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3) 예수님의 정체, 그분을 따르기(루카 9,18-27)](//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6888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3) 예수님의 정체, 그분을 따르기(루카 9,18-27)베드로, 예수님을 하느님의 그리스도라 고백하다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한 곳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60㎞ 정도 떨어진 카이사리아 필리피다. 헬레니즘 시대에는 파네아스라고 불렸는데 헤로데 대왕의 또 다른 아들 헤로데 필리포스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를 위해 도시를 세우면서 카이사리아 필리피라고 불렀다. 오늘날에는 바니아스라고 불린다. 사진은 헬레니즘 시대와 로마 시대 유적이 남아 있는 카이사리아 필리피. 가톨릭평화방송 여행사 제공예수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은 그분의 정체성에 대한 궁금증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그리고 이제 베드로가 예수님의 신원을 고백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함구령을 내리시면서 당신을 따르는 길이 어떠해야 하는지를 가르치십니다. 베드로의 고백(9,18-21)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고 계셨고, 제자들이 함께 있었을 때였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군중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하고 물으십니다.(9,18) 제자들의 답변은 헤로데 영주가 소문에 들은 이야기와 같습니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고, 엘리야라고도 하고, 옛 예언자 한 사람이 다시 살아났다고도 한다는 것이었습니다.(9,19; 9,7-8 참조) 예수님께서는 다시 제자들에게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하고 물으셨고, 시몬 베드로가 “하느님의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엄중히 분부하십니다.(9,20-21) 이 짧은 이야기에서 특별히 두 가지를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는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이해이고, 다른 하나는 예수님의 함구령입니다. 예수님의 신원 이해와 관련해, 군중들의 답변과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의 답변이 다릅니다. 군중은 예수님을 엘리야나 옛 예언자에 속하는 위대한 인물로 생각하지만 정확하게는 알지 못합니다. 반면 베드로는 “하느님의 그리스도”라고 분명하게 대답합니다. 하느님의 그리스도란 하느님의 기름부음받은 이 곧 하느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구세주라는 뜻입니다.(1414호 5월 14일 자 참조) 베드로는 어떻게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었을까요? 같은 내용을 전하고 있는 마태오복음에는 베드로가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었던 것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너에게 알려주셨기 때문”(마태 16,17)이지만, 루카복음에는 그런 내용이 전혀 없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의 이 고백은 그가 다른 제자들과 함께 예수님을 따라다니면서 예수님께서 하신 놀라운 일들을 직접 보고 체험한 데서 나온 고백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제자들에게 엄중하게 분부하십니다.(9,21) 왜 함구령을 내리셨을까요? 그다음 이야기에서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수난과 부활의 첫 예고(9,22) 함구령을 내리신 예수님께서는 이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많은 고난을 겪고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과 율법 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였다가 사흘 만에 되살아나야 한다.”(9,22)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가 오시면 자신들을이민족의 압제에서 구해 주실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로마 제국의 지배를 받고 있었으므로 로마의 지배에서 풀어 주실 것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를 비롯한 다른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입니다. 병자를 고치고 죽은 사람을 살리고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5000명이나 되는 장정을 배불리 먹이는 기적까지 보았으니까요.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사람의 아들이라고 지칭하시면서 오히려 많은 고난을 겪고 죽임을 당했다가 되살아나야 한다고 하십니다. 더욱이 예수님을 배척하고 죽음으로 몰아넣는 이들은 이스라엘의 지배층입니다. 원로들과 수석 사제들 그리고 율법 학자들은 유다인 최고 의회인 ‘산헤드린’을 구성하는 이들입니다. 따라서 예수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을 해방할 메시아가 이스라엘의 최고 지도부에게 배척과 죽임을 당하리라는 것입니다. 이는 베드로로 대표되는 제자들이 생각하는 메시아 상과는 멀어도 한참 멉니다. 물론 “되살아나야 한다”는 말씀을 덧붙이기는 하셨지만 말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당신이 그리스도이심을 긍정하시면서도 제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리신 것은 제자들이 생각하는 메시아 상과 메시아이신 당신이 가서야 할 길이 엄청나게 달랐기 때문이 아닐까요? 달리 말하면 제자들이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의 사명과 그분의 길을 아직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어서 예수님께서 함구령을 내리신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일깨우시고자 당신의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 말씀을 하신 것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따라야 하나(9,23-27) 이렇게 당신의 수난과 죽음과 부활을 예고하신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어떻게 따라야 할 것인지를 말씀하십니다. 주목할 것은 이 말씀을 제자들 곧 사도들에게만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을 따르려는 “모든 사람”(9,23)에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려는 모든 사람이 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첫째는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9,23)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라는 말씀과 “사람이 온 세상을 얻고도 자기 자신을 잃거나 해치게 되면 무슨 소용이 있느냐?”는 말씀은(9,24-25)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는 이유에 대한 설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둘째는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9.26) 예수님이나 예수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면,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오실 때에 그를 부끄럽게 여기실 것입니다. 이렇게 당신을 따르는 법에 대해 말씀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덧붙이십니다.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곳에 서 있는 이들 가운데에는 죽기 전에 하느님의 나라를 볼 사람들이 더러 있다.”(9,27) 이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우선 ‘하느님의 나라’는 하느님의 주권이, 하느님의 다스림이 펼쳐지는 상태라고 이야기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시고 죽은 이를 살리신 것 또한 하느님의 다스림의 표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만, 가장 결정적인 것은 바로 예수님의 부활 사건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그 자리에 있는 사람들 가운데 부활하신 예수님을 볼 사람이 있으리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학자들은 루카가 바로 이어서 묘사하는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 또한 하느님의 다스림의 펼쳐진 사건으로 해석하기도 합니다.생각해 봅시다-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렇다면 자기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자기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님과 예수님의 말씀을 부끄럽게 여기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자신을 버리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예수님을 따르는지요? 아니면 자신을 지키고 내세우려 하고 자신에게 주어지는 십자가를 외면하면서 입으로만 예수님을 따른다고 말하는지요? 혹시 그리스도 신자임을 밝히는 것을, 그리스도의 말씀을 듣거나 선포하는 것을 부끄러워하지는 않는지요? - 예수님의 길은 배척과 고난, 수난과 죽음을 거쳐 부활에 이르는 길입니다. 예수님은 그 길을 가시고 우리는 그 길을 따릅니다. 그렇다면 우리 역시 배척과 고난, 수난과 죽음을 겪어야만 예수님처럼 부활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두려워할 것은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십자가를 지면 되니까요. 때로는 그 십자가마저 고달프고 무겁게 느껴지지만, 예수님께서는 그런 우리를 위안하십니다.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마태 11,28) 문채현2017.09.27
![[성경 속 도시] (39) 다마스쿠스](//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325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39) 다마스쿠스박해자 사울, 예수님을 만나다 다마스쿠스 구시가지 동쪽 외곽의 거리 모습. 출처=「In the steps of Saint Paul」 나는 오래 전 성지순례차 다마스쿠스에 갔다. 당시 과거와 현재가 혼합돼 있는 느낌이었고 전체 도시가 생기발랄한 좋은 인상을 받았다. 그리고 시리아 지역 시골에서 만난 사람들은 넉넉한 살림살이는 아니었지만 정이 많고 순박했다. 시간이 많이 흐른 후에도 그때를 생각하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그런데 지금은 오랜 내전 등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고 나라가 폐허가 되어가고 있다. 하루빨리 전쟁이 끝나고 이 도시에 평화가 내리길 기도해본다. 기원전 3000년쯤 세워져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로 손꼽히는 다마스쿠스는 시리아의 수도로 중세기 한때는 이슬람 제국 전체의 수도였다.아름다운 도시, 교통의 중심지‘다마스쿠스’라는 이름은 기원전 15세기부터 사용했다. 옛날부터 ‘동양의 진주’라고 불렸다고 하니 그 규모와 아름다움을 짐작할 수 있다. 긴 역사를 지닌 다마스쿠스는 이슬람 문화의 4대 도시(메카, 메디나, 예루살렘, 다마스쿠스) 중 하나로 예로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메소포타미아와 이집트를 연결하는 대상 무역로로 유명했고 아라비아 반도와의 통상로 등 교통의 중심지였다.다마스쿠스는 본래는 구약 성경에 나오는 아람의 수도였지만 기원전 732년 아시리아 제국에 의해 멸망했다. 이후 신바빌론, 페르시아, 마케도니아의 지배를 받다가, 서기 1세기에 로마 제국의 속주 시리아의 수도가 됐다. 당시 다마스쿠스에는 이미 많은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고 전해진다. 다마스쿠스는 비교적 성경에 많이 언급되는 도시다. 구약에서 나오는 인물은 유명한 시리아의 장수 나아만이다. 나아만이 나병을 치유하는 이야기이다. 나아만이 나병을 고치려고 시리아 다마스쿠스에서 사마리아까지 찾아와 엘리사 예언자의 말에 따라 요르단 강에 내려가 몸을 씻고 나병을 고쳤다는 극적인 이야기다(2열왕 5,1-27). 성경 속 인물 중에 이 도시와 관련을 맺는 가장 대표적인 인물은 역시 바오로 사도가 아닐까. 사울(개종 전의 바오로 사도의 이름)은 본래 철저한 바리사이였고 열심한 유다교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앞장서서 박해했고 교회를 아예 없애 버리려고 남자든 여자든 신자를 잡아다가 감옥에 넘겼다(사도 8,1-3 참조). 사울은 그리스도교 신자들을 색출하고 예루살렘으로 연행해오기 위해 대제사장의 공인을 받은 뒤, 다마스쿠스를 향하다가 극적으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 제자가 되었다(사도 9,1-18). 박해하려던 곳에 하느님 말씀 전해바오로 사도의 회심은 성경에 여러 번 반복돼 언급된다. 세례를 받은 사울은 바오로로 개명했다. 이제 그는 새로운 사람이 된 것이다. 그는 제일 먼저 자신이 박해하려던 다마스쿠스에서 처음으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한다.“사울은 며칠 동안 다마스쿠스에 있는 제자들과 함께 지낸 뒤, 곧바로 여러 회당에서 예수님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시라고 선포하였다”(사도 9,19-20). 그는 이방인들에게 부활하신 주님의 복음을 전하는 데 자신의 전 생애를 바쳤다. 안타깝게도 현재 다마스쿠스는 우리나라 외교부에서 여행 경보 4단계인 여행 금지로 지정하고 있는 지역이다. 우리나라 국민은 이곳에서 즉시 대피하거나 철수해야 하며 만약 당국의 허가를 받지 않고 방문하면 처벌을 받게 된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4.01

그들이 어떻게 기도했길래 하느님이 응답해 주셨나 성경 인물들의 기도 상·하 성경 인물들의 기도 상·하차동엽 지음/위즈앤비즈/2만 5000원무(無)에서 유(有)가 탄생하는 경우는 없다. 소설가들은 한 권의 소설을 쓰기 위해선 수십 수백 편의 소설을 ‘필사’한다고 한다. 그렇게 다른 작가의 작품을 통해 자신만의 세계를 만들어 간다. 미술가들은 또 어떠한가. 위대한 걸작들을 보고 익히면서 자기만의 화풍을 구축해 간다.기도도 마찬가지다. 기도할 줄 모른다면, 기도를 잘하고 싶다면 먼저 신앙 선배들이, 신앙 선조들이 바친 기도를 찾아보고 그 기도를 따라 해봐야 한다. 배움에 왕도가 없듯이 기도에도 왕도가 없다. 차동엽(인천교구) 신부가 펴낸 「성경 인물들의 기도」는 기도의 길을 닦은 성경 속 인물들의 갖가지 기도가 담겨 있다. 그들이 무슨 기도를 바쳤는지, 하느님께선 응답해 주셨는지, 기도의 결말은 어떠한지를 살펴봤다. 차 신부가 ‘기도 선배’인 성경 속 인물들을 통해 배운 기도와 기도 체험을 엮어낸 것이다. 기도와 믿음에 도(?)가 텄을 것 같은 차 신부지만, 그 역시 “기도를 기도답게 하고 싶었고 그러려면 기도 선배들에게 배우는 게 먼저였다”고 털어놨다. 책은 구약편과 신약편 2권으로 구성돼 있다. 구약편엔 아담와 카인, 모세, 여호수아, 솔로몬, 다니엘, 말라키 등 34명의 기도가 들어 있다. 신약편은 세례자 요한에서부터 예수님까지 19명의 기도를 담았다. 어떤 기도는 금세 하느님께 응답받았고 어떤 기도는 거절당하기도 했다. 응답을 받기까지 한평생 기다린 이들도 있다. 성경 인물들의 기도를 통해 세상만사 희로애락과 한 시대의 흥망성쇠를 엿볼 수 있다. 차 신부는 기도를 배우면서 시편 102편 말씀에서 깨달음을 얻었다. “주님께서… 헐벗은 이들의 기도에 몸을 돌리시고 그들의 기도를 업신여기지 않으시리라”(시편 102,17-18). 하느님 앞에 기도를 바치는 이들은 임금이나 예언자, 과부나 고아 할 것 없이 ‘헐벗은 이들’이 됐다. 그리고 이들의 기도는 애원이고 탄원이었으며 하소연이었다. 하느님께선 그 기도를 ‘업신여기지 않고’ 보듬어 주셨다. 차 신부는 “우리 시대 저마다의 애환과 고달픔을 속속 헤아려 주시는 주님 연민이 고동치는 듯하다”고 했다. ‘대체 성경 인물들 기도가 나와 무슨 상관이냐’고 되묻는 이들에게 차 신부는 “그들의 기도가 우리 기도를 한 단계 발전시켜 주는 영감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인천교구장 최기산 주교는 책을 추천하며 “신앙 선배들은 우리에게 척박한 삶의 터에서 살아남는 생존 기도, 실전 기도를 가르쳐 준다”면서 “무작정 기도하기보다는 먼저 기도하는 법을 충실히 배우는 것이 상책”이라고 했다.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6.04.27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48.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15)](//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1320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48. “하느님께서 깨끗하게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사도 10,15)믿음 가진 모든 민족에게 구원의 길 열렸다베르나르도 카발리노 작 ‘성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 백인대장’ 부분, 1640년대,로마 국립근대미술관, 이탈리아.환시 통해 새 깨달음 얻은 베드로 정결한 것과 속된 것 구분 없어져 예수님 의해 구약의 법 새롭게 모든 이에게 차별 없는 주님 사랑 이방인에게도 구원의 기회 주어져 “카이사리아에 코르넬리우스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이탈리아 부대라고 불리는 군대의 백인대장이었다.”(사도 10,1) 사도행전 10장 전체는 베드로와 코리넬리우스와의 이야기를 전합니다. 코르넬리우스는 이방인으로, 로마의 군사를 이끌던 지휘관이었습니다. 복음서에서도 간간히 등장하는 백인대장은 로마의 군대에서 백 명의 군사를 이끌 수 있는 권한을 가진 사람을 의미합니다. 그는 이방인 출신이었지만 이미 신심을 가진 사람으로 소개됩니다. 내용에서 차이는 있지만 코리넬리우스의 이야기는 루카복음(7,1-10)에서 전하는 백인대장의 이야기와 비교될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에서 특이한 점은 베드로와 코르넬리우스 모두 환시를 통해 서로 만나게 된다는 점입니다. 백인대장은 환시를 통해 베드로를 찾아가라는 천사의 말을 따릅니다. 베드로 역시 환시를 통해 새로운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베드로는 하늘에서 큰 아마포 같은 것이 내려오는 것을 봅니다. 그 안에는 “네발 달린 짐승들과 땅의 길짐승들과 하늘의 새들”이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구약성경에서 하느님이 창조하신 생명체를 일컫는 표현입니다.(창세 6,20) “하느님께서 만드신 것을 속되다고 하지 마라.” 유다인들에게 거룩한 것과 속된 것, 깨끗한 것과 더러운 것의 구분은 중요했습니다. 그들은 정결법을 충실하게 지키면서 속된 것으로부터 멀어지고자 했으며 이것은 유다인들의 특징처럼 표현됩니다. “주 너희 하느님이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9,2)는 말씀처럼 유다인들은 거룩한 사람이 되도록, 거룩함을 유지하도록 최선을 다했습니다. 이러한 생각은 생활 전반에 걸쳐 영향을 줍니다. 음식에 있어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깨끗한 짐승과 부정한 짐승을 철저하게 구분했고 정결한 짐승만을 먹을 수 있었습니다.(레위 11장 참조) 베드로는 말합니다. “저는 무엇이든 속된 것이나 더러운 것은 한 번도 먹지 않았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어진 환시는 사도행전에서 큰 의미를 갖습니다. 이제 구약의 법은 예수님에 의해서 새롭게 됩니다. 복음서에서도 이러한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마르 7,18-23) 더 이상 거룩한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은 없습니다. 이것은 단지 음식에 대한 내용만은 아닙니다. 먹을 수 있는 짐승에 관한 이 환시의 의미는 선택받은 민족과 그렇지 못한 민족에게로 확장됩니다. 정결한 것과 속된 것의 구분은 유다인들의 삶에서 중요한 것이었고, 이 선택은 민족들에게도 해당됩니다. 하느님의 선택을 받은, 뽑힌 백성인 이스라엘 사람들은 이방인들, 곧 그 외의 민족들과는 어울리지 않았습니다. 환시 이후에 코르넬리우스를 만난 베드로는 이렇게 설교합니다. “나는 이제 참으로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차별하지 않으시고, 어떤 민족에서건 하느님을 경외하며 의로운 일을 하는 사람은 다 받아 주십니다.”(사도 10,34-35) 더 이상 민족들 간의 구분과 차이는 없습니다. 구원은 믿음을 간직한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습니다. 코르넬리우스의 집에서 행한 베드로의 설교에서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역시 복음 선포의 내용입니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분을 사흘 만에 일으키시어 사람들에게 나타나게 하셨습니다.”(사도 10,39-40) 여기서 베드로는 ‘십자가’라는 표현 대신 ‘나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이 표현은 신명기(21,22-23)를 생각하게 합니다. “죽을죄를 지어서 처형된 사람을 나무에 매달 경우, 그 주검을 밤새도록 나무에 매달아 두어서는 안 된다. 반드시 그날로 묻어야 한다. 나무에 매달린 사람은 하느님의 저주를 받은 사람이기 때문이다.” 유다인들에게 십자가는 이런 의미였습니다. 하느님의 저주인 십자가에서의 죽음 그리고 하느님께서 예수님을 다시 일으킨 사건인 부활. 서로 조화되기 어려운 내용이지만 이것이 초기 교회의 믿음이었고 선포였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김지항2017.05.10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중동(1) 자흘레 난민 캠프를 가다](//cpbc.co.kr/CMS/newspaper/2017/10/rc/699565_1.0_titleImage_1.jpg)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중동(1) 자흘레 난민 캠프를 가다가족 8명과 포격 뚫고 국경 넘은 모나 란다씨 자흘레 시 외곽 시리아 난민 캠프에서 만난 아일란 쿠르디의 친구들. 전쟁의 고통은 힘없는 여성과 아이들 몫으로 고스란히 남는다. 천막 틈바구니로 고개를 내밀고 바깥 세상을 구경하는 아이의 순수한 눈빛이 그 사실을 웅변한다. “성조들과 예언자들의 고향, 메시아가 강생하신 영광스러운 장소, 구원자의 십자가가 드높여지는 것을 보았고 구세주의 부활과 성령 강림을 목격한 곳, 사도들과 성인들과 수많은 교부가 거쳐 간 땅, 최초의 교리가 정립된 현장….”(베네딕토 16세 교황 권고 「중동 교회」 제8항 참조)중동은 그리스도교의 뿌리이자 요람이다. 하지만 인간의 눈먼 욕심에 그 뿌리는 뽑히고, 요람은 짓밟혔다. 100년 전만 해도 중동 인구의 14%가 그리스도인이었다. 지금은 4%대로 주저앉았다. 그리스도인들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2003년)과 ‘아랍의 봄’, 그리고 이슬람 극단 무장조직 창궐이라는 일련의 소용돌이 속에서 모진 박해를 받고 쓰러졌다. 특히 극단 무장세력 IS(이슬람 국가)가 활개친 이라크와 시리아의 경우 앞으로 그리스도인의 ‘현존’ 가능성을 의심해야 할 정도다. 교황청 산하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와 가톨릭평화신문은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두 번째 순서로 박해받는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찾아간다. 글ㆍ사진=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레바논 국경도시 자흘레에 있는 시리아 난민 캠프에 들어서자 아일란 쿠르디의 친구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아일란은 2년 전 터키 보드룸 해안에서 차가운 주검으로 발견된 3살짜리 시리아 난민 꼬마다. 모래사장에 잠든 양 엎드려 있는 아일란의 모습은 시리아 난민의 비극을 환기시켰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에 무관심했던 전 세계인의 양심을 아프게 찔렀다. 아일란과 난민 캠프 아이들은 모두 시리아 북부 알레포가 고향이다. 알레포는 칼리프 제국 건설의 망상에 사로잡힌 이슬람국가(IS)가 점령해 초토화시켰다. 천막 골목에서 놀다 낯선 방문객을 보고 몰려든 아이들의 해맑은 얼굴…. 이들은 친구 아일란의 죽음과 고향 소식을 모르는 듯하다. 이들에게는 당장 배고프고 추운 게 불만이다. 그래서 아이들이다. 겨울에 대비해 찬바람을 막으려고 천막 귀퉁이에 못질하는 여인의 어설픈 손길에서 난민 생활의 고달픔이 느껴질 뿐이다. 분쟁 지역의 난민촌 풍경이 다 그렇듯, 남자들은 보이지 않는다. 캠프의 대표격인 이브라힘(40)씨는 남자들 행방에 대해 “전쟁 중에 죽었거나, 시리아에서 싸우고 있거나, 아니면 시내로 날품팔이를 나갔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눈앞에 보이는 황량한 산등성이 너머 시리아 영토를 가리키면서 “기막힌 사실은 저기에 남아 싸우는 남편이나 아들이 지금 누구와 싸우는지 모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수니파 극단 무장세력과 시아파 정부군, 미국과 러시아, 사우디아라비아와 이란이 뒤엉켜 패권 다툼을 벌이는 내전의 현실에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또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며 “하지만 다 파괴된 데다 언제 제2, 제3의 IS가 튀어나올지 몰라 망설이고 있다”고 말했다. 자흘레 외곽에 있는 난민 캠프는 50개 가까이 된다. 5, 6년 전 난민들이 물밀듯 쏟아져 나올 때와 비교하면 모든 게 줄어들었지만, 지금도 여전히 유엔을 비롯한 비정부 기구들(NGO)의 지원을 받고 있다. 하지만 이들 캠프에는 그리스도인이 거의 없다. 그리스도인은 대부분 자흘레 변두리 산동네로 올라가 피란 보따리를 풀었다. 자흘레대교구(멜키트 동방가톨릭교회)의 난민지원사업 담당 사나 사미아씨는 “극단주의자들과 폭도로 돌변한 무슬림 이웃을 피해 도망 나온 그리스도인들이 어떻게 무슬림 캠프에 들어갈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무슬림 난민은 시내와 캠프 어디든 들어갈 수 있지만, 그리스도인은 선택의 여지가 없다”며 “더욱이 산동네 빈민촌으로 들어온 그리스도인들은 유엔과 NGO 지원의 사각지대에 있어 고충이 더 크다”고 말했다.남편과 함께 사지(死地)에서 탈출한 그리스도인 난민 로나씨는 “그간 알레포에서 무슬림 이웃과 갈등 없이 평화롭게 살았다”며 “하지만 2011년 내전 발발 직후 마을의 모스크(이슬람 사원)에서 확성기로 그리스도인들을 위협하기 시작하면서 이웃 주민들이 폭도로 변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제 아무도 믿을 수 없다. 그들의 배신과 이유 없는 증오에 몸서리가 쳐진다”며 고개를 돌렸다. 그의 표정은 공포와 배신감, 피란 생활의 막막함으로 뒤범벅됐다. 자흘레대교구는 거대한 파도처럼 밀려오는 난민들 때문에 처음에는 어쩔 줄을 몰랐다. 난민들은 시내 빌딩 주차장은 물론 대성당 마당에까지 천막을 쳤다. 긴급 구호 경험이 없는 대교구에 사업 방향을 가르쳐 주고, 지원해 준 곳이 교황청 산하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재단이다. ACN은 지금도 난민 월세 주거비, 무료 급식소, 난민 학교 등을 지원하고 있다. 사나 사미아씨는 “ACN 도움이 없었다면 우리 교구는 지금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것”이라며 “우리는 무슬림과 그리스도인 가리지 않고 하느님의 이름으로 인도적 지원을 한다”고 밝혔다. 여러 세력이 뒤엉켜 싸우는 시리아와 이라크 내전은 수니파, 시아파 모두에게 큰 상처를 남겼다. 하지만 가장 큰 피해자는 그리스도인들이다. 강대국들은 석유와 지역 패권을 차지하기 위해 두 나라의 독재 정권을 두둔했다. 이에 대한 불만을 먹고 성장한 극단 무장세력은 정치적 야망을 위해 불을 지르고 모든 것을 잿더미로 만들었다. 세를 규합하는 데 쓰인 불쏘시개는 그들의 종교적 ‘신념’이다. 불의한 신념의 희생양은 바로 그리스도인들이다. 시리아만 하더라도 내전 발발 직전 국민의 6%를 차지하던 그리스도인은 현재 유서 깊은 ‘성경의 땅’에 얼마나 남아 있는지 모른다. 혹자는 2~3%라고 추정한다. 교회와 그리스도인들을 짓밟은 그들의 눈먼 증오는 파스칼의 「팡세」 한 구절로 설명이 충분하다. “인간은 종교적 신념을 갖고 행할 때일수록 희열에 넘쳐 철저하게 악을 행한다.” 가족 8명과 포격 뚫고 국경 넘은 모나 란다씨 가정 가족 8명과 함께 피란 온 그리스도인 난민 모나 란다(54)씨 손에 약봉지가 들려 있다. 자흘레대교구와 ACN에서 보태 준 돈으로 사온 남편의 심장약이다. 피란길에서부터 심장 이상 증세를 보인 남편은 병원에서 “죽기 일보 직전에 왔다”는 말을 들었다. 지금도 약을 달고 산다. 란다씨는 “IS 대원들은 아들을 구타하면서 IS에 가입하라고 협박하고, 마을 소녀들을 끌고 갔다”며 “우리 가족은 그들 손에 죽고 싶지 않아서 포격을 뚫고 걸어서 국경을 넘었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의 피란길은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 여정과 다를 게 없었다”며 5년 전의 피란길 악몽을 떠올렸다.란다씨 가족의 생활은 ‘버티는 것’이지 사는 게 아니다. 빈민가에 작은 방을 하나 얻었지만, 수입은 아들 혼자 나가 벌어오는 돈이 전부다. 자흘레 시내에서 일하는 시리아 난민 남성의 하루 품삯은 20~30불(약 3만 원)이다. 그나마도 난민들 탓에 일거리가 줄었다고 반발하는 원주민들 때문에 일감도 많지 않다. ACN의 도움으로 월세 충당란다씨 가족은 ACN이 교구를 통해 지원해 주는 돈으로 월세를 낸다. 제대로 된 식사는 무료 급식소 ‘자비로운 요한의 집’에 가서 먹는 점심이 유일하다. 그는 “하느님 도움 없이는 하루도 살지 못한다”고 말했다. 전쟁 전에는 가난해도 행복했는데…그는 시리아 고향 얘기를 하다 “전쟁이 모든 것을 앗아갔다”며 울음을 터뜨렸다. 남편 레도씨는 내전 발발 전에 채석장에서 일했다. 가난했지만 아무 문제 없이 행복하게 살았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라는 이유로 모든 것을 놔둔 채 도망쳐야 했다. 그리스도인이라서 박해받은 데 대해 그는 “그리스도인이라서 전쟁 중에 우리의 신앙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하루도 거르지 않고 시리아의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며 “한국에서 온 손님과 다시 만날 때는 ‘예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다”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차별과 박해,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 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산하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가 개설됐다. 문의 : 02-796-6440 성금 계좌 : 우리은행 1005-303-232450 (예금주 사단법인 에이드투더처치인니드 )고통받는 교회 돕기(Aid to the Church in Need)는 차별과 박해, 가난으로 어려움을 겪는 가톨릭 교회를 지원하는 교황청 산하 단체로, 한국 교회도 1960, 70년대에 많은 도움을 받았다. 2015년 아시아 최초로 한국 지부(이사장 염수정 추기경)가 개설됐다. 홈페이지: www.churchinneed.or.kr cpbc2017.10.25

‘성모님의 군대’로서 소명과 사명 되새겨인천·의정부교구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돌 인천 '바다의 별' 레지아 도입 60주년 기념 행사에서 기수단이 입장하고 있다. 맹현균 기자 인천교구 ‘바다의 별’ 레지아(단장 고중섭)는 3일 부천종합운동장에서 ‘너희는 이 일의 증인이다’(루카 24, 48)를 주제로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 신앙대회를 개최하고, 성모님을 닮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살 것을 약속했다. 1만 5000명의 단원이 참가한 이날 행사는 기수단 사열식을 시작으로 ‘답게 살겠습니다’ 운동 선포식, 장기근속자 및 모범단원 표창, 경축 미사 봉헌, 축하공연 등으로 꾸며졌다. 김태현(교구 선교사목부 부국장) 신부는 대회사를 통해 “지난 60년은 시간의 흐름을 넘어 단원들이 성모님과 함께, 성모님을 닮으며 살아온 시간이라는 더 큰 의미가 있다”고 말했다.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 주례와 80여 명의 교구 사제단 공동집전으로 봉헌된 60주년 경축 미사에서 단원들은 지난 1년간 바친 묵주기도 7637만 300단, 소외된 이웃을 위한 기도 39만 1400회, 매일 미사 참여와 성경 읽기 706만 3000회, 60주년 봉헌기도 353만 3000회를 새긴 봉헌기도 패를 봉헌했다. 정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교구 ‘바다의 별’ 레지아가 60년 동안 눈부신 성장을 이뤄온 것은 하느님의 은총 덕분”이라며 “앞으로도 성모님이 걸으신 신앙의 길을 우리도 굳건한 믿음 속에서 힘차게 따라가야 한다”고 당부했다.단원들은 또 ‘답게 살겠습니다’ 결의문을 통해 △겸손하신 성모님을 본받아 교회와 레지오에 순명하고 △가족을 소중히 여기며 성가정에 충실하며 △매일 까떼나와 묵주기도를 바치고 △천주교 신자의 의무를 다할 것 등을 다짐했다. 이날 전임 단장 권대섭(요셉)씨 등 3명이 공로상을 받았고, 장기근속자(16명), 모범단원(17명), 소년단원(1명), 소년파견간부(1명) 등이 표창장을 받았다. 50년 장기근속 표창장을 받은 오춘자(가브리엘라, 연수동본당)씨는 “하느님께서는 제게 건강함을 주셨다”면서 “힘닿는 데까지 계속 이웃을 도우며 살라는 하느님의 뜻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인천교구 레지오 마리애는 1957년 9월 인천 답동본당 ‘천지의 모후 쁘레시디움’으로 시작했다. 1986년 3월 레지아로 승격했으며, 현재 17개의 꼬미시움과 211개의 꾸리아, 2560개 쁘레시디움이 있다. 행동단원은 2만 2000명, 협조단원 2만 6000명이다. 맹현균 기자 maeng@ 의정부교구 ‘애덕의 모후’ 레지아(단장 한효수)는 3일 경기도 의정부시 주교좌 의정부성당에서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 기념행사를 열고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서의 소명과 사명을 되새겼다. 한효수(바오로) 단장의 개회 선언으로 시작한 행사는 특강(홍승권 신부), 연혁 보고, 경축 미사 등으로 진행됐다. 교구장 이기헌 주교는 미사를 주례하고 강론을 통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에게 평화를 위한 기도를 특별히 당부하면서 “우리나라와 세상의 평화를 위해 더 기도해 주길 바란다”고 말했다. 또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평화의 원리로 서로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는 것을 꼽았다”면서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도 서로를 존중하고 다름을 인정하며 평화를 실천하는 사람들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주교는 미사 중에 정정근(막달레나)씨를 비롯한 단원 9명에게 모범상을 수여했다. 40년 넘게 레지오 마리애 활동에 헌신한 공로로 상을 받은 나정자(아가타, 85)씨는 “하느님과 성모님께 언제나 최고의 사랑을 받았다”면서 “남들이 볼 땐 가진 것 하나 없는 할머니겠지만, 지금 나는 누구보다 행복하다”고 말했다. 교구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1년간 전 단원이 기도와 선교 대상자, 냉담교우 회두 등을 봉헌하기로 서약한 결과를 패에 담아 이 주교에게 전달했다. 의정부교구 레지오 마리애는 1957년 2월 의정부2동본당(현 주교좌 의정부본당) ‘근심하는 이의 위로’ 쁘레시디움으로 시작했다. 2004년 서울대교구에서 의정부교구가 분가하면서 애덕의 모후 꼬미시움이 교구 애덕의 모후 레지아로 승격했다. 2017년 3월 말 현재 애덕의 모후 레지아는 쁘레시디움 1107개, 꾸리아 93개, 꼬미시움 8개로 구성돼 있다. 성인 단원은 9087명(여성 6280명, 남성 2807명)이며, 청년 단원 67명, 소년소녀단원 198명이다. 협조단원은 모두 1만 5526명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17.05.09
![[나의 미사 이야기] (1) 손희송 주교(서울대교구 총대리)](//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1048_1.0_titleImage_1.jpg)
[나의 미사 이야기] (1) 손희송 주교(서울대교구 총대리)손희송 주교
서울대교구 총대리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복음서에 따르면 제자들은 예수님의 부활 소식을 듣고도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모두 잠가 놓고 있었다. 그런 그들 가운데 예수님이 나타나시어 “평화가 너희와 함께!”(요한 20,20)라고 인사하신다. 예수님은 당신을 뵙고 기뻐하는 제자들에게 다시 한 번 “평화가 너희와 함께!” 하고 인사하시고 그들을 세상에 파견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가 용서를 받을 것이고, 그대로 두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요한 20,23)부활하신 예수님은 위기의 순간에 당신을 버리고 도망갔던 제자들을 용서하시고 평화를 선물해주신다. 그리고 그들을 용서와 평화의 사도로 삼으시면서 계속 그들과 함께하겠다고 약속하신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태 28,20) 이 말씀대로 지금도 예수님은 성경 말씀과 성사, 특별히 성체성사 안에 현존하시면서 제자들에게 기원하셨던 평화의 은총을 우리에게 선사해주신다. 유럽 유학 시절미사 중에 주님의 현존을 느끼면서 평화의 은총을 체험한 이들이 적지 않다. 황송하게도 내게도 그런 체험이 있었다. 오래전 유럽 유학 시절의 일이다. 1982년부터 오스트리아 인스부르크에서 10년간 유학 생활을 했는데, 마지막 2년 반은 신학교에서 남자 수도원으로 거처를 옮겨 지냈다. 가능한 대로 수도원의 일과표에 따라 성무일도와 미사, 식사를 함께했다.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곳 수사 신부들, 수련자들과도 친해져 공부에도 도움을 받고 개인적으로도 가깝게 지내게 됐다. 어느 날 그동안 비교적 친하게 지내던 수사 신부가 나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내 독일어 발음이 잘못됐다고 지적해 주었다. ‘네가 독일어를 한 지가 벌써 몇 년이 되었는데, 그런 것도 틀리느냐’는 약간의 비웃음이 담긴 지적처럼 들렸다. 그 순간 모욕을 당했다는 느낌과 함께 그 신부에 대한 미운 감정이 솟아올랐다. 그런데 문제는 그 미운 감정이 시간이 지나도 사라지기는커녕 점점 더 강해지는 것이었다. 너그러울 때에는 온 세상을 다 받아들일 듯하다가도 옹졸해지면 바늘 하나 꽂을 자리도 없는 것이 마음이라는 어느 선승의 말을 절감하게 됐다. 그 신부와 대화는 물론 시선조차도 마주치기가 싫었다. 작은 일에 내가 이래서는 안 되지 하면서 마음을 다잡고 기도 중에 하느님께 도움을 청해도 별반 달라지지 않았다. 한 집안에서 매일 마주치는 사람에 대해 미운 감정을 갖고 살자니 우선 내가 불편해서 견디기 어려웠다. 미사 중 하느님께 간절히 청해그러던 어느 날 수도원 아침 미사 때 그 신부도 함께 참석한 가운데 하느님께 간절히 청했다. ‘주님, 제 힘으로는 도저히 안 되니 이제는 당신이 어떻게 좀 해주십시오.’ 나도 도저히 어쩌지 못하는 내 마음을 하느님께 봉헌한다는 심정으로 그렇게 기도했던 것이다. 정말 신기하게도 미사 후에 그 신부에 대한 미운 감정이 사라졌고, 다시 평소처럼 그와 대화도 하고 농담도 할 수 있게 됐다. 미움의 먹구름이 한순간에 걷히고 내 마음에 찾아온 평화의 햇살은 온전히 주님의 선물이었다. 거의 단절되다시피 한 인간관계가 다시 이어지는 체험을 통해 부활하신 주님의 손길을 느낄 수 있었다. 죽음은 모든 것을 무(無)로 돌리는 세력이고, 돈독했던 인간관계가 끊어진 곳에는 분명히 죽음의 세력이 활동하는 것이다. 단절된 인간관계가 다시 이어졌다면, 모든 것을 무로 돌리는 죽음의 세력이 극복된 것이고, 바로 여기서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의 손길이 닿았다고 말할 수 있다. 미사 안에서 부활하신 주님의 손길을 느끼고 체험하는 이들이 많아지기를 기원한다.※‘나의 미사 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 글을 연락처, 얼굴 사진과 함께 pbc21@c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평화신문2017.05.09
[미사전례풀이] 15. 성당, 예수님 흠숭하기 가장 알맞은 곳▨그리스도는 성체 안에만 현존하는가?사람으로 오신 하느님의 아들이고, 십자가의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는 분으로서 ‘하느님의 오른편에 앉아 우리를 위하여 간구해 주시는 그리스도 예수님’은 여러 가지 방식으로 교회에 현존하신다. 특별히 가장 탁월한 방식으로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신다. 그리스도께서는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마태 18,20)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따라서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신자들 집회 안에, 신자들이 함께 기도할 때에 현존하십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교회 안에서 성경이 봉독될 때와 그 말씀에 대한 해설이 이뤄지는 바로 그때에 당신 말씀 안에서 현존하시며, 십자가 상의 제사를 거행하고 말씀을 선포하는 사제의 인격 안에도 현존하십니다. 그뿐만 아니라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어려운 사람들, 곧 가난한 사람들, 병자들, 감옥에 갇힌 사람들 안에도 현존하십니다. 미사성제 때에 빵과 포도주가 축성됨으로써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과 피의 실체로 변화됩니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형상 안에 가장 완전하게 ‘실재적으로’ 현존하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사가 거행되고 감실이 모셔져 있는 성당과 경당은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해 계시는 그리스도를 흠숭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입니다.▨신령성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모령성체는 무엇인가?교회는 신자가 영성체를 할 수 없는 경우에도 성체에 대한 믿음과 사랑을 지니고 성체를 모시고자 원한다면 성체성사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가르친다. 이를 신령성체(神領聖體)라고 부른다. 반대로 신자가 영성체를 해서는 안 될 경우임에도 성체를 영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모령성체(冒領聖體)라고 한다. 사제가 없어 미사를 거행하지 못하고 단지 말씀 전례만 거행할 경우, 병고나 다른 여러 가지 이유로 미사에 참여하지 못하는 경우, 대죄 중에 있으면서 고해성사를 받지 못해 영성체를 할 수 없는 경우, 혼인 조당으로 지속적으로 성체를 영하지 못하는 경우, 또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예비 신자일 경우에 신령성체를 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경우이기는 하지만 미사 중에 성체가 모자라 영성체를 못 하는 경우도 여기에 해당합니다. 이처럼 영성체를 하지 못하는 신자들이 신령성체를 하는 것입니다. 신령성체는 성체 신심의 또 다른 표현으로, 성체를 모시지 않고 마음으로 성체를 모셔도 같은 효과가 있다는 믿음입니다. 영성체를 하지 못한다고 미사 참여마저 하지 않는 신자들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영성체를 하지 못하더라도 미사에 참여하고 신령성체를 함으로써 그리스도와의 일치를 이루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모령성체는 은총의 지위에 있지 않은 신자가 스스로 중죄 중에 있음을 의식하면서 영성체를 하는 경우입니다. 모령성체는 성체에 대한 불공경의 태도이며, 중죄에 해당합니다. 그러므로 은총의 지위에 있지 않은 신자는 영성체 전에 하느님께 죄를 용서받고 교회와 화해해야 합니다. 백영민2017.03.08
![[미사전례풀이] 8. 쪼개진 성체도 온전한 주님의 몸](//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7645_1.0_titleImage_1.jpg)
[미사전례풀이] 8. 쪼개진 성체도 온전한 주님의 몸 성찬례를 거행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성체성사는 언제 만들어졌나예수 그리스도는 수난 전날 제자들과 함께한 최후의 만찬 자리에서 성체성사를 세우고, 이 예식이 제자들을 통해 계속 이뤄지기를 바랐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실 때 하신 말씀이 성경에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또 빵을 들고 감사를 드리신 다음, 그것을 떼어 사도들에게 주시며 말씀하셨다. ‘이는 너희를 위하여 내어주는 내 몸이다.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 또 만찬을 드신 뒤에 같은 방식으로 잔을 들어 말씀하셨다. ‘이 잔은 너희를 위하여 흘리는 내 피로 맺는 새 계약이다.’”(루카 22,19-20)예수님께서 행하신 이 예식은 오늘도 우리가 미사를 거행할 때 이뤄지고 있습니다.성체성사는 무한한 풍요로움을 지니고 있기에 여러 이름으로 불립니다. 하느님께 드리는 감사 행위이기 때문에 성찬례(감사제)라고 하고, 주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신 최후의 만찬이므로 주님의 만찬, 빵의 나눔, 성찬 모임이라고 부릅니다. 또 구세주 그리스도의 유일한 제사를 재현하고 교회의 봉헌도 담고 있기 때문에 거룩한 희생 제사, 하느님의 거룩한 전례라고도 부르며, 일상생활 안에서 하느님의 뜻을 수행하도록 신자들을 파견(missio)한다는 뜻을 지녔기 때문에 미사라고도 부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성체 안에 실제로 계시나예수 그리스도는 빵과 포도주의 성체성사 형상 안에 실제로 현존한다. “이는 내 몸이다. … 이는 내 계약의 피다”(마태 26,26-30)라는 말씀으로 빵과 포도주를 당신의 몸과 피가 되게 하셨기 때문이다. 교회는 이렇게 빵이 주님의 몸으로 변화되는 것을 거룩한 변화라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이러한 변화를 실체 변화라고 일컫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께서는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하시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화된 빵과 포도주가 훼손되지 않도록 각별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두 가지 형상 안에 각각 온전히 현존하며, 또 그 각 부분에도 현존하시므로 빵을 나눠도 그리스도께서는 나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영성체 때 쪼개진 성체를 모시게 되더라도 온전한 예수님의 몸을 모시는 것입니다. 백영민2017.01.11

기도할 때 십자성호 긋는 이유는?[교회상식 교리상식] 십자가는 구원의 상징… 신앙 고백 담긴 표현2014년 브라질 월드컵 당시 일본전에서 골을 넣은 뒤 십자성호를 긋는 코트디부아르의 디디에 드로그바 선수.십자가가 그리스도교 상징이라고 알고 있습니다만, 그 배경을 좀더 자세히 알고 싶습니다. 또 천주교 신자들은 밥 먹을 때나 기도할 때 손으로 몸에 십자가 표시를 하는데 어떤 의미가 있는지요? ----------------------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상징입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주님이요 하느님'이라고 믿고 고백하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기 때문이지요. 십자가는 예수님 시대 이전부터 근동 아시아와 로마 제국에서 사형(死刑) 수단으로 사용됐습니다. 로마제국에서는 중죄인, 특히 제국에 반기를 든 모반자들이나 강도들을 십자가형에 처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십자가형에 처해졌다는 것은 그 자체가 바로 치욕이었습니다. 이렇게 본다면 예수님이 십자가형으로 돌아가신 것은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에게는 가장 치욕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지 3일 만에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 부활을 체험하고 난 후부터는 십자가를 더는 부끄럽게 여기지 않았고 오히려 구원의 상징으로 자랑스럽게 여겼습니다. 그래서 신약성경은 십자가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유다인들은 표징을 요구하고 그리스인들은 지혜를 찾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합니다"(1 코린 1,23). 그런데 그리스도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로마 제국에서는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 곧 그리스도인들에게 대한 박해가 일어납니다. 처형 수단인 십자가에 대한 일반 사람들의 혐오와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합쳐지면서 신자들은 드러내놓고 십자가 표시를 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신자들은 비신자들이 모르도록 십자가를 삼지창이나 닻 형태로 변형해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임을 표시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남 모르게 개인적으로 이마나 가슴에 십자 표시를 하는 관습이 신자들 사이에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이 십자가를 공개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4세기에 로마제국에서 그리스도교가 용인되면서부터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재미있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습니다. 4세기초 로마에서는 두 장군 콘스탄티누스와 막센시우스가 서로 황제가 되려는 야망에서 결전을 벌이게 됩니다. 전투를 하기 전날 밤 콘스탄티누스가 환시를 봤는데 하늘에 큰 십자가 표시가 보이면서 '이 표지로 그대는 승리하리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그리고 콘스탄티누스는 싸움에 이겨 마침내 황제 자리에 오릅니다. 이후 황제는 그리스도교를 공식으로 인정하고 세례까지 받게 됩니다. 그러면서 십자가는 무덤을 비롯해 기념비나 동전, 관공서 서류 등 곳곳에서 사용되기 시작하고 마침내 그리스도교가 4세기 말 로마제국 국교가 되면서 십자가는 그리스도교의 대표적 상징이 된 것입니다. 이와 함께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마나 가슴에 하던 십자표시를 이마에서 가슴까지 그리고 두 어깨를 연결하는 큰 십자가 표시로 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발전해서 오늘날 천주교 신자들이 기도를 바칠 때나 식사를 할 때 긋는 십자성호가 된 것입니다. 그리스도교가 로마제국 국교로 공인되고 널리 확산되면서 아무런 형상이 없는 민십자가를 보석이나 포도넝쿨 등 화려한 장식으로 치장하는 관습이 생겼습니다. 또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신 모습을 표현한 십자고상(十字苦像)도 등장했습니다. 십자고상은 그리스도교 예술가들에 의해 고통 당하는 예수님 상, 영광스럽게 왕의 옷을 입고 팔을 벌리는 모습의 예수님 상 등 시대 상황에 따라 여러 형태를 띠었습니다. 성당에서 또 천주교 신자들 집에서 볼 수 있는 십자고상들은 이런 역사적 변천 과정을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는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알아둡시다>> 십자성호와 성호경 천주교 신자들은 기도할 때나 마칠 때, 식사를 할 때나 마칠 때, 그 밖에 일과를 시작하거나 마칠 때도 언제나 손으로 자기 몸에 십자 모양을 그으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하고 기도를 바칩니다. 이때 십자 모양을 긋는 것을 '십자성호', 함께 바치는 기도문을 '성호경'이라고 합니다. 「예비신자 교리서」는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호경을 바치는 의미를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첫째,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 대한 신앙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하느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 곧 성자께서 우리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못박혀 돌아가셨음을 상기하는 것입니다. 셋째, 우리가 천주교 신자임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십자성호 긋는 법 십자성호를 그을 때는 먼저 왼손은 손가락을 붙여서 가슴에 붙입니다. 그리고는 오른손은 손가락을 다 모아 먼저 이마에 대고 "성부와" 이어서 가슴에 대면서 "성자와" 다시 왼편 어깨에 대고는 "성" 마지막으로 오른편 어깨에 대며 "령의" 하고 십자표를 그은 후 두 손을 모아 가슴에 붙이면서 나머지 부분 "이름으로. 아멘"을 바칩니다. 손을 모을 때는 왼손 엄지손가락이 오른손 검지 쪽을 잡고, 오른손 엄지 손가락을 왼손 엄지 위로 포개 엄지 손가락이 대각선으로 십자표시를 이루도록 합니다. 성호경을 바칠 때는 언제나 이렇게 십자성호를 그으면서 바칩니다. 십자성호를 그으며 성호경을 바치는 이 행위로써 우리 가톨릭 신자들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며, 우리가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성령 안에서 행동할 수 있도록 은총을 청합니다. 이 십자성호는 또한 세상의 온갖 유혹과 어려움 가운데서 우리를 굳세게 해줍니다. 이제부터는 십자성호를 그을 때마다 정성을 다해 그으면서 성호경도 정성스럽게 바칩시다. 천주교 신자들은 미사 중 복음 말씀을 읽기 전에도 오른손 엄지손가락으로 이마와 입술과 가슴에 십자표시를 합니다. 이것은 복음 말씀을 믿고 받아들이며(이마), 입으로 고백하며(입술), 가슴에 새겨 실천한다(가슴)는 의미를 지닙니다.김지항2017.07.07
![[평화칼럼] 부활의 희망 속에](//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7313_1.0_titleImage_1.jpg)
[평화칼럼] 부활의 희망 속에윤재선 레오 보도총국장 윤재선 레오 보도총국장 우연의 일치인가 묘한 악연인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감옥에 갇힌 날 세월호는 진실을 향한 항해를 시작했다. 그리고 뭍으로 돌아왔다. 그가 파면되자마자 세월호 인양 시점이 확정됐다. 마치 누군가 짜놓은 시나리오처럼 말이다. 사람들은 “박근혜가 내려가니 세월호가 올라왔다”고 외쳤다. 누군가는 ‘인과응보’, ‘사필귀정’이라고 말했고 누군가는 ‘신의 뜻’이 아니겠느냐고 해석했다. 그런 해석의 이면엔 참사 당일의 또렷한 기억과 대비되는 망각, 결코 잊어서는 안 되는 일을 너무 쉽게 망각해버린 대통령에 대한 분노와 응징이 자리하고 있다. 진실 규명을 끊임없이 방해하고 ‘세월호’를, ‘바다’를, ‘아이들’을, ‘팽목항’을 입에 올리는 것조차 징글맞게 싫어했던 사람들에 대한 노여움이 서려 있다. 그동안 드러난 국정농단의 파렴치한 사례들에 비춰 그의 죄악과 위선을 법적으로 엄히 단죄하는 건 순리이고 당연한 귀결이다. 세월호 희생자 유가족과 미수습자 가족들이 바라는 건 오로지 ‘진실’이다. 복수가 아닐 것이다. 행여나 법적인 단죄에 맞서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는 사람이나 세력이 있다면 그런 생각일랑 접어두시길.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라고 하지 않는가. “‘복수는 내가 할 일, 내가 보복하리라’ 하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로마 12,19) 세월호 참사 3주기가 다 되어가는 지금, 유가족과 생존자들은 각자의 방식으로 세월호 참사를 안고 살아왔다. 이들에겐 어제도 오늘도 내일도 4월 16일 그날이다. 생존자들은 어떤가. 어느새 발언을 멈추고 피해자로서의 자신을 숨기며 살아가고 있다. 그래서일까. 함께 기도하고 울어줘서 국민 여러분에게 고맙다는 미수습자 9명 가족의 진심 어린 감사 인사는 되레 가슴을 저미게 한다. 그런데 왜 나는, 우리는 이렇게 스스로를 미안해하는 걸까?, 그 이유를 곱씹고 또 곱씹어본다. 세월호가 침몰한 바다는 진도 앞바다가 아니었다. 탐욕의 바다였다. 부패의 탁류에 침몰한 것이다. 약육강식과 강자생존의 논리로 대한민국은 기나긴 항해를 계속해왔다. 누구의 탓이라고 할 것 없이 우리는 모두 물질에 대한 욕망과 부패의 탁류에 휩쓸려왔음을 부인할 수 없다. 우선적으로 물질에 대한 욕심과 욕망이 우리들의 삶을 압도한 결과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면 지나친 해석일까. 그렇다면 물어야 한다. 나와 우리 삶의 좌표는 그날 이후 어떻게 얼마나 달라져 있는가를. 여전히 탐욕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지 않은가를. 4월 16일은 참사 3주기이자 공교롭게도 예수 부활 대축일이다. 예수님의 수난과 십자가의 희생, 부활 사건을 묵상하며 희생자와 유가족, 생존자들을 떠올린다. 유가족 중의 누군가는 애통해 하며 이렇게 물었다. 하느님은 왜 우리에게 이런 고통과 슬픔을 주시느냐고. 침묵으로 위로할 수밖에 없었지만, 고통과 슬픔을 겪는 게 어찌 하느님의 탓이랴. 욕망의 덫에 갇혀 하느님을 멀리하고 부패의 탁류에 젖어들어 우리 자신의 죄악을 깨닫지 못한 인간 군상(群像)의 탓임을. 그래도 희생자들은 우리의 기억을 통해서 온전히 살아남을 수 있음을 확신한다. 기억은 부활이다. 부활은 새로운 체험이고 만남이다. 그리스도인에게 부활 신앙은 십자가에 못 박혔으나 살아 계신 분과 다시 만나는 것이며 새로운 만남은 체험을 통해 형성된다. 예수님은 목숨까지 바쳐 사랑하신 그 인간들 안에 성령으로 다시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느님이시다. 세월호 참사 3주기를 앞두고 두 손 모아 기도드린다. 부활의 희망 속에 그들이 주님의 빛나는 얼굴을 뵈옵게 하소서. 아멘. 윤재선 기자 백영민2017.04.05
![[추기경 정진석] (59) 새로운 목자의 탄생](//cpbc.co.kr/CMS/newspaper/2017/07/rc/689782_1.0_titleImage_1.jpg)
[추기경 정진석] (59) 새로운 목자의 탄생베네딕토 16세 새 교황에 선출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교황 선출 직후 2005년 4월21일 로마에 있는 숙소 앞에서 군중에게 답례하고 있다.【CNS】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뒤를 이을 새 인물을 고대하며 수많은 군중이 성 베드로 광장으로 모여들었다. 2005년 4월 18일 오후, 교황 선거인 콘클라베의 첫 번째 투표를 앞둔 때였다. 라틴어 ‘콘클라베(Conclave)’는 ‘자물쇠가 채워진 방’을 의미한다. 교황을 선출할 추기경단은 일제히 선거 회의장에 들어가 교황이 선출될 때까지 외부와 완전히 단절된 채 투표를 진행한다. 또 참석자들은 그 안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비밀로 한다. 이날 오후 4시 30분, 교황 선거를 위한 추기경단 115명의 행렬이 성령의 도움을 바라는 성가 ‘오소서, 성령님(Veni Creator)’을 부르며 선거 장소인 시스티나성당으로 이동하는 장면이 전 세계에 생중계됐다. 텔레비전을 통해 콘클라베의 시작을 생중계하는 것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우리나라 김수환 추기경은 교회법적으로 교황 선출 자격이 있는 80세를 넘긴 나이여서 아쉽게도 콘클라베에 참석하지 못했다.시스티나성당에 도착한 추기경들은 선서를 한다. 서약은 먼저 추기경단 수석 추기경이 서약문을 읽는 것으로 시작한다. 1996년 발표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교황령 「주님의 양떼」의 규정들을 충실하고 철저하게 준수할 것을 맹세하는 것이다. 특히 「주님의 양떼」는 신문이나 텔레비전 등의 미디어와 절대 접촉하지 말 것을 주문하고 있다. 실제로 2005년의 콘클라베에서는 추기경단 숙소인 마르타의 집 전화와 인터넷 회선이 절단됐고, 숙소와 시스티나성당에는 휴대전화 사용이나 도청을 방지하기 위한 방해 전파를 내보내는 등 보안을 강화했다. 추기경들은 어떤 식으로든 교황 선출과 관련된 모든 비밀을 엄수하고 교황 선출에 관한 어떤 형태의 간섭이나 반대 또는 개입에 찬성하지 않을 것을 약속하고 선서한다. 추기경들은 최후의 심판 장면이 그려져 있는 시스티나성당 벽화 앞에서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 성경에 손을 얹고 “나 아무개는 그와 같이 약속하고 맹세하고 선서합니다”라고 하면서 “하느님과 이 거룩한 복음은 저를 도와주소서”라고 기도한다. 추기경들의 선서 후에는 ‘외부인 전원 퇴장’을 선언하고 추기경단 이외의 사람을 모두 성당 밖으로 퇴장시킨다.교황 선출은 비밀 서면 투표로 진행된다. 개표 직후 투표용지는 불에 태워 처리하는 것이 관례다. 선거 이후 발생할 수 있는 구설수를 완전히 차단하기 위함이다. 교황 선출을 위한 추기경단의 득표는 과거에는 만장일치제였지만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경우 과반수의 찬성으로,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3분의 2 이상 찬성으로 규정을 바꾸었다. 교황을 다수의 합의로 선출함으로써 교회의 확고한 일치와 원활한 운영이 가능하도록 하기 위한 조치다.투표 결과는 투표용지를 태울 때 연기를 통해 외부에 알려진다. 과거에는 교황이 선출되지 않았을 때는 투표용지와 젖은 짚단을 함께 태워 검은 연기가 나도록 했다. 선출됐을 경우엔 마른 짚을 함께 태워 흰 연기가 나도록 했다. 그런데 요한 23세 교황이 선출된 1958년 콘클라베에서는 짚이 제대로 타지 않는 바람에 연기의 색깔이 불명확해져 회색 연기가 나왔고, 양도 너무 적어 성 베드로 광장에 모인 군중에게 혼란을 준 적이 있었다. 그래서 2005년부터는 화학 약품을 첨가해 색을 명확하게 했다. 그러나 연기의 색깔을 만드는 방법은 여전히 비밀이다. 또 흰색 연기에 성 베드로 대성전의 종소리를 추가해 혼란을 방지했다.드디어 4월 19일 오후 5시 55분. 교황 선출을 알리는 흰 연기와 함께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성 베드로 광장에 모여 있던 군중은 일제히 환호했다. 차기 교황이 확정되면 수석 추기경이나 연배가 가장 높은 추기경이 선거인단을 대표해 선출된 사람의 동의를 구한다. 이때 선출된 교황은 자신의 이름을 버리고 자신의 세례명 또는 평소에 존경하던 전임 교황의 이름을 교황명으로 명명해 공표해야 한다. 이후 추기경들은 새 교황을 알현하고, 선임 부제 추기경은 외부 사람들에게 새 교황 탄생 소식과 이름을 공표한다. 30여 분이 지나자 호르헤 메디나 추기경과 전례 담당 마리니 몬시뇰이 등장해 전통에 따라 라틴어로 새 교황의 탄생을 공표했다. “하베무스 파팜(Habemus Papam, 교황이 선출되었습니다).”새 교황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이며, 교황 이름은 베네딕도 16세로 명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곧이어 휘장 뒤에서 새 교황으로 선출된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 즉 베네딕토 16세가 모습을 드러냈다. 새 교황은 이탈리아어로 짤막하게 부족한 자신을 위해 기도를 청하는 인사를 한 후 군중과 세상을 향해 첫 축복을 했다. 언론은 새 교황이 교황명을 요한 바오로 3세로 정할 것으로 추측했지만, 교황명은 ‘베네딕토’로 정해졌다. 성 베네딕토(480∼546)는 유럽에 그리스도교 정신을 다시금 불러일으킨 인물로, 바오로 6세 교황이 ‘유럽의 수호성인’으로 반포할 만큼 위대한 성인이다. 교황이 선출된 시각이 우리나라 시간으로는 한밤중이었다. 그래서 한국의 언론사들은 밤중에 방송과 인터뷰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정진석 대주교는 당일 새벽 교황 선출 소식을 접하고 바로 감사의 기도를 올렸다. 그즈음에도 정 대주교는 어렵고 힘든 세상에 새로운 시대를 책임질 교황님을 교회에 보내 달라고 기도하고 있었다. 동이 트자 정 대주교는 곧바로 명동대성당으로 가서 새 교황 선출을 축하하는 미사를 봉헌했다. 그리고 신자들에게 전했다.“새 교황님께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이 강조하신 대로 이 세상을 인간다운 세상, 누구도 소외되는 일 없이 공존하는 평화롭고도 값진 세상으로 만들고, 사랑과 정의를 실천하며 진리에 충실하실 수 있도록 우리 모두 마음을 하나로 모아 기도와 희생을 봉헌해야 합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김지항2017.07.25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6) 권경수(헬레나) 이화여대 명예교수](//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1591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6) 권경수(헬레나) 이화여대 명예교수주님 모신 감실 되어 가난한 이들 위한 봉사 이어가고 싶어 2016년 피지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총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권경수 회장. 하나인 보편 교회 안에서 세계 평신도 여성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이를 만났다. 영문학자로 30년 동안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이 부르시고 교회가 부르면 언제나 ‘예’ 하고 달려갔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권경수(헬레나)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상임이사다. 지나온 삶은 폭력과 차별로 고통받는 여성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여정(旅程)이었다. 세계 가톨릭 여성들과 함께 가난과 전쟁,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해 달라고 해당 국가와 유엔에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봉사든 시작과 끝은 ‘기도’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명을 출산하고 교회에 헌신하는 여성들을 따뜻하게 품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던 첫 마음 그대로 소박하지만 꾸준한 봉사를 소망하며 가난한 교회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한다. 모든 여성이 행복한 하느님 나라를 만들기 위한 그의 용기와 응답을 들어본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WUCWO) 상임이사를 맡고 계시죠.5개 대륙에 27명의 이사가 있습니다. 각국에서 교회 봉사자로 복음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 가운데 대표를 뽑는데 우리나라는 한국가톨릭여성협의회를 통해 대표를 뽑습니다. 저는 2010년 이사로 선출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는 올해로 설립 107년이 됐는데, 교황청이 인준한 여성 신자 단체입니다. 가톨릭 여성들이 복음화와 인류 발전을 위한 활동을 하는 데 사회 참여와 책임을 다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는 올해 어떤 사업을 하는지요.4년마다 열리는 세계 총회에서 활동 주제를 정하는데, 2018년까지의 주제는 ‘가정과 젊은이, 인권 보호’입니다. 성매매와 인신매매 등 인권유린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 미혼모와 아이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깨끗한 물 마시기 운동도 하고 있고,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중동 여성들이 겪는 고통에 관해서도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2014년 세계주교시노드에 특별 협력 서기관으로 참석하셨는데 어떠셨는지요.교황청에 세계주교시노드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국이 있는데요. 회의 기간 내내 매일 들어오는 수많은 문안과 의안들을 분류하고 발췌해서 토의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듭니다. 서류가 워낙 많아서 회의에 참석하는 교부들은 정말 땀이 날 정도입니다. 현안을 다루다 보니 찬반 토론도 뜨겁게 전개됐지만 서로 경청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고통받는 교회가 있는데 그 고통받는 교회 안에서 더 고통받는 여성들이 있죠.가정 폭력으로부터 고통받는 여성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대표들이 서로 교류하고 논의하면서 대책을 마련합니다. 그러고는 각 나라 지도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목소리를 내고 있지요. 또 유엔에 직접 시급함을 호소하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다뤄 달라고 요구합니다. 가난과 전쟁에 시달리고 성폭력에 희생된 불우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가정의 분열과 결손을 우선 막아야 합니다. 이들에게 물질적, 법적 도움을 주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봉사’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여성 부제직 검토위원회를 설치했죠.가톨릭의 역사나 전통, 전례나 위치로 볼 때 교황님께서 이런 안을 도출해 내신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봅니다. 교회 안에서도 양성평등에 관해 다른 시선이 있었는데, 교황님께서 미래 개혁의 가능성을 열어두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황님의 결단에 하느님 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너무 보수적이라는 젊은 여성들의 비판이 있는데요.현재 사회는 양성평등 방향으로 많이 가고 있습니다. 요즘 여성들은 굉장히 역동적이고 능동적입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의 속도를 빨리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조금 늦게 따라 오는 것 같습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교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깊이 고민한다면 교회 안에서 젊은 여성들의 참여도 높아질 것입니다. ▶서울가톨릭여성연합회장을 맡으셨을 때 생명 운동을 많이 하셨어요. 특히 낙태 반대를 강조하셨죠.‘생명 수호’는 모든 운동의 근원이라 생각합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준 선물이지요.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모상대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렇기에 생명은 굉장히 소중하고 누구도 생명을 거부할 수 없다고 봅니다. 특히 여성에겐 어머니로서 자녀를 키우는 ‘위대한 모성’이 있고 ‘희생’이라는 위대한 공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을 희생한 분이신데, 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생명을 저버리는 낙태를 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생명의 복음」에서 말씀하셨죠.▶여성들의 생명 수호를 위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여성들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교회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성들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생명을 출산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교회를 위해 봉사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소외된 여성, 교회 밖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따뜻하게 품고 그들에게 용기와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몰타기사회 회원이시죠. 신앙을 수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평신도 기사 수도회인데, 2015년 한국 지회가 창립됐습니다. 교회에서 일정 기간 반드시 봉사해야 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잊힌 사람들을 기억하도록 노력한다는 서약을 합니다. 외롭고 쓸쓸한 노인들을 위해 도시락을 배달하며 말벗이 돼 드리고 있습니다. 몰타 회원들은 아픈 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픈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돼 줘야 합니다.▶30년 동안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점이 많으실 것 같아요. 어릴 적 꿈이 교단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배운 것을 나누라는 아버님 교육이 많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껜 늘 많이 매달렸는데요. “주님, 저는 가진 것도 자격도 없지만, 당신을 따르는 신자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학생들에게 널리 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독실한 신자이셨지요,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으셨고요.어렸을 때 부모님께선 신앙 교육을 철저히 하셨습니다. 주일이면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대학생 땐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꿈을 갖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늘 이야기했습니다. 또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신앙을 통해 삶의 지혜를 알려 주셨고, 신앙을 바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보물을 발견할 것’이라는 아버님 권유로 꾸르실료에 처음 참여했는데요. 1972년 꾸르실료 여성회장 1기를 시작으로 회장직을 서른 번 넘게 맡았습니다.▶세례명이 헬레나인데, 성인의 어떤 점을 닮고 싶으세요.헬레나 성인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시죠. 가톨릭을 믿고 아들을 세례 시키니까 남편이 자신을 버렸는데도 늘 겸손한 자세로 아픔을 딛고 2만 리(7800㎞)를 걸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찾았어요. 주님을 따라가신 헬레나 성인의 기도와 인내, 용기, 봉사 정신을 닮고 싶습니다.▶본당에서 ‘리더’로 활동하는 평신도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교회에 봉사하는 여성들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 달려들고 어떤 도전에도 용감하게 일어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 대한 봉헌 의식 속에서 매일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시기를 부탁합니다. 교회가 점점 늙어가고 있어 젊은 세대의 참여가 절실한데, 평신도와 성직자들이 힘을 모아 젊은이들을 키워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활발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교회가 장(場)을 만들어 주어야 교회에 활력이 넘칠 수 있다고 봅니다.▶어떤 성경 구절을 마음에 품고 계십니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3-10 참조)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우리 주위에는 자비를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웃들에게 온유로 다가가야 한다고 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 말씀을 듣고 조용하고 겸손하게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그런 자세가 ‘온유’가 아닐까 합니다.▶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요.순교 성인의 신앙적 발자취를 따라 성장한 우리 교회와 신앙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세계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늘 다른 나라 신자들에게 전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한편 제 자신이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가톨릭 신자로서 책임을 다 했는지 조용히 반성하게 됩니다. 소박한 봉사를 통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힘을 보태 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감실’을 참 사랑하는데요, 감실 앞에서 기도할 때 값진 행복을 느낍니다. 가난한 교회가 새로 성당을 지을 때 제가 감실을 봉헌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 교회 복음화에 지속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백영민2017.11.14
![[성경 속 도시] (38) 헤스본](//cpbc.co.kr/CMS/newspaper/2015/03/rc/560625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38) 헤스본이스라엘과 모압이 엎치락뒤치락 텔 헤스본의 원경. 출처=「성경 속의 도시 탐험」, 기독통신사 헤스본은 요르단 강 동쪽 약 25㎞ 지점의 고원 지대에 있는 아모리족의 수도였으며 나중에 모압인들의 도시가 된 곳이다. 헤스본은 높은 지대라 전망이 좋고 아름다우며 교통의 요충지로서 일찍부터 팔레스타인 내륙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요긴한 도로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당시에는 이곳을 아모리 왕 시혼이 다스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아모리인들의 임금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청하였다”(민수 21,21). 모세가 시혼 왕에게 이스라엘인들의 영내 통과를 요구하였다. “우리가 임금님의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밭이나 포도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임금님의 영토를 다 지나갈 때까지 ‘임금의 큰길’만 따라가겠습니다”(민수 21,22). 그런데 시혼 왕은 자기 영토를 그냥 지나간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래서 시혼 왕은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려고 자신의 모든 군대를 모아 광야로 집결시켰다. 시혼 왕은 야하츠에 이르러 이스라엘과 싸웠으나, 이스라엘 군대에 패하여 결국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르논에서 야뽁까지, 곧 암몬 자손들의 영토에 이르기까지 그의 땅을 차지했다. 이스라엘은 헤스본과 거기에 딸린 모든 마을을 점령해 아모리인들의 모든 성읍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가축을 치기에 적당한 곳으로 나중에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됐다. “아타롯, 디본, 야제르, 니므라, 헤스본, 엘알레, 스밤, 느보, 브온, 곧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공동체 앞에서 쳐 이기신 이 땅은 목축에 알맞은 땅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이 종들에게는 가축 떼가 있습니다”(민수 32,3-4). 그러나 암몬 자손들과의 경계는 몹시 굳건했다. 그 후 판관 입타 시대 때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켰지만 패배해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지배했다(판관 11,12-28). 이후 모압과 이스라엘은 헤스본 주변 지역을 놓고 다툼을 벌였는데 모압의 에글론 왕이 차지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압 임금 에글론을 이스라엘보다 우세하게 하셨다. 그들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판관3,12). 그 후 이스라엘이 차지했다가 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죽은 후 헤스본은 다시 모압의 땅이 되었다. 예레미야 예언자에 의해 멸망이 선포되기도 했다. “아이 성이 부서졌으니, 헤스본아, 통곡하여라. 라빠의 마을들아, 울부짖어라. 자루 옷을 두르고 애곡하며 몸에 상처를 내고 돌아다녀라. 밀콤 신이 그의 사제들과 대신들과 더불어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예레 49,3). 그 후 이 지역은 그리스, 로마 등을 거쳐 중세 이후엔 오스만 터키 등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는 비잔틴 시대 목욕탕, 비잔틴 시대 교회 건축물 등을 포함해 여러 유적들이 남아 있다. 로마 시대 유적들도 폐허 상태로 마을 북쪽의 왼편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한 이곳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지금 현재도 계속 발굴 중이다. 허영업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3.17
![[성경 속 도시] (40) 미츠파](//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433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0) 미츠파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등극 미츠파로 추정되는 곳 중 한 곳으로 예루살렘 북부에 있는 텔 엔 나스베. 출처=「성경 속의 도시 탐험」, 기독통신사 성경에는 여러 곳의 ‘미츠파’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은 베냐민 지역의 미츠파다. 정확한 위치에 대해선 학계에서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지만 베냐민 지역의 미츠파는 예루살렘 북방 12㎞ 지점에 있는,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장소였다. 특히 이곳은 초기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 종교적 활동의 중심지였다. 판관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불안정한 과도기에 당시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였던 사무엘이 전국을 공식 순회하던 중 자주 방문해 영적 운동을 전개했던 장소가 바로 미츠파다. “그러고 나서 사무엘이 말하였다. “온 이스라엘 백성을 미츠파로 모이게 하시오.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주님께 기도를 드리겠소”(1사무 7,5). 유다 멸망 후 바빌론에서 파견된 총독 그달야는 미츠파를 수도로 삼았다. “바빌론 임금이 그달야를 총독으로 임명하였다는 소식을 군대의 모든 장수와 그 부하들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 곧 느탄야의 아들 이스마엘, 카레아의 아들 요하난, 느토파 사람 탄후멧의 아들 스라야, 마아카 사람의 아들 아잔야와 그 부하들은 미츠파에 있는 그달야에게 갔다”(2열왕 25,23).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인들의 만행(판관 19,11-30)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응징을 결의한 장소가 미츠파였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츠파에 모여 범죄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나섰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길앗 땅에서도 온 공동체가 일제히 미츠파로 주님 앞에 모여들었다. 온 백성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수장들도 칼로 무장한 보병 사십만 명으로 이루어진 하느님 백성의 회중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판관 20,1-2). 그리고 베냐민 지파와 다른 지파들의 전쟁을 치렀다. “그러는 동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의 자손들에게 돌아가, 성읍의 남자 주민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대로 모조리 칼로 쳐 죽였다. 나머지 성읍들도 모두 불태워 버렸다”(판관 20,48). 또 미츠파는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는 동안 습격해온 필리스티아인들을 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둔 곳이었다. “사무엘이 아직 번제물을 바치고 있을 때,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다가왔다. 그날 주님께서 필리스티아인들 위에 큰 소리로 천둥을 울리시어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시자, 그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패배하였다”(1사무 7,10). 그러나 미츠파가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등극한 장소라는 것이다. 사무엘은 판관직을 자신의 두 아들에게 물려주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백성들은 더 이상 판관에 의한 지도체제가 아닌 왕정제도의 도입을 사무엘에게 요구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미츠파에 불러모아 사울을 왕으로 즉위시켰다. “그들이 달려가 그곳에서 사울을 데리고 나왔다. 그가 사람들 가운데에 서자, 그의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다.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주님께서 뽑으신 이를 보았소? 온 백성 가운데 이만 한 인물이 없소’ 하고 말하자, 온 백성이 환호하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1사무 10,23-24). 뛰어난 전투 지휘 능력을 갖춘 사울이었지만 백성 중에는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았다. 베냐민은 가장 작은 지파로 분류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모압과 암몬 자손들과 에돔, 초바 임금들과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워 연전연승했다(1사무 14,47-48). 사울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백성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4.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