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휴가철, 책 속으로 떠나는 생태 여행 미국 애리조나에 있는 성프란치스코 아시시센터의 벽화. 프란치스코 교황 회칙 제목 ‘찬미받으소서’는 프란치스코 성인이 자연을 찬미한 노랫말에서 따온 것이다. 프란치스코 성인은 생태학자들의 수호성인이기도 하다. 프란치스코 교황이 최근 생태 회칙 「찬미받으소서」를 발표하면서, 지구 생태와 자연 환경에 관한 신자들의 관심이 부쩍 늘었다. 교회 내에선 생태와 환경 관련 강의가 잇달아 열리고 있고, 즐거운 불편 운동처럼 작은 실천으로 환경을 살리는 데 동참하려는 이들도 많아졌다. 교황 생태 회칙에 관한 이해를 돕고 생태와 환경 지식을 넓혀줄 서적을 소개한다. 생태 영성찰스 커밍스 지음/맹영선 옮김/성바오로생태 문제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이 알아야 하는 생태 신학과 생태 영성을 종합 정리한 입문서다. 과학과 기술의 문제점, 성경에 나오는 생태 가르침, 가톨릭 교회를 비롯한 다른 종교 가르침, 생태 운동 현황 등을 폭넓게 다루고 있다. 미국 트라피스트회 신부인 저자는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성인이 ‘형제자매’로 사랑했던 동물, 식물과 인간이 같이 사는 세계를 ‘물질적 우주’라고 설명한다. 그러면서 그 누구도 이 물질적 우주에 사는 존재라는 사실에서 벗어날 수 없는, 상호 의존하는 관계임을 강조한다. 저자는 또한 “생태 영성의 생활 방식은 지속 가능한 생활 방식으로 전환하는 것이며 이는 하느님 창조 계획에 협력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1999년 ‘환경신학’이라는 제목으로 출판됐다가 절판된 책을 좀더 쉽게 번역해 새롭게 펴낸 것이다. 그리스도교의 미래와 지구의 운명 토머스 베리 지음/황종렬 옮김/바오로딸우주적 관점에서 신학과 생명을 이야기한 토머스 베리(1914~2009, 미국, 예수고난회) 신부는 “모든 종교인을 인간 중심주의 굴레에서 해방시켜 우주론과 생태학의 땅으로 이끈 새로운 모세”로 평가받는 인물이다. 그는 가톨릭 사제이면서도 생태신학자, 생태철학자, 문화사학자, 지구학자이기도 하다. 책은 베리 신부가 20여 년 동안 쓴 논문 11편을 담고 있다. 그리스도인들이 인류 공동체 미래를 위해 어떤 고민을 하고 어떤 실천적 삶을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 베리 신부는 점점 더 심각해지는 환경적 위협에 그리스도인들이 확신을 가지고 응답할 수 있기를 희망했다. 그리고 신앙인들이 환경 위기에 무기력하게 대응하는 것을 비판하면서 지구 공동체 전체를 위해 환경 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을 촉구했다. 생태 문제에 종교가 답하다종교인 대화 모임 엮음/운주사2004년부터 10여 년간 진행한 씨튼연구원 종교인 모임의 발제문과 토론 내용을 묶은 책이다. 이 모임에는 가톨릭ㆍ개신교ㆍ불교ㆍ원불교ㆍ유교 등 주요 종교의 신앙인이자 학자들이 참여했다. 환경 및 생태 문제에 관한 종교적 통찰은 물론 주요 종교의 환경 및 생태관과 생태적 대안들에 대한 이론적ㆍ실천적 측면도 살펴볼 수 있다. 각 종교가 자연과 생태를 바라보는 관점과 이론적 토대는 무엇인지, 그리고 그것들은 어떤 유의미성과 실천성을 가질 수 있는지 등을 보여줌으로써 종교들 간의 차이점을 성찰하게 해준다.창조 안에서 그리스도인의 사명한국천주교중앙협의회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환경소위원회가 발간한 환경 교재다. 근본적 환경 보전을 위해서는 본당에서 환경에 관해 배우고 나눌 수 있는 교육 자료가 필요하다는 요청에 집필했다. 신자들이 모여 말씀을 묵상하고 나누고 기도하며, 교회 가르침을 익히고 교회와 삶의 현실적 문제를 복음적으로 성찰하며 실천토록 하는 데 취지를 뒀다. △생명을 주시는 주님께 마음을 열고 △창조 안에서 인간의 소명 △성경을 통해서 본 지속 가능한 삶의 전망 △그리스도인의 새로운 소명, 생태적 치유를 향하여 등 네 가지 주제별로 시작기도에 이어 살펴보기, 들어가기ㆍ알아보기ㆍ나누기로 이뤄진 배우기, 실천하기, 마침기도로 구성됐다. 북극곰 어디로 가야 하나황창연 지음/바오로딸성 필립보 생태마을 관장 황창연 신부(수원교구)가 펴낸 환경 수필이다. 환경 전문가로서, 사제로서 바라본 환경 문제를 △지구 이해 △지구 온난화 △물 △숲 △환경 호르몬 △먹을거리 △에너지 △단상 등 8가지 주제로 나눠 다뤘다.황 신부는 “현대인들이 지구에서 일어나고 있는 몇 가지 환경 재앙의 의미를 꿰뚫어볼 줄 안다면 지금처럼 편안한 마음으로 지구를 파괴하고 살지는 않을 것”이라며 “이 책이 사람들이 지구를 더 사랑하고 아끼는 마음을 갖는 데 조금이나마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5.07.28
![[성경속 궁금증] 93. 성경은 우정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cpbc.co.kr/CMS/newspaper/2013/11/rc/482805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93. 성경은 우정에 대해 어떻게 이야기하성실한 친구는 생명 살리는 명약이며 보물조반니 바티스타 치마 다 코넬리아노, '다윗과 요나탄', 1505~1510년께, 목판에 유채, 런던내셔널갤러리, 영국. 우정은 사랑의 특별하고 숭고한 표현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우정은 사람들에게 큰 칭송을 받는 덕목이다. 또한 우정은 인격체 사이에서만 가능하다. 성경에서 '우정' 하면 가장 먼저 떠올리게 되는 인물이 다윗과 요나탄일 것이다. 다윗은 양치는 목동이었고, 요나탄은 왕자였다. 요나탄은 다윗보다 나이가 더 많았다. 신분으로 보나, 나이로 보나 두 사람은 친구가 되기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요나탄이 다윗을 알게 된 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게 된 때였다(1사무 18,1). 요나탄은 이렇게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해' 그와 계약을 맺고 그에게 당시 전쟁터에서 가장 귀중하다고 하는 갑옷, 심지어 칼과 활과 허리띠까지 줬다(1사무18,3-4). 아버지 사울이 다윗을 죽이겠다고 하자, 그는 친구 다윗에게 조심하라고 귀띔해 줄 뿐 아니라, 아버지를 설득해 살해할 계획을 취소하게 한다(1사무 19,1-7). 또한 요나탄은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고 다윗의 도주를 도와준다(1사무 20장). 이러한 상황에서 두 친구는 새로운 계약을 맺는다. "요나탄은 다윗을 자기 목숨처럼 사랑하였으므로, 그에 대한 사랑으로 다윗에게 다시 맹세하게 하였다"(1사무 20,17). 신약성경에서도 우정에 대한 언급이 나오는데, 바오로와 브리스킬라와 아퀼라 부부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이다(로마 16,3-4). 이들 부부는 아테네에서 전교 결과가 여의치 않아 풀이 죽어 코린토로 돌아온 사도 바오로에게 거처를 제공하며 극진히 대접했다. 사도 바오로는 이들 부부로부터 많은 위로를 받았다. 사도 바오로와 에바프로디도의 만남도 감동적이다(필리 2,25). 예수님과 제자들(요한 15,14-15)의 우정은 진정한 우정이란 어떤 것인가에 대한 정의라고 할 수 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신실한 벗으로서 본보기를 보여준다. "친구들을 위하여 목숨을 내놓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요한 15,13). 좋은 친구, 성실한 친구를 갖는 것은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일이다. 성경은 특별히 성실한 친구를 '피난처''보물''생명을 살리는 명약'으로 설명하며 성실한 친구가 얼마나 값진 존재인지를 말하고 있다. "성실한 친구는 든든한 피난처로서 그를 얻으면 보물을 얻은 셈이다. 성실한 친구는 값으로 따질 수 없으니 어떤 저울로도 그의 가치를 달 수 없다. 성실한 친구는 생명을 살리는 명약이니 주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그런 친구를 얻으리라"(집회 6,14-16). 즉 참된 우정은 하느님에 대한 성실함, 인간에 대한 성실함에 기초를 두고 있다. 하느님을 믿고 경외하는 사람은 우정 관계에서도 성실하고 신의를 지킨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도 당신을 사랑하는 사람을 잘 돌봐주시고 그에게 좋은 친구를 만들어주신다. 좋은 친구를 얻고자 하면 내 자신이 먼저 좋은 친구가 돼야 한다.cpbc2013.11.12

생활성가로 복음 전하는 ‘주님의 딴따라’대전교구 봉산동본당 주임 연광흠 신부 “젊은 시절 좋아하는 음반이라면 모조리 수집해 따라 부르는 ‘딴따라’였어요. 사제가 된 지금 저는 생활성가를 부르는 ‘주님의 딴따라’입니다. 음악은 사람들 마음을 한데 모으는 가장 좋은 묘약이죠. 생활성가는 주님과 가깝게 만들어주는 특효약이고요. 생활성가를 하는 이유입니다.”생활성가 가수들의 아지트검은색ㆍ파란색의 알록달록한 안경이 짧은 머리, 텁수룩하게 난 수염과 함께 친근함을 발산하는 연광흠(대전교구 봉산동본당 주임) 신부. 그의 사제관은 책장 가득 레코드판과 CD 음반으로 ‘도배’돼 있어 작은 레코드점을 연상케 한다. 생활성가 가수들이 모이는 ‘아지트’이기도 하다. 한쪽은 대중가요ㆍ팝송이, 다른 쪽은 가톨릭ㆍ개신교 성가 등 종교 음반으로 채워져 있다. 늘 다양한 풍의 성가를 제작해내는 힘이 여기서 나오는 듯했다.연 신부는 신학생 때부터 지금까지 음반 4장을 내고, 지금도 틈나는 대로 생활성가 가수들과 녹음하고 무대에 서는 생활성가 가수 사제다. 연 신부는 연신 음악에 빠져 지내온 자신의 인생을 이야기했다.고등학교 졸업 후 디제이로“당시 ‘음악 감상실’이라 불렀죠. 고등학교 갓 졸업하고 거기서 디제이(DJ) 하면서 사람들에게 음악 들려주는 일을 했어요. 팬도 더러 있었죠. 2~3년 하다가 노래 공부한다고 상경해서 프로덕션 회사에도 들어갔더랬죠. 트로트를 하라길래 ‘내가 좋아하는 음악 하겠다’고 뛰쳐나오기도 했죠.”연 신부는 아버지가 하던 사업도 물려받지 않았다. 대신 제대 후 1987년 스스로 500만 원을 장만해 13㎡(4평)짜리 레코드점을 차렸다. 창업을 한 것이다. 갖가지 귀한 음반을 수집해 모으고, 최신 팝송과 가요를 구색 맞춰 카세트테이프로 제작하다 보니 멀리 제주도에서도 사람들이 찾아왔다. 방송국, 나이트클럽 관계자들도 다녀갔다. 성소를 느끼고 31살에 신학교에“그러다 성경 구절을 읽고 성소를 느끼게 됐어요. 수녀회에 입회하는 여동생을 위해 매일 기도하고 성경을 읽던 중 이사야서 49장 ‘너에게서 내 영광이 드러나리라’란 구절에서 형언하기 힘든 황홀함을 느꼈어요. 레코드점을 일주일 만에 접고 신학교 준비에 들어갔죠.”갑작스러운 ‘인생 전환’에 놀라 반대하던 아버지에게 연 신부는 “신학교 문지기라도 하겠다”며 응수했고, 두려움을 무릅쓰고 새로 대입 시험을 준비해 1993년 31살에 신학대에 입학했다. 대전가톨릭대 신학대 1회 1번 신학생이었다.연 신부는 “사제가 되면 다시는 음악 안 하겠다고 다짐했는데, 신학생 6년간 전례 음악부장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생활성가에 매료됐다”고 했다. 그는 1999년 열린 제1회 PBC창작생활성가제에 동료 신학생과 생활성가노래패 ‘For’로 출전해 당당히 대상을 차지했다.고등학교 졸업 후 DJ하며 가수 꿈꿔아버지 반대 무릅 쓰고 신학교 입학음악부장 하며 생활성가의 길 들어서주님 일꾼으로 노래하는 삶이 은총음악으로 찬양하는 주님의 일꾼젊은 시절 모든 음악을 섭렵한 덕분일까. 연 신부는 다양한 장르의 노래를 생활성가와 접목해 자유자재로 마치 ‘음악 제조기’처럼 작ㆍ편곡을 선보인다. 의도적으로 개신교 성가를 가톨릭화(化)해 제작한 2집도 그렇고, 지난해 출시한 4집 ‘더불어 주님 찬양’은 수록곡 13곡 모두 기존 생활성가 느낌과는 전혀 다르다. 4집엔 뮤직비디오도 있다.2013년 연 신부는 사목하던 대전 연무성당에서 10시간짜리 생활성가 페스티벌을 열었다. 3일씩 여는 ‘재즈 페스티벌’에서 아이디어를 빌린 것. 생활성가 가수 20팀이 출연해 자정까지 축제를 열었는데, 어린이와 어르신 모두 엉덩이도 안 떼고 감상에 젖었다. 그 해는 장환진(요한 사도)씨와 2주간 미국 한인들 초청으로 생활성가 투어도 했다. 연 신부는 “힘이 닿는다면 생활성가 콘서트를 또 열고, 남미 쪽도 방문해 성가를 더 부르고 싶다”고 했다.“사제가 된 것이 제 인생 가장 큰 신비였다면, 주님의 일꾼으로 살며 노래하는 지금 순간순간은 늘 은총입니다. 생활성가계가 세상 논리보다 더불어 찬양하는 분위기 안에서 더욱 다양화되길 바랍니다. 다음 음반 준비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세요.”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 백영민2015.07.16
![[생활 속의 복음]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군요!](//cpbc.co.kr/CMS/newspaper/2016/01/rc/612708_1.0_titleImage_1.jpg)
[생활 속의 복음] 예수님은 이런 분이시군요!주님 세례 축일(루카 3,15-16. 21-22) 주수욱 신부(서울대교구 대방동본당 주임) 1. 예수님이 받은 세례는 어떤 세례입니까?예수님께서 베들레헴 마구간에서 태어나 고향에서 어린 시절을 다 보내고 성인이 되셔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다. 그분은 먼저 고향 사람들과 함께 요르단 강으로 가셨습니다. 하느님께서 선택하셔서 하느님 백성이 된 이스라엘이 로마제국 황제의 통치를 받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치욕이었습니다. 세례자 요한은 그 원인이 이스라엘의 죄 때문이기에, 요르단 강에 와서 세례 예식을 하면서 민족 전체가 회개하자는 운동을 벌이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죄인이 아니시지만, 자신이 속한 이스라엘 민족의 일이기에 기꺼이 동참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세례자 요한에게 가서 세례를 받을 정도로 겸손한 분이시기도 합니다. 그리고 로마제국의 식민 통치를 받는 동족의 여러 가지 고통을 같이 아파하시고 그들의 행동에 동참하시던 분이 분명합니다.2. 예수님의 자세와 기도오늘도 교회는 온 백성 가운데서 겸손하게 자리매김을 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복음은 온 백성이 겪는 고통을 함께 짊어지고 문제 해결을 위해 그들과 머리를 맞대고 함께 해결책을 찾아 나서기를 우리에게 촉구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동족은 어떤 고통을 겪으면서 살고 있는가? 오늘 지구촌의 이웃 사람들은 어떻게 파괴되고 소외되고 있는가? 어떻게 인간의 존엄성을 박탈당하고 있는가? 어느 나라에서든지 젊은이들은 절망하면서 방황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풍요한 시대에 부모들의 보살핌을 받지 못하는 아이들이 아무 대책도 없이 길거리로 뛰쳐나와 방황하고 있습니다.예수님께서는 고요한 환경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 사이에 어수선한 상황에서도 기도를 열심히 하십니다. 우리도 사람들이 곤란을 겪는 일상 삶의 한가운데서 하느님께 기도하는 것을 배워야 하겠군요. 이스라엘 사람들이 하느님께로 되돌아가자는 회개 운동을 하고 있는 현장에서,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느님과 깊은 일치를 이루시며 기도하고 계십니다.3. 그때 내리신 비둘기 모양의 성령그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비둘기 같은 모습으로 예수님 위에 내리셨습니다. 비둘기라고 하니 구약성경 창세기에 나오는 노아의 방주 사건이 생각납니다. 타락한 인류가 벌을 받지만, 하느님께서 노아와 가족들을 홍수에서 구출하십니다. 그 결정적인 때에, 비둘기가 싱싱한 올리브 잎을 물고 노아에게 돌아온 장면을 떠올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성령께서 비둘기의 형체로 예수님 위에 내리셨음은 모든 인간에게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표시가 아닌가요?예수님께서 전도를 시작하실 때 ‘주님의 영이 내리셨습니다’(루카 4,18). 사도행전 2장에서 보듯이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불꽃과 같은 혀 모양을 한 성령강림을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온 백성에게 이렇게 당신 모습을 드러내실 때부터 성령께서 예수님 위에 내려오시더니 이제는 우리 모두 위에 내려오십니다. 예수님과 하나되는 세례성사를 받은 우리가 주님의 소집에 응답하여 교회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것은 성령께서 우리에게 오심으로써 가능하게 된 일입니다.4.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여기서 예수님이 하느님 아드님이라는 사실이 하느님 아버지로부터 확인되고 있습니다. 덕분에 우리도 하느님 자녀가 됩니다. 바오로 사도는 이렇게 설명하십니다. “때가 차자 하느님께서 당신의 아드님을 보내시어 여인에게서 태어나 율법 아래 놓이게 하셨습니다. 그것은 율법 아래 있는 이들이 속량하시어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 되는 자격을 얻게 하시려는 것이었습니다. 진정 여러분이 자녀이기 때문에 하느님께서 당신 아드님의 영을 우리 마음 안에 보내주셨습니다. 그 영께서 ‘아빠, 아버지!’ 하고 외치고 계십니다”(갈라 4,4-6).하느님 마음에 드는 아들은 이런 분입니다. 성령께서 내려오시고, 겸손하여 큰소리치지 않고, 가난한 사람들을 소중하게 여기는 분입니다. “여기에 나의 종이 있다. 그는 내가 붙들어 주는 이, 내가 선택한 이, 내 마음에 드는 이다. 내가 그에게 나의 영을 주었으니 그는 민족들에게 공정을 펴리라. 그는 외치지도 않고 목소리를 높이지도 않으며 그 소리가 거리에서 들리게 하지도 않으리라. 그는 부러진 갈대를 꺾지 않고 꺼져 가는 심지를 끄지 않으리라. 그는 성실하게 공정을 펴리라”(이사 42,1-3). cpbc2016.01.05
![[우리가 궁금한 혼인성사]](//cpbc.co.kr/CMS/newspaper/2016/09/rc/651853_1.0_titleImage_1.jpg)
[우리가 궁금한 혼인성사]예비부부 발목 잡는 혼인성사, 왜 복잡할까?가톨릭교회의 혼인성사는 거룩하고 아름답지만, 그 준비 절차는 매우 복잡하고 까다롭다. 예비부부가 모두 가톨릭 신자여도, 그 과정은 번거로움의 연속이다. 결혼 준비 3종 세트로 불리는 ‘스ㆍ드ㆍ메’(스튜디오ㆍ드레스ㆍ메이크업)만으로도 정신없는데 혼인 교리, 혼인 면담, 성당 예약까지 해야 한다. 8월 26일, 서울대교구청. 청년들과 호흡하며 사는 은성제(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대학생사목부) 신부와 올가을 혼인을 앞둔 31살 동갑내기 예비부부 한가람(미카엘)·허윤아(미카엘라)씨가 만나 속 시원한 이야기를 나눴다. 한가람(미카엘, 31, 서울 여의도동본당)ㆍ허윤아(미카엘라, 31, 서울 여의도동본당) 예비부부와 은성제(서울대교구 청소년국 대학생사목부) 신부. 한가람 : 신부님, 먼저 가톨릭 교회는 가정을 어떻게 정의하는지 궁금해요. 은 신부 : 중요한 문제죠. 왜냐하면 여기서부터 ‘헉’ 하고 깜짝 놀랄 교리 내용이 있거든요. 특히 요즘 사람들에게 교회가 말하는 가정을 정의할 땐 먼저 혼인을 살펴봐야 합니다. 혼인성사는 남녀가 만나 자유로운 의지로 서로 사랑해서 자녀를 낳는 것을 기초로 해요. 자녀를 낳음으로써 하느님의 창조사업에 동참하는 거니까. 자녀를 낳을 생각이 없으면 교회는 두 사람이 혼인성사를 할 준비가 안 돼 있다고 판단합니다. 가정은 한사람이 생명을 받고 태어나 하느님의 사랑을 부모를 통해 체험하는 ‘최초의 교회’이기 때문이죠. 허윤아 : 그러면 신부님, 혼인의 목적은 자식을 낳는 게 제1의 목적인 거예요?(놀람) 은 신부 : 물론 자녀 출산만이 혼인의 목적은 아니예요. 부부 사랑이 가장 중요합니다. 자녀는 부부 사랑의 자연스러운 결실이지요. 그러나 이 둘은 뗄 수 없는 관계여서 출산을 배제한 혼인이란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없는 거지요. 그런데 다양한 후천적 원인으로 아기를 갖지 못하는 이들이 있잖아요. 이경우는 달라요. 허윤아 : 와, 교회가 굉장히 보수적이네요. 본인 의지로 가진 결함이 아니잖아요? 은 신부 : 그렇지만 교회법이 한편으로는 융통성이 있는 게 교회 안에는 ‘사목적 배려’라는 게 있죠. 사목자의 판단이 정말 중요해요. 모든 교회법보다도 결국은 하느님의 사랑이 가장 우선이니까요. 허윤아 : 신랑 신부 중 한쪽이 죽기 전까지는 재혼하면 안 되나요? 제가 재혼을 하겠다는 건 아니지만요. 배우자의 가정 폭력 때문에 자녀들의 생명이 위험한 가정이 있잖아요. 이런 경우에는 이혼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은 신부 : 교회는 ‘이혼’이라는 말을 안 써요. 성경 말씀에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 놓아서는 안 된다’고 예수님께서 단언하셨기 때문이죠. 교회는 보수적인 곳이 아니라 하느님의 가르침을 따르는 곳이에요. 대신 교회에는 ‘혼인 무효화’ 제도가 있어요. 배우자에게 어떤 질병이 있거나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는데 혼인하기 전에 몰랐어요. 이런 것들은 혼인 무효화의 사유가 됩니다. 혼인하고 보니깐 연애 때 했던 말들이 다 거짓말이었고,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었다면 교회는 무효화를 선언할 수 있죠. 무효화를 선언하기까지는 본당 신부가 면담을 통해 소견서와 진술서를 써서 교회 법원으로 보냅니다. 가정 폭력 같은 경우도 혼인 무효화가 가능한 기준이에요. 사람이 결국 살아야 하니까, 교회는 이런 제도를 교회법으로 만든 거죠. 한가람 : 혼인성사를 직접 준비해 보니 절차가 너무 까다롭고 복잡하더라고요. 은 신부 : 혼인성사는 두 사람이 교회와 공동체 앞에서 공증하는 거예요. 두 사람이 전에 혼인한 적이 없는지를 확인하려면 혼인 관계 증명서를 봐야 하고, 알고 보니 남편이 있고 아내가 있으면 안 되니까 문서로 교회 공동체에 공증하는 거죠. 전 신자를 불러놓고 할 수 없으니까 혼배 담당 사제가 대표로 하는 거고요. 교회 공동체로부터 두 사람이 공증을 받는 것으로 생각하면 절차가 까다로운 걸 이해할 수 있을 거예요. 혼인 준비가 혼수품만을 준비하는 게 전부가 아니니까요. 혼인 교리를 통해 내적인 준비도 필요하고요. 이런 걸 누군가가 설명을 잘해 줘야 하는데, 결혼할 때 정신이 없죠? 상견례를 하고, 날 잡고 성당 잡느라. 또 일도 해야 하고, 인사는 다녀야 하고…. 그놈의 혼수품 준비는 해야 하는데 말이에요. 이런 준비 때문에 혼인성사를 위한 준비가 발목 잡는다고 느낄 거예요. 허윤아 : 가톨릭의 혼인 절차가 까다롭다고 더 느끼는 건, 예비신랑 부모님이 신자가 아니거든요. 저는 신자니까 성당에서 혼인하고 싶은데 예비신랑 가족은 아무도 신자가 아니거든요. 저도 혼인이 처음이잖아요. 생각지 못한 절차가 너무 많으니까 시댁에 눈치가 보이는 거예요. 간단하게 예식홀만 잡으면 될걸. 은 신부 : 그래서 제안하고 싶은 건 혼인 날짜를 잡으면 무조건 2~3달 전에 혼인교리를 먼저 받으라는 거예요. 한가람 : 저희는 10월 혼인인데 5월에 혼인교리를 받았어요. 은 신부 : 미리 잘했네요. 내가 말하는 건 3개월 전에 혼인교리 받고, 늦어도 한 달 전에는 혼인 면담을 하라는 거예요. 그래야 나머지 준비가 수월합니다. 허윤아 : 저는 세례 증명서를 떼는 데 정말 힘들었어요. 세례는 홍콩에서 받고, 견진은 중국에서 받았거든요. 세례 증명서가 있어야 혼인 면담이 된다고 해서 홍콩에 연락하는데 엄청나게 애를 먹었어요. 한가람 : 성당 구하기도 정말 힘들더라고요. 명동성당은 3대가 복을 받아야 당첨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예요. 은 신부 : 서울대교구가 가진 큰 문제 중 하나예요. 수많은 청년 커플이 결혼하는 데 성당 잡기가 어려워요. 명동성당도 추첨하는데 추첨을 못 받으면 끝이고. 교회법으로 혼인성사의 장소는 성전과 경당, 공소예요. 사제는 일반 예식장에서는 혼인성사를 집전할 수 없게 돼 있거든요. 성당을 못 잡아서 예식장을 잡았는데 왜 신부님이 해 주면 안 되느냐고 하는데 신부들은 예식장에서 혼인성사를 해줄 수가 없어요. 허윤아 : 그런데 성당에서 혼인할 때 보면 왜 사진ㆍ뷔페 업체가 다 지정돼 있는 건가요? 성당 사용료도 성당마다 다르고요. 저희는 돈이 없고 있고를 떠나 화려하게 하고 싶지 않았는데…. 은 신부 : 모든 성당이 나름대로 여러 업체를 통해 견적을 비교했을 텐데 차이가 나는 건 본당마다 사정이 있기 때문이겠죠. 그런데 사제로서 인정하는 것은 결혼을 준비하는 커플과 집안 입장에서는 아쉬움이 크다는 거예요. 선택의 폭이 너무 좁죠. 더 소박해도 되는데 그 이하도 없고. 한가람 : 축가도 한 곡밖에 허용이 안 되는 성당이 있어요. 은 신부 : 간혹 가톨릭 교회를 잘 모르는 사람이 너무 이벤트성으로 한다거나 시끄럽게 할 수 있죠. 대부분 혼인하는 날은 토요일이고, 대부분 혼인 미사 후에 어린이 미사가 이어지는데 성모상 머리에 장식이 뿌려져 있고, 눈가루가 날리고 있어 봐요. 본당 입장에서는 질서를 잘 지켜야 하는데, 그러려면 업체를 지정해 놓는 게 관리하기 편리하죠. 그럼에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것은 그래도 신자들이 원하는 것에 대해 교회가 더 열어 주면 어떨까 싶어요. 허윤아 : 혼인을 문의하려고 사무장님들과 통화를 많이 했는데, 딱딱 정해져 있는 답변에 메뉴판을 읽어 주는 직원 느낌이 들었어요. 은 신부 :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님도 성당 직원들이 예식장에서 결혼업소를 운영하는 듯한 모습을 보인다고 지적하셨죠. 혼인은 두 사람에게 복된 성사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아야 하는 자리이고, 성당은 그것을 전해 주는 자리인데, 직원들이 그런 모습을 보이면 안 된다고요. 허윤아 : 이게 한국 교회만 그런 게 아니군요! 한가람 : 다음 질문을 드리면, 혼인 후에 부부 사이에 많은 난관과 문제가 생길 수 있잖아요. 또 생활 속에서 사소한 마찰이 있을 때마다 고해성사를 봐야 하나요? 은 신부 : 부부 사이에 난관을 만들지 마세요.(웃음) 허윤아ㆍ한가람 : 하하하 은 신부 : 고해성사는 중요하죠. 하지만 사소한 것으로 매번 고해성사를 볼 순 없어요. 살면서 순간 상대방에 대한 미운 마음이 들 때가 있죠. 시간이 흘러도 꼴도 보기 싫고 계속 미우면 성사를 봐요. 하지만 다음 날 괜찮으면, 부부가 함께 아침기도를 바치면 돼요. 일상에서 사소한 마찰이 계속되고 그 원인이 똑같으면 둘이서 대화를 나눠야 해요. 서로 아픈 데를 찌르니깐 화를 내는 게 아니라 서로 어디에 상처가 있는지를 보는 거예요. 부부간에 대화가 없으면 성숙해지질 않아요. 허윤아 : 혼인 생활을 하면서 양가의 종교가 달라서 많은 문제가 생기잖아요. 제사 문제도 그렇고. 현명하게 해결할 방법이 있을까요? 은성제 : 이게 참 문제가 커요. 허윤아 : 가톨릭은 제사를 지내잖아요. 제사 문화는 한집안의 풍습이고 오랫동안 내려온 전통인데, 제사를 지내더라도 나만 의미를 크게 안 두면 되는 거 아니예요? 은 신부 : 하지만 가톨릭 교리에 맞는 양식으로 되어 있죠. 연도를 바치고, 위패를 모시지 않아요. 12년 동안 사제 생활을 하며 본 결과는 결국 신앙심이 깊은 쪽이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버틴다는 거예요. 그 과정에서는 평화를 유지해야 하죠. 이런 부부도 있었어요. 남자가 가톨릭 신자고, 여자는 아닌데 남편이 주일마다 성당에서 온종일 봉사하는 거예요. 부부 사이가 나빠지자 남편은 신부님과 면담을 하고 주일 미사 대신 평일 미사를 나갔어요. 주일은 가족과 함께 보냈고요. 나중에 아내는 가족에게는 사랑을 보여 주지 않고, 성당에만 다니는 모습이 보기 싫었다고 털어놨어요. 결국 3년 뒤에 아내는 세례를 받았어요. 주일 미사에 빠지는 것은 교회법에서는 죄지만 그걸 논하기 전에 부부의 삶은 매우 다양해요. 한가람 : 신부님, 자녀는 하느님의 선물인데. 인공수정을 통해서 어떻게든 자녀를 갖도록 노력하는 건 옳지 않나요? 은 신부 : 애타는 마음은 이해하는데 교회는 수정란을 생명으로 봐요. 그래서 교회는 생명을 인위적으로 만드는 행위를 반대해요. 시험관을 통해 수정란을 여성의 자궁에 넣어 생명을 인위적으로 만들다 보니 쌍둥이가 많이 생겨요. 이때 부모에게 선택 유산이라는 선택권을 주죠. 말이 유산이지, 낙태에요. 교회는 자녀가 축복이라 할지라도 인위적으로 그런 과정을 거치는 것을 반대해요. 이런 이야기하면 싫어할 거예요. “네가 겪어 봤어?” 하면서. 신학생 때 공부하면서 이런 이야기를 세상 사람들에게 잘할 수 있을까, 시대에 뒤떨어진 소리라고 생각하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생명윤리학적으로 왜 안 되는지 이유가 명확하니깐요. 한가람 : 부모가 자녀의 신앙을 정할 수 있나요? 유아 세례는 아이는 모른 채 주는 거잖아요. 은 신부 : 엄마가 모유 수유를 할 때 아기한테 물어보나요? 부모에게 신앙이 중요하지 않으면, 자녀에게 신앙을 전해 주는 것을 강요라고 생각할 수밖에 없어요. 부모에게 신앙이 중요하다면, 영원한 생명을 얻는 것이 그 무엇보다 중요하다면 당연히 세례를 주는 거예요. 가끔 후회하세요? 엄마, 아빠는 왜 나한테 묻지도 않고 세례를 줬느냐면서. 허윤아 : 저는 엄마 아빠가 재산을 물려주는 것보다 신앙을 물려 주셔서 감사해요. 힘든 상황이 닥쳤을 때, 엄마가 준 가장 큰 선물은 신앙이었다는 걸 느껴요. 은 신부 : 물론 어릴 때는 습관적으로 성당에 가요. 방황도 하고. 하지만 성인이 되고 나서 유아 세례받은 걸 후회하는 사람은 많이 못 봤어요. 모든 신앙의 근원은 부모에게서 나와요. 아이들은 부모의 신앙생활을 보고 그대로 배우죠. 마지막으로 혼인 축하하고, 서로가 서로를 위해 죽을 수 있을 만큼 큰 사랑을 갖고 살아야 해요.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 박힌 것처럼. 싸울 때는 항상 다음 날 얼굴을 볼 마음으로 싸우고. 짐 싸서 친정으로 가지 마세요. 행복한 성가정을 이루며 사세요.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사진=이힘 기자 lensman@혼인성사 준비 복잡하다고요? 이렇게 하면 참 쉽죠~1. 혼인 신청 및 혼인 면담 예약 본인이나 예비 배우자가 속해있는 교적지 본당의 사무실을 방문해 혼인 신청서를 작성하고, 본당 신부와의 혼인 면담 일정을 예약한다. 2. 혼인교리 수강 소속 교구에서 시행하는 혼인교리를 수강한다. 서울대교구 혼인교리 일정은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홈페이지(www.ihome.or.kr)에서 확인할 수 있다. 혼인교리 대신 2박 3일간의 약혼자 주말에 참가해도 된다. 혼인교리 이수증은 유효 기간이 1년이다. 3. 서류 준비 혼인성사에 필요한 서류를 준비해 혼인 면담을 할 때 제출한다. 구비 서류 : 세례 증명서 1통, 혼인 관계 증명서 1통, 혼인교리 이수증 4. 혼인 면담 본당 사제와 혼인 면담을 할 때 혼인 전 당사자가 진술서를 작성한다. ‘관면혼’(가톨릭 신자가 교회의 관면을 받고 가톨릭 신자가 아닌 사람과 하는 혼인)을 받는 경우라면 이때 관면을 받게 된다. 혼인 면담은 아무리 늦어도 예식 한 달 전에는 진행해야 한다. 5. 혼인 예식 혼인 예식은 혼인 당사자 중 어느 한 편이 교적을 두고 있는 본당 사제의 주례로 본당에서 거행하는 것이 원칙이다. 만약 교적지 본당 이외의 성당이나 공소에서 혼인하려면 혼인 허가서를 받아야 한다. 본당 신부가 아닌 개인적인 주례 신부를 모실 수도 있다. ※혼인 예식을 위한 혼인 성당 정보(주차 규모, 성전 좌석 수, 성가대 지정 여부, 꽃장식 등)와 국가별 혼인 관계 증명 서류 발급처(국제결혼) 등은 서울대교구 가정사목부 홈페이지(www.ihome.or.kr)에서 자세히 안내하고 있다. 이밖에 전국 교구의 혼인 관련 정보는 각 교구의 가정사목부에 문의할 수 있다. 이지혜 기자 백영민2016.09.07
![[성경 속 도시] <8>성스러운 땅 모리야](//cpbc.co.kr/CMS/newspaper/2014/03/rc/499151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성스러운 땅 모리야솔로몬이 주님의 집 지은 땅 예루살렘 모리야 산 위에 세워진 이슬람 황금돔 안에는 큰 바위가 있다. 이 바위는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려고 사용한 제단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모리야'라는 지명은 성경에 단 두 번 등장한다. 그런데 모리야는 성경에서 대단히 인상적인 장소다. 모리야는 이스라엘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 하느님 말씀에 따라 외아들 이사악을 제물로 바친 곳이기 때문이다. "이런 일들이 있은 뒤, 하느님께서 아브라함을 시험해 보시려고 '아브라함아!' 하고 부르시자, 그가 '예,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그분께서 말씀하셨다. '너의 아들, 네가 사랑하는 외아들 이사악을 데리고 모리야 땅으로 가거라. 그곳, 내가 너에게 일러 주는 산에서 그를 나에게 번제물로 바쳐라"(창세 22,1-2). 여기서 모리야가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알 수 없다. '번제'는 제물을 불에 태워서 드리는 제사를 뜻한다. 구약의 번제는 가축 중에서 소나 양, 염소 따위를 잡아 제단에다 피를 뿌리고 내장을 모두 빼내고 가죽을 벗긴 다음 제단 위에 올려놓고 불에 태워 그 연기가 위로 올라가게 하는 것이다(레위 1,3-9). 성경에서는 아브라함이 외아들 이사악을 번제로 드리기 위해 죽이려는 순간 천사가 아브라함을 막는다. "천사가 말하였다. '그 아이에게 손대지 마라. 그에게 아무 해도 입히지 마라. 네가 너의 아들, 너의 외아들까지 나를 위하여 아끼지 않았으니, 네가 하느님을 경외하는 줄을 이제 내가 알았다'"(창세 22,12). 모리야는 솔로몬과 관련해 성경에 한 차례 더 언급된다. 솔로몬이 왕위에 올랐을 때 그는 수도를 확장하기를 원했다. 그래서 그는 북쪽 언덕, 곧 옛 오르난의 타작마당 위에 궁전과 성전을 세우려 했다. "솔로몬은 예루살렘 모리야 산에 주님의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 그곳은 주님께서 그의 아버지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으로서, 본디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이었는데 다윗이 집터로 잡아 놓았다"(2역대 3,1). 솔로몬은 페니키아인들의 도움으로 예루살렘에 성전을 세웠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지 사백팔십 년, 솔로몬이 이스라엘을 다스린 지 사 년째 되던 해 지우 달, 곧 둘째 달에 솔로몬은 주님의 집을 짓기 시작하였다"(1열왕 6,1).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성전은 구약시대의 솔로몬 성전, 즈루빠벨 성전, 헤로데 성전 등 3개가 건축됐다. 그리고 이 성전들은 모두 같은 자리에 세워졌다. 첫 번째 성전인 솔로몬 성전은 다윗왕의 아들 솔로몬에 의해 기원전 968년에 착공돼 기원전 961년에 완공된 것으로, 위치는 다윗왕이 환상에서 보았던 예루살렘 동쪽 모리야 산이었다. 전설에는 이 바위가 아브라함이 이사악을 번제물로 바치던 제단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다윗이 준비해 둔 금과 일부의 건축재료 외에 레바논에서 향백 재목를 공급받아 티로 왕 히람이 보낸 건축 기술자들과 3만 명의 이스라엘 인부들에 의해 건축됐다. 솔로몬 성전은 완공 이후 400년 동안 이스라엘의 종교와 생활의 중심으로 성역화됐으나 기원전 586년 신바빌로니아 네부카드네자르 왕의 예루살렘 침략 때 파괴됐다. 이스라엘 성지의 중심이 되는 이곳에 역사의 변화 속에서 지금은 '바위사원'이라 불리는 이슬람 사원이 세워져 있다. 멀리서도 한눈에 보이는 황금색 돔으로도 유명한 이 건물은 팔각형으로 웅장하게 지어져 있고 그 안에는 엄청나게 큰 바위가 있다. 무슬림은 이 바위를 딛고 마호메트가 하늘로 승천했다고 믿고 있다. 이 때문에 무슬림은 예루살렘을 사우디아라비아의 메카와 메디나에 이어 이슬람의 3대 성도로 여기고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cpbc2014.03.04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6) 이사야와 이사야서](//cpbc.co.kr/CMS/newspaper/2015/06/rc/575443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6) 이사야와 이사야서두 차례에 걸친 개정 증보판 이사야서 아직 기원전 8세기이지만, 이제는 남왕국 유다로 갑니다.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예언자는 이사야입니다. 이사야서는 매우 중요한 책입니다. 일단 분량이 많아서, 건너뛰고 지나갈 수가 없습니다. 신학적으로도 매우 비중 있는 책입니다. 신약 성경에도 여러 차례 인용되고 있어서, 구약과 신약의 관계를 고찰할 때에도 중요한 책이 됩니다. 마태오 복음 1장 23절에 나오는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하리라” 하는 말씀도 이사야서의 인용입니다.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오늘은 좀 딱딱하더라도 이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하겠습니다. 이사야서를 모두 이사야가 쓴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사실 18세기까지는 대부분의 사람이 이사야서 1─66장 전체가 이사야라는 이름의 한 예언자가 쓴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아모츠의 아들 이사야가 유다의 임금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유다와 예루살렘에 관하여 본 환시”(1,1)라는 머리글이 글자 그대로 이 책 전체에 적용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습니다.그러나 19세기에 이르러 40장 이하에서는 바빌론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점에 주목해 적어도 두 명의 저자가 서로 다른 시대에 쓴 글들이 합쳐진 것이라고 생각하게 되었고, 19세기 말에는 제1이사야(1─39장), 제2이사야(40─55장), 제3이사야를(56─66장) 나누는 이론이 형성되었습니다.20세기 초까지 교회는 이러한 입장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모세오경을 모세가 쓴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던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이사야서를, 적어도 그 상당 부분을 이사야가 쓰지 않았다고 하면 책의 권위가 떨어진다고 우려했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1940년대 이후로는 적어도 세 부분을 나누는 것이 정설로 받아들여집니다. 우리의 「성경」에도 1장 첫머리에 “이사야 예언서 제1부”, 40장을 시작할 때 “이사야 예언서 제2부”, 56장 앞에는 “이사야 예언서 제3부”라고 나와 있을 만큼 이 구분은 이제 누구나 인정하게 되었습니다.세 부분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차이점은 시대적 배경입니다. 이사 1─39장은 주로 아하즈와 히즈키야 시대를 배경으로 하고 있는데, 아시리아의 위협이 크게 부각되며 예언자 이사야가 직접 등장합니다. 구체적으로는 기원전 736~734년의 시리아-에프라임 전쟁과 기원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이 중요한 사건들로 나타납니다(기원전 8세기). 그러나 40장 이후에는 이사야는 나오지 않고 아시리아도 문제가 되지 않으며 오히려 바빌론에 대해서, 유배에서 돌아오는 것에 대해 말합니다. 45장 1절에서는 키루스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기까지 합니다. 배경은 유배 끝 무렵인 기원전 6세기입니다. 한편 56─66장에서는 이미 유배에서 돌아온 후의 재건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어 더 늦은 시기를 배경으로 합니다. 그 외에 문체와 신학에서도 차이를 볼 수 있습니다.정확히 말하자면, 책 세 부분을 완전히 갈라놓고 서로 다른 세 시대에 할당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1─39장 안에도 후대에 첨가된 부분들이나 작은 손질들이 있기 때문이지요. 예를 들어 24─27장은 매우 늦은 시기에 첨가되었습니다. 그러나 대략 말하자면 이렇게 세 부분으로 나누는 것을 받아들일 수 있으며 이를 염두에 두는 것은 이사야서를 이해하는 데에 큰 도움이 됩니다. 그래서 지금은 이사 1─39장만을 다루고, 제2이사야와 제3이사야는 각각 유배기와 유배 후의 예언자로 따로 살펴볼 것입니다.그러나 주의 사항이 있습니다. 이사야서의 세 부분을 마치 서로 떨어져 존재할 수 있는 책들처럼 생각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앞부분에도 후대에 삽입된 부분이 있다는 점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사야서 제2부나 제3부는 각각 떨어져 있었던 적이 없습니다. 이사야서 첫째 부분에 40─55장이 덧붙여져서 말하자면 개정 증보판이 된 것이고, 다시 56─66장이 덧붙여져 또 하나의 개정 증보판이 된 것입니다. 개정 증보판은 책 두 권이 아니라 한 권이지요. 이사야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책이 계속 자라났어도 이사야서는 늘 한 권이었습니다. 뒷부분을 덧붙인 사람들은 기존의 이사야서를 자신의 시대에 맞게 다시 해석하면서 책을 새롭게 만들어갔던 것입니다. 비록 각 부분의 저자는 달라도 이사야서는 지금도 한 권의 책입니다.기원전 8세기의 이사야에 대해 몇 가지만 언급해 둡니다. 이사야서 1장 1절에서는 이사야가 “우찌야, 요탐, 아하즈, 히즈키야 시대에” 환시를 보았다고 되어 있으나, 6장 1절에서는 그가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에 부르심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연대가 좀 어지럽기는 하지만, 어쨌든 우찌야 임금이 죽던 해라면 기원전 740년경입니다. 36─37장에서 기원전 701년 산헤립의 침공 당시 이사야의 활동을 전해주고 그 이후로는 그에 대한 진술이 이어지지 않는 것으로 보아 이사야는 대략 그 무렵까지, 약 40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활동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출생지나 가문에 대해서도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으나, 그의 글에는 높은 교육 수준이 드러납니다. 임금이나 고위 관리들과 어렵지 않게 접촉하며 정치적 활동을 했던 것으로 보나, 신학적으로 다윗 왕조와 예루살렘을 크게 중시했던 것으로 보나 그는 예루살렘 귀족 출신이었다고 생각됩니다.오랜 기간 활동한 예언자이기에, 각 시기의 활동에 대해선 다음번에 살펴보겠습니다. 너무 큰 책이라고 미리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구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5.06.09

성경으로 '새 삶' 사는 홍화자, 이응창 할머니까막눈 뜨던 날 신앙의 눈, 귀도 열려 까막눈이었던 홍화자 할머니(왼쪽)가 이응창 할머니에게 "형님, 성경을 읽을 수 있게 도와줘서 고마워요!"라고 하자, 이 할머니가 "내 힘으로 한 게 아니다"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다. 이지혜 기자 "형님, 나 이제 하느님은 안 보고도 써요. 이제 눈도 열리고 귀도 열려서 하느님 말씀이 들어와요. 지금은 정말 하느님과 같이 새 삶을 산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신의 이름 석 자만 겨우 쓸 줄 알았던 홍화자(데레사, 78, 서울 대방동본당) 할머니는 처음 하느님을 보지 않고 쓴 날의 감격을 잊지 못한다. "글을 가르쳐준 이응창 형님과 우리 박기주 신부님(대방동본당 주임)은 제 평생의 은인이에요. 글씨를 몰라 창피스러워 미사에 가도 앉아만 있다 왔는데…." 홍 할머니가 4년간 자신에게 한글을 가르쳐준 이응창(데레사, 80, 대방동본당) 할머니의 손을 잡고 고마워하자, 이 할머니도 흐뭇한 미소로 대답한다. "아이고, 가르치면서 얼마나 답답했는지 몰라요. 호호. 이건 내 힘으로 된 게 아니에요. 하느님이 도와주신 거지." 홍 할머니는 10년 전 남편을 잃고 홀로 정신분열증을 앓는 딸을 돌보며 병원 청소일로 생계를 이어왔다. 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홍 할머니는 전화번호도 받아적을 수 없을 만큼 평생을 까막눈으로 살아왔다. 그랬던 홍 할머니가 한글에 관심을 갖게 된 건 평소에 가까이 지냈던 이 할머니가 성경을 필사하는 모습을 보고 나서다. 이 할머니는 8년 동안 성경을 27번이나 통독한 '성경 박사'다. 홍 할머니는 이 할머니에게 "형님, 나도 성경을 한 번 읽어봤으면 좋겠다. 나도 할 수 있을까?"하고 물었고, 이때부터 이 할머니의 특별 과외가 시작됐다. 이 할머니는 매일 3시간씩 홍 할머니를 붙들고, 성경을 읽어주고 성경 구절을 그대로 따라 그리게 했다. "어머니를 쓸 때는 동그라미를 먼저 그리고 안에서 밖으로 긋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긋고. 네모를 그린 다음에 안에서 밖으로 긋고 위에서 아래로 내려그으면 된다." 두 할머니는 2012년부터는 본당에서 나눠준 '사순시기 말씀 통독'을 교재로 성경을 함께 읽기 시작했다. 본당 주임 신부도 만날 때마다 두 할머니에게 용기를 북돋아 줬다. 용기가 생긴 홍 할머니는 사순시기 말씀 통독을 마치고, 신약성경 필사에 들어갔다. 하루에 3~4시간씩 앉아서 성경을 쓰는데도 노트 한 바닥을 채우기가 쉽지 않았다. 거의 그리다시피 했다. 속도는 느렸지만 홍 할머니는 성경 말씀을 써 내려가면서 말씀의 빛을 만났다. "하느님 말씀을 쓰다 보니까 내 생각대로만 살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눈물이 나더라고요. 세례받은 지 20년이 넘었는데 '내가 이 나이 되도록 헛살았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홍 할머니는 "글씨를 알아 성경 말씀을 읽을 줄 아는 사람들은 얼마나 좋았을까 싶다"며 "평생 살면서 지금처럼 행복한 순간이 없었다"고 털어놨다. 신약을 필사하는 데 2년이 걸린 홍 할머니는 이제 구약을 필사하고 있다. 홍 할머니의 가정교사가 되어준 이 할머니도 성경을 27번이나 읽게 된 계기가 있다. 근육이 굳어가는 병으로 심한 관절 통증을 호소했던 이 할머니는 두부 한 모도 들 수 없을 정도로 힘이 없었다. 할머니는 병원에서 약이 없다는 말을 듣고, 성경을 펼쳤다. "하느님, 이 세상에는 제 병을 고칠 수 있는 약이 없다네요. 제가 하느님의 구약과 신약을 먹으면 치유해주시리라 믿습니다." 할머니는 8년간 열두 차례 병원에 입원하면서도 손에서 성경을 놓지 않았다. 이 할머니는 성경을 통독하는 동안 온몸에 착용하고 있던 보조기를 모두 풀었다. "성경을 읽으면 잡념이 사라지고, 고통도 잊게 됩니다. 성경처럼 읽을수록 재미있는 게 없어요. 미사 시간에 (독서와 복음 내용을 몰라) 답답하지도 않고요." 두 할머니는 "우리가 주님에게 갈 날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주님을 만나면 당신 말씀을 한 번은 읽었노라고 부끄럽지 않게 말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많은 어르신들이 성경 읽기의 기쁨을 알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어릴 때부터 신앙생활을 하는 젊은이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면서. 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cpbc2014.02.11
![[성경 속 도시]<12>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 내린 신 광야](//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375_1.2_titleImage_1.jpg)
[성경 속 도시] 만나와 메추라기의 기적 내린 신 광야 배고픈 백성을 저버리지 않으신 하느님 엘림에서 시나이산으로 가는 길에 있는 신 광야. 리길재 기자 이스라엘 공동체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신 광야는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다. 성경은 신 광야에 이른 때가 이스라엘 민족 공동체가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이라고 기록하고 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온 공동체는 엘림을 떠나, 엘림과 시나이 사이에 있는 신 광야에 이르렀다. 그들이 이집트 땅에서 나온 뒤, 둘째 달 보름이 되는 날이었다"(탈출 16,1). 이집트를 탈출한 지 한참이 지나 굶주린 지 오래된 이스라엘 백성은 또다시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기 시작했다. 급기야 노예생활을 했던 이집트를 그리워하는 사람들까지 생겨났다. "이들에게 이스라엘 자손들이 말하였다. '아, 우리가 고기 냄비 곁에 앉아 빵을 배불리 먹던 그때, 이집트 땅에서 주님의 손에 죽었더라면! 그런데 당신들은 이 무리를 모조리 굶겨 죽이려고, 우리를 이 광야로 끌고 왔소?"(탈출 16,3). 이때 하느님은 모세에게 양식을 내려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날 저녁에 메추라기 떼가 날아와 진영을 덮었다. 그리고 아침에는 진영 둘레에 이슬이 내렸다. 이슬이 걷힌 뒤에 보니, 잘기가 땅에 내린 서리처럼 잔 알갱이들이 광야 위에 깔려 있는 것이었다"(탈출 16,13-14).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위에 깔려 있는 만나를 보고 이것이 무엇인지 몰라 서로 물었다. 모세는 그들에게 "이것은 주님께서 너희에게 먹으라고 주신 양식이다"라고 설명했다(탈출 16,15). 만나는 사막에서 자라는 나무나 관목의 잎사귀에 맺히는 이슬 모양의 형성물로 추측되는데, 밤에 기온이 내려가면 비교적 단단하게 굳어지며 맛이 꽤 단 편이다. 성경에 의하면 만나는 빵이 아니라 고수풀 씨앗처럼 하얗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고(탈출 16,31), 기름과자 같았다고 한다(민수 11,8). 만나는 태양이 떠오르기 전 이른 아침에 광야의 모래 위에 흰 서리처럼 내렸지만(탈출 16,14 참조), 이내 '햇볕에 녹아 버렸기 때문에'(탈출 16,21) 이스라엘 백성은 이른 아침에 이를 거둬들였다. 안식일을 제외한 매일 아침, 이스라엘 백성은 이 만나를 모아 식량으로 삼았으며, 안식일 전날은 안식일을 위해 조금 더 모았다고 한다. 이집트를 떠난 이스라엘 백성이 식량 부족으로 불만을 터뜨렸을 때 메추라기 역시 만나와 함께 기적의 음식이 됐다. "그때 주님에게서 바람이 일어나, 바다 쪽에서 메추라기를 몰아다가 진영을 돌아가며 진영 이쪽과 저쪽으로 하룻길 되는 너비로 떨어뜨려, 땅 위에 두 암마가량 쌓이게 하였다"(민수 11,31). 시나이 반도는 유럽과 아프리카 사이를 오가는 철새들의 통로다. 지금도 봄, 가을이 되면 떼 지어 날아가는 철새를 볼 수 있다. 이스라엘 공동체는 이를 통해 신 광야에서 하느님께서 자신들을 돌보고 계심을 체험한 것이다. 만나와 메추라기는 이집트를 탈출했던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이 예외 없이 먹어야 했던 양식이었다. 주님께서 내리신 양식은 이스라엘 백성의 정체성을 유지시켜 주는 역할을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험난한 상황 속에서도 때에 따라 필요를 채워주시고, 선택한 백성을 끝까지 돌봐 주시는 하느님이심을 깨닫게 된다. 신 광야는 이런 의미에서 이스라엘 공동체를 단단하게 결속시키는 역할을 한 장소라 할 수 있다. 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cpbc2014.04.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