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속 생명 이야기] 7. 자유에 대한 그릇된 개념](//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1216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생명 이야기] 7. 자유에 대한 그릇된 개념"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넬슨 만델라는 그의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감옥에서 백인에 대한 내 분노는 서서히 줄어 갔지만, 이 시스템에 대한 증오는 커 갔다. 나는 우리를 서로 적으로 만들어 버린 이 시스템을 증오하는 반면에 적들마저 사랑한다는 사실을 남아프리카 공화국이 알기를 바랐다"(「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이처럼 전체를 악화시키는 시스템에 대한 저항과 사람에 대한 사랑을 구별하려는 자유의지의 실천이 있는가 하면, 어떤 경우에는 개인의 권리주장에만 갇혀 사적 자유로 타인의 생명을 위협하거나 해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합니다. 이런 뜻에서 카인은 "네 아우 아벨은 어디 있느냐?"는 하느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한 것입니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창세 4,9). "모릅니다"라는 카인의 진술은 타인과의 연대로부터 고립되길 선택하는 자유의 표방입니다만, 결국 그의 자유는 복종 외에 별다른 선택을 할 수 없는 약자를 임의대로 다루는 강자의 자유가 되고 말았습니다. 또한 카인은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하고 말하는데, 여기서 '지키다'로 번역한 히브리어 동사 '샤마르'는 하느님께서 세상과 인간을 창조하신 뒤 사람에게 에덴동산을 '지키도록' 맡기실 때(창세 2,15) 사용한 단어와 동일합니다. 카인은 '지키라'는 하느님 명령을 따르기보다 그에 반대되는 행위를 했을 뿐 아니라, 하느님 명령대로 '지키는' 일을 하지 않겠다는 강한 자유의지를 나타낸 것입니다. 따라서 카인이 아벨과 아무 상관을 갖지 않으려 한 자유란, 결국 개인의 자유에 그릇되고 사악한 의미를 부여하는 것이었습니다. 곧 타인과의 연대를 끊고 스스로 고립됨으로써, 실제로는 타인에 대항하는 절대적 힘을 자신에게 부여한 것입니다. 이는 진짜 자유의 죽음입니다(「생명의 복음」 20항 참조). 이렇듯 자유를 개인주의적 방식으로 절대화할 때 그 본래 내용은 사라지며, 그 의미와 존엄성도 모순에 처하게 됩니다. 또한 개인의 자유가 진리에 부합한 것인지를 살피지 않거나 아예 무시하는 자유는 진리 자체를 무효화하고 파괴하며 타인을 파멸로 이끄는 요소로 변질되고 맙니다(「생명의 복음」 19항 참조). 이런 일은 정치와 통치의 차원에서도 일어납니다. 근원적이고 양도할 수 없는 생명에 대한 권리가, 가령 낙태ㆍ유아살해ㆍ안락사에 대한 법률적 허용이 의회 표결이나 국민 일부(그 일부가 다수라 할지라도)의 의지에 입각해 이뤄질 때, 그때는 합법성을 엄격하게 존중한다는 외관만 유지될 뿐입니다. 모든 사람의 인격이 지닌 존엄성을 인정하고 보호할 때만 참된 것일 수 있는 민주주의의 이상은 죽은 것이나 다름이 없는 것입니다(「생명의 복음」 20항 참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좋든 싫든, 협력하든 경쟁하든, 형제ㆍ자매와 한데 어울려 사는 세상입니다. 우리는 성경 안에서 카인과 아벨 외에 야곱과 에사우, 요셉과 형제들, 암논과 압살롬 등 형제지간의 냉혹한 현실을 봅니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시편 133편에서는 "보라, 얼마나 좋고 얼마나 즐거운가, 형제들이 함께 사는 것이!"라고 노래합니다. 신약성경 역시 우리 삶이 종종 하느님과의 관계에서 그리고 형제지간에 갈등을 겪음을 이야기합니다. 루카복음 15장 '되찾은 아들의 비유'에서 큰아들은 카인처럼 살인자는 아니지만, 방탕한 짓을 하다 돌아온 동생을 환영하는 소식을 듣고 분개했으며, 그 역시 카인의 경우와 비슷하게 아버지의 보호로부터 떨어진 '들판'에 나가 있었습니다(루카 15,25 참조). 그에게도 죄가 그를 삼키려고 도사리고 있는 형세가 그려지는데, 창세기 4장과 다른 점은 아버지가 몸소 들에 나가 그를 달랜다는 점입니다. 또 마태오복음 5,21-26에서 예수님은 형제 살인에 대한 금지명령의 배후를 캐고 들어가 창세기 4장에 가까이 나아가십니다. 곧 카인과 아벨의 제사 때처럼 제단에 예물을 바치려 하다가 원한 품은 형제가 생각나면 즉시 화해부터 하고 제단에 예물을 바치라고 명하십니다. 우리의 삶도 마찬가지입니다. 유일한 대안은 화해에 있습니다. "우리가 세상살이에서 사람들을 증오하는 법을 배웠다면 사랑하는 법 또한 배울 수 있을 것입니다"(만델라, 「자유를 향한 머나먼 길」). cpbc2014.03.18
![[성경 속 생명 이야기] 9. 희망의 표징과 헌신에 대한 초대](//cpbc.co.kr/CMS/newspaper/2014/04/rc/503353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생명 이야기] 9. 희망의 표징과 헌신에 대한 초대이명기 수녀(가톨릭대 ELP학부대학 교수) 카인의 아벨 살해 후 하느님께서는 카인에게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10)고 말씀하십니다. 땅에 쏟아진 무죄한 피의 울부짖음은 하느님께 복수를 호소하는 것이었으며, 결과적으로 카인은 타인의 생명을 뺏은 대가로 하느님의 저주를 받습니다(창세 4,11-12 참조). 노아의 홍수 이후 하느님께서는 구원받은 사람들에게 피를 마시지 않도록 엄격하게 금하셨습니다(레위 7,26-27 참조). 피는 곧 생명이므로, 인간은 생명에 대해 아무 권한이 없음을 강조하는 것이었습니다. 다른 한편으로 하느님께서는 인간이 쏟게 한 무죄한 이의 피는 당신 자신의 일부로 보존하셨습니다. 시편 56장 9절에서 원수에게 죽임을 당하게 된 이가 자신의 피의 울부짖음(눈물)을 하느님의 부대(負袋)에 담아달라고 기도하는 데서 이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피를 먹어선 안 된다"는 금령을 지키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사람의 아들의 살을 먹지 않고 그의 피를 마시지 않으면, 너희는 생명을 얻지 못한다.…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사람은 내 안에 머무르고 나도 그 사람 안에 머무른다"(요한 6,53-55). 이 말씀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흘리시는 피는 한편으론 하느님의 부대 안에 보존되는 무죄한 아벨의 피입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죄인의 구원을 위해 당신 친히 흘리는 속죄의 피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흘리시는 피는 인류에게 참된 음료로 내어주는 피로서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피입니다"(히브 12,24).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 피'란 구체적으로 무슨 의미입니까? 그 의미는 예수님께서 아벨의 피의 울부짖음을 다음과 같은 부르짖음으로 변혁시키는 데서 나타납니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루카 23,34). 이러한 부르짖음은 전에 아벨의 피에서 솟아나온 복수의 부르짖음을 무색케 하는, 용서를 청하는 부르짖음입니다. 이 피의 호소는 일차적으로, 무고한 이의 피를 흘리게 한 사람들을 용서해 달라는 탄원입니다. 이 탄원이 인류에게 미치는 영향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남의 피를 흘리게 했던 자신의 돌 심장(에제 36,26)을 깨뜨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호소는 생명으로의 초대입니다. 십자가 위에서 창에 찔린 예수 성심의 옆구리에서 흘러나온 이 피(요한 19,34 참조)는 죄인에게 생명의 참된 목적지를 돌려주고, 생명의 원천이 다시 열리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리하여 새 인류는 예수님의 이 피를 마심으로써 자기 자신의 죄로 죽은 옛 인간의 가슴에서 다시 생명(살, 심장)을 발견하는 것입니다. 성체성사를 통해 이 피를 마시고 예수님 안에 머무는 사람은 누구나 그분의 사랑과 생명의 선물이 지닌 활력 안으로 이끌려 들어갑니다. 거기서 모든 사람이 지닌 사랑에 대한 원초적 소명을 다시 일깨우게 됩니다. 곧 그리스도의 피로 모든 이가 자신의 생명을 증진하는 데 자신을 바치고자 하는 힘을 얻습니다. 우리 희망의 가장 힘 있는 원천은 바로 이 피입니다(「생명의 복음」 25항 참조). 현실적으로 우리 사회와 문화는 죽음의 문화를 강력하게 드러내고 있어서 그리스도 피의 승리가 보이지 않는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하여 우리가, 현 인류가 놓인 상황 속에서 약진하고 있는 긍정적 표징들을 발굴해 제시하지 않고 생명 위협에 대해 비난만 한다면, 그것은 헛된 낙담으로 이끄는 결과가 될 것입니다. 세상 한가운데서 긍정적 표징을 발견하기가 쉽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약하고 보호능력이 없는 이웃을 돕고 지원하려는 자발적 움직임이 얼마나 많이 생겨났고 또 계속 생겨나고 있습니까! 여전히 많은 부부가 막중한 책임감을 갖고 자녀를 '혼인의 가장 뛰어난 선물'로 받아들일 준비를 합니다. 무엇보다 생명에 대한 일상의 봉사활동 안에서 버려진 아기들과 어려움에 빠진 청소년들을 기꺼이 받아들이는 가정도 많습니다(「생명의 복음」 26항). 낙태 허용법과 안락사 합법화 노력에 대응해, 생명 옹호를 위한 사회적 각성을 일깨우려는 운동과 자발적 움직임이 세계 곳곳에서 생겨나고 있습니다(「생명의 복음」 27항). 빛과 그림자를 동반한 상황을 보면서 우리는 선과 악, 죽음과 생명, 죽음의 문화와 생명의 문화의 엄청나고 극적인 충돌에 직면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우리가 생명을 무조건적으로 선택하는 것은 "아벨의 피보다 더 훌륭한 것을 말하는"(히브 12,24) 그리스도의 피에 대한 신앙을 선택하는 길입니다(「생명의 복음」 28항 참조). cpbc2014.04.01

혼인과 가정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 가르침 재확인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 가정에서의 사랑에 관하여」 특징과 주요 내용 오스트리아 빈 대교구장 쇤보른 추기경이 8일 바티칸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노드 후속 문헌 권고 「사랑의 기쁨」을 들어 보이고 있다. 【바티칸시티=CNS】 ▨특징 “가정에서 체험하는 사랑의 기쁨은 또한 교회의 기쁨입니다”로 시작하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시노드 후속 권고 「사랑의 기쁨」은 혼인과 가정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전통적인 가르침을 재확인하고 있다. 본론 9개 장, 전체 325개 항으로 이뤄져 있는 문헌 어디에서도 교회 가르침의 변화를 시사하는 대목은 찾아볼 수 없다. 이로써 교리의 변화 여부를 둘러싼 논란을 불식시킨 셈이다.그렇다고 해서 문헌이 교회 가르침을 모든 상황에 예외 없이 획일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문헌은 오히려 “구체적 상황과 실제적인 가능성”(36항)을 고려해야 한다고 밝힌다. 모든 사람이 구원되기를 원하시는 하느님 아버지의 자비로움에 부응하는 사목적 배려를 위해서다. 그래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목적 대화와 식별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사랑의 기쁨」이 지니는 주목할 만한 특징이다.이런 사목적 식별을 통해 어려움에 처한 신자 가정을 배려하는 일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신자 가정들이 위기의 가정이 되지 않도록 예방하는 일이다. 교황은 이렇게 강조한다. “오늘날 실패한 이들에 대한 사목적 배려보다 훨씬 중요한 것은 혼인을 강화하고 그래서 깨어지지 않도록 막으려는 사목적 노력입니다”(307항).이런 특징들을 반영하고 있는 교황 문헌 「사랑의 기쁨」은 그래서 교리적 측면에서 보자면 “변화가 아니라 발전”(빈 대주교 쇤보른 추기경)을 지향하며, 가정과 혼인에 관한 교리적 가르침을 훼손하지 않으면서도 그 교리가 교회의 “사목적 사명에 봉사”(미국 ‘내셔널 가톨릭 리포터’)하기를 바라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교황청이 발표한 「사랑의 기쁨」 요약문을 중심으로 문헌의 주요 내용을 살펴본다. ▨주요 내용 서론에서는 문헌을 발표하게 된 배경과 문헌의 성격을 제시한다(1~7항). 교황은 가정에 관한 두 차례(2014년과 2015년)의 세계 주교시노드에서 나온 의견들을 “다면체로 된 보석”(4항)이라고 표현한다. 그러나 “교리적 윤리적 또는 사목적 쟁점들에 대한 모든 논의가 교도권의 개입으로 해결돼야 하는 것은 아니다”(3항)라며 이 문헌이 획일적이고 결정적인 교도권의 답변을 제시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제1장 말씀의 빛 안에서“말씀의 빛 안에서”라는 제목의 제1장(8~30항)은 가정에 관한 내용을 담은 시편 제128장에 대한 묵상으로 시작한다. 교황은 성경에는 가정들, 탄생과 사랑 이야기들, 가정의 위기들에 관한 이야기들이 풍부하다면서 하느님 말씀이 “일련의 추상적인 관념들이 아니라 어려움이나 고통을 겪는 모든 가정에게 위로와 동행의 원천”(22항)임을 제시한다. ▲제2장 가정의 경험들과 도전들“가정의 경험들과 도전들”을 다룬다(31~57항). 교황은 가정들의 현 상황을 고찰하면서 가정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들과 대면하고 있는 도전들과 관련, 구체성을 강조한다. “성령의 부르심과 요구는 역사의 사건들에서 울려 퍼지기에 구체적 실재들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31항)는 것이다. 또 이렇게 할 때 “실제 가정들의 구체적 상황 및 실천 가능성과 거리가 먼”(36항) 이상향을 제시하는 위험을 피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구체성은 교황이 이 문헌에서 제시하는 핵심 개념 가운데 하나다. ▲제3장 예수님 바라보기: 가정의 소명“예수님 바라보기: 가정의 소명”이라는 제목의 제3장(58~88항)은 혼인과 가정에 관한 교회의 핵심 가르침을 제시한다. 문헌은 복음에 따른 가정의 소명과 이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구체적으로 묘사한다. 교황은 여기서 2015년 주교 시노드의 최종 보고서와 요한 바오로 2세 교황의 회칙 「가정 공동체」를 인용, “사목자들은 진리를 위해 상황을 신중하게 식별해야 할 책무가 있음을 알아야 한다”고 언명한다. 식별의 중요성을 거듭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제4장 혼인의 사랑제4장 “혼인의 사랑”(89~164항)에서 프란치스코 교황은 바오로 사도가 코린토 신자들에게 보낸 첫째 서간에 나오는 ‘사랑의 찬가’(13,4-7)를 부부 사랑에 비추어 묵상하고 풀어낸다. 이런 성찰은 이전의 교황 문헌들에서는 전례가 없는 것으로 그리스도인 부부 생활에 대단히 풍요롭게 기여한다.교황은 한계를 지닌 부부에게 그리스도와 교회의 일치를 드러내라는 막중한 부담을 지울 필요가 없다면서 이상적 기준에 비춰 일상의 부부 사랑을 판단하기를 거부한다. 그러면서도 부부 사랑은 그 본성상 모든 것을 아우르고 지속하는 결합이라고 규정한다. 여기에는 “기쁨과 투쟁, 긴장과 휴식, 수고와 안식, 만족과 갈망, 성가심과 즐거움이 뒤섞여” 있다(126항).▲제5장 결실 맺는 사랑“결실 맺는 사랑”이라는 제목의 제5장(165~198항)은 부부 사랑의 결실과 출산에 대해 다룬다. 임신과 출산, 부모의 사랑뿐 아니라 입양에 대해서도 언급하며, 나아가 형제자매와 가까운 친척이 이루는 대가족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그러나 ‘핵가족’에 대해서는 별 언급이 없다. ▲제6장 몇 가지 사목적 전망들제6장(199~258항)은 “몇 가지 사목적 전망들”이라는 제목처럼 하느님의 계획에 따라 굳건하고 결실을 보는 가정 형성을 목표로 하는 다양한 사목적 전망들을 다룬다. 가정은 복음화돼야 할 뿐 아니라 가정 사도직의 주체로서 “가정의 복음을 선포”해야 한다. 교황은 이 장에서 혼인 준비, 혼인 초기의 부부 생활, 가정의 위기와 어려움 등에 대해 언급한다. 교황은 “이혼은 악”이라고 보면서 이혼이 점점 증가하고 있다는 것이 문제라고 본다. 따라서 가정과 관련해서 사목자들의 가장 중요한 과제는 “가족의 사랑을 강화하고 상처의 치유를 돕고 우리 시대의 이 드라마(이혼)의 확산을 막기 위해 일하는 것”(246항)이라고 교황은 강조한다. ▲제7장 더 나은 자녀를 향해“더 나은 자녀 교육을 향해”라는 제목의 제7장은 자녀 교육의 여러 측면을 다룬다(259~290항). 교황은 자녀의 윤리적 양성, 보상을 통한 교정 교육, 자녀 교육의 장인 가정생활, 성교육, 신앙 전수 등에 대해 언급한다. ▲제8장 가정들에 대한 자비와 사목적 배려문헌의 제8장(291~312항)에서는 가정들에 대한 자비와 사목적 배려에 대해 할애한다. 교황은 8장의 제목 그대로 “약한 이들을 안내하고 식별하고 통합할” 필요성을 강조한다. 교회는 혼인에 대한 교회의 가르침에 더이상 부합하지 않는 그런 상황에서도 건설적인 요소들, 긍정적인 측면들 포기해서는 안 된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자신의 첫 권고 「복음의 기쁨」에서 언급한 교회의 야전 병원 역할을 여기서도 거듭 강조한다. 문헌은 “통상적이지 않은” 상황에 대한 식별과 관련, “다양한 상황의 복잡성을 고려하지 않는 판단을 피하고, 사람들이 자신들의 조건으로 인해 어떻게 얼마나 고충을 겪고 있는지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 강조한다(296항). 또 이혼 후 재혼한 신자들이 “할 수 있는 다양한 방식으로 그러나 스캔들이 되지 않도록 주의하면서 교회 공동체에 온전히 통합되도록 해야 한다”고 밝힌다(299항). 교황은 이와 함께 “우리는 자비에 너무 많은 조건을 부여해 자비의 구체적 의미와 실제적 중요성을 제거해 버린다”며 “이것이 복음을 희석시키는 가장 나쁜 방식”(311항)이라고 지적한다.▲제9장 혼인과 가정의 영성문헌의 마지막 제9장(313~325항)은 “혼인과 가정의 영성”을 다룬다. 교황은 여기에서 “어떤 가정도 완벽하게 형성되어 하늘에서 떨어지지 않는다”면서 한계가 있다고 해서 상심해서는 안 된다고 격려한다.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은 ‘성가정께 바치는 기도’로 끝을 맺는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cpbc2016.04.14
![[나의 묵주이야기] 143. 묵주기도는 살아 숨쉬는 예수님 일생](//cpbc.co.kr/CMS/newspaper/2015/10/rc/598023_1.0_titleImage_1.jpg)
[나의 묵주이야기] 143. 묵주기도는 살아 숨쉬는 예수님 일생김현희 아녜스(미국 뉴저지 성 백삼위 한인본당) 레지오를 하면서 묵주기도를 숙제하듯 하던 나에게 묵주기도는 어디에서나 좋은 수면제가 되곤 했다.환희의 신비를 묵상하면서도 환희를 느끼지 못했고, 빛의 신비를 묵상하면서도 그냥 책 속의 이야기처럼 여기고, 고통의 신비는 그나마 오래전 영화 속 영상으로 인해서인지 예수님 고통은 조금이나마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영광의 신비는 그야말로 나에게는 와 닿지 않는 천상의 이야기처럼 아득했다. 이처럼 내가 하는 묵주기도는 무겁고 죽은 기도에 가까웠다.이런 무디고 축 처진 기도를 하던 내가 아는 언니의 요청으로 이스라엘을 갑자기 다녀오게 됐다. 개신교 신자인 언니는 이스라엘에 흠뻑 빠져 있었고, 두 달 체류를 목적으로 그곳에 있으면서 내게 꼭 이스라엘에 오기를 간청했다. 그즈음 이런저런 어려움에 빠져있던 터라 언니가 묵는 숙소에서 지내기로 하고 일주일 일정으로 이스라엘 예루살렘 근처에 머무르게 됐다.예루살렘 구시가지에 가서야 그곳이 여러 종교가 각 구역을 나누어 차지하고 있으며, 유적지가 아니라 지금도 수많은 사람이 사는 생활 터전이라는 사실에 많이 놀랐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오르던 골고타 언덕의 골목 골목마다 조잡한 묵주와 성물을 파는 상인들의 호객 소리가 넘쳐나고 있었다. 우기에 든 이스라엘엔 자주 비가 내렸고, 나는 구시가지에 들어서야 예수님이 이야기책에 나오는 주인공이 아니라 2000년 전 이곳에서 살았던 사람이었으며, 그가 이 길 위를 정말로 십자가의 무게에 짓눌리며 걸었다는 사실을 현실로 받아들이게 됐다. 나는 보고서야 겨우 믿을 수 있는 얄팍한 사람이었다.예루살렘 골목에 숨겨져 있는 십자가의 길을 걸으며 드디어 ‘고통의 신비’에 담긴 다섯 가지의 묵상이 생생하게 살아서 내 묵주의 한 부분이 됐다. 그리고 하루 일정으로 다녀온 나자렛과 가나안, 요르단 강과 카파르나움을 직접 보고 걷고서야 ‘빛의 신비’에 담긴, 세상으로 나온 예수님의 행적이 내 묵주알 속에 살아났다. 어머니 마리아와 아들 예수가 유년 시절을 보낸 그 작은 나자렛 마을에는 비가 내렸다. 그 비는 겸손하게 자신에게 내린 성령에 순명한 성모님의 일생으로, ‘환희의 신비’가 살아 있는 이야기로 내 마음속에 담겼다. 그리고 예루살렘과 예리코, 옥빛으로 빛나던 사해의 물빛과 건너편 요르단을 배경으로 둥글게 걸린 무지개, 예수님이 40일간 악마의 유혹을 견디던 광야의 절벽에 서서야 예수님이 성경 속에 담긴 존재가 아니라 이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살아 움직이며 여전히 마음속 가장 깊숙한 자리에서 나를 부르고 계신다는 사실이 바로 ‘영광의 신비’로, 내 묵주의 마지막 단락에서 살아 있는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어 했음을 깨달았다.내 주머니에 넣고 갔던 아무런 장식이 없는 나무 묵주를 예수님 시신을 내렸던 돌 위에 올려놓고 잠시 그분께 감사함과 미안함의 기도를 드렸다. “이토록 옹고집인 저를 친히 불러, 당신이 직접 그 길을 안내하고 보여주고 함께 걸어주신 분, 오늘도 당신이 내 손에 쥐여주신 이 묵주는 그 시간을 그 길들을 고스란히 기억하나이다. 감사합니다. 하느님!” ※‘나의 묵주이야기’에 실릴 원고를 기다립니다. 200자 원고지 8매 분량으로 연락처와 함께 pbc21@pbc.co.kr로 보내주시면 됩니다. 채택된 원고에 대해서는 소정의 고료를 드립니다. 문의 : 02-2270-2513 cpbc2015.10.14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3)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하바 2,2)](//cpbc.co.kr/CMS/newspaper/2015/05/rc/571802_1.0_titleImage_1.jpg)
[안소근 수녀와 떠나는 구약 여행] (23)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하바 2,2)예언, 성령으로 재해석되고 생명력 얻어 성령의 영감을 받아 복음서를 집필하는 마태오 복음사가, 카라바조 작. 예언자들은 책을 쓰지 않았습니다. 예외는 있지만, 거의 안 썼습니다. 예언서들은 서서히 형성되었습니다. 예언자들에게서 시작하여 예언서가 완성되기까지의 과정은 예언자들의 활동, 예언의 문서화, 예언서 편집의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첫째 단계는 예언자들의 활동입니다. 예언자들은 먼 훗날 우리가 읽으라고 책을 쓴 것이 아닙니다. 본래 예언자들은 책을 쓰는 사람들이 아니라 말을 하는 사람들이었고, 말을 하는 것은 후대 사람들을 위해서가 아니라 그 시대 사람들을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말이 기록될 것을 생각하지 않았고, 현재를 위해 하느님의 말씀을 선포했습니다.후에 예언이 문서화되고 성경에 속한 책들이 되면서 그 말씀이 선포된 구체적 상황에서 어느 정도 풀려나고 모든 이들을 위한 말씀이 되었다 해도, 처음 예언자들이 말을 한 것은 추상적인 이론을 말한 것이 아니라 특정한 한 시대, 특정한 사회 안에 살고 있는 구체적인 사람들을 향해서였습니다.예를 들어, “정의를 강물처럼 흐르게 하여라”는 말은 특정 시대나 사람들과 관계없이 일반적으로 진술할 수도 있는 말이지만, 기원전 8세기 북왕국 이스라엘에서 아모스 예언자가 이 말을 했을 때에는 특수한 어떤 상황을 지칭하여 한 말이었습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성경의 다른 책들을 읽을 때보다 특히 예언서를 읽을 때에는 각 예언자들의 시대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특히 언제나 외세에 시달려온 이스라엘의 역사 때문에, 국제 정세까지도 고려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그만큼 그들의 메시지가 역사와 깊이 얽혀 있기 때문입니다. 시대 배경을 아는 것은 예언자들이 어떤 말을 한 의도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그 말들이 오늘 우리의 세상을 위하여 어떤 의미를 갖는지 파악하기 위해서도 필요합니다. 예언자들의 말은 처음부터 지극히 현실적인 말들이었고, 그 말들이 지금도 현실성을 지니는 것은 그것이 구체적인 인간 역사 안으로 들어온 하느님의 말씀이었기 때문입니다.물론 예외적인 경우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예언자들의 소명담이나 문학적으로 뛰어난 일부 본문들은 처음부터 글로 작성된 것이었습니다.둘째 단계는 예언의 문서화입니다. 예언자들 자신이 글을 남겼다는 기록은 별로 없지만, 예레미야서 36장의 경우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그의 말들을 받아 적게 했음을 전해 줍니다.말을 기록하는 것은 보존하기 위해서입니다. 서두에 인용한 하바쿡서 2장 2절에서 하느님께서 예언자에게 “너는 환시를 기록하여라”고 하시는 것은 그 환시가 지금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때를 위하여 기록해 두라는 것입니다. 이렇게, 예언자가 선포한 말들 가운데 현재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미래에도 의미가 있을 말들이 기록됩니다.예언자 자신이 직접 기록하는 경우는 드물고, 그의 제자들이나 그의 전승을 후대에 전달한 이들이 예언자들의 말을 기록했습니다. 물론, 예언자가 평생 했던 모든 말을 다 기록할 수는 없었고 그럴 필요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문서화 단계는 선택을 전제합니다. 녹음기처럼 모든 말을 다 적어두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언을 기록한 이들은, 어떤 부분에서는 많은 내용을 간략하게 요약하기도 하고 또 어떤 부분에서는 다른 말을 보충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그 예언을 읽는 사람들을 돕기 위해서입니다.이렇게 예언이 문서화되면서 예언의 말씀은 예언자가 처음 그 말을 발설했던 그 구체적 상황에서 풀려나기 시작합니다. 한 가지 특정한 상황을 위한 것이었던 그 말이 다른 상황, 다른 독자, 다른 청중에게도 적용될 수 있는 말씀이 되어 가는 것입니다.셋째 단계는 예언서의 편집입니다. 처음에 단편적으로 기록되었던 예언자의 말들이 점점 큰 덩어리로 뭉쳐져서, 어떤 주제나 핵심 단어를 중심으로 하는 모음집이 되었다가 하나의 책을 이루게 됩니다.이 단계에서 예언서들은, 지금 우리 눈앞에 있는 모습이 되기까지 계속 변화되어 갑니다. 후대의 편집자들은 때로는 예언자들의 말에 많은 내용을 덧붙입니다. 예를 들어 이사야서의 경우, 40─66장은 모두 후대에 덧붙여진 것입니다. 또 때로는 작은 손질을 가하여 기록된 예언을 변형시킵니다.이러한 작업은 예언을 변질시킨 것이 아닙니다. 예언은 그저 잘 기록해서 흠 없이 보존하면 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언은 인간의 역사 속으로 들어온 살아 있는 하느님 말씀이었기에, 그 역사가 흐름에 따라서 끊임없이 새롭게 해석돼야 했습니다. 그 말씀이 과거 한 시점만을 위한 말씀이 아니라 지금 이 순간에도 살아 있는 말씀이기에, 냉동하거나 박제해서 보존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시대를 위하여 재해석해야 했던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그 말씀은 예언자가 처음 발설한 그 상황과는 다른 시대의 사람들에게도 현실성을 지니게 됩니다.성경에 들어 있는 모든 말씀이 성령의 영감으로 기록된 것이라면 예언서가 변화를 겪어온 과정 역시 모두 성령의 영감으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예언서를 읽을 때, 후대에 덧붙여진 부분들을 예언자 자신의 말이 아니라고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하느님의 말씀은 예언자 한 사람에게 매이지 않습니다. 살아 있는 하느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도로 그 말씀을 재해석한 사람들을 통해서 그 안에 지니고 있는 생명력을 역사 안에 펼쳐 놓은 것입니다. 예언서는 오늘 우리를 위한 말씀이고, 우리를 위해서 해석되어야 합니다.<성 도미니코 선교수녀회, 대전가톨릭대 교수> 평화신문2015.05.19

성경 완필 청소년 '이스라엘 성지순례' 선물수원교구, 교구 설정 50주년 기념 '청소년 성경축제' 시상이성효 주교가 성경을 완필한 청소년들에게 교구장 축복장을 수여하고 있다. 임영선 기자 수원교구가 성경을 완필한 수원교구 청소년ㆍ청년 20여 명에게 '이스라엘 성지순례'라는 큰 선물을 안겨줬다. 수원교구 청소년국은 14일 수원교구청에서 개최된 '청소년국 전체 봉사자 총회'에서 시상식을 열고 완필자들에게 교구장 이용훈 주교 축복장과 부상을 수여했다. 완필자들은 내년 1월 11일부터 일주일간 이스라엘 주요 성지를 순례한다. 수원교구는 2010년 11월부터 교구 설정 50주년을 맞은 올해 10월까지 청소년ㆍ청년을 대상으로 청소년 성경축제를 열었다. 축제는 읽기 운동과 쓰기 운동으로 진행됐는데, 완필자들에게 해외 성지순례라는 파격적인 상품을 내걸었다. 수많은 청소년이 성경 필사를 시작했고, 마침내 신약성경 완필자 10명을 비롯해 완필자 20여 명이 나왔다. 최연소 완필자는 신약을 완필한 장산(베드로, 9, 은행동성가정본당)군으로 지난해 10월 필사를 시작해 1년여 만에 대장정을 마쳤다. 또 장군의 누나 장미소(그라시아, 12)ㆍ은지(요안나, 10)양은 신ㆍ구약 성경 전체를 완필해 초등학생 삼남매가 함께 성경을 완필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맏이 장미소양은 "성경 필사를 마친 순간 감격스러워서 눈물을 흘렸다"면서 "많이 힘들었는데 이렇게 축복장을 받으니 정말 기분이 좋다"고 소감을 밝혔다. 시상을 한 총대리 이성효 주교는 "많은 청소년이 죽음의 문화와 맞닥뜨리고 있는 현실에서 여러분은 제게 천군만마와 같다"면서 "여러분은 귀하고 고마운 존재"라고 말했다. 한편 이날 총회 중 세잎클로버 해외자원봉사단 발대식이 열렸다. 세잎클로버 운동은 청년들이 물질적 후원과 희생, 사랑 실천을 통해 하느님 축복을 서로 '주고(Give), 받고(Take), 나누는(Share)' 운동이다. 해외자원봉사단으로 선발된 청년 12명은 선서식을 통해 세잎클로버 정신을 충실히 실천할 것을 다짐했다. 봉사단은 내년 캄보디아 빈민촌으로 봉사활동을 떠난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cpbc2013.12.17
![[일치 주간] 갈라진 형제들- 가톨릭 교회와 타 그리스도교](//cpbc.co.kr/CMS/newspaper/2015/01/rc/550024_1.0_titleImage_1.jpg)
[일치 주간] 갈라진 형제들- 가톨릭 교회와 타 그리스도교뿌리 하나인 그리스도교, 여러 가지로 뻗어나가 오늘날 그리스도교는 가톨릭, 동방 정교회, 개신교, 성공회 등으로 나뉘어 있다. 원래는 하나였던 그리스도교는 1054년 로마 가톨릭교회와 동방 교회의 분리를 시작으로 1517년 마르틴 루터가 개신교회를, 1534년 영국 헨리 8세 국왕이 성공회를 세우면서 갈라지게 됐다. 그러면서 각자의 고유한 전례와 교리를 확립해 나갔다. 일치 주간을 맞아 각 교파에 대해 알아본다. 동방 정교회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우신 교회는 예루살렘에서 시작해 여러 대륙으로 퍼져 나갔다. 4세기쯤 로마와 함께 콘스탄티노폴리스, 알렉산드리아, 안티오키아, 예루살렘이 그리스도교를 대표하는 지역이었다. 로마를 중심으로 볼 때, 다른 네 지역은 로마 동쪽에 있어서 로마 교회를 서방 교회(혹은 라틴 교회)로, 동쪽 교회를 동로마 교회, 동방 교회라 불렸다. 하지만 교세가 커지면서 교리와 전례, 신앙생활 등에서 의견 대립과 마찰이 일어났다. 동방 교회들은 로마 주교의 교황 수위권을 인정하지 않으려 했고, 동방 지역에 있는 교회와 수도원들이 라틴 전례가 아닌 비잔틴 전례를 사용하도록 강요하기도 했다. 결국, 1054년 로마 교회와 동방 교회는 서로를 파문하며 갈라섰다. 동방 교회는 스스로를 정교회(正敎會)로 불렀다. 자신들만이 사도로부터 이어오는 ‘올바른 믿음’, ‘올바른 가르침’(正敎)을 간직하고 있다는 뜻이다. 정교회는 지역에 따라 독립적으로 운영되고 있는데, 러시아 정교회, 그리스 정교회, 루마니아 정교회 등으로 나뉘었다. 세계 정교회의 최고 권위를 지닌 이는 콘스탄티노폴리스 총대주교다. 정교회는 가톨릭과 마찬가지로 성경과 사도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의 거룩한 전통(聖傳)의 권위를 인정한다. 그러나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구약 성경은 천주교와 달리 구약 성경을 70인역으로 알려진 49권을 사용하고 있다. 성직은 주교와 사제, 보제(가톨릭 부제에 해당)로 나뉜다. 성직자는 혼인과 독신을 선택할 수 있으며, 주교는 독신 사제 중에서 임명된다. 일곱 성사를 지키고 있지만, 세례성사 후 견진성사가 곧바로 이어지는 등 조금씩 차이가 있다. 개신교 16세기 마르틴 루터(1483~1546) 주도로 일어난 종교 개혁으로 개신교가 탄생했다. 개신교는 가톨릭에 대항한다(protest)는 뜻에서 프로테스탄트(protestant)라고도 한다. 종교 개혁이 일어나기 전 15세기 이후 유럽 가톨릭 교회는 세속 권력과 결탁한 부패가 많았다. 로마 교황은 종종 정치적으로 이용당했고, 성직 매매가 빈번해 돈만 내면 성직자가 될 수 있었다. 잠벌을 사면해주는 ‘대사’ 제도도 남용됐다. 대사는 보속으로 다 갚지 못한 벌이 있을 경우, 가난한 이를 위해 헌금을 하거나 선행하면 이를 사면해주는 제도였다. 성당 재건 등에 막대한 재정이 필요했던 교회는 대사를 남발하기 시작했다. 돈을 내는 순간 영혼이 천국으로 올라간다는 말까지 나돌았다. 아우구스티노회 수도자이자 성서학 교수였던 마르틴 루터는 이에 대항했다. 그는 1517년 대사 문제를 지적하며 믿음에 의한 구원을 강조하는 내용의 95개 명제를 발표하고 가톨릭 교회를 비판했다. 가톨릭 교회는 1521년 그런 루터를 파문했다. 이후 개신교회는 수많은 종파로 분리됐다. 루터교를 비롯해 장로교, 침례교, 성결교, 구세군 등이 있다.개신교회는 오직 성경만 인정할 뿐 사도로부터 이어져 온 교회의 거룩한 전통(聖傳)을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기에 성전에 근거를 둔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 성모 마리아 교리, 성사 등이 없다. 구약성경의 경우 39권만 하느님 말씀으로 받아들인다. 믿음만으로 구원을 얻는다고 주장하는 개신교는 연옥을 믿지 않기에 연옥에 있는 영혼들의 존재를 부정한다. 죽은 이들을 위한 기도나 제사도 바치지 않는다. 성공회 가톨릭 신자는 교회법상 이혼할 수 없다. 그러나 영국 헨리 8세 국왕(1491~1547)은 아내 캐서린과 이혼하고 궁녀 앤 볼린과 결혼을 강행했다. 교황청에 아내 캐서린과 혼인 무효 소송을 신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이에 반발한 헨리 8세는 교황이 아닌 자신을 교회 최고 권위자인 ‘수장’으로 선포했다. 국왕을 교회 수장으로 하는 영국 성공회의 시작이다. 가톨릭 교회에 반대해 생겨났기에 개신교에 속한다. 성공회(聖公會)라는 이름은 사도신경의 ‘거룩하고(聖) 공번된(公) 교회’라는 구절에서 따왔다. 로마 교회가 동서로 분리되기 이전의 모든 교리를 인정하기에, 교회 전통으로 내려오는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인정하고 고백한다.그러나 교황 수위권과 무류성을 인정하지 않는다. 사제 독신제는 의무가 아니라 성직자도 혼인할 수 있다. 여성 사제를 인정해 왔으며 지난해 12월에는 첫 여성 주교가 탄생했다. 성경은 개신교와 같이 구약 39권,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쓰고 있다.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처럼 일곱 성사가 있지만, 성사를 집전하고 받는 사람의 신앙 정도에 따라 그 효력이 다르다는 인효성을 주장한다. 하지만 가톨릭 교회는 성사가 근원적으로 하느님이 베푸는 은총이라는 신앙에 근거, 성사를 집전하고 받는 사람의 신앙 정도에 상관없이 성사 그 자체로 효력을 지닌다(사효성)고 가르친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평화신문2015.01.14

예수 세례터,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등재요르단 강 동쪽 연안 부근… 이스라엘 아닌 요르단 영토 지난해 3월 팔레스타인 사목 방문 중 전통적으로 예수의 세례터라고 일컬어지는 요르단 강 동쪽 연안에서 묵상에 잠긴 프란치스코 교황. 【CNS】 예수 그리스도가 요한 세례자로부터 세례를 받은 장소로 추정되는 요르단 강 동쪽 연안 세례터가 최근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목록에 등재됐다. 성경에는 예수가 ‘요르단 강 건너편 베타니아’(요한 1,28)에서 세례를 받았다고 기록돼 있을 뿐 어디라고 정확히 나와 있지는 않다. 예수는 유다인들이 돌팔매질을 하려고 할 때도 “요르단 강 건너편, 요한이 세례를 주던 곳”(요한 10, 40-41)으로 물러가 거기서 머문 적이 있다. 이 때문에 요르단 강을 국경으로 삼고 있는 이스라엘과 요르단은 ‘강 건너편’을 두고 서로 자기 영토에 속한다고 옥신각신해왔다. 서쪽 이스라엘 영토에서 보면 건너편은 요르단 땅이고, 반대로 동쪽 요르단에서 보면 건너편은 이스라엘에 속하기 때문이다. 특히 이스라엘은 순례자들이 좀 더 가까이 강에 접근할 수 있도록 난간을 설치하는 등 순례자 유치를 위해 많은 노력을 해왔다. 그런데 이번에 유네스코가 오랜 조사 끝에 동쪽 연안, 즉 요르단 영토에 속하는 강변이라고 손을 들어준 것이다. 예루살렘 성서대학 유제니오 앨리아타 교수 신부는 “비잔틴 시대의 유적과 교회 건물은 모두 동쪽 연안에 있었던 데다 순례자들이 서쪽 연안으로 접근하기 시작한 것은 600년이 채 안 된다”며 “따라서 유네스코 결정은 타당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동쪽 연안 부근에서는 교회터, 기도 장소, 세례터 웅덩이 등 로마 시대와 비잔틴 시대의 것으로 추정되는 20여 개 유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교황들도 팔레스타인을 방문할 때마다 요르단 강 동쪽 연안에서 예수의 세례를 기념했다. 요한 바오로 2세는 2000년 대희년, 베네딕토 16세는 2009년, 프란치스코 교황은 지난해 예수의 세례터를 순례했다. 앨리아타 신부는 “고대 이콘화들은 예수가 어느 쪽 연안이 아니라 강물에 들어가 중간쯤에서 세례를 받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며 “이스라엘과 요르단 양측이 합의한다면 동쪽과 서쪽을 아우르는 어느 한 지점을 정할 수도 있는 문제”라고 말했다. 김원철 기자 cpbc2015.07.22
![[성경 속 생명 이야기] 6.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cpbc.co.kr/CMS/newspaper/2014/03/rc/500204_1.0_titleImage_1.jpg)
[성경 속 생명 이야기] 6.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생명 가치의 상실 '카인과 아벨', 두 형제에게서 삶의 두 갈래 길을 봅니다. 한 길은 이웃이 자신보다 더 낫다고 생각하며 시기하고 결국 그를 정신적, 물리적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다른 길은 자신을 해치는 이로부터 스스로를 방어하거나 저항하지 못한 채 죽어가는 길입니다. 하지만 이 비극적인 형제 이야기를 통해 생명 가치의 상실은 죽이는 자와 죽임을 당하는 자 모두에게 해당된다는 것을 배울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훈계하시며(창세 4,8 참조), 그가 아우를 해치려는 악의적 욕구를 따라갈 필요가 없음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러나 카인의 결심은 확고했고, 문 앞에서 기다리던 죄는 카인을 생명 가치의 상실로 이끌었습니다. 아벨과 마찬가지로 카인을 굽어보시는 하느님께서는 그를 향해 "네가 무슨 짓을 저질렀느냐?" 하고 심문하십니다. 카인으로선 피할 수 없는 하느님의 이 심문은 현대인들에게도 내려집니다. 무엇 때문에 타인의 생명을 공격하는가? 어떤 공격은 미움과 시기와 질투 등 본성 자체에서 나오지만, 어떤 경우에는 바로잡을 수도 있었는데 무관심과 태만으로 생명에 대한 공격을 더 악화시키기도 합니다. 또한 이익 갈등이라는 상황 아래서 살인, 전쟁, 집단 학살, 민족 말살 등 세계를 폭력으로 얼룩지게 하는 공격이 있습니다(「생명의 복음」 10항 참조). 이와 다른 범주의 공격에도 유의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것은 생명의 초기 단계와 마지막 단계에 가하는 공격(「생명의 복음」 11항 참조)으로서 낙태와 피임 그리고 안락사 문제입니다. 낙태의 확산을 용이하게 하고자, 의술의 도움 없이 모태 안에서 태아를 죽일 수 있는 약품을 생산하는 데 엄청난 자금이 투자되고 있습니다. 많은 사람이 낙태의 유혹을 받지 않으려면 피임을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피임 사고방식'에 내재하는 부정적 가치, 곧 '바라지 않는 생명'에 대한 사고는 실제로 낙태의 유혹을 더 강화시키는 것으로 드러나고 있습니다(「생명의 복음」 13항 참조). 아울러 피임과 낙태를 통해 여성의 생명은 어떠합니까? 두 생명은 함께 파괴되는 것입니다. 피임에 관한 교회 가르침을 거부하는 곳에서 낙태 조장 문화가 위세를 떨치는 가운데, 심지어 국내 영화관과 TV에서 묵주반지를 낀 여성을 모델로 삼아 가톨릭 신자라 하더라도 자유로운 성관계를 꺼릴 필요가 없다는 이미지를 교묘하게 각인시키는 광고가 아무렇지 않게 전파를 탑니다. 더 일반적 차원에서 현대 문화 안에는 일종의 프로메테우스적인 태도가 존재합니다. 이 태도는 사람들이 스스로 삶과 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림으로써 그것을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도록 유도합니다. 우리는 비밀리에 행해지거나 공개적으로, 심지어는 합법적으로 행해지는 안락사의 확산 현상 속에서 이 모든 일에 대한 비극적 모습을 보게 됩니다. 안락사는 환자의 고통을 바라보며 느끼는 그릇된 동정심과 아울러 때로는 효과도 없고 사회적으로도 큰 부담을 주는 비용을 피하자는 실용주의적 동기 때문에 정당화됩니다(「생명의 복음」 15항 참조). 고통으로부터 해방시키고자 죽음을 앞당겨 주는 것 같아 보이지만, 진정 죽음을 향한 고통을 통해 또 다른 세계로 나아가게 하는 하느님의 초대를 간과하고 있습니다. 하느님께서는 카인을 향해 "네 아우의 피가 땅바닥에서 나에게 울부짖고 있다"(창세 4,10)고 말씀하십니다. 하느님께서 살해당한 아벨에게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한편으론 카인의 운명이 아벨의 울부짖음과 관련돼 있기 때문입니다. 곧 카인이 아우 없는 삶을 살아가는 것은 더 이상 자신을 방해할 자가 없는 안전지대가 아니라 자기 삶의 터전도 상실하는 것입니다. 형제가 함께 나누어야 할 생명을 독차지하기 위해 아우를 죽이지만 아우가 죽는 순간 형의 생명 또한 텅 빈 껍데기만 남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의 신비이며 하느님께서 창조한 세상에서는 어떤 생명도 버려져서는 안 된다는 천명이기도 합니다.이명기 수녀(가톨릭대 ELP학부대학 교수)cpbc2014.03.11
![[성경속 궁금증] 88. 성경에서 이혼은 어떻게 이야기 되는가](//cpbc.co.kr/CMS/newspaper/2013/10/rc/476148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88. 성경에서 이혼은 어떻게 이야기 되는가프레데릭 앙리 쇼팽, '황비 조세핀의 이혼', 1851년, 유채, 말메종과 부아프레오성, 프랑스. 고대 사회에서 남자는 별 어려움 없이 그의 아내와 이혼할 수 있었고 모든 면에서 주도권을 가지고 있었다. 바빌로니아에서는 아내가 심각한 질병을 앓거나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경우 당연하게 이혼할 수 있었다. 하지만 구약성서는 이혼을 하느님이 싫어하는 행위로 표현한다. "정녕 나는 아내를 내쫓는 짓을 싫어한다. 주 이스라엘의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는 제 옷을 폭력으로 뒤덮는 자다. 만군의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제 목숨을 소중히 여겨 배신하지 마라"(말라 2,16). 가정을 중시하는 이스라엘인들은 실제로는 이혼하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성경에서는 이혼 사유를 여자가 추한 일을 행했을 경우만으로 제시하고 있다. "어떤 남자가 여자를 맞아들여 혼인하였는데, 그 여자에게서 추한 것이 드러나 눈에 들지 않을 경우, 이혼 증서를 써서 손에 쥐어 주고 자기 집에서 내보낼 수 있다"(신명 24,1). 유다인에게는 부부가 갈라지는 것이 허락됐다. 다만 이혼할 수 있는 주도권은 남편에게만 있었다. 이혼을 당하는 여자는 이혼장이 있어야 이후에 다른 남자와 혼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점차 남자들의 권리를 행사하는 편리한 도구로 변질됐다. 그래서 간단히 이혼장만 써 주면 남편은 자기의 아내를 내쫓을 수가 있었다. 성경에서 언급한 이혼 규정은 본래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 시대에 남자는 남성 위주의 혼인법을 통해 성적 방종을 허락받았고, 결국 여자는 남자가 버리거나 취할 수 있는 소유물로 전락했다. 이러한 남성 중심적인 이스라엘의 사회풍속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산상설교를 통해 이혼에 대해 엄격하게 말씀하셨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말한다. 불륜을 저지른 경우를 제외하고 아내를 버리는 자는 누구나 그 여자가 간음하게 만드는 것이다. 또 버림받은 여자와 혼인하는 자도 간음하는 것이다"(마태 5,32). 이는 단순히 '이혼'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남편이 아내를 보호하고 사랑할 것을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이혼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인간의 근본적인 존엄성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이혼장을 써주고 결혼을 파기하려는 남자들에게 문제를 제기한 셈이다. 예수님은 남성 중심의 혼인법에 맞서 이혼을 금지함으로써 약자인 여성을 보호하려 하였던 것이다. 무엇보다 '이혼하지 말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은 인간의 근본적인 존엄성에 대한 가르침이었다. 이처럼 신약성경에서 말하는 이혼에 대한 금지는 당시 절대적인 약자였던 여성과 어린 자녀들을 보호하려는 데 근본적인 목적이 있다. 이는 본래 모세 율법의 정신이기도 하다. 예수님은 한 걸음 더 나아가 결혼의 인격적인 결합을 강조하셨다. "따라서 그들은 이제 둘이 아니라 한 몸이다. 그러므로 하느님께서 맺어 주신 것을 사람이 갈라놓아서는 안 된다"(마태 19.6).cpbc2013.10.01
![[나의 신앙 나의 기업] (14)조상호 토마스 아퀴나스 (주)나남 대표](//cpbc.co.kr/CMS/newspaper/2015/08/rc/589634_1.0_titleImage_1.jpg)
[나의 신앙 나의 기업] (14)조상호 토마스 아퀴나스 (주)나남 대표사람 만드는 책 만들기·나무 심기… 그가 복음을 사는 법 “조금 불편하게 사는 것이 올바른 길일 때도 있다”는 조상호 대표는 그 길이 대개는 “양심이라는 이름의 나의 신(神)의 목소리가 인도하는 길”이라고 말한다. 이창훈 기자 대학 시절 지하신문을 만들다 제적됐다. 기자의 꿈은 접었지만 출판으로 언론 기능을 수행하고자 출판사를 차렸다. 우연히 시작한 나무 심기는 세파의 유혹을 견디고 자신을 지킬 수 있도록 해준 출구가 됐다. 조상호(토마스 아퀴나스, 65) 나남출판 대표 이야기다.그는 전남 장흥 출신이다. 고려대 법대 2학년이던 1971년 지하신문 「한맥」 편집장이었다. 청계천 개발에 밀려 경기도 광주로 쫓겨난 이들의 아픈 삶을 취재한 내용이 문제가 됐다. 제적과 함께 징집돼 최전방 철책선에서 소총수로 36개월을 보내야 했다. 어렵사리 복학해 대학을 마쳤다. 1976년 우여곡절 끝에 수출입은행 공채 1기로 취직했다. 하지만 3년 후인 1979년 5월 그는 나남출판사를 차렸다. 첫 책으로 「갈매기의 꿈」 저자 리처드 바크의 「어디인들 멀랴」를 냈다. 이듬해 초엔 출판에 전념하고자 직장을 그만뒀다. 버트란드 러셀의 「희망의 철학」을 냈다. 당시 한국 사회의 모습을 여실히 반영하는 듯한 책이었다. 출판사는 책이 잘 팔려야 하지만 잘 팔릴 희망은 없어 보였다. 1년 후 뜻밖에도 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하겠다고 해서 4000권을 새로 찍어냈다. 부제였던 ‘희망의 철학’을 제목으로 달았고, ‘나남신서’ 1호를 붙였다. ‘나남신서’는 36년 세월이 흐르면서 1800호를 훌쩍 넘어섰고, 나남출판은 사회과학 전문 출판사로서 굳게 자리매김하고 있다. 특히 1980년대 중반 커뮤니케이션 분야 책을 본격적으로 출판하면서 ‘나남의 책이 없으면 신문방송학과 커리큘럼을 짤 수 없다’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이 분야에서도 독보적 입지를 굳혔다. 사회복지학 총서도 100권이 넘는다. 베스트셀러보다 스테디셀러그렇다고 나남의 책이 사회과학 분야에 한정된 것은 아니다. ‘나남양서’ ‘나남문학선’ ‘나남창작선’ ‘나남시선’ 등 인문, 문학 부문에도 관심을 갖고 꾸준히 양서를 펴내고 있다. 그동안 나남이 낸 책은 3000종이 넘는다. 특히 조상호 대표가 큰 스승으로 평생을 사숙(私淑)하고 있는 조지훈의 전집 9권을 낸 것이나, 박경리의 소설 「토지」 21권을 양장본으로 출간한 것 등은 조 대표여서 해낼 수 있는 업적이라는 평을 받고 있다. 「토지」는 밀리언셀러가 됐다. 조 대표가 출판업을 시작한 이유는 무엇일까. 그는 “출판 언론을 하고 싶었다”고 말한다. 언론이 제 기능을 하기 힘들었던 군부 독재 시절, 출판을 통해 우회적으로 언론의 역할을 하고 싶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출판 언론의 길은 결코 쉽지 않았다. 백척간두(百尺竿頭)에 진일보(進一步)하는 자세로 자강불식(自强不息)의 삶을 살아야 했다. 나무 심기는 이 험난하고 고달픈 삶에 숨통을 틔우는 활력소가 됐다. 그는 30여 년 전 아들의 초등학교 입학 기념으로 옛집 아파트 입구에 커다란 느티나무 두 그루를 심었다. 이렇게 시작한 나무 심기는 1990년대에 들어와 파주 적성의 1만 5000평에 묘목밭을 가꾸는 것으로 이어졌고, 2008년에는 포천에 20만 평의 나남수목원을 시작하기에 이르렀다. 묘목을 심고 죽이기를 거듭하면서 조 대표는 깨달음을 얻었다. 나무를 심는 일은 세월에 대한 정직한 보상이고, 생명에 대한 애착임을. 세파에 시달리고 인간의 탐욕에 실망할 때마다 조 대표는 나무를 심고 나무와 대화를 나누면서 자신을 추스르곤 한다. 나남에는 두 가지 캐치프레이즈가 있다. ‘나남의 책은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립니다’와 ‘나남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듭니다’다. 쉽게 팔리지 않고 오래 팔리는 책을 만드는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나남은 그런 지향으로 책을 만들어왔다. 1년에 100~200권 팔리는 전문 서적들. 그것이 나남을 지탱해온 밑거름이 됐다. ‘나남이 책을 만들고 책이 사람을 만듭니다’라는 캐치프레이즈에는 어느 필자의 표현처럼 ‘나남이 사람을 만든다’는 당돌함이 들어 있다. 꿈보다 해몽이 좋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하지만 좋은 해몽을 잘 받아들이고 자기 것으로 소화할 때 꿈보다 더 좋은 결과를 실제로 낼 수 있다. ‘나남’이라는 이름이 그렇다. ‘나와 남이 어우러진다’는 뜻으로 풀이한다면 해몽이 좋은 것이다. 원 의미는 조 대표의 고향인 ‘전라남도’의 줄인 말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은 모두 ‘나와 남이 어우러짐’의 의미로 받아들인다. 나와 남이 어우러져 하나가 되는 대동 사회는 조 대표가 그리는 사회이기도 하다. 그런 사회를 위해 조 대표는 할 일이 많다. 그는 이를 ‘자연채무’(自然債務)라고 부른다. 법적이고 강제적인 효력은 없지만 양심에 비춰 진 빚이 있고 따라서 갚아야 할 일이 있다는 것이다. 조지훈 전집을 내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2001년부터 지훈상(지훈국학상, 지훈문학상)을 제정해 해마다 시행하고 있는 것이나, 매년 열리는 박경리 토지문학제에 협찬을 하는 일, 로터리 클럽을 통해 장학금을 내고 모교에 도서를 기증하는 일 등은 또한 자연채무를 갚는 일환이다. 독실한 처가, 그리고 신앙의 삶 조 대표는 2000년 대희년을 1년 앞둔 1999년 봄에 서울 양재동성당에서 세례를 받았다. 주변의 권유도 있었지만 무엇보다도 처형이 수녀일 정도로 처가가 독실한 가톨릭 집안이어서 그 압력을 많이 받았다. 제적당하고 최전방에서 3년 동안 복무할 때 관물대에 나뒹구는 영한대역 성경을 독서욕을 채워주는 유일한 위안거리로 삼았다는 조 대표는 그때 성경을 읽은 기억이 교리를 배우고 세례를 받는 데 도움이 됐다고 한다. “고통의 길에서도 부드러움의 평화로 반려가 되어준 아내(황옥순 베로니카)에게 조금이라도 대속이 되었으면 싶었다”는 말로 세례받았을 당시를 떠올린 조 대표는 자신의 신앙과 관련, “생활 신앙”이라고 말한다. “‘미사가 끝났으니 복음을 전합시다’ 하지 않습니까. 복음을 삶의 현장에서 실천하자는 것이지요. 이것이 (복음의) 커뮤니케이션입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5.08.26
![[성경속 궁금증] 96. 성경 속에서 자손의 번성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cpbc.co.kr/CMS/newspaper/2013/12/rc/486049_1.0_titleImage_1.jpg)
[성경속 궁금증] 96. 성경 속에서 자손의 번성은 어떤 의미를 갖고 있나?다산, 하느님의 근본적인 축복으로 여겨… 예수께서는 신앙에 의한 가족관계 강조조르주 드 라투르,'새로운 탄생', 1640년께, 캔버스에 유채, 프랑스 렌 미술관. 자식을 많이 낳는 다산(多産)은 예로부터 어느 문명권에서나 매우 귀중한 축복으로 생각했다. 성경에서 하느님께서는 인간을 당신의 풍요에 참여시키신다. 그래서 다산은 하느님의 근본적인 축복으로 간주한다.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우고 지배하여라. 그리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땅을 기어 다니는 온갖 생물을 다스려라"(창세 1,28). 그런데 이스라엘 역사에서 보면 다산의 축복도 율법의 한계 안에서 이뤄져야 함이 명백하다. 율법은 여러 가지 금령을 제정해 인간의 출산을 보호한다. 특별히 성경에서는 여성의 부부생활에 대한 규정(레위 20,18), 혼인과 처녀성과 간음에 관한 규정(신명 22,13-29) 등을 자세하게 언급하고 있다. 이러한 규정은 모세 이전부터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이스라엘도 이러한 규정을 받아들여 자손을 번식시키고자 한 것 같다. 그래서 하느님께서 주시는 다산의 축복은 그분의 말씀을 잘 듣고, 그분의 모든 계명을 명심해 실천할 때 이뤄진다고 성경에 언급돼 있다. "너희 몸의 소생과 너희 땅의 소출도, 새끼 소와 새끼 양을 비롯한 너희 가축의 새끼들도 복을 받을 것이다"(신명 28,4). 반유목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하느님의 도우심으로 한 곳에 정착해 농사짓는 삶을 살아야만 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가나안 토착민들이 섬기는 풍요의 신인 '바알'과 '아스타롯'을 접하게 됐다. "그들은 저희 조상들의 하느님이신 주님, 저희 조상들을 이집트 땅에서 이끌어내신 주님을 저버리고, 주위의 민족들이 섬기는 다른 신들을 따르고 경배하여, 주님의 화를 돋우었다. 그들은 주님을 저버리고 바알과 아스타롯을 섬겼다"(판관 2,12-13). '주인' 또는 '소유주'라는 뜻을 가진 '바알'은 땅을 소유하고 풍요와 다산을 지배하는 남성 신이었다. 또한 '아스타롯'은 '바알'의 배우자다. 가나안 민족들의 종교에서는 풍요를 비는 종교의식이 성적으로 타락한 형태로 발전했다. 그래서 이 의식이 이스라엘 사람들에게는 늘 유혹과 갈등거리였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가나안 사람들이 믿는 신들은 다산의 세력 그 자체였다. 신약성경에서 예수님은 자손 번성의 참된 의미를 말씀하셨다. 예수님께서 다산에 대해 최초의 가르침을 주신 것은 어머니 마리아에 관해 말씀하실 때였다. 그분은 물론 마리아가 어머니로서의 아름다운 소명을 지니고 있음을 부정하지 않으셨지만, 어떤 어머니가 가장 행복한 어머니인지를 천명하셨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지키는 이들이 오히려 행복하다"(루카 11,28). 마리아는 처녀로서 어머니가 된 특권에 의해 일생을 하느님께 봉헌하는 사람들의 모범이 된다. 예수님께서는 특별히 신앙에 의한 가족관계를 강조한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당신께 말한 사람에게, '누가 내 어머니고 누가 내 형제들이냐?'하고 반문하셨다. 그리고 당신의 제자들을 가리키시며 이르셨다. '이들이 내 어머니고 내 형제들이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행하는 사람이 내 형제요 누이요 어머니다'"(마태 12,48-50).cpbc2013.12.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