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다모와 거지에 쫓기고 보쌈당해 종살이까지역사학 전공 저자, 천주교 박해사 흥미롭고 밀도 있게 다뤄조선 시대 사회상과 민간신앙 연결 한국 천주교사 재조명 박해 시대 숨겨진 이야기들 2서양자/도서출판 순교의 맥/2만 원18~19세기 당시 조선 시대 사회상과 풍속, 민간신앙을 연결지어 한국 천주교회사를 재조명한 책이 출간돼 눈길을 끈다. 서양자(아가타, 한국순교복자수녀회 대전관구) 수녀가 지은 「박해시대 숨겨진 이야기들 2」이다.역사학을 전공한 저자는 30여 년간 한국 교회사와 민간신앙, 우리나라 풍속을 연구해 왔다. 1권에 이어 4년 만에 출간한 이 책은 당시 풍속과 민간신앙으로 천주교가 얼마나 박해를 받았는지를 흥미롭고 밀도 있게 다루고 있다. 성직자의 방(리델 주교 그림 일기) 민간신앙, 성경에 기초해 분석저자는 먼저 우리 조상들의 민간신앙을 성경에 기초해 들여다본다. 특히 구약 성경 탈출기 12장 5-7절과 12-13절 내용이 우리나라 민간신앙과 관련이 있다고 본다. 이스라엘 백성이 재앙을 피하려고 문설주에 피를 발랐듯이 우리 조상들도 액땜하기 위해 동짓날 팥죽을 쑤어 대문과 담, 창틀에 뿌리고, 전염병을 막기 위해 문앞에 피를 뿌렸다는 것이다. 또 민간에서 병을 치료하거나 귀신을 쫓을 때 십자를 그으며 소금물을 뿌리는 것도 구약 성경과 연관된다고 본다. 박해 시대 당시 풍속을 거스르는 행위가 신자 색출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했다. 많은 신자가 마을 동제(洞祭)와 기우제(祈雨祭)에 참여하지 않는 바람에 신분이 탄로 나 쫓겨나거나 고발됐다. 18~19세기 도박이 성행했는데 ‘명례방’과 ‘장흥동 약국’에서의 신앙 모임도 포졸들이 도박하는 것으로 알고 들이닥쳐 발각됐다. 약탈의 대상이 된 교우촌조선 시대엔 일종의 약탈혼인 보쌈이 만연했는데 여교우와 동정녀들이 이 제도 때문에 외교인 약탈자에 끌려가 처첩이 되거나 종이 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고 한다. 또 여교우가 배교하지 않을 경우 감옥에서 성고문을 당하는 일도 흔했다고 한다. 저자는 다모(茶母)와 청계천의 땅꾼과 거지들이 신자로 위장해 교우촌으로 들어가 정보를 캐고 밀고하는 일에 앞장섰다고 한다. 저자는 “박해 시대 당시 천주교 신자는 대역죄인이었기에 백정만도 못한 취급을 당해 관리, 양반, 포졸, 불량배, 일반 백성까지 신자들의 재산을 약탈하기 위해 교우촌을 습격했다”며 “당시 많은 교우가 농토를 버리고 유랑하다 상업에 종사하는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설명했다.책 특징은 간결하고 쉬운 문체로 한국 천주교회사와 우리나라 18~19세기 사회상과 풍속, 민간신앙을 생생하게 전해주고 있다는 점이다. 마치 200년 전의 일을 현시점에서 보는 것처럼 적나라하게 파헤쳐 놓은 것이 재미와 흥미를 자극한다. 9월 순교자 성월에 꼭 한 번 읽어볼 책이다. 리길재 기자 teotokos @pbc.co.kr 백영민2016.08.31
[미사 전례풀이] (28·끝) 교회력의 중심은 성탄과 부활▨새해는 1월 1일에 시작되는데 교회는 대림 제1주일에 새해가 시작된다고 한다. 교회는 왜 다른 달력을 사용하나?교회는 1년을 주기로 예수 그리스도 구원의 신비를 기리며 은총을 얻고자 예수 그리스도 구원 신비의 업적을 여러 항목으로 나눠 일정 기간에 기념한다. 이것이 규칙적으로 반복되면서 전례력 또는 전례 주년이 생기게 됐다. 따라서 교회의 달력인 전례력은 일반 달력과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성탄을 준비하는 대림시기부터 새로운 해를 시작한다.오늘날 우리가 지내고 있는 전례 주년은 교회 초창기부터 정해진 것이 아니라 시대의 흐름에 따라 점진적으로 생성됐습니다. 초기에는 부활 축제(사순시기와 부활시기)를 해마다 지내왔고, 4세기 중엽에 와서 성탄 축제(대림시기와 성탄시기)가 거행됐습니다. 성탄 축제는 주님 공현 대축일까지 이어지는데, 유럽에서는 1월 6일에 지내고 우리나라에서는 1월 6일과 가까운 주일에 지냅니다. 그 뒤에 부활시기와 성탄시기에 속하지 않은 시기를 연중시기(34주간)로 해서 여타 축제들이 이 시기에 삽입됐습니다. 예컨대 그리스도와 끊으려야 끊을 수 없이 결합돼 있는 하느님의 모친 복되신 성모 마리아에 대한 공경 축일, 순교자 축일, 성인 축일 등을 기념하는 축제가 삽입됐습니다. 그리스도의 구원 업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에서 시작되고 그분의 부활로 완성되기 때문에 전례 주년은 성탄과 부활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습니다.▨전례와 신심 행위는 어떤 차이가 있는가?전례(典禮)는 우리 구세주이자 대사제인 그리스도께서 성부께 드리는 공적 예배인 동시에 신자 공동체가 성령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공적 예배다.교회에는 전례 외에도 개인 또는 신자 공동체가 함께 모여 하느님을 섬기고 경배하는 신심 행위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전례 안에서 그분의 사제직을 수행하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전례 안에 현존하시어 누가 세례를 줄 때에 친히 세례를 주시고, 당신 말씀 안에 현존하시어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 친히 말씀하십니다.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인 전례는 당신 교회의 행위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전례를 통해 하느님을 찬미하며 파스카 신비에 참여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과 친교를 이룹니다. 따라서 전례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교회 모든 힘의 원천입니다. 교회 공동체 안에서 전례는 다음의 조건을 갖춰야 합니다. 첫째, 전례는 교회로부터 합법적으로 임명된 사람이 거행합니다. 한국 천주교회에서는 주교, 신부, 부제에게 전례 거행의 임무가 맡겨졌습니다. 둘째, 전례는 교황청의 인준을 받은 전례서로 거행됩니다. 집전자는 예식서의 절차와 규정에 따라 전례를 거행해야 합니다. 거룩한 전례에는 미사를 비롯해 성사, 준성사, 시간 전례(성무일도), 교회 장례식 등이 있습니다.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유해 공경, 순례, 십자가의 길, 묵주기도, 메달 등으로 다양하게 표현돼 왔습니다. 신심 행위는 전례 생활의 연장으로 교회에서 적극 장려되지만 본질상 전례를 대체할 수 없습니다. 또한 교회에는 신심 행위와 구별되며, 주교들의 명령과 합법적으로 승인된 예식서에 따라 거행되는 ‘거룩한 행위’가 있습니다. 거룩한 행위에는 성체 현시, 성체 행렬, 성체 대회 등이 있는데, 전례 시기를 고려해 전례와 조화를 이뤄 마련됩니다.※그동안 ‘미사 전례풀이’를 애독해주신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백영민2017.06.07

서울대교구, 사제수품 50주년 금경축 사제 축하행사 열어 서울대교구 주교단과 금경축 사제들이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유경촌ㆍ손희송 주교, 양홍ㆍ이기명ㆍ김택암 신부, 정순택 주교, 이종효ㆍ안충석 신부, 염수정ㆍ정진석 추기경, 안경렬 몬시뇰, 오지영 신부. 남정률 기자 서울대교구는 13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성유 축성 미사를 봉헌하고, 안경렬 몬시뇰과 이기명ㆍ김택암ㆍ오지영ㆍ안충석ㆍ장홍선ㆍ양홍ㆍ이종효 신부의 금경축 행사를 열었다. 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지난 50년간 사제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온 신부님들은 후배들에게 좋은 모범이자 교회의 산 증인”이라며 금경축 사제들의 영육간 건강을 기원했다. 사제단 대표로 축사에 나선 백성호(불광동본당 주임) 신부는 금경축 사제들에 얽힌 일화를 소개한 후 8명의 금경축 사제들이 하느님의 무한한 은총 속에 평안하기를 축원했다. 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권길중(바오로) 회장은 “금경축 신부님들의 지도와 기도, 사랑에 보답하기 위해 저희 모두 더욱 그리스도인답게 살겠다”고 다짐했다. 안경렬 몬시뇰은 “주님께서 주신 은총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자책하게 된다”며 후배 사제들에게 주님의 사제다운 삶에 더욱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이기명 신부는 “사제로서 참으로 좋고 신 나는 삶이었다”면서 “젊은이들에게 사제 성소의 꿈을 심는 데 힘써달라”고 부탁했다. 김택암 신부는 “임종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완화의료 병동 환자들의 말벗을 하면서 보람 있게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오지영 신부는 “하느님과 교회, 사제들, 그리고 무엇보다 신자들의 도움으로 오늘을 맞을 수 있었다”며 “부끄럽지 않은 삶으로 은인들의 고마움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충석 신부는 “일상이 아닌 미사 때만 하느님 나라를 살아온 것 같다”면서 “일상생활 모두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제로 살아달라”고 요청했다. 양홍 신부는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에페 6,12)이라는 성경 말씀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종효 신부는 “제가 사목하는 본당에 부임하는 사제들이 좋은 본당으로 발령받았다는 소리를 못 듣게 한 것 같아 아쉽다”고 소회를 밝혔다. 장홍선 신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정진석(전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은 “금경축 신부님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숨은 선행을 많이 하신 분들”이라고 치하하고, “여생을 건강하게 지내고 하느님 영광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하시도록 기도하겠다”고 축하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cpbc2017.04.14
초등부 제1회 울타리 성경 잔치 열려 마산교구 청소년국, 금상 노영진군·참가자 전원 ‘복음 암송상’
13일 마산교구청 강당에서 열린 초등부 제1회 울타리 성경잔치에서 학생들이 성경 문제를 풀고 있다. 손춘복 명예기자 마산교구 청소년국(국장 박혁호 신부)은 13일 교구청 강당에서 초등부 제1회 울타리 성경 잔치를 열었다.본당ㆍ지구 예선을 거쳐 이날 본선에 오른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 12명은 가족, 선생님, 친구 등 80여 명의 뜨거운 응원 속에 성경 문제를 풀었다. 참가자 대부분이 예상 문제집을 외울 정도로 실력이 좋아 경쟁이 치열했다. 이날 금상은 노영진(대건 안드레아, 초6, 사파공동본당)군이, 은상은 신예지(헬레나, 초6, 사천본당)양, 동상은 김수영(안드레아, 초6, 사파공동본당)군이 수상했다. 수상자들은 본당 주일학교 지원금도 부상으로 받았다. 본선에 오른 모든 학생은 ‘복음 암송상’을 받았다.박혁호 신부는 “어린이들이 대회를 준비하면서 하느님 말씀을 새겨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만나고 의지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면서 “어린이들이 성경을 가까이 두고 지낼 수 있도록 주일학교 교리교사와 부모님들이 관심을 두길 바란다”고 말했다. 교구는 매년 초등부 울타리 성경 잔치를 개최할 예정이다. 손춘복 명예기자 평화신문2015.09.16
![[생활속의 복음]연중 제14주일 (마태 11,25-30)](//cpbc.co.kr/CMS/newspaper/2017/07/rc/687627_1.0_titleImage_1.jpg)
[생활속의 복음]연중 제14주일 (마태 11,25-30)철부지 영성 오늘은 연중 제14주일입니다. 얼마 전 평일 미사 때에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는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미소(微小)함을 사랑하셨기 때문에 우리를 선택하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철부지들에게 당신을 드러내십니다. 그분의 목소리를 듣기 위해서 우리는 작아져야만 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는 임금님(즈카 9,9 참조)사막의 은수자라고 불리는 샤를 드 푸코(Charles de Foucauld) 복자께서는 “우리는 그분 이외의 어떠한 보물도 원하지 않고 또 보물을 얻는 것을 허용하지도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그분 이외의 다른 것이 우리 마음 속에 있는 것을 허용하지 않기 때문입니다”라며 깨우쳐 주셨습니다.오늘 제1독서에서 즈카르야 예언자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시는 분이 바로 만민을 구원하시는 메시아라고 선포합니다.(즈카 9,9 참조) 이 장면은 신약 성경에서 예수님께서 예루살렘 입성 때에 언급하신 ‘암나귀와 어린 나귀’를 떠올리게 합니다.(마태 21,1-11; 마르 11,1-11; 루카 19,28-38; 요한 12,14-15 참조) 결국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오로지 주님과 그분의 복음뿐입니다. 성령의 힘이 우리를 살립니다(로마 8,12 참조)세계명작동화 중에 으뜸으로 꼽히는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에 보면, 여우가 “너의 장미꽃이 그토록 소중한 것은 그 꽃을 위해 네가 공들인 그 시간 때문이야. (그런데) 사람들은 그 진리를 잊어버렸어”라고 어린 왕자에게 말합니다. 사실 우리가 맺는 관계 안에는 미처 제대로 깨닫지 못하고 지나쳤던 사랑이 내재(內在)하고 있습니다.오늘 제2독서에서 바오로 사도께서는 로마 교회 신자들에게 “성령을 따라 사는” 삶과 “육체를 따라 사는” 삶을 제시하시면서, “성령의 힘으로 몸의 (악한) 행실을 죽이며 사는 길”(로마 8,12 참조)을 택하라고 권고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와 맺은 관계성 안에 내재된 사랑을 통해서 깨우쳐 주시는 진리입니다. 그래서 “성령은 하느님께서 피조물들에게 내리시는 사랑의 원천이십니다.”(「생명을 주시는 주님」 39항 참조)나에게 와서 배워라(마태 11,28-29 참조)베네딕토 16세 교황님께서는 “우리는 진리를 가져 본 적이 없습니다. 잘 해야 진리가 우리를 가지는 거지요. 그렇기 때문에 진리를 인정하고 그것을 척도로 삼도록 하는 겸손을 새롭게 배워 몸에 익히도록 해야 합니다. 진리는 자신의 고유한 힘에 의해 관철됩니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베네딕토 16세 세상의 빛」 참조) 진정으로 우리는 빌라도처럼 “진리가 무엇이오?”(요한 19,38)라고 묻는 어리석음보다는 “진리이신 예수님”(요한 14,6 참조) 앞에 엎어져야(에페 3,14 참조) 합니다.오늘 복음에서 예수님께서는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 멍에를 메어라. 그리고 나에게 배워라”(마태 11,28-29 참조)고 권고하십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불행하여라, 너 코라진아! 너 벳사이다야! 너 카파르나움아!”(마태 11,20-24 참조)라고 하셨던 예수님의 꾸짖음 뒤에 바로 이어진 것입니다. 결국 우리는 세상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의 진리를 듣고 볼 수 있습니다.(요한 18,37 참조)약하고 작은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성녀 소화 데레사는 「자서전」에서 “저는 가벼운 솜털밖에 나지 않은 ‘힘없는 작은 새’일 뿐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독수리’가 아니라, 독수리의 ‘눈과 마음’만 가졌을 뿐입니다. 이 작은 새는 하느님이시고 사랑이신 ‘태양’을 향해서 날고 싶어 합니다”라는 간절한 소망을 피력합니다.교형 자매 여러분, 오늘 우리는 “한껏 기뻐하여라. 내가 너희를 살게 하겠다. 또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는 주님의 약속을 들었습니다. 이제 우리가 할 일은 자신의 지식이나 논리를 뒤로 접어두고, 오히려 철부지처럼 하느님의 사랑에 온전히 의탁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여러분이 하느님 안에서 충만한 기쁨을 누리시길 빕니다. 아멘. 서울대교구 화곡본동본당 주임 평화신문2017.07.05
![[성경 속 도시] (51) 아시리아](//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9136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51) 아시리아이스라엘 왕국 멸망시킨 제국의 수도 아시리아 티글랏 3세와 수행원을 그린 아시리아 왕궁 벽화 사본. 기원전 8세기 것으로 현재 프랑스 파리 루브르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아시리아는 메소포타미아 북부 지역에서 일어난 아시리아 제국의 첫 번째 수도다. 초기에 ‘아시리아’라는 말은 티그리스 강 상류 지역을 부르는 말이었다. 나중에 아시리아는 바빌론처럼 나라의 이름이자 동시에 도시 이름으로, 그리고 사람 이름으로 자유롭게 사용되기도 했다.이곳은 지금의 이라크 모술 지역에서 티그리스 강을 따라 남쪽으로 약 100㎞ 정도 떨어진 거리에 있다. 아시리아인은 오랫동안 바빌로니아 세력 밑에서 지배를 받았다. 아시리아는 기원전 7세기에 바빌론과 이집트를 정복해 근동 최초의 통일 제국이 됐다. 북부 메소포타미아의 요충지에 자리 잡고 있는 아시리아는 티그리스 강변의 지정학으로 아주 좋은 위치에 있다. 아시리아인들은 북쪽과 동쪽은 강이 자연적인 방어를 해주고 있어 남쪽과 서쪽에 방어벽을 구축해 도시를 방어했다. 그러나 그들의 영화는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아시리아는 점령지 주민의 강제 이주 등 가혹한 통치를 강행해 저항을 많이 받았다. 기원전 612년에 메디아와 바빌론 연합군이 수도 니네베를 함락하였고, 이어 기원전 609년 아시리아는 완전히 멸망하였다. 오늘날 이라크 내에 있는 성경 속 도시들은 거의 구약 시대와 관련이 있다. 그중에서도 아시리아는 바빌론 다음으로 성경에서 자주 언급되고 있는 중요한 도시다. 창세기에 보면 에덴 동산에 대한 이야기에 아시리아를 흐르는 강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셋째 강의 이름은 티그리스인데, 아시리아 동쪽으로 흘렀다. 그리고 넷째 강은 유프라테스이다”(창세 2,14).기원전 922년 솔로몬 왕의 죽음 이후 이스라엘은 솔로몬의 아들 르호보암 왕이 통치하는 남쪽의 유다 왕국과 여로보암이 통치하는 북쪽의 이스라엘로 분열됐다. 남쪽은 유다 지파와 베냐민 지파로 구성되었고, 북쪽은 나머지 열 지파로 구성되었다. 기원전 931년에 시작된 이 분열 왕국은 이스라엘 왕국이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에 망하고, 유다 왕국이 이스라엘보다 나중인 기원전 586년에 바빌론에 멸망했다. 북쪽 이스라엘 왕국은 초대 왕인 여로보암 1세부터 호세아 왕까지 모두 19명의 왕이 다스렸다. 19대 호세아 왕 때 아시리아 왕인 사르곤의 침공을 받아 사마리아가 함락됐다. 그리고 사마리아 주민들은 아시리아로 끌려갔고 사르곤은 다른 지방 사람들을 사마리아로 이주시켰다. 사마리아로 옮겨온 이방인들은 정착해 원주민인 이스라엘 사람들과 동화됐다. “아시리아 임금은 바빌론과 쿠타와 아와와 하맛과 스파르와임에서 사람들을 데려다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대신하여 사마리아 성읍들에 살게 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사마리아를 차지하고 그 성읍들에서 살았다”(2열왕 17,24).그런데 이방인들이 이주해 올 때 이교 신앙도 함께 가지고 왔기에 사마리아에는 혼합 종교가 생겼다. 그래서 예수님 시대에 유다 사람들이 사마리아인을 경멸했던 것이다. 그리고 남쪽 유다의 요시아 왕은 아시리아를 도우려는 이집트군과 전투를 위해 출병했다가 전사했다. “요시야 시대에 이집트 임금 파라오 느코가 아시리아 임금을 도우려고 유프라테스 강을 향하여 올라갔다. 요시야 임금이 그와 맞서 싸우러 나가자, 파라오 느코는 므기또에서 요시야를 보고 그를 죽여 버렸다”(2열왕 23,29).바빌론 제국에 앞서 당대에 메소포타미아와 그 주위의 세계를 지배하며 호령했던 아시리아 제국이지만, 오늘날 그 모든 영광은 사라지고 그 화려한 유적마저 많이 도굴당했다. 그 흔적과 기록마저도 보존이 잘 안 돼 있어 권력 무상을 느끼게 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6.30
![[방송] 하느님 위로가 그리운 요즘…평화방송으로 힐링하세요](//cpbc.co.kr/CMS/newspaper/2016/11/rc/658839_1.0_titleImage_1.jpg)
[방송] 하느님 위로가 그리운 요즘…평화방송으로 힐링하세요교회력으로 새해인 대림(11월 27일) 맞이 준비에 한창인 평화방송 TV와 라디오가 새롭고 유익한 신앙 프로그램으로 시청자와 청취자에게 다가갈 채비를 하고 있다. 평화방송은 ‘하느님 안에서 기쁨과 행복, 평화를 맛보게 하는 채널’, ‘힘든 세상살이에 대한 위로와 격려, 그리스도인다운 응답을 고민하는 방송’이 될 것을 다짐하며 오늘도 주님의 기쁜 소식을 전하고자 노력한다.라디오 - ‘희망나눔콘서트’ 공개방송 현장 탐방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와 시청자미디어재단(이사장 이석우)은 10월 28일 서울 동교동 가톨릭청년회관에서 ‘청각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라디오 오픈 스튜디오 희망나눔 콘서트’를 개최했다. ‘가을소풍’을 주제로 한 공개방송은 방송통신위원회 산하 미디어전문기관인 시청자미디어재단을 소개하는 한편, 약간의 도움만 있으면 청각장애인들도 라디오 청취하고 방송에 참여할 수 있는 우리 사회 공동체 일원임을 알리기 위한 소통의 자리였다. 이날 현장에는 청각장애인의 라디오 청취를 위한 수화 통역과 허리 쿠션 모양의 진동 스피커 15대가 설치됐으며, 대형스크린을 통한 문자 서비스가 선보였다. 또 ‘쉐어타이핑’(www.sharetyping.com)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방송 내용 전부가 문자로 생중계됐다. 평화방송 라디오 프로그램 ‘이동우 김다혜의 오늘이 축복입니다’의 진행자 이동우(마르코)ㆍ김다혜(로사)씨의 사회로 진행된 공개방송은 장애인들의 권익을 위해 활동하는 박마루(서울시의회) 의원과 소프라노 정민화(도미니카)씨의 토크 콘서트로 열렸다. 4인조 남성 아카펠라 그룹 보이스퍼<사진>도 출연해 ‘여름 감기’ 등을 열창했다. 지체장애인 가수이기도 한 박마루 의원은 ‘함께 꿈을 꾸어요’ ‘고백’ 등을 노래하며 “장애가 있지만 일할 기회를 하느님께서 많이 주신 덕분에 감사하게 산다. 그래서 직무 유기를 하지 않고 열심히 제 현실에서 기쁘게 일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민화씨는 “한 달에 한 번 문화예술인들과 만든 한마음문화예술단에서 어르신 시설을 찾아가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봉사할 때마다 굉장히 기뻐해 주시는 분들 덕분에 오히려 치유받고 있다”면서 더 많은 이들이 봉사에 나서기를 권유했다. 이석우(클레멘스) 이사장은 “공개방송이라는 제한된 장소에서나마 청각장애인 여러분이 라디오와 가까워지길 희망한다”며 “희망나눔 콘서트는 시청자미디어재단이 청각장애인의 라디오 청취를 지원하기 위한 여러 서비스를 생각하는 계기가 됐다”고 밝혔다. 콘서트에 참여한 청각장애인 김수현(26)씨는 “라디오를 들을 수 없어 그동안 라디오에서 과연 무슨 이야기와 음악이 나올까 궁금했다”며 “매우 좋은 경험이 됐고, 앞으로 청각장애인들을 위한 공개방송이 더욱 자주 열렸으면 좋겠다”고 전했다. 청각장애인들과 함께하는 라디오 오픈 스튜디오 희망나눔 콘서트는 6일 오전 11시 5분 청취자들을 찾아간다.tv성경 인물탐구 ‘IF YOU’ 성경 속 인물들이 인간적인 갈등 속에서 신앙인으로 변모했던 과정을 입체적으로 재구성하는 ‘토크멘터리’(토크쇼+다큐) 프로그램. ‘예수님을 만났던 많은 인물은 어떻게 예수님을 알아보고 주님의 길을 따라 걸었을까’ 혹은 ‘만약 내가 성경 속 인물이라면 어떻게 행동했을까’ 하는 상상력을 더했다. 현대인들이 겪는 삶의 고단함과 외로움을 성경 인물들이 마주한 상황과 접목해 삶의 지혜를 찾고 나눌 수 있도록 기획했다. 최광희(서울대교구 성서사도직ㆍ청년성서모임 담당) 신부와 박우곤(알렉시오) 가톨릭문화기획IMD 대표, 취업 준비생 원혜림(체칠리아)씨가 패널로 참여한다. 진행은 평화방송 신의석(다니엘) 아나운서가 맡았다. 배우 이윤지(마리아)씨를 비롯해 개그맨 류근지(베드로)씨, 배우 화가 김현정(아기 예수의 데레사)씨, 아나운서 최희(마리나)씨 등 매회 특별 손님도 출연한다. 첫 방송은 ‘마리아와 요셉’ 편이다. ▷첫 방송 : 29일 저녁 8시 우리 본당 노래자랑 본당 공동체 구성원들이 겨루는 노래 한마당이자 신자들의 진솔한 삶의 현장을 담은 휴먼다큐 노래자랑 프로그램. 첫 방송에는 ‘서울 묵동본당’ 편이 방송된다. 제작진들은 처음엔 신자들의 노래자랑 프로그램만을 기획했는데, 촬영을 거듭할수록 본당에 숨겨진 이야깃거리에 주목하게 됐다. 묵동본당 편에는 수십 년간 폐지를 팔아 모은 1억 3000만 원을 올해 본당에 기부한 93세 신자 할머니의 이야기가 눈길을 끈다. 신자들은 오래전 남편을 여의었고 자녀도 없이 홀로 살아온 할머니가 평생 제대로 된 생일상 한 번 받아보지 못했다는 것을 알게 되고 주임 박명근 신부와 함께 할머니의 요양원을 찾아가 푸짐한 생일상을 차려준다. 서울 수유동본당 편에서는 27년 전 15세인 아들을 잃은 슬픔 때문에 심장병에 걸린 아내와 함께 살아온 전당포 주인 요셉 할아버지 사연이 소개된다. 요셉 할아버지는 누군가 맡기고 오랫동안 찾아가지 않던 색소폰에 입을 대보니 소리가 난 것을 계기로 색소폰을 독학했다. 이제는 전문 연주자 못지 않은 실력으로 매주 월요일에 수유동성당에서 신자들에게 색소폰을 가르치고 있고, 정기적으로 요양원 등에서 음악 봉사를 하며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평화방송 TV 김성일(미카엘라) PD는 “삭막해져 가는 세상이지만 신자들의 가슴 따뜻해지는 사연과 노래를 통해 웃음과 위로를 얻기를 희망한다. 기대할 만하다”고 말했다. 방송선교후원금 제작 프로그램 ▷첫 방송 : 12월 3일 오후 4시 이힘 기자 lensman@pbc.co.k 문채현2016.11.02
![[교황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 해설] 10. 2성경의 지혜](//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9486_1.0_titleImage_1.jpg)
[교황 생태 회칙 해설] 10. 2성경의 지혜왜곡된 인간중심주의 벗어나 하느님께 돌아가야 회칙 2장의 ‘성경의 지혜’(65~75항)와 관련, 우리가 진지하게 성찰할 내용 몇 가지만 소개한다. 1. (구약 성경은) 인간 실존과 그 역사적 실재를 ‘관계’로 이해한다. “인간의 생명(생활)은 하느님과 관계, 이웃과 관계, 대지(세상)와 관계에 토대를 두고 있으며, 이 세 관계는 근본적인 것으로서 서로 밀접하게 엮여 있다. 이 세 가지 결정적 관계는 인간 안팎에서 파괴되며, 이 관계의 결렬이 죄다”(66항). 회칙은 성경에서 밝히는 이 관계의 참된 뜻이 무엇인지, 동시에 어떻게 그 관계들이 파괴되며, 그 결과가 무엇인지를 소개하고 있다. 한 가지 예만 들어보면, 카인과 아벨의 이야기를 소개하면서, 이웃과 관계가 파괴될 때, 어떻게 그것이 하느님과의 관계와 땅과의 관계는 물론 인류 전체에 악영향을 주는 것으로 이어지는지를 설명한다.“이웃과 적합한 관계를 가꾸고 유지해야 할 의무를 경시하는 것, 즉 내가 책임져야 할 사람에 대한 돌봄과 보호를 경시하는 것은 나와 나 자신, 나와 다른 이들, 나와 하느님, 그리고 나와 대지와의 관계를 파괴합니다. 성경은 이 모든 관계가 무시될 때, 즉 정의가 더 이상 땅에 남아 있지 않게 될 때, 우리의 생명(생활) 자체가 위협을 받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를 노아의 이야기에서 봅니다”(70항).2. “단호하게 배격해야 할 태도가 있습니다…[성경을 잘못 이해해서] 우리 인간만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고 [우리 인간에게만] 땅을 지배하라고 했으므로, 이는 다른 피조물들에 대한 인간의 절대 우월(지배)을 정당화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그것입니다”(67항). 이를 회칙은 ‘왜곡된 인간중심주의’(69항)라고 비판한다. 이 왜곡된 인간중심주의는 “창조주와 인류와 전체로서의 창조(피조물) 사이의 조화”를 붕괴시켰는데, “우리가 주제넘게 하느님의 자리를 취하려는 것”이며, “우리가 피조물로서의 한계들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66항)에 다름 아니다.3. 그렇지만, 하느님께서는 언제나 인류에게 새로운 시작(쇄신)의 기회를 주신다(71항). 하느님께서 재촉하시는 이 쇄신의 삶에는 “창조주의 손으로 자연에 새겨 놓은 리듬을 되찾고 존중하는 것”(71항), 창조주 하느님께 대한 찬미(72항), 하느님께 대한 관상으로 얻어야 할 새로운 힘(73항)과 희망(74항)이 포함되어 있다.4. “성경에서 해방하시고 구원하시는 분과 창조하신 분은 같은 하느님이십니다. 그분의 창조 행위와 구원 행위는 거룩한 행동 방식으로서 밀접하게 그리고 분리할 수 없이 결합되어 있습니다”(73항). 그리스도인의 영성은 바로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시며 해방자이심을 기억하고 고백하며 실천하는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 교회가 “지상의 권력들을 숭배하는 것을 종식시키는 방식” “우리 인간이 하느님의 자리를 강탈하는 것을 종식시키는 방식”이다(75항).5. 그러므로 무엇보다도 우리 그리스도인과 교회 당국은 스스로 다음과 같이 물어야 한다. 창조 질서의 보전과 참다운 해방의 도구가 되기 위해서 정치ㆍ경제ㆍ문화 같은 사회의 제 분야와 그리스도교는 실효적인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는가? 우리 사회의 다른 종교 혹은 종파와 대화를 나눌 의지가 있는가? 혹시 회피 내재주의의 쓴 독을 지금 마시고 있는 것은 아닌가? 우리 그리스도인이 ‘왜곡된 (이기적) 인간중심주의’에서 벗어나 하느님(원천)께 돌아갈 때(전환과 회개), 그럼으로써 파괴된 관계(자신, 이웃, 세상)를 회복하여, ‘쇄신의 삶’을 살 때 인류와 세상에 유익하다. 물론 용기가 필요하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한 신뢰와 희망이 그래서 더욱 절실하다. 우리는 하느님을 신뢰하는가? “무에서 온 세상을 창조하신 하느님께서는 이 세상에 개입하실 수도 있으며, 모든 형태의 악을 극복하실수도 있습니다. 불의는 무적이 아닙니다”(74항). 백영민2015.08.26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36) 예수님을 거부한 마을(루카 9,51-56)예루살렘 향해 사마리아 마을 거쳐가려 했으나…이번 호부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를 보게 됩니다.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길(9,51-56) 예루살렘 상경기는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9,51)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하늘에 올라가실 때”란 거룩한 변모 기사의 “세상을 떠나실 일”(9,31)을 가리킵니다. 이는 그분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과 승천까지를 포함하는 일을 의미합니다. 이 일은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져야 하기에(9,31 참조),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신 것입니다. 지금까지 예수님의 주 활동 무대는 갈릴래아와 그 주변 일대였습니다. 하지만 이제 예루살렘을 향하시면서 예수님께서는 심부름꾼들을 앞서 보내시고, 그들은 예수님을 모실 준비를 하려고 사마리아인들의 한 마을로 들어갑니다.(9,52) 예수님 시대에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크게 두 가지가 있었다고 하지요. 하나는 사마리아 지역을 거쳐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이고 다른 하나는 사마리아 지방을 피해 요르단 강 동쪽을 따라 내려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길이었습니다. 사마리아를 통해 예루살렘으로 가는 데는 3~4일이면 됐지만 사마리아 지방을 피해 에둘러서 가면 훨씬 더 많은 시일이 걸렸습니다. 하지만 유다인들은 사마리아인들과 상종하는 것을 꺼렸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들의 마을을 거쳐 가기로 작정하십니다. 유다인들이 사마리아인들에게 갖고 있는 편견을 부수고 두 집단 사이의 장벽을 허물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아니면 예루살렘에서 이룰 일을 생각하면서 그 길을 서둘러 가고 싶으셨을 수도 있습니다. 심부름꾼을 먼저 보내신 것도 같은 맥락에서라고 볼 수 있겠지요. 그런데 사마리아 마을 사람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이 싫어하는 유다인들의 성도 예루살렘으로 가시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루카는 기록합니다. 그러자 야고보와 요한 형제가 나섭니다. 하늘에서 불을 내려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는 저 사마리아 사람들을 불살라 버리면 어떻겠느냐는 겁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그들을 꾸짖으셨고 일행은 다른 마을로 갑니다.(9,53-56) 야고보와 요한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사람들을 불살라버리면 어떻겠냐고 예수님께 여쭌 것은 빈말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다 보았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모습이 변해 엘리야와 모세와 함께 이야기하시는 것도 직접 목격했습니다.(8,28-36 참조) ‘천둥의 아들들’이라는 별명처럼 다혈질적인 그들은 구약의 위대한 예언자 엘리야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신 자기들의 훌륭한 스승이 사마리아인들에게 거부당하자 화가 치밀어올랐을 것입니다. 그래서 불살라 버리자는 험악한 말까지 하고 있는 것입니다. 어쩌면 그들의 머릿속에는 엘리야 예언자가 사마리아 임금 휘하의 오십인 대장과 그 부하들을 불살라 버린 일화(2열왕 1,10-12)가 떠올랐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이는 예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나눈 대화는 당신이 “세상을 떠나실 일”(9,31), 곧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했듯이, “당신의 죽음과 부활과 승천으로 새로운 탈출을 실현시키실”(「주석 성경」) 일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이루시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시는데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해 사람들을 불살라 버린다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꾸짖으시지요. 예수님의 예루살렘 상경기를 시작하면서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하신 일과 앞으로 예루살렘에서 이루실 일이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은 이 일화와 어떤 관계를 이루는지를 잠시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서 하신 활동은 나자렛의 회당에서 이사야 예언서를 통해 선포하신 말씀에서 잘 드러납니다.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8-19) 이것이 예수님께서 갈릴래아 일대에서 하신 일,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일(4,43)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전하시면서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제자들에게 두 번이나 예고하십니다. 루카는 그 일을 이루시려고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향하시는 첫머리에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야기를 전합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겪으실 일에 대한 복선을 깔아놓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화가 난 제자들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반대자들을 불살라 버리자고 청하는 제자들을 꾸짖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앞으로 예수님께서 겪으실 배척과 반대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를 암시하고 있다고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알아 둡시다 : 유다와 사마리아 예수님 시대에 유다 사람과 사마리아 사람들은 사이가 아주 좋지 않았습니다. 거기에는 역사적 이유가 있습니다. 사마리아는 원래 가나안 땅에 들어온 이스라엘 민족이 솔로몬 왕 이후 남쪽은 유다 왕국으로, 북쪽은 이스라엘 왕국으로 갈라진 후 기원전 890년쯤부터 북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로 건설된 도시였습니다. 하지만 나중에는 북부 갈릴래아와 남부 유다 사이의 요르단 강 서쪽에 자리 잡고 있는 지역을 가리키게 됩니다. 사마리아인이나 유다인은 원래가 똑같은 유다인이었습니다. 하지만 기원전 722년 아시리아가 북부 이스라엘 왕국의 수도 사마리아를 함락시킨 후 이스라엘 사람들을 아시리아로 끌고 가고 대신에 아시리아 사람을 비롯한 다른 이방 민족들을 사마리아에 살게 하면서, 사마리아 지역에 살던 유다인들의 순수성이 훼손됐습니다. 게다가 야훼 신앙을 저버리고 우상 숭배에 빠져 지냄으로써 사마리아 사람들은 남쪽 유다인들에게 점점 멸시를 받게 됩니다. 그러다가 바빌론 유배(기원전 587~538) 이후 사마리아인들이 유다인들의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반대하면서 앙금의 골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사마리아인들은 나중에 예루살렘 성전 대신 사마리아의 그리짐 산에 성전을 세워 예배했는데, 이 성전을 유다인들이 파괴하면서 갈등이 더욱 심화됩니다. 이런 이유로 예수님 시대에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의 사이는 아주 좋지 않았지요. 문채현2017.10.26

지치기 쉬운 성경 통독의 길, 함께하니 수월하네서울 수락산본당 전 신자 성경통독 독려, 평일과 주말 성경 통독반 꾸려 성경 읽고 나눔의 장 마련 서울 수락산본당 성경통독반 신자들이 성경 나눔을 하며 즐거워 하고 있다. 이제 갓 세례받은 새 신자나, 신자 경력(?)이 20년 가까이 된 사목 위원이나 성경 통독 앞에선 너 나 할 것 없었다. 성경 전체를 읽는 것은 누구나 처음이었다. 서울 수락산본당(주임 김일영 신부) 성경 통독반에 참여한 신자들은 “여러 신자와 성경을 함께 읽으니 포기하지 않게 된다”면서 “성경을 통독하게 된다는 기대감에 설렌다”고 입을 모았다. 본당은 올해 중점 사목 프로그램 중 하나를 ‘성경 통독’으로 정하고 전 신자들에게 통독을 독려했다. 1월 1일부터 매일 4장씩 읽으면 1년 동안 신ㆍ구약 전체를 읽을 수 있기에 날짜별로 매일 읽을 성경 부분이 표기된 성경 통독표를 나눠줬다. 주보에는 성경 통독 일정을 매주 게재했다. 이와 함께 신자들이 중간에 성경 읽기를 포기하지 않도록 성경 통독반을 꾸렸다. 함께 모여 성경을 읽고 나누는 장을 마련해 준 것이다. 성경 통독반 신자들은 일주일에 한 번씩 성당에 모인다. 평일반과 주말반 모두 합치면 14개 반이나 된다. 한 반에 신자는 10명 안팎이다. 이들은 성경을 함께 읽은 뒤 마음에 드는 성경 구절에 관해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눈다. 성경 말씀에 비춰 자신의 신앙생활을 돌아보기도 하고, 때론 인생 고민을 털어놓기도 한다. 박노훈(마르코, 62)씨는 “1998년에 세례받았는데 그동안 성경 공부를 하기는 했어도 전체를 다 읽어본 적은 없다”면서 “혼자 읽었다면 진작에 실패했을 텐데, 이렇게 함께 읽으며 신앙 나눔을 하니 좋다”고 말했다. 신자들의 성경 통독을 돕기 위해 박정미(에우오디아) 수녀는 성경 강사를 자처했다. 한 달에 2번 성경 강의를 진행하며, 신자들이 올바르게 성경을 이해하도록 이끌어 주고 있다. 누구나 들을 수 있는 박 수녀 성경 강의는 이웃 본당 신자들도 찾아올 만큼 인기가 좋다. 이성모(요셉, 57)씨는 “세례받은 지 얼마 안 돼 성경 내용을 잘 몰랐는데, 성경 핵심 내용을 쉽게 설명해 주시는 수녀님 강의가 큰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이 밖에도 성경 통독반이 순조롭게 운영되는 데에는 봉사자들 노력도 빼놓을 수 없다. ‘마르타’로 불리는 봉사자들은 성경 통독반을 한 반씩 맡아 신자들을 챙기고, 성경 나눔도 이끈다. 봉사자 대표 채현숙(아나스타시아, 52)씨는 “주임 신부님께서 성경 통독반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고, 특히 봉사자들을 격려해 줘 감사할 따름이다”고 말했다. 본당은 매달 셋째 주 주일미사가 끝난 뒤엔 성당에서 성경 인물을 다룬 영화를 보여주고 있다. 성경 통독을 하는 신자들이 지치지 않고, 성경에 계속 흥미를 느낄 수 있도록 한 것이다. 김일영 주임 신부는 “하느님 말씀을 생활화하려는 신자분들 노력에 감사드린다”면서 “말씀 안에서 기쁘고 복되게 사시길 바란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5.07.16
![[하느님과 트윗을] (6) 마리아는 왜 중요한가요?](//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5272_1.0_titleImage_1.jpg)
[하느님과 트윗을] (6) 마리아는 왜 중요한가요?예수님 고통 함께한 ‘모두의 어머니’ 책 「하느님과 트윗을」 표지. 문 : 마리아는 왜 중요한가요.답 : 마리아는 우리의 역사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습니다. 하느님은 인류 구원에 협력하도록 마리아를 택하셨습니다. 성경은 마리아를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루카 1,27)라고 합니다. 교회의 전승에 따르면 마리아의 부모님은 요아킴 성인과 안나 성녀였습니다.예수님은 30세가 돼서야 공적으로 설교하고 기적을 행하기 시작하셨습니다. 하지만 흔히 예수님의 ‘숨은 삶’이라고 하는 그 이전 삶이 있습니다. 우리는 루카복음서에서 예수님의 어린 시절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에 대해 가장 많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천사가 마리아에게 구세주를 낳을 것이라고 말하자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대답한 주님 탄생 예고에서 우리는 마리아를 처음 만납니다. 예수님이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을 때, 양치기들은 거룩한 아기를 경배했으며 천사에게서 들은 대로 그 아기가 구원자라는 말을 전해 주었습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습니다. 예수님이 태어나고 40일 후에 요셉과 마리아는 유다인 관습에 따라 예수님을 성전에서 하느님께 봉헌했습니다. 그때 시메온 예언자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아기는 … 반대를 받는 표징이 되도록 정해졌습니다. 그리하여 당신의 영혼이 칼에 찔리는 … 것입니다.”(루카 2,34-35) 이 말은 마리아가 어떻게 그녀의 아들과 함께 고통을 받게 될 것인지를 예언한 것입니다.문 : 마리아가 받은 고통은 무엇인가요. 답 : 마리아의 고통은 새로 태어난 자기 아들을 죽이려고 파견된 군사들을 피해 성가정이 이집트로 달아날 때 이미 시작됐습니다.(마태 2,13-15 참조) 또 예수님이 열두 살이 되던 해에 예루살렘을 방문하는 동안 그의 양친은 예수님을 잃었습니다. 사흘 동안 애타게 찾아 헤매다가 요셉과 마리아는 성전에서 예수님을 찾았습니다. 거기서 예수님은 유다인 율법 교사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그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느라고 바빴습니다. 여기서도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루카 2,51)했습니다. 마리아는 언제나 하느님을 믿었습니다. 자기 아들이 처형됐을 때, 마리아는 십자가 아래 서 있었습니다. ‘연민’이란 ‘함께 고통을 겪는 것’을 뜻합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십자가 아래 서서 아들과 함께 겪은 마리아의 고통, 마리아의 연민은 “인간적 견지에서는 거의 상상할 수 없는 격렬한 상태에 달했지만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는 불가사의하고 초자연적인 풍성한 결실을 맺는 것”(「구원에 이르는 고통」 25항)이라고 말했습니다.문 : 마리아에게 기도해도 될까요.답 : 마리아는 자신의 믿음과 예수님과의 친밀함을 통해서 특별한 방법으로 우리를 위해서 간구해 주실 수 있습니다. 예를 들면, 마리아의 청에 예수님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는 첫 번째 기적을 행하셨습니다. 마리아는 예수님과 함께 천국에 계시기 때문에, 우리는 그분에게 “이제와 저희 죽을 때” 우리를 위해서 빌어 달라고 청할 수 있습니다. 물론 우리는 예수님께 직접 기도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들에게도 귀 기울이십니다. 모세는 자주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예수님도 우리에게 다른 사람들을 위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으며, 스테파노 성인은 자신에게 돌을 던지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했습니다. 마리아에게 우리를 위해 기도해 달라고 청하는 것은 아주 좋은 습관입니다. 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김지항2017.06.14
![[성경 속 도시] (47) 야포](//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421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7) 야포이방인 선교의 문 활짝 열어 현대의 야포 항구 모습.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 출판사 ‘아름답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는 야포는 이스라엘에서 가장 오래된 항구로 지금도 아름다운 절경을 자랑한다. 현재 야포는 텔아비브의 지중해 해안 남쪽 지역을 말하는데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곳이었다. 이스라엘에서는 항만 조건이 좋지 않은 지중해변에서 오랜 시간 동안 항구 도시로서 기능을 담당했다. 또 야포는 이집트 고대 문서에도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로 역사가 깊은 도시이다. 야포는 새롭게 하이파 항구가 발전하면서 서서히 그 기능을 잃었다. 주민들도 비좁은 야포 시내에서 벗어나 북쪽에 새로 형성된 ‘봄의 언덕’이라는 뜻을 가진 텔아비브에 자리를 잡았다. 원래 단 지파의 영토야포는 성경에 여러 번 언급돼 나온다. 야포는 본래 구약 시대에 단 지파 영토로 분배받은 땅이었다. “메 야르콘, 라콘, 그리고 야포 맞은쪽 지역이 들어 있다”(여호 19,46). 그러나 이스라엘 민족은 가나안 땅에 들어왔을 때 처음에는 야포를 정복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항구로서의 기능을 많이 상실했지만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과 궁궐을 지을 때 티로 임금 히람에게 레바논산에서 나는 향백나무와 방백나무, 자단나무 등을 베어 보낼 것을 청했다. 그래서 레바논에서 벤 나무들을 뗏목으로 엮어 바다로 야포 항구까지 보내면 예루살렘으로 가져갔다(2역대 2,1-16). 야포는 요나 예언자가 니느웨에 가라는 하느님 명령에 불복하고 타르시스로 도망하기 위해 배를 탔던 곳이기도 하다. “그러나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길을 나서 야포로 내려갔다. 마침 타르시스로 가는 배를 만나 뱃삯을 치르고 배에 올랐다. 주님을 피하여 사람들과 함께 타르시스로 갈 셈이었다”(요나 1,3).기원전 147년에 대사제 요나탄이 코일레 시리아 총독인 아폴로니우스와 전쟁을 하는 대목에서도 야포가 등장한다. “요나탄이 야포 앞에 진을 쳤지만, 아폴로니우스의 주둔군이 야포에 있었으므로 그 성읍 주민들은 그에게 성문을 열어 주지 않았다. 요나탄의 군대가 그곳을 공격하자, 성읍 주민들이 두려워서 성문을 열어 주었다. 그리하여 요나탄이 야포를 점령하였다”(1마카 10,75-76). 신약에서는 베드로 사도가 죽은 여제자 타비타를 살린 장소로 유명하다. “야포에 타비타라는 여제자가 있었다. 이 이름은 그리스 말로 번역하면 도르카스라고 한다. 그는 선행과 자선을 많이 한 사람이었는데…”(사도 9,36). 타비타는 그리스도교 신자로서 착한 일과 자선 사업을 많이 했던 믿음의 여인이었다. 그래서 그녀의 집에는 가난하고 불쌍한 사람들을 열성으로 도와줬다. 타비타가 죽자 베드로 사도가 달려가 그녀를 살렸다. 이 일이 알려지자 주위 사람들에게 깊은 감명을 주어 그리스도께 대한 신앙을 갖는 이들도 많이 늘어났다(사도 9,37-42). 베드로 사도, 환시를 보다 베드로 사도는 한동안 야포에서 무두장이 시몬의 집에 머무르다 어느날 기도 중에 환시를 보았다. 이 환시는 이방인을 향한 선교의 문이 크게 열린 계기가 됐다. “내가 야포 시에서 기도하다가 무아경 속에서 환시를 보았습니다.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그릇이 내려와 네 모퉁이로 내려앉는데 내가 있는 곳까지 오는 것이었습니다”(사도 11,5). 사도 베드로는 예루살렘 교회에 자신을 통해 하느님께서 이방인들에게도 세례를 주고 성령을 받게 했다는 자신의 체험을 보고 했다(사도 11,1-18). 그 후 예수님 복음이 예루살렘에서 이방인들을 향해 사방으로 퍼져나가 야포는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중심지가 됐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6.02
![[신앙 단상] 이웃 교회 신자가 작곡한 아름다운 음악](//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6933_1.0_titleImage_1.jpg)
[신앙 단상] 이웃 교회 신자가 작곡한 아름다운 음악이강민 (노트케르 발불로,명동성당 가톨릭합창단 지휘자, 음악 칼럼니스트) “지휘자님! 개신교 노래를 왜 부르나요?”가톨릭합창단 지휘자로서 단원들과 신자들에게 간혹 받는 질문이다. 정말 궁금해 묻는 이도 있고 불편한 기색을 보이며 퉁명스럽게 묻는 이도 있다. “지휘자가 개신교 출신이라 그런가 봐” 하면서 수군거리는 이들도 있다. 대답에 앞서 ‘개신교 노래’라는 표현 대신 ‘개신교 성가’ 혹은 ‘개신교 찬송가’로 부르는 것이 이웃 교회에 대한 예의인 것 같다. 우리가 부르는 가톨릭 성가에는 개신교회에서 온 곡이 적지 않다. 당연히 가사는 가톨릭 교회 정서에 맞게 수정됐지만, 의미가 크게 다르지는 않다. 대표적인 개신교 찬송가로는 ‘주 하느님 크시도다’(2번)와 ‘찬양하라’(4번), ‘평화를 주옵소서’(44번), ‘주여 임하소서’(151번), ‘주 날개 밑’(436번) 등이다. 성경을 중요시하며 성령에 대한 신앙 체험을 강조하는 미국 복음주의 교회의 영향을 받은 한국 개신교회의 찬송가를 가져다 쓴 것이 많다. 또한, 흑인영가는 노예로 살던 흑인들이 자신의 삶에 대한 고통을 천국에 대한 소망으로 견디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고유한 흑인(아프리카) 정서와 백인 음악이 만나 흑인영가라는 독특한 음악을 만들어 냈다. 가사는 문학적이지 않고 종말론적 색채가 강하며 성경과 관계없는 주관적 내용이 많다. 우리 성가집에는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489번)과 ‘주의 빵을 서로 나누세’(502번)가 실려 있다.흑인영가도 미국 개신교회의 산물이다. 가톨릭 성가에는 신학과 교리가 다른 여러 개신교회의 성가가 가톨릭 교회의 전통 성가와 함께 실려 있다. 성가 작곡가가 ‘Choral’이라 쓰인 곡이 있다. 이는 대부분 루터교회에서 왔고, 성공회와 감리교 성가도 있다. 이미 우리는 여러 개신교 교파의 성가를 부르며 미사를 하고 있다. 음악사를 장식한 위대한 클래식 작곡가들은 대부분 가톨릭 교회 신자일까? ‘음악의 아버지’ ‘교회음악의 대가’로 일컫는 바흐는 루터교 신자이고, 그의 곡은 특히 성체 성가가 많다. ‘음악의 어머니’로 불리며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쓴 헨델은 성공회 신자다. 오라토리오 ‘엘리야’를 작곡한 멘델스존과 루터가 번역한 성경 가사를 조합해 만든 ‘독일 레퀴엠’ 작곡가 브람스도 루터교 신자였다. ‘성 베드로’ ‘성 체칠리아’ 등 미사곡과 성가를 작곡한 브리튼은 성공회 신자였고, 한국인이 무척 좋아하는 교향곡 ‘비창’ 작곡가 차이코프스키는 정교회 신자다. 이렇게 우리는 알게 모르게 이웃 교회 신자가 작곡한 많은 성가를 오래전부터 부르며 미사를 드렸고 그들의 아름다운 교회음악을 연주하며 지냈다. 우리처럼 개신교회에서도 가톨릭 성가를 부르고 예배드리며 신앙생활을 하고 있었다. 신학과 교리에 대한 일치를 이루지 못해 나뉘어 있지만, 교회음악은 이미 오래전부터 일치를 이뤄 세계 모든 교회가 함께 부르고 있다. 가톨릭합창단과 음반을 녹음하고 연주회를 하며, 미사 중에 성가를 부를 때마다 훌륭한 작곡가들이 쓴 아름답고 거룩한 성가에 감동하며 그 작품 안에서 하느님과 예수님, 성령님, 성모님을 만날 수 있다. 나는 우리에게 음악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께 늘 감사드린다. 힘을 다해 성가를 연습하고 정성껏 음악을 봉헌하는 마음가짐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훗날 천국에 가서 교파별로 따로 하느님을 만나고 각자의 성가를 부를 것인가? 평화신문2016.10.19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55)“주님의 말씀은 더욱 힘차게 자라고 힘을 떨쳤다”(사도 19,20)](//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6816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55)“주님의 말씀은 더욱 힘차게 자라고 힘을 떨쳤다”(사도 19,20)이교 지역에 복음 선포하며 모교회와 협력 외스타슈 르 쉬외르 작 ‘에페소에서 설교하는 바오로’, 1649년, 루브르박물관, 프랑스. 바오로의 세 번째 선교 여행은 에페소를 방문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어디를 거쳐 에페소까지 도착했는지 사도행전은 이야기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내륙을 거쳐 에페소에 갔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에페소는 이미 두 번째 선교 여행에서 방문했던 곳으로 경제적으로 상당히 발전한 도시였으며 당시 소아시아의 주도(主都)였습니다. 바오로에 의해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세워진 에페소는 이후 그리스도교에 있어서도 상당히 중요한 도시의 역할을 합니다. 많은 사람은 이곳에서 요한복음과 사목 서간이 쓰인 장소로 생각합니다. 에페소에는 기원전 500년쯤 아르테미스의 신전이 세워진 것으로 보입니다. 아르테미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여신으로 사냥과 여인들의 수호신으로 여겨졌으며 특히 에페소의 아르테미스 신전에서는 풍요를 주관하는 신으로 등장합니다. 바오로의 세 번째 선교 여행의 첫 시작인 에페소에서 아르테미스 신과 관련된 갈등에 대해 읽을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에 머문 기간은 꽤 길었습니다. 에페소에 머문 기간이 사도행전에는 두 번 언급되는데 서로 일치하지 않습니다. 한 번은 2년(사도 19,10), 또 한 번은 3년(사도 21,31)으로 나와 있습니다. 어쨌든 바오로가 선교를 위해 다른 도시에 머물렀던 기간 중 가장 긴 시간입니다. 에페소에 있던 데메트리오스는 은장이로, 아르테미스의 상을 만들던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는 바오로 사도의 선교가 얼마나 많은 영향력이 있었는지를 보여줍니다. 데메트리오스는 자신과 같은 일을 하는, 신의 상을 만드는 이들에게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도 알다시피 우리는 이 직업으로 부유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저 바오로라는 자가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신이 아니라고 하면서, 에페소만이 아니 거의 온 아시아 지방에 걸쳐 수많은 사람을 설득하고 유인하였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사업이 나쁜 평판을 받을 뿐만 아니라 위대한 여신 아르테미스의 신전도 무시를 당하고, 마침내 온 아시아와 온 세상이 숭배하는 이 여신께서 위엄마저 상실하실 위험에 놓였습니다.”(사도 19,25-27)사실 이 표현은 바오로의 행동을 비판하는 것이지만 역설적으로 바오로의 업적을 이야기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사람의 손으로 만든 것”은 하느님의 손으로 만드신 것과 반대되는, 구약성경에서부터 우상을 나타내는 성서적인 표현입니다. 당시 그리스의 신들을 숭배하던 소아시아 지방에 바오로의 복음 선포가 상당히 큰 영향을 주었고 많은 사람이 바오로의 선포로 믿음을 갖게 되었다는 방증이기도 합니다. 이 사건 이후에 바오로는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를 거쳐 코린토를 다시 방문합니다. 돌아오는 여정에 에페소를 다시 방문할 예정이었지만 바오로는 그곳에 들리지 않고 예루살렘으로 향합니다. 사도행전은 그 이유에 대해 오순절을 예루살렘에서 보내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사도 20,16)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오로는 야고보와 원로들을 만났다고 전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야고보는 열두 사도 중의 한 명이었던 야고보가 아니라, 흔히 ‘주님의 형제’라고 부르는 야고보입니다. 제베대오의 아들이며 요한의 형제인 야고보 사도는 이미 순교했습니다. 바오로의 편지인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바오로는 직접 예루살렘에 있는 베드로와 요한 그리고 ‘주님의 형제’인 야고보를 “교회의 기둥”이라고 표현합니다.(갈라 2,9) 바오로 사도는 주로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였지만 지속적으로 예루살렘에 있는 모교회와도 협력했습니다. 이러한 바오로 사도의 모습은 교회의 일치를 나타내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 번째 선교 여행의 마지막 방문한 예루살렘은 이제 바오로 사도 선교의 마지막 이 됩니다. 바오로의 복음 선포를 달갑게 여기지 않았던 유다인들에 의해 바오로는 예루살렘에서 체포되고 자신의 거점인 안티오키아로 돌아가지 못합니다. 회심 이후 이방인의 세계에 복음을 선포하는 것을 자신의 사명으로 여겼던 바오로 사도는 세 번째 선교 여행을 끝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게 됩니다. 김지항2017.06.28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2) 세례자 요한의 설교 ① (3,1-6)](//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0386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2) 세례자 요한의 설교 ① (3,1-6) 죄의 용서 위한 회개의 선포, 광야에 울리다 시간이 흘렀습니다. 1장과 2장에서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탄생 예고와 탄생 그리고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에 관해 기록한 루카는 3장에서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요한 세례자가 광야에서 설교하는 새로운 무대로 옮겨갑니다. 세례자 요한의 출생 예고 때 그리고 예수님의 탄생 때, 그 역사성을 이야기하고자 시대적 배경을 언급한(1,5; 2,1-2 참조) 루카는 요한 세례자의 설교라는 새로운 사건을 소개하면서 다시 한 번 시대적 배경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시작합니다.“티베리우스 황제의 치세 제십오 년, 본시오 빌라도가 유다 총독으로, 헤로데가 갈릴래아의 영주로, 그의 동생 필리포스가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의 영주로, 리사니아스가 아빌레네의 영주로 있을 때, 또 한나스와 카야파가 대사제로 있을 때,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3,1-2)여러 사람의 이름이 나옵니다. 이들이 어떤 인물이고 또 이때가 어느 때인지는 잠시 후에 좀더 구체적으로 알아보기로 하고, 여기서는 마지막 문장 “하느님의 말씀이 광야에 있는 즈카르야의 아들 요한에게 내렸다”는 대목을 먼저 살펴봅니다. 루카는 1장 마지막에 요한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을 간략히 언급하면서 “그는 이스라엘 백성 앞에 나타날 때까지 광야에서 살았다”(1,80)고 전합니다. 그런데 세월이 흘렀고, 광야에서 살던 요한에게 이제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이 ~에게 내렸다’는 표현은 구약성경에서 예언자들이 소명을 받을 때 사용되곤 했습니다.(예레 1,2; 호세1,1; 요엘 1,1; 요나 1,1; 즈카 1,1) 이를 통해 루카는 요한 세례자 또한 예언자임을 드러내고자 했겠지요. 실제로, 구약의 예언자들처럼 요한 세례자 또한 회개를 선포합니다. 그러나 요한은 단지 회개를 선포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그는 세례를 베풉니다.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입니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요한은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닙니다.(3,3) 루카는 요한 세례자의 이런 활동이 구약의 예언자 이사야가 한 예언이 그대로 이뤄지기 위한 것이라며 이사야 예언서의 대목을 인용합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이의 소리. 너희는 주님의 길을 마련하여라. 그분의 길을 곧게 내어라. 골짜기는 모두 메워지고 산과 언덕은 모두 낮아져라. 굽은 데는 곧아지고 거친 길은 평탄하게 되어라. 그리하여 모든 사람이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3,4-6)원래 이 대목은 기원전 6세기 바빌론에 끌려갔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리라는 희망을 선포하는 예언입니다.(이사 40,3-5 참조) 마지막 부분은 ‘모든 사람이 주님의 영광을 보리라’는 내용인데, 루카는 이를 “하느님의 구원을 보리라”로 바꾸어놓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루카는 요한 세례자를 ‘모든 사람이 보게 될 하느님의 구원’을 준비하는 인물로 소개합니다. 어조를 볼 때 그 구원이 가까이 왔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하는 요한 세례자의 외침은 더욱 힘 있어 보입니다. 요한의 설교와 사람들의 반응에 대해서는 다음 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생각해보기광야 : 요한 세례자는 광야에서 하느님 말씀을 듣고 요르단강 일대에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합니다. 성경에서뿐 아니라 교회 역사를 보더라도 광야는 하느님을 만나기에 좋은 곳이라고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황량한 광야는 생존마저 위협하는 곳입니다. 텅 빈 광야에서는 살기 위해서라도 하느님을 찾을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광야에 있는 요한에게 하느님의 말씀이 내렸다는 것은 우리 또한 하느님 말씀을 들으려면 광야로 가야 함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광야에 갈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의 유다 광야나 이집트의 황량한 사막을 찾아 떠나야 할까요?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습니다. 그렇지만 다른 노력이 필요합니다. 하느님을 만나기 위해 그분 말씀을 듣기 위해 우리 마음에 광야를 만드는 일입니다. 하루에 단 10분이라도, 나의 계획, 목표, 생각을 모두 접어두고 마음을 비워보는 것은 어떨까요? 비우고 내려놓을 때 그분 목소리가, 그분 말씀이 들리기 시작할 것입니다. 알아둡시다 루카복음 3장 첫머리에 나오는 인물들은 누구이고 또 이때는 어느 때일까요? 티베리우스 황제 치세 15년은 시리아식으로 계산한 연대라고 합니다. 오늘날로 따지면 기원후 27년 혹은 28년쯤입니다. 티베리우스는 로마 제국의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의 양자로, 아우구스투스의 뒤를 이어 기원후 14~37년까지 제국을 통치한 2대 황제였습니다. 그는 황제가 된 후에 로마 제국을 황제의 직할 통치 지역과 대리인이나 총독을 통해 통치하는 원로원 통치 지역으로 나눴습니다. 헤로데는 헤로데 대왕의 아들인 헤로데 안티파스를 가리킵니다. 예수님 탄생 당시에 유다와 갈릴래아를 포함해 이스라엘 전역(팔레스티나)을 통치하던 헤로데 대왕이 기원전 4년에 죽자 그의 유언에 따라 세 아들이 아버지 나라를 나눠 차지했는데 그중 한 명입니다. 장남 아르켈라우스는 유다(좁은 의미)와 사마리아 지역을 통치했습니다. 그러나 그의 폭정이 심해지면서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로마에 청원했고, 황제 아우구스투스는 기원후 6년 그를 쫓아냈습니다. 대신에 총독을 보내 통치하게 했습니다. 그 총독 가운데 하나가 위 본문에 나오는 본시오 빌라도로, 그는 기원후 26~36년 유다와 사마리아 지역을 다스렸습니다. 예수님의 죽음도 빌라도 총독 때의 일이지요. 둘째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페래아를 맡아 다스렸습니다. 베로이아라고도 하는 페래아는 요르단강 동쪽 사해 북쪽 지역입니다. 헤로데 안티파스는 동생의 아내 헤로디아를 차지하고 요한 세례자를 처형한 장본인이기도 합니다. 그는 기원전 4년에서 기원후 39년까지 통치했습니다. 헤로데의 이복동생 필리포스는 갈릴래아 호수 북부와 동부 지역인 이투래아와 트라코니티스 지방을 기원후 34년까지 다스렸습니다. 그는 로마 황제 카이사르에게 충성하고자 자기 영토에 황제의 이름을 딴 도시를 세웠는데, 카이사리아 필리피가 그 도시입니다.(마태 16,13) 리사니아스는 잘 알려지지 않은 인물로, 그가 다스린 아빌레네는 이투레아와 트라코니티스 사이에 있는 지역입니다.<지도 참조> 루카는 대사제도 2명 언급하는데, 한나스는 기원후 6~15년 대사제였고, 카야파는 기원후 18~36년까지 대사제를 지냈습니다. 따라서 루카가 위에서 언급한 요한 세례자의 활동 시기에는 카야파가 대사제였고, 한나스는 말하자면 은퇴 대사제였습니다. 하지만 이후에도 계속해서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했기에 루카는 카야파뿐 아니라 한나스까지 언급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백영민2017.05.02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3) 초세기 ② - 신약 시대의 영성 생활](//cpbc.co.kr/CMS/newspaper/2016/12/rc/663306_1.1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3) 초세기 ② - 신약 시대의 영성 생활영성 생활 몸소 실천하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복음서와 사도들의 편지가 포함된 신약 성경은 우리에게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의 뿌리를 알려 줍니다. 물론 신약 성경은 예수님 시대의 정서와 언어로 그리스도인이 걸어야 할 영적 여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공생활 동안 보여 주신 행동과 가르치신 내용을 통해서, 그리고 사도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신약 성경 시대의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을 추적해 볼 수 있습니다. 제라르 다비드 작 ‘예수 세례’, 16세기 초, 벨기에, 브뤼헤 그로닝헤 미술관. 회개의 세례“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 구약 시대의 마지막 예언자이자 신약 시대를 여는 요한 세례자는 유다 광야에서 살면서 “요르단 부근의 모든 지방을 다니며, 죄의 용서를 위한 회개의 세례를 선포”(루카 3,3)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온 유다 지방 사람들과 예루살렘 주민들이…자기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 강에서 그에게 세례를”(마르 1,5) 받았습니다.‘공관(共觀) 복음서’가 전하는 요한 세례자의 메시지는 ‘회개’였습니다. 가까이 다가오는 하느님 나라에 참여하기 위해서 사람들은 우선적으로 세상의 유혹과 우상에게서 눈을 돌려 하느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회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 권고를 접한 유다 백성은 자신을 성찰하고 죄를 고백하며 요한에게 세례를 받았습니다.사실 그리스도인이 영성 생활을 시작하는 시점은 세례성사를 준비하면서부터입니다. 즉, 그리스도인은 세례성사에 참여하는 첫 회심을 통해서 영적 여정을 시작합니다. 여기서 영세자는 그리스도인으로 새로 태어나기 위하여 세례성사 예식에서 마귀를 끊어 버리고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믿는다고 고백해야만 합니다. 결국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은 죄를 고백하며 자신을 정화하는 단계에서부터 출발합니다.거룩함에로의 부르심그런데 그리스도인은 먼저 자신이 걷는 영적 여정의 마지막 단계를 파악해야 합니다. 만약 도착점을 잘 알지 못하면, 영적 여정 내내 엉뚱한 곳을 헤매다가 잘못된 곳에 도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께서 산에 오르시어 사람들을 가르치신 일화를 소개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에서 구약 시대에 하느님께서 모세를 통해 하신 말씀을 떠올리는 가르침을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늘의 너희 아버지께서 완전하신 것처럼 너희도 완전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마태 5,48). 하느님께서 거룩하시고 완전하시니 우리도 거룩하고 완전하게 되어야 한다는 권고는 열두 제자들이나 산 위에 모인 사람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 백성 모든 구성원에게 해당합니다.모든 그리스도인은 거룩해지도록 하느님께 불렸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이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입니다. 따라서 영적 여정의 마지막 단계는 그리스도인이 완덕을 완성하여 하느님과 하나 되는 일치의 순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점을 공생활 초기부터 모든 사람에게 강조하고 싶으셨을 것입니다.애덕 실천회개와 함께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은 하느님과 일치하는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기 위해서 영적 발전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지만 발전 단계는 단순하지 않고, 주님의 은총 속에서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 발전을 위해서 먼저 ‘애덕’ 실천을 강조하셨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에게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인지 질문을 받았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 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마태 22,37~39; 마르 12,29~31 참조; 루카 10,27). 예수님께서는 사랑의 이중 계명이야말로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을 이어받은 가장 큰 계명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인에게 조금 더 구체적인 덕행 실천 방법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는 먼저 갈라티아인들에게 육의 욕망을 채우려 하지 말고 성령의 인도에 따라 살아가라고 권고했습니다(갈라 5,16 참조). 그리고 그는 로마인들에게도 욕망을 채우려고 육신을 돌보는 어둠의 행실을 벗어 버리고 빛의 갑옷인 예수 그리스도를 입으라고 권고했습니다(로마 13,12.14 참조). 결국 바오로 사도의 권고는 육과 어둠의 행실(갈라 5,19~21 참조; 로마 13,13)인 나쁜 악습을 끊어 버리고 성령의 열매(갈라 5,22~23 참조)인 좋은 덕행을 증진하는 수덕 생활을 실천하라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사도 바오로도 영성 생활에서 마지막 단계는 애덕에로 수렴된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믿음과 희망과 사랑 이 세 가지는 계속됩니다. 그 가운데에서 으뜸은 사랑입니다”(1코린 13,13).요한 복음서는 예수님과 그리스도인 사이에 서로 머무는 것에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소개했습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요한 15,4).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르면 주님께서도 우리 안에 머무르시면서 성령의 열매를 맺게 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다만 우리가 주님 안에 머무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요한 15,10).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계명을 지킬 때, 주님을 사랑할 수 있고 영성 생활도 발전시킬 수 있습니다.기도 생활그러나 정말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늘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고 나신 후에 기도하셨고(루카 3,21), 카파르나움에서 하루 일정을 마치시고 기도하셨으며(마르 1,35), 오천 명가량의 군중을 돌려보내신 후에 따로 산에 가서 기도하셨고(마태 14,23; 마르 6,46), 나병 환자를 고치신 후에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습니다(루카 5,16).또한 예수님께서는 중요한 일을 앞두고도 늘 기도하셨습니다. 즉, 열두 사도를 뽑으시기 전에 산에서 기도하셨고(루카 6,12), 제자들에게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시기 전에 기도하셨으며(루카 11,1), 마지막 수난의 길에 앞서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셨습니다(마태 26,36; 마르 14,32; 루카 22,41). 예수님께서 몸소 실천하신 기도 생활은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의 중심입니다.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생활에서 힘을 얻어 회개의 삶을 시작으로 수덕 생활을 실천하고, 주님 은총 속에 하느님과 일치하는 영성 생활을 추구해야 합니다. 결국 신약 성경의 가르침은 오늘날 영성 신학이 가르치는 영성 생활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cpbc2016.12.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