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성경화 사무국 "지침서 발간은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활동의 시작"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의정부 평협 성경화 사무국장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코로나 상황 신자 의식에 많은 영향 주었다고 생각 코로나 상황에서 신앙인으로서 생각해 볼 만한 주제 중심으로 구성 집에서 부모와 자녀가 함께 기도할 수 있는 가정기도에 관한 기도 올려 코로나 위기는 화합과 일치로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쇄신할 수 있는 좋은 계기 [인터뷰 전문] 코로나19 사태가 길어지면서 신앙생활의 단절이 우려되는 상황인데요. 의정부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가 를 발간해서 눈길을 끌고 있습니다. 평신도들이 직접 만든 친절한 신앙생활 안내서라고 하는데요. 편집위원으로 함께 참여한 성경화 체칠리아 사무국장 연결해 자세한 내용 들어보겠습니다. ▷성경화 국장님, 안녕하십니까? ▶네, 안녕하세요? ▷이번에 나온 신자생활 지침서가요. 의정부 교구 신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를 토대로 발간이 됐다고 하던데 코로나 상황에서 겪은 신자들의 신앙생활은 어땠고요. 또 교회에 대해 어떤 바람을 갖고 있었습니까? ▶모든 신자들이 혼란스러운 상황이었을 거고요. 이 코로나 상황은 신자들의 의식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조사 결과를 잠깐 살펴보면 우리 신자들은 교회의 결정, 함께 하는 미사를 중단했던 것을 잘했다고 평가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상생활 안에서 신앙실천이 중요하다는 생각이 커졌다에 굉장히 많은 동의를 주셨어요. 그리고 본당 가족들이 궁금하다. 아니면 교회 공동체가 소중하다는 것을 또다시 느꼈다고 얘기를 하시면서도 매주 주일미사에 꼭 참석해야 한다는 생각은 약해졌다는 문항에도 굉장히 많은 동의를 주셨거든요. 이러다 보면 기존의 성당 중심의 신앙생활에서 일상 중의 신앙 실천으로 의식과 구조가 변화돼야 한다는 생각에도 굉장히 많은 의견들을 주셨어요. 그리고 스스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도록 교육해줘야 된다. 그리고 다양한 온라인, 신앙 콘텐츠를 개발해줘야 된다. 이런 의견들을 되게 많이 주셨어요. ▷코로나19 상황에서 슬기롭게 신앙생활 할 수 있는 안내서를 평신도사도직협의회에서 직접 만드신 건데 어떤 의미가 크다고 보십니까? ▶코로나 상황에서 어려운 사람들에게 사실은 첫 발걸음을 내딛는 디딤돌 역할이었다고 생각을 해요. 그래서 코로나 상황을 극복하기 위한 활동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비대면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신앙생활을 친절하고 자세하게 안내를 하고 있다는데요. 지침서를 준비할 때 가장 염두에 둔 건 무엇이었습니까? ▶굉장히 급하게 만들어졌고요. 그래서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으는 데 중점을 많이 뒀습니다. 그래서 깊이 있는 자료라고 말씀드릴 수는 없고요. 신자분들이 원하시는 신앙 콘텐츠들이 사실 온라인상에 굉장히 많이 나와 있어요. 그런데 그거를 각자 들어가서 찾기에는 사실 시간도 에너지도 많이 들잖아요. ▷정리돼 있지 체계화 돼 있지 않은 상황이요, 아직은. ▶그래서 이거를 하나로 묶어서 쉽게 접근할 수 있게끔 해보자는 의도였었어요. 그래서 흩어져 있는 자료를 모으자. 그래서 그런 말도 있죠.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말. 그래서 신앙생활 안에서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사실 다 각자 다를 수 있고요. 그래서 여러 가지 방향에서 자료를 모으려고 많이 노력을 했습니다. ▷코로나19 기도문부터 맨 마지막 온라인 모임과 회의 방법까지 지침서에 크게 9가지 내용 주제를 담고 있던데 전체적으로 소개를 좀 해주시겠습니까? ▶9가지 좀 많아 보이시죠. 첫 번째는 기도문을 4개 실었어요. 프란치스코 교황님 기도문 그다음에 서울 교구장님이 인준하신 장상연합회기도문 그다음에 미국 주교회의, 일본 주교회의에서 내놓은 공식 기도문을 번역해서 싣기도 했고요. 그래서 기도문 4개 돌아가면서 하실 수 있게끔. ▷코로나19와 관련된. ▶네. 그다음에 두 번째는 미사에 관련된 건데 실제로 미사를 못하잖아요. 집에서. 그래서 미사를 대신할 수 있는 거의 방법으로 사실은 신영성체를 계속 얘기를 했었어요. 2월, 3월. ▷저희 가톨릭평화방송을 통해서 나가고 있는 TV 매일미사도 매일 끝에 신영성체 기도를 함께 드리죠. ▶신영성체 기도문이 사실은 하나만 있는 게 아니에요. 그래서 3가지 정도 돌아가면서 할 수 있게끔. 그리고 그다음에는 온라인 미사참례 예절이라는 걸 그다음에 붙여놨어요. 이게 사실 워싱턴 대교구에서는 그렇게 통제 상태에서 미사를 할 때 교구 홈페이지에다 올려서 미사 참례하기 전에 이렇게 했으면 좋겠다고 하는 게 있었거든요. 그 부분을 약간 번역해서 올렸고요. 유튜브나 평화방송 미사를 할 때 어떻게 준비해야 되는지 이런 부분에 대한 거를 조금 실었습니다. 그다음에 세 번째는 기도생활, 기도문에 관련된 거고요. 가톨릭 신자들은 사실은 자기 말로 기도문 잘 안 만들잖아요. 그래서 기도문 만들어서 나누기. 이렇게 첫 번째 예시로 해서 올려드렸고요. 두 번째는 SNS를 통해 카톡이나 SNS를 통해서 릴레이 기도를 할 수 있는 방법. 같이 기도하고 있다는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게끔 하는 방법론적인 거고요. 세 번째 거는 묵주기도를 할 때도 코로나 극복을 위해서 지향을 두자고 해서 교구 레지아에서 지향을 좀 올려주셨어요. 그다음에 제일 마지막에는 사실은 집에서 부모님과 자녀들이 같이 기도할 수 있는 가정기도에 관한 것들을 올려봤습니다. 그리고 네 번째는 성경묵상인데요. 제일 중요한 거일 수도 있지만 지금 같이 미사를 못하는 상황이니까 성경을 같이 묵상할 수 있게끔 12주에 걸쳐서 구약성경, 주로 구약성경 안에서 뽑았어요. 이 코로나 상황에서 신앙인으로서 생각해봐야 될 주제들을 좀 중심으로 성경을 읽고 묵상을 읽을 수 있게끔 12주치를 준비했고요. ▷성경묵상은 사무국장님께서 직접 집필하셨다면서요. ▶네. 그다음에 순례 부분인데요. 이거는 의정부교구에는 교구 순례를 위한 7개 구간이 만들어져 있어요. 그것이 사실 매년 9월 정도에 봄, 가을로 전담 순례 봉사자들과 함께 움직여서 순례를 하게 되어 있었는데 지금은 사실 같이 하면 안 되잖아요. 그래서 혼자서도 순례를 할 수 있게끔 7개 구간 다는 아니고 1구간과 3구간을 혼자서 핸드폰만 들고 가도 찾아갈 수 있게끔 순교자공경회에서 다시 사진 촬영해서 올려주셨어요. 보통 이게 2013년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지형 변화로 바뀔 수도 있잖아요. 길도 바뀔 수 있는 그 부분을 다 다시 준비를 했습니다. ▷일종의 업데이트를 자연스럽게 한 거네요. ▶그리고 여섯 번째는 사랑실천인데요. 사실 교회법에서는 주일이나 의무축일에 미사를 참여 못하면 대송을 하라고 되어 있는데 주로 기도를 하게끔 얘기를 하죠. 그런데 그 대송 방법에 선행이라는 게 들어가요. 희생과 봉사 부분이 같이 들어가는데 그래서 사실은 미사를 못하는 상황에서 대송을 할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의미에서. ▷그러면 의정부교구에서 주력하는 나눔, 사랑실천 어떤 겁니까? ▶그래서 지금 의정부교구는 어쩔 수 없이 지역적인 특색이기 때문에 난민, 북한이탈주민에게 관심을 가질 수밖에 없어요. ▷그래서 1본당1난민가정돌봄사업도 하고 있고 그렇죠. ▶네. 그게 지난주 토요일부터 자원활동가 양성교육을 시작을 했거든요. 그런 부분도 있고 북한이탈주민을 돕기 위한 정착도우미양성 교육 이런 것도 있어서 멘토를 양성하고 있어요. 그리고 교구 차원에서는 기금 모금도 하고 있고 그다음에 제일 중요한 거는 사실 지금 이 코로나 사태가 온 것은 환경파괴에서 오는 재난이잖아요. 그래서 환경지킴이 운동으로 공동의 집인 지구를 살리는 차원에서 개인실천표를 작성할 수 있게끔. ▷개인이 실천할 수 여러 가지 사항들도 담고 있고 그리고요. ▶그리고 제일 마지막에는 교구 안에 지금 사람들이 움직이지 않으면서 봉사를 나가시는 분들이 많이 끊으세요. 그러면서 사회복지시설에서 굉장히 봉사자들이 없어서 어려워하고 있거든요. 교구 내의 지구별로 사회복지단체 시설 목록이나 전화번호를 올려놨어요. 그래서 원의가 있으시고 움직일 수 있는 건강한 분들은 전화하셔서 각자 참석하실 수 있게끔 했습니다. ▷이번 지침서요. 모바일 웹 버전부터 인쇄본까지 준비하셔서 누구나 쉽게 접할 수 있게 해놓으셨던데 그런데 모바일과 앱 버전은 어떻게 배포를 하신 겁니까? ▶그거는 저희 평협과 교구 선교 사목국 SNS네트워크를 이용을 했어요. 평협에서는 상임위원들로 지구대표 사목회장님들이 여덟 분 계시거든요. 그분들에게 보내면 그분들이 지구 내의 각 본당 사목회장님들에게 전달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본당 회장님들은 본당 안에서 이렇게. 그리고 선교 사목국에서는 여성 총구역장님에게 그런 식으로 해서 구역장, 반장 통해서 신자들에게 전달될 수 있게끔 그렇게 했습니다. ▷설문조사와 지침서 준비하면서 현재 교회 모습과 신앙인들의 태도에서 어떤 성찰과 비전을 보셨습니까? ▶신자들은 우리 교회는 성당 중심, 성사 중심으로 움직이고 있었잖아요. 신자들이 이거를 스스로 인식하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신자들이 스스로 함께 하는 미사에 참여 못하면서 아무것도 할게 없나는 질문을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고요. 어떤 신자 분들은 스스로 그렇게 해서 신앙생활을 돌아보게 되면서 미사를 못하면 나는 하느님을 믿지 않는 건가라는 질문을 하게 되시는 거죠. 그래서 사실은 이런 부분은 코로나 상황이 오기 전에도 신앙생활 교리하면서도 신앙생활을 성당에서만 하는 것이 아니다 열심히 얘기했지만 특별히 체감하지 못했던 부분을 그냥 몸으로 깨닫는 기회가 되었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러다 보니까 신자들이 굉장히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주셨어요. 교구에 바라는 내용이나 제안할 내용 적어달라고 요청을 드렸더니 보통 이런 설문에 주관식으로 적으라고 하면 잘 안 적으시잖아요. 그런데 이거 모았더니 A4용지로 90쪽 정도 됐어요. 각자 자기가 얘기하고 싶은 것들을 얘기를 의견을 제시를 해주시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의견을 모아보면 스스로 신앙생활 할 수 있도록 교육해 줘야 된다. 그다음에 다양한 신앙 콘텐츠 개발해 주셔야 된다는 얘기들을 했었고요. 이런 교회와 소통하려고 하는 의지든 그리고 변화될 필요성이 있다는 걸 이미 느끼고 있다는 것은 준비가 되어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 코로나 위기는 화합과 일치로 교회의 모습을 새롭게 쇄신할 수 있는 좋은 시작이 될 수 있는 계기라고 생각이 듭니다. ▷그런 면에서 첫 출발을 하는 디딤돌 같다는 표현을 앞서 해주신 거네요. 알겠습니다. 코로나 극복을 위한 신자생활 지침서를 발간한 의정부 교구 평신도사도직협의회 성경화 사무국장의 말씀 들었습니다. 오늘 함께해 주셔서 고맙습니다. ▶네, 감사합니다.이주엽2020.08.24

신천지, 잘못된 성경 공부로 젊은이 현혹[앵커] 신천지는 그동안 많은 피해자를 발생시켰습니다. 신천지로 인한 가출과 이혼, 학업과 직업 포기 등의 피해가 잇따랐는데요. 포교의 시작은 잘못된 성경 공부였습니다. 전은지 기자가 신천지 피해자들을 만나봤습니다. [기자] 대학 시절, 청소년 봉사활동을 하던 A씨는 청소년 잡지 인터뷰 요청을 받았습니다. 처음엔 ‘연락처를 어떻게 알았을까?’ 의심했지만, 자신이 하는 일은 물론 성격과 장단점까지 파악하고 있어 금새 경계를 풀었습니다. 모태신앙으로 유아세례를 받은 A씨는 6개월의 성경 공부를 거쳐, 신천지에 입교했습니다. 신천지는 요한 묵시록 15장 증거의 장막이 신천지 교회라 가르치는 유사종교입니다. 교주 이만희 씨에게 재림 예수의 영이 내려 천국의 비밀을 계시했다고 주장합니다. 신천지는 친분을 쌓은 뒤, 성경 공부를 권유하는 방식으로 포교합니다. 이후 복음방으로 인도해 신천지 센터로 유도합니다.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듣는 이들을 현혹하는 것이 특징입니다.<A씨 / 신천지 피해자>“성경의 무지함에 대한 그 자책감이라든지 그런 걸 찔러줘요. 그리고 네가 얼마나 모르고 있는지 알겠냐. 그러면서 또 잠재력, 이런 것도 계속 주입시키면서 센터까지 데려가죠.” 신천지 활동은 폐쇄적이고 강압적입니다. 그래서 한 번 빠지면 탈출하기가 어렵습니다.<A씨 / 신천지 피해자>“처음에 딱 왔을 때, 이만희 교주가 나오면 무릎을 꿇고, 그러고 “편히 앉으세요.” 그 사람이 해야지 아빠 다리로 앉게 되는 거예요. (진짜 군대의 그런 방식이라고 보시면 딱 맞을 것 같아요.)” <B씨 / 신천지 피해자>“월화수목금 다 나가고 나중에는 토요일, 일요일까지 다 참석을 하게 돼요. 거기에 자연스럽게 흘러가다 보면. 그래서 일주일 내내 신천지 사람을 만나게 되니까. 뭐 시간을 뺏는 거예요. 다른 사람을 만나지 못하도록.” 신천지 때문에 가출까지 했던 B씨는 한국 천주교 유사종교대책위원장 이금재 신부의 도움으로 간신히 신천지를 빠져 나올 수 있었습니다. 신천지의 꾐에 넘어가 청춘을 허비한 젊은이들은 신천지는 감정적으로 빠지는 종교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에 대한 갈증을 채우려고 했다가, 잘못된 성경 공부에 빠져드는 경우가 많다고 밝혔습니다. 가톨릭교회가 신자들의 성경 공부에 더 적극적으로 나서야 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신자들의 눈높이에 맞게 성경 지식을 전달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A씨 / 신천지 피해자>“신자들이 어떤 것에 목마름이 있는지, 어떤 것이 삶에서 힘든지, 이 삶에서 어떤 하느님을 원하는지를 직시해야 되지 않을까. 신부님들이 그걸 좀 더 내려다 봐주셨으면 좋겠고. 신부님들의 언어가 아니라 신자들의 언어로 성경 공부가 이뤄질 수 있는 곳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B씨 / 신천지 피해자>“저를 되돌리는 과정에서 정말 많이 느꼈던 게, 천주교에 이렇게 많은 유산들이 있었구나. 이런 좋은 말씀들이 있었구나. 이런 것들을 왜 제가 천주교에서 오랫동안 20년 동안 신앙하면서 알 수 없었을까 이런 게 굉장히 아쉬웠던 것 같아요” cpbc 전은지입니다. 전은지2020.02.24
[인터뷰] 호랑이와 한국교회사 이야기 ○ 방송 : CPBC 뉴스 ○ 진행 : 김혜영 앵커 ○ 출연 : 이학주 요한 크리소스토모 / 가톨릭평화신문 기자 [앵커] 2022년 올해는 임인년, 호랑이의 해입니다. 성경에서 호랑이를 검색하면 한 구절도 나오지 않습니다. 신앙과 호랑이, 아무런 연관이 없을 것 같지만 우리 신앙 선조들은 그렇지 않았나봅니다. 신앙을 지키려 호환을 당해 목숨을 잃은 척 하기도 했다는데요. 한국교회사 속에서 발견한 호랑이 이야기를 찾아 보도한 가톨릭평화신문 이학주 기자 스튜디오에 나와 있습니다. ▷ 안녕하세요. ▶ 안녕하세요. ▷ 우리 민족에게 호랑이는 아주 친숙한 동물이잖아요? 한국 교회사 속에서 호랑이 이야기를 찾아보겠다는 기획은 어떻게 시작한 건가요? ▶ 아시다시피 예전에 우리나라에는 호랑이가 참 많이 살았잖아요. 산 속에 숨어사는 천주교 신자들은 특히 호랑이와 더 자주 만났을 것 같았습니다. 그래서 혹시 교회사 기록에 호랑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없나 하고 찾아봤는데요. 예상보다 많은 기록들이 나와서, 이걸 묶어서 기사로 써보면 재밌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 가장 먼저 등장하는 호랑이에 관한 교회사 기록은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의 기록으로 보인다고 기사에서 언급했는데, 무슨 내용인가요? ▶ 네, 성 모방 신부가 조선 입국 후 파리외방전교회에 처음으로 보낸 1836년 4월 4일 자 편지에 호랑이가 처음으로 언급됩니다. 모방 신부는 편지에서 "중국인 유방제(여항덕 파치피코) 신부에게 들었다”며 아이를 잡아먹으려다 관둔 호랑이의 일화를 전했는데요. 호랑이는 아이에게 덤벼들어서 겁을 주다가 잡아먹으려고 했는데요. 아직 세례를 받지 않았어도 천주교를 이미 알고 믿던 아이가 힘을 다해서 외쳤습니다. "예수 마리아, 저를 불쌍히 여기소서. 예수 마리아, 저를 도와주소서!" 그러자 호랑이는 움직일 때마다 아이와 놀려고 하기만 하였고 아이에게 어떤 상처도 입히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후 어른들에게 구조된 아이는 세례를 받았고, 나흘 뒤에 죽었습니다. 죽은 이유는 안 나오는데, 아마 먹히기 전에 호랑이에게 상처를 좀 입지 않았나 싶습니다. 여하튼 모방 신부는 이를 두고 “천주께서는 그 아이에게 천주교 신자의 인호를 받을 기회를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성 앵베르 주교가 파리외방전교회에 쓴 편지에도 호랑이 이야기가 나오는데요. 앵베르 주교는 조선에서 매년 무려 1000명이나 호랑이에게 물려 죽는다고 말했습니다. ▷ 호랑이로부터 아내를 구한 124위 복자가 있다면서요? 어떤 내용인지 궁금합니다. ▶ 네, 아까 이야기한 모방 신부와 마찬가지로 1839년 기해박해 때 순교한 복자 김대권 베드로입니다. 달레 신부가 쓴 ‘한국천주교회사’에 나오는 내용인데요. 복자 김대권은 아내와 맨날 싸워서 평소에 사이가 아주 나빴다고 합니다. 어느 날도 크게 싸우고, 김대권은 안방, 아내는 부엌에서 잠을 청했는데요. 김대권이 잠이 막 들었을 때, 하느님께서 부르시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벌떡 일어났더니 호랑이가 부엌에 들어와서 아내를 물고 달아나고 있었습니다. 김대권은 소리를 지르며 호랑이를 쫓아가 겨우 아내를 구해냈다고 합니다. 이튿날 김대권은 하느님께 감사를 올리고 아내에게 당부했습니다. “이번 일은 우리 불화 때문에 생긴 것이니, 우리 잘못을 고쳐 착한 일을 하며 죽을 때까지 화목하게 살아가야겠소.” 이후 열심한 신자가 된 김대권은 또 한 번 호랑이와 얽히게 됩니다. 김대권은 주님 성탄 대축일마다 근처 산에 올라가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리며 밤을 샜는데요. 하루는 산에서 사나운 호랑이 한 마리를 맞닥뜨렸어요. 그런데 김대권이 겁내지 않고 계속 기도를 드리니까 호랑이는 공격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 지난해 탄생 200주년을 지낸 김대건 신부님, 최양업 신부님도 호랑이와 관련된 이야기가 있죠? ▶ 김대건 신부님은 신학생일 때, 1844년 2월 5일부터 두 달 동안 중국에서 두만강을 통해 조선에 들어오는 경로를 탐색했습니다. 그리고 ‘훈춘 기행문’이라는 보고서를 적어서 제3대 조선대목구장 페레올 주교에게 보냈는데, 여기에 호랑이에 대한 언급이 나와요. 제가 그 내용을 읽어보겠습니다. “좌우로 큰 나무들로 덮인 높은 산들이 우뚝 솟아 있었고, 또 거기에 호랑이ㆍ표범ㆍ곰ㆍ늑대, 그 밖의 맹수들이 살며 지나가는 사람들을 습격하려고 모여듭니다. 이 무서운 산간벽지 가운데로 경솔하게 감히 혼자서 지나가려고 하는 사람은 정말 불행합니다! 이번 겨울에도 근 80명의 사람과 100마리 이상의 소와 말들이 이 육식동물들에게 잡아먹혔다고 합니다.” 김대건 신부님은 맹수가 습격할 수 없게끔 다른 여행자들과 무장한 채 무리를 지어 움직였는데요. 맹수들이 그 위세를 보고 감히 덤벼들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살아서 호랑이를 잘 피한 김대건 신부님이었지만, 정작 세상을 떠난 뒤에 호랑이를 맞닥뜨리게 돼요. 1846년 새남터에서 순교한 김대건 신부님의 시신이 이민식 빈첸시오에 의해 미리내로 옮겨질 때 일인데요. 「용인천주교회사」에 따르면, 이민식은 새남터에서 미리내로 가는 두 번째 고개인 망덕(해실이) 고개에서 큰 호랑이를 만났다고 합니다. 순간 이민식은 등골이 오싹했지만, 곧 정신을 차리고 호랑이를 노려보며 호령했어요. “네 이놈, 아무리 짐승이기로서니 우리의 위대한 김 신부님의 시신을 모시고 가는 앞길을 막다니 썩 물러나지 못할까?” 그러자 호랑이는 슬그머니 산 중턱으로 사라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한국인 두 번째 사제 최양업 신부님은 11년 동안이나 쉬지 않고 산간벽지에 숨어 사는 신자들을 만나셨죠. 교우천에서 보고 들은 일을 글로 남겼는데, 호랑이가 얼마나 두려운 존재인지 짐작하게 하는 기록도 있습니다. 충남 부여 도앙골에서 스승 르그레즈와 신부에게 보낸 1850년 10월 1일 자 편지인데요. 최 신부는 바르바라라는 처녀가 11살 때 했던 일에 대해 이야기하는데요. 고작 11살 짜리 소녀가 신앙생활에 집중하기 위해 교우촌을 떠나 동굴 속에서 지냈답니다. 바르바라는 사흘 만에 오빠 손에 붙들려 집에 왔는데, 어머니가 이렇게 소리쳤다고 하네요. “너는 마귀한테 놀림을 당하는 것이 틀림없다. 어떻게 너 같은 어린애가 호랑이도 무섭지 않고, 굶어 죽는 것도 겁이 안 난단 말이냐?” ▷ 당시엔 호랑이 피해를 본 신자들이 적지 않았던 것 같은데, 신자들의 피해는 어땠나요? ▶ 서울 한복판에서 호랑이에게 잡아먹히는 일이 흔한데, 산 속 교우촌은 더욱 심각했죠. 선교사들 기록에 보면, 교우촌에서 사람들이 밤에 무서워서 집 안에 다같이 모여 기도를 했다고 하는데요. 그래도 호랑이가 발로 방문 열고 들어 와서 아이들을 물고 갔다는 이야기들이 남아 있습니다. 강원도 첫 본당인 풍수원본당에서 사목하던 정규하 신부는 당시 조선대목구장 뮈텔 주교에게 편지를 많이 보냈는데요. 강원도가 산이 많다보니 호랑이에게 신자가 목숨을 잃는 일도 많았습니다. 정규하 신부는 1897년 새해 인사편지에 강릉에 사는 아가타라는 여교우가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머리와 가슴과 손만 남았다고 썼는데요. 그 여인에게 한 살짜리 아기가 있다는 안타까운 소식도 전했습니다. 정규하 신부는 1902년 편지에서 원 베드로라는 사냥꾼이 호랑이 사냥을 하다가 오히려 호랑이에게 넓적다리를 물려 죽었다는 이야기도 적었습니다. ▷ 호랑이에게 아버지를 잃은 사제도 있었다면서요? ▶ 네, 1900년에 사제품을 받은 김문옥 신부는 호랑이에게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부산교구 언양본당 살티공소에서 일어난 일인데요. 공소에 살던 김 신부의 아버지는 대구로 판공성사 가시다 호랑이에게 잡아먹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머리만 남은 것을 교우들이 거두어 공소 근처에 묻었다고 하는데요. 그 무덤 이름이 ‘범찌꺼기묘’라고 불렸다고 합니다. 무덤 앞으로 새 길이 나면서 2007년쯤에 후손들이 현재 그분의 시신을 이장했다고 합니다. ▷ 호랑이와 한국 교회사를 신문에 두 차례 보도했는데, 연재를 하면서 개인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면요? ▶ 우선, 생각보다 이렇게 많은 호랑이 이야기가 있을 줄 몰라서 참 놀랐습니다. 우리 역사나 문화를 봐도, 호랑이가 참 다양한 모습으로 등장하잖아요. 무서운 맹수이기도 하고, 사악한 것을 내쫓는 영물이나 산을 지키는 산신령이기도 하고요. 그런 호랑이의 다채로운 모습이 한국 교회사 기록에도 잘 드러나서 정말 재밌었습니다. 또한, 회사 안도 그렇지만 외부에서도 기사에 대해 아주 좋은 평가를 많이 해주셨어요. 참 뿌듯했습니다. 그리고 지금 코로나19도 기승이고, 여러 모로 힘든 시기인데요. 시청자분들이 힘찬 호랑이 기운으로 다 이겨내시고 즐거운 새해를 보내셨으면 좋겠습니다. ▷ 네. 지금까지 임인년에 '호랑이와 한국교회사 이야기' 주제로 가톨릭평화신문에 두 차례 보도한 이학주 기자와 호랑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오늘 잘 들었습니다. ▶ 감사합니다.이학주2022.01.28
![[김혜영의 뉴스공감-홍성남 신부] 법치만 외치는 尹정부, 인(人)치는 없나요?](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3/05/19/Ela1684498951327.jpg)
[김혜영의 뉴스공감-홍성남 신부] 법치만 외치는 尹정부, 인(人)치는 없나요?"요직에 등용된 검찰 출신…정치는 잘 듣는 사람이 해야" ○ 방송 : CPBC 라디오 <김혜영의 뉴스공감> ○ 진행 : 김혜영 앵커 ○ 출연 : 홍성남 신부 /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주요 발언) - "尹정부 1년, 합법적(?) 불공평 행위 만연한 느낌" - "요직에 등용된 검찰 출신…정치는 잘 듣는 사람이 해야" - "법치만 내세우면, 법꾸라지 만연" - "사람들은 법으로 변화하지 않아…사람 통한 감화 커" - "법 강화한다고 범죄 없어지나? 문제 원인을 찾아야" - "김수환 추기경 같은 어른이 필요한 시기" - "아이들이 존경할 어른 있어야" 법치는 윤석열 정부의 존재 이유고 윤석열 정부에게 내린 국민의 명령이다. 박대출 국민의힘 정책위의장이 한 말입니다. 법치를 유독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 상대적으로 인치와 덕치는 소홀한 거 아니냐는 목소리가 나옵니다.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이신 홍성남 신부님과 깊은 내공에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법치를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이 취임 1주년을 맞았습니다. 지난 1년 어떻게 총평하시겠습니까? ▶법치와 상식을 강조했는데 느낌은 합법적인 불법행위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제가 10년 전에 성당에서 재개발 걸려서 그때 철거업체들하고 5년 반 동안 싸웠는데 그때도 철거업체 쪽에서 합법적으로 불법행위를 저지르더라고요. 모든 게 다 법에 맞아요. 그런데 뭔가 불법적인, 공문상으로는 합법인데 실제하는 행위는 불법행위를 저질러서 너무 열 받았던 기억이 있는데 지금 윤석열 정부 들어와서 보면 그런 느낌이 듭니다. 분명히 잘못한 사람에 대해서 수사를 하는데 뭔가 불공평하다는 느낌이 들고 표적수사를 하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고 내로남불 식으로 자기편에 대해서는 엄청 관대하고 불공정한 법치를 하고 있지 않나. 저 같은 종교인도 그런 느낌을 갖는데 일반 사람들은 더하겠죠. ▷지금 검찰출신 인사들이 정부 요직에 대거 임명돼 있습니다. 검찰 공화국이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하는데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게 오히려 검찰 공화국이라는 걸 강화하는 거 아닌가 싶은데 어떻게 보십니까? ▶만약에 신부들이 정치한다고 하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굉장한 목소리가 나오겠죠. ▶신부들이 정치한다고 하면 난리가 나겠죠. 교황청에서도 사제들은 정치에 관여하지 말라고 얘기하고 있죠. 정치권력을 잡지 말라는 겁니다. 그래서 예전에 어떤 나라 대통령이 사제였는데 대통령이 되겠다고 하니까 그냥 사제직에서 물러나라는 사례가 있었어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마음 자리들이 있거든요. 종교인은 종교인의 자리가 있고 교수들은 교수들의 자리가 있고 기업인은 기업인의 자리가 있듯이 정치도 정치하는 사람들의 자리라는 생각이 들어요. 저도 정치인들을 여러 분 만나봤는데 이분들은 독특한 면을 갖고 있더라고요. 편식을 안 합니다. 모든 사람들을 다 만납니다. 그 사람들이 하는 얘기를 끝까지 들어줍니다. 정치는 정말 아무나 하는 게 아니구나. 체력도 있어야 하지만 끈기도 있어야 하고 그래야 하는 거라는 느낀 적이 있었는데 검사들이 정치를 하게 되면 문제는 검사하던 시절의 습관이 나온다는 겁니다. 검사들이 남의 얘기를 들어주나요? 아니거든요. 수사하고 처벌하고 익숙한 사람들입니다. 검사들이 정책을 만든 적도 없습니다. 경제 정책, 복지 정책 만든 적도 없고 그냥 범죄대상자를 찾아서 수사하는 게 일이었던 사람들인데 이 사람들이 권력을 잡았다고 하면 그런 식으로 할 거란 거죠. 우려가 큽니다. ▷법치만 강조하는 게 아니라 인치와 덕치도 함께 어우러지면 좋을 텐데 신부님이 생각하시는 인치와 덕치는 어떤 건지 듣고 싶습니다. ▶법은 복잡 미묘한 게 법은 운영을 잘하면 괜찮은데 악용되면 사회적인 상황이 어려워지거든요. 법이라는 테두리가 목장에서 양들을 방목하는 거하고 비슷하다고 생각합니다. 목장이 굉장히 커서 테두리가 넓은 경우는 양들이 마음껏 놀고 성장할 수 있거든요. 그런데 만약에 사육장 같이 닭이나 돼지들을 가둬두면 전염병 걸리죠. 비정상적인 성장을 하죠. 법이 딱 그런 역할을 하는 것이거든요. 법이 너무 테두리가 좁고 조이면 사람들이 그때부터 공격적으로 됩니다. 사실은 그래서 제일 좋은 건 법이 없는 게 좋다고 얘기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법치를 앞세우는 것은 좋지 않다. 그리고 법치를 내세우게 되면 더 안 좋은 게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거죠. 그런데 법망을 빠져나가는 사람들은 법을 제일 잘 아는 사람들이죠. 그리고 뭔가 가진 게 많은 사람들은 법망을 쉽게 빠져나갑니다. 교도소에서도 가진 게 많으면 대접을 잘 받는다는 얘기를 하는데 법치주의는 사실 너무 하자가 많고 약점이 많은 시스템이라는 생각이 들고 사람들은 법으로 대화하지 않거든요. 처벌한다고 해서 사람이 변화하냐. 안 변합니다. 사람이 변하는 거는 내가 존경하는 사람을 만났을 때 그 사람을 보고 감화 받아서 변화하는 건데 그런 면에서 인치가 법치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법이 없으면 좋겠지만 법 없이는 살 수 없는 세상이니까 법치와 인치가 잘 조화되면 좋겠습니다. ▶법이 강조됐다는 거는 사회적으로 불안감이 커지고 범죄가 많아졌다는 건데 그래서 법을 더 강화시킨다고 하면 범죄가 없어지는 게 아니거든요. 실제 우리가 고민해야 하는 것은 법을 어떻게 강화시킬까보다 왜 사회적인 문제들이 더 많이 발생하는가에 대한 원인분석을 해야 합니다. 원인분석은 안 하고 법치를 강조하면서 뭔가 검찰이 그런 명분으로 자신들이 권력을 가진 것을 합리화 시키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건 좀 위험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인치하고 조금 결이 다를 수 있지만 요즘 워낙 시대가 어수선하니까 지혜로운 어른이 그립다는 말씀하시는 분들 많습니다. 신부님은 그리운 어른, 존경하는 어른 누가 생각납니까? ▶저는 김수환 추기경님 계실 때 신학교 들어갔고 서품도 그분께 받았고 사제생활도 그분과 함께 했기 때문에 옆에서 그분을 자주 뵙고 그래서 김수환 추기경님 같은 어른이 계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하곤 합니다. 독특한 분이었어요. 종교인임에도 불구하고 바깥사회에 관심을 많이 가졌고 그리고 교회가 크려면 스타가 있어야 한다고 하면서 내가 그러면 스타가 돼보겠다고 방송에도 많이 출연하셨던 분이거든요. 굉장히 비전도 있고 그릇이 크셨어요. 그런 어른이 있으면 좋겠다. 김수환 추기경님이 명동성당에서 강론하시면 신문 기자들이 다 왔어요. 다 녹음하고 기록해서 바로 신문에도 대서특필로 실었거든요. 그대 박정희 대통령 때부터 그런 역할을 하셨는데 그 당시 재야 인사들이 김수환 추기경님의 그늘, 그분의 뒤에서 안전을 지키셨던 부분도 있고 재야 인사들이 들으면 화내실지 모르겠지만 김수환 추기경님의 그릇이 컸습니다. 정말 우리나라의 큰 고목나무 같은 분이었고 그 분이 보여준 부분도 많고 지금은 큰 나무가 누가 있을까 찾아봤는데 안 보이는 겁니다. 작은 나무들은 보이는데 큰 나무들은 안 보입니다. ▷요즘 또 성인들을 주목하고 계시다고 들었습니다. 인치의 맥락으로 이해하면 될까요. ▶아이들이 건강하게 성장하려면 존경 대상이 있어야 한다고 합니다. 우리가 어렸을 때 위인전 많이 읽었잖아요. 위인전을 읽으면서 아이들이 이렇게 사는 것이 가장 바람직한 인생이라는 생각을 품게 됩니다. 그런 위인전이 범죄를 막는데 기여를 많이 했다는 겁니다. 마음 안에 존경 대상이 생기면 다른 짓을 안 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존경 대상이 가톨릭교회에서는 존경 대상들을 성인이라고 합니다. 세인트. 가톨릭신자들이 신앙생활을 어떻게 할 것인가 뿐만 아니라 인생을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답을 찾을 수 있는 분들이었던 거죠. 그래서 성인들에 대해서 개신교에서는 안 좋게 생각하는 분들 때 계세요. 하느님 말고 사람을 공경하냐. 우상숭배 아니냐고 시비거는 분도 있고 또 어떤 분들은 중세가 가톨릭교회 때문에 암흑시대가 도래했는데 성인이, 뒷담화 치는 소리냐. 사실 중세유럽 때 가톨릭교회가 부패했던 건 사실인데 부패했던 가톨릭교회가 무너지지 않았던 것은 수도회 출신의 성인들 때문이었던 거죠. 부패한 성자들을 보면서 등을 돌리려고 했는데 수도자들이 사는 것을 보면서 포기하지 않았던 겁니다. 성인들이 그냥 기도만 하고 수도원 안에서만 있는 게 아니라 중세유럽의 학문적인 발전에 큰 기여를 했던 분들입니다. 수도원의 학자들이 많았었어요. 중세유럽의 신앙적 문화적인 기동역할을 했던 것들이 성인들이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이런 성인들이 우리나라에도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갖게 됐습니다. ▷요즘 같은 시대에 더 주목하시는 성인이 있으실까요? ▶가장 성인품을 받은 분들 중에서는 저는 마더 테레사. 수녀님은 다 아시겠지만 인도 캘커타 빈민가에서 빈민들하고 평생을 사셨던 분들입니다. 그분을 통해서 전 세계에 있는 선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정신적인 어머니로 그분을 삼았다는 그런 얘기를 한 걸 들은 적 있습니다. 가톨릭수도회 수녀님인데 불자들도 존경한다고 하고 종교를 초월해서 세계 모든 분들이 존경했던 분입니다. 성인품은 못 받았지만 우리나라에서 성인처럼 대우해 드렸으면 좋겠다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번에 종군 신부님 중에 에밀 카폰 신부님, 그분의 이야기는 몇 년 전에 그분의 일대기를 신문기사에서 읽고 정말 마음이 울컥했는데 6.25 때 전쟁 때 포로가 된 미국 포로가 있었는데 20대 초반이었다고 합니다. 신부님도 20대였습니다. 자기 동생 같은 미군들이 잡혀 가는 걸 보고 자기도 같이 포로수용소에 가서 당신이 아파서 죽을 때까지 동생들을 돌봤습니다. 정말 사제라는 생각이 들고 이렇게 헌신적인 삶을 살았던 분이 미국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당시 종군군들도 존경했다. ▷요즘 시대에 더 주목하시는 성인으로 마더 테레사 수녀님, 종군 신부님 에밀 카폰 신부님 얘기해 주셨는데 더 해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분이 미군들뿐만 아니라 상대편이었던 군인들도 치료를 해주셨대요. 적국 군인들도 에밀 카폰 신부님을 존경했다는 기사가 있습니다. 러시아, 우크라이나 전쟁을 하고 있고 미국을 중심으로 한 그룹과 사회주의 국가들 간의 대립이 있었다고 하는데 이런 대립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은 그런 성인들이라는 거죠. 전 세계 모든 사람들이 이 사람은 존경할만해, 따라야 만 우리가 살 수 있다는 확신을 주는 분들이 그분들을 우리는 현대 성인들이라고 부르는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에밀 카폰 신부님은 국제적인 성인이라고 생각하고 국적이 미국인이지만 다른 나라에서도 인정하는 분이라는 생각이 들고 제가 한 분을 더 추천하고 싶다면 이태석 신부님을 추천하고 싶습니다. 이태석 신부님은 살레시오회 출신이고 남수단에서 일하다가 돌아가신 분인데 저도 잘 모르다가 이태석 신부님의 전기를 읽고 그분의 영화를 보면서 울컥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거는 이태석 신부님을 밖으로 알리기 위해서 애쓰는 분이 우리 쪽이 아니고 불자이신 구수환 감독이더라고요. 그 분을 몇 번 만났는데 어떻게 이렇게 불교 신자인데 이태석 신부를 알리러 다니시냐고 했더니 자기도 잘 몰랐는데 이태석 신부에 대한 자료를 보면서 우리나라 같이 혼란스러운 정국을 바로 잡으려면 이태석 신부의 정신이 필요하다. 이분이야 이태석 신부가 성인이 되느냐 안 되느냐 이런 거는 잘 모르고 관심도 없고 당신은 오로지 이태석 신부의 삶을 우리나라 국민들이 다 보고 배웠으면 좋겠다는 이야기를 하시고 재단도 만들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십니다. 대접을 어떻게 받냐고 물었더니 푸대접 받을 때가 많다고. 그런데도 왜 하시냐고 더니 이태석 신부님이 내 옆에 있는 것 같다고. 그분의 영혼이 내 옆에 있는 것 같다고. 그래서 그때 본인의 얘기를 들으면서 제가 전율이 왔던 경험이 있었는데 구수환 감독의 말에 의하면 사실 이태석 신부의 ‘울지마 톤즈’. 구수환 감독이 다니는 데가 성당이 아니고 문제아들 모인 단체, 일반인들 모임에 가서 영화 상영하고 끝나면 강의를 한다고 하는데 영화 상황이 끝나고 불을 켜면 다 울고 있대요. 이렇게 사람들을 울게 만들고 자기가 사는 삶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누가 또 있을까요. 저는 성인은 기적을 일으키고 거룩한 삶을 살고 이것보다 더 중요한 거는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 삶에 대해서 부끄러움을 느끼게 하는 사람이 성인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분들이 세상을 바꾸는 분들이 아닌가. 다른 나라는 몰라도 우리나라 같은 경우는 이태석 신부님의 삶이 정말 일반 사람들의 마음도 많이 흔들어 놓고 있고 그리고 아이들도 이태석 신부의 영상을 보면 다 운다고 합니다. 촉법소년을 처벌로 얘네들을 어떻게 해야겠다. 격리시켜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는데 그런 방법으로 사람을 처리를 하려는 거는 우생학이라는 이론이 있는데 그 이론을 갖고 있는 사람들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생학이라는 거는 원래는 동물들을 품종 개량을 해서 점점 더 종자가 좋은 동물들을 만들자는 게 우생학의 시작이었는데 이게 변질돼서 인간도 개량해 보자는 생각으로 변질이 된 겁니다. 그거를 실제로 실행했던 게 히틀러였습니다. 히틀러는 아리안 민족의 우월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열등 인자를 가진 사람들은 제거하는 게 맞다고 얘기했고 그래서 유태인들에 대한 콤플렉스가 있었잖아요. 유태인들은 열등 인자들이라고 해서 제거하는 게 맞다고 얘기했고 그걸 아이히만한테 지령을 내려서 유태인 말살 정책을 했죠. 그런데 더 놀라웠던 거는 제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갔는데 유태인만 죽인 줄 알았더니 독일인 장인들도 죽였더라고요. 어떤 방을 갔는데 해골들이 쌓여 있는데 그 옆에 지팡이가 있는 겁니다. 히틀러가 독일인 장인들은 아리안 민족이 될 수 없다고 해서 집단 학살을 했다는 겁니다. 이게 우생학이라는 거죠. 우생학은 나는 우월한 존재고 쟤네들은 치워도 될 쓰레기 같은 존재라고 생각하는 게 우생학인데 그런 관점에서 법치를 한다고 하면 인간에 대한 차별을 하게 된다는 겁니다. 감화시켜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해주는 게 아니라 처벌해서 우리들과 격리되게. 우리만 안전하고 세이프한 환경에서 살겠다는 우월주의죠. 위험한 일입니다. 그 범주 내에 머물려면 여러 가지 조건이 있어야 하고 그 범주 안에 있던 사람들이라고 할지라도 범주 안에 조건을 채우지 못하면 탈락한다는 얘기가 되는 겁니다. 굉장히 위험한 발상인 겁니다. 예수님이 복음서에서 계속 주장하셨던 것이 우생학에 대한 거를 반대하셨던 겁니다. 네 이웃 사람 사랑하기를 내 몸 같이 하. 보잘 것 없는 사람 환하게 해 주는 것이 내게 해 주는 것이다. 이게 바로 이런 차별주의자들에 대한 대항 발언을 하셨다고 생각하는 겁니다. ▷지금 세 분을 꼽아주셨습니다. 성인인 분도 계시고 아닌 분도 계시고 마더테레사 수녀님, 에밀 카폰 수녀님, 이태석 신부님. 이런 분들을 영성을 삶에 적용하고 하려면 어떤 노력이 필요할까요. ▶그분들의 삶에 대해서 성경을 통해서 예수님의 삶을 묵상하듯이 그분들의 삶을 묵상해 볼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똑같이 살 수 없지만 그런 마음가짐으로 사는 것이 이게 가장 인간다운 삶이구나. 그런 자기 인지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특히 이태석 신부님이 롤모델이 됐으면 청소년들의 롤모델이 됐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드는 게 남수단이 내전이 벌어졌고 서로 총을 들이대고 있는 상황인데 이태석 신부님이 나타나면 총들을 내려놨다는 겁니다. 남수단의 아이들은 울지를 않았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태석 신부님이 선종하고 나서 그 아이들이 통곡을 했다는 겁니다. 사람으로 하여금 사람다운 감정을 갖게끔 만드는 역할을 한 게 이태석 신부님입니다. 그게 인치라는 거죠. 그래서 이태석 신부님은 가톨릭교회 성인으로 뿐만 아니라 한국사회를 위해서 많이 알려져야 할 분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거를 특히 불자인 구수환 감독이 하고 있다는 게 너무 신기하고 이태석 신부님뿐만 아니라 인치가 중요하다는 걸 깨달았던 경험이 있는데 오래 전에 제가 보육원 한군데를 방문했습니다. 신학생 때였는데 아이들이 그때 수녀들이 와서 아이들을 돌봤는데 아이들이 수녀님 치맛자락을 붙잡고 장난을 치는 겁니다. 그래서 아이들이 밝다고 했는데 나중에 아이들한테 얘기를 들었더니 원래 이렇지 않았다. 처음에 보육원 원장은 아이들을 돌보지 않았대요. 보육원 하면서 정부에서 기금 타먹고 아이들이 하는 얘기가 보육원 원장의 식구들이 자기들이 먹다가 남긴 고기 조각들을 쓰레기통에 버리면 자기들이 주워 먹었다는 얘기를 하더라고요. 심지어는 외부에서 사람들이 물건을 기증합니다. 기증해 준 사람들이 아이들하고 사진 찍자고 한다고 합니다. 사과를 기증받았으면 사과를 쥐어주고 그 사람들이 가면 걷고 주인들이 먹고 나머지 썩고 못 먹을 만한 거는 아이들을 줬다고 아이들이 증언을 했어요. 그런데 정부는 돈만 주고 그냥 훑어보고 갔으니까 실상은 몰랐던 거죠. 그러다가 그것이 서울시에 의해서 가톨릭 쪽으로 연락이 와서 수녀님들이 들어가게 됐습니다. 수녀님들이 두 분이 들어가셨는데 아이들이 옆에 안 오더래요. 한 달 동안을 안 오더랍니다. 수녀님들이 끊임없이 한 달 동안 이름 부르고 먹을 거를 챙겨주고 했더니 천천히 다가오더랍니다. 아이들이 사람을 믿는 레벨이 달라요. 사람을 무서워 하면 옆에 안 옵니다. 경계심이 약해지면 천천히 옵니다. 그러다가 이 사람이 정말 나를 위해서 사는 사람이구나. 그러면 그 사람한테 매달립니다. 그런데 더 친밀감이 생기면 그때부터 떨어져서 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놀면서 쳐다본다고 합니다. 있나, 없나. 아주 친해지고 안 떠날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마음대로 논다고 합니다. 아이들이 갖고 있는 친밀도의 변화 과정입니다. 인치가 중요하다는 거죠. 그걸 보면서 아이들을 그냥 무조건 강제적으로 다루는 게 아니고 감화시키는 것이 아이들의 인성을 건강하게 만드는 거라는 거를 수녀님들을 통해서 깨달았던 적이 있었고 또 한 번은 살레시오회에서 아이들에게 강의를 해달라고 요청을 받았습니다. 되게 부담스럽더라고요. 저는 주로 나이 드신 분들을 위해서 강의를 했는데 아이들한테 무슨 얘기를 할지 재미있어 할지 자신 없는 마음으로 갔는데 큰 강당에 아이들이 있는데 딱 반으로 갈라졌습니다. 이쪽 애들은 표정이 없고 이쪽 애들은 일반적인 애들하고 똑같습니다. 강의를 하는데 이쪽 애들은 반응 없고 이쪽 애들은 재미있다고 웃는데. 그게 낯설었습니다. 끝난 다음에 수사님한테 물어봤습니다. 왜 얘네들은 반응이 좋고 얘네들은 반응이 없냐. 수사님이 웃으면서 얘네들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됐고 얘네들은 들어온 지 꽤 된 애들. 수사님들이 애들을 케어해 주면 이렇게 변한다고 현장에서 봤습니다. 그래서 인치가 중요하다. ▷작은 집단에서도 그런데 하다못해 나라의 운영에 있어서도 인치가 얼마나 중요하겠습니까? ▶검찰이 권력을 잡고 수사를 해서 민주주의 국가를 만들겠다는 건 김밥 옆구리 터지는 소리입니다. 그리고 법을 집행하는 사람들이 윤리적으로 떳떳하지 못하면 국민들이 비웃습니다. 본인들이 우선 깨끗하고 당당해야 하거든요. 그런데 국민들이 모이면 검찰 그러면 비웃는다고 합니다. 자기들은 그렇게 살면서 국민들만 잡는다고 하는데 어떤 권력기관도 국민들 앞에서 당당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인치가 필요하고 이 시대의 성인 존경대상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사람들이 그분을 보고 희망을 갖고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이 나와서 모든 사람들의 희망의 대상이 되면 정치인들도 그분의 눈치를 안 볼 수 없죠. 개신교 목사인 전광훈 같은 경우도 신자수가 많다고 정치인들이 거기 가서 아부하고 그런 판인데 만약에 가톨릭교회 성인들이 나와서 전 국민의 존경을 받는다고 하면 모든 정치인들이 다 어떻게 하면 우리를 챙겨주시겠냐고 찾아오겠죠. 저는 그렇게 성인 한 사람이 나오는 것이 가톨릭교회가 다시 살아나는 방법이고 나라가 건강해지는 방법이라고 확신합니다. ▷어른이 정말 그리운 시대입니다. 오늘 깊은 내공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홍성남 신부님 함께 했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김혜영의 뉴스공감2023.05.19
![[오창익의 뉴스공감] 신동호 "문재인, 미래 위해 옷깃 여밀 줄 아는 사람"](//cpbc.co.kr/CMS/news/2022/07/rc/827945_1.0_titleImage_1.PNG)
[오창익의 뉴스공감] 신동호 "문재인, 미래 위해 옷깃 여밀 줄 아는 사람"○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 진행 : 오창익 앵커○ 출연 : 신동호 /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주요발언)- "문재인 대통령, 글에 대해 엄격"- "3~4년은 꿈에서도 연설문 써"- "대통령 언어, 어려움 속에서도 국민에게 희망 줘야"- "윤 대통령 언어, 간결하지만 친절하진 않아"- "도어스테핑 굉장히 좋지만, 반드시 참모 도움 받아야"- "문재인, 말과 글 사람 존중하는 인물"- "文대통령, 선거 도움 안 되는 과제에도 간절"- "문재인, 미래 위해 옷깃 여밀 줄 아는 사람"다른 어떤 때보다 대통령의 말에 대한 국민들의 관심이 높은데요. 취임한 지 두 달된 윤석열 대통령 때문이기도 하고 두 달 전 퇴임한 문재인 전 대통령 때문이기도 합니다. 대통령의 말에 대해서 누구보다 관심이 많았고 그걸 직업으로 삼아서 일하셨던 분인데요.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 신동호 시인 모셨습니다.▷어서 오십시오.▶안녕하세요?▷신동호 시인께서 쓰셨던 연설문일지 모르겠는데 문재인 대통령의 연설을 준비했거든요.잠깐 함께 들어보시죠.“앞으로도 한국은 국제사회와 연대하면서 평화, 인권, 지속가능 개발이라는 UN의 목표를 실현하는데 책임과 역할을 다하고 UN의 궁극적 이상인 국제평화와 안보가 한반도에서 구현될 수 있도록 함께 노력하겠습니다. 국제사회의 지지와 협력으로 칼이 쟁기로 바뀌는 기적이 한반도에서 일어나길 기대합니다.”▷들으시면 언제 연설이라고 당연히 아시죠?▶2020년 UN연설이신 것 같습니다.▷칼을 쟁기로 만든다. 평화방송 청취자들은 익숙한데 성경 말씀을 인용하신 거죠? 이것도 신동호 시인이 쓰신 건가요?▶그렇습니다.▷시인이 청와대 가서 일하는 건 어색하긴 한데요. 시인이 문화부 장관도 했으니까 또 시인이라는 존재는 보통 시인이라는 분들은 등단을 해야만 시인입니까? 아니면 동네에도 시인들도 계시는 것 같은데요.▶기존에 평범함을 벗어나신 분들을 저는 모두 시인이라고 불러도 된다고 생각하고요. 예를 들면 쇼팽 같은 경우는 기존 피아노 연주를 뛰어넘었기 때문에 건반 위의 시인이라고 하듯이 그런 분들 다 시인이라고 불러도 괜찮다고 생각하고 보통 등단을 해야 시인이라고 인정받고 불리게 되죠.▷신동호 시인은 언제 등단하셨습니까?▶부끄럽게도 고등학교 3학년 때 제가 춘천의 강원고등학교 나왔는데요. 저희 문예부 분위기가 그랬습니다. 선배님들도 일찍 20살, 21살에 등단하셨고요.▷20, 21살도 일찍이지만 고3은 더 일찍인데요.▶굉장히 문학에 빠져서 거의 고등학교 생활을 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몇 군데 신춘문예를 보냈는데 강원일보 신춘문예에 선정돼서 등단하게 됐습니다.▷기사도 많이 나왔겠네요. 고3학생이 신춘문예 당선됐다.▶심사위원들이 안 붙이려고 했다는 후일담도 있었는데 지역에서는 잔잔한 이야기가... 잔치는 우리 문예부 선생님들하고 친구들하고 많이 했습니다.▷그러고 나서 그다음에도 문학을 공부하셨나요?▶원래는 과학자가 되고 싶었는데 신춘문예된 이후 심사 위원이셨던 이승환--- 선생님이 한양대 국문과에 계셔서 입학했는데 80년대가 공부만 하기는 어려운 시절이어서 문학공부만 하지는 못하고 거리에서도 많이 돌아다녔습니다.▷운동권 학생이었고 시인이었고 그때 문학공부도 하시고 작품활동도 계속 하셨던 거고요.▶하긴 했지만 고등학교 시절에 공부했던 문학하고 80년대 분위기가 주는 문학이 너무 달라서 쉽게 얘기하면 모더니즘과 리얼리즘인데 상당히 오랫동안 갈등하고 문학을 못했던 시절이 있었습니다.▷그래도 그때 이미 실천문학, 참여문학 이런 개념도 있었고요 저항문학, 민중문학, 민족문학 여러 가지 문학은 다른 영역에 비해서는 활발하고 전망도 있었던 80년대 아닙니까?▶몸은 거리에 있는데 문학은 그 시절의 문학을 잘 못 쫓아갔는데요. 오히려 제가 91년도에 이라는 첫 시집을 냈는데 그때 대학가에서 반향이 좀 있었거든요. 그 이유가 그 동안 많이 봤던 80년대의 저항시절하고 다른 모습을 보였기 때문이라고 평가를 받았거든요. 그런 갈등이 또래들한테는 좋은 의미로 다가갔던 것 같습니다.▷대학시절은 전공은 데모, 부전공은 문학. 이런 생활을 하시고요. 그런데 그런 분이 문재인 청와대에 들어간 건 자연스러운 선택이셨나요.▶저는 남북관계 일에 제 능력을 보태고 싶었는데요. 워낙에 문재인 대통령님이 글에 대해서 애정도 있으신 반면 까다롭기도 하다고 소문이 나셨습니다.▷B컷이라고 하나요? 책을 읽는 장면이나 주변에 책이 있는 장면이 많아서 독서인으로서의 면모는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드는데요.▶참여정부를 겪으면서 노무현 대통령의 연설이나 국민들에게 대통령이 해야 하는 연설에 대해서 기존에 갖고 계신 생각들을 많이 뛰어넘고 싶어 하셨습니다.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훈련 받은 정치권에서 훈련 받은 훌륭한 분들도 많으신데 그런 분들보다는 저하고 손발을 맞춰 보시길 원하셨던 것 같습니다.▷청와대는 언제 들어가셨어요?▶대통령 들어가시는 날 같이 들어가서 나오시는 날 같이 나왔습니다.▷만근을 하셨네요. 청와대 근무는 아침 출근도 빠르고 노동 강도도 세다고 하는데 고생하셨겠습니다.▶일찍부터 준비도 하고 마음가짐도 하고 그렇게 해서 5년을 버텼습니다.▷일 할 만하시던가요. 연설문이나 노동 강도가 센가요?▶대략 우리 대통령님께서 워낙 말과 글로 소통을 하시는 분이라서 저희 행정관님하고 나중에 계산해 보니까 주요 연설문 포함해서 SNS까지 다 해서 대략 5년 동안 3000개 정도를 저희가 썼더라고요. 거의 하루에 두 개 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겁니다.▷굉장히 흔히 하는 말로 빡센 작업이었고 대통령의 말이라는 게 우리가 일기 쓰는 것도 아니고 국민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해외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국제 관계, 북한에도 영향을 미치니까 이게 사실 엄밀하다고 할까요. 이런 대목도 있고 단어 하나도 골라야 하고. 그런 작업을 반복해서 하는 거니까 긴장상태는 늘 높여야 하겠습니다.▶3, 4년은 꿈에서도 연설문을 쓰고요. 요즘도 과민성대장염이 안 고쳐진 것 같습니다.▷대통령의 말은 총평을 하신다면 어때야 합니까? 문재인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통령이라는 존재, 대통령이라는 헌법기관의 말 어떻게 해야 합니까?▶문재인 대통령한테 배운 거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는데 첫째는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는 말이어야 한다. 그래서 어려운 상황에서도 어려움과 함께 동시에 희망을 같이 이야기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그다음에 수많은 국가정책들이 있을 텐데 국가정책들을 국민들에게 솔직하게 꺼내놓고 설명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들이 같이 진행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글을 쓴다는 게 말을 예쁘게 꾸민다, 귀에 들어오게 꾸민다는 게 아니라 중요한 건 글은 도구이고 내용이 있어야 하잖아요. 연설비서관이 다양한 국정현안에 대한 이해를 해야 하고 참고자료도 많이 읽어야 하는 거 아닙니까?▶거의 대통령님하고 똑같이 고민을 해야 하고 또 저희 혼자 하는 건 아니고 정책실도 있고 각 부처들도 있기 때문에 경제현안 같은 거는 부처들한테 도움을 받고 그런 것들을 저희가 숙지를 하고 거기에다가 기재부, 산업부 이런 데서 준비한 수많은 경제 자료들도 대통령 스타일에 맞게 때로는 그 많은 이야기 중에 무엇을 강조해야 할지에 대해서도 저희가 결정해야 할 때가 있습니다.▷물가가 오른다는 이야기를 하더라도 국민들 입장에서 어떤 물가가 오르냐, 기름 값 오르는 거 중요하고 먹거리 값 중요하고 선택하는 면이 있을 텐데 이런 역할을 연설비서관실에서 하셨군요. 윤석열 대통령 취임한 지 두 달 지났습니다. 지난 정부에 참여하셨던 분에게 평가를 요청하는 건 그렇긴 한데 전문가시니까 윤석열 대통령의 말이라는 주제로 평가를 하신다면요.▶제가 평가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라고 생각하는데요. 간결하다는 좋은 점은 있는 것 같은데 그 간결함이 친절하지는 않으신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 같은 경우는 어떻게든 국민의 입장에서 국민의 시각으로 말씀을 하시려고 노력을 많이 하셨고 그거를 쫓아가기가 상당히 힘들었거든요. 윤석열 대통령님의 연설은 좀 일방적이지 않은가. 그런 거에 대해서 주변에서 같이 더 많은 고민을 하시면 국민들에게 더 많은 이해를 받으시지 않을까 생각합니다.▷논란이 많은 약식회견, 도어스테핑이라고 부르는데 그건 어떻게 평가하세요.▶대통령의 언어라면 언어뿐만 아니라 입는 옷, 행동 하나까지도 다 메시지가 되기 때문에 혼자 결정하시는 거는 대단히 위험하다고 생각하거든요. 도어스테핑을 하는 거는 굉장히 좋다고 생각하고 반드시 그걸 하기 전에 전날 밤 참모들이 다음 날 이야기하실 거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준비하고 그것에 대해서 아침에 출근길에 동승하시든지 해서 충분히 이야기를 나눈 상태에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윤석열 대통령 실도 그런 기능을 하는 참모들이 있을 거 아니에요. 예상 질문을 뽑아보고 모범답안을 뽑아볼 텐데 문제는 대통령에게 전달이 되는지 아닌지 모르겠고 또 하나 메모 한 장 없이 늘 기자들의 질문에 답변하더라고요. 가능합니까?▶처음에는 그런 것들에 대해서 참 신선하다고 저는 느낄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그것이 국정이라는 게 처음에 생각하시는 것보다 너무 알아야 할 것, 판단해야 할 것, 결정해야 할 것이 많기 때문에 그것이 가면 갈수록 실수도 하고 부담도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 반드시 참모들의 도움을 받으셔야 한다고 생각합니다.▷국정전반을 완벽하게 파악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잖아요. 일부분에 대한 이해만 있는 거고 가급적 종합적 판단을 하려는 거. 또 하나는 시인이라면 모국어를 가지고 끊임없이 고민하시는 분이니까 대통령의 태도 중에 의아한 게 이를 테면 도어스테핑도 그렇고 공원하면 재미없는데 파크하면 좋다, 법무부 장관 얘기하면서도 영어 잘한다. 이런 말씀을 아주 반복적으로 하시는데 언어에 대해서, 모국어, 이런 부분에 대해서 조언을 해 주신다면요.▶제가 아까 말씀드렸던 태도의 문제인 것 같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국민을 먼저 생각하고 말씀을 하셨기 때문에 국민들이 어떤 언어를 사용하고 국민들의 언어를 사용하려고 노력을 하신 거라면 윤석열 대통령께서는 자기 언어를 쓰시는 것 같거든요. 꼭 나쁜 거는 아니지만 그것이 전달이 안 될 때는 한 번쯤 돌아보고 반성을 해봐야 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그런 것 때문에 지지율이 떨어진다는 얘기를 많이 해요. 태도 때문에. 인사실패도 있지만 여론조사 전문가들 얘기는 태도가 많이 나오거든요. 시인님이 보실 때 태도가 중요한 겁니까?▶두 가지가 같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기존 권위주의를 벗어나는 태도라면 어떤 국민들도 좋아하시고 우리 사회를 진정시키는데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태도들이 혹여나 자기중심적 태도라면 결국은 그것은 국민들하고 거리가 멀어지는 모습이 아닐까 생각합니다.▷문재인 전 대통령이 시집 출간을 축하하면서 막걸리 한 잔 주고 싶다고 했는데 드셨어요?▶찾아뵈러 가야죠.▷가까이에서 5년 동안 연설비서관이면 자주 만나시고 연설문을 갖다드려야 하는데 어떻든가요. 대통령으로서의 문재인.▶사람을 굉장히 존중하시고 저는 개인적으로 5년 동안 일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연설문에 대해서 가타부타 잘했다 못했다 말씀하신 적이 없고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고 하시는데 그 속에서 제가 느낀 거는 이분이 말과 글을 굉장히 존중하고 글을 작성하는 사람에 대한 마음도 똑같이 존중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많이 느꼈습니다. 그런 태도들이 지금의 문재인 대통령을 만든 거라고 생각하고 그렇기 때문에 저도 같이 5년 동안 잘 견딜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비서진, 참모들을 존중하는 태도가 있었다. 그래서 청와대 근무가 기본적으로 힘들었지만 5년 동안 올 수 있었다. 그러면 사실은 여태까지 봤던 리더십은 아닌데요. 장군형 리더십도 있을 거 아닙니까? 이런 건 아니고 어떤 리더십일까요.▶오늘 태도라는 단어가 많이 나오는데 본인이 기본적으로 갖고 있는 정직하고 성실한 태도, 주변으로 하여금 신뢰를 갖게 하시는 게 있고 또 사람에 대한 존중을 옆에서 실제로 느끼기 때문에 이분과 함께 새로운 사회를 만들어 보고자 하는 의욕들도 많이 주시는 것 같은데 한 번도 목소리를 높이는 걸 본 적이 없는데 그런 본인이 스스로 실천하고 스스로 삼가하고 그런 걸 통해서 만든 리더십이라고 저는 생각이 들고요. 그러다 보니까 주변에 그렇게 비슷한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신동호 시인에 동의하는 청취자들이 많을 것 같아요. 문재인 대통령의 태도는 제가 정말 인상 깊었던 건 5.18 첫 번째 기념식에서 유족 분을 안아드리는 장면이 선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5년 동안 그러나 정권 재창출을 못했던 대목은 대통령의 태도는 좋았는데 따라 붙는 말들이 무능했다든지 답답하다든지 혹시 반론을 하신다면요.▶제가 정치평론가가 아니라서 어려운 말씀인데요. 약간 예전에 양명학을 하셨던 어른들이 정인보 선생님이나 그런 분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결과는 중요하지 않다. 선한 동기가 중요하다는 말씀을 많이 하셨는데요. 저는 정권 재창출을 했다, 안 했다를 결과로 보지 않았으면 좋겠고요. 얼마나 5년 동안 해야 할 일들, 예를 들면 어떤 일들은 10년, 20년을 내다보고 해야 할 일인데 이거를 하면 당장 선거에는 도움이 안 될 수밖에 없습니다.그런 일들을 굉장히 많이 생각하셨고 탈원전도 그렇고 탄소중립도 그렇고 한국판 뉴딜도 그렇고 그게 당장 내일 모레 선거를 앞둔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답답한 이야기가 되겠지만 그런 거를 지금 하지 않으시면 아무도 할 수 없다는 것들을 간절하게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저한테 문재인 대통령을 한 마디로 표현해 보라고 말씀하시기에 아직 얼굴도 알 수 없는 미래의 아이들을 위해서, 미래를 위해서 옷깃을 여밀 줄 아는 분이라고 생각한다고 말씀을 드리고 싶고요.▷그런 평가를 받는 문재인 전 대통령은 기분은 좋으실 것 같네요.▶제 입장에서는 5년 동안 봐왔기 때문에 그렇게 말씀드릴 수밖에 없고요. 그것이 당장 선거만 생각하고 하다 보면 얼마나 중요하고 많은 것들을 우리가 못하지 않을까. 이런 생각을 저도 정치권에서 많이 느꼈습니다.▷나도 고3 나이에 시인이 되고 싶거나 시를 읽고 싶다는 분들이 있다면 이 책은 꼭 읽어보라고 권하고 싶은 책이 있다면요.▶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는 책 중에서는 라는 입문 서적이 아니지만 시야를 넓혀줄 수 있는 책인 것 같고요. 그다음에 제가 오르한 파묵이라는 작가를 좋아하는데 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우리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이해를 넓혀주는 것 같습니다. 결국 문학이라는 거는 나 외에 다른 사람들을 이해하는 작업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런 시각들을 넓히는 게 문학을 꿈꾸는 사람들에게 상당히 도움이 될 거라고 생각합니다.▷시집도 좋지만 소설도 좋고 같은 책도 좋다는 말씀 감사하고요.▶물론 성경도 포함됩니다.▷지금까지 전 청와대 연설비서관이셨던 신동호 시인과의 인터뷰였습니다. 감사합니다.▶감사합니다.오창익의 뉴스공감2022.07.14
![[열린 인터뷰] 강혜숙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전시회, 성화 작품에서 희망과 위로를"](//cpbc.co.kr/CMS/news/2021/07/rc/805513_1.3_titleImage_1.jpg)
[열린 인터뷰] 강혜숙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전시회, 성화 작품에서 희망과 위로를" ○ 방송 : cpbc 가톨릭평화방송 라디오 ○ 진행 : 윤재선 앵커 ○ 출연 : 강혜숙(클라라)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대표 * 아래 텍스트는 실제 방송 내용과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 보다 정확한 내용은 방송으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후지시로 세이지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 전시회 예술의전당 한가람미술관, 10월 12일까지 이어져 그림자회화의 거장...정제된 빛과 그림자 신비 담아 성경 주제 성화 작품 전시...평화와 사랑, 공생 추구 세례는 받지 않았으나 구도자의 모습 엿볼 수 있어 [인터뷰 전문] 그림자회화라는 독창적인 장르로 성경 말씀을 그린 특별한 성화 전시회가 열리고 있습니다. 세계적인 카게에의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의 작품을 총망라한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전(展)`인데요. 이색 성화를 포함한 동심 가득한 160여 작품들이 자연의 신비와 생명의 존엄함을 담고 있어 특별함을 선사하고 있습니다. 국내 처음으로 후지시로 세이지의 대형 전시를 기획한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강혜숙 클라라 대표 연결해 전시 소식에 관해 들어보겠습니다. ▷강혜숙 대표님, 안녕하십니까? ▶안녕하세요?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전’을 여는 후지시로 세이지 작가가 세계적인 ‘카게에’ 거장이라고 하는데요. ‘카게에’라는 게 어떤 예술 장르인지요? ▶생소한 단어이실 텐데 우선 단어를 풀어보면 카게에의 카게는‘그림자’, 에는 `그림’을 의미합니다. 스케치한 그림에 빛이 투과될 부분을 하나하나 오려내서 그 뒤에 셀로판지나 조명 필름으로 색채를 입히고 빛을 투과해서 완성해 가는 작업의 회화입니다. ▷작품을 보면 그림자 실루엣 애니메이션이나 중국의 피잉시(皮影?) 같은 그림자극과 비슷해 보이는데요, 어떤 면에서 특별하고 독창적인 장르라고 평가받고 있습니까? ▶그림자극은 아시아의 전통적인 민족예술입니다. 작가는 인도네시아와 중국의 그림자극을 보고서 크게 감동을 받았는데요. 나아가 이 그림자극이 터키나 유럽 등으로 퍼져나가서 전기 발명이나 영화, 이런 새로운 문명으로 이어지게 되잖아요. 영상으로 발전해 가는 계기가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카게에 작업을 시작하게 됐는데요. 작가는 그림자극처럼 움직이는 그림자의 아름다움 속에서 한순간 멈춰진 움직이지 않는 정제된 빛과 그림자의 신비를 담아내기 위해서 남들이 가지 않는 길을 걷기 시작한 거죠. 80년 가까이 작업을 이어왔습니다. 작업을 직접 보시면 아시겠지만 누군가가 오랜 세월 동안 인내로 지속할 수 있는 작업이 아닙니다. 노동이거든요. 나뭇잎 하나하나 섬세하게 오려내서 붙이고 그런 걸 5000여 점을 작업해 온 장인인 거죠. ▷한일 양국의 수년째 껄끄러운 갈등 상황에서 낯설고 생소한 일본의 ‘카게에’ 작품을 대형 전시로 기획한 데는 남다른 의도가 있어 보입니다. 어떻게 후지시로 세이지의 전시를 준비하셨습니까? ▶전시를 준비한 의도는 크게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의미로는 각박하고 자극적인 현대 사회를 살아가는 우리들이 좀 더 희망적이고 문화예술을 접해서 여유를 찾고 노장의 손길에서 빚어낸 작품을 통해서 우리가 서 있는 이 시점에서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하는 바람으로 했고요. 두 번째로는 한일 관계가 어렵습니다. 하지만 가까운 나라이고 뗄 수 없는 빛과 그림자처럼 함께 엉켜왔는데요. 무엇보다도 문화와 예술만큼은 모든 것을 초월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양국이 어려운 시기지만 조금이나마 관계가 유연해지길 바라는 마음으로 기획했습니다. ▷무려 160점이나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는데요. 어떤 작품들인지 소개를 해주시면요? ▶이번 전시는 작가의 창작활동을 연대기로 구성했는데요. 소년 시절의 작품부터 작가로서의 초기작인 모노크롬, 대표적 서유기가 있겠고요. 상아, 최근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습니다. ▷올해 98세의 고령임에도 한국 전시에 특별한 애정을 쏟았다고 들었습니다. 지금도 작품 활동을 하시나요? ▶지금도 왕성하게 작품 활동을 하고 계시고요. 이번 전시를 위해서 특별히 작업한 작품도 있고 신작들도 많습니다. 한국 전시를 위해서 7~8시간 작업하셨습니다. ▷일본에서는 가히 독보적인 인물로 꼽힌다고 하고 한국에서도 60년대, 70년대를 사셨던 분들은 후지시로 세이지 작가를 낯설지 않게 여긴다면서요? ▶이미 60년대, 70년대 선생님이 작업해 온 작품들이 국내에서도 TV나 이런 데서 방영이 됐었어요. 예를 들어서 영창피아노 CF도 있고 피아노 회사의 광고도 다 일본 광고였고요. ▷후지시로 세이지 작가에 대한 관심은 어느 정도예요? ▶일본이 60년대부터 고도 성장기를 맞이하잖아요. 일본의 1세대 아이돌을 만든 장본인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 같습니다. ‘케로용’이라는 스타를 만들어냈고요. 일본 열도를 달구다시피 했으니까요. ▷일본의 아이돌 1세대라고 하니까 어느 정도인지 능히 짐작이 됩니다. 후지시로 세이지의 많은 작품들은 동화를 소재로 하거나 아이들이 좋아할만한 환상적인 작품이고 또 어린이를 위한 인형극 등 인기가 많았는데요. 특별히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한 이유가 있습니까? ▶작가는 무엇보다도 가족애를 되게 중요시했는데요. 1960년대는 그 당시 작가가 극장 객석은 아이들이 주역이라고 할 정도로 캐치프라이를 만들 정도였어요. 아이들 사랑이 각별했고 또 일본의 고도성장기에 어린이 인구가 굉장히 비중을 많이 차지했었는데 1960년대 중반부터 아동극 붐이 일어납니다. 그래서 후지시로 세이지 작가는 연극 관람을 하더라도 학습적으로 선생님과 함께 관람하기보다 가족을 중심으로 해서 부모와 아이가 함께 연극을 관람하고 또 관객과 무대가 하나가 돼서 쌍방향으로 소통할 수 있는 공연을 많이 기획을 했고요. 그리고 무대와 아이들 이어주는 사회자를 세워서 상영 도중에 사회자가 아이들에게 말을 걸기도 하고 객석의 아이들을 무대로 불러서 아이들의 생각을 말하게 한다든지 무대와 객석이 일체감을 주는 방식으로 공연을 했어요. 1960년에서 70년 초반에 팽창하고 있던 고도성장기로 일본의 가족 분열 등이 사회 문제가 됐었는데요. 당시 루이자 메이 올컷의 ‘작은 아씨들’이라는 소설이 있잖아요. 마지막 공연으로 뮤지컬을 상영하게 되는데 가족애를 다시 한 번 강조하게도 하는 공연이었습니다. ▷앞서 그림자 회화로 그린 이색 성화가 전시된다고 소개를 해드렸는데요. 환상적이고 동심 가득한 다수의 작품들에 비해 성화가 많지는 않지만 감동과 여운이 크다는 평가가 있더군요. 독실한 신앙인이신가요? 어떻게 ‘카게에’ 성화를 그렸습니까? ▶작가는 세례는 받지 못했는데요. 어렸을 때 작은아버지께서 종교인이셨고 작가께서 학생 때 주일학교 때 인형극을 해서 봉사활동을 했어요. 그리고 10년 전에 돌아가신 부인의 장례도 성당에서 장례미사로 봉헌하셨고요. 어렸을 때부터 기독교적인 환경에 노출이 되어 있었기에 성서에 대한 관심은 굉장히 많았을 것 같고요. 그리고 작가는 만물을 관장하는 신의 위대함과 성서가 가지고 있는 깊은 의미 그리고 인생의 지침이나 경고같은 게 느껴지는 작업을 무척 하고 싶었고 그래서 그거를 카게에로 표현한 성화가 많은 사람들의 마음에 포근한 한줄기 빛이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작업을 했습니다. ▷작가는 성경을 읽으면 읽을수록 크기와 무게에 압도돼 시각적으로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 현대적인 시점에서 어떻게 그려야할지 고민이 많았다는데요. 어떤 말씀들을 작품에 담았습니까? ▶대표적으로 천지창조입니다. 천지창조만큼 규모가 크고 장엄한 이야기는 없을 텐데 작품은 빛이 있으라. 세상이 시작되면서 인간이 창조되기까지 그리고 아담과 이브의 에덴동산, 노아의 방주, 바벨탑 등 모든 스토리를 담고 있습니다. 작가는 천지창조 그 어떤 이야기를 끄집어내도 그 드라마가 가지고 있는 장엄함에 압도될 정도로 힘을 가지고 있으며 인류 공통이 가지고 있는 근원적이기도 하고 매우 큰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고 의미를 전한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예수나 아시시의 성프란치스코에 대한 내용도 담고 있고요. ▷미켈란젤로의 프레스코화, `천지창조`와는 또 어떤 다른 느낌일지 궁금해집니다. 일본에 있는 후지시로 세이지 미술관 안에 작가가 직접 디자인하고 스테인드글라스 작업을 한 성당까지 있다고 들었습니다. 성화를 일생의 과업으로 여기고 성경 공부를 계속하면서도 세례는 받지 않았는데요. 작가에게 성경과 신앙은 어떤 의미였습니까? ▶성서 공부를 하면서 성서가 가지고 있는 중대한 의미를 알고 성서 안에 내용이 작가 자신의 몸과 마음 안에 충분히 갈무리 되어 가는 시간을 기다리며 작업을 했습니다. 천지창조 작업은 11년간 했는데요. 끊임없이 성서에 대해 생각을 하며 그 사이 작가의 몸과 마음 안에서 신앙이 자연스럽게 자리 잡았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평화와 사랑, 공생의 작품세계를 추구해 온 후지시로 세이지의 카게에와 1985년에 아프리카 난민 구제를 위헤 제작된 앨범 `We are the world`와도 관련이 있다면서요? 어떤 사연이 있는지요? ▶위 아 더 월드(We are the world) 관련 작품을 만들었고요. 일단 평소에 동화세계를 그리던 작가에게는 간단한 작업이 아니었어요. 과연 카게에로 사람들 마음에 호소할 수 있는 작품을 만들 수 있는지 망설였기도 했는데요. 지구상에 여러 가지 빛과 그림자를 그리는 것이 한편으로는 아프리카의 기아야말로 빛과 그림자로 표현해서 전 세계에 호소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을 하면서 작업을 시작했고 그래서 아프리카 관련 자료를 모아서 보는 가운데 아프리카의 역사와 고난을 알게 되면서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 모습에 감동하고 여윈 아이들의 티 없이 맑은 눈을 떠올리면서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전시회는 언제까지 이어집니까? ▶10월 12일까지입니다. ▷관람객들의 반응은 어떻게 살피고 계세요. ▶저희가 홍보가 늦어서 아직은 관람객들이 많지는 않아요. 쾌적하게 관람을 하신다고 후기를 올리시는데 일단 오셨던 분들 중에서 전시회가 감동을 받았다고 하면서 두세 번 오시는 분들이 계세요. 그리고 또 수녀님들도 찾아주시고요. 반응은 좋습니다. ▷전시회가 열리는 장소는 어디입니까? ▶예술의 전당 한가람 미술관 3층입니다. ▷빛과 그림자의 판타지전이 한국과 일본의 어려운 관계와 국민들의 지친 마음에 어떤 메시지가 되길 바라세요? ▶양국 갈등도 그렇고 많은 사람들이 장기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로 많이 지쳐 있는데요. 국경을 넘어서 또 문화와 예술로 소통하고 작가가 추구해 온 가톨릭 정신과도 통하는데요. 사랑과 평화 그리고 공생이 담겨 있는 작품으로 조금이나마 위안이 되고 또 희망의 메시지가 전달되기를 바랍니다. ▷지금까지 구도자의 자세로 자연과 생명을 작품에 담아낸 그림자회화의 거장, 후지시로 세이지의 전시를 기획한 케이아트커뮤니케이션 강혜숙 대표 함께 만나봤습니다. 말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윤재선2021.07.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