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이먼드 브라운 (상)](//cpbc.co.kr/CMS/newspaper/2014/12/rc/542731_1.0_titleImage_1.jpg)
[20세기를 빛낸 신학자들](70)레이먼드 브라운 (상)교회 일치와 신약 성경(요한) 연구의 권위자 레이먼드 E. 브라운(Raymond Edward Brown, S.S, 1928~1998)은 성경 연구 분야에서 오랫동안 기억될 것이다. 그가 1998년 8월 8일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일생을 마감했을 때 타임스지는 그를 “미국 최고의 가톨릭 성경학자”로 칭송했다. 그의 죽음은 교회 일치와 신약성경 연구, 특별히 요한계 연구에서 큰 손실이었다. 그는 가톨릭 성경협회, 성경문학회, 신약성경연구회라는 세 단체의 장을 역임한 유일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전 세계 개신교와 가톨릭계 대학으로부터 30여 개에 달하는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영국학술원과 미국인물학술원 회원으로 선출되기도 했다. 47권의 책, 200편의 소논문, 108개의 책 논평들이 그의 펜에서 흘러나왔다. 브라운에 대해 다 소개할 수는 없고 그의 생애와 업적, 특히 요한 공동체에 대한 연구, 그리고 그에 대한 평가에 대해 알아보겠다.생애와 활동그는 1928년 5월 22일 뉴욕에서 태어났다. 1953년 5월 23일 플로리다 어거스틴교구에서 사제품을 받고, 성경 공부와 미래 사제들의 양성에 매료돼 1955년 술피스회 정회원이 된다. (그의 이름 뒤에 붙는 S.S는 술피스회[ Society of St. Sulpice]의 약자다). 술피스회는 수도회가 아니고 1641년 프랑스에서 설립된 교구 사제들의 공동체로서 로마 가톨릭 사제가 되려는 신학생들의 교육과 교구 사제들의 지속적 양성이라는 특별한 사도직에 봉사하는 단체다. 그는 미국 성 마리아 신학교(1791년 술피스회가 설립)에서 사제가 되기 위한 신학 과정을 계속하여 신학 학사와 석사 학위를 받는다(1953). 브라운은 팔레스틴 성경 고고학자인 올브라이트 밑에서 신약성경과 구약성경을 근동 고고학과 연결해 연구하면서 고고학 박사 학위를 받는다(1958년 존스 홉킨스 대학교). 후에 브라운은 로마 교황청 성서대학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고, 그곳에서 초청 교수로 가르치기도 했다(1973).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주교의 조언자 역할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는 예루살렘과 요르단에서 피츠마이어를 비롯한 동료들과 고고학 문서에 대한 자료집을 만들기도 했다.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후에 브라운은 모교인 성 마리아 신학교와 대학교에서 가르쳤다. 예수회 신학교에서 교수 계약이 끝났을 때(1971~1974) 그는 은퇴할 때까지 개신교 신학교인 유니온에서 가르쳤다. 은퇴 후 술피스회가 운영하는 성 패트릭 신학교에서 연구와 출간 활동을 하다가 하느님 품으로 돌아갔다. 그는 술피스회 공동묘지에 고이 잠들어 있다. 성경연구에 공헌많은 사람들은 브라운이 어떻게 성경 연구에 매료됐고 그렇게 많은 업적을 남겼는지 의아해 한다. 그는 신학생으로서 로마에 유학 갔다가 한국전쟁 때문에 1년 만에 미국으로 돌아와 신학 공부를 계속했다. 당시에는 교과 과정이 엄격했고 로마와 미국의 교육 체계가 달랐다. 미국에 오니 성경 입문 과정을 이수하지 못한 것이 돼 시험으로 대신해야 했다. 브라운은 먼저 구약성경을 읽고, 영어뿐만 아니라 불어, 이탈리아어, 독어로 된 참고 서적을 읽고 공부했다. 결국, 그는 높은 점수를 받았다.당시 그의 교수는 그에게 “그렇게 많이 공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해주면서 그가 성경에 관심이 있는지를 물었다. 그는 교수에게 “성경은 제가 일생 해야 할 가장 관심 있는 것이다. 아주 매력적”이라며 앞으로 성경을 가르치고 싶은 바람을 내비쳤다. 교수는 “우리에겐 성경을 가르칠 선생들이 필요하다”고 말해줬고, 그 후 브라운은 성경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그가 학문 분야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두 가지 큰 사건이 있었다. 하나는 비오 12세 교황의 혁명적 회칙 「성령의 영감」(1943)이 미국 가톨릭 교회에 깊이 침투했고, 또 하나는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쿰란의 사해 문서 발견(1947)이었다. 이 두 사건은 20세기 성경 연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쳤으며 브라운에게도 성경 연구의 방향을 잡게 해줬다. 비오 12세 교황은 대부분 사람이 성경 해석보다는 제2차 세계대전 같은 일에 신경을 쓰고 있을 때 성경 연구를 촉구하는 「성령의 영감」 회칙을 발표한 것이다. 회칙은 성경을 라틴 불가타보다는 원어(히브리어, 그리스어, 아람어)를 번역해야 한다면서 성경 해석의 방법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역사적이고 문자적인 해석을 끌어내기 위해 문학 형식을 따라 성경을 해석하라고 했다. 영감을 받은 인간 저자가 하느님 말씀을 표현했기 때문에 그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것은 그때까지 교회 교부들과 중세 해석자들에게 일반적이었던 근본주의적 해석을 깨는 것을 의미했다. 이 회칙의 영향으로 브라운은 성경 해석 방법 중 역사 비평 방법의 뛰어난 변호자가 됐다. 그는 요한복음과 요한의 편지들을 역사 비평 방법으로 주석했고, 많은 저서에서 그 방법을 적용했다.그의 박사 학위 논문은 「성경의 보다 풍부한 의미」(The Sensus Plenior of Sacred Scripture)]였는데 ‘보다 풍부한 의미’에 대해 많은 토론이 있었다. 그의 많은 저서 중 「요한복음 주석서」(1966, 1970), 「메시아의 탄생」(1977), 「요한서간 주석서」(1982), 「성서에 대한 101가지 질문과 응답」(1991)」「메시아의 죽음」(1994), 「신약성서의 그리스도론」(1994),「요한 공동체의 역사와 신학」(1979), 「신약개론」(1997), 「복음사가 요한과 함께하는 피정」(1998), 「요한복음 개론」(2003) 등이 유명하다. 「신약개론」은 신약성경을 어떻게 접근할 것인가와 성경 각 권의 신학적 논쟁들을 잘 요약 정리해 주고 있어 전문가와 학생 모두에게 필수적인 책이다. 브라운은 「New American Bible」의 번역위원회 위원이었으며 「제롬 성경 주석」(1968, 1990)을 동료 학자들과 편찬했는데, 이는 영어를 사용하는 많은 신학교에서 사용되고 있다. 브라운은 성서 해석을 언제나 교회에 대한 봉사로 염두에 두었으며 전례력에 따라 대림, 사순, 부활에 대한 소책자를 만들어 일반 독자들에게 성경의 이해를 도왔다. 그는 명확하고 통합적이며 모든 문제와 사람들에게 공정했다고 한다. 그는 술피스 신학교(1959~1971)와 뉴욕의 개신교 유니온 신학교(1971~1990)에서 가르쳤다. 가톨릭 학생들만 아니라 비가톨릭 신학도들도 뛰어난 스승에게 성경을 배우는 행운을 누린 것이다. 그와 함께 공부했던 학생들은 성경에 대한 그의 깊은 열정, 신약성경에 대한 사랑, 놀라운 기억력, 명확한 설명(불트만의 어려운 이론을 쉽게 설명했다고 한다), 유머 감각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고 한다. 이혜자 수녀( 미리내성모성심수녀회)▲1992년 종신서원 ▲2005년 로마 그레고리오대 졸업. 성서신학 박사(요한복음 전공) ▲현재 서강대 신학대학원 출강 평화신문2014.12.02
![[추기경 정진석] (32) 주님께서 마련하신다](//cpbc.co.kr/CMS/newspaper/2017/01/rc/666563_1.0_titleImage_1.jpg)
[추기경 정진석] (32) 주님께서 마련하신다선임 주교 배려, 주교관 옆 함석집에서 교구장 생활 시작 많은 이들의 축하를 받으며 1970년 10월 3일 청주교구 제2대 교구장 정진석 니콜라오 주교의 서품식과 착좌식은 노기남 대주교와 파디 주교, 한공렬 주교 공동 집전으로 거행됐다. 김수환 추기경을 비롯한 한국 교회 모든 주교가 이 미사에 함께하며 새로운 교구장의 탄생을 축하했다. 미사 중 주교 반지와 주교관이 수여됐고, 주교 목장을 받은 정 주교는 교황대사 히톨리토 로톨리 주교와 노기남 대주교의 인도로 청주교구장 주교좌에 착좌했다. 이로써 청주교구는 교구 설정 12년 만에 처음으로 한국인 주교를 맞이하게 됐다. 10여 년 동안 메리놀회가 위탁을 받아 사목하던 유년기를 벗어나 자치 교구로서 첫걸음을 뗀 셈이었다.청주교구 신자들은 새로운 교구장의 탄생을 진심으로 기뻐했고 많은 기대를 갖고 있었다. 신자들의 기대만큼 새 교구장 정진석 주교의 어깨는 무거웠다. 정진석 주교가 강론을 하기 위해 강론대에 섰다. “모든 것을 하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어 주교 서품식을 준비한 이들, 참석하고 함께한 이들에게 인사를 전한 정 주교는 구약의 모세를 들어 자신의 심경을 전했다. “모세는 말을 잘 못하는 사람이었고, 그저 평범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를 하느님은 당신의 도구로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겁이 났고 어찌할 바를 몰랐습니다. 심지어 도망치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부르시는 하느님만을 믿고 부르심에 응답합니다. 저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부족한 나 자신인데 두렵고 떨립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 함께해주신다는 믿음으로 그분의 부르심에 응답했습니다.” 이 말은 전혀 꾸밈이 없는 말이었다. 정진석 주교는 인생의 우여곡절을 통해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하느님께서 모든 것을 마련하신다고 굳게 믿고 있었다. 성경의 아브라함과 이사악의 이야기에 나오는 ‘야훼 이레’의 믿음이 깊이 뿌리 내려져 있었던 것이다. 지금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지만, 하느님께서 마련해주신다면 모든 것이 하느님 뜻대로 좋은 열매를 맺는다는 믿음이었다. 지금까지 자신의 삶이 그러했다. 고난과 역경의 시간도 굳세게 주님만 믿으며 걸어가니 새로운 길을 마련해주셨다. 스스로 그 신비를 체험했기에 자신 있게 주님을 향한 응답을 고백할 수 있었다. 정진석 주교는 미사 내내 이곳으로 자신을 부르신 분은 하느님이시고 그분의 뜻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일생 그 뜻을 찾고 실천하는 데만 노력하기로 마음먹었다. 그러자 마음이 조금은 가벼워지고 여유가 생기는 것 같았다.서품식이 끝나고 방문한 귀빈들과 일일이 인사를 나누고 신자들과도 인사를 나눴다. 한참 후에 가족들과 함께 계신 어머니가 눈에 들어왔다. 어머니는 별로 말씀이 없고 그저 담담한 얼굴이었다. 정진석 주교는 어머니와 둘이 찍은 사진이 없다는 것을 알고 주교 서품 기념으로 어머니와 사진을 찍었다. 그 사진이 둘이 찍은 유일한 사진이었다. 정 주교와 어머니는 사진기 앞에서 누구보다 환하게 웃었다. 어머니는 그 사진을 머리맡에 두고 평생을 사셨다. 아들로서 어머니께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데 평생 기도로 함께해주신 어머니는 정진석 주교에게 둘도 없는 든든한 지원군이었다.가난했던 청주교구 당시 청주교구는 메리놀회 사제가 19명, 한국인 사제가 6명이었다. 대다수가 메리놀회 소속 미국 사제들이고 한국 신부들은 수품한 지 아직 3년도 안 된 젊은 사제들이었다. 미국인과 한국인이 함께 있고, 그것도 절대다수가 미국인 사제인 데다가 대부분의 수품 연차가 새 교구장보다 높다 보니 교구장으로 어떻게 사목하느냐 하는 것은 큰 걱정거리였다. 특히 미국인 사제 중에는 한국어를 할 줄 아는 사제가 많지 않아 첫 사제 회의는 영어로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또 1970년대는 미국 본토에서도 인종 갈등과 차별이 심하던 시절이었다. 이런 벽들을 잘 넘어 순탄하게 교구를 이끌 수 있도록 정진석 주교는 무엇보다 먼저 기도를 했다. 누가 도와줄 수도 없고 자신이 해결해야 하는데 하느님께 매달리는 수밖에 없었다. 세상에 고집 센 사람들을 세워 보면 신부들은 절대 빠지지 않을 것이다. 그런 고집 센 선배들을 지휘하려니 결코 쉽지 않았다. 청주교구는 사제들에게 생활비도 지급하지 못할 정도로 가난했다. 정 주교가 새 교구장으로 부임했지만 전임 파디 주교가 주교관에서 지냈기에 정 주교는 다른 방에 묵어야 했다. 하지만 주교관에도 남는 방이 없었다. 지금 같으면 증축을 했겠지만, 교구가 사정이 어려워서 증축은 꿈도 꾸지 못할 상황이었다. 정진석 주교는 주교관 옆의 함석집에서 지냈다. 작은 기도방이 딸린 집이었다. 사람들은 굉장히 고생한다고 걱정했지만 정작 정 주교는 불편함이 별로 없었다. 전쟁 때부터 단련된 생활로 환경에 빨리 적응하는 편이었기 때문이다. 파디 주교는 교구장직을 사임하고 성심양로원 원장으로 불우한 노인들을 돌보다 1976년 본국으로 귀국했다. 정 주교는 파디 주교가 미국으로 돌아간 후에야 주교관에 들어갈 수 있었다. 첫째 과제는 사제단과 소통 정진석 주교의 첫 과제는 사제단의 일치와 소통이었다. 우선 함께 교구 사목을 할 사제가 필요했다. 눈여겨보았던 제라드 하몬드 신부를 불렀다. 10년 가까이 한국 생활을 한 그는 영어 이름을 한국식으로 바꿔 ‘함제도’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었다. 1960년부터 청주교구에 있었던 함 신부는 초대 교구장 비서 겸 관리국장으로 일한 경험이 있는 유능하고 부지런한 사제였다. 함 신부가 교구장실로 들어오자 정진석 주교가 말했다. “함 신부님, 저를 도와주세요. 총대리를 맡아 교구를 운영하는 데 힘이 되어 주세요!”말이 끝나기도 전에 함 신부는 손사래를 쳤다.“아이고 주교님, 하늘 같은 선배 신부님들이 많이 계시는데 제가 어떻게 그 일을 할 수 있겠습니까?”그래도 정 주교는 물러서지 않았다.“신부님은 청주교구에도 오래 계셨고, 파디 주교님 비서와 교구 관리국장까지 맡으셔서 교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제발 저를 도와주세요.”주교의 간절한 부탁에 골몰히 생각하던 함 신부는 조심히 입을 열었다.“부족하지만 주교님 뜻에 따르겠습니다.”이후 함제도 신부는 교구 총대리로 교구장을 적극적으로 도와줬다. 교구장이 사목방문을 떠날 땐 운전기사 역할도 도맡았다. 가난한 교구장은 총대리 함 신부가 운전하는 포니 왜건을 나란히 타고 사목방문을 오갔다. 함 신부의 도움에 힘입어 메리놀회 다른 사제들과도 잘 협의해 교구 운영을 지속해나갔다. 글=허영엽 신부(서울대교구 홍보국장) 사진=서울대교구 홍보국 평화신문2017.01.04
7살 어린이부터 팔순 할머니까지 성경 재미에 쏙~마산교구 제3회 교구 성경잔치 열고 친교 다져 16일 성지여고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마산교구 제3회 성경잔치에서 가족 암송대회 최우수상을 받은 지정훈씨 가족이 응원구호를 외치고 있다. 백슬기 기자 마산교구는 16일 경남 창원시 마산합포구 성지여고 실내체육관에서 ‘행복하여라! 주님의 가르침을 밤낮으로 되새기는 사람’(시편 1,1-2)을 주제로 제3회 교구 성경 잔치를 열고, 주님 말씀으로 하나 돼 친교를 나눴다.성경 잔치는 교구 신자 400여 명이 참석한 가운데 성경 봉헌식과 성경경시대회, 가족 성경 암송 대회 등으로 진행됐다. 또 행사가 진행되는 동안 체육관에는 성경 필사 노트와 이콘, 나뭇조각 등 성경작품이 전시돼 참가자들의 눈길을 끌었다.잔치의 백미는 가족 성경 암송 대회였다. 예선을 거쳐 본선에 진출한 다섯 가족은 성경 암송과 신앙 표현하기ㆍ가족 릴레이ㆍ돌발 퀴즈 등을 치르며 갈고닦은 암송 실력을 뽐냈다. 최우수상은 할머니부터 손자까지 3대가 참가한 지정훈(프란치스코, 석전동본당)씨 가족이 차지했다.특히 청소년들의 활약이 대단했다. 김도영(모니카, 초4)양은 쉬지 않고 성경 구절 10여 개를 외워 사람들을 놀라게 했고, 박지원(연희 마리아, 중2)양은 눈을 크게 뜨고 빠르게 말씀을 암송하며 유쾌한 웃음을 선사했다.성경 경시 대회 최고령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은빛상은 이남순(테오도라, 84) 할머니가, 최연소 참가자에게 주어지는 꿈나무상은 이예진(클라라, 7) 어린이가 받았다.교구장 안명옥 주교는 미사 강론에서 “우리 자신이 살아 있는 성경이 되기 위해 하느님 말씀을 마시고 먹고 입어야 한다”면서 “우리는 우리에게 생명력을 불어넣어 주는 성경 말씀으로 복음화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백영민2014.11.20
[사설] 지금은 성경 말씀 실천해야 할 때 한국교회는 전례력으로 연중 시기 마지막 주간을 성서주간으로 정하고 신자들에게 성경을 더욱 가까이할 것을 권고하고 있다. 성경은 우리를 하느님 사랑으로 이끌고 구원의 길로 나아가게 하는 신앙의 원천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복음의 기쁨」에서 “마음을 열어 하느님 말씀을 들을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하느님의 말씀이 자신의 삶에 와 닿지 못하게 한다면, 그 말씀이 자신을 반성하도록 이끌지 못한다면, 그 말씀이 자신에게 권고가 되지 않는다면, 그 말씀이 자신을 흔들어 놓지 않는다면, 그 말씀과 함께 기도하는 시간을 내지 않는다면, 그는 분명히 거짓 예언자, 사기꾼, 협잡꾼에 지나지 않을 것”(151항)이라고 지적했다.예수님께서는 “마음에 가득 찬 것을 입으로 말하는 법”(마태 12,34)이라고 가르치셨다. 이에 교황은 하느님의 말씀을 매일 읽고 묵상해 마음 가득 예수 그리스도를 채우라고 권고하고 있는 것이다. 주교회의 성서위원회 위원장 손삼석 주교도 올해 성서주간 담화를 통해 “우리가 성경을 통해 구세주 그리스도에게 희망을 둘 때 주변을 둘러보고 위로를 할 수 있고, 성경을 통해 사랑의 계명을 익힐 때 그 사랑을 이웃과 나누기 위한 선교의 열정을 불태울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는 무릇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을 통해 복음화될 때 세상의 빛과 희망이 될 것임을 일깨우는 말일 것이다. 올 한해 한국교회는 교구별로 교구장 사목지침에 따라 ‘말씀의 해’를 지내면서 말씀을 자기 것으로 삼도록 신자들에게 다양한 사목적 배려를 제공해 왔다. 이젠 그 결실로 내면화한 말씀을 실천할 때다. 그 길은 세상의 변두리에 내쳐진 가난하고 소외된 이들의 이웃이 되고, 공동선과 사회 평화를 위해 세상 사람들과 연대하는 것이다. 구세주 탄생을 준비하는 지금 절기야말로 복음적 사랑을 실천할 적기라 하겠다. 평화신문2014.11.19

신천지를 주의합시다! ⑤ 끝가족이 신천지로 의심되면 도움 청해야 Q. 가족이 신천지에 빠진 것을 알아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할까?<1> 화를 내며 “다시는 신천지에 나가지 말라”고 한다.<2> 차분하게 신천지의 문제점을 알려준다. <3> 모른 척한다. 정답은 <3>번이다. 신천지는 “가족을 비롯한 다른 사람에게 절대 신천지 성경 공부를 하는 사실을 알리지 말라”고 가르친다. 그들은 “예수님께서 핍박을 당하신 것처럼 ‘진리’를 이야기하면 박해가 시작된다”고 이야기한다. 신천지에 빠진 이들은 가장 가까운 가족들조차 ‘핍박하는 자’로 여기게 되고, 가족이 ‘신앙생활’을 방해한다고 여겨 극렬하게 저항한다. 2013년 11월 신천지 성경 공부를 시작해 1년 1개월 만에 그만둔 이로사(23)씨는 가족들에게 신천지 성경 공부를 하는 사실이 발각된 후 “신천지에 나가지 말라”는 가족들과 싸우다가 3개월 동안 가출했다. 이씨는 “가족들에게 발각되면 바로 ‘섭외부’(신도 이탈을 막는 역할)에 보고하게 되고, 섭외부는 ‘대응 지침’을 상세하게 알려준다”면서 “‘지금 이걸 그만두면 핍박하는 자들(부모)이 지옥을 가게 된다’고 겁을 준다”고 말했다.신천지에 빠진 이들의 회심을 돕는 이승혜(가타리나) 상담사는 “가족의 설득으로 회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면서 “일만 더 키우게 된다”고 경고했다. 그는 “절대 아는 척하지 말라”고 당부했다. 수원교구 복음화국은 ‘신천지 교회 주의 공지’에서 “신천지에 빠진 이들은 가족이나 주변 사람들에게 발각되지 않도록 끊임없이 거짓말을 하고 발각됐을 때는 신천지 교회가 가르쳐준 대응 지침에 따라 말하고 움직이도록 세뇌된 상태”라며 “주변에 신천지로 의심되는 사람이 있을 때는 사제나 수도자에게 보고해 도움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신천지 ‘대처’보다 더 중요한 것은 ‘예방’이다. 그들의 포섭수법을 숙지하고, 제대로 된 성경 공부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 있어야 한다. 신천지는 20~30대 청년들에게는 주로 설문 조사, 무료 심리상담(MBTI, 에니어그램)·심리 테스트·취미 교실 등을 빙자해 접근한다. 그들의 목적은 연락처를 확보하는 것이다. 휴대전화를 빌려 달라고 해 연락처를 알아내기도 한다. 몇 차례 ‘심리 상담’을 한 후에는 어김없이 ‘성경 공부’를 권유한다. 낯선 이가 설문 조사, 심리상담 등을 권할 때는 연락처를 알려주지 않는 것이 좋다. 그리고 ‘성경 공부’를 권하면 일단 의심해봐야 한다.40대 이상 장년층에게는 신천지에 빠진 지인이 “좋은 성경 공부가 있는데 같이 하자”고 권하는 경우가 많다. ‘가짜 신부’가 성경을 가르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주의해야 한다. 본당이나 교구, 수도회에서 개설한 성경 공부가 아니면 의심해 봐야 한다. ‘교회 밖 성경 공부’는 하지 않는 게 좋다. 또 ‘개역 한글판’ 성경을 사용하는 성경 공부는 신천지일 가능성이 높다. 가족이나 지인이 월·화·목·금요일 오전 또는 저녁마다 “성경 공부를 하러 간다”고 하거나 “일이 있다”고 하면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수원교구 복음화국은 신천지 성경 공부의 특징으로 △센터 등록 시 면접을 보고 사진, 원서, 소정의 복사비 등을 납부 △수강생이 필기한 노트를 집에 가져가지 못하게 하고 센터에 보관하도록 유도 △강사가 ‘자신은 특정 교파에 속하지 않는 초교파인’이라고 말함 △전날 배운 것을 복습하고, 수업을 마치면 소모임을 갖고 매주 시험 실시 등을 들었다. 임영선 기자 hellomrlim@pbc.co.kr ① 신천지란 무엇인가② 신천지는 어떤 사람을, 어떻게 포섭하나 ③ 왜 신천지에 빠지는가④ 신천지를 경험한 사람들 이야기⑤ 신천지 대처법·구별법 백영민2015.07.22
[위대한 신앙의 신비,기도] (8) 구약에 나타난 기도- 다윗, 임금의 기도 백성들에게 기도의 모범된 다윗 구약 성경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기도하는 법을 가르친 이들은 주로 백성의 지도자들, 곧 왕과 예언자들이었습니다. 교리서(2578~2580항) 는 임금의 기도에 대한 본보기로 다윗의 기도를 이야기합니다. 교리서는 다윗 임금의 기도를 이야기하기에 앞서, 하느님 말씀에 따라 다윗에게 기름을 부어 임금으로 세운 예언자 사무엘을 먼저 언급합니다. 사무엘은 어머니 한나에게서 주님 앞에 어떻게 나아가야 하는지를, 그리고 스승인 사제 엘리에게서는 어떻게 하느님의 말씀을 들어야 하는지를 배웠습니다. 사무엘의 어머니 한나는 마음이 쓰라려 흐느껴 울 정도로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드립니다. 그리고 그 기도는 속마음을 털어놓는 기도였습니다. 하느님께서는 한나의 기도를 들으시고 아들(사무엘)을 주십니다. 그리고 한나는 기도하면서 주님께 약속한 대로 아들을 주님께 바칩니다(1사무 1장 참조). 사무엘은 이런 어머니에게서 어렸을 때부터 주님께 기도 바치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하지만 주님 말씀을 듣는 법은 사제 엘리에게서 배웁니다. 그것은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1사무 3,9) 하는 자세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기도의 몇 가지 중요한 자세를 확인할 수 있습니다. 편의상 순서를 매기자면 기도는 ① 간절한 마음으로 드려야 합니다. 간절함은 하늘을 울립니다. ②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기도는 진솔해야 합니다. 또 진솔하지 않으면 간절함도 없습니다. 진솔하지 않은 기도를 간절하게 바친다는 것은 가식이고 위선입니다. ③ 마음을 열고 경청할 수 있어야 합니다. “주님 말씀하십시오. 당신 종이 듣고 있습니다”라는 응답은 내 뜻이 아니라 하느님의 뜻을 기꺼이 따르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에는 하느님께서는 만사를 좋게 이끄신다는 확신과 신뢰가 전제돼 있습니다. 교리서는 다윗을 “누구보다도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임금”(2579항)이라고 소개합니다. 다윗은 “백성을 위하여 또 백성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목자입니다. 지도자의 첫째 덕목은 자신이 아닌 백성을 위해 사는 삶입니다. 이는 기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다윗이 누구보다도 하느님 마음에 드는 훌륭한 임금인 것은 그가 도덕적으로 더할 나위 없서가 아닙니다. 하느님 뜻을 따르는 순명과 하느님께 바치는 찬미,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는 참회 때문입니다. 그래서 임금인 다윗의 순명과 찬미와 참회는 또한 백성에게 기도의 모범이 됩니다. 하느님의 뜻을 찾고 따르려는 자세,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시는 놀라운 은총에 대한 찬미, 그리고 잘못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겸손하게 뉘우치는 마음, 우리의 삶 자체가 이러한 기도의 삶으로 이루어진다면 우리 또한 ‘하느님 마음에 드는 자녀’가 될 것입니다. 하느님의 집, 기도의 집을 지어 바치겠다는 다윗의 뜻을 하느님께서는 물리치십니다. 그의 뜻은 아들 솔로몬이 현실로 만듭니다. 교리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봉헌하면서 바친 기도(1열왕 8,10-61 참조)와 관련, 임금의 기도가 어떠해야 하는지를 제시합니다. 왕은 겸손한 자세로 그리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늘을 향하여 두 손을 쳐들고 △자신과 온 백성을 위해 △미래의 후손들을 위해 △백성의 죄에 대한 용서와 매일의 필요를 위해 △백성의 마음이 온전히 주님을 향하도록 기도합니다. 지도자의 기도, 가장의 기도 역시 이런 기도이면 좋겠습니다.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백영민2016.07.20
![[자비의 특별 희년] (10)신문 배달하며 이웃 돕는 오광봉 할아버지](//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3767_1.0_titleImage_1.jpg)
[자비의 특별 희년] (10)신문 배달하며 이웃 돕는 오광봉 할아버지새벽엔 배달맨, 낮엔 ‘나눔 실천하는 독서광’ ‘날다람쥐’, ‘신문 배달맨’, ‘독서광’, ‘부산 감천동 할아버지’….이 모든 별명은 한 사람 것이다. 올해 여든넷의 오광봉(시몬, 84) 할아버지다. 할아버지는 젊은이들도 하기 힘든 신문 배달을 매일 새벽마다 한다. 35년째다. 게다가 ‘날다람쥐 할아버지’란 별명까지 있다. 동네 주민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는 할아버지에게 붙여준 것이다. 실제로 오 할아버지는 잰걸음으로 가파른 언덕과 계단을 널뛰듯 오르내리며 달동네로 유명한 부산 감천동 일대 400가정에 신문을 배달한다. 할아버지는 바쁘고 힘든 일과 중에 어려운 이웃도 돕는다. “일하는 것보다 노는 게 더 힘들지”라며 특유의 어린아이 같은 미소를 짓는 ‘자비를 실천하는 신문 배달맨’ 오광봉 할아버지를 부산 사하구 감천동 자택에서 만났다.신문 배달 35년, 그리고 나눔‘부산의 산토리니’로 불리는 감천동. 6ㆍ25전쟁 이후 피난민들이 일군 이곳 일대는 이제 ‘감천동 문화마을’이라는 이름으로 재탄생해 수많은 관광객이 찾는 명소가 됐다. 다닥다닥 붙은 가옥들 인근에 자리한 오광봉 할아버지 집은 사람 한 명이 드나들기에도 비좁은 골목 안 3평 남짓한 곳이다.“신문 배달은 속도가 생명이에요. 매일 밤 11시에 신문 보급소로 출근해서 새벽 6시까지 배달을 마치려면 부지런히 뛰어다녀야 하죠.”남들은 모두 곤히 자는 시간이 할아버지에겐 가장 바쁜 시간이다. ‘여든이 넘은 나이에 신문을 배달한다’는 진기한 사연에 2년 전엔 SBS TV 프로그램 ‘세상에 이런 일이’에 출연하기도 했다. 젊은이들보다 달리기도 빠르고, 명패 없는 집에도 신문을 ‘착착’ 배달하는 오 할아버지의 모습이 시청자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내 고향은 평안남도 진남포요. 6ㆍ25전쟁 일어나고 온 식구가 부산으로 내려왔지요. 가족과 오순도순 터전 잡고 지낸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세월이 이렇게나 흘렀소.”할아버지는 이후 중앙성당에서 세례를 받고, ‘가난한 이들의 사제’ 소 알로이시오 신부가 사목했던 송도성당에 다녔다. “알로이시오 신부님은 가난한 이들, 배고픈 사람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아낌없이 나눠 주고 함께해 주셨어요. 그게 아직 기억에 선해요.”그래서일까. 오 할아버지는 6년 전부터 ‘나눔’을 실천하고 있다. 홀몸 어르신 4가정에 격월로 쌀과 생필품, 생활비 등을 지원해 오고 있는 것. 할아버지 월급은 60만 원. 자신도 홀로 살면서 생활비를 겨우 버는 형편이지만, 틈나는 대로 폐지도 모으며 자선단체에 기부까지 하고 있다. 밥은 안 먹어도 되지만 책은 꼭 있어야 해“정신이 가난한 사람이 되면 안 돼요. 책은 소모되지 않고 정신을 살찌우죠.”할아버지는 ‘독서광’이다. 월급의 3분의 1을 책 구입에 쓰고, 돋보기 없이 하루 1권씩 책을 읽는다. 3평 남짓한 할아버지 방은 아늑한 서점을 방불케 한다. 할아버지는 “이 방에 책이 3000권쯤 된다”고 했다. 매일 성경도 30분씩 읽는다. “혼자 성경을 이해하기 힘들지 않으냐”는 질문에 “다른 종교 서적들이 성경 내용의 뒷받침이 돼 준다”고 했다.장자, 노자, 플라톤 전집 등 철학서적부터 자본주의, 경제학 서적을 넘어 한편에는 1600쪽에 달하는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헌」 등 교회 서적까지 없는 게 없다. 지학순 주교 강론집 「정의가 강물처럼」 등 오래된 서적과 프란치스코 교황의 「복음의 기쁨」, 「찬미받으소서」도 모두 정독했다. 할아버지는 “가난한 이들을 늘 위하는 프란치스코 교황님의 모습과 글이 아름답다”고 했다. 신문에 나온 신간 소식을 갈무리해 뒀다가 대형 서점과 바오로딸 서원에 가는 게 할아버지 낙(樂)이다. 할아버지는 쉼 없이 구입하고 소화한 책을 다른 이들에게도 나눠 준다. 몇 차례 TV 출연 후 생긴 팬 8명과도 늘 연락하며 지낸다. 모두 젊은 청년들인 이들은 할아버지가 구하기 어려운 책을 구매해 배송해 주고, 방문도 한다. 그들이 남기고 간 편지에는 “할아버지 책 선물 고맙습니다. 책을 많이 주신 만큼 제가 빨리 읽지 못해 오히려 죄송합니다”란 내용이 있다. “지혜는 우릴 배부르게 합니다. 좋은 글을 읽으면 좋은 생각을 가질 수밖에 없죠. 책을 나누는 건 좋은 생각과 감수성을 가지길 바라는 마음입니다. 좋은 생각을 가지면 이웃을 돕는 사람이 되잖아요.”할아버지의 소원은할아버지는 1990년께 이혼한 뒤 지금껏 홀로 살고 있다. 가족들과 연락도 사실상 끊긴 상태다. 젊은 시절 가내수공업을 하다 그만 기계에 손이 빨려 들어가 오른손은 엄지손가락뿐이다. 이후 일자리를 얻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받아주는 곳은 없었다. 할아버지는 “자식들 대학까지 다 보냈지만, 한때 술을 많이 마시는 바람에 가정이 파탄에 이르렀다. 내 잘못”이라며 가족 이야기를 할 때엔 고개를 숙였다.할아버지에겐 꿈이 두 가지 있다. 한 번이라도 가족을 만나는 것, 그리고 서원(書院)을 차리는 것이다. 할아버지는 “아담한 서원에서 사람들과 책을 함께 읽고, 토론도 나누고 싶다”고 했다.“내가 가진 건 지금까지 모은 책과 작은 지식입니다. 이걸 나눈다는 것은 제겐 큰 기쁨입니다. 좋은 것 있으면 혼자 누리기 아깝잖아요. 나중엔 교회에 다 기증할 겁니다.” 이정훈 기자 sjunder@pbc.co.kr취재 후기오광봉 할아버지는 가족 없이 홀로 지내는 어르신이다. 그럼에도 자신보다 더 어려운 홀몸 어르신을 돕고, 그들을 걱정한다. 젊은이들에겐 책을 선물하며 지혜를 쌓길 권한다. 작은 체구의 할아버지는 그렇게 노인과 젊은이들을 모두 돌보는 나눔을 베풀고 있다.할아버지 지론은 책을 읽은 좋은 생각은 결국 남들에게도 선(善)이 된다는 것이다. ‘선의 선순환’을 위해 책을 읽고 권하는 것이다. 무턱대고 “책 좀 읽으라”하는 말보다 훨씬 와 닿는다. 어려운 가운데에도 나눔을 실천하도록 할아버지를 이끈 원동력도 책의 한 구절에서 비롯되지 않았을까. 우리나라 가구당 책 소비량이 5년째 감소세라고 한다. ‘독서의 의미’부터 터득하는 게 급선무일 듯하다.할아버지가 인터뷰 말미에 책 두 권을 추천했다. 「토머스 머튼의 영적 일기」(바오로딸)와 「논어」(바이북스)이다. 할아버지는 책을 나눠줄 때 꼭 이렇게 써준다. “재물을 쌓지 말고, 지혜를 쌓아라.” 이정훈 기자 평화신문2016.03.09
![[부활 특집] 노숙·알코올 중독에서 재기한 박재기(베드로)씨](//cpbc.co.kr/CMS/newspaper/2016/03/rc/626328_1.0_titleImage_1.jpg)
[부활 특집] 노숙·알코올 중독에서 재기한 박재기(베드로)씨중독에서 벗어난 기적같은 삶, 또다른 기적 일군다 서울 가양 5단지 동대표 회장을 거쳐 지금은 주민과 단주 모임을 하고 있는 박재기(베드로, 67)씨.그는 20여 년을 알코올 중독자로 노숙생활을 하다 세례를 받고 신앙의 힘으로 재기한 보기 드문 인물이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 새 사람으로 태어난 그는 알코올 중독자들에게 나락에 떨어졌던 자신의 옛 삶을 이야기하면서 재기를 돕고 있다. 예수 부활 대축일을 맞아 부활의 새 삶을 경험했고, 알코올 중독자에게 새 삶의 기쁨과 희망을 전하는 데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 박재기씨를 만났다. 쓰레기통에 얼굴을 처박고 벌레처럼 살았던 세월이었다. 소주를 병째 마시고 지하철 역사에서 한뎃잠을 자다가 누군가의 발길에 걷어차여 발목이 부러진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피가 흘러도 누구 하나 가엾게 쳐다보지 않았다. 병원에 갈 돈은 당연히 없었다. 하루에 2000~3000원 구걸해 술로 탕진하는 터에 치료비가 있을 리 없었다. 처음부터 노숙자였던 건 아니다. 그도 한때 직장에 다녔고 결혼해 가정을 꾸렸다. 10여 년간 다니던 직장을 갑자기 잃고 아내마저 떠나면서 삶이 바뀐 것이다. 불행을 잊기 위해 마시던 술에 중독됐고 그러다 노숙의 나락으로 떨어졌다. 그렇게 서울 영등포역과 서울역, 청량리역 등지에서 20여 년을 살았다. 1993년 어느 날 당시 서울 신림동에 있던 요셉의원에 실려 갔다. 어찌나 술을 마셔댔던지 간경화 증상이 심각했다. 폐결핵 4기에 치아는 하나도 남지 않았다. 척추도 요추간판탈출증에 척추강 협착증 등으로 다 망가진 상태였다. 위궤양과 고혈압 등 자잘한 질환도 한둘이 아니었다. 병상에서 그의 숨이 멎었다. 의료진도 포기하고 흰 천을 얼굴에 씌웠다. 다들 죽었다고 했다. 그런데 박씨는 1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살아났다. 그 후 수년간 끝없이 이어진 투병 끝에 다시 일어났다. 요셉의원에서 봉사하던 내과 전문의 유태혁 박사가 자신이 일하던 한강성심병원에 그를 데려가 알코올 병동에 입원시켜 2년 동안 치료를 받게 해준 게 큰 도움이 됐다. 그렇게 몸을 추스른 그는 서울 목동의 집에서 재활하며 알코올 중독에서 벗어나는 데 성공했다. “지금은 고국으로 돌아갔지만, 재활을 돕던 메리놀수녀회 칼라 수녀님과 돌리스카 수녀를 잊을 수 없어요. 재활하면서도 유혹을 이기지 못해 몰래 술을 마시다 들켰는데 저를 말리는 칼라 수녀를 때려 어깨를 부러뜨린 적도 있었어요. 술을 마시며 제가 얼마나 많은 사람에게 고통을 줬는지, 치료를 받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그런 힘겨운 과정을 거쳐 술을 끊고 34년간 말소됐던 주민등록을 되살렸다.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선정돼 임대 아파트도 얻을 수 있었다. 아낌없이 자신의 재활을 돕던 수도자들에게 감화된 그는 1996년 세례를 받았다.죽었다가 살아난 터라 새로운 삶을 살기로 했다. 그래서 ‘체험담’ 나눔부터 시작했다. 목동의 집에 들어온 알코올 중독자들과 자신의 삶을 속속들이 나눴다. 20여 년 노숙생활에서 벗어나 1993년 술을 끊고 알코올 중독 치료를 받기까지 과정을 낱낱이 드러냈다. “술의 힘을 빌려 자신을 학대하며 술의 노예로 살아가던 분들이 자신과 똑같은 삶을 살다가 회복된 저를 봤으니 얼마나 동질감을 느끼셨겠어요? 치료 공동체에 들어올 때만 해도 다들 ‘걸어 다니는 종합병원’이던 분들이 제게서 희망을 본 것이죠. ‘선병자의’(先病者醫)라는 말이 있잖아요. 병도 앓아본 사람은 그 경험으로 뒤에 앓은 이의 병을 고칠 수 있다고 하듯이 제가 그런 경우가 된 거지요.”목동의 집을 나와 1998년 서울 가양 5단지 임대아파트에 입주한 뒤부터 봉사 활동을 시작했다. 주민 대다수가 국민기초생활수급자로 그들 중 알코올 중독자가 적지 않았다. 가양 5단지 전체 동대표 회장으로 활동하면서 ‘주민이 이끌어가는 단주 모임’을 조직했다. 알코올 중독이 가장 큰 문제였기 때문이다. 지난해엔 주민을 섬기는 경로후원회 ‘아름다운 동행’도 만들었다. 홀몸노인이 무거운 물건을 옮길 때 도와드리고 은둔형 술 문제로 고통받는 가정을 찾아 맞춤형 1:1 단주 상담 활동도 하고 있다. 또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방문해 생일상을 차려 드리고, 병구완과 이ㆍ미용, 요리, 청소 등 필요한 모든 것을 돕는다. 필요한 비용은 회원 60여 명이 십시일반으로 내서 해결했다. “우리도 정부에, 사회에 기대서 살지 말고 서로 돕고 살자는 뜻으로 시작했어요. 그야말로 자조 모임입니다. 회비도 3000원, 5000원 정도입니다. 다들 가난한 분들이에요. 이분들의 사랑이 변화를 일으켰어요. 30명이 넘는 알코올 중독자들이 술을 끊고 새로운 삶을 살게 됐어요. 이게 기적이 아니고 뭐겠어요?” 그의 맞춤형 1:1 단주엔 남다른 게 있다. 성경에 나오는 술과 관련된 내용 75구절을 추려 12단계에 걸쳐 나눔을 갖는 방식이다. 하느님 말씀과의 만남을 통해 알코올 중독자들이 참된 자아를 발견하고 하느님을 만나도록 하려는 데 초점을 맞췄다. 성경과 단주와의 접목은 예수의 꽃동네 자매회 박미혜(마태오) 수녀와의 만남에서 비롯됐다. 2007년 음성 꽃동네 아나빔 공동체에서 봉사할 때 박 수녀와 함께 술과 관련된 성경 내용을 묵상하면서 참된 단주는 하느님 말씀과 또 그분과의 만남을 통해 통회하는 데서만 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도 이 깨달음 이후로 정말 술에서 자유로워졌다. 그래서 “하느님과 만나지 않으면 진정한 단주가 아니다”라고 단호하게 말한다. “꽃동네에서 봉사하기 전만 해도 제 치부를 드러내고 싶은 마음이 없었어요. 1m 이상 쌓인 눈 속에서 술기운으로 자다가 동상도 걸리고 곁에서 얼어 죽는 경우도 보던 시절을, 얻어먹으면서도 고마워할 줄 모르는 비참했던 노숙 시절을 어떻게 쉽사리 드러낼 수 있었겠어요? 그렇지만 이 깨달음 이후 제 노숙 체험이 ‘하늘을 이불 삼고 땅을 안방 삼는’ 노숙인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얼마든지 공개할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됐어요.” 박씨가 꼭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 가양 5단지 주민과 함께 알코올 중독자들을 치료하기 위한 재활자립센터를 세우는 것이다. 지속적 단주를 통해 육체를 회복하고 자립 자활하는 것을 목표로 한 자조 공동체다. 이 꿈을 위해 절대 서두르진 않는다. 차근차근 해나가다 보면 언젠가는 이뤄질 것이고 하느님께서 자신을 살렸듯이 다른 알코올 중독자들도 살리실 것이라 믿고 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평화신문2016.03.24
![[주교 현장 체험] 화력발전소 현장 직접 보고 북한이탈주민 사연 듣고](//cpbc.co.kr/CMS/newspaper/2016/11/rc/660902_1.0_titleImage_1.jpg)
[주교 현장 체험] 화력발전소 현장 직접 보고 북한이탈주민 사연 듣고‘주교 현장 체험’에 참가한 주교단, 어려움 처한 이웃 고충 듣고 아픔 함께 나눠 북한이탈주민과의 만남주교단이 화력발전소 운영에 따른 기후변화 피해에 관한 설명을 듣고 있다. 도재진 기자올해로 3회째를 맞는 ‘주교 현장 체험’의 두 번째 발길은 북한이탈주민에게 향했다. 2002년 북한이탈주민센터를 세웠고, 2010년 2월에는 통일부 지정 서울남부하나센터를 개소하는 등 15년째 이들을 위해 헌신적 사도직 활동을 해온 서울 양천구 신월로 한빛종합사회복지관 서울남부하나센터에서였다. 주교단은 8일 복지관을 찾아 ‘북한이탈주민과의 만남’을 갖고, 탈북과 난민 생활, 입국, 정착 과정에서의 고충을 듣고 그 아픔을 나눴다. 간담회에는 서울대교구 염수정 추기경과 손희송ㆍ유경촌 주교, 의정부교구 이기헌 주교, 수원교구 이용훈ㆍ이성효 주교, 군종교구 유수일 주교, 전 마산교구장 박정일 주교 등 8명이 함께했고,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총무 이은형 신부, 위원 조성하(도미니코 수도회) 신부, 사무국장 오혜정(스바니아,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도회) 수녀도 참석했다. 7명의 북한이탈주민은 먼저 자신을 소개하고 탈북 경위와 함께 북한에서의 성장ㆍ교육 과정과 삶, 신앙생활 여부, 난민으로 살았던 삶, 국내 정착 이후 삶까지를 2시간에 걸쳐 털어놓았다. 특히 중국 등 제3국을 통해 이뤄지는 탈북 과정의 인권 유린과 인신매매 현실을 토로했고, 하나원과 하나센터 등을 거쳐 국내에 정착하는 과정에서의 어려움, 심리 치료와 재정적인 문제, 취직과 자녀 교육의 어려움 등에 대해 자세히 전했다. 두 차례나 북에 송환됐다가 세 번째 만에 탈북에 성공, 국내에 들어온 김아무개(52)씨는 “세 번째로 탈북할 때 아들에게 ‘언젠가 (탈북한) 엄마 마음을 이해할 때가 있을 것’이라고 편지를 써놓고 떠나왔다”면서 “북에 두고 온 아이들이 ‘우리끼리 여기서 잘 살겠다’고 말하는 걸 훗날 전해 듣고 얼마나 울었는지 모른다”고 말했다. 이어 “첫 번째 탈북 당시 중국에서 들여온 성경을 숨겨 보다가 두 번째로 탈북하면서 소각하고 나왔었다”면서 “두 차례 북한 송환으로 얼마나 고문을 많이 당했는지, 요즘도 그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다”고 전했다. 북강원도 철원 출신으로 대학에 다니는 이아무개(24)씨는 “부모님과 다 같이 탈북해서 이산의 아픔은 겪지 않았지만, 학업이나 일자리, 정착에 어려움을 겪는 건 마찬가지”라면서도 “열심히 공부해서 의미 있는 삶을 살아보겠다”고 다짐했다. 염 추기경은 간담회에서 “여러분들이 겪은 구체적인 고난을 들으면서 그런 어려움을 딛고 열심히 살아가시는 모습이 제게 큰 희망을 줬다”면서 “앞으로도 열심히 사시고 좋은 결실을 보기 바란다”고 기원했다. 간담회를 마친 주교들은 한빛종합사회복지관 지하 식당에서 북한이탈주민들이 직접 만든 북한식 두부밥과 감자떡 등을 시식하고 오찬을 함께하며 북한이탈주민들과 못다 한 이야기꽃을 피웠다. 오찬 뒤 주교들은 서울 양천구에 사는 북한이탈주민 세 가정을 직접 찾아가 30분간 환담하고 쌀과 선물을 전달했다.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 위원장 이기헌 주교는 주교 현장 체험을 마무리하며 “북한이탈주민의 신앙생활과 사회 적응을 돕는 ‘민족 화해 시범 본당’과 본당별 민족화해분과 활동에도 깊은 관심을 기울여 주시고 따뜻한 이웃이 돼 주시기 바란다”고 당부했다. 오세택 기자 sebastiano@pbc.co.kr 당진화력발전소 탐방“욕심 때문에 저지른 모든 잘못과 탐욕에 대해 하느님께 용서를 청합니다”. 주교회의가 2014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주교 현장 체험의 올해 마지막 일정이 9일 당진화력발전소에서 진행됐다. 충청남도 당진시 석문면 교로리에 있는 당진화력발전소는 수입 석탄을 연료로 사용하는 화력발전소다. 발전용량은 4000㎽. 현재 8호기를 운영 중이며 9호기와 10호기는 올해 준공될 예정이다. 생태 환경을 주제로 진행된 이번 일정에는 강우일(제주교구장)ㆍ권혁주(안동교구장)ㆍ정신철(인천교구장)ㆍ옥현진(광주대교구 보좌) 주교와 박현동(성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원) 아빠스가 함께했다. 행사는 시작 기도 및 당진화력발전소 소개, 질의응답, 마침 기도 순으로 진행됐다. 화력발전소 운영에 따른 기후변화 피해 지역을 돌아보며 지역 주민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마련된 자리인 만큼 주교들은 큰 관심을 나타냈다. 당진화력발전소 소개자로 나선 당진환경운동연합 유종준 사무국장은 “석탄 화력발전소가 대기 오염 물질을 다량으로 배출하기 때문에 큰 문제가 된다”며 “쉽게 이야기하면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염 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10개 업체 중 8개 업체가 석탄을 사용하는 업체들이고 그렇다 보니 그만큼 많은 오염 물질을 배출하고 있다”고 말했다. 또 “중금속으로 인해 발전소 주변 지역 주민이 피해를 보고 있다”며 “발전소로 인해 지금까지 24명의 암환자가 발생해 13명이 죽었고 11명이 현재 투병 중”이라고 덧붙였다. 유종준 사무국장의 이야기를 들은 주교들의 얼굴에는 근심이 가득했다. 강우일 주교는 “숨넘어가는 오늘의 현실을 우리가 지금이라도 자각하고 무서운 속도로 질주하고 있는 생태와 환경 파괴의 발걸음을 늦출 수 있도록 우리가 함께 호소하고 또 기도하며 세상을 향해 외쳐야 하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을 한다”고 말했다. 또 “우리의 현실을 좀 더 정확히 인식하고 파악해 국가가 장기적인 에너지 정책을 바꿔나갈 수 있도록 보탬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주교들은 당진화력발전소 탐방을 마무리하며 욕심 때문에 일어난 모든 잘못과 탐욕에 대해 기도로서 용서를 청했다. 오후에는 충청남도 홍성군 홍동면에 위치한 지역센터 마을활력소와 홍동마을을 둘러봤다. 2011년 만들어진 마을활력소는 중간 단체로서 협동조합 등 지역의 자생적인 주민 단체와 조직 40여 개를 연결해 주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고 있다. 주교들은 이곳에서 이동근 사무국장에게 마을활력소와 홍동마을에 대한 소개를 들었다. 홍동마을은 유기농업과 협동조합, 귀농 및 귀촌 운동 등을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마을이다. 주교들은 홍동마을에서 에너지를 독립적으로 만들어내는 자립형 컨테이너 하우스와 태양열 발전 시설 등을 둘러봤다. 도재진 기자 djj1213@pbc.co.kr 문채현2016.11.18

트윗으로 신앙의 갈증을 풀다! 하느님과 트윗을 하느님과 트윗을미헬 레메리 지음/김해경ㆍ이창훈 옮김/신정훈ㆍ김한수 감수/가톨릭출판사/1만 5000원가톨릭이 궁금한 청년들이 묻는 200가지 질문과 질문에 관한 답을 담았다. 질문은 ‘왜 사는 걸까요’라는 인생 고민에서부터 ‘성당은 왜 하느님의 집이라고 하나요’, ‘교황은 어떻게 될 수 있나요’와 같은 가톨릭 관련 궁금증까지 각양각색이다. ‘미사는 왜 지루한가요’ ‘천국에서 제 애완동물을 만날 수 있나요’ ‘종말은 언제인가요’ ‘자살하면 지옥에 가나요’처럼 평소 누군가에게 물어보고 싶었지만, 선뜻 꺼내기 어려웠던 질문도 눈에 띈다. 가톨릭 교회의 어제와 오늘은 물론 기도와 성사, 신앙과 윤리, 과학과 종교, 정치와 사회 등 가톨릭과 관련된 질문은 모두 담겨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 사제와 청년들이 뭉쳤다. 미헬 레메리(네덜란드 로테르담교구, 유럽주교회의연합회 부사무총장) 신부는 청년들과 2주에 한 번씩 만나, 청년들이 궁금해 하는 문제를 자유롭게 나눴다. 그리고 이에 대해 교회 가르침은 어떻게 말하고 있는지, 하느님은 성경을 통해 무엇을 보여 주고 계신지를 토론했다. 질문엔 제한을 두지 않았고, 답을 할 땐 교회 가르침을 바탕으로 논거를 분명하게 제시했다. 하지만 ‘정답은 이것이니, 그대로 이해해야 한다’는 식의 강요는 하지 않았다. 이해와 회심은 하느님께 맡겼다. 레메리 신부는 청년들과 나눈 이야기를 정리해 「하느님과 트윗을」(원제 Tweeting with GOD)이란 제목으로 책을 펴냈다.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청년들뿐만 아니라 신자, 비신자 가리지 않고 가톨릭에 관심 있는 이들 모두에게 호평받았다. “그동안 알고 싶었던 궁금증이 해결됐고, 가톨릭 신앙이 무엇인지 확실히 알게 됐다”는 찬사가 쏟아졌다. 네덜란드에서 출간된 이후 한국어를 포함해 8개 언어로 즉시 번역됐고, 20여 개국에서도 번역 중이다.레메리 신부는 소통의 장을 넓히기 위해 누리방(www.tweetingwithgod.com)과 어플리케이션(#TwGOD)을 만들어, 질문과 답을 나눴다. 특히 2016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를 맞아 기존 어플리케이션을 업데이트해 50개 이상 언어로 서비스한다는 계획이다. 책이 세계적으로 인기를 끄는 건, 질문에 ‘정답’을 알려줘서가 아니다. 질문에 질문이 꼬리를 물면서 신앙에 대해 스스로 생각할 기회를 열어주고 있어서다. 같은 고민을 하고 궁금해하는 이들이 함께 모여 나누도록 이끌고, 깨달은 신앙을 실천하도록 격려하고 있어서다. 별책 부록에는 각종 모임에서 책을 활용할 방법을 상세히 소개했다.정순택(서울대교구 청소년담당 교구장 대리) 주교는 “이 책은 끊임없이 소통하는 책”이라면서 “우리 청년들도 이 책으로 하느님과 신앙에 대해 함께 터놓고 이야기를 나눌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정 주교는 지난해 유럽에서 열린 세계청년대회 회의에 참석해 저자 신부를 직접 만나 이 책을 소개받았다. 한편 가톨릭출판사는 책이 더 널리 알려지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아 8일 서울대교구 청소년국(국장 김성훈 신부)에 책 3000권을 기증했다. 이날 도서 전달식에는 정순택 주교와 가톨릭출판사 사장 홍성학 신부, 청소년국장 김성훈 신부 및 청소년국 담당 사제단, 번역가 김해경씨 등이 참석했다. 기증 도서는 크라쿠프 세계청년대회에 참가하는 청년들을 비롯해 교구 청년ㆍ청소년에게 전달될 예정이다. 박수정 기자 catherine@pbc.co.kr 백영민2016.07.13
[위대한 신앙의 신비, 기도] (7) 구약에 나타난 기도- 모세, 중개자의 기도백성을 위해 하느님께 정성껏 기도 교리서(2574~2577항)는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야곱에 이어 구약 역사에 또 한 사람의 위대한 지도자인 모세의 기도를 살펴봅니다. 기도에서 주도권을 취하시는 분은 하느님이시라고 했는데, 모세의 경우도 하느님께서 먼저 행동하십니다. 불타는 떨기 가운데서 하느님께서 먼저 모세를 부르시고 말씀을 건네시는 것입니다(탈출 3,1-10 참조). 하느님께서 당신을 “아브라함의 하느님 이사악의 아느님 야곱의 하느님”(탈출 3,6)이라고 밝히시고 또 “나는 있는 나다”(탈출 3,14)라고 당신을 계시하시는 것은 당신이 살아 계시는 하느님임을 뜻합니다. 이렇게 살아 계시는 하느님께서는 당신 백성으로 삼으신 이스라엘을 구원하시어 생명을 주시고자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하느님께서 모세를 부르시는 것은 이 구원 사업을 당신 혼자 하시는 것이 아니라 모세를 구원 사업에 참여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리고 이 일을 인간의 의사를 무시하면서까지 하지도 않으십니다. 모세를 부르시는 하느님과 발뺌하려는 모세의 대화에서 볼 수 있듯이, 하느님은 오히려 모세에게 간청하시는 분처럼 나타납니다. 그리고 모세는 하느님과의 오랜 줄다리기를 하면서 마침내 하느님의 뜻에 자신의 뜻을 맞추게 됩니다(탈출 4장 참조).모세가 하느님께 사명을 받는 이 사건에서 주목할 또 한 가지는 하느님께서 당신의 속마음을 털어놓으시는 이 대화를 통해 모세가 기도하는 법을 배우게 된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회피하고 이의를 제기하고 질문을 던지고 하는 가운데 하느님의 뜻을 받아들이게 됩니다. 이런 대화를 통해 마침내 “주님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에게 말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하여 말씀하시곤 하였다”(33,11)고 탈출기는 전하는데, 교리서는 이 대화가 전형적인 ‘관상 기도’라고 설명합니다. 관상기도란 나중에 자세히 설명할 기회가 있겠지만, 간단히 ‘사랑으로 가득 차 하느님을 응시하는 기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모세가 하느님과 직접 얼굴을 맞대고 대화를 나누듯이 관상 기도를 할 수 있었던 것은 또한 그가 겸손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그의 겸손에 대해 “땅 위에 사는 어떤 사람보다도 겸손하였다”(민수 12,3)고 전합니다.하느님과 얼굴을 맞대고 대화하는 이 친밀함으로 모세는 자신을 위해서가 아니라 하느님께서 당신 소유로 삼으신 백성을 위해서 용기를 내어 항구하게 전구의 기도를 바칩니다. 아말렉 족과 싸움에서 이기도록(탈출 17,8-16) 전구할 뿐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하느님께 변절했을 때 백성을 위해 전구합니다(탈출 32,1─34,9 참조). 그리고 하느님께서는 그의 기도를 들어주십니다. 이렇게 하느님의 부르심을 받아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의 종살이에서 구해내고 마침내 이스라엘을 하느님의 소유가 된 백성이 되게 한 모세의 기도는 “하느님과 인간 사이의 유일한 중개자, 사람이 되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완전하게 이루어질 전구의 놀라운 표상이 된다”(2573항)고 교리서는 설명합니다. 그래서 모세의 기도는 크게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모세의 기도는 “살아 계신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의 구원을 위하여 먼저 부르시는 것에 대한 응답”입니다. 2) 모세의 기도는 “유일한 중개자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의 기도를 예시한다”는 것입니다(2593항). 이창훈 기자 changhl@pbc.co.kr 평화신문2016.07.12

예수님은 정말 부활하셨을까 빈 무덤은 예수 부활의 증거다.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한 동굴 무덤 위에 지어진 ‘예수 무덤 성당’ 내부. 평화신문 자료사진 알렐루야! 예수 부활을 축하합니다.오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신 지 사흘 만에 부활하신 것을 기뻐하고 기념하는 ‘부활 팔일 축제’ 마지막 날이에요. 예수님께서 진짜로 부활하셨는지 어떻게 아느냐고요? 성경 속에는 주님 부활을 알려주는 여러 증거가 있답니다. 의심을 품고 있는 친구들을 위해 그 증거들을 하나씩 살펴볼게요.증거1. 빈 무덤제자들은 돌아가신 예수님의 시신을 거둬 깨끗한 아마포로 감쌌어요(마태 27,59). 그러고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신 곳 근처 정원에 있는 새 동굴 무덤에 예수님을 모시고, 무덤 입구에 큰 돌을 굴려 막아 놓고 갔답니다(요한 19,41-42).안식일 다음 날 동틀 무렵, 마리아 막달레나와 야고보의 어머니 마리아, 살로메는 예수님 시신에 향료를 바르기 위해 동굴 무덤에 들렀어요. 그런데 입구를 막아 놓은 큰 돌이 굴려져 있었답니다. 화들짝 놀라 무덤 안으로 들어갔을 땐 예수님의 시신은 온데간데없었어요. 그때 하얀 옷을 입은 사람이 “그분께서는 되살아나셨다”면서 제자들에게 이 사실을 전하라고 말했죠(마르 16,1-7).예수님의 부활을 직접 목격한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렇지만 빈 무덤은 여러 사람이 목격했지요. 심지어 예수님을 죽인 주동자들인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은 예수님의 시신이 없어졌다는 경비병들의 보고에 ‘제자들이 훔쳐 갔다고 소문을 퍼뜨려라’고 지시합니다(마태 28,11-15). 이는 수석 사제들과 원로들마저 무덤이 비었음을 인정했다는 것이죠. 부활하신 예수님의 동굴 무덤 위에 성당이 지어졌어요. 326년 헬레나 성녀가 봉헌한 ‘예수 부활 성당’(예수 무덤 성당)이 바로 그것이랍니다. 무덤 입구에 들어서면 작은 방을 먼저 만나는데, 천사들이 발현했다는 ‘천사들의 경당’이에요. 경당을 지나면 예수님 무덤이 나와요. 무덤에는 석관이 하나 놓여 있어요. 그런데 이 석관 속은 비어 있답니다. 증거 2. 예수님을 만난 제자들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후 여러 사람 앞에 나타나 돌아가신 다음 되살아나셨음을 직접 보여주셨어요. 먼저 예수님께서는 누군가 시신을 꺼내 간 줄 알고 걱정하는 마리아 막달레나에게 나타나셨어요. 예수님께서는 울고 있는 마리아를 위로하시며 “내가 아직 아버지께 올라가지 않았으니 … 형제들에게 가서, ‘나는 내 아버지시며 너희의 아버지신 분, 내 하느님이시며 너희의 하느님이신 분께 올라간다’고 전하여라”라고 말씀하셨어요(요한 20,15-17).예수님은 엠마오로 가는 두 제자에게도 나타나셨어요. 제자들에게 성경에 적힌 예수님에 관한 기록을 설명해 주시고, 제자들 집에 들어가 함께 빵을 나누기도 하셨어요(루카 24,13-35). 또 주간 첫날 저녁,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십자가에 못 박힌 흔적을 보여주시며, 그들에게 복음 선포의 사명을 부여하셨어요(요한 20,19-23).부활하신 예수님은 또 티베리아스 호숫가에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어요(요한 21,1). 이날 예수님께서는 직접 물고기와 빵을 요리해 음식을 마련하셨고, 제자들을 부르시어 함께 나눠 드셨답니다. 식사를 마친 예수님께서는 베드로 사도에게 “내 양을 돌보아라”고 세 번 말씀하시고는 “나를 따라라”고 하시며 특별한 부활의 증인으로 삼으시기도 했어요. 이날은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제자들 앞에 세 번째 나타나신 날이었어요. 이 사건을 기념해 예수님과 제자들이 만났던 호숫가에는 ‘부활하신 그리스도 발현 기념 성당’이 세워졌어요. 성당 제대 아래에는 커다란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예수님과 제자들이 음식을 나눴던 ‘그리스도의 식탁’으로 전해 내려온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만남 자체보다 예수님을 뵌 제자들의 변화예요.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기 전, 제자들은 유다인들이 두려워 문을 잠가 놓고 숨어 있었어요. 하지만 예수님을 만난 후, 제자들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밖으로 나가 사람들에게 예수님 부활을 선포하며 그리스도를 따를 것을 강조했어요. 예수님의 부활을 믿으며, 동시에 예수님처럼 인간 또한 죽음 후 부활하리라는 굳은 믿음을 갖게 됐답니다.아직도 예수님의 부활이 의심스러운가요?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바오로 사도가 이렇게 말하네요. “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 가운데에서 되살아나셨다고 우리가 이렇게 선포하는데, 여러분 가운데 어떤 사람들은 어째서 죽은 이들의 부활이 없다고 말합니까? ”(1코린 15,12) 백슬기 기자 jdarc@pbc.co.kr 평화신문2016.03.30