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신약외경 입문- 신약 외경 올바른 이해 돕기 '신약 외경' 보완, 신약 성경 등 함께 비교 분석 신약 외경 입문송혜경 지음/바오로딸/상권 2만 1000원, 하권 2만 5000원 「신약 외경」을 통해 외경에 대한 편견과 오해를 잠재우고, 정경과 외경 사이에서 균형 잡힌 시각으로 초대 그리스도교를 살펴본 한님성서연구소 수석연구원 송혜경(비아) 박사가 최근 「신약 외경 입문」을 펴냈다. 입문서에서는 「신약 외경」에서 다루지 않았던 부분을 보완, 신약 외경을 올바로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될 새로운 내용을 실었다. 신약 외경만이 아니라 신약 성경과 교부 총서 내용을 함께 비교, 분석했다. 초대 그리스도교라는 공통의 환경에서 생겨난 다양한 저작물들의 유사점과 차이점을 한눈에 살펴본 것이 특징이다. 상권에서는 신약 외경의 역사적, 종교적, 문화적 배경을 소개하며 신약 외경의 정의와 분류 등을 다뤘다. 하권에서는 신약 외경 각 권에 대한 내용과 역사를 담았다. 상권이 총론이라면 하권은 각론이다. 송 박사는 왜 하필 신약 외경을 연구했을까. 교회에서 하느님 말씀으로도, 교부들 작품으로도 인정받지 못한 글을 굳이 파고든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프롤로그 '신약 외경 읽기를 권하다'에서 이렇게 답했다. "신약 외경에 분류되는 작품들은 대개 역사성 면에서는 설득력이 부족함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도 이 책은 외경을 읽자고 제안한다. …. 아직 정통과 이단의 구분이 없고, 정경과 외경의 구분이 없던 시절로 돌아가 그 시대의 눈으로 그 시대의 작품들을 읽자는 것이다. …. 이 책들은 그 시절의 오늘을 살았던 신앙인들이 무엇을 어떻게 믿어야 할지 고민한 내용들을 담은 삶의 기록이다. 철학적ㆍ신화적 이야기에 치우친 글들도 있지만 그 안에도 하느님과 그리스도, 성령과 교회, 인간과 세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대한 답변들이 녹아들어 있다." 박수정 기자 조은일2013.03.12

신약 성경 성인 28명의 발자취를 좇다요아킴·안나부터 필립보·베로니카까지관련 성지 101곳 4년간 매해 직접 답사성당 건축 양식·용어 알기 쉽게 정리 신약성경 속 성인의 성지를 찾아서 / 최하경(대건 안드레아) / 분도출판사 “2~3세기경 그리스도교에 대한 박해가 심해지면서 순교자들이 특별한 공경의 대상이 되었으며 그들의 무덤을 성스럽게 여기고, 그들의 순교일을 기념하는 전통이 생겨났다. 또한 이들은 사후에 천국에 있는 거룩한 증인으로 여겨졌으며, 이러한 인식 속에서 자연스럽게 ‘성스러운 자’(sanctus)라는 칭호를 받기 시작하였다.”(16쪽) 11월 1일은 ‘모든 성인 대축일’이다. 모든 성인, 특히 교회 전례력에 축일이 지정되지 않은 성인들을 기념하기 위해 609년 성 보니파시오 4세 교황이 제정했다. 그런데 성경에 등장해서 그 이름이 익숙한데도 막상 해당 성인의 행적에 대해서는 모르는 경우가 많다. 성경은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신약성경 속 성인의 성지를 찾아서」는 제목대로 신약성경에 등장하는 28명의 성인, 관련된 101곳의 성지를 소개한 책이다. 「세계의 성모 발현 성지를 찾아서」(2021)를 펴낸 저자가 이번에는 성인에 집중했다. 전승과 외경 등에서 자료를 찾고, 2022~2025년 매해 직접 성인들의 발자취를 좇으며 마주한 신앙 유산을 기록했다. 성모 마리아의 부모 요아킴과 안나부터 성가정의 모범을 보여준 요셉, 요한 세례자, 베드로와 바오로는 물론 상대적으로 많이 알려지지 않은 필립보·토마스·시몬 등 사도들의 행적과 영적 여정이 깃든 곳도 찾았다. 마리아 막달레나와 베로니카의 흔적도 확인할 수 있다. 그간 쉽게 접하지 못했던 성인들의 여정과 관련 성지가 많아 흥미롭다. 다양한 그림과 사진으로 현장감을 더한다. “전승에 따르면 토마스는 인도 남부 마드라스(현 첸나이)에서 힌두교 사제의 분노를 사 창에 찔려 순교한 후 인근 마일라푸르에 묻혔다. 그의 유해는 3세기경 인도의 왕에 의해 에데사(현 튀르키예 샨르우르파)로 옮겨졌지만, 유해 일부와 무덤은 그대로 남아 있다. (중략) 1523년 포르투갈은 사도의 무덤 위에 성당을 건립하여 사도에게 봉헌하였으며, 1896년 영국은 이를 고딕 양식의 대성당으로 재건해 지금에 이르고 있다.”(344쪽) “생트 봄이라 불리는 마리아 막달레나의 동굴은 생 막시맹 라 생트 봄 마을에서 남쪽으로 약 20km 떨어진 석회암 절벽에 위치해 있다. (중략) 전승에 따르면 그녀는 하루에 일곱 번씩 천사들에 의해 절벽 위로 들어 올려져 천상의 선율을 들으며 기도하였다고 한다. 14세기에는 그 절벽 꼭대기에 경당이 세워졌는데, 절벽 꼭대기의 이름을 따서 생 필롱 경당이라 불린다.”(259쪽) 저자는 서울대 건축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오랫동안 관련 업계에서 일한 전문성을 바탕으로 바실리카·대성당·경당 등 성당의 구분, 회중석·횡랑 등 성당 평면과 관련된 용어, 나르텍스·앱스·아트리움 등 성당 건축물을 설명할 때 자주 언급되는 단어, 비잔틴·로마네스크·고딕·르네상스 등 성당의 건축 양식도 이미지와 함께 정리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6.10.28
 작명- 동물이나 식물 이름 자주 사용](//cpbc.co.kr/CMS/newspaper/2010/11/rc/358155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95) 작명- 동물이나 식물 이름 자주 사용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어린 시절 학교 선생님께서 발음이 이상한 아이의 이름을 부르면 아이들은 폭소를 터뜨렸다. 그러면 당사자는 얼굴이 홍당무가 되곤 했었다. 사람에게 이름은 단순한 호칭의 수단이 아니라 그 사람의 명예와 인격성을 포함한다. 따라서 작명의 형태는 국가나 민족, 그리고 배경이 되는 사회나 문화에 따라 복잡하고 다양하며 보통 각기 다른 유래와 의미, 이유 등이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삼국시대 이전까지는 일반 서민은 물론 왕과 귀족들도 성(姓)이 없었다. 통일신라 때부터 중국문화와 접촉이 본격적으로 이뤄지면서 이름도 중국식으로 사용하게 됐다. 일부 지배층에서는 성씨 한(一)자에 족보 항렬을 따라서 이름자를 적는 전통적 작명법을 사용했다. 유럽에선 그들의 성을 조사해보면 조상이 중세시대에 갖고 있던 직업이 그대로 굳어진 것임을 알 수 있다. 슈미트(대장장이)나 슈만(제화공)이 그러한 예다. 옛 이스라엘 사람들은 자녀가 출생하면 무엇보다 먼저 그 자녀에게 이름 지어주는 것을 중요한 일로 여겼다. 반면 신약성경 시대에는 사내아이일 경우, 여드레째 되는 날에 할례를 베풀면서 작명하는 것이 관습이었다. "여드레째 되는 날, 그들은 아기의 할례식에 갔다가 아버지의 이름을 따서 아기를 즈카르야라고 부르려 하였다"(루카 1,59). 일반적으로는 어머니가 아기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지만(창세 29,32) 아버지가 이름을 지어주는 예외적 경우도 있었다(창세 16,15). 반유목민이던 유다인들은 이름을 지을 때 동물이나 식물의 이름을 자주 사용했다. 어미양인 '라헬'(창세 29,6)이나 비둘기를 뜻하는 '요나', 야자나무를 뜻하는 '다말'(창세 38,6)이 그 예다. 또 아기의 상태나 행동에 따라 이름을 짓기도 했다. 이사악의 부인 리브가는 쌍둥이 아들을 낳았는데, 털투성이인 형은 '에사오', 동생은 형의 발뒤꿈치를 붙잡고 나왔다 해서 '발뒤꿈치'라는 뜻을 지닌 '야곱'이라 불리게 된다(창세 25,24-26). 따라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아는 것을 의미했다. 이스라엘 부모들은 신앙적 차원에서 하느님과 연관지어 자녀 이름을 많이 지었다. 예를 들면 '나의 하느님은 야훼'라는 뜻의 엘리야, '야훼의 종'이란 뜻의 오바디야, '주님은 나의 심판자'란 의미의 다니엘 등이다. 성경시대에는 아브람이 아브라함(창세 17,5)으로, 시몬이 베드로(마태 16,l8)로, 사울이 바오로로 바뀐 경우 같이 어떤 사건과 계기를 통해 이름이 바뀌는 경우가 있었다. 이러한 이름은 그 사람에게 부여된 소명과도 연결돼 있었다. 예수님 시대에는 로마 제국의 영향이 유다인들 이름에도 나타나게 된다. 유다식 이름에 그리스나 로마식 이름을 덧붙이거나 '예수'나 '마리아'처럼 히브리말 이름을 그리스식으로 바꾸기도 했다. 유럽에선 중세부터 세례의식과 연결돼 세례명이 생겼다. 세례명으로 성경의 인물이나 성인의 이름을 따서 붙였다. 신자들은 세례 때 좋아하는 성인의 이름을 선택해 자신의 수호성인으로 특별히 공경하고 보호를 받으며 성인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한다. 따라서 세례 때 새로운 이름을 받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태어남을 의미한다. 조은일2010.11.23
![[성경 속 상징] 91-촛불-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cpbc.co.kr/CMS/newspaper/2010/10/rc/354073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91-촛불-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눈썰미 좋은 신자분들에게 가끔 이런 질문을 받는다. "신부님, 미사 때 제대에 켜는 촛불 수가 왜 다르죠?" 미사 때 제대 위에 켜는 초 개수는 그날 전례의 성격을 나타낸다. 평일이나 기념일에는 2개, 주일이나 축일에는 4개, 대축일에는 6개의 초를 켠다. 제대에 초를 7개 켤 때가 있는데, 그것은 주교님이 미사를 드릴 때다. 대사제인 주교에 대한 존경의 표시다. 지금은 전례 때 촛불을 켜는 것이 당연하지만 초대교회 때는 그렇지 않았다. 촛불을 켜는 것을 이교도들 사이에 널리 행해지던 관습이라 여기며 못마땅해한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영원한 생명과 구원의 상징으로 장례예식과 순교자들 무덤에서 촛불을 켜기 시작했다. 4세기 이후부터는 교회에서도 전례 때나 기도 모임에서 촛불을 켜는 관습이 일반화됐다. 우리가 전례 때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초는 밀초(蜜燭)다. 이는 벌들의 순결성과 희생성이 죄 없으신 순결한 어머니를 통해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를 상징하기 때문이다. 촛불은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심에 대한 기쁨을 상징하기도 한다. 또한 촛불이 전례에 사용되면서 촛불의 불꽃, 심지, 밀랍 이 세 부분을 삼위일체에 비유하기도 했다. 성경에서 성소나 성스러운 예식에 빛이나 불이 등장한다. 하느님은 모세에게 성소를 건립할 때 촛불을 밝히는 등잔대에 대한 모양과 개수, 재질 등에 대한 자세한 규정을 지시한다(탈출 25,31-37). 또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할 때 하느님께서 밤에는 불기둥으로 그들을 비춰 도움을 줬다. "주님께서는 그들이 밤낮으로 행진할 수 있도록 그들 앞에 서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 속에서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기둥 속에서 그들을 비추어 주셨다"(탈출 13,21). 여기서 불기둥은 하느님께서 함께하심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 때로는 하느님 약속을 나타내기도 한다. 다윗이 하느님 성전을 짓겠다고 결심했을 때 하느님께서는 다윗의 후손을 버리지 않으시겠다는 약속을 하시고(2사무 7,1-17), 이 약속은 '등불'이라는 상징으로 여러 번 성경에 언급된다. 흥미로운 것은 다윗의 후손 왕들이 모두 하느님께 흡족한 왕은 아니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다윗과 맺으신 계약 때문에, 또 일찍이 다윗과 그 자손들에게 영원히 등불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다윗의 집안을 멸망시키려고 하지는 않으셨다"(2역대 21,7). 신약에서 촛불은 "나는 세상의 빛이다"(요한 8,12)고 하신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따라서 미사 때 제대에 촛불을 켜는 것은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을 의미한다. 주님은 또 제자들에게도 세상의 빛이 되라고 당부하셨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자리 잡은 고을은 감추어질 수 없다"(마태 5,14). 초가 타서 주위를 밝히는 것을 자주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에 비유하기도 했다. 오늘날 세례식 때, 수도서원이나 서품식 때 후보자들이 촛불을 들고 입장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조은일2010.10.19
![[성경 속 상징]32- 어깨- 충실한 봉사, 노동 상징](//cpbc.co.kr/CMS/newspaper/2009/01/rc/278882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32- 어깨- 충실한 봉사, 노동 상징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어린 시절, 큼지막한 짐을 어깨에 올리고 자유롭게(?) 옮기는 어른들 모습을 신기하게 바라봤다. 좀 더 커서 나도 짐을 어깨에 올리고 옮길 수 있었는데, 그러고 보니 짐을 안아서 옮기는 것보다 훨씬 편했다. 무거운 물건을 안아서 옮기려면 앞이 잘 안 보일뿐 아니라 걷는 것도 불편하기 때문이다. 국어사전은 어깨를 '사람의 몸에서, 목의 아래 끝에서 팔의 위 끝에 이르는 부분'이라고 정의한다. 은유적으로는 어깨로 무거운 짐을 옮기듯, 인생의 무거운 짐을 진다고 해 책임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래서 어깨가 가볍다하면 무거운 책임에서 벗어나 마음이 홀가분하다는 의미를 지닌다. 이집트에서는 어깨에 손을 얹는 행위는 국가나 혹은 개인이 책임을 넘긴다는 가시적 표시가 되기도 했다. 또한 다른 이의 어깨에 기대는 것은 그 사람에 대한 의지와 친밀감을 표시한다. 성경에서 어깨는 충실한 봉사의 상징이 된다(1역대 5,15). 그래서 굳은 목과 돌려진 어깨는 불순종의 상징이 된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순종하는 자의 어깨에서 무거운 짐을 벗겨 주신다.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풀어 주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내려 주었다"(시편 81,7). 책임 있는 봉사자 아론도 하느님 앞에서 이스라엘 자손들 이름을 새겨 넣은 보석을 두 어깨에 메었다. "이 보석 두 개를 에폿의 양쪽 멜빵에 이스라엘 자손들을 기념하는 보석으로 달아라. 이렇게 아론은 주님 앞에서 그들의 이름을 기념하여 양어깨에 짊어지게 되는 것이다"(탈출 28,12). 또한 어깨는 노동을 위한 하나의 상징이었다. 목동들은 어린양을 목 뒤로 어깨 위에 걸쳐서 운반했다. 마음이 온유한 목자가 잃어버린 양을 찾고 즐거워하며 어깨에 메는 것은 봉사, 즉 지배의 상징이다. "그러다가 양을 찾으면 기뻐하며 어깨에 메고 집으로 가서 친구들과 이웃들을 불러, '나와 함께 기뻐해 주십시오. 잃었던 내 양을 찾았습니다' 하고 말한다"(루카 15,5-6). 무거운 짐 또한 어깨 이미지와 잘 연관돼 있다. 예수님께서 바리사이인들과 율법 교사들을 비난할 때 어깨 이미지를 사용했다. "또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고 하지 않는다"(마태 23,4). 포로 생활과 노예살이에 대한 묘사들은 무거운 짐을 진 어깨 이미지들로 가득 찼다. "내가 그의 어깨에서 짐을 풀어 주고 그의 손에서 광주리를 내려 주었다"(시편 81,6). 주로 짐승들 어깨에 묶어서 사용한 멍에는 노예들이 어떠한 취급을 받았는지를 보여준다. 위엄의 한 상징으로서 사람을 어깨에 태우는 것으로 표현했다. "주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보라, 내가 민족들에게 내 손을 쳐들고 겨레들에게 내 깃발을 올리리라. 그러면 그들은 네 아들들을 품에 안아 데려오고 네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오리라'"(이사 49,22). 에제키엘 예언자는 이스라엘이 유배를 당해 치욕을 당할 것임을 예언했다. "그들 가운데에 있는 수장은 어두울 때에 짐을 어깨에 메고, 사람들이 그를 내보내려고 벽에 뚫어 놓은 구멍으로 나갈 것이다. 그는 자기 눈으로 그 땅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릴 것이다"(에제 12,12). 가톨릭 사제가 미사를 집전하기 위해 제의를 입을 때 맨처음 아마포로 된 장방형의흰 천인 개두포를 어깨 위로 걸치게 된다. 개두포는 '구원의 투구'라는 상징적 의미를 갖고 있다. 사제는 미사 전 개두포를 두르면서 "주님, 제 머리에 투구를 씌우사 마귀의 공격을 막게 하소서" 라는 기도를 올린다. 어깨의 의미를 다시금 생각하게 하는 부분이다.조은일2009.01.06
![[성경 속 상징] 12-물고기- 구원을 가져오는 그리스도](//cpbc.co.kr/CMS/newspaper/2008/07/rc/260245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12-물고기- 구원을 가져오는 그리스도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구한말 우리나라에서는 처음 등장한 전등을 가르쳐 '증어'라고 불렀다. 물고기를 끓인다는 뜻이 재미있다. 왜 그랬을까? 1887년 우리나라에서 발전기를 통해 처음으로 전기를 만들 때 경복궁 향원정의 물을 이용해 석탄을 원료로 발전기를 가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발전기를 가동하자 물고기가 떼죽음을 당하곤 했다. 발전기 가동으로 수온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한문자에서 처음 만들어진 글자는 '魚'(물고기 어)자라고 하는 학설이 있다. 고대인들에게 물고기는 그만큼 강한 인상을 준 생명체이자 식량이었던 모양이다. 초기 인류가 물가에 살면서 식수도 얻고 물고기도 구할 수 있었으니 물고기는 최초의 사냥 양식인 셈이기도 하다. 물고기는 문자 그대로 물에 사는 고기다. 물에서 생명이 시작되었고 물에서 활동은 땅에서보다 더 많은 힘이 필요하다. 따라서 물고기는 자연스레 건강과 생명의 상징이 됐다. 우리나라에서 예로부터 물고기는 '아들 출산'과 '출세'를 상징했다. 또한 우리 선조들은 자물통을 물고기 모양으로 많이 만들었다. 물고기는 24시간 밤낮으로 눈을 감지 않아 귀중품을 잘 지킬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물고기는 고대 바빌론, 인도, 고대 이집트, 고대 그리스 등의 전설에서 신으로 자주 등장한다. 성경에서 물고기가 나오는 대목이 많다. 구약성경에서 인간은 바다에 사는 물고기로 비유된다. 인상적인 대목은 뭐니뭐니해도 요나 이야기다. 신약성경에서는 요나가 경험한 사건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을 상징적으로 나타낸다(마태 12,1-4). 성전에서 솟아나는 기적의 물에 의해 다시 소생하는 물고기는 하느님의 구원을 받는 상징적 의미를 띈다(에제 47,1-12). 또한 고기잡이 이미지는 때때로 개인에 대한 하느님 심판을 묘사하는 데 사용되었다(아모 4,2). 물고기에 대한 중요한 상징적 태도 중 하나는 바다에 대한 뿌리 깊은 두려움이다. 아마도 이것은 이스라엘이 바다와 접촉이 거의 없었다는 점에 기인하는 듯하다. 신약성경에서도 물고기는 인간을 비유한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을 물고기에 비유하시면서 말씀하셨다."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마태 4,19). 또한 하느님 나라를 온갖 종류의 물고기를 잡아들이는 그물로 비유한다. "또 하늘나라는 바다에 던져 온갖 종류의 고기를 모아들인 그물과 같다"(마태 13,47).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는 물고기와 깊은 관계를 지닌다. 부활하신 예수님 말씀을 따라 고기를 많이 잡은 후 제자들이 스승을 비로소 알아보았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져라. 그러면 고기가 잡힐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그물을 던졌더니, 고기가 너무 많이 걸려 그물을 끌어 올릴 수가 없었다. 예수님께서 사랑하신 그 제자가 베드로에게 '주님이십니다'하고 말하였다.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자, 옷을 벗고 있던 베드로는 겉옷을 두르고 호수로 뛰어들었다"(요한 21,6-7). 그래서 초대교회에서는 물고기를 구원을 가져오는 그리스도의 상징이라 해석했다. 실제로 물고기는 사도 베드로의 상징이었으며 때로는 '세례'의 상징으로 사용되기도 했다. 로마의 지하묘소인 카타콤바 벽화에 물고기가 많이 그려져있고 최후만찬을 묘사한 성화에 빵과 물고기가 함께 등장한다. 조은일2008.07.29

사도들을 부르심월간 꿈CUM | 성화로 읽는 신약 성경 (08) | 도메니코 기를란다요, 사도들을 부르심, 1482년경, 프레스코, 349x570cm, 시스티나 성당, 바티칸 미켈란젤로의 스승인 도메니코 기를란다요(Domenico Ghirlandaio, 1449 ~1494)는 동시대 피렌체 사람들의 초상화를 철저한 사실 기법으로 실물 그대로 그렸다. 자신의 그림에 금박을 사용하지 않은 최초의 화가로, 이탈리아 전역 에서 당대 최고의 거장 중 한 사람으로 여겨졌다. 그는 1481년에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 코시모 로셀리, 루카 시뇨렐리 등과 함께 교황 식스투스 4세의 요청에 따라 시스티나 성당 측벽에 프레스코 벽화를 그렸다. 기를란다요를 비롯하여 르네상스 거장들은 예수님의 생애 7개와 모세의 생애 7개의 주제로 프레스코화를 그렸는데, 이 그림의 목표는 구약에서 예고되고 신약에서 계시되어 성 베드로의 계승자들에 의해 영존하게 된 그리스도의 교회 를 찬양하는 것이었다. 그림의 구성은 식스투스 4세 교황이 직접 구상했는데, 예수님의 생애에 상응하는 모세의 생애를 구세사로 정리했다. 기를란다요가 그린 예수님의 생애 네 번째 주제인 ‘사도들을 부르심’은 코시모로셀리가 그린 모세의 생애 네 번째 주제인 ‘갈대 바다를 건너는 모세’와 짝을 이룬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갈릴래아 호숫가에서 부르시어 구원하는 장면과 모세가 갈대 바다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는 장면을 대조시킨 것이다. 예수님의 생애는 철저히 마태오 복음서의 내용과 순서를 따르고 있는데, 마태오 복음서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약의 예언을 완성했으며 새로운 모세라 고 증언하기 때문이다. 예수님께서는 갈릴래아 호숫가를 지나가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는 시몬과 그의 동생 안드레아가 호수에 어망을 던지는 것을 보셨다. 그들은 어부였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이르셨다.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그러자 그들은 곧바로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거기에서 더 가시다가 예수님께서 다른 두 형제, 곧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이 배에서 아버지 제베대오와 함께 그물을 손질하는 것을 보시고 그들을 부르셨다. 그들은 곧바로 배와 아버지를 버려두고 그분을 따랐다.(마태 4,18-22 참조) 기를란다요는 갈릴래아 호수의 풍경과 함께 예수님께서 물 안에 있는 어부 네 사람을 제자로 부르시는 광경을 묘사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어 모세의 이름처럼 그들을 물에서 건져내신다. 왼쪽 배경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아를 부르시자 그들이 그물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는 장면이고, 오른쪽 배경에는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동행하여 야고보와 요한을 부르시자, 그들이 아버지를 배에 두고 예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장면이다. 또 전경에는 당시 피렌체의 정치 지도자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바라보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베드로와 안드레아에게 “나를 따라오너라. 내가 너희를 사람 낚는 어부로 만들겠다.” 하고 말씀하시자, 영광을 상징하는 황금색 망토를 두른 베드로는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희망을 상징하는 초록색 망토를 입은 안드레아는 두 손을 합장하는데, 그들은 예수님께 무릎을 꿇어 순종하는 자세를 취하고 있고, 베드로는 수난을 암시하는 맨발로 있다. 이것은 기를란다요가 몸담았던 피렌체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대리자인 교황께 순종하겠다는 것을 암시하는 표현이다. 그래서 전면 오른쪽에 피렌체 출신으로 로마에서 명성을 떨치던 사람들을 등장시켰는데, 그들 중에는 로마 주재 피렌체 은행의 지점장으로서 후에 식스투스 4세 교황의 재무 담당이 된 조반니 토르나부오니(Giovanni Tornabuoni)를 비롯하여, 그 앞에 세련된 검은 옷을 입고 서 있는 그의 아들 로렌조도 있다. 그는 후에 아버지의 가업을 이어받아 바티칸 은행의 관리 책임자가 된다. 다른 주위 사람들은 당시 피렌체 공국에서 애덕 실천과 탁월한 교양을 지녔던 토르나부오니 가문의 친척들이다. 소년 로렌조 뒤에 짧고 흰 수염의 인물은 동방 교회의 인문주의 학자로 있다가 피렌체로 망명한 아리스토텔레스의 번역가 요한 아르기로포울로스(John Argyropoulos)이다. 기를란다요가 이런 인물들을 예수님의 제자 그룹에 포함한 것은 대단히 파격적이며 예언적 표현이다. 이들은 피렌체의 영광을 예찬하기 때문이다. 왼쪽에 푸른 옷을 입고 등을 돌리고 있는 여인들과 그 주변 사람들은 당시 피렌체에 살고 있던 일반 시민들을 상징한다. 이것은 예수님의 부르심이 과거의 사건만이 아니라, 현실 안에서도 이루어지는 것임을 강조하고자 하는 의도의 표현이다. 우리가 교회의 뜻을 따르는 것은 다만 교회를 위하는 것이 아니라 결국 그리스도를 위하는 행위라는 것을 역사를 통해서 배울 수 있다. 이 작품은 예수님의 부르심에 순종한 네 어부를 통해 우리가 교회의 권위에 얼마나 순종하는가를 깊이 묵상하게 한다. 기를란다요는 당시 시작되던 키아로스쿠로(Chiaroscuro) 기법으로 앞으로 나아갈수록 더 밝아지면서 청아한 하늘을 배경으로 공중의 새들이 기쁜 소식을 전하는 전령처럼 하늘을 날고 있는 모습으로 예수님의 제자들이 복음을 전하며 실천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전개하고 있다. 글 _ 손용환 신부 (요셉, 원주교구 북평본당 주임) 1992년 사제 서품. 원주교구 소속으로 16년간 군 사목을 한 후 홍익대학교에서 미술사를 전공하였으며, 현재 북평본당 주임으로 있다. 저서로 「오색의 기도」 「하느님의 가장 좋은 선물」 「사제의 향기」 「맹 신부」 「어리석음의 승리」 「천주교 군종교구사」 등이 있다.cpbc2026.10.29
![[출판]똑똑! 우리 아이 첫 성경- 얘들아, 아담 모세 예수님 나오는 재밌는 책 볼까?`](//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4190_1.1_titleImage_1.jpg)
[출판]똑똑! 우리 아이 첫 성경- 얘들아, 아담 모세 예수님 나오는 재밌는 책 볼까?`아이들 눈 높이에 맞춘 성경 이야기 책 똑똑! 우리 아이 첫 성경(카린 마리 아미오 글/카린 상송 그림/고선일 옮김/가톨릭출판사/1만 2000원) 어렸을 때 흡수한 신앙은 몸과 마음, 영혼 구석구석에 순수하고 생기로운 상태로 저장돼, 신앙의 위기가 닥쳤을 때 신앙을 잃지 않도록 해주는 자양분이 된다. 사목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가정에서 자녀 신앙교육, 유아 신앙교육을 으뜸으로 꼽는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일부 젊은 부모들은 아이에게 종교선택의 자유를 주겠다며 유아세례와 신앙교육을 꺼리기도 한다. 이에 대해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자녀에게 신앙을 물려주는 것은 아이를 더 안정되고 개방된 새로운 세상으로 인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신앙의 힘은 성경에서 나온다. 하느님 말씀을 알아야 올바른 신앙을 지닐 수 있다. 그렇다고 무작정 아이에게 두꺼운 성경책을 들이밀 수는 없는 법. 아이에겐 아이 눈높이에 맞는 성경이 필요하다. 「똑똑! 우리 아이 첫 성경」처럼. 「~첫 성경」은 천지창조부터 예수님 부활까지를 다루고 있다. 책은 한처음에 하느님께서 아무것도 없던 세상에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진흙으로 아담과 하와를 빚어 사람을 만드신 이야기로 구약성경을 펼친다. 이어 노아의 홍수, 아브라함과 사라, 이사악과 요셉, 모세와 이스라엘, 다윗과 골리앗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전개하고, 이스라엘의 혼란기에 나타난 예레미야와 이사야 예언자들 활동을 소개하면서 자연스럽게 예수님 탄생 후 신약성경의 이야기를 이어간다. 신ㆍ구약 전체 내용을 충실하게 담아 성경 전체 흐름을 파악할 수 있도록 한 구성이 돋보인다. 대부분 어린이 성경책이 성경 속 흥미로운 이야기를 부분적으로 소개해 놓은 데 그친 아쉬움을 시원하게 해결해준다. 또한 옆에서 누군가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처럼 쓰여 있어 쉽게 읽힌다. "예수님은 하느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했어요. 그중에 어부였던 베드로와 안드레아가 있었어요. 예수님은 바닷가에서 두 사람을 부르셨어요. 그물을 내려놓고 저를 따르세요!"(42쪽) 성경이 전하는 핵심을 뽑아 표현한 그림도 아이들 이해를 돕는다. 성경에 등장하는 다양한 동물과 인물들 표정을 생생히 살려 세심하게 그려냈고 남녀 아이 할 것 없이 모두 좋아할 만한 그림으로 꾸며졌다. 박수정 기자catherine@pbc.co.kr▨다양한 어린이용 성경책들 가톨릭출판사가 펴낸 유아ㆍ어린이 성경책을 몇 권 더 골라보자. 책 속 창문을 열면 성경 주인공과 사물이 튀어나오는 입체유아성경 시리즈는 신ㆍ구약을 대표하는 이야기를 골라 구약 6권, 신약 6권으로 발간됐다. 구약은 「노아 이야기」 「아브라함이 기뻐요」 「모세와 공주님」 「사무엘아!사무엘아!」 「다윗과 골리앗」 「요나는 물고기 배 속에서」가 있으며 신약은 「예수님이 태어나셨어요!」 「동방 박사들이 경배했어요」 「자캐오」 「착한 사마리아 사람」 「다시 찾은 어린양」 「예수님 만세!」가 있다. 읽고 보고 만지는 즐거움을 선사한다.(카린 마리 부아이에ㆍ카린 마리 아미오 글/테레즈 봉테 외 11인 그림/고선일 옮김/각 권 6000원ㆍ세트 6만 5000원) 「어린이 구약 성경」은 구약 성경의 주요 사건을 다루며 성경 이해에 필요한 기본 지식과 성경 속 주요 단어에 대한 설명을 곁들였다(소니아 골디ㆍ안 바이스 지음/스테파니 달레-아스테ㆍ미레유 보티에ㆍ안 바이스 그림/성찬성 옮김/7000원). 「하느님이 당신 자녀에게 말씀하신다」는 153개 언어로 138개 나라에 발간된 세계적 어린이 성경으로 성경 전체를 구원 역사에 따라 아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정리했다.(엘레오노레 베크 지음/미렌 조르네 그림/성찬성 옮김/9800원)조은일2013.05.21
![[성경 속 동식물] 51-빠르고 민첩한 표범](//cpbc.co.kr/CMS/newspaper/2007/06/rc/208919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동식물] 51-빠르고 민첩한 표범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표범은 고양이과에 속하는 동물이다. 표범은 모양이 호랑이와 같고 작으며 둥근 무늬가 있다. 몸의 색채는 일반적으로 황색 또는 황적색이고, 몸통과 사지에 장미 모양의 현저한 반점이 널려 있다. 몸은 늘씬하고 강하다. 머리는 크고 둥글며, 코는 다소 뾰족하고, 눈은 원형이며, 귀는 짧고 둥글며, 수염은 짧다. 목은 짧고 꼬리는 길어서 몸통의 반보다 길다. 발톱은 반달 모양이고 강하며 날카롭다. 겨울에는 등이 아름다운 윤기가 나는 황금색을 띤 황갈색이고 반점이 없다. 몸의 양 옆과 네 다리의 색채는 옅어져서 백황색을 나타내며 복부는 아주 희다. 주로 밀림지대에 살며, 노루ㆍ너구리ㆍ오소리ㆍ토끼ㆍ들쥐ㆍ꿩ㆍ닭 등 몸이 큰 초식동물을 잡아 먹는다. 「동의보감」에서는 "고기는 주로 오장을 편안하게 하고 육과 뼈를 굳세게 하고, 몸을 가볍게 하고, 기(氣)를 더하고 매우 건강하게 한다"고 하며 표범의 고기ㆍ기름ㆍ머리뼈ㆍ코ㆍ가죽 등의 약효를 들고 있다. 강변의 숲, 숲이 무성한 바위 지대, 덤불, 사바나, 인가 가까운 곳 등 서식범위가 넓다. 털빛깔은 연한 황갈색에서 약간 희끗희끗한 바탕에 검은 반점이 있다. 등면의 검은 얼룩점은 매화꽃 모양인데 그 속에 검은 점은 없다. 머리와 네다리 밑 얼룩무늬는 작다. 배면은 희고 검은 얼룩점은 매화꽃 모양이 아니다. 귓바퀴에도 얼룩무늬가 있으며 귀는 짧고 둥글다. 다리는 비교적 짧고 몸통은 길다. 표범은 보통 단독생활을 하며 낮에는 숲 속이나 나무그늘에서 쉬고 밤이 되면 일정한 행동권을 돌아다니며 사냥을 한다. 몸은 유연하고 민첩하다. 때로는 쌍으로 또는 여러 마리가 함께 사냥한다. 몰래 다가가는 것보다 잽싸게 덮쳐서 사냥감을 쓰러뜨린다. 힘이 세고 중형ㆍ소형의 영양ㆍ사슴ㆍ소 등을 잡으며 원숭이나 개 등도 곧잘 습격한다. 그 밖에 새ㆍ파충류 등도 잡아먹는다. 쓰러뜨린 먹이는 나무 위에 끌어올려 두고, 다 먹을 때까지 며칠이고 그곳에 먹으러 온다. 뛰어오르는 힘이 세고 나무타기와 헤엄도 잘한다. 시나이 반도에 사는 아라비아인은 표범은 본래 인간이었는데, 젖으로 몸을 씻었기에 표범이 되었다는 전설이 있다. 아라비아인 중에 표범이라는 뜻을 지닌 부족과 지명이 많이 있다. 지금은 팔레스티나 지역에는 표범이 적지만 옛날에는 상당히 많았던 모양이다. 표범이 갈릴래아의 산악지대와 티베리아 산 일대에 살고 있다. 성경에서도 표범은 아주 재빠르고 위험한 맹수로 묘사되어있다. 하바꾹은 쳐들어오는 바빌론의 기병을 "그들의 말들은 표범보다 날렵하고 저녁 이리보다 민첩하며 그 군마들은 당당히 내달린다. 기병들은 먼 곳에서 달려온다. 먹이를 덮치는 독수리처럼 잽싸게 날아온다"(하바 1,8)고 표현했다. 표범은 특별히 빠르고 날랜 짐승으로 묘사된다. "그래서 사자가 숲에서 뛰어 나와 사람들을 물어 죽입니다. 벌판을 쏘다니던 늑대가 덤벼들고 표범이 성읍 밖에서 노리다가 나오는 사람을 모두 잡아 갑니다"(예레 5,6). 또한 표범은 은신을 잘 하는 동물로 알려져 있다. 표범은 장차 도래할 하느님의 나라의 평화로운 한 단면을 묘사할 때도 등장한다. "늑대가 새끼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새끼 염소와 함께 지내리라. 송아지가 새끼 사자와 더불어 살쪄 가고 어린아이가 그들을 몰고 다니리라"(이사 11,6).조은일2007.06.07
 장신구- 거룩한 하느님 경배 상징](//cpbc.co.kr/CMS/newspaper/2011/07/rc/382440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122) 장신구- 거룩한 하느님 경배 상징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구석기시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 '고인돌 가족'을 보면 등장 인물들이 조개, 뼈, 돌멩이 등을 화려하게 엮은 장신구를 하고 나온 것을 볼 수 있다. 영화에선 희화적으로 묘사했지만 구석기시대 사람들이 착용한 장신구는 단순히 몸을 치장하는 의미 이상이다. 당시 장신구는 인간 생존에 절대적 영향을 끼친 사냥이나 고기잡이 등에 있어서 자신이 얼마만큼 재주가 있느냐를 보여주는 도구적 의미가 강했다. 장신구는 주술적 또는 종교적 의미도 갖고 있다. 고대 이집트에서는 투구풍뎅이가 케프리라는 신으로 불렸으며, 다산과 풍작을 상징한다고 해서 매우 신성시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투구풍뎅이 모양 도장을 만들고, 부적이나 장신구를 만들어 몸에 지니고 다녔다. 장신구 주재료가 되는 보석은 불가사의한 힘을 준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자신이 태어난 달을 상징하는 보석을 정해놓고 이것을 몸에 지니고 있으면 행운이 찾아온다고 여겼는데, 이는 탄생석으로 오늘날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장신구는 늘 착용을 하고 있어야 하기에 미(美)적 요소도 감안하지 않을 수 없다. 오늘날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기 위해 장신구를 사용하는 것처럼 과거 사람들도 장신구로 한껏 치장해 자신의 능력과 외모를 돋보이게 했다. 성경시대 이스라엘 민족, 특히 사제들은 정갈한 몸과 외적 장식으로 하느님 앞에 나가야 했다. "그들이 만들 옷은 가슴받이, 에폿, 겉옷, 수놓은 저고리, 쓰개, 허리띠다. 이렇게 너의 형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거룩한 옷을 만들어 주어, 그들이 사제로서 나를 섬기게 하여라"(탈출 28,4). 사제가 장식을 하는 자체가 거룩한 하느님을 경배하는 행위를 상징하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장신구의 내용 즉, 왕관이나 팔찌 등은 그것을 지닌 사람의 지위를 상징한다. "이러한 일이 있은 뒤, 트리폰이 나이 어린 안티오코스와 함께 돌아왔다. 안티오코스는 임금이 되어 왕관을 썼다"(1마카 11,54). 물론 성경에서도 장신구는 몸을 아름답게 치장하는 도구로 쓰인다(에제 16,11). 성경은 비유적 의미로 천지창조를 하느님 장식품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내 영혼아, 주님을 찬미하여라. 주 저의 하느님, 당신께서는 지극히 위대하십니다. 고귀와 영화를 입으시고 빛을 겉옷처럼 두르셨습니다. 하늘을 차일처럼 펼치시고"(시편 104,1-2). 성경에서 강조하는 것은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장식은 외적 치장이 아니라 사랑과 선행 같은 내적 가치다. "여자들도 마찬가지로, 얌전하고 정숙하게 단정한 옷차림으로 단장하기를 바랍니다. 높이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비싼 옷이 아니라, 하느님을 공경한다고 고백하는 여자답게 선행으로 치장하십시오"(1티모 2,9-10). 베드로 사도는 신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외적 치장이 아니라 마음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머리를 땋아 올리거나 금붙이를 달거나 좋은 옷을 차려입거나 하는 겉치장을 하지 말고, 온유하고 정숙한 정신과 같이 썩지 않는 것으로, 마음속에 감추어진 자신을 치장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하느님 앞에서 귀중한 것입니다"(1베드 3,3-4).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묵상해보자.조은일2011.07.05
![[성경 속 상징] (119) 식사- 여러 종류 특별한 식사 등장](//cpbc.co.kr/CMS/newspaper/2011/06/rc/380072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 (119) 식사- 여러 종류 특별한 식사 등장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모든 생물은 예외 없이 먹어야 산다. 사람도 동물처럼 생존을 위해 식사를 하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나 사람의 식사(食事)는 끼니로 음식을 먹는다는 사전적 의미를 뛰어넘는다. 사람의 식사는 단순히 음식을 먹는 행위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작게는 부모와 자녀, 넓게는 타인과 함께하는 교류의 장이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과 식사를 한다는 것은 단순히 같이 음식을 먹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식사를 함께하다 보면 그 사람의 됨됨이는 물론 가정교육이 어땠는지 등을 훤히 들여다볼 수 있다. 그렇기에 우리나라는 물론 세계 곳곳 많은 나라에서 '밥상머리 교육'을 중요시한다. 사람은 어릴 적 가족과 함께 식사를 하며 언어를 익히고, 예절을 배우며, 인내심을 기른다. 또한 가족을 배려하는 사고를 통해 사회적 공존성이 강화된다고 하니 '세 살 버릇 여든까지 간다'는 속담에서의 세 살 버릇이 바로 밥상머리 교육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성인이 돼서도 식사는 중요한 사회 활동이자 대화 창구가 된다. 식사는 예식을 갖춘 것일수록 그 안에 담긴 상징과 메시지가 중요하다. 식사는 명예, 사회적 지위, 소속, 거룩함의 상징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에서 타인 집으로의 초청이나 숙박은 언제나 식사로의 초청을 전제로 한다. 또 성경에는 예식을 위한 식사, 결혼과 같은 축제의 식사, 이별의 식사 등 여러 종류의 특별한 식사가 등장한다. 식사는 사회적ㆍ종교적 경계를 상징하기도 한다. 유다인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과 밖에 있는 사람을 구분하는 선을 긋는 것이 바로 식사였다. 또한 파스카와 같이 특별한 시기 식사는 하느님께서 함께하신다고 여겼다(신명 16,1-8). 경건한 유다인 가정은 매 식사 때마다 하느님과 함께하는 것을 기억했다. 식사는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신 것이기에 모든 식사가 다 신성한 것이었다. 그들에게 세속적 식사란 없었다. 그래서 식사 시간은 즐거운 시간이었고, 즐거움과 유쾌함이 식사의 상징이었다(잠언 15,15). 하느님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을 먹이셨고, 예수님께서는 빵의 기적으로 군중을 먹이셨다(루카 9,10-17). 이처럼 풍성한 식사는 하느님 나라 상징이다. 하느님의 최후 승리와 심판을 축하하는 것도 모든 나라 백성들을 위한 식사 모습으로 나타난다. "만군의 주님께서는 이 산 위에서 모든 민족들을 위하여 살진 음식과 잘 익은 술로 잔치를, 살지고 기름진 음식과 잘 익고 잘 거른 술로 잔치를 베푸시리라"(이사 25,6). 식사는 신약의 초대교회 생활에서 아주 중요한 요소였다. 식사는 예식의 중요한 부분이었으며, 예수님을 기억할 수 있는 자리였다. "그들은 날마다 한마음으로 성전에 열심히 모이고 이 집 저 집에서 빵을 떼어 나누었으며, 즐겁고 순박한 마음으로 음식을 함께 먹고, 하느님을 찬미하며 온 백성에게서 호감을 얻었다. 주님께서는 날마다 그들의 모임에 구원받을 이들을 보태어 주셨다"(사도 2,46-47). 이처럼 초대교회 식사 자리는 주님 식탁에 모여 한 형제ㆍ자매가 되는 자리였다. 예수님 최후 만찬을 기억하는 식사 자리는 미사 형태로 발전했다. 우리가 날마다 하는 식사에는 이처럼 많은 상징과 메시지가 담겨 있다.조은일2011.06.14
![[성경 속 상징]101-바퀴- 하느님의 전지 능력을 암시](//cpbc.co.kr/CMS/newspaper/2011/01/rc/363873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101-바퀴- 하느님의 전지 능력을 암시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장)바퀴는 가장 위대한 인류 발명품 가운데 하나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됐다고 전해지는 바퀴는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발굴된 전차용(戰車用) 바퀴다. 기원전 3500년께 만들어졌으며, 통나무를 둥글게 자른 원판 형식이다. 이로부터 1000년 후인 우르 왕조시대 능에서 발견된 바퀴는 수레에 2개 혹은 4개가 달린 것으로, 이 무렵 바퀴는 둘레에 가죽으로 만든 타이어를 구리 못으로 고정시킨 흔적을 볼 수 있다. 기원전 2000년께 전차 바퀴에서는 구리로 만든 테두리를 볼 수 있다. 그리스나 로마에서는 쇠로 만든 타이어를 단 이륜전차를 사용했다. 바퀴 재료는 처음에는 목재였으나, 금속이 사용되면서부터는 바퀴의 주요 부품도 금속을 사용했다. 이후 고무바퀴나 공기를 넣은 고무타이어 출현과 함께 바퀴는 비약적으로 발달했다. 예로부터 바퀴는 태양을 상징했다. 수레바퀴 중심은 태양이고, 살은 태양의 빛을 나타낸다고 믿었다. 또 바퀴는 재판을 상징하기도 했다. 성경에도 바퀴는 주로 하느님을 상징하는 것으로 등장한다. 에제키엘 예언자는 환시 중에 하느님의 출현에 수반하는 네 가지 생물 곁에 각기 하나의 바퀴가 있는 것을 보았다. "그 바퀴들의 모습과 생김새는 빛나는 녹주석 같은데, 넷의 형상이 모두 같았으며, 그 모습과 생김새는 바퀴 안에 또 바퀴가 들어 있는 것 같았다"(에제 1,16). 여기서 바퀴가 있는 수레는 인간이 아니라 하늘의 수레라는 것이다. 바퀴는 하느님의 전지(全知) 능력을 암시하기도 한다. "바퀴 테두리는 모두 높다랗고 보기에 무서운 데다, 그 네 테두리 사방에 눈이 가득하였다"(에제 1,18). 다니엘 예언자의 꿈에서 바퀴는 하느님 옥좌를 상징한다. "내가 보고 있는데 마침내 옥좌들이 놓이고 연로하신 분께서 자리에 앉으셨다. 그분의 옷은 눈처럼 희고 머리카락은 깨끗한 양털 같았다. 그분의 옥좌는 불꽃 같고 옥좌의 바퀴들은 타오르는 불 같았다"(다니 7,9). 또한 바퀴는 병사들의 병거와 함께 등장하는 대표적인 것이다. "그리고 그분께서는 이집트 병거들의 바퀴를 움직이지 못하게 하시어, 병거를 몰기 어렵게 만드셨다. 그러자 이집트인들이 '이스라엘을 피해 달아나자. 주님이 그들을 위해서 이집트와 싸우신다'하고 말하였다"(탈출 14,25). 바퀴는 마음의 동요를 상징하기도 했다. "어리석은 자의 감성은 수레바퀴와 같고 그의 생각은 돌아가는 굴대와 같다"(집회 33,5). 교부들 중에는 에제키엘의 환상에 나오는 네 개의 바퀴가 사대(흙, 물, 불, 바람) 혹은 사계절을 가리킨다고 해석하는 사람도 있었다. 커룹(사람 또는 짐승 얼굴에 날개를 가진 초인적 존재)을 상징하는 바퀴는 선악을 아는 지식의 나무와 함께 닫힌 낙원의 상징이 되는 경우도 있다(에제 10,6-7). 그래서 중세 신비사상에서 바퀴는 신적 존재의 상징으로 사용했다. 10세기께부터 동방교회에서 가장 높이 공경해오던 성인 중 한 명인 알렉산드리아의 성녀 가타리나(Catharina)와 관련해 바퀴에 연관되는 이야기가 전해오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성녀는 큰 못을 박은 바퀴로 고문을 당했지만 전혀 상처를 입지 않고 오히려 고문을 하는 이들이 상처를 입었다고 한다. 그래서 부서진 바퀴는 성녀 가타리나를 상징한다. 조은일2011.01.11
-할례- 이방 민족과 구분 짓는 표지](//cpbc.co.kr/CMS/newspaper/2011/01/rc/363133_1.1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상징](100)-할례- 이방 민족과 구분 짓는 표지할례란 음경의 표피 전부 또는 일부를 자르는 행위이다. 이 의식이 언제부터 어떻게 시작됐는지는 확실히 알 수 없지만 할례가 하나의 의식으로 여러 민족에 분포됐다는 점과 금속칼보다는 돌칼을 널리 사용한다는 점은 이것이 매우 오래 전부터 존재했다는 것을 짐작케 한다. 할례를 받는 민족들 중 어떤 민족들은 결혼 직전에 행하기도 하고, 어떤 민족들은 종교교육을 받을 수 있는 나이가 됐을 때나 출생 뒤 바로 행한다. 아기에게 할례를 베푼다는 것은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모르던 관습이다. 그래서 우리에게 할례는 매우 낯선 느낌이 든다. 하지만 이집트와 서남 아시아, 아라비아에 걸쳐 살던 셈족 대부분, 아프리카 여러 부족들, 오스트레일리아와 아메리카 원주민 여러 부족들 등이 할례를 행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행하고 있는 민족들이 많다. 성경에서 보면 할례는 이스라엘에서 모세 이전부터 실행됐을 가능성이 많다(창세 34,13-24). 할례가 이스라엘에서 본디 어떤 의미로, 무슨 까닭에 행해졌는지는 분명하지 않다(창세 17,23-27). 하지만 이스라엘에서 할례는 하느님께 선택된 민족인 '계약 공동체'에 들어간다는 상징이 됐다. "너희는 포피를 베어 할례를 받아야 한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세운 계약의 표징이다"(창세 17,11). 그래서 할례는 이스라엘과 이방 민족들을 구분 짓는 표지가 되기도 한다(판관 14,3). 아브라함의 남자 후손들은 할례를 받는다는 것이 하느님께서 자기들 조상 아브라함과 체결하신 계약을 자기 몸에 직접 표시하는 것이라 믿었다. 유다인의 세계관에는 하느님이 세계 여러 민족 중에서 유다인을 특별히 선택하시어 선민(選民)으로 세웠다는 자부심이 짙게 배어 있다. 이런 까닭에 할례를 받은 유다인은 할례를 받지 않은 비유다인을 천시하며, 그들은 하느님이 내리신 특권을 누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할례는 마음의 껍질을 벗는 것이며(신명 10,16), 의무를 의식하는 것이었다. 할례를 통해 죄가 사해지지는 않았지만 죄의 사함을 위한 조건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신약과 함께 할례는 의무적 의식에서 벗어났다(사도 15,1-20; 로마 2,29). 그리스도인은 할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과 계약을 맺는 것이 아니라 세례를 받음으로써 하느님과 계약을 맺게 되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초대교회에서는 할례로 인한 대립이 발생했다. 유다인이 아닌 그리스도인들도 할례를 받아야 하는가 하는 문제가 생긴 것이다. 결국 예루살렘에서 사도회의가 열린 끝에, 할례는 그리스도교 입문의 의무가 아니라고 선포됐다(사도 15,1-21). 초대교회는 교회에 들어온 신자들에게 이러한 '모세의 법'을 의무조항으로 하지 말자고 정했던 것이다. 바오로 사도는 믿음은 할례를 받았는지 여부보다 사랑으로 표현된다고 강조했다. "사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는 할례를 받았느냐 받지 않았느냐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사랑으로 행동하는 믿음만이 중요할 따름입니다"(갈라 5,6). 하느님과 인간과의 관계에서 중요한 것은 외적 율법이 아니라 사랑과 나눔이라는 마음의 율법이다. 조은일2011.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