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삼천년기 한국 교회 키워드는 연대·말씀·선교새천년복음화연구소 설립 10주년 기념 심포지엄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을 맞이한 제삼천년기의 한국 교회’ 제삼천년기를 살아가는 오늘날 한국 교회는 어떠한 방향으로 나아가야 할까. 과학 기술의 발전과 물질 만능주의가 극대화된 현대 사회에서 한국 교회가 해야 할 일은 무엇일까. 새천년복음화사도직협회 산하 새천년복음화연구소(소장 조영동)는 설립 10주년을 기념해 17일 서울 명동 가톨릭 회관에서 ‘제2차 바티칸 공의회 폐막 50주년을 맞이한 제삼천년기의 한국 교회’를 주제로 심포지엄을 열고 구원관과 성경, 선교 차원에서 한국 교회 복음화를 전망하는 자리를 마련했다.기조강연을 맡은 정순택(서울대교구) 주교는 “제삼천년기 한국 교회의 사명과 과제는 남북한 통일”이라며 “젊은이들과 함께 한반도 평화 통일을 위해 교회가 무슨 일을 시작해야 할지 고민하고 찾아 나가야 한다”고 말했다. 이와 함께 세계 교회 안에서 아시아와 중국을 위한 한국 교회 역할을 강조하며 “중국 교회와 아시아 교회 복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발제자로 나선 곽승룡(대전가톨릭대 총장)ㆍ백운철(가톨릭대 신학대학장)ㆍ김준철(주교회의 사무처장) 신부는 제삼천년기를 살아가는 신자들이 실천적 신앙인으로 거듭날 것을 주문했다. 곽 신부는 ‘참여와 연대’를, 백 신부는 ‘말씀’을, 김 신부는 ‘선교와 복음화’를 제삼천년기 한국 교회의 과제로 제시했다(발표 내용은 오른쪽 참조).이날 심포지엄에는 박문수(프란치스코, 한국가톨릭문화연구원 부원장) 박사, 전영준(가톨릭대)ㆍ김유정(대전가톨릭대) 신부가 논평자로 나섰다. 이와 함께 심상태(한국그리스도사상연구소 소장) 몬시뇰, 이재룡(서울 혜화동 주임)ㆍ조재형(새천년복음화사도직협회 담당) 신부 등을 비롯해 수도자, 신자 300여 명이 참석했다. 조영동(요한 세례자) 소장은 “지금 우리가 이 세상에 하느님 존재하심을 밝히는 일이야말로 다른 무엇보다도 중요한 우리의 사명”이라면서 “이 심포지엄이 신자들 마음에 불꽃이 타오르도록 자극해 마침내 세상이 진리 자체이신 사랑하는 목자를 만날 수 있도록 하고 싶다”고 말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제삼천년기 신앙 구원론과 한국 교회의 복음화 전망 및 과제(곽승룡 신부)신앙 구원론은 인간 구원 문제를 탐구하는 신학의 한 분야로 예수 그리스도 구원 업적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구원론은 예수 그리스도 강생론과 파스카 신비가 그 핵심을 이루고 있다.특별히 삼천년기 신앙 구원론은 강생 구원론(제일천년기)과 희생 구원론(제이천년기)을 바탕으로 참여연대 구원론이 실현돼야 한다. 이를 기초로 한국 사상과 문화, 역사와 정서에 가까운 토착화 가능성을 연구하고 실현해야 한다. 곧 그 구원관은 구원 경륜 안에서 자신을 비움으로써 스스로 희생하여 다른 사람들을 구하고, 어려움에 처한 사람을 생명에로 구하는 데 자신을 아끼지 않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 문화와 성경 구원 경륜에서 구원관을 대별해 본다면, 많은 점에서 한국 교회의 토착화에 밑거름이 될 것으로 믿는다. 한국 교회의 복음화 전망 및 과제도 우주 그리스도론 통합연대의 구원관 실현에 있다. 기존의 구원관에서 탈피해 통합과 연대, 참여의 구원관이 실행되도록 연구하고 준비할 몫은 교회 구성원, 하느님 백성의 몫이라 생각한다. 예를 들어 사목 일꾼들의 연대사목, 신자들에 대한 일대일 맞춤식 신앙영성 상담 사목(고해성사와 신앙상담의 전문화), 아시아 교회를 위한 성령에 깊이 이끌리는 한국 교회 복음화 사명과 역할을 연구하고 실현해야 할 몫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제삼천년기 한국 회의 성서 사도직의 과제-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과 교회 문헌의 한국적 적용(백운철 신부)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가톨릭 교회 안에 가져온 위대한 변화 가운데 하나는 성경을 읽고 공부하고 나누는 성서운동을 전 세계적으로 촉발시켰다는 사실이다. 공의회 이후 학자들은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고 주석하는 작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신자들은 번역 성경을 열심히 읽고 나눔으로써 하느님 말씀의 바람이 가톨릭 교회 안에 세차게 불기 시작한 것이다. 계시헌장 「하느님의 말씀」은 공의회 이전 성경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집약하고 그 이후에 성경 관련 회칙들이 발표될 수 있도록 영감과 자극을 주는 분수령 역할을 수행했다. 특히 베네딕토 16세 교황이 2010년 발표한 교황 권고 「주님의 말씀」은 하느님 본질과 교회 안에서의 말씀 연구와 활용 그리고 말씀의 사회적 역할에 이르기까지 공의회의 계시헌장을 보완하고 현대화하는 가장 포괄적인 전망과 내용을 담고 있다. 한국 교회의 성서 사도직의 역사와 과제는 △성경 번역 △성경 연구 △다양한 성서 모임 △성경 교육 기관의 설립 △말씀 중심의 다양한 사도직 △말씀 중심의 본당 사목으로 나눠 볼 수 있다. 이에 따른 한국 교회의 시급한 성서 사도직의 과제는 본당 사목을 말씀 중심으로 이끄는 일이다. 또 가톨릭대 신학대에 STL(교황청이 인정하는 석사과정) 과정을 개설해 성경 교사를 양성하고 이 교사들이 성서 사도직에서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교구 차원의 정책적 배려가 있어야 한다. 「교회의 선교 활동에 관한 교령」 반포 50주년을 맞이하는 제삼천년기 한국 회 진단(김준철 신부)「교회의 선교활동에 관한 교령」(이하 「선교 교령」)은 교회가 펼치는 선교 활동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그 방향을 올바로 설정해 준 문헌이다. 그러나 현대에 들어 선교 활동이 약화됐다. 이에 바오로 6세 교황은 1975년 「현대의 복음 선교」를 반포해 복음화 개념을 새롭게 했다. 복음화란 단순히 그리스도교로 개종시키는 것만이 아니고, 모든 개인과 집단, 그들의 활동, 가치관, 생활양식, 구체적 생활환경, 문화 등을 복음의 가치에 맞게 바로 잡는 것을 의미한다. 선교 측면에서 한국 천주교 신자들은 복음 선포에 있어 소극적이었다. 또한 ‘한국인의 종교와 종교의식’ 설문조사(한국 갤럽, 2014) 결과에서 드러나듯 신자들은 천주교 4대 교리(천주존재, 강생구속, 삼위일체, 상선벌악)에 대한 확신이 강하지 않았다. 거기에 더해 오늘날 기성 종교에 대한 실망과 거부감은 뉴에이지 운동, 기(氣)수련 운동 등 대체종교 등장으로 이어졌다. 「선교 교령」 반포 50주년을 맞이하는 한국 천주교회는 「선교 교령」 정신 대로 적극적으로 선교 사명을 수행하며 이 사회를 복음화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선 △올바른 하느님 이해 △올바른 인간 이해 △자연과 화해 △올바른 가치관 확립 △사랑의 공동체 확산 △천주교 이미지 강화 △사회 봉사활동 강화 △참된 그리스도인상 확립 △선교의식 촉진에 힘써야 한다. 평화신문2015.10.20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2번 ‘주 하느님…’ (상)회개의 기도 소리 듣고 가사 덧붙여 「가톨릭성가」 2번 ‘주 하느님 크시도다’는 가톨릭 교회가 사용하는 개신교 곡 중 가장 유명한 곡이 아닐까 싶다. 개신교 찬송가 제목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How Great Thou Art)다. 우리 성가책에는 작곡자가 스튜어트 하인(Stuart K. Hine, 1899~1989)으로 표기돼 있으나, 하인은 이 곡을 영어권 나라들에 소개한 음악가일 뿐이다. 본래 이 선율은 스웨덴의 민요에서 유래한 것으로, 작사가는 스웨덴 시인이자 저술가인 보베르그(Carl Gustav Boberg, 1859~1940)이다. 그는 당시 스웨덴 개신교 신문 「진리의 증거자」(Sanningsvittnet) 발행인으로 활동하면서 약 60여 편에 이르는 시와 성가 가사를 쓴 인물이다. 그가 1886년 3월 ‘오 위대하신 하느님’(O Store Gud)이라는 제목의 시를 발표했는데, 1888년 스웨덴의 어느 교회에서 이 시가 민속 선율과 합쳐지면서 처음 불리게 됐다. 이듬해 그가 발행하던 신문에 최초로 악보가 등장했으며, 후에 미국으로 망명한 스웨덴 음악교사이자 오르가니스트였던 에드그렌(Adolph Edgren, 1858~1921)에 의해 피아노와 기타 반주가 덧붙여지기도 했다. 이 곡은 처음에는 3/4박자였는데 1894년 출판된 「스웨덴 선교학회 노래집」에서 4/4박자로 수정돼 실렸다. 러시아의 마틴 루터로 불리는 프로카노프(Ivan S. Prokhanov, 1869~1935)에 의해 러시아어로 번역돼 1927년 「크리스천의 노래」라는 성가책에 실리기도 했다. 영어 번역판으로는 존슨(E. Gustav Johnson)과 하인(Stuart K. Hine)의 두 가지 번역이 있으나, 하인의 것이 더욱 유명해지게 된다. 사실 이 곡이 세계적으로 퍼져나가게 된 데에는 하인 자신의 역할이 컸다. 그는 독일어로 된 가사를 처음부터 직접 들은 것이 아니라 우크라이나에서 어느 여성이 러시아어로 부르던 노래를 듣고 이 성가를 번역하게 됐다. 1931년 하인은 폴란드 접경 지역인 우크라이나의 한 마을에 선교사로 가게 되었는데, 하인 부부가 묵었던 집 주인 부부가 그 지역 유일한 개신교 그리스도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집 주인 부인 루디밀라는 몇 년 전 러시아 병사가 놓고 간 「성경」을 통해 더듬더듬 성경을 읽을 줄 아는 사람이었다. 어느 날 하인 부부가 외출 뒤 집에 도착할 즈음 밖에서 루디밀라 부인이 자신의 집에 묵고 있던 사람들에게 요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처형 부분을 읽어 주는 소리를 듣게 된다. 그리고 이어 성경을 듣던 사람들이 죄를 뉘우치며 하느님을 부르고 회개의 기도를 외치는 소리를 들었다. 하인은 밖에서 그 소리에 귀 기울이다가 가사 한 절을 써서 그가 번역한 ‘주 하느님 크시도다’ 노래 가사에 덧붙였다. 그 후 몇 개의 절이 더해지면서 본래의 독일어 가사와 다소 다른 영어 가사의 노래가 탄생하게 되는데, 이 성가가 2번 성가의 유래가 되는 개신교 찬송가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인 것이다. 이 찬송가는 영국 선교사들이 식민지로 선교를 나갈 때 그곳에서 가르쳐주기 시작하면서 전 세계로 퍼져 나갔고, 미국에서는 쉐아(George Beverly Shea)라는 미국 찬송가 가수를 통해 유명해졌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백영민2016.01.13
![[생활 속의 복음] 인간으로 태어나 알게 된 하느님](//cpbc.co.kr/CMS/newspaper/2016/06/rc/639552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인간으로 태어나 알게 된 하느님연중 제11주일(루카 7,36-8,3)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어느 날 지구라는 별에 왔습니다60년도 더 된 과거의 어느 날, 나는 지구라는 별에 태어났습니다. 자신이 인간이 되었다는 걸 모른 채, 인간으로서 살기 시작하였습니다. 기억할 수 없는 과거 어느 날, 내가 인간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태어난 지구에 내가 적응하는 것은 지금도 결코 쉽지 않습니다. 수없이 많은 세포로 이뤄진 내 몸 안에 조금이라도 이상한 일이 발생하면 때로는 치명적이기도 합니다. 내가 정상적인 인간으로 자라난다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미 남들이 정해 놓은 복잡하고 규격화된 삶의 기준에 적응해서 살아야 합니다. 말도 배워야 하는데, 인간이 사용하는 말은 동물들의 세계에는 없는 것입니다. 갈수록 섬세한 말을 알아들어야 하고 말할 줄 알아야 했습니다. 또 부모님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이 나를 사랑한다는 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사랑받을 줄도 알아야 합니다. 쉬운 일인 것 같지만, 어른이 되어도 사랑받을 줄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런 일들에 무관심하면서 일생을 마치는 불행한 사람들도 적지 않습니다. 어느 날 보니, 친구들도 나에게 경쟁 상대가 되어서 다가왔습니다. 이와 함께 다른 사람들을 사랑해야 한다는 것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매우 어려운 문제입니다. 평생 노력해도 잘 안 됩니다. 사춘기가 되어서 이성을 사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지만 많은 경우가 사랑한다고 하면서 사랑하기보다는 자기의 욕심을 채우는 것일 뿐입니다. 이성을 비롯한 다른 사람들을 진정으로 사랑하지 않으면, 그래서 모든 사람이 이기주의로 살아가게 된다면 모두 죽어 버리고 맙니다. 인간이 죽는 것뿐만이 아니라 산천초목이 모두 사라져 버릴 것입니다. 그럼에도 쉽게 채워지지 않는 인간의 욕망은 끝이 없습니다. 지구라는 별에는 하느님이 많이 있습니다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하느님(神)이 있습니다. 한국에도 많은 하느님이 존재합니다. 특히 무교의 영향을 많이 받고 사는 한국인의 역사 속에 많은 신이 등장합니다. 중국에 가도 그렇습니다. 거대한 자연의 위력 앞에 노출된 일본은 더욱 그렇습니다. 종교의 나라라고 할 수 있는 인도에 가면 수많은 신이 그려져 있습니다. 아프리카의 신들, 아메리카 대륙의 신들도 무수합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 많은 신이 등장합니다. 이렇게 많은 신이 세상에 있다는 것은, 그만큼 인간이 신을 그리워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나 근대 이후에 신이 인간을 소외시킨다고 주장하는 철학자들이 많이 나타났습니다. 신이 없다고 주장하면서 20세기에 정치권력을 장악한 유물론적 공산주의는 끔찍하게 수많은 인간을 파괴하였습니다.하느님은 어떤 분인가?나는 어릴 적에 어머니와 함께 성당에서 세례를 받았습니다. 라틴어로 하는 미사에 끌려다니고, 사춘기에는 스스로 성당에 갔습니다. 그때에 예수라는 분이 서서히 저에게 다가왔습니다. 온 세상에 예수님은 잘 알려져 있습니다. 인도의 간디는 이렇게 유명한 말을 남기기도 하였습니다. “나는 예수를 사랑한다. 그러나 그리스도교인은 싫어한다.”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 잘 이해하지 않으면, 예수님과 성모님은 절에 모신 부처님과 보살님 정도로 여겨지고 맙니다. 교회에 나와서 알게 된 신이나 세상에 많이 모습을 드러낸 신이나 마찬가지가 되고 맙니다. 즉, 대단한 위력을 발휘하시는 하느님, 잘못한 사람들에게 벌을 주시고 고통을 가하시는 하느님, 열심히 빌면 복을 내려주시고 화를 면하게 하시는 하느님으로 잘못 이해될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은 볼 수 없으니 아무렇게나 하느님에 대해서 적당히 둘러대면 됩니다. 그래서 세상에는 종교가 많습니다. 그런데 성경을 통해서 알려진 하느님은 전혀 새롭습니다. 물론 성경이 기록된 그 시대와 그 지역 문화의 영향을 받기는 했지만, 내용은 완전히 다릅니다. 낯선 하느님, 그러나 한없이 자비로우신 하느님교회는 예수님이 하느님이시라고 선언합니다. 성부로부터 파견된 아드님이십니다. 그분의 모습은 아버지 하느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복음에 보면(루카 7,36-50) 예수님의 모습은 매우 파격적입니다. 그 고장의 유명한 창녀가 예수님께 행하는 행위들은 참으로 예사롭지 않게 보입니다. 이 여인과의 만남에서 드러난 하느님은 인간이 예상하는 바와는 전혀 다르게, 많은 빚을 탕감해 주는 하느님, 인간에게 한없이 자비로운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인간은 빚진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하느님 사랑으로 말미암아 창조의 세계에서 주인처럼 살게 되고, 하느님의 모상으로 만들어졌을 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자녀가 되어서 신성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참고 1베드 1,4). 인간을 일방적으로 사랑해주고 그치는 하느님이 아니라, 인간으로부터 큰 사랑을 받아야 하는 하느님이라는 것입니다. 연인 사이처럼, 인간과 사랑을 주고받고자 하는 하느님입니다. 올해 온 세상의 신자들은 프란치스코 교황님과 함께 이 자비로우신 하느님을 마음에 새기면서, 하느님을 닮아서 자비로운 사람이 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cpbc2016.06.08
![[NIE-신문으로 크는 신앙] 천상의 소리...그레고리오 성가](//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7719_1.1_titleImage_1.jpg)
[NIE-신문으로 크는 신앙] 천상의 소리...그레고리오 성가 왜 ‘그레고리오’라는 이름이 붙었나요?그레고리오 성가는 64대 교황인 성 그레고리오 (Gregorius Magnus, 540?~604)의 업적에 따라 그의 이름에서 유래했습니다.초기 그리스도교 성가에는 지역별로 로마 성가를 비롯해 갈리아(프랑스와 라인강 서부) 성가, 모자라빅(스페인) 성가, 고대 베네벤토(이탈리아 남부) 성가, 켈트(북서부 유럽) 성가 등이 산재해 있었습니다. 그레고리오 대교황은 이러한 성가들 가운데 ‘로마 성가’와 ‘갈리아 성가’를 중심으로 나머지를 합하고 전례력에 따라 정리해 「안티포나리움」(응답송, 후렴을 모은 성가라는 뜻)을 편찬했습니다. 가톨릭 교회 초기 성가집인 셈입니다.그레고리오 대교황은 이뿐만 아니라 체계적인 전례음악 교육을 위한 노래 학교인 ‘스콜라 칸토룸’도 세웠습니다. 성가를 체계적으로 정리했을 뿐 아니라 전례 음악의 정착에 힘을 기울인 것입니다. 이러한 공로로 성가에 ‘그레고리오’라는 교황 이름이 붙게 된 것이지요. 그레고리오 성가 덕분에 로마 교황의 주도로 서방 교회의 전례적 통일이 이루어지게 됐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전 세계 어느 지역의 성당에 가도 그레고리오 성가를 노래하고 들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흥미로운 이야기도 전해옵니다. 베드로라는 부제가 그레고리오 교황의 말씀을 받아 적을 때, 교황의 어깨 위에 앉아 있던 비둘기 모습의 성령이 교황의 귀에 성가 멜로디를 들려줬다고 합니다. 한편 학계에서는 서기 750~810년께 센 강과 라인 강 사이 지역에서 그레고리오 성가 목록이 집대성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 전신이 ‘고대 로마 성가’라는 점에는 이견이 없습니다.그레고리오 성가의 특징은 무엇인가요?첫째, 단선율의 성악곡(Vocal music)이라는 점입니다. 둘째,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전례 성가로서 미사와 시간 전례(성무일도)에서 사용됐습니다. 셋째, 가사는 대부분 성경의 내용, 특히 ‘시편’을 주로 사용하고 있으며, 라틴어로 돼 있습니다. 넷째, 리듬이 자유롭고 가사와 밀접한 관계를 갖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음정과 리듬보다는 가사 전달에 목적이 있습니다. 교회 예절을 돕는 가사를 더 강하게 잘 표현하기 위한 것이죠. 다섯째, 8개의 교회 선법(그레고리오 성가를 부르는 8가지 방법)을 따르고 있으며, 여섯째로, 성가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선포하는 ‘기도하는 노래’라는 점입니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전례헌장」 116항에는 “성교회는 그레고리오 성가를 로마식 전례의 고유한 성가로 인정한다. 따라서 같은 조건이라면 이 성가가 전례 행위(의식)에서 첫 자리를 차지한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 안에서 그레고리오 성가의 위치를 가늠할 수 있는 구절입니다. 그레고리오 성가의 흥망그레고리오 성가는 이미 9세기에 서유럽에서 권위를 인정받았습니다. 서기 800~1050년에 ‘선 없는 악보’로 기록됐습니다.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고 밑에 가사를 쓰는 오늘날의 악보와는 완전히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선 없는 악보는 가사만 있었고, 노래 음정이나 리듬은 부르는 이들이 암기해야 했다고 합니다.그러다 1050~1200년께 접어들면서 ‘선 있는 악보’로 기록됩니다. 이러한 악보들을 그레고리오 성가의 ‘고대수사본’(Paleographia)이라고 부릅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는 선 없는 악보, 곧 가사만 적혀 있는 악보가 가장 큰 권위가 있다고 합니다. 선 없는 악보를 통해서는 가사만 볼 수 있고 멜로디와 창법은 스승에게서 전수받음으로써 악보로 규격화되지 않은 멜로디와 리듬을 생생하게 이해할 수 있었거든요.선 있는 악보를 통해선 멜로디의 음높이를 올바로 파악할 수는 있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레고리오 성가의 원천적인 표현력은 상실되기도 했습니다. 1200년 이후 사각 악보가 서서히 등장하면서 그레고리오 성가는 매우 거칠고 메마르게 기록되죠. 그러면서 1500년 후반에 와서는 그레고리오 성가가 ‘죽음의 시대’를 맞게 됩니다. 스승에게 창법의 감칠맛까지 전수받아 익혔던 성가를 음표로 기록하면서 표현력을 상실해 쇠퇴하게 된 것이죠.그러다 1800년대에 와서 프랑스 솔렘(Solemes) 수도원을 중심으로 다시 그레고리오 성가를 부흥하려는 노력이 이뤄져 마침내 부활의 시대를 맞게 됩니다. 특히 고대수사본을 중심으로 그레고리오 성가가 복원됐습니다. 그레고리오 성가를 위해 현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악보(집)는 「그라두알레 로마눔(Graduale Romanum)」(1975)과 다른 두 수사본의 악보를 첨가한 「그라두알레 트리플렉스(Graduale Triplex)」(1979)가 주로 사용됩니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미사 때면 성당에서 오르간 소리가 울려 퍼집니다. 청소년 미사 때 생활 성가를 부를 때도 있지만, 가톨릭 성가의 기본은 ‘그레고리오 성가’입니다. ‘그레고리오 성가? 들어보긴 한 것 같은데’ 하는 분들 있으시죠? 로마 가톨릭 교회에서 미사를 비롯한 일곱 성사와 모든 경신 행위에 사용하는 고유 성가인 그레고리오 성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문채현2016.10.26
![[신앙단상] 신학원 풍경](//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7421_1.1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신학원 풍경이백만 요셉(캄보디아 하비에르학교 홍보대사) “교수님…, 예수님은 왜 결혼을 하지 않으셨나요? 어떤 소설에는 부인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있던데….” 공관복음 수업 시간이었다. 열성 학구파 자매님이 손을 번쩍 들더니,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게 다소 생뚱맞은 질문을 던졌다. 교실 안이 갑자기 조용해졌다. 교수님이 심호흡을 한번 내쉬고 나서 입을 열었다. “그게 그렇게 궁금하세요?”그 질문에 그 대답! 학생들 모두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교실 안에 조성됐던 묘한 긴장감이 화롯불에 눈 녹듯 사라졌다.자매님이 몰라서 이런 질문을 했을까? 믿음이 약해서 물었을까? 아니다. 더 확실히 알기 위해, 더 강한 믿음을 갖기 위해, 보다 근사한 논리를 습득하기 위해, 저명한 신학박사이자 신부인 교수님에게 용기를 내어 질문을 던진 것이다. 교수님은 자매님의 의도를 정확히 꿰뚫고 있었던 듯 ‘준비된 대답’을 술술 풀어나갔다. 고대 근동의 결혼 풍습, 예수님 독신의 의미, 이단들의 주장과 그에 대한 반박. 교수님은 설명을 마친 다음, 한마디 거들었다. “이번 학기 학생들은 질문이 무척 날카롭습니다.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요!” 학생들이 또 한 번 까르르 웃었다. 분위기를 살리기 위한 덕담인 줄 뻔히 알면서도 다들 좋아했다. 마치 초등학교 교실 풍경을 연상케 했다. 교수님들도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진다. 기초적인 개념을 이해하기도 어려운 철학 시간이었다.“신학을 배우려 오셨지요?” “네~!” “그런데…, 딱딱한 철학을 왜 공부해야 하지요?” “…….”다들 할 말을 잊은 채 교수님만 쳐다봤다. 곧이어 교수님의 설명이 이어졌다. 한국 최고 신학자들과의 만남, 자유로운 질문, 진지한 토론, 그 속에서 깊어가는 신앙심…. 이 모든 것들이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지난해 3월 가톨릭교리신학원에 입학했다. 주변 친구들이 아직도 의아해 한다. 왜 그곳에 갔느냐고 묻곤 한다. 마땅히 해 줄 말이 없다. “지은 죄가 많아서…”라고 눙쳐버린다. 1학년 때 구약성경을 가르쳤던 안소근 수녀님은 본인의 저서 「성경 펼쳐 읽기시편」에 저자 사인을 해주면서 이런 글을 써주었다. “주님이 얼마나 좋으신지 너희는 보고 맛 들여라.” 그 친구들이 이 ‘맛’을 어떻게 알겠는가.신학원에 모인 40여 명의 학우는 누구인가.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의 백전노장들이다. 대부분이 환갑을 넘나드는 나이다. 손주를 둔 할머니 할아버지도 적지 않다. 무엇을 바라고 여기에 왔는가. 승진? 출세? 돈? 권력? 명예? 어느 것도 아니다. 인생 2라운드를 ‘그분’과 함께 보람있게 살고 싶은 마음, 그것뿐이다. 얼마나 선한 집단인가. 올해 개학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전례에 관한 한 엄격하기 그지없는 수산나 자매님(전례부장)이 그날따라 살갑게 말을 걸어왔다. 뭔가 중요한 역할을 맡기려는 모양이었다. “요셉 형제님, 공동체 미사 때 보편 지향 기도 좀 해 주셔요! 신학원 학우들을 위해서….” “네!” 대답은 쉽게 했지만, 기도문 작성은 쉽지 않았다. 한참 고민했다. 시편 42장이 번뜩 떠올랐다. 학우들 모두가 영적인 갈증에 목말라하는 암사슴들 아닌가! “은총의 주님, 암사슴이 시냇물을 그리워하듯, 가톨릭교리신학원 학우들이 당신의 은총을 목말라하며 이곳 작은 배움의 공동체에 모였습니다. 불쌍한 저희가 당신의 가르침을 온전히 깨달아, 졸업할 수 있도록 은총의 단비를 내려 주소서.” cpbc2016.03.30
 2세기 ① - 사도 교부 시대 영성 생활](//cpbc.co.kr/CMS/newspaper/2016/12/rc/665837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6) 2세기 ① - 사도 교부 시대 영성 생활그리스도로 무장한 그리스도인 공동체 유배지에서 기적을 행한 죄로 닻에 묶인 채 흑해에 빠져 순교한 클레멘스 1세를 그린 피에르레오네게치 작 ‘성클레멘스의 순교’. 그동안 우리는 신약 성경을 통해서 초세기 그리스도인 영성 생활을 엿보았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는 초세기 말엽에서 2세기 중엽 사이에 위치한 사도 교부 시대 영성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물론 사도 교부 시대 작품들은 그렇게 많지 않지만, 그나마 남아있는 작품들을 통해서 지금으로부터 2000여 년 전에 그리스도인이 어떻게 영성 생활을 실천했는지 가늠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사도 교부는 열두 사도들의 직제자이었거나 사도들의 가르침을 직간접적으로 받았습니다. 사도 교부는 지역 교회 주교로서 사목 활동을 하면서, 신자들을 격려하고 신자들 사이에 발생한 문제를 해결하려는 사목적인 저술 활동도 겸했습니다. 로마의 교황 클레멘스(Clemes Romanus, ?~96/97), 안티오키아의 주교 이냐티우스(Ignatiua Antiochenus, 105?~135?), 스미르나의 주교 폴리카르푸스(Polycarpus Smyrnensis, ?~167), 및 히에라폴리스의 주교 파피아스(Papias Hierapolitanus, 60?~120?)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한편 비슷한 시기에 익명이나 가명 혹은 잘 알려지지 않은 저자가 저술한 몇몇 작품들도 사도 교부 시대에 속한 작품으로 간주되어 이 당시 상황을 짐작하는 데 도움을 줍니다. 「열두 사도들의 가르침-디다케(Didache ton dodeka apostolon)」, 「바르나바의 편지(Epistula Barnabae)」, 「헤르마스 목자(Pastor Hermae)」 및 「솔로몬의 송가(Odae Salomonis)」 등이 이에 해당합니다.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사도 교부 시대 영성의 첫 번째 특징은 그리스도 중심적인 영성입니다. 예수님을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았던 유다교와는 달리 예수님을 구세주 그리스도로 믿고 고백하는 그리스도교는 일부 나타났던 유다교화의 굴레에서 벗어나기 위해 당분간 교회 분위기를 하느님 중심보다 그리스도 중심으로 이끌어 가야 했을 것입니다.“우리의 자녀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교육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들은 주님과 함께 순수한 사랑의 힘과 겸손의 능력을 배워야 하고 순수한 정신으로 그분 안에서 거룩하게 살고 있는 모든 것을 구원하시는 그분께 대한 아름답고 큰 경외심을 가진 자가 되어야 합니다.”(클레멘스, 「고린토인들에게 보낸 편지」 21,8)“우리가 지금까지도 유다교를 따라서 살아간다면 이는 우리가 은총을 받지 않았다고 고백하는 것이 됩니다. 하느님과 가까운 사람들인 예언자들도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살았습니다.”(이냐티우스, 「막네시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8,1~2)“누가 여러분에게 유다교에 관하여 가르치려 할 때 여러분은 귀를 기울이지 마십시오. 할례받지 않은 사람에게서 유다교에 관해 듣는 것보다 할례받은 사람에게서 그리스도교에 관해 듣는 것이 더 낫습니다.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에 관해 말하지 않는다면, 둘 다 제게 있어서 사람들의 이름을 적어놓은 묘비나 죽은 자들의 묘소에 불과합니다.”(이냐티우스, 「필라델피아인들에게 보낸 편지」 6,1)전례 중심적인 영성두 번째 특징은 전례 중심적인 영성입니다. 예루살렘 모교회 신자들은 공동체 안에서 빵을 떼어 나누어 먹으면서 날마다 성찬례를 거행했습니다. 이후 주님의 복음이 전달된 모든 곳에서 그리스도인은 성찬례를 거행하며 전례 안에서 그리스도의 현존을 실현하고 체험했습니다. 그러나 교회 안에서 발생한 이단자들은 성찬례와 성찬례를 통해 오는 주님의 은총을 거부했습니다. 따라서 사도 교부들은 각지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성찬례 안에서 그리스도와 일치할 수 있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했을 것입니다.“이 빵조각이 산들 위에 흩어졌다가 모여 하나가 된 것처럼, 당신 교회도 땅끝들에서부터 당신 나라로 모여들게 하소서. … 주님의 이름으로 세례받은 이들이 아니면, 아무도 여러분의 감사(례)에서 먹지도 마시지도 말아야 합니다.”(「디다케」 9,4~5)“심지어 천상 존재들, 영광의 천사들 그리고 눈에 보이는 통치자들과 볼 수 없는 통치자들이라도 그리스도의 성혈을 믿지 않는다면 그 또한 심판받을 것입니다. … (예수 가현 이단자들은) 성체와 기도를 멀리합니다. 저들은 성체가 우리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살임을 고백하지 않습니다. 성체야말로 우리의 죄를 (사하기) 위해서 수난하신 그리스도의 살이요, 아버지께서 자애로이 일으키신 그리스도의 살인데도 말입니다.”(이냐티우스, 「스미르나인들에게 보낸 편지」 6,1; 7,1)“그 한 덩이 빵으로 말하면 불사의 약입니다. 죽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살게 하는 해독제입니다.”(이냐티우스, 「에페소인들에게 보낸 편지」 20,2)수덕 생활 실천의 영성이 시대 영성의 세 번째 특징은 수덕 생활을 실천하는 영성입니다. 이미 바오로 사도도 나쁜 악습을 끊어버리고, 좋은 덕행을 증진시키도록 수덕 생활 실천을 권고한 바 있습니다(갈라 5,13-26 참조). 특히 사도 교부들은 수덕 생활이 이념 논쟁과 이단사상을 극복하기 위한 좋은 방법이라고 여겼습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를 본받아 성덕을 완성하기 위하여 수덕 생활의 여정을 걸어야 했을 것입니다.헤르마스는 저서를 환시, 계명, 비유의 세 부분으로 구성했는데, 거의 모든 부분에서 덕행과 악습을 비교 나열하면서 윤리 도덕적인 실천을 권고했습니다(「목자」, 셋째 환시; 여섯째~여덟째, 열두째 계명; 아홉째 비유 참조). 도덕적인 완성 없이는 그리스도의 성덕을 본받을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가 의로운 것에 뜻을 둔다면 그의 영예는 하늘에 쌓이고, 그가 하는 모든 일은 분명히 주님의 마음에 들 것이다. 그러나 마음속으로 악한 것에 뜻을 두고 있는 이들, 특히 이 세상 것을 얻기 바라고 부를 자랑하며, 앞으로 선을 위해 온 힘을 기울이지 않는 이들은 스스로 죽음과 속박을 부른다.”(「목자」, 첫째 환시, 1,8)폴리카르푸스도 ‘의로움’이라는 주제로 글을 쓴다고 밝히면서, 그리스도인의 윤리 도덕적인 삶을 강조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이 덕들을 갖추고 있다면, 그는 의로움에 관한 계명을 완성한 것입니다. 사실 사랑을 갖춘 사람은 모든 죄에서 멀리 떨어져 있습니다.”(「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 3,3) 따라서 그는 여러 곳에서 악습과 덕행 목록을 비교 나열했습니다.(「필리피인들에게 보낸 편지」 2,2; 4,3; 5,2;6,1; 12,2 참조)새로운 종교적 신념을 확립하려면, 이념적인 무장뿐 아니라 실천이 따라야 합니다. 그러므로 사도 교부들은 그리스도로 무장한 그리스도인이 공동체로는 전례 안에서, 개인으로는 수덕 생활 안에서 영적 여정을 걸어야 한다고 강조했던 것입니다. 백영민2016.12.28
![[생활 속의 복음]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 말씀](//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6842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예수님의 마지막 당부 말씀전교주일 (마태 28,16-20)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마태오 복음서 맨 마지막에 나오는 주님의 말씀을 교회는 매년 전교주일에 듣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계속해서 우리에게 같은 말씀을 하십니다. 주님은 십자가 죽음에서 부활하셔서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는 분이십니다. 전교 또는 복음화의 내용을 이 말씀에 따라서 이해해 보고자 합니다.부활하신 예수님을 뵙고 그분께 엎드려 절하던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의심하고 있었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괘씸하게 생각해 심하게 나무라셨을 텐데 예수님은 전혀 그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그들의 부족한 신앙을 탓하지 않으시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이 제자들과 함께 복음화 사명을 계속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 저에게 얼마나 많은 위로가 되는지 모릅니다! 우리 모두 더러는 십자가와 부활의 스승 예수 그리스도에게 얼마나 많은 의심을 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의심보다 더 심각한 문제는 하느님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무관심입니다. 그런데도 주님은 우리를 동업자로 여기면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시고 계십니다.먼저 예수님께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한을 받은 분임을 밝히십니다. 광야의 유혹 때, 악마는 세상의 모든 나라와 그 영광을 보여주며, 그것들을 주겠다고 속삭이면서, 자기에게 엎드려 경배하도록 유혹했습니다(마태 4,9-10). 그러나 예수께서는 하느님만을 섬기면서 십자가 죽음까지 묵묵히 나아가시고, 마침내 부활하셔서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천지의 모든 권한을 받으셨음을 선포하십니다. 우리도 예수님과 하나가 되어 파스카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스러운 권한에 참여하는 자유로운 사람들이 됐습니다.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기도를 겸손하고 진실하게 바쳐야 하겠습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유혹에 빠지지 말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제자로 삼아라.” 종교인을 만들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예수님을 스승으로 모시고 그분의 말씀을 가슴 깊이 새기고 실천하고, 그분의 모범을 뒤따르는 제자가 되도록 하라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명령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을 하는 교회의 사명을 말하고 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마음의 상처를 받았다는 표현을 쉽게 합니다. 그래서 듣기 싫은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는 예언자의 사명을 수행하는 것을 쉽게 포기하려는 유혹에 쉽게 빠집니다.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을 제자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시는 마음의 표시로 가난한 사람들을 우선해 선택하셨습니다. 성경을 읽으면 누구나 쉽게 발견할 수 있는 사실입니다. 오늘 교회에서 가장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하느님은 모든 사람을 구원으로 초대하고 계십니다. 그런데 가난한 사람들은 쉽게 교회에 올 수 없습니다. 교회가 먼저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 교회는 용기가 필요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따뜻한 마음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오늘날 교회가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아갈 수 있는 용기와 지혜를 주십사고 성령께 간절히 기도합니다.“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어라.” 달리 표현하면 ‘삼위일체 하느님의 존재 안에서 사람들을 새롭게 탄생시켜라.’ 왜냐하면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새로운 탄생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도 하느님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더 설득력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래서 인간은 더욱 비참해집니다. 그러나 이렇게 살다가 사라지도록 사람들을 내버려둬서는 안 됩니다.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의 생명으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의 자녀로서 존엄하게 살아가도록 해야 합니다. 하느님에 대한 신앙을 고백하고 인간이 서로 신뢰하면서 살 줄 알게 해줘야 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에, 사랑하는 사람이 돼 하느님을 사랑하고 인간을 사랑할 줄 알도록 해줘야 합니다. 인간으로 태어나 하느님 자녀로서 새로운 탄생을 가져오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이 세상은 하느님의 나라로 완성돼야 합니다. 그래서 모두 빛과 생명 속에서 살고, 진리와 참된 자유 속에서 살고, 기쁨과 사랑이 넘치는 세상이 지금 시작돼야 합니다. 이것을 위해서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셨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보라, 내가 세상 끝날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다.” 평화신문2016.10.19
![[다시 보는 최양업 신부] (18) 선교사 측근 양반 신자들의 행패에 맞서다](//cpbc.co.kr/CMS/newspaper/2016/12/rc/665691_1.0_titleImage_1.jpg)
[다시 보는 최양업 신부] (18) 선교사 측근 양반 신자들의 행패에 맞서다선교사들의 양반 중심의 교회 운영, 불화의 불씨 돼 리델 주교가 그린 빗속의 가마 행렬. 페레올 주교를 비롯한 서양 선교사들은 사목 여행 중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양반 신자와 건장한 신자와 동행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최양업 신부는 성경 속 초대 교회처럼 신자들이 살아가길 소망했다. 반상(班常)의 구분도, 차별도 없이 모두가 평등하며 신앙 안에서 화목하게 그리스도의 사랑을 실현하는 공동체를 희망했다. 그래서 최 신부는 신앙 때문에 모든 것을 버리고 산속에서 교우촌을 이루고 사는 신자들을 좋아했다. 최 신부는 이들을 ‘열심한 신자’라고 불렀다. “신자들은 거의 모두 다 외교인들이 경작할 수 없는 험악한 산속에서 외교인들과 아주 떨어져서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신자들은 거의 다 교리에도 밝고 천주교 법규도 열심으로 잘 지키고 삽니다. 그러나 평야 지대인 고향에서 친척들과 외교인들 사이에 섞여 사는 신자들은 대체로 교리에 무식하고 신앙생활도 열심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좀 더 열심한 신자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죄악과 세속의 모든 관계를 끊고 산속으로 들어가 담배와 조를 심으며 살아갑니다.”(1850년 10월 1일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그러나 당시 조선 교회 현실은 최 신부의 바람과 정반대로 흘러갔다. 신자 간 갈등과 불만이 극심해 와해할 조짐을 보였다. “우리 포교지의 상태는 신자 중에서 신분의 계급 차이로 서로 질시하고 적대시하므로 분열이 일어나서 큰 걱정입니다. 그리스도교의 신덕과 형제애가 부족하고, 계속되는 논쟁과 암투와 증오로 신자 공동체가 와해하고 비건설적으로 소모되고 있습니다. 이 폐단을 시정할 무슨 대책은 없는지요? 그대로 내버려두었다가는 우리 포교지에 큰 손실을 초래할 것입니다.”(1854년 11월 4일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서양 선교사들의 양반 중심 교회 운영이 갈등의 불씨였다. 최양업 신부 귀국 전 조선 교회는 페레올 주교와 다블뤼 신부가 사목했다. 페레올 주교는 서울과 경기도를, 다블뤼 신부는 충청도와 경상도, 전라도 지역을 맡아 사목했다. 최양업 신부 귀국 직후인 1850년 초 두 선교사는 모두 병에 걸려 있었다. 특히 다블뤼 신부의 병세가 위중해 최 신부가 그의 사목지를 대신 맡았다.박해시대 교우촌을 찾아가는 서양 선교사들의 모습은 어떠했을까. 박해자와 비신자들의 눈을 피해 상복을 입고 한밤중 외딴길을 이용해 몰래 교우촌을 찾아가는 선교사의 모습을 일반적으로 상상한다. 하지만 현실은 사뭇 달랐다. 양반 신자와 완력을 쓰는 이들을 대동해 말과 가마를 타고 요란 법석하게 다녔다. 선교사들이 박해자의 눈을 피해 안전하게 사목 여행을 하기 위해선 이들의 든든한 보호가 필요했기 때문이다.“우리는 기품을 하나도 잃지 않고 어디든지 양반 행세를 하며 다녔어. 그날부터 우리는 계속 우리가 가는 주막마다 방을 차지하고 있던 사람들을 몰아내었지. 그러면 어떤 때는 그 가엾은 사람들은 추위에 몹시 떨어야 했어. 아이들을 데리고 밖에서 자야 하니까. 난 마음속으로 그들을 불쌍하게 여겼지. 그렇다고 어떻게 하겠어? 이렇게 하는 것이 불행한 만남을 피하고 우리를 알아보지 못하게 하는 유일한 방법인걸.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항상 그야말로 세르베로(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지옥을 지키는 머리가 셋 달린 개)로 행동했지. 엄한 말투로 말하고 가끔은 협박도 하고, 조선의 양반들이 평소에 하는 대로 했어.”(다블뤼 주교, 1848년 8월 동생에게 보낸 편지)문제는 선교사들의 양반 수행원들이 교우촌 신자들에게까지 위압적으로 행세했다는 것이다. 교우촌 신자들은 선교사들의 사목 방문 때마다 양반 수행원들 행패에 모욕을 감수하며 접대해야 했기에 불만이 컸다. “페레올 주교님이 생존하셨을 때 신자들 사이에 말이 많아 주교님을 원망하는 소리가 높았습니다. 가장 큰 이유는 페레올 주교님께서 당신을 보좌하는 복사들을 잘못 쓰셨기 때문입니다. 그 복사들은 크게 비난받을 짓을 많이 범하고서도 양반임을 내세워 항상 너무 거만한 행세만 부리므로 모든 교우한테 미움을 샀습니다. 그러나 유독 페레올 주교님께서는 그들만 사랑하고 신임하시어 그들하고만 모든 일을 의논하셨습니다. … 페레올 주교님은 양반 계급만 너무 편애하시어 이미 너무나 비참하고 억눌려 있는 일반 서민들을 더욱 억누르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신자들 사이에 나날이 더욱 불화가 심해지고 많은 이들이 의분을 느끼고 자포자기에 빠졌습니다. 또한, 교우들의 열심이 나날이 감퇴되어 가고, 악한 사정이 더욱더 악하게 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1857년 9월 15일 리브와 신부에게 보낸 편지)선교사 측근들의 전횡을 보다 못한 최 신부는 페레올 주교에게 직접 그들의 폐단을 지적했다. “제 생각에 이를 그대로 두면 주교님께도 해로울 것이고 일반 교우들에게도 손해가 되겠기에, 주교님께 여러 번 서한도 올리고 직접 면담하면서 그들을 내보내시라고 진언하였습니다. 그랬더니 오히려 저는 주교님께 큰 꾸중만 들었고, 저 복사들로부터는 큰 미움을 샀을 뿐이었습니다.”(같은 편지에서)최 신부는 조선의 양반 제도가 모든 사회악의 근원이고 백성들의 온갖 비참함의 원인으로 인식했다. “조선의 양반 제도 아래에서는 형제의 우애와 애덕이란 것이 있을 수 없고, 천부적 인권은 완전히 무시됩니다. … 그리스도의 정신에도 위배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말씀과 실행으로 항상 가난한 사람과 소외된 사람들의 편을 드시고, 교만한 자와 권세 있는 자에게는 혹독하게 대하셨습니다.”(같은 편지에서)최양업 신부는 조선 사회에 만연한 고질적인 신분제를 반대했다. 신분 차별 없이 그 사람의 출생 성분을 따지지 않고 재능과 인격만으로 평가받는 사회를 희망했다. 그래서 그는 측근에서 시중드는 복사들 말만 듣고 판단을 그르치거나 그릇된 선입견에 사로잡혀 자신과 신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도록 조선의 풍속과 문화를 제대로 익힌 다음 선교사를 파견해줄 것을 파리외방전교회 극동대표부 경리부장 리브와 신부에게 정식으로 요청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6.12.27
안셀름 그륀 신부가전하는 행복과 지혜안셀름 그륀(독일 성베네딕도회) 신부가 전해 주는 삶의 행복과 지혜를 담은 책이다. 만남을 준비하세요 「만남을 준비하세요」(최용호 옮김/가톨릭출판사/8000원)는 여러 만남에서 나타나는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도록 이끌어 준다. 인내, 수용, 겸손, 웃음, 신뢰 등 25가지 태도를 통해 자신이 변화해야 할 부분을 깨달아 상대방과 만남이 행복한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륀 신부는 “참된 만남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축복이며 다른 사람과 만남을 통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된다”면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행복한 만남을 위한 24가지 열쇠는 우리가 자기 자신과 타인, 사물,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세요」(신동환 옮김/가톨릭출판사/8000원)는 새로운 시작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독일어, 그리스어, 라틴어에서 ‘시작’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펴보며 사람들이 ‘시작’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짚어준다. 새로운 시작과 관련된 성경 속 예수님 말씀도 함께 전해 주며, 시작이 성공적 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준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서 새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과감하게 삶에서 새 일을 실천하며 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새로워집니다”(141쪽).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cpbc2016.04.06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6)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마태 15,24)](//cpbc.co.kr/CMS/newspaper/2016/09/rc/653346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6)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마태 15,24)비슷한 듯 비슷하지 않은 공관 복음서 복음서에서 읽게 되는 몇몇 이야기들에는 각 복음서가 지니는 특징을 비교해 볼 수 있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예수님과 바리사이들의 논쟁(마태 15,1-20; 마르 7,1-23)과 한 여인의 이야기(마태 15,21-28; 마르 7,24-30)입니다. 이 두 이야기는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마태오와 마르코 복음에서는 사건의 흐름으로 볼 때 같은 자리에 있습니다. 반면 루카에서는 동일한 이야기를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루카는 손을 씻는 정결례와 관련된 비슷한 내용을 전하지만(루카 11,37-41), 전체적인 이야기는 다른 방향을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요한 복음은 이 내용을 전하지 않습니다. 공관 복음과 요한 복음여기서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은 네 복음서의 관계입니다. 우선 요한 복음은 복음서의 구성이나 내용에 있어서 공관 복음과 차이가 있습니다. 이 말은 요한 복음이 공관 복음과는 다른 예수님에 대한 전승들을 기록하고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공관 복음은 상당히 많은 부분이 비슷합니다. 이것은 세 복음서가 예수님에 대한 같은 전승을 공유하고 있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지금까지의 연구에 의하면 공관 복음은 두 가지의 자료를 함께 사용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 두 자료는 ‘마르코 복음서’와 예수님의 말씀만을 모아 놓은 ‘어록집’(Q)입니다. 이러한 결과는 마르코 복음이 마태오나 루카 복음보다 먼저 기록된 복음서이고, 아마도 마르코와 비슷한 시기에 ‘어록집’ 역시 기록되었을 것으로 생각하는 근거가 됩니다. 마태오와 루카 복음은 이 두 출전, 곧 마르코 복음과 어록집을 기반으로 해 자신의 복음서를 기록했을 것으로 봅니다. 이러한 과정을 통해 기록된 복음서는 그들의 특성을 드러냅니다. <위 그림 참조>루카 복음은 조상들의 전통에 관한 이야기에 큰 비중을 두지 않습니다. 이것은 루카 복음이 지향하는 독자들이 유다인들의 전통과는 거리가 먼 또는 그것에 대해 아는 바가 거의 없었던, 이방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마르코는 이 이야기를 전하긴 하지만 식탁에 앉기 전에 손을 씻어야 하는 유다인들의 관습에 대한 자세한 설명을 덧붙였습니다(마르 7,3-4). 아마도 마르코 복음은 유다인들과 이방인들 모두를 독자로 삼았을 것입니다. 동일한 내용을 전하는 마태오는 마르코 복음에서 설명하는 정결례에 대한 설명을 소개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마태오의 독자들은 이미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알고 있던 유다인들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공관 복음은 하나의 이야기를 전할 때에도 자신들의 특성을 드러냅니다. 한 여인의 딸을 치유하는 이야기 역시 비슷합니다. 루카 복음에서는 찾을 수 없는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이방인 출신이었습니다. 마르코는 그녀를 시리아의 여인으로, 마태오는 가나안의 여인으로 기억합니다. “먼저 자녀들을 배불리 먹여야 한다”는 예수님의 말씀에 이 여인은 재치있게 답합니다. “상 아래에 있는 강아지들도 자식들이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먹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여인에게서 믿음을 보았고 여인의 청을 들어줍니다. 마태오 복음의 특성마르코 복음과 비교해서 마태오 복음에서 눈에 띄는 것은 “나는 오직 이스라엘 집안의 길 잃은 양들에게 파견되었을 뿐이다”는 예수님의 말씀입니다(마태 15,24). 이 표현 역시 마태오 복음의 특성을 잘 드러냅니다. 마태오는 자신들의 독자들에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처음의 목적이 ‘이스라엘을 위해서’라고 말하는 것 같습니다. 마태오 복음은 구약 성경의 전통을 이어 예수님의 구원이 우선적으로 이스라엘, 곧 유다인들을 향하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물론 마태오 복음의 이런 시각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염두에 두고 있습니다. 유다인들은 이런 예수님을 거부했고, 이제 예수님의 구원은 유다인들만이 아닌 다른 모든 이들을 위한 것이 됐다는 것을 보여 주는 것이 마태오 복음서의 특징입니다.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6.09.2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0) “알렉산드로스는 열두 해를 다스리고 죽었다”(1마카 1,7)](//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3473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0) “알렉산드로스는 열두 해를 다스리고 죽었다”(1마카 1,7)헬레니즘 문화 확장… 종교 박해의 시대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한동안 지혜문학을 읽느라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멀어졌지요. 지혜문학은 보편적인 주제들을 다루었기에 특정한 시대와 연관되는 일이 적었습니다. 마지막 집회서는 기원전 2세기까지 내려갔지만, 그 시대의 역사는 아직 안 다루었지요. 이제 다시 역사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기원전 538년 유배에서 돌아왔을 때는 페르시아 시대였습니다. 그때부터 페르시아가 패권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국제 정세에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누구나 ‘대왕’이라고 부르는 엄청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시대의 배경을 전체적으로 훑어보고, 마카베오 항쟁의 역사에 대해서는 마카베오기의 본문을 읽으면서 좀더 자세히 살펴봅시다.이스라엘, 유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등 지금까지 나타났던 모든 나라는 동방에 속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보면 서쪽이지만, 지구가 얼마나 넓은지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이 나라들이 동방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역사는 모두 동방 안에서 일어난 세력 다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와 로마는 계통이 다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다른 세상’에서 동방으로 쳐들어온 인물이었습니다. 기원전 336년에 마케도니아의 임금이 된 알렉산드로스는 동방 원정을 시작하여 기원전 333년에는 스무 살에 페르시아를 꺾고, 이집트로 진출하여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는 그 밖에도 인도까지 이르는 많은 지역을 점령하였는데,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중요한 것은 그가 정복한 모든 지역에 그리스 문화를 퍼뜨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모두 아람어를 말했는데 신약 성경은 왜 그리스어로 썼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시기에 알렉산드로스가 지배한 모든 지역에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신약 성경이 널리 전파될 수 있기도 했지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약 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 역시, 팔레스티나를 떠나 살고 있던 유다인들이 그리스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뤄진 일이었습니다.알렉산드로스가 기원전 323년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두 아들까지 살해되고 나자, 315년에는 그의 수하에 있던 네 장군이 제국의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는 여러 차례의 영토 분쟁이 있었지만, 300년쯤 팔레스티나는 이집트를 다스리던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통치를 받으면서 비교적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지배자들은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정복민들의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를 다스리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임금들과 시리아를 다스리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임금들 사이에는 전쟁이 계속되었으나, 유다는 여기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은 이미 터진 셈. 더 무엇을 하겠습니까?그런데 이제 문제가 생겨납니다. 기원전 200년쯤 셀레우코스 집안이 팔레스티나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이때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외세에 대하여 서로 다른 시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서양 문물이 처음 들어올 때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유다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전통 신앙에 충실하면서도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반면, 다른 이들은 그리스 문화가 유다 문화 및 종교에 큰 위험이 된다고 보아 이를 철저히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이렇게 처음에는 유다인들의 공동체 자체 내의 의견 차이였던 것이,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임금이 되면서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재위 기원전 175~164년). 단순히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는 문제가 아니라 종교 문제에서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안티오코스 4세는 모든 유다인에게 헬레니즘 문화를 강요하기로 작정을 하고 유다교의 특징적 요소들인 할례, 돼지고기와 다른 부정한 음식을 금하는 것, 율법에 대한 공경 등을 금지시키고, 유다인들에게 그리스 신들에게 제사를 바칠 것을 강요하며 이를 위반하는 이들에게 사형을 내렸습니다(1마카 1장 참조). 종교 박해가 된 것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예루살렘의 성전의 번제단 위에 이교 신의 제단을 세울 것을 명하기까지 했습니다.대개 이러한 박해는 기원전 167년에 발생하였다고 봅니다. 이때에 유다인들은 두려움 때문에 배교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수동적인 저항을 선택하여 순교자로서 죽음을 맞았으며, 또 어떤 이들은 사제였던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의 인도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적극적으로 대항하였습니다(마카베오 항쟁). 기원전 164년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고 새 제단을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이 시기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마카베오기입니다. 마카베오기 상ㆍ하권은 줄거리가 이어지는 책이 아니라, 서로 별개의 책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대의 사건들을 두 권에서 각각 서술하기도 하는데, 두 책 사이에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거의 담담하게 사실들만을 소개했지요. 이제 두 주간에 걸쳐 마카베오기 상하권을 읽고 그 둘을 대비해 보면, 한 시대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들에 서로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책들의 목적은 객관적으로 사실을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민족의 역사를 읽어내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3.08

가족·지인에게 2016년을 선물하세요 2015년도 어느새 두 달 밖에 남질 않았다. 서점과 문구점엔 벌써 2016년 달력과 다이어리들이 가득하다. 교계 출판사가 신자들을 위해 준비한 달력과 다이어리를 소개한다. 달력분도출판사는 벽걸이 달력 4종 △유럽 수도원 순례 △19세기 성화 △현대 한국 성화 △숫자판 캘린더를 준비했다. 유럽 수도원 순례는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에 있는 주요 수도원 모습을 담았다. 주위 자연과 멋스럽게 어우러진 수도원의 풍경 사진과 더불어 각 수도원의 간략한 기원과 특징, 수도원에 얽힌 이야기를 곁들였다. 19세기 성화 달력은 로마 수도원에서 수도자와 같은 생활을 하며 종교화에만 몰두한 ‘나자렛파’ 그림으로 꾸몄고, 현대 한국 성화는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소장 조광호 신부 그림을 실었다. 각종 2000원, 숫자판 캘린더 2500원.가톨릭출판사는 다양한 달력을 제작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벽걸이 달력 3종과 탁상 달력, 어린이 달력이 있다. 벽걸이 달력은 △순교 복자 124위와 함께하는 성지순례 △교황님의 미소 △자비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보였다. ‘순교 복자 124위와 함께하는 성지순례’는 순교 복자와 관련된 12개 교구 성지를 사진으로 담았다. 성지가 된 배경과 관련 순교자들에 관한 간단한 설명도 곁들였다. ‘교황님의 미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따뜻한 미소를, ‘자비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비의 희년에 맞춰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그린 성화를 수록했다. 각종 3000원. 기쁜소식은 성모님을 주제로 한 벽걸이 달력 2종을 선보였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달력은 심순화(가타리나) 화백의 성모자상 그림을 담았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달력은 세계 성모 발현지 성모님과 성지 관련 사진, 발현 메시지를 실었다. 각종 2000원. 바오로 딸 책상 달력 바오로딸은 ‘2016 주님과 함께’라는 탁상용 말씀 달력을 만들었다. 365일 교회 전례에 따라 주님 말씀을 새기며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달력 그림은 오순애(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작품이다. 8000원.다이어리 생활성서는 ‘Bible&Life 소금 다이어리’를 준비했다. 마음의 ‘소금’ 같은 성경 말씀을 다이어리 곳곳에 적어 놨다. 주간 계획표에는 주일 복음 말씀을 발췌해 한 주간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기도와 감사할 거리를 쓸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 뒀다. 메모 공간이 충분한 것이 장점. 가톨릭 주요 기도문과 성경 읽기표가 실려 있다. 색상은 비취색과 분홍색 2가지다.(1만 원) 이와 함께 속지 리필이 가능한 다이어리도 만들었다. 색상은 빨강, 주황, 연두, 군청, 분홍색이 있다. 일반형 1만 3000원, 고급형 1만 5000원, 리필 속지 5000원.바오로딸이 펴낸 다이어리 ‘말씀과 함께’는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라 휴대가 간편하다. 1년간 성경을 통독할 수 있는 성경 통독 계획표를 수록한 것이 특징. 메모 공간 곳곳을 오순애(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의 따뜻한 그림과 성경 구절로 채웠다. 색상은 라임ㆍ오렌지ㆍ체리ㆍ진주핑크ㆍ블루베리ㆍ하늘색이 있어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된다. 3900원.박수정 기자 백영민2015.10.28

낡은 유리화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다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 글라스] 40. 스테인드글라스의 보수 복원과 현대적 재해석 1985년과 2013·2015년 세 차례에 걸쳐 보수 복원을 거친 서울 용산 원효로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제대 쪽은 이남규씨(1985년 설치, 2013년 보수), 측창과 성가대석 창은 2015년 설치된 마르크 수사 작품이다. 유럽 색유리 제작사의 마케팅은 이제 유럽의 교회건축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신축되는 성당 수가 많지 않고, 점차 감소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신축 성당이 많은 아시아와 남미 국가에 홍보를 늘리고 일반 건축 창에 색유리를 도입하는 방안을 찾고자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축되는 성당들이 유럽에 비해 많지만 새로운 교회건축이 활발했던 과거에 비하면 그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반면 1980년대 급증했던 교회건축과 함께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들에 대한 보수 복원 및 새로운 작품 계획에 대한 논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복원된 유리화와 새로운 작품의 조화우리나라에서 처음 스테인드글라스 보수 복원이 이뤄진 사례는 1980년대 이남규 공방을 통해 진행됐던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명동성당 방문 계획이 알려지면서 80년 넘도록 수리한 적 없는 명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보수 복원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명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색이 바래고 지워진 부분들이 있었고 6·25 전쟁 당시 총탄으로 훼손된 부분들이 임시로 수리된 상황이었다. 절반 이상이 손상돼 있던 명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훼손된 부분의 원형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가능한 한 원작에 충실하게 복원됐다. 명동성당과 비슷한 시기에 유입된 대구 계산동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보수 복원은 1991~1993년 (주)H.K.스테인드글래스에서 진행했다. 복원 과정에서 기존에 있던 열두 사도를 제외하고 비어 있던 창에 한국 성인들과 4복음서의 상징을 묘사한 창들이 추가로 설치됐다.오래된 성당 건축을 보수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표현을 고집하지 않고 현대적인 해석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계획해 설치하는 사례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90~2000년대에 들어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중 대표적인 예로 1975년,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복원 보수 복원된 서울 중림동약현성당 스테인드글라스와 2008년 1월 새롭게 설치된 전주 전동성당, 그리고 1985년, 2013년, 2015년 세 차례에 걸쳐서 진행된 서울 용산 원효로성당(구 용산 신학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복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교회건축에 설치돼 있던 스테인드글라스라는 공통점이 있다.1975년 건축 보수와 함께 진행됐던 서울 중림동약현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한국 작가 이남규에 의해 제대 쪽 창의 달드베르 작품이 새롭게 계획된 이후 1998년 2월에 발생한 화재로 두 번째 보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성당 내부의 측창과 성가대석의 원형 창이 마르크 수사의 디자인으로 새롭게 설치됐다. 은은한 파스텔 톤을 주로 사용한 조용한 느낌의 측창 스테인드글라스는 제대 쪽 강렬한 인상을 부각해 건축 공간의 중심을 한층 확실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약현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남규의 작품이 설치된 지 30년 만에 발생한 화재 이후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또 한 명의 작가를 통해 동시대인과의 소통을 이뤄냈다. 2008년 마르크 수사와 김겸순 수녀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된 전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도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교회 공간을 재창조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성경 말씀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표현으로 전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2000년대 들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톨릭 교회건축의 스테인드글라스 보수 복원의 대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전문가에 의한 체계적 보수 복원 필요가장 최근의 보수 복원 사례 중 하나로는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서울 용산 원효로성당 스테인드글라스다. 구 용산 신학교 성당인 원효로성당에는 건축 당시 프랑스에서 제작된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됐으나, 6·25 전쟁 당시 파손돼 이후 건축 보수와 함께 1985년 이남규의 작품 ‘빛이 있어라’가 설치됐다. 이후 건축의 노후현상으로 스테인드글라스 보수의 필요성이 제기돼 2013년 제대 쪽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전면 보수됐고, 이어 2015년에는 과거 사진기록을 통해 성당 측창에도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성당 측창과 성가대석 창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새롭게 설치하는 계획이 진행됐다. 측장의 정확한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고 제대 쪽 작품도 현대 작가에게 의뢰했다는 점을 고려해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도입할 것을 결정하고 마르크 수사에게 작품 디자인을 의뢰했다. 성모님의 푸른 망토 자락을 모티프로 추상적으로 풀어낸 마르크 수사의 작품이 설치되면서 원효로성당은 현시대와 소통하는 전례 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현재 한국 가톨릭교회는 보수 복원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세 확장으로 1980년대 급증했던 교회건축들과 그 안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들이 이제는 새로운 보살핌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제는 오래된 교회 안에 설치된 성미술 작품들의 교회사적, 예술적 가치가 객관적으로 평가되어 무분별한 철거나 교체가 이뤄지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전문가들에 의한 체계적이고 올바른 보수 복원이 이뤄져야 하겠다. 백영민2016.11.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