비유(15,8-10)이 비유 역시 간단합니다. 어떤 부인이 은전 열 닢을 갖고 있었는데 한 닢을 잃으면 등불을 켜고 온 집 안을 쓸면서 샅샅이 뒤집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은전을 찾게 되면 친구들과 이웃을 불러 잃었던 은전을 찾았으니 함께 기뻐해 달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비유에서도 이렇게 결론을 맺으십니다. “이와 같이 회개하는 죄인 한 사람 때문에 하느님의 천사들이 기뻐할 것이다.”(15,10)되찾은 아들의 비유(15,11-32)이 비유는 성경을 제대로 읽어보지 않은 사람도 알 수 있을 정도로 대단히 잘 알려져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자기 몫을 달라고 해서 다 챙겨서는 집을 떠납니다. 먼 고장에서 흥청망청 탕진하다가 알거지가 되고 할 수 없이 돼지치기가 됩니다. 돼지는 유다인들에게 부정한 동물이어서 돼지치기가 된다는 것은 인생의 밑바닥까지 떨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하지요. 굶주림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던 둘째 아들은 그제야 제정신이 들어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버지의 그 많은 품팔이꾼들은 먹을 것이 남아도는데, 나는 여기에서 굶어 죽는구나. 일어나 아버지께 가서 이렇게 말씀드려야지. ‘아버지, 제가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 저는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아버지의 품팔이꾼 가운데 하나로 삼아주십시오.’”(15,11-19) 아들은 일어나서 아버지에게 갑니다. 멀리서 아들이 오는 것을 본 아버지는 가엾은 마음이 들어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춥니다. 아버지의 아들이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고 고백하는 아들의 말을 일축하고 가장 좋은 옷을 입히고 반지를 끼우고 신발을 신겨준 후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풉니다. 반지는 권위의 표상이고 신발은 노예와 반대되는 자유인임을 뜻합니다. 따라서 이 표현은 아버지가 둘째 아들에게 아들로서의 완전한 권위와 자유를 회복시켜 주었음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15,20-24)들에 나가 있던 큰아들이 돌아오면서 노래하고 춤추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 노래와 춤 소리가 동생이 돌아왔다고 해서 벌이는 잔치인 것을 안 큰아들은 들어가지 않으려 하지요. 아버지가 나와서 달래자 큰아들은 속에 든 불만을 토로합니다. 죽도록 일한 자기에게는 친구와 즐기라고 염소 한 마리도 잡아주지 않다가 창녀에게 놀아난 둘째가 돌아오자 살진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베푼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자 아버지가 말합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15,25-32)이 비유를 방탕한 작은아들의 회개와 아버지의 용서라는 두 가지에 초점을 맞추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 비유는 본래가 작은아들이나 큰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의 한없는 사랑과 자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이는 아버지께 돌아가기로 한 아들의 결심이 잘못에 대한 참회보다는 굶어 죽을 것 같은 두려움에서 비롯했다는 데서 알 수 있습니다. ‘하늘과 아버지께 죄를 지었습니다’고 고백하는 것은 말하자면 일종의 면피용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생각해 봅시다]1. 되찾은 양의 비유, 되찾은 은전의 비유, 되찾은 아들의 비유는 모두 같은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메시지는 잃은 양을 찾을 때까지 뒤쫓아가는 목자의 모습에서, 잃은 은전을 찾아 온 집 안을 쓸며 샅샅이 뒤지는 모습에서, 멀리서 아들을 보고 달려가는 아버지의 모습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세 비유에서는 길 잃은 양이 목자를 찾아서 헤맨다는 내용이나 은전이 주인이 찾아와 주기를 기다린다거나 아들이 진심으로 잘못을 뉘우치고 집으로 돌아가는 내용은 없습니다. 찾아 나서는 주체는 목자이고 부인입니다. 그렇다면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아버지가 아들을 찾아 나서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들의 의사를 존중했기 때문이 아닐까요? 비록 아들을 찾아 나서지는 않았지만 마음은 양을 찾아 나서는 목자나 은전을 찾아 샅샅이 뒤지는 부인의 마음과 전혀 다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니 작은아들이 “아직도 멀리 떨어져 있을 때” 달려가 아들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춘 것입니다. 이제 사순시기가 막바지에 이르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우선 요청되는 것은 우리를 위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을 깨닫는 것입니다. 그 사랑을 참으로 깊이 깨닫는다면 우리는 자연스럽게 우리 자신의 삶을 성찰하고 회개와 참회로 거듭날 수 있게 됩니다.2. 동생을 위해 잔치를 베풀어주는 아버지를 못마땅해 하는 큰아들의 태도는 우리네 여느 사람의 태도와 다를 바가 없어 보입니다. 그것은 또한 세 가지 비유 말씀을 시작할 때에 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이 보인 태도와도 같습니다. 그런 우리에게 하느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얘야, 너는 늘 나와 함께 있고 내 것이 다 네 것이다. 너의 저 아우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다. 그러니 즐기고 기뻐해야 한다.”(15,32) 우리가 큰아들과 같은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면, 바리사이와 율법학자처럼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면, 이제는 아버지가 한 이 마지막 말씀을 곰곰이 되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백영민2018.03.21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 글라스]38. 서울 돈암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7893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 글라스]38. 서울 돈암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자연스러운 아치 형태로 제작통일감 있게 공간 에워싸신자 시선 제대 향하게 유도 김겸순, 서울 돈암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 2000. ‘가난한 자의 성경’은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문맹자들에게 이미지로 성경의 말씀을 전달하는 역할을 해 생겨난 표현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새롭게 재건된 유럽의 많은 스테인드글라스는 더는 가난한 자의 성경이 아니었다. 문맹이 아닌 대다수 현대인에게 성경의 설명적인 이미지보다는 자신을 되돌아보며 묵상하게 하는 추상적 표현들이 선호됐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와 같은 추상적 표현 양식은 유럽에서도 독일, 프랑스, 영국을 중심으로 형성된 것으로 이웃한 다른 유럽 국가나 미국, 아시아에서는 상반된 경향을 보였다. 어쩌면 우리는 글을 모르는 문맹은 아니나 성경 말씀을 제대로 알고 있지는 못하다는 점에서 일종의 문맹이라 할 수 있겠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되뇔 수 있는 설명적인 이미지를 필요로 하는 듯하다.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 작가들의 작품 경향을 분석해보면 유럽 유학 후 귀국한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의 작품은 대부분 추상인데 반해 점차 구상적 경향의 작품으로 변화되는 경우가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그 변화의 중심에는 신자들과의 ‘소통’이라는 문제가 자리하고 있다.절제된 빛과 이미지로 메시지 전달이번에 소개할 서울 돈암동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절제된 빛과 색, 간결한 이미지로 성경 메시지를 전달하는 작품이다. 2000년 완성된 돈암동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노틀담 수녀회 김겸순(테레시타) 수녀의 작품이다. 김겸순 수녀는 독일 뮌헨 대학에서 회화를 전공하고 뮌헨에 소재한 구스타프 반 트렉 공방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구했다. 서울 돈암동성당, 인천가톨릭대학교 성당, 대전 정하상교육관 성당, 꼰벤뚜알 프란치스코회 양평 수도원 성당, 미국 가르멜수녀원 성당 등 국내외 여러 성당에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선보였다. 그는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전례 공간을 보다 차분하고 따뜻한 공간으로 만들고자 했으며 각각 독립된 그림으로서가 아니라 교회 건축 안에서 하나로 통합되는 스테인드글라스의 구성을 이뤄내고자 했다.초월적 공간으로의 초대김겸순 수녀의 대표작 중 하나인 서울 돈암동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서도 자연스럽게 휘어진 아치 형태의 건축 구조가 도입돼 공간을 통일감 있게 하나로 에워싸는 효과를 자아내고 있다. 이러한 공간 구성은 주변의 모든 요소를 통일감 있게 연결해 신자들의 시선을 최대한 제대 쪽으로 집중시키는 역할을 하며 일상의 공간과는 다른 초월적 공간을 체험할 수 있도록 유도한다.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 있어 전례 공간 전체에 적합한 빛을 연출 하는 것과 함께 김겸순 수녀가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것은 빛과 색을 통한 성경 말씀의 전달이다. 구약과 신약의 주요 장면들이 등장하는 그의 작품은 무지개, 아치, 식물의 줄기같이 공간을 에워싸며 지상과 천상을 연결하는 장치들이 함께 사용되고 있다. 돈암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는 검은색 유약을 이용한 선묘 중심의 페인팅이 이루어져 있다. 작가는 인물이나 대상의 고유색을 재현하지 않고 주로 선묘를 이용해 성경의 주요 장면을 묘사했다. 그 결과 작품의 전체적인 색조는 통일감 있게 유지되면서 스테인드글라스의 서술적 기능을 만족시킬 수 있었다.공간에 융화된 스테인드글라스전례 공간을 더욱 따뜻한 분위기로 만들고자 하는 김겸순 수녀는 강렬한 원색보다는 여러 색이 배합된 중간 톤의 색유리를 주로 사용했다. 공간을 압도하기보다는 부드러운 빛과 함께 공간 속에 자연스럽게 융화될 수 있는 스테인드글라스를 선보이고 있다. 그가 즐겨 사용하는 색은 맑은 톤의 코발트블루와 붉은 기가 도는 황색 그리고 올리브그린 계열의 초록색 등 전체적으로 중간색 톤이 지배적이다. 그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색을 선별하는 데 있어 ‘맑지만 산만하지 않고, 밝지만 화려하지 않고, 투명하지만 빛이 걸러지는 채도가 낮은 색’을 사용한다는 원칙을 제시했다. 김겸순 수녀의 작품에 등장하는 색들은 하늘, 땅, 자연을 상징하며 우주를 나타내기도 하고 한국의 향토색을 연상시키는 푸근하고 정감 어린 색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렇게 우리는 따뜻하고도 초월적인 그의 작품 앞에서 그림으로 말씀을 읽고 빛과 색으로 기도하게 된다. 백영민2016.10.26

만백성에게 경배 받은 아기 예수 기념하며, 성탄 기쁨 더 길게주님 공현 대축일(7일)과 주님 세례 축일(8일) 7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 그리고 8일은 주님 세례 축일이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주님 성탄 대축일이라고도 불린다. 그만큼 중요하다는 뜻이다. 두 축일의 유래와 의미를 알아본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주님 공현 대축일주님 공현 대축일은 동방 박사들이 구세주께서 탄생하심을 알고 별의 인도로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한 사건을 기념하는 날이다. 이날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가 모든 민족에게 자신을 드러내 보이셨다. 과거에는 ‘삼왕내조축일’(三王來朝祝日)이라고도 했다. 이 사건으로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공적으로 드러났다. 그리스어로 ‘에피파네이아’(epiphaneia)인 공현(公現)은 ‘드러나다’는 뜻이다. 한국 교회는 매년 1월 2일에서 8일 사이 주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을 지낸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마태 2,1-11)동방 박사의 방문은 구약에서 예고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이사 60,6) 금과 유향은 당시 이방인들이 태양신에게 바쳤던 예물이다. 구약의 말씀은 세상을 비추는 빛이 이 세상에 오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그리스도교 초기 서방 교회는 그날부터 낮이 길어지는 태양신 탄생 축일(동지)인 12월 25일을 예수 성탄일로 지냈다. 그런데 이집트를 포함한 동방 교회가 예수 성탄일로 기념한 태양신 탄생 축일(동지)은 1월 6일이었다. 예수 성탄일이 두 개가 된 것이다. 4세기 말쯤 동방 교회의 예수 성탄일이 서방 교회에 전해지면서 혼란을 막을 필요가 생겼다. 그래서 서방 교회는 주님 성탄 대축일은 12월 25일에, 주님 공현 대축일은 1월 6일로 나눠 지내기 시작했다.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주님 성탄 대축일과 달리 특별한 예식이 없다. 공현 대축일이 성탄시기에 들어 있고 또 성탄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성탄은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음을, 공현은 그분 탄생을 이방 민족들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셨음을 강조한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이방 민족들을 대표하는 동방 박사들을 구유에 설치한다. 동방 박사들은 구세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교황 레오 1세(재위 440~461)는 주님 공현 대축일의 의미를 이렇게 밝혔다. “오늘 경축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은 우리에게 성탄의 기쁨을 연장해주고 있는데, 두 축일에서 서로 비슷한 내용의 신비를 연이어 지낸다 해서 우리 기쁨의 강도나 믿음의 열정이 약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 태어나신 갓난아기가 작은 마을에 갇혀 계시면서도 벌써 온 세상에 선포하신 인류 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사실 그분은 이스라엘의 백성 그리고 이 백성 가운데 한 가정을 선택하셨으며, 이 가정에서부터 전 인류가 지니고 있는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하지만 만민을 위해 태어나신 그분은 당신의 탄생이 어머니의 협소한 거처 안에 감춰져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즉시 모든 이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성탄 대축일은 하느님께서 취하신 인성(人性)에, 공현 대축일은 인간 가운데 드러난 신성(神性)에 초점을 맞췄다. 두 대축일은 서로 보완하면서 서로에게 빛을 밝혀준다. 구세주의 별을 보고 예물을 가지고 경배하러 온 동방 박사들처럼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고백하며 사랑을 실천함으로써 주님께 맞갖은 예물을 드리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주님 세례 축일 레오나르도 다빈치 작, ‘그리스도의 세례’, 1472∼1473,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시기가 끝나고, 다음 날부터 연중시기가 시작된다. 주님 세례 축일과 이어지는 주간이 ‘연중 제1주일’이다. 주님 세례 축일 저녁에 구유를 비롯한 모든 성탄 장식을 치운다.주님 세례 축일은 원래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주일에 지낸다. 다만 주님 공현 대축일이 1월 7일이거나 8일인 때에는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에 기념한다.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그런 경우다.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세례를 따로 받을 필요가 없었다. 요한 세례자에게 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성부 하느님께 대한 순종과 예언의 성취를 위해 선택한 겸손의 표양이다. 성부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모습에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모든 인간이 주님의 세례에 동참할 수 있게 됐다.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를 구원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봤다. 예수가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으로 하느님의 아들임이 계시됐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옴으로써 예수 그리스도가 공적 활동을 하기에 앞서 도유되고 파견된 것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 경배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예수 그리스도께서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빚은 기적(요한 2,1-12)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공현을 나타내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같은 맥을 잇는다. cpbc2018.01.02
![[성경 속 도시] (64) 예루살렘 (상)](//cpbc.co.kr/CMS/newspaper/2015/10/rc/597703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64) 예루살렘 (상)하느님의 집, 첫 성전을 세운 곳 예루살렘은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모두의 주요 성지로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사진은 2014년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고 있는 모습. 【CNS 최고의 성지, 예루살렘은 늘 기대와 설렘을 주는 도시다. 예루살렘은 유다교, 그리스도교, 이슬람교 모두의 주요 성지로, 어떤 장소는 시간대별이나 구역별로 나눠 이들 세 종교가 관리한다. 예루살렘은 유다인들에게 역사와 종교와 민족 의식의 원천이고,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는 가장 중요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의 현장이다. 또 이슬람교도들에게도 예루살렘은 중요한 성지이다. 그래서 거대한 옛 도시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구시가지에는 유다인 지역과 아르메니아 지역, 그리스도교 지역, 무슬림 지역 등 4개 지역으로 구분돼 있다. 1948년 아랍과 이스라엘 전쟁 이후, 구시가지와 동(東)예루살렘은 트란스요르단에, 서(西)예루살렘은 이스라엘에 분할되었다가 1967년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점령했다. ‘평화의 도시’라는 이름이 무색하게 예루살렘은 지금도 분쟁이 끊이지 않는 곳이다. 어디서나 기관총을 휴대한 군인들을 쉽게 볼 수 있고 출입 관리도 까다롭기로 유명하다. 그런데 예루살렘은 국제법상으로는 어느 나라에도 속해 있지 않은 도시다. 현재 이스라엘이 동예루살렘을 인위적으로 점령 중이다. 지형적으로 동쪽으로는 키드론 골짜기와 남쪽으로는 힌놈 골짜기의 가운데 솟은 구릉에 사람들이 모여 살았던 것은 기원전 약 3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산악 지형의 예루살렘은 외부 침입을 쉽게 막을 수 있는 성채를 중심으로 서서히 도시가 발전했다. 이스라엘이 가나안 정복 후 약속된 땅을 분배할 때 예루살렘은 본래 벤야민 지파에 속하였던 곳이다(여호 18,11-28 참조). 성경의 기록을 보면 예루살렘의 가장 유명한 지도자는 다윗왕이다. 기원전 약 1000년경 이스라엘의 선조 다윗 왕이 구릉에 위치한 ‘시온의 성’이라 불리던 도시를 정복한 후 유다인들은 이곳을 ‘다윗의 성’이라 불렀다. 다윗 임금이 부하들을 거느리고 예루살렘으로 가서 그 땅에 사는 여부스족을 치려 하자, 여부스 주민들이 다윗에게 말하였다.“‘너는 이곳에 들어올 수 없다.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도 너쯤은 물리칠 수 있다.’ 그들은 다윗이 거기에 들어올 수 없으리라고 여겼던 것이다. 그러나 다윗은 시온 산성을 점령하였다. 그곳이 바로 다윗 성이다”(2사무 5,6-7). 그는 계약의 궤를 예루살렘으로 옮겼고 그의 아들 솔로몬은 예루살렘의 첫 성전을 건축했다. 그 이후 예루살렘은 이스라엘 민족과 역사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게 되었다. 서른 살에 이스라엘 임금이 된 다윗은 헤브론에서 7년 반 동안, 예루살렘에서 33년 동안 이스라엘과 유다를 다스렸다(2사무 5,3-5 참조). 다윗이 죽은 후 그의 아들 솔로몬 왕은 도시에 왕궁과 신전 및 성채를 새로이 건설하고 언약궤를 신전 안에 보관하였다. “또한 주님께서 우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 내실 때에 그들과 맺으신 계약을 넣은 궤를 둘 곳을 여기에 마련하였소”(1열왕 8,21).예루살렘은 신약에서도 중요한 장소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에서 시작하여 그분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이 이뤄진 장소이다. 성령 강림 후 사도들은 한동안 예루살렘에 머물면서 교회 공동체를 구성하여 복음을 선포하였다.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나, 예루살렘 제자들의 수가 크게 늘어나고 사제들의 큰 무리도 믿음을 받아들였다”(사도 6,7).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10.13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72)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갈라 2,16)믿음에 걸림돌 된 율법 예수 부활 앞에 무의미해진 율법예루살렘 사도 회의에서 논의한 사안은 ‘율법과 할례’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초기 교회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도들의 회의를 열었다는 것은 그만큼 이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고 중요했다는 의미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충실한 유다인이었고 율법에 정통했던 인물입니다. 어느 누구보다 율법의 의미를 잘 알고 있었던 그에게 율법을 통해 의로운 사람이 되고자 했던 유다인들의 모든 노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에 무의미한 것이 되었습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율법은 더 이상 하느님의 뜻을 담고 있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진정한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졌기 때문입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인간적인 노력을 통한 것이고, 유다인들은 율법 준수를 의로운 사람으로 살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여겼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구원은 전적으로 하느님에 의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진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것을 은총으로 이해합니다. “우리는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되려고 그리스도 예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갈라 2,16)아브라함처럼 순명하는 이들‘의로움’은 구약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중요한 주제입니다. 의로움의 근원은 하느님입니다. ‘의로운 사람’은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가장 훌륭한 찬사였고 하느님의 정의를 닮아가는 것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 주제를 통해 유다교의 믿음과 그리스도교의 믿음을 비교합니다. 흔히 ‘의화’(義化), 곧 의롭게 되는 것은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구원과 직접 연결되는 주제입니다. 이 표현의 좀 더 정확한 의미는 ‘하느님 앞에서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입니다. 구원이 ‘나’에게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에게서’ 온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이것을 위해 바오로 사도는 ‘신앙의 아버지’라 불리는 아브라함을 예로 듭니다. “아브람이 주님을 믿으니, 주님께서 그 믿음을 의로움으로 인정해 주셨다.”(창세 15,6) 바오로 사도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은 선조였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율법이 존재하지 않았지만,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순명하는 것을 통해 믿음을 보여 준 선조이고 그에게 내린 하느님의 축복은 이제 율법을 지키는 후손들이 아닌,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후손들에게 전해집니다. 여기서 중심이 되는 것은 율법의 준수가 아닌, 하느님께 대한 믿음입니다.믿음 통한 의로움으로 축복 받다바오로 사도는 아브라함의 예를 통해 하느님과 이스라엘 백성이 맺은 계약이 처음부터 ‘믿음을 통한 의로움’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전의 것들을 파기한 것이 아니라 구원 역사의 처음부터 율법이 아닌 믿음을 통해 사람들을 축복하셨습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의 약속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따르는 후손들, 곧 유다인들 안에서 실현되는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믿음을 따르는 후손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들 안에서 실현됩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율법은 저주와 연결돼 있습니다. 실제로 신명기에는 “이 율법의 말씀들을 존중하여 실천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고 기록돼 있기 때문입니다.(신명 27,26) 사람들에게 율법은 잘 지키는 이들에게 축복이 내린다는 것보다 그것을 지키지 못한 이들에게 저주가 내릴 것이라는 점을 더 강조합니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세상에 오시기 전에 바른길을 걷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주어진 것입니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에게 율법은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이후에 더 이상 구원을 위해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율법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에 걸림돌이 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는 율법에서 말하는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모습으로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기 때문입니다.(신명 21,22-23 참조)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율법의 저주를 무력화하는 사건입니다. 이것은 전에 없던 새로운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에게 주어진 약속이 믿음을 통한 것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을 위한 하느님의 약속은 믿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김지항2017.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