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 사목자를 찾아서] (2) 최창화 몬시뇰(서울대교구 원로 사목자)](//cpbc.co.kr/CMS/newspaper/2017/07/rc/689920_1.0_titleImage_1.jpg)
[원로 사목자를 찾아서] (2) 최창화 몬시뇰(서울대교구 원로 사목자)사제, 하느님 사업 쉬어선 안 돼… 어르신 위한 사목하고 싶어 서울 선릉로 김성학관에서 생활하고 있는 최창화 몬시뇰은 기회가 주어진다면 또래와 어르신들을 위한 사목을 하고 싶다고 했다. 리길재 기자 “일생을 검고 긴 수단 밑에서 성의를 맵시 있는 양복으로 아시고, 매일 미사 지내심을 천주님의 뜻으로 아시고, 또 기쁜 마음으로 길 잃은 양들을 인도하소서. 그리고 마음이 썩고 가난한 죄인들을 애인과 같이 손을 잡아 이끌어주시고, 길을 모르는 불쌍한 무리에게 사랑하는 이에게 하는 포옹을 해 주소서.”1971년 12월 사제 수품 때 서울대교구 오류동본당 신자들이 쓴 축하 글이다. 서울대교구 원로 사목자 최창화(토마스 아퀴나스, 74) 몬시뇰은 사제가 된 후 신자들로부터 받은 첫 편지 속의 염원을 지금까지 마음 깊이 새기며 그리스도를 닮은 거룩한 사제로 살아가고 있다. 2014년 2월 서울대교구 특수 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직을 사임하고 사목 일선에서 물러난 최 몬시뇰은 순교자 현양 사업과 아시아 본토인 사제 양성을 통한 복음화 사업, 우리 민족의 화해와 통일을 위한 남북한 교류와 인도주의 대북 지원 사업에 큰 업적을 남긴 착한 목자요 주님의 충실한 종이다. 최 몬시뇰은 1943년 평안남도 안주읍에서 출생해 1971년 사제품을 받았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수품 동기다. 서울대교구 돈암동ㆍ청량리본당 보좌를 시작으로 구파발ㆍ응암동ㆍ개봉동 주임을 지냈다. 1987년 가톨릭중앙의료원 원목실장 겸 강남성모병원 원목으로 처음 특수 사목을 시작한 그는 영국 연수를 마친 후 돈암동ㆍ천호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다. 이 시절 주교회의 북한선교위원회 총무를 겸임한 그는 새천년기가 시작하기 전인 1999년 서울대교구 사무처장으로 임명돼 7년간 재임하면서 서울대교구 시노드를 성공적으로 이끌었다. 2003년 8월 몬시뇰로 서임된 그는 2006년부터 2014년 사목 일선에서 물러날 때까지 중서울지역과 특수 사목 담당 교구장 대리로 일하면서 민족화해위원회와 직장 사목, 일반병원 사목, 경찰 사목, 순교자현양회의 기틀을 마련했다. 요즘 최 몬시뇰은 “고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면서 “기회가 있다면 또래 은퇴자들과 어르신들을 위한 사목을 하고 싶다”는 열정을 드러냈다.특수 사목 사제와 원로 사목자를 위한 숙소인 서울 선릉로 김성학관과 경기도 용문 집을 오가면서 생활하고 있는 최창화 몬시뇰을 만났다.▶근황이 궁금하다. “고독을 사랑하는 법을 배우고 있다. 매일 미사와 기도로 일과를 시작해 성경 묵상, 클래식 기타ㆍ아코디언 독학, 영어 공부, 텃밭 가꾸기 등으로 소일을 하고 있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어깨며 팔다리며 여기저기 아프기 시작해, 한 달에 4번은 정기적으로 병원에 간다. 찾아오는 이들도 없어 은수자처럼 살고 있다. 특별히 감사 기도를 많이 한다. 하느님과 신앙을 전해 준 선조들에게, 부모에게, 교회와 은인들에게 감사하는 기도를 바친다. 또 함께 교회 안에서 살다가 먼저 세상을 떠난 사제들과 교우들을 위해서도 기도한다. 이젠 사목과 같은 공적인 일과는 확연히 멀어진 것 같다.” ▶갑자기 사목 일선에서 물러나셨다.“개인적으로 교구장 대리 자리가 아니더라도 2016년 병인 순교 150주년까지 일하고 싶었다. 2013년 12월 말 서울대교구에 젊은 두 분의 주교가 탄생했다. 경사요 축복이었다. 그때 피정 중이었는데 새 주교들이 사목을 잘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교로서 첫 출발점에 있는 두 분께 내가 장애물이 되어선 안 되겠다는 생각에 일선에서 물러나는게 도리라고 결심했다. 아쉬움도 컸다. 무엇보다 전혀 준비가 안 되었기에 스스로 결정하고서도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한동안 방황도 많이 했다.”사람이 그리워서인지 최 몬시뇰은 된더위에도 밖에 나와 기자를 기다리고 있었다. 환하게 웃으며 반갑게 맞아 주었지만 벌겋게 달아오른 얼굴에 땀이 맺힌 걸로 봐서 한참을 나와 있었던 것 같았다. 숙소로 들어가자마자 찬 생수를 권하면서 서소문성지 조성사업을 걱정했다. 최 몬시뇰은 최기복 신부와 함께 서소문역사공원과 순교성지 조성 사업이 내년에 완공되면 한국 천주교의 과거 오늘 미래를 작품화한 나전칠화 작품을 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을 만큼 아직도 순교자 현양 사업에 뜨거운 열정을 품고 있었다.▶꺼져 가던 순교 신심에 불을 지피고 순교자 현양 사업도 활성화하는 큰일을 하셨는데. “2003년 몬시뇰에 서임된 직후 교구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됐다. 순교자를 본받기 위해 순교자 현양 미사, 기도, 성지순례, 성지 안내 봉사자 양성 등 많은 일을 했다. 그중에서도 보람된 게 몇 가지 있는데 먼저 서울 여의도에 103위 시성 기념비와 광화문 광장에 124위 시복 기념 표석을 설치한 일이다. 103위 시성 기념비를 세울 때는 참 많은 어려움이 있었는데 큰 도움을 준 여규태 전 한국평협 회장께 감사드린다. 또 2013년 서울대교구 성지순례 길인 말씀ㆍ생명ㆍ일치의 세 길을 조성해 염 추기경께서 선포한 일이다. 무엇보다 보람있는 것은 김대건 성인 기념 사업회를 창립해 아시아 본토인 사제를 양성해 복음 선교의 길을 초석을 마련한 일이다.”▶김대건 성인 기념 사업회에 사재를 내놓을 만큼 애정이 컸던 걸로 알고 있다.“원래 이 일은 1997년 배갑진 신부가 ‘김대건 성인 장학회’를 창립하면서 시작됐다. 정진석 추기경이 먼저 사재를 털어 장학기금을 내놓으면서 종잣돈이 돼 2008년 김대건 성인 기념 사업회로 새롭게 출범했다. 개인적으로 이 사업회를 위해 선친의 조의금 전액을 내놓기도 했다. 이후 국제신학교인 가톨릭대학교 성신교정에 중국, 베트남, 스리랑카 신학생들을 받아들여 지금까지 5명의 사제를 배출했고 현재 4명의 신학생이 공부 중이다. 이들이 한국 교회를 얼마나 이해하고 협조할지는 두고 봐야 하겠지만, 아시아 선교를 위해 본토인 사제를 양성했다는 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다.”최 몬시뇰은 1995년부터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장으로 퇴임 때까지 20년 가까이 일했다. 민족화해센터를 짓고 다섯 차례 북한을 방문해 다양한 대북 지원 사업과 민족의 화해와 일치, 한반도 평화를 위해 아낌없이 헌신했다.▶만 19년을 우리 민족을 화해와 일치를 위해 일하셨다.“소임을 맡았을 때 북에서 ‘고난의 행군’이 한창일 때였다. 무엇보다 북한 주민들의 식량난을 해소해 주기 위해 노력했다. 옥수수와 밀가루, 영양제, 약품 등을 지원했다. 문제는 북한이 변화가 없다는 것이다. 통일 이전이라도 이산가족끼리 왕래가 정례화 됐으면 좋겠다. 서신 왕래만이라도 자유로웠으면 한다. 그리고 민간 교류와 인도주의적 지원 사업은 중단되어선 안 된다. 새 정부가 남북 대화를 시도하려고 노력하는 일은 잘하는 것이다.”▶남북 교류가 중단된 상태이다. “무엇보다 영적으로 강해져야 한다. 우리 민족을 위해 또 통일을 위해 더 많은 기도와 지원이 필요하다. 다시 통일의 붐이 일어나야 한다. 그러려면 민화위 활동을 좀 더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탈북자들을 교회 내 통일 일꾼으로 양성해 그들을 중심으로 기도 운동과 민화위 홍보 사업, 대북 지원 사업을 펼치면 더 좋은 결과가 있을 듯하다. 탈북자들이 세례를 받고 신자가 되면 신앙과 열정으로 고향과 조국에 대한 평화 운동을 펼칠 것이다.”그는 46년 사제 생활 동안 절반씩 본당 사목자와 특수 사목자로 살았다. 인천교구장 정신철 주교를 비롯한 아들 신부만도 10명이나 된다. 사제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는 맏형 최창정(요아킴, 1937~1984) 신부에게 배웠다.▶본당과 특수 사목 분야를 각각 20년 넘게 고루 해 보셨다.“1999년 교구장 정진석 추기경께서 교구 사무처장으로 와서 일하라 했다. 그때 나를 ‘밀레니엄 사무처장’이라고 불렀다. 6년간 사무처장으로 일하면서 영적으로나 외적으로 많이 성장했다. 본당과 특수 사목 분야의 한정된 시야에서 벗어나 교구 전체를 보는 시야를 가지게 됐다. 2000년 대희년을 지내고 교구장을 보필해 교구 시노드를 진행했다. 의정부교구도 독립시키고 생명 운동 등을 추진하면서 사제는 뭐든지 소홀히 해선 안 된다는 것을 배웠다.”▶맏형인 고(故) 최창정 신부가 큰 버팀목이었다고 들었다.“형님은 늘 좋은 사제가 되라고 조언을 해 줬다. 그때는 잔소리 같았는데 돌아가신 후 내게 아무도 충고해 주는 사람이 없다. 미사 중에 형님을 위해 많이 기도한다. 나보다 10년 앞서 1961년 사제품을 받은 형님은 1965년 군종신부로 파월했다가 고엽제 때문에 많은 고생을 했다. 늘 기침을 하고 허리 통증을 호소했다. 그런데도 독일의 한국인 간호사와 광부, 선원들을 위해 자원해 함부르크 교포 사목을 떠났다. 가난한 사람들과 함께하고 그들의 벗이 됐다. 1984년 방한하신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강복을 받은 후 선종했다.”▶후배 사제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은 “사제 생활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같다. 좋은 날이 있으면 흐리고 폭풍우가 오는 날도 있다. 그러므로 자신을 통제할 줄 아는 인내심을 길러야 한다. 힘들 때마다 속상해 하지 말고 웃어라. 많이 웃을수록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잔걱정은 필요 없다. 걱정을 끊고 성령의 도우심을 청해라. 매일 하느님께 사제로 잘살도록 도와달라고 기도하라. 기도하면서 사는 게 중요하다. 50년 가까이 사제로 살다 보니 모든 것이 주님의 뜻이요 도움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매사에 감사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사목하길 바란다.”▶사제로서 하고 싶은 공적인 일이 있다면“우리 또래와 어르신들을 위해 사목하고 싶다. 한국 교회가 당면한 과제 중 하나가 노인사목과 원로 사목자 문제다. 매해 수십 명의 원로 사목자들이 나올 텐데 교구가 그들의 숙소조차 모두 보장해 줄 수 없는 때가 올 것이다. 젊은 사제들이 노인 사목을 효과 있게 한다는 것도 어불성설이다. 원로 사제들을 본당 사제들과 협력해 노인사목을 할 수 있는 방안을 교구에서 마련해 줬으면 한다. 원로 사목자들이 본당 일에 간섭하지 않는 장치만 마련한다면 큰 문제가 안 될 듯하다. 특수 사목은 많은 부분에서 교구 지원을 직접 받아야 한다. 그래서 본당을 활성화해야 한다. 사제는 하느님의 사업을 쉬어선 안 된다. 그 나이에 맞춰 할 수 있는 일들이 많다.”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백영민2017.07.26
![[생활 속의 복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루카 2,16-21)](//cpbc.co.kr/CMS/newspaper/2016/12/rc/665810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루카 2,16-21)정연정 신부
서울대교구 화곡본동본당 주임 오늘은 2017년 새해 첫날이며, 교회는 천주의 성모 마리아 대축일을 지냅니다. 아울러 ‘세계 평화의 날’을 지냅니다. 올 한 해도 우리 모두가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성모님의 모습을 닮아 살면서 주님의 평화가 온 누리에 충만해질 수 있도록 해야 하겠습니다.1.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5년 전에 이미 한 차례 암에 걸렸던 자매님이 다른 곳에 암이 재발하여 입원하게 되었다고 병자성사를 청하셨습니다. 제 눈에 들어온 그분은 깡말라진 몸에, 머리는 빡빡 깎은 초라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발병하기 전에 그분은 아들 셋을 남부럽지 않게 키우려고 유치원 버스 기사도 마다치 않았던 강인한 엄마로 살았다고 합니다. 그분의 눈에 고인 눈물에서 아이를 낳은 모성(母性)이 얼마나 큰 힘을 발휘하는 신비인지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그들이 거기에(베들레헴) 머무르는 동안 마리아는 해산 날이 되어”(루카 2,6) 예수님을 낳으셨습니다. 그래서 마리아는 예수 그리스도의 어머니십니다. 그러기에 성모님은 세상의 모든 어머니가 지녔던 모성뿐만 아니라,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따르는 모성도 사신 분이십니다.2.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아들이시며 하느님오늘 제2독서에서 우리는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갈라 4,4)는 구세경륜(救世徑輪)에 대한 바오로 사도의 선포를 들었습니다. 이 선포는 우리가 어떻게 하느님의 자녀로서 살게 됐는지를 잘 설명해줍니다. 아울러 마리아께서 지니신 ‘하느님의 어머니’라는 신적 모성(神的母性)에 대한 믿음을 자연스럽게 고백하게 된 단초(端初)를 제공합니다.그리하여 에페소 공의회(431년) 교부들은 “마리아는 성령의 능력에 의해 당신의 동정 품 안에 잉태를 하시어 아버지와 본질이 같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낳으셨기 때문에 ‘하느님의 어머니’이신 것”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회칙 「구세주의 어머니」 4항 참조)3. 마리아는 하느님의 어머니벨기에의 쉬넨스(L.J.Suenens) 추기경은 “마리아의 존재에 관하여 성경이 계시하고 있는 것은 순수하고 단순합니다. 즉 하느님이시고 인간이신 그리스도는 한 분의 어머니가 계시고, 그 이름은 마리아라는 것입니다. 이것으로 충분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오늘 복음에서 “마리아는 이 모든 일을 마음속에 간직하고 곰곰이 되새겼다”(루카 2,19)고 밝혀주면서, 성모님의 모습과 품성에 대하여 헤아릴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이를 통하여 우리는 마리아께서 이미 처음부터 ‘하느님의 어머니’로서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명에 대해 ‘완전히 개방된’ 사실을 다시금 깨달을 수 있습니다.(「구세주의 어머니」 39항 참조)4. 마리아는 교회의 어머니 : ‘앞서는’ 믿음몇 년 전에 한 신자로부터 받은 편지의 일부입니다. “요즘 저는 어린아이가 말을 배우며 세상의 경이(驚異)를 체험하는 것만 같은 심정입니다. 바라고 희구하고 매달리는 기도에서 벗어나 내 안에, 우리 안에 깃든 주님의 뜻을 살피고 기다리는 기도를 하게 되었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께서는 “마리아의 영웅적인 믿음은 교회의 사도적 증언에 ‘앞서는’ 것”이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구세주의 어머니」 27항 참조) 여기서 ‘앞서는’ 믿음이 바로 우리가 성모 마리아로부터 배워야 할 부분입니다. 성모께서는 그 누구보다도 큰 것을 이루려고, 더 많은 것을 생각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분께서는 오로지 ‘하느님께서 기억하시는 자비’(루카 2,54 참조)에 자신을 온전히 의탁하는 길을 택하셨습니다. 그 길이 성모님께 하느님의 역사와 섭리를 체험하게 하였습니다. 또한 그 길은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루카 1,38)라고 응답할 수 있도록 일깨워주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성모님의 믿음을 본받아 더욱더 주님께 의탁하여 평화와 사랑의 길에서 충만하게 되시길 빕니다. 아멘. 평화신문2016.12.28
![[아! 어쩌나] 375. 회개란 무엇일까요](//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7504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375. 회개란 무엇일까요홍성남 신부
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문 : 오랫동안 냉담하다 최근에 다시 성당에 나오게 됐는데, 저를 다시 나오게 한 분이 “회개하고 죄를 끊고 완전한 사람이 되라”고 하십니다. 그분은 수도자처럼 사는 분이라 심리적 부담감이 커집니다. 그래서 마음 한구석에선 냉담 교우로 살 때가 더 편하지 않았나 하는 생각도 들고 성당에 가기가 무섭습니다. 믿음이 부족해서일까요?답 : 그렇지 않습니다. 형제님의 문제는 신앙적 과제들을 너무 무겁게 받아들여서 그런 것이니 걱정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선 회개에 대한 버거운 마음을 가볍게 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흔히 회개라고 하면 길거리에서 회개하라고 외치는 사람들의 이미지를 떠올릴 때가 많습니다. 그리고 회개하는 삶이란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신앙에 매진하는 것으로 생각하기도 합니다. 실제로 어떤 종교는 신자들에게 그런 삶을 요구해 가정 파탄의 원인을 제공하기도 합니다.그러나 회개는 그렇게 부담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를 무겁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심리적 문제가 심각한 이들이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됩니다. 회개란 ‘마음의 눈이 뜨여 기도하는 삶을 사는 것’을 말합니다. 예를 들면 우리는 일상을 살면서 감사하지 않고 짜증 내고 분노하고 우울해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역경을 겪으며 자신의 살아있음이 자신의 힘이 아니라 하느님의 힘으로, 그분의 은총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체험하기도 합니다. 그때 자신이 교만했음을 고백하고 하느님께 의탁하는 삶, 일상의 삶에 감사하는 마음을 갖게 됩니다. 그렇게 감사하는 마음을 갖는 것이 바로 회개한 마음입니다.또 자신에게 마음의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분노하다가 그 분노의 끝자락에서 자신이 지은 죄를 볼 때도 있습니다. 하느님께서 그렇게 많은 죄를 지은 자신을 용서해주셨구나 하는 자각이 들면 부끄러움을 느끼고 하느님께 감사하고, 다른 사람들을 용서할 뿐 아니라 그들에게 용서를 구하고 싶은 마음이 듭니다. 이처럼 자신의 이기적인 감정과 욕구에 사로잡혀 심술 난 아이처럼 짜증 내고 우울해 하면서 살다가 심리적으로 눈이 뜨여 하느님 현존을 느끼고 감사하고 용서를 청하는 삶을 회개하는 삶이라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들은 마음이 즐겁고, 기도하고 싶어하고, 성경을 읽으면서 그 맛을 느낍니다. 어린아이처럼 하느님이 자신의 아버지임을 체험했기에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이지요. 이처럼 회개에서는 하느님의 큰 사랑을 체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이러한 감사와 사랑을 체험하지 못하고 억지 회개를 하고자 하면 심리적으로 부담감이 생기고 병적인 죄책감과 자기 기만적이며, 때로는 자학적인 기도 생활을 할 수도 있으니 조심할 일입니다. 우리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기면 자신의 모습을 다듬으려 합니다. 그처럼 우리도 하느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를 체험하면 그분의 마음을 상하게 하지 않으려고 죄를 끊으려 노력합니다. 이렇게 물이 흐르듯 마음이 변화를 일으켜야 회개가 주는 기쁨을 맛볼 수 있습니다. 그렇지 않고 인위적이고 작위적인 회개에 집착한다면 하느님께 대한 사랑은커녕 사람들에게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를 보여주려는 의도에서 길거리 회개 이벤트를 벌이는 광대 짓을 할 수 있으니 조심해야 합니다.영성 심리 관점에서 회개는 자기의 삶을 다듬어가는 과정이라고 봅니다. 떼이야르드 샤르댕 신부가 말한 것처럼, ‘사람은 그리스도라는 정점을 향해 진화해가는 존재’입니다. 성숙한 존재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존재라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회개하는 삶이며, 사람들이 모두 자신의 약함을 고백하고 성숙해지기 위해 노력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 하느님 나라라고 불리는 곳입니다. 회개하는 삶을 산다면서 마음이 어둡거나 무겁고 우울하다면, 그것은 잘못된 회개이고 피상적인 회개, 작위적인 회개로 일어나는 병적인 현상입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평화신문2017.01.10
![[신앙단상] 마리아의 지복지관, 그리고 순명](//cpbc.co.kr/CMS/newspaper/2016/04/rc/632281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마리아의 지복지관, 그리고 순명이백만 요셉(캄보디아 하비에르학교 홍보대사) 성모 마리아님의 ‘평생 동정’과 관련하여 꽤 난감한 사건을 경험한 적이 있다. 5년 전 스페인을 여행하고 있을 때였다. 가우디의 성가정성당을 보고 난 후였다. 한 남성이 도발적인 언사를 던졌다. “마리아는 평생 동정으로 살지 않았어요. 신약성경에도 나와 있잖습니까.” 아니, 이럴 수가! 나는 그 사람의 말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었지만, 성경 지식이 빈약한 처지여서 대응에 한계가 있었다. 옆자리의 아주머니들이 발끈했다. “듣자 듣자 하니 너무하네요. 무슨 망발입니까? 성경을 얼마나 아시는지 모르겠지만…, 성모님을 모독하지 마세요!” 나중에 알고 보니, 그 자매님들은 같은 성당에 다니는 독실한 신자들이었다. 자칫 ‘종교 전쟁’이 일어날 뻔했다. 많은 프로테스탄트들이 마리아의 ‘평생 동정’을 부정하고, 가톨릭에 대해 ‘마리아교’라는 비난을 서슴지 않는다. 참 고약한 사람들이다. 가톨릭교리신학원에 들어 온 후 ‘마리아론’ 수업을 많이 기다렸다. 다른 학우들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대부분이 비슷한 경험을 했고, 도발에 대비한 ‘쉽고 간결한’ 방어 논리를 찾고 있었을 터였다! 마리아론 공부는 그래서 재미있다. 교수님은 학생들의 이런 욕구를 아시는 듯, 개강 첫날부터 주요 쟁점별 대응 논리를 확실하게 가르쳐 주었다.마태오 복음(12,46-47)과 마르코 복음(6,3)의 ‘형제 이야기’나 루카 복음(2,6)의 ‘첫아들 이야기’는 어떻게 된 것일까. 형제니 첫아들이니 하는 표현은 고대 근동 지역의 관행적 호칭이다. 4촌 6촌도 형제라 불렀고, 심지어 조카도 형제라 했다. 또 새댁이 처음 아들을 낳으면 무조건 첫아들이라 했다. 그래도 찜찜하다. 뭔가 2% 부족한 느낌이다. 형제 논쟁에 대한 결정타는 요한 복음(19,27)에 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하신 말씀이다. “그 제자에게 ‘이 분이 네 어머니시다’고 말씀하셨다. 그때부터 그 제자가 그분을 자기 집에 모셨다.” 그 제자가 바로 요한 사도이다. 만약 예수님에게 피붙이 형제가 있었더라도 제자에게 어머니를 부탁했을까?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5년 전에 이것을 알고 있었더라면!마리아는 예수님을 낳기 이전에도 깨끗했고, 낳는 과정에서도 깨끗했으며, 낳고 난 뒤에도 깨끗했다. 그래서 ‘평생 동정(ever Virgin)’이다. 마리아는 요셉의 부인이었지만 ‘부부 관계’가 없었다. 동정부부였다. 하느님은 그래서 요셉에게 특별한 복을 주신 것일까. 죽을 때 하느님(예수님)을 상주로 둔 사람은 요셉이 유일하다. “성모 신심의 핵심은 순명입니다. 절대 순명! 복음서의 이 두 구절만은 꼭 암기해 두세요. 루카 복음 1장 38절과 요한 복음 2장 5절! 마리아는 이토록 하느님에 대해 순명하셨습니다. 믿음의 모범이지요. 그래서 상경지례(上敬之禮)로 마리아를 공경하는 것입니다. 기말고사 때 논술 문제로 나올 수도 있어요.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요…. 그 정도로 중요한 내용이라는 이야기입니다. 혹시 모르지요 뭐….” 중요성을 이렇게 강조해 주다니, 자상도 하시다. 다들 한바탕 웃었다.멜 깁슨의 영화 「패션 오브 크라이스트」(The Passion of The Christ)는 ‘예수의 수난’과 함께 ‘마리아의 순명’도 그리고 있다. 마리아는 십자가 위의 예수님에게 말한다. “내 살에서 나온 아들이여. 내 영에서 나온 영이여. 나도 함께 죽게 해다오.” 순명이다! 순간 모자의 눈이 마주친다. 예수님은 “다 이루었도다!”는 말을 남기고 절명한다. 마리아의 얼굴이 클로즈업된다. 신비스러운 광채가 흐른다. 지복직관(至福直觀)! 순명이 가져다준 선물이다. 평화신문2016.04.27

금경축 사제들에게 존경과 감사 전해 서울·대구대교구 등 각 교구별로 성유 축성 미사 후 축하 행사 열어 서울대교구 주교단과 금경축 사제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뒷줄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유경촌ㆍ손희송 주교, 양홍ㆍ이기명ㆍ김택암 신부, 정순택 주교, 이종효ㆍ안충석 신부, 염수정ㆍ정진석 추기경, 안경렬 몬시뇰, 오지영 신부. 남정률 기자 서울ㆍ대구ㆍ대전ㆍ전주교구는 13일 교구 주교좌성당에서 성유 축성 미사에 이어 금경축 행사를 열고, 사제 생활 50주년을 맞은 이들에게 감사와 축하를 전했다. 서울대교구는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안경렬 몬시뇰과 이기명ㆍ김택암ㆍ오지영ㆍ안충석ㆍ장홍선ㆍ양홍ㆍ이종효 신부의 금경축 행사를 열었다.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강론을 통해 “지난 50년간 사제의 길을 충실하게 걸어온 신부님들은 후배들에게 좋은 모범이자 교회의 산 증인”이라며 금경축 사제들의 영육간 건강을 기원했다. 안경렬 몬시뇰은 “주님께서 주신 은총을 낭비하지는 않았는지 자책하게 된다”며 후배 사제들에게 주님의 사제다운 삶에 더욱 충실할 것을 당부했다. 이기명 신부는 “사제로서 참으로 좋고 신 나는 삶이었다”면서 “젊은이들에게 사제 성소의 꿈을 심는 데 힘써달라”고 부탁했다. 김택암 신부는 “임종을 얼마 남겨 두지 않은 완화의료 병동 환자들의 말벗을 하면서 보람 있게 지내고 있다”고 근황을 전했다. 오지영 신부는 “하느님과 교회, 사제들, 그리고 무엇보다 신자들의 도움으로 오늘을 맞을 수 있었다”며 “부끄럽지 않은 삶으로 은인들의 고마움에 보답하겠다”고 약속했다. 안충석 신부는 “일상이 아닌 미사 때만 하느님 나라를 살아온 것 같다”면서 “일상생활 모두에서 하느님 나라를 사는 사제로 살아달라”고 요청했다. 양홍 신부는 “우리의 전투 상대는 인간이 아니라, 권세와 권력들과 이 어두운 세계의 지배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령들”(에페 6,12)이라는 성경 말씀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이종효 신부는 “제가 사목하는 본당에 부임하는 사제들이 좋은 본당으로 발령받았다는 소리를 못 듣게 한 것 같아 아쉽다”고 소회를 밝혔다. 장홍선 신부는 개인적인 사정으로 행사에 참석하지 못했다. 정진석(전 서울대교구장) 추기경은 “금경축 신부님들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하느님만이 아시는 숨은 선행을 많이 하신 분들”이라고 치하하고, “여생을 건강하게 지내고 하느님 영광을 위해 좋은 일 많이 하시도록 기도하겠다”고 축하했다. 대구대교구는 주교좌 범어대성당에서 정달용ㆍ이홍근ㆍ박병기ㆍ곽길우 신부 사제 수품 50주년 금경축 행사를 열었다. 교구장 조환길 대주교는 미사 강론을 통해 “사목자의 진정한 행복과 기쁨, 보람은 신자들을 위해 봉사할 때 또 그들과 생사고락을 함께할 때 온다”면서 “예수님을 닮은 사제로 50년을 살아온 선배 사제들에게 감사한다”고 고마움을 표했다.정달용 신부는 “계산본당 보좌 이후 신학교에서 계속 있어서 교구 신부의 70%가 제자”라며 “지금도 대구가대 명예도서관장으로 활동하고 있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홍근 신부는 “살아온 모든 것이 주님의 은총이었다”며 “항상 기도하는 사제가 되어 달라”고 후배 사제들에게 당부했다. 곽길우ㆍ박병기 신부도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신 주님과 신자들께 감사드린다”고 고마움을 표했다.대전교구는 주교좌 대흥동성당에서 원로사목자 이계창ㆍ김종국ㆍ구자오ㆍ윤주병ㆍ김병재 신부 금경축 축하식을 열었다. 사제품을 받은 지 91일째를 맞는 교구 새 사제들이 금경축을 맞는 다섯 사제에게 축하 꽃다발과 사제 수품 50주년 기념 초를 증정했고, 교구 총대리 김종수 주교와 김광현(안토니오) 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장도 교구 사제단과 평단협이 준비한 선물을 전달했다. 다섯 사제가 사목했던 본당 평신도 대표들 또한 영적 선물을 기록한 족자를 전달했다. 이계창 신부는 “저를 사제로 부르시고 50년 동안 보살펴주신 하느님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리고, 저는 사제가 돼 한 번도 후회해 본 적이 없다는 걸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김종국 신부는 “50년 전에 주님께 드린 약속은 착한 신부가 되자는 것이었다”면서 “지금까지 저를 신부로 만들어주시고 도움을 주신 하느님과 성모님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구자오 신부는 “미완성의 삶이었고, 사제로도 많이 부족했다”면서 “저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를 드린다”고 말했다. 윤주병 신부도 “너무나 부족한데 지금까지 사제라는 이름으로 여러분에게 너무 많은 사랑을 받았다”며 “항상 열심히 살아가시는 신자들의 모습에서 제 타성이나 잘못을 반성하며 거울로 삼아 살아왔다”고 밝혔다. 김병재 신부는 “사랑을 많이 주신 은인들께 하느님께서 넉넉하게 갚아주실 것을 믿고 기도하겠다”고 말했다. 교구장 유흥식 주교는 축사를 통해 “금경축을 맞으시는 신부님들이 헌신적 봉사에 힘입어 우리 대전교구가 성장할 수 있었다”면서 “금경축을 맞으시는 존경하는 신부님들, 늘 평안하신 모습으로 사제들과 교구를 위해 기도해 주시면서 기쁘게 덕으로 나아가는 사제 생활을 계속하시기를 기도하겠다”고 밝혔다. 전주교구는 주교좌 중앙성당에서 원로 사제 안용기ㆍ김병운 신부의 금경축 축하식을 열었다. 이병호 주교와 교구 사제단, 수도자들과 신자 등 800여 명이 성전을 가득 메우고 반세기 동안 묵묵히 주님께 헌신해온 노 사제들의 삶에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안용기 신부는 “모든 피조물은 자랑할 게 있는데 내가 자랑할 것이 있다면 성신 중ㆍ고등학교와 대학을 그대로 밟아 졸업한 사제라는 것”이라며 “덕분에 학비는 교구에서 지원받았고 지금까지 무임승차를 한 것 같다. 50년 동안 기쁘게 사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지원해준 신자들께 감사하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김병운 신부는 “나를 사제의 길로 이끄신 아버지는 사제가 될 때 세 가지를 당부하셨다”며 “‘나보다 나이 든 신자들에게 반말하지 말 것, 화내지 말 것, 공적인 자리에서 돈 얘기하지 말 것’”을 꼽았다. 김 신부는 “아버지의 부탁을 잘 지키려고 힘썼던 것 같다”며 “어릴 적 우리 가정이 그랬듯 여러분도 행복한 가정, 희생과 양보, 기도하는 가정을 이루기 바란다”고 말했다. 이병호 주교는 축사에서 “선배로서, 동료 사제로서 이끌어주시고 좋은 모범을 보여주신 두 분께 감사드리고 앞으로도 후배들이 사제의 길을 잘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말했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오세택 기자 sebastiano@cpbc.co.kr 전주=신현숙 명예기자, 대구=최태한 명예기자 평화신문2017.04.18
신천지를 주의합시다! ③교회에서 종교적 욕구 충족 못 한 신자들, 신천지 성경에 미혹 ① 신천지란 무엇인가② 신천지는 어떤 사람을, 어떻게 포섭하나 ③ 왜 신천지에 빠지는가④ 신천지를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⑤ 신천지 대처법·구별법 신천지의 ‘새 신자 과정’을 수료하는 것은 결코 만만한 일이 아니다. 6개월 동안 일주일에 4일(월ㆍ화ㆍ목ㆍ금), 하루 3시간을 ‘성경 공부’에 쏟아야 한다. 바쁜 직장인ㆍ학생들이 일주일에 4일이나 성경 공부에 투자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럼에도 신천지 성경 공부를 하는 사람은 꾸준히 늘어나고 있다. 신천지신학원에서 성경 공부를 하는 이들 중 천주교 신자 수는 얼마나 될까. 정확히 집계할 수 없지만, 증언을 종합해보면 꾸준히 늘어가는 추세인 것으로 보인다. 수강생 중 천주교 신자 비율이 20~30%에 이른다는 증언도 있고 레지오 마리애 단장, 현직 수사가 신학원에 나오고 있다는 증언도 있다. 한 매체는 지난 4월 신천지 대구 ‘다대오지파’의 1633명 수료생 배출 소식을 전하면서 32년간 천주교에서 신앙생활을 했다는 ‘수료생 대표’ 권 아무개씨의 소감을 게재하기도 했다. 신자들은 왜 신천지 교리에 흥미를 느끼고, 그들의 꾐에 현혹되는 것일까? 신천지의 회심을 돕는 이승혜(가타리나) 상담사는 “신자들이 이단 사이비, 성경 말씀에 대해 제대로 아는 게 없어서 신천지에 미혹된다”고 진단한다. 신천지신학원을 다녔던 신자들을 인터뷰했을 때 그들이 공통으로 하는 말이 있다. “성당에서 신천지에 대해 들어본 적이 한 번도 없고 성경 공부를 제대로 해 본 적이 없다”는 것이다. 나름대로 건실하게 신앙생활을 하는 신자도 신천지를 아는 경우는 거의 없다. 그들의 실체와 포섭 수법을 전혀 모르기 때문에 추수꾼들이 교묘하게 접근할 때 제대로 대처를 하지 못하는 것이다.성경에 대한 무지도 신천지 성경 공부에 미혹되는 주요 원인이다. 이승혜 상담사는 “성경 공부를 해 본 적이 없는 신자들은 도식과 비유 풀이로 성경 말씀을 해석하는 신천지 교리에서 그동안 경험해 보지 못한 재미를 느낀다”면서 “신학원 과정을 마치면 성경을 통달한 듯한 착각에 빠져, 사제와 수도자를 무시하고 기성 교회를 비난하게 된다”고 말했다.종교사회학자 노길명(요한 세례자) 고려대 명예교수는 “가톨릭 신자들이 신천지의 포섭 대상이 되고 있는 것은 그만큼 가톨릭의 응집력이 약화되고 있다는 방증”이라며 “교회 안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종교적 욕구를 충족하지 못한 신자들이 신천지를 비롯한 이단 사이비에 빠지고 있다”고 진단했다.최근에는 20~30대 젊은이들이 신천지의 집중 포섭대상이 되고 있다. 신학원 수강생의 절반 이상이 젊은이라는 증언도 나오고 있다. 특히 캠퍼스 안에서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인 포섭활동에 나서고 있다. 노 교수는 “순수하고, 종교성이 강하며 열정적인 젊은이들은 신천지 안에서 ‘전도의 역군’ 역할을 할 수 있다”면서 “비슷한 배경과 경험을 가진 또래들이 신흥 종교라는 울타리 안에 모여 온종일 기도하고 철저한 교육을 받으며 강한 결속력을 갖게 된다”고 말했다. 그는 “불확실한 미래 때문에 불안해 하는 젊은이들에게 신흥 종교는 도피처가 될 수 있다” 고 덧붙였다.몇 년 전 신천지가 작성한 「최근 총회장(교주 이만희)님의 의중」 문건을 보면 신천지가 천주교를 어떻게 바라보고 있는지, 왜 천주교 신자들을 대상으로 적극적으로 포섭 활동에 나서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그들은 천주교를 ‘잡아먹어야 할 대상’으로 여기고 있다. “제일 말씀이 없는 조직이 통일교이다. 거기는 예배도 안 보고 성경도 없다. 통일교를 우리가 잡아먹어야 한다. 그 다음 차례가 천주교다. 천주교도 우리가 잡아먹어야 한다. 하나님이 이루어가는 역사다.”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백영민2015.07.01
 요셉 피츠마이어 (상)](//cpbc.co.kr/CMS/newspaper/2015/01/rc/548678_1.2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73) 요셉 피츠마이어 (상)공의회 정신에 따른 성경 연구에 기여한 신약 성경 학자 미국 출신의 예수회 사제 요셉 어거스틴 피츠마이어(Joseph Augustine Fitzmyer, 94)는 신약 성경학자이자 아람어 학자이며 사해 문서 전문가다. 신약 성경의 배경이 되는 고대 유다 사상을 이해하는 데 큰 공을 세운 동시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가톨릭 교회에서 성경에 대한 큰 관심과 연구가 이뤄지도록 견인차 역할을 했다. 피츠마이어 신부가 교회와 학계에 미친 영향을 소개하기 위해 먼저 학문적 배경과 학자로서의 경력에 대해 알아보겠다. 그리고 이어서 그의 주된 저서와 업적을 제시하겠다. 생애와 학문적 배경 피츠마이어 신부는 1920년 11월 4일 미국 필라델피아에서 태어났다. 그리고 고등학교를 졸업하던 해인 1938년 예수회에 입회했다. 인디애나주 예수회 신학교에서 그리스 고전 문학으로 문학석사 학위를 취득한 피츠마이어 신부는 벨기에 에겐호벤에 있는 예수회대학과 루뱅대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1952년 루뱅가톨릭대학교에서 신학으로 고등석사학위를 받았다. 그 후 피츠마이어 신부는 본격적인 성경 공부에 몰두했다. 그런데 그가 성경 공부를 시작했던 상황은 현재와는 사뭇 다른 환경이었다. 지금은 역사 비평적 연구 방법으로 성경을 읽고 연구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지지만, 당시에는 그렇지 않았다. 교회는 근대주의 위협 앞에서 한동안 비평적 성경 연구를 금지했다. 비평적 성경 연구를 위한 대헌장(Magna Carta)이라 할 수 있는 비오 12세 교황 회칙 「성령의 영감」(Divino Afflante Spiritu, 1943) 반포와 함께 교회는 역사 비평적 연구 방법론을 성경 연구에 적용하는 가능성을 가톨릭 학자들에게 열어줬다. 가톨릭 교회 보수 진영은 이러한 조처를 환영하지 않았지만,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부들은 비오 12세 교황 회칙에서 지시하고 있는 바를 「계시헌장」(Dei Verbum)에 수용했다. 비오 12세 교황 회칙 반포에서 계시헌장 발표까지, 곧 1943년에서 1965년 사이에 로마에 있는 교황청 성경 연구소와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미국가톨릭대학교, 예루살렘에 있는 성경학교와 같은 가톨릭 고등교육 기관들이 회칙이 장려하는 바에 따라 새로운 성경 연구 방법을 익힌 성경학자들을 배출했다. 그런데 이곳에서 배출한 성경학자들의 성경 연구는 근대주의에 저항하던 기존의 보수 진영, 곧 가톨릭 절대주의를 주장하는 이들의 강한 반대에 부딪히곤 했다. 피츠마이어 신부는 이런 분위기 속에서 성경을 공부했다. 피츠마이어 신부는 1953년 존스홉킨스대학교에서 석사 과정을 시작했고, 곧이어 기록적인 시간 내에 박사 학위 과정도 마쳤다. 1956년 그는 유명한 성경 고고학자인 윌리엄 폭스웰 올브라이트(1892~1971) 교수 지도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위 논문은 ‘이집트에서 발견된 문헌에 기초한 아람어 문법’에 관한 것이었다. 그의 지도 교수인 올브라이트 박사는 성경과 고대 근동학 연구에서 혁혁한 업적을 남긴 조지 어니스트 라이트(1909~1974), 레이먼드 브라운 (1928~1998), 그리고 데이비드 노엘 프리드먼(1922~2008)의 스승이기도 하다. 피츠마이어 신부는 1957년 로마 교황청 성경 대학에서 성경학 고등석사학위(S.S.L.)를 받았다. 같은 해엔 동예루살렘의 팔레스타인 고고학 박물관에서 사해문서 가운데 성경이 아닌 자료들의 목록을 만드는 작업에 참여했다. 연구 및 저술활동이렇게 성경 연구에 필요한 전문적인 훈련 과정을 모두 마친 그는 메릴랜드 주 우드스탁대학에서 신약 성경 및 성경 언어를 가르치는 조교수가 됐고, 1964년 전임 교수가 됐다. 또한 존스홉킨스대학에서 아람어를 가르친 동시에 방문 교수로서 예일대학교에서 신약 성경을 가르쳤다. 이후 시카고대, 뉴욕 예수회 학교인 포담대, 웨스턴예수회신학교 등을 거쳐 1986년 미국가톨릭대에서 은퇴했다. 하지만 이내 명예교수로 복직, 1999년에서 2004년까지 신약 성경과 아람어를 가르쳤다. 피츠마이어 신부는 이처럼 후학을 양성하기 위해 거의 온 생애를 교수직에 헌신했다. 그러나 그의 활동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는다. 교수직 외에도 미국성경학회가 펴내는 전문 학술잡지인 「the Journal of Biblical Literature」, 미국가톨릭성경학회 전문 학술잡지인 「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그리고 「New Testament Studies」와 같은 주요 성경 잡지의 편집자로도 활동했다. 뿐만 아니라 피츠마이어 신부는 1984년부터 1995년까지 교황청 성경위원회의 위원으로도 활동했다. 피츠마이어 신부가 성경위원으로 활동하던 때인 1993년 교황청 성경위원회는 성경 연구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문헌인 「교회 안의 성경해석」을 발표했다. 그는 이 문헌에 대한 주석서를 집필, 이 문헌이 널리 전파되는 데 큰 기여를 했다.피츠마이어 신부의 학문적 연구 활동 범위는 매우 방대하다. 그는 학문 활동의 초기부터 왕성한 연구 활동을 펼치며 구약성경, 신약성경, 사해 문서, 아람어 문서들에 관한 연구 결과를 꾸준히 책으로 발표했다. 그리고 다른 학자 작품에 대한 학문적인 대화와 비평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그는 유명한 성서 주석서인 앵커 바이블 시리즈의 「루카 복음 주석서」를 집필했다. 앵커 바이블 주석서 시리즈는 그의 지도 교수였던 올브라이트 박사와 그의 또 다른 제자인 데이비드 노엘 프리드먼 박사가 1956년 함께 기획한 것이다. 그들은 이 주석서의 주된 독자층을 학자들과 상당한 교육을 받은 비전문가들로 정했고, 주석서 필진은 가톨릭 학자들과 개신교 학자들, 그리고 유다인 학자들을 두루 포함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현재 이 주석서 시리즈는 본문 이해에 필요한 자세한 입문 자료와 정확한 본문 번역, 그리고 역사 비평적 방법론에 따른 본문 주석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평이 나 있다. 앵커 바이블 주석서 시리즈 가운데 신약 성경 주석서로는 「요한 복음 주석서」가 가장 먼저 출판됐는데, 이 주석서를 집필한 이는 피츠마이어 신부와 평생에 걸쳐 우정을 나눈 동료, 레이먼드 브라운 신부다. 두 신부는 학문에 있어서도 선의의 경쟁자였지만, 세계적 수준의 우편 수집가로서도 경쟁했다고 한다. 그러나 브라운 신부는 1998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김영선 수녀(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회)▲ 1999년 종신서원▲2011년 미국 보스톤칼리지 구약학 전공(박사학위)▲주요저서 : 「The Temple Administration and the Levites in Chronicles」 (Washington DC: Catholic Biblical Association of America, 2014) cpbc2015.01.06
![[아! 어쩌나] 342. 신흥종교 교주는 어떤 사람인가](//cpbc.co.kr/CMS/newspaper/2016/05/rc/633618_1.0_titleImage_1.jpg)
[아! 어쩌나] 342. 신흥종교 교주는 어떤 사람인가홍성남 신부(가톨릭영성심리상담소장, 상담전화: 02-727-2516) 문: 요즈음 여러 신흥종교들이 기성 교단에 도전장을 내민다는 말이 파다하고, 실제로 많은 신자들이 신흥종교로 빠져들고 있어서 기성종교에서 비상이 걸렸다고 합니다. 이런 신흥종교의 교주들에 대하여 기성종교에서는 이단이라고 하면서 위험성을 경고하는데 어떤 점을 두고서 하는 말인지요?답: 신흥종교 교주 중 상당수는 성경을 부정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자신의 교단 이름에 그리스도라는 이름을 사용하면서 성경을 부정하고 자신의 말이 진리라고 가르치는 것이지요.이들이 성경을 부정하는 이유는 이제 더 이상 예수님이 필요 없고 자신이 세상을 구원할 사람이라는 자의식 때문입니다. 이런 자의식은 사람마다 정도를 달리합니다. 어떤 이는 자신이 신의 대리인이라고 하고, 심한 경우 자신이 신이라고 여기기조차 합니다. 성부 성자 성령을 하느님으로 섬기는 그리스도인들의 입장에서는 그들이 자신을 신적 존재로 여기기에 함께 할 수 없는 이단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이들이 이런 자의식을 가진 것은 심리적으로 어떤 문제 때문인가? 자아팽창 현상 때문입니다. 사람의 자아는 팽창과 수축을 반복합니다. 때로는 수축되어서 열등감을 느끼고 자신이 하느님 앞에서 도저히 구원받을 수 없는 존재, 죄인이라는 상태에 빠지기도 하지만 때로는 팽창하여서 자신이 영적인 존재인 양 심지어 자신을 천사라고 여기기도 하는 상태에 빠진다는 것입니다. 정상적인 사람들은 이 양극단의 중간 수준에서 오르락내리락하면서 살아갑니다. 그래서 많은 교우분들이 성당에서 기도할 때는 누구라도 사랑할 것 같은데 한 발짝만 밖으로 나와도 마음이 뒤집힌다고 하소연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정상적인 사람들은 자신이 그런 상태란 것을 받아들입니다. ‘사람이 다 그런 거야’ 하는 마음을 가지고 겸손함을 갖는 것입니다. 그런데 자신을 신적인 존재, 혹은 신 그 자체라고 여기는 사람들은 자아가 수축되는 일이 없이 팽창만 합니다. 한없이 팽창해 자신을 신이라고 여기는 것이지요. 이런 현상은 사실 자신의 자아가 위축돼 심리적으로 무너지는 것을 두려워하는 마음, 자신 안의 열등감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클 때 상대적으로 나타나는 현상입니다. 이런 심리적 현상은 조증으로 나타나기도 합니다. 우울증과는 반대로 들뜬 마음, 비현실적인 심리적 고양 상태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런 심리적 상태를 유지하고 일반인들과 자신을 차별화하려고 여러 가지 방법을 사용합니다. 향을 피우든가 천상계의 사람처럼 옷을 입는 등의 외적인 치장에 많은 공을 들입니다. 또한 심각한 경우에는 자신들의 심리적 고양 상태를 유지하려고 약물을 투여한다고 합니다. 외국 신흥종교에서 자주 보이는 현상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가진 심리적 문제는 그렇게 해서 해결되지 않습니다. 이들은 자신 안의 어둠, 무의식 보기를 두려워해 자신 안의 어둠을 외부 사람들에게 투사하는 경향이 아주 강합니다. 그래서 이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말이 마귀, 악마, 어둠의 세력 등등입니다. 자기 안에는 어둠이 없음을, 자신이 신적 존재임을 증명하기 위한 상대적 근거로써 외부의 대상을 악마화시키는 것입니다. 또 자격지심을 덮으려고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모두가 악의 세력이라고 여기거나 자신이 박해받는 예언자라는 이미지를 구축하려고 합니다.이런 일련의 노력은 결국 정신적 분열 현상을 초래하고 자아를 비현실적인 상태로 빠져들게 합니다. 일종의 중독 상태에 빠지는 것입니다. 이처럼 영신수련, 자기 성찰이 없는 생활은 외적인 모습과는 달리 그 실제 생활은 미해결된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세속적인 면을 가질 수밖에 없습니다. 마지막으로 문제시되는 것은 교주가 신격화되면 그 공동체는 형제적 공동체가 아니라 종교적 계급이 형성되는 것입니다. 교주와 친밀도가 얼마나 되는가 하는 것이 신도들을 차별화한다는 것입니다. ※상담을 원하시면 010-5032-7422로 ‘문자’를 보내주세요. cpbc2016.05.04
![[성경 속 도시] <30> 트로아스](//cpbc.co.kr/CMS/newspaper/2014/11/rc/541486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30> 트로아스바오로 사도의 유럽 선교 출발지 트로아스 유적지에 세워져 있는 트로이 목마 모형. 트로아스는 로마 시대 아시아와 마케도니아를 잇는 주요 항구 도시였다. 신전과 극장, 목욕장, 또 특히 트라야누스 황제가 만든 수도교 유물이 그 옛날 화려했던 번영을 말해 주고 있다. 고대 ‘시기아’(Sigia)라 불렀던 이 지역에 기원전 310년 마케도니아의 장군 안티고노스 1세가 도시를 세운 뒤 안티고니아 트로아스라 이름 지었다. 트로아스는 에게 해 연안의 도시 국가들과 물자를 교역하는 항구 도시로 발전했다. 로마 시대에 이르러 아시아와 유럽을 이어주는 교역 중심지로 크게 발전했으며, 서기 4세기 이후에는 동방 그리스도교의 중심지 역할을 했다. 아시아로 가려 했으나 그리스 지역으로 이 도시가 언제부터 쇠락했는지 알려주는 기록은 없다. 다만 오스만 튀르크 시대에 인근 고대 유적지 다수가 약탈당했으며, 석재나 기둥 일부는 이스탄불의 건축물에 사용됐다고 알려져 있다. 20세기 들어 터키 서부 해안 고대 유적지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며 발굴 작업이 시작됐으며, 로마 시대의 신전, 체육관, 목욕탕 등 유적이 발굴됐다. 바오로 사도는 세 번째 선교 여행 때 코린토를 떠날 즈음 적개심을 품은 유다인들이 자신을 해치려는 음모를 꾸미는 것을 알아차리고 마케도니아로 돌아가기로 했다. “거기에서 석 달을 지낸 뒤에 배를 타고 시리아로 가려고 하였지만, 유다인들이 그를 해칠 음모를 꾸몄으므로 마케도니아를 거쳐 돌아가기로 결정하였다”(사도 20,3). 바오로 사도 일행은 두 그룹으로 나뉘어 트로아스에 도착해 이레 동안 머물렀다. “베로이아 사람 피로스의 아들 소파테르, 테살로니카 사람 아리스타르코스와 세쿤두스, 데르베 사람 가이오스, 티모테오, 아시아 사람 티키코스와 트로피모스가 바오로와 동행하였다. 이들은 트로아스에 먼저 가서 우리를 기다렸고, 우리는 무교절이 지난 뒤에 필리피에서 배를 타고 닷새 만에 트로아스에 있는 그들과 합류하여, 그곳에서 이레 동안 지냈다”(사도 20, 4-6).바오로 사도는 이 도시를 처음 방문했을 때 어느 날 밤 본국으로 돌아오라는 환시를 본다. 바오로 사도가 두 번째 선교 여행 중 아시아로 가려 했으나 꿈에 마케도니아 사람의 간절한 호소를 듣고 에게 해를 건너 그리스 지역으로 행선지를 돌린 곳이 바로 트로아스였다. “그런데 어느 날 밤 바오로가 환시를 보았다. 마케도니아 사람 하나가 바오로 앞에 서서, ‘마케도니아로 건너와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는 것이었다. 바오로가 그 환시를 보고 난 뒤, 우리는 곧 마케도니아로 떠날 방도를 찾았다. 마케도니아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도록 하느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이라고 확신하였기 때문이다”(사도 16,9-10). 이렇게 해서 바오로 사도의 두 번째 선교 여행이 시작됐다. 유럽에 첫 교회인 필리피 교회 세워바오로 사도 일행은 그리스 북부 마케도니아에 내린다. 오늘날의 카발라 항구로 사도 시대 이름은 ‘네아폴리스’였다. 그리스도교의 유럽 전파가 시작된 곳이다. 따라서 카발라 항구는 사도 바오로가 첫발을 디딘 오늘날의 유럽 땅인 셈이다. 그리스도교가 유럽으로 건너간 것은 획기적 전환이었다. 그는 여기서부터 그리스 북부 지역에 필리피, 테살로니카, 베로이아 교회를 세웠다. 유럽 대륙에 복음을 전하기 위한 바오로 사도의 ‘첫발’이 옮겨진 곳이 트로아스라 하겠다. 이렇게 해서 사도 바오로는 심혈을 기울여 유럽에 첫 그리스도교 교회인 필리피 교회를 세운다(필리 4,15).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11.25
삶의 터전에서 주님의 나라 건설한 10년 감사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한국분원, 한국 진출 10주년 미사 봉헌 정순택(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주교가 2일 서울 서초동성당에서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한국 진출 10주년 감사 미사를 마치고 수도회 관계자들과 기념 사진을 찍고 있다. 이힘 기자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 한국분원(분원장 정시몬 신부)은 2일 서울 서초동성당에서 ‘한국 진출 10주년 감사 미사’를 봉헌했다. 미사를 주례한 서울대교구 수도회 담당 교구장 대리 정순택 주교는 강론을 통해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는 이 세상에 그리스도의 왕국을 건설하고 확장해 나가는 영성을 갖고 있다”며 “이처럼 우리는 모두 각자 삶의 터전에서 예수님을 더욱 깊이 만나고 내면적으로 더 깊이 일치하기를 다짐해야 한다”고 당부했다.미사 중에는 어제우(아브라함)ㆍ조민호(스테파노) 수사의 서약 갱신식이 열렸다. 미사 뒤 축하식에서는 설립 75주년을 맞은 수도회 소개 영상물 상영과 수사 및 가족 인사, 기념 촬영 등이 이어졌다.1941년 설립된 그리스도의 레지오 수도회는 교황청립 성직 수도회로 본원은 로마에 있다. 그리스도 중심, 성모 마리아에 대한 신심, 교황에 대한 충성, 교회에 대한 헌신과 화합된 마음과 정신, 충실한 기도생활과 적극적인 사도직 활동을 영성으로 삼고 있다. 2015년 말 현재 전 세계 22개국에 사제 900여 명, 수사 700여 명이 있다.2006년 7월 한국에 진출, 현재 서울 서초동ㆍ포이동ㆍ잠원동ㆍ논현2동 본당에서 영어 성경 공부를 진행하고 있으며, 가톨릭대 신학대학 영어 지도, 평신도 대상 피정 지도 및 신심 미사 봉헌 등에 나서고 있다. 한국분원 사제는 2명, 수사는 11명이다. 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평화신문2016.07.06
![[제4회 신앙체험수기] 작년 늦가을부터였다](//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3577_1.3_titleImage_1.jpg)
[제4회 신앙체험수기] 작년 늦가을부터였다특별상(가톨릭학교법인상) / 이영희 아녜스(부산교구 남천주교좌본당) 특별상(가톨릭학교법인상) 이영희 (아녜스, 부산교구 남천주교좌본당) 작년 늦가을부터였다. 막내가 운동할 때마다 머리가 아프다고 했다. 병원에 갔더니 의사는 편두통이라고 약을 처방해주면서 통통한 편인 딸에게 살을 좀 빼야겠다고 조언했다. 안 그래도 다이어트에 부쩍 신경 쓰고 있던 아이가 툴툴거렸다. 약을 먹어서 확 나아진 건 아니지만, 사춘기에 흔히 겪는 편두통이라는 의사의 말에 큰 걱정을 하지 않았다. 그렇게 계절이 바뀌었다. 연말을 시댁에서 보내면서 치킨과 피자 같은 기름진 음식을 푸짐하게 차려놓고 먹는데 아이는 식욕이 넘치던 평소와 다르게 많이 먹지 못했다. 집에 와서 토하는 아이를 보면서 체했다고 생각했다. 손을 따주고 약을 먹이고 아이를 재웠는데 이튿날에도 계속 토했다. 입맛이 없고 피곤하다며 잠을 계속 잤다. 소아과에 가니 ‘노로바이러스’라고 했다. 링거를 맞히고 며칠간 병원에 다녀도 나아지지 않아서 내과로 갔다. 꾸준히 치료를 받았지만, 차도가 없었다. 공을 물고 말하는 기분이라는 아이의 발음이 어눌해졌다는 느낌이 들어서 성당의 아는 분이 계시는 신경과로 갔다. 선생님은 뇌에서 오는 문제로 보인다고 소견서를 써주면서 대학병원으로 가보라고 하셨다. 가슴이 쿵쾅거리고 아득해졌다. 문제가 있는 곳이 다른 데가 아니라 ‘뇌’라는 게 겁이 났다. 차를 타고 병원으로 가는 동안 아이는 계속 토했다. 병원에 도착했을 때 아이가 거의 까부라졌고 응급실에서 바로 MRI를 찍었다. 검사결과는 바로 나왔다. 뇌종양이고, 더 검사해야 확실하겠지만 사진상으로는 악성으로 보인다고 했다. 뇌 안에 종양이 큰 게 있고 그 주변으로 작은 종양들이 흩어져 있다고 했다. MRI 사진 속에서 셀 수 없이 많은 종양을 보면서 정신이 아득해졌다. 저것들은 어디서 온 것일까. 언제부터 생긴 걸까. 저것들을 머릿속에 담고 아이는 지금까지 어떻게 견디고 있었을까. 우리 세미. 우리 세미를 어떡하지….그림=문채현 응급실에서 밤을 새우고 다음날 신경외과 병동에 아이를 입원시켰다. 스테로이드제로 일시적인 호전이 있을 거라는 의사의 말대로 몸 상태가 좋아진 아이는 휴대전화기로 친구들과 카톡을 주고받았다. 척수 검사, 피검사, 소변검사, 펫시티(PET-CT) 등, 검사가 어찌나 복잡하고 많은지 검사하느라 시간은 속절없이 흘렀다. 검사 결과를 기다리는 하루하루가 고문이었다. 잠시 상태가 좋아졌을 때 아이의 친구들이 왔다. 병명을 결핵으로 알고 있어서 “결핵이 나으면 레드봉봉 떡볶이 먹으러 가자”고 수다를 떠는 아이 얼굴에서 생기가 돌았다. 아이는 돌아가는 친구들에게 초콜릿을 나눠주었고 불편한 걸음으로 링거를 밀면서 엘리베이터까지 배웅했다. 스테로이드제의 효과는 길지 않았다. 반짝 좋아졌던 세미는 점점 걸음걸이가 불편해지고 상태가 불안정해지고 있었다. 주치의가 우리 가족을 불렀다. 최종 검사 결과는 예상대로 ‘악성 뇌종양’이었다. 이 병의 특징은 아주 빠르게 진행되는 것이고 발병 후 짧게는 한 달, 길게는 일 년 안에 사망한다고 했다. 아이의 종양은 숨골 가까이 있어서 수술하기에는 너무 위험한 곳이라고 했다. 의사의 설명을 듣고 인터넷을 뒤졌다. 의사의 말과 100% 일치했다. 고마운 건 우리 가족에게 어설픈 희망 고문을 하지 않았고 객관적인 사실에 근거한 정확한 정보를 주려고 애썼다는 것이다. 이날 우리에게 내려진 선고는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엄청난 충격이었다. 내가 발로 디디고 있고 당연하게 여기고 있던 나의 익숙한 세계가 뿌리째 뒤흔들리는 순간이었다. 그냥저냥 일도 잘되어가고 성당 활동도 무난하게 하고 아이들도 잘 크고 있어서 하느님 안에서 안전하고 행복하게 잘살고 있다고 생각했다.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은 제때에 열매를 내며 잎이 시들지 않는 나무와 같아 하는 일마다 잘되리라”고 말씀하시지 않았나. 아무런 준비도 안 되어있는 우리에게 납득할 만한 이유도 없이 이렇게 뒤통수를 칠 수가 있는 건가. 이게 뭐지. 이건 뭐지. 이게 뭐냐 구요. 허공에 대고 주먹질을 했다. 세미는 유아 세례를 받고 난 후 첫 영성체를 초등학교 5학년 비교적 늦은 나이에 했다. 그리고 복사를 했다. 해가 뜨기 전 눈을 비비면서 일어나 성당에 가서 새벽 복사를 서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비추는 엷은 살굿빛 여명 보는 것을 좋아했다. 성당 어르신들이 “하얀 복사복을 입은 아이의 얼굴이 보름달 같이 빵빵하고 환하다”고 인사를 건네시곤 했다. 건강할 때보다 살이 빠지긴 했지만, 여전히 아이의 얼굴은 보름달처럼 포동포동했다. 아이 머릿속 암이 퍼지는 빠른 속도로 보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의사의 말이 거짓말 같았다. 소식을 듣고 본당의 주임 신부님과 부주임 신부님이 한달음에 와주셨다. 이후 수녀님들이 오시고 친분이 있는 신부님들과 수사님들도 틈틈이 오셨는데 성직자, 수도자들과 함께 기도하는 그 시간들이 더없이 감사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는 게 참으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다. 까무룩 잠이 들었나 보다. 꿈을 꾸었다. 아기를 업고 시장통을 헤매고 있었다. 계속 포대기 끈이 풀렸다. 아기가 떨어질까 봐 끈을 아무리 매려고 해도 풀어지고 또 풀어졌다. 헛손질만 계속 하다가 잠을 깼다. 우리 세미. 우리 세미를 어째야 하나…. 자고 있는 아이 옆에서 성경을 소리 내어 읽었다. “그는 비틀거려도 쓰러지지 않으리니 주님께서 그의 손을 잡아 주시기 때문이다.” (시편 37, 24) 절박한 우리에게 성경 말씀은 가장 강력한 항암제였다. 좀 더 적극적인 치료 방법을 찾기 위해 허리까지 퍼져있는 종양 조직 검사를 위한 수술을 하기로 했다. 걱정을 많이 했는데 아이는 다행히 수술을 잘 견뎌주었다. 수술실에서 나온 아이 옆에서 묵주기도를 하면서 내가 중간중간 놓치고 헤맸는데 아이가 마취가 덜 깬 상태에서 희미하게 묵주기도를 함께 따라 했다. 그리고는 성호경을 긋고 기도 손을 하는 것이었다. 우리 세미가 최고다. 최고! 허리 수술 후부터 아이는 눈에 띄게 쇠약해졌다. 매일 아이의 영혼이 1g씩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결국, 감염의 위험 때문에 아이는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대부분 고령의 환자들이 누워있는 중환자실은 여기저기서 삑삑거리는 기계음이 울리고 독한 약 냄새가 진동했다. 그곳에 아이를 혼자 두고 나오면서 많이 울었다. 왜 열여섯, 어린 내 딸이 저 안에 누워있어야 하는지 슬픔과 동시에 분노가 치밀었다. 아이가 중환자실에 입원하면서 하루 두 번 면회를 위해 우리 가족은 병원에서 가까운 시댁에서 생활을 시작했다. 우리의 시계추는 세미에게 맞추어져 있었다. 아이는 “빨리 집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학교에도 가고 싶고 책상 위에 두고 온 「빨강 머리 앤」을 읽고 싶다”고 했다. “아직 결핵약이 안 나왔느냐며 좋은 결핵약 달라고 마음속으로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면회를 마치고 나오면 병원에 아이를 버리고 오는 기분이 들어서 슬펐다. 병원에서 집으로 터덜터덜 걸어오다 보면 골목길 안에 성당이 있었는데 오래된 성전의 낡은 의자에 앉아서 기도를 하면 스테인드글라스로 스며드는 푸른 햇살이 겨울 냉기와 우리의 슬픔을 누그러뜨렸다. 그 겨울의 성당은 참 따뜻했다. 의사들과 오랜 논의 끝에 우리는 아이의 뇌수술을 어렵게 결정했다. 목숨을 걸고 머리를 열어야 하는 수술이었다. 치료를 위한 수술이 아니라고 했다. “이대로 내버려두면 종양이 숨골을 막아서 어쩌면 갑자기 사망할지 모른다”는 의사의 말에 우리는 수술을 결정했다. 종양이 조금이라도 제거가 되면 아이의 여명이 좀 더 길어질 수 있다는 게 희망이었다. 아이에게는 “지난번 허리를 연 수술처럼 머리를 열어서 하는 수술”이라고 설명했다. 아이는 전혀 두려워하지 않았다. 아이가 당부했다. “나 아프지 않게 마취 잘해달라고 의사 샘한테 부탁해줘.” 머리를 깎고 수술실로 들어가면서 세미가 말했다. “모두들 사랑해.” 여섯 시간으로 예상한 수술은 일곱 시간, 여덟 시간이 지나도록 끝나지 않았다. 수술 시작 전부터 병실 앞에서 묵주기도를 바치면서 기다리던 우리는 불안한 마음을 기도로 봉헌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수술실 문이 열렸다. 의사는 “수술이 잘 되었다”고 했다. “예상시간보다 길어지긴 했지만 긁어낼 수 있는 최대한의 암 덩어리를 없앴다”고 했다. 마치 그 말이 암이 다 나았다는 말처럼 기쁘게 들렸다. 아이는 마취가 깨자 의사 지시대로 팔과 다리를 움직였다. 손을 잡자 세미가 내 손을 꼭 잡았다. 따뜻하고도 힘이 있었다. “앞으로 경과가 좋을 것 같다”며 다들 기뻐하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기쁨의 순간은 더없이 달콤했지만, 더없이 짧았다. 다음날 중환자실로 면회를 갔을 때 밤사이 이산화탄소 수치가 높아져서 아이는 인공호흡기를 단 상태였다. 우리가 말을 걸어도 전혀 반응이 없었다. 수술 전에 의사가 “신경 가까이 있는 종양 수술이라 후유증으로 마비가 올 수도 있다”고 설명했던 게 생각났다. 아, 이렇게 끝이 나는 건가. 이제 다시는 아이와 소통도 교감도 할 수 없는 건가. 그동안 아이 앞에서 최대한 감정을 자제하고 있던 우리 가족들은 중환자실 안에서 크게 소리 내어 울었다. 의사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지금 상태로는 희망이 없습니다. 이제 아이를 보낼 준비를 하시는 게 좋지 싶습니다.” 전혀 반응하지 않던 세미가 이틀 정도 지나면서 조금씩 움직이기 시작했다. 우리가 면회시간에 가서 “세미야!” 하고 이름을 부르면 눈을 뜨고 시선을 우리 쪽으로 옮겼다. 용돈을 듬뿍 넣은 자기 통장을 보여주자 눈이 커졌고 친구들에게서 온 사진과 문자를 보여주면 반응을 보였다. 손가락을 움찔대기 시작하고 다리도 다시 움직였다. 그랬다. 우리가 체감하는 세미는 그렇게 금방 갈 것 같지가 않았다. 의사가 틀릴 수도 있는 것이다. 아이는 돌아눕지도 일어나 앉지도 못했지만 “춥다” “목마르다” “돌아눕고 싶다”는 등 자기 마음을 손과 다리로 표현했다. 상태가 좋은 날은 활발하게 소통을 하고 쳐지는 날은 죽음같이 깊은 잠만 잤다. 하루하루가 긴장의 연속이었다. 우리는 하루살이처럼 살기로 했다. 불확실한 미래, 내일까지 걱정하지 말자고 했다. 당장 지금 오늘 하루만 무사하게 지나도 감사했다. 지금 생각해도 신기한 건 몇 번이고 물어봐도 아이는 “한 번도 아픈 데가 없다”고 했다. “수술한 허리도 머리도 아프지가 않다”고 했다. 평소 누구보다 건강했던 아이는 투병기간 내내 식사를 못 하고 링거와 콧줄에 의지했지만, 살이 많이 빠지지 않았다. 그래서 세미의 통통한 뺨을 보며 아픈 게 맞나, 농담하기도 했다. 정말 신기하고도 감사했다. 그러다가 우연하게 중환자실에서 두 번의 죽음을 목격하게 되면서 덜컥 겁이 나기 시작했다. 만약 세미도 저렇게 갑자기 하늘로 가면 어떡하지. 우리는 “아이를 병실로 보내 달라”고 주치의에게 매달렸다. 그런데 “일반 병실은 응급 상황이 벌어지면 즉각적인 대처가 힘들다”고 의사는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우리는 “아이를 책임지고 잘 돌볼 수 있다”고 다짐했고 아이의 멘탈 상태가 호전되면서 주치의는 아이가 병실로 가는 것을 허락했다. 아이의 가래를 뽑고 콧줄로 식사 주는 법, 소독 처치, 욕창 방지 등 환자 돌보는 법을 간호사에게 배워 숙지하고 있어서 우리는 의료진의 걱정을 뒤로하고 병실로 올라올 수 있었다. 아이와 함께한다는 기쁨에 들떠있는 우리에게 주치의가 심각하게 조언을 했다. “심장마비 같은 응급 상황을 항상 염두에 두고 당장은 감염이나 폐렴이 제일 위험하니 24시간 보살핌에 집중하라”고. 사방이 벽으로 막힌 중환자실에서 창문이 있는 일반 병실로 올라오니 천국 같았다. 탁자에 십자가와 성모상을 올려놓고 집에서 가져온 카세트로 성가 음악을 틀었다. 인공호흡기와 여러 개의 링거를 얼기설기 달고 올라온 세미를 침대에 눕히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간호사들과 온 가족이 매달려 아이를 편안히 눕힐 수 있었다.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뜨거운 물수건으로 깨끗이 닦아주자 세미의 혈색이 좋아지면서 살짝 미소가 번졌다. 처음으로 흡입기로 가래를 뽑아냈다. 독한 마음을 먹고 시작했지만 호스에 세미 목 안의 부드러운 살이 닿는 느낌이 너무나 안쓰러웠다. 마비가 많이 진행된 상태여서 아이는 발을 움직이거나 손을 까딱거리는 걸로 간신히 의사표현을 했다. 묵주를 아이의 손에 걸치고 우리는 묵주기도를 함께 바쳤다. 성경과 「빨강 머리 앤」을 번갈아 읽어주었다. 이 시간이 너무나 행복해서 아이와 평생 이 병실 안에 함께 살아도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빨강 머리 앤처럼 엉뚱한 상상도 했다. 이 병실이 노아의 방주여서 밖에는 홍수가 내리고 이곳은 하느님 마련하신 거처이며 곧 물은 다 마를 것이고 그때 우린 밖으로 손잡고 나갈 수 있을 거라고. 모니터로 세미의 맥박과 산소포화도를 수시로 검사하고 인공호흡기 알람 소리에 귀를 세우고 자느라 깊이 잘 순 없었지만, 긴장 탓인지 아침에 일찍 눈이 뜨였다. 눈을 뜨자마자 들리는 세미의 첫 숨소리는 반갑고 감사했다. “호흡의 주관자이신 주님. 오늘도 세미의 들숨 날숨에 매 순간 함께 해주세요. 아멘!” 아침에 눈 뜨면 성가부터 틀었다. 묵주기도를 함께하고 정갈해진 마음으로 성경을 소리 내어 읽었다. 점심을 먹고 느슨한 오후에는 클래식을 틀고 「빨강 머리 앤」을 읽어주었다. 신부님이 시간 날 때마다 오셔서 미사를 해주셨다. 침대 옆 탁자에 제대를 차리고 세미를 위해 봉헌하는 작은 미사는 우리의 병상일지 갈피갈피에서 방점을 찍었다. 그때에 우리를 위로하는 사람들 안에는 진짜와 가짜가 섞여 있었다. “어딜 가서 누구 안수를 받고 어떤 기도를 받으면 낫는다더라” “아이가 어느 용한 목사를 만나기만 하면 살 것”이라는 등 지반이 약해져서 무너지기 직전인 우리 안 깊은 곳, 약한 곳을 파고들면서 우리 종교와 다른 영역으로 넘어오라고 손짓했다. 그들은 상냥함으로 무장하고 있었지만 시끄럽고 불안했다. “자기들이 믿는 신앙을 따라오면 아이가 구원받는다”며 너무도 확신에 차서 목청 높여 기도하는 그들을 몰아내고 문을 닫아걸었다. 그때의 나는 아무것도 보장해주지 않고 어떤 확실한 답도 주지 않는 기도에 지쳐 있었지만, 분명히 구분할 수 있었다. 그들은 가짜라는 것을. 진짜는 하느님 단 한 분, 내가 오랫동안 믿어온 하느님뿐이라는 것을. 만약 그들이 말하는 그런 게 믿음이라면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바로 슈퍼맨이 되셨을 것이다. 병원에서 부활절을 맞이했다. 병실에서 밖을 내다보니 어느새 목련꽃 나무가 하얗게 피어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새로운 계절이 들이닥치다니 화사한 봄 풍경 앞에서 차오르는 슬픔으로 서걱서걱했다. 성당 친구에게서 부활 메시지가 왔다.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주님을 믿고 의지하게 되면, 태양이 비치지 않을 때에도 태양을 믿고 사랑이 느껴지지 않을 때에도 사랑을 믿으며 하느님이 보이지 않을 때에도 하느님을 믿는 그런 신앙인으로 변화될 수 있을 것이다.” 나는 바로 답장을 보냈다. “이 삭막한 병동에서 맛보는 목련꽃 평화로 우리는 하느님의 존재를 분명히 느끼고 있어. 근데 지금 어디서 뭘 하시는지 참…. 바쁘기 짝이 없는 여기 병동 의사나 간호사보다 더 뵙기가 힘들다.” 그렇게 부활절이 지나고 4월이 왔다. 순조롭게 지내던 세미가 혈압과 열이 오르면서 계속 딸꾹질을 해서 너무 걱정되었다. 며칠 사이에 아이는 부쩍 상태가 나빠졌다. “아침부터 계속 세미 생각이 많이 난다”면서 오후에 신부님이 오셨다. 신부님은 영성체를 못 하는 세미의 손에 포도주잔을 올려 주셨고 아이 옆에 무릎을 굽히고 눈높이에 맞추어 조근 조근 강론을 해주셨다. 세미가 복사 설 때 이야기를 하셨는데 그때에 세미는 눈을 신부님께 향하고 귀를 열고 듣고 있었다. 그 날 세미와 우리가 교감하던 그 순간을, 세미가 신부님께 집중하던 그 눈빛을, 미사에서 이루어진 그 ‘신비’를 나는 영원히 잊지 못할 것이다. 미사가 끝나고 난 뒤부터, 아이의 눈이 안으로 몰리면서 확연하게 의식이 쳐지기 시작했다. 호출을 받고 온 의사는 세미를 살펴보고 “뇌사가 시작된 것 같다”고 했다. “아마 아침부터 뇌사가 진행됐을 거라”고 했다. 나는 “방금까지 세미가 미사에 초 집중했고 신부님 말씀에 뚜렷하게 반응했다”고 말했다. 의사는 고개를 저었다. “이런 멘탈 상태에서 환자가 보고 듣고 느끼고 반응하는 것은 의학적으로 불가능하다”고 했다. 그러나 의사가 모르는 것을 신부님과 우리 가족은 알고 있었다. 세미가 남은 생명을 모두 모아 마지막 미사에 봉헌하고 새털처럼 가벼워진 몸으로 떠날 준비를 시작했다는 것을. 이것이 바로 ‘기적’이라는 것을. 뇌사 선고를 받고 아이는 사흘 더 우리 곁에 있었다. 세미는 세상 평화롭게 잠을 자는 것 같았다. 전과 다름없이 우리는 책을 읽고 성가를 들려주었고 아이에게 계속 말을 걸었다. 그 사흘간 내가 붙잡고 있던 말씀이다. “산들이 밀려나고 언덕이 무너져도 나의 사랑은 결코 너를 떠나지 않는다.”(이사 5,10) 세미는 4월 9일, 새벽에 하늘나라로 갔다. 처음 세상에 나올 때와 마찬가지로 마지막 순간에도 여전히 볼은 포동포동했고 표정은 편안했다. 경황이 없어 우왕좌왕하는 우리 가족들을 위해 달려와 준 성당 분들이 수고로운 많은 일을 맡아서 해주셨다. 그런데 그 날은 결정할 것과 치러야 할 절차가 너무 많았고 사람들을 맞이하느라 아이와 제대로 마지막 인사를 할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그때를 떠올리면 많이 안타깝고 아프고 슬프다. 말없이 누워있던 아이의 통통한 뺨에 실컷 얼굴을 비비지 못한 것이 두고두고 후회된다. 나중에 세미를 만나면 꼭 안아주고 싶다. 그리고 꼭 말해주고 싶다. “수고했어. 세미야. 병실에 누워 있는다고 애썼어. 답답했지. 세미. 많이 아팠지. 세미. 너의 이 통통한 볼이 그리웠어.” 하고 세미의 아기같이 통통한 얼굴에 뽀뽀를 막 하고 싶다. 병원에서의 긴 여정이 끝나고 집으로 돌아왔을 때 거실에 놓인 세미의 피아노가 우리를 맞이했다. 큰딸은 현관 앞 세미 운동화를 신발장에 집어넣었다. 세미 방문을 굳게 닫았고 피아노 쪽으로 고개도 돌리지 않았다. 이제 스무 살, 언니의 몫은 어른인 부모의 몫과 확연히 달랐다. “병원에 있을 때보다 집이 더 힘들다”고 큰딸은 말했다. “병원에서는 아픈 세미여서 세미가 하늘나라 가는 순간 이제 더 안 아플 테니 잘 가라고 인사했는데, 집에 오니 건강했던 동생 모습이 여기저기 보여서 견디기가 힘들다고.” 매일 밤 자리에 누우면 세미가 밀물같이 이불 속으로 파고들어 왔다. 웃음도 많고 말도 많았던 막내가 없는 집이 한없이 쓸쓸해서 대낮에도 방마다 불을 켰다. 가족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몰래 세미 방에 들어가서 일기장과 메모지들, 편지들을 읽으며 울었다. “노로바이러스가 다 나으면 먹겠다”고 사달라고 한 조청 유과 한 봉지와 롤리팝 사탕 두 개가 책상 서랍에 들어있었다. 침대 머리맡에 붙여둔 아이의 버킷리스트를 읽고 또 읽었다. ‘수학 열심히 하기, 3㎏ 빼기, 방탄소년단 콘서트 가기, 내 인생에 만족할 줄 알기.’ 문득 아이 책상을 보았는데 매일 넘기는 말씀 달력이 병원에 입원한 1월 16일에 멈추어져 있었다. “건강한 이들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든 이들에게는 필요하다.”(마르 2,17) 우리 가족은 가방을 싸서 집을 나섰다. 목적지는 성 베네딕도회 왜관수도원이었다. 그곳에서 새벽 미사를 하고 밥을 먹고 산책하고 햇볕을 쬐고 성체조배하고 기도하고 묵상하고 수사님들과 함께하는 그레고리오 성가로 하루를 마치고 방으로 돌아와서 깊은 잠을 잤다. 종소리로 새벽을 열고 종소리로 밤을 닫는 고즈넉한 그곳에서 세상 어디서도 받을 수 없는 위로를 받았다. 수사님들이 직접 구운 식빵에 무화과 잼을 바르고 따뜻한 우유와 함께하는 아침 식사는 잃어버린 입맛을 찾아 주었고 입구의 복사꽃 나무부터 조팝나무, 냉이꽃, 꽃다지. 반지 꽃, 영산홍, 금낭화, 히아신스…. 수도원 구석구석 핀 들꽃들은 우리를 향해 생명력을 뿜어냈다. 4월의 수도원은 그렇게 아름다웠다. 수도원 풍경이 천국을 닮지 않았을까 싶었다. 그렇게 왜관에서의 일주일은 우리에게 보약과 같은 시간이었다. 수도원에서 돌아온 이후부터 확실히 우리는 달라졌다. 그 일주일간 수도원에서 받은 에너지는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왜관수도원으로 무작정 짐을 싸서 떠난 것은 우리의 선택이 아니라 하느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시간이 아니었을까. 「돌아보면 발자국마다 은총이었네」라는 책 제목처럼, 이제 와서 지난 시간을 돌아보니 우리의 눈물이 떨어진 발자국 발자국마다 하느님 은총이 함께 찍혀있었다. 기도하다가도 가끔은 불쑥불쑥 화가 치밀어 오를 때가 있다. 욥의 말처럼, “편안하게 살던 나를 깨뜨리시고 덜미를 붙잡아 나를 부수시며 당신의 과녁으로 삼으신” 그분 앞에 쥐고 있던 묵주를 던져버리고 싶을 때도 있다. 눈물에 가려 기도조차 할 수 없어서 촛불 하나 켜놓고 무기력하게 앉아 있기도 한다. 때로는 세미가 너무너무 보고 싶어서 죽을 것 같은 순간이 있다. 정말 죽어버릴까 하는 순간도 왔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노가 치밀고 아프고 고통스러울수록 그분이 더 많이 더 깊이 더 뜨겁게 믿어진다. 지금껏 소문으로만 듣던 하느님을, 아이를 잃은 상처와 아픔을 통해 비로소 내가 직접 느끼고 매달리고 찾게 되었으니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신앙의 신비이다. 세상에서 믿는 단 한 분은 나의 주님이심을 고백하며 자녀로서 당당하게 그분께 청한다. 좀 하나 없다는 안전한 그곳 천국에서 세미를 잘 돌보아 주시기를. 남은 우리 가족에게 자비를 베풀어 주시기를. ‘마음이 부서진 이들을 고치시고 그들의 상처를 싸매 주시는’ 당신이 나의 주치의가 되어주시기를. ‘나 하늘로 돌아가리라. 아름다운 이 세상 소풍 끝내는 날, 가서 아름다웠노라고 말하리라?.’ 천상병 시인은 이 세상 삶을 소풍이라고 말했다. 한바탕 짧은 소풍을 끝내고 세미는 갔다. 우리는 분수리 하늘정원 천주교 묘지에 있는 스텔라의 산소 앞 작은 비석에 글을 새겼다. ‘귀여운 세미, 짧은 소풍 마치고 천국으로 떠나다.’문채현2017.03.02
![2015 [출판 결산]](//cpbc.co.kr/CMS/newspaper/2015/12/rc/610692_1.0_titleImage_1.jpg)
2015 [출판 결산]올해도 교황 열풍… 기도·신앙 서적 인기 2015년 교계 출판의 화두는 ‘프란치스코 교황’과 ‘봉헌생활의 해’였다. 교황 방한 1주년과 봉헌생활의 해(2014년 11월 30일~2016년 2월 2일)를 맞아 교황의 삶과 말씀, 수도 영성을 조명하는 책들이 주를 이뤘다. 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기도와 성경 관련 책도 꾸준히 발간됐다. 프란치스코 교황교황의 한 마디에 세계의 이목이 쏠린다. 그야말로 세계적 ‘인기 스타’라고 해도 틀리지 않는 말이다. 교황 말씀을 모아 놓은 강론집을 비롯해 교황 관련 서적들은 종류를 가리지 않고 독자들의 사랑을 받았다. 「2014 KOREA 프란치스코 메시지」(하양인)는 대전가톨릭대 총장 곽승룡 신부가 교황이 한국에 남긴 메시지를 중심으로 교황 방한의 의미를 되새긴 책이다. 4박 5일간 교황과 함께 뜨겁게 설레었던 감동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페이스북을 통해 교황 강론을 동영상과 함께 번역해 올리는 진슬기(서울대교구) 신부는 교황 말씀 모음집 「나는 그대를 이해합니다」(가톨릭출판사)를 펴냈다. 교황이 준비된 원고를 치우고 즉석에서 강론하거나 질문을 받아 답한 내용도 함께 실려 있다. 「베르골료 리스트」(분도출판사)는 교황이 아르헨티나 사제 시절, 군사 독재 정권의 눈을 피해 탄압받는 사람들을 도왔던 이야기를 담고 있다. 당시 교황 덕분에 살아남은 이들의 증언을 수록했다.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이야기다. 최근 MBC 프로그램 ‘신비한 TV 서프라이즈’에 소개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 밖에도 교황이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 대교구장 시절 집전했던 미사 강론 중 ‘생명’을 주제로 한 말씀을 모은 「프란치스코 생명」(생활성서사), 신앙생활과 관련된 강론을 모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말하는 신앙생활의 핵심」(바오로딸), 가정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교황 프란치스코, 세상의 가정들에게 말을 걸다」(사람과사랑) 등이 있다. 봉헌생활의 해,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탄생 500주년올해는 수도자들의 삶과 영성을 되새기는 봉헌생활의 해다. 또한 중세 교회 개혁을 주도하고 맨발 가르멜 수도회를 설립한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1515~1582) 탄생 500주년이 되는 해다. 이와 관련해 출판사들은 수도 영성과 특별히 가르멜회 관련 서적을 다양하게 선보였다. 「수도영성의 기원」(분도출판사)은 수도 영성의 모태가 되는 고대 교부들의 가르침을 다뤘다. 성 안토니우스, 성 파코미우스를 비롯해 에바그리우스 폰티쿠스, 성 바실리우스, 성 아우구스티누스 등을 소개하고, 교부들의 작품을 발췌, 인용해 교부들 가르침의 진수를 담았다. 「따름과 본받음」(형제애)은 수도 생활의 전통과 교회 가르침에 따른 그리스도론적 해석을 담고 있다. 로마에서 수도생활신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백남일(한국순교복자성직수도회) 신부가 썼다. 「가르멜 영성의 발자취를 따라서」(기쁜소식)는 성녀 데레사가 설립한 17개의 맨발 가르멜 수녀원과 그 수녀원이 자리한 도시에 대한 설명이 중심을 이룬다. 여기에 십자가의 성 요한과 가르멜회의 탄생 과정에 대한 설명을 더했다. 「현대인을 위한 성녀 데레사의 영성」, 「아빌라의 성녀 데레사 자서전」, 「십자가의 성 요한과 함께」(이상 기쁜소식) 등은 맨발 가르멜회 성인ㆍ성녀가 어떠한 삶을 살고, 어떻게 하느님께 다다랐는지를 알려준다. 신앙생활 길라잡이신자들의 신앙생활을 돕는 기도와 성경 관련 책은 꾸준히 인기다. 「베네딕토 16세 기도」(바오로딸)는 전임 교황 베네딕토 16세가 들려주는 기도법이다. 부제는 ‘하느님과 대화하는 기술’. 성경을 바탕으로 기도에 관한 가르침을 알려주며 전례가 얼마나 중요한 기도인지를 짚어준다. 「기도로 신학하기, 신학으로 기도하기」(생활성서)는 구약 성경의 인물들이 바치는 기도를 분석하며 내 삶이 내가 바치는 기도와 분리돼 있는 것은 아닌지 성찰하게 해 준다. 저자는 구약 성경 전문가 김영선(마리아의 전교자 프란치스코 수도회) 수녀로, 하느님과 자기 자신을 먼저 아는 것이 기도의 첫걸음임을 강조한다. 안셀름 그륀 신부는 「주님의 기도」를 통해 주님의 기도에 담긴 신비와 영성, 진리를 파고들었다. 마태오 신학과 루카 복음서 사상을 바탕으로 주님의 기도를 분석하며 주님의 기도가 기도에서 실천으로 이어져야 함을 조언했다.「한 권으로 정리하는 성경 Top 10 」(생활성서)은 성경 속 중요 인물과 장소, 다양한 사건에 관한 내용을 항목별로 순위를 매겨 알기 쉽도록 정리했다. 항목별로 10위부터 1위까지 차례로 소개하고 있어 성경 입문서로 제격이다. 「성경 속 하느님 생각」(바오로딸)은 구약 성경을 중심으로 하느님 말씀을 우리 현실에 비춰 하느님께서 생각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선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5.1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