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교구 원로사목자 박상래 신부 선종 4일 대흥동주교좌성당에서 장례미사 대전교구 원로사목자이자 신학자인 박상래(야고보) 신부가 1일 오전 대전성모병원에서 폐렴으로 선종했다. 향년 82세. 고인의 장례미사는 4일 오전 10시 교구 대흥동주교좌성당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봉헌돼며, 유해는 대전가톨릭대 성직자묘역인 하늘묘원에 안장된다. 1935년 충남 논산의 순교자 집안에서 태어난 박 신부는 1954년 성신대학(현 가톨릭대 신학대)에 입학해 수학하던 중 1961년 프랑스로 유학을 떠나 리옹가톨릭대를 졸업하고 1963년 12월 리옹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다. 이어 독일 본대학과 프라이부르크대학, 이탈리아 로마 성서대학에서 공부했다. 10년간 유학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박 신부는 가톨릭대 신학부에서 16년을 교수로 살았다. 성서신학을 전공했지만, 신약학뿐 아니라 그리스도론도 강의했다. 특히 제2차 바티칸공의회의 신학을 한국교회에 전하는 역할을 했으며, 해방신학에도 조예가 깊었다. 번역서인 「예수 그리스도」「예수와 역사」「나자렛 예수」 등과 저서인 「성서와 그 주변 이야기」등을 통해 신학 연구와 발전에 이바지했다. 1974년 설립된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신학적 비전을 제공했으며, 이로 인해 정의구현전국사제단의 배후자로 지목돼 당시 중앙정보부에 끌려가 조사를 받았다. 조사 후유증으로 1년간 요양했지만, 평생을 하느님 정의와 백성들의 민주주의를 위해 투신했다. 본당 사목도 논산 부창동본당과 신평ㆍ도고 본당 등 3개 본당에서 10여 년밖에 하지 못했다. 1997년부터 8년간 긴 요양 끝에 2005년 1월에 은퇴했고, 은퇴 이후에도 지병인 심장병으로 줄곧 심장박동제어기를 달고 살았다. 제자인 황종렬(레오) 박사는 “올해 늦은 봄에 찾아뵈었을 때도 눈빛이나 말씀이 살아 있으셨는데 이렇게 하느님 품으로 가시니 황망하기 이를 데 없다”며 “평생을 성경과 예수님 안에서 충실하게 머무르셨고, 진리에 대한 믿음을 꺾지 않으셨으며, 주위 사제들, 평신도들과 함께 다 같이 시대를 읽으려고 노력하셨던 분이셨다”고 추모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cpbc2016.10.03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cpbc.co.kr/CMS/newspaper/2016/06/rc/640451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루카 1,31)예수님 탄생 예고, 구원의 역사 1막 1장 프라 안젤리코 작 ‘주님 탄생 예고’, 1433년, 코르토나 디오체사노 박물관, 이탈리아 밀라노. 예수님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탄생에 대한 예고로부터 시작합니다. 마르코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에 대한 언급 없이 예수님의 공생활에서 시작합니다. 요한 복음서 역시 짧게 예수님의 탄생을 언급하고 있지만, 구체적인 탄생에 대한 예고는 찾을 수 없습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탄생에 대한 직접적인 예고 대신 예수님의 족보를 먼저 전합니다(마태 1,1-17). 그렇기에 마태오 복음의 족보는 예수님을 구약성경에서부터 예언된 메시아로서, 그리고 왕들의 계보를 잇는 인물로서 소개합니다.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을 언급하면서 간략하게 지난 과거의 탄생 예고를 언급합니다(마태 1,18-23). 그리고 마리아가 성령으로 잉태한 사건을 이미 구약성경의 예언에서 시작되었다고 전합니다. “보십시오,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이사 7,14). 예수님은 마태오 복음서 안에서 구약에서 예언된 메시아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와 관련해서 가장 풍부한 이야기를 전해 주는 것은 루카 복음서입니다. 루카 복음서는 예수님의 탄생 예고와 함께 요한 세례자의 출생과 관련된 내용을 함께 전하면서 짜임새 있게 구성해 놓았습니다.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고 예수님의 탄생 예고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수님의 탄생 순으로 이야기를 전개합니다. 그리고 그 안에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극적인 만남 또한 전해줍니다. 마치 탄생 예고에서부터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의 모든 사건을 준비하는 모습으로 표현됩니다. “그는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부모의 마음을 자녀에게 돌리고, 순종하지 않는 자들은 의인들의 생각을 받아들이게 하여,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할 것이다”(루카 1,17). 가브리엘 천사의 이 표현은 앞으로 복음서 안에서 보게 될 요한 세례자의 역할이기도 합니다. 즈카르야에게 전해진 요한의 출생 예고는 엘리사벳의 잉태로 확인됩니다. 같은 가브리엘 천사는 그 후 여섯째 달에 마리아를 찾아갑니다. “보라, 이제 네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터이니 그 이름을 예수라 하여라. 그분께서는 큰 인물이 되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아드님이라 불리실 것이다”(루카 1,31-32). 우리는 지금도 예수님의 탄생 예고를 3월 25일에 기념합니다. 예수 성탄 대축일(12월 25일)로부터 아홉 달을 거꾸로 계산한 날입니다. 이런 전례의 의미를 본다면, 교회는 이미 가브리엘의 탄생 예고 때에 마리아가 잉태하셨음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답을 듣고서야 마리아에게서 떠나갑니다. 한 가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예수님의 탄생 예고에서 보게 되는 마리아의 모습입니다. 천사의 발현에 두려워하고 처음에는 그 말씀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거부하지만, 결국 하느님의 뜻을 기쁘게 받아들이는 모습은 구약성경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예언자들의 소명에 관한 내용과 상당히 비슷합니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동시에 마리아를 부르시는, 마리아의 소명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탄생의 예고와 요한 세례자의 출생 사이에는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이 소개됩니다. 두 여인의 만남은 여전히 지금도 성모송과 마리아의 노래로 우리에게 남아 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향한 하느님의 업적을 찬양하고 그것을 받아들인 마리아를 칭송하는 이 만남을 매일 기억하고 있는 셈입니다. 그렇기에 믿기 힘든 하느님의 은총을 체험한 두 여인은 예수의 드라마를 시작하는, 그리고 지금도 기억하도록 하는 가장 큰 조력자입니다. 예수님의 탄생 예고는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립니다. 단순히 먼저 탄생을 알려 준다는 의미가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과 약속이 이 세상 안에서 실현되기 시작했음을 알려 주는, 구원 역사를 위한 하나의 사건입니다. 탄생 예고는 미리 앞으로 태어날 아기 예수의 정체성을 알려 줍니다. 예수님은 임마누엘, 주님으로 백성들을 구원으로 이끌 것입니다. 그리고 하느님은 이 구원 역사를 구체적인 인물들을 통해 시작하십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 <가톨릭대 성심교정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6.06.14
![[생활 속의 복음] 꼴찌가 됩시다](//cpbc.co.kr/CMS/newspaper/2016/08/rc/649036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꼴찌가 됩시다연중 제21주일 (루카 13,22-30) 주수욱 신부(서울 대방동본당 주임) 세상은 2등을 기억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모두 1등을 하려고 죽도록 노력합니다. 그러나 아무도 1등을 하지 못합니다. 아이들은 유치원에 들어가기 전부터 치열한 경쟁에 들어갑니다. 평생 경쟁하지만 정작 한 사람도 그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합니다. 하지만 인류 역사 이래로 현대처럼 교육의 기회가 흘러넘치게 제공된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어찌 된 일인지 모두 절망하고 고통스러워합니다. 인간의 성숙함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오로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생존 투쟁의 장이 돼버리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경쟁에서 밀려난 사람들의 절망감은 이루 다 말할 것도 없습니다. 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참된 행복을 모르고 살아갑니다. 꿈과 이상이 사라지고 더 많은 소유라는 신기루를 좇으며 불나방처럼 죽어가는 사회가 돼버렸습니다. 한국 사회뿐 아니라 온 세계가 희망을 잃고 망연자실한 채 주저앉아 버렸습니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이 안고 있는 깊은 문제입니다.흙수저 예수님그런데 그리스도 신자들은 십자가 밑에 모입니다. 십자가는 꼴찌임을 강력하게 가리키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오셔서 꼴찌가 되셨습니다. 하느님은 흙수저를 문 채 마구간에서 인간으로 태어났습니다. 고향 나자렛은 변두리 세계입니다. 거기서 자라고 변두리 사람의 억양과 말투로, 말씀도 단순하게만 하셨습니다. 그분은 수도 예루살렘이 아니라, 갈릴래아 호숫가를 중심으로 활동하셨습니다. 주로 만난 사람들은 병자, 귀신들린 사람, 배고픈 사람들, 죄인들이었습니다. 그리고 정치범으로 몰려서 사형수로 죽었습니다. 흙수저를 끝까지 문 채로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느님 아버지께서 세상을 너무나 사랑하셔서 구원하기 위해서 아드님을 보내셨는데, 남들이 부러워하는 금수저 대신 흙수저를 안긴 것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기록하듯이, 하느님께서는 흙수저를 문 사람들을 항상 우선하여 선택하십니다.요한 복음은 예수님의 십자가 수난과 죽음을 ‘영광의 때’라고 매우 강조합니다. 카나 혼인잔치에서는 성모 마리아에게 서운하게 대답하면서 ‘저의 때가 아직 오지 않았다’라고 모호한 말씀을 하기도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 하느님 아버지께서 능력을 발휘하시어 아드님도 부활시키셨고, 인간을 모두 부활에 초대하셨기 때문에 하느님 영광의 때를 작정하고 준비하신 것입니다.여종으로 자처하신 성모 마리아 성모 마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분은 하느님을 찬송하고 기뻐하면서 자신을 비천한 여종으로 자처하셨습니다. 가난하게 사는 것을 기꺼이 선택하신 성모 마리아입니다. 마리아는 동정녀로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성자를 자신의 태중에 모셨습니다. 능력을 발휘하시는 하느님께서 성모님 안에서 큰일을 하시고, 미천한 이를 한없이 끌어올리십니다. 성모 승천이 이것을 말해줍니다.당시 유다인 사회에서 기득권을 누리던 바오로 사도는 모든 것을 잃었지만 미련이 없었습니다. 그것들을 쓰레기로 여길 정도였습니다.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면서 모든 것을 포기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부활의 삶을 시작했기 때문입니다.십자가 밑에 모이는 교회는 2000년 역사 속에서 항상 꼴찌가 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많은 성인 성녀들을 기리는 아름다운 전통을 간직하고 있는 교회는 이 꼴찌들이 첫째가 되었음을 선포합니다. 성경을 충실하게 읽지 않는 교회는 이 복음 정신의 핵심을 놓치고 유혹에 빠지고 맙니다. 예수님께서 광야의 유혹을 물리치신 것과 달리 유혹에 빠진 교회는 정체성을 잃어버리고 맙니다.한국 순교자들이 그 당시 사회에서 분명히 꼴찌의 길을 가셨습니다. 이제는 우리가 꼴찌가 돼야 할 차례입니다. 적당히 타협해서는 안 됩니다. 확신이 있어야 합니다. 성모님에게 성자를 잉태시키신 성령께서는 십자가 죽음과 부활도 이끄셨습니다. 그렇게 성령께서 이끄셔야 우리도 그 복음적 꼴찌가 되고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진정으로 세워집니다. 평화신문2016.08.16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2.제1장 말씀의 빛 안에서 ① (8~11항)](//cpbc.co.kr/CMS/newspaper/2016/04/rc/632518_1.1_titleImage_1.jpg)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2.제1장 말씀의 빛 안에서 ① (8~11항)하느님 창조의 신비, 가정에서 볼 수 있다「사랑의 기쁨」 제1장(8~30항)은 ‘말씀의 빛 안에서’라는 제목을 달고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에서 제목 그대로 ‘성경 말씀에 비추어서’ 혼인과 가정의 본질과 특징을 고찰한다. 혼인과 가정에 관한 성경 말씀은 그냥 거룩한 말씀이 아니다. 성경에는 가정에 관한 이야기들, 탄생과 사랑 이야기들, 가정의 위기에 관한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그 이야기들은 추상적이지 않고 구체적이다. 마치 우리네 가정들처럼. 그런데 모든 가정의 이야기들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슬기로운 사람이 반석 위에 지은 집과 어리석은 사람이 모래 위에 지은 집이다(마태 7,24-27 참조).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 비유가 “가족 구성원들의 자유로운 행동이 빚어낸 가정들의 상황”(8항)을 상징한다고 말한다. 반석 위에 지은 집과 모래 위에 지은 집의 비유는 두 가지 측면에서 한번쯤 성찰할 필요가 있다. 하나는 우리 집, 우리 가정은 반석 위에 지은 ‘든든한 집’인가 아니면 모래 위에 지은 ‘부실한 집’인가 하는 것이다. 든든한 집이라면 비바람이 몰아치고 강물이 밀려들어도, 곧 온갖 어려움이 닥쳐도 붕괴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부실한 집이라면 조금만 비바람이 불고 강물이 밀려오면 금방 무너지고 말 것이다. 다른 하나는 반석 위에 집을 짓는 슬기로운 사람은 어떤 사람이며 그 반석이란 무엇인가 하는 것이다. 이런 물음들과 관련, 프란치스코 교황은 시편 128장 1-6절에 나오는 한 가정의 풍경을 예로 들면서 이야기를 진행한다(8항). 독자들은 꼭 이 시편 구절을 한번 정독해 보시길 바란다. 집은 기초를 놓고 짓듯이 가정은 남자와 여자의 결합으로 출발한다.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그러므로 남자는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아내와 결합하여, 둘이 한몸이 된다”(창세 2,24). 둘이 결합해 한 몸을 이루는 이 한 쌍의 남녀는 어떤 존재인가? 교황은 창세기 첫 장의 말씀으로 이를 설명한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 하느님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로 그들을 창조하셨다”(창세 1,27). 프란치스코 교황은 창세기 이 구절에서 하느님의 모습이 ‘남자와 여자’라는 쌍을 가리키고 있음을 주목한다(10항). 남자와 여자가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됐다고 해서 하느님이 남성과 여성을 다 가지고 있음을 뜻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하느님은 남성 여성으로 규정할 수 없는 초월적인 분이시기 때문이다. 이런 친절한 설명과 함께 교황은 핵심을 건드린다. “하느님의 초월은 보존되지만, 하느님께서 창조주이신 만큼, 한 쌍의 인간이 이루는 결실(자녀)은 하느님의 창조적 행위의 효과적인 ‘모습’, 즉 볼 수 있는 표징”이라는 것이다(10항). 그래서 교황은 이렇게 밝힌다. “부부의 결실을 맺는 관계는 하느님 자신의 신비를 이해하고 묘사하기 위한 ‘모습’이 됩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그리스도교의 시각에서, 하느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사랑의 영으로 관조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은 사랑의 친교이고, 가정은 그 생생한 반영입니다”(11항). 가정은 그래서 하느님의 존재 자체와 무관하지 않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여기서 선대 교황 성 요한 바오로 2세가 교황직 초기인 1979년 라틴 아메리카 주교회의에 참석하러 멕시코 푸에블라를 방문했을 때 그곳에서 행한 미사 강론 말씀을 인용한다. “당신의 가장 깊은 신비에 있어서 우리의 하느님은 고독이 아니라 하나의 가정입니다. 하느님은 당신 안에 아버지 됨과 아들 됨 그리고 가정의 본질인 사랑을 지니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이 신적 가정에서, 그 사랑은 성령입니다”(11항). 여기에서 우리 가정의 현실과 관련해 다음과 같이 성찰할 수 있다. 우리 가정은 반석 위의 가정인가 아니면 모래 위의 가정인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부부는 하느님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는가? 우리 부부는 하느님의 모습을 보듯이 서로 그렇게 대하는가? 우리 가정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께서 누리시는 사랑의 친교를 반영하고 있는가?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6.04.27
 나병 환자와 중풍 병자를 고치심(5,12-26)](//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6089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19) 나병 환자와 중풍 병자를 고치심(5,12-26)나병 환자의 고백과 믿음에 화답하시다 지금은 흔적만 남아 있는 카파르나움은 예수님 시대에는 세관까지 있던 도시였고 ‘예수님의 도시’라고 할 정도로 예수님 활동의 주 무대였다. 뒤의 새 건물은 시몬 베드로의 집터 위에 세워진 카파르나움 성당.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나병 환자를 고치심(5,12-16)장소가 어디인지는 확실치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어느 한 고을에 계실 때”(5,12)라고 루카는 전합니다. 같은 내용을 다루고 있는 마태오복음(8,1-4)과 마르코복음(1,40-45)을 참고할 때 이 일이 일어난 지역은 갈릴래아의 어느 곳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날에는 그렇지 않지만 나병(한센병)은 예전에는 천형(天刑)으로 여겨졌습니다. 이스라엘에서는 나병을 비롯한 악성 피부병에 걸린 이들은 부정한 이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일반인들이 사는 동네에서 함께 살지 못했으며, 그들의 집에 들어갈 수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동네 밖에서 따로 살아야 했으며, 사람들을 만나게 되면 옷을 찢고 머리를 풀고 콧수염을 가리고 ‘부정한 사람이오’ ‘부정한 사람이오’ 하고 외쳐야 했습니다.(레위 13,45-46 참조) 나병 환자들은 죄인으로 여겨졌을 뿐 아니라 소외된 이들의 전형이었습니다. 그런 나병 환자가 다가와 “예수님을 보자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려 … 주님, 주님께서는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습니다”(5,12) 하고 청합니다. 얼굴을 땅에 대고 엎드렸다는 것은 나병에 걸린 사람으로서 부정한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는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 앞에 엎드려 ‘주님 제게서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라고 말한 시몬 베드로의 태도를 상기시킵니다.(5,8 참조)나병 환자가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부르면서 ‘하고자 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다’고 청한 것은 예수님이 바로 주님이시며 주님의 능력을 지니신 분임을 확신한다는 신뢰의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말에 예수님께서는 손을 내밀어 그에게 대시고는 “내가 하고자 하니 깨끗하게 되어라” 하십니다.(5,13) 예수님께서는 말씀 한마디로도 얼마든지 나병 환자를 낫게 하실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손을 내밀어 불결과 부정의 표상인 나병 환자에게 대십니다. 손을 댄다는 것, 접촉한다는 것은 받아들임의 표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단순히 나병 환자의 병을 고쳐주신 것만이 아니라 불경하다고 부정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의 통념을, 고정 관념을 불식시키신 것입니다.예수님의 말씀에 “곧 나병이 가셨다”(5,13)고 루카는 기록합니다. 우리말 성경에는 ‘나병이 그에게서 떠나갔다’를 순화시켜 ‘나병이 가셨다’로 번역해 놓았습니다. ‘떠나갔다’고 나병을 의인화한 표현은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병이 그 사람에게서 붙어 있었을 때 그 나병 환자는 사람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늘 억눌리고 짓밟혀 지내야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나병이 떠나가게 하심으로써 그 사람을 나병의 억눌림으로부터 풀어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나병 환자를 치유하시고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고 다만 사제에게 보이고 모세가 명령한 대로 예물을 바치라고 분부십니다. 나병을 비롯한 악성 피부병에 걸린 환자는 깨끗해지면 사제에게 확인을 받고 부정에서 벗어나는 정결예식을 치르는 것이 모세가 정한 율법 규정입니다.(레위 14장 1-31) 예수님의 이 분부는 ‘나는 율법을 폐지하러 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완성하러 왔다’(마태 5,18) 하신 예수님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루카는 예수님의 분부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에 관한 소문이 퍼져나가 “많은 군중이 말씀도 듣고 병도 고치려고 모여왔다”면서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5,15-16)고 기록합니다. 중풍 병자를 고치심(5,17-26)마태오복음(9,1)과 마르코복음(2,1)을 참고할 때 이 일화는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에서 있었던 것이 분명합니다. 등장인물이 조금 다릅니다. 군중이나 환자만이 아니라 갈릴래아와 유다는 물론 예루살렘에서 온 바리사이와 율법 교사(율법 학자)까지도 등장합니다. 예수님은 이들 앞에서 가르치기도 하고 병을 고쳐 주기도 하고 계셨습니다. 루카는 예수님의 치유가 “주님의 힘”에 의한 것임을 분명히 합니다.(5,17)그때에 남자 몇 사람이 중풍 병자를 평상에 누인 채 데리고 옵니다. 군중이 많아서 예수님 가까이에 갈 수 없게 되자 지붕으로 올라가 기와를 벗겨 내고 환자를 예수님께 내려보냅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환자에게 “사람아,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 하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은 ‘저 사람이 누구인데 하느님을 모독하는 말을 하는가?’ 하고 의아하게 생각하기 시작합니다. 죄를 용서하는 권한은 오로지 하느님께만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생각을 아신 예수님께서는 “이제 사람의 아들이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있음을 너희가 알게 해주겠다” 하시며 중풍 병자에게 “일어나 네 평상을 가지고 집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5,18-23)이 대목에서 특별히 두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하나는 중풍 병자를 데리고 온 사람들의 믿음입니다. 루카는 그들이 병자의 친인척인지 아니면 이웃인지 언급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들의 태도는 중풍 병자가 낫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을 뿐 아니라 예수님께서 능히 그러실 수 있다는 확고한 미음을 지니고 있음을 보여줍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지붕까지 뚫고 병자를 예수님께 내려보낼 까닭이 없을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예수님께서는 자신에게 병을 고치는 능력뿐 아니라 죄를 용서하는 권한까지 있음을 말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며 죄를 용서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 자리에 있던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게 시빗거리가 됩니다. 죄의 용서는 오로지 하느님만이 하실 수 있다는 유다인들의 사고에 비춰볼 때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한 것은 어찌 보면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의 완고함을 꾸짖는 듯 들립니다. 여기서 생각할 게 있습니다. 루카는 이미 앞에서 “예수님께서는 주님의 힘으로 병을 고쳐 주기도 하셨다”(5,17)고 전합니다.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도 예수님의 치유 행위가 주님의 힘으로 이뤄지고 있음을 묵시적으로 인정하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실제로 당시에는 질병이 하느님의 벌이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질병의 치유 또한 하느님의 일로 여기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그들은 죄를 용서받았다는 예수님 말씀에는 하느님을 모독한다며 이상하게 여기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를 통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들의 이중적 잣대를 지적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요? 생각해봅시다 1) 예수님께서는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습니다.(5,16) 사람들이 나에 관한 좋은 소문을 듣고 나에게 몰려온다면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요? 2)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5,19) 중풍 병자를 데려온 사람들에게는 예수님께서 고쳐주시리라는 믿음이 있었을 뿐 아니라 병자의 치유를 바라는 간절함과 진실함이 있었습니다. 선을 지향하는 믿음, 진실함과 간절함이 결부된 믿음은 하늘을 울립니다. 백영민2017.06.21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3.제1장 말씀의 빛 안에서 ② (12~18항)](//cpbc.co.kr/CMS/newspaper/2016/05/rc/633819_1.1_titleImage_1.jpg)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3.제1장 말씀의 빛 안에서 ② (12~18항)자녀 신앙 농사 망치면 집안 교회 대 끊긴다 혼인과 가정은 남녀가 부부의 인연을 맺음으로써 시작한다. 부부는 서로에게 어떤 존재일까. 프란치스코 교황은 창세기 첫 장을 언급하면서 이렇게 설명한다. “남자는 동물들과 주변 세상 가운데서 느끼는 고독을 덜어줄,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창세 2,18.20)를 애타게 찾고 있다”(12항). 그 짝은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성경의 다른 표현을 인용하면 남자에게 “뜻이 맞는 협조자요 의지할 기둥이 되는”(집회 36,29) 여인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아가의 한 대목도 인용한다. “나의 연인은 나의 것, 나는 그이의 것… 나는 내 연인의 것, 내 연인은 나의 것”(아가 2,16; 6,3). 자기에게 알맞은 협력자, 의지할 기둥, 자기의 고독을 덜어줄 짝을 찾던 남자는 자기와 마찬가지로 하느님의 사랑을 반영하는 여인을 만난다. 이 만남은 두 남녀를 결합하게 하고 한몸이 되게 한다. 이로써 혼인이 이루어지고 새로운 가정이 시작된다. 둘이 한몸이 되게 하는 이 결합은 어떤 결합일까? 교황은 혼인의 결합은 “성적이고 육체적인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사랑 안에서 자발적으로 서로를 내어주는 데에”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 결합으로 두 사람은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마음과 삶의 결합에서, 그리고 마침내는 자녀에게서 한몸이 된다”고 설명한다. “자녀는 유전적으로만이 아니라 영적으로도 부모의 ‘몸’을 나누어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13항). 부부의 결합(혼인)이 지니는 의미를 이같이 제시한 교황은 이제 부부를 토대로 그 자녀가 함께 이루는 가정의 역할과 의미에 대해 계속해서 성경을 인용하면서 고찰한다(14~18항). 부모는 어떤 의미에서 가정의 토대, 기초다. 그렇다면 자녀는 무엇에 비길까. 교황은 자녀들을 “가정의 ‘살아 있는 돌’”(14항)과 같다고 본다. ‘살아 있는 돌’이란 신약 성경 베드로의 첫째 서간에 나오는 표현이다. “여러분도 ‘살아 있는 돌’로서 영적 집을 짓는 데에 쓰이도록 하십시오”(1베드 2,5). 가정에서 살아 있는 돌인 자녀들의 존재는 대대로 이어지는 가정의 연속성에 대한 표시다. 교황은 이어 “집에 모이는 교회”(1코린 16,19 등)라는 성경의 표현에 주목하면서 가족의 생활 공간인 가정은 그 안에 그리스도를 모실 때 집안 교회가 될 수 있다고 밝힌다. 여기서 한 가지 의미 있는 물음을 던질 수 있다. 가정이 집안 교회로서 대를 이어 가면서 연속성을 유지하려면 무엇이 필요할까. 자녀에 대한 신앙 교육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녀를 신앙 안에서 키우는 장소”인 가정에서 “부모는 신앙에 있어서 자녀들의 첫 교사가 된다”면서(16항), “부모는 이 교육에 진지한 책임을 진다”(17항)고 강조한다. 반면에 자녀들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공경하여라”(탈출 20,12)는 계명을 받아들이고 실천해야 한다. 여기서 ‘공경한다’는 표현은 말로만 때우는 것이 아니라(마르 7,11-13 참조), 가정과 사회에 대한 책임을 이행한다는 것과 관련된다고 교황은 설명한다(17항). 그런데 “자녀들은 부모의 소유물이 아니라 자기들이 꾸려가야 할 고유한 삶이 있다”(18항)고 교황은 적시한다. 그리스도를 중심에 모신 가정에서 신앙으로 양육되는 자녀들은 부모에게 순종해야 하지만, 자기 삶에 대한 결정을 내리고 나아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소명에 대한 결정을 내릴 때는 하느님 나라를 위해 부모와 가족을 떠나야 할지도 모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예수님을 이 삶의 모델로 제시한다. 어린 예수는 지상의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을 뿐 아니라(루카 2,51 참조), 열두 살 때는 더 큰 사명을 실행하기 위해 지상의 가족으로부터 떨어져야 한다는 것을 마리아와 요셉에게 알려 주었다(루카 2,48-50 참조).나아가 예수님은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루카 8,21)이라며 가정 안에서도 믿음과 그에 따른 실천이라는 더 깊은 유대의 필요성을 제시하신다. 그뿐 아니다. 예수님은 부모의 돌봄이 필요한 어린이들에게서 오히려 배우라고 말씀하신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 두 가지만 성찰하자. ①우리 가정은 집안 교회인가. 그래서 부모로서 자녀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고, 자녀들의 신앙 교육에 첫 교사 역할을 하고 있는가. ②부모로서 자녀를 소유물, 혹은 내가 하지 못하는 것을 대신해 줄 존재로 여기는가, 아니면 자녀의 인격과 고유한 개성을 존중하는가.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6.05.04
![[평양의 순교자들] ② 홍용호(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7280_1.1_titleImage_1.jpg)
[평양의 순교자들] ② 홍용호(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일제와 공산당 탄압에도 목자 소임 다하다 순교 ‘시련기를 살다간’ 사제였다. 사제품을 받은 시기도, 주교로 임명돼 주교품을 받은 시기도, 해방 이후 주교로 살았던 시기도 시련과 박해와 순교로 점철했다. 그러나 홍용호(프란치스코 보르지아) 주교는 ‘그리스도의 사랑에 빚진 자’로서 시련을 극복하며 지극한 사랑으로 신앙의 모범을 드러냈고 순교의 화관을 썼다. 홍 주교는 1906년 평안남도 평원군 한천면 감6리(현 평남 평원군 화진리) 태생이다. 국운이 기울던 대한제국 시대에 태어나 아버지를 일찍 여의었고, 어머니도 보통학교 5학년 때 잃었다. 이웃 동네로 시집간 누이 홍 마리아와 자형 최남현(다니엘)의 보살핌 속에서 자랐다. 홍 주교의 본적지가 누이의 주소(한천면 감7리 327)로 돼 있는 것도 불우했던 어린 시절을 시사한다. 그런데 누이도 몹시 빈곤했다. 홍 주교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내야 했고, 일찍부터 자립했다. 15세 어린 나이에 서울 용산 예수성심신학교에 입학하면서 사제 성소를 꿈꿨다. 신학생 시절의 홍 주교는 ‘책벌레’로 소문났다. 쉬는 시간조차도 책을 읽는 데 열중했고, 영어를 독학하는 데 몰두했다. 당시 신학교에선 라틴어와 프랑스어 외에 다른 외국어 학습을 못 하게 했는데도 혼자서 영어를 익혔고, 이 같은 선견지명은 훗날 메리놀외방선교회가 평안도 선교를 맡게 되면서 빛난다. 어렵게 신학교 과정을 마친 그는 1933년 5월 25일 평양 관후리주교좌성당에서 서울대목구장 아드리앙 조제프 라리보 주교 주례로 사제품을 받는다. 양기섭, 강영걸 신부에 이어 평양교구 사상 세 번째 본토인(本土人) 사제였다. 평신도 중심의 전교 운동 활성화관후리본당 보좌로 사목을 시작한 홍 신부는 1934년 1월 평양교구에서 월간 「가톨릭 연구」를 창간해 초대 사장을 맡았고, 교리 강좌와 함께 성경과 교회사, 전례 해설 등을 통해 신자들의 신심 생활에 도움을 줬다. 아울러 1934년 ‘평양지목구 가톨릭운동연맹’이 조직되면서 의장에 임명돼 평신도 중심의 전교 운동을 활성화했다. 1936년 3월 지목구장 비서로 서포교구청에 있다가 1936년 8∼12월 영유본당 주임으로 가면서 ‘소년단’을 조직했다. 1937년 1월에는 지목구 출판사를 전담하게 되면서 「가톨릭 연구」를 「가톨릭 조선」으로 개칭한 뒤 사장 겸 주필로서 문서 선교에 앞장섰다. ‘평양교구 봉헌문’을 지어 교구 신자들이 한마음이 돼 기도하도록 한 것도 빼놓을 수 없다. 하지만 1938년 12월 일제가 우리 말과 글에 대한 탄압을 시작하면서 「가톨릭 조선」은 폐간됐다. 어려움 속에서도 1939년 7월 11일 평양지목구가 평양대목구로 승격되는 기쁨을 맛봤지만, 이 기쁨도 잠시였다. 1941년 12월 태평양전쟁의 발발과 함께 미국 메리놀외방선교회 선교사들이 전원 감금되면서 홍 신부 또한 순천경찰서에 잡혀가 3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1942년 2월 평양대목구장 윌리엄 오세아 주교 역시 연금된 상태여서 서울대목구장 노기남 주교가 교구장 서리를 맡았지만, 노 주교 혼자서 서울과 평안도 전역을 관할하기 어려웠다. 노 주교는 석방된 홍 신부에게 평양대목구장 서리 직무대행을 맡겼다. 홍 신부는 대목구 공동체의 자립정신 함양과 함께 성직자 양성의 중요성, 신심 강화 등에 역점을 두고 사목했다. 이어 1943년 3월 9일 제6대 평양대목구장에 임명돼 3월 21일 대목구장으로 착좌했다. 수난은 끝나지 않았다. 1944년 2월 일제에 관후리성당과 대지, 부속건물을 징발당했고, 성당을 허문 자리에는 고사포 부대가 들어섰다. 1944년 4월 주교로 임명됐지만, 그해 6월의 주교 서품 미사는 일제가 관후리성당 대신 내준 개신교 예배당 산정현교회에서 봉헌해야 했다. 박해와 순교의 길을 걷다해방 이후 평양대목구의 5년은 ‘박해와 순교’로 얼룩졌다. 일제에 빼앗겼던 관후리주교좌성당 부지를 되찾아 새로이 대성당을 건축했고, 1947년 9월 1일 정초식을 거행하며 홍 주교가 ‘평화의 모후이신 성모 마리아께 바치는 봉헌문’을 지어 낭독까지 했다. 하지만 공산 정권의 노골적 박해는 계속됐다. 평양시 인민위원회는 1948년 12월 28일 관후리성당 건물을 이듬해 1월 3일까지 정부에 양도하라고 통고했고, 결국은 1949년 12월 몰수해 갔다. 운명의 날은 1949년 5월 14일이다. 이에 앞서 5월 7일 함흥대목구장 겸 덕원자치수도원구장 보니파시오 사우어 주교아빠스의 요청으로 덕원에 갔던 홍 주교는 사우어 주교아빠스로부터 독일인 성직자와 수도자들이 체포되면 자신의 교구를 보살펴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그러나 5월 9일 사우어 주교아빠스가 체포됐고, 홍 주교마저도 5월 14일 서포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첫 종신 서원자 면담을 마치고 평양으로 돌아오던 중 체포되면서 행방불명됐다. 그 뒤 부감목(현 총대리) 김필현 신부가 백방으로 알아본 바에 따르면, 홍 주교는 평양인민교화소 특별 정치범수용소에 갇혀 있었다. 당시 홍 주교와 같이 끌려간 두 소년과 함께 같은 감방에 갇혀 있다 풀려난 김원우(아명 김인국)씨의 증언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을 지내고 1959년 소련으로 돌아간 박길룡 박사의 증언으로는 홍 주교는 평양 수복 직전인 1950년 10월 18일 같은 감옥에 수감돼 있던 조만식(1883∼1950) 선생 등과 함께 북한 내무성 정보처 한규만 소좌 등에 의해 총살됐다. 홍 주교의 나이 44세였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김현진2017.04.05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4.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요한 15,1)](//cpbc.co.kr/CMS/newspaper/2017/02/rc/669917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4. “나는 참포도나무요 나의 아버지는 농부이시다” (요한 15,1) 정미연 작 ‘참포도나무의 예수님’, 2015. 가톨릭굿뉴스 제공 요한복음은 14장부터 17장까지 상당히 긴 예수님의 담화를 전합니다. 사람들은 이 부분을 흔히 ‘고별 담화’라고 부릅니다. 예수님께서 수난과 죽음 이전에, 세상을 떠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남긴 마지막 가르침입니다. 공관 복음은 이 자리에 예수님께서 겟세마니에서 기도하셨다는 내용을 짧게 전하는 반면에 요한은 성령과 세상 그리고 제자들과의 관계에 대한 긴 담화를 소개합니다. 그중에서 요한복음 15장 1-17절은 포도나무의 표상을 통한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를 알려주는 부분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 더 나아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넓은 의미의 제자들에게 권고하는 예수님의 말씀이기도 합니다. “내 안에 머물러라. 나도 너희 안에 머무르겠다.”(요한 15,4)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에서 ‘머물다’는 표현을 자주 사용합니다. 요한복음의 이 표현은 ‘믿음’을 대신하는 표현이기도 합니다. 머물러 있다는 것은 상당히 정적(靜的) 표현이지만 요한에게서 이 표현은 예수님과 맺는 관계의 역동성을 나타냅니다. 단순히 머물러 가만히 있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안에 머무는, 신앙 안에서 살아가는, 예수님의 현존 안에서 삶을 영위하는 것을 표현합니다. 그렇기에 요한은 ‘믿음’보다 더 역동적이면서 생생함을 전하는 의미로 ‘머무름’이란 용어를 사용합니다. “가지가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으면 스스로 열매를 맺을 수 없는 것처럼, 너희도 내 안에 머무르지 않으면 열매를 맺지 못한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안에 머무르는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는다.” 포도나무는 성경에서 하느님과 그의 백성들, 곧 믿는 이들과의 관계를 나타내는 전통적인 표상입니다. 가지가 나무 없이 살아서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가지에 양분이 공급되고 그것을 통해 열매를 맺는 것은 나무에 붙어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일상적인, 자연적인 현상들은 예수님과 믿는 이들의 관계를 표현하는 데 적용됩니다. 포도나무가 그러하듯 예수님과 믿는 이들의 관계는 유기적입니다. 생명을 유지하고 양분을 공급받으며 열매를 맺기 위해 필수적인 모습입니다. 가지는 살아있기 위해 필요한 모든 것들을 나무로부터 받습니다. 예수님은 이제 포도나무와 가지의 관계를 믿음 안에서 설명하십니다.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은 단지 외형적인 모습만이 아니라 내면적인 역동성을 포함합니다. 우리가 살아가고 열매 맺고 생명을 유지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은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있을 때 가능합니다. 또한, 우리가 예수님과 함께 머물러 있다는 것은, 예수님 역시 우리 안에 머물러 계시다는,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믿음은 또한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기서 사랑은 계명을 지키는 것으로 표현됩니다.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무를 것이다.” 이 계명은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는 것으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요한복음 안에서 하느님 아버지의 사랑에서 비롯합니다. 세상을 사랑하시어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은 형제적인 이웃 사랑의 근거가 됩니다.(요한 3,16) 그리고 서로 사랑하는 것을 통해 우리는 예수님 안에 머물러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15장의 의미는 공관 복음에서 표현하는 가장 큰 계명인 ‘하느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사랑하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마르 12,28-34) 요한은 이것을 포도나무의 표상을 통해 설명합니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남기신 마지막 담화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포도나무를 통한 말씀은 한 개인을 향한 가르침이면서 동시에 공동체를 향한 가르침입니다. 공동체의 가장 큰 특성은 사랑입니다. 공동체는 서로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실천하는 것을 통해 지속됩니다. 이 모든 사랑의 근원은 하느님입니다. 믿음은 수직적으로 이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면서 수평적으로 이 사랑을 실천하는 것입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7.02.01
![[미사 풀이] <4>](//cpbc.co.kr/CMS/newspaper/2016/01/rc/616447_1.0_titleImage_1.jpg)
[미사 풀이] III. 미사의 각 부분 나. 말씀 전례(1) 말씀 전례의 중심 부분은 성경에서 뽑은 독서들과 그 사이의 노래들로 이루어집니다. 강론, 신앙고백, 보편 지향 기도는 이 중심 부분을 더 발전시키고 완결짓습니다. 침묵 말씀 전례는 묵상을 북돋우는 방식으로 거행돼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을 모으는 데 방해가 되는 온갖 형태의 조급함을 반드시 피해야 합니다. 또 말씀 전례를 거행하는 동안에 회중의 특성에 맞게 짧은 침묵 시간을 두어야 합니다. 말씀 전례를 시작하기 전, 첫째 독서와 둘째 독서 다음, 그리고 강론 다음에도 알맞게 침묵의 시간을 갖는 것이 좋습니다. 이 침묵 시간에 신자들은 성령의 도우심으로 하느님 말씀을 마음속에 받아들이고 기도로 응답할 준비를 합니다. 성경 독서 성경 독서로 신자들에게 하느님 말씀의 식탁이 마련되고 성경 보물의 곳간이 열립니다. 이 독서를 통해서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고 구속과 구원의 신비를 열어 보이시며 영적 양식을 주십니다. 성경 독서는 신약과 구약의 일관성과 구원 역사의 연계성이 드러나도록 해야 합니다. 또 하느님 말씀을 담고 있는 독서와 화답송을 성경이 아닌 다른 본문으로 대체할 수 없습니다. 회중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 독서는 언제나 독서대에서 선포합니다. 전통에 따라서 성경 독서는 주례자가 아닌 봉사자가 맡습니다. 독서자가 독서를 하고, 주례 사제가 아닌 다른 사제나 부제가 복음을 봉독합니다. 그러나 부제가 없고 사제 혼자 미사를 거행할 때는 주례 사제 자신이 복음을 봉독합니다.복음 봉독은 말씀 전례의 정점입니다. 복음에 특별한 영예를 나타내는 표시로 가장 큰 경의를 보입니다. 그래서 복음 선포를 하도록 정해진 봉사자(주례자가 아닌 사제나 부제)는 강복을 받거나 기도를 바치면서 복음 선포를 준비하고, 신자들은 환호로써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계시며 자신들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고백합니다. 경의 표시로 복음은 서서 듣습니다. 또 「복음집」에도 경의를 표합니다. 화답송 화답송은 독서에서 봉독된 하느님 말씀을 잘 묵상하도록 도와주는 것으로, 말씀 전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부분입니다. 화답송은 각 독서 내용에 어울려야 하며, 원칙적으로 전례 「독서집」에 있는 것을 이용합니다. 그러나 「독서집」에 지정된 시편 대신 「로마 성가집」이나 「소성가집」 혹은 교황청이 승인한 다른 성가집에 실린 고유한 노래와 시편을 쓸 수 있습니다. 한국 교회에서는 주교회의 또는 교구장 주교가 승인한 시편 모음, 따름 노래집, 성가집에 나오는 시편을 노래할 수 있습니다. 그 밖의 다른 시가나 노래는 화답송으로 바칠 수 없습니다. 화답송은 적어도 신자들이 맡는 후렴 부분은 노래로 바치게 돼 있습니다. 시편 선창자는 독서대나 다른 적절한 자리에서 시편 구절을 노래하며 회중 전체는 앉아서 듣습니다. 신자들은 후렴을 바침으로써 화답송에 참여합니다. 복음 환호송 복음 바로 앞에 나오는 독서가 끝나면, 전례 시기에 따른 예식 규정대로 ‘알렐루야’나 그 밖의 노래를 부릅니다. 이 복음 환호송을 통해 신자들은 복음 선포에서 자신들에게 말씀하실 주님을 환영하고 찬양하며 또 그분께 대한 믿음을 고백합니다. 그래서 복음 환호송을 바칠 때는 모두 일어섭니다. 이 노래는 성가대 또는 선창자가 인도하며 필요에 따라 반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따라오는 구절은 성가대나 선창자가 노래합니다. 부속가를 바칠 때는 알렐루야 앞에 바칩니다. 부속가는 부활 주일과 성령 강림 주일에 하는 부속가 외에는 자유롭게 바칠 수 있습니다.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6.01.27

예수 자비하심을 체험하는 지름길은 성체 [특별기고] 교회가 인정하지 않는 성인 유해 공경은 경계해야 성체성사를 통해 그분을 모심으로써, 또 성체 앞에서 묵상하고 조배함으로써 우리는 예수 성심, 그 온유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체험하게 된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우리는 예수성심성월을 보내면서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에 대해 묵상한다. 특히 예수 성심 대축일을 맞이하면서, 고통받는 사람들과 함께 마음 아파하시며 그들을 위로하고 치유하시는 예수님의 자비로운 마음을 생각하게 된다. 예수 성심의 신비 안에서, 여러 인간사와 세상사로 인해 상처받고 아파하는 우리들의 마음이 위로를 받고 치유에 이르게 된다. 예수님의 온유한 마음과 자비 신약성경의 공관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의 도래와 현존에 관한 복음을 선포하며 행하셨던 치유와 구마의 기적이 나온다. 기적을 행하시는 이유는 아픈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을 보고 가엾이 여기시는 그 자비롭고 온유한 마음 때문이다. “고생하며 무거운 짐을 진 너희는 모두 나에게 오너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겠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하니 내 멍에를 메고 나에게 배워라. 그러면 너희가 안식을 얻을 것이다. 정녕 내 멍에는 편하고 내 짐은 가볍다.”(마태 11,28-30) 우리가 성체성사를 통해 그분을 모시고, 또 성체 앞에서 묵상을 하고 조배를 하면서 바로 이러한 예수 성심, 그 온유하고 자비로운 마음을 체험하게 된다. 사랑 때문에 우리를 위해 피 흘리고 상처받으신 예수님의 마음 안에서 우리의 지치고 상처받은 마음이 쉬게 되고 위로와 치유를 받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마음이 부서진 이들에게 가까이 계시고 넋이 짓밟힌 이들을 구원해 주신다”(시편 34,19)는 말씀이 이제 예수 성심 안에서 이뤄진다. 12사도의 유해가 담겼다고 하는 성광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에 소속되어 전국 차원의 활동을 펼치는 여러 전국위원회 중에 신앙교리위원회(위원장 손희송 주교)가 있다. 신앙교리위원회는 국내에서 발생하는 신앙 교리에 관련한 문제들을 다루고 조사하며, 식별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수행한다. 필자는 현재 신앙교리위원회의 위원이자 총무로서 활동하고 있다. 신앙교리위원회에서는 시대와 상황의 필요에 따라 자체적인 문헌을 만들어 발표하기도 하지만, 또 어떤 경우에는 여러 경로의 제보나 보고를 통해 접수된 신앙 교리에 관한 문제점들을 직접 다루게 된다. 그런데 최근 초대 교회 때의 12사도의 유해가 담겼다고 하는 성광 사진이 소셜네트워크(SNS)를 통해 신자들 사이에 유포되고 있다는 보고를 접하게 됐다. 즉, 그저 그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도 치유 은사와 영성이 넘친다고 하는 메시지와 함께 12사도의 유해를 담았다고 하는 성광의 컬러 사진이 카카오톡으로 유포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해 신앙교리위원회 위원들은 회의를 통해 많은 토의를 했으며, 모두가 일치해 이 현상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게 됐다. 이러한 사진과 메시지의 유포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문제들을 제기하기 때문이다. 첫째, 12사도의 유해를 담고 있다고 주장하지만, 어떻게 해서 그러한 유해를 입수하게 됐는지 그 원천적 경위나 출처에 대한 설명이 없다. 역사를 돌이켜보자. 초대 교회부터 중세 시대를 거치기까지 성인 유해 공경이 활발하게 이뤄졌으며, 이를 통해 많은 사람들이 성인 공경의 아름다운 전통에 참여하게 됐다. 하지만 동시에, 과도한 유해 공경과 잘못된 인식으로 말미암아 유해 약탈이 속출하기도 했고, 그로 인해 진짜 유해와 가짜 유해가 구분되지 않고 여러 지역에서 중복해 소장되기도 했다. 그러므로 성인 유해 공경은 교회의 허락을 받아 이뤄져야 한다. 교회의 교도권은, 성인들 특히 순교자의 유해 공경에 있어 확실하고 ‘진정한’ 유해가 아니면 인정할 수 없다는 지침을 역사 안에서 거듭 확인해 왔다. 그런데 오늘날 갑자기 우리나라에서 12사도의 유해를 모두 한데 모은 성광이 출현했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데, 그에 대한 확실한 교회사적 근거가 없다면 이는 신빙성이 매우 떨어지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둘째, 유해 공경은 유해라는 ‘사물’ 자체를 공경하는 것이 아니라 유해를 통해 드러나는 ‘사람’을 공경하는 것이다. 유해는 표지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 유해의 진정성에 관한 문제는 별개로 본다 하더라도, 유해 사진을 보는 것만으로 치유의 은사를 받는다고 말하는 것은 신학적으로 잘못된 주장이다. 이것은 유해라는 ‘사물’ 자체의 기계적이고 자동적인 힘을 믿게끔 유도하는 오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성사가 아니다. 만일 성인 유해라는 표지를 통해 그 신앙의 모범을 본받고자 하는 진실한 마음으로 성인들에 대한 공경이 이뤄지고 성인들의 전구를 간절히 청하게 된다면, 우리는 삼위일체 하느님께서 허락하시는 뜻과 범위에 따라 은총을 입게 될 것이다. 그러므로 유해는 내적 은총을 받기 위한 외적 요인이자 표지 혹은 도구일 뿐이지, 그 자체로 자동적인 은총의 효력을 발생시키지 못한다. 셋째, 은사에 대한 오해가 있다. 은사는 교회의 공동체적 필요와 봉사를 위해 주어지는 것이기에 개인의 영예를 위해 이례적인 은총을 청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성령 안에서 병을 고치는 은사”(1코린 12,9)가 주어질 수도 있지만, 이는 “성령께서 원하시는 대로 각자에게 나누어 주시는 것”(1코린 12,11)이다. 즉, 은사는 인간의 기대와 생각을 뛰어넘어 “바람이 불고 싶은 데로 부는 것처럼”(요한 3,8) 활동하시는 성령께서 직접 주시는 것이다. 사진을 바라보는 것만으로 기계적, 자동적으로 은사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은사의 진실성과 올바른 실천에 관한 판단은 교회 교도권에 속하는 것이다. 넷째, 우리는 성인들에 대한 ‘공경’을 통해 마침내 하느님을 향한 ‘흠숭’에로 나아가야 한다. 즉, 성인들을 향한 ‘공경지례’와 삼위일체 하느님을 향한 ‘흠숭지례’는 분명히 구분돼야 한다. 성인을 공경하는 이유는 먼저 그분들 삶의 모범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찾고 그리스도를 따르는 길을 배우고자 하는 것이고, 다음으로 전구를 통해 우리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해 주시도록 성인들에게 청하는 데에 있다. 하지만 과장된 성인 유해 공경으로 인해 삼위일체 하느님께 드려야 할 찬미와 흠숭이 소홀해지거나 불충실하게 돼서는 안 된다. 또 성인들의 전구를 청하는 것이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무이한 중개자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역할과 신비에 대한 경시와 간과로 이어져서는 안 된다. 진정한 치유를 향하여 오늘날 웰빙과 힐링의 문화가 널리 퍼져 있다. 사실 이는 현대인들의 불안감과 내적 피폐함, 그리고 영적 빈곤함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일반 사회 안에 퍼지고 있는 일부 저급한 웰빙 문화 식의 치유 흐름이 교회 안에도 번져서는 안 될 것이다. 출처가 불분명한 성인 유해를 찾아 헤매며 현혹되는 것은 그만큼 신앙의 미성숙함을 반영하는 것이다. 예수 성심 대축일을 맞아 우리는 미사와 성체강복, 성체조배를 통해 예수 성심을 묵상하며 그 신비 안에 머물러야 한다. 우리는 성체성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직접 모시지 않는가? 이것보다 더 큰 은총과 기적이 어디 있는가? 이 예수성심성월에 우리가 진정 온 마음을 다해 바라보며 깊이 묵상해야 할 대상은 불확실한 유해가 담긴 성광이나 그 사진이 아니라, 바로 그리스도의 몸인 성체가 모셔진 성광과 감실이어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고 자비로운 마음만이 우리에게 진정한 치유를 선사할 것이다. 박준양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주교회의 신앙교리위원회 총무, 교황청 국제신학위원)백영민2017.06.14
 기브온](//cpbc.co.kr/CMS/newspaper/2015/01/rc/552360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35) 기브온약삭빠른 동맹으로 전쟁의 화 면해 예리코 평원. 뒤로는 유다 산악 지형. 출처=「성경 역사 지도」,분도출판사 기브온은 솔로몬이 하느님께 번제물을 드리고 지혜를 선물 받게 된 중요한 장소이기도 했다. “임금은 제사를 드리러 기브온에 갔다. 그곳이 큰 산당이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그 제단 위에서 번제물을 천 마리씩 바치곤 하였다”(1열왕 3,4). 기브온은 기원전 12세기 이후 언덕을 둘러싸고 있었던 거대한 성벽으로 도시를 이뤘다. 이곳에서는 성벽 내 사람들을 위한 거대한 지하 물 저장고가 발견되기도 했다. 고대 가나안에서는 비가 오지 않는 여름에는 특별히 물 저장소를 만들어 주거지 주위에 뒀다. 기원전 8~7세기께 기브온은 유다 왕국의 포도주를 책임지는 도시가 된 것으로 보인다. 이 시대에 발견된 포도주 공장 지역에서는 63개의 포도주 저장용 장소가 있었다. 기브온은 성경 여러 곳에서 언급되지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역시 여호수아와 관련된 대목이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 군대가 아이성을 정복하자 기브온 주민은 여호수아가 예리코와 아이에서 한 일을 듣고서, 이스라엘과 동맹을 맺었다. 그런데 동맹을 맺는 과정에서 기브온 주민들은 이스라엘의 종을 자처하면서 남루한 옷차림으로 먼 고장에서 왔다고 거짓말을 한다. 여호수아는 그들과 평화롭게 지내기로 하고 그들을 살려 준다는 계약을 맺었다. 사흘 후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의 정체를 알게 됐지만 이미 주님의 이름으로 조약을 맺은 백성이었기에 기브온과 전쟁을 할 수는 없었다. 어찌 되었든 기브온과 동맹을 맺은 이스라엘은 중앙 산악지를 장악하게 되어 가나안에 대해 더욱 큰 지배력을 가지게 됐다. 이 소식을 들은 예루살렘 왕 아도니 체덱은 큰 충격을 받는다. 그는 이스라엘에 대항하기 위해 가나안 남쪽 지역의 왕들과 동맹을 맺었다. “그리하여 예루살렘 임금, 헤브론 임금, 야르뭇 임금, 라키스 임금, 에글론 임금, 이렇게 아모리족의 다섯 임금과 그들의 모든 군대가 모여 올라와서, 기브온을 향하여 진을 치고 싸움을 걸었다”(여호 10,5). 기브온 사람들은 길갈 진영으로 여호수아에게 전갈을 보내 도움을 청했다. 계곡 위에 있는 기브온의 지형 탓에 이곳을 공격하려는 연합 군대들은 계속 아래쪽에 진영을 갖췄다. 하지만 여호수아는 길갈에서 야간에 병력을 이동시켰고 공격을 감행했다. “여호수아는 길갈을 떠나 밤새도록 올라가서 그들에게 갑자기 들이닥쳤다”(여호 10.9). 고대 군사 전문가들은 여호수아가 새벽에 아침 해를 등지고 아직 잠들어 있는 군대를 기습적으로 공격해 섬멸했다고 설명하기도 한다. 또 한 번 여호수아의 뛰어난 군사 지략과 결단력이 드러난 전투였던 것이다.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은 가나안의 도시 국가들에게 상당한 두려움을 줬다. 여호수아와 조약을 맺은 것으로 정복 전쟁의 희생을 피한 기브온은 베냐민 지파의 땅이 됐고(여호 18,25), 레위 지파의 도시가 됐다. “또 벤야민 지파에서는 기브온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게바와 거기에 딸린 목초지, 아나톳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알몬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이렇게 네 성읍을 내주었다”(여호 21,17-18).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1.28
 사마리아](//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524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32) 사마리아사마리아인은 왜 사마리아인이 되었나 사마리아는 예수님 시대 이스라엘 중부 지방인 팔레스티나를 가리키던 지역명이다. 북쪽으로는 갈릴래아, 남쪽으로는 유다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서쪽에 지중해가 있고 동쪽으로 요르단 강이 흐른다. 이스라엘이 팔레스타인을 정복했을 당시 사마리아에서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역은 가나안족이 차지하고 있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산지에 발판을 마련했으나 이웃 평원이나 골짜기에 있던 가나안의 핵심적 거점들은 다윗왕 시대에 와서야 차지할 수 있었다. 북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 지역은 요셉의 가문, 곧 에프라임 지파와 므나쎄 분파에게 할당된 곳이었다. 지금의 나불루스 근처에 있던 고대 세켐 지방이 중심지였다. 이 지역은 당시에 도로들의 교차점이자 정치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북이스라엘의 오므리 왕이 세메르에게 은 두 달란트를 주고 매입해 그 산 위에 건축한 성을 산 주인이었던 세메르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는 사마리아 산을 세메르에게서 은 두 탈렌트로 산 뒤, 그 산을 요새로 만들고 자기가 세운 성읍의 이름을, 산의 본래 소유자인 세메르의 이름을 따서 사마리아라고 하였다”(1열왕 16,24). 구약 시대에 열두 부족이 가나안 땅을 분할 소유할 때 에프라임족과 므나쎄족이 후에 사마리아 지방이라 불리게 될 부분을 소유하였다. 사울, 다윗, 솔로몬 등의 시대에 남북은 통일돼 있었다. 그런데 기원전 10세기에 솔로몬 왕이 죽은 뒤 사마리아는 북왕국, 즉 이스라엘 왕국과 남쪽의 유다 왕국과 갈라지게 됐다. 이스라엘 왕국의 첫 수도는 티르자에 있었고 이어 오므리왕 시대에는 당시 세켐에서 사마리아로 옮겨졌다. 북왕국은 대체로 남쪽의 유다 왕국보다 세력이 더 강했으며 경제적으로도 번영을 누렸다. 그러나 그 뒤에 여러 강대국의 입김에 사마리아는 많은 고통을 겪으며 살아야 했다. 잡혼 성행하자 유다인이 사마리아인 멸시본래 사마리아인은 이스라엘 민족의 한 분파였다. 그런데 기원전 722년께 북이스라엘이 아시리아에 점령당한다. 황제였던 사르곤 2세는 주민 3만여 명을 포로로 잡아갔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 중 열 개 지파가 사라지게 됐다. 그리고 사마리아에는 각지에서 몰려온 이민족을 이주시켜 자리 잡고 살도록 하는 식민지 정책으로 잡혼을 실시했다. 사마리아 지역은 종족 간 피가 섞이게 됐고, 그래서 유다인은 사마리아 지역 사람들을 이방인이라 부르고 원수지간처럼 지냈다. 이후 유다인은 사마리아인을 이스라엘 사람으로 보지 않았고 경멸했다. 유다인은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인에게조차 말을 거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을 정도였다(요한 4,8-9). 그러다 기원전 587년 남쪽 유다 왕국도 바빌론에게 멸망하게 된다. 나중에 바빌론에서 본토로 귀환한 유다인이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던 무렵부터 유다인과 사마리아인과의 반목과 대립은 더 심해졌다. 사마리아 사람들이 참된 율법의 수호자로 자처하면서 즈루빠벨 성전 재건을 방해했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사마리아인은 오직 구약 성경의 오경만을 그들의 유일한 경전으로 여기고 세켐이나 그리심 산 중턱 등에 오늘날까지 일부 남아 있다. 현재 사마리아는 요르단의 북서부로 편입돼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12.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