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천지를 주의합시다! ⑤ 끝가족이 신천지로 의심되면 도움 청해야 Q. 가족이 신천지에 빠진 것을 알아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1> 화를 내며 “다시는 신천지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2> 차분하게 신천지의 문제점을 알려준다. <3> 모른 척한다. 정답은 <3>번이다. 신천지는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 절대 신천지 성경 공부를 하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핍박을 당하신 것처럼 ‘진리’를 이야기하면 박해가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신천지에 빠진 이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핍박하는 자’로 여기게 되고, 가족이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여겨 극렬하게 저항한다. 2013년 11월 신천지 성경 공부를 시작해 1년 1개월 만에 그만둔 이로사(23)씨는 가족들에게 신천지 성경 공부를 하는 사실이 발각된 후 “신천지에 나가지 말라”는 가족들과 싸우다가 3개월 동안 가출했다. 이씨는 “가족들에게 발각되면 바로 ‘섭외부’(신도 이탈을 막는 역할)에 보고하게 되고, 섭외부는 ‘대응 지침’을 상세하게 알려준다”면서 “‘지금 이걸 그만두면 핍박하는 자들(부모)이 지옥을 가게 된다’고 겁을 준다”고 말했다.신천지에 빠진 이들의 회심을 돕는 이승혜(가타리나) 상담사는 “가족의 설득으로 회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일만 더 키우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절대 아는 척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수원교구 복음화국은 ‘신천지 교회 주의 공지’에서 “신천지에 빠진 이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발각됐을 때는 신천지 교회가 가르쳐준 대응 지침에 따라 말하고 움직이도록 세뇌된 상태”라며 “주변에 신천지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사제나 수도자에게 보고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신천지 ‘대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그들의 포섭수법을 숙지하고, 제대로 된 성경 공부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천지는 20~30대 청년들에게는 주로 설문 조사, 무료 심리상담(MBTI, 에니어그램)·심리 테스트·취미 교실 등을 빙자해 접근한다. 그들의 목적은 연락처를 확보하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해 연락처를 알아내기도 한다. 몇 차례 ‘심리 상담’을 한 후에는 어김없이 ‘성경 공부’를 권유한다. 낯선 이가 설문 조사, 심리상담 등을 권할 때는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성경 공부’를 권하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40대 이상 장년층에게는 신천지에 빠진 지인이 “좋은 성경 공부가 있는데 같이 하자”고 권하는 경우가 많다. ‘가짜 신부’가 성경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본당이나 교구, 수도회에서 개설한 성경 공부가 아니면 의심해 봐야 한다. ‘교회 밖 성경 공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또 ‘개역 한글판’ 성경을 사용하는 성경 공부는 신천지일 가능성이 높다. 가족이나 지인이 월·화·목·금요일 오전 또는 저녁마다 “성경 공부를 하러 간다”고 하거나 “일이 있다”고 하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원교구 복음화국은 신천지 성경 공부의 특징으로 △센터 등록 시 면접을 보고 사진, 원서, 소정의 복사비 등을 납부 △수강생이 필기한 노트를 집에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센터에 보관하도록 유도 △강사가 ‘자신은 특정 교파에 속하지 않는 초교파인’이라고 말함 △전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수업을 마치면 소모임을 갖고 매주 시험 실시 등을 들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① 신천지란 무엇인가② 신천지는 어떤 사람을, 어떻게 포섭하나 ③ 왜 신천지에 빠지는가④ 신천지를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⑤ 신천지 대처법·구별법 백영민2015.07.22
[위대한 신앙의 신비,기도] (8) 구약에 나타난 기도- 다윗, 임금의 기도 백성들에게 기도의 모범된 다윗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친 이들은 주로 백성의 지도자들, 곧 왕과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교리서(2578~2580항) 는 임금의 기도에 대한 본보기로 다윗의 기도를 이야기합니다. 교리서는 다윗 임금의 기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하느님 말씀에 따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으로 세운 예언자 사무엘을 먼저 언급합니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에게서 주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그리고 스승인 사제 엘리에게서는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속마음을 털어놓는 기도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사무엘)을 주십니다. 그리고 한나는 기도하면서 주님께 약속한 대로 아들을 주님께 바칩니다(1사무 1장 참조). 사무엘은 이런 어머니에게서 어렸을 때부터 주님께 기도 바치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 말씀을 듣는 법은 사제 엘리에게서 배웁니다. 그것은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 하는 자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몇 가지 중요한 자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의상 순서를 매기자면 기도는 ① 간절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간절함은 하늘을 울립니다. ②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기도는 진솔해야 합니다. 또 진솔하지 않으면 간절함도 없습니다. 진솔하지 않은 기도를 간절하게 바친다는 것은 가식이고 위선입니다. ③ 마음을 열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는 응답은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느님께서는 만사를 좋게 이끄신다는 확신과 신뢰가 전제돼 있습니다. 교리서는 다윗을 “누구보다도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임금”(2579항)이라고 소개합니다. 다윗은 “백성을 위하여 또 백성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목자입니다. 지도자의 첫째 덕목은 자신이 아닌 백성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이는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누구보다도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임금인 것은 그가 도덕적으로 더할 나위 없서가 아닙니다. 하느님 뜻을 따르는 순명과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참회 때문입니다. 그래서 임금인 다윗의 순명과 찬미와 참회는 또한 백성에게 기도의 모범이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르려는 자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은총에 대한 찬미, 그리고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겸손하게 뉘우치는 마음, 우리의 삶 자체가 이러한 기도의 삶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 또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 기도의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다윗의 뜻을 하느님께서는 물리치십니다. 그의 뜻은 아들 솔로몬이 현실로 만듭니다. 교리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바친 기도(1열왕 8,10-61 참조)와 관련, 임금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왕은 겸손한 자세로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쳐들고 △자신과 온 백성을 위해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백성의 죄에 대한 용서와 매일의 필요를 위해 △백성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을 향하도록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기도, 가장의 기도 역시 이런 기도이면 좋겠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6.07.20
![[자비의 특별 희년] (10)신문 배달하며 이웃 돕는 오광봉 할아버지](//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3767_1.0_titleImage_1.jpg)
[자비의 특별 희년] (10)신문 배달하며 이웃 돕는 오광봉 할아버지새벽엔 배달맨, 낮엔 ‘나눔 실천하는 독서광’ ‘날다람쥐’, ‘신문 배달맨’, ‘독서광’, ‘부산 감천동 할아버지’….이 모든 별명은 한 사람 것이다. 올해 여든넷의 오광봉(시몬, 84)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신문 배달을 매일 새벽마다 한다. 35년째다. 게다가 ‘날다람쥐 할아버지’란 별명까지 있다. 동네 주민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할아버지에게 붙여준 것이다. 실제로 오 할아버지는 잰걸음으로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널뛰듯 오르내리며 달동네로 유명한 부산 감천동 일대 400가정에 신문을 배달한다. 할아버지는 바쁘고 힘든 일과 중에 어려운 이웃도 돕는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더 힘들지”라며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 ‘자비를 실천하는 신문 배달맨’ 오광봉 할아버지를 부산 사하구 감천동 자택에서 만났다.신문 배달 35년, 그리고 나눔‘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감천동. 6ㆍ25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일군 이곳 일대는 이제 ‘감천동 문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다닥다닥 붙은 가옥들 인근에 자리한 오광봉 할아버지 집은 사람 한 명이 드나들기에도 비좁은 골목 안 3평 남짓한 곳이다.“신문 배달은 속도가 생명이에요. 매일 밤 11시에 신문 보급소로 출근해서 새벽 6시까지 배달을 마치려면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하죠.”남들은 모두 곤히 자는 시간이 할아버지에겐 가장 바쁜 시간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신문을 배달한다’는 진기한 사연에 2년 전엔 SBS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하기도 했다. 젊은이들보다 달리기도 빠르고, 명패 없는 집에도 신문을 ‘착착’ 배달하는 오 할아버지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내 고향은 평안남도 진남포요. 6ㆍ25전쟁 일어나고 온 식구가 부산으로 내려왔지요. 가족과 오순도순 터전 잡고 지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소.”할아버지는 이후 중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가난한 이들의 사제’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사목했던 송도성당에 다녔다. “알로이시오 신부님은 가난한 이들,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낌없이 나눠 주고 함께해 주셨어요. 그게 아직 기억에 선해요.”그래서일까. 오 할아버지는 6년 전부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홀몸 어르신 4가정에 격월로 쌀과 생필품, 생활비 등을 지원해 오고 있는 것. 할아버지 월급은 60만 원. 자신도 홀로 살면서 생활비를 겨우 버는 형편이지만, 틈나는 대로 폐지도 모으며 자선단체에 기부까지 하고 있다. 밥은 안 먹어도 되지만 책은 꼭 있어야 해“정신이 가난한 사람이 되면 안 돼요. 책은 소모되지 않고 정신을 살찌우죠.”할아버지는 ‘독서광’이다. 월급의 3분의 1을 책 구입에 쓰고, 돋보기 없이 하루 1권씩 책을 읽는다. 3평 남짓한 할아버지 방은 아늑한 서점을 방불케 한다. 할아버지는 “이 방에 책이 3000권쯤 된다”고 했다. 매일 성경도 30분씩 읽는다. “혼자 성경을 이해하기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다른 종교 서적들이 성경 내용의 뒷받침이 돼 준다”고 했다.장자, 노자, 플라톤 전집 등 철학서적부터 자본주의, 경제학 서적을 넘어 한편에는 1600쪽에 달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등 교회 서적까지 없는 게 없다. 지학순 주교 강론집 「정의가 강물처럼」 등 오래된 서적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도 모두 정독했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이들을 늘 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습과 글이 아름답다”고 했다. 신문에 나온 신간 소식을 갈무리해 뒀다가 대형 서점과 바오로딸 서원에 가는 게 할아버지 낙(樂)이다. 할아버지는 쉼 없이 구입하고 소화한 책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 준다. 몇 차례 TV 출연 후 생긴 팬 8명과도 늘 연락하며 지낸다. 모두 젊은 청년들인 이들은 할아버지가 구하기 어려운 책을 구매해 배송해 주고, 방문도 한다. 그들이 남기고 간 편지에는 “할아버지 책 선물 고맙습니다. 책을 많이 주신 만큼 제가 빨리 읽지 못해 오히려 죄송합니다”란 내용이 있다. “지혜는 우릴 배부르게 합니다.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죠. 책을 나누는 건 좋은 생각과 감수성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좋은 생각을 가지면 이웃을 돕는 사람이 되잖아요.”할아버지의 소원은할아버지는 1990년께 이혼한 뒤 지금껏 홀로 살고 있다. 가족들과 연락도 사실상 끊긴 상태다. 젊은 시절 가내수공업을 하다 그만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오른손은 엄지손가락뿐이다. 이후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식들 대학까지 다 보냈지만, 한때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다. 내 잘못”이라며 가족 이야기를 할 때엔 고개를 숙였다.할아버지에겐 꿈이 두 가지 있다. 한 번이라도 가족을 만나는 것, 그리고 서원(書院)을 차리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담한 서원에서 사람들과 책을 함께 읽고, 토론도 나누고 싶다”고 했다.“내가 가진 건 지금까지 모은 책과 작은 지식입니다. 이걸 나눈다는 것은 제겐 큰 기쁨입니다. 좋은 것 있으면 혼자 누리기 아깝잖아요. 나중엔 교회에 다 기증할 겁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취재 후기오광봉 할아버지는 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어르신이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홀몸 어르신을 돕고, 그들을 걱정한다. 젊은이들에겐 책을 선물하며 지혜를 쌓길 권한다. 작은 체구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노인과 젊은이들을 모두 돌보는 나눔을 베풀고 있다.할아버지 지론은 책을 읽은 좋은 생각은 결국 남들에게도 선(善)이 된다는 것이다. ‘선의 선순환’을 위해 책을 읽고 권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책 좀 읽으라”하는 말보다 훨씬 와 닿는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나눔을 실천하도록 할아버지를 이끈 원동력도 책의 한 구절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가구당 책 소비량이 5년째 감소세라고 한다. ‘독서의 의미’부터 터득하는 게 급선무일 듯하다.할아버지가 인터뷰 말미에 책 두 권을 추천했다. 「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바오로딸)와 「논어」(바이북스)이다. 할아버지는 책을 나눠줄 때 꼭 이렇게 써준다. “재물을 쌓지 말고, 지혜를 쌓아라.”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2016.03.09
![[부활 특집] 노숙·알코올 중독에서 재기한 박재기(베드로)씨](//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6328_1.0_titleImage_1.jpg)
[부활 특집] 노숙·알코올 중독에서 재기한 박재기(베드로)씨중독에서 벗어난 기적같은 삶, 또다른 기적 일군다 서울 가양 5단지 동대표 회장을 거쳐 지금은 주민과 단주 모임을 하고 있는 박재기(베드로, 67)씨.그는 20여 년을 알코올 중독자로 노숙생활을 하다 세례를 받고 신앙의 힘으로 재기한 보기 드문 인물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새 사람으로 태어난 그는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나락에 떨어졌던 자신의 옛 삶을 이야기하면서 재기를 돕고 있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아 부활의 새 삶을 경험했고, 알코올 중독자에게 새 삶의 기쁨과 희망을 전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박재기씨를 만났다. 쓰레기통에 얼굴을 처박고 벌레처럼 살았던 세월이었다. 소주를 병째 마시고 지하철 역사에서 한뎃잠을 자다가 누군가의 발길에 걷어차여 발목이 부러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피가 흘러도 누구 하나 가엾게 쳐다보지 않았다. 병원에 갈 돈은 당연히 없었다. 하루에 2000~3000원 구걸해 술로 탕진하는 터에 치료비가 있을 리 없었다. 처음부터 노숙자였던 건 아니다. 그도 한때 직장에 다녔고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10여 년간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잃고 아내마저 떠나면서 삶이 바뀐 것이다. 불행을 잊기 위해 마시던 술에 중독됐고 그러다 노숙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서울 영등포역과 서울역, 청량리역 등지에서 20여 년을 살았다. 1993년 어느 날 당시 서울 신림동에 있던 요셉의원에 실려 갔다. 어찌나 술을 마셔댔던지 간경화 증상이 심각했다. 폐결핵 4기에 치아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척추도 요추간판탈출증에 척추강 협착증 등으로 다 망가진 상태였다. 위궤양과 고혈압 등 자잘한 질환도 한둘이 아니었다. 병상에서 그의 숨이 멎었다. 의료진도 포기하고 흰 천을 얼굴에 씌웠다. 다들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박씨는 1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 후 수년간 끝없이 이어진 투병 끝에 다시 일어났다. 요셉의원에서 봉사하던 내과 전문의 유태혁 박사가 자신이 일하던 한강성심병원에 그를 데려가 알코올 병동에 입원시켜 2년 동안 치료를 받게 해준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몸을 추스른 그는 서울 목동의 집에서 재활하며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재활을 돕던 메리놀수녀회 칼라 수녀님과 돌리스카 수녀를 잊을 수 없어요. 재활하면서도 유혹을 이기지 못해 몰래 술을 마시다 들켰는데 저를 말리는 칼라 수녀를 때려 어깨를 부러뜨린 적도 있었어요. 술을 마시며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줬는지, 치료를 받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그런 힘겨운 과정을 거쳐 술을 끊고 34년간 말소됐던 주민등록을 되살렸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임대 아파트도 얻을 수 있었다. 아낌없이 자신의 재활을 돕던 수도자들에게 감화된 그는 1996년 세례를 받았다.죽었다가 살아난 터라 새로운 삶을 살기로 했다. 그래서 ‘체험담’ 나눔부터 시작했다. 목동의 집에 들어온 알코올 중독자들과 자신의 삶을 속속들이 나눴다. 20여 년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1993년 술을 끊고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기까지 과정을 낱낱이 드러냈다. “술의 힘을 빌려 자신을 학대하며 술의 노예로 살아가던 분들이 자신과 똑같은 삶을 살다가 회복된 저를 봤으니 얼마나 동질감을 느끼셨겠어요? 치료 공동체에 들어올 때만 해도 다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던 분들이 제게서 희망을 본 것이죠. ‘선병자의’(先病者醫)라는 말이 있잖아요. 병도 앓아본 사람은 그 경험으로 뒤에 앓은 이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듯이 제가 그런 경우가 된 거지요.”목동의 집을 나와 1998년 서울 가양 5단지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뒤부터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주민 대다수가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그들 중 알코올 중독자가 적지 않았다. 가양 5단지 전체 동대표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주민이 이끌어가는 단주 모임’을 조직했다. 알코올 중독이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주민을 섬기는 경로후원회 ‘아름다운 동행’도 만들었다. 홀몸노인이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도와드리고 은둔형 술 문제로 고통받는 가정을 찾아 맞춤형 1:1 단주 상담 활동도 하고 있다. 또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방문해 생일상을 차려 드리고, 병구완과 이ㆍ미용, 요리, 청소 등 필요한 모든 것을 돕는다. 필요한 비용은 회원 60여 명이 십시일반으로 내서 해결했다. “우리도 정부에, 사회에 기대서 살지 말고 서로 돕고 살자는 뜻으로 시작했어요. 그야말로 자조 모임입니다. 회비도 3000원, 5000원 정도입니다. 다들 가난한 분들이에요. 이분들의 사랑이 변화를 일으켰어요. 30명이 넘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어요. 이게 기적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의 맞춤형 1:1 단주엔 남다른 게 있다. 성경에 나오는 술과 관련된 내용 75구절을 추려 12단계에 걸쳐 나눔을 갖는 방식이다. 하느님 말씀과의 만남을 통해 알코올 중독자들이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성경과 단주와의 접목은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박미혜(마태오) 수녀와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2007년 음성 꽃동네 아나빔 공동체에서 봉사할 때 박 수녀와 함께 술과 관련된 성경 내용을 묵상하면서 참된 단주는 하느님 말씀과 또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 통회하는 데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이 깨달음 이후로 정말 술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하느님과 만나지 않으면 진정한 단주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꽃동네에서 봉사하기 전만 해도 제 치부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1m 이상 쌓인 눈 속에서 술기운으로 자다가 동상도 걸리고 곁에서 얼어 죽는 경우도 보던 시절을, 얻어먹으면서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비참했던 노숙 시절을 어떻게 쉽사리 드러낼 수 있었겠어요? 그렇지만 이 깨달음 이후 제 노숙 체험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안방 삼는’ 노숙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박씨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가양 5단지 주민과 함께 알코올 중독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재활자립센터를 세우는 것이다. 지속적 단주를 통해 육체를 회복하고 자립 자활하는 것을 목표로 한 자조 공동체다. 이 꿈을 위해 절대 서두르진 않는다.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살렸듯이 다른 알코올 중독자들도 살리실 것이라 믿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평화신문2016.03.24
![[주교 현장 체험] 화력발전소 현장 직접 보고 북한이탈주민 사연 듣고](//cpbc.co.kr/CMS/newspaper/2016/11/rc/660902_1.0_titleImage_1.jpg)
[주교 현장 체험] 화력발전소 현장 직접 보고 북한이탈주민 사연 듣고‘주교 현장 체험’에 참가한 주교단, 어려움 처한 이웃 고충 듣고 아픔 함께 나눠 북한이탈주민과의 만남주교단이 화력발전소 운영에 따른 기후변화 피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도재진 기자올해로 3회째를 맞는 ‘주교 현장 체험’의 두 번째 발길은 북한이탈주민에게 향했다. 2002년 북한이탈주민센터를 세웠고, 2010년 2월에는 통일부 지정 서울남부하나센터를 개소하는 등 15년째 이들을 위해 헌신적 사도직 활동을 해온 서울 양천구 신월로 한빛종합사회복지관 서울남부하나센터에서였다. 주교단은 8일 복지관을 찾아 ‘북한이탈주민과의 만남’을 갖고, 탈북과 난민 생활, 입국, 정착 과정에서의 고충을 듣고 그 아픔을 나눴다. 간담회에는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과 손희송ㆍ유경촌 주교, 의정부교구 이기헌 주교, 수원교구 이용훈ㆍ이성효 주교, 군종교구 유수일 주교, 전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 등 8명이 함께했고,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이은형 신부, 위원 조성하(도미니코 수도회) 신부, 사무국장 오혜정(스바니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도 참석했다. 7명의 북한이탈주민은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탈북 경위와 함께 북한에서의 성장ㆍ교육 과정과 삶, 신앙생활 여부, 난민으로 살았던 삶, 국내 정착 이후 삶까지를 2시간에 걸쳐 털어놓았다. 특히 중국 등 제3국을 통해 이뤄지는 탈북 과정의 인권 유린과 인신매매 현실을 토로했고, 하나원과 하나센터 등을 거쳐 국내에 정착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심리 치료와 재정적인 문제, 취직과 자녀 교육의 어려움 등에 대해 자세히 전했다. 두 차례나 북에 송환됐다가 세 번째 만에 탈북에 성공, 국내에 들어온 김아무개(52)씨는 “세 번째로 탈북할 때 아들에게 ‘언젠가 (탈북한) 엄마 마음을 이해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편지를 써놓고 떠나왔다”면서 “북에 두고 온 아이들이 ‘우리끼리 여기서 잘 살겠다’고 말하는 걸 훗날 전해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첫 번째 탈북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성경을 숨겨 보다가 두 번째로 탈북하면서 소각하고 나왔었다”면서 “두 차례 북한 송환으로 얼마나 고문을 많이 당했는지, 요즘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북강원도 철원 출신으로 대학에 다니는 이아무개(24)씨는 “부모님과 다 같이 탈북해서 이산의 아픔은 겪지 않았지만, 학업이나 일자리,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라면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염 추기경은 간담회에서 “여러분들이 겪은 구체적인 고난을 들으면서 그런 어려움을 딛고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이 제게 큰 희망을 줬다”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사시고 좋은 결실을 보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간담회를 마친 주교들은 한빛종합사회복지관 지하 식당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직접 만든 북한식 두부밥과 감자떡 등을 시식하고 오찬을 함께하며 북한이탈주민들과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찬 뒤 주교들은 서울 양천구에 사는 북한이탈주민 세 가정을 직접 찾아가 30분간 환담하고 쌀과 선물을 전달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는 주교 현장 체험을 마무리하며 “북한이탈주민의 신앙생활과 사회 적응을 돕는 ‘민족 화해 시범 본당’과 본당별 민족화해분과 활동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따뜻한 이웃이 돼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당진화력발전소 탐방“욕심 때문에 저지른 모든 잘못과 탐욕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합니다”. 주교회의가 2014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주교 현장 체험의 올해 마지막 일정이 9일 당진화력발전소에서 진행됐다.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있는 당진화력발전소는 수입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다. 발전용량은 4000㎽. 현재 8호기를 운영 중이며 9호기와 10호기는 올해 준공될 예정이다. 생태 환경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일정에는 강우일(제주교구장)ㆍ권혁주(안동교구장)ㆍ정신철(인천교구장)ㆍ옥현진(광주대교구 보좌) 주교와 박현동(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아빠스가 함께했다. 행사는 시작 기도 및 당진화력발전소 소개, 질의응답, 마침 기도 순으로 진행됐다. 화력발전소 운영에 따른 기후변화 피해 지역을 돌아보며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 만큼 주교들은 큰 관심을 나타냈다. 당진화력발전소 소개자로 나선 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국장은 “석탄 화력발전소가 대기 오염 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된다”며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10개 업체 중 8개 업체가 석탄을 사용하는 업체들이고 그렇다 보니 그만큼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중금속으로 인해 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발전소로 인해 지금까지 24명의 암환자가 발생해 13명이 죽었고 11명이 현재 투병 중”이라고 덧붙였다. 유종준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은 주교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강우일 주교는 “숨넘어가는 오늘의 현실을 우리가 지금이라도 자각하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 생태와 환경 파괴의 발걸음을 늦출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호소하고 또 기도하며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현실을 좀 더 정확히 인식하고 파악해 국가가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주교들은 당진화력발전소 탐방을 마무리하며 욕심 때문에 일어난 모든 잘못과 탐욕에 대해 기도로서 용서를 청했다. 오후에는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 위치한 지역센터 마을활력소와 홍동마을을 둘러봤다. 2011년 만들어진 마을활력소는 중간 단체로서 협동조합 등 지역의 자생적인 주민 단체와 조직 40여 개를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주교들은 이곳에서 이동근 사무국장에게 마을활력소와 홍동마을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홍동마을은 유기농업과 협동조합, 귀농 및 귀촌 운동 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마을이다. 주교들은 홍동마을에서 에너지를 독립적으로 만들어내는 자립형 컨테이너 하우스와 태양열 발전 시설 등을 둘러봤다. 도재진 기자 djj1213@pbc.co.kr 문채현2016.11.18

트윗으로 신앙의 갈증을 풀다! 하느님과 트윗을 하느님과 트윗을미헬 레메리 지음/김해경ㆍ이창훈 옮김/신정훈ㆍ김한수 감수/가톨릭출판사/1만 5000원가톨릭이 궁금한 청년들이 묻는 200가지 질문과 질문에 관한 답을 담았다. 질문은 ‘왜 사는 걸까요’라는 인생 고민에서부터 ‘성당은 왜 하느님의 집이라고 하나요’, ‘교황은 어떻게 될 수 있나요’와 같은 가톨릭 관련 궁금증까지 각양각색이다. ‘미사는 왜 지루한가요’ ‘천국에서 제 애완동물을 만날 수 있나요’ ‘종말은 언제인가요’ ‘자살하면 지옥에 가나요’처럼 평소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선뜻 꺼내기 어려웠던 질문도 눈에 띈다. 가톨릭 교회의 어제와 오늘은 물론 기도와 성사, 신앙과 윤리, 과학과 종교, 정치와 사회 등 가톨릭과 관련된 질문은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제와 청년들이 뭉쳤다. 미헬 레메리(네덜란드 로테르담교구, 유럽주교회의연합회 부사무총장) 신부는 청년들과 2주에 한 번씩 만나, 청년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를 자유롭게 나눴다. 그리고 이에 대해 교회 가르침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 무엇을 보여 주고 계신지를 토론했다. 질문엔 제한을 두지 않았고, 답을 할 땐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논거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하지만 ‘정답은 이것이니,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강요는 하지 않았다. 이해와 회심은 하느님께 맡겼다. 레메리 신부는 청년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하느님과 트윗을」(원제 Tweeting with GOD)이란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신자, 비신자 가리지 않고 가톨릭에 관심 있는 이들 모두에게 호평받았다. “그동안 알고 싶었던 궁금증이 해결됐고, 가톨릭 신앙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됐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이후 한국어를 포함해 8개 언어로 즉시 번역됐고, 20여 개국에서도 번역 중이다.레메리 신부는 소통의 장을 넓히기 위해 누리방(www.tweetingwithgod.com)과 어플리케이션(#TwGOD)을 만들어, 질문과 답을 나눴다. 특히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를 맞아 기존 어플리케이션을 업데이트해 50개 이상 언어로 서비스한다는 계획이다. 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건, 질문에 ‘정답’을 알려줘서가 아니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면서 신앙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열어주고 있어서다. 같은 고민을 하고 궁금해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나누도록 이끌고, 깨달은 신앙을 실천하도록 격려하고 있어서다. 별책 부록에는 각종 모임에서 책을 활용할 방법을 상세히 소개했다.정순택(서울대교구 청소년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는 “이 책은 끊임없이 소통하는 책”이라면서 “우리 청년들도 이 책으로 하느님과 신앙에 대해 함께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 주교는 지난해 유럽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회의에 참석해 저자 신부를 직접 만나 이 책을 소개받았다. 한편 가톨릭출판사는 책이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8일 서울대교구 청소년국(국장 김성훈 신부)에 책 3000권을 기증했다. 이날 도서 전달식에는 정순택 주교와 가톨릭출판사 사장 홍성학 신부, 청소년국장 김성훈 신부 및 청소년국 담당 사제단, 번역가 김해경씨 등이 참석했다. 기증 도서는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는 청년들을 비롯해 교구 청년ㆍ청소년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6.07.13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7) 구약에 나타난 기도- 모세, 중개자의 기도백성을 위해 하느님께 정성껏 기도 교리서(2574~2577항)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야곱에 이어 구약 역사에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의 기도를 살펴봅니다. 기도에서 주도권을 취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고 했는데, 모세의 경우도 하느님께서 먼저 행동하십니다. 불타는 떨기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먼저 모세를 부르시고 말씀을 건네시는 것입니다(탈출 3,1-10 참조). 하느님께서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아느님 야곱의 하느님”(탈출 3,6)이라고 밝히시고 또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고 당신을 계시하시는 것은 당신이 살아 계시는 하느님임을 뜻합니다. 이렇게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어 생명을 주시고자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것은 이 구원 사업을 당신 혼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구원 사업에 참여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인간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하지도 않으십니다. 모세를 부르시는 하느님과 발뺌하려는 모세의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은 오히려 모세에게 간청하시는 분처럼 나타납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느님과의 오랜 줄다리기를 하면서 마침내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게 됩니다(탈출 4장 참조).모세가 하느님께 사명을 받는 이 사건에서 주목할 또 한 가지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시는 이 대화를 통해 모세가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회피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고 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런 대화를 통해 마침내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33,11)고 탈출기는 전하는데, 교리서는 이 대화가 전형적인 ‘관상 기도’라고 설명합니다. 관상기도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간단히 ‘사랑으로 가득 차 하느님을 응시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하느님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듯이 관상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또한 그가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의 겸손에 대해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민수 12,3)고 전합니다.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이 친밀함으로 모세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소유로 삼으신 백성을 위해서 용기를 내어 항구하게 전구의 기도를 바칩니다. 아말렉 족과 싸움에서 이기도록(탈출 17,8-16) 전구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변절했을 때 백성을 위해 전구합니다(탈출 32,1─34,9 참조).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내고 마침내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게 한 모세의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전구의 놀라운 표상이 된다”(2573항)고 교리서는 설명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기도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모세의 기도는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먼저 부르시는 것에 대한 응답”입니다. 2) 모세의 기도는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기도를 예시한다”는 것입니다(2593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07.12

예수님은 정말 부활하셨을까 빈 무덤은 예수 부활의 증거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동굴 무덤 위에 지어진 ‘예수 무덤 성당’ 내부. 평화신문 자료사진 알렐루야! 예수 부활을 축하합니다.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부활 팔일 축제’ 마지막 날이에요. 예수님께서 진짜로 부활하셨는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성경 속에는 주님 부활을 알려주는 여러 증거가 있답니다. 의심을 품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그 증거들을 하나씩 살펴볼게요.증거1. 빈 무덤제자들은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거둬 깨끗한 아마포로 감쌌어요(마태 27,59). 그러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근처 정원에 있는 새 동굴 무덤에 예수님을 모시고,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답니다(요한 19,41-42).안식일 다음 날 동틀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는 예수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동굴 무덤에 들렀어요. 그런데 입구를 막아 놓은 큰 돌이 굴려져 있었답니다. 화들짝 놀라 무덤 안으로 들어갔을 땐 예수님의 시신은 온데간데없었어요. 그때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면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라고 말했죠(마르 16,1-7).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빈 무덤은 여러 사람이 목격했지요. 심지어 예수님을 죽인 주동자들인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경비병들의 보고에 ‘제자들이 훔쳐 갔다고 소문을 퍼뜨려라’고 지시합니다(마태 28,11-15). 이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마저 무덤이 비었음을 인정했다는 것이죠. 부활하신 예수님의 동굴 무덤 위에 성당이 지어졌어요. 326년 헬레나 성녀가 봉헌한 ‘예수 부활 성당’(예수 무덤 성당)이 바로 그것이랍니다. 무덤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방을 먼저 만나는데, 천사들이 발현했다는 ‘천사들의 경당’이에요. 경당을 지나면 예수님 무덤이 나와요. 무덤에는 석관이 하나 놓여 있어요. 그런데 이 석관 속은 비어 있답니다. 증거 2.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여러 사람 앞에 나타나 돌아가신 다음 되살아나셨음을 직접 보여주셨어요. 먼저 예수님께서는 누군가 시신을 꺼내 간 줄 알고 걱정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울고 있는 마리아를 위로하시며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라고 말씀하셨어요(요한 20,15-17).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도 나타나셨어요. 제자들에게 성경에 적힌 예수님에 관한 기록을 설명해 주시고, 제자들 집에 들어가 함께 빵을 나누기도 하셨어요(루카 24,13-35). 또 주간 첫날 저녁,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을 보여주시며, 그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셨어요(요한 20,19-23).부활하신 예수님은 또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어요(요한 21,1). 이날 예수님께서는 직접 물고기와 빵을 요리해 음식을 마련하셨고, 제자들을 부르시어 함께 나눠 드셨답니다. 식사를 마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내 양을 돌보아라”고 세 번 말씀하시고는 “나를 따라라”고 하시며 특별한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시기도 했어요. 이날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세 번째 나타나신 날이었어요. 이 사건을 기념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났던 호숫가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발현 기념 성당’이 세워졌어요. 성당 제대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음식을 나눴던 ‘그리스도의 식탁’으로 전해 내려온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남 자체보다 예수님을 뵌 제자들의 변화예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숨어 있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제자들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예수님 부활을 선포하며 그리스도를 따를 것을 강조했어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며, 동시에 예수님처럼 인간 또한 죽음 후 부활하리라는 굳은 믿음을 갖게 됐답니다.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이 의심스러운가요?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말하네요. “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코린 15,12)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평화신문2016.03.30
여성 신자 위한 교육 과정 개설주교회의 여성소위, 찾아가는 교육 ‘여성 아카데미’ 마련… 영성·리더십 등 구성 가톨릭 교회 여성 신자들이 더 활기차고 의미 있게 신앙생활을 하도록 돕는 교육 과정이 개설됐다.주교회의 평신도사도직위원회 여성소위원회(위원장 염수정 추기경)는 2년의 준비 끝에 ‘여성 아카데미’를 선보였다. 교육을 원하는 교구나 본당, 단체에 강사들이 직접 방문하는 ‘찾아가는 교육’으로 강의 주제는 △여성의 영성 △여성 리더십과 좋은 인간관계 △공동체 팀워크 재조직이다. 강사진은 심리 상담, 철학, 사회학, 신학 전문가로 구성돼 있다. 여성의 영성은 △교회의 가르침-여성의 존엄과 소명(강사 박정우 신부, 서울 가톨릭대 신학대 교수) △창세기와 아가서의 여성 이야기(장경 교수, 서강대 신학대학원) △성경 읽기를 통한 영성적 치유(김세서리아 교수, 이화여대) △여성 리더의 심리적 건강(박은미 교수, 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으로 진행된다. 여성 리더십과 좋은 인간관계는 △중년기 여성의 자기 리더십(강성숙 수녀,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 사랑의 딸회 한국 대표) △보살핌의 윤리와 가정 영성(김세서리아 교수) △공동체 활동과 긍정적 자기 관리(박은미 교수) △여성 리더의 영성(최혜영 수녀, 가톨릭대)로 이뤄져 있다. 주제별로 4강의씩 있는데, 필요한 강의 한두 개만 골라 신청해도 된다. 강사료는 강의당 30만 원(100분 기준)이다. 공동체 팀워크 재조직 프로그램은 강성숙 수녀가 진행하며 조직 변화 관리 기법(OST, Open Space Technology)에 관한 교육이다. 조직 운영에 변화와 화합을 꾀하는 공동체 교육으로 제격이다. 주교회의 여성소위 총무 박은미(헬레나) 교수는 “여성 리더십 교육이기는 하지만 본당 견진교리나 사순 특강, 대림 특강에도 활용하면 좋다”면서 “여성소위에서 만든 여성 아카데미가 신자들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문의 및 신청 : 010-8344-2080, 박은미 교수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6.03.08
![[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5) 제5대 조선대목구장 성 다블뤼 주교 고향, 아미앵](//cpbc.co.kr/CMS/newspaper/2016/04/rc/630906_1.0_titleImage_1.jpg)
[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5) 제5대 조선대목구장 성 다블뤼 주교 고향, 아미앵성인 주교가 보살핀 조선 교회, 이젠 프랑스에 사제 파견 어린 다블뤼가 세례받을 때 사용한 세례대와 선교 여정을 표현한 그림이 생르 성당 뒤편 기도소에 설치돼 있다. 시의원인 아버지. 공장을 소유할 정도의 경제적 풍요로움. 신앙을 중요시하는 집안 분위기. 7세에 라틴어 공부 시작. 10세 때 예수회 기숙사 학교 입학.제5대 조선대목구장 성 다블뤼(St. Marie Antoine Nicolas Daveluy, 1818~1866) 주교의 이야기다. 부유하고 명망 있는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왜 가난하고 박해받는 조선의 선교사가 되기로 했을까. 그 이유를 찾기 위해 성 다블뤼 주교가 어릴 적 신앙을 키운 프랑스 아미앵(Amiens)을 찾았다.프랑스 파리에서 북쪽으로 약 140㎞ 떨어진 곳, 피카르디 지방 솜 주의 주도 아미앵이 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된 성당과 종각, 「80일간의 세계 일주」의 작가 쥘 베른의 집 등이 있는 곳으로 유명한 도시다.아미앵은 일찍이 도시로 발전해 지역의 수도 역할을 해왔다. 그래서 크기는 작아도 없는 것은 없다. 백화점과 마트 등 현대식 쇼핑센터와 옛 성당과 수도원, 근대 건물들이 섞여 묘한 세련된 분위기가 흘렀다.생르(St. Leu) 성당서쪽 영국 해협으로 흘러드는 솜(Somme)강은 아미앵을 관통해 흐르고 있다. 시내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작은 강줄기와 맞닿은 곳에 어린 다블뤼가 세례받은 생르 성당이 보였다.큰 성당은 아니었지만 종탑 곳곳에 세밀하게 조각된 장식들이 눈에 띄었다. 하지만 까맣게 변해 버린 외벽은 조각의 화려함을 무색하게 만들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폭격으로 그을린 자국이었다. 다블뤼 주교의 어릴 적 추억과 함께 시대의 아픔도 간직한 장소였다.안으로 들어가자 익숙한 깃발이 눈에 들어왔다. 태극기였다. 2005년 서울대교구 갈현동본당 신자들이 아미앵을 방문해 전달한 것이었다. 성당 뒤편은 성인을 기리는 기도소로 꾸며져 있었다. 기도소엔 어린 다블뤼가 세례성사를 받을 때 사용한 세례대도 놓여 있었다. 세례대 뒤에는 조선에 발을 딛기까지 여정을 표현한 그림도 함께 걸려 있었다. 또 갈현동본당 신자들이 선물한 현수막도 이곳에 걸려 있었다. 현수막 속 적힌 손글씨가 함께한 순례단 마음을 울렸다. ‘우리는 기도 안에서 하나 됩시다.’ 순례단은 잠시 의자에 앉아 주모경을 바쳤다.아미앵 노트르담(Amiens Notre Dame) 주교좌성당아미앵에서 노트르담 주교좌성당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높은 성당 지붕만 찾으며 걸어도 금방 성당에 도착할 수 있었다. 고딕 건축의 ‘파르테논 신전’이라 불리는 이유가 있었다. 화려한 조각으로 둘러싸인 웅장한 성당 외관은 순례단을 압도했다. 고개를 들어도 지붕 끝이 잘 보이지 않았다. 중앙 문 위에는 ‘최후의 심판’이, 문 양쪽으로는 열두 사도의 모습이 조각으로 표현돼 있었다. 성당 안팎을 둘러싸고 있는 조각은 3600여 점. 각기 다른 생김새에 다른 표정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 감탄을 자아내게 했다.성당 내부 넓이는 7700㎡, 축구장 크기였다. 아치형 천장을 받치고 있는 기둥은 마치 동화에 등장하는 거인 같았다. 내부 곳곳엔 요한 세례자의 생애 등 성경 내용을 표현한 상들이 줄지어 있었다. 눈으로 읽는 돌로 만든 성경이였다.성당 가장 안쪽 벽면에 걸린 그림 속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성 다블뤼 주교와 조선 신자들을 표현한 작품이다. 하얀 주교관을 내려놓고 두 손 모은 다블뤼 주교와 아기 예수 그리스도를 품에 안은 성모 마리아가 그려져 있다. 그 아래엔 한국 신자가 제작해 봉헌한 성해함이 있다. 다블뤼 주교의 조선 입국부터 순교까지 일대기를 그려 넣은 빈 성해함이었다. 다블뤼 주교의 성해는 본당에서 따로 보관 중이었다.안내를 맡은 아미앵주교좌본당 보좌 김지훈(서울대교구) 신부는 순례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사제가 없이 고통받는 조선 교회를 위해 몸소 뛰어든 다블뤼 주교와 사제가 부족해 어려움을 겪는 프랑스 교회를 위해 선교를 지원한 김 신부, 두 사제가 닮았단 생각이 들었다.“과거의 한국 교회는 외국인 선교사들의 도움을 받아야 했지만, 이제는 외국 교회에 도움을 줄 수 있는 교회로 성장했습니다. 받은 것을 갚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을 위해 애쓴 프랑스 선교사들의 흔적을 찾고 보존하는 것 또한 우리의 역할이 아닐까요.”글ㆍ사진=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성 다블뤼 주교는 누구인가성 다블뤼 주교는 1841년 사제품을 받고 1843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그는 1845년 중국 김가항성당에서 봉헌된 김대건(안드레아) 신부의 사제 서품식에 참석한 후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 김 신부와 함께 조선에 입국했다.1857년 제4대 조선대목구장 베르뇌 주교에게 주교품을 받은 다블뤼 주교는 내포 지방 선교에 온 힘을 기울였다. 1866년 3월 7일 베르뇌 주교가 순교하면서 다블뤼 주교는 제5대 조선대목구장이 됐다. 하지만 3월 30일, 대목구장 재임 23일 만에 충청도 갈매못에서 순교했다. 후에 주교의 유해는 서울 절두산순교성지에 안치됐다. 다블뤼 주교는 1984년 5월 방한한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시성됐다. 평화신문2016.04.19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8) 김자호 가브리엘 (간삼파트너스 회장)](//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4136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8) 김자호 가브리엘 (간삼파트너스 회장)‘놀면서 일하자’는 이상한 대표이사, 숨겨진 뜻은? 간삼파트너스 사무실에서 환하게 웃고 있는 김자호 회장. 백영민 기자 heelen@cpbc.co.kr 어떡하면 좀 더 재미있고 잘 놀 수 있을까? 늘 궁리하는 CEO를 만났다. 경영은 휴대폰으로 하고 정밀 설계하듯 시간을 쪼개면서 논다. 심지어 착한 사람이 있는 천당 대신 악한 사람이 있는 지옥에 가서 함께 놀면서 선도하고 싶다고 한다. 건축가가 본업이지만 문학, 예술, 스포츠 등 모두 만능이다. 재미있는 역설이지만 따뜻한 역발상의 인간미가 배어 있다. 건축물은 기본에 충실한 삶의 가치를 디자인해야 한다고 믿는다. 인터뷰 내내 그의 농담과 말의 재미에 취해 시간의 길을 잃고 말았다. 국내 유수의 건축회사인 간삼(間三)파트너스 김자호(가브리엘) 회장이다. 자신을 대표이사가 아닌 대표사원이라고 부른다. 김자호 대표사원의 놀면서 배운 건축, 놀면서 깨달은 인생, 노는 힘을 준 신앙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놀면서 간지(間志)게 일하는 법’을 배워보자.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사훈이 ‘놀면서 일하자’인데 어떤 의미인가요.즐길 줄 아는 사람이 일도 잘합니다. 놀기만 하면 안 되죠. 자기가 좋아하는 것을 즐기면서 일을 하자는 뜻입니다. 자신을 학대하고 고민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그런 사람은 칭찬을 많이 해주면 금방 성장합니다. 칭찬하면 고래도 춤춘다잖아요. 제 역할은 일을 잘할 수 있게 칭찬해 주는 것입니다.▶전 직원의 이름을 모두 기억하신다고요.3명으로 시작한 회사가 34년이 지난 현재 618명인데요, 제 방에 가면 빨간 앨범이 하나 있어요. 불조심하듯이 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뚜껑을 빨갛게 만들었는데요, 1번부터 618번까지 직원 명단이 있고 그 뒤에는 그만둔 사람들의 명단이 있습니다. 모두 다 기억하기 위해서입니다. 저는 회사를 나간 사람들에게 특별히 잘해 줘야 한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분들이 우리 회사에 대한 선전을 더 잘해 주고요. 이직한 사람 중에서 다시 돌아오는 사람이 꽤 있는데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놀기만 하는 직원, 일만 하는 직원, 회장님은 누구 손을 들어주시겠습니까.노는 사람, 일하는 사람 둘 다 있어야 합니다. 건달 같은 친구도 있어야 하고 열심히 일하는 사람도 있어야 하는데 일만 열심히 하는 사람만 있으면 회사 분위기는 망해요. 스트레스만 쌓이고 창조적인 생각들을 못 하거든요. 풍물도 보고 견학도 하고 다른 경험도 하고 밤거리도 좀 알고 그래야지요. 건축은 사람을 담는 그릇을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사람들이 어떤 행위를 하는지 더 많이 알아야 합니다. 양쪽이 다 필요해요. ▶간삼의 의미가 시간, 공간, 인간이라고 들었습니다. 어떤 철학이 담겨 있는지요.1983년에 이 회사를 만들고 이름이 필요한데 작고하신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건축가이신 김수근 선생님이 학교 선배님이셔서 “이름을 하나 지어 주십시오” 했더니 우리는 공간 건축이니까 너희는 간(間)을 두 개 더 넣는 것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건축은 인간과 시간, 공간인데 삼간 하니까 좀 왜소해 보여서 간삼(間三)이라고 했습니다. 처음에는 굉장히 어색했는데 건축 철학과 연결돼 지금은 익숙해졌습니다. ▶시간, 공간, 인간의 건축은 어떤 건축입니까. 일반 사람들은 건물을 보는 것이고 건축물은 건축가가 디자인해서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건축은 사람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에 구조적으로 튼튼하고 기능이나 동선을 잘 맞추고 디자인을 잘해서 최종적으로 예쁘게 만드는 것인데요, 여기에 혼(魂)과 정성이 담겨야 하고 그게 건축물을 설계하는 사람들의 기본자세가 되어야 합니다. 이집트에 우리나라 한옥이 있으면 어울리겠습니까? 반대로 을지로 네거리에 피라미드가 있으면 안 어울리죠. 건축물은 수학문제를 풀듯이 정답이 없습니다. 귀납적인 방법으로 모든 것을 다 만족하고 맞출 수 있는 공통분모를 찾아서 하는 것입니다. ▶신입사원에게 일일이 손편지도 쓰신다고 들었습니다.그래요. 신입사원들은 자라나는 새싹이라 처음부터 공을 들입니다. 우리 회사에 합격하면 제가 편지를 손수 써서 합격통지서를 보냅니다. 어떤 때는 꽃이나 떡을 보내 합격 통지를 합니다. 부모님에 대한 감사, CEO로서의 다짐이죠. 신입사원 교육은 한 3개월 정도 하는데요, 첫 번 강의는 30년 동안 늘 제가 합니다. 강의 주제는 한마디로 인간이 되라는 것인데요, 제 경험에 의하면 첫 번째 직장에서 얻은 지식이 직장을 바꾸더라도 한 70%는 영향을 미칩니다. ▶인간이 되는 법을 좀 알려 주세요. 설계하는 데도 법이 있습니다. 건축법이 있고 재개발법, 도시계획법이 있고 그 위에는 헌법이 있죠. 헌법보다 더 위에 있는 것이 윤리이고 그 위에는 도덕입니다. 인간은 윤리와 도덕을 가지고 살기 때문에 이것을 지키지 않으면 동물과 다를 게 하나도 없죠. 문을 열었으면 닫을 줄 알고, 물건을 썼으면 제자리에 놓을 줄 알고, 학교 갔다 왔으면 인사할 줄 알고, 기본에 충실할 수 있도록 가르쳐야 인간이 된다고 생각합니다. 윤리와 도덕 없이 놀면 건달이 되는 것이죠.▶처음부터 건축가가 꿈이셨나요.저는 학교 다닐 때 무엇이 되겠다는 생각은 안 했고 어느 학교가 좋다는 생각도 안 했습니다. 친구 따라서 대학을 갔는데 전혀 후회하지 않고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우리 집은 원래 의사 집안인데 의사는 90%가 외우는 직업이지요. 건축은 창조적인 직업이기 때문에 2050년이 돼도 없어지지 않는 직업 중의 하나입니다. 디지털이 돼도 건축은 아날로그입니다. 사람이 사는 곳을 만들기 때문에 굉장히 인간적인 직업이죠. ▶인공지능이 설계하고 로봇이 건축하는 시대가 오지 않을까요.초창기만 해도 투시도에 연필로 긋고 청사진을 만들고 했는데 30년 사이에 삼각자, T자, 직각이 다 없어졌어요. 옛날에는 구름 같은 집을 만들면 계산하기가 어려웠습니다. 1년 걸려서 구조 계산을 해야 했는데 지금은 몇 시간이면 합니다. 또 건축에서 제일 먼저 없어진 게 국경인데요. 현장에 가지 않아도 설계 대상 지역을 인터넷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건축의 최후는 아날로그입니다. 현장에서 잠을 자면서 바람 소리도 듣고 계절의 변화를 온몸으로 느껴야 합니다. 그래야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도면은 첨단 기계로 할 수 있지만 어떻게 지을 것인가는 결국 사람이 하는 것이죠.▶설계 기부를 많이 하신다고 들었습니다. 회사는 이윤을 다시 사회에 환원할 줄 알아야 합니다. 기부라는 것은 어렸을 때부터 집안에서 습관화되고 몸에 배어 있어야 하지 돈이 많다고 기부하는 것은 아닙니다. 집안이 가톨릭 집안이어서 어렸을 때부터 부모님들이 하는 것을 자주 봤습니다. 저희 부모님은 의사였기 때문에 환자에게 했지만 저는 건축을 통해서 한 것이죠. 신부님이나 수녀님들이 원하시면 좋은 것 만들어 드리고 국내뿐 아니라 아프리카나 콜롬비아, 몽골 등에 설계 기부를 많이 했습니다. 광희문 성지순교 현양관은 신부님이 너무 고생하셔서 리모델링 설계를 해드렸습니다.▶회사 경영도 놀면서 하신다고 들었는데요.요즘은 휴대전화로 다 합니다.(웃음) 사람이 나설 때 물러설 때를 잘 알아야 하듯이 제 나이쯤 되면 후배들이나 파트너들에게 물려주고 물러나야지 나이 들어서 자꾸 있으면 그것은 노악(老惡)입니다. 젊은 사람들이 일을 잘할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게 제 역할이지 제가 연필 잡으면 다른 사람들이 일을 안 합니다. ▶회장님께서 놀면서 깨달은 인생이란 무엇인지요. 혼자가 되기 전에 여러 사람에게 많은 것을 배려하고 베풀고 함께 갈 수 있는 그런 인생이면 좋겠습니다. 남은 인생에서 제일 힘든 것은 고독과의 싸움이겠죠. 정신적으로 건강해지고 남들과 더불어 살 수 있는 그런 마음의 여유를 가지면 좋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일도 혼자서 아무리 잘해도 소용이 없어요. 저는 대표이사라는 말을 잘 안 쓰고 대표사원이라는 말을 잘 씁니다. 우리 회사를 대표하는 사원입니다. 직원들이 다 열심히 했기 때문에 이 회사가 있는 것이지 제가 잘해서 있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아요. ▶천당 대신에 지옥 가고 싶다고 말씀하셨다고요.지옥에 가야 친구들도 많고 나쁜 사람도 더 만나고 그러지 않겠습니까? 천당에는 선한 일을 한 사람들이 있는데 재미가 없을 것 같아요. 히틀러, 김일성도 거기 가면 볼 수 있을 걸요? 나쁜 짓을 많이 한 사람들을 잘 선도하면 좋은 사람으로 만들 수 있지 않겠어요?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사람 보는 눈도 달라집니다. 시흥 전진상 무료 진료소 준공 때 고 김수환 추기경님께 감사패 대신 ‘천당 표 한 장 달라’고 부탁했더니 추기경님께서 “그거 구할 수 있으면 나도 좀 주게”라고 하셨습니다. ▶평소 마음에 담아둔 성경 구절 있으세요.주님의 기도를 좋아하고요. 재미있게 들은 구절은 ‘하늘을 나는 새를 봐라. 먹을 것이 없는데도 저렇게 살고 있지 않으냐’하는 부분인데요. 인생을 살다 보니까 창고에 쌓아놓지 않고 저금통장에 돈이 없어도 항상 마음이 푸근하게 살 수 있는 마음의 자세가 중요하지 않을까 합니다.▶정계나 권력에 줄을 좀 대고 싶은 유혹은 없으셨나요.솔직히 매우 많았어요. 그런데 저의 지론은 ‘송충이는 솔잎을 먹고 살아야 한다, 공짜는 없다’입니다. 정부가 선도하고 경제가 끌고 가고 정치가 잘 맞춰주면 나라 발전에는 참 좋습니다. 다만, 유착에 부패와 부조리가 생겨 문제가 되는 것이죠. 기술자는 기술을 가지고 생활하는 것이지 정치 논리에 자꾸 휘말리면 자기 능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젊은 사람들에게 희망의 메시지를 좀 주세요.용기를 가져야 해요. 용기를 갖기 위해서는 자신감과 학식이 있어야 합니다. 아무것도 없는 깡통이 되면 안 되잖아요. 모든 것은 자기가 정하는 것이고요. 자신만의 기준을 갖기 위해서는 많은 경험을 하고 다양하게 친구도 사귀어 보고 고생도 해 봐야 용기가 생깁니다. 열심히 노는 게 좋아요. ▶어떤 사람이 ‘리더’가 돼야 한다고 보십니까.리더는 아무나 되는 게 아니라 놀아본 경험과 용기가 있어야 하고 희생하고 배려할 줄 아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내 것은 하나도 없어도 돼요. 지갑에 돈이 없어도 먹고 살 수 있어요. 저는 더 나이 들면 혼자 놀아야 해서 요즘 판소리 단가를 몇 개 배우고 있습니다. 악기가 없어도 되잖아요. 방송 시각 TV : 14일 오후 7시, 15일 오후 11시, 16일 오전 8시 cpbc2017.03.08
![[성경 속 도시] (26) 티아티라](//cpbc.co.kr/CMS/newspaper/2014/08/rc/522770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26) 티아티라회개의 기회를 저버린 교회 상업 발달로 우상숭배가 만연했던 티아티라의 유적지. 제공=평화방송여행사 김원창 티아티라는 ‘속죄물’이란 뜻을 지닌 요한 묵시록 교회 중 한 곳이다. 최초로 기원전 7세기께 리디아인들에 의해 도시가 건설되고 ‘펠로피아’라 명명했다. 기원전 3세기께 알렉산더 대왕의 장군인 셀레우코스가 이곳을 점령해 군대를 주둔시키고, 이곳에서 출생한 자신의 딸 이름을 따서 ‘티아티라’라 불렀다. 그 후 도시를 확실히 정착시키기 위해 유다인들을 이주시킴으로써 상업도시로도 번성했다. 과거의 유적은 거의 묻혀 있고 도시의 한 모퉁이에 아폴로 신전과 회랑, 그리고 비잔틴 교회의 폐허만 남아 있다. 교회터에는 현재 석축 기둥과 담장만 남아 있다. 태양신 아폴로 영향 받아 티아티라는 지리적으로 비옥한 목초지가 있는 계곡을 끼고 형성된 도시다. 이곳 도시에서 발견된 동전에는 주석으로 된 갑옷을 입고 전차를 타고 전쟁에 나가는 태양신 아폴로의 모습이 새겨져 있다. 도시 사람들이 태양신에게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나타낸다. 실제로 기원전 132년 로마가 아나톨리아에서 크게 세력을 얻게 되자 이 지역에서 태양신 아폴로는 로마 황제로 둔갑해 황제를 숭배하는 사상으로 바뀌었다. 티아티라는 당시 염색업뿐 아니라 직조, 피혁, 도기 제조업 등 다양한 산업이 발달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장사하려면 동업 조합에 가입해야만 했고, 절기마다 장사가 잘 되기를 기원하는 의미로 조합원들은 조합 내에서 지내는 제사에 참석해야만 했다. 그들은 아폴로 신전에 가서 제사를 드릴 때면 술을 마시고, 우상에게 바친 제사 음식을 먹고 마셨고, 제사의 분위기가 절정에 이르면 신전의 사제들과 음행했다. 따라서 요한 사도가 티아티라 교회를 향해 편지할 때 “이제벨이라는 여자를 용인하고 있다.… 우상에게 바친 제물을 먹게 한다”(묵시 2,20)고 했다. 실제로 티아티라 도시와 인연을 가진 인물은 리디아다. 그녀는 바오로 사도의 설교에 탄복해 사도 바오로의 선교의 협조자가 됐다. 리디아로 인해 필리피 교회는 사도 바오로에게도 아주 특별한 교회가 됐다. 리디아와 그 가족이 첫 열매가 돼 이후 많은 사람들이 세례를 받고 큰 교회를 이루게 된다. “티아티라 시 출신의 자색 옷감 장수로 이미 하느님을 섬기는 이였던 리디아라는 여자도 듣고 있었는데, 바오로가 하는 말에 귀 기울이도록 하느님께서 그의 마음을 열어 주셨다. 리디아는 온 집안과 함께 세례를 받고 나서, ‘저를 주님의 신자로 여기시면 저의 집에 오셔서 지내십시오’ 하고 청하며 우리에게 강권하였다”(사도 16,14-15). 회개하지 않아 책망 들어 리디아는 필리피 교회의 첫 영세자였다. 리디아는 자색 옷감 장수로 티아티라 출신이었다. 당시에 염료를 얻기 위해서는 나무의 뿌리에서 자색 염료를 얻거나 자색이 나는 달팽이를 통해 원료를 얻었다. 자색 천 한 필을 염색하려면 많은 재료가 필요했다. 따라서 자색 천은 당연히 고가품으로 팔릴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비잔틴 시대에 자색 천에서 태어난 사람은 그의 신분이 왕족이나 귀족이었다고 전한다. 티아티라 교회는 성경에서 회개할 기회를 주었으나 회개하지 않았다는 책망을 들었던 교회로 묘사된다.“내가 그에게 회개할 시간을 주었지만, 그는 자기 불륜을 회개하려고 하지 않는다. 보라, 내가 그를 병상에 던져 버리겠다. 그와 간음하는 자들도 그와 함께 저지르는 소행을 회개하지 않으면, 큰 환난 속으로 던져 버리겠다”(묵시 2,21-22).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08.05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 글라스] 28.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 스테인드글라스](//cpbc.co.kr/CMS/newspaper/2016/08/rc/648185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 글라스] 28.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승리의 가시관’, 남용우 작, 1975,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예수 성심, 성모 성심’, 남용우 작, 1975,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 건축가 유희준의 작품으로 대통령상을 받았던 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에는 우리나라 스테인드글라스 작가 남용우의 1970년대 대표작 ‘예수 성심, 성모 성심’과 ‘승리의 가시관’이 설치돼 있다.남용우는 서울대 미대 재학시절 당시 학장이던 장발에게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를 연구하라는 권유를 받고 졸업 후인 1958년 독일 유학길에 올랐다. 그는 쾰른과 뮌헨 미술대학에서 스테인드글라스와 글라스 페인팅 작업으로 유리 고유의 물성을 탐구하는 연구를 진행했다. 이후 독일 체류 중이던 1968년 서울 초동교회의 작품을 시작으로 현재까지 국내 여러 성당에 스테인드글라스와 모자이크 작품을 선보였다. 빛으로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1975년에 완성된 성 라자로 마을 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한센병 환우촌에 위치한 성당에 놓인다는 것과 수호 성인이 예수 성심, 성모 성심임을 고려해 이에 맞는 상징들을 도입하고, 강렬한 원색을 중심으로 한 추상적인 구성을 취했다. 작가의 의도에 따른 상징과 색의 상징이 적절하게 조화를 이루는 성 라자로 마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궁극적으로 한센병 환자들이 희망을 잃지 않고 자신들의 삶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도움을 주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우선 제대 뒤편에 놓인 ‘예수 성심, 성모 성심’은 성모님을 상징하는 푸른색과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을 표현하는 붉은색을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작가는 붉은색과 푸른색으로 나뉜 구획에 따라 작품 하단에는 한센병 환자의 아픔을 상징하는 목발과 승리의 상징인 빨마가지를, 화면의 상단에는 예수 성심을 표현했다. 여기에 납선으로 이뤄진 윤곽선에 검은색 안료로 페인팅을 더 해 거친 가시의 인상을 그려냄으로써 한센병 환우들의 고통과 가시관을 쓰고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 그리스도의 고통을 동일시해 표현하고자 했다. 작가는 화면 전체를 아우르는 붉은색과 푸른색을 표현하는 데 있어 같은 색이면서도 미묘한 차이를 드러내는 여러 톤의 색유리들이 조화롭게 어우러질 수 있도록 해, 더욱 풍성한 빛의 뉘앙스를 만들어냈다. 이와 같은 빛의 환희는 한센병 환자들의 고통이 단순히 고통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성모님의 보살핌 속에서 극복되고 기쁨으로 승화돼 예수 성심으로 향하고 있음을 나타낸 것이기도 하다. 작가는 이렇게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빛과 색의 상징으로 미사에 참여한 한센병 환자들에게 그들이 버려진 존재가 아니며 그들이 겪는 고통은 우리 모두가 삶 속에서 지고 가야 할 십자가임을 이야기하고자 했다. 제대 양옆 벽에 위치한 원형 창 중에 1975년에 설치된 ‘승리의 가시관’ 역시 붉은색과 푸른색을 주조로 추상적인 가시관의 형상을 페인팅으로 표현하고 있다. 이와 같은 표현은 남용우의 초기 회화 작품인 ‘오상’(1958)의 표현과 유사한 것으로 그의 회화 작업들이 스테인드글라스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음을 보여준다. 미술계 흐름과, 교우와의 소통의왕 성 라자로 마을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1975년 설치 당시에는 지금의 모습과는 달리 십자고상 뒤편의 긴 창과 왼편의 원형 창에만 작품이 자리하고 있었다. 이후 여러 차례에 걸쳐 스테인드글라스가 추가로 제작되면서 현재의 모습이 완성됐다. 한 작가의 작품이지만 시차를 두고 완성된 작품인 만큼 작품 경향이나 표현된 내용 등에서 다소 차이를 보인다. 이에 대해 작가는 독일 체류 시절의 작품에는 당시 미술계의 흐름이 적극적으로 반영됐고, 귀국 후 진행된 작업은 한국적인 것과 교우들과의 소통을 고민의 결과라고 설명하고 있다.“스테인드글라스는 무엇보다도 성경에 대한 깊은 이해에서 출발하는 것이 중요하며 작품 안에서 교우들과의 소통을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에 대해 아직까지도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는 작가의 말을 떠올리며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이 참으로 매력적이면서도 쉽지 않은 것임을 새삼 깨닫게 된다 백영민2016.08.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