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43) 예수님과 베엘제불 그리고 참행복(루카 11,14-28)](//cpbc.co.kr/CMS/newspaper/2017/12/rc/704744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43) 예수님과 베엘제불 그리고 참행복(루카 11,14-28) 그리스도 이름으로 세례 받은 우리, 참된 신자 되려면 말씀 잘 듣고 실천해야 율리우스 슈노어 폰 파롤스펠트 작 ‘마귀 들린 자들과 마주친 예수 그리스도’ 출처=「아름다운 성경」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것이 시빗거리가 되고 이는 하느님 나라와 참 행복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루카가 전하는 이 이야기와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예수님과 베엘제불(11,14-22)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시자 벙어리가 말을 합니다.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합니다. 우선 예수님의 능력에 놀라워합니다. 그러면서 마귀 두목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비난합니다.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하는 이들도 있습니다.(11,12-16)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일차적으로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하는 비난에 대한 답변으로 모아집니다. ‘어느 나라든지 서로 갈라지면 망하듯이, 사탄도 서로 갈라지면 그 나라를 지탱할 수 없게 된다. 그러니 너희들의 비난은 잘못된 것이다. 그뿐 아니라 내가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한다면, 너희들은 누구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내느냐? 그러니 너희들의 비난은 터무니없는 것이다.’(11,18-19) 그런데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당신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11,20)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의 손가락’은 구약에서 모세가 일으키는 여러 기적이 하느님의 능력에서 나오는 것임을 파라오의 요술사들이 인정함을 나타내는 탈출기 8장 15절에 나오는 표현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 표현을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것으로 전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느님 능력으로 마귀들을 쫓아내실 뿐 아니라 ‘새로운 모세’이심을 드러내려고 한 것입니다.더 주목할 것은 그다음 예수님 말씀입니다.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다.”(11,20) 예수님께서는 마귀를 쫓아내시는 당신의 활동이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음을 드러내는 표징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으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요구한 이들에게 답변을 하신 셈입니다. 그런데 계속해서 이어지는 예수님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힘센 자가 완전히 무장하고 자기 저택을 지키면 그의 재산은 안전하다. 그러나 더 힘센 자가 덤벼들어 그를 이기면, 그자는 그가 의지하던 무장을 빼앗고 저희끼리 전리품을 나눈다.”(11,21-22) 성경학자들은 이 구절에서 ‘힘센 자’를 사탄의 세력으로, ‘더 힘센 자’를 예수님으로 이해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사탄의 지배에 예속돼 있던 이들을 예수님께서 사탄을 쫓아내고 자유롭게 해 당신의 사람이 되게 하시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마치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어 말 못 하는 사람이 말을 할 수 있도록 해 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이렇게 이해할 때 “내 편에 서지 않는 자는 나를 반대하는 자고, 나와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 자는 흩어 버리는 자다”(11,23)라고 하신 예수님 말씀을 좀더 쉽게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죄의 세력 곧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다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에서 해방돼 그리스도의 사람이 된 그리스도 신자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예수님 편에 서야 하고 예수님과 함께 모아들여야 합니다. 여기서 “모아들인다”는 표현은 목자가 양들을 모아들이는 행위, 또는 추수의 일꾼들이 수확하는 행위로 이해할 수 있다고 학자들은 풀이합니다. 우리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양 우리에 모이는 양이고, 예수님의 분부에 따라 수확하는 추수의 일꾼입니다. 그런데 만일 그리스도 신자가 된 우리가 예수님과 한 편에 서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모아들이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루카 복음사가가 전하는 예수님 말씀이 이 물음에 답변이 될 것입니다. 되돌아오는 악령(11,24-26)‘더러운 영 곧 악령이 사람에게서 나가 쉴 데를 찾아 물 없는 곳을 돌아다니다 찾지 못하면 다시 나온 집으로 돌아가야지 하고 생각하는데, 그 집이 깨끗하게 청소된 것을 보면 다시 나가서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고, 그러면 그 사람의 끝이 처음보다 더 나빠진다’는 것이 예수님 말씀입니다. 이 대목만 따로 떼어놓고 보면 무슨 말씀인지 알아듣기가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바로 앞 대목과 연결시켜 봅시다. 우리는 죄의 세력, 곧 사탄의 세력에 사로잡혀 있다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의 지배에서 풀려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됐습니다. 이렇게 되니 우리 안에서 우리를 지배했던 더러운 영이 쫓겨나 쉴 데를 찾아 돌아다닐 수밖에 없지요. 그러다가 예수님의 사람이 된 우리가 예수님과 한 편이 되지 않고 예수님과 함께 일하지 않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달리 말해서 회심을 했지만 완전하게 옛 생활을 청산하지 못한 채 살아가는 모습이지요. 그러면 악령은 자기보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사람에게 들어갑니다. ‘일곱’은 충만함을 나타내는 수입니다. 더 악한 영 일곱을 데리고 그 집에 들어가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더욱 강력하게 그 사람을 죄의 세력에 사로잡히도록 한다는 것을 나타내지요.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의 처지는 당연히 처음보다 더 나빠질 수밖에 없습니다. 결국 ‘되돌아오는 악령’에 관한 예수님 말씀은 그리스도 신자가 된 우리가 깨어 있으면서 그리스도와 함께 있고 함께 살아가지 않을 때 더 나쁜 상태에 떨어질 수도 있음을 경고하는 말씀입니다. 참행복(11,27-28)예수님께서 이 말씀을 하고 계실 때 군중 속에서 한 여인이 목청을 높여 “선생님을 배었던 모태와 선생님께 젖을 먹인 가슴은 행복합니다”(11,28)고 말합니다. 이 말은 예수님을 낳고 기르신 어머니 마리아가 행복하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달리 보면, 예수님을 모시는 이, 예수님과 함께하는 이는 행복하다는 말로도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11,28)고 말씀하십니다. 단지 예수님과 함께 있는 사람이 아니라,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참으로 행복하다는 것입니다. 세례를 받았다고, 그리스도 신자라고 내세우는 것이 능사가 아니라 세례를 받은 그리스도 신자답게 하느님 말씀을 듣고 새기며 실천해야 참된 그리스도 신자라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신자로서 참으로 행복하려면 그저 신자임을 내세우기만 하지 말고 신자답게 살아야 합니다. 말씀을 듣기만 하지 말고, 잘 듣고 실천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신 것이 시빗거리가 되고 이는 하느님 나라와 참 행복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으로 이어집니다. 루카가 전하는 이 이야기와 가르침을 통해서 우리가 확인하고 배울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생각해 봅니다. 문채현2017.12.13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66)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필리 3,8)](//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5307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66)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지만…”(필리 3,8)흠 없던 바리사이, 의로운 그리스도인으로 그리스 베로이아에 세워진 바오로 사도 설교 기념터의 모자이크 벽화. 바오로 사도가 베로이아에서 설교하는 모습을 그렸다. 가톨릭평화신문 DB 바오로 사도의 신학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찾으라면 그의 ‘의로움’에 대한 생각입니다. 사도 바오로의 ‘의화(義化)’ 또는 ‘의롭게 되는 것’은 바오로 사도의 논쟁에서 가장 중요한 주제입니다. 특별히 의로움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가르침은 그의 편지들 중에 비교적 후기에 쓰인 내용 안에서 잘 드러납니다. 율법 철저히 따르던 유다인“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 열성으로 말하면 교회를 박해하던 사람이었고, 율법에 따른 의로움으로 말하면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었습니다.”(필리 3,5-6) 바오로 사도의 이 표현은 그를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사실 바오로 사도의 편지 외에 그의 인간적인 역사에 대해 알려진 것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이미 살펴보았던 것처럼 사도행전과 일부 서간에서 찾을 수 있는 내용이 전부입니다. 필리피서에서 바오로 사도는 자신을 위와 같이 표현합니다. 그는 유다민족 출신으로 바리사이였습니다. 또 그의 말처럼 자신의 신앙에 대한 열정으로 교회를, 그리스도교를 박해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는 율법에 따라 아무 흠 없는 사람이라고 말합니다. 이 표현은 그가 얼마나 충실한 유다인이었는지, 그가 얼마나 율법을 철저하게 지키며 살았던 인물이었는지 알려줍니다. 구약성경의 배경에서 유다인들에게 ‘흠잡을 데 없는 사람’이란 표현은 가장 큰 칭찬이자 가장 모범적인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태생으로나 열성으로나 충실했던 바오로 사도에게 율법은 하느님의 뜻이 담긴 것으로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었습니다. 한 마디로 그는 철저하게 율법에 따른 삶을 살았던 인물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에게 유다교를 나타낼 수 있는 가장 큰 특징은 바로 율법이었습니다. 율법은 하느님의 계명에 충실하고자 했던, 계명에 따라 바른길을 걷고자 했던 유다인들의 역사를 담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율법은 그만큼 중요했습니다. 그렇지만 바오로 사도는 율법에 대해 필리피서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나에게 이롭던 것들을,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필리 3,7) 그에게 율법은 더 이상 하느님께 이르는 유일한 길이 아닙니다. 더 나아가 율법은 오히려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준 하느님의 구원을 알아보지 못하게 합니다. 율법을 충실하게 지키는 이들의 떳떳함은 오히려 예수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믿는 것에 해가 되었습니다. 하느님 앞에 ‘의로운 사람’ 인정받다이제 바오로 사도는 구약성경의 배경에서 ‘의로움’을 이야기합니다. 의로움은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으로 인정받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미 이 말 안에는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으로부터 의롭다고 인정받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율법에서 오는 나의 의로움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으로 말미암은 의로움, 곧 믿음을 바탕으로 하느님에게서 오는 의로움을 지니고 있으려는 것입니다.”(필리 3,9) 율법과 믿음에 대한 비교는 바오로 사도가 전하고자 하는 ‘의로움’의 가장 중요한 근거입니다. 이 주제는 앞으로 보게 될 바오로 사도의 다른 편지들 안에서도 지속적으로 드러납니다. 그만큼 의로움은 바오로 사도의 신앙과 그의 신학을 요약할 수 있는 주제입니다. 구원과 믿음, 소중한 신앙의 바탕어쩌면 바오로 사도는 누구보다 율법과 율법의 의미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었기에 율법을 통해 얻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 또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에서 율법이 어떤 역할을 하는지 우리에게 자세히 알려줍니다. 그에게 율법은 조상들이 전해준 유다교 신앙의 소중한 유산이었지만, 이제 그리스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과 믿음은 그보다 훨씬 더 소중한 신앙의 바탕으로 자리합니다. 이 믿음을 통해서 구원이 오고, 이것을 통해 하느님 앞에서 의롭게 될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바오로 사도에게 선물처럼 주어진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통해 얻게 될 의로움은 하느님을 향해 가는 유일한 길입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김지항2017.09.13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32) 8세기 ① - 로마 교회와의 일치 앞장선 잉글랜드 교회](//cpbc.co.kr/CMS/newspaper/2017/07/rc/687543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32) 8세기 ① - 로마 교회와의 일치 앞장선 잉글랜드 교회 복음화된 앵글로색슨족, 보편 교회 수호자로 나서다 앵글로색슨족 역사가 존자 베다. 서방 교회는 3세기 초부터 아일랜드 켈트족 복음화를 위해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켈트족 종교 심성과 앵글로색슨족과의 적대감 때문에, 켈트족 그리스도교는 로마 교회와 일치하지 못하고 고립을 자초했습니다. 반면에, 서방 교회가 7세기 초에 앵글로색슨족 복음화를 위한 노력들은 8세기에 들어서서 잉글랜드 본토뿐 아니라, 유럽 대륙 게르만족 복음화에도 열매를 맺을 수 있었습니다.앵글로색슨족 그리스도인 영성 발전에 기여한 존자 베다앵글로색슨족 역사가였던 존자(尊子) 베다(Beda Venerabilis, 672/73~735)는 잉글랜드 교회가 서방 교회 전통과 일치하며 영성 생활을 실천할 수 있도록 기여했습니다. 잉글랜드 중부 타인(Tyne) 강 남쪽에 위치한 노섬브리아(Northumbria) 왕국 출신인 베다는 이미 7세에 웨어머스(Wearmouth)에 있는 성 베드로 수도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았으며, 13세쯤에는 재로우(Jarrow)에 있는 성 바오로 수도원으로 옮겨 19세에 부제품을, 30세엔 사제품을 받고 베네딕도회 수도자로 평생을 살다가 그곳에서 사망했습니다.베다는 731년 저술한 「영국 교회사(Historia Ecclesiastica gentis Anglorum)」를 통해 훗날 ‘영국 역사의 아버지’로 불렸으며, 1899년에 교황 레오 13세(Leo PP, XIII, 1810~1903)에 의해 영국인으로서 유일하게 ‘교회 학자’로 선포되었습니다. 베다는 다른 시기에 부활절을 지내는 켈트족 그리스도인을 거슬러 서방 교회 전통에서 부활절 날짜를 계산하는 방식을 다룬 저서 「시대에 대하여(De Temporibus)」와 「시대의 계산에 대하여(De Temporum Ratione)」를 출간했습니다. 베다는 문학가로서 시집, 서한집, 강론집, 순교록, 전기 등 다양한 장르의 글을 남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다는 세속 학문 분야도 섭렵했는데, 문법, 작시법, 역사 기록학 및 연대기 등과 관련된 작품들도 남겼습니다.비록 베다는 고대 영어 지역에서 평생을 살았지만, 그는 라틴어를 익혀 라틴어 성경을 비롯해 서방 교회 전통과 사상을 섭렵했습니다. 먼저 베다는 성경을 주석하면서 문학적인 의미보다는 영성적인 의미를 찾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베다가 살던 시기는 이미 성경 문학이 형성되던 시대와 큰 차이가 있었으므로, 베다는 동시대 그리스도인에게 죄에 대한 경계심과 합리적인 생활양식을 제공하기 위해서 영성적인 의미를 탐구하는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따라서 베다는 방대한 성경 주석 작품을 남겼습니다.또한 베다는 그리스도인에게 더 많은 영성적인 가르침을 주기 위해서 서방 4대 교부들을 비롯하여 여러 교부들의 가르침을 인용했습니다. 특히 베다는 말년에 요한 복음서를 고대 영어로 번역함으로써, 라틴어를 모르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이 주님의 말씀을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습니다. 베네딕도회 수도자였던 베다는 기도하고 일하며 거룩한 독서를 실천하면서 잉글랜드 교회에 큰 귀감이 됨으로써, 사후에 바로 사람들에게 ‘존자’(尊者)로 불렸습니다.게르만족 복음화에 앞장선 보니파키우스한편 앵글로색슨족이면서 ‘게르만족의 사도’로 불린, 잉글랜드 남서부에 위치한 웨식스(Wessex) 왕국 귀족 가문 출신 보니파키우스(Bonifacius, 672/75~754)가 있었습니다. 그는 어린 시절에 엑세터(Exeter)에 있는 베네딕도회 수도원에서, 그리고 너슬링(Nursling)에 있는 베네딕도회 수도원으로 옮겨 교육을 받았습니다. 교육받는 동안 보니파키우스는 학문과 로마 교회와 선교 활동에 강한 애정을 보였습니다. 결국 보니파키우스는 그곳 수도원에 입회했으며, 30세에 사제품을 받고 수도원 학교 교장이 되었습니다.선교사의 꿈을 키웠던 보니파키우스는 716년 수도원장의 허락을 얻어 오늘날 네덜란드 지역인 북유럽 프리즐란트(Friesland)로 선교를 떠났으나, 그 지역 귀족의 방해로 선교는 실패했습니다. 다시 너슬링의 수도원으로 돌아온 보니파키우스는 717년 수도원장으로 선출되자 이를 수락하지 않고, 718년 로마로 떠났습니다. 결국 719년 보니파키우스는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Gregorius PP. II, 재임 715~731)를 알현했고, 교황으로부터 라인 강 동쪽 게르마니아 지역에 사는 게르만족을 복음화시키라는 선교 사명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보니파키우스는 먼저 게르마니아 중부 튀링겐(Thringen)을 경유해 또 다시 프리즐란트로 가서 3년간 선교 활동을 펼쳤습니다.보니파키우스는 722년 거의 복음화 되지 않은 게르마니아 중서부 헤센(Hessen)으로 이주해 베네딕도회 수도원을 건설하고 선교한 결과 성공을 거두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교황 그레고리우스 2세는 보니파키우스에게 주교품을 주었습니다. 725년까지 헤센에서 선교했던 보니파키우스는 다시 튀링겐으로 이주해 수도원을 설립하고 잉글랜드 수도자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10여 년간 그리스도교 정통 신앙과 교리를 전했습니다. 신임 교황 그레고리우스 3세(Gregorius PP. III, 재임 731~741)는 732년 보니파키우스를 대주교로 임명했으며, 737년 교황 특사로 임명해 게르마니아 교회 설립을 위임했습니다. 따라서 보니파키우스는 741년까지 게르마니아 남부 바이에른(Bayern)에 몇몇 교구들과 수도원을 설립했으며, 744년 헤센에 수도원을 설립하고 선교 중심지로 삼았습니다.프랑크족 그리스도인 개혁에 앞장선 보니파키우스보니파키우스는 742년 프랑크 왕국 북동부 지역 아우스트라시아(Austrasia) 궁재(宮宰)였던 카를로만(Carloman, 707쯤~754)과 함께 ‘게르만 민족 종교 회의’를 개최했으며, 744년 프랑크 왕국 북서부 지역 네우스트리아(Neustria) 궁재였던 페피누스 3세(Pepinus III, 714~768)의 도움으로 개최된 ‘전체 왕국을 위한 종교 회의’에 참석했다가 마인츠(Mainz) 교구장으로 임명되었습니다.745년 보니파키우스는 쾰른(Kln)에 대주교좌를 설립할 계획을 세우고 종교 회의와 교황의 승인까지 받았으나, 그의 개혁적인 성향을 싫어했던 프랑크 왕국 주교들의 반대로 무산되었습니다. 따라서 보니파키우스는 747년 개최된 종교 회의에서 신앙 고백과 충성 고백을 통해 프랑크 왕국의 주교들을 로마 교황과 묶어 주려고 시도했습니다.752년 마인츠 교구장직을 사임한 보니파키우스는 다시 프리즐란트 선교 계획을 세웠고, 1년간 성공하는 듯했습니다. 하지만 754년 프리즐란트 지역 이교도들은 보니파키우스와 동료 선교사들을 습격하고 살해했습니다. 결국 프리즐란트에서 시작되었던 보니파키우스의 선교는 프리즐란트에서 끝났습니다.프랑크 왕국이 유럽을 통일하고 로마 교회와 우호 관계를 직접 맺기 전까지 게르만족의 복음화와 프랑크족 그리스도인의 개혁은 역설적으로 잉글랜드 출신 앵글로색슨족이 담당했습니다. 그들은 북유럽 교회와 로마 교회를 일치시키려고 노력했으며, 여러 지역에 수도원을 설립하여 영성 생활 발전에 기여했습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7.07.05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3) 3세기 ④-안토니우스의 독거 은수 생활](//cpbc.co.kr/CMS/newspaper/2017/02/rc/672638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3) 3세기 ④-안토니우스의 독거 은수 생활 3세기 ④-안토니우스의 독거 은수 생활그뤼네발트 작 ‘성 안토니우스의 유혹’. 출처=가톨릭 굿뉴스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은 이론을 바탕삼아 연역적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지만, 선구자적인 삶을 바탕삼아 귀납적으로 설명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3세기에 그리스도교 내에서 교부들이 플라톤 철학 계열의 사상들을 본격적으로 활용하여 영적 여정의 체계를 세웠다면, 3세기 후반부터 영성가들은 그리스도인에게 귀감이 되는 새로운 형태의 삶을 살기 시작했습니다. 로마 제국의 박해가 뜸해지자 하느님을 위해 온전히 살고자 했던 그리스도인은 순교의 길과는 다르지만 하느님께 나아가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섰습니다. 그것은 바로 훗날 수도 생활의 원형이 되는 은수(隱修) 생활이었습니다. 은수 생활로의 부르심 은수 생활 혹은 수도 생활이 정확하게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 확인할 수 없지만, 이집트 수도자들의 아버지로 불리는 안토니우스(Antonius, 251경~355/56)는 남아있는 문헌 자료로 확인 가능한 최초의 은수자였습니다. 알렉산드리아의 총대주교 아타나시우스(Athanasius Alexandrinus, 295/300~373)는 저서 「안토니우스의 생애」(Vita Antonii)에서 안토니우스에 대한 역사적인 사실과 저자의 재해석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로 섞어가며 안토니우스의 삶을 조명하여 다른 이들에게 모범이 되도록 기록했습니다. 이집트 출신 안토니우스는 부유한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나 경제적인 어려움 없이 그리스도교 신앙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스무살가량에 부모를 여의고 여동생과 단둘이 살았던 안토니우스는 어느 날 가진 것을 다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던 사도들(루카 5,11 참조)을 묵상하며 성당에 들어갔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성당에서 마침 낭독되던 부자 청년 비유 이야기(마태 19,21 참조)에 대한 복음말씀을 들으면서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즉시 집으로 돌아와 상속받은 재산 대부분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얼마 후에 안토니우스는 다시 성당에서 내일을 걱정하지 말라(마태 6,34 참조)는 복음말씀을 듣자, 즉시 남은 모든 재산을 처분하여 나누어 주고 여동생도 동정녀 공동체에 맡기고 본격적으로 은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독거 은수 생활의 네 시기 안토니우스는 먼저 마을 변두리로 물러나와 고독 속에서 엄격한 금욕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아울러 그는 생계를 위한 노동을 했는데, 그 수입마저도 필요한 이들과 함께 나누었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성경말씀을 경청하며 부지런히 기도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또한 그는 주변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장점을 배워 실천하면서 선(善)을 추구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습니다. 15년가량의 이 시기가 안토니우스의 첫 번째 여정이었습니다. 이후 안토니우스의 금욕 생활을 시기한 악마는 그에게 분심을 일으키며 몹시 그를 괴롭혔습니다. 일차적으로 악마의 시험을 극복한 안토니우스는 금욕 생활을 강화하기 위하여 마을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공동묘지를 찾아갔으며, 한 무덤 속에 들어가 홀로 머물렀습니다. 이곳에서 악마의 방해는 더욱 강해졌고, 안토니우스는 육체적인 고통까지 느끼게 되었으나 기도를 통해 악마의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이따금 안토니우스는 주님의 보살핌과 위로를 느끼기도 했습니다. 1년 남짓한 이 시기가 안토니우스의 두 번째 여정이었습니다. 안토니우스의 본격적인 은수 생활은 사막에서 시작되었습니다. 하느님을 더욱 열심히 섬기려는 열정에 불탄 안토니우스는 알렉산드리아 남쪽 나일 강 하류 근처에 있는 이집트 북부 사막으로 나갔습니다. 피스피르 산 위에 버려진 요새를 찾은 안토니우스는 요새 안에 홀로 머물면서 금욕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간혹 방문객들이 있었으나 안토니우스는 그들을 만나지 않았습니다. 요새에서 20년가량 머문 안토니우스는 하느님의 은총으로 은수자들의 영적 사부가 되어 요새를 나와서 은수 생활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한동안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심지어 로마 제국의 마지막 박해가 발생하자 안토니우스는 오랜만에 알렉산드리아로 돌아가 그리스도인들을 위로하고 격려했으며, 박해가 끝나자 다시 사막으로 돌아왔습니다. 이 시기가 안토니우스의 세 번째 여정이었습니다. 또 다시 홀로 고독한 생활을 원했던 안토니우스는 하느님의 지시에 따라 나일 강에서 멀리 떨어진 깊은 사막으로 들어가 콜짐 산 속 동굴에 머물면서 독거(獨居) 은수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사람들은 그에게 가르침을 청하고자 찾아왔으며, 안토니우스는 그들을 환대했습니다. 안토니우스는 하늘나라에 갈 때까지 그곳에 머물면서 모든 이의 영적 사부로 살았습니다. 40년 이상 지속된 이 마지막 시기가 안토니우스의 네 번째 여정이었습니다. 성경말씀 중심의 기도 생활 안토니우스가 실천한 은수 생활은 아주 엄격한 수덕 생활의 모습을 지녔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은수 생활 이전부터 모든 것을 포기한 사도들과 초대 교회 신자들의 삶을 동경했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끼자 본인도 망설임 없이 청빈 생활을 선택했습니다. 또한 안토니우스는 악마의 온갖 시험에도 불구하고 엄격하게 금욕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그리고 안토니우스는 이 모든 수덕 생활을 철저하게 홀로 머물면서 실천했습니다. 따라서 안토니우스의 삶은 독거 형태의 은수 생활이라고 이해되었습니다. 하지만 안토니우스가 실천한 은수 생활의 중심은 성경말씀과 함께하는 신비 생활에 있었습니다. 안토니우스는 은수 생활 이전부터 늘 성경말씀에 귀 기울였고, 사막에서 지낼 때에도 성경말씀을 암송하며 깊이 묵상했습니다. 또한 안토니우스는 성경말씀과 함께하는 기도 생활이어야 하느님께 나아가는 데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른 은수자들에게 가르침을 줄 때에도 성경말씀이면 충분하다고 하면서 늘 성경말씀을 인용하여 은수 생활에 대한 권고를 했습니다. 아나타시우스는 안토니우스의 기억이 성경책을 대신할 정도였다고 회고했습니다.(「안토니우스의 생애」 3,7 참조) 결국 안토니우스의 성경말씀에 대한 사랑은 자신의 은수 생활을 지탱해주는 원동력이 되었고, 훗날 수도자들이 성경말씀 중심으로 수도 생활을 실천하는 출발점이 되었습니다. 313년 밀라노에서 공표된 로마 황제의 칙령으로 그리스도인은 자유롭게 신앙을 가질 수 있게 되었으며, 더 이상 로마 제국의 박해로 인해 피 흘리는 순교를 당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하느님과 일치하고자 하는 염원이 강했던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안토니우스가 보여준 은수 생활의 모범에 따라 자신을 극기하는 새로운 형태인 백색 순교의 길로 앞다퉈 들어섰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수도 생활은 오늘날까지 이어졌습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cpbc2017.02.22
![[나의 미사이야기] (28) 강론 경청은 어렵지만…](//cpbc.co.kr/CMS/newspaper/2017/12/rc/705539_1.0_titleImage_1.jpg)
[나의 미사이야기] (28) 강론 경청은 어렵지만…김종우 베드로
인천교구 답동본당 모든 신앙인과 신자들은 언제나 경건한 마음으로 주님을 흠숭하고 섬겨야 하며, 이는 신자라면 꼭 지켜야 할 의무요 도리다.세월에 떠밀려 이제 70평생을 살고 있는 지금 하느님의 사랑과 보살핌이 없었다면, 이제까지 평탄한 길에서 신앙생활을 못 했을 것이다. 하루하루를 감사의 나날로 살아가고 있을 즈음, 갑작스럽게 나에게 반갑지 않은 손님이 찾아와 나를 괴롭히고 신경을 많이 쓰게 했다.지난 5월 전국 111곳 성지순례를 완주하기로 계획했다. 혼자서도 순례하고 아내(마르타)와 큰딸 (클라라), 손자(미카엘)와 손녀(미카엘라)까지 함께 순례하기도 했다. 3대가 순례를 무사히 마쳤는데 111곳 중 110곳을 순례하고 성지 1곳만을 남긴 상황이었다. 그때 갑자기 예기치 않은 불행이 내게 찾아와 얼마나 황당하고 당황했는지 모른다.두통과 어지럼증으로 종합병원에 가니 ‘뇌종양’ 판정을 받았다. 거기에 더해 청각 장애 4급이 됐다. 이 결과를 처음 들었을 때는 이승에서 모든 미사가 끝나는가 싶었다. 천만다행한 결과로 정밀 검사 후 뇌종양은 양성으로 밝혀졌고, 청각 장애도 보청기 등의 도움을 받아 조금씩 차도를 보였다. 하지만 장애 판정 이후 겨우 성당 문을 밟았을 때는 기대와 달리 신경질과 한숨만 이어졌다. 한쪽 귀에서는 시도 때도 가리지 않고 각종 풀벌레 소리와 귀뚜라미 소리 그리고 별의별 희귀한 소리가 떠나지 않고 들려왔다. 잠이 들어 꿈나라로 갈 때만이 소리가 잠시 멈추는 시간이었고, 꿈에서 깨면 항시 같은 현상이 일어났다.그러니 신부님들의 강론 말씀을 제대로나 들을 수 있겠는가. 비장애인 때에는 누구 못지않게 강론 말씀이나 독서 내용 등을 열심히 들었다. 하지만 청각 장애 이후 그러한 적극적인 경청은 어렵게 됐고, 나는 좌절과 고민에 휩싸였다. ‘이것이 나에게 주어진 신앙의 운명일까? 아니면 주님께서 신앙생활에 크나큰 변화를 주시려고 내리시는 은총의 선물인가? 내가 신앙인으로서 정말 배워야 할 것도 많고 하고 싶은 것도 많은데, 주님은 왜 나에게 이런 시련을 주시는 걸까?’ 복잡한 생각들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다.일흔이 넘은 노인이 나이 들어서 저승으로 갈 준비나 하지 무슨 허황된 생각과 꿈을 꾸느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나는 젊어서부터 이제까지 항시 배움의 길만은 포기하지 않았고 버리지 못했다. 특히 글쓰기에 관심이 많아 틈나는 대로 관련 서적을 읽으며, 작문하고, 성경 필사도 게을리하지 않는다.장애를 안고 살아가는 길, 편안한 길은 아니겠지만, 오늘도 묵주를 쥐고서 마음을 다져본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며, 나약하고 죄 많은 인간의 뜻이 아닌,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 성령의 보살핌 안에서만 그 깊은 뜻이 이뤄진다는 것을 명심 또 명심해야겠다. 이승에서의 삶, 나그네 생활에서의 삶도 열심히, 성실히 하느님 뜻에 따라 후회 없는 길을 걸어야 하겠다. ※‘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 주시면 됩니다. 평화신문2017.12.20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7·끝) 정명호(요한) 토속촌 삼계탕 창업주](//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3303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7·끝) 정명호(요한) 토속촌 삼계탕 창업주손님에게 보약 한 그릇 대접한다는 마음 삼계탕에 담아 소문이 자자(藉藉)한 서울의 맛집 가운데 한 곳을 찾았다. 맛의 비결과 성공 뒤에 숨겨진 창업주의 삶과 신앙 여정(旅程)이 궁금했다. ‘토속촌 삼계탕’의 창업주인 정명호(요한) 사장이다. 계절 음식으로 알려진 삼계탕의 전문점이 계절에 상관없이 문전성시(門前成市)를 이룬다. 왜 한 음식에 인생을 걸었을까? 자신만의 길을 개척하는 과정에서 겪은 좌절과 슬픔은 어떻게 극복했을까? 평신도로 본당 사목회에 헌신하고 지역주민으로 세상에 복음을 외치며 그가 전하고자 하는 것은 무엇일까? 보이지 않아도 시시비비(是是非非)를 가리지 않고 그냥 믿는 게 신앙이고 생활 속에서 늘 하느님을 찾아야 자신의 신앙이 흐트러지지 않고 정리된다고 말한다. 언제 어디서나 주님을 찾고 모시면 다 풀어 주셨다고 했다. 일과 신앙에서 ‘자기만의 길’을 걸어온 그의 남은 소망은 새로운 다짐이었다. “예수님께서는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기보다 더 어렵다고 하셨지만, 더 작은 구멍이라도 들어가는 사람이 될 수 있도록 살고 싶습니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삼계탕집인데, 계절에 상관없이 문전성시를 이루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시나요.요즘 음식이 삼계탕뿐만이 아니고 계절을 가리지 않더라고요. 예전에는 닭에 인삼이 들어가면 값이 비싸고 모처럼 먹는 음식이었는데 지금은 경제사정이 많이 나아져 언제든지 찾고 있습니다. 모든 음식은 재료가 독특하고 신선해야 맛이 납니다. 우리나라에서 사육되는 닭의 종류가 80여 가지인데 그중에서 음식용으로 많이 쓰이는 닭은 6~7종류입니다. 우리 집에서 사용하는 닭은 ‘와룡’이라는 품종인데, 천천히 크는 닭입니다. 삼계탕용으로 보통 20일에서 30일 키우면 되는데 우리가 쓰는 닭은 50일은 키워야 합니다. 새벽 2시면 양계장에서 당일 사용할 닭을 고르고 우리 집에 6시에 도착합니다. 그날 잡은 닭은 그날 소비합니다.▶조류 인플루엔자(AI)라도 발생하면 영업하시는데 어려움이 많으시죠.몇 군데에 농장을 두고 있습니다. 한 군데가 잘못되면 다른 곳에서 닭을 공급받습니다. 직영하는 농장도 있고 도급도 주는데,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닭 종자를 분양하고 우리에게 납품하는 방식입니다. 총 다섯 군데 농장에서 키우기 때문에 AI가 오더라도 크게 걱정하지는 않는데, 대신 닭이 조금 작아질 수는 있습니다. ▶삼계탕에 인생을 걸어 보겠다고 생각하신 계기가 있으셨나요. 옛날에는 종로나 을지로에 가면 한의원들이 많았어요. 한의사가 있고, 운영자가 따로 있었는데, 저는 운영을 했습니다. 사향이나 녹용은 값이 비싸서 일반 서민들의 경우 약으로 쓸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일반 서민들의 건강에 좋은 약을 한번 찾아보자’고 해서 찾은 게 바로 삼계탕입니다. 인삼과 황기가 들어가고 들깨, 율무, 호박씨, 은행, 밤, 마늘은 물론이고 대추 등 여러 가지가 들어갑니다. 중요한 것은 조화가 잘 이루어지고 가격이 맞아야 하고, 맛도 있어야 하지만 소화가 잘 돼야 합니다. 그동안 시행착오도 많았습니다. ▶젊은 시절 홀로 서울에 오셨죠.월남전에 참전하고 1971년에 귀국한 뒤 먹고 살기 위해 대구에서 무작정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서울에 와서 안 해 본 게 없습니다. 페인트칠하는 일용직을 시작으로 손수레에서 앨범 파는 노점 행상도 했고요. 이후 한의원을 시작했는데, 약재값이 비싸져서 한약재 수입업도 했습니다. 당시 녹용 수입이 할당제여서 수출 실적이 있는 사람에게만 녹용 수입을 할 수 있도록 제한을 했어요. 참 어려웠죠. 결혼해서 아이들 낳고 보금자리를 마련해서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게 저의 작은 꿈이었는데, 스물일곱 살에 결혼해서 1년 만에 집을 샀습니다. 꿈을 일찍 이룬 셈이죠.▶지금의 ‘맛’을 내기까지 과정은 어떠셨나요?닭을 200마리 이상 실험용으로 사용한 것 같습니다. 음식은 궁합이라고 하잖아요. 이것저것 다 넣어봤죠. 한의원 운영 경험을 살려서 황기와 당기 그리고 각종 견과류를 넣으니까 제맛이 나더라고요. 요즘도 한약재를 구매하러 경동시장에 가는데 음식 궁합을 보고 값도 따져봅니다. 음식 맛은 완성이 없습니다. 늘 진행형이죠.▶1시간 이상 기다려야 먹을 수 있는 삼계탕집으로 유명한데, 왜 프랜차이즈를 안 하십니까. 프랜차이즈를 하면 정해진 규격으로 음식을 만들어야 하는데, 정해진 규격이 어디 있습니까? 만들 때마다 정성이 들어가야 합니다. 재료가 하나라도 빠지면 제맛이 안 나잖아요. 관리가 안 됩니다. 제가 돈을 벌려고 “가맹점 구합니다” 라고 하면 전국과 해외에서 100군데 넘게 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를 해도 제대로 해야지, 제맛이 나고 실수를 안 합니다. ▶실질적인 운영은 아드님이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어떤 당부를 하시나요.변함이 없어야 하고 가슴으로 해야 한다고 늘 이야기합니다. 직원들에게 겉으로만 입에 발린 칭찬을 할 게 아니라 가족처럼 생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하죠. 아버지 때부터 거래해 왔던 단골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유지하라고 합니다. 바뀌고 변하면 안 되잖아요. 30년 이상 재료를 공급하면서 바뀌지 않은 분들이거든요. 또 ‘갑질’ 하지 말고 직원들에게 겉으로 표 내지 마라. 어렵고 힘들 때 도와주고 가슴으로 대해야 한다. 그런 이야기를 많이 합니다.▶요즘 TV를 보면 음식 프로그램이 아주 많습니다. 어떻게 보세요.음식점은 한 방에 ‘대박’ 나는 게 아닙니다. 먹어보고 인정하고 입으로 꾸준히 전달돼서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창업하시는 분들에겐 손님이 와야 하니까 방송이 필요하고 방송국 처지에서 보면 새로운 재밋거리를 찾아야 해서 필요하긴 한데요, 업주도 방송도 끝까지 책임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저도 한 번은 닭 속에 인삼이 안 들어가 손님이 항의하길래 복권에 당첨되신 거라고 말씀드리고 수삼 열 뿌리를 꿀과 함께 갖다 드린 적이 있습니다. 음식점을 하다 보면 별의별 일이 다 생기는데요, 고비를 지혜롭게 잘 넘겨야 합니다.▶35년 동안 삼계탕집 하시면서 힘들 때마다 어떻게 견디고 극복하셨나요.아버님이 일찍 돌아가셨는데, 어릴 때 아침, 저녁으로 집에서 기도하고 추운 겨울에도 20~30분씩 걸어서 대구 계산동성당에 다녔습니다. 아버지가 성당 가라고 하면 ‘춥고 배고픈데 무슨 성당을 가라고 하느냐’고 반항하기도 했습니다. 그땐 신앙이 가슴에 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아버님이 돌아가시니까 ‘성당에 가지 않아도 뭐라고 할 사람이 없겠구나!’ 했지요. 그런데 다급한 일이나 무서운 일이 생기면 십자성호부터 긋고 하느님을 찾게 되더라고요. 월남전에 참전했을 때도 신부님을 찾아가서 ‘기도 좀 해 달라’고 부탁했더니 묵주를 주셔서 월남 전쟁터에서 22개월 내내 기도하며 생활했습니다. 증조할아버지 때부터 내려온 신앙인데, 보이지는 않지만 나도 모르게 몸에 배 있더라고요. 누가 부모님께 물려받은 게 뭐냐고 물으면 저는 자신 있게 ‘신앙’을 물려받았다고 이야기합니다. 그게 믿는 구석이죠.▶본당 총회장도 하시고 사목회 봉사활동을 많이 하신 분으로 유명하신데요.본당이 풀어야 할 숙제가 있을 때 노력해서 풀고 정상화되었을 때 많은 보람을 느꼈죠. 노인분과장을 할 때 노인분들에게 기쁨을 주고 청년분과장을 했을 때는 아이들과 어울려서 함께할 때 참 좋았습니다. 청년들이 신앙생활을 하기 위해서는 일거리를 주고 재미있게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봅니다. 중심에 있는 하느님께 가까이 갈 수 있도록 재미있게 노는 것이죠. 저에게 신앙은 몸 일부이고 생활 일부입니다. 언젠가는 찾을 수 있고, 모실 수 있고, 급할 때 부를 수 있는 그런 분이 하느님입니다. 신앙이 진통제처럼 당장 효과는 없지만 언젠가 돌아보면 문제가 다 풀려있더라고요. ▶창업을 준비하는 젊은이에게 한 말씀 해 주시죠.남이 잘된다고 답습하지 말라는 얘기를 하고 싶습니다. 자기가 찾아서 자기 것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절대로 쉽게 가려고 하면 안 됩니다. 요즘 푸드트럭이 유행하고 있는데, 쉬운 게 아닙니다. 무슨 일을 하더라도 자기에게 맞는 일을 최선을 다해 노력하면 끝이 보입니다. 대한민국 젊은이들이 다 대기업에 가고 공무원을 할 수는 없잖아요. 험하고 작은 일이라고 업신여기지 말고 재미있게 최선을 다하면 꼭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마음속에 늘 품고 계신 성경 구절이나 좌우명이 있는지요. 예수님께서 토마스에게 “너는 나를 보고서야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행복하다”(요한 20,29)고 말씀하셨잖아요. 이 성경 구절이 항상 제 몸속에 있습니다. 신앙생활에서 가장 중요한 게 ‘믿음’인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한 몸이다, 하느님이 아버지이고 예수님이 아들이다’라는 말씀이 머리로는 이해가 잘 안 되잖아요. 무조건 믿어야 합니다. 시시비비를 가리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고 봅니다. 열심히 하든 안 하든 믿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은 무엇인가요.성경 구절에 “부자가 하느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는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빠져나가기가 더 쉽다”(마태 19,24)고 했잖아요. 저 역시 바늘구멍은 못 들어가겠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바늘구멍보다 더 작은 구멍이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마음의 다짐을 하면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합니다. 지금은 들어갈 수 없지만, 그 작은 구멍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백영민2017.11.29
[하느님과 트윗을] (34) 왜 우리는 여기 세상에 있나요사랑 나누며 주님과 함께하는 삶이 행복 문 : 우리는 왜 태어났습니까.답 : 이 세상에서는 하느님을 알고 사랑하고 섬기기 위해서, 그리고 내세에서는 하느님과 영원히 행복하기 위해서 태어났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이 우리의 창조주이심을 알아보도록 요청받습니다. 우리의 창조주이신 하느님은 우리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모든 인간을 사랑하십니다.(요한 3,16 참조) 우리는 마땅히 그분께 사랑과 존경을 드려야 합니다. 하느님을 섬기는 데 우리는 종처럼 하느님께 굴종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주님이요 아버지이신 하느님께 순명할 것을 사랑으로 선택하지요. 그렇게 하려면 하느님이 우리에게 무엇을 요청하시는지 알아야 합니다.문 : 우리의 최종 목적은 무엇인가요.답 : 천국에서 영원히 하느님과 행복하게 사는 것입니다. 때로는 이를 믿기 힘들지만 우리는 여기 이 세상에서 이미 행복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하느님은 사람들이 서로 사랑하고 서로 돌보고, 함께 기도하는 곳이면 어디에나 계십니다. 죄 그리고 죄의 결과인 고통과 죽음으로 이 세상에서 사는 삶은 완전함과는 거리가 멉니다. 하지만 의식적으로 하느님과 함께 살고 또 다른 이들을 돌본다면 이 세상에서도 여전히 의미 있고 행복하게 살 수 있습니다. 이렇게 살아감으로써 우리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고 그곳에서 우리는 영원히 행복을 누릴 것입니다.문 : 행복해지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요. 답 : 행복해지려면 우리는 하느님을 믿고 의탁하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하느님만이 우리를 완전히 행복하게 해 주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모두 사랑, 건강, 성공, 안락함 등을 바랍니다. 이러한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것에 대한 갈망이 너무 강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때로는 그것들을 얻기 위해 하느님의 계명을 위반하고 싶은 유혹을 받습니다. 그러다가 이러한 것을 우상으로 만들어 하느님 대신 섬기고 숭배합니다. 문 : 어떻게 하면 올바르게 살 수 있나요.답 : 성경은 우리 마음에 쓰여 있는 몇 가지 기본 규칙에 관해 말해 줍니다.(로마 2,15 참조) 이러한 규칙들은 자연법을 이루지요. 자연법은 다른 시대와 다른 장소에서 산 사람들이 모두 보기에 인간 본성에 맞으며 우리가 올바르게 살도록 도와준다고 생각하는 법입니다. 그리고 양심은 어떤 행동이 자연법에 부합하고 어떤 행동이 부합하지 않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주는 내면의 소리입니다.(로마 9,1 참조) 우리는 어떤 행동이 아주 강하게 원한다는 이유만으로 그 행동이 선하다고 여깁니다. 하지만 하느님은 우리가 자신을 속이지 않도록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느님은 또한 우리가 옳고 그름을 구별할 수 있도록 예수님을 보내시고 교회를 주셨습니다. 문 : 무엇이 옳은지 그른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나요. 답 : 자기 양심에 귀를 기울여 바르게 산다고 해서 그들 자신이 옳고 그름을 결정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옳다거나 그르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잘못 판단할 수도 있죠! 바오로 사도는 오직 하느님만이 모든 것을 아신다며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잘못한 것이 없음을 압니다. 그렇다고 내가 무죄 선고를 받았다는 말은 아닙니다. 나를 심판하시는 분은 주님이십니다.”(1코린 4,4) 옳고 그름의 판단은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신 그 방식에 따른 것입니다.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cpbc2018.01.02
뜨거운 신앙으로 주님 체험하고 사랑 실천하는 2018년 전국 교구장 사목교서 발표, 공동체성 회복과 삶으로 복음 전파 강조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을 비롯한 전국 교구장들은 3일 대림 제1주일을 맞아 발표한 2018년 사목교서를 통해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나 하느님 사랑을 실천하는 데 더욱 힘써달라고 호소했다.염수정 추기경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사랑은 새로운 복음화의 열매’라는 제목의 사목교서에서 “성경 말씀과 기도, 성사를 통해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만나는 사람은 그분을 더욱 사랑하게 되고, 그 사랑으로 변화돼 이웃을 사랑하게 된다”며 “하나의 계명을 이루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서로의 성숙을 불러일으킨다”고 말했다. 염 추기경은 “우리가 체험한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것이야말로 믿음의 완성”이라면서 각 본당과 기관에 하느님 사랑을 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들을 숙고하고 실천하기를 요청했다. 대구대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성모당 봉헌 100주년을 맞아 교구 초창기의 순수함과 절실함으로 돌아가 개인과 가정, 본당과 기관을 포함한 교구 전체의 쇄신과 발전을 모색해야 한다”며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되고자 노력하고 교회의 사명인 복음화에 온 힘을 다할 것을 다짐했다.광주대교구장 김희중 대주교는 ‘공동체성 회복’을 위해 △공동체성 강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인 사랑 △청소년 친화적인 본당 이루기 △사제단 사목 교류 강화 및 지구사목 활성화에 역량을 쏟고, 복음 묵상과 실천으로 ‘더불어 살아가는 공동체’를 구현하는 데 앞장서겠다고 밝혔다. 춘천교구장 김운회 주교는 신(信)·망(望)·애(愛)의 삶으로 복음을 전할 것을 권고했고,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교구 쇄신의 희망인 시노드에 적극적으로 참여해 달라고 요청했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신앙의 원천으로 돌아가 신앙의 기초를 다지기를,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는 하느님에 대한 희망으로 하느님 나라를 위해 기도하고 일하기를 당부했다.수원교구장 이용훈 주교는 모든 세대와 계층을 유기적 관계망 안에 놓고 접근하는 통합사목을, 의정부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가정을 중심으로 사목 전반을 연계하는 통합사목과 통합사목센터 설립을 제시했다. 2018년을 ‘믿음의 해’로 정한 부산교구장 황철수 주교는 교구민들이 교구 초창기의 신심과 열정을 되살려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살아가기를 희망했다. 청주교구장 장봉훈 주교는 ‘받는 교회’에서 ‘주는 교회’로 나아갈 것을 천명했다.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는 지난해와 마찬가지로 사제와 신자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목소리를 알아듣도록 ‘마음의 귀’를 열 것을, 안동교구장 권혁주 주교는 본당의 쇄신을 위해 마음과 힘을 모을 것을 주문했다.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내적 쇄신을 강조했으며, 군종교구장 유수일 주교는 변함없는 열정으로 군 복음화에 매진할 것을 요청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평화신문2017.11.28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5)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의 변화 ?르네상스·바로크](//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6257_1.2_titleImage_1.jpg)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5) 판토크라토르 그리스도의 변화 ?르네상스·바로크하느님 중심 권위보다 인간 중심 자비 강조극사실 기법으로 하느님 모습 묘사 헤라르트 다비드, ‘축복하는 하느님 아버지’, 15세기쯤, 유화, 루브르 박물관, 프랑스 파리15세기 교황의 수위권과 공의회 우위설이 한창 대립할 때 교황을 지지하는 교회에서 교황관을 쓴 ‘판토크라토르(전능하신) 그리스도’를 그렸다고 했습니다. 플랑드르(현 네덜란드) 화파로 얀 반 에이크(Jan van Eyck, 1390?~1441)의 영향을 받은 헤라르트 다비드(Gerard David, 1460?~1523)의 ‘축복하는 하느님 아버지’도 그 대표적 작품입니다. 15세기 말쯤에 그린 것으로 추정되는 이 작품은 플랑드르 화풍의 특징인 극사실 기법으로 마치 하느님 얼굴을 직접 마주하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합니다. 머리카락과 수염 한 올 한 올, 카파(전례복)의 자수와 보석들의 섬세함은 돋보기로 보는 듯합니다. 작품에서 그리스도는 교황의 삼중관을 쓰고 카파를 입고 있지만, 전통적인 판토크라토르의 요소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작품 제목처럼 성자를 통한 성부의 형상을 시각화한 것은 비잔틴 양식의 성미술 전통을 계승한 요소입니다. 또 그리스도의 권위와 존엄을 상징하는 풍성한 머리카락과 수염, 왼손으로 쥐고 있는 왕홀은 이 작품이 판토크라토르임을 보여 줍니다. 아울러 오른쪽 손가락으로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 또한 전통적인 이미지입니다. 사랑 넘치는 자애 표현 16세기 독일 화가인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ürer, 1471~1528)는 환상적이고 묵시적인 세계를 그린 거장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독일과 프랑스, 스위스, 이탈리아에서 그림을 공부해 유럽 전체의 화풍을 섭렵했습니다. 그는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같은 선대 르네상스 화가들이 심취했던 인체의 균형과 조화에 평생 몰두했습니다. 그는 인체를 일부러 왜곡되게 길고 넓게 그려 시각적으로 균형감을 주는 독창적인 화법을 개발했습니다. 1504년에 뒤러는 자신의 대표작이라 할만한 ‘아담과 이브’, ‘예수 탄생’ 등의 동판화를 선보입니다. 그는 같은 해에 유화로 ‘구세주’를 그립니다. 당시 유럽은 격변기였습니다. 중세가 끝나고 근세로 접어들던 시기였습니다. 1492년 스페인이 통일하고, 콜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했습니다. 인문주의가 성행해 문학 예술 과학 등 모든 학문 분야에 르네상스가 열렸습니다. 교회도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요한 묵시록에 기초한 종말론이 유행했고, 교회가 쇄신돼야 한다는 요구가 전 유럽으로 퍼졌습니다. 이러한 때 뒤러는 교회의 전통 틀에서 살짝 벗어난 판토크라토르를 그립니다. 그의 ‘구세주’ 작품에는 제도 교회의 흔적이 많이 보이지 않습니다. 화려한 교황 제의 대신 보라색과 붉은색 옷감으로 마지막 날 그리스도 왕으로 오시는 주님의 권위를 드러냅니다. 또 정통적인 근엄한 눈은 온유한 눈으로 바뀌어 오시는 구세주께서 정의의 심판자가 아닌 사랑 넘치는 자애로우신 분임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오른손은 상징적 복음의 언어를 그대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십자가가 달린 원형 모형은 지구를 연상케 하는데 8세기 동로마 유스티니아누스 2세 황제 때부터 사용한 판토크라토르의 표현 기법입니다. 시작도 끝도 없는 원형처럼 그리스도의 평화가 영원히 지속할 것이라는 믿음을 형상화한 것입니다. 교회 분열 격랑의 시기에 그려진 성미술 알브레히트 뒤러의 작품과 거의 비슷한 이미지를 스페인 바로코 미술의 대가 엘 그레코(El Greco, 1541~1614)의 작품에서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제목도 ‘구세주 그리스도’입니다. 엘 그레코의 말기 작품입니다. 엘 그레코가 이 그림을 그리던 당시 유럽은 ‘교회 분열’이라는 큰 홍역을 치르고 있을 때였습니다. 가톨릭 교회에서 떨어져 나간 프로테스탄트들은 눈에 보이는 교회 조직이 참된 교회가 아니며 오직 ‘성경’ ‘은총’ ‘믿음’만으로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성미술을 우상숭배로 여기고 파괴했습니다. 또 이들은 제도 교회를 부정하는 극단적 표현으로 성사, 특히 ‘성체성사’를 부인하고 단지 상징적 의미로만 해석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프로테스탄트의 거센 불길에 맞서 쇄신을 단행하기 위해 트리엔트 공의회를 열었습니다. 1545년 12월 13일부터 1563년 12월 4일까지 18년에 걸쳐 진행된 공의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와 견줄 만큼 혁신적으로 교회 쇄신을 단행했습니다. 공의회는 로마 표준 라틴어 성경과 미사 경본, 시간 전례서, 교리서 등을 마련했고, 신학교와 수도원 정비, 가난한 이웃에 대한 선행 실천을 권고했습니다. 아울러 일곱 성사가 교회의 참된 성사임을 확인하면서 무엇보다 성체성사를 통해 그리스도께서 빵과 포도주 형상 안에 실재한다고 재확인했습니다. 엘 그레코는 격랑의 시기에 스페인 카스티야 왕국의 수도이며 가톨릭 신앙을 수호하는 교두보이자 중심지인 톨레도에서 궁정화가로 활동했습니다. 당시 스페인 펠리페 2세(1527~1598) 국왕은 프로테스탄트에 맞서 가톨릭 신앙을 지키는 데 앞장섰고, 트리엔트 공의회 결의안을 적극적으로 실천했습니다. 엘 그레코는 이러한 분위기에서 신비감 넘치는 성미술을 그렸습니다. 그는 구도와 조화를 강조하는 정형화된 방식에서 벗어나 빛과 색의 대비로 극적인 단순미를 드러내는 작품을 구현했습니다. 그의 작품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는 이콘의 판토크라토르 기법을 유지하면서도 뒤러처럼 자비로우신 그리스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맑고 깊은 구세주의 눈망울은 모두를 회심으로 이끕니다. 그는 뒤러와 같이 보라색과 붉은색 옷감으로 구세주의 왕권을 드러냈습니다. 원형 모형 위에 올려진 왼손을 통해 구세주께서 영원한 평화를 안겨 주시는 분임으로 고백합니다. 따뜻한 빛으로 예수님의 자비로움 나타내 바로크풍의 사실주의 프랑스 화가 조르주 드 라 투르(Georges de La Tour, 1593~1652)가 그린 ‘축복하는 예수 그리스도’ 역시 앞의 두 작품과 비슷한 이미지입니다. ‘빛의 화가’인 조르주는 한 개의 촛불이나 한 줄기 빛으로 그림의 입체감과 공간감을 표현하는 천재적 작가였습니다. ‘축복하는 예수 그리스도’도 왼쪽 측면에서 들어오는 한 줄기 빛으로 구세주의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의 시선이 마치 하느님 나라에서 인간 세계를 내려다보는 듯 아래로 향해 있지만, 화폭 전체를 감싸는 따뜻한 빛으로 이 분이 엄혹한 심판자가 아니라 자비로우신 구세주이심을 보여 줍니다. 또 투명한 구체에 비친 하나의 창틀은 오로지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구원을 성취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렇듯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의 판토크라토르는 초기 그리스도교 성미술의 양식을 일부분 계승하지만, 제도 교회가 표방하던 하느님 중심의 신적 권위보다 인간 중심의 자비로움을 강조해 표현하고 있습니다. 심판자 그리스도의 근엄한 모습은 인간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은 눈빛을 지닌 자비로우신 분으로 바뀌었습니다. 화려하고 위압적인 왕관과 옷은 사라지고 옷감의 색으로 주님의 권능과 권위를 표현했습니다. 또 왼손에 든 복음서(또는 생명의 책)는 그리스도의 영원한 평화를 상징하는 구체(원형)로 바뀌어 성경이 가르치는 본연의 그리스도 모습으로 회귀하고 있습니다. 15~17세기 르네상스와 바로크 시대 성미술에도 인문주의의 정신이 깊이 배어 있음을 보여 줍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문채현2017.09.20
남미처럼 정의·평화의 초석 놓는 데 교회가 나서야서울대교구 민화위 주최 ‘정의와 평화, 한반도의 길’ 한반도평화나눔포럼 한국과 라틴아메리카 천주교회 5개국 주교들과 학자들이 진리와 사랑, 정의와 평화, 화해 증진을 위해 서로 경험을 나누고 평화 문화 건설에 나섰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위원장 정세덕 신부)는 3∼4일 가톨릭대 성신교정에서 ‘정의와 평화, 한반도의 길’을 주제로 2017 한 반도평화나눔포럼을 개최했다. 남미 천주교회의 사목 경험을 토대로 한반도에서 평화와 화해를 건설하는 교회의 사명을 돌아봤다. 서울대교구장 겸 평양교구장 서리 염수정 추기경과 브라질 상파울루대교구장 오질루 페드루 쉐레 추기경,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 멕시코 모렐리아대교구 카를로스 가르피아스 메를로스 대주교, 벨기에 겐트교구장 루카스 반 루이 주교 등 고위 성직자들과 전 교황청주재 아르헨티나 대사를 역임한 베센테 에스페체 힐 아르헨티나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과 강원택 서울대 교수, 홍용표 한양대 교수 등 국내외 학자들이 대거 참석했다. ‘화해와 치유를 위한 삶의 길’이 남미 교회의 고위성직자들을 통해 공유됐고, ‘평화 실천을 위한 나눔의 길’이 남미 평신도 지도자와 국내 학자들에 의해 제시됐으며 ‘한반도의 미래를 내다보는 하나됨의 길’이 국내에서 선교했던 유럽의 고위 성직자와 정치학자, 이주사목 담당 성공회 사제의 눈길을 통해 논의됐다. 염수정 추기경은 기조강연을 통해 “분단 70년이 넘도록 군사적 대치와 반목을 벗어나지 못하는 한반도 상황은 성경에서 말씀하는 화해와 용서의 의미를 다시 한 번 일깨워준다”면서 “화해와 용서를 통해 ‘칼을 쳐서 보습을 만들고 창을 쳐서 낫을 만드는’ 진정한 평화를 이룩하라는 주님의 명령이 우리 앞에 놓여 있다”고 역설했다. 이어 “지구 반대편 라틴아메리카 천주교회와 한국 천주교회가 공유하고 연대할 수 있는 최고의 신앙적 가치는 바로 정의와 평화를 향한 발걸음이며, 주님께서는 우리가 함께 바치는 평화를 위한 기도, 정의를 위한 기도에 응답해 주실 것”이라고 확신했다.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의 협력자였던 엘살바도르 차베스 추기경은 “평화의 도정에 참여하는 교회의 역할은 모든 종류의 인도주의적 활동과 함께 분쟁의 당사자들이 대화의 테이블에 앉도록 초대하고 다시는 무력의 분쟁이 일어나지 않도록 그 원인을 철저히 제거하기 위해 강한 노력을 기울이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라틴아메리카 주교단은 포럼에 참석한 뒤 5일 가톨릭 청년들과의 대담, 6일 ‘함께 평화를 꿈꾸다’를 주제로 한 특별대담을 통해 평화의 저변을 넓히는 노력을 이어갔다. 3일 판문점, 7일 요셉의원, 1·8일에는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를 각각 방문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평화신문2017.11.07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68) 예루살렘 입성(루카 19,28-40)](//cpbc.co.kr/CMS/newspaper/2018/06/rc/723761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위원의 예수님 이야기] (68) 예루살렘 입성(루카 19,28-40)수난과 죽음 향해 걸어가신 평화의 임금 예수님께서는 벳파게에서부터 나귀를 타고 올리브 산을 내려와 예루살렘에 입성하셨다. 사진은 해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에 열리는 예루살렘 올리브 산의 성지 주일 행렬. 【CNS 자료사진】 루카복음에서 예수님의 활동 기록은 크게 셋으로 나눠 살펴볼 수 있습니다. 갈릴래아 활동기(4,14─9,50), 예루살렘 상경기(9,51─19,28), 예루살렘 활동기(19,29─24,53)입니다. 예루살렘 활동기의 첫 장면이 예루살렘 입성입니다. 예리코에서 사람들에게 미나의 비유를 말씀하신 후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향하십니다. 예리코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오르막길입니다. 두 도시의 해발 고도 차는 거의 1000m나 됩니다. 그러니 “오르는 길”입니다. “앞장서서 예루살렘으로 오르는 길을 걸어가셨다”(19,28)는 표현에는 결연함 혹은 비장함이 묻어납니다. 예수님 일행은 드디어 올리브산 근처 벳파게와 베타니아 가까이에 이르렀습니다. 베타니아는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 그래서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신 곳으로 추정되는 요르단 강 동쪽 베타니아가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동쪽으로 3㎞쯤 떨어진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곳에서 제자 두 사람을 보내며 “맞은 편 동네”에 가서 “아직 아무도 탄 적이 없는 어린 나귀 한 마리를” 풀어 끌고 오라고 분부하십니다. 누가 왜 나귀를 푸느냐고 묻거든 “주님께서 필요하시답니다” 하고 대답하라고 챙겨주십니다. 제자들이 가서 보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고, 또 예수님께서 대답하라는 대로 대답하고 나귀를 끌고 옵니다. 제자들은 나귀를 예수님께 끌고 와서 그 위에 자기들의 웃옷을 걸치고 예수님을 거기에 올라타시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어린 나귀를 타고 올리브산을 내려오시고 그들은 예수님께서 가시는 길 앞에 자기들의 겉옷을 깔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를 타시는 것은 구약의 다윗 왕이 아들 솔로몬을 노새에 태워 데려와 임금으로 삼도록 한 것을 연상시킵니다.(1열왕 1,33-39) 또 길 위에 겉옷을 깔아 놓는 것은 예언자 엘리사 시대에 예후가 임금이 되자 신하들은 겉옷을 벗어 예후의 발밑 층계에 깔고 “예후께서 임금이 되셨다!” 하고 외친 것을 연상하게 합니다.(2열왕 9,13) 한마디로 나귀를 타신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은 바로 임금으로서 당신의 거룩한 도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것을 나타낸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 올리브산 내리막길에 가까이 이르시자 제자들은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환호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자들의 무리가 다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큰 소리로 하느님을 찬미하기 시작하였다. 그들은 이렇게 말하였다.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 임금님은 복되시어라.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19,37-38)이 대목에서 특별히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제자들이 기뻐하며 하느님을 찬미하며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환호하는 이유입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제자들이 본 모든 기적은 무엇일까요? 예수님께서 하신 일들 곧 병자를 고쳐주고, 눈먼 이를 보게 하고, 악령 들린 이를 풀어주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에게 포용하며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모든 것이 바로 제자들이 본 기적이었습니다. 루카 복음서에는 이를 요약해서 전하는 대목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나자렛 회당에서 인용하신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4,18-19)제자들은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환호하면서 “하늘에 평화 지극히 높은 곳에 영광”이라고 노래하는데, 이는 예수님의 탄생 때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2,14) 하고 하늘의 군대가 찬미하는 노래를 연상하게 합니다. 이를 통해 우리는 예수님께서 이스라엘의 임금으로 오셨음을 거듭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리사이 몇 사람이 예수님께 “스승님” 하고 부르면서 제자들을 꾸짖어달라고 청합니다. 너무 소란스러워서 그랬을까요? 아니면 제자들이 예수님을 임금님이라고 부르면서 환호하는 것이 못마땅해서일까요? 후자일 가능성이 더욱 클 것입니다. 그 바리사이들은 예수님을 “스승”으로서는 인정하면서도 이스라엘의 임금으로서는 인정하고 싶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예수님께서는 임금으로 오셨다는 사실입니다. 이 사실을 아무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이 임금이심을 부인하고 거부하여 예수님을 배척한다면 그때에는 “돌들이 소리를 지를 것”입니다. 돌들이 소리를 지른다는 말은 “벽에서 돌이 울부짖으면 골조에서 들보가 대답하리라”는 구약성경 하바쿡서 2장 11절의 말씀을 연상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제 거룩한 도시 예루살렘에 임금으로 입성하십니다. 그러나 세상의 임금처럼 권세를 휘두르는 권력자 임금이 아니라 평화의 임금님으로 제자들의 환호 속에 소박하게 나귀를 타고 입성하신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루카복음에서는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기로 마음을 굳히시고 갈릴래아를 떠난 예루살렘 상경기가 예루살렘 입성으로 일단락됩니다. 그러나 그 여정은 단순히 예루살렘을 향한 여행이 아니라 갈릴래아에서 시작한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선포하는 여정이었습니다. 그 여정이 예루살렘 입성으로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호부터 살펴볼 것입니다. 그런데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면서 가시는 목적지 예루살렘은 또한 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이 기다리는 곳이라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미 갈릴래아에서 두 차례, 그리고 갈릴래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하는 도중에 한 차례 등 모두 세 차례에 걸쳐 당신의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셨습니다. 물론 당신의 부활까지도…. 하지만 제자들은 그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랐습니다. 그저 자기들이 본 모든 기적 때문에 기뻐하며 예수님을 임금님으로 환호합니다. 분명한 것은 제자들은 예수님을 평화의 임금으로 환호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어떤 임금으로 환호하며 따르는지요? 미사 때마다 성체를 모시면서 어떤 임금으로 고백하며 맞아들이는지요?[알아보기]벳파게와 베타니아 : 베타니아는 올리브산 동쪽 산비탈에 비탈에 있습니다. ‘가난한 이의 집’이라는 베타니아는 예수님께서 친구처럼 대하시며 가깝게 지내신 라자로와 그의 두 여동생 마르타와 마리아가 사는 곳이었습니다. 오늘날 라자로의 무덤을 비롯해 가톨릭과 정교회의 기념 성당이 있지만 아랍인 마을이고 이스라엘이 친 분리 장벽으로 일반 순례객들이 순례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벳파게는 ‘익지 않은 무화과나무의 집’이라는 뜻으로, 베타니아와 예루살렘 사이에 있는 마을이지만 정확한 위치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학자들은 예루살렘에서 안식일에도 걸어 다닐 수 있는 거리(900m)에 있었으리라고 추측합니다. 벳파게로 추정되는 곳에는 프란치스코 수도회가 관리하는 성당이 있습니다. 해마다 주님 수난 성지 주일이면 이곳에서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기념 행렬을 시작해 올리브 산을 내려오지요. 백영민2018.0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