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나는 겨울 방학, 신앙 유산 찾아 박물관으로전국의 국ㆍ공립 및 개인 박물관 소장 천주교 유물들 방학을 맞아 전국의 국공립 박물관을 비롯해 교회 박물관 견학을 추천한다. 문화체육관광부와 국립중앙박물관이 지난 12월 1일 새롭게 개편한 이뮤지엄 누리집(www.emuseum.go.kr)에 접속해보자. 이뮤지엄을 통해 전국 112개 박물관이 소장하고 있는 29만 건의 물품과 이미지 70만 장을 검색할 수 있다. 일반 박물관에 소장된 천주교 관련 유물들을 직접 찾아가 보는 것은 어떨까. 아울러 서울대교구 절두산순교성지 ‘한국순교자박물관’, 부산교구 ‘오륜대 한국순교자박물관’, 전주교구 ‘천호성지 가톨릭성물박물관’, 대전교구 ‘공세리성당 박물관’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100주년 역사전시관’ 등 교회 박물관들도 눈여겨보자.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가톨릭청년」(가톨릭靑年)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정문화재 제778호. 단기 4292년(1959) 12월 1일 가톨릭청년사 발행. 제13권 12호. 표지에는 아기 예수님과 경배하는 사람들이, 뒤표지에는 광고가 인쇄돼 있다. 내용은 천주교 교리 등을 다룬 논설과 교회 인물들을 다룬 전기, 문학 등에 관한 다양한 글과 성탄특집 관련 글이 수록돼 있다.△「미사경본」(彌撒經本)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정문화재 제309호. 일제강점기인 1938년 2월 19일 성분도수도원(聖芬道修道院) 발행. 편집 겸 발행인 홍태화(洪泰華, Lucius Roth, 성 베네딕도회, 1890~1950) 신부. 앞표지에는 십자가가 음각돼 있으며, 내지에는 미사의 순서, 전례 시기와 축일에 따른 미사 경문 등이 수록돼 있다. 내지 첫 장에 ‘서울 성동구 김 스데파노 행당동 천주교회’, ‘1970年 4月15日 샀음’이라고 적혀 있다.△「성경직해」국립민속박물관 소장. 1897년 발행. 지정문화재 제478호. 천주교의 주일과 주요 축일에 봉독 되는 성경 구절을 발췌해 수록한 책. 총 9권. 우측 가장자리의 구멍 4개를 꼰실로 꿰어 엮은 것이 특징.△「천주교요리문답」국립민속박물관 소장. 지정문화재 제778호. 1931년 조선주교공의회 명령으로 발행된 한국 천주교회의 교리서로, 이 책은 1937년 7월 10일 성서활판소(聖書活版所) 발행. 편집인 안세화(安世華, Florian Demange, 1875~1938, 초대 대구대교구장) 주교. 발행인 원형근(元亨根, Adrien Joseph Larribeau, 1883~1974, 제9대 서울대교구장) 주교. 앞표지에 ‘천주교요리문답’이 인쇄돼 있고, 내지에는 천주교의 주요 열두 가지 기도문인 십이단과 교리문답이 수록돼 있다.△묵주국립중앙박물관 소장. 광복시대 이후. 국가 지정 중요 무형문화재 제22호 김희진(율리아나) 작. 전체 길이 70㎝. △「성모성년 기념 제1회 성미술전람회 목록」김달진미술자료박물관 소장. 가로 13㎝, 세로 19㎝. 1954년 10월 5~12일 미도파백화점 5층에서 열린 제1회 성미술전람회 전시물 목록과 홍보 책자. △순교자1내설악예술인촌 공공미술관 소장. 회화. 2000년대 이후. 나정태 작. 가로 135㎝, 세로 163㎝. △「영남순교사」대구근대역사관 소장. 광복 이후. 가로 14㎝, 세로 20㎝. 영남지역 지리와 천주교 전래 역사, 병인순교사를 기록한 책.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주화대한민국역사박물관 소장. 재질은 금속과 니켈. 지름 3.2㎝, 두께 0.2㎝. 1984년 5월 한국조폐공사가 천주교 전래 200주년을 기념해 만든 주화. 앞면 상단에 ‘천주교 전래 200주년 기념’이라고 새겨져 있고, 중앙에 십자가가 도안돼 있다. 하단에는 ‘한국은행, 1784~1984’라고 새겨져 있으며, 뒷면에 사적 258호 명동성당 도안 아래 천원이라고 새겨져 있다. 천주교 전주교구 교세일람도. △천주교 전주교구교세일람도(天主敎全州敎區敎勢一覽圖)전주역사박물관 소장. 광복 이후. 가로 44.5㎝, 세로 33.5㎝. 전주교구 관할 지역지도와 교세 표. △「치명일긔」(致命日記)한글박물관 소장. 지정문화재 제23호. 1895년 발행. 가로 9.7㎝, 세로 16.9㎝. 연활자본. 간행지 및 간행자 미상. 1866년 병인박해로 목숨을 잃은 순교자들의 약전을 소개한 책으로, 경기ㆍ충청ㆍ전라ㆍ경상ㆍ강원ㆍ황해ㆍ함경도 지역 순교자들에 관해 기록하고 있다. 군데군데 이전 소장자의 기록이 있으며, 표지는 후대에 개장한 것으로 보임. 백영민2017.01.11
[위대한 신앙의 기도] (17) 기도의 전통(「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기도 원천에 이르는 네 갈래 길 이번 호부터는 교리서 제4편의 제2장 기도의 전통을 살펴봅니다. 교리서는 기도라는 내적 충동이 자연 발생적으로 분출해서 하게 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말하자면 기도하면 기도하고 싶은 마음(원의)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또 성경에서 기도를 알려 주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지적합니다. 기도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거죠. 이런 측면에서 그리스도교 기도 전통의 관점에서 기도를 살펴보는 것은 중요합니다. 기도의 원천①그리스도 신자들의 삶의 중심이자 원천은 그리스도이십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는 또한 우리에게 샘이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령을 통해 우리가 샘이신 당신에게서 생명의 물을 얻는 방법을 가르쳐 주십시다. 말하자면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생명의 샘에 이르는 수로를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기도의 전통에서 기도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는 그 수로는 크게 네 가지로 나뉜다고 교리서는 밝힙니다. 하느님 말씀과 교회의 전례, 향주덕(믿음과 희망과 사랑의 덕), 그리고 ‘오늘’이라는 특별한 시간입니다. 이 가운데 두 가지만 우선 살펴봅니다. 하느님 말씀(2653~2654항)교회는 “모든 신자 특히 수도자들이 성경을 자주 읽음으로써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을 얻도록 강력하고 각별하게 권고합니다.” 이와 함께 “성경을 읽을 때는 하느님과 인간의 대화가 이뤄지도록 기도가 따라야 함을 명심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에는 하느님께 말씀을 드리는 것이고, 우리가 하느님의 말씀을 읽을 때에는 그분의 말씀을 듣는 것이기 때문”입니다(계시헌장 25항; 교리서 2653항). 예수님께서는 기도와 관련해서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청하여라, 너희에게 주실 것이다. 찾아라, 너희가 얻을 것이다. 문을 두드려라, 너희에게 열릴 것이다”(마태 7,7). 교회 영성의 교부들은 이 말씀을 풀이하면서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으로 들어 높여진 마음가짐을 다음과 같이 요약합니다. “읽으면서 찾으십시오. 그러면 묵상을 통해서 발견할 것입니다. 기도하면서 두드리십시오. 그러면 관상을 통해서 열릴 것입니다”(2654항). 앞으로 살펴볼 기회가 있겠지만 여기서 묵상과 관상의 차이를 간단히 알아보는 것도 괜찮을 듯합니다. 위 내용에서 알 수 있듯이. 묵상은 기도하는 사람의 의지가 발동합니다. 그러나 관상은 나의 의지가 발동하기보다는 하느님께서, 그리스도의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열어 주시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교회의 전례(2655항)하느님께 바치는 교회의 공적 예배인 전례는 “성령 안에서 성부께 드리는 그리스도의 기도에 참여하는 것”(1073항)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교회는 “그리스도인의 모든 기도는 전례에서 시작되고 전례로 완성된다”고 가르칩니다. 교회의 성사 전례를 통해 구원의 신비를 선포하고 구현하고 전달하는 그리스도와 성령의 사명은 신자들의 기도하는 마음 안에 계속됩니다. 신자들은 전례가 거행되는 동안만이 아니라 전례가 끝난 후에도 기도를 통해서 전례를 내면화합니다. 전례는 교회의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성무일도, 곧 시간전례까지도 비록 골방에서 바친다 하더라도 그 기도는 언제나 교회의 기도이며, 이 기도를 통해 신자들은 거룩하신 성삼위와 일치를 이룹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09.27

정기 학술 세미나 ‘생명과 사랑-참된 인간관계의 회복을 찾아서’육체적 사랑·정신적 사랑, 그 진정한 모습과 가치는?발제자들이 질의응답 시간에 질문을 받고 있다. 왼쪽부터 사회를 맡은 구인회 교수, 발제자인 김중곤 교수, 이향만 교수, 민남현 수녀, 박정우 신부.가톨릭대 생명대학원, 가톨릭생명윤리연구소,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는 15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생명과 사랑-참된 인간관계의 회복을 찾아서’를 주제로 정기 학술 세미나를 열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발제자들은 진정한 사랑의 의미를 의학적, 인문학적, 성경적, 교회적 관점에서 성찰했다. 발제를 맡은 김중곤(서울대 의대)ㆍ이향만(가톨릭대 의대) 교수, 민남현(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박정우(가톨릭대 신학대) 신부는 한목소리로 “인간은 사랑 없이 살 수 없다”고 강조하며 사전적 의미를 넘어선 사랑의 진정한 모습과 가치를 되짚었다. 다음은 발제문 요약.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김중곤 교수-의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사랑 심리학자 스턴버그는 ‘사랑의 삼각형 이론’을 통해 “사랑은 △친밀감 △열정 △약속(책임감)으로 구성된다”고 정의했다. 이 세 가지 요소의 크고 작음에 따라 사랑을 여러 형태로 나눌 수 있다. 세 가지 요소가 같은 크기일 때 가장 바람직한 사랑이다. 사랑한다고 말할 때 말하는 사람마다 의미가 다를 수 있다. 행복한 사랑을 키우기 위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사랑의 의미와 사랑에 대한 기대를 알 필요가 있고 거기에 맞춰 내가 변화할 수 있는 범위를 결정하고 행동에 옮겨야 한다. 마르시아 라스웰과 노만 롭센츠는 기본적인 사랑의 유형을 여섯 가지로 나눴다. △가장 좋은 친구로서의 사랑 △논리적 사랑 △낭만적 사랑 △소유적 사랑 △이타적 사랑 △유희적 사랑이다. 대부분 경우 여러 유형이 혼합된 사랑을 하고 있으며 상대에 따라 다른 유형이 사랑을 나타낸다. 발달 심리학에서는 사랑하는 능력은 저절로 생기는 것이 아니라 인간관계를 통해 발달한다고 한다. 사랑도 배워 형성하는 학습으로 이뤄진다. 또한 사람들은 여자가 낭만적이고 남자들은 현실적이라고 착각한다. 실제로 과거 사회학적 연구 결과들은 거의 모두가 그와 반대되는 결과를 보고 하고 있다. 여자들은 논리적 사랑, 소유적 사랑, 가장 좋은 친구와 같은 사랑을, 남자들은 유희적 사랑, 낭만적 사랑을 훨씬 더 많이 한다. 이타적 사랑은 남녀 간 별로 차이가 없다고 알려져 있다. 이향만 교수-인문학적 측면에서 바라본 사랑사랑은 △생명의 서사 △자유 △정결 △함께 바라봄 △완전함을 향한 여정으로 볼 수 있다. 사람을 사람답게 하는 것은 의심할 여지 없이 사랑이다. 사람은 사랑하지 않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고대로부터 인간이 서술해온 사랑의 서사는 생명에 관한 고유한 메시지를 잘 전하고 있다. 사랑은 생명의 근원적 성향으로 인간 본질을 이루고 있다.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시 서사시, 구약 성경의 창세기, 플라톤의 향연 등에 나타나는 사랑의 서사는 인간이 추구하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지 잘 나타내고 있다. 사랑의 자유는 한 사람을 온전히 알게 하고 온전히 변화시킨다. 사랑할 때 세상이 아름답고 모든 것이 사랑스러운 것은 다른 까닭이 아니다. 사랑에 빠진다는 것은 새롭게 세상을 향한 눈을 여는 것이다. 구속이 아니라 한 사람을 통해 모든 것을, 모든 이를 사랑하는 자유를 얻는 것이다. 만일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모든 것으로 향한 길이 닫힌다면 그것은 참된 사랑이 아니라 서로를 가두는 애착이며 집착이다. 순결이 육체적 차원이라면 정결은 영혼의 차원을 의미한다. 정결은 순결의 내적 완성을 의미한다. 순결을 지키는 것은 사랑하는 사람과 완전한 일치를 이루기 위한 준비된 삶을 의미한다. 정결은 더 나아가 서로만을 위해 자신의 성적 관계를 인격적으로 유지하고 상호 간에 고귀한 생명의 의미를 부여하는 삶이다. 민남현 수녀-성경에서 나타난 사랑-원수를 사랑하라(마태 5,43-48)를 중심으로이기적이고 개인주의적인 사고와 삶의 양식에 익숙한 현대인에게 복음적 사랑을 이야기하는 것은 하나의 큰 도전이다. 특히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오늘날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계명을 살아내는 것이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원수 사랑에 대한 가르침은 관계성에 대한 그리스도교 윤리의 핵심으로서 예수님이 보여주시는 율법 해석의 절정이다. 예수님은 적극적인 사랑의 실천으로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당부하신다. 예수님은 사회적으로 소외된 처지에 있던 죄인들과 관계를 맺으시고 그들이 회개해 하느님 자녀로 새롭게 태어나도록 돌보셨다. 사랑의 의미를 구체적 삶으로 가르치신 것이다. 예수님은 우리가 가까운 이웃을 사랑하는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신다. 직접적인 친분이 없더라도 결핍 속에 있는 가난한 이들을 위해서 자신의 것을 내어놓고 희생할 수 있는 마음, 나아가 원수까지도 사랑하는 마음이 있을 때 완전함에 이를 수 있다고 하신다. 성경 저자들이 제시하는 하느님을 따르는 삶은 그분의 자녀답게 원수까지 포용하는 사랑을 사는 것이고, 이러한 실천을 통해서 하느님의 모습이 우리 안에 새겨지게 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다. 하느님 사랑의 새 계명이 인간적 본성으로는 불가능해 보이지만 주님이 어떤 분인지를 알고 그분의 사랑을 체험한 이들에게는 실현 불가능한 현실이 아니라 생각된다. 박정우 신부-교회의 가르침에서 바라본 사랑 인간의 구원을 목적으로 하는 그리스도교 핵심 교리는 사랑이다. 마태오 복음에서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이 무엇이냐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님은 하느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셨다(마태 22,37-40 참조). 「가톨릭교회 교리서」도 서문에서 사랑이야말로 교리교육의 최고 목표임을 강조했다. 사랑이라는 용어는 사용하는 사람과 그 맥락에 따라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느님은 사랑”이시고 인간은 바로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을 닮은 존재”라고 본다. 그렇기에 교회는 다른 피조물과 달리 인격 간의 자기를 내어주는 사랑의 실천을 자신의 본질적 정체성으로 받아들인다. 또한 예수 그리스도는 “친구들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4)고 말씀하시며 십자가 희생으로 사랑이 무엇인지 알려주셨다. 그리스도가 가르친 사랑의 의미는 자신을 희생해 타인을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바치는 행위다. 신약 성경의 저자들은 이러한 예수님의 사랑을 ‘아가페’라는 단어로 표현했다. 단지 사랑의 대상을 갈망해 소유로 만족감을 느끼는 데 머무르는 열정적 사랑은 ‘에로스’로 구분했다. 교회는 성관계를 포함해 남녀의 열정적인 사랑을 지지한다. 그러나 남녀의 사랑에서 끝까지 충실하게 신의를 지키고, 사랑의 결실인 새 생명을 책임 있게 양육할 수 있는 장소는 “자유롭고 의식적으로 선택된 부부 사랑의 계약인 혼인뿐이다”고 단언한다. 백영민2016.10.19
![[성경 속 도시] (45) 키레네](//cpbc.co.kr/CMS/newspaper/2015/05/rc/57179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5) 키레네예수님 십자가 대신 진 시몬의 고향 리비아의 키레네는 고대 그리스 도시로 신전, 주거 지역 등 유적이 많이 남아있다. 출처=heritage.unesco.or.kr 키레네는 리비아에 위치하고 키레나이카(Cyrenaica)로 불리는 중요한 고대 유적지 도시다. 현재 리비아에서 비교적 잘 보존된 고대 헬라(그리스) 도시로 신전, 무덤, 아고라, 원형경기장, 극장 등의 모습이 남아 있다. 가파른 절벽 아래의 지중해 바다와도 아주 잘 어울리는 풍광이다. 키레네는 본래 헬라인이 아프리카 북쪽 해안에 건설한 식민도시였다. 지금의 리비아 동부 지역에 해당한다. 이 키레네가 성경에서 등장하는 것은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의 길에서다. 사형 선고를 받고 십자가를 지고 가던 예수님은 너무 지쳐 있었다. 여러 번 십자가의 무게에 눌려 쓰러진 상태였다. 골고타를 향해 오르막이 시작되는 곳에서 로마 병사들은 한 사람을 불러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했다. “그들은 지나가는 어떤 사람에게 강제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하였다. 그는 키레네 사람 시몬으로서 알렉산드로스와 루포스의 아버지였는데, 시골에서 올라오는 길이었다”(마르 15,21).바오로 사도는 로마 신자들에게 보낸 서간에서 끝인사와 권고 중 자신의 선교 활동에 도움을 준 이들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있다. 그중에서 “주님 안에서 선택을 받은 루포스, 그리고 나에게도 어머니와 같은 그의 어머니에게 안부를 전해 주십시오”(로마16,13)라며 루포스와 그의 어머니에 대해 언급한다. 루포스의 어머니는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대신 지었던 키레네 사람 시몬의 아내이다. 그들 가족은 바오로 사도의 감사인사를 받을 만큼 초대교회의 열심한 교우로 활동하고 있었다.키레네는 예루살렘에선 대단히 먼 곳이다. 그런데도 당시에 유다인이 많이 살았다고 전해진다. 키레네는 본래 헬라 신화에 등장하는 샘의 여신 이름이다. 키네레는 기원전 7세기에는 인구 20만이 넘을 정도로 발전했고 헬라 지역에 주로 곡물을 공급하던 곡창지대였다. 기원전 96년,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된 후 북아프리카의 중심 도시로 자리 잡고 있었다. 로마 지배하의 2세기 동안은 번영을 누렸으나 서기 115년에 일어난 키레네 유다인의 반란 후 점차 쇠퇴하기 시작했다. 그러다 365년 대지진으로 폐허가 됐다. 마침내 642년 아랍인들이 정복하면서 키네레는 유목민이 머무는 잊힌 도시로 전락했다. 리비아에서는 드물게 대추야자와 같은 열대나무와 오렌지 및 올리브 과수원이 산재해 있고, 주변 지세도 리비아 사막과는 다르게 굴곡이 이어지는 해안의 모습을 지니고 있다. 현재 발굴된 유적지에는 헬라 로마 시대의 신전과 주거지역, 원형경기장을 비롯한 공공건물들이 많이 복원됐다. 유적지를 통해 당시의 화려한 모습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한다. 도시 북쪽에는 알렉산드리아의 카이사레이온을 본뜬 바실리카(교회)와 광장의 모습이 남아있고, 훌륭한 모자이크로 장식된 2세기의 저택도 발굴됐다. 로마 시대 터의 중심지에는 기원전 6세기 후반에 세워진 거대한 도리아식 건물인 제우스 신전이 있었는데, 지금은 거대한 도리아식 기둥만이 남아 있다. 현재는 아무도 살고 있지 않는 곳이다. 하지만 한때는 화려한 영화를 누렸던 도시국가였던 이곳에서 과거의 영광을 드러내려는 듯 계속해서 화려한 유적들이 발굴되고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5.19

예수회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 이냐시오 로욜라 (11)여덟 번의 이단 검열과 3주간의 옥살이 비록 예루살렘에 머무는 것이 불가능해졌다고 하더라도 영혼을 돕겠다는 이냐시오의 근본적인 열망은 지속됐다. 이냐시오는 영혼을 돕기 위해서 공부를 더 하기로 했다. 공부를 더 하는 것이 왜 영혼들을 돕는 길인지 자서전의 본문은 정확히 전해 주지 않지만 이렇게 추정할 수 있을 것이다. 카르도넬 강가에서 이냐시오는 영적 조명을 받았고 아직 완성본은 아니었지만 영신수련으로 사람들을 돕고 있었다. 이때까지만 해도 영신수련으로 사람들을 돕는 것은 개인적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사람들을 더 돕기 위해서는 영신수련이 공적인 차원으로도 발전해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영신수련」 책자를 교회에서 인준받아야 할 필요가 있었다. 인준 과정에서 교회는 성경과 성전을 바탕으로 「영신수련」을 심사할 것이다. 이냐시오가 공부하게 된 이유는 이러한 점을 염두에 두고 있었을 것이다. 이냐시오는 서른세 살에 라틴어 문법 기초를 배우기 위해 ‘어린아이’들과 함께 교실에 앉아 공부했다. 바르셀로나에서 1524년부터 1526년까지 2년간 문법을 배운 후 철학이 주요 과목이었던 알칼라대학에 입학했다. 그는 여기에서 공부뿐만 아니라 사도적 열정도 유지했다. 그래서 곧 네 명의 동료를 모았고 이들과 함께 살았다. 이냐시오는 여전히 영신수련을 지도했고 교리도 가르쳤다. 교회의 중개 거부하는 조명주의이 시기의 이냐시오의 생애와 관련해 특징적인 부분은 이냐시오가 조명주의자(Alumbrados)로 의심을 받은 것이다. 이 의심은 예수회 설립 초기까지도 계속됐다. 조명주의는 스페인에서 시작된 이단적 영적 현상이다. 조명주의자들에게는 몇 가지 특징이 있었다. 그들은 자신이 성령에 의해 조명받았다고 주장했다. 모든 것을 포기하라고 강조했다.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해주실 것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철저히 수동적이다. 이들은 정신 기도를 중요시했다. 정신 기도가 하느님과 직접적인 접촉을 가능하게 하고 이것이 하느님과 일치로 이끌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교회의 중개를 거부하고 심지어 교회가 필요하지 않다고 주장했다. 모든 종류의 종교적 예식, 성체 공경, 성인들을 통한 전구 등을 거부했다. 이러한 행위는 오히려 하느님께로부터 자신을 멀어지게 한다고 주장했다. 베아타(beata)라고 불린 그들의 리더는 바오로 사도보다도 그리스도교 사상에 더욱 조예가 깊은 인물로 간주됐다. 조명주의자들은 교회가 아닌 개인 집에서 모임을 가졌으며, 회원이 누구인지는 비밀로 했다. 교회는 이들을 의심의 눈초리로 쳐다보기 시작했고, 급기야는 1525년 알론소 만리케(Alonso Manrique)를 종교재판관으로 임명했다. 스페인의 종교재판소는 이들을 찾아내어 조사하고 처리하는 데에 커다란 힘을 기울였으며, 알칼라대학을 포함해서 톨레도교구 전역에서 매우 광범위한 조사가 이뤄졌다. 이냐시오가 조명주의자가 아닌 이유왜 이냐시오는 조명주의자로 오해받았을까? 이냐시오가 알칼라로 공부하러 갔던 바로 그다음 해인 1526년은 무엇보다도 매우 민감한 시기였다. 그런 시기에 조사관의 눈에 이냐시오는 매우 이상하게 보였다. 이냐시오는 알칼라에 도착한 후 맨발에 모자 달린 평범한 수단을 입고 십계명, 대죄, 성령의 힘 등을, 바오로 사도나 다른 성인들의 저술을 강론했다. 강론을 들은 사람 중 어떤 이들은 일상적이지 않은 영적 신체적 현상을 겪기도 했다. 이때 이냐시오 동료 중의 몇몇은 조명주의자로 고발당한 상태이기도 했다. 이러한 외적인 측면과 더불어 「영신수련」 15번에 나타나 있는 이냐시오의 근본적 신념, 즉 “창조주 하느님이 몸소 그 열심한 영혼과 통교하신다”는 부분은 조명주의자들이 주장하는 노선과 같은 선상에 있었던 것처럼 보였다. 이에 더해 관상과 활동을 결합하려는 열망, 하느님 사랑에 대한 감각적 경험, 삶의 일상적 결정 안에서 신적 섭리의 가능성에 대한 믿음 등은 이냐시오와 조명주의자들에게 공통된 부분이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이것이 곧 이냐시오가 조명주의자라는 것을 말해 주지는 않는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냐시오가 조명주의자였다면 이 사실은 알칼라의 종교재판소에서 발견됐겠지만, 종교재판소는 이냐시오에게 아무런 혐의도 발견할 수 없었다. 둘째, 이냐시오는 조명주의와 아무런 관계를 가진 적이 없었다. 조명주의는 1529년 당시 매우 대중적이었는데, 그 해에 이냐시오는 이미 파리에 있었기 때문이다. 셋째, 이냐시오의 가르침이 조명주의의 가르침과 비슷할 수는 있으나 이것이 본질적인 면에서가 아니라 표면적으로 비슷해 보일 뿐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이냐시오와 조명주의자들이 교회를 대하는 태도가 전적으로 달랐다. 이냐시오는 교회의 사람으로서 교회를 통해 하느님과의 일치를 추구했지만, 조명주의자들은 교회의 중개적 역할을 거부했다. 또 조명주의자들과는 다르게 이냐시오는 자신의 영적인 사정에 관한 생각을 절대 숨기지 않았다. 종교재판관들은 이냐시오를 여덟 번이나 검열했으나 결국 이냐시오는 조명주의자가 아니라고 결론내렸다. 알칼라에서 여러 일을 겪은 이냐시오는 살라망카로 갔다. 살라망카에서는 약 2개월 정도 머물렀는데, 그중에서 약 3주 동안은 감옥에 갇히는 등 힘든 일을 겪었다. 이냐시오가 조명주의와 관계됐다는 의심 때문이었다. 이런 모든 일은 이냐시오에게 영혼을 돕는 데 있어 교회로부터 공식적으로 인준된 방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 계기가 됐다. 그러기 위해서는 공부에 더욱 매진해야 한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결국, 이냐시오는 파리로 가서 공부하기로 결심했다. 영혼을 돕겠다는 목적을 위해서 공부를 할 것이고, 자신과 목적이 같은 동지들을 모으겠다고 새롭게 결심했다. 백영민2017.09.19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8) 4세기 ⑤ -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신비 사상](//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6700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을 찾아서] (18) 4세기 ⑤ - 니사의 그레고리우스의 신비 사상갈망과 열망으로 사랑한다면 신비체험도 가능카파도키아의 3대 교부 중 한 분이며 바실리우스의 친동생이었던 니사의 그레고리우스(Gregorius Nyssenus, 335/40~394 이후)는 수도 생활 신학뿐 아니라, 신비 생활 신학 정립에 탁월한 기여를 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오리게네스의 제자로서 오리게네스 예찬자였지만 4세기 삼위일체 교리 형성 과정에서 신 플라톤 사상의 영향으로 불거진 이단 논쟁을 극복하는 가운데 오리게네스와 닮은 듯하면서도 닮지 않은 신비 신학을 구축했습니다. 오히려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교리 논쟁의 영향으로 필론 및 중기 플라톤 사상과 닮은 부정신학의 관점에서 신비 신학을 전개했습니다.니사의 그레고리우스.수도 생활에 대한 권고 친형님이었던 바실리우스는 평신도 그리스도인으로서 결혼 생활을 하는 친동생 그레고리우스에게 동정 생활을 주제로 한 작품 저술을 부탁했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동정론(De Virginitate)」에서 하느님께서 정욕 없이 당신의 모상을 닮은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창조 신학의 관점으로 동정의 가치를 조명했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신비가 동정 생활의 기초 원리라고 강조했습니다. 이후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마크리나의 생애(Vita Macrinae)」에서 큰누이 마크리나를 완덕에 다다른 완벽한 수도자의 모델로 소개하면서 수도자가 완덕에 다다르기 위한 통합적인 영적 여정을 제시했습니다. 결국 수도 생활을 후원하던 바실리우스 사망 이후에 그레고리우스는 수도자를 돌보고 후원하는 일을 도맡게 되었습니다. 또한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히포티포시스(Hypotyposis)」에서 수도자의 영적 여정 및 수도 공동체의 올바른 생활을 언급했습니다. 특히 그레고리우스는 수도 공동체가 신비 생활로 나아갈 것을 격려했습니다. 상승의 여정으로서의 신비체험 325년 (제1차) 니케아 공의회는 그레고리우스가 오리게네스 신비 사상의 부족한 점을 극복하고 자신의 신비 사상을 펼치는 데 큰 영향을 끼쳤습니다. 먼저 니케아 공의회가 재확인한 무로부터의 창조 교리는 인간 영혼이 하느님과 본질이 같아서 합일할 수 있다고 주장한 오리게네스의 신비 사상을 정면으로 반박할 수 있었습니다. 즉, 인간 영혼도 피조물이기에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서는 저절로 일치할 수 있는 길이 없다는 것입니다. 오히려 창조주께서는 피조물 세상으로 건너오실 수 있으며, 강생의 신비가 신비체험의 열쇠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간 영혼이 할 수 있는 일은 하느님을 열렬히 사랑하는 것뿐입니다. 한편 니케아 공의회와 381년 (제1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 사이에서 지속됐던 삼위일체 교리 논쟁은 그레고리우스가 자신의 신비 사상을 전개할 방향을 정립하는 데 영향을 주었습니다. 이 시기에 아리우스주의(Arianism)는 성부만 유일하게 신의 본질을 지녔고, 성자는 신과 동일한 본질을 지니지 못한 피조물이라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에우노미우스주의(Eunomianism)도 태어난 적이 없는 성부의 본질과 태어난 성자의 본질은 같을 수 없다고 주장하면서 아리우스주의에 동조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에우노미우스 논박(Contra Eunomium)」에서 에우노미우스(Eunomius, 325?~394)가 성자와 성령의 존재를 거부하는 은유법을 사용할 뿐 아니라 성경과 공의회의 전통적인 용어를 포기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결국 삼위일체 논쟁이 거듭될수록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신비는 적극적인 설명보다는 우회하는 설명이 더 적절하다고 느꼈습니다. 따라서 그레고리우스는 자신의 신비 사상에서 초월적 존재인 ‘하나’로 수렴하는 신 플라톤 사상의 영향으로 상승의 여정을 전개했으며, 삼위일체 신비를 통한 하느님 인식의 문제를 부정신학적 방법론으로 접근했습니다. 부정신학적 신비체험 그레고리우스는 저서 「모세의 생애(De vita Moysis)」와 「아가 강해(In Canticum canticorum homiliae)」에서 그리스도인의 완덕과 영혼의 영적 상승을 묘사하면서 자신의 신비 사상을 제시했습니다. 먼저 그레고리우스는 「아가 강해」에서 솔로몬의 지혜서로 불리는 세 권의 성경인 「잠언」, 「코헬렛」 및 「아가」를 인간의 성장 시기와 대조하여 유년기, 청년기, 성숙기에 적용하여 인간 영혼이 걷는 상승의 세 단계로 묘사했습니다. 그런데 그레고리우스에 따르면, 세 번째 단계는 최종 목적지인 관상의 상태가 아니라 이제야 본격적으로 하느님을 만나러 가는 신비체험의 시작점이라는 것입니다. 즉 끊임없이 나아가도 인간 영혼은 하느님을 만날 수 없지만, 하느님의 활동이 인간으로 하여금 하느님을 조금 알 수 있게 한다는 것입니다. 한편 그레고리우스는 「아가 강해」를 통해 하느님을 찾는 여정에서 인간 영혼이 빛, 구름, 및 어둠의 세 길을 걸어간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모세의 생애」에선 이 세 개의 길을 모세의 중요 생애와 비교, 설명했습니다. 첫 번째 빛의 단계는 불타는 떨기 속에서 모세에게 나타나신 하느님에 관한 일화를 통해 설명했습니다. 인간 영혼에게 비춰진 신비스러운 진리의 빛은 인간이 파악할 수 없는 하느님이시라는 것입니다. 두 번째 구름의 단계는 홍해를 건넌 모세가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일화를 통해 설명합니다. 구름에 휩싸인 산을 오른다는 것은 하느님을 관상하기 시작한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어둠의 단계는 하느님을 만나는 순간으로 설명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계시하시기에 인간 영혼은 가시적인 모든 것을 버려야만 어둠 속에 하느님을 뵐 수 있습니다. 물론 그레고리우스의 부정신학적 신비 사상은 처음부터 불가지성(不可知性, 지성으로는 알 수 없음)만을 강조하지 않았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하느님께서 알려주시는 빛에서 시작하여 모든 것을 포기하는 어둠으로 옮겨갔습니다. 또한 영혼의 거울, 영적 감각, 내재하시는 말씀의 세 가지 측면을 통한 체험을 언급하면서 가지성(可知性)의 경계를 넘나들기도 했습니다. 결국 인간의 지적 활동으로 인식할 수 없는 하느님이시라도 인간 영혼이 갈망과 열정으로 하느님을 사랑한다면 하느님과 일치하는 신비체험은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삼위일체 교리 논쟁에서 인간의 이성이 하느님을 온전히 파악하지 못하고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목격했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인간이 안다는 것을 포기할 때 오히려 체험할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레고리우스는 부정신학적인 방법론으로 하느님께 다가가는 영적 여정을 주장하고 싶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레고리우스의 부정신학적 신비 사상은 훗날 여러 세기를 걸쳐 많은 영성신학자들에게 영향을 끼침으로써 ‘부정-신비 신학’의 계보를 만들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cpbc2017.03.30
![[성경 속 도시] (56) 키르 헤레스(하레셋)](//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552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56) 키르 헤레스(하레셋)모압에 대한 애도의 눈물 흘러 모압 왕국의 수도였던 키르 헤레스에 있는 성곽. 리길재 기자 키르 헤레스(하레셋)는 현재의 케라크(Kerak)로 한때는 모압 왕국의 수도였다. 삼면이 깊은 계곡으로 둘러싸인 이곳은 주변의 언덕과 깊은 계곡들로 적의 공격이 쉽지 않은 천혜의 요새다. 키르 헤레스는 로마와 비잔틴 시대에는 도시가 발달해 중요한 그리스도교 지역이 되기도 했다. 또 이른바 ‘임금의 큰길’에 있어 여러 시대에 걸쳐 전략적으로 중요한 곳이었다. “이제 임금님의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밭이나 포도원을 지나가지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임금의 큰길’만 따라가겠습니다. 임금님의 영토를 다 지나갈 때까지 오른쪽으로도 왼쪽으로도 벗어나지 않겠습니다”(민수 20,17). ‘임금의 큰길’에 있어 ‘임금의 큰길’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 지속적으로 사용되고 있는 통신로다. 그래서 이 ‘임금의 큰길’은 오래 전부터 북쪽의 고대 바산, 길르앗 및 암몬을 남쪽의 모압, 에돔, 바란 및 미디안과 연결하는 역할을 했다. 아브라함도 하느님 부르심을 받고 고향을 떠나 가나안을 향하는 여정에서 이 길을 이용했을 것이다. 이 길은 요르단에서 가장 뛰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곳들과 가장 중요한 고대 유적지들을 통과한다. 성경에서 키르 헤레스(하레셋)는 이스라엘에 반란을 일으킨 에돔과 북이스라엘, 유다의 연합군이 전쟁해 승리한 곳이다. “그들은 성읍들을 부수고 병사들마다 모든 옥토에 돌을 던져 그곳을 돌로 가득 채웠으며, 물이 솟는 샘을 모두 틀어막고 좋은 나무들을 모조리 쓰러뜨렸다. 그리하여 마침내 키르 하레셋에 돌담만 남게 되었는데, 그곳마저 투석병들이 포위하고 공격하였다”(2열왕 3,25). 모압 임금은 전투에서 밀리자 자기 뒤를 이어 임금이 될 맏아들을 데려다가, 성벽 위에서 번제물로 바쳤다. 그러자 무서운 분노가 이스라엘군에 내렸다. 이스라엘군은 그곳에서 철수해 본국으로 되돌아갔다(2열왕 3,4-27 참조).키르 헤레스는 이사야 예언서에도 두 번 언급된다. 이사야 예언에서는 당시의 키르 헤레스(하레셋)의 중요한 생산품이었을 ‘건포도 과자 생각에 더없이 상심하며 탄식한다’는 표현으로 모압에 대한 애도를 표현하고 있다(이사 16,7-11 참조). 예레미야 예언자도 키르 헤레스 사람들을 위해 슬피 울겠다고 예언한다. “그러므로 내가 모압을 두고 통곡하고, 모압 전체를 위해 울부짖으며, 키르 헤레스 사람들을 위해 슬피 울겠다”(예레 48,31).중세 성채가 남아현재 키르 헤레스에 남아 있는 성채는 중세 십자군 시대에 요르단 지역에 두 번째로 건축된 것이다. 십자군은 이 성에서 ‘임금의 큰길’을 통한 무역 길을 통제하고 예루살렘으로 연결되는 그리스도교 성지 순례자를 보호하는 목적으로 이용했다. 지금도 이중삼중으로 쌓인 성채 안에는 막사와 감옥이 잘 보존돼 있다. 1924년 유적 발굴을 통해 모압인과 로마 시대부터 중세 아랍시대 도기들이 발견되기도 했다. 성 안에는 작은 규모의 박물관이 마련돼 있어 키르 헤레스의 긴 역사의 흔적을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다. 지금은 요르단 중부 지역의 도청 소재지이며 곡류, 채소, 과일 등 농산물 생산이 많은 지역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8.04
![[낮은 곳에 주님 사랑을] (10) 한국중독연구재단 사무총장 김한석 신부](//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8968_1.0_titleImage_1.jpg)
[낮은 곳에 주님 사랑을] (10) 한국중독연구재단 사무총장 김한석 신부중독에 지친 이들 신앙과 사랑으로 감싸안다 한국중독연구재단(KARF)이 운영하는 카프성모병원이 환자들을 위해 운영하고 있는 집밥 프로그램. 카프성모병원 제공 ‘중독 사목’ 관점서 환자 도와 노래·요리 등 취미 통해 치유 격리하기보다 보듬는 데 매진사람들이 2층에서 자유롭게 탁구를 치고 있다. 한편에서 여성들은 노래 수업을 듣고, 어떤 이들은 강당에서 배드민턴을 치기도 한다. 다른 강의실에서는 성경 읽는 소리도 들린다. 1층 성당에서는 매일 미사가 봉헌되고, 때마다 세례식도 열린다. 여느 성당을 방불케 하는 이곳은 경기 일산동구 백석동에 있는 ‘카프성모병원’이다. 다양한 활동을 하는 이들은 알코올, 도박, 게임 등으로 고통을 겪다 입원한 환자들이다.14일 만난 한국중독연구재단(KARF) 사무총장 김한석 신부는 “저는 중독 환자들을 환자로 보지 않고 잠시 고통 중에 있는, 우리가 진정으로 돌봐야 할 형제ㆍ자매로 여긴다”며 “치료를 넘어 치유와 영성, 사랑으로 이들이 사회 일원으로 새 삶을 살도록 이끌고 있다”고 했다.2000년 한국주류산업협회가 처음 설립한 한국중독연구재단은 산하에 카프병원(현 카프성모병원)을 두고, 중독 치료 사업을 전개해왔다. 그러나 운영상 문제로 협회가 손을 뗀 이후 경영 주체를 찾다 2015년 서울대교구가 인수함에 따라 ‘중독 사목’의 관점에서 환자들을 그리스도의 향기로 보듬고 있다. 2년 새 카프성모병원은 중독자들을 치료하는 데 그치지 않고 ‘취미 활동’과 ‘신앙생활’을 하도록 이끌어 왔다. 궁극적으로는 환자들의 ‘사회 복귀’가 가능하도록 큰 역할을 하고 있어 학계에서도 주목받고 있다.한국중독연구재단은 △카프성모병원 △카프이용센터 △남녀 중독자 거주 시설 등을 운영 중이다. 150병상 규모 병원에는 현재 120여 명의 남녀 환자가 치료를 받고 있다. 기본 12주 단중독 프로그램을 비롯해 △가족 상담 △맞춤형 치료 서비스 △중독 방지 홍보 및 연구 사업을 진행 중이다. 실제 병원에선 동호회를 비롯해 노래, 미술 치료 교실이 운영 중이다. 최근에는 지하 한편에 번듯한 주방을 꾸며 ‘집밥 만들기’, ‘바리스타 교육’ 프로그램도 개설했다. 환자들의 만족도도 높을 수밖에 없다. 이뿐만 아니라 재단 산하 사회적 기업인 ‘청미래’ 사업단에서 운영하는 매점에서는 회복 환자가 직접 물건을 팔고, 병원 내 재활용품 매장인 ‘옹달샘’에서도 회복 여성이 매장 관리에 참여하고 있다. 최근에는 세차사업을 시작해 회복자의 자립을 돕고 있다. 김 신부는 “우리나라 알코올 고위험군에 속하는 성인이 474만 명에 이를 정도”라며 “중독을 개인이 아닌 사회 문제로 인식하고, 격리하기보다 그들을 보듬는 데 꾸준히 매진할 것”이라고 말했다.“환자들이 회복에 실패하더라도 우린 이 자리에서 언제든 이웃처럼 반갑게 맞을 겁니다. 꾸준히 안아주면 그분들은 진짜 시작을 하거든요. ”재단은 28~29일 병원 현지에서 중독 재활기금 마련을 위한 ‘제1회 카프 나눔 바자회’를 연다. 28일 오후 4시에는 서울가톨릭연극협회의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연극을 통해 중독 인식 개선 사업을 펼친다. 상담 및 문의 : 031-810-9200, 카프성모병원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평화신문2017.04.19
[미사 전례 풀이] (21) 흰색 제의, 영광과 기쁨 상징 ▨미사를 집전하는 사제의 제의 색깔이 때에 따라 달라지는 이유는 무엇인가?사제는 미사를 비롯한 전례를 집전할 때 여러 색깔의 제의를 입는다. 이는 교회가 전례 시기와 축일에 맞춰 다양한 색깔의 제의를 입도록 하고, 이를 위해 전례복의 색깔에 대한 규정을 정한 데 따른 것이다. 제의의 색은 보통 6가지이고, 제의의 색이 상징하는 의미와 입는 시기는 다음과 같다.▲흰색은 영광, 결백, 기쁨을 상징합니다. 흰색 제의는 성탄 시기와 부활 시기, 예수님의 축일들(수난 관련 축일은 제외)과 성모님의 축일들, 천사들의 축일, 순교자가 아닌 성인들의 축일에 입습니다. ▲빨간색은 성령과 피(순교)를 의미합니다. 빨간색 제의는 주님 수난 성지 주일, 성금요일, 주님 수난 전례, 성령 강림 대축일, 성 십자가 현양 축일, 사도들(단, 요한 사도는 흰색)과 복음사가들의 천상 탄생 축일, 순교 성인들의 축일에 입습니다. ▲초록색은 생명의 희열, 희망, 영원한 생명을 의미합니다. 초록색 제의는 연중 시기에 입습니다.▲보라색은 참회와 보속을 의미합니다. 보라색 제의는 대림 시기와 사순 시기에 입습니다.▲검은색은 죽음을 의미합니다. 검은색 제의는 위령 미사와 장례 미사 때 입습니다. 오늘날에는 죽음이 새로운 생명의 부활을 의미하기 때문에 검은색 대신 흰색 제의를 주로 입습니다. 또한 보라색 제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장미색은 기쁨을 의미합니다. 장미색 제의는 대림 제3주일(기뻐하여라 주일)과 사순 제4주일(즐거워하여라 주일)에 입는데, 성탄과 부활을 준비하는 도중의 휴식과 기쁨을 의미합니다. 장엄한 전례 예식 때는 황금색 전례복을 입을 수 있습니다. 특정한 시기와 축일에 맞는 색깔의 제의를 갖추지 못한 경우에는 흰색 제의를 입을 수 있습니다.▨미사 때 향을 피우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분향, 곧 향을 피우는 것은 성경에서 뜻하는 대로 공경과 기도를 표현한다.분향 예식은 구약 시대부터 사용됐는데, 그 의미는 여러 가지입니다. 거룩하신 하느님 앞에 나아갈 수 있도록 정화하는 행위이며, 하느님께 희생 제물을 바치는 행위입니다. 또한 하느님의 현존을 드러내는 의미이기도 하고, 하늘을 향해 올리는 기도를 뜻하기도 합니다. 성당 봉헌식 때 향을 피우는 것은 성당이 하느님께 봉헌된 거룩한 곳임을 뜻하고, 미사 때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십자가와 제대, 복음서에 분향하는 것은 공경(로마 황제에게 분향하던 예식에서 따옴)의 표시입니다. 예물에 분향하는 것은 피어오르는 연기처럼 하느님께 오르기를 기원하는 것이며, 사제와 신자들에게 분향하는 것은 축복하고 거룩하게 한다는 의미입니다. 빵과 포도주 축성 때 분향하는 것은 공경과 기도의 표현입니다. 장례 예식 때 시신에 향을 드리는 것은 존경을 드러냅니다.이렇게 우리는 미사 때 상징적인 의미를 지닌 여러 가지 동작들뿐만 아니라 물건들을 이용해 하느님의 은총을 전해주고 또한 하느님에 대한 우리의 정성을 표현합니다. 따라서 전례 때 사용하는 물건들과 상징적인 행위들은 하느님과 인간을 서로 소통하게 해주는 대화의 도구이기도 합니다. 백영민2017.04.19

한국 ME 40주년 릴레이 인터뷰 (1) 윤갑구·김부희 부부퇴근, 행복한 부부생활 위한 또 다른 출근 ‘가정이 화목해야 모든 일이 잘 이뤄진다’(家和萬事成)는 고사성어는 만고불변의 진리다. 가정 복음화의 기수, 한국 매리지 엔카운터(ME) 40주년을 맞아 부부와 가정의 의미를 일깨우는 ME 부부들을 차례로 만나본다. ME 40주년 행사는 5월 21일 서울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그대가 받은 하느님의 은사를 다시 불태우십시오’(2티모 1,6)를 주제로 열린다. 1984∼1986년 한국 ME 8ㆍ9대 대표를 지낸 윤갑구(바오로, 74, 에이스기술단 대표)ㆍ김부희(루치아, 74)씨 부부는 매일 아침 인터넷 가톨릭 굿뉴스(www.catholic.or.kr)의 ‘소리 매일미사’를 듣는 것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10여 분간 듣는 그 날의 복음은 부부가 일용할 대화의 소재다. 윤씨는 “성경 내용이 희한하게도 2000년 전이 아닌 오늘날의 이야기로 들린다”면서 “복음을 주제로 아내와 20여 분간 나누는 대화가 하루를 살아가는 힘이 된다”고 웃음을 지었다. 배우자 존경하는 마음 얻어부부가 ME와 인연을 맺은 것은 한국 ME 초창기인 1980년 1월 지인의 권유로 ME 주말에 참가하면서다. 부부는 ME 주말에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했다. 윤씨는 무엇보다 자기 자신을 스스럼없이 드러낼 수 있는 자유를 느꼈고, 김씨는 자신과 세상을 긍정적으로 바라볼 수 있는 마음의 힘을 얻었다. “하느님은 있는 그대로의 저희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ME 주말을 다녀온 이후 배우자가 가장 존경하는 이가 됐습니다. 다시 결혼한다고 해도 이 사람과 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서로가 편안해졌습니다.”(부부)혼인의 가치 전하는 부부의 날 제정이후 부부는 열렬한 ME 전도사로, 또 ME 봉사자로 한국 ME 발전에 큰 몫을 해왔다. 부부가 가장 많은 정성을 쏟은 것은 바로 ‘부부의 날’ 제정이다. 1995년 당시 서울 ME 대표를 맡고 있던 부부는 미국에서 기념하던 세계 결혼기념일을 우리 문화와 친숙한 ‘부부의 날’로 이름을 바꿔 지낼 것을 교회에 건의하고, 이듬해에는 6000여 명이 참석하는 성대한 ‘부부의 날’ 행사를 이끌었다. 부부의 날(5월 21일)은 2007년 국가 공식 기념일로 지정됐다.“혼인과 출산은 줄어들고, 이혼과 가정해체는 급속히 늘어나고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풀어야 할 심각한 현안이 아닐 수 없습니다. 혼인의 가치를 교회를 넘어 세상에 전파하는 것이 ME의 사명입니다. 부부의 날은 종교와 상관없이 ME의 정신을 전할 수 있는 좋은 기회입니다. 교회는 물론 정부도 부부의 날에 관심을 갖고 지원하는 데 좀 더 적극적으로 나서면 좋겠습니다. 혼인과 출산이 장려되는 건강한 가정 문화가 필요합니다.”부부는 매일매일을 ‘부부의 날’로 지내고 있다. 윤씨에게 퇴근은 행복한 부부 생활을 위한 또 다른 출근이다. 같은 마음으로 남편을 맞는 것은 아내 또한 마찬가지다. ME가 부부를 그렇게 만들어줬다. 부부는 모든 부부가 꼭 ME 주말에 한번 참가해 보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했다. 무엇이 그렇게 좋은지는 “가 보면 안다”면서.글ㆍ사진=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백영민2017.04.19

새 주교 중심으로 전주교구가 더 성장해 나가길제7대 전주교구장 이병호 주교 이임 감사 미사 봉헌, 수도회 담당 사제로 지낼 예정 4월 29일 전주 중앙주교좌성당 대강당에서 열린 이병호 주교 이임 사은식에서 김선태 주교, 이문희 대주교, 이병호 주교, 최덕기 주교(왼쪽부터)가 케이크를 자르고 있다. 27년 동안 전주교구를 이끌어온 제7대 교구장 이병호 주교가 교구장직을 떠났다.전주교구는 4월 29일 중앙 주교좌 성당에서 이병호 주교 이임 감사 미사를 봉헌하고 사랑과 열정으로 교구와 함께 한 이 주교를 위해 기도했다. 미사에는 전(前) 대구대교구장 이문희 대주교와 전 수원교구장 최덕기 주교, 제8대 전주교구장 김선태 주교를 비롯해 교구 사제단 120여 명과 신자 1500여 명이 참석해 대성전과 앞마당을 가득 메웠다. 슬픔 속에도 기쁨과 희망 있었다이병호 주교는 강론에서 “되돌아보면 모든 슬픔과 고뇌 속에도 기쁨과 희망의 씨앗이 들어있었다”며 긴 여정을 함께하며 자신의 부족함을 채워준 사제들과 한결같이 기도해 준 수도자들, 순교자 후예다운 신앙을 보여준 교구민들 모두에게 감사 인사를 전했다. 이 주교는 “교구장 직분을 마치며 가장 감사한 것은 하느님이 훌륭한 후임자를 보내주신 것”이라며 “새 주교님을 중심으로 모두가 각자 몫을 다할 수 있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미사 끝에는 사제단과 신자들의 감사 인사가 이어졌다. 총대리 김영수 신부는 사제단과 교구민을 대표해 이병호 주교의 글을 엮은 책 「목자의 지팡이」를 헌정했다. 「목자의 지팡이」는 교구 사목 계간지 ‘쌍백합’에 실린 이병호 주교의 신앙 사색을 담은 책으로 이 주교의 퇴임을 기념해 출간했다. 사제단 대표 이영우 신부는 “하느님 말씀을 읽고 쓰고 외우기를 실천하며 매일 이른 새벽 미사를 봉헌하고 치명자산을 걸으며 성경 구절을 묵상하는 이병호 주교님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운 신앙인의 모습을 배울 수 있었다”며 존경과 감사를 표했고 모든 사제단은 자리에서 일어나 박수를 치며 인사했다. 이어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 한귀석(바오로) 회장의 선창에 따라 모든 신자가 “주교님 수고하셨습니다, 주교님 감사합니다, 주교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며 두 팔로 하트 모양을 그렸다.이문희 대주교와 최덕기 주교는 “27년 동안 교구를 이끄느라 수고한 이병호 주교가 이제는 자유로운 시간 속에 주님과 함께 생활할 수 있길 바란다”고 격려했다.사은식 열려 미사에 이어 대강당에서는 송하진 전북도지사, 김승수 전주시장, 김승환 전북도교육감, 김혜봉 원불교전북교구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사은식이 열렸다. 이병호 주교 가족과 사제단, 수도자들은 식사를 함께 나누며 축하의 시간을 가졌다.이병호 주교는 1941년 전북 완주 출생으로 서울 성신고등학교와 서울 가톨릭대학교에서 공부하고 1969년 사제 서품을 받았다. 전주교구 중앙본당 보좌와 정읍본당 주임, 광주 대건신학대학 전임 강사 등을 거쳐 파리 가톨릭대학에서 신학 석ㆍ박사 학위를 받고 광주 가톨릭대학원장을 지냈다. 1990년 2월 8일 전주교구장에 임명돼 같은 해 4월 3일 주교품을 받고 전주교구장에 착좌했으며 27년 만인 올해 4월 29일을 끝으로 교구장에서 은퇴했다. 이병호 주교는 앞으로 교구 인보성체수도회 담당 사제로 지낼 예정이다.한편 전주교구는 제8대 교구장 김선태 주교 서품식과 교구장 착좌식을 13일 오후 2시 전북 군산 월명체육관에서 거행한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평화신문2017.05.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