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2 (1)[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9) 스페인 몬세라트 수도원 대성당 파사드의 ‘그리스도와 12사도상’ 만약 대가 끊어질 위기에 처한, 아들 귀한 집의 가장이 성경을 읽는다면 약간 맘 상할 부분이 있다. 바로 야곱이 아들을 ‘줄줄이’ 낳는 장면이다. “이번에도 아들이에요.”(창세 35,17) 아들, 아들, 아들…, 또 아들이다. 야곱은 그렇게 무려 열두 명의 아들을 낳는다. 할아버지 아브라함은 본부인에게서 둔 아들이 이사악 하나뿐이었다. 그리고 아버지 이사악은 에사오와 야곱, 쌍둥이 아들 둘만 두었을 뿐이다. 게다가 아브라함과 이사악 모두 젊었을 때는 아들을 보지 못하다가 늘그막에 자녀를 얻었다. 그래서 이사악과 에사오 그리고 야곱은 애지중지 길러졌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손자 야곱은 아들을 무려 열둘이나 낳았다. 아들 각각의 이름은 다음과 같다. 본부인 레아에게서 낳은 아들이 르우벤, 시메온, 레위, 유다, 이사카르, 즈불룬 등 여섯이고, 라헬에게서 낳은 아들이 요셉과 벤야민, 라헬의 몸종 빌하에게서 낳은 아들이 단과 납탈리, 레아의 몸종 질파에게서 낳은 아들이 가드와 아세르이다.(창세 35,22-26 참조) 이들은 각자 이스라엘 12지파의 조상이 된다. 한 민족을 12지파로 나누는 것은 기원전 2000~1600년경 당시 지중해 동부지역과 소아시아 지역에서는 흔히 있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왜 굳이 ‘12’였을까. 오늘날 유전학자들은 인류 생존의 수수께끼 속에는 ‘12의 법칙’이 숨어 있다고 말한다. 인간 스스로도 모르게 몸속에 ‘12’라는 숫자가 숨어 있다는 것이다. 학자들은 12의 법칙 균형이 깨지면 인류는 멸망한다고 주장한다. 유전학자들은 확률적으로 왼손잡이가 전체 인구의 12분의 1(8.3%)이라고 말한다. 또 12명 중 한 명은 색맹이다. 또한 12명 중 한 명은 대머리다. 왜 그럴까. 인류는 원시시대부터 12명을 기본 단위로 사냥에 나섰다. 그런데 12명 중 대머리와 왼손잡이, 색맹이 한 명씩 포함된 그룹이 가장 사냥을 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오른손잡이 11명이 동물을 오른쪽으로 몰 때 한 명은 왼쪽으로 돌아갔고, 동물에게 가장 가까이 접근할 수 있었던 사람은 대머리였으며, 동물들의 보호색 위장을 판별해내기 위해 색맹이 필요했다는 것이다. 믿거나 말거나이지만, 실제로 대머리와 색맹, 왼손잡이의 비율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오늘날에도 전체 인구의 8.3퍼센트(1/12) 비율을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인간은 유독 12라는 숫자에 집착한다. 인류 최초의 문명, 수메르인들이 사용한 것은 12진법(十二進法, duodecimal)이었다. 손가락이 10개여서 10진법이 가장 먼저 사용되었을 것 같지만 사실은 다르다. 인류가 최초로 선택한 셈법은 12진법이었다. 우리는 이 12진법을 오늘날 시계에 적용해 사용하고 있다. 우리는 하루 24시간을 오전과 오후 12시간으로 나눈다. 1년 또한 열두 달이다. 올림포스의 주축이 되는 신도 열둘이었다. 아서왕의 전설에 나오는 원탁의 기사도 열두 명이다. 동양에서도 12는 특별한 의미를 지닌 수였다. 십이지(十二支)는 자(子) 축(丑) 인(寅) 묘(卯) 진(辰) 사(巳) 오(午) 미(未) 신(申) 유(酉) 술(戌) 해(亥)를 말한다. 오늘날에도 음악에서 한 옥타브는 12개의 반음 간격이며, 컴퓨터 키보드에도 F1에서 F12까지 12개의 기능키가 있다. 연필 한 다스도 12자루다. 알렉산더 데만트(Alexander Demandt)는 「시간의 탄생」에서 12와 관련해서 이렇게 말한다. “초기 바빌로니아 시기부터 태양력에 있던 12개월은 숫자 12라는 숫자가 손가락 수에 기반을 둔 10이라는 숫자와 맞먹는 지위를 가지고 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10은 2, 5로 밖에 나눌 수 없지만 12는 2, 3, 4, 6이라는 숫자로 각각 나눌 수 있다. 12에서 파생된 가장 가까운 개념으로 하루에 12시간이라는 단위가 있으며 그 다음에는 60진법을 바탕으로 한 60분과 60초, 360도라는 원의 각도를 들 수 있다. 기하학의 영역에서 원은 여섯 개의 반지름으로 이뤄져 있으며 각 60도씩 마치 똑같이 자른 케이크처럼 여섯 개의 동등한 조각으로 나눌 수 있다. 이오니아오와 헬라스에서 개최되는 경기에 참가하는 팀은 열두개 팀이었다. 헤라클레스는 열두개의 과제를 수행해야 했으며, 전차를 모는 이들은 히포드롬 원형 경기장을 열두 바퀴씩 한 번 혹은 여러번 돌아야했다.”- 알렉산더 데만트(Alexander Demandt), 「시간의 탄생」(이덕임 옮김, 북라이프, 2018)에서 그리스도교 구원사 속에서도 12는 위력을 발휘하는데, 예수는 제자 “열둘을 뽑으셨다.”(루카 6,13) 여기서 12의 의미는 이스라엘 전체의 구원을 상징한다. 5000명을 먹이신 기적에서도 12의 상징은 의미심장하다. 남은 빵 조각과 물고기를 모으니 12광주리에 가득 찼다.(마르 6,43 참조) 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언젠가는 12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다스리게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사람의 아들이 영광스러운 자기 옥좌에 앉게 되는 새 세상이 오면, 나를 따른 너희도 12옥좌에 앉아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심판할 것이다.’”(마태 19,28) 요한묵시록에 나오는 새 예루살렘도 12성문, 12초석으로 이루어져 있다.(묵시 21,12-14 참조) 어쨌든 이스라엘(민족)은 이스라엘(야곱) 이후 그의 열두 아들을 머리로 하는 12부족 동맹체제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이들 부족은 훗날 강대국들의 틈바구니 속에서도 그리 쉽게 단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판관 5장 참조) 게다가 이들 부족들끼리의 영토 분쟁도 끊이지 않았다. 훗날 가나안 정복 후, 소위 젖과 꿀이 흐르는 비옥한 땅은 납탈리, 이사카르, 아세르 등에게만 돌아갔을 뿐이었다. 불만이 없을 수 없었다. 이러한 반목을 아예 피하려 했던 기록도 있다. 12지파의 막내 격인 가드와 르우벤 지파는 아예 약속의 땅을 거부하겠다고 모세에게 말했고,(민수 32,1-20 참조) 시메온 지파도 이집트와 인접한 오늘날 가자지구 남쪽 땅을 분배받았다. 12지파 이야기는 여기서 멈추고, 그 조상들의 이야기로 다시 돌아가자. 글 _ 편집부 cpbc2023.12.04

배신자 에돔은 심판 받고 이스라엘은 구원 받으리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2) 오바드야서 오바드야서는 21절로 이뤄진 구약 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으로 에돔의 멸망과 이스라엘의 구원을 예언하고 있다. 멜로초 다 포를리, ‘오바드야 예언자’, 1477, 프레스코, 산타 카사 바실리카(성모 마리아의 집 대성전), 로레토, 이탈리아. 구약 성경의 예언자들은 바빌론 유배 이전과 이후 예언자로 구분됩니다. 유배 이전 예언자들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느님만을 섬기고, 주님 뜻에 따라 충실히 율법을 지키고 살아가라 권고했습니다. 그러면서 하느님을 거스르고 우상을 섬긴 죄 때문에 주님의 심판이 다가왔다며 회개를 촉구했습니다. 하지만 북 왕국 이스라엘과 남 왕국 유다는 이들 예언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않았습니다. 결국 이스라엘과 유다는 아시리아와 신바빌로니아 왕국에 의해 멸망하고, 유다인들은 바빌론으로 끌려가 50년간 유배지에서 포로생활을 합니다. 바빌론 유배 이후 등장한 예언자들은 유다인에게 자비로우신 하느님께서 역사에 개입하시어 당신 백성을 용서해주시고 계약 관계를 회복해 이스라엘을 재건할 것이라고 격려합니다. 아울러 이들은 이스라엘의 현세적 재건을 넘어 모든 민족의 종말론적 심판과 구원을 예언합니다. 구약 성경의 예언자 가운데 남 왕국 유다가 멸망할 때 이스라엘 민족을 배신하고 갖은 나쁜 짓을 한 ‘에돔’의 심판을 선언한 예언자가 있습니다. 바로 ‘오바드야’입니다. 히브리어 오바드야는 우리말로 ‘야훼의 종’이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히브리어 ‘오바드야’를 음차해 ‘Οβδιου’(옵디우), ‘Abdias’(압디아스)로 표기합니다.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오바드야서’라 표기합니다. 오바드야 예언자에 대해 알려진 것은 이름뿐입니다. 다만 오바드야서 내용을 근거로 그가 유다 출신이며 예루살렘 성전이 파괴되고 유다인들이 포로로 바빌론으로 끌려가 모든 것이 끝난 것처럼 보일 때 유배지에서 주님의 환시를 봅니다. 하느님께서는 환시를 통해 당신 날의 도래를 선포하시고, 당신께서 민족들의 주님으로서 역사 속에 개입하시어 통치하신다는 사실을 드러내십니다. 특히 오바드야는 환시에서 예루살렘이 함락당할 때에, 에사우의 후손들인 에돔인들이 야곱의 후손들인 이스라엘인들에게 한 행실을 고발합니다.(10절) 그래서 이 예언서는 예루살렘이 함락된 해인 기원전 587년 조금 이후에 쓰였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오바드야서는 21절로 이뤄진 구약 성경에서 가장 짧은 책입니다. 그럼에도 1-14절과 15-21절의 문체와 주제가 차이가 납니다. 그래서 성경학자들은 오바드야서가 한 예언자의 고유한 기록이 아니라, 다른 예언자들의 기록을 토대로 서로 다른 문학 유형을 융합해 완성한 경전일 것으로 추정합니다. 오바드야서 주요 내용은 이스라엘 민족을 침략했던 외세에 내려질 심판, 특히 에돔의 멸망(1-14절)과 이스라엘의 구원(15-21절)을 예언합니다. 오바드야서를 문학 유형에 따라 살펴보면 머리글(1ㄱ절), 환시(1ㄴ-14절), 선언(15-18절), 산문체 해설(19-21절)로 세분화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과 에돔의 관계는 창세기 25장 21절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이사악이 20여 년의 기도 끝에 얻은 쌍둥이 아들 야곱과 에사우는 어머니 뱃속에서부터 다투던 사이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이들이 각각 민족을 이루되, 형이 동생을 섬기게 되리라고 예고하십니다.(창세 25,22-23) 야곱은 형 에사우가 장자로서 받을 축복을 가로채고(창세 27,1-29), 상당 기간 에사우의 원수가 되어 도피생활을 해야 했습니다.(창세 27,41) 결국 야곱은 이스라엘 열두 지파의 시조가 되었고, 에사우는 에돔 민족의 시조가 됐습니다. 에돔인들은 사해 남동쪽 세일산 부근 산악 지대에 자리 잡아 왕국을 이루고 살았습니다. 민수기 20장 18절에서 에돔 왕은 이스라엘이 자신들 영토를 지나가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은 가나안 땅을 목전에 두고도 먼 거리를 우회해야 했습니다. 신명기 23장 8절에는 ‘피를 나눈 에돔을 상종하지 못할 민족으로 여기지 말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하지만 다윗은 에돔인 1만 8000명을 죽이고 그곳을 자신의 속국으로 삼았습니다. 그러다 에돔은 남 왕국 유다 여호람 임금 때 독립해 이스라엘과 대립하는 나라가 됐습니다.(2열왕 8,22; 2역대 21,10) 그리고 에돔은 예루살렘이 멸망할 때 유다인의 원수인 바빌로니아 편에 섰습니다. 그들은 네겝과 유다 남쪽 도시 몇 곳을 점령하고 학살과 약탈을 자행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유다인들을 바빌론에 노예로 팔아넘겨 이득을 취하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오바드야 예언자는 이스라엘을 억압하던 민족들이 하느님 심판을 당연히 받을 것이고, 그중에서도 에돔은 더욱 엄한 심판을 받게 될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하느님께서는 에돔이 행한 만큼 갚아주겠다고 선언하십니다.(15ㄴ절) 에돔 지역을 차지했던 나바테아 왕국이 서기 106년 로마 제국에 병합되면서 에돔은 역사에서 완전히 사라집니다. 오바드야서는 ‘주님의 날에 새로운 이스라엘 곧 주님의 나라가 세워질 것’을 선포합니다. 그러면서 모든 민족에게 주님의 날이 가까웠으니 회개하라고 권고합니다. 주님의 나라가 거룩한 시온산에 실현될 날은 이스라엘에게 구원의 날이지만, 모든 원수에게는 심판과 멸망의 날이 될 것이라 합니다. 그들도 에돔처럼 주님 백성을 억압하고 파괴하는 데 동조하거나 주님의 나라를 거슬렀기 때문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2024.02.21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저는 믿나이다] (52) 예수 그리스도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삼위일체 하느님의 완전한 계시이다. 라파엘로 산치오, ‘주님의 거룩한 변모’, 1516~1520년, 바티칸박물관. “또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 하느님의 외아들,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을 믿나이다. 하느님에게서 나신 하느님, 빛에서 나신 빛, 참하느님에게서 나신 참하느님으로서 창조되지 않고 나시어 성부와 한 본체로서 만물을 창조하셨음을 믿나이다. 성자께서는 저희 인간을 위하여, 저희 구원을 위하여 하늘에서 내려오셨음을 믿나이다. 또한, 성령으로 인하여 동정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시어 사람이 되셨음을 믿나이다. 본시오 빌라도 통치 아래서 저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수난하고 묻히셨으며 성경 말씀대로 사흗날에 부활하시어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앉아 계심을 믿나이다. 그분께서는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영광 속에 다시 오시리니 그분의 나라는 끝이 없으리이다.”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 가운데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문입니다. 그리스도교가 유다교와 이슬람교와 근본으로 다른 것은 ‘예수 그리스도’와 ‘삼위일체이신 하느님’에 대한 신앙입니다. 그리스도교는 니케아-콘스탄티노폴리스 신경의 성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 고백을 온전히 믿는 종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느님의 외아들로 영원으로부터 성부에게서 나신 분임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고요? 예수님께서 직접 당신이 ‘하느님의 외아들’로 계시하셨기 때문입니다.(요한 3,16-18 참조) 더불어 주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그리고 거룩한 변모 때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마태 3,17; 17,5)이라는 아버지 하느님의 말씀이 하늘에서 들려왔다고 복음서는 기록하고 있습니다. 또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을 바라보며 “참으로 이 사람은 하느님의 아드님이셨다”(마르 15,39)고 한 로마군 백인대장의 고백을 통해 알 수 있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란 신앙 고백은 예수님께서 아버지 하느님과 같이 영원으로부터 계시는 분이심을 드러냅니다. 그리스도인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참하느님이시며 참인간이심을 믿습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과 같은 분”(필리 2,6)으로 아버지 하느님과 한 본체로서 ‘참하느님’이십니다. 아울러 예수 그리스도는 ‘참인간’이십니다. 하느님의 외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인간을 위하여, 우리를 하느님과 화해시켜 구원하시고자 ‘사람’이 되셨습니다. 교회는 이를 ‘강생의 신비’라고 합니다. 사람이 되신 하느님의 외아들이 우리와 근본으로 다른 것은 창조되지 않으신 분이라는 점입니다. 말 그대로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좀 어렵게 표현하면 신성을 잃지 않고 인성을 취하셨기에 참하느님께서 참인간이 되셨습니다. 참하느님께서 참인간이 되실 때 아버지 하느님과 성령께서 개입하셨습니다. 성령께서는 동정녀 마리아를 택하시어 하느님의 외아들의 어머니로 삼으셨습니다. 아버지 하느님께서는 인간 예수 그리스도의 전 생애에 “성령과 함께 힘을 부어 주셨습니다”(사도 10,38) 동정녀로서 ‘구세주의 어머니’가 되신 마리아는 온전히 거룩하신 분이셨습니다. “성부께서는 다른 모든 창조된 인간들보다 마리아에게 더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의 온갖 영적인 복을 내리셨습니다.’(에페 1,3) 하느님께서는 그녀를 ‘세상 창조 이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하시어, 당신 앞에서 거룩하고 흠 없는 사람이 되게 해 주셨습니다.’(에페 1,4)”라고 고백합니다.(「가톨릭교회 교리서」 492) 그래서 가톨릭교회는 마리아를 “하느님의 어머니”라 부르며 공경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 전체는 신비 그 자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과 행적, 기적을 통해 당신이 구세주 그리스도이시며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셨습니다. 교회가 예수님의 전 생애를 신비라 고백하는 것은 당신 삶 자체가 ‘아버지 하느님의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를 본 사람은 곧 아버지를 뵌 것이다”라고 하셨습니다.(요한 14,9) “그리스도의 삶 전부가 연속되는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분의 침묵, 기적, 행동거지, 기도, 사람들을 위하시는 사랑, 보잘것없는 사람들과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울이시는 각별한 애정, 인류 구원을 위한 십자가상의 전적인 희생을 기꺼이 받아들이시는 자세, 그분의 부활, 이 모두가 당신 말씀의 실현이었고 계시의 완성이었습니다.”(성 요한 바오로 2세, 「현대의 교리 교육」 9) 예수 그리스도의 지상 생활에서 가장 큰 신비는 바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부활하신 것”입니다.(콜로 1,18) 부활은 그리스도의 인성이 하느님의 영광 안에 들어간다는 신비적이고 초월적인 사건입니다. 주님의 부활은 장차 실현될 우리 부활의 근원이며 원천입니다.(1코린 15, 20 참조) 그리스도교는 하늘에 올라 성부 오른편에 계신 하느님의 외아들께서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믿습니다. 주님께서 다시 세상에 오시는 날은 ‘심판의 날’입니다. 이날 모든 산 이와 죽은 이들은 저마다 제 행동에 따라 심판받을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들이거나 거부한 것에 따라 갚아주실 것입니다. 하느님께서는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깨닫게 되기를 원하십니다.”(1티모 2,4) 이는 하느님께서 모든 사람이 당신의 외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알게 되기를 바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은 세상 모든 사람에게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야 합니다.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리길재 전문2025.11.18
권력자들이여, 가난하고 힘없는 이를 보호하라[리길재 기자의 성경에 빠지다] (61) 아모스서히브리어 구약 성경 「타낙」은 아모스서를 요엘서 다음에 배치해 놓았습니다. 이유는 두 책이 메뚜기, 재앙, 불, 경신례 탄원, 주님의 날, ‘시온에’라는 표현 등 유사점을 공유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아모스서는 요엘서보다 훨씬 이전인 기원전 8세기께 저술된 책입니다. 아모스는 ‘아모스야’를 줄인 말일 것이라고 성경학자들은 추측합니다. 아모스야는 우리말로 ‘야훼께서 (짐을) 들어주신다’, ‘야훼께서 (짐을) 짊어져 주신다’라는 뜻입니다. 헬라어 구약 성경 「칠십인역」과 라틴어 대중 성경 「불가타」는 히브리어 ‘아모스’를 음차해 ‘Αμωs’, ‘Amos’로, 한국 천주교 주교회의가 펴낸 우리말 「성경」은 ‘아모스서’라 표기합니다.아모스는 첫 번째 저술 예언자입니다. 저술 예언자는 자신의 이름을 제목으로 한 구약 성경 경전 안에 자신이 활동한 예언 내용이 그대로 보존돼 있는 예언자들을 말합니다. 하지만 저술 예언자들의 경전은 예언자 자신이 아니라, 대부분 그 제자들의 작품입니다.구약 왕정 시대 예언 운동이 먼저 발전한 곳은 북 왕국 이스라엘입니다. 저술 예언자 시대 이전의 엘리야와 엘리사 예언자도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활동했습니다. 하지만 저술 예언자로서 북 왕국에서 활동한 예언자는 아모스와 호세아 둘뿐입니다. 아모스는 호세아보다 약 10년 먼저 예언자로서 활동했습니다. 예언 운동이 먼저 시작됐지만, 예언자들이 적은 이유는 기원전 586년 멸망한 남 왕국 유다보다 136년이나 앞선 기원전 722년에 북 왕국 이스라엘이 멸망했기 때문입니다.아모스 예언자는 트코아에서 목양업과 돌무화과 나무를 재배하던 사람이었습니다.(1,1; 7,14 참조)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 백성의 구원 역사뿐 아니라 주변 민족사도 잘 알고 있고, 법 지식도 남다른 사람이었습니다.(2,6-8; 8,4-6) 아울러 아모스는 자신이 “예언자도 아니고 예언자의 제자도 아니다”라고 합니다. 다만 “가서 내 백성 이스라엘에게 예언하여라”는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뿐이라고 자기 신원을 밝힙니다.(7,14-15)트코아는 예루살렘에서 남쪽으로 약 18㎞ 떨어진 유다의 작은 마을입니다. 남 왕국 유다 사람인 그가 북 왕국 이스라엘에서 예언 활동을 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바로 하느님께서 유다인이든 이스라엘 사람이든 당신 백성 모두를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비록 유다와 이스라엘 두 왕국으로 갈라졌지만, 하느님께서는 그들을 “내 백성”(7,15)이라 부르십니다. 그래서 하느님께서는 유다 사람 아모스를 당신 예언자로 부르시어 이스라엘에 파견하셨습니다.이렇게 농축산업을 하던 아모스는 고향을 떠나 북 왕국 이스라엘 베텔에서 예언자로 활동합니다. 베텔은 예루살렘 성전과 경쟁해 북 왕국 이스라엘의 성소로 신전이 지어진 곳이죠. 아모스가 활동한 시기는 대략 기원전 760~750년께로 추정합니다. 당시 이스라엘은 여호아스의 아들 예로보암 2세 임금(기원전 787~747년 재위)이 통치하고 있을 때입니다. 예로보암 2세는 태평성대를 누렸습니다. 이스라엘 영토는 최대로 확장됐고, 외교적으로 안정과 평화가 지속했습니다. 농업과 수공업이 번창했고, 주변국과의 교역도 활발했습니다. 부정부패도 만연했습니다. 권력자들의 억압과 착취로 백성들은 가난을 면치 못했습니다.(4,1; 5,12) 무엇보다 종교 타락이 극치를 달렸습니다. 베텔에 왕실 신전을, 단과 길갈에 여러 신당을 세워 송아지상을 안치하고 우상을 섬겼습니다.(4,4; 5.5; 8,14)북 왕국 이스라엘은 예로보암 2세 임금이 죽은 지 25년 만에 아시리아에 패망합니다. 그 사이 임금이 여섯이나 바뀌었습니다. 대부분 폐위되거나 암살되었지요. 이스라엘이 예로보암 2세 사후 파국으로 치달은 까닭은 아시리아 때문이었습니다. 아시리아의 영향력이 미치자 이스라엘 정치권이 친아시리아파와 반아시리아 세력으로 갈라져 끝없는 모반을 일으켜 국력을 소진시키고 말았죠.아모스서는 머리글(1,1)과 짧은 서론(1,2), 이스라엘 주변의 일곱 국가를 향한 심판 선포(1,3─2,16), 이스라엘을 비난하는 신탁(3─6장), 다섯 환시(7,1─9,10), 맺음말(9,11-15)로 구성돼 있습니다. 이 중 다섯 환시(7─9장)에서 예언자가 자신에 관해서 단수 1인칭으로 말하는 부분들은 아모스가 직접 기록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아모스서는 하느님의 권능과 정의가 모든 민족에게 퍼져나가는 가운데 이스라엘에 대한 주님의 영원한 우선적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러면서 아모스서는 부자와 권력자들, 사제들에게 경신례와 가난하고 힘없는 이들을 보호해야 하는 율법을 상기시킵니다. 아모스의 이 신탁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확연하게 선포됩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아모스서는 이스라엘이 하느님께 형식적으로 제사를 바치면서도 마음으로는 하느님을 찾으려 하지 않아 미래가 없고, 남은 것은 멸망뿐이라고 경고합니다. 그러면서 회개하고 하느님께 용서를 구하면 구원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하지만 성경학자들은 이스라엘의 회복과 구원에 관한 아모스의 마지막 신탁은 그가 직접 선포하지 않았을 것으로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2024.02.21

군자불기(君子不器), 아름다운 목자 예수님![월간 꿈 CUM] 철학의 길 _ 동양 고전의 지혜와 성경 (2) 동양화의 가장 대표적 회화기법은 ‘여백의 아름다움(美)’에서 드러납니다. 그것은 형태로 화폭을 가득 채우는 것이 아니라 비어있는 공간을 항상 마련해 두는 것입니다. 설령, 붓칠을 해도 붓이 지나간 자리는 오묘하게 여백이 겹쳐 있습니다. 여백은 형태를 더욱 부각시키고 움직임을 무한히 확장해 더 생동감을 만들어줍니다. 자신은 비어있지만 다른 사물을 살리는 자리가 바로 여백이며, 그 아름다움의 경지를 ‘여백의 아름다움(美)’이라고 합니다. 이런 예술적 경지를 공자는 군자가 갖추어야 할 품격으로 말합니다. 孔子曰 君子不器 공자가 말하였다. 군자는 고정된 그릇이 되지 않는다. 여기서 ‘器(기)’는 좁게는 그릇, 넓게는 정해진 형태를 가진 사물들을 말합니다. 따라서 군자는 고정된 모습의 틀 속에 갇히지 않는다는 것을 말합니다. 넓은 포용력과 가능성이 열려있어 그림으로 말하면 ‘여백의 아름다움’의 경지에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군자불기’를 핵심적으로 설명해줄 수 있는 구절을 『예기』 「학기」편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鼓無當於五聲 五聲弗得不和 水無當於五色 五色弗得不章 북은 다섯 가지 소리(궁·상·각·치·우)에 속하지 않지만, 다섯 가지 소리는 (북 없이)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물은 다섯 가지 색(청·적·황·백·흑)에 속하지 않지만, 다섯 가지 색은 (물 없이) 표현될 수 없다. 북 자체가 소리의 형태는 아닙니다. 그러나 다양한 소리의 형태는 북을 근거로 살아있게 됩니다. 역시 물 자체가 색깔의 형태는 아니지만 다양한 빛깔이 물을 근거로 표현됩니다. 북과 물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없는 것처럼 있어 다양한 형태를 만들어주고 살려줍니다. 다양한 소리와 색이 숨 쉬며 생동하는 장소, 창의적 창조가 이루어지는 그곳, ‘여백의 아름다움(美)’의 경지, 不器(불기)의 품격입니다. 성경에서 이런 품격과 바탕을 찾아본다면 ‘착한 목자’(요한 10,11)의 품격에서 찾아집니다. 이것은 예수님이 자신을 두고 하신 말씀입니다. 여기서 ‘착한’은 ‘칼로스’인데 이 단어는 ‘아름다운’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하느님이 세상을 창조하실 때 ‘좋다’고 하신 말씀도 희랍어로는 같은 단어를 사용합니다. ‘좋다’는 도덕적 의미에서 ‘선’으로, 예술적 의미에서 ‘아름다움’이라 말해집니다. 그 최고의 경지에 있는 이가 ‘아름다운(착한) 목자’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당신을 착한 목자라 한 이유는 인간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때문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생명’에는 ‘조에’와 ‘비오스’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조에’는 ‘생명 자체’ 혹은 ‘신적 생명(영원한 생명)’을 말하며, ‘비오스’는 ‘생물학적 생명’ 혹은 ‘생애(인생)’나 ‘살이’를 의미합니다. 인간의 다양한 모습의 ‘살이’는 생명 자체인 신적 생명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단지 생물학적 생명으로만 살지 않습니다. 생명 자체는 모양도 꼴도 없지만, 그 위에서 다양한 ‘생애(살이)’가 만들어집니다. 창세기 하느님은 인간을 창조하시면서 진흙으로 빚은 후 하느님의 숨을 불어넣어 주셨습니다. 그 숨은 세상 창조의 숨이며, 인간 생명은 창조적인 신적 기원을 갖는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런 생명 자체가 다양한 모습을 갖는 ‘생애’의 형태는 아니지만, 모든 구체적 ‘생애’가 만들어지고 살아나는 不器(불기)한 자리, 창조적 아름다움이 충만한 여백의 자리입니다. 그래서 ‘조에’의 바탕에서 ‘비오스’는 창조적으로 다양한 그릇처럼 만들어질 수 있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조에)이다.’(요한 14,6) 붓칠을 해도 오묘하게 여백이 겹쳐 있듯, 내가 살아온 인생의 흔적에 오묘하게 예수님이 겹쳐 있다면 우리는 여백의 아름다움, ‘군자불기’의 품격으로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좌절은 극복될 수 있습니다. 인생(생애)은 하나의 그릇으로 정해져 있지 않습니다. 조각나고 깨어진 삶의 자리가 오히려 ‘생명 자체(신적 생명)’, 즉 ‘조에’가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그 자리에서 창조적으로 다시 만들면 됩니다. ‘비오스’에 집착해 ‘조에’를 포기해선 안 됩니다. 아름다운 목자 예수님이 우리의 창조적 여백이 되어주십니다. 오늘은 반나절 동안 눈을 감고 있었습니다. 낮잠이 필요해서가 아니라 눈의 여백을 잃어서입니다. 강론을 쓸 때도, 정보를 모을 때도, 사람과 소통할 때도 컴퓨터와 휴대폰 화면에서 눈을 뗄 수 없게 되었습니다. 강렬한 빛과 강렬한 색이 눈의 여백을 도둑질해 갔습니다. 여백을 버리고 빛과 색을 택하고 나니 거꾸로 빛도 색도 눈을 배신하여 떠나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조에’의 여백이 주는 아름다움까지 잃고 싶지 않군요. ‘아름다운(착한) 목자 예수님!’ 글 _ 손은석 신부 (마르코, 대전교구 산성동본당 주임) 2006년 사제수품. 대전교구 이주사목부 전담사제를 지냈으며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동양철학전공)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소소하게 살다 소리 없이 죽고 싶은 사람 중 하나. 그러나 소리 없는 성령은 꼭 알아주시길 바라는 욕심쟁이다. cpbc2024.02.19

하비루, 히브리, 이스라엘[월간 꿈 CUM] 유랑 _ 이야기 구약성경 (8) 이스라엘 광야 고대 중국인들은 한반도와 만주 지역에 살고 있던 우리들의 조상을 ‘동이’(東夷)라고 불렀다. 직역하면 ‘동쪽 오랑캐’라는 뜻인데 중국 역사에서 중국 사학자들이 중국의 북동쪽과 한국, 일본 또는 그곳에 사는 종족을 이르는 말이다. 중국인들은 동이뿐 아니라 서쪽에 사는 오랑캐를 서융(西戎), 남쪽 오랑캐를 남만(南蠻), 북쪽 오랑캐를 북적(北狄)이라고 불렀다. 스스로를 세계의 중심이라고 생각하다 보니, 주변에 살고 있는 민족들을 모두 오랑캐로 인식한 것이다. 남 말 할 수 없는 것이, 우리도 중국 사람과 일본 사람을 낮잡아 각각 ‘되놈’과 ‘왜놈’으로 불렀다. 아브라함과 이사악, 야곱 시대에도 당시 문명지역(이집트, 메소포타미아)에서 주변 지역 사람들을 경멸적 의미로 지칭하던, ‘오랑캐’와 유사한 명칭이 있었다. ‘하비루’(Habiru)가 그것이다. 1887년 이집트에서 발굴된 ‘아마르나 문서’(기원전 14세기 것으로 추정)에 따르면 ‘아삐루’(Apiru) 또는 ‘하삐루’(Hapiru)라고도 불렸던 이들은, 기원전 2000년경 안정된 사회에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떠돌던 하층민이었다. 주로 팔레스티나 지역에 살던 무법자, 범법자, 용병, 노예, 반란자 등이 이 부류에 속했다. 이 하비루에서 우리는 자연스럽게 ‘히브리어’, ‘히브리 민족’, ‘히브리인’의 ‘히브리’(Hebrews)를 떠올릴 수 있다. 참으로 비슷하다. ‘하비루’와 ‘히브리’ 두 단어에서 모음을 빼면 같은 자음인 ‘ㅎ’, ‘ㅂ’, ‘ㄹ’이 남는다. 이집트 카이로 인근의 기자 지역에 위치한, 약 4500년 전 지어진 쿠푸왕의 피라미드(높이 146m). 연대상으로 볼 때, 이집트로 팔려간 요셉도 이 피라미드를 보았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래서 과거에는 많은 학자들이 히브리의 어원을 하비루에서 찾기도 했다. 하지만 고대 근동 여러 지역에서 더 많은 문서들이 발견되면서 하비루인들은 히브리인처럼 고정된 혈통과 언어, 문화를 갖춘 민족 집단이 아니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하비루는 특정 사회 계층을 경멸적으로 지칭하던 용어일 뿐이었다. 실제로 히브리인은 히브리어로 ‘이브리’(ibri)다. 배철현의 「신의 위대한 질문」(21세기북스, 2016)에 따르면 이 단어는 ‘경계를 넘나들다’ 혹은 ‘(규율을) 어기다’라는 뜻의 ‘아바르’(abar)라는 히브리 동사에서 파생했다. 히브리인은 한 곳에 정착하지 않고 경계를 넘나드는 자율적인 사람들이다. 히브리와 하비루는 관련이 없음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당시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는 하비루라는 명칭을 히브리인을 지칭할 때 간혹 사용하기도 했다. 히브리인이 하비루인은 아니었지만, 하비루인으로 불리는 사람 중에 히브리인들도 섞여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히브리인들은 강대한 민족들의 용병으로 고용돼 전쟁에 가담하기도 했고,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으며, 특히 이집트에서는 다른 하비루들과 함께 피라미드를 쌓는 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히브리’(Hebrews)는 성경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될까. 히브리는 하느님 백성을 지칭하는 말로, 탈출기 5장 1-3절에서는 히브리인과 이스라엘인을 동일시한다. 아브라함에게도 히브리인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창세 14,13 참조) 적장의 목을 베기 위해 적진으로 들어간 유딧도 스스로를 ‘히브리 여자’라고 말했다.(유딧 10,12 참조) 「한국가톨릭대사전」에 의하면 신약성경에서 히브리인은 헬레니즘의 영향을 받지 않은 순수한 유대인들을 가리키기도 하고,(사도 6,1 참조) 유대인들을 이방인과 구별하기 위해 사용하는 용어이기도 하다.(2코린 11,22 ; 필리 3,5 참조) 이후 기원전 2세기경에 히브리는 구약성경의 언어와, 이 언어로 기록된 작품들을 의미하게 된다. 그 영향으로 우리는 오늘날 유대인들이 사용하는 언어를 히브리어라고 부른다. 구스타프 클림트(Gustav Klimt, 1862~1918)의 ‘이집트 2’(Egypt Ⅱ), 오스트리아 빈 미술사 박물관. 히브리인이 하비루인은 아니 었지만, 하비루인으로 불리는 사람 중에 히브리인들도 섞여 있었다. 히브리인들은 강대한 민족들의 용병으로 고용돼 전쟁에 가담하기도 했으며, 노예로 팔려가기도 했다. 특히 이집트에서는 다른 하비루들과 함께 피라미드를 쌓는 노역에 동원되기도 했다. 하지만 원래 히브리라는 명칭은 광범위하게, 통상적으로 사용되던 말이 아니었다.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히브리인이라는 이름으로 부른 일이 거의 없었다. 주로 이방인이 이스라엘인들을 지칭할 때나,(창세 39,14 ; 탈출 2,6 ; 1사무 4,6 참조) 혹은 이방인에게 신원을 밝히려고 했을 때(창세 40,15 ; 탈출 3,18 ; 유딧 10,12 참조) 간헐적으로 쓰였다. 사실 유대인들은 히브리라는 용어보다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을 선호한다. 흥미로운 점은 이 명칭이 담고 있는 의미가 지금까지도 유대인들의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종종 거론된다는 점이다. 야곱이 얻은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에는 ‘하느님과 겨룬 사람’, ‘하느님께서 싸우신다’, ‘하느님께서 싸워주시기를’, ‘신들과 싸우는 사람’, ‘하느님을 위해 싸우는 사람’, ‘하느님의 정직한 종’, ‘하느님의 지배로 움직이는 사람’ 등 다양한 의미가 있다. 이러한 해석들 중 공통적으로 드러나는 함의가 있다. ‘싸우다’가 그것이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 자체가 전투적이고 투쟁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지금도’ 싸우고 있다. 척박한 자연환경과 강대국들의 위협 속에서 살아야 했던 유대인들에게 ‘싸움’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을 것이다. 그 싸움의 틈바구니 속에서 사라져간 민족이 하나둘이 아니다.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의 주인공, 야곱이 처한 환경도 그러했다. 야곱에게 있어서 가나안 땅은 나그네살이를 해야 하는 이방인의 땅이었다. 그것이 현실이었다. “야곱은 자기 아버지가 ‘나그네살이 하던 땅’, 곧 가나안 땅에 자리를 잡았다.”(창세 37,1) 글 _ 편집부 cpbc2023.11.27

신앙 상륙작전[월간 꿈 CUM] 꿈CUM 신앙칼럼 (30) 13세기 스페인에서 만들어진 구약 성경 필사본. 바티칸도서관 소장. =CNS ‘눈에는 눈, 이에는 이’(탈출 21,24)라는 구약의 동태복수법(同態復讐法)은 원래 약자를 보호하기 위한 장치였다. 힘 있는 사람이 약자에게 피해를 봤을 때, 딱 입은 손해만큼만 죄를 물어야 한다는 법이었다. 기원전 1750년 함무라비 법전 제196조에도 이와 똑같은 법이 기록되어 있다. 하지만 이 법은 구약 시대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그 취지를 살려내지 못하고 있다. 테러가 과도한 전쟁을 부르고, 그 전쟁이 더 큰 테러로 이어지고 있다. 상처를 받았다고 생각하면, 상대방에게 수십 수백배 더 큰 상처를 줘야 그나마 분이 좀 풀리는 것이 요즘 세태다. 구약은 혼자 힘으로 가려다 길을 뱅뱅 돌고(시나이 광야에서 40년을 헤매고) 신약은 길을 물어서(사랑의 예수께 의지해서) 간다. 신약이 없다면 구약은 성취되지 않은 미완의 약속으로 남는다. 전쟁과 좌절, 약속이라는 구약의 수프에 믿음, 소망, 사랑이라는 신약의 후추가 곁들여져야 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하느님은 약속하셨다. “나는 그들의 하느님이 되고 그들은 나의 백성이 될 것이다.”(예레 31,33) 이 구약의 실현이 신약이다. 신약의 예수는 하느님 백성이 되는 조건으로 “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는 겉옷까지 내주어라”(마태 5,40)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미’ 도착한 신약 사랑의 배가 ‘아직’ 우리 마음에 상륙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 앞바다에 정박 중이다. 맥아더 장군은 성공 확률이 5000분의 1도 되지 않는다는 인천상륙작전을 성공으로 이끌었고, 마침내 서울을 탈환했다. 이제 이 지긋지긋한 구약의 전쟁을 끊어내기 위해서는 신약의 신앙을 우리 마음에 상륙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구원을 탈환해 내야 할 것이다. 아직도 구약 전쟁 중인 내 마음에 신약 사랑이 상륙했으면 좋겠다. 그 신약의 사랑이 고통받는 삶 안에서 탈환되었으면 좋겠다. 배신과 다툼, 눈물의 구약 고지에 믿음, 희망, 사랑의 신약 승리 깃발이 펄럭이는 그 날이 왔으면 좋겠다. 아직 내 마음에 상륙하지 못한 신약이 저 멀리서 나에게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더 많이 가지려고 싸우지 마! 더 많이 소유하고 싶다면 주님을 사랑해야 해! 완전한 소유는 오직 주님 안에서만 가능해! 글 _ 우광호 발행인 원주교구 출신. 대학에서 신학과 철학을 전공했다. 1994년부터 가톨릭 언론에 몸담아 가톨릭평화방송·가톨릭평화신문 기자와 가톨릭신문 취재부장, 월간 가톨릭 비타꼰 편집장 및 주간을 지냈다. 저서로 「유대인 이야기」 「당신을 만나기 전부터 사랑했습니다」 「성당평전」, 엮은 책으로 「경청」 등이 있다. cpbc2025.06.30

하느님의 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시복 예비 심사 법정 개정 하느님의 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시복 예비 심사 법정 개정식에 참석한 시복 재판 관계자들이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하느님의 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시복 예비 심사 법정이 3일 서울대교구청 1회의실에서 개정했다. 이로써 서울대교구민과 한국 교회, 대한민국 국민들이 염원하는 김수환 추기경의 시복시성 재판이 본궤도에 올랐다. 김 추기경에 대한 시복 재판은 교구 차원의 ‘예비 심사’와 교황청 시성부 차원의 ‘본 심사’를 거치게 된다.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위원장 구요비 주교는 이날 법정 첫 회기에서 “하느님의 종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 시복 안건에 착수를 선언하며, 시복시성 절차에 관한 현행 규범에 따라 위에 언급된 하느님의 종이 생애와 덕행, 성덕의 명성에 대한 소송을 시작하도록 명한다”라며 안건 착수 교령을 발표했다. 이어 김 추기경 시복 예비 심사 법정 재판관인 구요비 주교는 재판 심리를 진행할 재판관 대리에 박준양 신부, 검찰관에 송정우 신부, 공증관에 나윤정씨를 임명해 법정을 구성했다. 법정 직책자들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하느님의 종과 다른 사람들의 명예를 훼손할 수 있는 사항들에 대해 비밀을 지킬 것과 공정한 마음으로 소송에 임할 것을 성경에 손을 얹고 서약하고 서명했다. 이에 앞서 시복 청원인 박선용 신부는 지난 2년간 역사 전문가들과 신학 전문가들이 조사하고 연구한 김수환 추기경의 생애와 성덕, 명성에 대한 ‘준비 문서’를 법정에 제출했다. 김수환 추기경 시복 예비 심사 재판 소송은 약 2년 정도 진행될 예정이다. 시복 예비 심사 법정은 내년 6월까지 회기를 마무리하고, 교황청 시성부의 시복시성 절차법에 따라 현장 조사와 모든 재판 문서 번역·감수 등을 거쳐 교황청 시성부에 제출하는 것으로 폐정할 계획이다. 법정은 또 김 추기경의 생애와 덕행, 성덕의 명성에 대한 소송의 증거 제출 장소로 서울대교구청 시복시성위원회 사무실로 지정했다. 그리고 증인들의 심문과 회기별 법정은 매월 수요일 중 하루 오후 2시에 서울대교구청 회의실에서 열기로 했다. 제2회기는 오는 10월 1일 수요일 오후 2시에 개정한다. 이날 김수환 추기경 시복 예비 심사 법정 개정식에는 염수정 추기경과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 역사 및 신학 전문 위원, 증인 등이 참석, 첫 회기 과정을 지켜봤다. 염 추기경은 “역대 서울대교구장들은 세 분의 순교 성인이 계실 만큼 모범적으로 복음을 선포하고 교회 공동체를 이끌어 오셨다”며 “ 제11대 서울대교구장 김수환 추기경의 시복 법정 개정을 지켜볼 수 있어 감회가 깊다”고 감격해했다.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김 추기경님은 1968년부터 1998년까지 대한민국이 정치 사회 경제 모든 분야에서 가장 힘든 시기에 만 30년 동안 서울대교구장직을 수행하시면서 교회와 사회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제시하셨다”면서 “모든 이가 존경하는 김 추기경께서 마땅히 시복시성될 수 있도록 큰 역할을 해달라”고 시복 재판 관계자들을 격려했다. 재판관 구요비 주교는 “김수환 추기경의 시복 추진은 우리 각자의 자리에서 그분의 모범적인 성덕을 본받기 위함”이라면서 “오늘 법정 개정이 그 여정의 출발이 되길 희망한다”고 말했다. 한편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는 증거자인 하느님의 종 바르톨로메오 브뤼기에르 주교와 김수환 스테파노 추기경의 시복시성을 위해 지속적인 전구 기도를 신자들에게 당부했다. 아울러 기적 심사를 위해 전구로 얻은 치유와 다른 은총이나 은혜 체험을 교구에 적극 알려달라고 공지했다. 연락처 : 서울대교구 시복시성위원회 02-727-2019, 주교좌 명동대성당 02-774-1784, 용산성당(브뤼기에르 주교) 02-719-3301, 김수환 추기경 기념 경당 02-727-2225, 군위 김수환 추기경 사랑과 나눔 공원 054-383-1922 리길재 전문기자 teotokos@cpbc.co.kr 리길재 전문2025.09.03

시련과 고난마저도 은총임을 깨닫기[한민택 신부의 금쪽같은 내신앙] (114) 모든 것이 은총인 것을 신앙과 가장 잘 어울리는 표현은 ‘감사’일 것이다. 모든 것을 선물로 주신 하느님의 은총에 대해 감사의 마음으로 사는 삶이 신앙이기 때문이다. 성경에는 한없는 은총과 사랑을 베풀어주신 하느님과 그 사랑을 깨달아가는 당신 백성 사이의 사랑 이야기가 담겨 있다. 이집트에서 노예살이하던 이스라엘 백성의 울부짖음을 들으신 하느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을 노예살이에서 해방시켜 주셨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통해 하느님과 시나이 산에서 계약을 맺고 십계명을 받았다. 십계명은 단순히 의무로 지켜야 할 계명이 아니라, 하느님의 구원 받은 백성으로 살아야 할 삶의 방식이었다. 신약도 마찬가지다. 하느님께서는 죄와 악, 죽음의 굴레에서 신음하고 있는 인간을 구하시기 위해 친히 당신 아드님을 보내셔서 인간을 그 굴레에서 해방시켜주셨고 구원의 길을 걷게 해주셨다. 그리스도인이 지켜야 할 계명은 단순한 의무사항이 아닌, 구원받은 자녀로서 살아야 할 삶의 방식인 것이다. 최윤환 몬시뇰 사제수품 60년 기념 논총을 준비하며, 제목을 궁리하다 몬시뇰께서 평소에 좋아하시던 문구가 프랑스 작가 베르나노스의 ‘어느 시골 신부의 일기’의 마지막 문장인 것을 알게 되었다. “Tout est grâce.” 모든 것이 은총인 것을. 필자가 프랑스에서 유학할 때, 신자들에게서 자주 들은 표현도 이것이었다. 실로 모든 것이 은총이며, 우리 삶은 은총으로 가득 차있다. 은총이란 나의 능력이나 권리나 공로로 마땅히 받아야 할 것이 아닌, 오직 하느님께서 당신 선의와 호의로 베푸시는 선물이다. 우리는 존재 자체를 선물로 받았으며, 살면서 필요한 모든 것을 하느님께로부터 받으며 살고 있다. 우리 삶은 모든 것이 은총임을 깨달아가는 과정이 아닐까. 어리고 철없을 때는 없는 것, 불편한 것에 투정을 부리지만, 커가면서 하느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고 얼마나 많은 것을 베풀어 주셨는지 깨닫게 된다. 모든 것을 은총의 선물로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은 병이나 시련 중에도 하느님의 뜻을 찾는다. 물론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잔바람에도 쉽게 흔들리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느님 은총은 시련의 때에도 멈추지 않는다. 우리가 시련 속에서 용기를 내어 앞을 향해 나아가도록 지지해주시며, 저 앞에서 우리를 맞아주고 계신다. 우리 인생은 하느님의 은총을 깨달아가며 감사하는 마음을 배우는 학교다. 그 은총은 세상 모든 것, 특히 부모님과 가족의 사랑, 신자들의 사랑과 관심을 통해 전달된다. 이들이 바로 하느님께서 나에게 보내주신 천사요 가족이며 친구요 은인들이다. 혹여, 나에게는 왜 은총보다는 시련과 고난만 주어지는 것일까 하고 묻는 분이 계실지 모르겠다. 그런 분을 위해 필요한 것은 함께 머물며 격려와 지지, 기도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이웃일 것이다. 시련 중에 있는 이에게 다가가 함께 기도하고 응원하며 격려하는 이가 없다면, 하느님 사랑을 나누는 이가 없다면, 우리는 모든 것이 은총이라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시간이 지나며 시련과 고난도 과거의 일이 될 때, 주님께서 시련과 고난마저도 나를 성장시켜줄 은총의 계기로 삼으셨음을 우리는 함께 깨닫게 될 것이다. 지금도 우리 주위에는 은총의 선물을 간절히 기다리는 이들이 계시다. 그들에게 다가가 하느님은 사랑이시며,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어 주는 분이심을 전하고, 그분께 의탁하고 희망을 둘 수 있도록 기도해주고 응원해주는 것이 우리에게 맡겨진 소명일 것이다. 한민택 신부cpbc2025.09.02
![[과학과 신앙] (22) 정의의 저울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4/10/15/PWW1728980105959.jpg)
[과학과 신앙] (22) 정의의 저울 (전성호 베르나르도, 경기 효명고 과학교사) 물리학과 화학에서 무게(weight)는 중력에 의해 물체에 작용하는 힘이며, 질량(mass)은 물질이 갖는 고유의 양으로 정의한다. 무게의 단위는 N(뉴턴), 질량의 단위는 g(그램)이나 ㎏(킬로그램)을 사용한다. 무게는 장소에 따라 변하는 상대적인 값이라 달에서 몸무게를 측정하면 지구에서보다 1/6 작게 나오지만 질량은 우주 어디에서나 변하지 않는 불변의 값이다. 일상생활에서 이 두 용어는 구분 없이 사용되어 흔히 ‘내 몸무게가 70kg이다’와 같이 표현하는데, 과학적으로 이 표현은 오류이며 ‘내 몸의 질량이 70kg이다’가 정확한 표현이다. 또는 ‘무게=질량×중력가속도 상숫값(지구의 경우 약 9.8)’이므로 ‘내 몸무게가 686N(뉴턴)이다’라고 해야 한다. 고대부터 현재까지 상업과 교역에서는 거래 대상이 되는 물질의 실질적 양이 중시되어 무게가 아니라 불변의 값인 질량을 표준으로 사용한다. 고기 600g(한 근), 금 3.75g(한 돈)으로 사용하는 것이 그 예다. 질량은 저울로 측정하는데 성경에 “아브라함은 (⋯) 은 사백 세켈을 상인들 사이에 통용되는 무게로 달아내어 주었다”(창세 23,16)고 쓰여있듯 인류는 예부터 저울을 사용했다. 기원전 수천 년 전 고대 이집트 시대에도 저울 사용의 기록을 볼 수 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관 속에 미라와 함께 매장한 사후 세계의 안내서인 ‘사자의 서(死者의 書)’에는 죽은 자를 인도하는 신 아누비스가 양팔저울을 이용해 한쪽에는 죽은 자의 심장을, 다른 쪽에는 정의의 여신 마아트의 깃털을 올려놓고 무게를 재는 그림이 있다. 죄가 많은 자의 심장은 무거워 저울이 심장 쪽으로 기울어져 지옥으로 쫓겨나고 반대로 저울이 깃털 쪽으로 기울면 영생의 세계로 간다고 한다. 대한민국 법원은 저울을 들고 있는 정의의 여신을 현대적으로 형상화한 그림을 로고로 사용하고 있다. 대법원 앞에 있는 정의의 여신상도 저울과 법전을 들고 있는데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정의의 여신’ 디케는 왼손에 저울을, 오른손에 칼을 들고 있다. 저울은 공평하고 엄정한 법의 기준, 칼은 법 집행의 엄격함과 강력한 권위를 상징한다. 요즘 뉴스에서는 거의 매일같이 유명 인사들에 대한 법원의 판단과 거기에 따른 여론 반응이 보도되고 있다. “너희는 재판할 때 불의를 저질러서는 안 된다. 너희는 가난한 이라고 두둔해서도 안 되고, 세력 있는 이라고 우대해서도 안 된다. 너희 동족을 정의에 따라 재판해야 한다”(레위 19,15)는 성경 말씀처럼 절차적 공정성과 정의로운 판결이 나오기를 바란다. 인간이라면 삶이 다하는 날 누구나 한번은 서야 할 법정이 있다. 그 어떤 법정보다도 상위에 있는 그곳의 재판관은 하느님이다. 우리 또한 자신에게 주어진 삶 동안 제대로 살아왔는지, 자신의 의무를 다했는지 그곳에서 간단한 셈법으로 정의의 저울을 마주할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서시’에서 “죽는 날까지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이 없기를” 소망했고 칸트는 「실천이성비판」에서 “생각할수록 점점 더 새롭고 큰 경외감으로 마음을 채우는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밤하늘에 빛나는 별과 내 마음속의 도덕률”이라고 했다. 윤동주 시인과 칸트가 숭고한 가치로 여긴 인간으로서의 도덕성이 지금 이 시대에 가장 절실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전성호cpbc2025.03.19

“아들을 데려가셨지만 성인을 주셨어요”[인터넷의 수호성인 카를로 아쿠티스] (19)아쿠티스 성인이 가르쳐준 성덕의 재배법 레오 14세 교황이 7일 성 베드로 광장에서 주례한 카를로 아쿠티스의 시성식에서 카를로의 가족과 만나고 있다. 왼쪽부터 여동생 프란체스카, 어머니 안토니아 살차노, 아버지 안드레아 아쿠티스, 남동생 미켈레. OSV 참 특별한 시성식 부모와 동생들, 그리고 친척과 친지들이 모두 모였습니다. 물론 친구들도 찾아왔지요. 그뿐만 아니라 오늘의 주인공과 인연을 맺은 많은 이가 열일 제치고 멀리서 찾아왔습니다. 모임에 참여한 이들은 모두 밝은 표정으로 오늘의 주인공을 축하해줄 뿐만 아니라 서로 축복의 인사를 나눕니다. 혼인 예식을 상상하셨나요? 아닙니다! 평신도 소년의 시성식 2025년 9월 7일 레오 14세 교황께서는 피에르 조르조 프라사티(1901~1925년)와 카를로 아쿠티스(1991~2006)를 함께 성인품에 올리는 시성식을 주례하셨습니다. 그런데 그 시성식 현장에는 아쿠티스 성인의 부모와 동생들, 학교 친구들, 동네 사람들, 카를로에게 도움을 받았던 수많은 사람이 함께했습니다. 프라사티 성인은 선종 후 100년이 되어서야, 그리고 우리나라 103위 성인은 순교 후 100년이 훨씬 넘어서야 시성되었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가족과 친인척, 친구들이 다 함께 시성식에 참여하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카를로 성인이 겨우 열다섯 살에 이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시복시성 절차가 빠르게 진행되었고, 평범한 가정생활을 했던 평신도 소년이었기에 가능했습니다. 아쿠티스의 쌍둥이 동생 미켈레와 프란체스카 카를로 아쿠티스는 외아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쌍둥이 동생이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급성 백혈병으로 성 제라르도 병원에 입원했던 카를로는 죽음이 다가왔음을 확신했습니다. 카를로의 어머니는 당시 상황을 이렇게 전합니다. “카를로는 하늘나라에서 제게 많은 표징을 보내줄 것이라고 말했어요. 제가 카를로를 얼마나 사랑하는지 또 얼마만큼 불안해하는지 카를로는 잘 알고 있었지요. 카를로의 가장 큰 걱정은 바로 제가 카를로 없는 세상에 남겨지는 것이었어요.” 4년이 지난 어느 날, 카를로는 어머니 꿈에 나타나 다시 ‘엄마’로 불리게 될 거라고 말했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정말로 임신이 된 것을 알게 되었는데, 그때 카를로 어머니의 나이는 마흔넷이었고, 이후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2020년 10월 20일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 대성전에서 거행된 카를로 아쿠티스의 시복식에는 부모님뿐만 아니라 쌍둥이 동생 미켈레와 프란체스카도 함께 있었지요. 물론 성 베드로 광장에서 거행된 카를로 아쿠티스의 시성식에도 카를로의 가족 네 명이 함께했고, 남동생 미켈레 아쿠티스는 제1독서를 봉독했습니다. 그런데 신기한 일이 또 있습니다. 열아홉 살 터울이 있는 형제간이라는 것도 흔치 않은 일인데, 카를로가 이 세상을 떠났을 때가 열다섯 살, 그리고 아쿠티스의 시성식에 참여한 쌍둥이 동생의 나이가 열다섯 살이라는 것입니다. 시성식에 참석한 어머니의 마음 아들이 시성되는 장면을 지켜볼 수 있는 어머니가 또 있을까요? 참으로 특별한 은총을 받은 아쿠티스 성인의 어머니 심정을 들어봅시다. “하느님께서 오래전에 제게서 아쿠티스를 데려가셨지만, 오늘은 카를로 아쿠티스 성인으로 제게 다시 데려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저만의 아들이 아닙니다. 온 거룩한 교회가 저와 함께 기도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시성식이 끝나고 성 베드로 광장은 다시 조용해졌습니다. 아쿠티스 성인의 사진과 국기를 흔들며 환호하던 이들은 지금 어디 있을까요? 시성식 장면을 화면으로 지켜보며 가슴 벅차하던 이들은 지금 무엇을 하고 있을까요? 카를로의 어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카를로는 각자 안에 내재된 성덕의 씨앗을 잘 키우라고 우리를 북돋아 줍니다. 카를로가 모범을 보여주었듯이 말이죠. 카를로가 가르쳐준 성덕의 재배법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체성사와 고해성사, 주일 미사+평일 미사, 성체조배, 날마다 바치는 묵주기도, 성경 봉독, 기도, 선행.’” 하느님께서 심어주신 내 안의 성덕을 키우고 가꾸는 일은 우리의 몫입니다. 2025.09.16

도움 받던 우리… 이제는 다른 어려운 나라 도울 차례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이사장 조규만 주교 ‘제33회 해외 원조 주일’ 담화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 이사장 조규만 주교는 ‘제33회 해외 원조 주일’(26일)을 맞아 담화를 발표하고 “우리가 굶주린 이들, 병든 이들, 소외된 이들을 도와주는 일은 바로 하느님 나라가 이 땅에 오게 하는 일이요, 아버지의 뜻이 이 땅에서 이루어지도록 하는 일”이라며 “이러한 기도와 희망이 이루어지려면 악의 세력인 질병과 굶주림과 소외를 우리 가운데서 없애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 주교는 담화에서 “6·25전쟁 이후 어려워진 우리나라에 미국 가톨릭교회가 밀가루와 우유를 비롯한 원조 물품들을 보내왔고 전쟁 후 이러한 외국의 도움으로 굶주림에서 벗어나 오늘의 대한민국으로, 선진국으로 발전할 수 있었다”며 “도움을 받던 우리가 이제는 다른 어려운 나라 사람들을 도와줄 차례가 됐다”고 밝혔다. 조 주교는 “우리의 현실은 돈이 많은 사람은 돈을 더 많이 벌고, 돈이 없는 사람은 돈을 벌기 너무나 어려운 세상”이라며 “이러한 세상을 바꾸려면 서로 많이 도와야 하고 그런 까닭에 성경은 끊임없이 서로 나누라고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성경 속 요한 세례자는 ‘옷을 두 벌 가진 사람은 못 가진 이에게 나누어 주고 먹을 것을 가진 사람도 그렇게 하여라’(루카 3,11)라고 하셨고, 예수님은 ‘가진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이들에게 나누어 주어라’(루카 18,22)고 말씀하셨다”며 “그러면서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것을 나누어 준 사람들에게 세상 창조 때부터 준비된 나라, 곧 영원한 생명을 약속하셨다”고 전했다. 조 주교는 또 “콜카타의 성녀 마더 데레사 수녀는 ‘가난한 모든 사람을 구제할 수도 없고, 구제하려고 하지도 않으며 제가 만나는 가난한 사람, 아픈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도울 뿐’이라고 말했다”며 “우리 역시 이 세상의 모든 가난을 몰아내고 모든 질병을 낫게 할 수는 없지만 우리가 할 수 있는 만큼, 형편이 되는 만큼 도와야 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조 주교는 “한국카리타스인터내셔널은 1975년에 시작된 ‘인성회’를 이어받은 법인으로 올해 50주년을 맞이했다”며 “하느님께서 여러분이 왼손 모르게 베푼 오른손의 선행을 잊지 않으실 것”이라며 50년 동안 꾸준히 후원해준 이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다. 장현민 기자 memo@cpbc.co.kr장현민2025.01.22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선천성 심장비대증 앓고 있는 박경진씨](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5/08/13/Pqn1755065186419.jpg)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선천성 심장비대증 앓고 있는 박경진씨길에서 쓰러져 뇌혈관 4곳 이상 진단... 남편은 2층서 일하다 떨어져 수입 끊겨 8월 뜨거운 태양이 내리쬐는 서울 용산의 허름한 재개발지구. 박경진(가명, 58)씨가 골목길에 나와 있었다. 집이 너무 더워 밖이 오히려 시원하다며 연신 부채질을 했다. 박씨는 고3 딸과 정신과 치료를 받는 아들, 일용직 남편과 함께 살고 있다. 박씨 가족은 지난해 초까지만 해도 근근이 살아왔다. 상황이 나빠진 건 박씨가 일하다 쓰러지고, 남편도 보일러 시공일을 하다 떨어져 다치면서다. 박씨는 선천성 심장비대에 호흡기 알레르기로 숨이 자주 차서 장시간 일하기 어렵다. 40대 때까지는 약을 먹으면서 버텼지만 50대가 되면서 상태가 나빠졌다. 급기야 지난해 청소일을 하다 쓰러졌고, 급히 병원에서 치료받았다. 형편상 일을 당장 관두지 못한 게 더 독이 됐다. 어느 날 일을 마치고 돌아오다 길에서 쓰러졌고, 다행히 행인이 발견해 기적처럼 목숨을 건졌지만 더 일하는 건 무리였다. 남편에게도 문제가 생겼다. 보일러 시공일을 나간 남편이 2층에서 떨어져 허리와 다리를 다쳐 장기간 입원과 통원치료를 받아야 했다. 이후 모든 수입이 끊겼다. 박씨는 병원에서 뇌혈관 4곳에 이상이 생겼다는 청천벽력 같은 진단을 받았다. 급한 대로 수술을 받았지만 병원비가 걱정돼 의사의 만류에도 하루 만에 퇴원했다. 하지만 집에서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다. 그는 피가 한 번 나면 잘 멈추지 않는 특이 체질이다. 어디 조금이라도 부딪치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상처 하나 나지 않도록 항상 조심해야 한다. 여전히 뇌 관련 MRI 등 검사를 지속해야 하고, 문제가 생기면 바로 수술해야 한다. 박씨는 한글을 제대로 읽고 쓰지 못한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 어릴 때부터 학교 대신 봉제공장에서 일하느라 한글을 배울 기회를 놓쳤다. 평생 많은 불이익을 견뎌야 했고, 지금은 혼자 병원에 갈 수도 없어 불편한 게 한두 가지가 아니다. 높은 전세금을 내고 지금 집에 살고 있지만, 빚이 눈덩이처럼 불어난 상태다. 박씨 가족이 사는 집은 LH(한국토지주택공사) 소유라 당장 나가야 할 상황은 아니지만, 계획 중인 재개발 사업이 추진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 막막하다. 현재 월 수입은 기초수급비 90만 원이 전부다. 신자는 아니지만, 박씨의 꿈은 병이 나아 성당에 가보는 것이다. “병원비가 가장 걱정이에요. 나라에서 의료급여를 주고 있지만, 추가로 돈을 내야 하는 항목이 많아 부담이 큽니다. 다른 하나는 한글을 완전히 깨치는 것이에요. 몸이 나으면 성당에 가보고 싶지만 가지 못하는 이유 또한 글 때문이기도 해요. 성당에 가면 미사도 하고 기도문도 외우고 성경도 읽어야 한다고 들었어요. 꿈이 이뤄지길 바라면서 저만의 기도를 바쳐야죠.” 이상도 선임기자 raelly1@cpbc.co.kr 모세준(스테파노) / 서울대교구 한강성당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박씨는 건강상태가 좋지 않고, 한글을 읽고 쓰지 못해 일을 구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러면서도 사고를 당한 남편과 힘들게 생활하는 자녀들을 사랑으로 돌보고 있습니다. 이들이 희망을 가질 수 있도록 독자들의 많은 후원을 부탁드립니다.” 성금계좌 (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박경진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17일부터 23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3)에게 문의 바랍니다. cpbc2025.08.13

예수님 탄생 기쁨 cpbc 프로그램과 함께 나누자cpbc 가톨릭평화방송 TV와 라디오는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성탄의 기쁨을 시청취자들과 함께 나누고, 아기 예수님의 탄생 의미를 되새기는 다양한 특집 프로그램을 선보인다. TV 프로그램 홀리 몰리 아이들을 위한 10분짜리 짧은 만화로 고전 성경 이야기를 재구성해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24일에는 ‘마리아를 찾아간 가브리엘 대천사’를, 26~28일에는 각각 ‘별을 따라간 세 명의 동방 박사’ ‘성전에 계신 예수님’ ‘예수님 탄생’을 방영한다. 24일 오전 8시 50분·오후 2시 50분·9시 26~28일 오전 8시 50분·오후 2시 50분 산타 마르게리타 항구에서 찍은 사진. 카를로의 조부모님은 산타 마르게리타 리구레에서 살았는데, 집에서 항구가 내려다보였다. 출처=www.carloacutis.com ‘밀레니얼 세대 첫 성인’이자 ‘하느님의 인플루언서’로 인터넷을 통해 복음을 전하고, 어린 나이에도 이웃을 돕는 데 헌신하고 신앙의 의미를 전파하는 삶을 살다 선종하고, 지난 9월 시성된 성 카를로 아쿠티스(Carlo Acutis, 1991~2006)의 삶과 영성을 집중 조명하는 다큐멘터리도 연속 방송된다. 우리 시대의 복음 선포자, 카를로 아쿠티스 24일 오후 7시 30분 / 25일 오후 8시 10분 카를로 아쿠티스의 천국행 고속도로 24일 오후 10시 40분 / 25일 오후 7시 카를로 아쿠티스와 떠나는 여정 25일 오전 8시 / 27일 오후 10시 10분 신앙다큐, 내가 만난 하느님 각기 다른 고난과 역경 속에서도 하느님과 만남을 통해 매 순간 기쁘게 살아가는 이들의 선물 같은 삶을 보여준다. 24~26일 오후 4시 우리 함께 살아요 ‘베들레헴 어린이집’은 필리핀·몽골·중국·북한 등 출신과 문화가 서로 다른 어린이들을 돌보고 교육하는 기관이다. 아이들의 모습을 통해 진정으로 함께 살아가는 방안을 찾아본다. 24일 오후 5시 가톨릭 명화극장 ‘하느님 자비의 대폭발’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널리 알려진 성 마리아 파우스티나 코발스카 수녀의 영성과 그 영성을 따라 하느님 자비의 사도로 살아가는 이들의 이야기를 담은 다큐멘터리 영화다. 24일 오후 9시 10분 은빛 찬미의 노래 창단 25주년을 맞이한 cpbc 소년소녀합창단이 걸어온 길을 되짚고 한국과 아시아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활약하기까지 성장기를 담았다. 24일 오후 8시 20분 25일 오전 8시 20분 / 27일 오후 9시 30분 더 바이블 컬렉션 스페셜 ‘예수’ 예수님 탄생부터 공생활, 수난과 부활 이야기. 주님 성탄 대축일을 맞아 예수님 생애를 살피며 주님께서 남겨주신 가르침을 되새겨보자. 25일 오전 1시 30분·10시 26일·27일 오전 9시 50분 / 28일 오전 10시 10분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꿈 브뤼기에르 주교의 삶과 신앙, 조선을 향한 사랑의 마음을 애니메이션으로 만나볼 수 있다. 25일 오전 5시 30분 / 26일 오전 3시 40분 한나 파피루스, 1800년의 여정 루카 복음과 요한 복음 본문을 담고 있는 고대 문헌 ‘한나 파피루스’의 발견부터 소유권 변천사, 바티칸 도서관에 기증되기까지 여정을 따라가 본다. 25일 오후 1시 30분 / 26일 오후 7시 30분 / 27일 오전 7시 50분 하느님이 보낸 선물 소중한 생명을 지키고 사랑으로 보살피는 이들이 이야기를 통해 입양과 가족의 의미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본다. 25일 오후 5시 죽음에서 돌아오다, 메일린의 기적 뇌사 판정을 받은 세 살 프랑스 소녀 메일린이 수많은 이들의 기도와 복자 폴린 마리코에게 전구를 청하며 다시 살아난다. 메일린의 삶과 복자의 기적을 다룬 다큐멘터리. 27일 오후 4시 라디오 프로그램 장일범의 유쾌한 클래식 <크리스마스 페스티벌> 23일 ‘고상지 트리오와 함께하는 탱고 리듬 캐럴 페스티벌’ 공연을 선사한다. 24일에는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를 전곡 감상하는 시간을 갖는다. 25일에는 신청곡 중심으로 성탄 관련 클래식 명곡과 다양한 캐럴이 방송된다. 23~25일 생방송 오전 10시~낮 12시 신부님 신부님 우리 신부님 <보통의 우리가 함께하는 크리스마스 빵집! 콘서트> 아기 예수님의 탄생을 기다리며 ‘열일곱이다’ ‘에드윈킴’ ‘양채윤’ 등 다양한 출연진들이 콘서트를 펼친다. 24일 생방송 낮 12시 15분~2시 2시N뮤직, 김빛나입니다 <사람 그리고 캐럴> 올 한 해 우리를 찾았던 반가운 이들이 보내온 ‘듣는 크리스마스 연하장’을 소개한다. 시대를 관통하며 사랑받아온 ‘캐럴 계보’를 짚어보며 성탄을 기다린다. 24일 오후 2~4시 김준일의 뉴스공감 <지구 어딘가의 크리스마스> 모두가 사랑을 나누고 축하를 건네는 성탄이지만, 전쟁 지역에선 여전히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각자의 자리에서 실천할 수 있는 사랑과 평화에 관해 활동가·예술가들과 함께 이야기 나누는 시간. 24일 오후 6시 3분~7시 특집 공개방송 <명동, 겨울을 밝히다 -Ⅰ환대 /Ⅱ기적 / Ⅲ 희망> 24일 성탄 전야에 진행되는 무대는 가수들의 공연을 중심으로 성탄 콘서트 형식으로 꾸며진다. 25일 성탄의 기쁨으로 충만한 한낮에 ‘기적’을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며 노래가 울려 퍼진다. 해질 무렵 오후 5시부터는 명동을 찾은 시민과 전 세계 방문객과 실시간 소통하며 ‘희망’의 메시지를 전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24일 오후 8~10시(Ⅰ환대)/ 25일 오후 2~4시(Ⅱ기적)·오후 5~7시(Ⅲ 희망) 오수진의 행복을 여는 아침 <크리스마스엔 사랑하리오> 부모님의 첫 연애 이야기, 기다리던 편지, 사랑하는 이를 만나러 가던 거리의 공기 등 사랑이 탄생한 메시지를 배우와 함께 낭독하는 시간이다. 25일 오전 7~9시 참 좋은 오늘, 은빛 수녀입니다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좋은 크리스마스!> 국제 구호 활동가 한비야(비아)씨가 출연해 성탄 인사를 나눈다. 한씨가 펴낸 신간 「그때도 좋았지만, 지금도 좋아!」를 함께 읽으며, 성탄의 의미를 돌이켜보자. 25일 오전 9~10시 기도의 오솔길, 전영금 수녀입니다 <성탄을 그리는 수녀님> 성탄 카드를 직접 그리는 김옥순(막달레나) 수녀와 전화 연결해 아기 예수님 탄생의 기쁨을 색다르게 나눈다. 25일 오후 4시~4시 50분(재방송 오후 11시~11시 50분) 음악이 있는 저녁 풍경 김형중입니다 <우리들의 크리스마스> 저마다의 자리에서 성탄을 보내는 청취자들의 사연과 캐럴 신청곡을 소개하며, 코너 지기 가수 한희정씨가 직접 부른 캐럴을 선물한다. 25일 오후 7~9시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 박수정2025.12.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