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악인은 전멸하고 하느님 정의가 승리하는 때가 온다 [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6) 하바쿡서 하바쿡 예언자는 이방 세력과 남 왕국 유다 여호야킴 임금의 악행을 고발하면서 하느님의 정의가 승리하는 구원의 때가 반드시 도래한다고 예언합니다. 도나텔로, ‘하바쿡 예언자’, 1423~1426년, 피렌체 주교좌 대성당 박물관. 히브리어 ‘하바쿡’은 우리말로 ‘끌어안아 주시는 분’이란 뜻입니다. 이를 음차해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ΑμΒακουμ’(함바쿰)으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Habacuc’으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하바쿡서’라 표기하고 있습니다. 하바쿡 예언자에 대한 개인 정보는 성경 어디에도 나오지 않습니다. 그가 언제 어디서 누구의 아들로 태어났는지 전혀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그의 활동 시기를 추정하는 근거인 임금의 이름조차 나오지 않습니다. 유일하게 다니엘서에 “유다에는 하바쿡 예언자가 있었다”라며 사자 굴에 갇힌 다니엘에게 음식을 전해 주는 인물로 등장합니다.(다니 14,33-39 참조) 다니엘 예언자는 남 왕국 유다 여호야킴 임금 재위 3년 때인 기원전 606년부터 페르시아 키루스 임금 재위 3년 때인 기원전 536년까지 활동했던 인물입니다. 그래서 하바쿡 역시 여호야킴 시대에 활동한 예언자로 추정할 수 있지요. 그러나 히브리어로 쓰인 구약 성경 제1경전 「타낙」에서 예언서가 아닌 ‘성문서’로 분류된 다니엘서는 실제로 다니엘 예언자가 활동하던 때보다 400년 후인 기원전 2세기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때에 저술됐습니다. 따라서 성경학자들은 다니엘서에 서술된 하바쿡 예언자(다니 14,33-39) 내용은 실제 역사 자료가 아니라, 다니엘서 저자가 이미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하바쿡서를 빌려 제2경전에 속한 후대 전승으로 활용한 것이라고 여깁니다. 이런 이유로 하바쿡서 역시 저술 연대를 정확히 추정하기가 어려운 책입니다. 하지만 성경학자들은 하바쿡서 한 문장에서 하바쿡 예언자가 언제 활동했는지를 냉철하게 찾아냈습니다. 바로 “이제 내가 사납고 격렬한 민족 칼데아인들을 일으키리니 그들은 넓은 세상으로 진군하여 남들이 사는 곳을 차지하리라”(1,6)는 하느님의 말씀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칼데아인은 바로 신바빌로니아를 말합니다. 따라서 하바쿡서의 역사 배경은 기원전 7~6세기 고대 근동 지역을 지배하던 아시리아의 세력이 기울고, 신바빌로니아와 이집트가 패권을 다투던 때임을 알 수 있습니다. 아시리아 세력이 약해지자 기원전 625년 칼데아인 나보폴라샤르가 바빌로니아를 점령하고 아시리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합니다. 그는 메디아의 키악사레스 임금과 연합해 기원전 612년 아시리아의 수도 니네베를 점령합니다. 아시리아가 무너지는 틈을 타 숨죽이고 있던 이집트의 느코 2세(기원전 610~595년) 파라오가 아시리아의 저항군을 돕는다는 명목으로 군사를 일으킵니다. 느코 2세가 이집트 군대를 이끌고 팔레스티나 지역을 가로지르려 하자 남 왕국 유다의 요시야 임금은 이를 저지합니다. 예루살렘 성전과 율법을 중심으로 정치와 종교 개혁을 단행하고 있던 요시야 임금 입장에선 이집트 군대가 순순히 유다 땅을 짓밟고 가는 것을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집트 군대와 맞붙게 됩니다. 요시야 임금은 기원전 609년 므기또 전투에서 전사하고 맙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 여호아하즈가 왕위를 계승하게 되지요. 여호아하즈는 즉위 3개월 만에 느코 2세 파라오에게 끌려가 폐위된 후 죽음을 맞습니다. 느코 2세는 요시야의 다른 아들 엘야킴을 유다 임금으로 세웁니다. 엘야킴은 ‘여호야킴’으로 이름을 바꾸고 이집트에 조공을 바쳤습니다. 여호야킴(재위 609~598년)은 나약하면서도 무자비한 독재자였습니다.(예레 22,13-19; 36,27-31) 그는 파라오에게 금과 은으로 조공을 바치기 위해 백성들에게 막대한 세금을 부과했습니다.(2열왕 23,35) 그는 스물다섯 살에 임금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열한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2열왕 23,36) 그는 하느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만 했습니다.(2역대 36,5) 그래서 주님께서는 예레미야 예언자를 통해 여호야킴을 단죄합니다. “아무도 그를 위하여 애곡하지 않으리라. …사람들은 노새를 묻듯 그를 묻으리라. 그를 끌어다가 예루살렘 성문 밖에 멀리 내던지리라.”(예레 22, 18-19) 여호야킴은 초기 이집트의 종이 되었다가 신바빌로니아가 쳐들어오자 네부카드네자르 임금에게 붙어 3년간 그의 신하가 됩니다. 이후 그는 예레미야 예언자의 말을 듣지 않고 반란을 일으켰다가 기원전 598년 예루살렘을 함락한 네부카드네자르의 군대에 의해 처형되고 맙니다. 그리고 유다인들의 제1차 바빌론 유배가 시작됩니다.(2열왕 24장 참조) 하바쿡서는 총 3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내용상으로는 제1부(1─2장) ‘예언자의 탄원과 하느님의 응답’, 제2부(3장) ‘하느님의 승리를 찬미하는 하바쿡의 노래’로 구분됩니다. 하바쿡서는 다른 예언서처럼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을 고발하거나 이민족을 향한 심판을 선포하지 않습니다. 다만, 이방 세력과 독재자 때문에 고통을 겪는 이스라엘 백성의 입장을 하느님께 탄원하면서 하느님의 답변을 얻고자 합니다. 제1부에서는 여러 세대를 통해 제기된 선과 악의 문제를 다룹니다. 하바쿡은 폭력의 원인이 되는 권력자들의 문제를 지적하고 탄원 형식으로 이들을 강하게 고발합니다. 이에 대해 하느님께서는 그들이 전멸하고 의인이 승리할 것이라고 응답하십니다. 이에 하바쿡은 하느님의 정의가 승리하는 종말론적인 구원의 때가 반드시 도래할 것을 확신하며 기쁨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자신의 기도를 마무리합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2024.03.26

식어버린 믿음 꾸짖으며 예언자의 도래 예고[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70) 말라키서 히브리어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은 말라키서로 예언서 전체를 마감한다. 아울러 그리스도교는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3,23)라는 말라키서의 이 말씀에 주목해 말라키서를 신약과 구약을 잇는 경전으로 구약 성경 맨 마지막에 배열한다. 말라키 예언자 이콘. 히브리어 ‘말라키’는 우리말로 ‘나의 사자(使者)’, ‘나의 심부름꾼’이란 뜻입니다. 이를 음차해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Μαλαχιαs’(말라키아스),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Malachias’,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말라키서’라고 표기합니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은 말라키서로 예언서 전체를 마감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는 말라키서를 신약 성경과 잇는 가교 구실을 하도록 구약 성경의 마지막 경전으로 배열해 놓았습니다. 말라키 예언자가 언제 태어났고 어떤 사람인지 아무런 정보가 없습니다. 그래서 말라키가 특정 인물을 지칭하는 고유명사인지, 아니면 예언서 제목인 일반명사인지 자세히 알 수 없습니다. 전통적으로 말라키는 기원전 515년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된 때로부터 에즈라-느헤미야 개혁이 있기 이전 사이에 활동한 예언자라고 말합니다. 하지만 최근 대다수 성경학자들은 “보라, 내가 나의 사자를 보내니 그가 내 앞에서 길을 닦으리라”(3,1)란 내용을 근거로 말라키를 실존 인물로 보지 않고 경전 이름이라고 주장합니다. 또 「불가타」 성경을 펴낸 예로니모 성인은 에즈라서와 말라키서가 유사하다고 여겨 에즈라를 말라키서의 저자로 추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에즈라서와 말라키서는 관점이 완전히 다른 경전입니다. 에즈라서는 레위인을 비판하지 않는 데 반해 말라키서는 레위인들의 죄를 고발(2,4-8)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말라키서의 내용을 토대로 말라키 예언자가 활동했던 시기를 파악할 수 있습니다. 말라키서에 따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론 포로생활에서 이미 돌아왔고 예루살렘 성전이 다시 지어졌으며, 그들이 경신례를 다시 거행하기 시작한 지 오래된 상황이었습니다. 기원전 515년 성전 재건축이 완성된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하지만 이민족과의 혼혈혼 문제에 관한 에즈라의 대개혁은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이 개혁은 기원전 440년께 가서야 단행됩니다.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는 하느님께 대한 회의론이 팽배해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유다인들은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면 메시아 왕국이 바로 도래하리라고 믿었습니다. 하지만 하까이와 즈카르야 예언자가 성전 재건과 결부시켰던 구원의 희망은 기대와 달리 성취되지 않았으며, 경제적 어려움은 계속되고 여전히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그 실망감으로 신앙이 식어갔습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은 전례를 등한시하고, 사람들을 매수해 갖은 부정을 저지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시 우상을 섬기던 과거의 잘못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이러한 현실에 대응하기 위해 말라키 예언자가 등장해 “화덕처럼 불붙는 날이 온다”(3,19)고 종말을 예고합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 오시는 그 날을 맞을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일깨웁니다. 따라서 말라키 예언자는 기원전 480~460년께 활동한 것으로 추정됩니다. 말라키서는 총 3장으로 편집돼 있습니다. 내용상으로는 당시 유다 공동체 안에서 문제가 되고 있던 여섯 가지 사안들을 하나하나 들고 나와 논쟁을 펼친 다음, 새로운 시대를 향해 엘리야 예언자를 보낼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여섯 가지 논쟁은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을 향한 주님 사랑’에 대해 말라키는 하느님의 사랑을 의심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꾸짖습니다.(1,2-5) △‘그릇된 경신례와 참된 사제직’에 관해 합당하지 못한 제물을 하느님께 봉헌하며 자신의 임무를 소홀히 하는 사제들과 레위인들을 질책하고 징벌을 선포합니다.(1,6─2,9) △‘혼혈혼과 이혼’에 대해 동족 간 순수한 혼인을 마음대로 파기하는 유다인들을 질책합니다.(2,10-16) △‘심판과 정화’에 관해 레위의 자손들을 깨끗하게 정화하실 것이며, 악을 일삼는 자들은 응당한 징벌을 받게 되리라 전합니다.(2,17─3,5) △‘올바른 십일조와 예물 봉헌’에 대해 십일조와 봉헌 예물을 올바로 바칠 때 비로소 하느님에게서 풍성한 소출의 복을 받게 되리라고 가르칩니다.(3,6-12) △‘종말의 심판’에 대해 하느님을 경외하는 의인만 구원된다고 말씀합니다.(3,13-21) 끝으로 말라키서는 ‘주님의 날’을 두려움 없이 맞을 방법을 일러줍니다. 그 방법은 모세의 율법을 기억하고, 엘리야를 비롯한 예언자들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입니다.(3,22-24) 그리스도교는 “보라, 주님의 크고 두려운 날이 오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리라”(3,23)라는 말라키서의 이 말씀을 주목합니다. 교회는 이 문장으로 신약과 구약을 잇는 경전으로 말라키서를 구약 성경 맨 마지막에 배열합니다. 공관 복음서는 이 말씀을 여러 번 인용하며 ‘요한 세례자’를 가리키는 내용으로 해석합니다.(마태 17,10-13; 마르 9,11-12; 루카 1,17) 또 요한 세례자의 광야에서의 활동과 나인의 기적(루카 7,11-17)은 엘리야와 사렙타 과부의 이야기(1열왕 17,8-24)를 연상케 합니다. 올리브 산에서 받은 천사의 위로(루카 22,43)는 엘리야가 만났던 천사의 시중(1열왕 19,5-8)을 기억하게 합니다. “불을 지르러 왔다”는 주님의 말씀(루카 12,49)은 엘리야의 심판하는 불(2열왕 1,10.14)을 반영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변모 현장에서도 엘리야가 등장합니다.(마태 17,1-9; 마르 9,2-10; 루카 9,28-36)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선임2024.04.23

토마스 아퀴나스가 전하는 구원의 길토마스 아퀴나스의 가톨릭 교리서 / 정종휴 옮김 / 이재룡 신부 감수 / 가톨릭출판사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톨릭 교리서 / 정종휴 옮김 / 이재룡 신부 감수 / 가톨릭출판사 그리스도교, 믿음·희망·사랑으로 요약 사도신경·주님의 기도·십계명 등 제시 “우리가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무엇을 원해야 하는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이 세 가지를 알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교회의 전승으로 내려 온 신앙 고백의 가르침에서, 두 번째는 주님의 기도에서, 세 번째는 십계명에서 배울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신앙입니 다. 신앙이 없는 그리스도인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35쪽) 「토마스 아퀴나스의 가톨릭 교리서」가 출간됐다. 13세기를 살았던 성인이 21세기를 살아가는 현대인들에게 전하는 교리 강의다. 토마스(1224/5~1274) 성인은 1273년 사순절 나폴리의 산 도메니코 마죠레 성당에서 강의했다. 평소 라틴어로 강의하고 집필하던 그는 당시 고향 사람들을 위해 현지 방언으로 쉽게 설명했고, 그 내용을 제자들이 정리한 것이 이 책이다. 토마스 성인은 성경에서 근거를 찾아 교리에 정통성을 확보했다. 성인은 바오로와 아우구스티노처럼 그리스도교를 믿음·희망·사랑으로 요약하며, 삶의 궁극적인 목적은 구원이라 전했다. 또 우리가 믿어야 할 지식은 ‘사도 신경’에, 희망해야 할 지식은 ‘주님의 기도’에, 행해야 할 지식은 ‘법’, 특히 ‘참사랑의 두 계명(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과 십계명’에 있다고 강조한다. 이 책은 1882년 스위스 루체른에서 출간된 독일어판을 주교황청 한국대사를 역임한 정종휴(암브로시오) 전남대 로스쿨 명예교수이자 가톨릭꽃동네대학교 석좌교수가 우리말로 번역한 것이다. 정 교수는 “‘가톨릭 교리’는 그리스도교 초기부터 형성된 ‘가르침의 핵심’”이라며 “올해 탄생 800년이 되는 토마스 성인의 강의가 진선미의 종합과 같은 아름다운 가톨릭 신앙에 든든한 보탬이 되기를 바란다”고 전했다. 한국성토마스연구소 소장 이재룡 신부가 감수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06.04

하느님 섭리 행하며 인간을 수호하는 천사[박모란 교리교사의 교리, 궁금한 건 못 참지] (46) 천사와 악마 천사 주님의 피조물 중 가장 뛰어난 천사는 하느님을 모시는 사신(使臣)이며 영적인 존재입니다. 이들은 인간 이전에 지력과 자유 의지를 지닌 채 창조됐으며, 세상에 주님 영광을 드러나게 하고 하느님 섭리를 펴는 사명을 수행합니다. 천사에겐 특별히 우리 인간을 수호하는 임무가 있습니다. 성경에는 많은 천사가 언급되지만, 그 이름을 정확히 밝힌 천사는 미카엘·가브리엘·라파엘뿐입니다. 천사의 계급 성 암브로시오(339~397) 시대부터 교부와 신학자들은 천사를 9품으로 인식했습니다. 6세기 초 아레오파고스의 위(僞) 디오니시오는 천사들의 거룩한 직무와 능력(속성·권한)에 따라 9품을 3개 계급으로 구분했습니다. ① 상급 치품천사(Seraphim) - “그분 위로는 사랍들이 있는데, 저마다 날개를 여섯씩 가지고서, 둘로는 얼굴을 가리고 둘로는 발을 가리고 둘로는 날아다녔다.”(이사 6,2) 이하 천사가 언급되는 성경 구절들. 지품천사(Cherubim) - 창세 3,24 좌품천사(Thrones) - 콜로 1,16 ② 중급 주품천사(Dominantes) - 콜로 1,16 역품천사(Virtus) - 콜로 1,16 능품천사(Potestates) - 콜로 1,16 ③ 하품 권품천사(Principatus) - 에페 1,20-21 대천사(Archangelus) - 1테살 4,16 천사(Angelus) - 창세 19,1; 묵시 5,2 대천사 : 미카엘·가브리엘·라파엘 ① 선한 천사의 우두머리 미카엘(Michael) 대천사의 이름은 ‘누가 하느님과 같으냐? 하느님과 같이 구는 자는 누구냐?’란 뜻입니다. 사탄과 추종자들이 하느님께 반역을 일으켰을 때, 선한 천사들이 외치던 구호에서 유래했습니다. 악마를 축출하는 임무를 지닌 미카엘 대천사는 임종자와 유다 백성·교회의 수호자입니다. 세상을 떠난 사람을 심판대 앞으로 인도하고, 무사히 천국으로 데려가는 역할도 합니다. ② 가브리엘(Gabriel) 대천사는 라파엘과 함께 주님 대전에 대령하고 있는 7천사 중 한 명입니다. 가브리엘은 ‘하느님의 힘’ ‘하느님의 영웅’이란 뜻입니다. 세상에 3차례 파견됐습니다. 첫 번째로 다니엘 예언자에게 구세주 탄생 시기를 알려주고, 구세주를 맞을 마음의 준비를 시켰습니다.(다니 9,21-27) 두 번째로는 즈카르야에게 나타나 구세주 예수님의 길을 닦은 요한 세례자의 출생을 예고했습니다.(루카 1,11-20) 마지막으로 성모 마리아께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실 것을 예고하심으로써 하느님 구원사업 준비를 완수했습니다.(루카 1,28-38) ③ 라파엘(Raphael) 대천사의 이름은 ‘하느님이 낫게 하셨다, 하느님의 묘약, 하느님의 의사’란 뜻을 지닙니다. 이에 걸맞은 활약이 토빗기에 나옵니다. 먼 여행길에 오른 토빗의 아들 토비야를 위험에서 지켜준 데 이어 그의 아내가 될 사라를 악마의 손에서 구출했으며, 마침내 눈먼 토빗의 시력까지 되찾게 해줍니다. 모든 여행자의 보호자로 추앙받는 라파엘 대천사는 영적인 싸움에서 입는 상처에 천상 향유를 발라 치유해줍니다. 미카엘·가브리엘·라파엘 천사의 축일은 9월 29일입니다. 악마 사탄 또는 마귀라 불리는 타락한 천사를 일컫습니다. 본래 하느님께서 창조하신 선한 천사였던 이들은 스스로 악해졌습니다. 그리고 하느님의 계획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룩된 구원사업을 가로막고 봉사하기를 거부합니다. 악마들은 우리 인간을 자신들의 반역에 끌어들이고자 애씁니다. 악마가 저지른 가장 중대한 죄는 바로 인간이 하느님께 불순종하도록 거짓말로 유혹한 것입니다. cpbc2025.04.15

12 (2)[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10) 이집트 카이로 인근의 기자 지역에 위치한, 약 4500년 전 지어진 쿠푸왕의 피라미드(높이 146m). 건축 연대를 볼 때,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도 이 피라미드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성경은 야곱의 열두 아들 중 특히 요셉에 주목하고 있다. 성경이 주목한다는 것은 그에 의해 하느님 이야기가 전개된다는 의미이다. 야곱은 늘그막에 얻은 요셉을 다른 아들들보다 더 사랑했다. 그러자 형제들의 시기가 일었다. 성경은 이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야곱은) 다른 어느 아들보다 그를(요셉) 더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에게 긴 저고리를 지어입혔다. 그의 형들은 아버지가 어느 형제보다 그를 더 사랑하는 것을 보고 그를 미워하여, 그에게 정답게 말을 건넬 수가 없었다.”(창세 37,3-4) 그런데 이처럼 형제들이 요셉을 시기한 데는 요셉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었다. 그는 매번 미움받을 짓만 골라서 했다. “한 번은 요셉이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그 때문에 형들은 그를 더 미워하게 되었다. 요셉이 그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꾼 이 꿈 이야기를 들어 보셔요. 우리가 밭 한가운데에서 곡식 단을 묶고 있었어요. 그런데 내 곡식 단이 일어나 우뚝 서고, 형들의 곡식 단들은 빙 둘러서서 내 곡식 단에게 큰절을 하였답니다.’ 그러자 형들이 그에게 말하였다. ‘네가 우리의 임금이라도 될 셈이냐? 네가 우리를 다스리기라도 하겠다는 말이냐?’ 그리하여 형들은 그의 꿈과 그가 한 말 때문에 그를 더욱 미워하게 되었다.”(창세37,3-8) 요셉은 마치 형들을 약 올리듯 말했다. 자신을 향한 시기와 질투가 가득한 분위기를 모르지 않았을 텐데 말이다. “그는(요셉) 또 다른 꿈을 꾸고 그것을 형들에게 말하였다. ‘내가 또 꿈을 꾸었는데, 해와 달과 별 열한 개가 나에게 큰절을 하더군요.’”(창세 37,9) 형제들이 자신에게 굴복할 것이라는 예언이었다. 요셉을 제외한 나머지 형제들의 인내심이 폭발했다. 형제들은 어느 날 이집트로 가는 상인에게 요셉을 종으로 팔아넘긴다. 하지만 요셉이 누구인가. 구약성경의 주인공 아닌가. 그가 종으로 팔려 가는 것은 한층 그의 이미지를 극대화하는 데 도움을 줄 뿐이다. 이후 요셉은 이집트에서 감옥에 갇히는 등 고난을 겪지만 타고난 지혜와 재능을 바탕으로 파라오의 눈에 들어 이례적으로 출세를 하게 된다. 결국에는 이집트 재상의 자리에까지 오른다. 종의 신분에서 한 나라의 재상이라니… 대단한 성공이다. 게다가 그저 그런 평범한 재상이 아니었다. 훌륭한 정치를 통해 모든 국민의 존경을 받는 재상이었다. 파라오도 대만족했다. 재상이 된 요셉은 이후 아버지 야곱을 비롯한 형제들을 이집트로 불러온다. 마치 먹고 살기 힘들어 미국으로 입양 보낸 아들이 미국 부통령이 되어 한국의 가족들을 초대하는 격이다. 이때 요셉에게 의지해 이집트로 건너간 가족(12지파의 조상을 포함한)이 하나둘도 아니고 무려 70명이다.(창세 46,8-27 참조) 이때가 기원전 1600년경이다. 요셉과 형제들은 이후 행복한 나날을 보낸다. 하지만 그 자손들은 그렇지 못했다. 분위기가 급반전되었기 때문이다. 요셉을 명재상으로 떠받들던 이집트인들이 그 명재상의 후손들을 종처럼 부리며 혹사시킨다. “진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고된 일과 온갖 들일 등, 모든 일을 혹독하게 시켜 그들의 삶을 쓰디쓰게 만들었다.”(탈출 1,14) 요셉의 자손들은 더이상 견디기 힘들었다. 탈출해야 했다. 글 _ 편집부 cpbc2023.12.18

‘성인이 되는 법’ 키트 만들어 나눠준 또래 사도[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 (3) 성인이 되는 법, 11살 소년에게 배우다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의 어머니 안토니아씨가 2023년 미국 뉴저지의 한 성당에 복자의 유해와 함께 마련된 공간을 찾아 기도하고 있다. OSV 코로나19 팬데믹이 막 시작된 2020년 4월, 저는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의 어머니 안토니아씨와 왓츠앱으로 통화한 기억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15년이라는 짧지만 치열하고 거룩하게 살았던 복자의 삶도 감동이지만, 아들의 삶과 죽음, 그 영성을 세상에 전하고자 온 삶을 바치는 어머니와의 대화도 참으로 신기하고 벅찬 경험이었습니다. 그녀는 아들이 지은 성체 기적 이야기인 「하늘 나라로 가는 비단길」의 한국어 번역을 제게 기쁘게 허락했을 뿐만 아니라, 아들이 살았던 신앙의 길을 꽤 오랜 시간 들려주었습니다. 그러한 말과 태도에서 생전에 카를로가 얼마나 활기차고 적극적으로 믿음을 실천하고 전했을지 자연스레 떠오르더군요. 힌두교인 라제시의 개종 카를로는 특히 다른 종교를 믿는 이들을 그리스도교로 이끄는 데에 열정을 쏟았습니다. 집안일을 도와주던 인도 출신 힌두교도인 라제시를 개종시킨 이야기가 대표적입니다. 라제시는 유명한 인도 배우를 닮았다고 자부하며 그를 흉내내어 사진찍기를 즐겼고, 멋진 옷을 사는 데 월급을 다 써버리곤 했다고 합니다. 카를로는 그가 겉모습보다 내적인 삶을 가꾸도록 매일 기도하면서 가톨릭 교리를 그에게 가르쳤습니다. 마침내 그리스도인이 된 라제시는 이렇게 증언했습니다. “카를로는 자주 성경·교리서·성인전으로 저를 이끌었어요. 카를로는 교리서를 거의 외우고 있었고, 성사의 중요성에 대해 정말 훌륭하게 설명했죠. 어른들도 설명하기 힘든 신학적 개념까지도요! 그는 탁월한 교사이자 모범이었습니다. 제가 세례를 결심한 건 카를로의 깊은 믿음과 사랑·순수함에 감동했기 때문입니다.” 이후 라제시는 카를로와 함께 매일 저녁 집 근처 광장과 공원을 돌며 노숙인들과 음식을 나누는 사랑의 실천에서도 동반자가 되었습니다. 카를로는 무려 11살부터 이처럼 유능한 교리교사였습니다. 카를로는 어린이들에게도 이렇게 격려했습니다. “너를 거룩함으로 빠르게 이끌어줄 특별한 비결이 있어. 언제나 이걸 기억한다면 너도 성인이 될 수 있어!” 바로 다음과 같은 간단하고도 핵심적인 요점으로 자료를 만들어 주변 친구들을 가르친 거죠. 일명 ‘성인이 되는 법 키트’입니다. 카를로 아쿠티스는 어린 나이에도 놀라울만큼 깊은 신심으로 주변을 신앙으로 이끌었다. ‘성인이 되는 법’ 키트에 “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기. 아직 그런 마음이 없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주님께 청하기”라고 적혀 있다. 출처=www.carloacutis.com ‘성인이 되는 법’ 키트 ①온 마음을 다해 주님을 사랑하기. 아직 그런 마음이 없더라도 포기하지 말고 주님께 청하기. ② 매일 미사에 참여하여 성체를 받아 모시기. ③ 매일 묵주기도 바치기. ④ 매일 짧은 성경 구절 읽기. ⑤ 가능한 한 자주 예수님께서 참으로 현존하시는 감실 앞에서 성체조배 하기. 놀라울 만큼 성덕이 자라날 것임. ⑥가능한 한 매주 고해성사를 보고 사소한 죄라도 고백하기. ⑦ 주님과 성모님 앞에서 자주, 다른 이를 돕기로 결심하고 약속하기. ⑧ 내 가장 친한 친구, 수호천사에게 끊임없이 도움을 청하기. 예수님과 대화하기 프란치스코 교황께서는 자의 교서 「오래된 직무」(Antiquum Ministerium)로 평신도 교리교사 직무를 제정하고, 2024년 1월 21월 두 명의 한국인을 포함해 세계 각국에서 온 9명의 교리교사에게 직무를 수여하셨습니다. 복자 카를로 아쿠티스가 살아있다면 아마도 그 자리에 있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교회가 인정한 또래 사도’라는 별명을 하나 더 얻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나서 아마 전 세계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겠지요? 그가 늘 하던 말처럼요. “우리는 2000년 전 예수님 시대에 살았던 사람들보다 훨씬 큰 행운을 누리고 있어요. 왜냐고요? 그들은 팔레스타인의 거리에서 예수님을 직접 만나고 대화할 수 있었겠지만, 항상 많은 군중으로 둘러싸여 계신 예수님과 대화하기란 하늘의 별 따기였을 거예요. 그렇지만 우리는 달라요. 예수님을 만나려면, 집에서 나와 가까운 성당에 가는 것으로도 충분하잖아요!” 유소영 체칠리아cpbc2025.05.20
![[제13회 신앙체험수기] 장려상 - 무화과나무, 기적의 시간을 함께 살다](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3/17/DHC1773731524890.jpg)
[제13회 신앙체험수기] 장려상 - 무화과나무, 기적의 시간을 함께 살다최유란(릴리안, 수원교구 철산본당) 구글 제미나이 제작 어느 날, 나는 꿈을 꿨다. 내가 지하철을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들어 지하철 노선도를 바라보았다. 그곳엔 내가 가야 할 곳의 이름이 적혀있었다. “베델.” 그리고 나는 잠에서 깨었다. 그대로 누워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베델’이라는 명칭이 선명하게 떠올랐고, 내 머릿속에서 떠나지를 않았다. 그러나 ‘베델’은 내게 너무도 생소한 단어였다. 영어 같으면서도 전혀 뜻을 알 수 없었다. 나는 핸드폰을 켜서 ‘베델’이라고 검색해 보았다. ‘베델’은 야곱이라는 사람이 천사가 드나드는 사다리를 목격하고 하느님의 계시를 받은 곳의 명칭으로 ‘하느님의 집’이라는 뜻이라고 한다. 나는 평생 무교로 살아온 사람이었고, 하느님에 대해 무관심했다. 그런데 갑자기 내가 이런 꿈을 꿨다는 사실이 처음엔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다 하느님의 인도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안다. 그때, 내 곁에는 5살 된 아픈 아이가 콧줄을 한 채 잠을 자고 있었고, 지금은 천국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내게는 아들이 있었다. 태어날 때부터 너무도 착하고 건강한 아이였다. 아이의 환한 웃음을 보면 세상 모든 것이 아름다워 보였고, 투정부리는 입술조차 사랑스러운 그런 아이였다. 나와 남편은 아이가 태어난 후로 더 바랄 것 없이 행복한 나날들을 보내고 있었다. 아이가 5살이 되던 해, 어느 날 아이가 갑자기 절뚝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단순히 뼈에 이상이 있는 건가 싶어 정형외과에 다녀왔지만 별다른 차도 없이 시간만 흘렀고, 아이의 걸음걸이는 더욱 힘겨워 보이기 시작했다. 휘청거리다가 주저앉기도 하고, 낮은 계단도 오르내리지 못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심각성을 인지한 우리는 아이를 데리고 대학병원 신경외과로 향했다. 진료하던 의사는 심각한 표정으로 단번에 그날 바로 입원 후 MRI를 찍자고 했다. 다음 날, 우리는 충격적인 결과에 그야말로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심정이었다. 아이의 병명은 뇌종양이었다. 뇌의 정중앙(뇌간)에 탁구공만 한 악성종양이 자라고 있었다. 수술 불가, 치료 불가. 의사는 아이에게 약 6개월에서 1년의 시간이 남아있다고 했고, 퇴원해서 아이와 많은 추억을 만들라고 했다. 아이는 천진난만한 표정으로 집에 간다며 좋아했고, 나는 그런 아이의 얼굴을 보며 눈물을 삼켜야만 했다. 퇴원 후 나와 남편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여러 군데의 병원 진료를 보았지만, 모든 병원의 모든 의사가 똑같은 말을 했다. “죄송하지만 할 수 있는 게 없습니다. 아이와 남은 시간 잘 보내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 앞엔 절망만이 쌓여갔다. 6개월이 지났을 때, 아이에겐 편마비가 왔고 스스로 걸을 수 없게 되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아이의 하루하루가 행복으로 채워지기를 바라면서 많은 곳을 여행 다녔고, 수많은 사진과 동영상을 남겼다. 그리고 우리는 무심히 흘러가는 시간 속에서 무언가를 남겨야 한다는 절박한 마음으로, 아이와 함께 나무를 심었다. 무화과나무. 아이는 유모차에 앉은 채로 제 몸보다 큰 삽을 아빠와 함께 쥐고 무화과나무 뿌리에 흙을 뿌려주었다. 그리고 수도 호스를 잡고 물도 흠뻑 뿌려주었다. 1년이 지나고, 아이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게 되어 하루의 전부를 침대에 누워서 보내게 되었다. 그러나 아이는 그 힘겨운 투병 생활 동안에도 웃음을 잃지 않았다. 늘 해맑았고, 사랑스러웠다. 그러나 점점 약해지는 아이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은 내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다. 엄마로서 아이에게 해줄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 너무도 비참했다. 2024년의 가을, 아이는 하루가 다르게 야위어갔고, 증상은 점점 나빠져 갔다. 아이에게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그런 아이의 곁을 늘 지키며, 잘 알지 못하는 ‘하느님’을 떠올리면서 두 손 모아 서툰 기도를 하기 시작했다. ‘하느님, 저희 아이가 평온한 시간을 보내게 해주세요.’ 그리고 나는 그 꿈을 꾸었다. ‘베델’로 향하는 꿈. 꿈을 꾼 후 며칠 동안은 아이를 돌보는 일상 중에도 그 꿈의 의미가 무엇일지 계속 떠올려봤다. 그리고 나는 그날도 나를 향해 힘겹게 미소를 지어주는 아이의 모습을 보면서, 아이에게 세례를 받게 해줘야겠다고 결심했다. 그것은 아이를 위해 내가 해줄 수 있는 유일한 일이었다. 남편은 어릴 때 세례받은 이후 긴 냉담 중인 천주교 신자였다. 내가 꾼 꿈 이야기를 해주고, 우리는 함께 의견을 나눴다. 아이에게 세례를 주기 위해서 뭘 해야 하는지 전혀 알지 못했지만, 남편은 바로 성당으로 향했다. 집 근처를 오가면서 늘 무심코 지나치던 길에 오래전부터 자리 잡고 있던 성당. 남편은 성당 사무실을 찾아 들어갔다. 그곳엔 주임 신부님이 이미 계셨고, 남편은 우리 아이가 처한 상황을 말씀드렸다. 그리고 며칠 뒤에 신부님께서 세례식을 하러 우리 집으로 찾아오시기로 했다. 아이의 세례식 날, 우리는 아이에게 늘 입히던 파자마 대신, 미리 준비해 놓은 단정한 하얀색 셔츠와 검은색 바지를 입혀 주고, 손목에는 아이가 좋아하는 빨간색 나무 묵주를 쥐여주었다. 아이에게는 “신부님이 기도해 주시러 오실 거야. 마음속으로 ‘아멘’하고 말하면 돼” 하고 간단히 설명해주었다. 아무것도 먹을 수 없고, 말도 할 수 없는 상태였지만 아이는 눈을 깜빡이며 알겠다고 말하는 듯했다. 신부님과 수녀님, 대부님께서 함께 집으로 찾아오셨고, 신부님은 아이의 손을 잡고 유아세례와 병자세례를 함께 주셨다. 아이는 편안한 얼굴로 묵묵히 세례를 받아들였다. 아이에게는 ‘안젤로’라는 새 이름이 생겼다. 세례식을 지켜보는 나와 남편의 마음은 먹먹해졌다. 그 후 남편과 나는 한 명씩 번갈아가며 거의 매일 성당 미사에 참여했다. 미사가 시작되면, 신부님께선 늘 우리 아이의 이름을 불러주셨다. “김 안젤로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나는 ‘5단 묵주 기도’라는 것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안젤로의 곁에서 안젤로의 평안을 바라며 기도했다. 하루하루 지날수록 안젤로의 호흡과 의식이 조금씩 약해져 가는 것을 느끼면서도, 그저 오늘 하루를 안젤로와 함께할 수 있음에 감사하며 또 기도했다. 그리고 안젤로에게 예수님의 생애가 담긴 동화책을 읽어주기도 했다. 안젤로는 자그마한 눈을 살며시 뜨고 동화책에 있는 그림을 보면서 엄마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예수님을 알게 되었다. 나는 하늘에 있는 천국이 어떤 곳인지에 관해서도 이야기해 주었다. 사실 나는 천국에 대해서 잘 몰랐지만, 어떤 노래 가사의 ‘많은 사람이 다 모였네. 천국에 가서 커다란 사자와 친구가 되었네. 모두 여기서 다시 볼 거야’라는 구절이 떠올랐다. 그리고 나는 안젤로에게 “하늘나라에 가면 엄청 큰 사자랑 호랑이랑 다 친구가 된대. 예쁜 꽃이랑 나비도 많이 있는 아름다운 곳이야. 천국에서 하느님이 너와 함께 하실 거야”라고 말해주었다. 그러면 안젤로는 그저 배시시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띠었다. 2024년 12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안젤로의 상태는 급격히 나빠졌다. 안젤로의 생일인 1월 1일을 함께 보낼 수 있기를 바라며, 나는 안젤로의 손을 붙잡고 간절히 기도했다. “하느님, 우리 안젤로가 저희 곁에서 함께 생일을 맞이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안젤로의 모든 시간이 평안하기를 빕니다. 그리고⋯ 안젤로를 저희에게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젤로의 맥박과 호흡은 불안했고, 의식도 없었다. 그렇지만 감사하게도 안젤로는 크리스마스, 그리고 새해와 함께 찾아온 7번째 생일날을 우리와 함께 보낼 수 있었다. 그리고 며칠이 지난 1월 9일, 안젤로는 내 품에서 마지막 숨을 쉬며,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내 눈에선 하염없이 눈물이 흘렀지만, 이제는 아픔이 없는 곳에서 편안해질 안젤로를 생각하며 나는 그저 안젤로를 오래오래, 꼭 안아주었다. 구글 제미나이 제작 안젤로의 장례식을 마치고 돌아온 집은 안젤로의 흔적들로 가득했다. 안젤로가 좋아했던 장난감들과 안젤로의 옷, 여전히 남아있는 안젤로의 머리카락들⋯. 집 안의 거의 모든 것들에 안젤로의 숨결이 담겨있었다. 안젤로가 늘 누워있었던 침대 자리가 텅 비어 있는 것을 보고 가슴이 무너지는 듯했고, 안젤로의 짐을 정리해야 했을 때도 나는 그 앞에 주저앉아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안젤로를 주님의 품에 안겨드리고 난 후, 나와 남편에게는 ‘살아간다는 것’의 의미가 사라져버린 느낌이었다. 어둠 속에 덩그러니 홀로 남겨져 있는 듯했다. 어디를 가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아무 생각을 할 수가 없었고, 그 어떤 것으로도 안젤로의 빈자리를 채울 수가 없었다. 스마트폰을 가득 채운 안젤로의 사진과 동영상은 다시 꺼내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어쩌다 사진을 볼 때면, 하염없이 눈물이 흐르고 가슴 속의 멍은 더 짙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렇지만 그저 아프기만 했던 시간 속에서도 나는 기도와 성경 쓰기를 놓지 않았다. 기도하면서 어지러운 내 마음을 깊이 들여다보고, 하느님께 도움을 청했다. 나와 남편은 오랜만에 안젤로와 함께 심었던 무화과나무를 보러 갔다. 처음 심었을 때 30㎝ 남짓한 크기로 푸릇푸릇한 나뭇잎을 두르고 있었던 무화과나무는 한겨울이 되어 앙상한 나뭇가지만 남은 상태였다. 차디찬 바람을 맞으며 홀로 서 있는 무화과나무가 너무도 안쓰러워 보였다. 이 나무가 따스한 바람이 불고 뜨거운 햇빛을 맞이하면, 꼭 다시 싱그러운 나뭇잎을 입기를 바랐다. 여느 때와 다름없이 가슴 속에 허전함을 담고 있던 어느 날, 나와 남편은 천장을 바라보면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앞으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할지에 대해서 조심스럽게 한 마디씩 주고받았다. 말수는 적었고, 침묵은 길었다. 허공에는 고요함만 가득 차 있었다. 그러다 내가 말했다. “우리⋯, 아기 낳을까?” 남편은 처음에는 흠칫 놀라더니, 이내 입가에 떠오르는 웃음을 못내 감추며 말했다. “안젤로한테 동생이 생기는 건가?” 그렇게 안젤로 동생에 대한 대화를 시작으로, 나와 남편 사이에 있던 무거운 빗장이 스르르 풀리기 시작했다. 그 순간, 깊은 동굴 속에 살던 우리에게 따스한 햇볕이 스며드는 느낌이었다. 며칠이 지난 어느 날엔가, 남편의 꿈에 안젤로가 찾아왔다. 전 세계의 다양한 친구들과 함께 아빠를 찾아와서 인사를 하고 갔다. 그리고 평소 좋아하던 꽃게를 먹고 싶다고 이야기했다고 한다. 그 이야기를 들으니, 비로소 마음이 편안해짐을 느꼈다. ‘우리 안젤로가 잘 지내고 있구나.’ 나는 다음날 아침, 꽃게를 다듬어서 꽃게탕을 끓이고, 평소에 안젤로가 좋아했던 어묵볶음과 갈치구이, 김자반과 함께 안젤로가 늘 쓰던 어린이집 식판에 밥을 차려서 안젤로의 사진 앞에 놓아주었다. 안젤로를 위해 무언가를 할 수 있다는 사실이 기뻤고 그 음식을 하는 시간이 내겐 참 행복이었다. 두 달 후, 나는 성당에서 예비신자 교리 교육을 받으며 신자가 되기 위한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슬픔에만 빠져있지 않기 위해 하루도 빠짐없이 성경 필사를 하며 하느님 말씀을 가슴에 새기기 위해 노력했고, 교리 교육도 열심히 참석했다. 주체할 수 없는 슬픔과 불안함은 계속되었지만, 함께 교리 교육을 듣는 교우들과 성당에 오게 된 이야기를 나누며 함께 눈물을 흘리기도 하고, 서로를 위해 기도를 해주기도 했다. 나와 대모님과의 인연은 안젤로의 장례식 때부터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대모님은 위태로워 보이는 나를 살뜰히 대해주셨고, 교리 교육 시간마다 늘 먼저 오셔서 인사해주셨다. 미사 시간에는 영성체를 하시고 내 옆에 앉으시고는 내 가슴 위에 손을 얹고 늘 눈물로 기도해주셨다. 6개월의 교리 시간은 정말로 나에게 복된 시간이었다. 단순히 교리를 배우는 것만이 아니라, 마음의 치유를 받고, 서로를 이해하며, 서로를 위하는 법을 배우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언제나 위로의 눈빛을 보내주시는 신부님과 수녀님, 대모님의 따뜻함이 나를 치유해 주었고, 하느님 앞에서 기도하는 모든 순간이 나를 살게 해주었다. 세례식 날, 정말로 많은 분들이 축하해 주셨다. 진정한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날, 나는 세례를 받으며 하느님께 기도드렸다. “하느님, 저를 하느님의 자녀로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안젤로의 인도로 제가 하느님께 왔습니다. 주님, 안젤로가 저희에게 준 사랑을 오래도록 기억할 수 있게 하소서. 또한 새로운 생명을 잉태하여서 그 사랑을 나눌 수 있도록 도와주소서.” 가을바람이 불기 시작하고 나와 남편은 안젤로와 함께 심은 무화과나무를 다시 보러 갔다. 무화과나무를 보니 안젤로를 만난 것같이 반가웠다. 안젤로와 함께했던 소중한 시간이 그곳에 있었기 때문이다. 봄, 여름, 가을을 보낸 무화과나무는 놀라울 만큼 커져 있었다. 어느덧 키가 내 어깨만큼 자라있었고 널따란 잎도 무성했다. 그리고 주먹만 한 무화과 열매가 주렁주렁 달려있었다. 한 해 동안 이렇게나 건강하게 자라준 무화과나무가 너무나 기특했다. ‘참 잘 자라주었구나⋯.’ 무화과 열매는 안젤로가 우리에게 준 선물인 것 같았다. 나는 빨갛게 잘 익은 무화과를 한입 베어 물었다. 달큼한 맛과 싱그러운 향이 그리움과 함께 느껴졌다. 나는 9일 기도를 시작했다. 하루도 빠지지 않고 기도한다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직접 만든 5단 묵주를 손에 쥐고, 나는 안젤로의 평안과 새로운 생명을 청하는 마음으로 묵묵히 하루하루를 기도로 쌓아갔다. 달력에 환희의 신비, 빛의 신비, 고통의 신비, 영광의 신비를 순서대로 적어가며 매일 기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나는 간절함과 감사함을 담아서 성모님께 함께 기도해주시기를 청했고, 하느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실 거라는 믿음으로 계속 기도했다. 기도하는 날이 쌓일수록 내 마음은 평안함을 되찾았고, 새로운 생명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다. 그리고 54일간의 9일 기도를 마친 2025년 10월, 기적처럼 우리에게 새 생명이 찾아왔다. 나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그동안 새 생명에 대한 희망과 감사의 마음으로 기도해왔고, 이제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 기쁜 소식을 알게 된 많은 분이 함께 기뻐해 주셨고, 또 기쁨의 눈물도 함께 흘렸다. ‘기쁨이’가 건강하게 무럭무럭 자라길 바라면서 지금도 나는 계속 기도하고 있다. 나의 삶에서 가장 행복했던 때는 안젤로와 함께했던 모든 시간들이다. 엄마로서의 나는 서툴렀지만, 안젤로는 늘 변함없는 사랑으로 나를 대해주었다. 안젤로가 나에게 준 사랑은 가슴 속에 그대로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안젤로가 이 땅에서의 시간을 다 보내고 일찍 하느님 나라로 갔을 때, 그 시간은 내게 너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지만, 그때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오직 기도뿐이었다. 말씀을 묵상하며 아픈 마음을 다스리려 노력했고, 고통스러운 시간을 견뎌내기 위해서 묵주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 8,12) 이제 나는 ‘기쁨이’를 만나는 날을 고대하며 기쁜 마음으로 매일 기도한다. 내가 어둠 속을 헤매고 있을 때, 나의 곁에서 희망을 놓지 않고 기도할 수 있도록 빛을 주신 하느님. 나는 오늘도 나를 희망의 길로 이끌어주시는 주님께 감사의 마음을 담아 기도한다. 주님, 저희를 주님의 품으로 이끌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주님의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아멘. 최유란 릴리안cpbc2026.03.17

붓끝으로 피어난 복음, 주보에 ‘K-영성’ 수놓다서울주보 표지 그림 봉헌 하삼두 화백 작업 중인 하삼두(스테파노) 화백. “그림은 하느님께 드리는 일상 보고” 김범우순교자성지서 매일 미사 참여 신학적 오류 있나 학자 신부님께 자문 “나의 신앙 고백 담겼나 늘 깊이 생각” 미사 때면 유심히 또는 무심히 바라보는 주보. 성당에 들어선 모든 신자가 손에 쥐는 만큼 첫 장을 장식하는 표지 그림의 의미는 남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 차원에서 올해 ‘서울주보’의 표지 그림에 자연스레 눈길이 머무는 이가 많을 것이다. 지난해까지 세계적인 성화가 반기던 자리를 색다른 느낌의 수묵화가 장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몇 주 정겹게 바라보다 작가의 이름을 새기고 직접 연락해 보았다. 한국화 필법과 미학으로 표현한 묵상 성화 “김범우순교자성지(성모동굴성당)에서 매일 미사에 참여해요. 감실 앞에서 많은 생각을 합니다. 제게는 그림이 하느님께 드리는 일상 보고인 만큼 미리 주일 복음을 읽으면서 연구하고 새로 그림을 그리고 있어요. 제 그림 창고에서, 파일 속에서 꺼내오는 게 아녜요. 올해 서울에 계시는 분들은 50여 점의 새로운, 스타일도 각기 다른 그림을 보게 되실 겁니다.” 서울주보를 볼 때마다 눈여겨본 이름은 하삼두(스테파노) 화백이다. 동아대와 홍익대 대학원에서 동양화를 전공한 하 화백은 본지를 비롯해 다수의 가톨릭 매체에 그림을 연재해왔다. 30여 년 교회 안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는 만큼 주보 표지 그림을 봉헌하는 것은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니다. 다만 밀양에 작업실을 두고 부산·경남 지역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는 그가 서울주보의 표지를 수놓는 것이 의아했다. 서울대교구 문화홍보국 차장 박우준 신부는 이에 대해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개최를 1년 앞둔 올해 서울주보가 천명한 주제는 ‘K-톨릭’”이라며 “이 신조어가 지향하는 바는 한국 교회가 세계 교회에 기여할 수 있는 고유한 영성과 문화적 자원이 무엇인지를 자각하고 발굴하려는 성찰적 운동과 맥을 같이한다”고 말했다. 이어 “올해 서울주보는 한국 교회의 문화적 토양 속에서 자생하고 성숙해 온 신앙의 표현들을 최대한 폭넓게 조명하고자 하며, 하 화백은 한국화의 필법과 미학으로 묵상 성화를 완성해 오신 작가로서 그 예술적 역량과 작업량을 감당하실 성실함을 두루 갖춘 분임을 확인하였기에 이 귀한 협업이 성사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주보 표지 그림은 그 주일 미사의 복음을 묵상한다. 사제의 강론에 앞서 복음을 해석하고 그림은 물론 짧은 텍스트로 메시지를 전해야 하는 만큼 상당히 부담스러운 작업이 아닐 수 없다. “복음을 읽으면서 키워드가 무엇인지, 보편 교회의 가르침은 무엇이고, 나의 경험에서 어떤 것을 들추어낼 수 있고, 함께할 수 있는 경험은 무엇인지, 내가 알지 못하지만 무엇에 대한 그리움을 느끼게 해야 하는지 계속 연구하죠. 사실 그림을 그리는 시간보다 텍스트에 들이는 시간이 훨씬 많아요. 어떤 단어를 선택할지 고심하고, 글을 읽을 때 걸림이 없도록 윤문도 하고요. 가톨릭신학원에서 공부했지만 신학적 오류가 없도록 부족한 부분은 학자 신부님들에게 문의하기도 하고, 자기 고백이 있는가도 유념합니다. 나의 신앙 고백이 없으면 이 그림은 내가 안 그려도 되니까요. 그리고 내년 서울 세계청년대회가 중요한 시간의 마디이니만큼 젊은이에게 초점을 맞추고 신경을 많이 쓰죠.” 사순 제2주일(3/1) 서울주보 표지 그림. 유턴 표지판 안쪽에 예수님의 옆얼굴이 자리하고 있다. 성경서 찾은 ‘용묵법’ 그의 그림에 눈길이 머문 건 한국화라는 점에만 기인하지 않았다. 특유의 차분한 붓 터치와 색감 때문이랄까. 하 화백은 그 표현방식을 ‘용묵법’이라 이름 지었다. 독서 때 ‘노아의 방주’를 읽으며 “정결한 짐승은 모두 수놈과 암놈으로 일곱 쌍씩, 부정한 짐승은 수놈과 암놈으로 한 쌍씩 데려가거라”(창세 7,2)는 말씀에 오랜 머문 결과다. “7대 1의 비율인데, 하느님께서 세상이 혼탁해서 새 판을 짜시며 굳이 부정한 것을 넣은 이유가 궁금했어요. 화가로서 온갖 실험을 하다가 건조율에서 발견했지요. 제 그림을 보고 좀 독특하다 생각했다면 테크닉적인 부분일 텐데, 화선지는 한번 먹을 하면 용해가 안 되거든요. 마르고 나면 물에 담가도 안 녹아요. 그런데 7 정도 마르고 1 정도 안 말랐을 때 물로 씻어내면 이미 그린 먹이 용해가 되더라고요. 테두리가 먼저 마르기 때문에 테두리가 남아 있는 상태로 용해가 돼요. 그 기법을 제가 발견했어요. 독서의 성과죠.(웃음) 그리고 동양화에서는 가능하면 붓을 물에 빨지 말라고 하거든요. 색이 항상 인접하도록. 섞으면 탁해지지만 침투하면 서로 다른 색의 기운과 맥이 살아 있어요. 모든 사물은 자세히 보면 흑과 백의 경계 부분이 단절된 것이 아니라 항상 이어져 있고, 색감도 징검다리가 반드시 존재해요.” 사순 시기 역시 부활과 연결되어 있다. 사순 제2주일 그가 놓는 징검다리에는 ‘유턴 표지판’이 보인다. “무척 힘든 일이 있었을 때 운전하다 유턴 표지판을 보는데 예수님이 딱 나타나셨어요. ‘지금 너 어디 가노?’라고 말을 걸어오시더라고요. 그래서 유턴 고리 안쪽에 예수님의 옆얼굴을 그려 넣었습니다. ‘여러분한테는 이런 손길이 없었는가, 다 있습니다’라는 이야기를 하는 거죠. ‘회심’이나 ‘회개’라는 말을 표현한 거고요. 사순 시기 전체적인 주제이기도 합니다. 사순 시기에서 부활로, 다시 삼위일체까지는 굉장히 압축돼 있어서 아무래도 연중 시기에 비해서는 차이가 많이 나더라고요.” 3·4월 스위스 마리아슈타인 수도원서 작품전 그는 3월 21일부터 4월 26일까지 스위스 마리아슈타인 수도원의 부설 갤러리에서 전시회도 개최한다. ‘창조주의 섭리’라는 제목으로 32점을 선보일 예정이다. “K-문화 열풍과 관련해 스위스에서 취재하러 온 분들이 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 묵으면서 제 그림들을 보셨나 봐요. 그렇게 이뤄진 전시인데, 동양의 철학은 초월이 아니라 접근·도달이거든요. 창조 질서가 살아 있는 땅, 그 동양 문화의 향기를 보여드리려 합니다. 수익금은 전쟁으로 인한 우크라이나 난민들을 돕는 데 사용할 예정이고요.” 열두 달이라는 긴 여정에서 이제 도입부를 지나온 셈이다. 매주 지치지 않고 성실하고 정갈하게 걸어가야 할 발걸음에 어떤 마음가짐을 땔감으로 쌓고 있는지 물어본다. “작가로서 최고의 독자가 생기는 작업이 주보잖아요. 하느님이 개입하시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이라는 생각을 갖고 열심히 할 거고요. ‘이 그림을 통해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몫을 할 것인가’가 지금 저한테 주어진 숙제입니다. 창조주가 처음으로 나를 만들 때 ‘어떤 것을 하라’고 만든 그 속성이 있잖아요. 저는 그것을 빛깔처럼 ‘깔’이라는 접미사로 표현하는데요. ‘깔’을 되찾는 작업을 해야 된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야만 이 공동체의 일원으로 같이 평화를 누릴 수 있다 생각하고, 그 피조물로서의 몫을 회복하는 데 일조하고 싶습니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6.02.24

아브라함 (7) 기다림의 끝, 예수라는 영원한 계약[월간 꿈 CUM] 뿌리 _ 구약이 말을 건네다 (12) 어렸을 적 어느 날, 어머니께서는 장난감 가게에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두리번거리던 나에게, ‘잠시 어디 다녀올테니 이 안에서 가만히 기다리고 있어’라는 말씀을 하시고 어딘가를 다녀오셨던 적이 있다. 길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난 그 자리에 가만히 기다릴 수 없는 상황이었고 어머니와 나는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 극적으로 다시 만나야 했던 적이 있었다. 다시 만났던 그 순간, 어머니에게 보여지던 복잡 미묘하고 상기된 표정과 목소리의 떨림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이는 어린 나에게 있어서 약속이 지닌 커다란 무게감을 체험했던 첫 기억이었던 것 같다. 성경의 하느님은 약속의 하느님이다. 그런데 무엇인가를 요구하는 약속이 아닌, 하시겠다는 약속이며, 베풀어 주시겠다는 약속이다. 인간은 그저 그것을 믿으면 그만인 것이다. 그 쉬운 걸 못하겠다고? 사실 쉬운 이야기는 아니다. 그 이유는 그 약속의 실현에 시간이 걸리기 때문이다. 조급하고 초조한 인간에게 있어서 사실 그만큼 어려운 일도 없다. 언제 이루어질지 모를 그 약속의 실현을 언제까지 믿으란 말인가? 흥미로운 점은 성경에서 주님께서 베푸시는 은총과 섭리에 대한 약속은 자주 묘사되고 있지만, 그것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계약’이라는 용어는 매우 드물게 언급된다는 점이다. 이 짧은 지면에 계약이라는 용어의 어원적인 의미와 특징에 대해 논할 수는 없다. 다만, 성경에서 약속의 하느님이라는 두드러진 모습에 비해 그 약속을 명시적으로 드러내는 ‘계약’이라는 어휘가 드물게 사용되는 것을 보면, 그만큼 인간이 그분의 약속을 신뢰하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일 수도 있다. 약속의 하느님은 아브라함의 이야기 안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이야기 안에서 계약이라는 말은 15장 18절에 처음으로 등장한다. 그 계약이라는 용어가 사용되고 있는 전후의 문맥은 다음과 같다. 12 해 질 무렵, 아브람 위로 깊은 잠이 쏟아지는데, 공포와 짙은 암흑이 그를 휩쌌다. 13 그때 주님께서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잘 알아 두어라. 너의 후손은 남의 나라에서 나그네살이하며 사백 년 동안 그들의 종살이를 하고 학대를 받을 것이다. … 16 그리고 그들은 사 대째가 되어서야 여기로 돌아올 것이다. 아모리족의 죄악이 아직 다 차지 않았기 때문이다.” 17 해가 지고 어둠이 깔리자, 연기 뿜는 화덕과 타오르는 횃불이 그 쪼개 놓은 짐승들 사이로 지나갔다. 18 그날 주님께서는 아브람과 계약을 맺으시며 말씀하셨다. “나는 이집트 강에서 큰 강 곧 유프라테스강까지 이르는 이 땅을 너의 후손에게 준다.” 위의 본문은 하느님의 약속을 이해하는 데에 있어 중요한 대목일 수 있는데, 어째서 하느님은 계약을 맺기 전에 악이 차기를 기다리신다는 말씀을 하시는가? 조금 난해할 수도 있지만 성경 안에서 드러나는 이러한 표현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신뢰를 드러낸다. 하느님은 시간을 열어놓으시고 초대하시어 그 안에서 인간이 자신의 삶을 살고 도전하며 노력할 수 있도록 기다리신다. 그렇게 마지막까지 기다리신 후, 인간이 자신의 삶과 주변을 더 이상 지켜 나갈 수 없고 그것이 확실시되었을 때, 하느님은 결정적인 방식으로 개입하신다. 성경에서 ‘마지막 때’, ‘때가 다 찼을 때’라는 표현은 마지막 시점까지 허락하시고 기다리시는 하느님의 모습을 담고 있다. 아마도 이점은 하느님께서 인간의 삶에 급히 개입하지 않으신다는 이스라엘 민족의 영적인 체험과 지혜의 결과물인 듯 여겨진다. 그분은 시간을 두고 바라 보시며, 그 어떤 일련의 일들이 진정으로 무너지거나 파괴되기 직전에 개입하신다. 역설적으로, 인간의 타락이 모든 것을 파괴하기 시작할 때, 하느님께서는 모든 것을 구하신다. 이 안에는 인간을 마지막까지 신뢰하는 하느님의 모습이 서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아브라함 이야기에선 그러한 신뢰적인 소통 안에서 계약이라는 약속이 체결된다. 어머니와 나는 그 일이 있은 후, 다행히도(?) 서로 간의 신뢰를 잃지 않았다. 그것은 나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어머니께서 나를 끔찍이 사랑해 주셨기 때문이다. 아마도 어머니는 아주 오랜 시간 동안 나를 기다려 오셨을 것이다. 약속하신 분을 기다리는 대림시기를 보내고 있다. 하느님이 우리를 믿고 기다리셨던 것처럼, 이번 대림에는 그분의 마음을 헤아리며 기다림의 시간을 가져보면 좋겠다. 그리고 그 기다림 끝에 예수라는 영원한 계약을 만나기를 희망해본다. * 그동안 꿈(CUM)과 함께해 주신 오경택 신부님께 감사드립니다. 글 _ 오경택 신부 (안셀모, 춘천교구 성경 사목 담당 겸 교구장 비서) 로마 교황청립 그레고리안 대학교에서 성서신학을 전공했으며, 예루살렘 프란치스칸 성서대학에서 성서 고고학 디플롬(diploma superiore)을 이수했다. 춘천교구 묵호, 퇴계 본당 주임을 지냈으며, 현재 교구장 비서 및 교구 성경 사목 담당 소임을 맞고 있다. cpbc2024.11.25

임마누엘, 메시아의 베들레헴 탄생 예언[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4) 미카서 미카서는 메시아가 다윗의 고향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그리스도교는 미카의 이 예언이 예수님의 탄생으로 성취됐다고 고백합니다. 미카 예언자 이콘. “너 에프라타의 베들레헴아. 너는 유다 부족들 가운데에서 보잘것없지만 나를 위하여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너에게서 나오리라.”(미카 5,1)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듣거나 읽었을 성경 말씀입니다. 예수님 탄생 이야기를 할 때 꼭 인용되는 성구이기 때문입니다. 구약 시대 이 예언을 한 이가 바로 ‘미카’ 예언자입니다. 히브리어 미카는 ‘미카예후’를 줄인 말입니다. 우리말로 ‘누가 야훼와 같으랴?’라는 뜻입니다. 이 단어는 기원전 9세기께 유다인들 사이에서 유행했다고 합니다. 이 미카 예언서를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은 ‘Μιχαιαs’(미카이아스)로,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Michaeas’(미캐아스)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미카서’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미카서 머리글은 미카 예언자를 “유다 임금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1,1)이라고 소개합니다. 이는 미카가 기원전 8세기에 이사야 예언자와 같은 시기에 활동했음을 알려줍니다. 당시 이스라엘 주변 강대국은 아시리아였습니다. 아시리아의 군사력은 엄청났습니다. 아시리아는 무력으로 주변의 작은 나라들을 짓밟았습니다. 그래서 기원전 8세기 고대 근동 지역은 전쟁이 끊이지 않던 시대였습니다. 당시 아시리아의 군사력은 북 왕국 이스라엘뿐 아니라 남 왕국 유다에도 미쳤습니다. 이 시기가 기원전 740~687년에 해당합니다. 이때 이스라엘 민족에게 중요한 두 사건이 일어납니다. 기원전 722년 북 왕국 이스라엘 수도인 사마리아의 함락과 기원전 701년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의 남 왕국 유다 침공입니다. 당시 활동했던 이사야 예언자는 “히즈키야 임금 제십사년에, 아시리아 임금 산헤립이 유다의 모든 요새 성읍으로 올라와서 그곳들을 점령하였다”고 밝힙니다.(이사 36,1) 이 침략으로 미카의 고향 모레셋도 아시리아군에 점령당합니다. 모레셋은 예루살렘에서 남서쪽 약 35㎞ 떨어진 필리스티아의 작은 마을입니다. 오늘날 ‘텔 엘 주데데’로 추정합니다. 당시 북 왕국 이스라엘은 폭력과 음모가 난무하는 정변들로 말미암아 극심한 정치적 불안과 경제적 불균형에 시달리고 있었습니다. 북 왕국에 비해 남 왕국 유다는 정치ㆍ경제적으로 안정된 상태를 유지했습니다. 하지만 유다 역시 사회 내부는 부패로 곪아가고 있었습니다. 종교적으로 바알 우상에 젖어있었고, 지주들은 소작인들을 무자비하게 착취했습니다. 미카서는 이러한 정치ㆍ사회 배경에서 나온 예언서입니다. 7장으로 구성된 미카서의 주제는 ‘심판과 구원’입니다. 아시리아 침공을 심판의 징조로 본 그는 이 불행이 예루살렘에도 들이닥치게 될 것이라고 경고합니다.(1,8-16; 3,12) 그러면서 그는 백성을 억압하는 지도자들과 자신의 사치를 위해 가난하고 힘없는 백성들을 착취하는 부자들, 그리고 돈에 매수되고 거짓 예언과 허례허식에 찌든 종교 지도자들을 비난합니다. 아울러 하느님보다 국제적 정세와 권력과 힘에 의존하는 정치ㆍ종교 지도자들을 꾸짖습니다.(2,1-5; 3,1-4; 5,9-14) 이어 미카는 온통 짓밟힌 유다 땅에서 장차 하느님께서 이루어주실 평화로운 날들을 예고합니다. 특히 ‘메시아 탄생’과 ‘메시아 왕국의 설립’을 예언합니다.(4─5장) 미카는 하느님께서 작은 고을 베들레헴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릴 이가 태어나게 하실 것이고, 그는 목자처럼 백성을 이끌 평화의 임금이 되며, 백성은 안전하게 살 것이라고 선포합니다.(5,1-4) 베들레헴은 다윗의 고향입니다. 미카는 새로운 다윗이 부정과 부패의 본거지로 전락한 예루살렘이 아닌 보잘것없는 시골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도교는 이 예언이 ‘메시아 도래’의 약속이라고 봅니다. 메시아는 베들레헴에서 태어나 앞으로 다스리게 될 자기 양 떼의 목자로서 새로운 다윗의 역할을 떠맡아 수행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교는 이 약속이 ‘예수님 탄생’으로 성취되었다고 고백합니다.(마태 2,6) 다윗의 후손인 한 임금을 통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구원을 주시리라는 이스라엘 민족의 희망은 다윗 왕조가 무너진 후 장차 올 ‘메시아’에 대한 기다림으로, 종말에 이루어질 ‘메시아 왕국’에 대한 믿음으로 발전합니다. ‘메시아’는 본래 ‘기름 부음을 받은 이’를 뜻합니다. 기름 부음을 받는 이는 누구보다 ‘임금’을 가리킵니다. 미카 예언자와 같은 시대 또는 15~20년 앞서 활동한 이사야 예언자는 “우리에게 한 아기가 태어났고 우리에게 한 아들이 주어졌습니다. 왕권이 그의 어깨에 놓이고 그의 이름은 놀라운 경륜가, 용맹한 하느님, 평화의 군왕이라 불리리이다”라고 예언했습니다.(이사 9,5) 그러면서 그는 “젊은 여인이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할 것입니다”라며 장차 오실 메시아를 구체적으로 밝힙니다.(이사 7,14) 미카 예언자는 이 임마누엘이 베들레헴에서 태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교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 예언이 성취됐다고 고백합니다. 아울러 그리스도교는 미카가 예언한 대로 베들레헴에서 탄생하신 예수님께서는 종말론적 구원을 약속하고 실현하신 분이시라고 선포합니다. 리길재 선임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4.03.06

누구에게도 예외없는 하느님의 보편 사랑[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3) 요나서 요나서는 에즈라-느헤미야 시대 이스라엘의 민족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율법 중심의 배타적 분리주의 삶을 배격하고, 하느님께서는 누구도 예외없이 당신의 보편적 사랑을 베푸시어 모든 이를 구원하신다고 가르치고 있다. 미켈란젤로, ‘요나 예언자’, 1508년께, 시스티나 소성당, 바티칸. 구약 성경 예언서 가운데 요나서 만큼 그리스도교 성미술에 영감을 준 경전이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성미술가들뿐 아니라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어른들이 자녀들과 아이들에게 요나 이야기를 들려주며 신앙생활의 교훈을 전승해주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나 예언자의 됨됨이보다는 흥미로운 삶의 여정 때문일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활 중 요나를 언급하셨죠. 주님께서는 당신께 기적을 요구하는 바리사이들과 사두가이들의 청을 거절하시면서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구나! 그러나 요나 예언자의 표징밖에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요나가 사흘 밤낮을 큰 물고기 배 속에 있었던 것처럼, 사람의 아들도 사흘 밤낮을 땅속에 있을 것이다. 심판 때에 니네베 사람들이 이 세대와 함께 다시 살아나 이 세대를 단죄할 것이다. 그들이 요나의 설교를 듣고 회개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보라,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에 있다”(마태 12,39-41)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께서 행하시는 기적의 의미가 무엇보다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을 실현하는 것임을 보여주신 것이죠. 실제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주님 부활로 명료하게 드러납니다. 이에 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께서)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되살아나셨다”고 선포합니다.(1코린 15,4) 구약 성경 제1경전인 「타낙」은 요나서를 오바드야서 다음, 미카서 앞에 배치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우리말로 ‘비둘기’라는 뜻입니다. 이는 구약 성경 안에서 하느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상징으로 종종 사용되기도 했습니다.(호세 7,1; 11,11; 시편 74,19)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 그리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발행한 우리말 「성경」은 히브리어 요나를 음차해 ‘Ιωναs’(요나스), ‘Ionas’, ‘요나서’로 표기합니다. 요나서는 “주님의 말씀이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에게 내렸다”로 시작합니다.(1,1) 그래서 요나 예언자가 기원전 8세기 북 왕국 이스라엘 예로보암 2세 임금에게 이스라엘의 땅을 되찾을 것이라고 말했던 ‘요나 벤 아미타이’(2열왕 14,25)와 같은 사람이라고 추정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성경학계에서는 예로보암 2세 때 활동했던 아미타이의 아들 요나는 ‘국수주의자’인 반면 요나서의 주인공인 ‘만민 보편 구원주의자’로 서로 맞지 않기 때문에 같은 사람이라 볼 수 없다는 게 지배적인 견해입니다. 기원전 539년 신바빌로니아를 멸망시키고 새로운 대제국을 건설한 페르시아의 키루스 임금은 복속된 민족들의 전통을 존중하고 우호 정책을 폅니다. 키루스 임금은 기원전 538년 칙령을 반포하고 유다인들을 해방시킵니다. 바빌론 포로 유다인 가운데 4만 9897명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옵니다. 귀환자들은 즈루빠벨과 에즈라·느헤미야의 지도로 예루살렘과 성전을 재건합니다. 즈루빠벨은 예루살렘 성전을 기원전 515년에 준공해 봉헌합니다.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를 재조직했죠. 그리고 사제이며 율법학자인 에즈라는 이스라엘의 민족적ㆍ종교적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율법 중심의 유다교 개혁을 단행합니다. 그는 이스라엘 민족에게 예루살렘 성전에서 율법을 근거로 하느님의 백성다운 공동체를 이뤄야 한다면서 이민족과의 완전한 분리를 강요합니다. 유다인들은 에즈라를 ‘제2의 모세’라고 칭송하며 그의 요구대로 이미 혼인해 자녀를 둔 이민족 아내를 내치고 이방인과 그 문화를 배격하면서 율법 중심의 폐쇄적인 삶을 고집스레 살아갑니다. 요나서는 에즈라-느헤미야 시대의 선민의식에 사로잡힌 배타적 분리주의 삶을 배격하면서 하느님의 자비가 모든 민족에게도 열려 있다는 보편 구원관을 드러냅니다. 이 보편 구원관은 제2이사야서(이사 40─55장)에서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성경학자들은 추정합니다. 그래서 요나서는 바빌론 유배가 끝나고 상당 기간이 흐른 뒤 제작됐고, 기원전 180년께 최종 편집됐으리라 짐작합니다. 요나서는 4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리고 내용상 세 장면으로 구분됩니다. 성경학자들은 독립적으로 전승돼 오던 이야기가 편집자의 손을 거쳐 보편 구원관에 기초해 일관된 이야기로 재구성했을 것으로 봅니다. 첫째 장면은 ‘하느님의 부르심과 도주 그리고 회개’입니다.(1─2장) 요나가 아시리아의 수도인니네베로 가라는 하느님의 명을 어기고 반대편 땅끝인 타르테소스로 도망치다 큰 물고기에 삼켜져 고통스러운 사흘을 보낸 뒤 자신의 잘못을 깨닫고 주님의 부르심을 재확인합니다. 둘째 장면은 ‘니네베에서의 설교’입니다.(3장) 요나는 니네베로 가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니네베 사람들은 임금부터 짐승에 이르기까지 모두 단식하며 회개합니다. 셋째 장면은 ‘하느님 자애를 깨우침’입니다.(4장) 요나서의 절정이자 결론 부분으로 하느님께서는 책벌하시려고 하다가도 인간이 회개하면 용서하시는 분임을 드러냅니다.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누구도 예외 없이 당신의 보편적 사랑을 베푸신다는 것을 요나에게 깨우쳐주십니다. 요나서는 하느님의 말씀을 신탁 형식으로 전하는 일반 예언서와 달리 요나가 경험한 사건들을 통해 교훈을 전해줍니다. 요나서는 하느님께서 모든 이의 구원을 바라시기에 이방인들에게도 구원은 주어진다고 합니다. 동시에 요나서는 모든 이가 용서를 베푸시는 하느님을 받아들여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4.02.28

예술로 도약한 판화, 그 판화에 담긴 성경송도 국립세계문자박물관 기획전 ‘문자와 삽화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를 만나다’ 뒤러작, ‘요한 묵시록의 네 기사’, 1497년경, 오토쉐퍼박물관 소장. 독일 르네상스 거장 작품 한자리에 3대 목판화·4대 동판화 등 선보여 대다수 작품 성경 내용 묘사 친숙 문자로 적힌 성경의 주요 내용을 판화를 통해 그림으로 만날 수 있는 전시가 열리고 있다. 바로 ‘문자와 삽화 알브레히트 뒤러의 판화를 만나다’, 지난해 여름 인천 송도에 개관한 국립세계문자박물관의 기획특별전이다. 16세기 독일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알브레히트 뒤러(Albrecht Drer, 1471~1528)의 3대 목판화와 4대 동판화 등 50여 점을 한자리에서 만날 수 있는 전시로, 모두 독일 슈바인푸르트의 오토쉐퍼박물관에서 빌려왔다. 3대 목판화는 각각 ‘성모 마리아의 생애’, ‘대수난’, ‘요한 묵시록’, 4대 동판화는 ‘아담과 하와’, ‘기마병’, ‘서재의 성 예로니모’, ‘멜랑콜리아Ⅰ’이다. 이들 작품이 국내에 한꺼번에 소개되는 것은 1996년 국립현대미술관 전시 이후 27년 만이다. 판화는 여러 장 찍어낼 수 있는데, 이번에 소개되는 3대 목판화는 모두 초판본이다. ‘성모 마리아의 생애’는 성모 마리아의 탄생부터 영면의 과정을 묘사한 20점의 목판화 연작이다. ‘대수난’은 예수가 고통받는 모습을 담은 12점의 연작이며,‘요한 묵시록’ 15점에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천국의 도래 등을 표현했다. 뒤러작, ‘아담과 하와’, 1504년, 오토쉐퍼박물관 소장. ‘아담과 하와’는 최초의 인류인 아담과 하와가 뱀의 형상을 한 마귀로부터 선악과를 받아들면서 원죄를 짓기 직전의 성경 구절을 옮겼다. 예로니모 성인이 작업하는 모습을 담은 ‘서재의 성 예로니모’도 눈에 띈다. 대다수 작품이 성경의 내용을 묘사하고 있는 만큼 그리스도교인에게는 더욱 친숙하게 느껴질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경을 그대로 옮기지는 않았다. ‘마리아의 약혼’을 보면 건축 양식이나 예복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뒤러의 고향인 뉘른베르크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주님 탄생 예고’ 하단에 작게 그려진 악마를 상징하는 용은 성경의 이야기가 전개될수록 성장해 ‘요한 묵시록’에서는 거대한 용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이번 전시를 기획한 양진희 학예사는 “인쇄술의 발달과 함께 뒤러 이전에도 글의 내용을 잘 전달하기 위한 다양한 삽화와 판화는 존재했지만, 뒤러는 의뢰인의 요청을 넘어 자신의 생각을 녹여냄으로써 삽화를 판화라는 하나의 예술 장르로 승화한 인물”이라고 평했다. 스스로 장인이 아니라 아티스트로 도약함과 동시에 문자의 보조 역할을 하던 이미지를 개별적인 의미 전달 매체로 끌어올린 셈이다. 이러한 자의식을 반영하듯 수많은 자화상을 남긴 뒤러는 그를 상징하는 이니셜 ‘AD’를 작품마다 다양한 형태로 각인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뒤러의 대표작을 만날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박물관 1층 기획전시실에서 3월 31일까지 설날 당일과 휴관일인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10~18시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전시 기간 가족이 함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체험 코너도 마련되어 있다. 문의 : 032-290-2000, 국립세계문자박물관 윤하정 기자 윤하정2024.0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