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복음화로 신앙과 삶 하나로 잇는다 부산교구 본당, 신앙 서적 읽기와 복음 정신 담긴 영화 보기 등으로 문화 복음화 힘써 문화 복음화의 해를 지내는 부산교구 본당들이 다양한 방법으로 복음적 문화 전파에 힘쓰고 있다.지난 1월 ‘문화 복음화 운동 추진위원회’를 신설해 본당 공동체와 지역사회에 복음 정신을 전하는 다채로운 활동을 펼치는 양산본당(주임 임영민 신부)은 디지털 매체를 적극 활용, 본당 누리집에 문화 복음화 게시판을 따로 만들어 △영적 독서회 △성경 퍼즐 △종교 영화 △종교 음악 △성미술 △성경 속 동, 식물 △성경 속 도시 등을 연재 중이다.특히 성경 퍼즐은 신자들 사이에서 가장 반응이 뜨겁다. 1월에는 13명, 2월에는 14명이 정답을 맞혀 상품을 받았다. 참가자는 초등학생부터 중ㆍ고등학생, 어른까지 다양하며, 그 수도 점점 늘어나고 있다.또 본당은 ‘성경 속 동, 식물’과 ‘성경 속 도시’ 게시판에 평화신문이 같은 이름으로 연재한 기사를 소개해 신자들이 정확하고 깊이 있는 성경 지식을 알 수 있도록 돕고 있다. 지금까지 포도ㆍ올리브 나무ㆍ돼지ㆍ독수리 등 동, 식물과 와 우르ㆍ하란ㆍ스켐 같은 도시가 소개됐다.본당은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을 활용한 성경 읽기도 적극 권장하고 있다. 본당에서 성경 애플리케이션 활용법을 알리자, 본당 누리집 ‘한 줄 성경 쓰기’ 게시판도 활성화됐다. 올해 1~2월까지 등록된 글은 180여 건. 지난 한 해 게시판에 올라온 글이 40건인 것과 비교하면 상당한 변화다.용호본당(주임 윤용선 신부)은 매달 둘째 주일 청년 미사 후 특별한 교리를 연다. 차광준 보좌 신부가 진행하는 ‘문화 교리’다. 차 신부는 신자들이 가톨릭 신앙의 눈으로 대중영화를 감상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교구 정의평화위원회 소식지에 대중 영화를 그리스도교적 시각으로 재조명하는 글을 쓰고 있는 차 신부는 지난 1월에 「오늘」(감독 이정향), 2월에 「블랙」(감독 산제이 릴라 반살리)을 본당 신자들에게 강의했다.차 신부는 “요즘에 신앙 따로 삶 따로 살아가는 신자분들이 많다”며 “신자분들이 문화 교리를 통해 삶 속에서 구체적으로 신앙을 실천하는 법을 알고 진정한 복음화를 이룰 수 있도록 최선 다해 도울 것”이라고 말했다.범일본당(주임 이병주 신부)은 자체적으로 추천 도서를 선정하고, 영화 상영회를 열어 본당 신자들이 적극적으로 교구 사목 지침을 따를 수 있도록 독려하고 있다.추천 도서는 매달 2권씩 선정된다. 3월 도서는 교구 추천 도서 중 하나인 「바오로 6세의 복음」과 사순시기를 맞아 묵상하기 좋은 「성 토요일의 성모님」이다. 본당은 매달 추천 도서 독후감을 공모받아 우수작품을 시상하고 있다.추천 영화는 성당 강당에서 두 달 동안 상영된다. 2ㆍ3월 상영작은 ‘죽음’을 유쾌한 웃음과 잔잔한 감동으로 풀어낸 「굿바이」(감독 타키타 요지로)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백영민2015.03.11
![[생활 속의 복음] 예수님께서 먼저 오르신 하늘나라](//cpbc.co.kr/CMS/newspaper/2016/05/rc/633622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예수님께서 먼저 오르신 하늘나라주님 승천 대축일(루카 24,46ㄴ- 53)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예수님께서 하늘에 오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시고 3일 후 무덤에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하늘나라에 오르셨습니다. 하늘에 올라갔다는 사실이 그 시대 성경을 읽는 독자들에게는 놀라운 일이겠지만, 요즘은 너도나도 하늘에 올라갑니다. 비행기를 타고 오르기도 하고, 우주선을 타고 하늘에 오르기도 합니다. 이제는 기구를 타고 지상에서 50㎞ 위 성층권까지 가서 지구를 보는 관광 상품이 곧 나온다고도 합니다. 인류 최초로 지구 밖 하늘에 오른 옛 소련의 우주인 유리 가가린은 “하느님은 없다”고 했답니다. 달에 착륙한 첫 우주인 닐 암스트롱은 하느님을 찬미했다고 합니다. 글쎄요. 넓기만 한 우주에 대해 인간은 아직 상상 단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2000년 전부터 교회는 십자가에서 비참하게 죽은 나자렛사람 예수께서 분명히 부활하셨고, 하늘에 오르셨다고 선언하고 있습니다. 승천을 통해 이분이 하느님이라는 사실을 신앙으로 고백하는 것입니다.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십자가에서 죽었던 그분은 부활하시고 성부 오른편에 앉으신, 성자이신 하느님이라고 증언하고 있습니다.하늘에 있는 나라는 어떤 곳?마태오 복음서에서는 38번이나 ‘하늘나라’가 나타나는데, 모두 예수님께서 직접 하신 말씀 속에 들어있습니다. 하기야 하느님의 아드님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아버지와 함께 영원토록 함께 계시다가 이 세상에 인간이 되셨으니, 하늘나라에 대해서는 훤히 아시고 자신 있게 말씀하셨을 것입니다.그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 궁금하지 않으십니까? 무엇보다 이 세상에 가까이 와 있는 하늘나라입니다(마태 3,2).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의 하늘나라입니다. 이 세상 논리와는 전혀 다릅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들의 하늘나라입니다. 의로움 때문에 박해를 받는 사람들이 하늘나라의 주인이 됩니다(마태 5,3.10). 의로운 사람이 하늘나라에서는 큰 사람입니다(마태 5,19).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하늘나라입니다(마태 7,21). 예수님께서 가리지 않고 다니신 모든 마을에서 병자와 허약한 이들을 모두 고쳐주시면서 하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셨습니다(마태 9,35).어린이와 같은 세상의 작은 이들과 힘없는 가난한 사람들이 주인입니다(마태 19,14). 하늘나라의 주인은 실업자의 아픔을 알고 함께 해결하는 포도밭 주인과 같습니다(마태 20,1 이하). 하늘나라는 초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이 임금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하는데도 굽히지 않고 누구나 참여할 수 있도록 문을 열어놓은 혼인 잔치와 같은 곳입니다(마태 22,1 이하). 기쁨이 넘치는 축제에 참여하는 하늘나라입니다(마태 25,1 이하). 인간을 신뢰하는 하느님께서 인간으로 하여금 잠재된 능력을 발휘하도록 기회를 주시는 하늘나라입니다(마태 25,14 이하).“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예수님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셨는데, 구름에 둘러싸여 제자들의 시야에서 사라지셨습니다. 그때 아마도 두 천사가 제자들에게 이 질문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느냐?”(사도 1,11)이제 하늘나라가 우리 가운데 자리 잡기 시작했으니 목이 빠지게 하늘만 쳐다보고 있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는 예수님 승천을 기념하면서 ‘지금 여기서’ 하늘나라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구체적으로 하늘나라에서 살아가는 방식을 복음서에서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배웁니다.그러기 위해서는 우선 참으로 행복하게 살아야 하겠습니다. 마음이 가난한 사람으로서 돈이나 다른 즐거움을 찾으면서 허무하게 인생을 보낼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만을 신앙하고 희망하면서 살아야 하겠습니다. 하느님께서 당부하신 가르침대로 살아야 하겠습니다. 그 가르침을 교회가 생생하게 전해 주고 있습니다. 정의를 추구하면서 박해를 두려워하지 않도록 해야 하겠습니다. 이것이 교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기도 합니다.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식별하고 실행에 옮기도록 해야 합니다. 내 주위의 병자와 허약한 사람들을 돌봐야 하겠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내 가족 가운데 있고, 가까이에 있습니다. 힘없고 가난한 사람들을 존중해야 합니다. 이 시대의 청년 실업자들을 비롯해 모든 세대 사람들이 함께 인간답게 일하고 쉴 수 있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해 나갑시다. 서로의 벽을 허물고 너그럽게 서로를 향해 마음을 열어야 합니다. 기쁨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나눕시다. 서로 신뢰하고 인정하고 기회를 주는 사회가 되도록 함께 노력하는 하늘나라입니다. cpbc2016.05.04
[성경 속 생명이야기] 16. 이웃을 ‘너 자신처럼’사랑하여라 성경화 체칠리아(가톨릭교리신학원 강사)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이 하느님을 사랑하라는 계명과 연결되어 있음을 가르치시는 예수님의 선포는 성경에서 여러 번 등장합니다. 먼저 마르코 복음(12,28-31)을 보면, 율법학자는 전에 사두가이파와 함께 죽은 후의 생명으로 연결되는 부활에 대한 논쟁을 벌이셨던 예수님께 다가가 “모든 계명 가운데에서 첫째가는 계명은 무엇”인지 묻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마도 율법학자가 예상하고 있었던 말씀을 먼저 꺼내십니다. ‘이스라엘아, 들어라. 주 우리 하느님은 한 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너는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정신을 다 하고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었을 계명입니다. 항상 몸에 지니고 다니는 주님의 말씀이었으니까요. 그리고 둘째가는 계명은 레위기에 등장하는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고 이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고 말씀하십니다. 첫 번째 계명은 하느님께 대한 것이며, 이에 못지않은 것이 이웃에 대한 계명임을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이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 번제물이나 희생 제물을 바치는 것보다 낫다(마르12,33)고 율법학자의 입을 빌려 표현하고 있습니다. 마태오 복음(19,16-22)은 십계명에서 언급된 계명, “살인해서는 안 된다”로 시작하고 이어서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계명으로 마무리하고 있습니다.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자신의 재산을 나누는 세부적인 행동도 제시하고 있습니다.로마서(13,8-10)에서는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율법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마태오 복음에서처럼 십계명의 여러 계명을 언급한 다음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할 수 있음을 얘기하고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합니다. 갈라티아서 5장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인의 자유에 대해 권유하고 난 다음에 자유롭게 되라고 부르심 받은 그리스도인들은 사랑으로 서로 섬기면서, 한 계명으로 요약될 수 있는 하나의 계명, 즉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여라”를 준수하라고 격려합니다. 이 권고에 충실히 하는 것은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아가는 것이고, 성령의 인도를 받으면 단순히 율법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열매를 맺으면서 그리스도 예수님께 속하여 사는 사람이 된다고 말합니다. 마태오 복음(22,36-40)은 하느님을 섬기는 것과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라는 이 두 계명으로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요약된다고 말합니다. 구약에서 선포되고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이웃 사랑의 계명은 자기 사랑을 전제로 하고 있습니다. 각자는 이미 하느님의 모상으로 창조되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게 존귀하게 창조되고 하느님에게서 사랑받는 존재인 자기 자신을 온전히 사랑할 수 있을 때, 주위의 이웃을 그처럼 사랑해야 함을 말하는 것입니다. 자기 생명의 존엄성을 바탕으로 다른 이들의 생명을 바라본다면 이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 1서는 이렇게 전합니다. “여러분이 처음부터 들은 말씀은 이것입니다. 곧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형제들을 사랑하기 때문에 우리가 이미 죽음에서 생명으로 건너갔다는 것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자는 죽음 안에 그대로 머물러 있습니다. 자기 형제를 미워하는 자는 살인자이며, 살인자는 아무도 자기 안에 영원한 생명을 지니고 있지 않습니다. …자녀 여러분, 말과 혀로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진리 안에서 사랑합시다.” (3,11-18) 평화신문2014.06.11
신약의 비유 <2>신약성경의 비유(하)비유로 듣는 복음, 귀에 쏘옥 복음서에 나타난 비유복음서에서 찾을 수 있는 예수님의 비유는 세 가지 형태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이야기식 비유로 하나의 이야기 안에서 발견되는 비교들이다. 이 비유들은 우화적 성격을 지니고 있으며, 이야기들은 과거와 연관되는 특성을 지닌다. 둘째로 직유다. 직유는 이미 살펴봤듯이 하나의 이야기가 아니라 ‘~처럼’, ‘~와 같은’이라는 표현과 함께 쓰인다. 직유는 주로 일반적이고 시간의 경계가 없는 성격을 지닌 주제들을 다루는 데 사용된다. 셋째는 예화다. 다른 비유들과는 달리 하나의 예를 제시해 사람들이 따를 것인지 아닌지를 결정하게 한다는 특징이 있다. 예화로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루카 복음에 나오는 네 가지 비유이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루카 10,25~37),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루카 12,16~21),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카 16,19~31)와 바리사이와 세리의 비유(루카 18,10~14)이다. 이 비유들은 특별히 해석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잘 구성된 이야기로 사람들에게 구체적인 결정을 내리도록 요구한다.비유에서 볼 수 있는 특징예수님의 비유에서 발견되는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예수님의 비유는 이야기다. 이야기는 어려운 용어나 화법을 사용하지 않고 쉬운 말로 어떤 내용을 전달한다. 마치 사람들이 서로 이야기하듯이,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들을 이야기로 전달하듯이, 비유는 쉽게 다가갈 수 있는, 쉽게 귀 기울일 수 있는 이야기다. 이야기의 특징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는다는 점이다. 이렇게 이야기에 담긴 비유는 사람들 기억에 오래 남을 수 있고, 그 의미를 지속적으로 되짚어 보게 한다.2)예수님의 비유는 가르침이다.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하느님 나라에 대해 가르치셨다. 한 번도 접해보지 못한 하느님 나라를 설명하기 위해 사용되는 비유는 제자들과 청중들에게 하느님 나라가 어떤 특성을 지녔는지, 또 어떤 상태에 있는지 가르친다. 또한 예수님은 비유를 통해 사람들이, 특별히 신앙인이 지녀야 할 자세에 대해 가르치셨다. 비유를 통한 가르침은 확고하게 정해진 것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스스로 해석하고 적용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다. 그렇기에 비유로 가르치신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듣는 사람들이 스스로 비유를 해석하고 자신의 생활에 적용할 수 있게 하신다. 3)예수님의 비유는 계시다. 신적인 것이 드러나는 것을 계시라고 한다면 비유를 통해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대해, 그의 나라에 대해 알려주신다. 예수님께서는 이야기를 통해 하느님이 드러나도록 하시는 셈이다. 그렇기에 비유를 듣는 이들은 시대와 장소를 넘어서 하느님과 하느님 나라에 대해 알 수 있다. 더 나아가 하느님에 대해 가르치려는 예수님이 어떤 분인지도 비유를 통해 알 수 있다.4)예수님의 비유는 회개를 위한 말씀이다. 비유를 통한 예수님의 말씀은 듣는 이들에게 생각하도록 하고 결단하도록 한다. ‘ 하느님 나라가 다가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는 예수님의 선포는 그대로 비유들 안에 담겨 있다. 하느님께 돌아가고 구원의 기쁜 소식을 받아들이고 믿으라는 것이 비유를 통해 전해지는 내용이다.5)예수님의 비유는 생활 속의 말씀이다. 예수님의 비유는 일상 생활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것들을 소재로 삼는다. 물론 시대적인 배경 때문에 낯선 문화가 등장하기도 하지만, 많은 경우 사람들이 지니고 있는 공통적인 것들을 소재로 사용한다. 사람들이 원하는 것, 그리고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예수님의 비유 안에서 표현되고 그것을 통해 일상의 생활 안에서 믿음에 대해, 세상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그리고 각자의 자세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렇기에 예수님의 비유는 우리의 생활 안에 심어진 말씀이라고 할 수 있다. 평화신문2014.05.27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4>](//cpbc.co.kr/CMS/newspaper/2016/04/rc/632500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 샤르트르 대성당 남쪽 란셋창. 중앙의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좌우로 목말을 타고 한 쌍을 이룬 인물상들이 두 개씩 자리하고 있다. 붉은 선 안이 다니엘과 마르코가 새겨진 란셋창과 그것을 확대한 모습. 13세기, 샤르트르 대성당, 프랑스. “우리는 거인의 어깨 위의 난쟁이(nanos gigantium humeris insidentes)이다. 따라서 그들보다 더 많이 그리고 더 먼 곳에 있는 것까지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시야가 더 예리하거나 신체적으로 특출나기 때문이 아니라 거인들이 그들의 키만큼 우리를 높이 올려 주었기 때문이다” (중세 프랑스 스콜라 철학자 샤르트르의 베르나르).학기 초 학교 게시판에서 ‘미래로 나아가는 과거’라는 문구를 보고 꽤 오랫동안 눈을 떼지 못했었다. 인천교구 ‘열린 교회사 학교’의 주제 문구였는데, 시간의 흐름 속에서도 변화하지 않고 지속되며 흘러가고 있는 삶의 깊은 뿌리에 대해 고민하게 되는 요즘 참으로 마음에 와 닿는 표현이었기 때문이다. 하루가 다르게 급변하는 사회 속에서 우리는 늘 미래만을 이야기하며 근간이 없는 모래성 위에서 허황된 낙관주의에 빠져 있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 보게 된다. 과거가 없는 현재, 현재가 없는 미래가 있을까. 오늘 함께 살펴볼 샤르트르 대성당 남쪽 장미창 아래에 놓인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 도상(圖像)은 진정한 역사의 진정한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하게 한다.앞서 살펴보았듯이 샤르트르 대성당에는 모두 3개의 장미창이 있다. 그리고 각각 ‘예수님의 강생’과 ‘최후의 심판’ 그리고 ‘영광의 그리스도’를 표현한 3부작으로 이뤄져 있다. 그중 남쪽 장미창 하단의 다섯 개의 란셋창(꼭대기가 뾰족한 높은 창문)에는 중앙의 성모자상을 중심으로 해서 좌우로 2명이 목말을 타고 한 쌍을 이루고 있는 인물상들이 두 개씩 자리하고 있다. 성모자상 좌측에 예레미야와 루카, 이사야와 마태오 그리고 우측으로는 에제키엘과 요한, 다니엘과 마르코가 표현된 이 도상은 구약과 신약에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예수 그리스도의 강생과 수난, 부활의 신비를 상징하는 성경 말씀을 표현하고 있다. 각 인물을 연결하는 「공동 번역 성서」의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앞으로 내가 이스라엘과 유다의 가문과 새 계약을 맺을 날이 온다. 나 야훼가 분명히 일러둔다”(예레 31,31).“음식을 나눈 뒤에 또 그와 같이 잔을 들어 ‘이것은 내 피로 맺는 새로운 계약의 잔이다. 나는 너희를 위하여 이 피를 흘리는 것이다’ 하셨다”(루카 22,20).“그런즉, 주께서 몸소 징조를 보여 주시리니,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이사 7,14).“‘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신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졌다. 임마누엘은 ‘하느님께서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다”(마태 1,23).“이제 너는 이들에게 나의 말을 전하여라. 주 야훼가 말한다. 나 이제 무덤을 열고 내 백성이었던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올려 이스라엘 고국 땅으로 데리고 가리라”(에제 37,12).“안식일 다음 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 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그들은 그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요한 20,1.9).“나는 밤에 또 이상한 광경을 보았는데 사람 모습을 한 이가 하늘에서 구름을 타고 와서 태고적부터 계신 이 앞으로 인도되어 나아갔다. 주권과 영화와 나라가 그에게 맡겨지고 인종과 말이 다른 뭇 백성들의 섬김을 받게 되었다. 그의 주권은 스러지지 아니하고 영원히 갈 것이며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하리다”(다니 7,13-14).“예수께서는 ‘그렇다. 너희는 사람의 아들이 전능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아 있는 것과 하늘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볼 것이다’ 하고 대답하셨다”(마르 14,62).과거 역사를 토대로 더 나은 현재와 미래가 존재함을 역설한 샤르트르의 베르나르의 ‘거인 어깨 위의 난쟁이’에서 영감을 받은 구·신약의 인물상은 그리스도 강생과 부활의 신비가 예언되어 드러나고 계속되고 있음을 빛과 색채를 담은 이미지로써 보여 주고 있다. 예술적 영감의 단초가 된 텍스트에 신학적 메시지를 담아 이미지화한 중세인들의 상상력과 재능에 다시 한 번 경의를 표하게 된다. 백영민2016.04.27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52) “제 민족을 살려주십시오”(에스 7,3)](//cpbc.co.kr/CMS/newspaper/2015/12/rc/611361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52) “제 민족을 살려주십시오”(에스 7,3)하느님 섭리의 도구, 에스테르 렘브란트 작, ‘에스테르의 연회’, 1660년. 어느 날 미사 마침 성가가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였습니다. 그런데 아뿔싸. 우리가 손에 들고 있는 악보는 원선오 신부님이 작곡하신 노래였는데 반주는 현정수 신부님 곡이 나왔습니다. “주님의 집에 가자 할 때…”라고 노래는 시작했으나 끝까지 부를 수가 없었습니다. 뒷부분 가사가 달랐기 때문입니다. 제목이 같다고 같은 노래가 아닌 것이지요.에스테르기가 이와 비슷합니다. 에스테르기 줄거리는 아시리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함정이 있습니다. 히브리어본 에스테르기와 그리스어본 에스테르기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본 에스테르기는 더 짧고, 그리스어본에는 히브리어본에 없는 내용이 첨가되어 있습니다. 그러니 에스테르기에 대해 이야기할 때는 주의해야 합니다. 개신교 신자들이나 유다교 신자들도 에스테르기를 성경의 한 권으로 여기지만, 그들이 말하는 것은 히브리어본 에스테르기이므로 우리의 성경에 들어 있는 일부 본문들은 포함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같은 노래인 줄 알고 부르다 보면 뒤에 가서 노래가 달라지는 셈이지요.우리가 아는 대략의 줄거리, 곧 페르시아 임금 크세르크세스의 왕비가 폐위된 후 유다인으로서 모르도카이의 사촌이며 양녀인 에스테르가 페르시아에서 왕비가 되고, 하만이 음모를 꾸며 유다인을 몰살하려고 할 때 에스테르가 목숨을 걸고 임금에게 간청하여 자기 민족을 구했다는 이야기는 히브리어본에 모두 들어 있는 줄거리입니다. 그리스어본에는 이 줄거리 앞에 모르도카이의 꿈에 관한 내용이 더 들어 있습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히브리어본 에스테르기에는 하느님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는데 그리스어본에는 여러 곳에서 하느님이 언급된다는 점입니다. 그리스어 에스테르기 4장에는 모르도카이의 기도와 에스테르의 기도가 들어 있고, 마지막에는 모르도카이가 지난 일들을 회상하며 그 모든 일이 하느님의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생각하는 장면이 나옵니다.여기서 질문은, 히브리어 에스테르기를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그냥 하느님과는 아무 관계가 없는 옛날이야기라고 해야 할까요? 그렇게 생각하는 이들도 없지 않습니다. 이 책이 순전히 세속적인 이야기라고 보는 것이지요.하지만 또 어떤 이들은, 히브리어 에스테르기가 굳이 하느님을 언급하지 않으면서도 인간의 역사를 인도해 가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암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순전히 인간들의 손으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는 사건들 안에서 사실은 하느님이 움직이고 계시며, 독자는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그 하느님의 섭리를 알아보는 법을 깨닫게 된다는 것입니다.흔히 예로 드는 구절이 에스테르기 4장 13-14절입니다. 모르도카이는 에스테르에게, 임금에게 가서 동족을 위하여 간청하라고 말합니다. “그대가 이런 때에 정녕 침묵을 지킨다면, 유다인들을 위한 해방과 구원은 다른 데서 일어날 것이오.…누가 알겠소? 지금과 같은 때를 위하여 그대가 왕비 자리에 이르렀는지.” 여기서 말하는 ‘다른 데’는 하느님입니다. 그리고, 모르도카이의 이 말은 에스테르가 왕비가 된 것이 이때를 대비하기 위하여 하느님의 계획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우리에게 알려 줍니다. 룻기에서도 그랬듯이, 비현실적이라고 느껴질 만한 우연으로 사건들이 전개되는 것은 그 안에 하느님의 섭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테르는 그러한 하느님 섭리의 도구입니다.그러면, 왜 이렇게 하느님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이야기를 썼을까요? 그것은 아마도, 에스테르기가 작성된 시대가 하느님이 계시지 않다고 느껴지는 암울한 시기였기 때문일 것입니다. 토빗기나 유딧기와 마찬가지로 에스테르기도 역사적 사실의 기록은 아닙니다. 페르시아 역사에는 와스티라는 왕비도, 에스테르라는 왕비도 없습니다. 에스테르기의 마지막에서 말하듯이 유다인들이 페르시아인들을 몰살했다는 기록도 없습니다. 외국인들에게 배타적인 하만의 태도도 페르시아 시대에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의 모습은 오히려 기원전 2세기 말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를 생각하게 합니다. 이 시기가 에스테르기의 작성 연대일 것입니다.기원전 2세기, 외세의 억압과 박해 속에서 유다인들은 하느님이 과연 우리와 함께 계신 것일까 의심했습니다. 하느님은 당신 얼굴을 감추셨습니다. 마치 안 계신 듯, 하느님은 아무것도 하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입니다. 이 속에서 어떻게 하느님을 찾을 수 있는지 알려주는 것이 에스테르기입니다. 기원전 2세기의 누군가가 에스테르기를 읽으며 그 안에서 유다인들이 모두 죽게 된 상황에서도 보이지 않게 움직이시며 그들을 구원으로 이끄시는 하느님의 손길을 알아보게 된다면, 그는 캄캄한 어둠 속에서 하느님의 발자취를 알아보는 법을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그 시대 안에서도 하느님은 당신 백성을 기억하시고 돌보고 계심을 믿게 될 것입니다.하느님이 한 번도 언급되지 않는 히브리어 에스테르기를 그리스어로 번역한 사람이 그 책에 여러 단락을 덧붙이면서 이 모든 사건의 전개가 하느님의 개입으로 이루어진 것임을 표시해 주었다면, 그는 우리의 일을 더 쉽게 해 준 셈입니다. 모든 일이 끝난 다음 모르도카이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백성과 이민족들에게 서로 다른 운명을 마련하셨다고 말하며 “주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구원하시고 우리를 이 모든 악에서 건져 주셨다”(에스 10,3)고 말합니다. 에스테르기는, 혼란스런 인간의 역사 안에서도 그러한 하느님의 발자취를 알아보라고 말해 줍니다.<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5.12.28
![[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교회사 연구에 여생을 바친 연구자 김구정](//cpbc.co.kr/CMS/newspaper/2016/09/rc/654373_1.0_titleImage_1.jpg)
[빛과 소금 이땅의 평신도] 교회사 연구에 여생을 바친 연구자 김구정<8> 순교사 연구와 교구사 편찬 1946년 2월 대구대교구 제4대 교구장에 취임한 후 주재용 신부. 사람은 오묘하다. 누군가 나와 함께한다는 것을 느끼기만 해도 어떠한 어려움도 의연히 넘어간다. 함께하는 사람이 어려움을 없애 준다거나 아니면 감해 주리라는 기대가 있어서가 아니다. ‘그 누군가’가 여러 명일 필요도 없다. 김구정에게는 주재용 신부가 그런 사람이었다. 그들의 소통은 교회사 연구로 묶였다.김구정이 사회 경력을 접는 환갑 무렵 주재용은 그에게 교회사 연구를 권했다. 당시는 ‘한국 교회사 연구’라는 단어 자체도 낯선 때였다. ‘교회사’라면 세계 교회사를 일컬었고, 한국 교회에 관해서는 순교자에 대한 기억이 역사를 대체하고 있었다. 이러한 때 주재용은 김구정에게 교회의 사건들을 시간과 공간을 고려하면서 종합적으로 묶어보라고 권했다. 주재용은 물론 김구정의 작업을 교열하고 사료를 제공하고 방향을 잡아주었다.주재용은 용산신학교에서 공부하다가 1914년 대구에 유스티노신학교가 설립되자 이곳에 편입했다. 그는 1918년 제1회 졸업생으로 서품돼 대구교구가 배출한 첫 사제가 됐다. 주재용이 사제품을 받던 날 김구정은 삭발례를 받았다. 주재용은 수품 후 함양본당 주임을 거쳐 전라도 지역을 사목하다가, 1931년부터 성유스티노 신학교 교수가 됐다. 이때 그는 김구정의 권고에 따라 평양교구에서 간행하던 「가톨릭 연구」에 ‘성경 강의’를 연재했다. 1942년 주재용 신부는 전주교구 2대 교구장이 됐다. 그리고 1946년에는 대구교구 4대 교구장으로 착좌했다. 그는 대건학교를 세우는 등 교육 사업에 역점을 뒀다. 그러나 엄격하게 원칙을 고수하던 주 신부는 결국 1948년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춘천교구로 옮겨갔다. 그는 춘천교구로 이적한 뒤 교회사연구에 몰입해 1958년 「선유(先儒)의 천주사상과 제사문제」를 출간했다. 김구정도 이 무렵 대건학교에서 퇴임했다. 「천주교 호남 발전사」 출간김구정은 「천주교 호남 발전사」(이하 호남 발전사)로 교회사 연구의 첫발을 내디뎠다. 이 책은 김영구 신부와 공저로 주재용 신부가 교열해 1964년 전주교구에서 출간됐다. 이 책은 여러 사람이 힘을 합해 만든 만큼 책 앞에 교구장의 권두사, 교열을 맡은 주재용의 글, 공저자 김영구 신부의 책 간행 경위. 그리고 김구정의 일러두기 등으로 시작되고 있다. 이는 교구사 집필은 일개인이 감당하기에는 힘든 작업임을 드러낸다. 「호남 발전사」는 김영구 신부가 지녔던 집념의 산물이었다. 그는 자신이 살고 있는 땅에서 여러 어려움을 극복해 낸 조상들에게서 신앙인의 본보기를 찾을 수 있다고 믿었다. 그는 ‘호남사’를 펴내야 한다고 30여 년이나 희망해 왔다. 그러던 중 한공렬 주교가 전주교구장이 되자 호남 교회사 편찬위원회를 조직했다. 그러나 위원장이던 주교의 병환으로 김영구 자신이 위원장을 맡았고, ‘외우(畏友) 김구정’에게 집필을 의뢰했다. 김영구 신부는 호남 지역의 자료를 제공하고, 각 성당의 협조를 얻어 냈다. 출판비도 직접 부담했다. 김영구 신부는 한국 교회의 첫 순교자 윤지충과 권상연, 유례가 없는 동정부부 이순이 루갈다와 유중철 요한, 가장 어린 순교자 김아나스타시아, 병인박해의 평신도 가경자 중 3분의 1이 있는 ‘방인 자치교구’의 선두에선 전주교구의 역사에 큰 긍지를 가졌다. 이 긍지가 한국 최초의 교구사를 출간시켜 줬다. 이 책의 간행은 ‘태양 아래 동류의 것이 아직 없었던’ 빛나는 작업이었다. 교회사 약술하면서 저서의 틀 만들어김구정은 1961년 대구교구 설정 50주년을 기해 ‘남방교구사’를 쓰려고 일찍부터 사료를 수집해 왔다. 최정복의 「대구교회사」가 간행되자 이를 포기했지만, 이때 준비했던 자료들을 「호남발전사」에 활용할 수 있었다. 약 800여쪽에 이르는 「호남발전사」는 해당 지역에 대한 지리인문적 개괄에 이어서 전사(前史)로서 한국천주교회사를 약술했다. 그리고 교구 설정 사실과 당시까지의 교세를 서술하고, 이어 각 본당의 연혁을 기록했다. 이러한 형식이나 작업 방법은 김구정이 쓰게 될 저서들의 기본 틀이 됐다. 김구정은 「호남발전사」를 펴내고 2년 후 달레의 「한국천주교회사」를 참조하며 「영남 순교자」를 집필했다. 서정길 대주교는 1966년 병인 대교난의 백주년과 을해박해 151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이 작업을 그에게 의뢰했다. 여기에서 그는 홍유한이 신앙을 자유로이 실천하기 위해 경상도 영주 고을에 머물렀으므로, 경상도는 한국의 첫 신자가 살던 지역임을 드러내고 싶어 했다. 김구정은 이듬해 부산교구설정 10주년에 맞춰 「천주교 경남 발전사」를 엮었다. 최재선 주교는 부산 교구의 10년간의 발전을 감사하면서 이 작업을 김구정에게 맡겼다. 이어 김구정은 1981년 한국 선교 200주년, 조선교구 설정 150주년과 대구교구 설정 70주년을 맞아 90이 넘은 나이에 「대구의 순교자들」을 엮었다. 이 책은 김구정 자신이 이미 출간한 「영남 순교사」에서 순교자들의 약전을 뽑아 이를 능숙한 표현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이처럼 김구정은 「호남 발전사」 「영남 순교사」 「천주교 경남 발전사」를 차례로 펴내면서 남한 지역 각 교구의 발전을 정리했다. 이에 훨씬 앞서 그는 1930년대 「가톨릭 연구」를 통해 대구교구 25년의 역사를 개괄했다. 그리고 「가톨릭 조선」에 평양교구 10년사, 연길 선교 50년사의 편집을 담당하면서 그 개요를 직접 집필했다. 또 김구정은 「가톨릭 연구」에 ‘교구 설정 전 남선 교회약사’를 집필한 바 있었다. 다시 말하면 김구정은 한국 교회사에서 교구사 집필을 시작한 사람이었다. 그는 교구 단위로 지나온 과거를 살피려고 했다. 그것은 당대 교회가 필요로 하는 주문에 맞춘 작업이었다. 모두 교구 내지는 교구장으로부터 의뢰받은 작품이어서 그의 저서는 늘 해당 교구장이 권두사를 썼다. 김구정은 「호남발전사」에서와 같이 진실한 동료들을 둠으로써 저술의 기회를 얻었다. 또는 그 스스로 각 교구의 기념사업에 맞추어 미리 자료를 준비하기도 했다. 이러한 자료를 기반으로 그는 주문자에 맞춰 자신의 작업을 해낼 수 있었다.김구정은 당대 사회가 요구하는 역사와 알고 싶어 하는 내용을 정확히 알고 있었다. 그는 시선을 사람들이 알고 싶어 하는 내용으로 돌렸다. 그러므로 기존의 교회사가 복음의 전파와 순교사 위주이며 통사였는데 비해 그는 새로운 시선을 가지고 있었다. 그는 교회사연구의 주제와 방법의 폭을 넓혀갔고, 다루는 시기도 자신의 당대로까지 확대했다. 그의 글은 땅 위에 바탕을 둔 사람들의 이야기였으며, 박해기에는 없던 본당의 역사를 담아냈다. 열성적 기록자에서 연구자로흔히들 김구정이 현장을 찾아다녔다고 해서 발로 쓰는 역사가였다고 말한다. 그는 직접 만남을 통해 소통을 이루면서 자료를 찾았고, 또 집필 의뢰를 하는 사람과 교감을 이뤄냈다. 그러다 보니 그의 교회사는 공감을 일으켰고, 당연히 대중화에 이바지하게 됐다. 김구정은 교구사 서술의 기초를 놓고, 교구사 연구의 출발자임이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본격적인 연구자라기보다 아직은 열성적인 기록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했다.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교구사 서술에서 그 교구의 발전이 한국교회서 전반과 가지고 있는 연관성을 밝히려 노력했다. 김구정은 당대 현장자료를 수집하기도 했지만, 또한 문헌자료도 많이 봤다. 그는 당시 공개되지 않았던 「병인 치명사적」 「재판록」 등 귀한 자료를 참고했다. 또한 그는 프랑스어 자료를 오히려 후대의 연구자들보다 더 열심히 읽었다. 주재용 신부는 김구정과 각별한 관계를 갖고 김구정의 교회사 연구와 집필활동에 조언을 아끼지 않았다. 주재용 신부는 「호남발전사」가 출간된 이후에도 150여 군데의 오류를 잡아내고 이를 편지로 알려줬다. 주재용 신부는 말년에 건강 악화로 직접 글을 쓰지 못하게 됐다. 이때에도 주재용은 대필을 시켜서 교회사에 대한 의견을 김구정에게 보내주기도 했다. 주신부는 생애 끝 무렵 「배론 성지」를 탈고해 출판 과정에 있었다. 주신부는 김구정에게 교정을 봐 마무리해 달라는 대필 편지를 보냈다. 그 책은 그렇게 빛을 봤다. 주재용 신부와 김구정이 교회사에 관심을 갖고 저술을 남기던 시절은 교회사를 전공해 정규직을 가질 수 없었고, 또한 연구보조자 한 명 얻지 못했던 때였다. 이 열악한 연구환경을 그들은 연구자들끼리 협조하는 협업을 통해서 극복해 냈다. 오늘의 교회사 연구자들도 그 협업의 현장을 많이 그리워하고 있다. <계속> 백영민2016.09.28

신약의 비유신약성경의 비유(상)허규 신부
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허규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 교수) 예수님은 당신이 전하려는 메시지의 핵심을 뛰어난 문학적 비유를 통해 알기 쉽게 전달한 타고난 이야기꾼이셨다. 그 비유는 교부들과 학자들을 통해 끊임없이 해석됐고, 2000년이 넘게 수많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왔다. 예수님 비유의 시대적 배경과 참된 의미는 무엇일까. 복잡하나 오늘을 사는 우리는 비유를 통해 어떤 지혜와 힘을 얻을 수 있을까. 전문가 해설을 통해 살아있는 예수님의 비유 말씀을 올바로 이해하고 묵상한다. #하느님 나라를 비유를 통해 설명하신 예수예수께서 공생활 시작에 선포하신 것은 “때가 차서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마르 1,15)이다. 마치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는 것은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하는 근거처럼 제시된다. 마르코의 병행 구절인 마태 4,17에서는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기 때문이다”라고 표현된다. 예수님의 선포 안에서 중심이 되는 것은 바로 하느님 나라이다. 이 하느님 나라는 우리가 바치는 주님의 기도에서도 표현된다.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는 하느님의 나라가 예수님의 말씀처럼 도래하기를 바라며 드리는 기도문이다.그렇다면 하느님 나라는 무엇이며, 또 어떤 나라일까? 지금 우리에겐 꽤 익숙한 표현이지만 이것을 처음들은 당시 사람들에겐 낯선 표현이었음이 틀림없다. 이 낯선 하느님 나라에 대해 예수께서는 주로 비유를 통해 사람들에게 설명한다. 공관 복음서에서 사용된 비유 중에 대부분은 “하느님 나라는~에 비길 수 있다” 또는 “하느님 나라는~와 같다”라는 말로 시작한다. 이러한 설명 없이 시작하는 다른 비유들도 내용을 보면 직ㆍ간접적으로 하느님 나라와 관련이 있다. 눈에 띄는 것은 하느님 나라에 관해서 예수께서는 “비유를 들지 않고는 그들(군중들)에게 (아무것도) 말씀하지 않으셨다”(마르 4,33;마태 13,34)는 점이다. 이 말은 다르게 표현한다면 ‘비유가 아니고서 사람들은 하느님 나라에 대해 이해할 수 없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성경에서의 직유와 은유어떤 것을 비교하는 방법은 문학적으로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직유(simile)는 말 그대로 직접적으로 유사함을 가지는 무엇과 비교하는 방법으로‘(마치)~처럼’ 또는 ‘~과 같다’는 표현들과 함께 사용된다. “우리의 삶은 구름의 흔적처럼 사라져 가 버린다. 햇살에 쫓기고 햇볕에 버티지 못하는 안개처럼 흩어져 가 버린다”(지혜 2,5). 지혜서의 이 표현은 직유로 볼 수 있다. 여기서는 직접적으로 ‘삶’을 ‘구름의 흔적’과 ‘안개’와 비교하고 있다.은유(metaphor)는 표현하고자 하는 것과 관련이 있는 특성을 통해 비교하는 방법이다. 예를 들어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마태 5,13)라는 표현은 은유에 해당하는데, 소금이 가진 특성을 통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는 군중들과 비교하는 것이다. 하지만 은유의 경우, 부연 설명이 없으면 어떤 특성을 이야기하는 것인지 모호할 수 있다는 단점을 지니고 있다. 예수께서는 비유에서 소금이 지닌 짠맛과 비교하고 있음을 설명한다. 음식의 맛을 내거나 음식을 보관하는데 소금의 그 짠맛이 사용되는 것처럼, 비유를 듣는 이들도 세상에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역할을 지니라는 뜻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은유는 다시 몇 가지 형태로 구분할 수 있다. 알레고리는 ‘다르게 말하는 것’이다. 하나의 개념을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는 것을 말한다. 알레고리는 은유가 확장된 형태로 보통 상징들과 함께 사용되며, 유사한 점을 통해 비교하는 방법이다. 알레고리는 실제로 주로 사람들을 비교하는 데 사용된다. 특별히 예술 분야에서, 곧 조각이나 그림에서 쉽게 알레고리를 찾아볼 수 있다.비유 역시 은유의 확장된 형태로 볼 수 있다. 비유는 많은 경우 이야기처럼 전개되며 가르침이나 교훈을 주고자 하는 목적으로 사용된다. 이솝의 우화나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님의 가르침이 비유에 속한다.비유는 하느님 나라에 대해 설명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비유에 등장하는 친숙한 요소들을 통해 전혀 새로운 것이었던 하느님 나라에 대해 조금씩 가늠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비유는 두 가지 사실을 모두 알고 있는 사람만이, 곧 하느님 나라와 사람들에 대해 잘 알고 있는 사람만이 사용하는 방법이고, 이런 면에서 예수께서는 하느님 나라와 이 세상에 대해 잘 알고 있었다고 말할 수 있다. 비유들은 한 문장이나 표현으로, 또 하나의 이야기로 전해진다. ※30일부터 매주 금요일 오전 8시, 월요일 오후 8시, 수요일 오후 4시에 평화방송 TV로 시청할 수 있습니다. 백영민2014.05.21

성화 100점 그리고 눈물이 왈칵…그래도 또 그려야죠‘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2016 정미연 전’, 평화신문·서울주보 연재 성화 100여 점 전시 정미연 작, ‘참 포도나무의 예수님’, 70x100cm, 캔버스에 혼합재료 아크릴, 2016 서양화가 정미연(아기 예수의 데레사) 화백은 지난 한 해 동안 100점이 넘는 성화를 그렸다. 매주 평화신문과 서울주보에 연중 전례력에 따른 ‘그림으로 읽는 복음’을 연재한 것. 짧은 시간에 이만큼 많은 작품을 그려낸 화가가 또 있을까. 전례력으로 2015년 대림 시기부터 그리스도 왕 대축일까지 매주 각기 다른 작품을 두 지면에 출품하다 보니 복음을 주제로 한 작품이 그만큼 많이 쌓인 것이다. 이 성화들이 관객을 찾는다. 그것도 국내외 네 군데 연이어서다.정 화백은 4월 6~18일 서울 인사동 가나인사아트센터, 4월 22일~5월 6일 경주 예술의 전당 나우갤러리, 5월 13일~6월 11일 독일 상트 오틸리엔 수도원, 9월 22일~10월 6일 부산 해운대 오션갤러리에서 대형 성화 전람회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2016 정미연 전’을 연다. 지면으로만 접했던 성화를 한꺼번에 ‘원본’으로 감상할 기회다.정 화백에게 지난 1년은 ‘인고의 시간’이었다. 마감일에 맞춰 작품을 해내야 하는 부담감과 함께 “아내이자 엄마로서 가족에게 미안하기 이를 데 없을 정도”로 만사 제쳐놓고 ‘성화 그리기’에 몰두했다. 그는 이동 중에도 수첩과 성경을 지니고 영감이 떠오르면 재빨리 밑그림을 해가면서 ‘복음 여정’을 이어갔다. “하느님 일을 해내겠다는 일념으로 막상 임했지만 쉽지 않았어요. 남편(소산 박대성 화백)이 지난해 경주 솔거미술관을 개관하는 중대한 일에도 더 정성껏 보필하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말씀에 빠져 고민하는 제게 번뜩이는 영감을 주시고, 발목을 다쳐 목발을 짚고 그림 그릴 때에도 ‘겸손’을 깨닫게 해주셨죠. 이렇게 관객들과 만날 좋은 기회도 보너스로 주셨잖아요.”마감에 쫓긴 1년은 인고의 시간성화에 대한 호평과 항의도 받아성화 그려온 체험 글로 엮은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출간매주 신자들과 성화로 만나다 보니 “그림 속 예수님이 좋다”는 호평도 재깍재깍 왔다. 중반 이후부터는 호랑이, 새남터성지 등 한국적인 요소도 가미했다. 창작의 고통이 체험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어떤 때엔 “어떻게 분노하는 예수님을 그릴 수 있느냐”는 등 몇 차례 항의도 받아 본의 아니게 표현의 폭을 조절해야 하기도 했다. 1년 뒤 정 화백은 켜켜이 쌓인 성화 100점을 펼쳐놓고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을 흘렸다. 오랜 시간 참아낸 창작의 고통을 예수님이 마치 “애썼다” 하며 손을 내미는 듯했던 것이다.이처럼 정 화백의 체험이 고스란히 담긴 이번 전람회는 △그림으로 읽는 복음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 △사도 바오로의 길 △십자가와 14처 △한지 작품 등 총 5개 부문으로 나뉜 대형 전시다. 동양의 구도자를 닮은 12사도화를 비롯해 2011년 평화신문에 연재한 ‘위대한 선교사 사도 바오로’ 작품들도 선보인다.전시의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궁극의 주님 모습’을 그려낸 2m 높이 대형 성화 네 작품이다. 수놓듯 그려진 한복 차림의 예수님과 성모자화로, 온화한 미소가 눈길을 사로잡는다. 성화를 그려온 기쁨의 세월을 작품과 함께 글로 엮은 새 책 「하느님의 시간, 인간의 시간」(으뜸사랑) 출판기념회도 전시 첫날(4월 6일) 열린다. 정 화백은 책에서 “보잘것없는 인간의 시간 위에 하느님의 시간이 포개어지는 순간, 삶은 신비로 가득하다”고 설명했다. 아울러 5월 독일 전시는 ‘한국의 성화’를 현지에 알리는 계기가 될 것이라고 기대했다.“성화를 매주 그려 달라는 요청이 또 오면 응하겠느냐”는 물음에 “당연히 해야죠. 하느님이 주시는 영광스러운 일이잖아요”라는 즉답이 돌아왔다.“하느님께서 손 내미시는데 어쩌겠어요? 이 모든 건 제가 하는 게 아닌걸요.”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백영민2016.03.24
[성경 속 생명이야기] 15. 영원한 생명을 얻으려면 성경화 체칠리아(가톨릭교리신학원 강사) 한 젊은이가 영원한 생명을 얻고 싶어하며, 예수님께 다가가 묻습니다. 영원한 생명을 얻기 위해 무슨 선한 일을 해야 하느냐고…. 예수님께서는 해야 할 선한 일을 가르쳐 주시기보다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마태 19,17).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은 곧,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게 되는 것입니다. “생명의 말씀”(1요한 1,1)이신 예수님께서는 하느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길이 주님의 계명을 지킴으로써 시작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어 어떤 계명을 지켜야 하는지를 묻는 젊은이에게 십계명의 하나인 “살인해서는 안 된다”를 말씀하시며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레위 19,18)고 하십니다. 결국, 인간 생명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보이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의 첫 장인 하느님의 창조 행위에서부터 정확하게 드러내 보여줍니다. 다른 피조물들은 창조하실 때는 단순히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생겨라” 하시자 생겨났다고 우리에게 전해 줍니다. 그리고 사람을 만드시기 전에는, 조금은 특별하게 신경 써서, “우리와 비슷하게 우리 모습으로 사람을 만들자”(창세 1,26) 하시고, 당신의 모습으로 사람을 창조하셨다고 전해 줍니다. 덧붙여 정성스레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숨을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명체가 됐다(창세 2,7)고 합니다. 이렇게 창조주와 특별한 관계를 갖고 있는 인간, 곧 인간의 생명은 신성하며 어느 누구도 함부로 해칠 권리가 없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그리고 인간에게만 하느님께서 복을 내리며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는 사명을 주십니다. 노아의 홍수 이후에 노아와 계약을 맺으시면서 살아 움직이는 모든 것을 인간 생명을 위한 양식으로 허락해 주시면서도 남의 피를 흘린 사람에게 사람의 생명에 대한 책임을 물을 것임을 선언합니다. 인간 생명에 대한 규정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시나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느님과 계약을 맺으면서 십계명을 받습니다. 탈출기에서 보여주듯이 십계명은 시나이산 기슭 거룩한 곳에 모인 이스라엘 백성을 만나러 오셔서 직접 주신 말씀입니다(탈출 19,17-18). 백성들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을 보여주시는 부분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구약의 율법을 경직되거나 구속적이라고만 볼 것이 아니라 구약의 계명이 지닌 특별한 성격을 다시 염두에 둬야 할 것입니다. 이 계명은 자유롭게 하는 법이며 제한하는 법이 아니라 계시의 법이고 하느님께서 자신의 길로 들어오기를 바라는 백성에게 주신 법, 계명인 것입니다. 마태오 복음에서 예수님께서 영원한 생명을 찾는 젊은이에게 우선 지키라고 하신 계명은 하느님께서 사랑하시는 당신 백성에게 시나이산에서 주셨던 것이고, 인간의 성장과 기쁨을 위한 선물입니다. 계명을 지키는 것의 시작은 “살인하지 않는” 것이며, 이 계명을 완성시키는 좀 더 세부적인 규정은 “너희는 마음속으로 형제를 미워해서는 안 된다.…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레위 19,17-18)는 것입니다. 결국 살인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는 형제에 대한 미움이나 앙갚음을 “마음속으로”라도 품어서는 안 됨을 레위기 규정에서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게 될 것입니다. 구약의 율법이 적극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는 것(살인하지 않는 것)과 죄로 이어질 수 있는 속마음을 품지 않는 것(미워하거나 앙심을 품지 않는 것)을 계명으로 규정했다면,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는 적극적이고 실천적 행동을 취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리고 그것이 사람에게는 불가능하지만, 하느님께 매달려 있으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말씀하십니다. 각자 자리에서 자신의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인간, 모든 인류를 살리는 길이 될 것입니다. 평화신문2014.05.28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47>](//cpbc.co.kr/CMS/newspaper/2016/04/rc/628630_1.0_titleImage_1.jpg)
[전영준 신부의 가톨릭 영성 산책] 영적 지도자 영적 지도자는 피지도자가 교회의 믿음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도록 교리 지식·교양·학식 등을 쌓는 노력 평생 지속해야 한다. 그래픽=문채현 여성으로서 처음 교회학자로 선포된 아빌라 출신 예수의 데레사는 저서에서 영적 지도자에 대한 개인적 견해를 자주 언급했습니다. 아마도 데레사는 오랜 수도 생활 중 많은 고해 사제와 영적 지도자를 모셨기에 나름대로 견해를 갖게 됐을 것입니다. 먼저 데레사는 영적 지도자에 대한 일반적인 견해를 밝힙니다. “모든 그리스도 신자는 할 수만 있다면 교양 있는 지도자에게 마음을 열어 밝히도록 힘쓸 것입니다. 뛰어난 학식을 갖춘 분이라면 더 말할 나위 없이 좋겠지요. … 묵상기도에 전심하지 않는 학자는 묵상기도를 하는 사람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못한다고 말하는 등, 잘못 생각하는 일이 없도록 해 주십시오”(「자서전」 제13장, 17~18). 개인적인 성덕은 다소 부족하더라도 학식이 뛰어난 자가 오히려 영적 지도자로서 더 적합하다는 견해입니다.데레사는 동료 수도자에게도 똑같이 권고합니다. “딸들이여, 항상 유식한 분들의 의견을 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신중함과 진리로써 완덕의 길을 일깨워 주실 것입니다. 수도원장은 자기 직책을 잘 이행하고 싶으면 학문이 있으신 분을 고해 신부로 모시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렇잖으면 자기 딴에는 성덕의 행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숱한 과오를 저지르게 될지도 모를 일입니다. 수하 수녀들을 위해서도 학식 있는 분을 고해 신부로 가려 주어야 합니다”(「창립사」 제19장, 1).그런데 데레사는 한 명의 영적 지도자를 특별히 기억했습니다. “우리 영혼의 모든 비밀과 주께서 주신 은총을 교양 있는 신부에게 털어놓고 또한 그분에게 순종하는 것을 게을리 말 것입니다. … 내 고해 신부 중 한 분은 나에게 퍽 쓰라린 생각을 가지게 했습니다. … 그러나 내게 좋은 일을 가장 많이 해준 분 역시 그분이었다고 생각합니다”(「자서전」 제26장, 3). 사실 예수회 소속 발타사르 알바레즈 신부는 20대 중반 서품 1년 차 때 데레사의 영적 지도자가 됐습니다. 다른 많은 사람들의 영적 체험에 대한 이해도 부족했고 본인의 영적 체험도 미진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영적 체험에 대한 수많은 신학 서적을 읽고 배워가며 6년 동안 영적 지도를 했고, 데레사도 가장 만족했던 영적 지도자로 기억했습니다.현대 영성신학에 따르면,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해서는 신앙 공동체 안에서 피지도자에게 신뢰를 얻어야 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피지도자의 모든 이야기를 경청하는 개방된 자세를 지녀야 하며, 자신감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일반적 원칙을 우선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더 나아가서 체험에만 국한되지 말고, 계속해서 공부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즉, 영적 지도자가 신학 모든 영역에서 해박한 박사일 필요는 없더라도, 피지도자가 교회의 믿음을 올바르게 이해할 수 있도록 역사, 문화, 철학적 배경 속에서 교리 지식을 익혀 기초를 튼튼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중에서도 성경 연구는 가장 좋은 공부라 할 수 있습니다. 아울러 여유가 있다면 인간 이해를 도모하고자 약간의 현대 심리학을 공부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고 이야기합니다.영적 식별을 위해 영적 지도의 필요성을 강조한 「영신수련」의 저자 로욜라의 이냐시오는 타고난 재능 때문에 영적 지도자로 양성되는 데 따로 준비하지 않아도 훌륭한 영적 지도자의 면모를 드러냈습니다. 하지만 모든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이런 능력을 지니는 것은 아니기에 영적 지도자가 되기 위한 준비 과정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준비 과정은 영적 지도자에게 평생 지속돼야 합니다.모든 사제가 영적 지도자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사제 이외에 일반 신자도 영적 지도자일 수 있습니다. 중요한 점은 영적 지도를 체험 자체에만 초점을 맞춰 생각하지 말고 체험으로 이끄는 학문적 능력을 갖추는 것이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양과 학식을 갖춘 영적 지도자를 찾으라는 예수의 데레사의 이야기는 아주 의미 있는 권고입니다.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성신학 교수> 백영민2016.04.06
![[신앙단상] 귀향 입시 수험생들과 함께](//cpbc.co.kr/CMS/newspaper/2015/04/rc/567256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귀향 입시 수험생들과 함께안영 실비아(소설가) 살아가면서 가끔 느끼는 것이 있다. 평소 전혀 계획도 없었는데, 뜻밖에 주어지는 일. 거기엔 분명 하느님의 이끄심이 작용했을 거라는 믿음이다. 1999년, 새 천년은 후배에게 물려주는 게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정년을 몇 년 앞두고 과감히 정든 교단을 떠나왔다. 그리고 곧바로 성경공부를 시작했다. 마침 우리 본당인 분당 성 요한 성당에서 성서 40주간이 시작되었다. 가르치는 생활에서 배우는 생활로 내려오니 긴장이 풀리면서 더욱 행복했다. 시작하기 참 잘했다며 1년을 보람 있게 마쳤다.말씀에 맛을 들이자 이게 바로 하느님께 대한 효도로구나 싶어 더 공부하고 싶었다. 새 천 년을 맞아 성 바오로딸 통신성서 교육원에 등록했다. 구약과 신약 입문 과정을 끝내고 다시 중급 과정을 거쳐 마지막 바오로 영성까지 총 8년을 쉼 없이 달렸다. 모두 9년을 말씀과 함께 살았다. 그때 크게 깨닫고 아쉬워했던 것은 ‘아, 젊었을 때 이 공부를 해야 했는데…’였다. 그야말로 삶의 세세한 지침이 말씀 속에 다 녹아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내 생애 마지막 졸업식 날, 영광의 졸업장과 함께 주어진 것이 ‘성경교사 자격증’이었다. 나는 피식 웃었다. 늘그막에 아이를 갖게 되리라는 말을 듣고 피식 웃던 아브라함의 아내 사라처럼!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이 자격증이 진짜로 유효해, 칠순 나이에 우리 본당 어르신 대학인 요한대학교 통합반 성경 교수로 임명을 받게 된 것이다. 그리하여 벌써 7년째, 매주 목요일이면 꽃단장을 하고 출근한다. 사회에서의 모든 지위를 내려놓고 어린이가 되어 나오신 평균 76세 삼백 명 가까운 남녀 학생들 앞에서 말씀 봉사를 하기 위해서다. 그분들은 각자의 취미반으로 흩어지기 전, 첫 시간을 나와 함께 공부한다. 나는 이 책 저 책 뒤지며 열심히 준비해 가능한 한 알기 쉽고 재미있게 말씀을 전달하려고 노력한다. 무릇 모든 봉사의 첫 수혜자는 본인이듯 나도 이 일 덕분에 말씀을 깊이 배우는 즐거움과 함께 남녀 학생들의 과분한 사랑을 받으며 노후의 행복을 누리고 있다. 이를 어찌 하느님의 이끄심이라 느끼지 않겠는가. 우리 세대는 그동안 많은 입시를 겪어왔다. 중ㆍ고등학교와 대학 입시, 그보다 더 어려운 취직 입시, 혼인 입시, 그 이상 입시는 없는 줄 알았더니, 뒤늦게 훨씬 더 어려운 마지막 입시가 남아 있음을 알았다. ‘죽음 입시’다. 나는 그것이 우리가 본향으로 떠날 때 꼭 통과해야 하는 관문이기에 ‘귀향 입시’라고 이름 지었다.노년에 들어 결혼식보다는 가족 친지들의 장례식이나 병문안을 많이 다니게 되었다. 그때마다 잘 죽는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새삼 느낀다. 오죽하면 입시라고 생각했을까. 아무리 백 세 시대가 왔다지만 경로우대 나이를 지나면 귀향 입시 준비는 해야 할 것 같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 요한대학 학생들은 모두 귀향 입시 수험생인 셈이다. 그리고 이 입시를 위한 필수과목은 바로 성경 공부가 아니겠는가. 겨울나무를 볼 때마다 생각한다. 무성하던 나뭇잎 다 떨어뜨리고 앙상한 가지로 남아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모습의 겨울나무! 우리도 겹겹으로 덕지덕지 달고 있던 모든 것들 다 내려놓고 오롯이 가벼워진 몸이 아니면 어찌 하늘나라에 오르랴. 성경 말씀을 열심히 배우고 나눔과 섬김, 용서, 비움 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다 보면 점점 가벼워지지 않을까? 지상의 나그네 생활 다 마치고, 태초에 하느님께서 마련해 주신 에덴동산, 요한 묵시록에 나오는 새 하늘 새 땅을 찾아서 떠나게 될 날은 언제일까. 그날 그 시간을 설렘으로 기다리며 오늘도 열심히 성경을 읽는다. 평화신문2015.04.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