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6.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9732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46.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 세상에 전한 제자들마솔리노 작 ‘불구자를 고친 성 베드로와 타비타의 소생’중 일부, 1424-25년쯤, 프레스코, 브란카치 경당, 산타 마리아 델 카르미네 성당, 피렌체, 이탈리아.성령 강림 후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 예수님의 행적 요약하는 내용 담아 걷지 못하던 사람 일어나도록 치유 사도들 증언 통해 교회 형태 정착 모든 일이 하느님의 구원 계획이며 구약성경에 예언되어 있음을 전해복음서의 인물 중에서 베드로는 사도들의 으뜸이면서 인간적으로 공감할 수 있는 모습을 많이 보여주는 사도입니다. 예수님께 “스승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마르 8,29)라고 처음 고백하지만 뒤이은 예수님의 수난과 부활 예고를 이해하지 못하는 모습으로 그려지고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모습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하지만 사도행전이 전하는 베드로 사도의 모습은 사뭇 다릅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는 사도행전 초반에 담겨있는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사도행전이 전하는 베드로의 설교는 예수님의 사건을 요약하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우리는 믿음의 중심이 되는 이런 내용을 ‘케리그마(kerygma)’라고 부릅니다. “이스라엘인 여러분, 이 말을 들으십시오. 여러분도 알다시피, 나자렛 사람 예수님은 하느님께서 여러 기적과 이적과 표징으로 여러분에게 확인해 주신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통하여 여러분 가운데에서 그것을 일으키셨습니다. 하느님께서 미리 정하신 계획과 예지에 따라 여러분에게 넘겨지신 그분을, 여러분은 무법자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 다시 살리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죽음에 사로잡혀 계실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사도 2,22-24) 오순절의 성령 강림 이후에 전하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사도들이 이해한 예수님에 대한 내용입니다. 그리고 여기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십자가 죽음과 부활’입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의 구원 계획안에 포함되는 것으로 이제 약속된 성령을 통해 지속됩니다.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는 성령 강림의 의미를 가장 잘 드러내는 훌륭한 연설입니다. 또한, 구약성경의 여러 구절을 인용하는 것에서 당시의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이라는, 준비된 하느님의 계획 안에 구약성경이 있었음을 강조합니다. 사도들은 단지 예수님의 복음을 선포하는 데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의 활동을 이어갑니다. 그것을 잘 보여주는 예는 병자의 치유입니다. 베드로는 태어나면서부터 걸을 수 없었던 사람을 성전에서 치유합니다. “나자렛 사람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말합니다. 일어나 걸으시오.”(사도 3,6) 유다인들이 하느님의 거처라고 생각했던 성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자를 치유하는 베드로의 모습은 사도들을 통해 이 땅에서 예수님의 활동이 여전히 지속됨을 보여줍니다. 이 치유와 함께 있었던 솔로몬 주랑에서의 설교는 베드로의 오순절 설교와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예수님을 다시 일으키셨고, 우리는 그 증인입니다.”(사도 3,15) 한 가지 독특한 점은 이 설교 안에서 죄의 용서에 대한 언급을 찾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회개하고 하느님께 돌아와 여러분의 죄가 지워지게 하십시오.”(사도 3,19). 사도들의 활동은 이처럼 예수님의 업적을 이어가는 모습으로 그려집니다. 사실 예수님의 말씀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제자들이었지만 부활과 성령 강림은 그들은 완전히 바꾸어놓는 계기가 됩니다. 사도들은 이 모든 일이 하느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고 이미 구약성경에서 예언되었다는 사실을 사람들에게 선포합니다. 이 선포 안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물론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입니다. 이제 사도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에 대한 증인입니다. 이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교회’입니다. 성령 강림은 교회의 시작을 가시적으로 드러내는 사건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뽑으실 때부터 이미 교회는 준비되었지만, 그것이 가장 잘 드러나는 것은 성령 강림 이후입니다.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증인인 사도들의 활동을 통해 교회가 자신의 모습을 찾아가는 것을 보여줍니다. 이런 내용은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에서도 표현됩니다.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교회를 믿나이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김지항2017.04.26

사제·신자들 함께했기에 교구장이라는 ‘십자가’가벼웠습니다27년 만에 전주교구장에서 물러나는 이병호 주교 2002년 3월 성주간 성금요일 십자가의 길 기도에서 십자가를 지고 치명자산을 오르는 이병호 주교. 전주교구 홍보국 제공 “주교님 오늘의 빵은 무엇인가요?”오늘의 말씀(빵)을 묻는 질문에 이병호 주교의 성경 암송이 시작됐다.“갈릴래아에서부터 예수님과 함께 온 여자들도 뒤따라가 무덤을 보고 … 안으로 들어가 보니 주 예수님의 시신이 없었다 … 예수님께서는 빵을 들고 찬미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그들에게 나누어 주셨다 … 그들은 예수님께 경배하고 나서 크게 기뻐하며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갑작스레 시작된 이병호 주교의 성경 암송은 장장 20여 분 동안 이어졌다. 이 주교가 들려주는 예수 부활 이야기는 루카복음서 23장에 이어 24장을 모두 읊으며 끝이 났다. 이야기를 펼쳐놓는 목소리는 또렷했고 막힘이 없었다. 허공에 그림을 그리듯 양팔을 뻗고 가슴에 손을 대며 말씀을 그려 낸 이 주교는 “성경 봉독은 내 삶의 가장 중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 한 시간 반 동안 성경을 읽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은 생명이고 빵입니다. 엄마가 부엌에서 밥을 짓듯 매일 새벽 성경을 읽으며 오늘 하루 동안 만날 사람들과 나누기 위해 빵을 마련합니다.”29일 이임식을 앞둔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를 20일 전주교구청 교구장실에서 만났다. 전주교구를 위해 27년 동안 말씀의 빵을 구워 온 이 주교는 “(교구장직에) 참 오래 있었다”며 말문을 열었다. 공의회 헌장 구현 노력해와“교구를 어떻게 변화시켜야겠다는 개인적인 생각은 처음부터 없었습니다. 다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알려준 교회상을 어떻게 구현할 것인가, 관심사는 그것뿐이었습니다. 공의회 헌장의 모습대로 모든 교우가 사제와 함께 하느님 소명을 자각하고 수행하길 바랐고, 특히 전례 안에서 신자들의 생생한 기도가 드러나길 희망했습니다. 신자들이 적힌 대로 읽는 기도가 아니라 자기 입으로, 자기 표현으로 하는 기도가 되길 바랐고, 사제들도 스스로 하느님 말씀으로 들어가는 강론을 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 점에서 교구 분위기가 매우 적극적으로 변했습니다.”교구 본당을 방문할 때마다 신자들의 신앙체험을 꼭 들었다는 이 주교는 힘든 생활 속에서 신앙을 이어가는 신자들에 대한 애정도 듬뿍 드러냈다.“저는 신자들 덕분에 이렇게 기도하고 묵상할 여유가 있어요. 하지만 수많은 어려움과 유혹이 가득한 일상 속에서 신자들은 하느님 말씀대로 살기가 쉽지 않죠. 신앙을 실천하고 사는 신자들을 보면 교장 선생님 앞에 선 학생이 된 기분입니다. 그 옛날 사도행전이 지금도 계속되는구나 감동이 밀려옵니다.” 해군기지, 4대강 문제에서부터 백남기 농민 사망과 최근 대통령 탄핵까지 시대의 아픔과 함께했던 이 주교는 “착각에 빠진 신앙인, 혼자 열심히 잘 믿다가 혼자 천국에 가는 신앙인이 되지 말아 달라”는 당부를 남겼다. 공동체를 위한 존재 돼야 “보통 종교인을 생각할 때 산 깊이 들어가서 도를 닦거나 신비체험을 하는 것을 생각하는데 우린 그것을 ‘가짜 신자’라고 합니다. 물론 마음의 평화를 얻기 위해 종교를 찾는 것은 비난할 일이 아니죠. 예수님을 향해 달려들었던 모든 신자가 자기를 살려 달라 했으니까요. 하지만 거기에 머물러선 안 됩니다. 공동체를 위한 존재가 돼야죠. 나의 것을 모두 내어주고, 너의 모든 것을 나에게 내어줄 때, 너와 나 사이에 사랑이 도는 것이 성령입니다. 그 바퀴에서 떨어져 나가면 하느님을 잃고 외롭고 이기적인 존재가 됩니다.”대선을 앞두고 지도자의 덕목을 묻는 말에도 이 주교는 역시 ‘공동체’를 우선으로 꼽았다. “누구를 찍어야 내 처지가 확보되고, 내가 속한 계층이 이익을 볼 수 있을까 생각하면 천 년이 걸려도 발전이 없습니다. ‘어려운 사람에게 누가 더 희망을 줄 수 있을까’ 그런 기준을 가져야 하죠. ‘아버지의 눈으로 바라보고, 아들의 마음으로 느끼며, 성령의 힘으로 실천하게 하소서.’ 제가 늘 하는 말입니다.”인보성체수도회 담당 사제로 지낼 계획 교구장직을 떠나지만, 이 주교의 일정은 지금 못지않게 바쁠 것으로 보인다. 얼마 전 심어 둔 상추와 호박, 가지, 토마토, 포도, 체리, 무화과가 이 주교를 기다리고 있다. 사제관이 들어설 전주 근교 대성리에서 농사짓기를 시작했다는 이 주교는 교구 인보성체수도회 담당 사제 역할도 맡게 됐다. 그러면서도 “피앗!(Fiat,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뜻)”이라며 “내 계획은 의미 없으니 하느님이 이끌어 주실 것”이라고 덧붙였다.매일 다른 옷을 입는 자연이 좋아 치명자산에서 묵상하기를 좋아한다는 이 주교는 지난 27년을 날씨에 비유했다. “오늘처럼 우중충하게 비가 오는 날도 있지만, 햇빛이 드는 날도 있고 그러다 또 천둥 벼락이 치는 날도 있습니다. 그 모든 날을 나와 함께 걸어주신 우리 신자들과 수녀님, 신부님들께 감사합니다. 무겁게 느껴지던 십자가였는데 앞뒤에서 받쳐주니 어느 날 붕 떠 있는 듯했습니다. 감사합니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이병호 주교 약력 1941년 전북 완주 출생 1969.12 사제 수품1969.12 ~ 1971.04 전주교구 중앙본당 보좌1971.04 ~ 1975.01 전주교구 정읍본당 주임1975.01 ~ 1976.06 대건신학대학 전임 강사 1983.01 ~ 1990 광주가톨릭대학교 교수(대학원장)1990.02.08 전구교구장 임명1990.04.03 주교 수품, 전주교구장 착좌2010.03 ~2017.03 주교회의 복음화위원회 위원장 2017.03.14 전주교구장 사임 발표 2017.04.29 전주교구장 은퇴 평화신문2017.04.25
![[성경 속 기도] (3) 아브라함의 기도 (하)](//cpbc.co.kr/CMS/newspaper/2016/02/rc/61961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기도] (3) 아브라함의 기도 (하)순명의 기도, 믿음의 삶 티치아노 작 ‘이사악의 희생’, 1542~1544년, 이탈리아 베네치아 산타마리아 델라 살루테 성당. 출처=「명화로 만나는 성경」 아브라함은 네겝 지방에 살 때 기근이 들어 식구들과 함께 이집트로 나그네살이를 하려고 내려갔다. 이때 이집트 사람들에게 아내 사라이를 동생이라고 거짓말을 했다. 자칫 아름다운 사라이를 차지하려는 이집트인들 때문에 아브라함의 목숨이 위태로울 수 있었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우여곡절 끝에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창세 12,10-20). 그 후 아들과 같은 롯과 분쟁도 일어났다. 돈과 재물이란 것이 이상해서 하루아침에 인간관계를 파괴해버렸다(창세 13,1-18). 또 아브라함은 하느님이 약속하신 아들이 생기지 않는다고 초조한 나머지 하가르를 소실로 들이기도 했다. 결국 하가르에게서 아들을 얻었지만, 본인과 아내 사라이, 하가르 모두에게 끔찍한 고통과 아픔의 삶이 되고 만다(창세 16,1-16). 아브라함은 자신의 잘못으로 겪게 된 인생의 고비마다 마음을 다잡고 새로운 출발을 했다. 이때마다 그는 제단을 쌓고 기도를 드렸다. 아브라함 일생의 기도는 순명의 기도이다. 그는 하느님이 역사에 개입하실 때마다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응답한다. 물론 그의 삶에는 청원과 탄식의 기도도 있다(창세 18,16-33). 그의 신뢰 가득한 모든 기도는 신앙에 근거하고 있다. 또 자신만을 위해 기도하지 않고 다른 이를 위해서도 기도한다. “의인을 죄인과 함께 죽이시어 의인이나 죄인이나 똑같이 되게 하시는 것,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 일은 당신께 어울리지 않습니다. 온 세상의 심판자께서는 공정을 실천하셔야 하지 않겠습니까?”(창세 18,25) 아브라함에게 질문하고 탄식하는 기도는 하느님 뜻을 찾고 하느님 신비를 느끼는 장이 된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마치 가까운 부모나 친지에게 드리는 대화처럼 친밀하다.그런데 말년에 아들 이사악 때문에 받게 될 시련은 그동안 받은 것에 비하면 새 발의 피였다. 아브라함은 백 살이 되어 이사악을 얻었다. 늦둥이로 얻은 이사악은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그런 자식이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가? 어느 날 하느님께서는 그 어린 이사악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셨다. 그는 수없이 외치며 기도했을 것이다. “하느님, 너무 잔인하십니다. 그럴 수 없습니다. 차라리 저를 데려가십시오.” 아마도 그는 이런 심정이 아니었을까. 아브라함 일생의 가장 큰 시련에서 무척 혼란스러웠지만 갈등과 고민 끝에 결정을 내렸다. 믿음과 순종의 삶을 살아오면서 그는 한 가지 분명히 확신하게 되었다. 하느님은 당신 자녀가 행복하길 원하신다는 것이다. 당장 인간적으로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느님은 더 깊은 뜻을 가지고 계신다는 것을 믿게 되었다. 그것이 그의 기도의 삶이었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시련과 시험의 연속이었으며, 그가 만난 하느님은 시험하시는 하느님이시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시련과 시험을 잘 감당해 마침내 하느님 앞에 인정받은 사람이 되었다. 믿음을 전제로 자신의 삶을 하느님 말씀에 먼저 순명했던 아브라함은 믿음이 바로 이런 것임을 보여 준다. 그래서 그의 기도는 우리에게 좋은 모델이 된다. 후대 사람들은 이런 아브라함을 ‘신앙의 성조’(聖祖)라고 부르지만 그도 그저 약한 한 인간이며 신앙인이다. 신앙이란 끊임없이 완성을 향해 나가는 길이다. 마지막 순간까지도 죄인인 채 하느님께 나가는 길이다. 중요한 건 언제 어느 때라도 하느님께 대한 신뢰이다. 하느님께 대한 믿음, 그것이 바로 우리 인생의 가장 큰 위로이고 힘이다. 신앙인 아브라함의 기도는 그렇게 낮고 간절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6.02.16
“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사도 12,5)](//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2888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50)“베드로는 감옥에 갇히고 교회는 그를 위하여 끊임없이 기도하였다" (사도 12,5)박해, 복음 선포의 밑거름프란치스코 데 수르바란 작 ‘성 대 야고보의 순교’, 1639년, 프라도 미술관, 마드리드, 스페인.스테파노 부제의 순교 이후 박해는 점차 확대되었던 것처럼 보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시작된 박해를 피해 사도행전은 사도들만이 예루살렘에 남아있고 다른 이들은 모두 유다와 사마리아 지방으로 흩어졌다고 기록합니다. 사도행전은 가장 처음 사도들을 박해하고 스테파노 부제를 죽인 이들을 대사제와 사두가이들로 표현합니다. 이 박해는 종교적인 차원의 박해입니다. 유다교의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처럼 하느님을 모독하고 자신들의 가르침을 비판하는 그리스도인들을 박해합니다. 이후 계속되는 박해는 직접적으로 유다인들에 의한 것뿐 아니라 정치적인 지도자에 의해서 이루어집니다. “그즈음 헤로데 임금이 교회에 속한 몇몇 사람을 해치려고 손을 뻗었다.”(사도 12,1) 여기서 등장하는 왕은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여러 명의 헤로데가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탄생 이야기에 주로 표현되는 헤로데 왕은 세 아들(헤로데 아르켈라오스, 헤로데 안티파스, 헤로데 필리포스)을 두었고, 그의 손자뻘 되는 인물이 바로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이들이 모두 ‘헤로데’라는 이름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그 인물이 누구인지 정확하게 알기에 어려움이 있습니다. 헤로데 아그리파스 1세는 친(親) 유다교 성향을 가진 인물로 평가되며 41~44년까지 이스라엘 전역을 다스리던 영주였습니다. “그는 먼저 요한의 형 야고보를 칼로 쳐 죽이게 하고서, 유다인들이 그 일로 좋아하는 것을 보고 베드로도 잡아들이게 하였다.”(사도 12,2-3) 이렇게 교회를 박해한 헤로데 아그리파스는 실제로 쉽게 이해하기 어려운 죽음을 맞은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은 그에 대해서 사도행전은 하느님에 의해 끔찍한 죽음을 맞았다고 표현합니다.(사도 12,23) 열두 사도 중의 한 명인 야고보 사도가 순교합니다. 야고보 사도는 예수님께서 부르셨던 어부 중의 한 명으로 제베대오의 아들이자 요한의 형으로 표현됩니다.(마르 1,19-20) 신약성경에서 언급하는 야고보 역시 두 명입니다. 한 명은 헤로데에 의해 순교한 예전에 ‘대(大) 야고보’로 불렸던 야고보 사도입니다. 복음서에서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영광의 자리를 청했지만 예수님은 그들에게 당신의 잔을 함께 마실 것이라고 예고합니다.(마르 10,39) 야고보 사도의 순교는 이 예수님의 말씀이 실제로 이루어진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다른 한 명은 ‘예수의 형제’로 불리던 야고보입니다. ‘소(小) 야고보’로 불리기도 하는 예수의 형제 야고보는 예루살렘 교회에서 큰 역할을 했던 인물로 “교회의 기둥”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사도 12,17; 갈라 1,19; 2,9) 이 일과 함께 헤로데는 베드로 사도 역시 잡아들입니다. 쇠사슬에 묶여있던 베드로 사도는 천사의 도움으로 감옥을 탈출합니다. 기적처럼 묘사되는 이 이야기에서 천사는 베드로에게 말합니다. “빨리 일어나라. 허리띠를 매고 신을 신어라.”(사도 12,7-11) 천사의 표현은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탈출 12,11) 하느님께서 파라오의 손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하신 것처럼 베드로 역시 헤로데의 손에서 탈출합니다. 로마에는 베드로 쇠사슬 성당이 있는데 이곳에 지금도 베드로 사도가 묶였던 쇠사슬을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초기 교회의 모습은 사도들을 중심으로 한 복음 선포를 통해 성장하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살았던 이상적인 모습으로 표현되지만 많은 어려움을 겪기도 했습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박해’입니다. 새로운 정체성과 함께 유다교와 분리되고 종교적인 탄압은 초기 교회의 가장 큰 어려움 중의 하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어려운 상황에서 초기 교회는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 바로 박해를 피해 흩어졌던 이들이 여러 곳에서 복음을 선포하게 된 것입니다. “흩어진 사람들은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8,4)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김지항2017.05.24
![[성경 속 도시] (75) 라빠](//cpbc.co.kr/CMS/newspaper/2016/01/rc/61262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75) 라빠무고한 우리야 죽인 다윗의 죄 물든 곳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를 탐해 라빠성 전투에서 우리야를 죽게 한다. 하프를 연주하며 춤추는 다윗왕(가운데), 세밀화, 860년경, 프랑스 국립박물관. 출처=「성경 역사 지도」 라빠는 고대 암몬의 수도로 오늘날 고원 지대에 자리한 요르단 수도인 암만이다. 라빠는 10㎞만 나가도 사막이어서 주거 환경이 썩 좋지 않았다. 또 사막에 사는 유목민의 침입을 자주 받는 불리한 지형적 위치에 있었다. 그래서 암몬족은 물이 풍부하고 비옥한 영토를 확장하고자 주변국들을 자주 침입하였다. 암몬 왕국은 이렇게 열악한 환경 탓에 요르단 동편 지역의 국가 중 가장 힘이 약한 나라였다. 이스라엘에 대항했던 암몬 왕국은 기원전 8세기 말, 아시리아 제국에게 정복당해 400년 이상 암몬과 수도 라빠는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교통 요충지인 라빠는 기원전 63년 로마제국의 통치 밑으로 들어간 후 다시 크게 발전하게 된다. 또 서기 4세기에서 7세기에 이르는 ‘비잔틴’ 시대에는 라빠에 그리스도교가 전파되어 교회들이 건설되면서 황금기를 누렸다. 그러나 630년대 이슬람교를 신봉하는 아랍인이 이 지역을 정복한 후 그때부터 이 도시의 이름도 ‘암만’으로 바뀌게 돼 오늘에 이르고 있다. 성경에서 라빠는 암몬 자손들이 사는 장소로 등장한다. “바산 임금 옥은 라파인들 가운데에서 홀로 살아남았다. 쇠로 만든 그의 침대가 지금도 암몬 자손들이 사는 라빠에 있지 않은가? 그것은 보통 암마로 길이가 아홉 암마, 너비가 네 암마나 된다”(신명 3,11). 특별히 라빠는 다윗과 우리야의 이야기로 유명한 지명이다. 다윗은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의 아내, 밧 세바를 범해서 아이를 갖게 한 자신의 죄를 숨기려 한다. 그래서 밧 세바의 남편이자 자신에게 충직했던 부하인 우리야를 라빠성 전투의 최선봉에 서게 하고 결국 죽게 한다. 다윗이 미리 계략을 꾸며 우리야를 적군 가운데 남기고 다른 병사들을 후퇴시켰기 때문이다. “다윗은 편지에 이렇게 썼다. ‘우리야를 전투가 가장 심한 곳 정면에 배치했다가, 그만 남겨 두고 후퇴하여 그가 칼에 맞아 죽게 하여라’. 그리하여 요압은 성읍을 포위하고 있다가, 자기가 보기에 강력한 적군이 있는 곳으로 우리야를 보냈다. 그러자 그 성읍 사람들이 나와 요압과 싸웠다. 군사들 가운데 다윗의 부하 몇 명이 쓰러지고, 히타이트 사람 우리야도 죽었다”(2사무 11,15-17).라빠는 예로부터 ‘물의 성’이라 불렸다. “요압은 다윗에게 전령들을 보내어 이렇게 말하였다. 제가 라빠를 공격하여 그 ‘물의 성’을 점령하였습니다”(2사무 12,27). 요압은 이곳을 점령하고 그들을 노예처럼 데려다 일을 시켰다. “그는 또 그곳의 백성을 데려다가 톱과 날카로운 쇠 연장과 쇠도끼 다루는 일을 맡기고, 그들에게 벽돌 만드는 일을 시켰다. 그는 암몬 자손들의 성읍마다 이렇게 하였다. 그러고 나서 다윗과 모든 군사는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2사무 12,31). 다윗의 장군이었던 요압에 의해 정복당한 라빠가 폐허가 될 것이라는 예언이 예레미아서, 에제키엘서, 아모스서에 등장한다(예레 49,2-3). 북이스라엘이 멸망한 후 라빠는 아시리아 아수르의 지배를 받았고 이어서 바빌론과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 고대 라빠성은 돌로 쌓은 웅장한 성벽의 모습과 함께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유물들의 흔적이 남아 있어 라빠의 긴 역사를 말해주고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6.01.05
![[신앙단상] 사랑 사랑 사랑](//cpbc.co.kr/CMS/newspaper/2018/01/rc/707674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사랑 사랑 사랑고종희(마리아, 한양여자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교수 , 미술사가) “사랑 없으니 지옥, 사랑 하나 있으니 낙원.”평생 함께 살아온 부부지만 하루에도 몇 번씩 천국과 지옥을 오갈 때가 있는데 그 차이가 사랑 하나에 달려있음을 깨닫고 쓴 문장이다. 사랑이란 말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해야 하는데 부부간, 고부간, 그리고 형제간의 사랑처럼 가까운 관계일수록 주고받기가 더 어려운 것 같다. 가화만사성(家和萬事成)이라는 고사성어도 그래서 나왔고, 가족을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은 모든 이를 사랑할 수 있을 것이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신 것은 크게 두 가지라고 생각한다. 첫째는 하느님을 경외하는 일이요, 둘째는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갖추어야 할 나머지 덕목들은 대부분 이 둘 안에 포함시킬 수 있을 것 같다. 내가 마음을 써 드리는 분 중에 홀로 사시는 자매님이 한 분 계시다. 어느 날 그분 댁을 방문했는데 추운 겨울에 난방을 하지 않고, 바닥에 이불을 깔고 지내시는 것이 아닌가. 놀라서 사연을 물으니 당신의 고통을 하느님께 봉헌하기 위해서라고 했다. 한 달 생활비가 얼마나 되는지 여쭈니 나라에서 지급하는 이런저런 돈 합하여도 얼마 되지 않았다. 난방을 하고 싶어도 할 수 있는 처지가 못 됐던 것이다. 그 후 나는 그분께 약간의 도움을 드리고 있다. 그런데 올겨울 초 그 자매님 댁을 방문했는데 여전히 난방을 안 하고 바닥에 이불이 깔려 있었다. 아직 춥지 않아서 난방을 안 했고 그간 편안하게 지낸 것에 대한 보속을 하고 싶어서 난방비를 탈북자를 돕는 신부님께 봉헌하셨다고 했다. 성경 속 가난한 과부의 자선이 바로 이러했을 것이다. 그날 나는 봉투에 약간의 돈을 준비해 갔는데 그 자매님이 봉헌한 금액과 일치함에 놀랐다. 바쁘다는 이유로 차일피일 미루었던 그분을 내 발로 찾아간 것은 하느님의 이끄심 때문이었던 것 같다. 어느 날 그 자매님께서 나의 아버님의 건강 상태를 물으시기에 극도로 고통받고 계시는 상황을 설명해 드렸더니 “그래도 아버님은 따님이 계시잖아요”라며 부러운 듯이 말씀하시는 것이 아닌가. 나는 그 자리에서 말씀드렸다. “형님,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기시면 저에게 연락하세요. 제가 곁에 있어 드릴게요.” 이 말이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었으나 그분이 나의 이 말을 들으면 얼마나 안심하실 것인지도 알고 있었기에 말씀드리지 않을 수 없었다.사랑이란 상대에게 사소한 작은 일에 마음을 써 주는 것이고 누군가에게 기댈 언덕이 돼 주는 일인 것 같다. 우리가 나라를 구할 수는 없다. 아프리카에 사는 가난한 이들에게 소정의 기부를 할 수는 있으나 그들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도 없다. 하지만 내가 만나는 사람들에게 내 작은 관심과 사랑을 전할 수는 있다. 나는 친정 조카들에게 일 년에 한 번 운동화를 사준다. 별거 아닌 일이지만 몇 해째 계속하다 보니 이런저런 갈등이 있었던 가족 구성원들 간의 관계가 좋아지고 있음을 느낀다. 나는 학생들을 가르치는 교육자인데 요즘 학생들은 대부분 지식을 인터넷을 통해 습득하기 때문에 학생들에게 강의가 별로 먹히지 않고 있다. 앞으로는 인공지능 로봇이 인간보다 강의도 훨씬 더 잘할 것이라고 하며 교수라는 직업 역시 미래에는 사라질 직업군에 속한다는 이야기도 있다. 나는 가르치는 교육에서 사랑을 전달하는 교육으로 방식을 바꿔보았다. 그렇게 하려니 권위를 버려야 했고, 인내도 더 필요했으나 학생들과 더 가까워진 것 같다. 교수와 학생이 사랑의 공동체가 된다면 이보다 더 이상적인 교육도 없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평화신문2018.01.09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40.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마르 16,6)](//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5084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40.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마르 16,6) 라파엘로 델 가르보(Raffaellin del Garbo) 작 ‘예수님의 부활’, 1510년, 이탈리아 피렌체. 복음서에서 전하는 ‘사흗날’하느님의 사랑 나타내는 시간십자가 죽음부터 발현, 부활신앙의 핵심이자 중요한 체험안식일이 지났습니다. 예수님을 따르던 많은 이들에게 이날은 특별한 날이었을 것입니다. “주간 첫날 이른 아침”, 예수님의 죽음 이후 새로운 시간이 시작되는 때입니다. 신약성경에서 부활의 시간을 나타내는 표현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사흗날’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으로부터 셀 수 있는 이 표현은 예수님의 부활을 나타내는 교회의 전통적인 표현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편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나도 전해 받았고 여러분에게 무엇보다 먼저 전해 준 복음은 이렇습니다. 곧 그리스도께서는 성경 말씀대로 우리의 죄 때문에 돌아가시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시어, 케파에게, 또 이어서 열두 사도에게 나타나셨습니다.”(1코린 12,3-6) ‘사흘’은 복음서에서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을 예고할 때에도 사용한 표현입니다.(마르 8,31 참조) 또한, 사흘은 이미 구약성경에서도 상징적인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한마디로 정의하기는 쉽지 않지만, 성경에서 사흘은 ‘하느님의 시간’을 나타낸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탈출 5,3; 19,16; 호세 6,2)이와 함께 주로 복음서에서 부활을 나타내는 시간은 예수님의 빈 무덤 사건을 전하는 ‘주간 첫날’입니다. 지금의 주일에 해당하는 이날은 분명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의 부활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날입니다. 이날 복음서가 전하는 부활의 첫 목격자는 조금 차이가 있습니다. 공관 복음은 주로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지켜보았던 여인들을 이야기하고 요한복음은 마리아 막달레나라고 말합니다. 그중에서 모든 복음서에서 언급하는 여인은 바로 마리아 막달레나입니다. 어쨌거나 복음서에서 찾을 수 있는 공통점은 여인들만 언급된다는 것입니다. 부활의 첫 증인들이 무덤에서 발견하게 되는 것은 비어있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을 ‘빈 무덤’ 사건이라고 부릅니다.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비교적 단순한 사실이지만 복음서에서 이 사건은 부활을 나타내는 증거처럼 표현됩니다. 무덤이 비어있었다는 사실, 곧 그곳에 묻힌 이가 없었다는 것은 초대 교회에서 부활을 입증하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렇기에 복음서들은 이 사건을 전하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 그래서 여기에 계시지 않는다.”(마르 16,6) 유일하게 마태오복음은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줍니다. 유다교의 지도자들은 빌라도에게 무덤을 지킬 경비병을 청합니다. “나리, 저 사기꾼이 살아 있을 때, ‘나는 사흘 만에 되살아날 것이다’ 하고 말한 것을 저희는 기억합니다. 그러니 셋째 날까지 무덤을 지키도록 명령하십시오. 그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훔쳐내고서는, ‘그분은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 하고 말할지도 모릅니다.”(마태 27,63-64) 여기서 우리는 예수님의 빈 무덤 사건을 바라보는 전혀 다른 시각을 발견하게 됩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부활을 이렇게 생각한 이들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합니다.(마태 28,11-15)부활은 이해하기 어려운 사건이었을 것입니다. 과학적이고 합리적인 생각으로 부활을 설명하고 이해하는 것은 현재에도 어려운 일임이 분명합니다. 복음서들이 전하는 빈 무덤 사건은 완벽하지 않을 수도 있지만, 부활의 증거입니다. 이와 함께 복음서는 예수님의 발현을 이야기합니다. 빈 무덤 사건과 마찬가지로 복음서들은 마리아와 다른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는 사실을 통해 부활을 이야기합니다. 복음서가 말하는 빈 무덤과 발현은 이해하기 힘든 부활을 설명하고자 고심했던 초대 교회의 성찰을 잘 보여줍니다. 부활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드는 사건입니다. 이 부활을 중심으로 그리스도교가 시작됩니다. 십자가에 못 박힌 청년 예수가 곧 부활한 그리스도라는 것을 고백하는 이들이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빈 무덤과 발현, 그리고 그것을 통해 표현되는 예수님의 부활은 신앙의 핵심이자 모든 신앙인에게 가장 중요한 체험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7.03.16

‘21세기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은 누구인가’ ‘그리스도인 - 그 정체성과 죽음과 희망 서공석 신부 지음 / 분도출판사 / 1만 5000원그리스도인은 어떤 사람인가.’2000년 전 쓰인 성경이 하느님 말씀과 예수 행적으로 신앙의 참 의미를 알려준다면, 현대인 맞춤형 서적인 이 책은 ‘신앙인의 사고 체계’를 직접 건드려 정리한 신학적이고 철학적인 책이다. 신앙 안팎을 방대하게 사유한 저자의 깊은 통찰이 눈에 띈다.저자에 따르면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이라는 삶의 큰 축을 지닌 존재다. 여느 사람들처럼 온갖 장애와 어려움을 겪고 살지만, 방향을 잃고 헤매진 않는다. 하느님으로 말미암은 희망과 함께 과거 신앙 선조들이 열어준 지평이 있으며, 그 안에서 성공하도록 부름 받았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인은 ‘미래를 향해 있는 사람들’이다.그리스도 신앙인이라고 해서 역사와 무관하게 살아가는 사람이 아니다. 신앙인도 시간과 공간 안에서 살아가는 역사적 존재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신앙’이라는 동력을 하나 더 갖고 산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세상과 삶을 다른 이들과 조금 달리 본다. 그리스도인에게는 운명적인 것도 없고, 해결되지 않는 일도 없다. 그런 확신이 신앙이다. 확신을 가진 이들과 꿋꿋하게 유대하며 지내야 한다.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질서’를 사는 이들이다. 다다익선을 ‘가난한 사람이 행복하다’란 질서로, 입신양명의 신분 질서를 ‘섬김의 질서’로 사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이다. 그래서 우리는 굳이 하느님을 앞세워 투사로 만들 필요가 없다. 소외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사랑만 선행되면 될 일이다.저자는 “하느님이 우리 안에 계시다는 사실은 사람을 갑작스럽거나 극적인 회두로 유도하지 않으며, 어떤 영웅적 비상함을 발생시키지도, 감동을 일으키는 사실도 아니다”고 일축한다. “하느님은 우리 일상 안에 계시기 때문”이다. 저자는 고해성사, 혼배 조당과 같은 규범에 얽매이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사람을 살리는 일’이라고 관념을 깨뜨려준다.교회는 무엇인가. 그리스도인 공동체이자 인간이 만든 집단이다. 저자는 “교회는 하나의 수단이나 방법도 아니고, 사회와 대립하는 폐쇄 집단도 아니다”라고 바로잡는다. “복음적 실천의 결과인 교회 안에서 우리는 전통을 사랑해야지, 조직 체계나 책임을 진 이들을 우러러보는 곳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지적한다.저자의 사유는 2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주제로 옮아간다. 저자는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죽음에 틈이 생겼다”며 “신앙인은 그리스도 부활에 대한 체험에서 죽음이라는 생명의 불연속성을 극복한 연속성, 죽음을 극복한 생명, 무(無)를 극복한 존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보장받는다”고 알려준다. 우리는 시간적ㆍ공간적ㆍ존재론적으로 갇혀 사는 ‘감금된 존재’이지만, 동시에 ‘희망의 원리’를 지닌 존재다.저자는 “하느님 나라는 하나의 감춰진 현실”이라고 말한다. 세상 한가운데를 몰래 뚫고 일상에 자리한 하느님 신비를 우리는 늘 간청해야 한다. 하느님의 질서 속에서.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11.22
![[밭에 숨겨진 보물] 쉽고 간결히 쓴 성모 마리아의 모든 것](//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1913_1.0_titleImage_1.jpg)
[밭에 숨겨진 보물] 쉽고 간결히 쓴 성모 마리아의 모든 것 마리아, 은총의 어머니 - 마리아 교의와 공경의 역사 조규만 주교 지음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1만 2000원 교의신학 박사인 원주교구장 조규만 주교가 저술한 책으로 ‘마리아론의 교과서’로 불린다. 초판본은 1998년 10월에 출간됐는데 지금까지도 국내에서 성모 마리아를 다룬 책 중 최고의 저서라고 평가받고 있다. 성모 마리아에 대한 믿을 교리와 신심, 성모 발현과 전례의 의미 등 마리아론을 종합적이면서도 쉽고 간결하게 풀이해 놓았기 때문이다. 조 주교는 올바른 성모 신심과 공경을 알려주기 위해 이 책을 썼다고 했다. 저자는 “성모 마리아 공경이 결코 하느님 흠숭을 방해하지 않고 오히려 하느님 흠숭을 위해 도움이 된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 있다. 그분은 우리 신앙인의 본보기요 희망이기 때문”이라고 밝힌다. 그러면서 조 주교는 성모 공경을 겉치레 행사로만 그쳐서는 안 되며 그보다는 하느님 말씀에 대한 순종,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 법에 대한 성실한 준수, 겸손, 고통을 묵묵히 감수하는 인내, 기도의 자세 등 그분의 삶을 본받는 일을 우선하라고 권한다. 그리스도 중심의 마리아론 다뤄 책은 ‘그리스도 중심의 마리아론’을 일관되게 다루고 있다. 제1부는 마리아의 교의와 신심의 발전 과정을 소개하고 있다. 특히 마리아 공경을 반대하는 자들에 대해 구약성경에 나오는 마리아의 예형과 상징들, 신약성경이 증언하는 마리아의 구세사적 역할을 밝히며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요 믿는 자들의 어머니이며 교회의 어머니임을 분명히 한다. 또 초대 교회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까지 발전해온 성모 마리아에 관한 교의와 신심을 폭넓게 다루면서 성모 공경이 2000년 교회 역사와 함께함을 증언한다. 제2부는 마리아론의 기본 교의와 마리아의 중재성 문제를 깊이 있게 다루고 있다. 마리아의 동정성과 신적 모성, 원죄 없으신 잉태, 승천 교리에 관한 의미와 신학적 성찰을 서술하고 있다. 또 교회의 어머니인 마리아는 그의 보편적 모성애를 통해 구원의 유일한 중재자인 예수 그리스도의 중재에 참여한다고 고백한다. 성모 발현에 관한 궁금증도 풀어 부록에서는 마리아 공경의 전례와 성모 발현을 다룬다. 특히 성모 발현과 사적 계시의 진실 여부의 판단 책임은 소속 교구장에게 있음을 분명히 하고 발현 목격자가 마리아보다 두드러질 수 없고 그 메시지가 공적 계시의 진리와 교회 가르침에 어긋난다면 올바른 발현으로 받아들일 수 없다고 단정한다. 리길재 기자 백영민2017.05.16

레지오 60돌, 대전교구 ‘평화의 모후’ 레지아 새로운 실천 다짐들 채택, 장기 근속상·축복장 등 수여 대전교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60주년을 준비하며 바친 영적 예물을 기록한 족자를 유흥식(오른쪽) 주교와 해미성지 전담 김경식 신부가 들어보이고 있다. 오세택 기자 대전교구 평화의 모후 레지아(단장 이진우)는 6일 해미성지 성당에서 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믿음으로 새롭게 복음화되는 성모님의 군사가 될 것을 다짐했다. 800여 명의 교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기념행사에서 △신자의 의무를 충실히 지키고 △매주 주 회합에 참석하며 △매일 까떼나(Catena)와 묵주기도를 바치고 △매주 실질적이며 적극적으로 활동을 수행하며 △교회와 레지오에 순명하고 △성모님을 본받아 가정생활을 충실히 하고 △매일 성경을 읽고 묵상하며 △본당 사목 방침을 충실히 실천하겠다는 다짐을 채택했다. 김민희(교구 사목기획국장 겸 교구 레지오 마리애 담당) 신부는 대회사를 통해 “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의 올 한 해 여정이 지나온 레지오 사도직의 여정을 복음의 시선으로 되돌아보고 영적으로 다시 태어나는 해가 되기를 바란다”고 당부했다. ‘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를 주제로 열린 행사는 1부 기념식과 체험사례 발표, 2부 기념 미사와 시상식 차례로 거행됐다. 1부는 이진우(시몬) 교구 레지아 단장의 개회 선언을 시작으로 벡실리움(레지오 마리애 단기)과 성모상, 꾸리아 단기 입장, 묵주기도, 교구 레지아 연혁 소개, 영상 상영, 정순영(데레사, 온양 용화동본당)씨와 이금언(엘리사벳, 대전 전민동본당)씨의 체험 사례 발표, 금산본당 마중물성극단의 순교 성극 공연 등으로 꾸며졌다. 교구 레지아는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와 20여 명의 교구 사제단 공동 집전으로 봉헌된 60주년 기념 미사에서 묵주기도 7528만 6429단, 성경읽기ㆍ쓰기 1382만 7683장, 새 가족 찾기 2215명, 사랑의 증언 활동 20만 937회 등을 기록한 족자를 봉헌했다. 시상식에서 55년간 활동한 합덕본당 ‘상지의 좌’ 쁘레시디움 김기산(루도비코)씨 등 21명이 40년 이상 장기 근속상을 받았다. 또 축복장(1명), 모범평의회 꼬미시움(2단체), 모범평의회 꾸리아(4단체), 모범평의회 쁘레시디움(8단체), 개인 선교상(6명), 개인 봉사상(43명), 개인 확장상(15명), 개인 교육상(2명) 등이 수여됐다.유 주교는 “그동안 레지오가 교본의 문자 중심으로, 활동 중심으로, 보이는 것 중심으로 움직여 왔다면, 이제는 한 단계 성숙한 모습으로 나가야 할 때가 됐다”며 “레지오 조직을 위한 레지오가 아니라 본래의 예수님과 성모님 모습을 닮은 성숙한 신앙인이 되기 위해 예수님과 성모님께 다시 눈을 돌려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1957년 3월 논산 부창동본당 ‘천지의 모후’ 쁘레시디움으로 시작한 대전교구 레지오 마리애는 1987년 레지아로 승격했으며, 현재 14개 꼬미시움과 173개 꾸리아, 1906개 쁘레시디움을 두고 있다. 행동단원은 1만 5231명, 청년 단원은 194명, 소년ㆍ소녀단원은 601명, 협조단원은 1만 3291명이다. 오세택 기자 평화신문2017.06.13

주교좌명동본당 사순 특강 (3) ‘미사, 성체성사를 살다’ 윤종국 신부(서울대교구 홍은2동본당 주임) 윤종국 신부 미사는 거룩한 제사다. 믿음의 성사, 변화의 성사인 성체성사에 참여하고 그 성사로 힘을 얻어 세상에 복음을 전해야 한다. 미사 전 실천해야 할 것은 미사 준비다. 미사를 알면 미사가 흥미로울 것이다. 미사는 예식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영적인 생활의 자양분이다. 예수님 말씀을 담고 있는 성경은 쉬운 언어로 쓰여 있다. 성경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성경이 담고 있는 내용과 배경을 잘 몰라서일 것이다. 성경 말씀이 무슨 뜻일지 호기심을 갖는다면 강론에 더 귀를 기울일 수 있을 것이다. 또한 말씀을 읽고 깨달아야 생활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 성찬 전례의 준비는 고해성사다. 교회는 일 년에 두 번 고해성사를 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고해성사에 더 적극적으로 임하면 영적인 결실을 얻을 것이다. 고해성사는 이미 지은 죄를 용서하고 치유하는 개념도 있지만 예방하는 개념도 있다. 질병이 육신의 무질서라면, 죄는 영혼의 무질서다.미사는 집에서 나오는 것부터 시작된다. 성당에 들어와 앉아 마음으로 준비하는 것으로 이미 미사가 시작된 것이다. 미사 시간은 사제와 함께 기도하는 시간이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으로 미사를 드려야 한다.기도를 했는데,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는 것은 우리가 잘못된 청을 했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녀에게 해로운 것을 금지하는 것처럼 하느님께서도 우리를 해로운 것으로부터 막아주기 위해서 노력하신다. 우리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우리를 속박하는 여러 가지 억압이나 고통에서 해방시켜 달라고 청한다. 습관적으로 바치지 말고, 절박하게 바쳐야 한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교서 「주님의 날」에서 주일의 의미를 네 가지로 설명한다. 첫째, 주일은 창조의 날이다. 하느님의 창조가 시작되는 날이다. 둘째, 부활하신 날이다. 새로운 창조의 의미다. 셋째, 주일은 교회의 날이다. 마지막으로 주일은 기쁨과 휴식과 형제의 날이기에 인간의 날이다. 또한 주일은 증거의 날이다. 신자에게 주일은 주님의 날로 축하하고 부활을 경축하는 날이 돼야 한다. 내가 신자임을 확인하고, 신자가 아닌 사람에게 자신이 가톨릭 신자임을 드러내는 중요한 순간이다.한편, 신앙인은 더욱 완성된 자신을 위해 신앙을 지킨다. 구체적인 사랑의 실천으로 나아가지 않는 성찬례는 불안한 신앙이다. 예수님은 아무 대가를 바라지 않으시고 몸과 피를 내어 주셨다.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9가지의 성령의 열매를 공적으로 진화시키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공동선이다. 공동선은 아주 폭넓은 개념이면서도 동시에 실천해야 할 절대적 가치다. 누구라도 남을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전례란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이 말을 미사로 바꾸어도 말이 된다. 미사는 교회 활동이 지향하는 정점이며, 동시에 교회의 모든 힘이 흘러나오는 원천이다. 즉, 신자 생활의 목표와 힘의 원천이다. 시작이면서 끝이다.미사는 우물과 같다. 물만 길어오면 물이 생기고, 수도꼭지만 열면 물이 흘러나온다. 다만 물을 긷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만큼 실천해야 한다. 성체성사에 참여하며, 실천 의지가 없다면 성체성사의 어마어마한 능력을 숨겨두고 있는 것이나 다름없다. 미사의 은혜가 아무리 크다 하더라도 직접 체험하고 영적 은혜를 길어 올리지 않는다면 묻혀 있는 보물과 같다.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백영민2017.03.28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10)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아시시의 프란치스코](//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5729_1.2_titleImage_1.jpg)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10) [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아시시의 프란치스코복음 말씀 듣더니 신 벗고 지팡이 던져 프란치스코에게 성경 말씀은 성체성사만큼이나 당신 모습을 세상에 뚜렷이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현존 자체였다. 그림은 조토 디 본도네 작 ‘새들에게 설교하는 프란치스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당. 기도 안에서 교회와 이웃에 봉사하며 겸손과 인내로 하느님의 뜻을 기다리던 프란치스코는, 어느 날 캄캄한 어둠을 비추는 한 줄기 빛과 같은 하느님의 부르심을 체험한다. 그 체험에 대해 그는 유언을 통해 다음과 같이 전한다. “아무도 내가 해야 할 것을 나에게 보여주지 않았지만, 지극히 높으신 분께서 친히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할 것을 나에게 계시하셨습니다.”일상의 전례 속에서 계시를 듣다프란치스코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모든 계획은 이 세상이 아니라 하느님에게서 온 계시였으며, 그것은 ‘거룩한 복음의 양식에 따라 살아야 하는 것’이었음을 이야기한다. 우리는 ‘계시’라고 하면 뭔가 신비스러운, 이 세상에서는 있을 법하지 않는 방식으로 일어나는 특별한 하느님의 메시지 전달 방식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런데 프란치스코의 주요 전기들 속에는 이 유언의 내용을 뒷받침하는 하나의 사건을 기록하고 있으니, 그것은 그가 미사 중에 사제를 통해 선포되는 복음 말씀을 들은 사건이다. 보나벤투라의 「대전기」에 따르면 그는 ‘포르치운쿨라’라고 불리는 ‘천사들의 성 마리아 성당’을 수리하고 있던 어느 날, 한 사도의 축일 미사에 참여하였다. 그리고 미사 중에 사제의 입을 통해서 선포되는 복음 말씀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금이나 은이나 동전을 넣어 가지고 다니지 말 것이며 식량 자루나 여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도 가지고 다니지 말아야 한다”(마태 10,9-10)는 말씀을 듣는 순간 그의 마음속에 가려져 있던 모든 장막이 걷히는 것을 느끼며 크게 기뻐했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내가 원하던 것이다. 이것은 내 진심으로 갈망하던 바이다”라고 외치며 그 자리에서 신을 벗고 지팡이를 던져버린다. 성경, 프란치스코 삶의 길잡이프란치스코에게 성경은 가장 구체적인 하느님의 목소리였다. 따라서 복음 속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은 단순히 도덕적인 차원이 아니라 그 자체로 삶의 법칙이자 길잡이였으며, 세상의 모든 관습이나 법 위에 있는 최고의 규범이었다. 그런 이유로 그는 회개 초기에 형제들이 찾아와 첫 공동체가 이뤄졌을 때, 공동생활의 유지를 위한 최소한의 생활 규칙 외에 다른 별도의 규정을 가지는 것을 원하지 않았다. 왜냐하면 바로 그 규정들이 복음을 통해서 자신과 형제들을 이끌어 주시는 성령의 생생함을 방해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는 목표가 예수 그리스도와의 완전한 일치였던 만큼 말씀과도 완전한 일치를 바랐고, 자기 자신과 공동체 역시 오로지 복음을 통해서 인도되기를 원했다. 그는 특히 전례를 통해서 선포되는 성경 말씀에 성사적인 의미를 부여한다. 지극히 높으신 분이 말씀 안에 현존하시고, 말씀을 통해서 우리에게 인격적으로 다가오신다는 것이다. 우리는 말씀을 통해서 그분과 만나고 대화한다. “우리가 죽음에서 생명으로 구원된 그분의 몸과 피와 이름과 말씀이 아니고서는 우리는 이 세상에서 지극히 높으신 분을 육체적으로 모실 수도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성직자들이 말하고 전하고 거행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신 말씀과 피가 아니고서는 아무도 구원받을 수 없다는 사실을 우리는 모두 확신하고 있습니다.” 양피지 속 하느님성자께서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당신 자신을 감추시듯, 그분의 말씀 또한 비인격적인 책이나 양피지 속에 자신을 감추고 우리에게 오신다. 때때로 그것은 인간의 부주의 때문에 소홀하게 취급되거나 부적절한 곳에 던져져 모욕을 당하기도 한다. 이 모든 부적절한 조건들을 지극한 가난과 겸손으로 수용하시면서 인간과의 친교를 위해서 당신 자신을 낮추시어 우리에게 다가오신다. 프란치스코는 이러한 말씀의 겸손 앞에 감탄하며 형제들에게 거기에 합당한 태도로 응답할 것을 권고한다.“그러므로 나의 모든 형제에게 훈계하며 그리스도 안에서 격려합니다. 어디서든지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을 발견하게 되면, 할 수 있는 최대의 경의를 표했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잘 정돈되어 있지 않거나 혹 불경스럽게 흩어져 있으면 주워 모아서 보관하여 그 말씀을 하신 주님의 말씀 안에서 공경하십시오. 사실 하느님의 말씀으로 많은 것들이 거룩하게 되며, 그리스도 말씀의 힘으로 제단의 성사가 이룩되기 때문입니다.” 제단의 성사는 말씀의 힘으로 이룩된다. 물론 미사 안에서 성체성사가 가지는 독보적 가치와 절대적인 중요성을 부정할 수는 없으나, 빵과 포도주를 주님의 몸과 피가 되게 하는 것은 바로 말씀이라는 사실 또한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가 먼저 말씀으로 축성되지 않으면 주님의 몸이 현존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프란치스코에게 있어서 성경 말씀은 성체성사만큼이나 당신의 모습을 세상에 뚜렷이 드러내는 그리스도의 현존 그 자체였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말씀이 사람이 되신 분이었기에 그분과의 일치는 곧 말씀과의 일치를 의미하였다. “당신이 기도할 때 당신은 그분께 말씀드리는 것이고, 당신이 읽을 때 그분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것입니다”라는 성 예로니모의 말처럼, 성경을 통해서 우리는 그분과 만나고 그분의 인도를 받아서 걸어갈 수 있다. 그리고 그 증거를 우리는 프란치스코의 모범에서 발견한다. cpbc2017.03.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