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반도 평화와 화해, 세계 평화 갈망하는 염원 그림에 담아 장긍선 신부, 21일~7월 4일 은경축 기념전 및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 회원전 장긍선 신부 작 ‘평양교구 하느님의 종 24위’, 134 X 104㎝, 목판에 에그템페라. 7일 서울 명동 평양교구 사무실에서 만난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장 장긍선(전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 본부장) 신부에게 올해는 잊히지 않을 특별한 해다. 장 신부는 평양교구의 관할지인 신의주 출신 실향민 부모에게 태어난 순수 혈통(?) 평양교구민인데, 평양교구가 올해 올해 설립 90주년을 맞았다. 또 올해는 사제 수품 25주년이다. 파티마 성모 발현 100주년의 해이기도 하다. 이 뜻깊은 해를 지내면서 장 신부는 성모님의 다양한 모습을 담은 이콘(Icon) 전시회를 준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이콘연구소가 21일부터 7월 4일까지 서울 명동 갤러리 1898에서 ‘영혼의 빛을 따라서’를 제목으로 마련하는 ‘제10회 회원전 및 장긍선 예로니모 신부 은경축 기념전’에는 한반도의 평화와 화해, 세계 평화를 갈망하는 장 신부의 염원이 담겨 있다.연구소의 3년 과정을 마치고 연구ㆍ심화 과정의 회원 50여 명과 함께 전시회를 여는 장 신부는 “분단 72년이 흘렀음에도 진정한 평화와 화해가 도래하지 못한 것은 우리 모두의 잘못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시회를 통해 성모님께서 주님께 더욱 힘 있게 한반도의 통일과 평화를 간청하도록 우리의 희생과 기도를 성모님께 모아드리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강조했다.장 신부는 전시회에서 ‘평양교구 하느님의 종 24위’를 비롯해 예수님과 성모님, 러시아 유학 시절 연필로 그린 구약의 예언자들과 표상의 성모 시리즈 등 7~8점을 선보인다. 전시 공간도 개인전 분위기가 나도록 3개 가운데 한 전시실을 장 신부 작품으로만 꾸민다. 장 신부 작품 가운데 ‘평양교구 하느님의 종 24위’는 지난 3월 18일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염수정(평양교구장 서리) 추기경 주례로 봉헌된 평양교구 90주년 기념 미사 때 제대 앞에 세웠던 작품이다. 이 이콘에는 일제와 공산당의 탄압에도 목자의 소임을 다하다 순교한 평양교구장 홍용호(보르지아) 주교를 중심으로 초대 평양교구장 패트릭 번 주교와 12명의 사제, 1명의 신학생, 2명의 수녀, 평신도들이 24위를 의미하는 24송이의 무궁화와 총, 깨진 종 등 각자의 상징들과 함께 그려져 있다.장 신부는 1997~2001년 한국 교회 사제로는 최초로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정교회 신학교에서 비잔틴 전례와 이콘을 수학했다. 귀국 후 2003년 이콘연구소를 설립, 교회 미술의 옛 형태 가운데 하나인 이콘을 통해 성미술의 영적인 의미를 전하는 데 노력해 왔다.장 신부는 이콘을 ‘눈으로 보는 교리서이자 성서’라고 정의했다. 그러면서도 이콘을 베끼는 그림으로 오해하는 이가 여전히 많다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형태는 같아도 똑같은 이콘은 하나도 없어요. 성경을 필사하면 다 같은 성경이 아닌 것과 마찬가지지요. 이콘을 먹지에 대고 옮기는 경우도 있는데, 그건 참된 이콘이 아닙니다. 번거롭더라도 내 손으로 정성껏 그려야 참된 작품입니다. 이콘의 인물에 표정이 없는 것은 인간의 희로애락이 표현돼선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작가의 ‘영성’과 ‘기도’라는 재료입니다.”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백영민2017.06.14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45) 11세기 ⑤ - 카르투지오회 영성](//cpbc.co.kr/CMS/newspaper/2017/10/rc/697956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45) 11세기 ⑤ - 카르투지오회 영성침묵 속 은수 생활로 하느님 안에 자유로움 찾아 카르투지오회를 설립한 브루노. 공주(共住) 생활에서 은수(隱修) 생활로 옮겨가는 방식을 택했던 카말돌리회의 수도 생활은 수도원과 은수처 상호 간의 명확하지 않고 느슨한 관계 때문에, 서로 대립하거나 한쪽이 다른 한쪽에 종속되면서 긴장 관계 속에서 갈등 구조를 만들었습니다. 카말돌리회의 상황이 직접적인 영향은 아니었겠지만, 비슷한 시기에 공주 생활과 은수 생활을 모아 놓은 또 다른 형태의 새로운 수도 생활이 출현했습니다.그레고리오 개혁 운동에 동참한 브루노쾰른 귀족 가문 출신이었던 브루노(Bruno Cartusiensis, 1030/32~1101)는 2005년에 개봉했던 영화 ‘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에 나오는 ‘카르투지오회(Ordo Cartusiensis)’를 설립했습니다. 쾰른(Kln)에서 학업을 시작했던 브루노는 프랑스 랭스(Reims)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긴 학창 시절을 보냈습니다. 쾰른에서 사제 서품을 받은 브루노는 1056년쯤 다시 랭스 주교좌성당 학교로 돌아왔으며, 이듬해에 학장이 되어서 거의 20년 동안 신학을 가르쳤습니다. 또 브루노는 랭스 주교좌성당 참사 위원도 겸직했습니다.랭스에서 지내는 동안 브루노는 그레고리오 개혁 운동이 쇄신하고자 했던 성직 매매와 성직자의 부도덕한 생활을 바로 눈앞에서 경험하면서 그레고리오 개혁 운동의 지지자이자 버팀목이 되어 갔습니다. 1067년 랭스대교구좌가 공석이 되자 마나세(Manasss de Gournay, 재임 1069/70~1080/1081)는 성직 매매의 방법으로 랭스 대교구의 대주교로 임명되었고, 이후 교회의 재산을 노골적으로 사유화했습니다. 따라서 주교좌성당 학교 학장이었던 브루노를 비롯하여 교구 구성원들은 마나세를 비판하면서 강력하게 저항했고, 마나세 역시 자신을 비판하는 사람들을 핍박했습니다.위협을 느낀 브루노는 1076년에 잠시 쾰른으로 피신했습니다. 보다 못한 랭스에 성 레미(Saint Remi) 수도원 수도자들이 이러한 사태를 교황청에 고소했고, 마나세가 수도자들을 파문함으로써 갈등은 최고조에 다다랐습니다. 결국 1077년에 교황 특사가 마나세를 이단자로 파문했으며, 1080년에 교황 그레고리우스 7세(Gregorius PP. VII, 재임 1073~1085)는 그를 면직시켰습니다.침묵 속에서 은수 생활 실천하는 공동체 설립교황대사와 교구민들은 브루노를 랭스대교구의 차기 교구장으로 추천했으나, 브루노는 이 제안을 거절하고 수도 생활을 실천하기로 결심했습니다. 특히 세상을 등지고 독거 은수 생활을 실천하고자 했던 브루노는 1082년 2명의 동료와 함께 세셰 퐁탠(Sche-Fontaine)으로 이주해 몰렘의 로베르투스(Robertus Molesmensis, 1028~1111)에게 조언을 받으며 수도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 브루노 일행은 베네딕투스 수도 규칙 범위 안에서 다른 수도자들과 크게 다르지 않은 은수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하지만 브루노는 개별적으로 더 엄격하게 실천하는 은수 생활을 원했습니다.1084년 브루노는 6명의 동료와 함께 그르노블(Grenoble)로 이주해 그레고리오 개혁 운동을 열렬히 지지하던 그르노블의 주교 후고 1세(Hugues de Grenoble, 재임 1080~1132)가 제공한 샤르트뢰즈(Chartreuse)라는 험준한 산속 골짜기에서 경당 및 그 주변에 은수처를 짓고 엄격한 은수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브루노는 일행과 함께 6년 동안 이집트 사막 은수 생활을 본받아 고독, 청빈, 금욕과 함께 기도, 묵상, 노동을 행하면서 침묵 속에서 은수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오늘날 브루노가 설립했던 수도회를 카르투지오회라고 부르는 것도 정착했던 곳의 지명인 샤르트뢰즈의 라틴어 표기 카르투시아(Cartusia)에서 유래한 것입니다.1090년 과거 주교좌성당 학교 시절에 제자였던 교황 우르바누스 2세(Urbanus PP. II, 재임 1088~1099)가 도움을 요청하자 브루노는 동료였던 라누이노(Lanuino, ?~1116)에게 수도원을 맡기고 로마로 가서 교황의 자문 역할을 수행했습니다. 하지만 은수 생활을 바랐던 브루노는 1092년 교황에게 간청해서 허가를 얻어, 시칠리아 영주 로게리우스(Rogerius de Altavilla, 재위 1071~1101)가 제공한 칼라브리아(Calabria) 지역 토레(Torre)에 성 마리아 수도원을 설립해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지냈습니다. 1094년 교황 우르바누스 2세는 수도원 성당을 축성했습니다.수도원 안 독방에서 은수 생활 실천브루노가 사망하기 몇 달 전인 1101년 교황 파스칼리스 2세(Paschalis PP. II, 재임 1099~1118)는 카르투지오회의 생활 방식을 인가했습니다. 브루노는 수도 규칙을 정한 적도 없었고, 수도 규칙서를 저술한 적도 없었습니다. 브루노는 새로운 수도회를 설립할 생각이 없었으며, 다만 엄격한 수도 생활을 실천한 공간으로 수도원을 건설했을 뿐이었습니다. 따라서 함께 하는 동료들에게 수도 서원과 같은 서약을 요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브루노는 베네딕투스의 수도 규칙을 수정하여 기본적인 생활 규범을 제시하면서 침묵 속에서 고독한 은수 생활을 강조했을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인근 수도자들마저 이러한 수도 생활 방식을 따르려 하면서 고유한 수도 생활 방식으로 인정받으며 정착되었던 것이었습니다. 제5대 원장이었던 귀고 1세(Guigo de Castro, 재임 1109~1136)가 1127년 저술한 「관습법」(Consuetudines)이 카르투지오회의 첫 번째 규정집이었습니다.카르투지오회 수도자들은 수도원 안에 독방에서 은수 생활을 실천했습니다. 이러한 생활 방식은 수도원과 은수처가 구분되어 있던 카말돌리회와도 달랐으며, 공주 생활을 실천하는 베네딕도회와도 달랐습니다. 세상과 단절되어 침묵 속에서 고독한 은수 생활을 실천하던 수도자들은 성경 말씀과 함께 영적 독서를 실천하면서 관상 기도에 깊이 들어가고자 했습니다. 또한 수도자들은 독방에서 은수 생활을 실천하면서도 세상과 영적인 소통을 할 수 있다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수도자들은 성경 말씀을 연구했고, 필사했으며, 사람들을 위하여 저술 활동을 했습니다.카르투지오회 수도자들은 한 수도원 안에 살면서도 공동 시간을 최소화하려고 노력했습니다. 수도자들은 미사 전례 거행에서 생략할 수 있는 요소들은 최대한 생략해서 전례를 단순화시켰습니다. 성무일도를 바치기 위한 시간 전례에 있어서도 단순하고 소박한 가운데 경건함을 유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도자들은 전례 안에서 성모 마리아가 현존하신다는 것을 강조하는 신심을 발전시켰습니다.카르투지오회는 오늘날까지 한 번도 수도회를 개혁해 보지 않고, 원형을 그대로 보존했다고 언급했습니다. 즉, 브루노가 생각했던 대로 침묵 속에서 고독한 은수 생활을 기꺼운 마음으로 실천함으로써 하느님 안에서 자유로워지는 것이 카르투지오회 영성의 특징이 되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7.10.11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몸] (4) 생명운동 - 생명 수호 운동](//cpbc.co.kr/CMS/newspaper/2018/03/rc/713370_1.0_titleImage_1.jpg)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ㆍ가톨릭평화신문 공동 기획 [그리스도 안에서 한마음 한몸] (4) 생명운동 - 생명 수호 운동낙태 잔혹성 고발하고 생명운동 필요성 일깨워 지난 1991년 4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문화관에서 열린 ‘낙태 방지 심포지엄’은 생명 수호 운동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교회에 각인하는 계기가 됐다. 앞줄에 윌키 박사 부부 등 내빈들이 앉아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1991년 4월 30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문화관. 여느 때와 비슷하게 평범한 심포지엄이 마련됐다. ‘낙태 방지’라는 제목이 달린 게 달랐을 뿐, 늘 열리는 심포지엄과 그리 다를 게 없어 보였다. 교황청 가정사목위원 윌키(Willke) 박사 부부와 맹광호(이시도로) 가톨릭대 의대 교수 강의, 미혼모와 인공 유산을 경험한 이들의 증언이 이어졌고, 낙태 경험자들을 위한 치유예식도 거행됐다. ‘침묵의 소리(The Silent Cry)’와 ‘이성의 소멸(The Eclipse of Reason)’이라는 제목의 영상물도 잇따라 상영됐다. 그런데 캐나다의 한 산부인과 의사가 회심한 뒤 만들었다는 두 편의 영상물이 한국 교회의 생명운동을 뒤바꿔 놓았다. ‘웅변보다 더 웅변같이’ 낙태의 잔혹성을 고발했고, 생명운동이 왜 필요한지를 교회 공동체에 각인시켰다. 이를 계기로 서울대교구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입양결연부를 주축으로 ‘참생명학교’가 시작됐고, 기도회와 월례강좌, 청소년 성교육 지도자 연수 등 다양한 생명수호활동이 전개되기에 이르렀다. 당시 한국 사회는 연간 70만 명이 태어났지만 150만 명의 태아가 인공유산으로 죽어가는 상황이었기에 입양결연부에서 시작한 생명 수호 운동은 교회 안팎에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입양결연부는 먼저 1991년 5월 생명 수호를 위한 전문 요원 양성을 위한 참생명학교를 설립, 가톨릭성서모임 성경 봉사자로 활동하던 평신도 성양경(베로니카)씨를 교장으로 추대했다. 참생명학교는 1991년 9월 교구 내 6개 지구 구역ㆍ반장 월례 교육에 참가한 신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시행, 낙태 예방 교육 프로그램 개발에 나섰다. 설문 결과 응답자 719명 가운데 인공유산을 경험한 신자가 601명(83.6%)이나 된다는 조사 결과가 나오자 참생명학교는 1992년 1월부터 매달 둘째 주 금요일마다 낙태아와 낙태 부모를 위한 기도회를 하게 됐다. 생명 수호를 위한 기도회는 생명에 대한 강의와 나눔, 치유 기도, 미사, 친교 시간 등을 생명 수호에 대한 공감대를 만들었다. 참생명학교는 기도회에 이어 1992년 5월 서울 동교동 협동교육연구원에서 ‘청소년 성교육 지도자 연수회’를 개최했다. 이때 쓰인 교육 프로그램이 ‘틴스타(Teen STAR, 성인의 책임감이라는 맥락에서 본 성교육이라는 의미)’였다. 틴스타를 만든 세계적인 청소년 성교육 전문가 한나 클라우스(조지워싱턴대학 의대 산부인과 의사) 수녀가 내한해 가진 이 날 특강은 청소년 성교육에 대한 교회 안팎의 인식을 바꾸는 계기가 됐다. 청소년 성교육 지도자 연수회에 참가했던 봉사자들은 1995년 중ㆍ고생이나 서울소년원 내 가톨릭 학생들을 대상으로 두 차례 청소년 성교육 강좌를 열어 청소년들이 잘못 알고 있는 성 지식을 교회 가르침을 통해 바로잡도록 도왔다. 이 성교육은 당시 가톨릭대 이동익(현 서울대교구 공항동본당 주임) 신부의 강의와 비디오 시청, 그룹 토의와 발표 차례로 진행됐는데, 기존 성교육과 달리 성이 갖는 지성적ㆍ영성적ㆍ정서적ㆍ사회적ㆍ신체적 측면을 모두 고려해 인간 성장과 더불어 발달하는 성의 의미를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었다. 또한, 청소년을 대상으로 한 성교육은 본당 순회 교육 방식으로 진행되기도 했고, 수도자와 일반 성인들을 대상으로 한 생명ㆍ성교육으로 시행되기도 했다. 이어 1993년 10월 5일∼11월 23일에는 매주 한 차례씩 ‘생명과 사랑을 위하여’를 주제로 8주 과정의 제1기 참생명학교 강좌를 개설해 생명 교육의 장을 열었다. 이 강좌는 교황 바오로 6세의 회칙 「인간 생명(Humanae vitae)」 반포 25주년을 맞아 인간 존엄성의 회복과 생명에 대한 올바른 가치관을 재정립하고자 마련됐다. 또한, 1994년에는 서울대교구 구의동성당에서 두 차례에 걸쳐 참생명학교 단기 강좌를 열기도 했다. 참생명학교는 1993년 입양결연부가 서울가톨릭사회복지회로 이관되면서 생활실천부 소속으로 교육을 계속했으며, 1994년 1월에는 월례 모임을 마련하기도 했다. 이어 1995년 생명운동부에 속하게 된 이후에도 ‘생명과 사랑’을 주제로 참생명학교 강좌를 꾸준히 개설했다. 1995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 해마다 5월 마지막 주일을 ‘생명의 날’로 지낼 것을 결정하면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 생명운동부는 해마다 생명의 날 캠페인을 벌이며 아기발 배지 달아주기, 생명 수호 사진 전시, 생명의 날 홍보물 배포 등 활동을 전개하면서 꾸준히 생명 수호 운동을 이어 나갔다. 이어 2000년 주교회의 봄 정기총회에서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산하 협력 연구기관으로 ‘생명윤리연구회’(2008년 주교회의 생명윤리위원회로 승격)를 설치키로 하면서 한마음한몸운동본부 또한 2001년 6월 기획조정위원회의에서 생명윤리위원회 설립하기로 한 뒤 그해 11월 산하 기구로 생명윤리위원회를 발족시켰다. 이런 가운데 2005년 10월 서울대교구는 ‘생명위원회’를 발족, 우리 사회에 만연한 생명경시에 대처하고 생명 수호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게 된다. 교회의 본질적 가치이자 시대적 소명인 생명 존중을 실현하기 위해 교구 생명위원회를 중심으로 생명 연대를 확대해 나간 것이다. 교구 생명위원회가 발족, 기존 생명윤리위원회와 생명운동부가 맡았던 생명 수호 운동을 전개함에 따라 한마음한몸운동본부는 기존 생명운동부와 장기기증부의 부서를 ‘생명운동팀’으로 통합, 장기 기증과 조혈모세포기증, 헌혈 등의 사업과 활동을 펼치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백영민2018.03.07
![[성경 속 도시] (69) 타보르](//cpbc.co.kr/CMS/newspaper/2015/11/rc/60541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69) 타보르예수님께서 거룩하게 변모하시다 이즈르엘 평야에서 볼 수 있는 타보르 산. 평화신문 자료사진 이스라엘의 이즈르엘 평야를 달리다 보면 둥근 종 모양 같은 높은 산이 나타난다. 해발 560m가 넘는 타보르 산이다. 길이 가팔라서 산길을 오르기 위해서는 버스에서 내려 작은 차로 올라가야 한다. 타보르 산은 평지 위에 왕릉이나 고분처럼 우뚝 솟아 있는 것이 특징이다. 바로 이집트와 다마스쿠스로 이어지는 고속도로와 여러 지방도로가 마주치는 요점에 있어 예로부터 전략적으로도 매우 중요한 곳이다. 타보르 산을 오르다 보면 주변의 아름다운 전경이 눈앞에 펼쳐져 사람들의 탄성을 자아낸다. 5세기경 예로니모는 “경이롭도록 둥글고 높은 산”이라고 극찬한 바 있다. 예례미아 예언자는 타보르 산을 산중의 대표적인 산으로 칭송했다. “내가 살아 있는 한 ─ 그 이름 만군의 주님이신 임금님의 말씀이다. ─ 산들 가운데에서는 타보르 같고 바닷가에서는 카르멜 같은 자가 반드시 쳐들어온다”(예레 46,18). 타보르 산은 구약시대에도 많은 전쟁이 있었던 곳이었다. 일찍이 타보르 산은 이스라엘의 여 판관이었던 드보라의 파견을 받은 바락에 의하여 가나안의 시스라 군대와 병거들이 완패를 당하였던 장소였다. 그렇기 때문에 타보르 산은 유다인들에겐 승리를 주는 동시에 꿈과 성공을 높여 주는 산으로 통해 왔다. 드보라는 타보르 산 부근에서 시스라와 전투를 벌여 군사 1만 명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그때에 드보라가 바락에게 말하였다. ‘자, 일어나시오. 오늘이 바로 주님께서 시스라를 그대의 손에 넘겨주신 날이오. 주님께서 반드시 그대 앞에 서서 나가실 것이오.’ 그리하여 바락이 그 만 명을 거느리고 타보르 산에서 내려갔다. 주님께서는 시스라와 그의 온 병거대와 온 군대를 바락 앞에서 혼란에 빠뜨리셨다. 그러자 시스라는 병거에서 내려 달음질쳐 도망갔다”(판관 4,14-15). 한편 기드온은 자기 형제들에게 화를 입혔던 미디안의 두 왕 제바와 찰문나를 바로 타보르 산에서 처형하기도 했다(판관 8,18-21).사울이 사무엘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돌아갈 때에도 타보르 산이 언급된다. “거기에서 더 가다가 타보르의 참나무에 이르면, 하느님을 예배하러 베텔로 올라가는 세 사람을 만나게 될 것이오. 한 사람은 새끼 염소 세 마리를 끌고, 한 사람은 빵 세 덩이를 들고, 나머지 한 사람은 술 한 부대를 메고 있을 것이오”(1사무 10,3). 또 신약에서 타보르 산은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 등, 제자들과 함께 오르신 후 영광스런 모습으로 변모하신 산으로 생각되는 곳이기도 하다.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만 따로 데리고 높은 산에 오르셨다. 그리고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하셨는데, 그분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그분의 옷은 빛처럼 하얘졌다”(마태 17,1-2).타보르 산이 예수님께서 영광스럽게 변모하신 산으로 전해지는 곳이기에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모친인 헬레나 성녀가 기원후 326년, 정상에 교회를 지었으나 후에 파괴되었다. 다시 지은 교회들도 1187년, 아랍군에 의해 모두 파괴되었다. 현재 타보르 산 정상에는 1921년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의해 세워진 교회가 예수님의 변모를 기념하고 있다. 이 교회는 아마도 이스라엘에서 가장 아름답고 잘 건축된 교회당 중 하나이다. 십자군시대의 성벽과 건물의 유적이 있다. 또한 그리스 정교회 엘리아 기념 교회도 정상에 있어 순례객이 끊이지 않는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cpbc2015.11.24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에서 삶의 진리 향한 길을 찾다예수회 사제이자 불교 철학 박사 이영석 신부,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 한데 엮어 예수처럼 부처처럼 예수처럼 부처처럼 이영석 신부 글 / 성바오로 / 1만 8000원“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마태 5,44)“개에게도 불성(佛性)이 있습니까?”, “무(無)!”(「무문관」 제1칙)예수와 부처가 만났다. 인격적 사랑과 자비를 이야기하는 그리스도교와 비인격적인 지혜의 진리를 강조하는 불교의 만남이다. 「예수처럼 부처처럼」은 시대를 뛰어넘어 최고의 진리를 전해 온 예수와 부처의 가르침을 한데 엮은 책. 예수회 사제이자 불교 철학 박사이기도 한 이영석(서강대 인성교육센터 교수) 신부가 오랜 진리 탐독 끝에 내놓은 서적이다.저자는 “그리스도교와 불교의 문법은 많이 다르다. 하지만 지금 여기서 어떻게 살 것인가에 관한 ‘삶의 기술’에 대해서는 겹치는 부분이 꽤 있다”며 출간 이유를 밝혔다. 책은 성경과 함께 중국 남송의 선승 무문혜개가 지은 불서 「무문관」 내용을 두 축으로 삶의 지혜로의 안내를 시작한다. 쉬운 설명과 재미있는 비유가 읽는 재미를 더한다.“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 갔습니다.” 막달레나는 텅 빈 무덤을 보고 울면서 말하지만, 요한은 빈 무덤 안에 사랑으로 충만한 예수의 삶을 읽는다. 저자는 “예수의 삶은 처음부터 끝까지 그 자체가 비어 있는 삶이었다”고 일러준다. 아무것도 없는 마구간에서부터 텅 빈 돌무덤에 이르기까지. 자기 이권과 의지 모두 버리고 자기 비움의 방식으로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선사한 ‘텅 빈 충만’이라는 것이다.텅 빈 무덤처럼 무문관 제1칙이 말하는 불성이란 그 어디에도 없는 무(無)와 같다. ‘무’는 “있고, 없다”의 사유적 개념이 아닌, 아득히 멀리 떨어진 ‘자유’ 그 자체를 일컫는다. 우리는 자주 “하느님이 계시다, 계시지 않다”에 얽매이는 경우가 많다. 불가의 이 같은 가르침을 빌리자면 진리 자체이신 하느님에 대해 존재 여부를 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저자는 현대인에게 깨달음의 시각을 꾸준히 제시해 준다. 그는 “세상이 예수를 못 보는 까닭은 이별을 이별로만 보기 때문”이라며 이별 속에 가득히 남은 사랑을 바라볼 것을 요구한다. 또 주님께로 아무런 차별 없이 영원한 생명의 식탁에 초대받은 우리에겐 부자, 기업가, 정치인, 서민, 가난한 사람의 구분이 없음을 상기한다. 석가모니가 가르침을 기다리는 대중에게 그저 꽃 한 송이만을 들어 올려 보였듯이 진리를 깨닫는 것은 삶 속에서 피어나는 한 송이 꽃과 같음을 알아야 한다고 전한다.예수는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마태 5,3)라고 했다. 여기서 말한 ‘가난한 마음’은 너와 나를 가르지 않고, 네 것, 내 것을 따로 두지 않으며, 편애하지 않는다는 무심(無心) 무변(無邊) 무애(無)의 마음이다.원인 없는 결과가 없듯이 누군가 고통과 죽임을 당하고 있는데 무조건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이는 예수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유와 같다. 그러나 우리는 많은 자리에서 “제가 그런 게 아닌데요?” 하고 회피하며 산다.유무(有無), 상하(上下), 빈부(貧富)는 인간이 만든 득실의 세계다. 저자는 진리를 저 높은 곳, 멀리 있는 사유의 영역으로 여기지 말고, 진정한 믿음을 향해 몸담고 있던 틀을 부수고 나오는 용기를 지니길 청한다.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11.14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16) 미투(#Me Too)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영적 치유](//cpbc.co.kr/CMS/newspaper/2018/03/rc/714811_1.0_titleImage_1.jpg)
[이광호 소장의 식별력과 책임의 성교육] (16) 미투(#Me Too)보다 먼저 필요한 것은 영적 치유 지난해 12월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열린 성폭행 피해자를 위한 시위 참가자들에게 판매된 #Me Too 배지. 【CNS】 성적인 악은 원죄에 그 뿌리를 두고 있는 중대 문제다. 뱀으로 비유되는 악이 개입된 영적 사건이기 때문에 인간의 방식으로 해결되기 어렵다. 현재 한국 사회의 미투 운동은 대중의 관심과 분노를 촉발시켜서 정의를 이루는 느낌을 주지만, 이는 용서와 화해로 가는 길이 아니다. 성적 범죄는 성에 대한 철저한 영적 이해를 바탕으로 예수님의 모범을 따라야 한다. 미투 운동을 영적 치유 차원에서 살펴보고자 한다. 성문제의 표층적 차원재벌 2세 남성이 가난한 여성을 사랑해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주는 드라마는 IMF 이후 항상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하지만 이는 드라마 속 환상일 뿐이다. 현실에선 여성이 농락당하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현실에서 재벌 2세인 것처럼 가장하고 나타난 남성은 여성을 성적으로 착취하고, 사업을 물려받으려면 능력을 입증해야 하는데 자금이 부족하다는 말로 여성에게 대출을 받아오게 한다. 여성은 시키는 대로 다 하고나서 깊은 상처를 받는다. 여성은 피해자, 남성은 가해자다. 반대로 남성이 피해자, 여성이 가해자가 될 수 있다. 재판을 하면 가해자는 처벌을 받는다. 마땅히 그래야 한다. 그러나 이런 해결로는 피해자의 상처가 치유되지 않는다.성문제의 영적 차원이 현상의 이면에 자리한 영적 뿌리를 볼 수 있어야 한다. 남녀를 불문하고 피해자가 당하는 이유는 의존성이 강한 영을 품고 있기 때문인데, 이 영은 성적·금전적 착취를 하는 사람에게 끌리게 한다. 본질은 ‘당하게 하는 영’과 ‘가하는 영’이다. 이 영이 내 안에 나로 위장해 있기 때문에 거짓 자아인 영이 느끼는 감정을 내 것이라고 착각하며 따라가 버린다. 남녀 내면에 각각 숨어 있는 이 영들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서 처음에는 잘 지내는 척하다가, 결국 한쪽은 착취를 당하게 또 한쪽은 착취를 가하게 하면서 상처를 입히고 원한과 분노를 키우게 한다. 표층에서는 가해자의 악만 보이지만, 영적 심층에서는 피해자 안에 있는 악도 드러난다. 당하게 하는 악인데, 이 악은 사람을 피폐하게 한다. 악이 가해자에게만이 아니라, 피해자에게도 있다는 사실은 영적인 진실이다. 이 둘이 맞물릴 때 죄가 형성된다. 따라서 진정한 회복을 위해서는 영적 접근이 필수적이다.성적 상처에 대한 영적 치유란?상처를 입은 사람에게 진정한 치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그 안에 있는 의존과 망상의 영, 억울하게 당하도록 끌어가는 악을 없애줘야 한다. 이 악을 제거하거나 그 힘을 약화시켜주지 않고 가해자만 처벌하면, 피해자는 고통에서 벗어나기가 힘들다.예수님은 가해자와 피해자를 갈라서 판단하지 않으셨다. 군중에게는 “너희 가운데 죄 없는 자가 먼저 저 여자에게 돌을 던져라”(요한 8,7)고 하셨고, 여인에게는 “나도 너를 단죄하지 않는다. 가거라. 그리고 이제부터 다시는 죄짓지 마라”(요한 8:11)고 하셨다.예수님은 두 악을 각각 지적하여 쫓아내셨다. 진단의 깊이에 따라 처방이 달라지는 것이다. 예수님은 군중들에게는 그들 안의 악을 인식시키고 치유하셔서 살인 무기인 돌을 내려놓게 하셨다. 여인에게는 더 깊은 치유를 베풀어주셔서 악을 분리해주셨다. 현재 벌어지는 미투와 예수님 치유 사이의 극명한 차이가 바로 여기에 있다. 악의 양쪽 매듭을 동시에 풀어버리는 진정한 영적 치유로 예수님만이 하실 수 있다.왜 분노 표출보다 영적 치유가 우선인가?간음했다는 이유로 잡혀온 여인과 현재 미투를 외치는 이들의 공통 입장은 뭘까? 상황은 달라 보이지만 성경속 군중과 깊은 상처를 준 성폭력 가해자에게 분노하고 있다는 점일 것이다. 영적으로 보면 이는 피해당한 사람 안의 당하게 하는 악이 보는 시각이다. 때문에 예수님은 이 시선에 결코 동의하지 않으신다. 그래서 예수님은 여인의 딱한 처지에는 공감했지만, 여인의 분노 표출은 허락하지 않으셨다. 이 분노는 여인의 감정인 것 같지만, 여인 안에 숨어 있는 영이 느끼는 감정이기 때문에 이것이 군중을 향해 표출될 경우, 군중 안의 악이 또 터져나와 여인의 상처를 더 깊게 한다. 악의 증식 원리를 잘 아시는 예수님은 악의 입은 다 틀어막고, 군중과 여인 모두에게 근원적 치유를 해주셨다. 이것이 진정한 돌봄이고 사랑이다. 그런데 지금의 미투는 방송을 통해서 공개되고, 이후 엄청난 2차 가해를 불러들인다. 겉으로는 사람이 싸우는 것 같지만 영적 차원으로 보면 악이 상처를 주고받으면서 억울함을 가중시키는 악순환이다. ‘악이 악을 부르는 현상’을 동양에서는 주화입마(走火入魔, 화를 뛰어다니게 해서 악마를 불러들인다)라고 했는데, 이는 개인과 사회에 치명적인 해를 입힐 수 있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예수님은 서로 맞물려 있는 양쪽의 악을 침묵시켜 쫓아내고, 사람을 치유해주셨다.악을 악으로 갚지 않아야가해자는 극악한 죄인이지만 예수님은 이 사람을 위해서도 피를 흘리셨고, 피해자를 사랑하는 만큼 가해자도 사랑하신다. 성폭력 고소와 공개적인 미투는 그 성격이 다르다. 죄인이라 해서 그를 대중재판이라는 불구덩이에 넣을 권리가 우리에게는 없다.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스스로 복수할 생각을 하지 말고 하느님의 진노에 맡기고, 악에 굴복당하지 말고 선으로 악을 굴복시키십시오”(로마 12:17-21 참조)라는 말씀을 깊이 새겨야 한다.치유의 영적 원리를 이해하는 신자들이 늘어나고, 이를 실천하여 미투의 방향이 용서로 바뀌기를 소망한다. 이 운동의 창설자 타라나 버크도 미투 운동의 변질을 우려하며 “어떤 이들은 치유와 정의를 얻기 위해 가해자의 이름을 크게 소리치고 싶어한다. 이를 이해하지만 이보다 더 긴 여정과 나아가야 할 길이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고 했다. 미투가 일치로 가야 함을 강조한 말이다. <사랑과 책임 연구소 소장> 백영민2018.03.21
![[성경 속 도시] (74) 아라랏 산](//cpbc.co.kr/CMS/newspaper/2015/12/rc/611364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74) 아라랏 산노아의 방주가 도착했다는 전설의 산 다니엘 매클라이즈 작, ‘노아의 제사’. 아라랏 산은 터키에서 가장 높은 산으로 이란과 아르메니아와의 접경 지대에 위치한 사화산이다. 이 산이 유명한 것은 노아의 방주가 대홍수 끝에 표류하다가 도착한 곳이라는 전설 때문이기도 하다. 아라랏 산은 지난 수백 년간 ‘노아의 방주’ 목격설이 있었고, 현재까지도 노아의 방주와 그 유물을 찾기 위해 탐험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중세 탐험가인 마르코 폴로는 아라랏 산에 노아의 방주가 존재한다고 말하기도 했다. 20세기에 들어서도 탐험가들은 아라랏 산에서 발견한 나무, 그 밖의 자재들을 노아 방주의 일부분으로 주장하고 있고, 미국·러시아 비행사들이 찍은 항공사진을 근거로 아라랏 산 노아 방주의 존재를 최근까지 주장하고 있다. 최근에도 노아의 방주에 대한 구체적인 여러 증언이 나오고 있다. 성경에서도 여러 번 이 지역에 대한 언급이 나온다. 창세기의 홍수 사건은 인간의 범죄로 말미암은 하느님의 심판과, 방주를 통해 악한 세상에서 의인 노아를 구원해주신 하느님의 은혜를 말하고 있다. 홍수 때 노아의 방주가 정박했던 산이 바로 아라랏 산이다. “그리하여 일곱째 달 열이렛날에 방주가 아라랏 산 위에 내려앉았다”(창세 8,4). 성경은 노아가 포도밭을 가꾸는 첫 사람이 됐다고 한다. “농부인 노아는 포도밭을 가꾸는 첫 사람이 되었다”(창세 9,20). 노아의 방주가 내려앉았다는 아라랏 산의 주변 지역은 포도의 원산지이기도 하다. 그리고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니네베에 머무르고 있을 때 그의 두 아들이 산헤립을 죽이고 이 지방으로 도망했다. “그런데 그가 그의 신 니스록의 신전에서 예배드리고 있을 때, 그의 두 아들 아드람멜렉과 사르에체르가 그를 칼로 쳐 죽이고는 아라랏 땅으로 도망쳤다. 그의 아들 에사르 하똔이 그 뒤를 이어 임금이 되었다”(2열왕 19,37). 이 이야기는 토빗기(토빗 1,21)나 이사야 예언서(이사 37,38)에도 잘 기록돼 있다. 예레미야 예언자가 바빌론에 관해 예언할 때에도 이 지역의 언급이 나온다. “그 땅에 깃발을 세우고 민족들 가운데에서 나팔을 불어라. 바빌론을 칠 민족들을 동원하고 그를 칠 왕국들 곧 아라랏과 민니와 아스크나즈를 불러들여라. 그를 칠 사령관을 임명하고 날개를 곤두세운 메뚜기 떼 같은 군마를 몰고 와라”(예레 51,27). 그런데 대부분의 학자는 탐험가들의 아라랏 산에 대한 발견과 시도에 대해 회의적이다. 왜냐하면, 성경의 아라랏 산이 오늘의 지명 아라랏 산과 일치하고 있느냐는 논쟁이 현재에도 진행되고 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아라랏 산의 정확한 위치뿐 아니라 노아와 홍수 사건을 통해 드러난 하느님 구원과 사랑이 성경의 중요한 메시지라는 것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12.28
![[밭에 숨겨진 보물] (1) 예수 그리스도](//cpbc.co.kr/CMS/newspaper/2017/02/rc/670955_1.0_titleImage_1.jpg)
[밭에 숨겨진 보물] (1) 예수 그리스도그리스도 이해의 지평 넓혀 줄 신앙 서적 좋은 책은 인생을 바꾼다. 두려워하는 자에게 용기를, 절망하는 이에게 희망을 준다. 때론 시대의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 되기도 한다. 밭에 숨겨진 보물 마냥 세상에 빛을 보지 못한 좋은 책들이 많다. ‘밭에 숨겨진 보물’ 꼭지를 통해, 알려지지 않았거나 잊힌 책들 가운데 우리 신앙과 인생의 훌륭한 길잡이가 될 책들을 소개한다. 예수 그리스도 예수 그리스도안젤로 아마토 추기경 지음 / 김관희 신부 옮김 / 수원가톨릭대학교출판부 / 2만 5000원교황청 시성성 장관인 안젤로 아마토 추기경이 교황청립 살레시오대학교 교의신학 교수로 재직할 때 저술한 책이다. 그리스도론 신학 서적 중에서 압권으로 평가받으며 ‘그리스도론 교과서’로 불린다. 그리스도론에 관한 많은 학설과 이론을 종합해 간결하면서도 명쾌하게 풀이해 놓았기 때문이다. 우리말 번역 또한 깔끔하다. 이해하기 난해한 중문과 복문이 거의 없다. ‘예수 그리스도’라는 말을 처음 듣고 읽는 독자라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신학 서적이라기보다 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인가를 소개하는 입문서에 가깝다. 하지만 읽다 보면 예수 그리스도의 부름에 자연스럽게 응답하도록 이끄는 신앙 서적이다. 그래서 아마토 추기경은 이 책을 마음으로 읽을 것을 권한다.책은 크게 다섯 부(部)로 구성돼 있다. 제1부는 현대 사상 안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모습을 객관적 시각으로 그려내고 있다. 그러면서 교회 밖에서 본 그리스도론, 특히 비 그리스도교 종교에서 본 예수 재해석의 심각성을 지적한다. 한 마디로 ‘예수 흉내 내기’만 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 종교는 예수를 하느님의 예언자로, 인류의 위대한 스승으로, 순교자로만 인식할 뿐 예수의 핵심적인 구원 사건을 고려하지 않기에 예수 그리스도의 원초적인 모습에서 상당히 빗겨나 있다고 비판한다. 이와 함께 현대에 나타난 우주론적ㆍ초월적ㆍ역사적ㆍ종말론적 그리스도론과 토착화 신학에 드러난 신학적 견해를 폭넓게 소개하며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객관적 시각으로 분석한다.제2부는 구약성경과 신약성경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리스도의 신원을 담았다. 무엇보다 그리스도론의 핵심인 ‘예수 부활’에 넓은 이해를 전해준다. 부활에 관한 예수의 자의식부터 이를 신앙으로 수용하는 초대 교회의 모습까지 신앙의 정통성과 통일성을 유지하면서 성경 속 그리스도의 모습을 그려낸다.제3부는 가장 중요한 핵심 글이다. 성경의 그리스도론에서 교의적인 그리스도론으로 발전되는 과정을 담고 있다. 동방교회를 전공한 아마토 추기경은 동방교회 관점에서 그리스도론을 풍부히 서술하고 있다. 여느 그리스도론 책에서 볼 수 없는 백미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부터 제2차 니케아 공의회(787년)까지 개최된 일곱 보편 공의회에서 그리스도께 대한 교의 즉 신앙 고백을 어떻게 발전시켜 가는지를 서술하고 있다.아마토 추기경은 “공의회에서 선언된 규정들이 성경과 부합하고, 전체 그리스도교 공동체에 의해서 받아들여지고 실천되었으며, 교회의 전례 생활과 선교사명에 상응한다는 사실은 그 정식들이 오늘날 그리스도 신비를 새롭게 이해하는 데 꼭 필요한 필수적인 원리가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평가했다.제4ㆍ5부는 교의신학적 그리스도론을 다루고 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사건이 삼위일체적, 그리스도론적, 구원론적 사건임을 고백하고, 전 인류에게 미치는 구원의 보편적 가치를 정리해 놓았다. 역자인 수원가톨릭대학교 교수 김관희(미리내천주성삼성직수도회) 신부는 “다른 책에서 볼 수 없는 그리스도론 자료들이 많이 수록돼 있다”고 소개했다. 김 신부는 “이탈리아어로 된 원서 자체가 쉽게 쓰였지만, 독자들이 잘 이해하고 쉽게 해득할 수 있도록 우리말 문장을 고치고 또 고쳤다”며 “많은 신자가 이 책을 읽고 그리스도 이해의 지평을 더욱 넓혀가길 바란다”고 말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김지항2017.02.08
![[하느님과 트윗을] (26) 영원한 삶은 어떤 것일까요](//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0805_1.0_titleImage_1.jpg)
[하느님과 트윗을] (26) 영원한 삶은 어떤 것일까요기쁘고 행복하게 하느님 안에 사는 삶 하느님과 트윗을 문 : 천국으로 가는 길은 어떤 길인지요.답 : 천국이 어떤 곳인지 그려보는 것은 매우 어렵지만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은 천국에 관해 말할 때 생명, 빛, 평화, 혼인 잔치, 아버지의 집, 천상의 예루살렘, 낙원과 같은 다채로운 이미지를 사용했습니다. 천국은 ‘생명이 넘치는 곳’이고 ‘영원한 곳’입니다. 영원한 삶은 성인들과 천사들과 더불어 기쁘고 평화롭고 행복하게 하느님과 영원히 사는 것을 뜻합니다. 따라서 영원한 삶은 여러분이 예수님을 믿기로 하고 세례를 받을 때 지상에서 시작합니다. 천국에서만 우리는 하느님과 우리 자신을 완전히 알 수 있고 하느님이 우리에게 의도하셨던 모든 것이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천국에 갈 때 비로소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서 마련하신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통하지 않고서는 아무도 아버지께 갈 수 없다”(요한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를 것을 선택할 때 세례를 받지만, 세례성사가 자동으로 ‘천국행 티켓’이 되지는 않습니다. 예수님을 선택한 것이 우리의 행위에서 드러나야 합니다. 문 : 지옥은 어떤 곳인가요. 답 : 지옥은 의식적이고 결정적으로 하느님을 사랑하지 않기로 한 사람들이 가는 곳입니다. 따라서 지옥은 하느님의 사랑에서 영원히 분리된 것이며, 교만과 이기심으로 인한 고통과 불행에 갇힌 곳입니다. 예수님은 지옥을 ‘꺼지지 않는 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은 ‘고통스러운 불’입니다. 최후의 심판 후에 모든 영혼에 육신이 주어지는데, 지옥에 있는 이는 육체적인 고통도 겪을 것입니다. 하지만 가장 극심한 지옥의 고통은 하느님과 다시는 접촉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지옥에 있는 모든 사람은 자기만을 신경 쓰기 때문에 그곳은 지독하게 외로운 곳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하느님께 돌아설 것을 끊임없이 촉구하시며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 하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숨을 거둘 때까지 죄를 뉘우치고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흘러들어오도록 할 기회는 있습니다. 그 기회를 받아들일 때 우리는 ‘은총의 상태에서’ 즉 하느님과의 친교의 상태에서 죽지만 이를 거부하는 것은 바로 생명을 거스르는 선택으로 지옥의 영원한 죽음을 맞을 것입니다.문 : 연옥을 두려워해야 하나요. 답 : 연옥은 지옥에 가기에는 너무나 선하지만, 천국에 가기에는 충분하지 않은 사람들을 위한 곳이라고 어느 사제는 말했습니다. 연옥은 하느님의 무한하신 연민과 자비가 존재하는 곳으로 천국의 대기실이라는 준비 단계이며 자기 자신과 살아온 삶의 여정을 마주 보아야 하는 거울과 같습니다. 따라서 연옥을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하느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아 천국에 있기를 원하십니다. 죄의 결과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은 누구든지 죽으면 곧바로 천국에 갈 수 있지만 이미 용서받은 죄의 결과에 계속 짓눌리고 있다면 우리는 정화를 위해 연옥에 갑니다. 하느님과 불완전함은 자석의 양극처럼 서로에게 반대되기 때문에 정화가 반드시 필요합니다. 따라서 하느님 앞에 가기 전에 죄의 결과로부터 깨끗해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에서 겪는 고통은 사후에 우리를 정화하고 천국을 준비시키는 데 도움이 됩니다. 정화하는 고통을 경험한 후에야 우리는 두려움 없이, 아무것도 숨길 필요 없이 예수님 사랑의 눈길에 응답해 천국에서 영원히 행복할 수 있을 것입니다. 정리=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평화신문2017.11.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