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공간 뛰어넘는 새 생명의 신비 ‘부활’을 읽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은 단순한 죽음을 넘은 ‘인간 구원’을 위한 위대한 신앙 사건이다. 이 사건이 인간 구원을 향한 은총일 수 있는 것은 당신 아들 예수의 부활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새 생명의 신비로 드러난다. 2000년 전 예수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고, 하느님 은총의 참뜻을 돌아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읽을 책을 소개한다.바오로 신학 하느님의 구원 은총 프랭크 메이트라 지음 / 한충식 옮김 /바오로딸 / 2만 2000원“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11)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영(靈) 안에 산다면, 죄 때문에 죽게 되더라도 주님은 생명이 되어준다고 서간을 통해 전하고 있다.바오로 사도는 또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은 이들의 보편적 부활의 첫 열매이며, 그것이 메시아 예수님에게서 시작됐다”며 “재림 때 일어날 신자들의 부활 희망을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말한다.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신학자다. 특히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원 사건을 은유적 가르침으로 전하며 복음의 빛 안에서 최종적 구원과 희망을 이야기했다.미국 가톨릭대 성서신학 교수인 저자 프랭크 메이트라는 바오로 서간의 신학을 체계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파헤쳤다. 특히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 속에 자리한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신론을 깊이 들여다봤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1코린 1,1) 바오로 사도. 열성적 유다교인이었던 바오로 사도가 ‘회심’을 통해 어떻게 ‘부르심’에 동참해 사도가 됐는지, 그의 서간에서 부활의 의미가 어떻게 빛나고 있는지 살펴보자.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엔도 슈사쿠 지음 / 맹영선 옮김 / 성바오로 /1만 3000원소설 「침묵」 작가 엔도 슈사쿠가 전하는 솔직한 신앙기다. 그는 “마지못해 가톨릭 신자가 됐고”, “성당이 재미가 없어 앉아서 졸기 일쑤였다”고 밝힌다. 심지어 프랑스 유학 중에도 그는 그리스도교를 “나를 죄어 매는 것”이라고까지 여겼다. 「예수의 생애」 등 다양한 신앙 서적을 쓴 그의 솔직함이 생경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겪었을 가치 정립의 과정, 하느님을 ‘희망의 존재’로 믿게 된 이야기가 술술 읽힌다. 그리스도교가 불교보다 가깝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개인적 고백부터, ‘재미없는 성경을 한 번 더 읽는 방법’, 성령과 기적에 대한 견해 등 가톨릭 신자로서 지닌 신앙 고민이 와 닿는다. 부제는 ‘나의 신앙 입문’.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김인호 지음 / 생활성서 / 1만 4000원우리 사회는 사교육에 극성이다. 그런데 삶의 행복 같은 진정한 가치를 전하는 교육에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성당을 다니고, 신앙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무료 정서 교육’인 셈인데, 그럼에도 이를 올바로 받아들이려면 사전 교육이 필요하단다. 영성 심리학자인 저자 김인호(대전가톨릭대 대학원장) 신부는 일상과 맞닿은 사례를 곁들여가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레슨’해주고 있다.평소 죄책감을 지나치게 크게 갖지는 않는가. 김 신부는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데도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부적절한 죄책감”이라며 죄책감을 ‘주관적’, ‘객관적’으로 나눠봐야 한다고 말한다.환시 체험을 겪는 이들이 많다. 김 신부는 환시를 체험하지 않으면 기도 시간이 의미가 없다고 여기거나, 하느님의 특별한 답변만 기대하는 것은 신앙적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우리는 자주 흥분하거나 화내기도 한다. 김 신부는 “얼마나 배려했는가를 성찰하는 것은 덕을 성장시키는 ‘수행의 시간’이자 ‘훌륭한 기도 시간’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한편, 김 신부의 행복한 북콘서트가 2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강북구 덕릉로42길 57-4 생활성서사 북카페에서 열린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04.12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0) 풍랑을 가라앉히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다 (루카 8,22-39)](//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4640_1.3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0) 풍랑을 가라앉히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다 (루카 8,22-39)쿠르시는 갈릴래아 호수 동쪽 휴양지인 엔게브에서 북쪽으로 5㎞쯤 떨어진 곳으로, 비잔틴 시대 수도원과 성당의 유적이 남아 있다. 사진은 쿠르시의 유적.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예수님께서 어느날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저편으로 건너 가십니다. 호수 저편은 갈릴래아 호수 동쪽 곧 시리아의 골란고원이 있는 쪽을 말합니다. 루카는 그 여정에서 두 가지 일화를 소개합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사건과 호수 건너편 이방인들의 지방에서 많은 마귀가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일입니다. 풍랑을 가라앉히시다(루카 8,22-25)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저편으로 가시고자 합니다. 열두 제자 중 적어도 4명 곧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출신입니다. 호수와 배에 관해 일가견이 있다는 뜻이지요. 제자들은 배를 저었고 예수님은 잠이 드셨습니다. “그때에 돌풍이 호수로 내리 몰아치면서 물이 차들어와 그들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루카는 전합니다. 다급해진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소리칩니다.(8,23-24) ‘호수에 돌풍이 내리쳐 풍랑이 인다 해도 얼마나 대단할까’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갈릴래아 호수는 그 지방 사람들은 바다라고 불렀을 정도로 큰 호수입니다. 호수 넓이가 약 170㎢ 여의도 면적의 20배에 이르지요. 게다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서풍과 동쪽 시리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호수에서 마주치면서 일으키는 돌풍이 만들어내는 거센 풍랑은 뱃사람들조차도 겁을 낼 정도로 위력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소동에 잠이 깨신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십니다. 그러자 곧 물결이 잠잠해지고 호수가 고요해집니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악령들인 이들을 치유해 주시며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일까지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이 닥치자 믿음은 간데없고 제 목숨 구하기에 급급한 제자들의 태도를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귀에는 예수님의 꾸짖음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두렵고 놀라워서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시고 또 그것들이 이분께 복종하는가?”(8,25) 하고 수군거립니다. 마귀들과 돼지 떼(8,26-39)이렇게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난 후 제자들은 갈릴래아 호수 동쪽의 게라사 지방으로 배를 저어갑니다.(8,26) ‘게르게사’ 혹은 ‘가다라’고도 하는 이곳은 이방인들의 지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 마귀 들린 사람이 마주옵니다. 그는 자기 고을에서 살지 못하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는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8,28). 마귀 들린 사람의 말은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바로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또한 말씀 한 마디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 분이 누구신가 하고 서로 수군거린 제자들의 물음(8,25)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줄곧 따라다닌 제자들도 아직 올바로 깨닫지 못했던 예수님의 정체를 마귀 들린 사람이, 곧 마귀가 대신 알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는 예수님과 마귀와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마귀 들린 사람의 입을 통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이름을 물으시자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많은 마귀가 그 사람에게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을 지하 세계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리지 말아 달라면서 대신에 근방에 놓아 기르던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 허락하시자 마귀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고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내리달리다 물에 빠져 죽고 말지요.(8,30-33)여기서 지하 세계란 마귀들이 갇혀 지내는 곳을 나타냅니다. 마귀들의 일은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사람들을 사로잡아 격리시키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마귀 들린 그 사람이 오래전부터 옷을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집에 있지 않고 무덤에 지냈고 또 쇠사슬과 족쇄로 묶인 채 감시를 받았지만 묶은 것을 끊고 마귀에게 몰려 광야로 나가곤 했다는 루카의 설명은(8, 27.29) 마귀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런 마귀가 지하 세계에 갇히면 더 이상 자기 일을 하지 못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마귀들은 돼지 속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를 허락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유다인 사회에서 돼지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하느님의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사는 땅과 돼지는 같은 뜻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마귀들이 돼지 떼 속에 들어가고 돼지들이 비탈을 달려 모두 물속에 빠져 죽었다는 것은 마귀 들린 그 사람이 마귀의 권세에서 풀려났고 동시에 이방인의 땅이 더러움에서 해방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성경학자들은 풀이합니다.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놀라서 고을로 달려가 알리고 고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인지 보러 옵니다. 사람들은 마귀 들린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 전체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8,34-37)왜 게라사 지역 주민들은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청했을까요? 마귀 들린 사람과 이방인의 지역은 마귀가 활개를 치는 곳이었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부정한 돼지들이 익사했다는 것은 이 고장에 대한 마귀의 권세가 끝나고 이 지역이 더러움에서 해방되었음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자유와 해방 자체가 이전의 행태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럽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되돌아가실 때에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집으로 돌아가, 하느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을 다 이야기해 주어라”며 그를 돌려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주신 일을 온 고을에 두루 선포하였다”고 루카는 전합니다.(8,37-39) 생각해 봅시다-집에서 살지 못하고 옷도 입지 않은 채 무덤에서 지내는 마귀 들린 사람은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람의 처지를 그대로 나타냅니다. 그런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세력에서 풀어준 후 집으로 돌려 보내십니다. 이는 오늘날 여러 가지 이유로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채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그들을 공동체의 온전한 일원으로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그렇게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는 누구일까요? -마귀 들린 사람은 예수님의 분부를 좇아 집으로 돌아가 자기 지방에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체험한 구원의 기쁨을 말과 행동으로 선포해야 하는 우리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거센 풍랑으로 위험에 처하자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제자들처럼 우리 또한 위급한 상황에 부닥치면 주님께 대한 믿음보다는 다급한 마음에 “어떻게 좀 해주세요!” 하고 절규하지는 않는지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문채현2017.09.06
![[성경 속 도시] (41) 아나톳](//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693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1) 아나톳슬픔과 비애가 깃든 도시 아나톳은 예루살렘 북쪽 약 4.8km 지점에 있는 벤야민 지파의 지역 중에서 레위 지파에게 할당된 48개 성읍 중 하나였다. “아나톳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알몬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이렇게 네 성읍을 내주었다”(여호 21,18). 다윗을 도왔던 용사 아비에제르와(2사무 23,27) 예후(1역대 12,3)도 아나톳 출신이었다. 쫓겨난 에브야타르 사제들이 머물러 다윗이 사망하자 솔로몬은 이복형 아도니야와 왕위를 놓고 다투게 된다. 당시 대사제 에브야타르는 아도니야를 지지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솔로몬이 승리하자 아도니야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제 저를 세우시어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히시고,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집안을 일으켜 주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아도니야는 오늘 죽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솔로몬 임금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어 아도니야를 내려치게 하니, 아도니야가 죽었다”(1열왕 2,24-25). 그리고 아도니야 편에 섰던 대사제 에브야타르는 아나톳으로 쫓겨나게 된다. “임금은 에브야타르 사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나톳에 있는 그대의 땅으로 가시오. 그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지만, 그대가 나의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하느님의 궤를 날랐고, 또 아버지와 온갖 고난을 함께 나누었으므로 오늘 그대를 죽이지 않겠소’”(1열왕 2,26).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제관 계급은 ‘차독 가문’이 독식했고 ‘에브야타르’계 사제들은 출셋길이 막혔다. 아나톳에서 에브야타르 계열 사제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는 것을 지켜보며 쫓겨난 제사장 가문의 슬픔과 비애를 맛보았다. 아나톳 출신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예레미야 예언자다. 예레미야의 부친은 아나톳에 살고 있던 사제였다. 북이스라엘은 멸망했고 남쪽 유다는 주변 강대국의 힘에 눌려있는 신세였다. 유다도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유다 백성들에게 이러한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예레미야의 사명이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평생을 오해와 편견과 테러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던 불행한 예언자였다. 그의 예언이 대부분 왕들의 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예레미야 예언의 핵심은 하느님 뜻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는 ‘바빌로니아’에 대항하지 말라고 예언해서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무모하게 전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요시야’의 뒤를 이은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킨’, ‘치드키야’ 등 4명의 왕은 모두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한 채 전쟁을 일으켰다가 참패하고 만다. 결국 유다는 바빌로니아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바빌론의 진격으로 파괴돼유다의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는 (2열왕 24,17) 예레미야가 전쟁을 반대하자 그를 다시 감옥에 가둔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치드키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하게 된다. 아나톳은 바빌론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할 때 대부분 파괴됐다(이사 10,30).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벤야민 지파에 의해 아나톳은 재건됐고 느헤미야 통치 때는 많은 사람이 거주했다(느헤 11,32). 이처럼 아나톳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특히 슬픔과 비운이 깃든 도시였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4.21
![[신앙단상] 생활성가와 전통 성가](//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5081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생활성가와 전통 성가이강민(노트케르 발불로, 명동성당 가톨릭합창단 지휘자, 음악 칼럼니스트) 찬송가만 부르던 한국 개신교회에 복음성가가 등장한 건 1980년대다. 행진곡풍의 군가와 교가 같았던 기존 찬송가보다 선율이 쉽고 단순하며 친근해 젊은 세대가 무척 좋아했다. 복음성가는 복음 메시지를 편하게 전달하기 위해 작곡된, 대중적 성격을 강하게 띤 찬양곡을 의미한다. 성경 내용을 담은 가사도 있지만 주로 개인의 주관적 신앙고백이나 체험을 노래하는 것이 많다. 주일 예배를 제외한 크고 작은 예배나 기도 모임에서 복음성가가 찬송가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복음성가는 미국 몇 교회의 영향으로 신학적 검증 없이 신형 교회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복음성가를 주로 부르며 예배하는 교회는 ‘초대형 교회’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규모가 커졌다. 복음성가(Gospel Song)는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으로 이름을 바꾸고 찬양예배 혹은 열린 예배라고 부르는 새로운 형식 속에서 더욱 성장했다. 열린 예배를 하는 교회가 부흥하자 성장을 꾀하는 교회에선 전통 예배에서 벗어나 열린 예배를 수용했고, 오르간이나 피아노 구매보다 유능한 찬양 인도자와 연주팀을 초빙하고 좋은 악기와 음향 장비 마련에 힘을 쏟았다. 이젠 열린 예배를 위한 성직자도 양성되고 있고, 주일 예배도 열린 예배와 비슷한 형식으로 하는 교회가 전통 예배를 하는 교회보다 훨씬 많다.강대상(가톨릭의 제대에 해당) 중앙에선 인도자가 노래하고 밴드(주로 전자ㆍ어쿠스틱 기타, 신시사이저, 베이스 기타, 세트 드럼으로 구성된다)가 뒤쪽에서 반주하며 코러스 역할을 하는 보조 인도자들은 양옆에 서서, 손들기와 춤추기, 박수 유도, 뛰며 환호하기 같은 여러 동작으로 회중을 이끌며 참여를 유도한다. 여기에 현란한 조명까지 더해지면 대중가수 콘서트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하지만 요즘 개신교회에서는 CCM과 열린 예배에 대해 부정적인 문제 제기가 빈번하다. 사도 전승에 의한 전통 예배로 돌아가려는 노력도 시작되고 있다. 이성적이고 정적인 개신교회 전통 예배와 성가를 그리워하는 신자 일부는 가톨릭 교회의 거룩하고 고요한 모습에 매료돼 신앙의 터전을 옮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CCM을 가톨릭 교회에선 생활성가라 부른다. 생활성가란 말 그대로 신자들이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생각하는 노래다. 다른 의미로는 미사를 위한 전례 음악이 아니라는 뜻도 담겨있다. 생활성가는 개신교회의 CCM을 가사만 가톨릭 교회에 맞게 바꿔 부르는 것이 많고, 새로 작곡된 것이라도 성경 내용 보다는 개인의 주관적 가사가 많다. 전통 라틴 성가나 전례 음악에 비해 쉽고 친근해 청년과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혹은 피정이나 성서 모임에서도 많이 불리고 있다. 가톨릭 신자가 돼 이 모습을 다시 보게 되니 마치 30년 전 개신교회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가톨릭 교회의 품위 있고 거룩한 전례에 어울리는 음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바로 전통 성가다. 1500년 이상 가톨릭 교회에서 이어온 전통 성가는 생활성가처럼 편하게 듣거나 부를 수가 없고 사용하는 악기도 한정적이다. 그 때문에 어울리는 노래 방법을 배워 연습해야 하고, 훌륭한 교회음악 연주를 많이 듣고 공부할 때 비로소 전통 성가에 대한 소양이 조금씩 생긴다.이렇게 어렵게 음악적 소양을 쌓으면, 전통 성가의 거룩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 속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음악가들 사이에 하는 말이 있다. “아는 만큼 들리고 느끼고 부르고 감동할 수 있다.” “노력(연습)은 대가를 만든다.” 평화신문2016.10.04

“생활양식 변화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유경촌 주교, 가톨릭 유아 생태 기관장·교사 교육에서 강조 앞으로 1년간 이어질 가톨릭 유아 생태교육에 앞서 가톨릭 유아교육 기관장과 대표 교사들이 유경촌 주교가 주례한 미사에서 피조물을 위한 보편지향기도를 바치고 있다. 오세택 기자 “폐식용유를 활용한 비누 만들기를 통해 ‘즐거운 지구 살리기’에 참여했습니다. 5세 반 아이들이 원내는 물론 방과 후 가정에서의 실천에 이르기까지 분리수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교사들이 먼저 생태적 삶과 실천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생태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최현아(로사, 35) 구립 송화어린이집 교사의 말에 70여 명에 이르는 유아교육 기관장이나 대표교사들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영아반을 맡은 김장미(38) 구립 목동어린이집 교사도 활동사례를 발표했다. 김씨는 그림책을 통한 생태 실천 교육의 주제와 목표, 활동과정, 평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명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실천하기 위한 ‘공동의 집 돌봄 교육’ 전반을 살피면서 영아 생태 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6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이재돈 신부) 유아생태교육위원회가 주관하는 가톨릭 유아 생태 기관장과 대표교사 교육을 시작으로 2017 가톨릭 유아 생태교육의 막이 올랐다. 이날 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 유경촌 주교는 창조질서 보전 미사를 주례하고, ‘「찬미받으소서」 제6장 생태 교육과 영성, 유아 생태교육의 중요성’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유 주교는 기조강연을 통해 “「찬미받으소서」 회칙에서 요청하는 것은 강박적, 집착적 소비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생활양식으로의 변화”라며 “환경문제 해결은 개인적 실천과 함께 공동체 실천이 뒤따라야 하고, 그래서 생태적 회개는 공동체의 회개”라고 강조했다. 이어 “생활양식의 변화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하고, 생태계 위기를 인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습관으로 이어져야 하며,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창조질서에 대한 감사와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으로 1년간 계속될 가톨릭 유아 생태교육은 「찬미받으소서」의 성경적 의미를 이해하고 가톨릭 생태 유아교육에 필요한 환경 문제의 영역별 정보 이해와 현장 활용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기초과정, 「찬미받으소서」를 토대로 생태교육 현장에서 실행할 교육 경험을 살려 생태적 감수성을 함양할 심화과정으로 나눠 진행된다.한편, 이날 미사 중엔 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산하 유아생태교육위원회 신임 위원으로 박찬옥(안나) 중앙대 유아교육학과 교수와 김영전(루치아) 가톨릭대 오르프슐베르크연구회 교수가 위촉됐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백영민2017.01.11
![[나의 신앙 나의 기업] (32.끝) 서왕석 마태오 성심애드㈜ 대표이사](//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4037_1.0_titleImage_1.jpg)
[나의 신앙 나의 기업] (32.끝) 서왕석 마태오 성심애드㈜ 대표이사 예수 ‘성심’?굳게 믿으며?‘성심’껏 회사 경영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던 장남의 삶을 어머니의 기도가 바꿔놓았다. 뜻밖의 사고는 고통 속에서 은총을 깨닫는 값진 체험이 됐다. 서왕석(마태오, 62) 성심애드(주) 대표이사의 삶과 신앙 이야기다. 동종업계 매출 1위의 바탕은 신앙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있는 성심애드(주)는 시계 부품 유통 및 완제품 제조 판매 회사다. 1992년 성심라이프(주)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1998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올해 만 25년이 되는 셈이다. 시계 부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했지만, 제빵기계, 커피 기계 등도 수입해 판매했다. 3~4곳의 협력업체와 거래를 트기 시작해 5년 만인 1997년에는 국내 동종업계 15개 업체 중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고, 거래업체는 180개 업체로 늘어나는 급성장을 이뤘다. 비결이 뭐였을까. 첫째, 모든 제품에 대해 10% 이상의 이익은 절대로 남기지 않는다. 단가 2000원에 물건을 들여오면 10%의 이윤을 붙여 2200원에 파는 식이다. 이 원칙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둘째, 학부에서 행정학, 대학원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노하우와 현장 경험을 살려 영세한 협력업체들의 생산ㆍ관리ㆍ품질 분야에 솔직하고 아낌없이 자문해 줬다. 이는 협력업체들과 상생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이로 인해 동종업계 경쟁업체들의 질시와 반목의 대상이 되는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셋째, 물건을 구매하는 데는 정도를 지켰고 품질과 납기를 정확히 지킴으로써 신뢰와 믿음을 구축했다. 넷째, 직원의 잘못으로 손해가 나는 계약을 하더라도 계약은 반드시 지켰다. 다섯째, 직원의 월급과 상여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제때에 지급했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도 뿌리 깊은 신앙이 회사 운영의 밑거름이 됐다. ‘성심(聖心)’이라는 회사 이름 자체가 예수 성심을 굳게 믿고 의탁하는 가운데 성심의 열정으로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각오와 의지의 표현이라고 서 대표는 말한다. 충남 서산 성연면이 고향인 서 대표는 5대째 이어오는 구교우다. 5대조와 4대조에서 각각 순교자 한 분씩이 나왔을 만큼 독실한 집안 출신이다. 8남매 중 장남으로 위로 누나 둘, 아래로 다섯 동생을 두었다. 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했지만, 전공과는 무관한 드라이아이스 공장의 생산직 사원으로 직장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동생이 다섯이나 있어서 전공에 맞는 직장을 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다급했었지요.” 열심히 노력해 사무직으로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행정에 대한 소양 부족을 느껴 주경야독의 정신으로 방통대를 다니며 행정학을 공부했다. 1983년 직장 동료인 아내(박재진 체칠리아, 57)와 결혼했다. 3년 만에 부친이 폐암 말기로 투병하면서 집안의 재산을 모두 병원비로 쏟아부어야 했다. 부친 선종 후 장남으로서 어머니와 동생들 부양해야 했다. 생활은 늘 어려웠다. 월급을 받으면 며칠 안 되어 다시 빚을 지고 외상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 계속됐다. “1989년쯤으로 기억합니다. 고달프고 힘들어 방황할 때였습니다.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일이 잦았지요. 어느 날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그때까지 어머니가 주무시지 않고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고 계셨어요. 그 모습에 정신이 확 들었고,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요한 묵시록(3,15)의 말씀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에 마음을 다잡은 서 대표는 아내와 함께 54일 기도를 바치며 길을 열어주시도록 간구했다. 가난을 극복하려면 회사를 설립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을 굳혔다. 마침 다니던 직장이 시계와 관련된 회사였고 무역과 수출업을 담당했었기에 이와 관련된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을 물색했다. 기도와 용서로 무수한 어려움 이겨내 1992년 마침내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 이름을 ‘성심’으로 지었고 로고도 만들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뜻하는 삼각형에 두 동생을 양옆에 데리고 끝없이 전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제는 자금이었습니다.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근처에 있는 은행으로 지점장을 찾았지만 수차례 문전박대만 당했지요. 그러다가 신자인 직원 한 분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10만 달러를 대출받을 수 있었습니다.” 부품을 사러 홍콩으로 갔다. 미리 연락해 놓았지만 찾아가니 만날 수가 없었다. 세 번이나 헛걸음을 한 끝에 네 번째에 어렵사리 만나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끈기와 성실로 신용을 얻고 협력업체들과 신뢰를 쌓아 가다 보니 불과 5년 만에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곧 어려움이 닥쳤다. 외환위기의 파고가 덮치면서 30개사 이상의 협력업체가 부도가 났고, 성심애드도 큰 타격을 입었다. “한 달 이상 실성한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몸무게가 7㎏이 빠졌고 한쪽 팔과 다리에 마비 증세가 왔지요. 하루는 출근해서 보니 아내와 당시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이었던 딸과 아들이 쓴 편지가 양복 주머니에 들어 있었습니다. ‘아빠, 우리가 있잖아요. 힘내세요. 돈은 또 벌면 되지요’(딸) ‘아빠가 그렇게 하고 다니시니 무서워요.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아들) ‘지금까지 어려웠어도 참고 살아왔잖아요’(아내). 편지를 읽고 그날로 약봉지를 다 버렸습니다. 훌훌 털고 일어났지요.” 다시 전진이 시작됐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시계 완제품의 제조 판매를 시작하면서, 중국에 공장 겸 지사를 설립했다. 연 100만 개의 완제품을 생산해 중국에 40개 매장을 두고 판매했고, 국내에는 20개 회사에 납품했다. 해외에도 7개국에 수출했다. 수출 상담을 위해 40개국 이상을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2002년 천호동본당 사목회 부회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본당 신자가 상을 당해 다른 신자들과 함께 시골로 상가 방문을 한 후 올라오는 길에 일행이 탄 승합차가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8명 중 5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난 것이다. 서 대표는 중상을 입었고, 무려 14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후유증으로 한쪽 팔을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하는 장애인이 됐다. “6개월 만에 직원의 부축을 받아 사무실에 와서 보니, 책상 옆에 늘 있던 큰 금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금고 안에는 쓰레기 뭉치가 된 어음들이 잔뜩 있었고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살려 두신 이유를. 그 어음의 주인들을 모두 용서하라는 것이었지요. 모두 불에 태워버리고 깨끗이 잊었습니다.” 사고로 몸이 불편해지면서 서 대표는 실무에서 차츰 손을 떼고 관리만 담당하면서 동생들에게 맡겼다. 2011년부터는 큰동생이 생활 제품과 판촉 부분을 맡아 별도 회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고, 둘째 동생은 중국 지사를 전담하고 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성심애드(주)는 시계 부품 유통 분야에서 동종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서 대표는 전한다. 중국 지사에서 생산하는 완제품 시계 판매와 수출도 계속 하고 있다. 1995년 매리지 엔카운터(ME) 체험, 1996년 꾸르실료 체험, 2000년대 초반의 성령 세미나 체험은 사고 이후 관련 단체에서의 봉사 활동으로 이어졌다. 200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성내동본당 사목회장으로 8년 이상 봉사했고, 2012년에는 동서울 ME 대표 부부를 지냈다. 올해부터는 서울대교구 꾸르실료 주간과 꾸르실료 한국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본당 사목회장을 마치면서는 홀몸 어르신들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 활동에 좀더 전념하려고 했는데, 올해 서울 꾸르실료 주간과 한국협의회 회장이란 중책을 새로 맡게 되어 애초에 계획한 봉사 활동은 2년 정도 더 연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사진=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문채현2017.09.01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 성체성사란 예수님 당신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내어주심을 기념하는 축일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정점이다. CNS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당신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을 기념하고 되새기는 축일입니다. 일곱 성사 중 하나인 성체성사에 대해 알아봅니다.살펴봅시다 세례성사로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신자들은 견진성사로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아 그리스도의 힘찬 증인이 됩니다. 그리고 성찬례 곧 성체성사를 통해 온 공동체와 함께 주님의 희생 제사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를 완결짓는 성사입니다. 교회는 성찬례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1324항)이라고 가르칩니다. ㉠감사와 찬미의 제사(1328, 1359~1361항) : 성찬례는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제사입니다. 성찬례는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 창조와 구속과 성화로 이루어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로 교회가 드리는 찬미"(1360항)입니다. 성찬례로 번역되는 라틴어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라는 말 자체가 '감사'를 의미합니다. 성찬례는 또 교회가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여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미의 제사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이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제사(1330, 1362~1367항) :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기념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전례 안에서 이 십자가 희생 제사를 현재화하는 제사입니다. 성경적 의미에서 기념은 단지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는 것"(1363항)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전례 안에서 과거 사건을 기념할 때 그 사건은 현재 실제로 일어나게 됩니다. 곧 그 사건이 현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를 위해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를 위해 흘릴 내 피다' 하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성찬례는 이 희생제사를 기념하고 현재화(재현)하는 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희생 제사(1368~1372항) : 성찬례는 또한 교회의 희생 제사이기도 합니다.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인 신비체인 교회는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봉헌되기 때문입니다. 또 신비체인 교회의 지체들이 바치는 제사이기도 합니다. 곧 "신자들의 삶, 찬미, 고통, 기도, 노동 등은 그리스도의 그것들과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봉헌과 결합되며, 이로써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다"(1368항)는 것입니다. 성찬례에서는 이 세상에 있는 지체들뿐 아니라 하늘의 영광 중에 있는 지체들, 곧 천국의 성인들도 그리스도의 봉헌에 결합됩니다. 교회는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을 기억하며 또 그분들과 일치하여 성찬의 제사를 봉헌합니다. 나아가 이미 세상을 떠나 정화 중에 있는 신자들을 위해,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1371항) 제사이기도 합니다. ㉣성찬례에서의 그리스도 현존(1373~1377항) :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고 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찬례에서 특히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십니다. 교회는 성체성사 안에는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담겨 계신다"(1374항)고 고백합니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 성사에 현존하시게 되는"(1375항) 것입니다. 16세기에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성체성사 안의 그리스도 현존에 대한 가톨릭 신앙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빵과 포도주의 축성으로써 빵의 실체 전체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의 실체 전체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한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실체변화'라고 불러왔다"(1376항)(「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 또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두 가지 형상 곧 빵과 포도주 안에 각각 온전히 현존하실 뿐 아니라 그 각 부분에도 현존하시므로 빵을 나누고 포도주를 나눠도 그리스도께서는 나뉘지 않고 그대로 온전히 현존하신다고 교회는 믿고 가르칩니다. 알아둡시다 ㉠영성체와 그 효과(1384~1401항) : 신자들은 성찬례에서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중한 죄를 지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성체를 모시기 전에 먼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또 교회가 전한 공복재(영성체 한 시간에는 물과 약을 제외하고는 다른 것을 먹고 마시지 않음)를 지켜야 합니다. 교회는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물론 더 자주, 매일 같이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실 것을 간곡히 권고합니다. 이렇게 성체를 받아모시는 영성체는 △우리와 그리스도의 일치를 증진시켜 주며 △세례성사 때 받은 은총의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시키고 새롭게 해주고 △우리를 죄에 멀어지도록 지켜 주며 △소죄를 없애줍니다. 또 신자들이 세례로써 이미 교회와 이룬 결합을 더욱 새롭게 하고 굳건하게 해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하게 해줍니다. ㉡성체 공경(1378~1381항) : 성체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실제로 현존하시기에 교회는 각별한 정성으로 성체께 대한 공경을 표시합니다. 미사 전례 중에는 특히 무릎을 꿇거나 몸을 깊이 숙여 절함으로써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계신다는 믿음으로 표현합니다. 또 축성된 성체는 정성스럽게 보존하고, 신자들이 장엄하게 흠숭을 표현하도록 성체를 현시합니다. 또 행렬 중에 함께 모시기도 합니다. 성체를 모셔둔 곳을 감실, 성체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흠숭을 드리는 것을 성체조배, 성체를 모시고 장엄하게 행렬하는 것을 성체거동이라고 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17.06.15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9) 두 비유와 예수님 가족(루카 8,4-21)](//cpbc.co.kr/CMS/newspaper/2017/08/rc/693710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9) 두 비유와 예수님 가족(루카 8,4-21)내 마음속 말씀 씨앗 노력 있을 때 열매 맺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인내로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이 중요함을 일깨우고 있다.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 작 ‘씨 뿌리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8,1) 예수님의 소문은 온 지방으로 퍼져나갔고 이제는 사람들이 각 고을에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등불의 비유입니다.(8,4-18) 그러고 나서는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라고 하십니다.(8,19-21)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설명(8,4-15)루카가 전하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단순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거나 새들이 먹어 버렸고, 어떤 씨는 바위에 떨어져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으며,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 자라면서 숨이 막혀 버렸고,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8,4-8)이 말씀을 들으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분명 농부일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가 씨를 뿌릴 때는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뿌리지 않습니다. 밭을 갈아서 씨가 잘 자랄 수 있게 해놓고는 이랑에 씨를 뿌리지요. 그런데 비유를 따르면, 농부는 나가서 씨를 그냥 훌훌 뿌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떤 것은 길가에, 어떤 것은 바위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에,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지지요. 이 비유를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당시 이스라엘 농법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건기(4월~10월)와 우기(11월~3월)가 뚜렷한 이스라엘에서는 농사를 짓던 밭도 건기가 되면 바짝 말라버립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그 위를 다니면 완전히 길이 돼 버리지요. 우기가 시작되면 농부는 먼저 씨앗을 뿌린 후에 밭을 간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씨가 길가에도, 바위 위에도, 가시덤불에도, 혹은 조금 남아 있는 좋은 땅에도 떨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농사짓는 법이 이렇게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 비유 말씀을 이해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이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비유의 뜻을 묻지요(8,9). 여기서 제자들이란 다른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다닌 열두 제자로 볼 수 있습니다.(8.1 참조)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알아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8,10-11)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비유의 뜻을 설명해 주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씨는 하느님 말씀이고 길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악마가 와서 앗아가는 바람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바위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인생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해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이다.’(8,11-15)예수님의 설명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배경과 뜻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우선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말씀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겠지요. 다양하게 떨어진 씨들은 바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입니다. 비유의 핵심은 길가에 떨어진 씨나 바위에 떨어진 씨,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가 되지 말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되라는 것입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할 뿐 아니라 인내로써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는 비유의 뜻을 풀이해 주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일가요? 또 ‘저들이 알아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도록 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실까요?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란 일차적으로 예수님 말씀을 들으러 모인 사람입니다. 말씀을 들으러 왔지만 속마음은 저마다 달랐을 것입니다. 길가에 떨어지고 바위에 떨어지고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처럼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펼쳐지는 하느님 나라를 보아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8,10)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착하고 바른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며 인내로 가꾸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백 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등불의 비유(8,16-18)이어서 말씀하신 등불의 비유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들어오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등불이 어둠을 몰아내고 주변을 환히 밝히듯이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환히 나타날 것입니다.(8,16-17) 그런데 “정녕 가진 자는 더 갖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8,18)라는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선 등불을 하느님 말씀 혹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으로 보면 어떨까요? 하느님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처럼 잘 받아들여 인내로 가꾸면서 자기 안에 열매를 맺어야 하지만 또한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올려놓듯이 하느님 말씀을 널리 선포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자신 안에 열매를 맺는 것은 물론이고 말씀을 널리 선포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받은 하느님의 말씀마저 놓치게 될 것입니다.예수님의 참가족(8,19-21)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등불의 비유를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 예수님 말씀이 좀 더 명확해집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더 가까이 갈 수 없게 됐는데, 누가 예수님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고 알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8,21)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육친을 가족이 아닌 것처럼 대하라는 말이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참된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고 성경학자들은 풀이합니다. 그렇다면 참가족에 관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등불의 비유를 마무리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말씀을 받아들인 나는 몇 배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 나는 나의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등경 위에 올려놓고 있는지요? 아니면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백영민2017.08.30

주교좌명동본당 사순 특강 (1) ‘미사의 전례적 의미’조학균 신부(예수회)전례,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간 가톨릭평화신문은 사순 시기의 참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에서 실시하는 사순 특강을 연재한다. 올해 사순 특강의 주제는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다. 특강 순서는 △13일 ‘미사의 전례적 의미’(조학균 신부) △20일 ‘성경을 통해 바라보는 미사’(이영제 신부) △27일 ‘미사, 성체성사를 살다’(윤종국 신부) △4월 3일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조성풍 신부)이다.조학균 신부(예수회) 보여주는 것을 설명하고 설명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전례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듣고, 보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장은 교회가 마련해 준다. 그것이 바로 전례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는 약속된 날들을 기념하고 재현한다. 이것이 전례주년이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재현하기 위해서 전례력을 만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부활 대축일이라고 한다. 부활은 큰 기쁨이다. 기쁨뿐만 아니라 수난받으신 날도 기억하자는 의견이 제시됐고, 부활절 행사가 부활 시기로 변했다. 사순시기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의 성유 축성 미사까지다.사순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만남’이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만남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잘 만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사순시기에 들어서면 신자들은 하느님께 많은 약속을 한다. ‘금식하겠다’, ‘술, 담배를 하지 않겠다’ 등의 약속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왜?’ 이런 약속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내가 겪은 고행의 결과물을 나눌 때 하느님과의 약속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해 사순시기 동안 달걀을 먹지 않았다. 먹지 않은 달걀을 모아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부활의 기쁨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부활의 기쁨은 나눔에서 온다.성목요일 저녁에는 ‘주님 만찬 미사’가 거행된다. 사제들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발씻김 예식을 한다. 단순히 발을 닦아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사제가 보여주는 것이다. 신자들도 이 모습을 보며 겸손해지고 항상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보여주는 것을 설명하고 설명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전례다.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사순시기에 수난을 함께한다.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수난, 희생을 바라보며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하는 시기다. 나도 내 이웃을 위해 과감하고 당당하게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사순시기의 진정한 의미다. 내가 동참하고 같이 느낄 때, 같은 곳을 바라볼 때 사순시기는 은혜로운 시기로 다가온다. 그 부활의 기쁨은 예수님과 함께 더욱 커진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 당신 곁에 오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복음을 읽고 읽은 것을 믿으며 믿는 것을 가르치자. 그리고 가르친 바를 실천해야 한다. 사순시기는 고난과 고통의 시기가 아니라 은혜의 시기다.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백영민2017.03.16

자비의 성문 닫혀도 자비의 온기는 이어진다자비의 특별 희년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막 내려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자비의 특별 희년이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막을 내린다. 한국 교회는 이에 앞서 13일 교구별로 자비의 문을 닫는 예식을 거행하고 지역 교회 차원의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마무리했다.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루카 6,36 참조)라는 주제로 지난해 12월 8일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에 시작된 자비의 특별 희년은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새롭게 체험하고 그 체험을 바탕으로 이웃에게 자비를 실천할 것을 다짐하는 한해로 이어졌다. 한국 교회는 교황청이 마련한 자비의 특별 희년 일정에 따라 하느님 자비를 되새기고 그 자비를 구체적 행동으로 전하기 위한 다채로운 행사와 프로그램을 시행했다. 한국 교회 자비의 특별 희년을 되돌아본다.염수정 추기경이 13일 명동대성당 자비의 희년 성문을 닫은 후 신자들을 축복하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지난해 12월 8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성문(聖門)을 열어 자비의 특별 희년 개막을 선포한 후 한국 교회 대다수 교구도 12월 13일 주교좌 성당의 성문을 열고 본격적인 희년살이에 들어갔다. 전국 교구는 먼저 상설 고해소를 개설하고 자비의 특별 희년 순례 성당 및 성지를 지정함으로써 희년 기간 신자들이 전대사의 은총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왔다. 희년 기간에 하느님 자비의 의미를 전하고 고해성사를 집전하는 임무를 수행하게 하려고 교황이 파견하는 자비의 선교사로는 한국 교회에서 총 29명의 사제가 임명됐다. 한국 교회는 또 교황이 발표한 자의교서 「자비로운 재판관이신 주 예수님」에 따라 교회 법원의 혼인 무효 선언 소송을 2심제에서 1심제로 간소화했다. 전국 교구가 교황청 일정에 따라 동시에 거행한 대표적인 행사로는 ‘주님을 위한 24시간’을 꼽을 수 있다. 3월 4∼5일 전국적으로 일제히 열린 ‘주님을 위한 24시간’에서 신자들은 회개를 지향하는 미사와 참회의 성시간, 고해성사,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을 위한 묵주기도 등 교구별로 다양하게 준비한 프로그램에 참여하며 하느님께 좀 더 가까이 다가가는 시간을 가졌다. 전국 교구는 이 외에도 △병자와 장애인을 위한 희년(6월 12일) △자비 활동가들과 자원 봉사자들을 위한 희년(9월 2∼4일) △교리교사들을 위한 희년(9월 25일) △감옥에 있는 이들을 위한 희년(11월 6일) 등 교황청이 정한 특정 희년에 맞춰 해당 희년의 의미를 살리는 다양한 행사를 개최했다. 교구별로 눈에 띄는 희년 프로그램을 살펴보면, 서울대교구는 지난해 12월 18일 명동대성당 마당에 특별 고해소 30개를 설치하고 젊은이를 대상으로 고해성사를 베풀었다. 또 별도로 제작한 ‘자비의 희년 기도문’과 함께 본당에서 강론이나 공지사항 시간 등에 활용할 수 있도록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 요약본을 배포하고, 병인박해 포고령의 날인 2월 23일에는 병인박해 관련 성지인 서소문ㆍ새남터ㆍ절두산 순교성지에서 성문 개방 예식을 거행했다. 서울대교구는 매월 첫 금요일 밤을 ‘자비의 기도의 밤’으로 정하고 관련 예식서를 발송해 신자들이 성경 말씀과 기도로 하느님 자비를 묵상하도록 이끌었다. 교구가 펼친 ‘하자아자’(하느님처럼 자비로이,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운동은 신자 개개인에게 실천표를 나눠준 후 누구를 위해 어떤 기도를 바쳤고, 누구를 위해 무엇을 나눴는지 적게 함으로써 자비를 구체적으로 실천하도록 하는 길잡이가 됐다. 대구대교구는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맞아 셋째 이상 다자녀 가정을 지원하는 ‘생명사랑 장려금’을 신설했다. 출산율이 최저인 우리나라 현실에서 신자들부터 생명사랑 운동에 적극 나서자는 취지에서 만든 장려금으로, 셋째 자녀를 출산한 가정에 100만 원, 셋째가 고등학교에 입학한 가정에 100만 원, 셋째가 대학교에 입학한 가정에 200만 원씩 총 5억여 원을 지원했다. 교구는 내년에도 장려금 지원을 이어갈 계획이다. 광주대교구는 18개 공소에서 ‘자비의 희년 공소 순회 피정’을 실시했다. 노인여가활동지도사회와 교구 청년성가봉사단의 율동과 찬양, 레크리에이션 등을 곁들인 피정은 공소 신자들의 신앙을 북돋우는 좋은 기회가 됐다. 또 지난 5월 광주시 남구 광주공원에 ‘노숙인 샤워장’을 개설하는 한편 출소 청소년 자립을 위한 쉼터 ‘주빌리 하우스’와 교구 첫 발달장애인 주일학교(삼각산본당)를 개교하는 등 희년의 정신을 살리는 활동을 이어갔다. 수원교구는 수원대리구 주관으로 모든 이들이 함께할 수 있는 ‘자비의 학교’를 열었다. 자비의 학교는 △강의와 자비의 기도, 미사로 진행된 ‘자비의 사도’ △매주 금요일 ‘자비와 은총의 성시간’과 ‘자비의 교실’로 나눠 총 110회의 강의와 행사로 진행됐다. 성시간과 자비의 교실은 희년이 끝난 후에도 계속될 예정이다. 의정부교구는 올해 5월 성지로 선포된 양주 순교성지를 비롯해 마재성지, 의정부주교좌본당, 행주본당, 참회와 속죄의본당을 교구 지정 전대사 순례지로 지정하고, 교구민들이 자비의 희년에 주어진 전대사 은총을 누리도록 했다. 9월에는 교리교사를 위한 희년의 날을 맞아 경기도 양주 서정대학교에서 교리교사 희년 미사를 봉헌하고 주일학교 교리교사들을 격려했다. 대전교구는 자비의 특별 희년 개막과 동시에 교구 시노드(대의원회의)를 열어 쇄신과 변화를 위한 ‘함께하는 여정’에 돌입했다. 교구는 시노드 준비를 위한 기초 단계를 마무리한 데 이어 2017년 상반기까지 준비 단계, 2017년 하반기부터 2018년까지 본회의 단계를 진행할 계획이다. 교구는 또 ‘2016 청년, 자비의 희년을 말씀과 함께하다’ 프로그램을 통해 △자비의 특별 희년 기도 바치기 △성경 읽기 △자비가 무엇인지 나누기 △침묵 중에 묵상하기 △자비를 실천하기 등 다섯 가지를 실천하도록 권고했다. 춘천교구는 교구 성당들과 사적지 소개, 교황이 제안한 자비의 실천 방안과 기도문 등을 담은 ‘본당 순례 수첩’을 펴냈다. 교구 사제단은 △고해소를 사랑하자 △십일조로 자선을 베풀자 △친절과 소통의 삶을 살자 등 세 가지를 실천하는 운동을 펼쳐 눈길을 끌었다. 교구청 소속 사제들은 ‘자비 통장’을 개설해 함께 자선기금을 모으며 자비를 실천하는 데 앞장섰다. 전주교구는 소공동체와 레지오 마리애 회합 등 각종 모임에서 교황 칙서 「자비의 얼굴」과 관련 성경 구절도 읽고 묵상하고 실천할 것을 권고하고, 신자들이 모임에서 사용할 수 있도록 「자비의 얼굴 강독 자료」를 펴냈다. 교구는 희년 성음악제와 사진 공모전을 열었으며, 교구장 이병호 주교는 교구민 특강에 직접 강사로 나서 희년의 불씨를 지폈다. 안동교구는 자비로운 삶을 살 것을 다짐하면서 ‘냉담교우 회두 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쳤다. 그 결과 330여 명의 냉담교우가 다시 교회 공동체로 돌아와 기쁜 마음으로 신앙생활을 하는 성과를 거뒀다. 부산교구는 하느님 자비가 깃든 혼인성사의 은총과 가정생활의 기쁨을 알리기 위해 전국 최초로 혼인 전문 성당인 ‘초량가정성당’을 5월에 착공했다. 교구는 경제적으로 어려운 신자와 일반 시민에게 성당을 무료로 대여해 줄 계획이다. 마산교구는 특별히 청년 사목 활성화를 위해 청소년국 산하 청년부를 청년사목국으로 분리 신설하고 청년들을 위한 다양한 지원에 힘썼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백영민2016.11.17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요한 4,29)](//cpbc.co.kr/CMS/newspaper/2016/11/rc/658780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22)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요한 4,29)“직접 만나 보니, 그분은 구원자셨다” 우물가에서 예수님을 만난 사마리아 여인은 마을 사람들에게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고백한다. 그림은 카라치 작 ‘그리스도와 사마리아 여인’ 부분, 1593~1594, 블레라 미술관, 이탈리아 밀라노. 가톨릭 굿뉴스 제공 사마리아인들에 대한 신약 성경의 내용 중에서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은 요한 복음이 전하는 이야기입니다. 요한 복음 4장은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로 시작하는, 사마리아인들과 관련된 상당히 긴 이야기를 전합니다(요한 4,1-42). 사마리아 지역에도 복음을예수님께서 예루살렘에서 갈릴래아로 가시면서 사마리아 지역을 가로질러야 했다고 이야기를 시작합니다(요한 4,4). 하지만 이미 본 것처럼 당시의 사람들은 이러한 경로를 거치지 않았습니다. 요한 4장의 이야기는 일반적이지 않은 예수님의 행보를 소개합니다. 어떤 학자들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 지역을 “가로질러 가야만 했다”는 표현에서 단순한 여정의 소개가 아니라 예수님의 의지가 담긴, 곧 사마리아 지역에도 복음이 전해지는 이야기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야곱이 자기 아들 요셉에게 준 땅에서 가까운 시카르라는 사마리아의 한 고을”에 이릅니다. 흔히 사람들은 ‘야곱의 우물’이라는 표현을 사용합니다. 하지만 구약 성경에서 야곱이 우물을 만들었다는 언급은 찾을 수 없습니다.우물가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의 한 여인을 만납니다. 그리고 이 둘의 대화는 “나에게 마실 물을 좀 다오”라는, 십자가 위에서 “목마르다”(요한 19,28)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연상케 하는 표현으로 시작됩니다(요한 4,7). 사마리아 여인과 예수님의 대화는 그리 순탄하지 않았습니다. 물, 곧 생명수를 주제로 한 첫 대화에서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전혀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직 여인은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이해할 준비가 돼 있지 않은 모습입니다. 둘째 대화는 예수님께서 여인의 과거를 맞추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대화의 큰 주제는 진실한 예배입니다(요한 4,16-26). 이 대화 안에서 사마리아인들과 유다인들의 특징과 반목이 잘 드러납니다. 여인이 말하는, 자신의 조상들이 예배를 드린 ‘이 산’은 바로 사마리아의 성소(聖所)가 있던 그리짐 산을 가리킵니다. 진실한 예배는 더 이상 장소적인 의미 안에 머물지 않는 것으로 이야기됩니다. 예배는 어떤 장소에 얽매여 있는 것이 아니라 “영과 진리” 안에서 드리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더 이상 하느님은 성소가 있는 곳에 머물러 계신 것이 아니라, 진리가 있는 곳에 함께 계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특별히 요한 복음 안에서 진리는 예수님의 활동을 통한 계시와 관련이 있다는 점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느님을 경배하는 것이 진실한 예배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대화 끝에 사마리아 여인은 자신의 고을로 가서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제가 한 일을 모두 알아맞힌 사람이 있습니다. 와서 보십시오. 그분이 그리스도가 아니실까요?” 여인의 이 표현은 질문의 형태로 돼 있지만 ‘그분은 그리스도이시다’는 신앙고백으로 받아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여인의 행동을 보고 마을 사람들은 모두 예수님을 찾아가 자신들과 함께 머물러 달라고 청하고 예수님은 거기서 이틀을 함께 머물렀다고 복음은 전합니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고을 사람들의 신앙고백으로 끝납니다. “우리가 직접 듣고 이분께서 참으로 세상의 구원이심을 알게 되었소”(요한 4,42).증언을 강조하는 요한 복음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요한 복음의 특징을 가장 잘 나타내는 이야기입니다. 요한은 다른 복음서와 비교해서 “증언”을 강조합니다. 예수님을 알고, 믿고,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는 것은 다른 복음서에서도 강조하는 내용이지만 요한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그 신앙을 다른 이들에게 증언하도록 요청합니다. 사마리아 여인과의 대화는 한 여인의 변화되는 모습을 통해 이러한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처음엔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했던 여인이 예수님과의 대화를 통해 그를 예언자로 생각하고(요한 4,19) 마침내 그를 메시아로 받아들입니다. 또한, 이 여인은 자신의 믿음을 고을 사람들에게 가서 증언합니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이 여인의 말을 듣고 예수님을 만나게 되고 결국 그를 세상의 구원자로, 그리스도로 받아들입니다.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6.11.02

카파르나움에서의 예수님 모습 소설 형식 빌어 생생히 묘사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 카파르나움 이야기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 카파르나움 이야기파비오 차르디 지음/국춘심 옮김/분도출판사/1만 원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어떻게 생겼을까? 키는 컸을까 작았을까? 피부색과 눈동자는 무슨 색일까? 목소리는 맑았을까 아니면 중후했을까? 예수님의 얼굴은 분명 화가들이 그린 생김새는 아닐 것이다. 오블라띠 선교수도회 파비오 차르디 신부가 지은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 카파르나움 이야기」는 예수님을 찾는 여정에 새로운 실마리를 제시한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 “이미 여러 번 그분에 대해 이야기해 주었잖아요.” “또 해 주세요.”예수님에 대해 수없이 듣고 읽고 보고 했지만 “또 해 주세요”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라고 요구하는 이들에게 저자는 생생한 예수님의 모습을 보여준다.저자가 예수님을 알려주기 위해 이끌고 간 곳은 카파르나움이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사시는 고을, 예수님의 집이 있는 곳이다. 예수님은 이 고을에서 베드로,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 세리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다. 또 열병에 걸린 베드로의 장모, 야이로의 딸, 하혈하는 부인, 중풍병자, 백인대장의 병든 종을 치유하셨다. 그리고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사람들을 가르치셨고, 오천 명을 먹이신 기적도 이곳에서 행하셨다. 저자는 카파르나움에 있는 베드로의 장모 집을 배경으로 이곳에서 생활하셨던 예수님의 모습을 소설 형식을 빌어 보여준다. 성경의 딱딱하고 간결한 묘사가 아니라 예수님을 직접 만난 사람들이 그분의 인간적이고 따뜻한 면모를 실감 나게 이야기한다.“단식을 하고 광야의 고독 속에 살던 엄격한 고행자 세례자 요한과 같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먹고 마시고 사람들과 어울렸지요. ‘먹보요 술꾼’이라고 험담꾼들이 말했듯이요. 그분은 먹보도 술꾼도 아니었습니다. 기쁨과 아픔, 꿈과 희망을 함께 나누는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뿐이었습니다”(79쪽).저자는 “그분에 대해 말해 주세요”라는 요구에 그분의 손을 잡고 새 생명을 얻은 사람, 옷자락만 만졌을 뿐인데 오랜 병이 나은 사람을 통해 “그분은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고백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백영민2016.12.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