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생명이야기] 19. 생명을 내어줌으로 생명을 얻게 하는 사랑 성경화 체칠리아(가톨릭교리신학원 강사) 집회서 저자인 벤 시라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당신 자신처럼 그들에게 힘을 입히시고 당신 모습으로 그들을 만드셨다”(17,3)고 언급하면서 또한 인간에게 “지식과 이해력으로 그들을 충만하게 하시고 그들에게 선과 악을 보여 주셨다”(집회 17,7)고 말합니다. 그래서 인간은 지혜를 추구하고 그를 통해 영원한 생명으로 이끌어질 수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선과 악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향이 만연한 현대 사회에서는, 고의적 낙태, 배아 실험, 안락사 등이 사람들 양심의 감지 능력이 흐려지면서 법을 통해 합법적으로 받아들이도록 권장되거나 허용되고 있다고 생명의 복음은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이사야 예언자는 아마도 이런 모습을 “좋은 것을 나쁘다 하고 나쁜 것을 좋다 하는 자들! 어둠을 빛으로 만들고 빛을 어둠으로 만드는 자들!”(이사 5,20)이라고 표현하고 있으며 이런 이들을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들 자신을 슬기롭다고 여기는 자들!”이라고 칭합니다. 하느님이 보시기에 지혜로운 자들과 스스로 지혜롭다 하는 자들은 다른 모습으로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면 진정한 지혜를 찾아 얻고 영원한 생명으로 나아가는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사도 베드로는 신앙고백을 하면서 주님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생명의 말씀을 가지셨기에 따로 누구를 따라갈(요한 6,68)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예수님께서도 스스로 “생명의 빵”(요한 6,48)이며 당신을 믿는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얻게 될(요한 6,47)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생명의 복음」에서도 예수님 사명의 참된 목표는 생명을 주는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37항)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 인간의 육체를 취하여 오셔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면서 우리 인간들에게 주시고자 한 것은 하느님의 생명입니다. 그분께서는 “하늘에서 내려와 세상에 생명을 주시는”(요한 6,33) 분이십니다. 창조 첫 순간에 하느님께서 첫 인간 아담에게서 세우신 생명 계획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을 이루게 됩니다. 이를 바오로는 “첫 인간 아담이 생명체가 되었지만, 마지막 아담은 생명을 주는 영이 되셨다”(1코린 15,45)고 말합니다.예수님께서는 “나를 따르는 이는…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요한8,12)라고 말씀하시면서 영원한 생명에 대하여 말씀하십니다. 그 생명은 “그분 안에 있었으며” “사람들의 빛이었고”(요한 1,4)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것이며, 그분의 충만한 사랑을 나누어 받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고 그분과 일치하려고 하는 모든 사람은 영원한 생명을 받습니다.(요한 3,15; 6,40) 그러면 예수님을 따른다는 것은 그분이 행하셨던 것과 같이하는 것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온전히 자신의 생명을 내어주시면서까지 인간을 사랑하셨고, 그를 통해 하느님의 모양을 회복하고 하느님의 생명을 영원히 누릴 수 있게 하셨습니다. 또한 자신의 몸을 빵으로 축성하여 떼어 제자들에게 나누어 먹으라고 주셨습니다. 이웃에게 먹으라고 빵이 되어 주심으로 다른 이의 생명을 이어가게 하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방법을 예수님께서는 몸소 보여주신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 19장에서 영원한 생명을 구하는 젊은이에게 계명 실천을 명하신 후, 가진 재산을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19,21)고 하셨지만 이어지는 구절에서 “내 이름 때문에 집이나 형제나 자매, 아버지나 어머니, 자녀나 토지를 버린 사람은 모두 백 배로 받을 것이고 영원한 생명도 받을 것”(19,29)이라고 덧붙입니다. 그리고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고 하십니다.예수님께서는 성부께 드리는 대사제의 기도에서 영원한 생명에 대해 다시 한 번 밝히십니다. “아버지께서는 아들이 아버지께서 주신 모든 이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도록 아들에게 모든 사람에 대한 권한을 주셨습니다.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 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요한 17,2-3) 예수님을 알고 따르는 것이 영원한 생명,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온전히 예수님을 따르려는 우리는 매 순간 성체를 영하면서, 다른 이들에게 생명의 빵이 되어주기 위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평화신문2014.07.02
![[생활 속의 복음] “기가 막혀 죽겠네?”](//cpbc.co.kr/CMS/newspaper/2016/05/rc/634825_1.1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기가 막혀 죽겠네?”성령 강림 대축일(요한 20,19-23)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기가 막힌 세상세상에는 기가 막혀 죽을 사건들이 매일 넘쳐납니다. 부모가 아이를 죽이는 것이 어쩌다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정치, 경제, 교육, 종교, 사회 모든 분야에서 기막힌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람이 기(氣)가 막히면 죽습니다. 창조 때 인간은 기가 막혀 있었습니다. 창조 때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숨을 불어넣으니 사람이 기가 뚫리고 생명체가 되었습니다(창세 2,7 참고).분노와 폭력의 거친 숨소리하느님의 숨을 받아 하느님과 함께 낙원에서 살던 인간은 ‘하느님처럼 되려는 욕심’을 부려서 하느님을 떠납니다. 하느님의 숨을 쉬지 못하고 맙니다. 탐욕을 부려서 그 열매를 따 먹은 인간(창세 3,6 참고)은 분노하고 책임을 지지 않으려고 합니다(창세 3,12 참고). 그리고 카인은 형제의 피를 손에 묻히는 살인을 저지르기에 이릅니다(창세 4장). 그 분노와 폭력의 거친 숨소리가 바로 옆에서 들려오는 것 같습니다.현대 사회에서 인간은 탐욕을 부리고, 다른 사람에 대해 무책임한 채 분노하곤 합니다. 여기에 더해 여러 종류의 폭력을 행사하면서 다른 사람들과 자신을 파괴하고 있습니다. 해고된 사람들이 자살하고, 강도로 변했다는 소식을 접하면서 우리의 앞날이 심상치 않다는 생각을 떨쳐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새롭게 숨을 불어넣으시려는 하느님하느님은 인간에게 숨을 불어넣고 영원한 생명을 선사하시면서 함께 살아가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을 닮은 자유로운 인간은 유혹에 넘어갔습니다. 하느님처럼 되어서 하느님 없이 스스로 살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느님을 떠난 인간은 함께 살고 있는 인간으로부터도 떠나갑니다.이렇게 불충실한 인간을 자비로운 하느님께서 잊지 않으셨습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에서 이미 약속하셨습니다. “너희에게 새 마음을 주고 너희 안에 새 영을 넣어 주겠다”(에제 36,26). “너희 마른 뼈들아,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에제 37,4-6). 그리고 성령을 보내 주시겠다는 새로운 창조를 약속을 하십니다. “나는 모든 사람에게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날에 남종들과 여종들에게도 내 영을 부어 주리라. 그때에 주님의 이름을 받들어 부르는 이는 모두 구원을 받으리라”(요엘 3,1-2; 3,5). 성령을 부어 주시는 것은 하느님께서 인간에게 베푸시는 결정적인 구원입니다.성부와 성자께서 성령을 보내주심이렇게 약속하신 하느님의 성령을 보내 주시는 것은 하느님 아버지 홀로 하시는 일이 아닙니다. 성자를 세상에 보내시고, 그분의 죽음과 부활을 통해 우리에게 성령을 보내 주십니다. 마술을 부리듯이 어느 한순간에 성령을 보내 주신 것이 아닙니다. 아주 오래전부터 아니 인간이 하느님 곁을 떠나던 그 순간부터 하느님은 작정하고 준비하셨습니다. 그리고 성부께서는 성령을 통해 아드님을 동정녀 마리아가 잉태하도록 하셨습니다. 마침내 인간이 되신 아드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을 통해서 모든 사람에게 성령을 보내 주시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자주 성령을 보내 주십사고 기도하면서 성령을 향하여 마음의 문을 열어야 합니다.성령으로 숨 쉬며 살아가는 삶매일, 매 순간 성령을 선물로 받아 하느님의 숨으로 영원히 살아가는 우리는 하느님 평화의 숨, 사랑의 숨, 용서의 숨을 쉬면서 살아가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기도하면서 하느님 아버지의 자녀로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운 사람이 됩니다. 그리고 하느님 나라 건설의 완성을 향하여 하느님의 협력자로 이 세상에 매일 새롭게 나섭니다.구체적으로는 첫째,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살아가는 것입니다. 여기에 참된 행복이 있습니다. 욕심을 부리면 자신과 다른 사람을 파괴하고 맙니다. 둘째, 사회 정의를 바로 세우면서 인류가 하느님 안에서 하나의 공동체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건설하는 것입니다. 셋째, 서로 존중하고 다양함을 인정하면서 참 평화를 위해 노력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성령의 기름을 받은 후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을 풀어주고,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사람들을 풀어 주고 희년을 선포하셨습니다(루카 4,18 참고). cpbc2016.05.11
![[아! 어쩌나] 341. 신흥종교, 무엇이 문제인가](//cpbc.co.kr/CMS/newspaper/2016/04/rc/632251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341. 신흥종교, 무엇이 문제인가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문: 요즈음 신흥종교로 인하여 교회가 시끌시끌합니다. 여러 가지 신흥종교가 있지만, 이들이 가진 심리적인 문제는 무엇인지요?답: 제가 전문가가 아니라 내부적인 것은 잘 모르지만, 전문가들 말씀에 근거하여 그들에 대해 심리분석을 한다면 그들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종교 중독성’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술이나 약에 중독되기도 하지만 종교도 중독성을 갖는 경우가 허다합니다. 중독이란 말은 일상생활에서는 별 의미나 맛을 느끼지 못하지만 특정한 것, 즉 약이나 술, 종교와 같은 대상 속에서 생동감과 존재성을 느끼는 것을 의미합니다. 물론 공부나 일에 중독되는 경우는 긍정적 중독이라고 합니다. 약이나 술에 빠진 경우는 가정이나 일상의 삶을 포기하는 자기 파괴적인 삶을 살기에 끊어야 하는데 종교는 이와는 차원이 다른 중독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외적으로는 그야말로 철저한 신앙인의 삶을 사는데 정서적으로는 황폐해진다는 점에서 다른 중독성이 있다는 것입니다. 자기는 술이나 약물중독자와는 달리 자신이 환자라는 자의식을 갖는 것이 아니라 뽑힌 자라는 선민의식을 가지고 있기에(종말에 뽑힘받은 14만 4000명이라는 자의식) 치료하기가 어렵다는 것입니다. 대체로 신흥종교를 찾는 사람들은 불안감과 열등감이 큰 편이라고 하는데 이런 사람들이 선민의식을 가지면 심리적 변형이 발생합니다. 선민의식을 가진 상태가 심리적으로 우월 콤플렉스가 작동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선민의식을 가진 사람들은 세상이 다 자기 마음대로 될 것 같은 착각 속에 삽니다. 그리고 다른 선민들과의 끈끈한 연대감이 주는 소속감이 있기에 자신이 속한 곳에서 행복감을 느끼고 벗어날 생각을 하지 않게 됩니다. 자신을 환자로 보는 사람들을 오히려 사탄의 세력이나 자신을 박해하는 종말의 적그리스도들이라고 여기고 자족한다는 것입니다. 이런 자족 상태, 자존감이 넘치는 상태에서는 교주가 신성시될 수밖에 없고 신흥종교의 교리들이 진리라고 여길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많은 신흥종교 교단들이 자신들의 교주가 신적인 존재란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서 여기저기서 성경 구절을 인용해 짜맞추기식 교리를 만들어도 아무런 의심도, 물음도 갖지 않는 것은 이미 정서적으로 중독 상태에 있기에 그런 것입니다. 신흥종교가 중독성을 갖는 것은 기적과 개인적 체험에 대한 집착도 원인 중 하나입니다. 교주의 기도로 병이 낫는다든가 일이 잘된다든가 하는 일들이 발생하면 심리적으로 불안한 사람들은 전적으로 교주에게 의존하고픈 마음이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물론 종교인들에게 개인 체험, 기적 같은 일들은 필요한 것입니다. 신앙생활이 학문적이고 논리적인 삶, 이성적인 삶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과의 만남을 추구하는 신비적인 면이 있기에 이성적 차원을 넘어선 체험은 신앙생활을 한 단계 높이는 데 아주 중요한 기능을 합니다. 문제는 그런 신비적 현상에 집착하면 여러 가지 심리적 부작용을 낳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학교를 그만두거나 직장 생활을 포기하고 기도만 한다든가 하는 등등의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이런 일련의 선택은 종말에 대한 긴박감이 원인이기도 합니다. 즉 여러 가지 요소들이 신비주의에 대한 집착을 강화시켜 일상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는 결과를 낳는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개인적 신비체험은 지속적이지 않습니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고무줄과 같은 특성을 갖습니다. 깊은 신비체험을 하여도 시간이 지나면 원래의 자리로 돌아옵니다. 그래서 옛 성인들은 개인의 신비체험보다 일상 수도 생활의 중요성을 더 강조하였던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신비체험에 집착하다 보면 심리적으로 병인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성령께서 주시는 체험이 아닌 무의식이 착란 현상을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cpbc2016.04.27

마을사목으로 소공동체 활성화의 답을 찾다수원 인계동본당 마을사목, 4개 지역 나눠 자치권 부여, 본당 운영 신자 참여 늘어 최인각 신부가 1월 24일 ‘믿음마을’ 미사를 마치고 돌아가는 신자를 배웅하고 있다. 임영선 기자 “믿음마을 회장님, 믿음마을은 올해 목표가 어떻게 되죠?”1월 24일 수원 인계동본당 ‘믿음마을 미사’. 강론 시간이 되자 본당 주임 최인각 신부가 신자 석으로 다가가 ‘믿음마을’ 임충기(도미니코) 회장에게 질문을 던졌다. “소공동체 활성화”라는 답이 돌아왔다.인계동본당이 관할 구역을 평화ㆍ행복ㆍ기쁨ㆍ믿음마을 등 4개 마을로 나누고, 각 마을에 ‘자치권’을 주는 ‘마을 사목’을 펼쳐 눈길을 끌고 있다. 매 주일 오후 3시에는 마을 미사도 봉헌한다. ‘마을 사목’은 지난해 부임한 최인각 신부의 제안으로 시작됐다. 본당 안에 여러 개의 ‘작은 교회’를 만들고, 신자들이 그 교회 운영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해 ‘소공동체 활성화’를 이끄는 것이 목표였다. 수원교구 대리구제를 모델로 삼았다.기존 4개 지역을 ‘마을’로 이름을 바꿨다. 각 마을에는 회장과 부회장이 있고 복음화위원회, 청소년위원회, 재정위원회 등 6개의 상임위원회가 있다. 각 마을은 자체적으로 운영한다. 예산도 따로 짠다. ‘지방자치제도’와 비슷한 개념이다.연초에는 신자들이 머리를 맞대고 마을별 ‘복음화 계획서’를 만든다. 올해는 4개 마을이 선교와 통일 기금 마련을 공통 목표로 삼았다. 그 밖에 평화마을은 성경 통독, 복음화 교육, 경로당 봉사를, 행복마을은 마을 걷기 대회, 청소년들을 위한 수영장 만들기, 음악 피정 등을 계획했다. 기쁨마을은 1월 29일 ‘마을 활성화를 위한 봉사자 피정’을 열기도 했다.마을 사목이 자리 잡아 가면서 본당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각 마을이 자치권을 갖게 되면서 본당 운영에 신자들의 참여가 부쩍 늘어난 것이다. 소공동체도 활기를 띠고 있다. 반 개수가 두 배 이상 늘어난 마을도 있다.행사에 참여하는 신자도 눈에 띄게 늘어났다. 최 신부는 “본당 송년회나 신년회, 체육대회를 열면 참여하는 신자가 보통 150여 명 정도였는데 마을별로 행사를 하면서 참여자가 몇 배나 늘었다”며 “지난달 행복마을 신년회에만 150명이 참여해 성황을 이뤘다”고 말했다. 최 신부는 “처음에는 신자들이 낯설어 했는데, 이제는 다른 마을을 서로 본보기로 삼으며 저마다의 방식으로 마을을 꾸려가고 있다”면서 “본당은 마을이 활성화될 수 있도록 지원하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밝혔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백영민2016.02.03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10> 489번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 - 상](//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6327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89번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 - 상 노예생활 애환 속 피어난 흑인 영가 목화밭의 흑인 노예들. 우리 「가톨릭 성가」에서 ‘흑인 영가’라고 나와 있는 유일한 곡이 성가 489번 ‘보았나 십자가의 주님을’이다. 1492년 콜럼버스가 카리브 해 연안의 히스파뇨라 섬을 발견한 이후로 아메리카 대륙은 백인들의 식민지가 되었고, 이 백인 이주자들은 주로 광산이나 대농장을 운영했다. 노동집약적인 이 사업을 유지하기 위해 그들은 많은 인력이 필요했지만, 아메리칸 인디언들은 절대다수가 백인에 의해 이미 학살당한 뒤였기에 인력을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이러한 인력 수급의 목적으로 아프리카에서 흑인들을 수입하는 사업이 벌어지기 시작했는데, 소위 ‘인간 사냥꾼’이라 불리던 백인에 의해, 혹은 돈을 벌 목적으로 동료나 민족들을 팔아넘긴 일부 다른 흑인에 의해 수많은 흑인이 짐승 취급을 받으며 미 대륙으로 건너오게 됐다. 이들은 인간으로 대우받지 못했기 때문에 대서양을 건너오는 선박에서도 마치 외양간에 소를 싣고 오듯이 실려 왔으며, 긴 항해 동안 정욕을 풀지 못한 뱃사람들에 의해 가족이 보는 앞에서 적지 않은 흑인 여성들이 성폭행을 당하는 장면까지 벌어지기도 했다.이런 가운데 적지 않은 흑인들은 열악한 환경에 병이 걸려 죽거나 혹은 기회를 틈타 스스로 바다로 몸을 던져 자살하기도 했으며, 거칠고 오랜 항해 끝에 대략 절반 정도, 혹은 많으면 3분의 2 정도의 흑인들만 살아남아 미 대륙에 도착했다고 한다.미 대륙에 도착한 흑인들에게는 어떠한 종교적 집회와 행위도 금지됐고, 심지어 자신들의 토착 언어를 사용하는 것도 금지당함으로써 이들은 점차 아프리카에서 누렸던 자신들의 문화를 잊어갔다.이런 가운데 그들은 비밀스러운 모임을 열기도 했다. ‘언더그라운드 레일로드’(underground railroad)라 불리는 노예 탈출을 돕는 비밀 조직이 생겨나기도 했고, 야밤에 울창한 숲 속이나 밀밭 등지에 자기들끼리 모여 비밀 집회를 하기도 했다. 흑인 노예들의 문화를 모두 없애버리려 했던 백인 소유주들은 대개 노동할 때 부르는 노래만은 허락했는데, 이때 발생한 노래들이 ‘플랜테이션 송’(Plantation song, 농민가)이라 불리며 새로운 아메리칸 흑인들의 문화를 형성하게 된다.한편 흑인 문화 말살의 목적으로 시행된 것이 그들에게 그리스도교를 가르치는 것이었는데, 글을 읽고 쓸 줄 몰랐던 흑인들은 그저 예배 시간에 성경 속 인물들에 대해 그저 주워듣는 정도로 지내곤 했다. 그 가운데 이들에게 대표적으로 다가온 인물이 모세다. 하느님을 대신해 이스라엘 민족 해방을 이끌었던 모세라는 인물에 대한 열망이 노예들 가운데에 자라났고, 이 열망을 바탕으로 생겨나 구전된 노래가 유명한 ‘가라 모세!’(Go Down Moses)이다. 이 노래는 한편 독재 권력에 항거하던 시절에도 ‘저항 노래’로 많이 불리기도 했다.이렇게 강제로 주입받은 그리스도교 신앙을 바탕으로 노예생활의 애환 속에서 피어난 흑인들의 노래들을 ‘흑인 영가’(Negro Spirituals)라고 하는데, 이는 서구 신앙을 바탕으로 아프리카의 토속 리듬 및 선율과 백인에게서 배운 서구 음악이 가미된 독특한 장르로 발전하기에 이른다.<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가톨릭 성가곡들은 가톨릭 인터넷 굿뉴스(www.catholic.or.kr)에서 들으실 수 있습니다. 백영민2016.03.24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39> 강론 Ⅲ](//cpbc.co.kr/CMS/newspaper/2015/09/rc/594636_1.0_titleImage_1.jpg)
[홍기선 신부의 복음의 기쁨 해설] 강론 Ⅲ비유의 언어와 신자 기도가 명강론 만든다 교황은 계속해서 모든 형태의 교리 교육은 ‘아름다움의 길’(via pulchritudinis)이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리스도를 선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것이 단순히 마땅하고 옳은 일일 뿐만 아니라, 아름다운 일이기도 하다는 것을 보여 준다는 의미”(167항)라고 설명했다. 시련 속에서도 삶을 새로운 빛과 심오한 기쁨으로 채울 수 있기에 아름답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된 아름다움의 모든 표현은 주 예수님을 만나는 길이 될 수 있으므로 ‘예술’을 적극 활용하도록 권고했다. 새로운 ‘비유의 언어’로 신앙을 전달할 수 있도록 노력하라고 했다. “우리는 말씀을 전달하는 데에 필요한 새로운 표지와 새로운 상징과 새로운 형체를 찾는 용기를 가져야 합니다. 이는 다양한 문화적 상황에서 소중히 여겨지는 아름다움의 다양한 형태들을 찾는 것입니다”(167항). 사목자의 노력이 필요하다. 미래는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다. 구원의 메시지를 담는 ‘비유의 언어’는 아름다움의 총화가 돼야 한다. 비유의 언어를 계발해야스스로 질문해 본다. 케리그마의 심화에 대한 교황의 가르침을 읽었다. 우리가 본당에서 교리교육 혹은 특강을 하거나 일상적인 신자 재교육을 준비할 때, 염두에 둬야 할 것으로 판단된다. 교황은 이와 같은 내용을 전달하기 위해 새로운 표지와 새로운 상징과 새로운 형체를 찾는 용기를 내야 한다고 말했다. 새로운 ‘비유의 언어’를 계발하라는 말씀이다. 어떤 것을 생각해 볼 수 있겠는가? 교황은 계속해서 성직자, 수도자 그리고 평신도는 성숙과정의 동행인들이기에, 서로를 존중하며 참다운 영적 동행으로 지상 여정을 순례하도록 권고했다. 이들의 함께함을 ‘동행의 예술’이라는 표현으로 묘사했다. ‘예술’은 서로에 대한 존중을 의미하는 말이다(탈출 3,5 참조). “이 동행은 힘차고 꾸준한 발걸음으로 이루어지고 존중과 연민으로 가득 찬 시선이 담겨 있어야 한다”(169항). 바오로가 티모테오와 티토와 맺은 관계는 사목 활동 중에 이루어지는 이러한 동행과 교육의 모범이 된다고 했다. 그리고 모든 복음화의 원천은 성경에 있음을 강조하면서 말씀에 귀 기울이는 훈련을 게을리해서는 안 된다고 했다. 또한 신자들까지 성경 연구에 적극 참여하도록 독려했다. 그 내용을 옮겨보면 다음과 같다. “성경 연구는 모든 신자에게 열린 문이 되어야 합니다.…우리는 하느님을 눈먼 채로 찾지 않습니다. 또한 하느님께서 이미 말씀해 주셨으므로, 우리에게 계시되지 않은, 우리가 더 알아야 할 것이 없기 때문에, 우리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먼저 말씀하시기를 기다리지도 말아야 합니다. 계시된 말씀의 숭고한 보화를 받아들이도록 합시다”(175항). 명강론은 신자들의 기도에서 나온다교황은 「복음의 기쁨」 3장 후반부 ‘강론’에 대해 말하면서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의 ‘동행의 예술’이라는 표현을 사용했다. “좋은 동행자는 좌절하거나 두려움에 빠지지 않습니다. 그는 다른 이들이 치유되어 다시 일어나고 십자가를 지며 모든 것을 뒤로하고 복음을 선포하고자 언제나 새롭게 출발하도록 권유합니다”(172항). 베트남 반 투안 추기경 이야기를 하고 싶다. 2000년 희년에 교황청 사순 피정 강론을 시작하며 이렇게 말했다. 반 투안 추기경은 예화를 들었다. “미국의 한 작가가 군중을 매혹 시킨 유명한 설교자 이야기를 들려주었는데, 저에게 큰 위안이 되었습니다. 어떤 노인이 설교를 충실히 듣고 있었습니다. 설교자는 자신의 성공 앞에서 몹시 행복해했습니다. 어느 날 밤 꿈에 천사가 나타났습니다. ‘명설교를 축하드립니다. 참으로 훌륭하십니다! 그런데 설교를 들으려고 늘 당신 앞에 앉아 있는 그 노인을 기억하시나요?’ 그가 ‘예, 기억하고말고요’ 하고 대답하자 천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당신의 설교를 듣기 위해 오는 것이 아니라, 당신을 위해 기도하려고 온다는 사실을 알아두세요. 그분의 기도 덕분에 당신의 설교는 신자들에게 언제나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으로부터 강론에 대해 충분한 가르침을 받았다. 야단도 많이 맞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제들의 강론이 시원찮으면, 그들을 위해 기도해 주는 평신도들이 형편없기(?) 때문이라고 억지로 푸념해보고 싶어 위의 예화를 인용해 보았다. 백영민2015.09.23
![[성경 속 도시] (17) 바오로의 고향, 타르수스](//cpbc.co.kr/CMS/newspaper/2014/05/rc/51138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17) 바오로의 고향, 타르수스철학·교육 등 수준 높은 문화도시 타르수스에 있는 성바오로성당 내부. 출처=「IN the steps of saint Paul」 오늘날 터키의 중남부에 있는 타르수스는 국제 교류의 중심이며 두 가지 문화가 경계를 이루는 옛 도시다. 타르수스는 고대 북부 메소포타미아 문명의 하나인 히타이트 문명의 영향 아래 건설된 도시다. 고고학의 발굴 결과에 따르면, 사람이 정착하기 시작한 시기는 기원전 3000~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도시는 천연 항구 도시로 지중해의 물물교환과 교통 왕래를 통해 빨리 발전했으며, 기원전 7세기를 전후로 고대 그리스인이 소아시아 지역에 활발히 식민지를 건설하기 시작할 무렵 이들의 문화에서 적지 않은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기원전 333년 알렉산더 대왕이 치드누스 강에서 목욕하다가 익사할 뻔했다. 알렉산더가 죽은 후 타르수스는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가 됐고, 기원전 64년에 로마에 병합됐다.사도 바오로는 타르수스에서 태어났다. “주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일어나 ‘곧은 길’이라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 있는 사울이라는 타르수스 사람을 찾아라”(사도 9,11). 타르수스에는 유다인의 회당이 잘 형성돼 있었다. 바오로의 부친이 종교적으로 열성적이었기에 아들에게 히브리 원전으로 성경을 배우게 했다. 바오로는 학교에서는 그리스어로 된 칠십인역성경을 공부했고, 유다 정착촌 밖이나 집 안에서 그리스어로 말했다. 사도 바오로는 타르수스에서 태어난 지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았다. “여드레 만에 할례를 받은 나는 이스라엘 민족으로 벤야민 지파 출신이고, 히브리 사람에게서 태어난 히브리 사람이며, 율법으로 말하면 바리사이입니다”(필리 3,5). 회심 후 3년이 지난 36년께 바오로는 예루살렘에 가서 베드로와 야고보를 만난 다음(갈라 1,17-19), 고향 타르수스로 돌아가 약 8년 동안 지냈다. “형제들은 그것을 알고 그를 카이사리아로 데리고 내려가 다시 타르수스로 보냈다”(사도 9,30). 타르수스는 현재 거주민이 10만 명 남짓하지만 옛날에는 문화, 정치적으로 중요한 도시였다. 로마제국 시대의 타르수스는 킬리키아 지방의 행정수도 역할을 했으며, 도시의 문화 수준이 아테네와 알렉산드리아에 버금갔다고 전해진다. 바오로 사도 시대에 타르수스는 교육과 철학 분야에서 아테네나 알렉산드리아보다 훨씬 우위를 차지했다. 타르수스는 서쪽의 그리스·로마 문화와 동쪽의 셈족과 바빌로니아 문화가 만나는 곳이었다. 이처럼 타르수스는 당시 헬레니즘 문화의 중심지였고 스토아학파의 유명 철학자들이 활약했던 곳이었다. 이곳에는 많은 유다인들이 이민 와서 정착해 있었기에, 이런 배경 속에서 사도 바오로는 자연스럽게 그리스어와 셈족어를 비롯한 문화를 익힐 수 있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부친에게 상속받아 로마 시민권을 지니게 됐는데, 그것은 훗날 그가 선교 활동하는 데 유용하게 사용됐다.타르수스는 641년부터 아랍인의 침공을 받기 시작하면서 점점 쇠퇴했다. 현재 타르수스에는 바오로 시대의 유적이 거의 없다. 흔히 ‘클레오파트라 성문’이라 부르는 로마 시대의 성문만이 남아 있다. 이는 이집트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로마 장군 안토니우스와 함께 타르수스에서 신혼여행을 즐겼다는 전설에서 생긴 이름이다.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가 배로 지중해를 건너 치드누스 강을 거슬러 올라와 이곳에서 마르쿠스 안토니우스를 유혹해 만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평화신문2014.05.27
[성경 속 생명이야기] 18. 지혜문학 안에서의 생명 성경화 체칠리아(가톨릭교리신학원 강사) 성경은 창세기 첫 장에서, 하느님께서 인간을 흙으로 만드시고 하느님의 생명의 숨을 불어넣으셔서 생명체가 되게 하셨음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서 생명의 주인이 하느님이심을 드러냅니다. 지혜문학의 표현을 따르면,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지혜 2, 23)고 합니다. 하느님께서는 당신 말씀으로 만물을 만드셨고(지혜 9,1), 당신의 지혜로 인간을 빚으시어 당신께서 창조하신 것들을 통치하게 하시고 세상을 거룩하고 의롭게 관리하도록 하셨습니다(지혜 9,2-3). 당신 손에서 생명을 받은 모든 피조물을 지배하게 하셨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지혜로 땅의 기초를 세우시고(잠언 3,19), 많은 업적들을 이루시어 세상이 당신의 조물들로 가득 차게 하셨습니다(시편 104,24).구약성경은 지혜가, 스스로 “주님께서는 그 옛날 모든 일을 하시기 전에 당신의 첫 작품으로 나를 지으셨다. 한 처음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영원에서부터 모습이 갖추어졌다(잠언 8,22)”고 말하며 원래 하느님에게서 기인한다고 가르칩니다. 지혜의 말을 듣고, 지혜를 찾아 얻는 것은 생명을 얻으며 주님의 총애를 받게 될(잠언 8,35) 것이라고 말합니다. 특히 지혜문학은 사람이 지혜를 얻어야 행복하고 성공적인 삶을 누리게 될 것이며, 현실을 올바로 알고 지혜롭게 잘 살 수 있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스라엘 현인들은 조상 대대로 전해오는 지혜의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기고 이를 실천하도록 젊은이들에게 권했습니다. 한 인간이 훌륭하게 살아가는 데 필요한 모든 가능한 지식과 정보를 젊은이들에게 조언으로 제시하고 그들이 올바른 길을 선택하도록 가르침을 되풀이하였던 것입니다. 그렇게 “지혜를 찾는 자가 생명을 얻는 것”(잠언 8,35; 집회 4,12)으로 가르쳤습니다. 다른 표현을 빌리면 “지혜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그 왼손에는 부와 영광이 들려 있다…. 지혜는 붙잡는 이에게 생명의 나무, 그것을 붙드는 이들은 행복하다(잠언 3,16.18)고 말합니다. 그리고 지혜의 길에서 벗어나는 자들은 “더 이상 생명의 길에 이르지 못한다(잠언 2,19)“고 선언합니다. 지혜를 추구하는 것은 하느님의 계명과 규정과 법규들을 지킴으로써 생명과 죽음, 축복과 저주 둘 중에 생명을 선택하는 것임을 가르쳐 줍니다(신명 30,15-20). 또한 지혜 추구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에게 전해진 하느님의 계명들을 지키려는 노력과 동일시(집회 24,23; 바룩 4,1)되기도 합니다. 지혜는 ‘생명의 나무’(잠언 3,18)이기에, 지혜를 추구하는 근본 목적은 생명을 얻기 위한 것입니다.지혜서에 의하면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지만”(지혜2,13-14), 죽이기도 살리기도 하시는 분(신명 32,39), 저승에 내리기도 올리기도 하시는 분으로 표현되기도 합니다. 창세기 2장에 하느님께서는 첫 인간들을 위해 에덴동산을 꾸미시고 그 한가운데에 생명나무와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자라게 하십니다. 그리고 사람에게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금하셨지만 생명나무를 금하지는 않으셨습니다. 생명나무의 열매는 인간을 영원히 살게 하고 불멸성을 보증하였을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첫 인간들이 내쳐지는 이유로 “생명나무 열매까지 따 먹고 영원히 살게 되어서는 안 된다”(창세 3,22)는 하느님의 걱정스러운 말씀이 언급되기 때문입니다. 인간의 범죄로 인해 가까이 다가갈 수 없었던 생명나무에 이르는 길은, 주님을 경외함으로 시작되는 지혜를 추구함으로써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지혜의 현인들은 제시합니다. cpbc2014.06.26
![[사순기획-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3.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cpbc.co.kr/CMS/newspaper/2016/02/rc/621253_1.0_titleImage_1.jpg)
[사순기획-주님, 어서 저를 도우소서] 3. 감옥에 갇혀 있는 이들속죄의 삶 사는 그들에게 희망의 씨앗 전해 교정사목 현황2015년 12월 말 현재 전국 65개 교정 시설에서 수형자들을 위해 활동하고 있는 성직자, 수도자, 평신도는 1087명에 이른다. 군종교구를 제외한 모든 교구에서 교정사목을 하고 있는데, 서울ㆍ대구·대전ㆍ수원교구 등 8개 교구는 교정사목 전담 사제를 두고 있다. 6개 교구는 사회사목국에서 교정사목을 담당하고 있고, 마산교구는 삼위일체 수도회가 교구로부터 교정사목을 위탁받았다.교정사목 봉사자는 1007명인데, 서울대교구가 170명으로 가장 많고 수원교구(150명), 부산교구(132명), 광주대교구(115명)가 뒤를 잇는다. 봉사자들은 미사 준비, 수형자 상담, 교리교육, 성경공부반 운영,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운영, 간식 준비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서울구치소ㆍ대전교도소ㆍ춘천교도소, 청소년 보호시설 고봉중고등학교 등 전국 교정시설에서는 매주 또는 2주일에 한 번 종교 집회(미사)가 열린다. 교정사목 전담ㆍ협력 사제들과 교정사목 봉사자들은 이 시간에 수형자들을 만나고 미사를 봉헌한다. 남부교도소, 서울ㆍ성동구치소 등 5개 교정시설을 담당하고 있는 서울대교구 사회교정사목위원회(위원장 김지영 신부)는 미사 봉헌뿐 아니라 교리교육, 다채로운 문화 행사, 외부 강사 초청 특강 등을 열어 수형자들의 신앙생활을 돕고 있다. 춘천교구 교정사목 봉사회는 춘천교도소에서 매주 목요일 미사를 봉헌하고, 화요일에는 예비신자 교리, 수요일에는 레지오 마리애 쁘레시디움 주회합을 연다. 매달 마지막 주 목요일은 ‘좋은 이웃’이라는 신앙상담 시간을 갖는다. 다른 교구 교정사목위원회 활동도 크게 다르지 않다. 6년째 서울남부구치소에서 봉사하고 있는 안옥수(데레사)씨는 “수형자들은 얼굴도 모르는 자신들을 꾸준히 찾아주고 관심을 두는 사제와 수도자, 봉사자들의 모습을 보고 감동한다”고 말했다.출소자 자활 돕기도 적극적교정사목위는 가난한 출소자들의 자활을 돕는 활동도 하고 있다. 서울 사회교정사목위원회는 출소자들에게 창업 자금을 대출해줘 자립을 돕는 ‘기쁨과 희망은행’을 운영하고 있다. 2008년 문을 연 기쁨과 희망은행은 지난 1월 말까지 192명에게 창업자금을 빌려줘 출소자들에게 큰 힘이 되고 있다.전국 교구에서 가장 많은 교정시설(12곳)을 담당하는 대전교구 교정사목부(담당 강창원 신부)를 비롯한 6개 교구가 출소자들이 머물 수 있는 쉼터를 운영한다. 전주교구(전담 이정현 신부) 교정사목위는 소년원을 퇴소하고 갈 곳 없는 아이들을 위한 그룹홈 ‘천사의 집’을 운영하고 있다.대구대교구 교정사목위(담당 정황래)는 출소자들이 일할 수 있는 식품 공장 ‘빠스카의 집’을 운영한다. 13명의 출소자가 이곳에서 두부와 묵을 만들어 판매하며 새로운 삶을 꿈꾸고 있다.대전 교정사목부는 2010년부터 초등부 주일학교 학생을 대상으로 범죄 예방 교육인 ‘윤슬 교육’을 하고 있는데 학부모들에게 큰 호응을 얻고 있다.김지영 신부는 “교도소를 하나의 본당, 수형자들은 본당 신자라고 생각하고 사목하고 있다”면서 “신자 수형자들이 언젠가는 교도소 밖 일반 본당에서 신앙생활을 할 텐데, 그때 잘 살아갈 수 있도록 교도소 안에서부터 관심을 기울이고 그들을 끌어안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 신부는 또 “수형자들이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갖고, 새롭게 살아갈 희망을 얻을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전국 교구 교정사목 담당자들의 협의체인 ‘한국 가톨릭 교정사목 전국협의회’(회장 강창원 신부)는 매년 봉사자 연수, 사제ㆍ수도자 연수를 개최해 교정사목 봉사자를 길러내고 있다. 또 전국 교정시설 신자 교도관 모임인 ‘성심회’ 가족의 날 행사도 열고 있다. 수형자들이 원하는 것은? 갇힌 공간에서 엄격한 규율을 지키며 살아가야 하는 수형자들은 늘 자유가 제한된다. 신앙생활도 정해진 시간 지정된 장소에서만 할 수 있다. 매주 수형자들을 만나며 그들의 신앙생활을 이끌어주는 교정사목 봉사자들은 하나같이 시간 제약에 대한 아쉬움을 호소했다. 일반인들은 언제든지 가까운 성당을 찾아가 기도하고, 미사 참례하고, 고해성사도 할 수 있지만, 교도소 안에서는 꿈도 꿀 수 없다. 매주 또는 2주에 한 번 있는 ‘종교 집회’ 시간에만 사제를 만날 수 있다. 이것도 그날이 공휴일이면 신앙생활을 할 수 없다. 집회 자체가 취소되기 때문이다. 또 여름과 겨울 각 한 달여 간은 ‘방학’이라는 이름으로 집회를 쉬어야 한다. 종교 담당 교도관들이 휴가를 가기 때문이다. 이렇듯 여러 사정으로 수형자들은 꾸준히 신앙생활을 이어가기 어렵다. 전국 51개 교도소 가운데 수형자를 위한 경당은 단 한 곳도 없다. 봉사자들이 쉬거나 종교 활동을 준비하기 위한 종교실은 마련돼 있지만 그것마저 창고 수준이라는 게 일반적이다. 그만큼 수형자들이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신앙생활을 할 수 있는 교도소 내 공간이 마련되지 못한 실정이다. 그래서 ‘감방’ (수용 거실) 안에서 기도하거나 성경을 읽기라도 하면 수형자들 간에 시비가 붙기도 한다.춘천교도소에서 교리교육 봉사를 하는 박영선(프란치스코)씨는 “종교 때문에 다른 종교 신자 수형자와 싸움이 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일주일에 두 시간 남짓한 종교 집회, 쁘레시디움 회합 시간을 제외하면 동료 신자들과 신앙에 관해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없다”면서 “결국 홀로 신앙을 키워야 하는데 교도소 안에는 신앙 서적도 부족해 수형자들이 ‘공부’를 하는 것도 여의치 않다”고 아쉬워했다.신앙생활 공간도 제대로 마련돼 있지 못한 수감 시설에서 재소자를 교화하고 교정한다는 것은 어찌 보면 공염불에 그치는 것이 아닐까 우려된다. 수형자들은 출소 후에도 신앙생활의 어려움을 호소한다. ‘전과자’에 대한 신자들의 따가운 시선 때문이다. 춘천교구 교정사목 봉사회 이효원(스테파노) 회장은 “본당 신자들의 편견 때문에 상처를 받아 성당에 발길을 끊고 신앙생활을 하지 않고 출소자들이 많다”면서 “따뜻한 시선으로 그들을 바라보고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해 달라”고 부탁했다. 서울대교구 교정사목위원회 위원장 김지영 신부는 “사회의 가장 그늘진 곳에서 살고 있는 수감자들에게 자비의 희년인 이 성년에 우리 마음을 열 수 있어야 한다”며 “갇힌 이들을 위로하고 하느님 자비로 감싸주며 연대와 세심한 배려로 치유하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귀 기울여야 한다”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6.02.24

잊지 말아야 할 이 땅의 고통, 십자가에 담아 순교자 현양비를 쌓다광주대교구청 ‘비움의 십자가’ 제작한 조각가 이춘만 선생 이춘만 조각가는 “‘비움의 십자가’는 자신을 비우는 것이 곧 하느님과 하나 됨을 일러주는 기도 매체”라고 말한다. “작품을 제작하는 내내 침잠(沈潛)하듯 말씀의 바다 속 깊숙이서 기도하며 지냈습니다. 많은 이들이 제 작품 앞에 와서 기도하고 묵상할 텐데, 하느님의 한없는 뜻을 담아내야 하는 작가가 어떤 마음으로 제작에 임했겠습니까.”광주대교구청에 설치된 ‘비움의 십자가’를 제작한 조각가 이춘만(크리스티나, 75) 선생은 “‘비움의 십자가’는 사실 10년 전부터 구상해 온 프로젝트”라며 “그러던 중 마침 제 작품 세계를 알아봐 주신 김희중 대주교님, 옥현진 주교님과 함께 논의해 탄생시키게 된 산물”이라고 설명했다.이춘만 선생은 반세기 동안 성미술 조각을 해온 국내의 대표적 여류 조각가다. 서울 절두산순교성지 대형 순교 기념비를 비롯해 전주 천호성지 십자가의 길, 명동대성당 김대건 신부상 등 수많은 작품을 해왔다. 작가를 모르는 이들은 으레 ‘남성 조각가의 작품’이라고 여길 정도로 크고 웅장하면서 굵고 강한 선으로 이뤄진 작품을 해오기로 유명하다.그가 다시 깊은 명상 끝에 탄생시킨 ‘비움의 십자가’ 역시 높이 8m에 이르는 대형 작품이다. 총 4개의 탑에 27개 부조가 퍼즐처럼 채워졌고, 탑 사이 비워진 틈은 십자가 형태를 한 독특한 형상이다. 뒷면엔 ‘성령’, ‘어린양’ 등을 표현한 벽화까지 새겨진 입체 조각탑이다. 이 선생은 “비움의 십자가는 ‘순교 현양비’”라고 했다. 비움의 십자가는 그의 말처럼 이 땅에서 일어난 다양한 ‘고통 이야기’를 빼곡히 담고 있다.가장 아랫단(壇)의 거대한 예수님상과 순교성인상을 시작으로 시선을 올려보면 6ㆍ25전쟁 참전 용사와 참수당하는 순교자들을 비롯해 5ㆍ18 광주 민주항쟁 당시 거리의 사람들, 세월호 참사 희생자까지 잊지 말아야 할 이들이 계속 등장한다. 그가 고안한 5등신 조각상은 실제 감정을 품은 작은 인간처럼 아픔과 고통을 잘 드러내고 있다. 모든 일을 주관하는 하느님은 꼭대기에서 내려다보고 있다.“인체는 하느님 언어를 담는 그릇입니다. 눈은 감정을, 손은 나눔 기도 소통을 표현합니다. 성경 말씀이 조각상 하나하나에 배어 있는 것이죠. 사람들이 ‘제 작품은 볼 때마다 다르게 보인다’고 하는 것도 그만큼 조각이 기쁨, 슬픔 등 가치관을 담고 살아 숨쉬기 때문이죠.”이춘만 선생은 1958년 서울대 미대 조소과에 입학하던 해에 세례를 받았다. 그는 “인생과 철학을 가장 고민하던 그 시기 김세중(프란치스코, 당시 서울대 미대 교수) 선생 권유로 성미술에 입문하게 됐다”고 했다. 초창기 그의 작품을 생소하게 본 이들의 혹평과, 성미술에 대한 엄격한 잣대 속에 힘든 나날도 많았지만, 그는 ‘성미술하는 수도자 삶’을 자처하고 그 상상력과 고통마저 ‘그림 일기’에 풀어내며 주님께 의탁했다.이 선생은 “19살 작은 체구 여자아이의 소묘를 알아봐 주신 장발(루도비코, 당시 서울대 미술대학장) 교수와 김세중 선생과의 인연, 그리고 세월을 거쳐 오늘 이렇게 생애 가장 의미 있는 작품을 하게 된 것은 모두 빈틈없는 하느님 섭리와 이끄심 말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고 했다.“우리 각자에겐 하느님이 주신 전능함이 내재돼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철저히 비우지 않고선 하느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비움의 십자가’는 나를 비우는 것이야말로 곧 하느님과 하나 됨을 일러주는 기도 매체입니다.”이 선생이 자신의 드로잉 작품이 빼곡히 그려진 ‘그림 일기장’을 가방 깊숙이서 꺼내 보여 줬다. 돌조각으로만 마주하던 형태들이 종이 위 소묘로 채워져 있었다. 그 옆에는 말씀과 묵상 글이 가득했다. 반세기 조각가의 고민 흔적들이 지면에서도 살아 숨 쉬는 듯했다.그의 작품 60여 점을 감상할 ‘이춘만 성미술전’도 26일까지 광주가톨릭평생교육원 갤러리 현에서 열린다. 문의 : 062-380-2210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신문2016.05.04

예수님의 진짜 모습 궁금하다면…세계적 성서학자 로핑크 신부역사비평적 방법으로 풀어낸예수 말씀과 행적 예수 마음 코칭 예수 마음 코칭 게르하르트 로핑크 지음/김혁태 옮김/생활성서/2만 9000원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진짜 모습은 어떠했을까. 무엇이 예수님이 하신 원래 말씀이고 행적들일까. 기적은 실제로 일어난 일이었을까. 성경을 읽으면서 누구나 한 번쯤 해봤을 질문이다. 이러한 궁금증에 학자들은 역사 비평적 방법으로 연구한 예수님을 제시한다. 과거에 어떠한 일이 있었는지를 집요하게 파고들며 그리스도교가 ‘신화’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실제 ‘역사’와 관련돼 있음을 보여준다.최근 국내에 소개된 「예수 마음 코칭」은 이러한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예수님을 낱낱이 파헤친다. 저자는 세계적인 신약성서 학자로 꼽히는 게르하르트 로핑크(독일, 82) 신부다. 그는 예언자, 사회 혁명가, 치유자, 사회 활동가 등으로 편협하게 단순화한 예수님 모습이 잘못됐다고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면서 성경 속 예수님을 철저히 역사적으로, 비평적으로 분석하며 역사와 전통, 신앙과 지성의 지평 위에서 복음서에 나온 예수님이 바로 역사적 예수님이었음을 드러내 보인다.“하느님 백성 이스라엘 없이는 그분을 생각할 수 없다. 그분은 이 백성의 전통 안에서 사셨다. 따라서 이 하느님 백성의 신앙과 그들의 신앙적인 기억을 바탕으로 해서만 그분을 적절하게 이해할 수 있다.”(32쪽)로핑크 신부가 쓴 이 책은 종종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쓴 「나자렛 예수」와도 비교된다. 「나자렛 예수」 역시 역사 비평적 관점에서 쓰였기 때문이다. 책의 원제목 역시 베네딕토 16세 전임 교황이 쓴 「나자렛 예수」와 똑같다. 이에 대해 로핑크 신부는 베네딕토 16세 교황 책과는 출발점이 다르다고 설명한다. 베네딕토 16세 교황은 ‘복음사가들은 예수님을 어떻게 보는가’라는 신학적 질문에서 시작하지만, 그는 ‘예수님이 바라신 것은 본래 무엇인가’ ‘그분의 요구와 주장은 무엇인가’라는 역사적 질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것이다.로핑크 신부는 복음서를 바탕으로 예수님께서 그 행동을 하신 목적이 무엇인지, 예수님께서 말씀을 통해 실제 이루고자 했던 것이 무엇인지를 밝히는 데 집중했다. 이를 통해 예수님의 온 생애는 ‘하느님의 다스림’(그는 하느님 나라를 하느님 다스림으로 번역해야 한다고 주장한다)과 결부돼 있다고 봤다. 예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불러모은 것도, 제자들을 파견한 것도 모두 하느님의 다스림을 선포하기 위한 것이다. 중요한 것은 이와 같은 하느님의 다스림이 이미 지금 이 순간에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하느님의 다스림은 이상향(유토피아)이 아니라 “이미 실현되고 있는 미래”라고 했다.“(예수님의) 선포를 통해 그분 사후에 곧바로 지중해 주변 곳곳에서 이스라엘의 토양을 바탕으로 공동체들이 생겨났다. 그분의 복음을 사는 공동체들이 자라났다. 바로 이 사실에서도 그분의 하느님 나라가 유토피아가 아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629쪽)책은 670여 쪽에 이르는 방대한 분량이다. 역사적 예수에 관한 주제 역시 간단하지 않다. 그럼에도 책장을 쉬이 넘길 수 있는 것은 김혁태(전주교구, 광주가톨릭대 교수) 신부의 매끄러운 번역 덕분이다.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5.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