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앙단상] 지휘자와 연주자의 호흡이 중요하듯](//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6146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지휘자와 연주자의 호흡이 중요하듯이강민(노트케르 발불로, 명동성당 가톨릭합창단 지휘자 음악 칼럼니스트) 지휘할 때 중요한 게 무엇일까? 어떤 이는 좋은 지휘봉과 보면대처럼 소품을 중요하게 생각하고, 또 어떤 이는 연미복을 입고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멋있게 지휘하는 게 중요하다고 여길 것이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것은 ‘지휘를 위한 호흡법’이다. 지휘를 위한 호흡법은 들숨ㆍ날숨ㆍ정지ㆍ숨 등 여러 가지가 있고, 연주자 호흡법과 거의 같다. 좋은 지휘자는 연주자들이 편안하게 연주하도록 돕고 정성껏 준비한 음악을 잘 이끌어 표현한다. 음악이 엇갈리고 지저분하거나 혼란스러울 때는 지휘자의 호흡법에 문제가 있는 경우가 많다.훌륭한 지휘자는 생각하는 음악 표현이 호흡과 일치하고, 하나 된 음악적 호흡을 온몸으로 표현해 지휘하며 연주자와 하나 되는 지휘자다. 이렇게 지휘자와 연주자가 하나 된 연주에 관객들은 감동하고 환호한다. 훌륭한 지휘능력을 갖췄더라도 지휘자의 수준에 맞는 연주자를 만나야 좋은 연주를 할 수 있다. 반대로 지휘자의 실력이 연주자에 못 미치면 좋은 연주를 기대할 수 없다. 사제는 지휘자, 연주자는 신자 같다는 생각이 지휘할 때마다 든다. 사제는 신자들을 지휘하기 위해 신앙과 신학에 대한 충분한 준비와 좋은 지도력이 함께 있어야 한다. 신자는 사제의 지휘를 따라 신앙생활을 잘할 수 있는 기도생활과 성실한 미사 참여, 성경 읽기, 깊이 있는 교리공부 같은 준비를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사제의 신앙, 문화 지식 수준이 신자보다 월등히 높은데 신자가 스스로 수준을 높이려 하지 않고 계속 자신 수준에 만족하며 머무를 때, 수준 높은 사제의 역량은 빛을 잃는다. 반대로 신자의 수준이 사제보다 높을 경우, 사제에 대한 불만이 쌓여 의지하지 못하게 되고 신앙적으로 방황하는 일이 생긴다. 개신교회를 예로 들면 1980년대 후반부터 1990년대 초, 여러 교회에서 신자가 성직자의 수준을 추월하게 되자 성직자에게 수준 향상을 요구하게 됐다. 이 때문에 성직자들이 공부를 게을리하지 않았고 높은 영성을 갖추려는 노력으로 성직자의 수준을 높이는 계기가 됐다. 반대 사례로는 수준 높은 성직자를 초빙했으나 신자가 그 수준을 따라가지 못해 신자 스스로 교회 안에 예술문화학교, 신학 강좌, 인문학 강좌 개설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수준 향상을 위한 노력을 했다. 합창 합주를 할 때 연주자는 다른 이의 소리를 들으며 그에 어울리는 소리로 연주하는 것이 무척 중요하다. 자신의 소리가 튀거나 다른 이의 실력에 못 미치는 경우 조화로운 연주를 할 수 없다. 또 지휘자의 지휘를 잘 봐야 한다. 지휘와 관계없이 자신의 박자나 음악적 표현을 하면 지휘자와 다른 연주자는 조화롭지 못한 음악 때문에 당황스러운 상황을 맞게 되며, 듣기 불편한 연주가 돼 버린다. 지휘자는 모든 연주자가 내는 소리를 들으며 정확하고 안전하게 지휘해 조화로운 연주를 해야 한다. 또 모든 연주자의 실력이 점차 향상되도록 연주자 수준에 맞게 지도해야 한다. 연주자와 지휘자의 이러한 노력은 좋은 연주로 이어져 관객에게 기쁨과 감동을 주는 실력 있는 연주단체로 성장할 것이다. 지휘자와 연주자의 관계처럼 사제와 신자도 각자의 위치에서 온 정성을 쏟으며 살고, 주변 이웃과 특히 소외되고 고통받는 온 세상 사람들 소리에도 귀 기울여 하느님의 사랑을 전하는 조화롭고 아름다운 공동체의 모습을 하느님께서 보신다면 무척 감동적인 연주를 보고 환호하는 관객처럼 참 기뻐하실 것 같다. 평화신문2016.10.12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령, 우리를 변모시키는 사랑의 불](//cpbc.co.kr/CMS/newspaper/2016/11/rc/661455_1.1_titleImage_1.jpg)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성령, 우리를 변모시키는 사랑의 불74. 삼위일체의 성녀 엘리사벳의 영성 ⑦ 성령께서는 우리를 거룩하게 불사르고 변모시키신다. 사진은 바티칸 성 베드로 대성전 중앙 제대 뒤 성령을 표현한 스테인드글라스화. 성녀 엘리사벳이 체험한 성령성녀 엘리사벳의 영성에서 주목할 또 다른 주제로 성령과의 관계를 들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성녀는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 2장 10절을 바탕으로 성령이야말로 “하느님에 대한 사정을 유일하게 아시는 분”(서간 274)이라고 소개하며 우리가 하느님의 심오한 신비를 통찰할 수 있는 은혜를 얻기 위해 성령께 기도해야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또한 성녀는 성령을 삼위일체 안에서 세 위격 간의 ‘일치’를 완성하시는 사랑의 영(靈)으로 보았습니다(서간 193). 특히 성녀는 성령을 성부와 성자를 하나로 일치시키는 “두 위격 사이의 결속”으로 보았습니다. 그래서 삼위일체 하느님의 신비를 알아들으려면 무엇보다 성령의 움직임에 자신을 열고 그분께 온전히 의탁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그것은 성령이야말로 우리와 삼위일체 하느님 사이를 이어주고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신비 안에 살게 하며 신적인 생명을 전해 주는 가운데 그 관계를 완성으로 인도함으로써 우리의 성화 과정을 실제적으로 완성시켜 주는 분이기 때문입니다.살라버리고 변모시키는 불이신 성령그러면 성녀의 글에서 성령은 어떤 상징으로 드러날까? 성녀 엘리사벳은 우리를 ‘살라버리는 불’, ‘변모시키는 불’로 성령을 표현하곤 했습니다. 사실, ‘불’이라는 상징은 성경에서 그리고 신비가들의 여러 작품에서 생명의 시작이자 인간을 쇄신하고 정화하며 변모시키는 거룩한 힘으로서의 성령에 대한 체험을 언급하기 위해 사용되곤 했습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히브리인들에게 보낸 서간 12장 29절의 “우리의 하느님은 다 태워버리는 불이십니다”라는 말씀을 바탕으로 성령에 대한 자신의 체험을 설명했습니다. 성녀에게 있어서 성령은 “건드리는 모든 것을 당신 안에서 소멸시키고 변모시키는 사랑의 불”(믿음 안에서 천국, 13)입니다. 성녀는, 이 신적인 불이 간직한 쾌감은 결코 식을 줄 모르는 활동을 통해 우리를 존재의 근본에서부터 새롭게 해주신다고 보았습니다. 성녀에 따르면, 성령은 무엇보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모시키는 신성한 사랑의 힘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의 삶이 더욱 더 거룩하게 되는 가운데 성부께서 우리를 향해 고개를 숙이실 때 우리 안에서 당신이 총애하고 사랑하는 성자의 모상을 알아볼 수 있게”(믿음 안에서 천국, 12) 해주십니다.신비적인 죽음으로 인도하는 성령그런데 성령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시는 우리의 변모 과정은 우리로 하여금 매일 우리 자신을 더 포기하는 가운데 점점 더 작아지게 해줍니다. 그럼으로써 그리스도께서 우리 안에서 점점 더 자라고 높이 들어 올림을 받게 합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이 과정을 ‘신비적인 죽음’이라 불렀습니다. 이렇게 신비적인 죽음의 과정을 거치는 사람들은 자신을 불태우는 사랑의 불 속에 잠기기 위해 서슴없이 자신을 없애고 벗어던집니다. 그들에게 이 죽음은 고통과 단절이 아니라 오히려 감미로움으로 내적인 기쁨으로 다가온다고 성녀는 전합니다. 우리를 이 신비적인 죽음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불은 다름 아닌 성령이십니다. 이 신비적인 죽음의 과정은 믿음과 사랑 안에서 이루어지는 과정으로 이는 루카 복음 12장 49절(“나는 세상에 불을 지르러 왔다. 그 불이 이미 타올랐으면 얼마나 좋으랴?”)에서 보듯이 예수께서 간절히 바라신 소망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령의 불을 통해 우리를 영적으로 성장시키시고 그럼으로써 당신과 동등하게 해주십니다. 그래서 당신과 더불어 삼위일체의 내밀한 친교에 참여하도록 우리를 인도하십니다. 성녀 엘리사벳은 이를 관상적인 삶이라고 불렀습니다.내적 여정으로 초대하시는 성령성녀는 또한 우리 존재를 거둬들여 내면으로 집중하게 해주는 성령의 활동에 주목했습니다. 그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우리 존재의 중심 가장 깊은 곳으로 내려가게 함으로써 그곳에 현존하시는 하느님과의 만남을 실현해 주신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세례를 통해 하느님의 실제적인 자녀로 거듭난 우리는 성령의 움직임에 우리를 내어 맡김으로써 삼위일체 하느님과의 친교의 삶을 살아가기 위한 실제적인 변모 과정을 거치게 됩니다. 성령께서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 우리를 자극하시고 인도하시는 가운데 우리의 영적인 성장을 도모해 주십니다. “실제로 하느님의 자녀가 된 영혼은 성령에 의해 움직여진 사람을 말합니다. 하느님의 영에 인도되는 사람은 누구나 하느님의 자녀입니다”(믿음 안에서 천국, 31). 성녀에 따르면, 성령께서는 우리 영혼의 하늘 안에 거하시며 그 중심에서부터 일하심으로써 우리를 변모시켜 주시고 우리 안에 “거룩한 아름다움 자체이신 분”(서간 239), 즉 그리스도의 모습이 새겨지게 해주십니다. 문채현2016.11.23
[성경 속 도시] (28) 페르게소아시아 전교 여행의 시작지 소아시아 남부의 고대 도시 중 하나인 페르게는 팜필리아 지방의 한 도시로 기원전 12~13세기쯤에 건설된 것으로 추정된다. 페르게는 트로이 전쟁 이후에 발전했다. 리디아 왕국에 이어 페르시아의 점령하에 들어갔던 페르게가 기원전 334년 알렉산드로스 대왕에 의해 해방되고 최고 번영기를 누린 것은 로마 시대였다. 그래서 우리가 현재 페르게에서 볼 수 있는 유적 대부분은 역시 로마 때의 것이다. 현재도 유적 발굴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페르게는 해안으로부터의 공격을 막을 수 있는 위치에 있었고 팜필리아 평원과 서동부의 교통 요충지였다. 현재 페르게에서 발굴된 유적에는 성채와 성벽으로 둘러싸인 낮은 성읍과 외딴곳에 세워진 기념비 등이 있다. 성벽 안에는 로마 시대의 것으로 보이는 목욕탕 같은 공공건물이 몇 개 남아 있다. 남문과 서문 밖에는 공동묘지가 있고, 극장과 경기장은 성벽으로 쌓인 낮은 성읍 밖에 남아 있다. 바오로 사도, 1차 전교여행 때 두 차례 통과이곳 페르게는 바오로 사도가 소아시아 전교 여행을 시작했던 중요한 곳이며 그와 연관이 깊은 도시다(사도13,13:14,24-25). 바오로 사도는 1차 전교 여행 때(45~48년쯤) 두 번에 걸쳐 이곳을 통과했다. 바오로와 바르나바는 페르게에 도착해 곧바로 안티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피시디아 안티오키아로 갔다. “그들은 페르게에서 더 나아가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았다”(사도 13,14). 이곳 페르게에서 안티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피시디아의 안티오키아로 넘어가는 곳은 어느 지역보다 위험한 곳이다. 바오로 사도가 강도의 위험을 당했다고 하는 지역이 이곳으로 추정되기도 한다. 바오로와 바르나바의 전교 여행에 동행하던 마르코 요한은 너무 힘든 나머지 이곳에서 그들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귀환하고 말았다. “바오로 일행은 파포스에서 배를 타고 팜필리아의 페르게로 가고, 요한은 그들과 헤어져 예루살렘으로 돌아갔다”(사도 13,13). 바오로와 바르나바, 각자의 길로 이 일은 2차 전교 여행 때 두 사람이 헤어진 원인이 되었다. 바오로 사도와 바르나바가 첫 번째 선교여행 중에 세운 교회들에서 문제가 대두하자 바오로 사도는 바르나바에게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고을로 형제들을 찾아보자고 사목방문을 권한다. “며칠 뒤에 바오로가 바르나바에게, ‘자,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전한 모든 고을로 형제들을 찾아가 그들이 어떻게 지내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하고 말하였다”(사도 15,36). 신자들이 믿음을 지키고 신앙에 따라 사는지를 살펴보고 신앙의 삶을 살아가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때 바르나바는 마르코라고 불리는 요한도 데리고 가려 했다. 그러나 바오로 사도는 마르코가 팜필리아 페르게에서 사도들과 협력하기를 중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기 때문에 그를 데리고 가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결국 바르나바는 마르코와 함께 바르나바의 고향인 키프로스로 가서 그들의 첫 번째 선교 여행을 계속하기로 했다. 그리고 바오로 사도는 자신의 협조자로 실라스를 선택하여 사도들과 함께 머물며 안티오키아에서 선교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평화신문2014.11.11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세상 둥지 걷어가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다](//cpbc.co.kr/CMS/newspaper/2016/07/rc/645524_1.1_titleImage_1.jpg)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세상 둥지 걷어가신 주님께 온전히 의탁하다58. 성녀 소화 데레사의 영성 ⑩ 소화 데레사는 아버지의 고통을 통해 삶의 주도권을 주님께 내어드리기 시작했다. 아버지의 병고로 인한 정화지난 호의 마지막에서 소화 데레사가 신뢰와 사랑의 길에서 높이 날아오르기 위해 먼저 자기 비허(卑虛)의 길을 걸어야 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는 그로부터 얼마 후 성녀가 아버지의 병고로 인해 겪게 되는 인간적인 아픔 그리고 아버지를 저 세상으로 떠나보내며 겪었던 자기 자신과 이 세상으로부터 이탈을 의미합니다. 소화 데레사는 가르멜에 입회한 지 얼마 후부터 그 누구보다도 자신을 사랑했던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인해 고통받으며 많은 사람 앞에서 수치를 당하고 끝내 금치산자(禁治産者) 선고를 받아 사회적인 죽음을 겪는 일련의 사건을 봉쇄 수녀원 안에서 들으며 심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았습니다. 결국 아버지는 1889년 2월 정신병이 심해지면서 캉에 있는 정신병원에 들어가서 1892년 5월이 돼서야 다시 집으로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큰 병고를 겪고 마침내 아버지가 다시 리지외의 집으로 돌아오게 된 것은 성녀에게 큰 위안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그해 10월 성녀는 피정을 하는 동안 그간 아버지와 관련해서 있었던 일련의 일들을 묵상하며 깊은 영적인 진리를 깨우치게 됩니다. 이는 성녀가 당시 바로 손위 언니인 셀리나에게 10월 19일자로 보낸 편지에 잘 담겨 있습니다. 거기서 성녀는 “얼른 내려오너라. 오늘은 내가 네 집에 머물러야 하겠다”(루카 19,5)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되새기며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인해 캉의 정신병원에서 지냈던 3년간은 가족 모두에게, 특히 자신에게 깊은 절망의 시간이었고 아버지의 시련과 더불어 이제 자신이 마음의 고향으로 여겼던 이 세상의 집은 사라지고 말았다고 고백합니다.성녀는 하느님께서 아버지의 일로 자신을 치셨으며 이 지상에서의 거처를 완전히 없애주심으로써 이 세상 여정 동안 머리 둘 곳조차 없었던 예수님과 같은 처지가 되었음을, 그래서 이제 천상을 향해 날아갈 영적인 바탕이 자기 내면에서 마련되기 시작했음을 직감적으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이제 그분이 원하시는 대로 하시게 하자. 그분은 내 영혼 안에서 어떻게 당신의 일을 완성시킬지 알고 계시니까.”주님께 주도권을 내어드림자신에게 있어 가장 소중한 사람인 아버지의 일을 겪으며 성녀는 이때부터 자기 삶의 주도권을 예수님께 온전히 내어놓기 시작했습니다. 성녀는 예수님께서 아버지의 일을 통해 자신을 정화시키셨음을 보았습니다. 즉, 주님은 그 일을 통해 성녀를 이 세상으로부터 이탈하게 해주었습니다. 그간 성녀는 자신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 아무것도 아니기를 열망해 왔으나 1892년 피정 동안 이 세상에 기댈 아무것도 없는 자신의 모습을 뒤돌아보며 비로소 “내려오너라” 하는 예수님의 말씀을 알아듣게 된 것입니다. 당시 성녀는 자신이 예수님의 거처가 되어 그분을 섬겨드리기 위해서는, 세상뿐만 아니라 궁극적으로는 자기 자신으로부터 내려와야 한다는 것, 즉 완전히 이탈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이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 철저한 가난이자, 예수님 이외에는 기댈 그 누구도 지니지 않는 완전한 내적 가난의 여정을 걸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또한 성녀는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수치를 당하는 사건을 통해 성면(聖面)의 신비를 깨달았습니다. 성녀는 주님의 성면 안에서 이 내적 가난을 보았습니다. 그리고는 비천하게 되신 주님의 얼굴을 보며 자신의 얼굴 역시 가려져 오직 주님만이 자신의 얼굴을 보고 자신의 눈물을 헤아려 주시길 염원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마음속에 그분이 머리를 기대고 쉬실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드리고자 했습니다.자신의 작음과 무능함에 대한 체험이런 일련의 일들은 인간적인 면에서 볼 때 소화 데레사에게 모든 위로를 거둬갔습니다. 1893년 7월 6일자 편지를 보면, 성녀는 당시 어두움과 메마름 속을 걸으며 때때로 아무것도 못 느낄 정도로 기도와 덕을 실천하는 데 있어 무기력감을 많이 경험했다고 고백합니다. 성녀는 성성(聖性)을 향한 여정에서 자신의 작음과 무능함을 느끼며 동시에 지적, 영적 가난함도 느꼈습니다. 그러나 성녀는 이 무능함 속에서 성경과 준주성범의 도움으로 단단하고 영양가 많은 영적 음식을 발견해 갔으며 특히 복음서에서 새로운 빛과 숨겨진 신비로운 뜻을 찾아내기 시작했습니다. 마침내 소화 데레사의 아버지는 1894년 7월 29일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그간 아버지를 돌보아 드렸던 셀리나가 그로부터 몇 달 후인 9월 14일 리지외 가르멜에 입회하게 됩니다. 가르멜에 들어올 당시, 셀리나는 작은 성경 선집(選集)을 갖고 들어왔으며 소화 데레사가 읽을 수 있도록 이 선집을 넘겨주었습니다. 이는 그간 아버지의 일로 아파하며 영적인 메마름과 세심증 속에서 자신의 무능함과 가난함을 깊이 체험하던 성녀로 하여금 이 모든 것을 넘어서는 새로운 영적인 비전을 발견하는 촉매 역할을 해주었습니다. 성녀는 이 선집에서 장차 자신의 영적 어린이의 길을 발견하게 해 줄 두 구절인 ‘누가 작은 자이거든 내게로 오라’(잠언 9,4 참조), ‘어머니가 자기 아이를 귀여워하는 것같이 나도 너희를 위로하고 너희를 품에 안고 무릎에 올려놓고 흔들어 주겠노라’(이사 66,12-13 참조)라는 말씀을 만나게 됩니다. 문채현2016.07.20

아기 예수 경배와 세례에 담긴 구원의 신비 드러내 8일 주님 공현 대축일과 9일 주님 세례 축일을 맞아 두 축일의 유래와 의미를 살펴본다. 특히 주님 공현 대축일은 또 하나의 예수 성탄 대축일로 불릴 정도로 중요한 축일인 만큼 각별한 관심과 이해가 필요하다. 남정률 기자 njyul@cpbc.co.kr 알브레히트 뒤러 작 ‘동방 박사의 경배’, 1504, 이탈리아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 주님 공현 대축일가스파르, 발타사르, 멜키오르로 알려진 세 명의 동방 박사가 구세주께서 탄생하심을 알고 별의 인도를 받아 아기 예수를 찾아가 경배한 것을 경축하는 축일이다. 이 사건으로 구세주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이 세상에 공적으로 드러났다. 그리스어로 ‘에피파네이아’(epiphaneia)인 공현(公顯)은 ‘드러나다’는 뜻이다. 이전에는 ‘삼왕내조축일’(三王來朝祝日)이라고도 불렀다. 주님 공현 대축일은 매년 1월 2일에서 8일 사이 주일에 지낸다. 성경에는 다음과 같이 기록돼 있다. “예수님께서는 헤로데 임금 때에 유다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셨다. 그러자 동방에서 박사들이 예루살렘에 와서, ‘유다인들의 임금으로 태어나신 분이 어디 계십니까? 우리는 동방에서 그분의 별을 보고 그분께 경배하러 왔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이 말을 듣고 헤로데 임금을 비롯하여 온 예루살렘이 깜짝 놀랐다. … 그들은 임금의 말을 듣고 길을 떠났다. 그러자 동방에서 본 별이 그들을 앞서 가다가, 아기가 있는 곳 위에 이르러 멈추었다. 그들은 그 별을 보고 더없이 기뻐하였다. 그리고 그 집에 들어가 어머니 마리아와 함께 있는 아기를 보고 땅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또 보물 상자를 열고 아기에게 황금과 유향과 몰약을 예물로 드렸다. 그들은 꿈에 헤로데에게 돌아가지 말라는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자기 고장에 돌아갔다.”(마태 2,1-12)동방 박사의 방문은 예고된 것이었다. “그들은 모두 스바에서 오면서 금과 유향을 가져와 주님께서 찬미 받으실 일들을 알리리라.”(이사 60,6) 금과 유향은 당시 이방인들이 태양신에게 바쳤던 예물로, 세상을 비추는 빛(구세주)이 오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예수 성탄 대축일과 달리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특별한 예식을 하지 않는다. 주님 공현 대축일이 성탄시기에 들어 있으면서 성탄의 연장이기 때문이다. 성탄은 ‘어두운 이 세상에 빛이신 그리스도께서 우리 가운데 오셨다’는 것을, 공현은 ‘구세주 탄생을 이방 민족 모두에게 드러내 보이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그래서 주님 공현 대축일에는 이방 민족을 대표하는 동방 박사들을 구유에 설치한다. 세 명의 동방 박사는 구세주를 경배하는 모든 백성을 상징한다. 레오 1세 교황(재위 440~461)은 주님 공현 대축일의 신학적 의미를 다음과 같이 밝혔다. 아기 예수 경배한 동방 박사 마음 헤아려야“주님 공현 대축일은 우리에게 성탄의 기쁨을 연장해주고 있는데, 두 축일로 서로 비슷한 내용의 신비를 연이어 지낸다 해서 우리 기쁨의 강도나 믿음의 열정이 약화하지 않습니다.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개자로 태어나신 갓난아기가 작은 마을에 갇혀 계시면서도 온 세상에 선포하신 인류 구원에 관한 일입니다. 사실 그분은 이스라엘의 백성 그리고 이 백성 가운데 한 가정을 선택하셨으며, 이 가정에서부터 전 인류가 지니고 있는 본성을 취하셨습니다. 하지만 만민을 위해 태어나신 그분은 당신의 탄생이 어머니의 협소한 거처 안에 감춰져 있기를 원치 않으시고 즉시 모든 이에게 알려지기를 원하셨습니다.”예수 성탄 대축일이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셨다는 데 초점을 맞췄다면 주님 공현 대축일은 인간 가운데 드러난 신성(神性)에 초점을 맞췄다. 두 대축일은 각각 인성과 신성에 초점을 맞춰 성탄과 공현의 의미를 보완하면서 서로에게 빛을 밝혀준다. 주님 공현 대축일 미사에서는 긴 순례 끝에 마침내 아기 예수를 뵙고 기뻐하며 땅에 엎드려 경배한 동방 박사들의 마음을 헤아리며 참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 주님 세례 축일예수 그리스도께서 요한 세례자에게 세례받으신 것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성탄시기의 마지막 날인 주님 세례 축일로 성탄시기가 끝나고, 다음 날부터 연중시기가 시작된다. 따라서 주님 세례 축일과 이어지는 주간이 ‘연중 제1주일’이다. 주님 세례 축일 저녁에 구유를 비롯한 성탄 장식은 모두 치운다.주님 세례 축일은 주님 공현 대축일 다음 주일에 지낸다. 다만 주님 공현 대축일이 7~8일인 때에는 대축일 다음 날인 월요일에 기념한다. 올해가 그런 경우다.예수 그리스도는 이미 하느님의 아들이기에 하느님의 자녀로 태어나는 세례를 받을 필요가 없었다. 그럼에도 요한 세례자에게 물로 세례를 받은 것은 성부에 대한 순종과 예언의 성취를 위해 선택한 겸손의 표양이다. 성부 하느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러한 모습에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7)라고 말씀하셨다. 예수 그리스도의 순종으로 인간인 우리 역시 주님의 세례에 동참할 수 있게 됐다.예수 그리스도 세례, 구원사의 중대한 사건교부들은 예수 그리스도가 세례받은 것을 구원사의 중요한 사건으로 여겼다.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오는 음성을 통해 하느님의 아들임이 계시됐고, 성령이 비둘기 모양으로 내려와 예수 그리스도가 공적 활동을 하기에 앞서 도유되고 파견된 것을 드러냈기 때문이다.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동방 박사들의 아기 예수 경배와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물로 포도주를 빚은 기적(요한 2,1-12)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공현을 나타내는 사건이라는 점에서 맥을 같이 한다. 주님 세례 축일 미사의 고유 전례문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의 세례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입당송부터 본기도, 복음 말씀, 예물 기도, 감사송, 영성체송 등 거의 모든 전례문이 주님의 세례와 이에 대한 구원의 신비를 드러내고 있다. 백영민2017.01.04
![[추기경 정진석] (38) 주님께 영광](//cpbc.co.kr/CMS/newspaper/2017/02/rc/673163_1.0_titleImage_1.jpg)
[추기경 정진석] (38) 주님께 영광스무살 된 청주교구, 신앙의 힘으로 한 단계 성숙 미사를 집전하고 있는 노기남(왼쪽부터) 대주교, 교황대사 루이지 도세나 대주교, 정진석 주교. 설립 20주년 기념행사 ‘1만 인파’ 정 주교, 대형 체육관 개최 제안 다 채울 수 있을까 일부선 우려 ‘지역사회 선교’ 실현 의지 증명 1978년은 정진석 주교에게 너무나 특별했다. 사랑하는 청주교구가 20년이 돼 어엿한 청년기를 맞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교구에 내려주신 은총에 감사하면서 설립 20주년인 1978년 11월 5일에 20주년을 기념하는 신앙대회를 개최하기로 계획했다.5월에 열린 교구 사제단 총회에서 20주년 기념 신앙대회에 대해 논의하면서 기념 성당으로 무극성당을 건립하기로 했다. 또 10월 22일부터 11월 5일까지를 ‘신앙대회를 위한 특별 기도 기간’으로 선포하고, 이 기간에 ‘교회 발전을 위하여’라는 지향으로 교회 구성원이 다 함께 묵주기도 5단을 봉헌하기로 했다. 교회 행사에서 가장 중요한 준비는 ‘기도’라는 것을 정 주교는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정 주교는 한 가지를 더 제안했다. “이왕이면 선교도 할 겸 청주체육관을 빌려 외부에서 대대적으로 행사하는 게 어떨까요?” 정 주교의 말에 준비하는 신부들은 난색을 보였다.“어이쿠! 주교님, 체육관에는 적어도 6000명이 참석해야 합니다. 우리 교구 실정상 결코 쉽지 않습니다. 만약 자리를 채우지 못해 휑하게 보이면 밖에 큰 망신이 될 수도 있어요!” “여러 가지 시뮬레이션을 해보면 자리를 못 채울 수도 있어요!” 20주년 행사를 주교좌성당에서 하는 것이 어떤가 하는 신중론도 많았다. 그러나 정 주교는 며칠 동안 고민하다 "지역사회에 선교하는 의미가 중요하니 청주체육관에서 해야 한다"고 결심을 굳혔다. 그래서 주제도 일찌감치 ‘너희는 온 세상에 가서 만민에게 복음을 전하라’로 정했다.목표가 생기면 그 목표를 위해 노력하는 법이다. 본래 계획은 조금 높게 잡아야 한다는 것이 정 주교의 지론이었다. 그리고 한번 결정한 다음에는 신부들을 설득하고 신자들을 격려했다. 정 주교의 강한 의지에 신부들도 마음을 모았다. 20주년 행사를 하는 당일 아침까지도 사제들은 최선을 다했다.교구가 설립된 후 처음 있는 행사였기에 걱정도 많았지만 신자들에게는 자부심도 안겨줄 수 있는 행사였다. 사실 정 주교는 어떻게든 신자들을 모시고 와 교구의 20살 생일을 좀 알려보자는 단순한 생각이었다. 그러나 정 주교는 그날 그곳에 인파를 모아주실 분은 성모님이라 굳게 믿었다. 점점 그런 확신이 더 생겼다. 드디어 1978년 11월 5일, 주일이 밝았다. 청주교구 곳곳에서 신자들이 행사장인 체육관으로 모여들었다. 청주에서 멀리 떨어진 거리에 있는 본당의 신자들도 팻말을 앞세우고 속속 입장했다. 행사 직전, 신자들이 얼마나 모였는지 궁금했던 정 주교는 식장 안으로 들어가 눈을 들어 관람석을 바라봤다. 그리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1층 플로어부터 2층 관람석까지 신자들이 꽉꽉 채우고 있었기 때문이다. 신자들 모습을 보고 있자니 구약성경에서 백성들이 이집트를 탈출하여 40년의 광야생활을 마치고 가나안 땅에 입성하는 구절이 떠올랐다. 신자들의 밝은 얼굴과 자신감 넘치는 표정이 무엇보다 기뻤다.청주교구 20주년을 기념하는 신앙대회는 오전 10시에 시작했다. 제1부 기도와 특별 강론, 제2부 축하 미사, 제3부 20주년 기념식 등 3부로 나뉘어 진행됐다. 이날 미사는 정 주교를 비롯해 주한 교황대사 루이지 도세나 대주교, 전 서울대교구장 노기남 대주교, 수원교구장 김남수 주교와 교구 사제단이 공동 집전했으며, 여기에 사제와 수도자, 신자 1만여 명이 참가했다. 강론 시간이 되어 정 주교는 강론대에 섰다. 체육관을 꽉 채운 신자들을 보니 가슴이 두근거렸다.“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에게 원수를 사랑하고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바로 지금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세례성사로 그리스도의 자녀가 된 모든 신자는 그의 명령을 준수할 의무를 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기에 모인 것은 아직 세상의 빛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므로 모든 신자가 다른 이의 모범이 되고 세상의 빛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열심히 노력해주십시오.”손뼉을 치는 신자들의 얼굴이 환하게 빛나고 있었다. 감격에 겨워 ‘하느님, 감사합니다’ 하고 찬미의 노래가 절로 나왔다.밤이 되어 숙소로 돌아온 정 주교는 늘 그랬듯이 이날의 일을 자신의 일기장에 꼼꼼히 기록했다.“10:00-18:00 청주체육관에서 청주교구 설립 20주년 기념 신앙대회, 10,000명 참석, 교황대사와 노기남 대주교, 김남수 주교….” 정 주교는 이날 참석한 지역장 여러 명의 이름과 직함을 한 글자 한 글자 눌러쓰며 이들을 잊지 않기로 다짐했다. 서울에서 온 이들과 합창단도 적어두고 감사를 표현하기로 했다. 정 주교는 일기를 쓰면서 일종의 안도감과 감사하는 마음이 강하게 들었다. 그야말로 ‘야훼 이레’, 하느님께서 이끌어주시면 할 수 있다는 것을 자기 자신에게 보여준 셈이었다. ‘교구 자립’ 무극성당 지어 실현 외국 도움 없이 예산 마련 추진 전국 교회서 성금 후원 잇따라 바오로 6세 교황도 지원금 쾌척청주교구가 교구 설정 20주년을 기념해 건립하기로 한 무극본당은 ‘교구 최초로 외국의 도움 없이 교구 신자들의 봉헌금과 사제들의 성금, 타 교구 신자들의 후원금만으로 완공한다’는 목표를 두고 있었다. 그동안 교구가 추진해온 ‘교구 자립 운동’의 상징이나 마찬가지였다.교구 모든 신자들은 본당 건립을 위한 물적 봉헌 운동과 함께 ‘묵주기도 10만 단 봉헌 운동’을 진행했는데, 본당 봉헌식을 앞두고 묵주기도가 30만 단을 넘어서게 됐다. 신자들의 한마음이 무극본당에 모였고, 그 상징과 같은 본당을 보며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다. 무극본당 신자를 비롯해 청주교구 24개 본당 전 신자, 300여 명의 타 교구 사제들과 본당, 교회 기관ㆍ단체 등 전국적으로 많은 신자들이 성금을 보내왔다. 바오로 6세 교황은 본당 건축에 특별 강복과 함께 1만 5000달러(약 1700만 원)의 지원금을 보냈다. 교회 안의 관심과 사랑으로 6600㎡(2000평)의 사과밭을 정비해 드디어 건물을 올릴 수 있었다. 전체면적 443㎡(134평)에 약 7000만 원의 공사비가 투입됐다. 그리고 2년 후인 1980년 5월 5일 정 주교의 주례로 무극본당 봉헌식이 거행됐다.이어 신축한 교구청사와 가톨릭회관도 개관했다. 교구 설정 20주년 기념사업으로 추진한 교구청사 신축은 단순히 건물을 신축한다는 의미를 넘어서는 것이었다. 청주교구는 그때까지 본래 청주본당 사제관이었던 건물을 교구청사로 사용하고 있었다. 가톨릭회관의 개관으로 피정이나 교육을 마음껏 진행할 수 있게 돼 청주교구는 내적으로 한층 더 성숙해지는 발판을 마련했다. 정 주교는 이러한 기쁨의 순간을 신자들과 함께한다는 사실이 참으로 영광스러웠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 사진=서울대교구 홍보국 cpbc2017.02.27
![[장신호 주교 서품식] 착한 목자, 하느님 마음에 드는 목자, 양 냄새 나는 목자 기원](//cpbc.co.kr/CMS/newspaper/2016/07/rc/644723_1.1_titleImage_1.jpg)
[장신호 주교 서품식] 착한 목자, 하느님 마음에 드는 목자, 양 냄새 나는 목자 기원축사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장 주교는 하느님이 대구대교구에 내려주신 은총 가운데 가장 큰 은총이다. 장 주교의 사목표어 ‘제 뜻이 아니라, 아버지 뜻대로’(루카 22,42)는 장 주교의 인품과 믿음을 그대로 보여 준다. 그러한 순명 정신은 주교로서의 삶을 성실하게 하고 좋은 열매를 맺게 할 것이다. 장 주교가 하느님 보시기에 참 좋은 목자가 될 수 있도록 대구대교구의 제1주보인 루르드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와 제2주보인 이윤일 요한 성인의 전구를 청한다. 장 주교가 착한 목자로서 교구장을 잘 보좌해 사제단과 교구민 모두가 하느님 나라의 기쁨을 누릴 수 있도록 기도하겠다. 주한 교황대사 오스발도 파딜랴 대주교교황 성하께서는 장신호 보좌주교를 선택하면서 그의 인간적, 사목적 자질을 중요하게 여겼다. 주교가 된다는 것은 단순한 영광이 아니라 교회를 위한 사도적 의무이자 봉사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주교로서 이렇게 썼다. “제가 여러분을 ‘위하여’ 있다는 사실이 저를 한없이 두렵게 하지만, 제가 여러분과 ‘함께’ 있다는 사실이 저에게 한없는 위로가 됩니다. 사실 저는 여러분을 위한 주교이지만, 또한 저는 여러분과 함께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주교가 직무의 이름이라면 그리스도인은 은총의 이름입니다.” 하느님께서 장신호 보좌주교를 축복해 주시기를 빈다.주교회의 의장 김희중 대주교훌륭하신 장신호 주교가 한국 주교단의 일원이 되신 데 진심으로 환영한다. 축하와 아울러 위로의 말씀도 드린다. 주교직은 ‘서품식 날 하루 반짝 영광이요, 평생이 십자가’라는 말이 있다. 전혀 터무니없는 얘기가 아니라는 것을 나날이 확인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장 주교께 위로의 말씀을 드리지만, 그 십자가의 길은 부활의 영광으로 나가는 첩경이라는 말씀도 함께 드린다. 하느님과 교회를 위해 예수님처럼 죽기까지 하느님 아버지의 뜻을 따르겠다는 겸손하고 충성스러운 순명 정신이라면, 하루 영광, 평생 십자가도 오히려 은총의 기쁨으로 지고 가실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사제단 대표 최호철 신부(관덕정순교성지 담당)서울 올림픽이 열리던 해에 ‘88 꿈나무’라는 애칭으로 신학교에 입학했다. 세상 사람들은 입신양명의 꿈을 이루려 했지만, 우리는 선한 목자가 되려는 꿈을 위해 노력했다. 당신께 축하 인사를 드리면서도 십자가의 무게를 더 무겁게 느끼는 것을 아는 동기 사제는 당신을 위해 하느님께 필요한 은총을 기원해 본다. 멀리 떨어진 소임지에서도 열린 마음, 따스한 미소로 동기 모임에 오시어 당신 뜻을 내세우기보다는 동기들 이야기를 듣고자 하는 마음은 당신의 사목 표어인 “제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대로”에 고스란히 담겨 있다. 사제로서 첫 소임을 수행하셨을 때의 마음으로 주교직을 수행하시도록 감히 청해 본다.박근혜 대통령 (정관주 문화체육관광부 제1차관 대독) 지금 우리는 안팎으로 많은 어려움에 직면해 있지만, 서로를 존중하며 가정의 가치를 세워나갈 때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도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대구대교구가 펼쳐온 가정 성화와 생명 사랑 운동, 건강한 가정을 위한 노력이 지역사회는 물론 우리나라의 건강한 발전에 큰 힘이 될 것으로 믿는다. 교구장의 사목 활동에 장 주교님께서 큰 역할을 더하시어 이 땅에 하느님의 역사가 이루어지기를 바란다. 이호성 대구대교구 평신도위원장 교구민의 기도를 어여삐 들으신 하느님께서 겸손하고 지혜로우신 주교님을 보내주셔서 교구의 새로운 100년을 다져갈 수 있게 해주셨다. 지극 정성으로 기도해 주신 교구민과 기쁨을 함께 나누고 싶다. 새 주교님께 감히 부탁의 말씀을 올린다. “요한 보스코 주교님! 평신도들을 많이 사랑해 주십시오. 요한 보스코 성인께서 그러셨듯이 교회의 희망인 젊은이들을 더욱 사랑해 주시어 그들이 하느님의 사랑과 자비를 깨닫고 실천하도록 이끌어 주시기를 청원 드립니다.”답사 대구대교구 장신호 주교 오늘 이 자리를 빛내주신 추기경님, 교황대사님, 주교님과 신부님, 수녀님과 신자분들 그리고 정관계 내빈 여러분 모두 감사드린다. 준비하고 진행하시면서 드러나 보이는 곳에서, 또 드러나지 않는 곳에서 마음을 다해 기도해 주시고 수고해 주신 모든 분께도 감사드린다. 조환길 대주교님께서 아버님 뜻대로, 아버님 마음을 지니고 신부님들과 신자분들을 대하라고 하셨다. 지금 앉아 계신 분 모두가 기도로 저를 지원해 주실 기도부대 같아서 마음이 아주 든든하다. 먼저 저를 위해서 제가 착한 목자, 하느님 마음에 드는 목자, 양 냄새 나는 목자로 살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길 바란다. 그리고 대구대교구가 앞으로 100년을 바라보고 사제들과 신자들의 일치 속에서 영성적으로 옹골차게 성장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린다. 세계 교회사의 관점에서 순교 성인들은 성경을 열심히 읽었고, 생활 성인들은 성경을 생활에 적용한 교부 문헌을 읽었다고 한다. 한국 천주교회는 순교 성인 이후 최초로 생활 성인을 기대하고 있다. 저의 개인적인 바람이기도 하다. 이러한 역사적 단계에 걸맞게 우리 신자들이 쉽게 읽을 수 있는 교부 문헌을 한국 교회가 갖출 수 있도록 함께 기도해주면 좋겠다. 끝으로 프란치스코 교황님께서 하신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라는 말씀에 따라 우리 모두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도록 기도하고 또 노력하면 좋겠다. 우리 다 함께 기도 안에서 서로 만나길 바란다. 백영민2016.07.13

가톨릭 교회, 불평등 가득했던 인도 인권 향상 기여한국·인도 가톨릭 교회 미디어 워크숍, 15~16세기 선교 위한 학교 건립, 교육 수준과 인권 의식 높여 페리아난(가운데) 신부가 워크숍 시작에 앞서 김민수 신부에게 인도 전통 숄을 어깨에 둘러주며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이힘 기자 국민 대다수(80.5%)가 힌두교 신자인 인도에서 가톨릭 교회가 현지인의 교육 수준 향상과 신분제(카스트제도) 약화에 이바지하는 등 인도인들의 인권 향상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고 인도 교회 관계자가 밝혔다. 5일 서울대교구 불광동성당에서 열린 ‘한국-인도 가톨릭교회 미디어 워크숍’에서 인도 마드라스대학교의 패트릭 나나프라가삼(종교철학대학 교수) 신부는 “15~16세기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활동하면서 당시 인도 모국어였던 타밀어로 기도문과 교리서, 교회 역사서를 출간했다”며 “인도인에게 그리스도교를 전하기 위해 문맹자를 위한 학교를 세우면서 교육 수준이 높아졌고 이는 인권 의식 고취에도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나나프라가삼 신부는 이어 “모든 이에게 교리를 가르치는 것은 개인의 평등과 존엄을 위한 것이며, 교육은 곧 자유를 뜻한다”며 “가톨릭 교회는 불평등으로 가득했던 인도 사회에 노예제 및 조혼 폐지, 과부의 재혼권 등을 주장하며 인권 향상에 기여했다”고 강조했다.인도의 그리스도교 전래 역사와 관련, 나나프라가삼 신부는 인도 교회는 성 토마스 사도가 서기 52년께 페르시아에서 400여 명의 사람을 데리고 온 것을 시작으로 여기며 16세기에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1506~1552)와 같은 훌륭한 선교사들이 활동했다고 설명했다. 인도 복음화율은 2.34%이지만, 인구가 13억 명에 달해 신자 수는 3000만 명이 넘는다고 덧붙였다.‘새 미디어의 종교적 공유와 사목자의 의사소통에 대한 응답’을 발표한 세바스티안 페리아난(탄자부르교구 성심주교좌본당 주임) 신부는 “지역 교회 공동체는 이미 커뮤니케이션 시스템을 통해 서로 연결돼 있었다”며 “교회가 문서 시대에 사용했던 기본 전략들을 모델로 디지털 시대에 적용한다면 우리가 취해야 할 행동은 명백해진다”고 말했다. 페리아난 신부는 이를 위한 사목자들의 응답으로 △매월, 매주 또는 하루의 일정 시간을 침묵으로 묵상하며 내적 확신과 성향 확인 △성경 연구와 배움을 통한 공동체 유대감 고취 △지역민의 삶과 일, 직업을 위한 교육 △화해와 대화를 통한 평화 문화 선도 △자비로운 봉사를 제시했다.이날 워크숍은 1~4일 아시아 최초로 서울에서 열린 국제언론종교문화학회(ISMRC) 국제학술대회 발표자로 방한한 두 신부를 김민수(서울 불광동본당 주임, 주교회의 매스컴위원회 총무) 신부가 초청해 이뤄졌다.김 신부는 “그리스도교의 전래로 인도의 문맹률이 낮아지게 됐고 누구나 평등하다는 생각이 강해지면서 인권을 생각하게 된 점은 한국 교회와 닮은꼴이라 생각한다”며 “앞으로 한국과 인도 교회가 지속해서 협력할 방안을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이힘 기자 lensman@pbc.co.kr 평화신문2016.08.10

신천지, 새학기 대학가 캠퍼스를 노린다 봉사활동·성경 공부·심리 상담 등 빙자 포섭… 가톨릭 신자 청년 ‘무방비’ 신천지가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포섭활동에 나서고 있어 주의가 요구된다. 신천지에 포섭돼 집을 나간 한 여대생의 가족들이 딸을 돌려 달라며 시위를 하고 있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서울의 한 대학에 다니고 있는 김정은(율리아, 21)씨는 지난해 가을 교정을 걷다가 한 여성에게 “아기 봉사(미혼모 아기를 돌보는 봉사 활동)를 해보지 않겠느냐?”는 제안을 받았다. 평소 아기를 돌보는 봉사에 관심이 많았던 김씨는 흔쾌히 “하겠다”고 대답했다. 그 여성은 봉사를 시작하기 전 교육을 받아야 한다며 서울 상계동에 있는 한 교회로 오라고 했다.교육을 받으러 찾아간 교회에는 간판이 없었다. 교육생은 김씨 혼자였다. 그 여성은 아기 봉사 교육보다는 ‘성경 공부’에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봉사하는 데 필요한 것이라고 했다. 두 달 가량 시간이 흘렀지만 아기 봉사는 뒷전이고 이상한 성경 공부만 계속됐다. 이를 이상하게 여긴 김씨는 가족들에게 성경 공부 내용을 알렸고, 개신교 신자인 한 친척은 “신천지 성경 공부이니 중단하라”고 경고했다. 김씨는 그 후 그 여성과 연락을 끊었다.2015학번 신입생인 윤 가타리나씨(20)는 입학 전 한 동아리 모임에 참석했다. 모임에서 유난히 윤씨를 잘 챙겨주는 선배 언니가 한 명 있었다. 말도 잘 통하고 학교생활도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친분이 쌓이자 그 선배는 어느 날 성경 공부를 하자고 제안했다.대학 입학 후 고3 때 잠깐 쉬었던 신앙생활을 다시 시작할 생각이었던 윤씨는 별 의심 없이 성경 공부를 시작했다. 그 선배는 “학교 내에 이단이 많다. 특히 신천지를 조심하라”고 주의까지 주며 의심을 피했다. 얼마 후에는 선배 한 명이 성경 공부에 합류했다. 성경 공부가 진행될수록 평소 신부님이 말한 성경 내용과는 다른 점이 느껴졌다. 윤씨는 신부님에게 이를 이야기했고 “신천지인 것 같으니 더이상 그 선배를 만나지 말라”는 경고를 들었다.신천지예수교증거장막성전을 비롯한 이단·사이비가 새 학기를 맞아 대학생들을 상대로 적극적인 포섭활동에 나서고 있어 주의가 요청된다. 월간지 「현대종교」 3월호에 따르면 현재 가톨릭계 대학들을 비롯한 전국 대부분 대학에서 사이비 종교들이 활동하고 있다. 그중 가장 적극적으로 학생들을 포섭하고 있는 곳은 신천지다. 신천지에 포섭됐다가 빠져나온 김아무개씨에 따르면 광주·전남 지역에서만 3000명이 넘는 대학생이 신천지에 포섭돼 전도활동을 하고 있다. 학생 수가 1만 2000명에 이르는 경남 지역 한 대학은 1500여 명이 신천지에 포섭됐다는 제보도 있다. 신천지의 포섭 수법은 날이 갈수록 교묘해지고 있다. 신천지라고 드러내고 포섭 활동을 벌이는 경우는 거의 없고 대학생들이 관심이 많은 봉사 활동, 성격 유형 검사, 심리 상담, 만들기 수업, 멘토링(선배가 후배에게 조언을 해주는 프로그램) 등을 빙자해 학생들을 유인한 후 신천지 성경 공부로 인도하는 방식이다. 지난 7일에는 서울 서대문구 한 대학 학생회관에서 ‘에니어그램 세미나’가 열렸는데, 신천지가 학생들을 끌어모으기 위해 주도한 행사로 밝혀진 바 있다. 신천지에 포섭된 이들의 회심을 돕고 있는 상담사 이승혜(가타리나)씨는 “신천지의 목표는 에니어그램, MBTI와 같은 성격 유형 검사를 통해 포섭 대상자들의 성격을 파악하고, 연락처를 비롯한 개인 정보를 알아내는 것”이라며 “무료 성격 검사나 심리 상담은 가급적 참여하지 말고, 참여하더라도 절대 연락처를 남기지 말아야 한다”고 강조했다.이씨는 또 “개신교는 대학 안에 신천지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 적극적으로 대학 측에 항의하면서 신자 학생들을 보호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지만 천주교는 사실상 손을 놓고 있다”고 안타까워하며 “교회도 가톨릭대학생들이 신천지에 현혹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워야 한다”고 말했다.앞의 김씨와 윤씨도 나름대로 건실하게 신앙생활을 해왔고, 가톨릭학생회 활동도 하고 있지만 신천지에 대해 아무런 정보가 없었다. 교구와 본당에서 신자들, 특히 대학생, 청년들에게 신천지의 위험성과 포섭 방법을 적극적으로 알려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는 이유다. 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대학생사목부 담당 은성제 신부는 “대학교 안에서 이단·사이비가 동아리, 심리상담 등으로 위장해 학생들에게 접근하고 있다”면서 “봉사단체나 동아리에 들어갔는데, 성경 공부나 ‘좋은 말씀이 있다’면서 이상해 보이는 프로그램 참여를 권하면 신천지를 의심해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cpbc2015.03.25
![[신앙단상] 왜 가톨릭 교회로 왔느냐](//cpbc.co.kr/CMS/newspaper/2016/09/rc/654341_1.0_titleImage_1.jpg)
[신앙단상] 왜 가톨릭 교회로 왔느냐이강민 (노트케르 발불로, 명동성당 가톨릭합창단 지휘자, 음악 칼럼니스트) 개신교에서 가톨릭으로 신앙의 터전을 옮긴 뒤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이 몇 가지 있다. 첫째 ‘왜 가톨릭 교회로 갔느냐’는 것이다. 이유야 수십 가지지만 가장 큰 이유는 품위 있는 전례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이 주는 평안함이었다. 강론에 치우쳐 있는 대부분의 개신교 예배보다 말씀과 성찬이 균형을 이루고 있고 미사 순서마다 주는 의미와 감동 또한 참 좋았다. 6년 전 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원의 부활 성야 미사에 참여할 기회가 생겼다. 유학 시절 유럽의 여러 가톨릭 교회에서 종종 미사를 드리고 연주도 했었지만 오랜만에 느끼는 거룩하고 아름다운 전례에 빠져들었다. 담백하고 순수한 수녀원 성가대의 고운 소리도 큰 감동이었다. 미사와 성가를 진심으로 열심히 준비한 마음을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서에서 “하느님은 영이시다. 그러므로 그분께 예배를 드리는 이는 영과 진리 안에서 예배를 드려야 한다”(요한 4,24)는 말씀이 느껴지는 시간이었다. 감격스러운 미사가 진행됐지만 나는 성체를 모실 수 없었다. 당시에는 이해하기 힘들었다. 유럽 유학 시절 개신교와 가톨릭 교회가 함께 성체를 나누며 형제임을 확인하는 공동 미사(예배)를 자주 드렸기 때문이다. 심지어 성경 공부까지 함께하기도 했다. 하지만 그건 유럽의 상황이고, 우리는 아직 서로 이해와 정리가 더 필요한 부분이 많은 현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가톨릭 교회에서 신앙생활을 시작한 사람은 가톨릭 교회의 거룩하고 아름답고 품위 있는 전례에 큰 감동이 없을 수 있다. 전례에 조금 더 관심을 가진다면 좋을 것 같다. 두 번째는 가톨릭 교회와 개신교회의 차이에 대한 질문이다. 개신교 신학자나 목사인 친구 제자들은 성만찬에 대한 견해 차이를 묻고, 평신도들은 성모님에 대해 질문한다. 개인적으로 가톨릭 교회 신자로서 느끼는 가장 큰 차이는 개신교회와 다른 공동체 문화였다. ‘모든 신자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중재자가 돼 하느님께 직접 예배하며 교제할 수 있다’는 개신교회의 교리인 만인제사장설(가톨릭 교회의 평신도사도직과는 다르다)에 따른 생각이 공동체 안에 깔려 있다. 그래서 가톨릭 교회와 달리 신자들이 투표로 뽑은 대표(목사ㆍ장로ㆍ권사 등)가 공동체를 이끈다. 이렇게 선발된 신자 대표들은 교회 사업과 현안을 공동회의와 투표를 통해 결정한다. 성직자가 되려면 신자들의 동의가 필요하고 성직자가 된 후에도 신자들이 공동회의와 투표를 통해 성직자를 면직 해임할 권한이 있다. 이러한 만인제사장설이 깔린 문화는 평신도의 자율적 활동과 참여를 끌어낸다. 이 때문에 생기는 분쟁과 문제도 있지만, 공동체 생활이 활성화돼 있고 냉담자도 적은 편이다. 이와 달리 가톨릭 교회는 사제의 가르침에 순종하고 잘 따르는 문화가 있다. 신자들의 자율적 활동에 다소 제약이 있어 개신교회보다 참여나 활동이 소극적으로 보이지만 분쟁은 훨씬 적은 것 같다. 두 교회 다 장ㆍ단점은 있다. 하지만 하느님 사랑에 감사하고 이웃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하며 그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생각에는 이견이 없을 것 같다. 서로 우열을 가리기 전에 내가 예수님을 따라 사는지, 하느님 은혜를 받은 자답게 생활하는지, 사랑하기 위해 노력하는지 자주 성찰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오늘도 말씀을 보며 반성한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느님에게서 오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이는 모두 하느님에게서 태어났으며 하느님을 압니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느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1요한 4,7-8). 평화신문2016.09.28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21)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루카 9,53)](//cpbc.co.kr/CMS/newspaper/2016/10/rc/657735_1.0_titleImage_1.jpg)
[허규 신부와 떠나는 신약여행] (21) 사마리아인들은 예수님을 맞아들이지 않았다(루카 9,53)이방인들에게도 두 팔 벌리신 예수님 유다인과 사마리아인은 오랫동안 적대적인 관계였다. 하지만 네 복음서 중 루카 복음에서는 나병 환자를 고쳐준 사마리아인 이야기 등 사마리아인에 대한 긍정적 기록을 남기고 있다. 그림은 반 고흐 작 ‘착한 사마리아인의 비유’, 1890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국립미술관. 가톨릭 굿뉴스 제공 “하늘에 올라가실 때가 차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려고 마음을 굳히셨다”(루카 9,51). 루카 복음은 이제 갈릴래아를 떠나 예루살렘으로 향해 가시는 예수님에 대해 이렇게 표현합니다. 제자들이 예수님보다 먼저 사마리아 마을로 가지만 사마리아 사람들은 예수님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사마리아는 역사적으로 유다인들과는 적대적인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반목의 역사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유배 시기 이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솔로몬 왕 이후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분열됩니다. 북쪽 지역은 북이스라엘로, 남쪽은 남유다로 서로 다른 왕국을 세웁니다. 이스라엘의 분열된 왕국은 모두 시간 차이를 두긴 하지만 비극의 역사로 끝납니다. 기원전 722년경 북이스라엘은 아시리아에 의해 점령당합니다. 아시리아는 사마리아에 살던 이들을 이주시키며(2열왕 17,6) 정책적으로 그 땅에 이방인들이 살도록 합니다(2열왕 17,24). 이러한 과정에서 사마리아는 이방 종교의 영향을 받고 또 민족의 순수한 혈통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을 받게 됩니다. 그 이후 이스라엘의 정통을 이어가고자 했던 남유다 역시 바빌론의 침략으로 성전을 잃고 유배를 경험하게 됩니다(기원전 587년경). 비슷한 역사적인 배경을 가졌던 이들이지만 유배 이후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의 갈등은 점점 커지고, 기원전 450년경 사마리아는 자신들의 땅 그리짐 산에 성소를 세우게 됩니다. 이런 사건 이후로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종교적으로도 서로 다른 길을 걷게 되고, 유다인들은 이런 이유로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처럼 취급하게 됩니다. 같은 민족이었지만 전쟁과 침략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민족처럼 반목하는 역사를 보여줍니다. 예수님 시대에도 이러한 상황은 마찬가지였습니다. 유다인들과 사마리아인들은 상종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사마리아인들을 이방인으로 여긴 유다인들은 갈릴래아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갈 때에도 사마리아 지역을 통과하는 것이 가장 빠른 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지역을 지나지 않았을 정도입니다. 신약 성경에서 사마리아 지역에 예수님에 대한 복음이 선포됐다고 처음 전하는 것은 사도행전 8장 4-25절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에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서 예루살렘으로 가시고자 했다는 루카 복음의 이야기는 특별해 보입니다. 당시의 일반적인 여정과는 맞지 않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루카 복음만이 이 이야기를 전합니다. 그리고 유독 루카는 사마리아인들에 대해 호의적인 태도를 가진 복음서이기도 합니다.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비유(루카 10,29-37)나 예수님께서 고쳐주신 열 명의 나병 환자 중에 사마리아 사람만이 유일하게 돌아와 감사를 드렸다는 내용(루카 17,11-19)은 루카 복음이 전하는 고유한 이야기입니다. 루카의 고유한 이야기들은 다른 복음서와 구분되는 특징을 잘 드러냅니다. 루카 복음은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 기록된 복음서입니다. 더욱이 복음서의 저자가 바오로 사도의 동반자였던 루카라는 점을 생각한다면, 복음서의 초점이 이방인들에게 맞춰져 있다는 것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루카 복음은 복음서의 시작에서부터 유다인들이 아닌 모든 이들을 복음 선포의 대상으로 삼습니다(루카 4,16-30 참조). 혈통이나 출신에 의해서가 아니라 믿음에 의해서 구원받을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예수님께서 사마리아를 지나고자 했다는 루카의 이야기는 부정적으로 끝납니다. 비록 그들이 아직은 예수님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지만, 이 이야기는 예수님께서 사마리아에서도 복음을 선포하길 원하셨다는 사실을 알려줍니다. 루카는 예수님의 복음 선포는 모든 이들에게 열려 있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누구든지 믿음을 통해 구원될 수 있다는 선포는 혈통을 중시했던 유다인들에게는 불편한 것이지만 이방인들에게는 새로운 기쁜 소식입니다. <가톨릭대 성신교정 성서학 교수> 평화신문2016.10.26

‘빈자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 성인으로 선포교황, 시성식 거행… 데레사 성녀 본받아 “자비 실천하라” 강조 교황이 마더 데레사 대형 초상화 아래에서 마더 데레사를 성인으로 선포하고 있다. 【바티칸=CNS】 “그가 보여준 자비는 빈곤과 고통에 눈물조차 말라버린 사람들에게 ‘빛’이 됐습니다. 이제 그의 미소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전하십시오!”프란치스코 교황이 4일 마더 데레사(1910~1997)를 성인으로 선포하면서 “오늘 이 여인, 수도자 마더 데레사를 이 세상과 봉사자들에게 넘긴다(pass)”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의 삶을 모범으로 삼아 세상에 자비를 실천하라고 참석자들에게 호소했다.이날 교황이 ‘가난한 이들의 어머니’ 마더 데레사를 성인으로 선포하는 순간, 성 베드로 광장을 가득 메운 12만 명은 환호와 박수를 보내며 열광했다. 마더 데레사가 생전에 가장 사랑한 인도 콜카타의 빈민들, 그리고 그의 고향 마케도니아 스코페 주민들도 TV로 역사적인 순간을 지켜보면서 환호했다. 교황은 성 마더 데레사를 “하느님 자비를 풍성하게 나눠준 사람”이라고 말했다. 특히 가난한 이들뿐 아니라 낙태를 막기 위해 동분서주하고, 태어나자마자 빈곤 속에 버려진 아이들에게 각별한 애정을 쏟은 점을 상기시킨 후 “인간 생명을 지킨 자애로운 성인”이라고 칭했다. 교황은 또 “마더 데레사는 빈곤을 초래한 이 세상의 힘 있는 사람들에게 그 책임을 절감하라고 말한다”며 신자유주의 경제 질서 속에서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시키는 ‘힘 있는’ 사람들의 양심을 흔들어 깨웠다. 교황은 마더 데레사가 실천한 자비는 “모든 것에 맛을 내는 소금이었고, 빈곤과 고통에 눈물조차 말라버린 사람들에게 어둠을 밝혀주는 빛이었다”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면서 “나는 그들의 말을 할 줄 모르지만, 미소 지을 줄은 압니다”고 마더 데레사가 즐겨 한 말을 떠올리고 “우리도 그의 미소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 전하자”고 강조했다. 이어 “그를 ‘성 데레사’라고 부르는 게 어색할 것이다. 그의 성스러움은 우리에게 너무나 가깝고 다정하기에 계속 ‘마더 데레사’라고 부르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이날 시성식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이탈리아 전역에서 초대된 1500여 명의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밀라노와 나폴리 등 사랑의 선교회가 운영하는 시설에 거주하는 이들은 귀빈석(VIP)에 앉아 감격 어린 표정으로 성인 탄생 순간을 지켜봤다. 교황청은 시성식이 끝난 후 이들에게 점심으로 따근따근한 피자를 대접했다. 이 급식을 위해 사랑의 선교회 수녀와 수사 300여 명, 요리사 20명, 대형 피자 오븐 3개가 동원됐다.교황은 전날 자비의 봉사자들을 만난 자리에서도 “교회에 대한 신빙성은 여러분의 봉사를 통해 설득력 있게 전달된다”며 마더 데레사처럼 봉사하라고 당부했다. 한편, 마더 데레사는 1980년대 한국을 3차례나 방문해 150㎝ 단신에서 뿜어져 나오는 힘찬 육성으로 그리스도의 사랑을 역설한 바 있다. 1981년 김포공항에 처음 모습을 드러냈을 때 그의 마디진 손에 들려 있던 성경과 묵주, 작은 헝겊 가방은 한국인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당시 김수환 추기경이 그를 감싸 안다시피 하고 환영 인파를 헤치며 공항을 빠져나오는 통에 다음날 신문에 ‘보디가드 김 추기경’이란 기사가 실리기도 했다. 1985년 3차 방문 때는 판문점에 찾아가 그리스도의 평화의 빛이 북녘땅에도 비추어 주기를 기도했다. 김원철 기자 wckim@pbc.co.kr 평화신문2016.09.06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3)포교성성과 선교 보호권](//cpbc.co.kr/CMS/newspaper/2016/12/rc/665014_1.1_titleImage_1.jpg)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3)포교성성과 선교 보호권조선대목구 설정은 중국 선교 위한 교황청 전략 중국 선교에 대한 교황청의 역할은 미비했다. 16세기 이후 중국과 아시아의 선교 책임은 포르투갈 왕에게 있었다. 포르투갈 왕이 파견한 수도회들이 중국 교회를 관할했다. 중국에 관한 모든 것에 포르투갈이 교황청보다 우선했다. 가톨릭 교회의 수장은 교황이다. 하지만 국제 정치 질서는 늘 힘의 논리에 좌우된다. 15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유럽의 중심축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두 나라로 기울어 있었다. 두 나라 왕은 식민지로 개척한 새 영토에 가톨릭 교회를 세우는 것을 의무라고 여겼다. 교황청은 아시아와 신대륙에 선교사를 파견하거나 교회를 세울 여력이 없었다. 해외 선교사들을 지원할 배도 없었을 뿐 아니라 그들의 신변을 보호할 군사력도 전무했다. 교황청은 스페인과 포르투갈 왕에게 식민지 개척의 독점권을 인정하면서 그 식민지에 대한 선교 활동도 병행할 권한과 의무를 허락했다. 교회는 이를 ‘선교 보호권’(宣敎 保護權, Padroado)이라 불렀다. 선교 보호권을 받은 두 나라 왕은 자국 관할 영토 지역에서 교구 설립, 주교 추천 및 임명, 선교사 파견, 교회 운영 및 관리에 관한 모든 권리와 책임을 졌다. 비오 2세 교황(재위 1458~1464)은 1461년 포르투갈 아폰수 5세 왕에게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선교 보호권’을 줬다. 이후 포르투갈 왕은 두 대륙 가톨릭 교회의 실질적 책임자가 됐다. 이때부터 19세기 초ㆍ중반까지 포르투갈 왕과 그의 선교사들은 중국과 아시아 가톨릭 교회를 좌지우지했다. 포르투갈은 1557년 마카오를 중국과 유럽을 잇는 무역 거점으로 건설했다. 그리고 예수회와 프란치스코회에 중국 선교를 맡겼다. 1565년 마카오에 가장 먼저 진출한 예수회는 성 바오로 신학교와 성 요셉 신학교를 세워 성직자를 양성하고, 중국과 일본 선교에 힘을 쏟았다. 선교 보호권은 처음부터 교황청이 목적한 대로 시행되지 않았다. 폐단이 여기저기서 터졌다. 가장 큰 골칫거리는 두 나라 왕들이 선교 보호권을 제한 없이 남용한다는 것이었다. 그들은 선교사들을 마치 자국 관리처럼 통제했다. 국가 통치 정책에 순응하는 성직자와 수도자만이 주교와 장상으로 임명됐다. 선교사들은 마치 십자군처럼 한 손엔 성경을, 다른 손엔 칼을 들고 식민지 개척에 따라 나섰다. 선교 보호권은 선교의 도구가 되기보다 스페인과 포르투갈의 이민족 정복과 식민지 지배를 정당화하는 근거가 됐다. 예수회가 본토민 보호 정책을 적극적으로 펼쳤으나 현지에서는 구원을 명목으로 원주민의 강제 개종이 성행했고, 노예제를 인정하기까지 했다.포르투갈과 스페인의 왕들은 자신이 파견한 선교사 외에는 누구도 선교 보호권 관할 내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교황청조차 두 나라의 양해를 얻지 않고서는 선교 보호권 지역에 대한 선교 정책 수립이나 선교사 파견을 독자적으로 할 수 없었다. 설상 양해를 얻어 신임장을 받은 교황청에서 파견됐다 하더라도 선교지 현지에서는 갖은 방법으로 이들을 방해했다. 그중 가장 비열하고 악랄한 방법은 ‘신앙과 구원’이라는 문제를 걸고 본토인 신자들을 위협하는 것이었다. 그 대표적 희생자가 바로 초대 조선교구장 브뤼기에르 주교였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마카오 포르투갈 대표부의 신임장을 갖고 중국으로 갔음에도 현지 포르투갈인 선교사들로부터 그 어떤 도움도 받지 못했다. 중국의 포르투갈 선교사들은 신자들에게 ‘브뤼기에르 주교에게 음식과 잠자리, 길 안내 등 그 어떤 도움을 제공하는 자는 파면에 처한다’고 공지했다. 브뤼기에르 주교는 포르투갈 선교사들이 사목하는 지역에서 중국인 신자들에게 물 한 모금조차 얻어먹을 수 없었다. 오히려 폭행당하고, 감금되고, 내쫓기는 수모를 당했다.교황청은 두 나라의 전횡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또 17세기부터 영국과 네덜란드가 동양 무역권을 차지하면서 개신교의 진출이 빈번해지면서 선교 업무를 총체적으로 관장할 필요성이 대두했다. 이에 그레고리오 15세 교황(재위 1621~1623)은 1622년 선교 업무를 총괄하고 지도, 감독하는 교황청 포교성성을 신설했다. 포교성성은 선교 보호권과 수도회의 특권을 축소하는 일부터 착수했다. 이를 위해 교구 사제들의 해외 선교 참여를 적극적으로 권장했다. 포교성성은 선교사들에게 선교 활동에만 전념하고 선교지의 관습과 전통문화를 존중하라고 지시했다. 또 본토인 성직자를 양성해 토착 교회를 세울 것을 강조했다. 그리고 포교성성은 선교사들이 정치에 간여하고 상업 활동을 하는 것을 일절 금했다. 포교성성의 이러한 선교 지침은 직할 선교 조직인 파리외방전교회의 기본 정신으로 발전했다.교황청 포교성성은 선교 지침을 실현하고 선교 보호권을 무력화하기 위해 ‘대목구’(代牧區, Vicariatus Apostolicus) 제도를 시행했다. 대목구는 교황이 직할하는 교구를 설정하고, 명의 주교를 대목구장으로 임명해 교황을 대신해 교구를 사목하도록 하는 제도이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재위 1830~1846)은 1831년 9월 9일 세계 교회가 깜짝 놀랄 칙서를 반포한다. 성직자가 단 한 명도 없는 조선에 대목구를 설정한다는 칙서였다. 교회사에서 단 한 번도 없었던, 현재까지도 유일한 파격적 조치였다. 그레고리오 16세 교황과 교황청 포교성성의 이 조치는 조선 신자들만을 위한 결단이 아니었다. 조선대목구를 통해 중국 교회에 대한 선교권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려는 교황청의 선교 전략이 깔려 있었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던 조선 교회가 중국과 아시아의 선교 무대에 새로운 핵으로 떠오르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cpbc.co.kr 김현진2016.1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