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엔 갑질하는 창업주, 미국엔 가치 사업에 뛰어든 창업주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톰 모나한, 가톨릭 학교 설립·생명운동 등 ‘하느님 사업’에 매진 불우한 어린 시절 자신에게 신앙과 용기를 불어넣어준 베라르다 수녀를 만난 톰 모나한의 모습. 자서전(왼쪽)에 실린 사진. 국내 외식 업체 프랜차이즈 창업주들이 성추행과 ‘갑질’ 논란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고 있다. 하지만 피자 사업으로 번 돈을 하느님 사업에 쏟아부은 프랜차이즈 창업주도 있다. 피자 업계 세계 2위인 도미노 피자의 창업주 톰 모나한(80)이다. 미국에서 모나한은 ‘피자’와 ‘가톨릭’ 두 단어로 다 설명이 되는 유명 인사다. 1980년대 ‘아베 마리아 재단’을 설립해 교육과 자선사업을 시작하더니, 지금은 프랜차이즈 지분을 정리해 가톨릭 관련 사업에 ‘올인’하고 있다.그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떠나는 바람에 여섯 살 때 동생과 함께 가톨릭 교회가 운영하는 성 요셉 어린이집에 맡겨졌다. 그곳에서 수녀들을 통해 가톨릭 신앙을 알았다. 하지만 반항 기질이 다분한 골칫덩어리였다. 사제가 되고 싶은 마음에 신학교에 들어간 적도 있지만 얼마 안 가 쫓겨났다.그래도 방황하는 그를 잡아 준 것은 신앙밖에 없었다. 특히 자신을 특별히 사랑해 줬던 베라르다 수녀가 “어떤 일이 있어도 하느님은 너희를 포기하지 않으신다”고 해준 격려를 떠올리면서 다시 일어서곤 했다. 도미노 피자 신화는 1960년 미시간 주에서 동생과 함께 창업 자금 500달러를 빌려 인수한 허름한 피자 가게에서 시작됐다. 그 가게 이름이 ‘도미닉스’(DomiNick’s)였다. 도미노 피자가 단박에 세계 2위의 피자 프랜차이즈로 올라선 비결은 30분 배달 서비스였다. 당시로선 기발한 아이디어였다. 그의 사업은 1980년대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미국 피자 배달 서비스 시장 점유율이 54%까지 치솟고, 해외 100여 개국에 지사를 세웠다. 프로 야구단 디트로이트 타이거를 인수해 대박이 나기도 했다. 그렇다고 그가 탄탄대로만 걸은 ‘바른 생활’ 신앙인은 아니다. 소송에 휘말려 파산 직전까지 간 적도 있고, 재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자 초호화 요트와 헬리콥터 등을 사들이는 데 몰두하기도 했다. 그는 C.S. 루이스가 쓴 신앙 서적을 읽고 회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어느 순간 “장난감들을 모두 포기하겠다”고 선언했다. 장난감이란 프로 야구단, 초호화 요트, 고급 맨션 건축 사업 등을 가리켰다. 도미노 지분도 1998년 10억 달러(1조 1500억 원)에 넘겼다. 그는 그 결심을 “억만장자의 청빈 선언”이라고 말했다.이후 하느님 사업으로 눈을 돌렸다. 그전에도 교회 지원과 자선 사업은 꾸준히 해왔다. 누가 돈에 대한 가치관을 물어오면 “돈은 악마가 아니다. 그걸로 성경을 살 수 있고, 성당을 지을 수 있고, 병원도 세울 수 있다”고 대답하곤 했다. 그는 플로리다 주 마이애미 인근에 있는 어마어마하게 큰 농장을 거금을 주고 매입했다. 거기에 아베 마리아 대학을 세웠다. 아베 마리아 방송국과 초등학교, 중학교도 열었다. 복음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마리아의 도시를 건설하는 게 목표다. 하지만 2004년 혼전 섹스ㆍ피임ㆍ낙태ㆍ포르노 없는 도시를 선언해 인권 단체들의 반발을 초래하기도 했다. 지금도 적지 않은 돈을 쏟아부으며 도시를 완성하고 있다. 모나한은 미국의 보수적 백인 가톨릭을 대표한다. 특히 생명운동에 적극적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이 발표한 새 건강보험 개혁법에 피임이 보험 항목에 포함되자 연방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cpbc2017.07.12
![[성경 속 도시] (53) 얌니아](//cpbc.co.kr/CMS/newspaper/2015/07/rc/58204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53) 얌니아구약 24권을 정경으로 결정 얌니아는 그리스식 이름으로 구약에서는 ‘야브느엘’로 등장한다. “그 경계는 또 에크론 북쪽 비탈로 나가서 시카론 쪽으로 구부러져 바알라 산을 지난 다음, 야브느엘로 나가 그 끝이 바다에 이른다”(여호 15,11). 얌니아는 대략 텔아비브 남쪽 20km에 있는 성읍이다. 얌니아는 성경에 자주 언급되는 곳이 아니지만 성경과 깊은 관계를 지닌 중요한 지역이다. 유다교의 중심지, 얌니아 회의 기원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자 제관 계급과 율사들은 얌니아로 이주한다. 당시 얌니아는 로마가 종교 활동을 허락한 도시였고 유다교의 중심이 된다. 이 지역이 중요한 것은 무엇보다 기원후 90년경에 있었던 ‘얌니아 회의’일 것이다. 이 회의에서 율법학자들은 유다교의 경전 목록, 즉 구약 성경의 정경을 확정했다. 유다인들은 얌니아 회의에서 히브리어로 된 구약을 24권으로 확정했다. 그런데 얌니아 회의에서 처음으로 정경 목록을 확정한 것이 아니라, 이미 기원전 400년경에 에즈라에 의해 일차적으로 확정된 목록을 그대로 재확인한 것이었다는 설도 있다. 유다인들이 구약성경을 24권으로 확정하기 훨씬 이전인 기원전 3세기쯤에 알렉산드리아에서는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대표해서 모인 70인(또는 72인)이 히브리어로 쓰인 유다교 경전을 당시 널리 사용하던 언어인 그리스어로 번역하는 작업을 했다. 구약성경은 본래 히브리어로 기록되었다. 하지만 세월이 흐르면서 디아스포라에 사는 유다인들은 점차 히브리어를 잊어버리고 그리스어에 익숙하게 되었다. 히브리어를 읽을 줄 모르는 세대가 늘어나자 경전을 그리스어로 번역할 필요성이 제기됐다. 그리스어는 당시 지중해 전역의 공용어였다. 약 100년간에 걸쳐 이뤄진 이 작업으로 히브리어로 된 구약성경 24권이 그리스어 성경 39권으로 번역됐다. 이렇게 권수가 늘어난 것은 열왕기ㆍ역대기ㆍ사무엘기 등 일부 성경을 각 상ㆍ하로 구분했기 때문이다. 70인이 번역한 그리스어 구약을 흔히 ‘칠십인역 성경’ 또는 70을 뜻하는 라틴어 ‘셉투아진타’나 숫자 ‘LXX’라고 부른다. 24권의 히브리어 구약성경 외에도 다른 책들이 포함됐다. 토빗기, 유딧기 같은 7권이었다. 그뿐 아니라 히브리어 구약성경에는 없는 다니엘서 일부분 등도 포함시켰다. 그런데 얌니아 회의는 구약의 정경을 결정함으로써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인에게 모두 큰 의미를 지니는 결론을 냈다. 유다교가 정경을 확정한 근거는 히브리어로 쓰인 사본이 남아 있느냐 여부였다. 즉 히브리어로 쓰인 낱권이 있어야 정경으로 인정했다. 이 규정에 따라 그리스어 사본만 있고 히브리어 사본이 없는 문서는 정경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유다교와 그리스도교의 결별 또 얌니아 회의에서 중요한 것은 그동안 부분적으로나마 공존해왔던 유다교와 그리스도교가 완전히 결별했다는 것이다. 얌니아 의회는 그리스도교인을 정식으로 파문하면서 모든 유다교 회당에서 예배를 드리기 전에 ‘그리스도교 이단에 대한 저주’를 반복할 것을 명했다.그런데 초대 그리스도교회는 70인역 성경을 공적으로 사용했다. 현재 구약성경에서 개신교와 차이가 나는 가톨릭 성경(제2경전)은 토빗기, 유딧기, 마카베오 상권, 마카베오 하권,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이렇게 7권이다. 가톨릭은 제2경전으로 인정하지만, 개신교에서는 외경으로 본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7.15
[새 성전 봉헌을 축하드립니다] 대전교구 당진본당 대전교구 당진본당 전경. 당진본당 제공 대전교구 당진본당(주임 강길원 신부)은 19일 오전 10시 30분 충남 당진시 서문2길 28(읍내동) 신축 성전에서 교구장 유흥식 주교 주례로 성전 봉헌 미사를 거행한다. 대지 6421㎡에 건축면적 2194.16㎡, 지상 3층 규모로 지었으며, 성당동과 사제관, 수녀원 등 3동의 건물로 이뤄져 있다. 성당동 1층에는 카페 형태의 나눔방과 성물방, 폐백실, 신부 대기실, 성체조배실 등이, 2ㆍ3층에는 650석의 신자석을 둔 대성전이 들어섰다. 건우리건축사 사무소 김충열(시메온)씨가 설계와 감리를 맡았다. 새 성전 맞은편, 기존에 사제관과 수녀원으로 쓰던 건물은 교리실과 회합실로 고쳐 지어 어르신대학이나 주일학교, 레지오 마리애 등 본당 신심 단체나 활동 단체들에 도움이 되도록 했다. 1939년 설립된 당진본당은 설립 당시 당진초등학교 건물과 관사를 성당과 사제관으로 써오다가 1967년 첫 성전을 지었다. 40여 년 세월이 흐르면서 건물 노후 문제로 2013년 전 신자가 성경 필사를 통해 성전 신축에 뜻을 모았다. 이듬해 1월 성경 필사본 봉헌과 신립, 성전 봉헌 기도와 묵주기도로 본격적인 성전 건립 준비에 들어갔으며, 2015년 3월에 대지 축복과 기공식을 시작으로 9개월간 공사를 거쳐 2015년 12월 입당했다. 본당 공동체는 그동안 묵주기도만 405만 단을 바쳤고, 금식 기도, 9일 기도 등을 진행했다. 성전 봉헌 예식을 앞두고는 100일 미사를 봉헌했다. 2014년부터 평신도들이 봉헌한 3만 3057㎡ 밭에서 주일학교 어린이부터 어르신들까지 다 함께 농사를 짓고 생강 조청과 들기름, 들깻잎, 장아찌 등을 만들어 팔며 성전 건립을 도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백영민2016.11.16

남북 모두의 자리 마련된 잔칫상에서 하느님의 평화를 나누길 바라2017 한반도평화나눔포럼이 4일 폐막했다. 위기에 선 한반도에 평화를 가져오기 위한 ‘작은 디딤돌’이 될 평화나눔포럼은 막을 내렸지만, 그 평화 메시지가 남긴 향기는 강렬하고 여운은 길다. ‘평화의 사도직’에 투신해 온 성직자들의 이야기를 두 차례에 걸쳐 나눠 싣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브라질 상파울루대교구장 오질로 페드루 쉐레 추기경 “한반도도 가능합니다.”브라질 상파울루대교구장 오질로 페드루 쉐레(Odilo Pedro Scherer) 추기경은 “참된 평화는 인간과 하느님 사이의 원초적 관계 위에 세워지는 관계(창세 17,1)이기에 평화와 폭력은 같은 집에서 살 수 없다”며 “한반도 평화 또한 대화 문화를 증진하는 데서 답을 찾을 수 있다”고 잘라 말했다. “이번 방한을 통해 한민족의 상처에 대해 많이 알게 됐습니다. 치유되지 않은 상처 말입니다. 휴전 협정은 진정한 평화가 아니었습니다. 평화 협정도 아니었잖아요? 한반도에서는 대화의 작은 발걸음을 이어 나가는 게 중요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몸소 화해를 위해 일했던 분입니다. 그래서 대화를 강조하십니다. 우리 모두 대화를 위한 첫걸음을 떼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쉐레 추기경은 “국내 사안이든, 국제 현안이든 갈등을 해결하려면 갈등의 기원을 찾아 그 원인을 이해하고 극복해야 한다”며 “무엇보다 불의와 빈곤, 착취의 구조적 상황에 연결된 원인을 찾아 해결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쉐레 추기경은 “전쟁보다는 협상과 대화의 길을 열어야 하고, 경제제재는 엄격한 판단과 윤리 기준에 비춰 심사숙고해 결정해야 한다”면서 “대북 경제제재 역시 북한을 협상과 대화의 테이블에 끌어내는 일이기에 제재로 가장 취약한 이들이 고통받는 상황이 일어나서는 안 된다”고 거듭 힘주어 말했다. 쉐레 추기경은 한국 보수 진영 일각에서 제기하는 핵무장을 단죄했다. 「사목헌장」 80항을 인용, “핵무기나 생화학무기 같은 대량살상 무기는 ‘하느님과 사람을 거스르는 죄악으로, 확고하고 주저 없이 단죄돼야 한다”고 경고했다. 쉐레 추기경은 공포의 균형 유지 차원에서 핵무장을 해야 한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교회는, 성경은 평화에 대해 힘의 균형이라고 말한 적이 없다”면서 “힘의 균형은 무기의 무서움 때문에 이어지는 폭력의 평화이고, 위협의 평화”라고 지적했다. “폭력은 결코 평화에 이바지할 수 없다”면서 “평화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질서를 찾는 데서 이뤄지며 모든 이가 평화 증진에 대한 자신의 책임을 인정할 때 비로소 평화가 꽃필 수 있다”(「민족들의 발전」 76항 참조)고 말했다. 쉐레 추기경은 “브라질 교회는 무엇보다 가난한 이들을 위한 자선활동을 통해 사회적 평화에 이바지하고자 애를 쓰고 있다”며 “그 노력은 교육과 사회사업, 특히 어린이들과 가난한 가정에 대한 지원에 집중돼 있다”고 전했다. 1949년 브라질 세로 라르고 태생인 쉐레 추기경은 1976년 톨레도교구에서 사제품을 받았으며, 로마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신학 석ㆍ박사학위를, 같은 대학에서 철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2002년 상파울루 보좌 주교로 임명됐고, 2007년 4월 상파울루대교구장 대주교가 됐으며, 그해 11월 추기경에 서임됐다. 현재 상파울루 아포스톨로대학 교회법 학과장, 브라질 라칭거 소사이어티 회장도 맡고 있다.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 추기경 “교회가 요구하는 대화는 평화를 열망하는 많은 이들의 고뇌와 고통, 수고, 고난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을 모색하라는 요청에 응답하는 진지한 노력입니다.” 복자 오스카르 아르눌포 로메로 대주교의 오랜 협력자였던 엘살바도르 산살바도르대교구 보좌 그레고리오 로사 차베스(Gregorio Rosa Cahvez) 추기경은 “우리가 추구하는 평화는 그리스도의 평화여야 한다”고 말문을 뗐다. “2000년 대희년 선포 칙서인 「강생의 신비」는 ‘기억의 정화’를 강조합니다. 단순히 잊자는 게 아닙니다. 역사적으로, 신학적으로 철저하게 진상을 규명하고 가해자 또한 죄를 인정하고 용서를 구함으로써 피해자와 화해하며 과거 잘못을 새로이 재평가한다는 뜻입니다. 그래야 진정한 평화가 가능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2016년 자비의 특별 희년에 기억을 정화하고 과거로부터 나와 앞으로 나아가라고 초대하십니다. 한반도의 미래 평화를 위해 가장 중요한 메시지는 바로 기억의 정화입니다.” 그래서 차베스 추기경은 “우리가 기억의 정화를 통해 그리스도의 평화를 만드는 사람, 곧 평화의 장인(匠人)이 돼야 한다”고 주문한다. 차베스 추기경은 “갈등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어떻게든 갈등 당사자들이 만나 대화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며 “교회 안에서든, 교회 밖에서든 대화는 큰 도전이며, 우리는 평화를 가르치며 대화의 길을 걸어야 한다”고 거듭 역설했다. 아울러 “한국인들은 ‘빨리빨리’를 말하지만, 먼저 멈추고 침묵의 내면화를 통해 하느님의 목소리를 듣고 묵상하는 시간이 앞서야 한다”면서 “평화의 장인은 인내심이 필요하다”고 권고했다. 사회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학자답게 차베스 추기경은 사회를 평화로운 분위기로 바꾸는 사회 매체의 역할에 주목한 뒤 “단순히 사실을 알리는 광고, 위선을 진리처럼 파급시킴으로써 사람들의 의식 자체를 오염시키는 선전을 구별하는 게 중요하다”며 “이를 구별하려면 정보가 어디서 오는지를 알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차베스 추기경은 또 “평화는 마치 자전거 페달과 같아 페달을 밟지 않으면 평화는 굴러갈 수 없다”며 “평화를 지키기 위해 우리는 매 순간 평화의 페달을 밟지 않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반도에서도 남북이 모두의 자리가 마련된 잔칫상에 둘러앉아 하느님의 평화를 나누게 되기를 바란다”고 기원했다. 1942년 엘살바도르 모라산 태생인 차베스 추기경은 1970년 사제품을 받았고 1976년 벨기에 루벵가톨릭대에서 신학 박사, 사회매스커뮤니케이션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7년부터 6년 가까이 산살바도르대교구 대신학교 학장을 지냈으며, 1982년 7월 주교로 임명돼 보좌 주교로 사목해 왔다. 1984년 10월부터 1989년 10월까지 5년 동안 엘살바도르 정부와 반군 무장단체 ‘파라분도 마르티 해방 전선(FMLN)’ 간의 대화를 5차에 걸쳐 중재했고, 올해 5월 엘살바도르 최초로 추기경에 서임됐다. 백영민2017.11.14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9)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마태 17,9)](//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5958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9)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마태 17,9)예수님이 제자들에게 함구령을 내린 까닭은 구약에서 하느님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인물로 그려진 엘리야 예언자는 죽음을 맞지 않고 하늘로 들어 올려진 인물로 기록돼 있다. 그림은 폰 카롤스펠트 작 ‘승천하는 엘리야’. 출처=「아름다운 성경」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 이후에 제자들과 함께 산에서 내려오신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예수님의 이런 표현을 ‘함구령’이라고 부릅니다.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본 것을 말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당부는 악령들에게 내렸던 명령과도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이야기하는 부분에서 그들에게 “조용히 하라”고 명령하시고(마르 1,25) 그들이 예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고 복음서는 기록합니다. “마귀들이 말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셨다. 그들이 당신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마르 1,34).예수님의 함구령은 바로 그의 정체성과 관련돼 있습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하는 영광스러운 변모 역시 예수님의 정체성을 나타낸다는 점에서 같습니다. 그래서 이런 표현과 함께 사용되는 것은 ‘메시아의 비밀’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당신이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을 말하지 못하게 하셨을까? 이 문제에 대해서 여전히 토론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어쩌면 완벽한 해결책을 찾지 못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지금까지 의견 중에 적절해 보이는 것은 예수님의 사명과 함께 이해하는 것입니다.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위한 예수님의 삶은 십자가에서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가장 잘 드러납니다. 그렇기에 죽음과 부활은 계시의 절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복음서에서도 표현돼 있는 것처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다시 살아날 때까지 메시아의 비밀을 지키라는 것은 이때가 되어서야 많은 이들이 그 사실을 알게 되고 받아들일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그리스도라는 사실이 드러날 때까지, 사람들이 스스로 그리스도라고 고백할 수 있을 때까지 그 사실을 말하지 말라는 말씀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영광스러운 변모 이후에 전해주는 내용은 ‘엘리야 재림에 대한 논쟁’입니다. 루카 복음은 이 내용을 전하지 않습니다. 율법 학자들이 말하는,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내용은 말라키서 3장 23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 또한 집회서에 기록된 엘리야에 대한 표현에서도 연관된 내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당신은(엘리야는) 정해진 때를 대비하여 주님의 분노가 터지기 전에 그것을 진정시키고 아버지의 마음을 자식에게 되돌리며 야곱의 지파들을 재건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집회 48,10). 구약 성경에서 엘리야는 죽음을 맞지 않고 하늘로 들어 올려진 인물로 기록됩니다(2열왕 2,11). 아마도 이런 사실에서 사람들은 그가 다시 오리라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런 사실을 확인하면서 그가 이미 왔지만, 사람들은 제멋대로 다뤘다고 이야기합니다. 복음서는 엘리야의 이미지를 세례자 요한과 비교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마태오 복음은 그것을 확실하게 표현합니다. “그제야 제자들은 그것이 세례자 요한을 두고 하신 말씀인 줄을 깨달았다”(마태 17,13). 엘리야 예언자는 구약 성경에서 종말에 올, 하느님의 백성들에게 종말을 미리 알리는 인물로 소개됩니다. 구약 성경과 복음서의 공통점을 찾는다면, 엘리야 예언자는 하느님의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복음서는 이러한 엘리야 예언자의 모습을 세례자 요한을 통해 발견합니다. 그는 예수님보다 먼저, 예수님께서 시작하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인물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성경의 전통을 많이 전해주는 마태오 복음은 이미 공생활 초기에 예수님의 입을 통해 이러한 내용을 표현한 바 있습니다. “너희가 그것을 받아들이고자 한다면, 요한이 바로 오기로 되어 있는 엘리야이다.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마태 11,14).<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6.10.12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마르 13,33)](//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6724_1.2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31)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마르 13,33)프란치스코 하예즈 작 ‘예루살렘 성전의 파괴’, 1867, 캔버스에 유채, 이탈리아 베네치아, 국립현대 미술관.가톨릭굿뉴스 제공예수님의 수난과 죽음에 대한 이야기 이전에 공관 복음이 공통으로 전하는 내용 중의 하나는 성전 파괴에 대한 예고와 종말에 관한 말씀입니다. 성전을 방문하고 나오시는 예수님과 제자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전이 파괴될 것임을 예고합니다. “여기 돌 하나도 다른 돌 위에 남아있지 않고 다 허물어질 것이다.” 여기서 한 가지 생각해 볼 점이 있습니다. 실제로 예루살렘의 성전은 유다인들과 로마와의 긴 전투 끝에 기원후 70년 파괴됩니다. 유다인들과 이방인들의 갈등, 그리고 로마의 억압과 함께 무리하게 세금을 거두는 것에 반발하여 일어난 이 전쟁은 로마 내부의 혼란한 정국의 영향을 받으며 이스라엘 역사에서 중요한 사건이 됩니다. 4년여에 걸쳐 계속된 이 전쟁 때문에 예루살렘의 성전은 로마에 의해 파괴됩니다. 이것이 유다인들의 마지막 성전입니다. 이 이후로 유다인들은 더는 성전을 갖지 못하고 지금까지도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성전은 두 번 파괴됩니다. 첫 번째는 기원전 587년 바빌론에 의한 것이고 두 번째는 기원후 70년 로마에 의한 것입니다. 이후 성전의 파괴라는 공통점에서 바빌론과 로마는 신약성경에서 동일한 것으로 간주됩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이 파괴될 것이라 예고하신 것은 물론 유다 전쟁(66~70) 이전이고 예수님께서 살아계실 때입니다. 하지만 복음서들이 기록될 때에 이미 이 예고는 실현되었습니다. 복음서 중에 가장 빨리 쓰인 복음서는 마르코복음인데 유다 전쟁이 끝난 직후, 70년께 기록된 것으로 생각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님의 예고는 이미 실현된, 이미 이루어진 예언으로 볼 수 있습니다. 성경의 상당히 많은 예언이 이러한 방식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이미 이루어진 것이지만 복음서에는 예언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전 파괴에 대한 예고 이후 예수님은 종말에 대한 말씀을 이어가십니다. 특별히 마르코복음 13장과 병행이 되는 내용은 복음서의 묵시문학적 본문이라고 불립니다. 복음서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여기에서 소개되는 것은 종말의 때에 앞선 표징들입니다. 그것을 정리해 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전쟁의 소문과 전쟁, 지진, 기근, 박해, 황폐화, 거짓 그리스도와 예언자들의 출현 그리고 하늘의 표징입니다. 복음서의 이런 표현으로 인해 세계대전과 같은 큰 전쟁이 일어나거나 큰 지진이나 기근 등이 생길 때마다 사람들은 종말의 표징으로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말씀이 종말을 미리 알려주는 예언처럼 받아들여졌습니다. 하지만 종말 이전에 일어날 이런 표징들 외에 또 한 가지 염두에 둘 것은 종말에 대한 다른 표현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시간은 아무도 모른다.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아버지만 아신다. 너희는 조심하고 깨어 지켜라. 그때가 언제 올지 너희가 모르기 때문이다.” 종말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은 그때가 언제인지 모른다는 것에 있으며 항상 깨어있으라는 당부로 끝납니다. 예수님의 말씀에서 강조되는 것은 종말을 예견할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늘 준비하고 있으라는 점입니다. 마태오복음만이 전하는 열 처녀의 비유 역시 이러한 맥락과 함께합니다.(마태 25,1-13) 신랑을 기다리는 처녀들의 비유는 종말의 날과 시간을 아는 것보다 준비하고 있는 자세가 더 중요함을 일깨워줍니다. “깨어 있어라. 너희가 그 날과 그 시간을 모르기 때문이다.” 종말에 앞서 일어날 재앙들은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적지 않은 사람들이 종말을 예견하는 이들의 말에 관심을 갖고, 심지어 그들의 잘못된 가르침을 따르기도 합니다. 비록 성경에서 종말을 묘사할 때 두려움을 줄 수 있는 표현들을 사용하지만, 그 안에 담긴 가르침은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더라도 동요하거나 두려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종말은 올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신앙인들에게 두려운 것만은 분명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은 이 종말을 통해 새로운 세상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릴 것을 기다리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종말을 위해 필요한 자세는 깨어있는 것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하는 이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깨어있어라.”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문채현2017.01.04
![[고통받는 교회 돕기] 중동 (6,끝)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3122_1.0_titleImage_1.jpg)
[고통받는 교회 돕기] 중동 (6,끝) 우리를 기억해 주십시오2000년 믿음의 땅, 성당 종소리 다시 크게 울려야 프란치스코 교황이 중동 그리스도인 돕기 기금을 마련하기 위해 경매에 내놓을 람보르기니를 축복한 뒤 서명하고 있다. 【바티칸=CNS】 프란치스코 교황은 최근 모 자동차 회사가 기증한 세계적 스포츠카 람보르기니를 축복만 하고는 바로 소더비 경매에 부쳤다. 경매 수익금은 이라크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니네베 평원 재건 사업을 추진하는 고통받는 교회돕기(ACN) 등에 전달하려는 게 교황 뜻이라고 바티칸이 밝혔다.교황은 지난 8월에도 “동족상잔의 전쟁과 종교적 광신주의 때문에 집을 포기하거나 혹은 강요 때문에 조국을 떠나야 했던” 중동 그리스도인들 처지를 상기시키고 “그들의 고통에 눈을 감으면 안 된다”고 강조했다.(콜럼버스 기사단 총회에 보낸 서한 중에서) 교황에게는 이슬람 극단 무장 조직의 박해로 목숨을 잃거나 난민 신세가 된 이라크와 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아픈 손가락일지 모른다. 글·사진=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이슬람이라는 대양(大洋)에서 목숨을 걸고 신앙의 정체성을 지키며 살아가는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은 한결같이 자신들을 잊지 말아 달라고 호소했다. 레바논에서 만난 프리아스 벤암(47, 이라크 바그다드 성 프란치스코 본당) 신부가 착잡한 심정을 토로했다. “내 인생에서 전쟁이 없었던 때는 단 10년뿐이다. 예전에는 누가 죽었다고 하면 슬펐고, 어디에서 폭탄이 터졌다고 하면 두려웠다. 하지만 지금은 무덤덤하다. 그리스도인들이 사라지고, 그로 인해 ‘잊혀 가는 교회’가 되는 것이 더 두렵다.” 150만 명에 달하던 이라크 그리스도인 수는 현재 30만 명쯤 되는 것으로 추산된다. 하지만 벤암 신부는 “15만 명 정도 남았다”며 “돈과 석유, 정치적 다툼이 그리스도교 공동체를 붕괴 직전으로 몰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점령지의 90%를 잃고 지하 테러 조직으로 전락한 이슬람국가(IS)는 정치적 야욕과 종교 광신주의가 결합하면 어떤 참극을 초래하는지 여실히 보여 줬다. 재앙의 직격탄은 힘없는 그리스도인들이 맞았다. 최대 격전지 시리아 알레포에서 버티다 두 달 전 레바논 국경도시 자흘레에 도착한 가톨릭 난민 바샤르(32)씨. 어머니와 여동생을 데리고 나온 그는 “알레포에는 남은 것이 아무것도 없다”며 “너무 늦게 탈출해 유럽으로 가기가 불가능한 상황이라 내일 다시 고향으로 돌아갈 예정”이라고 말했다. “IS가 물러가지 않았느냐”고 묻자 “1년 안에 새로운 무장 조직이 등장할 것이다. 여태껏 그랬다”며 고개를 저었다. 그의 가족은 다음날 보이지 않았다. 교황청과 ACN이 추진하는 니네베 평원 재건 사업은 2014년 IS가 벌인 피의 광란을 피해 탈출한 그리스도인들의 재정착을 돕는 것이다. 이라크 북부에 위치한 니네베와 카라코쉬는 그리스도인들이 밀집해 살던 성경의 땅이다. 이 지역에서 2000년 가까운 교회 역사상 처음 미사가 끊기고, 성당 종소리가 멎었다. 재건 사업은 미사를 이어가고, 무너진 종탑을 세워 다시 종을 울리자는 상징적 의미도 있다.자흘레대교구장 이삼 다위시 대주교는 중동에서 그리스도인이 사라지면 안 되는 또 다른 이유를 설명했다. “이슬람 시아파 지도자들이 ‘그리스도인이 중동에서 떠나면 우리는 어둠 속에서 살게 될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우리는 서방과 아랍 세계, 때로는 시아파와 수니파 사이에서 다리가 돼 주었다.”레바논 맨발의 가르멜수도회 관구장 레이몬드 신부는 “중동 교회는 이 정도 시련에 쓰러지지 않는다”며 “우리가 7세기 이슬람 발흥 때부터 지금까지 숱한 시련을 겪는 동안 하느님은 아름다운 선물도 많이 주셨다”고 말했다. 이어 “형제들이 부축해 주면 시리아와 이라크 교회는 다시 일어설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침묵과 무관심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신앙 형제들의 고통에 침묵한 채 국제 사회가 그들을 도와주기 바라는 것은 위선이다. 프랑스의 한 자선단체가 IS에 의해 파괴된 이라크 에르빌 외곽 에인카와 마을에 루르드 성모상 15개를 보냈다. 그곳 그리스도인들은 성당에 안치하기 전에 성모상을 앞세우고 마을을 행진했다. 그 광경은 복음의 증언이었다. “네 앞날은 희망이 있다. 주님의 말씀이다. 네 자녀들이 고향으로 돌아오리라.”(예레 31,17) <인터뷰> 할렘바 신부(ACN 중동 담당) “특별한 우산을 쓰고 다녀서 총 맞을 걱정 같은 건 안 한다.”알레포에서 몇 시간 전 레바논으로 돌아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중동 담당 안제이 할렘바 신부. 그는 위험하지 않았느냐는 안부 인사에 ‘성령의 우산’ 얘기를 하더니 바로 본론으로 들어갔다. 그는 이라크와 시리아를 옆집 드나들듯 하면서 지원 사업을 지휘하고 있다.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중대한 결정의 순간이다. 그리스도교 요람인 두 나라 교회를 방치하고 포기할 것인가, 아니면 재건해 회복할 것인가에 관한 결정이다. 우리 신앙의 뿌리를 더는 잃을 수 없다.”차별과 박해, 무관심이 빚어낸 결과 그는 사도행전과 요한 묵시록의 무대 터키(소아시아)를 예로 들었다. 비잔틴 종교와 문화가 만발했던 소아시아 지방은 15세기 이슬람 오스만 투르크 제국에 점령된 후 서서히 쇠락해 지금은 명맥만 유지하는 상황이다. “100년 전만 해도 터키 인구의 23%가 그리스도인이었다. 하지만 0.2%(로마 가톨릭은 0.06%)밖에 남지 않았다. 이슬람의 차별과 박해, 그리고 우리의 무관심이 빚어낸 결과다. 그런 역사적 과오를 되풀이할 수 없다.”교회 재건축과 청소년 교육 중요그는 교회 재건축과 청소년 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이번에 로마 가톨릭을 비롯해 칼데아ㆍ시리아 동방 가톨릭 교회 주교들에게 건축비를 지원할 테니 성당을 하나씩 선정해 공사를 시작하자는 얘기를 하고 돌아왔다고 했다. “성당은 희망의 표징이다. 이라크만 하더라도 성당 350곳이 완전 또는 부분 파괴됐다. 난민들이 성당 건축 소식을 들으면 희망을 품고 고향으로 돌아올 것이다. ACN은 차비가 없어 학교에 못 가는 그리스도인 대학생들도 돕는다. 그들이 교회와 사회를 재건해야 할 사람들이기 때문이다.”그는 전쟁의 상흔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자신의 부모 형제를 죽인 사람들과의 화해는 시간이 오래 걸릴 것”이라며 “하지만 그리스도인은 용서와 화해라는 훌륭한 덕목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또 “울분을 토로하는 젊은이들에게 우리는 주님의 기도 중 ‘저희에게 잘못한 이를 저희가 용서하오니’ 부분을 입이 아니라 삶으로 바쳐야 한다고 타이른다”고 말했다. ‘일용할 양식’과 관련해서는 “매일 주님의 기도를 바치는 우리가 그들에게 주님의 이름으로 먹을 것을 줘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한국 신자들을 향해 “고통받는 그들 안에 주님이 계신다”며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을 돕는 행렬에 기도와 나눔으로 동참해 달라”고 호소했다. cpbc2017.11.28
![[추기경 정진석] (73) 미래 사목의 중요한 방향은 IT 사목](//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0993_1.0_titleImage_1.jpg)
[추기경 정진석] (73) 미래 사목의 중요한 방향은 IT 사목정보화 시대에 부응하는 복음화 위해 ‘클릭’ 2008년 9월 24일 정진석 추기경이 ‘한국 천주교 사목행정을 위한 통합 양업시스템’에 접속, 그룹웨어를 통해 서울대교구와 의정부교구 전체 사제, 교구청 및 본당 직원들에게 통합 양업시스템 개통을 알리는 문자메시지(SMS)를 발송하고 있다. 현대를 흔히 정보화 시대라고 말한다. 인터넷과 같은 새로운 미디어의 발달로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발전의 속도가 빠르고 정보의 공유화로 세계가 하나의 지구촌을 이루며 사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1990년대 이미 정보사회 속으로 깊숙이 들어온 한국 사회에서 한국 교회는 정보화의 흐름에 뒤처지지 않으려 다양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정진석 추기경은 비록 컴퓨터를 능숙하게 다루지는 못하나 그 효용성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었다. 정 추기경 자신이 평생 쓴 책 수십 권의 원고도 손가락보다 작은 이동저장장치(USB)에 다 담고도 남는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 많이 놀랐다고 주변에 웃으며 이야기하곤 했다. 정 추기경은 미래 사목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게 될 온라인을 통한 사목적 시도에 관심과 도움을 아끼지 않았다.어려움에 봉착한 한국 교회 정보화 사업한국 교회는 1990년대 중반 이후 행정 전산화를 중심으로 교회 정보화 사업을 본격적으로 추진했다. 그러나 한국 교회 전체의 정보화 사업은 여건이 미비한 관계로 어려움에 봉착했다. 전산화, 정보화를 위한 초기 투자비가 엄청난 것에 비해 눈에 띄는 사목적 성과가 뚜렷할 것인가에 대한 확신이 부족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교구별로 전산화, 정보화를 추진하기에는 재정이나 인력, 필요성에 대한 인식의 차이가 컸고 준비도 부족해 한국 교회 정보화 사업은 답보 상태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정보매체의 급격한 발달은 하루가 다르게 삶의 형태와 질을 바꿔가고 있었다. 더욱 발전된 미디어는 인간 사회에 신속하게 다양한 정보를 제공하며 긍정적인 영향을 주고 있다. 그러나 그 이면으로는 현세적이며 물질 만능주의 사조를 확산시키는 부정적인 영향을 끼치기도 한다. 새로운 문명의 이기인 뉴미디어는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간성 향상의 이기일 수도 있고 인간성 파괴의 흉기가 될 수도 있다. 역대 교황들은 미디어 내용의 생산과 보급에 종사하는 이들이 무엇보다 인간의 존엄성과 가치를 존중하도록 노력해야 하고, 새로운 미디어 기술이 개인과 사회에 선익이 돼야지 인간의 품위를 손상하고 증오와 불화를 조장하며 약하고 힘없는 이들을 착취하는 도구가 돼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서울대교구는 인터넷을 선교 매체로 활용하기 위해 1998년 9월 20일 인터넷 굿뉴스 사이트를 개통했다. 굿뉴스는 교회의 다양한 소식과 정보를 제공하는 것은 물론 이용자들 간에 서로 의견을 나누고 정보를 교환하는 가톨릭 가상 공동체라고 할 수 있다. 가톨릭 인터넷 선교 통신망인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는 몇 달 만에 총 접속 건수가 200만 건을 돌파할 정도로 인기가 높았다. 이처럼 접속 건수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것은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가 제3의 선교 매체인 인터넷 선교에 대비하는 가톨릭 선교 통신망의 모델로 자리를 잡은 데다 단순히 가톨릭 관련 정보를 일방적으로 전하는 홍보에 그치지 않고 쌍방향 통신의 장점을 살려 회원들과 대화의 창구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 교회 전산망 하나로 이은 ‘통합 양업시스템’2006년 4월 10일 정 추기경은 시중 은행과 ‘전국 통합 양업시스템’ 개발 조인식을 가졌다. 그리고 2008년 9월 24일 드디어 한국 교회 사목 행정 전반을 하나의 전산망으로 연계하는 ‘통합 양업시스템’이 개통됐다. 10여 년 전 시작한 ‘양업시스템’도 당시 국내는 물론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서도 유례를 찾기 힘든 종합 정보시스템이었다. 한국 교회 두 번째 사제인 최양업 신부의 이름을 딴 ‘양업시스템’ 개통으로 교구 내의 모든 본당과 기관이 네트워크로 연결됐다. 그 결과 신자 관리, 재정, 인사, 회계 등 각종 교회 행정 업무뿐만 아니라 구역ㆍ반별 신자 현황, 본당 신자 현황 등 다양한 사목 정보를 제공할 수 있게 됐다. 이후 정 추기경은 우리은행과 ‘통합 양업시스템’ 개발을 위한 업무 협약을 맺음으로써 세계 최초로 단일한 사목 행정 전산 프로그램인 ‘통합 양업시스템’을 바탕으로 국가 교회 단위의 통합된 사목 행정 전산망을 개통하게 됐다.통합 양업시스템으로 한국 교회는 전국의 교구가 하나의 전산망으로 연결되는 통합 사목 행정 지원 시스템을 갖췄다. 이 시스템을 통해 전국 교구 본당의 행정 업무와 신자 개인의 신앙생활을 지원하고 사목자를 위한 맞춤형 사목 정보를 제공하는 한편 특히 교회 회계 업무의 투명성을 보장할 수 있었다. 전산화 작업은 비영리 조직인 교회로서는 엄두를 내기 어려운 막대한 비용이 소요되는 벅찬 일이 아닐 수 없다. 따라서 풍부한 전문 인력과 물적 자원을 보유한 기업체의 지원 없이는 추진이 어려웠다. 그래서 정 추기경은 우리은행과 업무협약을 맺음으로써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다.한국 교회의 정보화는 크게 두 가지 축으로 추진됐다. 하나는 교구와 본당에서의 행정 전산화이고, 다른 하나는 웹사이트를 중심으로 하는 사목 및 선교 정보 서비스라고 할 수 있다. 굿뉴스는 개통된 지 6년 만인 2004년 6월 6일을 기해 가톨릭 포털사이트로 개편했고, 2008년 6월 2일에는 휴대폰 시대에 발맞춰 모바일 통신사와 모바일 복음화 협약식을 가졌다. 이 사업을 통해 성경과 가톨릭 기도문뿐만 아니라 매일 미사와 기도문, 각 교구 주보, 가톨릭 성인, 성지 등 신앙생활에 필요한 정보를 이용료나 통화료 없이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됐다. 변화하는 세상에서 교회도 최대한 변화하려는 노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결과였다.오늘날 정보화 인프라는 우리 사회와 교회 안에 어느 정도 구축된 셈이다. 정 추기경은 교회가 신자들에게 얼마나 좋은 콘텐츠를 제공하느냐에 미래 사목의 성패가 달려 있다고 생각했다. 교회 안의 보화들을 디지털화해서 신자, 비신자 구분 없이 웹 서비스를 통해 제공해야 할 때가 된 것이다. 더 지체할 수 없었다.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백영민2017.11.08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7) 카파르나움 활동과 전도 여행 (4,31-44)](//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4376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17) 카파르나움 활동과 전도 여행 (4,31-44)기쁜 소식, 말씀과 행동으로 현실이 되다 갈릴래아 호수 북단에 있는 카파르나움은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의 중심지였다. 카파르나움 회당 및 도시 유적. 고향 나자렛에서 배척을 받으신 예수님은 갈릴래아의 카파르나움으로 내려가십니다.(4,31) 위도로 보면 카파르나움이 더 위에 있지만, 해발 고도로 볼 때 카파르나움이 나자렛보다 훨씬 낮은 곳에 있습니다. 갈릴래아 호수 북단에 있는 카파르나움은 예수님 시대에 로마 군대가 주둔하고 세관이 있을 정도로 큰 도시였습니다. 루카는 카파르나움에 내려오신 예수님께서 하신 일을 세 일화로 나눠 소개합니다. 안식일에 카파르나움 회당에 가셔서 사람들을 가르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십니다.(4,31-37) 이어 시몬의 집으로 가시어 열병에 걸린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하십니다.(4,38-39) 또 사람들이 데려온 갖가지 질병에 걸린 많은 사람들을 고쳐주시고 마귀를 쫓아내십니다.(4,40-41)예수님의 이 활동은 크게 둘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가르침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은 사람들이 몹시 놀랄 정도로 말씀에 권위가 있었습니다. 그뿐 아니라 그 말씀은 마귀까지 쫓아낼 만큼 힘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게 대체 어떤 말씀인가? 저이가 권위와 힘을 가지고 명령하니 더러운 영들도 나가지 않는가?” 하며 서로 말합니다.(4,36)다른 하나는 기적 행위입니다. 이 행위는 질병의 치유와 마귀 들린 사람의 치유로 나눌 수 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기적(또는 이적)을 네 유형으로 구분합니다. 병을 고치는 치유의 이적, 마귀를 쫓아내는 구마의 이적, 죽은 사람을 살리는 소생 이적, 그리고 물 위를 걷고 바람을 잔잔하게 하는 등 자연을 대상으로 하는 이적이 그것입니다. 예수님은 카파르나움의 첫 활동에서 이미 두 유형의 이적을 드러내 보이신 셈입니다. 카파르나움에서의 예수님의 첫 활동을 소개하는 이 세 일화는 같은 날에 있었던 일로 보입니다. 안식일에 회당에 가시어 가르치시고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을 쫓아내신 후 시몬의 집으로 가서 심한 열병으로 누워 있는 시몬의 장모를 낫게 하십니다. 이 시몬은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하나인 시몬 베드로를 가리킵니다. 그렇다면 시몬은 예수님을 처음 만났을 때 이미 결혼한 상태였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해 질 무렵”(4,40)이 되자 사람들이 많은 병자를 시몬의 집으로 데려옵니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하신 일로 소문이 주변 곳곳으로 퍼져 나갔기에(4,37), 사람들이 많은 병자들을 데려올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해 질 무렵”에야 병자들을 데려온 것은 그날이 안식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해가 뜨는 아침을 하루의 시작으로 여기는 우리와 달리 당시 이스라엘은 백성은 해가 지는 저녁부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그 날이 안식일이어서 사람들이 병자들을 막 데려올 수 없었기에 안식일이 끝나는 해질 무렵부터 데려오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은 마귀들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아봤다는 사실입니다. 마귀들은 예수님을 “하느님의 거룩하신 분”(4,34) “하느님의 아드님”(4,41)으로 알아봅니다. 하지만 마귀들은 겸손하게 고백하는 것이 아니라 “소리를 질렀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 쫓겨나는 것이 억울하고 분해서 항변하는 듯한 느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카파르나움에서 하루를 보내시고 날이 새자 외딴곳으로 가십니다.(4,42) 왜 외딴곳으로 가셨을까요? 안식일이 끝나는 저녁부터 많은 병자들에게 손을 얹어 병을 낫게 하시고 마귀 들린 사람들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시느라 피곤하셨을 것입니다. 어쩌면 외딴곳에서 휴식을 취하고 싶으셨을지 모릅니다. 그런데 성경학자들은 이 외딴곳을 광야와 연관 짓습니다.(1,80; 4,1 참조) 광야는 무엇보다 하느님을 만나는 곳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외딴곳으로 가신 이유는 기도하시기 위함이었을 것입니다.(예수님께서 활동하신 후 외딴곳으로 물러가 기도하셨다는 내용은 5장 16절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그러자 군중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는 자기들을 떠나지 말아 달라고 붙듭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권위 있는 가르침을 들었고 병자를 치유하고 마귀를 쫓아내는 놀라운 일(이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사실 나는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 그러고 나서 예수님께서는 유다의 여러 회당에서 복음을 선포하셨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4,42-44)생각해봅시다 루카는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가르치셨다고 하지만 그 가르침의 내용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무엇을 가르치셨을까요? 그 답은 예수님께서 고향 나자렛의 회당에서 하신 일에서 찾을 수 있을 것입니다.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은 해방시켜 내보내며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4,18-19).따라서 예수님께서 카파르나움에서 하신 활동은 나자렛 회당에서 선포하신 말씀을 당신의 행동을 통해 구체적으로 입증하신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러운 마귀의 영이 들린 사람에게서 마귀를 쫓아내신 것은 마귀의 권세에 짓눌려 억압받는 이를 해방시켜 주신 것입니다. 갖가지 질병을 앓는 이들을 고쳐주신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사람들이 당신을 찾아와서 붙잡았을 때 당신이 하신 일이 또 하셔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언급하십니다. “나는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을 다른 고을에도 전해야 한다. 나는 사실 그 일을 하도록 파견된 것이다.”(4,43)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 곧 복음이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에서 현실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과 행동이 복음의 표징입니다. 여기서 생각해 볼 거리가 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 신자들은 복음의 증인이 되라고 부름 받은 이들입니다. 그렇다면 우리의 말과 우리의 행동은 복음의 표징이 되고 있는지요? 알아둡시다 - 카파르나움갈릴래아 호수 북단,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들어 가는 요르단 강에서 서쪽으로 4㎞ 정도 떨어진 곳에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는 꽤 큰 도시였고, 시리아의 다마스쿠스와 갈릴래아 남쪽의 유다 지방 또는 지중해 연안을 통해 이집트로 연결되는 도로가 지나는 교통의 요충지였다고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에서 활동하실 때에 카파르나움을 주된 거처로 삼으셨다고 하지요. 오늘날 유적만 남아 있는 카파르나움에는 시몬 베드로의 집(혹은 시몬 베드로 장모의 집) 유적 위에 성당이 건립돼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의 회당 터에 4세기쯤 재건한 회당의 유적을 비롯해 옛 도시의 흔적들을 직접 볼 수 있습니다. 백영민2017.06.07
![[성경 속 도시] (52) 나자렛](//cpbc.co.kr/CMS/newspaper/2015/07/rc/58046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52) 나자렛예수님이 자란 곳, 구세사의 출발점 나자렛 주님 탄생 예고 성당 성모님의 집터 경당.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에게 주님 탄생 예고를 들은 장소로 알려지고 있다. 리길재 기자 나자렛은 이스라엘이 관할하고 있는 요르단 강 서안 지구에 위치한 고대 도시다. 사방이 산으로 싸였으며 동네는 움푹 들어간 골짜기에 있다. 농지도 초지가 거의 없는 벽촌이다. 예로부터 나자렛은 국경지대였기에 전쟁이 잦았고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오랫동안 강대국들의 식민지를 벗어나지 못했다. 이런 이유로 역사적으로 나자렛은 전혀 알려지지 않았고 성경의 언급도 거의 없다. 유다인에게 나자렛은 하찮은 장소라는 생각이 일반적이었던 같다. “나타나엘은 필립보에게 ‘나자렛에서 무슨 좋은 것이 나올 수 있겠소?’ 하였다. 그러자 필립보가 나타나엘에게 ‘와서 보시오’ 하고 말하였다”(요한 1,46). 그런데 탄생지인 베들레헴보다 나자렛이 더 부각됐던 것은 예수님이 유년과 청년 시절을 이곳에서 보냈기 때문이다. 현재 나자렛은 이스라엘에서 아랍인들이 사는 가장 큰 도시이지만 그리스도인들이 순례하는 중요 성지이다.유다인들은 예수님을 나자렛 출신이라 불렀다. “그가 대문께로 나가자 다른 하녀가 그를 보고 거기에 있는 이들에게, ‘이이는 나자렛 사람 예수와 함께 있었어요’ 하고 말하였다”(마태 26,71). 예수님의 십자가 명패도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표기되어 있다. “빌라도는 명패를 써서 십자가 위에 달게 하였는데, 거기에는 ‘유다인들의 임금 나자렛 사람 예수’라고 쓰여 있었다”(요한 19,19).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태어났음에도 ‘나자렛 사람’이라 불리는 것은 예수님께서 공생활 이전에 오랫동안 나자렛에서 사셨기 때문이다. 또 나자렛은 성모 마리아가 성장한 곳이며 성 요셉과 성가정을 이뤄 살던 곳이었다.가브리엘 천사가 예수님 잉태를 알린 곳도 나자렛이다. “여섯째 달에 하느님께서는 가브리엘 천사를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이라는 고을로 보내시어, 다윗 집안의 요셉이라는 사람과 약혼한 처녀를 찾아가게 하셨다. 그 처녀의 이름은 마리아였다”(루카 1,26-27). 그래서 성모 마리아께서 천사를 통해 아기 예수님을 잉태하게 되었고 나자렛은 구세사의 출발점이 되는 땅이 되었다.예수님 살던 시대에 나자렛은 유다인이 모여 살았으며 로마가 그리스도교를 국교로 받아들인 기원후 313년 이후에는 중요한 성지로 떠오른다. 순례자들의 발길이 많아지자 성당들이 건축됐다. 대표적 순례지는 주님 탄생 예고 성당과 성 요셉 성당, 마리아의 우물이 있다. 또 예수님께서 회당에 들어가 희년을 선포하신 시나고그 성당도 있다.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루카 4,19). 이 중 성모님의 집터 위에 세워졌다는 ‘주님 탄생 예고 성당’은 가장 유명한 순례지다. 이 성당이 위치한 곳이 바로 마리아가 주님의 천사 방문을 받은 곳이라고 전해진다. 교회 안에는 대천사 가브리엘이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타나 아기 예수를 낳게 되리라고 알려 줬다는 ‘주님 탄생 예고 동굴’이 잘 보존돼 있다(루카 1,26-31). 이 동굴에는 5~6세기경에 만든 모자이크 마루 일부가 남아있다. 오늘날 나자렛은 아랍인의 교역 중심지며, 이스라엘에서 가장 큰 아랍인 도시다. 물론 나자렛에는 그리스도인, 유다인, 무슬림이 공존하며 평화를 유지하고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7.07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 2세기 ③ - 이단사상과 훼손된 영성 생활](//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7628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8) 2세기 ③ - 이단사상과 훼손된 영성 생활형제에서 적으로, 그리스도교를 파고든 이단사상 그리스도교는 외부 세력의 박해에 이어 그리스도교 정통 교리와 생각을 달리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인한 이단사상으로 내적 시련을 겪어야 했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작 ‘최후의 심판’, 1536, 바티칸 시스티나 경당. 가톨릭 굿뉴스 그리스도교가 설립되고 100년 남짓 지나지 않은 가운데, 그리스도인은 이미 여러 외부 세력의 박해로 온갖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외부 억압은 외견상 느낄 수 있어서, 그리스도인은 외적인 위험을 극복하고자 최선을 다했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교 정통 교리와 생각을 조금 달리하는 그리스도인이 생겨나면서, 이단사상은 새롭게 내적인 위험으로 다가왔습니다.내부에서 발생하는 이단사상은 초기에 발견하기 어렵고 어느 정도 진행되어야 알 수 있기에, 교회가 그것을 알았을 때는 이미 돌이키기 어려운 상황이었습니다. 따라서 이단사상을 따르던 그리스도인은 한번 훼손한 영성 생활을 쉽게 포기하지 못했습니다.영지주의 - 선별적 구원관과 윤리적 방탕주의그리스도교는 2~3세기에 영지주의(靈智主義, Gnosticism)의 위협에 시달렸습니다. 다양한 고대 철학 사조와 이방 종교 사상에 젖어 있다가 개종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못하고 기존에 친숙했던 생각들을 그리스도교 교리에 무리하게 적용했습니다. 따라서 영지주의자들의 주장은 겉으로 보기에 성경에서 나오는 이야기들과 용어들뿐 아니라 그리스도교 신앙의 구조들과 비슷하게 비쳤습니다. 하지만 꼼꼼히 살펴보면, 그들의 주장은 정통 신앙에 위배되는 결정적인 오류들을 많이 담고 있었습니다. 리옹의 주교 이레네우스(Irenaeus Lugdunensis, 130/40~200/202경)는 저서 「이단 논박」(Adversus haereses)에서 2세기에 대표적인 영지주의자로 바실리데스(Basilides, 117~138)와 발렌티누스(Valentinus, ?~160?)를 소개했습니다.영지주의는 이원론, 점성술, 종교혼합주의 및 밀교(密敎) 신비사상 등을 배경으로 삼았습니다. 그중에서 이원론이 중심축을 이룹니다. 즉, 플라톤 사상과 유사하게 온 세상은 본래 선한 영적 세계와 악한 물질 세계로 나뉘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적 세계를 지배하는 미지의 하느님과 선한 본성을 공유하던 인간이 악한 물질 세계에 예속되면서 자유를 잃고 부정적인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여기서 인간 구원 문제가 발생하는데, 영지주의는 그리스도교가 기존에 가르치던 교리와 상반되는 해결 방법을 제시했습니다. 그리스도교는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면 모두 구원받을 수 있다는 보편 구원을 가르쳤습니다. 하지만 영지주의는 미지의 하느님에 대한 ‘영지’(gnosis), 즉 ‘인식’을 가져야만 물질 세계에서 해방되어 영적 세계를 향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하느님의 은총보다는 인간이 이미 소유한 신적인 본성을 깨닫는 인식에 의존한 구원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지주의는 모든 사람이 이러한 인식에 도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몇몇 사람에게만 기회가 주어진다고 언급함으로써 선별적인 구원을 주장했습니다.게다가 근본적으로 인간이 물질 세계에 예속된 것은 개별 인간의 독자적인 잘못에 의한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의 타락에 의한 총체적인 상황이라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은 악한 본성에 대해 각자 책임질 상황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생각은 선별적인 구원관과 더불어 사람들로 하여금 ‘윤리적 방탕주의’에 빠지게 했습니다. 이런 생각은 그리스도인이 전통적인 영성 생활을 실천할 수 없게 만들었습니다.몬타누스주의 과도한 예언 운동과 거짓 종말론2세기경에 출현하여 그리스도교 신앙에 위협을 주었던 또 다른 이단사상으로 몬타누스(Montanus, 2세기 활약)가 창시한 몬타누스주의(Montanism)가 있었습니다. 이방 종교 지도자였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몬타누스는 환시와 신탁에 기반을 둔 예언 운동을 펼쳤습니다.2세기 들어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는 것은 당연하게 받아들여졌고, 초대 교회 공동체와 같은 열광적인 분위기도 시들해졌습니다. 이에 몬타누스주의는 그리스도인에게 초대 교회의 모습으로 되돌아가자고 독려하기 위하여 세상의 종말이 가까이 다가왔다고 주장했습니다. 특히 이 이단사상은 천년왕국을 맞이하기 위하여 깨어 준비하며 기다려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몬타누스주의는 초대 교회의 열정을 복구하기 위하여 철저한 금욕 생활이 필요하다고도 강조했습니다. 즉, 자선과 단식, 독신 생활과 순교 등을 실천할 것을 요구했습니다.게다가 몬타누스주의는 시한부 종말론까지 언급하는 무리수를 두었습니다. 그러나 한 차례 정했던 시간에 종말이 오지 않아 기세가 꺾이기도 했으나, 이것을 만회하려고 더욱 엄격한 도덕적인 삶을 요구하면서 한동안 위세를 이어갔습니다. 결국 몬타누스주의는 과도한 예언 운동과 거짓 종말론을 주장하면서 그리스도인의 신비 생활을 왜곡시켰으며, 무리한 금욕 생활을 강조하면서 수덕 생활을 흐트러뜨렸습니다.마르치온 극단적인 금욕 생활과 왜곡된 그리스도론마르치온(Marcion, 85~160)은 이단사상을 설파했다기보다는 교계제도에 대립하는 신흥종교를 세운 인물이었습니다. 그리스도교 집안 출신이었던 마르치온은 이미 고향에서 교의논쟁으로 물의를 일으켜 추방당하자 로마로 왔으나, 로마에서도 정통 교리에 어긋나는 내용을 가르쳐서 역시 추방당했습니다. 그러자 마르치온은 독자적인 교회를 설립했고, 마르치온이 죽은 후에도 한동안 이 교회가 유지되었습니다.마르치온의 신학에 따르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선포하신 하느님은 선하시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구약성경을 통해서 접하는 공정하고 벌하시는 하느님과 동일한 하느님일 수 없다고 철저하게 구분했습니다. 심지어 그는 신약성경에서 구약의 하느님을 조금이라도 암시하는 구절이 있으면 모두 삭제함으로써 루카복음서 일부와 바오로 서간 일부만 성경으로 인정할 정도였습니다.그런데 선하신 하느님을 동경한 마르치온은 역설적으로 사람들이 구원받기 위해서 세상을 떠나 철저하게 금욕 생활을 실천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러한 금욕 생활은 너무나 극단적인 모습으로 나타나서 결혼 생활을 거부했으며 금주(禁酒)를 실천하기 위하여 성찬례에서 포도주 사용을 거부했습니다.신약과 구약을 분리하고 세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본 마르치온의 신학은 왜곡된 그리스도론을 탄생시켰습니다. 즉,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이 오시기 전에 태어났던 사람들의 죄를 사할 수 없었으며, 그리스도조차도 타락한 세상에 들어올 수 없었으므로 강생의 신비를 거부하면서 그리스도의 인성을 부정했습니다.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은 올바른 신앙 고백에 기초해서 실천해야 합니다. 2세기에 나타난 다양한 이단사상은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을 왜곡시킬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올바른 영성 생활로 나아가려면 자신이 올바른 그리스도교 신앙을 고백하고 있는지를 먼저 성찰해야 할 것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백영민2017.01.11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25) 5세기 ⑥ - 위-디오니시우스의 신비신학](//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1907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25) 5세기 ⑥ - 위-디오니시우스의 신비신학천사에도 등급이 있다? 위-디오니시우스는 천사론이라는 천상 존재의 다양한 등급을 플라톤 사상의 세 단계 틀을 통해 제시했다. 사진은 러시아 남부 한 도시에 세워진 천사상 배경으로 해가 지는 모습. 【CNS】 중세 신학자 보나벤투라(Bonaventura, 1217?~1274)는 저서 「모든 학문의 신학으로의 환원(De reductione artium ad theologiam)」에서 성경 말씀 안에 문자적인 의미 이외에 세 가지 영적인 의미가 있는데, 세 번째 영적인 의미가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곁에 붙어있을 수 있는지를 가르치는 신비 상징적 의미”(제5장)라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관상가는 신비적인 의미를 연구해야 하는데, 대표적으로 디오니시우스가 신비적인 의미를 가르쳤다는 것이었습니다.아레오파고스 법정의 디오니시오로 오인되었던 위-디오니시우스동방 교회에서 디오니시우스와 그의 작품에 대한 언급은 6세기경에 나타났습니다. 533년 이단 사상인 그리스도 단성론을 주장하던 사람들은 사도적 권위를 빌려 자신들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서 디오니시우스의 작품을 제시했습니다. 처음에 정통파 학자들은 그의 작품에 대한 진정성을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차차 동방 교회에서도 그를 바오로 사도가 아테네에서 만났던 “아레오파고스 의회 의원인 디오니시오”(사도 17,34)로 여겼습니다. 따라서 스키토폴리스의 주교 요한(Ioannes Scythopolotanus, 재임 536~553경)은 디오니시우스의 작품들을 주석한 주해 총서를 저술하기 시작했으며, 신비신학자였던 고백자 막시무스(Maximus Confessor, 580경~662)가 총서 저술 작업을 이어받아 마무리했습니다.서방 교회가 디오니시우스의 신비 신학에 대한 가르침을 접하게 된 시점은 9세기경이었습니다. 요한 스코투스 에리우게나(Ioannes Scotus Eriugena, 810경~877/80)는 고백자 막시무스를 통해 디오니시우스의 작품들을 접하고 난 후, 디오니시우스의 작품들을 라틴어로 번역해 서방 교회에 소개했습니다. 따라서 서방 교회도 한동안 그를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타(Dionysius Areopagita, ?~500경)로 불렀고, 그의 작품들에 사도적 권위를 부여했습니다.그런데 1895년 휴고 코흐(Hugo Koch)와 요제프 스틸그마이어(Josef Stilgmayr)는 디오니시우스 작품에서 신 플라톤 사상 철학자인 프로클루스(Proclus, 412경~485)의 작품과 유사한 흔적들을 찾을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따라서 오늘날 학계는 그를 사도행전에 나오는 디오니시우스와 구분하기 위해서 위(僞)-디오니시우스(Pseudo-Dionysius)라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위-디오니시우스를 시리아 출신으로 5세기 말엽~6세기 초엽에 활동했던 인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정화, 조명, 완성의 여정을 걷는 천상과 지상 존재들위-디오니시우스는 대표적으로 「신명론(De Divinis Nominibus)」, 「신비신학(De Mystica Theologia)」, 「천상 위계론(De Caelesti Hierarchia)」, 「교계 위계론(De Ecclesiastica Hierarchia)」 등을 저술했습니다. 「신명론」에서 위-디오니시우스는 성경에 나오는 하느님을 일컫는 여러 가지 명칭을 제시하면서 철학적인 주석을 시도했습니다. 즉, 인간이 ‘선’, ‘존재’, ‘생명’, ‘지혜’, ‘권능’ 등으로 불리시는 하느님에 대해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에 대해 숙고했습니다.「천상 위계론」에서 위-디오니시우스는 훗날 교회에서 소위 ‘천사론’이라는 천상 존재의 다양한 등급을 신 플라톤 사상의 세 단계 틀을 통해 제시했습니다. 즉, 첫째 등급에 치품(熾品)천사(Seraphim), 지품(知品)천사(Cherubim), 좌품(座品)천사(Ophanim)가 있으며, 둘째 등급에 주품(主品)천사(Dominions), 역품(力品)천사(Virtus), 능품(能品)천사(Potestates)가 있고, 셋째 등급에 권품(權品)천사(Principatus), 대(大)천사(Archangelus), 천사(Angelus)가 있다는 것이었습니다.「교계 위계론」에서 위-디오니시우스는 교회에서 교계 제도에 따른 지상 존재의 구분을 역시 세 가지씩 세 등급으로 제시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세 단계 구분은 그리스도교 영성 생활의 세 가지 길인 정화, 조명, 완성의 단계와 일맥상통합니다. 먼저 첫째 등급은 성사(聖事)와 관련되었는데, 세례, 성체, 견진이었습니다. 둘째 등급은 성직 계급과 관련되었는데, 부제, 사제, 주교이었습니다. 셋째 등급은 평신도와 관련되었는데, 예비신자, 세례받은 자, 수도자이었습니다. 결국 각 등급에서 세 가지는 각각 정화, 조명, 완성의 관점에서 발전의 여정을 걷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상승의 여정을 걷는 부정신학적 신비신학위-디오니스우스의 작품 중에서 분량이 적지만 의미 있는 저서는 「신비신학」입니다. 위-디오니시우스는 신비 신학을 설명하기 위해 세 가지 종류의 신학을 소개했습니다. 즉, ‘긍정신학(cataphatic theology)’, ‘상징신학(symbolic theology)’, ‘부정신학(apophatic theology)’입니다. 먼저 긍정신학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의 본성을 인간의 언어로 설명을 시도합니다. 이때 계시를 통해 알게 된 다양한 명칭이 하느님께 주어집니다. 상징신학은 감각 세계에서 선택한 바를 통해 무엇이 신적 형상이며, 어떻게 하느님을 상징적으로 묘사하는지 설명합니다. 끝으로 부정신학은 상승의 여정을 통해 하느님께 도달했을 때 더 이상 인간의 언어가 필요 없다는 점을 깨닫게 되는 순간 하느님과 하나 된다고 설명합니다.위-디오니시우스의 신비신학은 이미 니사의 그레고리우스가 저서 「모세의 생애」에서 보여준 부정신학적 방법론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즉, 위-디오니시우스도 모세가 산 정상에서 하느님을 직접 뵙지 못했지만, 보이는 세계에서 벗어나 무지의 어둠으로 들어가 하느님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게 되었을 때 하느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위-디오니시우스는 이후 서방 교회에서 부정신학적 방법론으로 신비체험을 설명하는 신비신학 형성에 오랫동안 많은 영향을 주었습니다.그런데 위-디오니시우스는 「신비신학」에서 플로티누스의 신비철학에서 다룬 머무름, 유출, 귀환의 순환 과정 중에 상승의 여정을 통해 하느님께 돌아가는 인간의 귀환을 다루었습니다. 한편 위-디오니시우스는 「신명론」에서 머무름을 다루었고, 「천상 위계론」과 「교계 위계론」에서 유출과 귀환의 다양한 과정을 설명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위-디오니시우스의 네 작품들을 통해야 그의 신비신학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저자가 누구인지도 모르고, 그리스도 단성론의 색채가 있다고 한때 거부되었던 위-디오니시우스의 작품들은 비록 9세기 이후에야 서방 교회에 알려졌지만, 오랫동안 서방 교회 영성신학 발전에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또한 그리스도교에서 ‘신비신학’이라는 용어를 공식적으로 사용한 첫 번째 사례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중세 이후 서방 교회 영성신학을 잘 이해하려면, 위-디오니시우스의 신비신학에 대한 이해는 필수요소가 되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신비신학=인간의 영혼과 신과의 신비적인 교류(交流) 현상을 연구하는 신학의 한 부문.단성론=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 중 하나만 인정하는 것. 백영민2017.05.16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1) 안식일 논쟁 (6,1-11)](//cpbc.co.kr/CMS/newspaper/2017/07/rc/687510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1) 안식일 논쟁 (6,1-11)안식일에 밀만 보고 사람은 못 본 바리사이 안식일에 밀밭을 지나다가 밀 이삭을 뜯어 비벼 먹은 제자들이 안식일 규정을 어겼다는 바리사이들의 주장에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으로 안식일의 참의미를 일깨우신다. 사진은 이스라엘의 밀밭.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예수님과 바리사이 및 율법 학자들과의 단식 논쟁은 안식일 논쟁으로 이어집니다. 이와 관련, 루카는 안식일에 있었던 두 가지 서로 다른 일화를 소개합니다. 제자들이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 먹은 일화와 안식일에 사람을 고치신 일화입니다.(6,1-11)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안식일에 밀밭 사이를 지나가시게 되었는데 제자들이 밀 이삭을 뜯어 손으로 비벼 먹었습니다. 배가 고팠던 모양입니다. 이를 본 바리사이들이 “왜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하오?”하고 항의합니다.(6,1-2)이스라엘 백성에게 안식일은 주님께 바쳐진 거룩한 날이었습니다. 이 날을 더럽히는 자는 사형을 받고, 이스라엘 백성에게서 잘려나갔습니다. 안식일에 일을 하는 사람도 사형에 처해졌습니다.(탈출 30,12-17 참조) 이런 모세 법에 따라 유다 사회에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이 서른아홉 가지가 있었다고 합니다. 안식일에 추수하는 일이 그에 해당했습니다.(탈출 34,21 참조) 문제는 안식일에 밀 이삭을 뜯어서 비벼 먹는 것이 안식일 금지 규정에 어긋나느냐 하는 것인데, 밀 이삭을 자르는 것 또한 추수 행위로 여기는 해석이 있었다고 하지요. 그렇다면 제자들에 대한 바리사이들의 항의성 질문 또한 당연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배고픈 다윗 일행이 안식일에 성전에 들어가 먹어서는 안 되는 빵을 먹은 예를 드십니다.(6,3-4) 구약성경 사무엘기 상권 21장 2-7절에 나오는 사례지요. 다윗이 아히멜렉 사제에게 요청해 얻어먹은 빵은 주님께 바치려고 안식일에 새 빵으로 제단 앞에 차려놓은 것으로 사제들도 함부로 먹을 수 없었습니다. 새 빵으로 교체하고 난 묵은 빵이 사제들 차지였습니다.(레위 24,5-9 참조) 예수님께서 그런 빵을 먹은 다윗 일행의 예를 드신 것은 제자들의 행위를 변호하기 위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 다음과 같은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리사이들도 같은 의문을 품었으리라고 추측한다면 지나친 비약일까요. ‘예수, 당신이 누구인데 감히 우리가 성왕(聖王)으로 존경하는 다윗과 비교한다는 것이오? 당신이 우리 조상 다윗보다 더 훌륭하고 권위가 있다는 것이오?’ 예수님의 답변은 “사람의 아들은 안식일의 주인이다”(6,5)입니다. 문맥으로 보면 사람의 아들은 예수님 자신을 가리키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은 ‘내가 안식일의 주인이다’라고 풀이할 수 있습니다. 안식일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니, 예수님께서는 당신을 하느님과 같은 급으로 놓고 계신다고 할 수 있지요. 루카는 ‘안식일 밀 이삭 논쟁’에 이어 또 다른 안식일 논쟁을 전합니다. 이번에는 안식일에 회당에서 예수님께서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고치신 것과 관련한 논쟁입니다. 밀 이삭 논쟁에서 예수님께 패한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들은 예수님이 손을 오그라든 사람을 고쳐 주기만 하면 고발하려고 벼르고 있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을 가운데 세워 놓고는 먼저 물으십니다. “안식일에 좋은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남을 해치는 일을 하는 것이 합당하냐? 목숨을 구하는 것이 합당하냐? 죽이는 것이 합당하냐?”(6,9)밀 이삭 논쟁에서 바리사이들의 도전에 반론을 펴신 예수님께서는 이번에는 공개적으로 선수를 치십니다. 쟁점이 약간 다른 것 같습니다. 앞에서는 안식일에 ‘해도 되느냐 하지 말아야 하느냐’의 소극적 문제였다면, 이번에는 안식일에 ‘선을 행해야 하느냐 악을 행해야 하느냐’의 적극적 문제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에는 선을 행할 기회에 선을 행하지 않는 것은 악을 행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뉘앙스가 들어 있다고 한다면 지나친 해석일까요. 율법을 엄격히 준수하던 당시 라삐들의 해석에 따르면, 죽을 위험이 있는 사람한테는 안식일에도 도와줄 수 있다고 합니다. 물론 손이 오그라든 사람이 죽을 위험에 있는 위태로운 처지에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그 사람은 안식일이라는 이유로 예수님께서 고쳐주시지 않는다면 평생을 불구로 살아야 할지 모릅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이 말씀을 두고 ‘착한 일을 할 수 있을 때에 착한 일을 하지 않는 것은 악을 조장하는 것과 같다’고 해석하더라도 아주 틀리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께서는 주위를 둘러보시고 나서 바로 “손을 뻗어라”라는 말씀으로 그 사람을 고쳐 주십니다.(6,10)루카는 바리사이들과 율법 학자들이 “골이 잔뜩 나서 예수님을 어떻게 할까 하고 서로 의논하였다”(6,11)라는 표현으로 기사를 끝냅니다. 골이 잔뜩 났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님을 의미합니다. 그만큼 격앙돼 있다는 것이지요. 왜 격앙됐을까요? 말과 행동에서 의롭다고 자처한 그들이었는데 예수님 앞에서 그 의롭다고 생각한 것이 여지없이 무너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어떤가요? 우리는 곧잘 내 생각이, 내 판단이 옳고 최고라고 여기곤 합니다. 그런데 그 생각이나 판단이 잘못됐다는 지적을 받을 때, 특히 평소 나와 다른 의견을 가진 사람에게서 그런 지적을 받을 때 어떻게 하는지요? 골이 잔뜩 나서 어떻게 할까 하고 궁리하는가요? 아니면 기분이 좋지 않아도 인정하면서 진솔하고 겸허하게 자신을 다시 한 번 돌아보는지요? 생각해봅시다안식일 논쟁과 관련한 이 두 이야기는 안식일의 참의미, 나아가 율법 규정의 참의미가 어디에 있는지를 되새기게 해줍니다. 안식일, 오늘날로 치면 주일은 바로 하느님께 바치는 거룩한 날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지칭하면서 “사람의 아들이 안식일의 주인이다”라는 말씀으로 당신이 안식일의 주인인 하느님과 동등한 권위를 지니심을 밝히십니다.그런데 두 번째 논쟁에서는 안식일을 해석하는 기준이 달라집니다. 여기서는 ‘사람을 위해 착한 일을 하느냐 아니냐’가 기준이 됩니다. 말하자면 ‘사람의 아들’을 위한 날에서 ‘모든 사람을 위한 날’로 확대됐다고나 할까요. 이는 예수님의 말씀과도 무관하지 않습니다. 루카복음에서는 빠져 있지만 같은 내용을 다루는 마르코복음에서는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은 아니다”라는 예수님 말씀을 전하기 때문입니다.(마르 2,27) 그렇다면 우리는 시야를 넓히고 생각을 크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느님을 위한다면서 가까이 있는 사람에게 상처를 주는 일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게 생기고 있습니다. 때로는 나 자신이 그렇지는 않은지요? 알아둡시다‘사람의 아들’은 예수님께서 자신에 관해 직접 쓰신 전형적인 표현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때로는 사람의 아들과 약간 거리가 있는 듯이 말씀하시고, 때로는 사람의 아들과 자신을 명백히 동일시하십니다. 많은 성경학자는 ‘사람의 아들’이라는 표현이 묵시문학의 전통과 관련있다고 봅니다. 이 전통에 따르면 사람의 아들은 종말에 죄인을 심판하고 의인을 구원하러 오시는 존재, 곧 메시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자신을 ‘사람의 아들’로 자주 표현하셨다면 당신 자신을 메시아로 여기고 계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메시아이신 예수님은 구약 전통에서 나타나는 메시아와는 다릅니다. 어떻게 다른지는 다음 기회에 살펴보겠습니다. 백영민2017.07.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