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생명 이야기] 11. 생명은 선한 것](//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5726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생명 이야기] 11. 생명은 선한 것민남현 수녀(엠마, 성바오로 딸 수도회) 하느님은 세상을 창조하신 후 대단히 만족해하셨습니다. 창조물을 바라보시는 하느님의 흐뭇한 마음을 창세기 저자는 "하느님께서 보시니 좋았다"라는 말로 일곱 번이나 표현합니다(1,4.10.12.18.21.25. 31). 하느님의 이 기쁨의 말씀은 창조된 모든 것이 창조주의 뜻에 맞게 생겨났기에 그 자체로 선하고 아름다운 현실임을 시사합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하느님의 귀한 작품이므로 그분은 생명을 사랑하십니다(지혜 11,26). 창조주 하느님에게서 지음 받은 모든 생명은 선한 것이기에 하느님은 인간에게 뭇 생명의 피를 함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계명을 주셨습니다. 만일 이 계명을 거스르는 사람이 있다면 그 스스로 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하는 책임의식을 분명히 일깨워주십니다(창세 9,5-6 참조). 자비롭고 정의로운 하느님은 선한 생명이 인간의 폭력과 불의로 희생되지 않도록 구체적인 법의 울타리를 세워주신 것입니다. 특히 모든 생명 가운데 인간이 으뜸으로 소개된 사실이 중요해 보입니다. 하느님은 인간에게 직접 숨을 불어넣으시고(창세 1,7) 생물들에게 이름을 지어주는 특권을 주시어 존재의 의미를 부여하는 당신의 특별한 협력자로 삼으셨습니다(창세 1,19-20). 아마도 이를 근거로 인간이 서로의 생명을 돌보는 문제는 단순히 생명을 파괴하지 않는 차원을 넘어 적극적으로 사랑하는 행위가 요청된 듯합니다. "너희는 동포에게 앙갚음하거나 앙심을 품어서는 안 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나는 주님이다"(레위 19,18). 인간이 서로 아끼고 사랑해야 하는 근본 동기는 우리 모두가 동등하게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대상이기 때문입니다. "인간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기억해 주십니까? 사람이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 …영광과 존귀의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시편 8,5-6). 이처럼 인간 존재는 창조주 하느님의 현존을 증언하고 그분의 영광과 선하심을 드러냅니다. 하느님의 사랑을 받는 최고 작품인 인간이기에 그분은 우리에게 지식과 이해력을 주시고 선과 악을 식별하는 능력을 주셨습니다(집회 17,3.7 참조). 이러한 하느님의 선물에 맞갖은 인간의 응답은 세상의 기원과 인간의 생명이 하느님께 속해 있음을 알고 생명을 상속재산으로 여기며 소중하게 보존하고 성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날 선한 생명의 선물을 두려움 없이 파괴하고 헛되게 낭비하는 생명 경시 사상이 심각합니다. 이에 대해 생명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바람이 무엇인지를 지혜서의 저자는 잘 알려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지혜 1,13).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특별한 사랑은 불멸의 존재로 만드신 사실에도 드러납니다. "정녕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 당신 본성의 모습에 따라 인간을 만드셨다"(지혜 2,23). 이러한 점에서 인간은 하느님과 가장 가까운 관계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인간이 죄악으로 하느님의 영광과 선 자체인 생명을 잃게 되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구세주로 세상에 파견되시어 십자가의 죽음으로 인간의 죽을 운명을 생명으로 길로 되돌리셨습니다.(필리 2,6-9 참조) 이 큰 사건을 들어 「생명의 복음」 회칙은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느님의 아드님께서 인간 생명을 취하시고 그것을 모든 인류의 구원을 위한 도구로 삼으셨으니, 그 인간 생명이란 얼마나 위대한 것입니까!"(33항) 그러므로 인간 생명은 부유하신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가난해지심으로써 얻은 은총의 선물입니다(2코린 8,9 참조). 거저 받은 은총이기에 생명의 주인은 우리가 아니라 선하신 하느님이십니다. 하느님이 인간을 창조하신 목적에 맞게 그분 계획에 따라 살아갈 때 우리 삶은 선으로 작용해 세상에 하느님의 영광을 증거하는 살아 있는 존재가 됩니다. 우리를 뽑으시어 당신의 현존을 알리는 존재가 되게 하시고 당신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신 하느님의 부르심(로마 8,28-29 참조)에 응답하는 첫걸음은 충만하고 기쁘게 생명의 길을 걷는 것입니다. cpbc2014.04.17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3> 2번 ‘주 하느님…’ (하)](//cpbc.co.kr/CMS/newspaper/2016/01/rc/615205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3> 2번 ‘주 하느님…’ (하)
하느님 찬미하는 분위기로 너무 빠르지 않게 불러야 ‘주 하느님 크시도다’ 작사가 보베르그가 영감을 얻은 스웨덴 묀스테로스 해변 모습. 보베르그는 묀스테로스 바다(발트해)가 보여준 장엄함과 두려움, 평화로움의 감정을 곡에 담았다. 우리가 즐겨 부르는 성가 ‘주 하느님 크시도다’의 원 가사인 ‘오 위대하신 하느님(O Store Gud)’을 쓴 스웨덴 작사가 겸 시인인 보베르그(Carl Gustav Boberg, 1859~1940)가 이 가사를 쓰게 된 계기는 이렇게 전해진다.어느 날 보베르그가 교회 종소리를 들으며 자기 집이 있는 묀스테로스로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평선 위로 잔뜩 번개가 치면서 폭우를 머금었던 먹구름 사이로 가느다랗게 빛이 하늘에서 비쳐 내려오는 것을 보게 된다. 강한 바람이 목초지 위를 거쳐 곡식 들판을 스쳐 지나갔고, 세찬 빗줄기가 한 차례 시원하게 지난 뒤 하늘에 아름다운 무지개가 뜨는 장면을 본 것이다. 집으로 돌아온 그는 창문을 열었고, 창문 사이로 마치 거울과 같은 묀스테로스 해안과 함께 빗물에 맑게 씻긴 숲 속 개똥지빠귀의 지저귐, 은은히 울려 퍼지는 교회 종소리 속에서 평온한 저녁을 맞이한다. 보베르그는 장엄함과 두려움 뒤에 만나게 된 이 평화로움 속에 영감을 얻고 이 가사를 쓰게 됐다고 한다. 이 가사는 1절과 2절로 표현되어 있다.한편 이 가사의 영어버전 3절에는 지난 호에서 소개했듯이 독일어 가사를 영어로 번역했던 영국 선교사 스튜어트 하인(Stuart K. Hine, 1899~1989)이 우크라이나 접경 마을에서 겪었던 체험과 관계가 있다. 이 가사는 예수님의 십자가 고통과 죽음에 관한 성경 이야기를 들으며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외친 러시아 병사들의 탄식에서 영감을 받아 작성됐다.한편 4절에는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얽혀 전해온다.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하인은 친구와 함께 영국 수섹스에 있는 러시아 난민 수용소를 방문하게 된다. 거기서 전쟁 와중에 사랑하는 부인과 이별하게 된 한 러시아인을 만난다. 그의 부인이 그리스도인이어서 그도 따라서 세례를 받은 것이다. 아내를 무척이나 사랑했던 그는 다시 부인을 만나 자신도 갖게 된 신앙을 부인과 함께 나누고자 하는 강렬한 열망에 사로잡힌다. 그러나 수용소에 갇힌 그는 생전엔 부인을 다시 만날 수 없으리라는 걸 잘 알고 있었다. 다만 그는 하늘나라에서 부인을 만나 그 꿈이 이뤄지길 갈망할 뿐이었다. 이런 간절함을 가진 러시아인과의 만남을 바탕으로 하인은 영어판 가사의 4절을 만들어 덧붙이게 된다. 우리 말 가사도 이렇게 작성된 가사들을 비교적 본래 뜻을 충실히 번안해 수록하고 있다.이 곡은 세계 각국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연주되고 있는데, 우리 「가톨릭성가」에는 “너무 빠르지 않게”라고 표기돼 있다. 이를 보면 서양에서 부르듯이 드럼 비트에 따른 대중가요 분위기가 아니라, 빠르지 않으면서도 장엄하게 하느님을 찬미하는 분위기로 노래할 것을 요구하는 것으로 보인다.우리도 때때로 마치 엘리야가 호렙 산에서 바위를 부수는 강풍과 지진, 불이 한차례 지나간 뒤 조용하고 부드러운 소리로 하느님을 만났던 것처럼 (1열왕 19,11-12) 힘겨운 등반으로 올라선 높은 산꼭대기에서나, 혹은 한차례 폭풍이 지나간 뒤 무지개가 펼쳐진 바다의 평화로움 속에서 그 자연을 만들어내신 하느님을 만나게 된다. 이 성가를 부를 때에는 이렇게 만났던 평화 속의 하느님을 다시 만나는 것이다.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 평화신문2016.01.20

성탄 기쁨 잃은 당신에게 띄우는 편지'안셀름 신부의 성탄 편지'세계적 영성가 안셀름 그륀(독일 성 베네딕도회) 신부가 보내온 성탄 편지다. 그륀 신부는 성탄 즈음이면 지인들에게 편지를 보낸다. 해마다 돌아오는 성탄이지만, 그륀 신부에겐 매년 새로운 성탄이다. 그는 “성탄은 우리가 결코 완전히 파악할 수 없는 축제”라면서 “그래서 여전히 자주 이 축제를 묵상할 수 있다”고 했다. 그의 편지에는 성경 말씀에서 뽑아낸 성탄 소망과 희망들로 가득하다. 책은 그륀 신부의 성탄 편지를 10가지 주제로 나눠 엮었다. 편지 중 일부를 소개한다. ☆하느님과 함께 새로운 시작을“참으로 오늘날 많은 이들이 번아웃(burnout, 정신적 탈진)에 시달리고 있지요. 자기들의 본래 모습으로 살지 못하고, 다른 이들이 그들에게 덮어씌운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자신들에게 향하는 다른 이들의 기대들로 말이에요. 이럴 때 천사가 그대로 하여금 그대 안에 있는 거룩한 아기, 곧 그대를 위해 생명력과 힘의 원천으로 거기 있는 그 아기와 만나게 해줄 것입니다. 그렇게 그대, 성탄절에 하느님과 함께 새로운 시작이 열리기를 소망합니다.”☆평화를 누리기를“우리가 하느님을 온전히 받아들인다면, 인간은 평화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하느님이 중심에 서 계시면 인간도 자신의 중심을 잡지요. 그리고 인간이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중심을 잡으면 그는 자신뿐만 아니라 사람들과도 평화 가운데 있게 됩니다. 그러면 그는 더 이상 다른 이들의 가치를 폄하할 필요도, 또 그들과 싸울 필요도 없게 되지요. 오히려 그들을 있는 그대로 그냥 바라볼 수 있습니다.”☆하느님의 한없는 사랑 체험하기를 “성탄절에 우리는 구유에 누워 있는 한 아기 안에서 하느님을 볼 수 있게 됩니다. 이 아기가 우리에게 하느님을 알려주지요. 예수님 안에서 우리는 하느님이 인간적인 심장을 가지고 계시다는 것을, 그분이 당신 마음을 우리에게 여셨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그대가 하느님을 성탄절에 가까이 계신 분으로, 그대에게 몸소 내려오시어 그대 마음속에 자리하신 분으로, 그대 영혼의 밑바닥 위에 사시는 분으로 체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온전히 기쁘고 자유롭기를“그대가 그대 삶을 천상의 눈으로 바라본다면, 하느님이 그대에게 일으키고자 하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면 그대는 자신의 삶이 온전하고 완전하게 되기 위해서 스스로 어떤 걸음을 내디뎌야 할지 깨닫게 될 거예요. 천사가 요셉에게 알린 약속은 그대에게도 유효합니다. 하느님은 임마누엘, 곧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느님’이시잖아요. 성탄절은 우리에게 하느님이 어느 낯선 신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우리의 모든 여정을 걸어가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보여줍니다.”☆그대 자신이 축복이 되기를 “부디 축복과 보호 속에 확신과 희망이 가득한 삶이 되기를. 하느님의 축복하시는 손이 언제나 그대 위에 머무르시어 그대를 지켜주시기를. 그분 손이 그대에게 그대 삶이 잘 이루어질 것이라는 확신을 주시기를, 하느님께서 그대를 내리누르는 모든 지나간 것을 그대에게서 없애 주시고 그대에게 새로운 시작을 선사해주시기를 빕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5.12.16
구약 인물 통해 구원 역사 설명 안동교구, 초등부 주일학교 교재 「… 인물 이야기 1」 발간 안동교구가 초등부 주일학교 교재 「하느님과 얘기해요 : 구약 속 인물 이야기 1」을 발간했다. 창세기와 탈출기, 여호수아기, 판관기, 룻기, 사무엘기 내용을 바탕으로 만든 교재는 천지창조 이야기와 함께 구약성경 인물인 노아, 아브라함, 야곱, 요셉, 모세, 여호수아, 드보라와 열두 판관, 사무엘과 사울, 다윗과 골리앗을 다룬다. △말씀을 읽어요 △말씀을 공부해요 △말씀을 생각해요 △말씀과 놀아요로 구성된 교재는 학생들이 성경을 읽고 되새기는 가운데 말씀에 담긴 뜻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또한 재밌는 그림과 다양한 자료사진을 활용해 학생들이 성경을 부담 없이 공부할 수 있도록 했다. 구약을 주제로 하고 있어 시작과 마침 기도는 시편에서 따왔다. 안동교구는 2012년부터 초등부 주일학교 교재 「하느님과 얘기해요」 시리즈를 자체적으로 만들어 사용해 왔다. 다른 교구 본당은 물론 해외 한인 본당에서도 이 교재를 사용할 정도로 교사와 학생 모두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다. 원주교구는 올해 안동교구에서 만든 교재를 교구 주일학교 교재로 사용하기로 했다. 안동교구 사목국 주일학교 담당 사공균 신부는 “학생들이 이 교재를 통해 하느님 구원 역사 전체를 볼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면서 “하느님 나라의 참된 가치를 더 잘 전해주기 위해 앞으로도 계속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교재 구입 문의 : 054-858-3114, 안동교구 사목국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5.02.25
![[신앙단상] 새해 아침에](//cpbc.co.kr/CMS/newspaper/2015/12/rc/611659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새해 아침에이창건 승훈 베드로(아동문학가) 새뜻합니다. 새해가, 상서롭기도 합니다. 이런 새해의 좋은 기운이 우리의 형제가 되고 자매가 되는 풀과 나무와 새들과 나비와 원숭이들과 토끼들과 저희에게 한해 내내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하느님은 임마누엘이시지만, 새해에는 조금 더 하느님을 그리워하고, 조금 더 하느님을 기다리고, 조금 더 자주 하느님을 만나고 싶습니다. 새해 아침에 당신께 몇 가지 저희 계획을 여쭙습니다. 첫 번째는 집에서 기르고 있는 화분 가운데 하나라도 생명을 잃는 일이 없도록 해보렵니다. 아내가 좋아하는 동백나무가 여름 가을까지는 잘 자라서 꽃망울을 제법 달고 있었는데 요즈음에 와서 잎을 다 떨구고 꽃망울마저 하나둘 떨어지고 있습니다. 사람이든 식물이든 동물이든 관심과 반응으로 싹이 트고 잎이 나고 자라서 꽃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인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한 마디로 사랑을 주지 않아 그렇게 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죽어가는 동백을 버리지는 않으렵니다. 지금부터라도 자주 눈길을 주고 물길을 주고 발길을 가까이해 어떻게든 살려 보겠습니다. 만약에 그렇게 안 되면 꽃집에 가서 새로 동백을 사와 올겨울에는 꼭 꽃을 피워 보겠습니다.두 번째는 기쁜 소식을 스스로 만들고 찾아내고 그것을 널리 알리고 싶습니다. 저희는 기쁜 소식의 반딧불이가 되고 싶습니다. 촛불은 바람이 불면 꺼지지만, 반딧불이의 깜박이는 불빛은 바람이 불어도 꺼지지 않습니다. 촛불은 사람이 만든 발광체이지만 반딧불이는 하느님이 만든 광원이어서 그렇습니다. 그렇다고 어둠을 밝히는 촛불들을 끄지는 않겠습니다. 기쁜 소식은 구석을 밝히는 빛입니다. 기쁜 소식이 빛을 통과하면 아름다운 색상을 만들어 냅니다. 성경에는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들의 아름다움을 이렇게 기억하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가, 산 위에 서서 기쁜 소식을 전하는 이의 저 발!”(이사 52,7) 그렇습니다. 기쁜 소식을 전하는 사람들의 발은 아름다운 천사의 발과 닮아 있습니다. 올겨울 여느 해 같지 않게 추운 날씨가 계속되고 있는 이란에서 노숙자들이 추위를 견딜 수 있도록 시내 곳곳의 벽에 ‘친절의 벽’이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이란 시민들은 스스로 만든 이 벽에다 ‘필요하면 가져가라’는 문구와 함께 옷들을 걸어 놓았다는 소식입니다. 친절의 벽이 나눔의 자비 터, 사랑의 우물가가 되었습니다. 단절을 의미하는 벽이 오히려 사랑을 더욱 가깝게 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훈훈합니다.마지막으로 하느님께 말씀드리기는 새해에는 하느님의 자비와 사랑이 결합하여 세상이 평화로웠으면 합니다. 광야에서 사막에서 도시에서 길거리에서 학교에서 하늘과 바다와 땅에서 시시때때로 일어나고 있는 테러와 폭력으로 무자비하게 죽어가는 영혼들이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의 소중함을 인간의 위치에서 다시 한 번 생각해야겠습니다.배고픔과 굶주림에 대한 슬픔과 고통,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공포, 미래에 대한 불안으로 떨고 있는 차가운 파도 위의 난민들도 자유와 건강과 안전한 생명의 축복을 받는 해가 되었으면 합니다. 참담한 나날을 보내는 어린이들을 찾아 기쁨을 누리게 하는 일도 게을리하지 말아야겠습니다. 새해 아침에 “하루를 살아도 / 온 세상이 평화롭게 / 이틀을 살더라도 / 사흘을 살더라도 평화롭게 // 그런 날들이 / 그날들이 / 영원토록 평화롭게-”라는 김종삼 시인의 시 ‘평화롭게’를 펼쳐 읽습니다. 평화신문2015.12.29

은총으로 신앙의 눈 뜨고 주님을 찬양하다시각장애 생활성가 가수 황인숙씨새 음반 「어둠 속 빛을」 음반 출시 최근 3집 「어둠 속 빛을」을 낸 황인숙씨는 “저보다 더 아프고 힘든 이들을 위해 계속 희망 전도사 역할을 하고 싶다”고 했다. 이정훈 기자 “어제저녁 부산의 한 성당에서 성가 피정을 진행하고 새벽에 막 돌아왔어요. 혼자 KTX 타고 다녀도 두렵지 않아요. 예수님께서 함께하시거든요.”시각장애인 생활성가 가수 황인숙(마리아, 52)씨는 시종 미소를 머금고 말했다. 얼마 전 서울 청량리성당에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부른 이야기도 해줬다. “제가 ‘여러분 일어나서 율동으로 주님께 찬양합시다’하면 모두 일어나 두 팔 흔들며 함께 찬양하세요. 저는 그걸 못 보지만, 아름다운 모습이 그려져요.”최근 새 음반 3집 「어둠 속 빛을」을 내며 어느 때보다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는 그를 12월 23일 만났다.그는 “20여 년 노래해 왔지만, 이제는 제 목소리에 주님의 은혜로움이 더욱 깃든 느낌이 든다”고 했다. 3집에는 아프고 고통스러웠지만, 주님만 생각하며 희망을 놓지 않았던 지난날을 옮겨 쓴 가사에, 이용현 신부와 신상훈(시몬)씨가 작곡한 노래, 떼제곡 등 14곡을 담았다. 그만의 청아한 목소리가 곡마다 흘러나온다.“2년 전 신장 이식 수술을 받은 후로 지금도 매달 통원 치료를 하고, 신장 면역 억제제를 매일 복용하고 있어요. 갑자기 열이 오르고 몸 상태가 떨어질 때엔 응급실에 실려가기도 해요. 하지만 하느님은 고통을 통해 늘 새로운 길을 열어주십니다. 그래서 노래할 수 있고, 해야만 해요.”황씨는 1998년 친구의 배신에 충격이 컸던지 2.0이던 시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렸다. 개신교 신자였던 그는 고통 속에 병실에 있을 때 밥까지 떠먹여 주며 도와준 옆자리 천주교 신자를 보고 개종했다. 그는 “성모님의 이끄심이었다”고 했다.고통은 또 찾아왔다. 2001~2013년 만성신부전증을 앓으며 지낸 것이다. 투석을 받으러 병원을 오가면서도 1ㆍ2집 음반을 내고, 병원과 구치소 봉사도 다녔다. 2013년 신장 이식수술을 받은 뒤에도 거부반응 탓에 1년 넘게 병원 신세를 졌다. 그리고 올해 퇴원하자마자 음반을 내면서 병원을 찾아가 노래 봉사활동도 재개했다. 그는 “봉사는 곧 은총의 체험”이라고 말한다.“병원 봉사를 갔는데 누가 부탁을 해요. 2년 전 경주 마우나리조트 사고로 꽃다운 나이 여학생이 7~8차례 대수술을 받고도 하반신 고통과 욕창으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 거예요. ‘왜 슬퍼하느냐~ 왜 걱정하느냐♬’ 하고 여러 번 방문해 기도하고 노래해 줬어요. 한껏 밝아진 그 아이가 어느 날 제 묵주를 만지작거려 얼른 빼서 줬죠. 그 아이는 후에 세례도 받았어요.”아픈 이들의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아서일까. 말기 암환자, 성당 신자들 모두 그가 노래하고 말하는 은총의 체험을 듣고 이유 모를 눈물로 마음을 치유하곤 한다. “기억력이 좋다”는 그는 23권으로 된 점자 성경을 읽은 기억을 되살려 노래와 말씀, 체험을 술술 전한다. 매달 4~5차례 성가 피정에, 병원 서너 곳에서 봉사하며 희망을 전하고 있다.“가만가만히 돌아보니 여러 길을 지나왔었지/ 철없던 시절 곁에 계신 주님 손길 몰랐었지요/ 막다른 골목 눈물 젖어 무릎 꿇고 올려다보니/ 나를 사랑하는 주님께서 내 손잡고 계셨나이다”(3집 수록곡 ‘주님 손잡고’ 가사 중).구입 문의 : 02-451-0333, 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평화신문2015.12.29
![[생활 속의 복음]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cpbc.co.kr/CMS/newspaper/2016/01/rc/616460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너는 그들 앞에서 떨지 마라”연중 제4주일(루카 4,21-30 )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1. 예수님 말씀을 감미롭게 받아들이다가도 즉시 뱉어버리곤 합니다오늘 복음서는 재미있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예수님 말씀에 대해 긍정적인 반응과 부정적인 반응을 동시에 표현하고 있습니다.구약 성경의 말씀이 지금 여기 예수님에게서 이뤄지고 있음을 알리자 모두 예수님을 좋게 말하며 은총의 말씀에 놀라고 있습니다. 그러나 즉시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고향에서 환영받지 못하고 있음에 마음이 편치 않음을 내비치고 계십니다.이어서 예수님께서 시돈 지방의 이방인 과부와 시리아 사람 나아만의 치유를 설명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느님께서 이방인을 선택하시면서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 계시다는 복음을 알리셨습니다. 그때 회당에 있던 모든 사람이 잔뜩 화가 난 가운데 예수님을 죽이려 하였습니다.갓난아기 예수님을 안고 외치던 시메온의 예언이 이미 그대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이 아기는 이스라엘에서 많은 사람을 쓰러지게도 하고 일어나게도 한다.”저도 하느님의 아드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에 얼마나 위로를 많이 받는지, 얼마나 많은 용기를 얻고 희망을 얻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 말씀이 때로는 저의 기분을 편하지 않게 할 때도 있습니다. 제가 예수님 말씀대로 살기를 주저하고 제 안에 안주하려고 할 때가 있는데, 그럴 때 더욱 그렇습니다. 제가 하늘로부터 받은 복음을 제 안에 가두려고 할 때 이미 복음은 사라지고 분노와 단죄와 슬픔만 남습니다.2. 왜 하느님 말씀을 두려워하나?왜 우리는 끝까지 복음 말씀을 듣고 마음에 새기기를 두려워할까요? 말씀하시는 하느님에 대한 믿음이 부족한 때문이 아닐까요?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어설프게 하느님 말씀을 믿는다고 하면서 자신만 옳다고 여기고, 다른 사람들을 배제할 때 문제가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작게 시작된 이 현상은 심각하게 확대되기도 합니다. 교회에 겸손하게 입교한 신자가 한때 열심히 믿다가, 성장이 멈추고 목소리를 크게 내기 시작할 때 다른 사람을 불편하게 합니다.성직자로 살아가는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애송이 신부일 때는 겸손해서 다른 사람들의 말을 잘 듣다가, 뭔가 좀 안다 싶으면 서서히 교만해지기 시작합니다. 선배 신부님을 비롯해 다른 신부들과 소통이 되지 않기 시작하고, 신자들에게 겸손하게 다가가기를 그만두게 됩니다. 신자들과 주민들에게 더는 기쁨을 갖다 주지 못하고 맙니다.이렇게 마음을 닫아버리니 하느님 말씀이 내 안에서 질식하고 사라지고 맙니다. 하느님 말씀을 새롭게 들으려는 마음이 사라지고 맙니다. 어느새 하느님 말씀을 들으려니 두려움이 앞섭니다. 하느님 말씀을 경청하고 실천하지 못하니 내 영혼이 영양실조에 걸리고 맙니다. 나도 쓰러지고, 공동체도 경직되고 분열되고 소란스럽게 되고 맙니다.내 영혼을 향해 들려오는 하느님 말씀에 대해 두려움을 갖지 말아야 하는데, 용기가 생기지 않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들으면서 하느님 명령대로 살아갈 자신이 없습니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이해가 가기도 합니다. 적당히 하느님과 타협하면서 살면 되겠다는 속삭임이 내 귀에 들려옵니다. 그럴수록 교회는 하느님 말씀과 멀어지고, 내용물 없는 포장만 남게 됩니다. 복음이 사라진 내 영혼, 복음이 사라진 교회를 많은 사람이 떠나고 맙니다. 더 이상 매력을 주지 못하는 곳에 사람들이 오지 않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까요?하느님 말씀에 대해서 두려움을 갖지 않게 해주십사고 성령의 이끄심을 매일 청할 수밖에 없습니다. 하느님 말씀에 맛 들이며 살면, 사람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자신감 갖고 증언하고 증거하고 선포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 못해서 하느님께서는 안타까워하십니다.하느님 말씀을 듣고 믿는다는 것은 결국 하느님을 닮아서 사랑하고 자비로워야 한다는 것입니다. cpbc2016.01.27
![[성경 속 생명 이야기] 12. 사랑으로 성장하는 생명](//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6701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생명 이야기] 12. 사랑으로 성장하는 생명민남현 수녀(엠마, 성바오로 딸 수도회)화초를 키우면서 생명의 성장원리를 배웁니다. 생명을 가장 생생하게 꽃 피게 하는 힘은 다른 어떤 물질보다 따뜻한 관심이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식물도 보살피는 이의 사랑을 먹고 자라는데 사람의 생명이 누군가의 사랑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현실입니다. 그런데 요즘 들어 믿기 어려운 험악한 소식들을 자주 듣습니다. 자신을 방어할 힘이 없는 어린 애들이 어른들의 폭력과 무관심으로 비참하게 숨졌다는 슬픈 기사를 연이어 읽으면서 삶의 근본 가치와 의미를 상실한 이 시대의 짙은 어둠을 직시합니다. 자신을 살게 하는 원천이 무엇인지 의식하지 않고 기계처럼 살아가는 우리에게 예수님은 생명을 선택하는 길을 일러주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 나를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고, 또 살아서 나를 믿는 모든 사람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다. 너는 이것을 믿느냐?”(요한 11,25-26) 생명을 창조하신 하느님의 생명에 대한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지혜서는 하느님의 이러한 선한 속성을 잘 표현해줍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창조하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다”(1,13-14 참조). 이렇듯 가장 큰 선물인 생명을 주신 창조주 하느님은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서 살아가라고 호소하시면서 성경 곳곳에 생명 존중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을 제시하십니다. 아우를 부당하게 살해한 카인의 폭력 행위에 대해 꾸짖으시는 하느님의 슬픈 음성이 오늘날 더욱 마음 깊이 울립니다.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들어 보아라.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10). 하느님은 “살인해서는 안 된다”(탈출 20,13)는 계명을 반드시 지켜야 할 규정으로 설정하심으로써 인간 생명은 절대로 파괴해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그런데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행위는 단순히 직접 타인의 생명을 파멸하는 것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해 더욱 깊고 폭넓은 의미로 설명합니다. 곧 타인이 자유롭고 인격적으로 살아가지 못하도록 부당하게 방해하는 온갖 가해 행위와 잘못된 편견 또한 생명을 해치는 행위라고 규정합니다(탈출 21,12-27 참조). 또한, 소외되고 의지할 곳 없는 가난한 이들을 억압하거나 그들이 최소한 인간답게 살아갈 수 있도록 가진 것을 나누지 않는 이기심도 생명을 돌보는 일과 매우 먼 행위라고 말합니다(탈출 22,20-26; 마태 19,16-18). 산상설교를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은 그리스도인의 사랑이 얼마나 적극적 의미를 지니는지 잘 설명해줍니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너희는 원수를 사랑하여라. 그리고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여라. 그래야 너희가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의 자녀가 될 수 있다. 그분께서는 악인에게나 선인에게나 당신의 해가 떠오르게 하시고, 의로운 이에게나 불의한 이에게나 비를 내려 주신다. 사실 너희가 자기를 사랑하는 이들만 사랑한다면 무슨 상을 받겠느냐? 그것은 세리들도 하지 않느냐?”(마태 5,44-46) 하느님의 자녀는 자비하고 선하신 하느님을 닮아 최대한의 사랑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온 존재로 생명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삶을 살아갈 때 하느님의 창조행위에 진정으로 참여하는 것입니다. 구약시대부터 하느님은 당신의 백성으로 살아가는데 근본이 되는 중요한 율법들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실 이 모든 계명의 조항들이 지향하는 목표는 하나입니다. 이에 대해 바오로 사도는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간음해서는 안 된다. 살인해서는 안 된다. 도둑질해서는 안 된다. 탐내서는 안 된다’는 계명과 그 밖의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그것들은 모두 이 한마디 곧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말로 요약됩니다.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저지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입니다”(로마 13,9-10). 사랑의 주님은 이렇게 우리에게 사랑을 실천하는 사람이 되라고 가르치시면서 당신의 협력자로 새롭게 변화하라고 당부하십니다. cpbc2014.04.23
![[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1)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레삭](//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4839_1.4_titleImage_1.jpg)
[프랑스 선교사들의 고향을 가다] (1)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레삭선교 위해 죽음 불사른 영성의 뿌리를 찾아서 교리를 공부해 천주교 신앙을 스스로 받아들인 것은 우리 선조들이었다. 하지만 미사와 성사를 통해 박해 속에서 조선 교회가 견고히 성장할 수 있도록 헌신한 사람들은 바로 파리외방전교회 선교사들이다. 피로 물든 조선 교회를 위해 손든 그들은 선교지의 위험을 알면서도 “제가 하겠습니다”라며 서슴지 않고 나섰다.돌아갈 곳을 기억에서 지운 채, 우리 민족의 복음화를 위해 죽음도 불사한 파리외방전교회의 선교사들. 서울대교구 순교자현양위원회 순례단과 함께 선교사들의 고향을 방문, 그들의 뜨거운 신앙과 선교 열정이 어떻게 꽃피울 수 있었는지를 확인했다. 그 여정을 9회에 걸쳐 전한다. 첫 번째는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프랑스 레삭(Raissac) 지방이다. 브뤼기에르 주교가 어릴 적 신앙생활을 한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 안 경당 제대 위에 한국 성모자상이 놓여 있다. 프랑스 남서부 나르본(Narbonne) 지방에는 지중해로 흘러드는 오드(Aude) 강이 있다. 강의 발원지인 피레네 산맥을 향해 물길을 따라 거슬러 올라가다 보면 레삭(Raissac)이란 작은 마을을 만나는데, 이곳이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Bruguiere Barthelemy, 1792~1835) 주교가 태어나고 자란 곳이다.자작농의 아들 브뤼기에르3월 초, 레삭 마을 입구는 조용했다. 골목길을 사이에 두고 높이가 비슷한 가정집들이 오밀조밀 모여 있었다. 연한 건물 바탕에 알록달록 칠해진 나무창은 각자의 개성을 보여주는 듯했다.거리에서 사람들보다 자주 만날 수 있는 것은 플라타너스 가로수와 곳곳에 펼쳐진 포도 나무밭이었다. 지중해성 기후를 띠는 레삭 지방은 와인용 포도를 재배하기 좋은 지역이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부모도 이곳에서 포도밭을 일궜다. 그는 자작농인 아버지 프랑수아와 어머니 테레즈 사이에서 열한 번째 아들로 태어났다.마을 입구에서 200m 정도 떨어진 골목길 어귀에 브뤼기에르 주교가 태어난 생가가 있다. 노란색 벽에 창을 자주색으로 칠한 집이 바로 초대 조선대목구장이 탄생한 곳이다. 하지만 길가나 집 근처 어디에도 그의 탄생지 표지는 없었다. 전문 안내자 없이는 찾아오기 힘들 정도였다. 생가를 지키고 있는 사람도 후손이 아닌 지역 주민이었다.성 바르톨로메오 성당브뤼기에르 주교의 생가가 있는 곳에서 골목을 돌아 나오면 십자가 표지가 보인다. 표지를 따라 광장으로 걸어 나오면 커다란 플라타너스 한 그루가 서 있다. 바로 그 옆, 노란 벽돌 위에 편평한 붉은 기와지붕이 덮인 성당이 주교가 어린 시절 세례를 받고 신앙을 키운 곳이다. 흔히 알고 있는 유럽의 대성당들과 달리, 주변 가정집과 비교해도 무색할 만큼 크기가 아담했다. 지붕 위 종탑이 성당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작은 표시였다.브뤼기에르 주교는 바르톨로메오 성인에게 봉헌된 이 성당에서 바르톨로메오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그리고 카르카손 소신학교를 다니기 전까지 주일마다 이곳에서 미사를 참례했다.어린 브뤼기에르는 키가 평균보다 작고 몸도 마른 소년이었다. 하지만 주교의 오랜 친구는 “그는 의지가 매우 강하고 독립심이 대단한 인물이었다”고 회상했다. 주교의 굳은 신앙심과 선교 의지는 이곳에서 자란 것이 아니었을까.성당 안 경당 제대 위에는 앞서 방문한 한국 신자가 봉헌한 한복 입은 성모자상이 놓여 있었다. 그리고 반대편 벽면에는 대리석에 글귀를 새긴 현판이 설치돼 있었다.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 1792~1835’. 이곳에서 자란 브뤼기에르 주교의 선교 열정을 기억하고자 본당에서 최근 제작한 것이었다.순례단은 이 성당에서 미사를 봉헌했다. 독서자가 읽은 이날 성경 말씀은 여리지만 성당을 가득 채울만큼 뚜렷하게 울려 퍼졌다. “그분께서는 우리에게 비처럼, 땅을 적시는 봄비처럼 오시리라”(호세 6,1).1999년. 성 바르톨로메오 성당 지붕이 내려앉고 종이 바닥에 떨어졌다. 갑자기 내리친 벼락 때문이었다. 하지만 몇 달 걸리지 않아 성당은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브뤼기에르 주교의 고향 성당인 것을 안 주민들이 합심해 성당 수리를 도운 덕이었다.디디에(Didier) 레삭 시장은 “몇 년 전부터 이곳에서 나고 자란 브뤼기에르 주교의 생애와 영성에 대해 주민들에게 가르치고 있다”면서 “이제는 많은 사람이 주교에 대해 안다”고 설명했다.또 “주교의 생가에 사는 주민에게도 그의 삶에 대해 알렸다”며 “생가에 거주 중인 주민에게 양해를 구하고 현판을 꼭 설치하려고 한다”고 계획을 밝혔다. 글ㆍ사진=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브뤼기에르 주교는 누구인가1815년 사제품을 받고 모교인 카르카손 신학교에서 철학과 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아시아 선교를 갈망하며 1825년 파리외방전교회에 입회했다. 1828년 샴(방콕)대목구 부주교가 됐다. 사제를 애원하는 조선 신자들의 소식을 접하고 파리외방전교회 본부와 교황청에 편지를 보내 조선 선교를 자원했다. 결국 1831년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에 의해 조선대목구가 설정되면서 초대 대목구장 주교에 임명됐다. 1년 뒤 이 소식을 접한 주교는 사목 중이던 태국에서 출발해 우여곡절 끝에 중국 마가자 교우촌에 도착했지만, 조선 입국을 앞두고 돌연 선종했다. 1835년 10월 20일, 43세였다. cpbc2016.03.16
노래와 연극·춤으로 주님 찬양전주 축동본당, 예수 부활 대축일 기념 축제 마련 한복을 맞춰 입은 어르신들은 국악으로 주님을 찬양했고, 청년들은 열정적인 율동으로 부활의 기쁨을 표현했다. 성경공부를 익히는 다른 신자들도 함께 나와 성경을 암송하고, 대본에 따라 오랜 기간 연습한 이들이 성극도 펼치는 등 말씀으로 하나 된 축제가 열렸다. 전주교구 축동본당이 8일 성당에서 펼친 예수 부활 대축일 기념 ‘말씀과 찬양 축제’다.축동본당은 공동체가 부활의 참 기쁨을 나누고, 특히 말씀을 갖고 일치하기 위해 다양한 장르로 복음을 표현했다. 구역, 단체, 연령별로 팀을 이룬 신자들은 14개 팀으로 나뉘어 노래, 연극, 춤, 악기 연주 등으로 부활의 기쁨을 드러냈다. 120여 명이 참가한 이날, 연극 ‘세 나무의 꿈’을 선보인 팀은 예수님 탄생, 죽음, 부활을 세 나무를 통해 들려주는 아이디어로 선보여 수준 높은 성극이라는 평을 얻었다.국악찬양을 선보인 본당 7구역 신자들은 지팡이를 짚고 출연한 최필자(데레사, 78) 어르신을 비롯해 구역 모든 식구가 한복을 새로 맞춰 입고 참여해 박수를 받았다. 타본당 신자들도 함께 참석해 행사를 즐기는 등 주님 안에 다양하게 말씀을 즐겼다.여혁구 주임 신부는 “오늘의 ‘말씀과 찬양축제’는 우리 공동체가 부활하신 예수님께 드리는 선물”이라며 “모두 부활의 기쁨을 나누며 더욱 활기찬 신앙인의 모습으로 살아가자”고 당부했다.신현숙 명예기자 cheska@pbc.co.kr 평화신문2015.04.14
[안소근 수녀와 함께 떠나는 구약 여행] (61)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이는 모두 나를 따라나서시오”(1마카 2,27)율법에 충실한 이들에게 승리를 주신다 성전 모독에 분노 투쟁 시작 그리스 종교를 강요하던 안티오코스 4세는 예루살렘 성전에 제우스 신상을 세우고 돼지를 제물로 바치게 하여 성전을 모독했습니다. 이 성전 모독은 열심한 유다인들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치명적인 사건이었습니다.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각 지방에서도 이와 같은 상황이 전개되어 모데인에서도 임금의 관리들이 이교 제사를 강요했습니다. 그러자 사제 마타티아스는 그리스 신들에게 제사를 바치라는 왕명을 거부하고 모데인 제단에서 이교 제사를 바치려던 사람을 쳐 죽인 다음, “율법에 대한 열정이 뜨겁고 계약을 지지하는 이는 모두 나를 따라나서시오” 하며(1마카 2,27) 아들들과 함께 산으로 들어가 투쟁을 시작했습니다. 이것이 마카베오 항쟁의 시작입니다.마타티아스가 세상을 떠난 다음 그의 뒤를 이어 항쟁을 이끈 것은 셋째 아들 유다 마카베오였습니다. 그는 기원전 166~160년까지 항쟁을 이끌며 총독 리시아스를 공격하고 그의 군대를 유다에서 몰아내었습니다. 유다 마카베오는 “우리 백성과 성소를 위하여 싸우자”(1마카 3,43)고 사람들을 격려하며 소수의 군대로 “하늘에서 내려오는 힘”(1마카 3,19)으로 승리를 거두었는데, 그의 가장 중요한 업적은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모독한 성전을 기원전 164년에 정화하여 다시 봉헌한 것입니다.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 다음으로 안티오코스 5세가, 그 다음으로는 데메트리오스 1세가 왕위에 오르는데 유다 마카베오는 데메트리오스가 보낸 바키데스와 맞서 싸우다가 전사합니다.다음으로는 유다 마카베오의 막내아들이었던 요나탄이 지도자가 되었습니다(기원전 160~142). 그는 시리아의 정치적 내분을 이용하였습니다. 그에게서 특히 주목할 점은 그가 셀레우코스 왕조의 알렉산드로스에게서 대사제로 임명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이때부터 로마가 팔레스티나를 점령할 때까지 하스몬 집안이 대사제직을 계속 수행하게 되는데, 이것은 합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다른 나라들에서라면 임금이 대사제를 임명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으나, 유다에서는 대사제 집안에 속하지 않은 요나탄에게 그 직무가 주어질 수는 없었기 때문입니다. 이 때문에 율법에 충실하려 했던 일부 유다인들은 더 이상 요나탄을 지지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마카베오 항쟁에 대한 지지에 금이 가기 시작한 것이 보이시지요?대사제·왕위 겸하는 하스몬 왕조요나탄이 잡힌 다음, 마타티아스의 둘째 아들 시몬이 그의 뒤를 이었습니다. 그는 본래 셀레우코스 왕조 출신이 아닌 트리폰이 아니라 데메트리오스 2세를 지지하였고, 이에 데메트리오스 2세는 유다인들에게 면세를, 곧 실제적인 독립을 허용하였습니다. 이로써 유다인들은 독립을 되찾았고, 시몬은 왕직과 대사제직을 겸하는 하스몬 왕조를 시작합니다. “백칠십 년에(기원전 142) 이스라엘은 이민족들의 멍에에서 벗어났다. 백성은 모든 문서와 계약서에 ‘유다인들의 총독이며 지도자인 시몬 대사제 제일년’이라고 쓰기 시작하였다”(1마카 13,41-42). 독립입니다. 후에 그는 사위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암살되었고 왕위는 그의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에게 넘어갔습니다.자, 이제 이 역사를 어떻게 바라볼까요? 마카베오 상권만 읽으면 이들의 업적을 높이 기리고 있습니다. 그런데 실상 마카베오 상권은, 성경에서 대사제직과 왕직을 겸했던 하스몬 왕조의 통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바라보는 유일한 책입니다.이 책의 저자는 그들을 일컬어 “하느님을 대신하여 이스라엘을 구원한 사람들의 후손”이라고까지 말합니다(1마카 5,62). 이러한 말들은 판관들을 지칭하던 신명기계 역사가의 표현을 상기시킵니다. 사실 마카베오 상권은 판관기와 마찬가지로, 전쟁의 역사를 통하여 그 안에서 신앙의 역사를, 하느님께서 엮어 가시는 역사를 봅니다. 승리는 믿음에 대한 응답이고 패배는 죄의 결과로 여겨집니다. 마카베오 집안 사람들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율법에 대한 열성으로 봉기한 사람들이었고 그래서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고 그들을 통하여 셀레우코스 왕조의 통치에서 이스라엘을 구해 주셨다는 것이 마카베오 상권의 저자가 마카베오 항쟁을 바라보는 시각입니다. 더 나아가서, 저자는 이렇게 하느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여 승리를 거둘 수 있게 해 주셨다는 사실이 하스몬 왕조의 정당성을 확증해 주는 것이라고 봅니다.이 책이 작성된 것은 시몬의 아들 요한 히르카노스가 다스리기 시작한 이후이고(기원전 134년) 로마군이 팔레스티나를 점령하기 이전(기원전 63년), 즉 하스몬 왕조가 다스리고 있던 기간 중입니다. 아마도 기원전 100년경이리라고 생각됩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모든 이들이 하스몬 왕가를 이렇게 긍정적으로 보았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의 후손도 아니면서 왕권을 주장했고 사독 집안도 아니면서 대사제직을 수행했던 이 왕조에 대해서 그리고 무력 항쟁의 가치와 의미에 대해서도 비판의 소리는 있었습니다. 마카베오 상권의 저자는 마카베오 집안 사람들이 이스라엘을 위해 싸웠다는 것과 특히 율법에 대한 그들의 열성을 크게 강조하지만, 후에 이들이 세습 왕조가 된 다음 얼마나 심한 내분과 권력 다툼을 겪었는지를 생각한다면 그러한 비판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외세를 물리치기 위해 분연히 일어났지만, 마지막에는 왕위를 둘러싼 집안 싸움에 로마군을 끌어들였고 이 때문에 나라가 망하게 될 것입니다.<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3.15
![[창간 27돌] 세 가지 직무로 본 평화신문 27년, 그리고 미래](//cpbc.co.kr/CMS/newspaper/2015/05/rc/569461_1.0_titleImage_1.jpg)
[창간 27돌] 세 가지 직무로 본 평화신문 27년, 그리고 미래신자들 기도·성사 생활 돕고 사랑 나눔에 기여 가톨릭 교회는 세 가지 직무를 지니고 있다. 예수님께서 인류 구원을 위해 행하셨던 사제직과 왕직과 예언직이다. 사제직은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으로 이룩하신 인류 구원의 거룩한 제사를 봉헌하는 것으로 신자들은 성사 생활과 기도 생활에 참여하며 특히 자신의 일상생활을 통해서 보편 사제직을 수행한다. 왕직은 섬김을 받지 않고 섬김으로써 왕직을 행사하신 그리스도의 봉사직을 수행하는 것이고, 예언직은 하늘나라 기쁜 소식을 전하며 정의로운 사회 건설을 위해 시대의 예언자로 활동했던 예수님 사명을 잇는 것이다. 교회 언론 매체인 평화신문 역시 지난 27년간 이와 비슷하게 사제직, 왕직, 예언직의 사명 수행에 동참해 왔다. 사제직평화신문은 신자들이 기도와 성사 생활을 통해서 힘을 얻어 자신의 삶을 봉헌하는 보편 사제직을 수행할 수 있도록 다양한 기획 기사를 연재해왔다. 특히 성경과 전례ㆍ교회사ㆍ생명과 가정 분야 등을 깊이 있게 다뤘다. 성경은 지난 27년간 다양한 방식으로 다뤄온 주제다. 90년대 인기 연재물 ‘안병철 신부의 성서데이트’를 비롯해 ‘백운철 신부의 신약 여행’ 그리고 연재 중인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까지 복음 말씀을 친근하게 전하는 특집 기사를 내왔다. ‘주원준 박사의 구약 성경과 신들’도 좋은 반응을 이끌었다. 신자들이 다소 어렵게 느끼는 전례와 교리는 ‘교회상식, 교리상식’ ‘반갑다 교리야’와 같은 친근한 분위기의 기사를 통해 의미를 전했다. 또 문답 방식의 ‘그건 이렇습니다’와 ‘예비신자가 묻습니다’도 쉬운 해설로 좋은 평을 받았다. 1984년 한국 103위 성인이 탄생한 이후, 평화신문은 신앙의 뿌리를 확인하는 기획 기사를 꾸준히 연재했다. ‘교우촌을 찾아서’를 비롯한 ‘복자 124위 순교지를 가다’ 등 다양한 방식으로 순교자 영성을 되새겼다. 탁희성 화백의 그림을 함께 실은 ‘그림으로 보는 순교자 열전’은 3년 동안 독자들의 큰 사랑을 받았다. 평화신문은 생명의 고귀한 가치를 알리는 기사도 잊지 않았다. 특히 서울대교구 생명위원회와 함께 ‘성경 속 생명 이야기’를 연재해 생명의 소중함을 나눴다. 수정부터 출산까지를 아기 입장에서 동화로 쓴 ‘태아 일기’는 생명의 신비를 쉽고 재치있게 풀어낸 연재 동화였다.포콜라레 새가정운동 책임자였던 손세공(비오)ㆍ배금자(가타리나)씨가 실생활에서 느낀 점을 글로 풀어낸 ‘우리 부부 이야기’와 이지혜 기자가 출산 준비 과정 중 느낀 하느님 사랑을 적은 ‘엄마 일기’ 등 생활 밀착형 기사들도 많은 독자의 공감을 얻었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왕직(봉사직)평화신문은 우리 주변의 가난하고 고통받는 이웃들을 돌보며, 이들에게 사랑과 희망을 전하는 데 힘써왔다. 대표적으로는 ‘사랑이 피어나는 곳에’ 꼭지가 있다. 매주 어려운 이웃들의 사연을 소개하고 이들을 위한 성금을 모금해 전달해 왔는데, 2001년부터 지금까지 676명에게 성금 83억 8526만 원을 전해줬다. 성금을 받은 이들은 얼굴도, 이름도 모르는 독자들이 보내온 성금을 받고는 “그래도 아직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걸 느낀다”며 눈물을 쏟아내곤 한다. 경기가 나빠지고 살림살이가 팍팍해졌다지만, 최근 몇 년 사이 독자들 성금은 오히려 늘었다. 매주 일어나는 나눔의 기적이다. 이와 함께 평화신문은 교회와 사회의 무관심으로 잊혀가는 이웃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자녀들보다 딱 하루만 더 살고 싶다는 발달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의 절절한 호소를 특집으로 실었고, 산간벽지 외딴 공소를 찾아 신앙생활의 끈을 놓지 않고 살아가는 어르신들의 삶을 담아내 왔다.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홀몸 노인, 고아, 학교 밖 청소년, 지적장애인 등을 돌보며 묵묵히 주님의 길을 걷는 사목자들의 발걸음도 다뤄왔다. 수해나 폭설, 화재로 하루아침에 삶의 터전과 신앙 터전을 잃어버린 이들의 아픔을 전하는 데도 노력해 왔다.평화신문은 또한 왕직의 모범을 사는 이들의 소식을 전하는 창구 역할을 해왔다. ‘오늘을 사는 사람들’ 꼭지를 통해 교회와 사회의 빛과 소금으로 살아가는 이웃들의 생생한 삶을 보여주고 있다. 또 사랑과 봉사를 실천하는 교회 내 다양한 공동체 활동을 알리며 이 시대 신앙인들이 살아야 할 신앙의 향기가 있는 삶을 전하고 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5.05.06

자연출산조절법, 난임 극복하고 건강한 임신 도와평화신문-서울 생명위 공동 기획 ‘자연출산 교육 기초과정’ ⑧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랑하는 사람과 평화를 유지하는 세 가지 방법에 대해 알려준 적이 있다.무엇을 하고 싶을 때 배우자에게 “이렇게 해도 될까요?”라고 물어보고, 도움을 받았을 때는 “고맙습니다”, 잘못을 했을 때는 “미안합니다”라고 말하라는 것이다.TV 드라마에 나온 대사 중에 기억에 남는 대사가 있다. “가족끼리는 ‘미안하다’ ‘고맙다’ 이런 말 하는 거 아니야.”얼핏 들으면 상충하는 말 같지만, 사실 드라마 대사와 교황의 조언은 사랑이라는 뿌리를 두고 있다는 점에서 그 뜻은 같다. 하지만 서로를 존중하는 대화 없이 부부가 전적으로 자신을 상대방에게 내어줄 수 있을까.총 10주에 걸쳐 진행된 자연출산조절법 기초 과정은 부부가 함께 자연출산조절법에 따라 생명을 출산하고, 부부가 혼인의 고귀한 가치를 어떻게 지켜낼 수 있는지를 고민하게 한 시간이었다.11일 자연출산조절법 기초 과정 마지막 날, 미국 네브래스카주에 있는 ‘교황 바오로 6세 연구소’에서 ‘나프로 테크놀로지’(Na-Pro Technology) 전문가 양성 교육을 받고 온 이영(여의도성모병원 산부인과) 교수가 난임을 극복할 수 있는 자연출산조절법과 건강한 임신에 대해 강의했다. 이 교수는 자연출산조절법은 “내가 내 몸의 상태를 관찰함으로써, 스스로 임신을 준비하고 예측하고 준비할 수 있다”고 강조하며, 난임 부부가 쉽게 시험관 시술을 시도하는 세태에 대해 안타까워했다.이에 앞서 서울대교구 이상선(생명대학원 박사 과정) 신부는 구약과 성경에 나타난 혼인과 가정에 대해 강의했다. 구약에서는 혼인을 하느님과 이스라엘의 계약관계,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의 사랑으로 맺어진 계약을 표상하는 구원의 장으로서 혼인을 설명한다. 이 신부는 “하느님이 창조하신 남녀는 생명과 사랑의 성사로서 인격적인 결합을 맺는데, ‘한 몸’(창세 2,24)을 이룬 남녀는 결코 인간적 의지나 당사자들의 합의대로 해소될 수 없는 운명 공동체”임을 강조했다. 이렇게 신적 연원을 갖는 생명과 사랑의 공동체는 부부간의 완전한 인격적 헌신과 통교와 사랑으로서 복음을 살아가는 것이다.일상이라는 현실에 두 발을 딛고 선 부부가 가정에서 할 일은 아이들을 씻기고 재우고, 빨래를 널고 쓰레기를 비우는 일보다 서로 인격적으로 헌신할 마음의 준비가 먼저라는 생각이 들었다.퇴근 후 어느 날, 부리나케 집안일을 하고 아이를 재운 후 고요한 밤이 찾아왔는데 남편에게 인격적으로 헌신할 마음이 고갈돼 슬펐던 그 날을 기억한다. 그리고 함께 기도하고 싶어졌다. 우리 사이의 의미, 하느님 안에 깊게 뿌리를 둔 혼인의 고귀한 가치가 일상에 잠식돼 증발되지 않기를.“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요한 13,34).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평화신문2015.11.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