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6) 권경수(헬레나) 이화여대 명예교수](//cpbc.co.kr/CMS/newspaper/2017/11/rc/701591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26) 권경수(헬레나) 이화여대 명예교수주님 모신 감실 되어 가난한 이들 위한 봉사 이어가고 싶어 2016년 피지에서 아시아태평양지역총회에서 아이들과 함께 한 권경수 회장. 하나인 보편 교회 안에서 세계 평신도 여성 리더로 활동하고 있는 이를 만났다. 영문학자로 30년 동안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이 부르시고 교회가 부르면 언제나 ‘예’ 하고 달려갔다. 이화여대 명예교수인 권경수(헬레나)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상임이사다. 지나온 삶은 폭력과 차별로 고통받는 여성을 위해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일깨우는 여정(旅程)이었다. 세계 가톨릭 여성들과 함께 가난과 전쟁, 성폭력에 시달리는 여성과 아이들을 보호해 달라고 해당 국가와 유엔에 끊임없이 메시지를 보내고 목소리를 높였다. 어떤 봉사든 시작과 끝은 ‘기도’라는 말을 잊지 않았다. 그러면서 생명을 출산하고 교회에 헌신하는 여성들을 따뜻하게 품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하느님의 부르심을 느꼈던 첫 마음 그대로 소박하지만 꾸준한 봉사를 소망하며 가난한 교회를 위해 하느님께 기도한다. 모든 여성이 행복한 하느님 나라를 만들기 위한 그의 용기와 응답을 들어본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WUCWO) 상임이사를 맡고 계시죠.5개 대륙에 27명의 이사가 있습니다. 각국에서 교회 봉사자로 복음화에 선도적인 역할을 한 사람 가운데 대표를 뽑는데 우리나라는 한국가톨릭여성협의회를 통해 대표를 뽑습니다. 저는 2010년 이사로 선출돼 지금까지 계속하고 있습니다.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는 올해로 설립 107년이 됐는데, 교황청이 인준한 여성 신자 단체입니다. 가톨릭 여성들이 복음화와 인류 발전을 위한 활동을 하는 데 사회 참여와 책임을 다하도록 독려하고 있습니다.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는 올해 어떤 사업을 하는지요.4년마다 열리는 세계 총회에서 활동 주제를 정하는데, 2018년까지의 주제는 ‘가정과 젊은이, 인권 보호’입니다. 성매매와 인신매매 등 인권유린으로부터 여성을 보호하고 미혼모와 아이들의 희생을 막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또 아프리카 등지에서는 깨끗한 물 마시기 운동도 하고 있고, 마약 중독에서 벗어나도록 돕는 노력도 하고 있습니다. 중동 여성들이 겪는 고통에 관해서도 고민하며 기도하고 있습니다. ▶2014년 세계주교시노드에 특별 협력 서기관으로 참석하셨는데 어떠셨는지요.교황청에 세계주교시노드 실무를 총괄하는 사무국이 있는데요. 회의 기간 내내 매일 들어오는 수많은 문안과 의안들을 분류하고 발췌해서 토의할 수 있는 자료를 만듭니다. 서류가 워낙 많아서 회의에 참석하는 교부들은 정말 땀이 날 정도입니다. 현안을 다루다 보니 찬반 토론도 뜨겁게 전개됐지만 서로 경청하고 존중하는 모습이 참 아름다웠습니다.▶고통받는 교회가 있는데 그 고통받는 교회 안에서 더 고통받는 여성들이 있죠.가정 폭력으로부터 고통받는 여성들을 어떻게 보호할 수 있는지 세계가톨릭여성연합회 대표들이 서로 교류하고 논의하면서 대책을 마련합니다. 그러고는 각 나라 지도자들에게 메시지를 보내고 목소리를 내고 있지요. 또 유엔에 직접 시급함을 호소하고 전 세계적인 차원에서 문제를 다뤄 달라고 요구합니다. 가난과 전쟁에 시달리고 성폭력에 희생된 불우한 아이들을 보호하기 위해선 가정의 분열과 결손을 우선 막아야 합니다. 이들에게 물질적, 법적 도움을 주기 위한 활동을 하고 있는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적극적인 ‘봉사’와 ‘기도’라고 생각합니다.▶프란치스코 교황이 2016년 여성 부제직 검토위원회를 설치했죠.가톨릭의 역사나 전통, 전례나 위치로 볼 때 교황님께서 이런 안을 도출해 내신 것은 대단한 용기라고 봅니다. 교회 안에서도 양성평등에 관해 다른 시선이 있었는데, 교황님께서 미래 개혁의 가능성을 열어두신 것이라 생각합니다. 교황님의 결단에 하느님 지혜가 함께하시기를 기도해야 하겠습니다. ▶가톨릭 교회가 너무 보수적이라는 젊은 여성들의 비판이 있는데요.현재 사회는 양성평등 방향으로 많이 가고 있습니다. 요즘 여성들은 굉장히 역동적이고 능동적입니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고 변화의 속도를 빨리 이해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교회가 조금 늦게 따라 오는 것 같습니다. 사회 변화에 따라 교회가 어떻게 변화할 것인지 깊이 고민한다면 교회 안에서 젊은 여성들의 참여도 높아질 것입니다. ▶서울가톨릭여성연합회장을 맡으셨을 때 생명 운동을 많이 하셨어요. 특히 낙태 반대를 강조하셨죠.‘생명 수호’는 모든 운동의 근원이라 생각합니다. 생명은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준 선물이지요. 창세기를 보면 하느님께서는 당신 모상대로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그렇기에 생명은 굉장히 소중하고 누구도 생명을 거부할 수 없다고 봅니다. 특히 여성에겐 어머니로서 자녀를 키우는 ‘위대한 모성’이 있고 ‘희생’이라는 위대한 공헌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당신을 희생한 분이신데, 모성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누구도 생명을 저버리는 낙태를 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님께서도 「생명의 복음」에서 말씀하셨죠.▶여성들의 생명 수호를 위해 교회는 어떻게 해야 한다고 보시나요.교회를 위해 봉사하는 여성들에게 따뜻함을 전하는 교회가 돼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도 교회는 항상 열려 있어야 하고, 귀를 기울여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성들은 하느님 나라를 위해 생명을 출산하고 자녀를 키우면서 교회를 위해 봉사합니다. 따라서 교회는 소외된 여성, 교회 밖에서 고통받는 여성들을 따뜻하게 품고 그들에게 용기와 힘을 줘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몰타기사회 회원이시죠. 신앙을 수호하고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는 평신도 기사 수도회인데, 2015년 한국 지회가 창립됐습니다. 교회에서 일정 기간 반드시 봉사해야 하고 생을 마감할 때까지 따뜻한 위로가 필요한 사람들에게 봉사하며 잊힌 사람들을 기억하도록 노력한다는 서약을 합니다. 외롭고 쓸쓸한 노인들을 위해 도시락을 배달하며 말벗이 돼 드리고 있습니다. 몰타 회원들은 아픈 이들을 돌봐야 할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아픈 이들에게 위로와 힘이 돼 줘야 합니다.▶30년 동안 교수 생활을 하면서 하느님께 감사드리는 점이 많으실 것 같아요. 어릴 적 꿈이 교단에 서는 것이었습니다. 배운 것을 나누라는 아버님 교육이 많이 작용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껜 늘 많이 매달렸는데요. “주님, 저는 가진 것도 자격도 없지만, 당신을 따르는 신자로서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지혜와 용기를 주십시오. 주님의 말씀을 학생들에게 널리 전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십시오”라고 기도했습니다. ▶부모님께서 독실한 신자이셨지요, 신앙을 유산으로 물려받으셨고요.어렸을 때 부모님께선 신앙 교육을 철저히 하셨습니다. 주일이면 기도하며 하루를 시작했습니다. 대학생 땐 주일학교 교사를 했는데 주일학교 아이들에게 꿈을 갖고 책을 많이 읽으라고 늘 이야기했습니다. 또 자신보다 어려운 이웃을 위해 나눌 줄 아는 사람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제 부모님은 신앙을 통해 삶의 지혜를 알려 주셨고, 신앙을 바탕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를 주셨습니다. ‘위대한 신앙의 보물을 발견할 것’이라는 아버님 권유로 꾸르실료에 처음 참여했는데요. 1972년 꾸르실료 여성회장 1기를 시작으로 회장직을 서른 번 넘게 맡았습니다.▶세례명이 헬레나인데, 성인의 어떤 점을 닮고 싶으세요.헬레나 성인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어머니시죠. 가톨릭을 믿고 아들을 세례 시키니까 남편이 자신을 버렸는데도 늘 겸손한 자세로 아픔을 딛고 2만 리(7800㎞)를 걸어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찾았어요. 주님을 따라가신 헬레나 성인의 기도와 인내, 용기, 봉사 정신을 닮고 싶습니다.▶본당에서 ‘리더’로 활동하는 평신도들에게 한 말씀 부탁합니다.교회에 봉사하는 여성들은 너무나 귀하고 아름답습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주님께 달려들고 어떤 도전에도 용감하게 일어설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주님께 대한 봉헌 의식 속에서 매일 감사하며 긍정적으로 살아가시기를 부탁합니다. 교회가 점점 늙어가고 있어 젊은 세대의 참여가 절실한데, 평신도와 성직자들이 힘을 모아 젊은이들을 키워야 합니다. 젊은이들이 활발하게 운동할 수 있도록 교회가 장(場)을 만들어 주어야 교회에 활력이 넘칠 수 있다고 봅니다.▶어떤 성경 구절을 마음에 품고 계십니까. “행복하여라,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행복하여라 온유한 사람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3-10 참조)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처럼 우리 주위에는 자비를 필요로 하는 이웃들이 많습니다. 그런 이웃들에게 온유로 다가가야 한다고 봅니다. 어디에서 무엇을 하든지 주님 말씀을 듣고 조용하고 겸손하게 뒤로 물러설 수 있는 그런 자세가 ‘온유’가 아닐까 합니다.▶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일은 무엇인지요.순교 성인의 신앙적 발자취를 따라 성장한 우리 교회와 신앙이 참 자랑스럽습니다. 세계 회의에 참석할 때마다 늘 다른 나라 신자들에게 전하는 부분입니다. 그러면서 한편 제 자신이 하느님 앞에 부끄럽지 않게 가톨릭 신자로서 책임을 다 했는지 조용히 반성하게 됩니다. 소박한 봉사를 통해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에게 힘을 보태 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저는 ‘감실’을 참 사랑하는데요, 감실 앞에서 기도할 때 값진 행복을 느낍니다. 가난한 교회가 새로 성당을 지을 때 제가 감실을 봉헌할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또 교회 복음화에 지속적으로 기여할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백영민2017.11.14
![[성경 속 도시] (38) 헤스본](//cpbc.co.kr/CMS/newspaper/2015/03/rc/560625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38) 헤스본이스라엘과 모압이 엎치락뒤치락 텔 헤스본의 원경. 출처=「성경 속의 도시 탐험」, 기독통신사 헤스본은 요르단 강 동쪽 약 25㎞ 지점의 고원 지대에 있는 아모리족의 수도였으며 나중에 모압인들의 도시가 된 곳이다. 헤스본은 높은 지대라 전망이 좋고 아름다우며 교통의 요충지로서 일찍부터 팔레스타인 내륙을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요긴한 도로에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집트에서 탈출하던 당시에는 이곳을 아모리 왕 시혼이 다스리고 있었다. “이스라엘은 아모리인들의 임금 시혼에게 사자들을 보내어 청하였다”(민수 21,21). 모세가 시혼 왕에게 이스라엘인들의 영내 통과를 요구하였다. “우리가 임금님의 땅을 지나가도록 허락해 주십시오. 밭이나 포도원으로 들어가지 않고 우물물도 마시지 않겠습니다. 임금님의 영토를 다 지나갈 때까지 ‘임금의 큰길’만 따라가겠습니다”(민수 21,22). 그런데 시혼 왕은 자기 영토를 그냥 지나간다는 것을 곧이곧대로 믿지 않았다. 그래서 시혼 왕은 이스라엘이 자기 영토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스라엘을 치려고 자신의 모든 군대를 모아 광야로 집결시켰다. 시혼 왕은 야하츠에 이르러 이스라엘과 싸웠으나, 이스라엘 군대에 패하여 결국 죽임을 당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르논에서 야뽁까지, 곧 암몬 자손들의 영토에 이르기까지 그의 땅을 차지했다. 이스라엘은 헤스본과 거기에 딸린 모든 마을을 점령해 아모리인들의 모든 성읍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은 가축을 치기에 적당한 곳으로 나중에 르우벤 지파에게 할당됐다. “아타롯, 디본, 야제르, 니므라, 헤스본, 엘알레, 스밤, 느보, 브온, 곧 주님께서 이스라엘의 공동체 앞에서 쳐 이기신 이 땅은 목축에 알맞은 땅입니다. 그런데 당신의 이 종들에게는 가축 떼가 있습니다”(민수 32,3-4). 그러나 암몬 자손들과의 경계는 몹시 굳건했다. 그 후 판관 입타 시대 때 암몬 사람들이 이스라엘에 대항해 전쟁을 일으켰지만 패배해 이스라엘이 이 지역을 지배했다(판관 11,12-28). 이후 모압과 이스라엘은 헤스본 주변 지역을 놓고 다툼을 벌였는데 모압의 에글론 왕이 차지하기도 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다시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다. 그래서 주님께서는 모압 임금 에글론을 이스라엘보다 우세하게 하셨다. 그들이 주님의 눈에 거슬리는 악한 짓을 저질렀기 때문이다”(판관3,12). 그 후 이스라엘이 차지했다가 북이스라엘 아합 왕이 죽은 후 헤스본은 다시 모압의 땅이 되었다. 예레미야 예언자에 의해 멸망이 선포되기도 했다. “아이 성이 부서졌으니, 헤스본아, 통곡하여라. 라빠의 마을들아, 울부짖어라. 자루 옷을 두르고 애곡하며 몸에 상처를 내고 돌아다녀라. 밀콤 신이 그의 사제들과 대신들과 더불어 포로로 끌려갈 것이다”(예레 49,3). 그 후 이 지역은 그리스, 로마 등을 거쳐 중세 이후엔 오스만 터키 등의 지배를 받았다. 현재는 비잔틴 시대 목욕탕, 비잔틴 시대 교회 건축물 등을 포함해 여러 유적들이 남아 있다. 로마 시대 유적들도 폐허 상태로 마을 북쪽의 왼편 언덕에 자리하고 있다. 일찍부터 도시가 발달한 이곳에서 많은 유물이 발굴되었는데, 지금 현재도 계속 발굴 중이다. 허영업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3.17

시공간 뛰어넘는 새 생명의 신비 ‘부활’을 읽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형은 단순한 죽음을 넘은 ‘인간 구원’을 위한 위대한 신앙 사건이다. 이 사건이 인간 구원을 향한 은총일 수 있는 것은 당신 아들 예수의 부활을 통해 시공간을 뛰어넘는 새 생명의 신비로 드러난다. 2000년 전 예수 부활의 의미를 되새기고, 하느님 은총의 참뜻을 돌아볼 ‘예수 부활 대축일’에 읽을 책을 소개한다.바오로 신학 하느님의 구원 은총 프랭크 메이트라 지음 / 한충식 옮김 /바오로딸 / 2만 2000원“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의 영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면, 그리스도를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일으키신 분께서 여러분 안에 사시는 당신의 영을 통하여 여러분의 죽을 몸도 다시 살리실 것입니다.”(로마 8,11)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영(靈) 안에 산다면, 죄 때문에 죽게 되더라도 주님은 생명이 되어준다고 서간을 통해 전하고 있다.바오로 사도는 또 “그리스도의 부활이 죽은 이들의 보편적 부활의 첫 열매이며, 그것이 메시아 예수님에게서 시작됐다”며 “재림 때 일어날 신자들의 부활 희망을 뒷받침하는 것은 바로 그리스도의 부활”이라고 말한다.바오로 사도는 그리스도교 신학의 성장과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신학자다. 특히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이라는 구원 사건을 은유적 가르침으로 전하며 복음의 빛 안에서 최종적 구원과 희망을 이야기했다.미국 가톨릭대 성서신학 교수인 저자 프랭크 메이트라는 바오로 서간의 신학을 체계적이고 다양한 측면에서 파헤쳤다. 특히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 속에 자리한 그리스도론, 구원론, 교회론, 종말론, 신론을 깊이 들여다봤다. “하느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 예수님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은”(1코린 1,1) 바오로 사도. 열성적 유다교인이었던 바오로 사도가 ‘회심’을 통해 어떻게 ‘부르심’에 동참해 사도가 됐는지, 그의 서간에서 부활의 의미가 어떻게 빛나고 있는지 살펴보자.나에게 있어서 하느님은 엔도 슈사쿠 지음 / 맹영선 옮김 / 성바오로 /1만 3000원소설 「침묵」 작가 엔도 슈사쿠가 전하는 솔직한 신앙기다. 그는 “마지못해 가톨릭 신자가 됐고”, “성당이 재미가 없어 앉아서 졸기 일쑤였다”고 밝힌다. 심지어 프랑스 유학 중에도 그는 그리스도교를 “나를 죄어 매는 것”이라고까지 여겼다. 「예수의 생애」 등 다양한 신앙 서적을 쓴 그의 솔직함이 생경할 수 있다. 그러나 누구나 겪었을 가치 정립의 과정, 하느님을 ‘희망의 존재’로 믿게 된 이야기가 술술 읽힌다. 그리스도교가 불교보다 가깝게 다가오지 않았다는 개인적 고백부터, ‘재미없는 성경을 한 번 더 읽는 방법’, 성령과 기적에 대한 견해 등 가톨릭 신자로서 지닌 신앙 고민이 와 닿는다. 부제는 ‘나의 신앙 입문’.신앙도 레슨이 필요해 김인호 지음 / 생활성서 / 1만 4000원우리 사회는 사교육에 극성이다. 그런데 삶의 행복 같은 진정한 가치를 전하는 교육에는 얼마나 투자하고 있는가. 성당을 다니고, 신앙을 갖는 것은 어찌 보면 ‘무료 정서 교육’인 셈인데, 그럼에도 이를 올바로 받아들이려면 사전 교육이 필요하단다. 영성 심리학자인 저자 김인호(대전가톨릭대 대학원장) 신부는 일상과 맞닿은 사례를 곁들여가며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레슨’해주고 있다.평소 죄책감을 지나치게 크게 갖지는 않는가. 김 신부는 “자신과 직접적인 연관성이 없는데도 지나치게 죄책감을 느끼는 것은 부적절한 죄책감”이라며 죄책감을 ‘주관적’, ‘객관적’으로 나눠봐야 한다고 말한다.환시 체험을 겪는 이들이 많다. 김 신부는 환시를 체험하지 않으면 기도 시간이 의미가 없다고 여기거나, 하느님의 특별한 답변만 기대하는 것은 신앙적이라고 하기 어렵다고 꼬집는다.우리는 자주 흥분하거나 화내기도 한다. 김 신부는 “얼마나 배려했는가를 성찰하는 것은 덕을 성장시키는 ‘수행의 시간’이자 ‘훌륭한 기도 시간’이 될 것”이라고 조언한다.한편, 김 신부의 행복한 북콘서트가 20일 오후 7시 30분 서울 강북구 덕릉로42길 57-4 생활성서사 북카페에서 열린다. 이정훈 기자 sjunder@cpbc.co.kr 백영민2017.04.12
![[성경 속 도시] (40) 미츠파](//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4332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0) 미츠파이스라엘 초대 왕 사울의 등극 미츠파로 추정되는 곳 중 한 곳으로 예루살렘 북부에 있는 텔 엔 나스베. 출처=「성경 속의 도시 탐험」, 기독통신사 성경에는 여러 곳의 ‘미츠파’라는 지명이 등장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한 곳은 베냐민 지역의 미츠파다. 정확한 위치에 대해선 학계에서 여전히 많은 논란이 있지만 베냐민 지역의 미츠파는 예루살렘 북방 12㎞ 지점에 있는, 이스라엘 역사의 중요한 장소였다. 특히 이곳은 초기 이스라엘 민족의 정치, 종교적 활동의 중심지였다. 판관시대에서 왕정시대로 넘어가는 불안정한 과도기에 당시 이스라엘 최고의 지도자였던 사무엘이 전국을 공식 순회하던 중 자주 방문해 영적 운동을 전개했던 장소가 바로 미츠파다. “그러고 나서 사무엘이 말하였다. “온 이스라엘 백성을 미츠파로 모이게 하시오. 내가 여러분을 위하여 주님께 기도를 드리겠소”(1사무 7,5). 유다 멸망 후 바빌론에서 파견된 총독 그달야는 미츠파를 수도로 삼았다. “바빌론 임금이 그달야를 총독으로 임명하였다는 소식을 군대의 모든 장수와 그 부하들이 들었다. 그래서 그들 곧 느탄야의 아들 이스마엘, 카레아의 아들 요하난, 느토파 사람 탄후멧의 아들 스라야, 마아카 사람의 아들 아잔야와 그 부하들은 미츠파에 있는 그달야에게 갔다”(2열왕 25,23). 베냐민 지파에 속한 기브아인들의 만행(판관 19,11-30)에 대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응징을 결의한 장소가 미츠파였다. 온 이스라엘 백성들이 미츠파에 모여 범죄자의 처벌을 요구했다. “그리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이 모두 나섰다. 단에서 브에르 세바에 이르기까지, 그리고 길앗 땅에서도 온 공동체가 일제히 미츠파로 주님 앞에 모여들었다. 온 백성 곧 이스라엘 모든 지파의 수장들도 칼로 무장한 보병 사십만 명으로 이루어진 하느님 백성의 회중 가운데에 자리를 잡았다”(판관 20,1-2). 그리고 베냐민 지파와 다른 지파들의 전쟁을 치렀다. “그러는 동안에 이스라엘 사람들은 베냐민의 자손들에게 돌아가, 성읍의 남자 주민에서 짐승에 이르기까지 보이는 대로 모조리 칼로 쳐 죽였다. 나머지 성읍들도 모두 불태워 버렸다”(판관 20,48). 또 미츠파는 사무엘이 제사를 드리는 동안 습격해온 필리스티아인들을 쳐서 이스라엘이 승리를 거둔 곳이었다. “사무엘이 아직 번제물을 바치고 있을 때, 필리스티아인들이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다가왔다. 그날 주님께서 필리스티아인들 위에 큰 소리로 천둥을 울리시어 그들을 혼란에 빠뜨리시자, 그들은 이스라엘 앞에서 패배하였다”(1사무 7,10). 그러나 미츠파가 유명한 것은 무엇보다 사울이 이스라엘의 초대 왕으로 등극한 장소라는 것이다. 사무엘은 판관직을 자신의 두 아들에게 물려주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있는 상황이었다. 그런데 백성들은 더 이상 판관에 의한 지도체제가 아닌 왕정제도의 도입을 사무엘에게 요구했다. 그래서 사무엘은 이스라엘 사람들을 미츠파에 불러모아 사울을 왕으로 즉위시켰다. “그들이 달려가 그곳에서 사울을 데리고 나왔다. 그가 사람들 가운데에 서자, 그의 키는 모든 백성보다 어깨 위만큼 더 컸다. 사무엘이 온 백성에게 ‘주님께서 뽑으신 이를 보았소? 온 백성 가운데 이만 한 인물이 없소’ 하고 말하자, 온 백성이 환호하며 ‘임금님 만세!’ 하고 외쳤다”(1사무 10,23-24). 뛰어난 전투 지휘 능력을 갖춘 사울이었지만 백성 중에는 사울을 왕으로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람도 많았다. 베냐민은 가장 작은 지파로 분류됐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사울은 모압과 암몬 자손들과 에돔, 초바 임금들과 필리스티아인들과 싸워 연전연승했다(1사무 14,47-48). 사울은 놀라운 능력을 발휘해 백성들의 우려를 불식시켰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4.07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0) 풍랑을 가라앉히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다 (루카 8,22-39)](//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4640_1.3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30) 풍랑을 가라앉히시고 마귀들을 쫓아내시다 (루카 8,22-39)쿠르시는 갈릴래아 호수 동쪽 휴양지인 엔게브에서 북쪽으로 5㎞쯤 떨어진 곳으로, 비잔틴 시대 수도원과 성당의 유적이 남아 있다. 사진은 쿠르시의 유적.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예수님께서 어느날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저편으로 건너 가십니다. 호수 저편은 갈릴래아 호수 동쪽 곧 시리아의 골란고원이 있는 쪽을 말합니다. 루카는 그 여정에서 두 가지 일화를 소개합니다. 갈릴래아 호수에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사건과 호수 건너편 이방인들의 지방에서 많은 마귀가 들린 사람을 고쳐주신 일입니다. 풍랑을 가라앉히시다(루카 8,22-25)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호수 저편으로 가시고자 합니다. 열두 제자 중 적어도 4명 곧 시몬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 야고보와 요한 형제는 갈릴래아 호수에서 고기를 잡던 어부 출신입니다. 호수와 배에 관해 일가견이 있다는 뜻이지요. 제자들은 배를 저었고 예수님은 잠이 드셨습니다. “그때에 돌풍이 호수로 내리 몰아치면서 물이 차들어와 그들이 위태롭게 되었다”고 루카는 전합니다. 다급해진 제자들은 예수님을 깨우면서 “스승님, 저희가 죽게 되었습니다” 하고 소리칩니다.(8,23-24) ‘호수에 돌풍이 내리쳐 풍랑이 인다 해도 얼마나 대단할까’ 하고 의문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갈릴래아 호수는 그 지방 사람들은 바다라고 불렀을 정도로 큰 호수입니다. 호수 넓이가 약 170㎢ 여의도 면적의 20배에 이르지요. 게다가 지중해에서 불어오는 서풍과 동쪽 시리아 사막에서 불어오는 바람이 호수에서 마주치면서 일으키는 돌풍이 만들어내는 거센 풍랑은 뱃사람들조차도 겁을 낼 정도로 위력이 대단하다고 합니다. 제자들의 소동에 잠이 깨신 예수님은 바람과 물결을 꾸짖으십니다. 그러자 곧 물결이 잠잠해지고 호수가 고요해집니다. 그러고 나서 제자들에게 “너희의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말씀하십니다. 사실 제자들은 예수님을 따라 다니면서 예수님께서 병자들을 고쳐주시고 악령들인 이들을 치유해 주시며 과부의 외아들을 살리신 일까지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위급한 상황이 닥치자 믿음은 간데없고 제 목숨 구하기에 급급한 제자들의 태도를 나무라시는 것입니다. 하지만 제자들의 귀에는 예수님의 꾸짖음도 들어오지 않는 모양입니다. 두렵고 놀라워서 “도대체 이분이 누구시기에 바람과 물에게 명령하시고 또 그것들이 이분께 복종하는가?”(8,25) 하고 수군거립니다. 마귀들과 돼지 떼(8,26-39)이렇게 한바탕 소동을 치르고 난 후 제자들은 갈릴래아 호수 동쪽의 게라사 지방으로 배를 저어갑니다.(8,26) ‘게르게사’ 혹은 ‘가다라’고도 하는 이곳은 이방인들의 지방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배에서 내리시자 마귀 들린 사람이 마주옵니다. 그는 자기 고을에서 살지 못하고 무덤에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 사람이 예수님을 보고는 그 앞에 엎드려 큰 소리로 말합니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당신께서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8,28). 마귀 들린 사람의 말은 두 가지 중요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첫째,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은 바로 예수님의 신원에 대한 고백입니다. 이 고백은 또한 말씀 한 마디로 풍랑을 잠잠하게 하신 예수님을 보고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 분이 누구신가 하고 서로 수군거린 제자들의 물음(8,25)에 대한 답변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줄곧 따라다닌 제자들도 아직 올바로 깨닫지 못했던 예수님의 정체를 마귀 들린 사람이, 곧 마귀가 대신 알리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둘째, “저와 무슨 상관이 있습니까? 당신께 청합니다. 저를 괴롭히지 말아 주십시오”는 예수님과 마귀와의 관계를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은 마귀를 쫓아내는 능력이 있으시다는 것을 마귀 들린 사람의 입을 통해 고백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 사람에게 이름을 물으시자 “군대”라고 대답합니다. 많은 마귀가 그 사람에게 들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마귀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을 지하 세계로 들어가라는 명령을 내리지 말아 달라면서 대신에 근방에 놓아 기르던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예수님께 허락하시자 마귀들이 그 사람에게서 나와 돼지들 속으로 들어가고 돼지 떼가 호수를 향해 내리달리다 물에 빠져 죽고 말지요.(8,30-33)여기서 지하 세계란 마귀들이 갇혀 지내는 곳을 나타냅니다. 마귀들의 일은 사람들 속에서 살면서 사람들을 사로잡아 격리시키고 파괴하는 것입니다. 마귀 들린 그 사람이 오래전부터 옷을 입지 않았을 뿐 아니라 집에 있지 않고 무덤에 지냈고 또 쇠사슬과 족쇄로 묶인 채 감시를 받았지만 묶은 것을 끊고 마귀에게 몰려 광야로 나가곤 했다는 루카의 설명은(8, 27.29) 마귀가 어떻게 활동하는지를 잘 보여 줍니다. 그런 마귀가 지하 세계에 갇히면 더 이상 자기 일을 하지 못하게 되겠지요. 그래서 마귀들은 돼지 속에 들어가게 해달라고 청한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이를 허락하시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유다인 사회에서 돼지는 부정한 짐승입니다. 하느님의 율법을 모르는 이방인들이 사는 땅과 돼지는 같은 뜻을 나타냅니다. 그런데 마귀들이 돼지 떼 속에 들어가고 돼지들이 비탈을 달려 모두 물속에 빠져 죽었다는 것은 마귀 들린 그 사람이 마귀의 권세에서 풀려났고 동시에 이방인의 땅이 더러움에서 해방되었음을 의미한다고 성경학자들은 풀이합니다.돼지를 치던 사람들이 놀라서 고을로 달려가 알리고 고을 사람들은 이 소식을 듣고 무슨 일인지 보러 옵니다. 사람들은 마귀 들린 사람이 옷을 입고 제정신으로 예수님의 발치에 앉아 있는 것을 보고 겁이 났습니다. 그래서 지역 주민 전체가 큰 두려움에 사로잡혀 예수님께 자기들에게서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8,34-37)왜 게라사 지역 주민들은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청했을까요? 마귀 들린 사람과 이방인의 지역은 마귀가 활개를 치는 곳이었습니다. 마귀 들린 사람이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부정한 돼지들이 익사했다는 것은 이 고장에 대한 마귀의 권세가 끝나고 이 지역이 더러움에서 해방되었음을 나타냅니다. 하지만 자유와 해방 자체가 이전의 행태에 젖어 있던 사람들에게는 오히려 부담스럽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떠나 달라고 요청한 것이 아닐까요? 예수님께서 배를 타고 되돌아가실 때에 마귀 들렸던 사람이 예수님을 따르게 해달라고 청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집으로 돌아가, 하느님께서 너에게 해주신 일을 다 이야기해 주어라”며 그를 돌려보내십니다. 그리고 그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예수님께서 자기에게 해주신 일을 온 고을에 두루 선포하였다”고 루카는 전합니다.(8,37-39) 생각해 봅시다-집에서 살지 못하고 옷도 입지 않은 채 무덤에서 지내는 마귀 들린 사람은 공동체에서 소외된 사람의 처지를 그대로 나타냅니다. 그런 사람을 예수님께서는 마귀의 세력에서 풀어준 후 집으로 돌려 보내십니다. 이는 오늘날 여러 가지 이유로 공동체에서 소외되고 버림받은 채 살아가는 이들을 우리가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그들을 공동체의 온전한 일원으로 맞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그렇게 소외되고 버림받은 이는 누구일까요? -마귀 들린 사람은 예수님의 분부를 좇아 집으로 돌아가 자기 지방에서 복음을 선포합니다. 우리가 체험한 구원의 기쁨을 말과 행동으로 선포해야 하는 우리의 자리는 어디일까요? -거센 풍랑으로 위험에 처하자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제자들처럼 우리 또한 위급한 상황에 부닥치면 주님께 대한 믿음보다는 다급한 마음에 “어떻게 좀 해주세요!” 하고 절규하지는 않는지요?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물으십니다. “네 믿음은 어디에 있느냐?” 우리는 어떻게 대답할 수 있을까요? 문채현2017.09.06
![[성경 속 도시] (41) 아나톳](//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693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41) 아나톳슬픔과 비애가 깃든 도시 아나톳은 예루살렘 북쪽 약 4.8km 지점에 있는 벤야민 지파의 지역 중에서 레위 지파에게 할당된 48개 성읍 중 하나였다. “아나톳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알몬과 거기에 딸린 목초지, 이렇게 네 성읍을 내주었다”(여호 21,18). 다윗을 도왔던 용사 아비에제르와(2사무 23,27) 예후(1역대 12,3)도 아나톳 출신이었다. 쫓겨난 에브야타르 사제들이 머물러 다윗이 사망하자 솔로몬은 이복형 아도니야와 왕위를 놓고 다투게 된다. 당시 대사제 에브야타르는 아도니야를 지지했다. 그러나 결국에는 솔로몬이 승리하자 아도니야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이제 저를 세우시어 아버지 다윗의 왕좌에 앉히시고,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집안을 일으켜 주신, 살아 계신 주님을 두고 맹세합니다. 아도니야는 오늘 죽을 것입니다.” 그러고 나서 솔로몬 임금이 여호야다의 아들 브나야를 보내어 아도니야를 내려치게 하니, 아도니야가 죽었다”(1열왕 2,24-25). 그리고 아도니야 편에 섰던 대사제 에브야타르는 아나톳으로 쫓겨나게 된다. “임금은 에브야타르 사제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아나톳에 있는 그대의 땅으로 가시오. 그대는 죽어 마땅한 사람이지만, 그대가 나의 아버지 다윗 앞에서 주 하느님의 궤를 날랐고, 또 아버지와 온갖 고난을 함께 나누었으므로 오늘 그대를 죽이지 않겠소’”(1열왕 2,26). 이때부터 이스라엘의 제관 계급은 ‘차독 가문’이 독식했고 ‘에브야타르’계 사제들은 출셋길이 막혔다. 아나톳에서 에브야타르 계열 사제들이 예루살렘 성전이 건축되는 것을 지켜보며 쫓겨난 제사장 가문의 슬픔과 비애를 맛보았다. 아나톳 출신 가운데 가장 유명한 사람은 예레미야 예언자다. 예레미야의 부친은 아나톳에 살고 있던 사제였다. 북이스라엘은 멸망했고 남쪽 유다는 주변 강대국의 힘에 눌려있는 신세였다. 유다도 멸망하는 것은 시간문제였다. 유다 백성들에게 이러한 ‘미래’를 예언하는 것이 예레미야의 사명이었다. 예레미야 예언자는 평생을 오해와 편견과 테러에 시달리며 살아야 했던 불행한 예언자였다. 그의 예언이 대부분 왕들의 정책을 정면으로 반대하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특히 예레미야는 예루살렘 성전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다. 예레미야 예언의 핵심은 하느님 뜻을 따르라는 것이었다. 그는 ‘바빌로니아’에 대항하지 말라고 예언해서 많은 오해를 받기도 했다. 예레미야는 무모하게 전쟁을 하지 말라는 것이었는데 ‘요시야’의 뒤를 이은 ‘여호아하즈’, ‘여호야킴’, ‘여호야킨’, ‘치드키야’ 등 4명의 왕은 모두 예레미야의 예언을 무시한 채 전쟁을 일으켰다가 참패하고 만다. 결국 유다는 바빌로니아의 속국으로 전락하고 만다. 바빌론의 진격으로 파괴돼유다의 마지막 임금 ‘치드키야’는 (2열왕 24,17) 예레미야가 전쟁을 반대하자 그를 다시 감옥에 가둔다.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예루살렘은 함락되었고 치드키야 왕은 두 눈이 뽑힌 채 바빌론으로 끌려가는 치욕을 당하게 된다. 아나톳은 바빌론이 예루살렘으로 진격할 때 대부분 파괴됐다(이사 10,30).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빌론에서 포로생활에서 돌아와 벤야민 지파에 의해 아나톳은 재건됐고 느헤미야 통치 때는 많은 사람이 거주했다(느헤 11,32). 이처럼 아나톳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특히 슬픔과 비운이 깃든 도시였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4.21
![[신앙단상] 생활성가와 전통 성가](//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5081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생활성가와 전통 성가이강민(노트케르 발불로, 명동성당 가톨릭합창단 지휘자, 음악 칼럼니스트) 찬송가만 부르던 한국 개신교회에 복음성가가 등장한 건 1980년대다. 행진곡풍의 군가와 교가 같았던 기존 찬송가보다 선율이 쉽고 단순하며 친근해 젊은 세대가 무척 좋아했다. 복음성가는 복음 메시지를 편하게 전달하기 위해 작곡된, 대중적 성격을 강하게 띤 찬양곡을 의미한다. 성경 내용을 담은 가사도 있지만 주로 개인의 주관적 신앙고백이나 체험을 노래하는 것이 많다. 주일 예배를 제외한 크고 작은 예배나 기도 모임에서 복음성가가 찬송가의 자리를 대신하기 시작했다. 복음성가는 미국 몇 교회의 영향으로 신학적 검증 없이 신형 교회를 중심으로 퍼져나갔다. 복음성가를 주로 부르며 예배하는 교회는 ‘초대형 교회’라는 이름을 얻을 만큼 규모가 커졌다. 복음성가(Gospel Song)는 CCM(Contemporary Christian Music)으로 이름을 바꾸고 찬양예배 혹은 열린 예배라고 부르는 새로운 형식 속에서 더욱 성장했다. 열린 예배를 하는 교회가 부흥하자 성장을 꾀하는 교회에선 전통 예배에서 벗어나 열린 예배를 수용했고, 오르간이나 피아노 구매보다 유능한 찬양 인도자와 연주팀을 초빙하고 좋은 악기와 음향 장비 마련에 힘을 쏟았다. 이젠 열린 예배를 위한 성직자도 양성되고 있고, 주일 예배도 열린 예배와 비슷한 형식으로 하는 교회가 전통 예배를 하는 교회보다 훨씬 많다.강대상(가톨릭의 제대에 해당) 중앙에선 인도자가 노래하고 밴드(주로 전자ㆍ어쿠스틱 기타, 신시사이저, 베이스 기타, 세트 드럼으로 구성된다)가 뒤쪽에서 반주하며 코러스 역할을 하는 보조 인도자들은 양옆에 서서, 손들기와 춤추기, 박수 유도, 뛰며 환호하기 같은 여러 동작으로 회중을 이끌며 참여를 유도한다. 여기에 현란한 조명까지 더해지면 대중가수 콘서트에 온 것 같은 느낌마저 든다.하지만 요즘 개신교회에서는 CCM과 열린 예배에 대해 부정적인 문제 제기가 빈번하다. 사도 전승에 의한 전통 예배로 돌아가려는 노력도 시작되고 있다. 이성적이고 정적인 개신교회 전통 예배와 성가를 그리워하는 신자 일부는 가톨릭 교회의 거룩하고 고요한 모습에 매료돼 신앙의 터전을 옮기는 경우도 종종 있다. CCM을 가톨릭 교회에선 생활성가라 부른다. 생활성가란 말 그대로 신자들이 생활 속에서 하느님을 느끼고 생각하는 노래다. 다른 의미로는 미사를 위한 전례 음악이 아니라는 뜻도 담겨있다. 생활성가는 개신교회의 CCM을 가사만 가톨릭 교회에 맞게 바꿔 부르는 것이 많고, 새로 작곡된 것이라도 성경 내용 보다는 개인의 주관적 가사가 많다. 전통 라틴 성가나 전례 음악에 비해 쉽고 친근해 청년과 주일학교를 중심으로 혹은 피정이나 성서 모임에서도 많이 불리고 있다. 가톨릭 신자가 돼 이 모습을 다시 보게 되니 마치 30년 전 개신교회로 되돌아간 것 같은 착각이 들 때가 있다. 가톨릭 교회의 품위 있고 거룩한 전례에 어울리는 음악이 무엇인지 생각해 보면 바로 전통 성가다. 1500년 이상 가톨릭 교회에서 이어온 전통 성가는 생활성가처럼 편하게 듣거나 부를 수가 없고 사용하는 악기도 한정적이다. 그 때문에 어울리는 노래 방법을 배워 연습해야 하고, 훌륭한 교회음악 연주를 많이 듣고 공부할 때 비로소 전통 성가에 대한 소양이 조금씩 생긴다.이렇게 어렵게 음악적 소양을 쌓으면, 전통 성가의 거룩한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고 그 속에서 주님을 만날 수 있다. 음악가들 사이에 하는 말이 있다. “아는 만큼 들리고 느끼고 부르고 감동할 수 있다.” “노력(연습)은 대가를 만든다.” 평화신문2016.10.04

“생활양식 변화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유경촌 주교, 가톨릭 유아 생태 기관장·교사 교육에서 강조 앞으로 1년간 이어질 가톨릭 유아 생태교육에 앞서 가톨릭 유아교육 기관장과 대표 교사들이 유경촌 주교가 주례한 미사에서 피조물을 위한 보편지향기도를 바치고 있다. 오세택 기자 “폐식용유를 활용한 비누 만들기를 통해 ‘즐거운 지구 살리기’에 참여했습니다. 5세 반 아이들이 원내는 물론 방과 후 가정에서의 실천에 이르기까지 분리수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는 걸 확인했습니다. 교사들이 먼저 생태적 삶과 실천을 보여주지 않는다면 생태교육은 불가능하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최현아(로사, 35) 구립 송화어린이집 교사의 말에 70여 명에 이르는 유아교육 기관장이나 대표교사들이 공감하듯 고개를 끄덕인다. 영아반을 맡은 김장미(38) 구립 목동어린이집 교사도 활동사례를 발표했다. 김씨는 그림책을 통한 생태 실천 교육의 주제와 목표, 활동과정, 평가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설명한 뒤 프란치스코 교황의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실천하기 위한 ‘공동의 집 돌봄 교육’ 전반을 살피면서 영아 생태 교육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했다. 6일 서울 명동 가톨릭회관 1층 강당에서 서울대교구 환경사목위원회(위원장 이재돈 신부) 유아생태교육위원회가 주관하는 가톨릭 유아 생태 기관장과 대표교사 교육을 시작으로 2017 가톨릭 유아 생태교육의 막이 올랐다. 이날 교구 사회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 유경촌 주교는 창조질서 보전 미사를 주례하고, ‘「찬미받으소서」 제6장 생태 교육과 영성, 유아 생태교육의 중요성’을 주제로 기조강연을 했다. 유 주교는 기조강연을 통해 “「찬미받으소서」 회칙에서 요청하는 것은 강박적, 집착적 소비주의에서 벗어난 새로운 생활양식으로의 변화”라며 “환경문제 해결은 개인적 실천과 함께 공동체 실천이 뒤따라야 하고, 그래서 생태적 회개는 공동체의 회개”라고 강조했다. 이어 “생활양식의 변화는 가정에서부터 시작돼야 하고, 생태계 위기를 인식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습관으로 이어져야 하며, 하느님께서 선물로 주신 창조질서에 대한 감사와 생태적 감수성을 회복하는 데까지 이어져야 한다”고 주문했다. 앞으로 1년간 계속될 가톨릭 유아 생태교육은 「찬미받으소서」의 성경적 의미를 이해하고 가톨릭 생태 유아교육에 필요한 환경 문제의 영역별 정보 이해와 현장 활용 가능성을 모색해보는 기초과정, 「찬미받으소서」를 토대로 생태교육 현장에서 실행할 교육 경험을 살려 생태적 감수성을 함양할 심화과정으로 나눠 진행된다.한편, 이날 미사 중엔 교구 환경사목위원회 산하 유아생태교육위원회 신임 위원으로 박찬옥(안나) 중앙대 유아교육학과 교수와 김영전(루치아) 가톨릭대 오르프슐베르크연구회 교수가 위촉됐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백영민2017.01.11
![[나의 신앙 나의 기업] (32.끝) 서왕석 마태오 성심애드㈜ 대표이사](//cpbc.co.kr/CMS/newspaper/2017/09/rc/694037_1.0_titleImage_1.jpg)
[나의 신앙 나의 기업] (32.끝) 서왕석 마태오 성심애드㈜ 대표이사 예수 ‘성심’?굳게 믿으며?‘성심’껏 회사 경영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던 장남의 삶을 어머니의 기도가 바꿔놓았다. 뜻밖의 사고는 고통 속에서 은총을 깨닫는 값진 체험이 됐다. 서왕석(마태오, 62) 성심애드(주) 대표이사의 삶과 신앙 이야기다. 동종업계 매출 1위의 바탕은 신앙 서울 강동구 성내동에 있는 성심애드(주)는 시계 부품 유통 및 완제품 제조 판매 회사다. 1992년 성심라이프(주)라는 이름으로 출발해 1998년 지금의 이름으로 바꿨다. 올해 만 25년이 되는 셈이다. 시계 부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했지만, 제빵기계, 커피 기계 등도 수입해 판매했다. 3~4곳의 협력업체와 거래를 트기 시작해 5년 만인 1997년에는 국내 동종업계 15개 업체 중에서 매출 1위를 기록했고, 거래업체는 180개 업체로 늘어나는 급성장을 이뤘다. 비결이 뭐였을까. 첫째, 모든 제품에 대해 10% 이상의 이익은 절대로 남기지 않는다. 단가 2000원에 물건을 들여오면 10%의 이윤을 붙여 2200원에 파는 식이다. 이 원칙은 지금까지도 변함없이 지키고 있다. 둘째, 학부에서 행정학, 대학원에서 무역학을 전공한 노하우와 현장 경험을 살려 영세한 협력업체들의 생산ㆍ관리ㆍ품질 분야에 솔직하고 아낌없이 자문해 줬다. 이는 협력업체들과 상생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이로 인해 동종업계 경쟁업체들의 질시와 반목의 대상이 되는 어려움도 겪어야 했다. 셋째, 물건을 구매하는 데는 정도를 지켰고 품질과 납기를 정확히 지킴으로써 신뢰와 믿음을 구축했다. 넷째, 직원의 잘못으로 손해가 나는 계약을 하더라도 계약은 반드시 지켰다. 다섯째, 직원의 월급과 상여금은 무슨 일이 있어도 제때에 지급했다. 이와 함께 무엇보다도 뿌리 깊은 신앙이 회사 운영의 밑거름이 됐다. ‘성심(聖心)’이라는 회사 이름 자체가 예수 성심을 굳게 믿고 의탁하는 가운데 성심의 열정으로 회사를 운영하겠다는 각오와 의지의 표현이라고 서 대표는 말한다. 충남 서산 성연면이 고향인 서 대표는 5대째 이어오는 구교우다. 5대조와 4대조에서 각각 순교자 한 분씩이 나왔을 만큼 독실한 집안 출신이다. 8남매 중 장남으로 위로 누나 둘, 아래로 다섯 동생을 두었다. 대학에서 임상병리학을 전공했지만, 전공과는 무관한 드라이아이스 공장의 생산직 사원으로 직장 생활의 첫발을 내디뎠다. “동생이 다섯이나 있어서 전공에 맞는 직장을 구할 여력이 없었습니다. 그만큼 다급했었지요.” 열심히 노력해 사무직으로 옮길 수 있었다. 하지만 행정에 대한 소양 부족을 느껴 주경야독의 정신으로 방통대를 다니며 행정학을 공부했다. 1983년 직장 동료인 아내(박재진 체칠리아, 57)와 결혼했다. 3년 만에 부친이 폐암 말기로 투병하면서 집안의 재산을 모두 병원비로 쏟아부어야 했다. 부친 선종 후 장남으로서 어머니와 동생들 부양해야 했다. 생활은 늘 어려웠다. 월급을 받으면 며칠 안 되어 다시 빚을 지고 외상으로 살아야 하는 삶이 계속됐다. “1989년쯤으로 기억합니다. 고달프고 힘들어 방황할 때였습니다. 술에 취해서 들어오는 일이 잦았지요. 어느 날 새벽 2시가 넘어서 집에 들어왔는데, 그때까지 어머니가 주무시지 않고 촛불을 켜놓고 기도하고 계셨어요. 그 모습에 정신이 확 들었고, 성경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너는 차지도 않고 뜨겁지도 않다’는 요한 묵시록(3,15)의 말씀이었습니다.” 어머니의 기도에 마음을 다잡은 서 대표는 아내와 함께 54일 기도를 바치며 길을 열어주시도록 간구했다. 가난을 극복하려면 회사를 설립하는 수밖에 없다고 결심을 굳혔다. 마침 다니던 직장이 시계와 관련된 회사였고 무역과 수출업을 담당했었기에 이와 관련된 분야에서 할 수 있는 사업을 물색했다. 기도와 용서로 무수한 어려움 이겨내 1992년 마침내 회사를 설립했다. 회사 이름을 ‘성심’으로 지었고 로고도 만들었다. 삼위일체 하느님을 뜻하는 삼각형에 두 동생을 양옆에 데리고 끝없이 전진한다는 의미를 담았다. “문제는 자금이었습니다. 사업 계획서를 만들어 근처에 있는 은행으로 지점장을 찾았지만 수차례 문전박대만 당했지요. 그러다가 신자인 직원 한 분을 만날 수 있었고, 그분의 도움으로 어렵사리 10만 달러를 대출받을 수 있었습니다.” 부품을 사러 홍콩으로 갔다. 미리 연락해 놓았지만 찾아가니 만날 수가 없었다. 세 번이나 헛걸음을 한 끝에 네 번째에 어렵사리 만나서 계약을 체결할 수 있었다. 이렇게 끈기와 성실로 신용을 얻고 협력업체들과 신뢰를 쌓아 가다 보니 불과 5년 만에 정상의 자리에 오를 수 있게 된 것이다. 하지만 곧 어려움이 닥쳤다. 외환위기의 파고가 덮치면서 30개사 이상의 협력업체가 부도가 났고, 성심애드도 큰 타격을 입었다. “한 달 이상 실성한 사람처럼 지냈습니다. 몸무게가 7㎏이 빠졌고 한쪽 팔과 다리에 마비 증세가 왔지요. 하루는 출근해서 보니 아내와 당시 초등학교 6학년, 4학년이었던 딸과 아들이 쓴 편지가 양복 주머니에 들어 있었습니다. ‘아빠, 우리가 있잖아요. 힘내세요. 돈은 또 벌면 되지요’(딸) ‘아빠가 그렇게 하고 다니시니 무서워요. 다시 웃는 얼굴로 돌아왔으면 좋겠어요’(아들) ‘지금까지 어려웠어도 참고 살아왔잖아요’(아내). 편지를 읽고 그날로 약봉지를 다 버렸습니다. 훌훌 털고 일어났지요.” 다시 전진이 시작됐다. 2000년대에 들어와서는 시계 완제품의 제조 판매를 시작하면서, 중국에 공장 겸 지사를 설립했다. 연 100만 개의 완제품을 생산해 중국에 40개 매장을 두고 판매했고, 국내에는 20개 회사에 납품했다. 해외에도 7개국에 수출했다. 수출 상담을 위해 40개국 이상을 누비고 다녔다. 그런데 날벼락이 떨어졌다. 2002년 천호동본당 사목회 부회장을 맡고 있을 때였다. 본당 신자가 상을 당해 다른 신자들과 함께 시골로 상가 방문을 한 후 올라오는 길에 일행이 탄 승합차가 굴러떨어지는 바람에 8명 중 5명이 사망하는 대형사고가 난 것이다. 서 대표는 중상을 입었고, 무려 14번의 수술을 받아야 했다. 후유증으로 한쪽 팔을 제대로 들어 올리지 못하는 장애인이 됐다. “6개월 만에 직원의 부축을 받아 사무실에 와서 보니, 책상 옆에 늘 있던 큰 금고가 눈에 띄었습니다. 금고 안에는 쓰레기 뭉치가 된 어음들이 잔뜩 있었고요. 그제야 깨달았습니다. 하느님께서 저를 살려 두신 이유를. 그 어음의 주인들을 모두 용서하라는 것이었지요. 모두 불에 태워버리고 깨끗이 잊었습니다.” 사고로 몸이 불편해지면서 서 대표는 실무에서 차츰 손을 떼고 관리만 담당하면서 동생들에게 맡겼다. 2011년부터는 큰동생이 생활 제품과 판촉 부분을 맡아 별도 회사를 차려 운영하고 있고, 둘째 동생은 중국 지사를 전담하고 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아직도 성심애드(주)는 시계 부품 유통 분야에서 동종업계 1위를 유지하고 있다고 서 대표는 전한다. 중국 지사에서 생산하는 완제품 시계 판매와 수출도 계속 하고 있다. 1995년 매리지 엔카운터(ME) 체험, 1996년 꾸르실료 체험, 2000년대 초반의 성령 세미나 체험은 사고 이후 관련 단체에서의 봉사 활동으로 이어졌다. 2008년부터 지난해 말까지 성내동본당 사목회장으로 8년 이상 봉사했고, 2012년에는 동서울 ME 대표 부부를 지냈다. 올해부터는 서울대교구 꾸르실료 주간과 꾸르실료 한국협의회 회장을 맡고 있다. “지난해 본당 사목회장을 마치면서는 홀몸 어르신들과 어려운 이웃을 위한 봉사 활동에 좀더 전념하려고 했는데, 올해 서울 꾸르실료 주간과 한국협의회 회장이란 중책을 새로 맡게 되어 애초에 계획한 봉사 활동은 2년 정도 더 연기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사진=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문채현2017.09.01

그리스도 성체 성혈 대축일- 성체성사란 예수님 당신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내어주심을 기념하는 축일 성체성사는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요 정점이다. CNS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체성사를 세우시고 당신 몸과 피를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우리에게 내어주신 것을 기념하고 되새기는 축일입니다. 일곱 성사 중 하나인 성체성사에 대해 알아봅니다.살펴봅시다 세례성사로 하느님 자녀로 다시 태어난 신자들은 견진성사로 그리스도를 더욱더 닮아 그리스도의 힘찬 증인이 됩니다. 그리고 성찬례 곧 성체성사를 통해 온 공동체와 함께 주님의 희생 제사에 참여합니다. 그래서 성찬례는 그리스도교 입문 성사를 완결짓는 성사입니다. 교회는 성찬례가 "그리스도교 생활 전체의 원천이며 정점"(1324항)이라고 가르칩니다. ㉠감사와 찬미의 제사(1328, 1359~1361항) : 성찬례는 하느님 아버지께 드리는 감사와 찬미의 제사입니다. 성찬례는 "하느님께서 주신 모든 은혜, 창조와 구속과 성화로 이루어주신 모든 것에 대한 감사로 교회가 드리는 찬미"(1360항)입니다. 성찬례로 번역되는 라틴어 에우카리스티아(Eucharistia)라는 말 자체가 '감사'를 의미합니다. 성찬례는 또 교회가 모든 피조물을 대표하여 창조주이신 하느님의 영광을 노래하는 찬미의 제사이기도 합니다. 교회는 이 감사와 찬미의 제사를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께 봉헌합니다. ㉡그리스도의 희생을 기념하는 제사(1330, 1362~1367항) : 성찬례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 제사를 기념하고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전례 안에서 이 십자가 희생 제사를 현재화하는 제사입니다. 성경적 의미에서 기념은 단지 "과거의 사건들을 기억하는 것뿐 아니라 하느님께서 인간을 위해 이루신 놀라운 일들을 선포하는 것"(1363항)입니다. 그래서 교회가 전례 안에서 과거 사건을 기념할 때 그 사건은 현재 실제로 일어나게 됩니다. 곧 그 사건이 현재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지막 만찬에서 제자들에게 '너희를 위해 내어줄 내 몸이다', '너희를 위해 흘릴 내 피다' 하고 말씀하셨고, 실제로 십자가에서 피를 흘리시며 당신 자신을 내어주셨습니다. 성찬례는 이 희생제사를 기념하고 현재화(재현)하는 성사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의 희생 제사(1368~1372항) : 성찬례는 또한 교회의 희생 제사이기도 합니다. 성찬례에서 그리스도인 신비체인 교회는 그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함께 봉헌되기 때문입니다. 또 신비체인 교회의 지체들이 바치는 제사이기도 합니다. 곧 "신자들의 삶, 찬미, 고통, 기도, 노동 등은 그리스도의 그것들과 결합되고 그리스도의 온전한 봉헌과 결합되며, 이로써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된다"(1368항)는 것입니다. 성찬례에서는 이 세상에 있는 지체들뿐 아니라 하늘의 영광 중에 있는 지체들, 곧 천국의 성인들도 그리스도의 봉헌에 결합됩니다. 교회는 동정 마리아와 모든 성인들을 기억하며 또 그분들과 일치하여 성찬의 제사를 봉헌합니다. 나아가 이미 세상을 떠나 정화 중에 있는 신자들을 위해, "그들이 그리스도의 빛과 평화를 얻을 수 있도록 바치는"(1371항) 제사이기도 합니다. ㉣성찬례에서의 그리스도 현존(1373~1377항) : '두세 사람이라도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함께 있겠다'고 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성찬례에서 특히 성체의 형상 안에 현존하십니다. 교회는 성체성사 안에는 "온전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실재적으로 그리고 실체적으로 담겨 계신다"(1374항)고 고백합니다. "빵과 포도주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화함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이 성사에 현존하시게 되는"(1375항) 것입니다. 16세기에 열린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는 성체성사 안의 그리스도 현존에 대한 가톨릭 신앙을 이렇게 선포합니다. "빵과 포도주의 축성으로써 빵의 실체 전체가 우리 주 그리스도의 몸의 실체로, 포도주의 실체 전체가 그리스도의 피의 실체로 변화한다. 가톨릭교회는 이러한 변화를 적절하고도 정확하게 '실체변화'라고 불러왔다"(1376항)(「지극히 거룩한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 또 그리스도께서는 성체의 두 가지 형상 곧 빵과 포도주 안에 각각 온전히 현존하실 뿐 아니라 그 각 부분에도 현존하시므로 빵을 나누고 포도주를 나눠도 그리스도께서는 나뉘지 않고 그대로 온전히 현존하신다고 교회는 믿고 가르칩니다. 알아둡시다 ㉠영성체와 그 효과(1384~1401항) : 신자들은 성찬례에서 성체를 받아 모심으로써 그리스도와 일치를 이루고 그리스도의 생명에 참여합니다. 하지만 중한 죄를 지었다고 느끼는 사람은 성체를 모시기 전에 먼저 고해성사를 받아야 합니다. 또 교회가 전한 공복재(영성체 한 시간에는 물과 약을 제외하고는 다른 것을 먹고 마시지 않음)를 지켜야 합니다. 교회는 주일과 의무 축일에는 물론 더 자주, 매일 같이 미사에 참례하고 성체를 모실 것을 간곡히 권고합니다. 이렇게 성체를 받아모시는 영성체는 △우리와 그리스도의 일치를 증진시켜 주며 △세례성사 때 받은 은총의 생명을 보존하고 성장시키고 새롭게 해주고 △우리를 죄에 멀어지도록 지켜 주며 △소죄를 없애줍니다. 또 신자들이 세례로써 이미 교회와 이룬 결합을 더욱 새롭게 하고 굳건하게 해주며 가난한 이들을 위해 투신하게 해줍니다. ㉡성체 공경(1378~1381항) : 성체 안에는 그리스도께서 온전히 실제로 현존하시기에 교회는 각별한 정성으로 성체께 대한 공경을 표시합니다. 미사 전례 중에는 특히 무릎을 꿇거나 몸을 깊이 숙여 절함으로써 빵과 포도주의 형상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계신다는 믿음으로 표현합니다. 또 축성된 성체는 정성스럽게 보존하고, 신자들이 장엄하게 흠숭을 표현하도록 성체를 현시합니다. 또 행렬 중에 함께 모시기도 합니다. 성체를 모셔둔 곳을 감실, 성체 앞에서 기도를 바치고 흠숭을 드리는 것을 성체조배, 성체를 모시고 장엄하게 행렬하는 것을 성체거동이라고 합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cpbc2017.06.15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9) 두 비유와 예수님 가족(루카 8,4-21)](//cpbc.co.kr/CMS/newspaper/2017/08/rc/693710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29) 두 비유와 예수님 가족(루카 8,4-21)내 마음속 말씀 씨앗 노력 있을 때 열매 맺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말씀을 받아들이는 자세와 인내로 열매를 맺으려는 노력이 중요함을 일깨우고 있다. 그림은 빈센트 반 고흐 작 ‘씨 뿌리는 사람’. 예수님께서는 고을과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8,1) 예수님의 소문은 온 지방으로 퍼져나갔고 이제는 사람들이 각 고을에서 예수님을 찾아옵니다. 이렇게 사람들이 예수님께 모여오자 예수님께서는 그들에게 비유로 말씀하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등불의 비유입니다.(8,4-18) 그러고 나서는 말씀을 듣고 실천하는 사람이 ‘내 어머니요 내 형제’라고 하십니다.(8,19-21)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설명(8,4-15)루카가 전하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단순합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가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에 떨어져 발에 짓밟히거나 새들이 먹어 버렸고, 어떤 씨는 바위에 떨어져 물기가 없어 말라 버렸으며, 어떤 씨는 가시덤불에 떨어져 자라면서 숨이 막혀 버렸고,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 백 배의 열매를 맺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들을 귀 있는 사람은 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고 루카는 기록합니다.(8,4-8)이 말씀을 들으면 이상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씨 뿌리는 사람은 분명 농부일 것입니다. 그런데 농부가 씨를 뿌릴 때는 비유에 나오는 것처럼 아무렇게나 뿌리지 않습니다. 밭을 갈아서 씨가 잘 자랄 수 있게 해놓고는 이랑에 씨를 뿌리지요. 그런데 비유를 따르면, 농부는 나가서 씨를 그냥 훌훌 뿌리는 것 같습니다. 그러니 어떤 것은 길가에, 어떤 것은 바위에, 어떤 것은 가시덤불에,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지지요. 이 비유를 우리가 이해하기 힘든 것은 당시 이스라엘 농법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라는 설명도 있습니다. 건기(4월~10월)와 우기(11월~3월)가 뚜렷한 이스라엘에서는 농사를 짓던 밭도 건기가 되면 바짝 말라버립니다. 게다가 사람들이 그 위를 다니면 완전히 길이 돼 버리지요. 우기가 시작되면 농부는 먼저 씨앗을 뿌린 후에 밭을 간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씨가 길가에도, 바위 위에도, 가시덤불에도, 혹은 조금 남아 있는 좋은 땅에도 떨어지기도 했다고 합니다. 당시에 농사짓는 법이 이렇게 차이가 있다 하더라도 이 비유 말씀을 이해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습니다. 이는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 비유의 뜻을 묻지요(8,9). 여기서 제자들이란 다른 누구보다도 예수님과 함께 다닌 열두 제자로 볼 수 있습니다.(8.1 참조)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아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다른 이들에게는 비유로만 말하였으니, ‘저들이 알아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8,10-11) 이 말씀은 제자들에게는 비유의 뜻을 설명해 주겠다는 것으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나서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씨는 하느님 말씀이고 길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받아들이기는 했지만 악마가 와서 앗아가는 바람에 믿지 못하여 구원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바위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기쁘게 받아들이지만 뿌리가 없어 시련의 때가 오면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다.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인생 걱정과 재물과 쾌락에 숨이 막혀 열매를 제대로 맺지 못하는 사람이다. 좋은 땅에 떨어진 씨는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해 인내로써 열매를 맺는 사람이다.’(8,11-15)예수님의 설명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대한 배경과 뜻을 이해할 수 있게 해줍니다. 우선 씨 뿌리는 사람은 예수님 자신이십니다. 말씀은 예수님께서 선포하시는 하느님 나라의 복음이겠지요. 다양하게 떨어진 씨들은 바로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의 다양한 삶의 모습입니다. 비유의 핵심은 길가에 떨어진 씨나 바위에 떨어진 씨,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가 되지 말고 좋은 땅에 떨어진 씨가 되라는 것입니다. 바르고 착한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할 뿐 아니라 인내로써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는 비유의 뜻을 풀이해 주시면서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신 까닭은 무엇일가요? 또 ‘저들이 알아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라는 말씀은 무슨 뜻일까요? 이렇게 생각해 봅시다. 제자들은 하느님 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시는 예수님의 사명을 수행해야 할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도록 해주는 것이 마땅하지 않을까요? 그렇다면 왜 다른 사람들에게는 비유로만 말씀하실까요? 여기서 다른 사람들이란 일차적으로 예수님 말씀을 들으러 모인 사람입니다. 말씀을 들으러 왔지만 속마음은 저마다 달랐을 것입니다. 길가에 떨어지고 바위에 떨어지고 가시덤불에 떨어진 씨앗처럼 말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예수님과 함께 펼쳐지는 하느님 나라를 보아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이 아닐까요?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저들이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8,10)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을까요? 착하고 바른 마음으로 말씀을 듣고 간직하며 인내로 가꾸려는 사람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백 배의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등불의 비유(8,16-18)이어서 말씀하신 등불의 비유 자체는 이해하기 어렵지 않습니다. 아무도 등불을 켜서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두지 않고 등경 위에 올려놓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야 들어오는 사람들이 빛을 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등불이 어둠을 몰아내고 주변을 환히 밝히듯이 숨겨진 것은 드러나고 감추어진 것은 알려져 환히 나타날 것입니다.(8,16-17) 그런데 “정녕 가진 자는 더 갖고 가진 것이 없는 자는 가진 줄로 여기는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8,18)라는 말씀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요? 우선 등불을 하느님 말씀 혹은 하느님 나라의 기쁜 소식으로 보면 어떨까요? 하느님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서처럼 잘 받아들여 인내로 가꾸면서 자기 안에 열매를 맺어야 하지만 또한 등불을 켜서 등경 위에 올려놓듯이 하느님 말씀을 널리 선포해야 합니다. 제자들이 해야 할 일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님 가르침을 잘 받아들여 자신 안에 열매를 맺는 것은 물론이고 말씀을 널리 선포해야 할 사명을 받은 것입니다. 만일 제자들이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받은 하느님의 말씀마저 놓치게 될 것입니다.예수님의 참가족(8,19-21)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등불의 비유를 이렇게 이해하고 나면, 그 다음 예수님 말씀이 좀 더 명확해집니다. 예수님의 어머니와 형제들이 예수님을 찾아왔지만 군중 때문에 더 가까이 갈 수 없게 됐는데, 누가 예수님께 어머니와 형제들이 찾아왔다고 알립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지요. “내 어머니와 내 형제들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하는 이 사람들이다.”(8,21) 예수님의 이 말씀은 육친을 가족이 아닌 것처럼 대하라는 말이 절대로 아닐 것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과 참된 관계를 맺으려는 사람은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실행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으로 보아야 한다고 성경학자들은 풀이합니다. 그렇다면 참가족에 관한 예수님의 이 말씀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와 등불의 비유를 마무리하는 말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생각해 봅시다- 말씀을 받아들인 나는 몇 배의 열매를 맺고 있는지요? 열매를 맺지 못하고 있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라고 보는지요? - 나는 나의 말과 행동으로 하느님의 말씀을 등경 위에 올려놓고 있는지요? 아니면 그릇으로 덮거나 침상 밑에 놓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백영민2017.08.30

주교좌명동본당 사순 특강 (1) ‘미사의 전례적 의미’조학균 신부(예수회)전례, 그리스도를 만나는 시간 가톨릭평화신문은 사순 시기의 참된 의미를 되새길 수 있도록 서울대교구 주교좌명동본당에서 실시하는 사순 특강을 연재한다. 올해 사순 특강의 주제는 “너희는 나를 기억하여 이를 행하여라”(루카 22,19)다. 특강 순서는 △13일 ‘미사의 전례적 의미’(조학균 신부) △20일 ‘성경을 통해 바라보는 미사’(이영제 신부) △27일 ‘미사, 성체성사를 살다’(윤종국 신부) △4월 3일 ‘미사로 하나 되는 신앙’(조성풍 신부)이다.조학균 신부(예수회) 보여주는 것을 설명하고 설명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전례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리스도를 만나고 싶어 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서는 그리스도를 듣고, 보고, 말할 줄 알아야 한다. 그리스도를 만나기 위한 장은 교회가 마련해 준다. 그것이 바로 전례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교회는 약속된 날들을 기념하고 재현한다. 이것이 전례주년이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구원 업적을 기념하고 재현하기 위해서 전례력을 만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날을 부활 대축일이라고 한다. 부활은 큰 기쁨이다. 기쁨뿐만 아니라 수난받으신 날도 기억하자는 의견이 제시됐고, 부활절 행사가 부활 시기로 변했다. 사순시기가 만들어진 배경이다. 사순시기는 재의 수요일부터 성목요일의 성유 축성 미사까지다.사순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만남’이다. 하느님과 인간과의 만남이다. 우리는 하느님을 잘 만나고 있는지 한번 생각해 봐야 한다. 사순시기에 들어서면 신자들은 하느님께 많은 약속을 한다. ‘금식하겠다’, ‘술, 담배를 하지 않겠다’ 등의 약속이 대표적이다. 그렇지만 우리는 ‘왜?’ 이런 약속을 하는지 잘 모르고 있다. 사람들은 대부분 예수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해서라고 대답한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사실은 내가 겪은 고행의 결과물을 나눌 때 하느님과의 약속이 더 큰 의미를 지닌다는 것이다. 중세 수도원에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수난에 동참하기 위해 사순시기 동안 달걀을 먹지 않았다. 먹지 않은 달걀을 모아 이웃에게 나눠주었다. 부활의 기쁨을 함께하기 위해서다. 진정한 부활의 기쁨은 나눔에서 온다.성목요일 저녁에는 ‘주님 만찬 미사’가 거행된다. 사제들은 제자들의 발을 씻기신 예수님의 사랑을 기억하며 발씻김 예식을 한다. 단순히 발을 닦아주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겸손을 사제가 보여주는 것이다. 신자들도 이 모습을 보며 겸손해지고 항상 봉사하고자 하는 마음가짐을 갖게 된다. 앞서 언급했듯 보여주는 것을 설명하고 설명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전례다.우리는 예수님의 사랑을 느끼기 위해 사순시기에 수난을 함께한다. 사순시기는 예수님의 수난, 희생을 바라보며 우리가 사랑받고 있다는 것을 느껴야 하는 시기다. 나도 내 이웃을 위해 과감하고 당당하게 예수님이 걸으신 길을 걸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 사순시기의 진정한 의미다. 내가 동참하고 같이 느낄 때, 같은 곳을 바라볼 때 사순시기는 은혜로운 시기로 다가온다. 그 부활의 기쁨은 예수님과 함께 더욱 커진다. 하느님께서는 당신이 사랑한 사람을 곁에 두는 것이 아니라 당신 곁에 오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느님께 다가가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아야 한다. 하느님은 항상 우리와 함께 계신다. 복음을 읽고 읽은 것을 믿으며 믿는 것을 가르치자. 그리고 가르친 바를 실천해야 한다. 사순시기는 고난과 고통의 시기가 아니라 은혜의 시기다.정리=맹현균 기자 maeng@cpbc.co.kr 백영민2017.0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