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36> 82번 주 찬미](//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6024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82번 주 찬미 주 찬미를 작사한 크로스비. 자신의 시각 장애를 하느님 축복으로 여긴 그녀는 8000여 곡이 넘는 찬송가 가사를 만들며 하느님을 찬양했다. <36> 82번 주 찬미82번 성가 ‘주 찬미’는 우리 성가집에서 주님을 찬미하는 노래 중 83번과 더불어 가장 장엄한 찬미 노래가 아닐까 싶다. 이 성가는 20세기 서양에서 나온 찬양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 가운데 하나다. 1983년에 나온 일종의 크리스마스 칸타타인 ‘높으신 분의 아들(Son of the Highest)’에서 사용되기도 했다.이 곡의 작곡자는 미국의 사업가이며 능력 있는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도언(William Howard Doane, 1832~1915)이다. 그는 목공기계 제조업 회사인 ‘J. A. Fay & Company’의 사장으로 일하는 한편, 자신이 다니던 교회 주일학교의 교장을 지낼 정도로 깊은 신앙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애초에 음악 전업가는 아니었고 그저 성공한 사업가로서 음악은 일종의 부업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백 곡의 찬송가를 작곡하고 약 40권의 찬송가집을 편찬하기도 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1875년 데니슨 대학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이 찬송가의 원제목은 ‘하느님께 영광을(To God Be the Glory)’이다. 그런데 이 가사를 쓴 이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찬송가 작사가이며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크로스비(Frances Jane Crosby, 1820~1915)다. 그는 생후 6주 때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시력을 잃고 평생을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갔는데, 신심이 깊었던 어머니와 할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는 그에게 자주 성경을 외우도록 교육했다고 한다. 여덟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1844년 「맹인 소녀와 여러 시들」(A Blind Girl and Other Poems)이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8000여 곡이 넘는 찬송가 가사를 만든 것이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그는 자신의 장애를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평생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로운 섭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분께 감사합니다. 만일 내가 내일은 완벽하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나는 거부할 것입니다. 내 주위의 아름답고 흥미로운 것들로 인해 내 마음이 산란해진다면 나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생전에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대중 연설가로도 이름을 날렸던 그를 위해 현재 미국 성공회에서는 전례력으로 2월 11일을 그의 기념일로 지내고 있다.우리 성가책에는 본래의 영어 가사를 비교적 충실히 번역해 옮겨놓고 있는데, 자신의 장애를 축복으로 여겼던 그는 이 곡의 후렴 부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주 찬미, 주 찬미, 그분의 소리를 땅에게 전하라! 주 찬미, 주 찬미 사람들아 기뻐 뛰라! 아들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아버지 앞에 나오라, 그분이 이루신 위대한 일들. 그분께 영광 드려라!’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휴대전화 어플로 QR코드를 촬영하면 지면에 소개된 성가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백영민2016.10.12
![[시사진단] 부부와 가정에 전하는 교황의 메시지](//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7814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부부와 가정에 전하는 교황의 메시지박은미 (헬레나,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교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에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2015년에는 환경에 관한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에 이어, 2016년에 결혼과 가정의 문제에 관한 신학적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을 내놓으셨다. 「사랑의 기쁨」은 성경과 가정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1981)와 2014년과 2015년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세계 주교시노드 최종 보고서’를 줄곧 인용하면서 현재 가정들이 겪고 있는 구체적인 도전 과제와 사목적 대안을 검토한다.「복음의 기쁨」과 「사랑의 기쁨」 두 권고에는 ‘기쁨’이라는 뜻이 담긴 어휘가 ‘Gaudium’(가우디움) 과 ‘Laetitia’(래티치아)로 구별돼 사용된다. ‘Gaudium’이 좋은 사상을 음미할 때처럼 내적으로 느껴지는 기쁨이라면, ‘Laetitia’는 밖으로 분출돼 표현되는, 비옥한 열매를 맺는 기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제목에 사용된 ‘기쁨’이라는 용어 하나만 보더라도 교황님의 새 권고(「사랑의 기쁨」)가 배우자 두 사람을 맺어 준 사랑이 자녀 교육으로, 가정이 공동체로 더 널리 확장돼야 한다는 사회적 의미와 전망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교황님은 현대 가정이 처한 문제는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회적 차원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가정을 대하는 교회의 방식이 오늘날의 위기 상황을 야기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먼저 교회가 반성해야 할 점부터 몇 가지를 제시한다(「사랑의 기쁨」 36, 37항). 첫째, 혼인에 대해 자녀 출산의 의무만을 강조함으로써 ‘사랑을 키워나가라는 부르심’과 ‘상호 도움의 이상’이 가려졌다. 둘째, 결혼을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인위적인 신학적 이상으로 제시해 가정의 구체적인 상황과 현실적 가능성에 동떨어진 것으로 만들었다. 셋째, 은총에 열려 있도록 권장하지 않은 채 결혼과 가정에 대해 교리적, 생명 윤리적, 도덕적 문제만을 강조하면서 교회가 이미 가정에 충분히 도움을 주고 부부 유대를 강화하며 부부가 함께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자만해 왔다. 넷째, 혼인을 개인의 성장과 완성의 역동적 여정으로 제시하기보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짐으로 더 많이 제시했다.교회의 태도에 대한 솔직한 자기반성 후, 가정과 결혼의 문제에 교회가 접근하는 방법은 “교회가 함께하며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38항) 가정 문제를 추상적 사변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풀어보려는 교황의 방식을 준비하신다. 특히 「사랑의 기쁨」 4장에서 교황님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 흔히 ‘사랑의 찬가’로 불리는 부분에 기초해 각 구절에 나오는 동사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가정 안에서 있어야 할 사랑의 원칙을 제시하신다. 다양한 선한 면모를 지닌 동시에 갖가지 불완전함을 지닌 짝을 서로의 배우자로 선택한 부부들의 삶을 묵상하면서 ‘사랑의 찬가’에 담긴 부부 사랑의 실천적 의미는 무엇인지, 부부 사랑에 대한 교황님의 새로운 이해를 만날 수 있다.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와 가정위원회에서는 각각 11월과 12월에 「사랑의 기쁨」에 관한 심포지엄을 마련한다. 번역서도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교우들께서는 주보와 신문에 게재될 홍보문을 눈여겨보고 「사랑의 기쁨」 ‘향연’에 참석하시길 바란다. “교회의 사명은 종종 야전병원의 사명과 비슷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교황님의 말씀이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평화신문2016.10.26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성인들께 의탁하며 성당에서 기도(21) 기도의 전통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 기도의 길잡이①(2683~2696항)교리서는 기도의 길잡이로 수많은 증인과 기도 봉사자들을 듭니다. 이와 함께 기도에 적합한 장소들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차례로 살펴봅니다. 수많은 증인들(2683~2684항)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들어간 증인들, 특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한 이들은 △모범적인 삶 △남긴 글 △그리고 기도를 통해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없이 돌보아 줍니다. 그들의 전구는 하느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온 세상을 위해 전구해 주시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교회 역사가 흐르는 동안,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다양한 영성이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갖가지 영성은 기도의 살아 있는 전통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신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안내자”(2684항)입니다. 기도의 봉사자들(2685~2690항)그리스도인 가정은 기도를 가르치는 첫째 장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 교회’입니다. 가정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교회로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날마다 바치는 기도는 교회의 생생한 기억을 특히 어린이들에게 처음으로 증언해 줍니다. 서품된 봉사자인 성직자들도 기도의 봉사자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신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을 기도가 솟아나는 샘, 곧 하느님 말씀과 전례와 하느님을 향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서품됐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들, 곧 봉헌생활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수도자가 그들의 전 생애를 기도하는 데에 바쳤습니다. 또 많은 은수자와 남녀 수도자가 하느님을 찬양하고 백성을 위해 전구하는 데에 일생을 보냈습니다. 사실, 봉헌생활의 힘은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봉헌생활을 유지하거나 확산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교회 안에서 관상 생활과 영성 생활이 솟아나는 원천 중 하나”(2687항)입니다. 교리교육도 기도의 봉사자입니다. 교리교육의 목표는 △개인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전례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을 현재 상황에 연결시켜 그 말씀을 항상 내면화하여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생활을 위해서는 기도문을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를 음미하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 모임 또는 기도 학교들도 기도의 봉사자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신자들에게는 지혜와 믿음과 식별의 은총 곧 영적 지도의 은총을 주십니다. 기도라는 공동선을 위해서지요. 이들 역시 기도의 봉사자들입니다. 기도에 적합한 장소(2691항)하느님의 집인 성당은 본당 공동체가 바치는 전례 기도에 적합한 곳입니다. 본당은 또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해 계시는 그리스도를 흠숭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개인 기도를 드리기 위한 장소로는 성경과 성화들이 비치돼 있는 ‘기도의 골방’이 적합한 기도 장소입니다. 가정에 이러한 작은 공간이 있으면 개인 기도만이 아니라 가족의 공동 기도를 촉진시켜 줍니다. 수도원과 순례지(성지)들도 기도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순례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을 상기시켜 주며, 순례지(성지)는 기도를 체험하는 특별한 곳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10.26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6) 엘리사벳 방문과 마리아의 노래(1,39-56) : 만남과 찬미](//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5702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6) 엘리사벳 방문과 마리아의 노래(1,39-56) : 만남과 찬미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이도 복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7㎞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주차장에 내리면 오른쪽 길 건너편으로는 요한 세례자 탄생을 기념하는 성당이 있고,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으로 오르면 즈카르야의 집터 위에 세워졌다는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이 있다. 또 언덕으로 오르기 직전에는 마리아의 샘이라고 부르는 샘도 있다. 그래서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곳곳이 황량한 광야와 바위산투성이지만 이곳은 수목이 우거지고 철마다 꽃들이 피어 풍광이 무척 아름답다. 처녀의 몸이지만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는 천사의 전갈에 마리아는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하고 응답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떠나갑니다.(1,26-38) 이렇게 예수님 탄생 예고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 루카는 이제 마리아가 사촌 엘리사벳을 만나는 무대로 화제를 돌립니다. 이 사건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1,39-45)과 마리아의 노래(1,46-56) 두 부분으로 이뤄집니다. 루카는 첫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지요.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1,39) 루카는 마리아가 서둘러 간 곳이 유다 산악 지방의 한 고을이라고 기록하지만, 구체적인 지명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 고을은 ‘에인 케렘’이라는 곳입니다. 나자렛에서 에인 케렘까지는 100㎞가 넘습니다. 그 사이에는 평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와 험한 산악들도 있습니다. 걸어서 가야 하니, 사나흘 이상 걸리는 거리입니다.그 길을 마리아는 ‘서둘러’ 갑니다. 왜 서두를까요?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에게서 아기를 낳지 못하는 늙은 사촌 언니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처녀인 자신도 아기를 갖게 된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곧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둘러 가서 언니를 만나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즈카르야의 집에 도착해 엘리사벳에게 인사하는 순간, 엘리사벳 배 속의 아기가 뛰놀았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엘리사벳의 말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큰소리로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1,42-45)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복되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합니다. 첫 번째는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에 대해 복되다고 합니다. 주님의 어머니가 되는 여인이니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다는 찬사는 당연하겠지요. 두 번째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에 복되다고, 행복하다고 찬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가 됐다는 것을,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성령으로 가득 차”(41절)라는 말이 이를 설명해 줍니다. 성령께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배 속 아기가 즐거워 뛰논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기는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1,15 참조) 마리아의 배 속에 잉태된 예수님을 알아보고 기뻐 뛰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말에 마리아는 길게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1,46-55) ‘마니피캇(Magnificat)’이라고 하는 이 찬가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시간 전례(성무일도) 저녁기도 때마다 바치는 노래이자,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회합 때뿐 아니라 매일 바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의 앞부분(46-50절)은 마리아의 개인적인 감사의 마음을, 뒷부분(51-55절)은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 전체의 집단적인 감사의 마음을 노래하는데, 대부분이 구약성경의 여러 대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을 이행하셨음을 감사하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는 약속 이행(구원)이 마리아에게서 출발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의 위대한 신비가 하느님의 뜻에 ‘예’ 하고 응답한 마리아의 순명에서 결정적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마리아를 높이 공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루카는 마리아가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으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과 마리아의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1,51) 석 달가량 함께 지냈다는 것은 엘리사벳이 해산할 무렵까지 마리아가 곁에 있으면서 보살펴주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자신도 임신한 몸이지만 나이 많은 사촌 언니를 보살피는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되새겨보기① 우리는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성령을 받았고, 견진성사로 성령의 은사를 더욱 풍부히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보고 주님의 어머니로 알아볼 수 있었듯이, 우리는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 생각과 마음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시는 성령의 불을 꺼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그에 필요한 도움을 청합시다. ② 마리아는 나이 많은 사촌 언니가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이 됐다는 소식에 자신도 임신 초기의 몸임에도 서둘러 100㎞가 넘는 길을 걸어 언니를 찾아가 석 달이나 머물면서 돌봐줍니다. 이것이 배려입니다. 갈수록 이기적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되면서 메말라가는 삶에서 우리는 어떻게 배려하고 있는지요. 하루에 한 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을 지니고 배려를 실천해 보면 좋겠습니다.다음은 마리아의 찬가(1,46-55)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고 뜻을 음미해 봅시다. (46)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47)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51)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통치자들을 왕좌에 끌어내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54)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백영민2017.03.22
![[성경 속 도시] (29) 밀레토스](//cpbc.co.kr/CMS/newspaper/2014/11/rc/540250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29) 밀레토스무겁지만 믿음에 찬 발걸음을 떼다 밀레토스는 터키 서부 해안의 최대 휴양지인 쿠사다시 항구 인근의 고대 도시이다. 지금은 해안선에서 9㎞ 떨어진 내륙에 있지만 고대에는 중요한 항구도시였다. 밀레토스는 고대 이오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국가로서 해상 무역이 번성했던 곳이다. 교역에 매우 유리한 지리적 입지조건과 상당한 수의 인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공급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 이곳은 오리엔트의 풍부한 경험적 지식 정보를 받아들임으로써 밀레토스 학파 철학자를 배출하며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를 이루기도 했다. 세상의 기원을 최초로 탐구한 철학자 탈레스를 비롯해 만물의 기원을 탐구한 학자들을 밀레토스 학파 또는 이오니아 학파라고 한다. 밀레토스는 결과적으로 ‘이오니아 자연철학’을 탄생시켰고, 아울러 밀레토스 학파 철학자를 배출해 문화의 중심지를 이뤘었다. 호메로스는 이곳을 ‘갈리아인의 도시’라고 하였다. 밀레토스는 기원전 8세기까지 이오니아의 중심지로서 해외 무역이 번성하였고, 기원전 7세기 동지중해, 흑해 연안에 70여 곳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기원전 6세기 중엽 페르시아 지배 아래에서 번영을 누렸으나 기원전 499년 이오니아 반란의 중심이 된 것이 원인이 되어, 기원전 494년 페르시아인에게 함락당하고 주민들은 노예가 되었다.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미칼레 전투 뒤, 히포다모스의 도시 계획으로 재건되어 델로스 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현재 대규모의 야외 극장을 비롯하여 이오니아식 상점 터, 신전 터, 로마 목욕탕, 아고라 등이 남아 있다. 성경에서 밀레토스는 바오로 사도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성령이 강림한 오순절 날에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경청했던 사람들 가운데 크레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크레타 섬에서 선교 활동의 새로운 장을 펼쳤던 것이다. 그리고 티토에게 크레타 섬 선교 임무를 맡기고, 그곳을 떠나 자신의 선교 활동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그는 코린토로 갔으며, 코린토에 에라스토스를 남겨놓았다. 그 후 밀레토스로 갔다. 그곳에는 에페소 사람 트로피모스가 앓아누워있었다. “에라스토스는 코린토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트로피모스는 병이 나서 내가 밀레토스에 남겨 두었습니다”(티모 4,20). 15년 선교 여행 마치며 예루살렘으로 향하다바오로 사도의 3차 선교 여행이 끝나갈 무렵인 58년쯤,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마케도니아로 향했다. 밀레토스에 도착한 후 에페소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라며 눈물의 작별을 했던 곳이다. 바오로 사도가 왜 에페소에 다시 가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할 장소로 선택한 곳은 에페소가 아니라, 밀레토스였다. 이곳에서의 설교는 바오로 사도의 15년 가까운 선교 여행의 최종 보고 같은 형식을 띠고 있다.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사도 20,32). 설교를 들은 신자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 사도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췄다.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신자들은 아쉬움을 안고 바오로 사도를 배 안까지 배웅했다(사도 20,1-38).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11.18

신앙의 힘으로 ‘시간의 가치’ 시계에 새겨
[나의 신앙 나의 기업] (29) 옥주석(요한 사도) 로렌스(주) 대표 시계는 사람이 만들지만 시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그래서인지 40년 이상 시계 산업에 몸담아온 옥주석 로렌스(주) 대표는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는 말씀을 자주 묵상한다. 로렌스(주) 매장의 옥주석 대표. 인생도, 사업도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세월이 흐르고서야 지혜를 얻는다. 선친과 함께 또 선친의 뒤를 이어 40년 넘게 외길로 매진했다. 겪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이 은총이었음을 깨닫는다. 시계 전문 로렌스(주) 옥주석(요한 사도, 69) 대표의 삶과 신앙이다.서울 마포구 독막로(옛 상수동) 지하철 6호선 상수역 1번 출구에서 합정동 방향으로 100m를 채 가지 않은 곳.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지는 모퉁이에 ‘Rolens’란 상호를 단, 세련미가 돋보이는 작은 건물. ‘로렌스’ 상표로 국산 시계의 명성을 살려 가고 있는 로렌스 본사 매장이다. 로렌스의 역사는 옥 대표의 선친 옥치돈(시몬, 1992년 선종) 회장이 부산에서 ‘동일사’라는 시계 도소매상을 연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여 년 시계와 인연을 맺어온 옥 회장은 1975년 서울 중구 충무로에 길양실업이라는 시계 전문 회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내세운 국산 시계 브랜드가 ‘로렌스’였다. 길양실업은 1979년 ‘로렌스시계공업’으로, 2011년 다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옥 대표는 은행에 다녔으나 선친이 회사를 설립하면서 합류해 영업직으로 시작했다. 회사는 설립 초기 13년 동안 매년 100% 성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부천에 공장을 신설했고, 유망중소기업, 우량중소기업으로 잇달아 선정됐다. “선친은 성실과 신용을 무엇보다 중시하셨습니다. ‘땀 흘려 노력한 것만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늘 강조하셨지요. 단돈 500원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빈틈없이 관리하고자 노력하셨습니다.”옥주석 대표는 1989년 선친에 이어 회사를 맡아 대표가 됐다. ‘88 서울 올림픽 직후’였던 당시는 민주화 열기에 이어 전국적으로 노동운동의 열기가 거세게 일던 때였다. 회사에도 노조가 생겼고 옥 대표는 노조와 대화를 통해 노사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새벽 미사에 참여하면서 노조를 이해하도록 해달라고, 잘 풀어가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 속에 지내는 노동자들의 처지와 ‘생존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갈등을 풀고자 했습니다.”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산업 구조의 변화는 또 다른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추가 달린 벽시계, 나무 시계 등은 많은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 노동 집약적 산업인데, 사회가 노동집약적 산업사회에서 첨단 정보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구조 조정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노사 갈등의 고비를 겪고 있을 때에 1997년 IMF의 외환위기라는 파고가 덮쳤다. ‘라파엘로’라는 또 다른 브랜드를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회사 공장 부지의 부동산을 다 처분해 빚을 갚았습니다. 갈 곳이 없어서 선친의 옛집을 수리해 회사로 삼았습니다. 그게 지금 회사 건물입니다.”2000년대에 들어 시계가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시계 산업은 계속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옥 대표는 난국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명품 시계’를 생각해냈다. 시계 전체를 18K로 만들고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유리로 장식한 100% 수제품인 명품 시계는 재도약의 발판이 돼주었다. LG홈쇼핑(현 GS홈쇼핑) 시계 부문 최우수 업계로 2년 연속 선정된 것을 비롯해 각종 상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대통령 시계 공식 납품업체로 지정됐다. 하지만 휴대폰을 비롯해 각종 전자제품에 딸린 전자시계로 시계시장의 수요는 더욱 위축됐고, 수입 자유화, 온라인 쇼핑 활성화로 인한 유통 구조 변화로 어려움은 가중됐다. 옥 대표도 다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한때는 사업을 접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금속공예를 공부하고 돌아온 딸(옥정윤, 아녜스)이 ‘할아버지가 설립한 회사와 장인 정신을 이어야 한다’며 함께하겠다고 나서더군요. 7년쯤 전이었습니다. 그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또 이젠 시계가 패션이 된 시대이기도 했고요.” 딸은 회사 일을 도우며 3년 전에는 본인 이름을 딴 ‘줄리옥(Julie Ok)’이라는 주얼리(Jewelry, 귀금속 장신구) 브랜드를 내놓았다. 2015년에는 마니아 고객을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시계 도소매업으로 시작한 67년 전통의 가업이 3대로 이어지면서 시계를 넘어 귀금속 장신구로 폭을 넓히고 있다.성체 모시며 하루를 열어“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어려운 일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일을 겪을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깨닫는 게 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느라고 노력했습니다만, 모든 것은 주님의 은총 덕분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하는 말씀을 자주 묵상하게 됩니다.”옥 대표는 30대에 세례를 받았다. “원래 선친 때부터 개신교에 다녔는데 서울로 올라오신 후 선친이 먼저 가톨릭으로 개종해 세례를 받으셨지요. 고등학교 때부터 개신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저는 집안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에도 한참 지나서 세례를 받았습니다.”옥 대표는 개종 후 중요한 체험을 한다. 그 체험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이루어졌고 옥 대표의 삶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젖어들었다. 영성체의 중요성을 체험한 것이다. “성체는 주님의 몸입니다. 영성체로 주님의 몸을 내 안에 모셨으면 우리 몸이 주님이 계시는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게 되지요. 말도, 행동도 똑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미사의 은총이지요.”성실ㆍ정직ㆍ신용 같은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고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선친에게서 보고 배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영성체의 힘, 미사의 은총이라고 고백하는 옥 대표. 그래서인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일에도 새벽 미사에 참여해 온 지 20년이 넘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체를 모시면서 주님과 일치하면서 똑바로 사는 힘을 얻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옥 대표가 좋아한다는 성경 구절 시편 1편의 첫머리다. 옥 대표는 이 시편을 바치면서 삶의 매무새를 추스르곤 한다.서울가톨릭경제인회는 ‘나의 신앙, 나의 기업’에 소개할 교우 기업인들을 추천받습니다. 아울러 경제인회 활동에 함께할 교우 기업인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 02-755-7060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 평화신문2017.03.16
![[금주의 성인] 9월 30일: 성 예로니모](//cpbc.co.kr/CMS/newspaper/2015/09/rc/594461_1.0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 9월 30일: 성 예로니모 ▨ 9월 30일: 성 예로니모(St. Hieronymus)348~420년, 슬로베니아 출생 및 선종, 교부, 신학교 수호성인.예로니모 성인은 고대 서방교회를 대표하는 교부 중 한 분이십니다. 서방교회 4대 교부라 하면 예로니모 성인을 비롯해 암브로시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을 일컫습니다. 성인이 남긴 업적으로는 ‘불가타 성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 성경은 히브리어(구약)와 그리스어(신약)로 쓰였는데, 성인은 이를 서방교회 대중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해 선보였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라틴어로 번역한 성경을 ‘불가타’(Vulgata, 대중적이라는 뜻) 성경이라 부릅니다. 성 다마소 1세 교황은 성인을 비서로 임명하면서 신ㆍ구약 성경 번역을 성인에게 맡겼습니다. 당시 라틴어 성경 번역본이 여러 권 있었지만, 로마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인의 대표작인 불가타 성경은 성경 원문에 충실한 라틴어 번역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성인은 성경 번역뿐만 아니라 그리스 교부들의 성경 주석서를 라틴어로 번역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대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라틴어 모두에 능통했던 학자는 예로니모 성인이 유일했습니다. 이 밖에도 성인은 창세기, 시편, 예언서 등을 해설한 주석서는 물론 역사서, 서간, 교의 신학서, 이단논쟁서 등 성경과 신학 전반에 걸쳐 수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로니모 성인을 두고 “예로니모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성인은 어린 시절 로마에서 유학하며 라틴어와 고전문학을 배웠습니다. 또 373년에는 안티오키아에서 성경 주석법과 그리스어를 공부했습니다. 이후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면서 히브리어를 익히며 성경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성인의 성경 사랑은 성인이 남긴 글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늘 성경을 읽으십시오. 아니 당신 손에서 성경을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지혜가 그대를 사랑할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그대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성인은 당시 득세하던 이단에 맞서 교회를 수호하는 데에도 노력했습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힘을 합해 펠라지우스 이단을 단죄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성인은 다마소 교황이 선종한 뒤 베들레헴에 정착해 수도 생활을 하다 선종했습니다. 성인은 수덕 생활의 수호성인, 신학교 수호성인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cpbc2015.09.23

교리와 말씀 전하는 5060 특별부대전교 주일에 만난 사람들/ 가톨릭교리신학원 평신도 선교사 12명 가톨릭교리신학원(원장 최승정 신부)에는 교리와 말씀을 선포하는 열두 사도들이 있다. 예비신자 교리 및 견진교리, 신자 재교육 등 본당의 교리교육을 지원하는 평신도 선교사들이다. 가톨릭교리신학원 교리교육부에 소속된 12명의 선교사는 6개월에서 1년 동안 교안 작성 및 연습 강의 등 철저한 강의 준비를 마치고, 각 본당에 파견돼 교리와 복음 말씀을 전한다. 2001년 설립된 교리교육부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의 교육 이념인 ‘기억ㆍ선포ㆍ봉사’에 따라 교리교육을 지원해 왔다. 주부·직장인 등 평범한 신자들교리교육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은 가톨릭교리신학원 졸업생으로 원장 신부의 임명을 받아야 활동할 수 있다. 나이는 50~60대로, 대부분 직장인ㆍ가정주부 등 평범한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돼 있다. 견진 교리 등 신자 재교육 특강 요청이 들어오면 성경, 성사와 기도생활, 한국 교회사, 성모 마리아, 사회교리, 전례 등 주제에 맞게 선교사들을 각 본당에 파견한다. 강단에 선 선교사들은 강의 내용을 통째로 외워서 진행한다. “처음 강의를 한 1년 동안은 입이 쩍쩍 마르고, 마이크 잡은 손이 떨리고 그랬어요. 적게는 30명, 많게는 200명 되는 신자 앞에 서면 얼굴이 새하얘지더라고요.”(정호영 소피아)“신자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복음 말씀을 전하면서 말한 대로 살지 못할 때 좌절감을 느끼거든요. 강의하고 나면, 성령께서 제가 하느님의 도구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셨다는 걸 느껴요.”(최종분 안나) 이들은 교리교수법을 전공한 이영제(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신부의 지도를 통해 강의 실력을 갈고닦는다. 매주 화요일에 모여 여러 차례 연습 강의를 통해 서로 보완해야 할 점을 지적해준다. 강의 준비를 위한 맹훈련에 교리교육 봉사를 포기한 이들도 꽤 많다. 교리 전하며 더 많이 배워6년 동안 30여 곳 본당에서 교리교육 봉사를 해온 엄재훈(프란치스코)씨는 “신자들을 가르친다기보다 교리를 전달함으로써 내가 배우는 게 더 많다”며 “신자들이 신앙적으로 무엇인가를 얻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계속 봉사할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재교육 차원에서 더 성장하기 위해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장학생 자격으로 세 과목을 청강하고 있다. 평신도 선교사들을 응원하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의 든든한 교육 지원인 셈이다. 교리교육부 담당 이영제 신부는 “많은 곳에서 평신도들이 봉사하고 있지만 이분들은 체계적인 양성 과정을 거쳐 삶의 자리에서 교리를 선포하는 선교사들”이라며 “각자 평범한 삶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하느님을 위해 시간을 내주는 용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교리교육부 회장 임승욱(하상 바오로)씨는 “아직 가톨릭교리신학원이 교리교육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본당도 많다”면서 “더 많은 본당에서 요청이 들어와 우리 선교사들이 갈고닦은 실력으로 하느님 말씀을 더 열심히 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선교사들을 통한 교리교육을 지원하려면 가톨릭교리신학원 홈페이지(http://ci.catholic.ac.kr/)에 접속해, 교리교육 지원을 클릭하면 교리교육 내용과 구성을 확인하고 교리교육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이들이 본당에서 받는 강의료(시간당 10만 원)는 선교사 양성비로 쓰인다. 문의 : 02-747-8501, 가톨릭교리신학원 교리교육부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평화신문2016.10.19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이슬처럼 작아질 때 천상의 문 열린다](//cpbc.co.kr/CMS/newspaper/2016/07/rc/646309_1.1_titleImage_1.jpg)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이슬처럼 작아질 때 천상의 문 열린다59.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11 예수님의 품안에서 더욱 작아짐으로써 천상으로 비상하는 비결을 발견한 소화 데레사. 잠언 9,4을 통해 빛을 받음 소화 데레사는 아버지의 임종 후 셀리나 언니가 입회할 때 가져온 성경 구절 선집(選集)에서 주옥같은 구절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녀는 잠언 9장 4절에서 ‘누가 작은 자이거든 내게로 오라’(우리말 성경에서는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로 번역-편집자)는 구절을 접했을 때, 이를 자기 자신을 향한 메시지로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성녀는 다년간의 수도생활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하며 자신의 작음을 받아들인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성녀는 이 구절을 읽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품 안으로 달려들도록 자신을 초대하신다는 점을 직관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녀는 그분께서 이 부르심을 통해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작은 자에게 하시려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또 다른 구절들을 뒤적이며 찾아보았습니다. 이사 66,12-13을 통한 영적 도약그리고 마침내 그에 대한 대답을 이사야서 66장 12-13절에서 발견했습니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귀여워하는 것같이 나도 너희를 위로하고 너희를 품에 안고 무릎에 올려놓고 흔들어 주겠노라!’ 가족과 함께 살던 어린 시절, 소화 데레사에게 있어서 자신의 작음과 나약함은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 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작음과 나약함으로 인해 소화 데레사는 가족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작음과 나약함은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과 배려를 끌어당긴 주요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화는 자신의 불완전과 작음이 예수님께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분의 애정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사야서 66장 12-13절에 대한 묵상과 더불어 성녀는 자신의 작음이 하느님께서 선호하시는 겸손의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신뢰의 길을 열어주고 그분께 모든 것을 희망하게 해 준다는 점을 깨우치기에 이릅니다. 성녀는 1894년 12월 18일에 쓴 어느 시에서 성성(聖性)에 대한 문제를 비추면서 작고 가난한 영혼을 위한 하느님의 도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습니다. “당신 성자의 형언할 수 없는 눈길 / 나의 가난한 영혼 위로 낮추시네 / … 그러나 이 하늘별의 사랑의 열기 아래 덕은 빠르게 자란다네”(시 11).예수님의 모성에서 지름길 발견이렇듯 소화 데레사는 작고 부족한 자신에 대한 걱정에서 해방되면서 1894년 성탄 이후부터 잠언 9장 4절과 특히 이사야서 66장 12-13절의 구절을 통해 작기만 한 자신을 어머니처럼 당신께로 이끄시어 팔로 안아 들어 올려서 자애로이 쓰다듬어 주시는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거기서 어린 시절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던 어머니, 마르탱 부인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 시절 어린 데레사는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마침내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어머니의 품에서 해결책을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얌전하게 굴지 않으면 지옥에 가겠네. 하지만 좋은 수가 있어. 엄마가 천당에 갈 때 같이 올라갈테야. 하느님이 어떻게 나를 붙잡아 가실 수 있겠어? 엄마가 나를 꼭 껴안아 줄 거지?” 그때와 마찬가지로 1894년이 저물어가던 겨울, 데레사는 성성(聖性)에 대한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면서 작은 자로 예수님께 나아가 엄마에게 했듯이 그렇게 예수님의 품 안에서 천상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비책(策)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 이보다 더 정답고 더 듣기 좋은 말씀이 제 영혼을 기쁘게 해준 일은 없었습니다. 저를 하늘까지 들어올려 줄 승강기는 오! 예수님, 당신의 팔입니다”(「자서전」). 소화 데레사는 예수님 안에서 모성적인 모습을 보는 가운데 어머니 같은 그분을 성성을 향한 ‘지름길’로 인식했습니다. ‘작아짐’을 통해 천상으로 날아오름소화 데레사는 그런 예수님의 사랑에 예전에 비할 바 없이 큰 신뢰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팔로 자신을 하늘까지 들어 올려 준다면, 그분을 돕기 위해서 여전히 작은 채로 남아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항상 더욱 더 작고 가벼워져야 한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저는 커질 필요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작은 채’로 남아 있어야 하고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자서전」). 소화 데레사는 비로소 예수님이야말로 천국을 향한 길임을 깊이 깨달았고, 그분의 자비를 끌어당기는 작은 길인 ‘의탁’과 ‘신뢰’의 태도 안에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해주는 ‘작음’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품 안에서 천상으로 날아가려면, 마치 한 방울의 이슬처럼 “항상 더 작아지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는 진리를 깊이 알아듣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성녀의 인식은 1895년 2월부터 그해 10월까지 쓴 모든 편지에 담긴 ‘작디작은 자’라는 서명과 더불어 잘 드러납니다. 한 마디로 성녀는 자신을 ‘작디작은 자’로 선언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 서명은 소화 데레사가 추구하는 영적인 이상(理想)이자 혼신을 다해 실현해야 할 계획이며 고귀한 칭호가 되었습니다. 문채현2016.07.26
![[성경 속 도시] (31) 아쏘스](//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272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31) 아쏘스바오로, 선교 열정에 걸어서 가다 아쏘스는 지금은 터키의 작은 항구이지만 예전에는 트로아스 남쪽의 항구 도시다. 일반적인 성지 순례 여행 일정에는 대부분 아쏘스가 빠져 있다. 워낙 외진 곳에 있고 산을 타고 가기에 교통편이 매우 불편하다. 그러나 아쏘스는 아주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항구 도시다. 이 도시는 예로부터 해안의 요지와 연결돼 적의 공격으로부터 쉽게 함락될 수 없는 천연 요새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아쏘스 항구에서 맞은편에 있는 미틸레네 섬이 보이고 도시는 해안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도성으로 가려면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게 돼 지형 자체가 자연적 방어막이 됐다. 아쏘스 성채는 암석으로 된 235m 높이의 언덕에 있고 방어 시설이 32㎞에 달하며 20여m 높이의 성곽이 둘러싸고 있다. 이 요새 형태는 비잔틴시대에 만들어졌다. 고고학적 유물 계속 출토 요새 안에는 아테나 신전과 군인들이 훈련을 받는 훈련터, 광장, 극장, 방파제 등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산 정상에 세워진 ‘아테나’ 신전은 이 도시의 중요한 고대 도시 유적으로 남아 있다. 기원전 530년쯤에 레보스인들이 아크로폴리스의 중앙에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많은 부분이 파괴됐지만 남아 있는 유적이 그 옛날의 영화를 잘 보여 준다. 이 신전에서는 시원하게 펼쳐진 에게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무척 아름다운 경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쏘스는 발전을 거듭하다 페르시아에 점령되면서 그 영광도 끝을 맺는다. 기원전 334~24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의 후계자의 지배를 받았고 기원전 241년에는 베르가모의 식민지가 됐다. 이 도시는 주변이 주로 농경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쏘스 항구에서 수출하던 좋은 품질의 밀로 유명했었다. 지금은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아쏘스에서는 지금도 고고학적 탐사가 계속돼 여러 유물을 찾아내고 있다. 그 중에는 도리아식 신전을 비롯해 조각품, 시장, 체육관, 목욕탕, 극장 등이 있다. 또 아쏘스는 철학과도 연관이 깊은데 아리스토텔레스도 아쏘스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년간 이곳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첫 학파를 세운 뒤, 기원전 344년 마케도니아의 필립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부름을 받고 떠난다. 트로아스에서 육로로 가서 밀레토스로 성경에서 아쏘스는 사도 바오로가 도보로 방문한 도시다. 사도 바오로는 트로아스에서 육로로 아쏘스까지 걸어가 아쏘스에서 배를 타고 밀레토스 항구에 도착했다(사도 20,13-16). 트로아스에서 사도 바오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동료들을 배로 먼저 보내고 자신은 걸어서 아쏘스로 갔다. “우리는 먼저 배를 타고 아쏘스로 떠났다. 거기에서 바오로를 배에 태울 참이었다. 바오로가 거기까지 육로로 가겠다고 하면서 그렇게 정한 것이다. 우리는 아쏘스에서 바오로를 만나 그를 배에 태우고 미틸레네로 갔다”(사도 20,13-14). 그런데 사도 바오로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어떤 이유로 힘들게 걸어서 이곳까지 오고자 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선교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열정이 아니었을까. 아쏘스로 오는 도중에 교회 공동체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목 방문을 할 교회나 개인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12.02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7>](//cpbc.co.kr/CMS/newspaper/2016/05/rc/635836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회화로 13세기 절정을 이룬 스테인드글라스는 14세기 이후 변화를 맞아 다양하고 부드러운 색 대비를 이룬 작품들이 등장한다. 작품은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의 피에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성당의 로마네스크에서부터 프랑스 파리의 생드니 성당과 샤르트르 대성당, 생트 샤펠 등 중세 고딕 성당에 이르기까지 스테인드글라스는 빛과 색으로 그려진 성경의 빛으로 충만한 성전을 이뤘다. 이렇게 13세기에 절정을 이룬 중세 스테인드글라스는 14세기로 접어들면서 교회건축 양식 변화와 함께 그 표현 양식이 변화했다.이후 찾아온 14~16세기에 이르는 르네상스 시기에는 건축 양식이 변화하면서 채광의 방법도 달라져 고딕 시대만큼 스테인드글라스가 유행하지는 않았다. 중앙 집중식 교회 건축이 등장하면서 고딕성당의 클리어스토리(채광창)를 가득 채웠던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대가들의 프레스코 벽화들이 성전 곳곳을 장식하게 됐다.또한 자연주의적인 묘사와 원근법이 도입된 3차원의 공간적 환영을 추구하는 회화의 경향이 등장하면서 스테인드글라스 구성도 그와 유사하게 변화해 갔다. 중세 스테인드글라스가 성경의 주요 장면들을 하나씩 구획된 화면에 압축적으로 묘사했다면, 르네상스 시기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하나의 연결된 큰 화면으로 구성된 유리에 당시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원근법에 따른 배경 묘사와 인체의 표현을 드러내고 있다.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 돔에 설치된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Andrea del Castagno)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피에타’는 마치 모자이크처럼 작게 분할된 색유리 조합으로 인체 표현이 그려지고 있다. 아울러 색채에서도 빨강과 파랑을 중심으로 했던 고딕 시기 스테인드글라스와는 달리, 더 다양하고 부드러운 색 대비를 이루고 있어 중세 작품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 준다. 그런데 안정감 있는 구도, 납선이 두드러지지 않은 표현, 색유리의 섬세한 분절로 인한 빛의 효과는 아름답지만, 메시지를 집약적으로 전달하는 힘은 다소 약화된 듯하다.르네상스 시기 이후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당시 회화가 추구하던 기법이 동일하게 추구됐다. 명암법으로 입체감을 최대한 살린 3차원적인 표현이나 섬세한 질감 표현 등이 그것이다. 어쩌면 이는 중세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색유리의 투명함과 명료한 이미지와는 달리 크게 구획된 유리 위에 표현된 한 폭의 회화 작품과도 같다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르네상스 시기 이후 글라스 페인팅의 수준은 상당했다.흔히 르네상스 시기 이후의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은 쇠퇴기를 맞았다고 한다. 건축 양식의 변화에 따른 창 양식의 변화, 당시 회화의 영향으로 변화한 스테인드글라스의 표현 양식 등이 그 이유다. 그리고 당시 미술 아카데미에서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제작 특성상 작품의 디자인, 색유리 선별, 유리 커팅, 페인팅, 조립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완성될 수 있다. 그리고 그중 한 과정이라도 소홀히 하게 되면 전체적인 작품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이렇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과연 누구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저작권이 중요하게 두드러지던 시기에 수공예적 요소가 강조된 스테인드글라스가 미술 아카데미에서 환영받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점차 주된 양식으로서의 위치를 잃어 가던 스테인드글라스는 17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잃어버린 예술’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리고 19세기 아르누보(새 예술 양식)와 고딕 부흥을 통해 다시 부활하였다. 백영민2016.05.18
[세상속으로] 김영란법, 완벽하지 않다이상도(요한사도) 금품수수 및 부정청탁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3주가 지났다. 그동안 기자라는 직업상 시장상인, 택시기사는 물론 기업 고위 간부, 정부 관료, 장ㆍ차관, 대통령까지 만나봤지만 최근 두 차례 식사 자리 이후 선뜻 약속 잡기가 어렵다.첫 번째 식사는 출입부처 주무관과의 자리였다. 삼각지 주변 순댓국집이라 부담이 없었기에 소주까지 시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나 사회적 경험으로 봐도 내가 밥값을 내는 게 당연한 것 같아 법이 정한 한도에서 주무관 몫까지 결제했다. 두 번째는 두 달 전에 잡은 금융투자자문사 대표와 모 금융기관 간부와의 저녁 자리였다. 여의도 일식집 식사하고 이후 2차에서 와인을 몇 잔 나눴고 김영란법을 감안해 비용은 각자 나눠 냈다. 원래 더치페이는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부담이 없다. 아침에 텅 빈 지갑을 보면서 이분들의 연봉과 수백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생각하니 앞으로 자주 만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연봉 3000~4000만 원의 회사원, 1억 원 간부 사원, 그리고 수십억 원의 연봉이 책정된 장ㆍ차관과 최고경영자가 가는 곳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시중에는 우스갯소리로 1998년 IMF 사태나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불가능했던 황제골프, 황제식사가 김영란법으로 가능해졌다는 말이 돌고 있다.현재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는 공무원, 공기관, 금융기관, 사립학교, 언론기관 등에 종사하는 약 400만 명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 중에 이들과 사적으로 얽히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영란법과 무관해 보이는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불교계 언론사 재단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한 스님은 재단이사장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고 개신교 주간지 발행인을 겸하고 있는 한 목사님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대폭 줄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통상 법은 ‘살인하면 처벌한다’ 처럼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정하고 나머지 행위는 자유롭게 하는 네거티브 방식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해당 기관 종사자와의 만남이 모두 청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3ㆍ5ㆍ10만원’ 범위 내에서는 가능하다는 포지티브 방식을 띠고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도래된 사회 변화 중 하나는 공동체 의식 대신 개인주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3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공직은 물론 성당까지 괜히 서로 얽히지 말고 ‘너는 너, 나는 나’라는 문화가 새로운 풍토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김영란법의 목적은 부정 청탁 관행을 바로잡고 사회 전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3주를 지내고 보니 법이 추구했던 긍정적 면과 함께 예상 이상의 부정적인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문학평론가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포괄적으로 대상을 정해서 온 나라가 도둑을 감시하듯 살게 생겼어요.”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농촌의 품앗이나 두레, 향촌 규약이 상징하듯 공동체 문화가 강조되는 곳이었다. 가톨릭교회도 초기부터 공동체를 지향한 것은 마찬가지다. 성경에 나오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의 군중을 먹이셨다’(마태 14,13-21 참조)는 말씀은 교회에서 공동체를 상징하는 기적이다. 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은 점점 사라지고 개인주의, 끼리끼리 형태로 흘러가고 있다면 심각히 생각할 일이다. 입법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김영란법이 완벽한 법은 아니다. 평화신문2016.10.12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 예수님의 탄생 예고(1,26-38) ② 피앗(fiat)](//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4227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 예수님의 탄생 예고(1,26-38) ② 피앗(fiat)“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나자렛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 안에 있는 주님 탄생 예고 경당.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게 나타나 예수님 탄생을 예고하고 마리아가 이를 받아들인 그 장소를 기념하는 경당이다. 제대 정면과 아래에는 대리석 위에 ‘이곳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마리아가 순명으로 응답한 순간 성령으로 말씀을 잉태하셨음을 알려준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 나자렛 산골 처녀 마리아는 약혼한 처녀입니다. 직업이 목수인 약혼자 요셉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지만 “의로운”(마태 1,19)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에 찾아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28)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생각하는 마리아에게 천사는 더 놀라운 말을 합니다.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그 아들이 ‘지극히 높으신 분’(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불리게 될 것이고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는 것입니다.(1,31-33)천사의 예고와 마리아의 반응이 놀라운 전갈에 마리아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1,34) 성경학자들은 마리아의 반응을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1,18)라고 한,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즈카르야의 반응과 대비시킵니다. 즈카르야의 반응은 믿지 못하겠으니 표징을 보여달라고 요구한 것인 반면, 마리아의 반응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즉 마리아의 반응은 천사의 말을 믿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해명해 달라는 요청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반응에 대한 천사의 설명은 더욱 놀랍습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엄청난 말을 덧붙입니다.(1,35)천사의 말을 다시 살펴봅시다. ‘성령’은 하느님의 영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또 ‘거룩함’은 오롯이 하느님에게만 속하는 속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때에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고 하느님을 소리 높여 노래합니다. 그러니 천사의 말은 아기가 잉태되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일 뿐 아니라 그 아기는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거룩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믿음천지가 개벽할 일입니다. 처녀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는데, 그 일이 남녀의 결합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이뤄지고, 게다가 그 아기는 ‘거룩한’ 아기,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불리게 된다니요. 요즘 첨단 생명공학의 발달로 ‘복제 인간’이란 말도 심심찮게 들립니다만,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야말로 꿈에서도 상상조차 못 할 일입니다. 더욱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그 사실이 주변에 알려진다면, 마리아는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단죄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으로 아기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더라도 사정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볼 때 간음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면 그 당사자는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맞아 죽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어쨌거나 처녀 마리아에게 좋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한술 더 뜹니다. 친척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지 못하는 나이에도 “임신한 지 여섯 달이나 되었다”면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1,36-37)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천사의 마지막 말은 천사가 지금까지 한 말을 보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산골 처녀 마리아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압박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니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다. 그런데 마리아, 너는 어떻게 할래?’라는 물음입니다. 어쨌거나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게 되고, 그 사실이 드러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뜻을 헤아린 마리아루카는 천사의 이 해명에 대한 마리아의 마지막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천사의 말이 그대로 이뤄질 경우에 인간적으로 마리아에게 좋을 일이 하나도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피앗, fiat) 하고 응답합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응답하는 데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종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지혜롭고 충직한 종은 주인의 뜻을 헤아려 처신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를 받은 첫 순간부터 주님의 뜻을 헤아렸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놀라운 얘기를 계속 들으면서 그것이 주님의 뜻임을 헤아리자 지체없이 ‘피앗’이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마리아의 응답은 인류 역사를 바꿔놓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는 놀라운 신비가 한 산골 처녀 마리아의 겸손한 순명을 통해 현실이 되었습니다.되새겨보기 지난 호부터 살펴본 ‘예수님 탄생 예고’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묵상하게 해줍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두 가지만 되새겨봅시다. 첫째, 곰곰이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요즘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분ㆍ초를 다투는 세상에서는 ‘빨리빨리’ ‘즉문즉답’(卽問卽答)이 인정받지, 곰곰이 생각하는 자세는 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어쩌면 지나치게 ‘빨리빨리’에 젖어서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할 여유를 지닐 때, 우리는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겉모습 너머에 있는 참된 진실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지나치게 예단하려 합니다. 그래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상황을 가능성만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고민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가진 후에 생길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자꾸 저울질했다면 결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순간마다 벌어지는 일에서 하느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따르려는 노력입니다. 마리아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백영민2017.03.08
![[창간 27돌] 본지 ‘묵상시와 그림’ 연재하는 김용해(필명 김요한) 시인](//cpbc.co.kr/CMS/newspaper/2015/05/rc/569463_1.0_titleImage_1.jpg)
[창간 27돌] 본지 ‘묵상시와 그림’ 연재하는 김용해(필명 김요한) 시인성경과 기도에서 건져올린 시, 나눌 수 있어 행복 시인 릴케는 말했다. “시는 체험이다.” 진실하고 좋은 시는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체험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릴케의 이 한 마디는 칠순 시인의 마음을 새삼 울렸다. 그리고 그를 묵상시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래, 내가 체험한 하느님 말씀을 시로 써보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일흔을 넘겨 쓰기 시작한 묵상시는 ‘묵상시와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현재 평화신문 지면을 빛내는 연재 중 하나가 됐다. 평화신문 창간 27주년을 맞아 2013년 12월부터 평화신문에 묵상시와 그림을 연재하고 있는 김용해(요한 사도, 72, 필명 김요한) 시인을 만났다. ▶시가 간결해 쉽게 읽힙니다. 그러면서도 깊은 여운이 남고요.“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동시 같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저는 쉽게 읽히는 시가 좋습니다. 이해하기 쉬워야 감동도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쉽지만 진실된 시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묵상시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는지요.“하느님 말씀인 성경입니다. 제 묵상시는 하느님 말씀, 하느님 마음, 하느님 사랑을 생각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통해 영혼을 일깨우고 마음을 아름답게 해주는 시를 쓰기 위해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를 바칩니다.”▶성경을 항상 가까이 두시겠네요.“하루를 기도와 시간 전례, 성경 읽기로 시작합니다. 성경 통독, 성경 필사도 여러 번 했습니다. 성경은 읽을 때마다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어제 읽은 구절을 오늘 또 읽어도 다르게 읽히는 걸 보면 참 놀랍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에 대한 답이 모두 성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묵상시를 쓰는 시간을 정해두시는지요.“시 쓰는 시간을 따로 정해두지는 않지만 주로 오전에 쓰게 됩니다. 아침에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면 시적 영감이 떠오릅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는다고 해야 할까요. ‘저기 저 꽃이 왜 피는 줄 아느냐. 저 바람에 나뭇잎이 왜 흔들리는지 아느냐’ 하고 하느님께서 물어오시기도 하고요. 그럼 그런 생각과 영감을 공책에 적어둡니다. 그리곤 몇 날 며칠이고 묵혀둡니다. 그 사이 제 생각은 자라 있고, 깨닫는 것들이 생기거든요. 시간이 흐른 뒤 공책을 펼쳐 묵상의 영감들을 문장으로 엮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 묵혀뒀다 꺼내서 고치고, 또 묵혀두고 고치고…. 그렇게 반복해서 하나의 시가 탄생합니다”▶시는 언제부터 쓰셨는지요.“중학교 때부터 시인을 꿈꿨습니다. 제가 제주 서귀포 출신인데 고3 때 일반인이라고 속이고 제주방송국 신춘문예에 시를 응모한 적이 있었는데 덜컥 당선됐었죠. 그때 ‘아 나도 시를 쓸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주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생활을 하면서도 시를 계속 썼고,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散調’(산조)가 당선돼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예수의 편지」 「민중일기」 「제주도 사투리 시집」 등을 발표했습니다. 1994년 바오로딸 출판사에서 시산문집 「부부들의 사랑 이야기」를 냈는데 최근 29쇄를 찍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M.E. 부부들의 교과서로 불린다고 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시와 함께 곁들인 그림도 시와 잘 어울립니다.“그림은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입니다. 시만 싣기엔 밋밋할 것 같아서 처음 그려본 것입니다. 전문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요.”▶묵상시를 읽는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요즘 자주 드는 생각은 ‘제가 하느님을 몰랐더라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라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엔 늘 하느님께서 함께해주셨고,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을 생각하며 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묵상시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도록 힘쓰겠습니다. ” 글·사진=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5.05.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