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진단] ‘자비’, 불교만의 용어 아니다](//cpbc.co.kr/CMS/newspaper/2015/12/rc/610920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자비’, 불교만의 용어 아니다오용석 프란치스코 사베리오(한국평협 사회사도직연구소장, 경성대 명예교수) 올 한 해의 막바지에 우리에게 특별히 주어진 삶의 지표는 ‘자비’이다. 지난 8일부터 내년 11월 20일까지 ‘착한 사마리아인’이 베푼 자비(루카 10,30-37 참조)를 우리도 베풀 것을 약속하고 실천하는 ‘자비의 특별 희년’이 시작된 때문이다.이 ‘자비의 희년’을 준비하면서 ‘자비’ 용어에 대한 정리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많이 제기되었다. 이 말이 원래 불교 용어라는 이유에서였다. 평화신문 6일 자에 실린 발터 카스퍼 추기경의 저서 「자비」 소개 글 제목도 “‘자비의 해’라는데… 자비, 불교 용어 아닌가?”(24면)였다. ‘자비’가 불교 용어인 것은 맞다. 불교에서 ‘자비’는 “중생에게 복을 주어 괴로움을 없애주는 일”로 풀이된다. 6세기에 중국 수나라 혜원(慧遠)이 지었다는 불교 백과사전으로 전해지는 「대승의장」(大乘義章)에도 ‘자비’가 불교의 중요한 용어로 설명되어 있다. “나약한 사람을 가엾게 여겨 사랑함을 자(慈)라 일컫고, 괴로워하고 슬퍼함을 비(悲)라 말한다”(愛憐名慈, 惻愴曰悲)가 그것이다. 이 때문인지 한국을 제외한 한자 문화권 가톨릭 교회에서는 라틴어 misericordia 번역어로 가장 적합한 말이 ‘자비’임에도 이 말이 쓰이지 않는다. 중국과 대만 교회만 하더라도 성경, 미사경본, 기도서 등 어디에도 ‘자비’라는 말은 보이지 않는다. 우리가 ‘자비’라고 쓴 곳에 ‘불쌍히 여김’을 뜻하는 ‘롄민’(憐憫), ‘콴수’(寬恕), ‘런쯔’(仁慈), ‘롄수’(憐恤), ‘취롄’(垂憐) 등이 함께 쓰인다. 미사 통상문과 호칭기도에서는 ‘취롄’으로 통일되어 있다.한국 교회도 ‘자비’라는 말을 미사경본과 기도서 등에서 공식 용어로 쓰기 시작한 것은 그리 오래지 않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에 1967년부터 우리말로 미사가 봉헌되었지만 30년 동안 ‘자비’라는 말은 쓰이지 않았다. 1997년 새 미사 통상문이 확정되면서 처음으로 이 말이 도입되었다. 가장 대표적인 부분이 “자비를 베푸소서” 하고 기도하는 ‘자비송’이다. 그 이전에는 Kyrie라는 라틴어 제목으로 “긍련(矜憐)히 여기소서”라고 하였다가 “불쌍히 여기소서”로 하다 지금의 ‘자비송’으로 바뀌었다.물론 1997년 이전에도 한국 교회에서 ‘자비’라는 말이 안 쓰인 것은 아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과 교황 문헌의 우리말 번역에서 이 말이 자주 나오는 것을 볼 수 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번역본에서 하느님의 속성으로 많이 쓰이고 있다. ‘자비’에 관한 교황 문헌으로 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Dives in Misericordia)이 있다.우리말 성경에서 ‘자비’라는 말의 쓰임새를 보면, 우리 교회에서 이 말의 중요성이 그대로 다가온다. 1977년에 나온 「공동번역 성서」(가톨릭용)에서는 이 말이 ‘자애’, ‘불쌍히’ 등과 함께 쓰이고 있다.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2005년 주교회의가 간행한 「성경」에서는 이런 유사어들이 ‘자비’로 거의 통일되어 쓰이고 있음을 본다. 이렇게 한국 가톨릭 교회에서 쓰임이 일반화된 ‘자비’라는 말을 불교만의 용어라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역사적으로 중국에 불교가 전래되기 수 세기 전 기록인 「좌전」(左傳)에 이미 이 말이 쓰였다. 그리고 어의적으로 ‘자’(慈)는 사랑(愛也), 선함(善也), 어짐(仁也), 부드러움(柔也)과 함께 불쌍히 여김(憐也)을 뜻하여 ‘비’(悲)와 통한다. 이 말뜻으로부터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닮으라고 가르치신 하느님의 속성은 바로 ‘자비’로 함축됨을 알 수 있다. ‘자비의 특별 희년’은 카스퍼 추기경이 「자비」에서 강조한대로 “신학계가 벌을 받아야 할 만큼 망각해온 자비”를 용어에서부터 그 본질을 회복해야 할 때이기도 하다. 평화신문2015.12.24
![[생활 속의 복음] 제자 되려면 가족을 미워하라고요?](//cpbc.co.kr/CMS/newspaper/2016/08/rc/650905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제자 되려면 가족을 미워하라고요?연중 제23주일 (루카 14,25-33)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예수님의 말씀. “누구든지 나에게 오면서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 아내와 자녀,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않으면, 내 제자가 될 수 없다.”복음서에 나오는 말씀 가운데 곧잘 알아들을 수 없는 내용이 있어도 어지간하면 넘어갑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도저히 받아들이기 어렵습니다. 하느님과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으려면 가족을 미워해야 한다는 말씀 말입니다. 평상시에 그렇게 강조하는 ‘사랑하라’는 계명은 어디로 사라졌는지 모르겠습니다. 가족들을 미워하라니요?여기서 미워하라고 표현한 이유는, 구약성경의 히브리말에는 ‘더 사랑하다. 덜 사랑하다’와 같은 비교급이 없답니다. 그래서 마태오 복음 10장 37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아버지나 어머니,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사람은 나에게 합당하지 않다.”예수님을 가장 사랑한다예수님을 더 사랑하라는 가르침입니다. 그리스도 신자는 예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사실 신앙생활을 오랫동안 해온 신자들 가운데도 간혹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말이 낯선 분들이 계십니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그저 마음의 평화를 얻는 것이 아닙니다. 도덕적으로 더 완벽한 생활을 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돕기만 하는 것도 아닙니다. 바로 예수님을 믿고 사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우리 인간은 얼마나 하느님을 보고 싶어 하고, 그분의 말씀을 직접 듣고 싶어 합니까! 예수님을 보면 하느님을 보고 있는 것이고, 그분의 말씀을 들으면 하느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것입니다. 십자가에서 보듯이 인간을 죽도록 사랑하시는 그 하느님이 바로 예수님입니다. 그렇게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니, 우리도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이렇게 하느님과의 사랑을 주고받을 수 있다는 사실로 인간은 이 세상에서 이루 말할 수 없이 위대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인간이 권리 주장을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사랑할 수 있는 것도 하느님의 선물이요 은총 덕분입니다.예수님의 부르심 세상에서 가장 좋고 값진 것입니까? 인간이 감히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는 것을 꿈이라도 꿀 수 있을까요? 인간 스스로 하느님께 다가가고 그분과 하나가 될 수 없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해주셨기에 가능한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인간이 되시고 죽기까지 하시면서 인간과 하나가 되시어 이제는 그분의 부활에 우리를 동참시키고자 하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서 그분을 따라서 살아가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조건 없이 즉시 말씀하십니다. “나를 따르라.”모든 사람은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가 되라는 부르심을 받고 있습니다. 우리는 단호한 태도로 이 부르심에 응답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이 길 외에는 인간의 구원과 해방이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제자가 되려면, 우선 예수님의 사랑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에서 말로 설명할 수 없는 풍성한 가치를 가진 제자 됨의 삶을 살기 위해서 결단을 내리고 철저하게 예수님을 따라야 합니다. 역사 속에서 끊임없이 많은 신자가 그 모범을 보여 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삶을 생생하게 살아가려고 합니다. 이 세상 모든 것의 주인은 하느님입니다. 하느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선물로 주신 것입니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이 서로 화목하고 정의롭게 살아가길 간절히 바라십니다. 죄는 인간을 소유욕에 사로잡히게 하고, 죄는 인간을 철저하게 파괴하고 비참하게 만듭니다. 이제 새롭게 예수님의 제자로 부르심을 받고 살기 시작한 우리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자세는 단호함입니다. 하느님의 것을 하느님께서 우리와 기꺼이 나누시려고 하십니다. 그러니 우리도 다른 사람들과 공동선을 추구하면서 함께 나누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이렇게 새 하늘과 새 땅을 살기 시작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사회생활에 대해서 하나하나 심사숙고하면서 잘 식별해야 합니다. 평화신문2016.08.31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24>](//cpbc.co.kr/CMS/newspaper/2016/07/rc/644657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서울 주한 교황대사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알빈 슈미트, ‘기도하고 일하라’, 서울 주한 교황대사관 성당, 1970년대 초. 서울 궁정동의 주한 교황대사관 성당에는 1970년대 초에 제작 설치된 두 점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남아 있다.성 베네딕도수도회 소속 알빈 슈미트 신부의 작품으로, 그가 한국 교회에 남긴 여러 점의 벽화와 마찬가지로 보이론(Beuron) 화풍을 보이고 있다. 보이론 미술은 19세기 독일 보이론에 위치한 수도원에서 시작된 교회 미술이다. 그리스도교적 신비주의를 바탕으로 하면서 이집트 미술에서 표출되는 기하학적 원리에 기초한 추상적인 작품 경향을 종교적 영성을 표현하는 이상적인 방법으로 삼은 게 특징이다. 이와 같은 보이론 화풍에서 비롯된 간결하고 기하학적인 작품들은 사실적인 표현에서 오는 직접적인 감정 전달과는 다른 절제된 종교적 감성을 제시하고 있다.주한 교황대사관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성 베네딕도수도회의 정신과 성경 말씀에 기초한 구상적인 표현으로 이뤄져 있다. 작품 제목은 따로 정해진 바가 없으나, 작품에 표현된 라틴어 문구에 따르면 그 주제는 ‘기도하고 일하라(ORA ET LABORA)’와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FACAMTE PISCATOREM HOMINUM)’이다. 이탈리아에서 제작되었다고 전해지는 이 두 작품은 모두 가로 1.78m, 세로 3m의 창에 설치되어 있다. 작품에 사용된 색유리들은 대부분 반투명과 불투명으로 바깥 풍경은 전혀 드러나지 않고 있다. 푸른색, 흰색, 갈색을 주조로 하면서 부분적으로 붉은색을 포인트 색채로 사용하여 자칫 경직되고 지루해 보일 수 있는 화면에 긴장과 변화를 준 작품이다.제대를 향하고 봤을 때 왼쪽 창에 설치된 ‘기도하고 일하라’는 성 베네딕도수도회의 정신을 집약적으로 나타낸 라틴어 문구인 ‘ORA ET LABORA’를 작품 왼쪽 위에 적어 넣음으로써 작품의 메시지를 보다 명확하게 전달하고 있다. 작품 중앙에는 성 베네딕토와 그를 따르는 제자들이 등장하는데, 배경과 구분이 어려울 만큼 도식화된 형태로 표현되었다. 이목구비가 생략되어 단순하게 그려진 인체는 화면 전체 구성에 나타나는 수직, 수평선의 연장 선상에서 표현되어 절제된 보이론 미술 경향을 반영하고 있다. 성 베네딕토의 얼굴과 손가락의 세부적인 표현을 위해서만 흑유(黑釉) 페인팅을 사용했고, 나머지 선묘에는 모두 납선을 사용해 공을 많이 들인 작품이다.오른쪽 창의 작품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에는 중앙에 물고기들로 가득한 그물을 끌어올리는 베드로를 사선 구도를 이용해 배치하고 있다. 작품 상단의 라틴어 문구 ‘FACAMTE PISCATOREM HOMINUM’과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표현했다. 자칫 그냥 지나칠 수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 붉은색 후광을 표현해 보는 이의 시선을 끌고 있다. 또 작품의 중심 부분에 과감하게 28㎜의 굵은 납선을 사용해 단조로워 보일 수 있는 작품에 변화를 주고 있다. 알빈 신부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작가 자신의 화풍인 보이론 미술 경향을 반영하면서 그리스도교의 메시지를 전달하는 상징적인 이미지로서 존재하고 있다. 백영민2016.07.13
![[성경 속 도시] 25. 페르가몬](//cpbc.co.kr/CMS/newspaper/2014/07/rc/522090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25. 페르가몬믿음 지켰으나 세속화로 책망받아 요한 묵시록의 7대 교회 중 하나인 페르가몬 도시 유적. 리길재 기자 페르가몬의 역사는 고대 트로이전쟁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헥토르의 아내 ‘안드로마케’가 ‘아킬레스’의 아들 ‘네프톨레무스’와 결혼해 나은 아들이 ‘페르가무스’인데 그가 성을 쌓아 만든 도시라고 해 ‘페르가몬’이라고 불렀다. 이처럼 페르가몬은 고대부터 도시가 형성됐다. 기원전 332년 알렉산더대왕이 죽자 그의 신하였던 장군 4명이 알렉산더가 정복했던 나라를 분할통치했다. 그중 리시마코스 장군은 페르가몬이 있는 지중해와 에게해 연안을 다스리게 됐다. 리시마코스는 전형적인 군인이다. 그래서는 그는 일찍부터 페르가몬의 특성을 이용해 성벽을 건축하는 등 군사적인 요충지를 만드는 데 공을 들였다. 그는 페르가몬을 중요하게 생각했다. 페르가몬은 원뿔형의 높은 위치에 요새로서 천혜의 환경을 갖추고 있었다. 주변국의 계속되는 침략을 잘 막아냈던 페르가몬도 로마제국 앞에서는 어쩔 수 없었던 모양이다. 나중에 페르가몬을 자진 헌납했다. 로마는 페르가몬을 아시아주의 수도로 삼아 더욱 발전시켜 나갔다.건축 문화 의술 등 발달 페르가몬은 무엇보다 일찍이 양피지의 발달로 20만 권의 장서를 가진 세계 2대 도서관과 대학이 있는 학문의 도시였다. 북쪽 광장에 있는 도서관이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었다. 페르가몬의 건축, 문화, 예술 교육, 의술은 우상과 신전에서 비롯된 것들이었다. 페르가몬은 제우스의 출생지로 세계의 7대 불가사의 가운데 하나로 꼽히는 제우스 신전과 아테네, 디오니소스, 아스클레피오스 신전이 모여 있고 신전을 건축하느라 건축과 미술 조각이 발달했다. 최고의 병원 아스클레피온이란 이름은 건강과 약 치료의 신이며 독사로 상징되는 아스클레피오스로부터 따왔다. 이 병원은 다른 병원들과는 치료방법이 달랐다. 물, 진흙, 스포츠, 연극 그리고 도서관 등으로 병을 고쳤다고 하니 놀라울 따름이다. 사티로스나 갈레누스와 같이 유명한 의사들이 이곳에서 활약했으며 의학의 아버지 히포크라테스도 이곳에서 출생했다.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소아시아의 7대 교회 중 하나인 페르가몬 교회는 안티파스의 순교와 신자들의 믿음으로 많은 유혹과 핍박에도 신앙을 지켜 하느님의 칭찬을 받은 교회로 알려졌다.“나는 네가 어디에 사는지를 안다. 곧 사탄의 왕좌가 있는 곳이다. 그렇지만 너는 내 이름을 굳게 지키고 있다. 나의 충실한 증인 안티파스가 사탄이 사는 너희 고을에서 죽임을 당할 때에도, 너는 나에 대한 믿음을 저버리지 않았다”(묵시 2,13). 또 동시에 페르가몬 교회는 교회가 세상과 결합해 진리를 잃어버리고 세속화돼 가는 것에 대한 책망을 듣기도 했다. 사탄의 영향 많이 받아요한 묵시록의 저자는 타락 행위를 탓하면서 이스라엘의 예언자 발라암의 예를 들고 있다. “그러나 너에게 몇 가지 나무랄 것이 있다. 너에게는 발라암의 가르침을 고수하는 자들이 있다. 발라암은 발락을 부추겨, 이스라엘 자손들 앞에 걸림돌을 놓아 그들이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고 불륜을 저지르게 한 자다”(묵시 2,14). 페르가몬은 우상숭배 신전들로 가득 차 있어 그리스도교 신앙을 유지하기 힘들 정도였고, 우상 숭배와 세속화 분위기 속에서 사탄의 영향력을 많이 받았다. cpbc2014.07.31

마진우 신부, 8년 간 선교생활 끝내고 귀국가진 게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 배워... 페이스북 친구를 만났다. 페이스북에서 ‘겸손기도’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 볼리비아의 선교사 마진우(대구대교구) 신부다.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는 볼리비아의 천진난만한 아이들부터 넉넉한 미소의 할머니까지 그와 함께 살 맞대고 사는 마을 사람들 이야기가 올라온다. 선교 현장에서 길어 올린 그의 영성 글은 페이스북이라는 얕고 넓은 ‘온라인 바다’에서 내면을 살피게 한다. 그의 영성 글을 구독하는 페이스북 친구만 4500명이 넘는다. 6월 30일, 그의 페이스북 타임라인에 ‘달릴 길을 다 달렸습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올라왔다. 갑작스러운 담석증으로 8년간의 볼리비아 선교생활을 끝내고, 수술을 위해 한국으로 돌아간다는 내용이었다. 7월 9일 귀국해, 수술 후 회복 중인 마 신부를 경북 칠곡군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만났다. “열심히 일했고, 많은 씨앗을 뿌리고 왔습니다. 가진 게 없어도 얼마든지 행복할 수 있다는 것을 배웠습니다.”7월 4일 그가 볼리비아 공항에서 출국하던 날, 신자들은 버스 한 대를 빌려 공항에 배웅 나왔다. 마 신부와 사진 찍고 포옹을 하며 인사를 나눴다. 눈물을 흘리는 신자도 많았다. 어느새 피부색과 표정이 볼리비아인이 되어 버린 그는 신자들에게 마지막 말을 남겼다. “외적인 것이 아닌 내적인 가치를 찾으세요. 예수님을 사랑하며 사세요.” 그는 전기도 들어오지 않고, 상수도 시설도 변변치 않은 산타크루즈의 시골 마을에서 즐겁고 기쁘게 살았다. 모래먼지와 열기, 모기와 곤충, 짜고 단 음식에는 금세 적응했다. 살인 사건과 성폭행이 잦았고, 길에 유기된 시체를 발견하는 것도 흔했다. 무엇보다 축복식과 병자성사, 장례 미사가 많았다. “성탄을 앞두고 시골 공소에 다녀오는 길에 16살 된 아이가 몸에 칼집이 난 채로 앉아 있는 겁니다. 동네 경찰들은 사건 경위를 조사하고 있고…. 급한 대로 트럭에 태워 병원으로 갔어요. 성탄절에 아기 예수님을 만난 거지요. 가장 소외된 이웃이었으니까요.”마 신부는 본당 사목을 하며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삶으로 깊숙이 들어가 그들을 사랑했다. 그가 가까이 다가갈수록 사람들은 마음을 열고, 신앙인으로서 가야 할 삶의 길을 물었다. 교리교육을 비롯한 성경 강좌를 열고, 소공동체 모임도 했다. 볼리비아는 국민의 80%가 세례를 받은 가톨릭 국가지만,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는 8%뿐이다. “전 세계 어디든 신자들이 정말 필요로 하는 사람은 영적으로 이끌어줄 목자입니다. 그만큼 신앙의 본질에 굶주려 있습니다.”한국으로 돌아온 소감을 묻자, 마 신부는 “한국 신자들은 전례와 교육 같은 외적인 형식과 틀은 잘 갖추고 있지만, 내면의 충실성은 상실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마 신부는 선교사의 길을 준비하는 이들에게는 쉬운 길을 선택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그가 말하는 쉬운 길은 돈과 명예 같은 세상의 힘을 이용하는 것이다. 그는 “한국인 사제들을 해외 선교지에 많이 보낼 수 있으면 좋겠다”면서 “선교지에서는 정말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 안에서 예수님을 발견할 수 있는 눈을 갖게 된다”고 했다.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문채현2016.07.26

네 복음서만으로는 2% 부족한 당신을 위한 ‘다섯 번째 복음서’다섯 번째 복음서로 불리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 예수회 제임스 마틴 신부의 생생한 여정 담아 예수, 여기에 그가 있었다 예수, 여기에 그가 있었다제임스 마틴 지음/오영민 옮김/가톨릭출판사/1만 5000원마르코ㆍ마태오ㆍ루카ㆍ요한 복음은 예수님 삶을 기록한 말씀이다. 예수님께서 어떻게 태어나셨는지, 마지막 모습은 어땠는지, 살아계시는 동안 어떤 말씀을 하셨는지를 오롯이 담고 있다. 예수님에 관해서 더 잘 알고 싶고 더 생생하게 만나고 싶은데, 네 복음서만으론 부족한 이들에게 종종 추천되는 ‘다섯 번째 복음서’가 있다. 바로 이스라엘 성지 순례다. 책은 ‘다섯 번째 복음서’ 즉 이스라엘 성지에 관한 이야기다. 더 정확히 말하면 이스라엘 성지에서 만난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다. 저자 제임스 마틴(미국 예수회) 신부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인지에 관한 답을 찾기 위한 여정을 생생하게 그려냈다. “이 책에서는 연구, 기도, 체험, 성지 순례, 그리고 믿음, 이 모든 것을 예수님의 삶에 집중할 것이다. 특히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카이사리아 필리피를 걸으며 처음으로 물으신 질문, 곧 예수님은 누구신가 하는 물음에 집중할 것이다”(41쪽).마틴 신부는 이스라엘 성지 순례를 해보라는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이런 생각을 했다고 고백한다. “난 예수회에 입회한 이래로 하루도 빠짐없이 복음서를 읽었다. 그리고 예수님에 대한 책을 수십 권도 넘게 읽었고, 복음서의 내용을 수백 번, 어쩌며 수천 번 정도 묵상했다. 이런 내가 이스라엘을 여행한다고 무엇을 더 배울 수 있을까?”(47쪽)그런데 막상 예수님께서 사셨던 삶의 현장에 가니, 자신의 생각이 완전히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왜 사람들이 이스라엘 성지를 다섯 번째 복음서라고 부르는지를 온몸으로 체험했다. “성지순례를 통해 나는 책에서 배우지 못한 것들을 알아갔다. … 예수님과 제자들이 예루살렘에서 예리코까지 걸으셨다는 내용을 읽는 것과 자동차로 한 시간 내내 그 먼 길을 가로지르며 1세기에 팔레스타인 지방을 걸어서 다닌 그 여정이 얼마나 고통스러웠을지를 마음에 그려 보는 것은 확실히 달랐다”(40쪽).마틴 신부는 예수회 소속답게 ‘이냐시오 영신 수련’ 방식으로 책을 구성했다. 예수회를 설립한 이냐시오 성인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이들이라면, 열두 제자처럼 살아 계시는 주님을 만나고 그분을 섬기라고 강조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저자는 각 장에서 이스라엘 땅에서 예수님과 만난 체험을 보여 주고, 이에 관한 복음 내용을 묵상하며 신학적 설명도 덧붙였다. 그런 다음 마지막에 관련 성경 구절을 써 놓고 독자들이 마틴 신부가 만난 예수님이 아닌 자신만의 예수님을 만나 묵상할 수 있도록 했다. 마틴 신부는 “성지순례를 통해 완전히 새로운 방식으로 복음을 읽고 듣게 됐고, 예수님을 새롭게 바라보게 됐다”면서 “이 책이 예수님을 새롭게 만나도록 하는 초대가 되길 바란다”고 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6.06.22
레이먼드 브라운 (상)](//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2731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70)레이먼드 브라운 (상)교회 일치와 신약 성경(요한) 연구의 권위자 레이먼드 E. 브라운(Raymond Edward Brown, S.S, 1928~1998)은 성경 연구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가 1998년 8월 8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일생을 마감했을 때 타임스지는 그를 “미국 최고의 가톨릭 성경학자”로 칭송했다. 그의 죽음은 교회 일치와 신약성경 연구, 특별히 요한계 연구에서 큰 손실이었다. 그는 가톨릭 성경협회, 성경문학회, 신약성경연구회라는 세 단체의 장을 역임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전 세계 개신교와 가톨릭계 대학으로부터 30여 개에 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학술원과 미국인물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47권의 책, 200편의 소논문, 108개의 책 논평들이 그의 펜에서 흘러나왔다. 브라운에 대해 다 소개할 수는 없고 그의 생애와 업적, 특히 요한 공동체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에 대해 알아보겠다.생애와 활동그는 1928년 5월 22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1953년 5월 23일 플로리다 어거스틴교구에서 사제품을 받고, 성경 공부와 미래 사제들의 양성에 매료돼 1955년 술피스회 정회원이 된다. (그의 이름 뒤에 붙는 S.S는 술피스회[ Society of St. Sulpice]의 약자다). 술피스회는 수도회가 아니고 1641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교구 사제들의 공동체로서 로마 가톨릭 사제가 되려는 신학생들의 교육과 교구 사제들의 지속적 양성이라는 특별한 사도직에 봉사하는 단체다. 그는 미국 성 마리아 신학교(1791년 술피스회가 설립)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신학 과정을 계속하여 신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는다(1953). 브라운은 팔레스틴 성경 고고학자인 올브라이트 밑에서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근동 고고학과 연결해 연구하면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1958년 존스 홉킨스 대학교). 후에 브라운은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그곳에서 초청 교수로 가르치기도 했다(197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주교의 조언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과 요르단에서 피츠마이어를 비롯한 동료들과 고고학 문서에 대한 자료집을 만들기도 했다.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후에 브라운은 모교인 성 마리아 신학교와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예수회 신학교에서 교수 계약이 끝났을 때(1971~1974) 그는 은퇴할 때까지 개신교 신학교인 유니온에서 가르쳤다. 은퇴 후 술피스회가 운영하는 성 패트릭 신학교에서 연구와 출간 활동을 하다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술피스회 공동묘지에 고이 잠들어 있다. 성경연구에 공헌많은 사람들은 브라운이 어떻게 성경 연구에 매료됐고 그렇게 많은 업적을 남겼는지 의아해 한다. 그는 신학생으로서 로마에 유학 갔다가 한국전쟁 때문에 1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와 신학 공부를 계속했다. 당시에는 교과 과정이 엄격했고 로마와 미국의 교육 체계가 달랐다. 미국에 오니 성경 입문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것이 돼 시험으로 대신해야 했다. 브라운은 먼저 구약성경을 읽고, 영어뿐만 아니라 불어, 이탈리아어, 독어로 된 참고 서적을 읽고 공부했다. 결국, 그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당시 그의 교수는 그에게 “그렇게 많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면서 그가 성경에 관심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교수에게 “성경은 제가 일생 해야 할 가장 관심 있는 것이다. 아주 매력적”이라며 앞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싶은 바람을 내비쳤다. 교수는 “우리에겐 성경을 가르칠 선생들이 필요하다”고 말해줬고, 그 후 브라운은 성경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가 학문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비오 12세 교황의 혁명적 회칙 「성령의 영감」(1943)이 미국 가톨릭 교회에 깊이 침투했고, 또 하나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쿰란의 사해 문서 발견(1947)이었다. 이 두 사건은 20세기 성경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며 브라운에게도 성경 연구의 방향을 잡게 해줬다. 비오 12세 교황은 대부분 사람이 성경 해석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 같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성경 연구를 촉구하는 「성령의 영감」 회칙을 발표한 것이다. 회칙은 성경을 라틴 불가타보다는 원어(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어)를 번역해야 한다면서 성경 해석의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역사적이고 문자적인 해석을 끌어내기 위해 문학 형식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라고 했다. 영감을 받은 인간 저자가 하느님 말씀을 표현했기 때문에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때까지 교회 교부들과 중세 해석자들에게 일반적이었던 근본주의적 해석을 깨는 것을 의미했다. 이 회칙의 영향으로 브라운은 성경 해석 방법 중 역사 비평 방법의 뛰어난 변호자가 됐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의 편지들을 역사 비평 방법으로 주석했고, 많은 저서에서 그 방법을 적용했다.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성경의 보다 풍부한 의미」(The Sensus Plenior of Sacred Scripture)]였는데 ‘보다 풍부한 의미’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다. 그의 많은 저서 중 「요한복음 주석서」(1966, 1970), 「메시아의 탄생」(1977), 「요한서간 주석서」(1982), 「성서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1991)」「메시아의 죽음」(1994),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1994),「요한 공동체의 역사와 신학」(1979), 「신약개론」(1997), 「복음사가 요한과 함께하는 피정」(1998), 「요한복음 개론」(2003) 등이 유명하다. 「신약개론」은 신약성경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와 성경 각 권의 신학적 논쟁들을 잘 요약 정리해 주고 있어 전문가와 학생 모두에게 필수적인 책이다. 브라운은 「New American Bible」의 번역위원회 위원이었으며 「제롬 성경 주석」(1968, 1990)을 동료 학자들과 편찬했는데, 이는 영어를 사용하는 많은 신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다. 브라운은 성서 해석을 언제나 교회에 대한 봉사로 염두에 두었으며 전례력에 따라 대림, 사순, 부활에 대한 소책자를 만들어 일반 독자들에게 성경의 이해를 도왔다. 그는 명확하고 통합적이며 모든 문제와 사람들에게 공정했다고 한다. 그는 술피스 신학교(1959~1971)와 뉴욕의 개신교 유니온 신학교(1971~1990)에서 가르쳤다. 가톨릭 학생들만 아니라 비가톨릭 신학도들도 뛰어난 스승에게 성경을 배우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그와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은 성경에 대한 그의 깊은 열정, 신약성경에 대한 사랑, 놀라운 기억력, 명확한 설명(불트만의 어려운 이론을 쉽게 설명했다고 한다), 유머 감각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고 한다. 이혜자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1992년 종신서원 ▲2005년 로마 그레고리오대 졸업. 성서신학 박사(요한복음 전공) ▲현재 서강대 신학대학원 출강 평화신문2014.12.02
![[추기경 정진석] (32) 주님께서 마련하신다](//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6563_1.0_titleImage_1.jpg)
[추기경 정진석] (32) 주님께서 마련하신다선임 주교 배려, 주교관 옆 함석집에서 교구장 생활 시작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1970년 10월 3일 청주교구 제2대 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의 서품식과 착좌식은 노기남 대주교와 파디 주교, 한공렬 주교 공동 집전으로 거행됐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교회 모든 주교가 이 미사에 함께하며 새로운 교구장의 탄생을 축하했다. 미사 중 주교 반지와 주교관이 수여됐고, 주교 목장을 받은 정 주교는 교황대사 히톨리토 로톨리 주교와 노기남 대주교의 인도로 청주교구장 주교좌에 착좌했다. 이로써 청주교구는 교구 설정 1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주교를 맞이하게 됐다. 10여 년 동안 메리놀회가 위탁을 받아 사목하던 유년기를 벗어나 자치 교구로서 첫걸음을 뗀 셈이었다.청주교구 신자들은 새로운 교구장의 탄생을 진심으로 기뻐했고 많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신자들의 기대만큼 새 교구장 정진석 주교의 어깨는 무거웠다. 정진석 주교가 강론을 하기 위해 강론대에 섰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어 주교 서품식을 준비한 이들, 참석하고 함께한 이들에게 인사를 전한 정 주교는 구약의 모세를 들어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모세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하느님은 당신의 도구로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겁이 났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심지어 도망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시는 하느님만을 믿고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나 자신인데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함께해주신다는 믿음으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이 말은 전혀 꾸밈이 없는 말이었다. 정진석 주교는 인생의 우여곡절을 통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마련하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성경의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야기에 나오는 ‘야훼 이레’의 믿음이 깊이 뿌리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다면 모든 것이 하느님 뜻대로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믿음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그러했다. 고난과 역경의 시간도 굳세게 주님만 믿으며 걸어가니 새로운 길을 마련해주셨다. 스스로 그 신비를 체험했기에 자신 있게 주님을 향한 응답을 고백할 수 있었다. 정진석 주교는 미사 내내 이곳으로 자신을 부르신 분은 하느님이시고 그분의 뜻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일생 그 뜻을 찾고 실천하는 데만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서품식이 끝나고 방문한 귀빈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신자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한참 후에 가족들과 함께 계신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별로 말씀이 없고 그저 담담한 얼굴이었다. 정진석 주교는 어머니와 둘이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주교 서품 기념으로 어머니와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둘이 찍은 유일한 사진이었다. 정 주교와 어머니는 사진기 앞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는 그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평생을 사셨다. 아들로서 어머니께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평생 기도로 함께해주신 어머니는 정진석 주교에게 둘도 없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가난했던 청주교구 당시 청주교구는 메리놀회 사제가 19명, 한국인 사제가 6명이었다. 대다수가 메리놀회 소속 미국 사제들이고 한국 신부들은 수품한 지 아직 3년도 안 된 젊은 사제들이었다. 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있고, 그것도 절대다수가 미국인 사제인 데다가 대부분의 수품 연차가 새 교구장보다 높다 보니 교구장으로 어떻게 사목하느냐 하는 것은 큰 걱정거리였다. 특히 미국인 사제 중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제가 많지 않아 첫 사제 회의는 영어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또 1970년대는 미국 본토에서도 인종 갈등과 차별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벽들을 잘 넘어 순탄하게 교구를 이끌 수 있도록 정진석 주교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를 했다. 누가 도와줄 수도 없고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데 하느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고집 센 사람들을 세워 보면 신부들은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고집 센 선배들을 지휘하려니 결코 쉽지 않았다. 청주교구는 사제들에게 생활비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정 주교가 새 교구장으로 부임했지만 전임 파디 주교가 주교관에서 지냈기에 정 주교는 다른 방에 묵어야 했다. 하지만 주교관에도 남는 방이 없었다. 지금 같으면 증축을 했겠지만, 교구가 사정이 어려워서 증축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정진석 주교는 주교관 옆의 함석집에서 지냈다. 작은 기도방이 딸린 집이었다. 사람들은 굉장히 고생한다고 걱정했지만 정작 정 주교는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 전쟁 때부터 단련된 생활로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파디 주교는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성심양로원 원장으로 불우한 노인들을 돌보다 1976년 본국으로 귀국했다. 정 주교는 파디 주교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야 주교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첫째 과제는 사제단과 소통 정진석 주교의 첫 과제는 사제단의 일치와 소통이었다. 우선 함께 교구 사목을 할 사제가 필요했다. 눈여겨보았던 제라드 하몬드 신부를 불렀다. 10년 가까이 한국 생활을 한 그는 영어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꿔 ‘함제도’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1960년부터 청주교구에 있었던 함 신부는 초대 교구장 비서 겸 관리국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유능하고 부지런한 사제였다. 함 신부가 교구장실로 들어오자 정진석 주교가 말했다. “함 신부님, 저를 도와주세요. 총대리를 맡아 교구를 운영하는 데 힘이 되어 주세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함 신부는 손사래를 쳤다.“아이고 주교님, 하늘 같은 선배 신부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그래도 정 주교는 물러서지 않았다.“신부님은 청주교구에도 오래 계셨고, 파디 주교님 비서와 교구 관리국장까지 맡으셔서 교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주교의 간절한 부탁에 골몰히 생각하던 함 신부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부족하지만 주교님 뜻에 따르겠습니다.”이후 함제도 신부는 교구 총대리로 교구장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교구장이 사목방문을 떠날 땐 운전기사 역할도 도맡았다. 가난한 교구장은 총대리 함 신부가 운전하는 포니 왜건을 나란히 타고 사목방문을 오갔다. 함 신부의 도움에 힘입어 메리놀회 다른 사제들과도 잘 협의해 교구 운영을 지속해나갔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사진=서울대교구 홍보국 평화신문2017.01.04
7살 어린이부터 팔순 할머니까지 성경 재미에 쏙~마산교구 제3회 교구 성경잔치 열고 친교 다져 16일 성지여고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마산교구 제3회 성경잔치에서 가족 암송대회 최우수상을 받은 지정훈씨 가족이 응원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슬기 기자 마산교구는 16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지여고 실내체육관에서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시편 1,1-2)을 주제로 제3회 교구 성경 잔치를 열고, 주님 말씀으로 하나 돼 친교를 나눴다.성경 잔치는 교구 신자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경 봉헌식과 성경경시대회, 가족 성경 암송 대회 등으로 진행됐다. 또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체육관에는 성경 필사 노트와 이콘, 나뭇조각 등 성경작품이 전시돼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잔치의 백미는 가족 성경 암송 대회였다.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다섯 가족은 성경 암송과 신앙 표현하기ㆍ가족 릴레이ㆍ돌발 퀴즈 등을 치르며 갈고닦은 암송 실력을 뽐냈다. 최우수상은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3대가 참가한 지정훈(프란치스코, 석전동본당)씨 가족이 차지했다.특히 청소년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김도영(모니카, 초4)양은 쉬지 않고 성경 구절 10여 개를 외워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박지원(연희 마리아, 중2)양은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말씀을 암송하며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다.성경 경시 대회 최고령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은빛상은 이남순(테오도라, 84) 할머니가, 최연소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꿈나무상은 이예진(클라라, 7) 어린이가 받았다.교구장 안명옥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우리 자신이 살아 있는 성경이 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마시고 먹고 입어야 한다”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성경 말씀으로 복음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백영민2014.11.20
[사설] 지금은 성경 말씀 실천해야 할 때 한국교회는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 마지막 주간을 성서주간으로 정하고 신자들에게 성경을 더욱 가까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를 하느님 사랑으로 이끌고 구원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신앙의 원천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마음을 열어 하느님 말씀을 들을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와 닿지 못하게 한다면, 그 말씀이 자신을 반성하도록 이끌지 못한다면, 그 말씀이 자신에게 권고가 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이 자신을 흔들어 놓지 않는다면, 그 말씀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 예언자, 사기꾼, 협잡꾼에 지나지 않을 것”(151항)이라고 지적했다.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마태 12,34)이라고 가르치셨다. 이에 교황은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해 마음 가득 예수 그리스도를 채우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손삼석 주교도 올해 성서주간 담화를 통해 “우리가 성경을 통해 구세주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둘 때 주변을 둘러보고 위로를 할 수 있고, 성경을 통해 사랑의 계명을 익힐 때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기 위한 선교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무릇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통해 복음화될 때 세상의 빛과 희망이 될 것임을 일깨우는 말일 것이다. 올 한해 한국교회는 교구별로 교구장 사목지침에 따라 ‘말씀의 해’를 지내면서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도록 신자들에게 다양한 사목적 배려를 제공해 왔다. 이젠 그 결실로 내면화한 말씀을 실천할 때다. 그 길은 세상의 변두리에 내쳐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이웃이 되고, 공동선과 사회 평화를 위해 세상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구세주 탄생을 준비하는 지금 절기야말로 복음적 사랑을 실천할 적기라 하겠다. 평화신문2014.1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