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도시] (22) 필라델피아](//cpbc.co.kr/CMS/newspaper/2014/07/rc/518368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22) 필라델피아박해에도 신앙 지킨 충실한 교회 필라델피아 유적지에 황폐하게 서 있는 성 요한 성당. 제공=김원창 현재 필라델피아를 찾으면 성 요한 성당이 황폐한 상태로 커다란 기둥만 덩그러니 남아 있다. ‘필라델피아’는 필로스(사랑)와 아델포스(형제)라는 두 단어의 합성어다. 그래서 필라델피아는 ‘형제 사랑’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이 지역 통치자였던 유메네스 2세의 동생 아탈루스 2세에게 간신들이 그를 왕위에 오르도록 충동질했다. 그러나 동생은 이를 거절하고 형에게 충성을 다했다. 이후 형이 죽고 동생이 왕이 되자 형제 사랑의 표시로 이 도시의 이름을 필라델피아로 명명했다. 이 도시에는 ‘작은 아테네’로 불릴 만큼 많은 신전이 있었고 수많은 종교행사가 거행되었다.지리적으로는 로마의 문화가 소아시아로 넘어가는 관문에 자리 잡고 있다. 코가미스 계곡에 자리 잡은 필라델피아는 동쪽 지역으로 가는 통로였다. 이곳은 직물과 가죽산업이 발달했고, 포도 재배지가 아주 넓게 펼쳐져 있었다. 필라델피아의 최고신이 포도주 신인 디오니시우스라는 것만 보아도 포도재배와 포도주 생산이 많았음을 짐작하게 한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요한 묵시록 첫 장에 등장하는 7개 교회 중 하나다. “그 목소리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네가 보는 것을 책에 기록하여 일곱 교회 곧 에페소, 스미르나, 페르가몬, 티아티라, 사르디스, 필라델피아, 라오디케이아에 보내라’”(묵시 1,11). 소아시아 일곱 교회 중 여섯 번째로 소개된 필라델피아 교회는 칭찬만 받은 모범적인 교회였다. “나는 네가 한 일을 안다. 보라, 나는 아무도 닫을 수 없는 문을 네 앞에 열어 두었다. 너는 힘이 약한데도, 내 말을 굳게 지키며 내 이름을 모른다고 하지 않았다”(묵시 3,8). 필라델피아는 기원후 19년쯤 지진으로 성읍이 대파됐으며 티베리우스 황제에 의해 재건됐다. 필라델피아 교회는 신자 수가 적었지만, 신앙이 신실하고 충성스러운 교회였다. 또 필라델피아 교회의 신자들은 신분이나 지위가 변변치 못한, 사회적으로 힘이 없는, 아주 적은 능력을 갖춘, 겉으로 보기에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이었다. 그런데도 필라델피아 교회는 특별히 칭찬을 받았다. 그들은 작은 능력으로도 하느님 말씀을 잘 지켰다. 또 당시 소아시아에서는 로마의 박해가 계속됐다. 그래서 박해가 두려워 교회를 등지고 떠나는가 하면, 이교도와 타협하는 사람이 생기고 교회를 이탈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한 어려움 속에서 필라델피아 교회는 주님을 배반하지 않았다. 필라델피아 교회가 직면했던 도전은 밖에서 오는 박해만은 아니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이단의 도전도 거셌다. 일부 신자들은 유다인이라고 하면서 은근히 교회를 파괴하려고 했다. “보라, 나는 사탄의 무리에 속한 자들을 이렇게 하겠다. 그들은 유다인이라고 자처하지만 사실이 아니다. 거짓말을 하고 있을 뿐이다. 보라, 나는 그들이 와서 네 발 앞에 엎드리게 하겠다”(묵시 3,9). 이처럼 필라델피아 신자들은 교회 안팎의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도 하느님의 말씀을 지키려고 노력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07.09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5> 6번 찬미 노래 부르며](//cpbc.co.kr/CMS/newspaper/2016/02/rc/617682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6번 찬미 노래 부르며마침 성가로 많이 불리는 성가 “찬미 노래 부르며 주 대전 떠납니다”라는 6번 ‘찬미 노래 부르며’ 가사는 ‘미사가 끝났으니 가서 복음을 전하라’는 사제의 파견에 대한 응답으로 적합하기에, 흔히 미사 마침 성가로 가장 많이 불리는 성가 중 하나다. 실제로 이 성가의 기원을 살펴보면 하루를 향해 세상에 파견되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로웰 메이슨. 이 성가 작곡자인 로웰 메이슨(Lowell Mason, 1792~1872)은 「가톨릭 성가」 151번 ‘주여 임하소서’를 작곡한 사람이기도 하다. 오늘날 미국 찬송가의 아버지라 불리기도 하는 그는 사실 전문적인 음악학교를 나오지 못하고 그저 생계를 위해 은행에서 일하면서 부업으로 틈틈이 곡을 쓰던 아마추어 작곡가였다. 그러던 중 보스턴에 있던 ‘헨델과 하이든협회’라는 음악 단체에서 그의 곡을 출판해 줬고, 이것이 대히트를 기록하면서 이후 본격적인 음악가의 길을 걸었다. 그가 1824년 만든 이 성가 선율의 타이틀은 ‘안식일’이다. 한편 이 성가 선율에 맞춰 가장 많이 부르는 원어 가사는 존 뉴튼(John Newton, 1725~1807)이 지은 ‘지난 이레 동안에’(Safely Through Another Week)이다. 뉴튼은 영국 성공회 성직자이자 찬미가 작사가로서 우리 「가톨릭 성가」 458번 ‘주의 말씀 듣고’의 원어 가사가 되는 찬미가를 쓴 사람이면서 동시에 유명한 ‘Amazing Grace’의 가사를 쓴 사람이기도 하다. 그는 깊은 신심을 지닌 어머니에게서 태어났으나, 그가 7살 되던 해에 어머니는 세상을 떠났고 이내 새어머니를 맞았으나 적응하지 못한 채 10살에 선원이 되어 아버지와 함께 항해를 떠나게 된다.그는 주로 서아프리카 노예선에서 일했는데, 이 당시 아프리카 흑인들은 인간 취급을 받지 못하던 때였다. 이렇게 흑인들을 짐승처럼 취급하며 일하던 중 그가 탄 배가 거센 폭풍우를 만나게 된다. 침몰과 죽음의 위기에 처한 그는 “주님, 저희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고 외치며 기도했고, 그 기도 덕분인지 다행히 죽을 고비를 넘긴 그는 참으로 오랜만에 성경을 읽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내 선원 생활을 그만둔 그는 성경과 신학을 공부해 목사가 되어 호소력 있는 설교로 이름을 알리게 된다. 그는 83세로 죽을 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내 기억들은 거의 사라졌지만 두 가지만은 분명히 기억합니다. 하나는 내가 대단히 큰 죄인이라는 것과 그리스도께서는 위대한 구원자시라는 것입니다.”이 가사는 1774년 만들어졌으며, 그의 동료였던 윌리엄 카우퍼와 함께 1779년에 출판한 「올니 찬미가집」(Olney Hymns)에 수록되어 있다. 이 찬미가집은 당시 주로 시편을 성가 가사로 하던 분위기 속에서 시편이 아닌 새로 작곡된 복음 찬미가들을 수록했던 모음집이라는 데에서 역사적 의미를 지니는 책이다. 원어 가사가 “또 다른 한 주를 안전하게 지내온 우리들, 하느님께서 우리의 길을 인도하여 주셨네…”로 시작하는 이 성가는 시간의 흐름 속에 숨겨진 하느님 은혜의 손길을 노래하고 있다. 국문학을 전공한 손복희 수녀가 비슷한 의미를 지닌 가사로 꾸며 놓았다. 이 성가는 하루 혹은 한 주를 주님께 봉헌하면서 이 순간까지 인도해주신 은혜에 감사하고, 새롭게 주어지는 시간을 향해 또다시 파견된다는 의미를 지니고 있기에 아침 기도나 새벽 미사에 가장 적절한 성가라고 할 수 있겠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백영민2016.02.03

재미·상상력 더한 영화, 성경 공부 부록으로 제격이정훈·백슬기 기자가 이야기하는 성서주간 영화 올해엔 어느 때보다 성경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잇따라 개봉했다. 성서 주간(23~29일)을 맞아 영화로 보는 성경 읽기는 어떨까. 평화신문 문화 담당 기자들이 ‘성서 주간에 볼만한 영화’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이정훈 기자 : 올해는 이른바 ‘성경 영화의 해’였다고 할까요? 성경을 주제로 한 영화가 참 많았어요.백슬기 기자 : 뭐니뭐니해도 영상 시대잖아요. 성서 주간에 성경 내용을 담은 영화들을 감상하면서 구세사를 역동적으로 묵상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 같아요.이: 특히 「노아」와 「선 오브 갓」 등이 많은 관객의 관심을 얻었죠.백: 「노아」는 러셀 크로우, 엠마 왓슨 등이 열연한 대형 블록버스터였죠. 어마어마한 방주가 파도를 거슬러 힘겹게 나아가는 장면의 그 규모는 지금껏 성경 소재 영화 가운데 최고였죠. 거대 민족을 이끄는 가장이자 인간으로서 노아의 고뇌를 잘 드러냈죠.이: 하지만 기대에 비해 호불호가 많이 갈리기도 했어요. 노아의 아들 셈, 함, 야펫의 가족 관계나 뱀 가죽으로 의식을 행하는 모습 등은 성경 내용과는 다소 동떨어진 모습이었죠. 러셀 크로우는 흔히 생각하는 따뜻한 노아의 이미지와도 다소 상반됐고요.백: 하느님께서 왜 사람과 동물을 각기 짝을 이뤄 방주에 타게 했는지 아세요? 서로 돕고 사랑하도록 이끄시고자 하신 거예요. 2007년 개봉한 「에반 올마이티」는 현대판 노아의 방주를 유쾌하게 그려내면서도 성경이 지닌 교훈을 잘 전달해줬죠.이: 「에반 올마이티」의 톰 새티악 감독은 ‘전능한’(almighty) 시리즈를 내놓으며 딱딱하게만 여겨지던 종교 소재를 재치있게 다룬 사람이죠. 짐 캐리가 열연한 「브루스 올마이티」도 청소년들까지 사로잡았죠. 유쾌한 종교 영화 또 안 나오나요?백: 올해 4월 부활시기에 맞춰 개봉한 미남 예수님이 등장한 「선 오브 갓」은 마르코 복음서를 그대로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영화예요. 고기 낚는 베드로와 군중 5000명에게 빵과 물고기를 먹인 오병이어의 기적, 중풍환자를 일으키는 모습 등에서 예수님의 인자한 성품을 눈앞에서 보듯 잘 표현했죠.이: 딱 10년 전 개봉했던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와 비교하자면, 분위기가 차분하고 서정적이면서 영상미가 가미됐죠. 군중과 제자들 앞에서 주님에 대한 믿음과 당당함을 놓치지 않는 예수님의 모습도 드러나 있어요.백: 「선 오브 갓」은 미국 히스토리채널 드라마 「더 바이블」을 원작으로 한 작품이에요. 지난 10월 국내에서도 5주간 방영됐었죠. 아담과 하와 이야기부터 예수님 부활까지 신ㆍ구약 성경을 10부작으로 다뤘는데, 배우들 연기가 매우 실감 나요.이: 올해 말에는 이스라엘 백성의 이집트 탈출기를 그린 「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이 개봉을 앞두고 있죠? 애니메이션 「이집트 왕자」의 할리우드 버전이라고 해야 할까요? 어쨌든 무엇보다 성경 영화는 그냥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안에 담긴 상징을 함께 읽으며 감상하는 게 관건이라고 봐요. 그걸 제대로 포착하려면 말씀 내용을 잘 알아야 할 것 같아요.백 : 영화가 지닌 상상력, 표현력과 함께 성경 내용을 잘 되새기며 보는 게 성경 영화를 감상하는 핵심일 것 같아요. 작품을 통해 성경을 새로운 방식으로 되새긴다면 더욱 유익하겠죠?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백슬기 기자 jdarc@ 평화신문2014.11.18
![[추기경 정진석] (29) 새로운 세계](//cpbc.co.kr/CMS/newspaper/2016/12/rc/664118_1.0_titleImage_1.jpg)
[추기경 정진석] (29) 새로운 세계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식, 그 감격의 현장에 함께 1968년경 로마 우르바노대학에서 성베드로 대성전을 배경으로 한국 신부들과 함께한 정진석 신부(왼쪽에서 두 번째). 로마! 정진석 신부는 드디어 로마로 유학을 떠났다. 정 신부의 로마행에는 작은 행운도 따랐다. 때마침 로마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한국 교회 역사상 43년 만의 시복식인 병인박해 순교자 24위 시복식이 거행될 예정이었던 것이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전세기를 빌려 역사적인 시복식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정진석 신부는 이 비행기로 함께 가기로 했다. 혼자서 여러 번 갈아타는 비행편에 비하면 시간도 절반밖에 걸리지 않았다. 또 그 긴 여행을 같은 동포 신자들과 같이 가게 되었으니 다행이었다. 정진석 신부의 입학이 결정된 학교는 로마의 교황청립 우르바노대학교였다. 우르바노대학은 교황청 인류복음화성 소속 신학교로 선교 지역에서 온 신학생, 신부들을 주축으로 지역 교회에서 헌신할 사목자를 양성하는 데 교육의 중심을 둔 역사 깊은 신학교였다. 세계 곳곳의 선교지에서 학생들이 오기에 나라와 인종이 매우 다양했다. 아프리카만 해도 수십 개나 되는 나라에서 학생들이 왔다. 피부색이 다르고 언어가 다른 외국의 신자들이 함께 모여 기도를 바치거나 미사를 하면 묘한 감동이 밀려왔다. 모두가 하나의 언어(라틴어)로 기도와 노래를 하는 것은 보편 교회에 대한 연대를 생각하게 했다. 문화와 언어와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한 분이신 하느님을 찬미한다는 것 자체가 정진석 신부에게는 공감과 유대의 큰 체험이었다.공의회가 가져온 변화당시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끝나고 유럽을 포함한 전 세계 가톨릭 교회에 많은 변화의 물결이 밀려오고 있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세계 교회에 미친 가장 큰 영향은 무엇보다 ‘평신도의 교회 참여’였다. 공의회는 평신도를 “각기 받은 은혜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나누어주시는 은혜의 분량대로 교회의 사명을 완수하는 도구요 증인”(「교회헌장」 33항)으로 인정하여 세속의 복음화와 성화를 위한 고유의 사도직 임무를 수행할 것을 권고했다. 또 하나의 큰 흐름은 전례의 토착화였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전례에서도 혁신을 일으켰다. 미사를 모국어로 집전토록 하고, 성경과 교회법전 등의 자국어 번역을 장려했다. 그리고 성당 제단 벽면에 붙어 있던 제대가 사제와 신자들 가운데로 옮겨졌다. 제단과 신자석을 가로막던 난간도 사라졌다. 그뿐만 아니라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회 일치 운동과 비그리스도교 문화 혹은 타 종교와의 관계 개선을 권장해 각 지역 교회들이 이를 위해 노력하도록 했다. 이 모든 것은 공의회가 변화시킨 교회의 새로운 모습이었다. 나라마다 차이는 있었지만 한국도 큰 변화가 시작되고 있던 터였다. 정진석 신부는 그 변화의 흐름 한가운데 있었다.베드로 대성전에서의 시복식1968년 10월 6일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시복식은 한국 교회 역사상 두 번째 시복식이었다. 1차 시복식은 1925년 7월 5일 거행됐다. 당시 시복식에는 서울대목구장 뮈텔 주교와 대구대목구장 드망즈 주교 두 분이 참석했다. 조선의 두 주교는 수행원도 없이 부산에서 출발해 고베, 상해, 홍콩, 싱가포르, 사이공, 수에즈 등을 거쳐 마르세유에 닿는 여정으로 로마에 당도했다. 당시 「경향잡지」 편집을 맡고 있던 한기근 신부는 조선인이 한 명이라도 있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어렵게 여비를 마련해 5월 11일 로마를 향해 떠났다. 그리고 7월 1일에는 뉴욕에서 유학을 마치고 귀국 중이던 장면ㆍ장발 형제가 로마에 당도했다. 이로써 1925년 첫 시복식에는 단 3명의 한국인이 참석했다. 1968년 10월 6일 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열린 두 번째 시복식에는 많은 신자가 참석했다. 한국에서 민간인 단체로서는 처음으로 비행기를 전세 냈다. 두 번째 시복식에는 20시간의 긴 비행을 마치고 도착한 한국인 순례단 136명, 서독에 파견된 간호사 65명, 그리고 유럽에 사는 유학생 등이 참석했다.성 베드로 대성전에서 거행된 시복 미사는 그야말로 감동의 연속이었다. 미사의 여러 부분에 한국어가 사용됐다. 당시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대주교(1969년 추기경 서임)가 교황을 대리해 미사 주례를 맡았다. 김수환 대주교가 입장하자 ‘칙서’가 낭독됐다. 라틴어 원문 낭독에 이어 이인하 대전교구 부주교가 한국어로 낭독했다. 김수환 대주교의 선창으로 ‘떼 데움(Te Deum)’이 시작될 때 성당 전면에 걸려 있는 복자들의 초상화 가림막이 걷혔다. 이어 대미사가 봉헌됐다. 미사 마지막에는 교황청 성가대가 이문근 신부가 작곡하고 최민순 신부가 작사한 ‘장하다 복자여~’로 시작하는 ‘복자 찬가’를 합창했다. 웅장한 한국어 성가가 성 베드로 대성전 가득 울리자 이내 성당은 울음바다가 됐다. 이날 오후 성체강복에서 교황 바오로 6세는 이날 시복된 새 복자들에게 경배한 후, 한국의 24위 순교자들을 현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신앙의 귀감’이라고 극찬하며 한국이 지리적으로는 멀리 떨어져 있으나 정신적으로는 가장 가까운 이웃이라고 전했다. 한국에서 온 신자들은 교황의 말씀에 큰 감동을 받았다.다음날 한국 신자들은 김수환ㆍ노기남ㆍ장병화 주교와 함께 교황을 특별 알현했다. 그때만 해도 한국 신자들이 바티칸을 순례하는 것도 어려웠고, 교황 알현은 더더욱 어려웠다. 교황은 거듭 한국 교회에 특별한 애정을 표하며 성작을 선물했다. 한국 교회와 순교자의 후손, 신자들의 선물에도 일일이 감사를 표했다. 시복식은 당시 교회뿐 아니라 국내 일반 매체에서도 호응이 높았다. 이후 교회에서는 엄청난 순교자 현양 운동이 일어났고 이는 시성식을 앞당기는 결과를 가져왔다.유학생 정진석 신부정진석 신부는 시복식 당일 성 베드로 대성전 옥상에 올라가 시복식을 생중계하는 데 참여했다. 정 신부의 로마 생활은 한국 신앙 선조들의 시복식으로 시작한 셈이었다. 시복식 사흘 뒤인 9일 우르바노대학에 입학했고, 수업은 15일 뒤에 시작됐다. 그러다 보니 눈코 뜰 새 없이 학기에 들어갔다. 강의는 라틴어로 진행돼 강의를 듣는 데 별 무리가 없었다. 3년간 라틴어 교사로 지낸 것이 큰 도움이 됐다. 유학생활에서 어려운 것으로 식사와 언어를 꼽을 수 있는데, 다행히 이탈리아 음식이 입맛에도 잘 맞았다. 언어도 말하고 듣고 쓰는 데 문제가 없으니 정 신부의 유학 생활은 크게 어렵지 않았다. 게다가 오랜만에 책을 보고 강의를 들으니 공부도 재미있었다. 공부하다 지칠 때면 학교 옥상에 올라갔다. 우르바노대학에서는 성 베드로 대성전이 한눈에 내려다보였다. 정 신부는 성 베드로 대성전을 바라보며 지난 시복식의 감동을 떠올리곤 했다. 그리고 한국 교회를 향한 주님 은혜에 감사함을 느끼며 마음을 다잡았다. 가끔 주말이 되면 로마에 있는 후배 신학생들과 함께 장을 보고 한국 음식을 해먹으며 향수를 달래기도 했다. 그 어느 때보다 즐겁고 감사하게, 쉼 없이 열심히 공부한 덕에 1년 반 만에 교회법 석사 학위를 받을 수 있었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사진=서울대교구 홍보국 제공 평화신문2016.12.14

위기의 지구, 인간의 변화와 실천 재촉하네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 공부·해석하는 포럼·세미나 잇따라 프란치스코 교황의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대한 관심이 뜨거워지면서 회칙을 다양한 관점에서 공부하고 해석하는 포럼과 세미나, 심포지엄 등이 잇따라 개최되고 있다.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위원장 유흥식 주교)가 11월 30일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회칙 「찬미받으소서」에 비추어 본 21세기 한국 사회에서의 통합 생태’를 주제로 정기세미나를, 이에 앞서 24일에는 정평위 환경소위원회가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에서 「찬미받으소서」를 성서ㆍ생태신학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가톨릭 에코포럼’을 열었다. 정기세미나와 에코포럼에서 발표된 내용을 △공동의 집 △신학적 성찰 △통합의 생태 △성서신학과 「찬미받으소서」 등 네 가지 주제로 정리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공동의 집공동의 집에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습니까?회칙 「찬미받으소서」 첫 장의 제목이다. 어떻게 하면 교황이 말한 ‘공동의 집’에서 모든 피조물이 조화롭게 살아갈 수 있을까. ‘생태 위기와 공동체 해체 시대, 「찬미받으소서」가 주는 울림에 대하여’를 발표한 박승옥(서울시민햇빛발전협동조합) 이사장은 공동의 집에서 살아가는 데 필요한 덕목을 이야기했다. 내가 소중하듯 이웃 또한 소중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웃과 평화롭게 지내고, 재물과 음식을 탐하지 말고, 자비를 베풀고, 풀 한 포기 생명체도 허투루 다루지 말고, 음식과 물건들을 절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찬미받으소서」는 예수님이 일깨워주셨던 이런 평범함과 상식의 힘을 부활시켜야 한다고 말한다”고 덧붙였다.그는 이웃과 함께하는 ‘연대’를 강조하며 “공동의 집’이 없는 개인 구원은 불가능할뿐더러 신기루 같은 환상”이라고 했다. 박 이사장은 “「찬미받으소서」는 공동의 집에는 사람만이 아니라 이웃 생명체인 풀과 나무와 벌레와 짐승 모두가 들어와 함께 살 자격과 권리가 있음을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 개인 구원과 사회 구원, 생태 구원은 하나라는 것이다. 박 이사장은 “단순히 분석과 비판만 하고 행동과 실천을 하지 않는다면 사람들의 생각과 세상은 변하지 않는다”며 “오직 삶과 현실을 바꾸는 실천만이 하느님이 주신 피조물들의 다채로운 무지갯빛 우애의 집을 세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실천하지 않으면 우리의 공동의 집은 파괴될 수밖에 없다고 경고했다. 신학적 성찰개신교 신학자는 「찬미받으소서」를 어떻게 바라볼까. ‘복음서로서 창조 세계 : 「찬미받으소서」에 대한 신학적 성찰’을 발표한 최광선(호남신학대 영성신학 교수) 목사는 “기술 관료적 패러다임, 인간중심주의, 반생태적 문화에 대한 교황의 비판은 타당하며 생태 위기의 근본 원인을 잘 인식하도록 도와준다”면서 “다만 왜 그동안 그리스도교 신학과 영성이 기술ㆍ산업 사회가 공동의 집인 지구를 파괴하는 동안 침묵했거나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했는지에 대한 진단이 있었으면 한다”고 바람을 전했다.최 목사는 또 “「찬미받으소서」는 ‘다양한 관계를 드러내는 전체로서 우주는 하느님의 다함 없는 풍요로움을 드러낸다’는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을 통해 다양성이 궁극적 신성을 드러내는 방법임을 강조한다”면서 “다양성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은 존재하는 모든 것에서 하느님의 현존을 발견할 수 있고, 자연 전체가 하느님 현존의 장소이자 하느님을 현시하는 곳임을 거듭 밝히고 있다”고 말했다.최 목사는 ‘생태적 권고의 부족함’을 「찬미받으소서」의 아쉬운 점으로 들면서도 “우리의 공동의 집에 관해 모든 이와 대화를 나누는 회칙 「찬미받으소서」는 인류 문명사와 지구 역사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통합의 생태교황은 「찬미받으소서」 4장에서 ‘통합 생태론’의 다양한 요소에 관한 성찰을 제안한다. 교황은 통합 생태론을 “모든 것이 서로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으며 오늘날 문제들이 세계적 위기의 모든 측면을 고려하는 시각을 요구하기 때문에 인간적 사회적 차원을 분명히 존중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통합의 생태를 향한 한국천주교회의 노력-쇄신, 복음화, 대화’를 발표한 박동호(서울대교구 정의평화위원장) 신부는 ‘통합의 생태’를 위해 한국 교회는 쇄신하고, 복음화하고, 대화하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 신부는 “사실 쇄신과 복음화와 대화는 제2차 바티칸공의회 ‘사제의 교역과 생활에 관한 교령’에서 언급됐기에 전혀 새로운 것이 아니다”면서 “공의회가 폐막한 지 반세기가 지났음에도 생소하다면 그동안 한국 교회가 ‘쇄신, 복음화, 대화’를 회피ㆍ무시했거나, 우리 교회의 요새가 너무 높고 견고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박 신부는 또 “무엇보다도 성직자와 봉헌생활자들의 책임과 ‘사회적 부채’에 대해 고통스럽게 성찰해야 한다”면서 이는 “(쇄신, 복음화, 대화에 있어) 성직자와 봉헌생활자의 책임과 부채의 무게가 무겁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회의 복음화 사명을 수행하기 위해 모든 사람과 정직하고 공개적인 대화에 나서기 위해서는 그들의 신뢰를 받아야 한다”고 강조했다.가톨릭 에코포럼에서 ‘생태신학의 관점에서 본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한 이재돈(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신부는 “회칙은 우리가 생태운동을 구체적으로 실천하는 데 필요한 생태적 회개와 생태교육, 생태영성, 더 나아가 시민적이고 정치적인 사랑을 제시한다”고 말했다.성서신학과 「찬미받으소서」잘못된 성경 해석이 생태 위기에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는 주장도 있다. 가톨릭 에코포럼에서 ‘성서신학의 관점에서 본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한 최승정(가톨릭대) 신부는 성서적 관점에서 생태 문제를 바라본 2장(피조물에 관한 복음)을 분석하며 이런 주장에 대한 답변을 내놓았다.회칙 67항은 “사람들은 인간이 땅을 ‘지배’(창세 1,28)하게 했다는 말이 창세기에 나온다는 것을 근거로 인간을 본성적으로 지배적이고 파괴적인 존재로 묘사하면서 유다-그리스도교 사상이 무분별한 자연 착취를 조장했다고 주장한다”며 “이는 교회가 이해한 바른 성경 해석이 아니다”라고 지적한다. 최 신부는 “생태론자들은 성경의 인간 중심적 사고가 오늘날 생태적 위기를 초래했다고 비난하곤 했다”면서 “그리스도교가 말씀을 부정확하게, 인간 중심적으로 해석했기에 생태론자들의 비난은 타당하다고 볼 수 있으나 그것이 성경을 인간 중심적이라고 결론 내리는 근거가 될 수는 없다”고 반박했다.최 신부는 이어 “성경은 하느님 중심, 즉 신 중심적”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하느님에게 있어서 인간 역시 피조물이며 따라서 인간에게 여타 피조물에 대한 절대적 지배의 권한을 준 것은 아니다”면서 “창세기 1장 28절의 ‘지배’의 개념은 (땅을) 일구고 돌본다(창세 2,15)는 의미로 보완돼야 한다”고 말했다. 평화신문2015.12.01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17. 제4장 혼인의 사랑 ⑥ (142~152항)성(性), 하느님이 피조물에 주신 놀라운 선물 격정적인 사랑(142~144항)부부 사랑은 “인간 전체의 행복을 다 포괄한다.” 그래서 “이 사랑은 몸과 마음의 표현을 특수한 품위로 풍요롭게 하고 또한 이 표현들을 부부 애정의 특수한 요소와 표시로 삼아 고귀하게 할 수 있다”고 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르친다(「사목헌장」 49항). 부부 사랑은 단순히 정신적인 사랑, 영적인 사랑이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말하자면 성애(性愛)와 감정으로도 표현되는 사랑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제 부부 사랑과 감정의 세계에 대해 언급한다. 감정의 세계(145~146항)욕구와 느낌과 감정, 열정(passion) 등은 모두 혼인 생활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실제로 현세를 사는 인간이 추구하고 행동하는 모든 것에는 즐거움과 아픔, 기쁨과 슬픔, 온유함과 두려움 같은 감정의 세계가 자리 잡고 있다. 예수님 또한 이 점에서 예외가 아니었다. 그분은 예루살렘이 당신을 거부한 것에 대해 아파하시면서 눈물을 흘리셨고, 다른 사람들의 고통에 마음이 움직이셨다. 예수님의 이런 민감함은 그분의 인간적 마음이 다른 이들에게 얼마나 많이 열려 있는지를 보여 준다. 그런데 이런 감정은 그 자체로는 윤리적으로 선하거나 악한 것이 아니다. 누군가에게 매력을 느끼는 것도 마찬가지다. 이 때문에 우리가 “좋다고 느낀다”고 해서 정말로 좋다고 보는 것은 엄청난 착각이라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적한다. 중요한 것은 그런 느낌이, 예를 들어 사랑한다는 감정이 실제로 가정 전반에 또 가족의 공동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노력하는 일이다.우리도 마찬가지다. 아내나 남편에 대해 사랑한다고 생각하고 그런 감정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그런 감정이나 느낌 자체를 가지고 아내나 남편을 정말 사랑하고 있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하느님은 자녀들의 기쁨을 사랑하신다(147 ~149항)“교회는 그 모든 계명과 금기로 삶의 가장 고귀한 것을 쓰디쓴 것으로 만들어 버린 것은 아닌가? 창조주의 선물인 기쁨이 우리에게 신적인 것을 어느 정도 미리 맛보게 해주는 행복을 주는 바로 그 순간에 교회가 금지 명령을 내리는 것은 아닌가?”(147항)이 내용은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첫 회칙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에서 에로스(남녀의 사랑)와 관련해 그리스도교에 대한 세간의 그릇된 인식을 질문 형태로 표현한 것을 프란치스코 교황이 「사랑의 기쁨」에서 그대로 인용한 것이다. 이를 통해 베네딕토 16세는 그리스도교가 에로스를 독살하는 바람에 에로스가 점차 악한 것으로 변질돼 버렸다고 주장한 20세기 무신론적 철학자 프리드리히 니체의 말이 사실이 아님을 지적하고자 한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전임 교황의 답변을 거의 그대로 인용한다. 과장이나 일탈한 형태의 금욕주의가 있었던 것은 사실이나 성경에 충실한 교회의 가르침은 “결코 에로스 그 자체를 거부하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오히려 왜곡되고 파괴적인 형태의 에로스를 물리치고자 하였다. 에로스를 그릇되이 신격화하는…행위는 사실상 에로스의 품위를 떨어뜨리고 에로스를 비인간화하기 때문이다”(147항;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4항).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은 그러나 에로스가 절제되고 정화될 필요가 있다고 지적한다. “에로스가 인간에게 단순히 순간적 쾌락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삶의 절정 곧 우리의 온 존재가 열망하는 지복을 어느 정도 미리 맛보게 해주려면 에로스는 절제되고 정화되어야 한다”(「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 4항). 프란치스코 교황도 전임 교황과 마찬가지로, 감정과 본능의 영역에서는 훈련이 필요할 뿐 아니라 때로는 한계를 설정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과도할 때, 억제하지 못할 때, 또는 즐거움에만 집착할 때는 오히려 그 즐거움 자체를 약화시키고 가정생활에 해를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의 본능에, 감정에 절제와 정화가 필요하고 성숙이 요청되는 것이다. 사랑의 에로틱한(性愛) 차원(150~152항)여기서 혼인의 성적 사랑에 대한 문제를 다시 한 번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성(性)은 하느님 친히 창조하신 것이고 당신 피조물들에게 주시는 놀라운 선물”(150항)이라고 말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몸의 신학’으로 혼인과 가정생활의 의미를 풍부하게 제시하고 있는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을 따른다. 그래서 성의 가치를 부정하는 것, 또는 성이 출산을 위해 필요하기에 관용할 따름이라고 하는 주장은 교회의 가르침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성적 욕구는 멸시해야 할 어떤 것이 아니다”(150항). 성애(性愛)는 “부부의 관계를 풍요롭게 해주는 하느님의 선물로 보아야 한다”(152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6.08.24

한국 교회 속 ‘작은 독일 교회’ 30주년서울 국제본당 소속 독일 공동체, 재한 독일인, 한·독 가정 등 참석
사회 나눔 확대 계획 6일 봉헌된 독일공동체 설립 30주년 기념 미사에서 독일 신자들이 미사에 참례하며 기도하고 있다. 이정훈 기자 서울 국제본당 소속 독일 공동체는 설립 30주년을 맞아 6일 서울 용산구 한남동 꼰벤뚜알 프란치스코수도회 수도원 내 성당에서 유경촌(서울대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 주례로 기념 미사를 봉헌했다.1977년 설립된 서울 국제본당에는 스페인, 프랑스, 독일 등 다양한 외국인 공동체가 있다. 초기 서울 정동 프란치스코 회관에서 공동체 미사를 해온 본당은 1987년 현재 자리로 옮겨 공동체별 미사를 진행해오고 있는데, 이 가운데 독일 공동체가 어느덧 설립 30년을 맞은 것이다.이날 독일어로 미사를 주례하며 독일 신자들과 교류한 유경촌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30년 세월을 한국교회와 함께해온 공동체가 주님 울타리 안에 독일인의 아름다운 신앙을 더욱 전하는 가교가 돼주길 바란다”고 말했다.독일 공동체는 독일 주교회의에서 파견된 사제가 공동체 사목을 맡아왔다. 그러다 독일 현지 사제 감소 등의 이유로 최근 독일인 사제 파견이 어려워지면서 국내 수도회 사제들이 돌아가며 미사를 주례해오고 있다. 대신 독일 주교회의는 공동체 책임자로 2014년 첫 평신도 여성 책임자인 유타 하슬러씨를 파견했다.현재 공동체에 나오는 신자는 독일인 한국 주재원, 독일-한국인 가정, 파독 간호사 등 70여 명에 이른다. 이들은 교회 주요 전례에 따른 축제를 함께 열고, 성경 모임을 하며, 10여 군데 자선단체에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독일 공동체 책임자 유타 하슬러씨는 “우리는 한국 속 ‘작은 독일 교회’로서 양국을 신앙으로 잇는 다리 역할을 하고, 독일인 영성을 다지는 공동체로 역할을 해오고 있다”며 “서울역 인근 노숙인 쪽방촌 사람들이 있는 ‘한사랑 가족 공동체’ 등 사회복지 시설과 연계한 나눔도 더욱 확대해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신문2016.03.15

자비의 특별 희년에 맞는 성모성월에 어울리는 책 자비의 어머니께 청하세요 자비의 어머니께 청하세요프란치스코 교황 지음/엘레나 인베르세티 엮음/이정석 옮김/가톨릭출판사/1만 원프란치스코 교황의 성모 신심은 잘 알려져 있다. 교황은 2013년 3월 13일 교황으로 선출된 다음 날 가장 먼저 로마 성모 마리아 대성전을 찾아 기도했다. 해외 사목 방문을 마치고 돌아오면 으레 성모 마리아 대성전에 가서 성모님께 인사드린다. 자비의 특별 희년 시작일을 12월 8일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동정 마리아 대축일’로 정한 것만 봐도 교황이 얼마나 성모님께 의지하는 지를 엿볼 수 있다. 책은 성모님 삶과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인으로서 나아가야 할 방향을 일깨우는 교황의 말씀 모음집이다. 교황은 성모님께서 늘 우리와 함께하시며, 주님께 우리를 이끌어 주는 사실을 강조한다. 그러면서 더욱더 성모님께 의탁하고 간구하기를 요청한다.교황은 “성모님은 늘 서둘러 오신다”고 했다. 우리가 도움을 필요로 할 때면, 우리가 기도를 드릴 때면 ‘어머니’의 마음으로 한걸음에 달려온다는 것이다. “우리에게 주시는 성모님의 은총을 기억합시다. 항상 우리 가까이 계시고, 절대 우리를 기다리게 하지 않는 그 은총을 말이지요. 성모님은 늘 우리를 위해 서두르십니다”(52쪽).책은 부록으로 성모님께 드리는 여러 기도문을 실었다. △매듭을 푸시는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아파레시다의 성모님께 드리는 봉헌문 △성모님께 교회를 의탁하는 기도 △파티마의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원죄 없으신 성모님께 드리는 기도 등을 담았다. 자비의 어머니-성모님과 함께 한 달을마리 폴 파란 지음ㆍ그림/김영주 옮김/성바오로/5000원요셉의 아내, 동정녀 중에 동정녀, 순종의 여인, 천상의 별, 세상의 여왕…. 모두 성모님을 표현하는 말이다. 책은 성모님의 삶과 영성을 하루에 하나씩 묵상하도록 이끈다. 성경 말씀과 묵상 글, 기도로 이어지는 구성으로 돼 있는데, 기도와 묵상 글은 고대 사막 교부나 중세 수도자들이 성모께 바친 기도와 동방 교회 전례에서 전해오는 기도 등에서 발췌했다. 교회 역사 초세기부터 오늘날까지 교부들과 신비가들은 성모님의 신앙과 삶을 묵상하고, 성모님께 대한 경탄과 사랑, 공경을 표현하기를 아끼지 않았다. 저자는 이집트 출신의 마리아 폴 파란(성 베네딕도회) 수녀다. 이콘 전문가인 파란 수녀는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를 이콘으로 승화시킨 작품을 함께 소개했다. 매일 하나씩 성모님 이콘을 보며 묵상해도 좋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6.05.04
![[미사 풀이] <5>](//cpbc.co.kr/CMS/newspaper/2016/02/rc/617689_1.0_titleImage_1.jpg)
[미사 풀이] 강론은 신자들 신앙을 살찌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다. III. 미사의 각 부분 나. 말씀 전례(2)강론미사 때 하는 강론은 전례의 한 부분으로서 크게 권장됩니다. 그리스도 신자들의 삶을 살찌우는 데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강론은 그날 미사 전례 때 봉독한 성경의 내용 혹은 그날 미사의 통상문이나 고유 전례문에 대한 설명이어야 합니다. 강론을 할 때는 거행하는 신비나 듣는 사람들의 특수한 상황도 고려해야 합니다. 강론은 원칙으로 주례 사제가 합니다. 공동 집전 사제 가운데 한 사람이, 필요한 경우 부제에게도 맡길 수 있습니다. 하지만 평신도에게는 결코 맡길 수 없습니다. 특별한 경우에 또 정당한 이유가 있을 때는 공동 집전을 하지 않지만 미사에는 참여하고 있는 주교나 사제가 강론을 할 수 있습니다.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신자들이 참여하는 모든 미사에서 강론을 해야 하며, 중대한 사유가 없이 생략할 수 없습니다. 다른 날에도, 특히 대림ㆍ사순ㆍ부활 시기의 평일에, 그리고 신자들이 많이 모이는 축일이나 특별한 기회에는 강론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강론 다음에는 알맞게 짧은 침묵의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신앙고백 신앙고백은 주일과 대축일에는 반드시 바치고, 성대하게 지내는 특별한 미사 때에도 바칠 수 있습니다. 강론 후에 바치는 신앙고백은 두 가지 의미를 지닙니다. 하나는 미사에 참여한 신자 전체가 성경 봉독에서 선포되고 강론에서 풀이한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성찬 전례를 시작하기 전에 전례용으로 승인된 양식문으로 신앙 규범을 고백함으로써 위대한 신앙의 신비를 마음에 새기고 찬양하게 하려는 것입니다.주일과 대축일에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이라고 부르는 신앙고백문을 바칩니다. 때에 따라서는 좀 더 짧은 ‘사도신경’을 바칠 수 있습니다. 또 미사 중에 세례식 혹은 세례 갱신식이 있을 때는 그 예식에 나오는 신앙고백문을 함께 바치는 것으로 대신할 수 있습니다. 신경은 노래로 바치거나 낭송으로 바칠 수 있습니다. 노래로 바치는 경우 사제가 시작하거나 또는 필요에 따라 선창자나 성가대가 시작할 수도 있습니다. 보편 지향 기도 흔히 ‘신자들의 기도’라고도 하는 보편 지향 기도는 신자들이 믿음으로 받아들인 하느님 말씀에 응답하고 세례 때 받은 사제 직무를 수행하면서 하느님께 모든 이의 구원을 위해 바치는 기도입니다. 교우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에서는 원칙으로 이 기도를 바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신자들은 이 기도를 통해서 거룩한 교회, 위정자, 온갖 어려움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 그리고 모든 사람과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 간청해야 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를 바칠 때는 보통 ①교회에 필요한 일을 위해서 ②위정자와 온 세상의 구원을 위해서 ③온갖 어려움으로 고통받고 있는 이들을 위해서 ④지역 공동체를 위해서 순서로 바칩니다. 그러나 견진, 혼인, 장례와 같은 특별한 미사 때는 기도 지향을 그 상황에 더 맞게 바꿀 수 있습니다.주례 사제는 주례석에서 이 기도를 이끕니다. 먼저 신자들에게 기도하도록 간단한 말로 권고하고, 신자들이 기도를 다 바친 후에는 맺는 기도를 바칩니다. 기도 지향은 간단명료해야 하며, 자유롭고 슬기롭고 짤막하게 준비합니다. 또 공동체 전체의 청원을 드러내야 합니다. 보편 지향 기도는 독서대나 다른 적합한 곳에서 부제, 선창자, 독서자, 또는 다른 평신도가 바칩니다. 보편 지향 기도는 서서 바칩니다. 봉사자가 각 지향을 말하면 다 함께 간구를 바치거나(예 : 주님 저희의 기도를 들어 주소서) 아니면 침묵 가운데 기도하면서 청원을 드러냅니다. 말씀 전례는 보편 지향 기도로 끝납니다.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6.02.03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72) 레이먼드 브라운 (하)](//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5246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72) 레이먼드 브라운 (하)성경 연구 헌신하며 교회 일치 운동에 한 획 그어 독일 루터교 신학자로 유명한 에른스트 케제만 교수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브라운 신부(왼쪽). 브라운 신부는 개신교 신학자들과 함께 연구하며 교회 일치를 위해 헌신했다. 실현된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요한 복음은 신약 성경 중에서 실현된 종말론을 가장 잘 보여준다. 그것은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거나 “빛이 세상에 왔다” 같은 표현에서 드러난다. 복음서 전체에서 예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자신을 따르든지 아니면 반대하든지 스스로 결정하게 한다. 참으로 그의 오심은 근본 의미에서 갈림길(crisis)이었다. 믿기를 거절하는 이는 이미 심판을 받은 것이다(요한 3,18). 그러나 믿는 자들은 이미 영생으로 넘어갔다(요한 5,24). 공관 복음에서 영생은 최후의 심판이나 미래에 받을 무엇인가이지만 요한 복음에서는 현재적 가능성이다. 다른 한편으로, 요한 복음서에는 미래적 요소들도 많이 발견된다. 이러한 긴장은 신약 성경 저자들이 예수님 말씀에서 나타나는 자취들을 특별한 상황에 적용하려 했기 때문이다. 예수님과 동시대 유다교에도 두 가지 형태의 종말론이 있었다. 쿰란의 전쟁 문서에는 하느님의 신적 개입을 고대했으나, 동시에 그들은 이미 하느님의 천상적 선물을 공유했으며 심판으로부터 구원받았고 천사와 함께 기쁨을 나눴다고 믿는다. 이러한 종말론은 그리스도인들이 이미 예수 안에서 받은 것들을 생각해 본다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것들이다. 우리는 마지막 심판을 크게 염려할 필요가 없다. 그 이유는 예수님에 대한 믿음 또는 불신의 반응이 이미 심판의 기준이 됐기 때문이다. 우리는 또한 재림이 가져다줄 축복들을 과도하게 소망할 필요도 없다. 왜냐하면 하느님의 자녀 됨과 영생이라는 두 위대한 선물이 이미 예수님을 믿음으로써 그리고 세례와 성찬례를 통해 그리스도인들의 소유가 됐기 때문이다. 예수님 안에서 죽은 자들은 마지막 날과 죽은 자의 부활을 기다려야 하는 무한한 고민이 필요 없다. 그 이유는 죽음 후에도 그들이 이미 소유한 영생이 이어지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이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연속이며, 예수님과 아버지와의 친교를 구성하는 연속이다. 사실, 그리스도인들이 말하는 종말론의 일반적 견해도 주도적으로 실현된 종말론과 미래적 종말론이 혼합된 형태다. 브라운은 현재 상태로의 요한복음이 갖는 다양한 종말론의 의미를 찾으려고 한다. 교회 일치 운동과 교회 삶에서의 브라운의 역할브라운은 성경 연구에도 공헌했지만, 교회 일치 운동과 교회 생활에도 폭넓게 봉사했다. 바오로 6세 교황은 미국의 보수적인 사람들의 기대와는 반대로, 브라운을 새롭게 발족한 교황청 성경위원회 20명 중의 최초 미국 위원으로 임명했다(1972~1978). 그만큼 그는 학문적으로 현명하고, 가톨릭 교회에 정통한 사람이라는 것을 뜻했다. 브라운은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에 의해 또다시 성경위원회 위원으로 임명된다. 그리고 미국 가톨릭 주교들은 그를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중에 미국 루터교인들과 함께 신학적 대화를 하도록 했는데, 이는 루터 이후 450년 만에 미국 가톨릭 교회와 루터교 신학자들이 처음으로 모인 것이다(1965). 여러 번의 모임 후, 가톨릭과 개신교 신학자들은 「신약 성경에서의 베드로」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래서 브라운의 영향은 전 세계의 많은 가톨릭인들 뿐만 아니라 개신교인들에게까지 이르게 됐다. 1973년에는 루터교 신학자들과 마리아에 대해 토론하고 「신약 성경에서의 마리아」라는 책도 펴냈다(1978). 그는 25년 동안 계속 그리스도교 일치를 위해 봉사했다. 브라운은 바티칸의 요청과 미국 가톨릭 교회의 요청으로 루터교와 장로교의 일치를 위해 일했다. 교회 삶에 대한 그의 역할 가운데 말씀 봉사도 빼놓을 수 없다. 그는 명확한 설교가였다고 한다. 그는 하느님 말씀의 문학적 의미를 그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상황에 맞게 설교하는 뛰어난 명사였다. 미국 LA대교구장을 지낸 마호니 추기경은 산상설교 산에서 브라운으로부터 설명을 들은 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브라운 신부는 그 사건을 그렇게 우아하고 명상적으로 묘사해줬다. 그가 설명을 마쳤을 때 어느 누구도 입을 열어 말하거나 움직이지 않았다. 우리는 모두 거기에 앉아서 마치 처음으로 그 말씀들을 해주시는 예수님께 듣는 것 같았다.” 브라운에 대한 불공정한 비판과 박해브라운은 일생에 많은 일을 이뤘고 성경학자로서 칭찬받을 만한 일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사제 생활과 학자적 삶에 대해 불공정한 비판과 박해를 견뎌야 했다. 그는 1970~80년대에 ‘독이 있는’(venomous) 비판자라는 말을 듣기도 했다. 브라운은 성경엔 오류가 없다는 무오류성을 부인했다고 비판받았다. 몇몇 보수주의자들은 예수의 동정 잉태가 역사적으로 증명될 수 없다는 브라운의 주장에 화를 내기도 했다. 그의 문학적 연구는 근본주의자들에게 반대를 받았다. 그의 동료 피츠마이어는 이러한 비판들이 그를 잘 아는 사제들에게서 나왔다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하며 비슷한 경우를 라그랑즈(1855~1938, 프랑스) 신부에 빗대어 이야기한다. 1900년대 초 라그랑즈 신부는 역사비평 방법이 가톨릭 성경 해석자들에게 유용하게 사용될 수 있음을 주장했다(1903). 이후 라그랑즈는 구약 성경을 가르치거나 책을 출판하지 못하도록 금지당했다. 그래서 그는 신약 성경 연구로 전향해 네 복음서에 대해 중요한 주석서를 발간하기에 이른다. 라그랑즈와 브라운 두 사람 모두 무지로부터 비롯된 불공정한 평가를 받았다. 이러한 불공정한 평가는 “가톨릭 주석가들은 성경을 자유롭게 토론하고 주석할 수 있다”고 선포한 비오 12세 교황 회칙에 의해 재평가됐다. 브라운은 이 회칙을 ‘성경 발전에 있어서의 대헌장(Magna Carta)’이라고 부른다. 시대는 변하여 라그랑즈 시대에 성경 연구 방법에 있어 이단으로 평가받았던 것들이 오늘날 가톨릭 교회에서 성경을 해석하는 데 완전하게 받아들여지게 됐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계시헌장」도 계시 진리를 탐구하는 데 있어 역사적이고 비평적인 방법의 필요성을 분명히 제시한다. 교황청 성경위원회도 1993년 “역사비평 방법은 고대 본문의 의미를 현대적으로 연구하기 위하여 필수불가결한 방법이며, 인간의 언어로 된 하느님 말씀으로서의 성경은 이 방법을 사용할 것을 허락할 뿐만 아니라 실제로 그것이 요구된다”(교회 안의 성경 해석)고 말하고 있다. 브라운 같은 성경 주석의 도전들이 없었다면 우리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아직도 헤매고 있을 것이다. 요한복음은 상당히 다른 형태로 예수님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새로운 세계를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예수님의 이야기를 형성했던 것은 요한복음이 영원한 매력을 갖게 되는 이유 중 하나다. 브라운은 성경학자로서 교회의 봉사에 충실했고 그를 인정하지 않았던 사람들과 박해했던 사람들에게도 친절한 관용을 보여줬다. 그는 마치 요한복음이 새로운 세계로 이어지는 다리 역할을 했듯이 교회 일치를 위한 중재자 역할을 했다. 브라운 신부의 하느님 말씀에 대한 헌신적인 연구는 결코 잊어버릴 수 없을 것이다.이혜자 수녀 (미리내 성모성심수녀회) 평화신문2014.12.16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6) 하스몬 왕조의 마지막](//cpbc.co.kr/CMS/newspaper/2016/04/rc/630902_1.1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6) 하스몬 왕조의 마지막권력 다툼에 멸망을 자초하는구나 지난주에 구약 성경에서 가장 작성 연대가 늦은 책인 지혜서를 마치면서, 연재가 끝나는 것으로 생각하신 분들이 계셨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닙니다. 신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시대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의 역사를 계속 따라가 보려고 합니다.마카베오기는 마타티아스와 그의 셋째 아들 유다 마카베오(기원전 166~160), 다섯째 아들 요나탄(기원전 160~143), 둘째 아들 시몬(기원전 143~134)의 활동을 기록했습니다. 142년에 유다는 독립을 얻었고 마카베오 집안은 하스몬 왕조가 되었습니다. 134년에는 시몬의 사위 프톨레마이오스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7세와 공모하여 시몬을 살해했으나, 왕위에 오른 것은 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였습니다(재위 기원전 134~104). 시몬이 세상을 떠나기 전에 이미 그렇게 결의되어 있었던 것입니다.등장인물이 많아지고 이름들이 길고 복잡해지기 시작했지요? 이후로 마카베오 집안은 말할 수 없는 분열과 부패를 거듭하게 되고, 따라서 하스몬 왕조에 대한 백성의 지지도 더욱 약화될 것입니다. 이 시대의 역사는 아무리 들여다보아도 복잡합니다. 그 복잡한 이야기를 적어 놓는 것은, 외세의 침입과 박해에 맞서 일어났던 마타티아스의 후손들이 어떤 상황에 이르렀는지를 보여 드리기 위해서입니다.요한 히르카노스 1세는 아버지 시몬이 시작해 두었던 정복 전쟁을 계속하여 유다의 영토를 확장했습니다. 기원전 128년에는 그리짐 산에 있는 사마리아인들의 성소를 파괴하였고, 유다 남쪽의 이방인이던 이두매아인들에게 할례를 강요하였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행위는 열심한 유다인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습니다. 그는 마타티아스처럼 율법에 대한 열성을 품은 이들과 함께 전쟁을 치른 것이 아니라, 자신이 모집한 용병을 이끌고 정복 활동을 했습니다. 유다인들이 볼 때 그는 세속적인 지배자였고, 하스몬 왕조는 점점 헬레니즘적인 방향으로 기울고 있었습니다. 처음에 하스몬 왕조를 지지하던 바리사이들도 이제는 등을 돌리게 되었습니다.요한 히르카노스의 뒤를 이은 것은 그의 아들 아리스토불로스 1세였습니다(기원전 104~103). 본래 요한 히르카노스는 부인에게 통치를 맡기려 했었는데, 아리스토불로스 1세가 어머니를 몰아내고 세 동생을 감금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갈릴래아를 정복하였고, 갈릴래아 북쪽의 이투래아인들에게 할례와 유다의 율법을 강요하였습니다. 그는 1년 만에 세상을 떠났고 그의 통치는 그렇게 끝나고 말았습니다.본래 아리스토불로스 1세의 아내였던 살로메 알렉산드라는 남편의 동생인 알렉산드로스 얀내오스를 감옥에서 풀어 주고 그와 결혼하며 그를 임금이 되게 하였습니다(기원전 103~74). 왕조를 이어가기 위해, 살아 있는 시동생들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았던 그와 결혼한 것이지요. 살로메 알렉산드라는 알렉산드로스 얀내오스보다 열세 살이 많았습니다. 한편 알렉산드로스 얀내오스는,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같은 대제국을 꿈꾸며 그의 이름을 취한 것이었고 과연 자신의 야심대로 다윗 시대만큼 영토를 확장하였습니다. 그렇다고 백성의 지지를 받은 것은 아닙니다. 군인이며 정복자이고 동시에 대사제가 된다는 것은 열심한 유다인들이 받아들일 수 없는 것이었고, 더구나 무리하게 영토를 넓히는 과정에서 점령지의 주민들을 억누르는 매우 잔인한 조처들을 취하였습니다. 반란과 폭동이 이어졌고, 그는 팔백 명의 폭도들을 십자가에 매달아 죽이기도 했다고 합니다. 이러한 형벌은 이스라엘 역사상 없던 일이었습니다.그가 세상을 떠난 다음에는 그의 아내가 되었던 살로메 알렉산드라가 통치했습니다(기원전 76~67). 알렉산드로스 얀내우스는 세상을 떠나기 전에 그녀에게 바리사이파와 화해하라고 충고했다 하지요. 그것이 많은 이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는 길이었을 것입니다. 그녀의 통치는, 이전과 이후의 임금들에 비하면 그래도 신중한 편이었습니다. 또한, 그녀는 실권은 자신이 갖고 있었으나 여성으로서 대사제가 될 수는 없었기 때문에 대사제직은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 2세에게 맡겼습니다. 살로메 알렉산드라 사후에는 일단 큰아들 히르카노스 2세가 임금이 되었지만(기원전 67), 그의 동생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사두가이파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을 공격하고 그를 몰아내었습니다(기원전 67~63). 형제간에 무력 충돌이 있었고, 아리스토불로스가 더 강했기에 히르카노스의 부하들까지도 나중에는 아리스토불로스의 편에 가담했던 것이었습니다.그 후에 히르카노스 2세는 이두매아의 총독이던 안티파테르의 도움을 청했고, 또한 안티파테르의 권고를 받아 나바테아인들의 지원도 청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기 시작했습니다. 이 상황에서 히르카노스 2세와 아리스토불로스 2세는 각각 막강한 힘으로 팽창하고 있던 로마의 지지를 얻으려고 했는데, 기원전 63년에 아리스토불로스 2세가 군사력을 움직이자 폼페이우스가 개입하여 예루살렘을 공격하였습니다. 그는 지성소까지 들어감으로써 성전을 모독하였으나 성전을 파괴하지는 않았습니다. 히르카노스 2세는 다시 대사제로 임명되었지만(기원전 63~40), 임금이라는 호칭은 포기해야 했고 이제 팔레스티나는 로마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실속을 챙긴 사람은, 히르카노스 2세를 지지했던 안티파테르였습니다. 안티파테르는 헤로데 대왕의 아버지입니다.괜히 읽기 시작했다 싶을 만큼 복잡하지요? 하지만 이 복잡한 역사는 대단히 교훈적입니다. 성전과 율법을 지키고자 목숨을 내놓은 투쟁을 시작했던 마카베오 집안이 스스로 권력 다툼에 휘말리기 시작했을 때 어떤 결과에 이르게 되는지를 보여 주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는 민족의 멸망이었습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4.19

“모든 사람은 하느님께 첫 번째… 늘 부르심에 응답”몽골지목구 출신 첫 사제품 앞둔 바타르 엥흐 부제 “몽골로 돌아가면 한국 교회에서 받은 사랑, 그리고 하느님 은혜를 몽골 형제자매들과 나누겠다”고 말하는 바타르 엥흐 부제. 오세택 기자 “부족하지만 저를 불러주신 하느님 부르심에 응답하며 그분을 신뢰하고 앞으로 나아가겠습니다.”몽골지목구 출신 첫 신학생이자 첫 부제인 바타르 엥흐(요셉, 29) 부제가 올해 사제품을 받는다. 대전가톨릭대학교서 신학 과정을 마친 그는 18일 몽골로 돌아간 뒤 오는 8월 28일 몽골 울란바토르 성 베드로ㆍ바오로 주교좌성당에서 지목구장 웬체슬라오 S. 파딜랴 주교 주례로 사제품을 받을 계획이다. 원래는 이번 겨울에 받을 예정이었으나 몽골의 1월 기온이 영하 40∼50℃씩 떨어지는 혹한기여서 현지 주민들이 다 함께할 수 있는 8월로 서품식 일정을 미뤘다. 그는 “제가 몽골지목구 첫 사제이냐는 중요하지 않다”며 “모든 사람이 하느님께는 첫 번째인 데다 2003년 몽골 지목구 설정 이후 첫 사제일 뿐이지 몽골인이 30% 사는 중국 네이멍구 자치주에도 몽골인 사제들이 있기 때문”이라고 덤덤해 했다. 그는 “7년간의 한국 유학은 알찬 시간이었고 소중한 체험이었다”며 “저를 이끌어주신 유흥식ㆍ김종수 주교님, 곽승룡 총장 신부님을 비롯한 교수 신부님들, 동기들의 사랑을 잊지 않겠다”고 말했다. 덧붙여 “사제로서 제일 중요한 것은 역시 삶의 중심에 누구를 두느냐인 것 같다”며 “그리스도 없이 사제의 삶은 의미가 없기에 어디서 무엇을 하건 그 중심을 잃지 않고 저의 부족함과 약점을 통해 하느님의 크심이 드러나도록 하겠다”고 소신을 밝혔다. 아울러 “오는 8월 사제품을 받기까지 잘 준비할 수 있도록 한국 교회 여러분들의 기도를 부탁드린다”고 덧붙였다. 그가 사제 성소를 갖게 된 것은 작은 누나(바타르 어윤) 덕이었다. 학원에서 프랑스어를 가르치던 선교사의 권유로 성당에 다니던 누나 손에 이끌려 세례를 받은 그는 성경 나눔을 하며 자신이 느낀 기쁨과 말씀, 진리를 사람들, 특히 영적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전해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며 사제가 되길 꿈꿨다. 그는 몽골국제대학교 생명공학과를 졸업한 뒤 파딜랴 주교 추천으로 대전가톨릭대에서 유학을 마치고 나서야 꿈을 이루게 됐다. 바타르 부제는 “몽골에 돌아가면 주교님의 뜻에 따라야겠지만 몽골어 성경 번역 작업을 하는 게 급선무일 것 같다”면서 “얼마나 걸릴지 모르지만, 평신도 학자들을 양성하고 팀을 꾸려서 하나하나 해나가겠다”고 말했다. 그는 “몽골지목구는 7개 본당(항올ㆍ바양호쇼 한인성당 포함)에 신자 수 1000여 명(0.04%)밖에 안 되지만, 예비신자 교리교육을 2년 과정으로 할 정도로 평신도 교육에 내실을 기하고 있다”면서 “몽골의 복음화에 한국 교회, 특히 대전교구와 여러 수도회의 역할이 컸으며, 앞으로도 더 많은 교류와 협력이 이뤄지길 기대한다”고 희망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cpbc2016.01.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