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송 통해 꾸준히 신앙 대화 이어가겠습니다”이영제 신부의 유튜브 신앙 프로그램 ‘가톨릭주유소’ 1주년 공개방송… 구독자들과 만남의 시간 가져
‘가톨릭주유소’ 1주년 공개방송에서 김상우(왼쪽부터)ㆍ김덕재ㆍ이영제ㆍ김영훈ㆍ최광희 신부가 토크를 하며 신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가톨릭주유소’ 1주년 생일잔치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신부가 혼자 방송해보겠다고 무작정 뛰어든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구독자가 2000명을 돌파했네요. 하하~”19일 서울 명동 옛 계성여고 마당이 방송국 세트장으로 변신했다. 유튜브 신앙 프로그램 ‘가톨릭주유소’ 진행자인 이영제(서울대교구 사목국) 신부가 1주년을 맞아 공개방송을 마련한 것. 매주 온라인으로만 소통하던 열혈 시청자들과 1년 만에 직접 만나는 자리다.반짝거리는 머리띠까지 두르고 등장한 이 신부가 자신을 “가톨릭주유소 알바생”이라고 소개하자 환영의 박수가 쏟아졌다. “실물로 보니까 주름도 많고, 못 생기지 않았나요?” 하는 유머에 객석은 다시 한 번 웃음바다가 됐다.‘주님을 당신께 소개합니다’를 줄여 만든 ‘가톨릭주유소’는 이 신부가 매주 1~2차례 유튜브를 통해 성경, 교리, 생활성가 등 신앙과 관련한 모든 것을 직접 전하고, 채팅과 사연도 받아 소통하는 1인 미디어 프로그램. 특유의 유쾌한 목소리와 재치있는 입담, 신앙 교훈까지 곁들여지다 보니 시청자가 꾸준히 생겼고, 1년 만에 정기 구독자가 2200명에 이른 것이다.사제가 ‘BJ’(1인 방송 진행자)를 하는 것은 흔치 않은 일. 이날 공개방송을 찾은 이들만 남녀노소 100여 명에 이르렀다. 이들은 새로운 방식으로 소통하려는 사제의 방송을 즐겁게 또 진지하게 방청했다. 공개방송은 사제들과의 대본 없는 토크쇼, 신앙 퀴즈 게임, 미사 등으로 꾸며졌다.그간 ‘가톨릭주유소’에 출연했던 최광희(가톨릭청년성서모임 담당)ㆍ김덕재(사목국 성서사목부 차장)ㆍ김상우(서울 주교좌명동본당 보좌)ㆍ김영훈(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차장) 신부는 이날 ‘행복, 그리스도인의 소명’을 주제로 토크쇼에 출연해 ‘행복론’을 전했다.“제가 신자들에게 주님을 잘 전하고 있다고 느낄 때 행복함을 느껴요.”(김영훈 신부)“특히 청년들의 눈빛에서 신앙을 발견할 때 행복하더라고요.”(최광희 신부)“행복은 엄청난 의무가 아니에요. 그리스도인에게 행복은 하느님 선물이죠.”(이영제 신부)미리 메일로 받은 시청자 사연도 소개됐다. ‘스펙 쌓기와 신앙생활’을 고민하는 사연에 김덕재 신부는 “학원 강사를 하다가 사제가 됐는데, 청년 시절 봉사는 사회생활에서 관계성과 사회성을 북돋워 준다”며 의미를 전했다.김영훈 신부는 “우리는 무조건 불행을 없애는 데에만 너무 애를 쓴다”며 “그보다 작은 행복이라도 만들고, 발견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다”고 전했다. 김상우 신부도 “고통은 제거되는 것이 아니다.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려는 삶이 곧 행복을 찾는 길”이라고 일러줬다. 방청객들은 이어진 신앙 퀴즈 게임을 즐기고, 미사도 봉헌하며 신앙의 의미를 진지하고도 즐겁게 고찰했다. 사제들은 성가 ‘아무것도 너를’을 함께 불렀다.이영제 신부는 “‘가톨릭주유소’는 신자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새로운 신앙 소통의 공간”이라며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시는 방송을 통해 신자들과 꾸준히 신앙 대화를 해나가겠다”고 말했다.글·사진=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8.05.22

유럽 현대 성당 탐방 (3) 성미술과의 만남실용적인 현대 건축에 아름다운 예술품 더하니 금상첨화샤갈 작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 프랑스 아시성당. 2003년에 이어 15년 만에 다시 떠난 현대 성당 건축 탐방은 한마디로 ‘눈이 아닌 가슴으로 보고 느낀 여정이었다’고 말하고 싶다. 유럽 현대 성당 건축과 미술은 예술의 힘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 잘 보여줬다. 프랑스의 아시성당은 15년 전에 가봤으니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루오의 거친 유약 선이 가득한 예수님 유리화에 손을 대보고, 그 옆 세례당에 있는 샤갈의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보는 순간 깊은 감동이 밀려왔다. 역시 작품은 훌륭했다. 쟝 뤼르사의 요한 묵시록의 여인과 용을 그린 커다란 직조물도 다른 미술품들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건축 외벽을 장식한 레제의 작품은 강렬한 선이기에 앞에 세워진 돌기둥들의 육중함과 어울릴 수 있었다. 마티스나 보나르 작품들도 아름다웠다. 각자의 미술 세계와 예술성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성미술품들은 미술관이 아닌 성당 안에서도 찬란히 빛나고 있었다. 좋은 성미술이란 역시 좋은 미술가가 만들어낸다는 생각이 들었다. 독일 네비게스의 마리아 평화의 모후 순례성당에서는 그 과감한 건축 형태 속에서 성모님을 상징하는 붉은 장미 문양 유리화들이 콘크리트벽의 회색과 대비를 이루며 성전 내부의 색과 빛의 양을 조절하고 있었다. 장미 문양이 제대 강론대 전례 의자에도 있었고 지하 소성당에도, 심지어 성당 외벽에도 있었다. 성당 내부 뒤쪽 경당에는 생명나무 ‘마리아의 기둥’ 조각 중간에 성당이 지어지게 된 기적의, 원죄없이 잉태되신 성모상이 새겨진 동판이 모셔져 있었다. 건축은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역동적 순례의 모습과 하느님의 도성을 표현했다고 하는데, 성미술에서는 성모님께 드리는 깊은 신심을 드러내고 있었다. 뮌스트슈바르작 수도원에서 새벽 기도 시간에 참여하고 알빈 신부님의 40주기 기념식에 참가했다. 양옆 경당에 전시한 신부님 작품들은 성경 해석이 명쾌하면서도 묵상적으로 표현돼 있어 깊은 감동을 받았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에 고난을 겪으시고도 다시 한국으로 오셔서 20년의 세월 동안 그 많은 작품을 남기셨음에 감사와 존경을 드린다. 데사우의 바우하우스에선 지금도 건축 곳곳에서 바우하우스가 추구하던 디자인의 실용성과 아름다움의 조화를 발견할 수 있었다. 라이프치히에선 2015년 지어진 삼위일체성당에 가봤다. 간결한 흰색 벽에 사방 길이가 같은 그리스풍 십자가가 제단 뒤에 걸려 있었다. 예수님의 몸체가 없이 연속적인 문양으로만 장식돼 있었고, 오른쪽에 있는 성체조배실 겸 경당에도 서 있는 십자가를 빼고는 감실과 그 주변이 다 같은 문양으로 돼 있었다. 독일 북부에는 개신교의 세력이 가톨릭을 넘어선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새 성전의 느낌도 우리 교회와 많이 달라 무척 현대적이며 개념 미술의 느낌이 강했다. 뮌헨에 있는 예수성심성당은 못이 가득 그려진 유리판으로 사각의 성당을 만들고 내부에 나무 루바를 설치해 빛 조정을 한 것으로 유명한 곳이다. 14처는 예루살렘 십자가의 길을 처마다 사진으로 찍어 걸어놓았고, 감실은 제단 뒤에 발처럼 늘어뜨린 금속 재료와 어울리게 가는 금속으로 만든 구조물 안에 설치해 놓았다. 건축의 공간과 어울리는 투명한 공간을 만들어 시각적으로 감실의 무게감을 덜어냈다. 성 비오 매겐성당에서 본 것은 반투명 대리석 벽체의 아름다움이었다. 이곳 역시 감실이나 제대 등은 간결한 디자인이었다. 반면 소성당에는 뒷벽 전체를 가로지르는 표현적 기법의 14처가 한 판 위에 그려져 있었다. 무띠에의 우리 마을의 성모성당은 공동체와 사제, 건축가, 예술가의 협력으로 이뤄진 성당이다. 알프레드 마네시에의 성당 뒤 상부 유리화 ‘성모님의 망토’와 세례대 주변의 창 ‘주라산맥의 수정 같은 물’ 유리화는 추상적이지만 너무도 충분한 표현이라 생각했다. 조르즈 앙리 아담스의 타피스트리와 제대, 모든 제단 부분과 감실, 세례대 등에 걸친 신선하고 방대한 흑백의 작품들도 아름다웠다. 다만 처음에 없었던 소리 울림을 막기 위한 구조물이 제단 윗부분에 설치돼 있어서 아쉬움이 있었다. 롱샹성당과 라투렛수도원의 피흐미니성당은 르 코르비지에 작품들로, 빛을 효과적으로 사용하고 색을 과감히 더해 환상적인 공간을 만들었지만, 성미술품은 모두 간결하게 돼 있었다. 건축의 모던함과 과감한 예술적 표현들 말고도 좋은 성미술이 함께 있었으면 어떠했을지 생각하게 됐다. 멋진 벽돌 조적의 원통형 성당 모양을 한 에브리성당에는 김인중 신부님의 유리화가 설치돼 있다. 제단 앞 십자고상은 단순하면서도 성전 내부의 중심을 잘 잡고 있었고, 제단 후면 흑백의 유리화와 검은색 바닥, 흰 대리석으로 된 제대와 감실의 흰색은 주위 벽돌의 붉은색을 중화시키고 있었다. 설치된 조각들도 모두 정성껏 만든 좋은 작품들이었다. 건축과 성미술이 조화를 이뤘다. 이번 탐방에서는 건축이 그리도 멋진 성스런 공간들을 만들 수 있다는 것에 놀랐고, 좋은 성미술품은 정말 소중한 것이란 생각을 하게 됐다. 그런 혁신적인 건축도 허락한 교회에 찬사를 보낸다. 우리나라에서도 좋은 건축의 성당이 많이 지어지고 미술가들도 아름다운 성미술품을 만드는 데 힘써 예술로 주님을 찬미할 수 있게 됐으면 좋겠다. 문채현2018.09.19

제3세계 작품 국내에 소개하며 문학 저변 넓혀생명의 신비상 수상자 릴레이 인터뷰(2) 인문사회과학 분야 본상 왕은철 교수 왕은철 교수 문학 작품에서 나타난 죽음, 애도, 트라우마를 연구해 온 왕은철(미카엘, 61, 전북대 영어영문학과) 교수가 ‘생명의 신비상’ 인문사회과학 분야 본상 수상자로 선정됐다. 왕 교수는 “죽음과 상처, 아픔을 이야기하는 것은 결국 생명과 삶이 소중하다고 이야기하는 것과 맞닿아 있다”면서 “특별히 가톨릭교회에서 주는 상을 받게 돼 놀랐고 또 영광이다”라고 말했다. 왕 교수는 초창기 문학에 나타난 정치적 함의에 주목하며 제3세계 문학 작품을 연구하고 번역해왔다. 식민주의와 제국주의의 희생자들, 가해자와 피해자 구분 논리에 관심을 두고 연구를 지속해왔다. 그러다 어머니의 건강 악화와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고통과 상처, 죽음의 세계로 눈을 돌렸다. 정치적 논의에서 윤리적 문제로 연구 방향이 바뀌었다. “부모님이 아프시고 또 아버지께서 돌아가시는 걸 직접 겪으니, 사랑하는 이와 이별하면서 느끼는 아픔과 슬픔은 원래 알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상처더라고요. 마음의 준비를 했는데도 힘들었습니다. 타인의 고통과 상처에 대해 함부로 얘기해선 안 된다는 걸 깨달았죠. 그러면서 문학 작품에선 이러한 슬픔, 애도를 어떻게 그려냈는지를 살펴보게 됐습니다.”왕 교수는 2013년 아버지 장례를 치른 뒤 세례를 받았다. 어머니가 독실한 천주교 신자여서 장례미사를 봉헌했다. 그는 가톨릭교회에서 큰 위로를 받았고, 신자가 되고 나선 프란치스코 교황의 행보에서 감명을 받았다. 학자로서 또 신자로서 성경을 새롭게 읽고 복음 말씀을 접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학문의 지평도 넓어졌다. 그는 “요즘은 고통과 트라우마, 죽음을 넘어서서 환대라는 주제에 관해 연구하고 있다”면서 “신앙이 없었다면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학자는 논리적, 이성적으로 학문을 연구해야 하지요. 신앙은 다른 차원의 문제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습니다. 요즘은 성경에서 나타나는 환대의 서사를 연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야말로 환대의 삶을 몸소 보여주신 분입니다. 상처받고 약한 이들에게 먼저 다가가 이들을 이해해 주셨죠. 상처를 공감하고 곁에 있어 주는 것만으로도 위로는 충분합니다.”왕 교수는 “제 입에서 신앙, 믿음, 예수님과 같은 말이 나오는 날이 오리라고는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 “이 모든 게 결국 하느님께서 계획하신 일이 아닌가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학자로서 글을 쓰고 주변을 더 따뜻하게 하는 일이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하는 일이라 생각한다”고 했다. 왕 교수는 1982년 전북대 영문학과를 졸업했고 이후 미국 펜실베이니아 클래리언 대학에서 영문학 석사 학위를, 메릴랜드 대학에서 영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40여 권에 이르는 제3세계 작품을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며 문학 저변을 넓히는 데 앞장섰다. 유영번역상(2011), 전숙희문학상(2012), 한국영어영문학회 학술상(2017) 등을 수상했으며 저서로는 「애도예찬」 「트라우마와 문학, 그 침묵의 소리들」 「문학의 거장들」 등이 있다. 역서로는 「나라의 심장부에서」 「연을 쫓는 아이」 등이 있다.생명의 신비상 시상식은 17일 오후 2시 주교좌 명동대성당 파밀리아 채플에서 열릴 예정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18.01.03

사도는 어떤 사람들인가요?[교회상식 교리상식] 예수님이 직접 뽑은 열두 명의 복음 선포자레오나르도 다 빈치 작 ‘최후의 만찬’, 1495~1497년.사도란 무슨 뜻인가요. 또 열두 제자만 사도라고 부를 수 있는지요? 신약성경은 예수님께서 자신을 따르던 제자들 가운데 12명을 따로 불러 그들을 '사도'로 삼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마르 3,13-19; 마태 10,1-4; 루카 6,12-16). 그런데 성경에서는 이 12제자에 속하지 않는 바오로나 바르나바도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사도 14,14). 사도에 대해 좀 더 알아봅니다. 사도란 그리스어 '아포스톨로스'(αποστολοs)를 우리말로 번역한 것인데, 아포스톨로스는 '보내다''파견하다'는 뜻을 지닌 동사 '아포스텔로'(αποστελλω)에서 나왔다고 합니다. 아포스톨로스는 원래 사절, 특사 같은 일반적 의미로 사용됐고 종교적 의미로는 거의 사용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신약성경에는 사도란 말이 80번 가량 나올 정도로 빈번하게 사용됐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자 파견된 사람'이라는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사도'의 기준은 무엇일까요? 복음서를 살펴보면 대략 파악할 수 있습니다. 네 복음서 가운데 마태오ㆍ마르코ㆍ루카 세 복음서를 공관복음서라고 부릅니다. 구조와 내용이 비슷하고 일치하는 부분도 많다고 해서 붙은 이름입니다. 예수님께서 12제자를 사도로 부르시고 파견하신 부분을 공관복음서(마태 10,1-4; 마르 3,13-19; 루카 6,12-15. 또한 마태 10,5-15; 마르 6,7-13; 루카 9,1-6)에서 보면 공통되는 점들이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뽑으셨다는 것입니다. 둘째는 (병을 고치는 능력과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을 주시면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파견하셨다는 것입니다. 복음서의 이런 내용을 요약해 보면 사도란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시고 선택하신 제자로서 예수님에게서 능력을 받아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도록 파견된 사명을 띤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공관복음서가 증언하듯이 예수님께서 이렇게 친히 뽑으신 사도는 모두 12명이었습니다. 12사도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교회의 반석이 되라는 뜻에서 '베드로'라고 이름을 바꿔주신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 제베대오의 아들인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 필립보와 바르톨로메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타대오, 열혈당원으로 알려진 시몬, 그리고 예수님을 팔아넘긴 유다 이스카리옷입니다. 그런데 제베대오의 아들 야고보는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구별하기 위해 대(大)야고보라고 부릅니다. 따라서 알패오의 야고보는 소(小)야고보가 되겠지요. 또 유다 이스카리옷은 예수님을 팔아넘긴 뒤에 죽고 맙니다. 그래서 사도들은 기도한 후 제비를 뽑아 마티아를 사도로 선택하지요(사도 1,15-26). 여기서 또 다른 질문이 제기됩니다. 사도는 이 12사도밖에 없느냐는 것입니다. 신약성경 사도행전에서는 바오로와 바르나바에 대해서도 사도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 바르나바는 사도들의 증언에 감화를 받아 자기 밭을 판 돈을 몽땅 사도들에게 바친 인물로(사도 4,36-37), 나중에 바오로와 함께 이방인 선교를 위해 사도들에 의해 안티오키아로 파견됩니다(사도 15,22-35).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바오로는 자신이 부활하신 예수님에게서 부르심을 받고 사도로 파견됐다는 점을 신약성경 서간 여러 곳에서 강조합니다(예를 들면 로마 1, 1; 1코린 1,1; 갈라 1,1 등). 바오로가 이처럼 자신이 사도로 부르심을 받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당시 교회에서는 누구를 사도라고 부르느냐와 관련해 논쟁이 있었음을 시사한다고 학자들은 말합니다. 당시에 이른바 '사도 논쟁'이라는 것이 있었든지 아니든 간에, 성경의 기록과 교회 전통은 바오로를 사도로, 그것도 베드로와 쌍벽을 이루는 사도로 인정하고 있습니다. 나아가 바오로는 자신과 열두 사도 외에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와 바르나바, 안드로니코스와 유니아 등을 사도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코린 9,6; 15,7; 갈라 1,19; 로마 16,7 등 참조). 따라서 사도란 열두 사도에게만 국한되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정리합시다 우선 엄밀한 의미에서 사도란 예수님께서 직접 부르셔서 복음선포의 사명을 맡기신 12제자를 가리킵니다.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부르심을 받고 특별히 이방인의 사도가 된 바오로 사도의 주장에 비춰보면 주님의 부르심을 받고 복음선포 사명을 띠고 파견된 이들도 사도라고 부를 수 있을 것입니다. 중세기 성인 치릴로(827∼869)와 그의 형 성 메토디오(825∼885)는 슬라브 민족의 복음화에 크게 기여한 분들로 '슬라브인의 사도'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사도라고 하면 흔히 12사도로 이해하게 되는 것은 예수님께서 친히 뽑으신 12제자가 대표성을 지니는 사도들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김지항2017.08.24
견진성사, 세례 확정하고 은총 견고히 해](//cpbc.co.kr/CMS/newspaper/2018/07/rc/728984_1.0_titleImage_1.jpg)
[성사풀이](9)견진성사, 세례 확정하고 은총 견고히 해 성령을 상징하는 비둘기와 성사를 의미하는 불꽃을 표현한 색유리화 작품. 【CNS 자료사진】 개신교에서 세례를 받았는데 가톨릭에서 세례를 다시 받아야 하나요비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이 가톨릭교회에 입교를 원할 경우, 이전에 받은 세례에 중대한 결함이 발견돼 그 유효성에 의심이 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세례를 다시 베풀지 않는다.(교회법 제869조 2항) 그러나 우리나라 개신교의 경우, 세분된 교파에서 주는 세례성사의 유효성이 의심되기에 몇 가지 확인 절차를 거쳐 세례성사 여부를 결정한다.(「사목 지침서」 59~62조)세례성사는 그리스도께 속해 있음을 나타내는 지워지지 않는 영적 표지(인호)를 새겨 줍니다. 그래서 이 성사는 일생에 단 한 번만 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 가톨릭교회에서 세례를 받은 사람의 경우 그 세례가 유효한지 확실하지 않기에 유효한 세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확인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교회의 뜻에 따라 규정된 대로 행하고자 하는 의향을 가지고, 물로 씻는 예식이든 침례식이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는지 확인이 돼야 합니다.(교회법 제869조 2항)이렇게 유효한 절차에 따라 세례를 받았다 하더라도 개신교와 천주교의 교리에 차이가 있으므로 예비신자 교리를 배울 필요가 있고 개신교에 없는 예절들이 있으므로 보충 예식을 해야 합니다.유효하게 세례받은 비 가톨릭 신자가 가톨릭교회에 입교하고자 할 때 그들의 세례가 합당한 방식으로 이루어진 세례라면 다시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고, 「어른 입교 예식」에 규정된 ‘일치 예식’만 하면 됩니다.(「사목 지침서」 62조)견진성사는 어떻게 제정되었나요그리스도의 뜻을 받들어, 오순절에 성령을 충만히 받은 사도들은 새 신자들에게 안수하여 세례의 은총을 완성시키는 성령의 선물을 베풀어 주었다. 이렇게 가톨릭 전승은 안수를 견진성사의 기원으로 인정했으며, 이 견진으로서 성령 강림의 은총이 교회 안에 영속되고 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88항)구약 성경에서 예언자들은 기다리던 메시아 위에 주님의 영이 내려오실 것이라고 예고하였습니다.(이사 61,1)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께서 그분 위에 내려오신 모습은 바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메시아이심을 드러내는 징표였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86항)그리스도께서는 이 성령을 하느님 백성에게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특히 성령 강림 날 분명하게 실현하셨습니다.(사도 2,1-4) 성령을 가득히 받은 사도들은 예수님께 받은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했고, 사도들의 설교를 듣고 세례를 받은 사람들은 성령의 선물도 받았습니다.초대 교회에서 오늘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활동은 교회를 지탱하는 힘이 될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 맡겨주신 구원을 위한 사도직 수행의 원천이 됩니다. 견진(堅振)이라는 이름은 이 성사가 세례를 확정하고, 세례의 은총을 견고하게 한다는 뜻입니다.견진성사 때 성령을 받는다는데 그러면 세례성사 때 받은 성령과는 다른가요우리를 거룩하게 하시는 성령께서는 같은 분이다. 세례성사 안에서 우리는 성령을 통해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고, 견진성사 안에서 굳건한 신앙인이 된다.세례성사는 성령 안에 사는 삶으로 들어가는 문입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14항) 또 하느님께서는 세례성사로써 우리가 “성령을 통하여 거듭나고 새로워지도록 물로 씻어 구원하신 것입니다.”(티토 3,5) 이처럼 세례성사를 받음으로써 우리는 죄에서 정화되고 성령 안에서 새롭게 탄생하게 되며 성령의 이끄심에 따라 살고 행동할 수 있게 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66항)견진성사는 세례 때 받은 성령의 선물을 충만하게 만들어 줍니다. “그리스도의 참된 증인으로서 말과 행동으로 신앙을 전파하고 옹호하며, 그리스도의 이름을 용감히 고백하고, 십자가를 부끄럽게 여기지 않도록”(「가톨릭교회 교리서」 1303항) 이끌어 줍니다. 이것은 “진리의 영께서 오시면 너희를 모든 진리 안으로 이끌어 주실 것”(요한 16,13)이라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를 두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오순절에 약속된 성령을 받고 스승의 말씀을 더 깊이 깨달아 두려움을 떨쳐 버리고 용감하게 복음을 선포하였습니다. 이처럼 세례성사로 우리는 새로운 생명으로 태어나고, 견진성사로 굳건한 신앙인이 됩니다. 정리=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07.31
![[허규 신부의 신약 여행] (75)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로마 1,17)](//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2491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의 신약 여행] (75)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로마 1,17)믿음의 후손들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약속 이탈리아 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 내부. 가톨릭평화신문 DB 구원을 가져다 주는 하느님의 힘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서문에서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복음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생각입니다. 그는 “이 복음은 하느님께서 당신의 예언자들을 통하여 미리 성경에 약속해 놓은 것으로, 당신 아드님에 관한 말씀”(로마 1,2-3)이라고 표현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에 대한 내용이, 특별히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내용이 이미 구약성경에, 예언서들에 약속으로 주어져 있다고 말합니다. 예수님은 다윗의 후손에서 태어난 메시아로서 그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로 우리에게 드러난 분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이 복음은 “믿는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힘”입니다.(로마 1,16) 그리고 이 “복음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믿음에서 믿음으로 계시됩니다.”(로마 1,17) 바오로 사도의 구원에 대한 생각에서 가장 핵심적인 것은 ‘의로움’과 ‘믿음’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편지에서 비교적 후대에 쓰인 편지들은 이 주제를 가장 중요하게 다룹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음을 가진 이들에게 주어집니다. 율법을 통해 의로움을 얻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통해 선사되는 의로움은 그 대상에서도 차이가 납니다. 율법을 통한 구원은 아브라함과 그의 후손들, 유다인들에게 유보된 것이었습니다. 하느님의 구원은 아브라함의 혈통을 이어받은 이들에게 약속되었고 그들에게 주어진다는 것이 유다인들의 생각이었습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에게 아브라함은 믿음을 통해 의롭다고 인정받은 사람으로(로마 4,3) 그에게 주어진 하느님의 약속은 혈통의 후손이 아닌 믿음의 후손들에게 전해집니다. 바오로 사도나 유다인들 모두 아브라함으로부터 전해지는 하느님 약속을 말하지만, 대상에 있어 큰 차이가 있고, 이것이 그리스도교와 유다교를 구분하는 기준이 되기도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하여 오는 하느님의 의로움은 믿는 모든 이를 위한 것입니다. 거기에는 아무런 차별도 없습니다.”(로마 3,22) ‘피의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진 것의로움은 바오로 사도에게 있어서 하느님의 구원을 요약해 주는 표현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을 속죄의 제물로 내세우셨습니다. 예수님의 피로 이루어진 속죄는 믿음으로 얻어집니다. 사람들이 이전에 지은 죄들을 용서하시어 당신의 의로움을 보여 주시려고 그리하신 것입니다.”(로마 3,25) 피로 이루어진 속죄와 믿음, 그리고 죄의 용서와 의로움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이야기합니다. 그리스도 통해 드러난 화해와 용서바오로 사도에게 죄는 하느님의 영광으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것이고 예수님은 다시 하느님과 화해할 수 있도록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신 분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우리를 죄로부터 자유롭게 한 사건이자 죄에서 벗어나 하느님과 관계를 회복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사건입니다. 이 일에서 사람들이 한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모든 것이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은총으로 거저 주어진 것이기 때문입니다. 구약성경에서 표현되던 하느님의 정의나 의로움은 심판에 관한 것으로 자주 받아들여집니다. 하지만 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의로움은 화해이며 죄의 용서라고 강조합니다. 필요한 것은 이러한 하느님을,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죄를 용서받고 하느님과 화해하며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 것은 믿음을 통해 의로움을 얻은 아브라함의 후손들, 곧 믿음의 후손들에게 지속적으로 전해집니다. 그렇기에 하느님은 믿는 모든 이들의 하느님입니다. 여기에는 어떤 구분이나 차별이 있을 수 없다는 것이 바오로 사도의 생각이고 이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 바오로 사도가 자신의 편지에서 들려주는 내용입니다. 지금 믿는 이들은 모두 아브라함의 믿음의 후손들입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했던 하느님의 약속은 우리에게 전해집니다. 곧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 구원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의 죄를 용서하기 위한 것이고, 그의 부활은 우리를 의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예수님께 대한 믿음으로 우리 역시 죄를 용서받고 의롭다고 인정받을 수 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김지항2017.11.22
몽골 교회, 함께 호흡할 신앙의 선배 절실‘몽골 교회의 복음화 현실과 전망’,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 종교 활동 제약 많아, 22개 국가 선교사 힘으로 신앙 전수
동아시아복음화연구원(원장 김동원 신부)은 4일 수원가톨릭대학교에서 제6회 학술 심포지엄 ‘몽골 교회의 복음화 현실과 전망’을 개최했다. 웬체슬라오 파딜랴(울란바토르 지목구장) 주교와 몽골 교회 선교사로 활동 중인 김성현(대전교구) 신부, 몽골 교회 첫 몽골 출신 사제인 바타르 엥흐 신부가 발제자로 나서 몽골 교회를 소개하는 자리였다.몽골은 법적으로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지만, 실제론 종교 활동에 제약이 많다. 가톨릭 교회는 1992년 몽골의 개혁 개방과 함께 신앙의 불모지인 몽골에 진출했다. 2002년 몽골지목구가 설정됐고 가난한 이들을 위한 다양한 복지와 교육사업을 펼치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 현재 몽골 교회에는 7개 본당과 4개 공소가 있으며 신자 수는 1300여 명이다. 22개 국가에서 온 80여 명의 선교사의 힘으로 신앙이 전수되고 있다.파딜랴 주교는 “몽골 신자들이 교회에 희망과 활력을 가져다주고 있지만, 최근 그 열정이 다소 식어가고, 많은 이가 교회에 나오지 않기도 한다”며 “이러한 도전에 대응하기 위해 지목구는 공동체 지도자와 교리교사 양성을 위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극빈자를 돕는 사회 교육 및 봉사활동에 주력하고 있다”고 설명했다.파딜랴 주교는 또 “몽골 교회는 학교, 센터, 도서관, 유치원, 경로당, 무료급식소 등 다양한 프로젝트와 사회적 활동으로 몽골 사회복지의 문제점과 염려를 덜어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며 “비자와 거주 문제 등 외국인 유입을 통제하는 정부 정책 탓에 선교사 유입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도 말했다.2000년 몽골 선교사로 파견돼 2007년 울란바토르 항올 성마리아 성당을 설립한 김성현 신부는 본당 신설을 위해 현지와 한국에서 건축 기금을 마련하고, 유일한 교재인 성경으로 어려움 속에 세례를 베푸는 등 지난날의 활동을 전했다. 김 신부는 “몽골 교회엔 가톨릭 성경, 교리서, 묵상집, 교리교육의 기회 등 여전히 없는 것이 많다”면서 “그중 이들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앙의 선배’다. 신앙 안에 살아가는 이들의 증거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말했다.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는 축사에서 “아시아 복음화를 위한 한국 교회 관심과 역량이 중요하다”며 “열악한 여건에도 하느님 사랑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위해 기도하자”고 당부했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7.11.08

설날, 차례 이렇게 지내요몸과 마음 단정히, 정성스럽게 준비 한국 가톨릭에도 조상에 대한 효와 하느님께 대한 감사, 가족의 화목을 아우르는 아름다운 제사(차례)예식안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예식안은 「상장예식서」(주교회의 인준) 별책으로 나와서 그런지 그 존재조차 모르는 사람들이 많죠. 설날 아침, 가족이 함께 예를 올릴 수 있는 이 예식을 소개합니다. 이 예식은 기제사와 설날, 한가위, 한식 등 모든 제사와 차례 때 사용할 수 있습니다. # 준비사항 차례를 올리기에 앞서 몸과 마음을 단정하게 한다. 혹시 불목하고 있는 이웃이 있는지 살펴 화해하기로 다짐하고, 고해성사를 통해 마음을 깨끗이 한다. # 예식순서 1) 제사 준비를 모두 마치면 영정(위패)을 모시고, 제주(祭主)는 제사의 시작을 알리며 십자 성호를 긋는다. 2) 참석한 모든 사람이 다 함께 두 번 절한다.3) 제주가 영정(위패) 앞에 나아가 무릎을 꿇고 분향한 후 잔을 받아 미리 준비한 그릇(모사기-茅沙器) 위에 삼제(三祭-술을 세 번 조금씩 따르는 것)한 다음 돕는 이에게 주면 돕는 이는 잔을 올리고 밥그릇 뚜껑을 열어놓는다. 제주는 두 번 절하고 물러난다. 참석한 모든 이가 차례로 나아가서 잔을 올린다. 그러나 제주 이외에 다른 사람은 삼제를 하지 않는다. 4) 이러한 절차가 끝나면 제주가 조상께 고한다. "주님의 보살핌으로 오늘 다시 ( )께 차례(제사)를 올리게 되었나이다. 이 맑은 술과 여러 가지 음식을 장만하여 드리는 저희의 정성과 사모하는 마음을 받아 주소서. 저희는 언제나 ( )를 기억하여 이 차례(제사)를 올리오니 ( )께서는 저희가 주님의 뜻을 따라 화목하게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전구하여 주소서. 5) 제주는 아래의 말로 참석자들에게 함께 조상을 기억할 것을 권한다. "성경에는 '어떠한 눈도 본 적이 없고 어떠한 귀도 들은 적이 없으며 사람의 마음에도 떠오른 적이 없는 것들을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사랑하시는 이들을 위해 마련해 두셨다'라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까?"(1고린 2, 9) 또 이렇게 말씀한다. "우리 가운데에는 자신을 위하여 사는 사람도 없고 자신을 위하여 죽는 사람도 없습니다. 우리는 살아도 주님을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님을 위하여 죽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살든지 죽든지 주님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돌아가셨다가 살아나신 것은, 바로 죽은 이들과 산 이들의 주님이 되시기 위해서입니다."(로마 14, 7~9) 이 말씀으로 우리 ( )께서는 영원한 행복을 누리고 계시며 주님 안에서 우리와 하나 되시어 우리를 위해 기도하고 계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모두 주님 안에 한 백성입니다. (주례는 다른 성경말씀을 바탕으로 권고할 수도 있다) 6) 주부가 나아가 숟가락을 밥그릇 위에 놓는다. 제주와 모든 참석자는 두 번 절한다. 절한 다음 조상을 생각하며 잠시 묵상한다. 7) 제주인 주인과 주부는 국그릇을 거두고 냉수나 숭늉을 올린다. 8) 제주는 모든 참석자와 함께 두 번 절하며 작별배례를 한다. 제사를 마치면서 조상과 가족, 친척들과의 통교를 더욱 깊게 할 것을 결심하고 주님께 감사하며 성가를 부른다. 9) 영정(위패)을 따로 모신 다음, 참석자들은 술과 음식을 나눈다. 이 식사는 사랑과 일치의 식사이며 조상과 가족간의 통교를 더욱 깊게 하는 의미가 있다. 이러한 축제의 기쁨은 이웃, 특히 소외된 형제들에게도 확장되어야 한다. ▨ 차례상은 이렇게 1) 차례상은 집안 관습에 따라 차리되, 향상(香床)에는 향로와 향합, 촛대 외에 중앙에 십자가를 모십니다. 차례상 앞에는 깨끗한 돗자리나 다른 깔개를 편다. 영정 대신 위패를 모셔도 좋다. <그림 참조> 2) 첫 줄은 숟가락을 놓는 대접과 잔, 받침대와 송편(추석의 경우)을 놓는다. 3) 둘째 줄은 어동육서(漁東肉西)다. 오른쪽(동쪽)에 어적(생선 구운 것)을, 가운데에는 소적(두부 구운 것)을, 왼쪽(서쪽)에는 육적(고기 구운 것)을 놓는다. 4) 셋째 줄은 3가지 종류(육탕, 소탕, 어탕)의 탕을 놓는다. 5) 넷째 줄에는 좌포우혜(左捕右醯)라 해서 왼쪽에는 포를, 오른쪽에는 식혜를 놓는다. 6) 다섯째 줄에는 홍동백서(紅東白西)라 하여 붉은 과일은 오른쪽에, 흰색 과일은 서쪽에 놓는다. ※차례상에는 각 가정 고유의 차례 음식을 올릴 수 있으며, 평소 고인이 좋아하던 음식이나 가족이 즐기는 음식을 올려도 무방하다. 백영민2018.02.14
[가톨릭 인포] 저술 시기에 따른 신약 성경의 책들 신약 성경은 복음서 4권과 역사서 1권, 서간 21권, 묵시록 1권 등 총 27권으로 구성돼 있다. 신약 성경의 집필 시기는 1세기 중반부터 2세기 초까지로 본다. 이 책들은 393년 히포 공의회와 397년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정경으로 확정됐고, 16세기 트리엔트 공의회는 이를 재확인했다. 신약 성경 저술 시기와 저자에 대해선 가톨릭과 동방 교회, 개신교 학자들에 따라 다소 차이를 보인다. 특히 일부 개신교 성경학자들 경우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이 신약 성경 중 제일 먼저 쓰였다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그래서 「200주년 신약성서 주해」와 「주석 성경」을 기본 자료로 저술 시기 순으로 신약 성경을 정리해 보았다. 단, 이 아래 내용은 학자들 간의 견해에 따라 차이를 보일 수 있음을 미리 알려둔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1.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저술 연대 : 51년께저술 장소 : 코린토수신인 : 테살로니카 신자들2.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 또는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저술 연대 : 51~52년께 또는 90년께저술 장소 : 코린토수신인 : 테살로니카 신자들3.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저술 연대 : 56~57년 저술 장소 : 시리아의 안티오키아수신인 : 북부 갈라티아 지방의 피시디아 안티오키아, 이코니온, 리스트라, 데르베 신자들4.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저술 연대 : 56~57년저술 장소 : 에페소수신인 : 코린토 신자들5.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저술 연대 : 57년께 저술 장소 : 트로아스 또는 마케도니아수신인 : 코린토 신자들6.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저술 연대 : 57년~58년 저술 장소 : 코린토수신인 : 로마 신자들7. 필레몬에게 보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 저술 연대 : 56~57년 또는 63년께저술 장소 : 에페소 또는 로마수신인 : 콜로새에 있는 필레몬과 그의 가족, 그리고 그의 집에 모이는 교회8. 필리피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저술 연대 : 56~57년 또는 63년께저술 장소 : 에페소 또는 로마수신인 : 필리피 신자들9. 마르코 복음서저자 : 요한 마르코저술 연대 :70년께저술 장소 : 로마 추정수신인 : 이방계 그리스도인10. 마태오 복음서저자 : 마태오 사도 또는 유다계 그리스도인 율사저술 연대 : 70~90년께 저술 장소 : 시리아의 안티오키아 (추정)수신인 : 유다계 그리스도인11. 루카 복음서저자 : 루카저술 연대 : 70~80년께저술 장소 : 카이사리아 일대 소아시아 지역 또는 로마로 추정 수신인 : 이방계 그리스도인12. 사도행전저자 : 루카저술 연대 : 70~95년께저술 장소 : 카이사리아 일대 소아시아 지역 또는 로마로 추정 수신인 : 이방계 그리스도인13. 야고보 서간저자 : 예수의 형제 야고보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 또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저술 연대 : 80년 후 또는 60년 전후저술 장소 : 예루살렘수신인 : 흩어져 사는 12 지파(디아스포라 유다인)14. 콜로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 또는 바오로 사도저술 연대 : 70년께 또는 61~63년께저술 장소 : 에페소 또는 소아시아 수신인 : 콜로새 신자들15. 베드로의 첫째 서간저자 : 베드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저술 연대 : 70~90년께저술 장소 : 로마수신인 : 폰토스, 갈라티아, 카파도키아, 아시아와 비티니아의 신자들16.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 저술 연대 : 80~90년께 저술 장소 : 미상수신인 : 히브리인들, 일반 신자 공동체17. 요한 복음서저자 : 요한 사도와 가필자(21장)저술 연대 : 90~100년께저술 장소 : 에페소 추정수신인 : 에페소 신자들과 유다계ㆍ이방계 그리스도인18. 요한 묵시록저자 : 요한 사도 또는 요한의 제자저술 연대 : 95년께저술 장소 : 파트모스수신인 : 서쪽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19. 유다 서간저자 : 야고보의 동생 유다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저술 연대 : 90년대 말저술 장소 : 미상수신인 : 모든 그리스도인20. 요한의 첫째 서간저자 : 요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저술 연대 : 100년께 저술 장소 : 소아시아수신인 : 에페소의 요한계 교회 모든 신자21. 요한의 둘째 서간저자 : 요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저술 연대 : 100년께 저술 장소 : 소아시아수신인 : 에페소의 요한계 교회 모든 신자21. 요한의 셋째 서간저자 : 요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저술 연대 : 100년께 저술 장소 : 소아시아수신인 : 에페소의 요한계 교회 모든 신자23. 에페소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저술 연대 : 90년대 초~100년께저술 장소 : 에페소 주변 또는 로마 수신인 : 에페소 신자들과 소아시아 교회들24. 티토에게 보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저술 연대 : 90~100년께저술 장소 : 니코폴리스 또는 미상수신인 : 크레타의 티토25. 티모테오에게 보낸 첫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저술 연대 : 100년께저술 장소 : 마케도니아 또는 미상수신인 : 에페소의 티모테오26. 티모테오에게 보낸 두번째 서간저자 : 바오로 사도의 이름을 빌린 익명의 인물저술 연대 : 100년께저술 장소 : 로마 또는 미상수신인 : 에페소의 티모테오27. 베드로의 둘째 서간저자 : 베드로 사도의 이름을 빌린 미상의 인물저술 연대 : 125년 이후저술 장소 : 로마 또는 미상수신인 : 폰토스, 갈라티아, 카파도키아, 아시아와 비티니아의 신자들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문채현2016.10.12

제주에 '오병이어의 기적' 일궈낸 임피제 신부 선종60여 년 전 가난밖에 남은 것이 없는 섬 제주에 도착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궈낸 선교사 임피제(Patrick J. McGlinchey) 신부가 23일 선종했다. 향년 90세. 임피제 신부. 아일랜드 출신의 성 골롬반외방선교회 선교사 임 신부에게 제주도와 성 이시돌 목장은 삶의 전부였다. “주님이 가라는 곳은 어디든 가고, 시키는 일은 뭐든 하겠다”고 약속하고 25살 나이에 들어간 제주에는 4ㆍ3 사건과 6ㆍ25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난에 허덕였다. 복음을 전하러 갔지만, 성경보다 삽을 먼저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새끼를 밴 돼지 한 마리를 인천에서 사다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그 목장을 기반으로 여성 1300여 명을 고용하는 한림수직을 세우고, 그 수익금으로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주민들을 위해 병원을 지었다. 특히 양돈사업은 오늘날 제주의 축산 기반이 됐기에 제주 사람들은 그를 ‘푸른 눈의 돼지 신부’라고 부른다. 교육사업을 포함해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벌인 모든 사업의 저력은 주님에 대한 신뢰와 서양인 특유의 개척 정신에서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던 청와대 관료들은 우연히 성 이시돌 목장을 둘러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만 마리 돼지와 수천 마리 소, 수천 마리 양을 기르는 한라산 중턱의 수백만 평 목장 풍경은 충격이었다. 이 때문에 임 신부는 박 대통령 앞에서 성공사례 브리핑까지 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신부님,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 그가 정작 고심한 것은 주민들의 자립이었다. 젊은이들이 앞장서는 농촌개발 운동 4-H 클럽을 제주에 확산하고, 가축은행을 만들어 종자를 퍼뜨렸다. 종잣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신협도 조직했다. 그는 애초부터 주민들에게 “동냥하기 위해서만 허리를 굽히지 말고 일하기 위해, 기도하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대의 징표를 읽을 줄 알았다. 제주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자 인간다운 삶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손댄 것이 2002년 무료 호스피스 병원 사업(성 이시돌 복지의원)이다. 그의 수상 이력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비롯해 열거하기가 어렵다. 2014년 제주 MBC가 주관하는 제1회 ‘자랑스러운 제주인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그는 은퇴했다는 이유로 수상을 사양했다. 하지만 “상금이 1000만 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시상식에 갔다. 무료 호스피스 병원 운영비가 쪼들릴 때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구는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시편 118,23)이다. 고인의 장례 미사는 27일 성 이시돌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봉헌된다. 유해는 그의 꿈과 땀, 기도가 배어 있는 성 이시돌 목장 묘역에 안장될 예정이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cpbc2018.04.24

인간 노동과 보수, 하느님의 눈으로 바라봐야테마 기획 - 누구에게나 한 데나리온을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 8350원. 가톨릭 사회교리는 ‘누구에게나 한 데나리온을’ 정신으로 임금 문제를 봐야 한다고 말한다. 아재 개그만큼 썰렁한 난센스 퀴즈. 세상에서 가장 가난한 왕은 누구일까? 동화 속 ‘거지왕’을 떠올리겠지만 아니다. 정답은 ‘최저임금’이다. ‘가장 가난한 왕’ 최저임금을 둘러싸고 소상공인과 근로자, 정부 모두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확정되자 소상공인들은 “인건비 때문에 문을 닫아야 할 판”이라며 울상이다. 근로자들은 “여전히 최저생활을 보장하지 못하는 수준”이라며 볼멘소리를 하고 있다. 특히 10.9% 인상 소식을 듣고 결혼과 출산, 집 장만에 희망이 보인다고 말하는 청년은 찾아보기 어렵다. 정부도 곤혹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소득주도 성장 정책의 수정이 불가피해 보인다. 그런가 하면 한쪽에서는 “최저임금이 주범이 아니다”라며 화살을 상가 임대료와 가맹점비, 재료비 인상에 돌리고 있다. 사용자와 근로자 사이에서 임금은 예나 지금이나 가장 중요한 문제다. 127년 전 레오 13세 교황은 자본과 노동에 관한 회칙 「새로운 사태」에서 “노동자의 적정 임금은 지극히 중요한 문제”라며 “상반되는 양 극단의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기 위해 올바로 이해돼야”(32항) 한다고 지적했다.성경과 사회교리가 한쪽은 덜 주고 싶어 하고, 다른 한쪽은 더 받고 싶어하는 갈등 관계에 개입해 어느 한 편의 손을 들어주는 심판관은 아니다. 대신 인간 노동과 그에 따른 보수 문제를 ‘하느님의 눈’으로 볼 수 있는 변치 않는 원리를 제공한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이 선한 포도밭 주인의 비유(마태 20,1-16)다. 포도밭 주인은 아침 일찍부터 나와 일한 일꾼에게나, 땅거미 질 무렵에 와서 잠깐 일한 일꾼에게나 똑같이 한 데나리온씩 품삯을 줬다. 온종일 뙤약볕 아래에서 고생한 일꾼들이 투덜대며 항의하자 주인은 “당신은 나와 한 데나리온으로 합의하지 않았소?”라고 일축했다. 한 데나리온은 당시 가장이 하루 일해 빵을 사 들고 집에 돌아갈 수 있을 정도의 적지만 가치 있는 액수다. 일부에서는 포도밭 주인의 생각을 공산주의 사고방식이라고 말한다. “무한 경쟁에서 승리한 1%가 몽땅 가져가도 좋다”고 믿는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신봉자라면 더 그렇게 본다.하지만 ‘누구에게나 한 데나리온을’ 정신은 획일적 평등 사상이 아니다. 포도밭 주인은 경제 활동을 신자유주의자들처럼 ‘돈’으로만 보지 않았다. 하루 치 품삯을 인간의 존엄성 유지와 사회 통합적 차원에서 봤다. 만일 늦게 온 일꾼이 온종일 일한 사람이 받은 품삯의 5분의 1만 받았다면 그는 집에 빵을 가져가지 못했을 것이다. 굶주림과 소득 불평등이 계속되면 사회 공동체는 불안해진다. 2011년 뉴욕에서 벌어진 ‘월가를 점령하라’ 시위는 낙오자(포도밭에 늦게 온 일꾼)를 껴안지 못하고, 사회 통합에 신경 쓰지 않는 채 질주하는 고삐 풀린 자본주의에 대한 반성을 불러일으켰다. 노동과 임금에 관한 역대 교황들의 가르침은 ‘누구에게나 한 데나리온을’ 정신을 관통한다. 비오 11세 교황은 사회회칙 「사십주년」(1931년)에서 임금을 결정할 때 세 가지 점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혔다. △노동자 자신과 그의 가족의 생계에 충분해야 하고 △특정 기업과 그 기업주의 형편도 고려해야 하며 △공공의 경제적 복지를 염두에 두면서 책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임금 중에서 필요한 지출을 충당하고 남는 부분을 저축함으로써 적은 재산을 마련하는 것이 공동선에 도움이 된다”며 입에 풀칠하는 수준이 아니라 미래를 꿈꿀 수 있게 임금을 책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성 요한 23세 교황은 최근 소득 불평등을 심화하는 최고 경영자(CEO)와 근로자 간의 임금 격차를 예견이라도 한 듯 회칙 「어머니요 스승」(1961년)을 통해 경종을 울렸다. “자본과 노동의 협력으로 얻어진 것을 다른 한 편에만 귀속시키는 것은 전적으로 그릇된 것이다.” “영국 기업 CEO들의 사흘 치 임금이 일반 근로자 연봉을 넘어섰다”, “근로자가 1달러 받을 때 경영자는 300달러를 받는다”는 최근의 외신 보도 내용은 명백하게 경제 정의에 어긋난다. 최저임금 논란도 사회교리에서 말하는 경제 정의, 다시 말해 즐거운 시소게임 원리로 볼 필요가 있다. 시소는 몸무게가 더 나가면(고액 연봉자) 조금 앞으로 당겨 앉든지, 아니면 몸무게가 덜 나가는 쪽에 사람을 한 명 더 앉히든지(공정한 분배) 해서 균형을 맞춰야 즐겁게 탈 수 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평화신문2018.07.24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앙 여행] (64)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1코린 15,20)](//cpbc.co.kr/CMS/newspaper/2017/08/rc/693637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앙 여행] (64)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1코린 15,20)믿음으로 죽음 넘어선 부활을 사는 신앙인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작 ‘그리스도의 부활’, 1460년쯤. 출처=가톨릭굿뉴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로마 15,3-5)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내용으로 그리스도의 부활과 죽은 이들의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부활하셨다는 내용은 이미 말한 것처럼 믿음의 핵심적인 내용입니다.(케리그마, 46회 참조) 바오로 사도는 이 모든 것들이 성경 말씀대로, 이미 약속된 대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또한,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것은 바오로 사도의 첫 번째 말씀입니다. 그 역시 믿음의 내용을 전해 받았고 그것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 이처럼 예수님의 삶과 부활의 첫 목격자들이 전하는 내용은 세대에서 세대를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지고 또 그것은 계속될 것입니다. 이것을 ‘전승’(傳承, tradition)이라 부르고 때로는 거룩한 전승이라는 의미에서 ‘성전’(聖傳)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에 대해, 특별히 믿음의 내용을 전해 주는 방식은 기록된 성경과 전승입니다. 그리고 이것을 ‘계시의 두 원천’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지금도 성경과 교회를 통해 전해지는 전승을 통해 신앙의 유산을 전해 받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특징을 ‘계시 종교’라는 말로 표현합니다. 신앙인에게 주어진 구원의 은총바오로 사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설명합니다. “이제 그리스도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습니다. 죽은 이들의 맏물이 되셨습니다. 죽음이 한 사람을 통하여 왔으므로 부활도 한 사람을 통하여 온 것입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아날 것입니다.”(로마 15,20-22)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은 모든 이들에게 드러나고 그들 역시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합니다. 이것을 위해 바오로 사도는 아담과 그리스도를 비교합니다. 우리가 아는 것처럼 첫 인간인 아담은 그의 죄로 인해 에덴동산에서 추방당하고 죽을 운명에 처하게 됩니다. 그리고 아담의 모든 후손은 죄의 결과인 죽음을 맞게 됩니다. 이렇게 아담의 죄로 인간이 죽을 운명에 처한 것처럼 그리스도의 부활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아담이 지은 죄의 결과처럼 모든 이들에게 미치는 결과입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러한 비교법을 ‘형태론’이라고 부릅니다. 한 명을 통해 행위의 결과가 모든 이들에게 적용된다는 것을 나타내기 위한 바오로 사도의 표현법입니다.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15장 전체는 부활에 할애된 장입니다. 부활은 우리 믿음의 핵심이기도 하지만 바오로 사도에게 가장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난 체험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기 때문입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부활은 단순한 믿음의 내용이 아니라 모든 이들에게 주어지는 구원의 은총입니다. 그에게 믿음을 갖는 것은,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인으로서 사는 것은 죽음을 넘어서는 삶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죽음으로 끝나는 삶을 사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 안에서 죄를 짓지 않고 주님을 따르는 윤리적인 삶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부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현세만을 위하여 그리스도께 희망을 걸고 있다면, 우리는 모든 인간 가운데에서 가장 불쌍한 사람일 것입니다.”(로마 15,19) 용서하고 주님과 화해하는 시간바오로 사도에게 그리스도의 부활은 마치 아담이 죄를 짓기 이전의 상태로,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세상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죄를 용서하고 하느님과 화해하는 사건입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구원을 위한 결정적인 사건입니다. 그는 또한 이 모든 것이 ‘하느님의 은총’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의 부활을 통해 모든 이들에게 드러난 하느님의 은총은 구원의 핵심이라 할 수 있습니다. 신앙인들은 이제 죽음이 아닌, 부활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에 우리에게 권고합니다.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죄를 짓지 마십시오.”(로마 15,34)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김지항2017.08.30
![[사목교서-춘천교구] 성경 말씀의 참뜻 이해하고 실천하자](//cpbc.co.kr/CMS/newspaper/2016/11/rc/661414_1.0_titleImage_1.jpg)
[사목교서-춘천교구] 성경 말씀의 참뜻 이해하고 실천하자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 -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 - 2017년 새로운 은총의 선물우리가 새로운 은총의 선물로 맞게 될 2017년은 교구 설정 80주년이 되는 2019년을 2년 앞둔 해입니다. 이 시점에서 우리가 설정한 목표를 상기해 봅니다. “교구 설정 80주년이 되는 2019년까지 복음화율 10%와 주일 미사 참여율 40%를 달성한다.” 남은 두 해를 어떻게 보내야 할지 고민하며 주님께 지혜와 힘을 청합시다.‘자비의 희년’ 동안에는 교구의 모든 본당과 사적지를 순례하며 뜻깊은 시간을 갖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한 가지 당부 말씀드립니다. 우리들의 그동안의 노력과 변화가 일회적이며 일시적인 것으로 마쳐져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새로운 열정과 새로운 방법 그리고 새로운 신앙의 표현을 개발하여 더욱 정진해야 합니다.아버지의 말씀이 진리입니다저는 여러분에게 2017년을 맞아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들」이라는 사목교서를 드립니다. 우리들 모두가 추구해야 할 진리는 ‘아버지의 말씀’입니다. 그러면 진리이신 ‘아버지의 말씀’은 어떻게, 누구를 통해 들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진리를 추구하며 영생을 얻고자 한다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곁에 머무르며 그분 말씀에 귀 기울여야 합니다.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우리 자신이 얼마나 성경 말씀을 가까이하고 있습니까? 성경을 모르면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고, 그리스도를 모르면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없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성경을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우리 교구의 신자들 가운데 주일 미사 참여의 의무를 궐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타성에 젖어 마지못해 신앙생활을 하며 기쁨과 감동 없이 살고 있는 사람들은 어떻습니까? 우리 모두가 시편 저자와 같이 고백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당신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시편 119,105).당신의 말씀은 제 발에 등불, 저의 길에 빛입니다2017년 춘천교구의 모든 본당에서 성경 사목에 특별한 노력을 기울여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성경 공부반을 새롭게 만들고 기존의 성경 프로그램(여정, 백주간, 40주간, 성독, 통독 피정 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 주십시오. 성경 필사자들도 더욱 늘어나도록 독려하여 주십시오. 모든 신자들이 날마다 성경의 참뜻을 이해하고 실천할 수 있도록 사목자들의 정성이 담긴 강론도 필요합니다. 신자들이 흥미를 느끼도록 특별한 행사를 기획하는 것도 바람직합니다. 교구의 각 처, 국에서는 이에 합당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하도록 노력할 것이고, 본당의 필요에 도움을 주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2017년은 성경을 통해 하느님을 만나고, 그분 말씀을 듣고, 들은 바를 실행하도록 합시다. 바다의 별이며 영생(永生) 얻는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성모님의 도우심을 간청하며 여러분 모두에게 주님의 축복을 전합니다.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 cpbc2016.11.23
[하느님과 트윗을] (36) 하느님이 제게 요청하시는 것은 무엇인가요주님 따르는 올바른 삶으로 부르심 문 : 예수님은 여전히 부르고 계신가요.답 : 예수님은 당신을 따르라고 사람들을 여전히 부르십니다. 예수님은 남자든 여자든, 젊은이든 늙은이든, 가난한 이든 부유한 이든, 건강한 이든 아픈 이든 상관하지 않고 부르셨습니다. 어떤 이들에게는 당신의 제자가 되라고 요청하셨고, 그 밖의 사람들에게는 교회에 봉사하는 다른 사명들을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 모두를 빠짐없이 사랑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첫 제자들과 같은 방식으로 예수님을 보거나 그분 말씀을 듣거나 할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성경이나 교회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성사를 받으며, 우리 삶을 다른 신자들과 나눔으로써 우리 자신 안에서 그분을 만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바라시는 것이 무엇인지 듣는 일은 첫 제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그분 곁에 있고, 그분을 따르는 데서 시작됩니다.문 : 누구에게나 각각의 소명이 있나요.답 : 하느님은 우리를 위해 당신이 원하시는 것을 우리에게 하도록 요청하십니다. 누구나 자신에게 고유한 소명이 있습니다. 그 소명을 선택할 때에 참으로 행복해질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느님의 소명을 바로 알아보기도 합니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기 삶을 위한 하느님의 계획을 압니다. 하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그 부르심을 발견하기가 어려울 수 있습니다. 부르심을 발견하려고 노력하는 동안에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마음을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의 소명은 우리 자신 안에 깊숙이 감추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그곳에서 자신의 가장 깊은 갈망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하느님은 자신에게 진실하라고, 자신을 위해 정말로 올바른 삶을 살라고 우리에게 요청하십니다. 이 갈망은 하느님이 우리 안에 심어놓으신 것입니다. 우리는 동시에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습니다. 부르심에 따르기 위해서는 뭔가를 포기해야 합니다. 하지만 보상으로 만족과 성취감과 마음의 평화와 같은 많은 것을 얻을 것입니다.문 : 그렇다면 내 소명은 무엇인가요.답 : 하느님을 섬기는 길은 많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은사는 여러 가지지만 성령은 같은 성령이십니다. 직분은 여러 가지지만 주님은 같은 주님이십니다. 활동은 여러 가지지만 모든 사람 안에서 모든 활동을 일으키시는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각 사람에게 공동선을 위하여 성령을 드러내 보여주십니다.”(1코린 12,4-7) 다양한 은사 가운데 두 가지 기본적인 그리스도인의 소명이 있습니다. 하나는 혼인 성소이며, 다른 하나는 주님을 위한 동정 생활입니다. 어떤 부르심이든 그 부르심은 근본적인 선택을 요구합니다. 곧 하느님의 뜻을 찾고 행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의 소명을 파악하기 위해서 먼저 하느님을 삶의 중심에 두십시오.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하느님께 바치십시오. 그다음으로 여러분에게 다가온 부르심이 혼인을 해서 가정을 꾸리는 것인지 아니면 예수님처럼 교회에 봉사하기 위해 혼인하지 않은 채 지내는 것인지를 식별해야 합니다.문 : 소명에 관해 알아야 할 것은 무엇인가요. 답 : 소명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부르심이며 어느 때든지 여러분의 삶에 들어올 수 있습니다. 우리는 소명에 대해 자유로이 ‘예’ 또는 ‘아니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겠지만 언제나 여러분에게 큰 행복을 줄 것입니다. 성급해 하지 마세요. 하느님은 참된 부르심을 발견하는 데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아십니다. 성경과 교회 역사는 하느님께 ‘예’라고 하는 사람은 누구나 큰일을 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혼자서 모든 것을 찾을 필요는 없습니다. 영적 지도자와 정기적으로 대화를 나눠 보세요.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평화신문2018.01.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