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 사막에서 찾은 영성의 샘, 교부들의 가르침 교부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 / 한국교부학연구회 지음 / 분도출판사 / 1만 5000원고대 교회의 교부들은 사제 생활보다 수도 생활을 더욱 열망했다. 수도 생활에서 비롯되는 순교 정신을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우스는 “동정 생활 자체가 순교자를 만들기 때문에” 순교와 동정 생활을 갈망한다고 이야기한다.평생 성경을 연구하고 번역했던 히에로니무스는 기도를 잘하기 위해 음식을 절제하고, 잠이 들어서도 성경 말씀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도록 성경을 자주 읽으라고 권했다.히포의 주교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덕이라는 건물을 높이 쌓아 올리고 싶다면 겸손이라는 기초를 먼저 닦으라”고 가르쳤고, 오리게네스는 하느님도 우리를 연민하며 아파하신다는 인격적 사랑을 처음 설파한다.「교부들에게 배우는 삶의 지혜」는 2002년 창설해 한국 교부학의 명맥을 잇고 있는 한국교부학연구회 소속 ‘교부학 전문가’들이 교부들의 지혜를 정리한 책이다. 이성효(수원교구 총대리) 주교, 정양모(안동교구)ㆍ서공석(부산교구)ㆍ노성기(광주가톨릭대 총장)ㆍ김산춘(예수회)ㆍ황치헌(수원가톨릭대 교수) 신부 등 국내 교부학의 대가 10여 명은 고대 교부들이 만든 영성의 샘에서 물을 길어올려 책으로 엮었다.“사랑엔 발이 있습니다. 발로 성당에 오잖아요. 사랑엔 손이 있습니다. 손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베풀잖아요. 사랑엔 눈이 있습니다. 눈으로 가련한 사람을 살피잖아요.”(성 아우구스티누스)교부들의 깊은 성찰과 지혜는 우리 신앙생활에 새 지평을 열어주기에 충분하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사막 교부들의 금언 / 베네딕다 워드 엮음 / 허성석 신부 옮김 / 분도출판사 / 2만 3000원4세기 이집트와 시리아, 팔레스티나, 아라비아 지역은 수도자들의 은수생활이 번성했던 땅이다. 특히 흙먼지 날리는 광활하고도 적막한 이 일대의 사막은 예수님의 뜻을 따르고, 평생 하느님 말씀대로 살고자 ‘제2의 그리스도’를 자처하는 수도자들의 천국이었다. 우리는 이들을 ‘사막의 교부들’이라 부르며, 이 시기는 ‘교부들의 황금시대’로 불린다.사막의 수도자들은 그들의 지도자인 ‘압바’를 중심으로 진리를 찾았다. 그러나 동양의 공자와 맹자 주변에 모였던 제자들과 달리, 이들은 본래 삶의 자리를 떠나 철저히 개별적으로 금욕과 절제하는 생활을 지냈다.「사막 교부들의 금언」은 교회 초석이 다져지기 이전인 4세기부터 6세기에 이르는 동안 수많은 수도자가 삶을 통해 선보인 경험과 말씀을 엮은 책이다. 사막의 교부 100여 명의 이름을 알파벳 순으로 나열해 그들이 남긴 경험과 금언(金言)을 정리했다.사막의 교부들은 각자 움막 같은 작은 집을 짓고 살았다. 삶은 단순하기 그지없었다. 하루 한 끼 식사만 했고, 불필요한 소유물도, 밤잠도 줄였다. 철저한 고독의 삶은 이들이 영성의 단계로 들어가는 시작이었다. 모든 인생의 초점은 오로지 ‘하느님 말씀’에 맞춰졌다. 이들은 많은 대화를 요구하거나 전하지도 않았다. 단순하면서도 절제된 삶은 악령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해 하느님과 참된 관계를 맺는 것을 뜻했다.“압바, 한 말씀 해주십시오.”한 수도승의 질문에 카이사리아의 바실리우스가 “마음을 다하여 주 하느님을 사랑하시오”라고 말하자 즉시 그는 자리를 떠날 정도로 문답에도 절제의 덕이 있었다.교부들은 밤중에 환시를 체험하기도 하고, 악령과 직접 대면해 싸우기도 했다. ‘독방에서 하느님을 발견할 수 없다면 어떤 곳에서도 하느님을 발견하지 못한다’는 일념으로 고독 속에 하느님과 소통했다. 대 마카리우스가 악령에게 풀이 죽은 이유를 묻자, 악령은 “네가 겸손으로 나를 물리쳤다”고 답한다.압바들의 답은 분명하고 일목요연하다. 하루는 형제들이 ‘수도승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대 안토니우스에게 물었다. “어떻게 해야 구원될 수 있습니까?” “성경 말씀을 경청했습니까? 그것이 여러분에게 필요한 일입니다.”(안토니우스) 압바 아가톤은 인생에서 가장 큰 노력을 요구하는 게 무엇인지 묻는 말에 “나를 용서하십시오. 하느님께 대한 기도의 덕행보다 더 위대한 일은 없습니다”라며 가르침을 전한다.짧지만 강력한 하느님의 메시지가 담긴 사막 교부들의 말씀은 시대가 변해도 가슴에 꽂히는 진리로 작용한다. 평화신문2017.09.27
![[사목교서-수원교구] 신자들이 영적 독서·성경 강좌에 관심 갖도록](//cpbc.co.kr/CMS/newspaper/2016/11/rc/662488_1.0_titleImage_1.jpg)
[사목교서-수원교구] 신자들이 영적 독서·성경 강좌에 관심 갖도록 말씀과 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쇄신 저는 지난해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선포하신 ‘자비의 해’를 은혜로이 지낸 것을 주님께 감사드리면서 2017년을 맞이하며 ‘말씀과 성사를 통한 그리스도인의 쇄신’을 주제로 사목교서를 발표합니다.그리스도인의 쇄신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 그 원천을 두고 있습니다. 그분께서는 당신과 함께 세상에 본질적으로 ‘전적인’ 새로움을 가져다주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베푸시는 신선하고 질적인 새로움은 우선 그분께서 전해 주신 가르침에서 드러납니다.따라서 전례 안에서 말씀을 선포하는 직무를 맡은 이들과, 말씀을 선포하고 해석하는 직무를 맡은 이들은 말씀을 듣는 이들이 보다 경건하고 안정된 마음으로 깊이 있게 말씀을 경청할 수 있도록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모든 신자는 하느님의 말씀으로 가득 찬 거룩한 전례를 통해서나, 영적 독서를 통해서나, 또는 적합한 성경 강좌 등을 통해서 성경에 가까이 다가가야 합니다. 특별히 교회 사목자들의 승인과 배려로 교구에서 시행하고 있는 성경 사목에 보다 많은 본당과 신자들이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것이 필요합니다.적지 않은 신자들이 세례받은 후 1, 2년 사이에 냉담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현재 교구 내 각 본당에서 시행하고 있는 입문 과정 전반에 대한 새로운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 안에는 교리교육의 기간, 교리교육의 단계적 과정 및 프로그램, 교리교사의 양성 및 관리, 본당-대리구-교구의 역할 등에 대한 반성과 성찰이 포함되어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본당 사목자와 교리교사 그리고 교구 담당자 상호 간에 유기적인 소통과 참여가 반드시 필요합니다.우리 교구 대부분의 본당 관할 내에 노인요양원이 적어도 하나 이상 자리하고 있습니다. 이들 노인요양원에는 다양한 노인성 질환을 앓고 있는 병자들이 있습니다.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가 올바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제도적인 장치가 마련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기에는 관할 사목구 주임의 권한과 역할, 이웃 본당 사목구 주임과의 협력, 병자영성체의 식별 기준, 지역 공동체의 유기적 협력 등에 관한 방안들이 포함되어야 합니다.교회는 성소자 양성을 위해 어느 때보다도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우선 성소자의 양적인 양성에 앞서, 교회 공동체가 보다 근본적으로 사제직이 갖는 의미를 성찰하고, 사제들은 스스로 그 직분에 합당한 자질을 갖추도록 쇄신해야 할 것입니다.여러 가지 이유로 혼인을 미루거나 기피하는 경우를 차치하더라도, 적어도 혼인하려는 그리스도인 젊은이들만큼은 교회 안에서 성찬례와 결합된 사랑의 성사를 통해 혼인의 유대를 맺을 수 있도록 인도해야 합니다. 그러나 만일 교회가 일반예식장과 다를 바 없는 비용을 요구하면서 신앙인이기에 불편하고 볼품없는 환경을 감수할 것을 요구한다면 더 많은 젊은이가 교회를 떠나갈 것은 자명한 일입니다.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 평화신문2016.11.30

하느님과 트윗을 (52) 성령은 누구이고 무엇을 하시나요고유한 역할과 은사 지닌 세 번째 위격 조지아 교회의 계단 유리 창문에 성령을 묘사한 비둘기. 【CNS 자료 사진】 문 : 성령은 누구신가요.답 : 성부이신 하느님과 성자이신 하느님이 언제나 존재하시듯이, 성령이신 하느님도 항상 존재하십니다. 성령은 성삼위의 세 번째 위격으로 자기의 고유한 인격과 은사를 지닙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성인은 성령을 성부와 성자 사이에 사랑의 결실이라고 불렀습니다. 창조 이야기에서 하느님은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에게 당신의 숨결(성령)을 불어넣어 생명을 주셨다고 합니다.(창세 2,7 참조) 이렇게 성령은 종종 ‘하느님의 숨결’이라고 불립니다. 성령을 표현하기 위해서 숨결, 공기, 또는 바람, 물, 불, 빛, 구름과 같은 상징을 자주 사용합니다. 성령은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실 때 예수님 위로 내려온 비둘기로 묘사되기도 합니다.(마태 3,16 참조)문 : 성령은 무엇을 하시나요.답 : 예수님은 성령으로 충만하셨습니다.(루카 4,18-19 참조) 마리아는 성령으로 인해 잉태하였으며(루카 4,35 참조) 아들을 낳았습니다.(루카 1,31 참조) 예수님이 세례를 받으셨을 때, 성령은 예수님 위로 내려왔습니다.(마태 3,16 참조) 예수님은 하느님 나라를 전하셨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나 성령은 예수님만을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부활하신 후에, 당신의 모든 제자에게 성령의 은사를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그리스도인으로서 삶을 잘 살도록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습니다. 성령은 특별히 세례성사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주어지는데, 성사는 성령의 은사로 우리를 강하게 합니다. 성령 없이는 아무도 그리스도교 신앙을 가질 수 없습니다.(1코린 12.3 참조) 성령은 진심으로 기도하도록 우리를 가르치십니다. 문 : 저에게 성령이 필요한가요. 답 : 예수님은 돌아가시기 전에 ‘보호자’, 즉 ‘협조자’가 제자들을 도와주러 오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요한 14,16-17 참조) 하느님은 우리의 자유를 존중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성령에 협조하거나 성령을 거스를 수 있습니다. 우리에게는 선택의 여지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살아가고자 할 때 우리는 날마다, 다양하게 그러한 선택과 맞닥뜨립니다. 성령은 우리가 옳은 것을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은사를 주십니다. 성령이 우리를 통하여 활동하신다는 증거는 바오로 사도가 말한 성령의 열매입니다. 성령은 또한 우리의 신앙을 설명하도록 도와주십니다. “어떻게 답변할까, 무엇으로 답변할까, 또 무엇을 말할까 걱정하지 마라. 너희가 해야 할 말을 성령께서 그때에 알려 주실 것이다.”(루카 12,11-12)라는 성경 말씀을 항상 기억하세요.문 : 하느님이 한 분이자 세 분이시라니, 무슨 의미인가요.답 : 하느님은 오직 한 분이시지만 하느님 안에는 세 위격, 즉 성부이신 하느님, 성자이신 하느님, 성령이신 하느님이 계십니다. 그렇지만 어떻게 우리가 하나이면서 동시에 셋인 무언가를 생각할 수 있을까요? 이를테면, 트라이앵글은 세 변으로 되어 있지만, 그것이 하나의 완전한 트라이앵글입니다. 만약 한 변을 없애면 더는 트라이앵글이 될 수 없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간 사랑의 관계는 바로 하느님의 본질이며, 하느님은 그 사랑을 당신만을 위하여 간직하고 싶어 하시지 않습니다. 하느님은 우리가 당신의 사랑을 나누도록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하나 됨으로써 삼위일체이신 사랑의 공동체에 참여합니다. 정리=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평화신문2018.05.15
![[아! 어쩌나] 425. 사람이란 존재는…](//cpbc.co.kr/CMS/newspaper/2018/01/rc/708511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425. 사람이란 존재는…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문 : 언론 보도를 통해 흉악범죄들을 접할 때면 “사람이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하는 생각이 들고 세상 살기 두렵다는 마음만 듭니다. 이런 세상을 두고 종교인들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고 주장하는데, 저는 그런 말을 들으면 종교인들이 정신없는 사람들이거나 비현실적인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곤 합니다. 이렇게 무법천지인 사회는 오로지 강한 경찰력으로 통제해야 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어쨌거나 요즈음은 길을 가다가도 사람이 무섭다는 생각이 들어 밤에는 아예 외출조차 하지 않습니다. 언제쯤 이런 세상이 끝이 날까요?답 : 형제님 심정은 충분히 이해가 갑니다. 범죄행각을 보면 사람들은 더 강한 경찰력으로 통제하면 되지 않을까 하는 유혹을 느낍니다. 필리핀의 두테르테 대통령의 예를 들면서 우리도 그래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는 것입니다. 마약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무자비한 경찰력을 동원하는 덕에 범죄율이 떨어졌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적인 문제들이 그런 외적인 통제로 해결된다고 생각하는 것은 ‘문제아’들을 교도소에 보내면 다 해결이 될 것으로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비현실적인 생각입니다.그렇다면 가장 현실적인 방안은 무엇일까요. 시간이 걸리더라도 선하게 사는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 그래서 악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발붙일 곳을 없애는 것이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사람의 마음 안에는 ‘악마성’도 있지만 ‘천사성’도 같이 존재합니다. 문제는 어린 시절부터 방치된 삶을 살아온 사람들은 본의 아니게 자신 안의 악마성이 더 커져서 소위 반사회적 성격장애인이 돼 분노 범죄를 비롯한 미성숙한 범죄 행위를 저지릅니다.그런데 사람이 가진 이런 악마성에만 초점을 맞추다 보면 마음 안에 불안감이 조성되고, 심지어 사람에 대한 두려움이 커져서 사람이 사람을 믿지 못하는 불신 사회가 될 가능성이 커집니다. 통제 사회가 가지는 한계가 바로 그것입니다. 이 문제의 해결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준 것이다.”(마태 25,40) 바로 이 말씀이 세상을 바꾸는 가장 효과적이고 근본적인 방법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 말씀처럼 선행을 한 사람들의 이야기, 자신도 암환자이면서 다른 암환자를 위한 기금을 모은 청년이라든가, 중병에 걸린 어린아이가 노숙자들에게 줄 빵을 만들 돈을 마련하기 위해 기금을 모은 이야기 등의 사연들은 주위 사람들 마음 안의 천사성을 자극해서 많은 기부금을 모았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평소 어려운 사람들에게 무관심했던 자신들의 삶에 대한 부끄러움을 느끼게 했습니다. 이름 없는 사람들이 행한 작은 선행이 사람들 마음 안의 선한 마음을 다시 타오르게 했고 ‘세상이 아직은 살 만하구나’ 하는 희망을 느끼게 해주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어떤 혁명보다도 강하고 절실하고 현실적인 혁명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비현실적인 것이 아니라 가장 현실적이며, 형이상학적이고 종교적인 문헌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사람과 사람이 함께 사는 법을 가르쳐주는 가장 정치적인 문헌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원수를 사랑하여라’는 말씀은 어떻게 들으면 현실적으로 받아들이기 어려운 주문이라는 생각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세상에서 주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다가 자기 생명을 내놓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주님의 말씀이 세상을 바꿀 수 있는 가르침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선행을 베푸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본인도 행복합니다. 주님은 행복한 사람들이 어떤 사람들인가에 대해 산상설교에서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온유한 사람들, 의로움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들, 자비로운 사람들, 마음이 깨끗한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세상을 바꾸는 사람들이 유명인사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아니라 아주 평범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평화신문2018.01.17

박해자 회심, 그리스도교의 세계화를 열다‘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25일)에 알아보는 바오로 회심 박해자 사울은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하늘에서 내려온 큰 빛에 눈이 멀게 된다. 이후 다마스쿠스에 도착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눈을 다시 뜨게 되면서 바오로 사도로 변신한다. 그림은 파르미자니노 작, ‘성 바오로의 회심’ , 16세기, 오스트리아 빈, 빈 미술사 박물관. 25일은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이다. 회심하지 않는 그리스도인은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별도의 축일을 정하면서까지 회심을 기리는 것은 그리스도교에서 바오로 사도가 차지하는 비중이 그만큼 크고, 바오로 사도의 회심이 끼친 영향이 그만큼 엄청나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전체 27권 가운데 바오로 사도가 쓴 것으로 나오는 서간은 무려 13권. 그렇다면 바오로의 회심은 무엇이고, 또 어째서 그렇게 대단한 일인 걸까.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독실한 유다교 신자 사울서기 5∼10년쯤 로마제국 타르수스(터키 남부 지역)에서 태어난 바오로는 독실한 유다교 신자이면서 로마 시민권자였다. 어려서부터 철저한 종교교육을 받은 바리사이로, 율법만이 구원해줄 수 있다고 믿었다. 율법 지상주의자였던 바오로가 율법을 호되게 비판한 예수를 받아들일 리 만무했다. 율법에 도전하다 처형당한 예수가 메시아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였다. 게다가 십자가에서 처형된 예수가 다시 살아났다니…. 부활은 역사가 끝나는 날 일어날 사건이라고 믿는 바오로에게는 천부당만부당한 소리였다. 불의를 참지 못하는 다혈질적인 바오로는 그런 예수를 믿는 교회를 박해하는 데 앞장섰다. 사건은 서기 33년쯤 바오로가 다마스쿠스 교회를 박해하러 가는 길에 일어났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일어난 사건 “내가 길을 떠나 정오쯤 다마스쿠스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 갑자기 하늘에서 큰 빛이 번쩍이며 내 둘레를 비추었습니다. 나는 바닥에 엎어졌습니다. 그리고 ‘사울(바오로)아, 사울아, 왜 나를 박해하느냐?’ 하고 나에게 말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내가 ‘주님, 주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여쭙자, 그분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나는 네가 박해하는 나자렛 사람 예수다.’ 나와 함께 있던 이들은 빛은 보았지만, 나에게 말씀하시는 분의 소리는 듣지 못하였습니다. ‘주님, 제가 어떻게 해야 합니까?’ 하고 내가 여쭈었더니, 주님께서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일어나 다마스쿠스로 들어가거라. 장차 네가 하도록 결정되어 있는 모든 일에 관하여 거기에서 누가 너에게 일러줄 것이다.’ 나는 그 눈부신 빛 때문에 앞을 볼 수가 없어, 나와 함께 가던 이들의 손에 이끌려 다마스쿠스로 들어갔습니다.거기에는 하나니아스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사는 독실한 사람으로, 그곳에 사는 모든 유다인에게 좋은 평판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가 나를 찾아와 앞에 서서, ‘사울 형제, 눈을 뜨십시오.’ 하고 나에게 말하였습니다. 그 순간 나는 눈을 뜨고 그를 보게 되었습니다. 그때에 하나니아스가 말하였습니다. ‘우리 조상들의 하느님께서는 당신을 선택하시어, 그분의 뜻을 깨닫고 의로우신 분을 뵙고 또 그분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를 듣게 하셨습니다. 당신이 보고 들은 것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그분의 증인이 되라는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무엇을 망설입니까? 일어나 그분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며 세례를 받고 죄를 용서받으십시오.’ 나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성전에서 기도할 때 무아경에 빠져, 나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는 그분을 보았습니다. ‘어서 빨리 예루살렘을 떠나라. 사람들이 나에 관한 너의 증언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내가 아뢰었습니다. ‘주님, 제가 회당마다 다니며 주님을 믿는 이들을 감옥에 가두고 매질한 사실을 저들이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주님의 증인인 스테파노가 피를 흘리며 죽어갈 때, 저도 곁에 있었을 뿐만 아니라 그 일에 찬동하면서, 그를 죽이는 자들의 옷을 지켜 주기까지 하였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나에게 이르셨습니다. ‘가거라. 나는 너를 멀리 다른 민족들에게 보내려고 한다.’”(사도 22,6-21) 바오로 사도의 체험담 사도행전을 쓴 루카는 이 외에도 9장 1-19절과 26장 9-18절 등 모두 세 번에 걸쳐 바오로의 회심 이야기를 상세하게 소개했다. 모두 매우 극적인 묘사다. 성경에는 루카가 아닌 바오로 사도가 직접 말하는 체험담도 나온다.“내가 우리 주 예수님을 뵙지 못하였다는 말입니까?”(1코린 9,1)“맨 마지막으로는 칠삭둥이 같은 나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5,8)“‘어둠 속에서 빛이 비추어라.’ 하고 이르신 하느님께서 우리 마음을 비추시어,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느님의 영광을 알아보는 빛을 주셨습니다.”(2코린 4,6)“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부터 나를 따로 뽑으시어 당신의 은총으로 부르신 하느님께서 기꺼이 마음을 정하시어, 내가 당신의 아드님을 다른 민족들에게 전할 수 있도록 그분을 내 안에 계시해주셨습니다. 그때에 나는 어떠한 사람과도 바로 상의하지 않았습니다.”(갈라 1,15-16) “그것을 차지하려고 달려갈 따름입니다.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이미 나를 당신 것으로 차지하셨기 때문입니다.”(필리 3,12) 바오로는 자기 자신에 관해 이야기하는 것을 꺼렸다. 바오로는 자신의 삶에서 그토록 중요했던 회심 사건을 몇 차례에 걸쳐 간단하게 언급했을 뿐이다. 그러나 앞에서 본 루카는 달랐다. 바오로 본인이 직접 한 말이 실상에 좀 더 가까울지 모르겠다. 2000년이 지난 오늘날 바오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체험했는지, 다시 말해 어떤 방식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났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요한 것은 바오로가 완전히 딴사람이 됐다는 사실이다. 부활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나서는 예수를 대하는 태도가 180도 바뀐 것이다. 비유하자면 독립군을 때려잡던 일본군 앞잡이가 둘도 없는 독립투사로 다시 태어난 것이다. 바오로 회심의 의미 바오로의 회심은 그리스도교의 분수령이 됐다. 바오로 사도가 없었다면 오늘의 그리스도교도 없었을 것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바오로 사도는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사실 초기 그리스도교는 예루살렘에서 거의 벗어나지 못한 지역 교회였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바오로는 이후 복음을 전하는 데 둘째가라면 서러운 사도가 됐다. 세 차례에 걸친 바오로의 선교 여행은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 전체로 확산하는 결정적인 실마리를 제공했다. 그의 노력으로 말미암아 팔레스타인 유다인 중심의 지역적ㆍ민족적 그리스도교가 인류 전체를 상대로 하는 세계적 종교로 탈바꿈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처럼 바오로의 회심은 바리사이 바오로를 사도 바오로로 거듭나게 한, 그리스도교가 보편 종교로 성장하는 계기가 된 결정적 사건이었다. 평화신문2018.01.16

난해함 털어낸 신학 서적, ‘신앙 필독서’로 거듭난다수원가톨릭대 「구약성경의 제도들 Ⅰ」 발간 「구약성경의 제도들 Ⅰ」 수원가톨릭대(총장 유희석 신부)는 ‘수가대 신학총서’의 첫걸음으로 「구약성경의 제도들 Ⅰ」을 펴내고, 9월 28일 경기 화성 수원가대 하상관에서 발간 기념 콘퍼런스를 열었다.김건태(수원교구 안산대리구장) 신부가 번역한 「구약성경의 제도들 Ⅰ」은 교회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구약성경 주석가이자 역사가, 고고학자로 일컬어지는 롤랑 드 보(1903~1971, 도미니코 수도회) 신부가 1957년 저술한 책이다. 구약성경 시대의 유목 생활, 가족ㆍ시민ㆍ군대·사회· 제도 등을 소개하고 혼인ㆍ장례식 풍습, 사회 구성원, 왕국의 행정, 법과 정의 등을 상세하게 설명한다.김건태 신부는 콘퍼런스에서 “유학 중이던 1979년 이 책을 처음 읽고 ‘언젠가 번역해 한국에 소개하겠다’고 다짐했는데, 40여 년 만에 현실이 됐다”며 “이번 총서 발간을 시작으로 좋은 총서가 많이 나와 신학생과 신자들에게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수원가대는 2019년까지 「구약성경의 제도들 Ⅱ」, 「선교란 무엇인가? 선교의 한국적 성찰」, 「교리교육신학의 근본 문제」, 「가톨릭 실천신학 입문」, 「해석학적 신학」 등 총서 10권을 발간할 예정이다.수원가대 총서위원장 곽진상(수원 가톨릭대) 신부는 “지나치게 전문적이거나 난해한 신학 서적이 아니라 신학생들과 수도자들, 신학에 관심 있는 평신도들이 꼭 읽어야 할 필독서를 발간할 것”이라며 “신학의 각 분야에서 다루는 기본적인 질문과 주제들을 제시하고, 그것이 오늘날 우리에게 어떤 도움을 주는지 숙고하도록 돕는 ‘신학의 기초-개론서’를 펴내겠다”고 밝혔다.이날 콘퍼런스에서는 수원가대 출반부의 신간 「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티모시 갤러허), 「영성 상담의 실제」(엘피 힌터코프)도 소개됐다. 「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는 이냐시오 기도의 두 가지 기본 방법인 묵상 기도와 관상 기도를 안내하고, 「영성 상담의 실제」는 ‘포커싱’(내면 집중 방법)을 활용해 영성상담을 하는 방법을 설명한다. 두 권 모두 안기민(수원가톨릭대) 신부가 번역했다.1984년 개교한 수원가대는 1990년 출판부를 설립, 26년 동안 신학서적, 연구서적 31권을 발간하며 신학 연구에 앞장서 왔다. 구매 문의 : 031-290-8814, 수원가대 출판부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백영민2016.10.05

‘제주의 아버지’ 임피제 신부, 하느님 곁으로 23일 선종… 성 이시돌 목장 설립 등 제주 양돈산업 일으킨 주인공, 65년간 제주 위해 헌신 미국 텍사스에서 후원금을 모금하는 장면. 돈을 많이 모금하기 위해 큰 돼지 저금통을 만들었다. 60여 년 전 가난밖에 남은 것이 없는 섬 제주에 도착해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궈낸 선교사 임피제(Patrick J. McGlinchey) 신부가 23일 선종했다. 향년 90세.아일랜드 출신의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선교사 임 신부에게 제주도와 성 이시돌 목장은 삶의 전부였다. “주님이 가라는 곳은 어디든 가고, 시키는 일은 뭐든 하겠다”고 약속하고 25살 나이에 들어간 제주에는 4ㆍ3 사건과 6ㆍ25 전쟁의 상처가 그대로 남아 있었다. 주민들은 너나 할 것 없이 가난에 허덕였다. 복음과 더불어 주민 자립 위해 복음을 전하러 갔지만, 성경보다 삽을 먼저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새끼를 밴 돼지 한 마리를 인천에서 사다 양돈사업을 시작했다. 그 목장을 기반으로 여성 1300여 명을 고용하는 한림수직을 세우고, 그 수익금으로 약 한 번 써보지 못하고 죽어가는 주민들을 위해 병원을 지었다. 특히 양돈사업은 오늘날 제주의 축산 기반이 됐기에 제주 사람들은 그를 ‘푸른 눈의 돼지 신부’라고 부른다. 교육사업을 포함해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벌인 모든 사업의 저력은 주님에 대한 신뢰와 서양인 특유의 개척 정신에서 나왔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운동을 추진하던 청와대 관료들은 우연히 성 이시돌 목장을 둘러보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수만 마리 돼지와 수천 마리 소, 수천 마리 양을 기르는 한라산 중턱의 수백만 평 목장 풍경은 충격이었다. 이 때문에 임 신부는 박 대통령 앞에서 성공사례 브리핑까지 해야 했다. 그 자리에서 박 대통령은 “신부님, 국가가 하지 못하는 일을 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인사했다.호스피스 병원 사업도 시작 그가 정작 고심한 것은 주민들의 자립이었다. 젊은이들이 앞장서는 농촌개발 운동 4-H 클럽을 제주에 확산하고, 가축은행을 만들어 종자를 퍼뜨렸다. 종잣돈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신협도 조직했다. 그는 애초부터 주민들에게 “동냥하기 위해서만 허리를 굽히지 말고 일하기 위해, 기도하기 위해 허리를 굽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시대의 징표를 읽을 줄 알았다. 제주가 절대 빈곤에서 벗어나자 인간다운 삶을 생각했다. 마지막으로 손댄 것이 2002년 무료 호스피스 병원 사업(성 이시돌 복지의원)이다. 그의 수상 이력은 ‘아시아의 노벨상’이라고 불리는 막사이사이상을 비롯해 열거하기가 어렵다. 2014년 제주 MBC가 주관하는 제1회 ‘자랑스러운 제주인상’ 수상자로 선정됐을 때 그는 은퇴했다는 이유로 수상을 사양했다. 하지만 “상금이 1000만 원”이라는 얘기를 듣고 시상식에 갔다. 무료 호스피스 병원 운영비가 쪼들릴 때였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구는 “이는 주님께서 이루신 일, 우리 눈에 놀랍기만 하네”(시편 118,23)이다. 고인의 장례 미사는 27일 성 이시돌 삼위일체 대성당에서 봉헌됐다. 유해는 그의 꿈과 땀, 기도가 배어 있는 성 이시돌 목장 묘역에 안장됐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평화신문2018.04.24
![[갤러리 1898]](//cpbc.co.kr/CMS/newspaper/2018/02/rc/712700_1.0_titleImage_1.jpg)
[갤러리 1898] 이영숙 작 ‘한복을 입으신 성모자’, 45 X 35cm, 순지에 분채, 봉채, 금분. 민화로 그린 이콘전, 예수님과 성경 이야기를 담은 나무 서각전,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숨은 풍경을 담은 사진전이 7~13일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열린다.‘민화 이콘을 만나다’를 주제로 제1전시실에서 문을 여는 이영숙(루치아) 작가의 6번째 민화전은 민화와 이콘에 대한 선입견을 단번에 사라지게 한다. 얼핏 보면 이콘이지만, 민화인 이 그림들은 보드라운 색조와 동양적이고 절제된 인물 표정을 통해 기존 이콘과는 색다른 감성을 가져온다. 민화를 하며 성화를 그리고 싶었다는 이 작가는 “민화에는 하나하나에 담긴 의미가 있듯이 성화에도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게 돼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렸다”며 “부족하나마 제 작품을 감상하는 이들이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계기가 되길 희망한다”고 밝혔다.55세 때 그림에 입문한 김인규(토비아, 65,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의 개인전이 같은 기간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LAETO ANIMO(기쁜 마음으로)’를 주제로 한 나무 서각전이다. 펜화로 그림에 입문해 재능을 발견한 김 신부는 지난 1년간 서각에 도전해 글씨뿐 아니라 예수님 얼굴 등의 성화를 제작했다. 따스함이 느껴지는 나무를 재료로 선택했다. 김 신부는 그동안 주일을 제외하고 하루 6시간 이상 매달려 깎은 서각 60여 점과 유화, 펜화 등을 전시한다.김 신부는 “예수님의 기쁨은 세속적 기쁨이 아닌 고통과 아픔을 초월한 기쁨인 만큼, 우리도 내 삶을 통해 사랑을 예수님께 드리고 예수님께서 마음에 드시도록 노력하기를 희망하는 마음으로 작품을 완성했다”고 말했다.한편 같은 기간 제3전시실에서는 가톨릭대학교 학생인 전호진씨의 첫 사진전 ‘LIVING IN VENICE’가 열린다. 전씨는 1년간 교환학생으로 베네치아에 머물며 현지인들의 숨겨진 모습들을 사진에 담았다. 베네치아는 하루 관광객 수가 6만 명에 이르는 전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관광지 중 하나다. 그러나 현지 주민들은 급격한 개발과 상업화로 자신들이 살던 터전에서 내몰리고 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cpbc2018.02.28
유다인에 반기 들었던 예수, 왜? 당시 율법·사상 보면 알 수 있다요한복음 배경된 헬레니즘부터 다양한 주제 대해 설명 요한 복음과 유다이즘요한복음과 유다이즘 요하네스 보이틀러 지음 / 허규 신부 옮김 / 1만 9000원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예수의 사상과 언행을 이해하려면 성경 속 이야기만으론 충분치 않다. 유다인 예수는 태어나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고, 예루살렘 성전의 경신례에 참석했으며, 팔레스티나 회당에서 아람어로 유다인들에게 설교하기도 한 유다이즘에 뿌리를 두고 있었다. 하느님의 외아들인 예수 그리스도의 행적과 표징들을 드러낸 요한복음은 ‘믿음과 생명, 사랑의 복음서’이다. 예수의 언행과 비유, 행적들을 이해하려면 당대 그가 반기를 들었던 유다인들의 율법과 사상, 즉 유다이즘에 대한 이해도 수반돼야 한다. 유다인 연구 분야의 저명한 학자인 저자 요하네스 보이틀러는 책을 통해 요한복음의 문학적 배경이었던 헬레니즘과 함께 유다이즘의 이해를 돕고 있다. 성전 정화 사건에서 성전의 의미, 구약성경에 관한 언급들, 복음서 안에서 ‘율법’과 ‘성경’ 등 용어들의 어원과 쓰임까지도 구체적으로 설명해주고 있다. “율법은 모세를 통하여 주어졌지만 은총과 진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왔다.”(요한 1,17) 하늘의 빵을 선조들에게 준 주체는 모세가 아니었다. 그러나 하느님은 생명의 빵을 예수 안에서, 예수를 통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전했다. 예언자 모세와 만왕의 왕 예수의 차이점 등 요한복음과 유다교 전승이 갖는 차이점과 다양한 주제들을 엿볼 수 있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김지항2017.07.12
![[신앙단상] 기도에 관한 기도](//cpbc.co.kr/CMS/newspaper/2018/06/rc/723075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기도에 관한 기도왕은철 (미카엘, 전북대 영문과 교수) 왕은철 (미카엘, 전북대 영문과 교수) 언어에 빗대 얘기하자면, 성당에서 행하는 의식이 나에게는 이민자가 마주하는 낯선 나라의 낯선 언어 같았다. 무슨 이유에선가 발을 딛게 된 나라에서 살아가려면 어떻게든 배우고 익혀야 하는 낯선 언어.그렇다. 지난 5년을 제외하면 평생을 종교의 울타리 밖에서 살아온 내게 성당의 의식은 일종의 외국어나 다름없었다. 영문학을 하면서 자주 접했던 성경을 제외하면 모든 것이 그만큼 낯설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낯선 것은 기도였다. 미사 시간에 올리는 기도는 공동 기도라서 특별히 고민할 게 없었지만, 혼자서 하는 기도는 대체 어떻게 해야 하나 싶었다. 너무 기본적인 것이라서 누구에게 물을 수도 없었다. 물으면 별것을 다 묻는다고 할 것 같았다. 그래서 궁여지책으로 일단은 가까운 것부터 기도하자고 생각했다. 나의 입에서 나온 첫 기도는 내 아버지의 영혼을 위한 것이었다. 아버지의 죽음을 계기로 성당에 나가게 된 나로서는 당연한 것이었는지 모른다. 나는 그 기도에 나의 어머니가 말년의 아버지처럼 고통을 당하지 않게 해달라는, 강박적이지만 내게는 절실한 마음을 얹었다. 그리고 염치없게, 나의 두 아들과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게 해달라는 마음도 얹었다. 그런데 누가 알면 어쩌나 싶었다. 너무 이기적이고 상투적이고 초라한 기도 같아서였다. 그래서 더 고민이었다.기도의 내용을 갖고 고민하던 어느 날이었다. 영세에 이어서 견진성사를 받기 전날이었다. 성사에 필요한 교육을 받고 성당을 막 나서려고 할 때였다. 교리 선생님으로 보이는 분이 다가오더니 밑도 끝도 없이 견진성사 중에 기도를 하라고 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런데 “내가 감히 어떻게”라고 말하자, 그분은 “몇 사람이 돌아가면서 하는 거니까 그냥 편하게 생각하세요. 세 번째로 하면 돼요”라고 말했다. 거절할 틈도, 내 입장을 설명할 틈도 주지 않았다.마음이 착잡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묘안이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저런 생각들을 종이에 적어 보아도 마땅한 내용을 찾을 수 없었다. 물론 매일미사 책에 나오는 기도들을 적당히 응용하면 안 될 것도 없었다. 그러나 나는 진짜 기도를 하고 싶었다. 가당치 않은 생각이었지만, 신의 마음을 움직이는 기도를 하고 싶었다. 문제는 어떻게 하느냐는 것이었다. 아무리 고민해도 마지막까지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 결과로 나는 어이가 없어도 너무 어이가 없는 기도를 하고 말았다.“주님,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주님의 마음에 닿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지혜로우신 주님, 어떻게 해야 저(희)의 기도가 주님께 닿아 주님의 마음을 움직일 수 있는지 가르쳐주옵소서.”기도하라고 하니까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달라고 하다니, 다른 사람들은 차치하고 내가 들어도 한심하고 어린애 같은 기도였다. 창피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런데 얼마 후, 의외의 일이 벌어졌다. 견진성사를 주관하던 주교님이 강론을 시작하면서 나의 어설픈 기도를 인용하는 것이 아닌가. “그래요. 우리는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 기도하는 법을 모르거나 잊는 경우가 있습니다. 깊이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나는 깜짝 놀랐다. 그것은 원론적인 것을 고민해도, 아니 고민해야 한다는 말이었다. 기본을 잊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었다.나는 지금도 외국어를 배울 때 제대로 된 발음을 하려고 연습에 연습을 거듭하듯, 어떻게 해야 제대로 된 기도일지 고민하고 또 고민한다. 낯선 나라의 언어를 배우고 익혀야 하는 이민자의 절박한 마음으로. 평화신문2018.06.05
사회교리를 성경·교리·노자 사상으로 풀어서울 정평위,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길」 발간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길」 사회교리를 성경 말씀과 교회 가르침, 노자(중국 고대 사상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풀어쓴 책이 발간됐다.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회가 펴낸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사는 길」<사진 표지>은 「간추린 사회교리」의 제4장 ‘교회의 사회교리 원리들’을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성경 말씀), ‘교회가 가르치기를’ (「가톨릭교회 교리서」, 교황 회칙 등 교회 가르침), ‘현자(賢者)가 말하기를’ (노자) 등 세 갈래로 풀어 설명한다. 성경 말씀과 노자 가르침은 다른 듯하면서도 통하는 부분이 있다. 이를테면 ‘사회적 약자 우선 원리’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라는 성경 말씀과 「노자 도덕경」 66장 ‘필이신후지’(必以身後之, 반드시 자신이 백성 뒤에 서야 한다)에 대입한다.‘선과 악을 식별할 수 있는 양심’은 “악이란 비열한 것으로서 제 입으로 자신을 단죄하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늘 어려움을 더해 가기만 한다”는 지혜서의 말씀과 “양심은 인간의 가장 은밀한 핵심이며 지성소”라는 「가톨릭교회 교리서」의 가르침, 「노자 도덕경」 37장 ‘불욕이정 천하장자정’(不欲以靜 天下將自定, 욕심을 내지 않고 고요하게 있으면 천하는 저절로 안정된다)으로 설명한다. 교구 정의평화위원장 박동호 신부는 서문에서 “‘우리는 여러 종교적 전통과 성경에서도 공통으로 볼 수 있는 오랜 교훈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프란치스코 교종(교황)의 말씀에 따라 더 나은 세상을 희망하며 이 책을 펴낸다”고 밝혔다. 가격 : 5000원. 문의 : 02-773-1050, 서울 정평위 임영선 기자 백영민2016.08.16
![[성사풀이] (8)유아 세례, 가급적 100일 넘기지 말아야](//cpbc.co.kr/CMS/newspaper/2018/07/rc/728389_1.0_titleImage_1.jpg)
[성사풀이] (8)유아 세례, 가급적 100일 넘기지 말아야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 1월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에서 아기들에게 세례를 베풀고 있다. 【CNS 자료 사진】 세례명은 왜 필요한가요? 세례명은 수호성인들의 전구와 사랑의 모범을 통해 하느님의 자녀가 되었음을 드러내는 표지이며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하겠다는 약속의 징표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2156항). 그러므로 세례명은 단순한 필요성의 여부를 떠나 하느님께서 주시는 소중한 선물이다.세례 때에 세례명을 받는 것은 하느님의 자녀로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 태어남을 의미합니다. 아기가 세상에 태어나면 이름을 붙여주는 것처럼,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기에 새로운 영적 이름을 붙여주는 것입니다.또한, 성경에는 개인의 이름이 가진 영적 중요성과 이름의 변화가 그 사람에게 부여된 소명과 연결됨을 말해 주는 내용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창세 17,5)으로, 시몬이 ‘베드로’(마태 16,18)로, 사울이 ‘바오로’(사도 13,9)로 바뀐 것이 좋은 사례입니다.세례명은 일반적으로 교회 성인들 가운데 한 분의 이름을 따서 정합니다. 신자들은 세례 때 자신이 좋아하거나 존경하는 성인을 선택해 일생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특별히 공경하고 보호를 청하며, 그의 성덕과 품성을 본받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인전을 통해 그 성인의 일생과 업적 등을 미리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그러나 세례명을 반드시 성인의 이름만으로 정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주님 성탄을 축하하고 찬미하는 의미를 가진 ‘노엘’, 또는 영적 의미가 있는 이름인 ‘임마누엘’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 ‘그라시아’ (은총), ‘글로리아’ (영광) 등과 같이 그리스도의 신비나 덕을 나타내는 세례명도 있습니다.강물 속에서 세례를 받을 수 있나요? 가톨릭교회의 세례 예식은 예비신자의 온몸이나 머리만을 물에 잠그는 침수 예식으로 세례를 줄 수 있고, 오랜 관습에 따라 물을 이마에 부어 줄 수도 있다.(「어른 입교 예식」 220-221항) 한국 천주교회는 지역 교회의 특성을 고려해 원칙적으로 이마에 물을 붓는 예식으로 세례성사를 집전하도록 규정하고 있다.(「사목 지침서」 63조 4항)세례는 ‘물에 담그다’ ‘물에 잠기게 하다’ ‘물로 씻다’는 의미입니다. 물로 씻는 것은 몸의 더러움을 닦아내는 것이고, 마음을 정화시키는 것이며, 죄를 깨끗이 씻어 용서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에 ‘잠김’은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죽음 속에 같이 묻히고, 그곳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해 ‘새사람’(2코린 5,17)으로 나오게 됨을 상징합니다.가톨릭교회는 부득이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전례서의 규정에 따라 성령 청원 기도와 그리스도의 침수(파스카 초를 물에 담금)를 통해 거룩하게 축복된 세례수를 가지고 세례성사의 핵심 예식인 물 붓는 예식을 거행합니다. 세례를 강에서 받는지 성당에서 받는지, 또는 몸 전체를 물에 잠그는지 물을 이마에만 붓는지를 따져 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세례 예식에서 물로 씻는 부분이 갖는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세례성사를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세례를 받으려면 가톨릭 교리와 교회 생활에 대해 적어도 6개월간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받고 주일 미사에도 참여해야 한다.(「사목 지침서」 54조 1항)세례를 받기 위해서는 먼저 자신이 거주하는 곳의 가까운 성당에서 실시하는 예비신자 교리반에 등록해야 합니다. 예비신자들은 교리반에서 신부, 수녀 또는 교리교사들이 전해주는 하느님의 말씀과 교회 가르침을 일정 기간 충실히 배우고, 신자 생활에 필요한 신경, 성사, 전례, 기도, 계명 등을 배웁니다. 이와 함께 중요한 것은 매 주일 미사에 참여함으로써 하느님께 찬미와 감사를 드리며 신자 공동체와 친교를 이루는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부득이한 사정으로 교육받을 시간이 부족한 예비신자들은 주교회의에서 마련한 통신 교리를 통해 필요한 교리교육을 받을 수 있습니다. 또한, 어르신이나 건강상 어려움을 겪는 이들의 경우, 그 사람의 건강과 지적 수준을 고려해 예비신자 교리교육 기간이 조정될 수 있습니다.교회는 왜 유아 세례를 주나요? 모든 사람은 원죄를 지니고 태어나므로, 유아들도 세례를 통해 죄에서 해방돼 하느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야 하기 때문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250항)아기가 태어나면 빠른 시일 안에 세례를 주도록 교회는 권장합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누구든지 물과 성령으로 태어나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요한 3,5)는 말씀을 통해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누구나 세례를 받아야 할 필요가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그래서 교회는 초기부터 어른들뿐 아니라 유아들에게도 세례를 주고 있습니다. “부모는 아기의 출생 후 될 수 있는 대로 빨리 세례를 받게 해야 하고, 가급적 100일을 넘기지 말아야 합니다.”(「사목 지침서」 47조)특히 죽을 위험에 있는 아기라면 부모가 바라지 않을지라도, 또 비신자 부모의 아기일지라도 세례를 줄 수 있습니다.(교회법 867조 2항) 그러나 죽을 위험이 없는 아기는 부모 중 적어도 한 사람 또는 합법적으로 부모를 대신하는 이가 유아 세례에 동의해야 하고, 유아를 가톨릭 신앙으로 양육할 책임을 져야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교회법 868조)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8.07.25
![[신앙단상] 나는 강사다](//cpbc.co.kr/CMS/newspaper/2018/05/rc/720715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나는 강사다고정욱(안드레아, 소설가, 아동문학가) “선생님 아파트는 몇 평이에요?”어느 학교에서 강연을 마치니 학생 하나가 번쩍 손을 들고 내게 던진 질문이다. 순간 강당은 얼어붙는다. 교사들과 일부 철든 아이들의 얼굴이 붉어진다. 나는 강사다. 하루에도 두세 번의 강의를 하며 전국을 누비고 있다. 유치원부터 대학교, 기업, 교회, 도서관, 일반 직장 등 내가 강연하는 곳은 다양하다. 어떨 때는 하루에 서너 번씩 장소를 바꿔가며 강연하기도 하고, 전날 부산에 갔다가 다음날 목포로 가는 강행군을 하기도 한다. 심지어 해외에서도 강연하게 됐다. 그러다 보니 별별 질문을 다 받는다.강연이 많아지니 강사의 역할과 의무, 강사의 사회적 기능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하게 됐다. 강사란 자신의 삶에 경험과 지식, 혹은 정보를 대중에게 널리 알리는 직업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최근에 강연이 붐을 이뤄 수많은 강좌가 열리고 있고, 텔레비전이나 각종 사회 프로그램에 강연이 당당히 자리를 잡고 있다. 과거에 비하면 놀라운 일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각급 학교에서도 강사들을 초청해 작가와의 만남이나 각종 교육의 명목으로 강연을 실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의 어린 시절과 비교해 본다면 이것은 놀라운 변화다. 우리는 1년 내내 칠판 앞에서 담임선생님의 수업을 듣고 공부하며 교과서 속의 단편적인 지식을 암기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수많은 강연을 하며 사람들 앞에서 삶의 방향과 지표를 말하다 보니 가끔 나는 두려움에 떨게 된다. 과연 나는 내가 하는 말을 책임질 수 있는 사람인가? 주위를 둘러보니 자신이 강연에서 한 말의 내용을 책임지지 못해 불명예를 당하거나 사회적 지탄을 받는 강사들도 제법 많이 눈에 띈다. 학력을 속이거나, 일구이언하거나, 불미스러운 문제를 일으키는 사람도 적지 않다. 심지어 고난을 이기며 참고 살라며 강연하더니 결국 자살한 사람까지…. 결국 자신의 말과 행동이 다른 것이다. 말로 감동을 주고, 대중의 삶에 변화를 주려 하므로 강사들에게 들이미는 잣대는 더욱 엄격하다.돌이켜보면 인류의 역사에서 말로 대중을 설득하고 변화를 시도했던 사람들은 많다. 예수님이 그러했고, 소크라테스, 공자, 붓다가 다 그런 사람들이다. 그들이야말로 영혼을 바꾸는 강연가라 할 수 있다. 인류의 사상에 큰 영향을 준다. 우리의 삶도 바꾸어 놓았다. 나는 이들을 절대 강사라고 부른다. 그들의 권위와 인격과 삶은 그야말로 초인의 경지이고 범인(凡人)이 상상도 할 수 없는 깨달음을 설파했다.그들과 비교해 보면 일반 강사의 가장 큰 위험성은 말이 바로 쉽게 나간다는 점이다. 행동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 말은 위험하다. ‘언행일치’가 그래서 나는 강사의 가장 큰 덕목이라 여긴다. 성경에도 있다. 제 눈에 들보는 보지 못한다는 이야기. 나는 오늘도 누군가에게 책임질 수 없는 말을 하는 것은 아닐까. 두렵지 않을 수 없다. 말과 글이 넘치는 세상이다. 조심하며 말한 것을 실천하기 위해 노력하는 강사가 되어야 한다고 늘 다짐한다. 이건 혼자 되는 일이 아니고 늘 기도하며 깨어 있어야 가능하다. 앞서 한 학생의 질문에 나는 꿈쩍도 하지 않고 눙치며 대답한다.“응, 우리 집은 하도 넓어서 현관에서 내 서재까지 가는 데 삼박사일이야.”강당엔 웃음보가 터진다. 웃자고 한 질문에 죽자고 덤빌 필요는 없다. 강연을 소명으로 받은 자라고 이 정도 유머를 재능으로 주셔서 안심이다. 평화신문2018.05.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