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5년간 성경 연구 서적만 60여 권, 성경의 매력에 빠진 사람들[성서 주간] 창립 25주년 맞은 한님성서연구소 연구소에서 번역, 연구한 책들이 비치된 책장. 한님성서연구소 전경. 1998년 발족한 이래, 평신도 신학자 인재 양성과 성경을 떠받치는 그리스도교 원천 연구에 몰두해 온 한님성서연구소(소장 정태현 신부). 사반세기 한국 신학의 토양을 일궈온 연구소는 12월 1일 ‘성서 주간, 연구소 창립 25주년 학술 발표회’를 앞두고 있다. 원천 문헌 연구에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시기, 평신도 신학자들이 나서 척박한 땅에 양분을 주기 시작했다. 성경 자체 연구는 물론, 구약을 태동시킨 고대 근동 문화와 구약을 주석한 유다교 랍비들의 문헌, 외경과 동방 그리스도교, 교부학 등 성경을 뒷받침할 원초적이고 가치 있는, 누구도 이전엔 시도하지 못했던 문헌 연구에 집중했다. 지금도 그 연구는 끊임없이 진행 중이다. 성서 주간(11월 26일~12월 2일)을 맞아 평생을 성경 연구에 매진해 온 소장 정태현 신부와 연구원들을 만나 성경에 대한 애정과 연구소 창립 25주년의 의미, 소회를 들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연구원들의 성경 구절 주원준(토마스 아퀴나스) 연구원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희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신명기 6,5) 하느님께 맡기고 살면 알아서 해주시더라고요. 신앙인에게 가장 근본이 되는 말씀 같습니다. 강지숙(빅토리아) 연구원 “하느님의 은사와 소명은 철회될 수 없습니다.”(로마 11,29) 인생에 여러 고민의 순간들이 있잖아요. 우왕좌왕하지 않고 꿋꿋이 살아가게 해주는 말씀입니다. 송혜경(비아) 연구원 “행여 네 발이 돌에 차일세라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쳐 주리라.”(루카 4,11) 어릴 적부터 뒤에서 하느님이 지켜주고 있다는 믿음으로 살아왔습니다. 얼마나 든든한지 모릅니다. 연구원들의 성경 이야기 저마다 자리에서 성경을 연구하며 한국 신학의 토대를 다지고 있는 연구원들. 신학 연구를 평생 업으로 선택한 연구원들에게 성경은 어떤 의미일까. 구약학과 고대 근동언어로 박사 학위를 받고 관련 자료를 연구 중인 주원준 수석 연구원은 “사람들이 구약을 어렵게 생각하지만, 모든 인간사가 들어 있어 읽다 보면 재밌다”며 “지금껏 신학을 하고 있는 이유도 그 안에 빠져들 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하다 보니 하느님에 대해 얘기할 수 있는 엄청난 학문이라는 사실을 알았고, 인류 전체 역사, 인간과 하느님의 근본적인 관계를 다루는 굉장히 매력적인 학문이 신학”이라고 전했다. 근동학으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연구소에서 신구약 외경과 영지주의를 연구하고 있는 송혜경 수석 연구원도 “성경은 2000년을 묵었지만, 전혀 낡지 않았다”며 “성경 속 메시지는 마치 현대인들이 던지는 질문처럼 다가온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답을 정확히 알려준다기보다 평생 물어가야 하는 질문이 성경에 있고, 그 여정을 예수님께서 함께해 주신다”고 덧붙였다. 구약학 박사 학위를 받고 탈무드 시대 랍비를 공부한 후 관련 연구에 몰두 중인 강지숙 수석 연구원도 “성경에는 하느님의 지혜와 가르침, 인간들의 온갖 선과 악 등 없는 게 없다”며 “모두가 알다시피 성경은 삶의 지침서”라고 말했다. 이들이 연구소와 인연을 맺은 계기는 저마다 제각각이다. 하지만 이처럼 성경의 매력에 푹 빠져 감사한 마음으로 학문에 몰두하는 작업만큼은 모두 똑 닮아있다. 주 연구원은 “평신도들이 연구에 몰입할 수 있도록 해주는 공간이 있고, 그 자리에서 25년간 교회 발전에 기여하는 서적과 논문이 나오고 있다는 사실은 기적에 가깝다”며 “우리 연구소를 모델로 삼아 다른 분야에서도 시도해 봤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송 연구원 역시 “개인적으로 책만 10권 이상 냈다”며 “상업적인 책이 아니기에 이런 장이 없었으면 불가능했을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줄어들고 있는 다음 세대 평신도 신학자들에 대한 우려도 내비쳤다. 주 연구원은 “인구도 줄고 종교 자체에 관심이 떨어지는 상황도 잘 알고 있지만, 그럼에도 성경 공부를 고민하는 사람이 있다면 용기를 갖고 도전해 보라고 권유하고 싶다”며 “행복한 길이다”라고 전했다. 송 연구원은 ‘전 신자 신학하기’를 제안했다. 그는 “신학은 특별한 게 아니다”며 “하느님에 대해 질문하고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될까 끊임없이 고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예수님은 스승이시고, 우리는 제자입니다. 끝까지 예수님의 제자이고 싶습니다. 함께 제자의 길을 걸어갔으면 합니다.” 한님성서연구소 소장 정태현 신부 “아무도 관심도 없고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시작했는데, 벌써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교회 안팎에서 관심이 조금씩 높아지니 책임도 커집니다. 아직 할 일이 태산이에요.” 그리스도교 원천 연구의 불모지나 다름없던 한국 교회에서 연구소를 설립하고 25년간 60여 권에 이르는 연구 서적을 간행했지만, 소장 정태현(전주교구 성사전담) 신부는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간 연구소는 고대어 성경 번역본 번역을 비롯해 구약성경과 직결된 고대 근동 문헌과 랍비 문헌, 신약성경과 직결된 외경 문헌과 교부 문헌 등을 번역해왔다. 현재도 성바오로딸수도회와 협력해 「거룩한 독서를 위한 성경 주해」 시리즈 등을 출간하고 있다. 정 신부는 “10년 전 시작한 성경 주해 시리즈는 이제 4분의 1 정도 온 것 같고, 아직도 연구해야 할 수많은 그리스도교 원천 문헌들이 존재한다”며 “번역하고 충분한 해설을 붙여서 한국 교회 토양을 풍성하게 하는 데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모두 평신도로 구성된 연구원들에 대한 애정과 염려를 드러냈다. 정 신부는 “평신도는 세상 한가운데 살고 있기 때문에 사제나 수도자보다 오히려 더 넓은 안목을 가질 수 있고, 신학도 그만큼 구체적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어 “하지만 제대로 양성도 시키지 않고 대가 없이 봉사하라는 교회 모습을 본다”며 “교회가 먼저 평신도를 체계적으로 양성하고 꾸준히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한님성서연구소가 그 모범이 되고 있다. 연구소 연구원들은 1, 2년 단기 교육 수준이 아니라 박사 과정까지 모두 끝낸 인재들이다. 많은 재원과 시간이 필요하지만, 지금은 교회의 큰 자산으로, 각자의 자리에서 한국 교회 신학의 토대를 다지고 있다. 아울러 정 신부는 “오늘날이야말로 성경이 꼭 필요한 시대”라고 강조했다. 그는 “어느 순간 ‘충, 효, 예’를 중시하는 유교 문화가 사라지고 그 자리를 물질만능주의와 과학 만능주의가 대신하며 가치관의 혼란을 가져왔다”면서 “유교 문화가 외면당한 이유는 수직적이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근본 가르침은 서로 사랑하라는 상호성을 내포하고 있고, 하느님 당신께서 높은 위치를 버리고 인간 세상으로 오신 육화의 신비를 보여주셨다”며 “물질만을 기준으로 삼는 이 시기, 성경은 영적 가치관을 형성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12월 1일 창립 25주년 학술 발표회 12월 1일 성서 주간에 의정부교구청 신앙교육원에서 열리는 ‘연구소 창립 25주년 학술 발표회’ 주제도 ‘말씀의 육화와 성경의 올바른 해석’이다. 정 신부는 “그리스도교의 핵심 메시지는 바로 육화”라며 “성서 주간을 맞아 보다 넓은 차원에서 성경 속 육화된 말씀을 현실과 어떻게 연결시킬지 고민하며 삶에 적용시켜 보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문의 : 031-846-3467, 한님성서연구소 박민규2023.11.17

박해 시기 청년, WYD 청년의 표징[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1) 연재를 시작하며 가톨릭평화신문은 한국 교회의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2027년 서울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는 모든 이들을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스스로 준비하기 위해 작은 도움이 되는 새 연재 ‘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코너를 마련했다. 김형주(이멜다), ‘새벽 빛을 여는 사람들’(124위 복자화). 2027년 7월 29일~8월 8일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가 개최된다.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라는 주제 성구로 교구대회를 거쳐 본대회는 8월 3~8일 진행된다. 2027 서울 WYD는 전 세계 청년 그리스도인들과 선의의 젊은이들이 복음의 기쁨을 공유하고 세상에 복음을 선포하는 보편 교회 행사다. 보편 교회를 대표해 한국 교회, 서울대교구가 이 땅에 하느님 나라가 실현되는 희망의 표징이 되는 거룩한 때다. 청년 각자의 삶 안에서 WYD를 준비하는 방법 2027 서울 WYD를 통해 전 세계 청년 그리스도인은 하느님의 존재를 부정하며, 하느님의 창조 질서를 거부하고, 생명에 반하는 물질 중심의 죽음의 문화가 만연한 현대 사회에 그리스도의 빛과 생명의 희망, 인간 존엄과 공동선, 사회 정의를 선포하는 사랑의 사도로 새로 태어나 성모 마리아처럼 가장 가난한 이들과 함께하는 예언자의 역할을 다해나갈 것이다. 이제 2027 서울 WYD 개최까지 1년 반 정도 남았다. 실질적으로 2026년 올 한 해 동안 대회 개최를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쳐야 한다. 나머지 기간은 세부 점검 시간일 것이다. 서울대교구와 한국 교회, 그리고 보편 교회가 적지 않은 시간과 상상 이상의 재정을 투자해 세계청년대회를 개최하는 것은 젊은이들의 삶 전체가 ‘복음화’되길 바라기 때문이다. 이번 대회가 인생의 전환점이 되고, 이 행사 기간 받은 성령의 은총으로 각자 삶의 자리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증거하는 거룩한 일상이 되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2027 서울 WYD가 하느님 뜻대로, 성령의 이끄심대로 잘 치러지기 위해선 교회의 세심한 준비뿐 아니라 젊은이 각자의 준비도 필요하다. 먼저 세계청년대회에 젊은이들과 함께 참가했던 역대 교황들의 권고대로 우리는 ‘매일 성경을 읽고, 항상 기도하며, 자주 성사를 보며’ 우리의 체질을 ‘영적’으로 바꿔야 한다. 일하고 쉬고, 공부하고 놀고, 먹고 자고 하는 일상이 가톨릭교회 신앙으로 실천될 때, 청년 그리스도인들은 분명 타인에게 하느님을 믿고 사는 사람의 본보기가 될 것이다. 두 번째, 청년 그리스도인들은 2027 서울 WYD를 준비하면서 세계 평화를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 성장해야 한다. 이때 정말 자신의 삶을 전환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무엇보다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토대로 삼아 현재와 미래를 설계해야 한다. 이것이 세상 사람들 눈에는 어리석게 보일지라도 예수님께서는 그 삶을 통해 세상을 이겼다. 그리스도를 향한 삶의 모티브는 ‘기도’다. 교회는 젊은이들이 영적 공허에서 깨어나 일어설 힘이 기도에서 비롯된다고 가르친다.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했던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과 베네딕토 16세 교황, 프란치스코 교황은 젊은이들이 좌절할 때마다 온 인류가 넘어지는 것처럼 안타까워했다. 셋째, 청년 그리스도인은 개방 정신과 연대 의식을 키워가야 한다. 개방 정신과 연대 의식은 그리스도의 사랑과 구원의 메시지에 기초한다. 곧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의 계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 교회가 젊은이들에게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라고 끊임없이 권유하는 이유도 이러한 삶을 제대로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리스도만이 인간을 인간답고 거룩하게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삶을 토대로 한 인생은 진리와 공정, 사회 정의, 인권 존중을 위해 일어나 증언할 수 있다. 박해 시기 청년들 삶 통해 삶의 지표 찾기 가톨릭평화신문은 한국 교회의 청년 그리스도인들이 2027 서울 WYD에 참가하는 모든 이를 잘 맞이할 수 있도록 작은 도움이 되는 새 연재 ‘한국 교회 주역, 청년들’ 코너를 마련한다. 주로 조선 왕조 치하의 박해 시기 청년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조명하는 글이다. 그들은 세상의 출세와 성공, 돈과 물질 재화를 좇지 않고 그리스도 안에 머무는 삶을 스스로 선택했다. 그들은 자신의 인간적 재능과 전문 능력을 충분히 발휘해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키웠으며 공동선과 진리를 위해 사용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으뜸에 두고, 자신의 신앙을 목숨과도 바꾸지 않았다. 가톨릭교회 신앙은 언제나 동일한 것이며, 또 언제나 새로운 빛의 원천이므로 옛사람을 통해 새 삶의 지표를 찾아가는 것은 마땅한 일일 것이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준비에 자양분 되길 연재는 특정 형식에 얽매이지 않고 그때그때 인물과 사건 중심으로 게재될 것이다. 필자는 한국천주교회사 관련 학문 기초가 부족하고 지식과 식견이 얕다. 그래서 연재를 해가면서 많은 서적과 논문 등을 참고할 예정이다. 인용한 참고 문헌들을 소개하겠지만, 지면 관계상 모두 밝히지 못할 경우가 있음을 미리 알린다. 필자와 논문 작성자들의 아량과 양해를 청한다. 혹 글이 방향을 잃고 헤맬지라도 이 연재가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를 잘 준비하자는 데 있음을 상기해주길 독자들에게 간곡히 바란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12.23

세례와 믿음으로 의화 은총을 받아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6)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세례를 받은 모든 이가 그분을 통해 의화된다면서 교회 공동체 구성원 간의 화해와 일치를 촉구합니다. 로마 교회 신자들을 대표하는 성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 이콘. 신약 성경에서 바오로 사도의 서간(바오로 친서와 차명 서간들)은 히브리서와 가톨릭 서간(야고보 서간, 베드로의 첫째·둘째 서간, 요한의 첫째·둘째 서간)을 제외한 13권을 가리킵니다. 이 중 로마서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과 함께 바오로 사도 서간 가운데 가장 긴 편지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를 ‘나의 복음’(2,16; 16,25. 「200주년 신약 성서」)이라고 소개합니다. 그만큼 로마서는 바오로 사도가 쓴 서간 가운데 가장 중요한 서간입니다. 이 서간은 무엇보다 로마 교회 초기 상황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으며 바오로 사도가 선포하는 복음의 핵심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는 로마서를 바오로 사도의 서간 가운데 첫째 서간으로 신약 성경 정경 목록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Ρωμαιοψs’(프로스 로마이우스-로마인들에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Romano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으로 표기합니다. 로마서는 제목 그대로 바오로 사도가 로마 교회 그리스도인들에게 보낸 서간입니다. 사도행전은 로마에 거주하는 유다인들이 예루살렘으로 와서 베드로 사도의 오순절 설교를 듣고 세례받아 그리스도인으로 개종했다고 증언합니다.(사도 2,10-11.41) 이들이 삶의 자리인 로마로 다시 돌아가서 그리스도인 공동체, 곧 교회를 세운 것이죠. 그래서 로마 교회를 베드로 사도가 세웠다고 하지요.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을 방문하고 싶어 했지만 여러 번 좌절됐습니다.(1,13; 15,22-23) 그래서 그는 그들에게 할 말을 편지로 대신한 것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방인을 위한 자신의 사도직을 알리면서(1,5-6; 15,15-16) 직접 로마로 가서 성령의 은사를 나누고 복음을 전하고자 했습니다.(1,10-15)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가이오스의 집에 머물면서 테르티우스에게 로마서를 받아쓰게 했습니다.(16,22-23; 1코린 1,14-15 참조)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복음 선포에 있어 전환점을 이룬 시기에 로마서를 썼습니다. 그는 제3차 선교 여행을 마무리하면서 3개월간 코린토에서 지냈습니다.(사도 20,3) 코린토에 머물면서 바오로 사도는 자기가 동방에서 수행해야 할 선교 사명을 마쳤다고 판단했습니다.(15,19-20) 그래서 이제는 서방에 복음을 선포할 선교 여행 계획을 세웁니다. 그의 마음은 이미 로마와 에스파냐를 향해 있었습니다.(15,24) 그러면서도 그는 예루살렘을 가는 마지막 여행을 어떻게 잘 마무리할지 염려합니다. 바오로 사도가 예루살렘으로 가는 까닭은 그곳의 가난한 성도들을 위해 마케도니아와 아카이아 지방에서 자신이 모금한 헌금을 전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이것이 동방에서 그의 마지막 사명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예루살렘에서 겪게 될 어려움을 예감했습니다.(15,30-31) 이러한 두려움은 사도행전에서도 확인됩니다.(사도 20,22-23) 바로 이 시기에 로마서가 쓰였습니다.(15,25-33) 성경학자들은 로마서가 쓰인 이때를 네로 황제가 통치하던 55/56년 봄이나 늦으면 57/58년 봄으로 봅니다. 로마서는 16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교리(1─11장)와 권고(12─16장) 편으로 구분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1─8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모든 이가 그분을 통해 ‘의화’된다고 합니다.(3,21─4,25) 첫 아담에 의해 인류 공통의 곤궁(5,1-14)과 예수 그리스도와 이루는 연대를 통한 인류 구원(5,15─6,23)도 설명합니다. 또 율법의 종이 된 인류는(7,1-25) 성령에 의해 해방됩니다.(8,1-39) 9─11장은 독립된 단락입니다. 그리스도를 배척함으로써 야기된 이스라엘의 곤궁(9─10장)과 유다인들과 다른 민족들로 구성된 새 이스라엘에 궁극적으로 구원이 열렸다고 합니다.(11장) 12─16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사랑으로 이루어지는 구체적인 일상 속에 살아가도록 당부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욕심을 포기하고 다른 이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연대성을 해칠 수 있는 모든 것을 피하는 데 전념하라고 권고합니다. 당시 로마 교회는 이방계 그리스도인들과 로마에서 추방됐다가 다시 돌아온 유다계 그리스도인들 간의 갈등으로 분열돼 있었습니다.(11,17-25; 14,3.10; 15,25-27) 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서로를 받아들이고 화해할 것을 촉구합니다. 아울러 둘은 근본적으로 하나라는 사실을 자각하도록 그들을 인도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여러분을 기꺼이 받아들이신 것처럼, 여러분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서로 기꺼이 받아들이십시오.”(15,7) 바오로 사도는 로마서에서 ‘의화’(justificatio·義化)와 ''구원’, ‘모세의 율법과 그리스도교 신앙’ 문제를 다룹니다. 갈라티아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도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바오로 사도는 다마스쿠스로 가는 길에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난 뒤 ‘우리를 의롭게 하는 것은 우리의 업적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은총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써 그리고 세례를 통하여”(6,3-4)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3,22) 누리게 된다고 합니다. 의화 은총으로 우리는 죄로부터 회복됩니다. 계명 준수가 영성 생활에 ‘필수적’(essential)이라면 의화 은총은 ‘근본적’(fundamental)인 것입니다. 따라서 의화 은총은 사랑의 실천으로 드러나야 합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6.04

성경 해석의 정석 「제롬 성경 주해」 ‘한국어판’ 첫 테이프를 끊다성서모임·성서와함께 50주년 사업「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첫 권 「창세기」 출간 카라바조 작 ‘예로니모 성인’, 1606년. 2022년 ‘가톨릭성서모임’ 창립 50주년 및 2023년 도서출판 ‘성서와함께’ 창사 50주년 기념 프로젝트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의 첫 권 「창세기」가 출간됐다. 성서모임·성서와함께 50주년 사업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시리즈 첫 권 「창세기」 출간 원서는 가톨릭 성경 해석에 있어 전통에 충실하며 최신 연구 반영 성서와함께, 26명 번역자 선정 가독성 높은 글에 방향성 두고 2027년까지 총 33권 출간 예정 ‘제롬(Jerome)’은 성경을 당시 서민들의 언어였던 라틴어로 번역해 오늘날 대중적인 성경이 보급되는 데 초석을 놓은 예로니모(Hieronymus) 성인의 영어식 이름으로,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는 1968년 전 세계 가톨릭 학자들이 모여 만든 「제롬 성경 주해 The Jerome Biblical Commentary」의 전면 개정판(2022)을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다. 「제롬 성경 주해」의 초판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가르침에 따라, 현대 성경학의 발전상을 한 권으로 축약하여 ‘현대 세계에서 로마 가톨릭교회의 성경 분석과 성경 해석이란 무엇인가’를 보다 많은 독자에게 효과적으로 전달하려는 시도로 간행되었다. 이후 1990년 개정판이 출간되는 등 가톨릭교회의 성경 해석 기준을 제시하는 책으로 확산되었다. 성서와함께가 한국어판으로 출간한 「창세기」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 2022년 개정판 특히 프란치스코 교황의 첫 권고인 「복음의 기쁨」에 깊이 공명하며 작업이 시작된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는 성경학자들이 가톨릭교회의 성경 해석 전통에 충실하면서도 최신의 연구 결과를 반영했고, 성경 73권 전체의 주해와 관련 주제들을 포괄적으로 담아 모든 교회 구성원이 볼 수 있는 수준으로 기술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1990년 개정판의 저자가 거의 사제와 수도자였다면,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의 경우 절반 정도가 평신도이고, 저자의 문화적 다양성이 높아진 것도 주목할 만하다.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의 출간을 적극적으로 반긴 프란치스코 교황은 친히 쓴 ‘서문’에서 “성경은 주님을 따르는 이들의 책이다. 그들은 성경 말씀을 들으면서, 흩어짐과 분열에서 떠나 일치를 향해 나아간다”며 “하느님의 말씀은 신자들을 하나로 묶고 한 백성으로 만들며, 그것이 바로 이 성경 주해서에 나타난 학문 유형인, 신앙 공동체를 위해 봉사하는 성경 연구의 중요성이며 사명”이라고 전했다. ‘성서와함께’는 이 같은 「21세기 제롬 성경 주해」의 태생적 특징을 살리고 한국 교회에 널리 사용될 수 있도록 2200여 쪽의 방대한 원서를 오는 2027년까지 총 33권(성경 입문 3권, 구약성경 14권, 신약성경 11권, 주제별 논문 5권)으로 나누어 출간할 예정이다. 원서 자체가 여러 저자의 모음집이고 사목적 성격이 강한 책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한님성서연구소 주원준(한국어판 번역·출판 위원장, 토마스 아퀴나스) 수석연구원을 필두로 평신도, 수도자, 사제 등 26명의 번역자를 선정했고, 학술적 엄밀함보다는 공동체를 위해 가독성이 높은 글을 우위에 둔다는 방침으로 작업하고 있다. 주원준 위원장은 “남녀 평신도, 수도자, 사제가 한 마음으로 협력하여 번역하는 것은 시노달리타스의 시대에 적절한 일”이며 “한국어 번역본을 낱권으로 나누어 내기로 한 것은 ‘늘 가까이 두고’ 참고할 수 있게 하려는 이 주해서 본래의 목적을 한국적 상황에 충실하게 실현하려는 의도 때문”이라고 말했다. 첫 열매인 「창세기」는 인류와 이스라엘의 초기 역사를 다룬 ‘오경 개관’과 ‘창세기 입문·주해’로 구성되어 있다. 그 뒤를 이어 연말까지 「마르코 복음서」 「고대 이스라엘의 역사와 사회」 「교회의 성경 해석」이 잇따라 공개될 예정이다. 도서출판 ‘성서와함께’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가 운영하는 성경 전문 출판사이다. 가톨릭대학생성서모임이 발족한 이듬해인 1973년 성서가족 소식지 「성서와함께」를 발간하며 첫걸음을 내디딘 이후 지금까지 가톨릭성서모임 그룹공부와 성서사십주간 교재, 성경 및 영성 관련 단행본 300여 종을 발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3.10.05

요한 묵시록 (03)[월간 꿈 CUM] 신약이 내게 말을 건네다 용을 물리치는 성 제오르지오(조지, 축일 4월 23일) 스웨덴 스톡홀름 대성당 요한 묵시록의 상징들을 어떻게 이해할 수 있습니까? 요한 묵시록의 모든 환시와 상징들을 다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몇 가지 예만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① 용, 또는 뱀(12,3.9) : 세상에서 판을 치는 악의 세력, 사탄. ② 일곱 머리(12,3) : 로마가 서 있는 일곱 언덕(17,9) 또는 일곱 왕(17,9-10) ③ 열 뿔(12,3) : 왕의 권력(17,12) 10은 완전한 전체를 나타냄. ④ 1260일(12,6) : 42달(11,2), 3년 반(12,14), 7년의 절반으로서 한정된 시간, 곧 유한한 시간. ⑤ 짐승(13,1) : 악을 일삼는 권력으로 용의 하수인, 곧 로마제국. ⑥ 어린양처럼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하는 짐승(13,11) : 악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로마제국에 봉사하는 거짓 예언자들. ⑦ 144,000명의 숫총각들(14,1-4) : 144,000(12×12×1000)은 완전한 숫자를 가리킴. 그 숫자는 구약의 열두 지파와 신약의 열두 사도, 그리고 1000으로 인수분해 된다. 따라서 그들은 로마제국의 거짓 신들을 예배하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⑧ 바빌론(14,8; 18,2) : 자신의 탐욕을 채우기 위하여 사람들을 착취하는 로마제국. ⑨ 하르마게돈(16,16) : 즈카르야 예언서(12,11)에서 채택한 적군의 상징. ⑩ 불바다(20,14) : 하느님의 계획을 반대한 모든 것의 운명을 상징함. 천년왕국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요한 묵시록 20장 1-6절에만 나타나는 사상입니다. 일반적 의견으로는 그리스도께서 종말이 오기 전에 이 지상의 당신 신도들 왕국에서 천년간 다스리시고, 그 다음에 악과의 마지막 전쟁이 있고, 전체적으로 부활이 뒤따르고 최후의 심판과 최후의 멸망이 뒤따라온다는 것을 말합니다. 이 천년 왕국의 근원은 기원전 1세기 이후에 널리 유행한 유다인들의 메시아시대에 관한 생각에서 찾아야 할 것입니다. 유다인들의 메시아 신앙은 시대에 따라 변해왔습니다. 그러나 그 근본은 항상 언젠가는 메시아가 와서 지구상에 세상을 세우실 것인데 그때는 유다민족이 최고 위치에 있으리라는 것입니다. 초기의 일반적인 개념은 메시아 왕국이 영원히 계속되리라는 것이었습니다.(다니 2,44: 7,14) 그러나 기원전 100년경부터 변화가 오기 시작했습니다. 이 당시 유다인들은 이 세상이 돌이킬 수 없이 근본적으로 악하기 때문에 이 세상에 하느님 나라가 임할 수 없고, 메시아가 이 세상에서 한정된 기간 동안 통치한 다음에 이 지구의 최후가 오리라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 메시아 시대는 그 기간이 40년, 100년, 600년, 1000년 등 다양하게 제시되었습니다. 이런 사상에 근거해서 요한 묵시록은 천년 통치 기간을 제시합니다. 이 천년은 긴 기간을 표현한 상징적인 숫자입니다. 이 천년은 그리스도의 부활 승리와 그분의 재림 사이에 자리하고 있는 교회 역사의 기간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천년에 대한 환시는 이제부터 우리가 땅 위에서 그리스도의 참다운 승리에 참여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한 묵시록은 내용상 어떻게 나누어져 있습니까? 요한 묵시록은 머리말과 맺음말 외에 다음과 같은 세 부분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1) 현재 : 처음 환시를 본 후, 아시아의 일곱 교회에 각각 편지를 보내어 그들의 영적상태를 드러내 보여주고 믿음에 충실할 것을 권고하고 있습니다.(묵시 1-3장) (2) 미래 : 역사의 운명을 통제하고 드러내 보여주는 하늘로 우리를 데려가는전반적인 환시가 들어있습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두 단계를 구별해 볼 수 있습니다. ① 첫째 단계 : 많은 재난을 가져오는 일곱 가지 연속 사건에는 일곱 봉인, 일곱 나팔, 신기한 일곱 표징, 일곱 대접 등 네 종류가 있습니다.(묵시 6-16장) 이것들은 잇따라 일어난 사건이 아니라, 일곱 가지가 한 조로 된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견지에서 살펴본 것입니다. 이러한 미래 사건들은 하느님의 명령으로 드러나게 되고(일곱 봉인), 이어 그 사건들이 공표됩니다.(일곱 나팔) 그 사건들은 상징적인 인물들을 통해 묘사되고(일곱 표징) 마침내 사건이 일어나게 됩니다.(일곱 재난) 여섯째 사건이 있은 후에는 언제나 막간을 이용해 잠시 쉬는 것처럼 보이는 환시가 설정되어 있고, 일곱 번째 사건은 다음에 이어질 사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② 둘째 단계 : 앞에서 언급된 일련의 사건들은 모두 로마의 멸망(묵시 17-18장)과 그리스도의 승리(묵시 19장)를 향해 나아가고 있으며, 이어서 성도들이 다스리는 천년 통치가 계속됩니다.(묵시 20,1-6) 그 후 교회에 대항하는 마지막 전쟁과 죽은 이들의 부활 및 마지막 심판이 이어집니다. (3) 영원 :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예루살렘의 모습 속에서 뽑힌 사람들의 영원한 행복이 묘사되고 있습니다.(묵시 21-22장) 요한 묵시록이 주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사상과 생활이 오늘날처럼 방향감각을 상실하고 있는 시점에서 성경의 이 마지막 책은 인생과 역사의 참뜻을 바라보고 영원한 안목으로 현세생활을 정립하도록 촉구합니다. 요한 묵시록은 우리가 자신의 영원한 운명을 망각하고 현세생활에만 자신을 국한하고 폐쇄하는 허망한 꿈에서 깨어나도록 채찍질합니다. 2025.12.22

예루살렘 성전 재건하면 영광의 시대가 온다[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8) 하까이서 하까이 예언자는 기원전 520년 8월부터 12월까지 4개월간 활동하면서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귀환한 유다인들에게 예루살렘 성전을 재건하라고 호소했다. 하까이 예언자 이콘. 구약 성경 제1경전 「타낙」의 히브리어 ‘하까이’는 우리말로 ‘나의 축제’라는 뜻입니다. 이를 음차해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Αγγαιοs’(하까이오스)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ggaeu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은 ‘하까이서’로 표기합니다. 하까이 예언자는 “다리우스 임금 제이년 여섯째 달 초하룻날”(1,1)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다리우스 1세는 기원전 522년부터 기원전 486년까지 페르시아를 통치한 임금입니다. 하까이 예언자는 기원전 520년 8월 27일부터 12월 사이에 약 4개월 동안 예루살렘에서 예언자로서 활동합니다. 하까이 예언자는 에즈라기(5,1; 6,14)에도 등장합니다. 에즈라기에 따르면, 하까이는 키루스 칙령 이후 18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방치돼 있던 예루살렘 성전을 서둘러 재건하라고 즈루빠벨과 예수아에게 권고한 인물입니다. 유다 총독 즈루빠벨은 기원전 597년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남 왕국 유다 여호야킨 임금의 손자입니다.(2열왕 24,8-17; 25,27-30; 1역대 3,17) 그는 페르시아에 의해 유다 지방의 행정권을 위임받아 예루살렘 재건에 힘썼죠. 예수아는 기원전 587년 네부카드네자르에 의해 처형된 스라야 대사제의 손자입니다.(2열왕 25,18-21) 그는 바빌론 포로 생활에서 돌아온 후 예루살렘 귀환 공동체에서 대사제로 활동했습니다. 안타깝게도 하까이 예언자에 관한 정보는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성경학자들은 하까이서가 신명기계 문서와 에제키엘 예언자의 영향을 받은 것을 토대로 하까이 예언자가 바빌로니아 유배지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율법과 제사 의식 교육을 받았으며 예루살렘 귀환 후 성전 재건에 관한 예언직을 수행했다고 추정합니다. 기원전 538년 바빌론을 점령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은 칙령을 반포해 유다인들을 포로생활에서 해방시켜 고향으로 돌려보냅니다. 세스바차르를 대표로 한 1차 귀국단입니다. 이들은 폐허가 된 예루살렘을 복구하고, 하느님 현존을 드러내는 성전을 재건함으로써 올바른 예배를 드리고자 합니다. 그들은 귀환 다음 해에 성전 기초 공사에 착수합니다.(에즈 3,8 참조)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이미 예루살렘에 살고 있던 주민들의 강력한 방해로 성전 재건 작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전 재건을 반대한 이들은 크게 두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 먼저, 바빌론 포로로 끌려가지 않고 예루살렘에서 남의 집과 땅을 차지하고 살고 있던 유다인들입니다. 두 번째는 신바빌로니아의 통합 정책으로 남 왕국 유다 땅으로 이주해와 유다인들과 피를 섞은 이방인들입니다. 이들은 야훼 신앙이 아닌 이방 종교를 믿고 있었기에 주님의 성전 재건을 당연히 반대하였습니다. 역대기계 문헌들은 이들을 ‘사마리아 집단’이라 부르면서 그들이 성전 재건에 가장 큰 방해자였음을 밝히고 있습니다.(에즈 4,1 이하) 결국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은 이들 두 부류의 반대로 18년째 답보하게 되고 맙니다. 기원전 522년 캄비세스 임금이 죽은 뒤 왕좌에 오른 다리우스 1세 임금은 집권 초기 격렬한 내부 혼란을 겪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은 예루살렘에도 긴장감을 불러일으킵니다. 하까이와 그 뒤를 잇는 즈카르야 예언자는 이 혼란을 유다인들을 일깨우는 기회로 삼습니다. 이들은 지금 겪는 빈곤과 흉작이 하느님 경배에 소홀한 벌이며, 신앙의 열성을 되찾고 주님께 합당한 집을 지어 드리는 공사를 재개하면 많은 복을 받고 구원의 시기가 결정적으로 시작될 것이라고 외쳤습니다. 예언자들의 말을 들은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다시 짓기 시작합니다. 이때가 기원전 515년입니다. 이들 두 예언자의 호소로 마침내 예루살렘 성전은 재건됩니다.(에즈 1─6장 참조) 하까이서는 2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를 내용에 따라 ‘성전 재건 호소’(1,1-15), ‘새 성전이 받을 영광’(2,1-9), ‘전례 문제’(2,10-19), ‘즈루빠벨을 향한 메시아적 신탁’(2,20-23)으로 구분합니다. 하느님의 신탁을 받은 하까이는 이기적인 생각에 빠져(1,4) 성전 재건 사업을 게을리한(1,2) 대사제와 귀환자들을 질책하면서 즈루빠벨 유다 총독과 예수아 대사제에게 성전을 재건하라고 재촉합니다. 하까이의 말을 들은 즈루빠벨과 예수아, 그리고 유다 백성들은 회심하여 “여섯째 달 스무나흗날”(1,5)에 성전을 짓는 일에 착수합니다.(1,12-15) 하까이는 “그해 일곱째 달 스무하룻날”(2,1) 성전 재건을 시작하고 거의 한 달이 지났을 때 다시 하느님은 성전 재건을 독려하시며, 하느님께서 그 집을 영광으로 가득 채우시고 평화를 주시리라고 약속하셨다”고 격려합니다. 그러면서 성전 재건이 완료되면 메시아의 구원 시대가 올 것이라는 희망을 선포합니다.(2,1-9) 하까이 예언자는 성전 재건을 시작하고 꼭 석 달 후인 “아홉째 달 스무나흗날”(2,10) 곧 기원전 520년 12월께 사제들에게 하느님의 말씀을 전합니다. 이전에는 백성 모두와 그들이 하는 일, 그들이 바치는 재물이 모두 부정했지만, 성전 재건을 시작함으로써 이제 그 모든 부정을 씻고 축복과 구원의 시대가 시작되었다고 알립니다.(2,10-19) 성전을 짓는 일이 그들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됐다는 뜻입니다. 마지막으로 하까이는 다윗 가문의 후손인 즈루빠벨에게 세상의 왕국과 왕좌의 권세를 꺾고 그를 당신의 인장 반지처럼 만들어주시겠다는 하느님의 약속을 전합니다. 즈루빠벨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선택은 새로운 성전 시대가 예전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영광의 시대이며, 메시아를 통한 하느님의 구원이 도래할 시대라는 희망을 고취해주었습니다.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새로운 영광의 시대를 희망하며 성전 재건에 온 마음과 힘을 다하라는 것입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4.09

하느님의 정의는 근본적으로 용서와 사랑에 근거[박병준 신부의 철학상담] 18. 정의 정의는 양날의 칼과 같다. 누구에게 정의로운 일이 다른 누구에게는 불의가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무조건적이며 절대 긍정으로서의 사랑과 달리 정의는 항상 앞에 ‘무엇을 위한’이라는 조건이 붙는다. 정의 자체는 진리나 선처럼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일정한 목적을 지향하는 조건적인 행위인 만큼 간혹 정의 구현은 마음의 상처를 치유하는 행위가 아니라 상처를 주는 행위가 될 수도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정의라는 명분을 앞세워 첨예한 이념적 갈등과 대립을 조장하고, 사람들의 마음에 돌이킬 수 없는 깊은 상처를 남기곤 하기 때문이다. 정의 개념은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법조인은 법적 정의를, 정치인은 정치적 정의를, 종교인은 신적 정의를, 시민운동가는 분배적 정의를 주장한다. 그러나 오래전부터 ‘각자에게 각자의 몫을!’(Suum cuique!)이라는 ‘권리’와 관련된 고대 라틴어 격언은 정의의 기본 이념이 돼왔다. 정의는 어휘적으로 ‘올바름’ 혹은 ‘올바름의 상태’를 뜻하는 그리스어 ‘디카이오시네’(δικαιοσυνη)에 어원을 두고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사물들 사이의 올바른 관계를 관장하는 여신 디케(Dike)도 이와 관련 있다. 국가가 존재하는 목적은 정의 실현에 있다고 주장한 플라톤(기원전 428/7~348/7년경)이 정의를 지혜·용기·절제의 덕목들이 균형과 조화를 이룸으로써 인간이 올바름의 상태에 이르는 것으로 규정한다면, 아리스토텔레스(기원전 384~322년)는 특별히 대인 관계의 탁월성과 관련지어 타인에게 좋고 유익한 것을 행하는 윤리적이며 도덕적인 품성 상태로 규정한다. ‘권리(ius)는 정의(iustitia)의 대상’이라는 아퀴나스(1224/6~1274)의 주장처럼 정의는 권리의 문제와도 직결되는데, 권리를 뜻하는 라틴어 ‘유스’(ius)가 법의 뜻을 지니고 있듯이 정의는 권리의 문제만이 아니라 공정한 법의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현실에서 공정해야 할 법이 이런저런 이유로 제대로 실현되지 못함으로써 정의의 한계를 드러내곤 한다. 이는 정의와 관련해 법을 만들고, 집행하고, 판결하는 자에게 더 높은 도덕적 양심과 무한한 책임이 요구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정의와 관련해 잘못된 법을 교정하는 ‘공정성’을 강조한 것도 바로 이런 이유다. 정의에서 우선 고려되어야 할 것은 보편적 정의의 실현보다 윤리의식과 도덕성이다. 정의의 본질적 문제는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 옳고 그름의 문제다. 선(좋음)이 항상 옳은 것도 아니며, 악(나쁨) 또한 항상 그른 것도 아니다. ‘무엇이 진정으로 공정한 것인가?’의 물음 또한 간단하지 않다. 성경에서 간음한 여인을 용서한 예수 그리스도의 행위가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아니면 간음한 여인을 돌로 쳐 죽이려 한 유다인들의 행위가 공정하고 정의로운가? 구약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권리와 채무의 계약 관계로 규정하고, 이것의 공정한 이행을 정의로 묘사한다. 그러나 더 중요한 메시지는 이를 이행하지 않았음에도 회심하는 인간을 항상 용서하시는 하느님의 정의다. 하느님의 정의는 근본적으로 용서와 사랑에 근거한다. 이런 정의야말로 인간을 치유하고 구원할 수 있기 때문이다. 치유의 기적을 행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항상 되새겨 볼 필요가 있다. “너는 죄를 용서받았다.”cpbc2025.04.30

설 연휴에 읽을 만한 책연말연시 분주한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니 어느덧 설 연휴다. 길게는 아흐레간의 연휴, 이제라도 차분히 마음을 가라앉히고 새롭게 한 해를 계획하고 열어가 보면 어떨까. 도움이 될 만한 책들을 골라봤다. 말씀 묵상하고 영어 공부까지 영어 성경 필사 노트 - 마태오 복음서 / 가톨릭출판사 새해 다짐이 보기 좋게 작심삼일로 끝났다면 음력설을 계기로 다시 마음을 다잡아보자. 새해 계획으로 빠지지 않는 영어를 챙기며 하느님 말씀까지 묵상할 수 있는 「영어 성경 필사 노트 - 마태오 복음서」가 출간됐다. 마태오 복음서는 “나를 따라 오너라” 하신 말씀에 바로 모든 것을 버리고 그분의 제자가 된 마태오 사도가 예수님 생애와 가르침을 기록한 복음서다. 신약 성경의 네 복음서 가운데 첫 번째로, 예수님의 족보로 시작해 구약과 신약을 연결한다. 또 예수님 가르침에 관한 격언과 교훈적 문체로 복음의 메시지를 더욱 깊이 있게 만날 수 있다. 「영어 성경 필사 노트」에 수록된 영어 성경은 「New American Bible(NAB)」로, 성경 원문의 의미를 충실히 전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마르코·요한 복음서도 출간됐다. 고해성사, 자꾸 미루고 싶을 때 고해성사란 / 미셸 존스 슈뢰더 / 서영필 신부 옮김 / 바오로딸 고해성사는 고백·화해·참회 등 여러 이름과 의미를 가졌지만, 고해성사에 대해 신자들이 갖는 생각은 대부분 비슷할 것이다. ‘꼭 봐야 하나?, 하느님은 이미 나의 마음을 아시지 않을까?’, ‘부끄럽고 두렵고 도대체 어떻게 말해야 할지⋯.’ 「고해성사란」은 고해성사에 참여하는 데 방해가 되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하느님께서 우리를 위해 의도하신 아름다운 경험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안내하는 책이다. 수년 동안 고해성사를 건너뛴 경험이 있는 미국의 평신도가 집필했다. 저자는 “고해성사가 잘못에 대한 벌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관계를 더 깊게 하기 위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선물”이라며 “두려움과 당혹감, 자존심, 그리고 겸손하게 죄의 용서를 구하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장벽에 잔인할 정도로 솔직해져야 한다”고 당부한다. “사제가 내 목소리를 알아듣고 나중에 우습게 여기는 건 아닐까, 죄를 고백하기가 너무 창피할 수도, 고해성사를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고백할 내용이 길고 추할 것이 걱정될 수도 있습니다. (중략) 판단은 사제들의 몫이 아닙니다. 고해성사에서 사제의 유일한 역할은 그리스도의 인격을 대신하여 사죄경을 전하는 것입니다.”(36쪽) ‘로마통’ 신부와 로마 구석구석 누비기 로마 이야기 / 전달수 신부 / 한솔 길게는 9일간의 설 연휴로 해외여행에 나서는 이가 많다. 희년을 맞아 로마에 가고 싶지만 여의치 않다면 책으로 구석구석을 누벼보자. 때마침 안동교구 원로사제 전달수 신부가 쓴 「로마 이야기」가 출간됐다. 저자는 로마에서 유학했고 교황청립 로마한인신학원장을 역임한 ‘로마통’이다. 로마시에 첫 우리말 이름인 ‘한국순교성인광장(Largo Santi Martiri Coreani)’을 조성하는 데도 애썼다. 책은 로마의 역사부터 여러 명소, 한인신학원에서의 에피소드 등 오랫동안 로마에 머문 사람만이 담을 수 있는 이야기로 빼곡히 채워져 있다. 신부님도 사는 게 힘들다고요? 어쩌면, 삶을 견디게 하는 것들 / 방종우 신부 / 라의눈 “신부님은 행복하죠?”라는 물음에 “그럴 리가 있느냐”는 답변을 듣게 되면 어떨까. 일단 좀 난처하겠지만, 한편으로 작은 위안의 물결이 일지 모른다. 사제도 사는 게 힘들다지 않은가. 「어쩌면, 삶을 견디게 하는 것들」은 서울대교구 방종우 신부의 자전적 에세이다. 천주교 고등학교에 지원했으나 남녀공학에 입학하게 돼 하느님의 의중을 의심하던 소년이 신학교에 진학하고 로마 유학을 떠나 신학대학 교수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흥미롭게 전개된다. 저자는 일련의 과정을 통해 ‘우리 모두는 힘들고, 그럼에도 살아가야 하는 것은 성직자든 아니든 모두에게 해당되는 진리’임을 이야기한다. 나아가 지극히 사소하지만 마음이 따스해지고 피식 웃게 되는 일상들이 삶을 견디게 해주며, 그렇게 행복에 계속 가까워지자고 말한다. 방 신부는 교황청립 라테라노대학교 알퐁소대학원을 졸업한 뒤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장영희 교수의 다섯 가지 키워드 삶은 작은 것들로 / 장영희 / 샘터 “행복은 어마어마한 가치나 위대한 성취에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별로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작은 순간들, 그러니까 무심히 건넨 한마디 말, 별생각 없이 내민 손, 은연중에 내비친 작은 미소 속에 보석처럼 숨어 있는지도 모른다.”(148쪽) 사람은 생을 마감해도 글은 사라지지 않는다. 고 장영희(마리아) 교수의 글이 또 한 권의 책으로 엮였다. 「삶은 작은 것들로」라는 제목처럼 책은 저자가 남긴 산문 가운데 지금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를 자연·인생·당신·사랑·희망이라는 다섯 개의 키워드로 묶었다. 교수이자 번역가·수필가·칼럼니스트로 활동했던 저자는 첫돌이 지나 소아마비를 앓은 후 평생 목발을 짚었으나, 누구보다 삶을 사랑하는 자세로 문학의 아름다움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했다. 2009년 지병인 암이 악화돼 57세의 나이에 눈을 감았다. 플라스틱으로 먹고 입고 살아가는 인류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나 / 하인리히 뵐 재단 / 손어진 등 옮김 / 작은것이 아름답다 “우리가 입는 옷의 60%를 폴리에스테르(플라스틱)로 만든다.” “1950년부터 2019년까지 세계 플라스틱 사용량을 보면 79억 톤 정도가 플라스틱 쓰레기가 된다. 74퍼센트는 매립지에 묻히거나 자연에 남는다.” 플라스틱이 등장한 지 100년이 훌쩍 지났다. 그 사이 도시와 농촌, 산과 바다, 지구 어디에서나 플라스틱을 발견할 수 있고, 인류는 플라스틱으로 먹고 입고 살아간다. 「플라스틱, 쓰레기 그리고 나」는 70가지 질문과 답변을 통해 너무 익숙하지만 사실상 무지한 플라스틱에 대해 알려준다. 플라스틱이 우리 일상에 오기까지 복잡하고 긴 과정, 수많은 플라스틱의 종류, 그 플라스틱이 일으킨 건강과 불평등, 기후문제를 짚어본다. 그 대안들에 대해 따져보며, 플라스틱 위기를 풀어가기 위한 진짜 해결법도 제시한다. 글자보다는 이미지와 색, 숫자로 플라스틱 위기를 경고한다. 책을 집필한 독일의 하인리히 뵐 재단은 녹색·인권·평화·성평등 정치 등을 목표로 활동하고 있다. (사)작은것이 아름답다는 2019년부터 이 재단의 지구환경보고서 「아틀라스」 시리즈 한국어판 출간을 진행하고 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1.22

깊은 영성과 카리스마로 수도회와 군종교구 위해 헌신했던 유수일 주교작은형제회의 겸손한 대선배 유수일 주교가 병사들에게 먹을 것을 직접 나눠주고 있다. 5월 28일 암 투병 끝에 선종한 유수일 주교는 수도자 출신으로서 지닌 가난과 겸손의 삶을 살았던 참 목자였다. 제3대 군종교구장에 임명된 뒤에는 국내외 군사목을 위한 곳이라면 어디든 사목 방문하며 따뜻한 카리스마를 통해 군 복음화에 헌신했다. 3남 1녀 막내로 태어난 유 주교는 어린 시절 부지런하고 남 돕기를 좋아하는 학생이었고, 중학교를 수석으로 입학해 장학금으로 학업을 마쳤다. 학창 시절 세례받기 전부터 대전교구 대흥동성당 미사에 참여하면서 당시 보좌 신부로 있던 두봉 주교와 주임이었던 고 오기선 신부의 강론을 들으며 하느님을 깊이 알아가게 됐다. 무척이나 검소했던 유 주교는 수도 사제 시절 몇 번이나 기운 양말을 신었고, 낡고 무거운 가방을 메고 다녔다. 춥고 더울 때에도 웬만한 거리는 걸어 다니는 통에 신자들이 택시비라도 쥐여주면 “걷는 게 나의 건강 비결”이라며 늘 사양했다. 교황으로부터 군종교구장 임명이 발표되던 2010년 7월 16일. 이날도 유수일 주교는 작은형제회 한국관구장을 지낸 뒤 청원소 부수호자(부원장)이자 수도회 대선배로서 조용히 소임을 하고 있던 중이었다. 수도복을 입은 채로 이기헌 주교에 이어 제3대 군종교구장에 임명된 유수일 주교의 축하식은 3분도 채 걸리지 않았을 정도로 소박하게 열렸다. 유 주교는 “능력도 없고 부족한데 중책을 맡게 돼 어깨가 무겁다”며 짧은 소감으로 교구장 주교직에 순명했다. 군종장교 임관식에 참석한 유수일 주교가 임관장교들과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유수일 주교는 군종교구장으로 10년여 동안 사목하는 동안 국내외 곳곳에서 열심히 나라를 수호하는 이들을 찾아 격려하는, 장병들에겐 따뜻한 할아버지같은 주교였다. 세례받고 새로 주님의 자녀가 된 군장병들에겐 직접 다가가 묵주를 선물하기도 하고, 환한 미소로 햄버거와 음료수를 가져다주는 주교였다. 유 주교는 판문점, 연평도 등 국내 곳곳의 부대를 방문해 장병들을 만나고, 수차례 해외 파병 지역을 사목방문하는 등 군인들을 위해 동서남북 활발히 만난 주교였다. 동티모르 등 해외 파병지 여러 차례 사목 방문 유수일 주교는 군종교구장 재임 시절 동티모르·남수단·레바논 등 우리 군이 파병된 지역을 여러 차례 방문했다. 주교의 파병지 방문은 그 자체로 타지에서 군생활하는 장병들에게 큰 위로가 됐다. 유 주교는 2014년 1월 6~11일 동티모르를 찾아 장병들을 격려하고 동티모르 교회 발전을 도모했다. 1999년 인도네시아에서 독립한 동티모르는 군종교구와 각별한 인연을 맺고 있다. 1999년 10월부터 2012년 10월까지 6명의 군종교구 사제가 유엔 평화유지군 일원으로 파견돼 현지 미사 봉헌, 교회 재건에 많은 물적 지원을 했다. 유 주교는 동티모르 방문 기간 살레시오 수녀회가 운영하는 라가 지역 여학생 고아원과 여학생 기술학교, 살레시오회 돈보스코 고아원, 돈보스코학교 등을 방문해 성금 2만 5000달러를 후원하는 등 지역 방문 때마다 따뜻한 선교와 후원도 아낌없이 실천했다. 그때마다 유 주교는 현지 학생들에게 “용기를 잃지 말고 열심히 공부해서 이 나라의 재원이 되길 바란다”고 격려했다. 그해 7월 14~22일에는 내전의 상처로 고통받고 있는 남수단을 찾아 유엔 평화유지군 일원으로 파병된 한빛부대 장병들을 격려하고 신자들에게 견진성사를 베풀었다. 당시 한빛부대에는 이종덕 신부가 가톨릭 사제로는 처음으로 군종신부로 파병돼 있었다. 유 주교는 “부대원들이 강에 제방을 쌓아주고, 농사를 지을 수 있도록 1만 6500㎡ 규모의 농경지를 마련해주는 등 남수단 주민들로부터 신뢰와 존경을 받는 모습을 보니 기쁘다”고 격려했다. 2015년 10월 5~9일에는 레바논 동명부대 제16진을 사목방문했다. 유 주교는 “동명부대가 정세가 불안정한 레바논에서 불법무기와 의심 차량을 검문하는 역할을 하는 등 평화수호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부대 역할을 높이 평가했다. 특히 군종신부로 파견된 유현상 신부에게 “매일 새벽 5시면 일어나 초소를 찾아 경계근무 중인 장병들을 위문하는 유 신부의 사제로서의 표양은 나중에라도 장병들이 가톨릭교회의 문을 두드리게 할 것”이라면서 사제의 역할도 세심히 챙기고 사목을 북돋워 줬다. 유 주교는 2019년 9월 23~28일 동명부대 22진을 만나기 위해 다시 레바논을 찾았다. 이때 유 주교는 신자 장병들에게 견진성사를 베풀었다. 또 군종신부가 파병되지 않았던 시기에 동명부대를 방문해 신자 장병들에게 미사를 집전한 현지 가톨릭계 카드무스학교를 찾아 감사를 표하기도 했다. 유수일 주교가 2015년 한국 주교단의 사도좌 정기방문 앗 리미나 때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인사를 나누고 있다. 재임 중 JSA 성당 완공 유수일 주교가 재임 중 가장 역점을 둔 일은 JSA성당 건립이다. 분단의 상징이자, 평화의 상징으로 최북단에 성전을 건립하는 일은 그 자체로 커다란 의미를 지닌 주님의 사업이었다. 그런 만큼 주교 집무실 한쪽 벽에 새로 지을 JSA성당의 큰 전경 사진을 걸어놓을 정도로 JSA성당에 대한 애착이 컸다. 이후 2019년 드디어 판문점 공동경비구역 JSA경비대대 안보견학관 맞은편에 JSA성당이 건립돼 봉헌됐다. 판문점 군사분계선에서 불과 4㎞ 떨어진 지리적으로도 북한과 가장 가까운 주님의 집이 세워진 것이다. 1958년 6월 미군 부속 건물로 준공됐던 과거 성당은 노후와 누수, 비좁은 공간 등이 문제가 됐었다. 유 주교는 이를 해결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했다. 신축된 성당에는 베드로 사도가 부활한 예수를 만난 뒤 갈릴래아 호수에 그물을 던져 물고기 153마리를 수확한 기적을 형상화했고, 앞마당에는 성당을 찾는 모든 신자가 같은 지점에서 만나도록 유도하는 ‘라비넨스 기도길’도 조성했다. 한국전쟁에 참전한 16개국 등 22개국에 감사를 표하는 상징물도 설치된 평화와 화해, 용서를 상징하는 공간이다. 이 때문에 JSA성당은 한국교회 전체와 한국군과 미군, 민간의 노력까지 더해져 탄생했다는 평을 받았다. 유 주교는 JSA성당 봉헌식 강론에서 “성경에 예수님께서 5000명을 먹이신 기적 이야기가 나오는데 사람과는 다른 생각을 가지신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기적으로 드러난 것”이라고 기쁨을 표했다. 그 후 한국 주교단이 2023년 6월 6일 성당을 방문해 북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기도’를 바치는 등 분단의 아픔을 치유하고 기원하는 장소로 거듭났다. 2015년 동명부대를 방문한 유수일 주교가 부대원들과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군 사목에 헌신. 코로나 19로 어려움 겪기도 유수일 주교는 군종교구장 착좌 후 군 영세자 수를 늘리는 데 다각적인 노력을 기울였다. 5주간의 짧은 기초훈련 기간 중에 교리교육을 거쳐 세례를 받기에는 부족함이 있었지만, 병사들이 원하면 세례를 줬다. 유 주교는 “성경을 보면 예수님을 찾은 사람들이 처음에는 하느님의 아들인지 몰랐지만 당신을 찾아오기만 해도 사람들에게 믿음을 심어주셨다”면서 젊은 장병들에게 믿음을 강조했다. 또 짧은 기간의 성경공부를 비롯한 성경필사 운동, 사순절 및 대림절 피정, 5분 교리 등을 통해 영성생활에 도움을 주고자 노력했다. 그 결과 2015년까지 군종교구에서 매년 평균 2만 4000명 정도 영세자가 나왔고, 95%가 병사들이었다. 특히 전국 영세자의 20% 이상을 군종교구가 차지하는 성과를 거뒀다. 유수일 주교 주례로 JSA성당 축성식이 봉헌되고 있다. 하지만 젊은층이 종교에서 이탈하기 시작한 2016년부터 군종교구 영세자 수는 감소세로 돌아섰다. 2018년에는 1만 2475명으로 반토막났는데, 더 큰 타격은 2020년 코로나19 때문이었다. 그해 군종교구 영세자 수는 3000여 명에 그칠 정도로 상황이 심각했다. 유 주교는 힘겨운 여건 속에도 교구민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하고자 고심했고, 2020년 10월 매년 발표하던 군인 주일 담화 대신 호소문을 발표했다. 유 주교는 호소문을 통해 “지난해 2월 코로나19가 시작되고 군성당에서 정상적으로 미사를 봉헌한 기간은 한 달 정도에 불과하다”며 “교구장이 본당 사목방문 중 견진성사를 집전하던 것을 할 수 없게 되면서 주임 신부에게 위임했지만, 본당마다 상황이 달라 못 한 곳도 있습니다”며 어려움을 전했다. 그러면서 ”군종신부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며 사목자들의 역할을 다시금 독려했고, 이같은 노력 끝에 이듬해 군종교구 영세자 수가 플러스로 전환됐다. 삼위일체 신비 강조 유 주교는 평소 교리의 핵심인 삼위일체 신비를 강조했다. 그러면서 이를 가장 잘 표현하고 있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을 통해 신자들이 가톨릭 교리에 확신을 지니고 신앙이 흔들리는 일이 없어야 한다고 늘 강조했다. 퇴임 후에는 본 소속인 작은형제회로 돌아갔다.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2025.05.28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랑의 친교로 일치돼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7)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 여행 도중 27개월 동안 에페소에 머물면서 분열된 코린토 신자들의 소식과 그들이 질문해온 신앙생활에 있어 부딪히는 여러 문제에 대한 답을 주기 위해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을 썼다. 사진은 바오로 사도가 활동했던 당시의 코린토 고대 유적지. 코린토는 고대 헬라스의 상업 중심지였습니다. 기원전 146년 로마군에 의해 완전히 파괴됐으나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기원전 44년 아카이아 속주의 수도로 재건된 로마 제국의 식민 도시입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2차 선교 여행(50~52년) 때 코린토에서 18개월간 머물면서 이곳 사람들에게 복음을 선포하고 세례를 주며 교회를 세웁니다.(사도 18,1-17) 앞서 바오로 사도는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건너와 필리피와 테살로니카에서 복음을 선포하고 그리스도인 공동체를 세웠으나, 유다인들의 선동으로 황급히 그곳을 떠나 베로이아를 거쳐 아테네로 갔습니다. 그는 테살로니카 공동체의 사정을 파악하기 위해 티모테오를 보내고 자신은 코린토로 떠났습니다. 바오로 사도가 머물 당시 코린토는 국제 상업 중심지로 다민족·다종교가 섞여 있던 도시였습니다. 특히 문란한 성(性) 풍속으로 유명한 곳이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아퀼라와 프리스킬라 부부의 집에서 천막을 만드는 일을 하면서 안식일마다 시나고그에 가서 유다인들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러다 실라스와 티모테오가 테살로니카 교회 소식을 갖고 오자 티티우스 유스투스의 집으로 거처를 옮긴 후 유다인이 아닌 다른 민족들을 상대로 복음을 선포하는 데 전념했습니다. 이곳에서 처음으로 복음을 받아들인 이는 스테파나스 집안 사람들입니다.(1코린 16,15) 바오로 사도는 유다인들의 고발로 아카이아 지방 총독 갈리오의 재판정에 서게 됩니다. 이후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를 떠나 에페소와 카이사리아·예루살렘을 거쳐 처음 선교 여행을 떠났던 안티오키아로 돌아갑니다.(사도 18,11-22) 아울러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 여행(53~58년) 때 코린토 가이오스 집에 머물면서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을 썼습니다.(로마 16,22-23; 1코린 1,14-15)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바오로 사도의 서간은 신약 성경 정경에 두 권만 수록돼 있지만, 실제로는 더 많았다는 게 성경학자들의 일반 견해입니다. 일례로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하 코린토 1서) 5장 9-13절의 ‘불륜을 저지르는 자들과 상종하지 말라’는 훈계는 코린토 1서 이전에 쓴 편지 내용입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이 부분을 ‘경전전(經典前) 서간’이라고 합니다. 또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둘째 서간도 서로 다른 두 통의 서간이 한 권으로 묶인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봅니다. 따라서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은 적어도 4통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선교 여행 때 에페소에 27개월간 머뭅니다.(사도 19,1-22; 20,31; 1코린 16,8-9) 이때를 대략 52년 중반부터 55년 후반까지로 추정합니다. 사도는 코린토 교회가 여러 계파로 분열됐고, 그리스도인 일부가 문란한 옛 삶의 방식을 버리지 못했을 뿐 아니라 전례와 교리, 특히 ‘부활’에 관한 논쟁으로 큰 혼란을 겪고 있다는 것을 듣게 됩니다. 그래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이 겪는 혼란을 해결하고 ‘사랑’으로 일치된 올바른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도록 권고하는 편지를 씁니다. 이 서간이 바로 코린토 1서입니다. ‘경전전 서간’을 고려하면 바오로 사도의 에페소 선교 활동 초기에 코린토 1서가 작성됐다고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에페소를 떠나기 얼마 전이라고 보기도 어렵습니다. 코린토 1서를 쓴 후에도 코린토 교회와 에페소에 있던 바오로 사도 사이에 여러 교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오순절까지는 에페소에 머물러 있겠습니다”(16,8)라는 내용을 보면 ‘봄’에 쓴 것은 분명합니다. 성경학자들은 일반적으로 바오로 사도가 54년 봄 또는 55년 봄에 코린토 1서를 썼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그리고 헬라어 신약 성경은 ‘Προs Κορινθιουs Α’(프로스 코린티우스 알파),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Ad Corinthios Ⅰ’,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라 표기합니다. 코린토 1서는 16장으로 구성돼 있는데 ‘공동체 안에서 빚어지는 분열에 대한 해답’(1─6장)과 ‘공동체의 실생활에서 일어나는 여러 문제에 대한 해답’(7─16장)으로 구분됩니다. 사도는 바오로 편·아폴로 편·케파 편·그리스도 편으로 분열된 코린토 신자들에게 ‘일치’를 강권합니다. 사도는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기에 공동체의 분열과 파벌이 있어서는 안 된다고 합니다.(1,10-17) 그리고 ‘십자가의 복음’을 부각해 믿는 이들은 성령을 통해 깨닫게 된다고 일깨웁니다.(1,18─2,16) 아울러 복음 선포자와 신자 모두 하느님께 속하기에 주제 넘게 처신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3─4장) 바오로 사도는 근친상간과 불륜 등 신자들의 윤리 도덕 폐해를 듣고 음란한 자와 사귀지 말라고 명합니다.(5,1-13) 그리고 다른 사람과 문제가 있더라도 이교도 법정에 고소하려 하지 말고 평화롭게 해결하라고 당부합니다.(6,1-11) 바오로 사도는 또 결혼과 독신에 관해 하느님께 받은 각자의 은사대로 살기를 권고합니다.(7장)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에 관해 우상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누구나 그 제물을 먹을 수 있지만, 믿음이 약하거나 소심한 이들을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지혜롭게 처신하라고 설명합니다.(8─10장) 사도는 또 전례와 신앙생활에 있어 남녀가 가져야 할 태도와 자세(11,1-6)와 성찬례를 엄숙하게 거행할 것(11,17-34)을 알려줍니다. 사도는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사랑의 친교로 일치돼야 한다고 강조합니다.(12─14장) 끝으로 사도는 그리스도의 부활은 믿음의 근원이며 복음 선포의 토대이고, 죽은 이들의 부활의 원동력이며 인간 구원의 완성이라고 가르칩니다.(15장)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6.11

니네베의 멸망은 하느님의 징벌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5) 나훔서 기원전 7세기 중반 남 왕국 유다 요시야 임금 통치 시기에 활동한 나훔 예언자는 니네베의 멸망을 예고하고 하느님 백성인 이스라엘을 위로합니다. ‘나훔 예언자’, 18세기, 러시아 카렐 리아 키지수도원. 히브리어 ‘나훔’은 ‘나훔야’의 줄임말입니다. 우리말로 ‘야훼께서 위로하시다’라는 뜻입니다. ‘느헤미야’(주님께서 위로하신다)도 나훔과 같은 히브리어 어근에서 변형된 이름입니다. 말뜻처럼 나훔은 이스라엘 백성을 위협하던 원수의 몰락과 주님의 승리를 예고하면서 하느님의 백성을 위로하고 신앙적으로 위안과 희망을 북돋아 준 예언자입니다.(로마 15,4-5 참조)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에는 열두 소 예언자가 등장합니다.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드야, 요나, 미카, 나훔, 하바쿡, 스바니야, 하까이, 즈카르야, 말라키입니다. 성경에서 열둘(12)은 ‘이스라엘 민족의 수’이며 ‘완성’을 의미합니다. 야곱의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 열두 부족의 시조입니다. 성전 사제단 역시 열두 조로 구성돼 있었습니다. 구약의 소 예언자도 열둘이었고, ‘사도’라 불리는 예수님의 제자도 열두 명입니다. 요한 묵시록은 새 예루살렘을 ‘12’라는 수로 표현합니다. 새 예루살렘 도성 성벽 초석과 성문도 열두 개이고, 초석 위에는 어린양의 열두 사도 이름이 하나씩 적혀 있습니다.(묵시 21,12-21 참조) 아울러 교회의 신앙 고백문인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과 사도 신경도 열두 신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타낙」은 나훔서를 후기 예언서 가운데 10번째, 소예언서 가운데 7번째에 배열해 놓았습니다. 이 예언서를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Ναουμ’으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Nahum’,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나훔서’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나훔은 ‘엘코스 사람’(1,1ㄴ)으로 남 왕국 유다의 요시아 임금(재위 기원전 640~609년) 때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스바이야·예레미야 예언자 역시 같은 시기 활동했었죠. 좀더 구체적으로 말씀드리면 나훔은 요시야 임금 통치 초기에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당시 근동의 패자는 아시리아였습니다. 아시리아는 시리아, 북 왕국 이스라엘, 티로, 시돈 등을 함락할 만큼 군사력이 막강했습니다. 그래서 주변 민족들은 아시리아의 수도를 ‘피의 성읍’(3,1)이라 부르며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요시야는 아버지 아몬 임금이 신하들의 음모로 죽임을 당하자 백성들이 이 반란자들을 맞서 그를 왕좌에 앉혔습니다. 그의 나이 겨우 여덟 살이었습니다. 기원전 7세기 중반 요시야가 유다를 통치할 때 아시리아의 세력이 급속히 약화됩니다. 7세기 바빌론에서 반란이 일어났고, 아시리아 안에서도 왕권 계승을 둘러싼 내전이 발발했습니다. 급기야 기원전 612년 메디아와 신바빌로니아가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파괴합니다. 나훔은 니네베 함락을 이렇게 예언합니다. “보라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 평화를 알리는 이의 발이 산을 넘어온다.”(2,1) 이는 제2이사야의 예언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 평화를 선포하고 기쁜 소식을 전하며 구원을 선포하는구나”(이사 52,7)와 흡사합니다. 하지만 같은 기쁜 소식이어도 이사야서는 ‘이스라엘이 유배에서 풀려나는 것’을, 나훔서는 ‘니네베의 멸망’을 이야기합니다. 이러한 정치 변화 안에서 나훔 예언서는 니네베의 멸망을, 유다를 억압하고 괴롭혀 온 아시리아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로 규정합니다. 이처럼 구약 성경에서는 하느님의 징벌 뒤에 이스라엘의 해방을 선포하는 예언자들은 여럿 있었습니다. 대표적인 인물이 바로 이사야와 예레미야 예언자이죠. 나훔서는 총 3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상 세 부분으로 나눕니다. 먼저 서론(1,1-8)은 히브리어 자음 순서를 따라 고통받는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을 찬미하고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가 당할 징벌을 예고합니다. 둘째 부분(1,9─2,3)은 니네베의 최후에 대한 위협과 유다의 구원을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이스라엘 역사에 비상한 방식으로 개입하시는 것은 당신 백성을 구원하시려는 것입니다. 셋째 부분(2,4─3,19)은 니네베 멸망에 대한 애가로 읊어집니다. 니네베의 힘이 아무리 막강해도 마지막에는 재로 변해 흔적도 없이 몰락할 것이라고 예고합니다. 니네베의 멸망은 하느님의 주권과 백성에 대한 주님의 사랑을 증거하는 구체적인 본보기로 만드십니다.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깁니다. 요나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니네베를 아끼시는데 왜 나훔서에서는 하느님을 “보복하시는 분”(1,2)이라며 니네베에 불행을 선언하는 것일까요? 성경학자인 안소근 수녀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나훔서 1,2-8의 노래를 주의 깊게 살펴보면 하느님을 ‘분노에 더디신 분’(1,3), ‘선하신 분’(1,7)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다시 말하면, 하느님은 쉽게 분노하고 마구 보복하는 분이 아니시며, 분노에 더디신 분이면서도 아시리아의 지나친 불의를 벌하지 않은 채 끝까지 그대로 두지는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세상을 지배하시는 하느님은 아시리아보다 강하십니다. 아시리아가 폭행을 저지를 때, 그 아시리아를 응징하시는 분이 하느님입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다스리시며, 불의를 꺾고 정의를 세우십니다.”(「구약 종주」, 186~187쪽, 성서와 함께)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4.03.19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먼 길을 가야한다 “먼 길을 가야 한다….” 75세 노인이 천막 안에서 깊은 상념에 잠겨 있다. “분명히 들었다 그분의 말씀을….” 노인은 며칠 전, 기도 중에 하늘에서 들려오는 ‘생생한’ 음성을 들었다. “네 고향과 친족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창세 12,1) 당장 짐을 싸라는 명령이다. 고대 근동에서는 태어나고 자란 곳을 떠난다는 것은 수치스러운 일이었다. 메소포타미아에서 살인과 같은 범죄를 저질렀을 때 내리는 형벌이 바로 그 사회로부터 추방하는 것이었다. 하느님은 지금 아브라함에게 그 수치스럽고 막막한 ‘떠남’을 명령하고 있다. 한참 동안 고민하던 노인이 양 팔을 무릎에 짚고 일어섰다. 결심이 선 듯했다. 천막 입구에 드리운 휘장을 걷고, 밖으로 큰 걸음을 성큼성큼 옮겼다. 그리고 아내와 조카를 비롯해 모든 종들을 불렀다. “이제 떠난다. 먼 길을 가야 한다. 짐은 가능한 줄이고, 꼭 필요한 것들만 챙겨라. 나와 우리 모두의 앞길에 신께서 함께하실 것이다.” 유대인의 역사는 이렇게 4000년 전, 작은 한 부족을 이끌던 노인 아브라함이 아시아의 서쪽 끝, 유럽의 동쪽 끝에서 내린 ‘결단 하나’에서부터 시작한다. 노구(老軀)를 이끌고 미지의 땅으로 향한다는 것이 쉽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해냈다. 그렇게 유대인 아브라함은 모든 신앙 백성의 맨 앞줄에 우뚝 섰다. 믿음의 조상이 된 것이다. 한민족(韓民族)의 맨 앞줄에 단군왕검(檀君王儉)이 있다면, 유대 민족의 맨 앞줄에는 아브라함이 있다. 2021년이 단기 4354년이니까 유대민족과 한민족의 역사는 비슷한 시기에 출발하는 셈이다. 출발한 시기도 비슷하지만, 살아 온 모습도 닮은 꼴이다. 두 민족의 역사는 고난의 역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강대국들에 둘러싸인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수많은 침략을 받았고, 이민족의 지배도 받아야 했다. 자녀에 대한 교육열, 치열하게 삶을 살아가는 열정 또한 닮은 꼴이다. 또 고난의 역사 탓인지 ‘우리끼리’ 똘똘 뭉치는 남다른 민족의식도 빼놓을 수 없다. 다른 민족에게선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풍부한 종교적 영성적 성향도 비슷하다. 우리의 어머니들은 고난이 닥치면 장독 위에 정화수를 떠 놓고 두 손 비비며 천지신명께 빌었고, 유대 어머니들도 유일신의 약속을 믿고 늘 기도했다. 이렇게 한국인과 유대인은 태어나면서부터 풍부한 종교적 감수성을 가지고 나온다. 특히 단군신화에서 알 수 있듯이 유대민족과 한민족의 출발점에는 ‘하늘’에 대한 특별한 공경이 자리하고 있다. 이렇게 유대인은 한국인과 많은 것에서 닮은 꼴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유대인에 대해 잘 모르고 있다. 알고 있다고 해도 탈무드, 키부츠, 밥상머리 교육 등 파편적 지식이 대부분이다. 그러다 보니 유대인에 대한 우리 사회의 대중적 인식이 심층적으로 이뤄지지 않고 겉돌고 있다. 구약성경 이야기를 지금 쓰는 이유다. 신약만 중요시하는 이들이 있다. 잘못이다. 구약을 알아야 신약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다. 신약성경은 온통 나자렛 예수가 구약성경에 예고된 약속을 성취한다는 확신으로 가득 차 있다. 구약이 없다면 신약은 해독할 수 없는 책, 뿌리가 없어 말라 죽게 될 식물과 같은 것이다. 끊임없이 배반하고 돌아서는 유대인들을 향한 유일신의 ‘새 계약’(예레 31,31-34 참조)은 오늘날 신앙인들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유일신은 유대인들에게 이렇게 약속했다. “나는 그들의 가슴에 내 법을 넣어 주고, 그들의 마음에 그 법을 새겨 주겠다. 그리하여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1,33) 그 ‘약속의 역사’로 이제 긴 여행을 떠나려 한다. “먼 길을 가야 한다….” 글 _ 편집부 cpbc2023.09.04

가난한 이들을 통해 ‘주님의 날’ 구원이 도래하리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67) 스바니야서 스바니야는 기원전 7세기 남 왕국 유다 요시야 임금 통치 초기에 활동한 예언자로 ‘주님의 날’에 아나윔이라 불리는 가난한 이들을 통해 하느님의 구원이 도래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스바니야 예언자 이콘. 스바니야는 구약 성경의 여러 경전에 자주 등장하는 이름입니다.(2열왕 25,18; 1역대 6,21-22; 예레 21,1; 29, 25.29; 즈카 6,10.14) 히브리어로 “쩨판야”로 발음되는 스바니야는 우리말로 ‘야훼께서 숨기신다’ ‘야훼께서 피신시켜 주신다’ ‘야훼께서 보호해 주신다’는 뜻입니다. 이를 음차해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Σοφονιαs’(소포니아스)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Sophonias’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스바니야서’로 표기합니다. 스바니야서 머리글에는 스바니야의 4대 족보가 소개됩니다. “스바니야는 쿠시의 아들, 쿠시는 그달야의 아들, 그달야는 아마르야의 아들, 아마르야는 히즈키야의 아들이다.”(1,1) 이 족보에서 우리가 주목할 인물은 바로 ‘히즈키야’입니다. 히즈키야는 기원전 8세기 이사야 예언자가 활동할 당시 남 왕국 유다의 임금입니다. 곧 므나쎄의 선왕이죠. 만약 이 족보대로 스바니야가 히즈키야 임금의 후손이라면 그가 활동할 때 남 왕국 유다를 다스리던 요시야 임금과 친척이 됩니다. 스바니야 예언자가 활동하던 시기는 요시야 임금(기원전 640~609년) 통치 초기입니다. 나훔 예언자도 이 시기 활동했었죠. 요시야는 여덟 살에 임금이 되어 31년간 남 왕국 유다를 다스렸습니다.(2열왕 22,2) 그의 나이에서 알 수 있듯이 요시야는 즉위 당시 직접 나라를 다스릴 능력이 없어 상당 기간 섭정이 이뤄졌습니다. 바로 이 시기에 스바니야가 활동했습니다. 남 왕국 유다에 만연한 우상 숭배와 지도층의 불의를 고발하는 예언(1,8; 3,3-4)이 스바니야가 요시야의 종교 쇄신 이전에 활동했음을 뒷받침해 줍니다. 스바니야서를 이해하려면 당시 근동 지역의 시대상을 알아야 합니다. 기원전 7세기 중엽 아시리아는 이집트를 점령하면서 고대 근동의 패권을 장악했습니다. 아시리아 제국은 주변 민족들을 파멸시키고 잔학 행위를 저지르며 세력을 키웠습니다. 당시 유다를 다스리던 므나쎄 임금은 왕국의 주권과 야훼 신앙을 포기하고 아시리아의 충실한 신하이기를 자청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 제단에 아시리아인들이 섬기던 우상을 세웠고, 매음이 성전에서 행해졌으며(2열왕 23,4-7; 스바 1,4-5), 사람을 제물로 바치는 일을 서슴없이 자행했습니다.(2열왕 21,6) 이것들은 모두 율법이 엄격히 금한 행위들이었죠. 므나쎄의 뒤를 이은 암몬 임금 역시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암몬은 즉위 2년여 만에 암살됐고, 요시야가 임금이 됐습니다. 요시야를 섭정한 권세가들 역시 므나쎄를 따라 우상 숭배를 자행하고 사회를 도탄에 빠뜨렸습니다. 이러한 시대 배경 아래 스바니야 예언자는 우상 숭배자들과 불의한 지도층을 향한 ‘하느님의 심판’을 선포하고(1,2-13), ‘아시리아의 몰락’(2,13-15)을 예언합니다. 스바니야서는 기원전 7세기부터 기원전 3세기에 이르기까지 여러 편집 단계를 거쳐 완성되었습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서들은 일반적으로 ‘이스라엘에 대한 경고’, ‘민족들에 대한 심판’, ‘구원의 약속’ 세 구조로 편집 구성돼 있습니다. 스바니야서 역시 예언 대상과 내용에 따라 세 부분으로 나뉩니다. ‘남 왕국 유다를 거슬러 내린 신탁’(1,1─2,3)과 ‘민족들과 예루살렘을 거슬러 내린 신탁’(2,4─3,8), ‘구원의 약속에 대한 신탁’(3,9-20)입니다. 스바니야는 ‘교만’이 모든 죄악의 뿌리라고 합니다. 교만은 하느님께 대한 불신(1,12; 3,2)과 반항(3,1), 우상 숭배, 율법을 거스르는 행위(3,4)를 통해 드러나며 마침내 사회 불의로 나타난다고 말합니다. 스바니야는 교만으로 말미암아 왕궁 관리들과 지도자들(1,8-9), 판관들(3,3), 상인들(1,11), 거짓 예언자들과 사제들(3,4)에 이르기까지 죄악에 물들지 않은 곳이 없다고 한탄합니다. 이에 스바니야는 모든 죄인을 향해 ‘하느님의 심판’ 곧 ‘주님의 날이 도래’할 것이라고 선포합니다. 아모서·나훔·요엘도 ‘주님의 날’을 예언했지만 스바니야는 그들과 달리 이날이 무섭게 득달같이 다가올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날은 분노의 날, 환난과 고난의 날, 파멸과 파괴의 날, 어둠과 암흑의 날, 구름과 먹구름의 날이다.”(1,15) 스바니야의 예언은 50년 후 예루살렘 멸망으로 현실이 됩니다. 하지만 스바니야는 ‘주님의 날’에 하느님의 구원이 실현될 것이라고 합니다. 스바니야는 무엇보다 하느님의 구원은 ‘가난한 이들’을 통해 도래한다고 합니다. ‘아나윔’으로 불리는 가난한 이들은 영적으로만 가난한 것이 아니라 우선 물질적으로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란 사회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영적 차원에서 이해해야 할 개념입니다. 교만한 사람들과는 반대로 주님을 찾으며 주님 계명을 지키고 정의를 실현해 나가는 사람들이 곧 가난한 사람, 겸손한 사람들입니다.(2,3) 기댈 곳 없어 오직 하느님께만 의지하는 이들, 주님의 이름에 피신하는 이들은(3,12) 왕국이 멸망한 후에라도 미래를 희망할 근거가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힘 있는 자들은 모두 베어내시고 그 밑에서 죽어가던 가난한 이들로부터 새로운 역사를 시작하실 것입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선임2024.04.02

개인적 지식·깨달음만 좇는 이단 ‘영지주의’ 출현[저는 믿나이다] (34) 영지주의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지식을 최고로 여기는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아 정통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이단’의 길을 걸었다. 교회는 영지주의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정통 신앙을 고수하고 믿을 교리를 확정해 나갔다. 작가 미상 ‘땅에 떨어지는 시몬 마구스’, 1170년경, 양피지에 템페라, 독일 힐데스하임. 사도 시대부터 교회를 가장 위협하고 있는 것이 바로 ‘영지주의(Gnosticism)’입니다. ‘지식’을 뜻하는 헬라어 ‘γνωσιs(그노시스)’에서 유래한 말로, 영지주의자들은 지혜를 통해 구원을 얻으려는 자들입니다. 이 영지주의가 사도 시대를 거쳐 2~3세기 교회 안에서 성행했으며 지금도 새 영성 운동으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지요. 신약성경에서도 알 수 있듯이 영지주의는 초세기 사도 시대 때부터 교회 안에 생겨났습니다. 이들은 죽은 이의 부활은 없다고, 그리스도는 참 인간이 아니라 사람의 모습처럼 보였을 뿐이라고 합니다. 그들은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는 그리스도가 아니며 성자 하느님께서 지상에 머무는 동안 잠시 빌린 인간의 모습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이에 영지주의자들은 십자가 죽음도 부활도 아무 의미가 없고, 인간이 구원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희생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지식’ 획득, 곧 ‘깨달음’ 덕분이라고 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아울러 참하느님과 창조주를 구분합니다. 그들은 참하느님께서 세상의 창조주가 아니기에 죄와 악, 고통과 비극에 대한 책임이 없다고 합니다. 모든 책임은 불완전한 창조주에게 있고, 창조주가 불완전하기에 그가 만든 세상 역시 불완전하다고 주장합니다. 영지주의자들은 인간의 죄를 문제 삼지 않습니다. 그들은 인간의 근본 문제는 죄가 아니라 ‘무지’라고 합니다. 무지야말로 하느님과 인간을 가로막는 벽이며 허물어야 할 대상이라고 합니다. 교회 학자들은 사도 시대 사마리아에서 마술로 사람들을 현혹하던 ‘시몬 마구스’를 통해 교회 내 영지주의가 시작했다고 봅니다.(사도 8장 참조) 첫 영지주의자인 시몬 마구스는 사마리아 지방 기타에서 태어났습니다. 시몬 마구스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내용은 사도행전 8장 9-12절까지의 구절입니다. “그 고을에는 전부터 시몬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는데, 그는 마술을 부려 사마리아의 백성을 놀라게 하면서 자기가 큰 인물이라고 떠들어댔다. 그리하여 아이에서 늙은이에 이르기까지 모두 ‘이 사람이야말로 위대한 힘이라고 하는 하느님의 힘이다’ 하며 그의 말에 귀를 기울였다. 사람들이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인 것은 그가 오랫동안 마술로 그들을 놀라게 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들은 하느님의 나라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에 관한 복음을 전하는 필리포스를 믿게 되면서,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세례를 받았다.” 사도행전의 내용 그대로 시몬 마구스는 로마 제국 클라우디우스 황제 재임 때(41~54년) ‘하느님의 위대한 힘’이라 자칭하며 사마리아와 로마 등지에서 수많은 추종자를 거느리며 교회와 맞섰다.(유스티누스 「호교론」 26) 시몬의 제자들은 하느님께서 처음에는 당신 아들을 예수의 형상으로 이 땅에 보냈고, 나중에 사마리아에선 시몬으로, 다른 나라에선 성령으로 나타났다고 주장했다. 바오로 사도는 시몬 마구스를 비롯한 영지주의자들을 ‘양 떼를 해치는 사나운 이리’ ‘진리를 왜곡하는 말을 하며 자기를 따르라고 제자들을 꾀어내는 사람들’이라고 경계했습니다.(사도 20,29-30) 분명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교 안에서 생겨난 것이지만 헬레니즘 문화 특히 그리스 철학에 영향을 받아 정통 신앙의 길에서 벗어나 ‘이단’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맙니다. ‘영지주의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최상 신이 있다고 믿는다. 최상 신은 초월적이고 영적인 존재로서 단 한 분이시다. 이 최상 신에게서 여러 신적 존재들이 유출되었으며 이들이 모두 함께 천상계를 이루고 있다. 둘째, 인간을 포함한 물질 세계는 최상 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보다 하등한 존재에 의해 창조되었다. 셋째, 인간은 복합적인 존재다. 물질로 이루어진 몸은 하급신인 창조주의 작품이고, 그 내면은 최상 신의 신적 섬광으로 이루어져 있다. 다시 말해 인간은 하급 신에 속하는 육체와 최상 신에 속하는 영으로 이루어진 존재다. 넷째, 신적 섬광, 곧 영이 육체 안에 갇힘으로써 인간의 참 자아인 영이 신에게서 멀어졌다. 그리고 그 영은 자신의 기원을 망각하고 잠에 빠져 버렸다. 다섯째, 인간 안에 깃든 신적 섬광이 깨어나는 것은 구원의 지식, 곧 그노시스를 통해서다. 그노시스는 믿음이나 착한 행실이나 계명의 준수로 얻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들은 기껏해야 그노시스를 얻도록 사람을 준비시키는 역할을 할 뿐이다. 여섯째, 잠든 영을 깨우려 신의 사절이 천상에서 지상으로 파견되었다. 빛의 사절 곧 구원자가 파견된 것은 사람의 영혼에 그노시스를 주기 위해서다.”(송혜경, 「영지주의- 그 민낯과의 만남」 34~35쪽) 사도들의 순교로 사도 시대가 끝나고 그의 제자들인 교부가 교회를 이끄는 시기가 열리면서 그리스도교는 본격적으로 ‘신앙의 유산’을 드러내고 보존해 갑니다. 영지주의와의 끊임없는 투쟁을 통해 교회는 ‘정통 신앙’과 ‘이단’을 구분하고, ‘신약 성경 정경’을 확정하며 ‘사도 전승 안에서 신앙의 규범’ 곧 ‘믿을 교리’를 확정해 나가지요. 이제 교회는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에 대한 성찰인 ‘교의(Dogma)’를 고백하게 된 것입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07.01
![[신앙단상] 시지프스와 욥의 존재 방식](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10/21/ArC1761018938129.jpg)
[신앙단상] 시지프스와 욥의 존재 방식김영수(루치오, 서강대 신학연구소 선임연구원) 청소년 시절부터 직장생활을 시작해 결혼 전까지 내 사유의 세계에 특별한 영향을 준 작가가 알베르 카뮈였고, 시지프스는 그런 의미에서 나의 사유의 상징적 이름이었습니다. 결혼 후 바쁜 직장생활 속에 자연스럽게 시지프스는 추억 속의 사유로 밀려났습니다. 그즈음 세례를 받고 가톨릭 신앙인이 되었고 주일은 성당을 찾았는데, 그 동기는 한 여자의 남편으로서, 한 아이의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완전한 그리스도인이라 할 수 없지만, 그때는 더욱 불완전하고 흠 많은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를 잃고 구약 성경의 욥기에서 욥을 만났습니다. 젊은 날의 시지프스가 그 시절 나의 아픔을 투사하는 이름이었다면, 욥의 고통을 통해 전달되는 아픔은 곧 아이를 잃어버린 나의 아픔이었습니다. 카뮈의 시지프스 신화는 고통에 직면한 무신론자의 입장을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시지프스는 저승의 신 하데스를 속인 죄로 무거운 바위를 산 정상으로 밀어 올리는 영원한 형벌을 받습니다. 카뮈는 현대인은 신에게 가중처벌을 받은 시지프스라고 진술합니다. 시지프스는 주어진 형벌을 치르면서 상황을 바꿀 수 없음을 확인하고, 신들에게 대항하기 위해 산 꼭대기에 바윗돌을 올리는 형벌을 노동 뒤에 오는 즐거움으로 내면적 관점을 전환시켜 버렸습니다. 카뮈는 ‘현대인은 신에게 가중처벌을 받았지만, 내면적 관점을 바꿔 받아들일 때 신도 어떻게 할 수 없을 것’이라고 진술합니다. 카뮈는 시지프스를 통해 부조리한 고통이 닥친 인간이 신의 구원을 청하는 대신 저항하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하느님께 순종했던 욥이 자신에게 닥쳐온 고통 앞에서 하느님께 탄원하는 것처럼 시지프스는 비신앙인의 방식으로 하느님께 저항합니다. 이해할 수 없는 고통에 직면하여 욥도 시지프스도 저항하지만, 마지막 자세에서 욥과 시지프스는 그리스도인과 무신론자로 갈라집니다. 욥과 시지프스는 둘 다 그들의 고통의 부조리에 대해 설명할 수 없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누구도 자기의 고통을 해결할 수 없고 자신만이 고통을 견디어내야 합니다. 많은 철학자와 신학자들은 욥이라는 인물을 통해 고통받는 인간상을 투사하고 있습니다. 하느님이 왜 악과 고통을 허용하시는지, 그리고 인간의 고통과 상처를 치유하시는 하느님이신지를 질문합니다. 악과 고통의 문제를 해명하는 것은 그리스도 신학의 핵심 과제입니다. 하느님이 인과응보에 따라 보상과 처벌을 하시는 윤리적 하느님이라 믿고 있는 욥의 친구들과 달리 욥은 새로운 하느님을 갈망합니다. 욥은 무죄한 인간의 고통을 구원하는 하느님을 찾습니다. 폭풍 속에 나타나신 하느님은 욥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으시지만, 사랑의 창조주로 자신을 드러내시며 욥이 스스로 인간이 하느님을 이해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하느님께 순종하도록 이끄십니다. 욥은 하느님과 화해하고 고통을 넘어섭니다. 시지프스와 욥은 각자 다른 방식으로 부조리와 고통을 탈출합니다. “그래서 제 자신을 부끄럽게 여기며 먼지와 잿더미에 앉아 참회합니다.”(욥기 42,6) 욥은 우주와 역사 안에서 일어나는 대부분의 일은 인간적 이해와 통찰을 뛰어넘는 것임을 발견했습니다. 욥기는 고난을 당한 뒤 하느님께 저항하는 욥의 모습을 표현하면서도, 한편으로 하느님에 대한 희망을 간직하고 끝내 하느님 현존과 무상적 사랑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과정을 묘사하고 있습니다. 욥의 고통의 의미에 대한 답변을 구티에레스는 다음과 같이 제시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에게 하느님을 사랑으로 계시하기 위하여 기꺼이 버림받고 죽음을 수용하셨다. 십자가에서 예수의 외침은 불의하게 고통을 당하는 이들의 목소리 전체를 대변하는 목소리인 것이다. 인간의 고통을 위한 투신이야말로 십자가를 지셨던 예수를 따르는 우리들의 의무이다.” 김영수 (루치오)cpbc2025.10.21

책꽂이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입니다 / 조명연 신부 / 파람북 조명연(인천교구 인천가톨릭대학교 성김대건본당 주임) 신부의 신간 「행복은 크기가 아니라 빈도입니다」가 나왔다. 사제의 소임을 다하고 남은 시간을 독서와 집필·강연으로 채우는 조 신부가 행복을 찾아가는 길을 안내한다. 조 신부가 제안하는 공식은 ‘행복=소유(have)/욕망(want)’이다. 즉 행복은 소유를 늘리거나 욕망을 줄일 때 커지며, 편하게 행복의 길로 접어들기 위해서는 소유를 늘리기보다는 욕망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삶의 작은 순간을 기쁨으로 채워 행복의 빈도를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학·심리학·문학·철학을 아우르는 조 신부의 박학다식함은 실천적 행복을 추구하는 독자들에게 좋은 길잡이가 된다. 냉이꽃 내 아버지 / 최인숙 수녀 / W미디어 「냉이꽃 내 아버지」는 최인숙(툿찡포교베네딕도수녀회 서울수녀원) 수녀가 말기 암 선고를 받은 아버지를 간병하고 배웅한 여정을 담고 있다. 노부모의 마지막 여정이 아름다운 순간만으로 채워지지는 않을 터. 저자는 딸로서·수도자로서·인간으로서 사랑과 고통, 희망과 두려움이 얽힌 복잡한 감정과 마주했던 경험들을 고백한다. 최 수녀는 “사랑하는 사람의 마지막 길을 준비하는 이들, 또는 지금 누군가를 돌보고 있는 이들에게 이 작은 책이 다정한 벗처럼 다가가기를 소망한다”고 전했다. 찰스 디킨스의 예수 이야기 / 찰스 디킨스 / 민혜숙 옮김 / 이른비 화제의 애니메이션 ‘킹 오브 킹스’의 모티브가 된 찰스 디킨스의 「예수 이야기(The Life of Our Lord)」가 출간됐다. 디킨스(1812~1870)가 「크리스마스 캐럴」(1843)을 발표한 이후 그리스도의 가르침에 따라 자녀들을 키우면서 동시에 호기심 많은 아이들의 질문에 답하기 위해 집필한 내용이다. 그러나 출판은 원치 않아, 원고를 보관하던 그의 여덟 번째 아들의 유언으로 1934년에야 대중에 공개된 디킨스의 마지막 작품이다. 아이들의 눈높이에 맞게 예수의 생애를 쉽고 간결하게 재구성했고, 자상한 문장 안에 말씀과 교리를 온전히 담으려는 마음이 전해진다. 귀스타브 도레의 성경 삽화, 자녀들에게 쓴 디킨스의 기도문과 편지도 수록돼 있다. 당신 곁의 아리아 / 백재은+장일범(발렌티노) / 그래도봄 아이다·라보엠·카르멘·나비부인·투란도트·마술피리·토스카·파우스트⋯. 무대를 직접 본 적은 없어도 이름은 친숙한 오페라들일 것이다. 「당신 곁의 아리아」는 오페라의 아리아(독창곡)에 대해 성악가 백재은씨와 음악평론가 장일범(발렌티노)씨가 나눈 대화를 담은 책이다. cpbc 라디오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에서 ‘행복한 오페라’ 코너를 4년간 함께 진행해 온 두 사람은 오페라 한 작품을 두고 큼지막한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헤친다. 그 방대한 대화를 책으로 엮었다. 백재은씨는 무대에서 오페라 속 인물을 노래하기 위해 탐구했던 문학과 시대배경, 성악가들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장일범씨는 작품의 구조와 작곡가의 의도, 음악사의 맥락을 풀어낸다. 라디오 대담 형식을 그대로 옮겨 귀로 듣는 것처럼 편하게 읽히고, QR코드가 수록돼 관련 음악도 바로 감상할 수 있다. 윤하정 기자윤하정2025.08.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