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의 자비 주일] 세상 떠나는 이들 위해 30년 봉사해온 안여일씨](//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8860_1.0_titleImage_1.jpg)
[하느님의 자비 주일] 세상 떠나는 이들 위해 30년 봉사해온 안여일씨죽음의 절망에 빛을… 하느님 자비의 등대 된 30년 안여일씨는 “절망 속에 병마에 시달리고 고통받는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며 “모든 이들이 자신과 주변 사람과 화해와 용서를 하고 하느님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죽음 앞에 두렵지 않은 사람이 어디 있으랴. 평생 열심히 살았고, 하느님을 굳건히 믿어온 신앙인이라 하더라도 모든 인간에게 죽음은 아프고 두려울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마지막 순간이 덜 외롭고 더 고귀할 수 있다면 그 이별은 조금이나마 따뜻하고 아름다워지지 않을까.‘하느님의 자비 주일’을 맞아 호스피스 봉사, 본당 연령회 회장, 병원 원목 봉사자로 30년 동안 세상과 이별을 앞둔 이들을 위한 ‘자비의 삶’을 살아온 안여일(데레사, 76, 수원교구 별양동본당)씨를 만났다. 최근 일흔을 훌쩍 넘긴 나이에 첫 책 「내가 먼저 희망이 되어야지」(가톨릭출판사 / 1만 원)를 낸 늦깎이 작가이기도 하다. 200여 쪽에 이르는 책에는 그가 그간 베풀며 살아온 따뜻하면서도 감동이 스민 삶의 순간들이 빼곡히 담겨 있다. 안씨는 시종 미소를 지으며 생의 마지막 순간에 있었던 이들과 만난 이야기를 전했다.“죽음은 아프지만 깨달음을 주죠. 저를 만난 모든 이가 어떻게든 존귀한 모습으로 하느님 나라에 들길 바라며 살아왔을 뿐이에요. 제가 좋아서 해온 일인 걸요.”그저 좋아서 한 일안씨는 남을 돕는 일 중에서도 가장 고통 가운데 있는 이를 돌보는 호스피스 봉사를 40대에 시작했다. 그리고 셀 수 없이 많은 이들의 임종을 지켰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책 제목처럼 ‘내가 먼저 희망’이 된 사연들이 쌓였다.“당신이 기도한다고 내 목숨 살릴 수 있어? 나를 그냥 내버려둬!”위암 말기였던 김정해(56, 가명)씨는 문앞에 서서 기도하는 안씨에게 물건을 집어 던졌다. 기도 소리가 듣기 싫다는 그는 입에 담기 어려운 욕도 내뱉었다. 그러기를 며칠이 지났다. “미안했다”며 안씨에게 문을 열어준 정해씨는 깡마른 몸에 수수깡 같은 손을 내밀며 그제야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놨다. 정해씨는 평생 남편을 뒷바라지하다 남편의 사업 실패로 병을 얻어 분노에 차 있었던 터였다. 안씨는 정해씨가 남편과 화해하고, 미처 안타까운 소식을 전하지 못했던 친정어머니까지 병원에 오도록 이끌며 정해씨의 마지막 순간을 함께했다.이뿐만이 아니다. 죽음을 앞둔 이의 첫사랑에게 연락해 마지막 만남을 하도록 소망을 이뤄주기도 하고, 외도한 남편을 용서하는 데 힘들어했던 한 자매의 병원 침상에서 밤새 그의 이야기를 들어줬다. 책에는 죽음을 앞둔 환자와 강원도로 2박 3일 여행을 다녀온 사연, 골수암에 걸린 대녀를 지극 정성으로 돌보고 하느님께 보낸 사연, 근육병 자녀 넷을 둔 할머니를 13년간 딸처럼 방문해 모신 사연 등 ‘가족도 아닌데 어떻게 이렇게까지 지극정성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절로 드는 이야기가 소설처럼 연이어 나온다.안씨는 “오랫동안 반찬 해드리고, 밥과 청소를 해드린 한 할머니는 제가 당연히 성당에서 돈을 받는 줄 아시더라”며 “누군가는 열심히 봉사한다지만, 저는 그보다 그저 ‘좋아서 한 일’”이라고 했다.유방암 수술 이후 얻은 새 삶“제 나이 마흔일곱에 찾아온 유방암은 삶의 전환점이 됐지요.”안씨는 당시 서울성모병원 호스피스 봉사자로 활발히 활동 중이었다. 그러다 갑작스레 유방암 진단을 받고 하루아침에 환자가 됐다. 갖고 있던 일기장과 사진을 다 태워버릴 정도로 극한의 고통을 겪은 안씨는 수술대에서 예수님이 자신을 강으로 끌고 가 머리에 안수해 준 체험을 했다. 이후 그의 삶은 더욱 진솔해졌고, 신앙적으로도 깊어졌다. 덤으로 얻은 생명을 이웃을 위해 쓰겠다고 다짐했다.안씨의 봉사와 나눔은 어머니 영향이 컸다. 안씨의 모친은 산자락에서 어렵게 사는 화전민들에게 먹을 것을 챙겨주고, 집에 있던 옷가지까지 보자기에 싸서 챙겨줬다. 명절 때면 떡을 차고 넘치게 만들어 동네 사람들에게 다 퍼줬다. 정작 식구들에게 돌아오는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안씨는 “그땐 그런 어머니의 모습이 너무 싫었지만, 지금 제가 어머니의 삶을 살고 있는 것 같다”며 “돈이 아니라 참되게 살아온 부모의 삶이 자녀에겐 물려 줄 유산이라 여긴다”고 말했다.이어지는 따뜻한 나눔“사무장님, 떡 사 먹게 2만 원만 주세요.”, “언니, 나 3만 원만 줘봐요.”안씨는 어느 날 영문을 일러주지 않고 주변 사람에게 무작정 돈을 얻어 150여만 원을 모았다. 평소 선행을 많이 하는 안씨에게 스스럼없이 돈을 건넸던 이들은 나중에 문자 메시지 하나를 받았다. 안씨가 보낸 메시지였다. ‘여러분 도움으로 소록도 한센인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했습니다!’ 뜻밖의 문자를 받은 이들은 “그런 줄 알았으면 돈을 더 챙겨줄걸” 하고 답했다. 안씨의 ‘깜짝 성금’으로 소록도 한센인 신자들은 오랜만에 잔치를 벌여 몸보신을 했다. 안씨는 “저와 친한 한센인 할아버지는 뭉뚝한 손에 펜을 묶어 매일 성경을 필사해 완필하셨다”며 “나눔을 하다 보면 이처럼 제가 크게 배우는 일이 비일비재하다”고 했다. 안씨는 이후 성경 필사를 시작했다.그는 지금도 주변에 알리지 않고 이런저런 선행을 이어오고 있다. 휴대전화에 빼곡히 저장된 ‘도와주는 이들’을 지금도 수시로 찾아 딸, 친구, 말벗 역할을 이어오고 있다. 슬하의 아들 셋과 며느리들도 내 일처럼 선행에 동참하고 있다.“막내아들은 입관 때 관을 들어줄 사람 하나 없는 무연고자를 위해 선뜻 나서 관을 들어주기도 했고, 대녀 입관 때엔 며느리가 예쁜 꽃 화관을 만들어 머리에 씌어줬어요. 돌보는 할머니에게 기저귀가 필요하면 자식들이 말없이 사다 놓기도 합니다. 선행은 절대 혼자 할 수가 없어요.”안씨는 “절망 속에 하루하루 병마와 싸우며 고통받는 환자들, 가난한 이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고 싶었다”고 선행의 이유를 밝혔다. “주님께 덤으로 얻은 새 생명을 끝까지 남을 위해 베풀고 싶다”며 “책 판매 수익금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쓸 것”이라고 했다.“죽음을 앞둔 이들은 하나같이 지난날을 후회합니다. 앞만 보고 살아온 것을요. 제가 해온 봉사는 자기 자신과 주변 사람이 화해하고 용서하도록 이끄는 작업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느님 나라에 갈 수가 없잖아요. 지구에 사는 모든 이들은 하느님 안에 한가족이에요. 저는 지금도 남편과 자식들에게 ‘사랑한다’고 자주 말합니다. 옆 사람, 내 이웃에게 참된 사람이 되고 싶어요. 제겐 그래서 이미 ‘하늘나라 친구들’이 많습니다. 훗날 그곳에서 모두 나와 저를 반겨 주겠죠?(웃음)”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04.19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5) 구약에 나타난 기도 - 너 어디 있느냐하느님 부르심에 어떻게 응답하나 이제 「가톨릭 교회 교리서」를 따라 구약 성경에 나타난 기도에 대해 차근차근 알아봅니다. 기도는 하느님의 부르심과 인간의 응답이 만나는 것임을 앞에서 이미 살펴본 바 있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의 첫 부르심은 타락한 첫 인간 아담을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따 먹지 말라고 금하신 열매를 따 먹고 두려워 몸을 숨긴 아담을 하느님께서 부르십니다. “너 어디 있느냐?” 그러고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런 일을 저질렀느냐?” 하느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이 하느님의 모습을 반영하지 못한 채 오히려 하느님의 뜻을 거슬러 죄를 범합니다. 범죄한 인간에게 하느님의 부르심은 더 이상 자애로우신 아버지, ‘보시니 참 좋았다’ 하고 경탄하시는 창조주의 선한 부르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엄한 추궁의 말씀입니다. 하느님이 첫 인간 아담을 대하시는 모습이 달라졌다는 뜻이 아닙니다. 아담 스스로가 하느님의 부르심을 그렇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죄를 지었기 때문입니다. 죄를 지었을 때 우리 내면 깊숙한 곳에서, 우리 양심에 가책을 받아 부끄러움과 두려움이 이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너 어디 있느냐?” 하는 부르심은 단순히 어느 곳에 있느냐는 장소를 묻는 말씀이 아니라 존재론적 부르심, 달리 말하자면 인간 존재의 근원적인 소명 혹은 사명에 관한 물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너 어디 있느냐?”는 “너 무엇을 하고 있느냐?”는 물음과도 통합니다. 그런데 죄를 지은 아담은 이 부르심에 제대로 응답하지 못합니다. 오히려 이렇게 변명합니다. “제가 알몸이기 때문에 부끄러워 숨었습니다”(창세 3,10). 마치 잘못한 후 책임을 추궁당하면 우물쭈물하는 우리 모습을 그대로 반영하는 듯합니다. “너 어디 있느냐?” 하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정확하게 올바로 응답한 분이 있습니다. 하느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보십시오, 하느님!…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러 왔습니다”(히브 10,7). 하느님의 뜻을 이루는 것, 이것이 부르심이 겨냥하는 본래의 목표이고, 인간 응답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에 대한 인간의 완전한 응답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서는 이렇게 언명합니다. “구약 성경에 나타난 기도에 대한 계시는, 인간의 타락과 그 속량 사이에서, (곧) 하느님께서 당신의 첫 자녀에게 탄식조로 ‘너 어디 있느냐?…어쩌다가 이런 일을 했느냐?’ 하는 질문과 외아들께서 세상에 오시면서 ‘하느님, 저는 당신의 뜻을 이루려고 왔습니다’ 하신 대답 사이에서 이루어진다”(2468항). 이것은 기도가 인간의 삶 속에서 인간을 부르시는 하느님과 그에 응답하는 인간의 관계 속에서 이루어진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래서 기도는 “역사의 사건들 속에서 인간이 하느님과 맺게 되는 관계”인 것입니다(2468항).앞으로 몇 회에 걸쳐서 이렇게 구약 성경에서 계시되는 기도를 구약의 주요 인물들의 기도를 통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물론 구약 성경의 첫 장들(9장까지)에는 아벨이 맏배를 봉헌한 일(창세 4,4), 에노스가 하느님의 이름을 부르며 간구한 일(창세 4,26), 노아가 번제물을 바치고 하느님을 기쁘게 해드린 일(창세 8,20─9,17 참조) 등 기도와 관련된 내용들이 나옵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에서 기도가 계시된 것은 특히 성조 아브라함부터이기에 다음 호에는 아브라함의 기도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되새겨봅니다 “너 어디 있느냐?” 오늘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이 부르심에 우리는 어떻게 응답하는지요?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06.28
![[NIE?신문으로 크는 신앙] 같은 하느님을 믿는데, 왜 서로 다른걸까?](//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7682_1.2_titleImage_1.jpg)
[NIE?신문으로 크는 신앙] 같은 하느님을 믿는데, 왜 서로 다른걸까?로마 가톨릭교회와 정교회, 개신교를 흔히 형제 교회라고 해요. 이들은 한 아버지인 하느님을 섬기지만, 교회 역사 2000년 가운데 절반의 세월을 갈등해왔어요. 그리스도교 일치 주간(18~25일)을 맞아 한 뿌리에서 났지만, 갈라져 지내온 형제 교회들에 대해 알아보려고 해요. 1964년 가톨릭과 정교회 간의 화해의 선물로 정교회 측이 선물한 이콘화. 왼쪽이 베드로 사도, 오른쪽이 안드레아 사도이다교회 분열 그리스도교는 왜 분열했을까. 이를 이해하기 위해선 로마의 역사를 잠시 들여다볼 필요가 있어요. 6~8세기 동로마제국 황제 유스티니아누스 대제는 황제가 교회의 수장을 겸하는 ‘황제교황주의’를 따랐어요. 서로마제국 멸망과 게르만족의 대이동 등으로 혼란에 빠진 이 시기 가톨릭교회에서는 교황이 교회의 수장이자 정신적 지주로 부상하게 됐지요. 정치적 대립까지 겪게 된 동ㆍ서로마는 종교의식과 교리도 충돌했죠. 그러던 중 1054년 당시 비잔틴 제국 수도인 콘스탄티노플(지금의 터키 이스탄불) 총대주교 케룰라리우스는 로마 가톨릭교회의 교리를 전면적으로 비난하고 나서기에 이르게 돼요. 성상 파괴 문제와 함께 신학적 논쟁까지 일면서 마찰은 가속화되기에 이르렀어요. 당시 레오 9세 교황은 이에 분노해 케룰라리우스를 파문했고, 교황의 수위권과 무류성을 부정하며 그리스 정교회를 세워요. 로마를 중심으로 교황이 이끄는 서쪽의 가톨릭교회와 동쪽의 정교회로 나뉘는 순간이에요. “로마의 교황은 ‘이교도의 대왕’이다.” 세계 정교회의 최고 권위를 지닌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는 교황을 이렇게 비난했고, 이 같은 갈등은 1204년 제4차 십자군이 정교회의 근거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을 점령하고 몰락에 이르게 함으로써 최고조에 달하게 돼요. 정교회와 개신교 1054년 가톨릭에서 떨어져 나온 정교회는 독자적인 전통과 전례를 지키고 있는 동방 교회들을 총칭해요. 정교회 본거지였던 콘스탄티노플이 1453년 오스만 터키에 의해 함락되자 정교회 중심은 러시아로 옮겨졌어요. 러시아 정교회가 탄생한 배경이죠. ‘올바른 믿음을 가진 교회’라는 뜻에서 정교회(正敎會)라 부르는 이들은 하지만 그리스, 루마니아, 알바니아 등 각 나라의 정교회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국가별 정교회 체제를 유지하고 있어요. 그 후 460년쯤 뒤. 1517년 가톨릭교회 교리와 교회 현주소를 비판하며 등장한 이들이 등장해요. 루터와 칼뱅 등 종교 개혁가로 불린 이들은 가톨릭에 대한 ‘항의자’(Protestant)라는 의미에서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세웁니다. 신학적 견해를 달리하는 교파가 끊임없이 생겨났고, 현재 500여 개 교파가 세계 곳곳에서 활동 중이죠. 대표적 교파로 장로교ㆍ감리교ㆍ침례교ㆍ루터교ㆍ구세군 등이 있어요. 17년 후인 1534년 영국 헨리 8세 국왕은 교황에게 낸 왕비와의 결혼 무효소송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자신을 교회 수장으로 한 (영국) 성공회를 세우면서 또 다른 새로운 형제교회가 생겨나기에 이르죠. 닮은 듯 다른 형제들 정교회 교리는 가톨릭과 비슷한 점이 많아요. 정교회도 일곱 성사를 그대로 보존하고, 성인을 공경하고 있어요. 성직이 주교ㆍ사제ㆍ부제로 나뉘는 것은 가톨릭과 같지만, 사제가 결혼할 수 있다는 점은 가톨릭과 결정적인 차이점이에요. 율리우스력을 주로 쓰는 정교회는 예수 부활 대축일과 예수 성탄 대축일 날짜가 가톨릭과 달라요. 개신교는 마리아 교리와 성사, 연옥 교리를 인정하지 않고 오직 성경만 받아들이고 있어요. 성공회 또한 사도신경과 니케아신경을 인정하는 등 많은 부분이 가톨릭과 비슷하지만, 사제 독신의 의무가 없고, 성경도 개신교처럼 구약 39권, 신약 27권만 인정하고 있어요. 일치와 화해를 향한 노력 형제들의 오랜 분열은 서서히 일치의 바람을 불러오기도 했어요. 20세기 후반 들어 가톨릭 교회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고 동방 교회와의 일치를 위해 힘쓰기 시작해요. 교회 분열 911년 만인 1965년 바오로 6세 교황은 콘스탄티노플 총대주교인 아테나고라스 1세를 예루살렘에서 만납니다. 이때 동서 교회 분열에 의한 상호 파문을 철회하는 공동 선언문을 발표하기도 했어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동ㆍ서 교회 간 대화에 더욱 힘써 1979년 이스탄불을 방문하고, 가톨릭-정교회 합동 위원회 구성을 이끌어내기도 했어요. 2000년 대희년 때에도 시나이와 예루살렘을 순례하는 동안 교황은 동방 교회들과의 일치를 주제로 대화를 시도했죠. 1978년 이후부터는 해마다 성 안드레아 사도 축일에 양측 교회 대표단이 만남을 이어오고 있어요. 문채현2017.01.11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16) 한수산 요한크리소스토모, 소설가](//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6829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16) 한수산 요한크리소스토모, 소설가 잊히고 왜곡된 진실 찾아 오늘도 펜을 든다 비워야 채워진다지만 잊힐 권리조차 허락되지 않는 과거의 아픈 기억들이 있다. 그렇다고 아픔을 슬픔으로만 담아 두어서는 안 될 것이다. 과거의 진실을 기억에 담을 때 역사는 ‘우연이 아닌 필연’이 된다. 너무도 가슴 시리게 아파 지우고 싶은 기억을 끈기 있게 파헤쳐 오늘에 내어놓고 미래를 기도하는 작가가 있다. 소설가 한수산 요한 크리소스토모다. 그에게 과거의 아픈 기억은 분노와 좌절에 머물지 않는다. 과거의 적폐(積弊)는 없어져야 하지만 진실은 기억해 오늘과 내일에 담아야 한다고 말한다. 끊임없이 성모송을 바치며 ‘빛의 갑옷’을 입고 이 시대의 간절함을 찾고 있다. 일제 강점기에 강제 징용된 조선인 노동자의 비극적인 진실을 그린 소설 「군함도」를 넘어 그는 지금 순교자의 발자취를 찾아 걷고 있다. 가진 것과 선입견, 편견을 버리고 ‘무릎 끊게 해 달라’며 주님께 애원하고 있다. 인간성이 상실된 이 시대, 지금 왜 순교자인가? 기도하며 그 답을 찾아 작품에 담는다. 생명의 삶을 살아야 하는 우리에게 ‘과거의 역할’, ‘현재의 임무’, ‘미래의 기도’는 과연 무엇일까?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27년 동안 취재한 소설 「군함도」로 가톨릭문학상을 받으셨어요.사람의 업적이나 공헌에 주는 상이 아니라 작품 「군함도」에 주는 상이어서 참 고마웠어요. 모든 문학 작품은 인간의 선과 휴머니즘을 그리는 것인데요, 본질에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담고 있습니다. 「군함도」를 쓰게 된 것은 아주 우연이었어요. 일본에 있을 때 한 시민단체에서 만든 ‘원폭과 조선인’이란 작은 책을 통해 전혀 몰랐던 과거사를 알게 됐죠. 군함도(일본명 하시마)라는 섬의 해저탄광에서 한국인들의 인권이 그렇게까지 말살됐다는 것을 전혀 몰랐으니까요. 너무 부끄러웠습니다. 화석으로 남겨둘 수 없다는 작가적 소명 의식으로 작품에 매달렸습니다.▶ 「군함도」의 전작인 「까마귀」가 일본에서 화제가 됐었죠.「까마귀」가 나왔을 때 제 얼굴까지 넣은 특집 기사가 다뤄졌어요. 「군함도」는 「까마귀」의 완결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문학작품은 물 위에 떠 있는 빙산이어야 하고 그 밑은 독자의 상상력에 맡겨야 한다는 이론이 있는데요. 전작인 「까마귀」는 빙산의 아랫부분에 집착한 작품이고요. 작가의 의도가 담긴 빙산의 일각만을 담은 작품이 바로 「군함도」죠. 그런데 첫 장면은 취재 과정에서 도움을 주신 분과 나눴던 일화에서 결심한 내용이기 때문에 바꾸지 않았습니다. 방파제에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저쪽이 조선이다’로 시작하죠. 군함도 취재에 도움을 준 다까자네(왼쪽) 교수와 일본 나가사키 평화공원에 선 한수산. ▶ 「군함도」를 통해 주고 싶은 메시지는 무엇인지요.기억하자는 것입니다. 흘러간 역사지만 오늘의 문제로 다시 생각하자는 것이죠. 일제 강점기 수많은 문제에 대해 일본의 반성도, 제대로 된 보상도 없고 새로운 한일관계를 만들어야겠다는 각오도 없잖아요. 문화적 기억을 되살리자는 겁니다. 문화가 나서서 지나간 것들을 오늘의 것으로 되살리자는 것이죠. ‘군함도’라는 섬에서 어떤 일이 있었고 왜 청산되지 않는지 오늘의 문제로 기억하자는 것입니다. 소설과 영화, 노래와 춤이 그것을 해원(解)해 줘야죠. 서글픔을 풀어주는 문화적 작업이 계속될 때 과거는 살아 있는 오늘이 되는 것입니다. 화석처럼 굳어지면 안 될 청산되지 않은 역사는 문화인들이 노래하고 춤추게 해야 합니다. 눈물짓게 하고 분노를 끓게 하는 것, 그게 남아 있는 사람들의 역사적 책무라고 생각해요. ▶ ‘문화적 기억’이라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환시(幻視)시켜야 할 문제들이 있어요. 문화가 나서서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하고 알려야죠. 유다인 문제에 독일은 수상이 무릎을 꿇고 사죄했지만, 일본은 부정하고 왜곡 일변도인데 피해국으로서 우리는 의무를 다했는가 하고 묻게 됩니다. 유다인 관련 영화보다 일제 강점기를 다룬 영화나 소설은 과연 몇 편인가. 문화가 역사의 비극을 알리는 것이 ‘문화적 기억’이라고 저는 믿는 거예요. 어제를 잊은 민족에게 내일은 없고 어제를 읽은 민족에게만이 내일은 희망입니다.▶ 1981년 5월, 한수산 필화 사건을 겪으셨죠.신문에 연재한 장편소설이 전직 대통령을 희화화했다는 이유로 보안사에 끌려가 고문을 당했는데요. 육체적인 고통은 쉽게 사라져도 영혼이 받은 상처는 남아 있습니다. 인간이 살아가는 근본적인 것은 사랑, 우정, 충성 등 추상 명사인데요, 고문은 추상 명사를 없애 버리고 인간을 벌레로 만듭니다. 헤쳐 나오기까지 매우 힘들었죠. 정신 착란까지 겪었습니다. 글을 쓴다는 게 불가능했죠. 전기 고문의 후유증으로 목 밑에서부터 손끝, 발끝까지 새카맣게 탔어요. 석 달이 지나니까 피부가 다 벗겨지더라고요. 이후 작가로서 재충전을 위해 일본으로 갔는데 그게 「군함도」를 있게 한 씨앗이 된 것이죠.▶ 김수환 추기경을 소재로 한 소설 「용서를 위하여」도 발표하셨지요.‘용서는 피해자가 가해자에게 할 수 있는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추기경님 말씀에 굉장히 충격을 받았어요. 가해자가 전혀 반성도 없는데 어떻게 피해자가 먼저 용서할 수 있나. 가혹한 비인간적인 행위(고문)를 했던 집단을 용서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추기경님을 더 깊이 알기 위해 강론과 저서를 포함해 전집을 읽고 1년 동안 추기경님의 자취를 찾아다녔습니다. 추기경님의 옛집을 찾아 어린 시절 냇가에서 어머님과 나눴을 이야기를 떠올리며 말씀하신 ‘용서’의 의미를 생각해 봤죠.▶ 백두산 정상에서 세례를 받으셨어요. 부끄럽게도 가톨릭 ‘삼수생’입니다. 첫 번째는 필화 사건 이후 고문을 받으면서 하느님을 부정했지요. 인간에 대한 혐오감, 세상에 대한 절망감으로 ‘하느님이 계신다면 이럴 수 없지 않습니까’라고 생각했어요. 두 번째는 스스로 예비신자 교리를 신청했다가 실패했어요. 제가 준비가 안 된 거예요. 세 번째는 정말 우연히 중국 여행을 떠나면서 성 라자로 마을의 이경재 신부님을 만났습니다. 가톨릭 삼수생이라고 했더니 웃으시면서 잘 됐다고 해요. 백두산에 도착하니 ‘내일 세례를 주겠다’고 말씀하시는 거예요. 얼음처럼 차가운 백두산 물을 이마에 받으며 세례를 받았습니다. 다시 태어나는 감동에 내내 눈물을 흘렸죠. 하느님을 찬양하고 증거하는 글을 쓰기로 주님과 약속했습니다.▶ 그래서 10년 동안 가톨릭 순교자들을 재조명하셨군요.세례 후 가장 감동 받은 한국 순교자들에 관해 소설을 쓰기로 하고 10년 동안 성지를 찾아다니며 월간지에 103편을 썼습니다. 성경도 교리서도 없이 흔들리지 않고 주님을 향했던 순교 선조들의 가르침은 ‘그냥 믿어라’, ‘주님이 계신다고 생각하라. 그럼, 계실 것이다’였습니다. 일반인들도 읽고 당시 가톨릭 신자들의 위대함이 전해지길 작가로서 온 정성을 쏟을 뿐입니다.▶ 가톨릭 문학작품들을 어떻게 보시나요.다른 종교와 비교하면 가톨릭 문학작품이 현저히 적습니다. 가톨릭 작품을 쓰는 작가들은 많은데 독자에게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더 좋은 작품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인간의 원죄 의식을 바탕으로 한 좋은 작품들이 더 많이 나와야 한다고 생각해요. ‘우리는 모두 죄인이다’에서 시작되는 삶이 작품에 깔려야죠. 그런 면에서 좀 더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요즘 어떤 작품을 준비하고 계십니까.최양업 신부님의 일대기를 소설로 쓰고 있는데요. 내몽골과 필리핀에 다녀왔고요. 최양업 신부님이 귀국 도중 일주일간 ‘경원’에 억류되었다는 기록을 읽고 ‘도문’에서 ‘훈춘’까지 귀국길을 답사했습니다. 최근에는 사료에 딱 한 줄 나오는 기록을 확인하기 위해 두만강 쪽에 다녀왔습니다. ‘두만강 어디를 건넜을까’를 설정하기 위해 아홉 군데를 답사하고 왔습니다. ▶ 약속을 지키면서 소설을 쓰시는데요. 선생님께 ‘약속’은 어떤 의미인지요.작품의 소재가 보이는 게 두려워지는 나이가 됐어요. 그래서 ‘가능한 시간 동안 깨어 있게 해 주십시오’라고 기도하죠. 한국 천주교회사 전체를 소설로 쓰다 죽겠다고 했는데 아직 쓰지 못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성모님 관련 소설을 남기고 싶어요, 성모님의 아름다움, 비참함, 고통, 사랑이 담긴 작품을 남겼으면 하는 게 꿈이자 자신과의 약속입니다. 작업실을 오갈 때 늘 성모송을 바칩니다. ‘제가 무릎 꿇게 해 주십시오’ ‘제가 가진 생각과 고집을 버리고 주님이 주시는 영감으로 작품을 쓰게 해 주십시오’ 하고 기도하고요. ‘빛의 갑옷을 입읍시다’(로마 13,12)라는 성경 말씀을 늘 가슴에 품고 삽니다.▶ 작품에서 ‘역사성’과 ‘감사’를 통합시키는 과정이 궁금합니다.‘왜 지금 최양업인가’는 그분의 편지 속에 답이 있습니다. 인간의 평등성, 인간에 대한 설움, 박애의 정신이 다 담겨 있거든요. 작품에 그것을 넣지 않는다면 소설 최양업을 쓸 이유가 없죠. 작품을 통해 그것을 묻고 담을 것입니다. 소설은 과거형을 서술하지만, 작가는 그 안에서 벗어나야죠. ▶ 새 정부가 출범했는데요, 작가에게 요구하는 시대적 소명 의식은 무엇인가요.정치, 사회적 변화에 크게 영향을 받지 않는 것이 작가라고 봅니다. 마음에 품은 작품으로 변화를 넘어서는 게 작가인 것 같아요. 일종의 적폐라고 이야기하는 문화계 블랙리스트는 이젠 없어져야 합니다. 인간의 자유를 향해 글을 쓰는 사람들이 작가입니다. 시대가 변해도 작가의 본질이 변하면 안 됩니다. 윌리엄 포크너가 그랬잖아요. ‘작가는 종이와 연필만 있으면 된다’고요.▶ 소설가를 꿈꾸는 젊은이들에게 한 말씀 해 주시죠.‘장르를 뛰어 넘어라’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제까지 있었던 소설 장르, 단편소설, 장편소설 이것은 없어져야 하고요. 시나리오나 연극 대본 아니면 춤추기 위한 대본용 소설을 써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글 쓰는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은 글은 고쳐야 합니다. ‘일단 쓰고, 고쳐라.’ 고칠 때부터 글이 됩니다. TV방송 시각 : 4일 오후 7시, 5일 오후 11시 백영민2017.06.28
![[성경 속 도시] (42) 바빌론](//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8187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2) 바빌론유배 생활의 치욕과 비운 서려 바빌론 유배 생활을 담은 부조 복제품, 다윗 탑의 예루살렘 역사박물관.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고대의 가장 유명한 도시 중 하나인 바빌론은 고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 위치한 옛 도시다. 바빌론은 티그리스 강과 유프라테스 강 사이의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남동쪽에 있었다. 현재는 이라크 바그다드 남쪽 80km 지점에 해당한다. 탐욕과 죄악의 도시기원전 2000년대 초기부터 1000년대 초기까지 남부 메소포타미아의 수도였고, 기원전 7세기와 6세기에는 신바빌로니아 제국의 수도였다. 바빌로니아는 활발한 정복 활동으로 마침내 전 메소포타미아를 지배하는 대국이 됐다. 이후 함무라비 대왕 등 위대한 왕들이 등장하면서 바빌론은 거의 역사상 최초로 ‘세계의 수도’라는 명성을 얻게 되었다. 바빌로니아가 망한 뒤 아시리아 등 강대국의 패권이 이어진 뒤에도 바빌론은 여전히 주요 대도시로서 건재했으며 아시리아가 망한 후 칼데아인들에 의해 신바빌로니아가 세워져 바빌론은 다시금 세계의 수도로 재등장한다. 성경에서 바빌론은 탐욕과 죄악으로 가득 찬 악의 도시와 같은 이미지가 강하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가장 비참하고 치욕스러운 바빌론 유배 때문이라 추정한다. 유다인들은 자신들을 침략한 바빌로니아를 극렬하게 증오했다. 유다인들에게 바빌론은 억압, 독재, 우상숭배와 같은 뜻으로 사용됐다.솔로몬이 건축한 예루살렘 성전은 기원전 587년 바빌론 임금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철저히 파괴됐다(2열왕 25,1-21). 몇 년 뒤 그는 성전을 완전히 파괴하고 성 안의 보물을 모두 약탈해 가져갔다. 그리고 이스라엘의 임금 치드키야의 자녀들을 살해하고, 그를 바빌론으로 압송했다(2열왕 25,7). 예루살렘을 함락한 뒤 바빌론 임금의 친위대장 느부자르아단은 성전과 솔로몬 궁, 예루살렘의 모든 집을 불태우고 성벽을 허물었다. 아울러 성전의 금과 은, 청동으로 만든 성물을 약탈하고 스라야 수석 사제를 비롯한 성전 사제들과 대신들을 바빌론으로 압송해 하맛 땅 리블라에서 처형했다(2열왕 25,8-25). 이후 이스라엘 백성은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멸망시킨 페르시아 임금 키루스의 칙령으로 해방돼 유배 생활 50년 만인 이듬해부터 본국으로 귀환했다(에즈 1─2장).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이들은 옛 자리에 제단을 쌓고 하느님께 제사를 드렸고 성전 재건에 힘썼다. 그러나 이 재건 공사는 사마리아 귀족들의 방해로 16년간 중단해야 했다(에즈 4,1-24). 그래도 희망을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의 계약에 충실하지 않아서 나라가 멸망하는 비운을 맞았다(2역대 36,17-21). 그러나 바빌론 유배 생활을 통하여 이스라엘은 새롭게 정화됐다. 또 이사야, 예레미아, 에제키엘 등 대예언자들이 역사에 등장하여 예루살렘의 부흥과 메시아 출현 등 희망을 예언했다(이사 4,2-3; 예레 5,18). 신약의 경우, 일부 초기 그리스도교 작가들은 로마라는 명칭 대신 ‘바빌론’이라는 말을 일종의 암호처럼 사용했다. 신약의 요한 묵시록도 신도들을 박해하는 사악하고 억압적인 권력을 가리키는 의미로 바빌론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사용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김현진2015.04.28
![[성경 속 도시] (48) 아인 카림](//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5440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8) 아인 카림엘리사벳, 마리아와 태중의 예수님 반겨 성모님 방문 성당에 들어서면 성모님과 엘리사벳이 임신한 배를 맞대고 있는 석상이 순례객을 반긴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아인 카림(Ein Karem)은 예루살렘 서남쪽으로 7~8㎞쯤 떨어져 있는 계곡 속에, 포도나무와 올리브나무들로 가득한 아주 아름다운 작은 마을이다. ‘포도밭의 샘’이란 뜻의 아인 카림은 1948년 이전까지는 이슬람과 그리스도인이 함께 살고 있었던 조용한 마을이었다. 그런데 1948년 아랍과 이스라엘이 전쟁을 하게 되자 기존의 아랍인은 이 지역을 모두 떠나갔다. 이스라엘이 승리하자 유다인이 아인 카림을 점령했고, 이스라엘은 법을 만들어 제도적으로 아랍인들을 추방했고, 유다인들이 정착하게 됐다.요한 세례자의 출생지물론 성경에는 아인 카림이라는 지명은 언급되지 않는다. 그러나 아인 카림은 요한 세례자의 출생지와 처녀 마리아가 친족 엘리사벳을 방문한 장소로 예로부터 유명하다.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과 거의 동시대를 살았고 예수님과 아주 가까운 인척이었다. 요한 세례자는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인 즈카르야와 성모님의 친척 엘리사벳의 아들로 예루살렘 남서쪽에 위치한 아인 카림에서 태어났다(루카 1.57-66). 아인 카림이 더 유명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교 순례자들이 즐겨찾는 ‘성모님 방문 성당’과 ‘세례자 요한 탄생 성당’이 있어서다. 세례자 요한 탄생 기념 성당에 들어서면 성경에서 언급하는 요한 세례자의 탄생 이야기에서 보듯 하느님 섭리를 느끼게 된다(루카 1,5-25). 이 성당은 5세기쯤에 세워졌지만 파괴됐다가 십자군 시대에 재건됐다. 그 후 이슬람 침입으로 완전히 파괴됐다. 현재의 기념 성당은 17세기에 프란치스코 수도회에서 복구를 시작해 1885년에 보수하고 개축한 성전이다. 성당 입구에 들어서면 왼쪽 벽에 세례자 요한의 탄생을 기뻐하며 노래한 아버지 ‘즈카리아의 노래’가 여러 나라 말로 적혀 있다. 한글 노래도 걸려 있어 반갑다. ‘세례자 요한 탄생 성당’에서 약 1㎞ 떨어져 있는 ‘성모님 방문 성당’으로 가다 보면 주차장 옆에 있는 ‘마리아의 샘’을 만나게 된다. 이 샘은 14세기부터 마을 사람들에 의해 ‘마리아의 샘’으로 불리고 있다. 그 위에는 이슬람 사원이 자리하고 있다. 마리아의 샘’을 지나 한적한 길을 따라 조금 더 올라가면 산 중턱에 아담한 기념 성당이 기다리고 있다. ‘성모님 방문 성당’은 나자렛의 ‘성모 영보 대성당’과 함께 가장 중요한 성모님 성지 가운데 하나다. 천사로부터 “성령으로 잉태할 것”이라는 소식을 들은 처녀 마리아는 유다 산골 즉 아인 카림에 사는 즈카리아의 집을 방문, 사촌 언니 엘리사벳을 만난다. “그 무렵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 그리고 즈카르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인사하였다”(루카 1,39-40). 마리아를 본 순간, 엘리사벳은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하며 감격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와 태중의 예수님을 반갑게 맞았다.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 약 3개월간 머물렀다(루카 1,56). 이렇게 엘리사벳은 구세주를 기다리는 전 인류의 상징이 됐고, 마리아는 구원을 전하는 공동체인 교회의 상징이 됐다.나자렛에서 130㎞ 넘는 먼 거리성경에서는 마치 가까운 동네를 방문하는 것처럼 간단하게 서술돼 있지만 성모님이 계시던 나자렛에서 산악 지방 아인 카림까지는 실제로 130㎞가 넘는 아주 먼 거리다. 서둘러 걸어도 사나흘이 족히 걸리며 산을 넘어야 하는 험한 길이었다. 현재 두 분의 만남을 기념하는 성당 앞마당에는 두 분이 임신한 배를 맞대고 있는 재미있는 기념석상이 있으며 성당 담벽에는 성모님의 노래 ‘마니피캇’이 전 세계 언어로 새겨져 부착되어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6.09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사도 12,24)](//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4435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의 신약 여행](52) “하느님의 말씀은 더욱 자라면서 널리 퍼져 나갔다.”(사도 12,24)이방인에 ‘구원자 예수’ 알리는 선교 여행 첫발바오로와 바르나바 사도는 리스트라 지방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하다가, 자신들을 신처럼 대하는 이들과 갈등을 겪고 돌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긴다. 뒤자르댕 작 ‘리스트라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하는 성 바오로’, 1663년,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네덜란드.바오로 사도와 관련된 가장 중요한 도시로 언급되는 것은 안티오키아입니다. 이미 스테파노의 순교 이후에 박해를 피해 일부 사람들이 안티오키아로 가서 자리를 잡았습니다. 이러한 소식을 접한 예루살렘의 모교회는 바르나바를 안티오키아로 파견하게 되고 그는 바오로를 찾아가서 함께 활동을 시작하게 됩니다. 한 가지 기억할 만한 것은 “안티오키아에서 제자들이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라고” 불리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사도 11,26) 안티오키아 교회에 머물러 있던 이들은 성령의 말씀을 듣습니다. “내가 일을 맡기려고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렀으니, 나를 위하여 그 일을 하게 그 사람들을 따로 세워라.”(사도 13,2) 이러한 말씀에 따라 그들은 바오로와 바르나바에게 안수하고 그들을 떠나보냅니다. 이제 본격적으로 바오로 사도의 선교 여행이 시작되는 셈입니다. 그들은 가장 먼저 키프로스 섬으로 건너가 그곳에서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합니다. 재미있는 것은 이들이 조수로 “요한”을 데리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여기서 언급되는 요한은 ‘마르코라 하는 요한’(사도 12,12.25)으로 전통적으로 마르코 복음서의 저자로 생각되는 인물입니다. 바오로의 첫 번째 선교 여행에는 이렇게 바르나바와 요한 마르코가 동행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들은 키프로스 섬을 거쳐 소아시아 지방에 있는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의 회당에서 바오로는 사람들에게 설교합니다. 이 설교는 하느님의 선택과 약속에 대한 내용으로 구원 역사에 대한 요약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하시고 그들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내셨으며 아브라함에게 약속한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 백성에게 상속 재산으로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판관들을 세워주시고 더 나아가 임금을 요구하자 그들에게 임금을 세워주셨습니다. 바오로 사도의 이름과도 같은 사울 임금을 시작으로 다윗을 임금으로 세우셨으며 그의 후손 중에 구원자를 보내시기로 약속하셨다는 내용입니다. 바오로의 설교 내용 안에서 예수님은 구약에서 말하는 왕적인 메시아의 모습입니다. 하느님의 약속처럼 다윗의 후손에서 올 구원자의 모습으로 예수님을 표현합니다. “이 구원의 말씀이 바로 우리에게 파견되셨습니다.”(사도 13,26) 이 예수님에 앞서 파견된 요한은 회개를 위한 세례를 선포합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예언자들의 말씀이 이루어지게 하셨다”고 이야기합니다. 바오로의 설교 안에서 예수님은 구약의 예언을, 하느님의 약속을 실현시키는 분으로 소개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을 선택했던 하느님의 계획과 약속은 예수님을 통해 실현되고 그 선택은 여전히 예수님을 통해 이어집니다. 바오로 사도는 또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 대해서도 그분은 죄가 없었지만 유다인들은 빌라도에게 사형을 요구하고 “성경에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 이 모든 일들이 벌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이 안에서 모든 일을 주관하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아무 의미 없이 그냥 일어난 일들이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이 실현되기 위한 것임을 바오로 사도는 강조합니다. “여러분은 이것을 알아야 합니다. 바로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에게 죄의 용서가 선포됩니다.”(사도 13,38)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죄의 용서를 통해 사람들이 의롭게 될 수 있다고 전합니다. 이러한 바오로 사도의 사상은 그의 서간들에서 좀 더 구체적으로 표현됩니다. 사도행전은 바오로의 설교에 많은 유다인이 개종하게 되었고 많은 사람의 관심을 받았다고 전합니다. 하지만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그곳에 머물지 않고 선교 여행을 계속합니다. 그들은 소아시아 지방의 이코니온과 리스트라에서 선교합니다. 항상 결과가 좋았던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리스트라에서 앉은뱅이를 치유한 것을 본 이들은 바오로와 바르나바를 마치 신처럼 대합니다. 이런 그들을 말리던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돌에 맞아 죽을 고비를 넘기기도 합니다. 이러한 일을 끝으로 다시 안티오키아로 돌아온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자신들의 첫 번째 선교 여행을 마칩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김지항2017.06.07
214위 시복, 본격 궤도에 오르다시복 예비 심사 법정 개정, 근·현대 순교자의 첫 번째 시복 재판으로 의미 하느님의 종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그리고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의 시복 추진 예비 심사 법정이 2월 22일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회의 대회의실에서 열렸다. 주교회의 시복시성주교특별위원회 위원장이며 시복 재판관인 유흥식 주교는 시성 절차법에 따라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에 법정을 구성하고, 지역 교회에서 진행하는 예비 심사를 합법적으로 추진할 것을 교령으로 선포했다. 이날 법정 개정식에는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시복 대상자 소속 교구와 수도회 대표들이 참석, 재판 과정을 지켜봤다. 이번 법정은 103위 성인과 124위 복자에 이어 조선 왕조 치하에서 순교한 이들의 마지막 시복 재판이다. 아울러 주교회의 차원에서 추진하는 근ㆍ현대 순교자의 첫 번째 시복 재판이다. 시복 예비 심사 법정은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의 시복시성 소송 청원서 낭독, 교황청 시성성의 소송 추진 교령과 ‘장애 없음’ 발표로 막을 올렸다. 이어 시복 소송 관할권자인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과 마산교구장 배기현 주교의 관할권 위임장 낭독, 법정 구성 교령 발표, 법정 구성원들의 직무 수락 서약과 서명 순으로 진행됐다. 법정 구성원인 재판관과 재판관 대리, 검찰관, 공증관은 성경에 손을 얹고 공정한 재판과 비밀 유지 등 합법적으로 법정을 운영할 것을 선서하고 서약했다. 이어 재판관과 재판관 대리, 검찰관들은 각 시복 예심 청원인들이 제출한 증인 명단을 확인하고 승인했다. 유흥식 주교는 “6ㆍ25 전쟁 전후 순교자들의 가해자인 북한 공산주의자들이 현존하고 있어 재판 과정에서 예상하지 못한 어려움이 닥칠 수 있을 것”이라고 우려했다. 그럼에도 “정확한 조사와 심사를 통해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준비하는 시복 과정이 되길 바란다”고 당부했다.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법정 구성원과 증인들, 개정을 위해 수고한 모든 분께 감사드린다”면서 “이번 재판이 어렵지만, 이 어려움이 은혜로운 시간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한다”고 격려했다.한편, ‘이벽 요한 세례자와 동료 132위’의 예비 심사 제2차 회기는 4월 27일에, ‘홍용호 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와 동료 80위’의 2차 회기는 5월 25일에 열린다. 장소는 서울 중곡동 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이다. 법정 구성원들은 한국 교회에서 진행되는 시복 예비 심사 과정만 대략 4~5년 정도 걸릴 것으로 예상하면서 신자들의 지속적인 기도를 요청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7.02.28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9) 천사들의 찬미와 목자들의 경배(2,8-20)](//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8085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9) 천사들의 찬미와 목자들의 경배(2,8-20) 양떼마저 뒤로한 채 주님 계시 따른 목자들의 믿음여관방을 구하지 못한 상태에서 마리아가 해산해 아들을 낳자 요셉과 마리아는 아기를 포대기에 싸서 구유에 뉘입니다.(2,6-7) 여기에서 이야기가 끝나버린다면, 뭔가 먹먹하다는 느낌 혹은 안타깝다거나 안됐다거나 하는 느낌으로 그칠 것입니다. 루카복음은 방향을 바꿉니다. 무대가 구유에서 베들레헴의 들판으로 변합니다. 오늘날에도 베들레헴은 시내에서 조금만 벗어나면 야트막한 구릉지들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 일대에는 깊지 않은 천연 동굴들이 있지요. 양을 치는 목자들이 양들과 함께 추위나 비바람을 피해 지내기에 적당한 곳들입니다. 이스라엘 지역은 우기와 건기가 구별돼 있습니다. 그래서 3, 4월에서 9, 10월은 건기이고 11월에서 2월은 우기입니다. 우기라 하더라도 우리나라 장마처럼 비가 내리지는 않습니다. 그러니 양을 치는 목자들은 사시사철 밤낮없이 들판에서 지내기도 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에서는 목자들은 죄인 취급을 받았다고 합니다. 들판에서 양을 치다 보니 주인 몰래 양젖이나 양털로 수입을 올리는 일이 있었겠지요. 그뿐 아니라 늘 야외에서 생활하다 보니 안식일 규정을 비롯해 율법을 제대로 지키기가 힘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님의 천사가 양을 치는 목자들에게 나타납니다. 밤인데도 잠을 자지 않고 “양떼를 지키는”(2,8) 것으로 보아 그 목자들은 비록 죄인 취급을 받을지라도 사람들의 이목과 상관 없이 자기 직분에 충실한 이들, 그래서 성실하고 순박한 이들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즈카르야가 천사의 발현에 놀라고 두려워했듯이(1,12), 목자들도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자기들의 둘레를 비추자 몹시 두려워합니다.(2,9) 그런 목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안심시키면서 전하는 천사의 말은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2,10-12) 베들레헴엔 예수님 탄생 기념 성당 말고도 목자들이 양떼를 지키던 들판에서 천사에게 예수님 탄생 소식을 들은 것을 기념하는 목자들의 들판 성당이 시내에서 조금 벗어난 곳에 있다. 사진은 목자들의 들판 성당 구내에 있는 동굴 성당 입구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①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너희에게 전한다.” 천사가 전하는 소식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몇몇 사람에게만 해당하는 기쁜 소식이 아니라 “온 백성에게” 그것도 “큰 기쁨”이 될 소식입니다. 사람들이 죄인 취급하는 가난한 목자들이, 그러나 밤중에도 양떼를 지키는 순박한 목자들이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을 듣는 첫 사람이 됩니다. ② “오늘 너희를 위하여 다윗 고을에서 구원자가 태어나셨으니, 주 그리스도이시다.” 큰 기쁨이 될 소식의 내용은 구원자가 다윗 고을에서 태어나셨는데 그분은 주 그리스도시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다윗 고을”은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구원자”는 구약성경에서는 주로 하느님을 가리키는 표현으로 사용됩니다. 그러나 때로는 이스라엘의 판관을 지칭하기도 합니다. 그리스 로마 시대에는 제국의 황제나 통치자를 ‘구원자’로 불렀다고 하지요. “그리스도”란 바로 이스라엘 백성이 고대하던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목자들이 천사에게 들은 소식은 실로 엄청난 소식입니다. ③ “너희는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를 보게 될 터인데 그것이 너희를 위한 표징이다.” 이 엄청난 소식을 전하면서 천사는 세 번째로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누워 있는 아기”가 그 표징이라고 말합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할 메시아, 그리스도이신 분이 포대기에 싸여 여물통에 누워 있다는 것입니다. 온 백성에게 큰 기쁨이 될 소식에 비하면 그 현실은 초라하기 그지없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갑자기 천사 곁에서 하늘의 군대가 나타나 하느님을 찬미한 것입니다.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느님께 영광, 땅에서는 그분 마음에 드는 사람들에게 평화!”(2,14) 적막한 밤. 갑자기 천사가 나타나 두려움에 휩싸인 목자들을 안심시키며 그리스도 탄생을 알린 데 이어 하늘 군대가 영광과 평화를 노래합니다. 그러고 나서 사방은 다시 고요해집니다. 목자들은 잠시 ‘이게 꿈일까 생시일까’ 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천사가 알려준 대로 베들레헴으로 “서둘러 가서” 마리아와 요셉과 구유에 누운 아기를 찾아냅니다.( 2,15-16) “서둘러”라는 표현은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졌다는 천사의 전갈을 들은 후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으로 엘리사벳을 찾아간 마리아의 모습을 연상케 합니다. 목자들이 가서 보니 천사의 말이 사실이었습니다. 그들은 거기 있던 사람들에게 자기들이 들은 말을 알려줍니다. 그 말을 들은 이들은 또한 모두 “놀라워”합니다.(2,17-18) 하느님의 일은 사람을 놀라게 합니다. 하지만 놀라는 것으로 그쳐서는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마리아의 모습은 우리에게 모범이 됩니다.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2,19) 우리 또한 마리아처럼 놀라운 일이 생겼을 때 그 놀라운 일 속에 숨은 하느님의 뜻을 헤아리고 되새길 수 있어야 합니다. 루카는 이 이야기의 마지막을 “목자들은 천사가 말해 준대로 듣고 본 모든 것에 대해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며 돌아갔다”(2,20)고 마무리합니다. 목자들은 하느님을 찬양하고 찬미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모든 일이 천사에게 들은 그대로였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기 첫째 밤에도 양떼를 지키는 목자들이라면 책임감이 뛰어났을 것입니다. 캄캄한 밤에 야생에서 양떼를 돌봐야 하는 만큼 이 목자들은 주변의 변화에 민감했음이 분명합니다. 여기서 잠시 엉뚱한 생각을 해봅니다. “주님의 천사가 다가오고 주님의 영광이 목자들의 둘레를 비추었다”(2,8)고 루카는 기록하지만, 목자들이 천사가 다가오는 것을 그리고 주님의 영광이 자신들의 주위를 비추는 것을 느낀 것은 그들에게 그런 민감함이 있었기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 말입니다. 우리는 때로는 하느님께서 직접 천사를 보내셔서 당신 뜻을 말씀해 주기를 바랍니다.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실상 여러 가지 방식으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데 우리 스스로가 마음의 눈을 감고 귀를 막아 알아차리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둘째 왜 하느님께서는 사람들이 죄인처럼 여겨 가까이하지 않으려는 목자들에게 먼저 구세주의 탄생을 알리셨을까요? 두 가지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루카복음을 처음 시작할 때에 말씀드렸듯이, 성경학자들은 가난한 이들, 죄인들, 소외받은 이들에 대한 관심이 루카복음의 특징이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렇다면 루카복음의 특징이 여기에서도 드러나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또 한 가지는 구약에서 예언자 사무엘이 다윗을 이스라엘 왕으로 세우고자 베들레헴으로 이사이의 집을 찾았을 때 하느님께서 사무엘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나는 사람들처럼 보지 않는다. 사람들은 눈에 들어오는 대로 보지만 주님은 마음을 본다.”(1사무 16,7) 우리는 우리 자신도 모르게 가지고 있는 다른 사람들에 대한 편견에서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백영민2017.04.12

하느님 자비 앞에 의심병이 자꾸 도진다면…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파우스티나 성녀의 삶, 성경의 자비와 성모님 자비·교회가 전하는 자비 설명엽서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만났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만났습니다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 지음/신동환 옮김/바오로딸/1만 원하느님 자비는 곱씹으면 곱씹을수록 새롭고 또 놀랍다. 고통의 순간엔 ‘하느님께서 정말 자비하신가’라는 의구심이 들다가도 끝내는 ‘하느님께선 진실로 자비로우신 분이시구나’를 깨닫게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끊임없이 하느님 자비를 의심한다. ‘하느님이 자비하시다면, 왜 전쟁이 나는가’ ‘예수님은 왜 누구는 병을 고쳐주고, 누구는 고쳐주지 않는가. 자비하다면 모든 이들을 낫게 해줘야 하지 않는가’ ‘하느님 자비에 연연하는 건 인간이 나약해서 아닌가.’ 책은 이러한 하느님 자비에 의문을 던지는 이들에게 “하느님 자비를 올바르게 알지 못해서 그렇다”고 일러준다. 또 하느님 자비 신심이 올바르지 못하면, 자비의 실천이 교만과 오만으로 나타난다고 경고한다. “우리는 예수님께서 제시하신 자비의 길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이해해야 합니다. 그리고 잘못된 자비의 행태를 비판하는 올바른 목소리에도 마땅히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 겉보기에 자비로운 행위는 지극히 이기적이고 역기능적인 행동방식을 감추는 위장 수단입니다”(20쪽).책은 ‘자비의 교황’이라 불리는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자비의 성녀’로 널리 알려진 파우스티나 성녀를 통해 자비 신심에 관한 올바른 신학적 해석이 무엇인지를 보여준다. 이어 성경에서 자비가 어떻게 나타났는지, 예수님은 어떻게 자비를 실천했는지, 바오로 사도는 어떻게 하느님 자비를 증거하고 전도했는지를 다룬다. 이와 함께 자비의 성사인 고해성사, 가톨릭 교리에서 말하는 자비, 성모님의 자비 등도 빼놓지 않고 설명한다. 저자는 오스트리아 빈대교구장 크리스토프 쇤보른 추기경이다. 쇤보른 추기경은 2008년 로마에서 열린 ‘하느님 자비의 세계 사도대회’를 맡아 준비하면서 하느님 자비 신심을 알리기 위해 신자들을 대상으로 매달 하느님 자비에 대한 교리 교육을 했다. 책은 당시 강의 내용을 담았다. 그는 “하느님 자비를 청해야 한다”고 강조했다.“하느님께 은총을 간절히 청해야 합니다. 기도를 하면서 청원하고 사랑의 봉헌을 하면 하느님께서 은총을 선사해 주십니다. 하느님께서는 누군가 당신의 자비를 ‘청원하기를’ 간절히 기다리십니다”(260쪽).한편 출판사는 책 발간 기념으로 ‘대전의 명물’ 성심당과 함께 ‘자비의 빵’ 캠페인을 펼친다. 자비의 해를 선포하며 가난한 이들과 함께 하느님 자비를 나눌 것을 강조한 프란치스코 교황 뜻에 따라 책과 빵을 나누기로 한 것. 책에서 마음에 와 닿는 구절을 바오로딸 서원에 비치된 엽서에 써내거나, 출판사 인터넷 홈페이지(www.pauline.or.kr)와 페이스북에 댓글로 올리면 된다. 출판사는 엽서 한 장당, 댓글 한 개당 200원씩 기부해 이 기부금으로 결식아동센터와 무료급식소 등에 책과 빵을 보낼 예정이다. 자비의 빵 캠페인은 5월 30일까지 진행된다.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6.03.24

뚝딱뚝딱…...내 손으로 만드는 ...나무 성상가톨릭 목공예 장재덕 회장이 한 회원에게 조각 기법을 설명하고 있다. “스스슥, 슥슥….”서울 강남구 삼성동의 한 목공예 작업실. 성가가 잔잔히 흐르는 가운데 10명에 가까운 가톨릭 신자들이 조각칼을 들고, 나무를 깎는다. 칼끝이 나무에 닿아, 나무의 결을 깎아낼 때마다 예수의 머리에 가시관이 얹어지고, 눈망울이 깊어진다. 오랜 시간 다듬고, 깎는 과정을 통해 만날 수 있는 결과물이다.7일 나무로 성상을 조각하며 영성의 향기를 꽃피우는 서울대교구 사목국 단체사목부 산하 ‘가톨릭 목공예(회장 장재덕)’ 회원들을 만났다.“오소서 성령님, 저희 마음을 성령으로 가득 채우시어, 저희 안에 사랑의 불이 타오르게 하소서.”수업이 시작되는 오후 2시. 앞치마를 멘 회원들이 성호를 긋고 ‘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를 바치고 성경을 읽는다. 2006년 서울 청담동성당에서 목공예 문화교실로 시작한 가톨릭 목공예는 2011년 서울대교구 인준을 받고 활동하고 있다. ‘모든 것이 함께 작용하여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로마 8, 28)를 슬로건으로, 지금까지 350~400여 명이 목공예 수업을 받았다. 그리스도교의 상징물과 한국 성인의 삶과 신앙 고백, 성경 말씀 등을 성물 조각을 통해 드러내 그리스도교의 정신을 구현하는 것이 목표다. 처음 회원이 되면, 1~2개월은 사포에 칼만 갈아야 한다. 칼의 종류가 12가지로 다양한 데다가, 칼의 경사면을 평면에 대고 갈아야 촉각에 대한 감각을 익히고 수월하게 조각 작업에 임할 수 있다.“나무로 성물을 조각하는 일은 나무의 물성과 신앙의 영성이 교감하면서, 하느님의 관념을 나무에 투영하는 작업입니다.” 독학으로 조각을 배운 장재덕(바실리오) 회장은 “나무에는 칼을 거부하는 결이 있고, 칼을 잘 받아들이는 결이 있다”면서 “작업하는 동안 나무의 물성과 대화를 하다 보면 나무에서 배울 점이 참 많다”고 설명했다. 장 회장은 “나무 조각이 얼음이나 돌보다 어려운 이유는 조각도가 잘 들어도 나무의 결을 세심히 보면서 작업하지 않으면, 나무는 자신이 찢어지고 싶은 방향으로 먼저 찢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빠른 속도에 결과물을 내는 것에 길든 요즘 사람들에게 목공예는 한없이 느리고 답답하다. 인내력이 없으면 해낼 수 없는 예술 작업이다. 초반에 칼만 갈다가 목공예 작업을 중단하는 사람들도 많다.현재 회원은 20명. 모두 목공예를 시작한 시기가 달라 각자 진도는 다르다. 누군가는 예수의 얼굴을 조각하고 있지만, 또 다른 회원은 칼만 간다. 직업은 현직 및 은퇴 교사가 많다. 대부분 평소에 미술과 예술에 관심이 있던 사람들이 꿈을 펼쳐보고 싶어 문을 두드린다. 이들이 나무를 깎으며 몰입하는 시간은 하느님과 만나며 침묵하는 시간이다.고등학교 교사로 방학 때마다 목공예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박보연(레지나, 41, 수원교구 동탄 영천동본당)씨는 “하느님 안에서 미술을 하고 싶어 이곳에 찾아왔다”면서 “성가를 들으며 조용히 나무를 만지는 이 시간은 기도하는 시간과 다름없다”고 말했다.박씨는 “작업을 하는데 가시관이 너무 깊게 들어가거나, 예수님의 표정이 너무 안쓰럽게 표현이 됐을 때는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는 마음이 전해져 눈물이 난다”면서 “이 시간은 은총이 가득하다”고 덧붙였다.유통업을 하는 김철웅(베드로, 58, 서울대교구 가락본동본당)씨는 “먹고 사는 일도 중요하지만 노후에 골프를 치러 다니는 것보다 성물 조각을 하는 게 더 의미 있겠다 싶어 조각을 배우고 있다”며 “조각을 하는 동안 나 자신의 악습이 순화되고 마음이 영성적으로 깊어진다”고 말했다. “작품 하나가 나오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지만 그 시간이 결코 헛되지 않음을 몸으로 배우고 있다”고 덧붙였다. 가톨릭 목공예 총무로 활동하고 있는 김보라(사비나, 36, 서교동본당)씨는 “조각칼로 나무를 깎아내는 일이 단순한 동작 같지만 그 동작을 통해 예수님께 가까이 다가가게 된다”면서 “개인적으로 아픔과 상처가 많은 분이 신앙적으로 치유되는 것 같다”고 털어놨다. 글·사진=이지혜 기자 bonaism@cpbc.co.kr가톨릭 목공예 이것이 궁금해요! 1. 미술과 조각, 목공예는 한 번도 배우지 못한 초보도 수업을 들을 수 있나요? 이곳에 오는 대부분 회원은 성물 조각을 처음 접하는 분들입니다. 하느님과의 관계 안에서 새로운 안목으로 영성적 재능을 키워가는 곳입니다. 2. 교육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회원 모집 기간이 있나요? 교육 기간은 개인의 작업량과 결과물에 따라 다릅니다. 성물 조각은 조급한 마음에서 자유로워야 합니다. 일생일업이라는 신념과 종신직업이라는 마음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회원 모집 기간은 따로 없으며, 언제든지 들어올 수 있습니다. 3. 재료비와 수강료가 궁금합니다.성물 조각 전문 과정 수강료는 주 1회 수업으로 3개월에 45만 원입니다. 처음 입문할 때 조각도는 10만 원에 구매할 수 있습니다. 학습 진도에 따라 다양한 공구를 사용하며, 그때마다 낱개로 조각도를 추가로 구매해 사용하면 됩니다. 나무는 단체에서 제공합니다. 4. 교육과정이 궁금합니다.처음 1, 2개월 칼을 간 후 평면, 경사, 기초 환조 과정을 배우게 됩니다. 칼을 가는 과정이 끝나면, 기하학적인 문양을 먼저 배운 후에 인체 및 얼굴 연습을 위한 구를 만듭니다. 예수의 측면과 반측면을 조각하는 연습을 한 후, 자유로이 성물을 선택해 작업하게 됩니다. 문의 : 가톨릭 목공예 카페 http://cafe.naver.com/cmc04 문채현2017.02.15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 연재를 시작하며](//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3645_1.1_titleImage_1.jpg)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 (1) 연재를 시작하며알쏭달쏭했던 성미술 알고 보면 가톨릭 영성과 역사가 한눈에 미술의 형식보다 주제가 되는 내용을 연구하는 학문을 ‘도상학(圖像學, Iconography)’이라고 한다. 그중 그리스도교 미술(이하 성미술)의 주제와 의미를 탐구하는 것을 ‘그리스도교 도상학’이라 한다. 말이 시대와 지역에 따라 변화하고 발전하듯이 성미술도 초기에는 단순한 의미의 회화적 형식에서 시작해 점차 신학과 사상, 사회, 문화적 정신을 반영해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호기심으로 읽는 성미술’은 성미술의 발전 과정을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교회사와 영성사, 시대사 안에서 들여다보고자 한다. 역사적 배경 속에서 성미술을 이해할 때 보다 풍부한 내용을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성미술이 품고 있는 다양한 기호들을 교회의 전통적 가르침과 전문가의 해석을 종합해 소개하고자 한다. 도상학은 물론 미술사나 그림을 전공하지 않은 기자에게 어떻게 보면 이 연재가 무모한 도전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성미술의 도상학은 일반 도상학의 관점과 사뭇 달라야 한다는 데서 도전할 용기를 얻는다. 그 다름의 시작은 분명 ‘성경’과 교회의 ‘거룩한 전통’에 기초한다. 성미술의 모티브를 오랫동안 사용해온 도학상의 용어로 해석하지 않고 교회의 눈으로 해석하는 새로운 언어로 풀이해 나가는 데 주력할 계획이다. ‘베드로 사도의 발을 씻기시는 예수 그리스도’, 오토 3세 복음서, 1000년쯤, 필사본, 바이에른 주립도서관, 뮌헨. 대야에 발을 넣고 있는 이가 베드로 사도이다. 중세 서방 교회 도상학의 기초가 되는 필사본에는 베드로 사도가 그리스도와 함께 하는 친근한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다. 어떻게 풀이해 갈 것인가성 베드로 사도를 표현한 성미술 작품들로 연재를 시작하며 이 연재를 어떻게 끌고 갈 것인지 선보이고자 한다.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그림)을 먼저 선택한 이유는 교황권과 관련해 다양한 변화를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은 초기에는 예수 그리스도와 밀접하게 연결돼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그림은 초세기부터 중세 초기까지 복음을 설명하는 정례적인 형식의 도상이었다. 10세기 말 신성로마제국이 탄생한 이후 유럽은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하나가 되는 그리스도교 왕국으로 성장한다. 11세기 말 십자군 전쟁이 시작되면서 유럽은 ‘정화와 회개의 시대’에 접어든다. 예루살렘 성지를 순례하는 이들이 늘어나고 최후의 심판에 그리스도와 함께 부활하기 위해 희생과 순교를 마다치 않는 종말 신앙이 확산된다. 이때부터 13세기 전반까지 유럽 전역을 복음화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으로 하나 된 대륙으로 이끈 교황들은 신성로마제국의 왕보다 더 강한 교황권을 행사했다. 강화된 교황권을 나타내기 위해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도 점차 그리스도와 독립된 하나의 이미지로 고착되기 시작했다. 그리고 교황을 상징하는 성 베드로 사도의 손에는 수위권을 상징하는 ‘천국의 열쇠’가 들려지기 시작한다. 13세기 말 십자군 전쟁 실패로 그리스도교 왕국이 쇠퇴하기 시작했다. 교황과 제도 교회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유럽 여기저기서 불거졌다. 뼈아프게도 교회 가르침에 반대해 정통적인 신앙과 공식적인 전례를 거부하는 일들이 생겨났다. 이단 심문이 이루어졌고, 교황의 수위권에 관한 논쟁이 벌어졌다. 황제들의 도전에 교황은 파문이라는 영적 무기를 남용했고, 황제들은 이에 맞서 반성직주의를 확산시켜 나갔다. 교황권이 약화되면서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도 또 다른 변화를 겪는다. 교황들은 자신이 다른 주교들과 달리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베드로 사도의 권한을 풍족하게 누릴 수 있도록 부름을 받은 유일한 목자임을 드러내고자 했다. 그래서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에 주교관을 씌운다. 아울러 교황들은 일반 세속 군주와 달리 그리스도 왕을 대리하는 자임을 나타내기 위해 삼중관을 쓴 성 베드로 사도의 도상을 만든다. 그리고 성 베드로 사도에게 ‘왕 중의 왕, 군주 중의 군주, 멜키체덱을 잇는 영원한 사제’라는 글이 새겨진 제의를 입히기도 했다.이처럼 주제별로 고대부터 중세에 이르는 성미술 도상의 변천을 독자들과 함께 알아가 보고자 한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cpbc2017.05.31
![[성경 속 도시] (44) 트코아](//cpbc.co.kr/CMS/newspaper/2015/05/rc/57047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4) 트코아부정·불의 질타한 예언자 아모스의 고향 트코아로 추정되는 베들레헴 남동쪽 광야.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트코아는 베들레헴에서 도보로 두 시간가량 걸리는 유다 지역 사막 부근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남으로 약 15㎞ 거리에 있는 해발 1000m 가까운 고지다. 과거 전쟁 때 예루살렘 방어의 언덕이었던 이곳에는 물론 오늘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계곡의 낮은 지대에는 소규모의 경작지가 있고, 넓은 들판이 있어 양을 치기에 적합하다. 트코아가 성경에서 유명한 지역이 된 것은 아모스 예언자의 고향이어서다. “트코아의 목양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모스가 전한 말씀. 유다 임금 우찌야 시대에, 곧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 시대에, 지진이 일어나기 이태 전 그는 이스라엘에 관한 환시를 보았다”(아모 1,1). 모압·암몬 침입 막는 데 기여예언자 아모스는 기득권 지배 계층의 부정과 불의, 부당한 억압과 수탈에 대해 용감하게 고발했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적 욕심으로 순수성을 잃은 이스라엘 종교의 타락한 예배 행위와 이교도의 많은 영향을 받은 성소들을 비난했다. 특히 아모스는 뇌물을 받고 엉터리 재판을 하는 관리들과 가난한 백성을 착취하는 고리대금업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하느님과의 관계에 좌우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떠나면 이스라엘 민족은 곧 멸망한다고 선포했다. 하느님 이외 어떠한 권세나 물질도 인간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전했다. 유다 임금 여호사팟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들과 모압과 세이르 산 주민들에게 맞서 일어나, 그들을 완전히 전멸시켰던 장소가 트코아 광야였다.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트코아 광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갈 때에 여호사팟이 일어나 말하였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주 여러분의 하느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굳건해질 것이오. 그분의 예언자들을 믿으시오. 그러면 성공할 것이오’”(2역대 20,20). 또 성경에는 요압이 지혜로운 트코아 여인으로 하여금 다윗 왕에게 청하여 압살롬을 돌아오게 한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요압은 트코아에 사람을 보내어, 거기에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불러다가 말하였다. ‘그대는 애도하는 여자 행세를 하시오.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도 말고, 죽은 이를 위하여 오랫동안 애도하는 여자인 체하시오’”(2사무 14,2). 르하브암은 트코아에 요새를 만들었고 예루살렘에서 엔게디로 가는 도로를 만들어 이 도시를 보호했다. “르하브암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유다에 요새 성읍들을 세웠다. 그가 세운 성읍들은 베들레헴, 에탐, 트코아, 벳 추르, 소코, 아둘람, 갓, 마레사, 지프, 아도라임, 라키스, 아제카, 초르아, 아일론, 헤브론이다”(2역대 11,5-6). 이 요새들은 여호사팟이 모압과 암몬 사람들의 침입을 막아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예레미야 예언자는 트코아에 적군들이 밀려들자 나팔을 불라고 외쳤다. 나팔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주로 전쟁 때 군인을 소집하거나 공격의 개시나 마침을 알릴 때 사용했다. 혹은 적들의 공격을 경고하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벤야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한가운데를 떠나 피난하여라. 트코아에서 나팔을 불고 벳 케렘 위에 봉화를 올려라. 북쪽에서 재앙이, 엄청난 파괴의 조짐이 보인다”(예레 6,1).과거에 많은 역사를 안고 있는 지역이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되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5.12

종교개혁 500돌, 신앙의 공통분모 찾아 대화를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공동 기념 문헌 「갈등에서 사귐으로」 출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회 일치 운동의 새로운 전기가 될 문헌이 나왔다.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는 11일 서울 성공회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교황청과 루터교가 함께 펴낸 공동 기념 문헌 「갈등에서 사귐으로」<사진>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갈등에서 사귐으로」(From Conflict to Communion)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450주년(1967년)을 계기로 대화를 시작한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와 루터교세계연맹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양 교회의 대화에 초점을 맞춰 2013년에 펴낸 보고서다. 「갈등에서 사귐으로」 한국어판 발간은 전 세계 그리스도교 차원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문서를 우리말로 펴냄으로써 한국 교회가 상호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교회의 일치 운동에 함께한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번역한 작업물을 낸 것은 1977년 「공동번역성서」 이후 40년 만이다. 모두 6장으로 이뤄진 문헌은 가톨릭이 루터의 종교개혁을 분열이 아닌 개혁으로 보고, 루터교는 종교개혁에 역사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가 섞여 있다고 보는 점에 주목한다. 이어 양측이 수용할 수 있는 신앙의 공통분모들 때문에 대화가 가능하고 또 반드시 대화가 필요하다면서 종교개혁의 역사에 나타난 주요 쟁점들을 짚었다. 문헌의 핵심인 4장 ‘루터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대화에 비추어 본 마르틴 루터 신학의 기본적인 주제’는 마르틴 루터의 제안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종교개혁 이후 교회 일치의 쟁점이 되는 4가지 신학적 주제, 즉 칭의/의화, 성만찬/성찬례, 교역/직무, 성경과 전통을 다뤘다. 문헌은 공동 기념을 위한 전제와 준비로 △종교개혁의 분열 속에서도 가톨릭교회의 세례 인정 △복음 안의 기쁨 △종교개혁 과정과 이후의 잘못에 대한 회개 △일치를 위한 기도 △교파적 이해에 종속된 신학적 과거의 재평가 △죄의 고백 등을 꼽았다. 문헌은 마지막으로 공동 기념을 위한 5가지 원칙으로 △분열이 아닌 일치의 전망에서 공동 유산 강화 △상호간 접촉과 신앙 증언을 통한 지속적 변화 △가시적 일치 추구 △우리 시대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 회복 △복음 선포와 세상에 대한 봉사로 하느님의 자비 증언을 제시했다.직제협의회 신학위 공동위원장 송용민(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는 “문헌은 순간이 아닌 평생, 단일 교리가 아닌 모든 계시, 유일이 아닌 최고 우선순위 등 일치 정신에 기반을 둔 인식의 틀을 사용함으로써 양 교회의 입장을 ‘비연속적인 양극에서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전환하고자 했다”면서 “동시에 루터를 적대자가 아닌 공동 개혁가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송 신부는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신학자들이 번역 과정에서 일치 운동의 주요 의제를 공유하고 합의하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중요한 일치 운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밝히고, 문헌이 한국 교회 일치 운동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출판 기념회에 이어 같은 장소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2017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에서 안교성(장로회신학대) 교수는 “지난 500년간 교회 개혁이라는 종교개혁의 본질이 아닌 분열과 교파화, 상호 비방과 오해가 부각돼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출간된 「갈등에서 사귐으로」는 갈등의 과거에서 사귐의 미래로 나아가자는 양 교회의 확고한 결단의 산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안 교수는 ‘「갈등에서 사귐으로」-지속적 대화의 열매’ 발표를 통해 일치 운동에서 ‘다르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다름이 있는 화해’와 ‘화해된 다양성’ 등 ‘다름’에 대한 발전된 인식이 일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는 한국 천주교회와 한국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교단들의 모임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교회 일치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4년 5월에 설립한 기구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평화신문2017.05.16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29.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마르 11,9)](//cpbc.co.kr/CMS/newspaper/2016/12/rc/665050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29.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마르 11,9)지오토 디 본도네 작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1302~1305, 프레스코화, 파도바 스크로베니성당 소장.공관 복음서에서 구원을 향한 예수님의 짧지 않은 여정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이제 마지막 장소에 다다릅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차이가 있지만, 공관 복음뿐 아니라 요한 복음 역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요한은 이미 여러 번 예루살렘을 방문한 예수님이지만, 사람들이 라자로를 되살린 표징에 대해 듣고 예수님을 환호하기 위해 맞으러 나왔다고 이야기하면서 바리사이들의 반응을 전해 줍니다. “이제 다 글렀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소”(요한 12,19). 또한, 제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공관 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전에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쳐 주신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전합니다. 물론 루카 복음은 이 이야기와 예루살렘 입성 이전에 예리코에서 벌어진 세관장 자캐오와의 만남과 미나의 비유를 담고 있습니다. 예리코에서의 치유 이야기는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이전의 마지막 기적이면서 예수님의 여정이 당시 사람들의 동선과 차이가 없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갈릴래아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갈 때 사마리아 지역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를 피해 요르단 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 사마리아 지역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요르단 강을 건넜습니다. 이때에 처음 만나게 되는 도시가 바로 예리코입니다. 이곳에서 베타니아와 벳파게를 거쳐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순례의 길이었고 예수님 역시 그 길을 가신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오는 두 명의 소경을, 그리고 마르코와 루카는 한 명의 소경을 치유해 주신 것으로 차이가 있지만, 그 내용은 동일합니다. 길을 지나는 일행에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듣고 바르티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며 소리칩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크게 소리칩니다. 그의 외침은 단순한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오신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고, 자비를 구하는 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청원만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우선 그의 청원은 시편 6장 3절을 기억하게 합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는 쇠약한 몸입니다. 저를 고쳐 주소서, 주님, 제 뼈들이 떨고 있습니다.” 결국, 그의 외침은 시편의 기도처럼 이루어집니다. 또 소경의 외침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정녕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이사 30,19). 결국, 소경의 외침은 자신을 위한 것인 동시에 예수님께서 향해 가시는 예루살렘 전체를 위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청원이기도 합니다. 군중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이런 예수님을 환호하며 맞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지금도 미사에서 성찬례 시작에 외치는 이 표현은 호산나, 저를 구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복음서는 모두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고 전합니다. 어린 나귀는 즈카르야의 예언과 관련이 있습니다.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즈카 9,9). 마치 임금처럼 사람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 그분은 바로 즈카르야의 예언을 이루듯 큰 말이 아닌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군중들은 마치 임금을 대하듯 예수님을 맞습니다. 그들의 기대와 소망이 예수님을 향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원했던 임금의 모습과 달랐을지 모르지만, 성경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묘사합니다. 그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임금이셨지만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임금이었습니다. 임금으로 이 세상에 왔지만, 그것과는 다른 임금이란 호칭을 받으며 이 세상의 삶을 끝내신 예수님의 모습은 성경이 보여 주는 역설이기도 합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문채현2016.12.21
소공동체 운동, 새로운 동력 필요하다‘소공동체 25주년 심포지엄 위한 2차 워크숍’ 열려, 공동체 의식 감소 우려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운동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조성풍 신부)이 18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개최한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25주년 심포지엄을 위한 제2차 워크숍’에서 김형진(사목국 일반교육부) 신부는 “현재 여성 소공동체는 65%, 남성은 28%만이 가정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며 “가정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의 모임이 늘어난다는 것은 소공동체의 근본인 공동체 의식이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김 신부는 또 “1994년 15%였던 주 1회 모임이 7%로 줄고, 1994년 18.6%였던 격주 모임이 2%로 급감함으로써 결국 월 1회 모임이 90% 가까이 이른다”면서 모임 횟수 자체가 줄어드는 현실을 우려했다. 김 신부가 발표한 ‘소공동체 모임 진단을 위한 설문 보고서’는 구역ㆍ반장 교육 참석자(여성 2048명, 남성 283명) 대상 설문 조사와 200여 개 본당의 소공동체 현황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보고서에 따르면 소공동체 모임 참석 연령대는 60대 이상이 70%에 육박하며, 50대 이하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추세다. 참석 인원도 10명 이하가 96%, 5명 이하도 절반 가까이 차지하면서 점차 감소하고 있다. 구역ㆍ반장이 없는 소공동체가 늘어나는 등 소공동체 봉사자 또한 감소하면서 고령화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목국장 조성풍 신부는 서울대교구 9개 본당 신자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발표에서 “소공동체 참여자가 불참자에 비해 복음화 지표가 조금 더 높았는데, 특히 ‘성경 읽기’ 부문에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상세한 설문조사 결과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 역할을 모색하고자 9월 16일에 열리는 소공동체 25주년 심포지엄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오세일(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신부는 ‘대도시 사목의 현실과 전망’ 발표를 통해 현대 사회의 종교 문화적 특징으로 삶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종교에서 구하지 않는 세속화와 물질주의, 개인주의를 들고 “종교 인구의 고령화와 젊은이들의 탈 종교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오 신부는 “종교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도 개신교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면서 가톨릭이 불교와 마찬가지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느슨한 태도를 꼽았다. 오 신부는 “인간은 누구나 다른 이와 함께하려는 공동체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며 “나눔과 증거의 소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머리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신앙에 맛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평화신문2017.02.22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8)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르 9,5)](//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5080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8)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르 9,5)예수님, 새하얗게 빛나시며 영광스럽게 변모 제자들과 함께 높은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새하얗게 빛나시기 시작했고 하늘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은 폰 카롤스펠트 작 ‘모세와 엘리야 사이의 예수 그리스도’. 출처=「아름다운 성경」 갈릴래아 호수에서 남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타보르(Tabor)라 불리는 산이 있습니다. 해발 600m 정도로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위가 모두 평원이기에 우뚝 솟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산 정상에는 모세와 엘리야의 경당과 함께 예수님의 변모를 기념하는 성당이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변모가 일어난 곳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습니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높은 산’이라고 표현하고 루카 복음은 그저 ‘산’이라고만 언급합니다. 예수님의 변모가 일어난 곳이 이 타보르 산인지 과거부터 지금까지 논쟁이 있긴 하지만 전승에 따라 많은 이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기념합니다. 마치 시나이 산에 오르는 모세 같아 이 이야기는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오르셨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마르 9,2; 마태 17,1). 이 표현은 본문에 등장하는 모세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 탈출 이후 시나이 산에 다다른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습니다. 모세는 계명을 받기 위해 산에 오릅니다. “주님의 영광이 시나이 산에 자리 잡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다”(탈출 24,16). 높은 산에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오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시나이 산에 오르는 모세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산에 오른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합니다. 복음서는 그 변모를 이 세상의 마전장이도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고 말합니다. 영광스러운 변모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또한 복음서의 문맥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 이후에 미리 보여 주는 영광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째 예고, 그리고 제자로서의 자세와 함께 드러나는 영광스러운 변모는 하나의 주제로 엮여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에 화답하는 내용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변모에 함께 등장하는 인물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 성경에서 보이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힙니다. 모세는 탈출이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체험을 이끈 예언자이며 하느님께서 미래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보낼 예언자이기도 합니다(신명 18,18 참조). 또한 유일하게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탈출 33,11). 엘리야는 우상이었던 바알 신에 맞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낸 예언자이면서 하늘로 들어 올려진 인물입니다(2열왕 2,11).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드러낸 두 예언자를 통해 예수님의 변모는 구원을 향한 의미를 갖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이러한 사건의 마지막에 전해지는 것은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와 비슷한 표현을 예수님의 세례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복음서 안에서 중요한 축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하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는 복음서의 시작과 중간에서 예수님의 신원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앞으로 받으실 영광을 미리 보여 준다는 점에서 영광스러운 변모는 예수님의 영광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모든 이들이 알게 될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해 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세례와 영광스러운 변모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서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계시하는 사건이면서 복음서 안에서 명시적으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건을 체험한 제자들은 그 영광스러운 모습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6.1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