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1/20/XUT1768865670497.jpg)
[신앙단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김성범 에지디오(아동문학가, 작곡가) 김성범 제공 누구나 가슴에 담고 다니는 자기만의 성경 구절이 있을 것이다. 나의 성경 말씀은 마태오 복음 18장 1-5절이다. 특히 3-5절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남들에게도 읊어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아동문학가인 까닭에 조선의 천주교 박해 이야기 「천주의 아이들」은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쓰기 전부터 출판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유박해부터 을해·정해·기해박해까지 어린이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는 무거운 소재이기도 하지만, 신앙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출판사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고를 했고, 출판사를 찾으려드니 가톨릭 계열 출판사들까지 아동문학 창작 라인이 없었다. 어찌 이럴 수가!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하느님 말씀을 들려주는 창작동화는 출판할 곳이 없다고? 출판을 포기할 즈음 ‘청동거울’이란 출판사 대표께서 청소년 소설로 다시 써줄 수 있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야 「천주의 아이들」이 출판될 수 있었다. 어쩌면 동화보다 소설로 태어날 수 있어서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기회를 얻은 듯하다. 고학년 어린이들부터 성인들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책이 되었기 때문이다. 출판이 되었고, 인세를 모두 출판물로 받았다. 하느님 이야기로 소득을 취할 순 없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조선 교회의 박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강의료 역시 전액 책을 구입하였다. 제목처럼 이야기는 어린이가 주인공이고, 어린이가 청년이 되어서 교우촌을 이끌었으나, 결국 관군들에게 다시 쫓겨, 어린이들을 이끌고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 떠나면서 끝을 맺는다. 마지막 구절을 소개해본다. ‘천주의 성모님, 하느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이들입니다. 오늘 당신의 보호 아래 피신하오니 당신 눈동자처럼 아이들을 보호하시어 당신의 품에 아이들을 품어주소서. 어려울 때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모든 위험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하소서.’ 나는 「천주의 아이들」에 가장 걸맞은 성경 구절이며, 나의 가슴에 상감이 되어 새겨진 마태오 복음 18장 3-5절 말씀으로 노래를 지어 책에 QR 코드를 넣었다. 딸과 함께 노래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면 좋겠다. 더불어 절판되지 않을 정도만 오랫동안 함께 읽어주는 책이 되면 좋겠다. “내가 진실로 너희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4) 김성범 에지디오 cpbc2026.01.21

무슬림 사회 속 규제와 검열에도30년간 꺼지지 않은 가톨릭 등불[아시아 가톨릭 미디어를 가다] (3) 헤럴드 말레이시아 헤럴드 편집국이 위치한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사목센터 전경.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다민족·다종교 국가다. 인구 3240만 명 가운데 무슬림이 63.5%다. 불교 신자 18.7%, 그리스도교 신자가 9.1%로 뒤를 잇는다.(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가톨릭을 믿는 이들은 120만 명 남짓으로 추산된다. 무슬림 사회에서 가톨릭 신자는 소수 공동체다. 이같은 현실에서 가톨릭 언론은 단순한 교회 소식지를 넘어선다. 흩어져 살아가는 신자들의 연결 고리이자, 교회 공동체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등불이 돼주기 때문이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사목센터에 자리한 ‘헤럴드(HERALD)’ 말레이시아가 그런 역할을 해왔다. 4개 언어 지면으로 교회 일치 증언 쿠알라룸푸르 시내 한복판, 오래된 사목센터에 자리한 헤럴드 편집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상주 직원은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과 산드라 앤 인바라즈 부편집장을 포함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취재 기자와 소셜미디어 담당자, 그래픽 디자이너, 회계 담당자가 편집국을 지키고 있다. 각 교구나 본당 주요 행사 소식이나 교리교육·성경 해설·외신·논평은 시민 기자단과 분야별 전문가들이 보내오는 기사와 기고로 꾸리고 있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AI 활용이 보편화되면서 사실 확인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며 “이젠 뉴스 전달을 넘어 설명하고 교육하며 신앙을 나누는 기사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럴드는 ‘소식을 알리는 사람’, ‘선포자’란 뜻이다. 1994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창간한 헤럴드는 영어판 격주간지(12개면)로 출발했다. 초대 편집장은 로렌스 앤드류(예수회) 신부였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에서 시작한 헤럴드는 이후 말레이반도(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섬 북부 사바·사라왁주(동말레이시아)까지 독자층을 넓히며 교구 신문을 넘어 말레이시아 가톨릭 공동체 전체를 잇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말레이시아 교회는 말레이반도에 쿠알라룸푸르대교구·페낭교구·말라카-조호르교구가 있으며 동말레이시아 사바주에 코타키나발루대교구·케닝아우교구·산다칸교구, 사라왁주에 쿠칭대교구·미리교구·시부교구 등 9개 교구로 이뤄져 있다. 특히 동말레이시아 지역은 말레이반도보다 가톨릭 공동체 기반이 뚜렷하다. 동말레이시아 일부 교구에는 가톨릭 신자 비율이 10%를 훌쩍 넘는다. 헤럴드는 영어 외에 중국어·타밀어·말레이어(바하사) 담당자를 두고 각 언어 지면을 함께 발행한다. 네 가지 언어를 한 신문에 담아 언어·문화가 다른 신자들이 하나의 교회 안에 있음을 지면으로 증언해 온 셈이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언어는 번역 수단에 그치지 않고 교회 일치를 위한 핵심 도구”라고 강조했다. 헤럴드는 현재 총 32개 면을 발행하고 있으며 영어 19개 면을 중심으로 중국어 3개 면, 타밀어 2개 면, 바하사어 8개 면으로 구성돼 있다. 헤럴드 사무실은 전례주기에 맞춰 꾸민다. 올해 초 사순 시기에 맞춰 보라색 천과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십자가상으로 장식한 사무실 입구. ‘알라’ 용어 사용으로 발행 중지 위기 헤럴드는 2001년 격주간지에서 주간지로 전환했다. 더 자주, 더 꾸준히 신자들에게 교회 가르침을 전하고,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제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해 웹사이트를 개설하며 새로운 독자층과 만날 길을 열었다. 그러나 헤럴드가 걸어온 길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헤럴드가 말레이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신문이 겪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헤럴드 말레이어 지면에 사용했던 ‘알라’(Allah)라는 단어가 발단이었다. 알라는 아랍어로 하느님, 곧 유일신을 뜻한다. 무슬림에게 ‘알라’는 신앙의 핵심 언어이자, 이슬람 공동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도 오래전부터 하느님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사용해왔고, 말레이어 성경과 교회 전통 안에서도 ‘알라’는 하느님을 뜻했다. 창세기 1장 1절 ‘창조주 하느님’을 가리킬 때도, 마태오 복음 27장 46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을 부르짖을 때도 말레이어 성경은 하느님을 알라로 표기해왔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07년 헤럴드 말레이어 지면의 ‘알라’ 사용을 문제 삼았다. 가톨릭 신자들이 쓰는 표현이 무슬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논쟁은 헤럴드의 발행 허가 문제로까지 번졌다. 정기간행물은 정부의 출판 허가를 받아야 했고, 교회는 해마다 이를 갱신해야 했다. 알라 논쟁 직후 헤럴드의 허가 갱신은 지연됐고, 발행 중지 압박도 커졌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는 법적 대응에 나섰고, 당시 편집장 앤드류 신부는 이 사안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무슬림 사회에서 가톨릭 소수 공동체가 홀로 맞서기엔 힘든 싸움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종교와 민족 정체성, 신앙과 출판의 자유가 맞물리며 알라 논쟁은 말레이시아 사회를 넘어 세계 교회의 관심사가 됐다.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은 2009년 가톨릭교회의 손을 들어주며 헤럴드에 ‘알라’ 사용의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판결 직후 일부 성당과 가톨릭 시설을 향한 공격이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항소에 나섰고, 오랜 법정 다툼 끝에 2013년 항소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헤럴드는 결국 ‘알라’를 지면에 쓸 수 없게 됐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이는 헤럴드지에만 해당되는 사안으로 미사나 전례, 성경에서 사용되는 것까지 막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하느님을 부르는 말조차 공적 논쟁과 법적 제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무슬림 사회 속 가톨릭 언론이 처한 현실을 보여줬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인종(Race)·종교(Religion)·왕실(Royalty), 이른바 3R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와 관련된 표현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거나 공공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보고 강하게 검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앙의 자유·인권·사회 정의·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선적 배려 문제는 가톨릭 사회 교리와 직결되는 주제지만, 3R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 헤럴드는 대립의 언어보다는 신중하고 절제된 표현을 택했다. 침묵하지 않되 갈등을 키우지 않고, 교회 가르침을 전하되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균형을 지켜온 것이다. 헤럴드 편집국 직원들. 왼쪽부터 산드라 앤 인바라즈 부편집장, 레이첼 샤르마 행정 담당,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 아만다 마 그래픽 디자이너. 팬데믹·독자 감소에도 교회 가치 실천 코로나19 팬데믹은 헤럴드의 또 다른 위기였다. 2020년 3월 이동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 일상도 멈췄다. 미사가 중단되고 신자들이 성당에 모일 수 없던 시기에 신문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헤럴드는 신문 인쇄를 멈추고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고, 2022년 9월부터 종이신문을 다시 발행했다. 신문 독자가 줄고 제작비, 우편료 부담이 커진 상황에도 헤럴드가 인쇄를 재개한 것은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신자들과 종이신문을 기다리는 이들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튜브를 비롯해 다양한 SNS 플랫폼을 운영하며 여러 세대와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2024년 창간 30주년을 맞은 헤럴드는 나무를 심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강조한 ‘공동의 집 돌봄’에 응답하는 일이었다. 사바주 수카우의 로워 키나바탕간 야생동물보호구역에 나무 100그루를 심고, 신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생태 캠페인을 마련했다. 신문을 만들고 배포하는 일을 넘어 교회가 말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시도였다. 30년 넘게 헤럴드는 신자들이 더 넓은 교회와 연결돼 있음을 알게 하고, 교회가 세상 안에서 무엇을 보고 말해야 하는지 식별하게 하며, 소수자의 자리에서도 신앙의 언어를 잃지 않도록 앞장서왔다. 말레이시아 가톨릭 공동체가 자신들의 언어와 전통을 잃지 않도록 헤럴드는 오늘도 네 개 언어로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박수정 기자 catherine@ 첫 여성 평신도 편집장 - 패트리샤 페레이라 “복음에 뿌리 둔 진실 전한다” 2021년 패트리샤 페레이라(Patricia Pereira) 편집장의 취임은 말레이시아 교회에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헤럴드 창간을 이끌고 27년간 편집장을 맡아온 로렌스 앤드류(Lawrence Andrew, 예수회) 신부 이후 첫 여성 평신도 편집장이기 때문이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자신의 임명에 대해 “교회가 리더십과 식별, 선교 영역에서 평신도, 특히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사였다”고 평가했다. “교회는 성직자만이 이끄는 공동체가 아니니까요. 가톨릭교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각자 역할을 맡아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입니다.” 이는 말레이시아 사회에도 교회가 시대에 발맞춰 포용성을 넓히고, 여성의 역량과 리더십을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취임 후 ‘알리고, 양성하며, 영감을 준다’는 헤럴드 사명을 이어가며 현장 목소리를 더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그는 “신자들의 생생한 삶의 경험, 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전하는 데 더 무게를 두는 변화를 추구했다”며 “스토리텔링의 렌즈가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에서 홍보학을 전공하며 교구와 본당 일을 돕곤 했다. 졸업 후엔 주말마다 헤럴드에서 번역하던 인연이 이어져 1996년 헤럴드 기자 겸 부편집장으로 합류했다. 2006년까지 10년간 기자로 일하다 일반 기업 카피라이터 겸 홍보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정적 이유에 따른 선택이었지만, 성과와 속도를 중시하는 기업에서 여러 고객을 만나며 새로운 소통방식을 배웠다. 그러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요청으로 2017년 다시 교회 현장으로 돌아와 교구 커뮤니케이션 및 대외 협력 업무를 맡았다. “일반 기업과 교회 기관의 가장 큰 차이는 ‘근본적 동기’에 있습니다. 기업은 수익과 성과를 좇지만, 교회는 사명·가치·사목적 돌봄을 지향하죠. 교회는 기업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기업은 교회의 인간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배우며 상호 보완할 수 있습니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가톨릭 언론의 정체성을 “양심을 지닌 저널리즘”이라 설명하며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음에 뿌리를 두고 진실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톨릭 언론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영감을 주며 성찰로 초대해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전문 사도직’”이라고 덧붙였다. 헤럴드 역시 신문 독자 감소와 디지털화라는 세계 언론의 공통된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기가 아닌 새 도약의 기회로 바라봤다. 온라인 입지를 강화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기사를 보도하겠다는 구상이다. “헤럴드가 가톨릭 공동체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를 연결하며, 영감을 불어넣는 ‘신뢰받는 목소리’로 남길 바랍니다. 나아가 사회와도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는 매체가 돼야 합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변화무쌍한 미디어 환경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빛을 비추는 ‘희망과 진실의 등대’로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박수정 기자박수정2026.06.10
![[기톨릭 문화산책]<21>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5)](//cpbc.co.kr/CMS/newspaper/2013/06/rc/457907_1.1_titleImage_1.jpg)
[기톨릭 문화산책]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5)하느님 인간의 결합 상징하는 혼인잔치, 포도주로 기쁨 더해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와 마리아, 사도들은 카나의 혼인 잔치에 초대를 받는다. 한창 잔치가 흥겨운 중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는 아직 잔치가 끝나지도 않았는데 포도주가 떨어진 것을 알고 아들에게 알린다. 이에 예수는 하인에게 정결례에 쓰는 돌로 된 여섯 개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고, 그것을 퍼서 잔치를 주관하는 사람에게 가져가라 말한다. 하인들은 예수가 시키는 대로 했는데, 항아리에 부은 물이 모두 포도주로 변한다. 이 작품은 조토 디 본도네(Giotto di Bondone, 1266~1337)가 예수의 첫 번째 기적인 카나의 혼인 잔치를 그린 것으로, 사실적 묘사가 탁월하다. 일반적으로 교회 미술에서 '최후의 만찬'이나 '카나의 혼인잔치'를 주제로 다룬 장면은 대개 수도원 식당을 장식하기 위해 많이 그려지곤 한다. 그러나 조토가 제작한 '카나의 혼인잔치'는 스크로베니 경당에 그려진 프레스코화 중 한 장면이다. 이 경당은 이탈리아 파도바 갑부였던 엔리코 스크로베니(Enrico Scrovegni)가 고리대금업자였던 아버지 레지날도의 속죄를 지향으로 성모 마리아께 봉헌한 것으로 예수와 성모 마리아와 관련된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장면은 세 단으로 나뉘어 있는데 '카나의 혼인잔치' 장면 위에는 마리아와 결혼하기를 원하는 젊은 구혼자들이 묘사되어 있고, 그 아래에는 죽은 예수를 안고 비탄에 잠겨 있는 마리아가 표현돼 있다. 표현된 인물 형상은 분명하게 구획된 실내 공간에 배치돼 그림의 이야기 전달을 넘어 심리 상태를 섬세하게 드러내고 있다."무엇이든지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요한 2,5) 작품 : '카나의 혼인잔치', 조토 디 본도네 작 (1304~06년께, 이탈리아 파도바 스크로베니 경당) ● 빛의 신비 2단 : 예수님께서 카나에서 첫 기적을 행하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결합(혼인), 믿음, 영광#신랑 예수와 신부 마리아 향연 식탁의 왼쪽에는 예수와 신랑이, 화면 중앙에는 왕비처럼 위엄있게 신부가, 그 옆에는 마리아가 앉아 있다. 잔치에 포도주가 떨어지자 마리아는 아들에게 혼주를 도와 달라고 요청한다. 비록 예수는 아직 자신의 때가 이르지 않았지만, 마리아는 "무엇이든 그가 시키는 대로 하여라" 하고 하인들에게 이른다. 예수는 마리아의 극진한 믿음 때문에 포도주가 떨어진 혼인잔치에 첫 기적을 보인다. 믿음이 물을 포도주로 변화시키는 기적을 만든 것이다. '도와줄 것이라는 확신' 때문이었다. 성모의 얼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그녀의 표정은 믿음으로 가득하다. 왼쪽에서 예수는 물 항아리를 향해 손을 들어 축복하는 동작을 취하고 있다. 이는 마치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모습을 연상시킨다. 하느님은 당신 아들을 많은 사람이 모인 잔치에서 예수가 성자이며 구세주로 이 땅에 왔음을 증거하고 계신다.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2,11). #신성한 결합 카나의 혼인잔치를 주제로 다룬 그림들에서 신랑과 신부를 화면에 중점을 둔 것은 14세기 초부터다. 이전에는 물이 포도주로 변하는 기적에 초점을 둬 물 항아리를 부각하거나, 신랑 신부는 아예 등장하지 않기도 했다. 조토의 작품에서 신부는 그림의 중앙에 마치 황후처럼 앉아 있고, 신랑은 예수의 옆쪽에 깍지를 낀 채 신부와 떨어져 앉아 있다. 하지만 그는 멀리서라도 신부를 뚫어지게 바라보면서 무엇인가 신부에 대한 각오를 다짐하고 있는 듯한 인상이다. 이제 그림은 포도주 기적과 신기한 일에만 관심을 두기보다는 신랑과 신부의 신성한 결합을 부각하고 있다. #'좋은 포도주'를 마시는 사나이 그림 오른쪽 앞 부분에 흰 옷을 입은 하인은 막 새 술독에서 나온 포도주를 항아리에 따른다. 그 뒤에 불룩한 배에 붉은 옷을 입고 서 있는 사람은 포도주 맛에 감복했는지 술잔을 내려놓지 못하고 바라만 본다. "과방장은 포도주가 된 물을 맛보고 그것이 어디에서 났는지 알지 못하였지만, 물을 퍼 간 일꾼들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과방장이 신랑을 불러 그에게 말하였다. '누구든지 먼저 좋은 포도주를 내놓고, 손님들이 취하면 그보다 못한 것을 내놓는데, 지금까지 좋은 포도주를 남겨 두셨군요'"(요한 2,9-10). 성경 내용에 따라 조토는 정결례에 필요한 물을 담기 위해 준비된 여섯 개의 항아리를 원근법적으로 앞줄과 뒷줄의 크기 차이를 통해 공간의 깊이를 나타낸다. 여기서 6이란 숫자는 메시아가 오기 전의 여섯 시기를 상징한다. 아담에서 노아, 노아에서 아브라함, 아브라함에서 다윗, 다윗에서 바빌론 유배, 바빌론 유배에서 요한 세례자, 요한 세례자에서 세상 끝날까지다. 일곱 번째, 즉 완전한 수를 상징하는 시기는 메시아의 도래를 뜻한다.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 성 베르나르도는 '아가에 대한 강론'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신랑으로, 교회를 신부로 보고 그리스도와 인간의 사랑을 설명했다. 그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혼인 관계는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는 것, 즉 우리 영혼이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는 '영적 혼인'으로 봤다. 아가서에서 신랑 신부의 입맞춤(아가 1,1-4)은 성령을 불어넣는 입맞춤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되기를 원하는 열망이다. 그리스도와 교회(마리아)와의 혼인 축가로 생각했다. 교회와 마리아는 동정의 성격과 동시에 하느님을 신랑으로 모시는 혼인 관계를 갖는다. 신랑-신부가 있고, 예수-마리아가 있다. 카나의 혼인잔치는 강생의 신비로, 하느님께서 당신 아들 예수의 육화를 통해 우리와 친히 결합하려는 것이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 혼인의 신비에 관해 말한다. 무의미한 물이 맛좋은 포도주로 변한 것처럼, 하느님은 신랑으로, 우리는 신부처럼 결합하여 우리 인생은 새로운 맛을 얻게 된다. 맛좋은 포도주 때문에 혼인잔치의 기쁨과 흥겨움이 우리 마음과 생활에 영원히 남는다. "보라, 하느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작품 : 이콘 '판토크라토르'(Pantoncrator) (6세기께, 이집트 시나이 성 카타리나 수도원) ●빛의 신비 3단 :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심을 묵상합시다 ●묵상 단어 : 하느님의 나라, 회개, 복음 이콘 '판토크라토르'는 우주의 통치자를 상징한다. 이 이콘은 고대 그리스인들이 입었던 튜닉 상의에 히마티온이라 부르는 일종의 숄을 두르고 있다. 오른손의 세 손가락은 삼위일체를, 나머지 두 손가락은 하늘과 땅의 결합을 상징하면서 인류에게 축복을 주는 자세를 취하고 있다. 왼손에는 보석으로 장식된 성경을 들고 있다. 그리스도의 모습은 무표정하고 엄숙하나 상당히 사실적인데, 이 안에는 이콘 도상학의 중요한 특성인 고요와 관조, 평정, 침묵을 상기시킨다. 오늘날까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이콘으로 인간적이면서 초월적인 인간성을 전지전능한 창조주의 모습으로 기품있는 권위를 극명하게 나타낸다. "저의 임금이신 하느님, 당신을 들어 높입니다. 영영세세 당신 이름을 찬미합니다."(시편 145,21) 윤인복 교수(아기예수의 데레사, 인천가톨릭대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조은일2013.06.11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 기념 전국 선교 신앙대회 이모저모 마리아의 군단, 성모신심 강화 통한 쇄신, 성장 다짐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 기념 전국 선교 신앙대회는 전국의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성모신심으로 한마음이 된 축제의 장이었다. 전국에서 모인 레지오 마리애 단원 1만여 명은 성모님의 하느님에 대한 순명 정신을 본받아 성숙한 단원으로 성장할 것을 다짐했다. 지난 60년간 레지오 마리애 정신을 살아온 신앙 선조를 위해서도 기도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을 기념하는 전국 선교 신앙대회가 광주 염주종합실내체육관에서 개최됐다. 이날 1만여 명의 레지오 마리애 간부와 단원들은 성모신심으로 한국교회 복음화에 투신할 것을 다짐했다. ○…5월 25일 광주 염주종합실내체육관을 가득 메운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의 열기는 30도 가까운 이른 여름 더위보다 더 뜨거웠다. 기념미사에 앞서 벡실리움(레지오 마리애 단기)과 성모상, 기수단이 차례로 입장하자 객석에 있던 단원들이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단장 김칠연)를 시작으로 대구 의덕의 거울 세나뚜스(단장 류해석), 광주 중재자이신 마리아 세나뚜스(단장 김광희) 단원들이 단기를 들고 입장했고, 사회를 맡은 손보영(광주평화방송) 아나운서는 각 세나뚜스와 레지아의 연혁 및 단원 수 등을 차례로 소개했다. 입장식에 이어 하성호(대구 세나뚜스 담당)ㆍ김종대(광주 세나뚜스 담당) 신부가 성모상에 화관을 씌우자, 이를 지켜보던 단원들은 박수를 아끼지 않았다. 김광희(펠릭스, 광주 세나뚜스) 단장의 개회 선언에 이어 단원들은 레지오 마리애의 60년 역사를 다룬 영상 '레지오 마리애의 어제와 오늘'을 감상하며 레지오 마리애가 걸어온 길을 회고했다. 단원들은 엄숙한 가운데 묵주기도와 까떼나를 함께 바쳤다. ○…이어 김희중(광주대교구장) 대주교 주례와 사제단 50여 명 공동 집전으로 60주년 기념 경축미사가 봉헌됐다. 김 대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1950년대 한국 사회와 교회는 전쟁의 폐허에서 삶의 터전을 재건하고자 몸부림쳤다"며 "온 국민이 물질적 정신적 궁핍을 느끼며 마음의 안식처를 찾고 있을 때 레지오 마리애가 도입됐다"고 회고했다. 김 대주교는 이어 "레지오 마리애의 기본 정신은 주님 뜻에 순명하고, 헌신적으로 봉사하는 것"이라고 강조하며, "기도는 우리 생명을 하느님과 연결해주는 탯줄과 같다"면서 레지오 마리애의 기본 무기(기도)를 버리지 말라고 당부했다. 단원들은 60주년 행사를 준비하면서 30개 평의회의 1만 3000여 명 단원이 이어 쓴 신구약 합본과 7개 평의회가 필사한 39권의 레지오 마리애 교본, 30개 평의회가 바친 묵주기도 5200만 단을 예물로 봉헌했다. 단원들의 다짐을 적은 '우리의 다짐'패도 함께 봉헌했다. ○…"세례성사를 받고 하느님의 자녀로서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하느님의 가르침을 알고 싶고, 살고 싶었습니다." 기념미사 후에 열린 기념식, 고령의 나이로 강단에 선 하초자(가타리나, 72, 마산교구 회원동본당)씨가 선교 사례 발표를 마치자 장내에서 박수가 터져 나왔다. 기념식에서는 하씨를 비롯해 단원으로서 복음 선포와 냉담교우 회두에 열성을 쏟은 단원 18명에게 선교대상을 수여했다. 깊은 성모신심으로 오랫동안 레지오 마리애 간부로 활동해온 단원 17명은 공로대상을 받았다. 수상자 중에는 머리카락이 희끗희끗한 어르신 신자가 많아 눈길을 끌었다. 시상식에 앞서 한국평협 최홍준(파비아노) 회장은 축사에서 "한국교회 대표 성모신심 단체이자 평신도단체인 레지오 마리애의 60주년을 축하한다"면서 "한국 가톨릭 신자의 10%를 차지하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새 복음화에 투신해달라"고 요청했다. 콘칠리움 특사로 방한한 패트릭 페이씨는 레지오 마리애 창설자 프랭크 더프의 손때가 묻은 성경을 김희중 대주교에게 전달했다. 광주 세나뚜스는 목포 산정동성당에 있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 기념관에 성경을 보관하기로 했다. 광주 세나뚜스 담당 김종대 신부는 "도입 60주년을 맞아 쇄신의 출발은 성모님의 정신에서 이뤄져야 한다"며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무엇이든 '예'라고 순명하신 성모님의 굳은 믿음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이날 신앙대회에 참석한 대구대교구 최훈(요한 사도, 봉덕본당 은총의 모후 꼬미시움)씨는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며 성모님께 의탁하는 삶을 살아왔다"며 "많은 이들이 성모님의 겸손과 순명 정신을 본받아 행복한 신앙생활을 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오전부터 한복을 차려입고 행사 안내 봉사를 맡은 광주대교구 주화영(베로니카, 화군동본당 '하늘의 문' 쁘레시디움 단장)씨는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기에 신앙인으로서 더 부지런하고 참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광주 세나뚜스 김광희(펠릭스) 단장은 "신앙의 해를 맞아 지난 60년의 세월을 반성하고, 세속주의와 물질주의를 타파하는 노력이 필요하다"면서 "온 세상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데 함께 나아가겠다"고 밝혔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손춘복 명예기자 ▨레지오 마리애는 '마리아의 군단'을 뜻하는 조직으로 고대 로마의 군대 조직인 로마 군단(Legio Romae)에서 가져온 것이다. 레지오 마리애 조직은 단위체인 쁘레시디움(Praesidium), 본당의 평의회 꾸리아(Curia), 꾸리아 대표가 모인 지역평의회 꼬미시움(Comitium), 교구 평의회 레지아(Regia), 국가 평의회인 세나뚜스(Senatus), 중앙 평의회 꼰칠리움 레지오니스(Concilium Legionis)로 구성돼 있다. 콘칠리움 특사- 패트릭 페이(콘칠리움 전 단장) "한국의 수많은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교회의 복음화 사명에 헌신하고 있다는 점이 감격스럽습니다. 한국 레지오 마리애가 아시아 복음화의 큰 도구가 되길 바랍니다." 5월 25일 열린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60주년 기념 전국 선교 신앙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방한한 아일랜드의 콘칠리움 레지오니스 특사 패트릭 페이(Patrick Fay, 55, 콘칠리움 전 단장)씨는 "레지오 마리애가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해 주신 한국의 주교님들과 성직ㆍ수도자들에게 감사하다"며 이같이 말했다. 콘칠리움 레지오니스는 아일랜드 더블린시에 있는 세계중앙평의회로, 레지오 마리애의 최상급 평의회다. 페이씨는 콘칠리움 레지오니스에서 서기를 맡고 있다. 그는 "전 세계의 단원 중에서 한국 레지오 마리애 단원이 10%를 차지한다"며 "한국의 단원들이 수적으로 많은 만큼 다양한 사도직 활동을 이행해주고 있어 감사하다"고 밝혔다. 또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봉사 및 선교단체로서 어르신과 환자 등 어려운 이웃을 위해 봉사하고, 냉담교우들을 회두하는 등 여러 가지 방법으로 신앙인의 모범을 보여주고 있어 기쁘게 생각한다"고 말했다. 페이씨는 "해외에 거주하고 있는 한국교포들이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서 봉사하고 있다는 소식도 들었다"면서 "앞으로도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를 위한 복음화 사명을 수행해 달라"고 요청했다. 콘칠리움 서기 보조 패트릭 오더나우씨와 함께 방한한 페이씨는 5월 28일 출국했다. 페이씨는 한국 레지오 마리애 도입 50주년 행사에도 참석한 바 있다. 이지혜 기자 조은일2013.05.29
![[평화인] 박용만(실바노, 두산그룹 회장) -냉혹한 경영에서도 따뜻함 일구는 '하느님의 사람'](//cpbc.co.kr/CMS/newspaper/2013/04/rc/451030_1.2_titleImage_1.jpg)
[평화인] 박용만(실바노, 두산그룹 회장) -냉혹한 경영에서도 따뜻함 일구는 '하느님의 사람' 두산그룹 박용만(실바노, 59) 회장은 외할머니의 만두를 잊지 못한다. 어린 시절, 그는 외할머니 손에서 자랐다.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던 외할머니는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일미사를 거르는 일이 결코 없었다. 묵주기도는 매일 바쳤다. 외손주가 외할머니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칭얼대도 외할머니는 "이 할미가 하느님 뵈러 갔다 오는 게 내 새끼한테도 좋지"하며 성당으로 향했다. 손주의 손을 떼어놓고 성당에 간 외할머니가 손주를 위해 사온 건 만두였다. 그가 정신없이 만두를 먹다가 "할머니도 하나 먹어"하고 내밀면 외할머니는 먹는 시늉을 하며 만두를 받아뒀다가 손주가 다 먹고 나면 그 만두를 다시 내밀었다. 그는 천주교에 입교한 계기를 묻는 질문에 할머니와 만두를 함께 떠올렸다. 그는 서른이 넘은 나이에 아버지가 되고 나서 성당을 찾아가 세례를 받았다. '강력한 사람들의 따뜻한 집단'을 표방하는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을 십자고상이 걸린 그의 집무실에서 만났다. 두산그룹 박용만 회장은 돌봄과 배려를 바탕으로 한 따뜻한 성과주의를 지향한다. 돌봄과 배려로 성과를 내라 117년 역사로 국내에서 가장 오래된 기업 두산은 '사람이 미래다'라는 핵심가치로 사람 중심의 경영을 해왔다. 두산그룹은 두산중공업, 두산인프라코어, 두산건설 등 산업기반 설비와 기계, 건설 등 인프라 지원사업과 소비재 사업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활약하고 있다. 지난해 4월 2일 두산그룹 회장에 취임한 박 회장은 취임식에서 "따뜻한 성과주의를 통해 인재를 키우겠다"고 밝혔다. 따뜻한 성과주의는 끊임없이 경쟁을 유도해 도태되는 사람을 가차 없이 내보내는 경영이 아니다. "따뜻함의 반대는 무관심, 냉혹입니다. 내부 경쟁이 전혀 없을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구성원들 역량을 정확히 파악해 육성하자는 것이지요." 그는 올해부터 후배에게 얼마나 관심을 갖고 육성했는지를 인사 평가에 반영하기로 했다. 임원이 부하 직원과 소통하기 위해 얼마나 시간을 보냈는지도 포함했다. "100명의 신입사원이 모두 사장까지 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어느 기업이나 조직은 피라미드 형태이기 때문에 올라가면서 누군가는 떠날 수밖에 없지요. 그러나 그 과정을 어떻게 관리하느냐에 따라 조직은 따뜻할 수도 냉혹할 수도 있습니다." 박 회장은 "인간을 도구화해서 경쟁의 결과로만 해석해서는 안 된다"며 "돌봄과 배려를 통해 구성원 역량을 파악해 육성하면 따라오지 못하는 사람은 자신의 역량을 알고 상처받지 않고 회사를 떠나게 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기업운영은 각박하고, 회사생활은 기계적으로 돌아가기 쉽다. 대기업 총괄 CEO로서 업무 스트레스는 만만치 않다. 박 회장은 일하면서 오는 괴로움을 두 가지로 정리했다. "가상의 원을 그려보세요. 그 원은 제 자신이 가진 역량의 한계입니다. 하나는 원 밖의 일을 이루고 싶을 때 괴로움이 오지요. 내 역량을 벗어난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원 안에 있는데 내가 충분히 하지 않아서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후회와 자책으로 이어집니다." 박 회장은 "원 밖에 있는 역량은 내 역량이 아니기 때문에 하느님이 안 주시는 것이라고 생각한다"며 "나를 분명히 알고 나의 한계를 받아들이는 것이 스트레스를 없애는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귀띔했다. 따뜻한 집단의 소통 잘하는 CEO 박 회장은 젊은이들과 소통을 잘하는 CEO다. 신입사원들과의 술자리와 야구를 좋아하고 트위터와 페이스북 SNS를 통해 다양한 이들과 소통을 즐긴다. "회사 가기 싫다"는 직원의 글에는 "내 차 보내줄까?ㅋㅋㅋ"라고 댓글을 단다. 그에게 젊은이들과의 소통 비결을 묻자, 박 회장은 "그들의 다른 점을 인정해주기 때문인 것 같다"고 했다. 이어 박 회장은 "젊은 친구들은 우리 베이비붐 세대가 만들어놓은 풍요롭고 다양한 사회에서 자랐다"며 "좋고 나쁨을 떠나 어떻게 다른지를 보면 이해하기가 쉬워진다"고 말했다. 박 회장은 신입사원뿐 아니라 어린이들을 만나러 서울시 꿈나무마을도 종종 방문한다. 꿈나무마을은 마리아 수녀회가 운영하는 아동복지시설. 박 회장은 재단법인 마리아 수녀회 후원회장이다. 함께 성경공부를 하는 고등학교 친구의 권유로 꿈나무마을을 방문한 게 계기가 됐다. 두산 베어스 선수단은 5년째 꿈나무마을을 방문해 아이들에게 즐거운 시간을 선사하고 있다. "부모가 없는 아이들은 우울할 줄 알았는데 밝고 순진한 모습에 놀랐습니다. 편견이었죠. 집에 돌아왔는데 아이들 얼굴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 인연을 맺기 시작했습니다." 박 회장은 아이들에게 자전거를 태워주고 싶어 직원들과 자전거를 사서 꿈나무마을을 방문하는가 하면, 겨울을 앞두고 아이들에게 옷도 지원해줬다. "아이들의 천진난만하고 밝은 웃음을 지켜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이 사회에 나가 혹시라도 밝은 웃음을 잃어버리지 않을까 싶은 생각에…." 박 회장은 "소외계층에 대한 사회공헌 활동과 사회 환원 등 기업의 사회적 책임은 선택사항이 아닌 시대를 관통하는 조류"라고 강조했다. 그는 고 김수환 추기경의 나눔 정신을 확산하는 재단법인 '바보의 나눔'에 통 큰 기부를 몇 년째 이어가고 있다. 박 회장은 기업을 운영하며 하느님의 지혜와 사랑이 숨어 있음을 발견할 때 즐겁다고 털어놨다. "성경 말씀을 경영에 그대로 투영해야겠다고 생각하면 답답하고 힘들어집니다. 하지 못할 일이 많은 것 같아요. 그러나 사회생활에서 이건 참 옳다고 생각되는 것들을 묵상해보면 하느님 말씀과 다른 게 많지 않아요." 박 회장은 이어 "두산그룹 구성원들이 각자 역량을 잘 갖추고 서로를 돌보는 인간적이고 따뜻한 집단으로 만들어주길 바란다"면서 "사회구성원으로서 책임 있는 당당함을 보여주고, 투명하고 바른 경영을 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경영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해외출장이 없을 때에는 서울 명동성당에서 주일미사를 봉헌하고, 틈틈이 묵상하는 시간을 통해 기도하는 박 회장은 "내게 신앙은 불완전하지만 중요한 삶"이라고 말했다. "제가 신앙인이라고 하면 많은 분이 완벽하기를 기대하십니다. 그러나 저는 매일 실수하고 고해성사도 자주 봅니다. 다만 제가 신앙을 안 가지고 계신 분과 차이가 있다면 고해성사를 할 수 있다는 것 같아요."(웃음) 두산가(家)의 천주교 신앙은 1896년 서울 배오개시장(현 종로4가)에 '박승직 상점'(두산그룹 모태)이라는 면직물 점포를 연 박승직(베드로, 1864~1950) 거상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박 회장은 박승직 거상의 장남인 고 박두병(바오로) 회장과 부인 고 명계춘(데레사) 여사의 7남매 중 5남이다. 남정률 기자 njyul@pbc.co.kr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조은일2013.04.30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2부] 28. 사제 양성 교령](//cpbc.co.kr/CMS/newspaper/2012/07/rc/420867_1.1_titleImage_1.jpg)
[교회사 속 세계 공의회 2부] 28. 사제 양성 교령성소증진, 사제 양성은 모든 그리스도인 책임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제 양성에 관한 교령 「온 교회의 열망(Optatam Totius)」(이하 사제 양성 교령)은 공의회 제4회기 때인 1965년 10월 11일 통과돼(찬성 2318, 반대 3) 10월 28일 제7차 장엄 공개회의에서 공포됐습니다. 보편교회 차원에서 사제 양성에 관한 가르침을 새롭게 제시한 것은 트리엔트공의회(1545~1563) 때인 1563년 성품성사에 관한 교리를 선포하면서 사제 양성 법규를 제시한 이후 400년 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목자 양성에 필요한 일반 원칙을 담고 있는 사제 양성 교령은 신학생들에게 타 종교를 이해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제시한다. 사진은 지난 6월 정교회를 방문해 설명을 듣고 있는 부제들. 교령은 서론에서 민족과 지역에 따라 차이가 크기에 공의회는 사제 양성에 관한 일반 원칙만 제시할 수 있을 뿐이고 "그 지역의 사목적 요구에 언제나 부합하도록" 각 나라나 예법(전례)에 따라 고유한 사제 양성 지침을 각국 주교회의가 제정하고 개정해 사도좌 승인을 받아 적용해 나가야 한다고 강조합니다(1항). 교령은 이어 사제 성소 증진에 관해 언급합니다(2~3항). "성소 증진은 그리스도인 공동체 전체의 의무"(2항)이기에, 하느님 백성 전체가 기도와 보속, 강론과 교육, 성소 기구 등을 통해 다양한 방식으로 성소를 증진하기 위한 노력을 기울여야 합니다. 이렇게 성소 증진을 위한 노력을 강조한 후 교령은 사목자 양성을 직접 목표로 하는 대신학교의 사제 양성에 관한 원칙들을 △학교 규정(4~7항) △영성 교육(8~12항) △교회 학문 과정 개편(13~18항) △사목 교육 증진(19~21항) △계속 교육(22항)으로 나눠 제시합니다. 교령은 대신학교에 관한 규정과 관련, 신학교 장상들과 교수진을 "가장 뛰어난 인재들 가운데서 발탁해야 한다"면서 모든 사제들은 "신학교를 교구의 심장으로 여기고 신학교에 기꺼이 협조하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5항). 성소 심사와 관련해서는 비록 사제가 부족하고 안타깝다 하더라도 언제나 확고한 기준을 적용해, 합당한 사람들을 진급시키고 부적합한 사람을 제때에 다른 임무를 찾아가도록 어버이로서 지도하라고 당부합니다. 또 각 교구가 자기 신학교를 제대로 설립할 수 없는 곳에서는 여러 교구 또는 그 지역이나 국가 전체에 공동 신학교를 설립하고 지원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6~7항). 교령은 영성 교육과 관련, 교회 정신과 순명 교육뿐 아니라 정결 교육과 인간 성숙 그리고 사목 수련까지 포함시키고 있습니다. 영성 교육은 △학문 교육과 사목 교육과 직결돼야 하며 △학생들이 성삼위와 끊임없는 친교를 이루며 살아가도록 이뤄져야 합니다. 또 "교회 관습이 권장하는 신심 행위도 열심히 실천해야 하지만 영성 교육이 신심 행위에 그치거나 종교적 감정만을 키우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8항)고 지적합니다. 신학생들은 사제적 순명과 가난한 생활 방식, 극기 정신의 배양에 각별히 힘써야 하며, "허용되는 것이라도 유익한 것이 아니면 기꺼이 끊어 버리고 십자가에 못박히신 그리스도를 닮아 가야 한다"(9항)고 교령은 적시합니다. 또 독신 생활은 "교회법의 명령일 뿐 아니라 겸손되이 간청해야 할 하느님의 고귀한 선물"이라고 밝히면서 신학생들의 "생활과 활동이 독신 생활 때문에 아무런 지장도 받지 않고, 몸과 마음을 더욱 철저히 다스리고 더욱 완전한 성숙에 이르며, 복음의 참 행복을 더욱 완전히 깨닫게 해야 한다"(10항)고 강조합니다. 인간 성숙과 관련, 신학생들은 특별히 △정신의 안정성 △신중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는 능력 △사건들과 인간들을 정확히 판단하는 방법을 익혀야 할 뿐 아니라, △진실한 마음 △변함없는 정의감 △약속을 지키는 신의 △정중한 행동 △사랑으로 나누는 점잖은 대화를 존중하도록 배워야 합니다(11항). 교령은 또 영성 교육의 더욱 확고한 기반을 마련하고 신학생들이 심사숙고한 후 자유 의사로 성소를 받아들이도록 하는 데 도움이 되고자 적절한 기간을 영성 수련기로 설정하고, 나아가 얼마동안 휴학기 또는 사목 수련기를 두어 사제직 후보자의 적성을 더욱 충분히 살펴보도록 권고합니다(12항). 교회 학문 과정 개편(13~18항)과 관련, 교령은 신학생들이 고등학문을 받을 수 있는 인문 교육과 과학 교육을 받아야 하고 라틴어 지식을 배양해야 할 뿐 아니라 전례 언어와 성경 언어에 대한 지식도 증진해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또 교과 과정에서는 철학과 신학 과목들을 적절히 조화롭게 편성해 신학생들이 그리스도의 신비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도록 해야 하며 특별히 교회 학문은 상당 기간 입문 과정을 계속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입문 과정은 신학생들에게 교회 학문의 의의와 체계, 사목적 목표를 제대로 이해하게 해주고 아울러 신앙을 토대로 평생을 살아갈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철학 연구는 신학생들이 "특히 인간과 세상과 하느님에 대한 건실하고 일관성 있는 지식을 얻도록 이끌어야"(15항) 하고, 신학 과목들은 "신앙의 빛 안에서 교회 교도권의 지도를 받아" 신학생들이 "가톨릭 교리를 깊이 이해하고 자기 영성 생활의 양식으로 삼도록 또 사제 교역에서 이를 선포하고 설명하고 수호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한다"(16항)고 교령은 밝힙니다. 또 성경을 비롯해 교의신학과 윤리신학, 교회법 등 과목들이 어떻게 개편돼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이 밖에도 갈라진 교회와 교회 공동체들을 더욱 충분히 이해하고 교회 일치를 촉진하는 데 기여하도록 이끌고 다른 종교들도 이해하도록 가르쳐야 한다고 교령은 강조합니다. 사목 교육 증진(19~21항)과 관련, 교령은 신학생들이 교리교육, 설교, 전례 거행, 성사집전 등 사목 임무 수행에 직접 필요한 교육뿐 아니라 적절한 대화 교육을 통해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듣고 인간관계의 여러 상황에서 사랑의 정신으로 마음을 열 수 있는 역량을 길러야 한다"(19항)고 지적합니다. 또 교육학, 심리학, 사회학의 도움을 활용해 다양한 형태의 사도직을 증진할 수 있도록 하고 신학교 밖에서의 실습 교육을 통해 이론만이 아니라 실습으로 사도직 수행 방법을 배워야 한다고 제시합니다. 교령은 끝으로 신학교 교육 과정을 마친 뒤에도 계속 교육이 필요함을 지적하면서 이를 위해 각국 주교회의들이 더욱 적합한 수단들을 활용할 것을 주문합니다(22항). 사제 양성 교령이 제시하는 이런 기본 원칙과 그 이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1992년에 발표한 교황권고 「현대의 사제 양성」 등을 토대로, 한국 천주교회는 2001년 교황청 승인을 받아 「한국 사제 양성 지침」을 마련했으며, 이를 토대로 각 대신학교에서는 나름대로 양성 지침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조은일2012.07.17

코린토 (02) : 먼지 뽀얗게 쌓인, 주인 잃은 편지[월간 꿈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8) 기원전 5세기에 건립된 코린토 유적지의 아폴론 신전. 바오로도 이 신전 옆을 걸어 지나갔을 것이다. 바오로가 재판받았던 코린토 유적지의 비마(Bema, 연단)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 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갔다.”(사도 18,12) 1년 6개월 넘게 코린토에 머물며 복음을 선포하던 바오로가 하루아침에 피고발자 신세가 되어 재판정으로 끌려갔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유대인들이 바오로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코린토 총독은 철저히 중립을 지킨다. 유대인들의 고발장을 접수한 후, 간단한 조사만 마치고 바오로를 방면한다. 바오로가 살인이나 방화, 간통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치안을 해치는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고발 사건은 바오로가 코린토를 터나 에페소와 안티오키아로 돌아가는 계기가 된다. 바오로가 공개적으로 조사받았던 자리가 지금도 남아있다. 코린토 성에서 내려와 찾은 코린토 유적지. 사람 사는 모습은 시대를 초월해 모두 비슷했다. 종교 시설 및 목욕탕, 공중 화장실, 상점, 관공서, 술집 터 등이 촘촘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코린토 유적지 광장 중심부에 ‘비마’(Bema)가 있다. 비마는 ‘연단’이라는 뜻으로, 총독이나 지방 자치 단체 관리가 연설하던 곳이다. 원전 희랍어 성경은 이곳을 ‘베마’(βημα)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말 성경은 이 단어를 ‘재판정’ 으로 번역했다. 바오로는 이곳에 끌려와 총독으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가 1년 6개월 동안 쾌락의 도시에 머물며 선포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함과 시기, 질투, 고발, 환난을 각오하고 반드시 말하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더 나아가 당시 코린토에 살던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으며, 어떻게 신앙을 이어나갔을까. 그 내용을 톰 홀랜드(Thomas Holland)가 저서 「도미니언 :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에서 잘 정리하고 있다. 이곳에 그 내용을 옮겨본다. “그리스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코린토스는 용광로 같은 도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해방된 로마 자유민들의 후손이 흘러들어와 그리스인 부자들과 뒤섞였다. 선박왕들이 구두 수선공과 섞여서 살았고, 순회 철학자들이 유대인 학자들과 교류했다. 이런 도시이니만큼 사람들의 정체성은 별로 뿌리 깊지 않았다. 과거 알렉산드로스 시대에, 저명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이 도시에서 커다란 통 속에서 살았고 또 사람들이 보는 데서 자위행위를 함으로써 그 사회의 규범에 대한 경멸을 악명 높게 선언했다. 그러나 바오로는 코린토스 사람들에게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아주 강력한 요구를 하고 나섰다. 부를 자랑하는 도시에서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비천한 자와 가난한 자, 즉 아무것도 아닌 자를 선택했다고 과감하게 선언했다. 최고가 되기 위한 경쟁이 우선인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이 현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 어리석은 자를 선택했고, 강자에게 수치심을 안기기 위해 약자를 선택했다고 선언했다. 노예와 주인의 위계질서를 당연시하는 세계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노예의 죽음을 당하신 마당에 노예와 자유인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스인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바오로는 이 메시지를 끊임없이 설교했지만, 딜레마(서로 다른 습속의 조화)로 고심했다. 그는 세상을 널리 여행했으므로 서로 다른 민족의 습속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바오로의 코린토 선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린토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 아니다. 자연 안에서 유유자적하며 하느님의 섭리를 찬미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가진 전원도시가 아니다. 돈과 명예, 쾌락을 위해 질주하는 인간 군상이 모인 곳이다. 그래서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편지는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집 우편함에 도착한 편지이기도 하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편지를 보면, 당시 코린토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이었다. 코린토 신자들은 자신이 각자 추종하는 사도와 설교자들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여러 파벌로 쪼개진 코린토 교회를 바라보는 바오로 사도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게다가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신자들 사이에 다툼도 잦았다. 고소 고발이 난무했다. 불륜으로 인한 혼인의 정체성 문제, 우상, 교리해석 문제도 심각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호소한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1코린 1,10)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1코린 6,7) 바오로 사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저지르는 타인에 대한 단죄’를 경고한다. 타인을 죄인이라고 함부로 단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윤리적으로 몹쓸 짓을 했어도, 하느님은 그 죄인을 감싸신다. “그리스도께서는(여러분이 죄를 지었다고 단죄하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1코린 8,11-12) 성경에 나타나는 코린토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읽혀지는 것은, 아마도 코린토가 현대사회의 결핍과 모순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코린토로의 여행은 현대사회라는 광장에 외롭게 서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저런 자잘한 심적 고통들을 안고, 코린토 유적지들을 둘러 보았다. 바오로 사도가 조사받았던 비마(연단, 재판정)가 눈에 들어왔다. 연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 보았다. 2000년 전 고발되어 끌려온 바오로 사도의 긴장한 모습,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냐며 웅성거리며 모여드는 군중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유 없는 고난 앞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연단 위에 있는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바오로의 눈에선 확신이 담겨 있었다. 순간, 바오로가 나에게 보낸 편지가 집 우편함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미 반송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편지를 뜯어봐야겠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연단을 내려오려는데, 오른편에 바오로의 말이 희랍어로 새겨진 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삶이 힘들어 지쳐있었을 때 이 편지를 읽었다면 큰 힘이 되었을 텐데…. 내가 아직 뜯지 않아 먼지 뽀얗게 쌓인 그 편지의 말씀,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 4장 17절이었다. “το γαρ παραυτικα ελαφρον της θλιψεως καθ υπερβολην εις υπερβολην αιωνιον βαρος δοξης κατεργαζεται ημιν.”(2코린 4,17)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cpbc2026.05.23

말씀 새기고 희망 수놓다글·그림·피규린으로 복음 표현한 전시 유임봉 작 ‘성모찬송’ 복음을 글과 그림, 피규린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돌에 새기고 화폭에 수놓고 인형으로 빚는 등 다양한 형태로 담은 하느님 말씀을 만날 수 있다. 엠마오 가톨릭말씀새김예술가회 부회장이면서 글아캘리아카데미 대표 유임봉(스테파노) 작가의 개인전 ‘엠마오 - 루카 복음서를 쓰고 새기다’가 서울 명동 갤러리 1898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2019년 마르코 복음서를 주제로 한 ‘에피타’, 2021년 마태오 복음서를 주제로 한 ‘마라나타’에 이은 세 번째 전시로, 복음을 화선지에 필사한 작품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입구 명례글판에 선보였던 작품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려면 칼로 돌을 깎으며 끊임없이 비워내는 과정과 하얀 백지 위에 다양한 붓으로 끊임없이 채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종이에 쓰고(캘리로고스그라피) 돌에 새기는(말씀새김) 과정을 통해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제자에게 오셨듯 주님께서 곁에 와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와 묵상을 관객들과 함께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전시 기간 행사를 통한 수익금은 전액 이주민과 난민들의 인권보호와 권익증진을 위해 의정부교구 사회사목국 ‘의정부 엑소더스’에 기부할 예정이다. 23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김옥순 작 ‘엄마의 휴식’ 희망의 순례자들 같은 기간 갤러리 1898 제1전시실에서는 김옥순(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의 17번째 개인전이 개최된다. ‘희망의 순례자들’을 주제로 복음의 사건 또는 소소한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희망을 마음으로 느끼고 작은 기쁨과 평화를 맛볼 수 있는 장면들을 25개의 화폭에 담았다. 김 수녀는 “우리의 고향인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 위해 순례의 길을 시작할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씨앗 하나를 주셨기에 우리는 절망하는 순간에도 일어설 채비를 한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꾸준히 성화전을 이어오고 있는 김 수녀의 작품은 특유의 파스텔톤 화풍으로 주목받는다. 예쁜 엽서나 동화책에 실릴 법한 화사하고 포근한 색감은 김 수녀만의 비법으로, 시간을 들여 물감을 굳히고 다시 바르는 과정을 반복해 구현한다.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작 ‘마르타와 마리아’ 성경인물 전시회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기획한 제4회 ‘성경인물 전시회’는 대구 바틀로 교육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피규린(figurine)’은 작은 인물상 또는 사람의 형상으로, ‘피규린 비블리크(Figurine Biblique)’는 성경인물, 즉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1964년 스위스의 한 수도원에서 개발해 성경 공부와 묵상, 신앙교육을 위해 보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2004년부터 도입해 확대하고 있다. 올해로 4번째 열리는 전시회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믿음의 여인들’을 주제로 미르얌·유딧·한나·성모 마이라·엘리사벳·하혈병에 걸린 여인·가나안 여인·마르타와 마리아 등을 선보이고 있다. 수녀회 측은 “하느님께서는 당신 구원계획을 실행에 옮기실 때 사람의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고유한 역할을 주셨다”며 “성경 안 여성들의 영적 체험과 믿음,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숙고하고 묵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23일까지 이어진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11.12

서울 WYD 주제가 작곡가 김지윤씨 수상국내외 공모작 433곡 중 선정… 교회 보편성·한국 문화 담겨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공식 주제가 작곡가 김지윤씨가 서울대교구장이자 2027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정순택 대주교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공식 주제가 ‘Confidite, Ego Vici Mundum’의 작곡가 김지윤(프란치스코, 39, 수원교구 호계동본당)씨가 6일 상장을 받았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이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이날 교구청에서 김씨에게 시상했다. ‘Confidite, Ego Vici Mundum’은 2027 서울 WYD 주제 성구인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의 라틴어 구절이다. 앞서 조직위는 서울 WYD 본대회 개막을 꼭 1년 앞둔 3일 대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주제가를 첫 공개했다. 이 곡은 공식 주제가 공모전에 출품된 국내외 433곡(국내 140곡·해외 293곡) 가운데 최종 선정됐다. 433곡은 역대 WYD 공식 주제가 공모전 최다 응모 기록이다. 여러 대륙에서 사제·수도자·평신도와 전문·아마추어 음악인 등 다양한 이들이 작품을 보내왔다. 조직위 음악위원회는 세 차례 심사를 거쳐 후보 5곡을 추렸으며,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의 최종 승인을 거쳐 이 곡을 공식 주제가로 확정했다. 정 대주교는 축사를 통해 “이번 공모전은 2027 서울 WYD를 향한 세계인들의 관심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익명 심사를 통해 우리나라 젊은 작곡가의 곡이 최종 선정돼 더 뜻깊고 기쁘다”고 밝혔다. 이어 “WYD에 참여할 수많은 젊은이가 예수님 말씀, 성경 말씀을 고백하고 그 의미를 담은 주제가를 함께 부를 것”이라며 “용기를 내어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힘을 체험하고 그 은총을 나누면서 세계 청년들이 서로 힘이 돼 주는 데 이 곡이 아주 든든한 매개체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1년 남은 WYD를 준비하면서 주제가 가사처럼 우리가 세상의 빛이며 서로에게 길을 밝혀주는 신앙인임을 기억하자”고 당부했다. 김씨는 “이 곡이 제 작품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서 제게 주신 사랑의 응답이 되면 좋겠다”며 “한국 문화와 교회 보편성을 담아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래가 가리키는 중심은 하느님”이라며 “세계 청년들이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신 주님 말씀을 삶에서 다시 만나고, 순례를 마친 뒤에도 이 곡을 매개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기억하며 용기 있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직위 음악위원장 최호영 신부는 이날 심사평에서 “세계 가톨릭 청년들의 젊은 감각에 맞고, 가사와 선율이 간결하며, 전례의 정통성에 맞으면서도 한국 문화의 전통성을 살리고, 나아가 국제적 공통성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6.08.12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살길 막막](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2/11/boE1770776289119.jpg)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살길 막막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 이어와 최근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전재순씨가 침대에 누워 요양하고 있다. 자영업하는 자녀들도 어려운 처지 매일 성경 쓰며 연령회 봉사 꿈꿔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 그래도 하느님께서 잘 이끌어주시겠죠. 확신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하느님께 맡기는 전재순(데레사, 73)씨. 지난해 말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그는 이제 혼자 힘으로는 거동조차 쉽지 않다. 지난 세월 또한 삶을 긍정하기엔 버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시절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이 마지막 학력이지만, 전씨는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으로 큰 굴곡 없이 살아왔다.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자녀 셋을 낳았고, 부유하진 않았지만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로 전씨 가정은 직격탄을 맞았다. 설상가상 어음 사기까지 당하며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 결국 지금 살고 있는 임대주택 아파트로 쫓기듯 이사해야 했다. 치매를 앓던 친정어머니까지 여섯 식구가 한집에 모여 살았다. “아들은 베란다에서, 딸 둘은 한 방에서, 나머지는 거실에서 뒤엉켜 잤어요. 그래도 가난을 부끄러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속 깊은 아이들이었어요. 그 힘으로 버텼죠.” 최근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전재순씨는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매일 성경쓰기를 하고 있다. 이후 전씨는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2002년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또 한 번 큰 시련이 찾아왔다. 다행이라면 자녀들이 모두 출가할 만큼 성장해 자신의 몸만 돌보면 되는 상황이었다. 전씨는 횟집 주방에서 야간 종업원으로 10년 일했고, 최근 수술 전까지는 요양보호사로 16년간 일했다. 그러나 삶의 무게가 쌓인 탓인지 몸은 하나둘 망가지기 시작했다. 심장 폐동맥협착증 수술을 비롯해 허리 수술, 백내장 수술, 최근에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았다. 이제는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버겁다. 매달 받는 기초연금 34만 원은 월세로 고스란히 나가고, 유족연금 20만 원이 전부다. 오랜 투병으로 모아둔 돈은 남아있지 않다. 자영업을 하던 자녀들 또한 코로나19 이후 빚에 시달리고 있다. 최소 1년간 재활이 필요하지만, 도수치료비 100만 원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중단했다. 전씨는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게 되면 다시 요양보호사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주변에서는 “요양을 받아야 할 사람이 어떻게 요양보호사를 하느냐”며 만류하고 있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된 현실에서도 전씨는 매일 성경을 쓰며 작은 소망을 간직한다. “본당에서 연령회 봉사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심장 수술하고 쉬는 동안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거든요. 죽음을 곁에서 함께하는 건 숭고한 일이잖아요. 그렇게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자녀들을 도와주신다고 들었어요.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제가 겪은 이 지독한 가난을 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후견인 : 서울 중계동본당 김나경(비비안나) 사회사목분과장 “자매님은 60대 초반에 발병한 무릎 통증과 허리 병으로 70대 초반인 현재까지 10여 년 동안 힘겹게 투병 중입니다. 최근 병원치료비뿐 아니라 주거 문제 등 경제적 타격까지 겹쳐 막막한 처지에 있는 전재순씨에게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금계좌 (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전재순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15일부터 21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3)에게 문의 바랍니다.박민규2026.02.11

패션 컨설턴트 장명숙씨, 패션계에서 이름 날리던 그녀 불우 청소년들 어머니로 나서 10여년 그룹홈 아이들 돌봐 "아침에 미사를 드리는데 인터뷰에 괜히 응한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본당 신자들이 평화신문을 보면 뭐라고 하려나…. 미사 때 분심이 생겨서 혼났어요. 제가 독실한 신앙인은 아니거든요.(웃음)" 시원시원한 이목구비에 은발의 쇼커트를 한 패션 컨설턴트 장명숙(안젤라 메리치, 62)씨는 서울 반포성당에서 평일미사를 막 마치고 온 길이었다. 장씨는 35년 전 한국인 최초로 이탈리아 밀라노로 유학 간 1세대로, 국내 유명백화점 패션 고문을 지내며 한국에 이탈리아 명품 '살바토레 페라가모', '막스마라' 등을 소개했다. 1990년대 젊은이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보이런던' '겟 유즈드'도 그의 작품이다. 밀라노 마란고니 복장예술학교에서 무대의상과 스타일리스트를 공부하고 귀국한 그는 교수와 디자이너로 활약했다. 패션시장을 떠난 그는 요즘 하느님과의 연애에 푹 빠져 산다. 장씨는 해마다 주한 이탈리아 대사관에서 열리는 만찬에 참석해 우연히 거룩한 열정의 딸 수도회 수녀들과 맺은 인연으로 10년 넘게 그룹홈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이들은 가정해체와 어려운 형편으로 친부모 곁을 떠난 청소년들이다. 아피(AFI, 국제가톨릭형제회)가 운영하는 서울 신림동 공부방 아이들도 돌본다. 그는 아이들을 만날 때 옷을 최대한 멋지게 차려입는다. 생일과 어린이날에는 최고급 레스토랑에 간다. 아이들이 귀한 대접을 받아야 주눅이 들지 않고, 자존감을 키워줄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장씨는 "젊은 시절 너무 바빠 두 아들에게 좋은 엄마 노릇을 못해 그에 대한 보속으로 아이들을 만난다"고 했다. "한창 일할 때 고민이 많았어요. 높은 연봉을 받으며 내가 추구하는 게 돈인지 명예인지…. 스스로 질문했죠." 1995년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은 충격이었다. 삼풍백화점 명품 패션 고문인 그는 월ㆍ수ㆍ금요일에만 출근했고, 백화점은 목요일에 무너져 내렸다. 함께 일한 동료와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는 100일 동안 사고로 목숨을 잃은 영혼을 위해 기도했다. "그때 생각했어요. 나는 왜 살아남았을까. 하루만 일찍 혹은 하루만 늦게 사고가 났어도…." 그는 2년 전 거룩한 열정의 딸 수도회 수녀들이 선교하는 아프리카 카메룬에서 피그미족 사람들을 만나고 왔다. 넝마 같은 옷을 걸치고 사는 아프리카 사람들을 보고 행복의 기준이 무너졌다. 지금은 아프리카 아이들과 대화하고 싶어 프랑스어를 배운다. 그의 패션과 디자인에 대한 열정은 봉사로 옮겨붙었다. 그는 카메룬에 다녀온 후 계획 없이 산다. 계획은 하늘에서 다 세운다는 섭리에 맡기기로 했다. 그는 밀라노를 오가며 문화 관련 디자인 컨설팅과 강의를 하고 있다. 매일미사를 봉헌하는 요즘 행복하다고 했다. 그는 좋은 곳에서 멋진 옷을 입고 식사할 때, 더 크고 확실하게 십자성호를 긋는다. "너희는 맛보고 눈여겨보아라, 주님께서 얼마나 좋으신지!"(시편 34,9). 그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구절이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조은일2013.07.16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전주교구- 각자가 참으로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863_1.1_titleImage_1.jpg)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전주교구- 각자가 참으로 믿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 우리는 오는 11월 24일 그리스도왕 대축일까지 계속될 신앙의 해를 지내며 '새로운 복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이 해의 근본 취지는 가톨릭교회 안에서 신앙의 열기를 다시 불러일으키고, 나 자신에서 시작해 교회 구성원 하나하나가 참된 믿음의 사람으로서 사도적 확신을 갖고 세상에서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1983년 남미 선교 5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이 대륙의 복음화 500주년을 기념하는 일이 정말 의미를 지니려면 주교 여러분이 각자 소속 사제 및 신자들과 더불어 새로운 각오와 헌신으로 복음화 사명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것은 재복음화가 아니라 새로운 복음화여야 합니다. 열정에서, 방법에서, 그리고 표현에서 새로워져야 합니다"라고 하셨습니다. 지난해 교구 사목평의회에서도 교회와 신앙생활의 현실을 돌아보며, 가장 큰 문제로 하느님 체험 부족을 들었습니다. 신앙이 굳건하지 못해 신흥 종교와 사이비 종교에 쉽게 넘어가기까지 하는 현상을 우려했습니다. 그래서 성경 봉독ㆍ공부ㆍ나눔, 전례 활성화, 소공동체 활성화, 피정, 「가톨릭교회교리서」 연구, 그리고 성직자ㆍ수도자의 소명의식 강화를 그 처방으로 제시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느님 말씀을 잘 지키는 일입니다. 하느님 말씀이 하늘에서 떨어진 씨앗처럼 우리 안에 뿌려진 다음, 우리가 그것을 잘 '지키기'만 하면 그다음부터는 하느님 능력으로 씨앗은 싹이 트고 자라서 열매를 맺게 된다는 것이 주님 가르침입니다.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 말씀을 자신 안에 잘 간직하는 것입니다. 우리 과제는 이 순서를 뒤에서부터 되밟아 살아 계신 주님에게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일입니다. "몸은 하나이지만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몸에 딸린 지체는 많지만, 그 모두가 한 몸을 이루는 것처럼 그리스도의 몸도 그러합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대로 각각 다른 기능을 가진 여러 지체를 우리의 몸에 두셨습니다"(1코린 12,12-18). 제2차 바티칸공의회가 선포한 새로운 교회상을 실제로 구현한 것이 소공동체입니다. 우리 교구도 그동안 활발하게 추진해온 성서운동을 바탕으로 다양한 모양으로 해오던 소공동체를 새로운 각오로 한층 체계를 갖춰 널리 확산시켜야겠습니다. 성서사도직운동을 교구 내 모든 본당과 기관에서 활성화하기 위해 교구 기구를 정비하고 보강해야겠습니다. 미사를 더욱더 활기차고 따뜻한 축제로 만들기 위해 전례에서 각자 맡은 역할을 잘 수행하도록 노력과 정성을 기울여야겠습니다. 하느님을 특별히 체험한 신자들의 증언을 듣고, 이를 널리 알리는 방안을 활용해야겠습니다. 아직 성서 공부와 나눔의 과정을 이수하지 않는 이들은 먼저 하느님 말씀을 통해 깊은 신앙체험을 하게 합니다. 그다음 「가톨릭교회교리서」와 공의회 문헌을 공부합니다. 교구와 다른 지역 성지를 찾아가 신앙 선열들의 정신을 되새깁시다. 구역ㆍ반 개념과 소공동체 개념을 분명히 구분해 사용합시다. 성서사도직과 소공동체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한 사제 특별연수회를 개최하겠습니다.조은일2013.01.22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마산교구-신앙의 해, 신앙의 정체성을 찾아서](//cpbc.co.kr/CMS/newspaper/2013/01/rc/438167_1.2_titleImage_1.jpg)
[전국 교구장 새해 사목교서] 마산교구-신앙의 해, 신앙의 정체성을 찾아서 마산교구장 안명옥 주교 세상의 복음화를 위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교회가 처한 환경은 열악해지고 있습니다. 급속도로 진행된 산업화와 현세위주의 가치를 추구하는 문화는 신앙의 기복화와 개인화를 초래하며, 영적 가치가 물질적 가치로 자리를 이동하고, 그 결과 신앙의 가치보다는 경제적 성공만이 중시되고 있습니다. 이 가치관은 교회 안에서도 영향력을 행사해 많은 신앙인들 역시 마음의 위로와 물질적 축복을 보장해 주는 수단으로서만 신앙을 받아들일 뿐 신앙인의 사명과 책무에 대해서는 외면하는 결과를 야기했습니다. 특히 교구가 처한 현실은 더 어렵습니다. 교구의 복음화율은 전국 평균보다 현저히 낮은 편이며, 미사 참례율도 다른 교구에 비해 저조한 상태이고, 냉담교우 비율 역시 높습니다. 이는 우리를 둘러싼 환경이 교회에 우호적이지 않았다는 것을 말해주며, 우리가 주님께서 맡기신 복음화 사명에 최선을 다하지 않았음을 드러내줍니다. 복음화를 위한 우리의 노력과 헌신은 신앙의 해를 통해 새로운 전기를 맞아야 합니다. 교황께서는 새로운 복음화 여정의 길을 떠나고자 '신앙의 해'를 선포하셨습니다. 아울러 2000년 교회의 역사 안에서 체험된 그리스도 신앙의 본질과 내용을 종합한 「제2차 바티칸공의회 문헌」과 아울러 공의회 정신의 진정한 결실이라고 할 수 있는 「가톨릭교회교리서」를 연구, 성찰하도록 초대하십니다. 거룩함과 죄가 교차되는 헤아릴 수 없는 신비가 배인 신앙의 역사를 되짚어봄으로써 그리스도 사랑을 알아차리고 신앙이 더욱 굳건해지기를 바라십니다. 믿음의 길 안에서 신앙인으로서 행동을 성찰하고, 2000년 교회 역사 안에서 신앙을 증거하며 전해준 분들의 삶을 배움으로써 믿음의 깊이를 더할 수 있기를 바라십니다. 우리는 은총의 선물인 신앙의 깊이를 더해 가는 데 게을러서는 안 됩니다. 신앙은 우리 삶에서 그리스도 현존과 사랑을 알아보도록 만들어 줍니다. 우리 믿음의 내용이 무엇인지를 공부하고, 신앙의 정체성을 회복할 수 있는 한 해가 돼야겠습니다. 신앙 선조들처럼 우리가 받은 이 신앙의 유산을 잘 보존하고 발전시켜 다음 세대에 물려줄 수 있는 신앙인이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죽은 신앙은 전달되지 않지만 생동감 있게 살아 있는 신앙은 다음 세대로 전달됩니다. 우리는 신앙의 전달자들이어야 합니다. 신앙의 해를 의미 있게 보냄으로써 복음의 증인이 되고, 우리가 물려받은 찬란히 빛나는 신앙을 그 모습 그대로 가정과 공동체 안에서 전달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사랑받는 형제 여러분, 우리는 여러분이 선택되었음을 압니다. 그것은 우리 복음이 말로만이 아니라 힘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여러분에게 전해졌기 때문입니다"(1테살 1,4)라는 바오로 사도의 말씀과 더불어 아래와 같은 실천 사항들을 제안합니다. 1) 성경 쓰기와 읽기를 계속합니다. 2) 본당은 신자들에게 '가톨릭교회 교리서'와 '공의회 문헌'을 공부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야 합니다. 3) 성찬 예식에 적극적으로 참례합니다. 4) 모든 본당과 신심단체는 연 1회 교구 내 여섯 순교자 묘소를 방문하고, 가능하다면 도보로 순례합니다.조은일2013.01.15
[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 (15) 신앙고백조학균 신부(예수회, 전례학 박사)미사 전례는 모든 부분이 매끄럽게 연결돼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편안하고 쉽게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어 하느님을 흠숭하고 자신의 성화를 위해 힘쓰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복음 봉독이 끝난 후 사제가 하는 강론의 효과는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성장시키는" 사제 강론은 미사 맛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본당 신부의 강론에 대해 좋게 평가하면서 본당 신부를 자랑하는 신자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는 그 신부의 강론이 그만큼 신자들 생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론은 거룩한 미사나 그와 유사한 전례의 거행에 속하는데, 집전 사제나 위임된 공동집전 사제가 강론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신도는 강론할 수 없다"(구원의 성사 64항). 결국 강론은 사제 몫이다. 잘 준비한 강론은 사제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충분한 기도로써 준비한 강론은 그리스도를 통한 삶의 지혜를 주고 신자들의 의식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사제들이 강론을 하지만 모든 이들을 똑같이 이해시킬 수는 없다. 전례력과 그 날 성경 말씀을 간결하면서도 쉬운 문장과 단어 그리고 예를 들어가며 적절히 해설한다면 강론을 듣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친숙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강론을 사제 자질에만 두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신자들 입장에서 보면 강론을 잘하는 사제가 좋지만, 사제 입장에서는 강론을 경청하고 반응을 보이는 신자들을 볼 때 힘이 솟는 법이다. 열심히 준비한 내용을 독서대에서 강론할 때 신자들이 주보를 보거나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영적 양식을 제공해 주는 신분으로서의 신원의식을 상실하곤 한다. 필자가 로마에서 유학하던 시절, 강론할 때 아무리 잘 준비를 해도 언어 한계 때문에 의사전달이 잘 되지 않곤 했다. 어느날 열심히 경청하던 분이 오셔서 용기를 주셨다. 강론이 무척 좋았는데, 내용이 길지 않고 필요한 말만 해주니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결국 강론은 ①너무 길어서는 안 된다. (주일 강론은 7~10분, 평일 강론은 4~6분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②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나누는 장소이며 시간이지 토론의 장이어서는 안 된다. ③ 일상적 언어 사용을 통해 묵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좋은 강론이다. ④ 원고를 읽어 나가는 형식이 아니라, 대화를 하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다. ⑤ 침묵 시간을 통해 강론을 듣는 신자들 마음 속에 하느님 말씀이 새겨지고 자라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 때에 따라서, 사목적 배려에서 평신도가 강론을 할 수 있지만, 강론에 관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전례의 흐름에 부합한다. 강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규범을 다루기 때문이며, 그 날의 일용한 영적 양식이기 때문이다.조은일2009.10.27

자업자득(自業自得)! 흩어지지 않는 기억으로…[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10)오늘은 아침부터 내 몸이 나에게 호소가 아닌 호통을 치기 시작했습니다. 3주 정도 전부터 위가 쓰려왔는데 오늘은 참다못해 요동을 치는 것 같습니다. 생각해 보니 내가 아닌 누구에게 탓할 일도 아닌 듯합니다. 아침에 마시는 에스프레소 한 잔이 오랜 변비를 해결해 주기 시작했습니다. 그 기쁨과 해방감에 하루, 이틀, 긴 시간의 반복이 내 삶의 습관이 되었습니다. 술이 술을 마시듯 모닝커피가 모닝커피를 마시는 패턴이 위장을 화나게 한 것입니다. 내가 나에게 준 자업자득의 고통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 고통이 호통칩니다. 불교에서 ‘업’(業)은 산스크리트어로 ‘카르마’라고 합니다. 우리는 보통 업이라하면 불교를 떠올리며 죽고 사는 삶의 반복인 윤회 혹은 환생과 연결 지어 생각합니다. 그러나 굳이 윤회와 연결 짓지 않더라도 업은 우리 일상에서 흔히 발견되는 삶과 행동의 인과적 패턴입니다. 자기의 행위(행업)는 과거 행위(행업)의 결과이며, 그 결과는 원인이 되어 새로운 결과로 돌아옵니다. 이런 인과적 패턴에 따른 업에서 ‘자업자득’이라는 말이 나옵니다. 「정법염경」(正法念經)에 나오는 사자성어로 쉽게 말해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는 것입니다. 이것은 한 개인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가 가는 길이 되기도 합니다. “그는 순교자가 될 준비가 되어 있었으며 삶이라는 습관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있는 정도가 아니라 적극적이었다. 영웅의 왕관은 거의 그의 손에 들어왔으며 그는 자랑스럽게 법정을 떠났다. 이 악명 높은 사건이 결과적으로 안 씨의 승리로 끝나고 만 것은 아닐까?” 이 내용은 안중근 의사의 마지막 재판을 지켜본 영국 기자가 쓴 기사 내용입니다. 이 기사에서 ‘삶이라는 습관을 포기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말이 눈에 잡힙니다. 습관은 우리의 행동이 반복되면서 몸에 밴 버릇을 말합니다. 지금의 행위가 다시 그 행위를 낳고 그 행위가 또 그 행위를 낳는 것이죠. 욕도 해본 사람이 잘하지 해보지 않은 사람은 뭔가 어색합니다. 욕이 욕을 낳듯, 강도질이 강도질을 낳고, 거짓이 거짓을 반복합니다. 자기 행위가 자기에게 돌아오는 것이며, 돌아온 행위는 그 패턴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더욱 자신을 옭아매게 합니다. 우리가 사는 사회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인과적 패턴의 자업자득이 사회 안에서 관습, 고정관념, 이데올로기라는 이름으로 자리 내리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는 우리가 너무 당연히 여기는 삶의 습관, 옳고 그름을 판단하지 못하게 하는 익숙한 사회적 습관의 업보에서 벗어난 영웅이었습니다. 잘못된 업보의 굴레에서 벗어나는 해방은 조건을 바꾸어 인과적 관계를 변화시키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일본이 강제로 맺은 조건의 굴레를 새로운 조건으로 만드는 것입니다. 안중근 의사가 보인 행동은 동양평화를 위한 행업, 그리고 우리 민족을 새로운 자주 독립 국가로 만들기 위한 사회적 행업, 일본의 한 부분이 되어 사는 삶이라는 습관을 포기한 순교행위였습니다. 일본의 신민(臣民)이 아니라 자주독립국을 선택해 업을 바꾼 것입니다.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우리의 현재 모습은 영국 기자의 말처럼 ‘안중근은 승리자였다’는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은 잘못된 인과적 업보에서 벗어나는 길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칼을 칼집에 도로 꽂아라. 칼을 잡는 자는 모두 칼로 망한다.”(마태 26,52) 칼을 쓰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칼이며, 죽이는 자에게 돌아오는 것은 죽음입니다. 일본은 총과 칼로 일어서 총과 칼로 무너졌습니다. 고통은 누가 아닌 자기 자신에서 비롯된 인과적 결과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인과적 업이 있다면 불의의 업이 아니라 하느님을 찾는 업입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루카 11,9) 하느님을 청하고 찾고 두드리는 행업은 반드시 하느님으로부터 받고, 얻고, 열리는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하신 약속이며 구원입니다. 그 약속의 결과인 구원은 무엇에도 휘둘리지 않는 자유입니다. 우리의 행업은 그 약속과 연결되어 있어야 합니다. 3월이 되면 3.1만세 운동을 기념합니다. 그 운동에 참여했던 수많은 이들은 일본 신민(臣民)으로서의 인과적 고리의 악습에서 벗어나려 한 순교자들이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특정 국가에, 잘못된 역사관에, 물질과 권력에, 특정 이데올로기에 신민(臣民)적 업보가 남아있다면 우리 안에서 다시 독립 만세를 외쳐야 합니다. 위장도 호통을 치는데 우리 정신이 호통을 치지 않아서야 되겠습니까. ‘깊은 한숨 바람에 흩어지고.’(영화 「영웅」 노래 가사의 일부) 그러나 기억만큼은 흩어지지 않을 것입니다. 독립 만세!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5.02.28

기도, 어떻게 해야 할까요… 두 사제가 답하다 배런 주교 “하느님이 우리 안에서 먼저 기도하셨다” 전례·신심·성경 통해 일상에서 하느님 만나는 법 집대성 마틴 신부 “느낌 없어도 마음 깊은 곳 무언가 일어나” 전통 기도·성모 기도·전례력 따른 기도 생활까지 쉽게 안내 신앙인에게 가장 익숙하면서도 어려운 단어인 ‘기도’. 기도의 사전적 의미는 ‘인간보다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하는 어떠한 절대적 존재에게 빎’이다. 누군가는 끊임없이 구하라 하고, 누군가는 자신이 바라는 기도만 해서는 안 된다고 하고, 때로는 각종 기도문들이 나와는 한참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도대체 기도는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할까. 기도에 대해 친절하게 알려주는 책이 나란히 출간됐다. 기도 - 내 안에서 기도하시는 하느님 / 로버트 배런 주교 / 허찬욱 신부 옮김 / 생활성서 “기도는 초월적인 영역이 우리의 세계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인식에서 시작합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 초월적인 영역에 가닿습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향해 뻗는 우리의 손길이 우리를 향한 하느님의 손길과 만나게 된다는 것을 믿습니다.”(17쪽) 「기도 - 내 안에서 기도하시는 하느님」은 교회의 가장 뛰어난 메신저 중 한 명으로 평가받는 미국 미네소타 위노나-로체스터교구장 로버트 배런 주교가 기도의 모든 과정을 집대성한 책이다. 배런 주교는 “기도는 결국 ‘청원’이며, ‘어떻게 기도하는지 모른다’라는 말이 곧 기도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특히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서 먼저 기도하고 계셨고, 우리가 하느님을 찾는 것보다 하느님께서 우리를 더 간절히 찾으신다”며 기도를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자 신비적인 응답으로 재정의한다. 책은 총 7장으로 나눠 기도의 기초적인 정의부터 의미, 구체적인 실천 방법까지 안내한다. 토마스 머튼과 십자가의 성 요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등 영성가들의 기도 체험을 통해 ‘바라봄’과 ‘머묾’의 관점으로 기도를 풀어낸다. 전례 기도를 통해 가톨릭교회의 공적 기도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법과 신심 기도 및 성경을 읽으며 일상의 순간마다 하느님과 대화하는 방법도 제시한다. “기도란 하느님을 바라보고, 그분께 마음을 여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도의 습관이 자리 잡으면, 우리는 어떤 일도 하느님과 떨어져 바라보지 않게 됩니다. 우리는 만물 안에서, 일상의 모든 자리에서 하느님을 뵙게 될 것입니다. 하느님은 세상 안의 누군가가 아니라, 모든 존재의 근원이심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79쪽) 파리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 박사학위를 받은 저자는 먼델라인신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했다. 10부작 TV 다큐멘터리 ‘가톨리시즘’의 진행자로 활동했고, 저술·강연·SNS 등 여러 매체로 복음을 전하고 있다. 기도, 할수록 좋네요 / 제임스 마틴 신부 / 가비노 김 옮김 / 바오로딸 “하느님께서는 우리가 숨김없이 마음을 드러내 보이길 바라십니다. 정말 가까운 친구에게 내 속마음을 털어놓듯이, 하느님께도 그대로 이야기하면 됩니다.”(26쪽) 「기도, 할수록 좋네요」는 제임스 마틴(예수회) 신부가 집필한 「기도, 이렇게 하니 좋네요」의 후속작이다. 기도에 대한 기초 지식과 삶의 모든 순간에 필요한 지향으로 바치는 기도, 다양한 기도 방법에 대해 안내한다. 쉽고 단순하게 풀어낸 짤막한 글에 자신의 이야기도 버무려 친근감을 더했다. 전통 기도부터 성모님과 함께하는 기도, 전례력에 따른 기도 생활도 영성적으로 이끌어준다. 마틴 신부는 “예수님의 제자들이 ‘주님, 저희에게 기도하는 것을 가르쳐 주십시오’(루카 11,1) 하고 청했던 것처럼 여러분도 기도에 한 걸음 더 다가갈 수 있기를 바란다”며 “(기도에) 아무런 느낌이 없더라도, 우리 마음 깊은 곳에서는 분명 무언가가 일어나고 있다”고 전했다. “기도하는 중에 문득 떠오르거나 의식하게 되는 생각(깨달음), 감정, 기억, 이미지, 열망, 몸의 느낌, 그리고 때로는 어떤 단어나 구절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런 순간들을 통해 여러분과 소통하고 싶어 하시는 하느님의 간절한 바람을 알아차릴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238쪽) 시카고 로욜라대학교와 웨스턴 예수회 신학대학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한 마틴 신부는 신문·잡지·웹사이트 등에 글을 기고하고, 피정 지도와 강연 등을 통해 신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번 책은 월간지 「Give Us This Day」의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주십시오’ 칼럼에 기고한 글을 발췌해 엮은 것이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6.05.20

늙음과 죽음 앞에서 한 가족의 결말이 결정된다[서민선 아녜스 작가의 노년을 읽습니다] 24. 아니·클로드 보듀셀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실 때」 구글 제미나이 제작 사람은 안 변할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니 변한다 나는 그것에서 어떤 희망을 본다 아니 보듀셀·클로드 보듀셀은 프랑스인 부부 작가다. 부부는 죽음의 단계에 있는 사람들과 그 가족을 돕는 일을 하는데, 그 과정에서 느끼고 깨달은 바를 책으로 썼다. 책은 코헬렛 12장으로 시작한다. “젊음의 날에 너의 창조주를 기억하여라, 불행의 날들이 닥치기 전에.”(코헬 12,1) 코헬렛 12장 제목은 ‘늙음과 죽음’이다. 모든 것이 허무라고 말하는 그 유명한 성경 구절이 바로 이 장에 들어있다. 불행의 날들이란 바로 노년이라는 사실을 서글프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보듀셀 부부는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는 것을 인식하면 “부모님과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들어가야 한다”라고 말한다. 부모님께 우리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사실도 인식해야 한다고. 즉 부모 돌봄의 시기가 왔음을 받아들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나는 이 문장에서 정반대의 맥락을 읽었다. 노년을 맞은 당사자 역시 자식과 함께 새로운 삶의 단계로 들어가는 것을 인식해야 한다. 비단 자식에게 노후를 의지하고 돌봄을 받아야 한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관계에 대한 이야기다. 노년기 부모와 장년기 자식의 결말에 관한 이야기. 관계는 어느 날 갑자기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유아기 때 관계가 좋았던 가족이 청년기 때도 좋고, 청년기 때 좋았던 가족이 장년기 때도 좋다. 희망적이기도 절망적이기도 한 진리다. 책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실 때」 작가도 그런 이야기를 한다. 예전의 부모님과 맺었던 관계에 따라 나이 든 부모님에 대한 연민이 달라질 것이라고. 그런데 지금껏 맺어온 관계를 뛰어넘을 수 있도록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거라고. 혹시 부모가 노년이 되었을 때 관계가 삐걱거리는 중이더라도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테니 잘 한번 해보자는 의미이리라. 부모님께서 나이 들어 가시면서 나는 종종 삶의 새로운 국면들을 만난다. 판단력·기억력·순발력·문제해결 능력·체력. 그분들의 모든 능력이 점점 쇠함을 서로가 느낀다. 그리고 쇠하는 것들은 본래의 성정이 바뀌도록 조금씩 영향을 끼친다. 그러니 사람은 변한다. 사람은 안 변하는 줄 알았는데 나이가 드니 변한다. 나는 그것에서 어떤 희망을 본다. 나와 부모 간에 풀리지 않던 어떤 것이 어느 날 ‘탁’ 풀려버릴지도 모른다는 희망을. 나는 일흔다섯의 시어머니를 만나 그분의 나이 아흔셋까지 함께했다. 너무나도 나이 차이가 많던 고부 사이는 세월이 가며 점차 달라졌다. 나를 그저 어린 손주 보듯 하던 어머니는 차츰 어른을 대하는 눈이 되더니 마지막에는 기대고 의지하는 눈이 되었다. 나도 그랬다. 시골에 계신 내 할머니를 상대하듯 그저 예쁨 받으려고 했던 나는, 그분의 병원 동행자가 되고 마지막에는 보호자가 되었다. 어느 여름날 남편과 함께 어머니를 뵈러 간 적이 있다. 간다고 연락드리면 새벽부터 아니 그 전날부터 기다리며 고속도로 운전을 걱정할 것을 뻔히 알기에, 그날은 연락없이 간 참이었다. 어머니 얼굴에는 반가움의 희색이 아니라 놀라움의 사색이 먼저 번졌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엄마(나)한테 무슨 일이 있어? 왜 이렇게 연락도 없이 왔어.” 나는 그때 어머니의 늙음을 보았다. 본인의 안위에 대해서도 자신이 없어지는 시기가 왔구나. 어머니께서 전적으로 우리에게 의지하기 시작한 것이 그때부터였던 것 같다. 자립심이 강한 어머니께 상상하지 못할 일이 일어났다. 본인에게도 자식들에게도. 그렇게 “내가 해. 그냥 둬”를 하루에 백 번씩 반복하시던 어머니가 “엄마는 이제 못 해. 해주고 가”를 반복하는 어머니로 바뀌었다. 새로운 국면은 어느 날 갑자기 오지 않는다. 그것은 차츰 서서히 진행된다. 책 「부모님이 나이 들어 가실 때」에는 한편 이런 이야기들도 나온다. 노쇠한 부모님을 연민하고 아이를 돌보듯 돌봐야 하지만, 여전히 부모라는 사실을 잊으면 안 된다. 즉 존중해야 한다. 그리고 부모의 노년을 지켜드리되, 부모님께 받은 모든 것을 받은 만큼 되돌려 드리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서로가 받아들여야 한다. 그리고 자식으로서의 나, 형제·자매로서의 나, 아내로서의 나 사이에서 균형을 잘 지켜야 한다.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신앙과 숙고다. 지침은 성경에서 얻을 수 있고 용기는 기도에서 얻을 수 있다. 크게 갈등하는 가족들의 서사에 꼭 등장하는 강렬한 문구들이 있다. “나 죽어도 오지 말아라”, “장례식 때나 만나자” 등. 가족 구성원 중 누군가의 죽음은 가족 서사의 핵심이다. 구성원의 죽음으로 가족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때로 완결된다. 여느 희극처럼 가족도 서사를 전개하는 때가 있고 마무리하는 때가 있다. 그러니 죽음은 여러모로 무겁다. 어두워서가 아니라 중해서 무겁다. 가족의 결말은 구성원 모두의 결말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러니 늙음과 죽음 앞에서 구성원 모두가 그것을 소중하고 무겁게 다룰 일이다. cpbc2026.06.10
![[가톨릭 문화산책]<16>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4)](//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2090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4)예수의 세례, 성자임을 선포하고 새 생명과 구원 약속 조반니 벨리니(1430?~1516)의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는 1501년께 제작됐다. 13세기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 도시인 비첸차에 건립된 산타 코로나 성당 안에 특별히 그라지아니 가문을 위해 만들어진 소제대 제대화로서였다. 이 제대화에는 사연이 있다.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난 비첸차 영주 잔바티스타 그라지아니 가르자도리가 요르단 강을 건너면서 위험한 순례를 무사히 마치면 자신의 수호성인인 요한 세례자를 위해 경당을 봉헌할 것이라 다짐한 게 계기가 됐다. 예루살렘에서 안전하게 돌아온 가르자도리는 맹세한 대로 요한 세례자를 위해 성당 내에 소제대 경당을 세우고, 그곳을 자신과 자신 가족의 무덤으로 쓴다. 제대화는 예수가 요한 세례자에게 물로 세례를 받는 장면이다. 요르단 강에서 받은 예수의 세례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드러냄과 동시에 구세주로서 공생활을 선포하는 사건이다. 예수의 세례에 관한 기록은 4복음서에서 모두 다루고 있다.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손을 모은 예수와 조개껍데기나 접시, 혹은 맨손으로 뜬 물을 떨어뜨리는 요한 세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또한 비둘기나 하느님 형상, 천사들과 군중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림 중앙에는 예수가 남루한 옷을 걸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고 있다. 왼쪽에는 세 인물이 나무 아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다. 요한의 어깨 뒤에는 초라한 집 앞에 서 있는 은수자가 보인다. 예수의 머리 위에는 비둘기가 날개를 수평으로 편 채 날고 있고, 그 위로는 양팔을 벌린 성부 하느님이 보인다. 배경은 성경에서 말하는 요르단 강이 아니라 바로 저녁 무렵의 비첸차 지방의 풍경이 묘사돼 있다. 작품 : 조반니 벨리니 작, '그리스도의 세례' (400×263㎝, 1501년께, 이탈리아 비첸차 산타 코로나 성당) ● 빛의 신비 1단 :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세례, 죽음, 구원#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화면 중심부에 두 손을 경건하게 가슴에 모은 예수의 몸은 오른쪽 발에 무게 중심을 둔 콘트라포스트(Contrappost, 이탈리아어로 '대비된다'는 뜻) 자세를 취해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 이상미를 나타낸다. 한 쪽 발로 서서 인체 중앙선을 S자형으로 그리는 인체 입상 형태로 그린 예수는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팔짱을 끼듯 엇잡은 예수의 손과 요한 세례자가 잡은 그릇에서 떨어지는 물, 비둘기, 성부 하느님이 일직선 상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예수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아들이자 하느님의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오래된 그림에서는 예수가 새로운 아담의 탄생이라는 의미로 거의 침수 상태의 나체로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예수는 막 강에서 나온 것처럼 물 밖에 있으며, 허리에는 믿음의 색인 흰옷을 걸치고 있다. 예수의 인간 모습(강생의 신비)은 인간이 원죄로부터 인성 회복의 가능성을 갖게 됐음을 뜻한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로마 6,3). 우리는 세례성사에서 예수의 죽음과 하나를 이루고, 예수가 죽은 뒤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것처럼 인간 부활도 약속된 것을 믿는다. 세례성사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또 예수가 세례를 받는 요르단 강은 구약의 두 가지 사건, 곧 출애굽 때 홍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건넜던 요르단 강을 의미한다. 죽음을 넘어서는 새로운 구원의 시작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예수에게 요르단 강은 세례 후 공생활 동안 겪게 될 수난을 암시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수난과 죽음은 부활로 연결된다. #요한 세례자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한 세례자는 예수 머리 위에 물을 부어 세례를 주고 있다. 그는 유다 사막에서 은수자로 살았고, 30세가 됐을 때부터 요르단 강가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설교하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전통적으로 요한 세례자는 넝마 같은 짐승 가죽옷을 입고 흐트러진 머리 모양으로 표현된다. 요한 세례자의 상징물로는 갈대로 만들어진 십자가나 어린 양이 그려진다. 이 작품에서 요한 세례자는 왼손에 십자가와 "Ecce Agnus Dei", 곧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쓴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예수 세례를 주제로 다룬 많은 작품에서 요한 세례자는 예수보다 조금 위에서 세례를 주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 역시 요한 세례자는 예수보다 높이 서있다. 그러나 그는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한쪽 무릎을 굽혀 예수에게 순종한다는 뜻을 드러낸다. #떡갈나무 아래 세 인물 그림의 왼쪽에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창세 18,1) 야훼를 상기시키듯 떡갈나무 아래에 세 인물이 보인다. 전통적으로 예수 세례 그림에서 인물 또는 천사의 현존은 세상 만물이 성자 예수께 경외감으로 경배드림을 나타낸다. 천사들은 고대의 존경을 표시하는 몸짓처럼 자신들의 겉옷으로 손을 감싸거나 예수께서 물에서 나오셨을 때 주님의 몸을 덮고자 옷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이 작품에서는 베네치아 회화의 영향을 받은 벨리니의 색에 대한 감각답게 아름답고 우아한 세 인물을 서로 다른 색의 의상과 포즈로 묘사한다. 세 인물은 신학적인 삼덕,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상징한다. 이들 중 두 인물은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 벗어 놓은 옷을 들고 있고, 가운데 인물은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있다. 이 동작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고, 하느님과 같은 본성이신 예수가 자신을 낮추고 완전히 비우는 케노시스(Kenosis, 자기를 비움)의 겸손을 실천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부 하느님의 기쁨 하늘에는 성령의 비둘기와 성부 하느님이 인자하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례 순간 성부 하느님은 마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고 말씀하시며 팔을 벌려 외아들의 현존을 기쁨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성부 하느님과 성령의 비둘기, 예수 그리스도는 그림의 중심 세로축으로 삼위일체를 이룬다. 이러한 삼위일체 상징은 요한 세례자의 발 아래 토끼풀에서도 알 수 있다. 하나의 줄기에서 세 잎이 돋아나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설교가 앵무새 그림 전경에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붉은 털과 회녹색 날개의 앵무새는 일반적으로 설교가와도 같은 '웅변의 상징'을 나타낸다. 벨리니의 그림에서 앵무새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3,2)고 외치며, 예수를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말하는 요한 세례자의 설교를 강조하기 위해 그려졌다. 앵무새는 요한 세례자의 설교를 자연의 깊은 곳까지 알리는 역할을 한다. 자연 풍경은 중앙 요르단 강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산이 황금빛 저녁노을로 물든 하늘과 연결돼 중앙 예수와 함께 일치를 이룬다. 신성하기까지 한 풍경 속에서 하느님 음성이 다시 들리는 듯하다. "동이 틀 때 떠오르는 태양은 놀라운 도구가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한다"(집회 43,2).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죄를 씻어버릴 뿐 아니라 예수의 구원을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살고 죽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세례의 진정한 완성일 것이다. 윤인복 교수(아기예수의 데레사, 인천 가톨릭대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조은일2013.05.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