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온유[월간 꿈 CUM] 테마로 읽는 성경 (1) 신학생 시절 들은 학장 신부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종종 함께 탁구 게임을 하는 성격이 아주 온유한 신부님이 계시는데, 급한 성격의 학장 신부님께서 그 성격대로 아무리 매서운 공격을 퍼부어도 공격은 하지 않으면서 공을 슬슬 받아넘기기만 하는 신부님을 한 번도 이기지 못한다는 말씀이었습니다. 계속 공격하다가 결국 힘이 빠져 헛손질해서 지고 만다는 것이었죠. 온유는 나약함이 아닙니다. 오히려 온유는 강한 내적 힘이 외부로 드러나는 것입니다. 온유는 단지 불편한 말을 하지 않고 찡그린 얼굴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다른 사람과의 갈등을 피하려 택하는 손쉬운 태도가 아닙니다. 하느님은 온유한 분입니다. 비록 하느님의 온유한 속성이 명시적으로 언급되는 구절은 얼마 되지 않고, 성경의 많은 부분은 오히려 그와 반대되는 하느님의 모습을 드러내는 듯하지만 말입니다. 하느님의 온유함은 성경의 첫 장에서부터 발견됩니다. 창세기에는 두 개의 창조 이야기가 담겨 있는데, 이 가운데 두 번째 이야기는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염려와 배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때에 주 하느님께서 흙의 먼지로 사람을 빚으시고.”(창세 2,7) 우리말 성경이 흙먼지로 번역한 히브리 단어 ‘아다마’는 찰흙으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찰흙을 빚어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 작업은 섬세함과 부드러움이 요구되는 일입니다. 찰흙을 거칠고 투박하게 다루었다간 원하는 형상을 만들지 못하고 낭패 보기 십상이죠. 이렇게 인간 창조는 하느님의 놀라운 권능이 아니라 부드러운 손길의 결과물입니다. 그러니 우리 인간 존재 자체가 하느님 온유의 결정적 증거입니다. 이탈리아 카프리 섬, 산 미켈레 성당 바닥의 마졸리카(도자기 타일화) ‘에덴동산’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을 데려다 에덴 동산에 두시어, 그곳을 일구고 돌보게 하셨다.”(창세 2,15) 이 말씀은 하느님께서 소작농에게 땅을 배당하는 지주와 같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말 성경에 ‘데려다’로 번역된 단어는 직역하면 ‘잡다’가 되는데, 어머니가 갓 태어난 아기를 손으로 조심스럽게 잡는 것과 같은 몸짓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주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명령하셨다. ‘너는 동산에 있는 모든 나무에서 열매를 따 먹어도 된다. 그러나 선과 악을 알게 하는 나무에서는 따 먹으면 안 된다. 그 열매를 따 먹는 날, 너는 반드시 죽을 것이다.’”(창세 2,16-17) 우리말 성경에 ‘명령’으로 번역된 단어는 ‘처방’으로 옮길 수도 있습니다. 명령과 처방은 다릅니다. 주차 금지구역에서 차를 빼라는 경찰의 명령과 잃어버린 건강을 되찾게 해주려는 의사의 처방은 명확히 다르죠. 명령은 무뚝뚝하지만, 처방에는 온유함이 있습니다. 흔히 이 말씀을 엄격한 금지 명령으로만 생각하지만, 하느님의 말씀은 선악과의 금지가 아니라 인간이 살기 위해서 먹어야 하는 대부분 열매의 허용이 우선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저주처럼 보이는 금지 명령도 단어 자체보다 그 어조에 유의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마치 어머니가 어린아이에게 아직은 소화할 능력이 없어서 크게 탈이 날 수 있는 음식을 주의하라고 강하게 경고하는 것과 같이 이해될 수 있습니다. 선과 악에 대한 엄청난 지식을 주는 열매는 그것을 감당할 수 있는 튼튼한 위장을 갖기 전까진 먹어선 안 됩니다. 아직 어린 인간에게는 이 열매를 먹는 것이 금지되었지만, 인간이 성장하게 되면 그 열매를 맛볼 수 있는 것입니다. 원죄 이야기에서 어떤 이들은 당신의 명을 거스르는 죄를 지은 인간을 저주하시는 하느님의 무서운 모습만을 기억할지도 모릅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 하느님께서 인간에 대한 태도를 온유에서 분노로 바꾸신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저주 밑에는 인간을 향한 하느님의 온유가 여전히 자리하고 있습니다.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저주 이후에도 하느님과 인간의 관계가 끊어지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즉, 저주는 하느님께서 인간을 포기하시거나 버리시기 위해 내리신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이것은 오히려 원죄로 손상된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관계를 온전히 회복하려는 훈육을 위한 조치였습니다. 회초리가 사랑의 매가 될 수 있는 것처럼 말이죠. 이렇게 하느님의 온유는 단순히 온화하고 부드러운 성격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하느님의 분노조차도 그분의 온유를 드러내는 방법입니다. 누군가는 하느님께서 선악과를 에덴동산에 두시고는 인간이 먹는 것을 금지하신 것은 덫을 놓으신 것이 아닌가 생각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만일 그렇다면, 덫을 놓고 인간이 걸려들기를 기다리며 사악한 웃음을 짓는 하느님의 모습에서 온유함을 찾을 수는 없겠죠. 하지만 이 또한 하느님의 온유를 드러냅니다. 여기서 드러나는 것은 아버지의 온유함입니다. 언젠가는 결국 자신의 모든 재산을 자녀에게 물려주겠지만, 단계별로 자녀가 감당할 수 있는 만큼씩 선물하는 아버지의 온유함 말입니다. 어린아이에게 단번에 차 열쇠를 선물하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인간이 성장하면 하느님은 언젠가는 선악과를 그에게 허락했을 것입니다. 글 _ 함원식 신부(이사야, 안동교구 갈전마티아본당 주임, 성서신학 박사) 1999년 사제서품 후 성경에 대한 전문적인 연구를 위해 프랑스로 유학, 파리 가톨릭대학교(Catholique de Paris)에서 2007년 ‘요나서 해석에서의 시와 설화의 상호의존성’을 주제로 석사학위를, 2017년 ‘욥기 내 다양한 문학 장르들 사이의 대화적 관계’를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cpbc2025.01.24
![[박효실의 평화칼럼] 위대한 평신도의 길](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6/01/4cN1780294814416.jpg)
[박효실의 평화칼럼] 위대한 평신도의 길박효실 기자(힐데가르트) 요즘 우리 본당 평일 저녁 미사에서는 새내기 복사들의 데뷔 무대가 한창이다. 무덥던 지난여름 첫 영성체 교리를 시작한 아이들이 무럭무럭 자라 어느덧 전례의 일원이 된 것이다. 10명 남짓한 꼬맹이들은 매주 목요일 저녁 성당 맨 앞 두 줄을 채우며 전 신자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았다. 강론 시간엔 지루함에 몸을 비틀다가도 ‘평화의 인사’를 할 때쯤이면 뒤통수도 잔뜩 신이 나 있었다. 또랑또랑한 목소리로 “평화를 빕니다”라며 온 사방에 아낌없이 평화를 선포하니 근엄한 신자들 얼굴에도 웃음꽃이 피어났다. 교리를 마친 아이들은 부지런히 전례 교육을 받고 이제 하나둘 복사로 출격 중이다. 키가 130㎝도 안 되는 아이는 미사 중 제대 뒤에 완벽히 가려졌다가 ‘뿅’하고 등장하는 마술을 선보이기도 한다. 조잘조잘 떠드는 모습이 꼭 참새떼 같던 아이들이 의젓하게 복사를 서는 모습은 그리 장할 수가 없다. 한국교회의 든든한 뿌리인 평신도의 탄생을 실시간으로 지켜보는 기분이다. 서른여덟에 세례를 받은 나는 눈처럼 새하얀 어린 시절에 신앙을 받아들여 성당 마당을 놀이터 삼아 자라는 저 아이들이 조금 부러워진다. 온 가족이 같은 신앙 안에서 생명이 무엇인지, 인간은 어디에서 왔고 또 어디로 가는지, 죽음은 무엇인지, 삶에서 가장 귀한 것은 무엇이고 어느 곳을 향해 걸어가야 하는지, 아주 어린 나이 때부터 생각하고 배울 기회가 있다는 건 인생에서 얼마나 귀한 자산이 될까. 교회 밖에서 자란 나는 이 철학적인 고민 앞에서 오랜 세월 막연한 공포를 느꼈고, 무력감과 허무에 빠진 적도 있고, 그저 오늘만 사는 방탕한 시절을 보내기도 했다. 먼 길을 돌아 신앙을 만나면서 나는 비로소 평화를 얻었고, 성경공부와 봉사는 효능감을 안겨줬다. 하지만 일반적인 노력으로는 도통 안 되는 것도 있었다. 묵주 기도, 고해성사, 매일 미사 등의 영성생활은 좀처럼 습관이 되질 않았다. 가만히 앉아 묵주를 굴리노라면 좀이 쑤셔서 어디라도 나가야 묵주 기도를 마칠 수 있었다. 고해성사는 여전히 일 년에 두 번 판공성사만 간신히 하는 수준이고, 매일 미사에 참여해야지 결심을 해봐도 며칠을 못 넘기고 퐁당퐁당 하고 만다. 자아가 비대했던 늦깎이 신자에게 보이지 않는 하느님과 영적으로 연결되는 영성 생활은 결코 넘기 쉽지 않은 허들이었다. 신앙 안에서 길을 잃었다고 느낄 때면 나는 월요일 새벽 미사에 간다. 고요한 성전 문을 열고 들어가면 어김없이 같은 자리에 앉아계신 백발의 어벤져스가 있다. 폭우에도, 폭설에도, 폭염에도, 혹한에도 성전을 지키는, 내가 가장 못하는 일을 숨 쉬듯 해내는 영성의 고수들이다. 평범한 할머니, 할아버지처럼 보이지만 한때 사목회, 구역, 전례단, 레지오 마리애, 연령회 등 각종 단체의 일원으로 교회의 한 시절을 떠받친 열혈 평신도였고, 지금도 여전히 현역인 어르신들이다. 그분들을 보며 100년의 박해 속에서도 스러지지 않은 신앙 선조들의 꿋꿋함을 본다. 신앙은 긴 삶의 여정을 따라가는 일이고, 시작점보다 결승점이 더 중요한 마라톤이다. 어제는 길을 잃었지만, 오늘은 제대로 찾아갈지 모른다. 그분들 곁에서 나도 조금씩 독실한 신앙인으로 물들어 가길 바라며 기도를 올려본다. “그리스도 안에서 잘 결합된 이 건물이 주님 안에서 거룩한 성전으로 자라납니다. 여러분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거처로 함께 지어지고 있습니다”(에페 2,21-22) 그렇게 어린이 복사부터 90세의 울뜨레야 원로까지 수많은 평신도들은 오늘도 교회 안에서 서로 배우고 성장하고 있다. cpbc2026.11.04

죽은 이들 기억하고 기도… 한국 교회에선 연도로 발전 위령 성월 유래와 의미 서울대교구 총대리 구요비 주교와 서울 무악재본당 주일학교 어린이들과 신자들이 2일 서울 용산성당 성직자 묘역에서 거행된 위령의 날 기념미사 후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묘소 앞에서 기도하고 있다. 가톨릭평화신문 DB ‘오늘은 나에게, 내일은 너에게(Hodie mihi, cras tibi).’ 죽음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는 사실을 일깨우는 라틴어 경구가 떠오르는 위령 성월이다. 세상을 떠난 이들의 영원한 안식을 위해 기도하며, 언젠가 맞을 자신의 죽음도 돌아보는 시기다. 신자들은 11월이면 고인을 위한 미사와 기도에 더욱 마음을 모은다. 위령 성월의 중심에는 11월 2일 ‘죽은 모든 이를 기억하는 위령의 날’이 있다. 교회는 11월 1일 모든 성인 대축일에 하늘의 모든 성인을 기념하고, 이튿날에는 세상을 떠난 이들, 특히 연옥의 영혼들을 위해 기도한다. 가족과 친지뿐 아니라 죽은 모든 이가 기도의 대상이다. 10세기 말 프랑스에서 998년 무렵 프랑스 클뤼니 수도원의 성 오딜로 아빠스는 자신이 관할하는 수도원의 수도자들에게 모든 성인 대축일 다음 날 죽은 이들을 위해 특별히 기도하도록 했다. 이후 이 관습은 교회 전역으로 퍼졌고, 11월 한 달 동안 위령 기도를 바치는 신심도 자리 잡았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의 뿌리는 구약성경에서도 찾을 수 있다. 유다 마카베오는 전투에서 죽은 이들이 죄에서 벗어나도록 속죄 제물을 바치게 했다.(2마카 12,43-45 참조) 초기 교회도 죽은 이들을 기억하며 기도하고 성찬례를 봉헌했다. 위령 기도는 ‘모든 성인의 통공(通功)’에 바탕을 둔다. 지상의 신자와 연옥의 영혼, 하늘의 성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로 연결돼 서로를 돕는다는 믿음이다. 살아 있는 이는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고, 성인은 지상의 신자를 위해 하느님께 전구한다. 교회는 하느님의 은총과 사랑 안에서 죽었으나 완전히 정화되지 않은 이들이 하늘의 기쁨에 들어가기 위해 거치는 마지막 정화를 연옥이라고 부른다. 교회가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한 미사와 기도, 자선과 보속을 권하는 것은 이 정화를 돕기 위해서다. 한국 연도, 고유한 가락과 구성 한국 교회에서 이러한 믿음은 조상을 공경하는 효성과 이웃의 장례를 함께 치르는 문화 속에 뿌리내렸다. 박해 시대 신앙 선조들은 교회의 가르침에 따라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서도 죽은 이를 위한 기도로 조상에 대한 추모의 마음을 표현했다. 그 전통을 보여 주는 기도가 ‘연도(煉禱)’다. 연도는 전통적으로 ‘연옥 영혼을 위한 기도’를 뜻하며, 오늘날에는 ‘위령 기도’로 불린다. 신자들은 선창과 후창으로 나뉘어 시편과 성인 호칭 기도 등을 우리 가락에 실어 노래한다. 한국 연도는 고유한 가락과 구성으로 발전한 전례 토착화의 대표적 사례로 꼽힌다. 연도의 내용은 1865년 목판본으로 간행된 상장례 예식서 「천주성교예규」에 자세히 실렸다. 이 책은 오늘날 한국 교회가 사용하는 「상장 예식」의 바탕이 됐다. 「상장 예식」에는 연도와 염습·입관, 장례 등 고인을 떠나보내는 과정에 필요한 전례와 기도가 담겼다. 이웃의 장례를 함께 치르던 문화는 오늘날 빈소에서도 이어진다. 빈소에서 위령 기도를 바치는 건 유가족 곁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다. 연령회 회원들은 장례를 도우며 고인의 마지막을 함께한다. 죽은 이를 위한 기도는 죽음의 슬픔을 나누고 부활의 희망 안에서 서로를 위로하는 일로 이어진다. 11월은 전례주년의 끝자락이기도 하다. 이 시기 미사에서 봉독되는 종말에 관한 말씀은 삶의 끝과 완성을 묵상하도록 이끈다. 위령 성월은 먼저 떠난 이들을 하느님의 자비에 맡기며 오늘의 삶을 어떻게 살아갈지 성찰하는 시간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cpbc.co.kr박수정2026.10.29

"하느님 자비에 자신을 맡겨보세요"하느님의 자비 주일 유래와 의미1931년 2월 22일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나타난 그리스도는 수녀가 본 당신 모습 그대로 상본을 그리고, 그 아래에 '예수님, 저는 당신께 의탁합니다'라는 글을 넣도록 하셨다. 2000년 4월 30일, 바티칸 성 베드로 광장에서 성모의 자비 수녀회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1905~1938) 시성식이 거행됐다. 새 천년기 첫 성인이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당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강론을 통해 그리스도께서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당신 자비 메시지를 전파하신 시기가 제1ㆍ2차 세계 대전 사이임에 주목하고, "희생과 고통을 체험한 이들은 자비가 얼마나 절실히 필요한 것인지 잘 안다"며 파우스티나 성녀를 우리 시대를 위한 하느님 선물이라고 밝혔다. 이후 2001년 교황청 경신성사성은 하느님께서 파우스티나 수녀에게 계시한 내용에 따라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내도록 했다. 성녀의 일기에 따르면, 하느님은 부활 제2주일을 하느님의 자비 주일로 지낼 것을 명했다. ▨성녀 마리아 파우스티나 수녀와 하느님의 자비 신심 폴란드 출신 파우스티나 수녀는 '하느님 자비의 사도'였다. 수녀는 13년 동안의 수도 생활을 마치고 33살 젊은 나이에 하느님 곁으로 떠났다. 수녀는 부활 제2주일인 1993년 4월 18일과 2000년 4월 30일 각각 시복, 시성됐다. 수도생활을 하며 특별한 영적 은사를 체험한 수녀는 하느님에게서 몇 가지 메시지를 받았다. 하느님 자비 상본을 만들고, 하느님 자비 축일을 지내며,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시각인 오후 3시에 하느님 자비 기도 시간을 가지라는 것 등이다. 수녀가 전하는 하느님 자비 신심의 골자는 말과 행동과 기도를 바탕으로 하느님 자비를 널리 알리고 실천하며, 순수한 마음으로 자신을 하느님 자비에 온전히 내맡기는 의탁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일생을 하느님 자비를 깊이 묵상하며 하느님께 자신을 온전히 의탁했던 수녀는 계시나 환시로 알게 된 하느님 자비의 신비를 일기 「나의 영혼 안에서 하느님의 자비」로 기록했다. 전 세계 언어로 번역된 이 책은 하느님 자비 신심을 널리 알린 계기가 됐다. ▨교회 전승에 비추어 본 하느님의 자비 성경에서 자비란 깊은 동정의 마음, 상대를 도와주는 사랑, 부모가 자녀에게 베푸는 사랑뿐만 아니라 '관대한 용서'를 의미한다. 이는 하느님과 계약 맺은 백성을 구원하는 사랑을 뜻하는 것이다. 이렇듯 자비는 동정심ㆍ용서에 충실성이 더해진 개념이다. 구약에서 보면 자비나 동정을 뜻하는 히브리어 '라함'은 자궁을 뜻하는 단어 '레헴'에서 유래됐다. 가족적 사랑과 하느님의 충실함, 변함없는 사랑 등을 나타낸다. 신약에서 예수의 자비는 구제와 치유의 의미로 이해됐다. 하느님은 처음부터 끝까지 인간의 비참함에 대해 연민을 드러내 보이셨고, 인간은 창조주를 본받아 이웃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한다. 요한 바오로 2세는 하느님의 자비에 관한 회칙 「자비로우신 하느님」(1980년)에서 "인간이 하느님의 자비로운 사랑, 즉 하느님의 자비를 입을 수 있는 것은 인간 자신이 이 사랑의 정신으로 변모해 자기 이웃을 대할 때"(14항)라고 말했다. 또, "자비는 정의에 새로운 내용을 부여하는 힘을 갖고 있으며, 그 새로운 내용이 가장 단순하고 온전하게 드러나는 것이 용서"라면서 "용서는 '사랑'이 필요하다"(14항)고 밝혔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신약에 나오는 되찾은 아들의 비유를 들며 "회개는 인간 세계에서 사랑의 작용과 자비의 출현을 보여주는 제일 구체적 표현"이라면서 "자비야말로 그리스도 메시아적 메시지의 근본을 이루며 그리스도 사명의 본질적 능력을 이룬다"(6항)고 말했다. "행복하여라, 자비로운 사람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마태 5,7). 강성화 기자 michaela25@pbc.co.kr황병훈2013.04.02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35-칠극(七克) 이야기(10)사랑이란 소명의 길, 끝까지 성실하게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이제 긴 이야기를 마무리할 때인 것 같다. 처음에는 「칠극」이라는 책에서 일곱 가지 주제만 가져오려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 내용이 좋은 것들이 많아, 결국은 유학적 내용들과 섞어가면서 스케치하듯 그 책을 소개하는 형국이 돼버렸다. 아쉬운 점도 많았지만 이런 기회에 많은 이들이 「칠극」이라는 책을 접하게 되었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감사하다. 이 책의 마지막 주제는 '게으름'(懈怠)과 그것을 극복하기 위한 '부지런함'(勤德)이다. 이 주제는 가장 평이한 주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가장 중요한 주제일 수 있다. 왜냐면 '성실'과 '근면'을 빼놓고 인간됨이나 수행과정을 이야기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내가 성경을 묵상하면서 가끔 두려움에 빠지는 대목은 '탈렌트의 비유'에서이다. 내가 재주가 많아서가 아니다. 하느님이 주신 모든 것들을 사용하는 문제에서, 특히 시간 사용에 있어서는 정말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그분은 일의 결과뿐 아니라 그 과정을 보시는 분이 아닌가! 그리고 그 과정은 낱낱이 드러나게 될 것이다. 언젠가 공자는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사람의 삶은 곧게 마련인데, 곧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것은 요행히 화나 면하고 있는 것이다."(子曰 人之生也 直 罔之生也 幸而免. 「論語」, 雍也篇) 삶을 꾸준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순간 순간 모면하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니냐 하는 질책으로 들린다. 그런 의미에서 빤또하가 말하는 게으름의 문제는 삶의 외적 태도만은 아니다. 오히려 삶의 참된 목표와 희망을 지니고 그것에 투신하는가 하는 문제인 것이다. 한 번은 루카복음으로 피정을 하면서 피정 지도자로부터 '예수의 하루 일과표'를 작성해보라는 제안을 받은 적이 있었다. 비록 단편적 장면들이었지만, 성전에서의 가르침, 세리와 죄인들과의 만남, 끝없는 병자치유 그리고 새벽까지의 기도와 다른 지방으로 떠나는 장면까지…. 그 하루는 정말 자신의 소명에 충실히 투신하는 모습이었다. 공자 자신도 자신의 삶을 그렇게 표현한 적이 있다. 언젠가 섭공(葉公)이 제자 자로에게 공자의 사람됨에 대해 물었을 때, 자로가 대답을 못했다고 하자 이렇게 말하며 서운해 했다. "너는 왜 그 사람됨이 학문에 발분하면 밥 먹는 것도 잊고, 즐거움으로 근심조차 잊어 버려서, 늙음이 장차 닥쳐오리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라고 말하지 않았느냐."(子曰 女奚不曰 其爲人也 發憤亡食 樂以忘憂 不知老之將至云爾. 「論語」, '述而') 대단한 경지이다. 이러한 주제를 만날 때마다 자신의 마음을 새로이 다지며 떠올리는 구절이 있다. 증자(曾子)의 말이다. "선비는 포용력이 잇고 강인해야 할 것이니, 책임이 무겁고 갈 길이 멀기 때문이다. 인(仁)으로 자기의 책임을 삼으니 또한 무겁지 아니한가. 죽은 후에야 그칠 것이니 또한 멀지 아니한가."(曾子曰 士不可以不弘毅 任重而道遠 仁以爲己任 不亦重乎 死而後已 不亦遠乎. 「論語」, '泰伯') 우리 그리스도교인들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사랑하는 것으로 소명을 삼았으니, 그 책임이 얼마나 막중한가? 또한 죽은 다음에야 완성될 것이니, 얼마나 먼 길이 되겠는가? 강인한 의지와 큰 열정을 지녀야 가능한 일일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이렇게 권고해 주고 계신다. "여러분 각자가 희망이 실현되도록 끝까지 같은 열성을 보여 주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리하여 게으른 사람이 되지 말고, 약속된 것을 믿음과 인내로 상속받는 이들을 본받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히브 6,11-12).조은일2008.10.21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9-칠극(七克) 이야기(4)자신과 하느님 아는 것, 선의 시작과 끝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칠극」을 읽다보면 늘 만나게 되는 독특한 느낌들이 있다. 어떤 지혜로운 사람의 구수한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편안함이다. 어릴 적 주일학교에서 선생님의 교리를 듣는 것 같기도 하고, 소신학생 시절 영적 지도신부님의 훈화를 들었던 기억을 떠올리게도 되며, 심지어는 한문을 가르쳐주셨던 여러 어르신들의 이야기들도 함께 어우러져 또 다른 세계를 여행하며 그것에 젖어 들어가는 행복한 느낌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학자인 김승혜 수녀는 「칠극」의 특성으로 '지혜문학적 성격'을 지적하기도 한다. 판토하가 인용하는 많은 성경구절, 고대 문학의 가르침, 교부들의 말씀들은 대부분 지혜문학의 성격을 띠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그가 오랜 경험에서 우러나온 동양 종교들의 지혜들도 함께 곁들일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하여튼 「칠극」은 '교만과 겸손'이라는 주제로 시작하면서 그것에 많은 양을 할애하고 있다. 이 주제가 수덕(修德)의 출발점이자 관건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먼저 교만을 극복하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설명하고 나서, 경계해야 할 것들을 하나하나 제시한다. 즉 세상의 행복 때문에 교만해지는 것(戒以形福傲), 마음의 덕을 자랑하는 것(戒以心德伐), 자신이 남과 다르다고 여기기를 좋아하는 것(戒好異), 명예를 좋아하는 것(戒好名), 선을 가장하여 명예를 낚으려는 것(戒詐善釣名), 예찬을 듣는 것(戒聽譽), 귀해지기를 좋아하는 것(戒好貴)들을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유학 뿐 아니라 동양의 모든 종교들이 그 수덕과정에서 강조하는 것들도 바로 이런 것이다. 가장 중요하고 근본이 되는 것을 잊고 세속적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진정 가치있는 삶인가 하는 문제요, 이러한 경향들은 모두 교만이 빚어내는 결과라는 것이다. 판토하는 교만을 극복하는 결정적인 방법을 제시하는데, 그것이 바로 '자신을 알아 겸손을 지키는 것'(識己保謙)이다. 그리고 그것에 관한 핵심적인 설명으로 성 베르나르도의 말씀을 전해준다. "너희가 만약 두 가지 알아야 할 것을 지니고, 두 가지 알지 못하는 것에서 벗어난다면, 지혜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자신을 알면 겸손이 생겨나게 되는데, 이것은 모든 선(善)의 시작이다. 그리고 하느님(天主)을 알면 하느님을 사랑하게 되는데, 이것은 모든 선의 마지막이다. 이것이 두 가지 알아야 할 것이다. 자신을 알지 못하므로 교만이 생겨나는데, 이것은 모든 죄(罪)의 시작이다. 그리고 하느님(天主)을 알지 못하므로 하느님에게 바라거나, 하느님을 두려워하지 않는데, 이것은 모든 악(惡)의 마지막이다. 이것이 두 가지 알지 못하는 것이다"(爾持二知. 逃二不知. 則能成智. 知己則生謙爲衆善之始. 知天主故愛天主爲衆善之成. 此二知也. 不知己故生傲爲衆罪之始. 不知天主故無所畏望於天主爲衆惡之成. 此二不知也. 「七克」, '識己保謙'). 유학이라는 학문도 자기 자신에게서 시작된다. 자신을 살피고, 가꾸고, 완성하는 것이 진정한 학문이다. 그래서 유학을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부른다.(「論語」 헌문편 25절 참조) 그리고 그 학문은 하늘의 뜻을 아는 지명(知命)에서 완성된다. 어쩌면 그런 까닭에 「論語」라는 책도 '學而時習之'(끊임없이 배우고 익히면)이라는 말로 시작하여 '不知命無以爲君子'(하늘의 명을 알지 못하면 군자가 될 수 없다)라는 말로 끝나는 지도 모르겠다. 결국 겸손은 모든 수덕과정을 아우를 수 있는 포괄적인 덕행이다. 성 이냐시오의 영신수련에 따른다면 '원리와 기초'가 되는 셈이다. 곰곰이 생각해보자.조은일2008.09.02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7-칠극(七克)이야기 (2)선이 커지면 악은 작아지고 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학장, 동양철학)내가 칠극(七克)을 읽으면서 지향했던 것 중 하나는 이 글을 먼저 읽었던 우리 신앙선조들의 마음을 헤아리는 것이었다. 아마 나도 유학을 공부했기에 어느 정도는 그 마음을 헤아릴 수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서였다. 조선시대 말엽, 사회적 혼란과 함께 그동안 성리학의 이념으로 이상적 사회를 이루려고 했던 노력들이 학문적으로 또 사회적으로 그 한계를 드러내고 있을 즈음, 그들은 서학(西學)의 문물과 사상을 만난 것이다. 유학도 본시 인간의 본질을 하늘이 부여한 도덕성으로 파악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 속에서 구현하는 것이 인간의 사명이라고 생각했다. 그러한 유학자들이 「칠극」 안에서 수많은 서양의 선비와 현자들의 수덕에 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마나 놀랍고 반갑게 느꼈을까? 더 나아가 자신들이 마음속에 품어왔던 삶의 근본인 하늘과 하늘의 이치〔天理〕가 인간 세상 안으로 들어와 가깝게 만날 수 있는 인격체로서 설명될 때, 혼란스러우면서도 또 한편 얼마나 커다란 희열을 느꼈을까? 내가 그들 안에서 느끼고 만나고 싶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참된 진리에 대한 욕구, 근원적 존재에 대한 열망 그리고 어려운 결단을 통해 그것을 자신의 삶에 받아들였을 때의 기쁨 같은 것이었다. 칠극(七克)에서 극(克)의 뜻은 무엇일까? 전주대학교 출판부에서 나온 번역본이 '일곱가지 승리의 길'이라는 부제를 붙인 것을 보면, '이기다' 또는 '극복하다'는 뜻으로 사용한 것 같다. 그러나 극복해가는 방식은 독특하다. 즉 일곱 가지 죄의 뿌리와 직접적으로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것과 대립되는 덕(德)을 쌓아가는 방식으로 이기는 것이다. 이것은 스콜라 철학이 악(惡)을 그 자체로 규정하지 않고, 선(善)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또한 선의 결핍(缺乏) 혹은 완전성의 결여(缺如)로 해석하고 있는 것에 기인한다. 이 문제와 관련해 마르틴 부버가 지은 「인간의 길」이라는 책에서 재미있는 일화를 전해준다. 즉 서로 사돈관계인 두 랍비가 대화를 나누는데, 한 랍비가 "나는 이 나이 되도록 아직 속죄하지 못했다"고 한탄하니 다른 랍비가 "그것에서 벗어나시지요"라고 답하는 내용이다. 그것에 이어 또 다른 랍비의 강론을 소개하는데 그 내용은 이렇다. "잘못을 저지르고 나서 줄곧 그 잘못에 대한 말만 하고 생각만 하는 자는 자기가 행한 저열한 그것을 마음에서 뿌리치지 못하고 있는 형편입니다. 그런 자는 결코 돌아서지 못할 것입니다… 그래, 어쩌자는 말입니까. 똥을 이리 쓸고 저리 쓸어 본들 똥은 똥입니다. 내가 죄를 지었는가 안지었는가 해봐야 하늘에 무슨 소용이 있단 말입니까. 그렇게 꿍꿍거릴 겨를이 있으면 차라리 하늘을 기쁘게 하기 위해 진주알을 꿰고 있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그렇기에 성경에도 "악을 떠나 선을 행하라"고 했습니다. 악에설랑 아예 돌아서서 더는 거기 마음을 쓰지 말고 선을 행하십시오. 그대는 잘못을 저질렀습니까. 그렇다면 선을 행함으로써 이에 대처하십시오." 이것이 「칠극」의 특징이기도 하다. 죄의 7가지 뿌리를 분석하고 살피는 것도 중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그것에 대적할 수 있는 더욱 완전한 덕을 설정하고 매진하여 그 경지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것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제 이러한 마음으로 신앙의 선조들과 함께 찬찬히 이 책을 읽어나가자. 그 안에 얼마나 많은 정통 신앙의 보화들이 있는지 확인하면서….조은일2008.08.12
[유학따라 떠나는 신앙여행]25 성인(聖人)들과 우리, 무엇이 다른가?그분 향해 걷다 보면 어느새 성인이?최기섭 신부(가톨릭대 신학대, 동양철학)내가 어렸을 때, 그 당시 교회 분위기는 성인들과 굉장히 밀접한 관계 속에서 살았던 것으로 기억한다. 성인들을 공경할 뿐 아니라 그들의 삶을 본받으려고 노력했고, 또 힘들 때 그들에게 전구를 청하며, 일상생활에서도 그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많은 위로와 힘을 얻었던 것이다. 더 나아가 교우 자신들도 그들처럼 성인이 되고자하는 열정을 지니고 있었다. 그런데 요즈음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 마치 성인들과는 딴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처럼, 그분들과는 별 관계없이 따로 놀면서 다른 것에 마을을 빼앗기고 있다. 이건 아니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이 된 것은 하느님께 축성되어 거룩한 삶을 살도록 불리운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너희는 나에게 사제들의 나라가 되고 거룩한 민족이 될 것이다"(탈출 19,6). "너희는 너희 하느님 야훼께 몸 바친 거룩한 백성이 아니냐?"(신명 7,6) "나 야훼가 너희 하느님이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스스로 거룩하게 행동하여 거룩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레위 11,44). "모든 사람과 평화롭게 지내고 거룩하게 살도록 힘쓰십시오. 거룩해지지 않고는 아무도 주님을 뵙지 못할 것입니다"(히브 12,14). 유학 또한 성인(聖人)이 되고자 하는 학문이다. 그래서 율곡 선생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의 본성은 본래 선하여, 옛날이나 지금이나 똑똑하거나 어리석거나 모두 같은 본성을 지니고 있거늘 성인은 무슨 까닭에 유독 성인이 되고, 나는 왜 유독 보통사람이 되었는가? 진실로 뜻이 세워져 있지 않고(志不立), 아는 것이 명확하지 않으며(知不明), 행하는 것이 독실하지 않기(行不篤) 때문이다"(원문생략, 「擊蒙要訣」, '立志章'). '모두 같은 사람인데'라는 표현이 마음에 오래 남는다. 왜 나는…. 율곡 선생의 원인분석이 명료하다. 삶의 목표를 어디에 두고 있는 지,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한 지식은 충분히 쌓았는지, 자신이 알고 있는 것을 힘써 행했는지 살펴보라는 것이다. 정말 우리는 성인이 되고 싶은 걸까? 실상 성인이 되는 것이 쉽지는 않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그것이 가능한가?'라고 묻기도 한다. 그러나 송대 유학자들 특히 주렴계 선생은 '가능하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럼에도 그 당시의 많은 학자들은 비웃거나 스스로 포기했던 모양이다. 그래서 宋代의 구산양씨(龜山楊氏)는 이렇게 한탄하면서 충고한다. 조금 길긴 하지만 차분히 들어보자. "옛날의 배우는 자들은 聖人을 스승으로 삼았는데도 그 배움이 지극하지 못함이 있었다. 그러므로 그 덕(德)에 차이가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성인이 되기 어려움을 보았다. 이 때문에 모든 배우는 자들이 '聖人의 경지를 배워서 이를 수 있다'고 말하면 반드시 미쳤다고 여기며 속으로 비웃는다. 聖人은 진실로 쉽게 이를 수 없으나 만약 聖人을 버리고 배운다면 장차 무엇을 법칙으로 삼겠는가. 聖人을 스승으로 삼음은 활쏘기를 배울 때에 과녁(的)을 세우는 것과 같다. 과녁을 저기에다 세운 뒤에야 활쏘는 자가 이것을 보고서 적중(的中)하기를 구할 수 있으니, 과녁에 적중하고 적중하지 못하는 것은 사람에게 달려 있을 뿐이지만 과녁을 세우지 않는다면 무엇을 표준으로 삼겠는가"(원문생략, 「心經附註」, '聖可學章'). 성인들은 많은 영적 보화들을 남겨주면서, 하느님께 이르는 여정을 우리보다 먼저 가신 분들이다. 우리가 가는 길이 아무리 힘들어도, 얼마나 많은 분들이 기쁘고 훌륭하게 이 길을 갔는지 되새긴다면 얼마나 힘이 되겠는가. 우리도 그분들과 함께 하느님의 은총 안에서 충실하게 이 길을 걷다보면, 언젠가 하느님 대전에서 그분들처럼 聖人이 되어있지 않을까? 조은일2008.07.22
![[신앙단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1/20/XUT1768865670497.jpg)
[신앙단상]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김성범 에지디오(아동문학가, 작곡가) 김성범 제공 누구나 가슴에 담고 다니는 자기만의 성경 구절이 있을 것이다. 나의 성경 말씀은 마태오 복음 18장 1-5절이다. 특히 3-5절은 기회가 주어질 때마다 남들에게도 읊어주는 구절이기도 하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어린이처럼 자신을 낮추는 이가 하늘 나라에서 가장 큰사람이다. 또 누구든지 이런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나는 아동문학가인 까닭에 조선의 천주교 박해 이야기 「천주의 아이들」은 어린이가 주인공이다. 쓰기 전부터 출판이 어려울 수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신유박해부터 을해·정해·기해박해까지 어린이들에게 흥미를 불러일으키기에는 무거운 소재이기도 하지만, 신앙 이야기가 될 수밖에 없으므로 출판사 입장에서는 선뜻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탈고를 했고, 출판사를 찾으려드니 가톨릭 계열 출판사들까지 아동문학 창작 라인이 없었다. 어찌 이럴 수가! 예수님께서 ‘누구든지 어린이 하나를 내 이름으로 받아들이면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라고 하셨는데, 하느님 말씀을 들려주는 창작동화는 출판할 곳이 없다고? 출판을 포기할 즈음 ‘청동거울’이란 출판사 대표께서 청소년 소설로 다시 써줄 수 있겠냐고 제안해 주셨다. 이렇게 우여곡절을 겪은 뒤에야 「천주의 아이들」이 출판될 수 있었다. 어쩌면 동화보다 소설로 태어날 수 있어서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기회를 얻은 듯하다. 고학년 어린이들부터 성인들까지 함께 볼 수 있는 책이 되었기 때문이다. 출판이 되었고, 인세를 모두 출판물로 받았다. 하느님 이야기로 소득을 취할 순 없었다. 많은 사람과 함께 조선 교회의 박해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강의료 역시 전액 책을 구입하였다. 제목처럼 이야기는 어린이가 주인공이고, 어린이가 청년이 되어서 교우촌을 이끌었으나, 결국 관군들에게 다시 쫓겨, 어린이들을 이끌고 하느님의 나라를 찾아 떠나면서 끝을 맺는다. 마지막 구절을 소개해본다. ‘천주의 성모님, 하느님과 예수님을 사랑하는 아이들입니다. 오늘 당신의 보호 아래 피신하오니 당신 눈동자처럼 아이들을 보호하시어 당신의 품에 아이들을 품어주소서. 어려울 때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모든 위험에서 우리 아이들을 구하소서.’ 나는 「천주의 아이들」에 가장 걸맞은 성경 구절이며, 나의 가슴에 상감이 되어 새겨진 마태오 복음 18장 3-5절 말씀으로 노래를 지어 책에 QR 코드를 넣었다. 딸과 함께 노래한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어’를 많은 사람들이 함께 노래하면 좋겠다. 더불어 절판되지 않을 정도만 오랫동안 함께 읽어주는 책이 되면 좋겠다. “내가 진실로 너희들에게 말한다. 너희가 회개하여 어린이처럼 되지 않으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한다.”(마태 18,3-4) 김성범 에지디오 cpbc2026.01.21

무슬림 사회 속 규제와 검열에도30년간 꺼지지 않은 가톨릭 등불[아시아 가톨릭 미디어를 가다] (3) 헤럴드 말레이시아 헤럴드 편집국이 위치한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사목센터 전경. 말레이시아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는 다민족·다종교 국가다. 인구 3240만 명 가운데 무슬림이 63.5%다. 불교 신자 18.7%, 그리스도교 신자가 9.1%로 뒤를 잇는다.(2020년 인구주택총조사 기준) 그리스도인 가운데서도 가톨릭을 믿는 이들은 120만 명 남짓으로 추산된다. 무슬림 사회에서 가톨릭 신자는 소수 공동체다. 이같은 현실에서 가톨릭 언론은 단순한 교회 소식지를 넘어선다. 흩어져 살아가는 신자들의 연결 고리이자, 교회 공동체의 존재를 확인해주는 등불이 돼주기 때문이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사목센터에 자리한 ‘헤럴드(HERALD)’ 말레이시아가 그런 역할을 해왔다. 4개 언어 지면으로 교회 일치 증언 쿠알라룸푸르 시내 한복판, 오래된 사목센터에 자리한 헤럴드 편집국은 그리 크지 않았다. 상주 직원은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과 산드라 앤 인바라즈 부편집장을 포함해 한 손에 꼽을 정도다. 취재 기자와 소셜미디어 담당자, 그래픽 디자이너, 회계 담당자가 편집국을 지키고 있다. 각 교구나 본당 주요 행사 소식이나 교리교육·성경 해설·외신·논평은 시민 기자단과 분야별 전문가들이 보내오는 기사와 기고로 꾸리고 있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AI 활용이 보편화되면서 사실 확인에 더 많은 시간을 쏟고 있다”며 “이젠 뉴스 전달을 넘어 설명하고 교육하며 신앙을 나누는 기사에 더 집중하고 있다”고 말했다. 헤럴드는 ‘소식을 알리는 사람’, ‘선포자’란 뜻이다. 1994년 9월 8일 ‘복되신 동정 마리아 탄생 축일’에 창간한 헤럴드는 영어판 격주간지(12개면)로 출발했다. 초대 편집장은 로렌스 앤드류(예수회) 신부였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에서 시작한 헤럴드는 이후 말레이반도(서말레이시아)와 보르네오섬 북부 사바·사라왁주(동말레이시아)까지 독자층을 넓히며 교구 신문을 넘어 말레이시아 가톨릭 공동체 전체를 잇는 매체로 자리 잡았다. 말레이시아 교회는 말레이반도에 쿠알라룸푸르대교구·페낭교구·말라카-조호르교구가 있으며 동말레이시아 사바주에 코타키나발루대교구·케닝아우교구·산다칸교구, 사라왁주에 쿠칭대교구·미리교구·시부교구 등 9개 교구로 이뤄져 있다. 특히 동말레이시아 지역은 말레이반도보다 가톨릭 공동체 기반이 뚜렷하다. 동말레이시아 일부 교구에는 가톨릭 신자 비율이 10%를 훌쩍 넘는다. 헤럴드는 영어 외에 중국어·타밀어·말레이어(바하사) 담당자를 두고 각 언어 지면을 함께 발행한다. 네 가지 언어를 한 신문에 담아 언어·문화가 다른 신자들이 하나의 교회 안에 있음을 지면으로 증언해 온 셈이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언어는 번역 수단에 그치지 않고 교회 일치를 위한 핵심 도구”라고 강조했다. 헤럴드는 현재 총 32개 면을 발행하고 있으며 영어 19개 면을 중심으로 중국어 3개 면, 타밀어 2개 면, 바하사어 8개 면으로 구성돼 있다. 헤럴드 사무실은 전례주기에 맞춰 꾸민다. 올해 초 사순 시기에 맞춰 보라색 천과 나뭇가지로 만들어진 십자가상으로 장식한 사무실 입구. ‘알라’ 용어 사용으로 발행 중지 위기 헤럴드는 2001년 격주간지에서 주간지로 전환했다. 더 자주, 더 꾸준히 신자들에게 교회 가르침을 전하고, 신앙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창을 제공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해 웹사이트를 개설하며 새로운 독자층과 만날 길을 열었다. 그러나 헤럴드가 걸어온 길이 늘 순탄했던 건 아니다. 헤럴드가 말레이시아를 넘어 전 세계에 알려진 계기는 신문이 겪은 가장 큰 시련이었다. 헤럴드 말레이어 지면에 사용했던 ‘알라’(Allah)라는 단어가 발단이었다. 알라는 아랍어로 하느님, 곧 유일신을 뜻한다. 무슬림에게 ‘알라’는 신앙의 핵심 언어이자, 이슬람 공동체성을 드러내는 상징적 표현이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도 오래전부터 하느님을 가리킬 때 이 말을 사용해왔고, 말레이어 성경과 교회 전통 안에서도 ‘알라’는 하느님을 뜻했다. 창세기 1장 1절 ‘창조주 하느님’을 가리킬 때도, 마태오 복음 27장 46절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의 하느님, 저의 하느님”을 부르짖을 때도 말레이어 성경은 하느님을 알라로 표기해왔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2007년 헤럴드 말레이어 지면의 ‘알라’ 사용을 문제 삼았다. 가톨릭 신자들이 쓰는 표현이 무슬림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이유에서였다. 논쟁은 헤럴드의 발행 허가 문제로까지 번졌다. 정기간행물은 정부의 출판 허가를 받아야 했고, 교회는 해마다 이를 갱신해야 했다. 알라 논쟁 직후 헤럴드의 허가 갱신은 지연됐고, 발행 중지 압박도 커졌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는 법적 대응에 나섰고, 당시 편집장 앤드류 신부는 이 사안을 국제사회에 알렸다. 무슬림 사회에서 가톨릭 소수 공동체가 홀로 맞서기엔 힘든 싸움이라는 판단에서였다. 종교와 민족 정체성, 신앙과 출판의 자유가 맞물리며 알라 논쟁은 말레이시아 사회를 넘어 세계 교회의 관심사가 됐다. 쿠알라룸푸르 고등법원은 2009년 가톨릭교회의 손을 들어주며 헤럴드에 ‘알라’ 사용의 권리가 있다고 판결했다. 하지만 판결 직후 일부 성당과 가톨릭 시설을 향한 공격이 벌어졌다. 말레이시아 정부는 항소에 나섰고, 오랜 법정 다툼 끝에 2013년 항소법원은 고등법원 판결을 뒤집었다. 헤럴드는 결국 ‘알라’를 지면에 쓸 수 없게 됐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이는 헤럴드지에만 해당되는 사안으로 미사나 전례, 성경에서 사용되는 것까지 막은 것은 아니었다”고 했다. 그럼에도 이 사건은 하느님을 부르는 말조차 공적 논쟁과 법적 제한의 대상이 될 수 있는 무슬림 사회 속 가톨릭 언론이 처한 현실을 보여줬다. 인바라즈 부편집장은 “말레이시아 정부는 인종(Race)·종교(Religion)·왕실(Royalty), 이른바 3R 문제에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이와 관련된 표현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거나 공공질서를 해칠 수 있다고 보고 강하게 검열하고 있다”고 말했다. 신앙의 자유·인권·사회 정의·사회적 약자를 위한 우선적 배려 문제는 가톨릭 사회 교리와 직결되는 주제지만, 3R 영역과도 맞닿아 있다. 헤럴드는 대립의 언어보다는 신중하고 절제된 표현을 택했다. 침묵하지 않되 갈등을 키우지 않고, 교회 가르침을 전하되 사회적 긴장을 불러일으키지 않는 균형을 지켜온 것이다. 헤럴드 편집국 직원들. 왼쪽부터 산드라 앤 인바라즈 부편집장, 레이첼 샤르마 행정 담당, 패트리샤 페레이라 편집장, 아만다 마 그래픽 디자이너. 팬데믹·독자 감소에도 교회 가치 실천 코로나19 팬데믹은 헤럴드의 또 다른 위기였다. 2020년 3월 이동 제한과 사회적 거리두기 영향으로 교회 공동체 일상도 멈췄다. 미사가 중단되고 신자들이 성당에 모일 수 없던 시기에 신문을 인쇄하고 배포하는 일도 어려워졌다. 헤럴드는 신문 인쇄를 멈추고 전면 온라인으로 전환하는 결단을 내렸고, 2022년 9월부터 종이신문을 다시 발행했다. 신문 독자가 줄고 제작비, 우편료 부담이 커진 상황에도 헤럴드가 인쇄를 재개한 것은 디지털 접근이 어려운 신자들과 종이신문을 기다리는 이들이 여전히 있었기 때문이다. 더불어 유튜브를 비롯해 다양한 SNS 플랫폼을 운영하며 여러 세대와 접점을 넓혀가고 있다. 2024년 창간 30주년을 맞은 헤럴드는 나무를 심었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회칙 「찬미받으소서」에서 강조한 ‘공동의 집 돌봄’에 응답하는 일이었다. 사바주 수카우의 로워 키나바탕간 야생동물보호구역에 나무 100그루를 심고, 신자들의 참여를 독려하는 생태 캠페인을 마련했다. 신문을 만들고 배포하는 일을 넘어 교회가 말하는 가치를 실천하는 시도였다. 30년 넘게 헤럴드는 신자들이 더 넓은 교회와 연결돼 있음을 알게 하고, 교회가 세상 안에서 무엇을 보고 말해야 하는지 식별하게 하며, 소수자의 자리에서도 신앙의 언어를 잃지 않도록 앞장서왔다. 말레이시아 가톨릭 공동체가 자신들의 언어와 전통을 잃지 않도록 헤럴드는 오늘도 네 개 언어로 목소리를 이어가고 있다. 말레이시아=박수정 기자 catherine@ 첫 여성 평신도 편집장 - 패트리샤 페레이라 “복음에 뿌리 둔 진실 전한다” 2021년 패트리샤 페레이라(Patricia Pereira) 편집장의 취임은 말레이시아 교회에 변화를 알리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헤럴드 창간을 이끌고 27년간 편집장을 맡아온 로렌스 앤드류(Lawrence Andrew, 예수회) 신부 이후 첫 여성 평신도 편집장이기 때문이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자신의 임명에 대해 “교회가 리더십과 식별, 선교 영역에서 평신도, 특히 여성의 역할을 새롭게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인사였다”고 평가했다. “교회는 성직자만이 이끄는 공동체가 아니니까요. 가톨릭교회는 공동체 구성원 모두가 각자 역할을 맡아 함께 책임지는 공동체입니다.” 이는 말레이시아 사회에도 교회가 시대에 발맞춰 포용성을 넓히고, 여성의 역량과 리더십을 인정한다는 메시지를 줬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취임 후 ‘알리고, 양성하며, 영감을 준다’는 헤럴드 사명을 이어가며 현장 목소리를 더 많이 담으려 노력했다. 그는 “신자들의 생생한 삶의 경험, 공동체의 다양한 의견을 전하는 데 더 무게를 두는 변화를 추구했다”며 “스토리텔링의 렌즈가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학에서 홍보학을 전공하며 교구와 본당 일을 돕곤 했다. 졸업 후엔 주말마다 헤럴드에서 번역하던 인연이 이어져 1996년 헤럴드 기자 겸 부편집장으로 합류했다. 2006년까지 10년간 기자로 일하다 일반 기업 카피라이터 겸 홍보 담당으로 자리를 옮겼다. 재정적 이유에 따른 선택이었지만, 성과와 속도를 중시하는 기업에서 여러 고객을 만나며 새로운 소통방식을 배웠다. 그러다 쿠알라룸푸르대교구 요청으로 2017년 다시 교회 현장으로 돌아와 교구 커뮤니케이션 및 대외 협력 업무를 맡았다. “일반 기업과 교회 기관의 가장 큰 차이는 ‘근본적 동기’에 있습니다. 기업은 수익과 성과를 좇지만, 교회는 사명·가치·사목적 돌봄을 지향하죠. 교회는 기업의 전문성과 효율성을, 기업은 교회의 인간 존엄성과 삶의 의미를 배우며 상호 보완할 수 있습니다.” 페레이라 편집장은 가톨릭 언론의 정체성을 “양심을 지닌 저널리즘”이라 설명하며 “단순히 사실을 보도하는 데 그치지 않고 복음에 뿌리를 두고 진실을 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가톨릭 언론은 사람들에게 정보를 주고 영감을 주며 성찰로 초대해 궁극적으로는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전문 사도직’”이라고 덧붙였다. 헤럴드 역시 신문 독자 감소와 디지털화라는 세계 언론의 공통된 과제를 마주하고 있다. 그는 이를 위기가 아닌 새 도약의 기회로 바라봤다. 온라인 입지를 강화하고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다양한 플랫폼을 활용해 기사를 보도하겠다는 구상이다. “헤럴드가 가톨릭 공동체에 유익한 정보를 제공하고 서로를 연결하며, 영감을 불어넣는 ‘신뢰받는 목소리’로 남길 바랍니다. 나아가 사회와도 의미 있는 대화를 이어가는 매체가 돼야 합니다. 우리의 최종 목표는 변화무쌍한 미디어 환경에서 단순히 살아남는 데 그치지 않습니다. 언제나 흔들림 없이 빛을 비추는 ‘희망과 진실의 등대’로 굳건히 서는 것입니다.” 말레이시아=박수정 기자박수정2026.06.10

코린토 (02) : 먼지 뽀얗게 쌓인, 주인 잃은 편지[월간 꿈CUM] 바오로 사도의 발자취를 따라서 _ 튀르키예, 그리스 성지 순례기 (18) 기원전 5세기에 건립된 코린토 유적지의 아폴론 신전. 바오로도 이 신전 옆을 걸어 지나갔을 것이다. 바오로가 재판받았던 코린토 유적지의 비마(Bema, 연단) “유다인들이 합심하여 들고 일어나 바오로를 재판정으로 끌고 갔다.”(사도 18,12) 1년 6개월 넘게 코린토에 머물며 복음을 선포하던 바오로가 하루아침에 피고발자 신세가 되어 재판정으로 끌려갔다. 복음이 전해지는 것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유대인들이 바오로를 고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 코린토 총독은 철저히 중립을 지킨다. 유대인들의 고발장을 접수한 후, 간단한 조사만 마치고 바오로를 방면한다. 바오로가 살인이나 방화, 간통 등 강력 범죄를 저지르지 않았고, 치안을 해치는 중대한 문제를 일으키지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고발 사건은 바오로가 코린토를 터나 에페소와 안티오키아로 돌아가는 계기가 된다. 바오로가 공개적으로 조사받았던 자리가 지금도 남아있다. 코린토 성에서 내려와 찾은 코린토 유적지. 사람 사는 모습은 시대를 초월해 모두 비슷했다. 종교 시설 및 목욕탕, 공중 화장실, 상점, 관공서, 술집 터 등이 촘촘히 자리를 잡고 있었다. 그 코린토 유적지 광장 중심부에 ‘비마’(Bema)가 있다. 비마는 ‘연단’이라는 뜻으로, 총독이나 지방 자치 단체 관리가 연설하던 곳이다. 원전 희랍어 성경은 이곳을 ‘베마’(βημα)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우리말 성경은 이 단어를 ‘재판정’ 으로 번역했다. 바오로는 이곳에 끌려와 총독으로부터 심문을 받았다. 그렇다면 바오로 사도가 1년 6개월 동안 쾌락의 도시에 머물며 선포하려 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모함과 시기, 질투, 고발, 환난을 각오하고 반드시 말하 싶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 더 나아가 당시 코린토에 살던 그리스도교인들은 어떤 문제에 직면했으며, 어떻게 신앙을 이어나갔을까. 그 내용을 톰 홀랜드(Thomas Holland)가 저서 「도미니언 : 기독교는 어떻게 서양의 세계관을 지배하게 되었는가」에서 잘 정리하고 있다. 이곳에 그 내용을 옮겨본다. “그리스의 다른 도시들과 마찬가지로 코린토스는 용광로 같은 도시다. 율리우스 카이사르에 의해 해방된 로마 자유민들의 후손이 흘러들어와 그리스인 부자들과 뒤섞였다. 선박왕들이 구두 수선공과 섞여서 살았고, 순회 철학자들이 유대인 학자들과 교류했다. 이런 도시이니만큼 사람들의 정체성은 별로 뿌리 깊지 않았다. 과거 알렉산드로스 시대에, 저명한 철학자 디오게네스는 이 도시에서 커다란 통 속에서 살았고 또 사람들이 보는 데서 자위행위를 함으로써 그 사회의 규범에 대한 경멸을 악명 높게 선언했다. 그러나 바오로는 코린토스 사람들에게 그들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를 전면적으로 재조정해야 한다는, 아주 강력한 요구를 하고 나섰다. 부를 자랑하는 도시에서 바오로는 하느님께서 비천한 자와 가난한 자, 즉 아무것도 아닌 자를 선택했다고 과감하게 선언했다. 최고가 되기 위한 경쟁이 우선인 사람들 사이에서, 하느님이 현자를 부끄럽게 하기 위해 어리석은 자를 선택했고, 강자에게 수치심을 안기기 위해 약자를 선택했다고 선언했다. 노예와 주인의 위계질서를 당연시하는 세계에서, 그리스도 자신이 노예의 죽음을 당하신 마당에 노예와 자유인을 구분하는 것은 그리스인과 유대인을 구분하는 것만큼이나 무의미하다고 주장했다. 바오로는 이 메시지를 끊임없이 설교했지만, 딜레마(서로 다른 습속의 조화)로 고심했다. 그는 세상을 널리 여행했으므로 서로 다른 민족의 습속이 다양하다는 것을 알았다.” 이처럼, 바오로의 코린토 선교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코린토는 한적한 시골 마을이 아니다. 자연 안에서 유유자적하며 하느님의 섭리를 찬미할 수 있는 그런 분위기를 가진 전원도시가 아니다. 돈과 명예, 쾌락을 위해 질주하는 인간 군상이 모인 곳이다. 그래서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편지는 오늘날 도시에서 살아가는 우리 각자의 집 우편함에 도착한 편지이기도 하다. 코린토인들에게 보낸 바오로의 편지를 보면, 당시 코린토의 가장 큰 문제는 분열이었다. 코린토 신자들은 자신이 각자 추종하는 사도와 설교자들을 중심으로 파벌을 형성하고 있었다. 여러 파벌로 쪼개진 코린토 교회를 바라보는 바오로 사도의 심정은 참담했을 것이다. 게다가 서로 뜻이 맞지 않아 신자들 사이에 다툼도 잦았다. 고소 고발이 난무했다. 불륜으로 인한 혼인의 정체성 문제, 우상, 교리해석 문제도 심각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호소한다. “모두 합심하여 여러분 가운데에 분열이 일어나지 않게 하십시오. 오히려 같은 생각과 같은 뜻으로 하나가 되십시오.”(1코린 1,10) “여러분이 서로 고소한다는 것부터가 이미 그릇된 일입니다. 왜 차라리 불의를 그냥 받아들이지 않습니까? 왜 차라리 그냥 속아 주지 않습니까?”(1코린 6,7) 바오로 사도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신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 저지르는 타인에 대한 단죄’를 경고한다. 타인을 죄인이라고 함부로 단죄하지 말라는 것이다. 중대한 범죄를 저질러도, 윤리적으로 몹쓸 짓을 했어도, 하느님은 그 죄인을 감싸신다. “그리스도께서는(여러분이 죄를 지었다고 단죄하는) 그 형제를 위해서도 돌아가셨습니다. 여러분이 이렇게 형제들에게 죄를 짓고 약한 그들의 양심에 상처를 입히는 것은 그리스도께 죄를 짓는 것입니다.”(1코린 8,11-12) 성경에 나타나는 코린토인들의 모습에서 나 자신의 모습이 그대로 읽혀지는 것은, 아마도 코린토가 현대사회의 결핍과 모순을 그대로 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래서 코린토로의 여행은 현대사회라는 광장에 외롭게 서 있는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한다. 이런저런 자잘한 심적 고통들을 안고, 코린토 유적지들을 둘러 보았다. 바오로 사도가 조사받았던 비마(연단, 재판정)가 눈에 들어왔다. 연단 위에 서서 아래를 내려 보았다. 2000년 전 고발되어 끌려온 바오로 사도의 긴장한 모습, 그리고 무슨 일이 생겼냐며 웅성거리며 모여드는 군중의 모습이 보였다. 그런데 이유 없는 고난 앞에서도 바오로 사도는 머리를 숙이지 않고 있었다. 그는 연단 위에 있는 나를 정면으로 응시하고 있었다. 나를 바라보는 바오로의 눈에선 확신이 담겨 있었다. 순간, 바오로가 나에게 보낸 편지가 집 우편함에 오랫동안 방치되어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이미 반송되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빨리 집으로 돌아가 편지를 뜯어봐야겠다. 어수선한 마음으로 연단을 내려오려는데, 오른편에 바오로의 말이 희랍어로 새겨진 돌 하나가 눈에 들어왔다. 삶이 힘들어 지쳐있었을 때 이 편지를 읽었다면 큰 힘이 되었을 텐데…. 내가 아직 뜯지 않아 먼지 뽀얗게 쌓인 그 편지의 말씀, 코린토인들에게 보내는 둘째 편지 4장 17절이었다. “το γαρ παραυτικα ελαφρον της θλιψεως καθ υπερβολην εις υπερβολην αιωνιον βαρος δοξης κατεργαζεται ημιν.”(2코린 4,17) 글·사진 _ 우광호 (라파엘, 발행인)cpbc2026.05.23
![[김일두 신부의 생활속의 복음] 순교 신앙](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9/16/ChD1789523197819.jpg)
[김일두 신부의 생활속의 복음] 순교 신앙성 김대건 안드레아 사제와 성 정하상 바오로와 동료 순교자들 대축일 루카 9,23-26 카라바조 작 ‘ 성 베드로의 순교’, 1601년. 국민의 생명·안전을 수호하기 위해 헌신한 유공자들, 특히 순국·순직한 이들을 향한 합당한 예우는 국가의 도리다. 애국·애민을 입증한 순국과 같이, 박해 시대의 순교는 처형당함으로 증거한 ‘애교’(愛敎)이며 ‘크고 깊은 신앙’이다. 그런데 형식상 순국과 유사한 양상을 보여주는 순교의 본질은 신앙의 결실인 생명이다. “자기 목숨을 구하려는 사람은 목숨을 잃을 것이고, 나 때문에 자기 목숨을 잃는 그 사람은 목숨을 구할 것이다.”(루카 9,24) ‘자기 목숨’과 ‘목숨’의 의도적 분리가 암시하듯, 교회가 순교자를 공경하는 근본 이유는 신앙으로 ‘잃은 생명’(자기 목숨) 때문이 아니라 신앙으로 ‘찾은 생명’(목숨) 때문이다. 세례 예식의 도입부에서 예비 신자는 “신앙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줍니까?”라는 집전자의 물음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영원한 생명을 줍니다.” 구원과 생명을 연계한 요한 복음은 “영원한 생명이란 홀로 참하느님이신 아버지를 ‘알고’ 아버지께서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입니다”(17,3)라고 정의한다. 정보 습득과 원리 통달로 오인될 소지가 있는 ‘지혜’(아는 것)를 경계했던 바오로 사도(1코린 1,27 참조)와 달리, 창조하고 구원하는 ‘하느님의 지혜’를 부각하는 지혜서는 ‘신앙이 주는 생명’을 이렇게 표명한다. “주님을 신뢰하는 이들은 ‘진리를 깨닫고’ 그분을 믿는 이들은 그분과 함께 ‘사랑 속에 살 것’이다.”(3,9) 사람에 대한 신망, 가치에 대한 신념, 사물에 대한 신용, 권위에 대한 신뢰 등 우리말 ‘믿다’(信)에서 파생하는 다양한 의미가 신을 향한 신앙 안에 수렴된다. 신앙인은 ‘예수님의 말씀’(진리)을 믿고, ‘예수님과의 관계’(사랑)를 믿으며, ‘예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선포) ‘말씀하는 예수님을 현존케 하는’(성사) 교회의 권위를 믿는다. ‘신앙이 주는 생명’(하느님을 아는 것)은 ‘예수님의 말씀에 대한 전적인 동의’(진리를 깨달음)이며, ‘아들이 아버지 안에, 아버지가 아들 안에 있는’(요한 14,10 참조) 성부와 성자의 관계처럼 ‘예수님과의 친밀한 만남’(사랑 속에 있음)이다. 조선 후기 세상의 도(道)나 이치를 새롭게 해명하는 학문인 서학(西學)으로 전래된 천주교는 ‘절대 존재’(신)를 인격적 대상인 ‘아버지’ 혹은 ‘님’으로 소개했다. 세례로 천주교에 입문한 이들은 ‘하느님의 자녀’라는 파격적 신원을 부여받았다. 오늘날과 같은 성경 지식을 접하지 못했던 신앙 선조들은 간단명료하게 집필된 한문 교리서를 기반으로 예수님을 통해 하느님을 알게 되었고, 예수님을 믿으면 생명을 얻으리라는 희망을 강렬하게 품었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님에게서 드러난 하느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로마 8,39) 이 정황을 기존 사회 질서에 대항한 도발로 규정한 위정자들은 천주교인을 숙청하는 박해를 자행하였다. 순교는 죽음으로 입증한 신앙이 아니라 ‘신앙으로 증거한 생명’이다. 순교자는 복잡하지 않은 단순함과 난해하지 않은 명료함을 특징으로 하는 ‘진리’와 계산하지 않은 확고함과 간사하지 않은 순박함을 특징으로 하는 ‘사랑’에 근거하여 ‘하느님 밖에 사는’ 자기 목숨을 내어놓고 ‘하느님 속에 사는’ 목숨을 구했다. cpbc2026.09.16

말씀 새기고 희망 수놓다글·그림·피규린으로 복음 표현한 전시 유임봉 작 ‘성모찬송’ 복음을 글과 그림, 피규린으로 표현한 작품들이 전시되고 있다. 돌에 새기고 화폭에 수놓고 인형으로 빚는 등 다양한 형태로 담은 하느님 말씀을 만날 수 있다. 엠마오 가톨릭말씀새김예술가회 부회장이면서 글아캘리아카데미 대표 유임봉(스테파노) 작가의 개인전 ‘엠마오 - 루카 복음서를 쓰고 새기다’가 서울 명동 갤러리 1898 제2전시실에서 열린다. 2019년 마르코 복음서를 주제로 한 ‘에피타’, 2021년 마태오 복음서를 주제로 한 ‘마라나타’에 이은 세 번째 전시로, 복음을 화선지에 필사한 작품과 서울대교구 주교좌 명동대성당 입구 명례글판에 선보였던 작품 등 50여 점을 선보인다. 작가는 “작품을 완성하려면 칼로 돌을 깎으며 끊임없이 비워내는 과정과 하얀 백지 위에 다양한 붓으로 끊임없이 채우는 과정이 필요하다”며 “그리스도의 말씀을 종이에 쓰고(캘리로고스그라피) 돌에 새기는(말씀새김) 과정을 통해 엠마오로 가는 길에 두 제자에게 오셨듯 주님께서 곁에 와주시기를 청하는 기도와 묵상을 관객들과 함께하고자 한다”고 전했다. 전시 기간 행사를 통한 수익금은 전액 이주민과 난민들의 인권보호와 권익증진을 위해 의정부교구 사회사목국 ‘의정부 엑소더스’에 기부할 예정이다. 23일까지 관람할 수 있다. 김옥순 작 ‘엄마의 휴식’ 희망의 순례자들 같은 기간 갤러리 1898 제1전시실에서는 김옥순(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의 17번째 개인전이 개최된다. ‘희망의 순례자들’을 주제로 복음의 사건 또는 소소한 일상에서 놓치기 쉬운 희망을 마음으로 느끼고 작은 기쁨과 평화를 맛볼 수 있는 장면들을 25개의 화폭에 담았다. 김 수녀는 “우리의 고향인 하느님 아버지의 집으로 가기 위해 순례의 길을 시작할 때 하느님은 우리에게 희망의 씨앗 하나를 주셨기에 우리는 절망하는 순간에도 일어설 채비를 한다”며 기획 의도를 밝혔다. 꾸준히 성화전을 이어오고 있는 김 수녀의 작품은 특유의 파스텔톤 화풍으로 주목받는다. 예쁜 엽서나 동화책에 실릴 법한 화사하고 포근한 색감은 김 수녀만의 비법으로, 시간을 들여 물감을 굳히고 다시 바르는 과정을 반복해 구현한다.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 작 ‘마르타와 마리아’ 성경인물 전시회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기획한 제4회 ‘성경인물 전시회’는 대구 바틀로 교육센터에서 열리고 있다. ‘피규린(figurine)’은 작은 인물상 또는 사람의 형상으로, ‘피규린 비블리크(Figurine Biblique)’는 성경인물, 즉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을 형상화한 것이다. 1964년 스위스의 한 수도원에서 개발해 성경 공부와 묵상, 신앙교육을 위해 보급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서는 그리스도의 교육수녀회가 2004년부터 도입해 확대하고 있다. 올해로 4번째 열리는 전시회에서는 ‘구약과 신약의 믿음의 여인들’을 주제로 미르얌·유딧·한나·성모 마이라·엘리사벳·하혈병에 걸린 여인·가나안 여인·마르타와 마리아 등을 선보이고 있다. 수녀회 측은 “하느님께서는 당신 구원계획을 실행에 옮기실 때 사람의 눈에 보잘것없어 보이는 사람들, 특히 여성들에게 고유한 역할을 주셨다”며 “성경 안 여성들의 영적 체험과 믿음, 하느님과의 관계에 대해 숙고하고 묵상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전시는 23일까지 이어진다. 윤하정 기자 monica@cpbc.co.kr윤하정2025.11.12

서울 WYD 주제가 작곡가 김지윤씨 수상국내외 공모작 433곡 중 선정… 교회 보편성·한국 문화 담겨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공식 주제가 작곡가 김지윤씨가 서울대교구장이자 2027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 정순택 대주교와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WYD) 공식 주제가 ‘Confidite, Ego Vici Mundum’의 작곡가 김지윤(프란치스코, 39, 수원교구 호계동본당)씨가 6일 상장을 받았다. 2027 서울 세계청년대회 조직위원회 위원장이자 서울대교구장 정순택 대주교는 이날 교구청에서 김씨에게 시상했다. ‘Confidite, Ego Vici Mundum’은 2027 서울 WYD 주제 성구인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요한 16,33)의 라틴어 구절이다. 앞서 조직위는 서울 WYD 본대회 개막을 꼭 1년 앞둔 3일 대회 공식 유튜브 채널을 통해 주제가를 첫 공개했다. 이 곡은 공식 주제가 공모전에 출품된 국내외 433곡(국내 140곡·해외 293곡) 가운데 최종 선정됐다. 433곡은 역대 WYD 공식 주제가 공모전 최다 응모 기록이다. 여러 대륙에서 사제·수도자·평신도와 전문·아마추어 음악인 등 다양한 이들이 작품을 보내왔다. 조직위 음악위원회는 세 차례 심사를 거쳐 후보 5곡을 추렸으며, 교황청 평신도가정생명부의 최종 승인을 거쳐 이 곡을 공식 주제가로 확정했다. 정 대주교는 축사를 통해 “이번 공모전은 2027 서울 WYD를 향한 세계인들의 관심과 열정을 확인할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익명 심사를 통해 우리나라 젊은 작곡가의 곡이 최종 선정돼 더 뜻깊고 기쁘다”고 밝혔다. 이어 “WYD에 참여할 수많은 젊은이가 예수님 말씀, 성경 말씀을 고백하고 그 의미를 담은 주제가를 함께 부를 것”이라며 “용기를 내어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을 따라 살아갈 힘을 체험하고 그 은총을 나누면서 세계 청년들이 서로 힘이 돼 주는 데 이 곡이 아주 든든한 매개체가 되리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또 “1년 남은 WYD를 준비하면서 주제가 가사처럼 우리가 세상의 빛이며 서로에게 길을 밝혀주는 신앙인임을 기억하자”고 당부했다. 김씨는 “이 곡이 제 작품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교회 안에서 제게 주신 사랑의 응답이 되면 좋겠다”며 “한국 문화와 교회 보편성을 담아낼 수 있는 음악을 만들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노래가 가리키는 중심은 하느님”이라며 “세계 청년들이 ‘용기를 내어라. 내가 세상을 이겼다’라고 하신 주님 말씀을 삶에서 다시 만나고, 순례를 마친 뒤에도 이 곡을 매개로 하느님께서 주신 은총을 기억하며 용기 있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조직위 음악위원장 최호영 신부는 이날 심사평에서 “세계 가톨릭 청년들의 젊은 감각에 맞고, 가사와 선율이 간결하며, 전례의 정통성에 맞으면서도 한국 문화의 전통성을 살리고, 나아가 국제적 공통성을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지향했다”고 설명했다. 이학주 기자 goldenmouth@cpbc.co.kr이학주2026.08.12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살길 막막](https://img.cpbc.co.kr/newsimg/upload/2026/02/11/boE1770776289119.jpg)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무릎 인공관절 수술 후 살길 막막요양보호사로 일하며 생계 이어와 최근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전재순씨가 침대에 누워 요양하고 있다. 자영업하는 자녀들도 어려운 처지 매일 성경 쓰며 연령회 봉사 꿈꿔 “제 힘으로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네요. 그래도 하느님께서 잘 이끌어주시겠죠. 확신합니다.” 자신의 처지를 담담히 하느님께 맡기는 전재순(데레사, 73)씨. 지난해 말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그는 이제 혼자 힘으로는 거동조차 쉽지 않다. 지난 세월 또한 삶을 긍정하기엔 버거운 시간의 연속이었다. 그 시절 딸이라는 이유 때문에 초등학교 졸업이 마지막 학력이지만, 전씨는 타고난 긍정적인 성격으로 큰 굴곡 없이 살아왔다. 사랑하는 남편을 만나 자녀 셋을 낳았고, 부유하진 않았지만 하루하루 감사한 마음으로 단란한 가정을 꾸렸다. 그러나 IMF 외환위기로 전씨 가정은 직격탄을 맞았다. 설상가상 어음 사기까지 당하며 회복할 수 없을 만큼 무너졌다. 결국 지금 살고 있는 임대주택 아파트로 쫓기듯 이사해야 했다. 치매를 앓던 친정어머니까지 여섯 식구가 한집에 모여 살았다. “아들은 베란다에서, 딸 둘은 한 방에서, 나머지는 거실에서 뒤엉켜 잤어요. 그래도 가난을 부끄러워하거나 원망한 적이 한 번도 없는, 속 깊은 아이들이었어요. 그 힘으로 버텼죠.” 최근 인공관절 수술을 받은 전재순씨는 거동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매일 성경쓰기를 하고 있다. 이후 전씨는 가리지 않고 일했다. 하지만 2002년 남편이 지병으로 세상을 떠나며 또 한 번 큰 시련이 찾아왔다. 다행이라면 자녀들이 모두 출가할 만큼 성장해 자신의 몸만 돌보면 되는 상황이었다. 전씨는 횟집 주방에서 야간 종업원으로 10년 일했고, 최근 수술 전까지는 요양보호사로 16년간 일했다. 그러나 삶의 무게가 쌓인 탓인지 몸은 하나둘 망가지기 시작했다. 심장 폐동맥협착증 수술을 비롯해 허리 수술, 백내장 수술, 최근에는 무릎 인공관절 수술까지 받았다. 이제는 하루하루 생계를 이어가는 것조차 버겁다. 매달 받는 기초연금 34만 원은 월세로 고스란히 나가고, 유족연금 20만 원이 전부다. 오랜 투병으로 모아둔 돈은 남아있지 않다. 자영업을 하던 자녀들 또한 코로나19 이후 빚에 시달리고 있다. 최소 1년간 재활이 필요하지만, 도수치료비 100만 원을 감당하지 못해 치료를 중단했다. 전씨는 조금이라도 걸을 수 있게 되면 다시 요양보호사 일을 하겠다고 말한다. 주변에서는 “요양을 받아야 할 사람이 어떻게 요양보호사를 하느냐”며 만류하고 있다. 꿈을 꾸는 것조차 사치가 된 현실에서도 전씨는 매일 성경을 쓰며 작은 소망을 간직한다. “본당에서 연령회 봉사를 한번 해보고 싶어요. 심장 수술하고 쉬는 동안 장례지도사 자격증을 땄거든요. 죽음을 곁에서 함께하는 건 숭고한 일이잖아요. 그렇게 기도하면 하느님께서 자녀들을 도와주신다고 들었어요. 적어도 아이들만큼은 제가 겪은 이 지독한 가난을 살게 하고 싶지 않습니다.” 박민규 기자 mk@cpbc.co.kr 후견인 : 서울 중계동본당 김나경(비비안나) 사회사목분과장 “자매님은 60대 초반에 발병한 무릎 통증과 허리 병으로 70대 초반인 현재까지 10여 년 동안 힘겹게 투병 중입니다. 최근 병원치료비뿐 아니라 주거 문제 등 경제적 타격까지 겹쳐 막막한 처지에 있는 전재순씨에게 독자 여러분의 많은 사랑과 관심 부탁드립니다.” 성금계좌 (예금주 : 가톨릭평화방송) 국민 004-25-0021-108 농협 001-01-306122 우리 454-000383-13-102 전재순씨에게 도움을 주실 독자는 15일부터 21일까지 송금해 주셔야 합니다. 이전에 소개된 이웃에게 도움 주실 분은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담당자(02-2270-2503)에게 문의 바랍니다.박민규2026.02.11

주(主) 바라기[월간 꿈CUM] 경청 출처: 월간 꿈CUM 여러분은 무슨 꽃을 좋아하는가? 나는 8~9월에 피는 해바라기를 좋아한다. 그 이유는 꽃이 아름답거나 씨가 맛있어서가 아니라, 항상 태양을 따라 돌고 돌면서 살아가는 해바라기의 속성 때문이다. 식물, 동물, 인간 할 것 없이 모든 생명체는 태양 빛을 받으며 살아가야 한다. 그리하여 생명체는 늘 남향(南向)으로 자리를 잡는다. 그중에서도 해바라기는 밤낮 구분 없이 태양을 향해 서 있다. 해바라기를 관찰해보자. 아침의 해바라기는 반가운 인사라도 하려는 듯 떠오르는 태양을 향해 동쪽을 향해 있다. 한낮에는 줄기를 길게 뻗어 태양을 똑바로 바라본다. 또 저녁 무렵에는 해와 석별의 정을 나누기라도 하듯이 하늘 서쪽으로 방향을 튼다. 그리고 밤에는 연인에게 실연(失戀)당한 것같이 머리를 다소곳이 숙이고, 다음 날 아침을 맞이하기 위해 몸을 틀어 동쪽으로 향한다. 그래서 꽃의 이름이 해바라기가 되었다. 그런 뜻으로 해바라기를 일본어로는 히마와리(ひまわり), 이탈리아어로는 지라솔레(girasole), 헝가리어로는 나프라포고(napraforgo), 한자어로는 향일화(向日花)라고 한다. 이런 해바라기는 언제부터인가 모습이 많이 변했다. 다른 식물에 뒤질세라 꽃 모양은 둥글게 더욱 커졌고, 키는 장대처럼 높아만 갔다. 자기만이 태양을 사모하고 독차지하려는 집념의 결과이다. 이렇게 지조(志操) 있게 살아, 어느새 자신도 모르게 태양을 닮은 꽃이 되었다. 해바라기의 새로운 이름이 생겼다. 해를 바라보며 살아가는 해바라기에서, 태양을 닮았다는 뜻으로 ‘태양의 꽃’이 되고 말았다. 그래서 영어로는 선플라워(sunflower), 독일어로는 존넨플루메(sonnenblume)라고 불린다. 생명의 원천인 태양 빛을 놓치지 않으려고 밤낮으로 태양 중심으로 살아가다 보니, 자신의 모습이 태양을 닮게 된 것이다. 우리에게 태양 같은 분은 누구인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 주님이시다. 영혼과 육신으로 이루어진 인간은 현세적 삶에서뿐만 아니라, 내세의 삶에도 빛이 필요한데, 바로 그 생명의 빛으로 오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도 요한 8,12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다. 나를 따르는 이는 어둠 속을 걷지 않고 생명의 빛을 얻을 것이다.”라고 하셨다. 그러므로 생명체가 항상 태양을 중심으로 살아가듯이, 신앙인들은 늘 생명의 빛으로 오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살아가야 한다. 회개(悔改)란 삶을 뉘우쳐 고치는 것이다. 세속 중심의 잘못된 삶에서 주님 중심의 삶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다시 말해 그릇된 삶을 뉘우치고 고쳐서 방향을 전환(轉換)해 새롭게 살아가는 것이다. 뉘우치기만 해서는 안 된다. 또 그러하기 위해 기도하며 희생하고, 성경을 읽고 봉사도 하며, 미사에 자주 참석해 성체도 모신다. 회개는 바로 해바라기와 같이 빛으로 오신 주님을 바라보면서, 주님 중심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그래서 지구가 태양을 중심으로 돌고 돌 듯이, 우리도 신앙인으로서 매일 주님을 향해 돌고 돌아야 한다. 그러할 때 우리는 일편단심(一片丹心) 민들레처럼, 주님만을 사랑하면서 살아가는 ‘주(主) 바라기’가 된다. 그리고 우리도 언젠가는 주님을 닮은 주님의 사람이 될 것이다. 글 _ 최봉원 신부 (야고보, 마산교구 원로사목) 1977년 사제 서품 1980년 군종장교로 임관, 군종단 홍보국장, 군종교구 사무처장 겸 사목국장, 관리국장, 군종참모 등을 지냈으며 2001년 군종감으로 취임, 2003년 퇴임했다. 이후 미국 LA 성삼본당, 함안본당, 신안동본당, 수산본당, 덕산동본당 주임으로 사목했으며, 마산교구 총대리 겸 사무처장을 역임했다.cpbc2026.09.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