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선교사이자 사도’로서 주일학교 교리 교사 역할 강조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지침」무엇을 담았나? 한국 천주교회의 교리 교사 양성 기준과 방향을 제시한 「한국 천주교회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지침」이 나왔다. 사진은 교리교사의 날 미사를 봉헌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주일학교 교리 교사들. 가톨릭평화신문 DB 주교회의 교리교육위, 통합적·체계적 양성 기준 마련 신임·재임 교리 교사 대상 양성 교육 5단계 제시 ‘공존적 앎’ ‘지식적 앎’ ‘실천적 앎’ 중심으로 구성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위원장 정신철 주교)가 편찬하고, 돈보스코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소장 윤만근 신부)가 연구·집필한 「한국 천주교회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지침」은 한국 천주교회의 교리 교사 양성 기준과 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한국 천주교회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지침」(이하 지침)에 어떤 내용이 담겼는지 살펴본다. 각 교구 청소년국 담당 사제와 직원을 비롯한 한국 교회 모든 본당 사목자와 교리 교사들이 눈여겨봐야 할 지침이다. 대부분 교구는 각 교구 상황이나 환경 변화에 따라 단기적이거나 일회적인 교리 교사 양성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는 게 현실이다. 교리 교사 양성의 이론 및 실천적 기준, 구성과 내용은? 이 지침은 이론과 실천 두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교리 교육의 정의·목적, 교리 교사의 정체성과 역할, 발달 시기에 따른 신앙 교육, 양성 원리와 공동체 책임을 다뤘다. 실천적 기준을 다룬 제2부에서는 5단계 교리 교사 연수 체계를 제시하며, 신임 교사 연수부터 단계별 프로그램과 영적 성장·안전·성교육 등에 관한 내용을 제시했다. 지침의 목적은 △교리 교사가 세례성사와 견진성사의 은총을 받은 그리스도인으로서 그들에게 부여되는 신원과 역할을 분명하게 인식하도록 돕는 것 △각 교구 청소년국이 이 지침을 바탕으로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교육 과정을 구성하고 실행하는 기준을 제시하는 데 있다. 무엇보다 교리 교사 양성의 목적은 교리 교사가 먼저 세례받은 그리스도임을 확인하고, 복음을 실천하는 그들이 선교사이자 사도임을 인식하게 하는 데 있다. 이에 교리 교사는 학생들을 가르치고 그들을 신앙으로 동반하며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참여한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한 양성 과정은 다음의 일곱 가지 목표에 따라 구성돼야 한다. △평신도 신원에 대한 인식 △교리 교사의 직무에 대한 식별 △동반하는 교육자와 신앙 전수자로서 역할 인식 △교리 교육 대상에 대한 이해 △교리 교육 내용에 대한 지식 습득 △교리 교재 활용과 교리 교육 전달 방법 △본당 공동체 구성원과 소통이다.(45항 참조) 교리 교사를 양성하는 데 필요한 원리와 기준은? 교리 교사 양성에는 세 가지 원리가 있다. 학생들과의 관계를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인식하고 발견하는 ‘공존적 앎’, 교리 교사의 존재 의미가 역할 수행을 통해 드러나는 ‘지식적 앎’, 교육적 소통 행위를 통해 교리 교육에 적용되는 ‘실천적 앎’이다.(46항 참조) 지침은 교리 교사 양성 교육의 기준을 다음과 같이 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는 양성 △선교와 복음화를 지향하는 양성 △통합적 접근을 지향하는 양성 △어린이와 청소년의 신앙 여정을 동반하는 교리 교사 양성 △지속성과 체계성을 지향하는 양성이다. 즉 교리 교사 양성 교육은 교사가 자신의 신원과 역할을 인식하고 교사 자신이 스스로 신앙적으로도 성장하는 과정이어야 한다. 지침은 축소된 양성 교육은 교리 교사에게 사명감을 심어주는 데 한계를 보이며, 교리 교사 활동으로 주일 학교 학생들을 만나는 것을 업무처럼 느끼게 하는 경향을 갖게 한다고도 지적하고 있다. 양성 교육은 단기적으로 특정 분야에 집중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학문(교회 문헌·교육학·심리학·사회학·인문학 등)을 바탕으로 통합적이고 체계적으로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지침을 집필한 이진옥(페트라, 돈보스코청소년영성사목연구소 연구원) 박사는 “각 교구의 교리 교사 양성 교육을 조사한 결과 다소 부족하게 느껴졌던 것은 교리 교육의 기능적 측면에만 집중하고 있다는 점”이라며 “지속성 보다 단발·일회적인 교육을 추구한다는 것이 아쉬웠다”고 밝혔다. 이어 “교리 교사 양성 교육에서는 ‘교리 교사의 신원 함양’, ‘교리 교육에 관한 지식 전달’, ‘교리 교사의 영성을 통한 신앙 성숙’에 주력해야 한다”며 “결국 통합적이고 체계적인 양성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교리 교사 양성의 5단계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는 교리 교사 양성 교육을 5단계로 제시했다. 교리 교육의 세 가지 원리(공존적 앎·지식적 앎·실천적 앎)를 중심으로 구성했다. (표참조) 교리 교사 양성 교육은 신임 교리 교사와 재임 교리 교사를 대상으로 하며, 교육은 교구를 중심으로 대리구(지구)·지역·본당 차원으로 준비해 실시할 수 있다. 신임 교리 교사 연수는 1단계 필수 과정으로, △교리 교사의 신원과 역할 △교리 교육의 정의와 목적 △성경 입문 △기초 교리(「가톨릭 교회 교리서」 중심) △대상자에 대한 이해(발달 시기별 학생들의 특성) △교리 교안 작성법을 중심으로 프로그램을 구성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 총무 이영제(서울대교구) 신부는 “이 지침은 결코 각 교구의 상황을 간과하거나 고유성과 독창성을 획일화하려는 시도가 아니다”라며 “각 교구에서 이뤄지고 있는 다양한 형태의 양성 과정과 기준을 공유하고, 이를 바탕으로 각 교구·본당에 교리 교사를 양성하기 위한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도움을 드리고자 마련한 것”이라고 취지를 밝혔다. 이어 “현장에서 주일 학교 교리 교사를 양성하는 사제와 교사들이 지침이 제시하는 내용을 성찰하고 발전된 방향을 제언해줄 것”이라고 기대했다. 이지혜 기자 「교리 교육 지침」과 「오래된 직무」 토대로 교리 교사 양성 지침 마련 「교리 교육 지침」(Directory for Catechesis)과 「오래된 직무」(Antiquum Ministerium)는 무엇인가? 한국형 주일 학교 교리 교사 양성 지침은 이 두 문헌을 토대로 마련됐다는 것이 핵심이다. 「교리 교육 지침」은 2020년 6월 교황청 새복음화촉진평의회가 반포했다. 「교리 교육 지침」은 교황청 성직자성(현 성직자부)이 1997년 8월 15일에 반포한 「교리 교육 총지침」(General Directory for Catechesis)을 보완해 23년 만에 발표했다. 보편 교회는 이 교리 교육에 관한 새 지침에서 새로운 복음화와 신앙의 토착화를 위해 교리 교육의 필요성과 교회 역할을 강조하고 있다. 오늘날 시대 변화에 따라 보편 교회도 세상 사람들에게 신앙을 전달하는 데에 새로운 방식을 찾아야 했기 때문이다. 새 지침은 복음화 사명을 위해 교리 교육을 수행하는 교리 교사의 역할을 세부적으로 제시한다. 「오래된 직무」는 2021년 5월 프란치스코 교황이 평신도 교리 교사를 교회의 직무로 제정한 자의교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새 복음화를 위해 지역 교회가 세례받은 평신도 교리 교사의 존재를 인정하고, 교리 교사가 신앙의 진리를 전달하는 자격을 갖추기 위해 성경, 신학, 사목, 교육학에 관한 지식을 갖추도록 양성할 것을 제안한다. 이에 교황은 자의교서에서 주교회의가 이 직무의 허용을 위한 필수 양성 과정과 규범의 기준을 마련할 것을 권고한다. 이지혜 기자 bonappetit@cpbc.co.kr이지혜2025.10.15

주님과 함께하는 영적 삶을 사는 법[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25) 내적인 삶으로의 초대 AI 기술을 비롯한 현대 문화의 급속한 발전에서 도움도 많이 받지만, 그와 함께 우리가 잊는 것은 영적인 삶을 살도록 초대받았다는 사실일 것이다.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에, 영적인 삶을 살지 못하면 건강하고 균형 잡힌 삶을 살 수 없음은 당연하다. 요한 복음에서 예수님은 생명의 빵, 생명수를 주는 분으로 등장하는데(요한 4,1-42; 6,22-59; 7,37-39 참조), 이는 그분께서 우리의 영적 삶의 자양분이 되시며, 우리를 영적으로 양육시켜주는 분이심을 의미한다. 주님께서는 말씀과 성사뿐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통해서도 말씀하시며, 우리의 영적 삶을 풍요롭게 해주고자 하신다. 일상 안에서의 영적인 삶, 내적인 삶에 관심을 기울여야 하는 이유다. 그런데 내적인 삶이란 어떤 것일까? “내적인 삶은 하느님과 친숙해지는 삶, 하느님과 친교를 이루는 삶이라는 의미입니다.”(익명의 성 베네딕도회 수사, 「내적인 삶의 발견」, 가톨릭출판사, 2013, 15쪽) 내적인 삶을 산다는 것은 눈에 보이는 감각적 삶에서 눈에 보이지 않는 내면으로 건너오는 것이다. 세상의 복잡한 일들·근심과 걱정·관심사·관계의 그물망에서 잠시 벗어나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에 집중하는 것이다. 폭풍우가 거세게 휘몰아쳐 파도가 거세게 일어도 바다 속은 평온히 머물러 있는 것처럼, 하느님과 함께하는 내적 삶을 영위할 때 삶이라는 폭풍우가 아무리 거세게 휘몰아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삶이란 내 삶의 지평에, 삶의 중요한 계획과 관심사에, 삶의 궁극적 의미를 찾는 여정에 하느님을 모시는 것이다. 일상의 내적 삶은 크게 네 가지로 이루어지는데, 침묵·의식성찰·내적대화·결단이 그것이다. 내적인 삶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침묵’이다. 하느님께서는 폭풍우나 지진이 아닌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 가운데(1열왕 19,11-12 참조) 다가오시어 말씀을 건네신다. 특히 고독 가운데 찾아오신다. 고독은 외로움과 다르다. 고독과 친숙해질수록 내면을 바라볼 용기를 낼 수 있으며, 하느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 침묵은 일상의 소음에서 벗어나 고독 가운데 나 자신의 내면을 비우는 것이다. 잡념, 분심, 걱정과 싸우지 말고 있는 그대로 내버려 두며, 그것들을 의식하고 있는 나 자신에 머무르는 연습이 필요하다. 침묵에 이어 ‘의식 성찰’의 시간이다. 잘못한 죄를 헤아리는 양심 성찰과 달리, 의식 성찰은 거리를 두고 나 자신을 바라보는 것이다. 하루 일과가 지나는 사이 내 마음에 무엇이 남아 있는지, 내 안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살피는 것이다. 내가 겪은 일들, 만남들, 나눈 대화들 안에서 내가 느끼고 경험한 것, 그리고 그 안에서 하느님께서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을 헤아리는 것이다. 이어지는 ‘내적 대화’는 내 안에 계신 주님과 대화하는 것이다. 성경 말씀을 통해 주님께서 지금 나에게, 이러저러한 고민과 어려움, 계획과 희망을 갖고 있는 나에게 해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결단’이다. 오늘 내가 주님과 함께 나눈 대화는 나의 일상 안에서의 결단을 통해 열매로 맺어진다. 오늘 대화는 보다 나은 내일을 위해 나에게 어떤 결단을 요구하는가? 이 모든 것을 기록하는 ‘영적 일기’는 매우 중요하다. 나 자신과의 대화요 주님과의 대화이며, 나의 내적 삶, 내면의 이야기를 역사로 기록하는 작업이다. 이러한 내적 삶이 일상 안에 자리 잡을 때, 우리는 놀랍게 변화하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한민택 신부cpbc2025.11.25

나와 타인의 경계를 허문 ‘우리’ 이야기자선 주일에 읽을 만한 책‘자선’을 가톨릭교회에서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자비는 물론 회개의 주요한 형식 중 하나로 여긴다. 대림 제3주일은 자선 주일이다. 나와 타인의 경계를 허물고 ‘우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책들을 골라봤다. 마더 카브리니 / 시어도어 메이너드 / 고정아 옮김 / 니케북스 미국 최초의 성인이면서 이민자의 어머니로 불리는 카브리니(1850~1917) 성인의 삶과 신앙을 담은 책이다. 성인의 삶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반 미국의 이민사와 가톨릭 역사를 아우른다. 미국이 수많은 이민자를 맞이하던 당시 성인은 배를 타고 뉴욕에 도착해 빈곤과 질병, 편견으로 고통받는 이들을 위해 구체적인 사랑을 실천했다. 이민자들에게 절실한 것이 단순한 자선이 아니라 자립을 위한 교육과 의료 서비스임을 파악하고, 뉴욕·시카고·뉴올리언스 등에 거점을 마련해 선교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예수성심선교수녀회를 설립하고 미국과 남미, 유럽 등지에 67개의 학교·병원·보육원을 세웠다. 이는 당대의 그 어떤 공공기관이나 민간 지도자도 이루지 못한 규모다. 1946년 비오 12세 교황은 카브리니를 미국의 첫 가톨릭 성인으로 시성했고, 1950년 바티칸은 이민자들의 수호성인으로 선포했다. 드라큘라가 무서워하는 회사에 다닙니다 / 이철우 / 시대의창 드라큘라가 무서워하는 회사, 바로 ‘레드크로스’를 뜻한다. 이 책은 대한적십자사에서 23년을 근속한 한 직원의 경험과 성찰을 담고 있다. 혈액 사업을 비롯해 재난 현장에서의 구호와 봉사활동, 공공의료 사업, 남북교류 및 이산가족 사업 등 그 활동은 실로 다채롭다. 1863년 전쟁의 참상을 목격한 스위스 출신 앙리 뒤낭의 노력으로 시작된 적십자는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에서 헌신과 나눔의 마음으로 인도주의를 실천하고 있다. 한 번도 받기 힘들다는 노벨평화상을 네 번이나 수상했을 정도다. 저자는 평범한 직장인이면서 거대 조직의 일원으로 마주한 적십자의 역사와 상징, 다양한 사업과 현장에서의 일화를 소개한다. 인도주의라는 대의가 얼마나 많은 관계 기관과 다양한 사람에 의해 실현되는지, 동시에 그 과정에서 평범한 사람들이 묵묵히 전개한 사랑의 실천이 얼마나 비범하고 아름다운지 확인할 수 있다. 빗물 그 바아압 / 권일혁 / 걷는사람 1952년에 태어나 중학교를 중퇴하고 30여 년간 거리와 쪽방촌을 떠돌던 노숙인이 엮은 시집이다. 저자는 성프란시스대학의 노숙인 인문학 과정을 통해 시를 만나고, 수천 편에 달하는 습작을 통해 첫 시집을 펴냈다. ‘밥’을 시인의 발음대로 옮겨 쓴 ‘바아압''은 사람의 체온과 의지를 담고 있다. 문법적으로 매끄럽지 않은 부분도 날것 그대로 실렸다. 그 언어 역시 시인의 삶이기 때문이다. 책은 모두 80여 편의 시로 구성되어 있다. ‘서울역’ ‘쪽방촌 사람들’ ‘노숙자’ 같은 시는 가장 낮은 자리에서의 현실을 적나라하게 담고 있다. 동시에 ‘걸레’ ‘밥처럼 살자’ ‘꽃의 질문’ 등은 고통의 자리를 넘어서 생명의 본능을, 인간다움을 잃지 않으려는 몸부림을 드러낸다. 최숙자 부덴시아나의 살림살이 / 최숙자 / 태원춘천교구 가톨릭 문우회 회원인 최숙자(부덴시아나)씨의 인생 기록이다. 올해 나이 85세의 저자는 성경을 필사하다 글을 깨쳤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하느님께 하소연하듯 일기를 썼다. 어렵게 5남매를 키웠고, 50대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생사의 고비를 넘겼으며, 이후 중국을 오가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단동성당의 뚱강공소를 활성화해 한족은 물론 조선족·탈북민까지 찾아드는 하느님의 공간으로 조성했다. 선교의 거점이 되는 ‘예루살렘 기쁜 찬미집’도 만들었다. 인연을 맺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숙원인 책을 펴냈다. 투박한 구성과 내용이지만, 삶의 희로애락과 순간순간 주고받은 도움의 손길들이 읽힌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12.09

신약 중 가장 먼저 쓰인 경전, 깨어 있는 삶 강조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3)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은 바오로 사도가 쓴 첫 번째 편지이며 신약성경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경전이다. 사진은 테살로니카 명소인 레프코스 피르고스(하얀 탑). 출처=구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하 테살로니카 1서)은 바오로 사도가 쓴 첫 번째 서간이며 신약 성경 가운데 가장 먼저 쓰인 경전입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Θεσσαλονικειs Α’(프로스 테살로니케이스 알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Thessalonicenses 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테살로니카는 필리피에서 서쪽으로 약 160㎞ 떨어진 그리스 최대 항구도시로 예로부터 무역과 행정 중심지입니다. 마케도니아 카산드로스 임금이 기원전 315년 이 도시를 건설해 부인의 이름을 따서 ‘테살로니케’(라틴어 테살로니카)라 했습니다. 테살로니카는 기원전 168년 로마제국에 합병된 후 기원전 146년 마케도니아 속주 수도가 됩니다. 이후 기원전 42년 로마제국의 자유도시가 돼 지방행정관(총독)이 통치하게 됩니다.(사도 17,6-8 참조) 바오로 사도는 50~52년 제2차 선교 여행(사도 15,36─18,22) 때 실바누스(실라스)·티모테오와 함께 테살로니카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유럽에서 필리피(사도 16,11-40)에 이어 두 번째로 그리스도교 신앙공동체를 세웁니다. 당시 테살로니카는 번창한 상업도시로 잡신을 섬기는 이방 민족들뿐 아니라 유다인들도 집단 거주하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먼저 시나고그를 찾아가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그다음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습니다.(1,7-10; 2,14; 사도 17,1-14) 그의 선교 활동은 대성공을 거둡니다. 이를 시기한 유다인들은 불량배들을 동원해 소동을 일으키고, 시 당국자들에게 로마 황제 말고 예수라는 또 다른 임금을 섬긴다면서 황제의 법령을 어기고 있다며 바오로 사도 일행을 고발했습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에서 안식일을 세 번밖에 지내지 못한 채 베로이아로 떠납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이 짧은 3주간 동안 테살로니카에서 천막 짜는 일을 했고(2,9; 사도 18,3), 필리피 신자들로부터 두 차례 물질적인 도움을 받았으며(필리 4,15-16), 그가 세례를 베푼 신자들과 깊은 정을 나눴습니다.(1,8; 2,7-8. 17-20; 3,6) 바오로 사도의 헌신으로 테살로니카 교회는 마케도니아(필리피·테살로니카·베로이아 등)뿐 아니라 그리스 아카이아 지역(코린토·아테네) 신자들에게 모범이 될 만큼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테살로니카 1서는 바오로 사도가 제2차 선교 여행 도중 1년 6개월간 코린토에 머물 때 썼다고 합니다.(사도 18,11) 성경학자들은 이 시기를 50년 말에서 51년 여름 사이로 추정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추방되다시피 테살로니카를 급히 떠났기 때문에 갓 세례를 받은 그곳 신자들에 대한 걱정이 매우 컸습니다.(2,15-16) 하루빨리 테살로니카로 가서 그들의 부족한 믿음과 교리 지식을 채워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습니다.(2,17-19; 3,10) 여건상 직접 갈 수 없었던 바오로 사도는 티모테오를 테살로니카에 보냅니다.(3,1-2) 테살로니카 신자들의 사정을 살피고 돌아온 티모테오는 그들이 어려움 속에서도 굳건한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는 기쁜 소식을 전합니다.(3,2-10) 아울러 그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주님께서 언제 재림하시는지 그리고 주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죽은 이들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한다고 보고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테살로니카 신자들을 격려하고 그들의 궁금증을 풀어주기 위해 테살로니카 1서를 써보냅니다. 테살로니카 1서는 5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주님 재림을 기다리며 하느님의 뜻에 맞는 거룩한 삶을 꾸준히 살아야 한다는 게 주된 내용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이 테살로니카에서 선포한 것은 ‘하느님의 복음’(2,2), ‘하느님의 말씀’(2,13), ‘주님의 말씀’(1,8), ‘그리스도의 복음’(3,2)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고 테살로니카 신자들이 복음을 받아들인 것은 바오로 자신의 언변 때문이 아니라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임하시어 복음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하셨고, 이 복음을 받아들임으로써 우상들을 버리고 살아계신 참하느님을 섬기게 됐다고 칭송합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아버지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구원은 성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어지며(5,9), 성령께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재림이 이뤄질 때까지 하느님의 뜻에 맞는 합당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이끌어 주실 것이니 그 성령의 불을 끄지 말아야 한다고 권고합니다.(4,8─5,19) 바오로 사도는 또 종말과 함께 마지막 심판에서 우리를 구해주실 분은 오로지 영광스럽게 재림하실 주 그리스도뿐이시라고 합니다.(1,10) 그리고 주님이 재림하실 때 먼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이들이 다시 살아나고, 그다음으로, 그때까지 남아있게 될 우리 산 이들이 그들과 함께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 늘 주님과 함께 있을 것이라고 가르칩니다.(4,16-17) 바오로 사도는 희망과 믿음으로 그날을 고대하고, 그날이 올 때까지 어떠한 환난과 고통도 참고 견디며 항상 주님을 맞이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삶, 깨어있는 삶을 살아갈 것을 당부합니다.(1,10; 3,13; 5,4-10) 그리고 주님을 맞을 준비를 하는 삶은 복음대로 사는 삶이라며, 서로 모범이 되고 본받을 것을 권고합니다.(1,6; 2,14)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7.23

천주의 성모 마리아 교리 요점 정리하느님의 어머니(테오토코스, Theotokos)[월간 꿈CUM]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베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예수를 잉태하셨다.(루카 1,31 참조) 또 그 아기를 낳아 포대기에 싸서 눕혔고(루카 2,7 참조)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었다.(루카 2,21 참조) 마리아는 신적 존재가 아니다. 성부 하느님께는 어머니가 없다. 마리아는 성자의 신성을 낳으신 분도 아니다. 성자의 신성은 아버지께로부터 영원하게 낳으심이 있었다. 따라서 마리아는 ‘창조주의 어머니’가 아니다. 그리스도(구세주)의 어머니 유일한 구세주이며 중재자는 그리스도이다.(1티모 2,5 참조) 그렇다고 해서 마리아가 구원 역사 안에서 아무런 역할을 하지 않은 것이 아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당신 아들이 여인에게 태어나는 것 없이는 이루어질 수 없었다”고 밝히고 있다.(갈라 4,4-5 참조) 이렇게 구세주께서는 우리를 하느님 자녀가 되게 하시기 위해서는 마리아 어머니를 통해 인간이 되셔야 했다. 그런데 이때 인간으로 탄생하시는 분은 이미 존재하시는 분이다. 아들은 중재자로, 구세주로, 모든 인류의 머리로 예정되신 분이다. 여기서 마리아의 위대함이 드러난다. 마리아는 구세주로 오시는 그리스도를 자유의지로 받아들이셨다. 인간의 어머니는 그냥 태어나는 아이의 어머니다. 하지만 마리아는 아들의 계획을 ‘네’라고 받아들이고, 자신의 운명을 아들의 운명에 결합시킨다. 하느님의 아들은 구세주로 육화하시길 원하셨고, 동정녀 마리아는 구세주이신 하느님 아들을 낳으시기로 응답하셨다. 육화에 대한 마리아의 동의는 그 자체로 구세주의 구원사업에 동참하신 것이다. 그렇게 마리아는 우리의 구원에 기여하셨다. 그리스도를 잉태하시고 낳으시고 성전에서 성부께 바치시고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그 아드님과 함께, ‘구세주의 어머니’로서 기여하셨다.(「교회헌장」 61항 참조) 하느님의 어머니 어떤 한 사람의 어머니라는 의미는 그 사람의 전체적 인격의 어머니이라는 것을 뜻한다. 이를 쉽게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글을 배우지 못한 어머니가 있다고 가정해 보자. 그 어머니의 아들이 대학 교수가 되었다. 아무리 어머니가 비천하다고 해도, 어머니는 어머니다. 글을 모른다고 해서 대학 교수의 어머니가 아닌 것이 아니다. 안중근 의사의 어머니는 육체적 안중근의 어머니임과 동시에 사춘기 지난 청년 안중근의 어머니이다. 독립투사로 활동한 공생활 중의 안중근의 어머니이고, 동양평화론이라는 위대한 사상을 부르짖다 순교한 안중근의 어머니이다. 마찬가지로 마리아도 소년 예수의 어머니임과 동시에, 영원하신 하느님 아들의 전 생애를 낳으신 어머니이다. 성경은 마리아에게서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다”(루카 1,35)라고 했다. ‘그 분의 어머니’ (마태 1,18; 2,11; 13,20; 12,46; 13,55)가 바로 마리아이다. 예수님은 기적을 일으키시는 하느님의 아들이시고, 마리아는 그 하느님의 아들의 어머니이다.(요한 2,1-12 참조) 그렇다.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고 부르는 것은 예수님이 온전한 하느님이시며 온전한 인간이라는 신앙 고백이다.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을 낳으셨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셨던 믿음으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신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 보자. ‘하느님의 어머니’가 가능하도록 한 마리아의 위대한 응답은 오늘날 교회와 우리 모두가 따라야 할 모범이다. 그래서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가 된다. 교회의 어머니 처녀의 몸으로 하느님의 아들 구세주를 잉태할 것이라는 엄청난 말에 마리아는 “예”라고 응답했다. 그렇게 마리아는 하느님의 아들이신 구세주를 온몸으로 받아들이셨고, 동시에 인류 구원이 가능해졌다. 이렇게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로 불림 받은 은혜(수동)와 “예”라는 응답(능동), 두 응답으로 당신 아들인 그리스도와 일치하셨다. 이 점에서 마리아는 교회의 전형이다. 교회 또한 자녀로 불림 받은 은혜에 “예”라고 응답해야 하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와 일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의 첫 구성원으로서, 마리아는 그리스도 강생의 순간부터 전 교회를 표현한다. 교회의 머리는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이다. 마리아는 그 교회의 머리를 낳으셨다. 따라서 하느님의 어머니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이다. “마리아께서는 교회의 가장 뛰어나고 유일무이한 지체로서 또 믿음과 사랑 안에서 교회의 가장 훌륭한 전형과 모범으로서 존경을 받으시며, 가톨릭교회는 성령의 가르침을 받아 자녀다운 효성으로 마리아를 가장 사랑하는 어머니로 받든다.”(「교회헌장」 53항) 종합 : 예수님의 어머니, 구세주의 어머니 하느님의 어머니, 교회의 어머니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은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며, 인류의 구원을 위해 이 세상에 동정녀 마리아를 통하여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오셨다. 마리아가 낳은 참 인간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러 이 세상에 오신 참 하느님이시다. 그렇다면 명백해진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어머니시고, 구세주의 어머니시며, 하느님의 어머니시고, 교회의 어머니이시다. cpbc2026.01.28

겸손하며 서로 섬기고 일치하는 삶을[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1)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바오로 사도의 옥중 서간으로 바오로의 인간미가 가장 엿보이는 서간이다. 필리피서는 그리스도의 비움을 본받아 겸손하고 일치된 삶을 살아가라고 권고한다. 사진은 바오로 사도가 리디아에게 세례를 준 곳으로 추정되는 지각티스 강변 세례터. 필리피는 고대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의 한 도시였습니다. 기원전 358~357년 알렉산더 대왕의 아버지 필리포스 2세가 이 도시를 건설하고 자기 이름을 따서 ‘필리피’라 했습니다. 기원전 147년 로마인들은 이 도시를 점령해 속주로 만들었습니다. 고대 로마사에서 필리피는 기원전 42년 공화정 말기 옥타비아누스, 안토니우스 군대와 율리우스 카이사르를 암살했던 브루투스·카시우스의 군대와 2차례 전투를 치른 곳으로 유명한 곳이지요. 이 전쟁 이후 기원전 31년 고대 로마제국의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이 도시에 퇴역 군인들을 이주시켜 여러 특권을 부여해 ‘콜로니아’ 곧 식민 도시로 건설했습니다. 필리피는 유럽과 소아시아를 잇는 상업 중심지요 군사 요충지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2차 선교 여행(50~52년) 때 지중해 연안도시 트로아스에서 마케도니아 사람 한 명이 나타나 자신들을 도와달라는 환시를 보고 실라스와 티모테오와 함께 샤모트라케·네아폴리스를 거쳐 필리피로 가서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 공동체를 세웁니다.(사도 16,11-40) 이로써 필리피는 유럽 최초의 그리스도교 신앙을 받아들인 곳이 됐습니다. 당시 필리피에는 유다인들이 많이 살지 않아 시나고그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성 밖 지각티스 강가에서 안식일 기도 모임을 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곳에서 설교해 유다인 몇 사람을 개종 입교시켰습니다. 그들 중 소아시아 티아티라 출신의 자색 옷감장수 리디아도 있었습니다. 그녀는 바오로 사도 일행을 자기 집에 머물게 했습니다. 그래서 리디아의 집은 필리피 교회의 요람이 됩니다. 하지만 오래지 않아 바오로 사도는 점 귀신 들린 하녀에게서 귀신을 쫓은 일로 주인에게 고발돼 감옥에 갇혔다가 기적처럼 풀려나 필리피를 떠나 테살로니카로 내려갑니다. 필리피 신자들은 또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갇혔을 때 에파프로디토스를 보내 그의 옥바라지를 하게 했습니다. (필리 2,25; 4,18) 이 일로 필리피 교회는 여느 지역 교회보다 바오로 사도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후 몇 차례 마케도니아를 거쳐 필리피 교회 신자들을 만납니다.(사도 20,1-6; 1코린 16,5; 2코린 2,13; 7,5) 바오로 사도는 늘 자기 손으로 생계비와 선교비를 마련해 선교 여행을 다녔지만 가장 친밀한 필리피 교회 신자들의 물질적 도움만은 기꺼이 받았습니다.(필리 4,15-16; 2코린 11,8-9)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옥바라지를 하던 에파프로디토스가 중병에 걸리자 그를 집으로 돌려보내면서 그간 도움을 준 필리피 신자들에게 고마움을 전하기 위해 편지를 씁니다.(필리 2,25-30) 바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필리피서) 입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Φιλιππησιουs’(프로스 필리페시우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Philippense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필리피서는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바오로 사도의 ‘옥중 서간’으로 분류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에페소, 카이사리아, 로마에서 수감생활을 했습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갇혀 있을 때 필리피서를 쓴 것으로 추정합니다. 자신이 석방되면 필리피로 직접 가겠다고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1,25-26) 성경학자들은 또 필리피서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ㆍ둘째 서간보다 조금 앞서 쓰였다고 합니다. 이에 필리피서는 대략 56~57년께 쓰인 것으로 추정합니다. 필리피서는 모두 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성경학자 중에는 필리피서가 한 번에 쓰인 것이 아니라 바오로 사도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짧은 친서 몇 편을 한 서간으로 편집한 것으로 보기도 합니다. 그래서 필리피서를 ‘감사의 편지’(1,1─3,1; 4,10-23)와 ‘이단을 경고하는 편지’(3,1─4,9)로 나누기도 합니다. 필리피서는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서 쓴 서간이지만 희망과 기쁨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특별히 친밀한 관계를 맺어왔던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기에 바오로 사도의 서간 가운데 가장 인정이 넘치는 편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비록 몸은 멀리 떨어져 있어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친교를 통해 가까이 있다고 인사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겪는 시련은 자신에게 문제가 있어서가 아니라 복음 선포에 큰 이익이 되기 위함이라고 강조합니다. 곧 자신을 철저히 낮춤으로써 하느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고백합니다.(1,12-26) 바오로 사도는 필리피 신자들에게 분열되지 말고 화목과 일치를 이루길 권고합니다. 자신을 낮추어 십자가의 죽음에 이르기까지 순종하신 그리스도를 본보기로 겸손하고 서로 섬기는 삶을 살 것을 당부합니다.(2,6-11) 그러면서 바오로 사도는 선동자들의 유혹에 빠지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경계하는 선동자들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ㆍ둘째 서간에서 반박한 영지주의 영향을 받은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입니다. 그들은 할례와 율법 준수를 요구하고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무시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들 선동자를 “개들”, “나쁜 일꾼들”(3,2)이라고 힐난하면서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닐 것을 권고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수난과 부활에 동참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를 하늘로 부르시어 주시는 상을 얻으려고, 그 목표를 향해 달려갈 것을 당부합니다.(3,8-16) 리길재 선임 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7.09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 전하는 예수님 그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3)루카 복음서 루카 복음서는 ‘가난한 이들의 복음서’, ‘사회 복음서’로 불릴 만큼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께서 만민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임을 고백한다. 루카 복음서 저자 이콘. 루카 복음서는 ‘가난한 이들의 복음서’, ‘억압받는 이들의 복음서’, ‘사회 복음서’라 불립니다.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가난한 이들, 눈먼 이들, 억압받는 이들의 해방을 알리는 희년을 선포하시면서 공생활을 시작하셨다고 루카 복음서가 서술하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헬라어 신약 성경은 ‘Κατα Λουκαν Αγιον Ευαγγελιον’(까타 루칸 하기온 에우안겔리온-루카에 의한 거룩한 복음), 라틴어 대중 성경 「불카타」는 ‘Luca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루카 복음서’라고 표기합니다. 180년께 로마에서 작성된 「무라토리 경전 목록」과 2세기 프랑스 리옹의 주교 성 이레네오(130/40~200/202)는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에서 바오로 사도의 협력자 가운데 의사 출신인 루카가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을 집필했다고 밝혔습니다.(콜로 4,14; 필레 1,24; 2티모 4,11 참조) 하지만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는 바오로 사도의 협력자 루카가 아니라고 주장합니다. 그 이유로 △사도행전은 바오로의 회심을 세 차례에 걸쳐 극적인 사건으로 서술하지만(사도 9,1-19; 22,3-21; 26,9-18), 정작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내적 체험으로 간결하게 언급합니다.(갈라 1,15-16; 1코린 9,1; 필리 3,12)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시작부터 승천하신 때까지 따라다닌 제자들만을 사도로 인정하지만(사도 1,21-22; 루카 1,2), 바오로는 자신을 사도로 자처했다는 점 등을 제시합니다.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이런 이유와 함께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의 저자는 이스라엘의 지리를 잘 알지 못할 뿐 아니라 정결법과 속량법 등 유다인의 풍습도 잘 모르고 있어(루카 1,59; 2,22-24; 5,19; 6,48; 14,5) 교육을 많이 받은 이방계 그리스도인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루카 복음서가 쓰인 장소로 카이사리아, 데카폴리스, 안티오키아, 아카이아, 로마 등을 거론하지만 모두 추측에 불과합니다. 분명한 것은 이스라엘 밖 이방인 지역에서 집필됐다는 것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50~60년께 집필된 「예수님 어록」(Q)과 70년께 쓰인 마르코 복음서를 참고했고, 70년에 로마군이 예루살렘을 점령한 후 유다인들을 학살하고 포로로 끌고 간 것 사실을 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00년께 쓰인 사도행전보다 앞서 저술된 것으로 보아 대략 80~90년께 집필됐으리라 추정합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의 행적과 가르침을 ‘테오필로스’(우리말-‘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에게 알리기 위해 쓰였습니다. 테오필로스는 실재 인물일 수도 있고 가상 인물일 수도 있습니다만, 교회 가르침을 배운 예비신자이거나 새로 입교한 교우로 소개됩니다. 머리말 마지막 부분인 1장 4절에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드리려는 것입니다”라는 문장을 근거로 루카 복음서 저자는 그리스도교에 막 입교한 사람이거나 그리스도교에 귀의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신앙의 확신을 심어주려고 복음서를 집필한 것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머리말(1,1-4), 도입부(1,5─4,13), 갈릴래아 활동(4,14─9,50), 예루살렘 상경(9,51─19,28), 예루살렘 활동(19,29─24,53)으 구성돼 있습니다. 신약 성경 가운데 루카 복음서와 사도행전만이 머리말이 있습니다. 도입부에 요한 세례자와 예수님의 잉태, 탄생, 성장 과정을 나란히 서술해 예수님께서 구약의 마지막 예언자인 요한 세례자보다 훨씬 위대하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족보(3,23-38)를 통해 예수님께서 온 인류의 구원자이심을 드러냅니다. 이어 악마의 유혹(4,1-13)을 통해 예수님을 통한 구원의 시대가 열렸음을 서술합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맨 처음 고향 나자렛에서 공생활을 시작하심을 드러냅니다.(4,16-30) 이어 갈릴래아로 떠나 예루살렘으로 상경하기까지 예수님의 활동을 서술하면서 주님의 십자가 수난과 부활 승천을 예고합니다.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수난하고 죽으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며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갈릴래아가 아닌 오직 예루살렘(24,36-49)과 인근 엠마오(24,13-35)에 나타나시고 베타니아 근처에서 승천하셨다고 알립니다.(24,50-51) 루카 복음서는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많이 예수님께서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신 분이심을 강조합니다. 루카는 실재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하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가난한 이들을 위한 네 가지 행복 선언과 부자들을 위한 네 가지 불행 선언을 나란히 소개합니다. 루카 복음서는 가난하고 소외당하고 차별받는 모든 이에게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신 예수님께서 만민의 구원자이신 그리스도이심을 고백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께 가장 많이 “주님” “스승님”이라고 부르며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구원자”라고 합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5.14

자유로운 성경 해석 때문에 다양한 교파 생겨 [그리스도인 일치의 여정](51) 개신교는 왜 많은 교파로 갈라졌나요 프란치스코 교황과 성공회 캔터베리대교구 저스틴 웰비 대주교가 1월 25일 로마 성 바오로 대성당에서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을 마무리하며 개신교 성직자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OSV 18세기 이후 시작된 신앙 각성 운동 영향 개인 신앙 체험 바탕 다양한 교파 탄생 국내 400여 개에 이르는 개신교 교단 있어 교파(敎派, denomination)란 종교적 견해나 입장에서 같은 신학과 신앙관을 공유하는 이들의 공동체를 뜻합니다. ‘교파’라는 용어를 흔히 ‘종파’(宗派)와 혼용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종파는 그리스도교 이외의 종교들 안에서 서로 다른 견해로 갈라져 있는 분파를 뜻하므로, 같은 그리스도교 신앙이지만 교리의 해석과 교회관이 서로 다른 천주교와 개신교를 구분하는 용어로는 ‘교파’를 사용하는 것이 적절합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개신교)가 가톨릭교회로부터 갈라져 나간 뒤, 개신교 내부에서는 성경과 교리는 물론 예배 의식의 차이가 서로 다른 신조를 공유하는 교파로 발전해 나갔습니다. 종교 개혁이 시작된 독일에서는 마르틴 루터의 개혁 사상을 바탕으로 ‘루터교’가 발전하였지만, 프랑스에서는 장 칼뱅의 영향으로 평신도 장로들이 교회를 이끄는 ‘장로교’가 크게 발전하였습니다. 영국에서는 로마 사도좌와 갈라져 국교회의 형태로 발전하여 가톨릭의 제도와 전례를 수용하지만 동시에 프로테스탄트의 개혁 신앙을 받아들인 ‘성공회’가 시작되었습니다. 이후 성공회 사제였던 존 웨슬리가 18세기 이후 신앙의 내적 체험을 강조하면서 ‘감리교’ 신앙이 싹을 틔웠고, 영국의 청교도 정신을 가진 이들이 미국으로 이주하면서 금욕과 복음주의 성향이 강한 ‘침례교’와 ‘성결교’가 시작되었습니다. 또한 19세기 이후에는 오순절 운동에 영향을 받은 교회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개신교 안에서 다양한 교파들이 생겨난 이유는 성경에 대한 자유로운 해석 때문입니다. 특히 18세기 이후 시작된 신앙 각성 운동의 영향은 개신교의 다양한 교파들을 발생시켰습니다. 이전까지는 루터와 칼뱅의 정신을 계승한 루터교와 장로교가 주류였고, 이들은 교회가 사회와 국가와 맺는 관계에서 정립된 교파의 성격이 강하였습니다. 그러나 18세기 이후 개인의 신앙 체험을 바탕으로 한 교회 정신이 중요시되면서 더 이상 국가 교회의 성격이 아닌 개인의 신앙 체험에 기반을 둔 다양한 교파들이 탄생하기에 이른 것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19세기 말 장로교와 감리교가 근대화의 선봉에서 교육과 복지, 병원 사업 등의 간접 선교를 통하여 들어오기 시작하였고, 20세기 초에는 성공회를 비롯하여 감리교, 성결교, 침례교, 구세군, 오순절 교회들이 차례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유감스럽게도 한국의 개신교는 개신교 교파의 고유한 교리와 색깔보다는 천주교와 차별화된 신앙을 전파하는 데 관심을 가져, 개신교 교회마다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런 분열 현상을 반영하듯 현재 한국에는 400여 개에 이르는 개신교 교단(「2018 한국인 종교 현황」 : 문화체육관광부 2019년 발표문 참조)이 있습니다. 교회 문헌 ⓒ 한국천주교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 위원회cpbc2024.04.03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새 삶, 생활과 교회에서 살아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2)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삶을 교회와 세상 안에서 실현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미국 뉴욕의 한 성당에서 유아 세례식이 거행되고 있다. OSV 콜로새는 소아시아 프리기아주 남서부에 위치한 소도시입니다. 에페소에서 동쪽으로 약 170㎞ 떨어져 있으며 라오디케이아와 히에라폴리스가 인근에 있었습니다. 라오디케이아는 에페소와 함께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한 곳으로 초대 교회 당시 이 지역 그리스도교 신앙 공동체의 중심이었습니다.(묵시 1,11; 3,14) 콜로새는 양 사육과 양모 섬유업으로 번성했으나 61년 지진 피해를 크게 본 후 점차 쇠락해졌습니다. 콜로새는 바오로 사도가 직접 선교하지 않았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2차 선교여행을 마치고 에페소에서 27개월간 머물며 주변 지역을 선교하던 시기에 그의 동료(제자)인 에파프라스가 고향 콜로새를 비롯해 라오디케이아와 히에라폴리스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신앙공동체를 세웠습니다.(1,7; 4,13)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에 가본 적이 없지만, 동료가 세운 교회이기에 직접 얼굴을 보지 못한 콜로새 신자들을 위해 노력을 아끼지 않았습니다.(1,24─2,5) 그 예로 감옥에 갇혀 있던 바오로 사도는 에파프라스로부터 콜로새 교회가 신앙 문제로 시련을 겪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들을 돕고자 자신을 대변할 수 있는 티키코스와 콜로새 사람 필레몬의 종인 오네시모스를 보냅니다. 그러면서 편지를 써서 그들 편으로 콜로새 신자들에게 전합니다.(4,3-18) 이 서간을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Κολοσσαειs’(프로스 콜로새이스), 라틴어 대중성경 「불가타」는 ‘Ad Colossense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콜로새서)이라고 표기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콜로새서를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에페소서),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옥중 서간’으로 분류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있을 때 쓴 서간이라는 것입니다. 콜로새서는 바오로 사도가 직접 썼다, 아니다 하는 ‘친저성 논란’이 있는 서간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친서로 주장하는 학자들은 콜로새서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갇혀 있을 때(54~57년) 쓰였을 것이라고 합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과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 쓰였을 때와 비슷한 시기입니다.(1코린 15,32; 2코린 1,8-10) 친서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학자들은 61년 대지진 후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을 쓴 직후 콜로새 교회에 대한 책임감을 가진 바오로의 동료(제자)가 콜로새서를 썼다고 봅니다. 또 어떤 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순교한 후 1세기 말엽에 쓰였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이들은 콜로새서가 바오로 사도가 친서에서 강조했던 ‘종말’에 관해 관심이 현저히 줄어 있을 뿐 아니라 영지주의에 맞서 사도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을 근거로 제시합니다.(2베드 3,15-16 참조) 콜로새서는 신자들 사이에서 유다교 율법 중심주의를 강요하고, 헛된 철학을 논하는 이들을 경계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한 새 삶을 살아갈 것을 권고하기 위해 쓰였습니다. 콜로새서는 에페소서와 주제 및 구성이 참으로 닮은 서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보편적 화해’라는 두 서간의 중심 주제가 더욱 그렇습니다.(2,12-13; 3,1; 에페 2,5-6) 또 ‘그리스도의 신비’(1,26-27; 2,2; 4,3; 에페 5,32),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1,18-24; 2,19; 에페 5,23-30), ‘그리스도와 함께하는 부활’(2,12-13; 에페 2,5-6), ‘옛것을 벗고 새것을 입음’(3,5-14; 에페 4,17-24) 등에 대한 가르침이 두 서간에 함께 나타납니다. 아울러 두 서간은 표현과 구조도 비슷합니다. 서간의 수신자를 “성도들 곧 그리스도 안에서 사는 형제 신자들”(1,2; 에페 1,1)이라고 표현하고, 그리스도인 가정에 대한 권고를 아내와 남편, 자녀와 부모, 종과 주인 관계 순으로 다룹니다. 하지만 주 관심사가 에페소서는 ‘교회’라면, 콜로새서는 ‘그리스도’로 차이를 보입니다. 콜로새서는 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인사 및 복음 전파에 대한 감사의 말(1,3-8), 신자들을 위한 기도(1,9-14), 그리스도를 우주의 머리로 기리는 찬가(1,15-20), 복음에 따라 살아가는 하느님과 화해한 공동체(1,21-23), 콜로새 신자들을 위해 노력하는 바오로 사도의 사도직(1,24─2,5),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이루는 충만한 새 삶(2,6─3,17), 그리스도인 가정과 그리스도인 삶에 대한 여러 권고(3,18─4,6), 끝인사(4,7-18) 순으로 전개됩니다. 콜로새 교회는 바오로 사도가 선교한 소아시아의 여러 교회처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과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이 함께 신앙공동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콜로새 신자들에게 이민족 사이에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그리스도의 말씀과 고난을 완성으로 이끌어 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1,24-2,5) 그리고 이단 설교가들이 전파하는 교리와 그 실천에 따르는 위험을 경고합니다.(2,6─3,4) 앞서 설명했듯 바로 콜로새서를 쓴 이유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언제나 내 존재의 중심을 “그리스도 안에” 두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라 합니다.(2,16─3,4) 세례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은 옛 인간을 벗어 버리고 새 인간을 옷처럼 입은 사람이 됐습니다. 새 인간의 새 삶은 그리스도교 공동체 안에서 실생활과 전례를 통해 실현됩니다.(3,5-11)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7.16

그리스도 사랑으로 새 삶을 살아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80)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에페소서는 하느님의 구원 신비가 그리스도를 통해 실행되었고 교회 안에서 완성된다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이미 구원된 그리스도인들은 옛 인간의 생활을 버리고 사랑을 기반으로 한 새 인간의 삶을 살아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에페소 고대 유적지 전경.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에페소서),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콜로새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둘째 서간, 티토에게 보낸 서간을 ‘제2 바오로 서간’ 또는 ‘바오로의 차명 서간’이라 합니다. 제2 바오로 서간 또는 바오로의 차명 서간은 바오로 사도의 친서와 표현이나 신학 사상에 유사한 점이 많지만, 바오로를 따르던 제자들(‘바오로 학파’)이 바오로의 이름으로 저술한 서간들입니다. 신약 성경이 저술되던 고대 로마 시대에는 이처럼 자신이 쓰는 글에 권위를 부여하기 위해 차명으로 글을 쓰는 경우가 흔했다고 합니다. 에페소서는 바오로 사도가 이 서간을 썼다고 명기하고 있습니다.(1,1; 3,1) 이런 근거로 신약 성경 정경이 성립될 시기인 2세기 중엽에 저술된 마르키온과 무라토리 경전 목록은 에페소서를 바오로 사도의 서간으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18세기 말엽 이후 신약성경 양식과 문헌 비평에 대한 학문이 발전하면서 성경학자들 사이에서 바오로 사도의 에페소서 친저성에 의문이 제기됐습니다. 50여 개에 달하는 어휘가 바오로 사도의 서간 중 에페소서에만 사용되고 있고, 그리스도와 교회 등에 관한 가르침이 다른 바오로 사도의 서간과 차이를 보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에페소서를 비롯한 ‘제2 바오로 서간’은 친저성 여부를 떠나 초대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바오로 사도를 통해 전해진 하느님의 말씀, 곧 성경으로 받아들여져 오고 있습니다. 이에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Εφεσιουs’(프로스 에페시우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Ephesio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에페소서는 콜로새서보다 나중에 쓰였습니다. 그래서 저술 시기를 70년 이전으로 잡을 수 없습니다. 또 로마 제국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81~96)가 치세 말기에 그리스도인을 박해해 소아시아 교회들에 큰 위기가 닥쳤는데(요한 묵시록 참조) 이에 관한 언급이 에페소서에는 전혀 없습니다. 그리고 100~110년 사이에 쓰인 안티오키아의 이냐시오 성인 편지들에 에페소서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성경학자들은 80년에서 90년 사이에 에페소서가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에페소서와 콜로새서의 긴밀한 관계를 고려해 에페소 주변에서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에페소서는 콜로새서와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필레몬에게 보낸 서간과 함께 ‘옥중 서간’이라 불립니다. 바오로 사도가 감옥에 갇혀(3,1; 4,1; 6,20) 동료들과 지내면서 자신의 처지를 알리기 위해 티키코스를 에페소와 콜로새 교회로 보내고(6,21-22; 콜로 4,7-8), 순교 전 로마 감옥에 있을 때 필레몬에게 편지를 써보냈기 때문입니다. 에페소서는 모두 6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크게 ‘교리’(1─3장)와 ‘권고’(4─6장) 부분으로 나뉩니다. 에페소서는 유다계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와 이방계 그리스도인으로서 ‘여러분’으로 구분됩니다. 에페소서는 교회 일치와 단일성을 드러내기 위해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여러분을 ‘새 인간’으로 만드셨다고 강조합니다. 그러면서 옛 인간의 옛 생활에서 벗어나 새 인간의 새 생활을 실천해야 하며 새 생활의 규범은 서로 용서하고 사랑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에페소서의 중심 주제는 ‘신비’라고 불리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이 구원 계획은 창조 이전 영원의 차원에서 미리 결정돼 인류의 역사가 흘러오는 동안 가려져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실행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구원 행위, 곧 새로운 창조가 실제로 이뤄지는 곳은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하느님의 백성’인 동시에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하느님의 계시는 그리스도인들의 교회 안에, 그리고 교회를 통해 주어집니다. 하느님의 구원 계획은 천상 영역에까지 반향을 일으킵니다.(1,22; 4,8-10) 따라서 교회는 하느님의 ‘신비’를 명백히 드러내고 구원의 완성을 향해 나아가는 실체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미 구원을 받은 이들입니다.(2,8) 세례를 받은 이들은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여 영광 속에 들어간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옛 생활을 버리고 새 생활 방식에 따라 살아가야 합니다. 그리스도를 옷처럼 입어야 하고(4,17-31) 하느님을 본받아야 하며(4,32─5,2), 어둠을 벗어나 빛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5,3-20)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본받음(4,31─5,2)은 사랑의 태도로 드러납니다. 사랑의 태도는 친절·자비·용서와 자신을 내어줌이라고 합니다. 에페소서는 또 “그리스도를 경외하는 마음으로 서로 순종하십시오”(5,21)라고 권고합니다. 특히 그리스도인 혼인의 품위를 그리스도께서 교회에 베푸시는 사랑의 신비로 투영합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부부는 서로 사랑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모든 일에 언제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하느님 아버지께 감사를 드리라고 권고합니다.(5,20)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7.02

낙태죄 개악에 맞서 생명 수호, 올해는 WYD 잘 준비하는 해 [신년대담 ] 이용훈 주교 (주교회의 의장, 수원교구장) 2026년 병오년은 한국 교회와 우리 사회 전체가 함께하는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를 한 해 앞둔 시점에서 만반의 준비를 잘 갖추고자 매진해야 하는 해다. 한편 정부 여당이 추진하는 낙태 관련 법안은 태아의 생명권을 위협하고 있고, 신학생 감소는 한국 교회 미래를 어둡게 하는 요인이 되고 있다. 그런 가운데 지난 12월 20일 곽진상 신부가 수원교구 보좌 주교로 임명됐다. 본사는 주교회의 의장이자 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를 만나 2026년 한 해 전망을 들었다. 이번 대담은 수원교구 곽진상 보좌 주교 임명 전에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주교님의 올해 소망이 있다면요. 수원교구 내에 편찮거나 또 심리적으로 어려움을 겪는 사제들이 계셔서 가까이하면서 좀 찾아뵐 생각입니다. 또 제가 글도 쓰고 강론도 하니까,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내용을 모아 책을 낼 생각도 있습니다. 지난 12월에도 하느님이 만드신 지구촌 피조물 보호의 가치와 실천적 방법을 담은 신간 「창조 vs 파괴」를 낸 바 있습니다. 새해에 모두가 각자 희망하는 바를 잘 이룰 수 있는 제언이 있을까요. 기도의 생활화가 가장 중요합니다. 기도를 더 잘하기 위해선 성경 말씀을 자주 들여다봐야 하고, 주일 미사 참여에 소홀함이 없도록 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다음은 행동이죠. 나눔과 선행입니다. 재능이든 무엇이든 넉넉한 마음으로 나눴으면 합니다. 기본 교리에서 나아가 사회적 가르침과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에 관한 교황님과 교황청 지침들도 꼼꼼히 보면서 건강하고 바람직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갔으면 합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1년여 앞으로 다가왔습니다. 우리는 어떤 마음으로 한 해를 보내야 할까요. 우선 주교회의 차원에서는 교구대회 준비 책임자인 주교회의 청소년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종강(청주교구장) 주교님께 이와 관련한 전권을 위임했습니다. 각 교구 청소년 관련 담당 신부님들과 협의하면서 특히 교구대회가 성공적으로 준비되고 치러지도록 계획하고 있습니다. 서울 WYD 조직위원회와도 긴밀히 협업하며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대회를 위해 ‘묵주기도 10억 단 바치기 운동’에 참여해주시길 요청드립니다. 나아가 우리 신자들이 준비해야 할 분야가 전 세계 청년들을 맞이할 홈스테이 참여입니다. 언어·문화의 이질감 때문에 걱정을 많이 하는데, 환대하는 마음만 가지면 얼마든지 가능합니다. 레오 14세 교황님은 지난해 5월 첫 강복에서 “두 팔 벌린 광장처럼 대화하는 교회가 됩시다”라고 하셨습니다. 교구대회 기간 내 집과 방을 4박 5일 동안 내어주는 홈스테이 제공에 동참해주시길 바랍니다. WYD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1년 앞으로 다가왔다. 2025년 3월 15일 2027 WYD 수원교구대회 발대식 및 발대미사 참석자들이 기도하고 있다. 수원교구 제공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앞두고 레오 14세 교황님께 우리가 특별히 청해야 할 것은 무엇일까요.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여건만 조성이 되면 언제든지 북에 가겠다’라고 여러 번 말씀하셨죠. 레오 14세 교황님도 그 뜻을 이어받아 남북관계와 분단된 상황에 안타까움을 갖고 계실 겁니다. 북한 청년들을 초대하는 것엔 아무 이의가 없지만, 정치적으로 풀어야 하는 과제가 있습니다. 세계청년대회를 하면서 북한과의 관계가 개선됐으면 합니다. 또 세계청년대회가 가경자 최양업 신부님뿐 아니라 추진 중인 많은 시복 대상자들이 시복되는 데 속도를 내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의 성공적 개최를 위해 정부·지자체와의 긴밀한 협력, 다른 종교와 함께하는 일도 중요하겠죠. 정부 차원에서는 안전·교통·숙박 등에 가장 심혈을 기울여 함께 준비해야 합니다. 그래서 정부도 국회에서 관련 특별법안이 빨리 통과되도록 노력 중인 것으로 들었습니다. 수원교구 차원에서는 경기도와 협조가 잘 되고 있습니다. 함께 회의하고, 정보를 공유하고 있습니다. 타 종교와의 협력은 당연합니다. 전 세계에서 2주간 걸쳐 하는 종교 젊은이 축제는 WYD 외에는 없습니다. 제가 다른 종교 지도자들에게 잘 알리고 있습니다. 또 비신자 청년들과 함께할 프로그램도 계획하고 있습니다. 환경·평화·정의 주제를 비롯해 소외계층과 함께하고 그들을 돕는 문제는 얼마든지 함께할 수 있습니다. 이달부터 2027년 5월까지 세계청년대회 상징물인 십자가와 성모 성화의 국내 순례가 이어집니다. 여기에도 비신자 청년들을 초대하면 좋겠습니다. 수원교구는 올해가 그리스도 안에서 일치 3개년 여정 마지막 해입니다. 교구민이 꼭 실천하거나 마음에 새겨야 할 내용은 무엇인가요. 우리 교구가 ‘말씀과 전례 중심의 일상생활이 많이 자리 잡았다’고 평가하고 싶습니다. 3년간 사목 목표를 통해 생태 환경을 보존하면서 청소년들의 신앙생활을 제고하고자 했습니다. 더 당부할 것은 첫째로 우리 신자들이 기본적인 성경, 교리 공부, 피정, 순례, 봉사에 더 열중해주셨으면 합니다. 두 번째는 사회교리·정치·경제·노동·생명 문제에도 바른 식견을 갖고 말과 행동에 임해줬으면 합니다. 코로나19 이후 교회 차원에서 새롭게 신자들을 맞이하고 참여를 독려할 방안이 있을까요. 수원교구의 경우만 봐도 본당별로 조금씩 차이는 있지만, 여전히 회복 단계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좀더 적극적으로 찾아가는 사목을 펼쳐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금은 가정이든 어디든 문을 열어주기도 쉽지 않죠. 그렇기에 신앙생활로 바로 인도하는 것도 좋지만, 전 단계로 본당 공동체 안에서 동아리 모임을 활성화하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본당 울타리 안에서 작은 취미 모임부터 마련해 사람이 모이면 같이 기도하고 성지순례하고, 이후 시간이 흘러 신심 단체 활성화에도 기여하게 되지 않을까요. 청년 신자들을 위해서도 여러 사목 콘텐츠도 개발해야 하지만 오프라인에서 그들을 우선 만나는 게 필요할 것입니다. 사제 성소 감소는 한국 교회의 과제로 떠올랐다. 2025년 12월 5일 수원교구 사제서품식에서 이용훈 주교와 교구 사제단이 새 사제들에게 안수하고 있다. 수원교구 제공 갈수록 사제·수도 성소가 감소하는 상황은 큰 고민입니다. 신학교나 각 수도회 또한 젊은 MZ 세대의 생각과 생활을 잘 살피고 그에 맞게 변화해야 한다고 봅니다. 사제와 수도자에게 필요한 삶이 있지만, 자칫 오늘날 젊은 성소자, 젊은 신학생, 수도자들에게 억압과 강요의 인상을 주면 답답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어떤 목마름을 갖고 있는지 좀더 잘 파악해 이해하고 포용해야 합니다. 우리가 먼저 ‘성소가 없다’라면서 포기하는 건 성급합니다. 교회부터 MZ 세대를 향한 열린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한국 가톨릭교회를 알릴 때 ‘K-톨릭’이라고도 말하기도 하는데요. 보편 교회 속에서 한국 교회 역할이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고 여겨집니다. 한국 교회 신자 수가 전체 인구의 11.3%, 600만 명 됩니다. 또 우리나라가 세계 경제 10위권에 있습니다. 교황청에서 볼 때에도 그렇고 다른 나라에서 볼 때에도 우리나라, 한국 교회는 매우 중요한 지역입니다. 물적 지원부터 성직자·수도자 파견 요청도 많은데, 우리 또한 나누는 데 인색하지 않습니다. 현재 1000여 명의 사제와 수도자·평신도들이 나가 선교 활동을 펼치고 있고, 미얀마 사태가 발생했을 때에도 교회에서 19억 원에 달하는 성금이 순식간에 모금됐죠.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때에도 평화를 향한 기도와 봉헌해주신 성금은 20억 원 이상이었습니다. ‘함께 걷는 교회’ 즉 시노달리타스 정신이 한국 교회에 더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 필요한 실천적인 방안은 무엇일까요. 시노드는 말로만 하거나 문헌 하나 나오는 걸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건 죽은 시노드에 불과합니다. 현재 진행 중인 시노드 이행 단계에 철저히 무게를 두고 있습니다. 시노드 정신을 잘 실천하는 것만이 우리 교회가 살 길입니다. 경청과 성령 안에서의 대화를 통해 우리 사명을 이행하고 교회 일에 참여하면서 친교와 교류를 더욱 이뤄가야 합니다. 교회가 환경 보호와 신앙 윤리를 어떻게 잘 조화시켜 나가야 할까요. 문명의 이기를 우리가 저버릴 수는 없습니다. 인간 생명뿐만 아니라 동식물, 모든 피조물의 생명까지 존중하면서 공동선을 증진해야 합니다. AI(인공지능)와 과학 기술 발전은 우리가 같이 가야 하는 상황이지만, 그 기술이 인간을 대체할 순 없습니다. 새 기술이 약자를 보호하고, 인간성을 증진하는 데 쓰이도록 교회와 정부 차원에서 윤리적 기준을 마련해야 합니다. 이용훈 주교가 본사와 신년대담을 하고 있다. 이 주교는 모자보건법과 낙태죄 등 개악시 끝까지 투쟁하겠다고 말했다. 수원교구 제공 지난해 국회에서 발의된 모자보건법 개정안에 임신 주수 제한을 없애고, 낙태약 허용과 건강보험 지원까지 포함하고 있어 문제입니다. 2019년 헌법재판소에서 ‘낙태가 이제 헌법에 맞지 않는다’며 불합치 결정을 하고 바로 시행령을 만들라고 국회에 주문했지만, 국회는 6년이 지나도록 손을 놓고 있습니다. 우리 교회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 항의하며 반대 입장을 표명하고 있는데, 정부는 ‘검토하겠다’는 정도입니다. 국회에서 발의된 그 악법을 수용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걱정이 됩니다. 교회는 하느님 모상대로 그분께서 만들어주시는 태아의 생명을 죽이는 모든 낙태는 주수와 관계없이 반대합니다. 교회는 이러한 사회 논란 속에서 최대한 낙태 허용 주수의 제한을 낮춰 더 많은 생명을 살릴 수 있도록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겁니다. 이러한 교회 뜻이 함께 반영된 법안이 되도록 우리는 끝까지 투쟁해야죠. 생명은 인간이 타협할 부분이 아닙니다. 오는 6월에는 제9회 전국 동시 지방선거가 치러집니다. 신자들이 어떤 기준을 가지고 지방선거에 임하면 좋을까요. 유권자들은 꼼꼼히 후보자들의 자질과 그 사람을 자세히 분석해 투표해야죠. 이번에도 주교회의 차원에서 후보자들에게 정치·경제·사회·청소년·남북한·환경 문제 등에 관해 질의해 대답을 공개할 겁니다. 후보자들을 잘 분석하고 더 나은 사람을 선택하는 데 초점을 맞춰야 합니다. 2026년을 맞이한 신자들과 국민들에게 희망과 평화의 메시지를 전해주신다면. 우리 신자들에게는 ‘작은 평화의 사도가 돼주시라’고 부탁드립니다. 모두 굉장히 마음이 메마르고, 이기주의와 물질주의, 경제 제일주의의 시대를 살고 있지만, 참 여유와 나눔·선행, 소외된 이들을 위해 나누는 우리 국민, 사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입니다.이상도 선임2025.12.30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 예수님 행적 생생[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2) 마르코 복음서 마르코 복음서는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저술됐기에 역사의 실제에 가장 가까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복음서다. 마르코 복음사가 이콘. 마르코 복음서는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쓰였고, 분량도 가장 적습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원래 16장 8절까지고 이후 내용은 덧붙여졌습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Κατα Μαρκον Αγιον Ευαγγελιον’(까타 마르콘 아리온 에우안겔리온),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Marcu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마르코 복음서’라고 표기합니다. 헬라어 ‘Μαρκοs(마르코스)’는 우리말로 ‘마르스에게 봉헌된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마르스는 로마 신화에 나오는 전쟁의 신이자 농사의 신입니다. 파종하는 3월을 ‘마르스의 달’이라 해서 라틴어로 ‘Martius’, 영어로 ‘March’라 하지요. 고대 로마인들은 자신을 마르스의 후예로 여겼습니다. 이처럼 마르코는 고대 로마 제국에서 흔한 이름이었지요. 신약 성경에는 ‘요한 마르코’라는 이름이 14번 등장합니다. ‘요한’은 히브리식 이름이고, ‘마르코’는 로마-그리스식 이름입니다. 요한 마르코는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예루살렘에 살았으며 그의 집에서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종종 열렸습니다.(사도 12,12) 그는 바오로 사도의 1차 선교 여행에 사촌 바르나바와 동행했습니다. 그들은 안티오키아에서 출발했으나 요한 마르코는 도중에 그만두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갑니다.(사도 12,25─13,13) 바오로 사도는 이를 못마땅히 여겨 2차 선교 여행(50~52년께) 때는 그를 데려가지 않습니다. 그러자 요한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 섬으로 가서 선교합니다.(사도 15,37-39) 그러나 요한 마르코는 바오로가 3차 선교 여행(53~58년께) 때 에페소 감옥에 갇히자 곁에서 그를 돕습니다.(필레 24; 콜로 4,10) 아울러 바오로는 로마에서 순교하기 직전 티모테오에게 마르코를 데려오라고 부탁합니다.(2티모 4,11) 70~100년께 로마에서 쓰인 베드로의 첫째 서간에서는 마르코가 베드로의 일행으로 로마에 있다고 소개합니다.(1베드 5,13) 이처럼 신약 성경은 요한 마르코가 베드로와 바오로 사도의 협력자임을 알려줍니다. 초대 교회 히에라폴리스의 파피아스(60년께~130년) 주교는 “마르코가 베드로 사도에게 전해 들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말씀을 기록했다고 요한 사도에게 들었다”고 증언합니다.(에우세비우스 「교회사」 12,12) 2세기 리옹의 이레네오 성인은 “베드로 사도가 순교한 다음에”,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스(150~215년) 성인은 “베드로 사도가 살아있을 때”에 마르코 복음서가 저술됐다고 합니다. 아울러 일부 교회 전승은 베드로 사도가 그의 통역자인 마르코를 이집트에 파견했고, 마르코는 알렉산드리아에 교회를 설립해 첫 번째 주교가 됐다고 합니다. 그는 그곳에서 68년께 순교했고, 그 유해는 훗날 베네치아로 옮겨진 후 산 마르코 대성전을 지어 제대 아래 안치됐다고 합니다. 이처럼 교회는 베드로·바오로 사도와 연결된 요한 마르코가 마르코 복음서를 저술했다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성경학자들은 △마르코 복음서에 바오로의 사상이 거의 없다 △수록된 예수님의 말씀이 50년대 편찬된 「예수님 어록」(Q)보다 많이 변질해 있어 베드로 사도가 전한 예수님의 말씀을 그대로 기록했다고 보기 어렵다 △치유·구마 이적이나 논쟁 사화 역시 이를 목격한 베드로가 바로 전한 이야기라 할 수 없다는 이유로 교회 전통상 마르코가 복음서 저자라고 할 뿐이지, 누가 마르코 복음서를 저술했는지 알 수 없다고 합니다. 다만, 그가 히브리어와 아람어를 알 뿐 아니라 헬라어로 집필했고, 유다인과 이방인들의 풍습까지도 잘 알고 있어 해외 유다계 그리스도인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제1차 유다-로마 전쟁을 기준으로 50~70년께 로마에서 쓰인 것으로 봅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네 복음서 가운데 가장 먼저 저술됐기에 역사의 실제에 가장 가까운 예수님을 만날 수 있는 복음서입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기(1─9장), 예루살렘 상경기(10장), 예루살렘 활동기(11─16장)로 구성돼 있습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16장 8절로 끝맺는데, 그 끝맺음이 매우 어색해 2세기에 긴 끝맺음(16,9-20) 또는 짧은 끝맺음을 덧붙였습니다. 마르코 복음서의 관심사는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1,1)입니다. 복음은 모든 사람을 위한 기쁜 소식입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나자렛 출신 예수님의 신원과 정체를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로 이야기하고 복음으로 선포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는 복음의 주제는 ‘하느님 나라’(1,14-15; 4,26-32)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참여는 인간 구원(9,43-45; 10,17-23)을 뜻합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고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지는 하느님 나라는 현실적이며 최종적이고 현재며 미래이고 보편적인 인간 구원입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을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합니다. 하느님의 아들과 같은 뜻으로 ‘그리스도’, 곧 히브리말로 ‘메시아’라고 선포합니다. 또 ‘사람의 아들’이라고도 부릅니다. 아울러 마르코 복음서는 세 번에 걸쳐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예고합니다.(8,3; 9.31; 10,33-34) 또한, 실제로 그분은 죽으시고(15,33-41) 묻히셨으며(15,42-47) 부활하시고 나타나셨다고 증언합니다.(16,1-8)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5.07
![[생활속의 복음]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체험으로 이해하게 되는 하느님 신비](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6/10/y4x1749539220878.jpg)
[생활속의 복음]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 체험으로 이해하게 되는 하느님 신비이계철 신부 (서울대교구 주교좌 기도사제) 헨드릭 반 발렌 작 ‘성 삼위일체’, 1620년. 오늘은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 대축일입니다. 그리스도교 역사에서 삼위일체만큼 논란을 불러일으킨 교리도 많지 않을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그 표현의 난해함과 추상성으로 이해가 쉽지 않기 때문에 설명을 시도하려는 노력을 ‘신비’라는 이유로 거부하는 경우도 많았습니다. 사실 삼위일체라는 단어는 성경에 나타나지 않는 표현입니다. 성경에는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그리고 성령을 함께 언급하지만 삼위일체라는 용어를 사용하지는 않습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니케아 공의회와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그리고 성 아우구스티누스의 신학을 거치면서 4세기경 형성된 교리로 그리스도교 불변의 진리입니다. 삼위일체 교리의 주된 내용은 성부·성자·성령께서 한 분의 하느님이시지만, 각기 구별되는 세 위격이시며, 세 위격은 선후나 높고 낮음이 없을 뿐만 아니라, 나뉨 없이 똑같은 신성을 갖고 계시지만, 세 분의 하느님이 아니라 오직 한 분의 하느님이라는 선언이자 고백입니다. 이 교리에 대해 알아듣기 어려운 개념으로 설명하거나 비유로 이야기하거나 설명을 아예 포기하기도 했으며 ‘신비’로서 인간이 이해할 수 없기에 그저 열심히 믿으라고 강요되기도 했습니다. 하느님에 관해 설명하기를 ‘위(位)격으로는 세 분이시고 본체로는 하나이시며, 먼저 계심도 후에 계심도 없고, 높고 낮음도 없으시며, 세 분께서 온전히 같으시다’라고 설명한 다음, 알아듣기 어려우나 중요한 교리이니 그냥 믿으라고 한다면 설득력은 떨어집니다. 또 딱딱한 교리 체계로는 자비로운 사랑의 하느님을 생각하기 어렵습니다. 오늘 축일을 지내면서 우리가 먼저 알아야 할 것은 삼위일체 교리는 하느님을 온전히 이해하고 난 다음 하느님께서 이러이러한 분이심을 설명한 교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삼위일체 교리는 시대적으로 이렇게 표현하지 않으면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께서 하느님과 관계없는 존재가 되고 마는 상황에서 선언된 교리입니다. 삼위일체 교리가 형성되었던 4세기 당시는 여러 이단과 추측과 학설이 난무하는 혼란의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인성 즉 예수님 몸의 물질적 실재를 부인 혹은 축소하거나, 그리스도의 천주성을 부정해 성부께 성자와 성령께서 예속되어 있다고 곡해하거나,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거부하는 등 수많은 오류와 빗나간 영성이 난무하던 시대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으로 말미암은 구원이 하느님의 일이라는 사실을 명확히 할 필요가 있었고, 초대 교회 때부터 고백했던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한 하느님 구원을 신학적으로 선포해야 했습니다. 그 든든한 기초가 된 것이 삼위일체 교리라 할 수 있습니다. 즉 삼위일체 교리의 핵심은 ‘구원은 인간의 힘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성령 안에서 가능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천주성은 하나이고, 그 영광은 동일하며, 그 위엄은 다 같이 영원하시다’는 선포입니다. 인간이 하느님의 신비를 완전히 이해하고 설명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가운데 신학은 하느님을 알아가는 신앙에 도움을 줍니다. 교회가 하느님을 올바로 설명해주는 방법이 교리입니다. 따라서 교리는 손쉽게 우리 신앙을 하느님께 인도해줍니다. 삼위일체 신비를 올바로 이해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하느님 신비를 체험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체험하며 살아가는 만큼 신비를 더 깊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넓고 깊은 사랑의 신비를 삶 속에서 체험하고 증거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 이계철 신부cpbc2025.06.10

모세의 탄생[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12) 지오반니 안드레아 돈 두치(Mastelletta, Giovanni Andrea Donducci, 1575~1655)의 ‘모세의 발견’(Il ritrovamento di Mose), 1618, 이탈리아 모데나 에스텐세 미술관. 이집트 파라오가 히브리 산파들에게 명령을 내린다. “너희는 히브리 여자들이 해산하는 것을 도와줄 때, 밑을 보고 아들이거든 죽여 버리고 딸이거든 살려 두어라.”(탈출 1,16) 이른바 산아제한 조치이다. 이집트인들은 잡초처럼 생명력이 질긴 유대인들의 인구 증가가 두려웠던 모양이다. 사실 유대인들은 이집트의 지배를 받는 다른 민족들과는 달랐다. 자기네들끼리만 똘똘 뭉쳤다. 이집트 문명에 쉽게 동화 되지도 않았다. 게다가 과거의 명재상 요셉의 사례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똑똑한 민족이었다. 이런 민족의 인구가 늘어난다는 것은 곧 이집트의 안보와 직결된 문제였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누구인가. 강제로 누른다고 고개를 숙이는 그런 민족이 아니다. 게다가 세상 모든 법에는 늘 빠져나갈 구멍이 있기 마련이다. 얼마 후 아므람이라는 사람이 아내 요케벳에게서 예쁜 아기를 얻는다. 남자 아이였다. 파라오의 명령대로라면 이 아기도 죽어야 했다. 그러나 부부는 초롱초롱한 눈과, 해맑은 웃음을 가진 아기를 도저히 죽일 수 없었다. 그래서 부부는 3개월 동안 아기를 숨겨 키웠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아기의 우렁찬 울음소리 때문에 숨겨 키우는 게 힘들어진 것이다. 아기가 언제 끌려가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상황. 결국 부부는 고민 끝에 왕골상자에 역청과 송진을 바르고 그 안에 아기를 눕힌 후, 나일강가 갈대숲에 버린다.(탈출 2,3 참조) 이제 아기의 운명은 하늘에 맡겨졌다. 여기서 ‘역청’(瀝靑)은 타르를 가열, 증류할 때 발생하는 끈적끈적한 검은색 물질로 아스팔트와 유사한, 당시로서는 아주 귀한 재료였다. 바벨탑 및 노아의 방주를 만들 때도 사용한 것으로 보아(창세 11,3; 6,14 참조) 역청은 당시 중요한 방수용 재료였던 것으로 보인다. 역청과 송진을 함께 왕골상자에 발랐다는 것은 그만큼 아기에 대한 부모의 애정이 남달랐음을 의미한다. 그 정성이 하늘을 움직였을까. 강변을 거닐던 이집트 공주가 이 상자를 발견한다. 공주는 예쁜 아기의 모습을 보고 한눈에 반했다. 결국 아기는 우여곡절 끝에 공주의 손에 의해 이집트 궁중에서 당시 최고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게 된다. 이 아기가 바로 ‘모세’다. ‘모세’라는 이름은 ‘물에서 건져내다’라는 뜻이다. 드라마 같은 모세의 삶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건장한 청년으로 성장한 모세는 어느 날 히브리인을 학대하는 이집트인을 ‘욱’하는 성질 때문에 살해했고, 결국 도망자가 된다. 히브리인으로서 이집트 왕궁에서 자란 모세가 느꼈을 정체성의 혼란이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후 모세는 미디안 땅으로 피신하는데, 그곳에서 사제 이트로의 딸 치로라와 결혼, 게르솜이라는 아들을 낳는다. 그렇게 한동안 평온하게 지내던 모세에게 어느 날 엄청난 사건이 발생한다. 모세가 호렙산(오늘날의 시나이산)에서 장인의 양 떼를 치고 있었다. 그때 떨기나무 한가운데에서 불꽃이 솟아올랐다. 그 불길 가운데서 음성이 들려왔다. 신과 인간이 직접 만나는 순간이다. “내가 이제 너를 파라오에게 보낼 터이니, 내 백성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어라.”(탈출 3,10) 하지만 여기서 모세는 나약한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순명 대신 한발 물러선다.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탈출 4,10) 백성을 이끌어야 할 지도자가 말을 잘하지 못한다는 것이 말이 되는가. 치명적인 약점이 아닐 수 없다. 모세의 말은 과장된 겸손이 아니었다. 사실이었다. 그는 있는 그대로의 자신의 모습을 고백한 것이다. 실제로 모세는 슈퍼맨이 아니었다. 성경을 읽다 보면 모세는 우물쭈물하고 결단력이 없는 인물로 자주 묘사된다. 그릇된 판단을 내리기도 하고, 고집이 세고, 쉽게 흥분하기도 한다. 지극히 인간적이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이 가지지 못한 것을 가지고 있었다. 인내와 땀, 신뢰와 희망, 극기와 믿음이 바로 그것이다. 그는 자신의 인간적 약점을 이겨내려고 고군분투했다. 「탈출기」 18장에는 동틀 무렵부터 해가 지기 전까지 백성들의 고충을 들어주고 판결을 내리는 모세의 열정이 잘 드러나 있다. 모세의 위대함은 여기에 있다. 모세는 열정적인 남자였다. 게다가 그 열정은 오직 하느님을 향해 있었다. 인류 역사를 되돌아보면, 역사는 때때로 위대한 인물 혹은 선택받은 인물의 카리스마 및 재능에 의해 거대한 도약을 이뤄낸다. 인류는 몇몇 위대한 철학자, 탐험가, 발명가, 시인 등에게 많은 빚을 지고 있다. 그들이 없었다면 지금과 같은 생활의 편리함도, 높은 지적 수준의 향유도 불가능했을 것이다. 인류의 비약적 도약을 가능케 한 인물 중 단연 돋보이는 인물이 바로 모세다. 모세는 단순히 한 민족의 영도자가 아니었다. 뒤에서 살펴보겠지만 인류는 그에 의해서 “아하, 사람은 이렇게 살아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배웠다. 인류에게 새로운 개념의 윤리의식을 심어준 것이 바로 모세다. 안식일의 개념, 즉 일주일에 한 번은 쉬어야 한다는 개념도 모세에 의해 파종됐다. 모세는 더 나아가 우상 숭배 등 오랜 세월 동안 무비판적으로 받아들여지던 관념을 극복, 획기적인 영적 진보를 이뤄냈다. 유일신 신앙을 재발견해낸 것이다. 모세는 당시까지 인류가 보지 못했던 것을 보게 했다. 유대인의 신이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이제 가거라.”(탈출 4,12) 이에 소명을 받은 모세는 이집트로 돌아갈 결심을 한다. 이집트로 향하는 그의 손에는 지팡이 하나가 들려 있었다. * 그동안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과 함께 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다음호부터는 [약속 _ 신약이 말을 건네다]가 이어집니다. 글 _ 편집부 cpbc2024.01.31

믿음으로 구원받고 사랑과 선행을 실천하여라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9)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바오로 사도는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구원받고, 사랑으로 서로 섬겨 성령의 열매인 참자유를 통해 육에서 해방될 것을 권고한다. 조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는 그리스도’, 1305년, 스크로베니경당, 파도바, 이탈리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하 갈라티아서)은 초대 교회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사도적 권위와 저자 문제에 관해 논란이 된 적이 없는 서간입니다. 기원전 3세기께 갈리아(오늘날 프랑스) 남부 지방, 좀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골 지역에 살던 켈트족들이 안키라(오늘날 튀르키예 수도 앙카라)를 중심으로 남으로는 지중해, 내륙으로는 카파도키아, 북으로는 흑해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지역에 이주해 살았습니다. 훗날 그리스인들과 로마인들은 이 지역을 갈리아인들이 사는 곳이라 해서 헬라어로 ‘Γαλατια’(갈라티아)라 불렀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1차 선교 여행 때 로마의 속주인 갈라티아 남쪽 피시디아·리카오니아·프리기아 등 여러 지역에 복음을 선포합니다.(사도 13,14─14,25) 그는 또 제2차 선교 여행 때 병에 걸려 갈라티아 지방에 오랫동안 머물면서 갈라티아 북부 지역 곧 카파도키아와 흑해 사이 지역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 공동체도 세우게 됩니다.(사도 16,6)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 여행(53~58년)을 시작하면서 갈라티아 지방과 프리기아를 차례로 거치며 모든 제자에게 힘을 북돋아 줬습니다.(사도 18,23) 이를 근거로 어떤 이들은 갈라티아서가 49~53년 사이에 쓰였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오늘날 대부분 성경학자들은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서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작성(57~58년)하기 몇 개월 전(56~57년께)에 갈라티아서를 썼을 것으로 봅니다. 학자들은 그 근거로 구원론과 의화론 같은 두 서간의 핵심 내용이 믿음·복음·구원·의화 등 비슷한 어투와 용어로 설명되고 있음을 제시합니다. 당시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에서는 유다계 그리스도인들로 구성된 유랑(떠돌이) 선교사들이 찾아와 이방계 그리스도인들에게 할례와 율법 준수를 강요해 마치 코린토 교회처럼 큰 혼란을 겪고 있었습니다.(3,2-3; 4,21; 5,4) 아울러 코린토 사람들처럼 갈라티아의 여러 교회도 자유를 남용하면서 도덕적으로 방종한 이들이 적지 않았습니다. 또 어떤 이들은 세례받기 이전 행했던 정령(精靈)들을 섬기는 미신 행위를 버리지 못하고 있었습니다.(4,3.9) 이에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사도적 권위로 복음에 충실할 것을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권고하기 위해 갈라티아서를 씁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Γαλαταε’(프로스 갈라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Galata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갈라티아서는 6장으로 구성돼 있으며 ‘인사말’(1,1-10)과 ‘바오로의 사도직’(1,11─2,10), ‘바오로의 복음’(2,11-21), ‘구원 역사에서 믿음과 율법’(3,1─4,7), ‘종살이로 되돌아가지 말라는 권고’(4,8─5,12), ‘참자유에 대한 가르침’(5,13─6,10), ‘마지막 권고와 축복’(6,11-18)으로 구분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먼저 인사말을 통해 갈라티아 지방의 신자들에게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의 사도직 활동의 원천이며 자기가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라고 상기시킵니다. 바오로 사도는 부활하신 그리스도로부터 이민족에게 복음을 선포하라는 사명을 받았다고 밝힙니다. 그러면서 구원은 모든 이에게 조건 없이 베풀어지며 유다인이 아닌 이민족들이 할례의 의무를 질 필요가 없다고 분명히합니다. 이는 베드로를 비롯한 사도들이 예루살렘 회의를 통해 공식 인정한 복음의 진리라고 일깨워줍니다. 바오로 사도는 구원 역사에서 드러나는 믿음과 율법의 관계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먼저, 사람은 율법에 따른 행위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고 합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으로 의롭게 됐는데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에게 약속하신 축복이 그리스도에게 전해지고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모든 사람에게도 전해지기 때문에 약속된 구원의 축복과 성령은 율법이 아니라 믿음으로 받게 되고, 율법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까지 다만 감시자 노릇만 했다고 합니다.(3,15-25)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은 하느님의 자녀가 되고, 구원 역사는 사람들이 세상의 종살이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이 누리는 참자유로 성령을 통해 건너가게 해 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된다고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덧붙여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육을 위한 것이 아니라 사랑으로 서로를 섬기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는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마르 12,31; 레위 19,18 참조)고 하신 주님의 계명으로 요약된다면서 육의 욕정과 욕망을 따르지 말고 성령을 따라 살아가라고 권고합니다. 그러면서 서로 남의 짐을 져주는 것이 그리스도의 율법을 완수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면서 온유한 마음으로 사랑과 선행을 실천해 영원한 생명을 얻도록 노력하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의 참자유라고 가르칩니다. 끝으로 바오로 사도는 십자가 상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으로 새로운 창조가 시작됐다며 이 새 창조에서 인간은 성령을 따라 살아가기에 율법에서 해방된다고 강조합니다. 리길재 선임2024.0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