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6) 김선실 아기 예수의 데레사(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장)](//cpbc.co.kr/CMS/newspaper/2017/02/rc/670905_1.3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6) 김선실 아기 예수의 데레사(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장)역사의 아픈 상처에서 진실과 희망 찾아서 전쟁의 포화 소리를 들으며 관람을 시작하는 박물관이 있다. 아리따운 소녀가 전쟁터로 끌려가 45년 넘게 침묵의 고통을 견뎌온 인고의 세월이 생생히 증언된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아픔을 기억하며 일본군의 전쟁 범죄를 고스란히 담은 곳.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이다. 이곳에서 역사의 아픔을 전하며 정의를 외치고 새로운 희망을 일구는 이가 있다. 김선실(아기 예수의 데레사) 관장이다.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공동대표도 맡고 있다. 아픔과 상처가 있는 곳에서 울고 웃으면서 함께했던 시간이 희망을 나누는 시간이었다고 말한다. 너무도 절실해 했던 이야기를 하고 또 한다. 포장도 미화도 인기영합도 없다. 인터뷰 내내 “재미없죠”라며 양해를 구한다. 재미를 넘어선 진실한 메시지가 메아리가 돼 돌아온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이곳은 전쟁과 여성인권 박물관인데요. 어떤 곳인지요.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고통을 기억하며 일본 군대의 전쟁 범죄를 알리고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한 공간입니다. 지하는 10대의 꽃다운 나이에 전쟁의 포화 속으로 끌려가는 장면부터 재현했고요. 45년 넘게 침묵의 고통 속에 살아오신 할머니들이 1990년대 초반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라는 것을 밝히는 과정 등을 담고 있습니다. 특히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호소의 벽이 있습니다. ‘다시는 나와 같은 피해자가 없었으면 좋겠다’, ‘우리의 미래 세대는 전쟁이 없는 세상에 살았으면 좋겠다’라는 할머니들의 호소를 들을 수 있고요. 2층은 일본군 위안부 역사관인데 2000년도 1000차 수요시위 때 일본 대사관 앞에 세운 평화비인 소녀상도 있습니다.▶지금은 몇 분이나 생존해 계십니까.서른아홉 분이 생존해 계시는데요. 최근 한 분의 할머니가 등록하셨어요. 그래서 생존 할머니가 마흔 분이 됐습니다. 238분의 할머니가 등록하셨는데 차마 이 사실을 알리기 싫어서 등록을 안 하고 있는 할머니들이 더 계신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박물관 표를 보면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가 한 분씩 소개돼 있는데요. 어떤 의미인가요매일 관람 오시는 분들이 한 분의 할머니와 인연을 맺고 그분을 특별히 기억하고 추념하자는 의미에서 이렇게 하고 있는데요. 할머니들의 고통스러운 삶이 생생하게 와 닿을 수 있도록요. 관람 후엔 추모의 마음을 가질 수 있고 또 우리가 이 문제를 꼭 해결해야겠다는 의지도 생기게 하거든요.▶홍대 근처라 젊은 사람들도 많이 올 것 같은데요. 관람객의 70% 이상이 20대 중반 이하의 청소년들과 대학생일 겁니다. 또 초등학교 5, 6학년들도 단체 관람을 많이 오는데 굉장히 뿌듯합니다.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바탕으로 평화와 인권이 보장되는 세상을 꿈꾸게 하는 게 목표였는데 젊은 미래 세대들이 많이 오니까 보람을 많이 느끼죠.▶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함께 생활하신 지 26년이 되셨어요.제가 처음 할머니들을 만났을 때 그분들은 이미 60대 중반이었어요. 그런데 이 소녀상을 딱 보는 순간 ‘어머! 할머니들이 저렇게 소녀 시절에 끌려갔구나!’라는 것이 생생하게 느껴졌어요. 1991년 8월 김학순 할머니가 최초로 증언했고 저는 1992년 가을 장위동성당에 신부님을 뵈러 가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를 알게 됐습니다. 피해자 할머니들이 경제적으로 너무 어렵고 건강도 안 좋으셔서 그분들을 위한 생활기금을 모금해 줬으면 좋겠다는 부탁을 받았어요. 저도 여성 인권 쪽에 관심이 많았고요. 할머니들의 고통을 알고 나니까 해결이 될 때까지 함께 해야겠다는 소명 의식 같은 것을 느꼈습니다. 하느님의 부르심이라고 할까요.▶우리가 흔히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라고 표현하는데 맞는 표현인가요?일본군 위안부라는 것 자체가 일본 군대에 의한 전쟁 범죄거든요. 그래서 할머니들은 피해자였기 때문에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라고 부르면 좋겠습니다. 또 현재 살아계신 할머니들을 만날 때에는 ‘일본군 위안부 생존자 할머니’라고 부르면 좋죠. 생존자라는 의미는 할머니들이 그런 고통을 겪고도 여전히 이 문제를 위해 투쟁하고 계시기 때문입니다.▶2014년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방한하셨을 때 교황님께 나비 배지를 달아 드렸죠.방한 마지막 날 명동성당에서 봉헌된 평화와 화해의 미사 때 김복동 할머니께서 직접 달아주셨는데요. 나비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상징으로 해방을 의미합니다. 할머니들이 명예와 인권을 회복하고 나비처럼 훨훨 날아 해방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나비 배지는 서울의 한 고등학교 동아리에서 기금 마련을 위해 만들었고 나중에 그 디자인을 박물관에 기증했습니다. 나비 배지를 다는 순간 ‘나는 할머니들의 명예와 인권 회복을 위해 함께 하겠다. 그리고 정말 할머니들 명예와 인권 회복이 이뤄지면 좋겠다’라는 기원이 담겨 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미사 내내 나비 배지를 달고 계셨죠.▶해외에 있는 전쟁 피해 여성에게 연대의 손길을 보내고 계시죠.2012년 김복동 할머니와 길원옥 할머니가 ‘나비 기금’을 만들었어요. 일본 정부로부터 법적 배상금을 받게 되면 전액 다른 나라의 전쟁 피해 여성을 위해 사용하겠다고 선언하셨죠. 그런데 법적 배상금을 받기까지는 시간이 걸리니까 먼저 종잣돈을 내어 놓으셨어요. 가수 이효리씨 등 많은 분이 나비 기금에 동참해 주고 계십니다. 나비 기금으로 아프리카 콩고 내전에서 성폭행을 당한 여성들을 지원하고 있고요. 베트남 전쟁 때 한국군 성폭행으로 고통받는 여성과 그 자녀들을 위해 나비 기금을 지원하고 있습니다. 피해자인 할머니들이 평화 활동가로 거듭나신 거예요. ▶한일 양국 정부 간 일본군 위안부 합의가 계속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2015년 12월 28일 한일 합의가 발표되는 순간 굉장히 참담하면서 한편으론 경악을 금치 못했죠.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합의안이었어요. 왜냐하면, 저희가 25년 동안 활동하면서 어떤 것이 정말 진정한 해결인가를 끊임없이 발표해 왔고 그동안 주장해 온 7가지 요구 조건을 문건으로 정리해 우리 정부와 일본 정부에 지속적으로 전달했거든요. 전혀 받아들여지지 않았어요. 가장 핵심적인 공식 사죄와 법적 배상이 없는 합의입니다. 10억 엔(100억 원)도 일본 정부는 배상금이 아니라고 밝혔습니다. 공식적으로 사죄도 안 하고 전쟁 범죄를 인정하지도 않고 법적 책임을 회피한 것이죠.▶왜 우리 정부는 그런 합의를 했을까요.박근혜 정부가 역사적으로 큰 오점을 남겼다고 생각합니다. 25년간 고생한 피해자 할머니들과 저희 지원 단체와는 일언반구 이야기도 하지 않고 그야말로 졸속 합의를 해 버린 것입니다. 치유와 화해 재단도 일본정부가 한국정부에 10억 엔을 주면서 재단을 만들라고 책임을 떠넘겨 결국은 한국 정부와 피해자들이 서로 갈등만 일으키는 상황이 된 것이죠.▶위안부 합의 어떻게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 소녀상 철거 문제도 이면 합의에 들어가 있지 않나 계속 의구심이 듭니다. 합의 자체를 무효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 의견과 지원 단체들 의견이 배제된 합의를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습니다. 합의안이 발표된 그 날 무효화 성명을 발표했고 그다음 날 380개 이상의 시민사회 단체들도 저희와 똑같은 입장의 공동선언을 했습니다.▶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 하면 수요집회를 빼놓을 수 없는데요.지난 1월 8일이 만 25주년이었는데 일요일이어서 바로 전 수요일인 1월 4일에 25주년 수요집회를 진행했습니다. 참 긴 세월이었죠. 기네스북에 올라갈 정도로 최장기 집회인데요. 할머니들이 워낙 연로하시고 건강도 좋지 않으셔서 수요집회 다녀오면 4, 5일씩 끙끙 앓으십니다.▶26년 지났는데 처음에 시작할 때 이렇게 오래 걸릴 줄 아셨어요.몰랐죠.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대만, 인도네시아, 동티모르, 필리핀 등 곳곳에서 피해자들의 증언이 이어지고 증거도 많이 나오고 국제사회도 공감하고 해서 저희는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어요. 그런데 해결이 안 되는 것은 일본 정부가 역사 인식도 제대로 하지 않고 다른 나라와의 평화적인 공존과 상생이 어떤 것인가를 모르고 있기 때문입니다.▶여성운동가가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1980년대 후반에 전문직 여성들의 결혼 퇴직제 문제가 곳곳에서 제기돼 여성들이 힘을 모아서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1987년 여성운동을 시작했고요. 1990년 여성신학을 만나게 되면서 교회 안에서 여성운동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새 세상을 만드는 천주교 여성공동체’를 열게 됐습니다. 천주교 여성들이 성경 공부나 교육을 통해 여성으로서의 정체성을 찾고 여성 인권을 위한 활동을 하는 곳인데요. 그동안 일본군 위안부 문제, 이주여성 문제, 성매매 방지 특별법 제정, 호주제 폐지 등 여러 가지 활동을 했습니다.▶이런 활동을 하면서 신앙인으로서 어떤 하느님의 섭리를 느끼시나요.하느님이 항상 제 앞을 다 열어주시지는 않지만, 다음 것을 계속 보여주시면서 저를 지치지 않게 하는 열정을 주시는 것 같습니다. 새 세상을 여는 천주교 여성공동체 활동을 10년 정도 한 뒤 신학 공부를 10년 동안 하면서 여성들과 함께 울고 웃고 했는데요. ‘하느님의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내가 너희와 함께하겠다’는 말씀대로 삼천포로 빠지는 이야기 속에 어려움도 토로하고 하느님을 만난 이야기도 하게 되고요. 결국, 우리가 함께 모여서 나누고 서로 기도해 주는 것이 하느님 체험이라고 생각해요. 이것이 저를 영적으로 성장하게 해줬고 지치지 않게 한 원동력이 된 것 같습니다.▶어떤 성경구절을 가장 좋아하십니까.요한 묵시록 21장 5절 “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든다”라는 구절을 굉장히 좋아하는데요. 저를 지치지 않게 하는 말씀입니다. 하느님께서 항상 저에게 새로운 힘과 새로운 희망과 새로운 꿈을 주시기 때문에 늘 저는 새롭게 열정을 가지고 일을 할 수 있습니다.▶어떤 새로운 변화를 꿈꾸십니까. 제가 하나 꿈꾸고 있는 것은 생태공동체예요. 하느님의 창조질서 안에서 생태적인 삶을 실천하면서 공동체로 살고 싶은 게 제 꿈인데요. 한국에 선교사로 오셨던 분들의 노후를 책임져 주는 선교사의 집을 하나 만들면 어떨까 하는 꿈을 가지고 있어요. ▶우리 사회의 희망을 어디에서 보시나요.요즘은 촛불에서 희망을 많이 봤는데요. 촛불이 있게 된 것은 다양한 분야의 NGO 활동 때문이라고 봅니다. 정부나 국회가 제대로 일을 할 수 있도록 각 분야에서 소리를 내온 NGO 즉 시민사회 단체들의 역할이 지난 20년 동안 한국 사회가 변화하는 데 큰 역할을 했다고 보고요. NGO 활동이 세분화 될수록 대한민국에는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그런 각각의 목소리들을 모아 낼 리더의 역할은 무엇인가요.어떤 상황에서도 절망하지 않고 희망을 보고 그 희망을 향해서 나아가도록 사람들을 격려하고 함께하는 것이 저는 리더의 역할이라고 봅니다. 일단 문제점이 무엇인지 볼 줄 아는 안목이 있어야 하고요. 그 문제에 함께 공감할 수 있는 능력이 있고 마지막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메시지를 나누는 것이라고 봅니다.방송 시각 TV : 14일 오후 7시, 15일 오후 11시, 16일 오전 8시 라디오 : 11일 오전 7시 cpbc2017.02.08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1) 예수님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루카 2,40-52)](//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9497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1) 예수님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루카 2,40-52) 지혜가 충만해진 소년, 아버지의 집을 찾다 나자렛 전경. 예수님 시대에는 작은 산골 동네였으나 오늘날은 인구 7만이 넘는 도시이자 이스라엘 내 아랍인들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가운데 원뿔 모양의 건물이 나자렛의 대표적 성지인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이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네 복음서 가운에서 루카복음만이 예수님의 유년 시절과 소년 시절에 관한 이야기를 전합니다. 유년 시절에 관한 내용은 “아기는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으며 하느님의 총애를 받았다”(2,40)는 짧은 문장이 전부입니다. 소년 시절과 관련, 루카는 대단히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한 일화를 소개한 후(2,41-51), “예수님은 지혜와 키가 자랐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하여 갔다”(2,52)는 문장으로 마무리합니다. ‘자라면서 튼튼해지고 지혜가 충만해졌고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도 더해 갔다’는 표현은 하느님의 아들로서 사람이 되신 예수님이 여느 인간과 마찬가지로 육체적으로 또 정신적 혹은 영적으로 성장해 갔음을 의미합니다. 루카는 그러나 요한 세례자의 어린 시절과 젊은 시절에 관한 묘사에서는 언급하지 않은 ‘지혜의 충만’과 ‘하느님과 사람들의 총애’를 언급합니다. 요한 세례자와 예수님은 다릅니다. 어린 시절부터 차이가 납니다. 이제 마리아와 요셉이 예수님을 데리고 예루살렘에 갔다가 그만 예수님을 잃어버리고 사흘 만에 찾았다는 소년 시절의 일화에 대해 살펴봅시다. 당시 이스라엘의 모든 남자는 일 년에 세 차례, 파스카 축제(무교절) 때와 수확절(주간절, 오순절) 그리고 추수절(초막절) 때에 예루살렘 성전으로 순례해야 했습니다.(탈출 23,14-17; 신명16,16 참조) 하지만 거리가 멀거나 형편상 순례가 힘들 경우에는 한 번만 순례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열세 살 이상의 남자는 모두 이를 지켜야 했습니다. 나자렛에서 예루살렘까지 100㎞에 이르기에, 해마다 세 차례씩 예루살렘을 순례하기는 쉽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선지 예수님의 부모는 해마다 파스카 축제 때에 예루살렘을 순례하곤 했다고 루카는 전합니다.(2,41) 예수님이 열두 살이 되던 해 파스카 축제 때가 되자 부모는 이번에는 아들과 함께 예루살렘을 순례합니다. 열두 살이면 아직 예루살렘을 순례할 의무가 없을 때입니다. 그렇지만 함께한 것은 두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습니다. 부모가 자녀의 신앙 교육을 위해 데려갔을 수 있습니다. 또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에 가고 싶어했다고도 추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서 12라는 수가 완전함 또는 충만함을 나타낸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소년 예수님이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할 만큼 성숙했다고도 풀이할 수 있겠지요. 축제 기간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사달이 났습니다. 소년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것을 모른 채 부모가 하룻길을 간 것입니다. 친척이나 친지들 사이를 아무리 찾아도 보이지 않자 부모는 부랴부랴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사흘이나 아들을 찾아 헤맸습니다. 그러다가 마침내 성전에서 율법학자들과 함께 있는 아들을 발견합니다. 열두 살 소년 예수님은 율법학자들의 말을 듣기도 하고 묻기도 하고 답변하기도 하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말을 듣는 사람들은 모두 “슬기로운 답변에 경탄했다”(2,47)고 루카는 기록합니다. 하지만 부모에게는 그게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사흘이나 헤매다가 찾았으니 반갑기도 하고 놀랍기도 하고 화가 나기도 했을 것입니다. 마리아는 조심스럽게 꾸짖습니다. “얘야, 우리에게 왜 이렇게 하였느냐? 네 아버지와 내가 너를 애타게 찾았단다.” 그런데 아들 예수님의 답변이 기가 찹니다.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8-49)똑같이 ‘아버지’를 이야기했지만, 마리아는 요셉을 아버지로 지칭한 반면에, 아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이신 아버지 곧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 열두 살 된 소년 예수가 예루살렘 성전을 ‘내 아버지의 집’이라고 했습니다. 말하면 하느님을 아버지라고 부른 셈입니다. 이 말은 루카복음에서 처음 나오는 예수님 말씀임을 주목할 필요가 있습니다. 자라면서 지혜가 충만해진 예수님은 이제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자각하기에 이르렀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마리아와 요셉은 아들의 이 말이 무슨 뜻인지 알아듣지 못합니다.(2,50)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이 부모와 함께 나자렛에 돌아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냈고 어머니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했다는 것으로 이 일화를 마무리합니다.(2,51) 생각해 봅시다첫째, 아버지의 집. 루카복음이 전하는 예수님의 첫 말씀은 “왜 저를 찾으셨습니까? 저는 제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하는 줄을 모르셨습니까?”(2,49)입니다. 이 말씀에서 핵심은 ‘나는 내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대목입니다. 성전은 하느님께서 거처하시는 곳입니다. 열두 살 예수님은 자신이 하느님 아버지께서 계시는 곳에 있어야 한다는 것을 깨닫고 그대로 실행하신 것입니다. 아버지의 집에 있어야 한다는 것은 아버지와 함께한다는 것이고, 이는 아버지와 하나가 되고 아버지의 뜻에 일치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세례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 또한 늘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도록 우리 마음에 자리를 내드려야 합니다. 아버지의 뜻에 우리 자신을 합치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 보이셨지만, 다시 나자렛으로 내려와 부모에게 순종하며 지내셨습니다. 순종은 단지 고분고분 말을 잘 듣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상대방의 말을 귀담아듣고 그 뜻을 헤아리고 실천하는 것입니다. 알아둡시다 : 이스라엘의 3대 축제 당시 이스라엘이 연중 크게 지낸 세 축제는 무교절, 수확절, 추수절입니다.(탈출 23,14-17; 레위 23,4-22; 신명 16,1-17 참조). 무교절은 누룩 없는 빵을 먹는 축제입니다. 이 축제는 이스라엘이 한 해의 첫째 달로 지내는 아빕달(바빌론 식으로는 니산달이라고 부르는데, 지금의 3~4월에 걸치는 달) 열나흗날 저녁부터 스무하룻날 저녁까지 누룩 없는 빵을 먹습니다. 그런데 이 무교절은 이스라엘의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파스카 축제와 결부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집트 탈출 때에 이 무교절 첫날에 주님의 지시에 따라 1년 된 흠 없는 짐승을 잡아 그 피를 문설주와 상인방에 바르고 그 고기를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함께 먹었습니다. 그때 주님의 천사가 이집트 전역을 다니며 이스라엘 백성의 집을 건너뛰고 이집트의 모든 맏배를 죽였습니다. 이에 이집트 왕 파라오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떠나도록 허락하고, 이스라엘은 홍해를 건너 약속된 땅으로 향하지요. 이를 기념하는 것이 파스카 축제입니다. 수확절은 ‘주간절’ 또는 ‘오순절’이라고도 하는데, 무교절이 거행되는 기간의 안식일이나 파스카 축제가 거행되는 그날로부터 50일을 헤아려 새로 수확한 햇곡식을 바치는 축제입니다. 추수절은 연말(가을)에 추수한 결실을 거둬들이면서 일주일간 지내는 축제로 나중에는 초막절이라고도 했습니다. 백영민2017.04.25
드디어 ‘여성부제연구위원회’ 설립 교황, 위원장에 신앙교리성 차관 페레르 대주교 임명… 여성 부제 역할 연구 지난 5월 여성 수도회 장상들에게 초기 교회의 여성 부제 역할에 관한 연구를 약속했던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여성부제연구위원회를 설립하고, 위원장에 교황청 신앙교리성 차관 루이스 라다리아 페레르 대주교를 임명했다. 위원회 위원은 남녀 6명씩 12명으로 구성했다. 여성으로는 교황청 성서위원회 위원 누리아 칼두크-베나게스 수녀, 교황청립 안토니오대학 총장 마리 멜론 수녀, 미국 호프스트라대학 필리스 자가노 수석 연구원 등이 참여했다. 이 가운데 필리스 자가노 교수는 여성 부제에 관한 연구 논문을 통해 “초기 교회 때 여성 부제들은 사목자로 서품을 받았기에, 오늘날 여성도 부제품을 받을 수 있다”는 주장을 펴는 학자다. 신앙교리성 자문기구인 국제신학위원회는 ‘우리의 자매이며 켕크레애 교회의 일꾼’ 포이베(로마 16,1) 등 초기 교회에 활동한 여성 사목 일꾼에 관한 연구를 20년 전에 한 바 있다. 국제신학위원회는 “성경에 등장하는 부제는 오늘날 서품받은 남성 부제와 다르다”는 결론을 내렸다.교황은 지난 5월 12일 여성 수도회 장상들과 만난 자리에서 여성 부제 부활 검토 요청에 대해 “초기 교회 여성 부제의 역할에 대한 이해가 불분명하다”며 “위원회 설립은 이런 의문을 해소한다는 점에서 교회에 유용하기에 (여러분의 요청을) 수용하겠다”고 밝혔다.교황의 이날 발언을 두고 교회 안팎에서 ‘여성 부제직 수여 검토’, ‘여성 사제서품으로 가는 첫 단계’ 등이라는 섣부른 추측이 나오자 교황청은 “초기 교회 부제의 역할과 여성 부제 가능성에 대해 연구하겠다는 것”이라며 확대 해석을 일축한 바 있다. 부제품은 다른 성품성사와 마찬가지로 세례받은 남자만이 합당하게 받을 수 있다. 부제는 강론을 하고 일부 성사를 줄 수 있지만, 미사 집전이나 고해성사는 할 수 없다. 초기 교회에 여성 부제가 존재한 것은 분명하다. 연구가 충분히 이뤄지지는 않았지만 그들은 주로 여성의 침수 세례를 돕고, 임종자를 찾아다니고, 공동체 기도를 이끌었다. 이런 활동은 현재 여성 수도자들의 활동 영역과 상당 부분 중첩된다. 김원철 기자 평화신문2016.08.10
[위대한 신앙의 신비,기도] (6) 구약에 나타난 기도 - 약속·믿음의 기도외아들도 기꺼이 바치는 믿음 구약성경 창세기 12장은 하느님께서 믿음의 성조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내용으로 시작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을 불러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너에게 보여 줄 땅으로 가거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주님께서 이르신 대로 길을 떠났다”고 창세기는 말합니다(12,1-4). 하느님의 말씀을 전적으로 따르며 순종한 것입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행동하기로 결정하는 마음의 귀 기울임이 기도의 본질적인 요소이며, 말은 부수적인 요소이다.”여기서 아브라함의 기도의 한 가지 특징을 볼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말보다도 “먼저 행동으로 표현”되는 기도입니다. 이렇게 행동으로 표현되는 기도는 아브라함이 주님의 말씀을 듣고 머무는 곳마다 주님을 위한 제단을 쌓는 데서도 드러납니다(창세 12,8; 13,4.8 참조). 아브라함이 말로써 표현하는 첫 기도는 나중에 나옵니다. “주 하느님, 저에게 무엇을 주시렵니까? 저는 자식 없이 살아가는 몸 …당신께서 자식을 주지 않으셔서, 제 집의 종이 저를 상속하게 되었습니다”(창세 15,2-3). 이 기도는 ‘큰 민족이 되게 하겠다’(창세 12,2)고 하신 하느님의 약속이 아직 실현되지 않았기에 그 약속을 하느님께 “상기시켜 드리는 은근한 탄식”입니다. 여기서 또 한 가지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믿음의 조상이라고 부르는 아브라함에게서조차도 처음에는 하느님의 약속에 대해, 달리 표현하면 하느님의 성실성에 대해 과연 믿어야 하느냐 하는 ‘믿음의 시련’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이런 탄식 어린 기도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네 후손이 하늘의 별처럼 많아질 것’이라고 거듭 약속하시고 아브라함은 그 말씀을 믿습니다(창세 15,5-6). 이 약속은 이사악의 탄생으로 실현되지요. 그런데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신앙을 최대한 정화시키고자 엄청난 요구를 하십니다. 당신께서 약속으로 주신 외아들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입니다(창세 22,2 참조). 아브라함은 다시 행동으로 순종합니다. 나이 100세에 아들을 본 아브라함은 신약성경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밝히고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서 죽은 사람까지 일으키실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히브 11,19). 이런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아들 이사악을 바쳤고, 그래서 마침내 믿는 이들의 아버지가 된 것입니다. 믿음으로 외아들 이사악을 기꺼이 바치고자 한 아브라함은 어느 면에서는 “우리 모두를 위하여 당신의 아들을 아끼지 않고 내어 주실 성부를”, 하느님 아버지를 “닮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처럼 “기도는 인간에게 하느님을 닮은 모습을 회복시켜 주며, 또한 많은 사람을 구원하시는 하느님의 강렬한 사랑에 참여하도록 해줍니다”(2573항). 하느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을 아브라함의 손자이자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조상인 야곱에게서 갱신하십니다. “…나는 너의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느님이며 이사악의 하느님인 주님이다.… 네 후손은 땅의 먼지처럼 많아지고… 땅의 모든 종족들이 너와 네 후손을 통하여 복을 받을 것이다…”(창세 28,10-22). 이 야곱과 관련된 한 일화는 교회의 기도 전통에서 상징적 의미를 지닙니다. 형 에사우를 속여 형에게 돌아갈 장자권과 아버지의 축복을 가로챈 야곱은 형의 복수를 피해 달아납니다. 세월이 흘러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야곱은 신비로운 어떤 분과 밤새도록 씨름을 합니다. 동이 틀 때가 되어 그분이 놓아달라고 애원했으나 야곱은 축복을 받기 전에는 놓아 주지 않겠다고 하지요. 그러자 그분은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로 고쳐 부르면서 복을 빌어줍니다(창세 32,25-31). 이 일화를 두고 교리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교회의 영적 전승은 이 이야기를 기도의 상징으로, 곧 신앙의 싸움과 끈기의 승리로 이해해 왔다”(2573항). 끈기 있게 바치는 기도를 하느님께서 들어주신다는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07.06

응답하라! 주님 사랑 전할 미래의 착한 목자들제54차 성소주일 프란치스코 교황 인형과 사진 찍는 주일학교 학생들. 부산교구 전산홍보국 제공 서울대교구를 비롯한 전국 교구는 제54차 성소주일인 7일 대신학교를 일제히 개방하고 예비신학생과 주일학교 학생, 학부모 등을 초대해 하느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삶에 대해 생각하고 기도하며 체험하도록 이끌었다.서울대교구 성소국(국장 조재형 신부)은 혜화동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예비신학생과 초ㆍ중ㆍ고생 등 50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소주일 행사를 열었다. ‘빵이 하나이므로 우리는 여럿일지라도 한 몸입니다’(1코린 10,17)를 주제로 한 미사에서 손희송(서울대교구 총대리) 주교는 강론을 통해 “우리 모두 하느님과 예수님께 극진히 사랑받는 사람임을 잊지 않게 해달라고 청하고, 그 사랑을 이웃에 전하는 사람이 되기를 기도하자”고 당부했다. 이어 “주위에 신부님과 수녀님들이 예수님의 사랑을 깊이 깨닫고 그 사랑을 전해주는 분이 될 수 있도록 함께 기도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앞서 손 주교는 강론을 시작하면서 “미세먼지가 많은 날 야외에서 봉헌하는 미사에 많은 청소년이 와줘서 고맙다”며 김민주(로사, 서울 돈암동본당)양 등 청소년 5명에게 성물을 선물하기도 했다.미사 뒤 대운동장에서는 메리놀수녀회와 인보성체수도회, 성 골롬반 외방선교회 등 15개 수도회와 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마련한 20여 개의 부스에서 기념 행사가 열렸다. 가톨릭평화방송 TV가 제작한 다큐 ‘사제’ 2ㆍ3부도 진리관 대강의실에서 상영됐으며, 사제ㆍ부제 서품식 사진전, 수단 입기 체험, 나만의 말씀 성구 만들기, 학사님을 찾아라 등 다양한 행사가 펼쳐졌다. 가톨릭대 신학대학생 밴드인 우니따스 밴드의 축하공연에 이어 프란치스코 교황과 김수환 추기경 인형의 등장으로 행사장을 찾은 청소년과 학부모, 교사 등의 입가에는 웃음꽃이 가득했다. 양서연(로사, 초6, 서울 거여동본당)양은 “기도를 쪽지에 적어 나무에 봉헌하는 ‘기도가 꽃피는 나무’에 참가했는데, 학사님들이 신부님이 되실 때까지 굳은 신앙을 가지시길 기도했다”고 말했다.이힘 기자 lensman@cpbc.co.kr대구대교구는 대구 관구 대신학원 남산동 유스티노 캠퍼스에서 주일학교 학생들과 청년들을 대상으로 성소 주일 행사를 했다. ‘환호하며 그분 앞으로 나아가라’(시편 100,2)를 주제로 열린 행사에는 4500여 명이 참가해 하느님의 거룩한 부르심에 대해 묵상하고 체험하는 뜻깊은 시간을 보냈다. 대구대교구 보좌 장신호 주교가 주례한 미사로 문을 연 행사는 수단 체험, 유스티노관 관람, 신학생 공연, 말씀 사탕 만들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으로 진행됐다. 특히 툿찡 포교 베네딕도 수녀회, 예수 성심 시녀회, 사랑의 씨튼 수녀회, 미리내 성모 성심 수녀회, 성 바오로 딸 수도회, 살레시오 수녀회 등 6개 수녀회가 참여해 수도 성소를 소개했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광주대교구는 전남 나주 남평읍 광주가톨릭대에서 ‘와서 보아라’(요한15, 9)를 주제로 예비신학생을 대상으로 성소주일 행사를 열었다. 행사에 참가한 300여 명은 교구장 김희중 대주교 주례로 미사를 봉헌한 후 예신 집중 프로그램을 청강했다. 고등부와 일반부는 그룹별로 신학생과의 만남의 시간을 가졌으며, 중등부는 사제직과 신학교에 대해 알아가는 시간을 가졌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인천교구는 강화군 양도면 인천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나는 착한 목자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내 양들은 나를 안다’(요한 10, 14)를 주제로 성소주일 행사를 개최했다. 예비신학생과 신자 4500여 명이 참가해 수도회 성소 상담을 비롯해 백일장과 OX 퀴즈, 축하 공연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을 통해 성소주일의 의미를 되새겼다 미사를 주례한 교구장 정신철 주교는 강론에서 “오늘 이 자리는 복음을 선포하는 일꾼을 만들기 위한 자리”라면서 “사제, 수도자의 삶은 복음을 따라 사는 세상에서 가장 값진 삶”이라고 강조했다.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수원ㆍ원주교구는 경기 화성시 수원가톨릭대에서 성소주일 행사를 개최했다. 행사에는 두 교구 예비신학생을 비롯해 초ㆍ중ㆍ고교 학생들과 각 본당 성소위원회 위원과 가족 등 7000여 명이 참여했다.‘복음의 기쁨은 우리의 마음과 삶을 채워줍니다’를 주제로 봉헌된 미사에서 수원교구 총대리 이성효 주교는 강론을 통해 “가정에서 성소에 관한 관심과 기도로 자녀들을 격려하고, 부모님들은 기쁘게 성직ㆍ수도자를 봉헌하기를 희망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생명주일이기도 한 오늘, 무엇보다 청소년들이 성에 대해 바른 인식을 하도록 올바른 성교육을 가르쳐 생명의 가치를 망각하지 않도록 하자”고 당부했다.청소년들은 점심을 마친 후 곳곳에 마련된 부스에서 △페이스 페인팅 △로고 붙이기 △블록 맞추기 △신학교 투어 등에 참여하며 즐거워했다. 김의태ㆍ김종헌 신부 등은 ‘사제의 삶, 기쁨의 삶’을 주제로 토크 콘서트를 열어 눈길을 끌었다.수원교구 홍보국 제공대전ㆍ청주교구는 대전가톨릭대 교정에서 ‘선교를 위한 성령의 이끄심’을 주제로 성소주일 행사를 열었다. 격년으로 대신학교 전체 개방을 해온 예년과 달리 올해는 두 교구 중ㆍ고등부와 청년부 3000여 명이 함께한 가운데 성소주일 본연의 취지를 살려 성소에 대한 깊이 있는 체험을 나누고 공감하는 자리로 기획했다. 두 교구 성소국과 대전가톨릭대 성소준비위원회는 성소주일 기념 미사를 시작으로 신학생과 함께하는 신학교 탐방, 수도회별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성소 체험에 대한 토크 콘서트를 열었다. 대전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하면,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누군지, 당신 뜻이 무엇인지 알려주신다”면서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 살 때에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이 살아갈 행복한 삶의 길을 결정해주시고 그 길을 따라 살 수 있도록 해주신다는 사실을 마음속 깊이 간직하고 살아가시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이 날은 주교회의에서 제정한 제7회 생명주일이어서 대전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회장 김광현)는 대신학교 교정에서 ‘성소주일과 함께하는 2017 카리타스 한생명대축제’를 개최하고, 생명 나눔을 통한 이웃 사랑 실천과 생명 수호 캠페인을 전개했다.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부산ㆍ마산교구는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교정에서 ‘제가 있지 않습니까? 저를 보내십시오’(이사 6,8)를 주제로 성소주일 행사를 개최했다. 부산교구 98개 본당과 마산교구 6개 본당 주일학교 학생과 청년 3500여 명이 참여한 이 날 행사는 신학생 축하 공연, 사생대회, 성경 이어쓰기, 버블축구, 단체 줄넘기 등 다채롭게 펼쳐졌다. 미사를 주례한 부산교구 총대리 손삼석 주교는 강론을 통해 “교회 안에서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든지 주님의 제자로서, 교회의 일꾼으로서 성실하고 충실하게 살아가자”고 당부했다. 리길재 기자 안동교구는 예비신학생 20명을 대상으로 6일부터 1박 2일간 대구대교구 무학연수원과 대구가톨릭대 신학대학에서 성소주일 행사를 열었다. 예비신학생들은 첫날 경북 성주 무흘구곡을 따라 자전거 하이킹을 하며 자연 안에서 지친 몸과 마음의 휴식을 갖고 서로 친교를 나눴다. 동행한 부제와 신학생들과 성소에 대한 고민과 신학교 생활에 대해 대화하는 시간도 가졌다. 7일에는 신학교를 방문, 신학생 생활관 관람 등 부스 행사에 참여하며 성소의 길에 대한 체험의 시간을 가졌다. 안동교구 제공 백영민2017.05.10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1.이새나무](//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7323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1.이새나무 생드니 성당 ‘이새나무’(Jesse Tress) 창, 1144년, 파리, 프랑스 “이새의 그루터기에서 햇순이 나오고 그 뿌리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야훼의 영이 그 위에 내린다. 지혜와 슬기를 주는 영, 경륜과 용기를 주는 영, 야훼를 알게 하고 그를 두려워하게 하는 영이 내린다”(「공동번역 성서」 이사 11,1-2).프랑스 파리 생드니수도원 성당에 설치된 ‘이새나무’는 스테인드글라스 역사에서 매우 중요한 작품이다. 글 서두에 언급한 이사야서 예언을 예술적으로 해석해 나무의 형상으로 예수의 가계(家系)를 표현한 이 도상은 생드니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첫선을 보였다. 이전에 필사본에서 유사한 도상이 시도된 바 있었으나, 이새나무의 결정적인 양식이 확립된 것은 쉬제르 아빠스에 의해서였다. 이새나무 창 오른쪽 하단에 이 창을 봉헌하는 쉬제르 아빠스의 모습이 표현된 것만 보아도 이새나무가 생드니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를 대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인지 이새나무는 생드니 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서 유일하게 창 전체에 하나의 주제를 그려내고 있다.이새나무 도상에는 나무뿌리와 같이 바닥을 받치고 누워 있는 이새의 몸에서 뻗어 나와 자유분방하게 그려진 나뭇가지들을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영적, 육적 조상들인 예언자와 왕들이 표현돼 있다. 그리고 이어서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로 이어지는 형식이다. 아래로부터 이새, 다윗 왕 그리고 다른 두 인물을 지나 작품 상단으로 시선을 옮기면 성모 마리아와 예수 그리스도 상을 마주하게 된다. 예수 그리스도는 원형의 프레임 안에 놓인 7개의 성령의 비둘기에 에워싸여 작품 맨 위쪽에 위엄을 갖추고 자리하고 있다.동일하게 구획된 6개의 패널 정중앙에는 양손으로 나뭇가지를 쥐고 나무 기둥에 걸터앉아 있는 인물들이 수직으로 일렬로 배열되어 마치 그림으로 표현된 족보와 같은 인상을 준다. 성경에 설명된 예수 그리스도의 긴 족보(마태 1,1-17; 루카 3,23-38)를 4~5명의 인물로 압축하여 장구한 생명을 이어온 나무의 상징과 결합하여 표현한 것은 뛰어난 예술적 발상이 아닐 수 없다. 생드니성당의 이새나무는 맨 아래 패널에 등장하는 이새와 그 위에 다윗 왕이 19세기에 복원된 것 외에 대부분이 12세기 당시 모습을 보존하고 있어 역사적, 예술적 가치가 더욱 높이 평가되고 있다.자연의 일부이면서 초자연적인 상징적 존재로서 ‘나무’는 성경 곳곳에 등장한다. 선과 악을 분별하는 지혜의 나무에서부터 뱀으로 변한 모세의 나무 지팡이,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못 박힌 나무 십자가가 상징하는 생명과 구원의 나무는 오랜 세월 깊이 뿌리를 내리고 생명을 이어가는 존재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새롭고 영원한 삶의 대표적인 상징이다.생드니 성당에서 시작된 이새나무 도상은 이후 12세기에 샤르트르 대성당, 13세기 스트라스부르, 르망, 보베, 앙제, 수아송 성당과 파리 생트 샤펠 등 여러 성당에 도입되어 유행했다. 중세 전반에 걸쳐 프랑스와 영국에서 유행한 이새나무 도상은 14~15세기까지 이어졌으나, 생드니 성당에서와 같은 전형적인 표현 양식에서 변형된 형태로 전개됐다.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아 이새나무의 의미를 되새겨보며 당시 성경의 말씀을 독창적인 예술적 표현으로 구현해낸 중세인들의 위대한 상상력에 경의를 표하게 된다. 그리고 한국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에도 이새나무와 같이 창의적인 조형 언어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이 구현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백영민2016.03.30
![[성경 속 도시] (27) 키프로스](//cpbc.co.kr/CMS/newspaper/2014/11/rc/53783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27) 키프로스박해 피해 간 섬, 복음의 꽃 피워 키프로스는 지중해에서 세 번째로 큰 섬으로 제주도의 약 5배 규모다. 섬은 비옥하고 쾌적하며 아름다운 풍광을 갖고 있다. 또 이곳은 유럽, 아시아, 아프리카를 잇는 교통의 요충지로 비너스 탄생의 전설로 유명한 곳이기도 하다. 키프로스는 기원전부터 그리스, 페니키아, 아시리아, 이집트, 페르시아, 로마, 아라비아, 베네치아, 제노바 등의 식민 지배를 받았고 1878년 영국령이 되었다가 1960년에 비로소 독립했다. 그러나 독립 후에도 그리스와 터키계 주민의 갈등이 계속돼 남북으로 갈라져 늘 전쟁의 위험 속에 놓여 있다. 키프로스에는 역사 유적이 많이 남아 있는데 로마 귀족들의 호화스러운 저택과 로마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돌로 만든 방벽, 바오로 사도가 묶여서 채찍을 맞았다는 돌기둥 등이 있다. 살라미스에도 체육관, 극장, 원형 경기장 등 고대 로마 유적들이 있다. 바오로 사도의 1차 선교 여행의 시작점 성경에서 보면 이곳 키프로스는 그리스도인들이 박해를 피해 교회를 세웠던 곳이다. “스테파노의 일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흩어진 이들이 페니키아와 키프로스와 안티오키아까지 가서, 유다인들에게만 말씀을 전하였다”(사도 11,19). 이처럼 키프로스는 스테파노 순교로 일어난 박해 때문에 그리스도인들이 예루살렘에서 도망간 곳 중 하나였다. 키프로스는 바르나바 사도의 고향이며 바오로 사도와 연관이 깊은 지역이다. 바오로 사도의 제1차 선교여행이 키프로스에서부터 시작됐다. “성령께서 파견하신 바르나바와 사울은 셀레우키아로 내려간 다음, 거기에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건너갔다”(사도 13,4). 바르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가 첫 선교 여행지가 된 것은 전혀 모르는 지역보다 잘 아는 지역을 선교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바오로 사도 일행은 바로 이 도시의 유다인 회당에서 복음을 전했다. 그리고 일행이 파포스라는 곳에 가서도 복음을 전했으며 당시 키프로스 총독이었던 세르기우스 바오로 총독의 유명한 회심 사건이 일어났다. “그는 슬기로운 사람인 세르기우스 바오로 총독의 수행원 가운데 하나였다. 총독은 바르나바와 사울을 불러 하느님의 말씀을 듣기를 원하였다”(사도 13,7).라자로 기념 성당 남아있어 바오로 사도의 제2차 선교 여행 때 바르나바가 그의 사촌인 마르코 때문에 바오로가 견해차를 보여 다투었다. “그리하여 그들은 감정이 격해져서 서로 갈라졌다. 바르나바는 마르코를 데리고서 배를 타고 키프로스로 떠나갔다”(사도 15,39). 마르코는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를 따라(사도 12,25) 제1차 선교 여행을 함께했다. 그러나 마르코는 키프로스까지 동행한 후 그 다음 목적지인 소아시아의 주요 지역 여행을 포기하고 예루살렘으로 돌아가 버렸다(사도 13,13). 이에 바오로 사도가 그를 못마땅하게 여긴 나머지 2차 선교 여행 때 동행하기를 거부하자 마르코는 바르나바와 함께 키프로스 섬으로 가 선교했다(사도 15,37-39). 그러나 제3차 선교 여행 때 바오로 사도가 에페소 감옥에 갇히자 마르코는 그의 곁을 지키며 위로가 돼 주었다(콜로 4,10). 교회 전승에 따르면, 예수님의 기적으로 라자로가 다시 살아난 후(요한 11,1-27참조) 다른 사람들과 배를 타고 가다가 기적적으로 키프로스에 도착해 키티온과 또는 라마카에서 30년간 선교하다가 그곳에서 운명했다고 한다. 그래서 그를 기념하는 라자로 기념 성당이 아직 키프로스에 남아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11.04

성경, 특히 네 복음서는 가장 훌륭한 기도 재료[성녀 데레사의 가르침에 따른 영성생활] 50. 데레사 성녀의 가르침을 바탕으로 한 기도생활④ 성경, 특히 네 복음서를 읽고 묵상하는 거룩한 독서는 초대 교회 신앙의 선조들이 계발해서 우리에게 전해준 값진 기도 방법이며 다른 여타 기도의 바탕이 되는 기도라고 할 수 있다. 영적 진보를 바라는 자, 기도를 잊지 마라성녀 데레사는 기도를 하면서 다양한 영성 서적들로부터 도움을 받도록 권했습니다. 아니, 기도 시간에 독서가 웬 말이냐고 할 수도 있지만, 성녀가 말하는 기도는 성당 근처를 잠시 지나다 들어가서 감실과 1~2분 정도 눈길만 마주치는 그런 번개기도가 아니라 최소 1번에 1시간 정도 진득하니 앉아서 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물론 지난 호에서 말씀드렸듯이, 이 바쁜 세상에 도대체 잠시라도 앉아서 기도할 수 있는 시간을 어찌 낸단 말입니까? 하고 반문하실 수 있겠습니다만, 그 와중에도 대부분의 사람은 영화도 보고 드라마도 보고 술도 마시고 운동도 하고 연애도 하고, 하고 싶은 일 다 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런데 인생의 근본이신 하느님을 만날 시간은 없다니? 그건 핑계에 불과합니다. 주님께 드릴 마음이 부족할 뿐입니다. 하느님을 향해 정진할 마음이 있다면, 제대로 된 기도는 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성녀가 창립한 맨발 가르멜 수도회는 매일 일과 중에 아침, 저녁에 1시간씩 2시간을 의무적으로 묵상 기도에 할애해야 합니다. 입회 때부터 계속 기도 수련을 받은 수도자들이라 할지라도 2시간은 결코 짧은 시간이 아닙니다. 하물며 평소에 번개기도, 화살기도에만 익숙해진 보통의 신자들에게 2시간을 기도하라면 대부분은 나가떨어지기 일쑤입니다. 예수님 앞에서 울고 웃고 떠들고 별의별 이야기를 다 해 봤자 시계를 보면 15분을 넘지 못합니다. 그다음에는? 십중팔구는 본의 아니게 비몽사몽 간에 신비적인 수면 기도 속에서 40~50분을 헤매다 속절없이 기도 시간을 허비하곤 합니다. 준비되어 있지 않으면 기도처럼 고역인 시간도 없습니다.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기도를 시작해야 좋을까?기도를 위한 수많은 보석을 담고 있는 성경성녀는 그런 사람들을 위해 가장 쉬운 것에서부터 기도를 시작하도록 권했습니다. 아무리 세월이 변해도 역시 신자들에게 가장 으뜸이 되는 기도의 재료는 「성경」입니다. 성경 중에서도 특히 네 복음서는 기도를 위한 수많은 보석으로 꽉 차 있습니다. 기도가 예수님과의 대화이자 사랑의 나눔이라면, 우리는 네 복음서를 통해 예수님께서 2000년이 지난 오늘 우리에게도 여전히 하시는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공생활과 수난 그리고 죽음, 부활을 통해 드러난 인류 전체에 대한 사랑, 구체적으로는 나를 위한 그분의 애틋한 사랑을 만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단언컨대, 네 복음서만 갖고도 1년 365일 기도를 하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거기서 여러분은 그 어떤 유명한 영성 서적에서도 발견할 수 없는 우리 믿음의 정수(精髓)를 발견하고 그것을 여러분의 것으로 체득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 신앙의 선조들은 일찍이 이런 기도의 비결을 발견하셨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4~5세기부터 순교하겠다는 각오로 본격적으로 광야에 나가 백색 순교를 치르며 평생을 그곳에서 수도 생활을 한 초창기 수도자들은 세속과 육신의 유혹에 맞서 싸우며 끊임없이 성경 구절을 읊조렸다고 합니다. 그중에서도 네 복음서를 거의 외우듯이 줄줄 꿰며 그 안에 담긴 천상 보화를 캐냈으며 시편을 바치면서는 시편 저자들과 한마음이 되어 주님께 감사와 찬미 그리고 용서를 청하는 기도를 드리곤 했습니다. 그걸 요즘에 ‘거룩한 독서’라고들 합니다. 거룩한 독서는 초대 교회 신앙의 선조들이 계발해서 우리에게 전해준 값진 기도 방법, 아니 다른 여타 기도의 바탕이 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음을 일깨우는 영성 서적의 도움앞서, 성녀 데레사가 기도하는 이들에게 영성 서적의 도움을 받으라고 한 것은, 기도 시간을 영적 독서 시간으로 삼으라는 게 아닙니다. 30분에서 1시간 정도 기도를 하다 보면, 묵상하다가 잡념이 들어 생각이나 상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결국에는 삼천포로 빠질 때가 있습니다. 그리고 기도 시간이 길다 보면 정신을 집중하지 못해 졸음에 빠지기도 합니다. 또 기도한다면서 머리만 사용하다 보면, 생각만 할 뿐 머리에서 가슴으로 내려가 주님과 더불어 전인적인 소통을 하지도 못합니다. 그럴 때 잠시 방황하던 것을 멈추고 영성 서적을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말씀드렸듯이, 가장 좋은 것은 성경입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행적과 말씀을 다시 천천히 읽으며 마음속에 구절들을 새겨보십시오. 그리고 그것과 관련된 구약성경을 펼쳐서 묵상해 보십시오.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느낌을 받게 될 겁니다. 그 밖에도 성 아우구스티노의 「고백록」이나 성녀 데레사의 「자서전」처럼 하느님을 깊이 체험하고 그분과 대화하며 그분을 향한 애틋한 심정을 절절히 표현한 영성 서적들을 펼쳐보시기 바랍니다. 그분들의 기도에 내 마음을 실어 함께 예수님과 대화하며 감사와 찬미 그리고 회심의 기도를 드리시면 됩니다. 마치 승천하는 용의 기운을 받아 하늘에 오르기 위해 그 용의 등에 업히듯이, 성인 성녀의 기도에 내 마음을 실어 함께 기도하면 그만입니다. 또는 예를 들어, 오랜 교회의 역사를 통해 이미 검증된 「준주성범」이나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 같은 주옥같은 영성 서적을 펼쳐 보시기 바랍니다. 꺼져가던 여러분의 마음에 하느님을 향한 사랑의 불이 다시 타오르게 해주는 영적인 기름을 발견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러 갈 땐, 성경과 여러분의 마음을 주님을 향한 사랑으로 촉촉이 적셔주는 영성 서적 1권쯤은 손에 들고 가시기 바랍니다. cpbc2015.03.18
![[생활 속의 복음] ‘자비의 문화’를 사는 기다림](//cpbc.co.kr/CMS/newspaper/2016/11/rc/662449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자비의 문화’를 사는 기다림대림 제2주일
(마태 3,1-12)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며 인권 주일입니다. 대림 시기는 우리들이 주님의 오심을 기쁨과 희망 안에서 기다리는 때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역사)’ 안에서 그분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1. 주님을 앎이 가득하여(이사 11,9 참조)오늘 제1독서에 보면 “함께, 더불어, 나란히(이사 11,6-8 참조)”와 같은 표현이 유난히도 우리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을 더 끄는 이유는 “함께, 더불어, 나란히” 지내는 주체들 사이의 자연적인 질서가 부정(否定)되는 듯한 까닭입니다. 과연 언제 ‘늑대와 새끼 양, 표범과 새끼 염소, 송아지와 새끼 사자, 젖먹이와 독사’가 ‘함께, 더불어, 나란히’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에 대하여 이사야 예언자는 “그날”(이사 11,10)이라고 밝혀주면서,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이사 11,9) 때라고 새겨줍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주님,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며 자신을 주님께 통째로 드렸습니다. 모름지기 이런 자세가 ‘주님을 아는 것’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더불어, 나란히’ 살 수 있게 합니다.2. 예수님과 같은 뜻으로(로마 15,5 참조)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유의지론」에서 “자유는 은총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아니, 은총이야말로 인간의 자유를 창조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은총을 통해서만 인간의 자유가 성숙하고 진리에 복속(服屬)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기꺼이 받아들이신 은총’으로 ‘한마음 한목소리로 진리이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됐다고 선포합니다(로마 15,5-7 참조). 결국 우리가 예수님의 뜻(마음)과 같게 된다면, 이는 진리이신 하느님의 은총을 입었다는 증거입니다.3. 그분 곳간의 알곡으로(마태 3,12 참조)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 가면 벼를 털고 도리깨질을 하고 검불 날리기 과정을 거쳐서 타작하던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검불 날리기는 낟알들을 한곳으로 모아놓고 가래로 퍼 공중 높이 던지면서, 키 또는 부뚜 따위로 바람을 일으켜 쭉정이와 검불과 알곡으로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 세례자가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라고 선포하면서 이 장면을 우리에게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줍니다.지난 11월 20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마무리하면서, 비록 “자비의 성문이 닫히더라도 ‘진정한 자비의 문인 그리스도의 마음’은 우리 안에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라며 우리들이 ‘자비의 도구’가 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아울러 다른 형제들에게 무관심했던 우리의 눈길이 그들과 ‘함께 나누는’ 만남의 모습이 되라고 권고하셨습니다(「자비와 비참」 20항 참조). 이른바 ‘자비의 문화’는 주님 곳간의 알곡이 되는 회개의 삶입니다.4.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마태 3,10 참조)어느 날 한 자매님이 제게 다가오셔서 “요즘 신부님과 자주 악수해서 그런지 머리 아픈 것이 많이 나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시기에, “자매님, 뻥치지 마세요!”라고 대꾸하며 그 순간을 애써 지나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매로 하여금 치유된 느낌을 갖게 하신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교형자매 여러분, 요한 세례자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마태 3,3)였습니다. 성경에서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분의 계획과 동행하심’을 깨달은 기억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대림 시기를 지내는 우리들도 ‘광야’를 떠올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을 더 잘 알고, 그분의 뜻에 같이하여, 영적으로 알곡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들이 다른 형제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응답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영적으로 충만한 대림 시기를 사시길 빕니다. 아멘. 평화신문2016.11.30
사회교리는 이웃사랑 계명 실천하는 것사회교리 주간 - 그리스도인은 왜 사회교리를 실천해야 하나 “나라의 정치 행위와 국가 안보 문제는 교회 권위에 속하지 않는다. 예수님으로부터 위임받지 않았으며 정치, 과학, 경제, 군사 작전에는 교회가 권위가 없으며 무류권이 없다. 이런 일에 천주교회의 이름으로 신자들에게 지시하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도 아니며 각자의 양심과 양식에 따라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자칭 한국 교회를 걱정한다는 한 단체의 주장이다. 과연 이들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인은 사회ㆍ정치ㆍ경제ㆍ환경ㆍ군비 문제 등에 눈 막고 귀 닫고 ‘오직 믿음과 구원’만을 외쳐야 참신앙인일까. 가톨릭 사회교리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준다.1. 가톨릭 사회교리란 무엇인가?가톨릭 사회교리는 한마디로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사회 교리는 사회 문제에 대해 교회의 거룩한 전통 안에서 성경의 가르침으로 해석해 제시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침이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신자가 반드시 사회교리를 배워서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리스도인은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관한 자신의 행동을 교회 가르침에 반드시 일치시켜야 한다”(「간추린 사회 교리」 3쪽). 2. 사회교리는 일부 주장처럼 비복음적인가?사회교리의 원천은 ‘복음’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요한 13,34-35). 사회교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세계 정의를 향한 새로운 투신을 권고했다. 정의 실천이 곧 복음 선포의 초석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하나 됨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요구를 우선한 데 있다고 성찰했다. 교회는 세상의 복음화와 인간 증진을 위해 사회교리를 가르친다. 그러므로 가톨릭 사회교리를 이념적 관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3. 사회 교리는 무엇을 가르치나?1) 인간 존엄성 : 사회교리의 근본 주제는 ‘인간’이다. 먼저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존엄한 존재’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부당하게 제약받아서는 안 된다. 2) 가정의 중요성 :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토대이다. 따라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가정의 우위성이 확인돼야 한다. 가정은 전인 교육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 자녀들은 법적 체계 안에서 합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며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는 연대해야 한다.3) 인간 노동 : 인간 노동은 존엄하다. 자본과 기술보다 우위에 있다. 정당한 임금과 노동자의 단결권은 존중돼야 한다. 이민자의 권리는 자국민과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4) 경제 생활 : 경제에도 도덕성이 요구된다. 부의 증대는 연대를 통한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은 사회 공동선에 이바지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5) 정치 공동체 : 정치 공동체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하며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정치 권위의 주체는 국민 전체이다. 권위는 도덕률에 따라야 한다. 권위는 공정한 법을 실행해야 하고,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증진해야 한다. 6) 평화 촉진 :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효과적인 국제 공권력이 필요하다. 군비 경쟁이 중단돼야 하고, 점진적으로 군비가 축소돼야 한다.4.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그리스도인은 항상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이익 일부를 포기하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는 데 협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권력과 재산, 권위를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나아가 이들을 돕고 연대해야 한다. 인간은 서로 형제애를 나누면서 발전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6.11.30
![[안소근 수녀와 함께 떠나는 구약 여행] (65)“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지혜 2,23)](//cpbc.co.kr/CMS/newspaper/2016/04/rc/629720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함께 떠나는 구약 여행] (65)“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지혜 2,23)지혜에 귀 기울이고 영원한 생명 얻으라 헤르만 골 작,‘ 알렉산드리아의 파괴’, 불멸! 지금까지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주제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주제가 나오는 것은 지혜서가 구약 성경의 책들 가운데 가장 작성 연대가 늦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는 흔히 이 책을 “솔로몬의 지혜”라고 일컫지만, 솔로몬은 이 책의 저자일 수 없습니다. 내용상으로 볼 때 이 책의 앞부분은 헬레니즘 시대의 가치관과 유다교의 전통적 가치관 사이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유다교와 그리스-헬레니즘 문화를 모두 잘 알고 있으며,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에도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을 사용하고 그밖에도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과 문학에도 정통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아마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식 교육을 받은 유다인들 사이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작성 연대는 기원전 1세기 중반에서부터 로마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기원전 30년 사이가 됩니다.한동안 떠나 왔던 지혜문학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 잠언이 말하는 고전적인 지혜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욥기와 코헬렛은 그 원칙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불행하게 살다 죽는 의인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세에 대한 희망은 아직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지혜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 세상의 질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혜서에서는 이 벽을 넘어섭니다. 인간 지혜의 한계 문제에서 벽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이미 집회서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집회서에서 벤 시라는, 하느님께서 홀로 지혜를 갖고 계시고 그 지혜를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말했습니다(집회 24장 참조). 지혜서에서는 솔로몬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그가 하느님께 청하여 지혜를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솔로몬도 태어날 때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었지만(지혜 7장),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자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혜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지혜 9장). 솔로몬이 다른 무엇보다 지혜를 청했다는 이야기는 열왕기 상권 3장에 나오지요. 지혜서 9장에서는 그의 기도를 제시합니다.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지혜 9,17).다음으로 인과응보 문제에 있어서, 지혜서는 불멸을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불멸을 누릴 수 있을까요? 지혜서의 대답은 지혜를 추구함으로써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은 불멸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는 의인이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지 못하거나 아니면 일찍 죽는다 해도 그것 때문에 인과응보의 원칙이 뒤흔들리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죽은 의인은 내세에서 복을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기의 마지막에서는 욥이 잃어버렸던 재산을 되찾고 자녀들도 다시 얻게 되지요(욥 42장). 만일 이러한 회복이 없이 그대로 욥이 죽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혜서에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었을 때에는 오래 사는 것과 후손이 많은 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복이었지만, 이제는 악인으로 오래 사는 것보다 의인으로 일찍 죽어 영원한 복을 누리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지혜 4장). 어리석은 이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하느님 안에 있다고 말하는 지혜서 3장은, 장례 미사 때와 순교자 축일에 읽는 독서이기도 합니다.그러면, 불멸은 얻기 어려운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혜서는 창세기로 돌아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 하느님의 본성을 닮아 불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죽는 것은 인간 스스로 죄를 지음으로써 죽음을 자신 안에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이 세상에서 살고 또 죽어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면서는, 인간은 본래 사멸할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다른 문화들의 신화에서도 신들과 인간의 차이는 신들은 죽지 않는 데 비하여 인간은 죽는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멸할 인간은 정말 힘써 노력해야만 간신히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혜서가 말하는 것은 그와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만드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세상에는 미치지 못한다”(지혜 1,13-14). 엄청난 말씀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운 말씀은 아닙니다. 지혜서는 다른 곳이 아니라 창세기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위대함과 죄에 떨어진 인간의 나약함, 인간의 그 두 모습 가운데 창세기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비록 죄로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서에서도, 지혜를 찾고 불멸을 얻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혜는 “다정한 영”(지혜 1,6), 어원적으로 말하면 ‘인간을 좋아하는 영’입니다. 인간이 지혜를 찾기 전에 먼저 지혜가 인간에게 오고 싶어 합니다. 비뚤어진 생각과 간악한 마음으로 그 지혜의 길을 막지 않는다면(지혜 1,3-4), 지혜는 우리에게 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토대로 지혜서는, 성경 말씀 안에서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영원한 생명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영원한 희망을 말합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4.12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5>](//cpbc.co.kr/CMS/newspaper/2016/05/rc/633808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아름다운 유리의 성모 ‘아름다운 유리의 성모’ 부분, 13세기, 샤르트르, 프랑스 중세 스테인드글라스를 이야기하면서 샤르트르 대성당의 많은 스테인드글라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성모자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아름다운 유리의 성모’(Notre-Da me de la Belle Verrire)라 불리는 이 창에는 중앙 상단에 성령의 비둘기와 함께 성모자상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성모자상 좌우로는 분향(焚香)하는 천사들이 에워싸고 있고, 아래에는 성모님을 떠받치고 있는 네 천사가 붉은색 배경에 놓여 있다. 이어지는 작품 하단에는 예수님의 첫 기적인 카나의 혼인 잔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세 유혹이 표현돼 있다. 하나의 패널이지만, 성모자상은 12세기(1137년 이전)에, 그 나머지는 13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이다. 그리고 성모의 얼굴 일부 등과 같이 19세기에 복원된 부분들도 있다.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샤르트르의 블루’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유독 푸른색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이 패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는 성모님을 상징하는 푸른색이 작품 중앙부에 크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엄있는 자태로 옥좌에 앉은 천상의 모후로서 표현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붉은색과 푸른색 유리로 뒤덮인 보석과도 같은 창을 더욱 기품 있게 보이게 해주고 있다.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유입되는 빛은 성모 마리아의 신비로운 잉태와 비교되곤 한다. 즉 흠집 없이 유리를 관통하는 빛의 이동은 성령을 통한 성모 마리아의 기적적인 잉태에 대한 중세의 특징적인 이미지로 해석되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는 자신의 글 ‘마귀 잡는 쥐덫- 메로드 제단화의 상징주의’(Muscipula Diaboli : The Symbolism of the Mrode Altarpiece)에서 스테인드글라스가 중세의 ‘유비’ 개념과 ‘빛의 미학’을 수용하는 데 얼마나 적절한 매체인지를 설명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빛의 경로는 성모 마리아의 기적적인 잉태의 은유로서 도입되어 당시 라틴어나 지역 방언으로 기록된 시, 신비주의 문학, 찬송가, 전례극 등에 되풀이되어 등장하고 있다.태양의 광선이 창을 통해 지나감에도반투명의 유리는 아무런 상처도 남기 지 않고그렇게, 아니 더욱 섬세하게티 없이 깨끗한 어머니하느님, 그 하느님의 아들은그의 신부로부터 오시네. <마이로 샤피로 논문 발췌>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가운데서 빛이 유리를 투과하듯이 그 어떠한 흠집도 남기지 않고 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가난한 자의 성경이자 빛으로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 성모 마리아의 기적과도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대변해주고 있기도 하다.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는 성경구절을 되뇌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진정한 역할과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백영민2016.05.04
![[추기경 정진석] (45) 불쑥 찾아온 봄](//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8164_1.0_titleImage_1.jpg)
[추기경 정진석] (45) 불쑥 찾아온 봄어린 시절 누비던 명동대성당, 교구장 되어 돌아온다니 ‘두근’ 1998년 6월 착좌식 전날 주교좌 명동대성당을 찾아 자신의 문장이 붙여진 서울대교구장 주교좌에서 기도하는 정진석 대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 제공 교황청, 김수환 추기경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 임명김 추기경, 발표 직후 전화로 정 대주교에게 축하 인사유아 세례·복사활동·사제수품 이어 같은 곳에서 은총1998년 봄이 되자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새 생명을 받아 개나리, 진달래, 산철쭉을 흐드러지게 피워냈다.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심천을 벚나무가 둘러쌌는데, 이 벚꽃도 활짝 피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청주는 큰 특색이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학생과 학교가 많아 교육도시라고 불렸다. 그 이름처럼 봄이 되자 젊은 학생들의 열기가 도시 전체를 싱그럽게 만들었다.정진석 주교는 청주의 이런 특징을 무척 좋아했다. 책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젊은 학생들을 보면 마치 자신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레었다. 정 주교는 얼마 전, 교황이 자신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교황대사관의 전화를 받고 난 뒤, 정 주교는 더욱 자주 깊은 침묵과 함께 기도에 매달렸다. 사실 정 주교는 28년 전 청주에 내려올 때 자신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것으로 생각했고, 이와 같은 생각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때문에 정 주교 자신이 서울대교구장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으니 혼란스럽고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그렇기에 더욱 기도 안에서 주님의 답을 듣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작년부터 한국 교회 안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었다. 정년을 맞은 김수환 추기경이 교황에게 사직서를 제출했고, 후임자를 결정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98년에 들어서면서 교계 신문도 아닌 일간지들이 차기 서울대교구장 후보 4~5명을 자기들 나름대로 꼽아가며 각 주교의 특징을 경쟁적으로 기사로 쏟아내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대략 K주교, G주교 등이 물망에 올라 있던 상황이었다. 정진석 주교는 자신도 가끔 언론에 사진과 함께 등장하지만 주교회의 의장이란 직함 때문이고 나이도 가장 연장자니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서 구색을 갖추느라 그렇게 했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던 차였다.서울대교구장 선택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1998년 6월 29일 있었던 제13대 서울대교구장 착좌 미사 후 김수환 추기경의 축사를 들은 정 주교는 그 어려움을 단번에 감지했다.“…정진석 대주교님은 순수 서울 태생이시고 이곳 명동대성당에서 유아 세례를 받은 분이십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는 노기남 대주교님의 복사를 할 만큼 이미 어릴 때부터 신심이 깊고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 대성당에서 유아 세례를 받으시고 복사도 하시고, 후에 사제로 서품되신 분이 오늘 서울대교구 대주교로 착좌하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요, 하느님이 일찍부터, 성경 말씀대로라면 정진석 대주교님이 태어나시기 전부터 이 분을 점지해두셨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말씀이 제가 이번 교구장 교체에 직접 실무 책임을 지고 있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으로부터 받은 편지에 있습니다. 인류복음화성장관 톰코 추기경과 차관 자고 대주교님이 함께 서명해 제게 보낸 편지에서 그분들은 이렇게 썼습니다. ‘후임 서울대주교를 찾는 데는 사실 어려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한 분을 뽑으셨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이 새 목자를 인도하시고 그분 안에서 일하시어 그분이 서울대교구를 화합과 진리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한 분을 뽑으셨습니다’라는 말씀은 참으로 뜻깊습니다. 정진석 대주교님의 임명은 교황님이 하셨으나,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음을 분명히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후략)”당시 정 주교에게는 임명 소식을 미리 전한 상태였지만, 교황청은 김수환 추기경 후임인 제13대 서울대교구장의 공식 인사 발표를 주교좌 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과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착좌 30주년 기념일 이후로 미루고 있었다. 드디어 5월 29일 오전 11시 주교좌 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과 김수환 추기경 착좌 30주년 기념 미사가 봉헌됐다.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 이날 미사는 교황청 대사, 각 교구 주교들, 파리외방전교회 부총장 신부 등 내외빈과 정부 측 인사 등 1500여 명이 참석해 성당을 가득 메웠다. 성당 밖의 문화관에서도 신자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미사에 함께하고 있었다.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던 정진석 주교도 이 미사에 함께했다. 정 주교는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수많은 신자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자니 인사이동을 한다는 것이 더 크게 실감 났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이 성당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감회도 남달랐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던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몇몇 인사들은 정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교황청 공식 발표 전 침묵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기에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미사와 축하식 후 청주로 돌아오는 길에 정 주교는 문득 청주교구장에 임명돼 잔뜩 긴장한 채 같은 길을 걷고 있던 28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길을 참 많이도 오르락내리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8년 전 그때와 지금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처럼 많은 것이 변했다. 정 주교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무 말 없이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이 저 넓은 평야를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다음날 5월 30일 오후 8시(로마 시각 낮 12시) 교황청에서 공식 발표가 나왔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는 교구장 정년을 맞아 사의를 표명한 김수환 추기경의 사임 신청을 받아들여 후임 서울대교구장에 주교회의 의장이자 청주교구장인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를 임명했다.” 이 소식은 한국의 모든 언론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모 일간지는 관련 기사를 미리 보도하느라 오보를 내기도 할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교황청 발표 직후 청주교구청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김수환 추기경의 목소리가 들렸다.“정 대주교님! 축하드려요. 그리고 내일 보좌 주교님들과 꾸리아 신부님들을 청주로 보낼 테니 착좌식 날짜와 준비를 상의해줘요. 고생 좀 해줘요.” “추기경님! 전화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사람이 추기경님의 후임자가 돼 송구합니다.”정 주교가 28년 전 청주교구장으로 발령을 받던 당시에도 모금을 위해 미국에 있던 정 주교에게 김수환 추기경은 주교 서품식과 교구장 착좌식을 준비하겠노라 연락해줬다. 참으로 신비로운 인연이었다. 형님 같은 김 추기경의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정진석 주교는 평소에도 김 추기경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존경했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으로 표현한 적은 없었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김지항2017.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