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붓끝에 생명의 빛 담아 하느님 사랑 전하고파‘빛으로 감싸리’ 주제로 화가 김형주 화업 40여 년 회고전 김형주씨가 자신의 추상 작품 ‘하늘과 땅’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이힘 기자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화가 김형주(이멜다, 69, 서울 압구정1동본당)씨는 “화가는 그리는 대상을 진심으로 사랑해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며 “화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4월 14일부터 서울 서초동 흰물결갤러리에서 ‘빛으로 감싸리’를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김씨는 “대상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붓을 들 수 있겠어요. 자연을 그리려면 자연을 사랑해야 하고, 예수님을 그리려면 예수님에 대해 잘 알아야 하지요”라며 사랑에 대한 자신의 미학을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 ‘인생이 무엇일까’하고 의문을 품었던 30대 때의 ‘추상화’에서부터, 가정 문제로 방황했던 40대 때의 검(劍) 작품, 성미술에 발을 들여놓은 50대 이후 최근 작품까지 6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6월 11일까지 갤러리 전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김씨의 40여 년 화업을 총망라한 ‘회고전’이다. 김씨는 124위 순교 복자화인 ‘새벽빛을 여는 사람들’을 그린 화가다. 2014년 8월 교황 방한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124위 시복 미사에서 대형 걸개그림으로 선보인 그의 순교 복자화는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를 탔다. 작품속 복자들은 한결같이 웃고 있는데, 그것은 고통 속에서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했지만,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음을 표현한 것. “젊은 시절엔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존재하고, 그 인간 중 하나인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의문에 휩싸였지요. 그래서 우주처럼 보이는 추상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마흔을 넘기면서 나무로 검 형상을 깎고 다양한 재료를 붙이고 새기는 작업을 했어요. 무당이 굿할 때 칼을 들고 춤을 추듯, 칼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다는 주술적 의미가 있습니다.”김씨는 작품 활동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아갈수록 내면에서 ‘종교적인 심성’을 발견하게 됐다.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여갈수록 주님 사랑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50대부터 본격적으로 성미술을 시작했다. 화가였지만, 처음 도전하는 성미술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묵주기도의 각 신비를 묵상하며 소묘 작품에 몰두했다. 성경 공부도 시작했다. 루카 복음을 155편의 소묘 작품으로 만들어냈고, 토빗기ㆍ탈출기 등 성경 이야기를 어린이들도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동화풍 작품도 그렸다. 또 한동안 이콘에 빠졌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단호하면서도 살아 있는 눈빛’을 가진 예수님 얼굴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김씨는 “전시회를 통해 하늘과 땅, 따스한 빛을 느끼며 작은 새싹이 돋아나는 듯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싶다”면서 “생명력의 원천은 사랑이고,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그림을 통해 드러내고 싶다”고 말했다.문의 : 02-535-7119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평화신문2016.04.27
올해 사순 키워드는 ‘자비’와 ‘교회 가르침’ 전국 교구·본당들, 자비의 희년에 맞춰 특강 주제 선정… 병인박해 150년 맞이 교회사 특강도 마련 사순 시기가 되면 교구별로 주교좌본당은 물론 각 지역 본당에서 사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특강을 마련한다.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는 올해는 ‘자비’를 주제로 하는 특강이 많이 준비됐다. 또 ‘교회 가르침’과 관련된 특강도 눈에 띈다.서울 명동주교좌본당은 ‘교회 가르침을 중심으로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하는 해가 되자’는 교구장 사목 방침에 따라 22일부터 3월 14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 ‘성경 봉독과 권고와 가르침에 열중하십시오’를 주제로 특강을 연다. ‘사도신경에 담긴 신앙고백’,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나타난 회심ㆍ친교ㆍ봉사’을 소주제로 한 강의를 준비했다.서울 성내동본당은 3월 10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본을 교재로 △내세 교리 △일곱 성사 △성모 마리아 등을 주제로 특강을 연다. 서울 면목동본당은 21ㆍ28일 교중미사 중 자비의 희년 특별 강론을, 응암동본당은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자비와 희망’ 등을 주제로 20일부터 3월 12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미사 후에 특강을 마련한다. 수원교구는 26일 오후 2시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극기복례 위인지본’(자기를 극복해 예로 돌아가는 것은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을 주제로 ‘자비의 특별 희년 기념 사순 특강’을 개최한다. 이근덕(교구 복음화국장, 동양철학 박사) 신부가 강연한다. 수원 권선동본당은 ‘가톨릭 교회 핵심 교리와 하느님의 자비’를 주제로 21일부터 3월 6일까지 주일 오후 1시에 특강을 진행한다.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본당은 △자비의 희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성경에 나타난 하느님의 자비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어떤 모습으로 받을 수 있는가 △하느님 자비에 대한 우리의 응답 등을 주제로 22일부터 3월 21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 사순 특강을 연다. 인천교구 부평지구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를 주제로 10일부터 자비의 희년 사순 기도회를 열고 있다. 3월 23일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부평4동성당에서 진행된다.병인박해 150주년을 맞아 교회 역사를 주제로 한 사순 특강을 마련한 본당도 있다.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1792~1835) 주교 현양 사업을 하는 서울 용산본당은 18일부터 3월 17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 한국교회의 시작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의 역사를 다루는 특강을 마련한다. 조현범(토마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강의한다. 서울 가락동본당도 3월 12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미사 후 한국교회사 강의를 연다. 이색적인 주제도 눈에 띈다. 서울 발산동본당은 ‘인간 생명, 생명 돌봄, 호스피스’(19일~3월 4일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쑥고개본당은 ‘생태, 「찬미받으소서」’(18일~3월 17일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대치4동본당은 ‘도스토옙스키와 자유’(3월 4일 오후 8시)를 주제로 특강을 마련한다. 음악 묵상회를 준비한 본당도 있다. 서울 신정3동본당은 5일 저녁 7시 ‘사순절 묵상 - 폴리포니 앙상블’ 공연을, 춘천 스무숲본당은 3월 8ㆍ9ㆍ17일에 ‘사순 음악 묵상회’를 개최한다. 8ㆍ17일에는 저녁 7시 미사 후, 9일에는 오전 10시 30분 미사 후 연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6.02.16
![[나의 신앙 나의 기업] (28) 황성일(안셀모) ㈜동아인업 대표이사](//cpbc.co.kr/CMS/newspaper/2017/02/rc/671116_1.0_titleImage_1.jpg)
[나의 신앙 나의 기업] (28) 황성일(안셀모) ㈜동아인업 대표이사 맨주먹으로 시작한 타향살이. 반 백 년이 흐르면서 타향은 제2의 고향이 됐고, 사진식자공으로 업계에 첫발을 들인 젊은이는 지역 최대 인쇄업체 대표가 돼 이제 희수(喜壽)를 맞고 있다. 황성일(안셀모, 77) ㈜동아인업 대표의 삶과 신앙 이야기다. 인쇄물을 살펴보는 황성일 대표이사. 부산시 부산진구 범천로 16에 있는 ㈜동아인업. 외형은 허름해 보이지만 임직원 40여 명을 둔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인쇄사다. 인쇄만 하지 않는다. 도서출판 ‘지평(地平)’이라는 출판사와 부설기관 디자인개발연구소도 두고 있다. 기획에서 편집 출판 인쇄 제본까지 모든 공정을 자체적으로 소화한다. 설립자인 황성일 대표이사는 기부와 나눔 실천에 앞장서는 향토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2015년 1억 원 이상 고액을 기부한 이들에게 수여되는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됐다. 하지만 황 대표는 훨씬 이전부터 교회와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와 나눔을 실천해 왔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기부와 나눔은 그 자신도 모르게 삶의 기술이자 철학이 됐다. 가난 극복하고 나누고 베풀어 황 대표 고향은 대구 인근 경북 경산 자인면이다. 부산에 내려온 것은 20대 중반 때였다. 고향인 대구에서 성공하고 싶었으나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바람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부산에서 새롭게 출발하기로 작정했다. 막노동으로 전전하다가 잡은 직업이 사진식자였다. 타자기 형식으로 사식을 치는 식자공으로 출발했으나 서울을 오가면서 배운 끝에 부산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편집기를 도입, 1972년 ‘동아사진식자사’라는 식자회사를 차렸다. ㈜동아인업의 시작이었다. “인쇄소의 하청작업을 맡아 하면서 쌓은 기술을 활용해 부산사진식자협회를 만들었습니다. 사진학자학원을 개설해 제자들도 양성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제자들과 본의 아니게 경쟁 관계가 자꾸 형성되더군요. 그래서 인쇄 쪽으로 방향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지요.” 유신 체제의 종말과 제5공화국으로 이어지는 1970년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부산 지역에는 민중 문학을 하는 이들이 꽤 있었고, 학창시절 정치학을 전공했던 황 대표는 자연스럽게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출판사를 운영했다. 황 대표는 민중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도 오르게 됐다. “이렇게 출판사를 운영해서는 빵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또한 인쇄 쪽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주력을 인쇄업으로 돌렸지만 시장은 만만찮았다. 관공서 쪽의 수주는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들어오지도 않았다. 유통 업계로 눈을 돌렸다. 유통업계는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거리가 많았고 물량도 컸다. 수익이 생기면 재투자해 시설을 확충했다. 회사는 점점 성장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제게는 부산이 혈연, 학연, 지연 등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입니다. 사진식자공에서 출발해 자영업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에 도움을 받을 데가 전혀 없었습니다. 대출을 받으려면 보증인을 세워야 했는데, 연고가 없으니 보증인을 세울 수가 없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려면 가진 것을 먼저 나누고 베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황 대표의 나눔은 작은 데서 출발했다. 책을 만들려는 사람에게는 종잇값만 받고 책을 만들어 주고, 인쇄 홍보물이 필요한 곳에는 실비만 받거나 나중에 비용을 탕감해 주는 식으로 기부를 실천했다. 이런 식으로 부산 소년의 집을 후원하기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된다.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관련 인쇄 홍보물 지원은 도맡아 하고 있다. 사회복지기금 출연, 장애인에게 일자리 제공 황 대표는 2010년에는 10억 원을 출연, 사회복지법인 동인복지재단을 만들었다. 재단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동인직업재활센터를 운영한다. 재활센터에는 현재 약 40명의 장애인이 정규 직원 4명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쇼핑백, 현수막, 인쇄물 등을 생산, 납품한다. 황 대표는 이사장 직함을 갖고 있지만 재정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일감을 주선하는 데에 관심을 쏟을 뿐이다. 살기 위해서 시작한 기부와 나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황 대표는 기부와 나눔의 의미를 더욱 깊이 체득하게 됐다. 한 마디로 “나눔은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 대표는 “행복하고 싶으면 나눔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황 대표가 신앙에 귀의하게 된 것은 1980년이었다. 먼저 신자가 되신 어머니의 권유를 받았다. 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괴정본당 사목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부산교구 평협 부회장과 부산 가톨릭경제인회 회장으로도 봉사했다. 현재 본당은 사하본당이지만 레지오 마리애 활동은 괴정본당에서 하고 있다. 쁘레시디움(주님의 성전) 주회를 특이하게도 수요일 새벽 6시 30분에 한다. 880차를 지냈으니 벌써 17년째 되는 셈이다. 황 대표는 “새벽 주회를 하면 불참 핑계를 댈 거리가 없다”면서 새벽 주회 예찬론(?)을 편다. 20년 이상 아침에 출근하면 매일 사무실 복도와 계단을 청소하다가 직원들의 거듭된 만류에 최근 들어 청소를 중단하고 미화 직원을 채용했다는 황 대표는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서 지혜를 배워라’는 잠언의 말씀(6,6)을 좋아하는 성경 구절로 꼽는다. 40년 된 목요학술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향토기업사랑 부산시민연합 상임대표, 재부 대구경북시도민회 회장, 부산시민센터이사 등으로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활발히 봉사하고 있는 황 대표는 사업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십시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정도를 걸으십시오.”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 서울가톨릭경제인회는 ‘나의 신앙, 나의 기업’에 소개할 교우 기업인들을 추천받습니다. 아울러 경제인회 활동에 함께할 교우 기업인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 02-755-7060 백영민2017.02.09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5)노르베르트 로핑크 (중)](//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6659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5)노르베르트 로핑크 (중)성경 연구는 성경이 하느님 말씀이라는 데서 출발 성서학은 성경을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노르베르트 로핑크 역시 주석자들에게 성경이 하느님 말씀임을 잊지 말기를 당부했다. 지난 호에선 노르베르트 로핑크의 생애를 살펴보고 「계시헌장」에 대한 그의 시각을 알아봤다. 그는 「계시헌장」이 근대적인 성경 연구 방법, 즉 역사비평을 수용했다는 점만을 주목하지 않고, 초기 교회에서부터 성경이 교회의 삶과 신학 안에서 지녀온 역할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제 그가 역사비평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했는지를 살펴보겠다.역사비평, 과거에 대한 질문근대에 이르러 과거에는 아무도 묻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묻기 시작했다. 특히 본문 저자와 본문 형성 과정에 대한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모세 오경과 이사야서가 과연 모세나 이사야라는 사람이 작성했는지를 논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학자들은 이 책이 한 사람의 저자가 아니라 오랜 기간 여러 사람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그리고 이런 결론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쓰인 책이라는 믿음에 상치되는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됐다고 믿는 이들은 역사비평적인 접근을 멀리하거나 단죄했고, 역사비평적 접근은 교회 밖에서 이뤄졌다.성경의 개별 책들의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성령의 영감 또는 정통성과는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인정받았다. 그때까지 가톨릭 교회와 역사비평의 관계는 평탄치 않았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역사비평이 성경 연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졌다.로핑크는 역사비평이 어둠 속에 덮인 과거를 밝히려 한다고 설명한다. 성경은 과거에 형성됐고 대개 과거를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연히 성경 연구는 그 본문이 형성된 과거, 그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과거를 묻게 마련이고 그 정당성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여기서 로핑크는 역사적 질문과 역사적 방법을 구분한다. 역사적 질문은 기본적으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한편 역사적 방법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사용되는 여러 기술과 도구, 규칙 등을 말한다. 그러나 과거를 말해주는 본문들, 특히 오래된 본문들에 대해서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는 것 외에 다른 역사적 질문들도 할 수 있다. 그는 플라톤의 「대화」를 예로 든다. 설령 그 대화가 실제로 있었던 대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등장 인물들이 사실에 충실하게 묘사됐는지, 그리고 원래 본문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을 수 있다. 역사와 해석, 그리고 성경 연구역사와 해석 사이의 구분은 본문에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나뉜다.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본문의 경우 역사와 해석이 겹쳐지지만, 일반적으로 오래된 본문이 있다면 그 본문에 대한 접근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본문을 해석해 그 본문이 의도하는 바를 찾거나, 아니면 본문을 사료로 사용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찾는 것이다. 물론 두 작업은 서로 연관된다. 본문의 발생 상황을 모르고서는 본문을 해석할 수 없다. 반대로 본문을 해석해 이해하지 않고서는 본문을 사료로 이용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방법은 오직 역사적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본문의 해석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그러나 로핑크는 결정적 문제는 성서학이 역사인가 해석인가 하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학자에게, 이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거기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물론 로핑크가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성서학이 해석임을 말하기 위해서다.그리스도교 신학자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과거 그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다. 그런 관심에서라면 코란 주석을 연구할 수도 있고 플라톤을 연구할 수도 있다. 그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성경이 그에게 특별한 가치를 지닌 본문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그 책을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그의 일차적 관심은 본문의 진술 내용에 있다. 그 책의 기원이나 본래 형태 등에 관한 역사적 질문은 이차적이며, 본문의 해석을 위해 요구되는 것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의 목표는 본문의 진술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본문의 세계 안에, 본문의 시각 안에, 곧 다른 어떤 사람의 세계와 시각 안에 들어선다. 그 시대 사람의 지평과 그 자신의 지평은 하나로 융합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또는 해석자가 여기에 성공할 때 성서학의 의미가 완성된다. 성서학은 해석”이라고 했다.논의의 핵심은 성경 연구에서 역사적 질문이 이차적 성격을 갖는다는 데에 있다. 역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성경 이해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역사비평적인 연구는 성경 연구 안에 포함되고, 본문의 이해를 돕는 것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성경 본문의 주석자가 찾는 것은 본문이 진술하는 의미이며, “본문 안에서 어떤 진술을 하는 이와의 인격적 만남”이다. 성서학은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실재에 대한 이해, 진리 문제여기서 로핑크는 매우 현대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역사적인 질문은 성서학 안에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므로, 성서학적인, 곧 로핑크가 이해하는 바와 같이 신학적 맥락이 아닌 순수하게 역사적인 관심에서 성경에 역사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신학자도 성서학자도 아닌 역사가가 성경 본문을 역사비평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다. 로핑크는 이 질문을 뚜렷하게 하기 위해 그 가상의 역사가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전제한다. 그럴 경우 그의 연구 결과는 성서학에서와 동일할 것인가? 일단은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정한 자료에 일정한 방법을 적용하면 결과는 일정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역사비평에는 각자의 실재 이해가 전제된다. 성경의 어떤 부분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에서 그 실재 이해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가가 기본적으로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고 기적도 있을 수 없다는 이해를 가지고 있고, 다른 역사가는 하느님과 기적이 실제로 확인될 수 있는 개념들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이들의 성경 해석 결과는 동일할 수 없다. 후자가 기적에 대한 본문을 언제나 역사적 사실의 보도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선험적으로 기적 보도가 역사적 사실일 수 없다고 여기지는 않는다.그러나 이것은 꼭 역사와 성경 해석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실재에 대한, 이 세상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한 사람의 주장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조리하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 심리학, 신학 등에서도 유신론적 실재 이해와 무신론적 실재 이해는 서로 전혀 다른(거의 소통할 수 없는) 인간관의 차이를 가져온다. 로핑크는 구약 성경을 읽는 데에도 거의 이에 상응하는 차이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 주석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실재 이해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평가한다.이 시점에서 로핑크는 지적한다. 오늘날 성경 주석은 구약 성경을 사료의 하나로 연구하는 교회 밖의 성경 연구와 대화할 수 있는가? 로핑크는 대화 가능성을 위해서 진리 문제를 침묵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역사비평에 대한 위와 같은 로핑크의 견해를 보면, 마치 성경 해석에 관한 최근의 교회 문헌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던 「교회 안의 성서 해석」이나 「주님의 말씀」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경 연구가 학문적이고 비판적인 경향으로 치우쳐 주석학과 신학이 분리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주석자들에게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임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평화신문2014.10.29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믿음·희망·사랑을 바탕으로 오늘 기도하라(18) 기도의 전통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 기도의 원천②향주덕(2656~2658항)주님을 향하는 덕이라는 뜻의 향주덕은 또한 대신덕(對神德)이라고도 합니다. 믿음(신덕), 희망(망덕), 사랑(애덕) 이 셋을 향주덕이라고 부르지요.믿음을 갖는다는 것,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인생을 보람있게 살려면 가족도 있고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봉사도 하고 한편으로는 믿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내 삶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날아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런 믿음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오공처럼 필요할 때만 부처님을 찾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달아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 전폭적으로 귀의함으로써,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께 맡겨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서는 이렇게 제시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좁은 문을 통하여…기도 안으로 들어간다.…우리가 찾고 소망하는 것은 주님의 얼굴이며, 우리가 귀담아듣고 간직하고자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다”(2656항).희망의 덕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는 가운데 성령의 은총의 도움으로 참된 행복을 주는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 덕입니다(교리서 1817항 참조).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갖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구약성경 시편은 이를 놀랍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에게 몸을 굽히시고 내 외치는 소리를 들으셨네”(시편 40,2).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희망과 사랑의 관계를 잘 설명합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특별히 전례 생활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이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받은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 베푸신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기도의 원천”입니다. 또 사랑에서 우러나는 기도를 하는 이는 “기도의 정상”에 도달합니다(2658항). 오늘(2659~2660항)우리는 특별한 순간에 기도를 배웁니다. 예를 들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리고 주님의 파스카 신비(성찬례)에 참여할 때에 기도를 드리며 기도를 배우지요. 하지만 매일매일의 사건 속에서, 바로 ‘오늘’이 순간에도 언제나 기도를 샘솟게 하는 주님의 성령을 받습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간은 아버지의 손안에 있다. 우리는 지금 아버지를 만난다. 어제도 아니요,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 만나는 것이다”(2659항). 이럴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시편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시편 95,7ㄷ-85ㄱ). 날마다, 순간마다 일어나는 일들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비밀 가운데 하나”라고 교리서는 설명합니다.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도록 기도하는 것도 좋고 마땅한 일이지만, “일상의 사소한 상황들에 기도가 배어들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2660항).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오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삶의 매 순간이 기도가 되도록 하라고 일깨웁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10.04
![[여름 휴가철 특집] 메마른 가슴, 가톨릭 영성으로 채운다](//cpbc.co.kr/CMS/newspaper/2016/07/rc/643743_1.0_titleImage_1.jpg)
[여름 휴가철 특집] 메마른 가슴, 가톨릭 영성으로 채운다‘소울스테이’가 주목받고 있다 불교에 ‘템플스테이’가 있다면 가톨릭교회에는 ‘소울스테이’가 있다. 대구대교구 4대리구 천주교문화융성사업단(단장 원유술 신부)이 영적 빈곤으로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가톨릭 영성 프로그램을 체험하도록 기획한 소울스테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소울스테이는 천주교문화융성사업단이 경상북도 지원을 받아 지난해 시작했다. 대구대교구 및 안동교구 지역의 수도원과 피정의 집, 사회복지시설 등 16곳의 가톨릭 기관들이 느림과 성찰, 비움 등을 주제로 영혼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진정한 치유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 학생, 가족, 단체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당일ㆍ1박 2일ㆍ2박 3일 일정 등으로 나뉜다. 자세한 내용은 누리집(http://soulstay.or.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수도원 및 피정의 집△연화리 피정의 집(경북 칠곡군 지천면 칠곡대로 2143)=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영적 재충전을 위한 쉼터다. 전례와 기도, 거룩한 독서가 함께하는 피정을 진행하며, 모래 놀이를 통한 상담 치료 등을 받을 수 있다. 054-973-4835 △월막 피정의 집(경북 고령군 쌍림면 월막길 120)=매실 밭 산책로를 따라 14처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자연 속에서 성령과 함께하는 금요 은혜의 밤에 참석할 수 있다. 054-954-0951 △왜관 피정의 집(경북 칠곡군 왜관읍 관문로 61)=왜관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 작가와 화가의 강의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문학 치유 피정과 수도생활 체험 피정 등이 있다. 054-970-2000△갈평 피정의 집(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기림로 1634)=예수성심시녀회 설립자 루이델랑드 신부가 마지막까지 생활했던 사제관이 있는 곳으로 루이델랑드 신부의 체취가 남아 있다. 산행길과 메타쉐콰이어 숲길, 자갈둘레길을 걸으며 심신의 피로를 풀 수 있다. 054-292-2354△평화계곡 피정의 집(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길 330)=자아 찾기ㆍ영성ㆍ명상ㆍ체험ㆍ쉼 다섯 가지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으로 가족 간 용서와 화해의 장이 되도록 돕고 있다. 바쁜 삶에서 지친 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평화를 얻어 삶의 생기를 다시 찾도록 치유 및 휴식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054-931-0022△울진 베네딕도 교육관(경북 울진군 울진읍 연지2길 29-20)=거룩한 독서 피정 및 성경 통독 피정, 성경학교 등 개인과 단체를 위한 피정이 가능하다. 054-783-6684▨성지 및 피정의 집△한티 피정의 집(경북 칠곡군 한티로 1길 69)=한티 순교성지에 있는 피정의 집으로 순교자 37기 묘역을 따라 아름다운 순례길이 조성돼 있다. 054-975-5151△진목정 성지(경북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284)=병인박해 때 순교한 세 명의 묘지가 있다. 최양업 신부가 사목 방문을 다녔던 8개 공소 중 하나인 진목 공소가 있다. 054-751-6488▨봉사 시설△민들레공동체(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산길 277-6)=만 7세 이상의 중증장애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장애체험과 함께 느림의 미학을 체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054-246-5005△성요셉재활원(경북 고령군 성산면 성산로 942-4)=장애인 거주 시설로, 장애인 10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성요셉재활원이 준비한 소울스테이는 장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교를 맺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생활실에서 청소를 하고, 장애인들의 식사를 돕고, 보호작업장에서 일손을 도울 기회도 있다. 054-954-4176△베들레헴공동체(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길 56-83)=‘복음과 함께하는 가족 공동체’로 11년 된 중증장애인시설이다. 육체ㆍ정신ㆍ심리적으로 지친 이들에게 묵상과 기도, 산책 등 체험 행사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도록 도와주고 있다. 054-262-8580△포항 들꽃마을(경북 포항시 흥해읍 칠포로 293)=인생검진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오는 우울과 스트레스를 알아차리고, 마음을 정화ㆍ치유할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비롯해 농사 체험도 할 수 있다. 054-262-9093▨체험 시설△무학연수원(경북 성주군 금수면 성주로 678)=신자들의 내적 성숙을 위한 신앙교육 및 가족 피정과 가족 캠프를 실시하고 있다. 자전거 하이킹과 다슬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054-932-0620 △울릉도 도동성당(경북 울릉군 울릉읍 행남길 9)=도동성당이 마련한 소울스테이 프로그램은 울릉 올레길을 탐방하고, 물놀이하는 시간으로 짜여 있다. 긍정적인 자아 찾기를 주제로 한 특강도 마련돼 있다. 2박 3일 프로그램이다. 054-791-2047△울릉도 천부성당(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2길 16, 사진 위)=둘레길 체험을 통해 자아를 찾고, 걷기를 통해 영적ㆍ신체적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갖는다. 최근 본당 설립 50주년을 맞아 영성센터와 교육관을 건립했다. 054-791-0080△농은수련원(경북 예천군 지보면 지풍로 983-41, 사진 아래)=신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모임과 교육, 연수 시설이다. 청소년 여름 캠프 및 대학생 인성교육, 가톨릭 교리교사 연수 장소로 적합하다. 운동장과 야외 쉼터, 수영장이 있다. 054-652-0591 cpbc2016.07.06

예수 고통 담은 ‘토리노의 수의’ 한국 온다9월 30일~10월 4일, 1898광장에서 사본 전시 토리노의 수의. 가로 4.41m, 세로 1.13m의 아마포로 돼 있다. 중간 왼편에 예수의 얼굴 형상이 보인다.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천으로 알려진 ‘토리노의 수의’(예수의 성 수의) 사본이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명동 1898광장에서 전시된다. 토리노의 수의 사본이 한국에서 전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예수의 성모 관상수녀회ㆍ예수의 성모수녀회(원장 문호영 신부)가 주최하고, 서울대교구 홍보국과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회는 성 수의에 새겨진 예수님의 형상을 통해 주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묵상하도록 이끄는 자리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10월 4일 오전 11시 명동 1898광장에서 ‘성 수의 장엄 미사’를 주례한다.토리노의 수의는 가로 4.41m, 세로 1.13m로 장방형의 한 장짜리 아마포다. 시신을 천 위에 올린 다음 발끝부터 머리를 향해 ‘ㄷ’자 형태로 감싼 다음 다시 발끝까지 덮은 형태다. 신약 성경에는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요한 20,6)는 구절이 나온다.교회 유물이자 보물 토리노의 수의1350년 발견된 토리노의 수의는 프랑스 리레에서 전시되다가 1694년 이탈리아 토리노로 옮겨졌다. 토리노의 수의는 진위와 관련해 숱한 화제와 의문을 남겼다. 1978년 미국 과학자 30명은 30분 안에 수의가 가짜임을 증명하겠다고 나섰지만, 조사 2년 만에 “현재의 물리 화학적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88년에는 과학자 21명이 탄소연대측정법을 동원해 1260~1390년 사이의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이후에도 수의를 둘러싸고 새로운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역대 교황들은 논란에 가담하지 않고 토리노 의 수의가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 성 세례자 요한 대성당을 방문, 예수의 성 수의 앞에서 참배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므로 교회가 답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의에 새겨진 얼굴에서 인간의 고통을 발견하고 모든 고통받는 이들 곁에 계시는 예수님을 떠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전시회를 기획한 문호영 신부는 “이번 전시회는 가톨릭 신앙의 근간이 되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더욱 확고히 다져 구원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하게 됐다”며 “토리노의 수의는 현존하는 가장 가치 있는 유물이자 보물”이라고 설명했다. 문 신부는 본지 9월 4일 자(1380호)부터 토리노의 수의에 관한 기고를 4회 연재한다.이힘 기자 lensman@pbc.co.kr 문채현2016.08.24
![[신앙단상] 지휘자와 연주자의 호흡이 중요하듯](//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6146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지휘자와 연주자의 호흡이 중요하듯이강민(노트케르 발불로, 명동성당 가톨릭합창단 지휘자 음악 칼럼니스트) 지휘할 때 중요한 게 무엇일까? 어떤 이는 좋은 지휘봉과 보면대처럼 소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연미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멋있게 지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휘를 위한 호흡법’이다. 지휘를 위한 호흡법은 들숨ㆍ날숨ㆍ정지ㆍ숨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연주자 호흡법과 거의 같다. 좋은 지휘자는 연주자들이 편안하게 연주하도록 돕고 정성껏 준비한 음악을 잘 이끌어 표현한다. 음악이 엇갈리고 지저분하거나 혼란스러울 때는 지휘자의 호흡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훌륭한 지휘자는 생각하는 음악 표현이 호흡과 일치하고, 하나 된 음악적 호흡을 온몸으로 표현해 지휘하며 연주자와 하나 되는 지휘자다. 이렇게 지휘자와 연주자가 하나 된 연주에 관객들은 감동하고 환호한다. 훌륭한 지휘능력을 갖췄더라도 지휘자의 수준에 맞는 연주자를 만나야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지휘자의 실력이 연주자에 못 미치면 좋은 연주를 기대할 수 없다. 사제는 지휘자, 연주자는 신자 같다는 생각이 지휘할 때마다 든다. 사제는 신자들을 지휘하기 위해 신앙과 신학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좋은 지도력이 함께 있어야 한다. 신자는 사제의 지휘를 따라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기도생활과 성실한 미사 참여, 성경 읽기, 깊이 있는 교리공부 같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제의 신앙, 문화 지식 수준이 신자보다 월등히 높은데 신자가 스스로 수준을 높이려 하지 않고 계속 자신 수준에 만족하며 머무를 때, 수준 높은 사제의 역량은 빛을 잃는다. 반대로 신자의 수준이 사제보다 높을 경우, 사제에 대한 불만이 쌓여 의지하지 못하게 되고 신앙적으로 방황하는 일이 생긴다. 개신교회를 예로 들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 여러 교회에서 신자가 성직자의 수준을 추월하게 되자 성직자에게 수준 향상을 요구하게 됐다. 이 때문에 성직자들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높은 영성을 갖추려는 노력으로 성직자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반대 사례로는 수준 높은 성직자를 초빙했으나 신자가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신자 스스로 교회 안에 예술문화학교, 신학 강좌, 인문학 강좌 개설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준 향상을 위한 노력을 했다. 합창 합주를 할 때 연주자는 다른 이의 소리를 들으며 그에 어울리는 소리로 연주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자신의 소리가 튀거나 다른 이의 실력에 못 미치는 경우 조화로운 연주를 할 수 없다. 또 지휘자의 지휘를 잘 봐야 한다. 지휘와 관계없이 자신의 박자나 음악적 표현을 하면 지휘자와 다른 연주자는 조화롭지 못한 음악 때문에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게 되며, 듣기 불편한 연주가 돼 버린다. 지휘자는 모든 연주자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정확하고 안전하게 지휘해 조화로운 연주를 해야 한다. 또 모든 연주자의 실력이 점차 향상되도록 연주자 수준에 맞게 지도해야 한다. 연주자와 지휘자의 이러한 노력은 좋은 연주로 이어져 관객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실력 있는 연주단체로 성장할 것이다. 지휘자와 연주자의 관계처럼 사제와 신자도 각자의 위치에서 온 정성을 쏟으며 살고, 주변 이웃과 특히 소외되고 고통받는 온 세상 사람들 소리에도 귀 기울여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하느님께서 보신다면 무척 감동적인 연주를 보고 환호하는 관객처럼 참 기뻐하실 것 같다. 평화신문2016.10.12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령, 우리를 변모시키는 사랑의 불](//cpbc.co.kr/CMS/newspaper/2016/11/rc/661455_1.1_titleImage_1.jpg)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령, 우리를 변모시키는 사랑의 불74.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⑦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불사르고 변모시키신다. 사진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대 뒤 성령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화. 성녀 엘리사벳이 체험한 성령성녀 엘리사벳의 영성에서 주목할 또 다른 주제로 성령과의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녀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2장 10절을 바탕으로 성령이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사정을 유일하게 아시는 분”(서간 274)이라고 소개하며 우리가 하느님의 심오한 신비를 통찰할 수 있는 은혜를 얻기 위해 성령께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성녀는 성령을 삼위일체 안에서 세 위격 간의 ‘일치’를 완성하시는 사랑의 영(靈)으로 보았습니다(서간 193). 특히 성녀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두 위격 사이의 결속”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들으려면 무엇보다 성령의 움직임에 자신을 열고 그분께 온전히 의탁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성령이야말로 우리와 삼위일체 하느님 사이를 이어주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신비 안에 살게 하며 신적인 생명을 전해 주는 가운데 그 관계를 완성으로 인도함으로써 우리의 성화 과정을 실제적으로 완성시켜 주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살라버리고 변모시키는 불이신 성령그러면 성녀의 글에서 성령은 어떤 상징으로 드러날까? 성녀 엘리사벳은 우리를 ‘살라버리는 불’, ‘변모시키는 불’로 성령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사실, ‘불’이라는 상징은 성경에서 그리고 신비가들의 여러 작품에서 생명의 시작이자 인간을 쇄신하고 정화하며 변모시키는 거룩한 힘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체험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곤 했습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12장 29절의 “우리의 하느님은 다 태워버리는 불이십니다”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성령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설명했습니다. 성녀에게 있어서 성령은 “건드리는 모든 것을 당신 안에서 소멸시키고 변모시키는 사랑의 불”(믿음 안에서 천국, 13)입니다. 성녀는, 이 신적인 불이 간직한 쾌감은 결코 식을 줄 모르는 활동을 통해 우리를 존재의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해주신다고 보았습니다. 성녀에 따르면, 성령은 무엇보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모시키는 신성한 사랑의 힘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욱 더 거룩하게 되는 가운데 성부께서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실 때 우리 안에서 당신이 총애하고 사랑하는 성자의 모상을 알아볼 수 있게”(믿음 안에서 천국, 12) 해주십니다.신비적인 죽음으로 인도하는 성령그런데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우리의 변모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매일 우리 자신을 더 포기하는 가운데 점점 더 작아지게 해줍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점점 더 자라고 높이 들어 올림을 받게 합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이 과정을 ‘신비적인 죽음’이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신비적인 죽음의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은 자신을 불태우는 사랑의 불 속에 잠기기 위해 서슴없이 자신을 없애고 벗어던집니다. 그들에게 이 죽음은 고통과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감미로움으로 내적인 기쁨으로 다가온다고 성녀는 전합니다. 우리를 이 신비적인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불은 다름 아닌 성령이십니다. 이 신비적인 죽음의 과정은 믿음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이는 루카 복음 12장 49절(“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에서 보듯이 예수께서 간절히 바라신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령의 불을 통해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키시고 그럼으로써 당신과 동등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당신과 더불어 삼위일체의 내밀한 친교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이를 관상적인 삶이라고 불렀습니다.내적 여정으로 초대하시는 성령성녀는 또한 우리 존재를 거둬들여 내면으로 집중하게 해주는 성령의 활동에 주목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존재의 중심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게 함으로써 그곳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실현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실제적인 자녀로 거듭난 우리는 성령의 움직임에 우리를 내어 맡김으로써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친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실제적인 변모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자극하시고 인도하시는 가운데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도모해 주십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영혼은 성령에 의해 움직여진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영에 인도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믿음 안에서 천국, 31). 성녀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우리 영혼의 하늘 안에 거하시며 그 중심에서부터 일하심으로써 우리를 변모시켜 주시고 우리 안에 “거룩한 아름다움 자체이신 분”(서간 239), 즉 그리스도의 모습이 새겨지게 해주십니다. 문채현2016.11.23
[성경 속 도시] (28) 페르게소아시아 전교 여행의 시작지 소아시아 남부의 고대 도시 중 하나인 페르게는 팜필리아 지방의 한 도시로 기원전 12~13세기쯤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페르게는 트로이 전쟁 이후에 발전했다. 리디아 왕국에 이어 페르시아의 점령하에 들어갔던 페르게가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해방되고 최고 번영기를 누린 것은 로마 시대였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 페르게에서 볼 수 있는 유적 대부분은 역시 로마 때의 것이다. 현재도 유적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페르게는 해안으로부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팜필리아 평원과 서동부의 교통 요충지였다. 현재 페르게에서 발굴된 유적에는 성채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낮은 성읍과 외딴곳에 세워진 기념비 등이 있다. 성벽 안에는 로마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목욕탕 같은 공공건물이 몇 개 남아 있다. 남문과 서문 밖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극장과 경기장은 성벽으로 쌓인 낮은 성읍 밖에 남아 있다. 바오로 사도, 1차 전교여행 때 두 차례 통과이곳 페르게는 바오로 사도가 소아시아 전교 여행을 시작했던 중요한 곳이며 그와 연관이 깊은 도시다(사도13,13:14,24-25). 바오로 사도는 1차 전교 여행 때(45~48년쯤) 두 번에 걸쳐 이곳을 통과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페르게에 도착해 곧바로 안티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로 갔다.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사도 13,14). 이곳 페르게에서 안티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넘어가는 곳은 어느 지역보다 위험한 곳이다. 바오로 사도가 강도의 위험을 당했다고 하는 지역이 이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전교 여행에 동행하던 마르코 요한은 너무 힘든 나머지 이곳에서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말았다.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사도 13,13). 바오로와 바르나바, 각자의 길로 이 일은 2차 전교 여행 때 두 사람이 헤어진 원인이 되었다.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가 첫 번째 선교여행 중에 세운 교회들에서 문제가 대두하자 바오로 사도는 바르나바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고을로 형제들을 찾아보자고 사목방문을 권한다. “며칠 뒤에 바오로가 바르나바에게, ‘자,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고을로 형제들을 찾아가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하고 말하였다”(사도 15,36). 신자들이 믿음을 지키고 신앙에 따라 사는지를 살펴보고 신앙의 삶을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때 바르나바는 마르코라고 불리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 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마르코가 팜필리아 페르게에서 사도들과 협력하기를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를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바르나바는 마르코와 함께 바르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로 가서 그들의 첫 번째 선교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협조자로 실라스를 선택하여 사도들과 함께 머물며 안티오키아에서 선교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11.11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세상 둥지 걷어가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다](//cpbc.co.kr/CMS/newspaper/2016/07/rc/645524_1.1_titleImage_1.jpg)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세상 둥지 걷어가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다58.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⑩ 소화 데레사는 아버지의 고통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병고로 인한 정화지난 호의 마지막에서 소화 데레사가 신뢰와 사랑의 길에서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먼저 자기 비허(卑虛)의 길을 걸어야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그로부터 얼마 후 성녀가 아버지의 병고로 인해 겪게 되는 인간적인 아픔 그리고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며 겪었던 자기 자신과 이 세상으로부터 이탈을 의미합니다. 소화 데레사는 가르멜에 입회한 지 얼마 후부터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했던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 끝내 금치산자(禁治産者) 선고를 받아 사회적인 죽음을 겪는 일련의 사건을 봉쇄 수녀원 안에서 들으며 심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1889년 2월 정신병이 심해지면서 캉에 있는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1892년 5월이 돼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큰 병고를 겪고 마침내 아버지가 다시 리지외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성녀에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해 10월 성녀는 피정을 하는 동안 그간 아버지와 관련해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묵상하며 깊은 영적인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이는 성녀가 당시 바로 손위 언니인 셀리나에게 10월 19일자로 보낸 편지에 잘 담겨 있습니다. 거기서 성녀는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인해 캉의 정신병원에서 지냈던 3년간은 가족 모두에게, 특히 자신에게 깊은 절망의 시간이었고 아버지의 시련과 더불어 이제 자신이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던 이 세상의 집은 사라지고 말았다고 고백합니다.성녀는 하느님께서 아버지의 일로 자신을 치셨으며 이 지상에서의 거처를 완전히 없애주심으로써 이 세상 여정 동안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예수님과 같은 처지가 되었음을, 그래서 이제 천상을 향해 날아갈 영적인 바탕이 자기 내면에서 마련되기 시작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게 하자. 그분은 내 영혼 안에서 어떻게 당신의 일을 완성시킬지 알고 계시니까.”주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림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인 아버지의 일을 겪으며 성녀는 이때부터 자기 삶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온전히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성녀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일을 통해 자신을 정화시키셨음을 보았습니다. 즉, 주님은 그 일을 통해 성녀를 이 세상으로부터 이탈하게 해주었습니다. 그간 성녀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아무것도 아니기를 열망해 왔으나 1892년 피정 동안 이 세상에 기댈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비로소 “내려오너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된 것입니다. 당시 성녀는 자신이 예수님의 거처가 되어 그분을 섬겨드리기 위해서는, 세상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내려와야 한다는 것, 즉 완전히 이탈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철저한 가난이자, 예수님 이외에는 기댈 그 누구도 지니지 않는 완전한 내적 가난의 여정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녀는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수치를 당하는 사건을 통해 성면(聖面)의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성녀는 주님의 성면 안에서 이 내적 가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비천하게 되신 주님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얼굴 역시 가려져 오직 주님만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눈물을 헤아려 주시길 염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 그분이 머리를 기대고 쉬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자 했습니다.자신의 작음과 무능함에 대한 체험이런 일련의 일들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소화 데레사에게 모든 위로를 거둬갔습니다. 1893년 7월 6일자 편지를 보면, 성녀는 당시 어두움과 메마름 속을 걸으며 때때로 아무것도 못 느낄 정도로 기도와 덕을 실천하는 데 있어 무기력감을 많이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성녀는 성성(聖性)을 향한 여정에서 자신의 작음과 무능함을 느끼며 동시에 지적, 영적 가난함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성녀는 이 무능함 속에서 성경과 준주성범의 도움으로 단단하고 영양가 많은 영적 음식을 발견해 갔으며 특히 복음서에서 새로운 빛과 숨겨진 신비로운 뜻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소화 데레사의 아버지는 1894년 7월 29일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간 아버지를 돌보아 드렸던 셀리나가 그로부터 몇 달 후인 9월 14일 리지외 가르멜에 입회하게 됩니다. 가르멜에 들어올 당시, 셀리나는 작은 성경 선집(選集)을 갖고 들어왔으며 소화 데레사가 읽을 수 있도록 이 선집을 넘겨주었습니다. 이는 그간 아버지의 일로 아파하며 영적인 메마름과 세심증 속에서 자신의 무능함과 가난함을 깊이 체험하던 성녀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적인 비전을 발견하는 촉매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성녀는 이 선집에서 장차 자신의 영적 어린이의 길을 발견하게 해 줄 두 구절인 ‘누가 작은 자이거든 내게로 오라’(잠언 9,4 참조),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귀여워하는 것같이 나도 너희를 위로하고 너희를 품에 안고 무릎에 올려놓고 흔들어 주겠노라’(이사 66,12-13 참조)라는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문채현2016.07.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