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도시] (44) 트코아](//cpbc.co.kr/CMS/newspaper/2015/05/rc/57047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4) 트코아부정·불의 질타한 예언자 아모스의 고향 트코아로 추정되는 베들레헴 남동쪽 광야. 출처=「성경 역사 지도」, 분도출판사 트코아는 베들레헴에서 도보로 두 시간가량 걸리는 유다 지역 사막 부근에 있다. 예루살렘에서 남으로 약 15㎞ 거리에 있는 해발 1000m 가까운 고지다. 과거 전쟁 때 예루살렘 방어의 언덕이었던 이곳에는 물론 오늘날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다. 계곡의 낮은 지대에는 소규모의 경작지가 있고, 넓은 들판이 있어 양을 치기에 적합하다. 트코아가 성경에서 유명한 지역이 된 것은 아모스 예언자의 고향이어서다. “트코아의 목양업자 가운데 한 사람인 아모스가 전한 말씀. 유다 임금 우찌야 시대에, 곧 이스라엘 임금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 시대에, 지진이 일어나기 이태 전 그는 이스라엘에 관한 환시를 보았다”(아모 1,1). 모압·암몬 침입 막는 데 기여예언자 아모스는 기득권 지배 계층의 부정과 불의, 부당한 억압과 수탈에 대해 용감하게 고발했다. 그리고 인간의 이기적 욕심으로 순수성을 잃은 이스라엘 종교의 타락한 예배 행위와 이교도의 많은 영향을 받은 성소들을 비난했다. 특히 아모스는 뇌물을 받고 엉터리 재판을 하는 관리들과 가난한 백성을 착취하는 고리대금업자들을 비판했다. 그는 이스라엘의 미래가 하느님과의 관계에 좌우되기 때문에 이스라엘이 하느님을 떠나면 이스라엘 민족은 곧 멸망한다고 선포했다. 하느님 이외 어떠한 권세나 물질도 인간의 생명을 보장해 주지 못한다는 것을 전했다. 유다 임금 여호사팟이 유다를 치러 온 암몬 자손들과 모압과 세이르 산 주민들에게 맞서 일어나, 그들을 완전히 전멸시켰던 장소가 트코아 광야였다. “그들은 다음 날 아침 일찍 일어나 트코아 광야로 나갔다. 그들이 나갈 때에 여호사팟이 일어나 말하였다. ‘유다와 예루살렘 주민들이여, 내 말을 들으시오. 주 여러분의 하느님을 믿으시오. 그러면 굳건해질 것이오. 그분의 예언자들을 믿으시오. 그러면 성공할 것이오’”(2역대 20,20). 또 성경에는 요압이 지혜로운 트코아 여인으로 하여금 다윗 왕에게 청하여 압살롬을 돌아오게 한 장면이 나온다. “그래서 요압은 트코아에 사람을 보내어, 거기에서 지혜로운 여인 하나를 불러다가 말하였다. ‘그대는 애도하는 여자 행세를 하시오. 상복을 입고, 기름을 바르지도 말고, 죽은 이를 위하여 오랫동안 애도하는 여자인 체하시오’”(2사무 14,2). 르하브암은 트코아에 요새를 만들었고 예루살렘에서 엔게디로 가는 도로를 만들어 이 도시를 보호했다. “르하브암은 예루살렘에 살면서 유다에 요새 성읍들을 세웠다. 그가 세운 성읍들은 베들레헴, 에탐, 트코아, 벳 추르, 소코, 아둘람, 갓, 마레사, 지프, 아도라임, 라키스, 아제카, 초르아, 아일론, 헤브론이다”(2역대 11,5-6). 이 요새들은 여호사팟이 모압과 암몬 사람들의 침입을 막아내는 데 효과적으로 작용했다.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아예레미야 예언자는 트코아에 적군들이 밀려들자 나팔을 불라고 외쳤다. 나팔이 가장 일반적으로 사용된 것은 주로 전쟁 때 군인을 소집하거나 공격의 개시나 마침을 알릴 때 사용했다. 혹은 적들의 공격을 경고하기 위해서도 사용했다. “벤야민 자손들아 예루살렘 한가운데를 떠나 피난하여라. 트코아에서 나팔을 불고 벳 케렘 위에 봉화를 올려라. 북쪽에서 재앙이, 엄청난 파괴의 조짐이 보인다”(예레 6,1).과거에 많은 역사를 안고 있는 지역이지만 지금은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 되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5.12

종교개혁 500돌, 신앙의 공통분모 찾아 대화를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 공동 기념 문헌 「갈등에서 사귐으로」 출판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교회 일치 운동의 새로운 전기가 될 문헌이 나왔다.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는 11일 서울 성공회대성당 프란시스홀에서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교황청과 루터교가 함께 펴낸 공동 기념 문헌 「갈등에서 사귐으로」<사진> 출판 기념회를 가졌다. 「갈등에서 사귐으로」(From Conflict to Communion)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1965년)와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 450주년(1967년)을 계기로 대화를 시작한 교황청 그리스도인일치촉진평의회와 루터교세계연맹이 종교개혁 500주년을 맞아 양 교회의 대화에 초점을 맞춰 2013년에 펴낸 보고서다. 「갈등에서 사귐으로」 한국어판 발간은 전 세계 그리스도교 차원의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문서를 우리말로 펴냄으로써 한국 교회가 상호 존중의 정신을 바탕으로 세계 교회의 일치 운동에 함께한다는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공동으로 번역한 작업물을 낸 것은 1977년 「공동번역성서」 이후 40년 만이다. 모두 6장으로 이뤄진 문헌은 가톨릭이 루터의 종교개혁을 분열이 아닌 개혁으로 보고, 루터교는 종교개혁에 역사적 요소와 정치적 요소가 섞여 있다고 보는 점에 주목한다. 이어 양측이 수용할 수 있는 신앙의 공통분모들 때문에 대화가 가능하고 또 반드시 대화가 필요하다면서 종교개혁의 역사에 나타난 주요 쟁점들을 짚었다. 문헌의 핵심인 4장 ‘루터교회와 로마 가톨릭교회의 대화에 비추어 본 마르틴 루터 신학의 기본적인 주제’는 마르틴 루터의 제안에 모두 동의한 것은 아니라고 전제하면서 종교개혁 이후 교회 일치의 쟁점이 되는 4가지 신학적 주제, 즉 칭의/의화, 성만찬/성찬례, 교역/직무, 성경과 전통을 다뤘다. 문헌은 공동 기념을 위한 전제와 준비로 △종교개혁의 분열 속에서도 가톨릭교회의 세례 인정 △복음 안의 기쁨 △종교개혁 과정과 이후의 잘못에 대한 회개 △일치를 위한 기도 △교파적 이해에 종속된 신학적 과거의 재평가 △죄의 고백 등을 꼽았다. 문헌은 마지막으로 공동 기념을 위한 5가지 원칙으로 △분열이 아닌 일치의 전망에서 공동 유산 강화 △상호간 접촉과 신앙 증언을 통한 지속적 변화 △가시적 일치 추구 △우리 시대를 위한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능력 회복 △복음 선포와 세상에 대한 봉사로 하느님의 자비 증언을 제시했다.직제협의회 신학위 공동위원장 송용민(주교회의 사무국장) 신부는 “문헌은 순간이 아닌 평생, 단일 교리가 아닌 모든 계시, 유일이 아닌 최고 우선순위 등 일치 정신에 기반을 둔 인식의 틀을 사용함으로써 양 교회의 입장을 ‘비연속적인 양극에서 연속적인 스펙트럼’으로 전환하고자 했다”면서 “동시에 루터를 적대자가 아닌 공동 개혁가로 자리매김하도록 했다”고 밝혔다. 송 신부는 “가톨릭과 개신교, 정교회 신학자들이 번역 과정에서 일치 운동의 주요 의제를 공유하고 합의하는 과정 자체가 또 하나의 중요한 일치 운동으로 이해될 수 있다”고 밝히고, 문헌이 한국 교회 일치 운동에 새로운 비전을 제시했다는 데 의미를 부여했다. 출판 기념회에 이어 같은 장소에서 열린 ‘종교개혁 500주년 기념 2017 한국 그리스도인 일치포럼’에서 안교성(장로회신학대) 교수는 “지난 500년간 교회 개혁이라는 종교개혁의 본질이 아닌 분열과 교파화, 상호 비방과 오해가 부각돼왔다”며 “이런 상황에서 출간된 「갈등에서 사귐으로」는 갈등의 과거에서 사귐의 미래로 나아가자는 양 교회의 확고한 결단의 산물”이라고 높이 평가했다. 안 교수는 ‘「갈등에서 사귐으로」-지속적 대화의 열매’ 발표를 통해 일치 운동에서 ‘다르다’는 것은 옳고 그름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면서 ‘다름이 있는 화해’와 ‘화해된 다양성’ 등 ‘다름’에 대한 발전된 인식이 일치에 대한 희망을 갖게 한다고 덧붙였다. 한국 그리스도교 신앙과 직제협의회는 한국 천주교회와 한국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 교단들의 모임인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가 교회 일치 운동을 활성화하기 위해 2014년 5월에 설립한 기구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평화신문2017.05.16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29.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마르 11,9)](//cpbc.co.kr/CMS/newspaper/2016/12/rc/665050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29.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마르 11,9)지오토 디 본도네 작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 1302~1305, 프레스코화, 파도바 스크로베니성당 소장.공관 복음서에서 구원을 향한 예수님의 짧지 않은 여정은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로 이제 마지막 장소에 다다릅니다. 전체적인 이야기의 흐름은 차이가 있지만, 공관 복음뿐 아니라 요한 복음 역시 예루살렘에 들어가는 예수님의 모습을 전합니다. 요한은 이미 여러 번 예루살렘을 방문한 예수님이지만, 사람들이 라자로를 되살린 표징에 대해 듣고 예수님을 환호하기 위해 맞으러 나왔다고 이야기하면서 바리사이들의 반응을 전해 줍니다. “이제 다 글렀소. 보시오. 온 세상이 그의 뒤를 따라가고 있소”(요한 12,19). 또한, 제자들은 이 사건에 대해 예수님께서 부활하신 이후에야 비로소 깨달았다고 말합니다. 공관 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이전에 예리코에서 눈먼 이를 고쳐 주신 이야기를 공통적으로 전합니다. 물론 루카 복음은 이 이야기와 예루살렘 입성 이전에 예리코에서 벌어진 세관장 자캐오와의 만남과 미나의 비유를 담고 있습니다. 예리코에서의 치유 이야기는 예루살렘에 입성하기 이전의 마지막 기적이면서 예수님의 여정이 당시 사람들의 동선과 차이가 없었음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당시의 사람들은 갈릴래아 지역에서 예루살렘을 향해 갈 때 사마리아 지역을 거치지 않았습니다. 사마리아를 피해 요르단 강을 건너 남쪽으로 내려가 사마리아 지역이 끝나는 곳에서 다시 요르단 강을 건넜습니다. 이때에 처음 만나게 되는 도시가 바로 예리코입니다. 이곳에서 베타니아와 벳파게를 거쳐 예루살렘 성전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순례의 길이었고 예수님 역시 그 길을 가신 것으로 보입니다. 마태오는 두 명의 소경을, 그리고 마르코와 루카는 한 명의 소경을 치유해 주신 것으로 차이가 있지만, 그 내용은 동일합니다. 길을 지나는 일행에 예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듣고 바르티매오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 저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십시오”라며 소리칩니다. 주위의 만류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더욱 크게 소리칩니다. 그의 외침은 단순한 것이었지만 예수님께서 구원을 위해 오신 메시아이심을 고백하는 것이고, 자비를 구하는 것은 단순히 한 개인의 청원만은 아닌 것처럼 보입니다. 우선 그의 청원은 시편 6장 3절을 기억하게 합니다. “저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주님, 저는 쇠약한 몸입니다. 저를 고쳐 주소서, 주님, 제 뼈들이 떨고 있습니다.” 결국, 그의 외침은 시편의 기도처럼 이루어집니다. 또 소경의 외침은 이사야서의 말씀을 기억나게 합니다. “정녕 예루살렘에 사는 너희 시온 백성아 너희는 다시 울지 않아도 되리라. 네가 부르짖으면 그분께서 반드시 너희에게 자비를 베푸시고 들으시는 대로 너희에게 응답하시리라”(이사 30,19). 결국, 소경의 외침은 자신을 위한 것인 동시에 예수님께서 향해 가시는 예루살렘 전체를 위한, 하느님의 백성을 위한 청원이기도 합니다. 군중들은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이런 예수님을 환호하며 맞습니다. “호산나! 주님의 이름으로 오시는 분은 복되시어라. 지극히 높은 곳에 호산나!”. 지금도 미사에서 성찬례 시작에 외치는 이 표현은 호산나, 저를 구하소서라는 의미입니다. 복음서는 모두 예수님께서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셨다고 전합니다. 어린 나귀는 즈카르야의 예언과 관련이 있습니다. “딸 시온아, 한껏 기뻐하여라. 딸 예루살렘아, 환성을 올려라. 보라, 너의 임금님이 너에게 오신다. 그분은 의로우시며 승리하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겸손하시어 나귀를, 어린 나귀를 타고 오신다”(즈카 9,9). 마치 임금처럼 사람들의 환호 속에 예루살렘에 입성하는 예수님. 그분은 바로 즈카르야의 예언을 이루듯 큰 말이 아닌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갑니다. 군중들은 마치 임금을 대하듯 예수님을 맞습니다. 그들의 기대와 소망이 예수님을 향해 있습니다. 그들이 예수님께 원했던 임금의 모습과 달랐을지 모르지만, 성경은 예수님을 임금으로 묘사합니다. 그의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예수님은 임금이셨지만 일반적인 생각과는 다른 임금이었습니다. 임금으로 이 세상에 왔지만, 그것과는 다른 임금이란 호칭을 받으며 이 세상의 삶을 끝내신 예수님의 모습은 성경이 보여 주는 역설이기도 합니다.<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문채현2016.12.21
소공동체 운동, 새로운 동력 필요하다‘소공동체 25주년 심포지엄 위한 2차 워크숍’ 열려, 공동체 의식 감소 우려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운동의 동력이 떨어지고 있다는 조사 결과가 나왔다.서울대교구 사목국(국장 조성풍 신부)이 18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강당에서 개최한 ‘서울대교구 소공동체 25주년 심포지엄을 위한 제2차 워크숍’에서 김형진(사목국 일반교육부) 신부는 “현재 여성 소공동체는 65%, 남성은 28%만이 가정에서 모임을 하고 있다”며 “가정이 아닌 다른 장소에서의 모임이 늘어난다는 것은 소공동체의 근본인 공동체 의식이 희미해져 간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지적했다.김 신부는 또 “1994년 15%였던 주 1회 모임이 7%로 줄고, 1994년 18.6%였던 격주 모임이 2%로 급감함으로써 결국 월 1회 모임이 90% 가까이 이른다”면서 모임 횟수 자체가 줄어드는 현실을 우려했다. 김 신부가 발표한 ‘소공동체 모임 진단을 위한 설문 보고서’는 구역ㆍ반장 교육 참석자(여성 2048명, 남성 283명) 대상 설문 조사와 200여 개 본당의 소공동체 현황 자료를 토대로 작성된 것이다.보고서에 따르면 소공동체 모임 참석 연령대는 60대 이상이 70%에 육박하며, 50대 이하는 급격하게 줄어드는 추세다. 참석 인원도 10명 이하가 96%, 5명 이하도 절반 가까이 차지하면서 점차 감소하고 있다. 구역ㆍ반장이 없는 소공동체가 늘어나는 등 소공동체 봉사자 또한 감소하면서 고령화하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사목국장 조성풍 신부는 서울대교구 9개 본당 신자 1만여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 발표에서 “소공동체 참여자가 불참자에 비해 복음화 지표가 조금 더 높았는데, 특히 ‘성경 읽기’ 부문에서 뚜렷한 차이를 나타냈다”고 밝혔다. 상세한 설문조사 결과는 새로운 복음화를 위한 소공동체 역할을 모색하고자 9월 16일에 열리는 소공동체 25주년 심포지엄에서 발표될 예정이다. 오세일(예수회, 서강대 사회학과 교수) 신부는 ‘대도시 사목의 현실과 전망’ 발표를 통해 현대 사회의 종교 문화적 특징으로 삶의 중요한 문제에 대한 해답을 종교에서 구하지 않는 세속화와 물질주의, 개인주의를 들고 “종교 인구의 고령화와 젊은이들의 탈 종교화 현상이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진단했다.오 신부는 “종교 인구가 줄어드는 현실에서도 개신교의 약진이 두드러진다”면서 가톨릭이 불교와 마찬가지로 부진을 면치 못하는 이유로 주변 사람들에게 관심을 두지 않는 느슨한 태도를 꼽았다. 오 신부는 “인간은 누구나 다른 이와 함께하려는 공동체적 욕구를 가지고 있다”며 “나눔과 증거의 소공동체를 이루기 위해서는 나 자신이 먼저 머리뿐만 아니라 몸과 마음으로 신앙에 맛 들이는 것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평화신문2017.02.22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8)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르 9,5)](//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5080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18)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마르 9,5)예수님, 새하얗게 빛나시며 영광스럽게 변모 제자들과 함께 높은 산에 오르신 예수님은 새하얗게 빛나시기 시작했고 하늘에서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림은 폰 카롤스펠트 작 ‘모세와 엘리야 사이의 예수 그리스도’. 출처=「아름다운 성경」 갈릴래아 호수에서 남서쪽으로 20km 정도 떨어진 곳에 타보르(Tabor)라 불리는 산이 있습니다. 해발 600m 정도로 아주 높은 산은 아니지만 주위가 모두 평원이기에 우뚝 솟은 느낌이 들기도 합니다. 이 산 정상에는 모세와 엘리야의 경당과 함께 예수님의 변모를 기념하는 성당이 있습니다. 복음서에서 예수님의 변모가 일어난 곳이 어디인지 명확하게 밝히지는 않습니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높은 산’이라고 표현하고 루카 복음은 그저 ‘산’이라고만 언급합니다. 예수님의 변모가 일어난 곳이 이 타보르 산인지 과거부터 지금까지 논쟁이 있긴 하지만 전승에 따라 많은 이들은 이곳에서 예수님의 변모 사건을 기념합니다. 마치 시나이 산에 오르는 모세 같아 이 이야기는 “엿새 뒤에 예수님께서 높은 산에 오르셨다”라는 말로 시작합니다(마르 9,2; 마태 17,1). 이 표현은 본문에 등장하는 모세와 함께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이집트 탈출 이후 시나이 산에 다다른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습니다. 모세는 계명을 받기 위해 산에 오릅니다. “주님의 영광이 시나이 산에 자리 잡고, 구름이 엿새 동안 산을 덮었다. 이렛날 주님께서 구름 가운데에서 모세를 부르셨다”(탈출 24,16). 높은 산에 세 명의 제자들과 함께 오르시는 예수님의 모습은 시나이 산에 오르는 모세의 모습을 생각하게 합니다. 베드로,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산에 오른 예수님께서는 그들 앞에서 모습이 변합니다. 복음서는 그 변모를 이 세상의 마전장이도 하얗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게 빛났다고 말합니다. 영광스러운 변모는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드러내는 사건입니다. 또한 복음서의 문맥으로 보면 예수님께서 수난과 부활에 대한 예고 이후에 미리 보여 주는 영광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베드로의 그리스도 고백,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째 예고, 그리고 제자로서의 자세와 함께 드러나는 영광스러운 변모는 하나의 주제로 엮여 있는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마치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고백한 베드로의 고백에 화답하는 내용처럼 보입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변모에 함께 등장하는 인물은 모세와 엘리야입니다. 모세와 엘리야는 구약 성경에서 보이는 하느님의 구원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인물로 꼽힙니다. 모세는 탈출이라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가장 중요한 체험을 이끈 예언자이며 하느님께서 미래에 하느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 보낼 예언자이기도 합니다(신명 18,18 참조). 또한 유일하게 하느님과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하던 인물이기도 합니다(탈출 33,11). 엘리야는 우상이었던 바알 신에 맞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낸 예언자이면서 하늘로 들어 올려진 인물입니다(2열왕 2,11). 구약 성경에서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드러낸 두 예언자를 통해 예수님의 변모는 구원을 향한 의미를 갖습니다.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이러한 사건의 마지막에 전해지는 것은 하늘에서 들려 오는 소리입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어라.” 이와 비슷한 표현을 예수님의 세례에서도 찾을 수 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는 복음서 안에서 중요한 축으로 보입니다. 예수님의 신성을 표현하는 하늘에서 들리는 소리는 복음서의 시작과 중간에서 예수님의 신원을 드러내는 역할을 합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앞으로 받으실 영광을 미리 보여 준다는 점에서 영광스러운 변모는 예수님의 영광이 결정적으로 드러나는,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 이후에 모든 이들이 알게 될 영광을 미리 맛보게 해 줍니다. 이런 의미에서 예수님의 세례와 영광스러운 변모 그리고 예수님의 부활은 복음서의 처음과 중간, 마지막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계시하는 사건이면서 복음서 안에서 명시적으로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심을 표현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이런 사건을 체험한 제자들은 그 영광스러운 모습 앞에서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스승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좋겠습니다.”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6.10.04
본당 활성화 성공의 길잡이 발간 부산교구 선교사목국, 「… 자료 모둠」에 다양한 성공 사례 담아 부산교구 선교사목국(국장 장재봉 신부)은 2017년을 ‘본당 복음화의 해’로 정한 교구장 사목 지침에 따라 「본당 활성화를 위한 자료 모둠」을 발간했다.이 자료집은 본당 복음화의 취지에 맞게 전국 각 본당의 활성화 성공 사례를 모아 놓았다. 자료집은 크게 네 주제로 구성돼 있다. 영성이 자라나는 성당, 나눔 봉사와 선교로 크는 성당, 끈끈한 공동체-아이들이 머무는 성당, 영성이 쑥쑥- 함께하는 기쁨이 있는 성당이다.영성이 자라나는 성당에는 춘천교구 죽림동본당의 어르신 복사단이 함께하는 새벽 미사, 서울대교구 면목동본당의 유아 신앙 교실, 전주교구 요촌본당의 성지순례 800 프로젝트, 수원교구 동탄부활본당의 사순 시기 단식 릴레이 등 24개 본당 사례를 소개했다.나눔 봉사와 선교로 크는 성당에는 대구대교구 포항 지곡본당의 지역민과 함께하는 동아리, 서울대교구 시흥4동본당의 자비 실천을 위한 종잣돈 5000원,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이동형 푸드마켓 등 11개 본당의 사랑 실천을 전하고 있다.아이들이 머무는 성당은 수원교구 죽전1동 본당 청소년 놀이 공간 ‘하늘 놀이터’, 서울대교구 무악재본당의 15분 다과회가 있는 젊은이 미사 등 12개 본당 이야기를 담았다.함께 하는 기쁨이 있는 성당은 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의 상시 심리상담실, 광주대교구 봉선동본당의 성가정상 순회 기도, 대구대교구 대명본당의 천사 닮기 운동, 의정부교구 6지구 가톨릭 문화 주간 등 28개 본당 사례를 싣고 있다.또 120시간 성경 이어 읽기 나눔표, 냉담자에게 보내는 글, 본당 사목위원의 십계명, 대부모와 대자녀의 만남을 준비하는 글, 대부모와 대자녀를 위한 기도, 본당 복사단 십계명 예시를 제시해 본당 형편에 맞게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6.12.21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10) 시편, 회중의 기도 (「가톨릭 교회 교리서」 2585~2589항)시편, 시공간 초월한 기도의 걸작 교리서는 구약 성경에 나타난 기도에 관한 마지막 부분으로 시편을 제시합니다(2585~2589항). 전체 150편으로 이뤄진 시편은 다섯 권을 모아 놓은 하나의 전집입니다. 각 권은 1─41편, 42─72편, 73─89편, 90─106편, 그리고 107─150편입니다. 이렇게 모아진 시편은 “구약 성경에 수록된 기도의 걸작”입니다.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은 큰 축제일에는 예루살렘에 모여, 그리고 안식일에는 각 동네에 있는 회당에 모여 기도를 바쳤습니다. 시편은 이 기도를 표현하며 풍요롭게 합니다. 이 시편 기도는 개인적이지만 또한 동시에 공동체적이기도 합니다. 시편 기도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뿐만 아니라 모든 사람에게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시편은 거룩한 땅 곧 이스라엘 땅에서만 아니라 이스라엘 밖의 흩어진 이스라엘 백성 공동체, 곧 디아스포라 공동체에서도 바칩니다. 그러나 시편 기도의 내용은 이스라엘 백성만이 아니라 만민을 다 포용합니다. 교리서는 시편 기도에 대해 “이 기도는 과거의 구원 사건들을 상기시키며, 역사의 종말에까지 미친다. 이 기도는 이미 실현된 하느님의 약속들을 상기시키며, 그 약속들을 결정적으로 실현하실 메시아를 기다린다”고 설명합니다. 실제로 예수님께서는 시편을 인용해 당신의 신원을 드러내실 뿐 아니라(마태 22,41-46 참조), 마지막 만찬을 드신 후에는 찬미가를 부르시고(마태 26,30 참조), 십자가 위에서도 시편을 바치며 부르짖으십니다(마태 26,30; 시편 22,2 참조). 그리고 숨을 거두실 때에도 시편을 바치십니다(루카 23,46; 시편 31,6 참조).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기도로 바치고 그분 안에서 완성된 시편은 교회가 드리는 기도의 핵심으로 머물러 있다”고 교리서는 밝힙니다. 시편은 또한 “그 안에서 하느님이 말씀이 인간의 기도가 되는 책”이라는 점에서 구약의 다른 책들과 구별됩니다. 다른 구약 성경의 “말씀들은 (인간을 위한 하느님의) 업적들을 선포하며 그 안에 포함된 신비들을 밝혀 주지만” 시편은 “시편 작가가 시를 지어 하느님께 노래함으로써 하느님의 구원 업적을 밝힌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물론 하느님의 일을 추진하시는 분도, 인간의 응답을 불러일으키시는 분도 같은 성령이시지요. 시편의 표현들은 다양합니다. 시편은 찬미가, 탄식 기도나 감사, 개인이나 공동체의 간구, 왕의 노래 또는 순례의 노래, 이 밖에 지혜의 명상 등을 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 백성의 역사에서 하느님의 놀라우신 일과, 시편 작가가 인생살이에 체험한 인간적 상황들을 반영하는 거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시편은 “신분이나 시대를 초월하여 누구든지 바칠 수 있는 진실한 기도”(2588항)입니다. 교리서는 또 시편들에는 일관된 특징들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그것은 △기도의 소박함과 자발성 △피조물의 온갖 좋은 것을 통해 또 그것들과 함께 드러나는 하느님께 대한 갈망 △주님을 더 사랑함으로써 원수들과 유혹의 표징이 되는 믿는 이들의 처지 △주님의 사랑을 확신하며 주님 뜻에 맡겨드리는 의탁의 자세 등으로 시편 전체에 일관되이 흐르고 있습니다. 요약하면, 시편은 구약 성경에서 기도의 걸작을 이룹니다. 개인적 요소와 공동체적 요소를 함께 지니고 있는 시편은 이미 이루어진 하느님의 약속을 기념하며 메시아의 오심을 희망함으로써 역사의 모든 차원에까지 미칩니다. 그래서 시편은 교회가 드리는 기도의 근본적이고 불변하는 요소일 뿐 아니라 계층과 시대를 초월해 모든 이가 드리기에 적합한 기도입니다(2596~2597항). 기회가 될 때마다 시편 한 구절씩이라도 읽고 묵상하는 시간을 가지시면 좋겠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08.03
정성스레 미사 준비하며 피정과 순례로 마음 모아서울대교구 본당,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의 해’ 보내며 다양한 사목 프로그램 선보여 서울대교구가 2017년을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의 해’로 지내면서 교구 각 본당들은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의 실천을 위해 다양한 사목 프로그램들을 내놓고 있다. 자양2동본당(주임 조원필 신부)은 ‘참된 성체성사의 재현’을 지향하며 △미사 시작 10분 전에 성당 도착하기 △미사 학교 운영 △미사 관련 신심 서적 월 1권 읽기 △평일 미사 월 2회 이상 참여 △한여름밤의 음악 캠프 등을 계획했다. 또 성경 공부 참여와 1박 2일 피정, 쉬는 교우 10% 줄이기 등을 지향하며 매일 밤 9시 55분에 전 신자가 주모경을 바치고 밤 10시에 사제가 축복하기로 했다.우이본당(주임 김세훈 신부)은 ‘성체 안에 성가정’을 사목 목표로 정하고 본당 설립 15주년 기념을 더해 12가지 실천사항을 마련했다. 우선 미사 뜻을 바로 알기 위해 주보에 주교회의 교리교육위원회가 편찬한 「미사 전례」를 게시하기로 하고 성시간과 성모 신심 미사, 전 신자 피정과 성지순례를 마련하기로 했다. 또 공동체 성장과 성가정화를 지향하며 1인 1일 묵주기도 10단 바치기와 개인 성체조배 등을 권고했다.미사 말씀 필사와 묵상 프로그램 등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암사동본당(주임 김중광 신부)은 ‘전례 말씀 필사’를 통해 독서와 화답송, 알렐루야, 복음, 영성체송을 적기로 했다. 갈현동본당(주임 장희동 신부)은 주일 미사 복음을 미리 읽고 빈칸을 채우면서 묵상하는 ‘미사 복음 새기기’ 프로그램을 마련했다. 온 가족이 함께 참여하는 ‘복음 가정 챌린지’ 신청도 받고 있다.미사 관련 도서 추천도 활발하다. 성수동본당(주임 윤재한 신부)은 미사 시작 성호경부터 마지막 파견 예식까지 담긴 의미를 쉽게 풀어쓴 책 「미사, 마음의 문을 열다」를 추천했고 자양2동본당은 「그리스도와의 만남 미사」, 「프란치스코 교황과 함께하는 성체조배」 등을 1월 신심 서적으로 선정했다. 우장산본당(주임 장강택 신부)은 교구에서 발간한 소책자 「미사로 하나 되는 2017년 말씀과 기도」를 사무실에서 배부하고 있다.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새로운 시대, 새로운 복음화-미사는 새로운 복음화의 중심’이라는 제목의 사목교서에서 “주님 말씀, 공동체의 기도, 교회 가르침이 모두 포함된 미사는 새로운 복음화의 원동력”이라며 교회 생활 전체의 원천이자 정점인 성체성사가 우리 삶과 복음화의 중심임을 더욱 깊이 깨닫게 되기를 희망했다. 유은재 기자 you@cpbc.co.kr 평화신문2017.02.01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9)쿰란 공동체](//cpbc.co.kr/CMS/newspaper/2016/05/rc/634583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9)쿰란 공동체바리사이보다 더 엄격했던 쿰란 공동체 이스라엘 사해 인근의 쿰란 동굴. 1세기의 플라비우스 요세푸스(Flavius Josephus)는 그의 「유다 고사(Antiquitates Iudaicae)」에서 바리사이, 사두가이, 에세네파를 당시 유다인들의 중요한 종교 집단들로 언급합니다.신약 성경에는 에세네파가 직접 언급되지 않으나, 요세푸스와 필로가 이들에 대해 전해 줍니다. 그들은 바리사이나 사두가이보다 더 당시의 정치와 사회를 멀리했습니다. 그들의 기원은 마카베오 항쟁에 참여했던 “충실한 이들”(1마카 2,42, 히브리어로 ‘하시딤’)에게서 찾을 수 있을 것인데, 이들은 처음에는 마카베오 집안과 함께했으나 기원전 152년에 차독 계열이 아닌 유다 마카베오의 동생 요나탄이 대사제가 되면서부터 요나탄과 시몬에게 배신감을 느끼고 그들이 이끄는 성전의 체제에 대해 반발하면서 그들과 상종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율법에 더 충실한 삶을 살고자 했습니다.이들에 대해 더욱 상세하게 알게 된 것은 1947년에 사해 근처에서 쿰란 동굴이 발굴되면서부터입니다. 정확히 말한다면, 쿰란에 살고 있던 공동체가 에세네파에 속했다는 증언은 없습니다. 그러나 쿰란 발굴 결과 드러난 그들의 생활상이 에세네파에 대한 고대의 기록들과 많은 점에서 일치하기 때문에, 쿰란 공동체가 에세네파에 속했을 가능성은 높습니다.쿰란의 발견은 신약 성경의 배경사로서뿐만 아니라 성경 본문의 전승에 대한 연구에서도 매우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쿰란은 사해 근처에 있는 언덕인데, 수천 년 동안 아무도 그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보러 들어간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1947년에 어떤 목동이 잃어버린 염소를 찾으려고 동굴 안으로 돌을 던졌다가 항아리 소리를 듣게 되어 발굴이 시작되었습니다. 모두 11개의 동굴이 발굴되었고 그 안에서 많은 구약 성경 두루마리들과 그 밖의 자료들이 발견되었는데, 이들은 1세기의 것들로서 지금까지 알려졌던 구약 성경 사본들보다 수백 년 또는 천 년 이상 오래된 것들이기 때문에 성경의 원문을 찾으려고 하는 이들에게 매우 큰 관심의 대상이 됩니다. 우리가 보통 구약 성경의 번역 대본으로 삼는 레닌그라드 사본이 1008년에 만들어진 것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그보다 천 년이나 앞선 사본들이 갖는 중요성을 조금이나마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이렇게 오래된 사본들이 발견되었을 때 처음에 학자들은 이제 성경 본문에 대한 수많은 문제가 풀릴 수 있으리라고 기대했고 오랜 전승 과정에서 손상된 성경의 원문을 찾는 데에 큰 도움이 되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엄청난 도움이 되었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쿰란에서 지금까지 우리가 가지고 있던 사본들과 차이가 나는 수많은 두루마리가 발견됨으로써 성경 본문의 역사는 생각보다 더 복잡한 것이었음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 쉽게 말하면, 문제들이 정리되기도 했지만 또 다른 문제들이 나타나고 상황이 더 복잡해지기도 했습니다.또한, 쿰란에서는 성경에 속하지 않은 다른 문헌들도 여럿 발견되었는데, 그 가운데에는 예를 들어 공동체의 규칙서와 같은 것도 있어 그들의 사상과 삶을 엿볼 수 있게 해줍니다. 겉으로 보이는 쿰란 공동체의 모습을 본다면, 철저하게 율법을 지키며 부정을 타지 않으려고 노력했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정결례를 위하여 몸을 씻으러 내려가는 계단에는, 올라오는 이들과 접촉하지 않도록 난간이 있습니다. 몸을 씻어 정결해진 이들이, 내려오는 이들과 접촉하여 다시 부정을 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이들은 바리사이들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율법을 준수했고, 공동체의 규율을 어기는 이들에 대해서도 매우 엄한 처벌을 가했습니다.이렇게 눈에 보이는 모습 아래에 깔려 있는 사상은 묵시문학적 역사관이었고, 그들의 삶은 종말을 앞두고 빛의 자녀들과 어둠의 자식들 사이의 마지막 전쟁을 준비하는 것이었습니다. 온 세상을 빛과 어둠으로 구분했던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의 사제들과 바리사이들 등을 어둠의 자식들이라고 보면서 그들 스스로는 빛의 자녀로서 흠 없는 삶을 살아감으로써 종말을 준비했습니다. 아울러 그들에게서는 메시아 희망도 강하게 나타납니다.쿰란 공동체는 기원후 68년 로마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로마군이 다가올 때에 그들은 전쟁이 끝난 다음에 두루마리들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항아리 속에 조심스럽게 숨겨 두었으나, 공동체가 완전히 파괴되고 말았기에 그 두루마리들은 20세기까지 그대로 동굴 안에 감추어져 있었던 것입니다. 바리사이와 사두가이, 그리고 에세네파 외에도 율법학자들, 열혈당원들 등이 있었으나, 신약 성경이 형성되던 시기에 가장 중요했던 종교 집단들은 이 세 집단이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영향력이 컸던 것은 바리사이들이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공생활 시기뿐만 아니라 교회가 형성된 초기에도 그리스도인들은 바리사이들과 대립해야 했습니다.또한, 이 세 집단과 예수님의 관계를 본다면 일단 예수님은 사제나 귀족 계층에 속하지 않았고 사두가이들의 믿음을 공유하지 않았으며, 육신의 부활이나 종말에 대한 믿음은 오히려 바리사이 또는 에세네파에 가까웠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예수님이 쿰란 공동체나 당시의 다른 조류에 속한 이들이 기다렸던 메시아 상에 부합되는, 정해진 틀에 맞는 바로 그 메시아였던 것도 아닙니다. 근래에 나온 연구서나 아니면 영화에서는 예수님을 당시의 랍비, 열혈당원, 에세네파 등의 모습으로 그려내기도 하지만, 신약 성경에서는 예수님을 그 어떤 특정 집단과 연결짓지 않습니다. 이는 예수님 안에는 그 모든 범주를 깨뜨리는 새로움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그 새로움이 많은 이들이 나중에는 그분을 버리고 떠나가는 이유가 될 것입니다.<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5.10
![[당신께 봉사함이 기쁩니다] (7) 서울대교구 서교동본당 청년 봉사팀 ‘위드(WITH)’](//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4190_1.0_titleImage_1.jpg)
[당신께 봉사함이 기쁩니다] (7) 서울대교구 서교동본당 청년 봉사팀 ‘위드(WITH)’ 토요일 새벽마다 성당 가는 청년들 서울 서교동본당 청년봉사단체 ‘위드’에서 활동하는 청년들이 노숙자들에게 전할 국을 뜨고 있다. 오세택 기자 ‘젊음의 거리’ 홍대입구. 말만 들어도 설레는 열정이 넘치는 거리 한복판에 서울대교구 서교동본당(주임 하형민 신부)이 있다. 본당 일부 청년들은 홍대입구를 찾는 일반 청년들과는 또 다른 열정으로 뭉쳤다. 열정의 지향은 ‘봉사’다. ‘위드(WITH)’라는 이름으로 모인 청년 30여 명은 ‘우리는 거룩한 사랑 안에 있다’(We are in the holy love)라는 말을 모토로 내걸고 함께한다. 매주 토요일 새벽 5시면 다들 부리나케 일어나 성당으로 달려온다. 급식 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새벽 6시면 본당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원들과 함께 급식 준비에 들어가 대략 80인분의 음식을 조리하고 배식하고 설거지까지 함께한다. 그러고 나서 봉사자들끼리 뒤늦은 아침 식사를 하고 나면 오전 8시 30분쯤 끝나는 서너 시간의 짤막한 봉사다. 그렇지만 매주 봉사한다는 게 쉽지만은 않다. 다들 공부에, 아르바이트에, 취업 스펙 쌓기에 바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들은 봉사에서 보람을 찾는다. “왜 봉사를 하느냐고요? 봉사하면서 오히려 제가 더 큰 기쁨, 더 큰 만족을 느끼기 때문이지요. 전 주로 주방 봉사를 하는데, 나누면서 결국은 제가 받아가는 게 훨씬 더 많다는 걸 알게 됐어요.”(정정화 레아, 34)이들이 처음부터 급식을 한 건 아니다. 2009년 무렵엔 노숙자에게 커피값으로 500원씩 나눠줬다. 그러다가 점차 컵라면, 김밥으로 메뉴를 바꿨고, 2012년부터는 급식을 했다. 평일이 아닌 주말엔 노숙자에게 급식하는 기관이나 단체가 많지 않아 이들이 굶는다는 걸 알게 됐기 때문이다. 본당 보좌 최영진 신부는 “매주 급식 봉사를 한다는 게 쉽지 않은데, 청년들이 스스로 봉사하며 보람을 찾는 걸 보면서 ‘주는 기쁨’을 알아가는 것 같아 기뻤다”면서 “저도 될 수 있으면 이들과 함께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들이 급식 봉사만 하는 건 아니다. 일부는 주중, 주말을 가리지 않고 살레시오 신월3동 ‘나눔의집’에서 위기의 청소년들에게 보충 학습이나 멘토를 해주기도 하고, 다른 청년들은 주말이면 정신요양시설 서울특별시립 ‘은혜로운집’을 찾아가 노숙자들을 돌보기도 한다. 박주하(페르페투아, 26) 단장은 “처음에는 본당에 청년 성경 모임이나 기도 모임만 있었는데, 청년들이 점차 성전에만 머물지 말고 봉사하자는 뜻을 보이면서 봉사 단체를 꾸리게 됐다”면서 “본당 빈첸시오회가 도움을 요청해온 것을 계기로 급식 봉사를 시작했는데, 반응이 좋아서 나눔의 집으로, ‘은혜로운집’으로 봉사 분야도 넓혔고 회원들도 늘었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백영민2017.03.08
 카이사리아](//cpbc.co.kr/CMS/newspaper/2015/05/rc/569504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43) 카이사리아이방인에게 처음으로 세례 베풀어 카이사리아는 헤로데가 로마에 충성의 표시로 건설한 지중해 대표적 항구로, 초대 교회 이방인 선교의 거점 도시였다. 사진은 헤로데가 건설한 카이사리아 전차 경기장 유적. 리길재 기자 카이사리아는 사마리아 북서쪽 텔아비브와 하이파의 중간에 위치한 지중해 연안에 건설된 항구 도시다. 이곳은 더운 여름에도 지중해의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그늘에 있으면 시원하고 마음이 상쾌해진다. 카이사리아는 로마 시대의 가장 중요한 도시 중 하나로, 예수님 시대 유다 지방의 로마 행정 도시였다. 그런데 원래 이곳은 고대 페니키아인 정착지였는데 기원전 63년에 폼페이우스가 이 도시를 점령해 자치제를 허용했다. 그 후 아우구스투스 황제로부터 이 땅을 하사받은 헤로데는 기원전 25년부터 12년간 대대적인 공사를 통해 항구를 완성했다. 그리고 헤로데 왕은 로마 제국 초대 황제에게 아름다운 도시와 항구를 지어 헌정하면서 ‘카이사리아’로 명명했다. 그로부터 카이사리아는 지중해 연안의 대표적 항구가 됐고 로마 총독부와 군대 주둔지가 됐다.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에 아주 큰 도시를 이뤘다. 로마 시대에는 무역항의 특징답게 여러 종류의 인종들이 섞여 살았으며 다양한 종교와 사상들이 쉽게 유입됐다. 카이사리아는 초대 교회 공동체의 또 다른 중심지였다. 195년경 현재 공의회 제도의 기원이 된 최초의 공의회가 열린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성경에서 카이사리아는 백부장 코르넬리우스 이야기에 등장한다. 베드로가 환시를 보고 로마 백인대장이면서 이방인이었던 코르넬리우스에게 세례를 준다. 이 사건은 할례 없이 이방인을 교회로 받아들임으로써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와 결별하는 중대한 사건이 됐다. 이제는 인간 구원은 율법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통해 이뤄진다는 것을 세상에 알린 것이다(사도 10,1-48).또 일곱 부제 중 한 명인 필리포스가 에티오피아 내시에게 이사야 예언서와 예수님에 관한 복음 말씀을 설명해 준 다음 세례를 주고 아스돗에서 카이사리아에 이르기까지 모든 고을을 다니며 복음을 전하였다(사도 8,26-40). 바오로 사도는 제3차 전도 여행을 마치고 예루살렘을 향하는 길에 카이사리아에 있는 필리포스의 집에 들어가 함께 머물렀고(사도 21,8), 카이사리아의 제자 몇 사람과 함께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사도 21,16). 그 이후 바오로 사도는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갔다가 성전에서 붙잡혀 유다인들은 그를 죽이려 카이사리아에 있는 총독에게 데려갔다(사도 23,23-35). 바오로 사도는 카이사리아를 세 번이나 방문했으며, 특히 마지막에 로마로 이송되기 전 2년간(58~60년) 이곳 감옥에 수감돼 있다가 로마로 압송돼 갔을 정도로 사도 바오로와 연고가 깊은 도시다. 카이사리아는 비잔틴 후기와 아랍의 통치를 받으면서부터 급격하게 쇠퇴하기 시작했다. 페르시아와 이슬람에게 점령되면서 많은 변화를 겪는다. 이슬람에게 점령되기 전 이 도시에는 유다인 2만 명과 사마리아인 3만 명이 살았지만 이슬람의 통치 기간 중 모두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다. 그러다 20세기에 들어서면서 고고학자들에 의해 카이사리아가 발굴돼 과거의 모습을 드러냈다. 로마 시대의 유적으로 현재 성벽, 극장, 전차 경기장, 신전 등과 인공적으로 만든 방파제가 남아있다. 그리고 카르멜 산에서부터 식수 공급을 위해 물을 끌어온 수도교가 지금까지 남아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5.06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기도의 두 가지 방법(23) 기도의 형태
(「가톨릭 교회 교리서」 2700~2724항) 소리 기도(2700~2704항)기도는 마음속으로 바치는 말이나 입으로 하는 말을 통해서 구체화됩니다. 이를 ‘소리 기도’라고 합니다. 소리 기도에서 중요한 것은 말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언변이 뛰어나 ‘황금 입’이라는 별명이 붙은 요한 크리소스토모 성인은 “우리의 기도가 받아들여지는 것은 말을 많이 하는 데 달린 것이 아니라 우리의 열성에 달린 것이다”라며 마음을 쏟는 정성의 중요성을 강조했습니다. 소리 기도는 그리스도 신자 생활에 필수적인 요소입니다. 침묵 중에 기도하시는 예수님 모습에 끌린 제자들이 기도하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청하자 예수님께서는 소리 기도인 ‘주님의 기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우리는 육체와 정신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우리의 감정을 외적으로 표현해야 할 필요성을 느낍니다. 소리 기도는 여기에 부합하는 기도입니다. 우리의 청원에 가능한 모든 힘을 부여할 수 있도록, 우리는 온몸으로 기도해야 합니다. 이는 또한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바입니다. “하느님께서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 곧 영혼의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살아 있는 기도를 드리는 사람을 찾으십니다”(2703항). 소리 기도는 외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기도이기에, “가장 훌륭한 일반 대중의 기도”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중의 기도라고 해서 무시해서는 안 됩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밝힙니다. “기도는 우리가 말씀드리는 그분을 의식하면 할수록, 내적인 것이 된다. 이리하여 소리 기도는 관상 기도의 최초 형태가 되는 것이다”(2704항). 묵상(2705~2708항)묵상은 “탐색”입니다. 주님께서 요구하시는 일을 받아들이고 실천에 옮기기 위해서 우리는 그리스도 신자로서의 삶을 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이해하고자 애씁니다. 이렇게 탐색하는 일, 곧 묵상은 주의력을 집중해야 하므로 결코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묵상할 때는 도움을 받습니다. 주로 성경, 특히 복음서, 성화상, 그날의 전례문, 신심 영성 서적들을 통해 묵상거리를 찾지요. 하지만 책만이 아니라 주변의 모든 것이 묵상의 소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은 묵상의 한 축을 이룰 뿐입니다. 다른 한 축이 필요합니다. 삶이 그것입니다. 묵상의 핵심은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생각에서 현실로 옮아가도록 하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겸손과 신앙의 정도에 따라, 우리는 묵상 중에 마음을 움직이는 감동을 발견하게 되고, 그것을 식별할 수 있게 된다. 빛에 이르기 위해서는 어떻게 진리를 실천하느냐가 문제이다. ‘주님, 제가 무엇을 하기를 원하십니까?’”(2706항). 묵상의 방법은 다양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어떤 방법을 사용하느냐가 아니라 “성령의 도움으로, 기도를 위한 유일한 길, 곧 예수 그리스도께 나아가는 것”입니다(2707항). 또 묵상에는 사고력과 상상력, 감정과 의욕 등이 모두 동원됩니다. 이러한 것들은 신앙의 확신을 깊게 하고 마음의 회개를 불러일으키며 그리스도를 따르고자 하는 의지를 강화하는 데에 필요합니다.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거룩한 독서’나 신자들이 즐겨 바치는 ‘묵주기도’는 그리스도의 신비를 묵상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이런 묵상 기도를 통해서 그리스도인은 예수님의 사랑을 깨닫고 그분과 결합하기 위해 더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11.09

대침묵 피정, 자유 찾는 데 좋은 길잡이 될 것송차선 신부와 함께하는 1박 2일 대침묵 두 번째 피정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송차선 신부 / 분도출판사 / 1만 원출판계가 불황이라지만, 좋은 책은 독자들이 먼저 알아본다. 책이 아무리 안 팔린다지만, 좋은 책은 그래도 사서 본다. 송차선(서울대교구 석관동본당 주임) 신부가 2010년 펴낸 「화해와 치유」(분도출판사)는 지금껏 5쇄를 넘기며 ‘스테디셀러’로 자리 잡았다. 「화해와 치유」는 혼자서 혹은 소규모로 1박 2일간 대침묵 피정을 하며 나 자신과 이웃과 화해하며 마음속 상처를 치유하도록 이끌어 준다. 대침묵을 하는 동안 무슨 기도를 바쳐야 하는지, 어떤 성경 말씀을 읽고, 무엇을 묵상해야 하는지를 자세하게 일러주는 데다, 아예 피정 시간표까지 제시해 줬다. 책만 있으면 누구라도 홀로 피정할 수 있도록 해 신자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화해와 치유’ 말고도 다른 주제로도 피정할 수 있도록 해 달라는 독자들의 요청이 끊이질 않았다. 송 신부는 「화해와 치유」 이후 7년 만에 새 책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로 응답했다. 이번 책에서는 화해와 치유를 넘어 자신을 자유롭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도록 독자들을 안내한다. 책 주제를 ‘자유’로 정한 데에는 송 신부의 체험이 바탕이 됐다. “제가 몇 년 전에 암 수술을 했어요. 수술실로 향하는 동안 병원 침대에 누워 있으면서 전혀 무섭거나 두렵지가 않았어요. 살고 죽는 것에 집착이 없었죠. 의사가 수술실에 웃으면서 인사하고 손 흔드는 환자는 처음 봤다고 하더라고요. 그런 저를 보고 사람들이 ‘아픈데도, 뭐가 그리 자유롭니’라고 하더라고요. 그때부터 많이 묵상하고 생각했어요. ‘내가 자유로운가? 무엇에서 자유로운 거지? 죽음에서? 고통에서? 무엇 때문에 자유로운 걸까. 그럼 자유란 게 진짜 뭘까’ 하고요.”송 신부는 철학에서 말하는 어렵고 딱딱한 ‘자유’가 아니라, 우리가 일상에서 느끼는 ‘자유’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다. 보좌 시절 본당 주임 신부에게 매운 ‘시집살이’를 겪은 사연, 성당을 새로 지으면서 신자들과 겪었던 갈등, 커피와 컴퓨터 게임에 빠졌던 중독 등 자신의 삶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과거를 가감 없이 고백했다. 그러면서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자유를 향한 열망을 가지고 간절하게 찾아 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사람들은 모두 무언가로부터 자유로워지기를 바라죠. 또 무엇이든 할 수 있는 자유를 얻길 바라고요. 바라는 데서만 그쳐서는 안 됩니다. 치열하게 고민하고, 찾아 나가야 합니다. 그 과정에서 때론 아프고 깨질 수도 있겠지요. 대침묵 피정은 자유를 찾는 데 좋은 길잡이가 돼 줄 것입니다.”송 신부는 침묵의 중요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하느님을 만나는 피정에서 핵심은 침묵이라고 했다. “꼭 1시간은 반드시 침묵하며 묵상하기를 권합니다. 그래야 하느님 소리를 찾아낼 수 있습니다. 아무런 생각이 들지 않으면 않는 대로 있으면 됩니다. 점차 익숙해지다 보면 어느 순간 하느님과 대화할 수 있을 겁니다.”송 신부는 또 자유로우려면 하느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현재에 머무르기를 당부했다.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지금, 여기의 기쁨과 행복을 놓치는 잘못을 경계했다. “현재를 살아가는 것은 과거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입니다. 과거에 만들어진 상처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이죠. 또 불확실하고 보장 없는 미래에 마음이 사로잡혀 있으면 오늘을 보지 못하고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느님께 모든 걸 맡기면 됩니다. 그분 사랑 안에선 모든 것이 자유롭습니다.”한편, 분도출판사는 19일 오후 7시 석관동성당에서 「자유로운 영혼을 위하여」 출판 기념 저자와의 만남 시간을 마련한다. 저자 송 신부의 체험을 직접 들을 수 있는 자리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평화신문2017.05.10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2) 열두 제자의 파견…오천 명을 먹이심(루카 9,1-17)](//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6254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2) 열두 제자의 파견…오천 명을 먹이심(루카 9,1-17)‘오병이어의 기적’은 군중에 대한 관심과 배려의 절정갈릴래아 호수 북서쪽 타브가에 있는 빵의 기적 기념 성당.열두 제자의 파견(9,1-6)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를 불러 모으시어 모든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을 주십니다.(9,1) 마귀를 쫓아내고 질병을 고치는 힘과 권한은 예수님께서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시면서 보여주신 바로 그 힘과 권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지니시는 힘과 권한을 이제 열두 제자 곧 열두 사도에게 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신 까닭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고 병자들을 고쳐 주라는 두 가지 목적 때문입니다.(9,2)그러면서 별도의 분부를 하십니다.(9,3-5) 분부하신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 길을 떠날 때 아무것도 가져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지팡이도, 여행보따리도, 빵도, 돈도, 여벌 옷도 가져가서는 안 됩니다.(9,3) 이 다섯 가지는 당시 여행객들에게 필요한 최소한의 지참물입니다. 지팡이는 사나운 들짐승이나 강도를 만났을 때, 다리가 불편할 때 사용하는 필수 지참물입니다. 빵, 돈, 여벌 옷, 그리고 이런 것들을 넣을 수 있는 여행보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 모든 것을 금하십니다. 왜? 열두 제자가 하는 일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 곧 하느님 일입니다. 하느님 일을 하는 사람은 하느님께서 나머지 모든 것을 마련해 주실 것을 믿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일을 챙기기 시작하면 하느님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할 것입니다. 둘째, 어떤 집에 들어가거든 그곳을 떠날 때까지 거기에 머무르라는 것입니다.(9,4) 이 분부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사도들이 하는 일은 하느님 나라를 선포하는 일, 곧 복음을 전하는 일입니다. 그 집 사람들이 사도들이 선포하는 복음을 받아들이면 사도들은 사명을 완수하는 것입니다. 사명을 완수할 때까지 그 사람들에게 집중하라는 것으로 이해하면 어떨까요? 한 집에 들어가서 자꾸 다른 집을 기웃거린다면 집중력이 떨어지고 결국 그 집에 대한 복음 선포도 완수하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셋째, 사람들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그 고을을 떠날 때 발에서 먼지를 털어 버리라는 것입니다.(9,5) 발에서 먼지를 터는 행위는 그 지역과 절연한다는 표시입니다. 유다인들은 이방인 지역을 떠날 때 혹은 거룩한 땅으로 들어설 때 발에서 먼지를 털었다고 하지요. 루카는 제자들이 예수님의 분부대로 이 마을 저 마을 돌아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병을 고쳐 주었다는 말로 이 기사를 마무리합니다.(9,6) 헤로데가 예수님의 소문을 듣다(9,7-9) 헤로데 영주가 이 모든 일을 전해 듣고 몹시 당황합니다. 헤로데 영주는 예수님 탄생 때 이스라엘 전체를 다스리던 헤로데 대왕의 아들 중 하나로 갈릴래아 지방을 맡아 다스리던 헤로데 안티파스를 말합니다. 루카 복음사가는 예수님 세례 이야기를 전하기 전에 이미 헤로데가 요한을 감옥에 가두었다는 소식을 전하지요.(루카 3,19-20 참조) 헤로데 안티파스가 당황한 것은 예수님에 대해 사람들이 요한이 죽은 이들 가운데서 되살아났다 하거나 또는 엘리야가 나타났다고 하거나 또는 옛 예언자 가운데 한 사람이 되살아났다고 말하고 있었기 때문입니다.(9,7-8) 하지만 헤로데는 당황해 하면서도 이런 소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요한은 내가 목을 베었는데,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9,9) 루카복음에는 나오지 않지만 헤로데가 요한의 목을 베게 된 사연은 마태오복음과 마르코복음이 자세히 전하고 있습니다.(마태 14,3-12; 마르 6,17-29 참조) 루카 복음사가는 헤로데가 예수님을 만나 보려 했다는 말로 헤로데 이야기를 끝냅니다. 헤로데는 나중에 예수님을 직접 보게 됩니다.(루카 23,8 참조) 오천 명을 먹이시다(9,10-17) 한편, 열두 제자가 돌아와 자신들이 한 일을 예수님께 보고하자 예수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벳사이다로 가십니다.(9,10) 벳사이다는 갈릴래아 호수 북동쪽에 있는 어촌으로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 필립보의 고향이기도 합니다. 물론 지금은 완전히 폐허가 돼 유적만 남아 있습니다. 그런데 군중이 이를 알고 예수님을 따라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을 맞아 하느님 나라에 관해 말씀하시고 병을 고쳐주십니다. 그러는 사이에 날이 저물기 시작했고 열두 제자가 예수님께 군중을 돌려보내고 잠자리와 음식을 구하게 하라고 말씀드립니다. 그곳은 고을에서 떨어진 “황량한 곳”이었던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먹을 것을 주어라” 하고 말씀하시자 제자들은 가진 것이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뿐이라고 대답합니다.(9,11-13) 그런데 모인 사람은 장정만 오천 명가량이나 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들을 대충 50명씩 떼를 지어 자리에 앉히라고 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를 들고 하늘을 우러러 축복하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군중에게 나눠주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모두 배불리 먹었고, 남은 조각을 모으니 열두 광주리나 되었습니다.(9,14-17) 이 장면을 잠시 떠올려봅시다. 저녁놀이 번지는 벌판에 사람들이 50명씩 떼를 지어 100무리나 앉아 있습니다. 그 가운데에 예수님께서 빵과 물고기를 들고 축복하십니다. 그러고 나서 빵과 물고기를 떼어 제자들에게 주시고 제자들은 이를 사람들에게 나누어 줍니다. 한폭의 그림같이 아름다운 정경이 펼쳐지고 있습니다. 더욱 놀라운 것은 다섯 개뿐인 빵과 두 마리뿐인 물고기가 계속해서 사람들에게 나눠지고 있는 것입니다. 마침내 식사가 끝났습니다. 남은 음식들을 모아보니 열두 광주리나 됐습니다. 성경에서 12는 완전함, 충만함을 가리키는 숫자입니다. 도대체 어찌된 일일까요? 흔히 오병이어(五餠二魚)의 기적이라고 하는 이 일화와 관련해 사람들이 저마다 가지고 있던 것을 내놓았다고 하기도 하는데, 이는 이 기적 이야기의 본질을 훼손시킨다는 지적이 있습니다. 그보다는 당신 자신을 생명의 빵으로 내놓으신 성체성사의 예표(豫表)로 보아야 합니다. 실제로 빵을 들고 축복하신 후 제자들에게 나누어주시는 모습은 성체성사에서 그대로 재현됩니다. 이 일화에서 절대로 잊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님의 자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과 벳사이다로 물러나셨습니다. 그것은 분명 제자들과 따로 하실 일이 있어서일 것입니다. 그렇지만 군중이 알고 찾아오자 피하거나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수많은 군중이 황량한 곳으로 예수님을 찾아오는 것은 단순히 호기심 때문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나름대로의 간절함이나 절박함이 있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군중을 외면하지 않고 맞아들여 하느님 나라를 가르치시며 병을 고쳐 주십니다. 예수님의 관심과 배려의 절정이 바로 군중을 배부르게 하신 기적입니다. 이 기적은 “소문에 들리는 이 사람은 누구인가?”(9,9) 하는 헤로데의 궁금증과 결부되면서 예수님 신원에 대한 의문을 더욱 증폭시킵니다. 이 의문은 단순한 궁금증이 아니라 놀라움과 경외심으로 가득찹니다. 병자를 고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며 죽은 이를 살리시고 오천 명을 배부르게 하신 예수는 도대체 누구이신가? 답은 시몬 베드로의 고백을 통해 드러납니다. 다음 호에서 살펴보겠습니다. 문채현2017.09.20
![[이상철 신부의 성가이야기] (54) 180. 주님의 작은 그릇 <상>](//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3476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이야기] (54) 180. 주님의 작은 그릇 <상>평범한 찬송가 ‘바흐 스타일’로 부활 180번 성가 ‘주님의 작은 그릇’은 바흐의 칸타타 147번에서 사용된 것이다. 180번 ‘주님의 작은 그릇’은 원래 ‘예수 인류 소망의 기쁨’이라는 제목의 선율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우리 가톨릭성가 책에 등장하는 이 성가는 바흐(J. S. Bach, 1685~1750)의 칸타타 147번에서 사용된 것이다.칸타타(Cantata)란 성악곡의 한 종류다. 어원은 ‘노래한다’라는 뜻의 라틴어 ‘Cantare’에서 유래했다. 이는 ‘울린다’는 뜻을 지닌 라틴어 ‘Sonare’에서 기원한 ‘악기로 연주한다’는 뜻의 소나타(Sonata)와 대조를 이루는 말이다. 처음에는 일반적인 성악곡을 의미했는데, 이후 악기 반주를 동반하는 몇 개의 악장으로 구성된 바로크 시대의 중요한 성악 작품으로 발전했다. 대부분 루터파 개신교의 예배에 사용하기 위해 코랄 선율로 작곡된 교회 칸타타가 주를 이루었으나, 세속 칸타타도 몇 곡 있다. 이후 여러 작곡가가 자신의 작품에 이 이름을 사용하면서 가톨릭에서 시작해 정착된 오라토리오와의 구분이 모호해졌다.180번 성가는 17세기에 활동한 독일의 음악가 쇼프(Johann Schop, 1590~1667)가 만든 코랄 선율이다. 다만 바흐는 이 선율을 자신의 여러 칸타타에서 활용했을 뿐이다. 그는 이 선율을 조금씩 변형시키며 자신의 여러 칸타타에서 사용했는데, 각각 BWV(바흐 작품 번호) 55번의 5악장, 244번의 40악장, 147번의 6악장과 10악장, 154번의 3악장, 146의 8악장, 359번과 360번 그리고 118번에서 사용했다. 당시에는 오늘날과 달리 다른 이의 선율을 가져와 사용하는 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여겨지던 시대였다.바흐는 이외에도 매우 다양한 이들의 코랄 선율을 가져와 자신의 작품에 사용했다. 바흐가 조금씩 변형시키며 차용했던 쇼프의 선율 가운데 우리 성가집에 수록된 선율과 가장 유사한 형태로 유명해진 것은 147번에서 사용됐다. 바흐가 ‘마음과 입과 행실과 삶은(Herz und Mund und Tat und Leben)’이라는 제목으로 만든 칸타타 147번은 그가 바이마르에 머물던 1716년경에 대림 제4주일 용으로 사용하기 위해 만들었다. 그러나 이 악보는 오늘날 전해지고 있지 않으며, 작품 번호도 147a로 따로 붙이고 있다.이후 바흐는 라이프치히의 루터교회 음악가로 활동하게 된다. 그러나 이 교회에서는 대림 제2~4주일까지는 조용한 가운데 속죄를 수행하는 ‘Tempus clausum(침묵의 시기)’라는 로마교회 전통을 지키는 때여서 칸타타를 연주할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1723년 몇 개의 곡을 더 추가해 ‘복되신 동정 마리아 방문 축일’용으로 이 작품을 다시 꾸몄고, 147번 칸타타가 탄생했다. 바흐는 1부를 마무리하는 합창(6악장)과 2부를 마무리하는 합창(10악장)에서 이 선율을 사용하고 있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오라토리오(oratorio)=성경이나 기타 종교적 도덕적 내용의 가사를 바탕으로 만든 서사적인 대규모 악곡코랄(chorale)=찬송가, 특히 독일 프로테스탄트 교회 찬송가 평화신문2017.03.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