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53>](//cpbc.co.kr/CMS/newspaper/2016/01/rc/616463_1.0_titleImage_1.jpg)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예수님과의 인격적 만남 예수님 앞에 서서 그분 시선에 자신을 내어 맡길 때 우리는 비로소 그분 사랑의 눈길을 알아볼 수 있다. 율리우스슈노어 폰 카롤스펠트 작 ‘첫 제자들’. 출처=「아름다운 성경」 교황은 선교 열정을 불러일으키는 여러 가지 동기 가운데, 첫 번째로 ‘구원하시는 예수님의 사랑과 갖는 인격적 만남’이라는 내용을 소개하면서, 신앙인 각 개인의 체험을 강조했다. 우리가 예수님의 사랑을 체험하지 못했다면, 결코 선교사가 될 수 없다는 이야기다. 사랑을 체험한 기억이 없고 그분을 만나지도 못했다면, 결코 그분을 전할 수 없다는 것이다. 열정적 복음화의 원동력은 믿음만일 우리가 예수님께 받은 사랑, 그분께 구원받은 경험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분에 대한 사랑과 열정이 식었다면, “우리는 예수님께서 우리의 마음을 다시 한 번 사로잡아 주시도록 꾸준히 기도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날마다 예수님의 은총을 청하며 예수님께서 우리의 닫힌 마음을 열어 주시고, 생기 없고 피상적인 우리 삶을 흔들어 주시도록 간청하여야 합니다. 예수님 앞에 열린 마음으로 서서, 그분의 시선에 우리 자신을 내어 맡길 때, 우리는 그분 사랑의 눈길을 알아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네가 무화과나무 아래에 있는 것을 내가 보았다’(요한 1,48) 하고 말씀하신 그 날, 나타나엘은 그분 사랑의 눈길을 깨달았습니다”(264항).교황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신다. “우리는 감출 수 없는 사랑과 생명의 보화를, 조작할 수 없고 실망시키지 않는 메시지를 간직하고 있습니다. 이는 우리 인간의 마음속 가장 깊은 곳에서 나오는 응답으로 우리를 지탱시켜 주고 드높여 줍니다. 이는 그 무엇도 도달할 수 없는 그곳을 꿰뚫고 지나는 것이기에 만고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의 끝없는 슬픔은 오로지 영원한 사랑으로만 치유될 수 있습니다”(265항). “이 확신은 그리스도와의 우정과 그분의 메시지를 끊임없이 새롭게 맛보는 개인적 체험으로 뒷받침되어야 합니다. 개인적 체험을 통한 확신이 없으면 열정적인 복음화를 꾸준히 수행할 수 없습니다. 곧 예수님을 안다는 것과 그분을 모른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분과 함께 걷는 것과 맹목적으로 걷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분의 말씀을 들었다는 것과 그분 말씀을 모른다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그분을 관상하고 경배하고 그분 안에서 우리의 평화를 찾는 것과 그러지 않는 것은 다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에 대한 확신을 개인적인 체험을 통하여 얻어야 하는 것입니다”(266항).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체험을 나눠야 사목국장으로 있으면서 지난 3년 동안 선교 운동을 위해 노력했다. 선교의 당위성을 알리고 사명으로 인식하도록 힘썼으며 방법적인 면에서의 주도면밀한 계획을 수립하였다. 이 모든 것을 기계적으로 신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힘썼다. 어느 정도의 결실도 보았다. 그러나 여전히 무언가 아쉬움이 크게 남아 있다. 무엇 때문인가? 교황의 말씀에서 그 답을 찾아본다.교황은 복음 선포자의 첫 조건이 예수 그리스도와의 인격적 만남이라고 했다. 그분의 사랑과 자비의 눈길을 의식하지 못했다면, 선교사가 될 수 없다는 말씀이다. 우리 신앙인들 모두가 복음의 선포자이기에 모든 이가 주님과의 만남과 그분의 사랑과 자비의 눈길을 체험할 수 있어야 한다는 말씀이다. 선교 열정은 바로 이곳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본당에서의 사목자들의 봉사도 바로 이와 같은 차원에서 전달되어야 한다. 신자들이 서로의 체험을 공유할 뿐만 아니라, 사목자의 인격을 통해서까지 예수 그리스도가 느껴져야 한다. 이런 체험에 대한 구체적 나눔의 자리가 필요하다. 신자들의 신앙 체험 공유와 성경 말씀에 대한 탐구 그리고 공동체와 각자의 기도 체험이 필요하다. 나아가 하느님 자비의 체험을 서로 나누도록 이끄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함을 절감한다. 백영민2016.01.27
![[가톨릭 리빙]기도,주님과 만나는 여정](//cpbc.co.kr/CMS/newspaper/2016/02/rc/619700_1.2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빙]기도,주님과 만나는 여정* 피정의 집 및 단체 기도 프로그램 기도하기에 좋은 사순 시기다. 기도는 하느님과의 인격적인 만남이며, 하느님과의 대화다. 성 그레고리오는 “숨을 쉬는 것보다 더 자주 하느님을 생각해야 한다”고 했다. 하지만 육체적으로나 정신적으로 바쁜 현대인들은 일정 시간에 의식적으로 기도하지 않는 이상, 그 어느 때에도 기도하기 어려운 일상을 살고 있다. 초심자들을 위해 기도란 무엇이며, 기도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도할 때 조심해야 할 점들은 무엇인지 「가톨릭 교회 교리서」와 「한국 가톨릭 대사전」을 중심으로 소개한다. 기도란 무엇인가가톨릭 영성의 대가들은 기도와 명상, 묵상에 전념하며 내적인 힘을 얻었다.아기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자서전」에서 “마음으로 하는 관상 기도란, 우리를 사랑하시는 그 하느님과 자주 단둘이 지냄으로써 친밀한 우정의 관계를 맺는 것”이라 말했다.하느님의 현존을 자기 안에 끌어들이는 기도는 신앙인이 하느님과 맺은 사랑의 관계를 스스로 알게 되는 의식적인 행위인 동시에 우정을 맺는 실천적인 방법이다. 하느님과의 사랑의 대화에 머무르는 것이 기도의 본질이므로 실천이 뒤따르지 않는 기도는 공허해진다. 성경을 비롯한 교부들과 성인들 가르침을 요약하면 ‘기도는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로 향하는 것’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기도로써 사람의 마음과 정신을 하느님께로 돌리고, 하느님께 감사하며 은혜와 용서를 청하는 것이다. 기도는 인간에게 말씀을 건네는 하느님과 그 말씀을 듣고 하느님께 신앙으로 응답하는 인간 사이의 대화다. 기도의 종류가톨릭 교회는 지속적인 기도를 함양시켜 주는 주기적인 기도를 신자들에게 권한다. 매일 바치는 기도로는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 삼종 기도, 식사 전후 기도, 성무일도(시간 전례)가 있다. 주일에는 성찬례 곧 미사를 중심으로 무엇보다도 기도로써 거룩하게 지내며, 전례주년과 그에 따른 대축일들은 그리스도인의 기도 생활에 근본이 된다(「가톨릭 교회 교리서」 2698항 참조).기도에는 세 가지 표현 방식이 있다. 소리 기도와 묵상 기도, 관상 기도다. 소리 기도는 그리스도인 생활에 필수적이다. 또한 외적이고 지극히 인간적인 것이기에 가장 훌륭한 대중의 기도이기도 하다. 기도는 우리가 말씀드리는 그분을 의식할수록 내적인 것이 되므로, 소리 기도는 관상 기도로 가는 최초의 형태가 된다(2705항 참조).비언어적인 묵상 기도는 아무 말 없이 하느님께 전적으로 몰입하는 기도다. 하느님의 현존만을 느끼며 고요히 안주하는 상태에 머물게 된다. 관상 기도는 늘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과 더욱 깊이 일치함으로써, 사랑하시는 성부의 뜻에 겸손하고 비어 있는 마음으로 승복하는 것이다(2822항). 우리는 각자가 처한 삶의 현실에서 다양한 기도를 통해 하느님과 대화를 나눌 수 있다. 일을 시작하며 바치는 기도, 배우자를 위한 기도, 가정을 위한 기도, 부모를 위한 기도, 환자를 위한 기도 등도 있다. 기도는 어떻게 할까바오로 사도는 기도에 ‘언제나’ ‘끊임없이’(필레 1,4) ‘밤낮으로’(1테살 3,10)라는 표현을 써 열성적으로 기도할 것을 당부했다. 기도는 장소와 시간, 태도에 대한 규제가 없다. 기도는 언제 어디서나 바칠 수 있다. 신약성경에서는 기도할 때에 이방인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해서는 안 되며(마태 6,7), 남에게 보이려고 시간을 오래 끄는 것은 잘못된 태도(마르 12,40)라고 설명한다.하느님 앞에서 겸손한 마음 없이 기도는 불가능하다. 기도는 무한한 하느님의 사랑에 자신을 의탁하고 하느님의 자비를 바라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기도의 정신은 사랑과 용서의 정신과도 일치한다(마태 18,25-35).지속적인 기도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노력이 따라야 한다. 기도의 유익성이나 기도의 가능성에 이르기까지 회의를 느끼게 하는 유혹들이 닥치지만 겸손과 신뢰, 인내로 대처해야 한다. 또한 하느님이 우리의 청원을 언제나 들어주시지는 않는다는 느낌이 들 때, 복음서는 우리의 기도가 성령께서 바라시는 것과 일치하는지 생각해 보기를 권고한다(2756항 참조).“당신이 청하는 것을 하느님에게서 바로 받지 못하더라도 슬퍼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당신이 기도하면서 꾸준히 하느님과 함께 머물러 있음으로써, 하느님께서 당신에게 더 좋은 것을 주시려고 하시기 때문입니다”(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기도론」 중).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 피정의 집 및 단체 기도 프로그램 문채현2016.02.16
신천지를 주의합시다!<2> 신천지는 어떤 사람을,어떻게 포섭하는가 신천지는 ‘아무나’ 포섭하지 않는다. 신천지가 포섭 대상자를 선별할 때 활용하는 ‘합당한 자 선정 기준표’를 보면 시간ㆍ환경ㆍ경제ㆍ건강ㆍ인성ㆍ신앙 등 6개 분야로 분류된 상세한 평가 항목이 있다. 주 4회(월ㆍ화ㆍ목ㆍ금) 복음방 및 센터에서 성경 공부 수강이 가능하고, 경제적으로 넉넉하고, 아무런 병이 없고, 약속을 생명같이 지키고, 활동적이고, 다니고 있는 교회에서 평판이 좋은 사람이 이른바 ‘합당한 자’다. ‘걸림 요소’도 명시하고 있다. 직장이 확실하지 않은 사람, 신앙생활을 시작한 지 3년이 안 된 사람, 신앙생활을 중단한 지 1년 이상 된 사람, 가족 중에 중환자가 있어 돌보고 있는 사람은 ‘부적격자’이다. 여성 신자의 경우 가정의 경제력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부적격자로 분류한다. 20세 미만이거나 61세 이상인 사람도 부적격자이다. 다시 말하면 신앙생활을 하는 그리스도교 신자이면서 왕성하게 활동할 수 있는 나이에, 어느 정도 경제력이 있으며 건강한 사람이 신천지의 포섭 대상이다. 성경 공부를 하는 데 지장이 있는 장애인은 포섭 대상에서 제외된다.신천지에 포섭된 이들의 회심을 돕고 있는 상담사 이승혜(가타리나)씨는 “신천지는 노인과 청소년을 포섭 대상에서 제외하지만 사회적 지위가 있고, (조직에) 도움이 될 거라고 판단되면 60세 이상도 포섭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최근에는 적극적이고 활동적인 대학생, 청년들을 집중적으로 공략해 신학원에서 성경 공부를 하는 이들 중 절반 이상이 젊은이”라고 설명했다.신천지의 전도 방법은 크게 지인 전도, 노방 전도, 모략 전도로 나눌 수 있다. 지인 전도는 말 그대로 아는 사람을 포섭하는 것이고 노방 전도는 거리에서 불특정 다수에게 신천지를 알리는 것이다. 신천지는 대개 정체를 드러내지 않고 접근하는 ‘모략 전도’로 대상자를 미혹한다. ‘신천지’, ‘성경 공부’라는 이야기를 꺼내지 않고 우연을 가장해 접근해 성경 공부로 이끄는 수법이다. ‘가짜 신부’들을 이용한 포섭도 모략 전도의 한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배 바오로(가명, 공무원)씨는 2013년 가을 초등학교 동창회에서 만난 친구가 “유명한 선교사가 성경 강의를 하는데 같이 가보자”고 권해 신천지 성경 공부를 접했다. 그는 “신학원에서는 몇 달이 지나도록 신천지라는 단어를 꺼내지 않았다”고 말했다. 신천지는 최근 들어 대학교 내에서 학생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포섭 활동에 나서고 있다. 대학생들이 관심을 두고 있는 설문 조사, 봉사 활동, 심리 상담, 문화ㆍ예술 활동을 빙자해 성경 공부로 이끄는 교묘한 방법을 주로 활용하고 있다. 부산의 한 대학에 다니는 유아무개씨(남)는 선배가 신입생들의 대학 생활을 도와주는 ‘멘토링’ 프로그램에 참가했는데, 알고 보니 그 선배가 신천지 신도였다. 신천지에서 활동하는 동아리 선배가 후배들을 신천지로 이끄는 경우도 적지 않다. 정체를 숨기고 대학 안에서 대규모 무료 성격 유형 검사(MBTI, 에니어그램)를 개최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신천지는 ‘포섭 대상자가 완전히 넘어왔다’는 확신이 들기 전까지 절대로 신천지임을 밝히지 않는다. 신천지에 미혹돼 활동하다가 지난해 가을 빠져나온 한 대학생에 따르면 광주ㆍ전남 지역에서 3000명이 넘는 대학생이 신천지에 포섭돼 활동하고 있다. 광주광역시의 A 대학은 800여 명, B 대학은 600여 명의 학생이 신천지에 포섭된 것으로 알려졌다.수원교구 복음화국은 ‘신천지 교회 주의 공지’에서 “신천지에 입교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성경 공부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교회 밖에서 성경 공부만 하지 않는다면 결코 신천지에 미혹되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신천지 신도들의 교리적 주장들을 반박할 충분한 사전 지식이 없으면 그들과 토론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 당부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백영민2015.06.24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3) 기도란 무엇인가 - 계약이자 친교기도, 진심으로 하느님과 친교 맺기 어떤 사람이 무엇을 하고 있는지는 보통 그 사람의 자세를 보면 압니다. 이는 기도의 경우에도 해당합니다. 사람의 자세를 보면 비록 소리 내어 기도를 바치지 않더라도 저 사람이 기도하고 있구나 하고 짐작할 수 있습니다. 물론 이 짐작이 언제나 맞는 것은 아닙니다. 겉으로 경건하게 기도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기도가 아니라 전혀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경우도 많습니다. 반대로 기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표정이나 몸짓인데도 실제로는 간절하게 기도하는 경우일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이 있습니다. 어떤 기도이든 간에 기도는 마음에서 우러나온다는 것입니다. 기도해야겠다고 생각해도, 마음이 동하지 않으면 기도가 잘 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는 저마다 체험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저는 아침 출근길에 특별한 일이 없으면 묵주기도를 바치곤 합니다. 오늘 아침에도 묵주를 꺼내 들었습니다. 하지만 머릿속에서는 기도해야겠다는 생각이 있지만, 마음이 동하질 않더군요. 성모송 몇 번 바치다가 결국은 중단하고 말았지요. 그래서 교리서에서도 “기도를 드리는 표현 수단이 어떠한 것이든… 마음이 기도하는 것”이라고 밝히고 있는가 봅니다(2562항). 물론 기도가 솟아나오는 곳을 가리킬 때 성경에서는 때로는 영혼이나 혹은 정신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마음이라고 하는 경우가 훨씬 많습니다. 그렇다면 마음은 무엇일까요? “마음은 내가 존재하고 내가 머무는 거처”입니다. ‘내 마음 나도 몰라’라는 말처럼, 마음은 다른 사람들의 이성으로는 물론 우리 자신의 이성으로도 파악할 수 없는, “우리의 숨겨진 중심”입니다. 기도하려면 이성(생각)의 결단만으로는 부족합니다. 마음의 결단이 있어야, 곧 마음이 움직여야 합니다. 그래서 마음은 “결단을 내리는 자리”이고 “우리가 삶이나 죽음을 선택하는 곳”이며 “진리의 자리”이며 “계약이 체결되는 자리”입니다(2562항). 우리 자신도 알 수 없는 이 마음을 살피고 감지하실 수 있는 분은 바로 하느님의 성령이십니다. 마음은 우리가 하느님을 만나는 자리입니다. 마음이 움직인다는 것은 이 만남이 성사됨을 의미합니다. 만남이 성사된다는 것은 계약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기도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계약 관계”입니다. 이런 점에서 기도는 “하느님의 행위이며 인간의 행위입니다”(2564항). 우리는 기도할 때에 하느님을 찾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하느님을 찾기 이전에 이미 하느님께서는 우리 앞에 와 계시고 우리를 찾고 계십니다. 이제 우리가 마음을 열기만 하면 됩니다. 우리가 마음을 열 때 계약이 체결됩니다. 지난 호에서 ‘기도란 성령께 마음을 여는 것’이라고 한 것도 이와 같은 맥락입니다. 하지만 기도에서 이루어지는 만남과 계약은 단순히 약속한 것을 주고받는 계약이 아닙니다. 기도는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인간의 마음이 온전히 결합되는 바로 그것”, 곧 삼위일체이신 하느님과 이루는 친교입니다. 그래서 기도 생활이란 “지극히 거룩하신 하느님 면전에서 지내는 것이며, 그분과 일치를 이루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할까요? 교리서는 “언제나 가능하다”고 가르칩니다. “우리는 세례성사를 통해 그리스도와 같은 존재가 되었기 때문입니다”(2565항). 곧 죽음을 딛고 부활하신 그리스도처럼 우리도 죄에 죽고 새사람이 되어 우리 안에 성령을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성령에 힘입어 우리 마음을 여는 것, 그것이 기도의 시작입니다. 기도 생활은 성령과 함께 호흡하는 것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06.14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해설] 13.제4장 혼인의 사랑 ②(101~110항)집에만 가면 긴장되고 짜증 난다면… 지난 호에 이어 사랑의 찬가에 대한 프란치스코 교황의 묵상을 계속 살펴보자. 사랑은 관대합니다(101~102항 )바오로 사도는 “저마다 자기 것만 돌보지 말고 남의 것도 돌보아 주십시오”(필리 2,4) 하고 당부하는데, 이것이 ‘관대한 사랑’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관대한 사랑은 자기의 유익을 추구하지 않지만, 자신에게 마냥 인색하거나 엄격하라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자신에게도 관대해야 한다. 그러나 자신을 사랑하는 것은 다른 사람을 더 잘 사랑하기 위해서다. 구약의 집회서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에게 악한 자가 누구에게 관대하겠느냐? 그는 자기 재산도 즐기지 못한다. 자신에게 인색한 자보다 더 악한 자는 없다"(집회 14,5-6). 관대한 사랑은 주고받는 정의를 넘어선다. 정의와 무관하다는 것이 아니다. 정의를 실현하고 초과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정의의 초과 달성’이다. 이것이 사랑은 정의를 초월한다는 의미다. 이 사랑은 “바라지 말고”(루카 6,35) 주는 사랑이다. 사랑은 성을 내지 않습니다(103~104항)성을 낸다는 것은 외부로부터 뭔가 자극을 받은 내면의 분개와 관련이 있다. 성을 낸다는 것은 내적인 폭력적 반응을 가리킨다. 이런 “내적 적대감을 키우는 것은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며 상처와 소외를 야기할 따름”(103항)이라고 교황은 지적한다. 하지만 중대한 불의를 보고 터뜨리는 분노는 건강하다. 이를 의로운 분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갑자기 적개심이 밀려온다고 느끼는 것과 거기에 굴복해 적개심을 마음에 깊이 담아두는 것은 별개라고 지적한다. 그래서 성경 말씀을 빌려 “화가 나더라도 죄는 짓지 마십시오. 해가 질 때까지 노여움을 품고 있지 마십시오”(에페 4,26)라고 권고한다. 교황은 이 말씀을 가정에 적용한다. 가정에서 하루를 마칠 때까지 화 난 채로 있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사랑은 앙심을 품지 않습니다(105~108항)앙심을 품지 않는다는 것은 거꾸로 말하면 용서한다는 것이다. 용서는 다른 사람의 약함을 이해하고 봐주는 것이다. 속상했을 때 또는 실망스러울 때, 우리는 용서할 수 있다. 그리고 이는 바람직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용서가 결코 쉬운 것만은 아니다. “아무도 용서가 쉽다고 말할 수 없다”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한다. 가정의 친교는 큰 희생정신을 통해서 보존하고 완성할 수 있다. 그러려면 가족 구성원 모두가 저마다 이해하고 참고 용서하고 화해하는, 관대하고 열린 마음을 기꺼이 지녀야 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나아가 우리 자신을 이해하고 용서하는 체험을 할 때에 다른 이들을 용서할 수 있다고 밝힌다. 따라서 “다른 사람을 받아들이고 용서하려면 우리 자신의 과거사를 놓고 기도하는 법을, 우리 자신을 받아들이는 법을, 한계를 안고 살아가는 법을, 그리고 용서하는 법까지도 배워야 한다”(107항)고 강조한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우리 자신이 하느님에게서 용서를 체험했음을 전제로 한다. 하느님의 사랑은 아무런 조건이 없다는 것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비록 다른 이들이 우리에게 나쁜 짓을 했다 해도 그들을 거듭 사랑하고 용서할 수 있게 될 것이다. 그렇지 않을 경우 우리의 가정생활은 이해와 지원과 격려의 자리가 아니라 끊임없는 긴장과 상호 비판의 자리가 되고 말 것이라고 교황은 지적한다. 사랑은 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합니다(109~ 110항)진실을 두고 함께 기뻐한다는 것은 진리 안에서 기뻐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하면 다른 사람의 존엄함을 보고 그들의 능력과 선행을 평가하면서 기뻐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다른 이들, 심지어는 배우자에 대해서도 늘 비교하고 경쟁하면서 그들의 약함을 남몰래 즐기는 그런 이들은 이렇게 함께 기뻐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른 이를 위해 선행을 할 수 있을 때 또는 다른 이들이 행복한 것을 볼 때 그 자신도 행복하게 살 수 있다. 또 “하느님께서는 기쁘게 주는 이를 사랑하신다”(2코린 9,7)는 것을 염두에 둔다면, 이렇게 살아가는 삶은 또한 하느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이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주님께서는 다른 이들의 행복에서 기쁨을 찾는 이들을 특별히 고맙게 여기신다”면서 “가정은 언제나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에게 기쁜 일이 생길 때 다른 이들이 함께 기뻐 축하하는 자리가 돼야 한다”고 강조한다(110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6.07.26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5)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cpbc.co.kr/CMS/newspaper/2016/06/rc/642632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5)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르 1,11)완전한 하느님이시며 완전한 인간, 예수 피에로 델라 프란체스카 작, ‘그리스도의 세례’ 일부, 1448~1450년, 내셔널 갤러리, 영국 런던. 예수님의 탄생과 짧은 유년기의 내용 이후에 본격적으로 그의 활동을 알리는 첫 사건은 바로 세례입니다. 또한 공관 복음 모두 예수님의 세례 이전에 세례자 요한의 설교 내용을 전해 줍니다. 세례자 요한은 죄의 용서와 회개를 위한 세례를 선포할 뿐 아니라 예수님의 세례, 곧 성령의 세례 역시 미리 예고합니다. 이런 의미에서 세례자 요한은 철저하게 예수님의 활동을 준비한 인물로 나타납니다. 조금 특별한 것은 요한 복음서가 전하는 세례자 요한의 역할입니다. 공관 복음이 세례자 요한의 역할을 예수님보다 앞서 사람들에게 회개를 선포하고 세례를 베푼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면, 요한 복음서는 세례자 요한을 통해 전해지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증언’을 강조합니다. 요한 복음에서 세례자 요한은 두 번에 걸쳐 예수님을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증언합니다(요한 1,29.36). 요한 복음 안에서 세례자 요한이 예수님께 세례를 베푼 것보다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것은 바로 이 증언입니다. 왜냐하면 요한 복음에서 ‘어린양’이라는 표현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 안에 담긴 의미를 직접적으로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세례자 요한의 증언은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을 미리 알려주는 표현이기도 합니다.예수님께서는 때가 되어 요르단 강에서 세례를 베풀던 요한을 찾아갑니다. 그리고 그에게 세례를 받습니다. 공관 복음이 전해주는 세례에 관한 이야기에서 강조되는 것은 예수님을 향한 하늘의 소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 성령이 내려오시는 것을 보았고 하늘로부터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라는 소리를 듣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신원과 정체성을 나타내는 표현입니다. 예수님의 공생활 첫 시작에 복음서들이 공통으로 전해 주는 것은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사실입니다. 세례를 받으신 예수님은 세례 때의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갑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사십 일 동안 유혹을 받았다고 공관 복음은 이야기합니다. 광야에서의 사십 일은 이스라엘 민족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가나안에 이를 때까지 광야에서 보냈던 사십 년의 역사와도 같습니다. 그렇기에 사십이라는 수는 하느님의 약속이 실현되기 전에 준비하는 시간을 의미합니다. 마태오와 루카 복음은 세 가지 유혹의 내용을 소개합니다. 순서에는 조금 차이가 있지만 빵으로 요약할 수 있는, 사람의 삶을 영위하는 데 필요한 것들에게서 오는 유혹입니다. 사람의 욕구를 채우고자 하는 것 역시 하나의 유혹입니다. 그리고 하느님 이외의 우상을 섬기는 것, 하느님을 시험하는 것이 뒤따릅니다. 예수님께서 받은 유혹은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이 저질렀던 잘못들을 배경으로 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무엇보다 먼저 사람의 기본적인 욕구를 채우고, 우상을 섬기기도 했으며 이런 일들을 통해 하느님을 시험한 모습으로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세례와 유혹은 예수님의 본격적인 활동을 준비하는 역할을 합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은 하느님이라는 사실이 드러나고, 유혹을 통해 다른 사람과 다름이 없음을 나타냅니다. 신학에서 말하는 완전하신 하느님이면서 동시에 완전한 인간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내용이기도 합니다. 이것은 하나의 역설이기도 합니다.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시어 여느 사람들처럼 유혹을 받았다는 사실은 예수님의 정체성을 가장 잘 표현합니다. 구약 성경에서 이미 암시되었던 그리고 하느님의 백성이 기다려 왔던 메시아는 기대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드러납니다. 왕을 세우거나 예언자를 파견하는 방식이 아니라 이제 하느님께서 직접 사람이 되셨다는 것이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에 세례와 유혹을 통해 드러납니다. 예수님은 하느님으로서 그리고 한 사람으로서 구원을 향한 당신의 사명을 시작하십니다.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6.06.28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 글라스] 29. 서울 광림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cpbc.co.kr/CMS/newspaper/2016/08/rc/649208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 글라스] 29. 서울 광림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스위스 출신 마르크 수사 작, 공간 성격과 기능성 살리고 감리교 특성에 맞게 구체적 형상 제외 1999년 서울 광림교회에 설치된 마르크 수사의 ‘성부, 성자, 성령’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높이 12m에 달하는 우측 6개 창에는 삼위일체와 성령의 속성이 표현됐다. 스테인드글라스 작가에게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은 언제일까?아마도 심혈을 기울여 디자인하고 제작한 자신의 스테인드글라스가 블라인드나 암막 커튼으로 가려져 있는 상황을 목격하는 순간일 것이다. 실제로 국내 성당 답사를 다니다 보면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해 유입되는 빛의 양이 적절하지 않거나 유리 표면에서 소리가 튀어 강론이 들리지 않는 현상을 완화하고자 스테인드글라스에 또 다른 장치를 덧대는 사례들을 종종 마주하게 된다. 큰 비용과 공을 들여 제작한 아름다운 스테인드글라스가 제 기능을 하지 못하고 방치되는 것은 여러 면에서 큰 손실이다.스테인드글라스는 한 작가의 예술 작품이기에 앞서 실제 건축물에 설치돼 기능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고려해야 하는, 지극히 현실적인 부분에 발을 딛고 있는 건축 예술이다. 오늘 소개하고자 하는 서울 광림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작품이 놓일 공간의 성격과 기능을 최대한 고려하여 사용자의 어려움을 스테인드글라스로 해결한 대표적인 사례다.서울 광림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프랑스 떼제 공동체 소속 스위스 출생 마르크 수사(Br. Marc)의 작품이다. 마르크 수사는 1987년부터 한국에 머물며 국내 여러 성당과 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을 디자인했다. 그의 여러 작품 가운데에서도 1999년 완성된 서울 광림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는 3년여의 작업 끝에 완성된 마르크 수사의 대표적인 역작이다.빛의 분할 극대화와 삼원색의 조화수천 개의 색유리 조각을 조합해 빛의 분할을 극대화한 이 작품은 감리교회라는 점을 고려해 구체적인 형상은 제외하고 최소한의 상징과 색, 그리고 성경 구절을 한글로 표현하는 방식으로 그리스도교적 메시지를 형상화했다. 광림교회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제단을 중심으로 오른쪽 6개의 창과 왼쪽 2층 4개의 창에 설치되었다. 오른쪽 6개의 창은 천장에서 바닥까지 이어지는 높이 12m의 창 3개와 2층 신자석에 의해 이등분된 3개의 창으로 이뤄져 있다. 마르크 수사는 온전한 창이 3개라는 점에 착안해 첫 번째 3개의 창에 삼위일체를 형상화하고 상하로 나뉜 3개의 창에는 성령의 속성을 표현했다. 그리고 제단 왼쪽 4개의 창은 교회 측 요청에 따라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존 웨슬리(John Wesley, 1703~1791)의 회심과 모세의 소명을 추상적으로 해석해 표현했다.교회 내부 공간 분위기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오른쪽 6개의 창은 색의 상징으로써 작품의 주제를 드러내고 있다. 첫 번째 창인 ‘성부’에는 태초 빛의 근원을 상징하는 푸른색을 사용하고, 두 번째 창인 ‘성자’에서는 하느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육화하는 예수 강생의 길과 그 고통을 흰색과 붉은색으로 표현했다. 그리고 삼위일체의 마지막 부분인 ‘성령’은 노란색을 주조로 해 마치 봄과 같이 생명감이 넘치는 성령의 힘을 표현했다.이처럼 파랑, 빨강, 노랑으로 이어지는 색 변화는 성령의 속성을 나타내는 나머지 3개의 창에서 거꾸로 반복되면서 통일된 색감을 이뤄내고 있다. 이러한 상징적인 색들은 잘게 쪼개진 색유리의 굴절된 빛에 의해 실내에 반사되면서 음악적인 울림을 만들어내고 있다. 한번은 학생들과 함께 현장학습차 교회에 방문해 작품에 대한 이런저런 의견을 나누었는데, 한 학생이 ‘왜 이렇게 큰 창을 잘게 나누어서 그물처럼 만들어 놓았는지 모르겠다. 좀 더 시원시원한 면 분할이었으면 좋았겠다’며 아쉬움을 표현했다. 그러자 옆에서 교회를 안내해 주던 담당자로부터 다음과 같은 답을 들을 수 있었다.스테인드글라스, 전례의 조력자로“우리는 이 스테인드글라스를 설치하고 100%가 아닌 200% 만족하고 있습니다. 큰 유리창으로 쏟아지던 강한 빛도 완화됐고 파이프오르간 소리가 창유리로 인해 튀는 현상도 사라져 음이 교회 구석구석까지 잘 전달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작품 설치 후 이전에 사용했던 암막 커튼은 필요 없게 됐습니다.”실제 마르크 수사는 작품 구상을 위해 예배에 여러 차례 참석하면서 찬양과 음악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음에 많이 고민했고, 이 점을 충분히 고려해 빛과 소리를 적절히 분절시킬 수 있도록 작품을 구상했다. 자신의 작품에 심혈을 기울이지 않는 작가는 없을 것이다. 그럼에도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늘 존재한다. 그러나 잠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사는 사람들로부터 진정한 호응을 이끌어낼 수 있는 것이야말로 성공한 작품이 아닐까. 스테인드글라스는 전례 공간 내 빛의 질을 결정하고, 전례의 모든 진행에 방해됨이 없는 ‘조용한 조력자’이자 ‘주인공’으로 존재한다는 것을 늘 기억하면 좋겠다. 백영민2016.08.17
노르베르트 로핑크 (하)](//cpbc.co.kr/CMS/newspaper/2014/11/rc/537833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66)노르베르트 로핑크 (하)성경 주석과 신학의 통합 추구한 성서학자 노르베르트 로핑크는 1999년 ‘신학으로서의 구약학?’이라는 제목으로 강의했고, 강의 내용을 책으로 엮어 2001년 출판했다. 강의할 때에 71세였던 로핑크는 지금까지 자신이 ‘성서 신학의 학문적 성격’에 대해 체계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던 것은 이러한 견해를 많은 이들이 공감하지 않을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라고 했다. 지금도 성서학자 중에는 로핑크의 견해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이번 호에선 그의 주장들을 요약해 보겠다. 그는 구약성경 본문 자체가 지닌 특성에서 출발해 성서학의 신학적 성격을 풀어나간다.구약 신학에 대한 역사적 연구구약성경은 본문 자체에 신학적 표상을 담고 있고, 또한 신학을 전제하고 있다. 따라서 그러한 본문을 연구하는 구약 신학은 학문적인 방식으로 그 신학을 밝히고 기술해야 한다. 성경 본문이 신학 교과서처럼 기술된 것은 아니기에 본문 안에 함축된 신학을 명시해야 하고 간접적으로 언급된 내용을 구체적으로 드러내야 한다. 그러면서 전체적인 연관을 파악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 성서 주석의 적절한 기술들이 필요하다. 많은 경우 본문을 하나하나 따라가며 주석하는 것은 충분하지 못하다. 물론 그러한 주석이 먼저 전제돼야 하지만, 구약성경 신학을 위해서는 전체적 전망이 필요하다. 구약성경 전체를 파악하는 시각도 분명 본문에 대한 작업에 속하며, 본문 연구는 언제나 개별적 분석과 전체적 전망의 종합으로 이뤄진다.개별적인 연구는 신학적인 주제 하나를 중심으로 할 수도 있고, 가설적으로 재고된 본문 이전의 단계에 적용할 수도 있다. 이러한 개별적 연구들과 성경 전체의 신학 사이에는 해석학적 순환이 있게 된다. 개별 시대나 개별 본문이 아닌 구약성경(또는 신약성경) 전체의 신학을 다룰 때도 성서학은 역사적인 작업을 할 수 있다. 때로는 전체 본문의 형성 과정을 역사적으로 다룰 수도 있고, ‘구약성경의 하느님 나라 개념’과 같은 하나의 주제를 다루면서 개별 본문들(책들)의 신학을 역사적 흐름 안에서 종합할 수도 있다. 구약 신학 전체를 전승사적 관점에서 기술할 때도 역사적 성격은 강하게 드러난다. G. 폰 라트의 「구약성서신학」이 대표적이다. R. 알베르츠의「이스라엘 종교사」와 같은 방식의 연구에서도 신학은 역사적 틀 안에서 제시된다. 많은 경우 신학 사전들도 각 개념의 역사적 발전을 담고 있어 역사 신학의 영역에 속하는 것으로 볼 수 있고, 성경 입문이나 구약성경 신학에 대한 책들도 역사적인 방식으로 기술된 경우가 많다.이와 같은 경우, 역사적 연구는 신학과 대립하지 않는다. 신학이 역사 연구 방식 틀 안에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로핑크는 ‘구약성경 신학’이라는 유형의 책들을 별도로 고찰한다.구약성경 신학방법론적 문제는 성경 전체의 ‘정경’을 고려할 때에 변화를 겪는다. 정경이라는 개념이 역사적 접근만으로 포괄할 수 없는 요소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정경은 다양한 신학을 지닌 다양한 책들을 포함하면서, 이들의 단일성을 주장한다.이는 이 책들의 역사적 형성 과정과는 별개의 차원에 속하는 문제다. 또한 정경은 이 본문들 외의 다른 모든 본문들에 대해서는 정경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구약성경 신학에서는 그 정경에 속한 본문만을 고찰하게 되는데, 이 또한 모든 증거 자료를 고찰하는 역사학과는 거리가 멀다. 정경과 관련해서 신학적으로 의미 있는 역사적 질문들이 제기된다. 특정한 책들이 정경으로 받아들여지거나 거부된 과정, 책들의 순서에 대한 질문 등 정경 편집에 관해선 지금까지도 밝혀지지 않은 부분이 많다.특별히 주목해야 할 요소는 정경이라는 맥락 안에서 개별 본문이 새로운 의미를 얻는다는 점이다. 정경 안에서 다른 본문들과의 어휘적, 형식적, 주제적 연결을 통해 본문은 고립됐을 때 지니고 있지 않던 의미를 더 얻게 되는데, 이를 찾아내는 것은 본문 자체에 대한 연구다. 로핑크는 정경 문맥에 대한 이러한 연구 역시 ‘전통으로의 회귀’임을 역설한다.로핑크는 정경 문맥에서 성경 본문을 이해하는 시도까지를 성경에 대한 역사적, 문헌적 연구에 포함한다. 성경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사료로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정경 범위를 고려하는 주석도 여기에 함께 묶는 것이다. 그는 성서학 자체가 교회 공동체에서 성경으로 받아들이는 책에 대한 이해를 추구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렇게 개별 본문에 새로운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정경’이라는 개념을 인정함으로써 성서학은 개별적인 성경 본문들만이 아니라 그 이상의 무엇을 인정하는 셈이 된다.로핑크는 세 부류의 ‘구약성경 신학’을 언급한다. 첫째는 하나의 교의신학적 체제를 따르거나 교의신학에서 다루는 주제들을 열거하면서 그 개별 논제들에 대해 연관된 성경 본문을 연결하는 것이다. 예를 들면 여러 신학 주제를 성경 내용으로 풀이하는 경우다. 둘째는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개념 체계에 따라 성경을 설명하는 것이다. 셋째는 성경에서 하나의 개념을 핵심으로 뽑아 그에 따라 성경 전체의 내용을 체계적으로 설명하는 경우다. 한편 교의신학에서도, 그리스도교 교의신학은 언제나 성경 본문과 연관돼 있으며 성경의 표현과 사고들을 되살리려고 노력한다는 점에서 ‘성경적인’ 신학이라고 볼 수 있다. 교의신학과 성서학은 서로 완전히 분리될 수 없다.신학으로서의 본문 연구로핑크는 성서학자 입장에서 본문 주석과 신학의 통합을 추구한다. 매우 특징적이고 눈길을 끄는 부분이다.그에 따르면, 성경 본문에 대한 역사적 연구는 오래된 본문 뒤에 있는 신학을 재고하며 이 연구는 다양한 신학들을 만나게 된다. 한편 조직신학에서는 신앙 공동체의 신앙을 합리적으로 명시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그 바탕이 되는 성경 전통의 다양한 측면을 하나로 통합하는 전체적인 시각이 필요하다.그런데 신앙 공동체가 지닌 신앙을 전체적으로 바라보는 신학은 꼭 조직적 신학을 통해서만이 아니라 그 공동체의 신앙의 기본이 되는 본문(성경)을 읽어가면서도 할 수 있다. 본문의 모든 부분을 신앙 전체에 그리고 성경 전체에 비춰 그 작은 부분이 전체 안에서 어떤 역할을 하고 있는가를 파악하고자 할 때 바로 그런 전망이 열리는 것이다. 서두에 로핑크가 말했듯 그의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 이들도 많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계시헌장」 반포 후 50년이 지난 지금 「주님의 말씀」에서 공의회 이후의 상황을 평가하는 것을 보면, 로핑크가 처음부터 줄곧 견지해온 입장과 매우 가까움을 볼 수 있다. 그만큼 그의 견해는 균형을 이루고 있고 교회의 성경 해석에 부합하는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마지막으로 적고 싶은 말이 있다. 마음에 담긴 말이다. 로핑크의 인간적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돼 짧게나마 쓰겠다. 필자의 스승은 로핑크의 제자였고, “로핑크가 나에게 해주었듯이 나도 너에게 해주려고 노력한다”고 했었다. 그래서 필자는 로핑크를 직접 만난 적이 없지만 간접적으로 큰 호의를 입었다. 언젠가 만날 기회가 있다면 반드시 감사를 표하고 싶었다. 이 세 번의 글로 감사의 마음을 대신한다. 평화신문2014.11.04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2) “대성전의 정화와 제단의 봉헌”(2마카 2,19)](//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5966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2) “대성전의 정화와 제단의 봉헌”(2마카 2,19)순교자 피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시는 주님 루벤스작, ‘유다 마카베오의 승리’. 마카베오기 상권과 달리 하권은 하스몬 왕조 전체를 지지하거나 정당화하는 것이 아니라 ‘성전 정화’만을 핵심으로 삼습니다. 이제부터 끝까지 ‘성전’에 주의를 기울이십시오. 저자는 머리말에서 이 책의 내용을 이렇게 요약합니다.“유다 마카베오와 그 형제들의 이야기, 대성전의 정화와 제단의 봉헌,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와 그의 아들 에우파토르와 치른 여러 전쟁, 유다교를 위하여 용감하게 싸운 영웅들에게 하늘에서 내린 현시들, 그리고 그 덕분에 그들이 얼마 되지 않은 수로 이 땅 전체를 차지하고 야만스러운 무리를 몰아내어, 온 세상에 이름난 성전을 되찾고 이 도성을 해방시켰으며, 폐기되어 가던 법을 다시 확립한 이야기, 이렇게 주님께서 당신의 크신 자비로 그들을 대해 주신 이야기”(2마카 2,19-23).모두 성전에 관련된 이야기들입니다. 하지만 책의 첫머리는 마카베오 상권 이전의 시대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마카베오 하권 3─8장에서는 마카베오 항쟁이 일어나기 이전에 있었던 대사제직의 타락상을 전합니다. 오니아스가 대사제였던 때에(기원전 187~175) 성전의 관리 책임자였던 시몬은 성전 금고에 엄청난 돈이 있다고 시리아와 페니키아 총독 헬리오도로스에게 고하고, 이 말을 전해 들은 임금은 헬리오도로스를 보내 성전 재물을 탈취하도록 합니다. 사람들은 성소가 모독되는 것을 두려워하였으나, 성전을 침탈하려던 헬리오도로스는 하느님께 징벌을 받아 오히려 회개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그는 임금 앞에서 하느님께서 예루살렘 성전을 지켜 주신다는 것을 고백합니다. “하늘에 거처가 있는 그분께서 친히 그곳을 지켜보고 도와주시며, 악한 짓을 하러 그곳에 다가가는 자들을 내리쳐 없애 버리십니다”(2마카 3,39).하느님 백성의 죄가 절정에 닿지 않도록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는 성전을 모독하고 성전의 기물들을 빼앗아 갑니다. 마카베오 하권의 저자에 따르면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은 “이 도성에 사는 이들의 죄악 때문에 주님께서 잠시 이곳을 소홀히 하시게 된 것” 때문입니다(5,17). 그렇지 않았더라면 안티오코스 4세도 이전에 성전을 모독하려 했던 이들처럼 벌을 받았을 것입니다. 그 후에 임금은 마카베오기 상권 1장에서 묘사한 바와 같이 유다인들에게 율법대로 살지 못하도록 강요하고 성전을 제우스 신전으로 만들었습니다. 저자는 이러한 고난이 닥치게 된 것이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죄가 절정에 달하지 않도록 그 전에 그들을 교육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하며, 이러한 시대에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에 대하여 엘아자르의 순교와(6,18-31) 한 어머니와 일곱 아들의 순교를(7,1-42) 모범으로 제시합니다.그러던 중에 “마카베오가 군대를 조직하자마자 이민족들이 그를 당해 내지 못하게 되었으니, 백성에 대한 주님의 분노가 자비로 바뀐 것이다”(8,5). 그리하여 유다 마카베오는 니카노르와 고르기아스, 티모테오스와 바키데스 등의 군대를 몰아냅니다. 10장에서 마카베오는 성전과 도성을 되찾아 정화하였고, 그 후에도 이두매아 지방의 총독 고르기아스와 유다 지방의 총독 티모테오스 등의 공격을 물리칩니다.마카베오기 하권이 마카베오 집안의 역사 가운데 오직 유다의 활동에만 집중하는 것은 다른 무엇보다도 그가 성전을 되찾아 정화했기 때문입니다. 3장 이하에 나오는 이야기들은 “성소의 거룩함과 온 세상이 존중하는 성전의 위엄과 그 불가침성”(3,12), 곧 성전은 헬리오도로스와 같이 오만한 인간이 침범할 수 있는 것이 아니며 반면 후에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가 성전을 모독할 수 있었던 것은 먼저 예루살렘의 유다인들이 죄를 지었고 대사제들이 타락했기 때문임을 보여 줍니다. 크게 말한다면 이것 역시 신명기적인 주제라고 볼 수 있습니다. 당신 백성이 하느님께 충실하게 살아갈 때 하느님은 성전과 당신 백성을 지켜 주신다는 것입니다.하느님 자비를 간청 따라서 성전을 되찾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 역시 군사력이 아닙니다. 책의 줄거리를 요약해 놓은 데에서는 잘 드러나지 않지만, 개별 본문들을 읽어보면 사이사이에서 저자가 얼마나 “하느님께 간청하는 것”을 되풀이해서 강조하는지를 볼 수 있습니다. 유다 마카베오가 항전을 시작할 때부터, 그와 그의 동지들은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에게 억압당하는 이 백성을 굽어보시고, 사악한 사람들에게 더럽혀진 성전을 가엾이 여겨 주십사고 주님께 간청하였다. 또한 파괴되어 거의 무너져 가는 이 도성에 자비를 베푸시고, 죽은 이들의 피가 당신께 하소연하는 소리를 들어주시며, 무죄한 아기들이 당한 무도한 학살과 당신의 이름이 받은 모독을 기억하시고, 악에 대한 당신의 혐오감을 드러내기를 간청하였다”(2마카 8,2-4). 외세가 예루살렘을 점령하여 율법의 준수와 성전에서 경신례를 거행하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유다인들 사이에서도 야손과 메넬라오스의 악행으로 대사제직이 오염되고 하느님의 진노를 불러일으키게 되었을 때, 하느님의 자비를 부르는 것은 마카베오기 하권에 따르면 순교자들의 피입니다. 백성과 성전과 순교자들의 피가 부르짖는 소리가 하느님의 자비를 부르고, 하느님께서 당신 성전의 거룩함을 지키기 위하여 개입하심으로써 성전 정화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한 가지 덧붙여 둔다면, 마카베오기 하권에서 율법에 충실하기 위하여 목숨을 바친 순교자들은 죽은 이들의 부활을 믿었습니다. 마카베오 하권 7장에서는 순교의 맥락에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명시적으로 언급되는데, 이는 구약 성경의 매우 늦은 시기에 나타난 중요한 발전입니다. 히브리 성경 가운데에서는 죽은 이들의 부활을 명시적으로 말하는 것이 다니엘서 12장뿐인데, 지혜서와 마카베오 하권 등 그리스어로 된 헬레니즘 시대의 책들에서는 이러한 믿음이 분명하게 확인되는 것입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3.22
![[시사진단] 국화 옆에서](//cpbc.co.kr/CMS/newspaper/2015/10/rc/599229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국화 옆에서도진순 하상 바오로(창원대학교 사학과 교수, 평화나눔연구소 연구위원) 가을의 한가운데, 국화의 계절이다. “내 누님같이 생긴 꽃이여”라는 서정주의 ‘국화 옆에서’가 유명해서 국화는 어느덧 여성적인 상징이 된 듯하다. 그러나 뭇 꽃들이 다투어 피는 봄여름이 아니라 가을에 서리에 맞서 피는 국화는 전통적으로 고고한 지사(志士)의 기품과 절개를 상징했다.1909년 가을, 이 국화 옆에서 미친 듯이 노래하고 하염없이 춤을 춘 사람이 있다. 그는 한말의 대문장가 김택영(金澤榮)이다. 일제의 서리를 맞아 조국이 망해 가는데도 자신은 연명하고 있어 부끄러웠는데, 10월 26일 안중근 의거의 굿뉴스를 들었다. 그리곤 “살다 보니 이런 좋은 소식도 듣는구나(未死得聞消息好)/ 국화 옆에서 미친 듯이 노래하고 하염없이 춤을 추노라(狂歌亂舞菊花傍)” 환호하였다. 안중근의 의거를 찬양한 사람이 어찌 김택영뿐이랴. 김택영이 국화 옆에서 춤을 추고 있을 때, 안중근은 기도하고 있었다. 안중근은 심문에서 “토마스가 아세아까지 와서 가톨릭을 선포한 사람”이므로 자신의 세례명으로 했다고 밝힌 바 있다. 세례명과 같이 과연 그는 가톨릭 신앙을 거리에서 선포했던 가두 선교의 선구자였으며, 독립운동의 전장터에서 죽을 위험에 직면한 동료들에게 가톨릭 입교를 설득하여 대세를 준 선교사였다. 그는 태극과 십자가 문양, 그리고 자신의 세례명 “Core An Thomas”를 새긴 인장을 지니고 다녔다. 안 의사는, “그날(10월 26일) 아침 하느님께 기도했다는데, 사실인가?”라는 심문에 “나는 매일 아침 기도한다” 대답하고, 또 의거 직후 “코레아 우라(한국 만세)!”라고 외치기 전에 먼저 “성호를 그었다”고 밝혔다. 그러니까 10월 26일 그는 기도로 의거를 시작해서 성호로 마무리하였던 것이다. 안중근은 자신의 행위가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을 위반한 것이 아니라, 미국 독립전쟁에서 민병대를 조직해 영국군과 싸운 조지 워싱턴처럼, 자신도 한국의 의병중장으로서 일제와 정당한 전투를 하고 있으며, 이것은 하느님께 부끄럼 없는 떳떳한 행위라고 생각하였다. 그리고 조지 워싱턴이 그랬던 것처럼 안중근 의사는 전투 중에도 매일매일 기도하였다.이런 안중근이 뤼순(旅順) 감옥에서 많은 휘호를 남겼는데, 그 중 가장 유명한 것이 “하루라도 책을 읽지 않으면 입에 가시가 생긴다(一日不讀書口中生荊棘)”이다. 유감스럽게도 누구에게 써 준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안 의사의 휘호는 거의 일본인들에게 써 준 것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매일 읽는 책이란 개인의 부귀영달을 가져오는 출세의 책도 아니고, 일제가 부국강병 할 수 있는 그런 책은 더더욱 아니다. 안 의사가 옥중에서 일본인들에게 줄기차게 이야기한 것은 “평화”였다. 이를 위해 「동양평화론」도 집필하지만, 평화방책만으로는 미흡하다 생각하여 일본인에게 기회 있을 때마다 “천주교를 믿어라” “성경을 읽어라”고 평화 영성을 권고하였다. 그러니 위의 휘호에 나오는 책도 성경이 아니고는 달리 설명할 도리가 없다. 1910년 3월 26일 사형장에서 일본인 미즈노 변호사가 “천국에서는 언어에 지장이 없을 테니 나도 뒤에 천국에 가면 당신과 손을 잡고 정을 나누자!”라며 마지막 인사를 하니, 사형 직전 그 순간에도 안 의사의 대답은 이러했다. “귀하의 동정과 이해에 매우 감사할 따름이다. 그러나 천국에 가는 것은 외국에 가는 것과 같이 일정한 법이 있다. 그대도 천주교도가 되어 천국에 가도록 하는 것이 어떠냐. 그렇다면 천국에서 같이 손을 잡고 서로 정을 나눌 수 있다.”국화 만발한 이 가을, 전장에서 감옥에서 심지어 사형 현장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하며 전교하던 안중근 의사를 한번 묵상해 보자. 평화신문2015.10.21
![[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영원한 레지오 단원 김금룡](//cpbc.co.kr/CMS/newspaper/2016/11/rc/660558_1.0_titleImage_1.jpg)
[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영원한 레지오 단원 김금룡<5> 주님의 더 큰 도구로 쓰일 재목이 되어 1953년의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주회 모습. 당시 김금룡이 보통 사람으로서는 이해하기 힘든 생각과 행동을 거침없이 할 수 있었던 것은 장차 교회의 큰 일꾼으로 쓰시려는 주님의 특별할 안배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금룡은 교리를 제대로 깊이 이해하고 교회 상식도 널리 알기 위해 성경과 교리서, 경향잡지 등을 열심히 읽고 어려운 부분이 있으면 본당에 파견되어 있던 사제, 수녀 그리고 선배 교우들에게 이해될 때까지 질문하고 해답을 얻고는 했다.열심히 기도하고 가난한 이웃을 위해 몸과 마음을 던지던 그는 상가(喪家) 봉사에서도 눈에 띄는 존재가 되어 가고 있었다. 1950년대에는 오늘날처럼 본당마다 연령회가 조직되어 있지 않았다. 당시 같은 본당 교우라면 대개 잘 알고 있을 뿐만 아니라 실제 삶에서 일어나는 일을 서로 돕고 살던 이들이 많았기 때문이다. “… 교우가 병들어 위태하다는 소식을 들으면 그 집에서 청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기꺼이 방문하여 살펴본 다음에 세상을 떠나려는 이가 회개하여 주님 앞으로 나아갈 준비를 잘하도록 권고하여 선종할 수 있도록 예비하게 하여야지 그냥 죽도록 버려두지 말아야 한다”(「텬쥬셩교례규」, 상장규구, 선종을 돕는 공부)는 교회 가르침대로 교우가 선종하기 이전부터 방문하여 위의 가르침을 실천하고, 선종하면 위령 기도(연도)를 바치고 형편과 능력에 따라 부조하고 봉사하였기 때문이다. 이 상가 봉사에도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은 누구보다 앞장섰고 헌신적이었다.당시 도회지 사람 가운데 천주교 신자가 아닌 이가 죽으면 가족 외에는 시신을 보거나 만지는 일을 금기시하고 천하게 여기는 관습 때문에 장의사 또는 동네에서 온갖 궂은일을 맡아 하던 이들에게 시신을 맡겼다. 그러나 우리 교우들은 시신을 “우리 주 예수님의 팔다리와 몸이요 성령의 궁전이었음을 깊이 생각할 것”(「텬쥬셩교례규」)이라는 가르침대로 대개 교우의 손으로 염습하고 입관했다. 그러나 시신을 만지는 일은 아무리 착한 마음이 있더라도 누구나 쉽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곱게 선종한 이도 있지만, 불행히도 화상이나 물에 빠져 죽거나 사고로 돌아간 시신들을 보고 만지는 일은 웬만한 비위나 담력이 없는 이는 감히 엄두도 못 낼 만큼 험난한 일이었다.하지만 시신의 상태가 아무리 험악해도 절대 불편한 기색을 보이거나, 마지못해 한다는 식으로 대충하는 적이 없었다. 늘 정성을 다해 씻기고 수의를 입히고 묶은 다음에 관에 모셨다. 비록 신자가 아니더라도 조건 없이 열심히 염습하고 입관하는 이런 천주교 신자들에게 자기 가족의 시신을 부탁하는 이들도 많아졌다. 나아가 기대 이상으로 진지하고 품위 있게 처리하고 기도까지 바치고 허드렛일도 망설이지 않고 도와주는 교우들의 이웃 사랑에 감복하여 천주교에 입교하는 이들도 많았다. 김금룡은 이 상가 봉사에도 가장 적극적이고 탁월한 솜씨를 발휘하였다.무리한 부탁에 응답하다선교사들은 이처럼 점점 드러나는 김금룡의 특별한 모습을 유심히 눈여겨보고 있었다. 악착같이 돈 버는 일에만 매달리지 않을뿐더러, 이웃의 딱한 처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의협심과 늘 새로운 것에 대한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심, 그리고 무엇보다 강렬한 신앙심을 지닌 그가 주님의 일꾼으로서 합당한 재목임을 알아차리지 않을 수 없었다. 당시 산정동본당 주임 둔(Dunne, 都) 신부가 어느날 김금룡을 사제관으로 조용히 불렀다.“가이오씨, 제가 대단히 어려운 부탁을 하나 할까 하는데, 들어 주실 수 있겠습니까?”“무슨 말씀이신지 잘 모르겠지만 어려워하지 마시고 말씀하십시오. 신부님!”“지금 압해도에는 천주교 신자들도 많이 있고 앞으로 신자가 될 만한 사람들도 많이 있지만, 공소를 체계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유능한 일꾼이 없어서 참으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가이오씨께서 이 압해도에 있는 공소의 회장으로 가실 수 있겠습니까?”“……”“아시다시피 써야 할 곳은 많은데 본당으로 들어오는 돈이 거의 없는 저희 형편에서 정기적인 보수를 약속할 수는 없습니다. 대신에 공소 신자들이 교무금으로 내는 쌀과 공소에 딸린 밭에 농사를 짓고 지내시면 굶지는 않으실 것으로 생각됩니다. 물론 이렇게 어려운 부탁을 하는 제가 참으로 부끄럽기 짝이 없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살펴보고 많은 날을 고민해 봐도 주변 사람 중에 가이오씨밖에는 압해도로 갈 사람이 없습니다. 참으로 염치없는 말씀이지만 제 부탁을 들어주실 수 있겠습니까? 가이오씨가 그곳으로 가지 않으셔도 잘못은 아닙니다. 그러니 며칠 깊이 생각하시고 결정되면 저에게 말씀해 주시면 고맙겠습니다.”하느님의 자녀가 아닌 이들이라면 할 말도 못되고 들을 말도 못 되는 억지에 가까운 소리였다. 목포본당 초대 주임 데예(Albert Deshayes) 신부가 산정동성당을 건립한 1898년 이듬해부터 도서 지방 선교를 시작하여 안창도, 도초도, 비금도, 자은도, 압해도 등지에 공소를 설립하였다. 따라서 압해도는 긴 역사만큼 신앙생활을 오래 한 교우들이 많이 살고 있는 공소였다. 목포의 사목자들은 특별히 신경을 썼고, 산정동본당에서 회장을 파견하거나 압해도에 거주하면서 공소 회장으로 선임된 이들의 노력으로 신앙 공동체가 잘 보존되어 있었다.당시 교회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교우들을 본당 신부를 대신해 “예비신자 교육, 춘추 판공 준비, 공소 재산 관리, 공소 예절 주관, 공소에서 유아세례·대세·종부·혼인성사 집행 등”(가톨릭대사전)을 담당하는 공소 회장의 역할이 점점 더 전문화되고 체계화되어야 한다는 시대적인 요청을 받고 있었다. 그런데 그러한 외적인 요소 말고도 회장은 “덕행이 있고 착한 표양이 있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이 세상에서 사람을 가르쳐 그가 기꺼이 받아들이게 하는 기묘한 이치는 권력이나 재물을 통해서도 아니고 학문이나 언변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다. 그것은 오직 덕행과 착한 표양으로만 가능한 것”(「회장 직분」)이라는 교회의 요구에 가장 부합한 교우라고 생각하였기 때문에 둔 신부가 김금룡을 불렀던 것이다.김금룡은 장사를 거의 하지 않는 것이나 다름이 없었지만, 목포와 고향인 무안에 집과 땅이 있어서 굶지 않고 살 수는 있었다. 그러나 서울에서 하숙하면서 사립 대학교에 다니는 아들의 뒷바라지에 적지 않은 돈이 계속 들어갔고, 아직 한참 일해야 할 장년 가장이었다. 혼자 겨우 굶지 않을 정도의 식량만 확보되는 압해도 공소에 아내까지 데리고 가서 함께 살 수 있는 형편이 아니었다. 그리고 보수 문제는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김금룡이 압해도로 떠난다면 겨우 세 명뿐인 가족이 세 살림을 해야 하는 참으로 난감한 지경이었다. 그러나 이런 어려운 문제에 김금룡이 대답하는 데는 몇 분 걸리지 않았다. 신자가 된 이후에는 삼종기도에 있는 마리아의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루카 1, 38)라는 고백을 언제고 기꺼이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신부님, 저에게 그런 자격이 있는지, 그리고 제가 얼마나 잘할 수 있을지 솔직히 잘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신부님께서 가라고 하시니 가겠습니다.”오늘날의 압해도는 목포와 무안 양쪽으로 다리가 놓여 있기 때문에 몇 초만 달리면 갈 수 있는 육지와 다름없는 곳이 되었다. 그러나 다리가 놓이기 전까지는 목포 사람들이 예전부터 ‘뒷개’라고 부르던 북항에서 배를 타고 8분 정도 걸리는 섬이었다. 김금룡은 압해도에 대한 기초 조사라든가 도회지와는 달리 기초 생필품을 구하기도 쉽지 않은 궁벽한 섬인 압해도에서 꼭 필요할 것 같은 물품들도 구입하지 않았다. 그저 덮고 잘 이불과 간단한 옷가지 몇 벌, 그리고 현 하롤드 신부가 감사의 표시로 수여한 십자가와 성모상을 간직하고 1957년 10월에 뒷개에서 압해도행 연락선을 탔다. <계속> 백영민2016.11.16
![[성서주간] 인터넷 굿뉴스 성경쓰기 31회 완필한 심재숙씨](//cpbc.co.kr/CMS/newspaper/2014/11/rc/540283_1.0_titleImage_1.jpg)
[성서주간] 인터넷 굿뉴스 성경쓰기 31회 완필한 심재숙씨매일 두세 시간은 ‘훌쩍’ 성경 쓰기는 문자 그대로 붓이나 만년필, 볼펜으로 쓰는 ‘필사’(筆寫)만 있는 게 아니다. 인터넷으로도 성경 쓰기가 성황이다. 지난 2006년 4월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http://www.catholic.or.kr)에서 개설한 ‘성경 쓰기’ 프로그램에도 17일 현재 9만 8256명이 참여, 6억 7259만여 절을 썼다. 필사 포함해 성경쓰기 35번이 가운데 선두 주자는 ‘sk2323’이라는 ID를 쓰는 심재숙(아녜스, 63, 서울 망우동본당)씨다. 2008년 6월부터 시작했는데, 벌써 31번이나 완필했고, 요즘도 여호수아기 22장을 쓰는 중이다. 처음엔 1년에 한두 번 쓰는 데 그쳤지만, 2011년부터 지난해까지는 3년간 해마다 6번이나 썼다. 그야말로 성경에 파묻혀 산다. 그렇다고 ‘필사’를 안 해본 것도 아니다. 2000년을 전후해 신ㆍ구약을 3번이나 썼다. 그런데 뒤늦게 알게 된 ‘인터넷 성경 쓰기’와의 사랑에 푹 빠졌다. 그가 이처럼 열심히 성경쓰기를 하게 된 건 1971년 혼인 당시 이문동본당 주임이던 김영일(현 서울대교구 원로사목자) 신부에게서 “일생에 한 번은 꼭 성경을 읽어 보라”는 권유를 받은 게 씨앗이 됐다. “혼인한 뒤 바빠 실천을 못 하다가 성경 통독을 권유하시던 김영일 신부님의 말씀이 뒤늦게 고리가 돼 32번째, 아니 필사까지 포함하면 35번째 성경쓰기를 하고 있네요. 처음엔 돋보기 쓰고 밤새워가며 써도 진도가 잘 안 나갔는데, 요즘은 하루 두세 시간, 많아야 대여섯 시간만 써도 진도가 빨리 나갑니다. 인터넷 성경 쓰기는 마음만 먹으면 언제 어디서든지 성경을 쓸 수 있으니까 하루가 어떻게 지나가는지 몰라요. 감사할 뿐입니다.”그야말로 ‘눈 뜨면 성경 쓰기’였다. 1980년대에는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에서 주관하는 그룹성서모임을 통해 성경공부도 열심히 했다. 그런데도 그는 “쓸 때마다 새롭다”며 “사랑받는 주님 자녀라는 사실을 실감한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주위에도, 자녀들에게도, 성당에서도 성경 쓰기를 적극 권하고 있다. 쉽지 않았던 일이지만 요즘엔 ‘순교자의 모후’ 쁘레시디움과 울뜨레야 여성 팀모임 단원들이 성경 쓰기를 실천하고 있다. 심씨가 가장 좋아하는 말씀은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할 것이다”라는 요한복음 8장 32절이다. 늘 주님 말씀이라는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게 만들어주는 힘이자 일생을 성당에서 살아가게 하는 원동력이다. 남편(조남환 스테파노)과 세 자녀와 함께 성가정을 이루고 살아올 수 있었던 힘도 신앙 덕이었고, 성경 쓰기 덕이었다. 횟수보다 말씀 실천이 중요요즘도 손주들을 건사하며 성경 쓰기와 성가대 봉사로, 재속 프란치스칸 활동으로 바쁜 심씨는 “필사 숫자가 중요한 게 아니라 말씀 속에서 말씀을 실천하며 살아가는 게 더 중요하다는 걸 늘 느끼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는 게 아쉽다”고 전한다. 그렇지만 “성경을 쓸 때면 오롯이 내 시간이어서 즐겁기만 하다”며 “일생 저를 따라다니는 그림자와 같이 살아 있는 한 성경쓰기를 제 삶에 붙이고 다니겠다”고 말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평화신문2014.11.18
신천지를 주의합시다! ④ - 1신천지에서 빠져 나온 청년 신자가 개신교로 간 까닭 ① 신천지란 무엇인가② 신천지는 어떤 사람을, 어떻게 포섭하나 ③ 왜 신천지에 빠지는가④ 신천지를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⑤ 신천지 대처법·구별법 지난해 8월 SBS 시사 프로그램 ‘궁금한 이야기 Y’에 의문의 사건이 소개됐다. 새벽에 중년 남녀가 한 청년의 다리를 묶어 납치한 장면이 아파트 엘리베이터 감시 카메라에 찍힌 것이다. 알고 보니 부모가 ‘특정 종교’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아들을 어디론가 데려가는 모습이었다. 방송에 언급되지 않았지만 ‘특정 종교’는 신천지였고, 방송에 소개된 가족은 천주교 신자였다. 방송의 주인공이었던 김○○(23, 광주광역시)씨를 인터뷰했다. 2013년 4월 신천지에 포섭됐던 김씨는 1년 6개월 만인 지난해 9월 기나긴 터널에서 빠져나왔다. “학교에서 어떤 사람이 설문조사를 부탁해서 했는데, 전화번호를 적는 난이 있었어요. 며칠 후에 연락이 왔고, ‘심리상담과’ 학생이라고 하면서 심리상담을 한 번 해보자고 했어요. 별 의심 없이 응했죠. 처음에는 심리상담만 했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면서 친해지니까 종교 이야기가 나왔고, 성경 공부를 권했어요. 전형적인 신천지 포섭 수법이었던 거죠.”중고등학교 시절 신앙생활을 쉬다가 대학 입학 후 다시 성당에 나가기 시작한 김씨는 ‘한 번 성경 공부를 해보자’고 결심했다. ‘심리상담과 학생’은 다른 이를 소개해줬고, 그 사람과 1:1로 카페에서 성경 공부를 했다. 그는 “나를 만나는 걸 다른 사람들에게 절대 말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한 달 정도 지나자 성경을 가르치던 이가 “센터(신천지 신학원)에서 본격적으로 공부를 해보자”고 권했다. 김씨는 6개월 동안 1주일에 4일을 센터에 나와야 한다는 말에 엄두가 나지 않아 거절했지만 “정말 좋은 기회이니 꼭 해보라”는 간곡한 권유에 마침내 신학원에 등록했다.“보통 30~40명이 같이 수업을 듣는데, 그중 절반 이상이 신분을 위장한 신천지 신도들이에요. ‘열매’(포섭 대상자)를 관리하는 사람들인데, ‘잎사귀’라고 부르죠. 딴생각을 하지 못하게 철저하게 관리해요. 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되면 잎사귀가 몇 명 더 붙어요.”김씨는 성경 공부 시작 3개월 만에 ‘신천지’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는 “3개월 정도 지나면 그곳에서 가르치는 것들이 진리라고 확신하기 때문에 크게 충격을 받지는 않는다”며 “신천지라는 것을 알아도 그만두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5월 말 김씨가 포섭한 친구가 가족에게 신천지 성경 공부를 하는 것을 들키면서, 1년여 동안 이어진 김씨의 신천지 활동도 들통 났다. 설득으로는 신천지에 빠진 아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다는 사실을 안 김씨의 부모는 고민 끝에 ‘아들 납치’라는 극단적인 방법으로 김씨를 모처로 데려갔다. 그곳에 신천지 전문 상담사를 불러 ‘개종 교육’을 시작했다.신천지 교리에 세뇌된 김씨는 완강하게 버텼다. 가족에게 발각됐을 때 대처 방법을 알려주는 신천지 ‘섭외부장’에게 철저한 ‘반증 교육’을 받았던 김씨는 계속된 설득에도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다. ‘개종 교육’은 석 달 넘게 이어졌고 김씨의 생각도 조금씩 달라졌다. 계속해서 교육을 받다 보니 ‘진리’라고 확신했던 신천지 교리의 허술한 점이 보였다. 상담 장소에서 벗어나 신천지로 돌아갈 궁리만 했던 김씨는 석 달 하고도 일주일 만에 완전하게 회심(回心)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는 “1년 넘게 진리라고 굳게 믿었던 것이 거짓이었다는 사실을 알고 나서 많이 허탈했다”고 말했다. 요한 보스코라는 세례명을 갖고 있던 김씨는 신천지에서 벗어난 후 다시 성당으로 돌아오지 않았다. 지금은 개신교 신자가 됐다. 나름대로 이유가 있었다. “천주교는 제게 잘 안 맞는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신천지에 빠졌을 때 주중에는 신천지에서 공부하고 주말에는 미사에 참례하니까 두 곳이 비교되더라고요. 신천지에서는 어쨌든 ‘진리’를 탐구한다면서 성경을 공부하는데 성당에 가면 미사 한 시간 참례하고, 매주 청년들끼리 어울려 술자리만 가졌어요. 성경 말씀을 묵상하거나 읽는 시간은 없었죠. 청년들이 신앙보다는 노는 데만 정신이 팔려 있는 것 같았어요. 그게 참 싫었어요.” 김씨는 “광주광역시 신천지 교세가 가장 크다. 20~30대 청년 신천지 신도가 7000명이 넘고, 신학원에서 교육을 받는 사람 10명 중 2~3명은 천주교 신자”라며 “천주교도 신천지 포섭에 대한 대책을 마련하고, 신천지에 있다가 나온 이들에게도 관심을 기울여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백영민2015.07.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