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동전 자국, 토리노 성의 진실 알려줄까프랑스 화폐 연구가, 성의 진의 입증하는 증거라 주장 토리노 성의의 얼굴과 머리 부분을 확대한 사진. 동전 자국이 토리노 성의(聖衣)의 진실을 밝혀줄 수 있을까.프랑스의 화폐 연구가 아고스티노 스페라차 박사가 토리노 성의에 나타난 남성의 시신 형상 가운데 눈 부위에 불룩하게 솟은 것은 A.D. 29년쯤 빌라도 총독 시절에 주조된 렙톤 동전<사진> 자국이라고 RCF 인터뷰를 통해 주장했다. 그는 “최첨단 기술을 동원해 밝혀낸 이 자국은 성의의 진실을 입증할 추가 증거”라고 밝혔다. 이탈리아 토리노의 성 요한 주교좌 성당에 있는 이 성의는 십자가에서 내려진 예수의 시신을 감싼 천이라고 전해지는 길이 436㎝, 폭 109㎝ 수의다. 성경은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과 니코데모 등이 “예수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 향료와 함께 아마포로 감쌌다”(요한 19,40)고 전하는데, 바로 그 아마포다. 이 성의는 30년 전 토리노대교구 의뢰로 조사에 착수한 3개 연구소가 ‘13세기 위조품’이라고 결론 내린 이후 진위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당시 연구소들은 피 묻은 흔적과 못 자국 혈흔, 구타당해 눈 부위가 부어오른 흔적 등 예수의 수의라고 볼 수 있는 단서를 많이 찾아냈다. 하지만 방사성 탄소 동위원소 실험 결과 아마포가 1260~1390년 사이, 즉 중세시대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그러나 이 조사 결과는 표본으로 떼어낸 천 조각이 16세기에 화재로 훼손돼 덧대거나, 후대에 여러 사람이 만진 가장자리 끝단이라는 반론에 부닥쳤다. 과학자들도 샘플 채취와 분석 실험 방법에 한계가 있음을 인정했다. 이런 상황에서 스페라차 박사가 이번에 눈 부위에 있는 동전 자국을 상세히 규명한 것이다. 물론 그것이 팔레스타인 지방에서 통용되던 렙톤 동전 자국이라는 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스페라차 박사는 오른쪽 눈 부위 동전 자국에서 로마시대 점성술사들이 점을 칠 때 사용하던 열쇠 모양의 구부러진 막대(lituus) 형상을 포착했다. 왼쪽 눈에서는 제의용 컵(주전자) 형상을 발견했다. 예수에게 십자가형을 선고한 빌라도 총독이 통용시킨 렙톤 동전과 문양이 똑같다. 또 ‘UKAI’라는 철자를 읽어냈는데, 이는 티베리우스의 카이사르를 뜻하는 그리스어 ‘TIBERIOUCAIKAROS’의 일부분이라고 주장했다. 유다 사회에는 사람이 죽으면 땅에 묻기 전에 시신 눈에 동전을 얹어 놓는 관습이 있었다. 그리스 사람들도 망자의 입안에 은전 몇 닢을 넣어줬다. 저승으로 가려면 스틱스 강을 건너야 하는데, 그때 뱃사공 카론에게 뱃삯을 내야 한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우리나라 장례 풍습에 남아 있는 노잣돈 개념이다. 아리마태아 출신 요셉 등은 “유다인들의 장례 관습에 따라”(요한 19,40) 시신을 수습했다. 그러나 그의 연구 결과가 결정적 증거가 될지는 미지수다. 학설과 주장이 난무하기 때문이다. 교황청도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놓자는 입장이다. 김원철 기자 cpbc2017.06.20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9) 2세기 ④ - 순교 영성](//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8557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9) 2세기 ④ - 순교 영성하느님 은총으로 피어나는 순교의 꽃 초대 그리스도교가 겪었던 여러 가지 시련 중에 가장 큰 것은 박해와 순교였습니다. 사실 유다교인도 순교를 경험했습니다. 기원전 2세기경 시리아 임금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는 이교 숭배를 거부하고 유다교 전통을 지키려던 유다인들을 참혹하게 죽였습니다. 율법 학자였던 엘아자르(2마카 6,18-31 참조)와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2마카 7,1-41 참조)의 순교가 대표적인 사례입니다.초대 그리스도인 중에서 첫 순교자는 스테파노 부제였고(사도 7,54-60 참조), 예수님의 제자 중에 첫 순교자는 야고보 사도였습니다.(사도 12,2 참조) 전승에 의하면, 베드로 사도는 “주님! 어디로 가시나이까?”라는 일화를 남기고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도 참수형을 당했는데, 굴러떨어진 머리가 세 번 튄 곳에서 샘이 솟았다고 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 사이에서 순교는 점점 영성 생활의 한 방편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순교 - 말로 하는 증언‘순교자’라는 그리스말 ‘마르튀스’는 신약 성경에서 ‘증인’이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발현하시어 “성경에 기록된 대로, 그리스도는 고난을 겪고 사흘 만에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나야 한다. …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46.48)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 직전에 제자들에게 “성령께서 너희에게 내리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 그리고 땅끝에 이르기까지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사도 1,8)라고 말씀하셨습니다.이처럼 신약성경에서 ‘순교자’는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며 그 내용이 참되다고 고백하고 증거하는 사람을 의미했습니다. 그래서 이 단어는 ‘고백자’ 혹은 ‘증거자’로 일컬어지기도 합니다. 초대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이야말로 진정한 구세주이시라는 신앙 고백을 하고, 그 내용이 진실하다는 점을 먼저 말로써 증언해야 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순교’의 첫 번째 의미가 ‘말로 하는 증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순교 - 행동으로 하는 증언신약성경 후기 서간에서 베드로 사도는 여러 교회의 원로들에게 자신을 “그리스도께서 겪으신 고난의 증인이며 앞으로 나타날 영광에 동참할 사람”(1베드 5,1)이라고 소개했습니다. 앞으로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할 것이라는 언급에서 우리는 ‘순교’의 두 번째 의미가 ‘행동으로 하는 증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그런데 로마에서 순교한 안티오키아의 이냐티우스는 자신의 서간에서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방법으로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을 언급했습니다. “저로 하여금 제 하느님의 수난을 본받는 자가 될 수 있게 해주십시오.”(「로마인들에게」 6,3) “또한 주님을 본받는 사람들이 되고자 애씁시다.”(「에페소인들에게」 10,3)또한 그리스도를 본받고자 그리스도의 수난에 참여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되고 그리스도를 만나게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세상이 저의 몸을 볼 수 없게 될 때 저는 참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될 것입니다.”(「로마인들에게」 4,2) “불이나 십자가 또는 맹수들의 무리, 뼈를 비틀고 사지를 찢는 것, 온몸을 짓이기는 것, 악한 자의 잔인한 형벌, 이 모든 것이 저에게 오도록 내버려 두십시오. 그렇게 함으로써만 제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날 수 있습니다.”(「로마인들에게」 5,3)순교 - 피를 흘려 하는 증언스미르나에서 폴리카르푸스가 순교한 직후 저술된 「폴리카르푸스 순교록」(Martyrium Polycarpi)에서 우리는 ‘순교’의 세 번째 의미가 ‘피를 흘려 하는 증언’이라는 점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가장 고결한 순교자들은 고문을 당하는 그 시간에 육체를 떠나 있다는 것과, 더구나 주님께서 그들 옆에 서서 그들과 이야기하신다는 것을 우리 모두에게 보여 주었습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2,2) “나를 이대로 내버려 두시오. 나에게 불을 참을 힘을 주시는 분께서 여러분이 못으로 (나를) 고정시키지 않아도 장작더미 위에서 움직이지 않고 견디어 내는 힘도 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13,3)하지만 피 흘리는 증언에서 주의할 점은 바로 순교는 그리스도의 뜻을 따라야지 자기 스스로의 뜻을 따라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스스로 (순교하겠다고) 나선 사람들을 칭찬하지 않습니다. 복음이 이처럼 가르치지 않기 때문입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4,1) “그들은 그리스도의 은총에 의지하였으며 이 세상의 고문들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2,3)결국 그리스도인은 피 흘리는 순교를 통해 영성 생활을 완성하고 하느님 나라에 들게 되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한 시간의 대가로 영원한 생명을 얻었습니다. … 주님께서는 더 이상 사람이 아니라 이미 천사가 된 그들에게 이 좋은 것들을 보여 주셨습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2,3)순교자 공경과 순교일 기념순교자와 관련된 신심은 더욱 발전하였습니다. 먼저 그리스도인은 순교자들의 순교 정신을 본받고자 했습니다. “그 폴리카르푸스는 훌륭한 스승일 뿐만 아니라 탁월한 순교자였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리스도의 복음에 따라 일어난 그의 순교를 본받기를 열망합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19,1) “우리는 순교자들이 왕과 스승께 비할 데 없는 애정을 쏟으므로, 주님의 제자들이며 본받는 사람들인 순교자들을 진실로 사랑합니다. 우리도 그들의 (순교에) 동참하고 동료 제자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17,3)다음으로 그리스도인은 순교자의 유해를 모시고 기도하며 순교자 기념 축일 거행을 원했습니다. “그 뒤 우리는 보석보다 더 귀하고 금보다 더 값진 그의 유골들을 모아 적당한 곳에 묻었습니다. …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이전에 투쟁한 사람들을 기억하고 앞으로 순교할 사람들이 단련하고 준비하도록 그가 순교한 날을 기념하는 것을 허락하셨습니다.”(「폴리카르푸스 순교록」 18,2~3)그러므로 순교 영성이란 먼저 그리스도의 수난에 기꺼이 동참하며 말과 행동으로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것입니다. 또한 평소에 순교에 대한 열망을 가지되, 순교 기회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허락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결국 그리스도를 증언하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본받는 길이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모습은 그리스도를 만나는 길입니다. 이것이 신비체험의 여정이며, 피 흘리는 순교에 담긴 영성 생활입니다. 2세기에 꼴을 갖춘 순교 영성은 한동안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의 한 축을 이뤘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cpbc2017.01.18

사순 시기, 수난과 죽음 묵상으로 영적 깊이를 더하다 가톨릭출판사가 사순 시기를 맞아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과 죽음을 묵상하며 영적 삶을 깊게 할 수 있는 신심 서적 3권을 잇달아 출간했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 「예수, 여기에 그가 있었다 2」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이다.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 걷는 십자가의 길」(데이비드 나이트 지음 / 가톨릭출판사 편집부 옮김 / 2500원)은 제목 그대로 프란치스코 교황의 자비로운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 묵상하는 십자가의 길 묵상 기도서다. 십자가의 길 묵상은 대개 고통에 초점을 둔다. 하지만 책은 고통을 넘어서서 우리의 참희망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용기를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준다. 십자가의 길 각 처마다 함께 기도할 주제가 있고, 프란치스코 교황의 말씀을 되새기는 묵상, 다 같이 바칠 수 있는 기도로 구성돼 있다. 또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기도’도 수록돼 있다. 세계 여러 나라를 순회하며 피정과 워크숍을 지도하고 있는 저자 데이비드 나이트 신부는 “십자가의 길은 세상을 구원하는 열쇠”라며 “십자가의 길은 우리에게 죽고 부활하는 은총의 길을 끊임없이 열어줄 뿐 아니라 삶을 더욱 충실하게 살도록 이끌어 준다”고 강조했다. 그는 또 “고통받는 마음을 어루만져 주시는 예수님을 따라 고통받는 이들을 안아주시는 교황님과 함께 십자가의 길을 바치자”고 권고했다.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박정애 옮김 / 1만 2000원)는 21세기 가톨릭교회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영성가로 떠오르고 있는 조앤 치티스터 수녀의 구약성경 코헬렛 묵상서다. 코헬렛은 “하늘 아래 모든 것에는 시기가 있고 모든 일에는 때가 있다”(3,1)고 가르친다. 저자는 이 말씀을 토대로 태어날 때, 잃을 때, 사랑할 때, 웃을 때, 전쟁의 때, 치유될 때, 죽을 때, 평화의 때 등 인생의 16가지 순간을 주목하고 이것은 한 번 거쳐 가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걸쳐 반복해 찾아온다고 말한다. 저자는 이 16가지 순간은 단순히 물리적인 상황이 아니라 영적인 시기와 때를 의미한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실패하고 좌절하는 순간은 ‘잃을 때’이므로 우리가 잡고 있던 것을 놓아 버릴 때이며, 영혼을 비우고 다시 시작할 기회의 때라고 가르쳐 준다.조앤 치티스터 수녀는 성 베네딕토회 소속으로 40년간 교회 쇄신과 영적 성장을 위해 다양한 저술과 강연을 했으며 인권과 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영성가다. 저자는 주제마다 “적극적으로 행동하고, 지켜야 할 것은 분명하게 지키고, 변화가 필요한 일에 적극 투신할 것”을 권고한다. 「예수, 여기에 그가 있었다 2」(오영민 옮김 / 1만 5000원)는 예수회 사제이며 미국 가톨릭 주간지 ‘아메리카’의 집필 및 기획 편집위원으로 활동하는 제임스 마틴 신부의 예수 탐구 여행기다. 저자는 이스라엘 성지를 순례하면서 체험한 예수님을 생동감 있게 전하고 성경을 통해 예수님이 어떠한 분이셨는지 구체적으로 말해 주고 있다. 예수님의 탄생부터 공생활까지 쓴 「예수, 여기에 그가 있었다 1」에 이어 2권에서는 예수님의 공생활 중의 여러 기적, 수난과 죽음, 그리고 부활을 다루고 있다.저자는 “이 책은 내가 공부한 예수님, 내가 따르는 예수님, 내가 성지에서 만난 예수님을 당신도 만나 보도록 보내는 초대”라며 “내가 이 책을 쓰면서 깨달은 것은 사람은 결코 그분을 완전히 다룰 수도 완전히 설명할 수도 없다는 것이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면서 독자에게 “이 책을 계기로 예수님에 대해 더 많이 탐구하게 되기를 바란다”며 “이 책을 통해 당신은 나의 예수님을 만났다. 이제 당신 자신만의 예수님을 만나라”고 예수 탐구 여행을 추천한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백영민2017.03.16

달력과 다이어리로 새해 준비하세요! 교회 전례력으로 새해인 대림 시기가 성큼 다가왔다. 새해를 준비할 때마다 서둘러 챙기는 것 중에 하나가 바로 달력이다. 교회 출판사들이 선보인 새해 달력과 다이어리를 모아봤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달력가톨릭출판사는 다양한 달력을 제작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벽걸이 달력 3종과 숫자 달력 2종, 탁상 달력 등 총 9종이다. 벽걸이 달력은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 △자연 속의 성전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을 선보였다.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하는 미사 열두 장면을 전례 순서에 맞게 꾸몄다. ‘자연 속의 성전’은 자연과 어우러진 성당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다.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은 정미연 화백의 성화 작품을 전례력에 맞게 구성해 놓았다. 구입 문의 : 02-6365-1800, 가톨릭출판사기쁜소식은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 시복시성 기원과 성화를 주제로 한 벽걸이 달력 2종을 선보였다. ‘가경자 최양업 토마스 신부의 시복 시성을 위해 기도합시다- 어화 벗님네야 우리 본향 가사이다!’는 최 신부의 출생지와 사목지, 선종지 현장 사진과 함께 시복시성 기도문, 약력, 주요 사목지 지도 등을 수록했다. 1년 내내 최양업 신부의 시복시성을 위해 기도하고 순례할 수 있도록 꾸며놓은 것이 특징. ‘주님을 찬미하여라’는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성화 작품과 관련 성경 말씀을 실었다. 구입 문의 : 02-762-1194, 기쁜소식분도출판사는 벽걸이 달력 4종 △친구, 프란치스코 △이탈리아여행 VIAGGIO IN ITALIA △김이슬의 감성 여행 △겸재 정선 화첩 캘린더를 준비했다. ‘친구, 프란치스코’는 독일의 저명한 만평작가 게르하르트 메스터의 카툰을 통해 누구와도 친구가 되는 프란치스코 교황을 만날 수 있다. 더 많은 사람을 더 가까이에서 섬기고 있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면면을 볼 수 있는 친근한 만화와 일상을 되돌아보게 하는 촌철살인의 묵상 글이 실려 있다. ‘김이슬의 감성 여행’은 마치 동화에 들어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는 감성적 그림으로 가득하다. ‘이탈리아 여행’은 모두가 평생 꼭 한번은 가고 싶어하는 나라 이탈리아의 문화 유적들을 담고 있다. 구입 문의 : 054-970-2400, 분도출판사 인쇄 사업부 다이어리 생활성서는 ‘Bible&Life 소금 다이어리’를 준비했다. 마음의 ‘소금’ 같은 성경 말씀을 다이어리 곳곳에 채워져 있다. 주간 계획표에는 주일 복음의 핵심 내용을 실어 한 주간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기도와 감사할 내용을 적을 공간을 마련해 뒀다. 메모 공간이 충분한 것이 장점. 가톨릭 주요 기도문과 성경 읽기표가 실려 있다. 1만 원. 구입 구입 문의 : 02-945-5987 생활성서 평화신문2016.11.09
![[하느님과 트윗을] (11) 예수님은 여성을 차별하셨나요?](//cpbc.co.kr/CMS/newspaper/2017/07/rc/689145_1.0_titleImage_1.jpg)
[하느님과 트윗을] (11) 예수님은 여성을 차별하셨나요?남성은 부성, 여성은 모성 지닌 상호 보완적 관계 하느님과 트윗을 문 : 예수님은 여성을 차별하셨나요?답 : 사도들의 명단을 살펴보면, 예수님이 여성을 남성보다 낮게 평가하신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 하지만 복음서를 자세히 보면 예수님이 여성을 존중하셨고, 높이 평가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여성들은 예수님의 삶과 사명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무엇보다 예수님은 다른 인간과 마찬가지로 여인에게서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님의 사명에서 그토록 중요한 역할을 했기에 교회는 마리아가 천상 성인들 가운데서 가장 높은 위치를 차지한다고 믿습니다.예수님의 제자인 여인도 많았습니다.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가 대표적입니다. 그녀는 다른 여인들과 더불어 예수님과 함께 다니면서 예수님의 일을 재정적으로 지원했습니다.(루카 8,1-3 참조) 마리아 막달레나 성녀는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 때 예수님과 함께 남아 있던 몇 안 되는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었습니다.예수님은 여성들을 차별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은 여인들에게, 죄 많은 여인에게까지도, 개방적이고 존중하며 받아들이는 태도로 온화하게 다가가셨습니다. 교회는 세상의 많은 곳에서 여성에 대한 대우를 개선했습니다. 아시아와 아프리카, 중동의 여러 지역에 비해 서구 사회에서 여성들이 더 많은 권리를 갖게 된 이유는 바로 그리스도교 때문입니다. 여성들은 신앙을 전수하는 데에서 언제나 중요한 역할을 해 왔습니다. 예를 들어 티모테오 성인은 자신의 어머니와 할머니에게서 신앙을 물려받았지요.(2티모 1,5 참조) 미사 전례에 성녀의 이름이 나오기도 합니다. 성모 마리아, 펠리치타, 페르페투아, 아가타, 루치아인데요. 이들은 모두 초세기 교회에서 신앙을 위해 목숨을 바쳤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성녀를 공경합니다. 후대에는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이 많은 여성이 이웃을 돌보는 데 애썼고, 병원과 학교 등에서 헌신했습니다. 여성 가운데는 위대한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대학에서 수학을 가르친 최초의 여교수인 마리아 아녜시 같은 이가 대표적이지요. 또 기도와 교회를 위한 봉사를 통해 자신의 삶을 예수님께 바친 많은 수녀도 있습니다.문 : 왜 예수님은 남자들만을 사도로 선택했을까요?답 : 어떤 이들은 예수님이 당시 관습 때문에 사제직을 남자들에게 한정하셨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이미 당시의 지배적인 관습들을 많이 거스르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맨 먼저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셔서 당신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살아났음을 사도들에게 알리고 분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여자들의 증언을 남자의 증언보다 낮게 평가하던 사회에서 마리아 막달레나를 ‘사도들의 사도’로 만드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이 남자들만 사도로 선택하셨기 때문에, 그들의 후계자인 주교들을 비롯해 사제와 부제들도 오직 남자뿐입니다. 그럼에도 성경에 나오는 창조와 구원에 관한 말씀을 잘 살펴보면 하느님의 눈에는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소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동시에 남자와 여자가 정확하게 똑같지 않다는 것도 분명합니다. 남성은 부성을 지니게 돼 있고, 여성은 모성을 지니게 돼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이러한 상호 보완적 소명에 부합하게 남자와 여자 모두에게 당신을 따르라고 부르십니다.여성과 남성은 하느님의 눈에 평등합니다. 하느님은 남성과 여성에게 서로 다르지만, 상호 보완적인 소명을 주셨습니다.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김지항2017.07.19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54) 13세기 ② - 도미니코와 설교자들의 수도회](//cpbc.co.kr/CMS/newspaper/2017/12/rc/704828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54) 13세기 ② - 도미니코와 설교자들의 수도회설교로 영혼 구원 힘쓰고 묵주기도 전통 전해 중세 중기에 다양한 수도회가 속출하자 지역 주교들은 자신들의 사목 활동에 지장을 준다고 생각했는지 새로운 수도회의 출현을 달가워하지 않았습니다. 주교들의 이런 불평 때문에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는 새로운 수도회 설립을 더 이상 승인하지 않겠다고 결정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이미 새로운 수도회가 태동하고 있었습니다. 결국 가톨릭 교회는 ‘탁발 수도회(Mendicant Orders)’라는 새로운 형태의 수도회를 승인했습니다. 성모 마리아에게 묵주를 받는 성 도미니코를 그린 유리화. 출처=가톨릭굿뉴스 이단 척결과 이단자 개종에 전념한 도미니코스페인 카스티야(Castilla) 지방 부르고스(Burgos) 인근 칼레루에가(Caleruega) 출신 도미니코(Domingo de Guzmn, 1170~1221)는 어린 시절부터 성직자였던 외삼촌에게 위탁되어 라틴어를 비롯하여 성직을 준비하는 교육을 받았습니다. 청소년 시절에 도미니코는 이후 1212년 스페인에서 최초로 대학이 설립될 도시인 팔레시아(Palecia)에서 약 10년간 인문학과 신학을 공부했으며, 1196년쯤 사제품을 받고 오스마(Osma)교구 의전 사제단에 참여했습니다. 도미니코는 1199년에 의전 사제단을 의전 수도회로 되살리고, 1201년에 의전 수도회 부원장에 선출되면서 청빈 생활과 관상 생활에 몰두하기 시작했습니다.하지만 도미니코는 1203년과 1205년 오스마의 주교 디에고(Diego de Acebo, 재임 1201~1207)가 왕실 대사 자격으로 북유럽을 여행하는 데에 동행하면서 전환기를 맞이했습니다. 관상 생활에서 벗어나 여행을 하던 도미니코는 랑그독(Languedoc)에 이단 때문에 발생하는 위험을 목격하고, 그 당시 교회의 현실을 느끼며 교회가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특히 도미니코는 1206년 프랑스 남부 몽펠리에(Montpellier)에서 알비파, 발덴서파, 카타리파에 대항하는 시토회 출신 교황 사절들을 만난 후, 교황이 맡긴 임무인 이단 척결에 투신하기로 결심했습니다.1206년 말 도미니코는 알비파에서 다시 가톨릭교회로 돌아온 여성들을 받아들일 목적으로 프루이유(Prouille)에 여자 수도원을 설립했으며, 이 수도원을 기반으로 설교에 전념했습니다. 1214년 도미니코는 동료 설교가들과 함께 공동체 설립 계획을 세우고, 1215년에 툴루즈(Toulouse)로 이주해 교황 사절의 동의와 지역 주교 풀크(Foulques de Toulouse, 재임 1206~1231)의 승인을 얻어 수도원을 설립했습니다. 특히 풀크는 도미니코와 동료들에게 교구 전역을 순회하며 교구민들이 신앙과 윤리를 지킬 수 있도록 설교해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의전 수도회를 기반으로 설립된 탁발 수도회도미니코와 풀크는 1215년 제4차 라테라노 공의회가 열린 로마를 방문해 교황 인노켄티우스 3세(Innocentius PP. III, 재임 1198~1216)에게 설교를 목적으로 하는 새 수도회 설립 승인을 요청했으며, 교황에게 구두로 약속을 받았습니다. 1216년 말~1217년 초 도미니코는 다시 로마를 방문해 교황 호노리우스 3세(Honorius PP. III, 재임 1216~1227)에게 ‘설교자들의 수도회(Ordo Fratrum Praedicatorum)’라는 명칭으로 도미니코회 설립을 공식으로 승인받았습니다. 다만 새로운 수도회를 더 이상 승인하지 않겠다는 라테라노 공의회의 결정 때문에, 도미니코회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 규칙을 따라야 했으며, 당분간 프레몽트레회 지도를 받아야 했습니다.의전 수도회의 영향을 받은 도미니코회는 수도 생활과 사목 활동을 적절하게 조화시킨 영성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먼저 도미니코회는 청빈, 정결, 순명의 복음삼덕에 대한 수도 서약을 하고 관상 생활을 지향했습니다. 다만 베네딕토회나 시토회와 같은 기존의 수도회가 함께 모여 장엄하게 성무일도를 바치면서 관상 기도를 실천했다면, 도미니코회는 노래를 부르듯이 가락에 맞추어 짧고 간략하게 성무일도를 바치면서 그 시간마저 주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설교를 준비하는 시간으로 활용했습니다. 때로는 혼자 성무일도를 바칠 수도 있었습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도미니코회가 관상 생활을 소홀히 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또한 도미니코회는 참회의 금욕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특히 도미니코는 수도회 형제들이 문전걸식할 수 있는 탁발 제도를 허용했습니다.한편 도미니코회는 교회와 교황과 신앙의 진리에 충실한 하느님 중심적이며, 그리스도론적이고 사제적인 영성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즉, 세상 만물의 처음이자 마지막이신 하느님께 초점을 맞추고, 하느님께 돌아갈 수 있는 길로써 그리스도에게 초점을 맞추며, 미사성제, 특히 성체성사에 초점을 맞추는 영성 생활을 실천하고자 했습니다. 따라서 훗날 도미니코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발전시켰습니다. 또한 도미니코회는 그리스도에 대한 신심 운동에서 자연스럽게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을 유추해 실천했습니다. 특히 도미니코회는 묵주기도 전통을 우리에게 전해 주었습니다.복음 선포 위해 신학 연구에 몰두한 도미니코회하지만 무엇보다도 도미니코회는 사도적인 영성을 살았습니다. 도미니코회는 복음서에 나오는 가난한 그리스도, 설교하는 그리스도를 본받아 완덕으로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도미니코회는 회헌에서 수도회 설립 목적이 설교를 통해 인간 영혼을 구원하는 것이기 때문에 다른 이들의 영혼에 유익함을 제공하기 위하여 전력을 다해 공부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복음 선포야말로 도미니코회가 포기할 수 없는 영적인 사명이었습니다.따라서 도미니코회는 수도자들이 공부를 가장 중요한 의무로 여기고, 늘 새로운 것을 연구하여 하느님 말씀을 진실하게 가르쳐야 한다고 언급했습니다. 거룩한 진리를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연구하는 것이 수도회의 목적을 달성하는 방법이라는 것이었습니다. 도미니코는 수도회 형제들이 신구약 성경을 꾸준히 연구하기를 늘 강조했습니다.도미니코회는 일찍이 대(大) 알베르투스(Albertus Magnus, 1200~1280)와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4/25~1274)와 같은 걸출한 신학자들을 배출했습니다. 쾰른(Kln)에서 신학을 공부한 알베르투스는 독일 각지에서 강의하며 명성을 알렸고, 파리 대학에서 교수 생활을 하다가 도미니코회가 쾰른에 설립한 수도회 대학에서 초대 학장을 역임했습니다. 알베르투스는 철학과 신학뿐 아니라, 자연과학에도 조예가 깊어 ‘보편 박사’라 불렸습니다. 알베르투스의 제자였던 토마스 아퀴나스는 아리스토텔레스 철학 체계로 하느님 존재를 증명한 「신학대전(Summa Theologiae)」을 저술하며 독보적인 신학 사상을 확립했습니다. 토마스 아퀴나스는 파리와 로마를 오가며 교수 생활과 저술 작업을 왕성하게 했으며, ‘보편 박사’ 혹은 ‘천사 박사’라고 불렸습니다.카스티야 지역에서 11세기 중반에 이미 아랍계 이슬람교도인 무어인들을 몰아내고 그리스도교 신앙을 회복하며 활기를 띠던 분위기에서 성장한 도미니코는 프랑스 내에 이단을 척결할 강한 의지를 드러냈습니다. 게다가 의전 사제단과 의전 수도회를 차례로 경험했던 도미니코는 엄격한 청빈 생활과 관상 생활 속에서도 복음 선포의 사목 활동에도 강한 의욕을 불태웠습니다. 다만 인간 이성 활동을 강조했던 도미니코회는 인간 의지와 사랑에 기반을 두었던 전통적인 신비체험을 등한시하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7.12.13
![[[성경 속 도시] (54) 카나](//cpbc.co.kr/CMS/newspaper/2015/07/rc/583066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54) 카나예수, OO 혼인 잔치에서 첫 기적을 카나 기적 기념 성당의 제단. 중앙에는 예수님의 첫 기적을 상징하는 물동이 6개가 놓여져 있다. 리길재 기자 카나는 히브리어로 ‘갈대’라는 의미를 지닌다. 보통 이스라엘 사람들은 카나라고 하면 두세 군데 지역을 지칭한다. 하나는 레바논 지역에 있고 나머진 오늘날 요한 복음에서 언급하고 있는 카나인데, 같은 지명이 두 곳에 있다. 하나는 키르벳 카나로, 나자렛에서 약 13km 떨어진 외딴 언덕 꼭대기에 현재는 폐허로 남아 있는 장소이다. 이곳에서 무덤과 지하 유골 안치소 등 중세기의 흔적들이 발굴되었다. 다른 하나는 카파르 카나로, 나자렛에서 북동쪽으로 6km 떨어진 갈릴래아 호수 티베리아로 내려가는 지방도로 변에 있는, 현재는 작지 않은 규모의 지방 도시이다. 요한 복음의 카나는 카파르 카나요한 복음에 나오는 카나가 어디인가에 대한 논란은 여전히 있지만 17세기에 가톨릭은 카파르 카나를 공식 성지로 인정했다. 그래서 이곳을 가톨릭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가 요한 복음에 나오는 카나로 믿고 있다. 이곳에는 로마ㆍ비잔틴 시대(약 1000~2000년 전)에 큰 유다 지역사회가 존재했다. 한때는 주민들 대개가 그리스도교인이었지만 오늘날 이곳 카나 주민들은 대부분 무슬림이다. 카나 마을의 중심지에는 고대 빌딩과 매장 동굴의 유적들이 몇 개 있다. 이 마을에서 가장 중요한 유적은 예수님의 포도주 기적을 기념해 건립한 가톨릭 성당이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이 세운 카나의 첫 기적 기념 성당은 마을 중심에 있다. 이 마을의 서쪽에서 로마인 무덤과 함께 우물이 발견됐다. 프란치스코회 수도자들은 1641년부터 이 유적지를 사려고 노력했으나 거의 200년이 지나서야 겨우 소유할 수 있었다. 1997년 가을에 성당을 보수하면서 대대적인 고고학 발굴 작업이 실시되었는데 초세기 유다교 시나고그와 그리스도인 무덤, 그리고 5세기경의 아람어 모자이크 등이 발굴되기도 했다. 성경에서 보면 갈릴래아 카나에서 혼인 잔치가 있었는데, 예수님의 어머니도 거기에 계셨다. 중간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예수님의 어머니가 예수님께 “포도주가 없다”고 하소연한다. 결국 일꾼들에게 물독에 물을 채우게 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행하셨다(요한 2,1-12). 이처럼 카나가 성경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은 예수님께서 혼인 잔치에 참여해 첫 기적을 행하신 장소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2,11).예수님의 제자 나타나엘의 고향성경 속 카나가 중요한 것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 하나인 나타나엘의 고향이기도 하다. “시몬 베드로와 ‘쌍둥이’라고 불리는 토마스, 갈릴래아 카나 출신 나타나엘과 제베대오의 아들들, 그리고 그분의 다른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요한 21,2).이곳 카나 기적 기념 성당은 매년 많은 성지 순례객들이 찾는 장소다. 이곳에서 결혼식을 하면 행복하게 산다고 해 많은 신혼부부가 이곳에서 결혼식을 거행하고 있다. 또 혼인 갱신식을 하는 전통이 발달해서 순례객 중 부부들은 혼인 갱신식을 하기도 하는데 한국어로 된 혼인 예식서가 비치돼 있기도 하다. 마을 중심의 교회 거리가 재개발되면서 신앙 중심지로 연결하는 산책로가 만들어졌다. 순례객들은 광장과 산책로를 따라 기도와 묵상을 하며 현대식 여행의 편의와 신앙적 경험을 동시에 누릴 수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7.21
![[하느님과 트윗을] (13) 기적은 무엇인가요](//cpbc.co.kr/CMS/newspaper/2017/08/rc/690543_1.1_titleImage_1.jpg)
[하느님과 트윗을] (13) 기적은 무엇인가요하느님만이 행하시는 초자연적 사건 문 : 기적은 무엇인가요.답 : 하느님이 자연의 힘을 넘어서는 뭔가를 하실 때, 우리는 그것을 기적이라고 부릅니다. 하느님은 물리적 세계에 적용되는 법을 만드셨고, 그것을 철회하지 않으십니다. 하지만 기적은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러한 물리 법칙이 적용되지 않는 일이 생기는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과학으로는 기적을 설명할 수 없습니다. 기적은 초자연적입니다. 한 가지 예로 예수님이 라자로가 죽은 지 며칠 지나서 그를 죽음에서 되살리신 일을 들 수 있습니다.기적은 불가사의한 활동들과 완전히 다릅니다. 예컨대 UFO 같은 것은 세상을 놀라게 할지는 모르지만 거의 믿을 수 없습니다. 미래를 알아내기 위한 타로, 점괘, 손금, 점성술과 같은 것들도 믿을 수 없습니다. 그것들은 우리가 하느님께 둔 믿음과 희망을 거스르기에 나쁩니다. 교회는 이런 것들에 아주 분명한 입장을 보입니다. 하느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멀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느님에 대한 전적인 신뢰입니다. 알려지지 않은 미래에 건전하지 않은 호기심은 이 신뢰를 약하게 합니다. 하느님은 때때로 예언자들과 여러 성인에게 미래에 일어날 일을 보여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은 하느님께 특별하게 부르심을 받은 이들에게 일어나는 예외적인 경우였지요. 문 : 기적은 계속 일어나나요.답 : 하느님만이 전능하신 창조주이시고 진정으로 기적을 행하실 수 있습니다. 비록 우리는 기적을 일으킬 수 없지만, 기적이 일어나도록 기도할 수는 있습니다. 예를 들어 1999년에 아돌프 도르만스는 성 안드레아의 가롤로 성인에게 질병을 낫게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의사들은 그에게 회복될 희망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며 마음의 준비를 하라고 말했지만, 그는 치유를 받았습니다. 의사들은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설명할 수 없었습니다. 도르만스가 치유된 일은 진정한 기적의 한 예입니다. 그의 체험은 신앙의 치유자로 자처하여 대중적 관심을 받고자 하는 사람의 모임에서 일어난 체험과는 달랐습니다. 하느님은 그런 모임에서도 기적을 행하실 수는 있지만, 우리는 이러한 쇼맨십에 속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성경에서는 거짓 메시지를 전하는 사람들을 따르지 말라고 경고합니다. “아무 영이나 다 믿지 말고 그 영이 하느님께 속한 것인지 시험해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들이 세상으로 많이 나갔기 때문입니다.”(1요한 4,1)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렇게 말하기도 했습니다. “올바르게 살고자 한다면, 하느님이 우리의 일상생활에 두시는 신비스러운 ‘도로 표지판’을 읽고서 삶의 계획을 식별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점성술도, 점술도 전혀 소용없습니다. 필요한 것은 진정한 기도입니다. 진정한 기도에는 언제나 하느님의 법에 따라 살려고 하는 결단이 수반돼야 합니다.”(1998년 9월 6일 삼종 기도)문 : 요술은 어떤가요. 답 : 요술은 인간이 자연에 대해 힘을 행사하려는 시도인데, 이는 하느님을 거스르는 것입니다. 오로지 하느님께만 속하는 능력을 자연 세계나 악령에게 속하는 것으로 돌리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어떤 종류든 요술에 의지하는 것을 반대합니다. 질병을 치유하기 위한 마법의 묘약처럼 순수하게 보이는 것들도 위험합니다. 우리의 이성과 하느님에 대한 믿음을 약하게 하기 때문입니다.하느님은 당신에 대한 우리의 사랑이 성장하도록 돕고자 기적을 행하시곤 합니다. 이에 반해 요술은 그 어떤 종류라도 우리를 하느님에게서 멀어지게 합니다.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김지항2017.08.01

알면 알수록 깊어지는 성모신심 10월 묵주기도 성월을 맞아 성모님과 관련한 신간들이 쏟아졌다. 그중 3권의 책을 소개한다.믿는 이들의 어머니 성모 마리아김종수 주교 지음/가톨릭출판사/7000원김종수(대전교구) 주교가 본당 신부로 사목하던 시절 어려운 교본을 열심히 연구하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을 보고 성모님을 쉽게 알려주고자 쓴 글이다.책은 한 마디로 성모 마리아에 관한 모든 것을 담고 있다. 먼저 성모 마리아에 대한 구약과 신약 성경 구절을 자세히 살펴보며 저자의 묵상을 더했다.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성모 마리아를 직간접적으로 나타내는 성경 말씀을 새기다 보면 구원의 역사에서 성모님께서 우리가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큰 역할을 하고 계신 분임을 체감하게 된다.이 책은 또 성모 마리아에 관한 4가지 믿을 교리 곧 하느님의 어머니, 평생 동정, 원죄 없이 잉태되심, 승천하심을 쉽게 풀이해 주고 있다. 그리고 교회가 공식으로 인정한 성모님의 3대 발현지인 멕시코 과달루페, 프랑스 루르드, 포르투갈 파티마를 소개하고 있다.성모님 가슴에 달린 어여쁜 노리개장재봉 신부 지음/에스델/1만 1000원부산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년을 맞아 부산 바다의 별 레지아 지도 신부로 있는 장재봉 신부(부산교구 선교사목국장)가 펴낸 훈화집이다.책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닮고자 하는 성모님의 믿음과 사랑을 담고 있다. 레지오 간부의 역할과 레지오 마리애 용어, 왜 교본이 중요한지 등 레지오 단원으로서 알아야 할 것들도 망라하고 있다. 장 신부는 성모님처럼 믿음을 갖는 방법으로 묵주기도를 하고, 성모님의 적극적 협력자로서 단순한 삶을 살아갈 것을 레지오 단원들에게 권고한다. 또 성모님을 성실히 따르는 여덟 단계의 영신적 수련 과정을 쉽게 설명하고 있다.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는 “성모님의 신실한 신앙에서 나오는 온유한 마음, 겸손한 마음을 따르며 살아가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야말로 아름다운 삶을 구현하는 사람들”이라며 “이 훈화집은 성모님과 함께 살아가려는 레지오 단원들의 좋은 길잡이이며 소중한 나침반이 될 것”이라고 추천했다. 장재봉 신부는 “책 제목인 ‘성모님 가슴에 달린 노리개’처럼 삶이 어여쁘기를 기대하면서 맛깔난 세상을 위해서 가미되는 소금이기를 기도드렸고, 단원 한 분 한 분이 주님의 나라 확장에 든든한 일꾼이 되길 희망하면서 이 책을 썼다”면서 “모든 레지오 단원들의 마음이 성모님에 대한 각별한 애정과 열렬한 사랑으로 채워지길 바란다”고 소망했다. 구입 문의 : 051- 629-8720, 부산교구 선교사목국 충실한 제자 마리아 충실한 제자 마리아김일영 신부 옮김/마리아니스트 에셈북스/1만 원미국 데이턴대학에서 신학과 마리아론을 가르치고 있는 마리아수도회 버트란드 부비 신부가 자신의 삶을 통해 기도와 학문으로 경험한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고백을 책으로 엮었다. 이 책은 신약 성경에 나타난 성경 자료와 제자 직분에서 선구자로서의 성모님의 역할에서 드러난 마리아에게 초점을 맞추고 있다. 마리아에 대한 성경적 접근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비교되면서도 그 제자들을 오히려 능가한다. 그래서 마리아는 아들 예수님을 따르는 강한 개인으로 비치기도 하고 남성 지배적인 문화에서 나타난 매우 인간적인 여인으로도 그려진다. “그녀는 그녀의 고유한 삶 안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온전하고도 책임감 있게 받아들임으로써 믿는 이들에게 본보기가 된다. 이는 그녀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했으며 애덕과 봉사의 정신이 활동의 원동력이었기 때문이다. 그녀가 첫 번째이자 가장 완전한 그리스도의 제자이기 때문에 따라야 할 가치가 있는 것이다”(13쪽).책의 가장 큰 특징은 마리아의 고유한 제자 직분이 지나치게 감미롭거나 결코 도달할 수 없는 인격체의 이미지가 아닌, 우리의 제자 직분을 위해 실천한 전형적인 예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저자는 “그리스도인은 마리아의 특별한 제자 직분을 닮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한다.저자는 책에서 마리아는 성모상으로 존재하는 여인이 아니라 예수님을 창조적으로 따르도록 우리를 부르시는 믿음의 제자라고 밝힌다. 마리아는 예수님을 믿는 제자, 가장 믿음이 깊은 여인이다. 또한 나자렛 예수를 따랐던 한 인간으로서의 삶을 온전히 투신한 경험을 우리에게 보여주며, 오늘날 우리를 충실한 제자로 이끄는 여인이다. 책은 우리에게 마리아께서 “무엇이든지 그분이 시키는 대로 하여라”는 말씀을 들려주고 있다고 끊임없이 말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백영민2016.10.26

한국엔 갑질하는 창업주, 미국엔 가치 사업에 뛰어든 창업주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톰 모나한, 가톨릭 학교 설립·생명운동 등 ‘하느님 사업’에 매진 불우한 어린 시절 자신에게 신앙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베라르다 수녀를 만난 톰 모나한의 모습. 자서전(왼쪽)에 실린 사진. 국내 외식 업체 프랜차이즈 창업주들이 성추행과 ‘갑질’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하지만 피자 사업으로 번 돈을 하느님 사업에 쏟아부은 프랜차이즈 창업주도 있다. 피자 업계 세계 2위인 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톰 모나한(80)이다. 미국에서 모나한은 ‘피자’와 ‘가톨릭’ 두 단어로 다 설명이 되는 유명 인사다. 1980년대 ‘아베 마리아 재단’을 설립해 교육과 자선사업을 시작하더니, 지금은 프랜차이즈 지분을 정리해 가톨릭 관련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여섯 살 때 동생과 함께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성 요셉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그곳에서 수녀들을 통해 가톨릭 신앙을 알았다. 하지만 반항 기질이 다분한 골칫덩어리였다.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에 신학교에 들어간 적도 있지만 얼마 안 가 쫓겨났다.그래도 방황하는 그를 잡아 준 것은 신앙밖에 없었다. 특히 자신을 특별히 사랑해 줬던 베라르다 수녀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은 너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해준 격려를 떠올리면서 다시 일어서곤 했다. 도미노 피자 신화는 1960년 미시간 주에서 동생과 함께 창업 자금 500달러를 빌려 인수한 허름한 피자 가게에서 시작됐다. 그 가게 이름이 ‘도미닉스’(DomiNick’s)였다. 도미노 피자가 단박에 세계 2위의 피자 프랜차이즈로 올라선 비결은 30분 배달 서비스였다. 당시로선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의 사업은 1980년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미국 피자 배달 서비스 시장 점유율이 54%까지 치솟고, 해외 100여 개국에 지사를 세웠다. 프로 야구단 디트로이트 타이거를 인수해 대박이 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탄탄대로만 걸은 ‘바른 생활’ 신앙인은 아니다. 소송에 휘말려 파산 직전까지 간 적도 있고, 재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초호화 요트와 헬리콥터 등을 사들이는 데 몰두하기도 했다. 그는 C.S. 루이스가 쓴 신앙 서적을 읽고 회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순간 “장난감들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장난감이란 프로 야구단, 초호화 요트, 고급 맨션 건축 사업 등을 가리켰다. 도미노 지분도 1998년 10억 달러(1조 1500억 원)에 넘겼다. 그는 그 결심을 “억만장자의 청빈 선언”이라고 말했다.이후 하느님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전에도 교회 지원과 자선 사업은 꾸준히 해왔다. 누가 돈에 대한 가치관을 물어오면 “돈은 악마가 아니다. 그걸로 성경을 살 수 있고, 성당을 지을 수 있고, 병원도 세울 수 있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는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인근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농장을 거금을 주고 매입했다. 거기에 아베 마리아 대학을 세웠다. 아베 마리아 방송국과 초등학교, 중학교도 열었다.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마리아의 도시를 건설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2004년 혼전 섹스ㆍ피임ㆍ낙태ㆍ포르노 없는 도시를 선언해 인권 단체들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지금도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으며 도시를 완성하고 있다. 모나한은 미국의 보수적 백인 가톨릭을 대표한다. 특히 생명운동에 적극적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발표한 새 건강보험 개혁법에 피임이 보험 항목에 포함되자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cpbc2017.07.12
![[성경 속 도시] (53) 얌니아](//cpbc.co.kr/CMS/newspaper/2015/07/rc/58204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53) 얌니아구약 24권을 정경으로 결정 얌니아는 그리스식 이름으로 구약에서는 ‘야브느엘’로 등장한다. “그 경계는 또 에크론 북쪽 비탈로 나가서 시카론 쪽으로 구부러져 바알라 산을 지난 다음, 야브느엘로 나가 그 끝이 바다에 이른다”(여호 15,11). 얌니아는 대략 텔아비브 남쪽 20km에 있는 성읍이다. 얌니아는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곳이 아니지만 성경과 깊은 관계를 지닌 중요한 지역이다. 유다교의 중심지, 얌니아 회의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제관 계급과 율사들은 얌니아로 이주한다. 당시 얌니아는 로마가 종교 활동을 허락한 도시였고 유다교의 중심이 된다. 이 지역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기원후 90년경에 있었던 ‘얌니아 회의’일 것이다. 이 회의에서 율법학자들은 유다교의 경전 목록, 즉 구약 성경의 정경을 확정했다. 유다인들은 얌니아 회의에서 히브리어로 된 구약을 24권으로 확정했다. 그런데 얌니아 회의에서 처음으로 정경 목록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기원전 400년경에 에즈라에 의해 일차적으로 확정된 목록을 그대로 재확인한 것이었다는 설도 있다. 유다인들이 구약성경을 24권으로 확정하기 훨씬 이전인 기원전 3세기쯤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해서 모인 70인(또는 72인)이 히브리어로 쓰인 유다교 경전을 당시 널리 사용하던 언어인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구약성경은 본래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다인들은 점차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그리스어에 익숙하게 되었다. 히브리어를 읽을 줄 모르는 세대가 늘어나자 경전을 그리스어로 번역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리스어는 당시 지중해 전역의 공용어였다. 약 100년간에 걸쳐 이뤄진 이 작업으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 24권이 그리스어 성경 39권으로 번역됐다. 이렇게 권수가 늘어난 것은 열왕기ㆍ역대기ㆍ사무엘기 등 일부 성경을 각 상ㆍ하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70인이 번역한 그리스어 구약을 흔히 ‘칠십인역 성경’ 또는 70을 뜻하는 라틴어 ‘셉투아진타’나 숫자 ‘LXX’라고 부른다. 24권의 히브리어 구약성경 외에도 다른 책들이 포함됐다. 토빗기, 유딧기 같은 7권이었다. 그뿐 아니라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없는 다니엘서 일부분 등도 포함시켰다. 그런데 얌니아 회의는 구약의 정경을 결정함으로써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인에게 모두 큰 의미를 지니는 결론을 냈다. 유다교가 정경을 확정한 근거는 히브리어로 쓰인 사본이 남아 있느냐 여부였다. 즉 히브리어로 쓰인 낱권이 있어야 정경으로 인정했다. 이 규정에 따라 그리스어 사본만 있고 히브리어 사본이 없는 문서는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결별 또 얌니아 회의에서 중요한 것은 그동안 부분적으로나마 공존해왔던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완전히 결별했다는 것이다. 얌니아 의회는 그리스도교인을 정식으로 파문하면서 모든 유다교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그리스도교 이단에 대한 저주’를 반복할 것을 명했다.그런데 초대 그리스도교회는 70인역 성경을 공적으로 사용했다. 현재 구약성경에서 개신교와 차이가 나는 가톨릭 성경(제2경전)은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권, 마카베오 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이렇게 7권이다. 가톨릭은 제2경전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본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7.15
[새 성전 봉헌을 축하드립니다] 대전교구 당진본당 대전교구 당진본당 전경. 당진본당 제공 대전교구 당진본당(주임 강길원 신부)은 19일 오전 10시 30분 충남 당진시 서문2길 28(읍내동) 신축 성전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성전 봉헌 미사를 거행한다. 대지 6421㎡에 건축면적 2194.16㎡, 지상 3층 규모로 지었으며, 성당동과 사제관, 수녀원 등 3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성당동 1층에는 카페 형태의 나눔방과 성물방, 폐백실, 신부 대기실, 성체조배실 등이, 2ㆍ3층에는 650석의 신자석을 둔 대성전이 들어섰다. 건우리건축사 사무소 김충열(시메온)씨가 설계와 감리를 맡았다. 새 성전 맞은편, 기존에 사제관과 수녀원으로 쓰던 건물은 교리실과 회합실로 고쳐 지어 어르신대학이나 주일학교, 레지오 마리애 등 본당 신심 단체나 활동 단체들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1939년 설립된 당진본당은 설립 당시 당진초등학교 건물과 관사를 성당과 사제관으로 써오다가 1967년 첫 성전을 지었다. 40여 년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 노후 문제로 2013년 전 신자가 성경 필사를 통해 성전 신축에 뜻을 모았다. 이듬해 1월 성경 필사본 봉헌과 신립, 성전 봉헌 기도와 묵주기도로 본격적인 성전 건립 준비에 들어갔으며, 2015년 3월에 대지 축복과 기공식을 시작으로 9개월간 공사를 거쳐 2015년 12월 입당했다. 본당 공동체는 그동안 묵주기도만 405만 단을 바쳤고, 금식 기도, 9일 기도 등을 진행했다. 성전 봉헌 예식을 앞두고는 100일 미사를 봉헌했다. 2014년부터 평신도들이 봉헌한 3만 3057㎡ 밭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다 함께 농사를 짓고 생강 조청과 들기름, 들깻잎, 장아찌 등을 만들어 팔며 성전 건립을 도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백영민2016.11.16

남북 모두의 자리 마련된 잔칫상에서 하느님의 평화를 나누길 바라2017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이 4일 폐막했다. 위기에 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될 평화나눔포럼은 막을 내렸지만, 그 평화 메시지가 남긴 향기는 강렬하고 여운은 길다. ‘평화의 사도직’에 투신해 온 성직자들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브라질 상파울루대교구장 오질로 페드루 쉐레 추기경 “한반도도 가능합니다.”브라질 상파울루대교구장 오질로 페드루 쉐레(Odilo Pedro Scherer) 추기경은 “참된 평화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원초적 관계 위에 세워지는 관계(창세 17,1)이기에 평화와 폭력은 같은 집에서 살 수 없다”며 “한반도 평화 또한 대화 문화를 증진하는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방한을 통해 한민족의 상처에 대해 많이 알게 됐습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 말입니다. 휴전 협정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평화 협정도 아니었잖아요? 한반도에서는 대화의 작은 발걸음을 이어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몸소 화해를 위해 일했던 분입니다. 그래서 대화를 강조하십니다. 우리 모두 대화를 위한 첫걸음을 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쉐레 추기경은 “국내 사안이든, 국제 현안이든 갈등을 해결하려면 갈등의 기원을 찾아 그 원인을 이해하고 극복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불의와 빈곤, 착취의 구조적 상황에 연결된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쉐레 추기경은 “전쟁보다는 협상과 대화의 길을 열어야 하고, 경제제재는 엄격한 판단과 윤리 기준에 비춰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한다”면서 “대북 경제제재 역시 북한을 협상과 대화의 테이블에 끌어내는 일이기에 제재로 가장 취약한 이들이 고통받는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쉐레 추기경은 한국 보수 진영 일각에서 제기하는 핵무장을 단죄했다. 「사목헌장」 80항을 인용,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살상 무기는 ‘하느님과 사람을 거스르는 죄악으로, 확고하고 주저 없이 단죄돼야 한다”고 경고했다. 쉐레 추기경은 공포의 균형 유지 차원에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교회는, 성경은 평화에 대해 힘의 균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면서 “힘의 균형은 무기의 무서움 때문에 이어지는 폭력의 평화이고, 위협의 평화”라고 지적했다. “폭력은 결코 평화에 이바지할 수 없다”면서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를 찾는 데서 이뤄지며 모든 이가 평화 증진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평화가 꽃필 수 있다”(「민족들의 발전」 76항 참조)고 말했다. 쉐레 추기경은 “브라질 교회는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통해 사회적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며 “그 노력은 교육과 사회사업, 특히 어린이들과 가난한 가정에 대한 지원에 집중돼 있다”고 전했다. 1949년 브라질 세로 라르고 태생인 쉐레 추기경은 1976년 톨레도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신학 석ㆍ박사학위를, 같은 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상파울루 보좌 주교로 임명됐고, 2007년 4월 상파울루대교구장 대주교가 됐으며, 그해 11월 추기경에 서임됐다. 현재 상파울루 아포스톨로대학 교회법 학과장, 브라질 라칭거 소사이어티 회장도 맡고 있다.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 “교회가 요구하는 대화는 평화를 열망하는 많은 이들의 고뇌와 고통, 수고, 고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하라는 요청에 응답하는 진지한 노력입니다.” 복자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의 오랜 협력자였던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Gregorio Rosa Cahvez) 추기경은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그리스도의 평화여야 한다”고 말문을 뗐다. “2000년 대희년 선포 칙서인 「강생의 신비」는 ‘기억의 정화’를 강조합니다. 단순히 잊자는 게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 또한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피해자와 화해하며 과거 잘못을 새로이 재평가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평화가 가능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2016년 자비의 특별 희년에 기억을 정화하고 과거로부터 나와 앞으로 나아가라고 초대하십니다. 한반도의 미래 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기억의 정화입니다.” 그래서 차베스 추기경은 “우리가 기억의 정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평화를 만드는 사람, 곧 평화의 장인(匠人)이 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차베스 추기경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갈등 당사자들이 만나 대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교회 안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대화는 큰 도전이며, 우리는 평화를 가르치며 대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거듭 역설했다. 아울러 “한국인들은 ‘빨리빨리’를 말하지만, 먼저 멈추고 침묵의 내면화를 통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묵상하는 시간이 앞서야 한다”면서 “평화의 장인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사회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학자답게 차베스 추기경은 사회를 평화로운 분위기로 바꾸는 사회 매체의 역할에 주목한 뒤 “단순히 사실을 알리는 광고, 위선을 진리처럼 파급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의식 자체를 오염시키는 선전을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구별하려면 정보가 어디서 오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베스 추기경은 또 “평화는 마치 자전거 페달과 같아 페달을 밟지 않으면 평화는 굴러갈 수 없다”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매 순간 평화의 페달을 밟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반도에서도 남북이 모두의 자리가 마련된 잔칫상에 둘러앉아 하느님의 평화를 나누게 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1942년 엘살바도르 모라산 태생인 차베스 추기경은 1970년 사제품을 받았고 1976년 벨기에 루벵가톨릭대에서 신학 박사, 사회매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6년 가까이 산살바도르대교구 대신학교 학장을 지냈으며, 1982년 7월 주교로 임명돼 보좌 주교로 사목해 왔다. 1984년 10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5년 동안 엘살바도르 정부와 반군 무장단체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 전선(FMLN)’ 간의 대화를 5차에 걸쳐 중재했고, 올해 5월 엘살바도르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백영민2017.1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