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 (15) 신앙고백조학균 신부(예수회, 전례학 박사)미사 전례는 모든 부분이 매끄럽게 연결돼 미사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편안하고 쉽게 하느님을 만나게 해주어 하느님을 흠숭하고 자신의 성화를 위해 힘쓰도록 하는 데 목적을 두어야 한다. 복음 봉독이 끝난 후 사제가 하는 강론의 효과는 미사에 참여하는 신자들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그리스도인들의 삶을 성장시키는" 사제 강론은 미사 맛을 느끼게 해주는 중요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본당 신부의 강론에 대해 좋게 평가하면서 본당 신부를 자랑하는 신자들을 만날 때가 있는데, 이는 그 신부의 강론이 그만큼 신자들 생활에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강론은 거룩한 미사나 그와 유사한 전례의 거행에 속하는데, 집전 사제나 위임된 공동집전 사제가 강론할 수 있지만, 경우에 따라서는 부제도 할 수 있다. 하지만 평신도는 강론할 수 없다"(구원의 성사 64항). 결국 강론은 사제 몫이다. 잘 준비한 강론은 사제 생활에도 도움이 된다. 충분한 기도로써 준비한 강론은 그리스도를 통한 삶의 지혜를 주고 신자들의 의식을 강화시키기 때문이다. 모든 사제들이 강론을 하지만 모든 이들을 똑같이 이해시킬 수는 없다. 전례력과 그 날 성경 말씀을 간결하면서도 쉬운 문장과 단어 그리고 예를 들어가며 적절히 해설한다면 강론을 듣는 이들은 그리스도와 친숙한 시간을 갖게 될 것이다. 하지만 강론을 사제 자질에만 두고 평가하는 것은 옳지 않다. 신자들 입장에서 보면 강론을 잘하는 사제가 좋지만, 사제 입장에서는 강론을 경청하고 반응을 보이는 신자들을 볼 때 힘이 솟는 법이다. 열심히 준비한 내용을 독서대에서 강론할 때 신자들이 주보를 보거나 눈을 감고 있는 모습을 볼 때 사제들은 그리스도의 대리자로서 영적 양식을 제공해 주는 신분으로서의 신원의식을 상실하곤 한다. 필자가 로마에서 유학하던 시절, 강론할 때 아무리 잘 준비를 해도 언어 한계 때문에 의사전달이 잘 되지 않곤 했다. 어느날 열심히 경청하던 분이 오셔서 용기를 주셨다. 강론이 무척 좋았는데, 내용이 길지 않고 필요한 말만 해주니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었고, 많은 생각을 하게 됐다고…. 결국 강론은 ①너무 길어서는 안 된다. (주일 강론은 7~10분, 평일 강론은 4~6분이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②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을 나누는 장소이며 시간이지 토론의 장이어서는 안 된다. ③ 일상적 언어 사용을 통해 묵상할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 줘야 좋은 강론이다. ④ 원고를 읽어 나가는 형식이 아니라, 대화를 하듯이 자연스럽게 하는 것이 좋다. ⑤ 침묵 시간을 통해 강론을 듣는 신자들 마음 속에 하느님 말씀이 새겨지고 자라날 수 있도록 배려해 줘야 한다. 때에 따라서, 사목적 배려에서 평신도가 강론을 할 수 있지만, 강론에 관한 원칙을 지키는 것이 전례의 흐름에 부합한다. 강론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생활 규범을 다루기 때문이며, 그 날의 일용한 영적 양식이기 때문이다.조은일2009.10.27

21차례 보편 공의회가 남긴 신앙의 여정교회 역사와 함께한 보편 공의회 배경과 쟁점·결정·유산 등 소개 보편 공의회로 읽는 가톨릭 교회사 / 조지프 F. 켈리 / 김영식 신부 옮김 / 가톨릭대학교출판부 가톨릭교회의 역사는 스물한 차례의 보편 공의회가 남긴 신앙의 여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제1차 니케아 공의회(325년)부터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에 이르기까지, 각각의 공의회는 중대한 위기와 전환의 순간마다 교회가 믿는 바를 더욱 분명히 고백하고 시대의 물음에 응답하기 위해 모였던 역사적 사건이다. 보편 공의회(ecumenical council)란 정확히 무엇일까? ‘보편’이란 ‘사람이 거주하는 세계’를 뜻하며, ‘공의회’는 책임 있는 사람들이 함께 모여 직면한 주제들을 다루는 공동체의 회의를 의미한다. 현대에는 교황만 공의회를 소집할 수 있고, 교황만 공의회 결정 사항인 교령들의 최종 승인을 내릴 수 있다. 보편 공의회는 교황과 일치돼 가톨릭교회에서 최상의 교도권을 지니며, 가톨릭 신자에게 공의회의 교의적 결정 사항은 성경 및 주교 교도권의 전통적인 가르침과 같은 권위를 갖는다. 미국 존 캐롤 대학교에서 신학·종교학 교수를 지낸 저자는 교회의 역사와 함께한 이들 보편 공의회의 배경과 쟁점, 결정과 유산을 명료하고 균형 있게 소개한다. 처음 여덟 차례 공의회들은 동방과 서방 그리스도인들이 분열되기 전인 11세기 이전에 개최됐다. 모두 그리스어권에서 열렸고, 그리스어로 진행됐다. 첫 여섯 차례 공의회에서는 삼위일체의 본성과 그리스도의 위격 같은 주요 교의 주제를 다뤘다. 이후 열 차례는 서방 교회에서 라틴어로 진행됐다. 종교개혁 전이다. 개신교에 대응하기 위해 열린, 즉 가톨릭 공의회의 원형인 트리엔트 공의회는 1545~1563년 간헐적으로 진행됐다. 이후 열린 제1차 바티칸 공의회(1869~1870년)와는 306년이라는 최장 공백이 있다. 교황에게 모든 교구에 대한 통상적 재치권을 부여해 많은 이가 마지막 공의회라 생각했으나, 1962년 개막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교황과 주교들은 역사상 처음으로 민주사회에서 교육받은 남녀 평신도와 마주해 ‘그간 당연했던 절차들에 대한 의문’에 답해야 했다. “왜 사제들은 아무도 이해하지 못하는 언어(라틴어)로 미사를 집전하는가? 왜 교회 당국은 신학자들의 사상 표현을 침묵시키는가? (중략) 왜 독신 성직자들이 성과 결혼 같은 문제에서 평신도의 의견을 듣지 않는가?”(347쪽) 이처럼 교회와 성사의 본질, 교황과 주교들의 직무, 전례의 의미, 평신도의 소명, 세상과 맺는 교회의 관계 등 그리스도의 본성을 둘러싼 교리 논쟁부터 교회의 쇄신과 개혁, 현대 세계와의 관계 정립에 이르기까지 공의회는 언제나 교회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분기점이었다. 책을 번역한 김영식(서울대교구) 신부는 “보편 공의회는 단순한 회의의 기록이 아니라 교회가 사도들로부터 이어져 온 신앙을 충실히 보존하는 한편, 각 시대가 제기하는 물음에 책임 있게 응답하고자 했던 살아 있는 사건”이라며 “교회는 과거의 유산 위에 머무는 공동체가 아니라, 언제나 복음의 빛 안에서 자신을 새롭게 성찰하고 쇄신해야 하는 공동체”라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 윤하정2026.10.06
![[생활속의 복음] 명사의 사랑, 동사의 사랑](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5/06/ZLW1778042453852.jpg)
[생활속의 복음] 명사의 사랑, 동사의 사랑부활 제6주일 요한 14,15-21 장 밥티스트 드 샹페뉴 작 '선한 목자' ‘정보의 홍수’ 시대에 부각하는 현안은 ‘노아의 방주’(창세 6,18 참조) 역할을 위한 정보의 진위 판별과 우선순위의 배열이다. 획일적 원칙을 제안할 수 없는 판별과 배열은 공통으로 ‘신뢰’를 기반으로 구축된다. 신뢰의 두 가지 근간은 명확한 ‘가치’ 설정과 이에 수반되는 ‘책임’ 이행이다. 조직·기관의 권위를 신뢰의 토대로 간주했던 과거와 달리, 현대 사회에선 신뢰와 권위가 분리되었다. 전통적 권위가 신뢰를 보증하지 않고, 검증된 신뢰가 권위를 창출한다. 정보의 홍수와 더불어 등장한 ‘표현의 홍수’ 현상 중 하나인 한국 사회의 사랑 표현은 과거와 달리 매우 개방적이다. 엄지와 검지를 교차하거나 양손과 양팔로 연출하는 ‘사랑의 상징 기호’(하트), 문자 메시지에 빈번히 입력하는 하트 이모티콘이 이를 대표한다. 사랑의 확산이라는 긍정적 진단 이면에, 이 양상이 간과하는 측면에 대한 숙고가 필요해 보인다. 사랑은 가벼운 유쾌함과 동시에 무거운 책임감을 동반한다. 언어와 기호로 굳이 표현되지 않더라도, 사랑은 책임 있는 실천을 통한 무언(無言)의 힘과 향으로 전파된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요한 14,15) 사랑은 ‘명사’(고백 언어)이며 ‘동사’(수행 언어)다. 다양한 형태를 취하기에 한 문장으로 정의할 수 없는 ‘사랑’은 중압감 있는 인내와 희생을 요청하는 ‘사랑한다’로 증명된다. 동사의 사랑은 과거-현재-미래를 포괄하는 시간적 구성으로 전개된다. 과거의 행적을 종합한 신뢰의 축적으로부터 사랑이 시작된다. 상대에 대한 신뢰는 사랑의 요람이다. ‘신뢰할 만함’(과거)으로부터 귀결된 ‘사랑 고백’(현재)은 상대와 ‘함께 있고’, 상대 ‘안에 있는’ 국면으로 진입한다. 나아가, 사랑은 ‘책임 있는 미래’를 설계한다. 상대의 선(善)을 지향하는 사랑은 ‘너와 나’(우리)의 공동선을 기획한다. 미래적 사랑의 또 다른 표현이 ‘희망’이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구현된 하느님의 사랑을 기술하는 성경은 ‘세상 창조’(시작)부터 약속에 성실했던 ‘신뢰할 만한’ 하느님을 소개한다. 이 약속은 ‘어디서나 우리 옆에 있는 하느님’(성자: 부활하신 그리스도), ‘언제나 우리 안에 있는 하느님’(성령: 진리의 영)을 통해 ‘여기서 지금’ 성취되고 있다. “너희가 내 안에 있으며 내가 너희 안에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요한 14,20) ‘세상 종말’(마침)까지 책임지는 시작이요 마침인 하느님은 ‘하느님 나라’를 향하는 우리를 인도한다. 그리스도인의 소명은 이 “희망에 관하여 누가 물어도 대답할 수 있도록 언제나 준비”(1베드 3,15)하는 태도를 갖추는 것이다. 하느님의 사랑에 대한 압축적 서사가 신앙이 선사된 근거인 “그리스도를 통하여”(로마 1,8)와 사랑으로 생명을 보장받은 상태인 “그리스도와 함께”(필리 1,23), “그리스도 안에서”(1코린 15,22)란 문구로 고백된다. 이 신앙과 사랑은 “그리스도를 향한”(2코린 11,3) 우리의 희망을 통해 궁극적으로 완성될 것이다. 성경의 형성 과정 중 후기에 집필된 요한계 문헌의 저자는 ‘하느님의 사랑’(동사)을 ‘하느님인 사랑’(명사)으로 제시한다. “하느님은 사랑이십니다.”(1요한 4,16) cpbc2026.05.06
![[가톨릭 문화산책]<16>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4)](//cpbc.co.kr/CMS/newspaper/2013/05/rc/452090_1.1_titleImage_1.jpg)
[가톨릭 문화산책] 묵주기도와 함께하는 가톨릭미술(4)예수의 세례, 성자임을 선포하고 새 생명과 구원 약속 조반니 벨리니(1430?~1516)의 작품 '그리스도의 세례'는 1501년께 제작됐다. 13세기 이탈리아 북부 베네토주 도시인 비첸차에 건립된 산타 코로나 성당 안에 특별히 그라지아니 가문을 위해 만들어진 소제대 제대화로서였다. 이 제대화에는 사연이 있다. 예루살렘으로 성지순례를 떠난 비첸차 영주 잔바티스타 그라지아니 가르자도리가 요르단 강을 건너면서 위험한 순례를 무사히 마치면 자신의 수호성인인 요한 세례자를 위해 경당을 봉헌할 것이라 다짐한 게 계기가 됐다. 예루살렘에서 안전하게 돌아온 가르자도리는 맹세한 대로 요한 세례자를 위해 성당 내에 소제대 경당을 세우고, 그곳을 자신과 자신 가족의 무덤으로 쓴다. 제대화는 예수가 요한 세례자에게 물로 세례를 받는 장면이다. 요르단 강에서 받은 예수의 세례는 자신이 하느님의 아들임을 온 이스라엘 백성에게 드러냄과 동시에 구세주로서 공생활을 선포하는 사건이다. 예수의 세례에 관한 기록은 4복음서에서 모두 다루고 있다. 이러한 성경의 내용을 주제로 한 그림에서는 일반적으로 두 손을 모은 예수와 조개껍데기나 접시, 혹은 맨손으로 뜬 물을 떨어뜨리는 요한 세례자의 모습이 그려진다. 또한 비둘기나 하느님 형상, 천사들과 군중이 등장하기도 한다. 그림 중앙에는 예수가 남루한 옷을 걸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를 받고 있다. 왼쪽에는 세 인물이 나무 아래에서 그 광경을 지켜본다. 요한의 어깨 뒤에는 초라한 집 앞에 서 있는 은수자가 보인다. 예수의 머리 위에는 비둘기가 날개를 수평으로 편 채 날고 있고, 그 위로는 양팔을 벌린 성부 하느님이 보인다. 배경은 성경에서 말하는 요르단 강이 아니라 바로 저녁 무렵의 비첸차 지방의 풍경이 묘사돼 있다. 작품 : 조반니 벨리니 작, '그리스도의 세례' (400×263㎝, 1501년께, 이탈리아 비첸차 산타 코로나 성당) ● 빛의 신비 1단 : 예수님께서 세례받으심을 묵상합시다 ● 묵상 단어 : 세례, 죽음, 구원#하느님의 아들인 예수 화면 중심부에 두 손을 경건하게 가슴에 모은 예수의 몸은 오른쪽 발에 무게 중심을 둔 콘트라포스트(Contrappost, 이탈리아어로 '대비된다'는 뜻) 자세를 취해 전성기 르네상스 시대 이상미를 나타낸다. 한 쪽 발로 서서 인체 중앙선을 S자형으로 그리는 인체 입상 형태로 그린 예수는 깊은 생각에 잠긴 모습이다. 팔짱을 끼듯 엇잡은 예수의 손과 요한 세례자가 잡은 그릇에서 떨어지는 물, 비둘기, 성부 하느님이 일직선 상에 자리잡고 있다. 이는 예수가 세례성사를 통해 하느님의 아들이자 하느님의 존재임을 암시하는 것이다. 오래된 그림에서는 예수가 새로운 아담의 탄생이라는 의미로 거의 침수 상태의 나체로 표현되곤 한다. 하지만 이 그림에서 예수는 막 강에서 나온 것처럼 물 밖에 있으며, 허리에는 믿음의 색인 흰옷을 걸치고 있다. 예수의 인간 모습(강생의 신비)은 인간이 원죄로부터 인성 회복의 가능성을 갖게 됐음을 뜻한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새롭게 태어난다. "그리스도 예수님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은 우리가 모두 그분의 죽음과 하나 되는 세례를 받았다는 사실을 여러분은 모릅니까?"(로마 6,3). 우리는 세례성사에서 예수의 죽음과 하나를 이루고, 예수가 죽은 뒤 사흘 만에 무덤에서 다시 살아난 것처럼 인간 부활도 약속된 것을 믿는다. 세례성사는 새로운 삶의 시작이다. 또 예수가 세례를 받는 요르단 강은 구약의 두 가지 사건, 곧 출애굽 때 홍해, 여호수아와 이스라엘이 건넜던 요르단 강을 의미한다. 죽음을 넘어서는 새로운 구원의 시작임을 알려주는 것이다. 예수에게 요르단 강은 세례 후 공생활 동안 겪게 될 수난을 암시하는 장소이다. 그러나 수난과 죽음은 부활로 연결된다. #요한 세례자 구약과 신약을 연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요한 세례자는 예수 머리 위에 물을 부어 세례를 주고 있다. 그는 유다 사막에서 은수자로 살았고, 30세가 됐을 때부터 요르단 강가에서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고 설교하며 회개의 세례를 베풀었다. 전통적으로 요한 세례자는 넝마 같은 짐승 가죽옷을 입고 흐트러진 머리 모양으로 표현된다. 요한 세례자의 상징물로는 갈대로 만들어진 십자가나 어린 양이 그려진다. 이 작품에서 요한 세례자는 왼손에 십자가와 "Ecce Agnus Dei", 곧 "보라,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쓴 두루마리를 들고 있다. 예수 세례를 주제로 다룬 많은 작품에서 요한 세례자는 예수보다 조금 위에서 세례를 주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작품 역시 요한 세례자는 예수보다 높이 서있다. 그러나 그는 가볍게 머리를 숙이고, 한쪽 무릎을 굽혀 예수에게 순종한다는 뜻을 드러낸다. #떡갈나무 아래 세 인물 그림의 왼쪽에는 마므레의 상수리나무 곁에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던(창세 18,1) 야훼를 상기시키듯 떡갈나무 아래에 세 인물이 보인다. 전통적으로 예수 세례 그림에서 인물 또는 천사의 현존은 세상 만물이 성자 예수께 경외감으로 경배드림을 나타낸다. 천사들은 고대의 존경을 표시하는 몸짓처럼 자신들의 겉옷으로 손을 감싸거나 예수께서 물에서 나오셨을 때 주님의 몸을 덮고자 옷을 들고 있는 모습으로도 그려진다. 이 작품에서는 베네치아 회화의 영향을 받은 벨리니의 색에 대한 감각답게 아름답고 우아한 세 인물을 서로 다른 색의 의상과 포즈로 묘사한다. 세 인물은 신학적인 삼덕, 곧 믿음과 소망과 사랑을 상징한다. 이들 중 두 인물은 예수가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받기 위해 벗어 놓은 옷을 들고 있고, 가운데 인물은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있다. 이 동작은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나머지 당신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보냈고, 하느님과 같은 본성이신 예수가 자신을 낮추고 완전히 비우는 케노시스(Kenosis, 자기를 비움)의 겸손을 실천했다는 것을 강조한다. #성부 하느님의 기쁨 하늘에는 성령의 비둘기와 성부 하느님이 인자하신 아버지의 모습으로 나타난다. 세례 순간 성부 하느님은 마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고 말씀하시며 팔을 벌려 외아들의 현존을 기쁨으로 드러내는 듯하다. 성부 하느님과 성령의 비둘기, 예수 그리스도는 그림의 중심 세로축으로 삼위일체를 이룬다. 이러한 삼위일체 상징은 요한 세례자의 발 아래 토끼풀에서도 알 수 있다. 하나의 줄기에서 세 잎이 돋아나 삼위일체를 상징한다. #설교가 앵무새 그림 전경에 나뭇가지에 앉아 있는 붉은 털과 회녹색 날개의 앵무새는 일반적으로 설교가와도 같은 '웅변의 상징'을 나타낸다. 벨리니의 그림에서 앵무새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르 3,2)고 외치며, 예수를 "보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시다"(요한 1,29)라고 말하는 요한 세례자의 설교를 강조하기 위해 그려졌다. 앵무새는 요한 세례자의 설교를 자연의 깊은 곳까지 알리는 역할을 한다. 자연 풍경은 중앙 요르단 강을 따라 굽이굽이 이어진 산이 황금빛 저녁노을로 물든 하늘과 연결돼 중앙 예수와 함께 일치를 이룬다. 신성하기까지 한 풍경 속에서 하느님 음성이 다시 들리는 듯하다. "동이 틀 때 떠오르는 태양은 놀라운 도구가 되어 지극히 높으신 분의 위업을 선포한다"(집회 43,2).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죄를 씻어버릴 뿐 아니라 예수의 구원을 세상에 선포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살고 죽는 것이야말로 그리스도인으로서 새로운 생명을 얻는 세례의 진정한 완성일 것이다. 윤인복 교수(아기예수의 데레사, 인천 가톨릭대 대학원 그리스도교미술학과)조은일2013.05.07

붉은 말처럼 힘차게 영성의 초원 달리자병오년 새해 결의를 다지는 책교회 밖 달력으로 새해가 시작됐다. 병오년, ‘붉은 말의 해’라고 한다. 불의 기운과 말의 역동성이 더해져 어느 때보다 에너지 넘치는 한 해가 기대되는 2026년. 다방면에서 새로운 결의를 다질 수 있는 책들과 함께 달려보자. 평화가 모두와 함께 / 레오 14세 교황 / 가톨릭출판부 편집부 옮김 / 한영만 신부 감수 / 가톨릭출판사 레오 14세 교황 초기 연설과 강론 「평화가 모두와 함께」는 레오 14세 교황이 목자로서 새로운 여정을 시작한 이후 초기 연설과 강론을 엮은 책이다. 교황이 어떠한 세계관을 지니고 있으며 교회를 어떻게 이끌어 나가고자 하는지 명확한 방향성을 확인할 수 있다. 전 세계를 향한 당부는 물론 각국의 지도자에게 보내는 호소, 주교단과 추기경단을 향한 촉구, 새 사제들에 대한 권고, 청년들에게 건네는 격려 등 폭넓은 청중에게 전하는 메시지를 담고 있다. 모두에게 일관되게 강조하는 점은 바로 ‘평화·일치·사랑·경청’이다. 즉 인간 존엄의 회복, 평화를 위한 실질적인 행동, 공동체의 일치를 위한 경청, 그리고 가장 약한 이들과의 연대로, 오늘의 인류가 가장 시급하게 회복해야 할 가치들이다. 교황은 신앙의 테두리를 넘어 오늘을 살아가는 모든 이에게 우선순위를 다시 세우도록 요청한다. “루카 복음사가가 표현한 바와 같이(루카 2,19.51 참조) ‘신발레인(synballein, 마음속에 간직하다-편집자 주)’의 역량, 곧 생각의 조각들을 하나로 모으는 역량이 필요합니다. 피상적인 것을 경계하고, 삶의 조각들을 기도와 묵상 안에서 하나로 모으면서 스스로에게 이렇게 물어보십시오. 내가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이 나에게 무엇을 가르쳐 주는가? 내 여정에 대해 무엇을 말하고 있는가? 주님께서는 나를 어디로 이끌고 계시는가?”(190쪽) 한영만(라디오바티칸 담당) 신부가 감수했고, 글마다 한 신부의 해제를 더해 교황의 말씀을 보다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구성했다. 지구 수도원 / 크리스틴 발터스 페인트너 / 맹영선 옮김 / 생각비행 자연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삶으로의 초대 “나무와 꽃들은 창조된 자기 모습 이외의 다른 존재가 되려고 노력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진정한 본성을 거부하지 않음으로써, 어떻게 성도로서 자신의 삶을 살아낼 수 있는지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성도가 된다는 것은 본질적인 본성을 받아들이는 것을 의미하며, 이것이 우리의 소명을 실현하는 길입니다.”(107쪽) 「지구 수도원」은 빠른 속도와 소비주의, 산만함이 지배하는 삶에서 벗어나 자연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 그 안에서 하느님을 만나는 삶으로 독자들을 초대하는 책이다. 가톨릭 신자이며 영성 신학 박사로 수도원 영성을 현대인의 삶과 연결하는 작업을 해온 저자는 이번 책에서 지구를 우리의 원초적인 수도원, 즉 최초의 성전으로 간주한다. 인류가 야기한 기후위기에 대한 가장 좋은 해결책으로 프란치스코 교황은 ‘관상’을 언급했다. 관상 수행의 열매 중 하나는 ‘전체성(wholeness)’을 기억하는 것이다. 모든 것이 하느님 사랑 안에서 존재하고 그 사랑으로 서로 연결되어 있음을 깨닫는 것이다. 「지구 수도원」은 창조세계를 마주하는 일상에서 관상을 수행하고, 자연과의 친밀함을 통해 경이와 감사를 수행할 수 있도록 안내한다. 품격 있는 황혼 / 브라이언 그로간 신부 / 김학준 신부 옮김 / 바오로딸 나이듦은 쇠퇴가 아니라 무르익음 만 나이가 통용되고 있지만, 해가 바뀌면 자연스레 한 살이 더해진다고 생각하는 이가 많다. 특히 어느덧 황혼에 접어들었다면 새로운 한 해가 더욱 남다를지 모르겠다. 「품격 있는 황혼」은 늙어가는 것을 받아들이되 수동적으로 끌려가지 않도록, 주체적으로 만들어나갈 것을 당부한다. 책은 나이 듦이 쇠퇴가 아니라, 지난 세월의 경험과 지혜를 바탕으로 더 무르익어야 하는 때라고 강조한다. 특히 하느님께서 그 여정에서 함께하신다는 위로와 희망을 전한다. 아일랜드의 더블린 밀타운 신학교 학장을 지냈고 현재 영성학 명예 부교수인 저자는 자신의 경험과 시·기도문·일화 등을 통해 나이 듦·죽음·죽음 이후의 영광까지, 하느님 나라로 옮겨가는 여정을 어떻게 준비하고 받아들일지 깊이 묵상하도록 이끌어 준다. “너는 늙어가지만 여전히 나의 사랑이다. 나는 너를 머리부터 발끝까지 사랑한다. 너의 주름진 손, 앙상한 다리, 하얗게 센 머리카락, 깜박깜박 잊어버리거나 기도에 집중하지 못하는 것조차 사랑한다. 무엇보다도 나는 너의 마음을 사랑한다. 산만함 속에서도 나를 향해있는 너의 마음을!”(60쪽) 영혼과 육신을 살리는 음식이야기 / 노봉수 / 한마음문화사 신앙의 식탁에 차려진 성경 속 음식 탐구 새해의 시작과 함께 가장 많이 하는 다짐은 건강관리, 좀더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다이어트일 것이다. 식품에 대해 다양한 책을 집필해온 서울여대 식품공학과 노봉수(야고보) 명예교수가 「영혼과 육신을 살리는 음식이야기」를 펴냈다. ‘신앙의 식탁’이라는 부제에 걸맞게 그간의 책과는 달리 식품과학자의 시선으로 성경 속의 음식을 조명한다. 책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뉜다. ‘하늘의 양식 : 성경 속 음식이야기’에서는 성경에 등장하는 음식들의 의미를 탐구하고, ‘신앙과 음식의 만남’에서는 성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리 삶과 밀접한 토마토, MSG 등을 통해 신앙적인 메시지를 전한다. “빵은 성경에서 매우 일상적인 음식으로 등장하지만, 예수님은 이를 통해 깊은 영적인 메시지를 전달하신다. 빵은 고대 근동 지역에서 기본적인 주식으로,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적인 음식이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 일상적인 빵을 하느님의 은혜와 영원한 생명을 상징하는 매개체로 사용하셨다.”(62쪽) 저자는 “책을 집필하며 구약을 비롯한 성경 해석에 대한 미숙한 부분을 많이 느꼈다”며 “식품이라는 친숙한 소재를 통해 성경을 이해하는 색다른 접근법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12.24

WYD ‘관광’ 아닌 ‘순례’불편한 잠자리도 ‘감사’[이영제 신부의 신부님, WYD가 뭐에요?] 이경상 주교가 5일 서울대교구 신림성모성당에서 숙박시설 점검차 침낭에 누워 있다.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와 관련된 성스러운 땅, 곧 성지(聖地)와 순교자들의 유해가 안치된 곳 또는 성인들의 유적지를 방문해 경배를 드리는 신심 행위를 ‘순례’라고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순례란 개인이나 가족들이 예루살렘 성전에서 거행되는 축제에 참여하기 위해 연례적으로 떠나는 여행을 말합니다. 이 개념이 확장되어 하느님께서 마련하신 지상의 인생 여정을 넘어서 천국을 향한 모든 사람들의 삶에 대한 비유로도 사용됩니다. 그리스도교 모든 신자들 역시 천상 예루살렘을 궁극적인 목표지로 삼고 신앙의 여정을 걸어가는 사람들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본다면, 세계청년대회(World Youth Day)는 교황님의 초대에 응답하여 전 세계 청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고 하느님의 부르심을 되새기는 신앙의 여정이기에 이 대회에 참여하는 이들을 순례자라고 부릅니다. 전통적으로 순례는 오로지 하느님만을 생각하며 회개와 신앙의 쇄신을 위해 걷는 여정입니다. 그렇기에 순례자들은 온갖 형태의 불편함과 어려움을 극복하면서 길을 걷는 것을 중요한 요소로 여깁니다. 그리스도교 신자들은 이러한 길 위에서 만나는 순례자들을 환대함으로써 순례 여정을 돕는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세계청년대회를 준비하는 지역 교회는 청년들을 환대하고 그들에게 기꺼이 잠자리와 식사를 제공합니다. 이러한 숙박의 종류는 가장 먼저 홈스테이가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의 방법으로 순례자들은 성당과 성당의 부속 시설에서 머물면서 순례 여정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성당의 시설만으로는 턱없이 부족합니다. 대개 학교나 공공시설의 강당이나 체육관을 빌려 청년들을 맞이합니다. 혹자는 청년들을 왜 이렇게 불편한 곳에서 잠을 재우느냐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순례자들은 모든 불편함을 기꺼이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으며, 기쁘게 대회 여정을 소화합니다. 2011년 스페인 마드리드 세계청년대회에 참여했던 저 역시도 잠잘 곳이 부족해 먼지 날리는 운동장에서 하늘의 별을 보며 몸을 누였던 놀라운 추억이 있습니다. 전국의 각 교구는 이러한 숙박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각 지방자치단체 및 교육청과 긴밀한 협의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대회를 준비하는 서울대교구의 경우, 문화체육관광부를 중심으로 국·공립 및 사립대학, 전문대학 등 숙박을 위해 교육부와 논의 중입니다. 서울시와 서울시교육청은 서울시 내의 초·중·고등학교와 지자체 공공시설들 가운데 실제로 숙박 가능한 곳들을 조사하고 분석하여 필요한 시설물 점검과 보완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부와 지자체의 많은 분께서 적극적으로 도와주고 계시지만,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시설 정비와 대회 앞뒤 기간까지 합했을 경우 열흘 이상이 필요합니다. 특히 학교 시설을 숙박시설로 사용한 선례가 없기에, 비숙박시설을 숙박시설로 사용했을 때 발생할 수 있는 법률적·행정적 문제들은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 또 책임 소재는 어떻게 명확하게 할 것인지 등의 중요한 결정사항들이 있습니다. 아울러 숙박시설 대관료와 시설 이용료, 공공시설 측의 전문 인력 인건비 등 조율도 필요합니다. 이는 서울 WYD 조직위가 전적으로 부담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부분인 지역 성당을 중심으로 학교 담당 봉사자들을 선정해 시설 담당자들과 소통하고, 해외 청년들을 맞이하고 안내하는 과업도 준비해야 합니다. cpbc2026.11.04

아시아 농인 신자들, 신체·언어 장벽 넘어 친교 나눠제4회 아시아 가톨릭농인대회 신자·사제·수도자 등 250명 참가 농인이 조장, 봉사자는 수어 배워 16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제4회 아시아 농인 대회 개막미사에서 아시아 각지에서 모인 농인 신자들이 수어로 의사를 표현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아시아 각국의 농인 신자들이 한데 모여 언어와 신체적 장벽을 뛰어넘어 신앙을 나누고 하나의 형제 자매라는 친교를 공유했다. 서울대교구가 주최하고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지도 박민서 신부)가 주관한 ‘제4회 아시아 가톨릭 농인대회’가 15~21일 6박 7일간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에파타성당과 의정부교구 한마음수련장 등지에서 열렸다.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창세 1,10)를 주제로 한 이번 행사에는 한국을 비롯, 아시아 각국 농인 신자들과 사제·수도자 등 250여 명이 참가했다. 2015년 태국 방콕에서 처음 열린 아시아농인대회는 3년마다 아시아 각국 농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신앙과 친교를 나누는 자리다. 2018년 필리핀 마닐라, 2023년 인도네시아 자카르타를 거쳐 서울에서 네 번째 대회를 맞았다. 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16일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개막 미사에서 “주제성구처럼 하느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시고 보시니 좋았다고 말씀하셨다”며 “하느님의 시선 안에는 듣는 이와 듣지 못하는 이의 구별이 없으며, 농인이든 청인이든 각 사람은 있는 그대로 하느님의 눈에 좋은 존재”라고 말했다. 이어 “아직 갈 길이 멀지만, 서울대교구는 장애인 사목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면서 “우리는 장애를 가진 젊은이들이 이동이나 참여의 장벽 없이 내년 서울 세계청년대회라는 거대한 축제의 중심에 당당히 자리하기를 바란다”고 강조했다. 16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제4회 아시아 농인 대회 개막미사에서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가 격려사를 발언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주한 교황대사 조반니 가스파리 대주교는 레오 14세 교황의 축복을 전하며 농인대회가 교회의 참된 모습을 보여준다고 역설했다. 가스파리 대주교는 “성전에서 어떤 언어는 음성으로, 많은 언어는 수어로 표현되며, 이 모든 언어가 이해되고 있다”며 “교회는 다양한 목소리와 다양한 손, 다양한 얼굴들이 모인 하나의 친교”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여러분이 신앙생활을 온전히하는 데 공동체에 요구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며 “오직 여러분만이 나눌 수 있는 것에도 두려워하지 말길 바란다. 교회는 여러분 모두를 온전히 필요로 한다”고 말했다. 대회 기간에는 아시아 농인 교회의 과거·현재·미래를 살펴보는 강의와 각국 공동체 소개 및 나눔, 수어 교리·성경·기도·미디어에 관한 연구와 발표 등이 진행됐다. 폐막 미사는 각국 전례와 문화를 반영한 미사가 봉헌됐다. 농인 신자들이 한국 문화와 교회를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도 마련됐다. 참가자들은 경복궁·광화문·청계천·롯데월드·롯데타워·임진각 파티마성당·참회와속죄의성당 등을 방문하고, 한국 전통 공연을 관람했다. 16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봉헌된 제4회 아시아 농인 대회 개막미사를 봉헌한 뒤 아시아 각지에서 모인 농인 신자들이 기념촬영하고 있다. 서울대교구 홍보위원회 제공 특히 이번 대회에서는 농인 참가자들이 조별 프로그램에서 직접 조장을 맡았고, 원활한 소통을 위해 봉사자들이 매주 미국 수어를 배우며 준비해왔다. 서울가톨릭농아선교회 지도 박민서 신부는 “이번 대회가 농인과 청인의 벽을 허물고 친교를 나누며 일치할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밝혔다. 이준태 기자 ouioui@cpbc.co.kr이준태 2026.10.21
![[출판] 일치의 성사-성체성사와 교회 -주님 만남과 일치로 이끄는 성체성사](//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1330_1.1_titleImage_1.jpg)
[출판] 일치의 성사-성체성사와 교회 -주님 만남과 일치로 이끄는 성체성사전 일치평의회 의장 카스퍼 추기경, 성체성사 다양한 측면 다뤄 일치의 성사-성체성사와 교회(발터 카스퍼 지음/조규만ㆍ조규홍 옮김/분도출판사/9500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3년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발표하며 성체성사가 그리스도인 개인의 삶은 물론 교회 전체의 삶의 원천이자 중심이며 절정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듬해엔 '성체성사의 해'를 선포, 전 세계 신자들이 성체성사가 지닌 의미를 되새기고 성체성사가 중심이 된 삶을 살도록 독려했다. 옛부터 교부와 신학자들은 성체성사를 일치의 성사로 이해하며 성체성사의 본질을 꿰뚫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끈"이라 했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적 일치의 성사"라고 했다. 이 시대 가톨릭을 대표하는 신학자 중 하나인 발터 카스퍼(전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사진) 추기경은 "교회는 선교를 통해 언제든 성체성사가 본질적으로 항상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04년 성체성사의 해를 맞아 이 책을 펴내며, 성경에 분명하게 나와 있는 성체성사와 일치, 성체성사와 교회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독일 로텐부르크-슈트트가르트 교구장으로서 사목 현장에서 보고 느낀 현실과, 교의신학자로서 연구한 이론을 바탕으로 성체성사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봤다. 카스퍼 추기경은 엠마오로 떠나는 두 제자 이야기(루카 24,13-35)를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에 주목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에게 절실한 질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물으며 "성체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알아보고 체험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그분께 다가가게끔 이끌어 주시는지 하는 물음에 몸소 대답하셨다. 이는 엠마오의 두 제자가 얻은 답과 다르지 않다.… 미사 중에 우리는 그분이 누구이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알아볼 수 있다"(44~45쪽). 빵을 떼어 나누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다는 것은 우리도 빵을 떼어 나눔으로써, 즉 나누고 베풂으로써 서로가 그리스도인임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카스퍼 추기경은 남을 밟고 올라서고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 현대인의 삶을 경고하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줄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성체성사는 미사를 통해 이뤄지므로 "주일미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알아보기, 성체성사의 참뜻에 따라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고백하기, 그것이 우리의 모토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일치의 성사인 성체성사가 교회일치운동에 어떠한 영적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교회일치는 전례일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성체성사에만 집중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일치의 형태적 다양성은 결핍이 아니라 풍요로움의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교회가 추구하는 바도 하나의 획일화된 교회가 아니라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다"(87쪽). 카스퍼 추기경은 이와 함께 성찬 전례 때 나누는 평화의 인사 의미를 강조했다. "성찬 전례 때 우리는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일치와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에페 2,14)이심을 증거하는 평화의 축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평화이시다"(163쪽).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7.02

인터넷 팟캐스트로 '하느님 알리기' 행복팟캐스트 진행자 재미교포 전경아, 심지니씨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으로 복음화에 힘쓰고 있는 전경아(왼쪽)ㆍ심지니씨."안녕하세요, 여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입니다. 전 세계 청취자들이 저희 방송을 들으며 하느님 참사랑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새로운 방식의 새 복음화에 동참한 이들이 있다. 인터넷 라디오 팟캐스트(www.sdcatholic.com) 진행자 전경아(체칠리아, 39, 샌디에이고 한인본당)ㆍ심지니(리디아, 26)씨다. 이민 2세대인 이들은 1인 미디어 시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매주 낭랑한 목소리로 청취자에게 다가가는 이들의 스튜디오는 각자의 자동차와 방, 옷장 등이다. 회당 20분 분량의 방송은 장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휴대전화와 스마트기기로 녹음해 인터넷에 올린다. 각자 따로 방송하기에 매주 2회 분량이 업데이트된다. 방송 내용은 △이민사회 속 신앙생활 이야기 △가톨릭 뉴스 △가톨릭 Q&A △성가 △교회 영어 표현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주제들이다. 방송을 듣다 보면 몰랐던 생활성가에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고, 교회 영어단어와 상식을 배우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 세계 교회 소식도 접할 수 있고, 감동적인 사연에 훈훈함도 느낄 수 있다. 2012년 8월 첫 방송 이후 벌써 45회를 넘는 꾸준한 방송으로 새로운 개인 가톨릭 미디어 매체로 자리 잡고 있다. 현지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다 만난 두 사람은 방송이란 탤런트를 '하느님 일'을 위해 쓰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들의 뜻을 주님께서도 아셨는지, 어느 날 본당의 한 신자가 신기하게도 이들에게 휴대용 음성 녹음기를 선물하는가 하면 본당 누리방을 관리하는 신자가 방송 편집 프로그램을 구해주기도 했다. 변변한 장비가 없어 목소리와 배경음악을 따로 녹음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르지만, 이들은 방송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더 은총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씨는 "완벽한 방음을 자랑하는 집 벽장에서 매주 녹음을 하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심정으로 열심히 성경과 교회 서적을 뒤적이며 주제를 찾고 대본을 쓴다"면서 "무작정 시작한 탓에 녹음작업 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도 많지만, 신기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제작 관련 일을 하는 심씨는 "막상 생업이 아닌 일을 하려다 보니 가끔 시간에 쫓기거나 녹음했던 파일이 사라져 애를 먹는 경우도 많다"면서 "그럴 때면 종종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란 생각이 들지만, 이제 이 시간만큼은 신앙의 참뜻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여겨 기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주부인 전씨는 "방송을 하는 엄마를 보고 아이들도 어느새 성가를 따라 흥얼거리고, 종종 방송을 들은 본당 신자 분들이 감동했다고 말할 때면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보시기 좋은 모습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심씨는 "주일 미사만 참례하던 제가 방송을 하면서 저의 신앙 지식도 키울 수 있게 돼 좋다"면서 "생활성가 가수 인터뷰 등 새 코너를 많이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이 방송을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님께서 만들어주시는 이 방송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고, 이 땅에서 아름다운 천국을 함께 맛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조은일2013.03.12
![[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 (28) 영성체](//cpbc.co.kr/CMS/newspaper/2010/03/rc/328726_1.1_titleImage_1.jpg)
[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 (28) 영성체조학균 신부(예수회, 전례학 박사) 신자들은 영성체를 하기 전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사제가 성체를 들고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하고 외치면 신자들은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하고 고백한다. 이때 "하느님의 어린양"은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께 붙인 칭호이며 동시에 묵시록(19,9)에 나오는 성경 말씀에 근거를 둔 고백이다. 그리고 신자들의 응답은 백부장의 고백(마태 8,8)에 근거해 겸손한 자세와 확고한 믿음에서 나오는 고백이다. 미사에서 신자들의 고백 목소리는 중요하지만 성체를 모시기 전에 하는 고백은 신자들이 평화스러움과 함께 벅찬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굳은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성체하는 모든 신자들은 성체를 영하기 전에 바로 옆 형제ㆍ자매와 평화를 나눈 것을 기억하면서 기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영성체 행렬에 참가하는 신자들은 선택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면서 더불어 경건하게 제단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영성체는 사제가 먼저 성체와 성혈을 영하고(이때 주례사제가 큰 성체의 일부분을 성합에 넣어 미사에 참여한 신자에게 주는 것은 사목적으로 좋은 배려라고 할 수 있으며, 성혈은 일반적으로 사제만 마신다), 특별하게 허용된 경우(미사 거행에서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부제와 다른 사람들, 수도원 미사 또는 '공동체' 미사를 드리는 공동체 회원들, 신학생들, 영성 수련, 피정,영성 모임 등 사목 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의 경우-미사경본 총 지침 283항)에는 양형 영성체도 매우 바람직하다. 성체를 줄 때 사제는 성체를 영할 신자에게 들어 보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신자들은 "아멘"이라는 동의를 표한다. 이때 아멘은 자신에게 보여지는 밀떡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고백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모든 이들이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셔야 진정한 영성체에 참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체만으로도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교회간의 일치, 혹은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생각으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혹은 개신교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눠 주는 경우가 있는데, 결코 나눠 주어서는 안 된다. 성체를 영하는 신자들은 손으로 영하거나(왼손으로 받고 오른손으로 집어 영한다) 입으로 직접 성체를 영하는데, 한국 교회에서는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때 신자들은 사제가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쉽게 받기 위해 사제가 성체를 주는 높이에 맞춰 손을 내민다. 너무 높게 혹은 낮게 손을 내밀 때 그리고 손을 너무 가슴 쪽으로가 있으면 사제들이 성체를 분배하는 데 힘들기 때문이다. 또 성체 분배를 도와주는 평신도들은 교회에서 주관하는 과정을 이수함으로써 주례 사제를 도와 성체를 분배할 수 있다. 단 성체분배 때 성체가 부족하다고 여겨 성체를 쪼개는 행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성체를 쪼개는 것은 사제(때론 부제)에게 부여된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이다.조은일2010.03.09
![[구요비 주교의 생활속의 복음]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9/02/YBD1788316106258.jpg)
[구요비 주교의 생활속의 복음]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카스파르 다비드 프리드리히 작 ‘해 질 무렵의 형제들’. 저는 신학생 시절 윤리신학을 공부하며, 성경을 통하여 계시된 여러 계명이 하느님의 영원한 법을 이루고 있음은 자명한데, 자연법(自然法)도 신법(神法)에 속한다는 사실에 매우 놀랐던 적이 있습니다. 자연법은 “바로 하느님께서 우리 안에 부여하신 지성의 빛입니다. 이 빛을 받아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하는지를 알게 됩니다. 하느님께서는 창조 때에 인간에게 이 빛과 법을 주셨습니다.”(토마스 아퀴나스) 이는 하느님의 모습대로 창조된 인간은 그분의 창조 질서와 구원 계획을 올바로 깨닫고 이에 참여함으로써, 그 뜻이 세상과 역사 안에서 이루어지도록 협력하는 존재임을 잘 보여줍니다. 이 세상과 우주 만물 안에 하느님의 법과 질서가 아로새겨져 있고 인간은 이성의 빛으로 그 안에서 하느님의 현존과 손길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역사 속 예언자의 사명과 역할이 이 지점에서 이루어졌습니다.(에제 3,17 참조) 예언자의 말씀은 단지 인간의 죄와 과오에 대한 하느님의 징벌과 질책을 전달하는 것만이 아닙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 ‘나와 너’의 친밀한 관계를 회복하고, 인간의 회심과 개과천선을 바라시는 애정 어린 하느님의 호소입니다. 이렇듯이 하느님은 단지 당신의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을 당신의 파트너로 격상시켜 동등한 존재로 대해 주시는 사랑의 하느님이십니다.(1요한 4,17 참조) 그러므로 하느님의 사랑에 응답하는 구체적 규범인 율법도 사랑이어야 하며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10 참조)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외아들로서 하느님의 사랑을 살아가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오늘 복음에서 설명해 주십니다. “네 형제가 너에게 죄를 짓거든, 가서 단둘이 만나 그를 타일러라. (⋯) 그가 네 말을 듣지 않거든 한 사람이나 두 사람을 더 데리고 가거라. (⋯) 그가 그들의 말을 들으려고 하지 않거든 교회에 알려라.”(마태 18,15–17) 죄란 ‘인간이 하느님으로부터 멀어져 피조물에게로 향하는 것’이라고 할진대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이웃이 나에게 죄를 지은 경우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일까요? 무엇보다도 예수님은 그 죄가 어떠한 것이든 나에게 해를 입힌 사람들의 불의와 잘못을 나의 주관적이고 세상적인 규범으로 판단하고 단죄하고 처벌하려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이는 하느님의 자녀로서 나 자신이 먼저 하느님의 생각과 마음을 깊이 헤아리고 그분 사랑의 본성 안으로 들어가 머무름으로써 그분을 대신하여 그분의 심정으로 나에게 죄지은 사람을 대하라는 사랑의 초대입니다. 이 하느님의 사랑은 인간의 본성 안에 새겨져 있기에 자녀들인 우리는 이 내면의 사랑을 계속 키우고 활짝 꽃피워야 하겠습니다. 이를 위하여 예수님은 공동체적인 기도의 위력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십니다.(마태 18,19–20 참조) cpbc2026.09.02
![[전문]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부활 담화](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4/01/blC1775029666406.jpg)
[전문] 대전교구장 김종수 주교 부활 담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에페 2,14) + 찬미 예수님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십자가상 죽음으로 우리를 하느님 아버지와 다시 화해시켜 주신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께서 부활하셨습니다. 주님을 찬미합시다. 알렐루야! 유다 지도자들의 모함으로 예수님께서 로마 병사들에게 붙들려 가실 때 제자들은 모두 도망갔습니다. 베드로 사도만이 예수님 뒤를 따라갔지만, 밤새 세 차례나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증언을 듣고 제자들은 다시 예루살렘에 모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고 또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찾아오셔서 처음 건네신 말씀이 평화의 인사입니다. 요한복음 20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평화가 너희와 함께!”라고 세 차례 축복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 그분께서는 당신의 몸으로 유다인과 이민족을 하나로 만드시고 이 둘을 가르는 장벽인 적개심을 허무셨습니다.”(에페 2,14)라고 선언합니다. 성경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로 이루어진 구원을 평화라고 말합니다. 왜 그럴까요? 성경이 가르치는 평화는 태초에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만물이 ‘하느님 보시기에 좋았다.’고 한 상태를 잘 보존하는 것을 말합니다. 인간은 다른 동물들과는 달리 하느님의 숨을 받아 하느님을 닮게 창조되었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하느님처럼 살아야 하는 것이 하느님의 뜻입니다. 죄와 연루되지 않고, 하느님을 아버지로 하는 한 형제로 서로 사랑하며 살면서 하느님께서 맡겨주신 세상을 잘 돌보는 것이 평화입니다. 이 모든 것은 우리가 하느님 안에서 하느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는 뱀의 유혹에 넘어가 스스로 하느님이 되고 싶었습니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른다는 마음을 빼앗긴 것입니다. 이것이 모든 죄의 뿌리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느님을 떠난 인간에게 죽음이 들어왔습니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 시작하신 구원경륜은 죽음이 지배하는 죄의 역사를 다시 하느님 품 안으로 회복시키는 역사입니다. 그런데 구약성경의 긴 역사는 인간의 힘으로 인간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구원의 메시아를 약속하셨고, 이스라엘 백성은 메시아와 그분이 맺어주실 새 계약을 기다렸습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인간의 모습으로 오셨습니다. 그분이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 오시어, 이제 그분이 가시는 길은 우리도 갈 수 있게 보여주시려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우리의 죄를 당신 몸에 지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십자가 위에서 죄값을 치르셨습니다. 그리하여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에게 죄의 용서와 영원한 생명의 구원이 주어졌습니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느님께서 태초에 원하셨던 하느님 닮은 인간의 모습을 회복한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평화’입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는 우리의 평화이십니다.’라고 선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 일은 예수님이 오시기 수백 년 전 이사야 예언자가 이미 알려준 소식입니다.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 우리는 모두 양 떼처럼 길을 잃고 저마다 제 길을 따라갔지만, 주님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이 그에게 떨어지게 하셨다.”(이사 53,4-6)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님은 평화에 이르셨고, 그 평화를 사도들에게 주셨습니다. 우리 모두 사도들을 통하여 주님의 평화를 받았습니다. 우리를 위해 죽으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을 찬미하며, 예수님 안에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평화의 은총을 받으신 여러분 모두에게 축하의 인사를 드립니다. 이제 우리는 평화의 사도입니다. 평화는 하느님과의 화해이며, 이웃 형제자매들과의 화해는 물론 모든 피조물과의 화해를 의미합니다. 바오로 사도는 말합니다. “그분 십자가의 피를 통하여 평화를 이룩하시어 땅에 있는 것이든 하늘에 있는 것이든 그분을 통하여 그분을 향하여 만물을 기꺼이 화해시키셨습니다.”(콜로 1,20)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하느님의 자비를 믿으십시오. 하느님께서는 당신 아들을 희생하여 우리와 화해하셨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느님 한 아버지의 자녀들입니다. 시기와 질투 그리고 싸움과 전쟁은 화해와 반대되는 것들입니다. 그런 것들은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이들의 삶이 아닙니다. 기뻐하는 이와 함께 기뻐해 주시고, 슬퍼하는 이웃과 함께 울어 주십시오. 지금도 국제사회의 패권을 장악하기 위하여 혹은 권력자가 자신의 자리를 유지하고 확장하기 위하여 무모한 전쟁을 일으켜 평범한 시민 특히 어린아이들까지 희생시키면서도 아무런 반성의 태도를 보이지 않습니다. 이번 춘계주교회의에서도 이런 상황에 아픈 마음으로 동참하면서, 신자 여러분에게 단식과 기도로 세상의 평화를 위해 함께 해주실 것을 호소하였습니다. 지구 생태계 역시 우리 인간과 화해를 기다리며 신음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시며, 당신을 닮은 우리에게 모든 피조물을 맡기셨습니다. 생태계 파괴의 주된 원인은, 보다 편리한 삶에 대한 욕망과 그에 상응하는 돈벌이입니다. 우리는 조금 천천히 조금 불편하게 살아갈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이 우리의 정신적이고 영적인 삶을 위해서도 유익합니다. 창조주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셨듯이, 우리는 우리에게 맡겨진 피조물을 돌보아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고 하신 모습을 보존해야 합니다.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우리는 하느님의 지극한 자비로 구원받은 부활의 증인이며 평화의 사도입니다. 가난한 이웃에게 사랑을 베풀며 부활의 기쁨을 전하고 진정한 형제애로 평화를 이루십시오. 지구 생태계도 하느님 자녀들의 자비로운 손길을 고대하고 있습니다. 주님 부활을 온 마음으로 축하드립니다. 알렐루야! 알렐루야! 2026년 4월 5일 주님 부활 대축일에 천주교 대전교구장 주교 김종수 아우구스티노 이준태 2026.04.02

고개 숙인 키 작은 보라색 꽃, 성모의 겸손 닮았네[‘성서와함께’ 가꾸는 기도의 정원] 13. 제비꽃 성서와함께 제공 지난 글에서 성모 승천 대축일을 앞두고 성모님을 상징하는 백합에 관해 이야기했다. 주님 탄생 예고를 그린 회화 작품에 마리아의 순결을 나타내는 흰 백합이 종종 등장한다고 언급했는데, 그 자리에 다른 꽃도 있었던 모양이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가브리엘 천사가 하느님의 계획을 전한 다음 기쁜 마음으로 하늘로 돌아가려는 순간, 마리아의 방 창문 앞에 보라색 제비꽃이 피어있는 것을 보았다. ‘마리아가 정말 좋아하는 꽃인가 보구나.’ 천사는 잠시 걸음을 멈추고 제비꽃을 축복한 다음 그 꽃에 마리아의 겸손한 마음을 닮은 은은한 향기를 불어넣었다. 높이가 10㎝ 내외에 불과한 자그마한 제비꽃은 키 큰 식물들 사이에서 존재감이 묻히기 쉽고 외형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지만, 오히려 이 같은 특성 때문에 오랫동안 겸손의 상징으로 여겨져 왔다. 성경에 직접적으로 언급된 구절은 없으나, 그리스도인들은 작지만 당찬 제비꽃의 모습에서 마리아의 수수한 아름다움과 겸손을 떠올리고, 하느님의 계획에 평생 순종한 성모님의 믿음과 인내를 묵상했다. 또 다른 전설에 의하면, 예수님께서 못 박히신 십자가가 땅에 그림자를 드리우자 그 자리에 보라색 제비꽃이 피었는데, 꽃이 큰 슬픔에 잠겨 고개를 떨구었다고 한다. 실제로 제비꽃은 꽃줄기 끝 부분이 아래를 향해 휘어지면서 꽃이 옆을 향해 피어 마치 고개를 숙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제비꽃은 흰색·노란색 등 다양하지만, 보라색이 가장 대표적이다. 푸른 기운이 강하게 도는 진한 보라색을 ‘바이올렛’이라고 하는데, 제비꽃속이라는 뜻의 라틴어 비올라(Viola)에서 유래한 단어다. 보라색은 빨간색의 집중력과 에너지, 파란색의 차분함과 명료함을 모두 담고 있는 오묘한 색으로, 가톨릭교회에서는 참회·슬픔·애도를 상징한다. 한편 흰색 제비꽃은 이탈리아 산 지미냐노의 성녀 세라피나의 꽃으로 알려져 있다. 세라피나는 늘 어려운 이들을 위해 봉사하고, 몸이 아파 병상에 누워 지내면서도 자기보다는 다른 이들을 먼저 생각하며 기도했다고 한다. 겨우 열다섯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는데, 그녀가 누워있던 나무판에서 시신을 들어 올리자 그곳에 흰 제비꽃이 피어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화려한 장미 같은 사람도 아름답지만, 하느님께서 정말 예뻐하시는 이는 겸손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섬기고 타인의 시선에 흔들림 없이 묵묵하게 일하는 제비꽃 같은 사람이 아닐까. 신지현cpbc2026.08.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