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6>](//cpbc.co.kr/CMS/newspaper/2016/05/rc/634754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파리 생트 샤펠 스테인드글라스 생트 샤펠 경당 내부 모습. 흔히 고딕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을 천상의 빛을 연출하는 아름다운 빛과 색채의 벽이라고 표현하곤 한다. 이 표현을 가시적으로 가장 잘 드러낸 곳이 바로 파리 생트 샤펠(Sainte Chapelle, 1245~1248)이 아닐까 한다.파리 법원 옆에 위치한 이 작은 경당에는 벽면 전체를 에워싸고 있는 15개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들이 분절 없이 천장까지 길게 이어지며 마치 보석과도 같은 아름다운 빛을 발하고 있다. 높이 치솟은 거대한 고딕 대성당과는 달리 예수 그리스도의 가시면류관과 성 십자가 조각 등을 모시기 위한 왕실의 경당으로 건축되어, 규모는 작지만 그 호화로움은 극에 달한다. 루이 9세 때 건축된 생트 샤펠은 당시 성물 공경에 대한 열의를 대변해 주고 있다.생트 샤펠의 스테인드글라스가 유독 빛으로 충만해 보이는 것은 아케이드, 트리포리움(triforium, 아치와 지붕 사이), 클리어스토리(채광창)로 나뉘는 일반적인 고딕 성당 건축의 입면 구조와는 달리 하나의 긴 창으로 연결되어 빛을 차단하는 건축적 요소가 최소화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생트 샤펠은 네이브(신자석)와 아일(통로)을 구획 짓는 열주(列柱)들이 생략되고, 4개의 베이(구역)로 이뤄진 네이브만으로 지어져 시야를 가리는 것 없이 탁 트인 구조로 되어 있다. 여기에 창과 창을 연결하는 가는 기둥 다발에도 금색을 주조로 한 채색이 더해져 스테인드글라스와는 또 다른 빛을 발하고 있다. 마치 빛을 방해하는 요소가 철저히 배제된 공간으로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생트 샤펠은 두 개의 층으로 이루어져 있다. 아래층은 천장이 낮고 창이 많지 않아 어둡지만, 15m 높이의 스테인드글라스 15개가 에워싼 상층부는 천상을 연상시키는 빛을 연출하고 있어 극명한 대조를 이룬다. 게다가 이는 아래층에서 위층으로 올라가는 어둡고 좁은 나선형 계단을 끝에서 갑작스럽게 맞닥뜨리게 되는 빛이어서 그 신비로움이 더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인지 생트 샤펠의 스테인드글라스를 보기 위해 계단을 올라 상층 경당에 첫발을 딛는 사람들은 모두 빛의 벽을 맞이한 경이로움에 취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감탄사를 연발하곤 한다. 그리고 이내 자리를 잡고 앉아 각 15개의 창에 그려진 구약과 신약의 성경 말씀을 하나씩 읽어 간다.여느 고딕성당과 같이 원형, 마름모꼴 등으로 이뤄진 구획에 성경의 주요 장면들이 묘사된 창들이 이어지고 있는데, 이 중에서 동쪽 정 중앙에 자리한 예수 수난에는 좌우로 이사야와 이사이의 나무, 요한 사도와 예수의 유년기(좌), 요한 세례자와 다니엘, 에제키엘의 성경 말씀이 담겨 있다. 이어 북쪽과 남쪽 측창에는 창세기, 탈출기, 민수기, 신명기, 여호수아기, 판관기(북쪽), 그리고 예레미야서, 토빗기, 유딧기, 욥기, 에스테르기의 말씀 그림들이 이어지고 있다. 마지막으로는 프랑스의 왕들과 예수 수난 성 유물에 대한 이야기로 마무리되고 있다. 그야말로 창으로 만들어진 성경이 아닐 수 없다. 서쪽 장미창은 15세기 만들어진 것으로, 고딕 전성기인 13세기 장미창들과는 달리 수레바퀴 모양에서 벗어난 보다 자유로운 형식을 보여 주고 있다.한 번은 생트 샤펠을 방문하고 나서 호기심에 파리 법원에 들어가 재판의 청중이 되어 본 적이 있다. 이미 전과가 많은 아프리카 기니의 남자 죄수에 대한 재판이었는데, 형을 선고해야 하는 판사와 한 가족의 가장으로 부양할 가족들이 있음을 이야기하며 선처를 호소하는 변호사의 변론이 이어지는 상황이었다. 그 속에서 법의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심판과 하느님의 심판을 떠올렸다. 빛으로 충만한 공간에서 법원의 어둑한 재판장으로 발걸음을 옮기며 고양되었던 정신이 다시 땅을 딛고 있음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다음엔 반대로 법원에서 생트 샤펠로 순서를 바꾸어 방문해 보려 한다. 백영민2016.05.11

신앙의 양식으로 아이 믿음이 쑤~욱 교계 출판사에서 선보이는 유아와 어린이들을 위한 신앙 도서를 소개한다.어린이 눈높이로 예수님 비유 설명바오로딸은 예수님이 들려주는 비유 이야기 시리즈 둘째 권으로 「하느님이 주신 선물」(김세실 글 / 정은미 그림)을 내놓았다. 마태오복음 25장 14-30절에 나오는 ‘탈렌트의 비유’를 유아들이 알아듣기 쉬운 그림과 글로 표현해 놓았다. 하느님이 주신 몸과 마음, 재능, 신앙 등을 잘 사용할 것을 아이들이 이해하고 오래 기억하도록 옛이야기를 해주듯 구성해 놓은 것이 특징.아동 임상 심리를 전공한 지은이는 책에서 ‘탈렌트는 무엇을 의미할까?’ ‘한 탈렌트를 받은 하인은 왜 그것을 땅에 숨겨 두었을까’라고 물으며 아이들에게 궁금증을 유발한다. 탈렌트를 숨긴 것은 우리가 받은 선물의 귀중함과 가치를 모르고 이를 활용하지 않는 것과 같다며 예수님은 우리가 하느님께 받은 선물을 잘 사용해야 할 것을 친절히 알려 준다. 교회의 믿을 교리 알기 쉽게 설명생활성서는 가톨릭 어린이 추천도서 시리즈 「참행복 여덟 가지」 「미사를 드려요」 「묵주기도를 바쳐요」 「성당의 거룩한 물건들」 네 권을 출간했다. 가톨릭 어린이 추천 도서 시리즈는 가톨릭 교회의 믿을 교리 내용을 어린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성경과 삶을 연결시켜 다양한 주제로 풀이해 놓은 안내서다. 「참행복 여덟 가지」(코니 클락 지음 / 짐 버로우즈 그림 / 김경은 옮김)는 마태오복음 5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산상설교 내용을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 설명한다. 참행복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들려주고 싶은 가장 소중한 말씀이다. 그런데 그 내용은 쉽지 않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 의로움에 목마르고 굶주린 사람들, 평화를 이루는 사람들 등이 자비를 입고 하느님을 보게 될 것이라는 말씀을 어린이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책은 참행복을 설명함과 동시에 예시와 일화를 통해 참행복을 어떻게 실천할 수 있는지 구체적으로 알려준다. 「미사를 드려요」(줄리아 디살보 지음 / 짐 버로우즈 그림 / 이현주 옮김)는 미사의 소중함을 일깨워주기 위해 미사의 참뜻을 친절하게 안내하고 있다. 어린이들에게 미사가 그저 지루하고 답답한 시간이 아니라 ‘예수님과 하나 되는 시간’임을 설명한다. 시작 예식부터 말씀 전례, 성찬 전례에 이어 마침 예식에 이르기까지 미사에서 느낄 수 있는 하느님을 차근차근 이야기해준다. 「묵주기도를 바쳐요」(마크 닐센 지음 / 짐 버로우즈 그림 / 이현주 옮김)는 묵주기도가 어떤 기도인지 그 의미를 자세하게 알려준다. 책은 묵주기도가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라고 잘못 이해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묵주기도는 ‘성모님을 통해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라고 강조한다. 묵주기도는 예수님의 일생을 묵상하며 성모님의 전구를 청하는 기도임을 일깨우고 있다. 「성당의 거룩한 물건들」(코니 클락 지음 / 짐 버로우즈 그림 / 백지연 옮김)은 성당에 가면 마주치는 성물들이 왜 거기에 있고 무엇을 하기 위한 것인지 설명해 준다. 성당 문과 십자가, 성수대, 성작, 성합, 성화와 성상, 감실, 독서대 등 성당 안에 있는 모든 거룩한 물건은 하느님과 더 가까워질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임을 일깨운다. 무엇보다 미사와 기도에 더 집중할 수 있고 예수님이 부활하신 신비에 대해 잘 알 수 있도록 돕는 것이 성물이라고 강조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백영민2017.01.11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9.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4229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 여행] 39.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마사초 작 ‘성 삼위일체’, 1426년쯤, 이탈리아, 피렌체, 산타 마리아 노벨라 성당. 가톨릭굿뉴스 제공 예수님 부활 예언 이해 못한 제자들스승 잡혀갈 때와 사형 순간에도 부재십자가 위에서 남긴 말 ‘가상칠언’복음서 통해 모든 신앙인에 전파사형선고를 받은 예수님은 해골터라 불리는 골고타를 향합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십자가에 못 박힙니다. 로마의 형벌이었던 십자가형은 역사에서 가장 잔인한 형벌로 생각되기도 합니다. 기록에 의하면 십자가에 처형된 이는 적게는 서너 시간 동안 그리고 길게는 하루가 넘도록 십자가 위에서 고통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한때 예수님에 대해 역사적인 연구, 곧 실제로 예수님의 삶과 죽음이 어떠했는지 따져보았던 연구에 따르면 십자가형은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질식 상태로 죽어 가는 형벌이라고 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시간에 대한 언급은 공관 복음과 요한복음이 조금 다릅니다. 요한은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사형을 선고하고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내어준 시간에 대해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날은 파스카 준비일이었고 때는 낮 열두 시쯤이었다.”(요한 19,14) 반면에 마르코는 이렇게 전합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때는 아침 아홉 시였다.”(마르 15,25) 이와 함께 공관 복음은 낮 열두 시가 되어 어둠이 온 땅을 덮었고 예수님은 오후 세 시쯤 숨을 거두셨다고 전합니다. 공관 복음이 전하는 시간에 대한 언급이 좀 더 적절한 것처럼 보입니다. 가톨릭교회 안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을 모아 ‘가상칠언’, ‘십자가 위에서의 일곱 말씀’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기도 합니다. 또 이러한 전통은 하인리히 슈츠나 요셉 하이든과 같은 작곡가들에 의해 곡으로 만들어졌습니다. 복음서마다 조금 다른, 십자가 위에서의 말씀은 마치 제자들과 신앙인들을 향한 가르침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내가 진실로 너에게 말한다. 너는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을 것이다.”(루카 23,43) “여인이시여, 이 사람이 어머니의 아들입니다.” “이분이 네 어머니시다.”(요한 19,26-27)“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 어찌하여 저를 버리셨습니까?”(마르 15,34) “목마르다.”(요한 19,28) “다 이루어졌다.”(요한 19,30) “아버지, 제 영을 아버지 손에 맡깁니다.”(루카 23,46) 성경에서는 예수님의 죽음 시각이 유다인들의 9시, 지금의 오후 3시쯤이라고 전합니다. 다음날은 안식일이어서 유다인들은 안식일이 시작되기 전에 예수님을 무덤에 모십니다. 공관 복음과 요한복음이 공통으로 언급하는 사람은 아리마태아 출신의 요셉입니다. 예수님의 제자이자(마태 27,57) 의회 의원으로(마르 15,43) 착하고 의로운 이였다고(루카 23,50) 복음서들은 전합니다. 요한복음은 그가 이미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유다인들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고 말합니다.(요한 19,38) 이렇게 예수님의 드라마는 끝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리고 당시의 많은 사람은 이것이 모든 사건의 끝이라고 여겼을 것입니다. 그것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것은 바로 예수님의 제자들입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잡혀가실 때에도 그와 함께 있지 못했던 제자들은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에서도 등장하지 않습니다. 공관 복음서는 예수님 생의 마지막 순간에 이방인인 백인대장의 입을 통해 예수님의 정체성을 표현합니다.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 또한 그런 예수님의 죽음을 멀리서 바라보던 이들은 모두 여인들이었다고 전합니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갈릴래아에 계실 때에 그분을 따르며 시중들던 여자들이었다. 그 밖에도 예수님과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다른 여자들도 많이 있었다.”(마르 15,41) 요한복음에서 요한 사도가 등장하는 것을 제외하면 그 어디에도 제자들에 대한 언급은 없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의 공생활 중에는 잘 드러나지 않았던 여인들만이 예수님의 죽음을 바라보면 애통해 할 뿐입니다. 물론 제자들이 드러나게 예수님과 활동을 했기에 그 자리에 있을 수 없었을 것으로 추측해 볼 수도 있지만, 복음서들은 제자들의 부재(不在)를 통해 예수님 죽음의 의미를 더욱 부각시킵니다. 제자들은 부활에 대한 말씀들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고 예수님의 죽음은 그야말로 모든 것의 끝이었습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성서학 교수> 김지항2017.03.08
![[성경 속 도시] (34) 아이](//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9759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34) 아이승리의 나팔 불던 여호수아, 넘어지다 아이 왕의 처형을 그린 ‘콘스탄티노폴리스 모세팔경’의 세밀화, 11세기, 바티칸 박물관, 로마. 아이는 여호수아가 두번째로 공격한 도시로 패전의 아픔을 맛본 곳이다. 출처=「성경 역사 지도」(분도출판사) 이집트를 탈출한 이스라엘이 요르단 강을 건너 예리코에서 첫 번째 승리를 거뒀다. 여호수아는 예리코를 아주 잔혹하게 파괴했다. “그리고 남자와 여자, 어른과 아이, 소와 양과 나귀 할 것 없이, 성읍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칼로 쳐서 완전 봉헌물로 바쳤다”(여호 6,21). 이렇게 예리코를 철저하게 파괴한 이유는 가나안 지역에 이러한 소식을 전해 공포심을 조장하려는 심리적 이유가 강했다고 추측된다. 여호수아가 택한 다음의 전략적 요충지는 베텔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점령하려면 남북을 가로지르는 산맥을 선점해야 했기 때문이다. 산맥을 차지하게 되면 나라를 가로지르는 통로뿐 아니라 보병뿐인 이스라엘군이 전차를 대동하고 있는 가나안 병사의 공격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스라엘군에게 산맥은 전략적 요충지가 되었다. 여호수아는 산맥에 있는 고개 지역을 중심으로 가나안 지역의 나라들을 차례로 정복하려는 계획이었다. 오늘날 예루살렘에서 북쪽 16㎞ 거리의 베텔은 산맥을 가로지르는 길목에 있었다. 여기를 장악하면 가나안의 중추를 장악하기가 쉬웠을 것이다. 베텔에 이스라엘이 주력군을 보내기 전에 소규모 정찰대를 보냈다. 정찰대는 예리코 성에서 서북쪽 10㎞쯤에 있었던 아이 성을 발견한다. 아이는 1000년 전만 해도 강력한 도시였다. 정찰대는 돌아와서 아이 성이 정복하기 쉽다고 여호수아에게 말하였다. “백성이 다 올라가지 않아도 되겠습니다. 이천 명이나 삼천 명쯤만 올라가도 아이를 칠 수 있습니다. 저들의 수가 얼마 되지 않으니, 온 백성을 그리로 가게 하여 고생시킬 필요가 없습니다”(여호 7,3). 그리하여 백성 가운데에서 삼천 명쯤이 그리로 올라갔지만 그들은 아이 사람들 앞에서 도망쳤다. 일부 성서학자들은 예리코에서 대승을 거두고 방심한 이스라엘이 매복한 적 군사에게 당했을 것이라 주장한다. 결과적으로 여호수아의 이스라엘 군은 첫 패배를 했다. “아이 사람들은 그들 가운데에서 서른여섯 명을 쳐 죽이고, 성문 앞에서 스바림까지 뒤쫓아가 내리막에서 그들을 쳐 죽였다. 그러자 백성의 마음이 녹아내려 물이 되어 버렸다”(여호 7,5). 성경은 여호수아의 첫 패배의 원인이 전리품을 챙기지 말라는 아칸의 범죄 때문이라 설명하고 있다. 그래서 아칸은 죽임을 당한다(여호 7,24~26). 여호수아는 즉시 아이 성을 공격하면서 일부 병사들을 아이 서쪽으로 보내 베텔과 아이 사이에 매복하게 했다. 그리고 아이 성 앞으로 백성들을 데리고 접근하여 아이 성 안의 병사들을 유인했다. 그리고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들 앞에서 패배하는 척하고 광야 쪽으로 도망쳤다. 그러자 성읍 안에 있던 모든 백성이 성읍을 열어 놓은 채 이스라엘인들을 뒤쫓았다. 이 틈을 타서 매복병들이 아이 성을 점령하고 불을 질렀다. 결과적으로 성을 떠난 아이 성읍의 모든 사람이 죽임을 당했다. 아이의 임금은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여호 8,1-29).오늘날 이 지역은 아랍인들만 사는 가난한 농촌이며 지금은 산 언덕 위에 돌무더기만 남아 있다. 아이 성의 전투는 여호수아의 뛰어난 전략이 돋보였고 이스라엘 백성에게도 많은 교훈을 안겨줬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1.13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20>](//cpbc.co.kr/CMS/newspaper/2016/06/rc/640763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하> VIDIUS ENIM STELLAM EJUS IN ORIENTE VENIMUS ADORARE EUM(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마태 2,2).EUNTES DOCETE OMNES GENTES BATIZANTES EOS(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그들에게 세례를 주어라-마태 28,19).위의 문장은 서울 명동주교좌성당 트렌셉트(transept) 스테인드글라스 하단에 쓰여 있는 라틴어 성경 구절이다. 명동대성당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한국의 대표적인 성당이지만 그곳의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해 특별한 관심을 가지고 눈여겨볼 기회는 그리 많지 않은 것 같다. 스테인드글라스 연구를 진행하면서 현장을 방문할 때마다 한 성당에서 100컷 이상의 많은 사진을 촬영하곤 한다. 큰 그림, 작은 그림, 아주 자세한 디테일까지 두 다리를 삼각대 삼아 촬영하고 컴퓨터 모니터로 관찰해 가다 보면 예기치 못했던 서명이나 문구, 독특한 문양 등을 발견하게 된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전반에는 포도나무 잎과 단풍나무 잎 등이 즐겨 사용됐다. 이는 장식 역할뿐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표현된 것이다.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구상과 추상적 표현이 함께 이루어져 있다. 앱스 쪽에 다섯 개의 긴 창에 표현된 ‘로사리오 십오 현의도’와 트렌셉트 양쪽 창의 ‘성탄과 삼왕 경배’, ‘예수 그리스도와 열두 제자’는 프랑스에서 작품이 수용된 19세기 말 유럽에서 유행했던 양식대로 인물과 풍경이 묘사된 구상적 표현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밖에 신자석 측창들(아케이드, 클리어스토리의 창)을 비롯한 나머지 창들은 포도 잎, 떡갈나무 잎, 백합 등을 모티프로 한 간결한 구성의 그리자유(회색계통으로만 그리는 회화기법, grisaille) 기법으로 구성되어 조화를 이루고 있다.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전반에 가장 많이 사용되고 있는 모티프인 포도나무 잎은 떡갈나무, 단풍나무 잎 등과 함께 중세 그리자유 창에서 즐겨 사용되던 나뭇잎 문양이다. 이러한 나뭇잎 문양은 스테인드글라스의 장식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교의 상징으로 표현되었다. 특히 포도는 성경에서도 가장 많이 사용된 비유로 하느님과 인간의 긴밀한 관계를 표현하는 데 자주 사용되었다. 이러한 포도 잎이 신자들의 시선이 가깝게 닿을 수 있는 아케이드 창의 문양으로 쓰이고 있는 것도 인간과 하느님을 이어주는 일종의 매개로 작용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다. 동일한 그리자유 창이지만 성당 상부 클리어스토리의 창들은 도식화된 백합 문양으로 채워져 있다. 백합은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꽃으로 가시관 한가운데의 백합은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를 드러낸다. 그러므로 클리어스토리 스테인드글라스의 백합 문양은 명동대성당의 수호성인인 원죄 없이 잉태되신 성모 마리아를 상징하는 것이다. 그리고 성모님을 상징하는 백합 문양을 아케이드보다 높은 클리어스토리에 둔 것은 ‘천상의 모후’로서의 성모님의 이미지와도 일맥상통하고 있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도 중세의 거대한 장미창은 아니지만 작은 장미창들이 놓여 있다. 모두 8개의 꽃잎으로 나뉜 장미창에는 물고기 형상을 한 포도 잎이 묘사되어 있다. 그리스도교 상징에서 숫자 8은 예수가 예루살렘에 입성하여 8일째 되는 날 무덤에서 부활했으므로 ‘부활’을 상징하는 수이고, 물고기는 초기 그리스도교 신자들의 ‘신앙 고백’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을 상징한다. 따라서 명동대성당의 장미창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의 메시지를 함축하고 있다고 해석할 수 있겠다. 명동대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창들을 찬찬히 살펴볼 기회가 없었던 분들에게 우리나라 최초의 본격적인 스테인드글라스를 새로운 시선으로 대할 수 있도록 몇 가지 질문을 던지고자 한다. 명동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의 제작자 서명은 어느 위치에 몇 개가 남아 있을까? 장미창은 총 몇 개이며 글 서두에 언급했던 라틴어 성경 구절은 어디에 자리하고 있을까? 떡갈나무 잎과 포도 잎, 백합은 어디에 어떤 모양으로 표현되었는가? 질문의 답을 찾기 위해 창을 하나하나 관찰하면서 그냥 스쳐 지나갔던 나뭇잎, 꽃 한 송이의 그리스도교적 상징과 의미에 대해 묵상하고 마음에 새기는 계기가 마련될 수 있기를 바라본다. 백영민2016.06.15
![[말과 침묵] 닭을 위한 진혼곡](//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8576_1.0_titleImage_1.jpg)
[말과 침묵] 닭을 위한 진혼곡김소일 세바스티아노 보도위원 태어나서 한 번도 하늘을 보지 못했다. 시원한 바람도 쐬어 본 적 없다. 내 사는 곳은 무창계사. 창문이 없는 사육시설을 그렇게 부른다. 내가 딛고 선 발판은 흔한 종이 한 쪽보다 작다. 나는 모이를 쪼고 알을 낳는 일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인간의 세상엔 해가 뜨고 별이 지는가? 여기선 강렬한 인공조명이 낮과 밤을 정한다.이따금 계사의 문이 열릴 때 그 틈새로 세상을 본다. 그곳엔 구름이 흐르고 들판이 펼쳐지고 삽살개가 지나간다. 흔들리는 아카시아 잎을 볼 때는 내 가슴에도 바람이 인다. 아는가? 우리에겐 원래 왕족의 피가 흐른다. 일찍이 숲 속에서 알을 품어 천년 왕국의 탄생을 알렸다. 새벽을 깨우는 고고성은 감히 넘볼 수 없는 우리의 몫이었다. 이 땅에 오신 성자가 수난을 당할 때 베드로의 마음을 흔들어 깨운 것도 우리 선조였다.우리는 ‘볏을 가진 족속’이다. 붉게 솟아오른 수탉의 볏은 왕관보다 화려하다. 윤기 흐르는 깃털은 햇빛을 튕겨내고 꽁지깃은 휘어져 난초처럼 우아하다. 고개를 한껏 치켜든 채 늠름하게 걷는 수탉을 본 적이 있는가? 겁을 모르는 눈과 날카로운 부리까지 갖췄으니 가히 문무를 겸비했다. 성경에도 있지 않은가? ‘당당하게 발을 옮기는 것이 셋이 있으니, 동물의 왕 사자, 꼬리를 세우고 걷는 수탉, 양떼를 거느리고 가는 숫염소’(잠언 30,29-31)라 했다.기억하는가? 우리가 홰를 치며 날아오르는 모습을. 한낮에 담장이나 지붕 위로 날아올라 금빛 울음을 토하면 한순간 우주가 숨을 멈추곤 했다. 우리의 수명 또한 잘 모르리라. 나는 산란계라 1년은 넘게 산다. 2년 채우기는 어렵다. 육계는 그저 한 달이 무섭게 팔려나간다. 행여 그것이 우리의 자연 수명이라 착각하진 말아다오. 야생에서 우리 종족은 20년 넘게 사는 일도 흔하다.무슨 소용인가? 1년이든 한 달이든 무슨 차이란 말인가? 이 지옥 같은 창살 속에서 차라리 죽음이 우리를 구원하리라. 이제 거대한 떼죽음의 파고가 덮쳤으니 이것은 재앙인가 축복인가? 정유년 닭의 해가 밝아오는데 당신들은 집단 도살의 광기를 부린다. 이른바 ‘살처분’의 이름으로 삼천만 마리 넘는 우리 일족에게 죽음을 안겼다.나 이제 산 채로 구덩이에 떨어져 마지막으로 하늘을 본다. 그토록 보고 싶던 하늘은 잿빛이더라. 레퀴엠의 선율은 들리지 않더라. “훔치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 / 죽이지도 않았는데 죽어야 한다 / 재판도 없이 / 매질도 없이 / 구덩이로 파묻혀 들어가야 한다”(김혜순) 아아, 눈물 따윈 흘리지 않으리라. 차라리 당신들을 위해 기도하리라. 쏟아지는 흙비 속에서 나는 그분의 기도를 읊는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듣노라. “그는 우리의 병고를 메고 갔으며 우리의 고통을 짊어졌다. 그런데 우리는 그를 벌 받은 자, 하느님께 매 맞은 자, 천대받은 자로 여겼다. 그러나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악행 때문이고 그가 으스러진 것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다. 우리의 평화를 위하여 그가 징벌을 받았고 그의 상처로 우리는 나았다.”(이사 53,4-5)두려워 말라. 너희 몸속에 내가 있노니 우리는 한 생명이다. 나는 ‘치맥’과 삼계탕과 계란찜으로 너희 속에 있고 빵과 포도주로 거듭나 다시 한 몸을 이룰 것이다. 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오면 죄악을 감춘 땅 위로 꽃 한 송이 피어나리니 그 선홍빛 꽃잎을 보거든 부디 이 순환의 법칙을 기억해다오. cpbc2017.01.18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마태 4,12-23)](//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8403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연중 제3주일 (마태 4,12-23)정연정 신부
서울대교구 화곡본동본당 주임 오늘 교회는 연중 제3주일을 지내면서, 하느님의 뜻이 우리 안에 어떻게 실현됐는지를 알려줍니다. 이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로 어둠과 암흑을 벗어나 빛 속에 살게 됐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삶이 ‘하늘 나라에 좀 더 가까이’(마태 4,17 참조) 할 수 있도록 마음을 모아야 하겠습니다.1. 어둠 속을 걷던 백성이 본 큰 빛(이사 9,1 참조)이스라엘 북쪽에 위치한 갈릴래아 지역은 상대적으로 비옥해서, 예로부터 이곳을 탐낸 이민족(異民族)들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성경에 보면 ‘이민족들의 갈릴래아’(이사 8,23; 마태 4,15)라는 표현이 나올 정도입니다. 이런 이유로 유다인들은 갈릴래아를 부정(不淨)한 땅(요한 7,52 참조)으로 취급했으며, 좋은 것이 나올 수 없는 곳(요한 1,46 참조)으로 무시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이 갈릴래아에 속했다는 사실에서 하느님의 역사(役事)와 섭리의 오묘함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루카 4,14-16 참조)톨스토이의 단편소설 「사람에게 땅은 얼마나 필요한가?」에 등장하는 파홈이라는 소작농은 내기를 통하여 큰 땅을 차지하게 됐지만, 결국 그는 죽음이라는 더 큰 대가를 치렀습니다. 그의 욕심, 곧 그의 삶 안에 드리웠던 어둠과 암흑이 참 빛과 참 생명을 볼 수 없게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1독서의 말씀처럼, 인간은 “짊어진 멍에와 어깨에 멘 장대와 부역 감독관의 몽둥이”(이사 9,3 참조)가 주님 안에서만 부서지고 해결될 수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서 오로지 주님만이 우리의 메시아가 되십니다.2.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1코린 1,17)갑작스러운 황반 현상 때문에 시신경에 이상이 와서 한쪽 눈이 못 보게 된 자매님의 말씀이 새삼 떠오릅니다. “지금 저는 다른 한쪽 눈마저도 형체만 뿌옇게 볼 수 있는 처지지만, 모든 것을 깨끗이 낫게 하시는 하느님께서 제가 다시 보게 해주실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저는 이 자매님을 통하여, 우리가 궁극적으로 볼 수 있어야 할 것이 무엇인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됐습니다.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헛되지 않게’ 우리의 삶을 늘 살피자고 권고합니다. 사실 주님의 십자가는 인간의 기억에서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사랑의 상징입니다. 또한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신실한 사랑의 은약(恩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주님의 십자가 때문에 어떤 처지에서도 절대로 실망하지 않습니다. 참으로 주님의 십자가는 우리 마음 안에 하느님께 온전히 의탁하는 용기를 일으켜줍니다.3. 하느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려고(마태 4,14 참조)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公生活)에 대하여 전해줍니다. 그런데 그 시작이 예루살렘이 아닌 갈릴래아라는 것에서 그 의미가 새롭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이들이 종교적으로 정치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중요시하던 예루살렘을 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많은 이들로부터 멸시당하고 따돌려졌던 이른바 변방(邊方) 갈릴래아를 택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전하는 복음의 핵심이고 정신입니다. 아울러 갈릴래아는 베드로와 안드레아 형제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고 기꺼이 따르기로 응답한 곳입니다. 그러기에 두 사도에게 갈릴래아는 ‘영적 본향(靈的本鄕)’과 같은 의미였습니다.4. 무엇이 중요한가요?지금 우리에게 갈릴래아는 어떤 의미입니까? 자신을 드리웠던 어둠을 뚫고 비로소 빛이 들어왔다면, 우리도 사도들이 갈릴래아를 떠올리며 느꼈던 뜨거운 마음을 공분(共分)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그분께서 안 계신다면 삶이 같지 않다는 것을 마음으로”(「복음의 기쁨」 121항) 늘 새길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평화신문2017.01.18
 예리코](//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866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33) 예리코지도자 여호수아의 첫 승전지 유혹의 산에서 내려다본 예리코 전경 모세가 죽은 후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 지도자는 여호수아가 되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요르단을 건너 하느님이 약속한 가나안 땅으로 인도했다(여호 1,1-2). 영리한 지도자이며 뛰어난 전술가였던 여호수아가 요르단을 건너 가나안 땅으로 진군하면서 첫 번째 전투에서 승리한 지역이 바로 예리코이다. 예리코는 현지 아랍인들은 ‘아리하’라고 부르는 지역으로 예루살렘 북동쪽 36km에 위치하고 요르단 강과 사해가 합류하는 북서쪽 15km 지점에 있다. 예리코는 지중해 해면보다 250m나 낮은 지역으로 세계에서 가장 낮은 위치에 있는 도시다. 이 지역은 각종 과실수가 우거진 오아시스로, 예로부터 종려나무 성이라 불러왔다. 본래 요르단 영토였던 예리코는 1967년 6일 전쟁 때 이스라엘군이 점령한 후 이스라엘이 장악하고 있다. 고고학계에 발견된 증거에 따르면 예리코는 약 1만 년 전에 이미 사람이 살았다는 흔적이 있다. 이처럼 예리코는 세계 역사에서도 유명한 도시다. 기원전 8000년쯤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세계 최초의 도시이기도 하다.예리코는 한 부족이 살다 다른 부족이 침입해 먼저 살던 도시와 성벽을 파괴하고 그 위에 새로운 도시를 건설해 살고, 또 다른 부족이 침입해 들어와 새로운 도시를 건설했다. 이렇게 수천 년이 지난 결과로 고대 도시가 있던 자리가 점점 높아져 커다란 언덕을 형성하게 됐다. 지금도 예리코의 서쪽 편에는 폐허가 된 헤로데의 겨울 궁전 모습이 드러나 있다. 이 지역은 로마의 안토니우스(기원전 83~30)가 클레오파트라에게 선물했으며, 클레오파트라는 예리코를 헤로데에게 팔았다. 헤로데는 겨울에 와서 머물 궁전을 짓고 극장, 목욕탕, 수영장, 화려한 정원을 만들어 여기서 살다가 죽었다고 한다.성경에 의하면 기원전 14세기쯤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군의 공격으로 예리코 성이 함락됐다. 성경은 예리코 함락 과정을 기적처럼 묘사하고 있다. 하느님의 명령에 따라 여호수아는 사람들로 성을 에워싸게 한 다음 사제들에게 숫양뿔나팔을 불며 언약궤를 가지고 성 주변을 돌게 했다. 나팔 소리가 울리고 사람들이 소리를 지르자 성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실제로 예리코에는 석벽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 예리코를 점령한 이스라엘인들은 성을 완전히 파괴하고 남녀노소할 것 없이 도시의 주민을 모두 죽였다. 아마도 공포심을 조장해 주변 도시를 쉽게 정복하려는 전략으로 짐작할 수 있다. 이때 미리 침투해서 이 지역을 정탐한 이스라엘 첩자들을 숨겨준 공로가 있는 매춘부 라합과 그녀의 가족만 목숨을 부지했다(여호 6,1-27참조). 이 전투 과정에서 여호수아는 모세가 준 지침을 충실히 지키며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일치 단결시켜 가나안 정복에 나서는 매우 이상적인 지도자로 나타난다. 이스라엘인에게 함락된 뒤 오랫동안 저주가 내려져 아무도 살지 않는 땅이 돼버린 예리코는 기원전 9세기 베텔의 히엘이 재건했다(1열왕 16,34). 신약에서 예수님은 예리코를 지나던 중 맹인을 치료하고 회개하는 세리 자캐오의 집에서 식사를 했다(마태 20,29). 예루살렘과 예리코를 잇는 좁은 도로는 강도들이 들끓는 곳이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5.01.06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0) 138. 만왕의 왕<상>](//cpbc.co.kr/CMS/newspaper/2016/11/rc/659701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40) 138. 만왕의 왕1562년판 「제네바 시편집(Genevan Psalter)」. 138번 성가는 종교개혁이 발생하던 때 세상에 나온 곡이다. 당시 우리 교회는 전례를 거행할 때 라틴어로 된 그레고리오 성가를 불렀는데, 대부분 성직자나 수도자들 혹은 다성음악을 훈련받은 전문 합창단이 노래했다. 당연히 라틴어를 교육받은 바 없는 일반 신자들은 짧은 노래들을 외우고 있지 않는 한 성가에 참여할 수 없었다.종교개혁 주역 중의 한 명이었던 칼뱅(Jean Calvin, 1509~1564)은 예배에 참여하는 신자들이 성경의 시편을 자기들 언어로 함께 노래할 수 있도록 여러 시도를 했다. 가령 특별한 박자가 지정되어 있지 않은 그레고리오 성가를 박자가 있는 곡으로 바꿔 부르기 쉽게 만들거나, 일반 세속 곡의 선율 혹은 새로 창작된 선율에 시편 가사를 붙이는 시도를 했다.사실 그는 예배 중에 부르는 노래에 상당히 엄격한 정책을 취했는데, 어떠한 악기의 사용도 금지했으며 따라서 노래도 무반주로 화음 없이 선율만 노래하도록 했다. 당시 나온 악보 중 화음이 붙어 있는 악보는 예배 이외의 모임에서 부르기 위한 것이었다. 이렇게 새로운 형태의 찬송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라틴어로 된 시편을 자기네 언어, 즉 일반 대중들이 쓰는 프랑스어로 번역해야 했고, 여기에는 시인 마로(Clment Marot, 1496~1544)와 신학자 베제(Theodore de Beze, 1519~1605)가 큰 역할을 했다.이렇게 해서 1533년에서 1543년 사이에 시편 가사로 꾸며진 성가집들이 나오게 됐다. 이 책들은 개신교 찬송가 역사에서 대단히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제네바 시편집(Genevan Psalter)」이다. 최종적으로 150편의 시편이 집대성돼 완간된 것은 1562년이었으며 여기에는 ‘시메온의 노래’가 포함돼 있었다. 이 시편 찬송가집에는 여러 작곡가의 선율이 수록됐는데, 138번 성가의 선율도 그중 하나였다. 이 선율의 작곡자는 부르조아(Loys Bourgeois, 1510~1560)다.이 선율은 ‘Old 100th’라는 이름으로 1551년 출판된 「제네바 시편집」 두 번째 판에 처음 등장한다. 이 이름은 시편에서 유래했는데, 본래 시편 134편이 가사로 수록되어 있었지만, 프랑스어로 된 「제네바 시편집」을 영어로 번역한 이들 중 한 명인 케쓰(William Kethe,)가 ‘땅 위에 거하는 모든 사람들아’(All People that on Earth do Dwell)라는 제목으로 시편 100편을 바탕으로 한 가사를 붙여 이 이름으로 불리게 됐다. 이 찬송가는 영국의 작곡가 본 윌리엄스의 편곡으로 1953년 영국의 엘리자벳 2세 여왕의 즉위식에서 불렸다. 하지만 후에는 여러 다른 가사가 붙기도 했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김지항2016.11.09
![[이 땅에 평화] 저출산 문제?다둥이 가족을 만나다](//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2947_1.3_titleImage_1.jpg)
[이 땅에 평화] 저출산 문제?다둥이 가족을 만나다아이들 웃음소리가 인생의 선물이죠 즘 주변에서 만나기 쉽지 않은 다자녀 가정을 만났다. 여섯 자녀를 둔 박상근(시몬, 수원교구 안양 중앙본당)ㆍ박옥희(프란치스카 로마나)씨 가정과 전북 순창에서 농사를 지으며 다섯 자녀를 둔 김기열(이냐시오, 전주교구 순창본당)ㆍ전명란(클라라)씨 가정이다. 두 가정 모두 하느님의 선물이자 소중한 생명인 자녀들을 통해 더욱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다. 평신도 선교사 아빠, 평범한 가정주부 엄마와 여섯 자녀?박상근ㆍ박옥희씨 가정 “하느님께 감사하다는 기도가 절로 나옵니다.” 박상근(시몬, 49)씨는 “일하다가도 하느님께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해져 몰래 눈물을 훔치기도 한다”고 고백했다. 경기도 안양에서 부엌가구 제조공장을 운영하는 박씨는 “20여 년 전 일자리를 찾아 무작정 안양에 와 아내를 만난 것부터 IMF 시절 큰 빚을 내 시작한 사업이 승승장구한 것, 여섯 자녀와 행복한 가정을 이룬 것 등이 주님의 은총임을 확신한다”고 했다. 그는 고해성사를 보고 7년 넘게 이어오던 냉담을 풀고 미사에 참여하고 나오다 아내를 만났다. 이후 그는 아내와 함께 청년 레지오 마리애 단원으로 활동하며 사랑을 키웠다. 결혼 후 남편은 부엌가구 공장을 차렸다. 많은 회사가 줄줄이 부도로 쓰러지던 때였지만, 사업은 날개가 달린 듯했다. 덕분에 어린 시절부터 그를 괴롭혀온 가난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자녀는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로 낳았다. 셋째, 넷째…. 부부가 아이를 계속 낳자 친척들이 아내에게 낙태수술을 권했다. ‘무식한 여자’라는 소리까지 했다. 그럼에도 부부는 “하느님 뜻대로 낳겠다”고 선언했다. 그 뒤론 누구도 나무라지 않았다. 박씨는 7년 전 수원교구 하상신학원을 졸업하고 평신도 선교사가 됐다. 현재 수원교구 성령쇄신봉사회에서 자신의 신앙체험을 전하는 ‘말씀 봉사자’로 활동하고 있다. 매일 온 가족이 함께 아침ㆍ저녁 기도를 바치고, 사순 시기에는 매일 ‘십자가의 길’을 봉헌한다. 이러한 집안 분위기에 힘입어 유치원 교사인 장녀 슬기(마리아, 21)씨는 4년간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했고, 지금은 평일 미사 반주자로 봉사한다. 미사 때 복사를 서는 넷째 비오(비오, 중1)군은 사제가 꿈이다. 아내는 “하느님께선 나약한 존재인 저를 아이들을 통해 엄마로서 더욱 강하게 만들어 주신 것 같다”면서 “덕분에 제가 가족뿐 아니라 이웃에게도 사랑을 나눌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셨다”고 감사해 했다. 남편은 “큰딸이 첫 월급을 받고는 ‘하느님께 감사헌금을 봉헌하겠다’고 했을 때 자녀를 신앙의 길로 이끈 큰 보람을 느꼈다”며 “자녀를 하느님께로 이끌어주면 하느님은 아이들을 당신 뜻대로 이끄신다는 것을 늘 체험하고 있다”고 웃음 지었다. 장녀 슬기씨에게 결혼해서 자녀를 몇 명 가질 것인지 물었더니 “마음으론 3~4명을 낳고 싶은데, 현실적으론 2명 정도일 것 같다”며 부끄러운 듯 웃었다. 다섯째 민희(오틸리아, 초5)양은 “우리 집엔 언니 오빠, 동생이 모두 있어서 외로울 틈이 없다”고 밝게 웃었다. 귀농한 뒤 자식 농사도 풍년?다섯 자녀 둔 김기열ㆍ전명란씨 가정 순창군 풍산면 두승리에 있는 미나리 농장인 ‘가이아 농장’ 공동대표 김기열ㆍ전명란씨 부부는 도시에 살던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김씨는 20여 년 전 서울 방이동에서 학습지 영어 교사였고, 대학에서 건축을 전공한 전씨는 서울 강남의 건축설계사 사무소 직원이었다. 경기가 어려워지자 영어 교사를 그만둔 김씨는 친구의 권유로 전주의 한 식물원에 입사했다가 농장에서 일하는 것에 흥미를 느꼈다. 이 무렵 두 사람은 각자 떠난 보길도 여행길에서 만났다. 2000년생인 맏딸 예진(파우스티나, 고3)양이 돌이 됐을 무렵, 부부는 순창으로 귀농했다. 순창은 김씨의 고향. 두 사람 다 전라도 출신이긴 하지만 농사의 ‘농’자도 모르던 초보 귀농인이었다. 그런 부부에게 하느님은 수확의 기쁨을 쉽게 허락하지 않았다. 3300㎡(1000평) 땅에 고추 농사를 지었지만 4~5년간 실패만 거듭했다. 섬진강 변의 축축한 땅에 고추를 심으니 여름이면 물이 넘쳐 썩어 문드러졌다. 다시 도시로 가야 할까 심각하게 고민했다. 끼니를 거르는 날이 있었을 정도였다. 2002년생인 둘째 고은(로엘라)양과 셋째 민서(임마누엘)양이 4년 터울인 것도 그만큼 그 시절이 어려웠다는 증거(?)다. 보다 못한 이웃 어르신이 습지에서도 잘자라는 미나리 농사를 권했다. 다행히 이듬해 봄, 새싹이 돋아났다. 부부는 감사기도를 드렸다. 미나리 농사를 지으면서 농장은 번창했다. 집안에선 아기 울음이 계속 이어졌다. “원래 하나나 둘만 낳으려 했어요. 그러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대로 낳자고 마음을 바꿨지요. 시골에 오니 자연이 주는 편안함 덕분에 마음도 넉넉해진 것 같아요. 게다가 아내가 아이를 무척 좋아해요. 막내는 우리 집 활력소입니다.”(남편) 부부는 가족을 ‘가장 작은 사회’라고 말한다. 형제자매가 많은 집안 아이들은 어린 시절부터 작은 사회 속에서 서로 배운다. 소소하게 싸우고 양보하면서, 마음에 상처도 주고받으면서 사회생활을 연습한다. 경제적으로 풍요롭지 않은 것도 공부가 될 수 있고, 부모의 사랑을 쪼개고 나눠 받으면서 다른 사람에게도 양보하고 사랑을 나눌 줄 아는 방법도 체득한다. 그러면서 아이들은 자연스레 공동체 일원으로서 서로 존중하며 사는 법을 배운다는 것이 부부의 경험이다. 부부는 신앙적으로도 큰 체험을 했다. 2011년 부부가 트럭에 미나리를 가득 싣고 납품을 가다 차가 미끄러졌다. 낭떠러지에서 차가 떨어지려는 순간, 마주 오던 본당 신자 차량과 부딪쳐 목숨을 건졌다. 차는 처참하게 부서졌다. 남편은 크게 다치지 않았지만, 아내는 골반을 다쳐 한 달간 병원 신세를 졌다. “입원해 있는데 눈물이 막 쏟아졌어요. 주임 신부님과 수녀님, 신자들도 문병을 와 주셨지요. 성경을 읽다가 ‘하느님의 은총’이란 말씀이 뇌리에 박히더라고요. 앞으로 전과 다른 삶을 살라는 하느님의 경고 같았지요.”(아내) 사고 이후 부부는 완전히 새롭게 거듭났다. 완전히 냉담했던 남편도 애령회장(연령회장)과 성가대원으로 봉사하고 있다. 지난 2년간은 전주 가톨릭농민회 순창분회장으로도 봉사했다. 형제자매가 많은 것에 대해 둘째 고은(중3)양은 “요즘은 시골에도 자녀가 거의 한두 명인데 혼자인 친구들은 집에서 스마트폰을 주로 하고 놀지만 우리 집은 언니 동생들과 함께 물놀이도 하며 재밌게 지낸다”고 즐거워했다. 이힘 기자 lensman@cpbc.co.kr 문채현2017.05.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