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목일기] 행복하여라,가난한 사람들임용환 신부(서울 삼양동선교본당 주임)"행복하여라, 가난한 사람들! 하느님의 나라가 너희 것이다"(루카 6, 20). 1988년 9월, 사병 제대를 그야말로 무사히 마치고, 성소국장 신부님께 제대 신고(?)를 하고, 신부님의 소개로 찾아간 곳이 빈민사목위원회였다. 그렇게 빈민사목과의 인연은 시작됐고, 빈민사목을 하시는 신부님과 함께 금호동 전세방에서 살았다. 연탄불이 꺼지지 않게 잘 살피고, 가끔 밥도 하면서, 신부님과 함께 만났던 사람들이 천주교도시빈민회 회원들이었다. 거의 날마다 와서 신부님과 밤새 이야기했던 모습들이 기억난다. '세상에 이렇게 사는 사람들도 있구나!' 가난한 지역에 들어와서 최소한의 생활비로 살아가면서 아기방, 공부방, 야학, 노동 등을 통해 빈민운동을 하는 사람들, 그러나 늘 웃음 짓는 얼굴로 지역사람들을 만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들과 가까워지고 그들이 하는 모임에 같이 참여하면서 그들과 함께 계시는 하느님을 느낄 수 있었다. 내 생애에 잊지 못할, 그리고 지금의 나를 있게 한 시간이었다. 그렇게 3개월을 보내고 복학하여 빈민사목에 관심 있는 동지(?)들을 모아 모임을 만든 뒤 신부님과 또 천주교도시빈민회원들과의 인연을 이어갔다. 그 후 사제품을 받고 군종사목을 거쳐 정식으로 빈민사목에 발을 들여놓은 것이 1999년이었다. 벌써 10년 세월이 흘렀다. 그 세월 동안 늘 내 머리를 맴돌았던 성경구절이 있다. 바로 위의 루카 복음 6장 20절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어떻게 행복할 수 있을까? 하느님 나라를 차지하기 때문이라면 어떻게 물질문명의 이 세상에서 하느님 나라의 삶을 살 수 있을까? 물질적 측면에서만 가난을 이야기할 수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그것을 빼놓고 가난을 이야기할 수도 없다. 가난하면 떠오르는 성 프란치스코는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께 가까이 다가가는 가장 확실한 길이 가난의 길이라고 했다. 지금 내가 있는 곳은 삼양동, 33㎡가 채 안되는 공간에서 7명이 사는 가족, 음침하고 습한 지하 단칸방에서 혼자 사시는 할아버지, 한부모 가정, 그들은 내 삶을 부끄럽게 만든다. 가난하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가를 늘 고민하게 한다. 이제 '이것이다'라고 정확하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조금은 알 것 같다. 왜 가난한 사람들이 행복한지를. 부족하고 없는 만큼 하느님께서는 채워주신다. 돈으로는 결코 살 수 없는 그 무엇을. 그리고 그 무엇이 얼마나 값진 것인지를. 난 비록 가난하진 않지만 만일 내가 이곳이 아닌 다른 곳에 있었다면, 지금보다 하느님과 더 가까울 수는 없었을 것이다.조은일2009.08.11
![[박소화의 사도직 현장에서] 어디에 있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8/05/igv1785907969630.jpg)
[박소화의 사도직 현장에서] 어디에 있든 돌아갈 곳이 있다는 것(사)공감학교의 첫 청년공동체 가정을 시작할 때, 자칭 ‘할머니급’ 큰엄마는 일흔이라는 나이가 아이들에게 어색하지 않을까 걱정과 두려움이 크셨습니다. 그래도 여자아이들이니 가끔은 예쁘고 분위기 좋은 곳에서 차나 밥도 같이하고, 주말이나 방학, 명절 뒤에는 오붓한 데이트를 하셨습니다. 엄마와 딸이라면 흔했을 평범한 기억을 하나하나, 천천히 그러나 쉼 없이 채워주셨습니다. 시험이나 중요한 날이면 이모티콘과 성경 말씀을 보내고, 아이들은 학기마다 수강 시간표와 성적표를 보여주며 5년을 따로 또 같이했습니다. 이제 졸업해 취업하고, 다시 대학에 진학하거나 새 터전을 꾸리고, 승진 소식도 전해지면서 큰엄마는 오늘도 새벽 미사에서 아이들을 한 명 한 명 봉헌합니다. 그중 세라는 3년 학업 기간 내내 어려움을 묵묵히 견디며 참 성실하게 공부했습니다. 큰엄마도 다른 지방의 집까지 데려다주거나, 때로는 그곳의 유행 메뉴도 먹어보며 시간을 함께했습니다. 졸업 즈음, 오래 기억할 선물을 주고 싶어 단둘이 2박 3일 졸업여행을 제안하자 세라는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그렇게 해요. 고맙습니다!” 하며 기쁘게 받아주었습니다. 여행길, 운전하던 큰엄마의 귀에 옆좌석 세라가 친구와 통화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나 지금 가족여행 중이야.” 첫 가정의 아이들이 그렇게 저마다의 삶으로 걸어가는 동안 그 자리에는 새로운 아이들이 낯선 어른을 밀어내고, 연락을 끊고, 마음의 문을 닫기도 해서 우리의 기다림도 다시 시작되곤 합니다. 자립은 혼자가 되는 일이 아닙니다. 힘겨울 때 돌아갈 사람이 있고, 사랑받았음을 기억하고 다시 일어설 힘을 얻는 일입니다. 우리가 하는 일은 어쩌면 아이들의 마음속에 언제든 돌아올 ‘친정집’ 하나를 남겨주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주님, 저희 가정을 자립해 떠난 아이들과 오늘 만난 아이들이 어디에 있든 “나는 혼자가 아니다”라는 것을 기억하게 하소서. 당신 안에서 영원토록 한 가족으로 살아가게 하소서. cpbc2026.08.26

성경 품고 청년들과 동행한 착한 목자, 주교로 부르심 받다최광희 신임 주교 삶과 신앙서울대교구의 새 보좌 주교로 임명된 최광희 신임 주교는 청년 사목·성서 사도직·문화 홍보 등 여러 분야에서 경험을 쌓아온 인물이다. 최 주교 곁에서 동고동락한 이들은 한결같이 그가 배려심 깊고, 늘 경청하는 사제라고 입을 모은다. 사제 성소의 못자리였던 서울 목5동본당 공동체에서 성소의 싹을 틔웠고, 젊은이들의 사제로 동반했다. 최광희 주교의 어린 시절. 복사단과 성소 전주 숲정이에서 영세 후 복사로 활동 목5동본당에서 사제의 꿈 키워 2004년 사제품 받아 경청과 배려의 아이콘 학생 때부터 따뜻하고 자상 다정다감한 성품에 늘 먼저 다가가 청년들과 활발한 대화 통해 소통·사목 청년·성경·문화홍보 사도직 분야에서 7년간 성서모임 청년들과 동행 문화홍보국장 역할 충실히 다양한 경험 갖춘 사목자 “먹이고 재우고 입혔을 뿐입니다. 돌이켜보면 신학교와 교구·교회가 사람을 키운 것이지 제가 아버지로서 어떤 영향을 끼친 것은 없습니다. 교회 어른들이 잘 지도해주셨지요. 성당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삶 안에서 사제로 길러진 것입니다.” 최광희 주교의 아버지 최동준(보나벤투라, 77)씨는 아들의 주교 임명 소식에 “축하 인사를 받아도 제가 한 일이 없어 송구스러울 따름”이라며 말을 아꼈다. 최 주교는 1977년 1남 1녀 중 장남으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직장 관계로 초등학교 3학년 때 전주교구 숲정이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첫영성체를 한 뒤 복사단 활동으로 신앙을 키웠다. 이듬해 인천으로 이주했다가 초등학교 5학년 때 다시 서울로 돌아와 목5동에 정착했다. 최 주교에게 목5동본당은 성소의 뿌리이자 신앙의 터전이었다. 초대 주임 고 박노헌 신부의 영향을 받아 사제 성소의 꿈을 키웠고, 고등학교 진학 후 예비 신학생 모임에 참여했다. 2002년 3월, 시종직 후 청년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는 최광희 신학생.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1999년 강원도 고성에서 군 생활 시절.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2004년 7월 2일 사제서품식 후 아버지(최동준 보나벤투라)와 어머니(이연복 데레사), 여동생(최현주 엘리사벳)과 함께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모습.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아버지 최씨는 “유년 시절부터 어른스럽다는 말을 자주 들었다”고 했다. 그는 아들을 산과 바다에 자주 데려갔다. 최씨는 “다섯 살 무렵 동해안에 눈이 내려 버스를 타고 무작정 경포대 백사장을 찾아가 아이를 풀어놨는데, 모래가 아닌 눈으로 덮인 해변에서 바다를 향해 두 팔을 벌리고 뛰어가던 아들의 모습이 지금도 눈에 선하다”고 말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에는 미국에 거주하던 큰아버지와 함께 미국 동서부 공원을 여행했고, 중학교 3학년 때에는 어머니 이연복(아기 예수의 데레사, 72)씨와 함께 유럽 배낭여행을 했다. 어린 시절의 이러한 경험은 그의 시야를 넓히고 감수성을 키우는 계기가 되었다. 아버지는 “드넓은 대자연을 직접 보고 경험한 일들이 사제성소를 선택하는 데 분명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 주교는 2004년 7월 2일 사제품을 받았으며, 수품 성구로 ‘내가 너와 함께 있겠다’(탈출 3,12)를 택했다. 그는 수품 성구처럼 항상 경청하는 자세로 신자들에게 다가갔고, 배려는 그의 삶에 자연스럽게 스며들었다. 2004년 7월 2일 사제품을 받은 후 출신 본당인 목5동성당에서 첫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2004년 7월 2일 사제품을 받은 최광희 신부.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목5동본당 출신 후배 사제로 함께 생활한 박민우(교구 사목국 노인사목팀 담당) 신부는 “중고등부 시절부터 지금까지 늘 한결같이 따뜻하고 자상한 모습이었다”며 “훤칠한 인물에 다정다감한 성격으로 남녀노소 모두에게 인기가 많았다”고 밝혔다. 이어 “고민이 있을 때마다 가장 먼저 전화하던 든든한 선배였는데, 앞으로도 특히 젊은 사제들의 마음을 잘 읽어주시는 사제들의 아버지(주교)가 되어주시면 좋겠다”고 기대했다. 사제수품 동기인 은성제(교구 청소년국 가톨릭청소년이동쉼터 서울A지T 소장) 신부는 “최 주교님은 저와 청소년·청년 사목관에 있어 비슷한 점이 많아 대화도 많이 나눴는데, 늘 청년들과의 면담 스케줄이 꽉 차 있었을 정도로 젊은이들과 동반해온 분”이라며 “사목하다 보면화가 날 수 있는 일이 생겨도 인내심이 얼마나 깊은지 청년들 사이 ‘배려의 아이콘’으로 불렸다”고 전했다. 21년간 사제생활 중 최 주교가 가장 오래 몸담은 곳은 가톨릭청년성서모임이었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학교에서 성서신학 석사학위를 받고 귀국한 최 주교는 7년 동안 성서모임 청년들에게 말씀의 힘을 전하는 데 열정을 쏟았고, 젊은이들이 성경 그룹공부와 연수를 통해 느끼는 하느님 체험의 감동에 동반하며 성서 사도직 활성화에 헌신했다. 2020년에는 세계 각지에 사는 한인과 교포 청년들을 위한 첫 영문판 성경 공부용 교재도 출간하기도 했다. 가톨릭청년성서모임에서 찬양부 활동을 했던 고수미(클라라, 37)씨는 “연습 때 찾아와 불편한 점은 없는지 물어봐 주기도 하고, 고충이 있을 때엔 면담을 통해 들어주는 사제셨다”며 “늘 사려 깊고 청년들을 잘 챙겨주신 신부님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가톨릭청년성서모임 미사 중 성체가 쏟아졌는데, 한치의 망설임 없이 휴지로 먼지 섞인 성체를 다 모은 후 주저하지 않고 받아 모셔 곁에 있던 사제들을 놀라게 한 일화도 전해진다. 선배·동기 사제들과 함께 하고 있는 최광희 신부(맨 오른쪽). 앞줄 가운데는 당시 신부였던 유경촌 주교. 최 주교는 2023년부터 교구 문화홍보국장을 지내며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 담당 사제로 활동, 언론·방송·출판 등 커뮤니케이션 관련 일을 하는 신자들과도 교류해왔다. 가톨릭커뮤니케이션협회 강무성(티모테오) 회장은 “최근 협회 주관으로 열린 제25회 가톨릭 포럼 ‘다시 쓰는 민주주의’가 늦게 끝나 장내를 정리하고 있는데, 최 주교님은 그 순간에도 앞서 질의한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활동가들의 이야기를 다 들어주며 대화하고 계셨다”고 했다. 이어 “이들과 대화하는 최 주교님을 보며 가톨릭교회는 이런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면서 “잠시 후 기념촬영 때 전장연 활동가들이 어색하게 서 있자, 같이 사진을 찍자고 손을 잡아 앞자리에 세우며 세심히 챙기는 모습이 인상 깊었다”고 털어놨다. 교구 문화홍보국 차장 박우준 신부는 “최 주교님은 문화홍보국장으로 일하면서 직원들을 기능적으로 대하지 않고, 동반자로 여기며 각자의 사정과 이야기를 늘 경청해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경청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각자 상황에 맞게 마음을 써주셨기에 많은 청년이 애정을 갖고 주교님을 많이 찾아왔다”면서 “청년들과 소통해온 주교님의 경험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준비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최 주교는 인스타그램에 날마다 성화와 복음 묵상글을 올린다. 그리고 주교 임명 당일인 8일 처음 자신의 사진과 함께 주교 임명 축하식에서 발표한 소감문을 게재했다. “부족한 저를 위해 기도를 청한다”고 밝혔고, 축하 댓글이 이어졌다. “책임과 권한이 늘어나면 늘어날수록 자신의 권한과 책임을 망각하기 쉬움을 생각해봅니다. 자신의 권한에는 매우 넓은 아량을 베풀고 자신의 책임에는 매우 협소한 기준을 적용하기가 쉽지요. 잘못을 인정하는 거에는 인색해지고 책임을 전가하는 것에는 지혜로워지기가 쉽지요. 다른 사람들에게 무거운 짐들을 지워놓고 자신은 그 압박에서 슬그머니 빠져나와 버리기도 쉽습니다. (···) 생명의 길, 내적인 기쁨과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는 축복의 길을 걸어가는 사람들임을 다시금 되새깁니다. 감사의 마음으로 두 손 모아 기도를 올립니다. ‘파견된 이는 파견한 이보다 높지 않다.’(요한 13,17)” - 5월 14일 레오 14세 교황 선출 후 올린 최광희 주교의 글 중에서 - 이지혜·박예슬 기자이지혜2025.07.09
교황청 종교간대화부 장관 쿠바카드 추기경, 8월 방한 제1회 유교- 그리스도교 국제 콜로키움(토론회) 참석 교황청 종교간대화부 장관 조지 제이콥 쿠바카드 추기경을 비롯한 인사들이 8월 1~7일 한국을 찾아 유교 지도자들과 두 종교의 가치와 공동선의 의미를 나누고, 오늘날 윤리 교육을 위한 지혜를 모은다.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회는 8월 4~5일 서강대학교 정하상관에서 ‘이상 사회에 대한 그리스도교와 유교의 기여를 위한 대화 : 새 하늘, 새 땅과 대동(大同)’을 주제로 제1회 유교-그리스도교 콜로키움(토론회)을 개최하고, 이 자리에 교황청 장관과 인사가 함께한다고 밝혔다. 콜로키움 첫날에는 대만 푸런 가톨릭대학교의 움베르토 브레시아니 박사와 미국 산타클라라 대학교의 안 Q. 트란 신부가 「그리스도교-유교 대화 지침서」를 공식 발표할 예정이다. 아울러 학회에서는 △성경적 및 고전적 기초 △이상 사회를 증진하는 시민으로서의 신앙인 △역사적 구현과 제도적 표현 : 이상에서 실천으로 △리더십, 권위, 공동선 △도덕적 수양과 사회적 결속 : 다원주의 사회를 위한 구체적인 교육적 시사점 △생태학, 세계적 위기, 지속 가능한 미래 : 조화, 창조, 생태적 책임 △공유된 지평과 협력적 참여를 향하여 등을 주제로 논의한다. 일주일간 방한하는 교황청 종교간대화부 장·차관은 2~3일 불교와 성균관, 서울대교구청을 잇달아 방문하고, 4~5일 학회에 참석한다. 주교회의는 “이번 콜로키움은 이상적 인간 및 사회 질서를 정립하는 데 근본적 주제를 탐구한다”며 “그리스도교의 ‘새 하늘과 새 땅’ 개념과 ‘위대한 조화’, ‘대통합’으로 번역되는 유교의 대동 이상에 초점을 맞춰 보편적 형제애, 생태적 책임 등 규범적 주제들을 함께 탐구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이준태 2026.07.22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 신약 성경이 틀을 갖추다[저는 믿나이다] (21) 신약 성경이 쓰이다 그리스도교가 전파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되는 신약 성경이 쓰였다. 귀도 레니 작 ‘성 마태오와 천사’, 유화, 1635~1640년, 바티칸 박물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로마 제국 곳곳에 전파되면서 그리스도교 신앙과 생활의 규범이 되는 책들이 쓰이기 시작했습니다. 사도들과 그들의 제자들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 그분의 지상 생활과 가르침, 수난과 죽음, 부활, 승천, 세상 마지막 날에 다시 오실 주님, 그리고 성령 강림으로 탄생한 교회, 그리스도인의 생활 등을 주제로 글을 썼습니다. 성령의 이끄심으로 이러한 글을 처음으로 쓴 이가 바로 바오로 사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50년 말에서 51년 초 그리스 코린토에서 테살로니카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시작으로 자신이 세운 여러 교회에 편지를 보냅니다. 그리고 1세기 후반에 이미 네 복음서를 비롯한 신약 성경의 경전 대부분이 헬라어로 쓰였습니다. 신약 성경 정경 가운데 가장 늦게 집필된 경전인 「베드로의 둘째 서간」도 120년께 쓰였습니다. 신약 성경이라 함은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완성하신 새로운 계약을 말합니다. 이 새 계약은 하느님께서 교회와 맺으신 약속입니다. 신약 성경이 계시하는 핵심 주제어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이시다’(마태 16,16 참조)입니다. 그리고 신약 성경이 쓰인 목적도 “예수님께서 메시아시며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여러분이 믿고, 또 그렇게 믿어서 그분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요한 20,31)입니다. 이처럼 신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처음부터 하느님과 함께 계셨고, 생명과 은총·진리 등 모든 것이 그분을 통해 생겨났고,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으며,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 인간을 구원하셨다는 것을 증언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요한 1장 참조) 그래서 교회는 “성경 전체는 단 하나의 책이며, 그 하나의 책은 바로 그리스도이십니다. 왜냐하면, 성경 전체는 그리스도에 대하여 말하고 있으며,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기 때문입니다”라고 선언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34항) 신약 성경은 그리스도교 신앙의 원천입니다. 사도 시대 초대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드러난 하느님의 계시를 두 가지 방식으로 전했습니다. 하나는 ‘입으로 전승되었고’, 다른 하나는 ‘글’로 기록되었습니다. 입으로는 사도들이 그리스도의 말씀과 행적 그리고 그분과 함께한 공동생활에서 받은 것과 성령의 조언에 힘입어 배운 것을 설교와 모범과 제도로써 전달해 주었습니다. 글로는 사도들과 그 직제자들이 성령의 감도로 구원의 소식을 기록하였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76항) 우리는 이를 ‘성전’(聖傳)과 ‘성경’(聖經)이라 합니다. 교회는 성전 안에서 성경을 통해 하느님 계시를 모든 세대에 제대로 전하고 이해하며 그것을 믿고 따르게 이끕니다. 그래서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이며 ‘살아계신 말씀을 받아들이는 교회의 책’이라고 합니다. 교회는 사도 시대 때부터 성전 안에서 신·구약 성경의 단일성을 천명해왔습니다. “구약 성경과 신약 성경의 단일성은, 하느님 계획의 단일성과 그분 계시의 단일성에서 비롯된다. 구약 성경은 신약 성경을 준비하며 신약 성경은 구약 성경을 완성한다. 둘은 서로를 밝혀 주며, 둘 다 참된 하느님의 말씀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140항) 이에 교회는 하느님께서 강생하신 당신 아드님의 인격 안에서 이루신 일들의 예형을 구약의 하느님 업적에서 식별해냅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신약은 구약에 감추어져 있으며, 구약은 신약 안에서 드러난다”고 하였습니다. 신약 성경 경전 곧 정경 목록화는 2세기 중반부터 시작됩니다. 경전 목록 작업은 「70인역 성경」 곧 헬라어 구약 성경 구조를 토대로 분류되었습니다. 「70인 역 성경」은 △토라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 △예언서로 틀을 이루고 있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신약 성경은 △복음서 △사도행전 △서간 △요한 묵시록으로 구성하였습니다. 신약 성경의 뿌리는 구약의 토라(율법)와 견줄 수 있는 예수님의 네 복음서입니다. 중간에는 하느님의 구원 업적이 인간 역사 안에 실현되는 과정을 다룬 구약의 역사서, 시서와 지혜서처럼 신약에선 사도행전과 서간들이 그 몫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미래를 계시하는 구약의 예언서처럼 신약의 묵시록은 종말에 그리스도 왕과 함께 도래한 하느님 나라를 계시합니다. 교회는 ‘사도 전승’을 기준으로 2세기 말에서 3세기 초에 어느 정도 신약 성경 경전 범위를 잡습니다. 네 복음서와 사도행전, 바오로 사도의 13개 서한은 이때 경전으로 확고하게 자리매김합니다. 그러나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한과 가톨릭 서간(야고보 서간, 베드로의 첫째·둘째 서간, 요한의 첫째·둘째·셋째 서간, 유다 서간)과 요한 묵시록은 지역 교회별로 다르게 평가되었습니다. 성 다마소 교황은 382년 로마 공의회에서 처음으로 신약 성경 경전 27권을 선포합니다. 네 복음서(마태오·마르코·루카·요한)와 사도행전, 바오로의 14개 서간(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포함), 가톨릭 서간 7개, 요한 묵시록이 신약 성경 경전으로 확정됐습니다. 신약 성경 경전은 397년 제3차 카르타고 공의회에서 재천명됐고, 405년 성 인노첸시오 1세 교황이 재확인했습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5.04.02

김대건 신부 후손이 일군 부안본당, 100년 기린다17일 100주년 기념미사 봉헌 1926년 이기수(가운데) 신부가 부안본당 주임으로 부임하며 찍은 단체사진. 전주교구 부안본당 제공 1800년대 박해를 피해 숨어든 교우촌에서 시작된 부안 천주교의 역사가 한 세기를 넘어 오늘에 이르렀다. 전주교구 부안본당(주임 김정훈 신부) 설립 100주년 기념미사가 17일 오전 10시 30분 교구장 김선태 주교 주례로 봉헌된다. 부안 지역 천주교의 최초 기록은 1847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해를 피해 충청도에서 건너온 신자들이 변산 일대에 교우촌을 이뤘고, 최양업 신부와 김대건 신부 일가친척의 만남이 공식적인 출발점이 됐다. 이후 불무동·납티·만석동 등 13개 공소가 부안 각지에 형성됐다. 본당 설립의 핵심 인물은 김대건 신부의 후손 김양배(요한) 회장이다. 그는 하서면 등룡리 갈대밭 2만 4000평을 매입해 교우촌을 개척했고, 1918년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 주례로 등용리공소 경당이 봉헌됐다. 이후 드망즈 주교는 1926년 5월 30일 이기수 신부를 초대 주임으로 임명하고, 공소를 본당으로 승격시켰다. 당시 신자 수 500여 명이었다. 1963년 제8대 주임 지정환 신부 송별행사 후 성당 앞에서 본당 신자들이 단체 사진을 찍고 있다. 전주교구 부안본당 제공 본당은 1935년 부안읍으로 이전하며 지역 중심 본당으로 자리 잡았다. 이 시기 4년제 초등학교를 운영하는 등 교육활동에도 힘썼다. 1950년대 들어 신자들은 새 성당 건립이라는 과제를 스스로 떠안았다. 가톨릭 구제회 지원을 받으면서도 각 공소 신자들이 날짜를 정해 성당에 나와 직접 모래와 자갈을 씻고 블록을 찍는 등 노동 봉사로 공사를 이어갔다. 1961년 130평 규모의 성당이 완공됐고, 1963년 현재의 위치(성당길 10)로 이전해 새 성당 봉헌식을 거행했다. 1960년대에는 간척사업을 통해 농지를 마련하고 청호·신복·마포 공소를 신설하는 등 교세가 크게 확장됐다. 1980~1990년대에는 매년 100명 이상 영세자를 배출하는 등 전교 활동이 활기를 띠었다. 신자 수는 1999년 2663명으로 정점을 찍었다. 그러나 이농과 고령화 여파로 2025년 현재 1090명으로 줄었다. 부안본당은 100주년을 맞아 본당 100년사 발간, 사제관과 수녀원 리모델링, 성당 보수 등 시설 정비를 마쳤다. 또 100주년 기도문을 함께 바치며 신자 재교육 특강, 성지순례, 성경쓰기와 성경통독, 묵주기도 봉헌 등도 전개했다. 지난해에는 본당 신학생을 배출하며 새로운 성소의 희망을 밝혔다. 설립 이후 역대 26명의 주임 신부가 사목했으며, 현재는 창북·돈지 공소를 관할하고 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박민규2026.05.13
![[덕원의 순교자들] <1>총론 '덕원의 순교자들' 기획에 들어가며](//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4194_1.2_titleImage_1.jpg)
[덕원의 순교자들] 총론 '덕원의 순교자들' 기획에 들어가며복녘에 복음 전파하고 주님 증거하다 스러진 20세기 순교자들 2009년 12월 28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성당에선 한국천주교회사에 기록될 의미 있는 시복재판이 열렸다.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와 동료 순교자들' 38위의 시복시성을 위해 구성된 이 예비심사 법정은 20세기 한국 천주교회 순교자들에 대한 첫 시복재판이란 점에서 교회 안팎으로 주목받았다. 시복 예비심사는 순조롭게 진행돼 16차례 회기를 마친 다음 그 기록을 정리해 이탈리아어로 번역, 교황청 시성성에 제출했고 얼마 되지 않아 시성성으로부터 시복 재판에 '장애 없음'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이 재판에 대한 교회 구성원과 세간의 관심은 점차 사그라졌다. 지난해 시성성을 방문한 이형우 아빠스를 비롯한 시복재판 관계자들은 시성성 장관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에게서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한국과 독일 교회 신자들이 이분들을 얼마나 알고 있으며 현양하고 있습니까? 이분들이 하루 빨리 성인반열에 오르기를 바란다면 신자들에게 이들을 알리고 기도하게 하십시오"라는 강력한 권고를 받았다. 시성성 장관의 우려처럼 솔직히 한국 교회 신자들은 이분들에 대해 아는 게 별로 없다. 이에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과 평화신문은 시성성 장관의 바람대로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와 동료 순교자들' 38위를 널리 알리고 이들의 현양 운동을 교회 안에 확산하기 위해 특별 기획 '덕원 순교자들'을 연재하기로 했다. "작업은 갈수록 혹독해졌고 처우는 갈수록 잔인해졌으며 굶주림은 갈수록 고통스러워졌습니다. 우리는 침묵하고 참고 기도하고 하늘에 부르짖었습니다. 용기가 꺾였습니다. 정신력도 붕괴되고 들판의 돌무덤 위에 아무 데나 앉아 어린애처럼 울었습니다. 공산주의자들에게 총살당한다면 오히려 복일 것입니다. 1951년 9월1일 에우세비오 수사가 영양실조로 선종했습니다. 우리는 감시병들이 그를 마지막까지 들볶고 게으름뱅이라 욕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들은 에우세비오 수사의 죽음까지 비웃었습니다" (옥사덕 수용소 증언록 중에서)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 전경. 덕원수도원은 카예타노 피어하우스 신부와 레오폴드 다베르나스 신부가 설계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수도원은 길이 57m, 너비 19m, 종탑 높이 34m였다. ▨덕원의 순교자들 덕원의 순교자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 정치 사회적 혼란, 그리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그리스도인 특히 성직자와 수도자란 이유 하나만으로 무신론자인 공산당원들에 의해 무참히 순교한 이들이다. 북녘땅에서 복음을 전파하고 주님을 증거하던 사제와 수도자들이 6ㆍ25 전쟁을 전후해(1949~1952) 공산주의자들 손에 적잖이 희생됐다. 이 가운데는 성 베네딕도회 덕원수도원ㆍ연길수도원ㆍ원산수녀원 소속 수도자들과 함흥대목구ㆍ연길대목구 소속 사제 38명도 포함돼 있다. 덕원의 순교자 중 이번에 선정된 '하느님의 종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김치호 베네딕도와 동료 순교자들' 38위 가운데는 한국인 사제와 수도자, 평신도가 13명이고, 독일인 사제와 수도자가 25명이다. 교계 직분으로 좀 더 세분하면 주교 1명, 성직수사 13명, 덕원ㆍ함흥교구 사제 4명, 평수사 13명, 수녀 3명, 평신도 1명으로 구성돼 있고 연길교구 사제 2명도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25명은 독일 7개 교구 출신 수도자들이다. 또 이들 38위 순교자 중 23명은 평양인민교화소와 자강도 만포 관문리수용소 등지에서 총살 등으로 살해됐고, 13명은 옥사덕 수용소에서 영양실조 등으로 굶어 죽었다. 그리고 한윤승(필립보)ㆍ신윤철(베드로)신부는 해주인민재판장에서 사형선고를 받고 근처 바닷가에서 생매장됐다. 주요 인물로는 초대 원산교구장이며 덕원 수도원장이었던 신상원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 아빠스와 덕원 수도원 출신 첫 한국인 사제인 김치호 베네딕도 신부, 그리고 고 구상 시인의 형인 구대준 가브리엘 신부 등이 있다. 또 루치우스 로트 덕원수도원장 신부는 교황 비오 12세가 독일 주재 교황대사로 있을 때 대사 비서로 일했고, 아르눌프 슐라이허 신부는 한국어 신약성경을 번역 출간해 성경 보급에 앞장섰다. 백작 가문의 카누트 다베르나스 신부는 '두메 본당 신부'로 희생적 삶을 산 수도자였다. 또 김종수(베르나르도) 신부는 한국인 첫 수련장 수사였고, 성 남종삼(요한)의 후손인 부산 출신 김동철(마르코) 신부는 월남해 목숨을 구할 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마지막까지 자기 본당을 버리지 않고 신자들과 함께 있다가 체포돼 순교했다.<표 참조> ▨ 순교 자료들 덕원의 순교자들 삶과 수난사는 처음부터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독일인 수도자들이 교화소에 갇혔을 때 수도원에서 쫓겨난 몇몇 한국인 수도자는 담장 안의 형제와 비밀 쪽지를 주고받았다. 이들 한국인 수도자들의 담대한 용기가 없었던들 많은 순교 행적이 영영 땅속에 묻힐 뻔했다. 또한 옥사덕수용소에서 함께 수감생활을 하다 기적적으로 생환한 수도자들의 증언도 그들의 순교 사실을 알리는 결정적 증거가 됐다. ▨ 시복 청원 배경 성 베네딕도회 상트 오틸리아 연합회 한국 진출 100주년을 두 해 앞둔 2007년 5월 10일,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은 '덕원의 순교자들' 38위에 대한 시복시성 추진 교령을 반포했다. 여기에는 2007년 2월에 열린 오틸리아 연합회 평의회 권고와 같은 해 봄에 열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 총회의 격려가 큰 힘이 됐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우리 시대 최근 연도까지 신앙에 대한 배척 때문에 피 흘린 모든 이를 미래에도 기억하자"고 호소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뜻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일이기도 했다. ▨ 시복 청원 의미 20세기 순교자로서 '덕원의 순교자들'이 지니는 각별한 의미는 이들이 우리 역사의 한복판에서 우리 민족과 운명을 함께 나누었다는 데 있다. '덕원의 순교자들'은 일제 강점기와 해방 후의 정치·사회적 혼란, 그리고 한국전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민족의 절망과 아픔을 고스란히 몸으로 겪은 분들이다. 따라서 이들의 삶과 죽음은 그 자체로 이미 한국 현대사의 일부이며, 그들의 순교 사건은 한민족의 비극과 별개가 아니다. '덕원의 순교자들'이 우리 현대사에 끼친 영향력을 생각할 때, 이들의 순교 행적은 교회 안에서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이가 가슴에 품고 공경할 만하다. 리길재기자 teotokos@pbc.co.kr조은일2013.05.21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10) 다윗이 체험한 하느님 하느님께 대한 다윗의 믿음판관시대가 끝나고 사울이 왕이 되면서 이스라엘에 왕정시대가 시작됐다. 사울에 이어 왕이 된 다윗은 왕정시대 토대를 갖추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교황청립 그레고리오대 학장을 지낸 이탈리아 카를로 마리아 마르티니 추기경은 저서 「예루살렘의 밤의 대화-추기경, 청춘의 물음에 답하다」에서 마음이 불안할 때면 다윗왕을 생각한다고 말했다. 마르티니 추기경이 다윗왕에게 끌리는 이유는 그가 성공한 훌륭한 왕이어서가 아니라 온갖 시련과 비방을 겪으면서도 용기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성경에 나온 다윗왕 이야기 중에서 △왕자 요나탄과 우정 △좋은 아버지와 못된 아들 △하느님께 대한 신뢰 △저주를 받아들이고 용서하는 다윗 △하느님을 생각하는 마음에 대해 살펴보겠다. 첫째, 왕자 요나탄과 다윗 이야기는 우리가 잘 아는 '거지와 왕자' 이야기를 떠올리게 한다. 왕자 요나탄은 다윗이 왕궁에 입궐하자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게 됐다. "요나탄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여 그와 계약을 맺었다. 요나탄은 자기가 입고 있던 겉옷을 벗어 다윗에게 주고, 군복과 심지어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도 주었다. 다윗은 사울이 보내는 곳마다 출전하여 승리하였다. 그래서 사울은 그에게 군인들을 통솔하는 직책을 맡겼다. 그 일이 온 백성은 물론 사울의 신하들이 보기에도 좋았다"(1사무 18,3-5). 요나탄은 다윗을 좋게 보았지만 사울은 다윗을 시기, 질투하며 심지어 다윗을 죽이려고까지 했다. 그때마다 요나탄은 다윗을 구해줬다. 훗날 사울과 요나탄이 전쟁터에서 전사하자 다윗은 임금이 됐다. 다윗은 요나탄의 아들 므비보셋을 끝까지 보살펴주며 사울이 남긴 모든 땅과 종을 므비보셋에게 되돌려줬다. 둘째, 성경에는 좋은 아버지와 못난 아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가장 친숙한 이야기는 탕자의 비유다. 구약에서도 이와 비슷한 예가 바로 다윗과 그의 아들 압살롬이다. 예수께서 말한 탕자의 비유는 사실 비유가 아니라 다윗과 압살롬처럼 실재하는 이야기다. 다윗의 아들 압살롬은 반란을 일으켜 아버지 다윗을 죽이고 왕권을 차지하려고 한다(2사무 15). 때문에 아버지의 군대와 아들의 군대가 서로 칼을 겨누며 전쟁을 해야 했다. 다윗은 자신을 배반한 아들을 끝까지 사랑했다. 전투에 나선 부대장들에게 "나를 보아서 저 어린 압살롬을 너그럽게 다루어 주시오"하고 부탁할 정도였다. 하지만 결국 압살롬은 전투에서 죽고,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전쟁의 승리보다 아들을 잃은 슬픔에 통곡했다. "임금은 부르르 떨며 성문 위 누각으로 올라가 울었다. 그는 올라가면서 '내 아들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 압살롬아, 너 대신 차라리 내가 죽을 것을. 압살롬아, 내 아들아, 내 아들아!' 하였다"(2사무 19,1). 다윗은 탕자를 아무 탓 없이 맞이한 아버지처럼 아들을 사랑한 좋은 아버지였다. 셋째, 하느님께 대한 다윗의 철저한 믿음이다. 돌멩이 다섯 개를 든 다윗과 철갑옷과 칼로 무장한 골리앗 이야기는 상대가 되지 않는 싸움을 말할 때 많이 인용된다. 이런 싸움에서 다윗은 하느님께 대한 믿음으로 조금도 두려움이 없이 골리앗과 맞붙었다. 다윗은 또 자신을 죽이려 했던 사울왕을 여러 번 살려줬다. 그는 사울왕이 하느님께 기름부음을 받은 사람이기에 자신의 손으로 처단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하느님께서 세운 왕에 대한 존중이다. 다윗은 또 하느님께 죄를 지었을 때 삼년 동안 기근이 들게 하는 벌, 전쟁이 나서 적들의 칼을 피해 도망다니는 벌, 온 나라에 흑사병이 퍼져 백성을 파멸시키는 벌 중에서 한 가지를 선택해야 했다. 이 때 다윗은 "괴롭기 그지없구려. 그러나 주님의 자비는 크시니, 사람 손에 당하는 것보다 주님 손에 당하는 것이 낫겠소"(2사무 24,14)하며 흑사병을 택했다. 계약의 궤를 옮기는 과정에서 다윗은 흥에 겨워 벌거벗고 춤을 췄다. 이를 보고 사울의 딸 미칼은 다윗을 비웃었다. 하지만 다윗은 미칼에게 자신은 하느님 앞에서 체신을 따지지 않으며 이보다도 더 천하게 자신을 낮출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하느님 앞에서 얼마든지 자신을 낮추고 망가질 수 있던 다윗이었다. 하느님께 대한 다윗의 믿음은 자기 부하 아내를 범하고 나탄 예언자 앞에서 죄를 고백하는 부분에서도 엿볼 수 있다. 한 나라 왕으로서 최고 권력을 가진 그는 자기 죄를 은폐할 수 있었지만 용기를 내 하느님께 고백했다. 왕이 자기 죄를 인정하고 고백하는 일은 정말 대단한 일이다. 넷째, 다윗은 자신을 저주하는 친척 시므이를 넓은 마음으로 다 받아들였다. 그리고 나중에 용서를 청하는 시므이에게 해치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다섯째, 다윗은 하느님의 계약의 궤가 시온산 천막에 머무르고 있는 사실을 늘 안타까워하며 하느님께 송구스러워했다. 그리고 예언자 나탄에게 하느님 성전을 지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하느님을 생각하는 다윗의 마음을 보면 우리는 과연 하느님을 위해 무엇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지 돌아보게 된다. 하느님은 다윗의 갸륵한 마음에 "내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판관을 임명하던 때부터 해온 것처럼 너에게 한 집안을 일으켜 주리라고 선언한다. 너의 날수가 다 차서 조상들과 함께 잠들게 될 때, 네 몸에서 나와 네 뒤를 이을 후손을 내가 일으켜 세우고 그의 나라를 튼튼하게 하겠다. …너의 집안과 나라가 네 앞에서 영원히 굳건해지고 네 왕좌가 영원히 튼튼하게 될 것이다"(2사무 7,11-16)하고 약속하셨다. 정리=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조규만 주교의 하느님 이야기'는 평화방송 라디오(FM 105.3㎒)에서 매 주일 오후 6시 5분에 방송되며, 평화방송TV에서는 매주 화요일 오전 8시(본방송), 수요일 새벽 4시와 저녁 9시, 금요일 오후 4시, 주일 오후 6시에 재방송된다. 인터넷 다시 보기 www.pbc.co. kr조은일2011.08.09

시작 예식 (04)[월간 꿈 CUM] 전례 _ 미사 해설 (09) 파올로 베로네세, 카나의 혼인 잔치, 1563년, 캔버스에 유채, 666x990cm, 루브르 박물관, 파리, 프랑스 성수예식 (聖水 禮式) 성수예식(Asperges)이란 주일미사의 시작 예식에서 사제 자신은 물론 신자들과 봉사자들에게 성수를 뿌리는 예식이다. 때로는 정화와 하느님의 축복을 청할 목적으로 한 사람이나 많은 사람, 또는 물건과 건물 등에 성수를 뿌리는 예식을 뜻하기도 한다. 준성사(準聖事, Sacramentalia)인 이 예식은 축성이나 강복을 하는 예식 속에 포함되어 거행되고 있다. (1) 의미 성수예식은 전례에서 통상 사람이나 물건의 정화와 축복의 표지로 성수를 뿌리는 행위를 뜻한다. 그러므로 모든 성수예식은 기본적으로 정화와 축복이라는 이중적인 효과를 지닌다. 그러나 성수예식 가운데 가장 기본적으로 중요한 것은 세례이다. 부활성야 때 성수를 뿌리고, 병자성사나 장례예식 거행에서도 성수예식으로써 세례를 기억하게 한다. 그러므로 성수예식은 세례의 기억, 그리스도가 구원을 위하여 흘린 피의 기억, 모든 허물과 죄로부터의 정화 등의 의미를 갖는다. (2) 예식 거행 성수예식은 물 축복과 성수 뿌림 그리고 마침 기도로 구성된다. 물 축복 후 주례 사제는 자신과 봉사자들과 신자들에게 성수를 뿌린다. 사제가 성수를 뿌릴 때 신자들은 고개를 숙여 십자성호를 긋고, 예식에 맞는 성가 곧 세례의 기원과 효과를 암시하는 내용의 노래를 부른다. 이 예식은 참회를 대신하는 시작 예식의 한 부분이므로 참회 예식은 자동적으로 생략되며, 이어서 대영광송 또는 본기도로 미사는 계속된다. 자비송 (Kyrie) : 자비를 구하는 기도 (1) 의미 자비송은 우리 미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께 대한 고백이며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기 때문이다”(마태 18,20)라고 한 그리스도의 약속에 대한 공동체의 대답이다. 또한 자비송은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는 그리스도께 향한 외침이다.(마르 10,46-52 참조) 결론적으로 자비송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라는 고백이다. (2) 성경적 근거 ①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필리 2,11) ② “다윗의 자손이시여,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마르 10,48) (3) 실천 자비송은 우리의 가련함을 불쌍히 여기시는 그리스도께 대한 찬미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깊은 수렁에 빠져있음을 느끼고 주님의 자비를 청해야 한다.(마르 10,46-52 참조) 제3양식으로 참회예식을 하였을 때에는 자비송을 바치지 않는다. 대영광송 (Glory to God) (1) 의미 대영광송은 사순시기와 대림시기 이외의 모든 주일, 대축일과 축일, 그리고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거행 때(서품식, 서원식, 성당 봉헌식, 세례식 등) 부르는 하느님 찬미의 노래이다. ‘영광’이라는 말은 본래 하느님 자신을 뜻하는 말이었다. 따라서 그분이 드러나시는 것은 곧 그분의 영광이 드러나는 것이 된다.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 또는 기도, 찬사를 ‘영광송’이라고 부르며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로 시작하는 기도를 소영광송이라 하고 “하늘 높은 곳에는…”으로 시작하는 기도는 대영광송이라 한다. 대영광송은 교회가 성령과 함께 성부, 성자께 영광을 드리는 대표적 찬미가이다. 이는 하나의 신앙고백인 동시에 감사의 노래이기도 하다. (2) 구분 대영광송은 세 부분으로 나눌 수 있다. 첫째 부분은 천사의 노래이다.(루카 2,14) 둘째 부분은 “주 하느님…”으로부터 “주님 영광 크시오니 감사하나이다”까지로 성부께 대한 환호이다. 셋째 부분은 “주 하느님 성부의 아드님… 아멘”으로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찬양과 간청의 노래이다. (3) 성경적 근거 ① 루카 2,14 :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② 1코린 2,8 : 영광의 주님 ③ 요한 1,14 : 말씀이 사람이 되시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분의 영광을 보았다. ④ 요한 2,11 :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4) 실천 초대 교회 때부터 내려오는 가장 오래된 성가인 대영광송은 신앙에서 우러나오는 신앙의 외침이며 찬미의 기도이다. 대영광송은 우리의 기초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의미도 들어있기 때문에 ‘확신’을 가지고 외쳐야 한다. 또, 주님을 주님으로 받들어 모실 때 그분에게 영광이 된다. 그러므로 하느님께 크게 영광을 드리는 대영광송은 하느님의 전지전능을 그대로 인정하고 높이 받든다는 뜻이다. 따리서 대영광송을 바치는 것은 미사 때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에서도 나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이 드러나도록 해야 한다. 본기도 (Opening Prayer) (1) 의미 미사 중 공동체의 대표인 사제가 공동체와 함께 바치는 공적인 기도로 첫 번째 것이자 시작예식을 마무리하는 기도이다. 사제는 “기도합시다”라는 말로 공동체를 기도에 초대한 후 잠시 침묵 중에 세례를 통하여 공동체 구성원 모두에게 부여된 보편 사제직의 수행을 충실하게 실천하고자 전체 공동체의 마음과 정신이 한데 모아질 수 있도록 시간을 가진다. 그리고 이어서 교회에서 공식으로 바쳐오던 내용대로 함께 기도한다. (2) 기도 내용 하느님의 신비에 대한 찬양과 공동체의 염원으로 되어 있다. (3) 팔을 벌린 자세 사제는 서서 두 팔을 펴고 옛 이스라엘인들이 취했던 자세로 본기도를 바친다. 옛날에는 기도할 때 항상 동쪽 방향을 향해서 이 기도를 바쳤다. 동쪽은 해가 뜨는 곳이다. 동쪽을 향해 기도를 바치는 것은 빛으로 이 세상에 오신 참 태양이신 그리스도를 향해 바치는 것이다. (4) 실천 본기도 끝에 “아멘”이라고 응답하는데, 이것은 사제가 드린 기도가 우리 모두의 것임을 인정한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 중에 우리가 하느님 앞에 서 있음을 의식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참여하자. 이 본기도로 시작 예식이 끝나고 이제, 말씀 전례가 이어진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 cpbc2026.09.16

회칙 「찬미받으소서」 (Laudato Si’) 제2장 창조의 복음 : Ⅳ 창조의 조화 안에서 모든 피조물이 전하는 메시지[월간 꿈CUM] 꿈CUM 환 개가 맡을 수 있지만 우리는 맡을 수 없는 냄새가 있습니다. 또 개는 들을 수 있지만 우리는 들을 수 없는 소리가 있습니다. 박쥐는 보지만 우리가 보지 못하는 파장대의 빛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개가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우리가 생각할 수 있고, 새가 도달하지 못하는 인식에 우리는 도달할 수 있습니다. 새는 노래로 주님을 찬미하지만, 우리는 말과 마음과 영으로 주님을 찬미합니다. 모든 피조물은 각각 그에 따른 기능이 있습니다. 모두가 필요합니다. 물질세계 전체는 하느님의 사랑, 곧 우리에 대한 무한한 자애를 나타냅니다. 흙과 물과 산, 이 모든 것으로 하느님께서 우리를 어루만지십니다. 성경에 담겨 있는 고유한 계시와 더불어, 작렬하는 태양과 드리워진 어둠 안에도 하느님께서 드러내시는 것이 있습니다.(85항) 이와 관련해 교황님은 2003년 캐나다 주교회의 사목교서를 인용하십니다. “가장 뛰어난 장관에서부터 가장 작은 생명체에 이르기까지 자연은 경탄과 경의의 끊임없는 원천입니다. 이는 또한 하느님의 끊임없는 계시입니다.”(84항) 요한 바오로 2세 성인께서 말씀하신 것과 같이 “믿는 이들에게 피조물에 대한 관상은 메시지를 듣고 역설적인 무언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는 것입니다.” 이러한 계시에 귀를 기울이면 인간은 다른 피조물과 이루는 관계 안에서 자신을 깨닫는 법을 배우게 됩니다. “나는 세상을 표현하면서 나 자신을 표현합니다. 나는 세상의 거룩함을 헤아려 보면서 나 자신의 거룩함을 살펴봅니다.”(85항) 온 세상의 모든 것은 그 상호 보완성을 통하여 하느님의 무궁무진한 풍요로움을 나타냅니다. 세상은 이처럼 하느님께서 계신 곳이며, 우리를 찬미로 초대합니다. 우리가 존재하는 모든 것이 하느님을 반영하고 있음을 깨닫게 되면 모든 피조물에 대하여 주님께 찬미를 드리고 피조물과 함께 주님을 흠숭하려는 마음을 품게 됩니다.(87항) 또한, 자연 전체는 하느님을 드러내 보일뿐 아니라 하느님 현존의 자리입니다. “모든 피조물 안에는 생명을 주시는 성령께서 살아 계시며 우리가 하느님과 관계를 맺도록 초대하십니다.”(88항) 사랑과 선함, 아름다움이 드러나지 않는, 파괴된 자연에 하느님이 현존하신다고 생각해 보십시오. 자연이 무너지면, 하느님은 당신이 사랑으로 창조하신 자연이 망가진 그 비참한 자리에서 현존하실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만약 자연을 파괴한다면 하느님 현존의 자리를 파괴하는 것입니다. 글 _ 이용훈 주교 (마티아, 천주교 수원교구장) 1979년 3월 가톨릭대학교를 졸업하고 사제품을 받았다. 1988년 로마 라테라노 대학교 성 알폰소 대학원에서 윤리신학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2003년 주교로 서품되었다. 저서로는 「그리스도교와 자본주의」, 「삶에 대한 이야기」 등이 있다cpbc2026.11.02
![[정순택 대주교의 생활속의 복음] 모든 성인 대축일, 우리 미래의 희망](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10/28/EZK1793152879205.jpg)
[정순택 대주교의 생활속의 복음] 모든 성인 대축일, 우리 미래의 희망모든 성인 대축일 마태 5,1-12 프라 안젤리코 작 ‘그리스도의 승리를 따르는 성인들’, 1423~1424년경. 교회는 11월 ‘위령 성월’에 돌아가신 모든 연령들을 위해 기도 바치며, 그 첫날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시작합니다. ‘위령 성월’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시작한다는 점과 그다음 날이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라는 점은 의미심장하게 다가옵니다. 두 날의 전례력상 기원은 서로 다르지만, 11월 위령성월에 그 시작을 연이어 기념하는 데에는 어떤 섭리적 혹은 신학적 의미가 담겨 있을 것 같습니다. 교회는 하늘에 계신 복된 성인들의 ‘천상 교회’와 지상에서 순례자로 있는 우리들의 ‘지상 교회’, 그리고 ‘(연옥에서) 남은 정화 과정을 거치고 있는 돌아가신 분들’ 모두가 일치하여 ‘하나의 교회’를 이룬다고 믿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 962항 참조) 우리보다 세상을 먼저 떠나신 분들의 존재가 죽음으로 끝난 것은 아니며, 아직 정화가 필요한 분들은 연옥에서 정화 과정을 거치고 있고, ‘천상에 있는 사람들은 더욱 밀접하게 그리스도와 결합되어 있기 때문에 그들은 전(全) 교회의 성덕을 더욱 견고케 하며, 끊임없이 성부께 전구하며, 하느님과 사람들 사이의 유일한 중재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지상에서 쌓은 공로를 보여주고 계시다’고 우리는 믿습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956항 참조) 위령 성월 첫날을 ‘모든 성인 대축일’로 기념함은, 우리도 죽은 이후에 거룩한 성인들의 무리에 들어 그분들과 함께할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북돋워 줍니다. 사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초대 교회에서 ‘그리스도인들’을 부르는 호칭 중에 ‘성도들’(거룩한 이들)이라는 호칭을 성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1코린 6,2; 2코린13,12; 필리 4,22 등) 그렇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을 따라 살아가려고 애쓰는 그리스도인은 거룩한 성도들입니다. ‘거룩함’이란 무엇보다 ‘하느님의 특성’이며, 우리 편에서는 ‘하느님께 속하고, 하느님의 은총으로 그리스도를 닮아 가며, 사랑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거룩한 성도들’로서, 세상의 기준에 휩쓸리는 사람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기준대로 살아가려고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기준을 거슬러, 눈에 보이는 가치, 물질적인 가치를 훨씬 넘어 ‘영원한 가치’를 믿고, 그 가치를 추구하고 찾아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길이 오늘 복음에 나와 있습니다.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마태 5,3–12) 세상은 더 높은 자리를 서로 탐하고, 상대를 억누르려 하지만,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가난과 온유와 자비와 의로움과 평화 등 예수님께서 말씀해 주시는 그 안에 ‘참된 행복’, ‘영원한 생명’의 길이 있음을 우리는 믿습니다! cpbc2026.10.28

인공지능 활용의 기준은 ‘인간 존엄’수도자 생명문화 심포지엄… 생명교육·돌봄·선교 적용 방안 논의 일 서울 살레시오수도회 본관에서 열린 수도자를 위한 생명문화 심포지엄에서 발표자들이 참석자 질문에 대답하고 있다. 인공지능(AI) 시대에 인간 존엄성과 생명의 가치를 지키면서 과학 기술을 이웃 돌봄과 복음 선포에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는 자리가 마련됐다. 한국 남자수도회·사도생활단 장상협의회(회장 백남일 신부)는 9일 서울 영등포구 살레시오 수도회 본관에서 ‘AI 시대와 인간생명’을 주제로 수도자를 위한 생명문화 심포지엄을 열었다. 강당은 참석자 180여 명으로 가득 찼고, 예상보다 많은 인원이 몰려 준비한 자료집이 모자랄 정도였다. 양진홍(남장협 생명문화전문위원장) 신부는 “생명의 중요성을 알리는 교육에 더 많은 수도자가 참여할 방안을 고민하다 심포지엄을 마련했다”며 “AI를 단순히 위험한 것으로 보기보다 어떻게 잘 활용할 수 있는지 알리고자 전문가들을 초대했다”고 말했다. 심포지엄에는 박은호(서울대교구,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장)·백종호(서울대교구, 가톨릭대 생명대학원) 신부와 윤순희(프레드릭·예수의까리따스수녀회 삼위일체광주관구) 수녀가 발표자로 나섰다. 백종호 신부는 ‘AI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 발표에서 “기업들이 안전보다 개발 속도를 앞세우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고 지적했다. 근본 원인으로 인간을 기술 발전의 소모품으로 여기는 사고방식과 소수에 집중된 기술 통제권을 꼽았다. 또 “AI 개발에 필요한 데이터를 입력하는 저임금 노동자 문제와 같이 기술 이면에 가려진 이들의 희생을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백 신부는 AI 윤리와 인간 이해를 다룬 교회 문헌으로 「AI 윤리를 위한 로마의 호소」(교황청 생명학술원, 2020), 「옛것과 새것」(교황청 신앙교리부·문화교육부, 2025), 「인류여, 어디로 가는가?」(교황청 국제신학위원회, 2026), 「고귀한 인류」(레오 14세 교황, 2026)를 소개했다. 박은호 신부는 “혁신을 멈추기보다 기술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을 제대로 인식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기술로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려는 ‘트랜스휴머니즘’에 대해서는 “질병을 없애고 더 오래 잘 사는 것이 우리가 바라는 초월이 맞느냐”고 되물었다. 이어 “질병과 고통을 줄이는 과학의 혜택은 받아들이되, 생존과 능력 향상을 향한 욕망을 신앙이 지향하는 영원한 생명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윤순희 수녀는 미래 사도직의 방향을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와 성 카를로 아쿠티스의 삶과 영성에서 찾았다. 또 수도회 차원에서 AI 선교팀 구성을 제안하며 “청소년 사목과 노인 돌봄, 선교와 성경 공부에 AI 기술을 활용하고 새로운 선교문화를 일궈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백남일 신부는 축사에서 “생명문화를 만들어가야 할 사명을 지닌 우리 수도자들이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을 단순히 두려워하거나 거부하는 데 머무르지 않아야 한다”면서 “그 안에 담긴 가능성과 위험을 올바로 식별하며 인간의 존엄과 생명의 가치를 지켜나가는 지혜를 함께 찾아갈 수 있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박수정2026.10.14

식목일/ 나무와 숲이 갖는 의미와 중요성숲, 우리 생명의 보호막 5일은 식목일이다. 식목일은 1949년 국가공휴일로 지정된 뒤 공휴일과 비공휴일을 오가다 2006년 비공휴일이 됐다. 하지만 지구 온난화 등으로 지구촌 환경문제에 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나무와 숲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다. 유엔사막화방지협약 자료에 의하면 관개와 산림벌채, 환경오염 등으로 지구상에서 매년 600만㏊(여의도의 7185배)의 숲과 토지가 사막화되고 있다. 환경 전문가들은 "숲이 사라지면 지표 반사율이 증가하고, 냉각화돼 강우량이 줄어 사막화는 더 빠른 속도로 진행된다"며 "점차 산소가 부족해져 야생동물이 멸종 위기에 이르고 물 부족현상으로 작물재배가 불가능해 극심한 식량난에 빠진다"고 우려한다. 산불도 숲을 사라지게 하는 원인 가운데 하나다. 담배꽁초나 불장난 등으로 산에 불을 내는 행위는 단 몇 분 만에 몇십 년 자란 나무를 잿더미로 만들어 버린다. 황창연(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신부는 환경에세이 「북극곰 어디 가야 하나」에서 "산불이 일어나면 나무와 산에 사는 동물이 죽을 뿐 아니라 사람 병을 고치는 약초까지도 없애버린다. 산림 파괴는 인간 삶의 파괴로 이어지는 연결 고리"라고 말했다. 숲이 주는 혜택은 어마어마하다. 숲 1㏊(3025평)는 300명에게 산소를 공급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산림 면적이 630만㏊이므로, 19억 명이 마실 수 있는 산소를 내뿜는 셈이다. 숲은 또한 경제발전의 원동력이다. 홍수ㆍ가뭄을 조절하고 풍년을 안겨준다. 우리나라 국민이 1년에 쓰는 물의 양이 320억 톤인데, 우리나라 산에 저장된 물의 양이 180억 톤이다. 따라서 숲이 없으면 물을 구하기 어려워지고, 물이 없으면 풍요로운 삶을 기대할 수 없다. 성경에 따르면, 사막의 땅 중동 레바논도 2000년 전 솔로몬 시대에는 숲이 울창한 지역이었다. "또 레바논에서 나는 향백나무와 방백나무와 자단나무도 보내 주십시오. 나는 임금님의 종들이 레바논에서 나무를 잘 벤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2역대 2,7). "…임금은 이 방패들을 '레바논 수풀 궁'에 두었다"(2역대 9,16). 울창한 숲도 자연환경이 변하고 관리를 소홀히 하면 언제든지 사막으로 변할 수 있다는 얘기다. 필리핀 주교회의는 1988년 사목교서를 통해 "원래 30만㏊였던 원시림이 겨우 1만㏊만 남아 있다. 이 숲에 살던 몇몇 아름다운 동물들은 어디로 갔는가?"하고 우려한 바 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2010년 세계 평화의 날 담화에서 "평화를 이루려면 피조물을 보호하십시오. 모든 사람이 하느님과 인간과 피조물 전체의 불가분의 관계를 깨달으면 선의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평화는 더욱 쉽게 이뤄질 것입니다"라고 강조했다. 나무를 아끼고 사랑하는 것은 결국 하느님 창조질서 보전을 위한 길이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조은일2013.04.02
![[출판]뒤통수가 멋진 사람 - 겸손 사랑 일치 따라가면 그 끝엔 주님 평화가](//cpbc.co.kr/CMS/newspaper/2013/03/rc/444989_1.1_titleImage_1.jpg)
[출판]뒤통수가 멋진 사람 - 겸손 사랑 일치 따라가면 그 끝엔 주님 평화가대전 가톨릭대 총장 곽승룡 신부, 소통 치유에 이르는 여섯 가지 원리 제시 뒤통수가 멋진 사람 곽승룡 지음 /마음나무/1만 2000원우리 시대 화두인 '소통'과 '힐링'으로 가는 길을 그리스도의 마음과 행동, 생각에서 찾아냈다. 저자 곽승룡(대전가톨릭대 총장) 신부는 그리스도 마음인 '겸손과 섬김', 그리스도 행동인 '헌신과 사랑', 그리스도 생각인 '균형과 일치'를 힐링과 소통으로 가기 위한 여섯 가지 원리로 제시한다. 성경 속 인물들과 사건, 성인들 이야기 등 풍부한 예화로 여섯 가지 원리를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풀어냈다. 겸손과 섬김은 소통의 열쇠가 되는 공감을 형성하게 해준다. 곽 신부는 "사람을 움직이는 겸손은 마음속 문고리와 같아서 진심을 느낄 때, 마음의 문은 안쪽에서 스스로 열려 소통을 넘어 힐링으로 나간다"고 했다. 이와 함께 섬기는 리더십의 모범으로 예수님을 꼽으며 예수님과 참 만남을 통해 섬김의 삶을 살 것을 당부했다. 헌신과 사랑은 '뒤통수가 멋진 사람'이 되는 지름길이다. 몰로카이섬에서 한센인들을 돌본 성 다미안 신부와 아프리카 수단에서 하느님을 전한 이태석 신부, 백혈병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살면서도 원폭 피해자 구호활동에 앞장서고 여러 권의 책을 통해 평화를 외쳤던 일본인 의사 나가이 타카시 박사 등이 '뒤통수가 멋진 사람'으로 소개됐다. 예수님 삶을 온몸을 다해 살아간 분들이기 때문이다. 곽 신부는 "고독과 절망이 지배하는 오늘, 세상은 하느님의 마음을 아는 사람을 필요로 한다"면서 "용서하고 치유하고 돌보려는 애틋한 마음을 가진 사람, 의심하지 않고, 앙갚음하지 않고, 분노하지 않고, 증오하지 않는 마음을 가진 사람, 오직 사랑을 주고 사랑을 받고자 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필요로 한다"고 했다. 겸손과 섬김, 헌신과 사랑은 영적 균형과 일치를 이루게 해준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기 직전 아버지께 드린 마지막 기도는 일치의 청원기도였다. "그들이 모두 하나가 되게 해 주십시오. 아버지께서 제 안에 계시고 제가 아버지 안에 있듯이, 그들도 우리 안에 있게 해 주십시오"(요한 17,21). 곽 신부는 "일치는 신앙인 삶의 목표이자 중심"이라면서 일치의 원리는 '내 뜻'이 아닌 '아버지의 뜻'에 있음을 강조했다. 소통과 힐링의 길 끝엔 하느님의 평화가 있다. 곽 신부는 "주님처럼 하느님과 일치하고자 하는 사람은 스스로 어려움을 짊어지고 이겨 낼 수 있으며, 더 나아가 사람을 끌어당기는 생각과 마음, 그리고 행동을 지니게 된다"면서 "그 생각과 마음, 행동이 도착해야 하는 곳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평화"라고 했다. 그러면서 요한복음 14장 27절 말씀을 일깨웠다.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남기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준다"(요한 14,27).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3.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