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30.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당](//cpbc.co.kr/CMS/newspaper/2016/08/rc/649958_1.3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30.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당정수경 가타리나
인천가톨릭대학교
조형예술대학 교수
최영심,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당, 1996년. 학생들에게 스테인드글라스를 강의하면서 매 학기 현장 학습을 진행하곤 한다. 강의실에서 스크린 화면을 통해 바라보는 것만으로 실제 스테인드글라스의 아름다운 빛과 색채, 그리고 건축 공간 내에서의 역할과 조화를 느끼기에는 역부족이기 때문이다.국내 여러 작품 가운데 오늘 소개하려는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1년에 한 번은 학생들과 함께 성당을 방문해 감상하는 작품이다. 신학교 내 성당이라 출입이 자유롭지 않음에도 이곳을 찾는 이유는 스테인드글라스의 전통적인 면과 현대적인 면이 조화롭게 어우러진 사례로, 다양한 주제와 표현 양식으로 이뤄진 각각의 장면을 현장에서 학생들과 주고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방문하는 계절, 시간, 날씨에 따라 다른 모습을 연출하는 작품 앞에서 스테인드글라스의 수많은 표정을 마주하곤 한다.서울 종로구 혜화동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인 최영심의 1996년 작품이다. 최영심은 오스트리아 슐리어바흐 공방에서 스테인드글라스를 연구하고 1980년대부터 현재까지 국내 여러 성당에 작품을 선보이고 있다.가톨릭대 성신교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2연창 구조와 둥근 네 잎 원 모양과 마름모꼴이 교대로 반복되고 있는 틀 안에 성경의 장면들을 작가 고유의 표현으로 완성하는 방식 등에서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의 형식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작품이다. 작품은 성당 입구 쪽부터 첫 번째 창에는 예수 탄생 예고, 예수 성탄, 카나의 혼인 잔치에 이르는 주요 장면들을 재현하고 있고, 두 번째 중앙 창에는 가시덤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모세, 홍수 속에서의 노아, 깊은 물 속에서의 요나를 통해 이 세상에 존재하는 불과 물, 땅 위에 하느님의 현존을 표현했다. 마지막으로 제대 쪽에 위치한 세 번째 창에는 예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요한 묵시록과 연계해 표현했다.가톨릭대 성신교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내용의 조화 못지않게 표현 양식 면에서도 형태와 색채를 조화롭게 배치해 전체적인 균형을 이루고 있다. 원색적인 색감이 주를 이루는 중심 장면과 단순한 면으로 처리된 은은한 색조의 배경이 조화롭게 어우러져 지나치게 화려하지도 밋밋하지도 않은 깊은 빛을 전해 주고 있다. 안료의 질감을 다르게 표현하기 위해 색유리 앞뒷면 페인팅 기법, 흑유로 바탕을 칠하고 긁어내는 기법, 에칭 기법 등 다양하고 섬세한 페인팅 기법을 구사해 회화적 느낌을 한층 고조시켰다.최영심은 성경 내용을 구상적으로 표현하면서도 그 안에 담긴 메시지를 직접 제시하는 방식을 지양하고, 인간 실존의 문제와 결부된 개인적 고뇌를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는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에서 여러 차례 ‘부활’을 주제로 삼았다. 그러나 그는 부활을 주제로 한 작품에 일반적으로 등장하는 예수의 부활 장면 대신 시련과 고뇌로부터 해방을 이야기하는 구약의 인물들인 노아와 요나의 이야기를 그려냈다.신약 성경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 ‘슬기로운 처녀들과 어리석은 처녀들의 비유’, ‘사막에서의 예수의 유혹’ 등 최영심의 작품은 구체적인 이미지를 담은 구상적 표현으로 성경의 내용을 전달하는, 빛을 담은 성경으로 재창조되고 있다. 이렇게 성경의 말씀을 토대로 창조된 작가 고유의 내러티브적인 이미지들은 중세 스테인드글라스의 서술적 기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결과로 볼 수 있다. 작가는 이를 통해 한 개인, 인간으로서 실존의 문제, 더 나아가 예술가로서 삶에서 추구했던 해탈과 초월의 경지를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백영민2016.08.24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61) “‘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1코린 10,23)](//cpbc.co.kr/CMS/newspaper/2017/08/rc/691433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61) “‘모든 것이 허용된다.’ 하지만 모든 것이 유익하지는 않습니다”(1코린 10,23)우상에게 바쳤던 제물 ‘먹지 말라’ 권고 바오로 사도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지 말라고 권고하며, 성찬례를 통한 구원 의미를 지향할 것을 설교했다. 그림은 라파엘로 산치오 작 ‘아테네에서 설교하는 성 바오로’. 바오로 사도, 우상에 관한 독특한 관점 드러내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이하 코린토 1서)은 다양하고 중요한 주제들을 많이 다룹니다. 생활에 직접 관련된 혼인에 대한 문제, 교우들 간의 시비를 가리는 문제 그리고 불륜의 문제 등에 대해 신자로서 가져야 할 자세를 언급합니다. 이런 구체적인 문제와 함께 바오로 사도가 강조해서 언급하는 것 중의 하나는 우상과 관련된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문제를 언급하면서 바오로 사도는 독특한 관점을 보여 줍니다. 코린토 1서 8장에서 바오로 사도는 우상에게 바쳤던 제물을 먹는 문제에 대해 다룹니다. 구약성경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에는 제물이 사용됩니다. 황소, 양이나 염소 또는 비둘기 등이 대표적인 제물로 등장합니다. 번제제사(레위 1,1-17), 곧 모든 제물을 남기지 않고 태워서 살라 바치는 경우 외에, 제사에 바친 제물은 하느님의 몫과 사제의 몫을 제외하고 제물을 바친 이에게 돌아갑니다. 이처럼 다른 신들에게 바치던 제물 역시 비슷했습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러한 상황에 대해 코린토에 있는 신자들에게 권고합니다. 당시 코린토에는 상당히 많은 신전이 있었던 것으로 전해집니다. 또한, 제사에 쓰였던 일부 제물은 공개적으로 시장에서 팔고 사는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바오로는 다른 신의 신전에서 제물로 바쳤던 음식을 먹는 것(1코린 8,1-13)과 시장에서 제물에 바쳤던 제물을 사 먹는 것(1코린 10,23-33)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바오로 사도에게 찾을 수 있는 생각은 “세상에 우상은 없다”는 사실입니다. 그에게 하느님은 유일한 주님이자 신입니다. 다른 신은 없습니다. 하지만 우상에게 바친 제물에 대해 논하는 이유를 바오로 사도는 형제애의 차원에서 설명합니다. 하느님은 한 분뿐이라는 것은 자명한 사실이지만 아직 이것을 굳게 믿지 못하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이들을 위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행동이 다른 약한 이들에게 걸림돌이 된다면 그것을 하지 않도록 권고합니다.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것을 하느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십시오.”(1코린 10,31) 예수님과의 만찬 성찬례로 재현이와 함께 바오로 사도는 주님의 만찬인 ‘성찬례’에 대해서도 말합니다. 바오로 사도의 표현에서 당시 초대 교회의 신앙인들이 어떻게 성찬례를 거행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아직 전례 안에 자리 잡지 못한 성찬례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했던 방식대로, 저녁 식사를 겸해 이루어졌습니다. 빵과 포도주를, 음식을 함께 나누면서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했습니다. 복음서 이외에 성찬 제정에 관한 구체적인 내용을 전하는 것은 코린토 1서뿐입니다. “사실 나는 주님에게서 받은 것을 여러분에게도 전해 주었습니다. 곧 주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날 밤에 빵을 들고….”(1코린 11,23)바오로 사도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가장 중요한 전승을 전합니다. 하지만 코린토 공동체의 모습은 그리 모범적인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주님의 만찬은 여러 사람이 한데 모여 식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모두가 모여 주님의 죽음과 부활을 기억하는 것임을 다시 한 번 강조합니다. 성찬례는 예수님께서 행하셨던 것을 재현하면서 구원의 의미와 공동체의 일치를 지향합니다. 초기 공동체의 모습은 그들의 생활상을 통해 신앙인들이 예수님의 가르침을 어떻게 실천하며 살아갔는지 보여 줍니다. 이런 면에서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은 긍정적인 면들만 아니라 당시의 부정적인 모습들도 보여 줍니다. 구약에서 하느님께 바치는 제사가 가장 큰 경신(敬神)의 행위였다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 이것을 기억하는 성찬례는 제사를 대신하는 예식이었습니다. 경신의 차원인 성찬례, 그리고 그것에 반대되는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는 것에 대한 문제는 그리스도교 신앙인들을 특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이기도 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김지항2017.08.09
![[당신께 봉사함이 기쁩니다] (3) 서울대교구 오류동본당 시니어 아카데미](//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7610_1.0_titleImage_1.jpg)
[당신께 봉사함이 기쁩니다] (3) 서울대교구 오류동본당 시니어 아카데미 매주 목요일 마련되는 오류동본당 시니어 아카데미 동아리 활동 중엔 서예교실도 있어 묵향 그윽한 예술의 진수를 맛볼 수 있다. 오세택 기자 매서운 추위는 한풀 꺾였지만, 한기는 여전히 옷깃을 여미게 한다. 하지만 서울대교구 오류동본당(주임 이동호 신부) 성전과 교육관 경내는 열기가 뜨겁다. 70∼80대 어르신들의 신명 나는 본당 시니어 아카데미 활동 때문이다. 특히 동아리 활동에 어르신들 참여도가 높다. 신나는 음악과 함께 30여 명의 어르신이 줄을 맞춰 같은 동작으로 방향을 바꿔가며 라인 댄스를 추는가 하면, 노래ㆍ가곡 교실이나 우쿨렐레 반에선 흥겨운 대중가요나 옛 추억을 떠오르게 하는 가곡, 하와이 전통 현악기 우쿨렐레를 배우느라 여념이 없다. 묵향 물씬 배어나는 서예 교실에선 어르신들이 붓을 들어 한 획 한 획 그어나가고, 종이접기 반에선 색 도화지나 색종이로 갖가지 조형물을 만들어낸다. 지압 반에선 365개의 인체 경혈(침 자리) 마사지법에서 발 지압법, 전신 마사지법까지 속속들이 일러준다. 어느 하나 ‘무시하고 건너뛸’ 동아리가 없다. 고령자에겐 하나같이 다 필요한 것들이어서다. 어르신들을 이끄는 단체는 오류동본당 시니어 아카데미(대표 신수정)다. 이 중 26명의 교사 봉사자가 주역이다. 2014년 6월에 개강했으니 채 2년 6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매주 목요일 오전이면 어김없이 봉헌되는 매일 미사를 시작으로 성경 공부, 8개 동아리 활동으로 분주하다. 점심 또한 서명숙(루치아) 성모회장 등 본당 후원과 봉사로 해결한다. 신수정(비비안나, 58) 대표봉사자는 “성경 공부든, 동아리 활동이든 봉사자들은 부모님을 대하듯 열의를 가지고 봉사하기에 어르신들이 다들 좋아하신다”고 귀띔했다. 시니어 아카데미로 본당 고령화 돌파본당에서 본당 시니어 아카데미를 개설하게 된 건 60대 이상 본당 내 어르신 비율이 22%를 넘어설 정도로 고령화가 진행됐기 때문이다. 2013년 8월 부임한 이동호 신부는 본당 실정에 맞춰 ‘목요일 어르신 주일학교’를 개설했다가 본당 시니어 아카데미로 바꿔 학사 일정을 다시 짜고 수업 담당 봉사자를 선발한 뒤 교구 노인사목부에서 노하우를 배워오고 타 본당 노인사목을 벤치마킹했다. 본당 시니어 아카데미라고 해서 무시하면 안 된다. 학칙에 교과과목, 강의 계획안, 교가까지 있을 건 다 있다. 그러면서도 본당 시니어 아카데미를 위한 별도 예산을 편성하지 않고 본당 신자들의 후원을 받도록 해 공동체의 관심과 봉사 참여도를 높였다. 2015년 두 달간 암 투병을 했던 역경을 딛고 봉사자로 참여해 라인 댄스 동아리를 이끄는 윤구병(엘리사벳, 56) 봉사자는 “봉사라기보다는 어르신들과 함께하며 너무나 큰 기쁨과 행복을 느끼기에 손을 놓을 수 없다”고 고백했다. 일선에서 은퇴한 이필재(야고보, 68) 한의사는 “아무래도 어르신들이기에 배우고 나면 금방 잊기는 하시지만, 다들 ‘엄청 좋아하기에’ 그만둘 수가 없다”며 “특히 응급환자들이 생겨 도와드렸을 때 보람이 크다”고 전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본당 시니어 아카데미=서울대교구 사목국 노인사목부 관할 단체로, 교구 내 140개 본당에 시니어 아카데미가 구성돼 있다. 신앙 안에서 어르신들이 행복한 삶을 보내는 데 동참하고자 하는 봉사자들은 해당 본당 시니어 아카데미로 연락하면 된다. 백영민2017.01.11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고(1,5-25) : 뜻밖의 선물](//cpbc.co.kr/CMS/newspaper/2017/02/rc/672633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고(1,5-25) : 뜻밖의 선물하느님 섭리, 인간의 잣대로 평가한 즈카르야즈카르야의 집은 어디였을까. 성경에는 이에 대한 분명한 언급이 없다. 그러나 예루살렘 남서쪽에 에인 케렘이라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 있는데, 이곳에 요한 세례자 탄생을 기념하는 성당이 있어 엘리사벳이 아기를 잉태한 후에는 이곳에서 살았으리라고 추정한다. 사진은 에인 케렘 전경. 가운데 교회 건물이 요한 세례자 탄생 기념 성당이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루카복음은 머리말에 이어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고에 관한 기사를 전합니다. 요한 세례자는 누구인가요? 앞으로 좀 더 자세히 살펴보겠지만, 그는 예수님과 동시대 사람으로서 예수님이 오실 것을 미리 알리고 그 길을 준비한 선구자입니다. 성경의 시대를 구약과 신약으로 나누고 신약을 예수님의 시대라고 한다면, 요한 세례자는 예수님의 길을 준비한 구약의 마지막 인물 또는 구약과 신약에 걸쳐 있는 인물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요한 세례자의 출생 예고 기사는 “유다 임금 헤로데 시대에”(1,5)로 시작합니다. 이 헤로데는 헤로데 대왕으로 알려진 헤로데로, 기원전 37년부터 기원전 4년까지 유다와 갈릴래아와 사마리아 등 이스라엘 전역(팔레스티나)을 통치한 임금이었습니다. 루카복음에는 헤로데라는 이름이 모두 15번 나옵니다. 1장 2절에 나오는 헤로데는 아버지 헤로데(헤로데 대왕)이고 나머지 14번 나오는 헤로데는 아들 헤로데(헤로데 안티파스)입니다. 우선 이렇게 간단히 구별한 후에 복음서를 계속 살펴봅니다. 루카는 먼저 요한의 부모에 대해 서술합니다. 아버지 즈카르야는 사제였고, 어머니 엘리사벳은 구약의 대사제 아론의 후손이었습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 사제 가문입니다. 사제는 하느님께 바쳐진 사람입니다. 두 사람은 하느님을 섬기도록 봉헌된 사제의 가문 품위에 맞게 “하느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일 뿐 아니라 “흠 없이 살아가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다만 엘리사벳은 아이를 못 낳는 여자였고 두 사람 모두 나이가 많았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아이를 낳지 못하는 것이 치욕(1,25)이었음을 감안할 때, 두 사람이 그동안 아이를 갖기를 얼마나 간절히 원했는지 짐작할 수 있습니다. 천사의 예언 의심해 벙어리 되다 그런데 즈카르야가 자기 조의 차례가 돼 사제 직무를 수행하게 됐고,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직무를 맡게 됐습니다. 주님의 성소에 들어가 분향하는 일은 사제라도 쉽게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었습니다. 제비를 뽑아 당첨돼야만 할 수 있었습니다. 분명 대단히 영광스러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마 즈카르야는 그 영광스러운 기회에 평생 소망해온 자식을 보도록 해달라고 또한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때에 가브리엘 천사가 나타나 말합니다. “두려워하지 마라, 즈카르야야. 너의 청원이 받아들여졌다. 네 아내 엘리사벳이 너에게 아들을 낳아줄 터이니 그 이름을 요한이라고 하여라.”(1,13) 천사의 발현에 즈카르야는 놀라 두려움에 떨었지만. 엘리사벳이 아들을 낳으리라는 천사의 전갈은 그에게 분명히 큰 기쁨과 즐거움이었을 것입니다. 천사는 단지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아줄 것이라고만 전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아기가 “주님 앞에서 큰 인물이 될 것이기 때문”에 “많은 이들이 아기의 출생을 기뻐할 것”이라며(1,14-15), 태어날 아기에 대해 자세히 언급합니다. 아기는 △어머니 태중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찰 것이며 △많은 사람을 주님께 돌아오게 할 것이고 △엘리야의 영과 힘을 지니고 그분보다 먼저 와서 백성이 주님을 맞이할 준비를 갖추게 하리라는 것입니다.(1,15-17) 그런데 그토록 간절히 원했던 아기를 보게 될 뿐 아니라 그 아기가 큰 인물이 되리라는 자세한 설명에도 즈카르야는 뜻밖의 반응을 보입니다.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1,18) 즈카르야는 나이가 많다는 이유를 들어 천사의 설명에 의심을 제기하면서 자신이 확인할 수 있는 또 다른 표징을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즈카르야의 불신 섞인 반응에 천사는 아들을 낳을 때까지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될 것이라는 표징을 남기고 떠나갑니다. 즈카르야는 벙어리가 돼서 성소 밖으로 나왔고, 나머지 성전 봉직 기간을 채우고 집으로 돌아갑니다. 그 뒤 아내 엘리사벳은 임신해 다섯 달 동안 숨어지냅니다. 그러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사람들 사이에서 겪어야 했던 치욕을 없애 주시려고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주셨구나.”(1,25) 벌인가 은총인가 이 이야기는 우리에게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즈카르야는 하느님을 섬기도록 바쳐진 사제였습니다. 엘리사벳 또한 사제 가문이었습니다. 그 품위에 걸맞게 두 사람은 의롭고 흠 없이 살아왔습니다. 그러면서 소원인 자식을 보게 해달라고 늘 간절히 기도를 바쳤을 것입니다. 그런데 하느님의 천사가 나타나 아들을 낳게 될 것이고 그 아들이 어떤 인물이 될 것인지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자 즈카르야는 오히려 불신 어린 반응을 보입니다. 그 이유는 지극히 인간적이고 합리적인 것, 곧 나이가 많다는 것이었습니다. 말하자면 즈카르야는 전능하신 하느님을 섬기고 또 그 하느님께 간절한 기도를 드리면서도 정작 하느님의 놀라운 은총의 섭리(역사)에는 오히려 인간적인 잣대로만 평가하려고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가 아닌지요? 하느님을 믿고 섬긴다고 수시로 고백하고 또 우리에게 필요한 일이 하느님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간절히 청하면서 살아갑니다. 막상 하느님의 뜻이 펼쳐지면 그것을 우리가 생각하는 인간적인 잣대에 비춰 평가하고는 그 뜻을 제대로 헤아리지 않고 무시하거나 거부하곤 합니다. 그러다가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됐듯이 크게 한 대 맞고는 뒤늦게서야 깨달아 감사의 눈물, 혹은 참회의 눈물을 흘립니다. 즈카르야가 벙어리가 된 것은 믿지 않은 불신에 대한 벌이기도 하지만(1,20 참조), 또한 즈카르야 자신이 요구한 표징(1,18 참조)에 대한 하느님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일이 우리 뜻대로 잘 되지 않을 때 혹은 나쁜 일이 생길 때, 그것이 하느님께로부터 오는 벌이라고 쉽게 단정하지는 않는지요. 오히려 그런 일에서 우리가 올바로 해나가야 할 방향에 대한 표징을 볼 수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우리의 일상을 자주 찬찬히 돌아보면서 “주님께서 굽어보시어 나에게 이 일을 해주셨구나”(1,15)하고 주님의 뜻을 헤아리는 열린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하고 노력한다면 우리 삶은 분명 바뀔 것입니다. 이름의 뜻 즈카르야는 ‘주님께서 기억하신다’, 엘리사벳은 ‘나의 하느님께서 맹세하시다’ ‘나의 하느님은 완전하시다’, 요한은 ‘주님께서 너그러우시다’ ‘주님께서 은총을 베푸신다’는 뜻을 지닌다. 세 이름을 합치면 ‘주님께서 기억하시고 약속하신 대로 은총을 베푸셨다’고 풀이할 수 있다.알아둡시다헤로데 : 성경에는 2명의 헤로데가 나온다. 한 사람은 예수님의 탄생 시기 즈음해서 등장하는 헤로데, 다른 한 사람은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 나오는 헤로데다. 전자는 아버지 헤로데(대 헤로데 또는 헤로데 대왕이라고도 함)로 구약성경 마카베오 상권(12,16; 14,22)에 나오는 안티파테르의 아들이다. 기원전 63년 로마가 팔레스티나(유다, 사마리아, 갈릴래아를 포함한 이스라엘 전 지역)를 지배한 후 안티파테르는 로마의 지지를 얻어 팔레스티나 지역 총독에 임명됐고, 그의 두 아들 파사엘과 헤로데가 각각 유다와 갈릴래아의 영주가 된다. 이후 헤로데는 기원전 40년 로마의 신임을 얻어 유다와 사마리아의 영주로 임명되고, 기원전 37년에는 예루살렘을 점령해 왕위에 오른다. 이로써 헤로데 대왕은 유다, 사마리아, 갈릴래아에 이르는 팔레스티나 전역을 다스리게 되는데, 기원전 4년 사망한다. 루카 복음 1장 5절의 유다는 예루살렘과 그 일대를 포함하는 유다 지방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사마리아와 갈릴래아까지 포함한 팔레스티나 전체를 가리키기도 한다. 헤로데 대왕이 죽은 후 팔레스티나는 그의 세 아들이 나눠서 통치했는데, 맏아들 아르켈라오스는 유다와 사마리아를 폭압적으로 다스리다가 기원후 6년에 쫓겨나 그 지역은 로마 총독이 맡아서 다스렸다. 복음서에 나오는 본시오 빌라도도 그중 한 총독으로 그는 기원후 26~36년에 다스렸다. 둘째 아들 헤로데 안티파스는 갈릴래아와 베로이아를 다스렸고, 셋째 아들 필리포스는 갈릴래아 호수 북동쪽을 다스렸다. 예수님의 수난에 등장하는 헤로데는 바로 헤로데 안티파스다. <본지 2016년 5월 1일자 1362호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참조> 백영민2017.02.22

7대 종단, 가톨릭에 대한 이해 높이고 종교 간 화합 다지고2017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 이웃 종교 체험 성지순례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들이 프란치스코 교황을 알현하고 이탈리아의 가톨릭 성지를 순례했다. 한국종교지도자협의회(대표 의장 김희중 대주교)가 문화체육관광부 후원을 받아 8월 31일∼9월 5일 이탈리아에서 실시한 ‘2017 대한민국 종교 지도자 이웃 종교 체험 성지순례’에서 7대 종단 관계자들은 가톨릭에 대한 이해를 넓히고, 종교 간 화합을 다지는 시간을 가졌다. 순례에는 김희중(천주교 주교회의 교회일치와 종교간대화위원장) 대주교와 한은숙(원불교) 교정원장, 이정희(천도교) 교령, 김영근(유교) 성균관장, 이경호(성공회 서울교구장) 주교, 여운영(개신교) 한국기독교총연합회 사무국장, 이찬구(민족종교협의회) 기획국장 등 20여 명이 함께했다. ▶관련 인터뷰 24면 바티칸=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교황, 한국 순례단 특별히 예우 2일 바티칸 교황궁 도서관에서 20여 분간 이뤄진 순례단의 프란치스코 교황 특별 알현은 파격적인 배려로 진행됐다. 교황이 한국 순례단만을 교황궁에서 별도로 만난 것은 전례가 없던 일. 교황은 도서관으로 들어서는 순례단 한 사람 한 사람을 반갑게 악수로 맞았다. 교황은 또 평소 의자에 앉아 메시지를 발표하던 것과 달리 서서 연설을 하며 한 문장이 끝날 때마다 순례단과 눈을 맞추는 친근함을 보였다. 교황의 이탈리아어 연설을 알아듣지 못하는 순례단에게는 영어 번역본이 제공됐다. 교황 연설이 끝나자 순례단은 교황에게 종단별로 준비한 선물을 증정했다. 한은숙 교정원장은 ‘心月相照’(심월상조, 마음 달이 서로를 비춘다는 뜻)가 적힌 부채와 영문 원불교 경전을, 이정희 교령은 영문 천도교 안내 책자와 홍삼을, 김영근 성균관장은 한방차와 차 끓이는 기계를, 이찬구 기획국장은 홍삼을 각각 선물했다. 마지막으로 김희중 대주교가 종교지도자협의회 이름으로 십장생(十長生)을 수놓은 자수 액자를 교황께 증정했다. 순례단과 기념 촬영을 한 교황은 앞뒤로 자신의 문장과 ‘내가 나그네였을 때에 따뜻이 맞아들였다’(마태 25,35)는 성경 구절을 새긴 메달을 일일이 나눠줬다. 교황은 이어 문 입구로 먼저 가서 퇴장하는 순례단 한 사람 한 사람과 악수하며 환송하는 자상한 배려를 아끼지 않았다. 한은숙 교정원장은 “권위보다는 사람의 삶을 존중하면서 평화와 어려운 이들을 위해 애쓰시는 교황님께 감사드리고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렸다”며 “제 일생에서 아주 기쁜 날”이라고 알현 소감을 전했다. 또 김영근 성균관장은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인품이 유교에서 말하는 덕성을 갖춘 분이라는 인상을 받았다”며 “한 종교의 지도자를 넘어 인류와 역사를 보는 느낌이었다”고 밝혔다.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사무국 찾아 순례단은 4일 교황청 종교간대화평의회 사무국을 찾아 종교간대화평의회 차관 미겔 앙헬 아유소 기소 주교와 환담했다. 기소 주교는 이 자리에서 “여러분의 방문은 종교 간 화합의 좋은 예를 보여주는 것”이라면서 “종교 간 화합은 인류가 가진 소중한 가치를 지킬 수 있는 방법이므로 반드시 필요하고 또 노력해야 하는 부분”이라고 종교 간 대화의 중요성을 역설했다.기소 주교는 “평화로 가는 길에는 큰 인내와 노력이 필요하다”며 “대화는 공기와 물, 음식처럼 인류가 생존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본질적인 요소”라고 강조했다. 기소 주교는 “불안과 협박의 위험에 처해 있는 오늘날, 종교간 대화를 통해 세상에 평화와 화해를 증거해야 한다”면서 “가는 길이 힘들더라도 이것이 인류에 대한 사랑이자 봉사라는 것을 잊지 말고 세상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에 응답하고자 최선을 다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기소 주교는 북한 핵실험으로 위기감이 고조되고 있는 한반도 문제와 관련해 “교황님은 한국이 지금 굉장히 어렵고 긴박한 상황에 처해 있음을 잘 알고 있으며, 한반도를 비롯한 세계의 평화와 화해를 위해 매일 기도하고 계신다”고 밝혔다.공감대를 이룬 순례 교황 알현과 종교간대화평의회 방문이라는 공식 일정 외의 이탈리아 가톨릭 성지 순례는 순례단에게 가톨릭을 새로운 눈으로 바라보는 기회를 제공했다. 순례단은 1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과 카타콤바(지하무덤), 바오로 사도 참수터, 성바오로대성전을 둘러본 데 이어 3일에는 안드레아 성인의 유해를 모신 성 안드레아 대성당과 수도원의 모태인 베네딕도회 몬테카시노 수도원을 방문했다. 교회사를 전공한 김희중 대주교는 가는 성지마다 친절하고도 해박한 안내로 순례단의 이해를 도왔다. 이정희 천도교 교령은 “천주교가 2000년에 걸쳐 이런 아름다운 건축과 예술을 만들고, 또 수많은 성인을 탄생시킨 종교라는 것을 배웠다”며 “이웃 종교인 가톨릭에 대한 안목을 넓히는 좋은 시간이 됐다”고 말했다. 또 “교황님을 뵈면서 모든 종교가 지향하는 것은 결국 인간의 존엄성과 세계의 평화라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어려운 이웃과 세계 평화를 위해 종교가 더 화합하고 힘을 모아야 한다는 데 다시 한 번 공감대를 이룬 순례였다”고 평가했다. 백영민2017.09.13
![[당신께 봉사함이 기쁩니다] (16) 서울 사회교정사목위원회 봉사자 배영희(헬레나)씨](//cpbc.co.kr/CMS/newspaper/2017/06/rc/686106_1.0_titleImage_1.jpg)
[당신께 봉사함이 기쁩니다] (16) 서울 사회교정사목위원회 봉사자 배영희(헬레나)씨‘갇힌 형제들’ 생각에 10년째 봉사 봉사자 대기실에서 동료 봉사자들과 공연을 준비 중인 배영희씨.(왼쪽) 차가운 빗장이 풀리고, 철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열린다. 서울구치소 안으로 들어서면, 특유의 분위기가 훅 끼친다. 철문 닫히는 소리에 등 뒤로 싸한 냉기가 느껴진다. 서울구치소 남사(男舍) 책임봉사자 배영희(헬레나, 67, 서울 방배동본당)씨는 ‘조금이라도’ 수용자들에게 따뜻함이 전해지기를 기도하는 마음으로 봉사하며 함께해 왔다. 고등학교에서 독일어 교사로 재직하다가 퇴직한 지 얼마 되지 않은 2008년 11월 서울구치소에 왔으니, 벌써 10년째로 접어든다. 봉사 일정은 생각보다 단출하다. 매주 수요일 오후 1시 구치소 남사에서 집회하거나 미사를 봉헌한다. 매달 첫 주엔 집회를, 나머지 주엔 미사를 봉헌한다. 미사야 당연히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석원 신부가 주례하지만, 자잘한 준비는 다 봉사자 10여 명의 몫이다. 특히 음악회나 복음 묵상 연주회, 강연, 노래 자랑 등 명목으로 집회할 때면 준비할 게 한둘이 아니다. 미사 안내나 성경 공부, 교리 지도 봉사 또한 다 봉사자들이 해야 한다. 배 봉사자는 이들과 함께하며 구치소 수용자들을 보살핀다. 특별히 해주는 건 없다. ‘함께하려는 마음’ 그뿐이다. 이 밖에 한 달에 한 번은 교정사목센터에서 책임봉사자 회의를 하고, 또 후원회 모임에 참석한다. 7일에는 현악 실내악단인 ‘아카데미 앙상블’이 봉사를 왔다. 평소 미사 때보다 1시간쯤 일찍 들어가기 위해 연주자들은 대기실에서 봉사자들이 준비해온 김밥으로 점심을 때운다. 봉사자들도 재빠르게 점심을 때운다. 이쯤에서 왜 봉사를 하는지 궁금했다. “특별한 이유가 있다고 하기보다는 그냥 봉사가 생활이 됐다고나 할까요? 일주일에 한 번 있는 봉사를 오지 않으면 허전해요. 어느 해인가, 겨울에 눈이 하도 많이 와서 운전할 수 없을 정도였는데도 차를 끌고 벌벌 떨면서 길 없는 길을 달려 구치소에 왔어요. 지각하긴 했지만, 저희를 기다리고 있을 ‘갇힌’ 형제들을 생각하면 오지 않을 수 없었어요. 저희야 일주일에 한 번 봉헌하는 미사이고 만남이지만, 그분들은 일주일을 기다려요. 미사에 참여하려고요.” 배 봉사자는 그렇다고 해서 “굳이 뭘 해주려고 하지는 않는다”고 한다. 그저 “함께 미사에 참여하고 같이 있어줄 뿐”이라는 것이다. 봉사하게 된 이유도 단순했다. 우연히 서울주보를 보다가 같은 본당에 다니던 조영옥(실비아, 64)씨와 “한번 봉사해 보자”고 의기투합한 게 계기가 됐다. 다음날 당시 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이영우 신부를 찾아가 인터뷰하고, 다음날부터 봉사했다. 서울구치소에서만 그렇게 매 주일 한 차례씩 10년을 하루같이 살았다. 배 봉사자는 이제 “구치소 미결수나 기결수들이 꼭 형제 같고, 아들 같다”며 “따지고 보면 우리는 모두 죄인 아니냐”고 반문한다. “물론 순간의 잘못이야 있었겠지만, 회개를 통해 신앙의 기쁨을 찾는 모습을 보면 안타까움이 앞선다”고 했다. 배 봉사자는 “앞으로도 아무도 찾아주지 않는 재소자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순간까지, 힘닿는 데까지 봉사하며 살아가겠다”고 다짐한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백영민2017.06.21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44) 기도(루카 11,1-13)주님을 모신다 말하면서 표징은 입맛대로 청해고래에게 삼켜지는 요나를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 출처=가톨릭 굿뉴스루카 복음서의 문맥상 이번 호에서 다루는 내용은 지난 호에서 본 내용(루카 11,14-28)과 이어집니다. 이 점을 염두에 두면서 계속해서 살펴봅니다. 요나의 표징(루카 11,29-32)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셨을 때에 사람들은 놀라워했지만, 더러는 예수님이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고 말했고 또 하늘에서 내려오는 표징을 보여 달라고 요구한 이들도 있었습니다.(11,14-16) 예수님께서는 베엘제불의 힘을 빌려 마귀를 쫓아낸다는 비난과 관련해서는 예를 들며 구체적으로 대응하셨습니다만, 표징을 보여 달라는 요구에 대해서는 직접적인 언급은 하지 않으시고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라고만 말씀하십니다.(11,17- 23 참조) 그런데 “군중이 점점 더 모여들자” 예수님께서는 비로소 표징을 보여 달라는 요구와 관련한 구체적인 답변을 하십니다. 그런데 답변이 대단히 부정적입니다. 먼저 “이 세대는 악한 세대다”라고 비판하십니다.(11,29) 왜 “이 세대가 악한 세대다”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지난호에서 살펴본 것처럼 예수님께서 벙어리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놀라워하면서도,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를 쫓아내는 것을 보면서도, 곧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 나라가 이미 와 있는 것을 보면서도 그 표징인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고 자기들이 원하는 표징만을 예수님께 요구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시면서 “요나가 니네베 사람들에게 표징이 된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이 세대 사람들에게 그러할 것”이라고 설명하십니다.(11,29-30) 요나는 구약의 예언자입니다. 요나는 큰 성읍 니네베로 가서 주민들을 회개시키라는 하느님 말씀을 듣지만, 그 분부를 피해 ‘땅끝’을 상징하는 타르시스라는 곳을 향해 배를 타고 달아납니다. 그러나 풍랑을 만나고 뱃사람들에 의해 바다 속에 내던져진 요나는 커다란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지내다가 나와 다시 하느님의 분부를 듣고 니네베로 가서 회개를 선포합니다. 니네베 사람들은 모두 요나의 말에 회개해 악한 길에서 돌아서고 하느님께서는 그들에게 내리시려던 재앙을 거두시지요.(요나 1─4장 참조) 이런 요나서를 바탕으로 유추해 보면,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요나의 표징’을 두 가지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요나의 회개 선포를 듣고 니네베 사람들이 모두 회개한 것입니다. 따라서 니네베 사람들에게 요나가 회개(또는 회개 선포)의 표징이 됐듯이, 예수님 자신이 이 사악한 세대에 요나와 같은 표징이시라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요나가 큰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지낸 것처럼, 예수님께서도 사흘 동안 땅 속에서 지내시리라는 것입니다. 곧 예수님께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부활하시리라는 것이지요. 물론 지금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청중에게는 예수님의 부활이 아직 미래의 일이지만, 루카 복음사가의 독자들에게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이미 일어난 사건이고 이는 요나가 물고기 배 속에서 사흘을 지낸 것에 상징적으로 비견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어 남방 여왕과 니네베 사람들을 언급하시면서 이 세대를 사악한 세대라고 하신 이유를 간접적으로 설명하십니다. ‘심판 때에 남방 여왕이 이 세대 사람들과 함께 되살아나 이 세대 사람들을 단죄할 것이고 니네베 사람들이 되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남방 여왕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 땅끝에서 왔고, 니네베 사람들은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다. 그러나 솔로몬보다 또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11,31-32) 이 말씀은 솔로몬의 지혜를 들으려고 온 남방 여왕과 달리, 또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한 니네베 사람들과 달리 이 세대는 솔로몬이나 요나보다 더 큰 예수님의 말씀을 받아들이지 않기에 단죄를 받을 것이라는 심판의 말씀이자 경고의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남방 여왕은 솔로몬 치세 때에 솔로몬의 지혜에 대한 명성을 듣고 찾아온 스바 여왕을 말합니다.(1열왕 10,1-13 참조) 학자들은 스바가 기원전 900~450년쯤 인도와 교역을 통해 전성기를 맞은 아라비아 남쪽의 스바 왕국일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솔로몬과 스바 여왕의 이야기는 또 옛 에티오피아인 아비시니아와 무슬림 전승에도 나오며, 무슬림 전승에 따르면 여왕의 이름은 발키스였다고 합니다.(「주석 성경」 열왕기 상권 10장 주석 참조) 니네베는 고대 앗시리아 왕국의 수도였습니다. 요나서에 따르면 니네베는 성읍을 가로질러 가는 데에만 사흘이 걸리고, 주민이 12만 명이나 되는 큰 성읍이었습니다.(요나 3,3; 4,11 참조) 기원전 8세기 초부터 7세기 초까지 번성했던 옛 니네베는 기원전 612년 몰락하고 맙니다. 오늘날 이슬람국가(IS)에 의해 황폐화한 이라크 북부 모술 인근 니네베 평원 지역에 위치해 있지요. 눈은 몸의 등불(11,33-36) 이어 예수님은 지극히 상식적인 그러나 그 뜻을 바로 파악하기에는 쉽지 않은 말씀을 연이어 하시는 것으로 루카는 기록합니다. 첫째는 ‘아무도 등불을 켜서 숨겨 두거나 함지 속에 놓지 않고 등경 위에 놓아 들어오는 이들이 빛을 보게 한다’는 말씀입니다.(11,33) 등불을 켜서 숨겨 두거나 덮어 두거나 하지 않는다는 것은 지극한 상식입니다. 왜 이런 상식적인 말씀하셨을까요? 여기서 ‘등불’은 솔로몬보다 더 지혜롭고 요나보다 더 위대한 예수님 자신을 가리킵니다. 등불이 가리키는 표징이 바로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등불을 덮어 두지 않듯이 등불이신 예수님, 빛이신 예수님을 가리지 말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등불로, 빛으로 여기면서도 그 등불을 다른 것으로 가려 버린다면 얼마나 어리석은 짓이겠습니까? 둘째 말씀은 ‘네 눈은 네 몸의 등불이다. 눈이 맑을 때에는 온몸이 환하지만, 성하지 못할 때에는 온몸도 어둡다’는 것입니다.(11,34) 하지만 더욱 깊이 새겨야 할 것은 이어오는 “그러니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 너의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없으면 등불이 그 밝은 빛으로 너를 비출 때처럼 네 몸이 온통 환할 것이다”(11,35-36)라는 말씀입니다. 첫째 말씀과 마찬가지로 여기서도 등불은 바로 예수님을 표상합니다. 그렇다면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 안에 예수님을 제대로 모시고 있다면, 즉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삶을 산다면(11,28 참조) 우리 온몸이 환하여 어두운 데가 없으리라는 것을 뜻합니다. 그러나 만일 우리가 빛이신 예수님을 모시고 산다고 하면서도 우리 몸이 환히 빛을 내지 못하고 어둡다면 그것은 우리가 실제로는 우리 안에 모시고 사는 것이 아님을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생각해 봅시다그리스도 신자라고 자처하면서도 우리는 주님께서 주시는 표징을 받아들이기보다는 우리가 원하는 표징을 하늘로부터 내려 주시기를 주님께 요구하며 살아가지는 않는지요? 또 주님을 모시고 산다고 하면서도 우리 자신의 공명심과 이기심으로 참 빛이신 주님을 가리고 있지는 않는지요? 하루를 마치면서 적어도 잠깐이라도 “네 안에 있는 빛이 어둠이 아닌지 살펴보아라”(루카 11,35)고 하신 주님 말씀대로 우리 자신을 살펴보는 시간을 가져보는 것은 어떻겠습니까? 백영민2017.12.20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0) 박승찬(엘리야) 가톨릭대학교 성심대학원장](//cpbc.co.kr/CMS/newspaper/2017/08/rc/692987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0) 박승찬(엘리야) 가톨릭대학교 성심대학원장기도와 묵상으로 ‘중세의 보화’ 전하는 인문학 명강사 박승찬 교수는 “하느님께서는 다가서면 물러나시고 멀어지면 기다려 주시는 분, 계속 따라가게 만드는 분”이라고 말한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철학 교수와의 인터뷰는 전혀 지루하지 않았다. 그는 오히려 앵커인 나에게 많은 질문을 던졌다. 살아온 인생은 더 역동적이었다. 삶 자체가 감동적인 철학 강의였고 끝나지 않은 드라마였다. 가톨릭평화방송 TV에서 절찬리에 방송됐던 ‘그리스도교 최고의 스승,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만나다’의 강사인 가톨릭대학교 성심대학원장 박승찬(엘리야) 교수다. 삶의 곡절(曲折)마다 하느님은 늘 새롭고 더 큰 은총을 주셨다. 다가서면 거기에서 멈추지 않고 이만큼 물러나서 또 기다려 주시는 분! 그래서 쫓아가게 만드시는 분이라고 말한다. 한 방향만 보고 걸어왔는데 하느님께서는 전혀 다른 길을 마련하고 기다리셨다. 기도하고 묵상하며 머나먼 과거인 중세(中世)에 숨어 있는 현재와 미래를 찾기 위해 시간의 벽을 넘어 공감의 다리를 놓는다. ‘왜’라는 물음을 수없이 던지며 시간 여행을 하는 그에게서 일상의 불행과 좌절, 근심을 넘어서는 진정한 행복과 치유의 길을 찾아본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 가톨릭평화방송 TV에서 강의를 마친 소회가 어떠세요. 어려운 내용을 들고 와서 시청자분들을 괴롭혀 드린 것이 아닌가 너무 걱정했는데요. 함께해 주신 제작진 모두 노력해 주셔서 잘 마쳤습니다. 특히 질문과 대답 형식으로 진행하게 돼서 시청자분들이 내용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 것 같습니다. 또 제작진께서 강의를 뒷받침하는 자료 영상이나 정리 내용까지 넣어 주셔서 딱딱한 강의를 매우 풍성하게 만들어 주셨고요. 박수를 보내드리고 싶습니다. ▶ 특별히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을 주제로 잡은 이유가 있나요. 아우구스티누스 성인은 ‘최고’의 수식어가 많이 붙는 분이지만 최고의 말썽꾼이기도 하셨죠. 젊은 시절엔 세속적인 성공과 부(富)에 매달렸던 분이었습니다. 그래서 약한 인간이 하느님의 사랑을 통해 어떻게 변화될 수 있는지를 보여 주셨던 성인입니다. 세속적인 것들만 사랑한다면 ‘당신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땅의 나라에 속한 사람’이라고 가르쳐 주셨고요. 사회 정의에 대해서도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100대 명강사에 선정되셨는데요, 강의와 책을 보면 ‘왜’라는 질문이 많습니다.우리는 정답을 쓰는 것에 익숙한 모범생형 공부를 했는데요. 독일 유학 시절 ‘왜’ 그런지 설명하게 하는 공부를 했습니다. 무엇인가를 배우려면 스스로 던지는 질문을 가져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중세 철학 전공자로서 중세의 보화를 나눠주는 것이 제 사명인데요. 전문적인 내용을 쉽게 풀어주는 것이 강의죠. 스스로 명강사라고 생각해 본 적은 없습니다. 명강의는 기교보다는 개성인 것 같은데, 일방적인 주입이 아니라 공감하는 것이 명강의의 첫째 조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대학에서 식품공학을 전공하고 신학대학에 가서 철학을 공부하셨어요.어릴 적 꿈은 사제였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 앞만 보고 달려가는 ‘모범생’이었죠. 아버님께서 ‘신학교에 가면 세상을 너무 모르니까 일반 대학을 마치고 나서도 사제의 꿈이 유지된다면 반대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식품공학을 공부한 뒤에도 성소에 대한 꿈이 커져서 신학교에 입학했고요. 교수 후보생으로 선발돼 유학까지 보내 주셨는데 사제의 꿈을 실현하지 못해 교회에 죄송한 마음이 있습니다. 나름대로 열심히 한 길을 걸었는데 계속 길을 바꾸는 사람이 돼 버렸어요. 제가 유학 갈 당시에는 실천적인 정의 실현이 매우 중요한 시기여서 이론적인 공부와 연구가 과연 제 소명인지를 생각하며 갈등했습니다. 부제 서품을 미뤄 두고 깊은 성찰을 했는데, 가까이 계셨던 하느님이 아무 말씀을 들려주지 않으셔서 사랑에 빚진 마음으로 신학과 철학을 공부하는 평신도 학자의 길을 가게 됐습니다. 학생들과 교감하는 순간, 강단이 마치 제대처럼 느껴진 적이 있습니다.▶ 독일에서 어렵게 박사 학위를 받고 오셨는데, 순탄하지 않으셨죠.유학을 떠난 지 10년 만인 1998년 돌아왔는데 한국은 놀라울 정도로 성장해 있었고 문명적으로는 발전했는데 세속적으로 잘살게 된 것과 정신적인 풍요로움 사이에는 격차가 컸습니다. 유학 갈 때 ‘복부인’이라는 단어가 돌아오니 ‘재테크’로 바뀌었더라고요. 당시 3개 대학을 열심히 돌면서 시간 강사를 했는데 한 달 받은 돈이 56만 원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 생계를 꾸려야 했기에 가톨릭중앙의료원 임상사목연구소에 취직했습니다. 그곳에선 중세 철학을 공부할 수 없어서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아내가 용기를 줘서 다시 시간 강사를 할 수 있었죠. 그러던 중 가톨릭대학교에서 중세 철학 교수 모집 공고가 나서 응모했고 하느님께서 놀라운 은혜를 주셔서 지금의 제가 있게 됐습니다.▶ 모태 신앙이신데, 교수님께 하느님은 어떤 분이세요.태어난 지 6일 만에 세례를 받았고요.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항상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고 자랐습니다. 유년기에 하느님은 편안한 분이셨고 사춘기 때는 생각이 많아서 까불었던 시기였고요. 청년기인 대학 때는 주일학교 교사와 청년 성서 모임을 했습니다. 지금의 하느님은 숙성된 포도주 같은 분이라고 할까요, 하느님은 계속 바뀌시는 것 같습니다. 저에게는 언제나 ‘더 크신 하느님(DEUS SEMPER MAJOR)’이신데요. 성장해서 다가가면 거기에서 멈추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은 또 한 걸음 물러나서 기다려 주시는 분입니다. 멀리 가지 않으시면서 더 큰 곳에 가 계신 하느님! 그래서 계속 따라가게 만드는 분이십니다.▶ 세례명이 눈물로 기도한 선지자 ‘엘리야’이신데요. 어떤 점을 본받고 싶으세요.엘리야 성인의 열정을 본받고 싶습니다. 제가 만난 ‘더 크신 하느님’ 체험도 엘리야 예언자에게 배운 것입니다. 하느님께선 전혀 새로운 희망으로 항상 은총을 베풀어 주시지요. 또 매혹적인 것은 교육자로서 엘리야의 모습인데요. 엘리야 예언자가 1년 전에 오셨다면 아마 광화문에 나가 크게 외치셨을 것입니다. 정의가 무엇인지 용기 있게 일깨워 주지 않으셨을까요.▶ 현재 우리 사회의 가장 큰 죄성(罪性)은 무엇이라고 보세요.금전 만능주의가 아닌가 합니다. 모든 것들을 돈을 중심으로 계산하는 모습인데요. 돈을 목적으로 소중한 인격체를 사용하는 행위가 가장 큰 죄성(罪性)이라고 생각하고요. 다른 민족의 문화에 대한 배타성도 큰 문제라고 봅니다. 약한 이들에게 열려 있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이방인 과부에게 찾아갔던 엘리야 예언자의 모습을 한 번 본다면 우리 사회에 어두운 면을 살펴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철학 강의가 교수님에겐 또 다른 선교의 방법인가요.서양의 사상과 문화 속에서 그리스도교 사상은 절대적이죠. 자유와 인권 등 인격체에 대한 개념은 모두 그리스도교에서 나온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 가치로 살아간다면 이보다 더 나은 선교는 없기에 역사적인 부분을 재조명하고 있습니다. 철학은 근원에 대한 질문이고 존재 자체를 부여해 주신 하느님에 대한 질문입니다. 삶의 의미와 목적에 대한 질문은 진정한 행복을 묻는 것입니다. 진정한 철학은 신학으로 나가는 준비이고요, 이것을 연결하기 위해 나름대로 노력하고 있습니다. ▶ 현재 대한민국에서 가장 필요한 ‘정의’는 무엇이라고 보세요. 아리스토텔레스와 성경에서 공통으로 이야기하는 ‘정의’는 ‘각자의 몫을 각자에게 되돌려주는 것’입니다. 풍부한 자연과 이성을 주신 하느님께서 풍부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주셨는데 굶주린 사람이 있다면 야단치실 것입니다. 부자와 라자로의 이야기처럼 고통받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신들의 소중한 몫을 돌려주는 것이야말로 우리 교회와 사회 전체가 지향해야 할 정의라고 생각합니다. 이웃에 대한 사랑이 없는 정의는 생떼이고요. 진정한 정의는 이웃에 대한 사랑과 배려, 특히 약자에 대한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취업을 준비하는 학생들에게 한 말씀 해 주세요.스펙과 성적을 생각하다 보니 자신을 키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많아서 안타깝습니다. 천편일률적인 취업 준비에 파묻혀 있고요. 방학 때 ‘학원 간다’는 학생은 저한테 야단을 맞습니다. 방학에는 다양한 체험을 하라고 권합니다. 더는 대기업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고유함을 찾아가는 것이야말로 더 소중하다고 생각합니다. ▶ 어떤 성경 말씀을 늘 마음에 담고 계십니까.“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슬퍼하는 사람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마태 5,3-4) 이 말씀이 이해가 되나요? 저는 처음엔 이해가 안 됐습니다. 그런데 가장 힘든 곳에 떨어졌을 때 비로소 이해했습니다. 더는 떨어질 수 없는 곳까지 내려갔을 때 이 말씀이 희망이 돼 줬습니다. ‘모두가 위안을 주지 않는다 해도 내가 너를 들어 올려 주겠다’는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떨어진 곳이 마지막이 아니라 고통은 지나가고 새로운 희망이 올 것이라는 하느님의 희망을 전해 준 말씀으로 저에게 깊숙이 들어와 있습니다. ▶ 앞으로 꼭 하고 싶은 일이 있으세요. 토마스 아퀴나스의 방대한 작품들을 번역하는 작업은 은퇴 후에도 계속할 생각이고요. 몇 년 전부터 새로운 숙제가 생겼습니다. 철학 상담을 전공한 아내와 함께 인문학적 소양을 접할 기회가 적은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고 스스로 희망을 찾아갈 수 있는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는데 불우한 청소년들에게 형과 누나가 되어줄 일꾼들을 길러내는 것입니다. 그 일은 지속해서 하려고 합니다. TV 방송 시각 : 8월 29일 오후 7시, 30일 오후 11시 cpbc2017.08.23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47) 12세기 ①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의 영성과 그 영향](//cpbc.co.kr/CMS/newspaper/2017/10/rc/699595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47) 12세기 ① -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의 영성과 그 영향성인의 영성을 관통하는 키워드 ‘하느님은 사랑이시다’ 시토회는 초기에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두스(Bernardus Claraevallensis, 1090~1153)가 시토회에 합류하면서 수도회를 튼튼하게 성장시킬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습니다. 특히 베르나르두스의 신학 사상과 영성이 수도회에 큰 영향을 끼치면서 시토회는 이후 훌륭한 수도자들을 배출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학자들은 베르나르두스를 ‘제2의 시토회 설립자’이며 ‘최후 교부’라고 서슴없이 이야기합니다.베르나르두스의 ‘사랑-신비체험’부르고뉴(Bourgogne) 귀족 가문 출신인 베르나르두스는 샤티용(Chatillon)의 생 보를(Saint-Vorles) 성당 학교에서 문법, 논리학, 수사학 등에 탁월한 재능을 나타냈습니다. 세상에서 출세하는 것을 꿈꾸기도 했으나 1107년 어머니의 죽음을 계기로 수도자의 삶을 선택했습니다. 1112년 베르나르두스는 가족, 친척, 지인들을 설득해 엄격한 수도 생활을 실천하는 시토회에 입회했습니다. 시토회 아빠스 스테파누스 하르딩(Stephanus Harding, 1059쯤~1134)은 1115년 베르나르두스와 12명의 수도자에게 클레르보 계곡에 수도원을 설립하도록 지시했습니다. 이후 클레르보 수도원은 발전해 모원(母院)의 위상을 갖추게 됐고 1125년 베르나르두스는 클레르보 수도원 아빠스가 됐습니다. 베르나르두스는 덕망 있는 수도자로서뿐 아니라, 이단과 맞서는 신학자, 신앙을 장려하는 설교가, 분쟁을 중재하는 외교가로서 활동했으며 신비체험가 및 관상가로도 널리 알려졌습니다.베르나르두스의 신학이자 영성의 핵심은 ‘하느님은 사랑이시다’라는 것이었습니다. 베르나르두스는 저서 「하느님을 사랑함(De diligendo Dei)」에서 인간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어가는 과정을 소개했습니다. 첫 번째로, 나약한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자신을 위해서 자신을 사랑합니다. 두 번째로, 여전히 인간은 이기적이지만 자신을 위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세 번째로, 하느님을 사랑하면서 하느님을 더 알게 된 인간은 드디어 하느님을 위해서 하느님을 사랑하게 됩니다. 네 번째로, 진정한 사랑의 단계에 다다른 인간은 하느님을 위해서 자신을 사랑하는 행복한 순간을 맞게 됩니다.또한 베르나르두스는 「아가」 12장을 86편으로 구성한 저서 「아가 강론(Sermones super Cantica Canticorum)」에서 입맞춤이라는 상징으로 사랑 개념을 통해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체험을 강조했습니다. 첫 번째로, 인간은 예수님 발에 입맞춤을 하는데, 이것은 영성 생활을 시작하는 회개의 단계입니다. 두 번째로, 인간은 예수님의 손에 입맞춤을 하는데, 이것은 영적 여정을 걸으며 영성 생활이 발전하는 단계입니다. 세 번째로, 인간은 예수님의 입에 입맞춤을 하는데, 이것은 영성 생활이 완전한 상태에 다다른 사람에게 허락되는 매우 드문 단계로써 「아가」의 출발점입니다. 따라서 베르나르두스도 ‘사랑-신비체험’을 언급하면서, 지나치게 지성적인 신학 활동으로 기우는 것보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관상 생활을 실천하는 것이 영성 생활에 큰 도움이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베르나르두스는 동정녀 마리아에 대한 특별한 신심을 갖게 되었습니다.성모 신심 형성에 영향 끼침베르나르두스의 제자라고도 하는 이니의 게릭(Guerric d’Igny, 1070/80~1157)은 베네딕도회 수도자들이 운영하는 투르네(Tournai) 주교좌성당 학교에서 공부했으며, 1123년 시토회 클레르보 수도원에 입회해 베르나르두스의 지도를 받았습니다. 1138년 시토회 이니(Igny) 수도원 원장으로 선출돼 죽을 때까지 원장 직분을 수행했습니다. 게릭은 54편의 강론을 남겼는데, 그중에 「아가」에 대한 강론도 한 편 있었습니다. 게릭은 관상 생활을 통해 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체험을 언급했으며, 그리스도론의 관점에서 성모 마리아에 관해서도 가르쳤습니다.베르나르두스의 협력자였던 로잔의 주교 아마데우스(Amadeusof of Hauterive, 재임 1144~1159)는 1139년부터 시토회 오트콩브(Hautecombe) 수도원 원장 직분을 수행했습니다. 아마데우스는 복되신 동정녀 공경에 관한 8편의 강론을 남겼습니다.잉글랜드에 제2의 베르나르두스 출현잉글랜드 노섬브리아(Northumbria) 왕국, 헥섬(Hexham) 귀족 가문 출신이며 ‘북쪽의 베르나르두스’로 불렸던 리보의 엘레드(Aelred of Rievaulx, 1110~1167)는 1134년 요크셔(Yorkshire)에 시토회 리보(Rievaulx) 수도원에 입회했습니다. 1142년부터 리보 수도원 수련장을 지낸 엘레드는 1143년 새로 설립된 링컨셔(Lincolnshire)에 레베스비(Revesby) 수도원 원장으로 선출됐습니다. 이후 엘레드는 1147년 리보 수도원 원장으로 선출돼 그곳에서 죽을 때까지 살았습니다.엘레드의 필력이 뛰어난 것을 발견한 베르나르두스는 엘레드에게 수도자들을 도울 수 있는 작품을 저술할 것을 권고했습니다. 엘레드는 저서 「애덕의 거울(Speculum Caritatis)」에서 수련기에 있는 수도자들을 위한 고행 지침을 제시했습니다. 이후 엘레드는 이 작품과 짝을 이루는 저서 「영적 우정론(De Spirituali Amicitia)」에서 예수 그리스도에게 흘러나오는 참된 우정을 강조했습니다. 또한 엘레드는 저서 「은둔자 규칙서(De Institutione Inclusarum)」에서 육신을 잘 다스려 악습을 끊는 방법을 소개했으며, 이를 돕는 묵상 방법을 언급했습니다.베르나르두스의 「아가 강론」을 이어서 완성시킴호일랜드의 길버트(Gilbert of Hoyland, ?~1172)는 링컨셔의 시토회 스위니스헤드(Swineshead) 수도원 원장이었습니다. 베르나르두스 사망 이후에 길버트는 베르나르두스가 완성하지 못한 「아가」 강론을 계속 이어갈 것을 요청받았습니다. 따라서 길버트는 「아가」 3,15,10에 대한 47편의 강론을 저술했습니다.포드의 존(John of Ford, 1140쯤~1214)은 1191년부터 잉글랜드 남서부 도싯(Dorset)에서 시토회 포드(Forde) 수도원 원장을 역임했습니다. 존은 베르나르두스가 시작하고 길버트가 이어갔던 「아가」 강론을 완결 지었습니다. 특히 존은 「아가」 58장을 다룬 120편의 강론을 남겼습니다. 다만 존이 잉글랜드 왕 존(John, 재위 1199~1261)에게 보수를 받았다는 이유로 교황으로부터 성사 집행 금지를 당해서였는지, 존은 사망 이후에 사람들에게 거의 잊혔습니다.프랑스에 이어 잉글랜드에서 시토회 초기 영성은 먼저 「아가」를 묵상하며 관상을 통해 인간 영혼과 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체험을 추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복되신 동정녀 마리아에 대해 특별한 공경을 드리는 신심이었습니다. 이외에도 베르나르두스는 12세기에 그리스도교 영성이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도록 다방면에서 여러 사람에게 많은 영향을 발휘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7.10.25
![[성경 속 도시] (50) 니네베](//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788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50) 니네베요나, 하느님 말씀 전해 멸망 막아 이라크 니네베 북부 지역의 한 작은 마을에 있는 예수상 앞에서 한 그리스도 신자가 기도하고 있다. 【CNS 자료사진】 니네베는 고대 아시리아 제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인구가 많았던 도시로 티그리스 강 동쪽, 오늘날의 모술 맞은편에 자리하고 있다. 지금은 폐허로 남아있지만 남아 있는 유적을 통해 짐작컨대 큰 규모의 성벽에 둘러싸인 거대한 도시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니네베 성은 면적이 넓어 성을 한 번 도는 데 3일이 걸린다고 한다. “요나는 주님의 말씀대로 일어나 니네베로 갔다. 니네베는 가로지르는 데에만 사흘이나 걸리는 아주 큰 성읍이었다”(요나 3,3). 최초의 거주지는 신석기 시대의 작은 움집으로 기원전 7000년 쯤으로 거슬러 올라갈 만큼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니네베가 성경에 처음 등장하는 것은 창세기에서다. 노아의 홍수 이후 노아와 그 자손들은 세상에 흩어져 살게 된다. 노아의 둘째 아들인 함의 후손 중 에티오피아가 니므롯을 낳았는데, 그는 주님 앞에도 알려진 용맹한 사냥꾼이었다. 그는 막강한 권력을 가졌기 때문에 여러 곳에 큰 도시를 건설했는데 아시리아로 가서 세운 도시 가운데 하나가 바로 니네베다(창세 10,8-12).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군사 18만 5000명을 이끌고 예루살렘을 치러왔으나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들이 모두 죽어 주검뿐이었다. 하룻밤에 몰살되었고 산헤립은 간신히 목숨을 보전해 니네베로 돌아가 니스록의 신전에서 예배드렸는데, 결국 그는 두 아들에게 죽임을 당했다. “그날 밤 주님의 천사가 나아가 아시리아 진영에서 십팔만 오천 명을 쳤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그들이 모두 죽어 주검뿐이었다.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은 그곳을 떠나 되돌아가서 니네베에 머물렀다”(2열왕 19,35-36). 니네베가 성경에서 주목을 받는 것은 역시 요나 예언자 이야기 때문이다. 니네베 성은 물질적으로 번창하여 생활이 윤택해지자 범죄가 많아져 하느님 심판의 대상이 되었다. 그래서 하느님은 요나를 보내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게 했으나 요나는 주님을 피하여 타르시스로 달아나려고 길을 나서 야포로 내려갔다. 이에 하느님은 풍랑을 일으켜 결국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3일을 지내며 회개했다. 이후 요나가 니네베로 가서 하느님 말씀을 전하면서 왕을 비롯해 모든 백성이 회개해서 멸망을 피하게 되었다.“그러자 니네베 사람들이 하느님을 믿었다. 그들은 단식을 선포하고 가장 높은 사람부터 가장 낮은 사람까지 자루옷을 입었다. 이 소식이 니네베 임금에게 전해지자, 그도 왕좌에서 일어나 겉옷을 벗고 자루옷을 걸친 다음 잿더미 위에 앉았다”(요나 3,5-6). 그리고 기원전 606년에 선지자 나훔과 스바니아의 예언대로 니네베는 바빌론에 의해 멸망했다. “너를 보는 자마다 너에게서 달아나며 “니네베가 망하였다! 누가 그를 가엾이 여기겠느냐?” 하고 말하리니 내가 어디서 너를 위로해 줄 자들을 찾으랴?”(나훔 3,7) 니네베 지역의 산업은 중세부터 직물로 유명했으며 바그다드 다음가는 대도시로 이라크 경제의 중심지이기도 하다. 특히 1939년 북부 교외에서 유전이 발견된 후 석유개발기지와 교통 요지로 급속히 발전했으나 이라크 전쟁으로 다시 쇠퇴했다. 지금은 치안 문제로 쉽게 갈 수 있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다. 니네베는 이라크의 다른 도시들보다 사원이 많고 고대 아시리아의 수도답게 많은 유적이 있다. 현재 이곳에서 발굴된 많은 고고학적 유물은 영국 대영박물관에 소장돼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6.23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중동 (3) 1600년 신앙을 지켰다... 시리아 교회](//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0874_1.0_titleImage_1.jpg)
[고통받는 교회를 도웁시다] 중동 (3) 1600년 신앙을 지켰다... 시리아 교회차별·박해 딛고 무너진 성당 다시 짓는 그 날까지 ‘전진’ 종교를 넘어 모든 시리아 청년들에게 ‘아버지’처럼 시리아 내전의 아픔을 얘기할 때 독일 출신의 예수회 선교사 프란츠 반들라트 신부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1966년 시리아에 도착해 반세기 가까이 그 나라를 사랑했다. 이슬람교도들까지 그의 가난과 겸손, 단순함에 반해 ‘살아 있는 성인’이라고 칭송했다. 젊은이들은 아버지처럼 따랐다. 그는 일 년에 몇 차례 젊은이들을 이끌고 국토 대장정 길에 올랐다. 매번 수백 명이 참가했는데, 거기에는 무슬림 젊은이도 많았다. 프란츠 신부와 길을 걷는 젊은이들에게 종교적 차이는 하등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는 하느님과 인간, 사랑을 얘기했다. 또 시리아의 전통과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심어 줬다. 그리스도교 젊은이들에게는 특히 1600년 신앙 전통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그의 별명은 ‘계속 전진’(keep going). 지쳐서 땅바닥에 주저앉은 젊은이들을 보면 그들 어깨를 툭 치면서 항상 그렇게 말했다. 그리고 앞장섰다. 그는 극단주의 무장 조직이 홈스(Homs)로 진격했을 때 피란을 가지 않고 홀로 성당을 지켰다. “그리스도인만 도우려고 여기에 있는 게 아니다”며 성당 문을 열어놓고 그리스도인과 무슬림 가리지 않고 먹을 것을 내줬다. 하지만 2014년 4월 7일, 그의 선한 행동을 시샘하던 ‘악마들’이 성당에 난입해 그를 살해했다. 76회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있을 때였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반들라트는 나의 형제”라며 “형제의 죽음에 깊은 고통을 느끼며, 그 고통은 내 형제처럼 고난을 겪으면서 죽어가는 시리아 국민들을 떠올리게 한다”(4월 9일 일반알현 중)고 애도했다. 아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의 굳건함 프란츠 신부를 아버지처럼 여겼던 여성 마지드 알자 홈(27)씨는 그의 죽음이 이해가 되지 않아 눈물조차 나지 않았다고 말했다. 전쟁통에 사촌 동생과 많은 친구를 잃었지만, 아버지 신부의 죽음이 가장 큰 슬픔으로 남아 있다고 했다. “무장 조직의 포위가 곧 풀릴 것이라는 소문이 돌아 잔뜩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날아온 소식은 사랑하는 사람의 부음이었다. 신부님 가르침대로 참 그리스도인으로 살고 싶어 홈스의 난민구호센터에서 일하고 있다.”그는 성 바오로 구호센터에서 일한다. 교황청 산하 재단 고통받는 교회 돕기(ACN) 지원으로 난민들에게 식량과 의약품을 전달하고 있다. 그는 “그리스도인은 총을 들지 않고, 무슬림을 차별하지 않는다”며 “그래서 난민들이 교회가 운영하는 구호센터로 몰려온다”고 말했다. 또 “요즘은 전기가 24시간 들어오니까 천국이 따로 없다”며 내전이 끝나가는 현지 분위기를 전했다. 마지드씨와의 만남은 취재진에게 행운이었다. 시리아에 들어가기 힘든 상황이라 막막했는데, 그가 국경을 넘어 레바논 베이루트까지 달려왔다. 3명이 택시를 150달러에 전세 비용을 나눠냈다고 했다. 그가 부담한 50달러(5만 6000원)는 요즘 시리아에서 남성의 한 달 봉급과 맞먹는 액수다.“홈스 일대에서는 알카에다 분파인 알 누스라(Al Nusra)가 맹위를 떨쳤다. 4개월 전에도 전투가 있었다. 포위와 고립, 사랑하는 이의 죽음과 통곡은 일상이다. 포위된 동안 그리스도인 여성도 히잡(이슬람 여성이 쓰는 헤어 스카프)을 써야 했다.”시리아는 이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만 해도 복음의 땅이었다. 4세기 은수자 성 마론(St. Maron)의 영향으로 아시리아 제국의 후손들은 모두 그리스도교를 받아들였다. 7세기 이후 중동이 서서히 이슬람화하는 중에도 그들은 정체성을 잃지 않았다. 1600년 동안 이어진 차별과 박해, 심지어 대량학살에도 쓰러지지 않은 이들이 아시리아 그리스도인들이다. 아랍 세계에서 아시리아인은 중동에 남아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통했다. 지금도 그렇게 통한다. 마지드씨 소개로 최대 격전지 알레포에서 온 그리스도인 난민 엘리에(26)씨를 만났다. 대학에서 건축학을 전공한 엘리에씨는 “알레포는 집과 건물 80%가 무너졌다”며 “고향에 돌아가서 집과 교회를 다시 짓고 싶다”고 말했다. “우린 그나마 살아 있기에 희망을 얘기할 수 있는 것”이라고 덧붙였다. 마지드씨가 웃으면서 끼어들었다. “맞아. 우린 ‘계속 전진’하는 거야.” 김원철 기자 wckim@cpbc.co.kr 인터터뷰: 안토니에 쉬베르 주교(시리아 라타키아 교구장) “이 광대한 이슬람 땅에서 누가 복음을 지키고, 전할 수 있겠습니까.”라타키아교구(마로니트 가톨릭)의 안토니에 쉬베르 주교가 자리에 앉자마자 단도직입적으로 반문했다. 그러면서 “아랍어를 사용하는 중동의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의 땅에 남아 복음을 증거할 수 있도록 관심을 가져 달라”고 호소했다. 그는 기자를 만나기 위해 아침 일찍 차를 몰아 국경을 통과해 베이루트에 막 도착한 참이다. 그는 지난해 5월 교구 내 해안도시 타르투스가 IS 공격을 받은 이튿날 “난민을 돕던 신부와 신자들이 지금은 (사망한) 신부 시신을 묻고 있다”며 참담한 상황을 전해준 바 있다. 그는 시리아 내전은 정치적 이익과 지역 패권을 노린 진흙탕 싸움일 뿐 종교와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고 강조했다. 과거 서구 열강이 갈등의 씨앗을 뿌렸고, 무기와 오일을 바꾸고, 여전히 지역 패권을 잃지 않기 위해 각기 다른 셈법으로 발을 걸치고 있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전쟁은 수많은 원인의 결과다. 유럽 지도자들이 모인 자리에서 ‘국제사회가 마음만 먹으면 당장에라도 시리아 내전을 끝낼 수 있는데, 끝낼 준비가 돼 있느냐’고 물었더니 그들은 ‘아직(Not Yet)’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힘없는 이들이 그들 싸움의 고통을 계속 떠안고 산다.”이어 “병원과 학교가 가장 시급하다”며 “우리 교구는 지난달에도 ACN로부터 5만 달러(5500여만 원)를 받아 100명의 수술비를 지원했다”고 말했다. 또 “교육만이 시리아에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며 “학교를 지으려는 이유는 무슬림 아이들을 개종시키려는 게 아니라 이슬람 사회에 그리스도교의 가치관을 심어 주려는 것”이라고 말했다. “가령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는 말씀은 복음 이전에 인성교육과 평화의 기초 원리다. 극단주의자들은 그런 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 그래서 종교와 이념이 다른 사람을 존중하지 않고 타도 대상으로 본다. 아이들이 복음적 가치를 알아야 시리아의 평화가 가능하다.”그는 “행동이 말보다 큰 목소리를 낸다는 것을 알기에 난민들을 묵묵히 돕고 있지만 어려움이 많다”며 “한국 교회가 시리아의 미래(교육 사업)를 건설하는 일에 힘을 보태 달라”고 요청했다. 김원철 기자 cpbc2017.11.07

“말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사랑합시다”제1차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11월 19일) 담화문 해설 연중 제33주일인 11월 19일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포한 제1차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이다. 교황이 왜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을 선포했는지, 이 날의 의미가 무엇인지를 교황이 발표한 담화를 통해 짚어본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그리스도인이 주님께서 베푸시는 조건 없는 사랑에 응답할 때 주님과 이웃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다고 말한다. 사진은 2014년 8월 18일 명동대성당에서 평화와 화해를 위한 미사를 집전하러 입당하다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손을 잡고 위로하는 프란치스코 교황. 가톨릭평화신문 DB “가난한 이들은 문젯거리가 아닙니다. 그들은 복음의 본질을 우리 삶에서 받아들이고 실천하기 위해 노력할 때 필요한 자원입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이 파도바의 성 안토니오 사제 학자 기념일인 지난 6월 13일 발표한 제1차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 담화는 이 문장으로 끝을 맺는다. 교황은 ‘말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사랑합시다’라는 제목의 담화를 통해 한국 천주교회가 평신도 주일로 지내는 연중 제33주일인 11월 19일을 ‘제1차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로 선포했다. 사랑에는 변명 있을 수 없어교황은 담화 발표에 앞서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마무리하는 2016년 11월 20일 그리스도 왕 대축일에 발표한 교황 교서 「자비와 비참(Misericordia et Misera)」에서 이미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 제정의 필요성을 언급한 바 있다. 자발적으로 가난의 삶을 살며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파한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1182~1226)를 교황명으로 채택하고 가난하고 소외된 이웃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온 교황이 가난한 이들을 위한 주일을 제정한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행보다.총 9개 단락으로 이뤄진 담화는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1요한 3,18)라는 요한복음 구절로 시작한다. 그러면서 교황은 사랑에는 변명이 있을 수 없고, 예수님처럼 우리가 이웃을 사랑할 때 예수님을 본받아야 하며, 가난한 이웃을 사랑할 때에 특히 그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느님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을 뿐 아니라 우리를 위해 당신 목숨까지 내놓으셨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교황은 그리스도인들이 주님께서 베푸시는 조건 없는 사랑에 응답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러려면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주님의 은총을, 자비로운 사랑을 온전히 받아들일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만 우리가 의지와 감정을 모두 바쳐 주님과 이웃을 사랑할 수 있다고 교황은 강조한다. 이런 식으로, 자비는 우리의 삶을 형성하고 열정을 불러일으켜 도움이 필요한 형제자매를 위해 봉사하게 한다고 교황은 말한다.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봉사해야교황은 “재산과 재물을 팔아 모든 사람에게 저마다 필요한 대로 나누어 주곤 하였다”(사도 2,45)는 성경 말씀을 예로 들며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가장 중요시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일깨운다. 그러면서 도움이 필요한 이들에게 봉사하라고 요청한다. “나의 형제 여러분, 누가 믿음이 있다고 말하면서 실천이 없으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그러한 믿음이 그 사람을 구원할 수 있겠습니까? (…) 그러한 믿음은 죽은 것입니다.”(야고 2,5-6; 14-17 참조)교황은 이어 다양한 방법으로 가난한 이들을 위해 일생을 바친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음을 상기시키면서 그 가장 대표적인 예로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을 꼽는다. 교황은 성인이 나병 환자를 만나 그에게 자선을 베푼 것으로 그치지 않고 그와 함께 지낸 것을 언급하면서 이 만남이 성인에게 회심의 전환점이 됐다고 말했다. 교황은 이어 프란치스코가 예수님께 시선을 계속 맞추고 있었기에 가난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보고 섬길 수 있었다면서 “우리가 역사를 바꾸고 진정한 발전을 도모하고자 한다면, 가난한 이들의 외침을 듣고 그들을 소외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가난한 이들에게는 자신들의 삶에서 복음적 가난의 의미를 잃지 않도록 하라고 당부했다. 교황은 자선 행위가 우리를 사람들의 필요에 민감하게 한다고 했다. 아픔의 원인인 부당함을 알게 해 가난한 이들과 진정으로 마주하고 나눔이 삶의 방식이 되도록 해야 한다고 했다. 이러한 삶은 우리가 주님의 몸을 우리 손으로 직접 만지는 것과 마찬가지기에 기쁨과 영혼의 평화를 가져온다. 따라서 교황은 우리가 진실로 주님과 만나기를 원한다면 성세성사 중에 성체를 모시는 것처럼 가난한 이들의 고통 받는 몸에서 주님의 몸을 만나야 한다고 말했다. 부의 축적이 가난의 원인또 소수 특권층의 철면피한 부의 축적이 가난의 원인이라고 지적한 교황은 가난이 야비한 이익에 착취당하고 권력과 돈의 음모에 짓눌린 형제자매와 어린아이의 얼굴을 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면서, 모든 형태의 빈곤에 삶과 사회에 대한 새로운 비전으로 응답해야 한다고 역설했다.자비의 희년을 끝내며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을 제안한 배경에 대해 교황은 교회와 모든 곳의 선한 사람들을 초대해 도움과 연대를 호소하는 것이라고 했다. 무엇보다 세계 가난한 이들의 날이 버리고 낭비하는 문화에 맞서 만남의 문화를 받아들이는 날이 되길 희망했다. 구체적인 계획의 중심에는 ‘기도’가 함께해야 한다고 말한 교황은 ‘주님의 기도’가 가난한 자의 기도임을 잊지 말라면서, 이 기도를 통해 우리 모두 상호 수용의 기쁨을 누리기 위해 모든 이기주의를 극복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교황은 주교와 사제 등 모든 성직자, 모든 수도자와 단체, 협회, 봉사자들이 함께 이날을 전통으로 만들어 세상 복음화에 구체적으로 이바지할 수 있게 되기를 희망한다고 밝혔다.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백영민2017.10.18
![[성경 속 도시] (49) 베들레헴](//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665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9) 베들레헴아기 예수 탄생한 작은 마을 이스라엘의 성지순례 코스 중 가장 성스러운 순례지 중 하나는 베들레헴이다. 베들레헴은 히브리어로는 ‘빵의 집’, 아랍어로는 ‘푸줏간’을 의미하는데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멀지 않은 7~8km 위치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차량으로 20분 남짓 거리에 있는 베들레헴은 통행이 자유롭지 못하다. 베들레헴으로 들어가려면 이스라엘군 초소의 검문을 받아야 한다. 검문을 통과하면 이스라엘이 설치한 회색빛 높은 콘크리트 장벽이 가로막고 있다. 이 장벽을 지나가다 보면 왠지 모를 긴장감과 함께 서글픔이 밀려온다. 베들레헴은 해발 750m에 있는 높은 곳이지만 비옥한 땅으로 일찍이 사람들이 정착해 살았다. 베들레헴은 역사가 50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갈 정도로 오래된 고대 도시다. 베들레헴은 구약에서 야곱의 아내 라헬의 무덤에 등장한다. “라헬은 이렇게 죽어, 에프라타 곧 베들레헴으로 가는 길가에 묻혔다”(창세 35,19). 그리고 이곳은 이스라엘의 제2대 왕인 다윗왕의 고향(1사무 16,1-16)으로 유다인에게는 성스러운 땅으로 여겨졌다. 유다인들은 이스라엘을 구원해줄 메시아가 장차 베들레헴에서 탄생할 것으로 기대했다. “그러나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 그의 뿌리는 옛날로, 아득한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미카 5,1). 룻기의 배경 역시 베들레헴이다. 룻의 자손인 다윗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거기서 사무엘에 의해 기름 부음을 받았다(1사무 16,1-13 참조). 한때 베들레헴은 필리스티아 사람들에게 점령되기도 했는데, 다윗의 용사 중 세 명이 적진을 뚫고 이곳의 우물물을 떠서 다윗에게 바친 것은 유명한 이야기다. “다윗이 간절하게 말하였다. ‘누가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저수 동굴에서 물을 가져다가 나에게 마시도록 해 주었으면!’ 그러자 그 세 용사가 필리스티아인들의 진영을 뚫고, 베들레헴 성문 곁에 있는 저수 동굴에서 물을 길어 다윗에게 가져왔다”(2사무 23,15-16). 이스라엘 남북 왕국이 분열된 뒤 르호보암이 예루살렘을 방어하기 위해 요새 성읍을 세우기도 했다(2역대 11,6). 그러나 1000년 동안 베들레헴은 예루살렘 근교에 있는 작은 마을로 남아 있었다. 신약 성경도 예수님께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셨음을 선포한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마태 2,1-2). 이처럼 아기 예수 그리스도가 탄생지인 작은 베들레헴은 전 세계 그리스도인들에게 중요한 성지가 되었다. 베들레헴은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1993년 오슬로 평화 협정 후 1995년 12월 팔레스타인 자치 지역이 되어 현재는 팔레스타인 자치정부의 영향권에 있다. 주민들은 팔레스타인인으로 대부분 무슬림이다.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 탄생 기념 성당’은 현재 가톨릭 교회와 그리스 정교회, 아르메니아 교회가 삼등분하여 관리하고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6.16
![[NIE-신문으로 크는 신앙]성경 속 동방박사, 그들은 누구일까](//cpbc.co.kr/CMS/newspaper/2015/12/rc/611395_1.5_titleImage_1.jpg)
[NIE-신문으로 크는 신앙]성경 속 동방박사, 그들은 누구일까[카드뉴스]성탄 구유 장식을 보면 아기 예수님과 성모님, 요셉 성인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죠. 그중 색다른 옷을 입고 있는 사람들이 동방에서 온 박사들이랍니다. 동방의 세 박사가 아기 예수님이 계신 곳을 찾아 경배한 것을 기념하는 ‘주님 공현 대축일’을 맞아, 이들은 어떻게 예수님을 찾아왔으며, 또 어디서 온 누구인지 함께 알아봅시다. 왼쪽부터 차례대로 멜키올, 가스팔, 발타살성경 속 동방 박사아기 예수님을 찾아 예루살렘에 온 동방 박사 세 사람은 가장 먼저 유다 왕국의 헤로데 임금을 만났어요. 그리고는 이렇게 물었죠.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헤로데 임금은 놀랐어요. 자신의 왕권을 위협하는 사람이나 존재는 모두 처치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죠. 놀란 헤로데는 수석 사제와 율법 학자를 불러모아 그 아기가 태어날 곳이 어디인지 물어보았어요. 그들은 예언자가 기록한 대로 베들레헴에 있을 것이라 답했답니다. 헤로데는 그 아기 또한 없앨 생각으로 박사들을 베들레헴으로 보내면서 이렇게 말했어요. “가서 그 아기에 관하여 잘 알아보시오. 그리고 그 아기를 찾거든 나에게 알려주시오. 나도 가서 경배하겠소.”헤로데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난 박사들은 동방에서 본 별이 멈춘 자리에 있는 집으로 들어갔어요. 그곳엔 아이를 낳은 마리아와 아버지인 요셉, 그리고 포대기에 싸여 구유에 놓인 아기 예수님이 계셨죠. 박사들은 아기를 보고 기뻐 땅에 엎드려 경배했어요. 또 보물 상자에 담아온 황금과 유향, 몰약을 예물로 바쳤죠. 그리고 그날 밤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자기 고장으로 돌아갔답니다.어디서 온 누구?동방에서 온 세 박사, 이들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먼저 어디서 왔는지부터 살펴봅시다. 이들은 팔레스타인 지역과 가까운 동쪽 나라에서 왔어요. 바빌론이나 페르시아(이란)에서 온 점성술사라고 보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지요.실제로 베들레헴에 있는 예수탄생기념성당에는 페르시아인 옷을 입은 동방 박사 모습이 그려진 모자이크가 있어요. 그래서 600여 년이 흐른 후에 성당을 부수기 위해 찾아온 이슬람군들이 조상들 모습이 담긴 이 모자이크를 보고 감동해 오히려 허물지 않고 참배했다는 얘기도 전해지고 있답니다.근데 왜 박사를 점성술사라 부르느냐고요? 이때의 ‘박사’는 대학에서 공부해 학위를 받은 사람이 아니예요. 꿈의 해석자 또는 학식이 뛰어난 이를 뜻하는 그리스어 ‘마고스’를 번역한 것이죠. 고대 페르시아에는 천체 현상을 관찰해서 인간의 운명을 점치고, 꿈을 해석하는 특별한 능력을 갖춘 마기(Magu, Magi)라는 사제 계급이 있었어요. 마술이라는 의미의 영어 단어 ‘magic’도 이 단어에서 나왔죠.예수님의 생일 선물흔히 동방 박사는 3명으로 알려졌지만, 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바친 예물이 3가지라는 점을 미뤄 사람들이 짐작한 것이라고 해요. 8세기경에는 이들에게 발타살ㆍ가스팔ㆍ멜키올이란 이름까지 붙였는데, 이것 또한 정확하진 않아요.중요한 건 박사들이 가져온 예물의 의미예요. 황금과 몰약, 유향은 당시 동방에서 가장 가치 있는 것들이었어요. 그래서 이방인들이 태양신에게 바치는 예물이기도 했죠.△황금은 위대한 임금이신 예수님 △유향은 거룩한 사제직 △죽은 사람에게 바르는 약초였던 몰약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등을 상징해요.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이사 60,6)는 예언이 이뤄진 것이랍니다.그러면 오늘날 우리는 아기 예수님을 위해 어떤 선물을 드릴 수 있을까요. 거꾸로 어떤 선물을 드려야 예수님께서 가장 기뻐하실까요. 그것은 값비싼 황금이나 유향, 몰약이 아닌 소외된 사람을 돕는 마음, 예수님 가르침을 열심히 따르려는 노력이 아닐까요. 성탄 시기를 마무리하기 전에 아기 예수님을 위한 나만의 선물을 하나씩 마련해보기로 해요.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문채현2015.12.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