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3세기 ⑥ - 여성 신비체험가](//cpbc.co.kr/CMS/newspaper/2018/01/rc/707873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58) 13세기 ⑥ - 여성 신비체험가영성생활 발전 견인한 여성 수도자들 중세 후반 여성 그리스도인에게도 수도생활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늘어나자, 베네딕토회와 시토회를 중심으로 많은 수녀원이 설립되었습니다. 특히 독일어권 지역의 수녀원에서 수도생활을 실천하던 여성 수도자 중에 신비체험가와 영성 작가들이 다수 출현하면서 그리스도인 영성생활 발전에 이바지했습니다.나자렛의 베아트리스.플랑드리 지역 여성 신비체험가들벨기에 티넌(Tienen) 출신인 나자렛의 베아트리스(Beatrice of Nazareth, 1200쯤~1268)는 일곱 살에 약 일 년 동안 인근 베긴회 회원들과 함께 살면서 학교를 다녔고, 열 살가량에 네덜란드 브루먼달(Bloemendaal) 시토회 수녀원에 머물면서 공부를 계속했습니다. 그리고 열일곱 살 즈음 지원자로 수녀원에 입회했습니다. 베아트리스는 1236년부터 벨기에 리르(Lier) 근처 작은 마을인 나자렛에서 새로 시작하는 ‘나자렛의 성모 마리아 수도원(Abbey of Our Lady of Nazareth)’으로 옮겨 초대 원장이 되었습니다. 이곳에서 베아트리스는 매우 엄격한 금욕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베아트리스는 환시를 체험했을 때 예수님께서 나타나셔서 불타는 화살로 자신의 심장을 뚫었다고 이야기했습니다. 베아트리스는 고대 네덜란드어 산문체로 쓴 「거룩한 사랑의 일곱 단계(Seven Manieren van Heilige Minnen)」의 저자로 유명합니다. 이 작품은 초기 사변적인 신비체험 문학 중 하나로 사랑의 일곱 단계를 통해 하느님과 일치하는 여정을 묘사했습니다. 즉 하느님께 돌아가기 위해서 우리는 정화되고 변형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작품으로 말미암아 ‘신부-신비체험’의 사조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플랑드르 지방에서 활동했던 하데위치(Hade- wijch, 13세기 중반)는 아직 제대로 된 조직을 갖추지 않은 경건한 여성들의 공동체 지도자이자 영성 작가였습니다. 현대 학자들은 그 공동체를 베긴회와 연관 짓기도 합니다. 하데위치는 저서 「환시(Visioenenboek)」에서 자신과 예수님이 대화하는 형식을 통해 종교적인 체험을 이성적으로 상상할 수 있는 환시들로 환원해 제시했습니다. 몇몇 대목은 하느님과 일치의 순간과 관련이 있습니다. 하데위치는 저서 「편지(Brieven)」에서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사랑과 하느님에 대한 인간의 사랑에 관한 자신의 관점을 설명했습니다. 아마도 하데위치의 관점은 12세기 프랑스 영성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추정됩니다. 또 하데위치는 저서 「시구 안에 시(Strophische Gedichten)」에서 그 당시 음유시인의 형식을 통해서 하느님을 향한 신비적인 사랑에 관한 서정적인 시를 작성했습니다. 결국 하데위치의 신비사상은 14세기 플랑드르 신비신학자인 얀 반 뤼즈브룩(Jan van Ruusbroec, 1293/94~1381)에게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독일 지역 여성 신비체험가들독일 작센 지방 출신인 막데부르크의 메히틸트(Mechthild von Magdeburg, 1209쯤~1282/94)는 열두 살에 성령께서 그녀를 환대하는 첫 번째 신비체험을 했습니다. 1230년 메히틸트는 온전히 하느님을 위해서만 살기를 원하면서 막데부르크의 베긴회에 들어갔습니다. 그곳에서 도미니코회 수도자의 지도를 받아가며 40년간 열정적인 기도와 금욕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초자연적인 신비체험으로 불거진 주변의 적개심 때문에 1270년 막데부르크를 떠나 헬프타(Helfta)에 있는 시토회 수도원으로 이주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메히틸트는 저서 「신의 흐르는 빛(Das flie- ßende Licht der Gottheit)」에서 신비체험, 사랑의 노래와 비유, 환시, 윤리적인 반성 및 견고한 충고 등에 관한 영성적인 시를 썼습니다. 특히 메히틸트는 저서에서 구약성경 ‘아가’의 시상과 문체를 빌려 사용하곤 했습니다. 메히틸트는 저서를 통해 건전한 신비신학과 그리스도의 사랑의 신비 및 자비에 관한 자신의 이해를 잘 드러냈습니다. 이는 메히틸트가 11~12세기 신비신학자들의 사상을 잘 숙지한 결과입니다.독일 작센 지방 아이슬레벤(Eisleben) 인근 헬프타 출신인 하크본의 메히틸트(Mechthild von Hackeborn, 1240/41~1298)는 일곱 살에 부모님과 함께 로더스도르프(Rodersdorf) 베네딕토회 수녀원에 살던 언니인 하크본의 제르트루트(Gertrud von Hackeborn, 1232~1292)를 방문했던 일을 계기로 수도원 학교에 입학해 언니의 보살핌 속에서 교육을 받았고 훗날 수도자가 됐습니다. 1258년 언니 제르트루트가 헬프타 수도원으로 옮길 때에 함께 간 메히틸트는 그곳 수도원 학교 교장이 되었습니다.자신의 생애 동안에 초자연적인 은총을 체험했던 메히틸트는 1292년 자신의 내적인 삶의 비밀을 주변 사람들에게 털어놓기 시작했으며, 특별한 지식이 없는 가운데 7년 동안 자신에게 계시된 내용을 저술했습니다. 메히틸트는 저서 「특별한 은총에 관한 책(Liber Specialis Gratiae)」을 교회력에 따라서 전례적이고 삼위일체적이며 그리스도 중심적으로 구성했습니다. 특히 메히틸트는 저서에서 하느님을 찬양하기 위해 모든 감각을 사용하는 것을 논했으며, 예수 성심에 대한 신심을 강조했습니다.독일 헬프타 출신으로 추정하는 헬프타의 제르트루트(Gertrud von Helfta)라고도 불린 대(大) 제르트루트(Gertrud die Große, 1256~1302)는 다섯 살에 헬프타 베네딕도회 성 마리아 수도원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제르트루트는 처음에 하크본의 제르트루트 지도를 받았고, 이후에 하크본의 메히틸트 지도를 받았습니다. 학업을 마치고 수도원 공동체에 입회한 이후에도 세속 학문에 탁월한 재능을 나타내며 학문 연구에 매진했습니다.제르트루트는 스물다섯 살부터 신비생활에 대해 알게 되고 환시와 내적 은총을 체험했습니다. 중병을 앓게 된 제르트루트는 1281년 예수님의 발현을 체험하고 난 후에 예수님과 자신 사이에 사랑의 유대가 있다는 계시를 받았습니다. 제르트루트는 관상생활로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일치로 나아갔으며, 예수 성심을 통해 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생활을 실천했습니다. 특히 제르트루트는 저서 「하느님 사랑의 사자(Legatus Divinae Pietatis)」에서 예수 성심 신심을 강조했습니다. 제르트루트의 변적인 신비신학은 그 당시 독일에서 시작하던 신비신학과 유사한 특징을 지녔습니다.이와 같은 여성 영성가들은 유럽 전역으로 알려지지 않았지만, 지역에서만큼은 큰 존경을 받아 ‘성녀’로 여겨졌습니다. 이들의 활약을 통해서 그 당시 여성 그리스도인도 정규 신학교육이나 정규 수도생활을 접하면 이단에 물들지 않고 올바른 영성생활을 실천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볼 수 있습니다. 또 그 당시 독일어권에서 추상적이며 사변적인 신비신학이 활발하게 논의되기 시작했다는 정황을 엿볼 수 있습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8.01.10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8) 주님 세례 (상)](//cpbc.co.kr/CMS/newspaper/2018/01/rc/707721_1.0_titleImage_1.jpg)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8) 주님 세례 (상)물 속에 잠긴 예수님 머리 위로 성령의 비둘기가 내려오고 주님 세례 도상(圖像)은 참으로 극적입니다. 네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 세례 장면을 세밀하게 구성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도상에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형상이 표현되고, 주님의 세례 모습과 요한 세례자의 태도가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납니다. 또 요르단 강물부터 천사에 이르기까지 숨어 있는 상징들이 흥미를 자극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주님 세례의 의미주님 세례 도상을 이해하기 위해 먼저 예수님께서 받으신 세례의 의미를 알아봅시다. 주님 세례는 예수님께서 구세주이심을 세상에 공적으로 선포한 예식입니다. 그래서 힐라리오 성인을 비롯한 여러 교부는 “그리스도는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시지만 세례를 통해 새로운 임무를 받은 성자로 다시 태어나셨다”고 고백하였습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주님 세례를 통해 그분 안에서 인류는 새로 시작하고 또 최종 목적지에 도달한다”고 설명합니다. 3세기 때부터 출현세례를 주제로 한 도상은 3세기 때부터 등장합니다. 로마 성 밖의 카타콤바와 시리아 에프프라티스 근처 두라에브로포스 회당의 벽화가 지금까지 발견한 것 중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그중 하나가 로마 성 베드로와 마르첼리노 카타콤바의 ‘주님 세례’ 도상입니다. 회벽에 붉은 물감으로 그린 이 도상에서 예수님은 젊고 우아하며 알몸의 늠름한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이 벽화는 그리스 미술의 영향을 받았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이 고대 그리스인들이 즐겨 그리던 아폴론 신과 흡사하기 때문입니다. 또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이 예수님의 머리 위에 머물면서 빛을 내리고 있습니다. 이 빛은 창조되지 않고 영원히 지지 않는 빛으로 성령의 은총과 선물입니다. 성 베드로와 마르첼리노 카타콤바의 ‘주님 세례’ 도상. ▨ 그리스풍 도상500년께 제작된 이탈리아 라벤나 아리아니 세례당의 주님 세례 모자이크는 그리스풍의 도상을 완벽하게 보여줍니다. 모자이크 한가운데에는 젊고 우아한 예수님께서 알몸으로 요르단 강에 들어가 서 있습니다. 당시 신학자와 성미술 작가들은 알몸이 옷을 입은 육체보다 더 정숙하다고 여겼습니다. 겉모습보다 내적인 거룩함과 초월적인 순결함을 더 중시했기 때문입니다. 또 벗은 몸은 참회와 독실한 마음을 불러일으킨다고 생각했습니다. 물속에 잠긴 모습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흐르는 물은 ‘생명’을 나타냅니다. 따라서 흐르는 물에 잠겨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은 결국 죽음에서 다시 살아나실 분, 부활하실 분임을 나타냅니다. 예수님 오른편에 있는 이가 요한 세례자입니다. 그는 낙타 털옷을 입고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물 밖에서 주님에게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주님 왼편의 노인은 요르단강을 의인화한 것입니다. 강에서 자란 수풀로 머리에 화관을 쓰고 갈대를 왕홀(王笏, 유럽 군주의 권력과 위엄을 나타내는 지휘봉)처럼 들고 있습니다. 또 허리에 찬 물독에서 끊임없이 물을 강으로 흘려보내고 있습니다.예수님의 머리 위에는 흰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께서 하늘에서 내려오고 있습니다. 이 장면은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분 위에 내리셨다”는 공관 복음의 내용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습니다. 1030~1040년쯤 제작된 에히트나흐(Echternach) 채색 삽화 필사 성경의 주님 세례 도상을 보겠습니다. 그리스풍의 도상인데 특이한 것은 요르단강을 물무덤처럼 그려놓았습니다. 성령께서 태양에서 나오는 장면입니다. 라벤나 아리아니세례당 도상에서도 설명하였듯이 성미술에서 주님의 세례와 부활은 늘 맞물려 어우러집니다. 에히트나흐 필사본의 무덤 모양 요르단강은 ‘하데스’ 곧 저승을 상징합니다. 그래서 성 요한 크리소스토모 주교는 “물속에 잠기셨다가 거기서 다시 솟아오르셨다는 것은 저승에 내려가셨다가 부활하셨다는 상징”이라고 설교했습니다. 에히트나흐 필사본은 예수님과 비둘기 형상의 성령, 성령을 내려보내는 붉은 해를 일직선 상에 그려놓았습니다. 이는 네 복음서의 고백처럼 주님 세례 때 삼위일체이신 세 위격이 함께 현현하고 계심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그리스풍 특징 예수님 - 수염이 없는 단정한 얼굴에 알몸. 고대 그리스 철학자나 영웅처럼 당당한 모습. 요한 세례자 - 목동의 지팡이를 들고 있음. 요르단강- 의인화. 주로 그리스와 알렉산드리아, 에페소, 안티오키아, 이탈리아 북부 지역에서 발달.▨ 시리아풍 도상예루살렘과 시리아 지역에서 유행한 주님 세례 도상은 그리스풍과 사뭇 다릅니다.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리아풍 도상은 600년쯤 팔레스타인에서 만들어진 ‘몬자 성유병’(monza ampullae)입니다. 이 성유병에 장식된 주님 세례 부조에는 네 복음서에 없는 내용이 처음으로 나타납니다. 바로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을 예수님께 내려보내는 ‘손’이 등장합니다. 이 손은 천주 성부를 상징하는 것으로 하느님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이후부터 성미술에서 주님을 가리키는 하느님의 손은 주님 세례 때 하늘에서 들려온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는 복음서 내용(마태 4,17; 마르 1,11; 루카 3,22)을 표현한 것으로 해석되고 있습니다. 또 몬자 성유병의 주님 세례 도상에는 요르단강은 없고 천사가 대신합니다. 주님의 세례를 돕고 있는 이 천사의 도상은 이후 1000년 이상 계속되고 있습니다. 주님 세례 도상에 천사가 등장한 것은 이 시기에 활동했던 신비주의자 위-디오니시오의 천상 위계론에 영향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위-디오니시오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를 중개하는 천사의 역할과 등급을 세 단계로 나누었는데 세라핌(seraphim, 치품-熾品)과 케루빔(cherubim, 지품-知品), 옵하님(ophanim, 좌품-座品)이 첫째 등급이라고 합니다. 둘째 등급은 도미니온스(dominions, 주품-主品), 비르투스(virtus, 역품-力品), 포테스타테스(potestates, 능품-能品)가, 셋째 등급은 프린치파투스(principatus, 권품-權品), 아르칸젤루스(archangelus, 대천사), 안젤루스(angelus, 천사)라고 합니다. 시리아풍 주님 세례 도상도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 몸을 담그는 이미지로 표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수염이 있는 장년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주님께서 물에 들어가신다는 것은 예수님께서 대신 지신 모든 인간의 죄를 요르단강에 가라앉히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첫 공생활을 바로 죄인들과 자리를 함께하시는 일로 시작하십니다. 이 침례 예식은 십자가를 미리 짊어지는 것을 보여주는 예형입니다. 시리아풍 특징예수님- 수염이 있는 장년의 모습. 의인화된 요르단강 대신 천사가 등장. cpbc2018.01.10
![[하느님과 트윗을] (20) 혼인은 그리스도인에게 왜 중요한가요](//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6212_1.0_titleImage_1.jpg)
[하느님과 트윗을] (20) 혼인은 그리스도인에게 왜 중요한가요혼인으로 이룬 가정은 ‘작은 교회’ 문 : 혼인은 그리스도인에게 왜 그렇게 중요한가요.답 : 혼인은 천지 창조 때부터 있었습니다. 성경에는 “태초에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몸이 된다”(창세 2,24)고 했습니다. 세례를 받은 남녀가 만나 혼인을 합니다. 이때 중요한 특징은 예수님이 그들의 관계에서 특별한 위치를 차지한다는 것입니다. 혼인은 성사입니다. 교회는 혼인을 통한 남자와 여자의 결합을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스러운 유대에 비교합니다. “남편 여러분,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교회를 위해 당신 자신을 바치신 것처럼, 아내를 사랑하십시오.”(에페 5,25)문 : 혼인성사의 필수적인 두 가지 특징은 무엇인가요.답 : 혼인성사의 필수적인 특징 두 가지는 단일성과 불가해소성입니다. 혼인은 한 남자와 한 여자 사이의 유대입니다. 그들은 서로 충실할 것을 약속하며 단 두 사람만의 결합으로 부르심을 받습니다. 일단 혼인하면 배우자가 사망하기 전까지는 혼인을 해소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대로 하느님께서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은 자녀를 기꺼이 받아들이지만, 자신이나 배우자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불임인 경우에는 자녀가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닙니다.문 : 가정이 작은 교회라고요.답 : 신부와 신랑은 서로에게 혼인성사의 집전자가 됩니다. 그들은 하느님과 사제 앞에서 서로 친밀하고 지속적인 관계를 시작하겠다고 서약합니다. 그리고 사제가 이 부부를 축복함으로 혼인이 유효해집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공생활을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시작하심으로써 혼인 생활의 중요성을 보여 주셨습니다. 가정에서 어린이들은 신앙을 처음으로 배우고 실천합니다. 가정은 작은 교회이지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가정을 “사랑의 첫 학교”라고 했습니다. 어린이들은 다른 사람을 위해서 자신을 헌신하는 방법을 가정에서 배우기 때문입니다. 가족은 ‘은총과 기도의 공동체, 그리고 인간적인 덕행과 그리스도 사랑의 학교’입니다.문 : 결혼을 평생 지속해야 하나요.답 : 네. 결혼은 평생 지속해야 합니다. 배우자에 대한 여러분의 사랑이 죽을 때까지 지속하리라는 것을 어떻게 확신할 수 있느냐고요? 첫째, 하느님은 사랑의 기원이시기 때문에 하느님이 여러분을 도우실 것임을 믿을 수 있습니다. 둘째, 다른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선택이지, 단지 감정이 아닙니다. 감정만으로 혼인을 지속할 수는 없습니다. 헌신입니다. 서로의 사랑에 대한 헌신은 사랑이 지속하게 할 뿐만 아니라 사랑이 성장하도록 돕습니다.문 :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무신론자와 혼인할 경우에는요?답 : 서로의 다름으로 더욱 풍요로워진 혼종 혼인 사례도 많습니다. 그런데도 다른 종교를 가진 사람이나 무신론자와의 혼인은 여러분에게 어려운 선택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믿는 것에 반대되는 행동을 하도록 유혹받기 때문입니다.혼종 혼인의 위험한 점은 어떤 시점이 되면 하느님에 대한 사랑과 배우자에 대한 사랑 사이에서 선택해야 함을 느끼게 된다는 것입니다. 잔인한 선택이지요. 이러한 위험은 자녀가 태어나면 더욱 확실해집니다. 혼인할 때 가톨릭 신자들은 자녀를 가톨릭 신앙 안에서 양육하기로 약속합니다. 그런데 아빠나 엄마가 신앙에 대해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을 아이에게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런 상황에서 어떻게 자녀들이 하느님과의 개인적인 관계를 시작하도록 가르칠 수 있을까요? 이런 문제는 혼종 혼인 생활을 시작하기 전에 진지하게 생각해 봐야 할 질문입니다. 그리고 그런 결정은 언제나 기도에 바탕을 둬야 합니다. 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혼종 혼인 : 가톨릭 교회에서 세례받은 신자와 타 종교나 타 교파 신자 사이의 혼인 김지항2017.09.20
![[성경 속 도시] (61) 메디아](//cpbc.co.kr/CMS/newspaper/2015/09/rc/59192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61) 메디아바빌론·아시리아 멸망시킨 대제국 메디나 다리우스 왕궁에 장식돼 있는 궁수의 모습, 루브르 박물관, 파리. 출처=「성경 역사 지도」 메디아는 현재의 이란 북서부의 고원에서 기원전 7~6세기에 번창한 왕국이었다. 메디아인이라 하면 청동기 말기에 이란 고원으로 이주해 온 초기 이란계 부족들로 추측된다. 메디아는 수도 엑바타나를 중심으로 강성해져 기원전 6세기까지 흑해의 남부 연안과 페르시아를 포함한 중앙아시아와 아프가니스탄에 이르는 드넓은 대제국을 건설했다.메디아인들은 이란 고원에 살면서 말을 사육하는 것으로 명성이 높았다. 그들은 본래 아시리아 속국이었지만 점차 힘을 길러 영토를 이란 고원 너머로 넓히고 아시리아를 공격해 멸망시켰다. 아시리아를 멸망시킨 후 리디아, 이집트, 바빌로니아와 함께 오리엔트 4대 왕국의 위치에 올랐다. 나중에 이들 국가는 모두 페르시아 제국에 정복된다. 오늘날까지 남아 있는 메디아의 궁전과 왕릉 유적을 보면 당시 엄청난 위엄과 권력과 부를 누렸던 제국임을 알 수 있다. 바빌로니아가 함락된 기원전 539년부터 20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이스라엘 민족은 메디아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성경에서 메디아는 이스라엘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과 함께 여러 차례 언급돼 등장한다. 메디아의 다리우스가 왕이 된 후 다니엘을 재상으로 임명했다. “다리우스는 자기의 뜻대로 나라에 총독 백스무 명을 세워, 온 나라에 두루 주재하게 하고, 그들 위로 다시 재상 세 사람을 임명하였는데, 다니엘도 그 가운데 한 사람이었다. 임금에게 손실을 끼치는 일이 없도록 총독들은 이 재상들에게 업무를 보고하게 되어 있었다”(다니 6,2-3). 아시리아는 기원전 722년 사마리아를 함락시켰다. 그리고 북이스라엘 유다인을 오늘날 이란과 이라크 지역으로 강제 이주시켰다. “아시리아 임금은 사마리아를 함락하고,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서 하라와 고잔 강가 하보르와 메디아의 성읍들에 이주시켰다”(2열왕 17,6). 이사야 예언자는 메디아가 강대국인 바빌론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보라, 나는 그들을 거슬러 메디아인들을 일으키리라. 메디아인들은 은에도 관심이 없고 금도 좋아하지 않는다”(이사 13,17). 토빗은 죽을 때가 되자 자기 아들 토비야 를 불러 자식들을 데리고 서둘러 메디아로 피신하도록 일러준다. 니네베의 파멸에 관한 예언을 믿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향을 떠나 유배를 가겠지만 다시 하느님의 자비로 이스라엘로 돌아갈 수 있다는 희망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다시 그들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이스라엘 땅으로 돌아가게 하실 것이다. 그러면 그들은 하느님의 집을 다시 지을 것이다. 그러나 그 집은 정해진 때가 다 찰 때까지 첫 번째 집과 같지는 않을 것이다. 그 뒤에 모두 유배에서 돌아가 예루살렘을 화려하게 재건할 것이다. 그리고 그곳에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말한 대로 하느님의 집도 세워질 것이다”(토빗 14,5). 신약성경에서는 오순절 성령 강림 때 메디아 사람에 관한 언급이 나온다. 예루살렘에 사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온 독실한 유다인들은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지방 말로 듣고 어리둥절해 하는 장면이 나온다. “그들은 놀라워하고 신기하게 여기며 말하였다. ‘지금 말하고 있는 저들은 모두 갈릴래아 사람들이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저마다 자기가 태어난 지방 말로 듣고 있으니 어찌 된 일인가? 파르티아 사람, 메디아 사람, 엘람 사람, 또 메소포타미아와 유다와 카파도키아와 폰토스와 아시아 주민…우리가 저들이 하느님의 위업을 말하는 것을 저마다 자기 언어로 듣고 있지 않는가?’”(사도 2,7-11).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9.08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 머리말(1,1-4) : 존귀하신 테오필로님](//cpbc.co.kr/CMS/newspaper/2017/02/rc/671738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 머리말(1,1-4) : 존귀하신 테오필로님(2) 머리말(1,1-4) : 존귀하신 테오필로님 루카복음은 머리말(1,1-4)로 시작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듯이, 머리말은 일반적으로 필자가 글을 쓰게 된 동기와 내용, 목적, 배경 등을 간략히 설명하는 것입니다. 루카복음의 머리말 역시 같은 의미를 지닌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루카는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들에 관한 이야기를 엮는 작업에 많은 이가 손을 대었습니다”(1절)라고 시작합니다.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들’이란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진 일들, 곧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들을 말합니다. ‘하느님께서 이루신 일’이라고 직접적으로 표현하기보다 ‘(하느님에 의해) 이루어진 일들’이라고 수동태 형으로 에둘러 표현하는 기법을 학자들은 ‘신적 수동태’라고 부릅니다. 복음서에는 이런 표현이 드물지 않게 등장하는데, 기회가 되면 또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우리 가운데서 이루어진 일들이란 무엇일까요? 「주석 성경」은 “예수님의 생애와 사명 수행을 둘러싼 모든 일”을 말한다고 설명합니다. 예수님의 생애와 사명과 관련하여 하느님께서 이루신 모든 일이 곧 저자가 전하려는 내용, 곧 루카복음서의 내용인 것입니다. 루카는 예수님을 목격했을까?어떤 일을 기록으로 남겨 전하려면 적어도 그 일을 직접으로든 간접으로든 알고 있어야 합니다. 루카복음서를 쓴 루카는 예수님과 관련한 그 모든 일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2절은 바로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처음부터 목격자로서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우리에게 전해 준 것을 그대로 엮은 것입니다.” 이 내용으로 보아 두 가지는 분명합니다. 첫째, 복음서 저자인 루카는 예수님과 관련된 일을 직접 목격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둘째, 루카가 받아서 엮은 자료는 예수님과 관련된 일의 목격자들이 전해 준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리고 그 목격자들은 단순히 목격한 구경꾼으로 그친 이들이 아니라 ‘말씀의 종’이 된 이들입니다. 즉 복음의 선포자가 된 이들입니다. 전해 받은 복음을 순서대로 적다여기서 생각할 게 있습니다. 복음 곧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이라면 자기가 목격한 것을 기쁜 소식으로 받아들인 사람입니다. 같은 사건을 목격하고도 그것을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기쁨에 차서 받아들이는 사람이 있습니다. 객관적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은 그런 일이 있었지 하고 넘어가고 또 그렇게 그 내용을 전달하지만, 기쁨에 차서 복음으로 받아들이는 사람에게는 개인적 체험과 확신이 있고, 그래서 그가 전하는 메시지에는 그 사람의 주관적 체험과 확신이 반영돼 있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것을 틀렸다고 함부로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신중한 사람이라면 맞다 그르다를 판단하기에 앞서 되새기며 헤아려볼 것입니다. 복음서를 쓴 루카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루카는 3절에서 “이 모든 일을 처음부터 자세히 살펴본”이라고 쓰고 있습니다. 그뿐 아니라 루카는 자기가 전해 받은 모든 것이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했습니다. 그러기에 “저도 귀하께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3절)라고 덧붙이고 있는 것입니다. 루카에 의해 쓰인 복음여기서 또 한 가지 생각할 것이 있습니다. 말씀의 종이 된 이들이 선포하는 말씀 혹은 복음에 그들의 주관적 체험과 확신이 반영돼 있는 것처럼, 전해 받은 자료를 “순서대로 적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한 루카 자신의 주관적 체험과 신념 또한 그가 적는 내용에 알게 모르게 반영돼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순서대로’라는 표현은 객관적으로 발생한, 역사적인 순서 그대로가 아니라는 점을 유념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루카는 자기가 전해 받은 자료를 자신의 관심사와 필요에 맞춰 새롭게 정리하고 순서를 매겨 편집해서 기록으로 남겼다는 것이 성경학자들의 공통된 견해입니다. 이는 마태오, 마르코, 요한 등 다른 복음서 저자들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누구를 위해 복음서를 썼나?루카는 왜 자신의 복음서를 쓰려고 했을까요? 머리말의 마지막 4절 “이는 귀하께서 배우신 것들이 진실임을 알게 해드리려는 것입니다”라는 구절은 이 점을 생각하게 해줍니다. 여기서 ‘귀하’는 바로 앞 3절에 나오는 ‘존귀하신 테오필로스’를 가리킵니다. 존귀하다는 표현은 직책상 또는 사회적으로 자기보다 지위가 높은 사람을 부를 때에 붙이던 말입니다. 하지만 실재 인물인지 아니면 가상 인물인지 분명하지 않다고 합니다.(「주석 성경」) 테오필로스란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 혹은 ‘하느님을 사랑하려는 사람’이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테오필로스는 당시에 전파되고 있던 그리스도교에 이미 귀의한 그리스도인일 수도 있고 아니면 하느님 혹은 진리를 사랑해 그리스도교에 귀의하고자 한 사람을 지칭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루카는 자신이 살고 있는 사회의 그리스도 신자들 또는 신자가 되려는 이들에게 그들이 배운 예수님에 관한 내용이 진실이라는 것을 알게 해주고자 복음서를 썼다고 하겠습니다. 새겨보기루카복음을 시작하면서 두 가지를 한 번 생각했으면 좋겠습니다. 1) 나는 테오필로스, 곧 하느님을 사랑하는 사람인가. 내가 사랑하는 하느님은 어떤 하느님인가. 2) 나는 진실을 알고자 하는가. 내게 예수님에 관한 진실이란 무엇인가? 루카복음의 저자와 집필 연대루카복음을 집필한 루카는 누구일까요? 루카복음의 원래 제목 ‘루카에 의한 복음’입니다. 그래서 편의상 저자를 루카라고 부르지만 이 루카가 어떤 인물인지 밝히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성경학계의 정설입니다. 다만 루카복음의 저자와 사도행전의 저자가 동일인이라는 것은 분명하다는 데에 성경학자들은 일치된 견해를 보입니다. 전통적으로 루카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를 바오로의 협력자로서 의사인 루카(콜로 4,14; 필레 24; 2티모 4,11 참조)라고 여겼습니다. 또 고대 그리스 시대부터 의사들은 해부학에 관심을 가져야 했기에 그림에도 어느 정도 재주가 있어야 했는데 루카 역시 그림을 잘 그렸다는 전승도 전해지고 있습니다. 베일에 쌓인 복음사가하지만 이는 전통적인 일부 견해일 뿐 오늘날에는 여러 근거에서 루카복음의 저자가 바오로가 언급하는 의사 루카와 동일인일 수 없다고 보는 견해가 훨씬 많습니다. 학자들은 루카복음이 마태오복음이나 마르코복음에 비해 훨씬 세련된 그리스어 문장을 구사하고 있지만 유다인 풍습에 대해서는 틀린 부분이 더러 있어 상당한 수준의 교양을 쌓고 그리스 어문을 잘 구사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일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전통적인 견해에 따라 저자를 루카로 부르기로 합니다. 그렇다면 비 유다계 그리스도인인 루카는 아마도 이방인 그리스도교 공동체인 자신의 공동체에 갓 입문한 신자들 혹은 그리스도교에 입문하려는 신자들을 위해 이 복음서를 썼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학자들은 집필 장소도 확실하게 밝혀진 지역은 없고 다만 이스라엘 밖 이방인 지역일 것으로만 추정합니다. 그러나 집필 연대는 80~90년쯤이라고 일치된 견해를 보이고 있습니다. cpbc2017.02.15

일요일엔 성당에 꼭 가야 하나요? [교회상식 교리상식] 주일은 '주님의 날' 그리스도 죽음과 부활 기념하는 의미주일에 성당을 찾아 미사를 드리고 있는 신자들. [CMS] 일요일엔 성당에 꼭 가야 하나요? 나이도 50줄에 들어섰고 이제는 성당에 다녀볼까 하는데 한 가지가 걸립니다. 왜 성당에는 꼭 일요일에만 가야 합니까. 가족과 주말 여행도 떠나고 싶고, 직장 일로 바빠서 만나지 못한 친구들도 만나야 하고, 밀린 집안 일도 해야 하고, 아무 일도 않고 푹 쉬고도 싶은데, 일요일마다 성당에 가야 한다는 게 부담스럽습니다. 꼭 일요일에 성당에 가야 할 특별한 이유가 있습니까? ----------------------------------------------------------------------------------------------- 천주교 신자들은 일요일마다 성당에 가 하느님께 예배를 드리며 기도를 바칩니다. 이것을 미사에 참례한다고 하지요. 그리고 일요일 미사 참례는 천주교 신자라면 지켜야 할 중요한 의무 중 하나이기도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 우리는 보통 한 주간 시작을 월요일로 봅니다. 그래서 토요일과 일요일을 주말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런데 달력을 보면 예외 없이 모두가 일요일부터 시작합니다. '일-월-화-수-목-금-토'로 한 주간이 이뤄지지요. 그래서 일요일은 주간 첫날이 됩니다. 우리 통념과는 맞지 않지만 달력이 이를 말해 주지요. 이렇게 일요일부터 토요일까지를 한 주간으로 지내는 것은 서양 그리스-로마 세계 때부터 오늘까지 이어지고 있다고 합니다. 7일을 한 주간으로 정해 지내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이는 구약성경 창세기에서 잘 알 수 있는데 창세기는 하느님께서 6일 동안 삼라만상을 창조하시고 마지막 일곱째 날에는 쉬셨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날을 안식일이라고 하는데 오늘의 토요일에 해당하지요. 그런데 성경은 하느님께서 이렛날인 안식일에 쉬셨을 뿐 아니라 '복을 내리시고 거룩하게 하셨다'고 말합니다. 또 하느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과 계약을 맺으시면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이 지켜야 할 법으로 십계명을 주십니다. 그 중 세 번째 계명이 바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내라는 계명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켜라. 엿새 동안 일하면서 네 할 일을 다하여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의 하느님을 위한 안식일이다. 그날 너와 너의 아들 딸, 너의 남종과 여종 그리고 너의 집짐승과 네 동네에 사는 이방인은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주님이 안식일에 강복하고 그날을 거룩하게 한 것이다"(탈출 20,8-11). 이에 따라 이스라엘 민족은 안식일 계명을 철저히 지켜왔습니다. 안식일에 일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지나치게 엄격하게 해석해 나중에 문제가 되기도 했습니다만, 하느님 의 창조사업을 기념해 쉬면서 하느님을 찬미하며 거룩하게 지내라는 게 안식일 계명의 핵심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이렇게 일곱째 날인 토요일을 안식일로, 쉬면서 거룩하게 지냈습니다. 이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여서 이스라엘에 가면 유다교인들은 토요일을 쉬는 날, 곧 안식일로 지냅니다. 우리나라에서도 제7일 안식교 신자들은 토요일을 안식일로 지내지요. "주님을 위한 거룩한 안식의 날"인 이렛날인 토요일이 지니는 의미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는 그리스도교가 탄생과 함께 여덟쨋날 곧 주간 첫날인 일요일로 옮겨 가면서 그 의미가 새롭고 풍부해집니다. 안식일 다음날 곧 주간 첫날은 바로 예수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날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이 날을 주님의 날로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일요일을 주일(主日)이라고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주일은 다름 아닌 주님의 날을 줄여서 부르는 이름이지요. 주간 첫날인 주일은 이제 새로운 의미를 지니게 됩니다. 이날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심으로써 죽음에서 부활하신 첫 사람이 되셨습니다. 이것은 첫번째 창조(천지창조)와 연관지어 새로운 창조를 가리킵니다. 유다인들이 하느님 창조사업을 기념해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냈듯이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의 부활, 곧 새로운 창조를 기념하면서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이 날을 주님의 날로 경축하며 지내게 된 것입니다. 나아가 그리스도인들은 이날 함께 모여 주님 부활을 기념하면서 "사도들의 가르침을 받고 친교를 이루며 빵을 떼어 나누고 기도하는 일에 전념"(사도 2,42)했습니다. 곧 주님 부활을 경축하면서 성찬례를 거행한 것입니다. 이 성찬례가 오늘날 천주교 신자들이 주일에 성당에서 참례하는 '미사'입니다. 이제 왜 천주교 신자들이 다른 날보다도 주일에 성당에 가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되셨을 것입니다. 예수님의 부활 사건은 그리스도교 신앙에서 핵심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시지 않으셨다면 복음을 선포하는 일도 헛된 것이고 그리스도인들 믿음도 헛된 것일 수밖에 없습니다(1 코린 15,13). 그래서 천주교 신자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날인 주간 첫날 곧 일요일에 성당에 가서 주님 부활을 경축하면서 신앙을 고백하고 주님이신 예수님께서 직접 제정하시고 거행하라고 당부하신 성찬례(미사)에 참례해서 영적 힘을 얻고 친교를 나누는 것입니다. 아울러 안식일을 거룩하게 하신 창조주 하느님의 뜻에 따라 이날 일상 일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면서 거룩하게 지내는 것입니다. 거룩하게 지낸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좋은 일을 하라는 것과 통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마르 3,4) 그리스도교 신자들에게 주간 첫날인 일요일은 단순히 쉬는 날이 아닙니다. 인류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사건인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기념하고 경축하는 축제일입니다. 주님의 날인 주일이 또한 은총의 날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 <<알아둡시다>>> 가톨릭교회의 법규는 신자들이 주일에 미사에 참례할 의무가 있다고 규정합니다. 또 의무 축일에도 반드시 미사에 참례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의무 축일이란 주일처럼 미사에 의무적으로 참례해야 하는 날을 말합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12월25일(예수님이 탄생하신 날, 예수 성탄 대축일)과 1월1일(예수님의 어머니이신 성모 마리아를 또한 하느님의 어머니로 기리는 날,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 그리고 8월15일(성모님께서 지상 생활을 마치고 하늘에 불려 올라가심을 기리는 날, 성모 승천 대축일)을 의무 축일로 지냅니다. 우리 천주교 신자들은 이제부터는 '일요일' 대신 '주일'이란 말을 쓸 것을 제안합니다. 일요일은 '쉬는 날'로만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주일은 주님의 날을 가리키므로, 거룩한 날, 은총의 날, 성당에 가는 날로 금방 이해할 수 있습니다. 자녀 신앙교육 차원에서라도 '일요일' 대신 '주일'이라고 표현합시다. cpbc2017.08.04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16) 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4549_1.0_titleImage_1.jpg)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16) 수원교구 남양성모성지성모님과 함께 평화와 회개 위해 기도 바치는 곳모든 이를 받아들이시기 위해 두 팔을 벌이고 있는 남양성모상. 치마폭을 잡고 있는 예수님의 모습에 무한한 신뢰감을 느낀다.창세기 17장 1절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아브람)에게 처음으로 당신 신원을 드러내신 말씀이 기록돼 있다. 바로 “나는 전능한 하느님이다”는 말씀이다. 히브리 말로 ‘엘 샤따이’라고 한다. 엘 샤따이의 뜻에 대해선 아직도 논란이 계속되고 있지만 “전능하신 하느님’ 외에도 ‘산속에 사는 하느님’, ‘높은 언덕의 하느님’ 또는 ‘보호자인 하느님’ 등 여러 의미를 지니고 있다. 칠십인역본과 고대 번역본들은 일반적으로 엘 샤따이를 ‘전능하신 하느님’으로 옮겨왔고 우리말 「성경」도 이를 따르고 있다.(주교회의 「주석 성경」 99쪽 참조) 엘 샤따이란 뜻이 여러 의미로 해석되지만, 고대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인간은 높은 언덕이나 산에 하느님의 제단을 쌓거나 거처를 지어 그분을 경배해 오고 있다. 무명 순교자들이 순교한 곳 경기도 화성시 남양읍 너른 동산에 터한 남양성모성지에도 지금 티 없으신 성모 성심을 통해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고 있는 대성당이 지어지고 있다. 우리 민족에게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해진 이후 이 터는 순교자의 피로 축성된 거룩한 땅이 되었다. ‘건넝골’이라 불리던 이곳이 1866년 병인박해 이후 천주교 신자들의 순교지가 됐다. 충청도 내포 사람 김필립보ㆍ박마리아 부부, 용인 덕돌 정필립보, 수원 걸매리 김홍서(토마스)를 비롯한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많은 신자가 이곳에서 순교했다. 1991년 한국 최초 성모성지로 선포돼 수원교구는 이 순교지를 1991년 10월 7일 묵주 기도의 동정 마리아 기념일에 한국 천주교회 최초로 성모성지로 선포했다. 당시 수원교구장이던 김남수 주교는 1989년 베를린 장벽이 허물어지고 1991년 소비에트 연방이 붕괴하는 것을 보고 파티마의 성모 은총이 우리나라에 필요하다는 것을 절감했다. 그러던 차에 성지를 개발하고 있던 당시 남양본당 주임 이상각 신부가 “순교자들과 순교자의 모후이신 성모님과 함께 우리나라의 평화 통일을 위해 끊임없이 묵주기도를 바치는 성지로조성하고 싶다”고 하자 김 주교는 교구장 직권으로 성모성지로 선포했다. 이후로 남양성모성지는 100년 파티마에 발현한 성모 마리아의 예언적 사명과 요청이 끊임없이 이어지는 성지가 되고 있다. 성모성지로 선포된 이후 평화를 위한 묵주기도가 단 한 시각도 끊기지 않고 지속되고 있다. 그 비결은 ‘24시간 묵주기도 고리 운동’에 있다. 하루 24시간 중 묵주기도 5단을 바칠 수 있는 20분을 정해 1단은 우리나라의 평화를 위해, 2단은 민족의 화해를 위해, 3단은 죄인의 회개를 위해, 4단은 남양성모성지를 위해, 5단은 고리 운동에 참여하는 이들 서로를 위해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다. 또 매주 토요일 오후 2시부터 6시까지는 제대 위에 성체를 현시하고 우리나라의 평화 통일을 위해 묵주기도 100단을 바치고 있다. 아울러 매주 목요일 저녁 7시부터 10시 30분까지는 미사와 침묵의 성체조배를 한다. 이 성체조배는 “지구 상에 지속적인 평화를 정립시키는 가장 훌륭하고 가장 확실하고 가장 효과적인 길은 지속적인 성체조배의 위대한 힘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요청에 따른 것이다. 아름다운 경치와 성미술품 조화 이뤄 남양성모성지는 초록 대지 위에 펼쳐진 로사리오 동산이다. 성지 조성은 “성모님, 아무것도 없습니다. 가진 것은 묵주뿐입니다. 그러나 당신만 계시면 충분하다”는 이상각 신부의 기도로 시작됐다. 시작부터 김광현(안드레아, 서울대 건축학과) 교수와 김영섭(시몬)ㆍ김정규 선생 등 전문 건축가의 조언을 받으며 조성됐다. 성지는 폴란드 블라디미르 자비의 성모 이콘 모습으로 꾸며졌다. 성체조배실이 가장 먼저 마련됐다. 지금의 경당 아래 루르드 성모 동굴 한쪽에 마련된 성체조배실은 이곳의 심장과 같은 곳이다. 성체조배실 감실 바로 위에 경당 제대가 설치돼 있다. 그리스도의 현존을 관통해 보여주는 공간이다. 경당은 성모성지의 사계절을 체험할 수 있게끔 제단 뒷벽이 유리로 되어 있다. 오는 10월에는 프란치스코 교황이 축복한 날개 감실이 설치된다. 폴란드의 저명한 작가 마리우스 드라피코브스키와 카밀 드라피코브스키가 제작한 대형 크리스탈 감실이다. 1㎞를 걸으면서 묵주기도 20단을 할 수 있는 로사리오 광장도 조성돼 있다. 유년의 예수님께서 성모님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있는 모습의 남양성모상은 홍익대 오상일(프란치스코 하비에르) 교수의 작품이다. 또 성 요셉상은 장범석 조각가, 자비심의 광장에 설치된 하느님 자비의 상과 피에타는 경원대 김유선(프란치스코) 교수의 작품이다. 한창 공사 중인 통일기원 성모 마리아 대성당은 마리오 보타의 작품이다. 또 우리 시대 최고 건축가인 페터 춤토르(Peter Zumthor)의 개인 기도처도 마련될 예정이다. 이처럼 남양성모성지는 성모님의 보호와 사랑을 체험할 수 있는 곳이다. 남양성모상처럼 엄마의 치마폭을 잡고 있는 소년 예수의 신뢰심을 가슴에 품을 수 있는 포근한 성모 동산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문채현2017.06.08

명동본당 사순특강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나타난 봉사(디아코니아)복음적 회심은 친교 넘어 ‘선포’와 ‘봉사’로 박준양(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신부 하느님의 뜻을 향한 복음적 ‘회심’(메타노이아)은 교회 공동체의 ‘친교’(코이노니아)로 이어지고, 이는 이제 세상을 향한 ‘선포’와 ‘봉사’(디아코니아)로 전환되어 드러난다. 이러한 근본 정신과 기본 구도를 제시했던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핵심 문헌인 「교회 헌장」(1964.11.21)과 「사목 헌장」(1965.12.7) 반포 이후, 50년의 시간이 지나갔다. 이제 오늘의 시점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복음의 기쁨」(2013.11.24)을 통해, 세상을 향해 출발하며 복음을 선포하고 봉사하는 교회 상을 다시 한 번 새로이 제시한다.「복음의 기쁨」 제1장은 “교회의 선교적 변모”를 다룬다. 이는 복음 선포 사명에 대한 가장 근본적 전망을 드러내는 교회론적 핵심 부분이다. 여기서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교회의 “첫걸음 내딛기”에 관해 설명한다. 하느님의 초대에 대한 응답으로 내딛는 우리의 첫걸음은, 이제 이웃을 향한 “첫걸음 내딛기”로 전환된다. “우리가 사랑하는 것은 그분(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1요한 4,19).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시고 거저 자비를 베푸셨기에, 우리 역시 세상에서 고통받는 이들을 향해 먼저 다가가 거저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하느님과의 수직적 친교가 수평적 친교로 전환되어, 이제 이웃을 향한 자비의 봉사로 발전하는 것이다.이를 위해서는, 첫째, “교회는 언제나 문이 활짝 열려 있는 아버지의 집이 되어야 합니다”(47항)는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마치 “방탕한 아들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는 아버지”(46항)처럼 항상 교회의 문이 열려 있어, 죄인들, 안식과 치유가 필요한 이들 모두가 오기를 기다리는 교회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둘째, “하느님 백성 전체가 복음을 선포함”(111-134항)으로써, 그 치유하는 역동적 말씀이 교회 안팎에서 널리 울려 퍼져야 한다. “모든 더러움과 그 넘치는 악을 다 벗어 버리고 여러분 안에 심어진 말씀을 공손히 받아들이십시오. 그 말씀에는 여러분의 영혼을 구원할 힘이 있습니다”(야고 1,21). 주님의 말씀을 통한 치유와 구원의 체험은 복음 선포를 하는 교회의 진정한 역동적 힘이다. “내 입에서 나가는 나의 말도 나에게 헛되이 돌아오지 않고 반드시 내가 뜻하는 바를 이루며 내가 내린 사명을 완수하고야 만다”(이사 55,11).셋째, 세상을 향해 ‘출발’하는 교회가 되어야 한다. 「복음의 기쁨」은 교회를 “열린 마음을 가진 어머니”(Mother with an open heart)라고 표현한다(46~49항). 진흙에 빠진 아이를 구하고자 진흙에 뛰어드는 어머니처럼, 교회 역시 고통받는 인간을 안고 보듬기 위해서는 상처 입고 때가 묻을 수밖에 없는 것이다. 바로 이것이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 구원을 위해 우리에게 보여주신 모범이다. 헨리 나웬 신부는 이를 가리켜 “상처 입은 치유자”라고 묘사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복음의 기쁨」 49항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이제 출발합시다. 가서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전합시다. 자기 안위만을 신경 쓰고 폐쇄적이며 건강하지 못한 교회보다는 거리로 나와 다치고 상처받고 더럽혀진 교회를 저는 더 좋아합니다.”한편, 교회의 말씀을 통한 봉사, 즉 복음 선포에 있어, 「복음의 기쁨」 제3장이 강조하는 것은, “복음화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적 죽음과 부활을 기쁨과 인내심을 갖고 점진적으로 선포하는 예언”(110항)이라는 점이다. 사도 바오로가 그리스 아테네의 아레오파고스 언덕에서 행한 지혜롭고 인내심 있는 설교(사도 17장 참조)를 배워야 한다. 청중의 눈높이에 맞춘 교육학적 설교가 여기에서 이루어진다.「복음의 기쁨」의 마지막 제5장은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자”에 관해 말한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성령께서 주시는 “담대한 열정”인데, 이를 드러내는 핵심적 단어가 성서 그리스어로 “파레시아”이다. 이는 성령의 은혜를 받은 사도들의 담대한 복음 선포 활동을 가리킬 때 사용된 용어이다(참조: 에페 6,19-20; 사도 4,31). “성령으로 충만한 복음 선포자는 두려움 없이 성령의 활동에 자신을 열어젖히는 복음 선포자입니다. 성령께서는 ‘담대하게’, 큰 소리로, 언제 어디서나, 또한 시류를 거슬러, 복음의 새로움을 선포할 힘을 불어넣어 주십니다. 오늘날 우리는 기도를 토대로 삼고, 성령께 간청합시다”(259항). 백영민2016.03.15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5) 한홍순(토마스) 한국외국어대학 명예교수](//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0262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5) 한홍순(토마스) 한국외국어대학 명예교수예수님 태운 당나귀 되어 학자, 외교관, 평신도로 복음의 빛 전해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30)고 하신 예수님 말씀은 그를 두고 하신 말씀이 아니었을까? 그는 현재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 재직 시절 회고록을 준비하고 있다.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빌려 “달릴 길을 끝까지 달렸고 최선을 다해 신앙의 믿음을 지켰다”는 한국외국어대학교 명예교수 한홍순(토마스) 전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다. 주님은 그에게 무거운 책무와 극복해야 할 과제를 주셨지만, 그의 발걸음은 늘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찼다. 마치 예수님을 태운 당나귀처럼 겸손한 자세로 소임을 다해 온 벅찬 여정이었다. 그는 교회 안에 머물기보다 교회 밖으로 나가 매일의 삶의 현장에서 그리스도를 증언하고 교회의 공동체 정신을 보여 주는 것이 ‘평신도 영성의 힘’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교회가 세상에 세례를 줘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에 세속화의 세례를 주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평신도로서 우리는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해 무엇을 해야 할까?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한국외국어대학교에서 36년 동안 강단에 서셨는데, 노동경제학을 강의하셨죠.노동경제학 전공 1세대입니다. 미국이나 독일로 유학을 가지 않고 로마 그레고리오 대학으로 간 이유는 신앙 때문이었습니다. 학자가 되고 싶어 연구 분야를 찾다가 역대 교황님들이 반포하신 사회 회칙을 보고 사회교리를 공부하고 싶었습니다. 경제학 입문서 맨 뒤에 사회 회칙이 언급된 것을 보고 내가 공부해야 할 분야라고 생각해 로마로 유학 갔습니다. 노동경제학은 노동자 문제를 연구하는 학문으로 노동자의 임금과 권익, 분배 문제 등을 다루죠.▶유학하시면서 로마에 첫 한인 공동체를 만드셨어요.1966년 유학을 가 보니 로마에 유학생 신부님은 열 분이 넘게 계시는데 신자들은 많지 않았습니다. 모임도 없고 해서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모여서 한국말로 미사도 봉헌하고 친교를 나누기 위해 1968년 가을, 처음으로 로마 중심가에 있는 수녀원 성당을 빌려서 미사를 봉헌했습니다. 당시 한인 공동체에서 지금의 아내를 만났죠. ▶2010년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로 부임하셨는데 ‘준비된 분’이라는 평가가 많았습니다.당시 어느 날 갑자기 외교부에서 전화 한 통이 왔습니다. 이력서를 내라고 해서 이력서를 낸 게 전부였습니다. 대학 교수직에서 은퇴한 뒤여서 ‘한국을 대표해 바티칸에 대사로 가는구나!’ 하고 감을 잡았죠. ‘하느님이 저를 또 도구로 쓰시겠다고 부르시네’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에 제자들과 만찬을 하시고 나서 당나귀를 데리고 오라’고 하신 비유가 생각났습니다. ‘예수님을 내 등에 모시고 교황청으로 가네’라고요. 예수님을 모신다는 부담을 안고 대사로 부임했습니다. ▶교황청 주재 한국대사는 어떤 역할을 하는 자리인가요.교황청과 한국 정부를 잇는 다리 역할입니다. 한국 정부의 관심사나 의견 등을 교황청에 전달하고 반대로 교황청의 의견이나 관심사를 한국 정부에 전달하고요. 이는 한국과 교황청만의 일이 아니고 세계 전체를 위해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교황청은 전 세계 모든 백성의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곳이기 때문에 지역에서 이를 실천해야 목적을 달성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것을 교황청에 인식시키고 한국 정부에 대해서는 우리나라와 세계 전체의 공동선을 위해 일하는 곳이 교황청이라는 것을 알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1984년부터 교황청 평신도평의회 위원을 6차례나 역임하셨는데, 어떤 자리인가요.평신도평의회는 교황님을 보필하기 위해 전 세계 교회에서 평신도와 관련된 모든 문제를 다루는 기구입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생겼고, 위원은 대륙별로 뽑습니다. 저로서는 한국뿐만 아니라 아시아권에서 평신도와 관련된 문제를 교황청 평신도평의회를 통해 모든 의견을 솔직하게 교황님께 전달한 것이 매우 큰 보람이었습니다.▶현대사에 등장하는 교황님 네 분을 모두 만나셨죠. 바오로 6세 교황님은 유학 시절에 뵈었어요. 매우 이지적이고 냉철한 사고력을 가진 분이란 느낌을 받았고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을 제일 오랫동안 만났는데, 저에겐 ‘아버지’ 같은 분이었어요. 두 번이나 한국에 오셨고, 한국말도 배우셨죠.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은 라칭거 추기경 시절부터 아는 분이었습니다. 여러 회의를 통해 뵙고 말씀도 들었는데, 매우 논리적이며 마음이 여리고 다른 사람 말을 잘 듣는 분이셨습니다. 이 분처럼 말씀을 잘하는 분은 지금까지 본 적이 없습니다. 지금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매우 검소하고 ‘큰 형님’ 같은 분인데, 격의 없이 사람을 대해 주고 대화하면서 응답이 상당히 빠른 분이십니다.▶대사를 지내시면서 교황님 방한을 위해 많은 노력을 하신 걸로 알고 있습니다.다른 대사처럼 저도 살아 계신 두 교황님을 모셨는데 부임하자마자 제일 먼저 역점을 둔 게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한국 방문이었습니다. 하지만 연세도 있고, 건강 문제도 있어서 측근들이 장거리 사목방문에 선뜻 동의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한국에 오셔야 한다고 계속 설득해서 분위기가 어느 정도 무르익었는데 돌연 사임을 하셨습니다. 이후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방한을 위해 노력했는데, 먼저 있던 측근들이 방한의 필요성을 느껴 2013년 5월 긍정적인 신호를 주기 시작했고 그해 11월 대사 이임 인사를 드릴 때 방한을 확신했습니다.▶이임 인사 때 어떤 말씀을 하셨나요.제가 “교황님, 한국 천주교회는 예수회 소속 마태오 리치 신부님의 「천주실의(天主實義)」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그 교회가 지금 크게 성장하고 있습니다. 이제 예수회 신부인 교황님께서 한국에 오셔서 적극적으로 격려하고 밀어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하고 말씀을 드렸더니 교황님께서 “그렇게 하겠습니다”라고 답해주셨습니다.▶교황님이 방한하신 2014년에 한국 교회에는 경사가 많았습니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대주교님이 추기경으로 서임되셨고, 124위 순교 선조들의 시복이 결정됐죠. 124위 시복은 베네딕토 16세 교황님의 방한 목적으로 추진됐습니다. “순교를 바탕으로 커 나간 한국 교회에 친히 오셔서 분단의 상처를 치유해 달라”고 부탁드렸었죠. 기회가 있을 때마다 평신도들이 세운 한국 교회의 특징을 설명했습니다. 유럽에서는 경제가 성장하면 교회는 쇠퇴하는데 한국은 경제가 성장하면서, 교회도 성장한다는 점을 강조했고요.▶한국 교회 ‘평신도 영성’을 어떻게 보세요.한국 교회의 평신도처럼 교회와 주님을 위해 헌신적으로 활동하는 평신도는 전 세계적으로 찾아보기 힘듭니다. 그런 활동이 교회 안에서만 머물고 있어 아쉽습니다. 내 삶의 현장에서 다른 사람들이 교회를 볼 수 있고 그리스도를 뵐 수 있어야 하는데 안타깝게도 세상의 힘과 세력이 교회 안으로 들어오고 있습니다. 교회가 세상에 세례를 줘야 하는데 세상이 교회에 세속화의 세례를 주는 경향을 보이고 있는 것이죠. 평신도뿐 아니라 성직자와 수도자가 모두 합심해 올바른 방향으로 물길을 바로 잡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한반도에 긴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교회와 평신도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보시나요.올바른 역사의식을 바탕으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지금, 여기에서 그리스도를 대신해 무엇을 할까 하고 생각하는 것이 우선입니다. 지금 정신적인 면에서 우리가 크게 이바지할 수 있는 것은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힘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위대합니다. 위기를 푸는 가장 효과적인 열쇠가 바로 ‘기도’가 아닐까 합니다.▶한국 천주교의 평신도 대표로서 부담이나 어려움은 없으셨나요.주님께서 이 시점에 이 일을 하라고 하시는 것은 이유가 있을 것으로 생각하면서 맡겨진 직무를 충실히 수행했을 뿐입니다. 주님께서 주시는 임무는 극복해야 할 과제를 주신 것이고 ‘주님과 함께 걸어가며 지나온 날을 이야기한다’는 성가 가사처럼 주님과 함께 이 순간을 살고 있기 때문에 겁내거나 걱정할 것은 없었고요. 사도 바오로의 말씀처럼 달릴 길을 끝까지 달렸고 최선을 다해서 신앙의 믿음을 지켰습니다. ▶주로 어떤 기도를 바치시고 마음에 품고 계신 성경 구절은 어떤 말씀인가요.평생 배워서 몸에 익힌 ‘묵주기도’가 저의 최고의 기도이고요. ‘화살기도’도 많이 합니다. 성경 구절 중에서는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지 않으면 한 알 그대로 남아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는다”(요한 12,24)는 말씀을 늘 간직하고 있습니다.▶모태 신앙이신데, 어머님의 신앙 교육, 어떤 점이 가장 먼저 떠오르세요. 매사에 감사하고 교만하지 말고 겸손하라고 하셨고 동시에 “너는 누구보다 잘할 수 있다”고 늘 격려해 주셨습니다. 적극적인 자세를 갖게 해 주셨죠. 가장 감사한 것은 신앙을 물려주신 것입니다.▶청소년들에게 ‘신앙의 힘’에 대해 한 말씀 해주세요.주님과 함께하면 일상생활에도 크게 도움이 된다는 것이죠. 모든 일에 주님은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겁먹을 게 하나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의 청년 시절과 유학 시절, 주님께서 베풀어 주신 큰 은총에 보답하기 위해 열심히 충전하고 준비하는 자세로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청년 시절 신앙을 돌이켜보면 두 가지가 생각납니다. 일할 때나 사람을 대할 때 예수님을 대하듯이 하라는 것과 영성체를 한 뒤 주님이 내 안에 계실 때 기도하라는 말씀이었는데, 지금도 이 두 가지를 실천하면서 큰 힘을 받고 있습니다.▶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꼭 이루고 싶은 일보다는 생을 마치는 날까지 주님의 도구로서 잘 쓰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소원을 들어주시길 간절히 기도할 뿐입니다. 백영민2017.11.01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9) 주님 세례 (하)](//cpbc.co.kr/CMS/newspaper/2018/01/rc/709214_1.0_titleImage_1.jpg)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9) 주님 세례 (하)옷 입고 두 손 모은 채 세례받는 예수, 인간적 면모 부각 지오토 작 ‘주님 세례’, 프레스코화, 1304~1306, 이탈리아 파도바 스코로베니 성당. 주님 세례 도상(圖像)은 주님의 세례 모습과 요한 세례자의 태도가 시대별로 다르게 나타나지만 네 복음서에 기록된 주님 세례 장면을 세밀하게 구성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아울러 주님 세례 도상에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형상을 어떻게 표현하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성미술 도상에서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한 서열 예나 지금이나 교회 지도자들은 전례 거행 장소와 전례 목적에 적합하게 성미술 작품을 배치할 수 있도록 세심하게 신경 쓰고 있습니다. 2세기 사도 교부시대 문헌인 헤르마스의 「목자」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오른쪽에 반드시 사도들의 으뜸인 성 베드로가 있어야 하고, 최후의 심판이나 십자가에 못 박히신 도상에서는 그리스도의 오른쪽에 성모 마리아가 있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아울러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성모님과 사도들의 좌우 서열상 배열뿐 아니라 성인들의 서열 배치도 엄격하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성인들의 도상 서열은 전례력의 축일 급수에 따라 구약성경의 인물, 예언자, 증거자, 순교자, 동정녀 순으로 배치합니다. 또 수의 조화를 강조해 구약의 열두 예언자와 신약의 열두 사도, 구약의 이사야, 에제키엘, 다니엘, 예레미야 네 예언자와 신약의 마르코, 마태오, 루카, 요한 네 복음사가 등으로 배열하고 있습니다. 제4차 콘스탄티노폴리스 공의회(869/870)에서 니콜라오 1세 교황으로부터 이교로 단죄받았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포시우스 총대주교는 예수님과 관련한 구세사(救世史)의 열두 장면을 성당 벽면에 꼭 그리게 했습니다. 그 열두 장면은 주님 탄생 예고, 주님 성탄, 주님 공현, 주님 봉헌, 주님 세례, 주님의 거룩한 변모, 라자로 소생, 주님의 예루살렘 입성, 주님 수난, 주님 부활, 주님 승천, 성령 강림입니다. 이처럼 주님 세례 도상은 구세사의 주요 사건으로 초대 교회 때부터 지금까지 그려지고 있습니다. 신학자들은 주님 세례와 주님 수난을 대비시켜 구세사의 의미를 해석합니다. 물에 잠겼다가 다시 나오는 것은 죽음을 이기고 다시 태어남을 상징하기 때문입니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저서 「나자렛 예수」에서 “세례는 이제까지의 죄스런 생활을 청산하고 이제부터 새로 삶을 바꾸러 나선다는 뜻”이라며 “다시 말하면 그것은 죽음과 부활이요, 앞으로 새 삶을 시작한다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래서 주님 세례 도상과 주님 수난 도상은 종종 좌우로 배치해 장식하기도 합니다. 그림에 나타난 ‘손’, 성부 현존을 상징 6세기부터 복음서에 나오지 않는 해석들이 주님 세례 도상에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형상을 표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처음에는 주로 ‘손’이 등장했습니다. 손은 천주 성부의 현존을 의미합니다. 하늘에서 내려온 손은 비둘기 형상을 한 성령의 꼬리를 잡고 있거나 세례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이 손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하늘에서 들려왔다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성부의 목소리를 표현한 것입니다.천주 성부를 상징한 손의 형상은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스승인 15세기 화가 베로키오의 ‘그리스도의 세례’ 작품 등에도 표현되지만 12세기 이후 주님 세례 도상에서 점차 사라집니다. 대신 천주 성부께서 직접 얼굴이나 상체를 황금빛 구름 사이로 드러내며 등장하십니다. 이 도상은 동방 교회에서 먼저 시작해 서방 교회까지 널리 확산했습니다. 또 이 시기부터 의인화한 요르단 강의 형상은 천사로 대치됩니다. 천사는 주로 둘씩 짝을 지어 등장하는데 물가에서 주님의 옷을 받쳐 들고 시중을 드는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그 대표적 작품 중 하나가 14세기 때 지오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가 이탈리아 파도바 스크로베니 성당에 그린 ‘주님 세례’ 프레스코화입니다.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과 비둘기 형상의 성령, 그리고 상반신을 드러낸 천주 성부가 중심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성부께서는 오른손으로 예수를 가리키며 당신이 사랑하고 마음에 드는 아들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 성부께서는 왼손에 당신 외아드님이 인류 구원을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고 승천하신 후 그리스도 왕으로 재림하실 때 들고 오실 생명의 책을 안고 계십니다. 지오토는 알몸으로 요르단 강에 잠겨 세례를 받는 예수님의 모습과 요르단 강을 무덤의 봉분 모양으로 그린 것도 주님 세례 도상의 전통을 그대로 따르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모습은 마치 요한 세례자와 대화하는 듯 두 손을 들고 몸을 요한에게 향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요한 세례자에게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마태 3,15) 하고 대답하시는 모습을 생동감 있게 표현합니다. 세례 때 하신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주님께서 수난을 앞두고 겟세마니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제가 원하는 대로 하지 마시고 아버지께서 원하시는 대로 하십시오”(마태 26,39)라고 하신 말씀을 앞당겨 하신 것이라고 신학자들은 해석하고 있습니다. 지오토의 작품에서 눈여겨볼 것은 요한 세례자의 옷입니다. 요한 세례자는 낙타 털옷에 분홍 망토를 걸치고 있습니다. 분홍 망토는 사순 제4주일에 사제들이 입는 분홍 제의를 연상시킵니다. 분홍색은 주님의 수난과 희생을 상징합니다. 14세기 초부터 주님 세례 도상에는 또 한 번 변화의 바람이 붑니다. 주님께서 물속에 잠기지 않으시고 옷을 입은 채 두 손을 모으고 기도하는 모습으로 서 계시고, 요한 세례자가 주님의 머리에 물을 부어 세례를 주고 있는 장면이 새롭게 등장합니다. 과거 이콘 화가들은 내적인 순결함과 초월적인 거룩함을 표현하기 위해 알몸을 선택했으나 이 시기 서방 교회의 화가들은 주님의 인간성을 강조한 듯합니다. 그래서 세례를 받으시는 예수님께 옷을 입혔습니다. 아마도 인본주의를 근간으로 하는 르네상스 정신이 성미술에도 접목돼 나타났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 대표 작품이 르네상스 화가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Piero della Francesca)가 1451년에 그린 ‘주님 세례’입니다. 원근법이 적용된 이 그림은 요한 세례자의 수반에서 흘러내리는 물을 중심선으로 비둘기 형상의 성령, 예수님의 정수리, 이마, 코, 입술, 손바닥 사이, 배꼽이 일직선을 이루고 있습니다. 주님 왼편에 손을 잡고 서 있는 세 천사는 믿음, 희망, 사랑을 상징한다고 일부 미술가들은 설명하지만 이들 세 천사가 입은 붉고 푸른 색 옷과 흰색, 분홍색 옷으로 짐작하면 각각 주님의 수난과 영광, 희생을 표현한다고 하겠습니다. 주님 오른편에는 한 사람이 세례를 받기 위해 옷을 벗고 있습니다. 이 사람을 통해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로마 6,3)와 “그리스도와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여러분은 다 그리스도를 입었습니다”(갈라 3,27)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을 묵상하게 합니다. 평화신문2018.01.23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20)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cpbc.co.kr/CMS/newspaper/2017/12/rc/704727_1.0_titleImage_1.jpg)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20)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문화재급 성미술 가득 품은 성당, 60년 세월에도 세련미 물씬 교회 건축물인 성당은 기도하는 전례 공간일 뿐 아니라 하느님을 드러내는 표징이다. 서울대교구 혜화동성당은 근현대 한국 가톨릭 건축물 가운데 표징으로서의 교회 모습을 보여 주는 대표적 성당이다. 특히 혜화동성당은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초대 학장인 장발(루도비코) 선생의 지도와 기획 아래 서울대 미대 출신 작가들이 건축 설계와 성미술까지 참여해 한국 가톨릭 미술의 기초를 놓은 머릿돌 같은 성당이다.전쟁 후 외부 도움 없이 건립 혜화동성당은 1960년 5월 봉헌됐다. 지은 지 60년이 다 된 성당이지만 건축의 세련미와 성미술의 예술성은 지금도 한국 가톨릭 교회 근현대 건축물을 대표하는 데 손색이 없다. 잣나무골(栢洞, 백동) 성 베네딕도회 수도원 자리에 터를 잡은 혜화동성당은 6ㆍ25 전쟁 이후 단 한 푼의 외부 도움 없이 본당 신자들의 헌금과 희생으로 지어졌다. 설계는 이희태(요한) 교수가 했다. 서울 절두산순교성지 성당과 기념관을 설계한 이다. 그는 ‘성당은 붉은 벽돌로 고딕풍으로 지어야 한다’는 당시 고정관념을 깨고 직사각형 평면에 노출 콘크리트로 성당을 지었다. 일부 건축가들은 이 형태를 ‘창고형’이라고 정의하고 있지만, 장방형인 성당의 기본 형태와 평면 천장 구조로 보아 규모는 훨씬 작지만 초기 교회 건축 양식인 바실리카 풍을 따른 게 아닐까 한다. 또 성당이 높지 않은데도 건물 하중을 분산해서 지지하도록 외벽에 일정 간격으로 부벽을 덧대 놓아 전통적인 고딕풍의 요소도 보여 준다. 그래서 혜화동성당을 전문 건축가들이 말하는 ‘철근콘크리트구조 단순 창고형 설계’라고 부르기보다는 개인적으로 ‘바실리카와 고딕 절충식’이라고 감히 표현해 본다. 여하튼 혜화동성당은 1960년대 이후 건축되는 근대 성당의 모형이 되는 기념비적 건물로 2007년 문화재청 등록문화재 제230호로 지정됐다. 성미술 작품 화려 혜화동성당의 모든 성미술도 문화재급이다. 성당 정면 외벽 ‘최후의 심판도’는 김세중(프란치스코) 교수 작품이다. 화강석 부조인 이 작품은 재림하신 그리스도 왕을 중심으로 네 복음서를 상징하는 조각과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라’(요한 14,6) ‘천지는 변하려니와 내 말은 변치 아니하리라’(루가 21,33)는 복음 말씀이 새겨져 있다. 청동 대리석으로 된 제대와 제대 뒤 청동 십자가도 김세중 교수 작품이다. 성당 입구 계단은 일제 조선 신궁의 계단을 가져왔고, 여러 조각에 사용된 화강석은 장발 교수가 전라북도 황등에서 직접 골라 운반해 왔다. 십자가의 길과 로사리오의 길은 최봉자 수녀의 작품이다. 또 성당 입구 성모상과 성 베네딕토 상은 최종태(요셉) 교수의 작품이다.성당 내부도 전통의 틀을 깼다. 기둥을 없애 어디에서든 제대에 집중할 수 있게 했다. 제대 뒷벽은 도자로 장식돼 있다. 권순형(프란치스코) 교수 작품이다. 도자 벽화의 주제는 ‘신비와 성사’이다. 우주의 신비를 시작해 성사 안에서의 삶을 표현한다. 황갈색은 풍요로운 밀밭, 청록은 심오한 신비를 지닌 우주와 주님의 포도밭을 상징한다. 도자 벽화 왼쪽 위에 그려진 태양은 모든 빛의 원천이자 생명의 근원이신 하느님을 표현한다. 이 태양이 도자 벽화의 정점이다.색유리화 하나하나 의미 담겨 색유리화는 이남규(루카) 교수 작품이다. 제대 오른편의 색유리화는 ‘성부, 성자, 성령 그리고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로다’를 주제로 했다. 제대 오른편 4개의 색유리화는 ‘진리이신 그리스도(태양), 어둠을 비추는 진리의 빛,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가시밭길, 성체(밀)와 성혈(포도)인 생명’을 표현했다. 이 작품은 특히 제대 도자 벽화와 103위 성인화(복자화)에 주는 빛의 영향을 고려해 엷고 단순한 색만을 선택해 제대를 중심으로 한 각각의 성미술이 조화를 이루게 했다. 신자석 오른편 큰 창의 둥근 원은 천주 성부를 상징한다. 약동하는 파랑, 노랑, 빨강의 삼원색은 우주 창조의 신비를 나타낸다. 가운데 창은 성자를 표현했다. 십자가와 가시관의 고통, 승리의 월계수로 구성돼 있다. 세 번째 창은 성령이다. 비둘기와 주위의 빛으로 표현했다. 왼쪽 벽의 색유리화는 오른편 색유리화와 대칭적 조화를 이루기 위해 새로이 창을 내어 만든 작품이다. 본당 수호성인인 성 베네딕토와 아기 예수의 데레사, 제44차 서울 세계성체대회를 상징하는 색유리화이다. 또 작은 창의 색유리화들은 천지창조, 빛의 찬미, 성경 말씀 등을 주제로 한 색유리화다. 1976년 제작된 103위 복자화는 문학진(토마스) 교수 작품이다. 문 교수는 작품 제작에 앞서 1년 동안 한국사와 교회사, 복식사, 교회법과 전례 등에 대해 전문가의 고증과 조언을 받아 이를 토대로 가로 4m, 세로 3.2m의 대작을 남겼다. 순교 시기와 신분, 순교 형태는 모두 달랐지만, 도봉산을 배경으로 103위 모두가 평등한 위치에서 일치를 이루고 순교의 은총과 기쁨을 드러내고 있다. 이 복자화는 1984년 5월 6일 103위 시성식 때 사용됐고 이후 문 교수가 직접 보수해 한국 교회 공식 103위 성인화로 지정됐다.부활성수대는 이종상(요셉) 화백이 제작한 성수대 위에 임영선 교수가 예수 부활상을 얹은 합작품으로, 상반신 예수 그리스도가 가시관을 쓴 채 못 자국이 선명한 두 손을 포개 얹고 있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세례대는 이순석(바오로) 교수, 성수반은 김종영(프란치스코) 교수 작품이다. 혜화동성당은 전례 공간일 뿐 아니라 표징으로서 교회를 드러내는 한국 교회이며 우리나라 문화재이기도 하다. 글·사진=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7.12.13
![[성경 속 도시] (62) 파트모스 섬](//cpbc.co.kr/CMS/newspaper/2015/09/rc/59431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62) 파트모스 섬요한 사도가 묵시록 기록했다는 곳 파트모스 섬의 요한 동굴 입구. 이곳에서 요한 사도가 묵시록을 기록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리길재 기자 정치범의 유배지 파트모스 섬은 터키와 그리스 사이에 있는 수많은 섬 중 하나로 바위와 화산으로 뒤덮인 조그마한 섬이다. 에페소에서 남서쪽으로 90㎞ 정도 떨어져 있고 에게해 해안에 있는 그리스 영토다. 이 섬은 로마제국 시대에 종교인 또는 정치범의 유배지로 이용됐던 곳이다. 파트모스에 속해 있는 몇 개 작은 섬들이 동쪽에서 반원형을 이루고 있다. 이곳 집들은 대부분 하얀색이어서 바다와 함께 어우러져 매우 깨끗하고 한 장의 사진처럼 느껴진다. 파트모스 섬이 유명해진 것은 도미티아누스 황제(재위 81~96) 말기에 요한 사도가 유배 생활을 하며 요한 묵시록을 기록한 장소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여러분의 형제로서, 예수님 안에서 여러분과 더불어 환난을 겪고 그분의 나라에 같이 참여하며 함께 인내하는 나 요한은, 하느님의 말씀과 예수님에 대한 증언 때문에 파트모스라는 섬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묵시 1,9). 그래서 파트모스 섬은 요한 사도와 관련이 매우 깊다. 이 섬에는 현재 요한 묵시록을 기록한 곳으로 알려진 동굴, 섬의 정상 부분에 성채처럼 우뚝 서 있는 그리스 정교회의 성 요한 기념 수도원, 요한 사도가 처음 세례를 주었다고 전해지는 세례터가 있다. 그래서 작은 섬이지만 1년 내내 순례객이 끊이지 않는다. 요한은 18개월간 파트모스 섬에서 지내며 하느님의 계시를 받는다. 그리고 요한 사도가 에페소를 비롯한 소아시아 일곱 공동체에 그들의 신앙을 잊지 말라는 격려의 편지를 보내게 된다. 이 편지가 성경의 마지막 책인 바로 요한 묵시록이다. “어느 주일에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내 뒤에서 나팔 소리처럼 울리는 큰 목소리를 들었습니다. 그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에 보내라’”(묵시 1,10-11). 요한 사도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후 성모 마리아를 모시고 에페소에 와서 선교하며 살았다고 전해진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그 곁에 선 사랑하시는 제자를 보시고, 어머니에게 말씀하셨다.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어서 그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 하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요한 19,26-27). 요한 사도의 흔적 곳곳에 남아 요한 사도는 요한 묵시록을 기록한 후 석방돼 말년을 에페소에서 살다가 생애를 마감했다. 요한은 일찍이 예수님이 사랑하시는 제자로 불렸다.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예수님 품에 기대어 앉아 있었는데, 그는 예수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였다”(요한 13,23). 요한 사도는 고난과 핍박 속에서도 불굴의 신앙심과 믿음으로 오직 예수님만을 의지하여 사도의 길을 걸었다. 그의 흔적은 파트모스 섬 곳곳에 남아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9.22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69)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2코린 2,15)새 계약의 사도들이 선포하는, 구원으로 이끄는 화해의 말씀 복음 선포 직무에 대한 성찰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에서 특징적으로 발견할 수 있는 내용 중 하나는 복음을 선포하는 직무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성찰입니다. 사도의 직무에 대해 언급하는 신약성경의 내용에서 잘 알려진 것은 바오로의 협력자였던 루카가 전하는 사도행전의 표현입니다. 사도행전에서 사도들은 공동체의 일을 담당할 부제들을 뽑으면서 “기도와 말씀 봉사에만 전념하겠다”고 밝힙니다.(사도 6,4) 또 마티아 사도를 뽑는 이야기에서 보면 사도들은 “부활의 증인”으로 표현됩니다.(사도 1,22) 이런 내용의 연장선상에서 바오로 사도가 이해했던 사도 직무에 대한 내용을 살펴볼 수 있습니다.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나 멸망할 사람들에게나 우리는 하느님께 피어오르는 그리스도의 향기입니다. 멸망할 사람들에게는 죽음으로 이끄는 죽음의 향내고, 구원받을 사람들에게는 생명으로 이끄는 생명의 향내입니다.”(2코린 2,15-16) 바오로 사도는 자신과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라고 표현합니다. 이러한 표현의 배경에는 당시 로마의 ‘개선 행진’이 자리합니다. 로마는 전투에서의 승리를 기념하며 개선 행진을 벌였습니다. 그리고 그 행진의 가장 앞에는 신에게 감사하는 의미를 담은 향을 사용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개선 행진에서 사용하는 이 향은 로마에게는 승리의 향기로 그리고 로마에 패한 이들에게는 죽음의 향기로 여겨졌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마치 로마의 개선 행진처럼 말씀을 선포하는 이들 역시 사람들에게 전하는 향기라고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불의한 이들에게는 심판을 전하고 의로운 이들에게는 구원을 가져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전하는 이들은 개선 행진에서 피어오르는 향기와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들입니다. 영이 계신 곳에 자유가또한, 바오로 사도는 사도의 직무를 “새 계약의 일꾼”으로 생각합니다.(2코린 3,6) 여기서 말하는 계약은 문자가 아닌 성령으로 된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이러한 바오로 사도의 표현은 예레미야서 31장 33절의 말씀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구약의 십계명처럼 돌 판에 새겨진 계약이 아니라 마음에 새겨진, 곧 문자가 아닌 성령에 의해 주어진 계약입니다.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과 맺은 옛 계약은 사라질 것이지만, 성령을 통한 새 계약은 사라지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에게 사도의 직무는 “성령의 직분”이고(2코린 3,8) 사람들을 “의로움으로 이끄는 직분”입니다.(2코린 3,9) 하느님은 성령을 통해 사람들을 단죄하는 것이 아니라 의로움으로, 영광으로, 궁극적으로 구원으로 이끌 것입니다. “누구든지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는 새로운 피조물입니다. 옛것은 지나갔습니다. 보십시오. 새것이 되었습니다.”(2코린 5,17)이 모든 것을 바오로 사도는 ‘자유’를 위한 것으로 설명합니다. 마치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시켜 그들에게 해방을 주었던 것처럼 이제 하느님은 성령을 통한 새로운 계약으로 믿는 이들에게 의로움을 통한 자유를 선사합니다. “주님은 영이십니다. 그리고 주님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가 있습니다.”(2코린 3,18)하느님이 부여한 화해의 직분바오로 사도에게 하느님의 가장 큰 업적은 죄 중에 있던 사람들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당신과 화해시킨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하느님과 화해를 위한 하느님의 업적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이들은 이러한 하느님의 화해 말씀을 전하는 “화해의 직분”을 맡은 사람들입니다.(2코린 5,18) 바오로 사도의 사도 직무에 대한 성찰 역시 충실하게 하느님의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화해의 말씀을 전하는 것이라고 강조합니다. 하느님은 모든 이들을 죄에서 구원으로 이끄는 화해의 말씀을 사도들을 통해 사람들에게 선포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사절입니다.”(2코린 5,20) 사도의 직무는 이렇듯 말씀에 봉사하는 직분입니다. 이 직무는 개인적인 자격이 있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선물로 이해합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김지항2017.10.11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7)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다 (루카 7,36-50)](//cpbc.co.kr/CMS/newspaper/2017/08/rc/691900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7)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다 (루카 7,36-50)진정으로 회개했으니 이미 용서받았다 시몬이라는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받아 음식을 드시던 예수님은 자신의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닦아준 죄많은 여자를 용서하셨다. 그림은 성 안젤로 성당 벽화 중 하나로 ‘죄많은 여인을 용서하신 예수님’, 프레스코화, 성 안젤로 성당, 카푸아, 이탈리아. 출처=굿뉴스 가톨릭갤러리 지난 호에 살펴본 요한 세례자에 관한 예수님 말씀(7,24-35)의 끝 부분에서 예수님께서는 요한과 당신을 대비시키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세례자 요한이 와서 빵을 먹지도 않고 포도주를 마시지도 않자, ‘저자는 마귀가 들렸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런데 사람의 아들이 와서 먹고 마시자, ‘보라, 저자는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다’ 하고 너희는 말한다. 그러나 지혜가 옳다는 것을 지혜의 모든 자녀가 드러냈다.”(7,33-35)루카는 이 말씀에 바로 이어 예수님께서 시몬이라는 바리사이의 집에 초대를 받아 음식을 드시다가 죄많은 여자를 용서하시는 일화를 소개합니다. 그렇다면 이 일화를 통해 ‘먹보요 술꾼이며 세리와 죄인들의 친구’인 예수님의 지혜가 옳다는 것을 드러내려는 것이 루카의 의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일화를 세 장면으로 나눠 살펴봅니다. 첫째 장면입니다.(7,36-38) 시몬이라는 바리사이가 예수님을 식사에 초대합니다. 장소가 어딘지는 알려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고을에 죄인인 여자가 예수님이 바리사이 집에 계시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옵니다. 그 여자는 “향유가 든 옥합을 들고서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분의 발을 적시기 시작하더니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닦고 나서, 그 발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발랐다”(7,37-38)고 루카는 전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부분은 죄인인 여자입니다. 그 여자가 왜 죄인인지 또 어떤 죄를 지었는지에 대한 언급은 전혀 없습니다. 다만 그 여자 스스로가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예수님 뒤쪽 발치에 서서 울 까닭이 없을 것입니다. 그 여자는 예수님의 놀라운 활동과 특히 죄를 용서하신다는 소문을 이미 들었을 것입니다. 여인은 단지 눈물을 흘리는 것으로 그치지 않았습니다. 자신의 눈물로 예수님의 발을 적시고는 자기의 머리카락으로 그 발을 닦은 다음에 입을 맞추고 향유를 부어 바릅니다. 여인의 이 일련의 행위가 순전히 즉흥적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향유를 든 옥합을 갖고 올 때부터 이미 어느 정도는 생각했을 것입니다. 둘째 장면입니다.(7,39-47) 이 장면은 죄인인 여자의 행위를 본 시몬의 생각과 그 의중을 간파하신 예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집니다. 예수님을 초대한 바리사이 시몬에게는 여인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여인의 행위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문제 삼았습니다. “저 사람이 예언자라면 자기에게 손을 댄 여자가… 죄인인 줄 알 터인데”(7,39)라는 생각의 이면에는 ‘왜 저 죄 많은 여인이 하는 짓을 그대로 놔둘까?’ 하는 못마땅함이 들어 있다고 할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비유를 들어 시몬에게 설명하십니다. 여자가 눈물로 당신의 발을 씻어주고 머리카락으로 닦은 다음 입을 맞추고 향유를 발라준 것은 더 큰 사랑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너에게 말한다.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더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7,47) 그런데 이 마지막 말씀은 뭔가 이상한 것 같습니다. 여자의 행동은 자신의 죄를 용서받은 데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이라기보다는 오히려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표현으로 보는 것이 더욱 적합하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그 여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고 말씀하시는 것은 그 다음 장면에서입니다. 셋째 장면입니다.(7,48-50) 예수님께서는 이제 비로소 그 여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7,48) 하고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둘째 장면 마지막 부분에서 제기된 의문에 답을 찾아봅시다. 죄인인 여자가 예수님께 한 행위를 용서의 이유(회개의 표시)이자 동시에 결과(사랑의 표현)라고 보면 어떨까요? 어쩌면 여자는 예수님을 찾아뵙기로 작정했을 때부터 이미 마음으로 회개했고 또 자신의 큰 죄에 대한 예수님의 용서를 확신하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이 회개의 마음과 용서에 대한 확신이 예수님을 직접 뵈면서 행동으로 드러났다고 하면 잘못된 해석일까요? 성경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여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7,48)고 말씀하셨을 때, ‘용서받았다’는 단어가 ‘과거에 이미 용서받았고 그 결과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완료형’으로서 “이 여자는 그 많은 죄를 용서받았다. 그래서 더 큰 사랑을 드러낸 것이다”라는 47절의 ‘용서받았다’에 대한 반복이라고 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는 여자에게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7,48)고 말씀하시기 전에 또 그 여자가 사랑의 행위를 표시하기 전에 여자의 회개하는 마음을 보시고 이미 죄를 용서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는 성경 말씀이 떠오릅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는 예수님 말씀에 함께 있던 사람들은 속으로 “저 사람이 누구이기에 죄까지 용서해 주는가?” 하고 말합니다.(7.49) 죄의 용서는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는데 예수님께서 죄의 용서를 언급하시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다시 그 여자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거라”(7,50) 하고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는 말씀 또한 여자가 예수님께 한 행위가 죄의 용서에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살아가면서 우리는 회개가 먼저인가 용서가 먼저인가 하며 옥신각신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면서 자신에게 편한 쪽으로 해석하려고 하지요. 누가 내게 잘못했고 내가 용서를 해야 할 입장이라면,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언제든지 용서할 준비가 돼 있어. 그쪽에서 먼저 잘못했다는 한마디만 한다면.” 그 반대 상황이라면 또 이런 식으로 생각하겠지요. “저쪽에서 조금만 관용을 베푼다면 내 잘못을 기꺼이 인정하고 새롭게 시작할 수 있을텐데….” 죄 많은 여자를 용서하신 일화는 이런 방식에서 벗어나야 함을 일깨워 줍니다. 죄 많은 여인이 보인 태도는 회개의 표현이자 또한 용서받은 데 대한 감사와 사랑의 표현입니다. 중요한 것은 공감입니다. 용서하는 사람은 용서 청하는 사람의 진심을 볼 수 있어야 하고, 용서를 청하는 사람은 용서하는 사람의 너그러움을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런 면에서 우리는 사람의 마음을 보시는 하느님을 닮을 필요가 있습니다. -바리사이 시몬은 죄인을 멀리함으로써 자신의 의로움을 간직하고자 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을 멀리하거나 내치지 않고 오히려 받아들이고 포용하며 죄인을 회개시킴으로써 하느님 나라의 의로움을 드러내십니다. 죄로부터 완전히 차단된 흠 없고 깨끗한 세상을 꿈꾸기보다는 죄인을 받아들여 용서하고 회개시킴으로써 개선해 가는 세상, 그런 세상을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가꾸어 가야 하는 게 아닐까요? 평화신문2017.08.15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33) 8세기 ② - 성화상 논쟁과 종교 예술의 활성화](//cpbc.co.kr/CMS/newspaper/2017/07/rc/688256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33) 8세기 ② - 성화상 논쟁과 종교 예술의 활성화일단락된 성화상 논쟁… 불씨는 꺼지지 않아 7세기 이슬람 제국의 침입을 막아낸 동로마 비잔틴 제국은 종교 분야에도 깊이 관여함으로써 동방 교회 자체를 분열시켰을 뿐만 아니라, 서방 교회와도 대립 관계를 형성했습니다. 비잔틴 제국이 서방 교회를 이방 민족으로부터 보호해 주지 않자, 서방 교회는 유럽 본토 정치 세력과 우호 관계를 도모하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중심에 ‘성화상 논쟁’이라는 사건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성상 논쟁 시기 동로마 제국에서 제작된 성경 시편 사본의 삽화. 성상파괴주의자들이 교회에서 물에 적신 해면으로 예수의 성상을 지우는 것을, 병사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매달고 장대에 꽂은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셔 예수에게 갖다 댄 것에 대비시키고 있다. 출처=나무위키 성화상 파괴론자들의 출현시리아 지역 평민 출신이었던 비잔틴 제국의 황제 레오 3세(Leo III, 재위 717~741)가 황제 즉위 전후로 이슬람 제국의 유럽 진출을 저지시키면서 인기가 높아지자, 황제는 본격적으로 종교 문제에도 관여했습니다. 725년 성화상 공경을 반대하는 소아시아 주교들이 황제에게 성화상 파괴를 간언했고, 726년경에 레오 3세는 성화상 공경 금지 칙령을 내리면서 황궁의 칼케(Chalke) 문에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초상을 제거했습니다.콘스탄티노폴리스의 총대주교 게르마누스 1세(Germanus I Constantinopolitanus, 재임 715~730)는 성화상 파괴를 반대하다가 730년 레오 3세에 의해 해임되었습니다. 레오 3세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PP. II, 재임 715~731)에게 황제의 정책을 지지해 줄 것을 요청했으나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는 성화상 공경을 옹호하고 황제의 요구를 거절하며 황제에게 성화상 공경에 대한 서한을 보냈습니다.(「신경 편람」 581 참조) 그러자 레오 3세는 또 다시 성화상 공경 금지 칙서를 발표하고 성화상 철거 및 성인 유해까지 파괴했습니다.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Gregorius PP. III, 재임 731~741)도 731년 로마 교회 회의를 소집하여 성화상 파괴론자(iconoclast)를 파문하겠다고 경고했습니다.레오 3세의 아들이자 후임 비잔틴 제국의 황제 콘스탄티누스 5세(Constantinus V, 재위 741~775)는 황제로 즉위하자마자 반란에 의해 퇴위되어 잠시 피난살이를 했습니다. 이때 그를 보호하며 도와주었던 사람들이 성화상 파괴론자들이었습니다. 따라서 743년 콘스탄티누스 5세는 제위를 회복하자 바로 성화상 파괴 명령을 내렸습니다. 754년 콘스탄티누스 5세는 히에레이아(Hiereia) 교회 회의를 소집해 성화상 공경을 우상으로 규정하고 성화상 공경을 실천하는 수도원들을 박해하기 시작했습니다.성화상 공경의 당위성을 밝힌 다마스쿠스의 요한다마스쿠스의 요한(Ioannes Damascenus, 650경~754이전)은 성화상 파괴론자들을 반대했던 대표적인 인물이었습니다. 요한이 태어날 당시에 다마스쿠스는 이미 이슬람 제국의 영토였습니다. 다행히 한동안 그리스도교 관용 정책을 펼쳤던 이슬람 지도자들로 인해 요한은 가업을 물려받아 황실에서 관직을 맡을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7세기 말부터 정책이 바뀌었고, 요한은 관직을 더 유지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요한은 예루살렘 근처에 있는 마르 사바 수도원으로 이주하여 수도 생활을 실천하면서 성경과 신학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그의 명성을 듣게 된 예루살렘 총대주교 요한 5세(Ioannes V Hierosolymitanus, 재임 706~735)는 요한에게 사제품을 주었으며, 성화상 논쟁에 가담하도록 했습니다. 따라서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성화상 공경의 당위성을 강력히 주장했고, 사망 후인 754년에 히에레이아 교회 회의에서 단죄되었다가 787년 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복권되었습니다.요한은 많은 양의 저서를 남겼는데, 그 가운데 3부작으로 구성된 「인식의 원천(Fons Cognitionis)」 중 한 권인 「올바른 신앙에 관한 해설(De Fide Ortodoxa)」에서 다양한 주제로 구성된 교회의 가르침과 함께 성화상 공경과 성인 및 마리아 공경에 대한 견해를 밝혔습니다. 또한 요한은 저서 「성화에 관한 세 편의 연설(Orationes de Imaginibus Tres)」에서 성화상 공경에 대한 올바른 근거를 밝혔습니다.첫 번째 연설에서 요한은 인간은 하느님의 모상을 닮아 창조된 하느님의 형상이기에 성자 그리스도는 당연히 성부의 형상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두 번째 연설에서 요한은 예형론적인 관점에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미래의 구원을 보장할 구원의 은총이 담겼다고 언급했습니다. 세 번째 연설에서 요한은 하느님에 관한 형상의 묘사가 강생의 신비로 인하여 그리스도교에서 정당성을 확보했다고 언급했습니다.제2차 니케아 공의회에서 성화상에 관한 교의적 정의 공포됨비잔틴 제국 황제 레오 4세(Leo IV, 재위 775~780)가 즉위하자 성화상 공경을 지지하는 황후 이레네(Irene, 750쯤~803) 덕분에 암묵적으로 성화상 공경이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아들 콘스탄티누스 6세(Constantinus VI, 재위 780~797)는 모후 이레네와 공동 황제로 즉위하게 되어 786년경에 성화상 공경 신심이 거의 회복되었습니다.따라서 여황제 이레네에 의해 787년에 소집된 제2차 니케아 공의회는 성화상에 관한 교의적 정의를 공포했으며(「신경 편람」 600~603 참조), 성화상들, 그리스도의 인성, 그리고 교회의 전통에 대해 다시 한 번 확인했습니다.(「신경 편람」 605~609 참조) 또 성화상 공경 전통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들은 파문할 것이라고 경고했습니다.성화상 논쟁이 한 번 더 벌어졌습니다. 비잔틴 제국 황제 레오 5세(Leo V, 재위 813~820)는 815년 성화상 공경 금지 칙령을 발표하고,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 니케포루스 1세(Nicephorus I Constantinopolitanus, 재임 806~815)의 협조를 구했으나 뜻대로 되지 않자 총대주교를 해임했습니다. 하지만 비잔틴 제국 황제 미카엘 3세(Michael III, 재위 842~867)가 즉위하자 모후 테오도라(Theodora, 재위 842~855)는 섭정으로 843년 콘스탄티노폴리스 교회 회의를 소집하여 성화상 공경 법령을 확인했으며, 성화상 공경자였던 콘스탄티노폴리스의 메토디우스(Methodius Constantinopolitanus, 재임 843~847)를 총대주교로 임명했습니다.비록 성화상 파괴론자들이 어떤 우상이나 신상 및 형상을 만들지 말라는 하느님의 계명(탈출 20,4; 레위 26,1; 신명 4,16~18 참조)을 핑계 삼아 성화상 논쟁을 벌였으나, 성화상 공경은 예수 그리스도뿐만 아니라, 성모 마리아와 성인들 때문에라도 평신도 신심 운동 안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성화상 공경에 힘입어 교리 내용을 담은 예술 작품이 교회 안팎에 설치되었으며, 성화상 공경을 지지했던 교황은 세속 황제의 권력으로부터 신앙을 지키는 수호자로 여겨졌습니다. 결국 성화상 공경을 지속적으로 지지했던 서방 교회와 성화상 논쟁의 중심이 되었던 동방 교회는 훗날 분열의 길로 접어들 수밖에 없었습니다. <가톨릭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7.07.11

기도를 어떻게 바쳐야 할지 모르겠어요[교회상식 교리상식] 겸손·믿음 갖고 하느님과 일치하도록 노력한 신자가 성당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어떻게 기도해야 하나요? 기도가 중요하다는 것, 기도해야 한다는 것은 알지만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몰라서 기도를 못한다는 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어떻게 기도하느냐?'는 질문에 대한 답변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습니다만, 바람직한 기도 자세에 대해 「가톨릭교회교리서」를 중심으로 알아봅니다. ◇기도 자세 기도할 때에 우선적으로 요청되는 자세는 겸손입니다. 겸손한 마음은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이며 자신은 피조물에 불과하다는 것을 인정합니다. 오만한 사람은 자신의 원의를 하느님의 뜻보다 위에 두지만 겸손한 사람은 자신의 뜻보다 하느님의 뜻을 더 위에 둡니다. 자신의 뜻을 하느님 뜻에 맞추고자 합니다. 또 자신의 뜻을 하느님 뜻에 맞추지 못한 것을 가슴 아파하고 뉘우칩니다. 그래서 겸손한 마음은 회개하는 마음입니다. 회개는 잘못을 뉘우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회개하는 마음은 용서하고 화해하는 마음입니다. 그래서 회개는 마음을 깨끗이 하여 하느님 앞에 나아가게 합니다. 겸손한 자세와 관련해 성경에는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루카 18,9-14)가 나옵니다. 가슴을 치며 "오 하느님!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루카 18,13)하고 바치는 세리의 기도는 겸손한 마음, 회개하는 마음의 좋은 본보기입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겸손은 기도의 초석"이며 "기도의 선물을 무상으로 받기 위한 마음 가짐"이라고 가르칩니다(2559항). 기도할 때에 요청되는 또 한 가지 기본 자세는 신뢰, 곧 믿음입니다. 신뢰 역시 하느님을 하느님으로 받아들인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우리가 하느님을 참으로 아버지 하느님으로 믿고 고백한다면 하느님께 자녀다운 신뢰심을 지닐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기도하며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그것을 이미 받은 줄로 믿어라. 그러면 너희에게 그대로 이루어질 것이다"(마르 11,18). 그러나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믿음의 기도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의 뜻을 실천할 마음을 가져야 믿음의 기도가 됩니다. 그러면 모든 것을 다 알고 계시는 하느님 아버지께서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실 것입니다(마태 6,32-33 참조). 기도할 때에 믿음과 함께 요구되는 것은 간절함과 끈기입니다. 루카 복음에 나오는 '친구의 청을 들어 주는 사람의 비유'(11,5-8)와 '과부와 재판관의 비유'(18,1-8)는 기도에서 간절함과 끈기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잘 보여줍니다 비유의 끝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께 선택된 이들이 밤낮으로 부르짖는데 그들에게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지 않으신 채 그들을 두고 미적거리시겠느냐?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지체없이 올바른 판결을 내려주실 것이다. 그러나 사람의 아들이 올 때에 이 세상에서 믿음을 찾아볼 수 있겠느냐?" ◇한 가지 더 「가톨릭교회교리서」는 기도의 모범을 보여주신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드리신 두 편의 기도에 관해 언급합니다. 첫째 기도는 '하느님 아버지와 아들'이라는 제목으로 나오는 기도(마태 11,25-27; 루카 10,21-22)이고, 둘째 기도는 라자로를 다시 살리실 때에 바친 기도(요한 11,41-42)입니다. 이 두 편의 기도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두 기도 모두 감사로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그런데 첫째 기도에서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하고 감사를 드리신 예수님은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하고 고백하십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모든 기도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전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2603항). 둘째 기도에서 예수님은 감사를 드리신 후에 "언제나 제 말씀을 들어주신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습니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가톨릭교회교리서」는 "이 말씀에는 예수님께서도 끊임없이 청하고 계신다는 뜻이 내포돼 있다"며 이렇게 "감사로 시작하는 예수님의 기도는 우리에게 어떻게 청해야 하는지를 보여준다"고 제시합니다. 곧 "선물을 받으시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선물을 주시고 그선물과 함께 당신 자신도 주시는 분(하느님 아버지)과 일치하신다"는 사실입니다. 달리 말하자면, "베풀어진 선물보다도 그 선물을 주시는 분이 더욱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선물은 곁들여 주어지는 것"이라는 점입니다(2604항). 따라서 기도할 때는 언제나 감사로 시작하면서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도록 노력하고, 얻고자 하는 기도의 선물을 구하기에 앞서, 먼저 하느님 아버지와 일치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예수님께서 공생활 중에 바치신 두 편의 기도가 보여주고 있는 것이 이 점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cpbc2017.1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