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도시] (66) 다니엘 예언자가 활동했던 ‘수사’](//cpbc.co.kr/CMS/newspaper/2015/10/rc/60026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66) 다니엘 예언자가 활동했던 ‘수사’에스테르 왕비의 남다른 민족애 서려 엘람족 사절단이 줄지어 페르시아 왕에게 선물을 전하고 있는 모습. 페르세폴리스, 아파나다 궁 기단의 부조 작품.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수사는 옛 페르시아의 수도이며 선사시대에서 페르시아 제국에 이르기까지 이란 문명의 정치ㆍ경제적 중심이 됐던 고대도시다. 수사는 5000여 년 이상의 역사를 지니고 있고 기원전 4000년경부터 엘람 민족이 거주해 신석기 문화를 이룩했다. 수사는 기원전 7세기에는 북부 아시리아의 침공을 받았고, 기원전 331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에 의해 파괴됐다. 4세기 때는 수사의 그리스도교인들이 탄압을 받으며 수사 성이 파괴됐고, 13세기경에는 몽골 침략으로 완전히 폐허가 됐다. 그 후 점차 쇠퇴해 오늘날에는 중소도시 규모의 형태를 지니고 있다. 수사 성 궁전터는 19세기 말 프랑스 고고학자에 의해 발굴됐는데 역사 자료에 의하면 수사 궁을 건축할 때 외국에서 많은 재물과 보화 등을 가져왔고 벽 장식품들은 이오니아, 상아는 에티오피아에서, 돌기둥은 엘람에서 가져왔다고 한다. 그리고 각국에서 목수 석수 등 기능공들이 징발돼 왔다고 하니 수사 궁의 사치와 화려함이 얼마나 극에 달했는지 상상할 수 있다. 수사는 바빌론으로 유배된 이스라엘 포로들이 살던 곳 중 하나다. 그래서 유배지였던 이곳은 다니엘 예언자와 느헤미야 예언자의 무대였고 에스테르 왕비의 민족에 대한 사랑을 엿볼 수 있는 장소다. 다니엘은 어느 날 수사 성의 종말에 대한 환시를 본다(다니 8,2-3). 다니엘 예언자는 예언 활동을 통해 암울한 시기에 이스라엘 백성이 믿음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며 장차 누리게 될 영화로운 나라에 대한 소망을 갖게 하려고 힘썼다. 느헤미야는 수사 궁에서 예루살렘이 파괴되고 성문이 불탔다는 소식을 듣고 여러 날을 슬퍼하고 단식하며 하늘의 하느님 앞에서 기도했다. “내 형제 가운데 하나인 하나니가 몇 사람과 함께 유다에서 왔다. 나는 포로살이를 모면하고 살아남은 유다인들과 예루살렘에 대하여 물어보았다. 그러자 그들이 나에게 대답하였다. ‘포로살이를 모면하고 그 지방에 남은 이들은 큰 불행과 수치 속에 살고 있습니다. 예루살렘 성벽은 무너지고 성문들은 불에 탔습니다’”(느헤 1,2-3). 성경에서 페르시아의 수도인 수사가 무대가 된 대표적 인물은 역시 에스테르다. 구약의 에스테르기는 크세르크세스가 인도에서 에티오피아까지 이르는 127개 주를 다스리고 있었던 때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수사에는 모르도카이라는 유다인이 살고 있었는데 그에게는 용모가 빼어난 에스테르라는 양녀가 있었다. 나중에 에스테르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 크세르크세스 1세의 왕후가 되었다. 그녀는 목숨을 걸고 재상인 하만의 계략에서 동족인 유다인들을 구했다(에스 1─7장 참조). 이 사건에서부터 ‘부림절’이 유래되었는데 사실 부림절은 성경에는 기록돼 있지 않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사는 곳이라면 어디서든지 지키는 민족 축일이다. ‘부림’이란 주사위를 의미하는 페르시아어 ‘푸르’에서 나온 것으로 에스테르서에 나오는 하만이란 인물이 유다인들을 멸망시키려고 계획할 때 그의 부하들이 주사위를 던져 날을 정한 데서 유래한 것이다. “크세르크세스 임금 제십이년 첫째 달인 니산 달에 하만이 자기 앞에서 푸르 곧 주사위를 각 날과 각 달에 따라 던지게 하니, 열두째 달인 아다르 달이 나왔다”(에스 3,7).수사는 어느 도시 못지않게 오랜 세기를 걸쳐 영욕의 역사가 이뤄졌던 현장이지만 현재는 유적들의 작은 흔적만 남아 있어 세월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10.27

부활절 풍습과 ...전례가 궁금해요! 각양각색으로 화려하게 장식된 부활 달걀. 부활이란 무엇인가요.‘부활’이란 ‘다시 태어나는 것’을 말해요. 하지만 단순히 죽었던 사람이 이전의 몸으로 다시 살아나는 것을 이야기하는 건 아니랍니다. 부활은 ‘영원히 죽지 않는 새로운 존재로 태어나는 것’을 의미해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삶으로 다시 태어나는 것이죠. 예수님이 부활하셨다는 증거가 있나요.예루살렘에서 있었던 부활 사건은 많은 이들이 개인적으로 또는 집단으로 분명하게 증언하고 있답니다. 예수님의 부활을 과학적으로 입증할 수 없지만, 당시 부활을 직접 본 이들의 증언에서, 또한 사도들의 순교에서 드러나고 있답니다.예수님 부활을 성경에서 찾아보아요.마르코복음 16장 1-8절 이른 아침 마리아 막달레나와 두 여인은 예수님의 시신에 발라드릴 향료를 가지고 무덤에 찾아가요. 그때 한 젊은이(천사)가 나타나 빈 무덤을 보이며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전해요. 세 여인은 겁에 질려 무덤에서 달아나요.● 예수님은 금요일에 돌아가시고 안식일 다음 날인 일요일에 부활하셨어요. 말씀대로 죽으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거예요. 우리는 일요일을 ‘주님의 날’, ‘주일’로 거룩하게 지낸답니다.루카복음 24장 13-35절예수님께서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 나타나셨어요. 예수님은 두 제자와 함께 길을 걸으며 성경 말씀을 이야기했지만 제자들은 예수님인 줄 알지 못했어요. 식탁에 앉아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나눠주자 그제야 예수님을 알아보게 됐어요. ●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어요. 요한복음 20장 24-29절열두 제자 중 한 사람인 토마스가 예수님의 모습을 직접 보지 않고는 부활을 믿지 못하겠다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나타나셨어요.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말씀하셨어요.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 ● 우리는 미사 때마다 ‘사도신경’을 통해 부활에 대한 믿음을 고백해요. 이렇게 말이죠. “육신의 부활을 믿으며 영원한 삶을 믿나이다.”나는 부활을 믿고 있나요? 그렇다면 신앙인으로서 어떤 삶을 살아야 할까요?부활은 우리 신앙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어요. 예수님의 부활로부터 우리의 믿음이 시작됐기 때문이죠. 부활을 믿기 때문에 우리는 육신의 부활과 영원한 삶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희망으로 살아갈 수 있답니다.부활 달걀은 왜 만드나요?달걀은 병아리가 태어날 생명이 깃들어 있는 것으로 생명과 풍요를 상징해요. 예수님께서 새로운 생명으로 나타나신 돌무덤과도 닮았죠. 중세시대 때는 사순절 중에 달걀 먹는 것을 금지했기 때문에 부활 때 달걀을 주고받는 관습이 생겼답니다. 부활초 의미가 궁금해요!부활초는 세상의 빛이 되신 그리스도의 부활을 나타냅니다. 초는 일반적으로 밀랍으로 만들어지는데요. 과거 교부들은 벌이 동정성을 가지고 있다고 봤기 때문에 동정 마리아에 비유하고, 밀랍으로 만들어진 초는 예수님을 상징한다고 생각했어요.화려하게 꾸며진 부활초를 보면 십자가 위, 아래에 그리스문자의 첫 글자인 알파(A), 오메가(Ω)와 함께 그해 연도를 알리는 숫자가 새겨져 있어요. 올해는 2017년이니 2017이라고 새겨져 있겠지요. 이것은 모든 시간을 예수님이 다스리고 있음을 뜻한답니다. 십자가 끝에 꽂혀있는 다섯 개의 향은 예수님이 다섯 상처로 이 세상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알려주고 있어요.부활 풍습, 또 어떤 것들이 있나요?유럽에서는 부활 햄, 빵, 과자 등을 마련해 사제의 축복을 받아요. 축복된 빵은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일치와 사랑을 드러내는가 하면 성체를 모실 수 없는 비신자들에게도 나눠줄 수 있답니다. 돼지는 유럽에서 행운과 성공을 의미하기 때문에 축제의 기쁨과 행복을 나누는 음식으로 준비하고 있어요.부활 전례는 평소와 어떻게 다를까요?우리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다리며 성대한 ‘부활 대축일 성야 미사’를 봉헌해요. 부활 성야는 성토요일 밤에 다시 살아나신 그리스도의 신비를 경축하는 밤을 가리켜요. 이날 예식은 반드시 밤사이에 경축해야 한답니다.1. 빛의 예식 교회의 불을 다 끈 다음 사제는 성당 바깥에서 화로를 준비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의 상징인 새 불을 축복해요. 사제가 초에 십자가를 긋고 그 해의 연수를 쓴 다음 높이 들고 앞장서면 모든 이가 함께 걸어요. 사제가 성당 밖, 입구, 제대 앞, 세 곳에서 “그리스도 우리의 빛”이라고 노래하고 신자들은 “하느님 감사합니다”고 응답해요. 신자들은 각자 부활초를 밝히고 부활 찬송을 함께해요.2. 말씀 전례구약성서 7개, 신약성서 2개를 봉독해요. 탈출기 14장은 절대로 생략할 수 없어요. 독서는 창조, 아브라함의 희생 제사, 홍해 바다를 건넘, 새 예루살렘, 모든 이를 위한 구원, 지혜의 샘, 새 마음과 새 영을 다뤄요. 예식은 독서, 대영광송, 본기도, 바오로 사도의 서간, 알렐루야, 복음, 강론으로 이어져요.3. 세례성사 예식그리스도의 자녀로 새로 태어나는 세례는 곧 부활을 의미해요. 세례 예식이 끝나면 모든 이는 촛불을 켜고 세례성사 때 다짐한 신앙 약속을 갱신해요. 그러고 나서 사제는 성수를 신자들에게 뿌려줘요.4. 성찬 전례모든 예식이 끝나면 예물 준비부터 보통 때와 같은 성찬 전례가 거행돼요. 나머지는 같지만, 파견 때 알렐루야를 두 번 반복해요. 왜 부활하신 예수님 손과 발에 못 자국이 남아 있나요?부활한 예수님의 몸은 현세에만 속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 아버지의 신성한 영역에도 속하고 있지요. 부활한 몸은 시공을 초월한 모습을 상징하고요. 예수님 손과 발의 못 자국은 부활하신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히신 바로 그 예수님임을 확인해 주는 표징입니다.유은재 기자 여러분에게 1년 중 가장 기쁜 날은 언제인가요? 선물을 잔뜩 받을 수 있는 생일? 공부에서 해방되는 방학식 날? 아마 모두 각자 큰 기쁨을 느끼는 날을 하나씩 떠올릴 거예요. 물론 그리스도인이라면 ‘예수 부활 대축일’ 역시 손꼽아 기다리는 기쁜 날이겠죠! 주님 부활을 기다리며 주일학교에서, 집에서 예쁜 부활 달걀을 만들며 기쁜 부활을 맞기 위해 많은 준비를 하고 있을 텐데요. 오늘은 부활에 대해 알아보아요.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평화신문2017.04.12
![[당신께 봉사함이 기쁨입니다] (13) 하상장애인복지관 봉사자 신원경(루갈다)씨](//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1063_1.0_titleImage_1.jpg)
[당신께 봉사함이 기쁨입니다] (13) 하상장애인복지관 봉사자 신원경(루갈다)씨시각장애인의 ‘손발’ 돼 20여 년 헌신 하상장애인복지관에서만 20여 년간 봉사자로 활동해온 신원경씨는 평일 점심때면 무료급식 배식에 설거지를 하느라 눈코 뜰 새가 없다. 신원경(루갈다, 60)씨는 시각장애인들의 ‘눈’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20여 년간 한결같이 서울 하상장애인복지관에서 이들의 눈이 돼 함께 걸었다. 때로는 시각장애인들의 ‘손발’이 돼 시장을 봐주고, 밀린 집 안 청소를 해주고, 밑반찬을 가져다주는 건 물론이고 설거지까지 해줬다. 모처럼 놀러 갈 때면, 1박 2일이건 3박 4일이건 가리지 않고 헌신적으로 봉사했다. 이러니 신뢰가 싹트지 않을 수 없다. 낯선 사람들과는 사귀거나 관계를 맺는 데 무척이나 힘들어하는 시각장애인들도 신원경씨라면 그냥 믿고 따랐다. 봉사도 대물림그러고 보면 봉사는 그에게 삶이었다. 자녀들도 봉사에 함께했고, 고3 때조차도 봉사를 열심히 하던 딸 이승연(베네딕타, 35)씨는 봉사를 하다가 사회복지사가 됐다. 딸의 직장도 하상장애인복지관이어서 모녀가 봉사자로 직원으로 함께하니 봉사자가 부족할 때면 엄마에게 도와달라고 SOS를 치는 일도 다반사다. 본당도 서울대교구 시각장애인 공동체인 사랑결준본당(주임 김용태 신부)으로 옮겨, 이제는 시각장애인들과 함께하는 게 일상이 됐다. 봉사를 하게 된 건 우연이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30대 중반 무렵, 우연히 이웃을 따라 하상장애인복지관에 갔다가 봉사자로 눌러앉게 됐다. “평소에도 봉사를 하고는 싶었는데, 장애인들에게 접근하기가 힘들었어요. 마음은 굴뚝 같은데, 장애인에 대해 잘 모르는 데다 다가가기도 쉽지 않았어요. 그런데 한번 가고, 두 번 가다 보니 보람도 느끼게 됐고 다른 데로는 못 가게 됐어요. 한번 발을 디디면 못 빠져나가는 게 장애인에 대한 봉사더라고요.”맨 처음엔 시각장애인들이 등산이나 볼링 같은 동아리 활동을 하는 걸 돕거나 안마나 침술 치료 무료봉사 안내 같은 간단한 봉사로 시작했다. 요즘은 휴대용 점자 전자책이 나오면서 무용지물이 됐지만, 한때 성경이나 성가, 동화책, 기도서 등을 점자책으로 만들기도 했고 점자 연판 작업까지도 함께했다. 하지만 최근에도 사랑결성당 주보나 매일미사 등을 점자로 번역, 점자 주보나 점자 매일미사 만드는 일을 거들거나 ‘소리도서’ 녹음테이프 복사 작업을 돕기도 한다. 이뿐 아니라 시각장애인들이 바깥나들이를 할 때면 안내 봉사자로 함께하기도 하고, 평일 점심때면 강남 일대 장애인들이 400여 명이나 찾는 장애인 무료급식소 배식이나 조리, 설거지 봉사에도 힘을 쏟는다.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최근엔 남편이 잇단 병고를 치르며 형편이 어려워져 장애인 바우처(voucher)로 활동하면서 용돈을 벌기도 하지만, 그는 “봉사를 할 때가 훨씬 마음이 편하다”고 고백한다. “돈 버는 재주는 없으니까, 여생도 힘닿는 데까지 최선을 다해 시각장애인들에게 봉사하며 살겠다”고 다짐하는 그의 미소가 싱그럽다. 글·사진=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17.05.09

신앙과 삶 나누며 더 좋은 세상 만드는 엄마들육아맘 모임 ‘홀리 웬즈데이’, 인터넷 만남이 정기 모임으로 공동 육아 위한 공동 주택 계획 1년 반 동안 ‘홀리 웬즈데이’ 모임을 통해 함께 성경을 읽고 신앙을 나누고 있는 엄마들. 왼쪽부터 박민경ㆍ김경희ㆍ박수현씨. 신정민씨는 최근 둘째 출산으로, 서화일씨는 남편을 따라 독일로 출국해 함께하지 못했다. 이지혜 기자 서울 용산구 이촌동의 한 아파트. 태어난 지 50일, 100일 된 아기들은 엄마 품에 안겨 있고, 2~4살 된 아이들은 장난감을 가지고 노는 상황에 엄마 다섯 명이 성경을 함께 읽고 묵주기도를 바친다. 기도하다가 수유를 하는 엄마도 있고, 아이가 보채면 안아주고 간식을 챙기는 엄마도 있다. 누구 하나 가만히 앉아 있지 못하고 앉았다가 일어섰다, 돌아다니기를 반복하는 정신 없는 상황에도 엄마들의 기도는 이어진다. 어린아이들을 품에 끼고 매주 수요일 함께 모여서 기도하고, 복음을 나누며 책을 읽는 엄마들이 있다. 모임 이름은 ‘홀리 웬즈데이’(Holy Wednes- day). 초등학교 교사인 김경희(베로니카, 36, 도곡동본당)씨만 육아휴직 중이고, 홍보 일을 했던 박민경(아이린, 34, 한강본당)씨와 기상청연구소 연구원이었던 박수현(에디타, 36, 일원동본당)씨, 무역회사에서 근무했던 신정민(체칠리아, 34, 포이동본당)씨와 방송작가인 서화일(글로리아, 40, 사당동본당)씨는 아이를 양육하면서 일을 그만뒀다. 홀리 웬즈데이 모임이 시작된 건 지난해 1월, 이들은 병원 분만실, 수술 도구에 기대지 않는 ‘자연주의 출산’ 인터넷 카페의 소모임을 통해 서로를 알게 됐다.“우리 같은 엄마들은 아기가 있다는 이유로 성서 모임도 못하고, 성당에서 블랙홀 같은 존재더라고요. 아기가 있어도 신앙 모임에 대한 목마름이 있었어요.”(박민경씨) 성경 통독을 위해 모인 엄마들은 복음 나눔을 통해 삶을 나누며 내적으로 교감하는 사이가 됐다. 자연주의 출산을 시작으로, 아이를 자연스럽게 양육하고 싶은 육아관도 통했다. 녹색평론과 인문학 서적을 읽으며 자연스럽게 아이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환경 이야기로 확장됐고, 사회 문제에도 관심을 두게 됐다.“엄마가 되고 보니, 사회에서 일어나는 많은 일이 내 아이와 관련된 일인 거예요. 방사능이나 탈핵 문제, 세월호 참사가 일상에 던지는 불안까지요. ‘엄마’라는 정체성을 통해 사고가 확장되고, 사회 문제가 그냥 지나칠 수 없는 해결해야 할 절박한 과제로 다가왔습니다.”(김경희씨)엄마들은 지난 4월 24일 작은 카페를 하나 빌렸다. 세월호 참사 2주기를 추모하는 마음으로, ‘꽃들에게 희망을’이라는 나눔 콘서트를 기획한 것. 엄마들은 세월호 유가족 5명과 가족 및 지인 60여 명을 초대해 우쿨렐레를 연주하며 위로의 성가를 선물했다. 그리고 엄마들은 각자가 가진 상처를 꺼내 놓으며 그 상처가 신앙 안에서 어떻게 치유됐는지를 나눴다. 세월호 유가족과 엄마들은 함께 울었다. 엄마들은 세월호 유가족들의 마음속에 하느님께서 필요한 치유 기적을 일으키시도록 기도했다. 콘서트 수익금 70만 원은 416가족협의회에 기부했다. 임신과 출산, 육아를 겪으며 아이들의 엄마가 된 이들은 콘서트를 통해 좋은 뜻을 지닌 이들이 함께 꿈꾸고, 연대하고, 행동할 때 아이들에게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 줄 수 있다는 확신을 얻었다. “이 모임을 하기 전에는 여성의 삶을 이분화해서 봤어요. 워킹맘으로 직장을 다니면서 경력을 이어가느냐, 아니면 직장을 그만두고 경력이 단절된 채 아이와 가정만 바라보는 엄마로 사느냐 이 두 가지 길만 있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엄마로서 사회에 보탬이 되는 삶을 살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저희는 휴직 중이 아니라 시민 활동가예요.”(박민경씨)박수현씨는 “일주일에 한 번 모여 성경 한 구절만 겨우 읽고 끝날 때도 있지만 이 왁자지껄한 분위기에서 살아갈 힘을 얻는다”고 털어놨다.마을 공동체와 공동 육아, 사회적 협동조합에도 관심 있는 이들은 다섯 가정이 공동 육아로 아이를 키울 공동 주택을 지어 함께 살 계획이다.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평화신문2016.09.21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46) 11세기 ⑥ - 시토회 영성](//cpbc.co.kr/CMS/newspaper/2017/10/rc/698805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46) 11세기 ⑥ - 시토회 영성청빈 실천하며 기도하며 일하는 ‘백의(白衣)의 수도자’ 한 수도원에 모여 살았기 때문에 공동체를 이루는 수도 생활을 실천한다고 외부인들이 판단할 수도 있었겠으나, 한 수도원이면서도 각자 독방에서 은수 생활을 실천함으로써 카르투지오회는 수도회를 수적으로나 외형적으로 성장시키는 데 한계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동시대에 은수 생활을 지향했던 일부 수도자들은 은수 생활과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에서 강조했던 공동체를 조화롭게 결합시킨 새로운 수도 생활을 제시했습니다. 몰렘의 로베르투스(오른쪽)가 클레르보의 성베르나르두스를 시토회에 입회시키는 모습을 그린 성화. 청빈한 은수 생활을 추구한 로베르투스세 번째 새로운 수도회는 몰렘의 로베르투스(Robertus Molesmensis, 1028쯤~1111)가 1098년에 설립한 시토회(Ordo Cisterciensis)였습니다. 샹파뉴(Champagne)의 귀족 가문 출신인 로베르투스는 15세쯤 트루아(Troyes) 근처에 위치한 베네딕도회 무티에 라 셀(Montier-la-Celle) 수도원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로베르투스는 수련기를 마치자마자 그곳 수도원 원장이 되었으며, 클뤼니 개혁 정신으로 수도원을 이끌어 가려고 노력했습니다. 1070년 욘(Yonne)에 베네딕도회 토네르의 성 미카엘(Saint-Michel de Tonnerre) 수도원 원장으로 추대되어서 그곳으로 이주했던 로베르투스는 수도자들이 다툼을 일삼고 순명하지 않으면서 수도 생활을 개혁할 의지가 없는 모습을 발견하자 크게 실망하고 이전 수도원으로 돌아갔습니다.1072년쯤 토네르의 성 미카엘 수도원 근처 콜란(Collan)에서 은수 생활을 하던 은수자들은 로베르투스에게 함께 은수 생활을 실천하자고 제안했으며,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PP. VII, 재임 1073~1085) 교황에게 로베르투스를 은수자들의 장상이 될 수 있도록 청원했습니다. 결국 은수자들의 청원을 수락한 그레고리우스 7세 교황은 1074년쯤 로베르투스를 은수자들의 지도자로 임명했습니다. 따라서 1075년 로베르투스는 은수자들과 함께 몰렘(Molesme)에 작은 공동체를 설립하고, 클뤼니 수도회와 관련 없으며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을 충실하게 따르는 수도원을 시작했습니다. 로베르투스의 덕망과 명성 때문에 많은 지원자들이 도움을 주었던 몰렘의 수도원은 빠르게 성장하면서 문제도 발생했습니다. 많은 기부금으로 부유해진 수도원에서 수도자들이 본분을 잊고 나태하게 생활했으며, 이에 대한 해결책으로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을 더욱 철저하게 지키자는 부류의 수도자들과 극단적인 청빈 생활 속에서 엄격한 은수 생활을 실천하자는 부류의 수도자들이 대립했습니다.1098년 초 로베르투스는 알베리쿠스(Albericus Cassinensis, ?~1109)와 스테파누스 하르딩(Stephanus Harding, 1059쯤~1134) 및 20여 명의 수도자와 함께 몰렘의 수도원을 떠나 본(Beaune)의 자작(子爵)인 르노(Renaud)가 마련해 준 시토(Cteaux) 계곡에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동시에 청빈한 가운데 은수 생활을 실천하는 수도원을 설립했습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몰렘의 수도원은 로베르투스를 무단이탈로 규정하고 우르바누스 2세(Urbanus PP. II, 재임 1088~1099) 교황에게 중재를 요청했으며, 우르바누스 2세 교황은 교황 사절이자 리옹의 대주교였던 위그(Hugues de Die, 1040~1106)를 통해 로베르투스에게 몰렘의 수도원으로 귀원하라고 명령했습니다. 로베르투스는 몰렘의 수도원에서 죽을 때까지 수도자들을 지도하며 수도원 안정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베네딕투스 수도 규칙에 따라 단순한 수도 생활을 실천한 시토회1099년 로베르투스가 떠난 시토 수도원은 알베리쿠스를 제2대 수도원장으로 선출했습니다. 알베리쿠스는 로베르투스가 제시했던 수도원의 이상적인 모습을 현실 안에서 실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알베리쿠스는 수도자들에게 더 이상 베네딕도회의 검정색 수도복을 착용하지 말고, 염색하지 않은 천으로 만든 흰색 수도복을 입게 했습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후 시토회 수도자들은 ‘백의(白衣)의 수도자’라고 불렸습니다. 알베리쿠스는 수도 생활을 위해서 일하며 기도하라는 베네딕도회 정신을 따랐으며, 자선과 자급자족의 이상적인 삶을 추구했습니다. 알베리쿠스 원장 재임 시절에 교황 파스칼리스 2세(Paschalis PP. II, 재임 1099~1118)는 시토 수도원 설립을 승인하고, 교황권 아래에 두었습니다.1109년 제3대 수도원장으로 잉글랜드 귀족 가문 출신인 스테파누스 하르딩이 선출되었습니다. 하르딩은 수도 성소의 부족과 재정 궁핍으로 재임 초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하지만 1112년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Bernardus Claraevallensis, 1090~1153)가 30명의 형제와 함께 시토회에 합류하면서부터 여러 곳에 수도원 공동체가 설립되었고, 수도회의 상황도 개선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르딩은 효율적으로 시토회를 운영하기 위하여 일정한 숫자로 구성된 수도원 공동체와 수도회 총원장의 정기적인 방문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특히 하르딩이 작업을 시작하고 수도회가 작성하여 1119년에 칼리스투스 2세 교황(Callistus PP. II, 재임 1119~1124)이 공식적으로 승인한 수도회 회칙인 「사랑의 헌장(Carta Caritatis)」은 시토회가 추구했던 수도 생활에 대한 이상적인 모습을 알려주었습니다.시토회는 수도 생활의 단순성을 강조했습니다. 클뤼니 수도회가 미사 전례와 교회 예술을 화려하게 발전시킨 것에 반하여, 시토회는 전례 거행을 극단적으로 단순화시켰으며 성당 장식도 아주 수수하게 단순화시켰습니다. 특히 시토회는 문맹자들을 위해 성경 말씀이나 교리 내용을 담아 제작한 성화상들도 단순성을 위하여 최소화하거나 제거할 정도였습니다. 또한 시토회는 과도하게 기부금을 받지 않고, 수도자들 스스로 육체노동을 통해 최소한의 비용으로 생계를 자급자족하고자 했습니다.시토회는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충실히 따르고자 청빈을 실천하면서 농사와 관련된 육체노동을 실천하고 거룩한 독서를 통한 기도 생활을 실천하기 위하여 가능한 도시에서 멀리 떨어진 외딴곳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은수 생활 방식을 포함한 공동체 수도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특히 시토회는 애덕(愛德)을 강조했습니다. 수도자들은 수도원 안에서 수도 생활을 통하여 사랑으로 일치해야만 했습니다. 따라서 수도자들은 다양한 사랑의 발전 단계를 고찰하면서 하느님을 향한 일치를 염원했습니다.시토회는 설립 35년 만에 수도원이 80개소로 늘어났으며, 설립 55년 만에 343개 수도원으로 확대됐습니다. 단기간에 급속한 외적인 팽창으로 인해 시토회는 클뤼니 수도회와 비슷하게 풍요로워지고 비대해지는 문제점이 발생했습니다. 하지만 시토회는 수도자들에게 수도회가 추구하는 이상적인 수도 생활을 끊임없이 교육함으로써 당면한 문제를 극복하며 오늘날까지 수도 생활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백영민2017.10.18
성경 이야기만 나오면 위축된 당신, 이번 기회에 시작하세요성서 주간(22~28일)을 맞아 떠나는 성경의 세계 천주교 신자와 개신교 신자를 비교할 때 가장 많이 거론되는 말 중에 하나가 ‘성경’이다. 개신교 신자는 성경을 끼고 살며 ‘어느 복음 몇 장 몇 절!’이 술술 나오는데, 천주교 신자는 성경 앞에선 한없이 작아지곤 한다는 것이다. 성경을 펼쳐 본 일이 까마득하지 않은지 생각해 볼 일이다. 당장 성경을 읽기가 부담스럽다면, 성경에 맛을 들일 수 있도록 도와주는 성경 입문서부터 시작하는 것도 좋겠다. 성서 주간을 맞아 성경의 세계로 안내해 주는 길잡이 책들을 소개한다. 성경 입문서「한 권으로 정리하는 성경 Top 10 」(메리 엘리사벳 스페리 지음/생활성서)은 성경 속 중요 인물과 장소, 다양한 사건에 관한 내용을 항목별로 순위를 매겨 알기 쉽도록 정리했다. 항목별로 10위부터 1위까지 차례로 소개하고 있어 다음 순위가 궁금해서라도 책장을 넘기게 된다. 성경의 주요 내용을 알고 성경에 관한 지식을 쌓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바이블 가이드-성경입문」(마이크 보몽 지음/생활성서)은 성경 내용의 전체적 흐름을 파악할 수 있게 해주면서도 성경 각 권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도 상세하게 짚어준다. 사진과 연대표, 지도, 그림이 풍부하게 실려 있고, 성경 속 동물과 식물, 다양한 상징에 관한 해설도 곁들였다. 「안셀름 그륀의 성경이야기」(분도출판사)는 안셀름 그륀(독일 성 베네딕도회) 신부가 성경 읽기를 두려워하거나, 편견을 가지고 성경을 읽어 말씀의 참뜻을 잘못 이해하는 신자들을 안타깝게 여겨 쓴 책이다. 구약 창세기부터 신약 요한 묵시록까지 성경 전반을 다루며 성경 각 권의 핵심 내용과 말씀이 뜻하는 바를 명확하게 설명했다.성경 말씀을 쉽고도 재미있게 풀어주는 장재봉(부산교구) 신부의 성경 이야기 시리즈도 추천한다. 「성경에서 건진 이야기」 「성경의 숨은 이야기」 「성경 속 재미있는 이야기」(성서와함께)는 장 신부가 성경을 해설하면서 사목 현장에서 겪은 다양한 일과 개인적 체험을 함께 버무려 내 성경에 대한 부담감을 낮춰준다.성경 지도성경을 읽다 보면 성경 속 지역이 어디인지 궁금해져 성경 지도를 찾게 된다. 「성경역사지도」(엔리코 갈비아티ㆍ필리포 세라피니 지음/분도출판사)는 성경에 나온 지역을 설명해주는 지도책이자 성경시대 사람들 역사와 문명, 생활상을 알려주는 문화서다. 문명 기원인 메소포타미아 약사를 시작으로 고대 이집트, 아브라함의 첫 번째 이주, 열두 지파에게 분배된 약속의 땅, 페르시아 제국, 헤로데 대왕의 통치, 예수 일대기, 유다 전쟁 등을 거쳐 헬레니즘ㆍ로마 시대까지 다루고 있다. 성경 역사와 그 배경을 아우르며 지도와 사진, 그림, 도표로 성경을 입체적으로 재현했다. 「성경지도」(성서와함께)는 성경 인물들이 살던 시간적, 공간적 배경을 생생하고 구체적으로 보여준다. 현대 이스라엘 지도를 시작으로 한국과 이스라엘의 위치와 영역, 고대 근동의 자연, 팔레스티나 지형도, 이집트ㆍ이란ㆍ이라크, 예루살렘, 유적지 등이 두루 망라돼 있다. 창세기부터 요한 묵시록까지 고대 이스라엘과 근동ㆍ중동, 현대 중동을 넘나든다. 지도와 사진을 한 줄기로 엮으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원대한 구원 계획이 한눈에 들어온다.성경 속 인물들이 궁금하다면성경에 나오는 인물만 제대로 이해해도 성경을 다 이해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교황청 문화평의회 의장 잔프랑코 라바시 추기경이 펴낸 「성경의 인물들」(성바오로)은 성경 속 인물들과 친숙해지도록 이끄는 성경 인물 열전이다. 주일과 대축일의 말씀 전례 때 등장하는 인물을 전례력에 따라 대림시기부터 연중시기에 이르기까지 성경 인물 200여 명을 소개하고 있다. 성경 인물과 관련된 성화도 함께 실었다. 자신의 세례명과 관련된 성경의 인물을 알아보려는 이들과 세례명을 찾는 예비 신자들이 눈여겨볼 내용이 가득하다. 파리 예수회대학 교수를 지낸 폴 보샹 신부가 지은 「성경 인물 50」(생활성서)은 성경에 등장하는 50명의 인물상을 통해 성경 전체의 흐름을 한눈에 보게 해준다. 각 인물의 이야기를 간략하게 소개하면서도 한 시대에서 다른 시대로 연결되는 그 인물들을 통해 이루신 하느님의 구원 역사, 마침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구원의 약속을 되새기게 한다. 아이들을 위한 안내서어렸을 때부터 성경과 친숙해지는 것은 중요하다. 아이들이 성경에 흥미를 가질 수 있도록 그림책부터 시작하면 좋다.「똑똑! 우리 아이 첫 성경」(카린 마리 아미오 글/카린 상송 그림/가톨릭출판사)은 천지창조부터 예수님 부활까지를 다루고 있다. 성경 전체 흐름을 자연스럽게 이어간 구성이 돋보인다. 「나의 첫 번째 성경」(수잔 엘리사벳 벡 글/글로리아 그림/생활성서)은 성경 속 인물을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냈다. 각 인물들 특징을 살린 일화를 짤막하게 담아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5.11.18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7) 4세기 ④ - 동방 교회 수도 생활 신학](//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5713_1.1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7) 4세기 ④ - 동방 교회 수도 생활 신학동방 교회에서 불어온 영성의 바람 4세기 그리스도교는 동방 교회의 덕을 많이 보았습니다. 카파도키아의 교부들은 정통 교리를 수호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을 뿐 아니라, 영성 생활 발전에도 다방면으로 도움을 주었습니다. 또한 이집트 사막의 은수자들 중에서 학식을 갖춘 이들은 수도 생활을 학문적으로 조명하고 체계를 갖춘 가르침을 제시했습니다. 이론적이거나 실천적인 현장에서 활동했던 이들의 가르침은 곧바로 서방 교회의 영성 생활과 수도 생활에 전해졌습니다.바실리우스 수도 생활을 동경한 바실리우스카파도키아의 3대 교부들 중에서 대표적인 인물인 카이사리아의 주교 대 바실리우스(Basilius Magnus Caesariensis, 329/30경~379)는 본인이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동방 교회뿐 아니라 서방 교회 수도 생활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바실리우스는 유복한 그리스도교 가정 출신이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어느 날 성덕이 깊은 신앙인이었고 훗날 수도 생활을 하게 되는 큰누이 마크리나(Macrina, 327경~379)의 꾸중을 듣고 한적한 곳에서 몇몇 지인과 함께 은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바실리우스와 동료들은 다른 사람들이 놀랄 정도로 엄격한 금욕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바실리우스는 이러한 생활을 지속하지 못하고 카이사리아의 주교에 의해 사제로 서품되었고 몇 년 후에 그의 뒤를 이어 교구장이 되었습니다.바실리우스는 몇몇 저서들을 통해 그리스도인 수도 생활에 커다란 공헌을 했습니다. 은수 생활을 하던 당시 바실리우스는 친구이자 카파도키아의 3대 교부 중 또 한 명이었던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azianzenus, 326/30경~390경)에게 쓴 편지에서 자신의 금욕 생활을 설명하면서 기도 생활을 강조했습니다. “영혼 안에 하느님 생각을 분명하게 각인시키는 훌륭한 기도가 있습니다. 이것은 하느님의 내주, 즉 하느님 기억을 통하여 우리 안에 거주하시는 하느님을 소유하는 것입니다.”(「서간」 2,4) 하지만 바실리우스가 수도 생활에 크게 기여한 점은 수도 생활에 도움을 주는 규칙서를 저술한 데 있습니다.공동 생활을 강조한 수도 규칙먼저 바실리우스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은수 생활을 실천하던 중에 그리스도인의 영성 생활을 위한 「윤리 규정집」(Regulae Morales)을 저술했습니다. 그 당시 바실리우스는 일부 은수자들이 과장된 금욕주의를 실천하는 데 실망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폭넓은 관점에서 그리스도인이 실천할 복음적인 삶을 신약성경의 가르침에 따라 제시했습니다.다음으로 바실리우스는 사제로서 교구장 비서직을 수행하던 중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위한 「소 수덕집」(Asceticon Parvum)을 저술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과장된 금욕주의가 그리스도인에게 나쁜 영향을 주는 것을 목격했습니다. 즉, 평신도 그리스도인이 자신에게 적당하지 않은 과도한 금욕 생활을 실천한다든지, 항상 기도한다는 이유로 다른 일에는 전혀 관심을 갖지 않는 현상이 나타났습니다. 바실리우스는 사목적인 관점에서 금욕주의자들에게 하느님에 대한 사랑 및 공동 생활의 정신으로서 순종을 가르쳤습니다. 이 작품은 「바실리우스 규칙서」(Regula Basilii)라는 제목으로 라틴어로 번역되어 서방 교회 수도 생활에 큰 영향을 주었습니다.마지막으로 바실리우스는 주교로서 카이사리아 교구장 시절에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더욱 체계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대 수덕집」(Asceticon Magnum)을 저술했습니다. 바실리우스가 지도한 금욕주의자들 중에서 훗날 더 큰 공동체를 형성하는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여성 공동체도 출현했습니다. 바실리우스는 이 작품에서 회(會) 수도 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제시했습니다.무정념을 추구한 에바그리우스의 수도 생활바실리우스와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의 제자로서 정통 교리를 체계적으로 배운 폰투스의 에바그리우스(Evagrius Ponticus, 345/46경~399)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에서 큰 활약을 펼쳤지만, 이를 계기로 교만해져 방탕한 생활을 했습니다. 이후 에바그리우스는 팔레스티나에 위치한 수도 공동체에서 생활하던 과부 멜라니아(Melania, 342~410)의 충고에 따라 383년부터 이집트에서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오리게네스의 우의적 성경 해석을 따랐던 에바그리우스는 14년간 수도 생활을 하면서 많은 작품을 저술했습니다. 에바그리우스의 대표적인 작품들로 3부작이 있습니다. 「프락티코스」(Praktikos)는 욕정의 무절제한 충동을 정화할 수 있는 금욕 생활과 그것을 위한 기도 생활을 제시합니다. 「그노스티코스」(Gnostikos)는 관상 생활에 대한 가르침을 다룹니다. 「케팔라이아 그노스티카」(Kephalaia Gnostica)는 ‘영지(Gnosis)’에 대한 교의적인 가르침을 제시합니다. 이 이외에도 에바그리우스는 수도 생활과 관련된 「기도론」(De Oratione), 「수도자 생활의 원리」(Hypotyposis), 「수도자를 위한 권고」(Ad Monachos), 「동정녀를 위한 권고」(Ad Virginem) 등을 저술했습니다.그런데 에바그리우스는 이미 「그노스티코스」에서 다루었던 여덟 가지 악습만을 주제로 골라 다시 「안티레티코스」(Antirrhetikos)를 저술했습니다. 에바그리우스에 따르면, 일명 ‘팔죄종(八罪宗)’은 탐식, 음욕, 탐욕, 슬픔, 분노, 영적 태만, 헛된 영광, 교만인데 ‘무정념(無情念)’이라고 하는 ‘아파테이아(apatheia)’의 상태에 도달함으로써 이 욕정을 통제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결국 에바그리우스는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하느님에 대한 ‘영적 관상’이란 개념을 제시하면서 ‘부정 신학(apophatic theology, 否定神學)’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여러 사람들은 에바그리우스의 사상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비판함으로써 그의 작품들이 유실되는 결과를 낳았습니다.훗날 서방 교회 수도 생활의 아버지로 불리는 누르시아의 베네딕투스(Benedictus Nursinus, 480/90~555/60)는 저서 「수도 규칙」(Regula Benedicti)에서 수도 생활 및 규칙과 관련된 동방 교회의 가르침을 물려받은 바를 언급했습니다. 베네딕투스는 일찍이 라틴어로 번역된 「바실리우스 규칙서」와 에바그리우스의 제자였던 요한 카시아누스(Ioannes Cassianus, 360/65~432/35경)가 서방 교회로 이주해 저술한 「제도서」(Institutiones)와 「담화집」(Collationes)을 통해서 동방 교회의 수도 생활 전통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cpbc2017.03.22

시대를 초월한 신앙의 울림 교부들과 함께하는 사색이상규 지음 / 쉐마북스/ 1만 3000원‘교부’(敎父)는 1세기부터 7∼8세기까지 활동한 그리스도교 사상가들이다. ‘참 길’을 찾아 나선 순례자들로, 자신의 가르침을 온몸으로 증거했다는 점에서 구도자에 가깝다. 교부들의 저술은 시대를 넘어 끊임없는 영적 자양분을 제공하고 있는 교회의 고전(古典)이다. 교부학을 전공한 이상규(대전가톨릭대 교수 겸 정하상교육회관 관장) 신부가 펴낸 「교부들과 함께하는 사색」은 무궁무진한 교부학의 세상으로 이끄는 교부학 길잡이다. 교부들이 쓴 많은 책 중에서 주제별로 명언이나 경구 등을 한데 모은 뒤 저자의 해설을 달았다. 다룬 주제는 겸손, 노동, 우정, 평화, 순교, 기도, 죽음, 성경 등 모두 24개다.1500여 년 전 가르침을 소개했다고 고리타분할 것으로 생각하면 오산이다. 고전이 고전인 것은 시대를 초월한 가르침을 전하기 때문이다. 교부들의 저술도 마찬가지다. 울림이 더없이 묵직하다. 교부들의 글에 덧붙인 저자의 해설은 친절할 뿐 아니라 쉽고 분명하다. 교부 성 아우구스티누스는 시간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시간 안에서 해방되기를 원하고 시간의 어떠한 흐름도 찾아볼 수 없는 영원에 살려면 시간을 창조하신 분만을 사랑함으로써 가능할 것이다.”(「요한복음 강해」 31,5)저자는 이런 설명을 달았다. “어떻게 하면 시간으로부터 탈출할 수 있을까? 그것은 오직 시간을 초월함으로써 가능할 뿐이다. 영원 속에 머무시다가 우리를 위해 시간 안으로 오신 분, 그리스도! 그분만이 우리를 시간에서 뽑아내어 영원으로 들어 올려 주실 수 있다. 그분만이 시간 안에 머물면서 그 시간을 뛰어넘게 해주신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는 시간 속에 쓰러져감을 뛰어넘어 영원 안에 살 수 있다.”(13쪽)이 신부는 “앞선 교부들의 길이 우리에게 올바른 이정표가 되리라는 생각과 그들의 지혜를 통해 오늘의 삶을 조명하고 싶은 마음에 부족한 사색을 나누게 됐다”면서 이 책이 아직 한국 교회에 잘 알려지지 않은 교부들의 수많은 보화에 눈길을 돌리는 계기가 되기를 희망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백영민2017.03.02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5)서울대교구 중계양업성당](//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6936_1.0_titleImage_1.jpg)
[아버지의 집, 아름다운 성당을 찾아서] (5)서울대교구 중계양업성당청동십자가 따라가 만난 아담한 하느님의 집 프랑스 고고학회 회장이며 미술사학자인 알랭 에르랑드 브랑당뷔르는 성당을 ‘빛과 색이 있는 건축물’이라고 정의했다. 브랑당뷔르의 말처럼 아름다운 성당 건축물을 짓기 위해선 우수한 설계자와 빼어난 조적공과 미장공, 솜씨 있는 예술가들이 필요하다. 하지만 아름다운 성당을 짓는 참 건축가는 바로 그 본당 신자들이다. 성당을 지을 빈터에 신자들의 기도로 만든 벽돌이 쌓아지고, 그들의 희생으로 빚은 성 미술품들이 공간을 채울 때 비로소 하느님의 집을 마련할 수 있기 때문이다.성당 건립하며 신자들 매일 묵주기도 바쳐 배추밭에 지어진 아담한 서울대교구 중계양업성당(주임 김주영 신부)이 아름다운 것은 3년 6개월간 신자들의 기도와 희생으로 손수 지은 성당이기 때문이다. 이 성당 터 안에 있는 모든 것에는 1년간 빈 병을 주어 모은 7만 원 돈을 봉헌한 할머니의 정성과 주일마다 폐품과 음식을 팔고, 매일 묵주기도를 바치고 성경을 필사한 신자들의 헌신적 희생이 배어있다. 불암산을 병풍처럼 두고 있는 중계양업성당은 아파트와 학교가 있는 주변 환경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위압적이지도 않고 초라하지도 않다. 성당과 인도를 구분하는 얕은 담장엔 소나무를 비롯한 여러 수목으로 꾸며져 있다. 중계양업성당에선 ‘돌’과 ‘청동’ 그리고 ‘나무’와 ‘색유리화’라는 전통적인 성당 건축 재료를 모두 볼 수 있다. 성당에 들어서면 제일 먼저 청동 성미술품을 만나다. 성당 지붕 위 청동십자가가 설치돼 있어 처음 방문하는 이도 성당 찾기가 어렵지 않다. 조각가 한진섭(요셉) 작가의 작품으로 사방 어디에서 보아도 똑같은 모양으로 멀리서도 성당을 알아볼 수 있다. 한국 순교자 현양 정신 담아 정문에 들어서면 본당 수호자인 가경자 최양업(토마스) 신부의 청동상이 반갑게 맞아준다. 최태훈 조각가의 작품으로 복음을 선포하기 위해 힘있게 걸어가는 최양업 신부를 표현하고 있다. 이 작품은 최양업 신부의 주요 사목지였던 배티성지에도 설치돼 있다. 성당 출입문은 한국 교회에선 보기 드문 청동문으로 장식돼 있다. 역시 최태훈 조각가의 작품으로 좌측 문은 51가지 구약 성경 사건을, 우측 문은 52가지 신약 성경 주제를 담은 부조로 장식돼 있다. 좌ㆍ우측 둘의 성경 주제를 합치면 한국 순교 성인 103위와 같은 수다. 성당이 한국 순교자들을 현양하고 있음을 상징으로 보여준다. 청동은 인류가 발명한 최초의 합금이다. 솔로몬 성전에서 사제들의 몸을 씻는 정결례 물을 담는 제기의 재료로 사용됐다. 중계양업성당을 찾는 이들이 청동십자가를 따라 성당에 들어서면 본당 수호자인 최양업 신부의 청동상을 만나고 청동문을 통해 성당에 입장하도록 꾸며놓은 것은 어쩌면 솔로몬 성전의 청동 정결례 물통처럼 성당에 들어서기 전에 먼저 정결한 몸과 정화된 마음을 갖추라는 표지가 아닐까 싶다.성당에 들어서면 색유리화가 성전으로 안내한다. 김남용 작가가 ‘성령으로 가득한 성당’을 표현하고자 만든 작품이다. 전체적으로 단순하며 중간중간 둥근 모양의 포인트를 주어 현대적 감각을 느끼게 했다. 작가는 이 둥근 원을 예수님의 생애를 추상화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의 색유리화 작품은 성전 양쪽 벽면 상단에도 절제된 형태로 장식돼 경내를 신비로운 빛으로 채운다.김남용 작가는 성전 입구의 공간을 성령으로 채우기 위해 솔로몬 왕이 성전 지성소 문을 향백나무로 장식했듯이 원목 성전문을 만들고 오른편 고해소 문도 색유리화에서 보여준 성령을 다시 나타내 같은 모양의 그림으로 장식했다. 성전 내부 온통 하얀 돌로 꾸며 성전은 돌로 꾸며져 있다. 성당 내부 마감은 백색 인조석이다. 경건한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 김송필 조각가가 직접 인조석을 제작해 하나하나 붙여 만들었다. 제대와 감실, 제대 십자가, 독서대, 해설대, 성수대, 사제석은 모두 통돌을 깎아 만들었다. 한진섭 작가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좋은 익산 대리석으로 만든 이 성물들은 미사 전례의 장중함을 더해 준다. 아울러 성전 벽과 제단 모두를 하얀 돌로 통일해 미적으로나 시각적으로 조화를 꾀했다. 성전 내부가 빛을 상징하는 하얀색이어서 다소 밋밋해 보일 수 있지만, 한진섭 작가는 성전 정중앙 제단 십자가와 양측 벽면 십자가의 길 14처를 검은색 대리석으로 장식해 화룡점정의 포인트를 줬다. 그러면서 영적 에너지도 함께 느끼게 했다. 성당은 단순히 아름다워서만 되는 것이 아니라 기도를 하거나 미사를 올릴 때 마음의 평화가 찾아들어 하느님을 편안하게 만날 수 있어야 한다. 미술사가 고종희(한양대 실용미술과) 교수는 서울 중계양업성당에 대해 “그냥 지나친 구석이라곤 도무지 없는, 모든 것에 예술가의 혼이 배어있는 성당”이라며 “성당은 기도와 미사 전례를 통해 주님과 만나는 곳으로서 그 목적과 기능이 명확한 건축물인데 중계양업성당은 이같은 기능에 합당하게 지은 아름다운 성당”이라고 평가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 cpbc2016.10.19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7) 예수님을 따르려면(루카 9.57-62)](//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0388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7) 예수님을 따르려면(루카 9.57-62)제자 되려면 모든 것 내려놓고 주님 따라야예수님을 따르려는 사람의 자세에 관한 루카복음의 내용은 단지 신앙인이 지녀야 할 자세만이 아니라 인생길을 살아가면서 어떤 자세와 각오로 그 길을 가야 하는지를 되새기게 해 준다. 사진은 이집트의 시나이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길. 가톨릭평화신문 DB갈릴래아를 떠나 예루살렘을 향해 가시면서 사마리아 마을에 들어가셨으나 냉대를 받으신 예수님.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의 사이가 좋지 않다고는 하지만, 예수님의 마음은 인간적으로 볼 때 절대 편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당신이 향하시는 예루살렘에서 영광보다 고난과 죽음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셨을 것입니다. 루카는 이런 상황에서 예수님을 따르는 것과 관련해 세 사람의 이야기를 소개합니다. 예수님 길을 따르려는 이들 이야기는 “그들이 길을 가는데…”(9,57)로 시작합니다. 루카복음에서 이 “길”은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 길은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으로 이어지는 길입니다. 물론 영광스러운 부활과 승천으로 이어지는 길이기도 합니다만, 수난과 죽음이 먼저입니다. 그때에 어떤 사람이 나섭니다. “어디를 가시든지 저는 스승님을 따르겠습니다.”(9,57) 이 사람은 왜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섰을까요?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우리는 생판 모르는 사람을 따라 나서지는 않습니다. 웬만큼 아는 사람이 ‘나를 따르라’고 해도 따르기가 쉽지 않습니다. 혹시 그 사람의 카리스마에 압도되어 자신도 모르게 따라 나설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나를 따라라”하고 말씀하시지도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 사람은 “(스승님께서) 어디를 가시든지” 따르겠다고 다부진 의욕을 보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아마 예수님이 하신 일들을 봤기 때문일지 모릅니다. 예수님을 따르면, 그 멋진 일들, 곧 병자를 낫게 하고 마귀를 쫓아내고 빵을 많게 하는 놀라운 일들을 계속 보게 될 터이고 그분의 제자라는 사실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이 첫째 사람의 청원에 예수님께서는 ‘된다’ 또는 ‘안 된다’ 하는 대답은 하지 않으십니다. 다만 “여우들도 굴이 있고 하늘의 새들도 보금자리가 있지만, 사람의 아들은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다” 하고 말씀하실 따름입니다.(9,58) 그런데 이 말씀이 오히려 충격적입니다. 그냥 “안 된다” 하시면 그만일 것을,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신세를 한탄하고 계시는 듯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은 받아들이는 이들에게는 분명 기쁨입니다. 하지만 복음 선포의 사명을 수행하시는 예수님 자신은 머리 둘 곳조차 없는 비참한 처지입니다.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기쁨은 따로 있습니다. 나중에 살펴보겠지만, 예수님의 기쁨은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10,21 참조) 첫째 사람에게와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둘째 사람에게는 “나를 따라라” 하고 이르십니다. 이 사람이 먼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한 것이 아니라 예수님께서 먼저 당신을 따르라고 말씀하신 것이지요. 이 말씀에 그 사람은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해 달라고 청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죽은 이들의 장사는 죽은 이들에게 맡기고 “너는 가서 하느님의 나라를 알려라” 하고 말씀하시지요.(9,59-60) 아버지의 장사를 지내게 해 달라는 요청은 거부할 일이 전혀 아닌 듯합니다. 아버지의 장사를 치르는 일이라면 자식으로서 마땅히 해야 할 대단히 중요한 일이지요. 그럼에도 예수님께서는 이를 허락하지 않으시는 까닭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이 그만큼 시급하고 중요하기 때문이라고 많은 성경학자는 풀이합니다. 하지만 이렇게도 생각해 봅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도 예수님의 일행에 합류했다면, 또는 길에서 예수님을 만났다면 그 사람은 적어도 그 순간에는 아버지의 장례보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더 중요하다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런데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시자 그때에 비로소 아버지를 장사 지내는 일을 떠올리면서 먼저 장사를 지내고 오겠다고 청합니다. 달리 말하면 이 사람은 ‘나를 따라라’ 하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 응답할 태세가 돼 있지 않은 것입니다. 셋째 사람은 첫째 사람과 마찬가지로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조건을 답니다.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한 다음에 따르겠다는 겁니다. 스승을 따라서 길을 떠나기에 앞서 가족들과 작별 인사를 한다는 것 역시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에게 “쟁기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고 말씀하십니다.(9,61-62) 이 셋째 사람은 자신이 먼저 예수님을 따르겠다고 나선다는 점에서 첫째 사람과 비슷합니다. 그런데 작별 인사를 하게 해달라고 하는 점에서는 오히려 둘째 사람과 비슷합니다. 셋째 사람에 청에 대한 예수님의 답변 역시 둘째 사람의 청에 대한 답변과 마찬가지로 가혹해 보입니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셋째 사람 또한 길을 가다가 우연히 예수님을 만나서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그러나 먼저 가족들에게 작별인사를 하게 허락해 주십시오” 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아마 다른 제자들 사이에 끼어 예수님을 따르던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셋째 사람에게 하신 예수님의 말씀도 새롭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너는 이미 나를 따라 나섰으면서도 자꾸만 뒤를 돌아보느냐. 그러면 하느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다.” 생각해 봅시다 예수님을 따르는 것과 관련한 세 사람의 이야기는 기본적으로 예수님을 따르는 혹은 따르려는 사람들의 자세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일깨우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첫째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복음을 전하는 이는 “머리를 기댈 곳조차 없는” 처지에서도 초연하게 복음 선포에 매진하라는 것으로, 둘째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제자가 되어 복음을 선포하라는 부르심을 받았을 때는 열 일을 제쳐놓고 복음 선포에 집중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 셋째 사람의 이야기에서는 일단 그리스도인이 되었으면 자꾸 과거의 삶에 연연하거나 한눈팔지 말고 그리스도 신자로서 제대로 살아가라는 가르침으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는 그리스도 신자로서 지녀야 할 태도에 관해서만이 아니라 삶을 살아가는 기본자세에 관해서도 중요한 메시지를 던진다고 봅니다. 첫째, 인생에서 목표를 설정하고 투신하기로 했으면, 오로지 그 길에 매진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비록 때로는 “머리 기댈 곳조차 없는” 처지에 놓일지라도 그것이 두려워 가던 길을 포기해서는 뜻을 이룰 수 없을 것입니다. 둘째, 목표를 정하고 덤벼들기 전에 계획을 잘 세우고 차질없이 준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를 따라라” 하는 부르심은 우리 인생살이에서 “호기”, 좋은 기회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때 다른 일로 꾸물거리느라고 그 좋은 기회를 놓치는 경우를 우리는 직ㆍ간접으로 체험합니다. 그래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일단 결단을 내렸으면 다른 일에 신경을 쓰거나 한눈을 팔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고 기웃거리기 시작하면 이것저것 다 놓치기에 십상입니다. 문채현2017.11.02

신나는 겨울 방학, 신앙 유산 찾아 박물관으로전국의 국ㆍ공립 및 개인 박물관 소장 천주교 유물들 방학을 맞아 전국의 국공립 박물관을 비롯해 교회 박물관 견학을 추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2월 1일 새롭게 개편한 이뮤지엄 누리집(www.emuseum.go.kr)에 접속해보자. 이뮤지엄을 통해 전국 112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29만 건의 물품과 이미지 70만 장을 검색할 수 있다. 일반 박물관에 소장된 천주교 관련 유물들을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아울러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 ‘한국순교자박물관’, 부산교구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전주교구 ‘천호성지 가톨릭성물박물관’, 대전교구 ‘공세리성당 박물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100주년 역사전시관’ 등 교회 박물관들도 눈여겨보자.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가톨릭청년」(가톨릭靑年)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정문화재 제778호. 단기 4292년(1959) 12월 1일 가톨릭청년사 발행. 제13권 12호. 표지에는 아기 예수님과 경배하는 사람들이, 뒤표지에는 광고가 인쇄돼 있다. 내용은 천주교 교리 등을 다룬 논설과 교회 인물들을 다룬 전기, 문학 등에 관한 다양한 글과 성탄특집 관련 글이 수록돼 있다.△「미사경본」(彌撒經本)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정문화재 제309호. 일제강점기인 1938년 2월 19일 성분도수도원(聖芬道修道院) 발행. 편집 겸 발행인 홍태화(洪泰華, Lucius Roth, 성 베네딕도회, 1890~1950) 신부. 앞표지에는 십자가가 음각돼 있으며, 내지에는 미사의 순서, 전례 시기와 축일에 따른 미사 경문 등이 수록돼 있다. 내지 첫 장에 ‘서울 성동구 김 스데파노 행당동 천주교회’, ‘1970年 4月15日 샀음’이라고 적혀 있다.△「성경직해」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897년 발행. 지정문화재 제478호. 천주교의 주일과 주요 축일에 봉독 되는 성경 구절을 발췌해 수록한 책. 총 9권. 우측 가장자리의 구멍 4개를 꼰실로 꿰어 엮은 것이 특징.△「천주교요리문답」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정문화재 제778호. 1931년 조선주교공의회 명령으로 발행된 한국 천주교회의 교리서로, 이 책은 1937년 7월 10일 성서활판소(聖書活版所) 발행. 편집인 안세화(安世華, Florian Demange, 1875~1938, 초대 대구대교구장) 주교. 발행인 원형근(元亨根, Adrien Joseph Larribeau, 1883~1974, 제9대 서울대교구장) 주교. 앞표지에 ‘천주교요리문답’이 인쇄돼 있고, 내지에는 천주교의 주요 열두 가지 기도문인 십이단과 교리문답이 수록돼 있다.△묵주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광복시대 이후. 국가 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제22호 김희진(율리아나) 작. 전체 길이 70㎝. △「성모성년 기념 제1회 성미술전람회 목록」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 가로 13㎝, 세로 19㎝. 1954년 10월 5~12일 미도파백화점 5층에서 열린 제1회 성미술전람회 전시물 목록과 홍보 책자. △순교자1내설악예술인촌 공공미술관 소장. 회화. 2000년대 이후. 나정태 작. 가로 135㎝, 세로 163㎝. △「영남순교사」대구근대역사관 소장. 광복 이후. 가로 14㎝, 세로 20㎝. 영남지역 지리와 천주교 전래 역사, 병인순교사를 기록한 책.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주화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재질은 금속과 니켈. 지름 3.2㎝, 두께 0.2㎝. 1984년 5월 한국조폐공사가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주화. 앞면 상단에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이라고 새겨져 있고, 중앙에 십자가가 도안돼 있다. 하단에는 ‘한국은행, 1784~1984’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 사적 258호 명동성당 도안 아래 천원이라고 새겨져 있다. 천주교 전주교구 교세일람도. △천주교 전주교구교세일람도(天主敎全州敎區敎勢一覽圖)전주역사박물관 소장. 광복 이후. 가로 44.5㎝, 세로 33.5㎝. 전주교구 관할 지역지도와 교세 표. △「치명일긔」(致命日記)한글박물관 소장. 지정문화재 제23호. 1895년 발행. 가로 9.7㎝, 세로 16.9㎝. 연활자본. 간행지 및 간행자 미상. 1866년 병인박해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약전을 소개한 책으로, 경기ㆍ충청ㆍ전라ㆍ경상ㆍ강원ㆍ황해ㆍ함경도 지역 순교자들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군데군데 이전 소장자의 기록이 있으며, 표지는 후대에 개장한 것으로 보임. 백영민2017.01.11
[위대한 신앙의 기도] (17) 기도의 전통(「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기도 원천에 이르는 네 갈래 길 이번 호부터는 교리서 제4편의 제2장 기도의 전통을 살펴봅니다. 교리서는 기도라는 내적 충동이 자연 발생적으로 분출해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기도하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원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서 기도를 알려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도교 기도 전통의 관점에서 기도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기도의 원천①그리스도 신자들의 삶의 중심이자 원천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가 샘이신 당신에게서 생명의 물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다. 말하자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샘에 이르는 수로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기도의 전통에서 기도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수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고 교리서는 밝힙니다. 하느님 말씀과 교회의 전례, 향주덕(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 그리고 ‘오늘’이라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이 가운데 두 가지만 우선 살펴봅니다. 하느님 말씀(2653~2654항)교회는 “모든 신자 특히 수도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얻도록 강력하고 각별하게 권고합니다.” 이와 함께 “성경을 읽을 때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가 이뤄지도록 기도가 따라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계시헌장 25항; 교리서 2653항). 예수님께서는 기도와 관련해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교회 영성의 교부들은 이 말씀을 풀이하면서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으로 들어 높여진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읽으면서 찾으십시오. 그러면 묵상을 통해서 발견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관상을 통해서 열릴 것입니다”(2654항). 앞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겠지만 여기서 묵상과 관상의 차이를 간단히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묵상은 기도하는 사람의 의지가 발동합니다. 그러나 관상은 나의 의지가 발동하기보다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전례(2655항)하느님께 바치는 교회의 공적 예배인 전례는 “성령 안에서 성부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1073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는 전례에서 시작되고 전례로 완성된다”고 가르칩니다. 교회의 성사 전례를 통해 구원의 신비를 선포하고 구현하고 전달하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명은 신자들의 기도하는 마음 안에 계속됩니다. 신자들은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만이 아니라 전례가 끝난 후에도 기도를 통해서 전례를 내면화합니다. 전례는 교회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성무일도, 곧 시간전례까지도 비록 골방에서 바친다 하더라도 그 기도는 언제나 교회의 기도이며, 이 기도를 통해 신자들은 거룩하신 성삼위와 일치를 이룹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09.27

정기 학술 세미나 ‘생명과 사랑-참된 인간관계의 회복을 찾아서’육체적 사랑·정신적 사랑, 그 진정한 모습과 가치는?발제자들이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구인회 교수, 발제자인 김중곤 교수, 이향만 교수, 민남현 수녀, 박정우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1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생명과 사랑-참된 인간관계의 회복을 찾아서’를 주제로 정기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발제자들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의학적, 인문학적, 성경적, 교회적 관점에서 성찰했다. 발제를 맡은 김중곤(서울대 의대)ㆍ이향만(가톨릭대 의대) 교수, 민남현(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박정우(가톨릭대 신학대) 신부는 한목소리로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고 강조하며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사랑의 진정한 모습과 가치를 되짚었다. 다음은 발제문 요약.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김중곤 교수-의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사랑 심리학자 스턴버그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통해 “사랑은 △친밀감 △열정 △약속(책임감)으로 구성된다”고 정의했다. 이 세 가지 요소의 크고 작음에 따라 사랑을 여러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세 가지 요소가 같은 크기일 때 가장 바람직한 사랑이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말하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를 수 있다. 행복한 사랑을 키우기 위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의미와 사랑에 대한 기대를 알 필요가 있고 거기에 맞춰 내가 변화할 수 있는 범위를 결정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마르시아 라스웰과 노만 롭센츠는 기본적인 사랑의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눴다. △가장 좋은 친구로서의 사랑 △논리적 사랑 △낭만적 사랑 △소유적 사랑 △이타적 사랑 △유희적 사랑이다. 대부분 경우 여러 유형이 혼합된 사랑을 하고 있으며 상대에 따라 다른 유형이 사랑을 나타낸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사랑하는 능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통해 발달한다고 한다. 사랑도 배워 형성하는 학습으로 이뤄진다. 또한 사람들은 여자가 낭만적이고 남자들은 현실적이라고 착각한다. 실제로 과거 사회학적 연구 결과들은 거의 모두가 그와 반대되는 결과를 보고 하고 있다. 여자들은 논리적 사랑, 소유적 사랑, 가장 좋은 친구와 같은 사랑을, 남자들은 유희적 사랑, 낭만적 사랑을 훨씬 더 많이 한다. 이타적 사랑은 남녀 간 별로 차이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향만 교수-인문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사랑사랑은 △생명의 서사 △자유 △정결 △함께 바라봄 △완전함을 향한 여정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랑이다. 사람은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인간이 서술해온 사랑의 서사는 생명에 관한 고유한 메시지를 잘 전하고 있다. 사랑은 생명의 근원적 성향으로 인간 본질을 이루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 구약 성경의 창세기, 플라톤의 향연 등에 나타나는 사랑의 서사는 인간이 추구하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나타내고 있다. 사랑의 자유는 한 사람을 온전히 알게 하고 온전히 변화시킨다. 사랑할 때 세상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새롭게 세상을 향한 눈을 여는 것이다. 구속이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해 모든 것을, 모든 이를 사랑하는 자유를 얻는 것이다. 만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으로 향한 길이 닫힌다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가두는 애착이며 집착이다. 순결이 육체적 차원이라면 정결은 영혼의 차원을 의미한다. 정결은 순결의 내적 완성을 의미한다. 순결을 지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한 준비된 삶을 의미한다. 정결은 더 나아가 서로만을 위해 자신의 성적 관계를 인격적으로 유지하고 상호 간에 고귀한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는 삶이다. 민남현 수녀-성경에서 나타난 사랑-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43-48)를 중심으로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고와 삶의 양식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복음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큰 도전이다. 특히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계명을 살아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원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관계성에 대한 그리스도교 윤리의 핵심으로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율법 해석의 절정이다. 예수님은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으로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당부하신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처지에 있던 죄인들과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이 회개해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돌보셨다. 사랑의 의미를 구체적 삶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직접적인 친분이 없더라도 결핍 속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희생할 수 있는 마음,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고 하신다. 성경 저자들이 제시하는 하느님을 따르는 삶은 그분의 자녀답게 원수까지 포용하는 사랑을 사는 것이고, 이러한 실천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습이 우리 안에 새겨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하느님 사랑의 새 계명이 인간적 본성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한 이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현실이 아니라 생각된다. 박정우 신부-교회의 가르침에서 바라본 사랑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핵심 교리는 사랑이다. 마태오 복음에서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 22,37-40 참조). 「가톨릭교회 교리서」도 서문에서 사랑이야말로 교리교육의 최고 목표임을 강조했다. 사랑이라는 용어는 사용하는 사람과 그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인간은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닮은 존재”라고 본다. 그렇기에 교회는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격 간의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을 자신의 본질적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친구들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4)고 말씀하시며 십자가 희생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의 의미는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행위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아가페’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단지 사랑의 대상을 갈망해 소유로 만족감을 느끼는 데 머무르는 열정적 사랑은 ‘에로스’로 구분했다. 교회는 성관계를 포함해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을 지지한다. 그러나 남녀의 사랑에서 끝까지 충실하게 신의를 지키고, 사랑의 결실인 새 생명을 책임 있게 양육할 수 있는 장소는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선택된 부부 사랑의 계약인 혼인뿐이다”고 단언한다. 백영민2016.1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