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셀름 그륀 신부가전하는 행복과 지혜안셀름 그륀(독일 성베네딕도회) 신부가 전해 주는 삶의 행복과 지혜를 담은 책이다. 만남을 준비하세요 「만남을 준비하세요」(최용호 옮김/가톨릭출판사/8000원)는 여러 만남에서 나타나는 자신의 태도를 돌아보도록 이끌어 준다. 인내, 수용, 겸손, 웃음, 신뢰 등 25가지 태도를 통해 자신이 변화해야 할 부분을 깨달아 상대방과 만남이 행복한 만남이 될 수 있도록 안내한다. 그륀 신부는 “참된 만남은 상대방뿐만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도 축복이며 다른 사람과 만남을 통해 자신의 본래 모습을 알게 된다”면서 “이 책에서 소개하는 행복한 만남을 위한 24가지 열쇠는 우리가 자기 자신과 타인, 사물, 하느님과 관계를 맺을 수 있도록 도와줄 것”이라고 말했다. 「다시, 새롭게 시작하세요」(신동환 옮김/가톨릭출판사/8000원)는 새로운 시작을 잘할 수 있는 방법을 소개했다. 독일어, 그리스어, 라틴어에서 ‘시작’이라는 단어가 어떻게 생겨났고, 어떤 의미를 지니는지를 살펴보며 사람들이 ‘시작’을 얼마나 중요하게 생각하는지를 짚어준다. 새로운 시작과 관련된 성경 속 예수님 말씀도 함께 전해 주며, 시작이 성공적 출발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해준다. “모든 것을 새롭게 만들 필요는 없습니다. 이미 우리 안에서 새 일이 벌어질 수 있다는 사실을 믿고, 과감하게 삶에서 새 일을 실천하며 살면 됩니다. 그러면 우리의 삶은 새로워집니다”(141쪽).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cpbc2016.04.06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0) “알렉산드로스는 열두 해를 다스리고 죽었다”(1마카 1,7)](//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3473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60) “알렉산드로스는 열두 해를 다스리고 죽었다”(1마카 1,7)헬레니즘 문화 확장… 종교 박해의 시대로 알렉산드로스 대왕 한동안 지혜문학을 읽느라고 이스라엘 역사에서 멀어졌지요. 지혜문학은 보편적인 주제들을 다루었기에 특정한 시대와 연관되는 일이 적었습니다. 마지막 집회서는 기원전 2세기까지 내려갔지만, 그 시대의 역사는 아직 안 다루었지요. 이제 다시 역사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기원전 538년 유배에서 돌아왔을 때는 페르시아 시대였습니다. 그때부터 페르시아가 패권을 잡고 있는 동안에는 국제 정세에 큰 변화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알렉산드로스 대왕은, 역사를 잘 모르는 사람도 누구나 ‘대왕’이라고 부르는 엄청난 인물이었습니다. 오늘은 이 시대의 배경을 전체적으로 훑어보고, 마카베오 항쟁의 역사에 대해서는 마카베오기의 본문을 읽으면서 좀더 자세히 살펴봅시다.이스라엘, 유다, 이집트, 아시리아, 바빌론, 페르시아 등 지금까지 나타났던 모든 나라는 동방에 속합니다. 물론 우리나라에서 보면 서쪽이지만, 지구가 얼마나 넓은지를 알지 못했던 사람들에게는 이 나라들이 동방이었습니다. 그러니 지금까지의 역사는 모두 동방 안에서 일어난 세력 다툼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리스와 로마는 계통이 다릅니다. 알렉산드로스는 그 ‘다른 세상’에서 동방으로 쳐들어온 인물이었습니다. 기원전 336년에 마케도니아의 임금이 된 알렉산드로스는 동방 원정을 시작하여 기원전 333년에는 스무 살에 페르시아를 꺾고, 이집트로 진출하여 알렉산드리아를 건설하였습니다. 그는 그 밖에도 인도까지 이르는 많은 지역을 점령하였는데, 긍정적으로든 부정적으로든 중요한 것은 그가 정복한 모든 지역에 그리스 문화를 퍼뜨렸다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도 사도들도 모두 아람어를 말했는데 신약 성경은 왜 그리스어로 썼을까요? 그것은 바로 이 시기에 알렉산드로스가 지배한 모든 지역에 그리스어가 공용어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덕분에 신약 성경이 널리 전파될 수 있기도 했지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약 성경이 그리스어로 번역된 것 역시, 팔레스티나를 떠나 살고 있던 유다인들이 그리스어를 널리 사용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뤄진 일이었습니다.알렉산드로스가 기원전 323년 33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후 그의 두 아들까지 살해되고 나자, 315년에는 그의 수하에 있던 네 장군이 제국의 영토를 나누어 다스리게 되었습니다. 이들 사이에서는 여러 차례의 영토 분쟁이 있었지만, 300년쯤 팔레스티나는 이집트를 다스리던 프톨레마이오스 왕가의 통치를 받으면서 비교적 평온하게 지낼 수 있었습니다. 당시의 지배자들은 많은 세금을 거두어들이기는 했지만 적어도 정복민들의 종교적 문제에 대해서는 개입을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를 다스리던 프톨레마이오스 왕조의 임금들과 시리아를 다스리던 셀레우코스 왕조의 임금들 사이에는 전쟁이 계속되었으나, 유다는 여기에서 적극적인 역할을 하지 않았습니다. 고래 싸움에 새우 등은 이미 터진 셈. 더 무엇을 하겠습니까?그런데 이제 문제가 생겨납니다. 기원전 200년쯤 셀레우코스 집안이 팔레스티나에서 프톨레마이오스 왕조를 몰아내고 예루살렘을 지배하게 되면서부터입니다. 이때 유다인들 사이에서는 외세에 대하여 서로 다른 시각들이 나타나게 됩니다. 우리나라에 서양 문물이 처음 들어올 때를 생각하시면 되겠습니다. 유다인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전통 신앙에 충실하면서도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일 수 있다고 생각했던 반면, 다른 이들은 그리스 문화가 유다 문화 및 종교에 큰 위험이 된다고 보아 이를 철저히 거부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이렇게 처음에는 유다인들의 공동체 자체 내의 의견 차이였던 것이, 셀레우코스 왕조의 안티오코스 에피파네스 4세가 임금이 되면서부터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됩니다(재위 기원전 175~164년). 단순히 그리스어와 그리스 문화를 받아들이는 문제가 아니라 종교 문제에서 직접적인 충돌이 일어나게 되는 것이지요. 안티오코스 4세는 모든 유다인에게 헬레니즘 문화를 강요하기로 작정을 하고 유다교의 특징적 요소들인 할례, 돼지고기와 다른 부정한 음식을 금하는 것, 율법에 대한 공경 등을 금지시키고, 유다인들에게 그리스 신들에게 제사를 바칠 것을 강요하며 이를 위반하는 이들에게 사형을 내렸습니다(1마카 1장 참조). 종교 박해가 된 것입니다. 안티오코스 4세는 예루살렘의 성전의 번제단 위에 이교 신의 제단을 세울 것을 명하기까지 했습니다.대개 이러한 박해는 기원전 167년에 발생하였다고 봅니다. 이때에 유다인들은 두려움 때문에 배교하기도 했고, 어떤 이들은 수동적인 저항을 선택하여 순교자로서 죽음을 맞았으며, 또 어떤 이들은 사제였던 마타티아스와 그의 아들들의 인도로 무장봉기를 일으켜 적극적으로 대항하였습니다(마카베오 항쟁). 기원전 164년 이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정화하고 새 제단을 봉헌할 수 있었습니다.이 시기의 역사를 다룬 책들이 마카베오기입니다. 마카베오기 상ㆍ하권은 줄거리가 이어지는 책이 아니라, 서로 별개의 책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같은 시대의 사건들을 두 권에서 각각 서술하기도 하는데, 두 책 사이에 관점의 차이가 있습니다. 오늘은 거의 담담하게 사실들만을 소개했지요. 이제 두 주간에 걸쳐 마카베오기 상하권을 읽고 그 둘을 대비해 보면, 한 시대의 역사를 바라보는 시각들에 서로 차이가 있음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 책들의 목적은 객관적으로 사실을 열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안에서 하느님과 함께하는 민족의 역사를 읽어내는 데에 있기 때문입니다. <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6.03.08

가족·지인에게 2016년을 선물하세요 2015년도 어느새 두 달 밖에 남질 않았다. 서점과 문구점엔 벌써 2016년 달력과 다이어리들이 가득하다. 교계 출판사가 신자들을 위해 준비한 달력과 다이어리를 소개한다. 달력분도출판사는 벽걸이 달력 4종 △유럽 수도원 순례 △19세기 성화 △현대 한국 성화 △숫자판 캘린더를 준비했다. 유럽 수도원 순례는 이탈리아, 독일, 스페인에 있는 주요 수도원 모습을 담았다. 주위 자연과 멋스럽게 어우러진 수도원의 풍경 사진과 더불어 각 수도원의 간략한 기원과 특징, 수도원에 얽힌 이야기를 곁들였다. 19세기 성화 달력은 로마 수도원에서 수도자와 같은 생활을 하며 종교화에만 몰두한 ‘나자렛파’ 그림으로 꾸몄고, 현대 한국 성화는 가톨릭조형예술연구소 소장 조광호 신부 그림을 실었다. 각종 2000원, 숫자판 캘린더 2500원.가톨릭출판사는 다양한 달력을 제작해 선택의 폭을 넓혔다. 벽걸이 달력 3종과 탁상 달력, 어린이 달력이 있다. 벽걸이 달력은 △순교 복자 124위와 함께하는 성지순례 △교황님의 미소 △자비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를 선보였다. ‘순교 복자 124위와 함께하는 성지순례’는 순교 복자와 관련된 12개 교구 성지를 사진으로 담았다. 성지가 된 배경과 관련 순교자들에 관한 간단한 설명도 곁들였다. ‘교황님의 미소’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따뜻한 미소를, ‘자비로우신 예수 그리스도’는 자비의 희년에 맞춰 인간을 사랑하시는 예수님 모습을 그린 성화를 수록했다. 각종 3000원. 기쁜소식은 성모님을 주제로 한 벽걸이 달력 2종을 선보였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달력은 심순화(가타리나) 화백의 성모자상 그림을 담았다. ‘천주의 성모 마리아님, 저희를 위하여 빌어주소서’ 달력은 세계 성모 발현지 성모님과 성지 관련 사진, 발현 메시지를 실었다. 각종 2000원. 바오로 딸 책상 달력 바오로딸은 ‘2016 주님과 함께’라는 탁상용 말씀 달력을 만들었다. 365일 교회 전례에 따라 주님 말씀을 새기며 생활할 수 있도록 돕는다. 달력 그림은 오순애(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 작품이다. 8000원.다이어리 생활성서는 ‘Bible&Life 소금 다이어리’를 준비했다. 마음의 ‘소금’ 같은 성경 말씀을 다이어리 곳곳에 적어 놨다. 주간 계획표에는 주일 복음 말씀을 발췌해 한 주간 말씀을 묵상할 수 있도록 했다. 또 기도와 감사할 거리를 쓸 수 있는 공간을 따로 마련해 뒀다. 메모 공간이 충분한 것이 장점. 가톨릭 주요 기도문과 성경 읽기표가 실려 있다. 색상은 비취색과 분홍색 2가지다.(1만 원) 이와 함께 속지 리필이 가능한 다이어리도 만들었다. 색상은 빨강, 주황, 연두, 군청, 분홍색이 있다. 일반형 1만 3000원, 고급형 1만 5000원, 리필 속지 5000원.바오로딸이 펴낸 다이어리 ‘말씀과 함께’는 어른 손바닥만한 크기라 휴대가 간편하다. 1년간 성경을 통독할 수 있는 성경 통독 계획표를 수록한 것이 특징. 메모 공간 곳곳을 오순애(성바오로딸수도회) 수녀의 따뜻한 그림과 성경 구절로 채웠다. 색상은 라임ㆍ오렌지ㆍ체리ㆍ진주핑크ㆍ블루베리ㆍ하늘색이 있어 취향에 맞게 고르면 된다. 3900원.박수정 기자 백영민2015.10.28

낡은 유리화에 생명의 숨결을 불어넣다 [치유의 빛 은사의 빛 스테인드 글라스] 40. 스테인드글라스의 보수 복원과 현대적 재해석 1985년과 2013·2015년 세 차례에 걸쳐 보수 복원을 거친 서울 용산 원효로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제대 쪽은 이남규씨(1985년 설치, 2013년 보수), 측창과 성가대석 창은 2015년 설치된 마르크 수사 작품이다. 유럽 색유리 제작사의 마케팅은 이제 유럽의 교회건축을 겨냥하고 있지는 않은 듯하다. 신축되는 성당 수가 많지 않고, 점차 감소 추세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상대적으로 신축 성당이 많은 아시아와 남미 국가에 홍보를 늘리고 일반 건축 창에 색유리를 도입하는 방안을 찾고자 다방면으로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우리나라도 신축되는 성당들이 유럽에 비해 많지만 새로운 교회건축이 활발했던 과거에 비하면 그 수는 상대적으로 적은 편이다. 반면 1980년대 급증했던 교회건축과 함께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들에 대한 보수 복원 및 새로운 작품 계획에 대한 논의는 점차 증가하고 있다.복원된 유리화와 새로운 작품의 조화우리나라에서 처음 스테인드글라스 보수 복원이 이뤄진 사례는 1980년대 이남규 공방을 통해 진행됐던 서울 명동주교좌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다. 1984년 한국 천주교 200주년을 맞아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명동성당 방문 계획이 알려지면서 80년 넘도록 수리한 적 없는 명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에 대한 보수 복원 작업의 필요성이 제기됐다. 당시 명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오랜 세월을 거치면서 색이 바래고 지워진 부분들이 있었고 6·25 전쟁 당시 총탄으로 훼손된 부분들이 임시로 수리된 상황이었다. 절반 이상이 손상돼 있던 명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훼손된 부분의 원형을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상황 속에서 가능한 한 원작에 충실하게 복원됐다. 명동성당과 비슷한 시기에 유입된 대구 계산동주교좌성당 스테인드글라스 보수 복원은 1991~1993년 (주)H.K.스테인드글래스에서 진행했다. 복원 과정에서 기존에 있던 열두 사도를 제외하고 비어 있던 창에 한국 성인들과 4복음서의 상징을 묘사한 창들이 추가로 설치됐다.오래된 성당 건축을 보수 복원하는 과정에서 기존의 표현을 고집하지 않고 현대적인 해석을 통해 새로운 작품을 계획해 설치하는 사례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경향은 1990~2000년대에 들어 더욱 두드러지는데 그중 대표적인 예로 1975년, 2000년 두 차례에 걸쳐 복원 보수 복원된 서울 중림동약현성당 스테인드글라스와 2008년 1월 새롭게 설치된 전주 전동성당, 그리고 1985년, 2013년, 2015년 세 차례에 걸쳐서 진행된 서울 용산 원효로성당(구 용산 신학교 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 복원을 들 수 있다. 이들은 모두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교회건축에 설치돼 있던 스테인드글라스라는 공통점이 있다.1975년 건축 보수와 함께 진행됐던 서울 중림동약현성당 스테인드글라스는 한국 작가 이남규에 의해 제대 쪽 창의 달드베르 작품이 새롭게 계획된 이후 1998년 2월에 발생한 화재로 두 번째 보수가 진행되는 과정에서 성당 내부의 측창과 성가대석의 원형 창이 마르크 수사의 디자인으로 새롭게 설치됐다. 은은한 파스텔 톤을 주로 사용한 조용한 느낌의 측창 스테인드글라스는 제대 쪽 강렬한 인상을 부각해 건축 공간의 중심을 한층 확실하게 잡아주는 역할을 해내고 있다. 약현성당의 스테인드글라스는 이남규의 작품이 설치된 지 30년 만에 발생한 화재 이후 복원 작업을 거치면서 또 한 명의 작가를 통해 동시대인과의 소통을 이뤄냈다. 2008년 마르크 수사와 김겸순 수녀의 공동 작업으로 완성된 전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도 과거와 현재가 소통하는 교회 공간을 재창조해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성경 말씀을 충실하게 전달하는 표현으로 전동성당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은 2000년대 들어 근대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가톨릭 교회건축의 스테인드글라스 보수 복원의 대표 사례로 주목할 만하다.전문가에 의한 체계적 보수 복원 필요가장 최근의 보수 복원 사례 중 하나로는 2013년과 2015년 두 차례에 걸쳐 진행된 서울 용산 원효로성당 스테인드글라스다. 구 용산 신학교 성당인 원효로성당에는 건축 당시 프랑스에서 제작된 스테인드글라스가 설치됐으나, 6·25 전쟁 당시 파손돼 이후 건축 보수와 함께 1985년 이남규의 작품 ‘빛이 있어라’가 설치됐다. 이후 건축의 노후현상으로 스테인드글라스 보수의 필요성이 제기돼 2013년 제대 쪽 스테인드글라스 작품이 전면 보수됐고, 이어 2015년에는 과거 사진기록을 통해 성당 측창에도 스테인드글라스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되면서 성당 측창과 성가대석 창에 스테인드글라스를 새롭게 설치하는 계획이 진행됐다. 측장의 정확한 이미지를 파악할 수 있는 자료가 없고 제대 쪽 작품도 현대 작가에게 의뢰했다는 점을 고려해 동시대 작가의 작품을 도입할 것을 결정하고 마르크 수사에게 작품 디자인을 의뢰했다. 성모님의 푸른 망토 자락을 모티프로 추상적으로 풀어낸 마르크 수사의 작품이 설치되면서 원효로성당은 현시대와 소통하는 전례 공간으로 거듭나게 됐다.현재 한국 가톨릭교회는 보수 복원의 시기를 맞이하고 있다. 교세 확장으로 1980년대 급증했던 교회건축들과 그 안에 설치된 스테인드글라스들이 이제는 새로운 보살핌의 손길을 필요로 하고 있다. 이제는 오래된 교회 안에 설치된 성미술 작품들의 교회사적, 예술적 가치가 객관적으로 평가되어 무분별한 철거나 교체가 이뤄지지 않도록 관심을 기울여야 할 때다. 전문가들에 의한 체계적이고 올바른 보수 복원이 이뤄져야 하겠다. 백영민2016.11.09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76) 존 필 마이어 (상)](//cpbc.co.kr/CMS/newspaper/2015/01/rc/552369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 (76) 존 필 마이어 (상)‘역사적 예수’ 가장 치밀하게 연구한 성경학자 20세기 미 가톨릭 성경학자 중 독보적 20세기를 빛낸 미국의 가톨릭 성경학자로서 존 필 마이어(J.P.Meier, 74, 뉴욕대교구) 신부는 독보적인 인물에 속한다. 마이어 신부는 1964년 성 요셉 신학교에서 신학 학사, 1968년 교황청 그레고리오대학에서 신학 석사, 1976년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성서학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마태오 복음에 관한 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최우수 논문(summa cum laude)으로 선정돼 교황 금메달을 수상했다. 마이어는 1984년부터 미국 가톨릭대학교에서 신약 성경을 가르쳤고 지금은 노트르담대학교에서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마이어의 학문적 관심은 역사적 예수, 마태오 복음서, 1세기 팔레스타인의 유다교, 콥트어 토마스 복음서와 공관 복음서의 관계에 집중되어 있다. 그의 대표적인 저서는 1991년부터 현재까지 4권으로 간행된 방대한 예수 연구서인 「주변부 유다인: 역사적 예수의 재고」(A Marginal Jew: The Rethinking the Historical Jesus) 시리즈다. 마이어는 초기에 마태오 복음 연구에 집중하여 「마태오」(Matthew, 1980), 「마태오 복음」(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 1993) 같은 저서를 간행했다. 그 뒤로 그는 브라운(R.E.Brown)과 「안티오키아와 로마」(Antioch and Rome, 1983)를 함께 썼고, 「신 예로니모 성경 주석서」(New Jerome Biblical Commenatry, 1993) 개정판에 역사적 예수(Historical Jesus)에 관한 글을 썼다. 이어서 그는 「그리스도의 사명과 교회 : 교회론과 그리스도론에 관한 연구」(The mission of Christ and His Church : Studies on Christology and ecclesiology, 1990)를 펴냈고 역사적 예수 연구 방법론, 예수의 비유, 예수와 율법 등에 관한 논문들을 주요 학술 잡지에 발표했다. 마이어는 오랜 시간 「계간 가톨릭 성경」(The Catholic Biblical Quarterly), 「신약 연구」(New Testament Studies), 「사해 발견」(Dead Sea Discoveries) 과 같은 유수한 성경 학술지의 편집 책임자로 활동했고 여러 대학에 초대받아 강연하는 등 학문적 연구 결과를 일반 청중에게 전달하는 일에도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연구 방법론-역사적 예수 연구의 배경 마이어는 성경 연구에 역사 비평이라는 소위 통시적 연구 방법을 집중적으로 사용한다. 독일에서 발전한 역사 비평의 세 분야인 출전 비평, 양식 비평, 편집 비평을 적절히 활용하여 성경 본문의 역사적 배경과 초대 교회의 역사를 재구성하는 작업을 수행했다. 특히 그는 「마태오 복음 주석서」와 공저 「안티오키아와 로마」에서 마태오 복음서의 역사적 배경을 초대 교회의 역사 안에서 재구성하는 탁월한 능력을 보여준다.마이어는 역사적 예수 연구에 역사 비평 방법을 가장 치밀하게 적용하고 그 연구 결과를 필생의 대작인 「주변부 유다인」에 집대성하였다. 마이어는 왜 역사적 예수 연구에 전념하게 되었을까. 일찍이 라이마루스(1694~1768)가 역사적 예수와 신앙의 그리스도를 구별한 이후 개신교의 비판적인 성경학계에서는 20세기 전반부까지 불트만을 중심으로 역사와 신앙을 철저히 분리시키고 역사적 예수에 대한 불가지론의 입장에서 신앙의 결단만을 강조하는 소위 변증법적 신학을 전개했다. 그러나 1950년대 불트만의 제자 케제만이 예수 전승의 진정성을 살펴보는 최소한의 기준으로 비유사성(dissimilarity)의 기준을 제시하면서 역사적 예수 연구의 새로운 가능성이 열리게 됐다. 그 뒤로 역사적 예수 연구는 ‘새로운 탐구’ 시기를 거쳐 1980년대 이후 ‘제3의 탐구’에 이르러 예수의 면모를 유다교 틀 안에서 이해하고 고고학과 사회학, 종교학, 심리학과 같은 인문ㆍ사회 과학과의 학제간 연구 등 복합적인 방법론을 활용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성경학계는 알버트 슈바이처 이래로 견지돼 온 종말론적 예수상을 역사적 진실로 대부분 인정하지만 북미의 일부 학자들이 주도했던 ‘예수 세미나’는 비종말론적인 예수를 주장하고 1990년대부터 대중 매체를 통해 이를 선전하는 대담함을 보이기도 했다. ‘예수 세미나’ 학자들은 초기 형태의 토마스 복음을 문헌과 동시대에 놓음으로써 사실 역사적 예수는 묵시문학적 예언자가 아니라 지혜의 스승이었다고 해석하고 예수를 사회 개혁의 예언자, 전복적인 현인 등으로 묘사한다. 예수는 과연 누구인가? 마이어는 역사 비평적 방법을 철저하고 온전하게 활용해 해석자 자신의 심리적인 투사를 지양하면서 역사적 예수에 대한 이데올로기적 곡해를 걷어내고 진실을 찾고자 한다. 그러면 여기서 사용되는 역사성 판단의 기준은 무엇이 될까. 역사성 판단의 기준들마이어는 먼저 당혹성의 기준(The Criterion of Embarrassment)을 첫 번째 준거로 활용하는데 이는 예수의 세례와 같이 초대 교회로 하여금 당혹감이나 어려움을 불러일으킬 만한 예수의 말과 행동이 역사적일 가능성이 높다고 보는 것이다. 두 번째 기준은 불연속성 내지 비유사성의 기준(The Criterion of Discontinuity or Dissimilarity)인데 당시의 유다교와도 구별되고 초대 교회의 전통으로부터도 연역될 수 없는 전승을 찾는 데 유용하다. 그러나 이 기준은 유다교의 환경 안에서 성장한 예수가 자연히 유다교의 종교 유산을 상당 부분 공유하고 있다는 사실을 평가할 수 없다는 한계를 지닌다. 세 번째로 다수적 증언의 기준 (The Criterion of Multiple Attestation)은 예수의 말이나 행위가 다양한 전승에서 발견되는 현상에 의미를 부여한다. 마이어는 흔히 사용되는 위의 세 가지 기준 외에 거부와 처형에 대한 기준 (The Criterion of Rejection and Execution)을 제안한다. 예수가 유다교 지도자들과 로마 관리에 넘겨져 폭력적인 죽임을 당했다는 사실에 주목하여 유다인들의 왕으로 재판받고 처형에 이르게 한 예수의 말이나 행동의 역사성을 판단하는 데 활용한다. 백운철 신부(가톨릭대 신학대학장) 평화신문2015.01.28
![[미사 풀이] <1>](//cpbc.co.kr/CMS/newspaper/2016/01/rc/613048_1.1_titleImage_1.jpg)
[미사 풀이] 매주 참례하는 미사, 얼마나 알고 계세요? 미사를 이루는 각 요소와 동작들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할 때 능동적 전례 참여가 가능하다. 평화신문 자료사진 우리는 미사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미사는 어떻게 구성돼 있고, 미사를 이루는 각 요소와 동작들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신자들의 더욱 능동적이고 적극적인 미사 참례에 도움이 되고자 이번 호부터 교황청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정신에 따라 새롭게 펴낸 「미사경본 총지침」을 중심으로 미사와 관련해 알아야 할 부분이나 궁금한 점들에 대해 살펴본다. Ⅰ. 미사의 일반 구조 미사에서 신자들은 함께 모여 그리스도를 대신해 사제가 주례하는 성찬의 희생 제사를 거행합니다. 십자가의 희생 제사를 재현하는 미사에서, 그리스도께서는 당신의 이름으로 모인 신자들과 집전 사제의 인격과 당신 말씀 안에 실제로 계십니다. 또 사제에 의해 축성된 빵과 포도주의 형상으로 계속 현존하십니다. 그래서 미사는 크게 말씀 전례와 성찬 전례 두 부분으로 이뤄집니다. 이 두 부분은 긴밀히 연결돼 하나의 단일한 예배 행위를 이룹니다. 그리고 말씀 전례에 앞서 시작 예식이, 성찬 전례 후에는 마침 예식이 있습니다. Ⅱ. 미사의 여러 요소하느님 말씀에 대한 봉독과 해설미사에서 성경이 봉독될 때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에게 말씀하시는 것이며, 또 말씀 안에 현존하시는 그리스도께서 복음을 선포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회중은 하느님 말씀이 봉독될 때 존경하는 마음으로 들어야 합니다. 성경은 모든 시대에 모든 사람에게 하시는 하느님 말씀이므로, 성경이 봉독될 때 누구나 그 말씀을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말씀에 대한 해설인 강론을 통해 말씀을 더욱 완전히 이해하고 더욱 큰 효과를 얻도록 해야 합니다. 평일 미사에도 강론을 권장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사제가 담당하는 기도와 짧은 풀이 미사에서 사제가 담당하는 부분 가운데서 첫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감사 기도’입니다. 감사 기도는 성찬 전례에서 사제가 예물기도를 바친 후 팔을 벌리면서 “주님께서 여러분과 함께” 하고 인사하며 시작하는 감사송에서부터 영성체 예식 전 사제가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함께…모든 영예와 영광을 영원히 받으소서” 하며 마침 영광송을 바치는 부분까지입니다. 본기도, 예물기도, 영성체 후 기도 역시 사제가 바치는 기도인데 이 기도들을 ‘모음 기도’라고 합니다. 이 기도들은 그리스도를 대신해서 회중을 이끄는 사제가 거룩한 백성 전체와 모든 참석자의 이름으로 하느님께 바치는 기도입니다. 그래서 ‘주례자의 기도’라고 합니다. 이 밖에도 사제는 시작 인사와 참회 예식 사이에, 그날 미사에 대해 신자들에게 짤막하게 풀이해 줄 수 있고, 마찬가지로 독서 전에는 말씀 전례에 대해 풀이해줄 수 있습니다. 파견 전에도 간단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주례자가 기도하거나 말하는 동안에는 다른 기도나 노래를 해서는 안 되며, 오르간이나 다른 악기를 연주해서도 안 됩니다. 미사 중에 바치는 다른 전례문 미사 거행은 ‘공동체 행위’여서 사제와 신자들 사이의 대화와 환호가 매우 중요합니다. 사제와 회중의 일치를 이루고 굳건히 하기 때문입니다. 사제의 인사와 기도에 대한 신자들의 환호와 응답은 미사에 더욱 활발하게 참여하도록 도와줍니다. 특히 참회, 신앙 고백, 보편 지향 기도, 주님의 기도 같은 부분들은 참여하는 회중 전체가 해야 할 부분으로, 신자들의 능동적인 전례 참여를 드러내고 굳건하게 하는 데 매우 유익합니다. <계속> 정리=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송민경2016.01.06

2015 서울대교구 평신도단체 박람회, 14~15일 명동대성당 일대에서 열려2015 서울대교구 평신도단체 박람회, 14~15일 명동대성당 일대에서 열려 서울대교구 평신도사도직단체협의회가 14~15일 명동대성당 일대에서 마련하는 평신도단체 박람회는 숨겨져 있던 ‘교회의 은총 창고’를 공개하는 자리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주님뿐 아니라 기쁨과 보람, 즐거움도 함께 있다. 박람회를 통해 나와 잘 맞는 신심 사도직 및 직능 단체에서 활동해보는 건 어떨까. 단체의 활동은 무료해질 수 있는 신앙생활에 활력과 산소를 제공해준다. 박람회에 참가하는 단체들을 소개한다. 신심ㆍ운동단체▲ME 서울협의회대화를 통해 부부 관계를 개선하고 혼인 생활의 참다운 의미를 발견하게 하여 가정과 교회와 사회를 쇄신하는 부부 일치 운동. 1950년대 청소년 사목자로 활동했던 스페인의 가브리엘 칼보 신부가 청소년 문제는 부부 관계에서 출발한다는 것에 확신을 갖고 시작했다. ME 주말 프로그램에 참여하면 부부간에 풍요롭고 깊은 대화를 나눌 수 있다.(02-511-9901)▲가톨릭 노동청년회 서울대교구협의회사회환경의 복음화를 목적으로 하는 가톨릭 노동청년 운동 단체다. 1958년 서울대학교 부속병원 간호사 10명이 1925년 벨기에에서 창립된 가톨릭 노동청년회에 관한 연구를 하면서 출발했다. 1960~70년대 근로 청년들을 대상으로 노동조합 결성 및 임금인상, 처우개선 활동 등 노동자의 인권 신장 및 권익문제에 뛰어들었다.(02-953-0393) ▲국제성경사도직후원회성경을 살 수 없는 가난한 나라의 이웃들이 자국어로 성경을 읽도록 자국어 성경을 지원하고 있다. 베트남에 군종신부로 파견됐던 이문주(요셉의원 원장) 신부가 1997년 베트남의 신부와 수녀들이 성경 보급을 요청하면서 성경을 보급하게 됐다. 태국 소수민족인 카렌족에게 카렌어 성경을 보급하고, 과테말라에 스페인어 성경, 페루에 케추아어 성경을 지원했다. 자국어 성경 보급뿐 아니라 교육에 초점을 맞춰 성경대회와 성경교육 등에 필요한 경비를 지원하고 있다.(02-2676-9981)▲네오까떼꾸메나도 길(Neo catechumenal Way) 1960년대 초 스페인 마드리드 판자촌에서 시작된 공동체. 화가였던 설립자 기꼬 아르궤요는 판자촌에서 성매매 여성과 마약 중독자, 조직 폭력배들에게 하느님 말씀을 전한다. 기꼬의 노력에 마음을 연 소외된 이들은 말씀과 전례, 찬양을 통해 하느님의 사랑을 고백하며 공동체를 이룬다. 네오까떼꾸메나도 길은 현재 120여 개국으로 퍼졌으며 한국(1986년 도입)에는 40여 개 공동체가 있다.(02-945-3965) ▲르트루바이(혼인재발견 서울협의회) 르트루바이(Retrouvaille)는 ‘재발견’을 뜻하는 프랑스어. 이혼과 별거 위기에 처한 부부가 신뢰와 용서로 혼인생활의 회복을 돕는 프로그램이다. 미국에서 ‘부부 생명선’이라고 불리는 르트루바이는 1977년 캐나다 퀘벡에서 진행된 ME 주말 프로그램에 위기에 처한 부부들이 참가하면서 세계 각국으로 퍼졌다.(02-929-2141) ▲ 마리아사업회(포콜라레) 1943년 갈등과 불신이 팽배한 제2차 세계대전의 격랑 속에서 이탈리아 초등학교 교사인 키아라 루빅이 시작한 평신도 영성 운동이다. 새인류 운동과 새가정 운동, 일치를 위한 새 젊은이 운동을 통해 일치를 통한 사랑의 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다. 전 세계 180여 개국 회원들이 해마다 ‘마리아의 도시’라는 마리아 폴리를 열어 사랑 실천을 연습한다.(02-587-1020)▲바오로말씀봉사회 사도 바오로의 생애와 사상을 본받아 복음을 선포하고 실천하는 모임이다. 매주 모여 말씀을 묵상하고, 공소에서 무료로 성경 묵상 세미나 봉사에 참여한다.(02-869-5965)▲새천년복음화사도직협회복음화 학교 교육을 통해 신자 재복음화 교육에 헌신하고 있는 단체. 1990년 설립된 ‘세계 복음화 2000 한국본부’를 모태로, 복음 선포를 위한 교육을 열고 있다. 복음화 학교와 복음화 선교회, 복음화를 위한 기도 운동 추진 본부를 설립했으며, 새천년복음화연구소를 창립해 활동 영역을 넓혔다.(02-753-8765) ▲서울 무염시태 세나뚜스(레지오 마리애)라틴어로 ‘마리아의 군단(Legio Mariae)’을 뜻하는 평신도 사도직 단체로, 기도와 활동으로 복음 선포와 선교 사명을 수행한다. 조직의 형태는 고대 로마에서 사용하던 것을 따왔다. 서울ㆍ대구ㆍ광주 3개의 세나뚜스로 나눠져 있다.(02-776-8520) ▲서울대교구 지속적인 성체조배회성체 앞에서 지속적인 조배를 함으로써 성체 신심을 증진해 참된 신앙생활을 하는 데 도움을 주고 있다. 세상의 구원과 신앙인의 성화를 위해 기도사도직을 수행하는 게 목적이다. 성체조배 활성화를 위한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02-773-3030)▲서울대교구 파티마의 세계 사도직(푸른군대)1917년 5월 포르투갈 파티마에서 발현한 성모 마리아의 원의대로 죄인의 회개와 세계평화를 위해 활동하는 국제적인 신심 단체다. 한국에 도입된 이후 1974년부터 해마다 임진각에서 평화 통일 기원 미사를 봉헌하고 있다.(02-756-3473)▲천주교 서울대교구 꾸르실료 전통적인 가톨릭 국가 스페인의 청년들에 의해 시작된 평신도 신심 단체. 19세기 스페인의 내전으로 신앙심이 깊은 청년들이 야고보의 무덤이 있는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로 성지순례를 떠났고, 성지순례 봉사자 교육 프로그램으로 ‘순례자들을 위한 상급반 꾸르실료’를 실시한 게 효시가 됐다. 꾸르실료는 ‘회심을 위한 3박 4일의 피정’으로 내적인 변화와 함께 세상 복음화를 희망한다.(02-337-8588)▲미카엘나눔회 서울 성북구의 카페 ‘죠셉의 커피나무’를 운영하는 강지형(요셉)ㆍ김향신(마리아)씨 부부가 만든 단체로 기도와 봉사, 나눔을 통해 소외된 이들을 돕고 있다. 가난한 이웃과 자신의 것을 나누다 세상을 떠난 아들의 뜻을 잇고자, 아들의 세례명을 이름으로 땄다. 300여 명의 회원이 벼룩시장, 일일 찻집을 통해 모금 활동을 한다.(02-741-1060)▲서울가톨릭시각장애인선교회 1979년 시각장애인들이 신앙적으로 성장하기 위해 설립한 신앙공동체. 시각장애인 선교와 사도직 활동을 지원하고, 회원들의 친목과 장애인 복지 향상에 이바지해 장애인의 삶이 복음화되는 게 목적이다.(02-451-0333)▲서울대교구 가톨릭 여성연합회 교구의 사목 지침에 따라 평신도의 고유한 사명을 깨닫고 가톨릭 여성으로서 교구의 사도직 활동에 참여하고 있다. 재활용매장 사랑마트를 운영하고 있으며, 월례특강과 생명교육도 시행하고 있다.(02-727-2395)▲한국 천주교 서울대교구 가두선교단사도들의 선교 활동을 본받아 직접 찾아가서 거리에서 복음을 전하는 선교단체. 선교 교육을 이수해야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 「천주교를 알려드립니다」와 「김수환 추기경의 행복카드」 등을 펴냈다.(02-776-9419) ▲성 빈첸시오 아 바오로회 서울대교구이사회 우리 사회의 고통을 받고 소외된 사람들을 위해 애덕을 실천하는 사도직 단체. 소년소녀 가장, 교도소 수감자, 노숙인, 장애인 등 사회에서 쓸쓸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찾아 정신적ㆍ물질적 지원을 제공한다. 가정방문이 단체의 기본적인 주요 사도직이다.(02-2271-2176)▲서울대교구 아버지 학교사회의 모든 아버지에게 올바른 아버지상을 정립시키고 건강한 아버지로서의 정체성과 역할을 찾도록 돕는 학교다. 이 시대의 좋은 아버지상을 함께 고민하고, 아버지로서 흐트러진 마음을 바로잡을 기회가 주어진다. 교회 내 가정 성화 운동은 물론, 아버지 학교가 지역사회로 확산하도록 프로그램을 보급하고 있다.(0505-503-7080)▲한국여성생활연구원 경제적 빈곤이나 사회적 편견으로 배움의 기회를 놓친 여성들의 한글 교육 및 평생 교육 활성화에 힘쓰고 있다. 1978년 서울 봉천동 쪽방에서 야학 수업으로 문을 열었다. 여성 및 사회 약자들에게 학력이 인정되는 교육의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자기실현을 도모하는 다양한 교육을 시행하고 있다.(02-727-2471)▲ 서울 미바회 ‘미바’(Mission Verkehrs Arbeitsgemeinschsft)는 ‘선교를 위한 교통수단을 제공하는 단체’라는 뜻의 독일어. 무사고 운전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1Km를 주행할 때마다 1원씩 후원함으로써 해외 선교사들에게 필요한 차량을 지원한다. 1981년 설립된 한국 미바회는 5개(서울ㆍ대구ㆍ수원ㆍ대전ㆍ부산) 교구에 지부를 두고 있다.(02-924-2721)▲ 천주교 서울대교구 연령회 연합회세상을 떠난 이들이 죽음을 통해 영원한 생명을 얻기를 기도하는 장례식장의 천사들. 성인 통공의 믿음 안에서 연도와 기도를 통해 유족들을 위로하고 장례를 도움으로써 죽음과 부활의 파스카 신비를 드러낸다.(02-772-9090)직능ㆍ동호인 단체 ▲가톨릭 전례 꽃꽂이 연구회가톨릭 전례에 맞는 꽃꽂이 교육을 통해 미사 전례를 돕는 모임이다. 1995년에 설립됐으며, 정기적으로 전례 꽃꽂이 전시회를 연다. (02-6364-2200) ▲가톨릭 마라톤동호회성직자와 수도자, 평신도로 구성된 ‘달리는 선교사’들의 동호회. 해마다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개최하고 있으며 지난 5월에는 시복시성 특별기원 성지순례 222㎞ 울트라 마라톤 대회를 열었다. 2007년 가톨릭 마라톤 전국협의회를 구성하고 신자들이 달리는 것에 그치지 않고 봉사와 선교에 매진하기로 했다. (http://club.catholic.or.kr/camarathone)▲가톨릭 목공예가톨릭 목공예는 ‘내가 만든 성물로 신앙유산을 대물림한다’는 정신을 바탕으로 나무를 이용한 성물을 제작한다. 목공예를 배우고 싶어하는 신자들을 대상으로 취미반과 전문 과정을 운영하고 있다.(http://cafe.naver.com/cmc04)▲가톨릭 바리스타협회바리스타 자격 취득 교육 프로그램을 통해 본당 봉사자와 커피 전문가를 배출하는 단체다. 커피 전문가를 통해 선교 사명을 실천하는 게 협회의 설립 목적. 지난 3월 직영 선교 카페 1호점 ‘카페 하랑’ 숙명여대점을 열었다. 카페는 커피 로스팅 및 판매, 바리스타 교육 등과 더불어 미신자 입교 권유, 냉담자 회유에 힘쓰고 있다. 수익금 일부는 자선과 선교, 장학사업에 쓴다. (02-727-2494)▲서울대교구 가톨릭사진가회사진을 통해 세상의 복음화에 이바지하는 모임이다. 교회 역사를 사진 기록물로 남기고, 사진을 통해 신앙심을 고취한다.(http://www.photolic.net)▲ 서울대교구 가톨릭 경제인회 교회가 지향하는 가톨릭 정신을 기업경영에 반영하는 경제인들의 비영리단체. 기업경영과 사회활동을 통해 가톨릭 정신을 구현하는 게 목적이다. 국내외 취약계층을 돕고, 이주노동자들의 진료를 지원한다.(02-727-2410)▲이콘연구소(초기 교회 미술연구소) 초기 가톨릭 교회 미술의 근본 정신에 입각한 성화작가를 양성하고 교회 미술을 보급하는 게 목적이다. 60세 미만의 가톨릭 신자, 정교회 또는 성공회 신자로, 기본적인 인물 묘사가 가능하면 회원으로 활동할 수 있다.(02-313-9973)▲트리니타스 챔버 오케스트라 교회 음악을 전문으로 하는 협연 단체로, 합창단과 성가대 연주에 협연한다. 평신도 교회음악 지도자를 양성하고 있다. (cjsup47@naver.com, 정종섭 단장)▲트리니타스 합창단 평신도를 대상으로 전례음악 지도자를 양성하는 합창단. 음대 성악 전공자를 회원으로 두고 있으며, 전례음악 보존 및 발굴을 위해 활동하고 있다.(cantorum@hanmail.net, 신호철 단장) 정리=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평화신문2015.11.10
교리 중심 주일학교, ‘참여형 수업’으로 전환 시급 수원교구 청소년국, 청소년사목 시스템 점검을 위한 주일학교 교사 공청회 교리 교육이 중심이 되는 현재의 중고등부 주일학교를 선택형 수업, 나눔과 토론, 봉사 활동, 학생 자치회 등으로 구성되는 새로운 체계로 바꾸자는 제안이 나왔다.수원교구 청소년국이 18일 수원 가톨릭청소년문화원에서 연 ‘청소년사목 시스템 점검을 위한 주일학교 교사 공청회’에서 국장 박경민 신부는 “지금의 주일학교 체계로는 중고등부 학생들을 성당으로 이끌고 사목하기 힘들다”면서 “주일학교를 체계를 통째로 바꿀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박 신부가 ‘대건청소년학교’라는 이름을 붙인 새로운 체계는 첫주에는 교리, 성경 공부, 성교육, 전례 교육 등 여러 수업을 선택해서 듣고, 둘째 주에는 학생들 스스로 주제를 정해 토론 수업을 한다. 셋째 주에는 자원봉사 활동을 하고 넷째 주에는 학생들이 중심이 돼 자치회 활동을 하게 된다. 대건청소년학교 운영으로 △학생들 참여를 이끌 수 있고 △봉사활동으로 책임감을 키워줄 수 있을 것으로 그는 기대했다. 또 △부모들 호응과 협조를 이끌어내고 △주일학교 교사 업무가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박 신부는 “현재 중고등부 주일학교 체계에 변화를 주지 않으면 5년 안에 주일학교에 나오는 학생이 절반으로 줄어들 것”이라고 예상하며 “50년 동안 변화가 없는 주일학교 체계를 바꾸지 않고서는 희망이 없다”고 진단했다. 현재 중고등학생 신자의 주일학교 출석률은 10%에 불과하다.초등부 주일학교는 4~5학년 통합 수업과 견진교리 정례화(6학년)를 제안했다. 박 신부는 “첫 영성체를 하는 3학년까지는 큰 문제가 없지만 4학년 이후 출석률이 급격하게 떨어지고, 이는 중고등부 주일학교까지 이어진다”면서 “4~5학년을 통합해 선택형 수업을 하거나 ‘견진성사 준비 학년’으로 만들면 효과적일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6학년은 의무적으로 견진 교리를 받게 하면 참여가 늘어날 것”이라고 기대했다.박 신부는 “일방적으로 전달하는 교육이 아닌 청소년들이 함께 생각해 볼 수 있는 참여형 수업이 필요하다”며 “다양한 수업 중 하나를 선택해 들을 수 있는 ‘선택형 수업’이 이뤄지려면 분야별 전문 봉사자를 양성해야 한다”고 말했다.초등부와 중고등부로 나눠 진행된 이날 공청회는 주일학교 교사 70여 명이 참가했다. 교사들은 △보좌신부의 잦은 인사 이동으로 인한 주일학교 체계 변화 △교사 부족 △부모 신자들의 비협조적인 자세 △교리 교재 부족 등 여러 가지 어려움을 호소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 평화신문2016.06.22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12)이현주 바올리나](//cpbc.co.kr/CMS/newspaper/2017/05/rc/680360_1.0_titleImage_1.jpg)
[가톨릭, 리더를 만나다] (12)이현주 바올리나 기도합니다 아픈 현실 끌어안고 주님 당신 길 가도록 장애를 가진 아들 우현군을 위해 기도하는 이현주씨. 그의 기도에는 아들만이 아니라 모든 장애인을 위한 기도도 덧붙어진다. 이현주씨 제공 사회생활을 한 것도 아니고 직책도 명예도 없다. 평범하지 않은 남편과 더 평범하지 않은 두 아이와 함께 사는 평범한 가정주부다. 남편은 유명인이다. 국내 최고의 록 밴드 리더이다. 아내는 사랑과 인내 그리고 행복의 리더이다. ‘부활’의 리더인 김태원(바오로)씨의 부인 이현주(바올리나)씨다. 유명인의 아내로, 장애인을 자녀로 둔 엄마로 그는 다른 사람보다 곱절의 고통스러운 삶을 살았다. 그러나 “저는 괜찮아요”라고 말한다. 남편과 자녀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하느님께 의지했다. 주실 때까지 기도하고, 있어야 할 자리에서 기다리며, 하느님께서 허락하신 아픈 현실을 끌어안았다. 옹기장이 손에 든 진흙과 같이 하느님의 뜻에 따라 자신의 삶이 빚어지고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세례성사의 삶을 치열하게 살며 은총을 알았다. 부침 많은 결혼생활 20여 년! 짧은 독백에 그녀는 이렇게 기도를 담는다. ‘주님, 당신이 가는 길에 저를 놓아 주십시오.’ 그녀는 지금 새로운 하느님의 소명(召命)에 응답하고 있다. 서종빈 기자 binseo@cpbc.co.kr▶유명인의 아내로 살면서 구설에 오르고 불이익을 당한 적은 없나요.없는 것 같아요. 남편은 굉장히 배려가 많아요. 저에게 “노(No)”라고 한 적이 없어요. 빠져나갈 때에는 “생각해 볼게”라고 해서 오히려 제가 신앙을 가지면서 자유롭게 제 활동을 시작했죠. 그전에는 특별한 일이 아니면 옆에 딱 붙어있었어요.▶다복한 가정을 꾸리셨는데, 갑자기 위기가 찾아왔죠.첫째 서현이가 태어났을 때에는 ‘이게 가족이구나!’ 집에 두 사람만 있는 게 아니라 자석이 하나 생겨서 딱 붙은 느낌이 드는 거예요. 결속력이 느껴지고 좋았어요. 둘째가 태어나서 장애가 있는 것을 모를 때까지는 집안이 꽉 찬 느낌, ‘아 이제 완성이 됐구나!’ 하고 행복했어요. 그런데 8개월쯤 되면서부터 둘째 아이가 좀 다르다는 것을 느꼈죠. 처음에는 두려워서 확인하지 않았는데 심각한 위기가 찾아왔죠. 남편도 처음엔 인정하지도 받아주지도 않았어요. 가족에게 도움을 청할 수도 없었어요. 그래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필리핀으로 떠나게 된 것이죠. ▶필리핀에서 하느님과의 사랑이 시작됐죠. 종교를 갖는다면 가톨릭이 제 종교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한 적은 있었어요. 딸도 한국 사람들이 모이는 성당에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고 성당에 간 것이죠. 성당에 간 첫날 제가 하느님과 사랑에 빠졌어요. 시댁 식구 중에는 시어머님이 가톨릭이셨고 다른 분은 없으셨고요. 남편도 원래 종교가 없었는데 제가 세례받고 6개월 후에 바오로로 세례를 받았어요. 당시 남편은 솔직히 하느님은 모르지만 내 아내의 눈빛이 너무 달라져서 아내가 너무 원해서 세례를 받았다고 하더라고요. 그때 제 소원은 제대 맨 앞자리에 앉아서 가족 4명이 같이 미사 보기였는데 시간 맞추기가 어려워 아직 기회는 없었습니다.▶「예수님께 할 얘기가 있어요」라는 책을 내셨는데, 두 번째 묵상집이죠.첫 번째 책은 제가 남편을 처음 만난 1984년부터 이야기로 자전적인 글이 많아요. 장애인가족치유캠프가 2013년부터 시작됐는데 장애인 가족들을 만나기가 어려워서 책을 통해서 만나볼 수 있을까 하는 의도에서 책을 냈고요. 이번 두 번째 책은 순수하게 저의 바람으로 책을 냈어요. 신앙생활을 시작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제가 일상에서 만난 하느님 이야기를 묵상하면서 여백을 두고 담았습니다. 그래서 페이지마다 거의 사진이 있어요.▶과거가 너무 아파서 정말 화해가 안 될 때 어떤 기도를 바치세요.어떻게 기도해야 할지 잘 몰라서 성경에 있는 말로 기도합니다. 미사 중에 “기도 안에서 성장시켜 주세요”라는 기도문을 발견하면 그 기도를 하는데요, 응답이 오더라고요. 엄마 뱃속에서 잉태돼 태어나고 말을 배우고 걷잖아요. 지금 제가 딱 말할 시기인가 봐요. ‘예수님께 할 얘기가 있어요’라고 이제부터 말을 하려고요. 기도도 구체적으로 나올 것 같아요. ▶세례명이 바오로 성인의 여성 이름인 ‘바올리나’이신데요. 어떤 점을 특히 닮고 싶으세요.세례받을 때 본당 신부님께서 잘 어울린다며 추천해 주셨고요. 바오로 성인도 한순간에 예수님을 만나서 개종했잖아요. 저도 깊은 신심은 아니었지만, 새벽 기도 하러 절에 열심히 다녔어요. 지금 와서 생각해 보니 대상을 몰랐던 것뿐이지 그때 이미 하느님께 향해 있었던 것 같아요. 하느님께서 미리 준비를 시켜주셨던 것 같고요. ▶바오로 사도처럼 열심히 전교하고 계시는데요. 행복나눔 묵주도 만드시죠?처음에 묵주기도가 너무 힘들어서 어떻게 기도할까 고민하다가 한단 한단 묵주 알을 끼면서 기도하게 됐어요. 필리핀에는 예쁜 진주가 많고 마닐라본당의 성전 기금을 마련하면서 묵주 만드는 다양한 법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됐죠. 저는 묵주를 만들면 장미를 성모님 대신으로 많이 사용하는데 부활 앨범에 있는 장미를 부활이라는 글자로 만들어 성모님 장미처럼 사용하고요. 판매수익금은 모두 장애인과 가족들을 위한 기금으로 사용하려고 합니다.▶둘째 우현이가 태어난 2000년 전후는 어떻게 다른가요?남편이 저에게 잘하는 말이 있었어요. “나 자신하고 싸우기도 바쁘다”고요. 저는 그 말이 참 책임감 없이 들렸어요. ‘우리는 알아서 살아줘야 하는 것인가’ 하고요.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하느님께서 저에게 큰 선물을 주셨는데 ‘기다림’인 것 같아요. 주위 분들이 힘든 시기 참 잘 견뎠다고 칭찬해 주시는데, 사실 전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요. 그냥 내 자리를 지키며 남편 옆에 가만히 있었어요. 그게 하느님이 저에게 주신 탈렌트인 것 같아요. 그런데 지금은 조금 힘드려고 해요.▶하느님의 계획은 참 오묘한 것 같습니다. 하느님과 어떤 대화를 하세요.필리핀에서 만난 언니가 한 분 계시는데 그분은 ‘고통을 주지 말아 달라고 하느님께 기도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런 기도를 할 수 있는 것 자체가 너무 부러웠어요. 예수님께 물어보면 ‘고통은 이런 거야’ 하면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예수님의 고통이 나에게 주어지면 어떡하나, 무서웠어요.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의 사랑이 얼마나 큰지 제가 느끼고 감히 질문했죠. “예수님, 고통이 뭐예요?” 그랬더니 진짜 영화 속 한 장면처럼 자다가 눈을 딱 뜨고 대답을 들었어요. “너희가 사랑하지 않는 것이란다” 라고요.▶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님들에게 용기를 주시죠.처음에는 죄책감이 들어 숨기게 되는데요, 받아들이고 나면 모든 것들이 사라지죠. 그때부터 진정으로 관계가 시작됩니다. 남편이 방송에서 아이의 장애를 밝힌 것을 계기로 다른 분들도 용기를 내셨으면 좋겠고요. 제가 장애인 인식 개선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가족들을 만나고 싶은데 쉽지가 않아요. 비장애인들에게 장애인에 대해 알려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었으면 좋겠어요.▶장애인 가족캠프를 하고 계시는데, 어떤 이유가 있는지요.필리핀으로 가기 전에 저에게 신앙이 있었다면 건강하게 손을 내밀었을 거예요. 도와달라고. 정말 힘들다고요. 그런데 오로지 저는 비참함만을 생각했어요. 건강하지 못했고 도망간 거예요. 저도 그때 우울증 초기 증상을 겪으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아이와 어떻게 하면 건강하게 죽을 수 있을까를 생각했어요, 그런데 정말 죽음을 생각한 순간, 다시 희망을 품게 됐어요. 신앙을 갖게 되고 축복 속에서 성장하고 지금까지 온 것이죠. 하느님과 사랑에 빠진 첫날,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보낸 40년을 생각했어요. 왜 나를 이제야 부르셨는지, 그때 제 나이가 마흔이었어요.▶아들보다 하루만 더 살고 싶다고 하셨고 남편은 그런 아내를 하루만 더 지켜주고 싶다고 하셨어요.사실 어느 부모가 자식보다 하루 더 살기를 바라겠어요. 자식을 앞세운다는 것이 하느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처럼 느껴질 수도 있지만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것은 정말 슬픈 일이죠. 또 그런 아내가 남편 입장에서도 쉽지만은 않았을 것 같아요. 남편은 사랑한다는 말을 정말 많이 하는 사람이에요. 무뚝뚝한 것 같지만, 가정적이고 달콤한 사람이죠. 정말 내 사람이고 내 남자였어요. 남편은 제가 하느님과 사랑에 빠졌기 때문에 옛날보다 지금이 더 예쁘다고 말해요.▶여러 가지 활동을 하고 계시는데 예수님께서 어떻게 보고 계실까요. 정말 내 뜻으로 하는 일인지 하느님 뜻으로 하는 일인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요. 멈출 수는 없는 데 지치지는 않으니 이게 하느님 사랑이고 하느님 뜻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제가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르겠는데 하느님의 소명이라는 믿음으로 하루하루를 살고 있어요. 남편이 하는 이야기가 있어요, “우리는 착한 사람이 아니고 선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고요. 그래서 하느님이 복을 주지 않으실까요. 돈을 많이 벌고 건강하고 이런 것만이 축복이 아니라 고통 속에서도 고통 다음에 무엇이 올지 보는 힘, 그것이 축복이라고 봅니다.▶(인터뷰 현장에 남편 김태원씨가 뒤늦게 함께 했다)가족들이 모두 외국에 있는데 외롭지 않으세요. 힘든 것을 즐기는 편입니다. 작가는 고독과 고뇌가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굉장히 힘들지만 겪어야 한다고 늘 생각하고요. 누군가에게 위로를 주기 위해서는 즐거움뿐만 아니라 슬픔도 슬픔을 위로할 수 있다고 봅니다. 밝은 음악을 하는 분들은 많이 계시니까, 제 역할은 슬픔으로 위로하는 것이죠.(이하 김태원씨 답변)▶2000년 전후로 인생이 바뀌었다고 하셨는데 어떤 의미인가요.우현이가 태어난 시점이고요. 그전에는 인간에 대한 커다란 의미는 잘 몰랐어요. 내 고집으로만 살았죠. 아들이 태어나면서 위로하는 역할인 음악인의 자세를 배웠습니다. 제가 아내를 지켜야 하는데 음악을 하면서 너무 험하게 살았습니다. 건강이 좋지 않아서 사실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아내를 마지막까지 지키는 것이 제 인생의 최종 목표입니다.▶아내의 권유로 세례를 받으셨는데, 어떤 마음이셨나요.아내가 좋아하는 것이라면 제가 뭐든지 하죠. 성당에 자주 나가지는 못하지만, 나의 자만으로 일이 흐트러지지 않게 해 달라고 늘 기도합니다. 제가 죽음의 기로를 많이 겪었기에 물에 빠지면 엄마를 찾듯이 급류에 떠내려갈 때 지푸라기 하나라도 잡고 싶을 때 그런 역할을 해 주시는 분이 하느님이 아닌가 하고요. 저는 아내와의 대화가 예수님과의 대화라고 생각합니다.▶자녀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 있으면 해주세요.서현아! 아빠도 너 나이 때에는 뭔가 톰 소여 같은 마음으로 모험의 길을 갔단다, 아빠가 보기에 너는 굉장히 좋은 길로 가고 있다. 과거의 상처로 무언가를 쉽게 선택하지 않았으면 한다. 부모와 상의해 주기 바란다. 우현아! 너는 선물이다. 그렇게 커다란 아이가 조그만 엄마를 보살펴줘서 매우 고맙다. 든든한 내 아들 파이팅!방송 시각 TV : 9일 오후 7시, 10일 오후 11시 cpbc2017.05.02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병고·신앙의 유혹 겪으며 ‘좋으신 하느님’께 의탁](//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4878_1.0_titleImage_1.jpg)
[가르멜 성인들의 생애와 영성] 병고·신앙의 유혹 겪으며 ‘좋으신 하느님’께 의탁43. 성녀 소화 데레사의 생애 ③ 가르멜 수녀원 시절의 성녀 소화 데레사. 네 자매의 가르멜 생활성녀 소화 데레사는 1888년 4월 9일, 만 열다섯 살이라는 어린 나이에 리지외 가르멜 수녀원에 입회해서 1897년에 세상을 뜨기 전까지 약 10년간 수도 생활에 정진했습니다. 소화 데레사의 수도 생활에서 좀 특이한 점을 꼽는다면, 성녀가 입회한 리지외 가르멜 수녀원에는 이미 소화 데레사의 큰 언니인 마리아와 둘째 언니인 폴리나가 입회해서 살고 있었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소화 데레사가 입회한 지 몇 년 후에는 마지막 남은 바로 위의 언니인 셀리나도 입회했습니다. 그래서 리지외 수녀원에는 네 자매가 함께 사는 독특한 상황이 벌어지게 됐습니다. 피를 나눈 친자매들이 같은 수녀원에서 함께 살면 좋을 것 같지만, 사실 그렇게 되면 더 어렵습니다. 공동체 생활을 하다 보면 언니나 동생이 다른 수녀들과 마음 상하는 일을 보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사실 그렇게 고생하는 친자매를 보면서도 도와줄 수 없는 게 수도 공동체 생활의 현실입니다. 오히려 인간적인 정에 더 끌리지 않도록 경계해야 하고 옷깃을 여미며 마음을 다스리는 가운데 순수한 사랑으로 모든 공동체 회원들을 공평하게 사랑해야 합니다. 그래서 소화 데레사는 수녀원에 입회한 후 예전에 비해 오히려 더 언니 수녀들로부터 차갑다는 인상을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동생이 수녀원에 들어와서 제대로 살려면 어린아이나 할 법한 미숙한 습관을 버려야 한다고 생각했던 언니들이 소화 데레사에게 좀 차갑고 모질게 대했기 때문입니다.성성(聖性)을 향한 지름길을 찾다어쨌든 소화 데레사는 1888년 15살의 나이에 수녀원에 입회해서 그 이듬해인 1889년 수련을 받고 1890년 9월 8일에 수도서원을 발했습니다. 성녀는 참 영민하고 독창적인 여인이었습니다. 성성을 향해 나아가는 데 있어 어떤 길이 지름길인지 끊임없이 찾고 발견했던 혜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0년이라는 그리 길지 않은 수도 생활이었지만, 그 누구보다도 빨리 성덕에 진보할 수 있었습니다. 특히 성녀는 입회할 당시 가져온 수첩에 적어 놓은 여러 성경 구절들을 틈틈이 묵상하면서 많은 빛을 받았다고 합니다. 19세기 말이면 2차 바티칸 공의회 훨씬 이전 시대라 보통 사람들이 성경을 쉽게 접하기가 좀 어려운 시절이었습니다. 성녀는 이런저런 기회에 틈틈이 메모해 둔 주옥같은 성경 구절을 모아둔 수첩을 자주 꺼내보며 묵상하면서 영적인 빛을 받곤 했습니다. 서원한 지 3년 후인 1893년부터 임종하기 전까지 성녀는 부수련장 소임을 맡아 공동체를 위해 봉사했습니다. 성녀는 이 소임을 통해 수련장 수녀님을 도와 수련 수녀들의 교육을 맡아 동반했으며 이 과정에서 특히 자신의 독창적 영성을 담고 있는 ‘작은 길’을 발견하고 이를 몸소 실천하며 가르쳤습니다.병고와 신앙의 어두운 밤을 거치다그리고 1895년 6월 9일 성녀는 “자비로운 하느님 사랑에 자신을 제물로 봉헌하는 기도문”을 작성하고 그 사랑에 자신을 봉헌하게 됩니다. 또한 그로부터 닷새 후에는 ‘사랑의 상처’라는 신비적인 은총을 받았습니다. 이듬해인 1896년 사순절에 성녀는 첫 번째로 각혈을 하게 됩니다. 당시 성녀가 걸린 병은 폐결핵이었습니다. 지금이야 결핵하면 거의 퇴치된 데다, 걸린다 하더라도 치료 가능한 병으로 분류되지만, 19세기 말에 결핵은 불치병에 속했습니다. 그해 사순절부터 각혈을 하면서 성녀는 자신에게 죽음이 가까이 다가왔음을 직감적으로 알게 됩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이런 육체적 고통에 더해 성녀를 괴롭힌 것은 신앙을 거스르는 유혹이었습니다. 당시 성녀는 지독한 병고 속에서 과연 하느님이 계시는가, 천국은 있는가 하는 신앙의 근본 진리들에 대해 깊은 회의를 가졌다고 합니다. 이 신앙의 어두운 밤은 죽기 전까지 계속됐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녀는 이 모든 유혹과 병고를 신뢰와 사랑 안에서 받아들이는 가운데 자신이 발견하고 수련 수녀들에게 가르쳐왔던 ‘작은 길’을 끝까지 걸어갔습니다. 성녀이자 교회 박사 그리고 선교의 수호 성인생의 마지막 시기에 이르러 성녀는 특히 예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 사도적인 열성, 그리고 ‘좋으신 하느님’께 대한 자녀적인 의탁에 있어 절정에 이르게 됩니다. 그리고 죽은 후에도 천상에서 장미 꽃송이를 뿌리면서 영혼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는 강한 원의를 품게 됩니다. 이렇듯 성녀는 병마와 싸우다 1897년 9월 30일, 24살이라는 젊은 나이로 숨을 거두고 말았습니다. 성녀가 임종한 지 몇 년 되지 않아, 그간 원장 수녀의 명으로 소화 데레사가 병중에 자신의 생애에 관해 썼던 글들이 가르멜 수녀들을 비롯해 많은 신자들 사이에 읽히는 가운데 큰 감명을 주기 시작했습니다. 해가 갈수록 소화 데레사의 글은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여러 언어로 번역되어 많은 사람들에게 영적인 빛을 전해 주었습니다. 결국 소화 데레사는 죽은 지 채 30년도 되지 않아 1923년 4월 29일 교황 비오 11세에 의해 시복되고 그로부터 2년 후인 1925년 5월 17일 시성되었습니다. 또한 그로부터 2년 후인 1927년 12월 14일에는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와 함께 선교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됐고, 선종한 지 100주년이 되던 1997년 10월 19일에는 마침내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에 의해 교회 박사로 선포되었습니다. cpbc2016.03.16
주교회의 정평위, 최순실 사건의 엄정한 수사와 진실 규명 촉구 수원ㆍ부산ㆍ인천 가톨릭대 신학생, 시국 선언 발표 주교회의 정의평화위원회 위원장 유흥식 주교는 1일 헌정 사상 초유의 국정 농단 사태와 관련, 대통령에게 국민 주권과 법치주의를 유린한 전적인 책임을 질 것을 촉구하고 수사 당국에는 관련자 전원에 대한 엄정한 수사로 진실을 규명할 것을 요청했다. 유 주교는 ‘평화는 정의의 열매이다’(이사 32,17 참조)라는 제목으로 담화를 통해 “이른바 ‘비선 실세’를 통한 국정 개입은 국민 주권과 법치주의 원칙을 유린한 반헌법적 행위”라고 규정하고 “대통령은 자신의 과오를 뉘우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려는 진지한 자세로 국민의 뜻을 존중하여 책임 있는 결단을 해야 한다”고 강력히 요구했다. 유 주교는 또 “도덕 원칙과 사회 정의 규범을 한꺼번에 짓밟는 정치적 부패는 국가의 올바른 통치를 위협한다(「간추린 사회교리」 411항 참조)”고 전제하고 “이번 사태 관련자들에 대한 엄정하고 투명한 수사와 공명정대한 재판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천명했다. 이어 유 주교는 “어떠한 불의와도 결탁하지 않는 용기와 엄정한 법 집행이 조속한 국정 정상화와 국민 신뢰 회복을 위한 우선적 과제”라고 지적하고 “책임 전가나 사실 은폐, 수습 지연은 국정 공백과 민심의 공황 상태를 가속화시킬 뿐이며, 현재의 국가 위기를 이용하여 자신의 이익을 도모하려는 그 어떤 세력들의 부당한 개입을 거부한다”고 선언했다. 유 주교는 특히 “교회는 정의에 위배되는 죄악의 구조를 반대하며, 세상을 바꾸고 진실한 가치를 전달하며 더 나은 세상 건설을 위해 투신하는 참다운 신앙의 소명을 실천할 것”이라며 “신자들은 정의와 평화에 투신하기 위해 하느님께서 주신 힘과 수단을 유용하게 활용해야 할 의무(「가톨릭교회교리서」 2820항 참조)를 기억하며, 현 사태에 관심을 기울이고 민주주의의 회복을 위해 적극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아울러 “국정 정상화와 국가의 안정을 위해 인내하고 기도하면서 함께해줄 것”을 간곡히 호소했다. 끝으로 유 주교는 “현재 직면한 위기가 어둠과 절망으로 끝나지 않고 참다운 정의와 평화로 열매 맺을 수 있도록 온 국민이 지혜와 노력을 모을 때”라며 “수많은 희생을 통해 지켜낸 이 땅의 민주주의가 건강하게 회복되기를 간절히 기도하고 희망한다”고 밝혔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신학교도 잇따라 시국 선언 수원ㆍ부산ㆍ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생들이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잇따라 시국 선언을 했다. 수원가톨릭대학교 총학생회는 10월 28일 시국 선언을 통해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요구하며 우리 시대의 모든 불의와 부정, 폭력과 억압에 맞설 것이라고 주장했다. ‘불행하여라, 거짓의 끈으로 죄를 끌어당기고 수레의 줄을 당기듯 죄악을 끌어당기는 자들!’(이사 5,18)이라는 제목의 시국 선언에서 수원가대 신학생들은 “무엇보다 이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어야 할 책무를 지닌 그리스도인들로서 책임감을 통감하면서 참담한 심정으로 오늘 겸허히 일어선다”면서 △최순실 게이트 △국정원 대선 개입 △세월호 △백남기 임마누엘 어르신의 사망사건 △방산 비리 등 모든 부정에 대한 진상 규명과 관련자 처벌을 촉구했다. 또 △굴욕적인 위안부 합의 폐기 △교과서 국정화 중단 △노동 개악, 민영화 정책, 외국 자본에 의탁하게 하는 자원 외교 중단을 주장했다. 부산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학생회는 10월 30일 최순실 사건과 관련해 시국 선언을 하고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후속 조치를 촉구했다. 부산가대 신학생 85명은 교황 권고 「복음의 기쁨」 183항을 인용한 ‘교회는 정의를 위한 투쟁에서 비켜서 있을 수 없으며 그래서도 안 됩니다’라는 제목의 시국 선언에서 △대통령의 진심 어린 사과와 후속 조치를 취할 것 △국회는 초당적 협력으로 진상 규명에 힘써줄 것 △사법부는 투명하고 성역 없는 수사를 진행할 것을 요구했다. 신학생들은 이어 “‘그리스도인의 선포와 삶은 사회에 영향을 미쳐야 한다’(「복음의 기쁨」 180항)는 교회 가르침을 실현하기 위해 끊임없이 함께 고민하고 연대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천가톨릭대학교 신학대학 신학생들도 최순실 국정 개입 파문 시국 선언에 동참했다. 제21대 학생자치회는 10월 31일 “죽음아, 너의 독침이 어디 있느냐?”(1코린 15,55)를 제목으로 발표한 시국 선언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걷고자 하는 우리는 불의한 권력에 더 이상 침묵하지 않고 정직한 분노를 감추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학생자치회는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라’(아모 5,24)는 성경의 가르침을 마음에 품고 사는 신학생들은 더 이상 이 사태를 좌시할 수 없었다”며 “지배 권력에 휘둘리는 군중으로서가 아니라 사명감과 책임을 지닌 국민”(「복음의 기쁨」 220항)으로 행동하라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말씀을 기억하고 이를 실천하려 한다”고 말했다. 학생자치회는 현 시국의 비정상적인 상황을 규탄하며, 책임자를 엄중하게 처벌함으로써 짓밟힌 민주주의의 근간을 일으켜 세우라고 요구했다. 리길재 기자 teotokos@pbc.co.kr이지혜 기자 bonaism@pbc.co.kr cpbc2016.11.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