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레지오 60돌, 대구대교구 ‘의덕의 거울’ 세나뚜스 기념 특강과 감사 미사 봉헌, 소년 단원들에게 장학증 전달 조환길 대주교가 소년 레지오 단원 가운데 모범이 되는 47명에게 장학증서를 수여하고 있다. 대구 세나뚜스 제공 대구대교구 ‘의덕의 거울’ 세나뚜스(단장 류해석)는 6일 주교좌 범어대상당에서 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성모님의 모범을 따라 순명의 정신을 살겠다고 다짐했다. 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 기념행사는 기념 특강과 감사 미사로 이뤄졌다. 행사 장소가 제한돼 있어 3300여 명만 초대해 장인산(청주교구 원로사목자) 신부의 기념 특강을 듣고 성모님은 어떤 분이신지, 단원들이 성화 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지를 새기는 기회를 가졌다. 이어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 주례와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 박현동 아빠스,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신심 미사를 봉헌했다. 조 대주교는 강론을 통해 레지오 교본 3장을 특별히 언급하면서 “레지오의 정신은 성모님 정신이고, 이 성모님 정신은 겸손과 믿음, 순명으로 요약할 수 있다”면서 “당신 마음대로 사신 것이 아니라 하느님 뜻에 따라 살았던 성모님처럼 우리도 순명의 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영성체 뒤에는 간단한 축하식에 거행됐으며, 축하식 중에는 조 대주교가 소년 레지오 단원들 가운데 모범이 되는 초ㆍ중ㆍ고생 47명에게 1인당 100만 원씩 장학증서를 수여했다. 60주년에 앞서 대구 ‘의덕의 거울’ 세나뚜스는 특히 1년간 성경 통독 운동을 벌여 9000여 명이 신ㆍ구약을 다 읽는 성과를 거두기도 했다. 류해석(시몬) 단장은 “60주년이라는 이 뜻깊은 자리를 의례적인 행사로 끝내지 말고 이 시점에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무엇인가를 다시 한 번 성찰하고 우리 각자의 참모습을 되돌아보는 계기를 만들었으면 하는 바람도 가져본다”면서 “선배님들이 가꿔놓은 터전에 더욱 알찬 열매를 맺도록 노력하겠다는 결의를 다져보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울러 “이제는 시대의 징표를 읽어내고 그 징표에 알맞은 활동을 스스로 발굴해 능동적으로 대처하며, 자신이 속해 있는 지역사회가 바라는 바를 파악해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빛과 소금 같은 단체로 거듭나야겠다”고 당부했다. 1957년 1월 왜관본당에서 ‘종도의 모후’ 쁘레시디움이 설립되면서 시작된 대구 레지오 마리애는 1986년 레지아로, 2003년 세나뚜스로 승격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2016년 말 현재 1개 레지아(안동교구)와 35개 꼬미시움, 323개 꾸리아(5개 소년 꾸리아 포함), 4167개 쁘레시디움(137개 소년 쁘레시디움 포함)을 두고 있으며, 행동단원은 3만 4816명, 협조단원 1만 5909명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17.06.13

명동본당 사순특강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나타난 회심(메타노이아) 박준양(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신부 박준양 신부 교회는 거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 죄인들을 가슴에 품고 있어 항상 정화되어야 하기에, 끊임없이 참회와 쇄신을 추구해야 한다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교회 헌장」 8항은 가르친다. 즉, 복음 정신에 입각한 회심이야말로 모든 교회 활동의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 이는 마르코 복음서 1장 15절에서 이루어지는 예수님의 첫 복음 선포와도 연결된다. “때가 차서 하느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여기서 번역에 사용된 ‘회개’라는 단어도 좋지만, ‘회심’이란 말이 더 원문(메타노이아)의 의미에 가깝다고 생각된다. 회심은 마음을 돌려 온전히 새롭게 한다는 의미이다. 잘못된 방향으로 가던 길을 돌이켜, 하느님을 향해 온전히 마음과 정신을 새롭게 한다는 뜻이다. “죄인은 제 길을, 불의한 사람은 제 생각을 버리고 주님께 돌아오너라”(이사 55,7). 그저 새로운 것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에 맞게 내 생각과 마음과 정신을 온전히 바꾸는 것을 의미한다. 내 생각과 계산의 한계성과 내 실존의 유한성을 처절히 깨달으며, 내게 하느님의 개입과 도움이 필요함을 고백하는 겸손함이 바로 회심이다.하느님께서는 인간의 눈으로 따지는 죄의 경중보다는 회심하고자 하는 우리의 마음을 더 중요하게 여기신다. 그러기에 바리사이처럼 스스로 의롭다고 여기며 자신이 죄인들과 같지 않음에 만족스러워하는 자의 기도는 즐겨 듣지 않으신다. 오히려 고개를 숙이고 “하느님, 저는 죄인입니다. 이 죄인을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하고 가슴을 치며 고백하는 세리의 기도를 더 좋아하시는 것이다(루카 18,9-14 참조). 이것이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고자 하시는 바다. 주님께서는 “너희의 죄가 진홍빛 같아도 눈같이 희어지고 다홍같이 붉어도 양털같이 되리라”(이사 1,18)고 말씀하시지 않는가? 하느님의 위대한 뜻과 인간의 얄팍한 생각이 서로 다른 때문이다.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같지 않고 너희 길은 내 길과 같지 않다.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이 있듯이 내 길은 너희 길 위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 위에 드높이 있다”(이사 55,8-9). 우리 모두 하느님 앞에서 죄인이다. 그래서 매일같이 늘 회심해야 한다. 아무리 제 생각이 훌륭하다 해도 하느님 보시기엔 아무것도 아닐 수 있다. 내 생각의 유한성을 깨닫고 하느님의 뜻을 찾고자 하는 쇄신의 노력이 필요하다.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나를 초대하시는 부르심의 순간을 놓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회심의 첫 요소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하는 ‘즉각성’이라 할 수 있다. 지금 안 하면 영원히 못 하는 것이다. 내가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해 회심하려 한다면, 하느님께서는 나보다 먼저 가서 모든 것을 준비하고 나를 기다리고 계신다. 바로 이것이 하느님의 ‘첫걸음 내딛기’이다. 우리는 이것을 믿어야 한다. 하느님의 첫걸음 내딛기에 응답하여 우리 역시 첫걸음을 내디뎌야 한다. 그래서 회심을 위한 첫걸음이 가장 중요한 것이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신 하느님’이시지만, 회심하는 사람의 부끄러운 고백 앞에서는 또한 ‘우리의 모든 허물을 잊어버려 주시는 하느님’이시다. 이것이 ‘하느님 자비’의 측면에서 새로이 해석되는 ‘하느님의 전지전능하심’이다. 그리고 그분은 몇 번이고 쓰러지고 다시 일어서며 계속 회심하고자 하는 우리를 기다리시는 데 있어 결코 지치거나 화내시지 않는 분이시다. 2014년 8월 15일 솔뫼성지에서 이루어진 아시아 청년들과의 만남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다. “하느님께서는 결코 용서하시는 일에 지치시는 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기다리시는 일에 결코 지치지 않으십니다.”우리는 이 사순 시기에 회심의 은총을 청해야 하겠다. 우리는 많은 은혜를 구하는 기도를 바치지만, 실상 필요한 것은 단 하나, 회심의 은총뿐이다. 2014년 8월 18일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 강론에서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말씀하셨다. “화해, 일치, 평화라는 하느님의 은혜들은 이러한 회심의 은총과 분리될 수 없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하느님의 은총으로, 하느님의 뜻을 향한 회심이 먼저 이루어진다면, 우리가 구하는 나머지 것들은 모두 저절로 얻게 될 것이다. “너희는 먼저 하느님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그러면 이 모든 것도 곁들여 받게 될 것이다”(마태 6,33). 정리=이힘 기자백영민2016.03.02
![[성경 속 도시] (59) 그발](//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9505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59) 그발여호수아가 밟아보지 못한 땅 성경을 영어로는 ‘바이블’(bible)이라 한다. 어원은 그리스어로는 ‘책들’을 의미하는 ‘타 비블리아’ (ta biblia)이다. 후에는 단순 명사인 ‘헤 비블리아’(he biblia)라는 말이 성경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명사가 되었다.이집트 사람들은 나일 강변에서 갈대의 일종인 파피루스(Papyrus) 줄기를 종이로 가공해 지중해 연안의 다른 나라에 수출해서 많은 수입을 올렸다고 한다. 당시 지중해 무역을 독점했던 페니키아인은 비블로스(Biblos)항을 통해 파피루스를 수출했다. 이런 까닭으로 파피루스는 수출 항구의 이름에서 그리스어 ‘비블로스’라고도 불리게 되었다고 한다. 오늘날의 예베일(Jebeil)에 해당하는 곳이다.파피루스 수출 도시 ‘비블로스’ 파피루스 수출로 유명했던 도시인 ‘비블로스’가 그발이다. 그발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이다. 그발은 신석기 시대 후 사람들이 계속 거주해 온 곳으로, 페니키아 문명이 시작된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다. 이곳에 도시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4500년쯤이며, 기원전 1200년 후에는 페니키아 3대 항구도시 중에 하나로 크게 성장했다. 지금도 중세의 성과 고대 거주지를 비롯해 유적지 곳곳에 서로 다른 시대의 기원을 두고 있는 건축물이 도시의 역사를 잘 드러내고 있다.그발은 ‘경계’, ‘가장자리’란 뜻을 가지고 있다. 이스라엘이 정복하지 못한 시돈과 티로와 함께 페니키아 3대 도시국가로 언급되고 있다. 오늘날에는 레바논의 수도 베이루트 북쪽 40㎞ 지점의 지중해변에 있는 도시다. 그발은 옛날부터 조선업이 발달했으며, 배를 수출하고 있었다. 그발 사람들은 우수한 건축 기술을 가지고 있었고 조선술, 항해술 등 기술도 발달했던 것으로 보인다. 예로부터 이곳은 돌과 재목을 다듬는 기술자들이 많았던 것 같다. “이렇게 솔로몬의 건축가들과 히람의 건축가들과 그발 사람들이 돌을 깎아 내고, 주님의 집을 지을 나무와 돌을 마련하였다”(1열왕 5,32).십자군 성채 남아 있어페니키아인들은 레바논에서 나는 백향목을 수출하고, 이집트산 파피루스를 사들여 그리스 등지에 파는 중계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했다. 그발은 역사적으로 아시리아ㆍ페르시아ㆍ그리스ㆍ로마ㆍ이슬람 등의 반복된 침략과 지배를 받았으며, 1104년 십자군에게 점령당하기도 했다. 이처럼 여러 세력의 침략과 지배를 받는 동안 고대 유적들은 점차 파괴됐다. 그러다가 20세기 초 유적의 발굴로 페니키아 시대 및 로마 유적지를 중심으로 여러 시대의 유적들이 발견돼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됐다. 지금도 유적지 입구에는 십자군 점령기에 축조된 큰 규모의 성채가 있다. 또 신석기, 청동기 시대 주거지와 오벨리스크 신전 터, 로마 시대의 도로와 원형 극장, 십자군 시대 성벽까지 다양한 시대의 유적과 유물이 존재한다.성경에서는 여호수아가 죽기 전까지 정복하지 못한 땅으로 나타난다. “또 그발족의 땅, 헤르몬 산 아래 바알 가드에서 하맛 어귀까지 이르는 해 뜨는 쪽의 온 레바논이다”(여호 13,5). 그발은 다른 나라들과 동맹을 꾀해 이스라엘에 대항하는 적으로 등장한다. “그들은 한마음으로 흉계를 꾸미고 당신을 거슬러 동맹을 맺습니다. 에돔의 천막들과 이스마엘인들 모압과 하가르인들 그발과 암몬과 아말렉 필리스티아와 티로의 주민들도 함께”(시편 83,6-8). 그 옛날 해양국가로 조선업이 발달한 이곳 항구는 오늘날에는 초라한 항구로 남아 있다. 옛 항구 터에 아무런 항구 시설이 없어 화려했던 과거 역사의 흔적을 느낄 수 없는 것이 아쉽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8.26

세계 4000여 명 수녀, 복음화 위해 뛴다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총장 이귀순 수녀, 한국 관구 공식 방문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보편 교회와 세상 안에서 가장 힘없고 가난한 이들의 벗이 되기 위해 국경 없는 가족을 이루고 있는 수도회다. 교회의 유익과 이웃의 필요를 위해선 언제든 삶 전부를 내어 놓고 어디든 뛰어들 준비가 되어 있는 수도자들이다. 회원 수만 40여 개국 4000여 명에 달한다. 이 많은 수도자를 복음으로 심화시켜 하느님 나라의 표징을 현대인들에게 보여 주는 예언자적 사명을 다할 수 있도록 이끄는 이가 바로 총장 수녀이다. 아시아인으로서는 두 번째로 2013년 9월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 총장으로 선출된 이귀순(마리아 고레티) 수녀가 총장 취임 후 지난 9월 1일 한 달간 일정으로 한국의 두 관구 수녀원을 첫 공식 방문했다. 9월 20일 서울 관구 수녀원에서 이 총장 수녀를 만났다.- 급변하는 현대 사회에서 예언자적 사명을 충실히 수행하기 위해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는 어떤 준비를 하고 있나?1696년 수도회 창설 이후 초기부터 수도자로서 예언자적 소명을 다 하기 위해 회헌인 「생명의 책」을 성경과 교회법을 기초해 만들었다. 바오로 사도의 선교 정신을 이어가는 그리스도의 딸들로서 우리 수도자들은 교회의 유익과 이웃의 필요에 응답해 나가기 위해 항상 열려 있다. 이를 위해 초기부터 지금까지 단순ㆍ겸손ㆍ소박의 삶을 강조하고 있다. 새로운 특별함은 없지만, 기도 생활ㆍ새로운 복음화ㆍ형제적 생활 등 세 가지 주제로 가난하고 충실한 수도 생활에 관해 회원들을 자주 재교육하고 있다. 성소자 양성에도 힘쓰고 있다. 지난해 동티모르, 홍콩, 일본, 프랑스 등 오랫동안 성소가 없었던 자리에서 젊은이들이 입회했다. 이처럼 우리 수도자들이 끊임없이 삶의 자리에서 증거자의 모습으로 살면 하느님께서 당신의 나라를 위해 성소자를 보내 주실 것이라 믿고 기도하고 있다.- 내년은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의 한국 진출 130년이 되는 뜻깊은 해이다. 이번 총장님의 한국 관구 방문도 그 의미를 담고 있는 듯하다. 이번 방문의 의미와 성과를 평해 달라.지난 130년 동안 선배 수녀님들이 기도와 희생으로 한국 교회에 충실했다고 생각한다. 감사하고 계속해서 그렇게 살아주시길 격려한다. 한국의 두 관구 출신 수도자 70명이 현재 해외 선교사로 활동하고 있다. 또 선교와 교육, 의료, 복지 분야에서 사도직 활동을 충실히 하는 모습을 확인했다. 무엇보다 어린이 공부방, 다문화 가정 아이를 위한 센터, 새터민을 돕는 활동 등 이웃의 필요에 다양하고 능동적으로 응답하는 새로운 사도직이 많이 늘어난 것이 아주 기쁘다. 새로운 사도직 안에서도 기쁘게 생활하고 이웃에게 열린 자세로 더욱 다가가길 희망한다. 우리 수도회는 한국 교회 첫 수도회로 맏딸이다. 1888년 한국 진출 후 순교자의 후손들이면서 잘 준비된 지원자들이 많았다. 그 전통을 지금까지 잘 지켜 오고 있다. 후배들도 언니들을 보고 따라 배웠기에 지금도 잘 살아 있다.- 아시아인으로는 두 번째로 총장으로 선출되셨다. 4년간 총장직을 수행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총참사위원으로 2년간 소임을 하다 총장으로 선출됐다. 너무 두렵고 자신이 없었지만, 한국 수녀님들이 하나같이 기도 많이 하고 일치해서 잘 살 터이니 걱정하지 말라고 격려해 줬다. 그때 이것이 공동체의 힘이구나 느꼈고 행복하다는 마음밖에 없었다. 총장 수녀로서 각국의 자매들을 만나면서 눈이 많이 트이고 가슴도 넓어졌다. 그러면서 우리가 정말 성숙한 국제 공동체라는 것을 풍요롭게 확인하고 있다.-한국의 두 관구 수도자들이 우리 교회와 사회를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나가길 원하는지.지금까지 각자의 자리에서 선교, 교육, 의료, 복지 분야의 다양한 사도직을 정직하게 최선을 다해 수행해 왔다. 또 앞으로도 그렇게 해야 할 것으로 생각한다.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것이 예언자의 소명인데 그러기 위해선 하느님 말씀을 진실되게 믿고 믿은 것을 선포해야 한다. 특히 어린이들의 신앙 교육에 더욱 관심을 두길 바란다. 아울러 수도자로 부름 받은 것에 대해 기쁨으로 공동생활을 하고 희망을 전해 주길 바란다.이귀순 총장 수녀는 1972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 입회에 대구 관구 제7대 관구장을 역임했다. 로마 총원 총원장 및 총참사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13년 총장으로 선출됐다. 이 총장 수녀는 10월 1일 출국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7.09.27
![[방송]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cpbc 프로그램](//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6950_1.0_titleImage_1.jpg)
[방송]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 같은 cpbc 프로그램RADIO추석 특집 김도향의 명동연가 ‘오픈 스튜디오-한가위, 애청자와 함께’ 민족의 대명절인 추석을 맞아 명동연가 애청자들을 스튜디오로 초대한다. 가족에게 편지를 보내는 시간과 출연자들의 노래 실력을 뽐내는 시간도 마련했다. ▶4일(수) 오후 8~10시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같이의 가치’ 1~6부 함께하면 기쁨이 두 배! 홍성원 신부와 정혜인 PD가 함께 마이크를 잡는다. 4일에는 라디오 극장, 5일에는 시대ㆍ세대별로 사랑받은 음악을 들려준다. 6일에는 명절 앙케트가 청취자를 찾아간다. ▶4~6일 오후 10~12시 추석특집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미사는 새로운 복음화의 중심’ 1~2부 서울대교구는 2017년을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의 해’로 정했다. 이 시간에는 우리가 미사를 통해 받은 은총을 되돌아보고, 시대 변화에 따른 미사 전례 안에 도입되고 있는 다양한 시도들을 살펴본다. 5일은 ‘미사! 그 찬란한 은총의 샘이여’를, 6일은 ‘미사! 그 전례의 풍성함을 위하여’를 주제로 진행한다. ▶5~6일 오후 4~5시 추석 특집 ‘우리 가족, 소통으로 만사형통!’ 가족들이 모여 끈끈한 정을 확인하는 명절인데 대화가 사라졌다? 가톨릭평화방송 신의석(다니엘) 아나운서가 가족 구성원 사이 원활한 소통을 위해 나선다. 생생한 체험담을 통해 세대 간 소통이 사라지고 있는 현실을 살펴보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가족이 소통하는 방법을 소개한다. ▶7일(토) 오전 11~12시 한글날 특집 ‘세종대왕님이 케이팝 타고 세계 일주하시네’ 케이팝 열풍으로 한글, 한국 문화와 역사에 세계인의 관심이 꾸준히 이어지는 현실에서 국내에서 한국어를 배우는 유학생과 해외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교사들의 생생한 이야기를 소개하는 시간. 호세 마르틴 한ㆍ쿠바클럽 안토니오 김 회장과 국제교류재단 김익환 교수, 일본 나고야 한일교류회 황정란 회장 등의 인터뷰를 통해 전 세계의 한글 사랑을 확인한다. ▶9일(월) 오후 1~2시 특집 다큐 ‘평화의 바람’ 그 어느 때보다 한반도에 전운이 감도는 긴장국면 속에서 평화를 기원하는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DMZ를 찾았다. 13개국에서 온 72명의 청년은 한반도의 평화를 기원하며 지난여름 6박 7일간의 순례 여정에 참여했다. 순례에 참가한 젊은이들의 우애와 사랑, 그리고 평화를 위한 염원을 들어 본다. ▶6일(금) 오후 8시, 8일(일) 오후 4시, 9일(월) 오전 9시 특집 중계 명작 국악의 밤 ‘피스 메이커스 자선기금 마련 콘서트’ 한가위의 기쁨을 나누는 국악 한마당. 교육과 의료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전하는 가톨릭 학원 산하 피스메이커스가 마련한 자선기금 마련 콘서트에는 국내 저명한 국악인들이 아름다운 우리 가락을 선보인다. ▶4일(수) 오후 8시, 9일(월) 오후 9시 특집 다큐 ‘정진석 추기경의 하루’ 한국 교회의 큰 어른인 정진석 추기경의 일상과 지난 삶을 돌아보는 다큐멘터리가 앙코르 방송된다. 신학생 때부터 60년이 넘는 시간 동안 변함없이 지켜온 추기경의 일과를 통해 하느님께 충실한 사제이자 영적인 등불로서 묵묵히 세상을 밝혀온 노 사제의 숭고한 삶과 신앙을 만날 수 있다. ▶4일(수) 오전 9시, 6일(금) 오전 7시, 7일(토) 오후 3시, 8일(일) 오전 1시, 오후 11시 특집 강좌 ‘아우구스티누스에 삶의 길을 묻다’ 옆을 돌아볼 줄 모른 채 질주하는 현대인들에게 아우구스티누스가 하나의 길을 제시한다. 가톨릭대 박승찬(엘리야) 교수의 진지하고 열정 가득한 강의는 지친 현대인들의 삶에 새로운 희망의 물줄기를 선물한다. ▶5일(목) 오후 7시, 8일(일) 오전 9시 ‘성경인물 탐구 이프 유(IF YOU) 시즌2’ 이번에는 인간 다윗을 만난다. 하느님께서 사랑한 인물이자 다재다능한 재능을 가진 다윗. 하지만 왕좌에 오른 다윗은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문제 인물로 전락한다. 다윗은 어떻게 다시 회개하고 하느님 곁으로 돌아갔을까. 우리는 신앙인으로 올바른 길로 가고 있나 생각해 보는 시간이다. ▶17일(화) 오후 9시, 18일(수) 오전 12시, 21일(토) 오후 7시, 22일(일) 오전 9시 믿고 기도하며 10강 시간 전례 흔히 성무일도로 불렀던 시간 전례의 기원과 발전 과정을 알아보는 시간. 시간 전례의 거행은 전례의 중요한 부분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시간 전례를 탁월한 전례 기도로 이해했으며, 시간 전례야말로 주님께서 분부하시고 바오로 사도가 권고한 끊임없이 계속하는 기도의 모범임을 제시했다. ▶24일(화) 오전 7시, 25일(수) 오전 10시 20분, 오후 10시, 29일(일) 오전 10시, 30일 오후 3시 20분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맹현균 기자 maeng@ 문채현2017.09.27
![[방송] 교회와 함께하고 사회와 함께 가는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cpbc.co.kr/CMS/newspaper/2016/11/rc/661551_1.5_titleImage_1.jpg)
[방송] 교회와 함께하고 사회와 함께 가는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가톨릭평화방송 TV(위성TV 184)와 라디오(FM 105.3㎒)는 대림 개편을 통해 하느님 안에서의 기쁨과 행복과 평화를 맛보게 하는 방송으로 거듭나고자 노력하고 있다. cpbc TV는 △편하게 다가가고 쉽게 볼 수 있는 채널 △휴식과 치유가 있는 채널 △모든 세대를 포용하는 콘텐츠가 있는 채널 △교회와 함께 가고 사회와 함께하는 채널을 목표로 대(對) 교회 및 사회 프로그램 등 11개의 새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28일 오전 5시부터 개편되는 cpbc라디오는 매시 뉴스 폐지에 따른 프로그램 시간 확대를 통해 프로그램의 질 향상과 주요 콘텐츠의 멀티 활용, 직ㆍ간접 선교 콘텐츠의 통일성 확보에 개편의 주안점을 뒀다. 새 프로그램을 소개한다.tv 기도를 부탁해 세상 곳곳에서 벌어지는 가슴 아픈 사건과 기도가 필요한 이들의 사연과 요청을 모아 소개하고 시청자와 함께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생방송 프로그램. 당일 전례에 따른 기도 지향과 자연재해나 전쟁, 사회적 문제 등으로 고통받은 이들을 위해 기도하는 시간으로 마련된다. 편지와 인터넷, 전화, 문자로 사연을 받는다. 방송 후반부엔 사연에 맞는 성경 구절을 소개해 위로를 전한다. 월~금 오전 11시, 저녁 6시 35분 교회는 지금 교구와 본당, 성지, 신심 단체 등 한국 천주교회 내 각계각층에서 펼쳐지는 활동들을 발굴해 소개하고 많은 정보를 시청자와 공유하는 프로그램. ‘화제의 현장’ 시간에는 카메라에 담아온 생생한 현장을 보여 주며, ‘매거진 초대석’ 시간에는 교회 내 중요 인사를 초대, 교회 현안과 중요 행사 등에 대해 배경과 전망, 희망을 듣는다. 월 오전 4시, 토 오전 10시, 저녁 8시 40분, 주일 오후 3시 우리 본당 노래자랑 본당 공동체 구성원 간의 친교 진작을 위한 프로그램. 1부 ‘찾아가는 예선전’ 편에서는 제작진과 본당 신부가 신자들의 추천을 받아 노래자랑 본선에 진출할 만한 신자들을 직접 찾아 나선다. 2부 ‘본격 노래자랑’ 편은 출연자들의 사연소개, 노래 경연 수상자 선발과 시상식으로 구성된다. 첫 방송 : 12월 3일 오후 4시 ‘묵동본당’ 편 성경 인물 탐구 이프 유(IF YOU) 내가 만약 그때 그 성경 속 인물이었다면 어떻게 했을까. 성경 인물들의 말과 행동을 우리 시대에 걸맞게 재해석함으로써 그들의 삶과 신앙을 묵상하도록 이끄는 프로그램. 성경 인물의 재연과 대담 등 다양한 구성으로 신앙생활의 기초인 성경에 대한 흥미와 관심을 유발한다. 특별히 청년들을 위해 쉽고 재미있게 제작했다. 첫 방송 : 29일 저녁 9시 ‘마리아와 요셉’ 편 한국 순교자전 한국의 순교자, 증거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삶과 신앙을 들려주는 강좌 프로그램. 김길수(요한 사도) 순교자현양회 자문위원 등 교회사 전문가들이 대거 출연한다. 월 오전 6시 35분, 화 오전 3시 30분, 수 오전 11시 30분, 저녁 8시 30분, 토 오전 3시, 주일 저녁 6시 5분 님 따라 한평생 우리 시대의 아픔을 어루만지고 참된 공동체를 격려하는 원로 사목자들을 찾아가 만나는 프로그램. 일생을 바쳐 교회에 헌신하고 이제는 한발 뒤로 물러서서 자신을 돌아보고 하느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원로 사목자들의 근황을 소개하고 삶과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눈다. 월ㆍ화 오전 10시 20분, 수ㆍ목 오후 3시 20분, 주일 오전 3시, 저녁 9시 가톨릭이 보는 세상 세상에서 벌어지는 일을 그리스도인들은 과연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해야 할까. 가톨릭 교회 ‘사회교리’에 근거해 고민해 보는 시간이다. 교계 안팎의 전문가들을 초청해 이야기를 들어 본다. 화 밤 10시, 수 오전 9시, 저녁 7시, 목 오후 4시 뷰티풀 라이프 4U 750만 명에 이르는 1차 베이비붐 세대(1952~1962년생)의 은퇴가 본격화됐다. 650만 명에 이르는 2차 베이비붐 세대(1963~1973년생)는 은퇴를 준비하고 있다. 이들의 건강 문제를 비롯해 은퇴 이후 설계, 여가 및 신앙, 사회공헌, 봉사활동 등을 다루며 어떻게 사는 것이 잘사는 것이며 아름다운 삶인지를 가톨릭적인 시각으로 제시한다. 수 오후 4시, 목 밤 9시, 금 오전 3시, 오전 9시, 토 오전 11시, 주일 오후 5시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정치ㆍ경제ㆍ사회ㆍ문화 등 각계에 오피니언 리더들인 가톨릭 신자들의 삶의 현장을 찾아가 그들의 신앙과 삶을 듣는 프로그램. 가톨릭평화신문에서도 함께 소개한다. 화 저녁 7시, 수 밤 11시, 목 오전 8시 책, 영화 그리고 이야기 매주 새롭게 선 보이는 화제의 책과 영화를 소개하고 한 권의 책과 한 편의 영화를 선정, 가톨릭적 시각에서 짚어 보는 프로그램이다. 이창재(중앙대) 교수와 배우 화가 김현정(아기예수의 데레사)씨 등 패널들이 출연해 책과 영화 속 내용과 관련된 삶과 신앙 이야기를 나눈다. 목 오전 9시, 금 오전 12시, 저녁 7시, 토 오후 5시, 주일 오전 11시 미니 다큐 - 나눔 교회 곳곳에서 봉사활동에 나서는 이들을 찾아가 소개하고, 봉사하며 얻은 기쁨을 찾아 전하는 프로그램. 화 오전 11시 35분, 수 밤 10시, 목 오전 6시 35분, 금 오전 12시 35분, 토 오전 3시 30분, 저녁 6시 35분 radio 민병훈 감독의 영화 터치 민병훈(바오로) 영화감독의 시선으로 영화와 생명, 예술, 사랑, 음악을 소개하는 프로그램. 민 감독은 러시아 국립영화대학을 졸업하고 장편 극영화 「벌이 날다」(1998)로 데살로니카 국제영화제 은상을 받았다. 첫 방송은 ‘희생’을 주제로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 감독의 영화 「희생」을 소개한다. 매주 토 오후 4시 강신모 신부의 예수님 다시 보기 팟캐스트를 통해 가톨릭 교리 강의로 인기몰이 중인 강신모(의정부교구) 신부가 일상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예수님을 느끼고 예수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다. 매주 토 낮 12시 토요 특집 ‘신부들의 수다’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들이 신자인 청취자들과 유쾌하게 수다를 떨듯 소통하는 기획 프로그램. 매주 토 오후 1시 그 밖에 주요 프로그램들도 개편된다. 월~토요일 오전 9시 5분에 방송하는 클래식 중심의 음악 프로그램 ‘FM 음악 공감’은 세미 클래식과 영화음악, 월드뮤직 등으로 영역을 넓혀 다양한 음악을 소개한다. ‘이동우 김다혜의 오늘이 축복입니다’(낮 12시 15분 방송)는 ‘한낮의 가요 선물, 이동우 김다혜입니다’로 타이틀을 변경하고, 주 청취자층인 젊은 세대가 선호하는 선곡과 내용으로 새롭게 꾸민다. 오후 4시 5분에 전파를 타는 ‘우리는 코이노니아’는 성공적인 협동조합을 소개하고 가톨릭으로 보는 생활 경제 등 새로운 구성으로 청취자들을 찾아간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문채현2016.11.24
![[구요비 주교]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귀 기울이는 ‘경청의 사제’](//cpbc.co.kr/CMS/newspaper/2017/07/rc/687503_1.0_titleImage_1.jpg)
[구요비 주교]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귀 기울이는 ‘경청의 사제’서울대교구 보좌 주교 구요비 신부 삶과 신앙 1958년 4월 6일 부활절에 찍은 구요비 주교 어머니의 세례식 가족 사진. 어머니(가운데 흰옷) 오른쪽 꼬마가 7세 때의 구 주교다. 맨 오른쪽은 아버지의 친구인 김홍섭(바오로) 판사. 사제관 에어컨은 고장 났다. 주교 임명 당일인 6월 28일 저녁, 미사를 마친 구요비 신임 주교는 가톨릭평화방송ㆍ평화신문 등 교계 언론사 기자에게 둘러싸였다. 날씨는 그리 덥지 않았지만, 기자 10여 명이 모인 본당 사제관은 찜통이었다. 선풍기 두 대로 주교와 기자들 모두 땀을 식히며 인터뷰를 시작했다. 구 주교는 미안해했다. 그는 에어컨이 고장 난 줄도 몰랐다. 절약이 몸에 밴 그의 삶을 엿볼 수 있는 현장이었다.구요비 주교의 삶을 관통하는 두 열쇳말은 ‘가난’과 ‘겸손’이다. 1981년 사제품을 받자마자 ‘가난의 영성’을 실천하는 재속 사제회 ‘프라도 사제회’에 입회했다. 이후 오롯이 가난을 실천해 왔고, 늘 검소하고 소박하게 살았다. 사제관 책상에 놓인 우리말, 프랑스어 성경과 필사 노트는 ‘말씀과 함께한 가난한 삶’을 대변하는 듯했다. “포이동본당에서 4년 6개월 동안 사목하면서도 늘 가난한 이웃, 어르신들을 찾아가셨어요. 부임하자마자 시작된 가정 방문을 통해 어렵고 가난한 형제자매들을 돌보셨고, 지역사회 복지 혜택을 받도록 애쓰셨어요. 당신이 가지고 계신 모든 것, 축일 때 받으신 선물까지도 노숙인이나 홀몸 노인, 어려운 이웃에게 다 내어주는 사제이셨지요. 말씀 그대로 아흔아홉 마리 양보다 잃어버린 한 마리 양을 찾아 함께했던 참 목자이셨습니다.”(유병례 안나, 포이동본당 여성총구역장) 구 주교는 전쟁이 한창이던 1951년 1월 25일 경기도 가평군 설악면 위곡리에서 태어났다. 부친은 한학을 공부하다가 일제강점기에 일본 죠치대(上智大)에 유학해 언론인, 교육자로 산 구동식(안토니오)씨, 모친은 한경란(수산나)씨였다. 형제자매로는 큰 누나 구화사(클라라, 75)씨를 시작으로 구요한(요한, 72)ㆍ요섭(요셉, 70)ㆍ요나(요나, 63)씨가 있다. 구 주교는 4남 1녀 중 넷째다. 신문물을 접하며 천주교 신앙을 받아들인 부친 덕에 자녀들 이름은 ‘평화의 사도’를 줄인 화사씨를 제외하고는 모두 성경 등장인물 이름에서 따 지었다. 구 주교가 어린 시절을 보낸 집은 설악면에서 유일한 공소였다. 인근에 성당이 없었기에 구 주교 부친은 부활과 성탄 판공 때면 사제를 모셔다 자신의 집에서 판공을 하고 미사를 봉헌했다. 부친은 6ㆍ25 전쟁 직후엔 고향 설악면에 설악고등공민학교를 설립, 육영에 나섰고 나중에는 소명여중ㆍ고교 교장을 지내기도 했다. 구 주교가 성소를 느끼게 된 것은 서울 신일고 2학년 재학 시절로, 가세가 기울어 서울 강북구 삼양동 언덕배기 단칸방에 살 때였다. 가난했지만 ‘공부’를 통해 미래에 대한 희망을 꿈꾸던 시기였고, 철학을 통해 완덕에 이르는 사제의 길을 갈망한 시기였다. ‘가난 속에서의 성소’는 구 주교가 훗날 사제가 돼 가난의 영성을 실천하며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함께하는 배경이 됐다. 1971년 서울 대신학교에 들어간 구 주교는 서강대 산업문제연구소에서 주최한 노동사목 연수회에 참석한 것을 계기로 당시 우리나라 노동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체험하게 된다. 혹사당하는 노동자들과 갈수록 피폐해지는 농ㆍ어민들의 현실을 보게 되면서 큰 충격을 받았고, 가톨릭노동청년회 소속 청년들, 공장에서 일하는 노동자들에게 가까이 다가가겠다고 결심하는 계기가 됐다. 이 같은 체험을 하며 구 주교는 사제품을 받자마자 프라도 사제회에 들어갔고, 설립자인 복자 앙투안 슈브리에 신부의 가르침에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닮으려 노력해 왔다. “신학생 시절, 이웃에 홀로 사시는 어르신이 있었습니다. 움막에 사셨는데, 어느 겨울날 신학생이셨던 구 주교님이 그 어르신을 집에 모셔와 따뜻한 저녁 한 끼를 대접하고 ‘주무시고 가시라’고 하는 게 아니겠어요? 어머니는 당연히 반대하셨죠. 낯선 사람을 집안에 들이는 걸 꺼리셨던 거예요. 그 어르신은 결국 움막집으로 가셨는데, 주교님은 ‘어떻게 저 어르신을 그냥 보낼 수 있느냐’며 어머니께 화를 내신 적이 있었어요. 젊은 시절부터 주교님은 늘 가난한 이웃을 배려하는 삶을 사셨지요.”(동생 구요나씨)구 주교는 사제로 산 37년 동안 한결같이 누구에게나 귀를 기울이는 ‘경청’의 사제였다. 하느님의 모습을 닮아 창조된 존재이기에 인간은 누구나 소중하다는 것을 강조해 왔고 그 신념대로 살았다. 사제의 역할은 두 가지가 있는데, 하나는 ‘말씀 안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느님의 백성 안에서 주님을 만나는 것’이라는 구 주교는 두 역할에 충실한 삶을 살고자 노력해 왔다. 가톨릭노동청년회, 노동장년회 담당 사제로 살 때뿐 아니라 구로1동(현 구로2동)본당 등에서 본당 사목을 하면서도 노동사목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인지 사제로서 가장 행복했던 시기로 가난한 노동자들과 파업 현장에서 동고동락했던 구로1동본당 주임 시절을 꼽기도 했다. 프라도 사제회원인 정월기(서울대교구 광장동본당 주임) 신부는 “구요비 주교님은 한 마디로 ‘귀를 기울이시는 분’”이라며 “가톨릭노동청년회와 노동장년회 담당 사제로 사시면서 그들이 가정과 일터에서 예수님 사랑의 전달자가 되도록 이끄셨던 게 특히 기억이 난다”고 회고했다. 구 주교는 특히 2007년부터 2013년까지는 프라도 사제회 한국지부 책임자로 있으면서 2009년 자립 프라도 승격을 위한 준비위원회를 구성, 한국 프라도 사제회가 한국 진출 40년 만인 2015년 5월 ‘자립 프라도’로 승인받는 데 초석을 놓았다. 이처럼 가난과 겸손의 성덕으로 살아온 삶이기에 구 주교의 일상은 기도나 성체조배 등이 중심이다. 골프도 외면하고 인근 구룡산 등반이나 양재천 걷기로 건강을 다졌다. 취미라면 서예가 강포 김상용(스테파노) 선생에게 배운 서예가 있다. 예서(隸書)와 해서(楷書)를 주로 썼고 독서나 클래식 음악도 꽤 좋아하는 편이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이힘 기자 lensman@cpbc.co.kr구요비 주교 약력1951. 경기 가평 출생1981. 2 사제 수품1981~1982 이문동본당 보좌1982~1983 신당동본당 보좌1982~1983 겸) 서울대교구 북부지구 가톨릭노동청년회(JOC) 지도신부1983~1986 프랑스 리옹 가톨릭대학교 (노동사목)1986~1998 프라도사제회 한국지부 대표1986~1991 구로1동본당(현 구로2동) 주임1991~1992 겸) 가톨릭노동장년회(CWM) 지도신부1991~1993 상계동본당 주임1993~1998 가톨릭노동청년회(현 YCW) 전국 지도신부1993~1998 겸) 서울대교구 노동사목 위원회 위원1998~2000 프랑스 파리 가톨릭대학교 석사(영성신학)2000~2002 종로본당 주임2002~2009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 영성 지도 신부2006~2012 프라도사제회 한국지부 대표2007~2013 프라도사제회 국제평의회 위원2013. 2~현재 포이동본당 주임 백영민2017.07.05
 예수님의 탄생(2,1-7) : 초라한 탄생](//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7286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8) 예수님의 탄생(2,1-7) : 초라한 탄생아기 예수의 구유 탄생 뒤에는 요셉의 땀이 있었다 루카는 예수님의 탄생과 관련한 시대적 배경으로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칙령을 내려서 온 세상이 호적 등록을 하게 됐을 때였고 또한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였다고 전합니다.(2,1-2) 조금 후에 살펴보겠지만, 역사적으로 볼 때 이 기록은 부정확합니다. 성경 학자들은 이와 관련하여 루카의 연대 기술이 잘못이라는 점보다는 루카가 이런 배경 설정을 통해서 제시하려고 하는 의도가 무엇인지를 헤아려야 한다고 이야기합니다. 어쨌거나 모든 사람이 칙령에 따라 호적 등록을 하러 저마다 자기 본향으로 갔고, 요셉도 임신 중인 약혼녀 마리아와 함께 고향 나자렛을 떠나 본향인 유다 지방 베들레헴으로 올라갑니다.(2,3.5) 베들레헴은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남쪽으로 100㎞ 넘게 떨어져 있습니다. 요셉이 그 먼 길을 임신 중인 마리아와 함께 간 것은 우리식으로 표현하면 요셉의 본적지(本籍地) 혹은 원적지(原籍地)가 베들레헴이었기 때문입니다. 베들레헴은 다윗 왕의 고향이었는데 요셉은 “다윗 집안의 자손”(2,4)이었습니다.그런데 문제가 생겼습니다. 베들레헴에 머무는 동안에 해산 날이 된 마리아가 “첫아들”을 낳았는데, 여관이 만원이어서 들어갈 자리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2,6-7)이스라엘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기념 성당 전경과 앞 광장. 왼쪽으로 보이는 건물이 예수 탄생 기념 성당이다. 부정확한 역사와 루카의 의도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호적 등록에 관한 칙령을 내렸고 또 그 시기는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으로 있을 때였다고 한 루카의 설명은 역사적으로 정확하지 않습니다. 이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기원전 29년(또는 27년)부터 기원후 4년까지 로마 제국을 다스린 제국의 초대 황제였습니다. 문제는 아우구스투스 황제는 생전에 호적 등록에 관한 칙령을 내린 적이 없다는 사실입니다. 다른 한편으로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에 임명된 것은 기원후 6년쯤입니다. 그러니 아우구스투스 황제 때에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이었다는 설명 역시 틀린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합니다. 퀴리니우스는 총독이 된 직후인 기원후 6~7년쯤 이스라엘 지역에 호적 등록을 시행했다는 사실입니다. 그렇다면 루카는 왜 맞지 않는 두 시기를 예수님 탄생과 관련한 배경으로 설정해 놓았을까요? 그 이유를 헤아리게 해주는 단어가 있습니다. ‘베들레헴’입니다. ‘빵집’이라는 뜻의 베들레헴은 다윗 왕의 고향이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10㎞가 채 되지 않는 곳이지요. 그리고 요셉은 다윗 가문의 후손이었습니다. 루카복음은 예수님 탄생 예고에 관한 기사에서 마리아가 잉태하여 낳게 될 그 아기가 다윗 왕좌를 이어 이스라엘 백성을 영원히 다스릴 것이라고 예언합니다.(1,31-33 참조) 나자렛에서 살던 요셉과 마리아가 특별한 일이 아니고서야 요셉의 본향인 베들레헴으로 갈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마리아가 임신한 몸이었으니 더욱 그러했겠지요. 그렇다면 루카는 만삭의 몸인 마리아를 데리고 요셉이 베들레헴까지 가야 할 이유를 퀴리니우스 총독이 시행하라고 명령한 호적 등록으로 설명하고자 한 셈입니다.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은 다윗 왕실을 이어 이스라엘을 영원히 다스릴 통치자가 베들레헴에서 나올 것이라고 믿고 있었습니다.(미카 5,1 참조) 이는 또한 구약 미카 예언자의 예언을 실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생각해 보기 시대적 배경, 베들레헴이라는 장소의 의미를 제외하고 생각한다면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 자체는 우리네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와 다를 바가 없는 듯합니다. 요셉은 호적 등록을 하러 만삭이 된 아내와 함께 원적지를 찾아갑니다. 그곳에는 많은 사람으로 붐비고 있었고 만삭이 된 아내를 위해 방을 구하려 해도 구할 곳이 없었습니다. 해산할 곳을 찾아 헤매던 끝에 겨우 구한 곳이 외양간이었습니다. 그래서 해산한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었습니다. 뉘일 곳이 없어 구유를 요람으로 삼은 것이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한 가지 묵상할 것이 있습니다. 본문에는 나와 있지 않지만, 요셉의 노력입니다. “의로운 사람”(마태 1,19) 요셉은 아마 마리아가 해산하기 직전까지 방을 구하려고 백방으로 노력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여관에는 그들이 들어갈 자리가 없었습니다.(2,7) 만원이어서 방을 구하지 못했을 수도 있고, 돈이 없거나 부족해서 못 구했을 수도 있습니다. 어쨌거나 요셉은 최선을 다했을 것이고 뜻대로 이뤄지지 않아 결국 외양간에서 첫아들을 낳았습니다. 현재의 처지에서 최선의 노력을 다한 후에는 아무리 초라하더라도 그 결과를 겸허히 받아들이는 자세를 요셉과 마리아에게서 배울 수 있지 않을까요. “첫아들”(2,7)이라는 표현과 관련해서,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부인하는 개신교 측에서는 “첫아들”이라는 표현을 자기네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로 삼기도 합니다. 하지만 여기서 “첫아들”이란 표현은 예수님에게 동생이 있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맏물은 하느님께 바치라는 성경 말씀(탈출 13,12; 34,19-20)처럼 하느님께 봉헌된 사람이라는 의미라고 가톨릭 성경학자들은 이야기합니다. 실제로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님을 만물의 맏이라고 고백합니다.(콜로 1,15 참조)예수님의 탄생 연도 예수님 탄생 이야기와 관련해 더 짚고 넘어가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탄생하신 연도는 정확히 언제일까요. 마태오복음을 따르면, 예수님께서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고 합니다.(2,1) 반면에 루카복음을 따르면, 퀴리니우스가 시리아 총독 때에 실시한 호적 등록 때에 태어나셨습니다. 이때는 이미 헤로데 대왕이라고도 하는 헤로데 임금이 사망한 뒤였습니다. 그런데 루카는 또한 요한 세례자가 잉태된 것이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 곧 헤로데 대왕이 통치하던 때라고 합니다. 이 헤로데 임금은 역사적으로 기원전 4년에 사망했습니다. 그래서 확실하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 시기가 적어도 기원전 4년 이전이라는 것입니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기원전 6년에서 4년 사이에 태어나셨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의 탄생 연도를 기준으로 삼는 표현들인 B.C.(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 기원전) 혹은 A.D.(Anno Domini, 주님의 해, 기원후)는 어떻게 해서 생겨난 것일까요? 6세기에 제56대 교황 요한 1세(재위 533~535) 지시에 따라 디오니시우스 엑시구우스라는 수도자가 기존의 여러 달력을 참고해 전례용으로 사용할 달력을 만들 때 주님 강생을 기원으로 삼아 생겨났습니다. 하지만 계산 착오로 그리스도께서 그리스도 이전(B.C.) 6년 또는 그즈음에 탄생하셨다는 이상한 결과가 나오게 됐다고 합니다. 백영민2017.04.05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3.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7360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3.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8) ‘예수님과 제자들의 식사’, 14세기, 프레스코, 괴르메 박물관, 터키. 예수의 드라마, 시각은 달라도 믿음은 하나저자마다 특징 다른 공관 복음서마태오, 구약에서 전승된 점 강조마르코, 유다인도 이해 쉽게 설명루카, 이방인 출신 위한 해석 집중그리스도 구원 업적 공통으로 전달예수님의 드라마라 부를 수 있는 모든 사건은 이제 대단원의 막을 내립니다. 복음서에서 공통으로 전하는 것은 예수님의 부활과 발현까지입니다. 단지 루카만이 자신의 복음서 마지막에 예수님의 승천에 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러한 루카복음서의 마지막 이야기는 자연스럽게 사도행전의 시작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수님에 관한 하나의 사건을 전하는 복음서들은 서로 다른 시각에서 그 사건의 의미를 해석하고 전합니다. 이러한 차이점은 복음서 저자들이 염두에 둔 첫 번째 독자들이 예수님을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돕기 위한 것입니다. ‘공관’이란 이름에 맞게 대부분의 내용은 비슷하지만 각 복음서가 가지고 있는 특징을 간략하게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태오복음은 유다인들 또는 유다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우선적으로 초점을 맞춥니다. 다른 복음서에 비해 마태오가 강조하는 것은 구약성경이나 율법과의 관계입니다. 마태오복음에서 예수님은 구약의 말씀들, 특히 예언들을 성취하는 분으로 그려집니다. 이미 구약성경을 알고 있는 이들에게 예수님은 구약에 예언된 왕으로 오실 메시아의 모습으로 소개됩니다. 비교적 다른 복음서에 비해 율법이나 구약의 전승들이 가지고 있는 가치에 대해 강조하고 그것을 통해 예수님을 기존의 율법을 완성하러 오신 분으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사실을 가장 잘 드러나는 부분은 예수님의 탄생(마태 1―2장)과 산상설교(마태 5―7장)입니다. 마르코복음은 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쓰인 것으로 생각합니다. 많은 이들은 70년쯤, 로마에 의해 성전이 파괴된 직후에 이 복음서가 기록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마르코복음은 무엇보다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라는 점에서 예수님에 관해 간결하게 이야기합니다. 마르코복음에는 특정한 출신들에 국한되지 않고 한편으로는 유다인들에게 적합한,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이방인들에게 적합한 내용을 통해 예수님을 설명합니다. 루카복음은 마태오복음보다는 조금 늦은 시기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루카는 여러 면에서 마태오와는 구분되는, 이방인들이나 이방인 출신의 그리스도인들을 염두에 둔 복음서입니다. 그렇기에 유다교와 관련된 여러 관습이나 율법에 대해서 번역하거나 해설하는 내용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에 관해서는 예언자적인 모습을 강조하는 편입니다. 예언자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만이 아니라 이방인들에게도 익숙한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루카는 예수님의 구원은 유다인만을 위한 것이 아닌, 믿음을 지닌 모든 사람을 위한 것임을 나타내는, 구원의 보편성을 강조합니다. 요한복음은 여러 면에서 다른 복음서와는 차이가 있습니다. 요한은 무엇보다 먼저 예수님을 강생하신 하느님의 말씀으로 소개하고 예수님의 사명을 통해 세상에서 하느님의 뜻이 드러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하느님의 계시의 유일한 중재자이며 계시 자체인 예수님을 믿는 것을 통해 얻게 되는 것은 영원한 생명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요한복음을 기록한 목적이라고 저자는 밝힙니다.(요한 20,31)복음서들은 이런 특징들이 있지만 공통으로 예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을 선포합니다. 다양한 방식의 설명 역시 복음을 읽는 이들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하도록 요청하며 초대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을 믿는 이들은 모두 예수님의 사건에 대한, 그의 구원 업적에 대한 증인이기도 합니다. 이제 복음서의 마침은 사도들의 활동과 초대 교회의 모습을 그리고 있는 사도행전의 내용으로 이어집니다. 특별히 루카복음은 예수님의 승천과 성령 강림을 통해 복음서와 사도행전이 이어지는 내용을 전해주는 책이라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이 선포되어야 한다는 제자들의 사명은 사도행전 안에서 펼쳐집니다. 루카복음에 이어지는 두 번째 책으로 볼 수 있는 사도행전은 복음과 동일하게 테오필로스라는 인물을 통해 예수님의 활동과 사도들의 활동을 연결시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7.04.05

예수 수난 기억하며 속죄하고 ...새 사람이 되는 은혜로운 시기 사순 시기는 ‘흙에서 나와 한 줌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는 의미로 이마에 재를 바르는 재의 수요일에 시작한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사순의 시작, 재의 수요일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기념하며 부활을 준비하는 사순 시기가 1일 ‘재의 수요일’로 시작됐다.신자들은 재의 수요일에 이마에 재를 바르는 재의 예식으로 참회와 속죄를 다짐한다. 이마에 재를 바르는 것은 ‘흙에서 나와 한 줌 먼지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는 뜻에서다. 이날 사용하는 재는 지난해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축복한 나뭇가지를 태워 만든 것이다.의미와 유래사순 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을 기념하는 ‘주님 만찬 성 목요일’ 전까지다. 이 기간이 통상 40일이어서 사순(四旬) 시기라고 부른다. 사순 시기는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을 기억하는 슬픔의 시기인 동시에 죄를 씻고 새 사람이 될 것을 다짐하는 은혜의 때다.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로 죄에서 벗어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됐기 때문이다. 재의 수요일에 읽는 성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이 진리를 고백한다. “하느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그리스도를 우리를 위하여 죄로 만드시어,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의 의로움이 되게 하셨습니다.”(2코린 5,21)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뜻을 따르고자 수난과 죽음을 겪으셨고, 이로 인해 부활과 하느님 오른편에 앉는 영광을 누리셨다. 그리스도인 또한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할 때 그분의 영광에도 동참하게 된다. 이처럼 사순 시기는 파스카 신비를 집중적으로 묵상하는 시기다. 성경에서 40은 매우 특별한 의미를 지니는 숫자다.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은 악으로 가득 찬 세상을 정화하기 위해 40일 동안 비를 내리셨고(창세 6,5-7,22), 이집트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 민족에게 노예 생활에서 벗어나 당신께서 약속하신 땅에 들어가기까지 40년간 광야 생활을 하며 준비하도록 하셨다.(신명 29,4) 또 모세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의 계명을 받기 위해 40주야 재를 지켜야 했고(신명 9,18), 엘리야는 하느님의 산 호렙으로 가기 위해 40일간 밤낮으로 걸어야 했다.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공생활을 시작하기 전 광야에서 40주야를 단식하며 준비하셨고(마태 4,1-11), 부활하신 후에는 승천하실 때까지 40일 동안 제자들과 함께 머무르셨다.(사도 1,3) 이처럼 40은 살아 계신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참회와 속죄로 합당한 준비를 하는 기간을 상징한다.초대 교회 때부터 40일간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한 것은 아니다.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예수 그리스도 최후의 만찬과 수난, 부활에 이르는 ‘파스카 3일’만을 기념했다. 40일이라는 기간이 결정된 것은 신앙의 자유를 얻은 후 처음 열린 니케아 공의회(325년)에서였다. 사순 시기는 전통적으로 예비신자들이 세례를 준비하는 마지막 기간이었기에 더욱 경건하게 지냈다.전례사순 시기에 사제는 회개와 속죄의 상징인 자주색 제의를 입는다. 신자들은 기쁨의 노래인 알렐루야와 대영광송을 하지 않고, 성가대 찬송이나 화려한 오르간 독주도 자제한다. 참회와 속죄가 그만큼 강조되는 것이다.사순 시기에는 십자가의 길 기도를 바친다. 십자가의 길(Via Dolorosa)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고 무덤에 묻히시기까지 14개 사건을 묵상하는 기도이다. 이 기도는 초기 교회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 빌라도 관저에서 골고타 언덕까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를 지고 지나간 길을 따라 걸으며 기도한 데서 시작됐다. 십자가의 길 기도는 아무 때나 할 수 있지만, 특별히 사순 시기 매 금요일과 성 금요일에 하기를 권한다. 재의 수요일에 시작한 사순 시기는 성주간에 절정을 이룬다. 성주간은 ‘주님 수난 성지주일’로 시작하는 사순 시기의 마지막 한 주간이다. 성주간 전례는 그리스도인 신앙생활의 중심을 이룬다. 특히 성삼일과 부활 성야의 전례가 핵심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통해 제자들은 예수께서 생전에 그들에게 하셨던 말씀의 의미가 무엇이었는지 새롭게 깨닫게 됐다.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체험한 제자들은 그분의 행적을 더듬고 생전에 하신 말씀의 의미를 되새기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 사람들에게 증언하러 나섰다. 이러한 말씀과 행적들을 신앙 공동체의 생활 속에 표현하고 생활화한 것이 바로 전례다.준비먼저 사순 시기는 예수 부활 대축일을 준비하기 위해 마련됐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려면 그분과 함께 고난을 받아야 합니다”(로마 8,17)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사순 시기를 이해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한다. 사순 시기에 이뤄지는 고행과 단식은 예수 그리스도의 파스카 신비와 연관될 때라야 비로소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사순 시기를 시직하는 첫날인 재의 수요일에는 금식재와 금육재를 함께 지킨다. 금식재는 아침 식사를 하지 않고 점심은 평소대로 하되 저녁 식사는 요기 정도만 하는 것이다. 육식하지 않는 금육재는 재의 수요일과 모든 금요일에 지켜야 한다. 금식재와 금육재를 동시에 지켜야 하는 날은 재의 수요일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주님 수난 성 금요일’이다.사순 시기에는 또 하느님께 죄를 고백하고 용서를 청하는 고해성사를 받는다. 고해성사는 신자가 하느님 앞에 쌓은 공로를 셈한다는 뜻에서 판공(判功)이라고도 부른다. 교부들은 자선으로 이어지지 않는 단식은 가치가 없는 것이라고 했다. 자선은 사순 시기를 뜻깊게 보내는 매우 중요한 방법이다. 교회는 이 시기에 사순 저금통 모으기, 사랑의 쌀 모으기, 헌혈 캠페인 등 다양한 자선 활동을 펼친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평화신문2017.03.02
“성경 안에는 인생 희로애락 다 들어 있어” 성경 16번 필사한 춘천교구 신자 황호순씨 황호순씨(왼쪽)가 김운회 주교와 함께하고 있다. 춘천교구 문화홍보국 제공 아무리 즐거운 일이라도 몇 번을 반복하면 질리기 마련이다. 그런데 16번이나 신ㆍ구약 성경을 필사하고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에게 축복장을 받은 황호순(나오미, 68, 죽림동 주교좌 본당)씨는 한 번도 성경 필사가 지루하지 않았다고 했다. 황씨는 “아주 재밌는 소설도 두 번 읽으면 더는 흥미가 안 느껴지는데, 신기하게도 성경은 옮겨 적을 때마다 새롭다”며 활짝 웃었다.“2000년 즈음에 근심, 걱정이 참 많았어요. 무언가에 의탁하고 싶어서 성경 필사를 시작했어요. 성경을 옮겨 적으면서 마음도 아주 편해졌지만, 무엇보다 말씀에 맛을 들이게 된 게 기뻐요. 성경 안에는 슬픈 일도 있고, 기쁠 일도 있고, 눈물 나는 일도 있어요. 인생의 희로애락이 다 들어있죠.”춘천에서 미용실을 운영하는 황씨는 손님이 없을 때면 늘 성경과 필사 노트를 펼치고 펜을 든다. 그는 “손님이 있을 때는 돈을 벌어서 좋고, 손님이 없을 때는 필사를 할 수 있어서 좋다”면서 “성경을 필사를 시작한 후로 그냥 순간순간이 다 좋다”고 말했다.황씨는 성경을 읽고, 필사하며 인생의 교훈을 많이 얻는다고 했다. 가장 좋아하는 성경 구절은 “남을 판단하지 마라. 그러면 너희도 판단 받지 않을 것이다”(마태 7,1)이다.“함부로 다른 사람을 판단하고 뒤에서 험담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이 있잖아요. 성경 필사를 시작하면서 그런 ‘남 이야기’, 험담이 참 듣기 싫더라고요. 예수님 말씀대로 자기 마음대로 남을 판단하지 않았으면 해요.”황씨는 “처음 창세기 필사 때 많은 분이 힘들어하는데, 그때 조금만 견디고 계속 쓰다 보면 재미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며 “많은 신자가 성경 필사의 기쁨을 체험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그는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계속 성경을 읽고 옮겨적겠다고 했다.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백영민2015.11.25
![[신앙단상] 라뿌니(스승님)](//cpbc.co.kr/CMS/newspaper/2017/07/rc/689819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라뿌니(스승님)백형찬(라이문도, 서울예술대 교수) [tl 예수님은 훌륭한 교육자이셨습니다. 이는 성경 곳곳에 나와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간음하다 잡힌 여자’입니다. 율법 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이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를 끌고 와서 성전 가운데에 세워 놓고, 예수님께 율법에서는 이런 여자에게 돌을 던져 죽이라고 했는데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었습니다. 율법대로 돌을 던지라고 할 것인지 아니면 율법을 무시하고 살려 주라고 할 것인지 사람들은 예수님의 대답이 궁금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즉답을 피하시고 땅에 무엇인가 쓰셨습니다. 그런 후에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자 사람들이 하나둘, 나중에는 모두 그 자리를 떴습니다. 이 짤막한 이야기 속에는 교육철학, 교육심리학, 교육사회학 등 많은 교육학 이론이 들어 있습니다. 교육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깨닫게 해주는 것입니다. 가르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을 깨닫도록 하셨습니다. ‘간음하다 잡힌 여자’에서 돌을 던지며 죽이려 했던 사람들에게 스스로 자신을 돌아보며 깨닫게 한 것이 바로 교육자의 모습입니다. 가르치면 잊어버리지만 깨달으면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가르친 것은 단기 기억으로 들어가지만 깨달은 것은 장기 기억 속으로 들어갑니다. 장기 기억 속에 들어간 것은 시간이 흘러도 소멸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이러한 원리로 교육하셨습니다. 교육은 영어로 ‘education’이라 합니다. 이 단어 속에는 ‘안에 들어 있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낸다’는 뜻이 담겨 있습니다. 안에 있는 것은 하느님께서 주신 재능을 뜻합니다. 그래서 소크라테스는 교육을 ‘산파술’이라 했습니다. 산파란 아기를 받아내는 사람입니다. 산파의 역할은 아기를 건강하게 받아내는 것입니다. 아기는 이미 어머니 배 속에 있을 때에 하느님으로부터 과학자, 예술가, 교육자 등의 재능을 부여받습니다. 그러한 아이의 재능을 다치지 않게 잘 이끌어 내는 사람이 부모이고 선생님입니다. 교회의 모든 사람, 특히 사제를 비롯해 수도자, 사목위원, 단체장, 주일학교 교사, 그리고 각 봉사자는 예수님의 교육자적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강론할 때도, 고해성사를 줄 때도, 각종 전례에서도, 교회 행정에서도, 직무 봉사에서도 ‘나는 교육자다’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예전에 ‘TV는 사랑을 싣고’라는 프로그램이 방영된 적이 있습니다. 유명 인사들이 나와 어렵고 힘들었던 학창 시절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의 따뜻한 그 사랑이 없었다면 오늘 이 자리에 있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 선생님 덕분에 이렇게 번듯한 사람이 되었다고 말합니다. 애절한 사연이 끝나면 출연자는 무대 뒤편을 향해 선생님을 부릅니다. ‘선생님~’ 이때 음악이 흐릅니다. 처음엔 작게 부르다가 점점 크게 부릅니다. 음악은 더욱 커지면서 드디어 선생님이 무대에 등장합니다. 그러면 출연자는 그 앞으로 달려가 흐느껴 울며 큰절을 올립니다. 이때 시청자들도 함께 눈물을 흘립니다. 사람들은 수학과 영어를 잘 가르쳤던 교사를 찾질 않습니다. 자신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을 때 용기와 희망을 주었던 선생님을 찾습니다. 그래서 마리아가 예수님을 ‘라뿌니(스승님)’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교회(敎會)의 ‘교’ 자와 교육(敎育)의 ‘교’ 자는 서로 같습니다. 그렇습니다. 교회는 교육자적 모습을 보여 주어야 합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가져다주는 하느님의 은총이 우리를 교육합니다.(티토 2,11-12 참조) cpbc2017.07.25
하느님 생각 이해하고 세상 봐야성경 속 하느님 생각 성경 속 하느님 생각민남현 지음/바오로딸/1만 3000원구약 성경에 나타나는 중요한 주제─관계, 연대의식, 우상숭배, 빛과 어둠, 하느님의 현존, 부르심, 정의와 불의, 회개─를 통해 하느님 생각을 살펴봤다. 또한 하느님 말씀을 우리 현실에 비춰 하느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저자 민남현(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는 각종 폭력이 난무하는 세상을 보며 인간의 악한 모습 때문에 인간을 만든 것을 후회하고 고통스러워 하시던 하느님을 떠올렸다(창세 6,5-6 참조). 하느님께선 타락과 폭력으로 가득한 세상을 향해 냉정한 결정을 내리셨다. “나는 모든 살덩어리들을 멸망시키기로 결정하였다”(창세 6,13). 그 결과 대홍수가 일어났고 세상은 창조 이전의 혼돈이 됐다. 민 수녀는 이 대홍수 사건에서도 하느님 사랑을 찾아낸다. 인간의 악과 그 결과에 무관심하지 않은 하느님 사랑에서 비롯된 일이라는 것이다. 민 수녀는 묵상한다. “하느님의 바람인 평화는 폭력이 없는 상태를 넘어 악이 극복되고 생명을 낳는 사랑의 현실이다.…이 시대에, 더욱 무거워진 폭력 앞에서 하느님은 어떤 심정일까?”민 수녀는 성경 속 ‘하느님을 생각’하며 성경 속 ‘하느님의 생각’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게 해 준다. 말씀이 지닌 현실성과 영원성을 실감케 한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5.09.02
![[결산-세계교회] 분열·고통의 지구촌에 사랑·용서 전하고, 갈라진 형제와 일치 다져](//cpbc.co.kr/CMS/newspaper/2017/12/rc/705490_1.0_titleImage_1.jpg)
[결산-세계교회] 분열·고통의 지구촌에 사랑·용서 전하고, 갈라진 형제와 일치 다져 프란치스코 교황이 4월 28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이슬람 수니파의 최고 지도자격인 아흐메드 알 타예브 대이맘과 악수하고 있다. 교황은 “앗살람 알라이쿰!(평화가 여러분과 함께!)”이라고 인사한 뒤 “우리는 종교의 이름으로 행해지는 모든 형태의 증오를 하느님에 대한 거짓된 우상이라고 단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CNS 자료사진】 세계 교회는 올 한 해 성 프란치스코의 기도를 ‘말’이 아니라 ‘행동’으로 바치면서 더없이 분주하게 보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툼과 분열로 고통받는 지구촌 변방을 찾아다니며 용서와 일치의 씨앗을 심었다. 또 교회는 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11월 19일)을 지내면서 소외와 사회적 불평등에 절망하는 이들에게 희망을 전했다. 재혼자에 대한 영성체 허용 논란과 그리스도인 박해 등 안팎으로 많은 도전이 있었던 한 해였다. 하지만 교황은 “오히려 도전 없는 신앙을 두려워해야 한다. 이러한 도전은 황소를 붙잡을 때 뿔을 잡듯이 정면으로 맞서야 한다”(3월 25일, 이탈리아 밀라노 연설)고 말했듯이, 두려워하지 않고 헤쳐나갔다. 변방으로 달려간 목자 교황은 81세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왕성한 행보를 이어갔다. 올해 이탈리아를 벗어난 사도적 방문은 네 차례 있었다. 파티마 성모 발현지(5월)를 제외하면 모두 갈등과 분열로 얼룩진 지구촌 변방이었다. 콥트교인들에 대한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박해가 극심한 이집트(4월)를 방문해서는 이슬람과 새로운 대화의 장을 열었다. 교황은 수니파 최고 지도자격인 아흐메드 알 타예브 대이맘과 만난 뒤 “우리 만남이 곧 메시지”라며 2006년 이후 대화가 끊겼던 두 종교의 대표 회동 자체에 의미를 부여했다. 반세기 넘게 계속된 내전에 종지부를 찍고 사회 통합을 모색하는 남미 콜롬비아(9월)에서는 용서와 화해를 역설했다. 미얀마와 방글라데시(11월)에서는 종교적 증오로 고통받는 이슬람계 소수민족인 로힝야족 난민을 만나 위로했다. “모든 사람을 대표해 당신들을 박해한 이들에 대한 용서를 구한다. 오늘날 하느님의 현존은 또한 로힝야라고 불린다”고 한 교황 발언에 세계 언론이 놀라움을 표시했다. 종교개혁 500주년 ‘기억’가톨릭 교회와 갈라진 형제들은 루터의 종교개혁 500돌을 함께 ‘기억’하면서 분열의 역사를 넘어 일치의 길을 걷자고 다짐했다.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와 루터교세계연맹은 루터가 95개 조 반박문을 내건 지 500돌이 되는 10월 31일 공동 성명을 발표했다. 두 교회는 “우리가 공통으로 가진 것이 우리를 여전히 분열시키는 것보다 훨씬 많다”며 일치 여정을 계속 가겠다고 밝혔다. 끊이지 않는 박해와 교회 재건 IS를 비롯한 이슬람 극단 무장 조직들은 이라크와 시리아 교회에 큰 상처를 남겼다. 그들의 박해와 살해의 광기에 쓰러진 교회를 보고 ‘그리스도인 없는 신앙의 요람’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다. 이 때문에 교황청과 고통받는 교회돕기(ACN)가 피란을 떠난 그리스도인들의 고향 귀환을 지원하는 니네베 평원 재건 사업에 나섰다. 그리스도인들의 파괴된 집을 지어주고, 쓰러진 십자가를 다시 세우는 사업이다. 성직자와 수도자들 수난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어느 해보다 납치와 살해 위협에 시달렸다. 예멘에서 괴한들에게 납치된 인도 살레시오회 소속 톰 우준날리 신부는 피랍 18개월 만인 9월에 다행히 구출됐지만, 많은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목숨을 잃었다.(2017년도 미집계, 2016년은 23명). 멕시코에서는 최근 사제들이 강도의 표적이 되는 사건이 잇따르고 있다. 올해에만 사제 4명이 살해되고, 미수에 그친 납치 사건이 2건 발생했다.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 100년 전 포르투갈의 산골 마을 파티마에 모습을 드러내고, 죄인들을 위한 희생과 묵주기도 봉헌의 메시지를 전해 준 성모 발현 사건을 기념했다. 각국 교회는 파티마 성모상 국제 순례와 기념 미사, 다양한 문화 행사 등을 통해 하느님의 어머니가 인류에게 모습을 드러낸 의미를 되새겼다. 교황은 5월 12~13일 파티마를 방문해 기념 미사를 봉헌하고, 발현의 증인 프란치스코와 히야친타 남매를 성인으로 선포했다. ‘너무도 다른’ 두 지도자 첫 만남프란치스코 교황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5월 24일 바티칸에서 처음 만났다. 한 명은 가장 영향력 있는 영적 지도자이고, 다른 한 명은 최강대국 정치 지도자라는 점에서 세계적 관심을 끈 회동이었다. 바티칸은 두 지도자의 비공개 면담이 끝난 뒤 “중동의 상황과 소수 그리스도인 공동체들의 보호 문제, 그리고 정치적 협상을 통한 평화 증진에 관한 의견을 나눴다”고 밝혔다. 이혼 후 사회혼한 신자에 대한 영성체 허용 논란 지속이혼 후 재혼(사회혼)한 신자에 대한 영성체 허용 가능성 논란이 올 한 해 신학계를 달궜다. 2014, 2015년 잇따라 열린 가정 시노드에서부터 시작된 쟁점인데, 교황의 시노드 후속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석을 둘러싸고 본격화했다. “하느님께서 맺어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는 복음과 “그들의 다양한 상황을 지나치게 엄격한 틀에 맞추지 말라”(「사랑의 기쁨」 298항)는 조항이 충돌한다는 것이다. 제1차 세계 가난한 이의 날(11월 19일)성경 속 가난의 의미를 성찰하면서 가난한 이들에게 더 많은 사랑을 베풀자는 취지로 제정된 날이다. 세계 교회는 이날 일제히 가난한 이들을 방문하거나 식사 자리에 초대해 그들 손을 잡아줬다. 교구장 주교들의 사회 복지시설 방문도 줄을 이었다. 교황 역시 “가난한 이들은 우리에게 천국으로 가는 길을 열어주는 사람들”(기념 미사)이라고 말하고, 미사에 초대된 1500여 명과 바티칸에서 식사를 같이 했다. 대통령 질주에 제동 건 필리핀 교회 필리핀 두테르테 대통령이 마약ㆍ범죄와의 전쟁을 빌미로 초법적 공권력을 휘두르는 데 대해 주교회의가 잇달아 비판하면서 제동을 걸었다. 필리핀 교회를 대표하는 마닐라대교구장 루이스 타글레 추기경은 경찰이 마약 누명을 씌워 17세 고교생을 사살한 정황이 드러나자 “마약과의 유혈 전쟁을 끝내라”고 강한 어조로 촉구했다. 일각에서는 1980년대 피플파워 혁명 이후 서서히 진행돼온 교회의 도덕적 권위 실추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도 나왔다. 미 대통령 예루살렘 수도 인정 후폭풍미 트럼프 대통령이 12월 6일 예루살렘을 이스라엘의 수도로 인정하는 바람에 성탄을 기다리는 ‘평화의 도시’가 다시 갈등과 화염에 휩싸였다. 예루살렘은 그리스도교ㆍ유다교ㆍ이슬람교 모두에게 가장 성스러운 땅이라 유엔은 어떤 국가에도 속하지 않는 도시로 선포했는데, 트럼프 대통령이 이스라엘의 독점적 지위를 인정한 것이다. 교황뿐 아니라 국제사회는 “예루살렘의 현 상태(Status Quo)를 존중하라”고 촉구하고 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평화신문2017.1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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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속 도시](55) 단종교적 독립 위해 금송아지 숭배 도시 단의 포장된 광장과 돌로 쌓은 성벽. 이곳은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예로보암이 베텔과 함께 금송아지를 둔 곳이다. 발췌=「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이스라엘 사람들이 자주 사용하는 “브에르 세바에서 단까지”라는 표현은 이스라엘의 남쪽 끝은 브에르 세바요, 북쪽 끝은 단이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쓰는 “백두에서 한라까지”라는 표현과 유사하다.단은 구약시대 이스라엘의 전통적 북쪽 경계 도시로 팔레스타인 북단의 도시다. 원래 이름은 ‘라이스’였다. “그 성읍 이름을 이스라엘에게서 난 저희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지었다. 그 성읍의 본래 이름은 라이스였다”(판관 18,29). 요르단 강의 원류단이 전통적으로 가나안의 도시로 발달할 수 있었던 것은 단에서 헤르몬 산의 눈이 녹아 맑은 샘으로 솟아나며 요르단 강의 원천을 이루었기 때문이다. 요르단 강의 이름은 원래 ‘단으로부터 흘러내려 온다’는 뜻인데, 세 군데의 원류 중에서 단의 샘이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풍부한 물과 주변의 기름진 땅 덕분에 이미 신석기시대부터 주거지가 형성되기 시작했고 근처에서 가장 중심적인 도시로 성장했다. 단 지파는 원래 지중해 연안 지역을 분배받았지만 정착해 있던 필리스티아 민족에 밀려 세력을 확장하지 못하고 가나안의 전통적인 도시였던 라이스를 정복한 후, 도시 이름을 자신들의 지파 이름을 따 단이라고 부르게 되었다.“그러나 단의 자손들은 자기들의 영토를 잃어버리게 되었다. 그래서 그들은 레셈으로 올라가 싸워서 그곳을 점령하였다. 그곳을 칼로 쳐서 차지하고 그곳에 살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레셈을 자기들의 조상 단의 이름을 따서 단이라고 하였다(여호 19,47). 성경에서 단이 처음 등장하는 곳은 아브람이 롯을 구출하는 장면에서다. “아브람은 자기 조카가 잡혀갔다는 소식을 듣고, 자기 집에서 태어나서 훈련받은 장정 삼백십팔 명을 불러 모아 단까지 쫓아갔다”(창세 14,14). 결국 아브람은 롯은 물론 빼앗겼던 재물과 친척을 다 찾아왔다. 이 밖에도 단은 성경에서 자주 등장한다. 특히 유명한 것은 솔로몬 사후 남북이 분리돼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왕인 예로보암은 정치적으로 분리된 북이스라엘의 종교적 독립을 위해 남쪽 경계인 베텔과 북쪽 경계인 단에 금송아지 성전을 건축한 사건이다. “그래서 임금은 궁리 끝에 금송아지 둘을 만들었다. 그리고 백성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예루살렘에 올라가는 일은 이만하면 충분합니다. 이스라엘이여, 여러분을 이집트 땅에서 데리고 올라오신 여러분의 하느님께서 여기에 계십니다.’ 그러고 나서 금송아지 하나는 베텔에 놓고, 다른 하나는 단에 두었다”(1열왕 12,28-29). 따라서 단은 남북 왕국이 분열된 후 예로보암에 의해 금송아지를 숭배하던 장소로 유명하다. 그 이후 유다의 아사왕이 다마스쿠스에 사는 아람 임금 벤 하닷을 끌어들여 단을 점령했다. “벤 하닷은 아사 임금의 말을 듣고, 군대의 장수들을 그에게 보내어 이스라엘 성읍들을 치게 하였다. 그는 이욘과 단과 아벨 벳 마아카와 온 킨네렛, 그리고 납탈리 전 지역을 쳐부수었다”(1열왕 15,20). 오늘날 여름철 피서지오늘날 이곳은 이스라엘 국립공원으로 우기 때만 되면 많은 물이 단에서부터 솟아나와 요르단 강으로 흘러들어 간다. 특히 여름철에는 많은 이스라엘인이 피서를 즐기는 곳으로 유명하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7.29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0)레위를 부르심, 논쟁을 벌이시다(5,27-39) ...(4,31-44)](//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6844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0)레위를 부르심, 논쟁을 벌이시다(5,27-39) ...(4,31-44)새 포도주를 헌 부대에 담으려 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 유다인들은 그들의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동족들이 유배지로 끌려간 쓰라린 체험을 되새기며 단식하고 기도했다. 사진은 예루살렘 성전 서쪽 벽, 이른바 통곡의 벽에서 기도하고 있는 유다인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예수님께서는 세관에 앉아 있는 세리 레위를 부르시고 그의 집에서 음식을 드십니다. 이를 못마땅하게 여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이 시비를 겁니다. 예수님께서 죄인과 세리와 어울려 식사하는 것과 예수님의 제자는 단식하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시비에 단호하게 반박하십니다.(5,27-39) 차례로 살펴봅니다. 예수님께서는 밖으로 나가셨다가 레위라는 세리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부르십니다. “나를 따라라.” 그러자 레위는 모든 것을 버려둔 채 일어나 예수님을 따릅니다.(5,27-28) 레위는 자기 집에서 예수님께 잔치를 베풀고 세리들과 사람들이 큰 무리를 지어 함께 식탁에 앉았습니다. 그러자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시비를 겁니다. 예수님께 직접 거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겁니다. “당신들은 어째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오?”(5,29-30)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세리와 함께 식탁에 앉은 사람들을 ‘죄인’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세리를 죄인으로 여겨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세금을 징수하면서 등쳐 먹는 일이 많아 사기꾼으로 본 것입니다.(3,12 참조) 그래서 세리를 창녀와 같은 부류로 취급했다고 합니다. 그 세리와 어울리는 이들도 자연히 죄인처럼 취급당했지요. 부정한 사람과 접촉하면 그 사람도 부정한 것과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 제자들에게 왜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어울리느냐고 비난한 것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건강한 사람이 아니라 병자에게 의사가 필요한 것처럼 “나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려고 왔다”고 말씀하시면서 그들의 비난을 일축하십니다.(5,31-32)바리사이와 율법학자들 시비로 시작된 논쟁의 1라운드는 예수님의 이 말씀으로 판가름 나버렸습니다. 그들은 더 할 말이 없어 머쓱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은 다시 시비를 겁니다. “요한의 제자들은 자주 단식하며 기도를 하고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 당신의 제자들은 먹고 마시기만 하는군요.”(5,33) 단식은 당시에 신심의 중요한 표현이었습니다. 유다인들은 예루살렘의 파괴와 유배라는 치욕스러운 과거를 돌아보며 애도하는 단식과 함께 참회와 속죄, 탄원을 위해서도 자주 단식했습니다. 경건한 유다인은 일주일에 두 번 월요일과 목요일이면 단식하고 기도했지요. 아침저녁으로 단식하고 때로는 일주일씩 단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질문 방식이 묘합니다. 요한의 제자들만 단식하는 것이 아니라 “바리사이의 제자들도 그렇게 하는데”(5,33)라는 표현을 통해 자신들이 경건한 유다인임을 은연중에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면서 상대적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을 비하하고 있지요.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혼인 잔치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는 단식할 수야 없지 않느냐? 그러나 그들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다.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다”라고 답변하십니다.(5,34-35)여기서 예수님의 말씀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성경에서 신랑은 일반적으로 하느님(이사 54,5-8; 61,10; 예레 2,2; 31,3 에제 16)을, 때로는 미래의 메시아 임금(시편 45,7-8; 히브 1,8)을 상징한다고 봅니다. 또 혼인 잔치는 종말에 있을 하느님 나라의 잔치에 비유하기도 하지요.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신랑으로, 곧 하느님께 버금가는 이나 메시아로 여기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것이고 그때에는 그들도 단식할 것’이라는 말씀은 바로 예수님 자신의 운명을 예고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아무튼 이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당신 제자들이 단식하지 않는 이유를 대시면서 앞으로의 당신의 운명도 언급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그치지 않고 비유를 더 들어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을 반박하십니다. 새 천 조각을 헌 옷에 대고 꿰매지 않고, 새 포도주를 헌 가죽 부대에 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헌 옷이 찢어지고 헌 가죽 부대가 터지기 때문이지요.(5,36-37) 이 말씀에는 예수님과 함께 새 시대가 도래했고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생각은 낡은 관습이라는 지적이 함축돼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마지막으로 이 말씀을 덧붙이십니다. “묵은 포도주를 마시던 사람은 새 포도주를 원하지 않는다. 사실 그런 사람은 ‘묵은 것이 좋다’고 말한다.”(5,39) 옛날 습관, 옛날 사고방식, 옛날 생활 태도에 젖어 있는 사람은 새로움을 거부한다는 것으로,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복음의 새로움을 거부함을 빗대어 말씀하시는 것이라 하겠습니다.생각해봅시다세리와 창녀를 죄인으로 여겨 상종하지 않았던 당시 유다인의 일반적인 행태에서 본다면,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지적을 비난할 하등의 이유는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오셨습니다. 사람들은 그분의 권위 있고 새로운 가르침과 능력에 신기하고 놀라워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이 예수님께 몰려옵니다. 하지만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자신들이 율법에 관해서 최고라고 여깁니다. 하느님에 대해 자신들의 권위에 안주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복음에 귀 기울이려 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신들의 잣대에 맞춰서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업을 재단하려 합니다.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의 이런 행태는 우리에게도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합니다. 우리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는 아닌지요? 예수님과 교회의 가르침을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실제로 말씀을 받아들일 때는 내가 가진 기존 틀에서 벗어나지 않으려고 합니다. 나를 예수님의 말씀에, 교회가 선포하는 복음에 맞추는 것이 아니라 내게 맞는 것만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거부하거나 외면하려 하지는 않는지요? 그러면서 자기를 합리화해 “묵은 것이 더 좋다”고 말하지는 않는지요? 한 가지만 더 생각해 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의사인 예수님, 치유자이신 예수님으로 믿고 그렇게 의탁하고 있는지요? 의사와 환자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신뢰인데, 우리는 그렇게 예수님을 신뢰하는지요?. 백영민2017.06.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