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떤 곳을 ‘성지’라고 하나요?[교회상식 교리상식] 예수님 삶과 관련된 곳, 순교자 묘소 등 포함갈릴래아 호수. 가톨릭평화신문 DB 신자들과 성지순례와 관련한 얘기를 나누었는데 정작 "어디가 성지인가?"라는 물음에는 서로 말이 달랐습니다. 정확한 성지 개념에 대해서 알고 싶습니다. --------------------------------------------- 일반적으로 '성지'라고 하면 예수님과 관련된 곳(예루살렘), 성모님과 관련된 곳(파티마와 루르드), 성인들과 관련된 곳(로마와 아시시) 등을 가리키지요. 우리나라에는 솔뫼성지, 절두산순교성지, 해미성지, 배론성지, 초남이성지 등 많은 성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사정을 들여다보면 조금 복잡해집니다. 구체적으로 살펴봅시다. ▨ 성지 성지(聖地, Holy Land)는 원래 예수님께서 태어나시고 활동하시다가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땅을 통틀어 일컫는 표현입니다. 이 땅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약속하신 '가나안 땅'이기도 합니다. 이 땅을 교회에서는 라틴말로 '팔레스티나'라고 불러왔는데, 오늘날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자치지구 전체를 가리킵니다. 참고로 라틴어 팔레스티나(Palestina)와 영어 팔레스타인(Palestine)은 모두 같은 말에서 나왔는데 구약성경의 필리스티아인(공동번역 성서의 블레셋 사람)에서 유래합니다. 이렇게 '약속의 땅' '거룩한 땅'인 성지(聖地)는 예수님의 삶과 죽음 그리고 활동 무대인 팔레스티나 전체를 가리키지만 좀더 좁은 의미에서 거룩한 장소(터)를 가리키는 성지(聖址, Holy Place)도 있습니다. 이것은 팔레스티나 전체가 아니라 팔레스티나에서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관련되는 특정한 장소나 지역을 가리킵니다. 예를 들면, 베들레헴 동굴, 나자렛, 타볼산, 갈릴래아 호수, 베타니아, 겟세마니 등지를 말합니다. 그런데 이 두번째 의미의 성지는 세월이 점차 흐르면서 예수님과 관련되는 곳만이 아니라 성모님 발현지, 사도들의 활동지, 순교자나 성인들 순교지나 묘소, 하느님 은총으로 이적(異蹟)이 일어난 곳, 유서 깊은 성당 등에도 적용되기 시작했습니다. 팔레스티나를 가리키는 성지(Holy Land, terra sancta 聖地)든, 아니면 거룩한 장소를 가리키는 성지(Holy Places, loci sancti, 聖址)든 영어나 한자어로는 명확하게 구별이 되지만 우리말로는 전혀 구별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국가톨릭대사전」에서는 거룩한 장소를 나타내는 두번째 의미의 '성지'(聖址)를 '성역'(聖域)으로 바꿔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런 구별은 아무래도 복잡합니다. 그래선지 천주교 용어위원회는 이렇게 정리했습니다. "'성지(terra sancta)'는 본래 예수님과 관련된 이스라엘 땅을 말하지만, 성모님이나 성인 또는 순교자 관련 사적지나 순례지(sanctuaria)를 일반적으로 '성지'라고 하는 것에 대하여는 문제 삼지 않는다." 정리하자면 본래 성지는 예수님과 관련되는 땅 팔레스티나를 가리키지만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팔레스티나 곧 이스라엘 땅뿐 아니라 성모님과 성인들, 순교자들과 관련된 사적지나 순례지까지 다 포함해서 '성지'라고 부를 수 있도록 한 것입니다. ▨ 순례지 순례지란 "많은 신자들이 교구 직권자의 승인 아래 특별한 신심 때문에 빈번히 순례하는 성당이나 그밖의 거룩한 장소를 뜻한다"고 교회법은 규정하고 있습니다. 조금 풀어서 설명하자면, 성인이나 순교자 무덤이나 순교지가 아니더라도 성인 유해가 모셔져 있는 곳, 성모님의 발현이 일어난 곳, 성체 기적 같은 특별한 기적이 일어난 곳 등에는 많은 신자들이 찾아가 성인 유해를 참배하며 특별한 공경을 바치거나 그 일이 일어난 의미를 되새기며 신앙을 키우곤 합니다. 이런 곳들에 대해서 교회가 공식으로 순례지로 인정할 경우에 순례지가 되는 것입니다. 이 순례지는 교구가 인정하면 교구 순례지로, 그 나라 주교회의가 인정하면 국가 순례지가 됩니다. 국제 순례지가 되려면 교황청 승인을 받아야 합니다. 우리나라에는 국제 순례지와 국가 순례지가 없습니다. 그러나 지난 2000년 대희년 때에 각 교구들이 주교좌성당을 비롯해 교구내 주요 성지들을 순례지로 한시적으로 지정한 바 있습니다. 우리나라에는 현재 200곳이 넘는 성지가 있다고 합니다. 대부분이 순교자들 순교지나 무덤과 관련된 곳이지만 사적지에 해당하는 곳들도 더러 있습니다. 일부에서는 교회 사적지와 성지, 순례지와 성지를 구별하는 것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있습니다. 성지는 성인이나 순교자들의 무덤이나 순교지에 국한하자는 것입니다. 모두가 교회의 값진 유산이기는 하지만 구별할 때에 성지의 고유한 의미를 살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순교지나 무덤이 아닌 곳들은 사적지로, 필요하다면 순례지로 지정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런 의견이 잘 반영될 수 있다면 좋겠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알아둡시다>> 예전에는 순교자 성월이 되면 신자들이 순교성지들로 성지순례를 많이 갔습니다만 요즘에는 성지순례를 하는 신자들 발걸음이 성지마다 일년 내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성지를 찾아 순교성인들의 삶을 묵상하면서 우리 신앙을 굳게 하는 것은 대단히 긍정적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봅니다. 하지만 반드시 알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어느 성지를 가든지, 어느 순례지를 가든지 간에 성지순례의 최종 목적은 그 성지와 관련되는 성인, 관련되는 신심이 아니라 우리 신앙의 중심이요 목적인 예수 그리스도이시라는 것입니다. 물론 성지마다 다른 성지와 구별되는 영성적 또는 신심적 특징이 있고, 해당 성지에서는 그런 특징들을 부각시키는 것이 당연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지순례를 통한 신심 행위가 자칫 달을 향하기보다는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만 향할 우려가 있습니다. 지난해 11월 한국에서 열린 성지순례사목 아시아대회에서도 이 점을 특별히 강조했다고 합니다. 성지순례를 하는 신자들뿐 아니라 성지나 순례지사목을 담당하는 사목자들도 이를 좀더 유념해서 성지순례 신심이 올바로 고양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했으면 좋겠습니다.김지항2017.07.14
소공동체 활동 ‘평신도 복음화’ 이끌어 서울대교구 사목국, 소공동체 25돌 맞아 설문조사 보고서 발표… 23일 심포지엄 올해로 도입 25주년을 맞은 ‘소공동체’가 평신도 복음화에 이바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소공동체에 참여하는 신자들은 그렇지 않은 신자들에 비해 ‘미사 참여 외 성경 읽기 빈도’와 ‘미사 참여 빈도’, ‘고해성사 빈도’에서 각각 21.0점, 10.6점, 6.3점(이상 100점 만점 기준) 높은 점수를 보이는 등 거의 모든 복음화 지표에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다만, 소공동체 참여 빈도는 복음화 정도에 영향이 크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이는 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조성풍 신부)이 발표한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25주년 기념 기초자료 수집 설문조사 보고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 평가와 전망」(이하 보고서)에서 나타난 결과다. 교구 사목국은 2016년 10월 15일~11월 13일 교구 9개 본당 주일 미사 참여자를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실시했고, 8764명의 유효 응답을 토대로 보고서를 완성했다. 설문지법(자기기입식)의 구조화된 질문지를 통해 조사했으며, 참여 남녀 비율은 여성 66.7%, 남성은 33.3%였다. 60.2%가 대졸 이상의 학력 소지자였고 가정주부가 35.3%로 가장 많았다. 설문은 신자 개인의 기초 배경과 ‘복음선포’ ‘전례’ ‘친교’ ‘봉사’의 네 가지 항목으로 이뤄졌다.교구 사목국은 그동안 소공동체 현황 및 발전 과정에 관한 연구 보고서를 지속적으로 발간해 왔다. 올해 보고서는 소공동체 참여 신자와 불참 신자의 복음화 정도를 직접 비교 분석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보고서 발간은 2012년 이후 5년 만이다. 보고서에 의하면 소공동체 참여자들은 신앙고백에 관한 문항들로 이뤄진 ‘복음 선포’ 영역과 하느님 체험의 장인 ‘전례’, 신자로서 자부심과 이웃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친교’의 모든 영역에서 전체적으로 높은 점수를 기록했다. 하지만 말씀과 신앙 체험을 실천하는 ‘봉사’ 영역에서는 전반적으로는 높지만 뚜렷한 차이를 보이진 않았다. 소공동체가 복음화 도구로서 제구실을 하고는 있지만, 한계도 있음을 알 수 있는 대목으로 분석된다. 앞으로는 서울대교구 상황에 걸맞은 ‘맞춤형 소공동체’로의 변화가 요구된다고 볼 수 있다.서울대교구는 신자 수 급증과 본당 신설 및 비대화, 사목자와 신자의 인격적 만남의 어려움, 소속감과 유대감 약화, 냉담교우 및 거주불명자 증가, 신앙과 삶의 유리 등의 현상을 극복하고자 1992년 남아프리카 룸코 연구소의 소공동체 사목 모델과 프로그램(SCC, 작은 그리스도인 공동체)을 도입, 시행해 왔다.조성풍 신부는 “소공동체는 신자들이 복음을 중심으로 삼고 이웃에게 복음을 전하는 삶을 살도록 도와주는 도구”라며 “이번 보고서는 도입 25년이 지난 소공동체를 통한 신자들의 복음화를 위해서는 현대 대도시 문화에 발맞춘 보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고 평가했다.한편 교구 사목국은 23일 오후 2시 명동 가톨릭회관 1층 대강당에서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25주년 평가와 전망 심포지엄’을 개최한다. 변화의 기로에 서 있는 소공동체의 결실을 평가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자리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cpbc2017.08.29

하느님은 왜 내 기도를 안들어 주실까? 구약 성경 전문가 김영선 수녀가 전하는 성경으로 되새기는 올바른 기도법 김영선 수녀 기도로 신학하기, 신학으로 기도하기김영선 지음/생활성서/1만 4000원기도를 흔히 하느님과 대화 혹은 만남이라고 한다. 대화나 만남은 일방적일 수 없다. 상대가 있어야 하고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며 영향을 미치는 관계다. 그러니 기도를 하면 할수록 우리는 기도를 통해 하느님께 영향을 받게 된다. 하느님께 영향을 받았으니 당연히 말 한마디, 행동 하나가 달라지게 될 것이다. 그럼 현실로 눈을 돌려보자. 아침에 눈 뜨며 감사 기도를 바쳤지만, 이내 작은 불편도 참지 못해 화를 내는 자신을 발견하곤 한다. 시험 잘 보게 해달라는, 건강하게 해달라는, 로또에 당첨되게 해달라는 기도는 절로 나오지만, 왠지 굶어 죽는 아프리카 어린이를 위한 기도는 어색하기만 하다. 무엇이 문제일까. 기도 생활과 삶이 왜 이토록 분리됐을까. 김영선(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녀 역시 오랫동안 씨름하던 주제였다. 구약 성경 전문가인 그는 구약 성경을 연구하며 비로소 해답을 찾았다. 구약 성경에 현대의 기도 생활을 향해 들려주는 지혜의 소리가 담겨 있다고 확신했다. 그리고 그 확신을 한 권의 책 「기도로 신학하기, 신학으로 기도하기」로 풀어냈다. 김 수녀는 “기도와 삶의 분리를 극복하려면 내가 지금 기도를 바치는 하느님이 누구신지, 그리고 기도를 바치는 나는 누구인지를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수십 년간 기도를 바쳤다 해도 하느님에 대한 앎이 깊어지지 않는다면, 하느님과 내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끊임없이 생각하지 않는다면, 기도를 통한 삶의 변화를 기대하기는 힘들다는 것이다. 김 수녀는 구약 성경의 인물들이 바치는 기도에 주목했다. 이들이 하느님을 어떻게 불렀는지, 왜 기도를 드렸는지, 어떠한 자세로 기도했는지, 어떠한 확신과 믿음을 지녔는지 등 네 가지 요소로 나눠 분석했다. 이를 바탕으로 무엇이 기도와 일상의 괴리를 만들어 냈는지, 어떻게 기도를 바쳐야 하는지를 짚어줬다.“기도할 때 자비이신 하느님, 사랑이신 하느님이라고 먼저 하느님을 부르잖아요. 이렇게 하느님을 부르는 것이 중요합니다. 여기서 벌써 하느님을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나타나거든요. 그리고 내가 무엇을 청하는지도 드러나게 되고요. 이때 내 기도가 너무 개인적인 청원에만 치우쳐 있지 않은지, 내가 가진 하느님 이미지가 건강한지도 성찰해야 합니다.”김 수녀는 올바른 기도 생활을 위해 평소 바치는 기도문을 글로 적어보기를 권했다. 글로 적었을 때 자기 자신이 어떤 기도를 바치고 있는지 확실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기도에 응답이 없더라도 꾸준히 기도하길 당부했다.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다고 생각되더라도 꾸준히 바치다 보면 어느새 기도 지향의 중심이 ‘나’에게서 ‘하느님’으로 바뀌어 감을 체험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박수정 기자 백영민2015.11.18

바쁜 현대인의 성경 공부, 사이버로 통한다 수원교구 사이버 성경학교, 2013년 문 열어… 한 학기 수강자만 700명 넘어 제6차 연수 참가자들이 박병규 신부 강의를 듣고 있다. 임영선 기자 ‘성경 공부를 한번 해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신자는 많지만, 행동으로 옮기는 이는 드물다.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가장 큰 걸림돌은 “시간이 없어서”다. 바쁜 현대인들이 본당이나 교구ㆍ수도회에서 여는 성경 공부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그렇다고 혼자 공부하자니 어렵기도 하고, 꾸준히 이어지지도 않는다.2013년 문을 연 수원교구 사이버 성경학교는 신자들의 이런 고민을 해결해줄 수 있는 ‘교실 없는 학교’다. 요즘 많은 이들이 공부하고 있는 ‘사이버 대학’과 같은 형태다. 컴퓨터, 스마트폰만 있으면 누구나, 언제나, 어디서나 누리집에 접속해 원하는 강의를 들을 수 있다. 강의 수준도 무척 높다. 첫걸음·일반 과정 구분 강의는 처음 성경을 공부하는 이들을 위한 ‘첫걸음 성경 강좌’와 ‘일반 여정 성경 강좌’가 있다. 이용화(수원교구 군포본당 주임)ㆍ김승부(수원가톨릭대)ㆍ김효준(의정부교구 신앙교육원장)ㆍ박병규(대구가톨릭대) 신부, 김혜윤(미리내 성모성심 수녀회 총원장)ㆍ김영선(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ㆍ이혜정(예수의까리따스 수녀회) 수녀가 강의한다. 15개 강의를 들으면 한 학기 과정을 수료하게 된다. 출석률과 과제물 제출, 성경 일기ㆍ퀴즈 참여 등으로 수강생을 평가해 70점 이상이면 수료증을 수여하고, 성적 우수자에게는 장학금도 지급한다. 수료자들은 한 학기가 끝난 후 수원교구청에서 열리는 연수(1ㆍ7월)에 참여할 수 있다. 연수에서는 온라인에서 만나던 강사들을 직접 만나 강의를 듣는다. 9일 열린 ‘제6차 사이버 성경학교 연수’에는 2015년 2학기 과정을 수료한 이들 중 274명이 참가해 박병규 신부의 ‘요한 묵시록’ 강의를 들었다. 지난 학기 수강자는 711명, 수료생은 426명에 이른다.이날 ‘장학생’으로 선정된 장동호(바오로, 수원교구 상현동본당)씨는 “성경 공부를 하고 싶은 마음은 있었지만, 직장 생활로 바빠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었다”면서 “사이버 성경학교를 통해 ‘진정한 신앙인’으로 다시 태어난 기분”이라고 뿌듯해 했다. 서규석(요한 사도, 수원교구 지동본당) 씨는 “마음에 와 닿는 강의는 두 번이고 세 번이고 다시 들을 수 있는 게 사이버 성경학교의 가장 큰 장점”이라고 말했다.2016년 1학기는 2월 29일 개강 연수 파견 미사는 복음화국장 시절 사이버 성경학교를 만든 문희종(수원교구 교구장 대리) 주교 주례로 봉헌됐다. 문 주교는 “성경을 공부하고 싶어도 여러 가지 상황 때문에 공부할 수 없었던 이들에게 사이버 성경학교가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수강생들이 성경 말씀에 감동하는 것을 넘어서 세상에 나가 그 말씀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됐으면 한다”고 당부했다. 2016년 1학기 사이버 성경학교는 2월 29일 개강한다. 오경ㆍ역사서ㆍ시서와 지혜서ㆍ예언서(구약), 복음서와 사도행전, 서간과 요한 묵시록, 요한ㆍ마르코 복음서 강의가 개설된다. 모집 기간은 3월 31일까지이며 수강 신청은 누리집(cyberbible.casuwon.or.kr)에서 할 수 있다. 문의 : 010-7249-7966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6.01.12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5) 제자직(루카 14,25-35)](//cpbc.co.kr/CMS/newspaper/2018/03/rc/714094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5) 제자직(루카 14,25-35)가족까지 ‘미워하라’는 스승 말에 하늘이 무너진 제자들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따르려면 모든것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고 말씀하신다. 사진은 예루살렘 성지에서 십자가를 들고 십자가의 길 순례 기도를 하는 성지 순례단. 가톨릭평화신문 DB 예수님께서 당신과 함께 길을 가던 군중에게 당신을 따르는 제자 직분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여간 혹독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어떤 말씀인지 함께 살펴봅시다. 버림과 따름(14,25-33)예수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는 중입니다. 많은 군중이 그분과 함께 갑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돌아서시어” 말씀하십니다.(14,25) 돌아서신다는 표현은 예수님께서 군중에 앞서 가시고 군중은 예수님을 뒤따라가는 모습을 상상하게 해줍니다. 제자들이야 예수님과 함께 가는 것이 당연하겠지만 많은 군중이 왜 그분을 뒤따라갈까요? 군중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직접 보았거나 소문으로 들어 알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중에는 제자들처럼 예수님을 따르고 싶어하는 이들도 있었을 테고 호기심에서 함께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바로 그런 이들을 향해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이 충격적입니다.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14,26)학자들은 “미워한다”는 극단적인 표현과 관련해 예수님께서 사용하시던 언어 군(群)인 셈족 언어에는 비교급이 없어서 “덜 사랑한다”는 표현을 쓸 수 없기 때문에 “미워한다”고 표현한 것이라면서 “미워하지 않으면”이라는 표현을 “(예수님보다) 덜 사랑하지 않으면”이라는 뜻이라고 풀이합니다. 하지만 또 다른 데서는 그런 식으로 예수님의 표현 강도를 약화시켜서는 안 된다고 지적하기도 하지요.(「주석 성경」 참조)확실한 것은 예수님이 부르시자 “모든 것을 버리고”(5,11) 예수님을 따라나선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 또는 레위(5,28) 같은 제자들과는 달리, 군중은 그냥 따라나선 이들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 그들에게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제자가 되어 따르려면 부모와 형제자매는 물론 아내와 자식 심지어는 자기 자신까지 미워할 정도로 큰 결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말씀하시고 계신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 하더라도 인간적으로 이 말씀은 과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어오는 말씀 곧 “누구든지 제 십자가를 짊어지고 내 뒤를 따라오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14,27)는 말씀과 관련하여 찬찬히 새겨보면 “미워하라”는 말씀의 뜻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도 있으리라고 봅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고 계십니다. 예루살렘에는 당신의 죽음이, 그것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는 죽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것이 예수님께서 지셔야 하는 십자가였고, 예수님께서는 그 십자가를 지시려고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어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자기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그 십자가는 예수님처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부모나 형제나 아내나 자식을 미워할 정도로 포기하지 않는 한 죽음에 이르게 하는 십자가는 절대로 감당할 수 없을 것입니다. 자식들이 눈에 밟혀 배교했다가 다시 순교의 월계관을 받은 복녀 이성례 마리아(1801~1840)가 이와 관련한 좋은 사례입니다. 남편(최경환 프란치스코)은 순교하고 장남(최양업 토마스 신부)은 사제가 되고자 머나먼 이국에 가 있었습니다. 이성례는 젖먹이 막내 스테파노가 옥에서 죽어가자 자식들이 눈에 밟혀 배교하고 말지요. 그러다가 다시 체포된 이성례는 네 명의 자식을 둔 채 마침내 순교의 월계관을 받습니다. 반어(反語)적으로 표현한다면 네 명의 자식을 포기할 정도로 미워했기 때문에 어린 자식들을 두고 순교의 십자가를 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아니 어린 자식들을 남겨 두고 혼자 죽어야 하는 것 자체가 이성례 마리아가 짊어져야 할 십자가였던 것입니다. 이렇게 예수님을 따르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할 정도로 제 십자가를 지고 따르겠다는 결단을 내려야 하지만, 결단을 내린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결단을 내리고 나서 후회하는 사람, 결단한 대로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을 주변에서 흔히 봅니다. 어쩌면 우리 자신의 삶 자체가 그럴지도 모르겠습니다. 따라서 결단을 내리기 전에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내가 내리는 결단을 과연 감당할 수 있을지를 잘 헤아리는 것입니다. 특히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할 때일수록 더욱 그렇습니다. 탑을 세우려는 사람은 먼저 비용을 잘 계산해 봐야 한다는 말씀(14,28-30)과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기 전에 이길 수 있는지 먼저 헤아려봐야 한다는 말씀(14,31-32)은 바로 이를 강조한다고 하겠습니다. 이렇게 두 가지 예를 들어서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이와 같이 너희 가운데에서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 하고 마무리 지으십니다.(14,33) 얼핏 이 말씀은 탑을 세우려는 사람의 예화와 그리고 전쟁을 치르려는 임금의 예화와 맞지 않은 것 같습니다. 그렇지만 한 번 더 생각해 봅시다. 탑을 세우려는 사람은 비용을 마련해야 합니다. 또 전쟁을 치르려는 임금은 군사력을 확보해야 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은 ‘마련하고 확보하는’ 대신에 모든 것을 버려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는 예수님의 말씀은 제자가 되려면 부모 형제와 자식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말씀을 다시 한 번 강조하고 마무리한다고 하겠습니다. 맛을 잃은 소금(14,34-35)예수님께서는 이제 소금에 관한 말씀을 하십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짠맛을 잃으면 아무 쓸모가 없어 밖에 버려진다는 것입니다. 이 비유 자체는 어려울 것이 없습니다. 짠맛을 잃은 소금은 소금이라고 할 수도 없을 테니까요.그런데 이 말씀은 제자가 되려면 모든 것을 버리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야 한다는 앞 말씀과 연결할 때 새로운 의미를 지닌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소금이 된다는 것에 비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자가 되는 것 자체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자로서의 직분에 충실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짠맛을 잃은 소금처럼 아무 쓸모가 없는 제자이고 제자라고 불릴 수도 없을 것입니다. 따라서 짠맛을 잃은 소금에 관한 예수님 말씀은 제자가 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제자로서 직분을 충실히 수행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일깨우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생각해 봅시다]가족은 물론 자기 자신마저 미워하지 않으면 당신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 또 자기 소유를 다 버리지 않는 사람은 당신 제자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을 들은 사람들의 태도는 어떠했을까요? 개인적 상상입니다만, 이미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른 제자들과 소수의 몇몇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멈칫했을 것이고 곰곰 생각한 끝에 되돌아갔을 것입니다. 왜 예수님은 이렇게 극단적인 말씀을 하셨을까요? 역시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것은 이 말씀은 행복선언의 말씀과 맥락을 같이한다고 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것처럼 예수님의 행복선언 말씀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가치 기준과는 정반대이지요. 마찬가지로, 가족과 자기 자신을 미워하라는 것은, 소유를 버리라는 것은, 가족과 자기 자신과 소유에 대해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의 가르침에 비춰서 새롭게 생각하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어떻겠습니까? 그러나 생각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새롭게 생각했다면 그렇게 살아야, 적어도 그렇게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그래야 짠맛을 잃지 않는 소금이 될 것입니다. 백영민2018.03.14
[성서 주간] 이럴 때 이런 ‘성경 말씀’말씀이 우리를 ‘토닥토닥’ 누구의 말로도 위로가 되지 않을 때, 마음에 안식을 주는 단 하나는 ‘성경 말씀’이다. 힘들 때나 아플 때나 기쁠 때나 주님께서는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사랑과 힘을 주신다.하느님 말씀과 더욱 가까워지는 성서 주간, 마음에 와 닿는 성경 말씀을 골라 묵상하며 기도로 위안을 청해보자. 주변에 말씀의 위로가 필요한 사람이 있다면 말씀 카드로 만들어 함께 나눠도 좋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몸과 마음이 지쳤을 때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마태 11,28)근심거리가 많을 때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 같지 않다. 너희 마음이 산란해지는 일도, 겁을 내는 일도 없도록 하여라. (요한 14,27)중요한 일을 앞뒀을 때 하느님을 사랑하는 이들, 그분의 계획에 따라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는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 (로마 8,28)주변 사람이 미울 때악을 악으로 갚거나 모욕을 모욕으로 갚지 말고 오히려 축복해 주십시오. 바로 이렇게 하라고 여러분은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복을 상속받게 하려는 것입니다. (1베드 3,9)깊은 좌절에 빠졌을 때시련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행복합니다. 그렇게 시험을 통과하면, 그는 하느님께서 당신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생명의 화관을 받을 것입니다. (야고 1,12)분노가 치밀어 오를 때선한 사람은 선한 곳간에서 선한 것을 꺼내고, 악한 사람은 악한 곳간에서 악한 것을 꺼낸다. (마태 12,35)병으로 고통스러울 때그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병으로 말미암아 하느님의 아들이 영광스럽게 될 것이다. (요한 11,4) 평화신문2015.11.17
![[성서 주간] 성경 필사하는 신자들](//cpbc.co.kr/CMS/newspaper/2015/11/rc/604226_1.0_titleImage_1.jpg)
[성서 주간] 성경 필사하는 신자들성경, 쓰다보면 놀라운 일들이 쓰면 쓸수록 더 쓰고 싶어지고, 쓰는 동안은 행복하고, 잠시 외출이라도 하면 빨리 집에 들어가 쓰고 싶어지는 게 있다. 연애편지 이야기가 아니다. 성경 필사를 해본 신자들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다. 성서 주간을 맞아, 성경 필사를 한 신자들에게 삶에 어떤 변화가 찾아왔는지 물었다. 매일 1시간 20분씩, 18년간 “누가 쓰라고 시킨 것도 아닌데, 하루 세끼를 안 먹으면 배가 고프듯 성경을 안 쓰면 신앙적으로 배가 고파요.” 18년 동안 구약 8번, 신약 11번을 필사한 이분례(막달레나, 63, 안동교구 봉화본당)씨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확고해졌고, 어려운 이웃을 위해 돈 쓰는 일에 덜 인색해졌다”고 털어놨다.“남한테 쓰는 돈에 인색한 편이었어요. 그런데 성경을 쓰면서 하늘에 보화를 쌓고 싶고, 죽어서 하느님께 떳떳해지고 싶어진 겁니다.”매일 하루에 1시간 20분을 성경 필사하는 데 쓴다는 이씨는 “미사가 시작될 때 하느님에 대한 믿음으로 마치 연애할 때처럼 떨리고 설렌다”고 했다. 처음에는 성경을 완필하고 싶은 단순한 마음으로 펜을 잡았지만, 성경 필사는 신앙의 깊이와 기쁨을 더해줬다고 이씨는 전했다. 10년간 세 번 필사 10년간 세 번 필사를 한 여선숙(아녜스, 수원교구 금정본당, 56)씨는 자녀가 고3이었을 때 처음 필사를 시작했다. “밤 11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하고 오는 아들을 기다리며 썼습니다. 공부를 잘하는 것 같지 않은 아들을 생각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쓰다 보니 금세 빠져들더군요.”여씨는 쓸쓸하고 마음 붙일 곳 없고, 기도의 힘이 필요할 때마다 성경을 펴 한 글자씩 써내려갔다. 삶에서 어려운 순간을 겪을 때마다 성경 필사를 하면 마음이 풍요로워졌고 다시 살아갈 힘을 얻었다고 여씨는 털어놨다. 또 성경 필사를 통해 얻은 삶의 구체적인 변화로 일상생활에서 성경 말씀을 실천하게 되는 순간들이 생긴다는 점을 꼽았다. “이론적으로 이웃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은 알았지만 상대방이 원하는 대로 해주진 못했던 것 같아요. 하지만 상대방 처지에서 상대방이 필요로 하는 사랑을 알아챌 수 있는 눈이 생겼습니다. 본당에서도 봉사를 부탁하면, ‘그 자리는 나랑 안 맞아’라고 생각할 때가 많았는데, 이제는 내가 필요한 곳에 ‘예’라고 응답합니다.”해외성지순례 가고파 시작했지만배희진(클라라, 16, 수원교구 양지본당)양은 2년 전 2년 3개월 만에 신구약을 필사했다. 수원교구 청소년국에서 성경을 완필하면 해외성지순례를 보내준다는 소식을 접하고 필사를 시작했다. 배양은 “처음에는 너무 지루하고 재미가 없었지만 참고 계속 쓰다 보니 재밌게 느껴졌다”면서 “필사를 하면서 힘들 때마다 예수님이 계신 것을 느꼈다”고 했다. 배양은 스스로 성당에 갔고, 혼자서 9일 기도를 바치기도 했다. 하느님께서 항상 함께하심 체험 병상에서 성경 필사에 매달린 신자도 있다. 대장암을 앓았던 박민소(바오로, 7, 서울대교구 동대문본당)씨는 투병 중에 신·구약 성경을 필사하며 항암치료의 고통을 떨쳐 냈다.항암치료의 부작용으로 손이 떨려 수저도 겨우 들었던 박씨는 “처음에는 원망의 마음으로 성경 필사를 시작했지만, 성경을 써내려가면서 주님 말씀에서 희열을 체험했다”고 밝혔다. 박씨는 성경 필사를 통해 하느님이 항상 옆에 계시다는 것을 몸과 마음으로 체험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평화신문2015.11.17
![[하느님과 트윗을] (21) 보편 사제직이란 무엇인가요](//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6875_1.0_titleImage_1.jpg)
[하느님과 트윗을] (21) 보편 사제직이란 무엇인가요소명에 따라 맡은 역할 수행하며 교회와 사회에 기여 하느님과 트윗을 문 : 모든 신자의 보편 사제직이란 무엇인가요.답 : 성경에서 예수님은 대사제라고 불리셨습니다.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인은 누구나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그리스도의 사제직에 참여합니다. 이것이 하느님 백성의 보편 사제직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두 하느님 백성이며 다 함께 교회를 이룹니다.예수님에 관한 기쁜 소식을 전하고, 선행하면서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는 것은 모든 그리스도인의 소명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여러분은 선택된 겨레고 임금의 사제단이며 거룩한 민족이고 그분의 소유가 된 백성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은 여러분을 어둠에서 불러내 당신의 놀라운 빛 속으로 이끌어 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하게 되었습니다”(1베드 2,9)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의미를 생각해 보세요!문 : 그럼 평신도들은 어떤 소명을 받은 건가요.답 : 우리 교회는 대다수가 보편 사제직에 참여하는 평신도로 이뤄져 있습니다. 가톨릭 신자들은 성직자를 제외하고는 모두 평신도입니다. 자신이 맡은 임무가 무엇이든 평신도는 모두 예수님 부활의 기쁜 소식을 알리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평신도 개개인에게는 개인적인 소명이 있습니다. 그들은 일반적으로 혼인하고 가족 내에서 사제직을 수행하도록 소명을 받았습니다. 부모가 자녀들을 신앙의 길로 이끌어 주고, 성당에 데려가고, 자녀들이 잠자리에 들거나 학교에 갈 때 자녀를 위해 축복 기도를 하는 모습에서 그 소명은 뚜렷이 드러납니다. 어떤 신자는 독신 생활로 자신을 하느님께 봉헌하도록 소명을 받습니다. 이는 수도회의 수사나 수녀가 되는 소명이기도 하고, 하느님 사랑에 봉사하기 위해 독신으로 사는 소명이기도 합니다. 기혼이거나 미혼인 사람 모두가 예수님을 세상에 널리 전할 소명이 있습니다. 외국에서 신앙을 전하는 선교사뿐만 아니라 자기 고객을 돌보는 빵집 주인도, 예비신자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교리교사도, 사업가도, 복사를 하거나 봉성체를 하는 본당의 신자들도 예수님을 세상에 널리 전할 수 있습니다.문 : 직무 사제직의 역할은 무엇인가요.답 : 단지 열두 명의 제자만이 사도로 선택된 것과 같이 한정된 수의 그리스도인만이 우리 교회의 주교와 사제로서 직무 사제직의 소명을 받았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이 베푸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종이 되어, 하느님의 복음을 전하는 사제직을 수행하기 위한”(로마15, 15-16) 은총으로 대담하게 하느님에 대해 말할 수 있었습니다. 직무 사제직 덕분에 예수님은 신자들의 삶 속에서 성사를 통해 현존하실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은 계속해서 세상을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제가 있다는 것은 우리 교회에 근본적인 것이지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사도들을 위한 협조자들을 보내 주시도록 기도하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제 성소를 위해 모든 신자가 자주 기도하도록 부탁하셨습니다.문 : 각자 자기의 역할이 있다는 말인가요.답 : 직무 사제직은 보편 교회에 있어 근본적인 것입니다. 봉사를 위한 다양한 역할들이지요. 모든 신자에게는 교회를 꾸려야 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각자가 여기에 기여해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무슨 일을 맡았느냐가 아니라 사랑으로 그 일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서로 다른 역할이 필요하고, 모두가 보편 사도직에 참여해야 합니다. 모두가 예수님의 기쁜 소식을 실천하고 선포할 책임이 있습니다. 모든 신자는 각자의 개별적인 소명을 통해 예수님을 세상에 드러내도록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평화신문2017.09.27

판화로 하느님 자비 드러낸 ‘조르주 루오’의 판화 해설집정양모·웅모 형제 신부 루오의 58개 판화 해설한 첫 책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 불쌍히 여기소서(MISERERE)정양모ㆍ정웅모 신부 해설/기쁜소식/1만 5000원렘브란트 이후 가장 빼어난 종교화가로 꼽히는 이가 프랑스의 조르주 루오(1871~1958)다. 루오는 유화와 함께 판화를 많이 그렸다. 대표작은 58점의 연작으로 이뤄진 판화집 「미세레레」(MISERERE,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뜻의 라틴어). 루오는 판화를 통해 인간의 참상과 하느님의 자비를 드러내고자 했다. 「불쌍히 여기소서」는 정양모(안동교구 원로사목자)ㆍ정웅모(서울대교구 주교좌 성당 유물 담당) 형제 신부가 58개 판화 하나하나에 해설을 붙인 판화 해설집이다. 두 신부는 2013년 예수 일생을 62편으로 나누고 각 편에 해당하는 성화를 엄선한 뒤 편마다 성경 풀이와 미술 풀이를 단 「예수 모습 성경 미술」을 펴낸 성미술 전문가.파리 교외 빈민가에서 태어나고 자란 루오는 가난한 이들과 빈민촌을 즐겨 그렸다. 노숙자, 외톨이, 노동자, 매춘부와 뚜쟁이, 사형수, 농부, 슬픈 사람, 장님… 그의 판화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이다. 판화집 중간중간에 고난을 당하고 죽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이 등장한다. 해설자들은 그 뜻을 이렇게 풀었다. “…예수는 고통의 바다에 사는 인간들과 한통속이라는 뜻이다. 그는 인류의 대표 주자로서 인류 대신 고통을 받고, 인류의 죄를 대신 속죄하려고 죽었다는 것이다. 아울러 예수는 하느님의 크신 자비를 깊이깊이 깨닫고 맑게 맑게 체현했으니, 대자대비하신 하느님의 화신(化身)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부활한 그리스도는 죽은 이들에게 부활의 희망을 선사한다는 것이다….”인간의 참상과 구원을 직감적으로 꿰뚫어본 루오의 판화를 논리적으로 정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풀이하기가 난해한 영성적 작품이어서 그런지, 판화집은 여러 나라에서 출판됐지만 해설은 거의 없는 편이다. 따라서 「불쌍히 여기소서」는 루오의 판화를 본격적으로 해설한 첫 책이다. 해설자들은 “성경과 루오의 신앙관을 의식하면서 나름대로 연작 판화 하나하나에 주관적인 감상과 해설을 붙였다”며 해설에 구애받지 말고 루오의 판화를 스스로 감상하기를 권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백영민2016.12.14
![[낮은 곳에 주님 사랑을] 사회사목국 사제 릴레이 인터뷰 (9)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 위원장 이재돈 신부](//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8095_1.0_titleImage_1.jpg)
[낮은 곳에 주님 사랑을] 사회사목국 사제 릴레이 인터뷰 (9)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 위원장 이재돈 신부대량 생산·소비가 환경 파괴… 검소한 생활 지향해야 가톨릭교회에서 환경 운동이 시작된 건 그리 오래지 않다. 1990년 1월 1일 평화의 날을 맞아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이 발표한 담화 ‘하느님과 함께하는 평화, 모든 피조물과 함께하는 평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국내에선 1991년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활실천부 안에서 시작돼 1994년 이재돈 신부가 보편 교회에서 보기 드물었던 환경사목 전담 사제로 임명된 데 이어 2000년 10월 교구 환경사목위원회로 독립하면서 교회에 그 모습을 드러냈다. 이재돈(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 신부 생태신학자 이재돈(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위원장) 신부는 “그간 교회가 하느님 사랑이나 이웃 사랑은 많이 얘기했는데, 자연 사랑은 소홀했다”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2015년 9월 발표하신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폭넓고 깊이 있게 공부해 생활화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문을 뗐다. 지난해 3월 ‘한 지붕 두 가족’이던 우리농촌살리기운동 서울교구본부와 분리된 교구 환경사목위원회를 이끌어온 이 신부는 교회가 왜 환경사목을 해야 하는지부터 설명했다. “교회는 진화를 인정하면서도 우주는 성경과 함께 하느님 계시가 드러나는 장이라고 봅니다. 따라서 창조 세계를 파괴하면 하느님의 아름다움이 훼손되는 것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지배’라는 표현은 세상을 잘 돌보라는 얘기지 파괴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환경 문제의 원인은 대량 생산과 대량 소비, 대량 폐기에 있기에 이를 극복하려면 단순하고 검소한 생활방식으로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환경사목위원회의 역할은 창조 세계가 지닌 신학적 의미를 신자들에게 일깨우고 창조 세계를 돌보는 데 협력하도록 도와드리는 데 있습니다.” 이를 위해 교구 환경사목위원회는 교육과 조직, 행사, 실천, 연대, 홍보, 연구에 힘을 쏟고 있다. 교육 분야에선 지난 3월 말 생태영성학교를 개설했고, 분기별 가톨릭 에코포럼과 연중 가톨릭 유아 생태 교육에 치중하면서 본당 환경분과와 사목위원, 구역ㆍ반장 생태 교육도 빼놓지 않고 있다. 또한, 생태영성학교를 통해 양성된 활동가들을 중심으로 생태 사도직 단체인 ‘하늘땅물벗’을 조직, 본당 생태 환경 운동의 장을 만들 계획이다. 이와 함께 중ㆍ고등부 청소년 환경 기자단과 봉사자 조직, 후원회 등을 통해 생태 환경 운동의 저변을 다지고 있다. 실천 운동의 핵심은 ‘즐거운 지구 살리기 운동’에 있다. 캠페인은 에너지와 생활 속 실천, 두 분야로 나눠 추진되고 있다. 에너지는 지구 온난화를 줄이고, 하느님의 에너지 사용을 위한 생활 실천 운동으로서 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과의 연대, 미니 태양광 사업 등을 추진하면서 탈핵에 방점을 찍고 있다. 기존 ‘즐거운 불편’에서 생태적 회심을 통한 자발적 환경 운동으로 변모를 일신한 생활 속 실천 운동으로는 대중교통 이용과 생명의 먹거리 이용, 일회용품 안 쓰기, 물 아끼기, 폐식용유 활용 등이 연중 실천 운동으로 펼쳐진다. 이 밖에 전국 생태 환경 활동가와의 연수, 탈핵천주교연대와 함께하는 활동, 창조보전연대와 함께하는 축제, 예수살이공동체 주관 교육 참여, 종교인 대화 마당이나 종교인 생명평화 순례 등 연대에도 시선을 둔다. 아직 힘이 닿지는 않지만, 앞으로 생태 환경 연구 서적 발간이나 자료집 발간 통을 통해 교회 내 생태 환경 운동의 저변을 확충할 계획이다. 이 신부는 “교회 생태 환경 운동은 허공에 뜬 얘기가 아니라 현실적으로 변화를 일으키는 운동이고, 그래서 생태 사도직 단체로서 ‘하늘땅물벗’과 함께 즐거운 지구 살리기 캠페인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백영민2017.04.12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6) 갈릴래아 전도와 희년 선포(4,14-30)](//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3643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6) 갈릴래아 전도와 희년 선포(4,14-30)선입견에 사로잡힌 군중, 예수를 벼랑 끝에 몰다 나자렛의 절벽산 비탈. 나자렛 시내에 조금 떨어진 곳에 있는 절벽산은 나자렛 주민들이 격노해서 예수님을 끌고 가 벼랑 아래로 밀어 떨어뜨리려고 했다는 산으로 전해진다. 이 절벽산에서 시작해서 비탈을 타고 내려가 갈릴래아 호수 북단으로 이어지는 ‘복음의 길’ 순례길이 조성돼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이제부터 예수님의 활동을 본격적으로 살펴봅니다. 루카는 예수님이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셨고, 그곳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칭송을 받으셨다고 기록합니다.(4,14-15) 학자들은 이 성경 대목이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을 먼저 요약하고 있다고 풀이합니다. 여기서 세 단어를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령의 힘, 갈릴래아, 회당입니다. ‘성령의 힘을 지니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셨다’는 것은 지난 호에서도 언급했듯이 예수님의 활동이 성령의 힘으로 이루어진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갈릴래아는 예수님이 자라나신 고향인 나자렛을 포함해 갈릴래아 호수 일대를 끼고 있는 지역으로, 예수님 활동의 중심 무대입니다. 갈릴래아는 이스라엘에서 비옥한 곡창지대이지만 구약 시대 때부터 이집트에서 근동으로 가는 육상 통로의 요충지였습니다. 당연히 이민족의 침략과 왕래가 잦았고 그래서 “이민족의 갈릴래아”(마태 4,16; 이사 8,23)라고 불렀습니다. 그런데 이 변방 지역, 이민족의 갈릴래아가 예수님 활동의 출발지이자 주요 무대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회당은 기원전 6세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바빌론으로 유배갔을 때 성전에서 하느님을 예배할 길이 없던 유다인들이 성전 대신으로 사용하고자 마련했다고 합니다. 유다인들이 유배에서 돌아온 이후에도 안식일이면 회당에서 예배하는 관습이 이어지면서 곳곳에 회당이 생겼습니다. 회당은 안식일에는 예배 장소로 평일에는 공공집회 장소와 재판정으로도 사용됐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신 것은 자연스럽다고 하겠습니다.루카는 예수님이 고향 나자렛으로 가시어 희년을 선포하신 일화를 공생활의 앞머리에 내놓습니다.(4,16-30) 이 일화는 예수님의 말씀→청중의 반응(긍정에서 부정)→예수님의 대응→격분한 청중이 예수님을 끌고 가는 것에서 절정을 이룹니다. 차례로 살펴봅시다. 예수님은 안식일에 회당에 가시어 이사야 예언서의 한 대목을 찾아 읽으십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4,18-19) 이 대목은 이사야 예언서 61장 1-2절에서 일부 구절(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싸매주어)을 빼고 58장 6절(억압받는 이를 자유롭게 내보내며)을 덧붙인 것입니다. 마지막의 “주님의 은혜로운 해”는 레위기 25장 8-13절에 나오는 ‘희년’을 가리킵니다. 희년에 대해서는 아래에서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라는 구절은 희년에 이루어져야 하는 일들입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를 성별할 때에 나오는 전형적인 표현입니다.(1열왕 19,16 참조) 그렇다면 이 대목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에게서 파견된 예언자로서 직접 희년을 선포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한층 더 놀랍게도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희년을 선포하는 분일 뿐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또한 희년에서 선포되는 내용을 실현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에 그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좋게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 입에서 나오는 은총의 말씀에 놀라워하지요. 하지만 여기까지입니다. 다음 순간 그들은 돌변합니다. “저 사람은 요셉의 아들이 아닌가?”(4,22) 이 말투에는 ‘우리가 너의 출신을 아는데 네가 잘나 봤자 얼마나 잘났다고 그러나?’ 하는 업신여김 혹은 비아냥이 들어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들을 반박하십니다. ‘어떤 예언자도 자기 고향에서는 환영받지 못한다’는 격언을 인용하는 것을 시작으로 구약의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에 있었던 일화를 들면서 당신 말씀을 은총의 말씀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나자렛 사람들의 오만과 불손을 질타하십니다.(4,24-28) 이 말씀에 사람들은 오히려 격분하지요. 그래서 예수님을 고을 밖으로 내몰아 벼랑까지 끌고 가 거기에서 떨어뜨리려고 합니다.(4,28-29) 이 위기 상황에서 루카는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4,30)라는 표현으로 일화를 마무리합니다. 생각해봅시다 나자렛에서 희년을 선포한 이야기는 중요한 의미를 전합니다.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이제 당신의 말씀과 행적으로 희년을 몸소 실현하시리라는 것을 예시합니다. 또 희년의 기쁨을 가져다주는 가르침과 활동에도 불구하고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에게 배척을 당하시리라는 것을 예시합니다.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나자렛 사람들이 예수님을 좋게 말하다가도 어느 순간 ‘저 사람은 목수의 아들 아닌가?’ 하고 얕잡아봤듯이, 우리 또한 어떤 사람을 좋게 이야기하다가도 그 사람에게 가지고 있는 선입견에 사로잡혀 그 사람의 훌륭한 점, 장점마저도 인정하지 않으려 한 적은 없는지 반성하게 됩니다. 혹시 나의 선입관, 고정관념에 집착한 나머지 진실을 말하는 사람에게 오히려 화를 내고 그 사람에게 모욕을 준 적은 없었는지요? 사람들이 예수님을 벼랑 끝에서 밀어 떨어뜨리려 했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 한가운데를 가로질러 떠나가셨다고 루카는 전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성령의 능력으로 하느님 일을 하십니다. 아직 때가 오지 않았고 그것을 확신하고 계셨기에 예수님은 일촉즉발의 위기 상황에서 유유히 자리를 뜨실 수 있었습니다. 하느님을 믿는 사람, 하느님의 영을 모시고 사는 사람이라면 시련이나 어려움에 지레 겁을 먹을 필요가 없습니다. 알아둡시다 - 희년희년은 7년마다 돌아오는 안식년을 일곱 번 지낸 그다음 해 곧 50년이 되는 해를 말합니다. 이 희년은 거룩한 해(성년, 聖年)로서, 안식년 때와 마찬가지로 씨를 뿌려서도 안 되고 저절로 나는 소출을 거둬서도 안 됩니다. 땅만이 아니라 가축도 쉬게 해야 합니다. 빚을 탕감해 주고, 종으로 팔린 사람을 다시 풀어줘 자기 집에 가게 하고, 땅은 소유주에게 돌려줘야 합니다. 한마디로 모든 이에게 구원과 해방을 선포하는 해입니다.(레위 25,8-15) 이 희년 제도에는 하느님께서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후 보시고 좋았다 하신 그 상태로 원래 자리로 돌아가게 하는 것, 다시 말해 원상회복의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앙은 인간이 불순종과 죄로 하느님과 멀어졌던 관계를 그리스도께서 다시 새롭게 회복해 주셨다고 고백합니다. 희년을 가톨릭교회에서 받아들여 제도화한 것이 성년(聖年)입니다. 교회는 성년 때 일정한 조건을 이행하면 받아야 하는 모든 잠벌(暫罰)을 사해 주는 전대사를 발표합니다. 희년이 되면 모든 것을 다시 원상으로 되돌리는 것과 같은 맥락이지요.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 백영민2017.05.31

수도서원 30주년 맞이, 주님 향한 세레나데 발표심재영 수사가 수도서원 30주년 기념 음반 1집 ‘당신을 사랑합니다’를 들어 보이고 있다. ‘그대를 보며 그댈 그리워하는 이 마음을 그댄 아나요. 사랑이 깊어가며 나의 마음은 한결같은데 목마른 그리움으로 그댈 찾아보지만, 그댄 어디에 있나요….’ 사랑에 빠진 연인들의 연애편지 문구 같다. 그런데 ‘그대’를 ‘하느님’으로 바꾸면 이처럼 애틋한 신앙고백이 있을까 싶다. 성바오로수도회 심재영(예로니모, 성바오로미디어 기획 제작 책임자) 수사가 작사한 ‘당신을 사랑합니다’(Song of Songs) 가사 일부다. 노래 중의 노래(Song of Songs)는 사실 성경에서 ‘솔로몬의 가장 아름다운 노래’라고 일컫는 아가서(3,1-4 참조)를 이르는 말로, 여기서 모티브를 가져왔다. 1987년 첫 서원을 한 심 수사는 올해 수도서원 30주년이자 환갑을 맞아 ‘당신을 사랑합니다’(성바오로미디어 / 1만 2000원)와 수도자의 노래인 ‘사랑은 아름다워라’(성바오로미디어 / 1만 2000원)라는 두 음반을 잇달아 발표했다. 음반에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 고백이 담겨 있다. 음반 제작에는 생활성가 가수 박소정(알비나)씨를 비롯해 첼리스트이자 음악감독 이보선 SMC 대표, 데빈 리, 작곡가 이병욱 교수, 이수나 수녀, 김다위씨 등이 참여했다. 수록곡 ‘하늘 아래 사람아’는 가족 수도회인 스승예수제자수녀회 이춘자(M. 임마꿀라따) 수녀 작품이다. ‘사랑의 꽃’은 고 이태석 신부 추모곡이며, ‘하늘 아래 사람아’는 바오로 가족 창립자이자 인터넷의 수호성인인 복자 야고보 알베리오네 신부 헌정곡이다. “수도생활을 돌아보니 감사하고 행복했던 순간, 사랑 가득한 기억, 고마운 얼굴이 떠오릅니다. 어떤 날은 넘어져 상처도 났고 마음속 다짐도 폭우 속 꽃잎처럼 흩어지기도 했어요. 저에게 사랑과 생명을 주신 주님께선 하느님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셨습니다. 우리가 사랑에 충실하면 사랑이 솟아올라 손길 닿는 모든 것을 변화시킬 수 있어요.” 1988년부터 가톨릭교리신학원의 ‘임의노래연구회’ 1&2집을 시작으로 이태석 신부의 ‘묵상’ 곡이 수록된 수원가대 갓등중창단 1집 ‘내 발을 씻기신 예수’, 교황청립 성음악 연구소 합창단과 함께한 전례 시기별 ‘그레고리안 성가 미사곡 1~7집’ 등 그의 손을 거친 음반만 150여 개에 이른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자신의 음반을 낸 적이 없었다. 어린 시절 신심 깊은 큰어머니 손에 이끌려 성당에 나가기 시작한 그는 중학생 때 세례를 받은 후 복사단과 레지오 마리애 단원 등으로 열심히 활동했다. 집안에 천주교 신자가 없었는데 심 수사 덕분에 부모님과 5남매가 하느님 자녀로 거듭났다. 학창시절 가톨릭학생회 ‘셀(Cell)’ 모임에 참석했으며, 직장인 시절에는 점심시간에 늘 명동대성당 성모동산에서 기도하던 젊은이였다. 하느님께서는 끊임없이 기도하던 그를 수도회로 이끄셨다. 1991년부터 5년간 아프리카 나이지리아 선교사로 지낸 적도 있다. 아프리카의 극심한 말라리아와 선교지에서 몇 차례 죽음의 위기를 성모님의 보호로 살아난 은총에 감사하며 ‘거룩하신 어머니’, ‘평화의 묵주’라는 묵주기도 음반을 제작했다. 심 수사는 2010년 돌발성 난청으로 왼쪽 귀 청력을 잃고 한때 대인기피증과 우울증을 겪었다. 끊임없는 피정과 기도를 통해 어려움을 극복하고 하느님 사랑을 알아가는 방법을 깨달았다. “앞으로도 소임을 다해 하느님과 세상, 하느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사이의 소통을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진정 사랑과 평화만이 이 세상의 등불이기 때문입니다.” 글·사진=이힘 기자 lensman@cpbc.co.kr문채현2017.09.06
![[말과 침묵] 바람 속의 숨결](//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4592_1.0_titleImage_1.jpg)
[말과 침묵] 바람 속의 숨결김소일 (세바스티아노, 보도위원_ 은총은 계절을 가리지 않지만, 특별히 요즘은 넘치도록 풍성하다. 성큼 다가온 초가을의 하늘과 햇살과 바람 속에는 피조세계를 향한 창조주의 사랑이 가득하다. 대지 위로 쏟아지는 저 무한정의 은총이여. 불어오고 스쳐 가는 저 바람 속의 숨결이여. 대체 잘한 것이 무엇이라고 제게 이토록 넘치는 사랑을 주십니까. 미천하고 모나고 허물 많은 인간을 차별 없는 온유로 감싸주십니까. 찬미와 감사의 기도가 절로 나온다.이런 날 책상 앞에 앉아있는 것은 불경이다. 그분께서는 우리를 일과 공부 따위로 옭아매기를 원하지 않으신다. 대자연 속에서 팔을 벌리고 우리를 부르신다. 책과 컴퓨터 앞에서 굴절된 세상을 배우지 말고, 직접 들려주는 생명의 말씀에 귀 기울이라고 초대하신다. 모자 하나 챙겨 들고 집을 나선다.프란치스코 교황은 2015년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반포하면서 해마다 9월 1일을 ‘피조물 보호를 위한 기도의 날’로 선포했다. 7월도, 8월도, 12월도 아닌 9월이다. 이토록 찬란한 날에 어찌 기도하지 않을 수 있으랴. 교황이 알려준 아름다운 기도가 ‘그리스도인들이 피조물과 함께 드리는 기도’이다.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모든 존재에 대하여 저희가 찬미와 감사를 드리도록 일깨워 주소서.”배 밭을 비껴 숲길로 접어들었다. 숲은 그분을 가까이 느끼기에 가장 좋은 장소다. 일찍이 위대한 영성의 시인들이 저마다 숲을 사랑했다. 모세도, 엘리야도, 중세의 프란치스코 성인도 숲 속에서 그분을 만났다. 흔히 자연을 ‘제2의 성경’이라고 했다. “우리 눈이 아직 어두워지지 않았을 때” 자연이라는 책이 인간에게 열려 있었다.(성 보나벤투라) 새들과 풀벌레가 그분의 말씀을 전하고, 바람이 일렁이며 그 사랑을 흩는다.중턱에 오르니 저만치 수도원이 보인다. 저들이야말로 늘 그분을 찬미하는 이들이다. 존재의 이유가 찬미인 사람들, 그들이 있어 오늘 나의 기도가 조금 부족해도 삶은 위태로워지지 않는다.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시편 133,1) 그들이 읊조리는 그레고리오 선율이 들리는 듯하다.「찬미받으소서」가 처음 발표됐을 때 세상은 일컬어 ‘환경보호에 관한 회칙’이라 했다. 틀렸다. ‘보호’가 아니라 ‘찬미’다. 자연은 우리의 보호를 받아야 할 만큼 나약하지 않다. 그저 찬미하면 된다. 찬탄의 마음으로 대하면 된다. 피조물과 함께 그분을 찬양하고 경배하면 된다. 피조세계의 아름다움과 창조의 위대함을 함께 노래하면 된다.우리는 대자연의 혜택을 무상으로 누리면서도 자주 그 은덕을 잊는다. 피조세계의 청지기 신분을 잊고 마냥 주인인 양 행세한다. 주제넘게 보호를 이야기한다. 그 오만과 교만이 파괴를 낳고 오염과 훼손을 일으킨다. 문제의 근원은 이것이다. 부족한 것은 보호가 아니라 찬미이다. 운동이 아니라 기도이다.어느덧 산마루에 이르렀다. 쏟아지는 햇살 속에서 하늘을 우러른다. 마음에 기쁨이 솟고 몸에 활력이 넘친다. 온몸의 세포들이 환호하며 노래한다. 기쁨과 평화는 그분에게서 오는 것이니 이 또한 은총의 선물이 분명하다. 새들이 지저귀며 인사를 건넨다. 바람이 그분의 신비를 속삭이고 나무들 사이로 스쳐 간다. 온갖 피조물이 함께 찬미의 노래를 부른다. 용서와 사랑이 바람을 타고 흐르다 가슴 속으로 스민다. 이제 다시 세상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성령께서는 저희 마음 안에 머무르시며 저희를 선으로 이끄시나이다. 찬미받으소서.” 평화신문2017.09.06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4) 식탁에서(루카 14,1-24)](//cpbc.co.kr/CMS/newspaper/2018/03/rc/713390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4) 식탁에서(루카 14,1-24)예수님의 ‘밥상머리 교육’… 신앙인 삶의 자세 담아 두초 디 부오닌세냐 작 ‘맹인을 치료하다’. 출처 = commons.wikimedia.org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께서 한 바리사이집에 초대받아 음식을 드시는 이야기를 전하면서 그 자리에서 있었던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개합니다. 병자를 고치시며 안식일의 참뜻을 강조하신 일, 끝자리에 앉고 가난한 이를 초대하라는 가르침, 그리고 혼인 잔치의 비유입니다. 차례로 살펴봅니다. 안식일에 수종병자를 고치시다(14,1-6)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어느 집에 초대를 받으십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사람은 바리사이들의 지도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니 당연히 사람이 많았을 것이고, 그중에는 바리사이들과 율법교사들도 있었겠지요. 루카는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고”(14,2) 있었다고 기록합니다. 지켜본다는 말에는 여러 의미가 있습니다. 호기심에서 지켜볼 수 있지만, 감시하거나 경계하고자 지켜볼 수도 있습니다. 마침 예수님 앞에 수종, 곧 몸이 붓는 병을 앓는 이가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율법교사들과 바리사이들에게 “안식일에 병을 고쳐주는 것이 합당하냐 합당하지 않느냐?” 하고 물으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지켜보는 이유가 드러납니다. 예수님이 수종병자의 병을 고쳐주시기만 하면 시비를 걸려고 지켜보았을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그들은 잠자코 있었습니다. 자기들의 의도가 들켰기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병자를 손을 잡고 병을 고쳐서 돌려보내신 후 그들에게 “너희 가운데 누가 아들이나 소가 우물에 빠지면 안식일일지라도 바로 끌어내지 않겠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그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합니다. 이 첫 번째 이야기는 루카가 이미 두어 차례 소개한, 안식일에 병을 고치신 일(6,7-9; 13,14-16)과 맥락을 같이합니다. 곧 안식일을 지키는 참된 의미에 관한 것이라 할 수 있겠지요. 안식일에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착한 일을 해야 하는지요? 아니면 아무것도 하지 말아야 하는지요? 끝자리에 앉아라(14,7-11)초대받은 사람들이 윗자리를 고르는 것을 보시고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잔치에 초대받으면 윗자리에 앉지 말고 오히려 끝자리에 앉으라는 것입니다. 괜히 윗자리에 앉았다고 다른 자리로 내려앉으라는 소리를 듣기보다는 끝자리에 앉았다가 주인한테 윗자리로 올라앉으라는 말을 듣는 편이 낫다는 것이지요. 예수님께서는 비유 끝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누구든지 자신을 높이는 이는 낮아지고 자신을 낮추는 이는 높아질 것이다.”(14,11)세상을 살아가는 이치도 마찬가지인 것 같습니다. 괜히 자신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다가는 낭패를 보기 십상입니다. 오히려 자신을 낮추었다가 다른 이들에 의해 높여지는 것이 훨씬 낫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이 비유는 단지 처세에 관한 가르침이 아닙니다. 구원에 관한 가르침입니다. 가난한 이를 초대하여라(14,12-14)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초대한 그 지도자 바리사이에게 말씀하십니다. 잔치에 초대할 때에 부유한 이웃을 초대하지 말고 가난한 이들, 장애인들, 눈먼 이들을 초대하라고 말이지요. 부유한 이들은 답례하겠지만 이런 이들은 보답할 수 없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핵심은 “너는 행복할 것이다. 의인들이 부활할 때에 네가 보답을 받을 것이다.”(14,14)라는 마지막 말씀에 있습니다. 현세에서 보상을 받기보다는 영원한 생명으로 보상을 얻는 것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말씀이 아닐까요?혼인 잔치의 비유(14,15-24) 마지막 네 번째 이야기는 혼인 잔치에 관한 비유입니다. 함께 식탁에 앉아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사람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음식을 먹게 될 사람은 행복합니다” 하고 말하자 예수님께서는 그에 대한 답변으로 혼인 잔치의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비유 내용은 이렇습니다. 어떤 사람이 큰 잔치를 베풀고 많은 사람을 초대했는데, 초대를 받은 사람들이 한결같이 거부합니다. 어떤 사람은 밭을 샀기 때문에 그 밭을 보러 가야 한다며 양해를 구합니다. 또 어떤 사람은 겨릿 소 다섯 쌍을 샀는데 그것들을 부려봐야 해서 가지 못한다고 양해를 구합니다. 어떤 사람은 방금 장가를 들었기 때문에 갈 수 없다고 합니다. 이 사람은 양해도 구하지 않습니다. 종이 돌아와서 그대로 전하자 화가 난 주인은 “고을의 한길과 골목으로 나가 가난한 이들과 장애인들과 눈먼 이들과 다리 저는 이들을 데려오너라.”(14,21) 하고 분부합니다. 그들이 왔는데도 자리가 남자 주인은 다시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서 어떻게 해서든지 사람들을 오게 해서 집이 가득 차게 하라고 종에게 분부하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처음에 초대를 받았던 그 사람들 가운데에서는 아무도 내 잔치 음식을 맛보지 못할 것이다.”(14,24) 복음서들에서 하늘나라 또는 하느님 나라는 혼인 잔치에 자주 비유되곤 합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네 번째 혼인 잔치의 비유는 하느님 나라에 관한 비유, 좀 더 구체적으로 누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석해 음식을 들게 될 것인지에 관한 비유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비유에 대해 성경학자들의 해석은 대략 이렇습니다. 처음에 초대받은 이들은 하느님의 선택된 이들, 곧 이스라엘 백성을 가리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의롭다고 하는 이들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이들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초대를 받고서도 여러 이유를 대며 거부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 백성으로 선택됐지만 구원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을 받아들이기를 거부한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 고을의 한길 골목의 가난한 이, 장애인, 눈먼 이, 다리 저는 이들은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서도 버림받았다고 여겨지는 비천한 이들입니다. 이들은 같은 이스라엘 백성에게서도 버림받은 이들, 죄인으로 천시되던 이들이지만 오히려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참여합니다. 아직도 자리가 남아서 큰길과 울타리 쪽으로 나가 데려온 사람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결국 이스라엘 민족 가운데서도 선택됐다고 자부하는 이들은 하느님 나라에 들지 못하지만, 죄인으로 천시받던 이들, 그리고 이방인들은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들어갑니다. 따라서 혼인 잔치에 관한 이 비유를 통해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메시지를 거부한 이스라엘을 초대를 받고도 거부한 이들에 비기면서 반대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복음을 받아들인 이스라엘의 버림받은 이들, 그리고 이방인들이 구원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졌음을 이야기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혼인 잔치에 관한 이 네 번째 이야기와 앞의 다른 세 이야기는 아무런 관계가 없을까요? 혼인 잔치의 비유가 이스라엘의 버림받은 이들과 이방인들이 구원의 공동체에 받아들여졌음을 이야기하는 것이라면, 앞의 세 이야기는 그 구원 공동체에 받아들여진 이들이 해야 할 처신과 관련된다는 것이 저의 조심스러운 생각입니다. 첫 번째 이야기, 곧 안식일에 병자를 고쳐주신 일화는 안식일 규정에 얽매이기보다 하느님의 뜻이 무엇인지 헤아리고 그 뜻을 실천하라는 것입니다. 곧 안식일에 착한 일을 하라는 것이지요. 두 번째 이야기는 구원의 공동체에 속하는 사람이라면 겸손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잘났다고, 대접을 받겠다고 나서는 사람은 오히려 끝자리에 앉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쳐내시고 겸손한 이를 들어올리십니다.(루카 1,51-52 참조) 그리고 세 번째, 아무것으로도 보답할 수 없는 이들에게 베푸는 것은 답례를 바라지 않고 베푸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자선이고 사랑의 실천입니다.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 구원의 공동체에 속한 우리는 어떻게 살고 있는지요? 백영민2018.03.07

창세기 말씀 들어간 찬양곡 나왔다 인천교구 청년성서모임 ‘엘피스’ 20주년 음반 「한 처음에…」 발표 인천청년성서모임 엘피스가 20주년을 맞아 기념 음반 「한 처음에…」를 발표했다. 이지혜 기자 “청년들이 성경 공부를 하면서 함께 부를 찬양곡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한덕훈 신부)“창세기를 공부하면서 창세기 말씀으로 기도하고 싶었고, 그 기도를 나누고 싶었습니다.”(강설희 로사리아)인천교구 청년성서모임 ‘엘피스(Elpis)’(담당 한덕훈 신부, 대표 봉사자 강설희)가 20주년 기념 음반 「한 처음에…」를 발표했다. 엘피스는 10일 인천교구 청소년센터 강당에서 20주년 기념 미사를 봉헌하기에 앞서 기념 음반 발표회를 하고 찬양곡을 소개했다. 행사에 함께한 청년 100여 명은 발라드 형식의 조용한 묵상곡과 때론 흥겹고 경쾌한 찬양곡을 따라 부르며 20주년을 축하했다. 「한 처음에…」는 12과로 구성된 창세기 교재를 바탕으로, 과별 주제에 따라 기도문을 작성하고, 그 기도문에 선율을 입힌 음반이다. 지난 여름에 음반 작업을 시작했다. 수록곡은 ‘너 어디 있느냐’ ‘야훼 이레’ ‘베텔-야곱의 꿈’ ‘요셉의 손’ ‘모세의 기도’ 등 총 11곡이다. 기도문은 문예창작학을 전공하고 있는 강설희(로사리아)씨가 맡았으며, 작곡은 한덕훈 신부를 비롯해 김종성(바다의별 청소년수련원 담당) 신부와 생활 성가 가수 유승훈(프란치스코)씨 등 5명이 참여했다. 녹음은 청년성서모임 찬양팀이 함께 했다. 한덕훈 신부는 “생활 성가들이 지향하는 것은 하느님 찬양으로 같지만, 성경 말씀의 구절들이 가사에 직접 들어가 묵상하는 성가는 드물다”며 “곡을 접하면 창세기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고 기도가 살아나는 찬양을 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한 신부는 “청년성서모임 교재는 전국 교구에서 공용으로 사용하고 있어 성서모임 시간에 이 찬양곡을 함께 부르면 모임이 더 풍요로워질 것”이라고 덧붙였다.1996년 10월에 발족한 인천 청년성서모임은 ‘여러분이 지닌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해 두십시오’(1베드 3, 15)를 주제로, 청년들이 성경을 자주 읽고 묵상해 삶을 복음화하도록 힘써 왔다. 지금까지 1500여 명이 수료했으며, 3~400여 명이 연수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20주년 기념 음반 구매 문의 : 032-765-6909, 인천 청년성서모임 센터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백영민2016.12.14
![[nie-신문으로 읽는 신앙] 유래와 의미 알면 더욱 뜻깊은 크리스마스](//cpbc.co.kr/CMS/newspaper/2017/12/rc/705537_1.2_titleImage_1.jpg)
[nie-신문으로 읽는 신앙] 유래와 의미 알면 더욱 뜻깊은 크리스마스 성탄 구유에는 마굿간에서 태어난 아기 예수와 마리아, 요셉, 예수의 탄생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목동, 동방박사 등이 등장한다. 신 나는 캐럴과 오색 찬란한 불빛의 화려한 크리스마스트리가 거리를 수놓는 크리스마스가 돌아왔어요!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를 외치며 가족, 친구, 연인들과의 근사한 외식과 선물 보따리를 준비하고 있나요? 물론 성탄은 아기 예수의 탄생을 축하하는 즐거운 날이지만 들뜬 마음이 앞서 성탄의 참 의미를 잊고 지나가서는 안 되겠죠? 성탄의 의미와 유래를 되새기며 그리스도인다운 성탄을 준비해보아요.‘노는 날? X 선물 받는 날? X’…성탄은 어떤 날인가요.12월 25일은 ‘주님 성탄 대축일’이예요. ‘성탄’은 우리를 사랑하는 하느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당신의 외아들을 사람으로 태어나게 한 사건을 말해요. 성탄은 하느님의 구원에 대한 약속이 실현되고 참된 생명의 빛이 이 세상에 오셨음을 알려주고 있어요. 우리는 성탄을 보내며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인류에게 구원의 선물과 은총을 주셨음을 알고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묵상하며 이웃을 사랑하는 마음을 되새겨요.우리가 흔히 ‘메리 크리스마스(Merry Christmas)’라고 외치는 말뜻에도 성탄의 뜻이 담겨 있답니다. 크리스마스(Christmas)는 그리스도(Christ)와 미사(Mass)가 합쳐진 말로 ‘그리스도의 미사’ 즉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인류 구원을 위한 제사가 시작됨을 기념하는 날이에요.언제부터 예수 성탄 축일이 시작됐나요.가톨릭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개신교 등 아르메니아 교회를 제외한 모든 교회에서는 12월 25일을 성탄으로 기념하고 있어요. 그러나 아기 예수님의 탄생일에 대해서는 구약 전승과 신약 성경에 기록된 바가 없어요. 언제 태어났는지, 교회가 언제부터 성탄 예식을 시작했는지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답니다. 서방 교회에서는 336년 이후 12월 25일을 축일로 지키는 관습이 널리 퍼졌지요. 황제 아우렐리아누스가 274년 12월 25일을 ‘무적의 태양신 탄생 축일’로 정한 것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태양신 숭배에 빠져들지 않기 위해 같은 날을 성탄절로 정했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주님 성탄을 기념하는 축일은 12세기부터 16세기 사이에 교회와 수도원, 일반 가정에 널리 퍼지기 시작했고 성탄절 관습이 이 시기에 생겨났어요.성탄 시기의 특별한 전례 어떤 것이 있나요.- 성탄이 되면 전야 미사, 밤 미사, 새벽 미사, 낮 미사 네 번의 미사가 봉헌돼요. 하지만 요즘은 밤 미사와 낮 미사를 많이 봉헌하지요. 성탄 때는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기 위해 대림 시기 동안에 하지 않았던 대영광송을 다시 기쁘게 노래합니다. - 교회는 성탄의 큰 기쁨과 의미를 담아 성탄 팔일 축제를 지내요. 주님 성탄 대축일인 12월 25일부터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인 1월 1일까지예요. 성탄 팔일 축제에는 대축일과 특별한 축일만 허용되는데 ‘성 스테파노 첫 순교자 축일’(12월 26일)과 ‘성 요한 사도 복음사가 축일’(12월 27일), ‘죄 없는 아기 순교자들 축일’(12월 28일) ‘예수 마리아 요셉의 성가정 축일’(12월 31일) 등이 있어요.- ‘주님 공현 대축일’(1월 2일 또는 이날과 가까운 주일)은 아기 예수가 동방 박사들을 통해 자신이 메시아임을 드러낸 사건을 기념하는 축일이에요. 성탄이 강생(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심)의 신비를 보여준다면 공현은 인류 구원에 대한 그리스도의 약속을 보여줘요.- ‘주님 세례 축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 후 첫 주일로 이를 끝으로 성탄 시기를 마무리해요. 이후로는 연중 시기가 시작되기 때문에 주님 세례 축일 저녁 미사가 끝나면 구유를 치웁니다.성탄에 만나는 ‘구유, 크리스마스트리, 산타클로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나요.- 성탄이 되면 아기 예수님을 모신 구유가 성당에 모습을 드러내요. 구유 주변에서 성탄 복음을 읽고 성가를 부르며 기도하는 모습은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으로부터 시작되었다고 해요. 프란치스코 성은은 1223년 그레치오 성당에서 마구간을 만들고 구유와 나귀를 놓아두어 신자들이 강생의 신비를 생생히 느끼고 가장 낮은 곳으로 오는 주님의 겸손을 느끼도록 했답니다. 구유를 장식하는 인물은 아기 예수와 마리아, 요셉, 예수의 탄생을 알리는 천사와 그 소식을 듣고 달려온 목동 등이 있어요. 예수님을 경배하러 황금과 유향, 몰약을 들고 온 동방박사도 등장합니다.- 크리스마스트리(성탄 나무)는 언제부터 시작됐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16세기 독일에서 시작돼 미국으로 이주한 독일인 이민자들에 의해 널리 퍼졌다는 이야기가 있어요. 크리스마스트리는 춥고 어두운 12월에 푸른 잎을 모아 새 봄과 새 빛을 희망하는 표시로 불을 밝힌다는 뜻을 담고 있어요. 나무는 보통 별, 촛불, 사과(요즘은 동그란 방울)로 장식하는데 이는 빛이신 예수님과 생명의 열매를 상징한답니다.- 빨간 옷에 모자를 쓰고 선물 보따리를 매고 다니는 산타클로스 할아버지는 성 니콜라오 성인에게서 유래했어요. 니콜라오 성인은 3세기 후반 지금 터키에 속하는 리키아 파타라 지역의 주교였는데 자애와 헌신으로 신자들을 보살폈고 특히 어린이들을 사랑해 선물을 나눠줬다고 해요. 산타클로스(Santa Claus)는 세인트 니콜라오(Saint Nicholsa)에서 생겨난 말로 성인의 축일인 12월 6일에 가까운 성탄 즈음에 어린이들에게 선물을 주는 관습이 생겨났다고 합니다. <궁금증 주머니> 동방 박사가 전한 세 가지 예물(황금, 유향, 몰약)은 무엇을 의미하나요?황금은 모든 금속 중 가장 귀하고 변치 않는 것으로 예로부터 왕에게 드리는 선물로 여겨졌어요. 따라서 황금을 예물로 바쳤다는 것은 아기 예수가 왕이심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유향은 제사 때 신을 공경하기 위해 드리는 것으로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고백하는 것이며, 몰약은 시신의 방부 처리를 위한 것으로 죽음을 상징하기 때문에 아기 예수께서 죽을 수 있는 사람임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문채현2017.1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