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활 속의 복음] ‘자비의 문화’를 사는 기다림](//cpbc.co.kr/CMS/newspaper/2016/11/rc/662449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자비의 문화’를 사는 기다림대림 제2주일
(마태 3,1-12) 오늘은 대림 제2주일이며 인권 주일입니다. 대림 시기는 우리들이 주님의 오심을 기쁨과 희망 안에서 기다리는 때입니다. 이를 위하여 우리는 각자의 ‘삶의 자리(역사)’ 안에서 그분을 온전히 맞이할 수 있는 준비를 해야 하겠습니다.1. 주님을 앎이 가득하여(이사 11,9 참조)오늘 제1독서에 보면 “함께, 더불어, 나란히(이사 11,6-8 참조)”와 같은 표현이 유난히도 우리 눈을 사로잡습니다. 그런데 우리의 시선을 더 끄는 이유는 “함께, 더불어, 나란히” 지내는 주체들 사이의 자연적인 질서가 부정(否定)되는 듯한 까닭입니다. 과연 언제 ‘늑대와 새끼 양, 표범과 새끼 염소, 송아지와 새끼 사자, 젖먹이와 독사’가 ‘함께, 더불어, 나란히’ 할 수 있다는 말입니까? 이에 대하여 이사야 예언자는 “그날”(이사 11,10)이라고 밝혀주면서, “바다를 덮는 물처럼 땅이 주님을 앎으로 가득할”(이사 11,9) 때라고 새겨줍니다. 예수의 성녀 데레사는 “저는 당신의 것입니다. 저는 당신을 위해 태어났습니다. 주님, 제게 무엇을 원하십니까?”라며 자신을 주님께 통째로 드렸습니다. 모름지기 이런 자세가 ‘주님을 아는 것’이고, 다른 이들과 ‘함께, 더불어, 나란히’ 살 수 있게 합니다.2. 예수님과 같은 뜻으로(로마 15,5 참조)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자유의지론」에서 “자유는 은총의 도움을 필요로 한다. 아니, 은총이야말로 인간의 자유를 창조한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오직 은총을 통해서만 인간의 자유가 성숙하고 진리에 복속(服屬)하게 됨을 알 수 있습니다.오늘 제2독서에서 사도 바오로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기꺼이 받아들이신 은총’으로 ‘한마음 한목소리로 진리이신 하느님’을 찬양하게 됐다고 선포합니다(로마 15,5-7 참조). 결국 우리가 예수님의 뜻(마음)과 같게 된다면, 이는 진리이신 하느님의 은총을 입었다는 증거입니다.3. 그분 곳간의 알곡으로(마태 3,12 참조)얼마 전까지만 해도 농촌에 가면 벼를 털고 도리깨질을 하고 검불 날리기 과정을 거쳐서 타작하던 광경을 흔히 볼 수 있었습니다. 여기서 검불 날리기는 낟알들을 한곳으로 모아놓고 가래로 퍼 공중 높이 던지면서, 키 또는 부뚜 따위로 바람을 일으켜 쭉정이와 검불과 알곡으로 분리하는 작업입니다. 오늘 복음에서 요한 세례자가 “회개하여라, 하느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마태 3,2)라고 선포하면서 이 장면을 우리에게 다시금 떠올리게 해 줍니다.지난 11월 20일 프란치스코 교황님은 ‘자비의 특별 희년’을 마무리하면서, 비록 “자비의 성문이 닫히더라도 ‘진정한 자비의 문인 그리스도의 마음’은 우리 안에 언제나 열려 있을 것”이라며 우리들이 ‘자비의 도구’가 될 것을 촉구하셨습니다. 아울러 다른 형제들에게 무관심했던 우리의 눈길이 그들과 ‘함께 나누는’ 만남의 모습이 되라고 권고하셨습니다(「자비와 비참」 20항 참조). 이른바 ‘자비의 문화’는 주님 곳간의 알곡이 되는 회개의 삶입니다.4. 좋은 열매를 맺는 나무(마태 3,10 참조)어느 날 한 자매님이 제게 다가오셔서 “요즘 신부님과 자주 악수해서 그런지 머리 아픈 것이 많이 나았습니다”라고 말씀하시기에, “자매님, 뻥치지 마세요!”라고 대꾸하며 그 순간을 애써 지나친 적이 있었습니다. 그 자매로 하여금 치유된 느낌을 갖게 하신 주님께 찬미를 드립니다.교형자매 여러분, 요한 세례자는 “광야에서 외치는 소리”(마태 3,3)였습니다. 성경에서 ‘광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과의 만남을 통하여 그분의 계획과 동행하심’을 깨달은 기억의 자리입니다. 그러므로 대림 시기를 지내는 우리들도 ‘광야’를 떠올려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님을 더 잘 알고, 그분의 뜻에 같이하여, 영적으로 알곡이 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또 ‘하느님의 모상’인 우리들이 다른 형제들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마음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부디 여러분 모두가 응답하지 않고는 못 배기는 하느님의 자비 안에서 영적으로 충만한 대림 시기를 사시길 빕니다. 아멘. 평화신문2016.11.30
사회교리는 이웃사랑 계명 실천하는 것사회교리 주간 - 그리스도인은 왜 사회교리를 실천해야 하나 “나라의 정치 행위와 국가 안보 문제는 교회 권위에 속하지 않는다. 예수님으로부터 위임받지 않았으며 정치, 과학, 경제, 군사 작전에는 교회가 권위가 없으며 무류권이 없다. 이런 일에 천주교회의 이름으로 신자들에게 지시하는 것은 성령의 이끄심도 아니며 각자의 양심과 양식에 따라 따라하지 않아도 된다.”자칭 한국 교회를 걱정한다는 한 단체의 주장이다. 과연 이들의 주장처럼 그리스도인은 사회ㆍ정치ㆍ경제ㆍ환경ㆍ군비 문제 등에 눈 막고 귀 닫고 ‘오직 믿음과 구원’만을 외쳐야 참신앙인일까. 가톨릭 사회교리는 이 질문에 명확한 답을 준다.1. 가톨릭 사회교리란 무엇인가?가톨릭 사회교리는 한마디로 ‘교회의 도덕적 가르침’이라 할 수 있다. 사회 교리는 사회 문제에 대해 교회의 거룩한 전통 안에서 성경의 가르침으로 해석해 제시한 그리스도인의 생활 지침이다. 그래서 교회는 모든 신자가 반드시 사회교리를 배워서 알고 실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 “그리스도인은 정치, 경제, 사회 문제에 관한 자신의 행동을 교회 가르침에 반드시 일치시켜야 한다”(「간추린 사회 교리」 3쪽). 2. 사회교리는 일부 주장처럼 비복음적인가?사회교리의 원천은 ‘복음’이다. 예수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을 보고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다(요한 13,34-35). 사회교리는 ‘이웃을 사랑하라’는 예수님의 새 계명을 실천하는 것이다.제2차 바티칸 공의회는 가난한 이들을 위한 우선적 선택과 세계 정의를 향한 새로운 투신을 권고했다. 정의 실천이 곧 복음 선포의 초석이라고 선언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하나 됨은 가난하고 억압받는 이들의 요구를 우선한 데 있다고 성찰했다. 교회는 세상의 복음화와 인간 증진을 위해 사회교리를 가르친다. 그러므로 가톨릭 사회교리를 이념적 관점으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3. 사회 교리는 무엇을 가르치나?1) 인간 존엄성 : 사회교리의 근본 주제는 ‘인간’이다. 먼저 ‘인간이 하느님을 닮은 존엄한 존재’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인간은 어떠한 경우에도 개인의 권리와 자유를 부당하게 제약받아서는 안 된다. 2) 가정의 중요성 : 가정은 사회와 국가의 토대이다. 따라서 사회와 국가에 대한 가정의 우위성이 확인돼야 한다. 가정은 전인 교육을 제공할 책임이 있다. 자녀들은 법적 체계 안에서 합법적으로 보호받아야 하며 가정을 보호하기 위해 사회는 연대해야 한다.3) 인간 노동 : 인간 노동은 존엄하다. 자본과 기술보다 우위에 있다. 정당한 임금과 노동자의 단결권은 존중돼야 한다. 이민자의 권리는 자국민과 동등하게 인정받아야 한다. 4) 경제 생활 : 경제에도 도덕성이 요구된다. 부의 증대는 연대를 통한 발전을 지향해야 한다. 특히 가난한 이들을 우선적으로 선택해야 한다. 따라서 기업은 사회 공동선에 이바지할 능력을 갖춰야 한다. 5) 정치 공동체 : 정치 공동체는 인권을 보호하고 증진해야 하며 공동선을 추구해야 한다. 정치 권위의 주체는 국민 전체이다. 권위는 도덕률에 따라야 한다. 권위는 공정한 법을 실행해야 하고, 도덕적 가치를 인정하고 존중하고 증진해야 한다. 6) 평화 촉진 : 평화를 이룩하기 위한 여건을 조성하기 위해 효과적인 국제 공권력이 필요하다. 군비 경쟁이 중단돼야 하고, 점진적으로 군비가 축소돼야 한다.4.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그리스도인은 항상 개인의 인격을 존중하며 살아야 한다. 정의롭고 평화로운 사회를 만들기 위해 자신의 이익 일부를 포기하면서 공동체의 선을 이루는 데 협력해야 한다. 이를 위해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권력과 재산, 권위를 남용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자신보다 못한 처지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을 보호해야 한다. 나아가 이들을 돕고 연대해야 한다. 인간은 서로 형제애를 나누면서 발전한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평화신문2016.11.30
![[추기경 정진석] (45) 불쑥 찾아온 봄](//cpbc.co.kr/CMS/newspaper/2017/04/rc/678164_1.0_titleImage_1.jpg)
[추기경 정진석] (45) 불쑥 찾아온 봄어린 시절 누비던 명동대성당, 교구장 되어 돌아온다니 ‘두근’ 1998년 6월 착좌식 전날 주교좌 명동대성당을 찾아 자신의 문장이 붙여진 서울대교구장 주교좌에서 기도하는 정진석 대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 제공 교황청, 김수환 추기경 후임으로 서울대교구장 임명김 추기경, 발표 직후 전화로 정 대주교에게 축하 인사유아 세례·복사활동·사제수품 이어 같은 곳에서 은총1998년 봄이 되자 겨우내 얼었던 대지가 새 생명을 받아 개나리, 진달래, 산철쭉을 흐드러지게 피워냈다. 청주 시내를 흐르는 무심천을 벚나무가 둘러쌌는데, 이 벚꽃도 활짝 피어 사람들이 몰려들었다. 청주는 큰 특색이 있는 도시는 아니지만, 예전부터 학생과 학교가 많아 교육도시라고 불렸다. 그 이름처럼 봄이 되자 젊은 학생들의 열기가 도시 전체를 싱그럽게 만들었다.정진석 주교는 청주의 이런 특징을 무척 좋아했다. 책가방을 들고 어디론가 향하고 있는 젊은 학생들을 보면 마치 자신의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설레었다. 정 주교는 얼마 전, 교황이 자신을 서울대교구장에 임명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교황대사관의 전화를 받고 난 뒤, 정 주교는 더욱 자주 깊은 침묵과 함께 기도에 매달렸다. 사실 정 주교는 28년 전 청주에 내려올 때 자신은 이곳에서 생을 마감할 것으로 생각했고, 이와 같은 생각에 조금의 의심도 없었다. 때문에 정 주교 자신이 서울대교구장이 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한 적이 없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 일어났으니 혼란스럽고 어떻게 할지를 몰랐다. 그렇기에 더욱 기도 안에서 주님의 답을 듣는 수밖에 별다른 도리가 없었다.작년부터 한국 교회 안에서는 여러 가지 복잡한 이야기들이 나오고 있었다. 정년을 맞은 김수환 추기경이 교황에게 사직서를 제출했고, 후임자를 결정하는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려왔다. 1998년에 들어서면서 교계 신문도 아닌 일간지들이 차기 서울대교구장 후보 4~5명을 자기들 나름대로 꼽아가며 각 주교의 특징을 경쟁적으로 기사로 쏟아내고 있었다. 언론에서는 대략 K주교, G주교 등이 물망에 올라 있던 상황이었다. 정진석 주교는 자신도 가끔 언론에 사진과 함께 등장하지만 주교회의 의장이란 직함 때문이고 나이도 가장 연장자니 기자들이 기사를 쓰면서 구색을 갖추느라 그렇게 했을 거라고 가볍게 생각하던 차였다.서울대교구장 선택에 많은 어려움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1998년 6월 29일 있었던 제13대 서울대교구장 착좌 미사 후 김수환 추기경의 축사를 들은 정 주교는 그 어려움을 단번에 감지했다.“…정진석 대주교님은 순수 서울 태생이시고 이곳 명동대성당에서 유아 세례를 받은 분이십니다. 그리고 초등학교 때는 노기남 대주교님의 복사를 할 만큼 이미 어릴 때부터 신심이 깊고 장래가 촉망되는 소년이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이 대성당에서 유아 세례를 받으시고 복사도 하시고, 후에 사제로 서품되신 분이 오늘 서울대교구 대주교로 착좌하신 것은 처음 있는 일이요, 하느님이 일찍부터, 성경 말씀대로라면 정진석 대주교님이 태어나시기 전부터 이 분을 점지해두셨다는 것을 잘 알 수 있습니다. 이를 뒷받침하는 말씀이 제가 이번 교구장 교체에 직접 실무 책임을 지고 있는 교황청 인류복음화성으로부터 받은 편지에 있습니다. 인류복음화성장관 톰코 추기경과 차관 자고 대주교님이 함께 서명해 제게 보낸 편지에서 그분들은 이렇게 썼습니다. ‘후임 서울대주교를 찾는 데는 사실 어려움이 없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한 분을 뽑으셨습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이 새 목자를 인도하시고 그분 안에서 일하시어 그분이 서울대교구를 화합과 진리와 사랑으로 이끌어 주시도록 기도합니다. ‘성령께서 한 분을 뽑으셨습니다’라는 말씀은 참으로 뜻깊습니다. 정진석 대주교님의 임명은 교황님이 하셨으나, 그것은 하느님의 뜻이었음을 분명히 깨닫게 하는 말씀입니다.(후략)”당시 정 주교에게는 임명 소식을 미리 전한 상태였지만, 교황청은 김수환 추기경 후임인 제13대 서울대교구장의 공식 인사 발표를 주교좌 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과 김수환 추기경 서울대교구장 착좌 30주년 기념일 이후로 미루고 있었다. 드디어 5월 29일 오전 11시 주교좌 명동대성당 축성 100주년과 김수환 추기경 착좌 30주년 기념 미사가 봉헌됐다. 서울대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한 이날 미사는 교황청 대사, 각 교구 주교들, 파리외방전교회 부총장 신부 등 내외빈과 정부 측 인사 등 1500여 명이 참석해 성당을 가득 메웠다. 성당 밖의 문화관에서도 신자들이 대형 스크린을 통해 미사에 함께하고 있었다.주교회의 의장을 맡고 있던 정진석 주교도 이 미사에 함께했다. 정 주교는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 수많은 신자와 함께 미사를 봉헌하고 있자니 인사이동을 한다는 것이 더 크게 실감 났다. 고향이나 다름없는 이 성당으로 다시 돌아온다고 생각하니 감회도 남달랐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구석구석 누비고 다녔던 주교좌 명동대성당에서의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몇몇 인사들은 정 주교가 서울대교구장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교황청 공식 발표 전 침묵을 지키는 것이 원칙이기에 모두 침묵하고 있었다. 미사와 축하식 후 청주로 돌아오는 길에 정 주교는 문득 청주교구장에 임명돼 잔뜩 긴장한 채 같은 길을 걷고 있던 28년 전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 이 길을 참 많이도 오르락내리락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28년 전 그때와 지금은 정말 하늘과 땅 차이처럼 많은 것이 변했다. 정 주교는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는 듯 아무 말 없이 바깥을 바라보고 있었다. 노을이 저 넓은 평야를 발갛게 물들이고 있었다.다음날 5월 30일 오후 8시(로마 시각 낮 12시) 교황청에서 공식 발표가 나왔다.“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성하는 교구장 정년을 맞아 사의를 표명한 김수환 추기경의 사임 신청을 받아들여 후임 서울대교구장에 주교회의 의장이자 청주교구장인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를 임명했다.” 이 소식은 한국의 모든 언론을 통해 순식간에 퍼져나갔다. 모 일간지는 관련 기사를 미리 보도하느라 오보를 내기도 할 만큼 관심이 뜨거웠다. 교황청 발표 직후 청주교구청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기 너머로 김수환 추기경의 목소리가 들렸다.“정 대주교님! 축하드려요. 그리고 내일 보좌 주교님들과 꾸리아 신부님들을 청주로 보낼 테니 착좌식 날짜와 준비를 상의해줘요. 고생 좀 해줘요.” “추기경님! 전화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런데 부족한 사람이 추기경님의 후임자가 돼 송구합니다.”정 주교가 28년 전 청주교구장으로 발령을 받던 당시에도 모금을 위해 미국에 있던 정 주교에게 김수환 추기경은 주교 서품식과 교구장 착좌식을 준비하겠노라 연락해줬다. 참으로 신비로운 인연이었다. 형님 같은 김 추기경의 따뜻하고 자상한 마음에 절로 고개가 숙여졌다. 정진석 주교는 평소에도 김 추기경을 진정으로 좋아하고 존경했지만 이렇게 솔직하게 마음으로 표현한 적은 없었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김지항2017.04.12
![[안소근 수녀와 함께 떠나는 구약 여행] (65)“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지혜 2,23)](//cpbc.co.kr/CMS/newspaper/2016/04/rc/629720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함께 떠나는 구약 여행] (65)“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불멸의 존재로 창조하시고”(지혜 2,23)지혜에 귀 기울이고 영원한 생명 얻으라 헤르만 골 작,‘ 알렉산드리아의 파괴’, 불멸! 지금까지 구약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는 나오지 않았던 주제입니다. 이렇게 새로운 주제가 나오는 것은 지혜서가 구약 성경의 책들 가운데 가장 작성 연대가 늦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전통적으로는 흔히 이 책을 “솔로몬의 지혜”라고 일컫지만, 솔로몬은 이 책의 저자일 수 없습니다. 내용상으로 볼 때 이 책의 앞부분은 헬레니즘 시대의 가치관과 유다교의 전통적 가치관 사이의 갈등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저자는 유다교와 그리스-헬레니즘 문화를 모두 잘 알고 있으며, 구약 성경을 인용할 때에도 그리스어로 번역된 70인역을 사용하고 그밖에도 그리스와 로마의 철학과 문학에도 정통한 것으로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 책은 아마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그리스식 교육을 받은 유다인들 사이에서 생겨난 것으로 보입니다. 작성 연대는 기원전 1세기 중반에서부터 로마가 알렉산드리아를 점령한 기원전 30년 사이가 됩니다.한동안 떠나 왔던 지혜문학으로 다시 돌아가 봅시다.의인은 복을 받고 악인은 벌을 받는다는 것이 잠언이 말하는 고전적인 지혜의 가르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후에, 욥기와 코헬렛은 그 원칙에 의문을 품었습니다. 불행하게 살다 죽는 의인들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내세에 대한 희망은 아직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인간의 지혜는 한계에 부딪혔습니다. 이 세상의 질서는 인간의 능력으로는 파악할 수 없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런데 지혜서에서는 이 벽을 넘어섭니다. 인간 지혜의 한계 문제에서 벽을 넘어설 수 있는 것은, 이미 집회서에서 말한 바와 같이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에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집회서에서 벤 시라는, 하느님께서 홀로 지혜를 갖고 계시고 그 지혜를 율법을 통해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말했습니다(집회 24장 참조). 지혜서에서는 솔로몬을 주인공으로 내세우면서, 그가 하느님께 청하여 지혜를 받았음을 강조합니다. 솔로몬도 태어날 때에는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인간이었지만(지혜 7장), 하느님께 기도를 올리자 인간 스스로의 능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지혜가 그에게 주어졌습니다(지혜 9장). 솔로몬이 다른 무엇보다 지혜를 청했다는 이야기는 열왕기 상권 3장에 나오지요. 지혜서 9장에서는 그의 기도를 제시합니다. “당신께서 지혜를 주지 않으시고 그 높은 곳에서 당신의 거룩한 영을 보내지 않으시면 누가 당신의 뜻을 깨달을 수 있겠습니까?”(지혜 9,17).다음으로 인과응보 문제에 있어서, 지혜서는 불멸을 말합니다. 어떻게 하면 불멸을 누릴 수 있을까요? 지혜서의 대답은 지혜를 추구함으로써라는 것입니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지혜를 받아들임으로써 인간은 불멸을 누리게 됩니다. 이제는 의인이 이 세상에서 복을 누리지 못하거나 아니면 일찍 죽는다 해도 그것 때문에 인과응보의 원칙이 뒤흔들리지는 않습니다. 그렇게 죽은 의인은 내세에서 복을 누릴 것이기 때문입니다. 욥기의 마지막에서는 욥이 잃어버렸던 재산을 되찾고 자녀들도 다시 얻게 되지요(욥 42장). 만일 이러한 회복이 없이 그대로 욥이 죽었다면 어떻게 될까요? 지혜서에 따르면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내세에 대한 믿음이 없었을 때에는 오래 사는 것과 후손이 많은 것이 인간이 누릴 수 있는 최대의 복이었지만, 이제는 악인으로 오래 사는 것보다 의인으로 일찍 죽어 영원한 복을 누리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오게 됩니다(지혜 4장). 어리석은 이들의 눈에는 의인들이 죽은 것 같이 보일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하느님 안에 있다고 말하는 지혜서 3장은, 장례 미사 때와 순교자 축일에 읽는 독서이기도 합니다.그러면, 불멸은 얻기 어려운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여기서 지혜서는 창세기로 돌아갑니다.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 모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인간은 본래 하느님의 본성을 닮아 불멸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인간이 죽는 것은 인간 스스로 죄를 지음으로써 죽음을 자신 안에 끌어들이기 때문입니다.이 세상에서 살고 또 죽어가는 인간들을 바라보면서는, 인간은 본래 사멸할 존재라고 생각하게 되지요. 다른 문화들의 신화에서도 신들과 인간의 차이는 신들은 죽지 않는 데 비하여 인간은 죽는다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사멸할 인간은 정말 힘써 노력해야만 간신히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고 여기기 쉽습니다. 그러나 지혜서가 말하는 것은 그와 다릅니다. “하느님께서는 죽음을 만들지 않으셨고 산 이들의 멸망을 기뻐하지 않으신다. 하느님께서는 만물을 존재하라고 만드셨으니 세상의 피조물이 다 이롭고 그 안에 파멸의 독이 없으며 저승의 지배가 세상에는 미치지 못한다”(지혜 1,13-14). 엄청난 말씀입니다. 그러나 알고 보면, 전혀 새로운 말씀은 아닙니다. 지혜서는 다른 곳이 아니라 창세기에서 그 근거를 찾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느님을 닮은 인간의 위대함과 죄에 떨어진 인간의 나약함, 인간의 그 두 모습 가운데 창세기는 인간의 선한 본성을 먼저 이야기합니다. 비록 죄로 손상되었다 하더라도 그것이 인간의 본래 모습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혜서에서도, 지혜를 찾고 불멸을 얻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일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지혜는 “다정한 영”(지혜 1,6), 어원적으로 말하면 ‘인간을 좋아하는 영’입니다. 인간이 지혜를 찾기 전에 먼저 지혜가 인간에게 오고 싶어 합니다. 비뚤어진 생각과 간악한 마음으로 그 지혜의 길을 막지 않는다면(지혜 1,3-4), 지혜는 우리에게 옵니다. 이러한 가르침을 토대로 지혜서는, 성경 말씀 안에서 지혜에 귀를 기울이고 영원한 생명을 찾으려는 이들에게 영원한 희망을 말합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4.12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5>](//cpbc.co.kr/CMS/newspaper/2016/05/rc/633808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아름다운 유리의 성모 ‘아름다운 유리의 성모’ 부분, 13세기, 샤르트르, 프랑스 중세 스테인드글라스를 이야기하면서 샤르트르 대성당의 많은 스테인드글라스 중에서 가장 아름답다고 하는 ‘성모자상’을 그냥 지나칠 수는 없다.‘아름다운 유리의 성모’(Notre-Da me de la Belle Verrire)라 불리는 이 창에는 중앙 상단에 성령의 비둘기와 함께 성모자상이 가장 크게 자리 잡고 있다. 성모자상 좌우로는 분향(焚香)하는 천사들이 에워싸고 있고, 아래에는 성모님을 떠받치고 있는 네 천사가 붉은색 배경에 놓여 있다. 이어지는 작품 하단에는 예수님의 첫 기적인 카나의 혼인 잔치,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세 유혹이 표현돼 있다. 하나의 패널이지만, 성모자상은 12세기(1137년 이전)에, 그 나머지는 13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이다. 그리고 성모의 얼굴 일부 등과 같이 19세기에 복원된 부분들도 있다.샤르트르 대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는 ‘샤르트르의 블루’라는 표현이 있을 만큼 유독 푸른색이 많이 사용되었는데, 특히 이 패널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이는 성모님을 상징하는 푸른색이 작품 중앙부에 크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위엄있는 자태로 옥좌에 앉은 천상의 모후로서 표현된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붉은색과 푸른색 유리로 뒤덮인 보석과도 같은 창을 더욱 기품 있게 보이게 해주고 있다.스테인드글라스 창으로 유입되는 빛은 성모 마리아의 신비로운 잉태와 비교되곤 한다. 즉 흠집 없이 유리를 관통하는 빛의 이동은 성령을 통한 성모 마리아의 기적적인 잉태에 대한 중세의 특징적인 이미지로 해석되었다. 독일의 미술사학자 마이어 샤피로(Meyer Schapiro)는 자신의 글 ‘마귀 잡는 쥐덫- 메로드 제단화의 상징주의’(Muscipula Diaboli : The Symbolism of the Mrode Altarpiece)에서 스테인드글라스가 중세의 ‘유비’ 개념과 ‘빛의 미학’을 수용하는 데 얼마나 적절한 매체인지를 설명했다. 스테인드글라스를 통한 빛의 경로는 성모 마리아의 기적적인 잉태의 은유로서 도입되어 당시 라틴어나 지역 방언으로 기록된 시, 신비주의 문학, 찬송가, 전례극 등에 되풀이되어 등장하고 있다.태양의 광선이 창을 통해 지나감에도반투명의 유리는 아무런 상처도 남기 지 않고그렇게, 아니 더욱 섬세하게티 없이 깨끗한 어머니하느님, 그 하느님의 아들은그의 신부로부터 오시네. <마이로 샤피로 논문 발췌>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물질 가운데서 빛이 유리를 투과하듯이 그 어떠한 흠집도 남기지 않고 공간을 넘나들 수 있는 것이 있을까? 중세의 스테인드글라스는 가난한 자의 성경이자 빛으로 전하는 하느님의 말씀, 성모 마리아의 기적과도 같은 예수 그리스도의 잉태를 대변해주고 있기도 하다. “말씀이 곧 참 빛이었다”는 성경구절을 되뇌며 스테인드글라스의 진정한 역할과 의미에 대해 다시 한 번 깊이 생각해보게 된다. 백영민2016.05.04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36> 82번 주 찬미](//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6024_1.0_titleImage_1.jpg)
[이상철 신부의 성가 이야기] 82번 주 찬미 주 찬미를 작사한 크로스비. 자신의 시각 장애를 하느님 축복으로 여긴 그녀는 8000여 곡이 넘는 찬송가 가사를 만들며 하느님을 찬양했다. <36> 82번 주 찬미82번 성가 ‘주 찬미’는 우리 성가집에서 주님을 찬미하는 노래 중 83번과 더불어 가장 장엄한 찬미 노래가 아닐까 싶다. 이 성가는 20세기 서양에서 나온 찬양 노래 중 가장 유명한 곡 가운데 하나다. 1983년에 나온 일종의 크리스마스 칸타타인 ‘높으신 분의 아들(Son of the Highest)’에서 사용되기도 했다.이 곡의 작곡자는 미국의 사업가이며 능력 있는 아마추어 음악가였던 도언(William Howard Doane, 1832~1915)이다. 그는 목공기계 제조업 회사인 ‘J. A. Fay & Company’의 사장으로 일하는 한편, 자신이 다니던 교회 주일학교의 교장을 지낼 정도로 깊은 신앙을 지닌 사람이었다. 그는 애초에 음악 전업가는 아니었고 그저 성공한 사업가로서 음악은 일종의 부업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그럼에도 수백 곡의 찬송가를 작곡하고 약 40권의 찬송가집을 편찬하기도 했다. 이러한 업적으로 1875년 데니슨 대학에서 명예 음악박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이 찬송가의 원제목은 ‘하느님께 영광을(To God Be the Glory)’이다. 그런데 이 가사를 쓴 이는 미국에서 가장 유명한 찬송가 작사가이며 대중에게 큰 사랑을 받았던 크로스비(Frances Jane Crosby, 1820~1915)다. 그는 생후 6주 때 의사의 잘못된 처방으로 시력을 잃고 평생을 시각 장애인으로 살아갔는데, 신심이 깊었던 어머니와 할머니는 앞을 보지 못하는 그에게 자주 성경을 외우도록 교육했다고 한다. 여덟 살 때부터 시를 쓰기 시작해 1844년 「맹인 소녀와 여러 시들」(A Blind Girl and Other Poems)이라는 시집을 펴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8000여 곡이 넘는 찬송가 가사를 만든 것이 가장 큰 업적이라고 할 수 있다.그는 자신의 장애를 하느님의 축복으로 받아들이며 이렇게 말했다. “내가 평생 앞을 보지 못하고 살아가는 것은 하느님의 은혜로운 섭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분께 감사합니다. 만일 내가 내일은 완벽하게 세상을 볼 수 있게 된다고 해도 나는 거부할 것입니다. 내 주위의 아름답고 흥미로운 것들로 인해 내 마음이 산란해진다면 나는 하느님을 찬미하는 노래를 부를 수 없을 것입니다.” 생전에 시인으로서뿐만 아니라 대중 연설가로도 이름을 날렸던 그를 위해 현재 미국 성공회에서는 전례력으로 2월 11일을 그의 기념일로 지내고 있다.우리 성가책에는 본래의 영어 가사를 비교적 충실히 번역해 옮겨놓고 있는데, 자신의 장애를 축복으로 여겼던 그는 이 곡의 후렴 부분에서 이렇게 노래한다.‘주 찬미, 주 찬미, 그분의 소리를 땅에게 전하라! 주 찬미, 주 찬미 사람들아 기뻐 뛰라! 아들이신 예수님과 더불어 아버지 앞에 나오라, 그분이 이루신 위대한 일들. 그분께 영광 드려라!’ <가톨릭대 교회음악대학원 교수>※휴대전화 어플로 QR코드를 촬영하면 지면에 소개된 성가를 들을 수 있습니다. 백영민2016.10.12
![[시사진단] 부부와 가정에 전하는 교황의 메시지](//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7814_1.0_titleImage_1.jpg)
[시사진단] 부부와 가정에 전하는 교황의 메시지박은미 (헬레나,한국가톨릭여성연구원 교수)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에 현대 세계의 복음 선포에 관한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을, 2015년에는 환경에 관한 교황 회칙 「찬미받으소서(Laudato Si’)」에 이어, 2016년에 결혼과 가정의 문제에 관한 신학적 권고, 「사랑의 기쁨(Amoris Laetitia)」을 내놓으셨다. 「사랑의 기쁨」은 성경과 가정에 대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권고 「가정 공동체(Familiaris Consortio)」(1981)와 2014년과 2015년에 있었던 두 차례의 ‘세계 주교시노드 최종 보고서’를 줄곧 인용하면서 현재 가정들이 겪고 있는 구체적인 도전 과제와 사목적 대안을 검토한다.「복음의 기쁨」과 「사랑의 기쁨」 두 권고에는 ‘기쁨’이라는 뜻이 담긴 어휘가 ‘Gaudium’(가우디움) 과 ‘Laetitia’(래티치아)로 구별돼 사용된다. ‘Gaudium’이 좋은 사상을 음미할 때처럼 내적으로 느껴지는 기쁨이라면, ‘Laetitia’는 밖으로 분출돼 표현되는, 비옥한 열매를 맺는 기쁨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고 한다. 제목에 사용된 ‘기쁨’이라는 용어 하나만 보더라도 교황님의 새 권고(「사랑의 기쁨」)가 배우자 두 사람을 맺어 준 사랑이 자녀 교육으로, 가정이 공동체로 더 널리 확장돼야 한다는 사회적 의미와 전망을 내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교황님은 현대 가정이 처한 문제는 개인적 차원에서만이 아니라 공동체적, 사회적 차원에서 비롯되는 것이고, 가정을 대하는 교회의 방식이 오늘날의 위기 상황을 야기하는 데 일조했다는 점을 인정하면서 먼저 교회가 반성해야 할 점부터 몇 가지를 제시한다(「사랑의 기쁨」 36, 37항). 첫째, 혼인에 대해 자녀 출산의 의무만을 강조함으로써 ‘사랑을 키워나가라는 부르심’과 ‘상호 도움의 이상’이 가려졌다. 둘째, 결혼을 지나치게 추상적이고 인위적인 신학적 이상으로 제시해 가정의 구체적인 상황과 현실적 가능성에 동떨어진 것으로 만들었다. 셋째, 은총에 열려 있도록 권장하지 않은 채 결혼과 가정에 대해 교리적, 생명 윤리적, 도덕적 문제만을 강조하면서 교회가 이미 가정에 충분히 도움을 주고 부부 유대를 강화하며 부부가 함께하는 삶에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고 자만해 왔다. 넷째, 혼인을 개인의 성장과 완성의 역동적 여정으로 제시하기보다 평생 짊어지고 가야 할 짐으로 더 많이 제시했다.교회의 태도에 대한 솔직한 자기반성 후, 가정과 결혼의 문제에 교회가 접근하는 방법은 “교회가 함께하며 도움을 주는 것이 필요하다”며(38항) 가정 문제를 추상적 사변이 아니라 구체적이고 현실적으로 풀어보려는 교황의 방식을 준비하신다. 특히 「사랑의 기쁨」 4장에서 교황님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13장, 흔히 ‘사랑의 찬가’로 불리는 부분에 기초해 각 구절에 나오는 동사의 의미를 새롭게 해석해 가정 안에서 있어야 할 사랑의 원칙을 제시하신다. 다양한 선한 면모를 지닌 동시에 갖가지 불완전함을 지닌 짝을 서로의 배우자로 선택한 부부들의 삶을 묵상하면서 ‘사랑의 찬가’에 담긴 부부 사랑의 실천적 의미는 무엇인지, 부부 사랑에 대한 교황님의 새로운 이해를 만날 수 있다.주교회의 여성소위원회와 가정위원회에서는 각각 11월과 12월에 「사랑의 기쁨」에 관한 심포지엄을 마련한다. 번역서도 조만간 출간될 예정이다. 교우들께서는 주보와 신문에 게재될 홍보문을 눈여겨보고 「사랑의 기쁨」 ‘향연’에 참석하시길 바란다. “교회의 사명은 종종 야전병원의 사명과 비슷하다는 것을 잊지 말라”는 교황님의 말씀이 귓가에 생생하게 들리는 듯하다. 평화신문2016.10.26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성인들께 의탁하며 성당에서 기도(21) 기도의 전통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 기도의 길잡이①(2683~2696항)교리서는 기도의 길잡이로 수많은 증인과 기도 봉사자들을 듭니다. 이와 함께 기도에 적합한 장소들에 대해서도 설명합니다. 차례로 살펴봅니다. 수많은 증인들(2683~2684항)우리보다 앞서 하늘나라에 들어간 증인들, 특히 교회가 ‘성인’으로 인정한 이들은 △모범적인 삶 △남긴 글 △그리고 기도를 통해 오늘도 살아 있는 기도의 전통에 참여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고, 찬양하며, 지상에 남아 있는 이들을 끊임없이 돌보아 줍니다. 그들의 전구는 하느님 계획을 이루기 위한 그들의 봉사 중 가장 고귀한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 자신과 온 세상을 위해 전구해 주시도록 그들에게 기도할 수 있고 또 해야 합니다. 교회 역사가 흐르는 동안, 모든 성인의 통공 안에서 다양한 영성이 발전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교의 갖가지 영성은 기도의 살아 있는 전통에 참여하는 것”으로서, 신자들에게는 “필수적인 안내자”(2684항)입니다. 기도의 봉사자들(2685~2690항)그리스도인 가정은 기도를 가르치는 첫째 장소입니다. 그리스도인의 가정은 ‘가정 교회’입니다. 가정에서 하느님의 자녀들은 ‘교회로서’ 끊임없이 기도하는 법을 배우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 날마다 바치는 기도는 교회의 생생한 기억을 특히 어린이들에게 처음으로 증언해 줍니다. 서품된 봉사자인 성직자들도 기도의 봉사자입니다. 이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자매가 된 신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하느님 백성을 기도가 솟아나는 샘, 곧 하느님 말씀과 전례와 하느님을 향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해 서품됐기 때문입니다. 수도자들, 곧 봉헌생활을 하는 이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많은 수도자가 그들의 전 생애를 기도하는 데에 바쳤습니다. 또 많은 은수자와 남녀 수도자가 하느님을 찬양하고 백성을 위해 전구하는 데에 일생을 보냈습니다. 사실, 봉헌생활의 힘은 기도에 있습니다. 기도하지 않고서는 봉헌생활을 유지하거나 확산할 수 없습니다. “기도는 교회 안에서 관상 생활과 영성 생활이 솟아나는 원천 중 하나”(2687항)입니다. 교리교육도 기도의 봉사자입니다. 교리교육의 목표는 △개인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을 묵상하고 △전례 기도 중에 하느님 말씀을 현재 상황에 연결시켜 그 말씀을 항상 내면화하여 열매를 맺도록 하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기도 생활을 위해서는 기도문을 암기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의미를 음미하도록 하는 것도 매우 중요합니다. 기도 모임 또는 기도 학교들도 기도의 봉사자입니다. 성령께서는 어떤 신자들에게는 지혜와 믿음과 식별의 은총 곧 영적 지도의 은총을 주십니다. 기도라는 공동선을 위해서지요. 이들 역시 기도의 봉사자들입니다. 기도에 적합한 장소(2691항)하느님의 집인 성당은 본당 공동체가 바치는 전례 기도에 적합한 곳입니다. 본당은 또한 성체 안에 실제로 현존해 계시는 그리스도를 흠숭하기에 가장 알맞은 장소이기도 합니다. 개인 기도를 드리기 위한 장소로는 성경과 성화들이 비치돼 있는 ‘기도의 골방’이 적합한 기도 장소입니다. 가정에 이러한 작은 공간이 있으면 개인 기도만이 아니라 가족의 공동 기도를 촉진시켜 줍니다. 수도원과 순례지(성지)들도 기도에 적합한 장소입니다. 순례는 천국을 향해 나아가는 우리의 여정을 상기시켜 주며, 순례지(성지)는 기도를 체험하는 특별한 곳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10.26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6) 엘리사벳 방문과 마리아의 노래(1,39-56) : 만남과 찬미](//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5702_1.1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6) 엘리사벳 방문과 마리아의 노래(1,39-56) : 만남과 찬미 “여인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이도 복되십니다” 예루살렘에서 남서쪽으로 7㎞ 남짓 떨어진 곳에 있는 마을이다. 마을 주차장에 내리면 오른쪽 길 건너편으로는 요한 세례자 탄생을 기념하는 성당이 있고, 왼쪽으로 난 길을 따라 언덕으로 오르면 즈카르야의 집터 위에 세워졌다는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기념 성당이 있다. 또 언덕으로 오르기 직전에는 마리아의 샘이라고 부르는 샘도 있다. 그래서 순례객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계속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곳곳이 황량한 광야와 바위산투성이지만 이곳은 수목이 우거지고 철마다 꽃들이 피어 풍광이 무척 아름답다. 처녀의 몸이지만 아들을 낳을 것이니 이름을 예수라고 하라는 천사의 전갈에 마리아는 ‘주님의 종이오니 그대로 이루어지소서’ 하고 응답합니다. 그러자 천사는 떠나갑니다.(1,26-38) 이렇게 예수님 탄생 예고에 관한 이야기를 전한 루카는 이제 마리아가 사촌 엘리사벳을 만나는 무대로 화제를 돌립니다. 이 사건은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1,39-45)과 마리아의 노래(1,46-56) 두 부분으로 이뤄집니다. 루카는 첫 장면을 이렇게 묘사하지요. “그 무렵 마리아는 길을 떠나, 서둘러 유다 산악 지방에 있는 한 고을로 갔다.”(1,39) 루카는 마리아가 서둘러 간 곳이 유다 산악 지방의 한 고을이라고 기록하지만, 구체적인 지명은 언급하지 않습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 고을은 ‘에인 케렘’이라는 곳입니다. 나자렛에서 에인 케렘까지는 100㎞가 넘습니다. 그 사이에는 평지만 있는 것이 아니라 광야와 험한 산악들도 있습니다. 걸어서 가야 하니, 사나흘 이상 걸리는 거리입니다.그 길을 마리아는 ‘서둘러’ 갑니다. 왜 서두를까요? 마리아는 가브리엘 천사에게서 아기를 낳지 못하는 늙은 사촌 언니 엘리사벳이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이 됐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게다가 처녀인 자신도 아기를 갖게 된다는 전갈을 받았습니다. 이 모든 일은 인간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능력으로 이루어집니다. 곧 하느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둘러 가서 언니를 만나보고 싶지 않겠습니까?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집니다. 즈카르야의 집에 도착해 엘리사벳에게 인사하는 순간, 엘리사벳 배 속의 아기가 뛰놀았던 것입니다. 더 놀라운 것은 엘리사벳의 말입니다. “성령으로 가득 차” 큰소리로 이렇게 외친 것입니다. “당신은 여인들 가운데에서 가장 복되시며 당신 태중의 아기도 복되십니다. 내 주님의 어머니께서 저에게 오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보십시오. 당신의 인사말 소리가 제 귀에 들리자 저의 태 안에서 아기가 즐거워 뛰놀았습니다. 행복하십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으신 분!”(1,42-45)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복되다는 말을 두 번이나 합니다. 첫 번째는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가 되신 것에 대해 복되다고 합니다. 주님의 어머니가 되는 여인이니 여인들 가운데 가장 복되다는 찬사는 당연하겠지요. 두 번째는 주님께서 하신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기에 복되다고, 행복하다고 찬사를 보냅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은 마리아가 주님의 어머니가 됐다는 것을, 주님의 말씀이 이루어지리라고 믿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성령으로 가득 차”(41절)라는 말이 이를 설명해 줍니다. 성령께서 알려주신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배 속 아기가 즐거워 뛰논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아기는 어머니 배 속에서부터 성령으로 가득 차 있었기에(1,15 참조) 마리아의 배 속에 잉태된 예수님을 알아보고 기뻐 뛰놀 수 있었던 것입니다. 엘리사벳의 말에 마리아는 길게 찬미의 노래를 부릅니다.(1,46-55) ‘마니피캇(Magnificat)’이라고 하는 이 찬가는 성직자, 수도자들이 시간 전례(성무일도) 저녁기도 때마다 바치는 노래이자, 레지오 마리애 단원들이 회합 때뿐 아니라 매일 바치는 노래이기도 합니다. 이 노래의 앞부분(46-50절)은 마리아의 개인적인 감사의 마음을, 뒷부분(51-55절)은 하느님 백성 이스라엘 전체의 집단적인 감사의 마음을 노래하는데, 대부분이 구약성경의 여러 대목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구약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계약을 맺으신 하느님께서 당신 약속을 이행하셨음을 감사하는 것인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완전히 성취되는 약속 이행(구원)이 마리아에게서 출발함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님을 통해 이루어진 구원의 위대한 신비가 하느님의 뜻에 ‘예’ 하고 응답한 마리아의 순명에서 결정적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교회가 마리아를 높이 공경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루카는 마리아가 석 달가량 엘리사벳과 함께 지내다가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는 기록으로 마리아와 엘리사벳의 만남과 마리아의 노래에 관한 이야기를 마무리합니다.(1,51) 석 달가량 함께 지냈다는 것은 엘리사벳이 해산할 무렵까지 마리아가 곁에 있으면서 보살펴주었으리라는 것을 짐작하게 합니다. 자신도 임신한 몸이지만 나이 많은 사촌 언니를 보살피는 애틋한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되새겨보기① 우리는 세례성사로 하느님의 성령을 받았고, 견진성사로 성령의 은사를 더욱 풍부히 받았습니다. 성령으로 가득 찬 엘리사벳이 마리아를 보고 주님의 어머니로 알아볼 수 있었듯이, 우리는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해 하느님의 뜻을 식별할 수 있습니다. 우리 이웃 안에서 그리스도를 알아볼 수 있습니다. 우리의 이기적 생각과 마음이 우리 안에서 작용하시는 성령의 불을 꺼버리지 않도록 노력하면서 그에 필요한 도움을 청합시다. ② 마리아는 나이 많은 사촌 언니가 아기를 가진 지 여섯 달이 됐다는 소식에 자신도 임신 초기의 몸임에도 서둘러 100㎞가 넘는 길을 걸어 언니를 찾아가 석 달이나 머물면서 돌봐줍니다. 이것이 배려입니다. 갈수록 이기적이 되고 자기중심적이 되면서 메말라가는 삶에서 우리는 어떻게 배려하고 있는지요. 하루에 한 번이라도 배려하는 마음을 지니고 배려를 실천해 보면 좋겠습니다.다음은 마리아의 찬가(1,46-55)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천천히 읽고 뜻을 음미해 봅시다. (46)내 영혼이 주님을 찬송하고/(47)내 마음이 나의 구원자 하느님 안에서 기뻐 뛰니/ (48)그분께서 당신 종의 비천함을 굽어보셨기 때문입니다. 이제부터 과연 모든 세대가 나를 행복하다 하리니/ (49)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일을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분의 이름은 거룩하고/ (50)그분의 자비는 대대로/ 당신을 경외하는 이들에게 미칩니다.(51)그분께서는 당신 팔로 권능을 떨치시어/ 마음속 생각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통치자들을 왕좌에 끌어내시고/ 비천한 이들을 들어 높이셨으며/ (53)굶주린 이들을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자들을 빈손으로 내치셨습니다.(54)당신의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 종 이스라엘을 거두어 주셨으니/ (55)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대로/ 그 자비가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히 미칠 것입니다. 백영민2017.03.22
![[성경 속 도시] (29) 밀레토스](//cpbc.co.kr/CMS/newspaper/2014/11/rc/540250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29) 밀레토스무겁지만 믿음에 찬 발걸음을 떼다 밀레토스는 터키 서부 해안의 최대 휴양지인 쿠사다시 항구 인근의 고대 도시이다. 지금은 해안선에서 9㎞ 떨어진 내륙에 있지만 고대에는 중요한 항구도시였다. 밀레토스는 고대 이오니아 지방의 중심 도시국가로서 해상 무역이 번성했던 곳이다. 교역에 매우 유리한 지리적 입지조건과 상당한 수의 인구를 부양하기에 충분한 공급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 이곳은 오리엔트의 풍부한 경험적 지식 정보를 받아들임으로써 밀레토스 학파 철학자를 배출하며 학문과 문화의 중심지를 이루기도 했다. 세상의 기원을 최초로 탐구한 철학자 탈레스를 비롯해 만물의 기원을 탐구한 학자들을 밀레토스 학파 또는 이오니아 학파라고 한다. 밀레토스는 결과적으로 ‘이오니아 자연철학’을 탄생시켰고, 아울러 밀레토스 학파 철학자를 배출해 문화의 중심지를 이뤘었다. 호메로스는 이곳을 ‘갈리아인의 도시’라고 하였다. 밀레토스는 기원전 8세기까지 이오니아의 중심지로서 해외 무역이 번성하였고, 기원전 7세기 동지중해, 흑해 연안에 70여 곳 식민지를 건설하였다. 기원전 6세기 중엽 페르시아 지배 아래에서 번영을 누렸으나 기원전 499년 이오니아 반란의 중심이 된 것이 원인이 되어, 기원전 494년 페르시아인에게 함락당하고 주민들은 노예가 되었다. 기원전 479년 페르시아 전쟁의 마지막 전투인 미칼레 전투 뒤, 히포다모스의 도시 계획으로 재건되어 델로스 동맹의 일원이 되었다. 현재 대규모의 야외 극장을 비롯하여 이오니아식 상점 터, 신전 터, 로마 목욕탕, 아고라 등이 남아 있다. 성경에서 밀레토스는 바오로 사도와 밀접한 연관성을 지니고 있다. 사도행전을 살펴보면, 성령이 강림한 오순절 날에 베드로 사도의 설교를 경청했던 사람들 가운데 크레타 사람들이 있었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는 크레타 섬에서 선교 활동의 새로운 장을 펼쳤던 것이다. 그리고 티토에게 크레타 섬 선교 임무를 맡기고, 그곳을 떠나 자신의 선교 활동을 계속했다. 그곳에서 그는 코린토로 갔으며, 코린토에 에라스토스를 남겨놓았다. 그 후 밀레토스로 갔다. 그곳에는 에페소 사람 트로피모스가 앓아누워있었다. “에라스토스는 코린토에 머무르고 있습니다. 트로피모스는 병이 나서 내가 밀레토스에 남겨 두었습니다”(티모 4,20). 15년 선교 여행 마치며 예루살렘으로 향하다바오로 사도의 3차 선교 여행이 끝나갈 무렵인 58년쯤, 바오로는 에페소에서 마케도니아로 향했다. 밀레토스에 도착한 후 에페소 교회 지도자들을 불러 “나는 성령께 사로잡혀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습니다. 거기에서 나에게 무슨 일이 닥칠지 나는 모릅니다.”라며 눈물의 작별을 했던 곳이다. 바오로 사도가 왜 에페소에 다시 가지 않았는지 그 이유는 나오지 않지만 중요한 일을 할 장소로 선택한 곳은 에페소가 아니라, 밀레토스였다. 이곳에서의 설교는 바오로 사도의 15년 가까운 선교 여행의 최종 보고 같은 형식을 띠고 있다. “이제 나는 하느님과 그분 은총의 말씀에 여러분을 맡깁니다. 그 말씀은 여러분을 굳건히 세울 수 있고, 또 거룩하게 된 모든 이와 함께 상속 재산을 차지하도록 여러분에게 그것을 나누어 줄 수 있습니다”(사도 20,32). 설교를 들은 신자들은 모두 흐느껴 울면서 바오로 사도의 목을 껴안고 입을 맞췄다. 다시는 자기 얼굴을 볼 수 없으리라고 한 바오로 사도의 말에 마음이 매우 아팠던 것이다. 신자들은 아쉬움을 안고 바오로 사도를 배 안까지 배웅했다(사도 20,1-38).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11.18

신앙의 힘으로 ‘시간의 가치’ 시계에 새겨
[나의 신앙 나의 기업] (29) 옥주석(요한 사도) 로렌스(주) 대표 시계는 사람이 만들지만 시간의 주인은 하느님이시다. 그래서인지 40년 이상 시계 산업에 몸담아온 옥주석 로렌스(주) 대표는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는 말씀을 자주 묵상한다. 로렌스(주) 매장의 옥주석 대표. 인생도, 사업도 늘 마음먹은 대로 되지는 않는다. 때로는 세월이 흐르고서야 지혜를 얻는다. 선친과 함께 또 선친의 뒤를 이어 40년 넘게 외길로 매진했다. 겪을 때는 잘 몰랐는데, 지나고 나니 모든 것이 은총이었음을 깨닫는다. 시계 전문 로렌스(주) 옥주석(요한 사도, 69) 대표의 삶과 신앙이다.서울 마포구 독막로(옛 상수동) 지하철 6호선 상수역 1번 출구에서 합정동 방향으로 100m를 채 가지 않은 곳. 오른쪽 골목으로 꺾어지는 모퉁이에 ‘Rolens’란 상호를 단, 세련미가 돋보이는 작은 건물. ‘로렌스’ 상표로 국산 시계의 명성을 살려 가고 있는 로렌스 본사 매장이다. 로렌스의 역사는 옥 대표의 선친 옥치돈(시몬, 1992년 선종) 회장이 부산에서 ‘동일사’라는 시계 도소매상을 연 195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20여 년 시계와 인연을 맺어온 옥 회장은 1975년 서울 중구 충무로에 길양실업이라는 시계 전문 회사를 설립한다. 이 회사가 내세운 국산 시계 브랜드가 ‘로렌스’였다. 길양실업은 1979년 ‘로렌스시계공업’으로, 2011년 다시 현재의 이름으로 바뀌었다. 경영학을 전공한 옥 대표는 은행에 다녔으나 선친이 회사를 설립하면서 합류해 영업직으로 시작했다. 회사는 설립 초기 13년 동안 매년 100% 성장이라는 놀라운 성과를 거두면서 비약적인 성장을 거듭했다. 부천에 공장을 신설했고, 유망중소기업, 우량중소기업으로 잇달아 선정됐다. “선친은 성실과 신용을 무엇보다 중시하셨습니다. ‘땀 흘려 노력한 것만이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 늘 강조하셨지요. 단돈 500원이라도 허투루 쓰지 않고 빈틈없이 관리하고자 노력하셨습니다.”옥주석 대표는 1989년 선친에 이어 회사를 맡아 대표가 됐다. ‘88 서울 올림픽 직후’였던 당시는 민주화 열기에 이어 전국적으로 노동운동의 열기가 거세게 일던 때였다. 회사에도 노조가 생겼고 옥 대표는 노조와 대화를 통해 노사문제를 해결해 나갔다. “쉽지 않았습니다. 매일 새벽 미사에 참여하면서 노조를 이해하도록 해달라고, 잘 풀어가도록 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상대적 박탈감 속에 지내는 노동자들의 처지와 ‘생존이 아니라 사람다운 삶’을 살고자 하는 그들의 주장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면서 갈등을 풀고자 했습니다.” 계속되는 위기 속에서산업 구조의 변화는 또 다른 어려움을 가져다주었다. 추가 달린 벽시계, 나무 시계 등은 많은 노동력이 있어야 하는 노동 집약적 산업인데, 사회가 노동집약적 산업사회에서 첨단 정보산업 사회로 바뀌면서 구조 조정 또한 피할 수 없는 일이었다. 이렇게 노사 갈등의 고비를 겪고 있을 때에 1997년 IMF의 외환위기라는 파고가 덮쳤다. ‘라파엘로’라는 또 다른 브랜드를 내놓은 지 얼마 되지 않아서였다. “정말 정신이 없었습니다. 회사 공장 부지의 부동산을 다 처분해 빚을 갚았습니다. 갈 곳이 없어서 선친의 옛집을 수리해 회사로 삼았습니다. 그게 지금 회사 건물입니다.”2000년대에 들어 시계가 기계식에서 전자식으로 바뀌면서 시계 산업은 계속 타격을 입을 수밖에 없었다. 옥 대표는 난국을 타개하는 방안으로 ‘명품 시계’를 생각해냈다. 시계 전체를 18K로 만들고 다이아몬드와 사파이어 유리로 장식한 100% 수제품인 명품 시계는 재도약의 발판이 돼주었다. LG홈쇼핑(현 GS홈쇼핑) 시계 부문 최우수 업계로 2년 연속 선정된 것을 비롯해 각종 상을 거의 휩쓸다시피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대통령 재임 시절에는 대통령 시계 공식 납품업체로 지정됐다. 하지만 휴대폰을 비롯해 각종 전자제품에 딸린 전자시계로 시계시장의 수요는 더욱 위축됐고, 수입 자유화, 온라인 쇼핑 활성화로 인한 유통 구조 변화로 어려움은 가중됐다. 옥 대표도 다시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었다. “솔직히, 한때는 사업을 접을까 하는 생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미국에서 금속공예를 공부하고 돌아온 딸(옥정윤, 아녜스)이 ‘할아버지가 설립한 회사와 장인 정신을 이어야 한다’며 함께하겠다고 나서더군요. 7년쯤 전이었습니다. 그 말에 힘을 얻었습니다. 또 이젠 시계가 패션이 된 시대이기도 했고요.” 딸은 회사 일을 도우며 3년 전에는 본인 이름을 딴 ‘줄리옥(Julie Ok)’이라는 주얼리(Jewelry, 귀금속 장신구) 브랜드를 내놓았다. 2015년에는 마니아 고객을 위해 오프라인 매장을 열었다. 시계 도소매업으로 시작한 67년 전통의 가업이 3대로 이어지면서 시계를 넘어 귀금속 장신구로 폭을 넓히고 있다.성체 모시며 하루를 열어“회사를 운영해 오면서 어려운 일을 수없이 겪었습니다. 일을 겪을 당시에는 잘 몰랐지만, 나중에 깨닫는 게 있었습니다. 제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느라고 노력했습니다만, 모든 것은 주님의 은총 덕분이라는 것 말입니다. 그래서 ‘먼저 하느님 나라와 그분의 의로움을 찾아라’ 하는 말씀을 자주 묵상하게 됩니다.”옥 대표는 30대에 세례를 받았다. “원래 선친 때부터 개신교에 다녔는데 서울로 올라오신 후 선친이 먼저 가톨릭으로 개종해 세례를 받으셨지요. 고등학교 때부터 개신교회를 열심히 다녔던 저는 집안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에도 한참 지나서 세례를 받았습니다.”옥 대표는 개종 후 중요한 체험을 한다. 그 체험은 하루아침에 일어난 것이 아니라 서서히 이루어졌고 옥 대표의 삶도 자연스럽게 거기에 젖어들었다. 영성체의 중요성을 체험한 것이다. “성체는 주님의 몸입니다. 영성체로 주님의 몸을 내 안에 모셨으면 우리 몸이 주님이 계시는 성전이 되는 겁니다. 그래서 제대로 살아야겠다고,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으면 안 되겠다고 다짐하게 되지요. 말도, 행동도 똑바로 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 또한 미사의 은총이지요.”성실ㆍ정직ㆍ신용 같은 가치들을 소중히 여기고 실천할 수 있었던 것은 선친에게서 보고 배운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영성체의 힘, 미사의 은총이라고 고백하는 옥 대표. 그래서인지, 특별한 일이 없는 한 평일에도 새벽 미사에 참여해 온 지 20년이 넘었다. 하루를 시작하면서 미사를 통해 하느님의 말씀을 받아들이고 성체를 모시면서 주님과 일치하면서 똑바로 사는 힘을 얻고 감사하는 마음을 지니게 된다는 것이다. “행복하여라! 악인들의 뜻에 따라 걷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 들지 않으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않는 사람….” 옥 대표가 좋아한다는 성경 구절 시편 1편의 첫머리다. 옥 대표는 이 시편을 바치면서 삶의 매무새를 추스르곤 한다.서울가톨릭경제인회는 ‘나의 신앙, 나의 기업’에 소개할 교우 기업인들을 추천받습니다. 아울러 경제인회 활동에 함께할 교우 기업인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 02-755-7060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 평화신문2017.03.16

교리와 말씀 전하는 5060 특별부대전교 주일에 만난 사람들/ 가톨릭교리신학원 평신도 선교사 12명 가톨릭교리신학원(원장 최승정 신부)에는 교리와 말씀을 선포하는 열두 사도들이 있다. 예비신자 교리 및 견진교리, 신자 재교육 등 본당의 교리교육을 지원하는 평신도 선교사들이다. 가톨릭교리신학원 교리교육부에 소속된 12명의 선교사는 6개월에서 1년 동안 교안 작성 및 연습 강의 등 철저한 강의 준비를 마치고, 각 본당에 파견돼 교리와 복음 말씀을 전한다. 2001년 설립된 교리교육부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의 교육 이념인 ‘기억ㆍ선포ㆍ봉사’에 따라 교리교육을 지원해 왔다. 주부·직장인 등 평범한 신자들교리교육부에서 활동하는 선교사들은 가톨릭교리신학원 졸업생으로 원장 신부의 임명을 받아야 활동할 수 있다. 나이는 50~60대로, 대부분 직장인ㆍ가정주부 등 평범한 가톨릭 신자들로 구성돼 있다. 견진 교리 등 신자 재교육 특강 요청이 들어오면 성경, 성사와 기도생활, 한국 교회사, 성모 마리아, 사회교리, 전례 등 주제에 맞게 선교사들을 각 본당에 파견한다. 강단에 선 선교사들은 강의 내용을 통째로 외워서 진행한다. “처음 강의를 한 1년 동안은 입이 쩍쩍 마르고, 마이크 잡은 손이 떨리고 그랬어요. 적게는 30명, 많게는 200명 되는 신자 앞에 서면 얼굴이 새하얘지더라고요.”(정호영 소피아)“신자들 앞에서 말씀을 전하면서 그만두고 싶을 때도 있습니다. 내가 복음 말씀을 전하면서 말한 대로 살지 못할 때 좌절감을 느끼거든요. 강의하고 나면, 성령께서 제가 하느님의 도구로 봉사할 수 있도록 함께 해주셨다는 걸 느껴요.”(최종분 안나) 이들은 교리교수법을 전공한 이영제(서울대교구 사목국 선교전례사목부) 신부의 지도를 통해 강의 실력을 갈고닦는다. 매주 화요일에 모여 여러 차례 연습 강의를 통해 서로 보완해야 할 점을 지적해준다. 강의 준비를 위한 맹훈련에 교리교육 봉사를 포기한 이들도 꽤 많다. 교리 전하며 더 많이 배워6년 동안 30여 곳 본당에서 교리교육 봉사를 해온 엄재훈(프란치스코)씨는 “신자들을 가르친다기보다 교리를 전달함으로써 내가 배우는 게 더 많다”며 “신자들이 신앙적으로 무엇인가를 얻고 기뻐하는 모습을 볼 때 계속 봉사할 힘을 얻는다”고 말했다. 또 이들은 재교육 차원에서 더 성장하기 위해 가톨릭교리신학원에서 장학생 자격으로 세 과목을 청강하고 있다. 평신도 선교사들을 응원하는 가톨릭교리신학원의 든든한 교육 지원인 셈이다. 교리교육부 담당 이영제 신부는 “많은 곳에서 평신도들이 봉사하고 있지만 이분들은 체계적인 양성 과정을 거쳐 삶의 자리에서 교리를 선포하는 선교사들”이라며 “각자 평범한 삶의 자리에서 끊임없이 공부하고, 하느님을 위해 시간을 내주는 용기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교리교육부 회장 임승욱(하상 바오로)씨는 “아직 가톨릭교리신학원이 교리교육을 지원하고 있다는 것을 모르는 본당도 많다”면서 “더 많은 본당에서 요청이 들어와 우리 선교사들이 갈고닦은 실력으로 하느님 말씀을 더 열심히 전하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선교사들을 통한 교리교육을 지원하려면 가톨릭교리신학원 홈페이지(http://ci.catholic.ac.kr/)에 접속해, 교리교육 지원을 클릭하면 교리교육 내용과 구성을 확인하고 교리교육 지원을 신청할 수 있다. 이들이 본당에서 받는 강의료(시간당 10만 원)는 선교사 양성비로 쓰인다. 문의 : 02-747-8501, 가톨릭교리신학원 교리교육부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평화신문2016.10.19
![[금주의 성인] 9월 30일: 성 예로니모](//cpbc.co.kr/CMS/newspaper/2015/09/rc/594461_1.0_titleImage_1.jpg)
[금주의 성인] 9월 30일: 성 예로니모 ▨ 9월 30일: 성 예로니모(St. Hieronymus)348~420년, 슬로베니아 출생 및 선종, 교부, 신학교 수호성인.예로니모 성인은 고대 서방교회를 대표하는 교부 중 한 분이십니다. 서방교회 4대 교부라 하면 예로니모 성인을 비롯해 암브로시오 성인, 아우구스티노 성인, 성 그레고리오 1세 교황을 일컫습니다. 성인이 남긴 업적으로는 ‘불가타 성경’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시 성경은 히브리어(구약)와 그리스어(신약)로 쓰였는데, 성인은 이를 서방교회 대중 언어인 라틴어로 번역해 선보였습니다. 그래서 성인이 라틴어로 번역한 성경을 ‘불가타’(Vulgata, 대중적이라는 뜻) 성경이라 부릅니다. 성 다마소 1세 교황은 성인을 비서로 임명하면서 신ㆍ구약 성경 번역을 성인에게 맡겼습니다. 당시 라틴어 성경 번역본이 여러 권 있었지만, 로마 교회는 이를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성인의 대표작인 불가타 성경은 성경 원문에 충실한 라틴어 번역으로 높이 평가받고 있습니다. 성인은 성경 번역뿐만 아니라 그리스 교부들의 성경 주석서를 라틴어로 번역했습니다. 기록에 따르면 당대에 히브리어와 그리스어, 라틴어 모두에 능통했던 학자는 예로니모 성인이 유일했습니다. 이 밖에도 성인은 창세기, 시편, 예언서 등을 해설한 주석서는 물론 역사서, 서간, 교의 신학서, 이단논쟁서 등 성경과 신학 전반에 걸쳐 수많은 책을 저술했습니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예로니모 성인을 두고 “예로니모가 무엇을 모르는지 아는 사람은 없다”고 할 정도였습니다. 성인은 어린 시절 로마에서 유학하며 라틴어와 고전문학을 배웠습니다. 또 373년에는 안티오키아에서 성경 주석법과 그리스어를 공부했습니다. 이후 사막에서 은수 생활을 하면서 히브리어를 익히며 성경 연구에 매진했습니다. 성인의 성경 사랑은 성인이 남긴 글에서도 고스란히 전해집니다.“늘 성경을 읽으십시오. 아니 당신 손에서 성경을 떨어지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입니다.”“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지혜가 그대를 사랑할 것입니다. 성경을 사랑하십시오. 그러면 성경이 그대를 보호해 줄 것입니다….”성인은 당시 득세하던 이단에 맞서 교회를 수호하는 데에도 노력했습니다. 히포의 아우구스티노 성인과 힘을 합해 펠라지우스 이단을 단죄하는 데 큰 역할을 했습니다.성인은 다마소 교황이 선종한 뒤 베들레헴에 정착해 수도 생활을 하다 선종했습니다. 성인은 수덕 생활의 수호성인, 신학교 수호성인으로 존경받고 있습니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cpbc2015.0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