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활의 기쁨, 안방까지 전달합니다” cpbc 부활 특집 프로그램 풍성[부활특집] cpbc프로그램 주님 부활 대축일을 맞아 cpbc 가톨릭평화방송 TV와 라디오가 부활의 기쁨을 나누고, 그 의미를 더욱 체현할 수 있도록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마련한다. TV 2026 신앙체험수기 다큐멘터리 ‘나에게 오신 빛’ 3부작 인생 한 페이지에서 만난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다큐멘터리로 재탄생했다. 가톨릭평화신문이 13년째 공모받아 연재하는 신앙체험수기는 하느님과 진솔한 만남을 담은 신자들의 작품으로 주님 사랑을 찬미할 기회를 선사하고 독자들에게는 신앙을 성숙하게 하는 기회를 제공한다. 올해 당선작들이 지면을 넘어 안방극장에도 찾아간다. 방송 : 5~19일 일요일 오전 11시 30분, 재방송 : 6~20일 월요일 오후 8시 / 8일~22일 수요일 오후 7시 30분 / 9~23일 목요일 오전 10시 20분 / 11일~25일 토요일 오후 4시 김대우 신부의 부활 편지 “사랑하는 이여, 그대의 영혼이 평안하듯이 그대가 모든 면에서 평안하고 또 건강하기를 빕니다.” 신자들에게 보내는 김대우(수원교구) 신부의 부활 영상 편지, 성주간을 앞두고 1박 2일 다녀온 수도원 피정에 대한 나눔 등 김 신부의 묵상을 바탕으로 삶 안에서 부활을 사는 데 필요한 노력을 성찰한다. 방송 : 5일 오전 10시 30분 / 오후 8시 허규 신부와 듣고 보는 신약 성경 “부활이 뭔가요?” 청년의 물음에 허규(서울대교구) 신부가 답했다. 드라마 ‘예수 그리스도 생애’ 가운데 부활 이야기를 꼽아 전하는 일대일 부활 밀착 과외, 어렵게만 느껴지는 성경을 청년과 대화하면서 풀어낸다. 방송 : 5일 오전 11시 / 오후 7시 30분 주님의 마지막 일주일 머리에 재를 얹고 단식하며 ‘먼지로 돌아갈 것’을 기억하는 사순 시기, 네 복음서 속 수난기를 따라 예수 그리스도의 마지막 여정을 김덕재 서울대교구 신부와 함께 묵상한다.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부터 수난과 죽음, 부활에 이르기까지 복음서별 말씀을 차례로 살펴보는 시간. 그리스도교 신앙의 핵심 전례인 사순과 부활의 의미를 한껏 집약했다. 방송 : 3~4일 오전 2시 (라디오 : 2~4일 오전 5시) 특집 다큐 ‘바티칸 사람들’ 세계에서 가장 작은 국가, 교황청이 있는 바티칸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일상을 밀착 취재한 프랑스-이탈리아 공동 제작 다큐멘터리. 일반인은 접근이 불가한 바티칸 내부 모습을 카메라에 생생히 담았다. 이곳에서 생활하는 종교인과 평신도 약 5000명의 일상을 조명한다. 방송 : 4일 오후 5시 애니메이션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꿈’ 박해받는 조선의 신자들을 위해 이 땅에 당도하고자 온갖 애를 쓰다 중국 땅에서 선종한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신앙, 조선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볼 수 있다. 방송 : 4일 오전 6시 30분, 재방송 : 5일 오전 2시 40분 애니메이션 ‘홀리 몰리’ 아이들을 위한 10분짜리 짧은 만화로 고전 성경 이야기를 재구성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이해하기 쉽게 돕는다. ‘최후의 만찬’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 ‘빈 무덤’을 주제로 다룬 만화가 생생하게 안방 극장을 찾는다. 방송 : 2~4일 오전 8시 50분, 재방송 : 5일 오전 3시부터 3편 연속방송 영화 ‘마태오 복음’ 이탈리아 거장 피에르 파오로 파솔리니 감독의 영화(1964). 마태오 복음을 바탕으로 예수님 생애를 전기 다큐 형식으로 만나볼 수 있다. 방송 : 2일 오후 10시 40분 영화 ‘벤허’ 로마의 압제와 친구의 배신으로 왕자에서 죄수로, 노예에서 귀족으로 신분이 바뀌며 기구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한 유다 청년의 파란만장한 삶을 그리스도의 생애와 교차시켜 보여준다. 1959년 개봉 당시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휩쓰는 대기록을 세운 작품이다. 방송 : 4일 오후 10시 40분 미사 중계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 부활 제2주일 자비 주일을 맞아 하느님의 자비를 기리는 공개 미사를 천주교 사도직회(팔로티회)와 공동으로 서울 동성고등학교 대강당에서 봉헌한다. cbpc 가톨릭평화방송·평화신문 사장 성기헌 신부와 천주교 사도직회 김태광 신부가 공동집전한다. 2023년부터 이어진 하느님의 자비 주일 미사 중계는 죄에서 회복하기를 간절히 바라는 신자들이 자비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마련되고 있다. 방송 : 12일 오후 3시 라디오 미니 드라마 ‘2026 신앙체험수기’ 제13회 신앙체험수기 공모전 수상작이 성우들의 열연으로 엿볼 수 있는 듣는 드라마로 재탄생했다. 7분 분량의 미니 드라마로 각색된 일상 속 신앙의 신비가 청취자에게 깊은 감동을 선사한다. 방송 : 3월 30일~4월 3일 오후 4시 50분 재방송 : 4일 오후 12시부터 5편 연속방송 기도의 오솔길 전영금 수녀입니다 ‘평화가 너희와 함께’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후 올리브 산에 이르기까지 40일간의 약 330㎞ 여정. 그분의 발길이 닿은 다양한 장소에서 선포하신 부활 메시지를 음악과 함께 되새겨본다. 전쟁과 상처로 지친 오늘날 예수님이 전하신 ‘평화’란 무엇일까? 방송 : 6일 오후 4시, 재방송 : 6일 오후 11시 이 주의 책 ‘사제의 책’ 가톨릭 사제가 쓰고 번역하며 추천하는 영성 도서를 통해 부활 대축일의 기쁨을 온전히 맞이한다. 서울대교구 햇살사목센터 소장 조재연 신부가 전하는 「우리 아이도 신앙을 가지면 좋겠다」는 성가정을 꿈꾸는 모든 신자 가정에 희망의 등불을 선사할 예정이다. 방송 : 5일 오전 8시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회개와 절제, 성찰로 하느님과의 관계를 정화하고, 부활의 의미를 더욱 깊이 체험하는 영성의 시간을 갖는다. 가톨릭찬양크루 ‘열입곱이다’부터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 이희천 신부, 반주하는 시인 박은지(소화데레사)씨 등 활기를 선사하는 초대 손님들이 기다리고 있다. 방송 : 3월 31일~4월 3일 오후 12시 15분 박예슬 기자 okkcc8@cpbc.co.kr박예슬2026.04.01
![[생활속의 복음] 보라, 십자 나무!](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3/11/1QN1773195886755.jpg)
[생활속의 복음] 보라, 십자 나무!사순 제4주일 요한 9,1-41 가브리엘 뷔거 작 ‘슬픔의 성모’, 1868년 감각기관의 분류를 기준으로 오감은 시각·청각·후각·미각·촉각으로 구성된다. 선천적인 오감을 잘 활용함으로써 인간은 삶의 질을 향상하고, 타인과 함께 느끼는 공감력을 형성한다. 한 감각기관이 제 기능을 수행할 수 없다면, 다른 기관이 이를 보완하거나 대체하도록 신체는 대응체계를 수립한다. 보는 눈으로 듣거나 맛보는, 듣는 귀로 맡거나 만지는 가능성이 열려있다. 이 오감은 오용되거나 남용될 수 있다. 편견과 아집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인간은 보고 듣고 싶은 것만을 보고 듣기에 오류를 범하고, 한시적 감각에 치우친 무분별한 생활 태도로 인해 죄악을 행한다. 성경은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를 오감과 결합한다. “이스라엘아, 들어라(쉐마)!”(신명 6,4)로 시작하는 구약의 대표적 신앙고백과 ‘믿음은 들음에서 온다’(로마 10,17 참조)고 설파한 바오로 사도의 훈시는 청각과 관련된다. 신앙인의 합당한 품위를 상징하는 “그리스도의 향기”(2코린 2,15)는 후각과, 하느님을 찬미하도록 안내하는 “주님께서 얼마나 인자하신지 여러분은 이미 맛보았습니다”(1베드 2,3)는 미각과 연동된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짐’(루카 8,44 참조)으로 성사된 하혈하는 여자의 치유와 “믿음과 사랑의 갑옷”(1테살 5,8)을 피부에 밀착하여 입으라는 권고는 촉각과 연관된다. 신앙의 궁극적 완성 상태를 시사하는 “얼굴과 얼굴을 마주 볼 것입니다”(1코린 13,12)는 시각을 통해 묘사된다. 성경의 치유 기적에는 오감과 직결된 사례가 비교적 많다. 복음서 중 가장 후대에 집필된 요한 복음의 ‘태어나면서부터 눈먼 사람의 치유’에는 두 가지 특징이 나타난다. 하나는 ‘치유의 재료’다. 재료 없이 말씀(의지)만으로 성취된 ‘하느님의 창조 업적’(창세 1장 참조)처럼, 대개의 치유 기적은 예수님의 말씀만으로 실현된다. 반면 눈먼 사람의 치유에는 재료 사용(흙과 예수님의 침: 요한 9,6 참조)이 인상적이다. 이는 인간 창조의 재료인 ‘흙과 하느님의 숨’(창세 2,7 참조)을 연상케 한다. 다른 하나는 ‘치유의 절차’다. 치유 사건이 예기치 않게 한순간 벌어지지 않고, 흙으로 기존의 눈을 완벽히 차단한 후에 실로암 못의 물로 씻는 일련의 순서로 진행된다. 옛 눈에서 새로운 눈으로의 변화를 주도한 정화하는 물은 옛 인간에서 새로운 인간으로 변모시키는 세례성사의 물을 암시한다. ‘복된 들음’(복음)으로 시작된 신앙은 맡고 맛보며 만지는 ‘복된 여정’을 거친 후에 ‘복된 봄’(지복직관)으로 완성된다. ‘멀어 있는’ 눈은 하느님에게서 ‘멀리 있는’(하느님을 보지 못하는) 인간 실존의 한계를 표상한다. 하느님과 ‘가까이 있는’(하느님을 보는) 사람에게는 측정 가능한 시력과 다른 ‘새로운 눈’이 있다. 얼굴과 얼굴을 맞대듯 ‘하느님을 보는 때’를 고대하는 이들에게 요한복음은 예수님을 “보라”(1,36; 12,15)고 조언한다. 사순 시기는 부활한 예수님을 보는 새로운 눈을 얻기 위한 재료와 절차를 고민하는 기간이다. 이 재료와 절차를 안내하는 전례 문구는 다음과 같다. “보라, 십자 나무.”(성금요일의 십자가 경배예식 중) cpbc2026.03.11
![[김일두 신부의 생활속의 복음] 순교 신앙](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9/16/ChD1789523197819.jpg)
[김일두 신부의 생활속의 복음] 순교 신앙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루카 9,23-26 카라바조 작 ‘ 성 베드로의 순교’, 1601년. 국민의 생명·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 특히 순국·순직한 이들을 향한 합당한 예우는 국가의 도리다. 애국·애민을 입증한 순국과 같이, 박해 시대의 순교는 처형당함으로 증거한 ‘애교’(愛敎)이며 ‘크고 깊은 신앙’이다. 그런데 형식상 순국과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는 순교의 본질은 신앙의 결실인 생명이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자기 목숨’과 ‘목숨’의 의도적 분리가 암시하듯, 교회가 순교자를 공경하는 근본 이유는 신앙으로 ‘잃은 생명’(자기 목숨) 때문이 아니라 신앙으로 ‘찾은 생명’(목숨) 때문이다. 세례 예식의 도입부에서 예비 신자는 “신앙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줍니까?”라는 집전자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구원과 생명을 연계한 요한 복음은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17,3)라고 정의한다. 정보 습득과 원리 통달로 오인될 소지가 있는 ‘지혜’(아는 것)를 경계했던 바오로 사도(1코린 1,27 참조)와 달리, 창조하고 구원하는 ‘하느님의 지혜’를 부각하는 지혜서는 ‘신앙이 주는 생명’을 이렇게 표명한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3,9) 사람에 대한 신망, 가치에 대한 신념, 사물에 대한 신용, 권위에 대한 신뢰 등 우리말 ‘믿다’(信)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의미가 신을 향한 신앙 안에 수렴된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말씀’(진리)을 믿고, ‘예수님과의 관계’(사랑)를 믿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선포) ‘말씀하는 예수님을 현존케 하는’(성사) 교회의 권위를 믿는다. ‘신앙이 주는 생명’(하느님을 아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동의’(진리를 깨달음)이며, ‘아들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아들 안에 있는’(요한 14,10 참조) 성부와 성자의 관계처럼 ‘예수님과의 친밀한 만남’(사랑 속에 있음)이다. 조선 후기 세상의 도(道)나 이치를 새롭게 해명하는 학문인 서학(西學)으로 전래된 천주교는 ‘절대 존재’(신)를 인격적 대상인 ‘아버지’ 혹은 ‘님’으로 소개했다. 세례로 천주교에 입문한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파격적 신원을 부여받았다. 오늘날과 같은 성경 지식을 접하지 못했던 신앙 선조들은 간단명료하게 집필된 한문 교리서를 기반으로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강렬하게 품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 이 정황을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항한 도발로 규정한 위정자들은 천주교인을 숙청하는 박해를 자행하였다. 순교는 죽음으로 입증한 신앙이 아니라 ‘신앙으로 증거한 생명’이다. 순교자는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과 난해하지 않은 명료함을 특징으로 하는 ‘진리’와 계산하지 않은 확고함과 간사하지 않은 순박함을 특징으로 하는 ‘사랑’에 근거하여 ‘하느님 밖에 사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하느님 속에 사는’ 목숨을 구했다. cpbc2026.09.16
![[출판] 일치의 성사-성체성사와 교회 -주님 만남과 일치로 이끄는 성체성사](//cpbc.co.kr/CMS/newspaper/2013/07/rc/461330_1.1_titleImage_1.jpg)
[출판] 일치의 성사-성체성사와 교회 -주님 만남과 일치로 이끄는 성체성사전 일치평의회 의장 카스퍼 추기경, 성체성사 다양한 측면 다뤄 일치의 성사-성체성사와 교회(발터 카스퍼 지음/조규만ㆍ조규홍 옮김/분도출판사/9500원)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2003년 회칙 「교회는 성체성사로 산다」를 발표하며 성체성사가 그리스도인 개인의 삶은 물론 교회 전체의 삶의 원천이자 중심이며 절정이라고 강조했다. 또 이듬해엔 '성체성사의 해'를 선포, 전 세계 신자들이 성체성사가 지닌 의미를 되새기고 성체성사가 중심이 된 삶을 살도록 독려했다. 옛부터 교부와 신학자들은 성체성사를 일치의 성사로 이해하며 성체성사의 본질을 꿰뚫었다. 성 아우구스티노는 "일치의 표징이요 사랑의 끈"이라 했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회적 일치의 성사"라고 했다. 이 시대 가톨릭을 대표하는 신학자 중 하나인 발터 카스퍼(전 교황청 일치평의회 의장, 사진) 추기경은 "교회는 선교를 통해 언제든 성체성사가 본질적으로 항상 존재해 왔다는 사실을 확신할 수 있도록 최대한 노력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2004년 성체성사의 해를 맞아 이 책을 펴내며, 성경에 분명하게 나와 있는 성체성사와 일치, 성체성사와 교회의 연관성을 설명했다. 독일 로텐부르크-슈트트가르트 교구장으로서 사목 현장에서 보고 느낀 현실과, 교의신학자로서 연구한 이론을 바탕으로 성체성사의 다양한 측면을 살펴봤다. 카스퍼 추기경은 엠마오로 떠나는 두 제자 이야기(루카 24,13-35)를 묵상하며 예수님께서 빵을 떼어 나누자 제자들이 예수님을 알아본 것에 주목했다. 그는 그리스도인에게 절실한 질문,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본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물으며 "성체성사를 거행함으로써 예수님을 알아볼 수 있다"고 했다. "예수님은 우리가 어떻게 그분을 알아보고 체험할 수 있는지, 또 어떻게 그분께 다가가게끔 이끌어 주시는지 하는 물음에 몸소 대답하셨다. 이는 엠마오의 두 제자가 얻은 답과 다르지 않다.… 미사 중에 우리는 그분이 누구이며 우리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지 알아볼 수 있다"(44~45쪽). 빵을 떼어 나누자 예수 그리스도를 알아보았다는 것은 우리도 빵을 떼어 나눔으로써, 즉 나누고 베풂으로써 서로가 그리스도인임을 알아볼 줄 알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카스퍼 추기경은 남을 밟고 올라서고 경쟁에서 이겨야 살아남는 현대인의 삶을 경고하며, 예수님이 우리를 위해 당신 자신을 내주신 것처럼 우리도 다른 이들을 위해 자기 자신을 내줄 것을 당부한다. 그리고 성체성사는 미사를 통해 이뤄지므로 "주일미사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 알아보기, 성체성사의 참뜻에 따라 우리 자신을 그리스도인으로 고백하기, 그것이 우리의 모토가 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는 또 일치의 성사인 성체성사가 교회일치운동에 어떠한 영적 풍요로움을 가져다줄 수 있는지를 고민했다. 교회일치는 전례일치가 아니라는 점을 강조하며 성체성사에만 집중해서는 안 될 것이라고 했다. "일치의 형태적 다양성은 결핍이 아니라 풍요로움의 표현이다. 그런 의미에서 가톨릭교회가 추구하는 바도 하나의 획일화된 교회가 아니라 다양성 안에서의 일치다"(87쪽). 카스퍼 추기경은 이와 함께 성찬 전례 때 나누는 평화의 인사 의미를 강조했다. "성찬 전례 때 우리는 서로 평화의 인사를 나누며 일치와 평화를 위해 기도한다.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에페 2,14)이심을 증거하는 평화의 축제다.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평화이시다"(163쪽).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조은일2013.07.02

인터넷 팟캐스트로 '하느님 알리기' 행복팟캐스트 진행자 재미교포 전경아, 심지니씨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인터넷 팟캐스트 방송으로 복음화에 힘쓰고 있는 전경아(왼쪽)ㆍ심지니씨."안녕하세요, 여기는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디에이고입니다. 전 세계 청취자들이 저희 방송을 들으며 하느님 참사랑을 느끼셨으면 좋겠어요." 지구 반대편 미국에서 새로운 방식의 새 복음화에 동참한 이들이 있다. 인터넷 라디오 팟캐스트(www.sdcatholic.com) 진행자 전경아(체칠리아, 39, 샌디에이고 한인본당)ㆍ심지니(리디아, 26)씨다. 이민 2세대인 이들은 1인 미디어 시대 인터넷 방송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있다. 매주 낭랑한 목소리로 청취자에게 다가가는 이들의 스튜디오는 각자의 자동차와 방, 옷장 등이다. 회당 20분 분량의 방송은 장소,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의 휴대전화와 스마트기기로 녹음해 인터넷에 올린다. 각자 따로 방송하기에 매주 2회 분량이 업데이트된다. 방송 내용은 △이민사회 속 신앙생활 이야기 △가톨릭 뉴스 △가톨릭 Q&A △성가 △교회 영어 표현 등 다양하고 재미있는 주제들이다. 방송을 듣다 보면 몰랐던 생활성가에 저절로 흥얼거리게 되고, 교회 영어단어와 상식을 배우며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전 세계 교회 소식도 접할 수 있고, 감동적인 사연에 훈훈함도 느낄 수 있다. 2012년 8월 첫 방송 이후 벌써 45회를 넘는 꾸준한 방송으로 새로운 개인 가톨릭 미디어 매체로 자리 잡고 있다. 현지의 한 라디오 방송국에서 일하다 만난 두 사람은 방송이란 탤런트를 '하느님 일'을 위해 쓰기로 마음을 모았다. 이들의 뜻을 주님께서도 아셨는지, 어느 날 본당의 한 신자가 신기하게도 이들에게 휴대용 음성 녹음기를 선물하는가 하면 본당 누리방을 관리하는 신자가 방송 편집 프로그램을 구해주기도 했다. 변변한 장비가 없어 목소리와 배경음악을 따로 녹음해야 하는 어려움도 따르지만, 이들은 방송하면서 오히려 자신이 더 은총을 받고 있다고 입을 모았다. 전씨는 "완벽한 방음을 자랑하는 집 벽장에서 매주 녹음을 하는데,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심정으로 열심히 성경과 교회 서적을 뒤적이며 주제를 찾고 대본을 쓴다"면서 "무작정 시작한 탓에 녹음작업 하느라 밤을 새우는 일도 많지만, 신기하게 하나도 힘들지 않다"고 말했다. 영화제작 관련 일을 하는 심씨는 "막상 생업이 아닌 일을 하려다 보니 가끔 시간에 쫓기거나 녹음했던 파일이 사라져 애를 먹는 경우도 많다"면서 "그럴 때면 종종 '내가 왜 이걸 하고 있지?'란 생각이 들지만, 이제 이 시간만큼은 신앙의 참뜻을 알아가는 시간으로 여겨 기쁘게 하고 있다"고 말했다. 아이 둘을 키우는 주부인 전씨는 "방송을 하는 엄마를 보고 아이들도 어느새 성가를 따라 흥얼거리고, 종종 방송을 들은 본당 신자 분들이 감동했다고 말할 때면 이것이 바로 하느님께서 보시기 좋은 모습일 것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심씨는 "주일 미사만 참례하던 제가 방송을 하면서 저의 신앙 지식도 키울 수 있게 돼 좋다"면서 "생활성가 가수 인터뷰 등 새 코너를 많이 만들어 더 많은 이들이 방송을 들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들은 "주님께서 만들어주시는 이 방송을 통해 더 많은 이들이 세례를 받고, 이 땅에서 아름다운 천국을 함께 맛보았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조은일2013.03.12
![[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 (28) 영성체](//cpbc.co.kr/CMS/newspaper/2010/03/rc/328726_1.1_titleImage_1.jpg)
[조학균 신부의 미사 이야기] (28) 영성체조학균 신부(예수회, 전례학 박사) 신자들은 영성체를 하기 전 신앙고백을 해야 한다. 사제가 성체를 들고 "하느님의 어린양,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분이시니 이 성찬에 초대받은 이는 복되도다" 하고 외치면 신자들은 "주님, 제 안에 주님을 모시기에 합당치 않사오나 한 말씀만 하소서. 제가 곧 나으리이다"하고 고백한다. 이때 "하느님의 어린양"은 요한 세례자가 예수님께 붙인 칭호이며 동시에 묵시록(19,9)에 나오는 성경 말씀에 근거를 둔 고백이다. 그리고 신자들의 응답은 백부장의 고백(마태 8,8)에 근거해 겸손한 자세와 확고한 믿음에서 나오는 고백이다. 미사에서 신자들의 고백 목소리는 중요하지만 성체를 모시기 전에 하는 고백은 신자들이 평화스러움과 함께 벅찬 기쁜 마음으로 자신의 굳은 신앙을 표현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영성체하는 모든 신자들은 성체를 영하기 전에 바로 옆 형제ㆍ자매와 평화를 나눈 것을 기억하면서 기쁜 마음을 가져야 할 것이다. 이런 마음을 갖고 영성체 행렬에 참가하는 신자들은 선택된 자신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면서 더불어 경건하게 제단 앞으로 나아가게 된다. 영성체는 사제가 먼저 성체와 성혈을 영하고(이때 주례사제가 큰 성체의 일부분을 성합에 넣어 미사에 참여한 신자에게 주는 것은 사목적으로 좋은 배려라고 할 수 있으며, 성혈은 일반적으로 사제만 마신다), 특별하게 허용된 경우(미사 거행에서 자기 임무를 수행하는 부제와 다른 사람들, 수도원 미사 또는 '공동체' 미사를 드리는 공동체 회원들, 신학생들, 영성 수련, 피정,영성 모임 등 사목 모임에 참석하는 이들의 경우-미사경본 총 지침 283항)에는 양형 영성체도 매우 바람직하다. 성체를 줄 때 사제는 성체를 영할 신자에게 들어 보이며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다시 한 번 강조하며, 신자들은 "아멘"이라는 동의를 표한다. 이때 아멘은 자신에게 보여지는 밀떡이 예수 그리스도의 몸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고백하는 것이다. 일각에서는 모든 이들이 성체와 성혈을 먹고 마셔야 진정한 영성체에 참여한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성체만으로도 그리스도와 완전한 일치를 이룰 수 있다고 교회는 가르치고 있다. 그리고 교회간의 일치, 혹은 하나의 공동체 구성원이라는 생각으로 아직 세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혹은 개신교 신자들)에게 성체를 나눠 주는 경우가 있는데, 결코 나눠 주어서는 안 된다. 성체를 영하는 신자들은 손으로 영하거나(왼손으로 받고 오른손으로 집어 영한다) 입으로 직접 성체를 영하는데, 한국 교회에서는 손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는 것으로 결정했다. 이때 신자들은 사제가 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을 쉽게 받기 위해 사제가 성체를 주는 높이에 맞춰 손을 내민다. 너무 높게 혹은 낮게 손을 내밀 때 그리고 손을 너무 가슴 쪽으로가 있으면 사제들이 성체를 분배하는 데 힘들기 때문이다. 또 성체 분배를 도와주는 평신도들은 교회에서 주관하는 과정을 이수함으로써 주례 사제를 도와 성체를 분배할 수 있다. 단 성체분배 때 성체가 부족하다고 여겨 성체를 쪼개는 행위는 허락되지 않는다. 성체를 쪼개는 것은 사제(때론 부제)에게 부여된 고유한 권한이기 때문이다.조은일2010.03.09
![[특별기고] 호르무즈에 발묶인 선원들의 고통을 기억하자](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4/14/8wh1776130861445.jpg)
[특별기고] 호르무즈에 발묶인 선원들의 고통을 기억하자중동전쟁 발발 50여 일 ‘바다 위에 멈춰진 시간’(손지호 신부)미국은 2월 28일 ‘장대한 분노’ 작전으로 이란을 대규모 공습한 이후 때마다 자신들의 전쟁 정당성을 위해 성경 말씀을 인용하고 있다. 교회는 이에 “전쟁에 하느님 이름을 사용하는 것은 중대한 죄에 해당한다”고 비판했지만, 미 정부는 멈추지 않고 있다. 아울러 전쟁 후 현재 세계 원유 수송의 약 20%가 지나가는 호르무즈 해협에서는 유조선들의 발이 묶인 상황이다. 12일 기준 해협에 머물고 있는 우리나라 선박은 26척, 선원은 173명에 이른다. 본지는 전쟁을 둘러싼 미 정부의 잘못된 발언에 대한 주교의 기고와 평소 선원들을 위해 사목해온 사제의 글을 통해 전쟁을 향한 어긋난 진실과 이면의 고통을 돌아봤다. 정리=박민규·박예슬 기자 부산교구 해양사목 관계자들과 선원들이 선박 앞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손지호 신부 제공 매일 들려오는 전쟁의 소식 한복판에서, 아무런 선택권도 없이 머물러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바로 바다 위의 선원들입니다. 호르무즈 해협 일대에 긴장이 고조되면서 많은 선박이 발이 묶였고, 그 안의 선원들은 어디로도 나아가지 못한 채 시간을 견디고 있습니다. 사실 선원들의 삶은 평소에도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몇 달씩 가족과 떨어져 지내며, 끝없이 이어지는 바다 위에서 고립된 시간을 살아갑니다. 바다는 사람을 외롭게 만들고, 그래서 창살 없는 감옥이라고도 말합니다. 그런데 지금 그들이 처한 상황은 평소의 어려움을 훨씬 넘어섭니다. 전쟁이라는 예측할 수 없는 위협 속에서 그들은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습니다. 멀리서 갈매기 한 마리가 스쳐 지나가도 혹시 공격용 드론은 아닐지 불안을 느끼고,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시간 속에서 점점 줄어드는 식량을 바라보며 막막함과 두려움을 함께 견뎌야 합니다. 이들은 군인이 아니라 우리의 일상을 지탱하는 노동자들입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 가장 직접적으로 전쟁 한가운데에 놓여있습니다. 이 모습을 떠올리다 보면, 자연스럽게 우리 삶을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각자 자리에서 충실히 살아가고 있지만, 동시에 쉽게 다른 이들의 고통을 잊고 살아가는 것은 아닌지 묻게 됩니다. 원료 수급이 불안하다는 소식에 쓰레기봉투를 미리 사두고, 라면 생산이 어려워질 수 있다는 뉴스에 불편을 먼저 떠올립니다. 물론 그것도 우리 삶에서는 중요한 문제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반응 속에서 우리는 한 가지를 돌아보게 됩니다. 우리는 손가락 끝의 작은 불편에는 민감하면서도 누군가의 삶 전체를 뒤흔드는 고통에는 무감각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말입니다. 한편으로는 이 전쟁을 통해 평소에는 미처 알지 못했던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우리가 누리는 이 편안한 일상은 결코 당연한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우리가 사용하는 수많은 물건과 자원들은 바다를 건너 우리에게 도착합니다. 그리고 그 길 위에는 언제나 이름 없는 선원들의 수고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우리가 느끼지 못했을 뿐 우리의 삶은 이미 그들의 헌신 위에 서 있었습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는 두 가지를 함께 기억하면 좋겠습니다. 하나는, 바다 위에서 두려움 속에 머물러 있는 이들의 고통입니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그들이 지금까지 묵묵히 감당해온 삶에 대한 고마움입니다. 성경에서 바다는 두려움의 공간으로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그 자리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과 함께하십니다. 풍랑 속에서 두려워하던 이들에게 건네신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도 이어집니다. 두려움 속에 있는 이들을 외면하지 말고, 함께 기억하라는 초대입니다. 지금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크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적어도 그들을 잊지 않는 것, 그리고 그들을 위해 기도하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리는 평온이 누군가의 멈춰진 시간 위에 서 있지 않은지 돌아보며, 바다 위에 머물러 있는 이들을 마음에 품는 우리가 되기를 바랍니다. 손지호 신부(부산교구 해양사목 담당)박예슬2026.04.14

세종대왕과 성삼문 : 교황 다마수스와 히에로니무스[월간 꿈 CUM] 교회의 길 _ 예수, 그 이후 베들레헴 성녀 카타리나 성당의 히에로니무스 경당. 베들레헴의 예수 탄생 성당 바로 옆에 성녀 카타리나 성당이 있는데 이 성당에 히에로니무스 성인이 성경을 해석하고 번역한 공부방과 경당이 보존되어 있다. 출처: 월간 꿈CUM 우리나라에 세종대왕과 성삼문이 있다면, 그리스도교 역사에는 교황 다마수스(Damasus I, 366~384 재위, 다마소)와 고결한 선비 히에로니무스(Eusebius Sophronius Hieronymus, 347?~420, 예로니모, 제롬)가 있다. 세종대왕이 없었다면 어쩔 뻔했나. 세종대왕은 탁월한 리더십으로 조선의 경제, 사회,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 발전을 이끌었다. 특히 그는 한글 창제, 과학 기술 발전, 법률 제도 정비, 교육 체계 구축 등을 통해 백성들의 삶의 질을 크게 향상시켰다. 그런데 이 모든 업적은 혼자 힘으로 이룬 것이 아니었다. 세종대왕은 성삼문, 박연, 장영실 등 각 분야 전문가들을 발굴, 그 능력과 역량을 십분 활용했다. 교황 다마수스의 재위 기간 역시 조선 초 세종대왕이 처했던 상황과 비슷했다. 정세는 불안했으며, 이단의 난립으로 교회 존립이 불안한 상황이었다. 이에 다마수스는 과감한 개혁을 단행, 초기 교회가 뿌리내리는 데 크게 기여했다. 그런데 몇몇 역사학자들은 교황 다마수스의 업적에 의문을 갖기도 한다. 다마수스가 영적인 차원이 아닌 세속적인 차원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폴 존슨은 「기독교 역사」에서 그가 개종시킨 여성들은 대부분 사교계 여성이었으며, 특히 부유층을 교회로 끌어들이기 위해 노력했다고 적고 있다. 심지어 다마수스가 부유층 여성과 간통을 저지르고, 살인을 했다는 내용의 고발장이 지금까지 로마 공문서 기록에 남아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러한 주장은 당시 시대상을 제대로 감안하지 않은 오류로 보인다. 당시 교황 다마수스를 상대로 한 간통 및 살인 관련 고발은 교황과 대립하던 아리우스 이단 신봉자들에 의한 것이어서 그 신빙성이 의심된다. 또 그가 부유000000층 선교를 위해 주력한 것은 당시 우상숭배가 로마 원로원과 부유층에 만연하고 있었던 상황과 무관하지 않다. 다마수스의 선택은 영적인 차원에만 매몰되지 말아야 한다는 것, 예수가 세상에 왔듯이 교회도 세상과 보조를 맞추고 세상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는 것이었다. 교황은 이를 통해 연약한 교회 기반을 다지고 내실을 튼튼히 하고자 했다. 이 선택은 세종대왕이 고결한 궁궐 속에 갇혀 있지 않고 백성을 위해 아래로 내려간 것, 그리고 국방을 튼튼히 한 것을 연상시킨다. 교황 다마수스는 특히 교회 시스템이 그 어떤 외풍에도 흔들리지 않도록 하기 위해 노력했다. 378년 즈음 교황은 시노두스를 개최하고 서방교회 주교들이 로마 교구에 복종하도록 했다. 이 결정이 없었다면 로마 교회의 우위성은 확립되지 못했을 것이고, 각 지역 교회별로 뿔뿔이 흩어져 신앙의 통일성을 유지하기 힘들었을 것이다. 다마수스는 또 그리스어로 진행되던 미사를 라틴어 미사 의식으로 바꿨다. 이는 훗날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 라틴어 미사를 각 나라말로 집전할 수 있도록 한 것과 같은 혁신적인 조치였다. 획기적인 개혁은 요즘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1600년 전에도 이미 이러한 대담한 개혁 조치들이 있었다. 교황 다마수스의 또 다른 업적은 가톨릭 전례의 정착이다. 세종대왕은 조선 음률을 바로 세우라는 어명을 내렸고, 천재 음악가 박연은 그 명을 받들어 예악을 정립했다. 4세기 말 가톨릭교회는 주류 종교 지위에 걸맞은 전례를 정립해야 했다. 그 일을 해낸 것이 교황 다마수스다. 당시 미사는 사도들의 언행록과 구약성경 낭독, 강론, 평화의 인사,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분배 등 큰 틀에서만 통일되어 있었다. 전례의 구체적인 용어나 체계가 통일되어 있지 않았고, 세부적인 부분에서는 지역 교회마다 제각각이었다. 이에 교황 다마수스는 단순했던 미사 의식에 장엄한 요소들을 도입하여 좀 더 체계적인 틀을 갖추도록 했다. 교황 다마수스의 새로운 미사 전례에는 초보적이긴 했지만 찬양이 도입되었는데, 춤은 이교도 풍습이어서 배제됐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다마수스의 업적 중 대표적인 것은 히에로니무스를 시켜 성경 전체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다. 세종대왕 하면 떠오르는 것이 한글 창제이듯, 교황 다마수스 하면 떠오르는 것은 성경 완역이다. 원래 신약성경은 희랍어로, 구약성경은 히브리어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런데 당시 희랍어와 히브리어를 아는 사람은 극히 소수였다. 백성을 위해, 교회 전례 통일을 위해 새로운 공식 성경이 필요한 시점이었다. 물론 당시에도 라틴어 번역본 성경들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약성경의 경우 원문 히브리어를 라틴어로 번역한 것이 아닌, 히브리어를 희랍어로 번역한 70인역(Septuaginta)을 ‘재번역’한 것이어서 원문과 차이가 많이 났다. 이에 교황 다마수스는 히에로니무스에게 라틴어 성경 번역을 명했고, 이후 무려 15년이 걸려(연구자들에 따라 차이를 보이곤 있지만 서기 384년경 4복음서가 번역되었고, 386년경에 신약성경, 391~405년경에 구약성경이 번역되었다) 기적적으로 ‘불가타’(Vulgata)가 탄생한다. 불가타는 ‘대중적’이란 뜻이다. 불가타판 성경은 원문에 충실하고 번역이 정확할 뿐만 아니라, 당시 대중이 쉽게 접근할 수 있는 라틴어로 되어 있었다. 물론, 불가타 성경에도 오류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그 대표적인 예가 ‘모세의 뿔’이다. 구약성경 원문 히브리어 성경에는 모세의 얼굴이 ‘빛나는 얼굴’이 되어있는데, 히에로니무스는 이를 ‘뿔난 얼굴’로 오역했다. 유럽을 여행하 다 보면 미켈란젤로의 ‘모세상’ 등 모세 관련 성화와 조각에 뿔이 달려 있는 것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이는 모두 불가타의 오류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마수스의 명을 받들어 불가타를 탄생시킨 히에로니무스는 어떤 인물이었을까. 히에로니무스는 라틴어와 그리스어, 히브리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할 수 있었던 재원이었다. 그런데 그는 단순히 어학에만 뛰어난 것이 아니었다. 어떤 수도자 보다 더 철저하게 금욕적인 삶을 살았다. “부부 사이에서도 관계를 맺어서는 안 된다”고 주장했을 정도였다. 히에로니무스가 어떤 삶을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자료가 있어 옮겨본다. “사막의 교부였던 히에로니무스의 회상에 따르면 젊은 시절 그는 넝마 자루를 걸치고 흑인처럼 새까맣게 탄 몸으로 사막에서 혈혈단신으로 수마와 싸웠다. 식단도 비참했다. 냉수와 빵 부스러기 몇 조각이 전부였다.”(「독신의 탄생」, 엘리자베스 애보트 Abbott Elizabeth, 이희재 옮김, 해냄, 2006)에서 이런 삶을 가능하게 한 것은 성경 말씀에 대한 철저한 신뢰였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에 있는 이 말은 원래 히에로니무스가 한 말이다. 그는 그렇게 자신의 이름에 걸맞은 삶(고대 그리스어 히에로뉘모스 Ἱερώνυμος는 거룩한 사람이라는 뜻이다)을 살았다. 그에게는 유명한 전설 하나가 전해온다. 성경 번역 작업에 여념이 없던 어느 날, 엄청난 덩치의 사자 한 마리가 절룩거리며 그에게 다가와 앞발을 내밀었다. 히에로니무스가 자세히 보니 사자 발에 가시가 박혀 있었다. 사자가 불쌍했던 그는 가시를 빼주었다. 그러자 사자는 히에로니무스가 죽을 때까지 곁을 떠나지 않고 지켰다고 한다. 베들레헴에 가면 히에로니무스가 성경을 번역했다고 알려진 장소에 경당이 마련되어 있다. 그는 베들레헴 예수님 탄생지 인근의 동굴에 머물며 성경을 번역했고, 소임을 다한 뒤인 서기 420년 9월 30일 선종해 주님 탄생 성당에 묻혔다. 히에로니무스는 번역가들의 수호성인이며, 그가 선종한 9월 30일은 세계 번역의 날이다. 교황 다마수스의 탁월한 선견지명과 리더십, 히에로니무스의 헌신은 성령의 섭리였다. 세종대왕과 성삼문 없는 조선을 생각할 수 있는가. 교황 다마수스와 히에로니무스 없는 교회 역사는 생각하기 힘들다. 그들을 움직인 힘은 믿음, 그리고 그리스도에 대한 헌신이었다. 교황 다마수스는 자신의 묘비에 새겨질 문구를 직접 작성했다고 한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바다 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진정시킬 수 있는 분, 죽어가는 모든 씨앗에게 새 생명을 주시는 분, 죽음의 끔찍한 쇠사슬을 푸실 수 있는 분, 3일 암흑 이후에 마르타의 오라버니를 이 세상에 다시 불러오실 수 있는 분,나 다마수스를 먼지에서 다시 일으켜 세우실 분, 나는 그분을 믿는다.”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2025.09.04
[사설] 마산교구 60년, 희망의 공동체로 다시 서다마산교구가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아 새 교구청사를 봉헌했다. 새 교구청은 마산교구가 AI 대전환 시대의 사회 복음화에 부응하고 참 복음적 신앙 공동체로 쇄신하는 토대가 될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60년 전 설정 당시 마산교구는 21개 본당, 신자 수 2만 8165명에 복음화율 1.3%에 불과했지만, 2025년 말 현재 본당 75개소, 신자 수 18만여 명, 복음화율 7.7%로 크게 성장했다. 마산교구는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는 주님 계명에 따라 지난 60년간 지역 사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참 교회 모습을 구현하고, 오늘의 시대가 요구하는 시대 징표를 확실히 읽고 사회 약자를 위해 투신하는 일에 집중해왔다. 마산교구민들은 무엇보다 그리스도인으로서 봉사와 증거의 삶을 사는 데 헌신해왔다. 성경과 교리교육에 집중하고, 젊은 그리스도인과 성소자 양성에 아낌없이 투자했다. 또 사회 정의와 생명 운동, 이웃과 함께 나누는 삶에 적극 참여해 왔다. 교구 설정 60주년을 맞은 마산교구는 여전히 변함없이 ‘가난한 이들과 함께 걸어가는 희망의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다. 제6대 마산교구장 이성효 주교는 ‘감사와 겸손, 기도의 보화’를 마산교구민과 나누며 사회 모든 계층, 특별히 AI 시대에 소외된 이들과 연대하겠다고 약속했다. 마산교구는 한국 교회 안에서 젊은 교구에 속하지만 가장 먼저 AI 시대에 대비해 기존 틀을 과감히 조정하고 새로운 사목 비전을 마련하고 있는 교구이다. 마산교구의 새로운 비전이 한국 교회 전반에 새 복음화의 바람으로 선한 영향력을 미치길 기대한다. 다시 한 번 마산교구민 모두에게 교구 설정 60주년과 새 교구청사 봉헌을 축하한다. cpbc2026.04.22

역사·문화·신학으로 만나는 예수 그리스도신학적 해석·영적 성찰·역사 비평까지 한 권에 담아 예수님 가이드 / 마이크 보몽 / 황대기 신부 / 생활성서 “아주 오래전에 사셨던 예수님이 어떤 분이셨는지 우리가 정말 알 수 있을까? (중략) 최근 발견된 쿰란 문서(사해 사본)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면서 예수님에 관한 성경 기록이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1세기 유다교의 삶과 사상, 신앙과 정확하게 일치함이 드러났다. 결국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모습은 매우 신뢰할 만하며, 더 나아가 복음서가 예수님에 대한 오늘날의 연구에 확고한 토대가 될 수 있음을 그 어느 시대보다 더욱 확신할 수 있었다.”(8쪽) 지난 2000년간 전 세계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된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일 것이다. 종교를 떠나 다양한 시대와 문화 안에서 사람들은 예수님에 대해 많은 관심을 보였다. 예수님이 직접 남긴 기록이나 당대 그 모습을 담은 그림조차 존재하지 않는데 말이다. 실제로 예수님이 존재하지 않았다는 것이 증명된다면 그리스도교는 무너질 것이다. 「예수님 가이드」는 외형이나 구성 면에서 예수님을 담은 여느 책과 다르다. 교과서나 잡지에 가깝다고 할까. 하지만 책 제목에 충실하게 예수님에 관한 핵심적인 내용을 신학적인 해석은 물론 영적인 성찰과 역사 비평까지 한 권에 체계적으로 정리했다. 다양한 근거 자료와 사진·명화·지도·도표 등을 더해 이해를 돕는다. 예수님 시대의 정치와 주변 환경, 문화와 생활상,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지역과 용어에 대한 풀이도 곁들였다. 한 인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한눈에 다각도로 파악할 수 있는, 원제대로 ‘The One-Stop Guide to Jesus’다. 책은 총 5부로 구성돼 예수님의 탄생과 삶, 그분의 사명과 가르침, 승천 이후 세상으로 나아간 교회와 오늘날까지 이어진 유산에 대해 종합적으로 다룬다. 기원후 1세기 전후의 유다 사회의 정치·사회적 배경을 함께 설명함으로써 예수님을 실제 역사 속 인물로 생생하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신약 전체를 이해하기 위한 기초적이고 핵심적인 길잡이인 셈이다. 뉴욕주 사우샘프턴에 위치한 예수 성심 성모 마리아 성당 내부에 그려진 '최후의 만찬' 성화,. 예수 그리스도와 사도들의 모습을 담고 있다. "마태오는 요셉(예수님의 법적 아버지)의 계보를 따르고 루카는 마리아(예수님의 생물학적 어머니)의 계보를 따르며, 이는 요셉과 마리아 둘 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임금 다윗의 후손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마태오 복음서의 족보는 유다교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함으로써, 예수님이 하느님의 약속을 이행할 권리를 가지셨음을 보여준다. 반면에 루카 복음서는 아담까지 거슬러 올라감으로써, 예수님이 유다인들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을 위해 오셨다는 점을 강조한다.”(19쪽) “최고 의회는 예루살렘의 최고 종교·정치·사법 기구로, 수석 사제와 율법 학자, 원로들 중에서 선출된 일흔한 명의 의원으로 구성되었다. 이는 모세와 일흔 명의 원로를 반영한 것이다. 대사제가 의장을 맡았다. 최고 의회의 규정에 따르면 재판은 낮 시간에만 열어야 하고, 무죄를 입증할 증거부터 심리를 시작하며, 안식일이나 축제일 전날에는 재판을 열 수 없었다. 그러나 예수님에 대한 재판에서는 이 모든 규정이 무시되었다.”(100쪽) 런던신학교를 졸업한 저자는 목사 및 강연가로 활동했다. 교황청립 성서연구원 성서학 박사과정에 있는 황대기(예수회) 신부가 우리글로 옮겼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3.11

전례란 무엇인가[월간 꿈CUM] 전례 _ 미사 해설 (01) 스페인 바르셀로나 근교 몬세라트 베네딕토 수도원 대성당 미사 어원 전례(典禮, liturgy)란 말은 희랍어의 ‘레이뚜르기아’(λειτυργια)에서 유래하며 그 본래의 뜻은 민중에 대한 봉사를 의미하였다. 또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교회의 구제 사업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였다.(2코린 9,12) 그런데 민중에 대한 봉사나 가난한 사람에 대한 구제 사업은 그리스도의 신비체인 교회(에페 5,30)에서 공동으로 행해졌기 때문에, 훗날에는 교회의 공적인 의식이 전례라는 말로 굳어지게 되었다. 전례의 형성과 뜻 그리스도인은 초대 교회 때부터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주님의 날(묵시 1,10; 사도 20,7)에 일정한 장소에 모이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다. “단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다”(마태 18,20)고 그리스도께서 약속하신 말씀과 같이, 하나로 모임으로써 부활하신 그리스도께서 함께하고 있음을 서로 체험하게 되었다. 이러한 체험에는 먼저 그리스도의 구원사업을 다시 생각하고 기념하는 것이 필요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십자가 위에서 죽으셨으나 삼일 만에 부활하시어 지금도 우리 가운데 살아 계시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하였다.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의 생애나 사적들을 기록해 놓았으며 그 결과 복음서가 탄생하였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의 모임에서는 성경을 봉독하게 되었고 빵을 나누고 기도를 하게 되었다.(사도 2,42) 이것이 오늘날까지 계속 이어져 내려온 교회의 의식(儀式)인 전례라는 것이다. 전례란 교회가 성경이나 성전(聖傳)에 의거하여 정식으로 공인한 의식으로 하느님과 인간 사이에서 중재자의 역할을 하시는 그리스도(1티모 2,5)의 사제직을 계속 수행하는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드리는 공적(公的) 예배(public worship)이다. 따라서 전례는 사제이신 그리스도께서 교회 안에서 활동하실 때 우리는 그분과 함께, 그분을 통하여, 그분 안에서 하느님을 찬미하고 공경하며, 세상에 구원의 은혜를 가져오는 것이며 인간의 영혼을 초자연적 생명과 거룩함으로 채워주시는 것을 의미한다. 전례의 목적 전례의 목적은 하느님께 합당한 영광을 드리고 인간 자신을 성화시키는 데에 있다.(전례헌장 7항) 참된 의미의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의 쌍방통행이 이루어지는 것을 말하며, 전례 안에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거룩하게 해 주시는 하강적인 면과 인간이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느님을 찬미하고 감사드리며 도움을 청하는 상승적인 면이 동시에 존재한다. 따라서 전례는 하느님과 인간이 주고 받는 대화이며, 이러한 대화의 특성이 전례의 기본구조를 이룬다. 전례의 종류 교회는 전례를 통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사제직을 이어 나간다. 전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상의 희생제사인 미사와 우리를 초자연적 생명에 참여케 하는 성사와 교회가 매일 드리는 성무일도로 이루어진다. 미사(Mass) 그리스도는 당신의 인류구원 사업을 완수하시기 위하여 교회 안에, 특히 전례 안에 항상 현존하신다. 그리스도는 미사성제, 특히 성체 안에 그리고 더 나아가 사제의 인격 안에도 현존하신다. 곧 십자가 위에서 당신 자신을 제헌하신 바로 그분께서 지금도 사제의 봉사를 통하여 제사를 봉헌하고 계시는 것이다.(「전례 헌장」 7항) 성사(Sacraments) 교회가 주 그리스도께서 세우시고 교회에 맡기신 은총을 주는 거룩한 표지이며 수단인 성사들을 집행할 때, 그리스도는 그 성사 안에 능력으로써 현존하신다. 따라서 그리스도께서 성사 집행자를 통하여 친히 성사를 베푸시는 것이다.(「전례 헌장」 7항) 성무일도(Liturgy of the hours) 그리스도는 당신 말씀 안에서도 현존하신다. 교회에서 성경을 읽을 때 말씀하시는 분은 그리스도 자신이요.(「전례 헌장」 7항) 교회가 기도할 때에도 그리스도는 그곳에 현존하신다. 이러한 전례는 우리의 신앙을 감각할 수 있는 표징으로 드러내는 교회의 완전한 공식 흠숭이다. 그러므로 모든 전례 의식은 사제이신 그리스도와 교회의 행위이기 때문에 가장 거룩한 행위이며, 그 효과도 다른 어떤 행위보다 뛰어난 것이다. 글 _ 박정배 신부 (베네딕토, 수원교구 용인본당 주임) 1992년 사제서품. 수원교구 성소부장과 수원가톨릭대학교 영성지도, 수리산성지 전담 신부 등을 역임했으며 양지본당, 광북본당, 샌프란시스코 한인본당, 신둔본당, 철산본당 주임을 지냈다.cpbc2026.01.28

기록된 하느님 말씀과 전해지는 하느님 말씀[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24) ‘성경(聖經)’과 ‘성전(聖傳)’ 이스라엘 쿰란 유적지에서 발굴된 구약성경 사본. 이 두루마리 사본은 당시 최고(最古) 구약 사본보다 최소 1000년 전에 쓰인 것으로 판명났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첫영성체 교리를 하다 보면 아이들 모습에서 얼핏 부모 모습이 보입니다. 그럴 때마다 깜짝 놀랍니다. 부모님이 열심히 성경을 읽고 미사 참여도 빠지지 않으며 늘 기도하는 가정은 자연스럽게 아이들도 기도문을 잘 외우고 대답도 잘합니다. 첫영성체 교리과정 가운데에는 부모님과 함께하는 성경 쓰기가 있습니다. 성경을 열심히 쓰고 있다는 한 학생이 “선생님! 성경은 첫영성체 교리 시간에 배워서 알겠는데 성전은 뭐예요?”라고 질문합니다. 성경에 관해서는 첫영성체 교리과정 중에 자세히 배웠는데, 성전이란 말은 처음 접하니 궁금했나 봅니다. 성경과 성전은 서로 연관되어 있습니다. 성경(聖經)은 성령의 영감을 받아 하느님 말씀을 기록한 책입니다. 총 73권으로, 구약 46권·신약 27권으로 엮여 있습니다. 구약 성경은 예수 그리스도 탄생 이전에 쓰인 책, 신약 성경은 이후에 쓰인 책입니다. 성전(聖傳)은 그리스도와 사도들에게 위탁하신 하느님 말씀이 기록되는 대신 입으로 전해 내려오는 것입니다. 사도들은 하느님 말씀을 온전히 후세 사도들에게 전했는데, 그들이 성령의 감화를 받아 설교로 충실히 보존하고 설명해 널리 알리도록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예수님께서 33년간 지상에서 지내시면서 하신 말씀이 네 복음서에 다 기록돼 있다고 말할 순 없습니다. 성경 이전에 하느님 말씀이 있었기에 성전이 먼저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원천이 성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약 성경 첫 권이 나온 때는 기원후 40년경이라고 합니다. 이때는 예수님께서 돌아가시고 10년 쯤 지난 뒤였습니다. 그러므로 그동안은 성경은 없었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 말씀을 그 자리에서 받아적은 것도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성전도 성경 못지않게 중요합니다. 성전은 계시 진리 등 성경에 없거나 정확히 기록되지 않은 것을 더욱 명확하게 밝혀 줍니다. 예를 들면 연옥에 관한 교리나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관습 등입니다. ‘기록된 하느님의 말씀’과 ‘전해지는 하느님의 말씀’에 대한 유권적 해석의 임무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행사하는 교도권에만 맡겨져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계시로 믿어야 한다고 계시된(「계시헌장」 10항) 모든 것을 신앙으로, 성경과 성전에서 알아내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과 성전, 교회의 교도권은 하느님의 가장 현명하신 계획에 의해 성령의 작용 아래, 영혼들의 구원을 위해 효과적으로 기여하도록 상호 연관돼 있고 결합돼 있습니다. 성전의 내용은 성경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일은 이 밖에도 많이 있다. 그래서 그것들을 낱낱이 기록하면, 온 세상이라도 그렇게 기록된 책들을 다 담아내지 못하리라고 나는 생각한다.”(요한 21,25) 그런데 가톨릭교회 외에 다른 개신교 교파는 성전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성전을 인정하게 되면, 결국 성전의 주인공인 가톨릭을 인정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옛날에 있던 성경 중에는 분실돼 지금까지 전해오지 않은 성경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주님의 말씀’이라고 말하는 것은 좁은 소견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박모란 교리교사cpbc2024.10.30

"하느님 자비에 자신을 맡겨보세요"하느님의 자비 주일 유래와 의미1931년 2월 22일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난 그리스도는 수녀가 본 당신 모습 그대로 상본을 그리고, 그 아래에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라는 글을 넣도록 하셨다. 2000년 4월 30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모의 자비 수녀회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1905~1938) 시성식이 거행됐다. 새 천년기 첫 성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강론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당신 자비 메시지를 전파하신 시기가 제1ㆍ2차 세계 대전 사이임에 주목하고, "희생과 고통을 체험한 이들은 자비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것인지 잘 안다"며 파우스티나 성녀를 우리 시대를 위한 하느님 선물이라고 밝혔다. 이후 2001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하느님께서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계시한 내용에 따라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했다. 성녀의 일기에 따르면, 하느님은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낼 것을 명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와 하느님의 자비 신심 폴란드 출신 파우스티나 수녀는 '하느님 자비의 사도'였다. 수녀는 13년 동안의 수도 생활을 마치고 33살 젊은 나이에 하느님 곁으로 떠났다. 수녀는 부활 제2주일인 1993년 4월 18일과 2000년 4월 30일 각각 시복, 시성됐다. 수도생활을 하며 특별한 영적 은사를 체험한 수녀는 하느님에게서 몇 가지 메시지를 받았다. 하느님 자비 상본을 만들고, 하느님 자비 축일을 지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시각인 오후 3시에 하느님 자비 기도 시간을 가지라는 것 등이다. 수녀가 전하는 하느님 자비 신심의 골자는 말과 행동과 기도를 바탕으로 하느님 자비를 널리 알리고 실천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하느님 자비에 온전히 내맡기는 의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생을 하느님 자비를 깊이 묵상하며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했던 수녀는 계시나 환시로 알게 된 하느님 자비의 신비를 일기 「나의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로 기록했다.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하느님 자비 신심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 ▨교회 전승에 비추어 본 하느님의 자비 성경에서 자비란 깊은 동정의 마음, 상대를 도와주는 사랑, 부모가 자녀에게 베푸는 사랑뿐만 아니라 '관대한 용서'를 의미한다. 이는 하느님과 계약 맺은 백성을 구원하는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듯 자비는 동정심ㆍ용서에 충실성이 더해진 개념이다. 구약에서 보면 자비나 동정을 뜻하는 히브리어 '라함'은 자궁을 뜻하는 단어 '레헴'에서 유래됐다. 가족적 사랑과 하느님의 충실함, 변함없는 사랑 등을 나타낸다. 신약에서 예수의 자비는 구제와 치유의 의미로 이해됐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비참함에 대해 연민을 드러내 보이셨고, 인간은 창조주를 본받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1980년)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 즉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는 것은 인간 자신이 이 사랑의 정신으로 변모해 자기 이웃을 대할 때"(14항)라고 말했다. 또, "자비는 정의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는 힘을 갖고 있으며, 그 새로운 내용이 가장 단순하고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이 용서"라면서 "용서는 '사랑'이 필요하다"(14항)고 밝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약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들며 "회개는 인간 세계에서 사랑의 작용과 자비의 출현을 보여주는 제일 구체적 표현"이라면서 "자비야말로 그리스도 메시아적 메시지의 근본을 이루며 그리스도 사명의 본질적 능력을 이룬다"(6항)고 말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강성화 기자 michaela25@pbc.co.kr황병훈2013.04.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