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이슬처럼 작아질 때 천상의 문 열린다](//cpbc.co.kr/CMS/newspaper/2016/07/rc/646309_1.1_titleImage_1.jpg)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이슬처럼 작아질 때 천상의 문 열린다59.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11 예수님의 품안에서 더욱 작아짐으로써 천상으로 비상하는 비결을 발견한 소화 데레사. 잠언 9,4을 통해 빛을 받음 소화 데레사는 아버지의 임종 후 셀리나 언니가 입회할 때 가져온 성경 구절 선집(選集)에서 주옥같은 구절들을 발견하게 됩니다. 성녀는 잠언 9장 4절에서 ‘누가 작은 자이거든 내게로 오라’(우리말 성경에서는 ‘어리석은 이는 누구나 이리로 들어와라’로 번역-편집자)는 구절을 접했을 때, 이를 자기 자신을 향한 메시지로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당시 성녀는 다년간의 수도생활 그리고 자신이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를 떠나보내는 과정에서 자신으로서는 도저히 넘어설 수 없는 한계를 절감하며 자신의 작음을 받아들인 상태였기 때문입니다. 성녀는 이 구절을 읽는 가운데 예수님께서 당신의 품 안으로 달려들도록 자신을 초대하신다는 점을 직관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성녀는 그분께서 이 부르심을 통해 당신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작은 자에게 하시려는 게 무엇인지 알고 싶어서 또 다른 구절들을 뒤적이며 찾아보았습니다. 이사 66,12-13을 통한 영적 도약그리고 마침내 그에 대한 대답을 이사야서 66장 12-13절에서 발견했습니다.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귀여워하는 것같이 나도 너희를 위로하고 너희를 품에 안고 무릎에 올려놓고 흔들어 주겠노라!’ 가족과 함께 살던 어린 시절, 소화 데레사에게 있어서 자신의 작음과 나약함은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을 받아 누리는 데 전혀 걸림돌이 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러한 작음과 나약함으로 인해 소화 데레사는 가족으로부터 많은 사랑과 배려를 받으며 자랐습니다. 다시 말해, 그의 작음과 나약함은 부모님과 언니들의 사랑과 배려를 끌어당긴 주요한 원인이었습니다. 그래서 소화는 자신의 불완전과 작음이 예수님께는 전혀 중요하지 않으며, 오히려 그분의 애정을 받을 수 있는 이유가 된다는 것을 체험적으로 알고 있었습니다. 이렇듯 이사야서 66장 12-13절에 대한 묵상과 더불어 성녀는 자신의 작음이 하느님께서 선호하시는 겸손의 바탕이 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을 향한 신뢰의 길을 열어주고 그분께 모든 것을 희망하게 해 준다는 점을 깨우치기에 이릅니다. 성녀는 1894년 12월 18일에 쓴 어느 시에서 성성(聖性)에 대한 문제를 비추면서 작고 가난한 영혼을 위한 하느님의 도움을 다음과 같이 표현한 바 있습니다. “당신 성자의 형언할 수 없는 눈길 / 나의 가난한 영혼 위로 낮추시네 / … 그러나 이 하늘별의 사랑의 열기 아래 덕은 빠르게 자란다네”(시 11).예수님의 모성에서 지름길 발견이렇듯 소화 데레사는 작고 부족한 자신에 대한 걱정에서 해방되면서 1894년 성탄 이후부터 잠언 9장 4절과 특히 이사야서 66장 12-13절의 구절을 통해 작기만 한 자신을 어머니처럼 당신께로 이끄시어 팔로 안아 들어 올려서 자애로이 쓰다듬어 주시는 예수님의 새로운 모습을 보게 됩니다. 또한 거기서 어린 시절 그렇게 자신을 사랑해 주던 어머니, 마르탱 부인의 모습도 보았습니다. 그 시절 어린 데레사는 어떻게 천국에 갈 수 있을까 고민하다 마침내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면서 다음과 같이 고백하며 어머니의 품에서 해결책을 찾았던 적이 있습니다. “얌전하게 굴지 않으면 지옥에 가겠네. 하지만 좋은 수가 있어. 엄마가 천당에 갈 때 같이 올라갈테야. 하느님이 어떻게 나를 붙잡아 가실 수 있겠어? 엄마가 나를 꼭 껴안아 줄 거지?” 그때와 마찬가지로 1894년이 저물어가던 겨울, 데레사는 성성(聖性)에 대한 자신의 무능함을 인정하면서 작은 자로 예수님께 나아가 엄마에게 했듯이 그렇게 예수님의 품 안에서 천상으로 날아오를 수 있는 비책(策)을 발견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말합니다. “아! 이보다 더 정답고 더 듣기 좋은 말씀이 제 영혼을 기쁘게 해준 일은 없었습니다. 저를 하늘까지 들어올려 줄 승강기는 오! 예수님, 당신의 팔입니다”(「자서전」). 소화 데레사는 예수님 안에서 모성적인 모습을 보는 가운데 어머니 같은 그분을 성성을 향한 ‘지름길’로 인식했습니다. ‘작아짐’을 통해 천상으로 날아오름소화 데레사는 그런 예수님의 사랑에 예전에 비할 바 없이 큰 신뢰를 두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당신의 팔로 자신을 하늘까지 들어 올려 준다면, 그분을 돕기 위해서 여전히 작은 채로 남아 있어야 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항상 더욱 더 작고 가벼워져야 한다는 진리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려면, 저는 커질 필요가 없을 뿐더러, 오히려 ‘작은 채’로 남아 있어야 하고 점점 더 작아져야 합니다”(「자서전」). 소화 데레사는 비로소 예수님이야말로 천국을 향한 길임을 깊이 깨달았고, 그분의 자비를 끌어당기는 작은 길인 ‘의탁’과 ‘신뢰’의 태도 안에서 하느님께 더욱 가까이 다가가게 해주는 ‘작음’의 역할을 분명히 인식했습니다. 더욱이 예수님의 품 안에서 천상으로 날아가려면, 마치 한 방울의 이슬처럼 “항상 더 작아지는 것”을 훈련해야 한다는 진리를 깊이 알아듣기에 이릅니다. 이러한 성녀의 인식은 1895년 2월부터 그해 10월까지 쓴 모든 편지에 담긴 ‘작디작은 자’라는 서명과 더불어 잘 드러납니다. 한 마디로 성녀는 자신을 ‘작디작은 자’로 선언한 것입니다. 그때부터 이 서명은 소화 데레사가 추구하는 영적인 이상(理想)이자 혼신을 다해 실현해야 할 계획이며 고귀한 칭호가 되었습니다. 문채현2016.07.26
![[성경 속 도시] (31) 아쏘스](//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2727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31) 아쏘스바오로, 선교 열정에 걸어서 가다 아쏘스는 지금은 터키의 작은 항구이지만 예전에는 트로아스 남쪽의 항구 도시다. 일반적인 성지 순례 여행 일정에는 대부분 아쏘스가 빠져 있다. 워낙 외진 곳에 있고 산을 타고 가기에 교통편이 매우 불편하다. 그러나 아쏘스는 아주 아름다운 풍광을 지닌 항구 도시다. 이 도시는 예로부터 해안의 요지와 연결돼 적의 공격으로부터 쉽게 함락될 수 없는 천연 요새의 지형을 갖추고 있다. 아쏘스 항구에서 맞은편에 있는 미틸레네 섬이 보이고 도시는 해안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도성으로 가려면 급경사 오르막을 오르게 돼 지형 자체가 자연적 방어막이 됐다. 아쏘스 성채는 암석으로 된 235m 높이의 언덕에 있고 방어 시설이 32㎞에 달하며 20여m 높이의 성곽이 둘러싸고 있다. 이 요새 형태는 비잔틴시대에 만들어졌다. 고고학적 유물 계속 출토 요새 안에는 아테나 신전과 군인들이 훈련을 받는 훈련터, 광장, 극장, 방파제 등 유적이 남아 있다. 특히 산 정상에 세워진 ‘아테나’ 신전은 이 도시의 중요한 고대 도시 유적으로 남아 있다. 기원전 530년쯤에 레보스인들이 아크로폴리스의 중앙에 세웠다고 한다. 지금은 비록 많은 부분이 파괴됐지만 남아 있는 유적이 그 옛날의 영화를 잘 보여 준다. 이 신전에서는 시원하게 펼쳐진 에게해를 한눈에 볼 수 있는데 탄성을 자아낼 정도로 무척 아름다운 경관이다. 역사적으로 보면 아쏘스는 발전을 거듭하다 페르시아에 점령되면서 그 영광도 끝을 맺는다. 기원전 334~241년 알렉산드로스 대왕과 그의 후계자의 지배를 받았고 기원전 241년에는 베르가모의 식민지가 됐다. 이 도시는 주변이 주로 농경 지역으로 이루어져 있어 아쏘스 항구에서 수출하던 좋은 품질의 밀로 유명했었다. 지금은 조용하고 고급스러운 휴양지로 유명한 곳이다. 아쏘스에서는 지금도 고고학적 탐사가 계속돼 여러 유물을 찾아내고 있다. 그 중에는 도리아식 신전을 비롯해 조각품, 시장, 체육관, 목욕탕, 극장 등이 있다. 또 아쏘스는 철학과도 연관이 깊은데 아리스토텔레스도 아쏘스에서 교육과 연구 활동을 했다고 전해진다. 아리스토텔레스는 3년간 이곳에서 교수로 지내면서 첫 학파를 세운 뒤, 기원전 344년 마케도니아의 필립의 아들 알렉산드로스의 스승으로 부름을 받고 떠난다. 트로아스에서 육로로 가서 밀레토스로 성경에서 아쏘스는 사도 바오로가 도보로 방문한 도시다. 사도 바오로는 트로아스에서 육로로 아쏘스까지 걸어가 아쏘스에서 배를 타고 밀레토스 항구에 도착했다(사도 20,13-16). 트로아스에서 사도 바오로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자신의 동료들을 배로 먼저 보내고 자신은 걸어서 아쏘스로 갔다. “우리는 먼저 배를 타고 아쏘스로 떠났다. 거기에서 바오로를 배에 태울 참이었다. 바오로가 거기까지 육로로 가겠다고 하면서 그렇게 정한 것이다. 우리는 아쏘스에서 바오로를 만나 그를 배에 태우고 미틸레네로 갔다”(사도 20,13-14). 그런데 사도 바오로가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어떤 이유로 힘들게 걸어서 이곳까지 오고자 했는지 정확한 기록은 없다. 선교에 대한 사도 바오로의 열정이 아니었을까. 아쏘스로 오는 도중에 교회 공동체가 있었는지는 확실히 모르겠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사목 방문을 할 교회나 개인이 있었을 것이라 짐작할 뿐이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12.02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17>](//cpbc.co.kr/CMS/newspaper/2016/05/rc/635836_1.0_titleImage_1.jpg)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글라스] 스테인드글라스에서 회화로 13세기 절정을 이룬 스테인드글라스는 14세기 이후 변화를 맞아 다양하고 부드러운 색 대비를 이룬 작품들이 등장한다. 작품은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의 피에타. 독일 아우크스부르크 대성당의 로마네스크에서부터 프랑스 파리의 생드니 성당과 샤르트르 대성당, 생트 샤펠 등 중세 고딕 성당에 이르기까지 스테인드글라스는 빛과 색으로 그려진 성경의 빛으로 충만한 성전을 이뤘다. 이렇게 13세기에 절정을 이룬 중세 스테인드글라스는 14세기로 접어들면서 교회건축 양식 변화와 함께 그 표현 양식이 변화했다.이후 찾아온 14~16세기에 이르는 르네상스 시기에는 건축 양식이 변화하면서 채광의 방법도 달라져 고딕 시대만큼 스테인드글라스가 유행하지는 않았다. 중앙 집중식 교회 건축이 등장하면서 고딕성당의 클리어스토리(채광창)를 가득 채웠던 스테인드글라스 대신 대가들의 프레스코 벽화들이 성전 곳곳을 장식하게 됐다.또한 자연주의적인 묘사와 원근법이 도입된 3차원의 공간적 환영을 추구하는 회화의 경향이 등장하면서 스테인드글라스 구성도 그와 유사하게 변화해 갔다. 중세 스테인드글라스가 성경의 주요 장면들을 하나씩 구획된 화면에 압축적으로 묘사했다면, 르네상스 시기의 스테인드글라스는 하나의 연결된 큰 화면으로 구성된 유리에 당시 회화에서와 마찬가지로 원근법에 따른 배경 묘사와 인체의 표현을 드러내고 있다.이탈리아 피렌체 대성당 돔에 설치된 안드레아 델 카스타뇨(Andrea del Castagno)의 스테인드글라스 작품 ‘피에타’는 마치 모자이크처럼 작게 분할된 색유리 조합으로 인체 표현이 그려지고 있다. 아울러 색채에서도 빨강과 파랑을 중심으로 했던 고딕 시기 스테인드글라스와는 달리, 더 다양하고 부드러운 색 대비를 이루고 있어 중세 작품과 뚜렷한 차이를 보여 준다. 그런데 안정감 있는 구도, 납선이 두드러지지 않은 표현, 색유리의 섬세한 분절로 인한 빛의 효과는 아름답지만, 메시지를 집약적으로 전달하는 힘은 다소 약화된 듯하다.르네상스 시기 이후의 스테인드글라스는 당시 회화가 추구하던 기법이 동일하게 추구됐다. 명암법으로 입체감을 최대한 살린 3차원적인 표현이나 섬세한 질감 표현 등이 그것이다. 어쩌면 이는 중세 작품에서 느낄 수 있었던 색유리의 투명함과 명료한 이미지와는 달리 크게 구획된 유리 위에 표현된 한 폭의 회화 작품과도 같다 할 수 있겠다. 그래서인지 르네상스 시기 이후 글라스 페인팅의 수준은 상당했다.흔히 르네상스 시기 이후의 스테인드글라스 예술은 쇠퇴기를 맞았다고 한다. 건축 양식의 변화에 따른 창 양식의 변화, 당시 회화의 영향으로 변화한 스테인드글라스의 표현 양식 등이 그 이유다. 그리고 당시 미술 아카데미에서 스테인드글라스 교육이 이뤄지지 않았다는 점도 가장 큰 이유 중 하나일 것이다. 스테인드글라스는 그 제작 특성상 작품의 디자인, 색유리 선별, 유리 커팅, 페인팅, 조립 등 여러 과정을 거쳐야 완성될 수 있다. 그리고 그중 한 과정이라도 소홀히 하게 되면 전체적인 작품 완성도가 현저히 떨어지게 된다.이렇게 여러 사람의 손을 거쳐 완성되는 스테인드글라스는 과연 누구 작품이라고 해야 할까. 작가의 사회적 지위 향상과 저작권이 중요하게 두드러지던 시기에 수공예적 요소가 강조된 스테인드글라스가 미술 아카데미에서 환영받지 못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르겠다. 이렇게 점차 주된 양식으로서의 위치를 잃어 가던 스테인드글라스는 17세기경에 이르러서는 ‘잃어버린 예술’이라는 표현이 등장할 만큼 사라질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그리고 19세기 아르누보(새 예술 양식)와 고딕 부흥을 통해 다시 부활하였다. 백영민2016.05.18
[세상속으로] 김영란법, 완벽하지 않다이상도(요한사도) 금품수수 및 부정청탁방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3주가 지났다. 그동안 기자라는 직업상 시장상인, 택시기사는 물론 기업 고위 간부, 정부 관료, 장ㆍ차관, 대통령까지 만나봤지만 최근 두 차례 식사 자리 이후 선뜻 약속 잡기가 어렵다.첫 번째 식사는 출입부처 주무관과의 자리였다. 삼각지 주변 순댓국집이라 부담이 없었기에 소주까지 시켜 화기애애하게 이야기를 나눴다. 나이나 사회적 경험으로 봐도 내가 밥값을 내는 게 당연한 것 같아 법이 정한 한도에서 주무관 몫까지 결제했다. 두 번째는 두 달 전에 잡은 금융투자자문사 대표와 모 금융기관 간부와의 저녁 자리였다. 여의도 일식집 식사하고 이후 2차에서 와인을 몇 잔 나눴고 김영란법을 감안해 비용은 각자 나눠 냈다. 원래 더치페이는 수준이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야 부담이 없다. 아침에 텅 빈 지갑을 보면서 이분들의 연봉과 수백만 원의 업무추진비를 생각하니 앞으로 자주 만나기는 힘들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연봉 3000~4000만 원의 회사원, 1억 원 간부 사원, 그리고 수십억 원의 연봉이 책정된 장ㆍ차관과 최고경영자가 가는 곳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시중에는 우스갯소리로 1998년 IMF 사태나 2008년 금융위기 때에도 불가능했던 황제골프, 황제식사가 김영란법으로 가능해졌다는 말이 돌고 있다.현재 김영란법 적용 대상자는 공무원, 공기관, 금융기관, 사립학교, 언론기관 등에 종사하는 약 400만 명이다. 그러다 보니 국민 중에 이들과 사적으로 얽히지 않은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다. 김영란법과 무관해 보이는 종교계도 예외가 아니다. 실제로 불교계 언론사 재단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한 스님은 재단이사장을 내려놓아야 하는지 심각한 고민을 하고 있고 개신교 주간지 발행인을 겸하고 있는 한 목사님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대폭 줄였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통상 법은 ‘살인하면 처벌한다’ 처럼 사람이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정하고 나머지 행위는 자유롭게 하는 네거티브 방식이다. 하지만 김영란법은 해당 기관 종사자와의 만남이 모두 청탁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전제를 깔고 ‘3ㆍ5ㆍ10만원’ 범위 내에서는 가능하다는 포지티브 방식을 띠고 있다. 김영란법이 시행되면서 도래된 사회 변화 중 하나는 공동체 의식 대신 개인주의가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는 점이다. 3주밖에 지나지 않았지만 공직은 물론 성당까지 괜히 서로 얽히지 말고 ‘너는 너, 나는 나’라는 문화가 새로운 풍토로 자리 잡아 가고 있다. 김영란법의 목적은 부정 청탁 관행을 바로잡고 사회 전반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높이려는 것이다. 3주를 지내고 보니 법이 추구했던 긍정적 면과 함께 예상 이상의 부정적인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얼마 전 문학평론가인 박동규 서울대 명예교수는 한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했다. “법 취지에는 공감하지만 포괄적으로 대상을 정해서 온 나라가 도둑을 감시하듯 살게 생겼어요.”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농촌의 품앗이나 두레, 향촌 규약이 상징하듯 공동체 문화가 강조되는 곳이었다. 가톨릭교회도 초기부터 공동체를 지향한 것은 마찬가지다. 성경에 나오는 ‘빵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 명의 군중을 먹이셨다’(마태 14,13-21 참조)는 말씀은 교회에서 공동체를 상징하는 기적이다. 사회에서 공동체 의식은 점점 사라지고 개인주의, 끼리끼리 형태로 흘러가고 있다면 심각히 생각할 일이다. 입법 목적이 선하다고 해서 김영란법이 완벽한 법은 아니다. 평화신문2016.10.12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 예수님의 탄생 예고(1,26-38) ② 피앗(fiat)](//cpbc.co.kr/CMS/newspaper/2017/03/rc/674227_1.0_titleImage_1.jpg)
[이창훈 기자의 예수님 이야기] (5) 예수님의 탄생 예고(1,26-38) ② 피앗(fiat)“주님의 종이오니 말씀대로 제게 이루어지소서” 나자렛 주님 탄생 예고 대성당 안에 있는 주님 탄생 예고 경당.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게 나타나 예수님 탄생을 예고하고 마리아가 이를 받아들인 그 장소를 기념하는 경당이다. 제대 정면과 아래에는 대리석 위에 ‘이곳에서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마리아가 순명으로 응답한 순간 성령으로 말씀을 잉태하셨음을 알려준다. 가톨릭평화방송여행사 제공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 나자렛 산골 처녀 마리아는 약혼한 처녀입니다. 직업이 목수인 약혼자 요셉은 그다지 내세울 게 없지만 “의로운”(마태 1,19)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의 사건이 벌어집니다. 천사가 마리아의 집에 찾아와 “은총이 가득한 이여, 기뻐하여라. 주님께서 너와 함께 계시다”(1,28) 하고 인사를 건넵니다. 이 말이 무슨 뜻일까 생각하는 마리아에게 천사는 더 놀라운 말을 합니다. 아기를 가져 아들을 낳게 될 것인데 그 아들이 ‘지극히 높으신 분’(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불리게 될 것이고 그가 다스리는 나라는 끝이 없으리라는 것입니다.(1,31-33)천사의 예고와 마리아의 반응이 놀라운 전갈에 마리아는 이렇게 반응합니다. “저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겠습니까?”(1,34) 성경학자들은 마리아의 반응을 “제가 그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저는 늙은이이고 제 아내도 나이가 많습니다”(1,18)라고 한, 요한 세례자의 아버지 즈카르야의 반응과 대비시킵니다. 즈카르야의 반응은 믿지 못하겠으니 표징을 보여달라고 요구한 것인 반면, 마리아의 반응은 ‘깨달음을 추구하는 믿음에서 나온 것’이라고 풀이합니다. 즉 마리아의 반응은 천사의 말을 믿으면서도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지 해명해 달라는 요청이라는 것입니다. 마리아의 이 반응에 대한 천사의 설명은 더욱 놀랍습니다. “성령께서 너에게 내려오시고 지극히 높으신 분의 힘이 너를 덮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뿐 아닙니다. “태어날 아기는 거룩하신 분, 하느님의 아드님이라고 불릴 것”이라는 엄청난 말을 덧붙입니다.(1,35)천사의 말을 다시 살펴봅시다. ‘성령’은 하느님의 영입니다. ‘지극히 높으신 분’은 ‘하느님’을 가리키는 또 다른 표현입니다. 또 ‘거룩함’은 오롯이 하느님에게만 속하는 속성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미사 때에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온 누리의 주 하느님” 하고 하느님을 소리 높여 노래합니다. 그러니 천사의 말은 아기가 잉태되는 것은 하느님의 능력일 뿐 아니라 그 아기는 하느님과 마찬가지로 ‘거룩할’ 뿐 아니라 ‘하느님의 아드님’이라는 것입니다. 깨달음을 추구하는 믿음천지가 개벽할 일입니다. 처녀가 임신하고 아들을 낳는데, 그 일이 남녀의 결합이 아닌 하느님의 힘으로 이뤄지고, 게다가 그 아기는 ‘거룩한’ 아기, 하느님의 아드님으로 불리게 된다니요. 요즘 첨단 생명공학의 발달로 ‘복제 인간’이란 말도 심심찮게 들립니다만, 20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그야말로 꿈에서도 상상조차 못 할 일입니다. 더욱이 하느님의 능력으로 그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고 그 사실이 주변에 알려진다면, 마리아는 하느님을 모독한 죄로 단죄받을 수도 있습니다. 하느님의 능력으로 아기를 잉태했다는 사실을 비밀로 하더라도 사정이 달라질 것은 없습니다. 처녀가 아기를 가졌다는 사실은 사람들이 볼 때 간음의 증거가 됩니다. 그러면 그 당사자는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맞아 죽는 벌을 받아야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어쨌거나 처녀 마리아에게 좋을 일은 없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천사는 한술 더 뜹니다. 친척 엘리사벳이 아기를 낳지 못하는 나이에도 “임신한 지 여섯 달이나 되었다”면서 “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고 말합니다.(1,36-37)하느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다는 천사의 마지막 말은 천사가 지금까지 한 말을 보증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하지만 산골 처녀 마리아에게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엄청난 압박일 수 있습니다. ‘이 모든 일은 하느님이 하시는 것이니 그대로 이루어지고야 만다. 그런데 마리아, 너는 어떻게 할래?’라는 물음입니다. 어쨌거나 마리아는 처녀의 몸으로 임신하게 되고, 그 사실이 드러나면 죽음을 피할 수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주님 뜻을 헤아린 마리아루카는 천사의 이 해명에 대한 마리아의 마지막 반응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1,38) 천사의 말이 그대로 이뤄질 경우에 인간적으로 마리아에게 좋을 일이 하나도 없으리라는 것은 쉽게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리아는 ‘그대로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피앗, fiat) 하고 응답합니다. 마리아가 이렇게 응답하는 데엔 충분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자신을 ‘주님의 종’으로 여겼기 때문입니다. 종은 주인이 하라는 대로 합니다. 지혜롭고 충직한 종은 주인의 뜻을 헤아려 처신합니다. 마리아는 천사의 인사를 받은 첫 순간부터 주님의 뜻을 헤아렸습니다. 그리고 천사의 놀라운 얘기를 계속 들으면서 그것이 주님의 뜻임을 헤아리자 지체없이 ‘피앗’이라고 응답한 것입니다. “보십시오.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저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는 마리아의 응답은 인류 역사를 바꿔놓습니다. 하느님의 아들이 사람이 되신 것입니다. 하느님이 사람이 되시는 놀라운 신비가 한 산골 처녀 마리아의 겸손한 순명을 통해 현실이 되었습니다.되새겨보기 지난 호부터 살펴본 ‘예수님 탄생 예고’ 이야기는 여러 가지를 묵상하게 해줍니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마리아의 모습을 통해 두 가지만 되새겨봅시다. 첫째, 곰곰이 생각하는 자세입니다. 요즘같이 바쁘게 움직이고 분ㆍ초를 다투는 세상에서는 ‘빨리빨리’ ‘즉문즉답’(卽問卽答)이 인정받지, 곰곰이 생각하는 자세는 별 대접을 받지 못하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가 어쩌면 지나치게 ‘빨리빨리’에 젖어서 생기는 것은 아닐까요? 때로는 한 걸음 물러서서 생각할 여유를 지닐 때, 우리는 삶 속에서 하느님의 뜻을, 겉모습 너머에 있는 참된 진실을 헤아릴 수 있습니다. 둘째, 우리는 우리의 앞날을 지나치게 예단하려 합니다. 그래서 아직 벌어지지 않은 상황을 가능성만 가지고 이렇게 저렇게 고민합니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지금 벌어지는 현실입니다. 마리아가 아이를 가진 후에 생길 수 있는 여러 상황을 자꾸 저울질했다면 결코 “저는 주님의 종입니다. 말씀하신 대로 제게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라고 응답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매일 순간마다 벌어지는 일에서 하느님 뜻을 헤아리고 그 뜻을 따르려는 노력입니다. 마리아는 이를 잘 보여줍니다. 백영민2017.03.08
![[창간 27돌] 본지 ‘묵상시와 그림’ 연재하는 김용해(필명 김요한) 시인](//cpbc.co.kr/CMS/newspaper/2015/05/rc/569463_1.0_titleImage_1.jpg)
[창간 27돌] 본지 ‘묵상시와 그림’ 연재하는 김용해(필명 김요한) 시인성경과 기도에서 건져올린 시, 나눌 수 있어 행복 시인 릴케는 말했다. “시는 체험이다.” 진실하고 좋은 시는 감정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체험에서 우러나와야 한다는 말이다. 릴케의 이 한 마디는 칠순 시인의 마음을 새삼 울렸다. 그리고 그를 묵상시의 세계로 이끌었다. “그래, 내가 체험한 하느님 말씀을 시로 써보자.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그렇게 해서 일흔을 넘겨 쓰기 시작한 묵상시는 ‘묵상시와 그림’이라는 제목으로 현재 평화신문 지면을 빛내는 연재 중 하나가 됐다. 평화신문 창간 27주년을 맞아 2013년 12월부터 평화신문에 묵상시와 그림을 연재하고 있는 김용해(요한 사도, 72, 필명 김요한) 시인을 만났다. ▶시가 간결해 쉽게 읽힙니다. 그러면서도 깊은 여운이 남고요.“네. 그런 이야기를 많이 듣습니다. 동시 같다는 얘기도 들었고요. 저는 쉽게 읽히는 시가 좋습니다. 이해하기 쉬워야 감동도 전할 수 있지 않겠습니까. 쉽지만 진실된 시를 쓰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묵상시의 영감은 어디서 얻으시는지요.“하느님 말씀인 성경입니다. 제 묵상시는 하느님 말씀, 하느님 마음, 하느님 사랑을 생각하는 시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 말씀을 통해 영혼을 일깨우고 마음을 아름답게 해주는 시를 쓰기 위해 매일 성경을 읽고 기도를 바칩니다.”▶성경을 항상 가까이 두시겠네요.“하루를 기도와 시간 전례, 성경 읽기로 시작합니다. 성경 통독, 성경 필사도 여러 번 했습니다. 성경은 읽을 때마다 의미가 새롭게 다가옵니다. 어제 읽은 구절을 오늘 또 읽어도 다르게 읽히는 걸 보면 참 놀랍습니다.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그에 대한 답이 모두 성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이면 누구나 성경을 읽고 성경 말씀대로 살려고 노력해야 한다고 믿습니다.”▶묵상시를 쓰는 시간을 정해두시는지요.“시 쓰는 시간을 따로 정해두지는 않지만 주로 오전에 쓰게 됩니다. 아침에 성경을 읽고 묵상할 때면 시적 영감이 떠오릅니다. 하느님 말씀을 듣는다고 해야 할까요. ‘저기 저 꽃이 왜 피는 줄 아느냐. 저 바람에 나뭇잎이 왜 흔들리는지 아느냐’ 하고 하느님께서 물어오시기도 하고요. 그럼 그런 생각과 영감을 공책에 적어둡니다. 그리곤 몇 날 며칠이고 묵혀둡니다. 그 사이 제 생각은 자라 있고, 깨닫는 것들이 생기거든요. 시간이 흐른 뒤 공책을 펼쳐 묵상의 영감들을 문장으로 엮습니다. 그리고 또 며칠 묵혀뒀다 꺼내서 고치고, 또 묵혀두고 고치고…. 그렇게 반복해서 하나의 시가 탄생합니다”▶시는 언제부터 쓰셨는지요.“중학교 때부터 시인을 꿈꿨습니다. 제가 제주 서귀포 출신인데 고3 때 일반인이라고 속이고 제주방송국 신춘문예에 시를 응모한 적이 있었는데 덜컥 당선됐었죠. 그때 ‘아 나도 시를 쓸 수 있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제주 사범학교를 나와 교편생활을 하면서도 시를 계속 썼고, 1976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시 ‘散調’(산조)가 당선돼 정식으로 문단에 데뷔했습니다. 이후 「예수의 편지」 「민중일기」 「제주도 사투리 시집」 등을 발표했습니다. 1994년 바오로딸 출판사에서 시산문집 「부부들의 사랑 이야기」를 냈는데 최근 29쇄를 찍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M.E. 부부들의 교과서로 불린다고 해서 보람을 느끼고 있습니다.”▶시와 함께 곁들인 그림도 시와 잘 어울립니다.“그림은 정말 보잘것없는 수준입니다. 시만 싣기엔 밋밋할 것 같아서 처음 그려본 것입니다. 전문성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그리는 것도 좋아해서요.”▶묵상시를 읽는 독자분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요즘 자주 드는 생각은 ‘제가 하느님을 몰랐더라면 어떻게 살 수 있었을까’라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힘든 순간엔 늘 하느님께서 함께해주셨고, 덕분에 이겨낼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 늘 하느님을 생각하며 사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묵상시를 통해 하느님 말씀을 전달하도록 힘쓰겠습니다. ” 글·사진=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5.05.06

붓끝에 생명의 빛 담아 하느님 사랑 전하고파‘빛으로 감싸리’ 주제로 화가 김형주 화업 40여 년 회고전 김형주씨가 자신의 추상 작품 ‘하늘과 땅’ 앞에서 미소 짓고 있다. 이힘 기자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해요.”화가 김형주(이멜다, 69, 서울 압구정1동본당)씨는 “화가는 그리는 대상을 진심으로 사랑해야만 그림을 그릴 수 있다”며 “화가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 사랑”이라고 강조했다. 4월 14일부터 서울 서초동 흰물결갤러리에서 ‘빛으로 감싸리’를 주제로 개인전을 열고 있는 김씨는 “대상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붓을 들 수 있겠어요. 자연을 그리려면 자연을 사랑해야 하고, 예수님을 그리려면 예수님에 대해 잘 알아야 하지요”라며 사랑에 대한 자신의 미학을 설명했다. 그는 이번 전시에 ‘인생이 무엇일까’하고 의문을 품었던 30대 때의 ‘추상화’에서부터, 가정 문제로 방황했던 40대 때의 검(劍) 작품, 성미술에 발을 들여놓은 50대 이후 최근 작품까지 60여 점을 선보이고 있다. 6월 11일까지 갤러리 전관에서 열리는 전시회는 김씨의 40여 년 화업을 총망라한 ‘회고전’이다. 김씨는 124위 순교 복자화인 ‘새벽빛을 여는 사람들’을 그린 화가다. 2014년 8월 교황 방한 당시 프란치스코 교황이 주례한 124위 시복 미사에서 대형 걸개그림으로 선보인 그의 순교 복자화는 방송을 통해 전 세계로 전파를 탔다. 작품속 복자들은 한결같이 웃고 있는데, 그것은 고통 속에서 신앙을 증거하다 순교했지만, 하늘나라에서 예수님과 함께 행복하게 지내고 있음을 표현한 것. “젊은 시절엔 하늘과 땅 사이에 인간이 존재하고, 그 인간 중 하나인 나는 어떤 존재인가 하는 의문에 휩싸였지요. 그래서 우주처럼 보이는 추상화를 많이 그렸습니다. 마흔을 넘기면서 나무로 검 형상을 깎고 다양한 재료를 붙이고 새기는 작업을 했어요. 무당이 굿할 때 칼을 들고 춤을 추듯, 칼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다는 주술적 의미가 있습니다.”김씨는 작품 활동을 통해 인생의 의미와 아름다움을 찾아갈수록 내면에서 ‘종교적인 심성’을 발견하게 됐다. 작품의 예술적 완성도를 높여갈수록 주님 사랑의 아름다움에는 미치지 못함을 깨달았다고 했다. 그래서 50대부터 본격적으로 성미술을 시작했다. 화가였지만, 처음 도전하는 성미술은 쉽지 않았다. 그래서 처음엔 묵주기도의 각 신비를 묵상하며 소묘 작품에 몰두했다. 성경 공부도 시작했다. 루카 복음을 155편의 소묘 작품으로 만들어냈고, 토빗기ㆍ탈출기 등 성경 이야기를 어린이들도 쉽게 감상할 수 있도록 동화풍 작품도 그렸다. 또 한동안 이콘에 빠졌다. 그 과정을 거치면서 ‘단호하면서도 살아 있는 눈빛’을 가진 예수님 얼굴을 그릴 수 있게 됐다. 김씨는 “전시회를 통해 하늘과 땅, 따스한 빛을 느끼며 작은 새싹이 돋아나는 듯한 생명력을 느끼게 하고 싶다”면서 “생명력의 원천은 사랑이고, 사랑 그 자체이신 하느님을 그림을 통해 드러내고 싶다”고 말했다.문의 : 02-535-7119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평화신문2016.04.27
올해 사순 키워드는 ‘자비’와 ‘교회 가르침’ 전국 교구·본당들, 자비의 희년에 맞춰 특강 주제 선정… 병인박해 150년 맞이 교회사 특강도 마련 사순 시기가 되면 교구별로 주교좌본당은 물론 각 지역 본당에서 사순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는 다양한 주제의 특강을 마련한다. 자비의 특별 희년을 지내는 올해는 ‘자비’를 주제로 하는 특강이 많이 준비됐다. 또 ‘교회 가르침’과 관련된 특강도 눈에 띈다.서울 명동주교좌본당은 ‘교회 가르침을 중심으로 새로운 복음화를 실현하는 해가 되자’는 교구장 사목 방침에 따라 22일부터 3월 14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 ‘성경 봉독과 권고와 가르침에 열중하십시오’를 주제로 특강을 연다. ‘사도신경에 담긴 신앙고백’, ‘성경과 교회의 가르침에 나타난 회심ㆍ친교ㆍ봉사’을 소주제로 한 강의를 준비했다.서울 성내동본당은 3월 10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 「가톨릭 교회 교리서」 요약본을 교재로 △내세 교리 △일곱 성사 △성모 마리아 등을 주제로 특강을 연다. 서울 면목동본당은 21ㆍ28일 교중미사 중 자비의 희년 특별 강론을, 응암동본당은 ‘하느님 아버지처럼 자비로이’, ‘자비와 희망’ 등을 주제로 20일부터 3월 12일까지 매주 토요일 저녁 7시 미사 후에 특강을 마련한다. 수원교구는 26일 오후 2시 정자동주교좌성당에서 ‘극기복례 위인지본’(자기를 극복해 예로 돌아가는 것은 인을 행하는 근본이다)을 주제로 ‘자비의 특별 희년 기념 사순 특강’을 개최한다. 이근덕(교구 복음화국장, 동양철학 박사) 신부가 강연한다. 수원 권선동본당은 ‘가톨릭 교회 핵심 교리와 하느님의 자비’를 주제로 21일부터 3월 6일까지 주일 오후 1시에 특강을 진행한다.춘천교구 죽림동주교좌본당은 △자비의 희년을 어떻게 보낼 것인가 △성경에 나타난 하느님의 자비 △우리는 하느님의 자비를 어떤 모습으로 받을 수 있는가 △하느님 자비에 대한 우리의 응답 등을 주제로 22일부터 3월 21일까지 매주 월요일 저녁 7시에 사순 특강을 연다. 인천교구 부평지구는 ‘주님, 자비를 베푸소서’를 주제로 10일부터 자비의 희년 사순 기도회를 열고 있다. 3월 23일까지 매주 수요일 저녁 7시 부평4동성당에서 진행된다.병인박해 150주년을 맞아 교회 역사를 주제로 한 사순 특강을 마련한 본당도 있다. 초대 조선대목구장 브뤼기에르(1792~1835) 주교 현양 사업을 하는 서울 용산본당은 18일부터 3월 17일까지 매주 목요일 저녁 8시에 한국교회의 시작부터 병인박해(1866년)까지의 역사를 다루는 특강을 마련한다. 조현범(토마스)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강의한다. 서울 가락동본당도 3월 12일까지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 미사 후 한국교회사 강의를 연다. 이색적인 주제도 눈에 띈다. 서울 발산동본당은 ‘인간 생명, 생명 돌봄, 호스피스’(19일~3월 4일 매주 금요일 저녁 7시 30분), 쑥고개본당은 ‘생태, 「찬미받으소서」’(18일~3월 17일 매주 목요일 저녁 8시), 대치4동본당은 ‘도스토옙스키와 자유’(3월 4일 오후 8시)를 주제로 특강을 마련한다. 음악 묵상회를 준비한 본당도 있다. 서울 신정3동본당은 5일 저녁 7시 ‘사순절 묵상 - 폴리포니 앙상블’ 공연을, 춘천 스무숲본당은 3월 8ㆍ9ㆍ17일에 ‘사순 음악 묵상회’를 개최한다. 8ㆍ17일에는 저녁 7시 미사 후, 9일에는 오전 10시 30분 미사 후 연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평화신문2016.02.16
![[나의 신앙 나의 기업] (28) 황성일(안셀모) ㈜동아인업 대표이사](//cpbc.co.kr/CMS/newspaper/2017/02/rc/671116_1.0_titleImage_1.jpg)
[나의 신앙 나의 기업] (28) 황성일(안셀모) ㈜동아인업 대표이사 맨주먹으로 시작한 타향살이. 반 백 년이 흐르면서 타향은 제2의 고향이 됐고, 사진식자공으로 업계에 첫발을 들인 젊은이는 지역 최대 인쇄업체 대표가 돼 이제 희수(喜壽)를 맞고 있다. 황성일(안셀모, 77) ㈜동아인업 대표의 삶과 신앙 이야기다. 인쇄물을 살펴보는 황성일 대표이사. 부산시 부산진구 범천로 16에 있는 ㈜동아인업. 외형은 허름해 보이지만 임직원 40여 명을 둔 부산 지역을 대표하는 인쇄사다. 인쇄만 하지 않는다. 도서출판 ‘지평(地平)’이라는 출판사와 부설기관 디자인개발연구소도 두고 있다. 기획에서 편집 출판 인쇄 제본까지 모든 공정을 자체적으로 소화한다. 설립자인 황성일 대표이사는 기부와 나눔 실천에 앞장서는 향토 기업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지난 2015년 1억 원 이상 고액을 기부한 이들에게 수여되는 아너 소사이어티(Honor Society) 회원이 됐다. 하지만 황 대표는 훨씬 이전부터 교회와 지역 사회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기부와 나눔을 실천해 왔다. 돈이 많아서가 아니었다. 기부와 나눔은 그 자신도 모르게 삶의 기술이자 철학이 됐다. 가난 극복하고 나누고 베풀어 황 대표 고향은 대구 인근 경북 경산 자인면이다. 부산에 내려온 것은 20대 중반 때였다. 고향인 대구에서 성공하고 싶었으나 하는 일마다 실패하는 바람에 아무런 연고가 없는 부산에서 새롭게 출발하기로 작정했다. 막노동으로 전전하다가 잡은 직업이 사진식자였다. 타자기 형식으로 사식을 치는 식자공으로 출발했으나 서울을 오가면서 배운 끝에 부산에서 처음으로 컴퓨터 편집기를 도입, 1972년 ‘동아사진식자사’라는 식자회사를 차렸다. ㈜동아인업의 시작이었다. “인쇄소의 하청작업을 맡아 하면서 쌓은 기술을 활용해 부산사진식자협회를 만들었습니다. 사진학자학원을 개설해 제자들도 양성했고요. 그런데 시간이 흐르면서 제자들과 본의 아니게 경쟁 관계가 자꾸 형성되더군요. 그래서 인쇄 쪽으로 방향을 조금씩 바꾸기 시작했지요.” 유신 체제의 종말과 제5공화국으로 이어지는 1970년 후반과 1980년대 초반에 부산 지역에는 민중 문학을 하는 이들이 꽤 있었고, 학창시절 정치학을 전공했던 황 대표는 자연스럽게 이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출판사를 운영했다. 황 대표는 민중문학을 한다는 이유로 블랙리스트에도 오르게 됐다. “이렇게 출판사를 운영해서는 빵 문제를 해결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이 또한 인쇄 쪽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됐습니다.” 주력을 인쇄업으로 돌렸지만 시장은 만만찮았다. 관공서 쪽의 수주는 받을 생각도 하지 않았지만 들어오지도 않았다. 유통 업계로 눈을 돌렸다. 유통업계는 급하게 처리해야 하는 일거리가 많았고 물량도 컸다. 수익이 생기면 재투자해 시설을 확충했다. 회사는 점점 성장했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조롭게 진행된 것은 아니다. “제게는 부산이 혈연, 학연, 지연 등 아무런 연고가 없는 곳입니다. 사진식자공에서 출발해 자영업으로 사업을 시작할 때에 도움을 받을 데가 전혀 없었습니다. 대출을 받으려면 보증인을 세워야 했는데, 연고가 없으니 보증인을 세울 수가 없었지요. 이런 상황에서 살아가려면 가진 것을 먼저 나누고 베풀지 않으면 안 되었습니다.” 황 대표의 나눔은 작은 데서 출발했다. 책을 만들려는 사람에게는 종잇값만 받고 책을 만들어 주고, 인쇄 홍보물이 필요한 곳에는 실비만 받거나 나중에 비용을 탕감해 주는 식으로 기부를 실천했다. 이런 식으로 부산 소년의 집을 후원하기 시작한 지 20년 가까이 된다. 소년의 집 오케스트라 정기 연주회 관련 인쇄 홍보물 지원은 도맡아 하고 있다. 사회복지기금 출연, 장애인에게 일자리 제공 황 대표는 2010년에는 10억 원을 출연, 사회복지법인 동인복지재단을 만들었다. 재단은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동인직업재활센터를 운영한다. 재활센터에는 현재 약 40명의 장애인이 정규 직원 4명의 지도와 도움을 받아 쇼핑백, 현수막, 인쇄물 등을 생산, 납품한다. 황 대표는 이사장 직함을 갖고 있지만 재정에는 일절 관여하지 않는다. 다만 일감을 주선하는 데에 관심을 쏟을 뿐이다. 살기 위해서 시작한 기부와 나눔.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황 대표는 기부와 나눔의 의미를 더욱 깊이 체득하게 됐다. 한 마디로 “나눔은 삶을 윤택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그래서 황 대표는 “행복하고 싶으면 나눔을 실천하라”고 말한다. 황 대표가 신앙에 귀의하게 된 것은 1980년이었다. 먼저 신자가 되신 어머니의 권유를 받았다. IMF 외환위기 때인 1997년 괴정본당 사목회장을 맡은 것을 시작으로 부산교구 평협 부회장과 부산 가톨릭경제인회 회장으로도 봉사했다. 현재 본당은 사하본당이지만 레지오 마리애 활동은 괴정본당에서 하고 있다. 쁘레시디움(주님의 성전) 주회를 특이하게도 수요일 새벽 6시 30분에 한다. 880차를 지냈으니 벌써 17년째 되는 셈이다. 황 대표는 “새벽 주회를 하면 불참 핑계를 댈 거리가 없다”면서 새벽 주회 예찬론(?)을 편다. 20년 이상 아침에 출근하면 매일 사무실 복도와 계단을 청소하다가 직원들의 거듭된 만류에 최근 들어 청소를 중단하고 미화 직원을 채용했다는 황 대표는 ‘게으른 자는 개미에게서 지혜를 배워라’는 잠언의 말씀(6,6)을 좋아하는 성경 구절로 꼽는다. 40년 된 목요학술회 창립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것을 비롯해 향토기업사랑 부산시민연합 상임대표, 재부 대구경북시도민회 회장, 부산시민센터이사 등으로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활발히 봉사하고 있는 황 대표는 사업하는 후배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말을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개구리, 올챙이 시절을 생각하십시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흔들림 없이 의연하게 정도를 걸으십시오.” 이창훈 기자 changhl@cpbc.co.kr 서울가톨릭경제인회는 ‘나의 신앙, 나의 기업’에 소개할 교우 기업인들을 추천받습니다. 아울러 경제인회 활동에 함께할 교우 기업인들의 참여를 기다립니다. 문의 : 02-755-7060 백영민2017.02.09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믿음·희망·사랑을 바탕으로 오늘 기도하라(18) 기도의 전통 (「가톨릭 교회 교리서」 2650~2696항) 기도의 원천②향주덕(2656~2658항)주님을 향하는 덕이라는 뜻의 향주덕은 또한 대신덕(對神德)이라고도 합니다. 믿음(신덕), 희망(망덕), 사랑(애덕) 이 셋을 향주덕이라고 부르지요.믿음을 갖는다는 것,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무엇을 뜻할까요? 인생을 보람있게 살려면 가족도 있고 돈도 있고 명예도 있고 봉사도 하고 한편으로는 믿음도 있어야 한다. 그러나 이것은 하느님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느님을 내 삶의 기반으로 삼는다는 것입니다. ‘날아봤자 부처님 손바닥 안’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그리스도 신자는 세례를 받음으로써 이런 믿음의 삶을 시작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손오공처럼 필요할 때만 부처님을 찾고 그렇지 않을 때는 부처님 손바닥에서 달아나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느님께 전폭적으로 귀의함으로써, 하느님을 온전히 신뢰하고 그분께 맡겨드리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교리서는 이렇게 제시합니다. “우리는 신앙의 좁은 문을 통하여…기도 안으로 들어간다.…우리가 찾고 소망하는 것은 주님의 얼굴이며, 우리가 귀담아듣고 간직하고자 하는 것은 주님의 말씀이다”(2656항).희망의 덕은 그리스도의 약속을 신뢰하는 가운데 성령의 은총의 도움으로 참된 행복을 주는 하늘나라와 영원한 생명을 갈망하게 하는 덕입니다(교리서 1817항 참조).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희망을 갖고 기도할 것”을 가르치십니다. 구약성경 시편은 이를 놀랍게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주님께 바라고 바랐더니 나에게 몸을 굽히시고 내 외치는 소리를 들으셨네”(시편 40,2). 바오로 사도의 말씀은 희망과 사랑의 관계를 잘 설명합니다. “희망은 우리를 부끄럽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받은 성령을 통하여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마음에 부어졌기 때문입니다”(로마 5,5). 특별히 전례 생활의 기도를 통해 우리는 이 사랑을 받습니다. 그리고 이 사랑을 받은 우리는 마치 그리스도께서 사랑하신 것처럼, 하느님께서 베푸신 사랑에 사랑으로 응답하게 됩니다. 그래서 “사랑은 기도의 원천”입니다. 또 사랑에서 우러나는 기도를 하는 이는 “기도의 정상”에 도달합니다(2658항). 오늘(2659~2660항)우리는 특별한 순간에 기도를 배웁니다. 예를 들면 주님의 말씀을 들을 때 그리고 주님의 파스카 신비(성찬례)에 참여할 때에 기도를 드리며 기도를 배우지요. 하지만 매일매일의 사건 속에서, 바로 ‘오늘’이 순간에도 언제나 기도를 샘솟게 하는 주님의 성령을 받습니다. 교리서는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시간은 아버지의 손안에 있다. 우리는 지금 아버지를 만난다. 어제도 아니요, 내일도 아닌, 바로 오늘 만나는 것이다”(2659항). 이럴 때 우리의 자세는 어떠해야 할까요? 시편 저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아, 오늘 너희가 그분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면! 너희는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마라”(시편 95,7ㄷ-85ㄱ). 날마다, 순간마다 일어나는 일들 안에서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 나라의 비밀 가운데 하나”라고 교리서는 설명합니다. 정의와 평화의 하느님 나라가 도래하도록 기도하는 것도 좋고 마땅한 일이지만, “일상의 사소한 상황들에 기도가 배어들게 하는 것도 중요한 일”입니다(2660항). “하느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 있다”(루카 17,21). ‘오늘’은 우리 신앙인들에게 삶의 매 순간이 기도가 되도록 하라고 일깨웁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10.04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5)노르베르트 로핑크 (중)](//cpbc.co.kr/CMS/newspaper/2014/10/rc/536659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65)노르베르트 로핑크 (중)성경 연구는 성경이 하느님 말씀이라는 데서 출발 성서학은 성경을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노르베르트 로핑크 역시 주석자들에게 성경이 하느님 말씀임을 잊지 말기를 당부했다. 지난 호에선 노르베르트 로핑크의 생애를 살펴보고 「계시헌장」에 대한 그의 시각을 알아봤다. 그는 「계시헌장」이 근대적인 성경 연구 방법, 즉 역사비평을 수용했다는 점만을 주목하지 않고, 초기 교회에서부터 성경이 교회의 삶과 신학 안에서 지녀온 역할을 부각시키고자 했다. 이제 그가 역사비평을 어떻게 이해하고 평가했는지를 살펴보겠다.역사비평, 과거에 대한 질문근대에 이르러 과거에는 아무도 묻지 않았던 것을 새롭게 묻기 시작했다. 특히 본문 저자와 본문 형성 과정에 대한 많은 의문을 제기했다. 예를 들어 모세 오경과 이사야서가 과연 모세나 이사야라는 사람이 작성했는지를 논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학자들은 이 책이 한 사람의 저자가 아니라 오랜 기간 여러 사람을 거쳐 만들어졌다는 결론을 내렸다.그리고 이런 결론은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쓰인 책이라는 믿음에 상치되는 것으로 여겼다. 따라서 성경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됐다고 믿는 이들은 역사비평적인 접근을 멀리하거나 단죄했고, 역사비평적 접근은 교회 밖에서 이뤄졌다.성경의 개별 책들의 저자가 누구인가 하는 문제가 성령의 영감 또는 정통성과는 별개일 수 있다는 것은 오랜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인정받았다. 그때까지 가톨릭 교회와 역사비평의 관계는 평탄치 않았다. 20세기 중반에 이르러서야 역사비평이 성경 연구의 한 부분으로 받아들여졌다.로핑크는 역사비평이 어둠 속에 덮인 과거를 밝히려 한다고 설명한다. 성경은 과거에 형성됐고 대개 과거를 말하고 있다. 그렇기에 당연히 성경 연구는 그 본문이 형성된 과거, 그 본문에서 이야기하고 있는 과거를 묻게 마련이고 그 정당성엔 이론의 여지가 없다.여기서 로핑크는 역사적 질문과 역사적 방법을 구분한다. 역사적 질문은 기본적으로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는 것이다. 한편 역사적 방법은 그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사용되는 여러 기술과 도구, 규칙 등을 말한다. 그러나 과거를 말해주는 본문들, 특히 오래된 본문들에 대해서는 “실제로 어떤 일이 일어났느냐”는 것 외에 다른 역사적 질문들도 할 수 있다. 그는 플라톤의 「대화」를 예로 든다. 설령 그 대화가 실제로 있었던 대화가 아니라 하더라도 그 등장 인물들이 사실에 충실하게 묘사됐는지, 그리고 원래 본문이 말하고자 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물을 수 있다. 역사와 해석, 그리고 성경 연구역사와 해석 사이의 구분은 본문에 어떤 질문을 던지느냐에 따라 나뉜다. 역사적 사건을 기록한 본문의 경우 역사와 해석이 겹쳐지지만, 일반적으로 오래된 본문이 있다면 그 본문에 대한 접근은 두 가지 가운데 하나가 된다. 본문을 해석해 그 본문이 의도하는 바를 찾거나, 아니면 본문을 사료로 사용해 실제로 일어난 사건을 찾는 것이다. 물론 두 작업은 서로 연관된다. 본문의 발생 상황을 모르고서는 본문을 해석할 수 없다. 반대로 본문을 해석해 이해하지 않고서는 본문을 사료로 이용할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역사적 방법은 오직 역사적 사실을 알아내기 위해서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오래된 본문의 해석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그러나 로핑크는 결정적 문제는 성서학이 역사인가 해석인가 하는 데에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그리스도교 신학자에게, 이 질문을 제기한다는 것은 거기에 대답하는 것”이라고 덧붙인다. 물론 로핑크가 이 질문을 하는 것은 성서학이 해석임을 말하기 위해서다.그리스도교 신학자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과거 그 자체에 대한 관심 때문이 아니다. 그런 관심에서라면 코란 주석을 연구할 수도 있고 플라톤을 연구할 수도 있다. 그가 성경을 연구하는 것은 성경이 그에게 특별한 가치를 지닌 본문이기 때문이다. 그는 다른 모든 그리스도인과 함께 그 책을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그러므로 그의 일차적 관심은 본문의 진술 내용에 있다. 그 책의 기원이나 본래 형태 등에 관한 역사적 질문은 이차적이며, 본문의 해석을 위해 요구되는 것으로서 의미를 갖는다. 그의 목표는 본문의 진술을 이해하는 것이다. 그는 “본문의 세계 안에, 본문의 시각 안에, 곧 다른 어떤 사람의 세계와 시각 안에 들어선다. 그 시대 사람의 지평과 그 자신의 지평은 하나로 융합된다. 이러한 일이 일어날 때 또는 해석자가 여기에 성공할 때 성서학의 의미가 완성된다. 성서학은 해석”이라고 했다.논의의 핵심은 성경 연구에서 역사적 질문이 이차적 성격을 갖는다는 데에 있다. 역사적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것이 성경 이해에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역사비평적인 연구는 성경 연구 안에 포함되고, 본문의 이해를 돕는 것으로서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성경 본문의 주석자가 찾는 것은 본문이 진술하는 의미이며, “본문 안에서 어떤 진술을 하는 이와의 인격적 만남”이다. 성서학은 성경을 하느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기 때문이다.실재에 대한 이해, 진리 문제여기서 로핑크는 매우 현대적인 질문을 제기한다. 역사적인 질문은 성서학 안에서만 제기되는 것이 아니므로, 성서학적인, 곧 로핑크가 이해하는 바와 같이 신학적 맥락이 아닌 순수하게 역사적인 관심에서 성경에 역사적인 질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말하자면 신학자도 성서학자도 아닌 역사가가 성경 본문을 역사비평적으로 연구할 수도 있다. 로핑크는 이 질문을 뚜렷하게 하기 위해 그 가상의 역사가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고 전제한다. 그럴 경우 그의 연구 결과는 성서학에서와 동일할 것인가? 일단은 그렇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일정한 자료에 일정한 방법을 적용하면 결과는 일정하리라 생각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역사비평에는 각자의 실재 이해가 전제된다. 성경의 어떤 부분을 신빙성 있는 것으로 받아들일 것인지를 판단하는 데에서 그 실재 이해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어떤 역사가가 기본적으로 하느님은 존재하지 않고 기적도 있을 수 없다는 이해를 가지고 있고, 다른 역사가는 하느님과 기적이 실제로 확인될 수 있는 개념들이라는 이해를 가지고 있다면 이들의 성경 해석 결과는 동일할 수 없다. 후자가 기적에 대한 본문을 언제나 역사적 사실의 보도로 받아들인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는 선험적으로 기적 보도가 역사적 사실일 수 없다고 여기지는 않는다.그러나 이것은 꼭 역사와 성경 해석 사이의 문제만은 아니다. 역사가들 사이에서도 실재에 대한, 이 세상에 대한 서로 다른 이해를 가지고 있을 때에는 한 사람의 주장이 다른 사람에게는 부조리하게 여겨질 수 있기 때문이다. 철학, 심리학, 신학 등에서도 유신론적 실재 이해와 무신론적 실재 이해는 서로 전혀 다른(거의 소통할 수 없는) 인간관의 차이를 가져온다. 로핑크는 구약 성경을 읽는 데에도 거의 이에 상응하는 차이들이 나타날 수 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경 주석자들 사이에서도, 서로 다른 실재 이해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은 다른 사람의 연구 결과를 서로 다른 방식으로 평가한다.이 시점에서 로핑크는 지적한다. 오늘날 성경 주석은 구약 성경을 사료의 하나로 연구하는 교회 밖의 성경 연구와 대화할 수 있는가? 로핑크는 대화 가능성을 위해서 진리 문제를 침묵할 수는 없다고 단언한다. 역사비평에 대한 위와 같은 로핑크의 견해를 보면, 마치 성경 해석에 관한 최근의 교회 문헌을 읽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난번에도 언급했던 「교회 안의 성서 해석」이나 「주님의 말씀」에서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성경 연구가 학문적이고 비판적인 경향으로 치우쳐 주석학과 신학이 분리되고 있음을 지적하고, 주석자들에게 성경이 하느님의 말씀임을 잊지 말 것을 당부한다. 평화신문2014.10.29
![[여름 휴가철 특집] 메마른 가슴, 가톨릭 영성으로 채운다](//cpbc.co.kr/CMS/newspaper/2016/07/rc/643743_1.0_titleImage_1.jpg)
[여름 휴가철 특집] 메마른 가슴, 가톨릭 영성으로 채운다‘소울스테이’가 주목받고 있다 불교에 ‘템플스테이’가 있다면 가톨릭교회에는 ‘소울스테이’가 있다. 대구대교구 4대리구 천주교문화융성사업단(단장 원유술 신부)이 영적 빈곤으로 메마른 현대인들에게 가톨릭 영성 프로그램을 체험하도록 기획한 소울스테이가 주목을 받고 있다. 소울스테이는 천주교문화융성사업단이 경상북도 지원을 받아 지난해 시작했다. 대구대교구 및 안동교구 지역의 수도원과 피정의 집, 사회복지시설 등 16곳의 가톨릭 기관들이 느림과 성찰, 비움 등을 주제로 영혼의 위로가 필요한 이들에게 진정한 치유의 시간을 제공하고 있다. 모든 프로그램은 신자뿐만 아니라 일반인, 학생, 가족, 단체 등을 대상으로 진행되며, 당일ㆍ1박 2일ㆍ2박 3일 일정 등으로 나뉜다. 자세한 내용은 누리집(http://soulstay.or.kr)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수도원 및 피정의 집△연화리 피정의 집(경북 칠곡군 지천면 칠곡대로 2143)=조용하고 아름다운 곳으로 영적 재충전을 위한 쉼터다. 전례와 기도, 거룩한 독서가 함께하는 피정을 진행하며, 모래 놀이를 통한 상담 치료 등을 받을 수 있다. 054-973-4835 △월막 피정의 집(경북 고령군 쌍림면 월막길 120)=매실 밭 산책로를 따라 14처 십자가의 길이 조성돼 있다. 자연 속에서 성령과 함께하는 금요 은혜의 밤에 참석할 수 있다. 054-954-0951 △왜관 피정의 집(경북 칠곡군 왜관읍 관문로 61)=왜관 성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에서 운영하는 피정의 집. 작가와 화가의 강의를 들으며 자신의 삶을 그림과 글로 표현하는 문학 치유 피정과 수도생활 체험 피정 등이 있다. 054-970-2000△갈평 피정의 집(경북 포항시 남구 오천읍 기림로 1634)=예수성심시녀회 설립자 루이델랑드 신부가 마지막까지 생활했던 사제관이 있는 곳으로 루이델랑드 신부의 체취가 남아 있다. 산행길과 메타쉐콰이어 숲길, 자갈둘레길을 걸으며 심신의 피로를 풀 수 있다. 054-292-2354△평화계곡 피정의 집(경북 성주군 초전면 소성길 330)=자아 찾기ㆍ영성ㆍ명상ㆍ체험ㆍ쉼 다섯 가지를 주제로 한 프로그램으로 가족 간 용서와 화해의 장이 되도록 돕고 있다. 바쁜 삶에서 지친 이들이 스트레스를 해소하고, 평화를 얻어 삶의 생기를 다시 찾도록 치유 및 휴식 프로그램을 지원한다. 054-931-0022△울진 베네딕도 교육관(경북 울진군 울진읍 연지2길 29-20)=거룩한 독서 피정 및 성경 통독 피정, 성경학교 등 개인과 단체를 위한 피정이 가능하다. 054-783-6684▨성지 및 피정의 집△한티 피정의 집(경북 칠곡군 한티로 1길 69)=한티 순교성지에 있는 피정의 집으로 순교자 37기 묘역을 따라 아름다운 순례길이 조성돼 있다. 054-975-5151△진목정 성지(경북 경주시 산내면 내일리 284)=병인박해 때 순교한 세 명의 묘지가 있다. 최양업 신부가 사목 방문을 다녔던 8개 공소 중 하나인 진목 공소가 있다. 054-751-6488▨봉사 시설△민들레공동체(경북 포항시 북구 청하면 용산길 277-6)=만 7세 이상의 중증장애인들이 거주하는 곳으로, 장애 인식 개선을 위한 장애체험과 함께 느림의 미학을 체험하는 시간을 갖는다. 054-246-5005△성요셉재활원(경북 고령군 성산면 성산로 942-4)=장애인 거주 시설로, 장애인 100여 명이 생활하고 있다. 성요셉재활원이 준비한 소울스테이는 장애인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친교를 맺는 것이다. 장애인들이 생활하는 생활실에서 청소를 하고, 장애인들의 식사를 돕고, 보호작업장에서 일손을 도울 기회도 있다. 054-954-4176△베들레헴공동체(경북 포항시 북구 송라면 대전길 56-83)=‘복음과 함께하는 가족 공동체’로 11년 된 중증장애인시설이다. 육체ㆍ정신ㆍ심리적으로 지친 이들에게 묵상과 기도, 산책 등 체험 행사를 통해 삶의 활력을 되찾도록 도와주고 있다. 054-262-8580△포항 들꽃마을(경북 포항시 흥해읍 칠포로 293)=인생검진 프로그램을 통해 일상생활에서 오는 우울과 스트레스를 알아차리고, 마음을 정화ㆍ치유할 수 있다.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을 비롯해 농사 체험도 할 수 있다. 054-262-9093▨체험 시설△무학연수원(경북 성주군 금수면 성주로 678)=신자들의 내적 성숙을 위한 신앙교육 및 가족 피정과 가족 캠프를 실시하고 있다. 자전거 하이킹과 다슬기 체험 등을 할 수 있다. 054-932-0620 △울릉도 도동성당(경북 울릉군 울릉읍 행남길 9)=도동성당이 마련한 소울스테이 프로그램은 울릉 올레길을 탐방하고, 물놀이하는 시간으로 짜여 있다. 긍정적인 자아 찾기를 주제로 한 특강도 마련돼 있다. 2박 3일 프로그램이다. 054-791-2047△울릉도 천부성당(경북 울릉군 북면 천부2길 16, 사진 위)=둘레길 체험을 통해 자아를 찾고, 걷기를 통해 영적ㆍ신체적 치유와 회복의 시간을 갖는다. 최근 본당 설립 50주년을 맞아 영성센터와 교육관을 건립했다. 054-791-0080△농은수련원(경북 예천군 지보면 지풍로 983-41, 사진 아래)=신자와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모임과 교육, 연수 시설이다. 청소년 여름 캠프 및 대학생 인성교육, 가톨릭 교리교사 연수 장소로 적합하다. 운동장과 야외 쉼터, 수영장이 있다. 054-652-0591 cpbc2016.07.06

예수 고통 담은 ‘토리노의 수의’ 한국 온다9월 30일~10월 4일, 1898광장에서 사본 전시 토리노의 수의. 가로 4.41m, 세로 1.13m의 아마포로 돼 있다. 중간 왼편에 예수의 얼굴 형상이 보인다. 예수님의 시신을 감쌌던 천으로 알려진 ‘토리노의 수의’(예수의 성 수의) 사본이 9월 30일부터 10월 4일까지 명동 1898광장에서 전시된다. 토리노의 수의 사본이 한국에서 전시되기는 이번이 처음이다.예수의 성모 관상수녀회ㆍ예수의 성모수녀회(원장 문호영 신부)가 주최하고, 서울대교구 홍보국과 평화방송ㆍ평화신문이 후원하는 이번 전시회는 성 수의에 새겨진 예수님의 형상을 통해 주님의 수난과 죽음, 부활을 묵상하도록 이끄는 자리다.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은 10월 4일 오전 11시 명동 1898광장에서 ‘성 수의 장엄 미사’를 주례한다.토리노의 수의는 가로 4.41m, 세로 1.13m로 장방형의 한 장짜리 아마포다. 시신을 천 위에 올린 다음 발끝부터 머리를 향해 ‘ㄷ’자 형태로 감싼 다음 다시 발끝까지 덮은 형태다. 신약 성경에는 “시몬 베드로가 뒤따라와서 무덤으로 들어가 아마포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다”(요한 20,6)는 구절이 나온다.교회 유물이자 보물 토리노의 수의1350년 발견된 토리노의 수의는 프랑스 리레에서 전시되다가 1694년 이탈리아 토리노로 옮겨졌다. 토리노의 수의는 진위와 관련해 숱한 화제와 의문을 남겼다. 1978년 미국 과학자 30명은 30분 안에 수의가 가짜임을 증명하겠다고 나섰지만, 조사 2년 만에 “현재의 물리 화학적 방법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1988년에는 과학자 21명이 탄소연대측정법을 동원해 1260~1390년 사이의 것이라고 발표했지만, 여전히 설명하지 못한 부분들이 있다. 이후에도 수의를 둘러싸고 새로운 검증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돼왔다.역대 교황들은 논란에 가담하지 않고 토리노 의 수의가 있는 이탈리아 토리노 성 세례자 요한 대성당을 방문, 예수의 성 수의 앞에서 참배했다. 성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은 “이것은 믿음의 문제가 아니므로 교회가 답할 입장이 아니다”라고 했고, 프란치스코 교황은 “수의에 새겨진 얼굴에서 인간의 고통을 발견하고 모든 고통받는 이들 곁에 계시는 예수님을 떠올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전시회를 기획한 문호영 신부는 “이번 전시회는 가톨릭 신앙의 근간이 되는 예수님의 부활에 대한 믿음과 하느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을 더욱 확고히 다져 구원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하게 됐다”며 “토리노의 수의는 현존하는 가장 가치 있는 유물이자 보물”이라고 설명했다. 문 신부는 본지 9월 4일 자(1380호)부터 토리노의 수의에 관한 기고를 4회 연재한다.이힘 기자 lensman@pbc.co.kr 문채현2016.08.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