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들 손자 며느리 다 모여 기도 삼매경김병두·조영민씨 가정 3대 모여 아침 기도 봉헌, 3년 전부터 성경 통독도 김병두(베드로)ㆍ조영민(베로니카)씨가 아들 김준희(마티아)ㆍ며느리 우혜선(제노비아)씨와 손주들과 함께 기도를 바치고 있다. “마리아와 요셉에게 순종하시며 가정생활을 거룩하게 하신 예수님, 저희 가정을 거룩하게 하시고, 저희가 성가정을 본받아 주님의 뜻을 따라 살게 하소서.”지난 12월 23일 오전 8시 10분, 서울 동작구 대방동의 한 가정집. 김병두(베드로, 67, 대방동본당)ㆍ조영민(베로니카, 65)씨 부부와 아들, 며느리, 손주 3명이 둥그렇게 모여 앉아 ‘가정을 위한 기도’를 바친다. 일곱 살 막내(김성현 스테파노)는 잠이 쏟아져 연신 하품을 반복하지만, 할머니 무릎 위에 앉아 고사리손을 모으고 함께 기도를 바친다. 김씨 가정은 지난 여름부터 3대가 모여 하루를 기도로 시작해왔다. 김씨 부부가 새벽 6시 미사를 봉헌하고 집으로 돌아와 묵주기도를 바치고 있으면, 아침 식사를 하고 직장과 학교에 갈 준비를 마친 아들 부부와 손주들이 단독주택 아래층에 사는 할머니 댁으로 온다. 이들이 가정 기도를 시작한 것은 대방동본당(주임 주수욱 신부)이 지난 5월 ‘가정에서의 신앙교육 특별위원회’를 구성하고 나서다. 본당은 전 신자를 대상으로 가정 신앙교육의 현실을 진단하는 설문조사를 벌였고, 가정 복음화를 위해 △가족과 함께 기도하기 △가족 성지순례 인증샷 대회 등 가족 단위의 신앙생활 및 활동을 권유하기 시작했다. 특별히 가정 기도를 위해서는 3대가 함께할 수 있도록, 기도 스티커를 만들어 어린이들의 관심을 유도했다. 이 가정은 월요일부터 일요일까지 하루도 빠지지 않고 가정 기도를 열심히 바친 보상으로, 우수 가정에 선정돼 제주도 항공권도 선물로 받았다. 12월 초 가족이 함께 제주도 여행을 다녀왔다. 여행을 가서도 함께 기도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행사나 모임으로 아침에 가족이 모이기 어려우면 저녁때라도 꼭 모여 기도를 바친다. 바쁘고 졸린 데다, 밥 먹고 학교 가기에도 바쁜 시간에 아이들이 기도하는 습관을 잘 들인 이유는 따로 있다. 3년 전부터 주일마다 함께 모여 성경 통독을 해왔기 때문이다. 단독주택에서 3대가 함께 사는 김씨네는 주일이면 아래층에 사는 큰아들 가족뿐 아니라 인근에 사는 둘째 아들 가족들도 함께 모여 성경을 읽었다. 두 아들 부부와 손주까지 다 포함해 11명이다. 올해 첫영성체 반이었던 김성윤(필립보, 10)군은 가족기도 덕분에 첫영성체 시험을 거뜬히 통과했다. 성원(안나, 11)양과 막내 성현(스테파노, 7)군도 주모경을 비롯해 아침에 바치는 부모ㆍ자녀ㆍ가정을 위한 기도를 몽땅 다 외운다. 조부모는 손주ㆍ손녀들이 기도하고 성경 읽는 습관을 즐겁게 들일 수 있도록 가끔 용돈도 주고, 성경을 읽고 나면 치킨도 시켜준다. 기도와 말씀이 중심이 된 가정은 더 화목해졌다. 아무리 가족이라도 서운한 게 생길 수 있는 사이인데, 며느리와 시어머니는 신앙 안에서 서로를 더 믿어주게 됐다. 말이 적었던 부자지간도 편하게 말을 터놓기 시작했다. 김병두씨는 “세례받은 지 30년이 됐고, 봉사도 오래 했지만, 성경 말씀을 읽고 기도를 시작하면서 이제서야 참 신앙인의 삶에 접어든 느낌”이라며 “아이들이 커서 할머니, 할아버지와 함께 기도했던 기억이 신앙교육의 밑거름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평화신문2016.12.28
![[NIE-신뮨으로 크는 신앙]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늘 나라로 갈 수 있나요](//cpbc.co.kr/CMS/newspaper/2018/08/rc/729749_1.0_titleImage_1.jpg)
[NIE-신뮨으로 크는 신앙] 우리도 성모님처럼 하늘 나라로 갈 수 있나요8월 15일은 무슨 날일까요? 우리 민족이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광복절’이자, ‘성모 승천 대축일’이에요. 한국 천주교회의 수호성인 성모 마리아가 하늘로 올라가심을 기념하는 날이자 민족 해방을 기념하는 날이기에 우리에게는 더욱 특별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모 승천 대축일을 맞아 성모님의 승천과 한국 천주교회의 성모신심을 Q&A로 들여다봐요. Q. 성모 승천 대축일은 어떤 날인가요? A. 성모 승천 대축일은 성모님께서 지상에서 생을 마친 후 영혼과 육신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심을 기념하는 축일입니다. 8월 15일 성모 승천 대축일에는 모든 신자가 주일과 마찬가지로 반드시 미사에 참여해야 해요. 한국 역사를 돌아보면, 1945년 8월 15일 우리 민족은 일제 강점에서 해방됐어요. 3년 뒤 같은 날에는 유엔 승인 아래 새로운 대한민국이 탄생했지요. 한국 천주교회가 민족의 해방과 우리나라 탄생을 ‘성모님의 선물’이라고 받아들이는 이유입니다. Q. 성모님은 정말 ‘승천(昇天)’하셨나요? A. 모든 인간은 예외 없이 죽습니다. 예수님까지 죽음을 겪으셨습니다. 그렇다면 성모님도 죽음을 겪으셨을까요? 사실 성경에도 성모님의 죽음에 관해서는 기록이 없습니다. 다만 역사적으로 성모님 죽음과 관련해서 서방 교회(오늘날 로마 가톨릭교회)의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성모님께서 죽지 않고 ‘승천’하셨다는 믿음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이러한 믿음은 ‘성모님이 돌아가셨다면 어디에 묻히셨을까?’하는 질문에서 시작됐습니다. 성모님은 죽음 이후, 이스라엘의 예루살렘이나 터키의 에페소에 묻히셨을 거라는 주장도 있었지요. 그러나 어느 곳에서도 성모님 시신은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Q. 하느님은 왜 성모님을 부르셨을까요? A. 성모 승천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희망의 징표로 다가와요. “우리도 성모님처럼 살면 하느님 나라로 갈 수 있지 않을까?” 그 희망을 보여주시기 위해 하느님은 성모님을 하늘로 불러올리셨어요. 신앙의 모범이신 성모님을 통해 우리 신앙인들도 성모님처럼 천상에서 하느님과 일치하며 영원한 행복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셨죠. 비오 12세 교황님은 1950년 회칙 「지극히 관대하신 하느님」을 통해 성모 승천에 대한 교리를 선포하셨는데요. “원죄에 물들지 않고 평생 동정이셨던 하느님의 모친 마리아는 현세 생활을 마치신 후 육신과 영혼이 함께 하늘로 올라가 영광을 입으셨다”며 성모 승천 교리를 정리했어요. 승천한 성모님은 하느님 가까이에 계시면서 모든 은총의 중재자로서 우리를 위해 기도해주세요. 우리를 위해 하느님 곁에서 기도하는 성모님이 있으니 신앙인들은 더욱 든든하겠죠! Q. 한국 천주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는 어떤 의미를 지니나요? A. 한국 천주교회는 교회가 생기던 초기부터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을 강조했어요. 성모상과 묵주는 천주교의 상징이었죠. 그래서 박해시대 관청에서는 통행이 잦은 도성 입구에 성모상과 묵주를 놓아두고 행인들에게 밟고 지나가게 했어요. 밟지 않고 지나가면 천주교 신자라 생각하고 체포했지요. 그러나 체포된 신자들은 모진 고문에도 “예수 마리아”를 외치며 신앙을 증거했고, 순교 직전까지 손에서 묵주를 놓지 않았다고 해요. 신앙의 자유가 보장된 이후 한국 천주교회는 1898년 명동성당을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께 봉헌했어요. 아울러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은 1984년 5월 6일 명동대성당에서 우리 민족과 한국 교회를 성모님께 봉헌하셨답니다. 한국 천주교회는 이처럼 성모님과 특별한 관계를 맺고 있으며, 오늘날 활발한 성모 신심 운동도 이런 역사와 관련이 있다고 할 수 있어요. Q. 예수님의 승천과 성모님의 승천은 어떤 차이가 있나요? A. 예수님도 승천하셨고, 성모님도 승천하셨지만 두 분의 승천은 다른 의미를 지닙니다. 우리말로는 둘 다 ‘승천’이라고 표현하지만, 라틴어로 살펴보면 두 승천에는 차이가 있어요. 예수님은 ‘승천(Ascensio)’이라고 하지만 성모님은 ‘받아들여짐(Assumptio)’이라는 단어를 써요. 영어로도 예수 승천은 ‘Ascension’, 성모 승천은 ‘Assumption’이라고 표기하지요. 예수 승천은 예수님이 부활 후 육신과 영혼을 지닌 채 하늘로 오르신 사건을 말해요. 그러나 성모 승천은 성모님이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하늘로 들어올려지신 걸 말해요. 성모님의 승천은 구원을 주도하시는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지요. 성모신심이란? 성모님을 공경하는 마음이 성모신심이랍니다. 성모신심은 오래전부터 신자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발전해 왔어요. 그중 우리가 교리로서 기억해야 할 내용은 다섯 가지가 있어요. 성모 마리아는 ①원죄 없이 잉태되신 분으로 ②성령으로 인하여 구세주를 낳아 기르셔서 ‘하느님의 어머니’가 되셨으나 ③‘평생 동정녀’로 사셨고 ④생을 마친 다음 영혼 육신이 하느님의 불림을 받아 ‘승천’하시어 ⑤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에 참여, 하느님과 인간을 연결해주는 ‘인류의 중재자’가 되셨다는 거예요. [다른 그림 찾기]다른 부분은 모두 5군데!)◀ 페테르 파울 루벤스 작 ‘성모 승천’, 목판에 유채, 1626, 벨기에 안트베르펜 노트르담 대성당. 활짝 열린 석관의 뚜껑이 열려 있고 푸른 옷에 황금 수가 놓인 흰 드레스를 입은 금발의 성모님의 모습이 보여요. 두 명의 천사들은 성모님에게 장미 화관을 씌우려 하고 있어요. 그림 속 붉은색, 분홍색, 푸른색, 황색 등 다양한 색깔의 의상은 하느님이 축복을 내리신 지상의 풍족함을 나타내요. 이는 힘찬 바람에 휘날리며 하늘로 날아오르는 성모님의 생기 넘치는 모습으로 이어지죠. 성모님 주위에는 오동통한 아기 천사들이 하늘을 날며 수호하고 있어요. 성모님이 영원한 빛의 세계로 들어가는 장면을 그린 작품이지요. ‘성모 승천’이 지상과 천상계를 연결해주는 신비로운 사건임을 나타내는 그림입니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전은지 기자문채현2018.08.07

신자들이 응답할 때 ‘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새 「로마 미사 경본」(한국어판) 살펴보기 「로마 미사 경본」(한국어판) 전례는 개인의 기도가 아니라 교회의 공적인 기도다. 전례에 관해 정해진 내용과 절차를 담아 교황청의 권위로 반포하는 것이 ‘전례서’다.모든 전례와 교회 생활의 중심은 미사다. 1965년 막을 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반포된 미사 전례서로는 기도문을 담고 있는 「로마 미사 경본」과 선포될 말씀을 담고 있는 「미사 독서」, 성가를 담고 있는 「미사 성가」가 있다. 미사의 기도문과 독서는 교회 달력인 전례력, 교황청이 정한 기도문과 독서 목록을 따른다. 지역마다 언어가 달라도 전 세계에서 미사가 같은 구조와 내용으로 봉헌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로마 미사 경본」은 각 전례일에 따른 미사의 고유 전례문들을 수록한 것이다. 경본(經本)의 라틴어판 원본은 교황청 경신성사성이 발행하며, 번역본은 각국 주교회의가 그 나라 말로 번역한 뒤 교황청의 추인을 받아 지역 교회의 공식 미사 경본으로 사용한다. 지역 교회의 상황을 반영한 적응 지침과 고유 전례일(축일ㆍ기념일), 전례일 등급 변경도 교황청의 추인을 받아 확정된다.(교회법 제838조 참조)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미사 경본의 역사초창기 교회는 고정된 전례문 없이 즉흥적으로 기도를 바쳤다. 3∼4세기 들어 미사 전례문을 글로 적어 낭송했으나 경본의 형태를 갖춘 것은 아니었다. 사제가 전례문을 즉흥적으로 낭송하거나 임의로 작성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407년 카르타고 공의회는 “모든 전례문은 공적으로 교회의 인준을 받아야 한다”면서 전례문을 고정했다. 6세기 이후 한 권으로 묶은 전례집이 등장하는데, 이를 「성사집」(聖事集)이라고 한다. 당시에는 ‘미사’라는 용어가 아직 사용되지 않았고, 성찬례를 그냥 ‘성사’라고 불렀다. ‘미사 경본’이라는 용어는 중세 때부터 사용됐다. 기도문과 독서, 성가 등 미사에 사용되는 모든 전례문을 한 권으로 모은 「통합 미사 경본」 형태였다. 「통합 미사 경본」 형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까지 유지되다가 공의회 이후 다시 「미사 경본」, 「미사 독서」, 「미사 성가」로 분리됐다.미사 경본의 역사를 크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전과 이후로 나눌 때 이전 시기를 대표하는 것은 1570년 비오 5세 교황이 반포한 미사 경본이다. 중세 시대 성당과 수도회별로 개별적으로 사용하던 미사 전례문을 통일한 것으로, 공의회 직전까지 수차례 개정됐지만 기본 구조는 변함이 없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전례 개혁으로 1970년 새 미사 경본이 나오기까지 400년간 사용됐다. ‘비오 5세 성사집’이라고 부른다. 바오로 6세 교황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전례 개혁의 결과를 반영해 1970년 펴낸 것이 「로마 미사 경본」(표준판)이다. ‘표준판’이라는 말이 붙은 것은 라틴어 미사 경본을 표준으로 삼아 각 나라말로 번역한다는 것을 전제로 했기 때문이다. 공의회 이전에는 전 세계 모든 미사를 라틴어로 봉헌했기 때문에 라틴어를 모르는 일반 신자들은 그 의미를 알기가 어려웠다. 이 미사 경본은 성경 말씀이 차지하는 비중을 기존 20%에서 80%까지 늘렸다. 표준판이 반포된 지 5년 후인 1975년에는 그동안 발견된 개선점을 반영한 「로마 미사 경본」(제2표준판)이 나왔다. 그때부터 27년이 흐른 2002년에는 제3표준판이 반포됐다. 제3표준판은 표준판이 반포된 후 30여 년간 각 나라 교회가 모국어로 미사 경본을 번역하면서 교황청의 인가를 받아 적용했던 수많은 ‘적응’ 사례를 반영한 것이다.제3표준판의 사소한 오류를 수정하고 보충한 것이 2008년에 나온 제3표준 수정판으로, 현행 「로마 미사 경본」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 지금까지 네 차례에 걸쳐 반포된 미사 경본들은 모두 같은 구조를 지니고 있기에 통틀어 ‘바오로 6세 성사집’이라고 부른다. ▨「로마 미사 경본」(한국어판) 주요 변경 내용 「로마 미사 경본」 한국어판은 라틴어판 원본(제3표준 수정판)을 우리말로 온전하게 옮긴 것이다. 변경된 내용이 이전보다 원본의 본래 뜻에 더욱 충실하다는 의미다. 번역은 주교회의 전례위원회가 맡았다. 변경된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미사 통상문‘또한 사제의 영과 함께’에서 추가된 ‘영’(spiritu)은 사제 개인의 영혼이 아니라 사제가 성품성사 때 받은 사제의 은사와 직무를 가리킨다. 사제직이 그만큼 중요하다는 의미를 일깨운 것이다. ‘너희와 많은 이를 위하여’에서 바뀐 ‘많은’은 “이는 죄를 용서해 주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8)라는 성경 본문을 그대로 살린 것이다. 과거에 ‘모든’이라고 쓴 것은 예수 그리스도 속죄 예물의 보편성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의 죄를…’에서 ‘보라!’는 과거에는 본문에 있다가 삭제한 것을 이번에 다시 살렸다. ▲전례일 명칭 ▲한국 고유 전례력 ‘한국 성직자들의 수호자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 순교자 대축일’이 신심 미사로 조정된 것은 같은 성인은 한 번만 기념한다는 원칙에 따라서다. 한국 교회는 ‘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9월 20일)에 김대건 신부를 기념하고 있다. ▲기타 미사 전례문을 노래로 바칠 수 있도록 라틴어판 「로마 미사 경본」의 그레고리오 악보를 다듬어 실었다. 라틴어판의 4선 악보 가락을 존중하되, 사제와 신자들이 우리말로 쉽게 노래할 수 있도록 5선 악보로 바꿔 편곡한 것이다. 음높이는 적절히 조정할 수 있다. 주교회의가 「로마 미사 경본 총지침」에 따라 마련하고 사도좌의 추인을 받아 미사 경본에 삽입한 ‘한국 교구 적응 지침’도 게재했다. 장례 예식에서 고별식은 반드시 시신이 있을 경우에만 거행해야 하지만, 한국 교회는 ‘한국 교구 적응 지침’에 따라 천재지변이나 부득이한 사정으로 유골만 있거나 시신이 없는 경우에도 고별식을 거행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경우 기도문은 알맞게 바꿔 적용해야 하며, 유골도 없는 경우에는 성수 뿌림과 분향을 하지 않는다. 전례 거행에 가장 어울리는 악기는 오르간이다. 그러나 한국 교회는 관악기와 현악기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으며, 타악기는 특별한 경우에 신중하게 검토해 사용해야 한다. 악기의 사용은 거룩한 목적에 맞아야 한다. 새 미사 경본은 라틴어판에는 없지만 주교회의가 마련해 교황청의 추인을 받은 한국 고유 미사 전례문을 수록했다. ▨「미사 독서」와 「복음집」 이번에 「로마 미사 경본」(한국어판)과 함께 나온 「미사 독서」는 교황청이 정한 미사 독서 목록과 한국 교회 고유의 미사 지향에 따른 독서와 복음, 화답송과 복음 환호송을 집대성한 책이다. 「미사 독서」가 교황청 추인을 받아 공식적으로 발행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전례 시기와 미사 지향에 따라 총 4권으로 이뤄졌다. 「미사 독서」 독서와 복음 본문은 한국 천주교 공용 「성경」을 따랐고, 화답송 등에 쓰이는 성경의 시편은 「성경」 본문을 전례용으로 윤문한 전례 시편을 따랐다. 「복음집」은 미사 독서 중에서 복음만을 모아 복음서 각 권과 장절을 순서대로 엮은 책이다. 복음집은 주교ㆍ사제 서품식 등의 장엄 미사와 주교좌성당을 비롯한 크고 웅장한 성당의 미사에 쓰인다. 교회는 복음에 존경을 표시하는 행위로 미사 때 복음집에 대해 행렬, 높이 들어 올림, 입맞춤 또는 절, 분향 등을 하고 있다. 「복음집」은 보통 겉표지를 품위 있고 아름답게 장식해 사용한다. 주교회의 홍보국장 이정주 신부는 “신자들에게는 이전 미사 통상문과 거의 달라진 것 없이 사소한 것들만 바뀐 것으로 보이지만 미사 통상문의 문구 하나하나가 신학적으로는 매우 깊은 의미를 지니고 있다”면서 “새 미사 경본 발행을 계기로 신자들이 미사와 미사 전례에 쓰이는 문구 한 마디 한 마디의 의미를 좀 더 깊이 새겨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cpbc2017.10.18

갈라진 형제들, 다름을 인정하고 일치를 꿈꾸다일치 주간(18~25일) - 교회 분열의 역사와 일치 운동의 발자취 2014년 창립한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는 한국 그리스도인의 일치를 위해 다양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사진은 2017년 1월 한국신앙직제가 개최한 일치 기도회에서 한국 그리스도교 형제 교단 대표들이 참석자들을 축복하는 장면. 가톨릭평화신문 DB 2000년 전 예수 그리스도가 세운 그리스도교는 크게 두 번의 분열을 겪었다. 먼저 1054년에 정교회가 떨어져 나갔고, 500년이 지난 16세기에는 종교개혁으로 개신교가 ‘딴살림’을 차렸다. 그리스도교는 이런 역사를 거쳐 가톨릭과 정교회, 개신교로 크게 삼등분됐다. 하나가 되기 위해서는 갈라선 이유부터 알아야 한다. ‘일치 주간’을 맞아 교회 분열의 역사와 일치 운동의 발자취를 살펴본다. 정교회 분리초창기 그리스도교는 로마를 비롯한 콘스탄티노플(터키 이스탄불)ㆍ알렉산드리아(이집트)ㆍ안티오키아(시리아)ㆍ예루살렘(이스라엘) 등 5개 도시 총대주교 중심 체제로 운영됐다. 최고 지위는 로마 주교(교황)가 갖고 있었고, 콘스탄티노플 주교가 그다음이었다. 5명의 총대주교는 주변 교회들을 이끌면서 고유의 전례와 관습들을 발전시켜 나갔다. 느슨한 형태의 지방자치제였다. 로마를 중심으로 나머지 네 지역 교회는 모두 로마 동쪽에 있었기 때문에 동방 교회라고 불렸다. 7세기 이후 안티오키아ㆍ예루살렘ㆍ알렉산드리아가 이슬람 세계로 편입되면서 로마와 콘스탄티노플만이 그리스도교의 양대 산맥으로 남게 됐다. 로마와 콘스탄티노플 교회는 애초부터 이질적인 요소가 많았다. 로마 교회는 라틴어를, 콘스탄티노플을 중심으로 한 동방 교회는 그리스어를 쓰는 등 전례 언어가 달랐고, 제도나 관습도 많이 달라 종종 마찰을 빚었다. 476년 서로마 제국이 멸망한 후에는 정치적 이유까지 겹쳐 심각한 양상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두 교회의 균열이 가시화한 것은 8세기 성화상 파괴 논쟁에서였다. 콘스탄티노플을 지배하고 있는 비잔티움 황제가 우상숭배라는 이유로 성화상을 파괴하자 로마 교황이 이를 정죄하면서 관계가 틀어지기 시작했다. 신학적으로는 필리오퀘(Filioque, ‘아들로부터’) 논쟁이 있었다. 로마 교회는 성령이 성부뿐만 아니라 성자로부터도 나온다고 믿었지만 동방 교회는 오직 성부로부터만 나온다고 주장했다. 성찬례 빵에 누룩을 넣는 문제, 로마 교황의 수위권 인정 등을 둘러싸고도 크고 작은 마찰이 끊이지 않았다. 이런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해 교황 레오 9세는 1054년 훔베르트 추기경을 교황 사절로 콘스탄티노플에 파견했으나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이를 거부했다. 그러자 훔베르트 추기경은 파문 교서를 작성한 후 콘스탄티노플 성 소피아 대성당 제대 위에 놓고 돌아갔다.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파문 교서를 작성한 훔베르트 추기경을 똑같이 파문한 것이다. 이로써 두 교회는 완전히 돌아서게 됐다. 동방 교회는 자신들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정통 신앙을 지닌다는 뜻에서 스스로를 정교회(正敎會)라고 부른다.종교개혁15세기 유럽 국가들은 중앙집권적인 군주제로 발전하면서 자국의 이익을 중시하고 교회를 예속하려는 경향을 띠었다. 사회적으로는 도시와 지방의 빈부 격차가 심해졌다. 문화적으로는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르네상스 인문주의가 그리스도교 인문주의 또는 성서적 인문주의로 발전하면서 교회 개혁을 촉구했다. 교회 내부는 한마디로 총체적인 위기 상황에 처해 있었다. 교황들은 출신 가문의 세력 확장과 자신의 명예를 드러내는 데 열중했다. 비복음적인 부조리가 팽배했고, 사제에 대한 불신이 치솟았다. 이 무렵 교황청은 로마 성 베드로 대성전 신축 기금을 모금하기 위해 대사부(大赦符)를 발행했다. 대사부는 죄를 용서해 주는 면죄부가 아니라 고해성사 때 사제가 정해주는 보속을 줄여주는 증서였다. 그런데 이를 면죄(免罪)로 과장하고 상품화하는 사례가 적지 않았다. 독일의 루터는 1517년 이에 항의하는 95개 조 명제를 만들어 동료들에게 보냈다. 종교개혁의 단초가 된 사건이다. 95개 조 명제는 큰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루터는 교회에서 파문됐으나 교회 개혁 저술을 통해 자신의 사상을 전파했다. 종교개혁의 바람은 이웃 스위스로 번졌다. 츠빙글리는 자신의 성서관과 루터 종교개혁의 영향을 받아 1523년 교회 개혁안을 제시하고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제네바에서는 칼뱅이 시민들의 지지를 받아 종교개혁에 착수했다. 영국도 종교개혁의 대열에 합류했다. 영국 왕 헨리 8세(1491∼1547)는 관면으로 혼인한 아내(앤 블린)와 이혼하기 위해 관면의 무효성을 주장했는데, 교황청이 이를 받아들이지 않자 단독으로 이혼을 추진하면서 영국 왕이 영국 교회에 대한 수위권을 갖도록 했다. 이로써 영국 교회도 가톨릭교회에서 떨어져 나갔다. 성공회(聖公會)의 탄생이다.종교개혁 결과 수많은 개신교 교파가 등장했다. 개신교는 교황의 수위권과 성전(聖傳)을 인정하지 않고, 오직 성경만을 신앙의 근거로 삼는다. 성경에 대한 해석이 각기 다르다 보니 새로운 교파가 계속 생길 수밖에 없는 구조다. 종교개혁은 이전부터 있었던 가톨릭의 쇄신 운동에 힘을 싣는 긍정적인 결과도 낳았다. 종교개혁은 ‘교회는 항상 개혁돼야 한다’는 큰 교훈을 남겼다. 교회 일치 운동등을 돌린 형제 교회들은 쉽게 화해의 손길을 내밀지 못한 채 남남처럼 지내왔다. 가톨릭의 교회 일치 움직임이 표면화된 것은 19세기 중반 교황청이 일치 문제에 관심을 갖기 시작하면서다. 교황 레오 13세(재위 1878~1903)는 동방 교회와 개신교도를 일컫던 ‘열교자’와 ‘이단자’라는 부정적인 표현 대신 ‘갈라진 형제들’이라고 부름으로써 일치 운동의 발판을 마련했다. 교황 요한 23세(재위 1958~1963)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에 동방 교회와 개신교회의 대표들을 초청하는 한편 ‘그리스도인 일치 촉진 사무국’을 창설했다. 교황 바오로 6세(재위 1963~1978)는 1965년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와 가톨릭과 동방 교회 간 상호 파문(1054년)을 취소하는 공동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가톨릭과 동방 교회 일치 운동의 신기원을 이룩했다. 바오로 6세는 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을 통해 교회 일치에 관한 가톨릭교회의 원칙과 방향을 제시했다. 이러한 흐름을 좇아 교황청 그리스도인 일치촉진평의회와 개신교의 세계교회협의회 신앙직제위원회는 성 바오로 사도의 회심 축일(1월 25일)을 정점으로 1월 18일부터 25일까지 일주일간을 ‘그리스도인 일치 기도 주간’으로 정하고 1968년부터 매년 일치 기도 행사를 열고 있다.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재위 1978~2005)는 1998년 루터교와 함께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을 발표, 450년간 지속된 가톨릭과 루터교 간 논쟁의 종지부를 찍었다. 한국 가톨릭도 1965년 주교회의 산하에 ‘전국 그리스도교 재일치위원회’(현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를 설립하면서 일치 운동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1960년대 후반부터 1970년대까지 형제 교단들과 성경을 공동으로 번역한 것을 비롯해 합동 기도회, 일치 포럼, 그리스도교 종교 지도자 모임 등 일치를 위한 다양한 노력을 기울여왔다. 일치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구체적 연대의 틀이 필요하다는 데 뜻을 함께한 교단 대표들은 2014년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한국신앙직제)를 창립했다. 이전까지의 일치 운동이 일치에 대한 관심을 증진하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면 한국신앙직제를 통한 일치 운동은 신학적 대화 등 일치를 위한 본격적 활동에 중점을 두고 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백영민2018.01.10

교황과 주교들, 젊은이 성소를 말하다 경청하라, 식별하라, 실천하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3월 19일 로마에서 열린 시노드 예비 모임에서 젊은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있다. 교황은 젊은이들에게 주님의 부르심을 주의 깊게 경청하고, 잘 식별해서, 두려워하지 말고 실천하라고 강조한다. 【CNS 자료 사진】 프란치스코 교황은 올해 성소 주일 담화에서 3가지 열쇳말을 젊은이들에게 제시했다. 경청하라, 식별하라, 실천하라. 경청은 각자 마음 안에서 울려 퍼지는 하느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다. 그런데 그 부르심은 우리가 일상에서 매일 듣고 접촉하는 다른 어떤 소리보다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성령께 마음을 열고 침묵 속에서 들어야 한다고 교황은 조언한다. 경청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식별이다. 식별은 그분 목소리의 의미를 이해하고, 해석하고, 어떤 결정을 내리는 데 꼭 필요한 과정이다. 교황은 “성소를 증진하기 위해 노력하지 않는 것은 자살 행위이고, 어머니인 교회에 직접 ‘불임 시술’을 하는 것”(예수회 형제들과의 대화)이라며 성소 증진 노력을 촉구하면서도 그에 못지않게 식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성소 주일은 사제직과 수도 생활에 특별히 봉헌되는 성소를 위해 묵상하고 기도하는 날이다. 그런데 오는 10월 3일 개막하는 세계주교대의원회(주교 시노드) 제15차 정기총회에서도 ‘성소’와 ‘식별’ 문제를 다룬다. 주제가 ‘젊은이, 신앙과 성소 식별’이다. 물론 주교 시노드에서 다루는 성소는 젊은이 전체를 대상으로 한다. 젊은이들이 신앙 안에서 기쁘게 살아가려면 교회건 직장이건 가정이건 각자 자리에서 하느님의 목소리를 잘 듣고 그에 따라야 한다는 넓은 의미의 성소다. 그분 목소리에는 성직자와 수도자의 길로 부르시는 초대도 들어 있기에 성소 주일과 동떨어진 주제는 아니다. 시노드 예비 문서는 식별을 이렇게 설명한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에서 벌어지는 일들이 그 자체로는 불명확하고 모호하더라도, 여러 가지 해석에 열린 마음을 지니고 있다면, 성령께서는 그러한 일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 그 일들의 의미를 드러내고 결정을 내리는 데 필요한 것이 식별이다.”아울러 실천과 관련해 교황은 젊은이들, 특히 성소를 찾는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고 쉼 없이 당부한다. “두려워하지 마라, 마리아야. 너는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루카 1,30)와 “왜 겁을 내느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마르 4,40)는 성구를 즐겨 인용한다. 하느님이 좋은 결과로 이끌어주실 것이라는 믿음을 갖고 용기를 내어 ‘일어서라’는 호소는 웅변적이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모든 일과 모든 이에게서 자기방어를 하느라 내향적, 폐쇄적이 되고 무기력한 채로 남을 것이다. 우리는 행동해야 한다! 자기 안에 갇혀 있지 마라! 성경에서 ‘두려워하지 마라’는 표현은 각각 다르게 365번 반복된다. 주님께서는 우리가 한 해 동안 날마다 두려움에서 벗어나기를 바라신다는 말인 듯하다.”(3월 25일 제33차 세계 젊은이의 날 담화)시노드는 성소를 찾는 젊은이들과 ‘함께 걷는’ 문제도 심도 있게 논의할 것으로 예상된다. 시노드 사무국은 첫 제자들을 부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 가득한 눈길(요한 1,35-51 참조)을 동반자의 가장 이상적인 모습 1순위로 올려놨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cpbc2018.04.19
![[신앙단상]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6142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류정호(테레로사, 차<茶> 문화 연구가) 우리 성당은 모자원 고개에 있습니다. 신자들은 성당으로 가는 두 갈래 중의 한 길을 ‘깔딱고개’라고 부릅니다. 성당으로 올라가는 길이 가팔라 숨이 깔딱 넘어간다고 붙인 말인가 해요. 깔딱고갯길에 무궁화 꽃이 천연스레 피어 있고, 무궁화 꽃 그늘에서 숨을 고르는 어르신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번집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한 발 한 발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술래잡기 놀이하던 옛 추억을 떠올리시는 걸까요. 무궁화 꽃이 피고 지는 여름 막바지에 본당 홍보분과장의 소임을 마쳤습니다. 지난 4년간을 떠올리니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가 새삼 놀이만이 아니라고 생각됩니다. 눈을 감은 술래가 벽을 보고 ‘무궁화 꽃이…’를 외치다 고개를 돌릴 때 동무들은 동작을 멈추었습니다. 다시 ‘무궁화 꽃이 …’를 외치는 동안 동무들은 내 등 뒤로 바짝 다가왔습니다. 오랜 냉담을 풀고 성체를 영하면서 당당한 신자가 된 10년 전, 미사 때마다 강론 말씀이 다디달았습니다. 그런데 햇살같이 다독이는 성경 말씀 중에 ‘오병이어’의 기적은 마음 한구석에 의문으로 남았어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수천 명의 사람이 먹고 또 남을 수 있다니…. 아둔한 제 머리로는 터무니없는 기적이었지요. 그러다 본당의 크고 작은 행사에 함께하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감지하게 되었습니다. 봉사자들의 손과 발이 빵 수천 개와 물고기 수천 마리를 만들더군요. 어디 그뿐입니까. 봉사를 받은 신자들도 받은 만큼 또 누군가에게 나누고요. 애초에 없던 길도 사람들이 오가면서 만들어진 것처럼 나눔도 그러해서 오병이어의 기적을 이루곤 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현실로 만들어가는 그들이 눈부시게 아름다웠습니다. 성경은 머리로 이해하는 책이 아니고, 하느님께서 만드신 사람은 모습만이 아니었습니다. 하느님의 숨결은 사람의 마음결까지 그렸습니다. 마음이란 기적을 품는 오병이어의 텃밭이었습니다.4년 전 본당에 홍보분과가 신설되고 분과장으로 임명받은 후, 주임 신부님의 제안으로 소식지 ‘동행’을 만들었습니다. 그토록 하고자 했던 봉사의 길도 막상 깔딱고개였습니다. 새벽녘까지 책상에 앉아 있을 때가 수두룩했고요. 광고가 생각만큼 들어오질 않아 투덜거리기도 했습니다. 들어온 글을 다듬으며 내 일에 이렇게까지 공을 들인 적이 있었던가 하면서 생색내기도 바빴습니다. 디자인이 제시간에 나오질 않아 머리가 우지끈거렸고, 자잘한 푸념을 드러내어 불편을 끼치기도 했습니다. 급기야 소식지 발행을 두 번이나 건너뛰는 사정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니 생색내기와 푸념의 깔딱고개 같던 ‘동행’이 실은 ‘오병이어’의 현장이었습니다. 하느님과 함께, 하느님 안에서, 신자들과 함께 나누고 걸어가는 이야기를 엮어내던 ‘동행’은 이름대로 모든 분의 손과 발이 동행한 기적이었습니다. 글을 부탁해도, 대담을 청해도 흔쾌하게 응해 주셨고, 제작비가 모자라도 발행일을 맞춰 신자들 손에 ‘동행’이 들렸습니다. 편집장 한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한 분 한 분의 이름을 다 불러 하느님께 아뢰고 싶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느님도 새벽녘까지 글을 다듬던 저와 동행하셨습니다.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구호를 외칠 때 제 등 뒤에서 웃고 있던 동무같이 말입니다. 없던 길도 사람들이 오가며 만들어낸 것처럼 희망도 다져야 이뤄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런 희망을 품게 해주신 하느님은 언제나 저의 술래이신 오직 한 분입니다. 평화신문2017.09.19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63)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cpbc.co.kr/CMS/newspaper/2017/08/rc/692929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63)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가장 큰 사랑은 그리스도처럼 행동하는 사랑로마 성 바오로 대성전에 세워져 있는 바오로 사도의 입상. 가톨릭평화방송DB사랑의 찬미가엔 ‘사랑’ 열 번 등장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서 많은 사람에게 알려진, 어쩌면 바오로 사도의 서간 중에서 가장 유명한 내용은 흔히 ‘사랑의 찬미가’라 부르는 13장일 것입니다. 열 번에 걸쳐 ‘사랑’(아가페)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이 찬미가는 바오로 사도의 서간에서 거의 유일한 내용에 속합니다. 왜냐하면, 그는 사랑에 대해 이곳을 제외하고는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런 이유에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사랑’은 공동체에 필요한, 요청되는 사랑이기도 합니다. 신약성경에서 우리말의 사랑을 나타내는 용어는 셋으로 아가페, 에로스, 필리아입니다. 한때 이 용어들은 서로 구별되는 사랑을 나타내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아가페는 신적인 사랑을, 에로스는 육체적인 사랑을, 그리고 필리아는 형제적인 사랑을 일컫는 것으로 보기도 하지만 신약성경에서 사용된 용례를 보면 뚜렷하게 구분되지 않습니다. 특히 신약성경이 쓰일 당시 아가페와 필리아는 구별 없이 일반적인 사랑을 나타내는 용어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큰 믿음 있다해도 사랑이 없으면 우선 사랑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가장 큰 계명에 관한 가르침입니다.(마르 12,30-31)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요약하는 하느님을 향한 사랑과 이웃을 향한 사랑은 예수님을 따르는 이들에게 필요한 자세이기도 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사랑의 찬미가는 이 가르침을 기억하게 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미 보았던 것처럼 다양한 은사들과 그리스도의 공동체를 설명하면서 더 큰, 더 고귀한 은사를 추구하라고 권고한 바 있습니다. 그것에 덧붙여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이제 여러분에게 더욱 뛰어난 길을 보여 주겠습니다.”(1코린 12,31) 이후에 전해지는 사랑의 찬미가는 바오로 사도가 말한 ‘더욱 뛰어난 길’을 소개하는 것처럼 들립니다.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고 모든 신비와 모든 지식을 깨닫고 산을 옮길 수 있는 큰 믿음이 있다 하여도 나에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것도 아닙니다.”(1코린 13,2) 사랑은 마치 신비를 깨닫고 지식을 얻는 것보다 또 믿음보다 더 중요한 것처럼 표현됩니다. 이러한 사랑에 대한 강조는 역설적으로 당시의 상황 안에서 사랑의 모습이 가장 결여된 것일 수도 있습니다. 무엇보다 사랑의 가치가 더욱 절실한 것이었는지도 모릅니다.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의 내용을 생각해 보면, 그들은 성령으로부터 오는 은사에 많은 관심을 두고 있었고 여전히 바오로 사도가 보기에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적절하지 못한 모습도 많았습니다. 그런 이들에게 가장 절실한 덕은 사랑입니다. 또 한편으로 사랑의 찬미가는 코린토 공동체에 보내는 권고이면서 바오로 사도 자신을 향한 기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십자가 죽음처럼 실천하는 사랑 사랑의 찬미가는 크게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첫째(1코린 13,1-3)와 셋째 단락(13,8-13)이 다른 성령의 선물들과 사랑에 대해 비교하는 내용이라면 둘째 단락(13,4-7)은 사랑 자체에 대해 설명하는 부분입니다. 흔히 많은 이들은 사랑에 대해 감정적인 차원을 생각합니다. 사랑을 정의하기란 어려운 일이지만 바오로 사도가 말하고자 하는 사랑이 감정적인, 지성적이거나 이성적인 것과는 다른 차원의 것은 분명 아닙니다. 특히 신앙인들에게 사랑은 더욱 그렇습니다.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인간에 대한 가장 큰 사랑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신약성경에서 그리고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사랑은 감정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구체적인 행동을 통해 표현되는 사랑입니다. 감정으로서의 사랑이 아닌 윤리적 덕목으로서의 사랑을 이야기합니다. 또한, 바오로 사도가 말하는 사랑은 하느님 중심적인 사랑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본받도록 신앙인들에게 권고했듯이(1코린 11,1) 사랑 역시 하느님과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을 통해 구체적으로 실천될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사랑은 종말론적입니다. 모든 것을 믿고 바라고 견디어 내는 사랑은 현실의 어려움을 넘어 하느님을 향하게 해줍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김지항2017.08.23
[사설] 말과 행동으로 사랑합시다 17일은 자선 주일이다. 한국 교회는 1984년부터 해마다 대림 제3주일을 자선 주일로 지내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기도하고 사랑을 실천하고 있다. 주교회의 사회복지위원회 위원장 김운회 주교는 올해 자선 주일 담화를 통해 “주님의 자비와 사랑의 연대로 인간의 존엄을 회복하자”고 당부했다. 또 “빈곤과 소외에 대해 우리의 등을 돌리지 말고,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흘려듣지 말자”고 호소했다.프란치스코 교황은 현대 세계의 가난을 고통, 소외, 억압, 폭력, 고문과 옥살이, 전쟁, 자유와 존엄의 박탈, 무지와 문맹, 응급 의료 상황과 일자리 부족, 인신매매와 노예살이, 망명, 극빈과 강제 이주, 노동 착취, 사회 불평등, 도덕적 타락, 대중의 무관심 등의 형태로 드러난다고 정의했다. 그리스도인들이 가난한 이들을 도와야 하는 이유는 예수님께서 가장 작은 이와 자신을 동일시하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에게 주어라. … 그러고 와서 나를 따라라”(마태 19,21)고 하셨다.최근 기부금을 개인 돈처럼 사용한 사건이 연이어 발생하면서 자선기금이 급격히 줄고 있다고 한다. 이를 증명하듯 통계청이 발표한 ‘2017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현금 기부를 하겠다는 응답이 2011년 36.4%에서 올해 26.7%로 급락했다. 사회 전반에 불신이 가득할 때일수록 그리스도인들이 나서서 가난과 섬김, 개방과 충실함의 삶을 살아야 한다. 자선은 조건없는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응답이다.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라는 성경 말씀을 명심해야 하겠다. 평화신문2017.12.13

단풍 드는 계절, 신앙의 깊이 더해줄 성경 해설서깊어가는 가을, 책 읽기 딱 좋은 계절이다. 주님 말씀을 묵상하고 더 잘 알아들을 수 있도록 해설해 주는 책을 읽는 것은 신앙인으로서 더없는 기쁨일 것이다. 성경과 관련한 신간을 모아봤다. 로마서 강해 - 하느님의 의로움에 이르는 길 로마서 강해 - 하느님의 의로움에 이르는 길이영헌 지음/바오로딸/2만 2000원바오로 사도의 4대 서간은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ㆍ둘째 서간을 가리킨다. 그중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바오로 사도의 대표 서간으로 꼽는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과 초대 그리스도교의 가르침을 체계적으로 설명한 가장 긴 서간(16장)으로, 균형감 있고 사색적이며 전개 방식이 논리 정연할 뿐 아니라 다양한 성경 논증과 주요 신학 사상이 깊고 폭넓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성서학 박사 이영헌 신부의 「로마서 강해」는 성경을 잘 모르는 사람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한을 설명하고 있다. 저자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헬라어 원문에 따라 자세하게 풀이하며 주요 신학 사상을 간결하게 정리했다. 특히 하느님의 진노, 하느님의 의로움, 그리스도의 사랑 재현, 믿음의 길, 모든 사람을 위한 구원, 성령의 인도에 따른 삶, 그리스도를 본받는 공동체 생활 등에 관한 바오로의 주요 신학 사상을 설명하고 있다.마태오 복음서다니엘 J. 해링턴 지음/ 조장윤 옮김/ 대전가톨릭대학교 출판부/ 2만 5000원대전가톨릭대학교 출판부가 펴낸 성경 연구 시리즈 제1권이다.책은 마태오 복음서 주석서로, 입문자를 위한 마태오 복음서의 기본 지식뿐 아니라 면밀한 해석을 제공한다. 성경 본문에 대한 주석학적 해석을 기초로 하면서 단락 전체의 의미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마태오 복음서는 유다인들을 대상으로 작성된 문헌이다. 그래서 저자는 복음서 본문을 유다계 배경에 비춰 설명하고 그리스도교 신학과 유다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를 고찰한다. 저자는 마태오 복음서를 “유다인들의 임금으로서 예수에 대한 역설적인 고백과 성경의 완성”이라고 정의한다. “오랜 세기 동안 그리스도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육체적 고통에 주의를 집중했었다. 이것의 강조가 중요함을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마태오와 다른 신약성경 저자들은 예수의 십자가형 의미에 마음 씀이 또한 중요하다는 것을 제시한다. 예수의 죽음을 해석함에 있어서 두 가지 중요한 요소는 유다인들의 임금으로서의 그의 신원과 성경에 표현된 대로 하느님의 뜻에 대한 그의 순종이다.”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 성경 IX - 코린토 1ㆍ2서제럴드 브레이 엮음/ 한국교회학연구회 안봉환 옮김/ 분도출판사/4만 5000원바오로 사도가 코린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그리스도교의 성경에서 매우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코린토 서간을 주해한 교부들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이는 단연 요한 크리소스토무스다. 그가 남긴 코린토 1ㆍ2서에 관한 77편의 강해는 실제 생활을 예로 든 뛰어난 설명의 보고다. 「교부들의 성경 주해 신약 성경 IX - 코린토 1ㆍ2서」는 요한 크리소스토무스 강해 외에도 오랫동안 교회에서 높이 평가받아 온 디디무스와 세베리아누스, 테오도루스의 주해 단편들을 실었다.한국교부학연구회는 “「교부들의 성경 주해- 코린토 서간」편은 신약 성경 본문을 읽는 완전히 새로운 길을 열어 줄 것”이라며 “교부들의 사목적이며 신학적인 해설은 열린 마음과 정신으로 바오로 서간을 다시 읽고자 하는 이들에게 영적이며 지적인 자양분을 제공해 주리라 확신한다”고 추천했다.시편 4289편전봉순 지음/바오로딸/2만 1000원한님성서연구소와 바오로딸출판사가 공동 기획한 ‘거룩한 독서를 위한 성경 주해’ 총서 시리즈 중 구약 성경 시편 주해 두 번째 권으로 출간된 책이다. 구약을 전공한 전봉순(예수성심전교수녀회) 수녀는 이 책에서 시편 42─89편의 특징과 각 장과 절마다 자세한 주를 달아 시편 전체의 문맥 안에서 4289편을 이해할 수 있도록 했다. 하느님 백성의 기도이며 그리스도교회의 기도인 시편은 찬미와 찬양, 감사, 청원, 회개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책은 하느님을 그리워하는 우리 영혼의 거룩한 갈망(42편)과 현실적인 어려움에 부딪혀도 주님께 믿음을 두는 한 두려워할 이유가 없음(46편)을 전해준다. 또 회개를 통해 의롭고 거룩하게 되기를 가르치며(51편), 하느님께 모든 문제를 드러내고 그분이 해결해 주실 것을 전적으로 믿고 기도하도록 이끌어 준다(59편).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손삼석 주교는 “이 책은 성경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맛들이도록 도우며, 말씀을 깨닫고 기뻐하며 더욱 행복하고 자유롭게 살아가도록 이끌어 준다”고 추천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백영민2016.11.02
![[추기경 정진석] (75·끝) 희망을 안고 다시 하느님께](//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2556_1.0_titleImage_1.jpg)
[추기경 정진석] (75·끝) 희망을 안고 다시 하느님께“추기경님,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 정진석 추기경은 2012년 6월 20일 정든 명동 주교관을 떠나 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사제관으로 거처를 옮겼다. 사진은 혜화동본당 신자들과 혜화유치원생들이 피켓과 꽃다발을 들고 정 추기경을 환영하는 모습. 서울대교구 홍보국 제공 2012년 6월 20일. 정진석 추기경이 명동 주교관을 떠나 김수환 추기경이 머물렀던 서울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 내 사제관으로 거처를 옮기는 날이었다. 이날따라 하늘은 맑고 높아 보였다. 이날 아침도 여느 때와 다름이 없었다. 정 추기경은 교구청에서 교구청 사제들과 아침 미사를 지내고 아침 식사를 하고 숙소로 들어와 주교관을 떠날 채비를 마쳤다. 정 추기경은 오전 10시가 지나면서 정들었던 교구청 숙소를 나왔다. 교구청 마당에 교구청 사제들과 직원들이 늘어서서 마지막으로 명동을 떠나는 정 추기경을 배웅했다. “추기경님, 건강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정 추기경은 얼굴에 미소를 머금은 채 한 사람 한 사람 손을 잡으며 인사를 나눴다. 정 추기경과 오랫동안 정이 들었던 주교관 식당 직원들은 뒤돌아서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그러다 문득 정 추기경은 청주교구를 떠나던 때가 떠올랐다. 그 당시가 그의 일생에서 가장 힘든 때였다. 교구 한 해 예산의 10배나 되는 100억 원을 빌려 어렵게 병원 인수를 결정했는데, 얼마 후 덜컥 서울대교구장으로 임명됐기 때문이다. 다른 곳으로 떠날 줄 알았으면 그런 큰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에게 대책을 세울 때까지 부임 일정을 늦춰달라고 요청까지 했지만 어렵다는 대답을 들었다. 결국 그는 그해 6월 서울로 올라와야 했다. 청주교구에 100억 원이라는 큰 빚을 남겨 몹시 미안하고 착잡한 마음이었다, 겉으로는 표현하지 않았던 그는 서울대교구청을 떠나는 이 순간에도 청주교구 사제들과 신자들에게 미안하고 또 감사한 마음 뿐이었다.정 추기경은 손을 들어 인사를 하고 명동을 출발해 혜화동 대신학교로 향했다. 명동과 혜화동 사이를 그동안 수없이 오갔던 그였지만, 이날은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듯 말없이 차창 밖을 바라보았다. 오전 11시경 대신학교에 도착한 정 추기경은 혜화동본당 신자들과 혜화유치원생들의 환영을 받았다. ‘환영합니다’라고 적힌 피켓과 함께 꽃목걸이도 준비해 정 추기경의 목에 걸어주었다. “이 얼마나 좋은가~ 반가운 님 오신 이 날에~” 혜화유치원생들은 깜찍한 노래까지 준비해 정 추기경을 위해 목청껏 노래를 불렀다. 숙소에 가까이 이르자 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사제들과 같은 숙소에 거주하는 선후배 사제들이 마중 나와 정 추기경의 혜화동 전입을 환대했다. 신부들을 끌어안으며 정 추기경은 반가움을 표시했다. 마당 가득 넘치는 웃음소리에 싱그러운 녹음도 짙었다. 숙소는 사제관 2층의 작은 사무실이 달린 곳이었다. 김수환 추기경께서 거처하셨던 장소였다. 숙소는 그대로 보존돼 있었다. 정 추기경은 전임자인 김 추기경이 은퇴 직전 한 인터뷰가 떠올랐다. 김 추기경은 당시 가능하면 운전 면허증을 따서 전국의 가고 싶은 곳을 마음대로 가고 싶다고 말했다. 그렇게 하지는 못했지만 짧은 순간이라도 자유롭고 싶었던 김 추기경의 속 이야기였다고 생각했다. 정 추기경은 창밖을 바라보며 이제 본인도 새로운 삶을 맞게 됐다고 생각했다.정 추기경의 퇴임 후 생활도 사실 그전과 별반 다를 것이 없었다. 평생 시간표에 맞춰 생활해 왔던 터라 어려운 것은 없었다. 정 추기경은 젊은 시절부터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유지해 왔다. 보통 새벽 5시쯤 일어나 간단한 체조로 운동을 하고 아침기도와 묵상 후 7시 반에 숙소에서 같이 지내는 신부들과 아침 미사를 드린다. 8시에는 함께 식당에서 아침 식사를 한다. 오전에는 숙소와 붙어 있는 집무실로 나와 예방 손님을 만나거나 책을 읽거나 글을 쓴다. 12시 낮 기도와 점심 식사 후 오후 일과도 오전과 비슷하다. 오후에 빼놓지 않는 일정이 있다면 신학대학 구내를 한 시간가량 걷는 것이다. 매일 산책을 하는 것은 오래된 그의 습관이다. 비가 와서 바깥마당을 걷지 못할 때는 실내 조금 넓은 공간에서 어떻게든 걸으려고 노력한다. 저녁 기도와 식사 후에는 평소대로 묵주기도 20단을 바친다. 그리고 아무리 늦어도 9시 반 이전에는 잠자리에 든다. 텔레비전은 필요할 때 뉴스만 잠시 보는 정도다. 정 추기경은 젊은 시절부터 계속해서 책을 쓰고 있는데, 특히 새벽에 하느님을 묵상하고 기도하면서 책을 쓰는 것이 그에게는 가장 소중한 시간이다. 이처럼 정 추기경과 평생을 함께해온 오랜 친구이자 취미는 집필이다. 전에는 주로 영성과 교리, 교회법에 관한 글을 썼는데, 2000년도 초부터는 주로 성경에 관한 책을 쓰고 있다. 정 추기경은 어느 순간부터 성경에 맛 들이고 공부하는 데 큰 재미를 느끼게 됐다. 교구장 재임 중에는 꽉 막혔다는 생각이 들 때마다 성경에 매달렸다. 성경 속 인물에게서 가야 할 길을 찾았던 경험이 유독 많았기 때문이다.하느님께서 주신 긍정적인 성격에 감사하면서 정 추기경은 오늘도 희망을 안고 하느님께 더 가까이 가려고 애쓰고 있다. 신학생 시절처럼 시간표대로 기도하고 공부하고 글을 쓰고 묵상을 하며 주님 목소리에 귀 기울이고, 끊임없이 대화하려 노력하는 행복한 삶이다. * *“추기경님,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요?”“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사람의 행복이 바로 하느님의 뜻입니다.” ※그동안 ‘추기경 정진석’을 애독해 주신 독자 여러분께 감사 드립니다.<회고록을 마치며>한 사람의 일생을, 특히 교회와 역사의 중요한 인물을 회고한다는 것이 저에게는 어쩌면 애초에 무리였습니다. 구술과 자료를 바탕으로 연재를 시작했지만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가톨릭평화신문의 한 기자가 회고록 ‘추기경 정진석’을 읽는 소회를 정 추기경에게 질문했을 때, 정 추기경은 다음과 같이 대답했다고 합니다. “나는 나 자신의 일대기를 읽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을 준비합니다. 회고록을 읽다 보면 내 무덤 앞에 모인 사람들이 내 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다른 사람들 눈에 비친 제 모습이랄까요. 마치 죽은 다음의 나를 미리 보는 것 같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차분한 심정으로 일생을 돌아보는 은총의 시간입니다. 이상할 정도로 죽음이 두렵거나 아쉽게 다가오지 않습니다. 감정적 동요도 없습니다. 회고록은 제가 생을 정리하고 죽음을 잘 준비하도록 돕는 좋은 벗입니다.”정 추기경의 말씀을 전해 들으니 저는 부끄럽고 조금은 위안이 됩니다. 사실 정 추기경의 일생은 고스란히 우리 교회가 겪은 가슴 아픈 역사이며 근대사입니다. 회고록을 집필하면서 나는 고단한 시대를 사셨던 우리의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의 삶을 조금이나마 체험하게 된 것 같습니다.한 사람의 특성을 하나의 표현으로 정의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그래도 제 개인 체험에서 정 추기경은 인간적이며 많은 장점을 지니고 있는 분입니다. 그는 고통스런 과거에 얽매이지 않고 희망과 유머를 잃지 않고 앞으로 나아가는 존재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그 근거는 어렸을 때부터 몸에 밴 신앙의 힘 덕분이라 생각합니다. 매번 과거를 떠올리며 진솔하게 자신의 삶을 옛날이야기 들려주시듯 말씀해주셨던 정 추기경님에게 감사드립니다.허영엽 신부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백영민2017.11.22
![[하느님과 트윗을] (29) 교회는 교회만의 달력이 있나요](//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3239_1.0_titleImage_1.jpg)
[하느님과 트윗을] (29) 교회는 교회만의 달력이 있나요예수님 일생 중 가장 중요한 때를 기념 하느님과 트윗을. 문 : 전례는 무엇인가요.답 : 전례는 교회의 공적인 기도를 의미합니다. 공적인 기도를 통해 우리는 다른 신자들과 함께 하느님과 접촉하게 됩니다. 교회의 전례는 누구나 보고 경험할 수 있습니다. 전례 의식과 전례에서 사용되는 말은 성경과 성전에 근거합니다. 전례는 교회가 하느님께 드리는 예배를 드러내고 표현하는 “상징, 찬가, 행위 전부이다”라고 프랑스 신학자인 돔 게랑줴는 말했습니다.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례는 기본적으로 어디서나 똑같습니다. 언어만 다를 뿐이지 모든 몸짓과 행위가 똑같습니다. 전례는 우리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맞추기 위해 전례의 행위나 말을 바꾸어서는 안 됩니다. 문 : 전례력이 교회의 달력인가요.답 : 교회에는 교회만의 달력인 전례력이 있습니다. 전례 주년에는 대림 시기, 성탄 시기, 사순 시기, 부활 시기 외에 연중 시기가 있습니다. 전례력은 새해인 1월 1일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을 기념하는 주님 성탄 대축일 4주 전 일요일(11월 하순이나 12월 초순)에 시작됩니다. 주님 성탄 대축일은 무척 중요하므로 4주(대림 시기) 동안 준비합니다. 또 예수님의 부활을 기념하는 주님 부활 대축일은 대림 시기보다 긴 40일(사순 시기) 전부터 준비합니다. 교회의 전례 주년은 대림 시기로 시작합니다. 이렇듯 교회에는 전례력이 있어 우리는 예수님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때를 기념할 수 있습니다. 또한, 마리아와 그 밖의 성인들의 축일 역시 기억할 수 있습니다. 문 : 전례력에 담긴 의미는 뭔가요.답 : 전례 주년 동안에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 과거, 현재, 미래와 연결이 됩니다. 구원의 역사, 특히 예수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을 되돌아보면 우리는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지금이야말로 하느님이 내미신 손을 잡기 위해서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가 되기 위해서 하느님께 ‘예’라고 말해야 할 때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우리는 세상의 종말이 아닌 하느님과 영원히 함께할 새 세상이 시작되기를 고대합니다.문 : 대림 시기의 전례는 어떻게 되나요.답 : 대림 시기는 준비와 기도, 희망과 기대의 4주간으로 구성됩니다. 독서는 구약 성경의 메시아에 대한 하느님의 약속에 집중돼 있습니다. 그 약속은 마침내 예수님의 탄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대림 시기의 전례 색깔은 보라색입니다. 보라색은 보속과 준비의 색상으로 장례 미사와 위령의 날에 사용되기도 합니다. 대림 제3주일에는 가까이 다가온 구속을 느끼며 장미색이나 은색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장미색은 기쁨과 기다림을 상징합니다. 대림 시기에는 대영광송을 부르지 않고, 성탄 전야가 되어서야 부릅니다. 대림 시기 동안에 우리는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다리며 또한 예수님이 다시 오심을 기다리기 때문입니다.문 : 대축일과 축일, 기념일은 어떤 날인가요.답 : 모든 축일이 다 똑같이 중요한 것은 아닙니다. 대축일이 가장 중요하고, 다음은 축일이고. 그다음이 기념일입니다. 어느 날, 우리는 한 성인의 기념일을 기념하고 그 다음 날 동정 마리아의 축일을 거행할지도 모릅니다. 일요일인 주일은 그 주간의 가장 중요한 날입니다. 예수님이 일요일에 죽음에서 부활하셨기 때문입니다. 전례적으로 일요일은 토요일 저녁부터 시작됩니다. 그 관습은 전날 해가 지면 그 다음 날이 시작되는 유다인에게서 온 것입니다. 주일은 물론이고 몇몇 대축일에는 그날을 기념하기 위해서 미사에 참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사 참여의 의무 때문에 성당에 가는 것이 아니라 미사의 성찬 전례 때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서 성당에 가기를 바랍니다. 정리=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평화신문2017.11.29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7. 피할 수 없는 고령화, 교회 해법은 (상)](//cpbc.co.kr/CMS/newspaper/2018/08/rc/729129_1.0_titleImage_1.jpg)
[1988-2018 복음의 기쁨으로] 7. 피할 수 없는 고령화, 교회 해법은 (상) 노인만을 위한 사목에 노인은 외롭다 서울 영등포구의 ㄷ성당 중고등부 주일미사 시간. 대성전에는 주일학교 학생들이 띄엄띄엄 앉아 있고, 유아방에는 관절이 불편한 어르신 신자 1~2명이 다리를 주무르며 아이들과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경남 통영시의 ㅂ성당 주일미사 시간. 대성전에는 중장년층부터 머리가 희끗희끗한 어르신 신자들로 가득 찼다. 유아방에는 5~6명의 어르신 신자들이 누워 있거나 앉아서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유아는 단 한 명뿐이다.13년 전, 공익광고협의회가 만든 저출산 관련 공익광고는 사회적으로 반향을 일으켰다. 지하철의 풍경을 찍은 광고였는데 경로석과 일반석이 바뀌어 3명이 앉을 수 있는 경로석에는 아이들이, 일반석에는 어르신들이 앉아 있는 사진이다. 늙어가는 사회, 더 빠르게 늙는 교회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교회는 더 빠르게 늙고 있다. 한국은 2017년부터 노인 인구가 14% 이상인 고령사회로 접어들었다. 2026년에는 65세 이상 노인 인구가 총인구의 20% 이상을 차지하는 초고령사회가 될 전망이다. 주교회의가 발표한 한국천주교회 통계를 보면 2017년 말 현재 60세 이상 노인 신자는 154만여 명으로, 전체 신자(581만여 명)의 26.5%에 이른다. 통계청이 발표한 ‘2016 고령자 통계’(2015년 기준, 65세 이상)에서 고령자 인구는 656만여 명으로 13.2%를 차지한다. 같은 해 60세 이상 교회 어르신 신자 비율은 24.2%다. 미국 인구통계국의 ‘고령화 세계 2015년’ 보고서는 2050년 한국의 노인 인구 비율이 35.9%로 일본(40.1%)에 이어 세계 2위에 오른다고 내다봤다. 30년 후 우리나라 노인 인구가 전체 10명 중 4명이 되는 셈이다.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는 한국 사회 안에서 한국 교회도 그 그늘을 벗어나기 어렵다. 사회의 고령화로 한국 교회도 덩달아 고령화를 겪고 있지만, 교회의 고령화는 단순히 고령화뿐만 아니라 유입되지 않는 청소년 ㆍ청년 문제와도 맞물려 있다.이계영(테오파노, 성가소비녀회) 수녀는 지난해 11월에 열린 제23회 한일 주교 교류 모임에서 ‘양극화, 고령화가 가속화 되어가는 한국, 그리고 교회의 역할’에 대해 발표하며 인구 절벽 현상을 언급했다. 이 수녀는 “교회의 고령화와 맞물려 평신도 리더십이 약화되고 저출산 영향이 더해져 결국, 인구 절벽 현상은 교회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국 사회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 교회는 더 빠르게 늙고 있다. 사진은 수원교구 노인대학 예술제에 참가하고 있는 노인대학 학생들. 가톨릭평화신문 DB 한국 교회의 노인사목2016년 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가 개최한 가톨릭 노인사목 심포지엄에 따르면, 노인사목부를 따로 두고 있는 교구는 서울ㆍ인천ㆍ대전ㆍ의정부 등 모두 4곳이다. 노인 신자 비율(2016년 현재)은 서울이 16.5%, 대전이 15%, 의정부가 14.72%, 인천교구가 14.42%다. 타교구는 가정사목 혹은 선교사목국 산하에 노인분과, 노인대학연합회 등을 두고 있다. 본당 노인사목 프로그램은 노인대학 중심으로 가장 많이 이뤄진다. 본당에서 실시하고 있는 노인사목 프로그램으로는 △노인대학(72%) △효도 잔치(61.5%) △성경공부(55.5%) 순으로 나타났다.가톨릭 노인사목 심포지엄에서 ‘교회의 사목적인 해결 방안 모색’을 주제로 발표한 정찬남(한국여성생활연구원) 원장과 조해경(경기대 교양교직학부) 교수는 △노인의 발달 단계에 맞는 교육의 필요성 △거동이 불편한 노인에 대한 사목적 배려 △프로그램의 질적ㆍ양적 전문화 및 다양화 등을 노인사목의 과제로 꼽았다.노인 ‘중심’ 사목에서 노인 ‘융화’ 사목으로“노인의 생활은 인간 가치의 폭을 명백히 하는 데에 도움이 되고, 세대들의 연속성을 보여주며 하느님 백성의 독립성을 드러냅니다. 노인들은 흔히 세대 격차를 메우는 특은을 가집니다.”(「가정 공동체」 27항)지금까지 한국 교회의 노인사목이 노인 중심의 사목이었다면 이제는 노인 융화 사목으로 패러다임을 전환해야 한다. 노인사목에서 ‘노인’을 따로 떼어 생각한다면 오히려 단절과 고립을 일으킬 수 있다. “고령화 사회라고 해서 고령자들을 따로 떼어 놓으려고 하면 소외감만 느끼게 됩니다. ‘노인’, ‘고령화’를 따로 분리해서 생각하는 것은 단편적인 접근입니다. 한 사람이 태어나 죽을 때까지 사목적으로 어떻게 도와줄 수 있는지 교회는 고민해야 합니다.”(유승록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부 대표담당 유승록 신부는 “할아버지ㆍ할머니들이 손자ㆍ손녀들에게 신앙의 전달자로서 신앙생활을 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세대 간격을 메우는 등 교회 공동체의 구성원으로서 함께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1955년부터 1965년 사이에 태어난 베이비붐 1세대가 2020년부터 65세를 넘기기 시작한다. 교회 안의 베이비붐 1세대는 현재 본당과 각 단체에서 구역장, 반장이나 단체장을 맡고 있는 주역이다. “지금까지 노인사목이 노인대학 중심으로 교육ㆍ사회적 혜택을 받지 못한 이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는 형태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배고파서 가성비를 찾는 시대는 지났습니다. 베이비붐 세대는 이전 세대와 달리 교육도 많이 받았죠.”(나창식 신부)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부 차장 나창식(서울가톨릭시니어아카데미 담당) 신부는 “강사에만 의존하기에는 교회도 재정적으로 어렵다”면서 “이제는 함께 베이비붐 세대와 머리를 맞대고 주역으로서 함께 할 수 있는 노인사목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교회 공동체는 노인들이 가정과 교회 안에서 스스로 풍요로운 삶을 살고, 신앙의 전달자가 될 수 있도록 적극 지지하고 이끌어야 한다.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 백영민2018.08.01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81)“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2테살 2,15)](//cpbc.co.kr/CMS/newspaper/2018/01/rc/706882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81)“형제 여러분, 굳건히 서서 우리의 말이나 편지로 배운 전통을 굳게 지키십시오”(2테살 2,15)악의 세력이 활개치더라도 믿음은 더욱 굳건하게 테살로니카 2서는 하느님은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실현될 것이라고 전하고 있습니다. 미켈란젤로 작 ‘최후의 심판’, 1535~41년, 바티칸 시스티나성당. 출처=가톨릭굿뉴스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이하 테살로니카 2서)은 바오로 사도의 차명 서간에 속하는 편지입니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테살로니카 2서는 테살로니카 1서의 내용을 충실히 따르고 있습니다. 주제뿐 아니라 문체나 문구 역시 테살로니카 1서와 비슷합니다. 다른 바오로 차명 서간도 그렇지만 테살로니카 2서의 저자 역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을 이어가는 제자들이나 바오로계 구성원 중의 한 명일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이 서간이 기록된 시기에 대해서는 학자마다 조금씩 차이가 있지만, 테살로니카 2서가 담고 있는 내용을 본다면 1세기가 넘지 않는 후반에, 곧 90년 즈음이나 그 이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가장 먼저 기록된 테살로니카 1서와는 꽤 많은 시간 차이를 두고 기록된 편지입니다. 하느님은 의로우신 분“우리는 여러분이 그 모든 박해와 환난을 겪으면서도 보여준 인내와 믿음 때문에, 하느님의 여러 교회에서 여러분을 자랑합니다.”(2테살 1,4) 서간은 테살로니카 공동체가 처해 있는 박해의 상황을 이야기하면서 시작합니다. 박해와 환난 속에 있는 신자들에게 서간의 저자로 표현되는 바오로와 그의 협력자들은 지금 고난을 받는 것이 하느님 나라를 위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하느님은 의로운 분이셔서 박해하는 이들에게는 환난으로 갚으시고 환난을 겪는 이들에게는 안식으로 갚으신다고 강조합니다.(2테살 1,6-7) 이런 생각은 자연스럽게 심판의 맥락 안에서 표현됩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심판은 그리스도의 재림과 함께 실현될 것입니다. 테살로니카 2서에서 표현하는 재림 때에 일어날 일들은 구약성경에서 말하는 전통적인 하느님의 심판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구약성경에서도 하느님의 심판은 자주 언급되고 하느님의 의로움을 드러내는 사건으로 표현됩니다. 그렇기에 심판은 상과 벌을 강조하는 것이기 이전에 하느님의 정의를 강조합니다. 비록 이 세상의 삶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시시각각 드러나지 않지만, 그분의 정의는 반드시 실현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심판입니다. 이처럼 그리스도의 재림을 말하면서도 그 때에 대해서는 이렇게 표현합니다. “누가 예언이나 설교로 또 우리가 보냈다는 편지를 가지고 주님의 날이 이미 왔다고 말하더라도, 쉽사리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마십시오.”(2테살 2,2) 그리스도의 재림을 강조하지만 그 날이 언제인지를 따지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권고입니다. 그 날과 그 시간은 알 수 없는 것이고(마르 13,32) 이런 이들이 일어나더라도 그것이 곧 끝은 아니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합니다.(마르 13,7) 테살로니카 2서는 그 표징으로 ‘배교하는 사태’와 ‘무법자’를 이야기합니다. 종말을 말하는 본문들에는 ‘무법자’와 비슷한 인물이 등장합니다. 때로는 그리스도의 적으로 표현되기도 하고(1요한 2,18) 거짓 그리스도나 거짓 예언자로 표현되기도 합니다.(마태 24,24) 여기서 말하는 인물이 구체적으로 누구인지 특정적으로 말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 “신으로 자처하며 하느님의 성전에 자리 잡고”(2테살 2,4) 앉는다고 표현되는 까닭에 시대적인 배경과 함께 황제의 상을 만들어 경배하던 것을 생각하게 하지만 그것 역시 명확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런 본문들에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하느님을 반대하는 악의 세력의 일종이라는 점입니다.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간직할 수 없도록 만드는, 큰 힘을 가지고 거짓된 믿음을 갖게 하는 모든 세력에 대한 표현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재림이나 종말에 대한 강조가 의미하는 것초기 교회 공동체는 분명 종말 때에, 그리스도의 재림 때에 일어나는 일들이 하느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세력에 의한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유일한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혼란스럽게 하고 사람들을 현혹시켜 믿음을 저버리게 하는 세력들이 악의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그렇기에 재림이나 종말에 대한 강조는 흔들리지 않는 믿음에 대한 강조이기도 합니다. 그것은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세상에 하느님의 가르침에 반대되는 여러 모습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종말이 왔다는 것을 나타내는 표징은 아닙니다. 오히려 이런 세상의 모습 안에서 흔들림 없이 믿음을 굳건하게 하는 것이 종말을 말하는 본문들이 전하는 가르침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8.01.02

전국 은인들이 함께 지은 조가비 성당, 순례자를 기다립니다120년 역사 지닌 안동교구 상주 사벌성당 새 성전 봉헌 오랜 역사 속 희로애락공소 시절까지 120년간 신앙공동체의 대를 이어온 유서 깊은 땅. 40명이 넘는 사제와 50명이 넘는 수도자가 태어난 성소 못자리. 본당으로 승격됐지만, 산업화와 함께 다시 공소로 강등되며 여러 차례 부침을 겪은 곳. 담당 본당까지 여러 차례 바뀌며 서러움을 겪은 공동체…. 안동교구 상주 사벌성당 이야기다.현재 사벌성당은 퇴강성당과 함께 두 성당이 하나의 본당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 본당 이름이 ‘사벌퇴강본당’이다. 사목자는 주임 박재식 신부다. 보좌 신부 하나 없다. 하기야 두 공동체를 합해도 주일 미사 때 나오는 신자들은 100명이 조금 넘을 정도다. 신자들의 평균 나이도 75세다. 90% 이상이 영세 농민들이다. 가난한 본당, 50년 된 성전 철거전국에서 가장 가난한 농촌 가운데 한 곳인 사벌면 덕담리가 지난해 9월부터 주목받고 있다. 덕담리 447-2, 사벌우체국 바로 옆에 자리 잡은 사벌성당 덕분이다. 본당 공동체는 주변 도로보다 지대가 낮아 흘러든 빗물로 무너지기 직전이었던 50년 된 옛 성당을 철거하고 새 성당을 지었다.새 성당은 대지 1831㎡(553.8평)에 건축면적 291.65㎡(88평)의 지상 1층 건물로, 약 110석 규모다. 높이는 약 6m, 철근 콘크리트 구조다. 전체적으로 ‘조가비’(가리비)를 닮았다. 본당 수호성인이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사도 성 야고보’다. 성인의 상징이 조가비다. 유럽 대륙의 남서쪽을 이루는 이베리아반도에 복음을 전한 야고보 사도의 시신을 옮기던 중 바다에 그만 빠트리고 말았는데, 조가비들이 성인의 몸을 덮어 보호해줬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이후 조개껍데기를 매단 지팡이를 짚고 야고보 사도의 유해가 모셔진 산티아고를 향한 순례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 길이 ‘산티아고 순례길’이다. 야고보 사도의 성당답게 사벌성당은 순례자를 위한 성당이다. 순례하다 쉬며 기도할 수 있도록 다양한 성미술품을 품고 있다. 조가비 모양의 나무 손잡이가 달린 문을 밀고 들어서면 제대 가운데 유리 채색화 ‘최후 만찬’이 시선을 잡아끈다. 변진의(아기 예수의 데레사) 화백의 작품인 최후 만찬은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하시며 당신 살과 피를 성체와 성혈로 내어 주셨듯이, 사벌 공동체가 친교를 이루고 빵을 나누며 ‘기쁘고 떳떳한’ 신앙생활을 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최후 만찬 좌우에 자리잡은 유화작품 ‘예수 부활’(90×90㎝)과 ‘겟세마니 기도’(90×90㎝)도 변 화백 작품이다. 변 화백이 건강이 좋지 않아 아직 완성하지 못했지만 14처도 올해 안에 설치된다.입 벌린 조가비 틈새에 해당하는, 제대 맞은편 삼각형 모양의 다섯 개 창문은 모두 스테인드글라스. 온통 푸르다. 푸른빛이 낮에도 은하수가 펼쳐지는 듯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성당 입구에는 ‘성모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을 비롯해 ‘하늘을 우러러보는 천사’, ‘명상하는 천사’가 신자들을 맞는다. 성당 안 12개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형형색색의 빛을 통해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과 영광을 합창한다.전시 공간 ‘선교사의 방’ 마련사벌성당은 순례자의 성당일 뿐만 아니라 한국 교회를 위해 목숨을 바치고 복음을 전한 선교사들을 기억하는 ‘선교사의 방’도 갖추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이 물려준 초대 안동교구장 두봉 주교의 수단이 전시돼 있는 선교사의 방에서는 한국외방선교회와 파리외방전교회, 골롬반외방선교회 등 선교사들의 발자취를 영상으로 만나볼 수 있다.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성전 봉헌 미사 강론을 통해 “앞으로 많은 순례자가 사벌성당을 찾아올 수 있도록 본당과 교구가 함께 더욱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이어 “본당에서 공소로 전락했던 역사를 이제는 반복하지 않도록 교구가 책임지고 지키겠다”며 “안심하고 기쁘고 떳떳하게 신앙생활을 하시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박재식(안동교구 사벌퇴강본당 주임) 신부 “한 신자가 1억 원을 기탁하면서 시작한 사벌성당 재건축을 통해 ‘하느님 사랑’을 체험했습니다.”사도 성 야고보 축일(7월 25일)에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 주임 박재식 신부는 “가톨릭평화신문 애독자 여러분을 비롯해 전국에서 많은 분이 성당을 짓는데 도와주셨다”며 감사를 표했다. 특히 “서울ㆍ대구ㆍ의정부ㆍ대전 등 교구 본당을 순회하며 성전건립금 마련에 나섰을 때 극진한 대접을 받았는데, 이는 안동교구 선배 사제들이 열심히 잘 사신 덕분임을 확신한다”고 말했다.박 신부는 성전 건축 기금 마련을 위해 성당을 방문했을 때 오히려 ‘나눔’을 실천했다. 준비한 농산물을 판매하지 않고 찾아간 성당 신자들에게 선물하면서 건축 기금이 부족하다고 호소했다. 무엇보다 마음에 울림을 주는 강론을 준비했다. 노자의 「도덕경」 이야기를 비롯해 ‘인간의 심리는 조금씩 선한 쪽으로 발전해가고 있다’고 주장한 캐나다 심리학자 스티븐 핑커 이야기, 몽골이 세계를 정복할 수 있었던 거대한 집단의식의 출발점인 칭기즈칸의 ‘발주나의 맹약’ 등을 이야기했다.“성경 암송대회에 나가 받은 1등 상금을 봉헌한 신자, 생전 처음 보는 신자가 전하는 거액의 성금 등은 하느님께 많은 사랑과 은총을 받고 있음을 체험하게 했습니다.”박 신부는 “사벌성당이 작지만 아름다운 성당으로서 쉬면서 하느님을 만나고, 전 세계에 하느님 말씀을 전하는 선교사들을 기억하는 장소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힘 기자 cpbc2018.07.31
[새 성전 봉헌을 축하드립니다]대전교구 복수동본당 대전 복수동성당. 대전교구 복수동본당(주임 김대건 신부)은 18일 오전 10시 30분 대전광역시 서구 유등로 43번길 36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성전 봉헌식을 거행한다. 신축 성전은 부지 1317.7㎡에 전체 건축면적 2035.85㎡, 지하 1층, 지상 4층 규모다. ‘예수님과 자캐오’(루카 19,1-10)의 비유에 나오는 자캐오와 예수님의 만남, 나무 위로 올라가는 자캐오를 건축 설계에 반영했다는 점이 특징이다. 예안종합건축사사무소 대표 정호영(안토니오)씨가 설계했고, 동은건설(대표 성두영 안토니오)에서 시공했다. 본당 공동체는 2013년 10월 성전 건립을 위한 기도를 시작해 매 미사 전 성전 건립을 위한 기도, 사순시기에는 매일 밤 10시 기도, 묵주기도를 바쳐 왔다. 특히 성전 건립 기금 마련을 위한 ‘1m 1원 교구 내 성지 도보순례’를 기획, 총 19개 성지 493㎞를 순례하는데 237명이 참여, 939만 1080원을 봉헌했다. 올해 4월부터 최근까지 성전 봉헌 기도와 함께 가정별로 예수 성심상을 모시고 순회하며 예수 성심 고리기도를 바쳤고, 5∼8월 전 신자 성경 필사를 해 왔다. 성전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해마다 딸기잼을 제조, 판매해 왔다. 2010년 1월 대전 산성동ㆍ정림동본당에서 분가한 본당은 7개 구역 39개 말씀터에 1457명이 공동체를 이루고 있으며, 대전시 서구 복수동 일대를 관할하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17.11.14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와 하느님 나라의 도래(루카 17,11-21)](//cpbc.co.kr/CMS/newspaper/2018/04/rc/717956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60) 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와 하느님 나라의 도래(루카 17,11-21)육체를 치유받은 사람과 영혼을 구원받은 사람 정미연(데레사) 화가의 나병환자 치유에 관한 복음 묵상 그림.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9,51─19,27)를 전하면서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이라는 표현을 반복적으로 사용합니다.(9,53; 13,22; 17,11) 학자들은 이런 반복적인 표현이 예루살렘을 향한 예수님 여정에 극적인 긴장감을 더하고 있다고 풀이하기도 합니다. 나병환자 열 사람을 고치신 이야기는 이런 긴장감이 점점 고조되는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나병환자 열 사람을 고치심(17,11-19)예수님께서 사마리아와 갈릴래아 사이를 지나가고 계실 때였습니다. 어느 마을에 들어가고 계셨는데 나병환자 열 사람이 예수님께 마주 옵니다. 그들은 멀찍이 서서 소리를 높여 “예수님, 스승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 하고 청합니다.(17,11-13) 나병환자, 곧 한센병 환자들은 당시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부정한 사람’의 대명사였습니다. 구약의 법에 따르면 이들은 옷을 찢어 입고 머리를 풀어헤쳤습니다. 콧수염을 가리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쳐야 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가까이 와서 부정하게 되지 않도록 말이지요. 또 사람들이 사는 동네에서 떨어져 혼자 지내야 했습니다.(레위 13,45-46) 이런 이유 때문에 나병환자들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고 멀찍이 서서 예수님을 불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들은 ‘예수님’ 하고 이름을 부르고 나서 다시 ‘스승님’이라고 부릅니다. 희랍어로 스승을 가리키는 표현으로는 ‘에피스타테스’와 ‘디다스칼로’가 있다고 합니다. 디다스칼로가 일반적으로 교사, 스승, 선생 등으로 널리 사용되는 표현이라면 에피스타테스는 제자들이 스승을 부를 때 사용하는 표현으로 공경심이 더 담겨 있으면서도 더 친숙함을 드러내는 표현이라고 하지요.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부를 때 사용한 단어가 바로 에피스타테스입니다. 그렇지만 나병환자들이 예수님과 개인적인 친분이 있어서 친근한 표현으로 ‘스승님’ 하고 부르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다만 예수님께 대한 공경심을 나타내고 예수님의 권위를 인정하는 의미가 들어 있다고는 할 수 있겠지요.(「주석 성경」 참조)나병환자들의 청에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보시고 ‘가서 사제들에게 너희 몸을 보여라’” 하고 이르셨는데, 그들이 가는 동안에 몸이 깨끗해졌습니다. 그러자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 앞에 엎드려 감사를 드립니다. 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17,14-16) 여기서 잠시 멈추어서 이 상황을 상상해 봅시다. 멀찍이 서서 예수님께 자비를 베풀어 달라고 간절히 청하는 나병환자 열 사람. 그들을 보시는 예수님. 그리고 ‘가서 사제들에게 보여라’ 하시는 말씀. 그 말씀을 듣고 가는 환자들. 어느새 깨끗이 사라진 나병. 나병환자들의 간절한 청과 예수님의 응답이 ‘이심전심(以心傳心)’으로 통하지 않고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생겼습니다. 말 그대로 치유 기적이 일어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제들에게 몸을 보여라’고 말씀하신 것은 나병과 같은 악성 피부병이 깨끗이 나았는지를 사제에게 보여 확인해야 한다는 율법 규정이 있었기 때문입니다.(레위 14,2-3) 깨끗해진 나병환자 열 사람은 어떻게 했을까요? 예수님 말씀대로, 또 율법의 규정대로 그들은 사제를 찾아가 자신들의 몸을 보이고 깨끗해졌다는 선언을 받았을 것입니다.(레위 14,1-32 참조) 그런데 루카 복음사가는 그 이야기를 전하지는 않습니다. 대신에 “그 가운데 한 사람은 병이 나은 것을 보고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의 발 앞에 엎드려 인사를 드렸다. 그는 사마리아 사람이었다”고 전합니다.(17,15-16).병이 깨끗해진 사람은 모두 열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자기 병이 나은 것을 확인하자 바로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엎드려 감사를 드린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유다인들이 이방인처럼 멸시하며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율법 규정을 지키지 않고 이방인들의 신을 섬긴다는 이유에서였습니다. 그런데 그 사마리아 사람만이 하느님을 찬양하며 감사를 드렸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아홉은 어디 있느냐? 이 외국인 말고는 아무도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오지 않았다는 말이냐?”고 물으시고는 사마리아 사람에게 말씀하십니다. “일어나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17,18-19)예수님의 이 말씀을 보면 나병환자 열 사람은 모두 병을 치유받았지만 구원을 받은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 한 명뿐인 것 같습니다. 그는 병이 나은 것에 감사하며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러 돌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 사람의 그 행위가 바로 믿음의 행위라고 보셨습니다. 그래서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느님 나라의 도래(17,20-21)나병환자 열 사람의 치유와 구원에 관한 이야기에 바로 이어 하느님 나라에 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하느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는 바리사이들의 질문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답변하십니니다. “하느님의 나라는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또 ‘보라,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 하고 사람들이 말하지도 않을 것이다. 보라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여기서 예수님 답변의 핵심은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면 ‘하느님 나라가 바리사이들 가운데 있다’는 것이 됩니다. 하지만 바리사이들을 위선자라고 질타하신 예수님께서 바리사이들 가운데 하느님 나라가 있다고 말씀하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들은 지금 예수님과 함께 있습니다. 여기서 ‘너희 가운데 있다’는 말씀의 의미를 새롭게 생각할 수 있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는 나자렛 회당에서 구약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을 읽으시고는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4,21)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11,20) 하고 말씀하셨지요. 그렇다면 “하느님 나라가 너희 가운데 있다”는 말씀은 하느님 나라가 예수님과 함께 와 있다는 것입니다. 곧 하느님 나라는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 안에 있습니다. 생각해봅시다치유를 받은 나병환자는 열 사람이었지만 구원을 받고 돌아간 사람은 몸이 깨끗해진 것을 보고는 하느님을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린 사마리아 사람 한 명뿐이었다는 사실은 구원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해줍니다. 나병의 치유, 곧 육체적인 치유가 구원의 한 표징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육체의 치유가 구원의 전부가 아니라 표징일 따름입니다. 육체의 치유는 마음의 치유, 내면의 치유에 대한 계기가 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이를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하느님을 소리높여 찬양하며 돌아와 예수님께 감사를 드릴 수 있었습니다. 그럼으로써 그는 구원을 받고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아홉 명은 육체의 치유라는 표징이 의미하는 바를 제대로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몸이 깨끗해진 것으로, 외적인 치유 자체로 만족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자신들을 치유해 주신 하느님을 찬양하고 감사드리기보다는 빨리 사제에게 가서 깨끗해진 몸을 보여 주고 싶은 마음이 더 간절했을지 모릅니다. 그들은 아마 몸은 깨끗해졌을지 모르지만 그들의 마음과 정신과 영혼은 달라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의 삶은 어떤가요? 우리는 깨끗해진 몸을 사제에게 달려가 보여주고 정결하다는 선언을 받고 싶은 아홉 명에 가까운지요? 아니면 몸이 깨끗해진 것을 보고 하느님께 찬양과 영광을 드리는 사마리아 사람에 가까운지요? 백영민2018.04.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